코로나 팬데믹의 경제적 충격은 세계적 규모로 정치경제 분야의 거대한 격변을 불러올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이번 위기가 앞으로 진행될 변화를 긍정적으로 가속시킬 것인지, 이에 부정적으로 작동할 것인지, 구체적인 사항에 들어가면 서로 입장이 갈라지고 있다. 특히 중국에 대한 전망이 대표적인 예이다.
현재 중국의 정치경제 상황에 있어서 가장 심오하게 진행되고 있는 핵심적인 변화는 1990년대를 이끌었던 ‘수출주도형 성장정책’에서 국내소비와 독자적인 기술개발 그리고 도시화를 추구하는 ‘국내자족형 경제모델’로 신속하게 이동하고 있는 점이다.
국내자족형 경제에 대한 방점은 이미 2010년에 시작되었지만, 팬데믹이 주는 충격에 의해 이동의 변화가 보다 분명하고 단호하게 진행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으며, 중국의 정치경제에 근본적인 전환이 가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 열린 전국인민대표자회의NPC에서 시진핑 주석은 새로운 모델에 대하여 소상히 설명하였는데, 다가오는 미래에는 국내의 수요를 기점으로 하여 이를 발판삼아 온전한 국내소비 시스템을 구축하고 자립적 과학기술과 기타 분야에 스스로 혁신을 더욱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발생초기 경제활동의 중단과 세계수요가 격감하는 이중적 어려움을 동반하면서, 팬데믹은 중국의 경제에 커다란 어려움을 안겨 주었다. 수출분야가 여전히 중국 GDP의 30%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탓에, 해외에서 발생하는 충격에서 중국을 방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수요가 증가하면서 이제는 내수가 성장의 가장 중요한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수출의존을 대신하여 국내수요가 성장의 일차적 동력이 된 것은 이미 십 년 전부터 일이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이러한 경향을 분명하게 가속시키고 있다. 팬데믹이 불러온 세계적 규모의 경제적 충격으로 인하여 중국의 수출에 대한 해외수요는 향후 2-3년간 회복되지 못할 전망이다.
이에 더하여 중국의 최대 무역상대국인 미국이 가하는 통상과 기술 전쟁 역시 장기적인 위험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 요인들로 인하여 중국의 지도부는 세계경제가 사분오열되고 반세계화가 진행될 것으로 어둡게 전망한다.
중국이 무역의존형 경제에서 오는 딜레마를 탈구하는 길은 2020년대를 통하여 ‘국내자족형 개발모델’을 추구하는 것이며, 최근 발표한 중국정부의 정책은 정확히 이러한 궤도수정을 반영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항목은 첨단기술 역량의 배양에 경제촉진정책(stimulus package)을 집중한다는 점이다. 향후 6년간 1.4조 달러를 투자하여 주요 기술분야에서 미국으로부터 독립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수립된 촉진정책에 따르면, 가능한 모든 부문을 무선네트워크와 빅테이타로 연결하고 인공지능과 시물인터넷을 공급 확대하는 동시에, 초전압 그리드망, 바이오기술, 초고속철도, 무인자동차 및 도시스마트화 등 첨단기술의 혁신에 박차를 가한다.
미국회사들의 협력없이 중국 내 주요한 민간기술의 거대 기업들인 Huawei, Alibaba, Tencent 그리고 SenseTime 등이 상기 혁신에 필요한 새로운 인프라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토목 위주의 간접자본 건설에 집중하였던 과거 방식와는 달리, 새로운 디지털 인프라 계획은 최첨단 기술의 개발과 세계최고의 기술수준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한편 인민대표자회의에서 승인하였듯이, 과거 형의 인프라에 대한 투자 건에 관한 것이다. 중국 중앙당국이 준비한 계획에 따르면, 중부와 서부지역에 투자를 집중하여 신재생 에너지, 사천성-티벳 연결철도, 원유와 가스의 지하저장시설, 새로운 산업단지 조성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새로운 서부개척(GO-West)정책을 실현하면서 핵심기술의 자급도를 향상시키고, 식량생산과 소비수요를 확장한다. 이는 시주석이 주도한 일대일로(BRI)정책이 어려움에 직면하는 것에 대한 대응책이기도 하다. 중국의 자금지원으로 진행되어온 많은 해외 사업의 수혜국가들이 심각한 경제적 불황에 직면하여 자금의 회수가 어려워지면서 현재로써는 BRI사업을 추가적으로 진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서부개발의 재개는 국제지정학적 고립이라는 위기를 상쇄시키는 여유를 제공한다. 중국의 서부국경의 개발은 국내의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투자를 진행하면서도 BRI사업의 동쪽 연결지점으로 유럽과 남동아시아 지역 등과 물류의 수송통로를 확장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결국 코로나 팬데믹과 미국과 점증하는 대결상황이 중국으로 하여금 정치경제적 변혁을 신속하게 가속하는 촉진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중국이 경제와 기술의 자급을 추구하면서 발생하는 변화는 세계정치와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던진 경제의 돌출적 위험을 경험하면서 향후 예후적 상황을 사전에 식별할 수 있게 되었고, 국내 고유의 자원과 수요에 의존하고 독자적인 혁신을 추구하면서, 중국은 향후 점점 심화될 탈세계화와 경제적 의존에서 발생하는 혼란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국제적인 가치(공급)사슬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에 대한 근본적인 논쟁을 유발한다. 만약 의도한대로 새로운 발전모델에 성공한다면, 중국은 더 이상 ‘세계의 공장’으로 역할의 비중을 낮추고, 서구 장상꾼들이 200년 이상 꿈꾸어 온 것처럼, ‘거대한 대륙 소비시장’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꿈을 깨라. 새로운 모델의 주요 목표는 외부의존의 위험성(취약성)을 줄이는 것에 있다. 지난 청조 말처럼 지구상에 가장 거대한 시장으로 변모하는 것은 실현될 수 있겠지만, 외국의 세력(장사꾼)들은 중국의 국경 밖으로 밀려날 것이다.
출처 : East Asia Forum in Sydney on 2020-07-02
Christopher A McNally
호놀룰루 Chaminade University 의 정치경제학 교수출신이며, East-West 연구센터의 책임연구원이다
현대철학은 니이체와 프로이트 및 마르크스으로부터 시작되는데, 니이체는 존재는 생성이다라고 선언하면서 서구의 존재론인 실체론을 폐기하고 생성론을 새로운 존재론으로 제시하였으며 프로이트는 인간을 이성적인 인식의 주체가 아니라 무의식의 지배를 받기에 칸트의 주체철학은 종말을 고했다고 선포하였으며 마르크스는 서구의 관념론을 거부하고 유물론적 변증법을 제시하면서 물적 토대에 대한 구조적인 변혁의 필요성을 설파하였습니다.
한편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마르크스는 토대인 생산양식의 혁명을 주장하였으며(마르크스는 혁명은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엥겔스의 객관적인 결정론을 버리고 토대의 모순이 극대화된 임계상황에서 정치적 의식화를 통한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의지가 고양되었을때 토대인 자본주의의 혁명이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 한편 후기 포스트모더니스트인 슬라보이 지젝은 상부구조인 이데올로기의 혁명을(대중의 계급의식이 소멸함에 따라 토대의 혁명은 불가능해졌기에 상부구조가 만들어낸 허위의식인 이데올로기의 혁명이라도 이루어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혁명은 토대와 상부구조의 동시적 변혁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결국 유와 무가 둘이 아니듯 불교의 중도사상과 양자역학 의 중첩성의 원리를 진리로 받아들인다면 어느 하나만의 혁명은 온전한 변혁이 아니기에 결코 그에 따른 희생에 비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한편 마르크스의 혁명이 종국에 실패한 것은 상부구조에 위치한 욕망의 상대적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단지 상부구조는 토대에 종속된다고 해석하였기 때문인데 이는 이분법적인 실체론에 입각한 유물론의 필연적인 결론이라 할 것이므로 욕망의 본성을 반영하지 아니한 새로운 생산양식의로의 혁명의 성공가능성은 애초부터 희박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토대에 대해 상부구조의 상대적 독자성, 즉 상대적 결정론을 주장한 발터 벤야민이나 조르주 루카치의 견해를 계승한 지젝의 상부구조의 혁명론도 현실적으로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결코 절반의 치유책에 불과하기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생존을 위한 대중의 기본적 욕망의 결핍을 대부분 해소하였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욕망의 절대적 결핍상태를 벗어나는 것을 넘어서서 자본이 자신의 확장 및 심화를 위하여 생산한 잉여욕망을 마치 본래적인 인간의 욕구인 것처럼 왜곡시켜버렸기 때문에 대중은 무한한 잉여욕망을 당연한 본성인 것처럼 추구하다보니 결핍에 따른 계급의식 또는 투쟁의식을 상실하였다할 것입니다.
따라서 자본이 만든 잉여욕망을 주입시키는 이데올로기(허위의식)를 못 벗어난 대중이 어떻게 이데올로기가 허위의식임을 깨닫고 이를 해체할 수 있을까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물론 이에 대해 진지전 이론을 개진한 안토니오 그람시는 전통을 옹호하는 전통적 지식인 대신에 유기적 지식인이 전선의 참호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드러내어 이를 해체하는 진지전을 펼침으로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국가나 자본을 해체하여 재구성 하자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하여 자본이 만든 잉여욕망의 노예로 전락한 대중보다는 깨어있는 유기적 지식인이 중심이 되어 이데올로기를 해체하자는 의미에서의 혁명이론운 제시한 그람시의 이론이 더욱 실현가능성이 있지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현실을 볼 때 지식인들은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 유물적인 심층분석 보다는 특정 정치집단이나 특정 진영의 이데올로기나 포플리즘의 전위로서 정치적 구호에 흡수되어 자신의 변혁적 역할을 방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착잡함을 금하지 않을 수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직도 한국사회를 진보 또는 보수의 이항대립적 대결구도로 해석하면서 피상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문제해결을 시도할 뿐 결코 한국의 국가재벌독점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에 대해서는 과감히 눈을 감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면 참으로 답답함을 금치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온전한 혁명은 상부. 하부구조의 동시적 변혁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보는데 언듯 이러한 생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바램이 아닌가 생각하기에 인간에게는 온전한 혁명은 이상적인 꿈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하는 좌절감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대중은 물론 지식인조차 자본이 만든 잉여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토대와 상부구조를 변혁할 선구적 대안을 제시하는 지식인의 지혜와 토대를 변혁할 대중의 결집된 주체의식과 투쟁의지가 가능하지 않다고 보게 되는 것이며 나아가 이들을 전위에서 창도하고 대안을 설계할 수 있는 유기적 지식인도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인간은 결국 토대와 상부구조를 주체적, 자발적인 혁명에 의해서는 불가하므로 결국 외부적 사건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라고 슬프지만 어쩔 수없이 추단해봅니다. (그나마 한국사회의 시민운동은 정치권력, 경제권력과 사회 권력에 대해서 저항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시민사회의 독립성과 자구성을 확보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시민운동이 시민단체운동으로 협소하게 왜곡되어버리고 그나마 시민이 아닌 실무자 중심의 운동으로 전락해버렸으며 그 결과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면서 시민운동을 한 단계 레벨업을 시키기보다는 대부분이 정치운동으로 흡수되면서 결코 시민운동과 주체는 물론 목적과 작동방식이 다른 정치운동의 하부구조로 전락해버려 시민운동의 존재의미마저 의심받는 처지에 몰리게 되었기에 이제는 시민운동에 대한 기대마저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면 페스트에 의해 중세가 몰락하고, 세계대전에 의해 근대가 몰락한 역사가 반증하고 있듯이 현대 산업화의 모순에 따른 인간사회의 불평등과 지구적 차원의 파괴도 인간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서는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라는 회의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하여 이번 코로나 팬더믹 사태가 인간의 생존방식과 생산양식의 변환을 가져올 사건, 즉 알랭 바디우의 진리사건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따라서 데리다의 ‘부재의 진리’를 찾는 노력도 우리에게 그나마 혁명의 당위성을 가르쳐주고 있읍니다만 이 또한 관념적 철학자의 현실불가능한 꿈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래도 지젝은 불가능에 도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만.
그러나 여기서 고민해야할 문제점은 현재의 생산양식이 가지고 있는 모순은 다른 생산양식으로 대체해야 할만큼 치명적인 결합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수정자본주의 또는 사회적 복지국가를 통하여 이미 자본주의 모순을 완화시켜왔기에 다른 보완재로 치유가 가능한 것인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기본모순인 계급모순외에 한국만의 독특한 재벌자본주의에 따른 독점모순과 나아가 신자유주의에 따른 불평등 모순 및 기타 부가적 모순인 분단모순 및 지역모순 등을 열거할 수가 있는 바, 과연 그러한 모순들이 한국사회 시스템으로 하여금 정상적인 방법으로 치유불가능한 치명적 상황을 만들었기에 대체재가 필요한 임계상황인지 아니면 재정비하거나 보완하는 차원으로 치유가 가능한 상태인지를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으나 어떤 결론이 나던지간에 이들을 치유하는 방식은 결국 구조적인 접근방식으로 분석하고 해답을 내놓아야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사 진보정권이라하여도 지금껏 계급과 계층 및 집단을 망라하여 한국사회 모순에 대한 구조적인 진단과 근본적인 치유책에 대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해집단을 초월하여 진지한 연구와 성찰과 변혁의지가 부재한 실정이었다고 생각하기에 긴 안목으로 한국사회를 구조적으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과학적 자세를 갖춘 열린 대중과 유기적 지식인의 참여와 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3차 세계대전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는 가운데, COVId-19가 갑자기 돌출하여 현하 인류는 WWC(World War Coronavirus)를 수행하고 있으며, 인류역사에서 단일한 사건으로 전세계를 가장 황폐화시키고 있다.
온 세계가 전쟁을 수행 중이다. 그런데 이번 전쟁은 대부분 사람들이 예측했던 제3차 세계대전의 시나리오, 즉 미국과 이란 또는 인도와 파키스탄 혹은 러시아와 유럽에서 촉발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인지하는데 너무 늦은 상태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로 우리를 위협하며 이론적으로는 인류 모두를 감염시킬 수 있는 전쟁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필자는 이를 코로나세계전쟁, WWC(WorldWarCoronavirus)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세계가 어느 떄보다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세계화의 시점에 발생하면서, 인류역사상 단일한 전쟁으로 세계를 가장 황폐화시키고 있는 사건이다.
아시다시피, 우리 삶의 방식이 한 순간에 근본적으로 바뀌면서 이제 좋든 싫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전쟁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과거의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WWC가 언제 끝날지 현재 시점에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지난 몇 년간 진행된 신냉전이 전례가 없는 조건들과 만나면서 국제관계 시스템이 변해갈 모습을 예측하는 것은 어는 정도 가능하다.
세계체제에 대한 주도권을 향한 미국과 중국 간의 국제적 경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경쟁관계가 최소한 향후 수십 년간의 세계정세를 주도하여 갈 것이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인민공화국은 WWC로 인한 초기의 살벌함과 완전봉쇄의 상태를 벗어나 회복단계에 들어섰고, 지난 몇 개월간 겪은 소중한 경험을 기반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다른 나라들을 도와주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주도권에서 상대적으로 매우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필자가 다른 칼럼에서 ‘중국이 COVID-19로 부터 세계를 구하고 있다’고 지적하였지만, 사실은 미국이 중국을 돕지(방치) 않는다면 진정한 구원자가 될 수 없다. 세계를 향한 중국의 의료와 인도주의적 지원이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급격히 향상시키고 있고 세계경제가 중국의 도움을 받아 회복되면서 경제적 역할도 확대되겠지만, 미국이 일단의 싸움도 없이 호락호락 체제의 주도권을 넘겨주지는 결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과 중국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싸우는 물리적 전쟁에 돌입한다는 뜻이 아니다. 미국이 국내적인 상황을 수습하면 곧바로 주도권 경쟁에 뛰어들 것이라는 의미이다.
미국이 우선의 조치로 취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은, 현재 진행 중인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강력한 경제의 종합적인 회복정책과 실제적인 비상법안의 조치(martial law)를 취할 것이고, 이후에 G7과 연대하여 서방경제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한 해법을 추구할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세계경제의 근본적인 토대가 영원히 변할 것이지만, 새로운 체제가 여전히 비대칭적으로 미국에 의해서 주도될 것인지, 또는 중국의 힘이 보다 강력하게 작동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소위 트럼프주의자들은 세계화의 유지에 격렬히 반대할 것이고, 반면에 중국의 현재 WTO시스템과 유사한 것을 선호할 것이다.
새로 형성될 시스템은 정치적 결정에 따라 위로부터 이루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WWC로 인해 국제적인 공급사슬의 취약점이 드러나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약품과 의료기자재들을 제3국에서 생산하는 위험이 강조되면서, 일대일로를 추진하면서 세계화를 옹호해온 중국의 선호에 장애물이 발생하였지만, 중국은 여전히 이는 역사적 발전에서 불가피한 모델로 남반부의 개발국가들에게 더욱 유리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동안 세계화는 남반부 국가들에게 불평등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반면에 트럼프는 손가락을 한번 까닥여서 지난 수십 년의 기간 동안 외국에 수조 달러를 투자한 세계화의 시대를 순간에 끊어낼 수는 없다. 수많은 기업들이 자국의 국경을 넘어서 외국에 생산거점을 형성해 왔고,. 특히나 세계의 공장(중국)이 회복되면서 위기 이전의 투자자산을 보호하고 있고 전세계로 지원을 확대하는 등 기존의 시스템을 지속하는 것이 유리한 집단(기존 투자자)에게 이익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WWC는 궁극적으로 거대한 블랙스완(예상치 못한 사건)이며, 덜 중요하고 충격이 적은 다른 블랙스완을 연쇄적으로 만들어 내면서, EU 회원국가 중 주요한 경제권의 붕괴나 남반구에 속한 취약한 국가들의 실패를 야기할 것이다. 이로써 국제적 갈등의 방정식이 만들어 지고, 미국과 중국이 결과에 직간접적인 미치는 수준에 의하여, 진행되는 각본을 악화시키거나 혹은 방지하는 등식의 과정에서 궁극적인 게임-체인저가 결정될 것이다.
“알 듯 모를 듯” 그리고 ‘전혀 모르는”의 두 가지 진부한 신호의 위기 속에 해당국가의 전략가들은 전자의 신호를 예측하면서 전개될 도전에 사전적으로 준비하도록 도움을 제공할 것이고, 앞으로 무슨 일이 발생할 전혀 알 수 없는 후자에 대응하여 가능한 기술적인 실험을 준비할 것이다.
일상적 관행에 익숙한 인류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누적된 정보’와 ‘미래에 전개될 내용을 예시하는 데이터’에 의존하여 두 개의 카테고리(예측가능성과 불예측성)로 구성되는 미래를 파악하고자 노력하는 일이다.
‘알 듯 모르는 미래’의 실례는 이란의 탄력성 여부로, 이란 정부는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현재의 위기로부터 자신을 구하려고 노력 중이다. ‘알 수 없는 미래’는 잠재적인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또는 종교적 성향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가운데, 세계로 확대되어 직접적으로 새로운 세계질서를 형성하거나, 주요 행위자에 대하여 비대칭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경우가 된다 (혹은 주요 행위자에 상대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덜 미칠 수도 있다).
WWC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제치면서, 모든 영역에 모든 사람들에게 예상하지 못한 변화를 초래하고 살아가는 방식과 더불어 새로이 전개된 세계질서를 감성적으로 중요하게 받아들이게 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듯이, 다만 미국 또는 중국이 완전히 붕괴하는 것을 의미하는 ‘알 수 없는 미래’는 배제하고, 하나의 고정상수는 논쟁의 여지는 있겠지만 WWC 이후 형성될 세계체제의 주도권을 위하여 현재도 격화되고 있는 신냉전의 싸움을 지속할 것이라는 것이다.
우선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COVID-19 라는 보이는 않는 적과 싸움을 잘 수행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세계경제의 모델(질서)에 관한 미국과 중국 간의 대결이며, 이는 양국 간 싸움의 결과로 귀결되어 형성될 국제정치의 모습에 기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진행 과정에서 필자가 예측하는 미래의 시나리오라는 온전한 밑그림을 급작스레 뒤흔드는 수많은 잠재적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 물론 필자가 모든 부문을 구석구석 확인하여 그림을 그리기에는 아직 너무나 이르고, 설령 현재 밑그림을 그려낸다 해도 모든 것이 순식 간에 급격히 변해 버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기의 분석이 당분간 어느 정도 역할을 한다는 점에 만족하고자 한다.
출처: OneWorld via Global Research, 2020-05-25.
Andrew Korybko
미국인으로 모스코바에 체류하면서 미국의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정책, 중국의 일대일로 그리고 하이브리드 전쟁 등을 중범으로 기고할동을 하고 있다.
북한이 개성에 있던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자, 미국 우익의 주류언론들이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북한에 대한 온갖 거짓 기사들을 조작하여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미국내의 진보적인 평론가가 비판하는 글을 번역하여 소개한다.
북한은 미국에 의해 수도 없이 협박당하고 공격을 받고 있는 국가들 중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보수매체들의 끊임없는 거짓말과 사기로 조작된 역사의 논리에 빠져,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거꾸로 북한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는 전(全)역사를 통하여 결코 사실이 아니었고 지금 현재도 사실이 아니다. 중국, 이란, 러시아 그리고 북한, 이들 어느 국가들도 미국을 위협하지 않고 있다.
미국당국과 주류매체들은 반미적인 자주독립 국가들에게 그러하듯이,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발을 계기로) 반북선전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의 소리(VoA)는 지난 목요일 다음과 같이 거짓 주장을 떠들고 있었다 “….. 북한은 남한에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sic).”
북한이 서울당국과 전화선을 끊고 자신의 지역에 있는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키며 강경의 대치상태로 돌아간 것은 미국과 문재인 정권과 화해하려던 온갖 신뢰적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에 대한 좌절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폼페이오와 불턴 등 트럼프 주변의 호전적 강경론자들은 트럼프-김정은을 희롱하며, 양국 정상의 회담(하노이) 과정에 수용할 수 없는 요구조건을 제시하여 빈손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VoA는 국제정세의 이슈에 대해 수도 없이 거짓말을 해오면서 당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헤드라인을 조작했다 “북한은 오랫동안 긴장과 도발을 강화해오면서 남한에게 경제지원과 양보를 받아내려고 하였다.”
뉴욕타임즈 역시 모든 나라와 안정과 협력을 기본원칙으로 하는 북한에 대해 “김정은은 남한에 대해 적대적이며, 호전적인 행동과 군사적인 도발을 반복하면서 취약한 평화의 유지를 깨뜨리려고 협박하는 인물이다”라며 거짓말로 혹평을 가했다.
북한정권이 성립한 이래 단 한번도 미국과 서방 그리고 남한 정부가 화해를 요청한 적이 없다 – 단지 일시적으로 관계가 개선되는 기간이 있었을 뿐이며, 이마저도 미국의 표리부동한 행동으로 지속되지 못했다.
거짓말과 사기극은 워싱턴 당국과 서방측에서 만들어 왔으며, 미국은 평양이 아니라 서울당국에게 지속적인 압력을 가해 왔다.
복한에 호전적인 워싱턴포스트지는 2018년 국제인권자료(global slavery index)를 인용하여 “2.6백만 명의 북한주민이 노예상태에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북한정권에 의해 강제노동을 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상기 자료는 호주의 광산재벌인 Andrew Forest와 그의 부인인 Nicola가 세운 소위 Minderoo 재단에서 발표한 것인데, Nicola는 지독한 백인우월주의자로 악명이 높으며 호주 인권조직단체에서 활동하는 Tony Maurice의 딸이다.
소위 국제인권자료는 미국과 서구 사회에서 수천 만 명이 최저생계비 이하의 임금으로 살아가며, 이들 대부분은 불안정한 임시직종에서 일체의 사회적 보장혜택을 받지 못하는 조건에서 착취당하고 있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북한을 이웃인 남한에 도발적이라’고 보도하면서도 미국이 자신을 한번도 협박하지 않은 국가를 75년 동안 적대하여온 사실은 무시하고 있다.
폭스 뉴스는 의심스러운 출처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북한이 오는 11월 대선과정에 미국을 공격할 것 같다”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뒤를 이어 소위 김구=한국재단(Kim Koo-Korea Foundation?- 아마도 탈북자 단체인 듯)은 북한을 미국의 종속국가로 만들고 싶어한다고 보도하면서, 이 조직의 북한 전문가라는 이성희의 말을 인용하여 구체적인 자료도 없이 “북한은 미국의 선거시스템을 해킹하여 무력화시킬 수 있는 자신들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자 하며, 그들의 주적인 미국에 심리전을 펼치는 등 정치적 압박을 증대하려 한다”는 것이다.
나가서, 이는 ICBM 혹은 핵실험처럼 연속적인 도발을 강화하고자 북한의 기획된 전략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워싱턴에 소재하고 있는 이슈발간의 One그룹은 “미국의 선거를 위태롭게 만드는 외국의 조작된 간섭을 주장하면서 ‘미국을 혼란에 빠뜨리지 말라’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미국의 역사에서 이런 일은 결코 없었다 – 오히려 반대로 미국이 외국의 선거를 개입하고 조작하여 친서방 정권이 권력을 장악하도록 여러 번 시도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북한이 미국 선거에 개입해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무엇이란 말인가? –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북한의 입장은 “장기간 지속되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여 보다 신뢰할 수 있는 군사력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는 모든 주권국가들이 당연히 해야 할 자주방위권에 해당한다. 호전적인 것은 미국과 서방이 시도하는 방식일 뿐이다.
미국은 두 개의 진영을 나뉘어 있는 일당 독재의 국가이다. 양당의 입장은 주요 국내 현안들과 국제정치 이슈에 관하여 실제로 오십보 백보의 수준이다. 이들은 북한을 포함하여 미국의 정책에 순종하지 않는 국가들에게 항구적인 적대정책을 펼친다.
실제로 미국의 국가안전을 위협하는 외국의 위협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짓으로 조작해내어 수 조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비용을 군사주의와 끝나지 않는(endless) 예방전쟁에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다른 국가들과 우호적이며 협력적인 관계를 희생시키면서 진행하고 있다.
미국의 방식은 적국뿐만 아니라 동맹국들조차 지배하고 통제하는 것 – 온 세계가 자신의 의지에 굴복을 요구하는 것이다. 세계가 간절히 희망하는 평화, 평등, 정의 그리고 합의에 의한 질서를 무시한 끝없는 군사주의와 호전성이 미국이 지닌 처방전이다.
베트남 북부와 가까이 위치한 하이난 섬의 총면적은 33만 평방킬로미터로 경상남북도를 합한 면적보다 조금 작고 제주도의 18배에 달하는 광활한 지역이다. 인구는 8-9 백만명으로 상대적으로 조밀하며, GDP는 일인당 2019년 기준 약 9천불 수준이다.
하이난 성의 수도인 하이코우 시의 모습
지난 주에 중국정부는 하이난(海南)성을 자유무역항(FTP) 지대로 만드는 종합계획안을 공개하면서 기존의 아열대 관광지역을 두바이와 싱가포르와 어깨를 겨누는 국제적 중심지로 개발하려는 60여 조치를 제시하였다.
특별정책들을 포함한 패키지는 3단계로 나뉘어, 2025년까지 무역과 투자의 자유항으로 개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2035년까지는 이를 완숙한 단계로 이끌며, 2050년에는 명실상부한 국제적인 거점으로 만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향후 15년의 개발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이미 해당 지방정부의 관리책임자들을 두바이와 싱가포르에 파견하였고 이들을 성공시킨 자유무역의 규정들을 연구하도록 독려하였다.
하이난 지역을 중국의 새로운 자유무역과 물류의 중심으로 개발한다는 정책으로 의료, 바이오텍, 교육, 오락 그리고 금융서비스의 혁신 등 분야에 외국투자자들의 문호를 즉각적으로 개방하는 조치를 가져올 것이다.
하이난 지역은 등소평 시절부터 중국지도부에 의해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고려되어 왔으며, 이미 1988년에 중국의 가장 작고 가장 남부에 위한 성省급 지역으로 선정되었고, 2018년 4월에 시진핑 주석은 이 섬지역을 중국의 최대자유무역지대(FTZ)으로 선언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에 발표된 FTP종합계획은 2018년의 FTZ의 구상보다 훨씬 규모가 크며 거대한 청사진의 포부를 담고 있으며, 수출입에 대한 관세의 면제를 넘어서 투자와 자본의 흐름에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한다.
국제적 금융활동에 있어서, 세금은 투자와 자본의 흐름에 중추적 역할을 하며 지역을 소비와 인재, 투자와 사업에 매력적인 지역을 전환시키는 축으로 기능한다.
두바이와 싱가포르가 수십 년에 걸쳐 부유하고 번영한 지역으로 발전한 것에는 사업과 개인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소득세가 낮은 배경이 있으며, 이러한 배경의 연구를 통해 하이난 지역에 주거하기에 편하고 사업을 번창시키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능력있는 인재들의 개인소득세과 기업들의 법인세를 최대 15%로 제한하도록 결정한 것은 하이난을 국제적인 조세피난처에 견주는 지역으로 보장하려는 노력이다.
하이난의 전략적인 입지는, 한편에서는 광동성과 인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홍콩과 나란히 위치하여 중국의 접경지역을 확장하고 본토와 Greater Bay(광동-홍콩-마카오) 지역을 동남아 국가들과 연계하면서, 남반부의 여러 나라들과 무역 등 다양한 협력을 도모하는 관문關門으로 자연스러운 역할을 맡게 한다.
아열대적인 기후는 싱가포르를 대체하며 국제적인 정치 및 경제 이벤트를 개최하는 지역으로 매력을 가지게 할 것이다. 이미 지난 세월 유명 관광지로서 해변가 주변에 리조트와 5 성급의 호텔 등 인프라가 잘 조성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Dalian(대련)이 ‘여름의 다보스’로 불리듯이, 중국은 하이난 개발을 통하여 또 하나의 국제적인 지역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며, 주요한 국제행사를 유치하는 것과 더불어 국제관광 도시로서 소비진작과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이미지와 영향력을 강화하는 게기를 마련하게 된다.
중국당국의 하이난 개발결정은 Greater Bay(광동-홍콩-마카오) 지역과 연계하여 국가의 경제를 더욱 확장시키는 현명한 방향의 움직임이다. 국가를 국제사회에 더욱 개방하려는 견지에 비추어, 하이난 지역을 경제와 정치가 하나로 융합되는 왕관의 보석으로 선정 개발하면, 이 지역을 외국투자가 자연히 이루어지는 국제적 센터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출처: CGTN, 2020-06-06.
Matteo Giovannini
이탈리아 경제개발부의 중국담당 주요 맴버이자 중국상업은행의 재정분야 전문상담가
보충자료 –
중앙정부의 지원과 다양한 정책을 구비한 개발제도의 도움으로 하이난 성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우선 무엇보다도 제조업, 수송차량, 원자재, 소비재 등 분야에 대한 수출입 무역에 관세를 면제받게 된다. 이로서 자유무역이 상당한 수준으로 촉진될 전망이다.
다른 한편으로, 하이난 지역은 국제적인 관광과 하이테크를 위한 단지조성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중앙정부의 정보분야 위원회(council info office)는 세계경제의 미래전망은 하이테크 개발에 맞추어 있다는 판단과 하이난 지역이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지역이 아니었다는 현실을 감안하여, 향후 개발은 관광과 서비스 산업, 그리고 하이텍 분야를 유치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분야에 우호적인 정책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예를 들어 상기에 언급한 산업분야의 기업들은 본토의 기업들에게 적용하는 법인세 중에 가장 낮은 15%의 세금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중국본토의 소비자들에게 적용되어온 면세금액 3만 위엔의 혜택을 10만 위엔까지 확대할 것이다. 많은 중국인들이 면세가 적용되어 국제적인 소비재가 저렴한 홍콩을 관광하며 소비를 맘껏 즐겨왔듯이, 이제 하이난 섬도 같은 매력을 갖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계획에 의하면 재능있는 국제적인 인재들에게도 혜택을 부여한다.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개인들은 본토의 개인소득세 한도인 45%보다 30%를 낮춘 최대 15%의 한도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이는 홍콩보다도 2%가 더 낮은 수준이다. 이로써 자유무역지대는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뿐만 아니라, 재능과 기술과 경험을 갖춘 인재들을 불러모을 것이다.
하이난 자유항을 개발하면서 세계무역과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싱가포르와 홍콩의 성공을 따라 배울 것이지만, 하이난은 자신의 독특한 입지와 구상을 통하여 두 도시들의 정책을 단순히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만의 모습을 만들어 갈 것이다.
싱가포르와 홍콩이 성공한 배경은 단순히 지정학적 이점과 무관세정책 또는 매력적인 세금혜택뿐만 아니라, 중국 본토가 흉내낼 수 없는 역사적이고 제도적인 근거가 있다. 예를 들어 홍콩은 중국본토와 세계를 연결하는 핵심적인 역할이라는 장점을 통하여 놀라운 경제적 성장을 이루어 냈다.
따라서 하이난의 자유무역항 개발의 과정을 통하여 책임을 지고 있는 성省당국은 자신들의 입지와 중국의 사회경제적 현실과 조화를 이루어 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개발계획서에서 하이난 자유무역항은 중국적 특색을 지녀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하이난이 앞선 두 도시보다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뜻은 아니며, 성공여부를 가르는 핵심은 사업하기에 매력적인 환경을 만들어 내느냐에 달려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곳에서 사업하는 것이 매력적이고 편해야만 한다. 하이난이 이것을 제공할 수만 있다면 미래는 보장된 것이다.
미국이라는 합중국은 출발부터 문제투성이였다. 스스로 자국시민들에게 권리와 자유를 부여했다고 자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량학살과 노예제도 위에서 건국되었고, 이러한 과거의 죄업들을 제대로 청산한 적도 없다. 세대와 세대를 이어오면서 질문은 계속된다 – 누구를 위한 자유이며 누구의 권리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대륙을 약탈하여 국가를 세운 건국의 이주민(약탈자)들은 적시의 적소에 나타난 것이다. 이들은 당시 온갖 종류의 전쟁터가 되었던 유럽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광대한 수림, 향해가 가능한 넓은 강, 비옥한 토양, 석탄과 오일 그리고 가스 등 풍부한 광물자원들이 넘치는 지리와 역사를 누리는 행운을 가졌다.
그 결과로 한세기 반 만에 엄청난 부을 축적하고 산업화를 이루면서 세계 주도권을 갖게 되었다. 미국은 세상에 과잉소비라는 마법의 공식을 가져왔고 이를 온 세계에 퍼뜨렸다: 값싼 에너지+광고+신용(부채)제공은 끝없는 상업적 성장과 고용과 세금과 투자수익을 가져다 주었고, 풍부한 자원들이 에너지와 기술과 자본의 투자 그리고 노동력을 통하여 전례가 없는 속도로 엄청난 규모의 부로 전환되어 축적되었다.
20세기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미국의 시대이었다. 미국과 멀리 떨어져 진행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달러는 기축통화가 되었고 누구도 이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워싱턴의 미국 정치인들은 국가를 사례의 원칙에 의해서 통치한다고 주장하였지만, 미국의 지배에 저항하는 나라들은 CIA가 배후조종하는 쿠데타와 침공 또는 경제적 제제를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금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빛이 분명하게 약해지기 시작했다. 첫 징후는 지난 세기의 60-70년대 의미없는 베트남 침략에서 나타났는데 이로 인하여 국가가 분열되면서 문제가 발생하였고, 원유생산량이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리차드 닉슨은 아프리카-츨신의 미국시민들을 약화시키고 감옥에 가두기 위해 마약과의 전쟁을 기획했다. 1980년대에 시작된 금융우위정책은 미국을 2개 층의 카지노 판으로 변모시켰다. 부유한 소유계급들은 불만이 전혀 없었고, 가난한 계급은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었다. 계급으로 분리시켰다.
언급할 가치도 없이 값비싼 대가의 전쟁(중동개입)을 조지 부시 시절에 치렀는데, 무식하지만 돈많고 명랑하지만 말을 더듬는 촌놈이 졸지에 집안의 배경과 대법원의 도움으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것이다. 부시의 퇴임시기가 세계의 원유생산량이 한계에 이르고 주택시장의 대출거품이 터져 나오는 시점과 겹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 치명적인 어려움을 간신히 피해 살아 남았다.
부시의 후계자인 버락 오바마는 이 모든 혼란을 수습하는 책임을 맡게 되었다. 그는 매우 지적이었고, 수완이 좋았으며 호소력이 있었다. 더구나 그의 연설은 가치에 호소하면서 미국인들을 단결시켰다. 그러나 그의 당선으로 미국의 경제, 군사, 보건 그리고 환경정책 등이 크게 변할 것으로 기대한 진보그룹의 희망과는 달리, 오바마는 미국의 현안을 돌파하지 못했고 의지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그의 재직 당시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가 노동자들을 궁핍으로 몰아가면서도 유한의 투자계급들에게 엄청난 보상을 몰아주는 것을 막지 못했다.
투기꾼들은 흥청망청하게 제공되는 구제자금으로 엄청난 일들을 진행할 수 있었다: 후레킹의 열풍이 불어왔고, 소수의 흥분한 기업들이 북부 다코타, 텍사스, 오클라호마 등지의 세일 유정에서 매일 수백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실상은 채광업자들과 투자자들에게는 별 이익이 돌아가지 않았다. 이는 마치 피라미드의 게임과 같았지만 다행히 유형적 생산물이 손에 잡히는 사업이었다. 이로 인해 기존 원유생산의 한계(peak of oil)는 다시 미루어 졌고, 미국은 이제 세계최대 원유생산국가가 되었다.
오바마의 시절에는 또한 social-media가 거의 모든 미국인들의 생활 속에 확산되면서 주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편리하고 중독성이 강하며 수익성이 높은 디지털산업의 기업들이 통신에 재미를 보태면서 미국이라는 국가의 전반적인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이들 기업들은 사용자들에게 엉터리가 만든 조작이라도 한번 믿으면 그것에 빠지도록 유도하였다.
2008년에 유럽의 한 지인이 내게 묻기를, 미국이 아프리카-혹인 출신 대통령을 가지게 된 것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고 물어 왔다. 나는 답변하기를 나의 조국 내에 팽배하여 꺼질 줄 모르는 인종차별로 인해 누구인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했다.
8년 뒤에 재수없이 도날드 트럼프라는 작자가 나타나서 ‘버락 오바마는 케냐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는 황당한 내용을 퍼트렸다. 트럼프의 심리 – 과대망상증, 집중력과 애정의 결핍, 자신의 불만을 극적으로 표출하는 성향 등에 대한 많은 글들이 이미 출판되었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의 경악할 조치들에 대한, 예를 들어 환경규제의 철폐, 헌법이 규정한 합의와 견제 기능의 무력화, 그리고 미국의 국제적인 위상을 무너뜨리는 결정들에 대한 보고서들이 터져 나왔다.
불가피하게 여론의 다수는 트럼프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대응은, 정부를 보다 능력있게 운용하겠다는 식의 재선 캠페인을 벌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로운 논쟁을 벌려 나라전체를 분열시켜서 오는 11월 선거의 결과를 장악하려는 분명한 의도로 국가를 분노와 정치적 혼란에 빠뜨리려고 한다. 이런 혼란은 1960년대에 있었던 일련의 암살사건들(JFK, MLK, RFK, Evers, Malcolm-X)로 인한 도시의 폭동과 격돌 이후, 어쩌면 남북전쟁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하나 더 있다 – 팬데믹 사태.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사태의 돌출은 이미 공공보건의 전문가들이 경고하였듯이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미국이 극도로 분열되고 서로가 불신상태에 빠진 시점에 버그처럼 터져 나온 점이다.
논쟁은 있겠지만, 연방정부 지도력의 부재로 선진국가 반열에서 가장 취약한 대응을 하면서, 미국이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에서 세계를 압도하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 신속하고 협동적으로 대응하여 바이러스를 제거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가운데, 트럼프가 지도하는 미국은 뒤뜰거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극단의 혼란 속에 빠졌다. 얼굴에 마스크를 해야 하는지 결정을 못하는 것은 차리라 사소한 실책이고, 국민의 절반 가까이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고집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팬데믹으로 인해 경제적 불황 속에 엉망진창이 되었으며 전례없는 실업률과 광범위한 파산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에 예상을 뛰어넘는 관대한 지원조치에 힘입어 주식시세는 회복되어 고공을 유지하고 있다.
국가라는 육체적 정체政體가 치명적인 질병에도 불구하고 수수께기처럼 버티고 있었다면, 인종차별이라는 암이 갑자기 전이되어 나타났다. 무기도 없는 흑인-미국시민을 경찰이 살해한 것이다. Jim-Crow(흑인분리)법이 작동하던 수십 년(1876-1965)동안 자행되었던, 린치, 범죄 그리고 공권력이 배후인 기금지원프로그램으로 백인시민을 높이 받들고 흑인시민을 낮게 취급하던 관행이 이제 증오와 공포를 담아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격한 감정들이 폭발하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는 타는 불에 기름을 붓는 반응을 보냈다 ‘약탈이 시작되면 사살도 시작된다’ – 이는 악명이 높았던 마이애미 경찰국장 Walter Headley라는 자가 사용했던 바로 그 문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의 시위대들 대부분은 나이와 피부색을 막론하고 평화로운 행진을 유지하며 오는 11월의 선거를 앞둔 국가의 정치적 앞날을 염두에 두었다. 전체주의적 정권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일단의 독재로 향하는 국면에서 먼저 민주주의를 핑계로 삼았으며 일단 독재가 시작되면 이를 중단시키기가 어려워 진다. 독재를 중단시키는 유일하고 강력한 힘은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의 시위에 참여하여 저항하는 것이다.
지난 며칠 간의 시위는 특별히 트럼프를 목표로 삼지는 않았지만 시민들은 오랫동안 속을 끓였던 그와 그가 자행한 모든 행태의 백인우월주의와 제도화된 인종차별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에너지로 분출되어 나오는 것이 분명하다. 이제 군대의 지도자들이 공개적으로 트럼프에게 제동을 걸고 있다. 이런 사태의 추이를 감안해 보면, 트럼프에게 집중된 권력은 장기간에 걸쳐 심각하게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항의시위는 시민 대다수가 자랑스러워할 만큼 열정적으로 진행되었고, 아주 짧은 시간에 (트럼프의) 몇 번의 예공을 피했다. 트럼프의 독재가 퇴조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에는 팬데믹의 즉각적인 위협도 줄어들고 있다. 사업들은 재개되고 음악회와 스포츠 행사가 일정을 준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상태로 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여전히 시기상조이며 근본적으로 비현실적이다. 새로운 행정부가 내년 초에 들어선다고 가정하더라도, 미국은 이미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해체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비전통적인(후레킹) 원유생산은 이제 한계에 도달하여 급격히 퇴조하고 있으며, 2007년 때보다 규모가 커진 부채의 버블은 곧 터져나올 것이고, COVID-19는 반복적인 돌출을 통하여 인구를 감소시킬 것이다. 동시에 미국이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기후위기의 사건들이 다음 차례의 등장을 대기하고 있다. 조만 간에 해수면이 높아지고 산불폐해가 심각해지며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면서 폭풍우를 동반할 조짐이다.
짧게 말하면, 미국은 패권의 조락기에 들어서 있으며, 이는 세계의 질서를 제대로 유지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지난 5월말에 트럼프가 백악관의 지하벙커에서 움츠리고 있었다는 상징적 사건이 매우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향후에도 미국이라는 국가가 합중국으로 지속될 것인지 묻는 질문은 차라리 합리적이다. 연방정부가 당면한 주요 문제들을 해결하는 점차적으로 무능함을 드러내 왔는데, 백악관에 새로운 얼굴이 들어선다 해도 이러한 상황의 추이를 역전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현재의 팬테믹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태평양연안 북서부, 대륙중부 그리고 북동부 지역들이 서로 연합하였듯이, 향후 필요에 따라 주정부들은 분권적 전략을 추구할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Gavin Newsom이 ‘주단위 국가, nation state’라고 호칭하였지만, 현재로서는 주단위 정부들이 재정적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아, 경제적 불황의 충격을 견디어 낼 수 있는 만큼의 대규모 적자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한 목적으로 돈을 발권하고 대출을 집행할 수 있도록 주정부 산하의 은행들의 역할을 차선책으로 검토될 수 있다. 그러나 주정부로 권한을 이양하는 것만으로는 미국 전역의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도시와 농촌간 그리고 경제적 인종적 정치적 편차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법률적으로 합중국으로 남을지 여부가 현재의 미국 국민들과 후손들이 자신들을 미국인(또는 미국에 속하는 지역단위)이라고 확인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필요에 의해서 이들은 과소비를 축소하고 보다 분권화된 삶으로 적응해 갈수 있어야 한다. 특별히 개별적이고 가족중심적이며 지역의 자치권회복에 주도적 행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미국이라는 제국의 해체되는 과정이 살아가는데 이득이 될 수도 있지만 이를 즐기기에는 넘어야 할 어려움(rough seas)이 기다리고 있다.
욕망, 지나친 과소비, 인종차별, 그리고 제국주의적인 야심들이 우리조국의 운명을 지배하여 왔다. 한나라의 시민으로서 조국이 미래를 향해 전진하길 원한다면, 우리를 단결시키는 기초적인 가치인 근면, 절약, 관용, 공정, 정직, 성실, 그리고 상호존중 등을 추구해야 한다. 국가가 조락하는 과정에서 희생을 최소화하려면, 지역 단위의 제도와 경제운용, 그리고 실현가능한 사회적 제도들 속에 상기의 가치들을 고양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 시작하여도 결코 빠른 것은 아니다.
출처: CommonDreams.Org, 2020-06-10.
Richard Heinberg
포스트-탄소 연구재단의 수석연구원으로 Our Renewable Future, Society Beyond Fossil Fuels, How Fracking’s False Promise of Plenty Imperils Our Future 등 에너지 관련한 13종의 저술을 발간하였다
사모펀드가 지나간 곳엔 시체가 즐비하다. 흔히 사모펀드를 기업사냥꾼이라 부른다. 그러나 사모펀드는 기업사냥꾼이라 불리는 것도 모자라 사냥한 후에는 기업을 완전히 시체로 만들어 버리고 장사를 지낸다. 그래서 나는 사모펀드를 ‘기업장의사’라 부른다. 사모펀드가 어떤 식으로 기업의 흡혈귀와 장의사 노릇을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미국의 예를 보기 전에 먼저 우리나라 예다. 경상북도 영덕으로 가보자.
사모펀드가 기업장의사임을 즉시적으로 보여주는 뉴욕타임스 기사. “어떻게 사모펀드가 신발소매업 체인점 페이리스(Payless)를 장사 지냈는가”란 기사 제목이다.
경북 영덕주민들 두 번 울린 사모펀드
경상북도 영덕에 가면 영덕풍력발전단지가 있다. 바람의 언덕이라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 뒤에 지역주민들의 분노와 눈물이 있다. 이 풍력발전공사를 외국계 사모펀드 회사가 이른바 “먹튀”(먹고 튄다는 속어)를 했기 때문이다. 호주계 사모펀드 맥쿼리PE가 영덕풍력발전공사를 인수한 것은 2011년, 200억 원을 들여 유니슨 등으로부터 매입했다. 그리고 2019년 삼천리그룹의 삼탄에 매각했다. 7년간 맥쿼리가 소유주로 있는 동안 올린 수익은 630억 원. 그러나 현재 회사는 자본잠식상태다. 깡통회사란 뜻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2018년 한 해만 보더라도 영덕풍력발전은 한 해 동안 약 81억 원의 매출에 영업이익은 약 19억3천만 원을 올렸다. 하지만 이자비용으로 45억 원을 지출해야 했다. 이렇게 7년간 맥쿼리에 이자비용(전환사채 차입에 대한)으로 지출한 것이 총 319억 원이다. 결국 모든 것을 계상하면 결손금 117억 원이 자본총액 40억 원을 초과해서 자본잠식 상태에 놓인 것이다. 빚밖에 남는 게 없는 것이다. 그러나 멕쿼리는 2013년 영덕 근처의 영양풍력발전공사까지 인수했다가 작년 영덕풍력발전까지 한데 묶어 삼탄에 1천9백억 원을 주고 매각했다. 이로써 수백억 원의 매각 수익에 이자, 거기에 7년 동안 올린 수익을 쏙 빼먹고 튄 것이다. 영덕군이 올린 수입은 부지 대부료로 매년 331만 원 받은 것이 전부. 각종 기반시설 지원 등에 군민 혈세가 들어간 것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지역 경제 활성화라며 기대한 일자리는 고작 7명이다.
그럼 이게 다일까?
새 인수자 삼탄 역시 사모펀드와 은행을 끼고 영덕 및 영양풍력발전공사를 차입매수 했다. 각각 192억 원과 854억 원을 30년간 대출로 연리 12%의 이자를 내도록 했다. 해서 영덕과 영양풍력발전공사는 연간 각각 23억 원, 102억 원의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이익을 내봤자 아무 소용없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계속될 것이다. 영업을 할수록 손해만 쌓인다. 더 못 버티고 곧 문을 닫을 것이다.(『영남경제』, 2019. 9. 5; 2019, 9. 6; 2019, 9. 18).
기업흡혈귀와 장의사 사모펀드의 기업 고사 방식
다른 나라(미국) 이야기를 먼저 하면 관심이 덜 할 것 같아서 우리나라의 사례를 먼저 들었다. 그렇다면 사모펀드가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법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이것을 보면 사모펀드가 왜 기업장의사와 기업흡혈귀란 명칭이 어울리는지를 알 수 있다.
첫째, 사모펀드는 경영상태가 안 좋은 회사를 좋게 만들겠다는 명분을 들고 회사를 싼 값에 매입하거나 돈을 빌려준다. 그리고 경영에 감 놔라 배 놔라 참견을 한다. 이 뒤에 따라오는 명분들은 수익을 내는 튼실한 회사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질의 일자리도 창출 하겠다는 것이다. 매입 대상 업체는 둘 중 하나다. 상장사의 주식을 대거 매입해 상장을 폐지해 나중에 재상장해 매각 수익을 얻거나, 비상장사를 사서 상장사와 합병하는 우회상장을 통해 가치를 높여 매각해 수익을 얻는 방식이다. 공통된 것은 사정이 어려운 회사가 사냥의 대상이다.
둘째, 그러나 그 명분은 말만 그럴 뿐, 회사의 구성원이나 회사 자체를 위하지 않고 오로지 주주나 소유주의 이익 실현을 위해서 무지막지한 구조조정 등을 강행한다. 그렇게 해서 장부상으론 이전 보다 괜찮은 회사로 거듭난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리고 매각해 막대한 이익을 남긴다. 즉 회사의 정상화나 건실화 등이 목표가 아니고 오로지 산 것 보다는 비싼 값에 매각하는 것이 사모펀드의 목표다.
셋째, 회사를 매입할 때 절대로 자기의 돈으로만 하지 않는다. 남의 돈을 빌려 매수한다. 즉 차입매수(leverage buyouts)를 한다. 그 빚과 이자는 고스란히 회사에 떠넘긴다. 그러나 알맹이(수익)는 철저히 주주들과 소유주의 몫이다. 그러면 회사엔 뭐가 남는가. 계속해서 손실만 쌓이고 고사하는 것밖엔 다른 방도가 없다. 사정이 안 좋은 회사에 도움은커녕 설상가상으로 빨대를 꽂은 격이다.
넷째, 이렇게 부채더미를 쌓고 있는 회사는 위험하기 그지없다. 그러면 사모펀드는 이런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어떤 짓을 하는가? 부채에 대한 파생금융상품인 “대출채권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loan obligations, 이하 CLO)을 발행한다. 부채를 담보로 해서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 또 한 번 재미를 보는 것이다. 노리는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위험분산, 나머지 하나는 수수료로 인한 수익창출이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장사를 하다가 실제로 위험이 닥쳐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국가가 그 위험을 떠안아 주니까. 구제금융으로. 이들이 그 때 내세우는 명분은 대마불사다. 자신들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 이렇게 노나는 장사가 어디 있을까? 잘 나갈 땐 그 열매를 온전히 자신들의 몫으로, 위기가 닥쳐 망할 땐 국가가 나서서 국민의 혈세로 대신 메워준다.
코로나19가 악성 회사채를 가지고 무모한 노름을 하고 있는 월가(사모펀드)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고 기사를 낸 뉴요커
CLO는 2008년 금융위기를 몰고 온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때 월가에서 써먹던 “부채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s, CDO)의 사촌 격으로 작동 원리는 똑 같다. CDO는 대형금융회사가 서브프라임업체로부터 받은 불량채권에 대한 위험을 분산하고 동시에 투자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써먹었던 일종의 대출에 대한 보험 상품으로 우량과 불량대출을 섞어서 위험이 없는 것처럼 살짝 분칠해 파는 것이다.(김광기, 『정신차려 대한민국』, 2012). 본질 면에서 CDO와 똑같은 CLO는 대형금융회사나 사모펀드 자체가 발행, 관리 및 판매한다. 그렇게 거짓되게 위험을 분산한 것처럼 보이게 한 후 투자자를 모아 수수료까지 챙긴다. 그러나 위험은 인위적으로 희석되어 가려졌을 뿐 여전히 상존하고 있으며, 위기가 오면 그 실체가 드러난다. 그러면 사모펀드는 망하게 된다. 이 때 그들이 들고 나올 것이 바로 앞서 언급한 대마불사론이다. 2008년 월가가 써먹던 수법 그대로 전수받은 것이다. 이게 바로 금융주도자본주의(finance-driven capitalism)의 실상이다.
잉글랜드은행 전 총재 마크 카니의 경고
잉글랜드은행(Bank of England)의 전 총재 마크 카니(Mark Carney)는 2019년 1월 영국 하원에 나와 전 세계적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회사부채(corporate debt)의 폭증에 대해 경고했다. 당시는 코로나 때도 아니고 트럼프가 “나(미국)홀로 잘나가!”하면서 경제의 호황을 자랑하던 때다. 카니는 파행적인 회사부채 시장을 2008년 금융위기 때에 견주어 경고했다. 회사부채 시장에서의 이른바 “약식대출”(covenant lite loans: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확인하는 절차(검사)를 생략한 채 이루어지는 대출)의 만연이 “서브프라임과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채권인수’(no doc underwriting)라는 의미에서 그 때와 동일선상에 있다”고 증언했다. 2019년 1월 현재 차입대출의 85%가 약식대출이다(Bank of England, Financial Stability Report, Issue No. 44, November 2018; “Leveraged loans at pre-crisis levels — and I’m worried, says Carney,” The Times, Jan. 17, 2019; “The risky ‘leveraged loan’ market just sunk to a whole new low,” Business Insider, Feb. 17, 2019).
급증하는 회사채와 레버리지대출을 2008년 금융위기에 견주어 경고하고 있는 잉글랜드은행 전 총재 마크 커니 <출처: 타임스/로이터스>
그런데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영국은행 총재의 저런 경고는 개 코로도 듣지 않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사실 수십 년 전에는 소위 잘나가는 회사라면 높은 신용등급과 과도한 부채의 회피가 그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것은 완전히 구식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돈 놓고 돈 먹는 금융주도자본주의에 편승한 뒤로는 사모펀드가 이것을 선도했다. 인수와 자사주매입을 위해 많은 대출이 이루어졌고 차입매수가 성행했다. 미국 연준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4분기부터 2019년 4분기까지 비금융권기업의 회사부채는 총 6조1천억 달러(7,527조 원)에서 10조1천억 달러(1경2,463조 원)로 증가했다.
회사부채는 채권발행으로도 조달되었지만 위에서 말한 새로운 형태의 이른바 “레버리지대출”(leveraged loans)의 확산으로도 이루어졌다. S&P글로벌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9년까지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에까지 대출해준 협조융자(syndicated loan: 둘 이상의 은행이 공통의 조건으로 기업에 자금을 융자해주는 대출) 총액은 5,540억 달러(684조 원)에서 1조2천억 달러(1,481조 원)로 급증한다. 이런 레버리지대출은 앞에서 언급한 CLO를 창출하는데 사용되었다. 2019년 말까지 7천억 달러(864조 원) 상당의 CLO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하자면 빚을 놓고 그것에 대한 금융상품이 투자 상품으로 따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위험천만한 돈 놓고 돈 먹는 돈 놀이가 지금 월가에서 사모펀드 주도하에 가진 자들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The Coronavirus Is Exposing Wall Street’s Reckless Gamble on Bad Debt,” New Yorker, May 24, 2020). 문제는 그런 돈 놀이에 말려든 기업들과 거기에 속한 종업들이 말라 죽어나가고 있다는 데 있다.
백화점의 서거: 니만마커스와 JC페니
5월 초 미국의 유명 백화점체인 두 개회사가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니만마커스와 JC페니다.(“Neiman Marcus and the demise of the US department store,” Financial Times, May 8, 2020; “J.C. Penney, 118-Year-Old Department Store, Files for Bankruptcy,” New York Times, May 15, 2020). 두 회사는 모두 미국 백화점 업계의 대명사이다. 니만마커스는 최고급백화점이고, JC페니는 서민들을 위한 백화점이다. 두 회사의 역사는 각각 113년, 118년으로 둘 다 유서 깊다. 이를 두고 대부분의 매체들은 코로나 사태와 디지털시대에 맞는 변신에 실패를 파산신청의 원인으로 꼽고 있는데 내가 보는 견해는 다르다.
물론, 앞서 언급한 이유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코로나사태가 백화점에 직격탄으로 작용한 것은 도표에서 보듯 부인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미 이들 백화점이 두 손 두 발을 들 수밖에 없었던 기저질환이 도사리고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경제는 주식과 부동산 빼고는 나아진 게 없었다. 그 대표적 예가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쇼핑몰들의 폐쇄다. “쇼핑몰의 서거 경제학과 향수”라는 제목의 2015년 뉴욕타임스 기사
그 기저질환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2008년 이후 미국 경제가 살아났다고 하지만 증시와 부동산시장만 호황이었을 뿐 나머지 부문에서는 오히려 나아진 것이 없었다. 백화점의 서거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백화점과 단독 점포가 들어선 대규모 쇼핑몰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 전역에서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쇼핑몰은 미국인들에겐 애틋한 정서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딱히 재미라고는 달리 찾을 수 없는 건조한 미국식 삶 속에서 그나마 쇼핑도 하고 사람구경도 하고 놀기도 하는 곳이 쇼핑몰이기 때문이다. 하교 후 청소년들이 친구들과 친목을 도모하던 곳 중 하나도 쇼핑몰이다. 그런 곳이 문을 닫으니 뉴욕타임스 같은 곳은 쇼핑몰의 서거가 향수를 불러온다고 제목을 달아 기사화를 했던 것이다.(“The Economics (and Nostalgia) of Dead Malls,” New York Times, Jan. 3, 2015). 그런 기사가 났던 것이 2015년이다. 그리곤 마침내 이제 백화점의 종언까지 고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는 이미 휘청거리며 넘어지고 있던 백화점의 발에 살짝 걸린 돌부리와 같다. 다시 말해, 코로나가 미국 백화점 사망의 주효한 원인은 아니다. 이미 코로나 이전에 심각한 기저질환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니만마커스와 JC페니 등이 파산보호신청을 하자 백화점의 서거를 알리는 2020년 4월 뉴욕타임스
기업장의사 사모펀드에 의해 이미 고사 중이던 업계
나머지 기저질환은 사모펀드 때문에 생긴 것이다. 따라서 이번 파산신청의 주된 원인은 사모펀드다. 이것들의 농단으로 백화점들이 완전히 작살났다. 바야흐로 디지털시대에 온라인 쇼핑으로 노선을 바꾸고 재기할 자구노력과 자생력조차 사모펀드는 완전히 압살했다. 수익이 나는 족족 배당금과 이자로 현금을 다 빼갔으니 그렇다. 어떻게? 맨 처음 우리나라 영덕풍력발전공사의 경우에서와 같이 말이다.
대표적으로 백화점 업계의 귀공자 니만마커스가 어떻게 엄청난 빚만 짊어진 채 빈껍데기만 남은 회사가 되었는지 보자. 현재 니만마커스의 부채는 50억 달러(약 6조2천억 원)이다. 심각한 수준이다. 2005년 사모펀드 TPG와 워버그핀커스(Warburg Pincus)는 51억 달러(약 6조 3천억 원)로 니만마커스를 차입매수 한다. 그리곤 2013년 사모펀드 아레스매니지먼트(Ares Management)와 캐나다연기금운용회사(CPPIB)에 60억 달러(약 7조 4천억 원)를 주고 매각한다. 이들 회사는 니만마커스의 가격을 높이기 위해 2015년 기업공개(IPO)를 시도하려했으나 불발로 끝났다. 니만마커스는 지난 2년 동안 50억 달러의 부채를 조정해 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이자는 수억 달러가 지출되었다. 2018년 마지막 회계보고엔 49억 달러(약 6조5백억 원)의 수익이 있었다. 그러고도 빚이 50억 달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은 매해 나는 수익이 한 푼도 안 남기고 거의 다 주주들의 배당과 이자 지불로 빠져 나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디스는 니만마커스의 부채를 두고 “지탱하지 못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The Pandemic Helped Topple Two Retailers. So Did Private Equity,” New York Times, May 14, 2020;“J.C. Penney, 118-Year-Old Department Store, Files for Bankruptcy,” New York Times, May 15, 2020). 이런 판에 온라인쇼핑으로 전환하려는 자구노력을 어떻게 하는가? 그것도 돈이 들어가는 일종의 투자인데 말이다. 거기에 들어갈 돈들이 주주들과 소유주에게 배당금과 이자로 다 홀랑 가버리는데….
사모펀드가 손 댄 소매업체마다 좀비기업으로
그렇다면 백화점만 그럴까? 아니다. 사모펀드가 손 댄 소매업체마다 사정이 똑같다. 그리고 기업은 회생은커녕 시체로 거듭나고 있다. 대표적 예를 두 곳만 더 보자. 옷가게 제이크루(J. Crew)와 중저가신발업체 페이리스(Payless)다.
먼저, 2011년 사모펀드 TPG와 레오나드그린&파트너스(Leonard Green & Parners)가 제이크루를 30억 달러(약 3조7천억 원)에 차입매수 한다. 소비자 옹호 단체인 <미국금융개혁연대>(Americans for Financial Reform)이 추산한 바, 2011년 이후 제이크루는 소유주인 사모펀드에게 배당금, 이자 및 수수료로 7억6천만 달러(약 9천4백억 원)를 지불했다. 니만마커스와 마찬가지로 온라인쇼핑 등의 영업 전환 모색 등에 들어갈 돈은 한 푼도 없이 사모펀드가 탈탈 털어갔는데 무슨 자구노력이 가능했겠는가.(New York Times, May 14).
페이리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12년 사모펀드 골든게이트캐피탈(Golden Gate Capital)과 블룸캐피탈(Blum Capital)이 페이리스를 20억 달러에 차입매수 했다. 2015년 1월을 기준으로 과거 2년 동안의 에비타(EBITDA: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기업의 현금창출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를 보면 기가 막힌다. 페이리스는 그 기간에 3억2,200만 달러(약 3,986억 원)의 에비타(세전이자지급전이익)를 올렸다. 그러나 주주들에게 배당금으로 3억5,200만 달러(약 4,357억 원), 그리고 이자로 8,300만 달러(약 1,027억 원)가 돌아가서 손실만 기록했다. 이것을 쉽게 계산하면, 회사로 1달러(약 1200 원)가 들어올 때마다, 소유자에겐 1.09달러(약 1350원)가 대출자에겐 0.26달러(약 322 원)가 돌아가게 되어서 1달러 벌 때마다 계속해서 0.35달러(433 원)의 빚이 쌓이는 꼴이다.(“How Private Equity Buried Payless,” New York Times, Jan. 31, 2020).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딱 그 짝이다.
뉴욕시 진보단체인 <대중민주의센터>(The Center for Popular Democracy)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이후 파산한 소매점 체인 14개 중 10개가 사모펀드가 소유주로 밝혀졌다.(New York Times, May 14). 이렇게 기업은 시체가 되고, 사모펀드는 살이 통통 오른 승냥이와 장의사가 된다. 그리고 또 다른 먹거리와 시체거리를 찾아 어슬렁거린다.
워런과 코르테스는 왜 코로나사태 동안 기업의 인수합병 금지를 주장 했는가?
그러니 회사들로서는 어떤 노력을 경주해도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가 덮쳤고 완전히 고꾸라졌다. 그렇다면 사모펀드 입장에서는 언제가 그들에겐 가장 호기인가? 바로 헐값에 기업을 살 수 있을 때다. 가지고 있다가 적당한 기회를 봐서 비싸게 팔면 되니까. 이 칼럼시리즈 초반에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부동산 투자의 철칙인 “바이(buy), 픽스(Fix), 앤드 셀(Sell)”이 여기서도 그대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헐값에 사서 비싸게 팔 기업이 사라지면 사모펀드에겐 안 좋은 시기다. 따라서 코로나19야 말로 그들에겐 최적기다. 기업사냥을 하기에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위험과 위기는 사모펀드의 전가의 보도와 같은 것이라 사모펀드가 정말로 오매불망 기다리는 시간이다. 위험을 빙자해 고수익을 올렸으니(CLO가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 위험을 회피하면서 동시에 위기가 있어야만 장사가 되는 모순이 사모펀드가 떼돈을 벌 수 있게 하는 주된 동력이다. 또한 위기 시엔 파산하는 기업체가 즐비하다. 그것들을 헐값에 거머쥘 수 있으니 위기란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위기는 사모펀드에겐 노다지인 셈이다. 죽어가는 회사를 기사회생 시키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직 관심은 그걸로 더 큰 돈을 버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사모펀드가 막강한 현금동원 능력을 가지고 기세가 등등한 사이 이들에게 더 많은 투자가 들어오고 그걸 가지고 전 세계 사업들에 마수를 뻗치며 제국으로 등극하고 있는 것이다.(“Scary Times for U.S. Companies Spell Boom for Restructuring Advisers,” New York Times, March 3, 2020; “Some Big Investors Smell Profit in Virus-Plagued Companies,” New York Times, April 3, 2020).
이 때문에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과 오카시오 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가 코로나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의 인수합병을 금지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인수합병이 대다수는 사모펀드에 의해 벌어지기 때문이다.(“Elizabeth Warren and AOC’s Call for a Merger Ban May be a Moot Point,”, CNN, May 5, 2020).
사모펀드가 이끈 금융주도자본주의의 폐해
소위 미국식 선진금융의 핵심은 전 산업부문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금융화라 한다. 그것이 주도하는 자본주의를 금융주도자본주의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그것을 주도하는 선두에 현대의 제국 사모펀드가 있다.
산업자체가 이런 식으로 바뀌면 두 가지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 하나는 기업이 저렇게 좀비가 되고 파산에 이르게 되면, 거기에 종사하던 근로자는 어떻게 되겠는가. 모두가 실업자가 된다. 이런 펜데믹 시기에는 영원한 실직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2018년 현재, 미국에서 사모펀드가 소유한 회사에 약 880만 명의 근로자가 있으며, 이 회사들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5%를 차지한다.(New York Times, Jan. 31, 2020).
두 번째 문제는, 노동이 신성하다는 가치는 사라지게 된다. 경상도 말로 “쌔(혀)가 빠지게” 노력해서 돈 버는 것에 대한 회의가 많은 사람들에게 일 게 뻔하다. 이것은 경제와 관련한 관념과 가치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세상 어디에 저런 젖과 꿀이 흐르는 장사가 있겠는가. 땀 흘려 일 안하고 남의 돈 빌려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기술만 터득할 수 있다면 누구나 득달같이 덤벼들어 하려 들 것이다. 이게 바로 금융주도자본주의의 폐해다. 경제와 노동 가치의 왜곡, 그것은 기업의 시체가 늘비해진 상황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것을 막을 방법은 딱 하나. 규제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미국에서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는 월가의 대형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보다 훨씬 더 느슨하다. 그 틈을 타고 제국들이 탐욕의 눈이 박힌 머리를 바짝 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완화와 당국의 방치는 한국이 더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와중 우리에게도 사모펀드란 이름이 어느덧 익숙해지고, 이윤에 이악스런 자들은 남 보다 한 발 더 빠르게 사모펀드에 벌써부터 발을 담갔다. 사모펀드의 구성요건이 49명 미만에서 그 이상으로 풀어졌으며, 10%이상을 한 종목에 투자하는 것이 금지하는 “10% 룰”의 제한에서도 사모펀드는 제한이 없다. 500만 원 미만의 소액으로도 투자가 가능하게 문을 열어 놨다. 그리고 그 결과 이미 작년 우리나라의 사모펀드 시장 규모는 2천조 원을 넘겼다. 사모펀드의 규제완화는 정권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한국경제』, 2019. 5. 1; 뉴시스1』, 2019. 10. 4; 『한국경제매거진』, 2019. 6; 『동아일보』, 2018. 9. 28; 『이뉴스투데이』, 2020. 5. 28). 그리고 이 와중 어떤 이들은 막대한 이윤을, 어떤 이들은 소중한 노후자금까지 날리고 있다. 지금 한가하게 미국의 사모펀드 걱정할 때가 아닌 것이다.
지난 주 서울의 미대사관에는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기습시위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사실은 주한미군 분담금의 5배 인상을 요구한 도날드 트럼프의 요구에 거칠게 항의하는 시위가 이미 수개월 간 진행되고 있었다.
참가중인 한 시위자는 외친다. “그들은 우리에게 전쟁무기를 팔아먹고 있을 뿐이다.” 한 배너에는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항의시위의 구호 문구를 인용하여 이렇게 적혀 있다. “미제국은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는 뜻이다.” 한국전쟁을 통하여 피로 맺은 동맹이라는 혈맹의 나라에서 반미 감정의 흐름이, 특히 진보적인 젊은이들 그룹을 중심으로 긴장이 형성되고 있다.
그런데 현직 미국 대통령에 대한 혐오가 지난 몇 년간 비등해지면서 참가자와 경찰들 간의 충돌을 야기하는 등 시위가 발생하면서 이제 반미의 정치적인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미국은 방위분담금을 더 내라는 압박을 가하기 위해, 코로나바이러스가 경제에 심한 충격을 주는 와중에도, 지난 4월 미군기지에 일하고 한국인 근무자들을 일시 해고시켰다. 이러한 조치는 6월에 이루어진 잠정적인 합의 덕분에 중단되었지만 한국민의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는 한국인에게서 돈을 받아 내는 것이 (자신의 부동산을 통해) 뉴욕의 시민들에게 임대료를 받는 것보다 쉽다’고 떠벌리면서, 우리를 맘대로 돈을 뜯어낼 수 있는 국민이라고 조롱하였다”고 퇴역한 장교출신인 최인범씨는 인터뷰에서 밝혔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워싱턴의 오랜 혈맹인 한국은 그의 장사꾼 방식 외교정책으로 자신들의 이해가 소홀하게 무시되는 것을 염려해 왔으며, 상기에 언급한 시위 사태는 트럼프와 서울 당국자 간의 마찰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미행정부의 코로나 사태에 대한 대응이 국제적 비난을 받고, 미국사회가 인종차별 문제로 혼란에 빠져 있는 와중에, 미국과 한국 간의 갈등으로 지난 70년 간 지역의 평화를 유지해 왔던 미국주도의 안보질서에 간극이 발생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간극은 중국의 급속한 굴기에 의하여 넓어지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미국의 지도력에 의해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제일주의(America First)가 한국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고 있지만, 동시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주요 동맹국들도, 호주와 일본을 위시하여 지난 세기에 지역을 주도했던 미국의 패권에 자신들을 방어해 주는 역량과 의지가 점차 약화되고 있다고 염려하고 있다.
중국이 이웃 국가들에게 경제력과 더불어 군사적 영향력을 공격적으로 적용하면서 여기저기에서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아시아의 주요 국가들이 미국과 함께하는 것으로는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고 이를 신뢰할 수도 없게 되었다”고 미국의 주요 싱크탱크인 국제전략연구소 센터의 Bonnie Glaser는 말한다.
“오는 11월에 트럼프가 낙선되면 이 지역의 국가들 사이에 안도의 한숨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후의 워싱턴 당국이 트럼프보다 나아질 것에 대해서 확신을 갖지 못한다. 그 이유는 미국외교의 주요 관심과 군사력이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그녀는 설명한다.
북경당국이 중거리 미사일 숫자를 늘리면서 역내 미국의 군사적 우위가 위협받고 있고 독일 내 미군의 잠재적인 철수가 거론되는 등 유럽과의 관계와 나토가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무역이 핵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아시아는 북한문제와 SenKaku 또는 Diaoyu 군도, 대만해협, 남중국해, 이에 더하여 인도와 파키스탄 및 중국간의 국경 분쟁 등 많은 위험 요소들이 존재한다.
동시에 워싱턴 당국의 신뢰성 여부가 의심받고 있으며, 오랫동안 견지해 왔던 미국의 군사적 우위가 상실되고 있다는 징후들이 나오고 있다. 북경이 중장거리 미사일을 증강시킨다는 의미는 미국의 전통적인 역내 군사력 상징인 거대한 항공모함의 운용방식이 위협에 처해 있다는 것을 말한다.
2004년 이래 미군은 괌에 전략적인 폭격기 기지를 운용하면서 몇 시간 안에 미태평양 사령부 관할지역인 동중국해, 대만해협 또는 남중국해로 중무장 또는 스텔스 폭격기를 출격시킬 수 있었는데, 16년 만인 지난 4월에 이의 운용을 종결했다 ‘이제 미군은 전략폭격기를 미국 본토의 기지에서 운용하며, 이러한 변화는 군사력을 보다 유연하지만 예측하기 어렵게 하는 변화라고 전략사령부의 책임자는 이야기하면서, 이는 괌의 킬러라고 불리는 중국의 D-26 중거리 미사일, 즉 중국본토에서 괌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에 대한 대응이며 옳은 결정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어서 군사력과 무기체계를 유동적이고 비정기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중국이 대응하기 어렵고 비용을 크게 부담하게 만든다고 추가 설명하면서도, 반면에 역내의 국가들에게 미군이 약화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것 역시 언급한다.
같은 논리가 미국 군사력의 보호막이라는 핵심적인 항공모함의 운용에도 적용된다. 이들이 공룡(한 순간에 무력화)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고 동경의 싱크탱크이며 미군과 일본군 장교의 교환 프로그램을 주도한 Asia-Pacific Initiative의 회장인 Yoichi Funabashi는 주장한다. “COVID-19 사태로 미군의 항공모함이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 확인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는 바이러스가 출현하자 역내에 있는 4개의 항공모함 모두가 항구에 정박해야 했으며, 서태평양 지역에는 단 한 대의 항공모함도 운용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코로나를 대응하는 워싱턴 당국의 무력함에 신뢰가 심하게 흔들렸다. 미국은 경제와 군사력 그리고 기술적 주제에서 보여준 것 같은 효과적이고 강력한 모습을 팬데믹 대응과정에서 보여주지 못했다고 필리핀 대학 해양연구 센터의 책임자인 Jay Batongbacal는 지적하면서 미국의 군사력은 쇠퇴하였고 모든 이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은 이러한 비판을 거부한다. 우리는 전투력 증강을 위한 협력을 중진하고 능력을 고양시키는 상호지원운용, 정보의 교환 등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고 인도-태평양사령부의 대변인 Mike Kafka 대위는 주장하면서 2주 전에 군사력의 교체를 위해 호주의 Darwin 항구에 200 척의 군함이 집결되었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아시아 내의 미국동맹국들은 중국이 시도하는 군사적 도전에 트럼프 행정부가 초점을 맞추도록 신뢰를 보내고 있다. 워싱턴 당국은 북경당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확인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을 대체하려는 잠재적인 힘으로 묘사하고 있다. 북경당국이 강력해진 군사력과 경제적인 힘으로 이웃국가들과 관련지역을 자신의 이해에 복종하도록 압박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십 년 이상의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는 전력강화를 통해 중국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태평양 함대의 지휘관인 Phil Davidson 함장은 지난 4월에 언급하면서 향후 6년간 200억 달러의 추가적인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한 재편성으로 잠재적인 적의 어떠한 예비적 도발도 실패할 것이며 비용을 치를 것이라고 선언한다.
인도-태평양 사령부 역시 동맹간 군사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보의 교환을 강화하고 역내의 동맹들과 공유할 탐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합동지휘와 무기통제력을 구성하여 합동훈련을 배가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미해군이 소위 남중국해를 통과하는 향해의 자유(freedom of Navigation)를 운용하고 있지만, 역내의 국가들, 특히 중국과 해역과 지원이용 문제로 중국과 충돌하고 있는 필리핀과 베트남은 미군이 보다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도록 요구하고 있다. 베트남 국립대학 학장인 Pham Quang Minh,는 미해군은 중국이 공격적일 때만 반응을 보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중국과 베트남에서 회자되는 속담을 인용하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물은 아무리 많아도 불을 진화하는데 사용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최근 미국은 중국이 분쟁 해역에 대한 소유권 주장을 강화하는 것에 대응하여 남중국해에 대한 접근전략을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지아 국영회사인 Petrobra가 드릴쉽을 운용하고 있는 전용수역에 중국이 탐사선을 파견하자, 미군은 호주해군과 연합하여 해당지역에 전투함과 구축함 등을 운용하였는데, 이는 이전과 확연히 달리진 모습이었다.
“미군은 중국의 도전적인 행태에 대응하여 해전을 불사할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역내의 아시아 친구들은 이를 환영하고 있다”고 전역한 미군장교가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시아의 동맹들은 미군의 적극적이 작전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의 정치적인 입장 특히 미국제일주의의 배경을 염려하고 있다.
몇 주전에 워싱턴 당국이 발표한 중국인민공화국에 대한 전략적 접근은 민주주의와 자유무역에 대하여 동맹들과 자유의 가치를 공유한다는 의례적인 내용 이상은 없었다. 미국과 전통적인 관계를 맺어온 동맹국가들은 워싱턴 당국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를 존중하고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면 중국을 향해 접근해 갈수도 있다.
‘우리는 미국이 과거 자유적인 국제질서를 지켜왔다고 믿습니다. 이 점이 우리가 믿는 가치와 질서를 위해 중국과 대항하는 이유입니다’라고 Funabashi는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현재의 미국은 이러한 가치를 지켜주는 동맹이 아니라고 봅니다. 미국이 우리를 거래의 품목으로 취급하고 소모품(as prawn)으로 활용한다고 염려합니다. 이런 류의 불안감은 처음있는 일로 우리를 당황하게 합니다’라고 그는 말을 잇는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최대 고객인 일본은 워싱턴과 서울 당국간의 불협화음을 지켜보고 있다. 일본의 미국고객국가로서의 협정은 올해 재협상을 예정하고 있다.
호주와 일본은 특히 미국이 환태평양-파트너쉽(TPP)를 파기한 것에 실망하고 있는데 이는 오바마 시절 중국의 경제력 굴기에 따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호주당국이 지지한 역내 무역협상안이었다. 호주의 전직 외교통상 차관 출신인 Richard Maude는 미국이 TPP를 탈퇴하면서 역내 경제에 관한 발언권을 상실했다고 평가한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미국제일주의라는 경제적 자국주의에 의해 평가절하되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다른 동맹들은 미국이 중국과 대립이 심화되는 과정에 자신들이 볼모가 되었다고 느낀다. 싱가포르의 수상 Lee Hsien-loong은 6월에 있던 외교행사에서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이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고 연설문에 적고 있다. 그는 작성된 연설문을 통해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을 역내의 핵심적인 이해를 지닌 지역의 힘으로 평가하는 동시에 중국을 디딤돌의 현실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미중 간에 선택을 강요당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산업적인 공급사슬에서 중국과 결별을 요구하고 무기통제와 보건 및 기후위기에 관한 국제합의에서 철수하면서, 미국이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적고 있다.
시드니 연구센터의 연구자는 호주의 정책 책임자들은 워싱턴이 우리에게 양자 간에 선택을 강요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난 5월 미국무장관인 폼페이오는 호주가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의 경제계획에 참여하면 정보공유를 중단시키겠다는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호주와 단절을 위협했다. 이후 그의 발언은 호주의 미국대사관에서 긴급하게 수정되었다.
미국과 긴밀한 동맹관계를 갖고 있는 국가들은 이의 유지를 선호한다. 베트남은 아직 미국과 군사적 동맹은 아니지만, 미군에게 항구를 개방하고 미군의 훈련과정을 관람하는 수준에서 군사적 교환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과 오랜 동맹관계를 유지해온 필리핀은, 비록 현직 두테르테 대통령이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희망하면서 기존의 관계가 손상되기도 했지만, 최근 중국에 대한 억지력으로 미국과 동맹이 지니는 가치를 재평가하면서 미군의 잠정체류를 통제하려던 계획을 중단하였다.
일부의 국가들은 미군이 철수하는 것에 대비하여 양자 또는 다자간의 안보관계를 수립하고자 한다 한 예로 일본은 지역 안보에 독자적인 책임을 강화하려고 노력한다. 일본의 자위대는 미군 항공모함의 운용작전에 동참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해상안보를 위하여 유럽과 캐나다 등과 해군함정의 운용을 공동으로 진행한다.
미국 때문에 발생하는 경제 소프트파워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동경당국은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 프로그램의 일부인 동남아 인프라 투자에 참여한다. 호주 수상은 인도의 수상과 이번 달 초에 화상회의를 통하여 쌍무적인 협약을 체결하였으며, 이의 내용에는 양국 간의 군사기지에 접근하는 것을 양허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이는 2018년 베트남과 맺은 파트너 협정의 연장에서 이루어 졌다.
호주의 연구자는 중국의 영향력과 균형을 이루기 위해 일본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과 가능한 역할을 나누는 것이 호주에게 이상적인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미들-파워의 형성을 통해 지역의 안보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미군이 철수를 감행할 경우를 대비한 가장 안전한 시나리오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록 중국의 외교정책이 동맹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지 않고 있지만, 다른 상황 즉 친미국의 진영과 친중국의 진영으로 나누어지는 위험한 시나리오도 무시할 수 없는 가능성으로 보고 대비해야 한다.
전통적인 동맹인 미국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무시하고 안보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대안으로 중국과 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것이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서울에 있는 안보 컨설턴트인 StratWays그룹의 연구자이자 주한미군의 전직 전략가였던 Paul Choi는 미국과 불화가 심화되면 개혁적인 현재의 정부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과 강한 군사적 관계(강요)를 갖는 것과 중국과 경제적으로 압박을 받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가?”
한국사회 시민들은 북경당국이 어느 때보다 강력해 지면서 중국을 수용할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새로운 { }의 세계질서가 형성되면 새로운 해법을 찾아가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상황을 매우 위험하게 만든다’고 한국의 어느 예비역 장군이 걱정스럽게 말을 맺는다.
출처 : FT 기자단의 합동취재 기사. 2020-06-15.
Kathrin Hille in Taipei, Edward White in Wellington, Primrose Riordan in Hong Kong and John Reed in Bangkok
그렇다면 2017년부터 준비되어 2018년 큰 물꼬를 텄고, 최근 하노이 북미회담에서 일시적 교착국면에 빠진 남북미 간 평화체제 정착은 어떻게 수순을 풀어야 할까? 남북관계든 북미관계든 핵심은 ‘신뢰의 확증’에 있다. 남북과 북미관계가 대화 지속 – 신뢰 축적의 트랙을 이어가면 남북·북미관계 서로를 선(善) 방향으로 추동한다. 그러나 지금 하노이 회담 이후 보듯, 북미관계에서 지체가 생길 수 있다. 그럴 때 남북관계의 주동성, 추동력이 더욱 부각될 수 있다. 남북관계의 게임의 차원을 바꾸는 것이, 북미관계의 게임의 차원을 바꾸는 일보다 우리의 주동력이 발휘될 수 있다. ‘양국체제론’은 남북관계가 동북아 주변관계에 최대의 주동성, 추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구상되었다.
남북관계의 고리를 획기적으로 풀어나가는 방법을 우리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 신뢰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면 된다. 신뢰에는 ‘피상적 신뢰’가 있고, ‘심층적 신뢰’가 있다. 심층적 신뢰란 가장 기본적인,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신뢰를 말한다. 남북 간에 그렇듯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신뢰가 무엇이겠는가. 남북이 서로의 존재를, 존립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명환 교수의 글에도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정식 국교를 맺고 적대정책을 철회하더라도 남한의 존재가 위협이라는 현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고,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고 북한 사회가 개혁·개방에 노출될수록 북의 체제 운영자들은 정치적 위협을 심각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 북한 당국이 자신의 주민이 친족방문을 위해 남을 왕래하는 일을 허용하는 일은 상당 기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부분이다. 김명환 교수는 이런 사정 때문에 양국체제는 어렵고, ‘남북연합만이 올바른 길’이라 하였지만, 김 교수가 언급한 내용이 필자에게는 오히려 김 교수의 주장을 반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북미 수교, 북일 수교는 가능하더라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교, 즉 ‘한조(韓朝) 수교’는 오히려 불가능하다고 보는 듯하다. 글쎄 그럴까. 북미 수교와 북일 수교라는 토픽이 미국과 일본의 정책 캐비넷에 올라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베까지도 이 판에 끼어보려 하고 있다. 그러나 북미 수교, 북일 수교는 오히려 한조 수교가 물꼬를 터줌으로써 빠르게 뒤따라올 가능성이 더욱 크다. 왜냐하면 ‘근본적 신뢰의 확증 순서’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북의 안보조건에서 미국과 일본 쪽에 자신의 존립에 대한 근본적 신뢰를 먼저 확보하려고 할 가능성은 낮다. 반면 한국과는 그 가능성이 더 높다. 촛불 이후의 국면에서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앞서 김명환 교수가 말한 “남한의 존재가 위협이라는 현실”은 이제 북에게도 더 이상 그렇게 자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스스로가 북(DPRK)의 존립에 위협이 되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물론 30년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단번에 일소한 촛불혁명의 힘, 그리고 그 힘에 의해 들어선 촛불정부의 역할 때문이다. 아니, 30년이 아니라, 코리아전쟁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의 민의가 이만큼 남북의 공존과 평화를 소망하는 방향으로 모아져본 적이 없다. 남의 한국도, 북의 조선도 이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과 조선 간에 그러한 ‘근본적 신뢰’를 확증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무엇일까? 백낙청 선생, 그리고 백 선생을 항상 충실하게 조술(祖述)하는 김명환 교수도, 그 방법이란 ‘남북연합’이라고, ‘남북연합밖에 없다’고, 되풀이해왔다. 그런데 지금 이 마당에 그 ‘남북연합’의 방책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분명히 한 것이 없다. 필자가 본 단 하나의 예외라면 백 선생이 2018년 《창작과비평》 181호에 “미국이 어느 시점에 변심하여 북을 다시 침공하거나 적대정책으로 되돌아갈 태세가 되었을 경우, 이것이 곧바로 대한민국이 가담한 국가연합에 대한 침공 내지 적대가 될 수밖에 없도록 제도화해 놓는 일”이라 한 것인데, 이 정도로 높은 수준의 ‘국가연합’이란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국가 간의 관계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누가 읽어도 당연히 그렇게 읽히는 말이다.(이렇게 읽은 것이 ‘오독’이고 ‘비약’이라는 김명환 교수의 반론에는 아쉽게도 무엇이, 왜, 어떻게 ‘오독’이고 ‘비약’이라는 것인지 설명이 없다. 다만 ‘기성 사회과학 교과서에 맞춰 재단한 탓’이라 하고 만다.)
현재 이 순간의 남북관계에서 생각해보자. 백 선생과 ‘분단체제론’에서는 현재 이 순간 역시 당연히 ‘남북연합’, ‘국가연합’ 상태다. 남북연합은 분단체제를 상정·전제하는 것이라 하니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재의 남북관계 또는 남북연합 관계에서 백 선생이 말한 바와 같이 “미국이 어느 시점에 변심하여 북을 다시 침공하거나 적대정책으로 되돌아갈 태세가 되었을 경우, 이것이 곧바로 대한민국이 가담한 국가연합에 대한 침공 내지 적대”가 된다고 어느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물론 너무나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다. 그렇다면 백 선생이 그리는, 그렇듯 높은 수준의 ‘국가연합’까지 한참을 올라가야 할 것인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높이 올라가기 위한 첫 계단, 첫 단추가 무엇이냐다. 나는 지금껏 여기에 대한 답을 들어본 바 없다.
그 답이 어려워서 그런 것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필자가 지난 글들에서 여러 차례 설명해놓았다. 기존의 남북 간의 고통을 아주 기본적인 수준에서 느껴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다 알 수 있는 문제다. 남과 북이 서로의 존립을 보장하는 신뢰의 확증이 무엇이겠는가? 그 첫 단추가 무엇이 될까? 상대방을 적으로, 붕괴와 소멸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확증 장치다. 지금 남과 북의 상태에서 무엇이 그런 확증 장치가 될까? 남은 북을, 북은 남을, 영토와 주권을 가진 정당한 국가 대 국가로서 서로 인정하고 이를 만천하에 공표하고 상호 대표부를 교환하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과 조선 두 나라의 수교, 즉 ‘한조(韓朝) 수교’다. 이렇게 될 때 ‘분단체제’라는 과거의 룰은 폐기되고 ‘양국체제’라는 새로운 차원의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 이 ‘한조 수교’의 역사적 파급력은 1972년 ‘동서독 수교’에 못지않을 것이다. 동서독 수교 이후 상호 교류와 협력이 크게 증가했던 것은, 상호 간의 ‘근본적 신뢰’의 문제를 일차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두 국가가 상호의 존립을 위협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지켜질 것임을 서로가 믿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2018년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역시 그러한 근본적 신뢰를 확증해가는 과정이었다. 그 결실이 머지않은 미래에 맺어지기를 바란다. 한국이 북미 대화를 잘 중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일이 있다. 남북이 만나는 모든 자리에서, 남북의 모든 논의와 합의가 어떤 쪽을 향해가고 있는지 방향감각이 무엇보다 우선 분명해야 한다. 그것은 ‘남북 간의 근본적 신뢰의 확증’이며 ‘남과 북이 서로를 정당한 국가 대 국가로 인정’하는 일이다. 북미 수교가 한조 수교에 선행하기보다, 한조 수교가 북미 수교를 성사시키는 경로가 더 현실적이다. 소위 ‘대북제제’ 문제도 ‘한조 수교’라는 역사적 임팩트에 틀 자체가 변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김명환 교수는 여전히 북은 ‘남한의 존재의 위협’을 벗어날 수 없고, 남 역시 마찬가지로 ‘북한의 존재의 위협’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할까? 한 발 물러서 생각해보자. 물론 ‘한조 수교’가 이뤄지자마자 남북이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상태가 당장 100퍼센트 깨끗하게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사에 그런 일은 없다. 그러나 ‘한조 수교’가 이뤄지면 역사적 첫 단추가 채워진다. 게임과 트랙이 달라지는 것이다. 코리아의 지난 70년 적대 상태를 생각해보면, 당장 100퍼센트는 언감생심이고, 우선 절반만 해소된다고 하여도 획기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이런 것이 바로 ‘질적 변화’다. ‘위협’은 강박이어서 붙들려 있을수록 커진다. 기존의 ‘분단체제론’에는 그러한 ‘위협’을 넘어서고 극복할 담대한 전망이 부족했다.
그렇듯 질적 변화를 이루어내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그 후의 과정 역시, 그만큼, 또는 그보다 더욱 중요할 것이다. 상호 신뢰를 확인하고 쌓아가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배려들이 교환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매우 많다. 동서독 간 성공적 교류의 선례도 있다. 나는 ‘분단체제론’이 이러한 양국체제의 전망을 아주 적극적으로 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원래 분단체제론은 분단체제를 비판하고 극복하자는 이론이었다. 분단체제론이 양국체제의 전망을 수용한다는 것은 그러한 원래의 이론적 취지와 포부에도 부합한다.
독일 양국체제의 경험을 다시 생각한다
끝으로 앞서 몇 차례 언급한 만큼, 동서독 사례의 의미에 대해 첨언해보려 한다. 1970년대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동서독 수교(=<동서독기본조약>)의 의미를 다시 새겨볼 때가 되었다. 1990년대 초반 백낙청 선생이 분단체제론을 처음 입론하고 있을 때, 백 선생은 당시 이뤄졌던 독일의 흡수통일 사례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았고, 그래서 독일과 한반도의 분단 원인과 통일 전망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당시 백 선생이 그러한 태도를 취했던 데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동구권이 붕괴하고 동독이 서독으로 흡수통일 되었던 당시에는 ‘북한 조기붕괴론’을 펴는 사람들 중에 독일식 통일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았다. ‘북한’은 어차피 곧 붕괴될 것이니까 한국은 서독처럼 흡수통일 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그러한 생각은 물론 허황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독일의 사례를 무조건 백안시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1970년대 동서독 수교와 독일 양국체제이지, 1990년의 흡수통일이 아니다. 1972년 동서독 수교와 1990년 흡수통일은 전혀 다른 맥락에서 벌어진 전혀 다른 사건이다.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제는 1990년대 초반에 독일 흡수통일의 스펙터클에 눈이 팔려 1970년대의 독일 양국체제 경험의 역사적 중요성을 놓치고 있지 않았는지 다시 물어야 할 때가 되었다. 백낙청 선생과 김명환 교수도 다시 주목해주기 바라는 대목이다. 1989~1991년 당시 남북의 ‘당국자’들은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인 시각에서 양국체제의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북이 유엔에 동시가입할 수 있었고, <남북기본합의서>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볼 때도 대단한 용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정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남북 수교까지 이루었다면 코리아 양국체제는 이미 그때 성립할 수 있었다. 왜 이 길이 막혔던가? 누가 막았었나? 남쪽의 노태우 대통령도, 북쪽의 김일성 주석도 아니었다. 이들은 오히려 더 속도를 내서 이 방향으로 나가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 길을 막았던 것은, 이 책 1부 1장에서 상세히 분석해둔 바와 같이, 북미 수교를 거부하고 북의 조기붕괴를 도모했던 미국과 한국의 냉전대결 세력들이었다.
1970년대의 동서독 수교 – 독일 양국체제와 1990년대 흡수통일이 전혀 성격이 다른 사건이라는 것은, 흡수통일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반추해볼 시각을 1970년대 양국체제의 경험이 제공해주고 있다는 데서도 볼 수 있다. 독일 흡수통일의 최대 문제는 동독을 내부 식민지로, 동독인을 열등국민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통일독일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동구권 – 소련 붕괴라는 충격 속에서 통일과정이 눈사태와 같은 파국적 양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 체결 이후 1989년 소련·동구권 붕괴 이전까지 독일의 양국체제는 동서독의 차이를 장기적이고 점진적으로 줄여나간다는 분명한 공동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독일 양국체제의 경험이 우리에게 여전히 귀중한 타산지석이 되는 이유다.
더구나 과거 독일 양국체제를 둘러싼 국제적 상황에 비해 오늘날 코리아 양국체제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훨씬 더 안정적이다. 1970~1980년대 미소 간의 적대와 대립은 오늘날 미중, 미러, 또는 중일 간의 갈등에 비해 훨씬 날카롭고 높았다. 냉전 이후 세계는 진영 간 이념 적대가 사라지고 국가 간 지역 간 상호 의존이 깊어졌다. 필자는 이러한 새로운 세계상황을 ‘후기근대’로 정의하면서, 이 새로운 역사 단계의 세계사적 의미에 대해 여러 차례 분석하고 음미해본 바 있다. 후기근대에는 과거 소련·동구권 붕괴와 같은 진영 붕괴가 발생하지 않는다. 과거와 같은 수준의 진영 자체가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중국 혹은 미국이 머지않아 과거 소련과 같이 극적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이 세계의 그 많은 ‘전문가’ 중에서 단 한 사람도 없는 이유다. 그리고 이는 코리아 양국체제가, 성공적으로 정립되기만 한다면, 과거 독일의 양국체제보다 훨씬 성공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예상해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과거 아시아의 경제대국 일본에 근무 중이던 미국대사는 본국 국무부장관에게 다음의 노골적 전보를 보냈다. “일본을 완전히 끊어내진 말라. 이들에게 ‘경제적 운신의 폭’을 주지 않으면 무력으로 자체 경제제국을 세우려 할 것이다”. 하지만 백악관은 역사적 경기불황과 싸우는 경제 국수주의에 사로잡혀 조셉 그루(Joseph Grew)대사가 1935년 일본에서 보내온 간청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미국은 대일 경제압박을 확대했고, 이는 통상금지령과 석유수출금지령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루 대사가 위의 전보를 보낸 날로부터 6년 후, 두 나라는 전면전에 나섰다.
오늘의 미국 정계는 또 다른 아시아 대국과의 경제적, 지정학적 갈등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1930년대에 그랬듯이 ‘경제-탈동조화’라는 주제가 대유행 중이다.
트럼프정부 내 강경파는 언제나 그랬듯이, 지난 20년간 친밀하게 지속된 양국의 경제관계를 끝내고, 중국의 공장과 기업의 투자에 대한 미국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야 말로 끝이 안 보이는 미-중 무역전쟁의 결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사태가 경쟁국 중국과의 위험한 동행을 벗어나고 싶은 미국의 욕구를 자극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생각은 전부터 확고했다. 현재 미 의회와 행정부는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두 나라를 떼어놓기 위해 다양한 제품에 대한 수출 금지, 중국제품에 대한 추가관세, 미국 기업의 강제 본국이전, 심지어는 WTO 탈퇴 등 여러 조치들을 강구하고 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것이 되려 중국의 소위 경제 제국주의를 조장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경제 관계만 위험에 빠진 게 아니다. 유럽 내에서도 중국과 최근 수십 년간 쌓아온 교역 및 투자 관계를 축소하고자 하는 논의가 늘고 있다 (물론 유럽은 영국의 EU탈퇴와 함께 이웃 유럽국가와의 관계도 축소하고 있기는 하다). 다른 나라들 역시 작금의 유례없는 경제통합이 너무 멀리 간 나머지, 득보다 실이 많다는 불안감에 점차 빗장을 걸어 잠그려 한다.
이렇게 본격적인 탈동조화의 위협은 1914년 갑자기 터져 나온 제1차 세계전쟁에 버금 갈 역사적 단절이 될 가능성이 있다. 당시 영국과 독일, 그리고 나중에는 미국까지, 서로 밀접하게 뒤얽힌 경제국들은 스스로 자기 파괴와 경제 제국주의의 포탄 속으로 몸을 던졌고, 이 행태는 이후 30년간 이어졌다. 이번 탈동조화는 전쟁이 아닌 포퓰리즘적 충동이 원인이나,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세계적 대유행이 기름을 부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세계경제가 수십 년 간 쌓아온 공급망의 지혜와 미덕을 흔들어 대고 있다.
다른 나라들 역시 작금의 유례없는 경제 통합이 너무 멀리 간 나머지, 득보다 실이 많다는 불안감에 점차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
여기서 진짜 문제는 ‘탈동조화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이다. 미-중 간 긴장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지난 목요일 Fox News인터뷰에서 “전면적 관계를 단절할 수 있다”고 말하며 근래 가장 신랄한 협박을 가했다. 이런 생각이 현실적으로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사실 상 현실화될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그의 언급만으로 글로벌 경제에는 유례없는 충격파가 될 것이다.
실제 대다수 전문가와 당국 관계자는 코로나의 대유행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갈등이 한층 고조되면서 여러 다국적 기업이 비즈니스 모델 변화와 함께 공급망을 미국에 가깝게 재조정할 것이라 내다봤다. 국내 정치상황이 꽤나 복잡한 미국 안에서도 공화당과 민주당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한 목소리로 중국과의 교역관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팬데믹의 여파가 빠르게 지나가고, 거기에11월 선거에서 트럼프와 그의 “미국 제일주의” 보호무역 어젠다가 재선에 실패한다면, 정치인들은 곧 세계 2대 경제대국들을 분리하는 것이 얼마나 까다로운 일인지 깨닫게 될 것이고, 중국과의 탈동조화를 외치는 목소리는 사그라지기 시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국이 미국채 1조 달러 이상을 보유한 2대 채권국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세계 경제의 구조가 바뀌면 비즈니스 모델의 해체부터 산업 전반의 개조까지 엄청난 파급효과가 뒤따를 것이다. 예측불허의 지정학적 결과도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중국은 지난 40년간 촘촘한 글로벌경제 시스템 안에서 서방사회와 교역 및 투자 관계를 발전시키며 피라미에서 고래로 거듭났다. 이 고래를 해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최근 동향을 보면 미-중 관계에 대한 그간의 가정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고 있음을 암시하는 증거가 충분하다. 기존의 미-중 관계는 1970년대 덩 샤오핑(Deng Xiaoping)이 지도부에 복귀해 중국의 40년 미래를 재시동한 당시 성립된 것이었다”. 전 호주 총리이자 유명 중국학 학자인 케빈 러드 (Kevin Rudd)가 Foreign Policy에 전한 말이다.
그는 핵무기 경쟁과 대리전으로 얼룩졌던 1차 냉전의 도돌이표까지는 아니더라도 냉전 1.5는 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 “지금 그런 변곡점에 와 있다.”
이는 과거 냉전 시대와 같은 경쟁 구도의 재등장을 의미할 수 있다. 중국은 이미 자체 경제권 조성 이니셔티브인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에 푹 빠져 있다. 이를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물론 일부 유럽 국가와의 경제 연결을 꾀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은 각각 경쟁적으로 다음 경제 대변환을 이끌 기술 개발, 특히 휴대전화 기술 개발을 착착 진행 중이다.
현재 트럼프정부는 뜻을 모은 국가와 단체 그리고 기업을 잇는 “경제번영네트워크(EPN, Economic Prosperity Network)”논의를 시작했다. 그간 미국경제의 중국의존이 주요한 국가안보 취약성으로 지적된 바, 미국의 대중 경제의존도를 줄이고자 미국 기업이 중국 땅을 떠나 네트워크 구성원과 협력하도록 유도하는 목적도 있다. 예컨대 미국 제조기업이 중국을 떠나 미국 본토에서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베트남이나 인도 등 미국 친화적인 국가로 일자리를 옮길 수 있다.
미 국무부에서 경제 성장, 에너지, 환경 등을 전담하는 키스 크라크 (Keith Krach)차관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자산보호가 핵심인데, 그 중에서도 공급망(supply-chain)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면서 “공급망은 워낙 복잡해 경우에 따라서는 10단계, 20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그 중 정말 중요한 영역과 방해물이 있는 영역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반응은 어떨까? 신(新)미국안보센터의 애슐리 펭(Ashley Feng)연구원의 말을 빌리면 중국은 발전된 기술을 직접 개발해 미국과 여타 서방기업에 대한 의존을 낮추자는 운동에 착수한 이래, 어찌보면 10년 이상을 자체적 탈동조화에 힘써온 셈이다. 실제로 다수의 중국 기업이 미국과의 불화 속에서도 무리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화웨이(Huawei)는 스마트폰 부품 때문에 미국기업에 의지했던 과거가 있으나, 이제는 미국 없이도 건재하다. 다만 이들이 스스로 혁신을 도모하고 기술주도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여전히 전세계 기업과 연구자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므로, 중국은 서방사회와의 완전한 단절은 원치 않는다. 게다가 올해는 이미 팬데믹으로 경제가 둔화되고 있기 때문에 우선 지난 1월 서명한 1단계 무역합의 준수에 매진하며 트럼프를 달래는 등, 일단 미국과의 경제적 긴장을 늦추기 위해 노력할 공산이 크다.
러드는 “코로나 이전에 이미 무역전쟁으로 다소 상처를 입은 경제가 코로나 위기로 큰 손실을 입게 됐다”면서 “아직은 중국이 홀로 설 만큼 강하지는 않아서 당장은 경제관계를 안정시키려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탈동조화는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공급망을 고의적으로 해체한 후, 결국 다른 구성원들과 재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공급망은 세계화와 최근의 미-중 관계를 정의하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컨셉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건 중국의 과도한 달러 의존과 미국의 고급기술을 걱정한 1990년대 중국 정치인들이었다.
오랫동안 트럼프는 중국이 미국노동자의 희생을 발판 삼아 미국경제를 착취하여 부를 창출했으며, 경제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대통령 취임 후, 미국 정부는 중국과의 부분적 경제 탈동조화를 추구해왔다. 처음에는 높은 관세를 통해 중국제품의 미국수입을 줄였고, 나중에는 주요 분야에 대한 중국의 자본투자를 더욱 제한적으로 심사했다.
최근에는 잠재적 첨단기술의 중국수출에도 통제를 확대했으며, 이번 주에는 연방퇴직연금의 중국 주식투자를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중국이 보유하는 미국국채의 상환을 거부(defaulting)하는 방안이 언급되기도 했다. 요즘에는 글로벌 공급망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반도체, 희토류원소, 또는 코로나 팬데믹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의약품과 개인보호장비 등 가리지 않고 탄력을 얻고 있다.
상윈의원(공화당, 미주리) 조쉬 하울리 (Josh Hawley)에 따르면 “이번 팬데믹은 우리가 메이드-인-차이나, 나아가 해외생산에 크게 기대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특히 주요 분야가 중국제조업과 중국공급망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는 미국 공급망의 귀환과 WTO탈퇴를 위한 입법활동에 매진 중으로 “최대한 많은 제조업이 다시 미국본토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팬데믹은 미국이 메이드-인-차이나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미국동맹국들도 미국을 뒤따르기 위해 길을 모색 중이다. 중국의 무역위협에 발끈한 호주는 중국 외 수출시장 및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유럽은 그 어느 때보다 친밀했던 중국과의 무역투자 협력을 재검토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일부 유럽국가는 항구에서 전력망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핵심인프라를 장악하려는 중국의 공격적인 움직임에 크게 당황했다. 중국이 해당 국가에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중국외교부는 일부 서구권에 저돌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코로나 대유행 중 네덜란드와 관계가 틀어지자 제재나 기타 강압 등 완곡한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많은 나라가 이들의 이런 저돌적 전술을 알아차리고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 망가진 국가평판은 회복불가다.” 크라크 미 국무부 차관의 말이다.
독일 주류 언론사인 악셀 스프링거(Axel Springer)의 CEO 마티아스 되프너(Mathias Döpfner)는 최근 유럽의 상황을 바탕으로 “(중국이) 넘어서는 안될 선을 긋고”, 미국을 따라 대중 경제협력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고문에 “유럽이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지키지 않으면, 천천히 중국 식민지가 되는 아프리카와 같은 운명에 시달릴 수도 있다”고 썼다.
이러한 동향은 정치를 초월한다. 즉, 트럼프 정부가 끝나도 탈동조화는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트럼프의 대항마로 떠오른 민주당의 조 바이든(Joe Biden)은 무역 및 외교정책의 중도파이지만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상원의원 지지자들을 포함, 그의 경제무역정책에 좌회전을 촉구하는 진보진영 포퓰리즘의 압박이 거세다. 이번 주 바이든은 자신의 최측근과 샌더스 지지자들을 한데 모은 민주당 단일 플랫폼을 구성하고자 “단일화” 공동 태스크포스를 발표했다. 샌더스는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 회복과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등, 중국과의 전면적 무역 재협상을 요구해왔다. 그 사이 공화당에서는 부통령 시절 바이든이 중국에 너무 너그러웠다고 공격하며 향후 논쟁을 대비한 기반을 다지는 중이다. 이번 대선기간의 화두는 중국과 코로나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크게 보면 현재의 탈동조화 경쟁은 지난 20년간 꾸준히 상승한 중국 경제력의 결과이다. 트럼프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제조업 등 서방국가 내 주요 산업의 공백을 중국 탓이라 한다. 중국 국영 기업은 흔히 정부가 제공하는 보조금과 경쟁사 지적재산의 무단사용을 바탕으로 운영되기에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한 이래 미국 및 기타 선진국과 불공정한 경쟁을 해왔다는 것이다.
하버드 케네디스쿨(Harvard University’s Kennedy School) 대니 로드릭(Dani Rodrik)국제정치학 교수에 따르면, “과거에는 중국이 언젠가 경제 운용방식을 바꿔 미국과 유럽의 기대에 부응할 것이라고 가정했기 때문에기존 상황을 지속할 수 없었다.” 또한 “그 가정은 처음부터 인정하기 어려웠고, 틀렸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그는 “미국과 유럽의 우려가 타당하다”면서,“ 중국이 자국정책을 지키고 싶듯이 우리도 우리의 노동시장과 혁신 그리고 기술을 적절히 지키고 싶은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중국의 WTO 가입을 선진국과 중국 간 경제 관계의 원죄로 지적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그것이 미국의 이익에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이었다는 주장을 견지하는 이들도 있다.
“중국이 이미 미국 시장 안에 진입한 상황이었음을 간과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이 포기한 건 없다. WTO 가입을 위해 양보를 한 건 중국이다.” 중국의 WTO 가입 당시 조지 W. 부시 (George W. Bush) 정부 통상대표를 맡은 로버트 졸릭(Robert Zoellick)의 주장이다.
그는 “국제협력이 실패했다는 생각이 하나의 주제, 새로운 통념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런 가정은 모두 오해”라면서 “핵 확산, 글로벌 금융위기, 환경, 안보 등 국제 협력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 경우도 아주 많다”고 말한다.
“국제협력이 실패했다는 생각이 하나의 주제, 새로운 통념이 되어버렸지만, 그건 모두 오해다.”
이런 주장이 중국의 자유 무역이 결국 미국의 발목을 잡았다는 트럼프의 오랜 믿음에 닿을 리 없다. 그는 2017년 대통령 당선 이전, 코로나 바이러스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이런 생각을 고수했다. 실제 2015년 Fox News와의 인터뷰에서 “중국과 너무 엮여 있기 때문에 중국이 잘못되면 우리도 무너질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중국은 문제가 많으니, 나라면 지금 중국과 결별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겠다.”
이미 중국과의 경제관계가 득이 될 것인가에 대한 회의론이 만연한 와중에, 중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자, 중국과의 결별 욕구를 증폭시켰다. 중국은 그간 세계 여러 공급망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기 때문에 올해 초 세계경제가 멈추자 파급효과가 아시아, 유럽, 북미 전역에 퍼졌다.
현재 미국 통상대표를 역임 중인 로버트 라이츠시저(Robert Lighthizer)는 이번 주New York Times에서 미국 일자리의 해외이전은 “잘못된 실험”이었고, 이번 팬데믹으로 극명히 대조되는 취약점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팬데믹은 새로운 방식으로 트럼프 무역정책의 정당성을 보여준다. 핵심 약품과 의료기기, 개인보호장비 등의 원료를 외국에 너무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썼다.
그런데 전염병의 여파가 의료품에만 미친 것은 아니다. 자동차업계와 전자업계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공장들이 연초에 중국이 경제활동의 동면에 들어가면서 운영이 힘들어졌다.
베아타 자보르칙(Beata Javorcik)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성(province)을 하나 봉쇄했더니 갑자기 전세계 공장들에 재료공급이 막혔다”면서 그 결과 우리는 “얼마나 중국에 의지하고 있는 지와 글로벌 공급망에 대안이 없음을 자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원과 발생을 은폐하려는 시진핑 (Xi Jinping) 주석의 시도는 미국이 그동안 너무 저들의 불투명하고 비민주적인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정치제도에 너그러웠던 것 아니냐는 중국혐오만 부채질할 뿐이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 2대 경제대국 간의 결별을 가속화하기 위해 팬데믹 사태를 이용하고 있다. 미국은 경제와 국가안보 간 구분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을 반영하여 국가경제안보전략(Economic National Security Strategy)의 초안을 작성 중이었는데, 팬데믹 선언 이후 해당업무의 긴급성을 배가됐다. 이번 사태로 주요 인프라기술에서 필수의료장비 공급망에 이르기까지 지정학적 라이벌과 상호 의존하고 있었음이 탄로났기 때문이다.
6.25 70주년을 앞두고 미연방하원에서 한국전쟁 종식 평화협정체결 촉구결의안 동참이 확산(擴散)되고 있다.
Ayanna Pressley 의원과 이금주씨(왼쪽)
코리아평화네트워크 등 4개 미주평화단체들은 24일 ‘한머리땅(한반도) 종전지지 결의안’(H. Res. 152)에 매사추세츠 아이아나 프레슬리(Ayanna Pressley) 의원과 뉴욕 폴 톤코(Paul Tonko) 의원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고 밝혔다.
6월 첫째 주와 둘째 주에 걸쳐 진행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온라인 로비 액션 결과, 두 의원이 합류함에 따라 결의안 지지 의원은 대표 발의자인 로 칸나 의원을 포함하면 45명으로 늘어났다.
한국전쟁 종식, 평화협정체결 촉구 결의안은 2019년 2월 북미 싱가포르 정상 회담을 앞두고 로 칸나(Ro Khanna, 캘리포니아 하원의원), 앤디 김(Andy Kim, 뉴저지 하원의원), 바바라 리(Barbara Lee, 캘리포니아 하원의원) 등에 의해 발의되었다.
이번 로비 활동은 남북 관계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고 나날이 한반도 긴장이 고조(高調)되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직접 로비를 통해 미국 의원들을 움직였다는 것에 더욱 의미가 크다.
로비행동의 참가자였던 ‘전쟁에 반대하는 여성(Women Against War)의 멤버인 Maud Easter(마우드 이스터)’은 “폴 톤코 하원 의원실과의 회의 결과로 구속력있는 평화 협정을 요구하는 하원 의원 결의안의 공동 지지자가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톤코 의원은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북한과 외교 대화를 지원했다. 한국 전쟁이 외교에 방해가 된다는 우리 입장을 인정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보스턴 부근 아이아나 프레슬리 의원 지역에 거주하는 이금주씨는 “정말 기쁘다. 가장 진보적인 민주당 의원 중 하나인 의원이기에 우리의 기대도 컸다. 하프레슬리 의원과 3번의 만남을 갖고, 보좌관들과 여러 차례 방문 미팅과 수십통의 이메일, 최근 화상미팅까지 지난 1년6개월간 희망을 놓지 않고 꾸준히 설득했다. 마침내 프레슬리 의원이 코리안 아메리칸과 한국인들의 평화의 열망을 이해하고 지지해 한국전쟁 종식 결의안에 서명을 하게 됐다. 다른 의원들의 설득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온라인 로비 액션은 코리아평화네트워크(Korea Peace Network, KPN), ‘코리아 피스 나우(Korea Peace Now! Grassroots Network, KPNGN)’,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해외동포연대(Peace Treaty Now, PTN)’, 그리고 위민크로스DMZ (Women Cross DMZ, WCD)에서 공동주최하고 있다.
조현숙씨는 “이번 로비 활동에는 26개 주 90개 지역에 거주하는 200명 이상의 유권자들이 참여했으며, 이중 84개 의원사무실과 만남이 진행되었다. 총 참가인원 110명은 한인이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로비주간에는 H Res 152 외에도 한반도 관련 다른 법안들도 로비활동을 펼쳤다. 북한과 위헌적 전쟁 금지 법안인 H.R. 6639, 대북 인도적 지원 강화 법안 H.R. 7218, 상원에는 대북 인도적 지원 강화 법안인 S.3908, 한국전쟁 이산가족 상봉 법안인 S.3395 등이 이번 로비 주간의 주요 내용이었다.
한편 캐롤린 마로니 하원의원(Carolyn Maloney-NY)과 바바라 리 하원의원(Rep Barbara Lee-CA)은 북한과 위헌적 전쟁 금지 법안인 HR 6639의 첫 지지자가 되겠다고 나섰으며, 폴 톤코 (Paul Tonko-NY)도 바로 뒤따라 지지에 나섰다.
에드 마키(Ed Markey-MA) 상원의원과 벤 카딘(Ben Cardin-MD) 의원은 한국전쟁 이산가족 상봉 법안인 S.3395 결의안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메릴랜드 상원의원 벤 카딘 (Sen. Ben Cardin-MD)이 대북 인도적 지원 강화 상원결의안인 S.3908의 첫 지지자가 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각 미팅에서는 위 법안에 대한 지지 및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종전선언에 대한 입장을 내주기를 요청했다. 많은 의원실에서 6.25 주간에 한국전쟁이 70주년을 맞이했으며 종전을 통한 한반도 평화를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각 의원의 SNS에 포스팅 하거나 성명서를 내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번 활동은 ‘하노이 회담’ 이후 북에 최대압박 정책을 가하고 있는 미국 정부를 향해 유권자들의 지속적인 종전협정 요구를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팬데믹이 세계 경제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할 기회를 주는 이유는 하나다. 미국과 그 외 대부분의 국가가 올해 상반기 경제가동을 멈췄기 때문이다. 이는 충격적일지 언정, 백지에서 새로 시작할 절호의 기회를 만들고 있다.
다트머스 대학교의 무역 역사와 정책 전문가인 더글라스 어윈(Douglas Irwin) 교수는 “경제활동이 활발하고 실업률이 낮을 때 세계 경제를 분리한다면 그 고통을 바로 느끼겠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상황이기 때문에 분리가 쉬워졌다고 볼 수 있다”면서 “이런 인위적인 위축으로 과거로 돌아가지 않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세계화와 함께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글로벌 공급망이었다.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도 있었지만 제조회사에게는 저비용 고효율이, 거의 전세계 모든 곳의 소비자에게는 이득이 허락되었다.많은 기업이 단순한 글로벌 생산 원천이 아닌 세계 최대소비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중국 투자를 지속했다. 중국 시장에 전기차를 대량공급 중인 테슬라(Tesla)의 상하이 공장을 보라.
각 정부는 근본적인 사업 논리를 뒤집기 위해 정책을 통해 특정분야 기업들이 제조설비를 이전하도록, 또는 투자자들이 중국투자를 재고하도록 독려하거나 강제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이러한 공장이전 강제의 일환으로 중국제 등 수입품의 관세를 인상하고자 국가안보 논의를 이용해왔다.앞으로는 국방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과 국제비상경제권한법(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 등 정부가 민간 분야의 일부 생산 관련 결정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에도 손을 뻗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트럼프정부는 중국의 첨단기술 탈취를 막기 위해 중국자본의 미국기업 투자에 대한 심사를 강화했다.
다만 미 의회와 행정부는 여전히 기업들이 중국에서 사업을 계속할 때 정치와 평판에 미치는 위험, 중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은폐가 초래한 경제적 손실, 그리고 조금 구태의연하지만 애국심 등 복합적인 요인들을 깨닫고 기존의 사업 관행을 정비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일부 정부 당국자는 실제로 중국 철수를 위해 단기적인 재정적 충격은 감수할 의향이 있음을 표한 기업이 있었다고 밝혔다.다만 구체적인 이름 언급은 거절했다).
“전문가들은 제조업 얘기가 나오면 ‘절대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웃는다. 그런데 제조업은 획일적이지 않다.”
다른 기업들도 정부에 협조하는 모양새이다. 대형 반도체회사 인텔(Intel) 등은 정부와 민간부문 소비자를 위해 첨단제조시설을 미국에 다시 세우는 아이디어를 검토 중이다. 이번 셧다운(shutdown) 기간 중 멕시코처럼 인접한 국가의 공급마저 중단되면서 다른 기업들도 생산활동을 미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생산자와 제조사,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은 중국과 다른 공급망 등 너무 많은 외부요인에 지쳤다.이제 직접 생산을 통제하고 싶어한다.” 조쉬 하울리 상원의원(미주리)의 말이다.
해당 정부는 단호하게 정책을 추진할 준비를 마쳤지만, 이들은 사실 허술한 문에 기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포퓰리즘이나 팬데믹 사태만 글로벌 공급망과 세계화 이면의 사업 논리를 재확립하고 있는 게 아니다. 2011년 일본 쓰나미와 말레이시아 홍수처럼 기후변화와 극단적 기상사태로 일회성 외부 충격처럼 보이지만 글로벌 생산을 뒤흔드는 사건의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자보르칙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팬데믹과 그 여파로 단순히 저렴한 게 아닌 견실한 공급망의 가치가 회복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신용평가기관과 주주가 기업을 평가할 때 앞으로는 회복력이 그 잣대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기업에게는 공급망을 변화시키는 것, 중복이 될지라도 지리적 다양성을 가지는 것이 강력한 보상이 될 것이다”라 전했다.
탈동조화의 첫 물결은 아마도 의료공급망에서 일어날 것이다. 이번 팬데믹 대응과정에서 마스크와 장갑은 물론 호흡기 조달조차 어려워 그 취약성을 드러냈다. 통신에서 반도체에 이르는 여러 첨단기술의 공급망 역시 안보를 이유로 재구성되고 있다. 하울리 의원처럼 탈동조화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현재의 트렌드가 더 넓은 제조분야로 확대되기를 바란다.
하울리 의원은 “전문가들은 제조업 얘기가 나오면 ‘절대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웃지만 제조업은 그렇게 획일적이지 않다.”면서 “이 세상에는 정말 많은 정밀 기기와 첨단기술 제조가 진행 중이다. 그런 기술이 필요한 제품은 거의 대부분 미국이 디자인하지만, 실제 그 기기와 완제품은 미국에서 생산하지 않는다. 미국이 디자인과 생산을 모두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실제 많은 기업들이 중국을 떠나 생산기지를 베트남 등 아시아국가나 미국으로 옮기기 시작했다.컨설팅회사 커니(Kearney)가 최근 발표한 제조업회귀지수(Reshoring Index)에 의하면 실제 점점 더 많은 제조회사들이 미-중 무역전쟁의 위험을 느끼면서 중국을 떠나 공급망을 다양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기 회복력과 공급망의 분산을 기준으로 기업평가를 시작하는 대형 투자자와 자산운용사도 늘어나고 있다.
물론 목전에 있는 듯한 이 탈동조화에는 비용이 따른다. 미국 등 고비용 국가로 생산을 이전하는 회사들은 최근 10여 년간 달성한 효율을 다소 잃을 것이다. 아무리 미국 정부가 수많은 인센티브와 경고를 쏟아내도 보호주의적 압력은 많은 산업에서 회사이사회의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
“괴로움에 발버둥치며 결국 중국을 떠나 다른 국가로 이동하는 산업도 있을 것이다.”
투자자에게 중국 경제 관련 데이터 분석을 제공하는 플랫폼인 차이나 베이지-북(China Beige Book)의 쉐자드 H.카지(Shehzad H. Qazi)는“대체로 기업은 주가에 손상을 주는 요인이라면 놀라울 만큼 강한 저항력을 보여줄 것”이라면서 “비용측면에서 전혀 말이 안되기 때문에, 예컨대 나이키(Nike)가 생산기지 전체를 미국으로 옮겨서 모든 신발과 운동복을 미국에서 생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그걸 가능하게 할 정도로 매력적인 세제혜택은 없을 것으로 본다.”
다만 다른 산업에 비해 탈동조화의 규모가 작은 일부 산업의 경우, 그 과정이 더 쉽거나 최소한 덜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탈동조화가 사실상 불가능한 산업도 있을 것”이지만“괴로움에 발버둥치며 결국 중국을 떠나 다른 국가로 이동하는 산업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한 국가가 경제적 자급을 추구하면 이는 십중팔구 다른 국가들도 가담하여 향후 투자기회를 박탈하고 교역의 감소를 초래할 것이다.
전 미국 통상 대표 졸릭은 “1980년대 적시(just-in-time) 생산방식과 관련하여 얻은 교훈도 일부 수정될 것이며, 그게 자연스럽고 적절”하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탈동조화에는 대가가 따를 것이므로 우리는 어디서 그 대가를 치룰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모든 생산을 미국 내에서 처리하면 그 자체에도 대가가 있을 것이고, 무역장벽이 날로 높아지는 세상에서 고군분투해야 할 미국의 수출기업들에게도 대가가 있을 것이다.”
2018년 3월 23일 중국 주식은 개장과 동시에 폭락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제품에 수십억 달러의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이 가능한 보복조치 목록을 작성한 직후였다.
대규모 탈동조화가 이리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세계가 지난 80여 년간 미국의 주도 하에 의도적으로 각국의 경제통합을 (약화가 아닌)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개방적, 상호연결 세계경제를 전후 사회의 주요 구성 요소로 삼았는데, 이는 미래의 글로벌 분쟁을 모면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세계2차대전이 끝나기도 전인 1944년에 브레턴우즈(Bretton Woods)체제가 탄생했고, 그 결과 WTO의 전신인 관세무역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가 도입되어 경제적 상호의존을 평화와 연결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세계2차대전이 끝나고 몇 년 후에는 전쟁으로 얼룩진 유럽 대륙의 경제안보적 유대의 초석으로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의 창설이 뒤를 이었고, 이는 향후 유럽연합(EU) 결성의 근간이 되었다. 이후 수십 년간 일시적인 하락이나 퇴보가 있었을 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및WTO창설에서 EU회원국 간긴밀한 경제통합과 확대에 이르기까지 그 추세가 계속되었다.
전반적인 과정은 가장 최근 겪은 거대 탈동조화, 즉 격동의 세계1차대전에 대한 반작용 그 자체였다. 세계1차대전으로 첫번 째 세계화시대가 막을 내렸고, 이후의 10년은 대공황과 무역장벽, 자국경제주의, 세계화의 전면적 퇴보로 점철되었다.
그 결과로 국가 간 경제경쟁은 경제문제가 안보위협이 되는 제로섬, 근린궁핍화(beggar-thy-neighbor)경쟁으로 변질되었다. 원자재가 필요했던 일본은 만주를 점령했고, 이는 1930년대 그루 대사가 우려한 바 있는 “대동아공영권(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이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은 자원이 풍부한 동남아를 공격했고, 진주만에서는 선제공격을 강행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고립되었던 나치 독일은 독일팽창주의 개념인 레벤스라움(Lebensraum)의 경제적 동의어로 거대한 경제권이라는 뜻의 Großwirtschaftsraum의 창설을 꾀했고, 결국엔 힘으로 이를 실현하고자 했다.
WTO에서는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의 경험에서 도출할 수 있는 주요 교훈은 국제적 정치협력과 항구적 평화는 근본적으로 국제경제협력에 의존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교훈을 가장 잘 흡수한 나라가 미국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이 작금의 의도적 세계화 퇴보를 고민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버드 경제학자 로드릭 교수는 “탈동조화의 파급력은 2008-2009 금융위기 이후 십여 년 간 완만하게 축소된 글로벌교역과 글로벌공급망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한다. “포지티브-섬보다는 중상(重商)주의와 제로-섬에 가까운 무역 접근방식”이라는 설명이다.
로드릭 교수는 중국과 관련하여 “탈동조화 논의 시 가장 고민해야 할 부분은 경제를 채찍으로 활용하여 경제관계를 지정학적 경쟁의 인질로 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에 누렸던 세계화는 없어질 것이다. 세계화를 뒤집기 위해 어디 수준까지 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렇다면 무역장벽이 높아지고 탈동조화가 가속화될수록 세계는 다시 1930년대에 가까워진다는 의미인가?
다트머스의 어윈 교수는 “미국에는 실제 그런 지경까지 가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는 반면, 좀더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는 나라들도 있다”는 입장이다. “특정 국가가 탈동조화의 길을 걷게 되면 이들은 다른 나라들에게도 탈동조화에 동참하고, 개방과 통합이 주는 이익을 일부 포기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그러면 상황이 급변할수 있고, 이는 정히 1930년대와 맞아 떨어진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하면 이러한 역사의 되풀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세계화, 무역, 역외투자 등이 대공황 당시보다 훨씬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는 “반론을 제기하자면 오늘날에는 경제의 통합정도가 높으므로 호주와 캐나다, EU는 미국이 원하는 만큼 탈동조화에 따라주지 않거나, 미국처럼 본격적으로 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그 결과도 어둠의 골짜기에 또다시 빠지는 것이 아닌, 통합의 축소에 그칠 것이라는 의견이다.
“과거에 누렸던 세계화는 없어질 것이다. 세계화를 뒤집기 위해 어느 수준까지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졸릭 전 통상대표는 공급망의 재조정, 수출 통제, 무역금융 제한, 전통적 보호주의의 부활 등 이번 팬데믹과 국가봉쇄가 야기한 효과를 언급했다.
“이들 현상이 결국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 확신할 수 없지만, 방향이 분명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다고 1930년대로 돌아간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팬데믹 리스크로 기존의 경제침체가 악화되어 경제자급주의로 간다면, 정말 끔찍한 결과가 생길 수 있다”면서 “매사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고 당부했다.
트럼프 정부가 코로나 팬데믹을 이용해 경제적 탈동조화를 더욱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바, 앞으로의 미-중 관계에 귀추가 주목된다.
미국은 이미 중국과의 전략적 제휴 카드를 버렸고, 공공연히 중국을 주요 지정학적 라이벌로 취급하고 있다. 중국은 이번 팬데믹을 대만에 대한 압박증대의 기회로 삼았다. 이들은 대만을 반란에 의해 떨어진 영토로 여긴다. 연간 6천5백억 달러 이상의 상호 교역, 수백억 달러 이상의 투자,중국이 보유 중인 조 단위 미국 국채 등으로 결속된 미국과 중국의 경제관계를 약화시킬수록 양국 간 대립은 극도로 악화될 것이다.
러드 전前호주 총리는 “현재 우리는 경제 탈동조화의 시작과 함께 미-중간 경제적 완충재의 상실을 보고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이 완충재를 통해 냉전시대 미국-소련 관계와는 차별성이 있었다”고 말한다.
“또 다른 팬데믹이나 기후 문제, 금융 문제, 이란 또는 북한 문제가 터졌을 때, 중국과 협력관계가 없다면 얼마나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중국과 관계가 틀어지면 날로 적대성과 공격성을 띄는 중국 외교정책의 완화는 고사하고,미국이 수년간 중국을 상대로 추진해온 개혁 관철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졸릭 전 통상대표는 “경제협력의 쇠퇴가 마찰 증가로 이어질 것이냐고 묻는다면, 답은 그렇다”면서 “탈동조화가 중국이 파괴적 행동을 멈추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탈동조화 이전에 미국이 밀어붙였을 기준에 신경을 끄게 되는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즉,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중국에 글로벌체제의 “책임감 있는 당사자”가 되도록 호소를 해놓고,실제로 졸릭 전 통상대표가 국무부 차관의 자격으로 지난2005년 발표한 연설처럼 일부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결국 미국은 패배를 인정하게 되는 셈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세계최대 인구, 제2의 경제대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과의 관계를 포기하는 것은 글로벌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이해관계를 전반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다.
“또다른 팬데믹이나 기후 문제, 금융 문제, 이란 또는 북한 문제가 터졌을 때, 중국과 협력관계가 없다면 얼마나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중국 인민대표대회 위원들이 2018년 3월 20일, 베이징에서 열린 인민대표대회 폐회식에서 시진핑중국 주석의 연설을 듣고 있다. 중국 정책입안자들의 연례회의인 인민대표회의는시 주석의 국수주의적 연설로 막을 내린다. 시 주석은 해당 연설을 통해 세계속에서 국가의 위상을 찾겠다는 중국의 결의를 당당히 표현했다.
그리고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 등 트럼프 정부의 다른 외교정책 과제와는 달리, 중국과의 갈등 문제는 내년에 민주당이 백악관 주인이 된다 한들 크게 누그러지지 않을 것이다.
닉슨(Richard Nixon) 시대에 처음 중국비밀 방문의 문을 연 후, 전략적 제휴는 실질적으로 후속 정부들의 길잡이가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과거 오바마 정부에 속했던 이들조차 이에 대한 사망선고를 내렸다. 사상최대 실업률과 경제침체로 그 누구도, 특히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실시되는 바이든(Biden)도 중국에 호락호락하지 않을 태세다. 그리고 외국인 투자 개혁에서 외국인 투자 통제, 중국 수입품에 대한 유지에 이르기까지, 트럼프 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펼치는 다수의 경제정책은 펜 한번 굴려 번복하기엔 정치적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신미국안보센터 의 펭 연구원의 설명이다.
그는 “미국에서는 당을 초월해 중국에 더욱 강경하게 맞서야 한다는 강경화법이 진행 중이고, 이번 팬데믹 사태는 기름을 부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결국 미국이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한 세계화의 한 축, 즉 글로벌공급망과 무역을 줄이겠다는 건 아무리 잘 말해봐야 불완전한 해결책이며, 다른 문제들을 악화시킬 것이다. 졸릭 전 통상대표는 오늘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경제적 탈동조화를 택하는 것은 미래의 또 다른 골칫거리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세계화의 관성으로, 한 지역의 시스템을 방해하려 든다면 그것이 팬데믹이든 이민이든,그 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무역체제를 망가뜨리면 개발도상국의 성장 기회도 죽이게 된다. 저성장은 더 많은 이민으로 이어진다. 이민이 늘어나면 선진국의 정치적 긴장은 더 높아진다. 그는 현 상황을 두고 “풍선을 쥐어짜는 셈”이라고 말했다.
출처: Foreign Policy, 2020년 5월 14일
키스존슨 (Keith Johnson), 로비그레이머 (Robbie Gramer)
키스 존슨(Keith Johnson)은 Foreign Policy에서 선임기고가로 활동 중이고, 로비 그레이머(Robbie Gramer)는Foreign Policy의 외교 및 국가 안보 기자이다
만약 독자 여러분이 미국 시민들의 항의시위가 우리를 어디로 안내할 지 안다면, 필자인 나보다 매우 명석한 것이다. 고백하건대, 정부의 강압적 기구들과 맞서 싸우고 있는 대중의 항의시위로 인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헤아리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어렵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어려운 이유의 하나는, Timur Kuran이 세미나 중에 설명하였듯이, 개인적인 저항의 성향을, 이번에는 시위에 가담하는 것이지만, 미리 추정하는 일이 실제로 불가능한 까닭은 개인적 정보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처럼 발달한 시기에도, 어떤 사소한 일이 동기가 되어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 나오게 될지, 어떤 조치를 취해야 사람들이 진정鎭靜하고 집으로 돌아갈는지, 외부인으로서 이를 알아내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시위에 참가하는 것은 ‘폭포수(군중심리)’ 효과를 지니고 있다. 대부분은 자신이 시위를 처음 주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지만, 5천 명이 모인다면 그 중 한 사람이 되는 것에는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항의운동의 규모는 시간이 흐르면서 커지고, 특히 정부가 초기 단계에 시민들의 흥분을 부추기는 대응을 하면 시위의 흐름은 더욱 커져만 간다.
트럼프 대통령(그리고 공화당 Tom Cotton 상원의원)은 시위를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위압적인 힘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듯싶다. 그는 여기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때때로 강압적인 위세가 통할 때도 있는데, 다중의 시위가 체제의 안전을 위협하고 여론이 강압적 조치를 지지하고 강제적인 권위가 질서를 옹호하고 책임을 진다는 판단이 서있을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란의 Shah 등 독재자들이 보여 주었듯이, 철권鐵拳을 휘두르는 것이 평화로운 시위를 폭력적으로 변하게 하고 사람들을 반대편에 가담하게 하며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들면서 안보(강압)의 조직들이 기능을 상실하면서 무력해 진다. 설령 무자비한 독재자가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시리아에서 보듯이, 해당국가는 이미 거덜이 난 상태가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Trump나 Cotton이 원하는 막무가내의 억압이 정당화될 만큼 미국이 무질서한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약간의 범죄와 약탈이 있긴 했지만 (이들 행위자들은 온당한 비난을 받아야 하고, 체포해서 법의 판결을 받게 해야 한다), 그러나 알려진 정보와 데이터에 의하면 압도적 다수는 매우 평화롭게 시위에 참가하였으며, 상식을 벗어난 폭력의 경우는 드물게 예외적이었다. 더구나 폭력 사태는 시위를 제지하는 경찰력이 과도하게 자극하면서 촉발된 것이었지, 시위대가 먼저 폭력을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시위참가자들은 공공조직을 파괴하거나 헌법적 질서를 뒤흔든 사례가 없다. 연방의회에 불을 지르거나, 백악관의 출입구를 부수거나, 시장과 의원 또는 경찰 지휘관을 납치하려고 시도한 적이 없다. 몇 주 전에 미시간 주에서 극우집단이 총기로 주 소속 입법의원들을 협박한 사례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어떤 주지사도 연장정부에게 시위대에 대처하기 위한 협력을 요청한 바도 없다.
FBI에 의해 Antifa(반파시즘)운동으로 알려진 위험한 무리는 다행히 폭력을 조장하지 않았고(아마도 이들은 극우적인 민병대인 듯하다), 폭스뉴스는 이점에 크게 실망하였다.
오히려 헌법질서를 위협하는 주요 움직임은 시위참가자들이 아니라 백악관 자체에서 나왔다. 이런 배경에서 현직 및 전직 군부 지도자들이 공식적으로 비판에 나서는 것을 우리는 목격했다. 이들은 트럼프가 원한다 하더라도 군대조직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이들은 미국시민들이 공격해야 하는 전장터의 무리가 결코 아니며, 군대가 복무해야 하는 신성한 역할이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을 준수하고 외국의 침략에서 국가를 방위하는 것임을 정확히 숙지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의 상황은 한가지를 분명히 예시하고 있다. 트럼프는 능력이 없는 그리고 절망에 빠진 대통령이며, 그가 선택할 다른 수단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선임자(오바마)는 2008년의 위기에서 국가를 성공적으로 구출해낸 반면에, 현재 경제는 점차 수렁에 빠져드는 가운데 트럼프는 조만간 이를 회복시킬 아무런 계획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최근의 일자리 현황은 충격적이며, 수천 만 명이 대선선거 당일에도 여전히 실직상태일 것이라는 것이고, 이점을 트럼프 자신도 잘 알고 있다.
나라가 이 지경인데 COVID-19에 대처하는 트럼프의 행동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바이러스가 마법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가 지닌 예의 습관성 거짓말인데, 문제는 10만 명 이상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의 허풍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축복받은 주변의 국가들이 능력있는 지도자의 지휘에 따라 회복기에 들어서면서 안정적인 사회활동을 재개할 준비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미국의 상황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조만간 재차의 대규모 감염을 걱정하는 처지에 빠져 있다.
마지막으로 외교정책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무한 상태에서 그의 충동적인 행동은 상대국들을 담대하게 만들고 동맹국들을 화나게 만들면서 도무지 외교적 성과라고는 내놓을 것이 한가지도 없는 지경이다. 트럼프는 문제의 해결능력이 전혀 없는 인물이다.
그가 하는 짓이라고는 나라 전체가 영구적 타격을 입는다 해도 상관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분열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거짓말이 아니라, 그는 폭력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그의 실책으로부터 우리의 관심을 멀리하고, 미국시민들이 공공질서의 대규모 위협에 직면하게 하여 그가 동원하는 모든 강압수단을 정당화시키려 하고 있다.
정말로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다. 미국의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란 자가 폭력을 부추기고 국내에 혼란을 야기시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유리하게 유도하려는 것이다. 리차드 닉슨조차도 결코 이런 정도는 아니었다.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자연스럽게 트럼프가 그토록 절절하게 필요로 하는 대혼란의 상황을 본인 스스로 부인하도록 하는 것이다. Erica Chenoweth와 그녀의 동료는 비폭력적인 시민저항이 폭력적인 봉기보다 사회변혁에 훨씬 효과적이라는 점을 저술하였다.
요점은 간단하다. 폭력은 정부가 사용하는 강압을 정당화시키는 것을 용이하게 하는데, 국가의 강압적인 무기(조직)들은 항의하는 시민들 것보다 매우 강력하다. 그러나 시민들이 평화롭게 항의를 진행하면, 강제적인 진압을 정당화시킬 수 없으며, 경찰조직이나 국가수비대 또는 다른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하기 더욱 어려워 진다. 강압적 수단을 사용하게 되면 미국시민들이 이를 지켜보면서 저항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평화스런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것은 현재의 대통령이 국가를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증거가 될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필자가 진심으로 염려하는 일이 있다. 현재 진행중인 항의시위가 일차적으로 인종차별에 관한 것이고, 전적으로 정당한 사유이지만, 미국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안들은 인종차별을 넘어서는 내용들이다. COVID-19의 충격이 소수인종들에게 비대칭적으로 고통을 발생시킨 사례를 포함하여 인종차별에 대한 합법적인 문제에 추가하여, 이번 시위에는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표출되고 있는데 최근 몇 년간에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광범한 계층보다 생활이 매우 풍족한 소수의 정치적 경제적 엘리트들이 상대적으로 좋은 일자리를 제공받으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한다는 사실을 향하고 있다.
시민들의 분노는 개혁을 거부하고 직위를 남용한 책임 당사자들의 해고를 거부하고 있는 경찰조직을 일차적으로 향하고 있지만, 또한 2008년의 금융위기를 야기시킨 월가의 내부자들이 사태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고 있지 않은 사실에 더욱 격분하고 있다. 이러한 분노의 표출은 직위남용이 폭로되고 처벌받기 전에 수십 년간 위세를 떨었던 Harvey Weinsteins를 향하고 있으며, 존 볼턴과 에리옷 에이브람스(극우변호사 출신으로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특사)와 같이 소위 외교전문가라는 작자들이 벌리고 있는 황당한 뻘짓을 지켜보아야 하는 좌절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렇듯 엘리트 층에 대한 배신감과 직위남용에 대한 광범한 시민들의 분노가 정상적인 상태에서 등장하지 못할 트럼프 그리고 버니 샌더스라는 인물들을 현실적인 정치적 힘으로 형성시킨 것이다.
2016년으로 돌아가 보자. 트럼프는 자신에 대한 자찬을 통하여 미국이 처한 어려움을 청산하고 자신이 지닌 사업적 혜안으로 모든 현안을 처리하겠다고 허풍을 떨면서 광범하게 퍼져있는 대중들의 불만을 조직하여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다.
비록 그의 지지자들 일부는 여전히 인정하지 않지만, 이제 트럼프의 사기성 거짓말은 완전히 노출되었다. 어려움(쓰레기)를 청산하기는커녕, 그는 자신의 행정부 요직에 로비스트, 졸부들, 추종자들, 잡동사니들 그리고 부실한 자신의 가족들을 배치하여, 공공의 세금으로 사익을 취하여 왔다.
재앙에 가까운 통치방식으로 끊임없는 사직과 해임 그리고 대리지명 등 미국 행정부 역사상 요직인사에 가장 잦은 교체를 반복하면서 중앙정부 기능이 국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노출하였다. 이런 와중에 팬데믹이라는 공공보건의 절박함과 경제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면서, 트럼프는 상황을 진정시키며 조직을 단합하고 격려하고 지시하는 능력이 전무하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오로지 거짓말하고 뻐기고 비난하는 것이 그가 가진 정치기술의 전부인 것임을 노출시켰다.
나의 판단으로는 시민들의 분노가 지금부터 오는 11월 대선의 시점까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하며, 특히 대도시권에서 심해지면서 인종차별의 주제를 넘어 다양한 이슈로 확산될 것으로 본다. 중소기업의 임금지불에 대한 연방정부의 지원도 끝나가고 개인의 저축도 바닥이 나면서 시민들은 임대료조차 내지 못해 숙소에서 쫓겨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고, 젊은 세대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야만 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은 질병에 노출되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제 우리 대부분은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가 가능할지 회의를 갖게 될 것이다. 미국시민들은 외국의 거버넌스가 안정된 국가들이 하나 둘 활동을 재개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찾아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왜 미국은 이것을 해내지 못하는지 스스로 자책하게 될 것이다.
분열을 획책하는 도날드는 이런 시점에서도 불난 집에 기름을 붇듯이 지옥에서도 선동을 획책하고 그의 실책에 대한 회생을 시도할 것이다.
우리는 그가 무슨 짓을 저지를 것이지 직감적으로 안다. 그는 자신이 벌려놓은 실책에 대해 중국과 WTO를 비난하고 낸시 펠로시와 오바마를 언급하고 힐러리의 이메일 서버와 새로운 매체 그리고 소위 deep-state를 비난하고, 필요하다면 불소화된 음용수를 언급할 것이다. 조지 소로스를 호출하고 종교재판과 예언자 등 자신을 뺀 모든 인물과 사례들을 둘러댈 것이다. 그는 경쟁자인 조 바이든을 어리석은 자로 몰아 부치며 그의 가족들에 대해 온갖 거짓말을 조작해낼 것이다.
그의 행패가 지속되는 와중에, 아마도 무장진압을 정당화하려는 처방전을 내려 그의 진영사람들에게 자신이 진정으로 강한 지도자임을 보여주려 할 것이다. 아마도 그의 측근인 법무장관 bill Barr에게 요술을 부려서 대선을 보류시키는 것이 정당하다는 법적 논쟁을 야기시키도록 종용할 것이다. 또는 선거를 방해하도록 보안조직을 동원할지도 모를 일이다. 누가 알겠는가?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는 지도자가 진행할 변명(행패)에는 한계가 없다. 왜냐하면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항의시위가 미국전역에 넘쳐나는 가운데, 중도좌파적 경향을 지닌 경제학자들은 투시경을 통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오바마시절 백악관의 경제자문단을 이끌었던 하버드 대학의 James Furman은 오는 11월에 트럼프를 끌어내리는 것에 안달을 하고 있는 민주당원들에게 경고를 보내면서 유권자들이 투표장을 향하는 직전에 ‘이 나라 역사에서 가장 경기가 좋은 상황을 맞이할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저명한 Paul Krugman 역시 빠른 회복세를 전망한다. 이러한 입장들에 대해 초당적인 입장을 지닌 의회예산처(CBO)도 동의하고 있으며, 증권시황도 낙관적이다.
이러한 판단의 공식은 매우 단순하다. 의회예산처는 2분기에 GDP가 12% 위축된다고 전망하는데 이는 일년으로 따지면 40%가 줄어드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동시에 3분기에는 5.3%의 반등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하는데 이는 연간기준으로 23.5%의 성장을 의미한다.
반등의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5월의 고용동향이 긍정적이며 2분기의 부진도 예상보다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예산처의 상기 예측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선거시점의 GDP는 1분기에 비하여 7%가 축소된 것이고 실업률 역시 10%를 훨씬 넘어선 수준에 이를 것이다.
3분기에 대한 낙관론자들의 전망이 맞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전개될까? 소득이 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등 즐거운 일들이 연속해서 벌어질까? 아니면 극심한 불황이 지속되면서 새로운, 정확히 표현하자면,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뉴딜이 필요할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상기에 언급한 Furman & Krugman 교수들 그리고 예산처는 심리적 모델로 접근하였다. 이들은 팬데믹이 불러온 상황을 마치 지진 또는 9.11 테러공습과 같은 일시적 충격으로 바라본다. 아니다, 이는 정상적 성장에 대한 이탈이며, 견고했던 구조의 붕괴를 의미한다.
‘미국이 다시 가동되려면, 정말로 필요한 것은 아마도 충격적 자극을 통한 신뢰의 회복이다. 소비자들의 위축된 잠재수요를 충격적 자극을 통하여 새로운 소비로 전환한다면, 기업은 투자를 재개할 것이고 빠른 시일 안에 모든 것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 이런 류의 각본은,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중도좌파의 경제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이, 1960년 케네디와 존슨 시절 세금을 인하하여 경기를 회복시켰던 사례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미국의 경제가 1960년대 이후 세계화를 통하여 주요한 변화를 가져온 것을 무시한 것으로, 소비와 고용에 있어 서비스분야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개인과 기업의 부채가 증가한 사실을 잊고 있다.
1960년대에는 경제가 매우 균형적이었고 기업과 가계를 위한 생산은 기술적 수준의 향상에 의해 이루어졌고 잘 통제된 금융산업은 비교적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생산이 경제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수입도 부족한 상품중심으로만 이루어 졌다.
그러나 현재의 미국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선진적 투자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우주항공, 정보기술, 전쟁무기 그리고 석유생산 기술과 금융 등을 판매하고 있다 대신에 반세기 전에는 자체생산을 했던 온갖 소비재들, 의류와 전자제품, 차량과 부품 등을 대량 수입하고 있다.
1960년대에는 미국소비자들의 수요가 차량과 TV 그리고 가전제품들에 몰려 있었으나, 현재에는 외식과 호텔, 리조트, 살롱, 커피샵 그리고 오락실 등 중심으로 대량소비가 이루지고 있으며 이들 분야에 수천만 명이 종사하고 있다.
종합하면, 1960년대에는 임금이 오르고 가계자산이 늘어나고 있었던 반면에, 2000년 이후 임금은 전반적으로 정체상태에 머물고 개인과 기업의 부채를 증가시켜 소비를 함께 늘려 왔다. 주택가격은 운좋으면 정체상태를 유지하거나, 아니면 조만 간에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으며, 소비는 수입과 욕구에 의해 되살아날 것이고 이에 따라 기업의 투자도 재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본질과 현상은 전혀 구분되지 않은 채, 부채라는 현실의 짐이 전적으로 무시되고 있다.
더구나 미국자신이 만든 자본상품의 수요는 글로벌한 조건에 의존한다. 민간 항공기의 절반이 묵혀있는 상황에서 신규 항공기 수요는 회복되지 않는다. 현재의 원유가격에서는 새로운 유정을 개발하지 않는다. 국내적으로도 새로운 건물계획이나 토목의 프로젝트가 없을 것이고 신규의 대규모 소비판매장(outlets)도 개설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왕래를 줄이면서, 차량의 보유기간은 늘어나고 차량에너지 수요도 격감할 것이다.
급격하게 닥친 불확실성으로 인해 미국 소비자들은 덜 쓰고 더 많이 저축하려 할 것이다. 정부가 일시적으로 수입을 보전해 주는 조치를 취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재정지원이 조만 간에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이 정말 알지 못하는 것은 실직 후 일자리가 다시 회복되는 시점이다.
더구나 사람들은 필요(needs)와 욕구(wants)를 구별한다. 미국인들은 먹어야 살지만 대부분 반드시 외식을 해야 할 필요는 없고 반드시 여행을 즐겨야 할 필요도 없기에, 레스토랑과 항공산업은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한다. 공공보건(팬데믹)이 진행되는 동안 매출은 제한되어 기본 경비를 충당할 수 없으며, 설령 코로나가 사라진다 해도 수요는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배경이 법적으로 사업을 재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아직 사업의 재개를 망설이는 이유이고. 재개한 사람들도 지속적으로 운영이 가능한지 자신을 못하는 이유이다. 거대한 서비스 부문에 종사해온 수백 수천 만영의 종사자들은 이제 자신들의 직업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반면에 미국의 가계부채는 임대료, 담보비용, 전기-가스 사용료, 교육비와 차량 대출의 이자 등 줄곧 늘기만 하였다. 정부의 구제지원이 유효하기는 하였다. 파산이 줄어 들었고, 부동산 임대업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수입부족이 장기간 지속되면, 사람들은 부채를 갚기 위해 자금을 비축하려 할 것이고, 이에 따라 매출은 줄어들고 연방정부와 지방조직들의 재정수입이 줄어들면서 지출을 삭감하고 일자리와 수입 또한 사라질 것이다.
미국경제의 어려움은 구조적인 것이다. 단순히 트럼프의 무능함이나 연방의회 의장인 Nancy Pelosi의 정치전략의 미숙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지난 50년간 일류상품을 글로벌 시장에 의존하고 소비재를 등한시 하였으며 가계와 기업의 부채에 의존한 성장을 추구해온 시스템의 결함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 동안 다행스럽게 수백 수천만 명에게 일자리와 소득을 제공하면서 번영을 구가하여 왔으나. 이는 부채로 쌓아 올린 모래성이었고 이제 COVID-19에 의해 날라가 버린 것이다.
미국의 재가동(Reopen-America)는 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 환상일 뿐이다. 현직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기대하는 만큼 일시적인 성장의 반등을 추구할 것이고, 붕괴의 깊이가 깊어진 만큼 잠시 동안의 반등은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깊숙이 들어다 보면 잠시의 반등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뿌리깊은 인종차별과 폭력적인 정치강압에 대한 시위가 미국전역에 벌어지는 만큼, 당장 미국의 경제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출처: Project Syndicate. on 2020-06-10.
James K. Galbraith
텍사스 대학의 교수이며 공공정책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저술한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의 아들이기도 하며 ‘The end of Normal(2014)’ 등을 저술하였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당초 제헌의회 때 상임위원 임기는 의원의 임기와 같이 4년이었다. 그랬던 것이 1953년 1월 22일 국회법 개정에 의한 이승만 정권의 국회 무력화 과정에서 1년으로 단축되었다가 다시 1963년 11월 26일 박정희의 제3공화국에서 2년으로 연장되었다. 그러나 제3공화국 당시 본회의 중심 체제를 상임위 중심 체제로 전환한 것은 의회기능 강화의 목적이 아니라 독회제도 폐지 등 행정부 안의 신속한 국회 통과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특히 이 상임위 중심 체제는 말이 상임위 중심이었지 의원의 정책전문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상임위 중심체제에서는 극히 기형적인 “임기 중 상임위원 개선(改選) 제도”였을 뿐이다. 이 점에서 “임기 중 상임위원 개선제도”는 권위주의 정권에 의한 의회 무력화의 도구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현재 국회의장 임기도 2년이다. 국회의장 임기도 제헌의회 때는 4년이었다. 그러나 1951년 3월 15일 당초 임기 4년이던 국회의장 임기를 “국회 운영의 원활을 기하기 위해” 1년 임기제로 개정하고자 했다. 이 개정안은 심지어 “토의시간만 허비하는 전원위원회 제도 폐지”를 제안하기도 했다. 결국 반발에 부딪혀 의장 임기는 2년 임기로 수정되었다.
국회의원의 업무 전문성은 어떻게 높아질 수 있는가?
우리 국회에서 의원들의 업무 전문성에 있어서의 취약성은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그 취약성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제도적으로 관행적으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의원의 업무 전문성이란 임기 동안 혹은 선수(選數)를 쌓으면서 “동일한 상임위원회를 유지”함으로써 업무 전문성을 축적하는 것이다. 미국 의회의 경우 의원의 업무 전문성은 상임위를 중심으로 업무 전문성이 축적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에는 집권당 내 위원회를 중심으로 전문성이 축적된다. 미 의회에서 상임위원회는 의회와 행정부 간의 정책결정의 중심무대로서 따라서 자연스럽게 상임위를 중심으로 한 정책형성은 의회 활동의 중심으로 되었다. “한 상임위 내에서의 선임 순위가 위원장이나 간사로 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미 의회의 불문율, 즉 ‘선임우선제’는 위원회 내의 승진에 대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자동적이고 공평한 원칙이었다.
한편 일본은 자민당 일당독재가 고착화되는 과정에서 법안과 예산 심의가 의회 위원회가 아니라 자민당 내 정책결정기구인 정무조사회로 되었고, 이 정무조사회의 각 부회(部會)가 의회 위원회 역할을 대신하였다. 그리하여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동일 위원회와 부회를 유지하면서 관청과의 인적 네트워크 및 영향력을 확보하면서 이른바 ‘족(族)의원’의 위치를 확보하게 됨으로써 관련분야의 정책전문가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의원들이 2년마다 상임위를 변동할 뿐 아니라 상임위 배정 뒤 임기 2년 중에도 수시로 상임위를 변동하고 있다. 실제 역대 국회의원 임기 중 상임위 변동률은 50%를 상회한다. 심지어 최근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상임위원장을 1년씩 ‘쪼개기’로 맡는 것이 관행화되고 있다. 또한 현역의원이 재선될 경우 전임기의 상임위를 그대로 유지하는 비율도 40%를 넘지 못한다. 미국 재선의원의 90%가 전임기의 상임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과 전혀 딴판이다. 더구나 우리 국회는 1963년에 김종필에 의해 도입된 당정협의체제는 행정부 주도 하의 정부여당 협의기구로 오늘날까지 존속하면서 의회와 상임위 위상을 크게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동되어왔다.
임기 중 상임위의 빈번한 변동과 재선 시 상임위 변동은 의원의 업무 전문성 축적에 결정적 저해 요인이다. 상임위 변동으로 소관 업무 및 관련 행정부처 역시 변경되고, 의원은 물론 보좌진도 새로 업무를 파악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원과의 통로를 어렵사리 뚫어 놓아봤자 그 다음 만나면 이미 소속 상임위가 바뀌는 바람에 다시 다른 의원을 알아봐야 하는 고충을 겪어야 한다.
의원들의 업무 전문성은 의회 발전의 중요한 토대이다. 우리 국회의 정상화와 발전을 위해서는 한 의원이 동일 위원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함으로써 업무 전문성을 축적해야 한다. 상임위원 임기는 의원 임기와 일치되어야 하며, 또한 재선 시에 전임기와 동일한 상임위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국회는 너무 오래 이승만-박정희 체제의 관행에 머물러 있다. 이제 권위주의 정권이 국회 무력화를 위해 만들어놓은 국회 상임위 2년 체제를 벗어나야 한다.
‘적대적 공존’, 그 나눠먹기의 시작
본래 우리 국회도 상임위원장은 다수당이 독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국가 의회든 의회의 일반적 형태이다. 그런데 우리 국회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탄생된 이른바 ‘87 체제’의 여소야대 4당 체제 정국에서 상임위원장을 의석 비율에 따라 배분하게 되었다. 긍정적 측면에서 평가하자면, 이는 의회 상임위 활동에서 독점을 해소하고 공존과 균형 그리고 타협의 공간을 제공했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에서 평가한다면, 여야 나눠먹기의 전형적 형태라 할 수 있다.
당시 여소야대 4당 체제에서는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 조항도 신설되어 각 당이 정책연구위원을 ‘나눠 갖게’ 되었다. 그리고 줄곧 여당의 몫이었던 국회도서관장 자리도 제1야당의 몫으로 가져가기로 되었고, 이 관행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이 과정은 당시 제1야당으로 올라선 평민당의 의도가 관철되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물론 이는 DJ의 구상과 ‘철학’이 반영된 셈이었다. 이러한 DJ식 정치는 “상인적 현실감각”에 대한 강조에서 드러나듯, 독점된 권력을 분배하고 균점하는 계기로 작동되었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나눠먹기’, ‘기득권의 공존’ 혹은 개량주의라는 단점 역시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우리 국회의 고질적 폐단이기도 한 여야 간 ‘적대적 공존’의 토대로 기능해온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장기적으로 살펴본다면,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우리 국회의 중요한 폐단인 “나눠먹기” 혹은 “적대적 공존”이 관행적으로 구축되는 중요한 계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합중국은 코로나 팬테믹을 대응하는 과정에서 봉쇄정책과 인종차별의 폭력이 발생하면서 합법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의 살해,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몇 건의 경찰에 의한 흑인사망 사건이 즉각적인 시민들의 항의시위를 불러왔으며, 일련의 사태는 지속적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의 확산방지를 위한 봉쇄가 일상화되는 것을 거부하는 운동이 집단화의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경찰의 인종차별적 조치에 저항하는 시위가 광범한 지지를 받으면서 겉잡을 수 없이 전개되고 있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합법성에 대한 위기는 여러 상황적 조건과 얽혀 있다. 이제 수백 수천만의 미국인들은 실직을 당해도 자신이 당하는 고통에 대하여 스스로를 탓하지도 않고 이웃과 하나님을 탓하지 않을지 모른다. 반면에 이들은 1930년대와 1960년대에 분노가 저항과 폭동으로 표출되었듯이, 이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볼지 모른다. 그 동안 익숙했던 일상적 과소비의 습관이 중단된 현재의 상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아야 한다. 더구나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어려움에 처해지고 대중이 열광하던 스포츠가 중단되어 있는 상황이 (스트레스에 쌓인) 일반시민들에게 자신이 처한 세상을 비관적으로 판단하게 만들지 모른다.
그간 미국의 정치질서는 단지 강압에만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강압과 더불어 선거를 통해 합의를 용이하게 만들어가는 기제들로 이루어져 왔으며, 이러한 과정들로 인해 국가전복이 가능하지 않도록 작동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많은 영역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상실되면서 권위에 대한 합법성이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이라는 합중국은 군조직, 경찰, 법원, 정치와 행정시스템 등 기구들을 갖추고 있는데 이중에 시민들은 경찰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행정부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했다. 경찰력은 군대와 마찬가지로 정부에게 반드시 필요한 (강제력의) 무기이다. 인종과 계급 그리고 젠더 위에 군림하는 지배구조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정치질서를 유지하고 방어하는 임무를 지닌다.
현재 일어나고 있듯이, 권위에 대한 합법적인 동의를 형성하지 못하는 경우에, 정부는 국가의 강화된 강제력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국가강제력은 평시에도 결코 방관의 휴식상태에 있지 않다). 이것이 조지 플로이드 살해에 대한 항의시위를 진압하기 위해서 무장경찰과 국가수비대가 동원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군대조직이 대기한 이유이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유지하고 방어하기 위해 필요한 억압기구로써 물리적 폭력에 의존하고 있다.
소위 미국의 위대함에는 인종차별이 필수적이었다. 트럼프가 외치는 ‘위대함’속에 인종차별이 내재되어 있으나, 경제적인 성공이라는 구호 속에 묻혀 있었다. 논쟁의 여지는 있겠지만, 건국의 시절부터 미국의 인종차별은 국가가 후견하는 정책이었고, 그동안 북아메리카의 원주민 학살과 노예제도 그리고 실제적인 인종분리를 진행하여 왔다. 역사를 통해 멕시코 땅을 남서부에 합병시켰고, 쿠바와 필리핀 푸에토리코, 하와이, 괌, 알래스카의 침략 및 정복을 진행하여 왔으며, 이 과정에서 물리적 폭력을 자행하고 종종 잔인한 학살(carnage)의 트라우마를 남겼다.
물리력은 침략과 억압 그리고 폭동에 항상 개입하지는 않지만, 폭력은 억압받는 사회와 지역의 높은 실업률, 가난, 경찰의 잔악함 그리고 감금 등 동반한다. 동시에 폭력의 결과는 개인과 사회의 파괴라는 현상으로 발전하는데, 자살과 심한 음주, 마약복용 등으로 표출된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갖는 제국주의적 성격의 한 측면이며, 자본주의가 정착되면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피와 먼지를 쏟아 붓게 된다’고 마르크스가 논평한 배경이기도 한다.
미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외국에서 자원을 약탈하고 시장을 장악하고 지배하기 위해서 군사력에 의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저임수준에서 일을 해야 하는 숙달된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필요하다. 소수의 혜택을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비참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체제를 정당화시키는 이념과 상응하는 물리력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Chris Parenti(1999)에 의하면, 어쩔 수 없는 모순이 자본주의 심장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으며, 산업예비군을 유지하기 위해 가난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빈민들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위협을 받게 된다. 이런 배경으로 발생하는 모순을 관리하기 위하여 경찰과 감옥 그리고 범죄처벌법 등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1960년대에 항의시위와 폭동이 폭발한 결과로 경찰에 이들 새로운 범죄를 다루는 부서가 팽창하고, 1979년대 중반에 이르러 투옥의 비중이 절정에 이르게 된다. ‘마약과 전쟁’정책을 입안한 Glenn Tonry는 이 정책의 시행으로 미국도시들의 주변(소수인)지역에 집중되면서 많은 흑인들과 라틴계 인종들이 투옥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금지지역(ghetto)이 설정되고 마약의 전쟁은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수행되면서 이 제도는 폐쇄와 폭력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해당 인구들을 부정직하고 위험하며, 격리와 감시대상으로 만들었다.
Pamala Oliver에 의하며, 2004년에 일어난 흑인파워운동에 대해 흑인남성들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대규모의 투옥을 강제 도입하였으며, 억압받는 사람들이 상황에 저항하는 것뿐만 아니라 혁명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는 이들을 ‘위험인물’이라는 범죄의 이름으로 억압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대부분의 경우, 기업독점국가의 형태로) 사적소유권과 이익 그리고 경쟁에 기초하고 있다. 창출되는 부는 사회가 공유하지 않는다. 단지 소수가 소유하며 보상과 명예가 집중되는 상황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념이 필요하다. 부는 어디에서 오는가? 노동을 통해서 발생하며 토지와 자원을 이용해서 발생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는가?
경찰의 효시는 1829년에 영국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당시 영국정부는 산업자본주의의 새로운 경제질서를 지원하고 정치적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제력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따라서 경찰의 역할은 애초부터 부유한 유산계층을 폭도들로부터 보호하고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무질서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동시에 당시 아일랜드를 식민지로 점령하면서 발생하는 폭동과 정치적 반란을 혁신적으로 제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Alex S Vitale는 미국의 경찰은 본질적으로 인종과 계급의 불평등을 통제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흑인과 황색인종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이 경찰의 핵심적 역할이라는 것이다 사적재산권을 보호하고, 폭동을 진압하고, 파업 등 산업의 쟁위행위들을 억제하는 일이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노예제도와 필리핀의 식민지화를 지원하고, 텍사스 원주민을 억압하고 미국의 영토확장을 위한 수단으로 텍사스 원주민을 억압하고 무력화시켜 왔다.
현재 미국경찰력의 목표는 자동화와 탈산업화 및 탈규제화 등으로 빈민층과 소수인종의 집단에서 발생하는 노동의 잉여인구를 관리하는 것이다. Parenti가 지적하였듯이, ‘마약과의 전쟁’은 바로 이러한 정책 목표를 가장한 트로이의 목마였다.
경찰조직과 국가강제력은 항상 정치적 중립이라는 문제를 야기하여 왔다. Charles Tilly의 연구는 강제력과 합법성의 변증적 관계를 잘 보여준다. 그는 사회계약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국가의 성격이 무엇이던 간에, 국가는 가능한 모든 것을 조직하고 폭력을 독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민간적인 단체들과 비교하여 공식적인 기구들과 협력을 도모하며 적용대상인 시민들의 광범한 동의 하에 보다 효과적으로 보다 효율적으로 광범위하게 폭력을 조직하는 과정을 통하여 국가의 합법성이 획득된다고 설명한다.
Stephanie Kent 와 David Jacobs는 가장 권위적인 정치인이 이를 독점한다 하더라도 강제력만으로는 사회가 유지될 없으며, 다른 수단들과 결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연구를 보면, 경찰력이 갑자기 시위 등 진압 과정에서 무기력해지고 대응을 못하는 경우들을 열거하면서, 빈민들이 더 이상 불평등을 수용하지 않고 부의 재분배를 요구한 여러 사례들을 증거하고 있다. 때때로 저항하는 시위대는 설정된 금지선을 넘어서 행동하는데, 이는 폭력에 항거하여 즉흥적으로 진행되곤 한다.
다시 말하면, 시위자는 자신의 뜻에 따라서 금지선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구타를 당하거나 타의로 저지당하면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질서의 확립과 유지를 위해서는 핵심적인 요소가 강제력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민주사회에서 보듯이 자원의 분배가 불평등하여 소수만이 실제적 자유와 권리 그리고 안전을 누린다면, 해당사회는 불안정하게 된다. 현재 미국에서는 유색인종이 범죄를 다루는 것이 법질서의 목표가 되었고, 이에 따라 비대칭적인 처벌을 받으면서 이들 개인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불평등한 관계는 12백만의 경찰 및 군대조직에 의해 유지되고 있으며, 수십 수백 억불의 예산이 이러한 강제력의 기구에 투입되고 있는데, 경찰조직에서 시작하여, 교도관, 국가수비대 그리고 일부 군대조직에 이른다. 이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미국이라는 국가를 유지하고 세계 속에서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국내외 정책을 받쳐주는 기능을 한다.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데 미국 국내에만 7백만 명이 종사하고 있으며, 세계의 경찰력을 유지하는 목적으로 형편없는 조건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에 배치되어 있다.
현재 미국인구의 12%가 흑인이며 15%가 라틴계이다. 그러나 통계에 따르면 이들 2개 그룹에서 구속 수감된 사람들의 60%를 차지한다. 2012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수감된 흑인 숫자는 2,841 명이고 라틴계는 1,158 명에 달하는 반면에 백인의 경우에는 463 명이다. 이렇듯 인종별로 편차를 보이는 수치는 범죄를 다루는 법체계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수감자 수치는 산업화된 국가군에서 가장 높으며, 인종별로 분류하면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다중(mass) 수감 상태는 사회의 주변층에 대한 봉쇄를 의미하며, 흑인과 유색인 그리고 원주민과 빈민층에게 비대칭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사회적 특권과 부유함과는 담을 쌓고 있는 이들 그룹은 동시에 정치적 질서를 가장 위협하는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인종적 접근을 통해 분석해보면 왜 소수인종들이 범죄를 야기하는지 잘 설명해 준다.
경찰력의 집행이 빈민과 소수인종의 집단에 편중되면서, 이들이 다수인 일부 주 단위에서 시민들의 요구에 응하지 못하고 권리를 보호하지 못하면, 범죄는 국가를 무시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들의 시위는 주정부의 합법적인 권위를 붕괴시키고 항거와 폭동과 조건을 형성한다.
조지 플로이드의 살해에 대한 전국적인 시위가 폭발하면서, 그동안 경찰에 의해서 살해된 알려지지 않은 많은 흑인들의 죽임에 대해서도 분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것 역시 비상식적이고 정당화될 수 없는 죽임이었고 이에 대해 경찰은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법집행의 일방강행은 흑인, 라틴계, 원주민 그리고 빈민사회를 격분하게 하고 있다.
이제 문제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게 되었다. 매일 항의와 폭동이 일어나면서, 그동안 비무장의 흑인과 시민들을 반복적으로 살해한 경찰에 대하여 모든 시민들이 주목을 한다. 워싱턴포스트의 보도에 의하며 경찰에 의해 사살 또는 죽임을 당한 시민의 상당수가 백인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흑인들은 비대칭적으로 사살당하였다. 흑인의 인구 비중이 13%에 불과한데, 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수치는 백인의 두 배에 해당한다. 라틴계에도 같은 경우가 적용되며, 미국에서 경찰에 의해 살해당하는 수치 역시 산업국가군에서 압도적으로 높다.
살해의 배경은 비무장 상태와 무장상태, 범죄가 확인된 사례와 단지 혐의를 받고 있던 경우, 그리고 인종적 차별 등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일치하는 것은 법집행 과정의 살해가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핸드폰의 카메라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강제로 수색을 당하지 않았으면, 시민들은 경찰의 요구에 순응하였을 것이다.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상대가 흑인이거나 유색인종인 경우, 경찰이 더욱 무자비하게 취급했으며, 이런 행동이 일부 예외적인 경찰과 소수의 조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권위가 위기에 봉착하면서 기존의 주류 매체들은 흑인들의 항의가 제한된 지역에서만 일어난 것으로 묵살할 수 없게 되었다. BLM(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운동이 성공하게 된 배경에는 운동을 조직한 중심에 흑인들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이 함께 결합한 것이다. 경찰의 잔혹함을 경험한 흑인들과 유색 사회의 자연발생적인 항거와 폭동이 BLM운동을 계기로 하여 이러한 부정의不正義한 행동들이 미국전역과 국제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다문화의 다양한 지원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유명인사들과 스포츠 선수들까지 응원을 보냈다. 갑자기 모든 시민들이 인종차별의 반대운동을 벌리고 있다. 동시에 이번 사건이 기회주의적인 양대 정당의 독점적인 정치시스템, 그리고 잘못된(거대기업이 소유한) 대중매체를 손볼 계기라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게 되었다.
반면에 양당의 정치지도자들과 대중매체의 기업들이 그들에 의해 반쯤 불신을 당해온 정치질서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정치인들과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새로운 앵커들은 조지 플로이드의 살해를 비난하는 동안에도 미국의 현재라는 현상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이들은 논쟁의 초점을 경찰력 행사과정에 대한 훈련, 책임의 당사자에 대한 기소와 해고, 인종문제에 대한 교육, 그리고 현재의 분노를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해소하는 등으로 유도한다. 불행하게도 이들은 극심한 불평등의 미국사회에서 경찰이 수행해야 하는 근본적인 역할과 임부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고 못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조지 플로이드의 살해에 따른 분노를 폭력적이며 불복종적이고 약탈과 방화라는 측면과 결합시키면서, 미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항거의 다양한 수단이 시민불복종과 파괴와 기업재산과 국기의 훼손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과 경찰이라는 조직이 문제라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시위자들을 도적, 테러리스트 또는 러시아나 Antifa(반파시즘)의 외부세력에 조종당하는 자들로 폄하하는 것은 ‘미국이 바로 문제 그 자체’라는 사실을 회피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수백 수천만 명의 시민들은 미국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였고, 정치인 자신들만을 위해 지속되는 정치의 과정에서 소외를 당하고 있었다. 유명한 아나키스트가 다음과 같이 외친 것처럼 말이다 “선거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이는 불법적인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오랜 관행인 착취적인 시스템이 더욱 급진화되었다. 실제로 2011년에 있었던 점령시위와 2013년에도 있었던 BLM운동 역시 정치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면서 발생하였던 것이다. 현재의 운동이 시민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상기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정치 지도자들은 이들을 전혀 대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3년 Ferguson의 경찰살해 등 여러 사건들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더구나 양당 체제하에서 이러한 사건들은 정치적으로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합법성의 위기는 정치권이 경찰살해 사건에 무관심하면서도 당시 금융위기 당시 월가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대비하면서 발생한다. 현재 COVID-19 상황에서도 양대 정당들은 기업구제에 우선적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양대 정당들은 1994년 클린턴 행정부 당시 입안되었던 폭력범죄 법안 등 범죄에 대한 가혹한 입법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법안들은 일부 다중의 수감과 소수인종을 대상으로 하는 가혹한 법집행의 조항을 담고 있었다. 양대 정당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화함으로써 빈민층과 일반시민들에게 경제적 고통과 불안정을 야기시킨 책임을 지고 있다. 이들은 클린턴 시절 사회안전망을 악화시키는 데도 공조하였다.
또한 오바마 시절에는 월가 구제에 온갖 정성을 다 쏟으면서도, 일반건강보험의 도입 대신에 부담자원칙의 건강보험을 채택하였고, 2014년에는 푸드뱅크의 예산을 삭감하는 Farm 법안을 도입하였다.
양대 정당은 미국의 잘못된 현상을 유지시키는 양측의 날개일 뿐이다. Glen Ford는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비록 백악관에 흑인이 주인으로 들어갔어도 인종차별적 자본제 국가는 흔들림없이 지속되었다고 지적하며, 마치 인종차별의 시대가 지나간 것처럼 각색하는 동안에, 기업의 파워는 강화되었고 제국주의적 아젠다는 계속되었다고 비판한다.
1960년대에는 다양한 국가정책이 도입되어, 도시에서 폭동이 줄어들고 정치적 지위와 시장직 등에 유색인들이 참여하고 선출될 수 있는 입법조치가 이루어 졌지만, 이는 사회심리적인 것인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미국이라는 국가가 자본제국주의라는 성격을 변화시키지 않고, 형식적인 조직 개혁에만 안주하면서 현재의 정치적 질서를 고집하는 한 경찰조직의 성격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이번에 겪는 합법성의 위기는 행정부를 포함한 양대 정당에 대한 불신을 담고 있으며, 경찰력은 단지 문제가 많은 국가의 유지 수단이라고 지적하는 것이 옳다. 현재 길거리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항의와 지속적인 시위들이 이를 입증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경찰조직의 책임자로부터 시위현장병력까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침묵의 푸른 선 밖에 숨어 있는 진실로, 시민들을 경찰과 대치하게 만드는 것은 푸른 저지선과 경찰을 대치하는 시민들의 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사회가 지니고 있는 불평등과 불의不義인 것이다.
출처 : Global Research on 2020-06-11.
Vince Montes
사회학 교수이자 의사. 뉴멕시코 대학에서 의학과 사회학을 전공하였고 워싱턴대학 등에서 연구생활을 하였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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