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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미국경제, 진짜 한국경제보다 10배 나쁠까?[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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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미국경제, 진짜 한국경제보다 10배 나쁠까?[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admin | 수, 2020/08/12- 01:12

경제 기사의 가장 기본은 무엇일까? 경제성장률을 정확히 전하는 것 아닐까. 불행히도 경제성장률을 전하는 기사에도 오류가 많다. 경제성장률은 보통 전분기대비 성장률과 전년대비 성장률로 나타낼 수 있다. 그리고 전분기대비 성장률은 원 값 그대로 표현할 수 있지만 이를 연율로 환산할 수도 있다. 

지난달31일 헤럴드경제 기사에 2분기 GDP 성장률 비교표가 있다. 한국은 -3.3%, 미국은 무려 -32.9%다. 미국이 거의 10배 더 나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오류다. 미국 2분기 경제 하락폭이  -32.9%인 것은 아니다. 2분기 경제성장률 원 값은 -9.5%다. 그래서 한국 2분기 성장률 -3.3%와 -9.5%를 비교해야 한다. 매분기 -9.5%만큼 역성장이 일년간 지속하면, 연율로 -32.9%가 된다는 뜻이다. 한국도 매분기 -3.3% 역성장을 일년간 지속하면, 연율은 -12.6%가 된다.   

이런 식의 오류 기사는 분기 경제성장률 발표 때마다 나타난다.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 발표 때도 뉴스1코리아(뉴스1)이 비슷한 오류를 범했다. 불행히도 이 기사는 다음 탑에 올라가 댓글만 3000개가 넘을 정도로 많이 회자됐다. 뉴스에는 한국 1분기가 -1.4%, 미국은 -4.8%로 나와있다. 그러나 미국 1분기 -4.8%는 연율을 의미한다. 한국 1분기 성장률 -1.4%를 연율로 환산하면(4승을 하면) -5.5%다. 1분기는 한국이 미국보다 더 하락 폭이 크다. 한국은 2월부터 코로나19피해가 심했지만, 미국은 3월 중순이후에 코로나19 환자가 크게 늘었다. 3월말까지 경제실적을 평가하는 1분기 미국 경제실적이 한국보다 좋은 것은 이해 가능하다. 

 

(중략)

 

이참에 경제성장률 통계 기준을 정리해보도록 하자. 전분기 대비 성장률은 원 값과 연율 환산기준 두 가지 기준이 다 의미 있는 기준이다. 각 분기에 실제로 달성한 원 값도 중요하지만 이를 연율로 환산한 수치를 알려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 코로나19 이전 분기별 경제성장률 수치가 발표될 때마다 많은 언론은 ‘0%대 성장률’이라는 기사 제목으로 소식을 전할 때가 많았다. 분기 성장률이 0%대라는 제목은 한국 경제성장률이 매우 낮은 것처럼 느끼게한다. 그러나 만약 분기 성장률이 0.99%라면 이는 연율로는 4%가 넘는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약 2.6%)보다도 높은 수치다. 이론적으로는 잠재성장률보다 높은 성장률은 과열이라고 평가한다. 그래서 ‘0%대 성장률’이라는 부정적 뉘앙스의 기사 제목은 모두 잘못된 제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분기별 경제성장률을 연율로 환산해 설명하는 것이 0.9% 성장의 의미를 정확히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다. 그러나 이도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다. 이번 분기 성장률이 4분기 연속 지속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오늘 주식이 1% 올랐다고 이를 연율로 환산하여 1800% 올랐다고 말하는 것과도 마찬가지다. 분기 성장률에는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하기에 이번 분기에 고성장을 하면 다음 분기는 성장률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중략)

 

요약하면 전기대비 성장률을 주지표로 원 값과 연율기준으로 비교하고, 전년대비 성장률을 보조지표로 살펴보는 것이 정석이다. 각각의 기준과 지표가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두 가지 기준을 섞어서 기사를 쓰면 대혼란에 빠진다. 한국은 전기대비 성장률 원 값으로, 미국은 연율기준으로, 중국은 전년대비 성장률로 각각 비교하는 기사는 정보로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 이러한 기사가 포털뉴스 탑에 선정돼 유통되는 일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미국경제, 진짜 한국경제보다 10배 나쁠까? - 미디어오늘

경제 기사의 가장 기본은 무엇일까? 경제성장률을 정확히 전하는 것 아닐까. 불행히도 경제성장률을 전하는 기사에도 오류가 많다. 경제성장률은 보통 전분기대비 성장률과 전년대비 성장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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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여덟 명의 여성에게 2018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이야기하고 싶은 여성 인물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시네21의 기자 이다혜님은 소설가이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의 저자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다시 한번,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다. 아프리카 문학을 이끄는 차세대 대표 주자라고 자주 말해지는 아디치에는, 첫 소설 <자주색 히비스커스>를 발표한 뒤 ‘치누아 아체베의 21세기 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역시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등의 소설을 연달아 발표한 남성 작가 치누아 아체베와 연결짓는 것은 역시, 서구와 그 영향권에 있는 세계의 독자들을 위한 ‘친절한’ 설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디치에는 아디치에다. 심지어 오늘날 아체베의 책보다 더 널리 그녀의 책들이 읽히고 있다.

소설가, 그리고 인기있는 강연자

소설가로 유명한 아디치에는 TED×Euston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쓴 책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로 한국에서도 많은 독자들을 만났다. 치누아 아체베의 ‘딸’이라는 표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아디치에가 페미니스트임을 밝히고 활동하면서 팬‘이었다는’ 남성으로부터 받은 질문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가디언>은 아디치에와의 2017년 4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전한다. “지난 해, 워크숍 말미에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한 젊은 남자가 유명한 소설가인 그녀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 일어섰다. ‘나는 당신의 소설을 전부 읽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페미니즘 관련된 일을 시작하면서, 그리고 동성애자에 관련된 말을 시작하면서, 당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더 이상 모르겠는 기분입니다. 당신은 나같은 사람들의 사랑을 어떻게 유지할 생각입니까?”

그 남성의 질문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의 큰 성공에 기반하고 있었다. 2015년, 그 책은 스웨덴에서 16살이 된 ‘모든’ 학생들에게 배포되었다. 그리고 비욘세의 <Flawless>에 책 내용의 일부가 가사가 되었다. “우리는 소녀들에게 말하지. 너희는 야망을 가질 수 있어. 하지만 너무 많이는 말고. 너희는 성공을 목표로 해야 해. 하지만 너무 성공적이면 안돼. 아니면 너희는 남자를 위협할 수 있으니까.” 크리스천 디오르와의 콜라보 작업으로 티셔츠에 새겨진 “We Should All Be Feminists”라는 문장은 또 어떤가. 그리고 이런 점으로 그녀는 빠르게도 비판받았다. 페미니즘이 상업화되고, ‘구매’와 직결되는 분야에서만 마케팅 도구로 쓰인다고. 이 말에 대한 아디치에의 답을 듣기 전에, 아디치에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1977년 나이리지아에서 태어난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여섯 아이 중 다섯째로, 아버지는 나이지리아대학교의 통계학 교수였고, 어머니는 같은 학교의 첫 번째 여성 교무과장이었다. 그녀는 나이지리아대학교에 진학했는데, 1년 반 정도 의학과 약학을 공부하며 교내 잡지 <컴파스> 편집자로 일하다가,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된다. 필라델피아의 드렉셀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며 유학생활을 시작, 이스턴 코네티컷 주립 대학교에서 언론정보학과 정치학을 전공하고 2003년 존스홉킨스 대학교, 2008년 예일 대학교에서 각각 문예 창작과 아프리카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아디치에는 1997년 시집을, 1998년 희곡을 출간했는데, 2002년부터는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주목받았다. 한국에 출간된 단편집 <숨통>에서는 O. 헨리상을 수상한 <미국 대사관>을 비롯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첫 장면 <자주색 히비스커스>(2003)는 영연방 작가상, 허스턴 라이트 기념상을,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2006)로 주목할 만한 신인에게 주어지는 오렌지 소설상을 받았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영어로 글을 쓰고 활동한다. 나이지리아의 공식 언어는 영어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이런 점이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소설가로서의, 또한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에 중요한 부분이 된다.

 

단편적인 이야기의 위험성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TED 강연 중 ‘단편적인 이야기의 위험성’이라는 제목의 강연이 있다. 이 강연은, 여성으로서 흑인으로서 나이지리아인으로서 미국에서 살며 활동하는 그녀가 맞딱뜨리는 편견과 비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 속 나이지리아인들이 ‘나와 너무 똑같기 때문에’ ‘진짜 아프리카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비판을 들었다는 대목에 귀를 기울일 것. 왜냐하면 그 말은 어느 미국인 백인 남자 교수가 한 말인데,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책에 대해 그 이름만으로 편견을 갖고 (선입견으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읽지 않는 독자들에 대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에 갔을 때) 룸메이트는 내가 스토브 사용법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그녀가 나에게 동정심을 느꼈다는 것이다. 만나기도 전부터. 그녀는 나를 아프리카 사람으로, 악의 없는 동정심과 보호심으로 대했다. 내 룸메이트는 아프리카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만을, 재난의 이야기만을 알고 있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아프리카 사람은 그녀와 어떤 공통점도 없었다.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소통도 불가능했다. 솔직히 미국에 가기 전까진 내가 아프리카사람이라고 생각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아프리카 얘기가 나오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나미비아 같은 곳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음에도. 하지만 나는 나의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였다. 많은 면에서 나는 나를 아프리카 사람으로 생각한다.

단편적 이야기는 고정관념을 만든다. 그리고 고정관념의 문제는 그것이 거짓이라서가 아니라 불완전하다는 데 있다. 고정관념은 하나의 이야기를 유일한 이야기로 만든다. 약자와 소수자, 비주류의 삶과 현실은 지금껏 그렇게 왜곡되어 왔다.

<숨통>에 실린 단편 <사적인 경험>에서 아디치에는 ‘다름’과 ‘연대’의 무대로 나이지리아의 시장 골목을 선택한다.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 간 충돌이 일어나자, 이보족 기독교도 치카는 시장에서 양파를 파는 하우사족 이슬람교도 여자와 함께 숨는다. 두 사람은 폭동 때문에 각각 언니와 큰 딸을 잃었음을 알게 된다. 표제작 <숨통>은 이런 이야기다. 한 나이지리아 여성이 미국에 대한 동경을 품고 숙부가 사는 미국으로 간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식당에서 손님과 사랑에 빠지는데, 그가 개방적이라고는 하지만 그녀를 이해하는데는 역부족이다. <숨통>의 이야기는 정서적인 면에서 <아메리카나>의 도입부와 이어진다.

아프리카 출신 여성을 ‘선량한’ 마음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악의가 없다 해도,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근사했지만 천국은 아니었어”라는 <아메리카나>의 주인공의 말 속에 숨은, 아메리칸 드림을 꿀 자격이 출신지나 피부색에 따라 주어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자신이 오랫동안 자문해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정의되는 정답은 없다

“페미니즘을 정의해 주세요.” 페미니즘 강연을 위한 사전미팅에서 이 질문을 받고 연사 셋이 다 고민에 빠진 기억이 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격적, 경제적, 정치적, 성적 권리와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말할 때, 페미니스트는 여성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부터 숙고하게 된다.

아디치에가 <엄마는 페미니스트> 출간 직후 있었던 영국 ‘채널4’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트랜스 여성들도 여성인가요?’라고 물을 때 내 대답은, 트랜스 여성은 트랜스 여성이라는 것이다”라고 말한 일이 논란이 되었다. “많은 트랜스 여성이 성전환을 결정하기 이전에는 남성으로 태어나 남성으로 길러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시스젠더 여성(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난 여성)과는 달리 트랜스 여성들은 근원적으로 남성으로서의 특권을 받아왔다고 믿는다”라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들 역시 계속해서 세상을 배워나간다. 페미니스트 완전체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나와 다른 경험을 한 사람들 속에서 차이를 인지하고 차별에 눈뜨고, 더 많은 이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노력한다.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가 되는 일이 즐거운 이유라면, 이것이 완성되어 박제된 분야가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해 알아갈수록 모르는 게 많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다름에 눈이 뜨인다. 논란이 그쳐서는 안된다. 우리는 서로의 친구가 되고 동료가 되고 선생님이 될 것이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한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아디치에는, 페미니즘의 대중화가 상업화로 이어진다는 말에 이런 답을 했다.

페미니즘이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싫다. 이것이 바로 왜 그렇게나 많은 여성들이, 특히 유색인종인 여성들이 서구의 주류 아카데미 페미니즘으로부터 유리되었다고 느끼는 이유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류가 되고 싶지 않은가? 나에게 페미니즘의 궁극적인 목표는 페미니즘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지는 것이다. 아카데믹한 페미니즘은 경험에 언어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흥미롭지만…(중략) 나는 사람들의 결혼생활이 더 나아지기를 원한다. 나는 여성들이 직업을 갖기 위한 면접 자리에서 페니스를 가진 사람들과 동등하게 대접받기를 원한다.(중략) (저소득층의 여성들을 돕는 것과 관련된 운동에 쓰인 문구가 부유한 회사가 돈을 벌게 하는 데 쓰인다해도) 해가 될 것은 뭔가?

나이브하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는 답변이지만, 이 또한 아디치에가 경험한 현실에 기반한 말이었음을 간과할 순 없다. 주류가 된다는 것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태어난 백인 여성과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여성에게 다른 의미일 수밖에 없다.

참고로, 페미니스트는 해낸 것에 대해 인정받는 대신, 하지 않은 것으로 비난받는 일이 더 많다. 아디치에는 (미국출신이 아닌)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여성 페미니스트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창작활동을 하고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해 찬사를 받기 무섭게, 그녀가 충분히 목소리를 내지 않는 부분에 대해 지적받고 비난당했다.

아디치에의 말은, 최근 한국에서도 출간된 <페미니즘을 팝니다>(앤디 자이슬러)같은 책에서 비판하는 ‘상업화된 페미니즘’이다. 비판의 요지에는 동의하지만, 페미니즘을 필요로 하는 여성들이 처한 삶의 모습은 천양지차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페미니즘이 마케팅 수단에 머무는 일을 경계하는 일이 필수적인 동시에, 페미니즘은 지금보다 더 대중화되어야 한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를 둘러싼 애정과 논란은 이런 페미니즘의 역동성을 잘 보여준다.

글. 이다혜
그림. 구자선

목, 2018/03/0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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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법인 “다른백년”은 짧은 2-3 년간의 모색과 실험적 기간을 지나오면서, 2018년 가을부터는 열린 시민적 담론과 공론을 형성하기 위한 칼럼과 논평 그리고 토론회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하였습니다.

매 주 단위로 꾸준히 늘어나면서 수 만의 방문 횟수를 기록하고 있는 홈페이지 e-platform, www.thetomorrow.kr을 기반으로, 한국사회의 대안을 찾아서” 라는 주제에 대해 해당 분야 10분 정도 전문인들이 연속적으로 글을 제공하는 기획칼럼과 시대적 현안에 대해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는 시민적 소통의 “열린공간”, 그리고 오프라인 방식으로 연 3-4회 정도 주제가 있는 심포지움을 운용하고자 합니다.

한국사회의 대안을 찾아서”에 참여하는 필진을 다음과 같이 가나다 순으로 소개합니다. 

김봉준 화백, “신화이야기, 원형 공동체를 찾아서”

김정호 박사, ” 중국의 현재, 중국의 시각”

김화순 박사, “북한사람, 북한사회”

박헌권 변호사, “유기체 사상, 동서양철학과 현대과학의 만남”

이래경 이사장, “제3섹타 경제론, 인간의 자유와 해방의 논리”

이병한 교수, “개벽천하, 급변하는 세계”

이재승 교수, “변혁적 실용주의, 웅거Unger를 중심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현안인 민주주의라는 주제에는 이래의 두 분이 수고해 주실 것입니다.

이정옥 교수, 대구가톨릭 대학, “직접민주주의” 주임.

이승원 박사, 경희대학교 “전환과 사회혁신” 센타장.

또한,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싶거나, 오늘의 현안에 대해 진보적인 의견을 가지고 계신 여러분들은 누구나 언제라도 다른백년의 “열린공간”의 기고를 통해서 자신의 의견을 동시대의 이웃들과 소통하고 공론화 할 수 있습니다. 채택된 기고에 대해서는 소정의 수고료를 지급합니다.

 

열띤 참여와 격려를 부탁 드립니다. 이사장 이래경. 2018-09.

기고 연락처 : 박형섭 사무국장 010-5171-8527. [email protected].

금, 2018/08/3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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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 위협, 일본의 재무장과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 중국의 군사력 확충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의 군비 경쟁과 군사적 긴장은 점점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 불안하고 위험한 악순환의 고리를 언제까지 그냥 두어야 할까요? <프레시안>과 <참여연대>는 악순환의 출발점인 정전체제의 한계를 진단하고, 한반도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안녕과 평화를 보장하는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이제는 평화'를 연재를 진행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진을 통해 현안에 대한 분석과 대안, 국방·외교 분야를 바라보는 평화적인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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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신상 터는 헬조선 정부

[이제는 평화] 대한민국 정부에게 난민은 누구인가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상근변호사


 


탈북자 신상 공개를 감행하는 세계관 

 

총선을 닷새 앞둔 지난 4월 8일, 통일부는 '집단 탈북 관련 브리핑'을 통해 "북한이 해외 식당에 파견하여 근무 중이던 남자 지배인 1명과 여자 종업원 12명이 4월 7일 서울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그들의 탈북 동기와 마스크 착용 전신 사진도 앞장서서 공개했다.

 

이 브리핑은 내용과 시점 양면에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제재가 성공적으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선전하는 북풍 몰이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총체적인 숙고가 부재했던 이 브리핑은 총선 결과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오히려 현재까지도 풀기 어려운 문제만을 남기게 되었다. 

 

이러한 정략적 행위의 타당성이나 목적의 탈법성 자체보다, 한국에서 난민을 옹호하는 활동가들을 더욱 분노케 한 것은 난민의 생명을 담보로 정무적 이익을 얻으려는 시도를 감행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던 그들의 세계관 자체다.

 

난민의 신상은 왜 보호되어야 하는가 

 

탈북자들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국민이다. 하지만 제3국에서는 난민협약 등 국제법에 따라 명확히 '난민(Refugee)'에 해당하며, 난민협약은 난민에 관한 신상 정보는 물론이고 난민이 특정 국가에 비호 신청을 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공개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탈북자들이 이에 적용을 받진 않지만, 한국의 난민법 역시 제17조 제1항에서 본인의 동의 없이 난민 신청자를 특정할 수 있는 인적 사항과 사진 등의 공개 금지, 정보 공개 및 누설 금지 규정과 벌칙 규정을 두고 있다. 

 

왜 이렇게 난민의 신상 정보를 보호해야 하는가? 국적 국가로부터 박해를 피해 제3국에 난민 신청을 했다는 정보는 난민인 탈북자들에게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당사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가 누설되어 본국 정부가 이를 알게 될 경우, 본국에 있는 가족 및 기타 관련자들에게 조사, 처벌 등 박해가 가해질 것이 명백하다.

 

과연 대한민국 정부는 이 브리핑에 대해 그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동의를 거쳤는가? 브리핑이 난민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에게 끼칠 무서운 결과에 대해 과연 정부는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질 수 있는가? 난민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이뤄진 이 브리핑은 과연 한국 정부에게 난민이란 누구인가를 질문케 한다.

 

한국 정부에게 난민은 누구인가

 

한국 정부에게 난민은 구체적 인간이 아니라 정책적 재료다. 우선 난민은 '인권 선진국'이라는 허구적 이미지의 대외 선전 수단이다. 아시아에서 사실상 최초의 난민법 입법 및 시행, 유엔난민기구 집행이사회 의장국 역임, 시리아 난민에 대한 인도적 체류허가 등은 국제사회에 반복적으로 선전된다. 

 

1994년부터 2015년까지 21년 동안 1만5250명이 난민 신청을 했고, 그중 576명이 난민 인정을 받았으며, 910명이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다. 21년간 신청자 중 평균 3.78%만이 난민 인정을 받아 한국에서 살 수 있었고 나머지는 미등록 체류자로 살거나 추방되어야 했다는 사실은 대외적 선전 뒤로 숨겨진다. 

 

한국 정부에 난민은 사실 거의 존재하지 않는 허구다. 비호를 구하는 대부분의 난민 신청자들은 난민 제도를 남용해서 한국 체류를 꾀하는 허위 신청자들로 여겨질 뿐이고, 난민 제도는 강력한 국경 관리와 체류자 관리를 저해하는 요소일 뿐이다.

또한 한국 정부에게 난민은 정책적 필요에 따라 활용되는 얼굴과 목소리가 없는 '타자'다. 난민 문제에 더해 남북 관계의 모순까지 함께 투영된 존재인 탈북자는 이번 사건에서처럼 체제 우위성의 선전도구로 활용되거나, 분단 체제를 항구화할 담론을 간접적으로 유포할 도구로 활용된다. 

 

심지어 난민들은 한국 사회에 안보 불안을 가져오는 잠재적인 대상으로까지 이해된다. 작년 말 시리아 난민에 대한 국정원장의 느닷없는 현안 보고는 난민과 테러를 연계시켜 소위 '종북 세력'과 구별된 새로운 안보 불안의 주체로 난민을 활용하려는 시도였다.

 

예일 대학교 정치학 교수인 제임스 스콧은 저서 <국가처럼 보기(Seeing Like a State)>에서 국가가 공간과 사람을 읽기 쉽게 치환해가는 속성을 '가독성과 단순화'라는 키워드로 분석한다. 

 

한국 정부에게도 난민은 통계로 읽히는 체류 외국인 중 일부, 지방자치단체 시설 보수 예산에도 못 미치는 연 17억 가량 예산의 집행 용처, 극히 적은 숫자로 존재하는 무명의 체류 관리 대상일 뿐이지 구체적 인간이 아니다. 과연 대한민국 정부에게 피와 살, 존엄한 영혼을 가진 난민의 인간성은 어디에 있는가. 

 

난민과 국가의 보호, 평화 

 

박해를 피해온 난민은 우리에게 국가의 보호를 되묻는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비극적 사건 속에서 우리는 '국가가 과연 인간을 보호하는가'에서부터 '오히려 국가가 인간을 공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질문을 곱씹어왔다.  

 

난민 역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국가와 그에 준하는 집단으로부터의 박해를 피해온 사람들이다. 그들의 고국도, 그리고 한국도 그들을 선뜻 보호하지 않는 경계 속에서 자신의 몸뚱어리에만 의지하고 있을 뿐이다. 

 

난민의 존재는 평화의 소중함을 되묻는다. 국가와 그에 준하는 집단들의 폭력적 박해를 피해온 그들은 언어, 문화, 역사적 경험이 모두 다른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로서 또 다른 비평화를 경험한다. 평화를 찾아온 난민들이 경험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에게마저도 가혹한 '헬조선'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영상 메시지를 통해 "전쟁의 처절함을 체험한 난민들은 어떻게 평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난민의 존재는 우리가 모두 지구에 온 외부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한다"고 심오한 통찰을 줬다.

 

우리는 우리가 국가의 경계를 초월한 코스모폴리탄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역시 어디에선가 이방인이며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이기에 난민들 곁에 선다. 한국 정부가 그들을 얼굴도 목소리도 없는 존재로 치환하여 정책적 재료로 활용하고 있을 때, 국가의 의무를 요구하고 평화를 희망하는 우리는 어떻게 그들 곁에 서고 연대할 것인가.

목, 2016/04/2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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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01/08-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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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카 쇼지Hiroka Shoji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담당 조사관

아름다운 섬 제주도는 매년 관광객 수백만 명이 찾는 한국의 인기 관광지다. 올해 이 제주도를 찾은 방문객 중에는 어린이를 비롯한 예멘 난민 수백 명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예멘인들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이 섬을 찾은 이유는 여느 관광객들과는 다르다. 아름다운 풍경이 아닌, 피난처를 찾아서 온 것이다.

이들의 고향은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예멘에서는 지금까지 16,000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죽거나 다쳤고, 200만 명이 피난을 떠나야 했으며, 어린이 340만 명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예멘 전체 인구의 75%에 해당하는 2,220만 명은 생존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상태다.

예멘 난민에 대한 주요 통계

 

죽거나 다친 민간인 수
피난을 떠난 사람들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
16,000명 이상
200만 명
340만 명

예멘 난민에 대한 주요 통계

죽거나 다친 민간인 수
최소16,000만 명
피난을 떠난 사람들
200만 명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
340만 명

 

2018년 1월부터 5월 사이, 약 550명 정도의 예멘인이 말레이시아를 통해 제주도에 도착했다. 난민을 법적으로 규제하지 않는 한국과 달리, 말레이시아의 난민 신청자들은 구금, 기소되거나 채찍질형에 처해질 수도 있으며 그로 인해 강제 송환될 수도 있다. 예멘인들은 30일간 무비자 입국을 이용해 한국에 들어와 임시 비자를 발급받아 난민 신청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예멘인들은 한국에 도착한 뒤로 친절보다는 대부분 적대적인 시선을 받아왔다. 2018년 7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예멘 난민들이 한국의 경제적 안정성을 이용하려는 “가짜 난민”이라고 주장하며, 난민 신청을 거부해 달라는 청원에 714,000명 이상이 서명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한 청원이었다.

청와대 웹사이트 캡쳐

한국은 난민 신청자들이 흔히 찾을 만한 곳은 아니다. 한국은 난민협약에 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난민 지위를 인정하거나 인도적 차원에서 체류를 허가하여 매년 받아들이는 난민 신청자의 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국의 난민 인권단체인 난민인권센터(NANCEN)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약 1만 건에 이르는 난민 신청 중 한국 정부가 받아들인 건수는 그 중 1.5%에 불과했다. 그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예멘인 550명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이처럼 난민 수용에 익숙하지 않은 점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2018년 7월 4일, 예멘인 비호 신청자 모하메드 살렘 두하이쉬.

난민들이 고향을 떠나게 만든 예멘에서의 위협은 현실적이며,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수백만 명의 예멘 민간인들이 ‘철저히 인간이 초래한 재앙‘ 속에 휘말린 채 갇혀 있으며, 그 재앙은 만연히 이루어지는 인권침해와 국제인권 및 인도법을 위반하는 행위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 분쟁의 당사자들은 구호품 조달을 빈번히 제한하며, 학교와 병원 등의 민간 시설을 계속해서 공격하거나 파괴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은 민간인과 민간 시설에 무차별적으로 과도한 공습을 수십 건 감행했고, 이로 인해 주택과 학교, 시장, 예식장, 병원, 모스크가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공격의 대부분은 국제법상 전쟁범죄에 해당된다.

엄청난 반대 여론에 대한 답으로,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예멘 난민들의 망명 신청 심사 기간을 단축시키고 9월 말까지 1차 심사를 완료할 예정이라고 8월 1일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을 통해 밝혔다. 또한 제주도민들의 안전을 위해 난민을 더욱 철저히 관리하고 통제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2018년 7월 30일 서울에서 열린 반난민 집회

난민 신청을 신속히 처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절차는 반드시 공정해야 하며, 신청자 개개인은 법적 대리인의 도움을 받아 심사 결과에 항소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정부는 각각의 난민 신청건을 필요한 만큼 충분히 검토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여론의 압력을 이유로 심사 절차를 성급히 처리해서는 안 된다.

피난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시민권이 없는 사람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인류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한국의 지도자들과 국민들은 앞으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기를 원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더욱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마다 맡은 역할이 있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이들에게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장소를 제공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 예멘 난민들의 망명 신청을 거부해 달라는 국민 청원에 답변을 해야 한다. 2017년 대선 후보였을 당시, 문 대통령은 난민협약을 이행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호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제는 리더십을 발휘해, 망명 신청 절차를 공정하고 신속하게 처리하고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들에게 보호를 제공함으로써 그 약속을 지킬 때다.

 

 

금, 2018/08/2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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