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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냉전-2.0의 승리를 위한 준비 중이다 : 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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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냉전-2.0의 승리를 위한 준비 중이다 : 5G

admin | 금, 2020/07/31- 18:27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이 진행했던 ‘냉전-1.0’은 45년 간의 거대한 이념적 경제적 기술적 전쟁이 이었고, 세계를 핵전쟁의 위험(Armageddon)으로 몰아가며 지구상의 모든 국가뿐만 아니라 달나라까지 영향을 미쳤다.

현재 진행중인 미국과 중간의 ‘냉전-2.0’은 기존의 냉전과는 매우 다른 양상의 경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위험성과 영향력에 있어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미국에게 있어서 중국은 인구의 규모 면에 있어서도 기술적 야심이라는 측면에서 과거의 상대보다 훨씬 힘든 적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싸움은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진행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과 소련은 지구를 양분하여 분리된 형태로 각자의 영역에서 존재하였지만,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서로 엉켜 의존하고 있다. 2018년 현재 중국은 미국이 최대 무역대상국이었으며, 중국의 바이트댄스(ByteDance)사가 비디오 네트워크의 지분을 공유하고 있는 TikTok은 비게임 분야에서 세계 최대의 앱(app) 프로그램이고, 2019년 현재 미국의 대학에 369,548 명의 중국학생이 등록한 가운데 시진핑 주석의 따님이 2014년에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바 있다.

이와 별도로 미국과 중국의 강대국 경쟁은 기존과는 달리 전혀 새롭고 결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과거의 ‘냉전-1.0’이 재래식 군사력과 핵위협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면, 현재의 ‘냉전-2.0’은 민간사회를 통한 소프트웨어와 기술의 혁신경쟁이라는 측면이 훨씬 강하다. 인터넷은 단순히 통신수단이 아니라 통제의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 세계적 규모에서 사물인터넷(IOT)를 운용하면 수십 억의 장치를 연결하면서 지정학적 전략의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바로 이 분야에서 중국이 자신의 위상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서방의 주요 국가들이 5G 네트워크에 화웨이 장비를 적용하는 여부가 일종의 시금석이 된다. 흔히 미국과 중국의 대결적 상황은 성격이 전혀 다르며 어울리지 않는 두 국가의 지도자들 즉 트럼프와 시주석의 개인적 정치성향 때문이며 두 사람이 서로를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미국 내 중국분야 최고의 권위자중 한 사람인 Orville Schell은 보다 분석적이고 위협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공화와 민주 양당이 8번을 교대로 집권해온 지난 50년 간 지속되었던, 중국에 대한 미국의 포용정책은 이제 끝장이 났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냉전이라는 높은 산의 정상에 오른 것(종결)이 아니라 겨우 중턱 어디쯤에 머물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미국의 포용정책은 아래의 두 가지 전제에 기반하고 있었으나 모두 실패하였다고 결론짓는다. 한가지는 중국이 번영을 지속하고 개방화를 진행하면 점차로 민주적 사회로 전화할 것이라고 워싱턴은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인터넷의 도입이 자유를 확산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08년 전직 대통령인 빌 클린턴은 중국이 인터넷을 차단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마치 ‘벽에다 껌을 부치는 격’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판연히 다르다. 중국은 공산당이 내부의 통제력을 전혀 늦추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거대한 경제강국으로 부상하였으며, 국제적 인터넷에 대한 중국내의 방어벽(firewall)을 강화시키는 한편, 다른 국가들의 사이버 공간에 혼란을 야기시킬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지난 주에만 중국과 연계된 선전 캠페인으로 추정되는 23,750개의 내용물을 트워터에서 추려냈다.

“우리는 총격전을 벌릴 필요는 없지만 이에 필적하는 위험한 경쟁의 전쟁에 빠져 있다”고 미국의 전역장성은 경고를 보낸다. 위싱턴의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 책임자인 Robert Atkinson은 중국이 이미 일부의 선도산업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하였고 동시에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하여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중국은 기술분야에서 강력하게 그리고 손쉽게 미국을 압도할 것이다”. 그는 미국이 긴급하고 강력하게 자국의 산업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자유시장과 사적재산권 그리고 기업가의 정신이면 성공을 보장한다’는 기존의 흔해빠진 신념은 비역사(비현실)적이며 무책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Actkinson은, 냉전이 절정이었던 1963년 당시, 미국 연방정부는 나머지 전세계의 정부 및 민간 분야의 모든 투자액보다 많은 예산을 R&D 분야에 투입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현재는 1955년에 이루어진 GDP 비중보다도 적은 예산이 미국의 R&D에 할당되고 있다. 역설적인 것은 중국의 지도부들이 미국의 정치지도자들보다 과거 냉전에서 미국이 승리한 미국의 역사를 더 잘 숙지하고 있으며, 기술적 혁신이 국가안보의 핵심이라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출처 : 파이낸스 타임즈 on 2020-06-16.

John Thornhill

FT 혁신분야 편집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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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언론들은 잽싸게 세계인의 관심을 집중시켜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의 출현지가 중국이라고 공식적으로 단정했으며, 구체적으로 우한 소재의 축축한 화난 해산물시장 내 동물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원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으며, 중국과 일본 등 보고서들에 따르면 해당 바이러스가 다양한 여러 장소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며, 외부에서 우한 시장으로 유입된 후에야 비로소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발생하지 않았으며, 일본 및 타국의 매체에 따르면 그것이 미국에서 발생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중국 연구자들은 바이러스가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의학 연구자들은 중국의 게놈(유전체) 샘플을 수집한 후, 먼저 바이러스가 우한 해산물 시장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여러 미확인 출처에서 유래했다는 사실과, 이후에 바이러스가 해산물 시장으로 유입되어 노출되었음을 결정적으로 입증해 냈다.

환구시보에 따르면 “중국 연구자들이 수행한 새로운 연구는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한의 화난 해산물 시장이 아닌 어떤 다른 곳에서 지난 11월 중에 대인 접촉을 통한 감염으로 시작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과학 연구자들을 위한 중국의 개방적 지식 저장소인 ChinaXiv에 발표된 연구내용에는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른 지역(들)에서 해산물 시장으로 유입된 후 많은 사람들의 긴밀한 접촉으로 인해 시장에서 급속히 확산되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발견은 게놈 데이터와 감염 출처를 분석하고 중국 전역에 걸쳐 수집된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이의 확산 경로를 분석한 결과였다.

이 연구는 최초 감염자가 화난 해산물 시장의 일꾼들 혹은 상인들에게 바이러스를 일차적으로 전염시켰으며, 붐비는 시장이라는 조건은 시장을 방문한 구매자들에게 바이러스를 추가적으로 전염시키기가 용이했으며 이는 2019년 12월 초에 바이러스가 더욱 광범위하게 퍼지게 된 원인이라고 밝혔다.”

중국 의료 당국과 “정보 기관”은 바이러스의 기원을 알아내기 위해 신속하고 광범위한 조사를 수행했다. 4개 대륙 12개 국가에서 입수한 거의 100개의 게놈 샘플을 수집하여 모든 변종과 돌연변이를 확인했다. 이 연구에서 그들은 바이러스 발생이 우한에서 열린 세계 군인 체육대회 직후인 11월에 시작되었다고 판단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작년 10월 18일에 이런 보도를 했다:  “중국 우한에서 세계 군인 체육대회(제7회 CISM 군사세계 경기, CISM Military World Games)가 2019년 10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에 걸쳐, 세계 109개국가에서 9,308명이 참가하는 가운데 성대한 개막식이 치뤄졌다.” (*대회 이후, 참석했던 미군들이 화난 해산물 시장을 방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호흡기 전문의 종 난샨(Zhong Nanshan)박사는 1월 27일에 이렇게 말했다. “비록 COVID-19가 중국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중국에서 바이러스가 생겨났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퍼진 바이러스는 어쨌든 중국 것이긴 합니다. 비록 다른 나라에서 발원했다 할지라도 말이죠.”

이것은 물론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원지에 관한 질문을 제기한다. 중국당국이 12개국에서 100개의 게놈 샘플을 통해 분석을 시도했었다면,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원천을 찾아야 할 강력한 이유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최초 감염자(patient zero)’의 위치를 찾아내고 신분을 식별하는 데는 대단한 어려움이 있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중국 연구자들과 별도로 같은 시기 일본 동료들이 동일한 독자적 결론을 내렸다. 즉 이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유입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미디어가 코로나 바이러스 발원지가 미국일 가능성을 시사하였다.  2020년 2월, 일본 아사히 뉴스 보도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이 아닌 미국에서 발생했으며, 사망의 원인이 인플루엔자 탓으로 돌려지는 14,000명 (*3월 8일 현재는 20,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의 미국인들 중 일부 또는 다수가 실제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사망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일본 TV 방송국의 한 보도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자신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음을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이 중국의 소셜 미디어에 퍼졌으며, 신형 바이러스가 미국에서 유래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추론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아사히 TV의 이 보도는 미국 정부가 자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얼마나 널리 퍼졌는지를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동시에 아사히 TV의 보도는 이미 인플루엔자로 사망한 미국인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의 여부는 알 수가 없다고도 했다.

2월 14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시카고, 뉴욕의 공중 보건소에서 인플루엔자 유사 증상을 보이는 개인들에게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테스트를 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사히 TV는 그들의 주장에 대한 과학적 문건을 제시했으며, 미국 질병 예방 당국이 바이러스 테스트를 하지 않았거나 혹은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사망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반면에 일본 연구자들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자연발생적인가 인공적인가 또는 우발적 실수인가 고의적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확답을 회피하면서, 단지 바이러스가 미국에서 최초로 발생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서구의 인터넷은 이와 관련된 정보들을 모두 삭제한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 언론은 여전히 이러한 정보들을 인용한다.

아사히 TV의 이러한 주장은 일본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벌집을 쑤셔놓은 듯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작년 10월 말 우한에서 개최된 군인들의 올림픽인 ‘세계군인 체육대회’때문에 중국 소셜 미디어가 뜨겁게 달구어졌으며, 이미 그 시점에 외부로부터 중국 내부에 전염되었을 가능성에 관하여 광범위한 토론이 벌어졌다.

“아마도 우한에서 열린 세계군인 체육대회의 미국 대표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우한으로 가져 왔고, 바이러스에 약간의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바이러스가 더 치명적이고 전염성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올해 광범위한 확산을 일으켰다.” (인민일보, 2020년 2월 23일 기사)

상하이 푸단 대학의 국제관계학과 교수인 션 이(Shen Yi)는 “정보 기관을 포함한” 세계 바이러스 학자들이 바이러스의 기원을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흥미롭게도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한 가능성을 계속 열어 두었다. 중국의 뉴스 보도에 따르면, “네티즌들이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다만 합리적인 방식으로 참여하는 것이 좋습니다.” 중국 내에서는 이를 허용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만약 어떤 특정 보도가 조작된 쓰레기였다면, 중국 정부는 분명히 그 사실을 밝히고 사람들에게 허위 소문을 퍼뜨리지 말라고 알려 주었을 것이다.

대만에 거주하는 바이러스 학자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국에서 유래됐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2월 7일에 대만 TV 뉴스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방영 중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국에서 유래되었음을 시사하는 도표와 흐름도가 제시 되었다. 아래 도표는 해당 뉴스 방송의 선택된 콘텐츠에 대한 대략적인 요약 및 분석이다. 이를 발표한 사람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근원을 오랫동안 상세하게 탐색해온 대만의 정상급 바이러스 학자이자 약리학자이다.

그는 영상의 첫 부분에서 다양한 단상형(單相型) 바이러스(필요한 경우 변종들도 포함하여)를 설명하고, 어떻게 그것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는지, 어떻게 하나가 다른 것보다 먼저 오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 종류가 다른 종류를 파생시키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이것이 단지 기초적 과학 지식일 뿐이며 지정학적 문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마치 숫자 2 다음에는 3이 온다는 산수문제방식으로 의문을 하나씩 풀어나간다고 했다.

대만의사의 바이러스 감염 설명도표

그의 주요 논점 중 하나는 대만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 유형이 호주와 미국에만 존재하며, 대만 사람들이 호주 사람들에게 감염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만에서의 감염은 미국으로부터 온 바이러스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의 기본 논리는 바이러스 변종이 가장 다양하게 존재하는 지리적 위치가 바로 바이러스 발생지[근원지]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변종이 나오려면 다른 바이러스가 이미 존재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무(無)에서 변종 바이러스가 나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만이 5개의 알려진 바이러스 변종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했으며 반면에 우한과 중국의 대부분 지역에는 대만, 한국,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영국, 벨기에, 그리고 독일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변종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는데, 이는 미국을 뺀 다른 국가들에 존재하는 단상형(單相型) 바이러스가 미국에서 기원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과 대만은 중국과는 다른 단상형(單相型)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데, 아마도 그것은 전염성은 더 강하지만 치사율은 보다 적은 바이러스 일 것이라 추측되며, 한국과 대만 양국의 사망율이 중국의 사망률에 비해 1/3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이란이나 이탈리아는 위의 시험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현재 양국은 지역적으로 널리 퍼진 게놈(genome)을 해독하여 바이러스들이 중국과는 다른 것임을 공표했다. 이는 바이러스들이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다른 곳에서 유입된 것임을 의미한다.

이탈리아의 변종 바이러스는 중국의 것과 거의 비슷한 사망률을 보여주는데, 이는 다른 나라들보다 세 배나 더 큰 것이다. 반면에 이란의 단상형(單相型) 바이러스는 사망율이 10%에서 25% 사이로 가장 치명적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초점을 맞춘 엄청난 양의 서구 언론의 보도로 인해, 대부분 세계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으로부터 시작되어 다른 국가로 퍼졌다고 믿고 있지만 현재 그러한 믿음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 것처럼 보인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점, 전 세계 약 50여 개 국가에서 적어도 한 건 이상의 사례가 확인되었으므로, 각 국가로부터 바이러스 샘플을 검사하여 그것들이 생겨난 원래 위치와 전세계적 출처 및 확산 패턴을 알아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위의 바이러스 학자[대만 의사]는 최근 미국에서 200명 이상의 “폐섬유증 (pulmonary fibrosis)” 진단 사례가 발견되었는데 그 환자들은 호흡이 불가능해져 사망에 이르지만 이는 폐섬유증의 증상과 상태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미국 보건 당국에 그러한 사망 사례들이 혹시라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것이 아닌지 진지하게 고려해 볼 것을 알려주는 논문을 써주었으나 그들은 그것이 단지 전자 담배로 인한 사망이라고 반응할 뿐 더 이상의 심도 깊은 논의를 차단시켰다.

대만 의사는 바이러스 출현의 시점이 우리의 예상보다 더 이른 시기라고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2019년 9월 경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는 2019년 9월에 몇몇 일본인들이 하와이로 여행을 가서 돌아온 후 감염된 채 귀국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중국에 결코 간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때는 시기적으로 보아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감염이 시작되기 2개월 전이었고 동시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CDC)가 병원체의 외부 유출을 막기에 시설이 충분치 않다는 이유를 대며 갑작스레 포트 데트릭(Fort Detrick) 생물학전 무기 연구소를 전면 폐쇄한 직후였다.

대만의사는 동일한 결론을 내린 일본 바이러스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으로 감염 사례를 매우 신중하게 자체 조사했다고 말했다. 이것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미 미국에 퍼졌지만 그로 인해 발생한 증상들이 공식적으로 다른 질병 탓으로 돌려져 아마도 은폐되었음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해 환구시보(环球时报)는 미국의 한 사례를 언급했는데, 어느 여성의 친척이 내과 의사들로부터 들은 내용이라며, ‘독감(flu)’으로 사망한 어느 남성의 사망 증명서에 사망 이유로 ‘코로나 바이러스 (coronavirus)’가 기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2월 26일, ABC뉴스 계열사인 KJCT8 뉴스 네트워크는 한 여성이 최근 자신의 언니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사망했다고 언론에 전했다고 보도했다. 콜로라도주(州) 몬트로즈(Montrose)에 사는 알메타 스톤(Almeta Stone)은 “의료진이 우리에게 사인(死因)이 독감이라고 알려주었으나, 나중에 사망 증명서를 받았을 때 거기에는 사망 원인이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써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미국에서 이러한 사례들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신뢰할만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테스트 키트(test kits)를 갖추고 있지 않고. 게다가 바이러스에 대한 테스트가 거의 또는 전혀 수행되고 있지 않는 현실을 감안하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에 의한 사망을 단순히 독감의 의한 것이라고 은폐되어 처리되는 사례들이 부지기수로 존재할 거라는 추측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현재 유달리 전염병이 창궐하는 중국…. 그 진정한 이유는 뭘까? 지난 2년간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 전쟁(trade war)’ 중에 갖가지 전염병을 겪었다.

(1) 2018년 2월 15일 : H7N4 조류 독감 발생. 중국에서 1,600명 이상이 병을 앓았고 600명 이상이 죽었다. 수많은 닭들이 죽었다. 이로 인해 중국은 미국 가금류 제품을 구매해야 한다.
(2) 2018년 6월 : H7N9 조류 독감. 수많은 닭들이 죽었다. 중국은 미국 가금류 제품을 구매해야 한다.
(3) 2018년 8월 : 아프리카 신종 인플루엔자 발생. 러시아와 같은 변종이며 그루지야에서 온 것임. 수백만 마리의 돼지가 죽었다. 중국은 미국산 돼지고기 제품을 구매해야 한다.
(4) 2019년 5월 24일 : 대부분의 식량 작물을 파괴하는 중국의 14개 지방 수준 지역에서 조밤나방속의 유충이 대량으로 만연하여, 대부분의 식량 작물을 파괴했다. 그것은 즉시 중국의 곡물 생산에서 8,500 헥타르 이상의 경작지로 퍼져나갔다. 그 유충은 어마어마한 수의 알을 낳는다. 중국은 이로 인해 옥수수, 콩 등 미국 농산물을 구매해야만 한다.
(5) 2019년 12월 : 코로나 바이러스 출현으로 중국 경제가 일시 정지 되었다.
(6) 2020년 1월 : 중국은 후난성에서 “고병원성” 조류 독감 발생. 수많은 닭들이 죽었고 많은 닭들을 죽여야 했다. 그래서 중국은 미국산 가금류 제품을 구매해야 한다.

중국 속담에서 이르듯이, 우연적으로 액운이 세번까지는 찾아 올 수 있지만, 상기에 적시한 6번의 액운 모두가 우연에서 발생한 것은 아닐 것(즉, 외부로부터의 영향 또는 개입)이다.

 

2020년 3월 4일, Global Research column

래리 로마노프(Larry Romanoff)

은퇴한 경영 컨설턴트 및 사업가. 국제 컨설팅 회사에서 고위 임원직 역임, 무역회사 경영. 상하이 푸단 대학교의 방문 교수로 초빙되어 시니어 EMBA 수업에서 국제거래에 관한 사례연구를 강의

월, 2020/03/09-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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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지역으로 가져오기

때론 세상에 온통 나쁜 소식만 들려오는 것 같다. 기후혼란, 생물멸종, 고용불안, 빈곤, 폭력사태∙∙∙. 이런 소식들은 우리를 답답하고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직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은 대부분 같은 원인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여러 문제를 따로 해결할 필요 없이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나는 저개발국가에서 가장 산업화된 선진국까지, 세계 여러 곳을 관찰하고 연구한 끝에 무엇이 문제인지 확실히 알았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들이 경제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의 우선순위를 혼동하는 바람에 잘못된 순위를 앞세워 다른 대안들을 묵살함으로써 부지불식간에 글로벌 경제를 지지한다. 글로벌 경제는 몹시 비대하고 강해져서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글로벌 경제는 기술-경제 체제로서 인간생활의 모든 것, 심지어 생명까지도 상품으로 만든다. 글로벌 경제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을 분리시키며 번영하고 있다.

그러나 꼭 이런 길로 가야 할 필요는 없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구태의연한 권력기관과는 전혀 다른 풀뿌리 운동이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경제구조를 지역화하여 생태계와 공동체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육대주에서 일어나 힘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경제가 문화와 생태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생태가 경제를 주도하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풀뿌리 운동은 사람들의 힘과 인내, 선한 의지를 증명하고, 신속하게 확산하여 앞으로의 정치와 경제 지형을 바꿔놓을 것이다.

지역화는 글로벌 경제가 입힌 손상을 만회하는 가장 전략적이고 효과적이며 상식적인 방법이다. 지역경제가 튼튼해지면 개인, 즉 ‘내부’의 변화뿐 아니라 정치 변화, 곧 ‘외부’의 변화까지 일어난다. 지역화는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경제학이다. 빈부 격차를 크게 줄이고, 에너지 사용과 공해를 줄인다. 아울러 지역화는 행복의 경제학이다. 개개인을 공동체, 그리고 자연과 다시 이어주기 때문이다.

지역화는 고립화가 아니다. 사실 정책적으로 세계화에서 지역화로 전환하려면 국제협력이 필요하다. 글로벌 은행과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자유무역조약이 아니라 환경을 보호하는 구속력이 있는 협정을 맺어야 한다. 풀뿌리 운동에서도 시급히 정보를 공유하고, 국가와 사회 안팎의 각계각층과 협력해야 한다. 지역화는 융통성 없이 꽉 막힌 처방이 아니다. 오히려 경제활동을 변화시켜서 지역사회와 인간을 다양하게 만든다. 나는 지역화를 ‘경제를 지역으로 가져오기(bring the economy home)’라고 부르고 있다.

 

큰 그림 행동주의

글로벌에서 로컬로 방향을 바꾸는 지역화를 위해서는 두 가지 사뭇 다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즉 풀뿌리 운동과 정책 변화를 동시에 병행해야 한다. 상향식 풀뿌리 차원에서 로컬의 수많은 기업은 현재 기본수요를 장악하고 있는 소수의 독점기업들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이미 증명해 보였다. 이러한 지역사회기반의 경제구조는 사회와 경제 구조를 재편하여 자연과 인간의 기본욕구를 모두 충족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을 더 확대하려면 하향식 정책변화도 필요하다. 세금혜택과 보조금을 로컬로 돌려야 하고, 무역과 금융을 규제해서 (은행을 포함한) 기업들이 지역에 기반을 두고 사회가 정한 규칙과 법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세계화를 지원하는 공공정책의 방향을 지역화로 바꾸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까닭은 전 세계의 정책결정권자들이 대기업과 은행의 요구를 계속 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운동이 점진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 운동은 발전의 방법(동반경제성장, 무역진흥, 첨단기술, 기업후원 등)이 정확히 일치하는 보수나 진보의 정치인들에게 희망을 걸기 보다는,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시민운동은 서로 연대하여 양분된 좌우를 초월하고, 구태의연한 정치를 넘어서고 있다. 사람들은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 현 체제를 조금 손보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근본적인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들의 수가 임계치에 달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근본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의미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변화를 만들어낼 결정적 다수를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내가 말하는 ‘큰 그림 행동주의(big picture activism)’의 목표다. 시민의 의식을 높이려면 이론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지역화 사업의 감동적인 사례를 날마다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도시와 농촌에서, 사람들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건하자마자 다양한 정신적∙심리적∙실용적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큰 그림 행동주의는 기본 전제에 잘못이 없는지 폭넓게 재검토한다. 신화와 잘못된 정보를 기반으로 한 오늘날의 소비자문화는 모순적인 개념으로 사람들을 혼란스럽고 당황하게 만든다. 한편에서는 저녁뉴스에서 소비자 지출이 감소하면 당장 세상이 멈출 것처럼 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소비자의 탐욕이 세상을 파괴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경제체제를 만든 것은 개인의 탐욕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도 보조금과 법, 세금을 이용해 지구와 개인의 안녕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제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다.

최근까지 글로벌 경제를 해체하는데 필요한 폭넓은 관점은 찬밥 신세였고, 그 분야에는 편협한 시장근본주의자들이 득세했다. 결과적으로 유일한 길은 계속 팽창하는 비인간적인 경제규모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고, 부와 권력은 더 적은 소수에게 집중되었다. 그러나 큰 그림 행동주의는 우리에게 다른 길이 있다고 말해준다.

큰 그림 행동주의가 성공하려면 몇 가지 장벽을 극복해야만 한다. 어떤 문제를 발견하면 곧장 해결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우리는 이미 경제가 문제라는 것도 알고 있고 기업이 너무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안다. 왜 그걸 계속 논의하고 앉아있나?”라고 말한다. 그러나 경제세력이 환경문제와 사회정의문제 이면에 있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은 많아도, 경제가 문화와 개인의 자부심을 허물고, 민족∙인종∙종교 갈등을 높이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무역조약이 기업과 은행에 막대한 힘을 실어준 덕분에 그들은 사실상 세계정부가 되고 좌익이든 우익이든 어떤 정당이 선출되더라도 그 정당을 배후에서 지배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이미 기업의 지배에 반대하는 사람이 글로벌과 로컬을 아우르는 폭넓은 관점을 가지면 문제에 더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로컬의 미래를 위한 정책 제안

(1) 로컬 경제를 위한 대안무역 지침

국가들은 글로벌 무역규제를 계속 완화하거나 철폐하는 대신 함께 힘을 모아 건강한 국가경제와 로컬경제를 우선하는 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 앞으로 무역의 목적은 기업의 이윤과 국내총생산(GDP)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잉여생산물을 시장에 공급하고 국내에서 생산할 수 없는 재화를 획득하는 것이다.

무역규제철폐를 더 이상 관용할 수 없는 개인과 단체들이 이미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유럽에서는 80개가 넘는 단체들이 연대해서 대안무역지침의 초안을 마련했고 총선후보자 193명이 그 지침의 목표를 지지하겠다고 약속했다.

(2) 지역기반의 금융체계 확립

은행과 금융체계를 다시 규제해서 유령자산을 만들지 못하게 제한하고 무질서한 자본의 흐름을 줄여야 한다. 아울러 지역투자부문에서는 지역민이 연금기금과 증권교환을 통해서 지역사회에 투자하는 길이 거의 막혀있는 구시대적인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

은행의 대출관행도 변해야 한다. 상업은행들은 대기업에 비해 상당히 높은 대출이자를 요구하면서 작은 기업들을 차별해왔다. 게다가 대기업 중역들에게는 개인대출보증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소상공인들에게는 요구하기도 한다. 지역사회의 은행과 신용협동조합을 더 많이 지원하고 이용하면 훨씬 더 다양한 중소기업이 번영할 수 있다.

(3) 건전한 경제지표 적용

의사결정권자들은 흔히 국내총생산(GDP)이 성장하면 이를 가리켜 정책이 주효한 증거라고 말한다. 국부의 척도라는 GDP가 끔찍한 혼선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모르는 소리다. GDP는 시장의 활동, 주인을 갈아타는 돈의 총량을 말해줄 뿐이다. GDP는 바람직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비용과 이익을 구별하지 않는다. 암, 범죄, 교통사고, 기름유출에서 나가는 지출이 증가하면 GDP도 덩달아 오른다. GDP에는 돈이 오가는 거래만 고려하고 가족과 공동체, 환경의 기능은 산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돈은 GDP에 들어가는 반면 가족이 집에서 자녀를 돌보는 것은 들어가지 않는다.

이에 사람들은 GDP를 대신할 다양한 대안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실질진보지표(GPI)이다. 기존의 지표에다 경제∙환경∙사회의 중요한 요소를 단일체계에 넣어서 발전과 실패의 정확한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다. 오스트리아, 캐나다, 칠레, 프랑스, 핀란드,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영국에서는 이미 GPI를 계산해서 발표하고 있다.

(4) 편파적인 세금체계의 개선

거의 모든 나라가 체계적인 세금규제로 중소기업을 차별한다. 지속 가능한 소규모 생산은 보통 더 노동집약적인데 소득세, 사회복지세, 근로소득세 등 무거운 세금을 노동에 부과한다. 한편 자본집약적, 에너지집약적 기술을 사용하는 대기업 생산자는 세금우대(가속상각, 투자세공제, 세액공제)를 받는다. 편파적인 세금체계를 바꾸면 로컬경제를 살릴 수 있을 뿐 아니라 기계보다 사람을 더 선호하게 되어 일자리도 더 많이 창출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생산에 쓰는 에너지에 세금을 물리면 첨단기술투입에 덜 의존하는 기업, 곧 노동집약적인 소기업이 진흥한다. 게다가 생산과 소비로 일어나는 환경파괴대책을 포함해 화석연료에 세금을 부과하면 실비가 가격에 반영될 테니 운송은 줄고 지역소비를 위한 생산은 늘며 경제는 건강하게 다각화될 것이다.

(5) 재생에너지의 분산작업

현재 재생에너지 기술로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은 화석연료에 비해 5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러한 불균형을 뒤집으면 오염은 줄어들고 일자리는 늘어나며 장기적인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를 비롯해 어떤 형태의 에너지든 발전소는 분산하는 것이 좋다. 에너지원을 최종 용도에 가까이 두면 전송망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에너지원을 분산하면 지역경제에서 돈이 새는 것을 막을 수 있어 정치권력도 확실히 분권화한다.

완벽한 정책은 없지만 전 세계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분산된 재생에너지의 확산을 촉진하는 새로운 법을 채택하고 있다. 이를테면 세금우대, 보조금, 발전차액지원제도 같은 금융지원, 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 등이 있다. 미국은 주 차원에서 재생에너지를 일정비율 의무적으로 공급하도록 하는 정책인 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가 불씨가 되어 태양광발전소와 풍력발전소가 급격히 늘어났다.

(6) 다품종 유기농 생산지의 확대

대다수 국가는 농업보조금을 대규모 산업농 기업에 몰아준다. 세계무역기구 회원국 사이에서 보조금의 3분의 2는 부유한 거대농가가 받는다. 농업연구자금도 생명공학과 화학∙에너지 집약 단일품종농업에 크게 편중되어 있다.

소규모 다품종 농업을 장려하는 연구를 더 많이 지원하면 농촌경제가 활기를 띨 뿐 아니라 생물이 다양해지고 토양이 건강해지며 식량안보를 이룩할 수 있다. 또한 식단에 균형과 다양성이 생기고 식재료가 더 신선해질 것이다.

(7) 소규모 로컬생산자를 위한 규제 완화

소규모 기업은 대규모 생산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규제하는 법 때문에 부당한 세금을 내야 하는 일이 빈번하다. 예를 들어 공장형 밀집사육방식의 양계장은 분명히 환경과 보건규제를 철저히 받아야 한다. 그러나 닭 여남은 마리를 놓아 기르는 소농 같은 소규모 생산자도 기본적으로 같은 규제를 받기 때문에 치솟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서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일리노이주는 일명 ‘코티지푸드’ 법안을 통해 잼과 피클 같은 여러 보존식품을 소규모로 생산하는 생산자를 위한 규제완화를 고려하고 있다. 비슷한 법안 17개가 미국 전역에 도입되었다.

(8) 토지사용규제의 합리적 개선

지역과 지방의 토지사용규정을 개정하면 야생지와 공지, 농지를 개발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목적으로 설립된 토지신탁에 정치지원과 금융지원을 해야 한다. 지방정부가 공공자금으로 농지개발권을 사서 교외 확장을 막고 농부들의 금융부담을 덜어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 사례도 있다.

(9) 로컬미디어와 로컬엔터테인먼트 지원

지역사회 라디오 방송국부터 라이브 뮤직과 극장 등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공연예술문화시설을 지원하면 세계화한 미디어를 대신할 대안으로 발돋움할 것이다. 춤과 노래, 축제 같은 공동창작 엔터테인먼트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지역사회의 유대감은 한층 더 튼튼해질 것이다.

(10) 로컬에 기반한 교육으로의 전환

학교교육은 장차 현재의 아이들을 고용할 기업의 요구에 맞게 점차 변하고 있다. 기업에 맞춘 교과과정에서 벗어나 지역에 기반한 다양한 형태의 학습으로 전환하면 막대한 혜택을 얻을 것이다. ‘고용 없는 성장’ 경제를 위한 경쟁적이고 전문화를 장려하는 교육이 아니라 다양한 환경과 문화, 지역화한 경제에 맞게 변할 것이다. 지역에 맞는 농업과 건축, 적합한 기술교육을 제공하면 기본수요를 충족시키는 생산분권화가 더욱 진전할 수 있다.

 

세계 지역사회의 다양한 풀뿌리 활동

(1) 로컬금융

공동체은행과 신용협동조합은 주민들이 멀리 있는 기업이 아니라 마을과 지역사회에 투자할 수 있는 금융기관이다. 이 두 곳에서는 창업자금을 대기업에만 대출해주는 시중은행과 달리 소기업에도 낮은 금리로 대출해준다.

지역투자는 앞으로 새로운 트렌드를 이룰 것이다. 슬로머니(로컬 식량체계에 대한 자본투자를 돕는 비영리단체)의 여러 지부에서는 이미 많은 투자를 소농과 식품기업에 유치했다. 지역증권거래, 소액투자편드, 협동조합투자편드, 지역에서 투자하는 연금펀드 같은 여러 구상도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지역화폐를 만들어 사용하면 돈을 지역경제 안에 붙잡아둘 수 있다. 마찬가지로 타임뱅크(비시장영역에서 봉사활동을 시간가치로 환산하여 기록, 저장, 교환하여 공동체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운동으로, 시간의 가치교환을 위해 가상화폐를 발행하기도 한다)와 지역통화운동(Local Exchange Trading System)은 사실 대규모 지역사회 물물교환체계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제공할 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희망금액을 게시한다. 따라서 돈이 부족하거나 실물화폐가 없는 사람들도 지역경제 안에서 돈을 흐르게 할 수 있고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2) 바이 로컬, 로컬기업

바이 로컬(Buy Local)운동은 막대한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로컬기업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 운동은 지역경제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뿐 아니라 먼 곳에서 제조해서 인위적으로 가격을 낮춘 상품에는 환경과 지역사회가 지불할 비용이 숨어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교육효과도 있다.

지역의 중소기업들이 연대해서 연합체를 만들면 서로 지원하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북미의 자영업자 약 3만개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80개 이상의 네트워크를 갖춘 지역생활경제기업연합(BALLE)을 조직했다.

(3) 로컬에너지

전 세계에는 지역사회가 소유하는 분산형 에너지시설에 투자한 도시가 많다. 예를 들어 콜로라도주 포트콜린스에서는 600킬로와트 ‘태양광 정원’ 설립을 계획하고 있고, 인도 비하르주 다니이마을에서는 350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태양광 에너지 ‘마이크로 그리드’를 설치하고 있다. 이러한 소규모 사업들은 무공해 재생에너지원을 이용한다는 것 이상의 이점이 있다. 첫째, 현지에서 전력을 생산하기 때문에 송전인프라를 확충할 필요가 없다. 둘째, 주민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전력회사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에너지 비용을 관리한다. 셋째, 지역투자자들은 남는 전기로 수익을 얻는다.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시민들이 다른 지역 투자자 소유 전력회사(IOU)에 넘어간 에너지체계의 소유권과 운영권을 되찾으려고 지방정부를 설득하고 있다.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완전히 다시 공영소유로 만들거나 시와 군이 IOU 외에 지역에서 새로운 전력공급자를 지정할 수 있는 지역사회 선정권(Community Choice)이라는 정책을 채택하면 된다.

(4) 로컬푸드

로컬푸드 운동은 전 세계에서 매우 큰 성공을 거둔 풀뿌리 활동이다. 소비자와 근거리에 있는 농부를 직접 연결하는 공동체지원농업(CSA) 덕분에 규모가 작은 다품종 농장들이 번창하고 점점 더 늘어났다. 소비자들은 대개 자신이 먹을 식재료가 자라는 농장을 직접 알고 있고, 농장에서는 일손이 부족하면 소비자들의 도움을 반긴다. 소농들은 믿을 수 있는 안정된 시장을 확보할 수 있고, 소비자들은 슈퍼마켓보다 더 신선하고 건강한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다. 미국은 1986년에 단 두 개였던 CSA의 수가 2014년에는 6200개 이상으로 급증했다.

농부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농부직거래장터 역시 지역경제와 환경에 이롭다. 미국의 농부 직거래 장터의 수는 1994년 1755개에서 2014년 8268개 이상으로 증가했다. 직거래장터와 관련해 로컬 유기농 먹거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유기농 농지면적이 2001년부터 두 배로 증가했다.

지난 50년동안 북반구와 남반구에서는 청년들이 농촌을 떠나는 추세여서 도시화가 빠르게 이어졌고 농촌사회도 사라졌다. 오늘날 여러 청년농부는 그러한 트렌드를 뒤집고 있다. 미국에서 결성된 전국청년농업인연합(NYFC)은 600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했다. 전 세계 73개국 2억 농민이 연대한 비아캄페시나에는 청년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회원단체가 있다.

(5) 로컬미디어

지역사회의 대중매체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고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안을 알려준다. 아울러 시민들의 힘을 모아서 지역사회문제를 해결하고 결속을 다지고 지역문화를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

‘망 중립성’이 공격을 받아 위협에 처하자 통신망 접근을 자유롭고 평등하게 유지하려는 여러 단체가 힘을 합쳐서 싸우고 있다. 최근 ‘지역사회가소유한브로드밴드’ 운동이 일어나 지역사회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제하는 힘을 기르고 있다. 2015년 현재 미국 전역에서 500개가 넘는 지자체들은 자체 브로드밴드 망을 구축하고 더 많은 주민이 믿고 쓸 수 있는 빠른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여 지역경제를 살린다.

(6) 대안교육

자연결핍장애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자 야생지나 농지를 교육장소로 활용하는 학교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다. 예를 들어 숲속 학교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종일 야외에서 지내면서 현지에서 자라는 식물과 버섯 종류에 정통한 전문가가 된다. 청소년과 성인에게 야생에서 자립할 수 있는 지식을 가르치는 학교들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는데 미국 버몬트주에 있는, 전통기술을 익혀서 뿌리를 되찾겠다는 뜻의 루츠(ROOTS) 학교도 그러한 곳이다.

(7) 로컬기반의 보건의료

몇 해 사이에 전통대체의학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일반의사들조차 약초치료법, 동종요법, 바디워크요법, 이완요법에 관심을 가질 정도다. 이같이 차분하게 예방을 강조하는 의술은 더 인간적인 보건의료체계로 돌아가는 길이다. 지역에 기반한 보건의료체계는 인간의 전인(全人)을 강조하며 생명을 더 넓게 바라본다.

(8) 로컬 계획공동체의 건설

규모가 몇몇 가구에서 수백 가구에 이르는 생태마을은 매우 인기가 높고 성공적이고 다양한 계획공동체의 하나다.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연합체로서 ‘글로벌 에코빌리지 네트워크’를 통해서 연결된 생태마을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에 걸쳐 수백 곳에 이른다.

전환마을은 탄소집약적인 글로벌 경제에서 전환을 선택한 소도시와 대도시의 공동체 모임으로, 북미와 유럽에서 인기가 높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모여서 식량, 에너지, 상업, 예술, 교통, 보건 등 로컬 경제의 여러 부문별 사업을 계획한다.

 

갈림길에서

우리는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수십 년 동안 경제성장을 강조하는 길을 걸어왔지만 이제 다른 길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현재의 글로벌 경제체제는 더 이상 대다수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인식하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 이 체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진정한 지속 가능성을 실현하려면 지금까지와는 반대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거주형태, 에너지원, 식량생산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분산을 시켜서 사람과 자연의 밀접한 관계를 재건해야 한다.

이 새로운 경제의 중요한 요소는 규모이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자립경제에 기초한 경제적 지역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지역중심의 경제에서는 사람과 환경을 소중하게 여기고, 금융구조와 상업활동이 지역과 문화에 맞춰 변화할 것이며 문화와 생물, 농업 등 모든 면에서 다양성을 존중할 것이다. 진정한 지역화가 이루어진다면 의미 있는 일자리들이 많이 생기고, 튼튼하고 탄력 있는 지역사회의 토대도 구축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의 소속감과 목적의식, 결속력이 높아지면서 마음 충만한 행복을 누릴 것이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로컬퓨처스 대표, 『오래된 미래』 저자

화, 2020/03/10-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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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 반-자본주의 운동은 끔찍한 한 해를 보냈다. 그러나 자본주의 상황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레미 코빈(Jeremy Corbon) 영국 노동당 대표가 지난 달 선거에서 패배하자 급진 좌파 세력이 크게 위협을 받았다. 동시에, 대통령의 경선예비선거가 임박한 미국에서는 예상치 못한 세력이 자본주의를 비난했다. 억만장자, CEO 그리고 금융계 언론조차 지식인과 지역사회 지도자들과 함께 불로소득 자본주의의 만행, 어리석음, 지속 불가능을 한탄했다. 대기업 이사회들 조차 “사업을 평상시처럼 지속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만연한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가 느끼는 처참한 불안감에 어느 정도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이나 부유층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정당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무너지고 있다. 마르크스(Marx)가 예언한 대로 자산을 소유하지 않은 자들에게 적절한 생활을 보장할 수 없는 양극화된 사회를 관리해 내기에는 부적절한 소수의 그룹이 권력층을 형성했다.

부유계층에 속하는 일부 지식인들은 그들의 사회에 고립된 채, 새로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지지하면서 그들의 계급에 더 높은 세금을 부과하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들은 민주주의 및 재분배 체계에서 가능한 최고의 보험정책(안전망)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 동시에 그들은 보험료(대가)를 줄이는 것이 자신들의 본능임을 두려워했다.

제안된 개선책은 지지부진한 것부터 터무니없는 것까지 다양했다. 주주들이 임원들의 급여 및 임기를 결정할 유일한 권한을 지닌다는 곤란한 사실만 없었다면, 이사회 임원들이 주주들의 이해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요구는 훌륭했을 것이다. 비슷한 관점에서, 기업 대부분이 자신들의 주식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금융기관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과도한 금융 권력을 제한하자는 호소 또한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사회적 책임이 마케팅 책략에 지나지 않는 패션 회사처럼 불로(지대)소득 자본주의에 맞서기 위해서는 다름 아닌 기업에 대한 법제적 개정이 필요하다. 개정 프로젝트의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거래 가능한 주식이 자본주의를 무기화 했던 역사적인 순간으로 돌아가서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는 역사적 ‘오류’를 수정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 역사적인 순간은 1599년 9월 24일이었다.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완성하기 위해 애쓰고 있던 장소에서 멀지 않은 무어게이트 필드 근처의 목조 건물에서 새로운 형태의 회사가 설립되었다. 동인도 회사(East India Company)라고 불리는 새로운 기업의 소유권은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는 작은 종이조각으로 발행되었다.

이후 민간 기업들은 거래 가능한 주식을 통해 국가보다 더 거대하고 강력해졌다. 자유주의는 성실하게 일하는 다수의 도살업자, 제빵업자, 양조업자들(아담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언급한)을 치켜 세우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자유로운 시장의 해로운 적폐를 방어하는 치명적인 위선을 갖고 있었다. 동인도 회사는 지역 사회에 대해 알지 못했고, 도덕적인 정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가격을 책정하며, 경쟁업체를 집어삼키면서 정부를 부패하게 만들고 시장의 자유를 조롱했다.

이후 19세기 말에 이르러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 벨과 같은 최초의 네트워크 거대 기업이 형성되면서 시장성이 있는 주식에 의해 발생한 마수(魔手, genie)가 한 걸음 발전해 갔다. 은행 및 투자자 모두 네트워크형 거대 기업에 투자할 자본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각자 주주를 보유한 세계적 은행 연합과 잘 알려지지 않은 펀드의 형태로 초대형 은행이 생겨났다.

이에 따라, 미래에 충분히 상환할 수 있을 만큼 수익을 창출하기를 바라는 희망 아래에 전례 없는 새로운 부채를 창출하여 이를 현재 가치로 이전시켰다. 거대 금융, 거대 지분, 거대 연금 펀드, 거대 금융 위기는 당연한 결과였다. 1929년 및 2008년의 폭락, 막을 수 없는 대형 기술 기업의 부상과 오늘날 자본주의에 대한 모든 불만 요인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제도 내에서 포용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요구는 단순한 언술적 유행에 불과하다. 특히, 거대 기업 및 거대 은행이 사회를 완전히 장악했음을 확인한 2008년 이후의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강력하게 1599년 처음 도입된 거래 가능한 주식을 금지할 의사가 없는 한, 오늘날 부와 권력과 분배에 뚜렷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현실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모습을 떠올리려면 반드시 기업의 소유권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만약 주식이 사고 팔 수 없는 선거인단 투표와 비슷하다면 어떨지 생각해보자. 신입 사원들은, 마치 등록 후 도서관 카드를 받는 학생처럼, 경영에서부터 순이익 및 보너스 분배와 같은 사안 계획까지 기업 내 모든 부분을 결정할 수 있는 주주 투표에서 영향력과 같은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투표권이 보장되는 주식을 받게 될 것이다.

갑자기 이윤-임금 구분이 의미가 없어지고, 기업의 규모가 적정하게 조정되어 시장 내 경쟁을 부추기게 된다. 중앙은행(*연기금을 상상해 보자)은 아이가 태어나면 주기적으로 보편적 기본배당으로 충당되는 신탁 자금이나 개인 계좌를 자동으로 부여한다. 중앙은행(연기금)은 아이가 자라서 청소년이 되면 당좌예금 계좌를 제공한다.

노동자들은 신탁자금 자본을 가지고 회사를 자유롭게 이직한다. 그들은 해당 자본금을 자신이 일하는 회사나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줄 수도 있다. 거대한 가공 자본의 초과이윤을 목적으로 투자할 주식이 없기 때문에 다행스럽게 금융활동이 지루하고 안정된다. 해당 정부는 모든 개인소득세와 부가가치세를 인하하는 대신 기업 이익세, 토지세 및 서민에게 해가 되는 행위에 대해서만 세금을 부과했다.

현재 시점에서 충분히 상상해야 한다. 2020년을 맞이하면서 진정으로 진보적이고, 포스트 자본주의적이며 기술적으로 진보한 사회의 놀라운 가능성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러한 상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필자의 친구인 슬라보예 지젝(SlavojŽižek)이 지적하는 대로 틀림없이 부조리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이들은 자본주의 이후의 삶을 상상하는 것보다 세계의 종말을 헤아리기는 어리석음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될 것이다.

 

출처 : commondreams.org – syndicate project.

야니스 바루파키스(Yanis Varoufakis)

급진좌파연합이 집권하는 그리스 정부의 재무장관직에서 2015년 7월 6일 사임했으며, 《세계의 미노타우루스》의 저자이자 텍사스 대학교의 오스틴 캠퍼스내 초빙 교수

수, 2020/03/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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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임진강을 건넜던 그 한 번의 선택은 김낙중에게 평생의 천형(天刑)이 되었다. 물론 그는 자신의 자유의지로 결정한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온몸으로 질 각오가 서 있었다. 그러나 그 짐은 너무나 무겁고 가혹했다. 1957년의 재판에서 그의 간첩죄 혐의는 무죄가 되었으나, 그가 자진 월북하여 1년간이나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은 한국의 분단권력이 필요할 때마다 두고두고 소환하여 이용해먹는 소재가 되었다. 아니 남한만이 아니었다. 북의 분단권력 역시 그 전력을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1992년의 네 번째 간첩사건이 그러하다.

한국에서 네 차례의 김낙중 간첩사건을 살펴보면 남한 체제가 북한문제, 간첩사건을 다루는 기법이 어떻게 발전해갔는지를 알 수 있다. 1956년 첫 번째 사건은 전쟁 직후의 상황이 아직 어수선했음을 보여준다. 아직 휴전선은 느슨했고 월북, 월남자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직 젊은 학생에 불과했던 김낙중에 대한 무리한 ‘간첩 만들기’는 그다지 집요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전후의 큰 혼란이 아직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김낙중의 해프닝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사소하게 묻혀버린 듯하다. 그가 자진 월북하여 북에 1년간 머물렀음에도 그에 대한 간첩죄가 무죄로 선고되었던 경우를 이후 60~80년대의 살벌했던 무수한 ‘간첩 만들기’ 사건들과 비교해보면 의외라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김낙중의 (한국에서의) 두 번째 간첩사건은 박정희 정권 초기인 1962년 발생하는데 이 시기의 간첩조작 방법은 아직 조잡하고 억지스러웠다. 1973년 유신체제 초기에 발생했던 세 번째 사건에서는 박정희 정권의 폭력성이 고도화되고 조작 방식이 집요해진다. 87년 민주화 이후 발생한 1992년의 네 번째 사건은 성격이 달랐다. 조작이나 고문 문제가 특별히 강조되지 않았다. 이 사건의 성격은 그 이전의 것들과 다른 점이 있으니 다음 절에서 별도로 살펴볼 것이다.

한국의 역대 반공 정부 입장에서 간첩사건의 핵심 효용은 소위 ‘북풍 효과’다. 아무리 독재와 실정을 하더라도 반대 세력의 일부에라도 친북의 낙인만 확실히 찍어놓으면 비판 세력 전반이 크게 타격을 받고 약화된다. 북과 전쟁을 치른 민심 때문이다. 독재 비판에는 지지하다가도 그 비판 세력이 친북이라고 하면 당장 등을 돌린다. 민심을 그렇게 돌려놓는 데 간첩사건만큼 효력이 큰 건 없다. 따라서 ‘간첩조작’은 분단권력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효율적인 ‘민심조작’이기도 했고, 이렇듯 마법적 효과를 발휘하는 ‘간첩조작’은 분단권력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절대무기’였다.

김낙중이 한국에서 개인이 아닌 조직으로서의 ‘간첩단’ 사건 주모자로 조작되어 처음 구속된 것은 1962년 6월이었다. 5·16 1년 후 박정희 군사혁명정부의 수사본부가 발표한 ‘학원간첩단 사건’이었다. 수사본부의 발표문에 따르면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대학원생이던 ‘월북 간첩’ 김낙중이 학생들을 조직하여 한미행정협정 등에 반대하는 데모를 배후 조종했다 한다. 이 ‘사건’은 박정희 군사정부가 학생운동조직을 간첩단과 연계시킨 최초 사례에 속한다. 김낙중을 ‘간첩’으로 엮을 빌미가 되었던 것은 그가 만났던 한 학생의 월북이었다. 폐병으로 고생하던 한 고려대 학생을 김낙중이 만난 적이 있는데, 이 학생이 그가 월북 기간 북한의 결핵치료 전문병원에서 요양했던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가 말해준 경로대로 월북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반공’을 제1국시로 천명하며 쿠데타를 정당화했던 군사정부는 4·19 이후의 학생운동, 혁신운동에 재갈을 물릴 방안을 찾고 있었다. 이때 월북 경력을 가진 김낙중의 ‘효용’이 군사정부에 의해 다시 발견되었던 것이다. 그는 1957년 대학 복학 이후 진보적 지식인들의 모임이던 ‘한국농업문제연구회’의 일원이었고 4·19 이후에는 대학원생으로 여러 혁신계 통일운동 모임에서 활동하다 5·16 이후 징집영장을 받고 입대 중이었다. 그런데 5·16 이전에 만났던 한 학생이 문제가 되었다. 그 학생은 치료 목적이었다지만 김낙중의 말을 듣고 실제로 월북했다. 김낙중 자신이 1년 동안 월북한 경험이 있었고 4·19 이후 혁신계 청년활동을 했다는 사실은 군사정부의 ‘간첩조작’을 위한 더 없이 좋은 빌미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수사발표문은 엉터리였다. 김낙중은 1960년 8월 15일 월북하여 1961년 3월 ‘간첩 사명을 띠고’ 월남한 것으로 되고, 치료차 월북한 학생은 ‘북노당 중앙당의 새 지시와 자금을 받기 위해’ 월북 중인 것으로 되어 있었다. 김낙중을 취조한 ‘506 특무대’는 고문으로 여러 학생모임을 ‘반국가단체’로 만들었던 곳이다. 군인 신분의 김낙중에게 사형을 구형했지만, 군사법정조차 너무나 앞뒤가 맞지 않는 공소장의 내용을 그대로 인정해줄 수 없었다. 2심에서 국가보안법은 무죄가 되고 김낙중에게는 “(학생) 월북 방조, 4·19 이후 중립화 통일 주장, 남북 교류 주장” 등을 이유로 반공법 위반 3년 6월형이 선고되었다.

김낙중이 두 번째로 ‘간첩단 조작’에 휘말린 것은 1973년 6월 발표된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이었다. 당시 유신개헌 직후의 박정희 정권은 학생 등 비판 세력의 반발을 되받아칠 묘수가 필요했다. 또 성장하기 시작하는 노동운동, 민중운동에 대해서도 확실히 낙인을 찍어둘 필요가 있었다. 김낙중과 당시 그가 주도하고 있던 활동이 이러한 ‘필요’에 너무나 잘 부합했던 것이다. 다음은 당시 한 일간지의 보도 내용이다.

서울형사지법 합의 6부는 21일 오전 10시 대법정에서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사무국장 김낙중을 중심으로 한 N – H회(민족주의 – 인도주의회)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의 첫 공판을 열고 관련 피고인 11명에 대한 인정신문을 끝냈다. 피고인들은 지난 5월 24일 중앙정보부에 의해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내란선동, 내란음모혐의로 구속, 송치돼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에 의해 구속, 기소되었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낙중은 1955년 …… 월북, 평양의 밀봉아지트에서 북한중앙당 연락부 정 모 지도원으로부터 1년간 공산주의와 대남간첩교양을 받은 뒤 남파돼 노동자 및 학생들을 포섭, 선동해왔다는 것이다.

김낙중은 66년 출소 후 67년부터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은사의 요청을 받고 같은 학교 부설 노동문제연구소(노연)의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노연을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지원하는 교육기관으로 육성하고 있었다. 학생들도 활발히 노연 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일찍이 “평화통일을 위해 단독으로 시위하고 남북을 오가며 온갖 고초를 겪은” 김낙중은 “자신의 힘을 기르면서 때를 기다리자 결심”했고 “민중의 조직된 힘 없이는 그 어떤 변혁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하였다. 4·19와 5·16의 경험은 섣부른 행동보다 민중 속에서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워주었고 이것이 그의 노연 교육 활동의 동기가 되었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힘을 모아 때를 기다리자는 그의 태도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더욱 가혹한 탄압의 빌미가 되었다. 유신체제 중앙정보부의 눈에 월북 전력을 가진 김낙중의 노연 활동은 언제든 이용해먹기 좋은 먹잇감으로 보였을 것이다.

중앙정보부는 이번 조작 사건을 통해 김낙중의 1955년 월북과 1년간의 북한 체류를 정식 ‘간첩교육 기간’으로, 그리고 김낙중을 북에서 정식 공작원 교육을 이수한 정통 간첩으로 ‘공인’했다. 그리고 노연에서 이뤄진 학생 그리고 노동자들의 교육·토론 모임들이 ‘사회주의 국가 수립을 위한 내란 선동 조직’으로 탈바꿈되었다. 이 허위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중앙정보부는 많은 고문을 했다.

유일한 증거는 온갖 고문과 구타를 이기지 못해 이루어진 허위 진술이었다.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 김낙중은 죽음을 넘나드는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결국 고문에 못 이겨 그들이 요구하는 내용의 조서에 무조건 지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또 간첩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거의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그들이 시키는 대로 따랐다. 그리고 그것은 그 사건에 연루된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김낙중은 너무나 억울했다. 검찰로 송치되었을 때 자신의 ‘자백’이 고문에 의한 허위였음을 호소했다. 이를 받아들인 담당검사가 새로 1차 조서를 썼다. 그러자 중정은 김낙중을 다시 남산으로 끌고 갔다.

“이 새끼야, 네가 검찰에 가서 딴소리했다며?”
“네가 검찰에서 조서 내용을 부인하면 사형은 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골병이 들어 옥사를 하거나 병신이 되어 나가는 것은 각오해야지.”
김낙중과 중앙정보주의 조사관들 사이의 대화는 길게 가지 않았다. 처음부터 대화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김낙중은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고문을 또다시 당했다. …… 숱한 고문을 당한 그날 밤 김낙중은 반송장이 되어 구치소로 돌아왔다. 송장처럼 축 처진 김낙중은 사소(청소를 맡은 모범 기결수)의 등에 업혀서 구치소의 싸늘한 방에 던져졌다. …… 며칠 후 검찰은 출정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골병이 든 김낙중을 만나러 구치소로 찾아왔다. …… 김낙중은 취조를 받으러 소장실까지 나갈 때도 한동안 다른 사람의 등에 업혀서 다녀야 했다. 처음 김낙중을 담당했던 L검사의 얼굴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새로 담당한 C검사가 중앙정보부의 조서를 재확인했고, 김낙중은 모두 “예”, “예”로만 대답했다. 다시 남산에 끌려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형을 당해 죽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유신체제 하의 법원은 김낙중에게 ‘간첩죄’와 ‘내란선동죄’를 적용하여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그나마 ‘간첩죄’로는 최하 형량이었다. 그러나 억울한 옥살이 7년은 보통사람이라면 감내하기 힘든 큰 고난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시국 관련 사건으로 김낙중보다 훨씬 가혹한 처벌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1975년 4월, 옥중의 김낙중은 큰 충격과 전율에 빠졌다. 소위 ‘제2차 인혁당’ 사건 관련자 8명의 사형집행 소식을 들은 후였다. 사형선고가 내려진 바로 그날 밤이었다. 이들 중에는 김낙중과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많았다. 인혁당 사건은 1974년 전국의 대학에서 유신철폐 시위가 터져 나오자, 전국 학생조직(민청학련)의 배후조직으로 조작되었다. 김낙중은 옥중에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이 인혁당 사건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들끼리 “김낙중이 꼭 있어야 하는데!”라면서 무척 아쉬워했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된다. 그들이 인혁당과 북이 직접 연결된 증거를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앙정보부에서 보기에) 김낙중이 이미 (아쉽게도) 다른 사건으로 미리 구속되어 있지 않았다면 이 사건에 김낙중을 끼워 넣어 북 – 김낙중 – 인혁당 – 민청학련이라는 그림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김낙중은 옥중에서 자문해보았다. “하나님이 나에게 억울한 7년 징역형을 받게 해서까지 나를 이 세상에 살아남게 하신 뜻은 과연 무엇일까?”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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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3/11-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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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계로서의 도시

도시는 인간활동의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 2014년 기준으로 전 세계 인구의 54%가 도시에 거주하며 한국의 경우 이 비율은 2015년 기준 92%에 이른다. 도시는 생태적 위기의 주된 원인이며, 동시에 환경문제에 취약한 만큼 생태적 전환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곳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많은 도시들이 생태적 위기에 대응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생태적 전환이라고 할 만한 근본적 변화가 없이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도시의 생태적 전환과 관련된 문제는 무엇일까. 가장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는 도시가 다양한 이익집단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즉 도시는 거주자들의 일상생활로 구성된 복잡계이다.

따라서 좋은 의도를 가진 정책만 있다면 도시의 생태적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예를 들어 행정적, 법적, 경제적 수단을 동원해 도시계획을 집행하는 공적 부문이 있는 한편, 이에 반해 자신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간지대에 많은 무관심한 시민들이 있다.

완전한 해체에 이른 푸룻-아이고(Pruitt-Igoe) 주거계획보다 더 스펙터클한 사례는 없다. 1950년대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시행된 이 프로젝트는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가 최악의 결과를 낳은 극적인 정부 실패의 상징이다. 푸룻-아이고 프로젝트는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막대한 재정지원 아래 도시재생과 빈곤층 주거안정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착수됐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결국 33채의 건물을 모두 폭파시켰다. 정책실패의 원인은 여전히 많은 논쟁과 이야기를 낳고 있지만, 어쨌든 이 프로젝트는 도시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통합적 관점이 부족한 채 하향식으로 진행된 관료적 도시정책의 무능함을 보여준다. 도시주거정책, 경제정책, 도시재생정책의 실패에다 인종차별이 합쳐진 결과였다.

제인 제이콥스는 역저 『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1961)에서 도시는 인간의 자연적 거주지이며 사람들은 자연의 과정과 복잡계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자연생태계와 인간경제의 과정들이 놀랍도록 유사하다”고 강조했다.

레이첼 카슨이 자연생태계에 관심을 가졌다면 제이콥스의 주제는 인간생태계였다. 그 시대에는 그가 환경주의자로 간주되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다. 제이콥스는 당대의 현대화, 자동차 중심성에 반대하면서 활기찬 이웃, 도보구역, 사람들의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또 도시정책은 엔지니어와 하드웨어가 아니라 자연적 진화가 일어날 삶의 장소에 기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도시정책은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에 기초해 기억과 이야기를 창조하는 인간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

 

전환관리

도시를 생태계 혹은 복잡계로 이해하는 관점은 도시계획이나 도시정책에 대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접근을 요청한다. 도시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유럽에서는 이런 전환실험이 진행 중이며 이런 실험의 과정과 결과를 분석해 전환관리에 대한 이론적 토론으로 이어진다. “전환관리란 사회적 전환과 지속 가능한 발전의 개념에 기초한 대규모 사회변화의 속도와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통합 조정된 노력을 말한다” (Derk Loorbach, Governance for sustainability, Sustainability: Science, Practice, & Policy, Fall 2007, Volume 3, Issue 2).

예를 들어 (1)네덜란드에서는 2001년부터 재생에너지, 농업, 의료, 수자원관리 등의 영역에서의 거버넌스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2)유럽 6개 지역(스페인 발렌시아, 독일 헤센,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 중부 헝가리, 폴란드 실레지아, 영국 웨스트 미드랜드)은 “기후-KIC”의 유럽 지역연합 프로그램(“2013 Pioneers into Practice” program)에 참여한다. “기후-KIC”는 유럽의 야심 찬 기후변화의제를 만들기 위한 혁신, 기업가정신, 교육, 전문가 지도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네트워크 프로그램이다. 이 중 “2013 Pioneers into Practice”는 기후변화 측정, 유발요인 관리, 회복적인 저탄소 도시로의 전환, 탄소제로 생산시스템 개발과 적정 수자원관리 개선 등 4개 주제에 초점을 둔 상향식 지역 프로그램이다. (3)OECD 시스템 혁신 프로젝트는 OECD 기술과 혁신 정책(TIP) 워킹그룹 활동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목표는 지속가능성과 녹색성장의 맥락에서 정책입안자들을 돕는 것이다. 2015-2016년 계속된 프로젝트 2단계는 시스템혁신 접근이 어떻게 녹색혁신을 증진시킬 수 있는지 실험했다.

전환관리 접근의 중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시스템 동력과 참여자 행동에 대한 종합 분석은 사회동력에 대한 일반적 아이디어를 산출해서 전환과정에서 참여자의 행동과 전략을 숙고하고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2) 전환관리는 학자, 정책입안자, 산업계, NGO 간의 폭넓은 네트워크에서 나온 이론과 실천을 통해 개발된다.

(3) 사회를 전형적인 행동과 메커니즘(예를 들면 공진화, 창발, 적응)에 기반한 복잡계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4) 하향식 정부 정책도, 상향식 시장권력도 여러 섹터에 걸친 장기간의 변화를 단독으로 유도할 수 없다. 정부정책, 시장권력, 시민사회의 상향식 이니셔티브가 결합될 때 변화가 가능하다.

(5) 전환관리는 이륙기, 가속기, 안정기 등 전환의 단계를 구분해야 한다.

OECD 시스템 혁신 프로젝트의 첫 번째 단계에서 나온 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1) 정책입안자는 문제의 체계적 성질과 혁신을 통해 변화를 구성하는데 있어 자신들의 역할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2) 지속가능한 건물, 바이오경제, 스마트시티 등의 분야에서 이미 전환을 가능하게 할 만한 기술들이 개발돼 있다. 그러나 제도, 법률, 규제, 시장메커니즘, 사회문화적 태도의 변화가 없이는 많은 해결책들이 실패로 돌아간다.

(3) 전환관리와 참여적 접근이 바람직하지만 이것은 시간, 일관성, 정책방향의 안정성이 필요하다.

(4) 변화에 대한 저항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것이 시스템 혁신의 핵심이다. 사례연구에 따르면,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가능한 해결책 가운데 하나는 문제를 작은 부분으로 쪼개거나 공공민간 파트너십, 새로운 행정능력과 부처간 조정능력을 통해 혁신의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5) 장기적 정책전략과 함께 정교한 로드맵, 중간점검과 영향평가를 포함한 정책목표가 필요하다.

 

서울의 동북4구의 지역협력 실험

전환관리 연구의 중요한 문제는 현재 사회를 어떻게 지속 가능한 상태로 만드느냐 하는 것이다. 전환관리 접근은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강력하고 통일된 접근으로는 전환이 실현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전환은 다양한 접근, 즉 경계를 넘나드는 혁신실험, 다양한 이해와 갈등집단을 포함한 참여적 프로그램, 다양한 분야의 학제적 협업, 공통의 목표를 향한 기술∙제도∙문화의 적용 등이 결합될 때만 가능하다.

서울 동북4구(강북구, 성북구, 도봉구, 노원구)의 협력실험은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2008년 시작된 이 실험은 당시 대학과 기업간 산학협력이 대세이자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지던 흐름을 거부하면서 지역 시민사회와 협력하는 새로운 대학의 모델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한신대학교 서울캠퍼스에 평생교육원을 개설하면서 지역사회 풀뿌리활동가들을 초대한 포럼(강북지역 풀뿌리 활동가 포럼, 일명 강풀포럼)을 만든 게 시작이었다. 강풀포럼은 4개구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온 풀뿌리 활동가들이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행정구역의 경계를 넘어 지역사회간 협력과 발전이라는 의제를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해 활동했으며, 그 성과는 4개구청과 서울시의 참여로 이어졌다. 그 결과 시민사회-기초자치단체(4개구청), 광역자치단체(서울시)라는 3중의 협력적 거버넌스를 통해 낙후된 서울의 “원조 강북”인 동북4구 지역에 새롭고 지속 가능한 방식의 지역발전과 도시재생을 실현하는 정책(서울 행복4구 플랜)이 마련되고 사업이 추진됐다.

여전히 진행형인 이 프로젝트는 명시적으로 생태적 전환을 목표로 내세우지 않았고 계속 진화하는 과정과 실천을 더욱 철저하게 분석, 평가해야 하지만, 장기적 안목으로 지역을 변화시키고자 한 혁신적이고 참여적인 시도로 평가될 만하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협력, 상호신뢰, 거주자 역량 강화, 지역수용성 확대 등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는데 이런 것들은 장기적인 전환을 성취하기 위한 보이지 않으면서 중요한 자산이다.

역사적으로 서울의 동북지역은 서울과 한반도 북부를 연결하는 사람과 물자의 집결지였다. 현대사를 거치면서 이 지역은 6.25전쟁과 분단의 희생양이 됐다. 발전이 중단되고 장기간 도시계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건물, 도로와 교통체계 등 도시 인프라 역시 노후했으며 주거지역은 계속 쇠락했다. 지속적인 경제적 쇠퇴로 인해 이 지역은 서울의 “베드타운”으로 변했다.

동북4구 발전전략은 산으로 둘러싸인 경관이나 유서 깊은 도로와 전통가옥 등 과거에는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던 자원을 자산으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또한 지역개발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혁신 전략으로 접근했으며, 지역주민들의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아래로부터 지역발전의 원동력을 끌어내는 참여적이고 내생적인 발전 전략인 동시에 사회적 경제에 기반을 둔 지역경제의 순환시스템을 창조하는 대안적 발전 전략이기도 하다. 즉, 재생가능 에너지, 로컬푸드, 공동체 형성을 지역경제 순환시스템에 연결시키는 지속 가능한 발전 전략이다. 이런 점에서 동북4구의 실험은 이 지역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예비실험의 성격이 있다.

참여와 협력의 관점에서 볼 때 삼중의 협력 실험이 진행됐다. 대학, 지역주민 등 시민사회와 동북4구의 각 구청, 서울시가 참여한 민간-공공 파트너십을 통해 민주적 거버넌스에 대한 상호학습과 혁신역량 상승이 시도됐다. 특히 사회적 경제와 공동체 형성을 지원화는 과정에서 공공영역의 인큐베이팅 기능이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장기목표는 공공영역의 혁신지도자들이 없이도 공동체 스스로 혁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한국은 정부와 기업이 많은 자원을 소유하고 모든 문제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회인데 반해 시민참여와 풀뿌리의 의견 개진은 약하다. 따라서 시민사회의 자원이 불충분하고 연약할 때는 변화의 도입과 가속 단계에서는 공공영역의 주도가 불가피하다.

이 프로젝트의 비전을 서술한 핵심어는 “오래된 미래”이다. 이 말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저서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1991)의 제목에서 왔다. 이 책은 발전의 개념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졌고 선진산업사회가 당면한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탐구했다. “오래된 미래”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지역에서 통합된 삶의 원리를 발견함으로써 전통과 현대성을 재해석하고 그로부터 대안적 미래를 찾자는 뜻이다. 지역의 미래 비전으로서 “오래된 미래”는 자기 지역의 역사적 특성, 즉 자원순환과 문화교류의 결절점을 참조하면서 다른 지역과 협력하는 자족적이고 지속 가능한 도시를 창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이런 변화를 선제하고 주도하기까지는 큰 도전이 남아있다. 2020년 현재 서울 동북4구의 지역협력 실험은 서울시 예산이 투입돼 도시재생, 캠퍼스타운, 지역혁신 등의 사업으로 지속되고 있지만, 구청장이 바뀌고 시민사회 풀뿌리활동가들의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등의 변화를 겪으면서 그 비전과 가치의 실현이 시험대에 서있다. 종종 그렇듯 공공영역은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결과를 얻는데 초점을 두며 장기적 안목에서 시민사회의 역량을 강화하는데 거의 무관심하다. 이외에도 많은 목표들이 있는데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간”이다. 가시적 성과가 나올 때까지 길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만드는 것,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것,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지속성, 헌신, 고통을 감내하는 노력을 기울이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접근에 비한다면 하드웨어를 중심에 둔 접근은 목표를 이루기가 비교적 쉽다. 정책시행 과정에서 자원할당의 우선권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바뀌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자칫 토건사업이 마무리된 다음, 하드웨어의 내용을 채울 컨텐츠와 그 하드웨어를 운영하고 활용할 시민주체의 형성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채 미완의 과제로 남겨질 가능성도 크다.

 

회복탄력성을 가진 도시를 향해

생태적 전환은 기후변화와 자원고갈 등 현재 부딪친 생태위기에 대한 필수적 응답의 결과물이다. 생태위기에 대한 응답으로서 도시의 생태적 전환은 도시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회복탄력성이란 “근본적인 구조, 기능, 내부피드백을 유지하면서 혼란을 견디는 시스템 능력”으로 정의된다(William E. Rees, “Thinking ‘Resilience,’” in Richard Heinberg and Daniel Lerch, eds., The Post Carbon Reader: Managing the 21st Century’s Sustainability Crises, 2010).

공동체 건설, 사회적 경제, 에너지 분산, 재생에너지 사용, 공동체지원농업 등 모든 프로그램은 도시의 회복탄력성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공동체가 음식, 주거, 교육, 교통, 보살핌을 스스로 해결할수록 그 공동체는 스스로의 재화와 서비스를 더 많이 생산하며 잠복한 금융위기의 영향을 덜 받는다.” (Michael Shuman, Local Dollars, Local Sense: How to Shift Your Money from Wall Street to Main Street and Achieve Real Prosperity, Community Resilience Guides, Kindle Edition, 2010)

빈곤 해결 역시 도시의 회복탄력성을 강화하는데 기여한다. 경제적으로 박탈된 지역의 가난은 개발에 대한 숨겨진 열망을 자극함으로써 생태적 전환을 위한 자원의 보존과 보호에 대한 동의를 형성하는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경제적 순환을 창조하는 사회경제적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생태적 전환은 더욱 어려워진다. 이런 점에서 도로, 교통, 의료시설, 교육문화시설 등 인프라 건설은 생태적 전환을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서울의 지역협력 프로젝트는 도시빈곤 문제 해결과 생태적 전환을 연결시켜 선순환을 이루도록 하려는 시도이다. 이것은 도시경제의 순환시스템이 만들어져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유지할 수 있을 때까지 지속되는 장기간의 생태적 전환 프로젝트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제인 제이콥스는 이런 유형의 도시경제에 대한 위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는 도시경제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가장 기본적 조건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그러나 경제학에 대한 제이콥스의 관심은 대기업이나 프렌차이즈로 대표되는 이윤경제에 대한 것이 아니라 도시경제에 대한 주류 분석에서 종종 제외되는 지역기반의 작은 경제,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에의 저항으로서의 도시경제에 대한 관심이었다. 지역경제에 대한 그의 이해는 자연생태계와 유사한 자발적 도시경제를 뜻하며 이는 “오래된 미래”로서 도시의 모습이기도 하다. 또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회복탄력성을 가진 “지속 가능한 도시”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자연생태계에서는 틈이 많이 채워질수록 생태계의 가용 에너지를 더 효과적으로 쓸 수 있으며 생명과 생명을 부양하는 수단이 더욱 풍부해진다. 우리 도시경제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틈이 많이 메워질수록 생명을 부양하는 수단이 더 풍성해진다. 이것이 바로 특화된 경제보다 지역경제가 훨씬 좋은 이유이다. ∙∙∙ 자연생태계에서는 다양성이 존재할수록 안정성도 늘어난다. 생태주의자들이 말하는 항상성 피드백 루프가 늘어나기 때문인데 이는 자동자기조절을 위한 피드백 조절기능이 잘 작동한다는 뜻이다. 우리 경제도 똑같다. 이것이 도시에서 지역경제가 다른 형태의 경제보다 더욱 회복탄력적이며 쉽게 붕괴되지 않는 이유이다.”  -Jane jacobs, “The Economy of Regions”, Annual E. F. Schumacher Lectures Book 3, Kindle Locations 101-107, Schumacher Center for a New Economics, Kindle Edition.

 

정건화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월, 2020/03/16-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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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COVID-19가 미국에서 문제가 되기 시작한 3월 초의 이야기이다. 실업률과 주식시황 등 형식적인 경제수치가 자신의 재선가도에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트럼프는 COVID-19가 ‘감기처럼 별것이 아니라며 모두가 생업현장에서 평소처럼 행동할 것과 적기라면서 주식시장에 적극 투자할 것’을 호언했다. 며칠 후 증권시장은 20-30% 급전직하로 추락하였고 미국 전역에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급기야 일주일 만에 비상사태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트럼프는 취임 즉시, 사스와 메르스의 경험에 기초하여 오바마 시절 질병예방센터(CDC) 내에 특별히 구성되었던 코로나바이러스 연구조직을 해산시키고 CDC 예산을 격감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가 임명한 책임부처인 보사부 장관은 거대 제약회사의 로비스트 임원출신으로 정부의 섣부른 개입보다는 시장의 기능과 역할에 맡기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마치 한국의 어느 무책임한 야당 이야기를 옮겨 놓은 듯 하다.

미국인들은 COVID-19의 창궐과 관련하여, 괴물 대통령의 자기과신과 황당함 그리고 시장만능주의 뒤에 숨어있는 자본의 탐욕이라는 재앙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앨릭스 에이자 (Alex Azar) 미 보건사회부 장관은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면 중앙 조달 방식보다 민간 시장에 맡길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앨릭스 에이자 보건사회부 장관의 최근 발언은 지배 엘리트 계층의 왜곡된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에이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형적인 인물로서 공중 보건에 대한 책임 혹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공중 보건에 대한 무책임한 행동을 보호하는 제약 산업 로비스트이자 전직 제약 회사 관리자이다. 에이자 장관은 최근 가장 심각한 감염(확진) 상황 속에서도 기자회견을 통해 공중 보건보다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제도에 의존해야 안도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였다.

코로나-19 백신 개발과 관련된 에이자 장관의 놀라운 발언은 다음과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코로나-19는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고, 여러분이 들으신 바와 같이 민간 시장 관계자와 주요 제약 업체 종사자들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이것이 천연두 치료와 같이 정부가 유일한 구매자가 되어야 하는 생물적 테러 조달과정의 유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수요, 구매, 비축 등의 측면에서 시장이 구매자를 선별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치료 연구 및 개발뿐 아니라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에이자 장관은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면 중앙 조달 방식보다 민간 시장에 맡길 것임을 시사한것이다. 민간사업자들이 “수요, 구매, 비축 등을 실제로 선별할 것”이다. 스셔카우스키 일리노이 주 하원의원은 다음날 의회 증언에서 백신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적절한 가격이 책정될 수 있을 것인지” 단언할 수 있냐고 에이자 장관을 압박했다. 에이자 장관은 “우리는 백신의 가격이 적절하도록 책정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하지만, 민간 부문의 투자를 필요로 하는 만큼 우리가 가격을 직접 통제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제약 산업에서 백신 가격을 책정할 것이므로 정부는 가격의 적정성을 보장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드문 상황은 아니지만 전염전파 상황을 고려하면 끔찍할 수 있다.

이것은 잘못된 접근 방식이다.

만약 우리가 운이 좋게도 1년 정도 내의 가까운 미래에 연구, 개발, 테스트를 마치고 효과적인 백신을 얻는다면 해당 백신은 전 세계 정부들에 의해 일관된 방법으로 질병의 역학 및 전파 패턴에 따라 대규모 집단 및 취약 단체에 체계적으로 배포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접근방식이야 말로 코로나-19 감염을 막는 일관된 공공정책 및 행동이어야 한다.

에이자 장관의 발언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민간 기업들 연구의 상당 부분 또는 대부분을 지원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치명적이다. 실제로 금권 정치의 천국인 미국은 제약 회사를 위해 납세자의 세금으로 연구 및 개발 (R&D)의 상당 부분을 후원한 뒤 지적 노하우를 무료로 민간 사업으로 넘겨서 20년 동안 약품에 대해 특허 보호를 받음으로써 미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거액을 벌어들이는 과정이 만연하다.

그것은 지난 수십 년 간 지속된 부정 행위이지만 보건 부분의 놀라운 로비 자금 (2019년 약 594만 달러)에 대한 보답성의 관행이었다.

공중보건이라는 접근방식이 올바른 모델이다. NIH는 계획대로 대규모 코로나19 백신 개발 활동을 주도하고 충분하게 후원해야 한다. 민간기업들은 그 이후 NIH와의 계약 또는 미국 정부로부터 성공적이고 유용한 백신에 기여했다는 지적 재산에 대해 로열티를 받을 것이라는 사전이해 하에 개별로 투자함으로써 개발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성공적인 백신은 상당히 또는 전면적으로 NIH 및 기타 공공 또는 비영리 기금 (중국의 예를 들어 민간 재단 및 R&D 세계 협력 포함)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며, 아마 민간 사업이 일부 R&D에 기여할 것이다.

이러한 공공보건의 접근 방식에 따라 백신이 개발되면 올바른 제조 과정을 보유한 전 세계의 모든 제조 업체에게 무료로 라이선스가 허가되어야 한다. 전 세계 인구에게 백신을 빠르게 공급하기 위한 기금은 자연스레 세계백신면역연합과 같은 기관의 기부와 함께 미국 및 전세계의 해당 정부로부터 공개적으로 자금 지원을 받게 될 것이다.

“에이즈 장관님, 그건 아닙니다. 그러한 과정을 민간 사업에 맡기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장관님, 세계적인 공공보건 비상사태에 맞서 싸우기 위해 공공자금을 상당히 활용하여 생산되는 새로운 백신에 대한 특허 보호를 승인해서는 안 됩니다. 미 NIH 알레르기 전염병 연구소의 유능한 소장인 앤서니 파우치 (Anthony Fauci) 박사에게 백신 개발을 맡긴 뒤, 필요한 자금 조달을 포함하여 백신 배포까지 연방 전부에게 주도권을 맡기세요. 민간 기업은 반가운 파트너가 될 수는 있으나 그들에게는 백신에 대한 독점권이 없어야 하며 연방 정부가 명백하게 백신을 운영해야 합니다.”

지난 세기 중반에 개발된 소아마비 백신의 인상적인 사례를 상기하면 좋을 것이다. 1921년 소아마비 진단을 받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은 민간 부문의 노력이 절대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백신 개발을 위한 미국의 공공 자금 후원이 시행되기도 전인 1938년에 10센트 동전의 행진으로 알려진 국립소아마비재단을 위한 비영리 기관을 설립하기 위한 방안을 고안한 바 있다.

1953년 최초로 성공적인 소아마비 백신을 발표한 소아마비 백신의 위대한 선구자 조나스 솔크 (Jonas Salk) 박사는 10센트 동전의 기적을 통해 기초 작업을 위한 자금을 마련했다. 1954년부터 소아마비 백신은 미국, 캐나다, 핀란드에서 어린이 16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 1955년, 대규모 면역 캠페인에 투입되었고 미국의 소아마비 발병률은 1954년 인구 10만 명 당 13.9건에서 1961년에는 인구 10만 명 당 0.8건으로 감소했다.

솔크는 에드워드 R. 머로우 (Edward R. Murrow) CBS 앵커가 “이 백신에 대한 특허는 누가 보유하고 있습니까?” 라고 질문하자 “글쎄요, 말하자면 일반사람들 모두이지요. 특허는 없습니다. 태양에게도 특허를 낼 건가요?” 라는 유명한 답변을 남겼다. 이것이 소아마비를 종식시킨 공공 정신이며 미국 내에서 코로나-19부터 기후 변화에 이르기까지 많은 과제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회복해야 할 공공 정신이다.

출처: CommonDreams.org

제프리 D. 삭스 (Jeffrey D. Sachs)

컬럼비아 대학교 지구연구소 소장 및 지속가능한 발전, 보건 정책 및 관리 교수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 소장

밀레니엄 빌리지 프로젝트 소장 역임

월, 2020/03/1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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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김낙중은 만기 출소했다. 전두환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와 광주에서 벌인 시민 학살의 광기가 전국을 휘감고 있을 때였다. 출소 이후 김낙중은 상한 건강을 추스르며 홀로 조용히 저술에 전념했다. 그러나 그의 초심인 평화통일에의 열망은 그 시기에도 한시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86년 초부터 김낙중은 조심스럽게 독립운동 원로들이 만든 ‘민족통일촉진회’라는 온건한 통일운동단체의 회지(會誌)를 만드는 일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87년 민주항쟁이 터져 나왔고 이후 통일문제에 관한 그의 발언과 활동은 점차 활발해졌다. 김낙중은 특히 노태우 정부의 통일정책에 주목했다.

(노태우 태통령은) 1988년 7월 7일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이를 북한과 재야 운동권(전대협과 민통련) 진영에서는 ‘영구분단획책’이라고 비판하고 있었는데도 김낙중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통일원에서는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라는 것을 발표했는데, 그는 이 방안을 남과 북이 서로 상대방에 대한 타도를 추구할 것이 아니라, 공존을 전제로 하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으로 (김낙중은) 이해했다. …… 1980년대 말, 재야 운동권은 치열하게 통일운동을 전개했지만 대체로 노태우 정부의 통일방안에 대해서는 무조건 배타적이었다. 또한 북측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세력도 많았다. 이와 반대로 보수적 통일운동 세력은 남측의 통일방안만을 고수하며 북측의 통일방안은 일말의 논의할 가치가 없다고 비난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낙중은 남측의 주장과 북측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결합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시대 변화의 추세에 잘 부합하는 것이었다. 87년 민주화에 이어 89년부터는 미소 냉전체제가 붕괴하고 있었다. 김낙중은 남과 북이 서로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오랜 시간 생각해온 자신의 통일방안을 ‘4단계 통일론’으로 정리했다. 1단계 평화공존 기초 구축 → 2단계 국가연합 → 3단계 연방국가 → 4단계 통일 민족국가의 경로였다. 이를 1989년 9월 국회 통일특별위원회에서 민족통일촉진회 정책심의회 의장 자격으로 발표했다. 시민단체에서의 활발한 통일 논의와 함께 통일원의 통일방안 자문에 여러 차례 응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강연도 하고, 언론에도 자주 모습을 비쳤으며, 각종 집회에서 연설할 기회도 많았다. 1991년 후반부터 1992년 봄까지는 민중당 공동대표로도 활동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고 주목하게 되었다.

그러던 1992년 9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또 한 번의 ‘김낙중 간첩사건’이 보도되었다.

안기부에 따르면 김낙중 씨는 지난 55년 6월 자신 월북, 공작원으로 포섭돼 1년간 간첩 교육을 받고 남파된 뒤 36년간 자신의 신분을 진보적 지식인으로 위장한 채 다른 남파간첩을 통해 북한으로부터 미화 210만 달러(한화 약 16억 원)를 넘겨받아 민중당 창당을 지원하는 등 고정 간첩으로 활동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안기부는 김 씨가 지난 1990년 2월 남파간첩 최 모 씨(35)로부터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포섭해 지하망을 구축하라”는 지시와 함께 30만 달러를, 1990년 10월에는 “민중당 창당에 참여해 당권을 장악하라”는 지시와 함께 30만 달러를 각각 받았으며 지난해 10월 북한의 장관급 공작원 임 모 씨(65)로부터 추가로 150만 달러와 권총, 독약 앰플을 받는 등 세 차례에 걸쳐 활동비를 받았다고 밝혔다.

당시에는 김낙중 씨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던 만큼 사건 발표 내용은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1955년의 일을 두고 ‘간첩 교육 받은 남파 고정간첩’이라 한 것은 박정희 정권이 이미 70년대에 써먹은 낡은 수법이라 하더라도, 과연 정말 김낙중 씨가 북한 공작원을 만나고 돈을 받았을까? 김낙중 씨처럼 간첩 혐의로 억울한 죄를 번번이 뒤집어썼고, 그런 만큼 북한에서 보낸 ‘공작원’을 만나는 일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 과연 그러한 일을 정말 저질렀을까? 또 한 번 모진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 아닌가?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발표 내용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당시의 시기는 미묘했다. 노태우 정부의 남북화해정책에 서서히 제동이 걸리고 있었다. 미국이 북에 핵사찰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그해(1992년) 5월 민자당 대통령 후보로 당선된 김영삼 씨는 남북화해기조가 대선에서 라이벌인 김대중 씨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해 8월 벌어졌던 ‘대통령 훈령 조작 사건’도 그런 흐름 속에서 나왔다. 김영삼 후보 진영에서 남북화해사업의 진행을 노태우 대통령의 훈령을 조작하면서까지 방해했던 사건이다. 그렇다면 이 뜬금없는 또 한 번의 ‘김낙중 간첩사건’은 역시 남북화해기조를 흔들고 뒤집어놓기 위해 만들어낸 안기부의 조작극 아닐까? 김낙중은 또 한 번 대북 적대감 고취를 위해, 분단권력 강화를 위해 억울하게 이용된 것이 아닐까? 의문들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2005년 출판된 『탐루』의 상세한 기록에 따르면, 1990년 2월부터 4월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일성 주석님이 보낸 사람”이라고 밝힌 최 모라는 30대의 인물을 여섯 차례 만났고, 1990년 10월부터 12월까지 최 모가 데려온 65세가량의 ‘임 과장’과 여러 차례 긴 시간 만났다. 이들로부터 기사에 발표된 금액의 지원금을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들이 북으로 돌아간 후 1년 동안 세 차례 ‘장문의 편지’를 “임 과장이 미리 알려준 국제사서함”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1991년 10월 다시 서울에 온 ‘임 과장’과 다음 해 3월까지 다시 여러 차례 만났다고 한다. 그렇지만 김낙중은 자신의 간첩 행위 여부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했다. 다음은 《한겨레신문》 1992년 11월 13일 자에 보도된 이 사건 첫 공판에서의 그의 진술이다.

김 씨는 “대북 접촉 창구를 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북과 접촉한 것은 맞지만 북쪽 사람들로부터 기밀 수집을 요청받지도 않았고, 하지도 않았다”라면서 “검찰의 공소장은 일부 내용이 맞으나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라고 진술했다. 김 씨는 이어 “처음 북쪽의 연락 대표가 찾아왔을 때 이들을 신고해야 하느냐는 문제로 며칠 밤을 새며 고민했다”라면서 “그러나 지난 1955년 평화통일안을 들고 북한을 찾아갔을 때부터 계속 평화통일론을 주장해온 나로서는 이들을 신고해 처벌받게 하고 남북관계를 긴장되게 할 수는 없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라고 진술했다.

1993년 2월 11일의 최후진술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본 피고인의 행동 자체가 아니라 본 피고인이 상대했던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 예, 그렇습니다. 저는 분명히 여러분이 악마로 생각하는 북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1955년 사선을 넘어 평양에 갔었던 사람이고, 또 1990년 2월 이후 평앙에서 온 그들을 상대로 회합·통신 등의 행동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검사님이나 판사님, 그리고 우리 사회 많은 사람들과 제가 관점을 달리하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즉 저는 북한 사람들을 악마로 대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며 그들을 우리와 똑같은 동포 형제로 대했다는 사실입니다.

1993년 2월 22일,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김낙중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8년, 김낙중은 8·15 특사에 포함되어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되었지만, “현재도 여전히 ‘무기수’이며, 투표권도 없고, 해외여권도 나오지 않는 부자유한 신분의 소유자다.”

 

분단체제에서의 자유와 책임

김낙중은 자신에게 자유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 했다. 과연 그는 그 자유를 얻었던 것일까? 그의 자유는 북에서도 남에서도, 남 체제에 의해 북 체제에 의해 거듭 꺾였다. 그러나 그렇듯 거듭 좌절해도 결코 굴하지 않고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자유라고 한다면 과연 김낙중은 자기 방식의 자유인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이명준은 김낙중 식의 자유를 차라리 포기했다. 포기를 통해 이명준 식의 자유를 실현했던 셈이다. 그러나 이명준과 김낙중의 두 자유는 일반화하고 권장할 만한 차원의 긍정적 의미의 자유가 되기 어렵다. 이명준의 자유는 포기의 자유일 뿐이고, 김낙중의 자유는 현실의 벽에 부딪치는 자유, 부딪치고 부서져도 포기하지 않고 반복하는 패배의 자유일 뿐이다.

우리는 소설 속 이명준에게 비겁하게 죽지 말고 살아남아 현실 속에서 무엇이든 이뤄 나가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작품이 아닌 현실에서 찾을 수 있는 그와 흡사한 살아있는 플롯이 있다면 바로 김낙중이 그에 가까운 모델이었다. 캐릭터는 다르지만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광장”을 열정적으로 추구했다는 점에서 양자는 같다. 이명준이 결국 포기한 반면 김낙중은 이 길을 평생 추구했다.

그의 ‘자유’ 추구 방식은 특이했다. 현실이 그어놓은 남과 북의 경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현실의 남북에는 경계가 있지만 그의 소망(所望) 속의 남북에는 경계가 없다. 그 소망 속의 자유를 그는 평생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 자신 그리고 그의 가족은 혹독한 고통의 대가를 치렀다. 그 고통의 크기는 일반인은 쉽게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것이었다. 남(南)의 체제는 자신의 정권안보를 위해 필요할 때마다 김낙중의 이상과 소망을 거꾸로 이용했다. 북(北) 역시 다를 바 없었다. 1955년 입북했을 때도, 그리고 1990년 서울의 그를 찾아 고위 공작원을 보냈을 때도 북은 자기 체제를 위해 김낙중을 이용했을 뿐이다.

김낙중 자신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스스로 “평화통일이 절실한 사람들에게는 힘이 없고,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평화통일보다 자기 지위나 정권의 유지가 더 소중하다는 현실”을 말한다. 그렇게 잘 알고 있음에도 그는 번번이 현실에 걸려 넘어진다. 20대 젊은 시절 휴전선을 넘어 입북했던 것은 젊은 이상주의와 열정 탓이었다 하자. 30대, 40대의 고난 역시 순전히 분단 독재권력의 야만과 탐욕의 소산일 뿐이었다 하자. 그러나 수많은 고난을 겪은 60대가 되어서도 남과 북 사이에 아직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의 경계를 수용하지 않고 또다시 그의 관념, 소망 속에서 그 경계를 지워버렸다는 사실, 그로 인해 이번에는 ‘조작’이 아닌 실제 간첩사건에 엮여 든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의 자유, 어떤 억압이 와도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시도를 그만두지 않겠다는 그의 자유는 어쨌거나 그의 뜻대로 행사하였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야기되었던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도 그는 감당할 수 있었을까? 가족과 주변의 오랜 친구와 동지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은 여기서 논외로 치더라도 과연 김낙중 식의 ‘자유’ 행사는 그가 원했던 남북 화해와 공존, 그리고 통일에 기여했는가? 그의 사상과 실천에 감명을 받은 이들도 많고 그의 선구적인 공동체 통일론에 영감을 받은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흐름을 결과적으로 보면 그의 행동은 그의 의도와 반대되는 쪽, 분단체제의 구속력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쪽으로 이용되고 말았다. 특히 노태우 정부 시기 현실로 진행되던 남북 화해 흐름을 거꾸로 돌이켜 보려는 세력에게 김낙중의 행동이 역용의 빌미를 주었던 것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사실이다.

북 역시 ‘연방제 통일’이라는 자신의 통일정책을 충실히 대행해줄 남측의 정치 세력을 만들기 위해 김낙중이라는 한 개인을 이용했다. 그들이 그를 접촉하고 거액의 돈을 전달했을 때, 그런 방식의 ‘대남사업’이 김낙중 개인에게 얼마만큼의 위험부담을 주는 일인지 결코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김낙중의 젊은 시절부터의 순수한 이상주의와 사람됨을 믿고, 그를 시험했다. 그리고 남북의 경계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그의 관념 세계, 소망 체계는 여지없이 다시 한번 그를 시험에 들게 했다. 그의 말대로 북한 사람을 악마로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 그러나 남과 북을 서로 악마시하는 세력이 남과 북의 체제의 뇌수와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현실 역시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 현실을 그의 관념·소망 속에서 지워버리고 ‘악마가 아닌 사람과 만난’ 그의 ‘순수한’ 행위는 역으로 ‘사람이 아니라 악마로 그들을 보아야 한다’는 분단체제의 정언명령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데 맞춤형으로 이용되고 말았다.

이명준과 김낙중, 이 두 사람의 자유에는 불행하게도 현실의 기반이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늘 분단을 부정하고 극복한다. 그러나 관념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부정이요 극복일 수밖에 없었다. 둘 모두 자유의지에 따라 분단선을 넘는다. 그러나 우선 이명준은 남에서도 북에서도 그가 찾는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광장”을 찾을 수 없었다. 중립국행과 자살이 그의 자유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렇지만 이명준에 대한 평결은 여기서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 『광장』과 이명준의 문학사적 위치에 대해 조금 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명준이라는 캐릭터가 한국 문학에 등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사건’이 되었던 그 시대, 바로 그러한 ‘사건’을 가능하게 했던 시간적 배경을 함께 읽어야 할 것이다. 1960년이라는 해, 그리고 4·19라는 사건이었다. 『광장』이라는 소설이 분단체제에서 최초로 열렸던 4·19라고 하는 ‘자유의 공간’에서야 비로소 출현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명준이라는 캐릭터 자체, 『광장』의 이미지 자체가 ‘분단체제에서 최초로 출현한 자유’를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자유의 틈새는 아직 좁았고 연약했던 듯하다. 그래서 결국 이명준은 중립국행의 배 위에서 바다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의 투신자살은 이명준이라는 캐릭터의 죽음이 아니라, 분단체제에서 피어난 아직 연약한 자유의 싹의 운명을 예견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김낙중에게도 그 자신의 ‘소망 체계 안에서의 자유’가 아닌 ‘현실에서의 자유의 기반’은 너무나 취약했다. 분단체제의 강박은 남북 모두에서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강고해졌다. 그런 분단체제를 살아야 했던 그의 삶에서도 현실에서의 자유의 기반이 크게 열렸던 때가 있었다. 첫 번째는 4·19였고, 두 번째는 1987년의 민주화대투쟁이었다. 87년이 열어놓은 자유는 60년보다 크고 넓고 강했다. 87년 대선에서 야권의 어리석은 분열로 그 에너지의 태반이 초반부터 분산·유실되었음에도 민주화의 큰 흐름은 여전히 도도했다. 어부지리로 출범했던 노태우 정부 역시 이 대세를 의식하여 북방정책과 남북화해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다.

김낙중은 이렇듯 열린 87년 이후 ‘현실의 자유’의 기반 위에서 그의 생에서 아마도 가장 빛났을 몇 해를 보냈다. 그의 평생에 걸친 ‘평화통일’의 구상이 비로소 현실 속에서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김낙중은 노태우 정부의 남북화해정책을 88년 <7·7 선언>에서부터 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92년 <남북기본합의서> 효력 발생에 이르기까지 줄곧 적극적으로 평가하였다. 이는 당시 재야와 학생운동권의 태도와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당시 재야와 학생운동권은 노태우 정부의 출범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했다. 노태우 정부의 남북화해정책 역시 신뢰하지 않았기에 정부의 ‘불순한’ 남북 대화 ‘독점’을 운동권이 앞장서 깨뜨려야 한다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89년의 문익환 목사, 임수경 양의 실정법을 넘어서는 ‘불법 방북’은 이러한 흐름의 운동론에서 나온 필연적 산물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분단의 벽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이러한 지향은 남북의 경계를 초월해 있는 김낙중의 소망적 자유와 상통하는 바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한편으로 노태우 정부의 남북화해정책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당시 재야 학생운동권이 추진하던 남북 직접 접촉의 운동방식에 대해서도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이렇듯 ‘실정법을 뛰어넘는 남북 직접 접촉’의 흐름이 재야 운동권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는 사실이 1990년 초 북쪽 사람이 은밀히 그를 찾아왔을 때 그의 판단과 대응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 그의 오랜 고난의 경험과 거기서 쌓인 지혜가 노태우 정부의 남북화해정책을 편향 없이 사실 그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면, 그의 원형적 분단초월의식은 1988~1989년 남북 직통의 통일운동 열기에 의해 다시금 격발되었고, 그 격발에 의해 그의 관념 세계 속에서 현실의 남북 경계는 또다시 지워졌던 것이 아닐까? 어떤 이유에서든 그는 1990년 이래 2년간 북에서 보낸 대남사업 고위간부를 마치 남북의 현실적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자유롭게 만났다. 그리고 그로 인해 다시 한번 ‘간첩사건’에, 그것도 이번에는 결코 조작되었다고 항변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연루되고 말았다.

끝내 꽃피우지 못했다는 점에서 87년 공간 속의 김낙중과 60년 공간 속의 이명준은 동형(同型)이다. 철옹성 같았던 분단체제에 자유의 파열구가 열리는 순간을 맞이했으나 결국 그 안에서 자유의 꽃을 피우지 못했다. 분단체제는 여전히 강고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은 4·19와 87년에 이어 세 번째 자유의 시간을 맞이했다.

2016~2017년의 촛불혁명이다. 이 촛불혁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대립과 적대의 분단체제가 공존과 평화의 새로운 체제로 전환하는 순간까지 촛불이 지속될 때, 촛불혁명은 비로소 성공했다고 자신의 소임을 비로소 완수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준은 사랑과 생명을, 김낙중은 평화와 통일을 꿈꾸었다. 그러나 남북의 분단체제는 이들의 꿈을 가혹하게 짓밟았다. 분단체제란 분단의 대상을 ‘법 밖’으로 내모는 ‘호모 사케르(Homo Sacer)’의 체제다. ‘호모 사케르’란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 자’를 뜻한다. 휴전선 저쪽에, 그리고 이쪽 내부에도 호모 사케르가 존재하는 체제, 아니, 호모 사케르를 만듦으로써 작동하는 체제, 따라서 호모 사케르를 만들어야만 하는 체제다. 독일 법학자 카를 슈미트(Carl Schmitt)의 언어로는 ‘법 밖의 예외(exception)’를 결정하는 절대적 힘을 가진 권력, ‘예외주권’이다.

남에는 북이, 북에선 남이 ‘법 밖’에 존재하는 예외의 대상, 호모 사케르다. 예외주권은 자신의 주권 영역 안에 ‘법 밖’의 결정선을 그어놓고 그 선을 넘어섰다고 결정한 자는 누구든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 자’, ‘호모 사케르’로 선포한다.

따라서 이명준의 아버지가, 그리고 그를 이어 월북한 이명준이 바로 호모 사케르다. 휴전선을 넘은 김낙중 역시 호모 사케르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그는 ‘법 밖의 예외’ 취급을 받았다. 그리하여 북에서 한 번, 남에서 네 번 ‘간첩’이 되었다. 간첩은 분단체제에서의 호모 사케르를 칭하는 말이다. ‘미제 간첩’, ‘남조선 간첩’, 그리고 ‘북한 간첩’. 그래서 도합 18년을 감옥에 갇혀야 했다.

분단체제는 ‘적’을 먹고 사는 체제다. 적이 존재해야만 분단체제는 존속하고 강해진다. 그 적은 전쟁을 통해 남과 북에 각각 확고하게 정립됐다. 남과 북은 각각 서로에게 확실한 적, 악마가 되어야 남북의 분단체제는 힘과 생명을 얻는다. 남북의 분단체제는 각각 서로의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내부의 적=간첩=호모 사케르를 색출한다. 예외를 결정하는 법 밖의 법은 색출된 ‘예외분자=불순분자’들의 적성(敵性)의 정도에 따라 형량을 설정한다. 이렇게 적발한 ‘빨갱이’, ‘미제 – 남조선 간첩’들은 국민대중·인민대중의 공포와 두려움, 경각심을 한껏 끌어올린다. 이렇게 위축된 대중심리는 분단체제의 결속력, 구심력의 핵심 장력(張力)이 된다.

분단체제에서 이명준과 김낙중의 자유는 설 곳이 없었다. 오직 현실 너머 그들의 소망의 터에 그들의 자유를 풀어줄 만큼의 자유를 가질 뿐이었다. 그러한 자유조차 허용하지 않으려는 또 다른 자유가 있었다. 분단체제는 예외를 결정할 수 있는 힘을 항시화한 국가권력체제라 했다. 바로 비상국가체제(emergency state system)다. 누구를, 어느 세력을 ‘법 밖’으로 ‘결정’하여 호모 사케르로 호명할 수 있는 것 역시 자유다. 그것도 절대적 자유, 무제한적 자유다. 그 자유는 이명준과 김낙중의 꿈속까지도 검열하고 수색할 수 있는 자유다. 그렇기에 분단체제의 자유와 이명준·김낙중의 자유, 이 두 개의 자유는 결단코 병존할 수 없다. 분단체제가 존속하는 한, 이명준과 김낙중의 자유는 영원히 패배하는 자유, 패배할 자유일 수밖에 없으며, 오직 그들의 꿈, 소망 속에서만, 이명준의 말에 따르면 ‘자신만의 밀실’ 안에서만, 그것도 매우 위태롭게 숨쉴 수 있는 자유였다.

코리아의 분단체제는 이미 해방 직후 싹이 뿌려졌고 1950~1953년의 전쟁을 통해 순식간에 성체(成體)가 되었다. 이후 어언 70여 년이다. 해방 이후 38선이 그어졌을 때 그 어느 누구도 그토록 인위적인 분단선이 이토록 오래 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무엇이 이 분단체제를 이렇듯 장수하게 하였을까. 그 시작이 미소 냉전 때문이었다면 미소 냉전이 종식된 후에도 30여 년이나 분단체제가 지속된 이유가 무엇일까. 분단체제의 특이한 자기생산 메커니즘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분단체제의 생명은 남북 체제 안팎에 적을 생산함으로써 유지된다. 70여 년간 남북의 분단체제는 적의 존재와 생산을 항구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분단체제는 자기부정을 통해 자기를 유지한다. 분단체제는 늘 분단극복=통일을 부르짖는다. 그리고 그 분단극복=통일의 분투를 통해 분단체제는 지속된다. 그러니 분단체제란 분단의 부정, 즉 자기부정을 통해 자기를 재생산하는 괴이한 자기생산체제다.

자기부정을 통한 자기생산이란 무엇인가. 먼저 분단체제가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체제의 목적이 ‘분단의 극복’이다. 남북의 분단 권력 모두 분단을 부정하고 자기 중심의 통일, 즉 분단의 극복을 주창해왔다. 이렇듯 분단체제의 양측이 분단을 부정하고 통일을 부르짖을수록 서로에 대한 적대와 대결의 힘은 더욱 팽팽하게 당겨진다. 이것만이 아니다. 분단체제의 기득 권력을 비판하고 맞서는 힘 역시 ‘분단극복’을 표방한다. 그러나 분단체제의 기득 권력은 ‘분단체제극복’을 부르짖는 비판 세력을 기다렸다는 듯이 체제비판 세력, 내부의 적, 예외, 호모 사케르로 호명하고 잡아들인다. 자신이 내세우는 통일이 아닌 모든 통일은 적이 주장하는 통일, 적과 내통한 통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김낙중의 반복된 사례에서 보았듯 기획하고 조작하여 거대한 간첩사건, 체제전복사건, 내란선동사건으로 생산해낸다.

분단체제란 이렇듯 강고하고 교묘한 자기생산체제다. 과연 이렇듯 교묘하고 지독한 ‘마의 순환고리’를 벗어날 길이 있는가. 4·19도, 87년 민주화대투쟁도, 결국 분단체제의 작동논리에 야금야금 말려들어가 결국 다시금 강압적인 대결체제로 회귀하지 않았던가. 김낙중의 운명이 말해주듯 그의 분단극복의 선한 의지는 번번이 차가운 감옥 안의 장기수, 무기수 신세로 끝맺음되지 않았던가. 과연 2016~2017년의 촛불혁명조차 그러한 전철을 다시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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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3/18-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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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 자유주의 운동에 연료를 공급해 온 억만장자 코크씨는 뉴욕의 병원과 박물관의 후한 기부자였다. 그는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너무 많은 돈을 썼으며 그 영향력을 계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코크형제

2019년 8월 코크 형제 중 동생인 데이비드 코크가 79세로 숨졌을 때 뉴욕타임스는 이런 부고 기사를 냈다. 미국 공화당의 돈줄이자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검은 손으로 불리는 코크 형제에 대한 세평을 생각하면 다소 밋밋한 평가다.

돈을 많이 쓰긴 썼다. 데이비드 코크는 맨해튼의 미국 자연사박물관에 2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박물관에는 그의 이름을 딴 공룡 전시홀이 있다. 이 전시홀에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듯한 설명 패널이 붙어 있어서 음모론이 돌기도 했다. (사실은 그냥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것이었다고 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65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링컨센터에는 1억 달러를 기부했다. ‘변혁적(transformative)’이란 평가를 받았던 이 기부금으로 링컨센터의 뉴욕주립극장은 무대 전면 보수가 가능했다. 극장 자체가 ‘데이비드 코크 극장’으로 불릴 정도다.

뿐만 아니라 뉴욕 장로교 병원(NewYork-Presbyterian Hospital)에 1억 달러를,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에 1억 5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흑인 고등교육 지원단체인 ‘흑인연합대학기금’에 2500만 달러,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 2억 달러를 기부한 것을 비롯해 각종 기관에 10억 달러 이상을 지원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미국을 움직이는 검은 손

미국의 부자라고 하면 빌 게이츠, 워런 버핏을 떠올린다. 코크 형제는 한국에는 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포브스 선정 세계 부자 순위에서 늘 10위권 내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곤 했다. 2016년의 경우 두 사람의 재산을 합치면 800억 달러에 달해 1위인 빌 게이츠의 자산 750억 달러를 넘을 정도였다. 지난해 두 사람은 나란히 11위에 올랐으며 재산을 합치면 1010억 달러에 육박했다. 1위인 제프 베이조스(1310억 달러)에는 못 미치지만 2위인 빌 게이츠(965억 달러)는 넘어섰다.

미국 정치가 ‘슈퍼팩’으로 대변되는 거대 기업과 큰손들의 막대한 정치자금 기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금권 과두 정치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코크 형제다. ‘뉴요커’의 전속 작가인 제인 메이어는 <다크 머니>라는 책에서 대표적인 ‘검은 돈’의 출처로 코크 형제를 꼽고 있다.

코크 형제가 소유한 코크 인더스트리는 하루 6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4000마일의 송유관을 소유하거나 운영하고 있는 거대 석유·화학 기업이다. 당연하게도 코크 형제는 기후변화를 부정한다. 되레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사람들의 삶을 오히려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당시 인수위원회에서 환경보호청 관련 업무를 맡았던 마이런 에벨은 기후변화 부정론자 중 하나다. 그는 코크 가문의 자금을 후원받아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하자 세계적 경제학자인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코크 형제의 승리다. 트럼프는 단지 도구에 불과하다”라고 평가했다.

코크 형제는 2012년 대선에서는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를 공개 지지했지만 2016년 대선에서는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당시 트럼프 후보의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에 대해서 “나치를 연상시킨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대선 기간 동안 트럼프와 힐러리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암과 심근경색 중 반드시 한쪽을 골라야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오히려 힐러리가 공화당의 경선 주자들보다 더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가능하다”고까지 말했다.

트럼프 역시 워싱턴 주류 정치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며 인기를 얻었다. ‘워싱턴 오물 빼기’(drain the swamp)라는 공약이 말해주듯 돈과 정치권력을 주고받으며 나눠먹는 거대 자본과 정치 엘리트를 척결하겠다고 했다. 마치 코크 형제를 겨냥한듯하다.

서로에게 으르렁대는 사이 이미 트럼프 주변은 이미 코크 형제의 영향력 하에 있는 인물들로 들어찼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부터가 코크 형제에게서 대규모의 정치자금을 받아온 인물이었다. 2012년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밀었고 30만 달러의 선거자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뒤에 국무장관이 되는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장 역시 별명이 ‘코크 가문의 하원 의원’일 정도로 아낌없는 지원을 받아온 인물이다. 폼은 잡았지만 트럼프 자신 역시 이른바 ‘코크토퍼스’(코크 형제와 문어를 뜻하는 옥토퍼스의 합성어)에 단단히 휘감겨 있었던 셈이다. 트럼프 취임 후 ‘오물’의 상징이었던 로비스트들은 더 늘어나고 로비 자금도 증가했다.

코크 형제는 트럼프를 싫어한다고 했지만, 트럼프의 등장은 그들이 만들어온 미국의 결과이자 역사의 일부다. <다크 머니>의 언급대로 “코크 형제는 트럼프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만 트럼프야말로 본질적으로 그들의 후계자인 동시에 그들이 1970년대 이후 계속해서 매진해 온 광범위한 정치 활동의 결과물”이며 “트럼프는 미국의 과두 체제를 이끄는 대부호들이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실패한 괴물”인 것이다.

 

코크 형제의 ‘자유지상주의’가 낳은 괴물

코크 형제는 캔자스주 위치토에서 태어났다. 형인 찰스 코크가 1935년생, 동생인 데이비드 코크가 1940년생이다. 할아버지인 해리 코크는 네덜란드 출신 이민자로 철도와 언론 사업을 벌였던 기업가다. 아버지인 프레드 코크는 MIT 출신으로 원유를 휘발유로 정제하는 보다 효율적인 공정을 개발하는 등 사업에 수완을 보였다. 프레드는 잠시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정유소 건설에 참여하기도 하는데 그때의 체험으로 공산주의를 혐오하게 된다. 극우단체인 존버치협회를 결성하고, 2차 대전 당시에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독일의 나치를 칭찬하기도 했다. 코크 형제의 양육에도 나치 추종자인 가정교사를 고용할 정도였다.

코크 형제는 두 사람 모두 MIT를 나왔고,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찰스 코크는 1967년 부친의 사업을 물려받아 사장이 됐고 회사 이름을 ‘코크 인더스트리’로 바꿨다. 데이비드 코크는 1970년에 회사에 합류했다. 코크 형제는 본래 네 명인데, 재산 다툼 끝에 1983년에 차남인 찰스와 3남인 데이비드가 다른 형제들의 지분을 11억 달러에 인수했다.

코크 인더스트리는 석유·화학을 기반으로 사업 다각화에 성공했다. 회사 매출액은 2006년에 이르러 2000배 이상 커졌다. 지금은 카길 다음으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비상장기업이다. 60여개 국가에서 12만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석유, 화학, 에너지, 섬유, 광물, 비료, 펄프 및 제지, 화학 물질 등 광범위한 사업 분야를 갖고 있다. 두 형제는 나란히 지분의 42%씩을 소유하고 있다. 2017년에는 유명 시사주간지 ‘타임’지 인수에 돈을 대기도 했다.

찰스 코크는 자신이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특권적인 삶을 누리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아버지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인 것처럼 일하기를 원했다”고 회고했다. 찰스는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민간의 자유를 중시하는 고전적인 자유주의 신봉자로 알려져 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등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비판하는 동시에 오바마 정부의 복지 정책에 대해서도 혹평을 아끼지 않았다.

데이비드 코크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1980년 대선에서 자유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을 때 공약이 사회보장과 복지 제도, 모든 가격지원과 보조금, 최저임금, 법인세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증권거래위원회(SEC), 연방수사국(FBI) 등의 연방 기관도 모두 없애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1% 남짓의 득표율로 패배했지만 그의 생각은 여전한 것처럼 보인다. 대외적으로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등 해외 군사 개입에 반대한다. 동성결혼과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하기도 했다.

코크 형제는 지식인, 정책연구소, 시민모임에 대한 지원이라는 3단계 계획을 세우고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AFP)’ 같은 보수 단체나 헤리티지재단 등 보수적 성향의 싱크탱크도 코크 형제의 지원 아래 있다. 자발적으로 생겨난 것으로 알려진 보수주의 정치 운동 ‘티파티’ 역시 코크 형제들이 자금을 지원해 조직한 ‘만들어진 운동’이라고 한다.

그들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1997년 정부가 석유 정제시설에서 나오는 오염물질 기준치를 강화하려고 하자 코크 형제의 지원을 받는 어느 학자는 궤변을 제시했다. “스모그로 인해 태양빛이 줄어들면 피부암도 줄어든다. 만일 공기오염에 지나치게 간섭한다면 피부암이 매년 1만1000건 이상 늘 것이다.” 소송까지 이어진 국면에서 어처구니없게도 재판부는 이 학자의 의견을 들어준다. 알고 보니 재판부 역시 코크 가문의 재단들이 뒷돈을 대준 학술회의에 참석해 휴가를 보냈던 것이다.

2010년 미 연방대법원 역시 코크 형제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슈퍼팩’을 허용하며 사실상 무제한 선거자금 사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 직접 자금을 대는 방식이 아니라면 영리 목적 기업들도 무한정 모금을 해서 선거자금으로 쓸 수 있다. 코크 형제도 자신들의 이념에 부합하는 정치인들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붓는다. 데이비드 코크는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저지하기 위해 1억 달러 이상을 썼다. 2016년 대선에서는 1600명이 넘는 유급 직원들을 35개 주에 파견해 전체 유권자의 80% 이상을 접촉할 수 있을 정도였다. 끌어 모은 정치자금만 8억8900만 달러에 달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파리기후협약 탈퇴 이후 ‘공화당 지도부가 어떻게 기후 변화를 가짜 과학(Fake Science)으로 생각하게 됐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에 따르면 한때 공화당의 존 매케인은 대선 후보 경선에서 지구온난화 대응을 주요 의제로 들고 나오기도 했지만 먼 옛날의 얘기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기후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하는 공화당 정치인들은 정치자금 부족에 시달린다고 한다. “특히 코크 형제와 같은 화석연료 산업의 플레이어들이 만든 정교한 캠페인에 따라 공화당 의원들이 움직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크 형제가 쓰는 언어의 단어 하나하나까지 가져와 썼다.”

데이비드 코크는 죽었지만 앞으로도 코크가문의 영향력은 변함없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미 대선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 2018년 코크 형제가 노스다코타 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케빈 크레이머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 웃음거리”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그들의 후원을 한 번도 구하지 않았다”며 “그들의 돈도 나쁜 아이디어도 필요치 않다”고도 했다. 코크 형제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 무역 정책을 공공연히 반대해 왔다.

그러나 <다크 머니>의 분석처럼 도널드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라는 아웃사이더가 열광적인 지지를 얻은 배경에 미국의 심각한 빈부 격차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코크 형제와 트럼프의 갈등은 사소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오랫동안 주장해 왔던 자유지상주의가 낳은 기형적인 세계에서 트럼프는 백인 중산층의 울분, 기성 체제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토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 토대는 당분간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생전에 데이비드 코크는 흔치 않았던 인터뷰 중 하나에서 ‘워런 버핏처럼 죽기 전에 전 재산을 기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닙니다. 우리 돈의 대부분은 코크 인더스트리에 있고, 우리가 죽으면 아이들은 주식을 인수할 것입니다. 나는 코크 인더스트리가 계속 성장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당신의 돈을 거부한 사람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아니오.”

 

참고자료

[뉴욕타임스 2019. 8. 26] How David Koch Left His Mark on New York

[뉴욕타임스 2017. 6. 3] How G.O.P. Leaders Came to View Climate Change as Fake Science

[CRAIN’S NEW YORK BUSINESS 2014. 9. 8] David Koch offers rare look into his giving, politics

[THE VERGE 2018. 1. 8] The climate change misinformation at a top museum is not a conservative conspiracy

[서울신문 2017. 6. 16]‘괴물’ 트럼프 조종하는 ‘코크토퍼스’의 검은 돈

[조선일보 2016. 4. 26] 美공화 핵심 돈줄 “힐러리 지지할 수도”

[이코노미조선 2017. 6. 12] 트럼프의 기후협약 탈퇴 조종한 ‘악의 축’ 비난, 자유 경제 신봉하는 재산 110조원 석유 재벌

[한겨레 2017. 6. 15] 트럼프 대통령을 조종하는 ‘어둠의 손’ 코크 형제

[한겨레 2018. 1. 28]‘워싱턴 오물’ 빼겠다더니…트럼프 첫해 ‘로비스트’ 더 활개

[연합뉴스 2018. 8. 1] ‘공화당 큰손’ 코크형제와 등돌린 트럼프…”그들 돈 필요없어”

목, 2020/03/1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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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론을 보면 매일매일 코로나19 확진자 및 사망자 수 관련 기사와 마스크 대란 기사가 도배된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늘어나는 코로나19 확진자 및 사망자 수를 농구경기 스코어 중계하듯 보도한다.

더 한심한 건 마스크 관련 기사다. 거의 모든 언론이 ‘마스크 대란’, ‘마스크 품절’, ‘마스크 구입 위한 장사진’ 따위의 기사를 쏟아낸다. 이런 기사들은 마스크 수급을 위한 대안은 없이 마스크 공급을 제대로 못하는 정부 성토로 가득하다.

 

시장경제원리가 정확히 작동하는 마스크 시장

마음을 가라앉히고 곰곰히 생각해보자. 마스크를 생산하는 국내 민간기업들의 공급 한계량은 하루 1000만장 남짓이다. 그럼 국내 마스크 생산 업체들이 지금처럼 생산능력의 한계까지 기계를 돌려 마스크를 생산한 때가 또 있었을까? 단언컨대 없었을 것이다.

마스크 소비가 과거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 근년부터인데, 소비가 크게 늘었다고 해봐야 마스크 제조업체들의 생산능력 한계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을 것이 자명하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의 일 평균 마스크 생산량은 최대 생산가능량의 몇분의 1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신천지 교인들의 집단 감염 등으로 코로나19가 전국으로 번지면서 너나 할 것 없이 공포에 질린 채 마스크 구입에 혈안이다. 쉽게 말해 가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부당이득을 노린 생산업체·유통업체의 사재기도 마스크 가수요 증가에 일조했음은 물론이다)했고, 이 가수요는 국내 마스크 제조업체들의 생산능력한계를 가볍게 넘어선다.

전 국민이 매일 마스크 한 개씩만 구입하려해도 매일 5000만개의 마스크가 필요하다. 현재 마스크 생산능력의 5배에 달하는 수요를 당장 해결할 길은 전혀 없다.

그리고 감염병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생긴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민간업체들이 생산 시설과 인력을 대거 늘릴 리도 만무하다. 감염병이 잦아들고, 해 뜨면 사라지는 아침안개처럼 가수요가 소멸되면, 생산 시설을 확장한 기업들을 기다리는 건 파산이기 때문이다. 설사 일부 기업들이 그런 무모한 선택을 한다해도 시차효과 때문에 지금의 공급부족 현상을 타개하는 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게 대한민국 경제가 채택하고 있는 시장경제원리의 작동 방식이다. 감염병으로 인해 가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마스크 가격이 폭등하고, 마스크가 품귀 현상을 빚는 건 시장경제원리상 지극히 당연하다. 시장원리를 조금만 알아도 지금의 마스크 부족을 정부 탓만으로 돌릴 수 없다.

 

정부가 마스크 공급? 엄청난 낭비와 비효율도 감수해야

그러거나 말거나 언론과 야당, 일부 시민들이 문재인 정부에 요구하는 건 이런 것 같다.

‘코로나 사태 이전과 같이 KF80, KF94마스크를 1000원 남짓의 저렴한 가격에 맘 편하게 구입하고 싶다. 정부가 무능해서 혹은 사태 초기에 중국에 퍼줘서 마스크가 모자라니 정부는 책임져라.’

이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매일 5000만장의 저렴한 마스크를 전 국민에게 신원을 확인해 배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 보다 다섯 배 이상의 마스크 생산능력을 확보해야 하고, 매일 전 국민에게 1인 1장의 마스크를 제공하는 배급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정부가 마스크 생산업체를 전부 국영으로 만들든, 아니면 지금의 마스크 생산업체들이 매일 5000만장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데 드는 천문학적 비용(공장증설, 기계구입, 인력확충 비용 및 그 유지비용)에 대해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든 어마어마한 비용이 발생하는 건 불문가지다.

생산능력만 확보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사재기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매일 1인 1장의 마스크 배급이 정확히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신원 확인 시스템과 배급 장소 및 배급 담당 인력의 확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모두 엄청난 비용이 발생할 게 자명하다. 마스크 5000만장 생산능력 확보 및 유지, 마스크 배급체계의 구축 및 유지 등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은 모두 세금이다.

그런데 이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어쩌다 발생하는 전염력 강한 역병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가 천문학적 낭비와 비효율을 감수하는 게 말이다. ‘모든 시민들에게 매일 저렴한 마스크를!’을 외치며 정부를 성토하는 자들은 적어도 그에 따르는 천문학적 낭비와 비효율을 감수할 각오는 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시장경제와 작은 정부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자들이 그럴 리 없다.

 

지금은 마스크 가수요를 억제하는 방법뿐

거듭 말하지만 지금의 마스크 품귀와 가격 상승은 감염증 공포로 인한 가수요 때문이다. 이로 인한 일시적 마스크 부족 해결 방법은 가수요를 통제하는 길 뿐이다. 사재기에 대한 단속은 물론이거니와 개인이 특정 기간 동안 구입할 수 있는 마스크의 수를 제한해야 한다. 정부도 그렇게 가닥을 잡은 것 같아 다행이다.

코로나19 공포 마케팅을 통해 마스크 가수요를 폭발시킨 언론은 이제 마스크 타령 좀 그만하기 바란다. 이 마당에도 배급제 운운하며 정부를 공격하는 언론도 있다. 공격하더라도 대안을 내놓고 하기 바란다.

토, 2020/03/21-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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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치명적인 역병이 전 세계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거기에 쏠려 있기에 이번 회에선 트럼프의 미국이 코로나사태에 대처하는 법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지난 회 글의 연속을 기대한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이 제1의 우선순위라는 미국

전 세계 국가 중에서 자국민 한 명이라도 위험에 처해 있다면 끝까지 구해내고야 마는 국가가 미국이라고 흔히 알고 있다. 그래서 미국이야말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안전을 지키는데 있어 1등 국가라는 이미지와 자부심이 전 세계인은 물론 미국시민들에게도 확고하게 굳혀져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세계가 공포에 벌벌 떨고 있는 이 민감한 시기에조차 미국만은 아무 문제없다는 트럼프 대통령 말에 절대적 신뢰를 보내는 미 국민들이 있다. 이 절체절명의 난국 속에서도 천하태평인 이들은 바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백인 노인네들이다. 그들은 대다수의 국민들이, 그것도 동년배의 다른 인종의 노인들이(특히, 트럼프와 척을 진) 코로나에 대해 염려하고 혹시나 올지도 모를 파국에 가슴 졸이며 사태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Older Americans are more worried about coronavirus — unless they’re Republican,” The Washington Post, March 15, 2020). 그런데 그들이 보내는 신뢰는 과연 타당한 것일까? 이것에 답하기 위해 두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우한에서 온 부녀

중국인 여자와 결혼해 3살짜리 딸 하나를 가진 미국인 남성은 우한에서 근무하다가 최근 우한폐렴사태가 터지자 본국으로 돌아올 것인지를 묻는 미국 정부 통지에 응해 딸과 함께 미국으로 왔다. 그의 아내는 오기 직전 폐렴증상을 보여 중국에 머물러 생이별을 해야 했다. 이들 부녀는 미국에 내려 곧장 샌디에고 소재 미국 해병대 시설에 2주간 격리 수용 되었다. 그것은 연방법에 근거한 조치였다. 그러나 기침하는 딸을 본 관리인들이 이들을 근처의 어린이병원에 두 번 데려가 신종코로나 검사를 받게 했다. 각기 갈 때마다 3~4일이 걸렸다. 그러나 검사 결과는 음성. 2주간 격리에서 풀려난 이들이 펜실베니아 고향의 어머니 집으로 돌아갔을 때 날아온 1차 병원비 청구서는 3,918달러 (약 470만 원)였다. 참고로 미국의 병원비는 한 몫에 날아오지 않는다. 아직도 몇 차례가 더 남았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을 받았을 때 이 남성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그렇지 않아도 돈이 얼마 나올까 시설에 격리 되었을 때에도 전전긍긍했었는데 그의 첫 일성은 “내가 이걸 무슨 수로 내지?”였다.(“Kept at the Hospital on Coronavirus Fears, Now Facing Large Medical Bills,” New York Tiems, Feb. 29, 2020).

우한에서 와 샌디에고 해병대 시설에 강제격리되 병원비 폭탄을 맞은 부녀 <출처: 본인 Frank Wucinski>

 

추억여행이 공포가 되어버린 손녀와 할머니

탑승자 한 명이 우한폐렴으로 사망해 샌프란시스코만으로 회항한 ‘그랜드 프린세스’호 탑승객 2천여 명이 미전역의 군 시설에 격리 수용되었다. 그 중 올해 83세의 할머니와 함께 추억여행을 떠났던 손녀가 수용된 격리 시설에서 얼마나 부적절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에 대해 유에스투데이지와 원격 인터뷰를 했다. 조지아 주의 도빈스(Dobbins)공군기지에 격리 조처된 지 이틀이 지나도록 어느 누구 하나 와서 체온을 재지 않았다. 그것은 격리 수용된 이들에 대한 조치의 ABC중 A에 해당하는 것이다. 게다가 도착 후 12시간이 지나도록 어떠한 음식물도 제공되지 않았고, 방에는 수건은커녕 비누 한 알조차 없었다. 또한 수용소 내의 사람들 간의 거리두기도 시행되지 않았다. 이런 사정(식사와 확진검사 정보의 부족, 그리고 부적절한 의료조치)은 미국 내 나머지 격리 수용소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인됐다. 매체와 인터뷰한 손녀는 “할머니를 돌보는 것이 왜 내 일이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국가의 일이 아닌가?”하며 분통을 터트렸고, “자신들은 죄수보다 더 못한 취급을 받고 있다”고 울먹였다. 더군다나 크루즈 여행의 특성상 대다수의 탑승객은 노인들이라 이들의 건강이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어찌될지 걱정이라면서. 그러나 트럼프는 지난 주말 행한 백악관 회견에서 ‘그랜드 프린세스’ 호의 격리 수용은 “엄청난 성공”(tremendous success)라고 자화자찬 했다.(“Cruise passengers under coronavirus quarantine say they lack food, basic medical attention,” USAToday, March 14, 2020).

 

아무런 보호막 없이 내팽개쳐진 국민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이들을 관리하는 것은 정부 소관이지만 소요비용을 누가 내는가는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병원비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종코로나 공포 속에서 병원에 격리돼 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벌벌 떨게 된다. 그리고 혹시나 걸렸을까 걱정되는 사람들도 매한가지다. 이러니 간덩이가 붓지 않는 이상 누가 스스럼없이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갈까? 더더군다나 의료보험이 없는 이들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다. 게다가 저렇게 국가에 의해(자의가 아닌) 강제 격리되어 병원 치료를 받는 이들이라면 그 공포는 신종코로나에 걸린 것 보다 더 한 공포다.

사실 이런 공포는 괜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 일반 서민이 파산하는 이유가 바로 병원비 때문이라는 것만 짚고 넘어가겠다.(“’I live on the street now’: how Americans fall into medical bankruptcy,” The Guardian, Nov. 14, 2019). 그래서 이러한 난리 법석 속에서 그리고 공포와 광기 속에서 열이 나도 병원에 검사 받으러 가지 못하는 미국. 하다못해 자의가 아니라 국가가 강제격리 시켜 검사와 치료를 하고 있는 데도 병은 둘째 치고 격리가 해제 된 후 병원비를 어찌해야 할지에 대해 염려해야 하는 이런 미국. 이런 나라를 도대체 누가 만들었는가?

 

탈규제 속 무지막지하게 오른 의료비

헬스플랜 국제연맹(The International Federation of Health Plans)이 추정해 보니 미국 병원에서 입원비는 하루당 평균 4,293 달러(약 527만 원), 호주(1,308 달러: 160만원), 스페인(481 달러: 60만 원)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하다. 단순하게 계산해서, 병원에서만 2주 동안 온전히 격리되었다 치자. 얼마인가? 입원비만 60,102 달러(약 7,380만 원)이다. 그런데 그것이 다가 아니다.(New York Tiems, Feb. 29, 2020).

저 위의 남성에게 내라고 날아온 1차 청구서에는 병원비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것 말고도 앰뷸런스 사용료 2,598달러(약 319만 원)와 X-레이 값 90달러(약 11만 원)는 따로 청구되었다(New York Tiems, Feb. 29, 2020). 이 남성의 경우와 미국 병원비의 평균을 적용해 대략 추정해 보면 만일 미국인이 이러한 재해로 2주 동안 병원에 격리 수용된다면 약 1억 원 안팎의 돈이 날아간다. 그러면 다음 수순은 당연 파산이다.

그런데 미국의 의료비는 어쩌다 이렇게까지 얼토당토않게 되었을까? 그것은 이들 의료계와 보험업계의 대국회 및 대정부 로비에 의한 탈규제 때문이다. 이것은 레이건 대통령이후 심화되었다(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다루겠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점 하나 먼저. 정말로 아무 것도 모르는 바지저고리를 대통령으로 만들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런 바지저고리를 앉혀 놓고 제국(극소수 기득권)들이 그들의 배를 한껏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피를 보는 것은 바로 순진한 서민들이다.

 

강제격리는 법제화, 그러나 비용은 각자 알아서

미국에서 강제격리 수용은 법제화 되어 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만이다. 그 뒤는 아무 것도 없다. 나머지는 격리 수용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러면 애초의 격리 수용의 목적 자체가 무색해진다. 조지타운대학교의 국제보건법 교수인 로렌스 고스틴(Lawrence Gostin)은 “공중보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규칙은 바로 국민들의 협조를 얻는 것이다. 그러니, 법적, 도덕적, 공중보건 상의 이유로 강제격리자에게 비용을 청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만일 강제격리 시 드는 비싼 비용을 수용자에게 부과한다면 그들은 필요한 의료조치를 경계하며 꺼리고 급기야는 숨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격리수용 해 관리하는 목적 자체가 허공에 떠버리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방역은 물 건너가게 되는 것이다. 혹시나 부과될 병원비 때문에 전전긍긍해 하던 격리 수용자의 다음의 말이 이를 방증한다. “여기에 있는 비용을 내가 왜 내야하나? 파산하느니 차라리 숨어서 그 꼴을 안 당할 걸 그랬다.”(New York Tiems, Feb. 29, 2020).

 

트럼프의 호언장담: “신종코로나 걱정 마, 나만 믿어!”

이것은 원래부터 미국이 안고 있던 근본적인 의료체계의 문제다. 그러나 지금이 어떤 때인가? 그야말로 엄중한 비상사태다. 트럼프도 미루다 미루다 마지못해 지난 주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신종코로나로 최악의 경우 미국인이 170만 명 이상이 사망할 것이라는 전망도 흘러나온다.(“Worst-Case Estimates for U.S. Coronavirus Deaths,”New York Times, March 13, 2020). 그러면 트럼프는 이렇게 되기 전에 조짐이 이상할 때 뭔가 선제적 액션을 취해야 했다. 그러나 그가 한 행동은 그저 “내가 잘 통제할 테니 걱정 마”란 말뿐이었고 그 외에 어떠한 조치도 취한 게 없다.(“A Complete List of Trump’s Attempts to Play Down Coronavirus,” New York Tiems, March 15, 2020). 그리고 사태는 보다시피이다. 경제는 멈춰서고 주식은 수직 낙하, 학교는 문 닫았고 상점에선 필수품들이 동이 났다. 신종코로나가 강타한 미국이다.

만화: “신종바이러스는 나를 엿 먹이기위해 야당과 가짜뉴스가 합작해 날조한 사기다. 그리고 의사들은 내가 얼마나 의학에 대해 조예가 깊은지 깜짝 놀라고 있다.”고 트럼프가 말하자, 병원관계자가 “정신병원에 이 또라이를 위한 병실있어?”하고 대꾸하는 풍자 만화. 트럼프의 말은 그가 실제로 한 말이다. <출처: 시애틀 타임스>

 

트럼프의 무능 

확산되는 신종코로나에 아무런 대책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트럼프 행정부의 실체는 부통령을 팀장으로 한 코로나 대응 팀이 여실히 보여준다. 그것을 간단히 요약하면 “내분, 책임전가, 잘못된 정보, 헛발질, 그리고 치명적 위험에 대한 뒤늦은 인식”이다. 즉 한 마디로 말해 ‘무능’이다. 대응 팀에서 흘러나온 정보에 의하면 대응 팀의 대책회의는 각자 책임은 회피하고 벌인 그야말로 ”아무 말 대잔치“였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워싱턴 포스트는 ”즉석 난장판“(ad hoc free-for-all)이라 표현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트럼프가 한 일은 바로 그의 사위 쿠슈너(Jared Kushner)를 거기에 끼워 넣은 것인데, 그 또한 ”아무 대책 대잔치“의 주인공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왜냐하면 쿠슈너가 감염 병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쿠슈너가 고작 한 일은 IT기업과 소매상들을 압박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빌미로 트럼프가 호기 있게 대국민 발표했지만 모두 허풍으로 판명되었다. 트럼프는 구글이 관련 사이트를 만들었다고 말했고 월마트 주차장에 검별소를 만들겠다고 맹세했었다. 그러나 이런 담화가 ‘뻥’으로 판명 되도 트럼프는 사과 한 마디 없었다. 대응 팀에서 진단키트 부실과 부족에 대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이야기가 나왔을 때조차, 그의 참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트럼프는 “내가 왜 그 책임을 져?”하고 발뺌을 했을 뿐이다. 무능, 참으로 심한 무능의 화신이다.(“Infighting, missteps and a son-in-law hungry for results: Inside the Trump administration’s troubled coronavirus response,”The Washington Post, March 15, 2020).

 

트럼프의 관심은 오로지 11월 재선

그렇다면 그는 그저 무능하기만 한 것일까? 그것으로만 끝나도 이러한 절체절명의 시기에 많은 수의 미국인이 골로 가게 된다. 그런데 게다가 그가 교활하기까지 하다면? 그다음엔 정말 답이 없다. 그럼에도 철석같이 그를 믿는 이들이 존재한다면 더더욱. 다음은 국방장관과 CIA국장을 지냈던 리온 패네타(Leon Panetta)의 이야기다.

온 나라가 멈춰 섰다. 그런데 대통령이란 작자는 자기가 어떻게 이 위기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까만 생각한다. 그것은 정치공학적 접근이다. 아니, 리얼리티 TV쇼 적 접근이 더 나은 표현이겠다. 트럼프는 “이 위기가 내 이미지에 어떤 타격을 줄까?” “이게 얼마나 나빠질까?” “이 위기에서 어떻게 말로 내가 빠져나갈 수 있을까?” “책임을 어떻게 회피할 수 있을까?”만 생각할 뿐이다.(The Washington Post, March 15, 2020.)

이런 자를 절반이 넘는 지지자들이 맹목적으로 믿고 지지하고 있으며, 이런 자의 손에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달려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트럼프의 관심은 오로지 그의 11월 재선 그리고 그것을 위한 이미지 관리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은 안중에 없다. 이미지에 타격을 주는 모든 뉴스는 야당 발(혹은, 야당을 위한) 가짜뉴스라고 낙인찍으면서.

“언론과 민주당이 코로나의 위협을 과장되게 포장해 자신에게 타격을 주려한다며 공격하는 트럼프”란 제목의 기사를 낸 뉴욕타임스

 

국민 생명 아랑곳 하지 않는 진영논리: Fox CNN

그런데 오해 마시라. 필자가 어떤 정치색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 절대 아니니. 미국의 민주당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이 보다 나아질 것은 전혀 없다.(필자의 연재 글 1회 참조). 초록이 동색이다. 이미 미국의 정치는 썩을 대로 썩어 문드러졌으니까. 문제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아직도 정치색의 미몽에 사로 잡혀 진영논리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진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위에서 언급한 백인 노인들이다. 그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폭스뉴스만 신뢰한다. 그 반대편도 마찬가지다. CNN과 뉴욕타임스만 믿는다. 서로가 서로를 가짜뉴스라 칭한다. 한 쪽은 빨갱이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 하고 반대편에선 예측불허의 개망나니가 다시는 돼서는 안 된다 한다. 그리고 신종코로나에 대해 서로 정치적으로 이용만 해먹으려 드는 사이 그 타격은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떠 안겨진다.

도표: 정당지지도 별, 연령 별 미국 팍스뉴스(Fox News) 주시청자 분포도. 왼쪽이 민주당진영, 오른쪽이 공화당진영 지지자이다. 연령별로나 진영별로나 공화당지지 노인층이 팍스뉴스 주 시청자층이다. <출처: 워싱턴포스트>

 

각자도생: 국가의 보호막이 없는 곳에서 살아남기

코로나로 재택근무? 그것은 서민들에겐 딴 세상의 일. 그래서 그들에겐 미국의 열악한 인터넷 사정이 과연 재택근무를 가능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염려는 참으로 호사에 가깝다.(“So We’re Working From Home. Can the Internet Handle It?,” New York Tiems, March 16, 2020; “Avoiding Coronavirus May Be a Luxury Some Workers Can’t Afford,” New York Tiems, March 1, 2020). 그리고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에겐 무급휴가란 당장의 호구지책을 염려해야 할 처지를 말한다. 우리나라 자영업자들과 대부분의 서민들이 그러하듯. 언제나 지지리 궁상은 국경을 초월해 수렴한다. 만인을 위한 의료 시스템이 불비한 나라에서 감염된 줄도 모르고, 또 설사 걸렸다 해도 속수무책. 병원 한 번 못 가보고 사망에 이르는 이들도 부지기수일 것이 뻔하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 딱한 취약계층이 있으니 바로 노숙자들이다.(“Coronavirus could hit homeless hard, and that could hit everyone hard,” Salon, March 16, 2020).

반면, 상위 계층의 사람들에겐 코로나는 아무 문제없다. 병원을 가는 것이나 엄청난 병원비도 그들에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번 코로나사태가 미국의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의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낼 것이며, 심지어 이것저것 다 떠나 그것은 곧 생존의 문제라고까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As Coronavirus Deepens Inequality, Inequality Worsens Its Spread,” New York Tiems, March 15, 2020.; “The coronavirus pandemic is heightening the class divide in the Bay Area,” Salon, March 16, 2020).

이런 와중 최고결정권자인 트럼프는 오직 자신의 권력 유지에만 관심이 있고, 국민의 보건문제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마지못해 극렬지지자들만을 의식해 잔뜩 ‘뻥’만 늘어놓는다. 진정성 ‘1’도 없이. 그러니 서민들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는 각자도생뿐이다. 미 국민들 사이에서 번지고 있는 사재기 행태는 아무런 방패막이 없이 재앙을 맞이한 이들의 심리적 공황을 이야기해준다. 그들도 은연중 자신들의 처지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국민은 잘 사는 이들만을 말하지 않는다. 국민은 못 사는 이들도 이름한다. 이쯤에 우리는 또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참고자료

“’I live on the street now’: how Americans fall into medical bankruptcy,” The Guardian, Nov. 14, 2019.

“As Coronavirus Deepens Inequality, Inequality Worsens Its Spread,” New York Tiems, March 15, 2020.

“A Complete List of Trump’s Attempts to Play Down Coronavirus,” New York Tiems, March 15, 2020.

“Worst-Case Estimates for U.S. Coronavirus Deaths,”New York Tiems, March 13, 2020.

“So We’re Working From Home. Can the Internet Handle It?,” New York Tiems, March 16, 2020.

“The coronavirus pandemic is heightening the class divide in the Bay Area,” Salon, March 16, 2020.

“Coronavirus could hit homeless hard, and that could hit everyone hard,” Salon, March 16, 2020.

“Avoiding Coronavirus May Be a Luxury Some Workers Can’t Afford,” New York Tiems, March 1, 2020.

“Kept at the Hospital on Coronavirus Fears, Now Facing Large Medical Bills,” New York Tiems, Feb. 29, 2020.

“Older Americans are more worried about coronavirus — unless they’re Republican,” The Washington Post, March 15, 2020.

“Infighting, missteps and a son-in-law hungry for results: Inside the Trump administration’s troubled coronavirus response,”The Washington Post, March 15, 2020.

“Cruise passengers under coronavirus quarantine say they lack food, basic medical attention,” USAToday, March 14, 2020.

금, 2020/03/27-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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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아래의 칼럼은 한국정부에 던지는 심각한 질문이기도 하다. 24일 트럼프와의 통화에서 의료물자 지원 요청을 하자 한국정부는 사정이 허락하면 지원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물론 할 수만 있다면 세계제일의 강대국을 도와주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변변한 의료자원이 없는 가난한 국가들에 대해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인도주의적인 절차일 것이다.

더구나 제재로 인해 그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조차 할 수 없는 이란을 차치하고서라도, 오로지 국경 봉쇄 외에는 달리 수단도 갖고 있지 못한 동포국가 북한의 경우에 대해서 우리 정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과 같은 지구촌 위기 앞에서 G20 회의를 앞두고 UN사무총장은 공문을 통해 지구촌 팬데믹과 싸우기 위해서 제재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인류애를 구현하는 수장답게 말이다. 그런데 팬데믹과 싸우는 일에 모범국으로 칭송받고 있는 한국은 인류애적 인도주의라는 주제에 대해 존재감이 없다.

개성공단의 부분가동으로 의료물자를 만들어 일부는 북한에 보내자는 제안이 공론화되었지만 정부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지금 이 마당에도 미국 눈치만 보고 있자는 것인가? G20 화상회의에서 문대통령은 각국이 국경을 봉쇄하더라도 기업인의 활동보장을 의제로 제시한다는 풍문이다. 좋은 제안이다. 하지만 한 걸음 나가야 한다. 북한을 포함한 제재 대상국들이 코로나19와 싸울 수 있도록 제재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유엔의 제안에 결단력있게 동참해야 한다. 역사적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왔을 때 잡아야 한다. 스치는 악마의 옷깃이라도 잡아야 한다.


코로나가 대유행중인 가운데 마스크를 쓴 채 테헤란 유명시장을 걷고 있는 이란 시민들

유엔의 지도부는 수백만의 생명을 위협하며 코로나 대유행병의 확산을 방지하려는 노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현재 시행중인 제재들을 완화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제안은 쿠바, 이란, 북한 베네수엘라 그리고 짐바브웨 등 국가들이 코로나 전염병과 대처하는 노력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전염병을 이웃국가에 급속히 전파시킬 수 있다는 염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나왔다. 또한 크리미아의 침공으로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와 더불어 중국 역시 제재를 완화시켜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여 왔다.

유엔 사무총장인 안토니오 쿠테흐스는 G20 개국 지도자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제재대상의 국가들이 식량, 의약품 그리고 COVID-19 퇴치에 필요한 지원을 쉽게 받기 위한 조치로 제재를 완화하도록 촉구하고자 합니다. 지금은 연대할 시점이지, 배제를 지속할 때가 아닙니다. 모두가 하나로 연결된 지구촌에 살면서 빈약한 의료 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해서 우리는 (연대를 통해서) 강해져야만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이러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안보리 이사국을 구성하는 외교관들은 제재완화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 듯 합니다. 제재완화를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는 한 외교관에게 묻자, 그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전혀 아닙니다. 러시아와 중국 외교관들은 매우 정치적이며 기회주의적입니다” UNSC 이사진으로 활동하는 다른 외교관 역시 “ 제재에 대한 사무국의 호소에 대해 진지하게 협의된 내용이 없다”고 답변합니다.

그러나 유엔의 인권문제를 책임지는 고위직 인사인 Michell Bachelet은 지난 화요일 “지구적 규모로 대유행병이 진행되는 가운데 일부 국가들의 의료 행위를 방해하는 것은 우리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성명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 지구적 규모의 공공의료 개선과 제제대상국들의 수백만 생명을 위해서라도, 매우 시급한 현재 시점에서 해당 제제를 완화하거나 중단시켜야만 합니다”

성명서는 사태가 발생한 후 지난 5주 동안 이란에서만 1,800 명의 시민과 50여명의 의료진들이 사망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진행중인 제재가 기본적인 의약품과 의료기기– 호흡기와 마스크 그리고 의료진의 보호장비들-의 접근을 훼방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또한 이란에서 진행되는 유행병이 이웃인 아프칸과 파키스칸으로 전파되고 있으면서 이들 국가의 의료시스템에 부하가 걸리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점증하는 제재완화의 요구는 트럼프 행정부에 새로운 도전을 던진 셈이다. 미행정부는 이란과 북한 등이 미국이 요구하는 협상에 응하도록 옥죄는 최대압력의 수단으로 제재조치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중국과 러시아는 제재완화를 추진하였다. 이번 주 초에, 중국의 유엔주재대사인 Zhang Jun은 무고한 이란 시민을 해친다며 미국의 제재를 비난했다. 그는 트윗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란 국민들은 대유행병에 심각하게 고통을 받고 있으며 미국의 일방적 제재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유엔 내 국제위기관리 그룹의 전문가인 Richard Gowan에 의하면, 유럽국가들도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는 점에 동조하고 있으며 이란과 거래를 못하도록 굴레를 씌운 미국에 대해서, 특히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크리미아 침공을 구실로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는 것에, 매우 피곤해 하고 있다고 한다.

유엔 안보리 회의 자체가 이란, 리비아, 북한 그리고 시리아에 대하여 수개월 동안 열리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의 중단은 대유행병의 충격과 국제적인 평화와 안전에 관련해 15개국의 이사국들이 논의를 통해 결의와 성명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제 역할을 못하는 것으로 이에 대해 비난과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안보리 회의 활동이 중단되면서 제재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Gowan은 지적한다. 지난 해말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제재완화를 결의하고자 시도하였으나 용두사미격으로 실패하였다. 그에 의하면 특히 미국이 한번 제재를 완화하는 것으로 양보하면, 상황을 반전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염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주 초에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미국의 제재정책을 옹호하면서 식량,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수입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지 않으며, 실제로 지난 1월부터 이란은 장애를 받지 않고 테스트 키트를 수입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팩트는 이란 정부가 지난 2012년 이후 160억 불이 넘는 금액을 해외 테러집단에게 지원해 왔으면, 2015년 이루어진 핵협정합의로 실시된 제재완화를 통하여 자신들 대리인들의 금고를 채워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엔과 시민들의 원조단체들은 오히려 미국의 금융제재로 인해 이란과 북한을 돕고자 하는 국제적 원조기구들의 활동이 은행과 금융기구로부터 제지와 협박을 당해 왔다고 폭로하였다

유럽연합의 외교정책 책임자인 Josep Borrell은 더 많은 조직들에게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 제재대상국가들에 대한 원조활동을 지원해야 한다고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사실을 명백히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원조활동에 참여하면 미국에 의해 (by secondary sanction) 다시 제재를 받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사실이 아니라면, 모든 사람들이 인도주의적 지원에 참여하고 활동하여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재확인해야 합니다”.

 

2020.03.24

Colum Lynch

국제적으로 저명한 언론인이자 유엔에 관한 정기 기고자

목, 2020/03/26-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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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제 미국은 팬데믹의 최대 피해국가로 전락하였고 이대로 방치하면 백만 명 이상이 희생당할 수 있다는 최악의 상황을 예측한 시나리오도 나왔다. 미국이 이런 지경에 이른 배경에 대해서는 우선 트럼프의 예측할 수 없는 황당함이 지적되고 있다. 콜롬비아 대학의 크루그만 교수는 이를 ‘트럼프 바이러스’라고 명명한다. 아래의 칼럼기사는 그밖에 상업주의와 이해관계로 찌든 의료계 및 보험산업의 탐욕,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과다한 국방비 지출, 지시경제command economy로 지칭되는 배후 거대기업들의 미국지배 등을 지적한다.

냉전의 잔영 속에 미국의 눈치를 살피는 외교군사적 기회주의와 재벌 등 대기업의 특혜적 독과점 그리고 황당한 야당의 발목잡기와 일부 종교집단의 자해행위 등에 시달리는 한국사회는 그나마 합리적이고 냉정한 판단을 유지하는 행정조직과 지도력을 갖춘 것이 불행 중 행운이라 할 것이다.


전세계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는 가운데 미국이 감염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3월 28일 기준하여 120,000건이 넘는 확진 사례가 보고되었는데 이는 중국이나 이탈리아의 경우보다 많습니다. 1천명 이상의 미국인이 이미 사망했지만, 이것은 치명적인 유행병과 미국의 부적합한 공공의료 체계 간의 발생하는 충돌에서 발생하는 결과물에 대한 겨우 시작일 뿐입니다.

한편, 국민 건강관리의 대부분을 다루는 보편적인 공공보건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과 한국은 이미 감염대상 검역, 공공의료 자원의 동원 및 신속한 테스트 프로그램을 통해 Covid-19 확산의 흐름을 완연하게 진정시키는 방향으로 전환시켰습니다. 이들 국가에서는 바이러스와 접촉한 모든 사람을 효율적으로 테스트합니다. 중국은 발생 이후 한달 안에 호흡기 전문가 1,000명을 포함한 4,000명의 의사와 간호진을 후베이 성으로 파견했습니다. 이제 새로운 확진자가 없는 날이 3일간 연속되면서 사회적 봉쇄를 해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은 신속하게 350,000명 이상을 테스트하였고 139명만이 사망했습니다.

WHO의 브루스 에일워드 (Bruce Aylward)는 지난 2월 말에 중국을 방문하여 실태조사 후 다음 같이 보고 했습니다. “중국에서 배울 학습은 속도라고 생각합니다…. 사례를 더 빨리 찾고, 사례를 분리하고,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추적할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에서는 관계 병원 간에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담당지역 내 방역팀이 해당 시민들에게 찾아가서 대상구역을 방역하면서 4시간에서 7시간 동안에 대상자들과 대화를 통해 향후 행동에 대한 지침을 진행합니다. 속도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이탈리아의 연구원들은 실험을 통해 COVID-19 사례의 4사람 중 3명은 별다른 증상이 없으므로 증상이 있는 사람만 검사하면 방역을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방어적(extensive) 테스트라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 미국은, 한국과 같이 첫 감염이 보고된 날인 2월 6일로부터 2개월 가까이 지나고 있는 지금, 이미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 숫자와 앞자리를 차지하는 높은 사망자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미국은 주로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 제한적인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으며, 중국과 한국처럼 확진자와 접촉한 대상에 대해 효과적인 전수 테스트를 수행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건강한 무증상 보균자가 무의식적으로 바이러스를 확산시키면서 기하급수적으로 감염이 확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이 중국, 한국, 독일 또는 다른 국가만큼 효율적으로 또는 효과적으로 방역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일까요?

국가적으로 공공자금을 지원받는 보편적인 의료 시스템의 부재가 일차적인 중대한 결함입니다. 이에 더하여 우리가 이러한 결함을 갖게 된 배경에는 강력한 자본가 계급 이익에 의한 정치 시스템의 부패와 다른 국가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에 대해 우리를 눈을 멀게 하는 미국의 “예외주의”를 포함하여 미국 사회의 다른 역기능적 측면 등의 결과입니다.

또한 미국의 패권을 위한 해외군사기지 운용은 건강과 같은 국가의 다른 중요한 역할의 필요를 희생시키면서, 전쟁과 군사주의에 대한 연방지출로 우선 순위를 왜곡하면서 “방어”와 “안보”라는 군사개념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미국인들의 이익을 희생시켰습니다.

 

Why can’t we just bomb the virus?

바이러스를 폭격해서 없앨 수는 없는가?

물론 말도 안되는 우스꽝스러운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 지도자들이 직면한 모든 위험에 대응하는 방식이며, 미국처럼 부유한 국가에서 거대한 재원을 군산복합체에 쏟아 부은 탓에 무기와 전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해야 할 자원이 고갈된 상태에 처해졌습니다. “안보”라는 이름으로 지출되는 비용은 연방 재량지출의 2/3에 해당하는 지경입니다. 지금도 미국민의 가족들을 위기에서 탈출하도록 돕는 것보다, 두 번째로 큰 미국의 무기 제조업자인 보잉사에 금융을 지원하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과 연방의회의 많은 의원들에게는 더 중요합니다.

6조 달러를 쏟아 붓고도 성과가 없는 소위 “테러와의 세계전쟁 (Global War on Terror)”의 피범벅인 실패의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예산확보의 싸움에서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것은 기회주의적 군사 비용입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2020년 미군예산은 2000년보다 59%, 1990년보다 123 % 더 높게 확정 되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2020년의 달러 기준으로 2000년 이래 같은 수준의 국방력을 유지하는데 4.7달러가 추가 투입되었습니다. 칼 코네타 (Carl Conetta)가  그의 논문 “훈련되지 않은 국방: 미국 국방 지출의 2조 달러 급증에 대한 이해” 에서 지적한 바 같이 1998년에서 2000년 사이에 실제 전쟁과 관련이 없는 추가 지출로 인해 2조 달러의 조달 비용이 증가했습니다. 해군에는 비싼 새로운 전함, 공군에는 공격전용기인 F-35 전투기, 그리고 군 내부의 모든 병력을 위한 새로운 무기와 장비의 개발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지출되었습니다.

2010년 이래로 전례없이 국가 재정자원을 군산복합체를 위한 사업으로 전환함으로써 실제 전쟁 지출보다 훨씬 더 늘어났습니다. 오바마 정권은 부시 시절보다 더 많은 국방비를 지출했고 트럼프는 이를 더욱 크게 늘렸습니다. 순수 국방비 추가 지출만 10년 간 4.7조 달러에 달할 뿐 아니라 1.3조 달러 이상이 전쟁비용과 군사비 명목으로 2000년대 이후 재향군인 부문에 사용되었습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아마도 전쟁에서 제대한 군출신들의 의료비용에 충당된 듯 추정되며 이는 미국이 전쟁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일반국민들에게 제공될 수 있었던 재원입니다.

2001년 이후 8만톤 이상의 폭탄을 최빈 국가인 아프카니스탄에 쏘다 붓는데 사용하면서, 정부재정의 모든 돈이 몽땅 태워버린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COVID-19 라는 비군사적 위기를 대응하는데 필요한 공공 병원, 인공 호흡기, 의료 훈련, 테스트 비용 등에 지출할 재원이 없어진 것입니다.

상기의 6조 달러는 완전히 낭비되었습니다. 테러와의 전쟁은 테러에서 승리하지도 끝내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전세계에 끝없는 폭력과 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전쟁국가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소말리아, 리비아, 시리아, 예멘 등 국가를 멸망시켰지만 결코 이들 국민들에게 재건을 선사하거나 평화를 가져다 주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러시아와 중국은 전쟁국가 미국에 대한 효과적인 21세기형 방어진을 아주 적은 비용으로 구축했습니다.

전세계의 대부분 국가들이 COVID-19라는 인류공동의 적에 직면한 지금, 미국 정부가 이란에 매우 잔인한 제재을 추가한 것에 대해 대부분 국가들이 차가운 냉소를 보내고 있는데, 이는 이란이 코로나 전염병에 최악의 상태에 빠진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제재에 때문에 생명을 구하는 의약품 및 기타 의료 자원의 공급이 봉쇄되었기 때문입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모든 전쟁의 즉각적인 휴전과 미국이 가하는 치명적인 제재의 중지를 요청했으며, 이러한 요청의 대상국가에는 이란을 위시하여 북한, 수단, 시리아, 베네수엘라, 짐바브웨 그리고 전염병 퇴치에서 용기 있고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쿠바까지 포함됩니다. 특히 쿠바는 미국 및 기타 국가에서 입국을 거부 한 감염된 영국 유람선의 승객을 구조하고, 이탈리아 및 전세계 감염된 국가들에 전문의료 팀을 파견하는 등 팬데믹과 전쟁에서 용기있고 적극적인 역할을 해내고 있는 나라입니다.

 

The 21st Century Command Economy

21세기형 지시경제(command economy)

“지시 경제 command economy”는 동서냉전 기간에 동유럽에서 실시한 중앙계획 경제를 비판하는데 사용한 용어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제학자 에릭 슈츠는 ‘21세기형 지시 경제’라는 용어를 그의 2001년 발간된 저서 ‘시장과 힘”에서 독점적 다국적 기업이 지배하는 미국경제에서 거대기업들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면서 다시 사용하였습니다.

슈츠가 설명했듯이, 신자유주의(또는 신고전주의) 경제이론은 미국인들의 기성세대가 경의를 표한 “자유”시장이 지닌 중요한 요소를 무시합니다. 무시된 요소는 시장 배후에 있는 권력의 힘입니다. 미국 생활의 점점 많은 측면이 시장의 신화적인 “보이지 않는 손”에게 맡겨지면서, 권력의 힘이 모든 시장의 이면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면서 마음대로 시장의 힘을 사용하여 부를 집중시키고 더 큰 시장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규모 경쟁 업체들을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다른 이해관계자 즉 고객, 직원, 협력업체, 정부, 지역 사회를 제멋대로 이용합니다.

1980년 이래로 미국 경제의 모든 부문은 점점 더 많은 대기업에 좌우되기 시작했으며, 이들 대기업들이 미국시민들의 생활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공공 인프라 및 서비스에 대한 투자 감소, 실질적 인하 또는 정체된 임금, 임대료 상승, 교육 및 의료의 민영화, 지역 사회의 파괴, 정치의 구조적인 부패 등 항목을 이들의 영향으로 열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들은 주로 입찰이라는 방식을 통해 거대 은행, 거대 제약사, 첨단기술 회사, 건설 회사, 광고홍보 기업, 벤처 집단 그리고 군산복합체 등 가장 부유한 미국인 1%의 이익을 위해 이루어집니다.

모든 경제영역에서 고위 공무원들이 군대조직, 로비 회사, 기업 이사회, 의회 및 행정부 사이를 연결하는 악명높은 회전문을 통해 이동하고 재취업합니다. “감당할만한 의료법안”을 쓴 리즈 파울러는 상원 및 백악관 직원으로 근무한 이후 Blue Cross-Blue Shield의 모회사인 Wellpoint Health (현재 Anthem)의 고위 간부로 취임했고 자신의 저서에 내용대로 연방 보조금으로 수십억 달러를 자신의 회사를 위해 끌어 모았습니다. 그녀는 다시 Johnson & Johnson의 임원으로 산업계로 돌아 왔으며, ‘미친 개’로 불리던 James Mattis는 국방장관이란 공직에 봉사한 이후 General Dynamics의 이사회 중역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혼합방식이 미국 경제에 대한 답안이라고 미국시민들이 선호할지는 모르지만, 현재 진행되는 21세기형의 부패한 지시경제를 선택할 시민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미국의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에게 지시경제의 내용이 자신들이 제시한 시스템이고 이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미국의 정치인들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레너드 코헨 (Leonard Cohen)이 노래하였듯이, 대부분 미국시민들이 대부분의 거래가 부패하였음을 알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거울(허상)로 가득찬 방안에서 길을 잃었고, 21세기형 지시경제 영향 안에 있는 여러 부문과 함께 강력한 통제 정치와 미디어를 통한 “분할과 통치”라는 전략의 희생자가 되어 있습니다. 트럼프, 바이든 그리고 주요 연방의회 지도자들은 간판급 인물들이며, 서로가 악마의 역할을 하면서 웃어가며 금융자본에게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COVID-19가 현실로 돌출한 것처럼, 민주당이 바이든 주변에 인물(지지 계층)들을 구축시키는 방식에는 야만적인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한달 전에는 2020년이 평범한 미국시민들을 위하여 미국의 건강보험산업의 특혜와 로비를 날려 버리고 보편적 재정으로 지원하는 의료보험을 마침내 달성하는 해가 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자들은 ‘샌더스’라는 대통령과 보편적 건강보험의 도입이라는 커다란 위험greater danger(그들의 눈에는)을 대신하여 굴욕적인 패배를 받아들이고 4년의 재선 기회를 트럼프에게 제공하기로 결심한 듯 합니다.

그러나 이제 기능부전적 장애사회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작은 바이러스라는 자연의 현실적 힘에 맞부딪쳤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공공의료 및 사회의 공적 시스템에 대한 중대한 시험대에 올라서 있지만, 미국보다 매우 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침내 ‘미국의 꿈’이란 착각에서 깨어나 눈을 크게 뜨고 우리와는 다른 정치, 경제 및 공공의료 시스템을 가진 여러 나라들의 이야기와 이들 이웃들로부터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지요? 우리의 삶은 그것에 달려 있습니다.

 

March 27, 2020

Nicolas J S Davies

‘우리 손에 묻힌 피’ ‘미국의 이란 참략과 파괴’ 저자, 자유언론 기고자, 반전운동단체인 CodePink의 연구자

월, 2020/03/3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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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른백년의 2019년도 기부금 모금액과 사용 실적을 공개합니다.

이 내용은 국세청 홈텍스에 공개한 내용과 동일합니다.

[다른백년] 2019 연간보고서 기부금모금액 및 활용실적명세

화, 2020/03/3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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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분단 70년의 시간을 세계사적 차원에서 되돌아볼 때가 되었다. 자력이 아닌 미·소 연합의 힘으로 일본을 몰아낸 이상 코리아가 미국과 소련의 영향권을 벗어날 길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나마 분단을 벗어날 수 있었던 아마도 유일한 방도는 전후 신탁통치를 받아들인 오스트리아형 통합방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내전이 격화되면서 코리아와 동아시아는 미소 냉전이 본격화하는 격발지가 되었고, 결국 코리아 남북은 국제 전쟁에 휘말리는 자충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대략 1946년에 시작되어 1953년까지 줄기차게 끓어오른 코리아의 적대와 충돌은 이후 70년 남북의 지형을 결정지었다. 이후로도 남북은 적대와 대립을 벗어나지 못했다. 미소와 미중의 적대와 대립이 완강했을 때는 그런 이유가 단지 외부의 탓이라 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먼저 미중 간 적대와 대립이 해소되었을 때(미중 데탕트와 미중 수교)도, 이어 미소 냉전이 종식되었을 때도, 코리아의 적대와 대립은 해소되지 못했다. ‘코리아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 주변 강국들의 탓’ 그중 특히 ‘미국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것이다. 코리아 내부가 적대와 대립을 해소할 확고한 의지와 방법을 세워 내놓지 못했다. 두 코리아가 서로를 국가로서 인정하지도 못하면서 연방과 연합을 주장해보아야 그것이 적대와 대립을 해소할 리 없었다. 오히려 격화시키는 소재로 역용될 수 있었다. 먼저 코리아 남북이 양국체제로 전환하여 전쟁 상태와 분단체제를 끝내야, 남북 상호 간의 의심과 대결의 소지를 없앨 수 있고,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주변 강국들이 코리아의 적대적 대립을 이용하는 판을 바꿔갈 수 있다. 남북 두 국가 간의 연합도 연방도 그때서야 비로소 실제적인 방안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김낙중은 70년 강고한 분단체제를 온몸으로 거부하며 살았고, 그 결과 남북 모두에서 수인(囚人)/호모 사케르의 삶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명준은 어떤가. 남북 모두를 포기하고 중립국행을, 그리고 자살을 선택했던 그는 남북 모두에 비판적이었던 1950~1960년대 지식인들의 심리 상태를 표상한다. 김낙중은 반대의 길을 걸으려 했다. 남북을 모두 포기하는 길이 아닌 남북을 모두 인정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대로 남북 두 나라가 그를 비판하고 부정하고 버렸다. 그가 선택했던 ‘서로 인정하는 남북’이란 그의 관념 세계 속에서만 존재했을 뿐이었다. 따라서 남북의 전쟁 상태, 분단체제 속에서 허여된 자유와 책임이란 상대를 철저히 부정하고 말살하는 전제 위의 자유와 책임이거나 아니면 언제든 체포되어 고문받고 살해될지 모르는 길을 아슬아슬하게 걸어갈 자유와 책임이었을 뿐이었다.

이제 여기서 우리는 코리아 남북관계에서 가능한 네 가지 이념형(ideal type)적 선택지를 생각할 수 있다. I유형은 남과 북 모두를 인정한다. II유형은 남만을 인정하고 북을 부정한다. IV유형은 북만을 인정하고 남을 부정한다. III유형은 남과 북 모두를 부정하거나 남과 북 모두에 의해 부정된다. 이 유형은 코리아의 적대 상태, 분단체제에 비판적이었던 이들의 입장이다. 이명준은 스스로 남과 북 모두를 포기(부정)하는 유형을 표상하고, 김낙중은 남과 북의 양측에 의해 부정되는 유형을 대표한다. 지금까지 현실로 존재했던 것은 II, III, IV유형뿐이었다.(아래 〈그림 1〉 참조)

이제 지난 70여 년 존재할 수 없었던 I유형이 현실로 다가왔다. 남북이 통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경로는 I의 길을 통하는 길밖에 없다. 그것이 코리아 양국체제의 길이다. II, III, IV의 길은 모두 닫혀 있다. 지난 70년의 역사가 그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길은 이미 한 번 그 가능성이 열렸던 적이 있다. 1989~1991년 사이 미소 냉전이 종식되고 남북 두 국가가 유엔에 동시 가입했으며 남북이 서로의 체제를 인정할 것을 약속한 <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했던 시기다. 여기서 반보만 더 나갔다면 양국체제의 길은 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실패했다. 무엇보다 남과 북 내부에서 I의 길을 열어갈 힘이 아직 부족했다.(종합적인 분석은 1부 1장 참고) 이제 2016~2017년 촛불혁명을 통해 그 가능성이 다시 한번 열렸다.

김낙중은 양국체제의 가능성이 처음 열리기 시작했던 1980년대 말의 상황 변화에 매우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남북의 상호 인정을 통한 통일의 길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한 듯하다. 1989년에는 통일 민간단체 대표 자격으로 4단계 통일론(평화공존 기초 구축 → 국가연합 → 연방국가 → 통일 민족국가)을 국회 토론회에서 발표하는 등 활동을 활발히 벌였다. 김낙중의 이런 활동에 주목한 북측이 ‘김일성 주석’의 이름으로 공작원과 고위직 간부를 그에게 보냈고, 김낙중의 ‘원형적 분단초월의식’은 이들과의 만남을 거부하거나 기피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조작’이라 항변하기도 어렵게 다시금 ‘간첩사건’에 말려들었고, 결국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당시 양국체제의 가능성을 폐쇄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던 냉전대결 세력들에게 역이용되고 말았다.

필자가 특별히 주목했던 것은 이러한 체험 이후 김낙중의 변화였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그는 양국체제의 요점을 최초로 분명히 명시하게 되었다. 연합인가 연방인가 문제보다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이 먼저라는 것이다. 이제 역사적인 문서가 된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나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은 1989년 김낙중이 제안했던 ‘4단계 통일안’과 아주 가까운 내용이다. 그러나 이제 2000년의 김낙중은 이 두 역사적 문서의 한계를 분명히 제기하고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남측의 ‘연합’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 안의 공통성을 인정했지만 “서로를 국가적 실체로 인정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일절 언급을 회피”하였고, 그 이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흔히 칭송되어왔던 유명한 구절인 “쌍방 사이의 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대목에 대해서도 “상호 간의 국가적 실체를 인정하는 일을 피하기 위한” 또는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기를 거부”하기 위한 표현일 뿐이라고 하였다.

이 비판이 매우 직설적일 뿐 아니라 암묵적으로 남북의 지도자와 지도층, 정책브레인들을 직접 향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진실로 통일에 이르려고 한다면 남북 지도자와 지도층의 획기적인 발상과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김낙중은 그 요점이 코리아 남북의 두 나라가 서로를 국가로서 인정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그는 1989~1992년 사이, 남측 여야의 지도층 인사들과 그리고 북에서 ‘김일성 주석’의 이름으로 보낸 고위간부까지를 모두 만나 통일문제에 대해 심도 깊게 토론해보았다. 이 경험 속에서 그는 일단 이론과 언어 차원에서는 남북 양측이 공유할 수 있는 부분들이 생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낙중의 2000년의 비판을 보면 그가 그동안의 남북 대화 당사자들 간의 논의에서 무엇인가 결정적인 것이 빠져 있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남북 대화에 나섰던 남북의 지도자와 지도층이 일면 용기 있게 남북 평화공존의 상황 조성에 나서면서도 바로 이 결정적인 지점을 ‘회피하고 거부해왔다’고까지 쓰고 있다. 통일문제에 관해 남과 북의 통일 정책 핵심인사들과 직접 대화해보지 않고는 쓰기 어려운 직설적인 표현이다.

양국체제란 먼저 코리아 남북 두 국가가 ‘자신의 체제의 자기존립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상대가 자신을 말살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상대에 대한 신뢰’는 상호 강화적인 미덕이다. 양국체제의 첫 계기였던 80년대 말~90년대 초반에는 한국도 조선도 그러한 자신감과 신뢰가 부족했다. 양측이 큰 용기를 내어 양국체제에 접근했지만, 한발 더 내딛어 핵심적 신뢰의 조건을 합의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 필요조건은 되었으나 충분조건이 아직 채워지지 못했다. 그러나 2016~2017년을 거치면서 그러한 필요하고 충분한 조건이 비로소 형성됐다. 이 책 앞 장에서 상세히 살펴본 바와 같이 그 핵심은 ‘촛불혁명’과 ‘북핵 완성’ 그리고 ‘북미 대화’의 조합이다. 이를 통해 한국과 조선은 자기 체제에 대한 자신감과 상대에 대한 신뢰의 토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역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북미 공존의 대화 기조를 앞으로의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쉽게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코리아 양국의 ‘자기존립에 대한 자신감’과 ‘상대에 대한 신뢰’가 강화될수록 더욱 그러하다. 이로써 코리아가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 체제전환을 이룰 역사적 계기는 충분히 무르익었다.

양국체제는 남북 두 국가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인식체계요 방법론이며, 통일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중간 경로다. 양국체제가 안정되면 남북의 동포는 그동안 허용되지 않았던 많은 자유를 얻는다. 우선 현재의 중국과 대만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정도의 교류와 통신이 목표가 될 수 있다. 물론 이조차 단번에 이루어질 일은 아니고 급하게 서두르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더디더라도 결코 되돌려지지 않는 단단한 합의의 기초를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양국체제의 기초는 두 나라가 서로의 주권, 영토, 정통성을 확실히 인정하는 데 있다. 이 삼자를 서로 부정하고 적대해온 지 70년이다. 이를 바꾸어가는 일은 꾸준한 인내와 지속성, 그리고 용기를 아울러 요청한다.

김낙중과 이명준이 경험했던 분단체제에서 남북 두 국가와 사회는 이들 개인의 자유의 대극에 서 있었다. 그들의 자유혼을 유린하고 억압함으로써 자신(체제)의 무제약적 자유를 한껏 과시했던 셈이다. 분단체제의 남북 정권은 서로 자신에로의 동일화를 요구했다. 아울러 그 동일화의 강도만큼 상대에 대한 부정을 강요했다. 분단체제에서 허여되는 자유와 책임이란 그러한 동일화만큼의 자유와 책임이었다. 김낙중과 이명준의 자유와 책임이란 바로 그 동일화를 거부하는 만큼의 자유와 책임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양국체제에서의 자유와 책임은 동일성이 아닌 차이의 인정에 기초한다. 이 속에서 (양국)체제의 자유와 김낙중·이명준의 자유는 상치되지 않는다. 오히려 차이를 존중하고 대화하면서 공존하려 했던 김낙중·이명준의 자유혼은 비로소 현실의 거처를 찾게 되고, 이로써 국가, 사회, 개인의 자유와 책임이 서로 발걸음을 맞추어가는 시대로 접근해간다. 그러한 국가와 사회와 체제는 분명 이명준, 김낙중과 같은 자유혼이 꿈꾸었던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광장”에 한 걸음 다가간 곳일 터이고, 그때 비로소 통일은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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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4/01-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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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다른백년은 현재 지구적 규모에서 진행중인 COVID-19 팬데믹을 새로운 형태의 세계전쟁(World War–C, WWC)로 정의한다. 

지난 세계1, 2차 대전은 눈에 보이는 적국과 전쟁을 수행하며 물리적 무기를 포함한 전통적 방식의 전술전략을 사용하였다면, WWC는 국경을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상대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지난 수세기 쌓아온 인류문명(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를 포함한)에 대한 선전포고라는 새로운 성격의 전쟁이다. 언제 끝이 날지 모르지만 COVID-19가 진정된 이후의 세계와 인류문명은 거대한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다른백년 은 “World after CoronaVirus? –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계는?”라는 주제로 세계 주요한 칼럼을 매주 번역 소개한다. 첫 번째로 포린포리시(FP)가 종합한 10명의 세계명사들의 의견을 첫 기사로 소개한다. 또한 이와 관련한 국내 필진들의 자유로운 기고를 환영하며 앞으로 뜨거운 논쟁이 전개되기를 기대한다.


1990년 베를린장벽의 해체 또는 2008년 Lehmann Brothers의 파산처럼, 코로나-19라는 엄청난 대유행병이 전세계를 뒤흔들면서, 이후 미칠 파장에 대해 현시점에서 여러 가지 경우들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번 질병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시장을 뒤흔들며, 나라마다 정부의 역량(부족)을 드러내는 동안, 세계를 움직이는 정치와 경제의 권력구조가 재편되면서 새롭게 전개되어 갈 것이라는 것이다.

이번 위기가 보여주듯이 목하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분별있게 바라보기 위해, FP는 여러 각국의 10명의 저명한 인사들에게 이번 사태 이후 전개될 세계질서에 대한 견해를 질의하였다.

4/2,국내외 코로나19 발생현황 <출처: esri Korea>


A World Less Open, Prosperous, and Free

세계는 폐쇄적이고 퇴보하며 자유축소적 경향으로 갈 듯

대유행병은 국가의 기능을 강화하고 민족주의의 대두를 불러올 것이다. 각 나라 정부는 위기를 관리하는데 온갖 조치를 동원할 것이며, 위기가 끝난 후에도 강화된 조치의 철회를 기피할 것이다. 일부 권위주의적 국가들은 희생자의 숫자를 조작하겠지만, 오래가지는 못한다.

COVID-19는 국제정치의 힘과 영향력을 서구에서 동양으로 이동을 가속화할 것이다. 한국과 싱가포르가 최선의 모범을 보였으며, 중국 역시 초기의 실수를 만회하면서 적절히 대응하였다. 반면에 유럽과 미국은 허둥지둥 대며 대처를 지연시킴으로써 과거의 서구라는 아우라(명성)는 퇴색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을 것은 국제정치가 지닌 대립적 충돌이라는 기본적 속성이다. 1918-19년 간에 유행하였던 독감의 경우에서 보듯이, 대유행병의 경험을 겪으면서도 강대국 간의 권력다툼은 사라지지 않으며 지구적 협력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COVID-19 역시 예외가 아닐 것이다. 각국의 시민들은 국가가 자신들을 더 보호해 주길 요구할 것이고 정부와 기업들은 미래의 취약성을 감소시키기 위하여 초세계화의 흐름에서 퇴각하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COVID-19는 세계를 더욱 폐쇄적이고 퇴행적이며 자유축소적으로 몰아갈 것이다. 확실하지 않지만, 치명적인 바이러스와 함께 부적절한 기획들, 무능한 지도력들이 결합되면서 인류를 암울한 미래로 유도할 듯하다.

Stephen M. Walt

미국 하버드 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


The End of Globalization as We Know It

주지하듯이 세계화는 종말을 맞이할 듯

코로나 대유행은 ‘경제의 세계화’라는 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는 매질이 될 수 있다. 대유행 이전에도 중국을 경계하여 지국의 첨단기술과 지적재산권에서 격리시키고 동맹들에게 이를 강요하던 미국의 이중화 결정에 대응하여, 이미 중국은 일취월장하는 경제와 군사력으로 도전을 해오고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21세기 전반에 유행하던 상호혜택의 세계화라는 이상으로 되돌아 가기는 어렵다. 지구적 경제통합에서 오는 혜택을 공유하는 매력이 없어진다면, 20세기에 형성되었던 지구적 규모의 경제질서와 규칙구조는 조만간 위축될 것이다. 이로 인해 발생할 노골적인 국제정치의 대립으로 빠지지 않고 여전한 협력을 유지하려면 정치적 리더들의 부단한 자기단련을 요구한다.

자국의 국민들에게 COVID-19을 성공적으로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이는 지도자들은 정치적 자산을 획득하겠지만, 이에 실패한 정치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실패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으려는 유혹에 빠질 것이다.

Robin Niblett

영국 왕립국제문제 연구소 책임자


A More China-Centric Globalization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화 가능성

COVID-19는 세계경제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꿀 뿐만 아니라, 새로운 변화 즉 미국중심의 세계화에서 중국주도의 세계화로 흐름을 가속시킬 것이다.

왜 그런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는가? 미국인들은 세계화와 개방무역에 대한 매력과 신뢰를 상실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존재와 관계없이, 미국인들에게는 자유통상이라는 합의가 이미 자신들에게 해로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반면에 중국인들은 이에 믿음을 잃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역사적 깊은 배경이 있다.

1842-1949년간 중국의 굴욕적인 역사는 자기도취(만족)와 무익한 외부세계와 관계단절에서 발생한 결과였다. 이후 지난 수십 년간에 이룬 경제적 굴기는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성과이었다. 동시에 중국인들은 어느 곳, 누구와도 경쟁할 수 있다는 문화적 자신감을 흠뻑 경험하였다.

결론적으로 나의 신작 ‘ Has China Won?’에서 언급하였듯이, 미국 앞에는 두 개의 선택지가 놓여있다. 세계를 지배하는 패권국의 선두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면, 중국과 정치적 경제적 제로-섬의 국제적 경쟁(대립)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러나 만약 미국인들 삶의 안녕– 현재 매우 악화되어 있는 –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라면 중국과 협력해야만 한다. 현명한 조언자들은 후자의 협력을 제안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재 미국 정치의 자해적 환경은 중국에 대한 화해를 선택할 것 같지 않다.

Kishore Mahbubani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외교전문가,  2001-2년간 UN 안보리 의장 역임


Democracies Will Come out of Their Shell

민주주의 진영이 새로운 변모를 보일 때

요약하자면, 서구정치의 거대이론에 대한 제자백가적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민족(고립)주의자, 반세계화주의자, 반중국 이론가, 그리고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 간에 자신들의 견해를 추동할 새로운 증거들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될 것이다. 현재 진행중인 경제적 타격과 사회적 붕괴에 따라 대충적 결론으로 자국주의, 패권국가간의 경쟁격화, 전략적 단절(decoupling) 등이 대두할 것으로 전망된다.

1930-40년대의 공황을 겪으면서, 서구사회에 서서히 반체제적인 흐름이 대세적으로 형성되었던 반면에, 루스벨트(FDR)와 소수의 앞선 정치지도자들이 전쟁 전후에 흐름을 어렵잖게 국제주의로 다시 돌리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1930년대 세계경제의 붕괴는 선진사회가 매우 긴밀히 연계되어 있었고, 동시에 매우 취약했음을잘 보여 주었으며, FRD은 이를 전염병균(contagion)이라고 명명했다. 당시 미국은 상대적으로 다른 서구국가들보다 폐해가 적었다. FDR과 국제주의자들은 전후의 국제질서로 개방적 질서를 유지하면서 상호의존을 운용해낼 방어기제와 역량이라는 규칙을 구상해 냈다. 미국은 국가 간의 국경을 봉쇄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상호협력이라는 지구적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전후 개방질서를 작동시켰다 (브레튼우드 체제).

미국과 서구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상호의존이 약점이라는 방어적인 느낌에서 취할 수 있는 반동적인 흐름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 진영은 당장은 자국(고립)주의적 반응을 보이겠지만 긴 호흡으로 실용적이고 규제를 동반한 국제주의의 새로운 모습을 찾아가야 한다.

G. John Ikenberry

프린스턴 대학교 W. Wilson 스쿨의 책임교수, 국제외교 전공


Lower Profits, but More Stability

적은 수익구조, 그러나 장기적인 공급체계의 안정구조로

COVID-19의 유행은 세계규모 단위의 생산거점기지라는 기본적 교의를 위협하고 있다. 기업들은 현재 시행중인 다단계적 조치, 다국적의 부품공급체제를 재고하고 축소시킬 것이다.

세계규모 단위의 부품공급은 정치적 경제적 요소들에 의해 혼란을 겪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중국의 인건비 상승 트럼프의 통상전쟁 로봇산업의 발전 자동화 3D 프린트 등에 의해, 정치적으로는 선진경제권 내에서 겪고 있는, 진행 중이거나 곧 다가올, 실업문제 등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과 겹치면서 COVID-19는 부품공급체계의 연계고리들에 타격을 가하고 있다: 전염된 공장들의 폐쇄는 다른 생산기지들의 연쇄적인 중단을 야기하고, 생산과 재고가 고갈되면서 병원 약국 슈퍼마켓 그리고 소매상들이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대유행병이 가져올 다른 측면은 많은 기업들이 통상의 이점보다는 대체공급의 안정성에 대해 많이 고려하게 되면서 곧 이를 적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단위에서도 전략적인 산업에 대하여 국내에 back-up 계획과 적정 재고를 갖추도록 강제하면서, 기업들의 수익성을 떨어지는 대신에 공급체계의 안정성은 제고될 것이다.

Shannon K. O’Neil

예일대 출신의 남미지역 전문가로 NGO 싱크탱크에서 활동


This Pandemic Can Serve a Useful Purpose

대유행병은 미래에 긍정적인 촉매제가 될 수도

아직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세가지 사항은 명백하다.

첫째, 코로나 바이러스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정치를 크게 변화시킬 것이다.  ‘평등’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정부의 권한을 강화시키면서 대유행병과 이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안보적 주제와 양극화라는 사회적 이슈를 악화시키고나 또는 경감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정부의 권한은 강화된다. 경험상으로 보면 권위적이거나 인기영합적인 정부들은 전염병에 제대로 대처를 못하는 반면에, 한국과 대만처럼 민주적인 정부들은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대유행병은 상호 연계된 세계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호의존성에 대한 명백한 증거이기도 하다.

둘째, 국제 정치적으로는 자국폐쇄적이며, 자급적이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한마디로 더욱 가난하고, 추하고 좁아진 세상을 향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희망과 긍정적인 신호들도 있다. 현재의 위협에 지역적으로 공동대응하기 위하여 인도정부는 동남아 국가 지도자들과 화상회의를 진행하였다. 현재의 대유행병이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지구적인 큰 이슈들에 대해 공동적인 대응을 촉발한다면, 이는 매우 긍정적인 촉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Shivshankar Menon

인도의 외교가. 싱(Singh) 수상의 외교안보 고문 역임


American Power Will Need a New Strategy

미국권력에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시기

2017년 트럼프는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강대국 간의 패권경쟁에 초점을 맞춘 국가안보전략을 선언하였다. COVID-19의 대유행은, 이 전략이 매우 잘못된 것으로,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조차 스스로 국가안보를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리차드 댄지그(Danzig)는 2018년에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21세기의 기술 수준은 분포(소유)뿐만 아니라 결과에 있어서도 글로벌한 성격을 지닌다. 전염균, AI 시스템, 콤퓨터 바이러스, 방사능 등은 한번 사고가 터지면 사고 당사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로 다가온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상호의존적 위험에 대하여 합의된 보고체계 공유된 통제 공동의 위급대응계획 기준 협약 등을 추진해야 한다.

COVID-19와 기후위기와 같은 초국가적인 위협 앞에서 다른 국가보다 미국을 우선하는 사고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른 국가들이 지닌 힘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지국의 이익을 우선시 하더라도 자국의 이익을 어떤 수준에서 정의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현재 진행중인 대유행병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전략에 미국이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Joseph S. Nye, Jr.

‘소프트파워’ 이론을 제창한 미국 정치학자,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전 학장


More Failed States

실패한 국가군들의 다수 출현 가능성

‘영구적’ 이라는 표현은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불러온 위기는 향후 수 년간 대부분 국가들을 국제적인 무대에서 벌어지는 현안보다 자국의 국경선 안에서 전개되는 상황에 집중하게 할 것이다.

향후 부품공급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적 자급자족(결과로서 관계의 단절)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위기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극복하고 국내적 자원을 재결집시키기 위하여, 대규모의 이(난)민에 대한 거부, 기후위기 등 지구단위의 문제 또는 역내 문제 해결의 노력 또는 실행에 대한 축소 등이 일어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국가들은 약점을 드러내면서 회복 과정의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위기들은 악화일로에 있는 미중 관계를 더욱 어렵게 하고, 유럽의 통합과정을 약화시킬 것이다. 긍정적 측면으로는 글로벌한 수준의 공공의료 가버넌스가 일정 부분이 강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세계 각국이 서로 협력하고 역할을 다하기 보다는 결국은 세계화를 퇴보시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Richard N. Haass

공하당 출신의 미국외교협회 회장, 콜린 파웰 전 국무장관의 조언자


The United States Has Failed the Leadership Test

지도적 국가로서 미합중국은 실패했다

미국은 국제사회의 지도국가로서 자격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 미합중국은 속좁은 자기이해에 갇히고 서툰 무능함을 드러내었다. 이러한 종류의 대규모 유행전염병은 국제적인 기구를 통하여 정보를 사전에 제공하여 각 국가들이 이에 대응할 충분한 시간을 갖게 하고 조치에 필요한 자원을 준비하도록 했어야만 한다. 미합중국이 지도국가로서 이를 조직해 냈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속좁은 이해에 갇히면서 워싱턴은 리더쉽 테스트에서 실격을 당했고 그로 인해 세계는 더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Kori Schake

미국 국제전략연구소(IISS) 부국장이며, The Atlantic의 정기 기고자.


In Every Country, We See the Power of the Human Spirit

모든 국가에서 인류애가 지닌 감동을 목격하고 있다.

COVID-19는 금세기 최악의 대규모 유행병으로 영향의 규모와 깊이는 실로 어마하다.  공공의료의 (실패)위기로 인해 지구상의 78억 인구가 위협을 당하고 있다. 이의 영향은 2008-9년에 있었던 금융 대공항보다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대규모의 지진성 충격은, 아시다시피, 국제사회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면서 힘의 균형을 뒤흔든다. 동시에 예외적인 도전에 대응하여 전세계인들이 남녀 구별없이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희망을 제공하기도 한다.

현재까지는 국제적 규모의 협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다. 현 위기의 책임 당사자들인 강대국가 미국과 중국 등이 말장난의 싸움을 그만두고 효과적으로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면, 이들 국가들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도는 급격히 축소될 것이다. 유럽연합의 이름으로 5억에 해당하는 해당 시민들에게 적정한 지원을 해내지 못한다면 회원국가들은 브뤼셀(유럽연합정부의 소재)의 힘을 축소시키려 할 것이다. 미국의 문제는 현재의 위기를 중단시키려는 효과적인 조치를 제공해야 할 연방정부가 무기력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국가에서 보듯이 인류애의 정신이 살아나 의사, 간호사, 정치인,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이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리더쉽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계기로 예외적인 위기라는 도전에 대응하여 전세계인들이 남녀의 구별없이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희망을 제공하기도 한다.

Nicholas Burns

하버드 케네드 스쿨 교수출신의 외교관

목, 2020/04/02-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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