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뉴시스] 구용희 기자 = 지난 2017년 5월20일 광주 무등산 공원 구역 내 한 종교시설 인근 A씨의 비석 앞에 김모(81)씨가 설치했던 광고물. A씨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2020.04.02. (사진 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 구용희 기자 = 친일파로 알려진 인물의 비석 앞에 그의 행적을 알리는 내용의 불법 광고물을 설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80대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광주지법 제3형사부(항소부·재판장 장용기 부장판사)는 옥외 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 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모(81)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2일 밝혔다.
김씨는 2017년 5월20일 광주 북구 무등산 공원구역 내 한 종교시설 인근에 설치된 A씨의 비석 앞에 관할관청의 허가 없이 A씨의 친일 행적을 알리는 내용의 지주 이용 광고물(가로 100㎝·세로 90㎝)을 설치한 혐의로 약식기소됐다.
김씨와 변호인은 ‘친일파인 A씨의 비석과 부도 형태의 탑이 설치된 것을 규탄하기 위해 광고물을 설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1심은 “김씨가 자연공원법상 자연공원인 부지에 광고물을 세운 사실은 인정된다. 하지만 이는 입간판으로 보일 뿐 검사가 주장하는 지주 이용 간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는 ‘해당 광고물은 지면에 따로 설치한 파이프 형태의 지주에 끈을 이용해 알루미늄 및 아크릴 재질의 광고 현판을 고정한 것이다. 이는 관련 법이 정한 지주 이용 간판에 해당한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입간판과 지주 이용 간판을 구분하는 핵심 표지는 해당 광고물이 따로 설치된 기둥에 의해 건물 또는 지면에 고정돼 있는지 여부”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주 이용 간판에 해당하기 위해 필요한 (기둥의) 설치의 고정성은 단순히 꽂아두거나 꽂아둔 정도의 것으로 족하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적어도 기초공사나 체결 작업 등을 통해 지표면이나 건물에 단단히 고정돼 풍수해에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을 고정성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해당 광고물은 알루미늄 재질의 H형 뼈대의 다리 부분을 별다른 고정 장치 없이 땅에 20∼30㎝ 깊이로 꽂아 고정한 것이다. 지주 이용 간판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고정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이 사건은 A씨 후손의 고소로 시작됐다.
A씨의 후손은 법률대리인을 통해 사자(死者)명예훼손도 주장했지만, 수사기관은 게시글의 내용이 진실에 부합하다며 김씨에게 혐의없음 처분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행정기관에서는 입간판을 유동광고물로, 지주 이용 간판을 고정광고물로 분류하고 있다. 불법 유동광고물의 경우 과태료 처분을, 불법 고정광고물은 형사처벌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광주에 남은 일제 잔재에 대해 그 죄상과 내역을 담은 단죄비 설치 사업을 진행하는 사업이 올해도 이어진다. 이를 계기로 단죄비만 설치할 것이 아니라 외관이 보존된 주요 거점에 대해서는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일 광주시에 따르면 시는 오는 13일 광주 광산구 송정공원 금선사 입구에서 광주 친일잔재 청산 단죄문 설치 및 제막식을 갖는다.
광주 시장과 시의회의장, 시교육감을 비롯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 유가족과 광복회 회원들이 행사에 참여한다.
일제 시대 광산군 송정면의 송정 신사 모습
지난해 광주공원 윤웅렬·이근호 선정비 등 3곳에 단죄비가 설치된 데 이어 올해는 7개의 단죄비가 추가된다.
우리나라에 남은 유일한 목조 신사 건물인 송정공원과 원효사 내 친일인사 송화식 부도탑·부도비(본보 2017년 3월 1일 1면 보도), 화정동 학생운동기념관 주변 지하동굴 , 남구 사동 양파정 현판, 서구 세하동 습향각 서판, 동구 선교동 서정주 시비 등이다.
특히 행사가 치러지는 송정공원 내 금선사는 일제 시대 세워진 신사(神社)를 해방 이후 사찰로 바꾼 시설물이다.
일제는 3년 내에 전남 도내 243개 부읍면 전체에 신사를 신설하고자 하는 등 전국에 854개의 신사를 세웠으며 이 과정에서 송정 신사는 1922년 광산군 송정읍에 세워졌던 신명 신사를 1940년 오오츠카 료헤이 등 53명의 청원을 통해 승격됐다.
더군다나 송정공원 내에 세워진 나무아미타불탑이 사실 광주공원 신사에 세워진 것과 같은 충혼탑이었으며 여기에 일본에 대한 충성을 강요했던 ‘황국신민서사’가 새겨졌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또 송정신사에는 신사 건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참계(參階), 신목(神木), 참도(參道), 봉등(奉燈)이 조성돼 있다.
해방 이후 사찰로 조성되면서 일부 모습이 바뀌긴 했으나 학계에서도 “송정 신사의 사각형 서까래 등 건물 모습은 일제시대 영향을 받아 건립된 형태”라며 말하고 있다.
이처럼 조선인을 신사에 강제로 참배하게 한 ‘내선일체’가 이뤄졌던 현장인 송정 신사를 역사의 교육 현장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목소리는 수년 전부터 제기됐었다.
그러나 금선사는 현재 광주 한 불교계 학원 재단이 소유하고 있고 산림은 산림청 소유 국유지인 데다 군데 군데 사유지도 혼재돼 있어 좀처럼 논의되기 어려웠다.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은 “신사는 일제가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들고자 정신을 개조하고자 한 장소”라며 “전국에 보기 드물게 원형이 보존된 신사를 활용해 일제가 어떻게 우리를 침탈했는지, 역사의 비극이 또다시 재발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새기는 역사의 현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시가 전국 최초로 일제 잔재를 조사해 공식 보고서까지 작성하고 단죄비를 세워 앞장서고 있다”며 “연구와 조사 이후에는 일반 대중들이 이를 잘 알 수 있도록 활용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덧붙였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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