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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천 서택저수지는 일제잔재, 침략전쟁 가담 인물 이름 딴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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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천 서택저수지는 일제잔재, 침략전쟁 가담 인물 이름 딴 명칭

admin | 화, 2020/06/30- 00:13

일본인 ‘서택효삼랑’에서 명명 …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 명칭 변경 요구

▲ 경남 사천시 용현면에 있는 서택저수지 표지판. ⓒ 민족문제연구소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의 승리를 위해 침략전쟁에 적극 가담했던 인물의 이름을 딴 저수지가 있어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경남 사천시 용현면에 있는 ‘서택저수지’다. 민족문제연구소 경남진주지회(대표 강호광)는 29일 이 저수지를 관리하고 있는 한국농어촌공사 사천지사에 “서택저수지 명칭 변경”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 단체는 “올해는 해방 75주년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주위에 청산되지 못한 식민지 시기의 잔재가 치욕스럽게 존재하고 있다”며 “그 가운데 하나가 서택저수지다. 저수지 명칭을 바꾸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단체에 따르면 ‘서택’저수지는 일본인 서택효삼랑(西澤孝三郞, 니시자와 고자부로)’에서 따온 것이다.

저수지는 일제의 식량 증산과 관련해 만들어졌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본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산업자본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농업 생산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특히 1918년 발생한 쌀 파동은 조선에서 산미증식계획을 수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조선에서 산미증식계획은 1920년부터 1935년까지 장기 계획으로 수립되었던 것이다. 1923년 3월, ‘조선공유수면매립령’이 공포되어 조선 곳곳에서 연안을 매립하여 농토도 변경하는 공사가 진행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계획에 따라 1928년 일본인 서택효삼랑은 사천 용현면 장송에서 신촌리까지 900m의 방조제를 축조하고, 1935년 12월 31만 7568평의 농지 조성을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조선총독부 <관보>(1935년)와 <시정20년역사>(1935년), <조선신보>(1937년), 사천시의 <사천시사>(2003년),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데이타베이스> 등에 기록되어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서택효삼랑은 농지의 상류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저수지를 축조하였고, 저수지의 이름을 ‘서택저수지’로 명명하였다”며 “이 명칭은 해방 75주년이 되는 현제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 단체는 “일제의 침략전쟁이 한창일 때 ‘서택’은 일본군의 승리를 위해 침략전쟁에 적극 가담했던 자”라며 “이러한 서택의 행적을 볼 때 아직까지 저수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시민과 우리 민족 전체를 욕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서택저수지를 우리의 정서에 맞는 이름으로 변경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했다.

이들은 “저수지가 위치한 지역은 선 태종까지 세곡을 운반했던 ‘통양창(通陽倉)’이 있었던 곳으로, 이 지역에선 아직까지 ‘통양’이란 지명이 남아 있다. ‘통양저수지’로 명칭 변경도 조심스럽게 권유해 본다”고 했다.

<2020-06-29>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사천 서택저수지는 일제잔재, 침략전쟁 가담 인물 이름 딴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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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노동역사탐방’ 해설을 맡은 장회숙 인천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장이 강경애의 장편소설 ‘인간문제’의 배경인 인천 중·동구 일대의 일제강점기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지부장·강태욱)는 24일 인천 중구 북성포구와 동구 만석동 일대에서 ‘인천노동역사탐방’을 개최했다.

회원, 시민 30여명과 함께 진행된 이날 행사는 장회숙 인천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장이 해설을 맡았다.

중구 차이나타운 입구 중국문화원에 모인 참가자들은 장 소장의 해설을 따라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탑과 기념탑 교회 앞으로 이동했다.

1883년 인천개항 이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역만리 낯선 땅을 찾은 선교사들이 조선 땅에 첫 발을 디딘 곳이다.

1884년 매클레이 선교사를 시작으로 알렌, 아펜젤러, 언더우드 등이 차례도 이곳 제물포항에 내려 서울로 들어갔다.

▲ 구한말 조선 땅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발자취가 중부경찰서 옆 기념탑 교회에 상세히 설명돼 있다.

기념탑을 지나 개항기 러시아 공사관 터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28층짜리 오피스텔을 짓는다며 옛 흔적을 모두 지운 채 높다란 가림막을 둘러놓았다.

주민들은 고층 오피스텔이 들어선 이후에는 수변공간으로 개방될 예정인 8부두와 상상플랫폼 전경을 가로 막는 흉물이 될 것이라는 비판한다.

인천역 뒷길을 따라 대한제분을 지나면, 북성포구 입구를 알리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안내판을 등에 지고 맞은 편 원목야적장을 바라보며, 대한제분 담벼락을 따라 400m 가량을 걷다보면 북성포구에 도착한다.

▲ 인천의 바닷가의 삶을 고스란히 간직한 북성포구는 내년 8월 매립이 끝나면 기억 속으로 사라진다.

형형색색의 어망들이 햇빛을 받으며 줄지어 누웠고, 어민들이 막 잡아 올린 바닷고기들은 어판장에서 손님을 불러 세운다.

한창 매립이 진행되고 있는 포구 한 켠에서는 갈매기 떼를 꼬리에 단 고깃배 갑판 위에서 ‘파시’가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어민들과 주변 횟집 상인들의 삶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은 북성포구는 내년 8월이면 기억 속으로 사라진다.

자갈과 모래, 콘크리트가 바닷길을 메우는 매립공사가 끝난 뒤에는, 그 위로 새로운 어판장이 들어서고 ‘똥바다’ 북성포구의 과거를 알지 못하는 낯선 관광객들의 왁자지껄이 아스라한 추억을 대신하게 된다.

▲ 매립이 진행되고 있는 북성포구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이 곳으로 들어오는 고깃배들의 파시가 관광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포구를 뒤로 하고 작은 골목길을 빠져 나오면 장 소장이 손에 든 강경애의 ‘인간문제’가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궁핍한 농민과 고달픈 노동자의 삶을 그린 ‘인간문제’는 만석동과 동양방적(현 동일방직 자리), 신포동 등이 주 무대다.

이 주변은 현덕의 ‘남생이’,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등 수많은 작품의 배경이 된 곳이다.

▲ 만석동 쭈꾸미집 일대는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그려낸 여러 문학작품 속 배경으로 등장한다.

강경애는 ‘인간문제’에서 농촌을 떠나 공장지대에 흘러온 ‘선비’의 투쟁과 죽음, 그를 둘러싼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냈다.

이 소설은 일제 강점기 여성작가의 작품 중에는 가장 뛰어난 역작으로 평가받는 이외에도, 당시 인천 지역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인간무대’에서 여공들이 투쟁을 벌이던 방직공장은 이후, 1970년대를 대표하는 투쟁현장으로 거듭났다.

인천지역의 탁월한 노동운동가들을 배출한 ‘동일방직’ 사건은 부마항쟁의 촉매제로 작용해 박정희 정권을 몰락을 가져왔다.

1986년 인천 5.3항쟁,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진 ‘한국 민주주의의 산실’로 불리고 있다.

장 소장의 해설에 빠져 동일방직 담 길을 걷던 일행들은 어느덧 동일방직 정문에 도착한다.

지금은 베트남으로 이전해 빈 공장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현재 동일방직 건물 터를 두고, 동구청은 영상촬영 스튜디오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아파트촌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시민사회 일부에서는 민주화공원으로 조성하자는 운동이 조심스럽게 일고 있다.

답사를 마친 일행들은 동일방직 정문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마친 뒤,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다음 역사탐방을 기약했다.

/글·사진 = 정찬흥 기자 [email protected]

<2020-05-25> 인천일보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인천노동역사탐방 개최

목, 2020/05/28-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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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 111주기’ 기념사업회 지역지부 추진
26일 오후 광주시립미술관 일원서 진행
온라인 역사교육 체험프로그램 중계도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11주년을 맞아 광주에서 언택트 방식의 특별한 역사 교육 체험프로그램이 마련된다. ‘방 탈출’ 게임 형태의 역사 추리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안 의사의 삶과 정신을 재미있게 배우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광주전남지부는 광주실천교육교사모임과 함께 오는 26일 오후 3시부터 광주 북구 중외공원 내 광주시립미술관 일원에서 ‘안중근 의사 하얼빈의거 111주년 기념 역사 체험’ 행사를 진행한다고 22일 밝혔다.

안중근 의사 서거 111주년을 기념해 지역 학생들에게 유익한 역사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행사는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사단법인 한말호남의병기념사업회, 전교조 광주지부, 진정한광복을생각하는시민의모임 등도 손을 보탠다.

프로그램은 ‘코레아 우라, 광주 중외공원에서 안중근의사를 찾아야 한다고?’라는 주제의 현장 체험과 ‘차이자거우 기차역, 의문의 사나이를 도우라! 불가능한 미션을 가능케하라!’라는 주제의 온라인 수업 등 투트랙으로 진행된다.

난이도가 다른 테마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의 ‘방탈출’ 요소를 가미해 재미를 더할 예정이다. 참여 대상은 초등 3·4학년부터 성인까지이며 교사나 부모가 함께 참여가능하다.

광주실천교육교사모임이 공익적으로 개발한 이 프로그램은 행사 이후에도 온라인에서 언제든 참여가능하다.

모집인원은 2~4인 15팀 내외로 성인 인솔자가 포함되어야 하며 참여 접수는 24일 자정까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광주전남지부 이메일([email protected])로 하면 된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광주전남지부 관계자는 “안 의사의 서거를 기리고 그의 삶과 역사를 재미있고 유익하게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온라인 방탈출 게임을 연계한 언택트 방식의 이번 행사에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중외공원에는 1995년 건립된 안중근 의사 동상과 ‘대한의사안공중근숭모비’가 세워져 있다. 해당 숭모비 건립은 1961년 광주·전남 지역민이 주최가 된 전국 인사들이 추진했으며 무등산이 있는 의향 광주에 설립하자는 의견에 따라 전국에서 처음 이곳에 세워졌다. 숭모비는 관리 소홀로 한동안 분실됐다 지난해 되찾기도 했다.

주현정기자 [email protected]

<2020-10-22> 무등일보

☞기사원문: ‘방탈출’로 배우는 안중근··· “광주 중외공원서 만나요”

금, 2020/10/23-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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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유일 신사 흔적 광산구 송정신사
올해 7곳에 ‘단죄문’ 설치…13일 기념식
시민사회 “역사 현장으로 활용해야”

일제 시대 광산군 송정면의 송정 신사 모습

광주에 남은 일제 잔재에 대해 그 죄상과 내역을 담은 단죄비 설치 사업을 진행하는 사업이 올해도 이어진다. 이를 계기로 단죄비만 설치할 것이 아니라 외관이 보존된 주요 거점에 대해서는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일 광주시에 따르면 시는 오는 13일 광주 광산구 송정공원 금선사 입구에서 광주 친일잔재 청산 단죄문 설치 및 제막식을 갖는다.

광주 시장과 시의회의장, 시교육감을 비롯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 유가족과 광복회 회원들이 행사에 참여한다.

일제 시대 광산군 송정면의 송정 신사 모습

지난해 광주공원 윤웅렬·이근호 선정비 등 3곳에 단죄비가 설치된 데 이어 올해는 7개의 단죄비가 추가된다.

우리나라에 남은 유일한 목조 신사 건물인 송정공원과 원효사 내 친일인사 송화식 부도탑·부도비(본보 2017년 3월 1일 1면 보도), 화정동 학생운동기념관 주변 지하동굴 , 남구 사동 양파정 현판, 서구 세하동 습향각 서판, 동구 선교동 서정주 시비 등이다.

특히 행사가 치러지는 송정공원 내 금선사는 일제 시대 세워진 신사(神社)를 해방 이후 사찰로 바꾼 시설물이다.

일제는 3년 내에 전남 도내 243개 부읍면 전체에 신사를 신설하고자 하는 등 전국에 854개의 신사를 세웠으며 이 과정에서 송정 신사는 1922년 광산군 송정읍에 세워졌던 신명 신사를 1940년 오오츠카 료헤이 등 53명의 청원을 통해 승격됐다.

더군다나 송정공원 내에 세워진 나무아미타불탑이 사실 광주공원 신사에 세워진 것과 같은 충혼탑이었으며 여기에 일본에 대한 충성을 강요했던 ‘황국신민서사’가 새겨졌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또 송정신사에는 신사 건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참계(參階), 신목(神木), 참도(參道), 봉등(奉燈)이 조성돼 있다.

해방 이후 사찰로 조성되면서 일부 모습이 바뀌긴 했으나 학계에서도 “송정 신사의 사각형 서까래 등 건물 모습은 일제시대 영향을 받아 건립된 형태”라며 말하고 있다.

이처럼 조선인을 신사에 강제로 참배하게 한 ‘내선일체’가 이뤄졌던 현장인 송정 신사를 역사의 교육 현장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목소리는 수년 전부터 제기됐었다.

그러나 금선사는 현재 광주 한 불교계 학원 재단이 소유하고 있고 산림은 산림청 소유 국유지인 데다 군데 군데 사유지도 혼재돼 있어 좀처럼 논의되기 어려웠다.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은 “신사는 일제가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들고자 정신을 개조하고자 한 장소”라며 “전국에 보기 드물게 원형이 보존된 신사를 활용해 일제가 어떻게 우리를 침탈했는지, 역사의 비극이 또다시 재발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새기는 역사의 현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시가 전국 최초로 일제 잔재를 조사해 공식 보고서까지 작성하고 단죄비를 세워 앞장서고 있다”며 “연구와 조사 이후에는 일반 대중들이 이를 잘 알 수 있도록 활용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덧붙였다.

서충섭기자 [email protected]

<2020-08-02> 무등일보 

☞기사원문: ‘광복 75년인데’ 광주 도심에 아직도 일본신사라니

월, 2020/08/03-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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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시민사회단체, 6일 대전현충원 정문에서 국립묘지법 개정 촉구 시위

▲ 6일 오전 11시, 국립대전현충원 정문 앞에서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주관(주최 국가공무원노조, 대전 민중의 힘)으로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행위자 묘 이장 촉구 시민대회”가 열리고 있다. ⓒ 심규상

현충일인 6일 오전 11시 국립 대전현충원 정문에서는 어김없이 ‘국립묘지법 개정과 반민족행위자 묘 이장 촉구 시민대회’가 개최됐다. 지역시민사회단체에 따르면 국립 대전현충원에만 친일행위자 37명, 군사 반란 가담자 22명,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관련자 8명, 반헌법 행위자 7명 등 모두 74명이 안장돼 있다.

첫 파묘 시위는 김창룡 전 기무사령관이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1998년 열렸다. 당시 시위는 사회단체인 민주주의민족통일대전충남연합이 주도했다. 김창룡은 일본 관동군 헌병 출신으로 해방 후 이승만 정부 아래에서 각종 백색 테러와 민간인 학살을 주도했다. 또 안두희에게 김구 선생의 암살을 지시한 배후로 꼽히고 있다.

이후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매년 김창룡을 비롯한 친일행위자와 군사 반란 가담자, 반헌법 행위자들을 찾아내 묘 이장을 촉구했다. 올해 들어 23년째다. 이날 한 참가자는 “30대에 첫 파묘 요구 시위를 벌였는데 이제 50대 중반이 됐다”고 밝혔다.

“30대 때 김창룡 첫 파묘 시위.. 이제 50대 중반이 됐다”

▲ 74명의 반민족, 반민주행위자의 이름과 죄상을 적은 천을 국립현충원 참배객들이 밟고 지나고 있다. ⓒ 심규상

이날 시민대회에서는 애국지사와 순국선열 틈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빼내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줬다.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서 김창근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은 “20여 년 동안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묘를 국립묘지 밖으로 옮기는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매번 본회의에 상정도 못 한 채 폐기됐고, 이번에도 국회의원들의 무관심과 냉대로 낮잠을 자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석경 광복회 대전광역시지부장은 연설을 통해 “민주당은 매번 국립묘지법이 개정되지 않은 이유로 다른 당의 반대를 꼽았다”라며 “그래서 180여 석의 거대 여당을 만들어 줬지만 어찌 된 일인지 1년이 넘도록 적폐 세력의 눈치만 보고 있다”라고 성토했다. 이어 그는 “민주당에 강력히 촉구한다”라며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이장하도록 조속히 법 개정에 나서라”라고 강조했다.

다른 발언자들로 정부와 정치권에 국립묘지법 개정을 통한 반민족행위자 묘 이장을 거듭 요구했다. 안정섭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과 김율현 대전민중의힘 상임대표는 각각 “역사 정의를 더럽히는 행위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 “친일반민족행위자에게 국가유공자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세금을 쏟아붓는 짓을 더는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윤석경 광복회 대전지부장 “거대 여당을 만들어줬지만 적폐 세력 눈치만…”

▲ 윤석경 광복회 대전광역시지부장은 “거대 여당을 만들어줬지만 적폐 세력의 눈치만 보고 있다”며 민주당에 조속한 법 개정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 심규상
▲ 6일 국립대전현충원 김창룡의 묘 앞에는 ” 계룡충호안보연합”(계룡시 관내 기무사 출신 모임) 이름의 조화가 놓여 있다. ⓒ 서준석

참석자들도 이날 채택한 대회 성명서에서 “적폐 청산을 제1과제로 내걸고 촛불혁명을 통해 정권을 교체했지만, 여전히 호국영령들의 넋은 편히 쉬지 못하고 있다”며 “하루빨리 국립묘지법을 개정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이들은 반민족, 반민주행위자로 지목된 유족에게도 “진정 고인을 위한다면 현충원에서 묘를 이장하라”고 권고했다.

이날 시민대회에는 오전 10시부터 반민족행위자의 행적을 적은 자료를 전시하고 관련 홍보물을 배부했다. 특히 74명의 반민족, 반민주행위자의 이름과 죄상을 적은 천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밟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시민대회가 끝난 후 조문기 지사, 곽낙원 지사(김구 선생 어머니) 묘역을 참배했다.

<2021-06-06>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친일·반민족행위자 파묘 시위 23년째… 그래도 안 바뀌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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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2021/06/0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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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재판부 “검사가 주장하는 지주 이용 광고물로 볼 수 없어”

[광주=뉴시스] 구용희 기자 = 지난 2017년 5월20일 광주 무등산 공원 구역 내 한 종교시설 인근 A씨의 비석 앞에 김모(81)씨가 설치했던 광고물. A씨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2020.04.02. (사진 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 구용희 기자 = 친일파로 알려진 인물의 비석 앞에 그의 행적을 알리는 내용의 불법 광고물을 설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80대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광주지법 제3형사부(항소부·재판장 장용기 부장판사)는 옥외 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 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모(81)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2일 밝혔다.

김씨는 2017년 5월20일 광주 북구 무등산 공원구역 내 한 종교시설 인근에 설치된 A씨의 비석 앞에 관할관청의 허가 없이 A씨의 친일 행적을 알리는 내용의 지주 이용 광고물(가로 100㎝·세로 90㎝)을 설치한 혐의로 약식기소됐다.

김씨와 변호인은 ‘친일파인 A씨의 비석과 부도 형태의 탑이 설치된 것을 규탄하기 위해 광고물을 설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1심은 “김씨가 자연공원법상 자연공원인 부지에 광고물을 세운 사실은 인정된다. 하지만 이는 입간판으로 보일 뿐 검사가 주장하는 지주 이용 간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는 ‘해당 광고물은 지면에 따로 설치한 파이프 형태의 지주에 끈을 이용해 알루미늄 및 아크릴 재질의 광고 현판을 고정한 것이다. 이는 관련 법이 정한 지주 이용 간판에 해당한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입간판과 지주 이용 간판을 구분하는 핵심 표지는 해당 광고물이 따로 설치된 기둥에 의해 건물 또는 지면에 고정돼 있는지 여부”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주 이용 간판에 해당하기 위해 필요한 (기둥의) 설치의 고정성은 단순히 꽂아두거나 꽂아둔 정도의 것으로 족하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적어도 기초공사나 체결 작업 등을 통해 지표면이나 건물에 단단히 고정돼 풍수해에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을 고정성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해당 광고물은 알루미늄 재질의 H형 뼈대의 다리 부분을 별다른 고정 장치 없이 땅에 20∼30㎝ 깊이로 꽂아 고정한 것이다. 지주 이용 간판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고정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이 사건은 A씨 후손의 고소로 시작됐다.

A씨의 후손은 법률대리인을 통해 사자(死者)명예훼손도 주장했지만, 수사기관은 게시글의 내용이 진실에 부합하다며 김씨에게 혐의없음 처분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행정기관에서는 입간판을 유동광고물로, 지주 이용 간판을 고정광고물로 분류하고 있다. 불법 유동광고물의 경우 과태료 처분을, 불법 고정광고물은 형사처벌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2020-04-02> 뉴시스 

☞기사원문: ‘친일 인물 행적 소개’ 불법 광고물 설치 80대 2심도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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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 ‘친일 인물 행적 소개’ 불법 광고물 설치 80대 2심도 무죄

월, 2020/04/06-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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