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70주년을 앞두고 미연방하원에서 한국전쟁 종식 평화협정체결 촉구결의안 동참이 확산(擴散)되고 있다.
Ayanna Pressley 의원과 이금주씨(왼쪽)
코리아평화네트워크 등 4개 미주평화단체들은 24일 ‘한머리땅(한반도) 종전지지 결의안’(H. Res. 152)에 매사추세츠 아이아나 프레슬리(Ayanna Pressley) 의원과 뉴욕 폴 톤코(Paul Tonko) 의원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고 밝혔다.
6월 첫째 주와 둘째 주에 걸쳐 진행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온라인 로비 액션 결과, 두 의원이 합류함에 따라 결의안 지지 의원은 대표 발의자인 로 칸나 의원을 포함하면 45명으로 늘어났다.
한국전쟁 종식, 평화협정체결 촉구 결의안은 2019년 2월 북미 싱가포르 정상 회담을 앞두고 로 칸나(Ro Khanna, 캘리포니아 하원의원), 앤디 김(Andy Kim, 뉴저지 하원의원), 바바라 리(Barbara Lee, 캘리포니아 하원의원) 등에 의해 발의되었다.
이번 로비 활동은 남북 관계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고 나날이 한반도 긴장이 고조(高調)되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직접 로비를 통해 미국 의원들을 움직였다는 것에 더욱 의미가 크다.
로비행동의 참가자였던 ‘전쟁에 반대하는 여성(Women Against War)의 멤버인 Maud Easter(마우드 이스터)’은 “폴 톤코 하원 의원실과의 회의 결과로 구속력있는 평화 협정을 요구하는 하원 의원 결의안의 공동 지지자가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톤코 의원은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북한과 외교 대화를 지원했다. 한국 전쟁이 외교에 방해가 된다는 우리 입장을 인정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보스턴 부근 아이아나 프레슬리 의원 지역에 거주하는 이금주씨는 “정말 기쁘다. 가장 진보적인 민주당 의원 중 하나인 의원이기에 우리의 기대도 컸다. 하프레슬리 의원과 3번의 만남을 갖고, 보좌관들과 여러 차례 방문 미팅과 수십통의 이메일, 최근 화상미팅까지 지난 1년6개월간 희망을 놓지 않고 꾸준히 설득했다. 마침내 프레슬리 의원이 코리안 아메리칸과 한국인들의 평화의 열망을 이해하고 지지해 한국전쟁 종식 결의안에 서명을 하게 됐다. 다른 의원들의 설득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온라인 로비 액션은 코리아평화네트워크(Korea Peace Network, KPN), ‘코리아 피스 나우(Korea Peace Now! Grassroots Network, KPNGN)’,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해외동포연대(Peace Treaty Now, PTN)’, 그리고 위민크로스DMZ (Women Cross DMZ, WCD)에서 공동주최하고 있다.
조현숙씨는 “이번 로비 활동에는 26개 주 90개 지역에 거주하는 200명 이상의 유권자들이 참여했으며, 이중 84개 의원사무실과 만남이 진행되었다. 총 참가인원 110명은 한인이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로비주간에는 H Res 152 외에도 한반도 관련 다른 법안들도 로비활동을 펼쳤다. 북한과 위헌적 전쟁 금지 법안인 H.R. 6639, 대북 인도적 지원 강화 법안 H.R. 7218, 상원에는 대북 인도적 지원 강화 법안인 S.3908, 한국전쟁 이산가족 상봉 법안인 S.3395 등이 이번 로비 주간의 주요 내용이었다.
한편 캐롤린 마로니 하원의원(Carolyn Maloney-NY)과 바바라 리 하원의원(Rep Barbara Lee-CA)은 북한과 위헌적 전쟁 금지 법안인 HR 6639의 첫 지지자가 되겠다고 나섰으며, 폴 톤코 (Paul Tonko-NY)도 바로 뒤따라 지지에 나섰다.
에드 마키(Ed Markey-MA) 상원의원과 벤 카딘(Ben Cardin-MD) 의원은 한국전쟁 이산가족 상봉 법안인 S.3395 결의안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메릴랜드 상원의원 벤 카딘 (Sen. Ben Cardin-MD)이 대북 인도적 지원 강화 상원결의안인 S.3908의 첫 지지자가 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각 미팅에서는 위 법안에 대한 지지 및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종전선언에 대한 입장을 내주기를 요청했다. 많은 의원실에서 6.25 주간에 한국전쟁이 70주년을 맞이했으며 종전을 통한 한반도 평화를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각 의원의 SNS에 포스팅 하거나 성명서를 내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번 활동은 ‘하노이 회담’ 이후 북에 최대압박 정책을 가하고 있는 미국 정부를 향해 유권자들의 지속적인 종전협정 요구를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년 9.13대책 이후 거래량이 급감하고 일부 랜드마크 단지 위주로 가격도 급락했던 서울 아파트 시장이 올 여름 완연히 기운을 차린 듯한 모양새를 보이자 향후 서울 아파트 시장의 방향성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거의 모든 미디어들과 자칭 타칭의 부동산 전문가, 대부분의 부동산 유튜버들은 지금이 바닥이라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
먼저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동산가격은 인구총량 및 생산가능인구의 변화, 도시화 정도, 산업구조의 변화 등의 요소, 각종 거시경제(금리, 환율, 경제성장률, 1인당 실질구매력, 실업률 등)지표, 수급 등의 요소에 의해 중장기적으로 규정된다. 정부의 각종 부동산 정책- 공급(공급량-공급유형과 로케이션 등, 분양방식-원가공개, 후분양제, 청약제도, 실질주택보급율 등)정책, 수요(세제-취득세, 보유세 및 양도세 등)정책, 금융(주택담보대출-LTV 및 DTI- 관리)정책, 공공임대주택 건설 등 주거복지 정책, 개발이익환수장치(개발부담금, 재건축 규제 등)정책 등-도 부동산 가격에 중단기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즉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장,중,단기적으로 허다하며, 경중과 선후가 있지만 지극히 복잡하다.
위에서 열거한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 가운데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에 호재는 찾기 어렵다. 인구 등의 장기요인, 성장률 등 거시 지표 등은 향후 서울 아파트 가격을 암울하게 만드는 요소이고, 서울에 신규로 공급되는 아파트 총량도 2024년까지는 충분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서울 아파트 가격의 하락을 강하게 유도하는 정책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가격 상승에 친화적인 정책도 아니다.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의 유일한 호재는 사상 최저 수준의 기준금리인데, 이마저도 대출 관리가 엄격하게 되고 있는 점, 기준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다는 건 경제주체들의 체력이 그만큼 약하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호재라고만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영원히 상승하는 시장은 없다
사정이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아파트 가격이 올 4월 이후 8월까지 거래량 상승을 동반한 전고점 회복을 보인 끼닭은 무엇일까? 부동산가격 상승을 주구장창 주장하는 미디어, 자칭, 타칭의 부동산 전문가들, 대부분의 부동산 유튜버들의 여론조작과 그에 현혹된 시장참여자들의 가격상승기대감이 주범이 아닐까 싶다. 거의 모든 미디어, 자칭,타칭의 부동산 전문가, 대부분의 부동산 유튜버들은 서울 아파트 공급이 부족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다주택자들이 투기목적으로 서울 아파트를 구입하지 않는 한 서울 아파트 수급이 문제 될리 없다)부족하니 가격이 폭등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화폐개혁을 하면 서울 아파트 가치가 더 올라갈거라고 주장하며,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하면 신규 아파트 가격이 더 올라갈 거라고 주장하고, 기준금리 인하가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3기 신도시 토지보상이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기승전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론인 셈이다. 견강부회와 곡학아세의 전형이다.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이미 서울 아파트 시장은 대세하락의 초입에 들어섰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장,중, 단기 요인들이 거의 모두 가격하락을 지시하고 있다는 점, 2014년 가을부터 시작된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세로 말미암아 강남과 마용성은 고사하고 입지가 떨어지는 지역의 신규 아파트 가격조차 평당 3천만원에 육박할 정도로 가격 피로도가 극심하다는 점, 가격에 선행하는 지표인 거래량이 작년 8월을 정점으로 확연히 꺾였다는 점(올 8월 이후의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은 거래량이 줄면서 가격이 상승하는 장세인데, 이는 대세하락의 초입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임. 반대로 서울 아파트 가격이 바닥이었던 2013년 같은 경우는 거래량이 상승하면서 가격이 떨어지는 장이었는데, 이는 대세상승의 초입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임)등이 그 근거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영원히 상승하는 시장은 없다는 사실, 서울 아파트도 대한민국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지금은 인내심을 갖고 시장을 지켜볼 때지 시장에 뛰어들 때가 아니다.
미국의 도시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대번에 헛소리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터져 나올 것이다. 지금도 물론 전 세계에서 비행기가 미국의 도시를 향해 뜨고 있고 건물들이 멀쩡히 건재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며. 그러나 마천루 빌딩과 사람만 있다고 그게 정말 도시일까? 여기선 적어도 사람이 살 수 있는 전통적 의미의 도시를 말한다.
기능성과 효율성에 기반 한 쾌적한 주거환경, 양질의 그리고 다수의 일자리, 문화적 풍요 등이 시골로부터 많은 사람들을 쭉쭉 끌어들이는 도시의 매력이다. 그것이 바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도시의 현대성이다. 물론 필자가 여기서 거론한 것은 이른바 현대 도시의 좋은 측면들만 과도하게 부각시켰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현대 도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측면들도 분명 갖고 있기에 그렇다. 이를테면 끈끈한 정에 기초한 인간미의 상실(흔히 비정함으로 묘사된다)과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는 과도한 익명성이 그것들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위에서 언급한 전통적 도시의 좋은 측면은 물론 나쁜 측면조차도 모두 사람들을 현대 도시로 꼬여 들게 했다는 사실이다. 현대 과학 문명의 기술과 문화를 동경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웃의 눈과 과도한 간섭으로 벗어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에겐 현대 도시가 갖는 익명성과 비정함이 나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혜택으로 받아들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미국에서 그런 전통(전형)적 의미의 현대적 도시가 사라지고 있다. 현대 도시가 지닌 장점과 단점으로 무장해 사람들을 유인하기는커녕 점점 더 사람들을 도시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이제 미국의 몇몇 대도시는 거주자들은 물론 관광객마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들어 더 이상 방문하고픈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덧정을 떼고 있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이를 살피기 위해선 다음을 살펴봐야 한다. 도시가 사라진다는 것은 한 마디로 도시다운 도시가 사라진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도시에서 사라지는 것들과 함께 새로 생기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를 함께 고려하면 필자가 왜 도시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하는지를 납득할 수 있다.
웨이터가 사라지고 있다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점을 빼고 고급 식당에서 깔끔한 유니폼을 입은 웨이터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는 모습이 전통적인 미국 도시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제 고급 식당에서 그런 종업원들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변모하고 있다. 대표적 예가 샌프란시스코의 고급식당들이다. 종업원이 없는 대신 모든 일을 손수 손님들이 해야 한다. 컵과 물을 포함해 심지어 와인까지도 카운터에 가서 직접 가져 와야 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고급 식당에서 ‘셀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고급 식당이라면 으레 식탁 옆에서 주문도 받고 손님 옆에 식사시간 동안 시종 대기하면서 와인을 따라 주는 등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종업원이 있어야 하나 그들이 싹 사라져 버렸다. 어쩌다 이런 일이?
뉴욕타임스(San Francisco Restaurants Can’t Afford Waiters. So They’ve Putting Diners to Work, NYT, June 25, 2018)는 그 이유로 임대료와 인건비의 상승을 들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이유는 주거비가 터무니없이 올라 종업원들이 하릴없이 도시를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똥 더미로 뒤덮여지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그렇다면 어느 정도나 엉망이 되었으면 도시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까지 하겠는가? 그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잠깐 다른 이야기부터 꺼내는 것으로 시작하는게 좋을 것 같다. 필자가 미국에 유학하던 시절 언젠가 하와이에서 한 교민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한국에 가면 왜 그렇게 똥냄새가 나는지 그것 때문에 질색이라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거쳐간 장소를 흔히 냄새로 기억하는 버릇이 있다. 떠나온 고향조차 냄새로 진하게 기억한다. 새로이 접하는 장소도 마찬가지다. 필자도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딛고 맡은 공항 화장실의 소독내로 미국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냄새로 고국을 기억하는 그녀를 마냥 탓하기는 어렵다. 똥냄새가 난다는데 어찌하랴.
거의 삼십여 년이 다 되가는 이 시점에도 그 말이 기억나는 것 보면 필자에겐 당시에 무척이나 그 말이 인상적이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 똥냄새라는 말이 하수도가 지나는 골목의 정화조에서 나는 실제 악취를 가리킨 것인지, 혹은 부유한 나라 미국에 살고 있던 교포가 당시에 못 사는 나라 모국에 대한 칙칙한 인상에서 유래한 비유였는지는 그 때나 지금이나 확실하지 않다. 늘 똥냄새만 맡고 살다 막 미국에 건너 온 어리바리 신참내기여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당시의 필자로서는 미국에 오래 산 이들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도 있겠거니 하고 그리 크게 괘념치 않고 넘어 갔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크게 역전되었다. 아무런 정보 없이, 그것도 미국 서부 여행에 대한 기대를 잔뜩 안고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 이들이라면 똥냄새가 다가 아니라 아예 천지에 밟히는 똥 때문에 아연실색을 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놀라지 마시라. 그 똥은 개똥이 아니고 사람 똥이다. 샌프란시스코가 어떤 곳인가? 금문교와 짙푸른 태평양, 골든게이트 공원, 버클리대학과 스탠포드대학 등이 소재한 이른바 미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품 도시가 아닌가. 도시 남쪽 외곽엔 인텔, 야후, 애플 등의 회사들이 밀집한 그 유명한 실리콘밸리를 품은 최첨단 기술 도시이다. 그런 샌프란시스코가 지금 똥 더미로 뒤덮여지고 있다. 그것도 사람 똥으로 말이다.
‘똥 지도’(poop map), 그리고 ‘똥 순찰대’(poop patrol)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샌프란시스코에 새로 생겨난 기상천외한 것들이 있다. 바로 ‘똥 지도’와 ‘똥 순찰대’이다. ‘똥 지도’는 도시 내에서 발견된 똥들이 있던 자리를 시 당국이 찍어 만든 지도다(웹사이트 이름은 OpenTheBooks.com). ‘똥 순찰대’는 그 똥들을 수거하러 도시를 돌아다니는 신종 직종의 종사자들이다. 마약사범 같은 범죄자들을 추적하는 순찰대는 들어봤어도 세상에 ‘똥 순찰대’라니. 절대 농담이 아니다(It’s no laughing matter — SF forming Poop Patrol to keep sidewalks clean. San Francisco Chronicle, August 14, 2018). 그들의 공식 명칭이다. 그런데 필자가 이 똥 관련 소식을 처음 접한 이래로 상황은 개선되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그 대표적 예가 똥 발견 건수의 지속적인 증가다. 다음의 지도와 막대그래프가 그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샌프란시스코 시당국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OpenTheBooks.com에서 보여주는 도심 ‘똥 지도’(poop map); 고동색이 똥 발견 장소이다. 신고가 들어온 곳에 좌표를 찍어 지도를 만든 것.
‘똥 지도’는 지금 거의 샌프란시스코 전역을 똥색으로 뒤덮고 있는데 5~6년 전만 하더라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지도의 바탕색이 보이는 정도였으니까(사실 그것조차도 충격적이기는 매한가지이지만). 그러나 지금은? 독자들이 보는 바와 같다. 빈틈이 없다. 막대그래프는 과거 2011년부터 2018년까지의 똥 발견 적발 건수를 연도별로 측정해 놓은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시 공공사업부(Dept. of Public Works)가 집계한 공식 통계치이기 때문에 터무니없다고 볼 수 없는, 매우 믿을만한 것이다. 실제는 저 수치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모든 똥을 ‘똥 순찰대’가 치우는 것은 아니니까.
2011~2018년 까지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인간 똥 발견 건수 증가 추이를 보여주는 막대그래프 <출처: 샌프란시스코 시, OpentheBooks.com>
막대그래프를 보면, 2011년엔 5,500건에 달했던 똥 적발 건수가 2018년에는 5배가 넘는 28,000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지속적인 증가세는 특히 2016년과 2018년에 각기 가파르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올해의 통계는 아직 잡히지 않고 있지만 필자가 볼 때는 그 증가세는 더하면 더했지 결코 줄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나중에 밝히겠다.
어쨌든 샌프란시스코의 새 시장 런던 브리드(London Breed)는 “자신이 어렸을 적 길거리에서 보았던 똥에 비교할 수 없이 많은 똥을 지금 샌프란시스코 길거리에서 보고 있다”고 NBC뉴스 인터뷰에서 한탄했다(SF Mayor: “There’s More Feces … Than I’ve Ever Seen”, NBCNews). 또한 그녀가 “살아오면서 목격한 가장 최악 중에 하나가 바로 최근 세상에서 부유하기로 이름난 도시, 샌프란시스코 도심에 쌓여만 가는 사람 똥 더미”라고 고백했다(San Francisco human feces map shows waste blanketing the California city, FoxNews). Fox뉴스 보도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시 공공사업부가 사람 똥을 치우기 위해 2019년 책정한 예산은 약 750,000 달러(약 8억 7천만 원)이다. 그리고 ‘똥 순찰대’의 활동은 2019년 4월에나 시작됐으니 2011년부터 이 아름다운 도시는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이란 팝송 가사에서 보듯 향기로운 꽃냄새 대신 똥냄새로 뒤덮였음이 분명하다. 이것을 보면 사람이 살 곳이 전혀 못 된다. 똥 더미와 똥냄새에 특별한 기호를 갖고 있지 않은 이상 지금 미국에서 도시다운 도시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받아들여야만 하는 엄연한 현실이 되고 말았다. 어쩌다 미국이!
샌프란시스코 ‘똥 순찰대’(poop patrol)가 보도의 똥을 수거하고 그 처지하고 있다. <출처: San Francisco Chronicle> 샌프란시스코 ‘똥 순찰대’(poop patrol)가 보도의 똥을 수거하고 있다. <출처: Getty Image>
제 3세계로 전락한 로스앤젤레스
그런데, 이건 약과다.
영화 조커엔 고담시티의 암울한 사회경제적 상황이 묘사되고 있다. 쓰레기 더미 속 쥐가 들끓고 노숙자들이 즐비한 도시의 모습이…. 이런 영화의 비현실적 이야기가 현실이라면 당신은 믿겠는가? 그것도 세계 최강국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캘리포니아의 다른 도시 로스앤젤레스로 가보자.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스티브 로페즈(Steve Lopez)는 지금 로스앤젤레스 비현실적인 실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신체적·정신적 질병으로 피폐해져 가고 있는 수천 명의 노숙자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길거리의 인도는 제 3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노숙자들의 텐트와 임시방편으로 만든 판자대기 거처들로 뒤덮여 사라지고 있고, 장티푸스와 발진티푸스의 발병이 뉴스가 되며 쥐새끼 군단은 노숙자들과 이들이 버린 쓰레기 더미 속을 종횡무진 들락거리며 병들을 옮기고 있다. 지금이 도대체 몇 세기인가? 가장 부유한 국가―그것도 세계에서 나 홀로 경제가 가장 탄탄하다고 소문난 미국의―의 가장 큰 대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과연 지금이 21세기가 맞는가? 아니면 누군가 달력을 되돌려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가 있는 것일까?”(Column: Rats at the police station, filth on L.A. streets — scenes from the collapse of a city that’s lost control”, Los Angeles Times).
쓰레기더미로 뒤덮인 로스앤젤레스(LA) <출처: Los Angeles Times>
미국 대도시의 제 3세계로의 전락에 대해선 한두 개의 언론이 보도하는 게 아니다(예, Los Angeles’ homeless crisis reaching third world country levels, local residents say”, FoxNews). 로스앤젤레스의 가장 극빈 지역인 ‘스키드 로우’(skid row)에서 구호활동을 하는 베일스 목사(Andy Bales)같은 이는 구호활동 중 살파 먹는 박테리아에 감염 돼 한쪽 다리를 잘랐다. 그 정도로 도시 환경이 최악이다.
2019년 9월 현재, 로스앤젤레스 시의 노숙자는 44,000명에 이르고 이들이 길거리에서 먹고, 생활하고, 버리고, 싸질러대는 쓰레기와 용변으로 도시 전체가 쥐 떼로 들끓고, 흑사병 같은 중세의 역병이 돌고 있다. 쓰레기는 온 천지에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다. 심지어 전문가들은 콜레라와 문둥병의 귀환도 내다보며 공포에 떨고 있다고 포브스지가 보도하고 있을 정도니 미국 대도시의 제 3세계로의 전락은 영화에서나 볼법한 비현실적 이야기가 아닌 이미 엄연한 현실이다(Why California Keeps Making Homelessness Worse,” Forbes ;Mountains of trash in LA could cause bubonic plague outbreak: expert”, New York Post).
필자가 현지의 지인을 통해 취재해 본 결과, 11월 현재 쓰레기 처지는 노숙자들을 고용해 치우고 있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LA 경찰서에 쥐 떼들이 출몰해 경찰관이 장티푸스가 걸렸다는 소문이 돌면서 한 동안 손 놓고 방치하고 있던 쓰레기 처치가 시작되었다니 시쳇말로 얼마나 “웃픈”(웃기면서 슬픈) 이야기인가. 반면 로스앤젤레스 시내의 노숙자는 여전히 계속해서 늘고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미국의 도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일까? 답은 제국질이다. 제국의 배불리는 방식이 미국에서 살만한 도시다운 도시를 사라지게 한 원흉이다. 다음엔 그 이야기를 몇 회에 걸쳐 자세히 해 보기로 한다.
생태문명’이란 맥락에서 ‘문명’이란 용어는 대개 ‘공유된 가치를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뜻한다. 문명은 농업부터 경제, 거버넌스, 교육, 종교, 교통, 의학, 건축, 예술, 음악 등 모든 것을 포함한다. 기본적으로 우리 인간이 타인, 그리고 환경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방식이다.
(생태문명이라는 대안이 필요한) 현재 우리의 문명은 ‘현대문명’ 혹은 줄여서 ‘현대성’으로 불린다.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현대문명을 탐구한 뛰어난 학자인데, 그는 주류 제도들이오늘날 사람들에게 얼마나 자명한 것으로 보이는지 설명한다.
내 가정은 서구 현대성의 핵심이 사회의 새로운 도덕적 질서라는 것이다. 처음에 도덕적 질서는 몇몇 영향력 있는 사상가들의 정신에 있는 단순한 아이디어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광범위한 사회적 상상력을 형성하며 사회 전체로 퍼진다.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 자명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중 하나의 가능한 개념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도덕적 질서에 대한 이런 관점의 전환은 서구 근대성을 특징짓는 사회적 형식을 발전시켰다. 시장경제, 공공영역, 자율적인 인간이 그것이다.
테일러는 현대문명의 세 가지 명백한 특성을 강조한다. 1)우리는 상호번영을 증진하기 위해 재화와 서비스를 교환하는 경제로서 사회를 상상하게 됐다. 2)우리는 낯선 사람끼리 상호관심사를 숙고하고 토론하는 은유적 장소로서 공공영역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우리는 초월적 원리에 의지하지 않고 세속에 “기초”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자율적 인간이라는 아이디어를 발명했다.
이런 실천과 가치는 현대인에게 너무 자명해서 아예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바꿀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과연 그럴까? 현대성의 개념적 토대를 생각해보자. 이른바 현대사상의 아버지인 르네 데카르트는 인간 주체를 의미와 가치의 유일한 원천으로 삼는 전환을 감행했다. 데카르트는 동물을 단지 기계로, 자연을 정신과 사고의 모험을 위한 배경으로 간주했다. 그럼으로써 세계를 “사고하는 존재”와 “확장된 존재”둘로 나눴다. 데카르트의 인간중심주의는 “자아”를 생각하는 주체로 특권화하는 개인주의와 쌍을 이뤘다.
개인주의는 자연스럽게 경쟁과 지배의 모델로 흘러갔다. 1649년 정치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인간의 조건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며 따라서 지구상의 생명은 “추잡하고 짐승 같고 단순하다”고 단언했다.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곧바로 그의 동료들에 의해 “이빨과 발톱이 피로 물든”(앨프리드 로드 테니슨)자연으로 해석됐다. 이런 지배의 태도가 인간 존재와 사고의 전 영역에 만연하면서 남성과 여성, 백인과 흑인, 대국과 소국, 과학과 종교, 인간과 비인간, 부자와 빈자의 위계를 가져왔다. 물론 다양한 형식의 협력이 존재한다. 그러나 함께 일하는 게 성공을 위한 더 근본적 전략이라는 공생(symbiosis)의 아이디어는 대개 배척당했다.
현대문명에서 사회는 개인을 위해 존재하며, 유사하게 국가는 시민을 위해 배타적으로(“아메리카 퍼스트”) 존재한다. 존 로크는 그의 『통치론』 제2논고에서 국가는 재산권을 가진 (남성)시민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지켜주기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했다. 존 스튜어트 밀이 국가의 목표는 각 개인의 자유를 최대화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그는 이런 현대적 이상의 대변인이 됐다. 밀은 이 전통을 확장시켜, 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해로울 때만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민의 행동은 살인처럼 다른 사람에게 직접 해를 끼쳐 국가가 규제해야 할 때까지는 “사적 영역”에 속한다는 게 밀의 주장이다. 개인은 공공선을 위해 존재한다는 견해인 공동체주의는 현대적 패러다임 안에서 개인주의를 이기지 못한다.
마침내 현대성은 스스로의 옹호자가 됐다. 이전 단계의 역사는 모두 “전(前)과학적’이며 과학시대에 비해 열등한 것이 됐다. 현대 정치철학자들은 낡은 정치체제와 철학, 사회적· 정치적 조직의 형식들이 대체됐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이룬 위대한 진보는 현대성의 원리 덕분이며, 사회는 점점 좋아진다는 신념인 사회개량론이 올바른 태도로 여겨진다.
우리는 현대문명의 끄트머리에 있다
당연히 현대문명은 유일한 문명이 아니다. 문명의 등장은 농업 발전과 연결돼 있는데, 기원전 3000년 최초의 문명은 농업이 인간에게 잉여의 음식과 안전을 보장했을 때 등장했다. 식량안전성이 증가하면서 많은 인구가 기본적 생존을 넘어 예술이나 여가 활동 같은 다른 문제들에 눈을 돌릴 수 있었다. 그래서 문명은 인구의 집적, 문어(文語), 기념비적 건축물, 고유한 예술양식, 통치체제, 복잡한 분업, 그리고 사회적 계급으로 특징지어진다. 문명들은 농업과 더불어 등장하며 무역, 전쟁, 탐험 등으로 확대된다. 대부분 문명은 다른 확장되는 문명에 합병되거나 붕괴하거나 단순한 형식으로 회귀함으로써 사라진다.
과거 문명의 범위는 산과 대양과 원거리로 인해 제한됐다. 그래서 헬레니즘 문명은 중국문명이나 마야문명과 같은 시대에 공존했다. 오늘날 우리는 최초로 하나의 글로벌 문명 안에서 살고 있다.
교통과 통신기술의 발전은 서로 다른 문명들을 갈라놓았던 지리적 한계를 극복했다. 스마트폰, 할리우드 영화, 인터넷은 군대와 전쟁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해냄으로써 공유된 가치, 국가 간의 균형(혹은 불균형), 그리고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 기초한 하나의 글로벌 공동체를 창조했다.
현대인과 현대국가는 이전에 없었던 하나의 글로벌 문명으로 함께 묶여있다. 점점 강력해지는 기술에 매혹됨으로써 소비자들은 전지구적으로 하나의 욕망과 열망 앞에 도열했다. 그 결과 기술력을 가진 기업들은 점점 거대한 부를 축적한다. 그들은 지금까지 어떤 군대와 예술작품, 문화적 성취도 성공하지 못한 곳에서 소비주의를 통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글로벌 시민으로 묶어냈다. 물질적 성취에의 매혹은 거대한 자석이 돼 모든 저항을 물리치고 글로벌 소비자를 “예스맨”으로 만들었다. “세계를 주머니에 넣는” 스마트폰은 전세계의 필수품목 가운데 하나다.
끝없는 진보라는 신화는 유혹적이다. 의약품은 질병을 물리치고 사망률은 떨어졌다. 오늘의 문제는 내일의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기술이 소비자들을 위해 준비한 안락과 효율의 초입에 서있을 뿐이다. 더 큰 번영과 즐거움으로의 전진은 무한정 계속될 수 있다. 삶은 점점 더 편안하고 즐거울 것이다. 사람들은 원하는 물건이라면 뭐든지 가질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사기 위해 돈만 있으면 된다. 글로벌 자본주의와 시장의 성공 덕분에 더 많은 부가 창출되고,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계속 개선될 것이다.
이런 현대성의 마술은 화석연료 덕분에 가능해졌다. 전례 없이 에너지가 풍부해졌고, 우리가 당연시하는 대부분의 기술은 엄청난 탄소를 배출함으로써 유지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지구의 한계에 이르렀다. 지구인 모두가 이런 문명의 변화를 지지한 건 아니다. 그러나 현대문명은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었고, 최소한 다른 사람들이 가진 물건을 갈망하도록 했다. 인디아의 소농도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을 가졌다. 아주 외딴 마을의 주민도 서구식 티셔츠를 입고 코카콜라를 마신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오래 살수록 더 많이 소비해야 하며 지구에 더 큰 스트레스를 준다. 지구가 우리 욕망보다 먼저 고갈될 것이다. 지구 스스로 현대문명을 끝장낼 것이다. 현대의 막바지인 지금에 와서야 우리는 지난 몇 세기를 돌아보면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뒤늦게야 마지막 단계에서 우리 문명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됐다.
문명에 대한 짧은 학습의 결론은 분명하다. 앞선 모든 문명들과 마찬가지로 현대문명도 끝날 것이다. 언제 어떤 방식이 될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끄트머리에 서 있는 건 분명하다. 이는 다음의 핵심적 질문을 불러온다. 현대성 뒤에 진정으로 생태적이고 지속 가능한 문명이 올까? 인간은 현재의 문명이 막다른 지점에 이른 뒤 땅, 다른 생명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와 경제, 급진적으로 다른 삶의 방식을 발견함으로써 지구적 붕괴를 막고 문명을 재건할 수 있을까?
생태학에서 상호의존성을 배워야 한다
지난 지난 수십 년 간 우리는 생태과학 분야의 폭발적인 성장을 지켜봤다. 이제 생태적이라는단어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이 단어는 살아있는 세계가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지의 사실과 더불어 어떻게, 그리고 왜 이런 자연생태계를 보존해야 하는지의 가치를 모두 담고 있다. 우리의 존재자체가 생태계에 기반하기 때문에, 이 경우 사실과 가치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인간은 하나의 종으로서 생태계없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생태계는 매우 중요하고 가치가 크다. 따라서 생태계와 관련된 사실은 우리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다. 홈즈 롤스턴에 따르면, “어원상 ‘생태학(ecology)’이라는 말은 생명체들이 자신의 집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뜻하며, 이는 똑같이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 우리가 사는 세계)란 어원을 가진 ‘보편적(ecumenical)’이라는 말과 관련이 있다.”
생태학은 탹월한 상호의존성의 과학이다. 물론 이를 부정하면서 모든 과학이 보다 근본적인 법칙을 이용해 복잡한 상호작용을 설명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생태과학 역시 다른 과학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이는 과학적 성공이 생태계에서 유기체로, 유전자로, 다시 생화학, 화학, 마지막에는 가장 기초가 되는 물리학으로 이루어진 환원의 사다리를 내려가는 것으로 정의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예일대 삼림과학대학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는 특정 숲에서 전체 나뭇잎의 표면적을 계산한 뒤 나뭇잎들의 생화학적 처리능력의 총량을 이용해 그 숲의 진화를 설명하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생태계 연구는 이런 식으로 환원적이지 않다.
생태계는 부분의 합보다 크고 복잡한 창발적 실재이며, 그런 복잡하고 통합적인 전체의 견지에서 개별적 유기체가 이해돼야 한다. 높은 수준의 상호의존성 때문에 환원주의적인 설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 종의 번성은 다른 종들의 번식률과 영양 수요에 달려있으며, 식물과 동물 간의 균형은 양쪽이 생존하는데 필수적이다. 매우 큰 유기체와 아주 작은 유기체가 상호의존의 복잡한 춤에 참여한다. 정교하게 조정된 그들의 공생적 관계는 생존확률을 높이는 협동의 형식을 보여준다. 물론 다윈 식의 경쟁이 여전히 존재하며, 자연에 더 잘 적응한 유기체들이 경쟁자를 압도하고 더 많은 수의 자손들을 생식가능연령에 도달하게 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종 간의 협력이 그들의 생존과 생태계, 그리고 생태계를 이룬 다른 유기체들의 번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유기체들은 서로 외향적인 영향만 주고받는 게 아니라 내향적으로도 상대를 변형시킨다. 포유류나 썩은 나무의 배출물이 다른 종들의 먹이가 된다. 생태계 내부의 이런 풍부한 상호의존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안에 사는 생물들의 행동은 이해될 수 없다.
생태문명은 생태과학의 이런 통찰에 따라 만들어진 모델이다. 이것은 경제와 정치, 생산, 소비, 농업 등의 사회 시스템이 지구적 한계 안에서 재설계되는, 완전히 다른 미래를 향한 비전이다. 이러한 비전은 현대의 확장, 정복, 소비 정신의 죽음으로부터 나오며 계약, 협력, 육성 등의 정신에 기초하여 살아있는 지구와의 조화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말한다.
생태문명은 가장 중요한 사고 실험이다
생태문명이 기존 다른 문명들과 가장 뚜렷하게 구분되는 점은 자연세계와의 관계이다. 다른 문명 형태들의 가장 큰 특징이 인간을 위한 자연의 조작인 것과 달리, 생태문명은 사람뿐 아니라 자연의 웰빙도 고려하면서 자연환경을 지속 가능하고 공생적인 방법으로 변형시킨다. 이는 원초적인 자연의 순수성으로의 회귀와 같은 낭만적 이상이 아니며, 어쨌든 문명의 한 형식이다. 생태문명은 단순히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번영을 위해 사람들끼리도 서로 평화롭게 살아가자는 것까지 포함한다.
19세기까지는 다른 모든 문명을 정복하고 제거할 수 있는 하나의 문명, 즉 글로벌 문명이 존재하지 않았다. 문명이 지역적 형태를 띨 때는 하나가 사라져도 다른 것들은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었기에 그 위험성은 낮았다. 오늘날 지구는 최초로 과학, 기술, 국가, 전지구적 소비자들에 기반한 현대문명이라는 하나의 글로벌 문명이 지배하고 있다. 과거 다른 문명들이 그랬듯이 이 단일 문명이 사라진다면, 그 결과는 엄청날 것이다. 미국정부는 몇몇 은행이 “파산하기에는 너무 크다”고 믿을지 모르지만, 이 글로벌 문명이 휘청거릴 경우 우리를 구제할 수 있는 힘은 없다. 인류 역사에서 50번째 혹은 100번째로 다시 한번 문명변화의 율동적인 순환과정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 첫 번째 북소리가 지금 들린다.
다음문명, 즉 사회조직의 다음 패턴은, 만약 그것이 존재한다면 생태문명이 될 것이다. 여기서 “생태적”이라는 말은 유토피아적 꿈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며, 최소 한도로 우리의 현재 문명 뒤에 올 어떤 것을 뜻할 뿐이다. 어쩌면 다른 문명이 없을 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나무에서 살거나 모두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문명이 끝난 뒤에도 어떤 종류의 안정된 사회가 지속된다면, 그 사회는 지속가능한 문명이 돼야 한다. 즉 현대문명이 지금 초래하는 종류의 파괴적 손상을 피하거나 되돌릴 수 있을 만큼 환경과 충분히 조화를 이뤄야 한다.
제레미 렌트에 따르면, “생태문명의 배후에 있는 중요한 생각은 대다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사회가 훨씬 더 깊은 수준에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재생 에너지에 투자하고 고기를 덜 먹고 전기 자동차를 운전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전지구적인 사회적, 경제적 조직의 내재적인 틀이 바뀌어야 한다.” 현대성이 (아마 말 그대로) 스스로를 소진시키고 그 계승자가 등장할 때, 과연 어떤 종류의 문명-어떤 종류의 세계관과 생명관–이 부상할 지 생각해보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고 실험이다. 생태과학은 우리가 발전시켜야 하는 문명의 종류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우리는 현대의 고통스러운 실수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일으키고, 과소비 및 자원의 과도한 사용을 초래하고, 공공선보다 개인의 이익을 위한 사회구조를 형성했으며,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에너지원에 의존하도록 만든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결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웠을까? 우리의 생태문명은 어떤 모습일까?
중국 공산당 정부는 권위주의 체제답게, 전통적으로 치안을 비롯한 사회안전관리를 각별히 중시한다. 향촌진흥 정책을 국가의 안전관리 관점에서 해석하고, 제도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책 건의를 하는 것은, 효율적이고 좋은 시도로 볼 수 있다. 특히, 도시화, 공업화, 금융화 등이 야기한 다양한 생산 과잉 문제, 특히 화폐를 비롯한 재화의 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농촌을 활용하고 농민에게 이익을 돌릴 수 있게 하는 새로운 금융정책 제안은, 불평등 문제를 함께 해소할 수 있기 때문에, 일거 양득인 동시에, 사회안전관리를 위한, 근본적인 문제해결책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서 가장 큰 난제는, bottom-up 방식의 개혁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농민의 자주적 조직, 즉, 협동조합과 같은 마을집체경제조직의 활성화와 대표성 강화이다. 그런데, 요는 농촌 엘리트와 청년들이 빠져나간 농촌에서 이런 조직을 농민 스스로 만들어 내리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상당한 규모를 만들어낸 유사한 성공 사례는 아직도 너무 부족하다. 결국,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NGO, 원농민, 신농민 등의 협치가 필수 불가결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중국정부의 사회 안전관리의 다른 측면을 생각하면, 우려가 생기기도 한다. 이는, 즉, 감시와 통제 정책인데, 저비용의 기술발전에 힘입어, 중국 정부는 도시뿐 아니라 농촌에서도 사상의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 겪은 일인데, 역자가 즐겨 찾는 도시 근교의 생태농장이 한 곳 있다. 이곳에 가면 하루, 이틀 머물다가 오기도 하는데, 최근, 친구인 농장주가 “차대접을 받았다”고 하면서, 농장에 외부인이 머무는 것에 예전보다 신경을 더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중국식 완곡어법인데, 경찰이나 공안정보기관(国保)에 호출 당해서 조사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유인즉슨, 농장에 자원봉사자로 와있던 한 예술가가, 정부를 비판하는 짤막한 글을 인터넷에 올린 것이 적발되어, 이 예술가뿐 아니라, 농장주와 직원까지 관리책임을 물어, 조사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이 논문이나, 앞서 번역된 일련의 논문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향촌진흥 정책 실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현지 농민조직의 결성이고, 향촌의 생태와 문화자원을 활용한 산업 융합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자원을 활용하고 상품화시킨다거나, 금융수단이나 시장,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농민조직이 만들어지려면, 상당한 지적 자본을 가진 도시 출신 인사들의 참여가 필수불가결하다. 그런데 이런 인사들의 경우, 정치적으로 좌우 이념에 상관없이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갖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실제 정책의 실행과정에서, 현장에서 이와 유사한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낮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경제틀을 전환하기 위해, 기층민중의 사회의식, 정치의식을 제고하거나, 질문하는 태도가 필수인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을 육성해야하는 과제가 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이러한 의식과 사상을 통제해야 하는 딜레머는 중국 사회의 향후 발전 경로에 있어,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저자: 董筱丹 동샤오단 马黎 마리 杨璐璐양루루 温铁军 원톄쥔
시진핑 주석은 2014년 4월15일 국가안전위원회 제1차회의석상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국가안전에 관한 형세변화의 새로운 특징, 새로운 경향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고, 반드시 총체적 국가안전관을 견지해야 하며, 중국의 특수한 국가안전 시스템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본고를 통해, 시진핑의 종합적 국가안전관을 지도사상으로 삼아, 국가안전과 근대화 과정에서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의 비용전가간의 상관성을 분석하고, 중앙정부, 지방정부와 농촌기층, 삼자간의 관계를 연구하고, 이러한 기초위에 적용가능한 정책을 건의하고자 한다.
이마뉴엘 월러스타인의 ‘세계체제론’은 전체 세계체제가 기본 분석의 배경이 되는 관점을 수립할 것을 강조한다. 이 체제내에서 소수의 국가가 핵심국을 이루고, 다수의 국가는 부속국가가 된다. 핵심국가가 점유하는 전세계의 제도수익의 한축은 전지구자본화의 거대한 비용을 핵심국가에서 주변국가로 전가함으로써 거두는 것이다. 이는 개발도상국이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리스크의 주요한 원인이 된다.
2008년 금융위기 발생이후, 금융화가 내포하는 불평등 기제는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으며, 금융의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따라 전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이 여전히 서방국가의 식민화 시기에 형성된 단일한 경제체제와 제도의 언어속에 사는 가운데, 전지구적 위기하에 선진국들은 정상시장교역의 틀안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무리없이 비용을 전가하고 있으며, 이의 주요한 채널은, 개발도상국의 주요수출품 가격하락이 가져오는 심각한 경제침체와 재정적자, 그리고 식량 등 필수품가격의 대폭 상승, 인플레이션의 심화, 개발도상국 정부수반의 정치적 지위에 대한 위협 및 강제 퇴임요구 등이다. 이집트, 리비아,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의 국가가 좋은 예가 된다. 그러나 ‘시장경제’는 가치측면에서는 여전히 ‘정치적 해답’으로 여겨지고, 도구적 측면으로는, 조직과 제도혁신을 통해 어려움에 대처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 비전통적 안전영역에서의 도전이 개발도상국의 주요 리스크가 된다.
국제 통화로써의 미국 달러의 가치는 석유와 같은 자원의 결제 통화 지위를 통해 유지된다. <출처 원문>
구체적으로 중국에 대한 영향을 살펴보자: 2008년 금융위기는, 2009년 전세계 경제위기를 불러왔고, 중국도 크게 영향을 받아, 수출량이 급락했다. 그후, 미국, 유럽연합, 일본의 양적완화정책 영향하에서, 중국은 한쪽으로는 원재료 수입 가격의 대폭 상승, 다른 한편으로는 수출의 위축으로, 실물경제 측면에서 엄청난 불경기에 직면했다. 2013년 이후로는 ‘뉴노멀’로 진입하여, 양적완화에 따른 외국의 저금리 자금이 중국으로 유입됐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인민폐를 대량으로 발행해야 했는데, 결국 금융버블이 발생하게 된다. 2015년 증권시장에 위기가 닥치고, 최근에는 미달러의 금리상승과 미중무역전쟁때문에, 대량의 자금이 중국을 이탈함에 따라서, 자본시장의 불안정과 실물경제의 위축을 가져오고 있다.
(2) 개발도상국 현대화 과정에 잠재한 내생적 리스크의 끊임없는 현실화, 국가-사회대립과 갈등 심화, 중국의 경우‘중앙-지방-기층간의 ‘삼원패러독스’ 현상이 나타나다
2차대전후 식민지상태를 벗어나 독립한 개발도상국가들은 보편적으로 산업화 목표를 추구하게 되지만, 리스크 대응능력은 상대적으로 심각하게 부족하다. 울리히 벡과 앤서니 기든스는 공업사회와 현대사회의 시스템내에 잠재한 대량의 리스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인지하고 있다. “각종 부정적 결과는 산업화, 기술발전, 경제발전 과정의 극단화에 따라서, 끊임없이 생성된다.”
국가 거버넌스 측면에서 보게 되면, 현대리스크사회는 국가기구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키고, 끊임없이 사회 거버넌스의 비용을 상승시킨다. 이를테면, 가장 현대화한 국가인 미국은 ‘감옥국가’로 불리곤 하는데, 800만명 이상의 미국인이 국가의 통제를 받고, 죄수들이 계속 증가하며, 전세계 여성수인 (성년과 미성년 모두 포함)의 3분의 1이 미국에 있으며, 10명의 아동중 한명은 부모중 최소한 한명이 재소자로 복역중이다. 2008년 월스트리트 금융위기가 촉발한 유럽채권위기및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국가의 정치위기와 시위사태는, 금융경제의 버블 붕괴뿐 아니라, 서구사회식 현대 정치체제가 요구하는 고비용이 누적되어 국가 부채를 증가시키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중국은 ‘개발도상국인 동시에, 각종 불평등과 격차가 존재하고’ 따라서 상당한 갈등을 내포한 국가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 리스크의 도전에 대응하는 동시에 산업화가 심화시키는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며, 국제와 국내, 전통산업부문과 현대금융부문, 전통적인 위험과 비전통적인 위험 등 여러 방면의 안전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국제와 국내, 중앙과 지방, 도시와 농촌, 단체와 개인등 다양한 차원의 관계가 이러한 문제의 복잡성을 심화한다.
과도한 금융화와 그 글로벌라이제이션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모두 지는 게임 <출처 원문>
금융이 주도역량이 되는 상황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기층사회 사이에 출현하는 새로운 ‘삼원三元패러독스’는 금융 글로벌라이제이션조건하의 국가 리스크를 더 심화시킨다. 구체적으로는:
중앙정부가 국가안전관리의 최종책임을 져야 하지만, 중앙정부가 국가종합안전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능케 하는 생태문명건설로 국가전략을 전환하는 가운데, 이익집단과 지방정부의 방해로 실행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특히, 국가의 정치권력이 실물경제와 산업으로부터 이탈하게 된다. 즉, 국제적으로 연결된 금융자본이 주요 모순을 주도하는 국면이 벌어진다.
갈수록 기업화하는 지방정부는 지속적으로 GDP성과에 목을 매고 친자본적인 개발주의 방식으로 운용이 되어, 현실감각 없이, 즉 수익과 비용에 대한 충분한 고려없이, 자본을 유치하고, 도시화를 추구하며, 토지의 대규모 수용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도시와 농촌의 기층에서 많은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뿐 아니라, 심각한 재정적자를 낳게 된다. 지방정부 채권을 발행하면서, 금융시스템으로 문제를 전가하지만, 결과적으로 금융리스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동시에 대규모 식량안전 문제와 생태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낳게 된다.
기층사회는 식품안전, 금융불안정, 환경파괴 문제를 겪게 되고, 이때 중앙정부는 전체국민의 안전에 대한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이익집단이 이를 방해하고, 과도하게 분산된 생산경영주체와 소비자간의 거래 원가가 과도하게 높아지는 문제때문에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기 어렵게 된다.
역사를 비교해 볼 때, 근대사회가 추구하는 공업화가 시작된 이래, 중국은 농촌에서 약취한 잉여를 통해 시초자본을 축적하면서, 중앙-지방-기층 삼자가 동시에 만족할만한 충분한 이익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를 ‘삼원三元패러독스’라고 한다. 오늘날, 중국은 이미 공업화 중기 단계에 진입하였으나 ‘삼원패러독스’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새로운 환경에서 더욱 복잡한 관계로 착종되고 있다. 21세기에 진입하면서, 중국 경제성장의 주요한 드라이버는 공업에서 도시화에 수반한 산업과 금융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동시에 금융은 실물에서 이탈하여 거품을 키우고 있는데, ‘삼원패러독스’가 심화되고, 동시에 리스크가 누적됨에 따라, 회색코뿔소와 블랙스완 사이에서 ‘민스키 모멘트’가 다가올 확률, 빈도와 그 예상되는 파국의 크기가 증가하고 있다.
2. 국가의 종합안전체계 수립을 위한 전략적 사고
중국이 갈수록 위험사회로 변모함에 따라서, 종합적 안전관리에 대한 도전도 날로 거세진다. ‘삼원패러독스’에 어찌 대응할 것인가도 갈수록 긴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본고는 다음 두가지의 전략적 사고를 제안한다.
(1) 국가의 종합안전전략체계수립에 있어 그 중점을 향촌에 둔다.
현재 중국이 첩첩이 직면한 내외적 중대 도전 과제에 있어, 국가의 종합안전관리를 보장하기 위한 중대 기초는 여전히 농촌에 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각 민족국가들이 참여하는 전지구적 금융경쟁 와중에, 하나의 중요한 대결지점이 되는 금융의 영역이다. 금융에 대한 통제권은 주권국가의 기본 도구이다. 국가정권이 신용체계에 대하여 권한을 부여 받고 신용을 확장함으로써, (성장을 통해) 국내경제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이는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수단이다. 그러나 화폐를 발행하는 것은 국내자산의 화폐화 정도를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실물산업이 필요로 하는 자원과 요소원가를 높이게 될 가능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해당 국가가 글로벌 시장에서 가진 원가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투자가 외부로 향하고, 국내 산업 공동화가 진행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핵심국가가 화폐를 발행하여 전세계로 비용을 전가하는 와중에 그 밖의 국가들은 피해를 입게 되고, 한편으로는 스스로, 국제금융경쟁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에 있어서도 이런 식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중국은 농촌을 이용해서 화폐 발행 때문에 높아진 전체적 제도원가를 낮출 수 있다.
국가간 사례를 비교해보면, 중국은 ‘개발함정’에 빠지지 않은 세계적으로 소수에 해당하는 개발도상국가이다.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신중국 건국후 70년의 과정을 거치며, 중국은 역대 수차례 위기가 발생할 때마 ‘연착륙’이 가능했는데, 이때마다 농촌을 적절히 활용했다. 토지개혁과 농촌의 조직화 건설이라는 방법을 사용했다. 토지 개혁은 농촌내부의 계급착취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해줬고, 사람과 자연이 공생하는 생태문명을 핵심정신으로 삼는 농촌의 개혁은, 외부 리스크를 내부화하여 흡수 대응하는 능력을 키우고, 국가의 농촌 기층에 대한 동원능력을 제고했다. 그리하여, 자본에 동기화하여 리스크가 심화하는 도시와 차별화를 이뤄왔다. 그러므로, 향촌은 자신이 가진 자연 자원과 소농이 가진 노동력을 원가를 고려하지 않고 투입할 수 있다. 외부로 자신이 생산한 식량을 보내는 등, 대량의 물자와 대량의 잉여를 유출할뿐 아니라, ‘(충격을 흡수하는) 스폰지 시스템’의 특징도 갖는다. 이런 식으로 대량의 리스크 – 즉, 과다발행된 화폐를 흡수하고 인플레이션도 어느 정도 안정시킬 수 있다. 도시에서 과잉 생산한 공업제품을 소비해 줄 수도 있다. 또, 수천만명에 달하는 도시의 대량 실업인구를 직접 흡수해서, 사회불안 요인을 감소시킬 수 있다. 신중국70년의 역사과정에서, 농촌은 국가 차원에서 이와 같이 화폐, 자산, 노동력 pool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농민은 도시로 건너가 농민공으로서 값싼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중국의 산업과 도시를 건설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해왔다. <출처 원문>
현재, 향촌은 다시 한번 과잉 발행된 화폐를 흡수하는 화폐 pool의 역할을 맡을 수 있다 (1950년대초 악성인플레이션에 대응을 해줬던 것이 첫번째 사례이다) . 신시대중국의 발전 결과로 생성된 부족, 불평등의 모순은 향촌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구체적으로 따지자면, 향촌은 화폐화 정도와 시장의 발전이 불충분하다. 자원성 자산의 가격도 제대로 매겨져 있지 않다.
농촌의 자원, 토지, 생산제품, 상업적 서비스등의 가격이 도시보다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어 있다. 만일 국가의 화폐발행이 합리적인 방식으로 농촌으로 향할 수 있다면, 금융도구의 장점을 잘 살려, 농민이 화폐 발행의 이점을 누리게 하고, 동시에 원가 상승하는 것을 억제할 뿐 아니라, 오히려 낮출 수도 있다.
<<국가향촌진흥전략계획(2018-2022년)>>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소강사회와 사회주의 현대화강국의 전면 건설에 있어, 가장 큰 난관도 가장 중요한 임무도 농촌에 있다. 가장 폭넓고, 가장 깊은 기초가 농촌에 있다. 가장 큰 잠재력과 가장 큰 사후영향력도 농촌에 있다.
(2) ‘중앙정부’와 ‘마을’이 협력하여 경제를 살린다
이론적으로 살피면, 중국 근대화과정에서 객관적으로 나타나는 양대 ‘비교우위’는 ‘강력한 중앙 정부’과 ‘마을 조직’이다. ‘정부’는 기본민생영역에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이용한 적극적인 거버넌스 작용으로 사회의 공평과 정의를 촉진한다. 동시에 지방 정부의 지나친 기업화를 단속한다. 지방채의 재융자(refinancing)를 통해서 금융제도를 혁신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신용의 차별화를 실현한다. 결과적으로 지방정부의 ‘친자본’ 성향을 ‘친민생’과 ‘생태문명’등의 방향으로 전환한다. 이를 통해, 지방의 다원화 거버넌스 혁신과 전환구조의 업그레이드를 실현한다. 즉 ‘마을조직’은 ‘생태문명’이라는 시대정신하에 국가신용을 이용한 역사적 부흥 기회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소농의 기본적 생계와,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객관적인 요구를 견지할 수 있다.
정책설계를 함에 있어, 향토중국의 기초 건설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현縣급 지역경제전략하에서 국가의 신용 투자를 ‘읍면화’ (townizaiton, ‘도시화’에 대비하여, 농촌의 읍과 면단위를 발전시키는 중국의 국가 발전 전략을 의미한다.) 진행 과정의 ‘무위험자산’으로 삼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중소기업이 읍면지역에 둥지를 틀게할 수 있다. 그러면, 외지로 나간 농민들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취업을 할 수 있다. 농업의 1, 2, 3차산업의 융합과 생태농업, 친환경 자원절약형 농업의 발전을 통해 사회자원에 대한 통합적 개발을 진행하고, 다기능, 다원화된 사회자본으로의 전환을 촉진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 새로운 ‘외부 리스크의 내부화 처리’의 연착륙 기제를 수립한다. ‘대중창업과 만인혁신’을 격려함으로써 농촌조직혁신과 제도혁신의 정책을 지지하고 확립한다.
거버넌스 구조상, 정치, 경제, 사회 삼자결합의 기초건설을 통해 기층거버넌스 구조를 조정한다. 현향촌縣鄉村의 삼단 계층 각각 종합거버넌스의 건설체계 수립을 위해 노력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외부자원을 사용할 수 있도록 ‘bottom-up’으로 농민과 농촌의 조직화 수준을 높이고, 동시에 문화교육, 사회연계, 윤리적 통합등 다양한 사회문화영역의 메커니즘 혁신을 통하여, 내부집체행동능력을 배양하고, 프로젝트 자원분배과정에 발생할 수 있는 ‘향촌 엘리트층의 자원 농단’을 약화시키고, 농민협력조직의 ‘약자중심성과 구빈역량’을 높인다. 정부공공자원이 공공성을 실현하도록 하고, 보편 복지 효과를 성취하게 한다.
3. 정책건의: 조직혁신과제도혁신을통해서, 향촌5대진흥 (산업, 인재, 문화, 생태, 조직)을촉진하고, 지방경제의전환을도모한다.
소농경제가 장기적으로 유지되는 기본적인 상황하에서, 중앙에서 투입하는 신용에 의한 레버리지를 통해 ‘삼원패러독스’를 해결해야 한다. 농촌집체경제조직으로서 향촌이 정부 및 외부공상업자본을 상대하고 거래하는 주체가 되게함으로써, 향촌대외거래의 통합성을 강화한다. 향촌자원의 3차산업화와 통합적개발을 촉진하여, 지방경제의 전환을 가져 온다.
농기계를 사용하는 중국 농촌의 모습 <출처 원문>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상층부 설계를 강화한다. ‘상하의 결합’을 촉진하고, 지방정부의 업무패턴을 바꿔야 한다. 농민의 주체적 지위를 제고하고 육성해야 한다. ‘농촌이 도시에 대해 우위를 점하는’ 성공의 경험과 사례를 많이 알려야 한다. 정부와 농촌이 상대하는 직접 채널 (농민이 기업을 통해서 정부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을 만들 필요가 있다. 중앙과 지방은 재정과 금융의 레버리지를 강화하여 농민과 기층을 지원해야 한다. 집체경제조직이 금융도매업무를 맡을 수 있는 기본단위가 돼야 한다.
둘째, 외부경영주체와 농민의 분산거래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향촌발전 잠재력의 가장 큰 부분은 향촌의 자연과 인문자원을 활용하는 1, 2, 3차 산업융합에 있다. 이러한 자원의 통합성과 불가분성 때문에, 향촌의 농촌집체경제조직이 대표가 되어, 마을의 통합적 자산에 대해서 전체자원의 가격을 결정하고 외부의 상공업자본과 대등하게 담판을 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한다. 상공업 자본이 향촌으로 찾아와, 통합 자원이 아닌 단일 자원에 대한 거래를 개별 농가와 진행할 때, 왕왕 향촌자원이 수탈당거나, 혹은 헐값에 넘겨져서 개발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셋째, 마을내부에서, 농촌집체경제조직이 주가 되어 거버넌스와 발전의 기초틀을 만들게 한다. 소농경제가 장기적으로 존재하는 기본적인 국가의 상황하에서, 필수적으로 집체경제조직이 교량이 되어 소농과 현대농업의 접점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향촌내부의 자원통합과 마을조직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마을조직의 내부자원과 요소의 내부 일차 시장을 육성하여 집체경제의 기초를 강화한다. 이를 위해서, 중앙과 지방 정부로부터의 재정투입이 각각 레버리지가 되도록 해야 하고, 농민은 수중의 자원에 대한 일차가격 결정권을 집체에 넘겨서 통일적으로 경영하게 함으로써 마을조직집체의 대외가격협상능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집체와 농가사이의 상호작용관계와 이익관계를 강화할 수도 있다. 집체의 농가에 대한 협상지위도 높여서, 마을조직 내부의 비공식적인 제도와 질서를 내부화하여 활용하고, 마을조직 사무를 저비용으로 처리하는 이점을 살릴 수도 있고, 마을조직의 거버넌스도 개선한다. 사회조직과 문화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농촌의 저비용 거버넌스 경험을 발굴 소개한다.
넷째, 현縣급에서 향鄉을 단위로 해서 자본시장의 조작 메커니즘을 도입해서, 향촌이 직접 융자 플랫폼을 건립함으로써, 향촌개발의 융자원가를 낮추고, 사회자금을 흡수하고, 경제거품의 리스크를 낮춘다. ‘탈산업화’의 거대 경제 국면하에서, 지방정부는 한편으로 지속적으로 자본을 유인하고, 이러한 자본을 활용하여 지역사업을 진흥할 것을 희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동산개발을 위주로 하는 ‘읍면화’와 금융화를 추진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결국, 사회의 잉여가 금융업과 부동산개발에 의해 점유되고,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토지와 노동력 원가가 상승하는, 악성순환에 들어가는 결과를 초래한다. 향촌경제 내부에 직접 자본시장을 수립하여, 지방이 실물산업을 지지할 수 있는 자본시장과 금융시스템육성을 촉진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금융이 ‘실물을 벗어난 거품경제’로 변화하는 추세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상기와 같은 네가지 시책은, 간단히 다음과 같이 귀납된다:
“중앙정부의 신용이 레버리지가 되게 하고, 지방정부의 자본으로 플랫폼을 만들고, 기층의 집체조직이 통합을 수행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다양한 산업이 융합돼 개발되게 한다”. 이는 마을집체경제조직이 중심이 되는 ‘3급시장’(http://thetomorrow.kr/archives/9643)으로 귀결된다.
벼를 수확하는 중국농민들 <출처 원문>
이러한 제도설계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상호 지도하도록 격려함으로써, 80년대이래 각지역 향촌에서 시행되어온 실천을 혁신하도록 한다. 중앙정부는 신용을 확장하고, 지방경제는 업그레이드되고, 농촌과 도시가 새로운 융합을 추진하고, 향촌을 전면적으로 진흥하는 등, 다방면의 내재된 요구를 종합적으로 실현한다., ‘중앙의 하향’과 ‘지방의 하향’이 유기적인 협력하에 이루어지고, ‘중앙-지방-기층’간의 ‘삼원패러독스’를 약화시키고, 국가종합안전관리의 향토 기초를 다져서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에 의거한, 문제 대응능력과 현실개입능력이 강화된, 국가종합안전전략 시스템을 만들어 나간다.
한국 자본주의가 당면한 문제는 중소제조기업 환경을 둘러싼 체질개선, 구조조정이라고 단언한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그 자본의 성격에서 참으로 다국적적이다. 주요 대기업의 50~60%의 주식이 외국자본의 소유이며 특히 간판기업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KT 등 한국의 대기업은 주주이익실현에 열심이고 외국투자자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생산성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하이닉스의 1인당 매출액이 8억 정도인 것을 필두로 전자, 화학, 자동차, 제약, 화장품 등의 기업들이 여느 세계적 기업들과 견주어 뒤지지 않는다. 반면, 중소제조기업은 순수한 국내자본이면서 우리나라 고용을 떠받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이 낮으며, 그에 따라 임금수준도 낮다. 우리나라 전체 자본주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며 전통적으로 정부 등으로부터의 지원에서도 사각지대에 있어 왔고 스스로는 취약한 상태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고용인원 50명 미만, 매출 50억 미만의 소규모 제조업은 현재 최저임금, 노동시간 문제와 함께 생사의 갈림길에 있고, 매출 500억 미만 업체들도 업종과 기술지원, 하청관계의 혁신적인 변화 없이는 획기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다.
우리 기층 대중의 문제가 바로 우리의 중소제조업의 갈 길과 결을 같이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정부의 산업정책, 더욱이 중소기업 정책에서 생산성의 문제, 노동인력의 개발문제 등은 등한시되고 있다. 이제부터 중소제조업의 구조조정, 생산적인 변신의 필요성을 살펴보고 그 방도를 찾아보도록 한다.
1. 한국 자본주의가 당면한 문제 – 중소제조업의 구조조정
한국 자본주의의 현재 상황의 간단히 정리해 보면 크게 다음의 두 가지로 축약할 수 있다.
1) 선진자본주의 사회로 진입, 산업화, 산업혁명을 완수하려는 단계
2) 동시대적인 요구로 기술 트랜드, Industry 4.0을 맞이한 상황
첫째, 한국 자본주의는 산업화를 통해, 자본주의 제조업 국가로 확고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경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성장을 이룩했고 그래서 우리나라는 인구 5000만 이상의 나라로서는 유사이래 7번째 산업혁명을 이룬 나라가 되었다. 1750년대 영국을 필두로, 1840~50년대 미국과 프랑스, 1890년대 독일, 1900년대 이태리와 일본이 이룬 대업을 우리가 이루어낸 것이다. 러시아가 탈락하고, 스페인과 브라질이 이루지 못한 길을 우리가 지난 50년(특히 87년 이후 최근 30년)에 걸쳐서 달성한 것이다. 단지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사회 등 전체 사회시스템이 자본주의화 한 것이다. 스페인과 남부이탈리아의 경우, 소득수준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실상은 완전히 농업국가, 지주 중심의 봉건적 요소들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한 국가들이며 아일랜드 같은 나라는 산업이라고는 없고 단지 농업, 관광에 얹어서 외부로부터 심어진 금융업으로는 그 나라의 미래가 안전하다고 할 수 없으며 정치세력을 보면 자본주의적이지 않다. 이들 나라는 모두 산업혁명을 겪지 않은 나라들이다.
우리나라는 부가가치 대비 제조업 비중에서 세계 최고인 30%대를 달리는 유일한 나라이며 활동인구 대비 비중에서는 인구 5천만 넘는 나라들 중에서 세계 1위 (혹은 대만 – 인구 2천4백만 – 에 이어 두 번째)이며 독일과 일본이 뒤이어 20%대에 남아있는 나라들이다. (참고로 인구가 적어도 산업혁명을 겪었다고 할 수 있는 나라로는 네덜란드를 필두로 덴마크, 스웨덴, 스위스, 오스트리아, 캐나다, 호주, 이스라엘 정도가 전부이다.)
두 번째는 우리나라 자본주의도 세계의 선진 제조업이 닥친 Industry 4.0의 쓰나미를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현대자동차는 새로 출시한 모델의 신차에 자율주행 Level 2.0을 도입하였다. 그리고 21년에는 4.0을 도입할 예정이다. 2.0은 시스템이 감가속과 조향을 담당하는 부분자율주행이고 4.0은 비상시를 제외하고는 운전자의 개입이 필요치 않는 고등자율주행이다. 이러한 자율주행이 생산제조현장에 도입되는 것이 스마트공장, Industry 4.0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제조현장은 일반적인 자동화, Industry 2.0 수준, Taylorism 수준을 채 넘어서지도 못하고 있다. 대기업조차 생산현장에서 발생하는 Data들을 충분히 모으지도 못하고, 모아도 사용할 엄두를 못하고 있다. 하지만 변화의 움직임은 아래로부터 빨라져서 매출 50억 미만 업체에서조차 단순인력을 현장에서 몰아내는 자동화의 욕구는 엄청나고 300억 업체 정도에서는 공정개선과 생산관리능력에 대해서 관제와 AI를 이용하여 품질데이터 분석을 하겠다는 요구들이 솟구쳐 올라오고 있다.
자동화, 관리, 관제, 분석(AI), 제어 ; 스마트 공장의 요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다. 자동차에서 전기전자장치 부품(전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재 40%이나 이는 5년 10년 후면 80%선을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제조업의 현장, 공장도 전자화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최후발 자본주의 국가로 치고 나가는 상황에서 스마트공장, Industry 4.0은 도전이자 기회이다. Catch-up 방법이 Open Source로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공장이 일반화되고 혹은 되려면 노동력의 재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미숙련 중심에서 숙련중심으로 바뀌는데, 3가지 영역, 즉 제품설계 직종, 생산관리 등 관리직종, 설비 등 유지보수와 보안직종 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현재 10명 이상 고용 67000개, 218만(2016년 중기부 통계)을 고용하는 중소제조업이 개수로는 1/3이하로 줄고 규모로는 100억 매출의 중소기업과 1000억 매출의 중견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업종도 단순가공, 단일공정 중심의 하청구조에서 자기부품, 자기기술에 의한 중간부품 생산체계, 나아가서 금형, 기계제작, 자동화 설비, 장비 제작 등 고부가 제품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체계로 이어져야 한다.
미국의 제조업 비중은 10%수준이며 영국은 7%에 못 미친다. 역사 속에서 보듯이 자본주의는 보다 손쉬운 방법으로 자본증식을 하는 것을 무조건 선호한다. 영국 자본주의가 혁신을 피해 식민지경영에 몰두할 때 미국과 독일이 그를 추월하였지만, 제조업을 피해서 경쟁력을 상실하여 국가적으로는 몰락할 때 몰락하더라도 개별 자본은 본능적으로 최대한 위험을 회피하려고 한다. 실로 제조업은 다른 어떤 분야의 산업보다 (증권화하기 전에는) 투자와 수익창출까지 오래 걸리고 특히 불황에 대해서 아주 취약하다. 뿐만 아니라 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혁신을 고안해야 한다는 점에서 랜덤요소가 너무 커서 자본가 입장에서는 피곤도가 제일 높다. 그리고 자본의 규모가 커서 독과점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라면 확률적 고려, 분산을 통한 위험회피도 쉽지 않다. 그래서 자본은 생산현장을 피하고 싶어하고, 간접화, 증권화로 한사코 멀어지려고 한다. 유통과 서비스업이나 금융업으로 제조업을 지배하려고들 한다. 하지만 추적자 입장은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제조업에 투입된 자본은 시장이 확대되어 브레이크 이븐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발생하는 폭발적 이윤의 발생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 순간이 제조업에 투자된 자본이 여타 상업, 유통, 금융업에 투입된 자본을 압도하는 지점이 된다. 창업과 약진, 항상 새로운 도전의 의미에서, 제조업은 최고로 창조적인 첨단의 시스템으로 무장하여야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제조업에서의 압도적 우위는 최종적으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의 우위로 연결되는 것이다. (독일이 Industry 4.0에 국가적 명운을 거는 것도 그 이유에서 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제조산업은 산업혁명을 완수해야 하고, 특히 Industry 4.0 시대에 스마트공장을 적용하여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한다. 일시적인 국산화 주장에 편성한 것이 아니라 소재, 부품, 장비와 나아가서 기계설계, 공정설계, 제작이 실제로 가능하려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대기업의 1인당 매출액 평균은 3.5~4.0억원인데 반해 1차기업(중견기업) 2.5억 정도이다. 대략 70%수준이다. 반면 2차, 3차기업(매출 50억미만)의 매출 1억 정도이다. 이것이 최저임금, 52시간 문제에서 중소기업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의 기저이다. 해결방법은 최종하청기업인 2차 기업 수준에서 2.5억 정도로 업그레이드 되도록 변화하는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단순한 매출상승 문제가 아니다. 규모와 업종, 노동력 모두가 걸려 있는 문제이다. (즉 구조조정의 방향은 규모조정, 업종조정, 노동인력조정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중소제조기업이 직면한 문제 중에는 생산성의 향상 뿐아니라 하청구조의 개선, 기술의 확보, 자동화 로봇화 등이며 이의 해결 방안으로 집단화/협업 방안과 업종의 전환 혹은 고도화 (소재부품, 장비와 설비, 제품설계/공정설계/디자인 능력, 바이오화학, 전산, 산업공학 등의 문제)를 이루어야 한다. 노동자 집단은 이 과정에서 교육/재교육을 통해서 숙련화를 달성하고 노동시간단축,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이루어야 한다.
2. 구조조정은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가, 누가 추동하는가
이제 근본적인 질문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구조조정은 왜 이제까지는 진척이 거의 없었는가? 우리나라 대기업은 한국 자본주의의 고도화를 원할까? 심지어 중소제조업의 구조조정을 통해서 노동자들은 소득상승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의 대기업은 외국자본의 지분이 과반이 넘는 상황에서 이들의 이익실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그리고 충분히 성과를 내고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들이다. 이들 입장에서는 현재 GDP 1인당 3만에서도 잘 벌어 주고 있는데 굳이 4만, 5만불로 한국의 국민소득이 오른다고 해서 더 많은 이윤을 가져갈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스라엘의 경우를 보면, 이 나라의 개별기업들은 미국이나 독일을 빰칠 정도로 세계 최고도의 기술을 가진 초호화판 첨단회사들이 수두룩하다. 나스닥 상장기업이 세계 3번째로 많은 등, 기업들의 기술수준으로만 따지자면 국민소득이 7~8만불은 당연할 듯하지만 이스라엘의 1인당 GDP는 우리나라보다 조금 나은 4만 불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PPP는 우리나라보다 못한 3만 불대에 머물러 있다. 물론 이스라엘의 인구는 8백만 밖에 되지 않고 내수(노동자의 소비)로 자본주의 발전이 좌우될 상황은 절대 아니다. 노동자의 임금수준을 결정짓는 요소 중 인당 생산하는 부가가치, 매출액, 생산성이 모두 중요하지만 이들은 가능성이고 필연은 노동시장이다. 이스라엘은 규모가 작은 경제이며 노동시장을 적극적으로 자본이 조절하고 있다.
임금을 낮추기 위한 자본주의의 노력, 사회적 생활비용과 임금의 요구수준이 올라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는 노력은 사실 쉽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알고보면 실로 눈물겹다. 예전 이명박/강만수 시절의 인위적인 환율조절도 우리나라 대기업 대 중견기업 대 중소기업 임금 비율을 현재의 100 대 70 대 30으로 만든 극적인 장치 중의 하나였다. 이런 억지는 이제 그만 두어야 하고 막아야 한다. 심지어 자본의 입장에서조차 이런 방식으로 우리나라 자본주의 유지되기에는 위험하고 그로인한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30/100(동일한 산업내의 최고임금 대비 최저임금)을 최저임금 수준을 정하고 사회의 바닥을 묶어두는 것이 자살률 세계 1위, 출산율 최하인 사회를 만든다. 이런 막가파식 소득불균형 옹호정책은 비정규직 문제, 택배기사도 자영업이 되고 편의점주도 자영업자가 되어 자영업자 창업/도산을 권유하는 사회, 대기업 노동조합의 일탈이 자연스러운 사회를 가져온 것이다.
영국은 대처 수상 집권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숙련노동자 억압정책, 숙련노동이 필요한 산업을 경시하는 정책을 진행한 결과, 지금은 스위스의 하청산업 국가로 전락하고, 2류의 제조업국가가 되고 말았다. 단순노동을 선호하는 자본을 국가가 지원하고 최대한 오랫동안 저임금을 잔존시키는 정책을 진행해 왔는데 이는 사실 자본의 몰락을 가져온 설탕물 정책이다. 당장은 이윤을 만들어 주지만 닥쳐오는 변화에 느리고 기술에 둔감하고 심지어 노동억압을 통해서 저임금체제를 유지하려는 시도 등이 모두 당뇨를 불러오고 만 것이다. 결국 역사가 주는 교훈에 따른다면 우리나라 중소제조업은 업종변환, 자동화가 요구되는 시점에 있으며, 노동자 집단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 당장 숙련된, 특히 제품설계 등에서 새로운 기술을 가진 고급인력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정부가 혹은 대기업이 일본문제, 혹은 보호주의 기조 하에서 중소기업 군의 정비를 필요로 할지도 모르겠다. 소재와 부품 나아가서 장비와 설비, 설계능력을 갖춘 산업을 가져야 한다는 절박함?이 언제까지 얼마만큼이나 필요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부와 반도체 대기업들의 절박함은 우물에서 숭늉을 바라는 절실함 정도이지 솥에 불을 때는 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과연 이들 대기업들이 우리나라 중소제조업을 통털어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시행하는 것을 찬성하겠는가? 너무 나아갔지만 중소제조업의 체질개선, 구조조정은 그 방향에서 생산성의 향상을 포함하고 있다. 결코 소용되는 기술의 변화와 노동인력의 재편을 제외하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속생각은 대기업노동자 대비 소기업노동자의 생산성 격차와 임금격차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앞서 말했듯이 글로벌 환경 속에서 현재의 3만불 국민소득 체계, 즉 단순하청기업에 낮은 생산성의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특별히 중소제조업에서의 변화를 원할 이유가 없다. 이대로가 더 좋으니까!
하지만 중소제조기업은 사정이 다르다. 최저임금, 52시간 노동이 올려치고, 세계적 불황과 국내소비시장 위축이 내리 누르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다. 자동화를 해야 하고, 단순노동 중심의 생산구조를 벗어나 보려고 발버둥을 쳐야한다. 인력을 줄이는 방도를 찾고 있다. 공장 문을 닫든지 아니면 자본재를 투입하고 SQ기준에 맞추고, 단가를 스스로 낮추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하지만 저임금에 기반을 둔 단순하청 혹은 자체 기술에 기초한 제품이 없는 까닭에 원청에 억매여 끌려가는 업체들로서는 이러한 노력들이 절대로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 업종조정, 공정조정, 노동 조정, 원하청 관계조정을 통하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중소제조업의 노동자들은 대기업 대비 30%의 임금을 받고 젊음을 불사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단순노동은 주로 외국인들이나 결혼 후 여성인력에 의존한다. 전 사회적으로 대기업 대비 70~75% 정도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시행되면, 당연히 기계가공 노동자 등 블루컬러 숙련공이 사무직이나 공무원과 맞먹는 수입을 가지는 사회를 꿈꿀 수 있지 않겠는가? (목수와 배관공이 의사와 수입이 다르지 않다는 덴마크 같은 나라까지는 아니라도) 그렇게 되면 자살률도 낮아지고 출산율도 올라가고 교육지옥도 없어지는 우리나라가 되지 않겠는가?
한국 자본주의 자체가 숙련노동력을 담을 그릇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중소제조업의 구조조정에서부터 가능해 진다. 업종에서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설비와 기계제작, 금형제작 등의 영역으로 진행되고 노동도 제품설계와 디자인, 공정설계와 정밀가공, 생산관리와 유지보수에 종사하는 최소 전문대학/대학 졸업자로 구성되는 숙련공의 노동으로 바뀌어 가야 한다.
자본은 항상 쉬운 길을 가려하고, 그 결과 전체 사회의 경제수준과 노동의 질은 자본의 의지에 묶여 혁신의 길을 가지 않는다. 대만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지고 산업성장의 가도를 달렸었다. 출발부터 우리와는 달리 자기자본을 충분히 가졌었고 화교들의 네트워크를 이용한 세계시장도 컸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만의 제조업 생산성은 우리나라보다 높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폭스콘을 비롯한 대만 자본들은 쉬운 돈벌이를 찾아 중국으로 물밀 듯 몰려갔고 대만 경제의 활력은 예전만 하지 못하다. 1인당 GDP가 2만 초반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 자본주의는, 지금 또 다른 기회를 맞이하였다. 중소제조기업과 노동자들 모두는 변화의 격랑 속에 들어와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결절점, 산업혁명의 막바지이자 세계 자본주의 기술의 결절점, Industry 4.0의 시작시점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중요한 시기를 제대로 헤쳐 나가는 길은 중소제조기업 종사자들과 노동자 그리고 국민대중의 요구에 기반을 둔 산업정책을 만드는 것이다.
앞에서는 직접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도구들에 대해 설명했다. 국민발안은 시민들이 법률을 도입, 제안하거나 수정, 폐기할 수 있게 해 준다(제안적 레퍼렌덤이나 법률 폐기를 위한 레퍼랜덤). 입법 기구(의회나 지방의회)에서 승인된 법률이 주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 확인하려면 확정적 레퍼렌덤 도구를 시행해야 할 것이다. 한 지방의회의 발안으로 어떤 법 제안이나 국책 사업과 관련하여 국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견해나 입장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리려면, 법적 구속력이 없는 자문형 레퍼렌덤을 조직할 수도 있다. 그 결과는 표본을 통한 여론 조사의 결과보다는 약간 나을 것이다.
시행을 위해 중요한 바람직한 규정
만일 레퍼렌덤 도구의 활용과 레퍼렌덤 투표 시행을 위한 법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면, 최고의 레퍼렌덤 도구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직접 민주주의의 질은 이러한 절차 상의 구체적인 규범과, 정치의 결정 과정에서 그것을 어떻게 담아내느냐에 달렸다. 각 단계마다 규정해야 할 중요한 요인들이 있는데, 그 요인들로 시민들의 참여를 촉진시킬 수도, 좌절시킬 수도 있다.
직접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12가지 절차적 요인들은 다음과 같다.
1) “레퍼렌덤을 할 수 있는” 사안들: 무엇에 대해 투표할 것인가?
시민들은 어떤 주제에 대해 투표할 수 있으며, 어떤 정치적 현안들이 애초부터 직접 민주주의의 모든 절차에서 배제되어야 하는가? 민주주의에서 주권자인 시민들은 모든 정치적 현안에 대해 결정을 내릴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그들이 선출한 대의원들 또한 해당 현안에 대해 결정한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의회나 지방의회 등의 구성이나 해당 정치 기구의 예산 관련 법규이다. 어느 레퍼렌덤 사안에 대한 허용성은 어쨌든 헌법과 이탈리아에서 비준된 국제 협약, 지방 법령 및 자치 법령으로 한정된다. 레퍼렌덤은 항상 관련 정부 차원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범위 내의 현안들을 다뤄야 할 것이다. 공공 지출이나 세금 및 관세는 이탈리아의 경우처럼 반드시 레퍼렌덤에서 제외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발안 및 레퍼렌덤에서 재정 관련 현안이 가장 인기있는 사안의 하나이다(10장 참조). 그리고 종종 정부의 행정 명령이나 주 정부의 승인으로 재정, 환경, 사회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는 결정들이 내려지므로 이를 시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드시 레퍼렌덤 투표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 요청 기준: 레퍼렌덤 투표를 요청하려면 얼마나 많은 지지 서명이 필요한가?
여기서 말하는 ‘요청 기준’이란 구체적으로, 레퍼렌덤 발안자들은 얼마나 많은 시민들의 서명을 모아야 레퍼렌덤 권리나 국민발안권리를 얻어낼 수 있는가?를 뜻한다. 그러한 문턱의 적정한 한도 설정을 위해 참조할 만한 기준이 있다. 가령 스위스의 칸톤 차원에서는 평균적으로 그 칸톤의 투표권을 지닌 유권자 총 숫자의 2.3%를 요구한다. 가장 문턱이 높은 곳은 5%에 이르는 티치노 칸톤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전국 차원에서 적어도 50만 명의 유권자들이 법폐지를 위한 레퍼렌덤 요청에 서명을 해야 하는데, 이 숫자는 2018년 3월 국회의원 선거 시 전 유권자의 약 1.1%에 해당한다. 볼자노 주에서는 현재 제안적 레퍼렌덤을 시작하려면 1만 3천 명의 서명을 받도록 요청하며, 롬바르디아 주에서는 같은 요청을 위해 2만 명의 거주민 유권자들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적절한 요청 기준은 투표권을 지닌 시민의 2~5%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3) 서명 모음 방식
강연이나 직접적인 정보전달, 시민들 사이의 의사소통은 레퍼렌덤 절차에서 결정적인 요소들이다. 서명 모음은 동료 시민들과 접촉해 새로운 제안을 들고 그들을 설득하는 단계이다. 그러므로 서명 모음은 공공장소나 회의, 모임 등의 장소에서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관련 공무원의 입회 하에 서명 공증을 받는 번거로움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서명을 받을 때 그 서명의 신빙성을 입증하기 위한 복잡한 요건이 있어서 서명을 통한 시민들의 참여를 번거롭고 어렵게 만든다. 발안자들은 공무원들을 동반하는 것이 어렵고, 시민들에게는 레퍼렌덤 제안에 서명하기 위해 관청을 찾아 가야 하는 것이 어렵다. 장현에서 직접 받는 서명에 대해서는 시민들 중 누군가가 시장의 위임을 받아, 형사 책임하에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다음 단계로 기초자치단체 관청에서 서명자들의 정보를 확인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서명 모음 장소에서 자유롭게 서명을 받고, 나중에 선거 본부의 확인을 거친다. 공증은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 된 이탈리아만의 별난 관행이다.
4) 허용 여부의 확인
레퍼렌덤 사안에 대한 허용 여부를 검증하고, 모든 레퍼렌덤 절차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은 중립적인 실행 위원회가 있어야 한다. 어떤 제안이 헌법과 양립 가능한지에 대한 검증은 이 위원회의 소관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독점적인 관할권이다. 법적 허용성은 레퍼렌덤 투표 이전에 검증되어야 한다. 또한 헌법적인 양립 가능성 입증 또한 서명 모음 이전 단계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허용하여, 유권자들이 헌법에 부합하지도 않는 문제에 투표함으로써 막대한 공공 기금을 낭비하는 일을 예방해야 할 것이다. 레퍼렌덤 투표 덕분에 시행되기 시작한 법령에 맞서는 법적 항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있는데, 이는 의회에서 승인받은 모든 국법과 지방법의 경우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친다. 이탈리아에서 검증 위원회는 대개 치안 판사magistrate로 구성되지만 반드시 판사judge로만 (magistrate는 judge 보다 관할권이 적으며, 구나 소도시 등의 특정 지역에 국한되는 역할만을 담당한다─역자 주) 구성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경험이 풍부한 그 밖의 법률 전문가에게도 이 역할을 담당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현재 이탈리아 대부분의 주에 이러한 검증 위원회 등이 기구들이 갖춰져 있다. 보증 자문 위원회Consulta di garanzia, 보증 위원회comitato digaranzia, 레퍼렌덤 절차위원회 등 명칭은 다양하지만, 그러나 취지는 허용성(및 다른 관련 의견)에 대한 판단을 정치 기구에 맡기지 않고, 정당 간의 다툼에서 독립적이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기구에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또한 레퍼렌덤이나 국민발안의 허용성에 대한 판단을 서명 모음에 앞선 시점으로 옮기는 것은 틀림없이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할 것이다. 이미 끝난 서명 모음에 그제서야 끼어드는 결정이 가져오는 불확실성과 혼란과 좌절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서명 모음 기간과 레퍼렌덤 금지 기간
서명을 모으기 위해 시민들에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있는가? 레퍼렌덤 절차에서 시간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명을 모을 기간이 더 길수록, 발안자들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시민들을 양성하며 자신들의 목표에 시민들을 참여시킬 시간을 더 가질 수 있다. 국제 기준에 따르면 이 기간은 최소 6개월에서 1년에 걸쳐 다양하다. 스위스에서는 헌법개정 국민발안의 경우 심지어 18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선거 전후에 레퍼렌덤 활동을 금지시키는 기간을 두는 것은 선거와 똑같은 존엄성을 지닌 민주적 투표, 곧 공동체에 중요한 사안에 대한 레퍼렌덤의 실시를 방해한다. 때로 지방법에서 선거 12개월 전부터 레퍼렌덤 활동을 금지시키는데, 이는 지나친 처사이다. 이런 법령은 선거 전 한 해 동안 시민들이 오로지 어느 칸에 체크를 해야 할지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든다.
6) 참여 정족수
어떤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1947년 이탈리아 헌법 제정 당시 헌법 조항에 국민투표 요청 유권자니 참여 정족수가 마련되었다. 이 조항에 의하면 레퍼렌덤 투표가 효력이 있으려면 투표권 보유자들의 과반수 이상이 참여해야 한다. 이는 이탈리아 레퍼렌덤의 역사에서 최악의 규정으로 1974년부터 실시된 10여 차례의 레퍼렌덤 투표를 실패로 이끈 나쁜 법령이다. 직접 민주주의의 가장 숭고한 목표 중의 하나는 시민들의 참여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활용하여 투표에 참여하도록 격려해야지 좌절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족수 규정은 정확히 직접 민주주의에 반한다.
정족수는 어떤 레퍼렌덤 제안에 대한 반대자들로 하여금 토론에 대한 정보 전달부터 투표 참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참가를 거부하도록 만든다. 정족수는 반대 정치 세력들에게 그 사안에 기권하도록 만드는 암묵적인 초대이다. 정족수와 그에 따른 거부는 결국 제안에 반대하는 “진정한 적수”가 되어 (결과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투표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는 방관자들, 여러 다양한 이유로 꼼짝할수 없는 이들, 그리고 좁은 의미의 반대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허위의 연합을 만들어 낸다. 반대로 그 어떤 선거에도 투표하지 않고 무관심하거나 망설이는 사람들이 불참함으로써 원안의 법률은 취하되지 않는다.
정치적 현안의 성격상, 유권자들이 낸 발안의 대부분은 모든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가 아니며, 늘 적지 않은 일부 국민들만이 관심을 갖는 주제이다.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그 서명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을 것이다. 투표소에 가지 않는 시민들의 표는 선거에서 투표하지 않는 시민들의 표와 마찬가지로 간주해야 한다. 이들은 곧 기권자에 불과하다. 기권을 반대표로 생각할 수는 없다. 정족수는 소수를 보호하지 않는 매커니즘이다. 정족수가 소수자들을 보호한다는 것은 일종의 허위의 가설로서, 정치적이지 않은 갖은 이유로 어쨌건 투표소에 가지 않는 유권자 25~30%를 사안에 반대하는 표로 간주하게 된다. 정족수 없는 레퍼렌덤 투표는 선거와 유사하게 작동한다. 곧 투표하는 사람이 결정하고 투표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결정하도록 내버려 둔다. 스위스와 미국, 독일 바바리아 지방 및 다른 많은 나라에서 실시하는 정족수 없는 레퍼렌덤의 실례는 직접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꼭 정족수가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7) 공적 책임과 정보의 공정성
민주적 체제에서 시민들은 정치적 현안에 대해 공공 기관으로부터도 충분한 정보를 얻을 권리를 지녀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이탈리아의 법률에서 공정성에 대해 규정하고 있듯이, 시민들은 공공정보 기관에 동등한 접근권을 가져야 한다. 레퍼렌덤 캠페인을 통해 정치적 입장들을 제시하고, 발안자들은 사안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며, 모두가 어떤 레퍼렌덤 사안에 대해 찬성인지 반대인지 자신의 의사를 표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이 레퍼렌덤 사안들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제시하고, 이용 가능한 모든 형태로 공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공공 기관들은 이를 종이 책자나 디지털 책자로 간행해야 한다. 책자에는 투표에 부치는 제안들, 찬반 논점, 절차상의 공지 사항 및 시민들에게 유익한 그 밖의 정보들을 싣는다. 이 소책자는 시기 적절하게 투표권을 지닌 모든 시민들에게 전달하고, 또 투표를 조직하는 기관의 사이트에 들어가 다운로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8) 대의 기구의 참여
시민들의 직접 참여가 지방의회를 무시해서는 안되겠지만, 첫 단계에서는 어떤 문제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을 찾는 것에 대해 서로 합의점을 발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서로 대화를 통해 의회의 업무와 국민발안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거나, 어쨌건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국민발안의 경우, 발안위원회는 국회나 지방의회와의 협상에 들어가며, 대의 기구는 어떤 대안적 제안에 대해 승인하고 그것을 레퍼렌덤 투표로 가져갈 권리를 지닌다(“기관의 반대 제안 institutional counter proposal”).
9) 투표 방식
현재 이탈리아에서 모든 정부 차원급의 레퍼렌덤 투표는 거의 모두 오로지 투표함 투표를 통해 진행하며, 해외 거주 시민들은 예외적으로 우편으로 투표할 수 있다. 해외 거주 시민들의 우편 투표는 선거나 레퍼렌덤의 경우 모두 주 정부들에서도 동의했다. 이탈리아의 몇몇 기초 자치단체에서는 레퍼렌덤에서 모든 시민들의 우편 투표를 허용한다. 우편 투표는 스위스와 독일, 미국의 몇몇 주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투표 형태이다. 미국의 오레건 주는 심지어 우편 투표만을 허용한다. 이런 형태의 투표는 시민들에게 상당한 이점이 있고, 공공 기관에 꽤 큰 비용 절감 효과를 제공한다. 앞으로 새로운 온라인 전자 투표 도구들 또한 고려될 것인데, 이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다.
10) 자금 조달
레퍼렌덤이나 어떤 법률을 발안하고자 하는 위원회는 처음부터 항상 ‘어떻게 비용을 마련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직면한다. 선거를 치르는 정당들처럼, 발안하는 시민들도 서명 운동 비용을 지급받을 권리를 지닌다. 제안서 작성 시의 법률 자문, 서명 모음, 레퍼렌덤 캠페인, 정보 전달 등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며, 작은 단체들과 재원이 없는 시민들은 이를 감당하기가 힘들다. 선거 운동 비용 지급과 유사하게 공공 기관은 발안을 주창한 이들에게 발안이나 레퍼렌덤 제안시 발생한 비용의 일부를 보전할 의무가 있다. 공공 지원금은 원칙적으로 그에 요구되는 최소 서명 인원수에 도달하기까지 서명 모음을 위해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11) 투명성의 의무
투명성의 의무는 다양한 이유에서 중요하다. 모든 발안 위원회는 어떤 자금으로 그들의 레퍼렌덤 발안 비용을 충당했고, 어떤 제3자에게서 재정 지원을 받는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발안자이건 반대자이건 자금 조달원에 대해 투명성을 지킴으로써 모든 시민들이 그들의 후원자와 이익 당사자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반면에 공공 기관이 직접 레퍼렌덤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12) 투표 결과의 적용과 보장
이 단계에서는 투표로 나타난 다수의 뜻을 존중하고, 그러므로 법적 실체를 갖추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 투표함에서 나온 판단을 의회나 지방의회에서 단기간에 뒤집을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국회에서 승인된 모든 법률과 마찬가지로 레퍼렌덤 투표 결과는 헌법재판소에서 투쟁을 벌일 수 있다. 정치-입법 차원에서 레퍼렌덤 결과를 보호하는 것은, 의회 다수당이 그 결과를─이미 존재하는 법의 개정이나 폐기 제안─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런 현상은 이탈리아에서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되었다. 레퍼렌덤의 결과는 최소 1년간 유효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결과를 적용하는 법률의 시행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직접 민주주의의 질은 적용법에 따라 좌우된다
직접 민주주의의 질은 레퍼렌덤 절차의 시행을 규정하는 법규와, 입법 기관에서 어떻게 법규를 법 제정 과정에 삽입시키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런 법규들은 또 실제로 시행중인 법으로 규정된 직접 민주주의 도구들이 얼마나 적용 가능한지 그 유효성을 평가하는 명백한 평가 기준이다. ‘유럽의회의 권리를 통한 민주주의 유럽 위원회(베네치아 위원회)’도 “레퍼렌덤 시행 수칙code of conduct”(2007년 3월 17일)을 채택했는데, 많은 부분이 이 책에서 제안한 적용 규칙들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잘 발달한 직접 민주주의를 확보하려면 다음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일 정치적 사안을 근거 없이 배제할 수 없다
만일 이탈리아가 조인한 국제 조약이나 협약과 관련한 의무 혹은 일반적인 공동체적 권리 때문이 아니라면, 정치적 사안들을 레퍼렌덤 권리에서 배제시키지 않는다. 예산이나 의회와 지방의회 내규, 책임 면제와 사면 등을 제외하고, 레퍼렌덤을 할 수 없는 사안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레퍼렌덤 의제들은 헌법 및 해당 정부 차원의 관련 의무와 양립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레퍼렌덤 의제는 종교적, 언어적 소수자들의 기본권을 위반할 수는 없으며 그 어떤 최고 법률에도 정치인들의 보수나 정당의 자금, 해외 정치 문제, 현재 진행중인 행정부의 대형 프로젝트 결정을 레퍼렌덤 회부 사안에서 배제시킨다고 규정되어있지 않다.
독립성이 보장된 위원회
국민발안의 법 제안이나 실행적 레퍼렌덤 요청의 허용성 여부를 판단하도록 소집된 위원회는 독립성을 지닌 전문가들로 구성되어야 하며 모두가 꼭 판사일 필요는 없다.
지나치지 않은 지지 서명 인원수
레퍼렌덤 투표의 “요청 기준”이 너무나 높은 나머지 큰 단체를 통해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이 이 권리에 접근하지 못할 정도가 되어서는 안된다. 보통 서명 인원수는 유권자의 2~5% 사이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대개 이 숫자는 해당 의회 대의원 선출에 필요한 표 숫자를 넘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규정되어야 한다.
시민들에게 우호적인 서명 모음 양식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순간에 시민들의 책임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자유로운 형식으로 서명을 모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며, 이후 선거 관리 사무소에서 확증과 검증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지지 서명은 같은 시에 거주하는 시민들을 위해 일하도록 시장이 임명한 시민이라면 누구든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의회의 참여와 반대제안 권리
직접 민주주의 절차에서 선출된 정치인들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국민 제안들을 확인하는 것 외에도, 의회는 일종의 “의회의 반대 제안”을 승인하여 레퍼렌덤 투표에 부칠 수 있어야 한다. 시민들은 그렇게 국민 제안, 의회 반대 제안, 현상유지(두 가지 모두 아닌 것)라는 세 가지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법으로 규정된 특별한 확정적 레퍼렌덤의 경우 시민들에게 반대 제안 권리가 있다.
서명 모음에 적절한 기간 보장
레퍼렌덤 절차는 정보 전달과 공공 토론을 위해 충분한 기간을 두어야 한다. 정부와 행정기관은 국민발안의 경우 충분한 기간을 두고 발안자들이나 관계자들의 의견을 듣고 토의하며, 반대 제안을 승인하거나 자신들의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 입장은 어떤 입장도 갖지 않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스위스에서는 이를 위해12 ~18개월을 둔다.
참여 정족수를 두지 않는다
투표에 부쳐진 의제와 현안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참여하여 결정한다. 투표하지 않는 사람은 기권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선거에서 투표하지 않는 이들이 바라는 결과가 선거의 목적이 되지 않도록 한다. 투표하지 않는 이들은 동료 시민들에게 결정을 맡긴 것이다(뒤의 “정족수 반대 십계명” 참조).
정기 투표 및 미리 정한 투표 날짜
잠정적으로 매년 어느 날 레퍼렌덤에 투표하러 갈지를 미리 정해 두어야 한다(“투표 공휴일”). 그런 방식으로 레퍼렌덤 투표가 선거와 중복되지 않게 한다. 지나치게 길게 레퍼렌덤 활동 금지 기간을 두지 않도록 한다(예를 들어, 하원의원이나 지방의원 선거 앞뒤로 1년). 이는 직접 참여 절차를 지나치게 지연시키기 때문이다.
모든 유권자들에게 객관적인 정보 전달
제도적인 정보 전달과 각각 다양한 입장들을 서로 비교해 보는 것에 최대한의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모든 유권자들은 투표에 부쳐진 다양한 선택안들에 대해 관련 공공 기관에서 편찬한 공식 정보가 담긴 소책자를 받을 권리가 있다. 기초자치단체의 관청이나 공공 사무소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금 조달과 비용 상환의 투명성
모든 레퍼렌덤 캠페인에서 관련자들의 자금 조달은 공적으로 알려야 한다. 누가 어떤 자금을 대었는가? 선거에서와 같이 국민발안의 주창자들은 각 서명 모음에 대한 법정 액수에 따라 비용을 환급 받을 권한이 있다. 정치 기관이 레퍼렌덤에 대한 그들의 반대 제안들을 홍보한다면, 발안의 주창자들은 그들의 캠페인에 같은 정도의 기금을 사용
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들을 위한 법률 자문
국회의원들처럼 시민들도 공공 기관 측에서 무상으로 법률 자문을 받음으로써 그들의 법 제안이나 레퍼렌덤 의제들을 다듬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투표 결과의 보장 조항
투표함에서 나온 결과는 보장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투표 결과의 후속 조치로 이어지는 의회나 정부의 심의로 결과가 뒤집힐 수 없다. 레퍼렌덤 투표의 결과는 존중되어야 하며, 미리 정한 최단 기간 내에 적용되어야 한다. 의회는 향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반대 제안을 표명할 권리를 여전히 지녀야 한다.
국민발안과 확정적 레퍼렌덤을 활용하여 이 법안들을 도입하고 개정하는 것이 시민들의 몫으로 남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대리인 선거를 위해서나 직접 참여권의 행사를 위해 법안을 마련하는 것은 주권자인 시민들의 몫이다. 시민들이 그들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끔 결정하는 것을 온전히 대의원들의 자유 재량에 맡기는 것은 모순일 것이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북한은 남한과 달리 취업걱정이 없다. 모두 직업배치가 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실업이 없는 사회이다. 실업없는 사회야말로 우리 인류가 오랫동안 꿈꾸어온 사회가 아니던가. 매우 달콤하게 들린다. 북한에서 설사 원료나 전기가 없어 생산을 못해 공장이 가동되지 않더라도 항상 일자리는 넘쳐난다. 그러나 공장 기업소에서 배급을 주지 못하고 국정가격으로 공급하는 물품이 없어진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생활비(임금)는 그 의미를 잃었다. 넘치는 무보상 일자리 속에서 북한의 노동은 사람들에게 고통의 근원이 되었다.
북한에서 모든 공민들은 노동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일해야만 한다. 우리처럼 일감이 있고 일감에 따라 고용과 해고를 하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노동은 사적인 돈벌이가 아니라 ‘공공적이며 이타적인 것’, ‘신성하고 영예로운 것‘으로 규정된다. 북한 사회주의 헌법 83조에 “노동은 공민의 신성한 의무이며 영예이다”라고 써있다. 즉 북한에서 노동은 선택이 아닌 의무이고 직업은 개인의 이익적 목적이 아니라 집단의 이익, 국가의 이익에 복종하는 충실성의 개념이고 척도가 된다. 낡은 관념은 노동의 의무를 살아있는 생명에게 강제하면서 그들을 덧씌우는 굴레가 되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무슨 일을 할까? 1990년대 중반의 경제위기 이후 기업소 운영 부실화되면서 대부분의 기업소에서 배급 중지 혹은 간헐적으로 배급을 지급한다. 생활비는 거의 의미가 없다. 고등중학교나 대학을 졸업한 북한청년들은 이처럼 무보상 노동을 해야 하는 공장이나 기업소에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동되지 않는 직장에 사람들이 꼬박꼬박 출근하는 기이한 현상이 지난 20여년간 지속되어 왔다. 물론 일단 출근하면 공장생산을 하지 않더라도 할 일은 넘친다. 각종 국가적 일에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장이나 기업소에서 생산을 하지 않더라도 각종 도로수리나 건설, 농촌지원 등에 ‘동원’되기도 하고 국가에서 내려보내는 각종 사회적 과제를 수행한다. 일이 있는 다른 곳에 파견되는 더벌이도 한다. 노동자들은 출근해서 잡담을 하면서 여가시간을 보내는 일도 드물지 않다.
북한 노동사회를 이해하는 두 가지 코드,‘직업’과‘벌이’
이처럼 기이한 현상이 생긴 시기는 언제부터인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래 배급체제가 붕괴하고 국가는 공장기업소로 배급의 책임을 넘기면서 각 공장기업소별로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는 차별화되었다. 2000년대부터 북한사회에는 기존의 계획경제하에서 운영되는 국유 기업소 공장 외에 새로이 노동시장이 생겨났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미증유의 경제위기와 비공식경제의 대두를 배경으로 국가가 아니라 개인장사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고용해서 일을 시키는 장 즉 노동시장(labour market)이 열리게 된 것이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비록 노동력의 매매가 이루어지면서 신성하고 영예로운 노동을 돈으로 팔고 사는 일이 행해졌지만, 이를 북한사람들은 아무도 직업이라고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대신에 북한사람들은 이러한 행위를 ‘벌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북한 사람들이 경제적 위기를 넘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시장에서의 ‘벌이’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북한사람들은 벌이를 직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북한에서 노동의 의미는 사적인 돈벌이가 아니라 ‘공공적이며 이타적인 것’, ‘신성하고 영예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사람들에게 직업을 배치하고 동시에 이를 통해 소속 즉 정치사회학적 생명을 주었다. 사람은 직위를 통해 살아있는 유기체이자 공동체에서 자신의 위치를 얻는다. 그러니, 오늘날의 북한에는 두 개의 일이 존재한다. 계획경제와 국가에서 배정한 공적 ‘직업’, 시장경제와 생계를 위해 돈을 버는‘벌이’이다. 이것이 오늘날 북한의 직업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 키워드이다. 사람들도 공식부문- 국영기업체에서 거의 무급으로 일하다가 생계가 어려우니까 그나마 벌이를 하러(소득을 얻고자) 시장(비공식경제부문)에 나간다. 혹은 두 개를 오가면서 혹은 병행하면서 투잡을 가지고 일하기도 한다. 그러면 북한사람들은 어떻게 직업생활을 영위하는지 다섯 가지 질문과 응답을 통해 알아보자.
첫 번째 질문, 이직(移職) VS 조동(調動):
국가에서 배정해 준 직장을 떠나 내가 원하는 직장으로 가려면 어떻게 하나?
사실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우리도 일상에서 늘 겪는 일이다. 그 때 우리는 이직을 시도한다. 나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업그레이드하고 새로 나오는 구인정보들을 체크하여 이력서를 보낸다. 북한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가에 저는 다른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배급 주는 공장으로 바꿔 주십시오!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을까? 북한사람들 역시 당연히 보다 나은 직장으로 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갈만한 직장을 알아보고 옮기려고 노력한다. 대부분 배급이나 보상이 적은 국영경제부문의 공장 기업소를 떠나서 먹을 알이 있는 국영경제부문의 일자리 혹은 소득이 있는 시장경제부문의 일자리로 옮겨가는 추세가 나타난다.
그렇지만 이들이 직장을 옮기는 방식은 남한과 다르다. 개인이 마음대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다른 곳으로 옮긴다? 그것은 당연히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직(移職)’대신 북한어로는 ’조동(調動)‘이라고 하는데, 조동의 뜻은 “행정적인 조치로 직장을 옮김”이다. 지금 다니는 직장의 책임자에게 ‘사업’을 해서 즉 돈을 주고 다른 곳으로 보내도록 일을 꾸민다. 직장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은 국가에게 있다. 그러니 이직을 원하는 나는 국가의 대리인들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동인(動因)을 제공한다. 그 동인은 돈이다. 이직과 조동. 이 미묘한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직의 주체가 개인 노동자라면, 북한에서 조동의 주체는 국가가 된다. 국가가 노동자를 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결과는 같을 지라도 이동의 주체나 과정은 달라진다.
그러면 그들도 옮길 때 이력서를 쓸까? 북한도 원래 기록문화가 상당히 발전해서 미군노획문서에 의하면 자서전 이력서, 평정서 등과 같은 자료들이 많다. 그렇지만 일반 신규노동자의 입직시 별도의 이력서나 자기 소개서를 제출하지는 않는다. 가장 중요한 문건은 평정서이다. 평정서는 당사자는 보지 못하는 문건인데, 기관 당국이 개개인을 평가하는 평정서가 있다. 이 평정서에 기초하여 직업이 배치된다고 하겠다. 학교에서 기록한 생활기록부와 평정서를 참조하여 직업배치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일반노동자가 아니라 직위가 높은 직업의 경우에는 조동시 이력서가 필요하다.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도 아니고, 시장경제도 아닌 공식/비공식 부문이 혼합된 나타나는 양상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도 공식부문-국영기업체에서 일하기도 하고, 비공식경제부문이라는 선택지가 한 군데 늘어났다. 사람들은 배급도 없고 그렇다고 소득도 없는 공식부문-국영기업체를 떠나 소득이 있는 비공식부문 일자리를 향해 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소득도 없는 공식부문-국영기업체에 있는 일자리를 떠난다는 것도 쉽지 않다. 이때 등장하는 것은 돈이다. 돈을 가지고 사업을 해서 책임자에게 돈을 주고 자리를 옮기는 일이 많다. 노동자 자신이 이직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기에 권한 있는 윗 사람에게 돈을 써서 옮겨야 한다. 딱한 사람들은 그럴 돈도 없는 사람이다.
어제 필자는 최근에 국경연선지역에서 탈북한 한 여성노동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탈북전 19세의 나이였던 그녀는 배급도 없고 새벽 4시부터 11시까지 장시간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일자리를 그만 두고 다른 자리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집안은 돈이 없어서 옮길 수가 없었고 결국 탈북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혼종화
두 번째 질문. 북한사람들은 어떤 직업을 선호하나?
남한이 열광하는 의사, 변호사를 그들도 선호할까?
특정 직업을 가리켜 북한 선호직업이다. 개인의 취향도 있기에 이렇게 말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아래와 같이 거칠게 정리해볼 수 있다. 북한은 권력으로 움직이는 사회이기에 법간부, 경찰간부, 당간부 등 권력있는 직업을 가장 선호하며, 그 다음으로는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선호한다. 아직 북한사회에서 돈은 독립변수로 작동되지 않는다. 권력의 빛을 받아야 힘을 발휘하는 달과 같은 존재이다. 장사는 추세, 외환 등에 민감하지 않으면 한 순간에 망하기도 하는 불안정한 직업이다. 특히 권력의 지원 없이는 할 수 없다. 북한은 시장화 과정에서 많은 장삿꾼들이 망하거나 비법행위로 처벌되거나 심지어 처형되는 일을 겪었으며 주민들은 이를 목도해왔다. 그래서 최근에 올수록 국가기관에서 직업을 가지고 일하면서 안정적이고 ‘먹을 알’이 있는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도 도드라진다. 위험성이 있는 불안정한 벌이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한다.
일반적으로 북한사람들은 피곤하고 위험성이 높은 외화벌이보다 안정적이고 권력 있는 직업을 가장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보안원, 보위부야말로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다. 시장경제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주민들 경제활동 자체가 비법과 일탈로 이루어지다 보니 북한의 경찰인 보안원은 일상에서 큰 권력을 갖게 된다. 세관원 또한 최고의 직업인데 일반인들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직업이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의사와 변호사는 어떤가? 남한처럼 선호하나?
결론부터 말해자면 의사도 변호사도 남한처럼 잘 나가는 직업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 의사 역시 우리나라만큼 돈 잘 버는 직업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일반인에 비해 돈도 잘 버는 직업임에는 틀림없다. 2016년 현재 한국에 들어온 의사출신 탈북민들의 수는 100명 가량 되는데, 그 중 총 24여명만이 한국에서 의사자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 북한에서 변호사를 했다는 탈북민은 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북한 변호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며 우리사회의 변호사와는 개념이 다른 직업인 듯 하다.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사회에서는 용의자인 개인이 변호사를 선임해서 조력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소속되고, 경제적 범죄에 국한되어 다소 조력을 주는 정도라고 한다. 즉 북한에는 국선변호사만 있으며 정치적인 문제에는 조력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탈북과 같은 국가적 범죄인 경우, 재판을 받을 때 변호사의 조력을 받았다는 탈북민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북한에도 변호사가 있기는 하지만 개인이 돈을 내고 선임해서 조력을 받는 경우는 특권층에 한한다. 북한의 일반인(평백성)에게는 변호사는 상징적 존재에 불과하다.
세 번째 질문. 북한에 스펙은 있는가?
북한의 학부모도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려고 노력할까?
우리에게 스펙쌓기란 힘있는 자격증, 해외연수, 대회에서 상타기, 양질의 기관이나 회사에서 인턴 등을 가리키는데, 북한에서 이같은 스펙쌓기가 아직 그렇게 성행하지는 않는 듯하다. 북한의 기본 스펙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대학졸업, 둘째는 군대 가기, 셋째는 당원이다. 물론 당원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스펙이다.
물론 이같은 스펙쌓기에 대한 열망은 계층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북한의 흙수저들은 감히 꿈을 꾸지 않으며, 출신지역이 도시냐 농촌이냐에 따라서도 다르다.
일반 노동자, 농민층들 특히 대를 이어 농장에서 일해야 하는 농장원들은 대부분 체념하고 위로 올라가려고 하거나 상승을 위한 꿈을 아예 꾸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 금수저들은 늘 진로를 깊이 고민한다. 여기에 시장경제가 형성되는 틈새에서 장사를 해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추가되면서 북한사회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과외도 하고, 돈도 쓰고 자녀들에게 정성을 쏟고 있다. 그들의 자녀를 일류 고등중학교에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사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북한은 더 이상 한 덩어리가 아니다. 북한의 계층들이 점점 분화하면서 계층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네 번째 질문. 자유로이 장사하는 북한 여성들, 그들의 지위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가?
여성은 결혼을 하면 부양이라고 해서 표면적으로는 세대주인 남자의 부양을 받는 게 된다. 우리에게 전업주부와 같은 개념이다. 실질적으로는 여성이 시장경제 부문에서 장사일을 해서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고, 온 가족의 부양을 하는 여성들이 거꾸로 ‘부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는 사실이야말로 북한의 역설이다. 이는 지난 20여년 동안 억척스럽게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고 돈을 벌어오면서 자신들의 힘을 만들어왔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인정은 미약한 현실을 보여준다.
남자들은 일단 국가가 주는 일자리에서 벗어나면 강한 처벌을 받는다. 3개월 이상 무단으로 직장에 출근하지 않으면 노동단련대에 보내기 때문에 보통은 직장에 매월 돈을 내고 8.3노동자가 되어 자기 마음대로 노동시장에 나가서 노동력을 파는 일용노동자가 되든 아니면 자영업을 하든 아니면 자기 사업을 벌이든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은 벌이는 하는 것이지 ‘직업’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소속된 공장 기업소에서 국가가 준 직위를 지켜야 하고 최소한 적(소속)을 유지해야 한다.
다섯 번째 질문, 지난 20여년간 북한 직업세계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8.3노동자들, 공장 문을 열고 시장으로 나가 변신을 거듭하다.
최근 북한이 시장화이후 겪는 가장 큰 직업세계의 변화를 꼽으라면 나는 역시 8.3노동자의 등장과 진화와 노동이동을 들고 싶다.
첫 번째 변화는 8.3노동자의 등장이다. 8.3노동자가 등장한 90년대 말부터 2019년 현재까지 8.3노동자들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사회주의 로동법에 의하면 노동자는 공장 기업소에 출근 의무가 있고 안 나가면 단련대가 잡으러 간다. 그 중에서도 시세에 빠른 일군의 노동자들은 공장 기업소에 출근을 하지 않으려고 공장 기업소에 돈을 내고 시장에 나가게 되었다. 이들은 공장에 나가지 않는 대신에 노동시장에 나가서 짐도 나르고, 장사고 해서 돈을 번다.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거나, 자영업을 해서 살아간다. 이들이 내는 돈은 공장 기업소에서 소중한 운영자금이 된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8.3노동자들을 애초에 채용하는 공장이나 기업소가 생기게 되었다. 대체로 8.3노동자는 공장 기업소 노동자들의 15% 내외이다.
두 번째 변화는 점점 노동자들의 이동이 잦아지고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 국영기업체에 배치되었던 청년들은 배급도 없고 그렇다고 소득도 없는 공식부문-국영기업체를 떠나 소득이 있는 비공식시장경제 일자리, 공식 시장경제 일자리, 비공식 국영경제를 향해 이동을 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돈이 있어야 이동도 가능하다.
남북한 청년들의 일자리상황, 그 억울함과 고단함, 희망 없음에 대하여
오늘날 남북한 청년 모두 심각한 일자리 문제에 직면해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남과 북 모두가 행복하게 일하는 평화로운 세상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지 못하였다. 북한사회에서 청년들은 노동의 보수가 없는 사회에서 일하며 사니 억울해하고 남한 청년들은 두 개의 양극화된 노동시장, 사회적 이동이 되지 않는 공정이 무너진 사회에서 사니 억울해한다. 남북한 청년 모두 고단하고 억울하고 불안하다. 끝없이 무기를 사들일게 아니라 우리의 일자리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남북이 함께 상생하는 평화로운 공간을 열어가야 한다.
북한의 경우 일부 기업은 그나마 생산을 해서 일부라도 배급을 주지만 배급조차 나오지 않은 열악한 공장기업소가 더 많다. 북한남성들은 노동보수가 없는 국영경제 공장기업소 일자리에 나가서 국가를 위해 거의 무상노동을 하고, 부인이 장마당에 나가서 생계유지를 하는 것이 기본구조이다. 이런 구조하에서 주민들은 아주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직업배치를 받아서 기업소나 공장을 간다고 쳐도 배급은 거의 안 나오거나 잘 나오는 기업소도 반달치는 주기 힘들어하고 생활비(한국의 임금)는 담배 한갑 가격정도밖에 안 되니 아무도 월급(생활비는)을 신경쓰지 않게되면서, 일반 북한 청년들이 공장이나 기업소에 가길 원치 않을 수 밖에 없다.
한편, 남한에서 우리는 두 개로 나누어진 노동시장, 괜찮은 일자리와 주변부 일자리로 양극화된 직업세계에서 일하고 있다. 괜찮은 일자리를 이미 기성세대의 일부가 점하고 있고, 신규 인력인 청년층들은 대부분 제 2차 노동시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노동 강도도 너무 강하고 최저 임금을 받고 휴가도 제대로 쓸 수 없고 장시간 노동을 하고, 두 개의 노동시장은 분절되어 있어 이동이 불가능하다. 청년들은 희망이 없으니 소확행을 찾아가게 된다. 먹방에 열중한다.
남과 북 모두 노동의 개혁이 필요하다. 이같은 노동의 개혁없이는 남과 북 청년들의 희망도 없다.
20세기의 유럽은 사민당의 역사이었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의 사회당은 존재가 사라졌고, 스웨덴의 사민당은 1당의 위치를 유지는 하였으나 무기력한 정당으로 전락하고, 유럽진보 정치의 중심이었던 독일 사민당(SPD)조차 소수정당으로 전락하는 위기에 처해진 가운데, 아래의 기사는 10월-11월간에 벌어지는 사민당 당대표 선출의 과정을 묘사한 내용이다.
한국 내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은 유럽의 교훈, “사회적 정체성으로서 산업 노동계급의 감소, 노조 가입자 정체 및 더 많은 맞춤형 정책과 정체성을 제공하는 녹색당, 포플리즘 정당 등 다양한 요구들이 좌파 정치조직의 과거 빅텐트(big-tent) 모델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 달 바이에른에서 열린 회의에서 독일 사회민주당을 이끌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모습
9월 중순 화요일 밤, 독일 사회민주당원 수 백 명이 1960~70년대 독일을 이끌었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총리의 동상을 지나 베를린 당사로 몰려들었다. 1964년부터 1987년까지 당을 이끌었던 브란트의 동상은 마치 그의 동료 당원들을 보호하듯 한쪽 팔을 벌리고 있는 모양새다.
참가한 당원들은 대강당에 자리했고, 곧 이어 남녀 7쌍이 무대 위에 올랐다. “검투사가 나타났다” 필자 근처에 있던 누군가가 속삭였다. 각 쌍은 당의 차기 당대표에 출마하여 한 때 브란트가 홀로 맡았던 역할을 둘로 나눠 가지게 됐다
“우리 당을 다시 노동자의 당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한 후보가 말했다. “사회민주당은 희망의 당이 돼야 한다”고 다른 후보가 말했다. 또 다른 후보자는 사회민주당과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성향의 기독민주당으로 구성된 연합인 “대연정을 파기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날 밤 대강당을 가득 채운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사회민주당(독일어 약자로 SPD)의 일원이 되기에 좋은 시기라고 할 순 없었다. 당의 전임 지도자 안드레아 날레스(Andrea Nahles)는 취임한 지 불과 1년여 만인 지난 6월 대표직을 내려놨다. 사민당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또 다른 큰 패배를 맛본 바 있었다. 지난 2017년 총선에서 사민당의 득표율은 20%로, 2000년대 중반 34%, 1998년 40%의 득표율을 기록했던 것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수치를 보였다. 현재는 여론조사 지지율이 약 15%대로 떨어졌다. 한 때 독일 좌파의 지배적 목소리였던 사민당은 현재, 특히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녹색당에 자주 밀리는 형국이다.
잔존 지도부는 날레스 대표가 사임할 당시, 그녀의 후임은 대개 비밀리에 결정되던 것과는 달리 모든 당원들에게 공개되는 예비선거에 의해 선출될 것이며, 9월 베를린에서 있을 프레젠테이션을 포함해 전국적인 공개방송을 통해 발표함으로써 이번 금요일 최종 투표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사민당은 토요일 투표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독일 법에 따라 선출 대의원 회의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겠지만, 정치적으로 당원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당대표 투표는 당원과 당 기득세력 간의 싸움이 됐으며, 동시에 연정을 유지할지 여부에 대한 싸움이 되기도 했다. 많은 평당원들은 당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맺은 타협을 쇠퇴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만약 연정 “탈퇴”를 주장하는 후보 팀이 예비선거에서 승리하는 경우엔 연정이 붕괴되고, 내년 독일은 조기선거를 치르거나 소수당 정부로 전락하게 될 수도 있다.
특히 이 같은 후보자 명부의 경우, 사민당 투표는 당 역사상 유례없는 경우다. 노스트라인베스트팔렌주 의회 의원이자 연정을 탈퇴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인인 크리스티나 캄프만(Christina Kampmann, 39)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사민당 역사에서 결정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다. 새 출발, 새 시대에 대한 열망이 엄청나다. 이번 예비선거는 누가 그런 변화를 실현해 낼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새 시대는 독일 사회민주당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서유럽 국가들에서 사회민주당의 득표율이 90년대 중반 평균 3분의 1을 훌쩍 넘어섰던 수준에서 최근 몇 년간 약 5분의 1로 줄었다. 프랑스 사회당과 같은 일부 정당들은 특히 큰 타격을 입었다. 2017년 총선에서 프랑스 사회당의 득표율은 7.4%에 그쳤으며,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과 같은 기타 정당들은 그보단 나은 사정이지만, 여전히 종종 선거에서 패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쇠퇴에 국가별 요인이 작용하긴 했겠지만, 대부분의 사회과학자들은 근본 원인이 정치구조에 있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중도좌파 유권자의 비율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지만, 사회 민주당은 점점 더 그들을 동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취리히 대학의 정치학자 실야 하우저만(Silja Häusermann)은 유럽사회의 분열이 전후 시대를 지배했던 경제 및 계급적 요소에서 이주 및 기후변화와 같은 문제로 옮겨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문화적으로 보다 진보적인 세계주의자와 문화적으로 보다 보수적인 “사회주의자”를 갈라놓는데, 이 둘은 모두 한 때 전통적 사회민주주의 유권자들이 가졌던 이념을 공유하고 있다.
게다가 사회적 정체성으로서의 산업 노동계급의 감소, 노조 가입자 축소 및 더 많은 맞춤형 정책과 정체성을 제공하는 녹색당, 포퓰리즘 정당, 극좌 정당의 부상 등 이 모든 것들이 좌파 정치조직의 과거 빅텐트(big-tent) 모델에 도전하고 있다.
쇠퇴의 압력 속에서 유럽의 많은 사회민주당은 대표직을 두고 벌이는 싸움과 당 진로에 대한 격렬한 싸움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재정정책과 경제부양 비법을 가지고 있는 포르투갈인이나 반이민 정책을 주장하는 덴마크 사회민주당원이 제시하는 쇠약한 희망에 지나치게 현혹되는 경향이 있다.
뒤셀도르프 대학(University of Düsseldorf)의 정치학자 토마스 포군트케(Thomas Poguntke)는 유럽의 다른 정당들이 고려하고 있는 공개 예비선거의 경우 당 기반세력이 기득세력보다 더 온건하다면 완화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의 마테오 렌치(Matteo Renzi)가 2013년 비당원들에게 개방된 경선에 의지하며 좌파 지도부에 맞서, 사민당 내에서 중도 노선을 힘겹게 방어했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공개예비선거는 결과를 왜곡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와 같은 비정통 후보자가 선출되어 기득세력의 반대를 극복할 수 있게 될 수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극좌파 후보 브누아 아몽(Benoît Hamon)이 주류 선두주자인 마뉘엘 발스(Manuel Valls)를 제치고 사회당을 장악했다. 영국에서는 평화주의 사회주의자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이 2015년 3파운드에 표를 산 “기명 지지자들”에 의해 노동당 지도자로 선출됐다.
독일 후보자에는 제레미 코빈이 없다. 심지어 대연정 탈퇴를 옹호하는 사람들조차도 비교적 온건하다. 그럼에도 위험성이 높은 것처럼 대연정 탈퇴에 대한 지지율도 여전히 높다. 사민당 예비선거는 새 지도자 또는 정부를 떠나는 것 같은 단기적인 움직임이 당을 비틀거리게 만드는 요인을 고칠 것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느 쪽도 중도파 타협에서 멀어지면서 철저히 양극화로 다가가는 유럽 정치의 구조적 변동에 대해 고심하고 있지 않다.
이제 유럽 내 사회민주당의 미래는 누가 그들을 이끌 것인가 보다는 새롭고 지속적인 기반을 구축하도록 이끌 수 있은 인물이 누구인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누구의 얼굴이 포스터에 그려지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제공해야 하는 가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회민주당은 그 부분을 파악하지 못해왔다. (2019-10-26, 1차 개표결과 독일 사민당 당대표 선거에서 숄츠 재무장관이 1등을 차지했으나 과반수 미달로, 현재 숄츠와 대연정 파기를 주장하는 발터-보어얀스 간에 결선투표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며 11월 30일 경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다른백년).
북미 협상의 교착으로 남북 교류와 협력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에 대한 잠재적 기대가 당분간 어려운 가운데, 아세안과 인도가 한국 경제와 외교의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유망한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비동맹과 중립적 위치를 표방해온 이들 지역은 미중 또는 미러 간의 패권 경쟁에서도 자유롭고, 장래적인 경제 전망이 매우 밝은 곳이다. 이에 문재인 정부가 아세안에 공을 들이며 전략적 수준의 협력을 모색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고 박수를 보낼 일이다. 다만, 이 지역과 관계를 현재의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한 단기적인 이익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긴 역사의 관점으로 함께 공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방향에서 모색할 일이다.
한국은 오랜 기간 외부 패권 투쟁의 한복판에서 역사를 써온 나라다.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은 현재 한국의 지정학적 현실을 형성하는 데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럼에도 한국은 지금의 경제 성장을 이루어내기 위해 이 같은 상황을 극복하며 매우 예외적인 지속적 성장을 거뒀다.
한국은 현재도 지역 패권 정치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한국은 현재 중국 및 일본과의 분쟁에 계속해서 휘말리고 있다. 역사적 적대감은 한국 점령기간 동안 한국인 강제징용에 대한 일본의 보상문제에서 비롯됐다. 한국의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도 중국의 안보 불안을 부추겼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과 중국 쌍방은 한국에 대한 보복적 무역 조치를 시행했다.
그 결과 한국은 다른 파트너 국가들과의 무역 및 외교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신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국 정부는 2017년 11월 동북아플러스 책임공동체(Northeast Asia Plus Community of Responsibility)의 일환으로 신남방정책(New Southern Policy)을 천명했다. 신남방정책은 아세안 국가들과의 관계를 미국, 중국, 일본 및 러시아와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중요시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한국과 아세안의 관계는 아세안의 다른 대화파트너, 특히 일본 및 중국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준이다. 한국은 1991년까지 완전한 대화파트너가 되지 못한 반면, 일본은 1977년 관계를 공식화했다. 문재인 정권 하에서 한국은 해당 지역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문대통령은 태국, 미얀마, 라오스를 순방하는 동안 미얀마에 10억 달러 규모의 원조 제공, 태국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라오스와의 사업협력 등 세간의 이목을 끄는 계약을 다수 맺었다.
비록 아세안 국가와의 협약이 한국이 목표로 하는 새로운 이니셔티브는 아니지만, 이같이 지속적인 접근은 분명히 이전과 차이를 보인다. 통상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재임 초기 아세안 정책에 중점을 두지만, 한반도 문제와 주요 강대국들과의 관계가 아세안 관련 정책들을 제치고 부상했기에 오래가지 못했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신아시아구상(New Asia Initiative)’에서 아세안 국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한국의 외교 정책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노력을 보였지만, 해당 정책은 결국 지정학적 중요성을 지니는 몇몇 국가들에만 초점을 맞추는 데 그쳤다.
문대통령은 전임자들과는 달리 아세안과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 직속 신남방정책 특별위원회(Presidential Committee on New Southern Policy)와 같은 정부기관의 제도화를 통해 아세안 국가들과의 교류에 대한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지역에서의 정책 지속성 및 이니셔티브를 촉진하기 위한 연구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아세안센터 설립뿐만 아니라 한-아세안 청년네트워크워크숍, 한-아세안 학술 컨퍼런스, 주한아세안 교수협의회(Council of ASEAN Professors in Korea)와 같은 인적교류 프로젝트도 포함된다.
아세안은 동아시아에서 더 많은 교류를 위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아세안은 비동맹 및 비간섭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 미국 간 경쟁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와의 교류를 지속할 수 있었다. 또 아세안 국가들은 싱가포르와 베트남이 북미정상회담(North Korea–US Summits)의 주최국으로서의 역할을 보여준 것처럼 중립적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왔다.
한국은 아세안 국가와의 관계 증진을 통해 남북한 갈등 해결을 위한 자체적 접근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은 남한보다 아세안과 더 활발히 교류했다. 일부 아세안 국가들은 당사자간 관계나 고위급 교류를 통해 북한과 정치적 대화 채널을 유지해 왔다. 아세안이 중립성과 포괄성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세안과의 관계 개선은 남한에 경제적 이점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일본, 중국과의 분쟁으로 인해 더 큰 규모의 무역 상대국에 대한 의존이 취약점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은 대체 시장일 뿐만 아니라 자연 및 인적 자원의 잠재적 공급원이기도 하다.
한국이 베트남 같은 일부 아세안 국가들과 강력한 교역 관계를 맺었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같은 선진국과의 교역 및 투자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실정이다. 인도네시아와의 문대통령은 포괄적경제 동반자협정(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타결을 위한 노력과 같은 이니셔티브를 통해 이들 아세안 회원국들과의 다자간, 양자간 교역 관계 증진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아세안 내의 다양성은 한국이 신남방정책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미안바 정부의 로힝야 소수민족에 대한 대우 방식은 아세안 회원국 사이에서 많은 의견차이를 낳았다. 한국이 로힝야족이나 미얀마 정부 중 어느 한 측에 대한 지원을 추진한다면 반발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아세안은 안보협력을 발전시키기 보다 태국에 대한 군사수출 증대의 근거가 될 수 있는 태국과의 군사정보 보호협정과 같은 이니셔티브의 장단점도 고려해야 한다.
현재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산업문명은 인류 역사상 그리 오래된 문명 형태가 아니다. 16세기 유럽에서 근대적 사고방식이 시작된 것을 기점으로, 이후 과학과 기계기술의 발전과 함께 폭발적으로 확산된 삶의 방식이다. 산업문명은 인류에게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이 산업문명에도 부작용이 생겼다. 첫째는 구조화된 빈부차이다. 산업혁명에 의해서 가능해진 물질적 풍요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분배되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빈부차이가 구조화되었고 그 차이는 더욱더 벌어지고 있다. 특별히 1990년 이후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흐름은 빈부차이를 더욱 심각하게 벌리고 있다. 둘째는 생태계 파괴이다. 모든 사람이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원을 자연으로부터 가져와야 하고 자연은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되는 과학과 기계기술은 생태계의 흐름을 심각하게 파괴하였다.
한국에서 산업문명은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신작로를 만들고, 발전소가 가동되고, 전차로 이동하면서 산업문명의 일부를 미리 체감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제가 한국을 산업화시키려는 목적보다는 착취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일제는 실제로 35년 동안 한반도의 생태계와 문화계를 철저히 짓밟았다. 한반도 전체에 대해 체계적인 생태계 조사를 한 다음, 전 국토의 나무를 대대적으로 벌목해 전쟁물자로 사용했다. 한국이 1960년대부터 산업화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한 일이 ‘나무심기운동’이었다. 북한은 나무심기보다는 식량 증산 운동을 장려하였고, 이 때문에 북한에는 아직도 민둥산이 많이 남아 있다. 한국은 나무심기에 성공함으로써 국토에 물이 충분해지면서 농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후 한국은 경공업, 중공업, 그리고 전자산업까지 발전하였다. 산업문명 역사를 시작한 지 약 60년 만에 한국은 산업화에 성공했다. 이후 한국은 민주화에도 성공함으로써 한 세대 만에 문명의 전환을 이루고 선진국으로 진입했다. 그러나 한국도 심각한 환경파괴와 빈부의 차이로 고통을 겪고 있다.
첨단기술문명이 아닌 생태문명을 선택해야 한다
산업문명 이후의 문명 형태로 인류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앞에 놓여 있다. 하나는 과학과 기계기술을 최첨단으로 발전시켜서 환경파괴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첨단기술문명으로 나아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상호 공존하는 방향으로 재정립하는 생태문명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첨단기술문명은 지구의 생태적 질서보다는 인간의 산업기술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지만, 생태문명은 인간의 기술보다는 지구의 자기조직과정인 지구기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기술은 지구의 자연적 질서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 생태문명의 입장이다. 첨단기술문명은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자연을 착취하고 조작하는 문명이라고 한다면, 생태문명은 인간이 자연과 함께 존재하면서 함께 진화하는 문명이다.
첨단기술문명과 생태문명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관점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두 문명 사이의 긴장과 갈등은 피할 수 없다. 20세기를 주도했던 갈등이 자본주의자와 공산주의자 사이의 정치, 사회적 갈등이었다면, 21세기를 주도하는 갈등은 자연을 계속적으로 착취하려는 자본주의자들과 자연세계를 보전하려는 생태주의자 사이의 갈등이다.
첨단기술문명은 인류와 생태계를 조작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첨단기술문명의 전망 속에서는 100년이나 500년 후 인류와 지구 생태계가 어떻게 변할지 상상할 수 없다. 생태문명을 미래의 대안문명으로 주창하는 사람들은 인간과 자연과의 원형적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성찰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들은 신석기 시대의 삶의 방식이나 고전문명의 생태적 가르침에서 영감을 얻는다. 특별히 인간과 자연의 공존과 조화를 강조했던 동양종교의 지혜에서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현대과학이 우주에 대해 발견한 새로운 통찰에서 생태문명의 당위성을 찾고 있다. 최첨단 우주과학은 우주가 138억 년 전 빅뱅이라는 같은 기원에서 시작했다는 과학적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진화론은 생명 있는 모든 것은 같은 진화의 연속성 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자료들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주의 진화, 지구의 진화, 생명의 진화, 의식의 진화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가 아니라 경험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생태문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과학적 전망 안에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새롭게 통찰한다. 우주 진화 안에서 인간의 위치와 역할은 무엇인지 묻는다. 이들에 의하면, 인간은 우주를 의식하는 존재이며 경축하는 존재이다. 이런 통찰에 근거할 때 인간은 자연을 파괴해서 안 되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생태문명은 이러한 인간관과 우주관에 근거하고 있다. 생태문명을 우리의 미래전망으로 가질 때 인류와 지구생태계가 미래에도 생존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두 문명 사이의 갈등은 핵발전소에 대처하는 방식, 이산화탄소를 줄이자고 약속한 파리기후정상회의의 합의를 실천해가는 과정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전 세계 어디에서나 일어난다. 우리나라도 국가발전 계획에 대한 국론이 서로 다른 의견으로 분열돼 있다. 4대강 사업에 대하여 찬성하는 편과 반대하는 편이 갈라졌고, 핵발전소를 건설하자고 주장하는 편과 폐기를 주장하는 편이 대립하고 있다. 이러한 서로 다른 주장의 근저에는 각자가 생각하는 문명관이 전제돼 있다. 4대강 사업이나 핵발전소 건설을 주장하는 근저에는 산업문명의 세계관이, 4대강 사업이나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근저에는 생태문명의 세계관이 전제돼 있다. 어떤 문명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찬성과 반대가 갈리며, 환경파괴에 대한 진단과 처방도 달라진다.
인간과 지구생태계가 미래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첨단기술문명이 아니라 생태문명을 선택해야 한다. 인간은 지구 진화의 산물(earthling)이며, 지구를 떠나서는 살 곳도 없고 살 방법도 없다. 지구의 질서를 존중하고 생태계와 공존하는 것이 인간의 생명을 보전하는 길이다. 산업문명을 생태문명으로 전환하고자 할 때 그 변화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기계기술이 제공하는 편리함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업문명이 제공하는 중독을 끊고 생태문명을 선택하는 일은 인류가 이 세상에 존재한 이래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인류와 지구생태계 전체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다.
지구는 단 한 번 주어진 것이다
생태문명의 세계관은 한마디로 ‘생명중심주의’ 또는 ‘지구중심주의’이다. 산업문명이 인간중심주의라고 한다면 생태문명은 인간생명만이 아니라 생태계의 모든 생명, 더 나아가 지구질서를 소중하게 여기는 문명이다. 생태문명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몇 가지 통찰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주는 객체들의 집합이 아니라 주체들의 친교이다. 산업문명의 세계관에 의하면 인간만이 주체이고 다른 모든 것들은 대상화할 수 있는 객체였다. 그러나 생태문명의 세계관에서는 우주의 모든 것이 같은 근원에서 유래하는 주체적 존재이다. 이런 우주적 공동체적 이해에서 생태계를 보전해야 할 원리가 나온다.
둘째, 지구는 오직 통합적으로 기능할 때에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으며 유지될 수 있다. 산업문명은 지구를 인간의 필요에 의해 분할하고 부분화해 처리했다. 그러나 지구의 운영체계는 인위적으로 분리할 수 없으며, 어떤 생태계도 지구의 운영체계와 분리해서 보존할 수 없다. 지구는 하나의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셋째, 지구는 단 한 번 주어진 것이다. 두 번째 기회는 허락되지 않는다. 산업문명은 지구의 자원이 무한한 것으로 전제한다. 그러나 만약 지구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생물종도 멸종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어떤 것도 멸종한 생물종을 다시 복원시킬 수 없다.
넷째, 지구가 일차적이고 인간은 이차적 존재이다. 산업문명에서는 인간과 국가가 일차적이고 지구는 이차적이었다. 생태문명의 세계관에서는 지구 공동체가 일차적 경제 실체이며, 일차적 교육자이며, 일차적 통치자이며, 일차적 치유자이며, 일차적 도덕적 가치다. 지구의 건강이 우선이다. 지구가 건강하면 지구에 속해 있는 모든 것도 건강할 수 있다. 그러나 지구가 파산하면 지구에 속한 인간과 국가 그리고 모든 생물종도 파멸하고 만다.
다섯째, 현재 지구의 진화과정에서 인간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45억 년의 지구 진화과정에서 인간은 맨 나중에 출현한 존재이다. 그동안 인간은 지구 생태계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지구 생태계가 인간의 판단과 행동에 의존하고 있다. 인간은 지구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 지구의 진화과정을 통제하고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보호하고 돌보는 것이 지구를 살리는 길이고, 인간이 바로 이러한 역할을 도맡아야 한다.
여섯째, 산업문명의 윤리가 인간윤리를 최우선으로 삼았다면, 생태문명의 윤리 원칙은 생태계를 보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법률이 제정돼야 하며, 새로운 종교적 감수성도 개발돼야 한다.
민주주의가 아니라 생명주의다
세계관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인간 문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네 가지 사회 체제, 즉 정치, 경제, 교육, 그리고 종교를 변화시킨다. 근대 산업문명의 인간중심주의적인 세계관이 도입되면서 정치, 경제, 교육, 종교, 모두가 인간중심주의적으로 개편하였듯이, 생태문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네 체제가 생태문명의 세계관인 생명중심주의 또는 지구중심주의에 맞춰서 개편돼야 한다. 생태문명시대에 정치, 경제, 교육, 종교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생태문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대의 정치 체제를 민주주의(democracy)에서 생명주의(biocracy)로 전환시켜야 한다. 민주주의는 산업혁명 이후 민족국가 의식이 생긴 다음에 나온 정치체제다. 현재 가장 발전한 정치체제로 간주되고, 모든 나라가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국가나 개인의 권리에만 초점을 맞추고 다른 생물종의 권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인간의 권리만이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민주주의는 생태민주주의 또는 생명주의로 변해야 한다. 그리고 생태문명 시대에는 지구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는 새로운 정치의식이 필요하다. 지구는 지구 전체 기능 안에서만 존재하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는 하나의 실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구를 부분적으로 구원할 수 없다. 따라서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나라들의 연합(The United Nations) 정도가 아니라 종들의 연합(The United Species)이 필요하다.
산업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의 전환기적 상황을 맞아 1982년 유엔 총회에서 통과한 ‘세계자연헌장(World Charter for Nature)’은 새로운 정치적, 법적 체계를 위해 매우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헌장은 모든 형태의 생명은 유일하며, 인간에게 유용한지 여부에 상관없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현재 인간은 지구의 기능을 지배하는 막강한 힘을 지녔기에,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법적 장치가 특별히 필요하다. 현재 법조계에서는 야생 세계에 대해 법적인 지위를 보장하려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에콰도르는 2008년 국민투표를 통해 자연에 대해 존재할 권리와 스스로의 순환과 구조, 기능과 과정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헌법을 채택한 첫 번째 나라이다. 그리고 뉴질랜드에서는 1999년 동물의 복지권을 인정하는 법을 세계 최초로 통과시켰다.
둘째, 생태문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인간과 지구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제체제로 전환시켜야 한다. 산업혁명 이후 시작된 자본주의 경제는 자연 세계가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이런 사고방식은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것을 허용해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 세계의 엔트로피는 그 한계에 이를 것이고 현재의 경제 체제는 더 지탱하지 못할 것이다. 지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경제체제의 정립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현재 세계에서 자본주의 경제는 지구 생태계에 어떠한 사회 조직보다도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자본주의 경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자본의 힘은 정치, 교육은 물론 종교에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류와 지구 생태계의 미래는 다국적기업이 지니는 사회적 책임과 생태적 윤리의식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익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경제체제가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역할을 자발적으로 수행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가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치계의 견제와 시민단체들의 압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과 대안경제공동체를 설립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생명과 창조영성을 가르쳐야 한다
셋째, 생태문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육체제를 ‘인간중심 교육’에서 ‘생명중심 교육’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교육은 미래 세대를 준비시키는 과정이기에 중요하다.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지나치게 인간중심주의에 치우쳐 있다. 교육 내용은 학생들에게 자연세계와 친밀히 지내도록 하는 역할이 아니라 자연 세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확대하는 역할을 하도록 준비시키고 있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인문학의 내용은 인간과 자연세계와의 조화와 공존을 가르치기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 사회에 대해서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가르치는 반면, 자연세계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방법을 가르치지 못한다. 자연과 대화할 줄 모르는 현대인들의 심리상태는 자기 안에 매몰된 자폐아적 상황과 비슷하다. 또한 산업문명의 교육방식은 지나치게 전문화되어 있다. 전문화는 다른 말로 파편화이기도 하다. 산업문명의 교육방식으로는 실재에 대한 전체적 이해도 부족하고, 따라서 통합적 대책을 마련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생태문명에서는 인간이 지구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전체적 이해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 지구의 진화과정에서 인간이 지니는 위치와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인간은 지구 진화의 절정이며 지구 생태계를 보살피고 돌보아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전 교육과정에서 가르쳐야 한다.
넷째, 생태문명 시대에는 종교도 그 가르침의 강조점이 변해야 한다. 생태문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연이 단순히 경제적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숨결과 손길이 깃든 신성한 창조세계임을 강조해서 가르쳐야 한다. 그동안 종교들은 자연세계가 인간에게 가장 우선적인 계시적 경험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데 소홀했다. 그리스도교는 그동안 원죄에 근거한 구원영성만을 강조한 면이 없지 않았다. 생태문명을 실현하려면 원죄만이 아니라 원복에 근거한 창조영성도 강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종교는 생태계에 대한 새로운 윤리를 발전시켜야 한다. 현대세계에서 우리는 자살, 살인, 종족살해 등에는 민감하지만, 생태계와 지구를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윤리원칙을 가지고 있지 않다. 생태계 파괴, 지구 파괴를 절대적 악으로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윤리원칙이 있어야 한다. 지구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닌 인간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책임감과 윤리 의식도 가져야 한다.
현재 생태적 가르침을 정립하고 실천을 권유하는 것은 모든 종교의 중요과제이다. 이를 위해 메리 이블린 터커와 존 그림이 주관해 하버드 대학교에서 개최한 종교와 생태포럼(Forum on Religion and Ecology)은 매우 중요한 시도였다. 1996부터 1998년까지 각 종교와 생태문제를 가지고 토론한 후 그 결과로 각 종교와 생태라는 주제로 총 열 권이 도서가 출판됐다. 이 포럼은 각 종교가 생태문제를 더욱 깊이 성찰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산업문명을 넘어 생태문명을 실현하는 과업은 현재까지 인류가 이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 겪은 일 중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이다. 그리나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생태위기를 극복하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문명으로 발전시켜 나가야만 한다. 생태문명은 인류와 자연이 공존하면서 양자를 공진화시키는 문명으로 인류를 한 단계 성숙시킬 것이다. 이런 생태문명을 실현시키는 것이 우리 시대에 주어진 ‘위대한 과업(The Great Work)’이다.
[경희대 임채원교수는 최근 자신의 경향신문 기고문 “시진핑의 헛된 꿈 중국몽”에서 중국정부가 홍콩시민의 민주주의와 자치 요구를 무시한 채 강경대응을 지시함으로써 ‘일국양제’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임교수는 지금의 홍콩 정세를 완전히 거꾸로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완강한 폭력적 저항을 계속하고 있는 일부 홍콩시위대야말로 행정수반에 대한 완전한 ‘직선제’를 요구함으로써 사실상 ‘홍콩독립’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6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홍콩사태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한국 언론들은 그것을 ‘제2의 광주항쟁’이라는 시각에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작금의 홍콩 사태와 80년 광주항쟁은 다음 몇 가지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첫째, 광주항쟁은 전두환 신군부의 등장에 맞선 ‘민주화 투쟁’이었는데 반해, 지금의 홍콩 사태는 이미 민주주의가 고도로 실현된 기반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홍콩은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오랜 기간 민주주의가 잘 정착된 국제적 개방도시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동안 반년 넘게 별 탈 없이 진행되어 온 집회와 시위, 그리고 그것들이 자유롭게 취재되고 시시각각 해외로 보도되고 있는 활발한 언론 활동은 지금 홍콩의 민주주의 수준이 어느 정도에 와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80년 당시의 광주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널리 알려진 바대로, 홍콩은 기본적으로 ‘일국양제(一國兩制)’ 하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자치’를 보장받고 있다. 예컨대 독자적인 홍콩화폐를 발행하고, 경제정책에 있어선 완전히 독자적인 정책결정이 이루어진다. 또 자체 경찰병력을 보유함으로써 일상의 치안유지를 책임지며,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교육체계와 그 내용 역시 스스로 결정한다. 일각에선 이 때문에 과거 영국 식민지하의 ‘서구 우월주의’ 교육 잔재가 아직도 청산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이다. 사실 이 점은 최근 학생들이 왜 반(反)중국 정서와 친 서구성향을 보여주는지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어떻든 입법, 경제, 행정, 치안, 교육 등 제 방면에서 이 정도의 높은 자치를 누리는 도시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광주항쟁은 순수하게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주된 것이었다고 한다면, 홍콩은 사실상 ‘독립’에 대한 요구를 제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홍콩 시위대가 표면상 요구하고 있는 것은 행정장관에 대한 ‘직선제’이다. 하지만 이들 시위대가 이미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천명했듯이 이 같은 직선제는 사실상 ‘홍콩독립’에 대한 요구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한번 생각을 해보자. 홍콩과 같이 고도로 개방된 국제도시에서, 또 거기에는 미국 시민권을 가진 자가 6만여 명이고, 영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3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 만약 행정수반에 대한 ‘직선제’까지 이루어진다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비근한 예로 요즘 스페인 카탈루냐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들 수 있다. 그곳에서는 지난 2017년 완전한 주민 직선제로 선출된 행정수반과 각료들이 독립을 선언했다가 스페인 정부에 의해 거부당하고 체포당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최근 대법원에서 반역죄로 기소된 이들에 대해 중형이 선고되면서, 카탈루냐 주민들은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와 연일 과격한 항의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홍콩에서도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만약 독립 성향의 후보가 당선된다면 홍콩은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할 것이고, 중국정부는 결코 그것을 허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홍콩은 자칫 ‘내전’이라는 커다란 비극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갈 수 있다. 우리가 일찍이 이라크, 우크라이나 그리고 시리아 등지에서 무수히 보아 왔던 사태가 바로 한반도 가까운 인근에서 재현되게 되는 것이다. 중국궐기 저지를 제일의 국책으로 삼고 있는 미국과 서구세력이 배후에 있는 한 이 같은 시나리오는 결코 공상 만은 아닐 것이다. 원래 문제의 발단이었던 ‘송환법’이 이미 공식 철회되었음에도 아직까지 홍콩 사태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지금의 홍콩 사태는 그 성격에 있어 단순한 민주주의 투쟁이라고는 볼 수 없다. 사실상 그것은 ‘일국양제’를 인정하는가 부정하는가의 문제라고 보여 진다. 이 점에서 80년 광주 민주화운동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광주시민들은 비록 신군부의 만행에는 분노하였지만, 광주와 전라도의 독립을 추호도 꿈꾸지는 않았다.
셋째, 언론의 보도태도에 있어서의 차이점이다. 80년 당시 한국 언론들은 광주항쟁에 대해 ‘친정부’ 일색으로 보도하였다. 그것은 당시 언론통제 하에서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홍콩 사태에 대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보도가 그와는 정반대로 ‘친시위대’ 일색인 것은 의외라 할 수 있다. 이는 한편에선 앞서 지적한 홍콩에서의 취재와 언론보도가 매우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면을 보여줌과 동시에, 다른 한편 그것을 보도하는 언론 매체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사실 광주항쟁 당시 한국 언론들은 봉쇄되지 않았다. 조중동과 KBS 등 신군부 편에 섰던 언론매체들은 시위대가 군인들한테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르는 것과 같은 정부쪽에 유리한 장면만을 보여주었다. 지금 홍콩 사태에 대해서 우리가 언론을 통해서 접할 수 있는 것은 시위대에 유리하고 우호적인 장면뿐이다. 그렇지만 직접 중국어 인터넷매체를 통해서 보게 되면 홍콩정부와 경찰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규모 역시 상당히 큰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홍콩 빅토리아만에서 경찰의 질서수호 노력을 격려하는 어선이 플랭카드를 내걸고 항해하는 모습, 일부러 경찰서를 방문해 격려와 위로를 보내는 시민집단의 행렬이 이어지는 장면도 목격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와 관련된 보도들은 한국 언론에선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시위대가 폭력화하는 것을 비판하는 홍콩 시의원이 백주대낮에 테러 당해 병원에 실려 가거나, 신화사 기자가 폭행당하는 사건은 국내에선 아예 무시되거나 심지어는 시민들의 ‘정당한’ 적개심의 표현으로 미화되기까지 한다. 이는 시위대 중 누군가가 경찰에 의해 부상당하는 장면에 대해선 일제히 대서특필하는 태도와 선명하게 비교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홍콩 사태의 보도와 관련한 이 같은 언론의 공정성 문제는 물론 한국 언론만의 문제는 아니다. 앞서 잠깐 언급한 카탈루냐 사태와 비교할 때 그 점은 더욱 선명하다. 사실상 양쪽 모두 주민자치에 기반 한 ‘분리 독립’을 지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홍콩처럼 카탈루냐 사태를 줄기차게 보도하는 언론매체를 한국과 서구에선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 같은 편파보도는 자칫 한국 독자들의 공정한 판단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Asian Infrastructure Bank)는 2016년 출범 이후, 18개 회원국에서 45개의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회원국이 100개국에 이르는 기관으로 성장했다. AIIB는 회원국 수에서 세계은행(World Bank)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다자개발은행(MDB, Multilateral Development Bank)이 되었다.
AIIB에 가입하는 회원국이 늘어나면서 이 기관이 기존의 다자간 자금조달의 규범, 표준, 관행 등을 통합하거나 이에 대해 논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AIIB의 가장 가까운 다자간 경쟁상대이자 협력자인 아시아개발은행(ADB, Asian Development Bank)과의 관계가 이같은 의문의 중심에 있다.
아시아개발은행 ADB에는 68개의 회원국이 있으며, 총 가입자본금은 1000억 달러 규모다. 2018년 아시아개발은행 ADB의 자금지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215억8만 달러의 신규 유, 무상 차관이 도입됐으며 민간부문 공약은 전년 대비 37% 증가했다.
AIIB는 설립 4년 만에 아시아개발은행 ADB와 동일한 수준의 가입 자본금을 보유하게 됐지만, 투자포트폴리오의 경우 2019년 15~20개 프로젝트에 대한 예산은 총 35억~45억 달러 정도로 더 작은 규모다. 이는 아시아개발은행 ADB의 2018 포트폴리오의 6분의 1 수준이다.
AIIB에 2020년 이전 필요한 자금은 약 26조 달러로 추정된다. AIIB이 아시아개발은행 ADB와의 경쟁 없이 신규 프로젝트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는 충분하다.
아시아개발은행 ADB와 AIIB는 개발 및 인프라 자금조달이라는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협력적 관계를 빠르게 발전시켜 왔다. AIIB는 올해 ADB, 세계은행, 12개 기타 개발은행 및 기금들과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AIIB는 ‘국제 개발은행의 일원’이라는 지위를 부각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AIIB의 고위간부 중 다수는 아시아개발은행과 세계은행에 몸담았던 인물들이다.
아시아개발은행 ADB와 AIIB간의 협력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 기관 주주들 사이에 존재하는 지정학적 긴장 역시 함께 증가하고 있다. 이는 AIIB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미국 및 일본의 결정과 AIIB에 대해 가입의지를 보인 정치 경제 동맹국들에 대한 미국의 비판을 통해 입증된다.
미국과 일본은 아시아개발은행의 2대 주주로서, 각각 총 가입 자본금의 15.6%를 출자하고 있으며, 12.8%의 의결권을 가지고 있다. 이 기관은 항상 이 두 나라, 특히 일본의 지리적 이해를 증진시키는 수단으로 이용돼왔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시아개발은행의 역대 총재는 모두 일본인이며, 일본인 직원들이 기관 내 고위직책을 장악하고 있고, 아시아개발은행이 자금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의 경우 일본의 지정학적 우선순위에 따라 계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시아개발은행을 주로 일본이 주도한다면, AIIB는 중국의 주도로 운영되고 있다. 중국은 AIIB의 최대 주주로서 뒤이은 5개 국가의 의결권을 모두 합친 것보다 높은 26.6%의 의결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로써 중국은 다수결에 의한 모든 결정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거부권을 갖게 됐다. 중국은 이미 대만의 가입신청을 거부하는 데 이 권한을 행사한 바 있다.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개발국가군)의 주요 인프라 자본국이며, AIIB는 중국이 중국개발은행이나 상하이협력기구와 같이 인프라 자금조달을 확충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많은 기관 중 하나다. 이들 기관은 세계 정치경제 환경에서 중국 주도로 아시아 미래 개발 궤적을 구체화하는 역사적 변화를 보여주는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
AIIB는 중국 공산당에 다른 수많은 혜택들을 제공하는데, 외교적 이익을 취하며 중국 건설회사를 지원하는 새로운 투자 프로젝트에 자본준비금을 투입하는 수단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다자개발은행의 성공적 운영을 통해 지리적, 경제적 이익을 증진시키는 지역화를 형성하고, 동시에 중국의 위상과 차용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다.
다자개발은행은 채권국들과 긴밀히 연계돼 있지만, 이같은 관계와 거리를 둘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자개발은행은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쌍무 원조 관련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는 메커니즘을 제공할 수 있다. 일본, 미국, 중국의 동맹국이 아닌 국가들의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해 온 아시아개발은행과 AIIB의 대출 패턴이 이를 반영한다. 2019년 4월 현재, 인도는 중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부상국가임에도 불구하고 AIIB 전체 대출금의 28%를 할당 받았다.
그러나 인프라 자금조달과 건설이 지리경제학 및 지정학적 권력을 투영하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시아개발은행과 AIIB 간의 어느 정도의 경쟁은 불가피해 보인다.
중국은 아시아개발은행과 AIIB의 미래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두 기관 모두의 대주주이자 아시아개발은행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의 대출을 받은 수혜국이다. 또 중국은 관련국들을 진정시키고 광범위한 회원국 확보를 위해 AIIB의 초기 계획안을 상당부분 수정했다. 다시 말해, 다자개발은행을 이끄는 리더십 측면에서 미국을 뛰어넘는 타협의지를 보인 것이다.
키어런 심스(Kearrin Sims)
케언즈연구소 연구원 겸 호주 제임스쿡대학(James Cook University)의 개발연구 강사
문재인 정부 시작 이후 산업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4차산업혁명’ 관련하여 IT 중심, 서비스업 중심 정책에 매진했다. 중소기업벤쳐부가 만들어지고 나서도 이전 정부에서 진행해 오던 스마트공장사업을 제외한다면 제조업 정책이라고 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없었다. 특히 기대가 많았던 대기업/중소기업 관계의 새로운 수립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활약!에 역시 이번 정부도 삼성 등과는 싸우려 하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심지어 예산도 얼마되지 않고 중소기업에 한정된 사업인 스마트공장사업 조차 ‘스마트공장추진단’을 해체하는 대신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의 계륵사업으로 만들어 공무원 사회의 집단 이기주의의 희생이 되어 방향성을 잃어버린 사업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중소제조업 구조조정은 산업전체와 연결되고 노동자집단과 정치와 모두 연결되는 문제이다. 또한 적어도 5년, 10년 앞을 바라보면서 수행해야 하는 작업인 바, 그에 따른 보다 고도의 작업, 산업현장에서의 변화는 물론이고 교육, 정치환경, 사회적 캠페인 등 복합적인 조치들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우선 정리의 단서들을 정리하고 그를 바탕으로 필요한 정책적 조치들을 유도해 내는 순서로 결론을 이끌어 내보도록 하겠다.
2. 중소제조업의 생산성 현황
통계청 ‘출하액(매출액) 규모별 제조업 기업체(10인 이상 기업) 분포’를 보면, 출하액 10~50억 사이의 기업체가 2017년 기준으로 전체 제조기업체 중에 48%를 차지하여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제조업 기업체의 94%가 연매출 400억 원 이하로서 대부분이 중소기업에 속한다.
제조기업의 종사자 1인당 출하액(매출액)은 2017년 평균 5.1억 원이었고, 연간 출하액 10억~50억 미만의 기업은 1인당 출하액이 1.3억 원이었다. 연매출 1천억 원 이상의 기업만 종사자 1인당 평균 출하액을 넘어섰고, 대부분의 제조기업체는 5억 원 미만이었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매출액 자체가 작고 종사자 1인당 출하액이 작은 상황이다.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투자가 증가하는 경향이지만, 매출액과 1인당 매출액의 절대크기가 작기 때문에 유의미한 결과로 이어질지 의심스럽다.
3. 중소제조업의 성공을 위한 조건
조건 1. 중소제조업의 생산성 문제 (의식의 전환)
가) 매출액 50억미만
– 구조조정이 가장 시급한 경우이다. 최저임금제와 52시간 노동을 견뎌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매출 10억 미만업체들은 곧 타의에 의해 문을 닫을 지경이다.
– 문제는 중소기업 스스로 구조조정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50억이 100억 수준으로 올라서면서 30명 정도 고용하는 방식으로 1인당 매출액 현재 1억을 2.5억 수준으로 올릴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나) 매출액 500억 미만
– 자기 기술이 없는 2차업체로서 매출액 2~300억 수준의 중소제조업체들이 해당된다. 제품개발과 설계능력을 가지지 못한 업체로서 1차업체에 기술적으로 종속되어 있다. 이들도 스스로 개발력을 갖추기는 어렵다. 그리고 현재 업계에서도 특별한 기술없는 단순하청구조를 당연하게 여기는 바, 이를 타파할 계기가 필요하다.
– 스마트공장 사업의 기초수준으로 MES를 도입하여 제대로 된 공정기술과 관리기술이라도 갖추어야 한다.
조건 2. 업종의 문제
– 일본의 소재수출 규제문제로 터져나온 소재와 부품 국산화문제가 얼마나 실질적인 산업구조조정과 맞춤할까? 그렇다면 SK 하이닉스 6조원 설비투자에 한국 제조사 반도체 장비와 설비는 얼마나 될까?
– 우리나라 중소제조업에 필요한 기술은 세계 1위 기술이 아니다. 구조조정은 1등이 되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생산성을 높이고 중소제조업체의 체질을 바꾸자는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인, 언론, 교수들은 근본도 없는 4차산업혁명, 세계 1위를 외쳐대기만 하고 있는데, 이는 상황을 조금도 호전시키지 못한다. 중소제조업의 구조조정은 업종을 부가가치가 높은 쪽으로 옮겨 가고, 기술없이 단순공정 중심의 사업은 자동화로 고도화를 기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장비제작이나 설비제작은 CAD/CAM/CAE 등 설계능력에 달려 있다.
– 로봇과 MCT는 컨터롤러는 당연히 일본 화낙제품이고 본체도 거의 일본제품이나 독일제품들이다. 생산현장의 설비와 장비들, 금형제작은 주로 설계능력이 따르지 않거나 중견기업들이 나서기에는 충분히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일본 심지어 중국에까지 의존하고 있다. 자동화설비 도입과 관련하여 설비 주문제작 국내업체들은 너무 영세하고 기술과 가격적으로 경쟁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이미 언급했듯이 설계능력에서 특히 뒤처진다. 그리고 이는 하루아침에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험과 업력, 생태계가 중요하다. 교육을 통해서, OJT 현장실습을 통해서 신규인력이 계속 유입되어 들어오고 물량이 확보되어 충분한 가격경쟁력이 생길 때까지 국가와 사회가 지원해야 할 부분이다.
조건 3. 하청구조의 변화
– 중소제조업조차도 자본재 중심, 숙련직종 편성으로 이동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3차 협력업체를 없애고 2차도 현재 3000개를 2000개소로 축소하고, SQ도 B등급을 최하로 관리하려고 한다.)
– 자동차산업에서는 이미 원청과 1차업체 사이의 위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즉 완성차 제조가 전장 중심의 조립시스템이 됨에 따라 1차업체가 독립적인 부품제작 회사가 되고 메이커에 무관하게 부품을 생산하는 시스템으로 변화하였다. 이어서 2차업체 또한 더 이상 2차업체라기 보다는 이전의 1차업체의 운영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즉 2차업체 스스로 제품과 공정을 설계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자 등의 업계에서는 원청과 1차사 관계가 자동차의 1차/2차사 관계와 같다. 이제 제품과 공정의 설계도를 원청이 요구하는 경우는 없어져야 한다.
– 한국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대기업이 이제까지 중소기업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2차업체의 필요성은 역설적이게도 그 낮은 생산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인건비의 절감이 요구되는 공정을 끌고 가는 것, 저임금 구조하의 노동관리, 단순노동이 필요한 부문을 하청으로 전가하는 것이다. 1차업체가 2차 중소규모 회사에 금형이나 설계도, 공정지원 등 기술을 제공하는 것 등은 실제로는 중간관리를 외주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소사장제, 사내하청, 50명 미만의 소규모 하청회사들은 사장의 월급까지 원청회사에서 계산 가능한 공정외주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핵심소재나 기술력이 필요한 부분은 해외에 의존하거나 자신들의 자회사가 직접 경영하지 하청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기술탈취 문제도 터져 나오지만 원청회사는 이를 보안상의 문제라고 스스로 위안해 왔던 것이다.
– 집단화, 협업화의 방안(자동화, 로봇화에 대한 요구는 자본재 중심으로의 이동)과 노동력 구조조정을 위한 교육 : 제품(기계)설계 능력 중심, 생산관리 중심
조건 4. 노동력 재편성
– 숙련공 중심 제조업으로 전환 : Industry 4.0 아래 필요한 인력은 모두 숙련공이다. 제품설계 부분이 60% 이상, 나머지로 생산공정관리, 유지보수보안관리 등 3분야의 숙련인력이 요구된다.
– 중소제조업 수준의 자동화(산업화의 끝단) –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인 단순직의 퇴출을 가져 올 것이다. (중소자본의 최대 버팀)
– 노동자군의 재편성 : 52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 제조업이 독일과 같은 30시간대 노동에 대해서도 대응이 가능해야 한다. 동일노동/동일임금은 노동인력의 재편성으로 가능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대학 진학률 세계 1위인 것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생산현장이 공학전문가들로 가득찬 상황이 되는 만들어야 한다.
4. 정책제언
조치 1. 구조조정의 합의와 정형을 확립
가) 중소제조업 구조조정이 한국 자본주의 현단계에서의 사활적인 문제임을 공유한다. 자본과 노동 모두에게 합의되어 진행되어야 하는 것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얼치기 정책이 아니라 제대로 된 산업정책으로서 제조업 진흥 정책 – 중소제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을 결집시키는 정책에 대해 정부와 업계, 노동계가 합의해야 한다.
나) 단순공정 중심에서 설비와 기계제작, 부품제작 쪽으로 업종을 고도화하고, 중소제조기업의 주력산업의 변동을 돕니다. 중소제조기업 중심으로 초기 생태계를 만든다.
– 기계제작, 금형제작, 로봇제작 등 제품설계와 정밀가공 관련 진흥원을 설치하고 중소기업의 참여를 지원한다. 일정수준까지 지원사업 틀 속에서 보급확산을 도모한다.
– 정밀화학, 의약, 화장품 등 생화학을 비롯한 기술/장치중심 산업에 대한 기술과 금융지원을 과감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
다) 중소제조업에서 규모를 조정하고 유도하며 협동화 집단화를 보조한다.
– 매출 50억 미만업체에서의 규모의 문제를 집단화를 유도하여 공동설계, 공동수주, 공동관리 등을 통해서 조합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 공단이나 지역, 업종 단위에서 제품설계, 기계설계, 도면해석을 위한 설계실을 공동운영하고 이를 기계연구소, 생기원 등이 지원한다.
– 하청구조의 변화를 유도한다. 기술탈취나 단가 조절과 관련하여 공정거래위원회의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 공정단위의 단순하청을 사내화 혹은 자회사화 하도록 유도한다.
– 대기업의 사내하청 금지 혹은 75% 이상의 동일임금 지급토록 하는 법을 정한다.
라) 중소제조기업을 위한 기술개발을 (제품개발, 설계, 산학협력) 지원한다.
– 중소제조기업이 요구하고 조건에만 부합한다면 생기원 등에서 파견인력을 지원받는 방식이 되도록 바꾼다.
– 제품, 부품, 소재에서 독자적인 시장을 가지도록 지원한다.
– 글로벌 영업이 가능한 중소기업을 만드는 것도 지원한다.
조치 2. 노동자 훈련과 재교육
– 제조업 전 영역에서 자동화(전 제조분야에서 산업화)로 단순직은 퇴출될 것이다.
– 제품설계, 생산관리, 유지보수/보안 등 3개 분야의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 전체 현장 노동인력이 고교 + 대학 연계 5년 혹은 6년제 국가교육을 받은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 현행 인력의 재교육과 숙련 인력의 국가관리가 시급히 요구된다.
* CAD/CAM, 산업디자인, 기계설계, 소재설계 인력 – 공대/전문대학, 공학석박사 필요
* 생산관리, 공정관리, 관제, 시스템관리, 데이터 분석과 제어 – 산업공학, 스마트공장 전문가 필요
* 유지보수, 보안 전문 인력
조치 3. 스마트공장 관련 현행 정책 대비 신정책
가) 스마트공장 정책의 Upgrade
– 자동화 지원을 획기적으로 강화 (자동화 설계, 장비 설계, 기계 설계 ~ 중앙 정부와 연구소가 지원하는 중견기업들이 참여하는 제작환경)해야 한다.
– 관리인력 육성(생산관리 인력의 육성, 스마트공장 관련 기술인력)을 체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 (공단차원, 지역차원) 제조기업 공동 관리, 공동 수주, 공동 설계의 도구들을 제공한다.
– 스마트공장 관련기술 산업 지원, 즉 설계기반 기술 산업 (기계제작, 금형제작, 로봇/자동화 설비 산업 등), 기술기반 고부가 부품자재 공급 산업, AI-Big Data 관련 제조업 지원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나) 업종 관련 생태계 마련
– 자동화장비 시장을 활성화한다. 정부기관을 통해서 표준 자동화설비, 공작기계 제작 기술 공개, 각종 설계기술 공개, 비젼 등 AI, 설비모니터링 기술, 로봇기술 보조금 등을 지원한다.
– 전기자동차 플랫폼, 생산기술연구원 자원 공유, 국가지원 연구원의 기술개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 생태계 구축 : 설비 관련 산업에서 일정한 수준의 수요가 보장되면 공급기업들은 자체 경쟁을 통해서 초기 장벽을 넘어설 수 있다. (이를 위하여 앞서 언급한 스마트제조업 진흥법/진흥원을 제정한다)
다) 스마트공장 관련 기존 정부기관의 분발
– 스마트공장 사업의 컨트롤 타워 필요 (기정원의 능력 밖 사업)
– 생기원의 재편, 기계연 등 제반 연구소 재편
– 제조업과 유리된 ETRI 등의 해체 혹은 재편
조치 4. 장기적 관점에서 산업/노동정책이 갈 길
가) 노동자집단의 정치세력화와 그 일차적 목표로서 최저임금, 노동시간단축, 동일노동동일임금
~ 적어도 10년 이내의 변화로 5만불, 주 35시간, 75% 생산성 / 75% 임금, 동일노동/동일임금이 시행되도록 한다.
나) 중소상인, 자영업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 택시기사, 편의점, 소상인, 재래시장 자영업자, 자영농민
~ 노동자의 범위 문제. 택시기사, 트럭기사, 택배, 프랜차이지, 초소공장 사장(매출 10억미만) 등은 지역사회 단위에 고용된 노동자로 보아야 한다. 이들에게 국가적 차원에서 근로기준이 적용되도록 한다.
다) 노동조합의 길, 정당과의 관계
~ 정당, 노동조합이 바라보는 노동자군의 변화 – 숙련화를 유도하고, 정당과 노동조합 연맹 등이 노조가입이 취업보다 먼저 되는 취업알선형 산별노조 방식을 적극 유도할 필요가 있다.
~ 노동자 정당의 장기 목표로서 국가적 차원에서 복지정책 확보 – 노동자 포함 전 국민에게 주택과 교육, 의료, 노동기회에 대한 합리적 수준의 수혜를 보장해야 한다.
우리는 지구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서 있다. 지금은 인류가 스스로의 미래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다.
데이비드 코튼 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출처: 한겨레>
인류는 결정적 선택의 순간에 도달했다. 지구와 호혜적 균형을 이루면서 평화, 아름다움, 창조력, 물질적 만족, 그리고 영적 풍요라는 오랫동안 부정돼온 인간의 꿈을 이루는 것은 우리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 꿈을 실현하려면 우리를 그 꿈에서 멀어지게 했던 현재의 문화, 제도, 그리고 사회인프라의 깊고도 신속한 변화가 필요하다.
다섯 가지의 주요한 세계적 경향은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뿐 아니라 인간의 자기멸종, 나아가 생명을 유지시키는 지구 용량의 잠재적 파괴라는 위협으로 이어진다.
첫 번째 경향은 지구의 지속력을 넘어선 소비 증가이다. 이는 잠재적으로 기후변화, 비옥한 토양의 유실, 깨끗한 담수 공급의 감소, 숲의 소멸, 어업 붕괴 등의 치명적 결과를 가져온다. 글로벌 생태발자국 네트워크는 우리 인간이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1.7배를 소비한다는 계산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경제 성과의 결정적 척도로 쓰이는 국내총생산(GDP)을 계속 늘리고 있다. 사람과 지구에 대한 파괴적인 결과는 무시한다.
두 번째 경향은 극단적인 불평등의 증가이다. 우리는 소수 사람들이 필요 이상의 과도한 소비를 하는 동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절망의 삶으로 빠트리는 세계적인 부의 격차를 인내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6명의 금융자산이 인류의 절반에 달하는 38억 명의 가난한 사람들의 자산을 합친 것보다 많다.
세 번째 경향은 생명파괴 기술에 대한 의존의 증가이다. 우리의 핵, 탄소에너지, 유전자 변형, 인공지능 기술은 지구에 점점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종류와 잠재적인 영향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네 번째 경향은 정부와 공공정책에 대한 기업 통제의 증가이다. 우리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의 금융자산을 늘려주는 데 헌신하면서 이윤을 극대화하는 다국적 기업의 독점이 점점 집중되도록 방치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그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매수하고 나머지 구성원들에 비해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더욱 증가시키는 정책을 촉진하는 능력을 키워준다.
다섯 번째 경향은 점점 증가하는 제도적 정당성의 상실이다. 가장 강력한 권력을 지닌 기관들이 점점 절망의 삶으로 빠져드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우리는 공포 속에서 등장하는 정치적 선동을 목격한다.
내 나라인 미국은 이 다섯 가지 치명적인 경향을 주도하는 세력이자 이런 경향을 직접 경험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세계는 절망 속에서 새로운 지도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 앞의 도전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한국이 블룸버그 혁신지수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나라로 선정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는 신자유주의라는 잘못된 서사를 선택했다
우리 인간의 미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현재가 왜 이렇게 심각하게 잘못되었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엄청나게 나쁜 문화, 제도, 그리고 사회인프라를 선택해 왔다. 이제 전지구화된 하나의 종(種)으로서 우리는 돈을 명백한 공통의 가치로 선택하고 행복의 척도로 사용한다. 관계를 맺는 주된 방식으로 권력과 자원을 가지려는 경쟁을 선택한다. 규범이 되는 기관으로서 사적인 목적과 이윤을 추구하는 다국적 기업을 선택한다. 그리고 우리의 주요 거주지로 사람보다는 차를 위해 설계된 도시를 선택한다.
우리는 서사의 창조물인데, 결함 있는 서사를 선택해왔다.
초기 인류는 상징적인 사고와 의사소통 능력을 발달시켜 점차 다른 종들과 스스로를 구별했다. .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현실에 대한 이해를 소통하고 공유하기 위해 점점 더 정교한 서사를 창조했다. 공유된 신념은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조직화하는 능력의 기초가 되었다.
드문 경우를 빼면 우리는 태어난 집단의 서사를 진정한 현실로 단순히 받아들였다. 이것은 강력한 자산이 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서사를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가상적으로는 제한 없는 규모의 일관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또한 한 사회의 서사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들만의 배타적 목적을 위해 서사를 쉽게 조작하도록 만들었다. 현재 우리 인간의 오만, 자기파괴 능력, 그리고 서사적 조작에 대한 취약성, 이 모든 것은 제국주의 지배자들이 지난 5000년동안 인간과 지구를 착취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의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조작해온 서사를 그대로 따른다. 과거에 그 지배자들이 왕들과 황제들이었다면, 현재 그들은 기업의 CEO들과 월 스트리트 금융가들이다.
현재 우리 인간의 불행은 거침 없이 미화된 서사이자 실제로는 이데올로기인, 소위 신자유주의라는 사기에 넘어간 것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돈이 부이며, 돈을 버는 사람이 부를 창조하고, 개인이 얻은 이윤의 합을 넘어선 공동체의 이익은 없다고 믿도록 한다. 그리고 이윤을 추구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우리 모두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끌어 줄 것으로 기대하게 만든다.
신자유주의는 생산수단에 대한 접근을 통제함으로써 많은 이들을 착취해 소수가 이익을 취하는 시스템인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그것의 가치와 논리는 신중하게 고른 “밈”(meme: 비유전적 문화요소로 문화의 전달방식임)을 통해 전세계 대중의 의식에 침투했는데, 이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문구인 “경제 성장” “개인의 자유” “자유시장” “자유무역” “투자자” “다국적 기업” “작은 정부” 등이다. 각각의 문구는 인류와 지구의 복지보다 사적인 금융이익을 우선시하는데 도움이 되는 암호들에 불과하다.
“경제성장”은 GDP를 증가시키는 것과 관계 없는 자조적 돌봄이나 헌신보다는 시장에서의 거래를 중요하게 여긴다. “개인의 자유”는 단정적으로 개인이 우월하다고 보고 공동체를 폄하한다. “자유시장”은 (규칙에 기초한 윤리적 시장과는 반대로) 기업이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라면 공공의 규칙, 감독, 공공선에 대한 배려를 벗어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한다. “자유무역”은 (공정하고 균등한 무역과는 반대로) 단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에게 시장, 노동, 자원 및 돈에 대한 무제한적 접근과 궁극적 통제권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한 사회적, 환경적 결과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러한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우리의 정치제도는 보호가 필요한 공동체에 봉사할 의무를 가진 정부로부터 주주들의 금융배당을 최대화하는 것 외에는 아무 책임도 없다고 단언하는 다국적 기업에게로 권력을 쉽게 넘기도록 설계돼 있다.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에서 근본적인 요건은 돈이 숫자에 불과하고 돈을 벌기 위해 생명을 파괴하는 것은 자살만큼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불신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동시에 동양문화가 오랫동안 인식해 왔고 지배적인 서구문화가 오랫동안 무시해 왔으며 심지어 부인해온 근본적인 진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 인간은 살아있는 지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생명체이다. 살아있는 존재는 오직 공동체 안에서만 살아남고 번성한다.
우리 몸처럼 지구는 유기체이다
생태문명은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의 적절한 이름으로 보인다.
생태라는 말은 생명이 존재하는데 필수적인 조건을 만들기 위해 공동체 안에서 자기 조직하는 유기체의 능력에 초점을 둔다. 문명이란 말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진정으로 겸허한 관계를 맺는데 요구되는 문화적, 제도적 전환의 깊이를 상기시킨다..
수십 조의 살아있는 세포로 구성된 공동체인 당신의 몸을 생각해보라. 이 세포들은 끊임없이 각자의 요구와 자신들이 의존한 몸의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춘다. 그들은 각 세포의 연쇄적인 죽음과 재생, 기온의 변화, 영양분·물·정보 그리고 에너지의 다양한 투입을 포함한 변화의 조건에 끊임없이 적응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들은 의식의 보금자리이자 에너지의 운반체인 당신의 몸을 창조하고 유지한다.
지구도 진정 엄청난 규모로 이와 똑같은 일을 한다. 지구 안의 무수한 단세포와 다세포 유기체들은 토양, 대수층, 숲, 해양생태, 하천, 강을 재생시키기 위해 에너지, 영양소, 물과 정보를 교환한다. 또 잉여의 탄소, 독소 및 기타 폐기물을 격리시키고 태양 에너지를 잡아두고 공기를 정화하며 날씨와 기온을 안정시킨다.
우리는 돈, 시장, 기업과 정부라는 인간의 제도에 상응하는 등가물 없이도 지구에서 어떻게 이 모든 것이 작동하는지 이제 겨우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인간 상호간, 그리고 인간과 지구 간의 교환을 안내하는 수단으로서 돈, 시장, 기업과 정부라는 인간적 제도에 계속 의존할 가능성이 크지만, 이 제도들은 단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현재 구조화된 대로 우리가 선택한 제도들은 의사 결정을 중앙에 집중시킴으로써 우리 중 가장 부유하고 유력한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우리를 희생시키고 착취하도록 우리의 생존수단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를 이루려면, 이러한 제도들은 모든 사람의 물질적 충족과 정신적 풍요를 확보하기 위한 탈중심화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재구성되어야 한다. 또한 살아있는 지구가 온전한 건강과 활력을 갖도록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여기 퍼즐 조각이 하나 더 있다. 우리 인간은 공동체에서 살도록 진화했다.
최초의 인간이 지구에 발을 디딘 이래 대략 99%의 시간 동안, 우리의 조상은 사냥과 채집을 하는 종족으로서 다른 인간, 자연과 직접 연결된 상태로 살았다. 부족 구성원들은 함께 견과류, 씨앗, 과일, 그리고 야채 등을 찾으러 다녔다. 그들은 함께 사냥감을 쫓고 놀이를 즐겼다. 그들은 함께 공동부엌에서 함께 쓰는 불로 식사를 준비했다. 그들이 다른 사람이나 자연과 맺는 관계는 직접적이고 평생 유지됐으며 상대방이나 자신이 사는 지역의 실물과 동물에 대한 친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언제나 함께 생활하는 여러 세대로 구성된 가족 구성원으로부터의 지속적인 지지와 관여, 인내하는 관계를 경험했다. 청소년들 역시 부모들과 거의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그리고 자연과는 절대 떨어지지 않은 상태로 활동적인 야외생활을 영위했다.
이런 경험은 어린이들의 직접적인 행복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공동체 모든 구성원들의 행복,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에 대한 책임감을 심어주었다.
우리가 지금 사는 방식과는 얼마나 다른가! 세계적 추세에 대한 통계에 따르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1인 가구에서 혼자 살고 있다. 1960년대 이래로 1인 가구의 비율은 호주, 캐나다,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그럼 우리 아이들은 어떤가? 현재 미국 아이들의 31%는 한부모 가정에서 살고 있다. 종종 한부모는 한 개 이상의 저임금 일자리에서 가까스로 생계를 유지하려고 투쟁하는 엄마들로 긴 통근시간에 시달리며 사회보장을 거의 받지 못하고 동료나 이웃들과 어울릴 기회도 전혀 없는 경우가 많다. 아이는 대부분의 깨어있는 시간 동안 부모나 다른 친척들과 접촉하지 못 하고, 자연과의 접촉도 거의 혹은 전혀 없다.
이처럼 고립된 상태와 공동체의 지원 부족은 정신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에서는 2000년 이후 자살이 25% 증가했으며 전문가들은 현재 미국 인구의 50%가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서 정신질환을 경험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지난 세기에 걸쳐 우리가 진보라고 자축했던 것들은 돈의 개입, 자동차, 기업, 그리고 인간 상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매개자 역할을 하는 정부 등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그렇게 아둔하게 망쳐놓은 직접적 관계들을 복원해야 하는 당위에 직면했다.
생태문명은 공동체의, 책임 있는 삶이다
우리가 목표로 삼는 미래는 대부분 사람들이 대도시나 소도시 혹은 마을에 살면서 다른 사람, 그리고 자연과의 본질적 관계를 회복하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요소를 충족시키며, 우리가 지구에 가하는 총체적인 물질적 부하를 최소화하는 특징을 갖는다. 자동차에 대한 의존이 증가하고 각 가구를 고립시키며 생태적 통합성을 망치는 교외로의 무질서한 확산은 생태문명 안에는 설 자리가 없다. 또한 대도시에서 자동차의 자리가 없어져야 한다.
생태문명의 자동차 없는 도시에서는 다세대의 여러 가정으로 이뤄진 주거단지가 시설, 도구, 자원 및 노동을 공유하는 활력 있는 생태공동체로서 작동하며,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현재도 일부는 그런 것처럼 부족공동체로서 서로를 돌보고 서로의 아이들을 보살피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편리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사회인프라를 설계해야 한다. 사람들이 필요한 서비스, 쇼핑, 교육, 영적 활동, 직장, 그리고 거주지에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서 즐길 수 있는 여가생활 등의 수요가 충족돼야 한다.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위해 섞이고 어울리는 매력적인 장소가 많은 것이 이런 도시들의 특징이 될 것이다.
호감 가고 개성적인 이웃들이 초고속 부상열차나 지하철로 연결될 것이다. 또 모든 사람이 초고속 인터넷으로 소통할 것이다.
교외로부터 철수하면서 도시와 농촌 지역의 경계는 도농간 연계와 공유를 용이하게 하는 방법으로 다시 그려질 것이다. 도시와 농촌의 지방정부가 음식, 물, 에너지, 물질적 필요 등 양 지역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할 것이다. 또한 공기, 물, 비옥한 토양의 자연적 재생을 가능하도록 하고, 인공비료와 살충제의 사용을 배제하며, 쓰레기를 재활용, 분해 및 재사용할 것이다. (역자주: 필자는 미국의 산업화와 경제적 번영의 결과물로, 중산층이 교외에 큰 저택을 짓고 각자 자동차를 이용해 도시로 출퇴근하는 생활방식에 대해 비판적이다. 생태문명을 위해서는 한국의 아파트처럼 도시의 밀집한 주거단지가 에너지와 자원의 이용이나 관계 회복에 효과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최근 한국에서는 오히려 “생태적인 삶” “귀농귀촌”이라는 이름으로, 공동화된 농촌지역에 대형 주택을 짓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기본적으로 관계의 자본화와 붕괴를 나타내는 지표인 GDP의 성장이 아니라 진정한 건강과 복지의 지표로 우리의 진보를 측정할 것이다. 사람들은 오래 건강하게 살며 삶을 즐기고 있는가? 아이들이 적절한 보살핌과 교육을 받고 있는가? 자연은 풍요로운가? 이런 것을 측정하는 지표들이 발전한다면, GDP가 증가하는지 줄어드는지에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할 이유는 없다.
전지구적 수준에서 보자면, 우리는 다국적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세계에 걸쳐 돈, 인력, 재화가 이동하는 대신, 사람들이 자신의 지역에서 더불어 살면서 건강과 행복을 최대로 누릴 수 있는 자립적인 생태권역경제를 선호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계급분리를 최소화하고 평등을 최대화하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유지하고 도시가 주변 농촌 지역 및 농민들과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실천하려면 법률, 기술, 사회기반시설의 중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사유재산이 사회에 도움이 되고 민주주의에 필수적이라고 믿는데,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조금씩 재산을 가져야 한다. 가급적이면 자신의 집과 생계수단에 대한 소유권이 있어야 한다.
지역 참여적 소유의 필요성은 부의 재분배, 금융투기 해소, 독점기업 해체, 그리고 모든 사업체가 사업을 수행하는 공동체에 종속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의 필요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이는 소규모 지역공동체 사업을 통해 가장 잘 성취된다. 아담 스미스를 주의 깊게 읽어보면,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시장은 개인 농부나 장인이 개인 소비자들과 직접 거래하는 곳이다. 현대사회에서는 큰 규모의 사업이 필요하지만, 소유권은 지역적이고 안정적이며 평등해야 한다. 집중화되거나 다른 곳에 사는 사람의 소유권은 지역 협동조합원, 소비자, 지역사회 소유권을 위해 없애야 한다.
협력의 정신과 윤리에 따라 각 생태권역은 권역 안의 노동과 자원을 이용해 스스로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생태권역에서는 아이디어와 기술, 문화를 자유롭게 공유하며, 스스로 생산할 수 없는 것은 이웃들과의 공정하고 균등한 교역으로 얻을 것이다. 은행, 금융, 그리고 소유권을 지역적으로 유지할 것이다.
인류는 결정적 선택의 순간에 도달했다. 우리는 현재 궤도대로 살면서 소수 사람들이 일시적 과소비를 즐기도록 도와주는 황금만능주의를 추구하다가 멸망할 수도 있다. 아니면 생태문명의 비전을 수용해서 모든 인간이 번영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문화, 제도, 사회인프라의 전환을 이루자는 공동의 목적에 동참할 수도 있다.
모든 이들을 위한 평화, 아름다움, 창조성, 물질적 충족, 영적인 풍요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가족, 공동체, 국가 모두가 같은 지구생명체의 구성원이라는 공통의 정체성을 갖고 함께 헌신해야 할 시간이 왔다.
지난 10월 25일 – 11월 초에 ‘한반도평화국제회의’를 겸하여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를 중심으로 여러 종교단체와 시민단체 인사들이 뉴욕과 워싱턴을 방문하여 미국 조야에 대북제제의 완화와 미북 간 정산회담 재개를 촉구하는 활동을 펼쳤다. 당시 이들 대표단과 함께 했던 워싱턴의 저명한 팀 서록 기자는 대표단의 활동 과정에 대해 미국의 유력한 정치 전문지인 Foreign Policy와 Nation에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칼럼 기사를 제공하였다.
다시 싸울 준비가 되었는가?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사안을 놓고 트럼프 미 대통령과 진행하고 있는 양자 협상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데 진저리가 난 것은 북한 국민뿐만이 아니다. 한국 국민들도 더딘 협상에 지쳐가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11월 5일, 대한민국 국회의원 71인은 남∙북∙미∙중이 공식적으로 한국 전쟁 종전 선언과 평화 협정을 체결하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했다. 결의안을 발기한 국회의원들은 비무장지대(DMZ)를 가운데 두고 있는 남∙북 국민들에게 필요한 비핵화 회담을 촉구하는 과정이며 “한반도 평화를 불러오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 라고 전했다.
그러한 결의는 의미 있는 시기에 이루어졌다. 한 주 전인 10월 31일, 김정은은 단거리 미사일 ‘시험 사격’을 진행하면서 워싱턴을 긴장시켰다. 김정은의 ‘경제적, 정치적 권리를 위한 정권의 핵무기 언쟁을 다루는 새 제안을 연말 기한까지 맞추라’ 며 트럼프를 압박하려는 의도였다고 한국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관행적으로 미 주요 언론들은 미사일 시험 사격을 집중적으로 보도하였다. 반면에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시작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협상은 점차 경멸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리고 북한이 트럼프와 어려운 회담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북한은 여전히 재무장하고 있었다는 예의 소식은 외교 정책 수립에 영향을 미쳤다.
워싱턴 포스트지 강경파 필진인 조쉬 로긴(Josh Rogin)은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을 두 차례 더 발사했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고 시험 사격에 대한 트위터를 남겼다. 그러나 한국은 확실히 염려하는 입장이다. 한국인들은 전쟁의 위협 속에서 70년 간 지내왔고 진정한 평화를 간절하게 원한다.
미사일 시험 사격 한 주 전인 10월 말, 한국의 진보 단체는 남∙북 화해 진전 계획을 이어 나가기 위해 뉴욕과 워싱턴을 방문하여 미국의 정책이 변화함으로써 교착 상태가 타개되도록 촉구했다.
미-북 회담이 교착 상태에 빠지고 문재인 대통령이 제재를 유지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묵인하는 것에 참지 못한 대표단 22인은 한국 교회, 노동 조합, 학계, 농업을 대표하여 대서양 연안에서 닷 새 동안 미국이 하락해주지 않으면 한반도 평화 협상 과정은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적 현안
신필영 6∙15 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 대표위원장은 “미국과 북한의 답보 상태가 2020년까지 악화되면 한반도에 극단적인 군사 행동이나 심지어 전쟁을 도발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10월 26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 회담 개회사를 통해 전했다 (필자는 독립 기자로 회담에 초청받았다).
언론과 케이블 뉴스에 한국 관련 논의에서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미국의 대북 회의론자들과는 달리, 한국 내 진보주의자들은 미국 정책 그 자체가 한국 평화 협정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라는 견해를 보인다.
평화 대표단장이자 중심 인물인 이창복씨는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DPRK,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적대 정책이라고 반복해서 주장해 왔습니다” 라고 북한을 공식 명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칭하면서 유엔에서 있었던 회담에서 주장했다. ‘적대 정책’ 이라는 단어 또한 북한이 미국에게 주장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이어서 “미국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의 정신으로 돌아와서 교착된 현 상황과 북한을 억압하는 규정들을 완화해야 합니다.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절차들을 통해 우리는 결과적으로 안정된 평화 정권을 보장하고 비핵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전했다. 2018년 6월 12일, 그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북한과 미국 간의 오래된 적대 관계 종결을 약속했다”고 선언한 사실을 언급하며 “미국 정부는 한반도에 깊게 침식된 전쟁 메커니즘을 뿌리 뽑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와 함께 한 한국대표단은 지난 10월 5일 스웨덴에서 열린 미국 협상 대표단과의 마지막 실무 회담에서 북한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게 만든 것은 완전한 비핵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제재를 강행한 트럼프의 강경책이었다고 주장했다. 열흘 후, 김정은은 눈 내린 백두산에서 언론에 백마를 탄 모습으로 나타났다. 백두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북한의 민족주의, 권력과 불패를 상징한다. 한겨레는 ‘김정은은 북한 국민에게 인내심과 주체성이 담긴 메시지를 보낸 것’이란 표제를 통해 진보 성향의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미국 전문가 대부분은 소셜 미디어에서 크게 놀림감이 되었던 김정은의 모습을 두고 미국이 올해 초에 정한 기한을 지키지 않으면 아마 ‘더 규모가 크고 더 질이 안 좋은’ 미사일 훈련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것임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이어 데일리 비스트(The Daily Beast)지의 도날드 커크(Donald Kirk)는 김정은의 백두산 등반에 대해 “미국과 한국을 겨냥하여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끝내 자신의 요구 조건에 굴복하도록 극적 추진력을 얻고자 벌인 협박 작전에서 영웅처럼 보이려는 계획” 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한국 대표단은 김정은의 모습을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다.
10월 마지막 주, 유엔 외교관과 미 국회의원, 평화 단체와 만난 자리에서, 대표단은 트럼프가 ‘최대 압박’ 정책으로 김 위원장에게 즉시 비핵화를 시행하도록 강요하며 제재 해제를 거부했기 때문에 북한이 최근 미사일 시험 사격을 통해 군사력을 과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참관인에 따르면 올해 미사일 24회 발사).
더 나가서, 대표단은 지속적인 제재로 인해 남과 북이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역사적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이 합의했던 경제 프로젝트를 진전시키는 것이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중요한 경제 프로젝트 중 하나인 금강산 관광 재개 안건은 10월 말 김 위원장이 격렬하게 비난한 주제가 되었다. 한국이 이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하자고 제안하자 북한은 한국의 역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다.
대표단은 교착 상태의 원인인 미국의 제재를 비난했다. 신 원장은 “동맹국인 미국에게 간청합니다. 미국이 금강산 프로젝트를 가로막는 규제를 계속 가하고 있습니다” 라고 워싱턴 내 싱크탱크인 정책연구원(Institute for Policy Studies)의 연구자 단체에게 말했다. “이 난관을 함께 극복하고 싶습니다.” 신 위원장은 남북 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북한 핵무기에 관한 한미 협정 전망이 밝지 않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미국의 비정한 제재는 절실하게 필요한 인도적인 원조도 진행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대표단은 에드워드 마키(Edward Markey) 메사추세츠 상원의원과의 회의에서 의약품이나 정수기와 같은 제재 면제 항목에 대한 가능성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10월 30일,여성평화걷기(Women Cross DMZ)단체에서 이끄는 코리아 피스 나우(Korea Peace Now!) 캠페인에서 일반 북한 주민들에게 제제가 미치는 심각한 영향이 강조되어 보고되었다. 이 보고서는 객관적인 통계치와 함께 월스트리트 저널과 일간지 등의 매체에서 널리 다루어졌다.
보고서는 “이미 회복 불가능한 피해가 나타난 것이 증거로 드러납니다”라고 밝혔다. “제재로 인한 관련 지원의 지연과 유엔의 특정 인도주의 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치는 자금 부족의 결과로 2018년에 사망자가 3,968명 넘게 (5세 이하 어린이 3193명, 임산부 72명 포함) 있었을지 모른다고 꽤 확실하게 추정할 수 있습니다.”
미국을 방문한 6∙15 위원회는 금강산 프로젝트가 시작된 2000년에 첫 남북 정상회담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었던 2009년 폐쇄). 위원회는 2016년과 2017대규모 촛불 집회를 조직한 많은 단체 중 주요 일원이었고, 해당 촛불 집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 대통령이 당선된 2017년 5월 선거를 이끌어 냈다.
그 이후, 한국의 진보 세력들은 문 대통령 지지층의 근간이 되어 왔다. 필자가 2017년 광주에서 목격했을 때, 당시 문재인 후보는 정치 및 경제 업무에서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맹세하며 대선 운동을 했다. 햇볕정책은 1990년대 후반 시작되었는데, 2000년 북한에 첫 발걸음을 한 김대중과 노무현 전임 대통령들에 의해 시행되었다. 문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이후, 대다수는 그의 평화 계획에 찬성의 의견을 보였다. 최근 몇 달 동안 지지율이 하락했지만, 여론조사 대부분에 따르면 한국 국민 60%가 문 대통령의 대북 원조를 찬성한다.
그러나 미국의 강경한 대북 입장은 한국과 심지어 문 정부까지 큰 곤경에 처하게 만들어왔다. 미국이 관장하는 한국 내 유엔군사령부(UNC, United Nations Command)가 한국 관리들이 북한 철도 시스템 조사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고 한국인들이 북한측과 논의하려고 국경을 넘을 때 엄격한 통제를 지속해오는 것을 보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소한 규제도 있었다. 6∙15 위원회 대표단에 따르면 지난 2월 금강산에서 소환된 한 단체는 노트북과 카메라 소지를 금지당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는 유엔군사령부의 입장을 공개적으로는 옹호하면서도 사령부 정책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표출했다. 10월 21일, 국회 청문회에서 문 정부 측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유엔군사령부(UNC)가 ‘부적절한 법적 근거’를 들어 DMZ 통과를 거부하고 있다며‘ 제도적인 해결책’을 수립하여 사람들이 민간 목적으로 비무장지대를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례 없는 질책을 받은 유엔군사령부는 언론 발표를 통해 보도가 ‘부정확’하다고 대응했다).
한국 대법원이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 후일본이 무역 논쟁으로 대응한 것을 두고 문 정부가 반응하자 미국은 문 정부를 비난했고, 한국 진보주의자들은 이러한 미국 반응에 충격을받았다. 6∙15 위원회가 뉴욕과 워싱턴을 방문하고 있는 동안, 데이비드 스틸웰(David Stilwell)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서울에서 문정부에게 일본 수출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파기한 정보공유협정(GSOMIA)복귀를 요청했다.
주로 미국과 일본 무기 수출업자로부터 후원을 받는 군사 싱크탱크인 전략국제연구센터(CSIS)에서 주관한 회담에서 한국과 미국의 입장차이는 매우 극명했다. 전략국제연구센터 선임고문이자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정부에서 한국관련 사안을 다뤘던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은 “한국 당국은 자신에게 가장 해가 되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반박했다. “문 정부가 일본과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본이 분쟁에서 전략적으로 승리하고 있습니다.”
워싱턴의 공식적 적개심이 깊어지자, 며칠 전 문 정부의 이수혁 신임 주미대사는 기자들에게 한국의 대북 정책이 미국측으로부터 ‘친평양’이라는 비난을 초래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한국 좌파에게 대북 정책에 대해 칭찬을 받고 있던 트럼프는 한국이 주한 미군에 대한 재정지원을 5배로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비난을 자초했다.
제임스 매티스(James Mattis) 전 미 국방부 장관의 비서관이 집필한 최신 저서에서는 트럼프가 한국이 미국을 ‘가장 많이 이용해온 나라(a major abuser)’이고 한미 동맹관계는 ‘손해 보는 거래(losing deal)’로 이해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트럼프는 주한 미군 주둔을 위해 한국이 연간 60억 달러(약 7조원)을 지불한다면 괜찮은 거래” 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한국측은 이러한 진술을 접한 후 이의를 제기했다. 10월 18일, 진보성향 대학생 단체가 사다리를 타고 해리 해리스(Harry Harris) 주한 미국 대사 관저에 침입하여 미군 지원금 500% 인상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대학생 단체는 ‘해리스는 이 땅을 떠나라’는 배너를 들고 있었다).
한국의 진보세력은 주한 미군 문제에 관해서는 대세를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한국인 대부분이 미국과의 군사 동맹을 지지한다고 나타났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주한 미군의 향후 거취를 모호하게 생각하고, 주한 미군을 위한 지원금 인상을 요구하는 미국과는 뚜렷한 의견 차이를 보였다. 예를 들어 지난 1월, 한국 여론 조사 기업인 리얼미터(Realmeter)는 60% 한국인이 주한 미군 기지 비용을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요구를 반대했다고 발표했다. 반면에 한국인 52%는 ‘심지어 미국이 병력을 감축하거나 한반도에서 군사를 철수하더라도’ 트럼프의 요구에 반대한다고 보고되었다.”
트럼프의 최근 발언 역시 한국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코리아 타임즈 오영진 편집자는 “필자는 미국 국민들이 트럼프식 교란(Trumpian diversion)을 극복하고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논평으로 ‘왜 트럼프는 한국인들을 증오하는가’를 제목으로 일간지에 실었다.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회의에서 미 국방부 임원은 한국군은 중동 같은 지역에서는 미군의 지원 병력이 되어야 한다는 뜻을 비침으로써 트럼프 정부 또한 비난을 받았다. 국방부 대변인은 “전시작전통제권(Opcon) 반환 후에 미국이 위기라고 판단하는 해외 분쟁 지역에 한국군을 보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닙니다” 라고 발표했다.
워싱턴 모임에서 6∙15 위원회 위원들은 제재에 대한 한미 간의 의견 차이를 볼 때, 1954년 공식화된 한미동맹의 의미에 대한 재정립의 필요성이 강조된다고 주장했다.
평화단 대표인 이창복 씨는 “종속적인 구조가 아니라 더 동등한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동맹이 변화할 때까지 남북 간 대화는 제한될 것이다.” 게다가 그는 “미국이 한국과 위계적 동맹을 유지하는 이상, (미국 정부와) 북한의 관계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계속해서 해결책은 “한국이 한미 동맹에서 주권을 가지면서 한반도에서 한국의 이해를 옹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탄핵 조사로 곤경에 처해 있고, 외교 문제에서 전혀 예측이 가능하지 않는 트럼프에게는 무리한 요구이다. 그러나 미국 민주당은 여전히 종래의 입장을 보였다. 민주당 핵심 의원(낸시 펠로시(Nancy Pelosi) 하원 의장을 포함한)들은 ‘폭군’ (조 바이든(Joe Biden)의 표현 )김정은과 문 대통령의 협상안을 폄하했고 전략국제연구센터(CSIS)와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 보상 관련 논쟁에서 공공연하게 일본 편을 들어주었다.
내년 미국 대선 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트럼프는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외교 정책을 시도하고 여느 때처럼 정책에 낙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는 김정은과 맞서 비핵화를 성공할 수 있다고 계속해서 예측하지만, 합의를 마무리하기 위해 “급할 것 없다”고도 말했다.
북한 수뇌부도 합의에 대해 같은 의견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위 관료들이 미국의 입장을 맹렬하게 비판한 후에도 김 위원장은 트럼프가 합의를 성사시킬 것이라고 믿는 눈치였다. 트럼프와 김위원장은 여전히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김계관 고문은 “워싱턴 정계와 미 행정부 내 북한 관련 정책입안자들은 냉전 사고와 이념 편견에 사로잡혀 북한에 이유 없이 적대적이다” 라고 조선 중앙 통신(KCNA, 북한 통신사)에 논평을 기고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미국이 얼마나 현명하게 연말을 보낼지 지켜보고자 한다.”
이후 10월 31일 CNN은 트럼프가 스티븐 비건(Stephen Biegun) 대북특별대사를 국무부 2인자 자리인 부장관으로 임명했고, 이를 통해 ‘북한 포트폴리오를 유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비건은 놀랍게도 북한에 초점을 둔 인도주의 단체와 평화 단체를 도우며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예를 들어 지난주, 그는 여성평화걷기 단체의 창립자인 크리스틴 안(Christine Ahn)과 코리아 피스 나우 캠페인 회원들과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제네바(Geneva)에서 마주 친 안 대표는 비건과 만난 적이 있고, “그는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고 전했다). 그리고 화요일, 한미 평화 협정 간청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신호로서, 알렉스 웡(Alex Wong) 미 국무부 북한 담당 부차관보가 한반도의 전쟁 상태는 “영속돼선 안 되고 영속될 수 없다”고 워싱턴에서 전했다.
한편, 문 정부는 북한이 미국과의 회담에 다시 참석하길 바란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지난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10월 31일 있었던 북한 미사일 시험 발사를 염려하는 미국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을 향한 위험을 경시했다. 그는 국회에서 “북한이 현재 개발하고 있는 미사일 능력은 한국 안보에 아주 위중한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국방비 예산 규모가 북한보다 월등히 많고 한국도 단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를 다수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정부의 입장은 보수주의자들에게 신랄하게 비난을 받았다). 11월 4일, 서훈 국정원장은 국회의원들에게 미국과 북한 협상가들이 ‘늦어도 12월 초까지는’ 또 다른 양자회담을 열 것으로 예상된다며 낙관적인 어조로 말했다.
한국군과 미국군은 협상 전에 유연성을 보여주는 뜻으로 예정된 연합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를 중단하기로 동의했다. 2017년 비질런트 에이스에서는 F-22, F-35를 포함한 한미 항공기 270여 대가 투입되어 북한을 향한 한미 합동 능력을 보여주었다 .대신에 그들은 2018년과 마찬가지로 별도의 훈련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러한 결정은 ‘북한 비핵화를 위한 지속적인 외교를 유지’하려는 양국의 노력이라고 한국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이러한 군사 훈련 중지는 한국 전쟁 종전을 위한 평화 조약일 뿐 아니라 미국을 방문한 한국 대표단의 주된 요구이기도 했다. 제재와 관련하여 미연방 의회와 회의를 마친 후 대표단 중 한 위원은 ‘한 번에 하나씩’ 차분히 해결해 나가자고 말했다.
팀 셔록(Tim Shorrock)
워싱턴 DC에서 활동하는 기자이자 한국 관련 안건 전문가로 «고용된 첩자들: 기밀 아웃소싱의 비밀스러운 세계 (Spies for Hire: The Secret World of Intelligence Oursourcing)»의 저자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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