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미국 워싱턴에서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한 한반도평화활동가주간KPAW의 모임이 있었다. 아래의 내용은 참석자의 한사람이며 미국 내 저명한 반전평화 및 환경운동가 Garl Smith의 참가 보고서 요약본이다.
미국이 진행하고 있는 가장 ‘오랜 전쟁’의 타이틀은 아프칸이 아닌 한반도에 주어져야 한다. 이는 한반도의 대결이 여전히 공식적으로 종결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한국전쟁은 종전대신에 전쟁 당사자들간에 물리적 열전을 보류하는 정전형태의 Amnesty(사면)합의에 서명함으로써 군사적 대결에서 대치로 전환되었다.
오는 6월 25일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아프칸의 미국전쟁은 18년 동안 열전 중에 있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한국전쟁은 이보다 4배가 넘는 기간 동안 여전히 내연되고 있다.
아프칸에 워싱턴 당국이 개입하면서 그동안 미국시민의 세금이 2조 달러이상 투입되었지만, 한반도를 방어한다는 명분으로 해당지역을 군사화하고 남한지역에 미군을 주둔시키면서 발생한 현재까지 70년간의 비용을 감안하면 아프칸에 투입된 전비를 훨씬 넘어선다.
활동가들을 초청하고 6.25를 기념하는 것과 별도로,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전을 요구하는 Ro Khanna(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의 ‘의원결의-152호’에 동료의원들의 서명참여를 요청하고자 한다.
2 주전에 나는 한국평화활동가주간(KPAW, Korean Peace advocacy week)에 200여 명 활동가들과 함께 참여하였는데, 이 모임은 한국평화네트워크, Korea Peace Now!, 그리고 Women Cross DMZ 등 풀뿌리 시민단체들이 공동으로 주관한 행사이다.
나와 자리를 함께한 6 명은 카리스마가 넘치는 한국계 미국여성들이었는데, 이 중에는 Bay Area 영화제작자이자 활동가이며 “Women Cross DMZ” 다큐를 제작한 Borshay Liem도 있었다.
30분간 워싱턴에 있는 Barbara Lee 민주당 연방의원과 줌을 통한 영상대화가 있었고, 얼굴을 맞댄 토론과 준비된 노트북의 활동보고 그리고 온라인으로 올라오는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전쟁없는세상(WbW)’이 북한의 실상에 대한 소개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하였다.
한국은 1200여년 동안 통일된 왕국을 유지하여 왔으나, 1910년 일본이 식민지로 강점하면서 통일된 역사는 끝이 났다. 이후 북한을 만들어 낸 것은 다름아닌 바로 미국이었다.
그것은 1945년 8월 14일 즉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직후였으며, 미군부의 2명 장교가 한반도를 가르는 분단의 선을 설정하였다.
한국전쟁 중에 유엔의 경찰작전(police action)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폭격기들이 63만톤의 각종 폭탄과 32만톤의 네이팜탄을 투하했는데,, 이로 인하여 북한지역에서만 78개의 도시와 5000개의 학교, 1000여 개의 병원과 50만 채의 민간주택이 파괴되었고, 군인이 아닌 60만 명의 일반시민이 사망하였다. 현재까지 북한사람들이 미국을 증오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늘 현재, 북한은 남한의 50개와 일본내의 100여 개 미군기지로 둘러 쌓여 있으며 평양을 폭격할수 있는 거리의 괌섬에 전략핵무기의 장착이 가능한 B-52 폭격기가 대기하고 있다 (최근 비공식적 정보에 의하면, 미군은 중국의 중거리 미사일 사정거리에서 전략폭격기들을 철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백년).
1958년부터 미군은 정전협정을 위반하면서 남한에 핵무기를 반입하기 시작하였다. 한떄 950개에 달하는 핵탄두가 남한 내에 배치되기도 하였다.
미국은 북한이 제안하는 침략금지조약을 일방적으로 거부(무시)하여 왔다. 이런 배경에서 북한의 다수는 핵무장만이 미국의 침공에서 조국을 방어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외교적 활동이 진행되어 온 것을 지켜 보았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이 플라토늄 생산을 중지하는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제공한다는 일반협정-Agreed Frame에 서명하였다.
2001년 출범한 부시정권은 상기의 일반합의를 비난하고 제재를 가했다. 북한은 이에 대응하여핵무기 계획을 재개하였다.
북한은 북한을 위협하는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중단하면 미사일시험 역시 보류하겠다고 반복적으로 제안하였다.
2019년 봄에 미국은 봄철에 예정되었던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하는 것에 동의하였고, 김정은은 미사일시험을 중단하는 것으로 화답하였다. 이후 이들은 DMZ에서 재회하였으나, 미국은 합동훈련을 재개하였으며, 북한은 전술핵시험을 반복적으로 실시함으로써 대응하였다.
이제 미국은 중국이 주도하는 제안에 따라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하고 평화협정에 서명해야 할 시점이다.
지난 주말에 민주당 Barbara Lee연방의원으로부터 우리의 요청을 받아들여 HR6639의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전제안에 서명하고 이의 지원활동에 동참한다는 메시지를 접수하였다.
– 여기까지가 지난주에 있었던 한국평화행동주간 회의에 대한 요약 보고서이다 –
지난 해에는 75 명이 참여하였는데, 올해에는 200 명으로 늘어 났고, 이중 50% 정도가 한국계 미국시민들로, 캘리포니아에서 뉴욕 주까지 26개 주에서 자발적으로 참석하였고 워싱턴 수도에서 84 명의 공직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다음과 같은 성과에 대해 성급하지만 보고를 하고자 한다.
Rep. Carolyn Maloney (NY)와 Rep. Barbara Lee (CA) 두 분이 처음으로 HR 6639에 동참하였다.
Sen. Ed Markey (MA)와 Sen. Ben Cardin (MD) 두 분이 상원에 계류 중인 S.3395에 동참하였다.
북한의 인도적 지원법(S.3908)을 공식화하기로 하였으며, 내용은 곧 준비될 예정이다.”
한 회의에서 연방의회 직원에서 “우리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하여 이런 행사를 갖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하자, 그에게서 다음과 같이 황당한 답변을 받았다 “아니, 한국전쟁은 이미 끝난 것이 아닌가요?”
한국전쟁 70주년 행사를 진행하면서, KPAW 기획팀과 참여단체들은(Korea Peace Network, Korea Peace Now! Grassroots Network, Peace Treaty Now, Women Cross DMZ 등) 각자 해당지역의 정치인들에게 함께할 것과 한국전쟁의 종전을 공식적으로 요구할 것을 촉구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한국전쟁의 개시일인 6월 25일에서 정전협정의 서명이 이루어진 7월 27일까지 진행되기를 희망한다.
더불어 한국평화네트워크(Korea Peace Network)에서 정리한 요점을 소개한다.
“2020년은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종결되지 않은 한국전쟁 70주년의 해이다. 전쟁의 지속상태는 군사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한반도에 긴장을 야기하는 원인이다. 평화를 정착시키고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해야 한다.
미군은 여전히 70년 동안 북한과 전쟁상태로 대치하고 있다. 이제는 긴장과 적대를 끝내고 이러한 대결을 해결해야할 시점이다.
대립상태가 해결되지 못하면서 수천 가족들이 여전히 헤어져 살고 있다. 반드시 전쟁을 끝내고 가족들이 다시 결합하고 70년 간의 기나긴 대결과 분단의 고통을 이제 치료하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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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Berkeley Daily Planet via WorldBeyondWar on 2020-06-21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경제학자들은 그동안 장기적인 안정이라는 관점에서 효율성이 야기하는 문제점에 대해 무지하였으며, 자신들이 신봉하는 현재의 균형이론이 장래에도 변함없이 적용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현 시점에 효율적이라는 것이 미래에도 작동할 것이라는 믿음에는 근거는 없다.
런던 – 경제학은 최소의 시간과 노력으로 최대의 만족을 산출하려는 활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적은 자원을 투입하여 경제적으로 활용할수록, 우리가 원하는 것을 더욱 많이 얻어내는 것을 한마디로 ‘효율적 efficient’이라고 불러왔으며, 효율성을 최고의 목표로 추구하면서 생활비용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하여 왔다. 원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저렴하게 취득하는 것이 삶을 개선하는 열쇠이었다.
또한 효율성은 무역(거래)이론의 핵심을 형성하고 있었다. 19세기 초, 데이비드 리카르도는 모든 국가들은 자신들이 가장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상품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0세기에 노벨상을 수상한 폴 사무엘슨은 상기의 리카르도의 주장에 대하여 개인거래를 넘어서 민간사업과 국가 간에 공히 적용할 수 있는 노동분업의 이론을 인용한 것으로 평가하면서, ‘비교우위의 이점 comparative advantage’이라는 명칭을 부여하여 경제학의 최고이론으로 치켜 세웠다.
그간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상기의 주장은 지당하고 합리적인 이론으로 굳게 신봉되어 왔다.
동시에 ‘효율성’이란 단어는 현대의 경제학 분야에서 경제학자들이 노동생산성에 매달리는 근거가 되어 왔다. 영국의 경우에, 노동자 한 명의 시간당 산출량이 2007년 이래 정체되면서 효율성 측면에서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하였다. 다시 말하면, 지난 13년 동안 영국인들의 생활수준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며, 이는 산업혁명이래 가장 오랫동안 정체를 겪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하여 경제학자들은 학계 매체를 통하여 ‘생산성의 미로 – productivity puzzle’ 에 관하여 수백 수천의 논문을 발표하여 왔다.
그러나 이제 배경음악과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구글 검색어를 통하여 최근의 수백만의 저술과 논문을 분석하여 보면, 1982년 이래 효율성과 생산성이라는 단어의 사용빈도가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대신하여 균형적인 회복resilience과 지속성 sustainabilty이라는 단어가 더욱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제 인류는 경제생활의 지속성과 위기에 대한 균형적 회복에 대하여 더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경제학자들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존재가 되고 있다.
3가지 사항이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첫째는 가용 자원을 오로지 현재의 비용이라는 관점에서 집중하여 소모하면,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류의 생존을 지속할 수 없다는 염려가 증대하고 있다. 오늘 당장 저렴한 것이 미래에는 비싼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민간기업과 소비자들에게 단기적인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인류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지속가능의 기술에 투자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둘째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세계화에 따른 공급사슬의 취약점을 분명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가장 저렴한 지역에서 상품을 구매를 하자는 논리 즉 리카르도의 매력적인 이론을 수용한 것이 생필품의 접근을 하루 아침에 상실할 수 있는 악몽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팬데믹 과정에서 서구사회의 시민들은 의료행위에 필요한 기자재들을 중국 등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이제 모든 것에 우선하여 효율성을 추구하면, 그것이 자동화의 도입이든 세계화의 과정이든, 일자리의 안정과 지속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담 스미스는 논박할 수 없는 논리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생산의 종점(목표)은 소비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소비는 지속가능한 수입을 필요로 하며, 이는 일반시민들의 임금으로 이루어진다. 현재의 정치경제 시스템에서 임금이 없는 소비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현실에서는 오히려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부의 집중과 수입의 불평등이 거대하게 진행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흔히 거래(trade-off)에 대하여 논리를 펼친다. 그런데 이들은 효율성과 지속가능성 간에 이루어지는 상호의 거래에는 무지하였다. 일시적인 효율성을 시간을 넘어서는 장기적 개념으로 확장시키는 문제를 백안시하였다.
이는 대체로 현대 경제학이 떠받치는 균형모델에 시간개념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었고, 단지 현재의 모형이 미래에도 당연히 적용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 현재에 효율적인 것은 미래애도 여전히 효율적일 것이다?
케인즈가 여러 번 지적하였듯이 ‘미래는 불확실하다 future is uncertain’. 현재의 효율성에 작동하는 자유무역과 세계단위의 공급사슬, 자동화와 저렴한 임금 등의 조건들이 지속될 것이라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
케인즈가 생존 당시에 Jan Tinbergen(후에 노밸상을 수상한 인물)에게 수리경제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날선 비판을 하였다: “과거에 근거한 수리경제학의 결정함수가 인류의 미래에도 적용이 가능하다고 믿는가? 수학으로 표현할 수 없는 발명과 혁신, 정치, 노동쟁의, 전쟁, 지진, 금융위기 등 내용에 대하여 수리경제학의 어디에서 언급하고 있는가?”
케인즈의 지적대로 현재의 현안적 위기에 대하여 우리는 이제 목록을 작성해야만 한다.
우선적으로 경제정책의 책임자들은 ‘예비경고적인 원칙’ 다시 말하면 ‘최소적 위험에 대한 원칙’들에 보다 주의를 기울이면서, 최대의 수익보다는 위험을 관리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경제학자 Vladimir Masch는 이러한 접근을 ‘위험을 관리하는 극대화’라고 호칭하면서 ‘이번 세기는 매우 위험하고 불확실하며 복합한 조건들이 뒤섞어 있기에 위험을 우선시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Masch가 주장하는 신중한 정책결정의 이론은 기존의 관행에 익숙해 졌던 우리에게 불편함(어려움)을 가져다 준다.
예를 들어 ‘지구상의 통제할 수 없는 인구증가에 대하여 어떻게 지속가능한 원리를 적용할 것인가? – 이에 대하여 인구폭발을 규제하기 위해 적시의 교육과 과학을 활용해야 한다는 믿음을 견지해야 하지만, 문제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지구상의 인구폭발을 받쳐줄 자원의 부족으로 대규모의 질병, 기근, 홍수, 전쟁 등 전통적인 재앙이 과잉인구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맬서스의 근거 있는 주장을 새삼 심각하게 받아 들어야 한다.
동시에 정치적 경제적 회복력을 위협하고 예측가능한 정치적 후유증을 가져올 지나친 소비를 조절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기술력을 키워내야 하지만, 현재와 같이 효율성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비용절감과 시장경쟁력이라는 수단을 동원하여 이의 해결이 가능할까? 신중한 정책결정의 원칙에 따라 다른 무엇보다도 사람을 중시하는 기술에 집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기적으로 파국을 불러오는 현재의 금융시스템을 허용하는 자본주의적 정치경제 시스템으로, 다시 말하면 단기적인 효율성이라는 목표로 과연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여건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현재 우리는 상기에 언급한 중차대한 질문들에 대하여 겨우 첫걸음을 뗀 상태이다. 이제라도 ‘효율성에서 지속가능이라는 이슈의 전환’에 발맞추어, 경제학적 사고 역시 새로운 추세를 의무적으로 따라가야 한다.
출처: Project Syndicate on 2020-12-17.
Robert Skidelsky
영국귀족원의 평생회원이자 Warwick 대학교의 정치경제학 분야 명예교수로 케인즈에 대하여 3권의 방대한 전기를 저술하였다. 노동당에서 정치적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후에 보수당의 재정정책을 지지하는 귀족원의 대변인 역할을 맡았다가, 1999년 코소보에 대한 나토의 공습을 격렬하게 반대하여 보수당에서 출당조치를 당하였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난 12년 동안 공화당이 망친 경제를 되살려 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민주당 출신이 두 번째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지난 주에 발생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난동을 참담하게 지켜보았지만, 이제 곤경에 빠져있는 미국경제의 회생여부는 바이든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를 다루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연방의회에서 민주당이 미세하게 다수를 지켜내고 있어서 야심차게 진보적 목표를 추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지난 목요일 바이든이 이미 제시한 구제지원의 제안은 오바마 당시 경제적 위기에 보였던 지나친 소심함에서 일단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바이든 경제팀 중에 소심한 접근을 검토하는 인사들이 있다면, 필자는 과거의 고통스런 경험을 통해 터득한 다음의 4가지 원칙을 제시하여, 현재의 난국을 과감하게 돌파할 것을 주문한다.
원칙 1 – 구제지원에 대한 정부의 역량(파워)을 의심하지 말라. 오바마 정권 초기 당시, 백악관의 민주당 출신 참모들은 보수적인 이념적 공격에 어줍잖게 타협하면서 정부의 개입이 도움보다는 해를 끼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2009년 이후에 진행된 정부의 과감한 지출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커다란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당시 공화당은 오바마의 의료정책를 비난하면서 이를 노예제에 비유한 사실을 기억해보라? 여전히 몇 가지 결점을 지니고는 있었지만, 환자보호-적정부담-보험법(A.C.A – Affordable Care Act)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미국시민들의 숫자를 급격히 축소시켰고, 이들에게 과거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안전(사회안전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하였다. A.C.A를 뒤집으려는 공화당의 시도에 대한 이들 시민들의 반대가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을 승리로 이끈 주요 배경이 되었다.
최근에 들어서 상기 보험법이 확대되어 민간기업과 실업자들에게 추가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더욱 많은 구제지원이 가능해지면서 팬데믹으로 인한 어려움을 완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바이든은 확대된 구제지원책을 구상하면서, 빈민아동을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기존의 A.C.A 보험법을 보다 많은 시민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확대하고자 한다. 당연한 조치이며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최근의 경험에 따르면, 정부의 현명한 지출은 미국시민들의 생계를 크게 개선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원칙 2 – 재정적자를 마음에 두지 마라. 오바마 정권은 출범 당시부터 정부의 채무에 대한 끊임없는 경고에 시달렸다. 바이든 정부는 이러한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사실은 이러하다. 재정적자에 대한 과다한 경고성 예측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으며, 정부부채는 과거의 식견에서 판단했던 것처럼 큰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이제 다수의 경제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한 예를 들어보면, 연방정부의 부채비중이 높아져도 역사적으로 매우 낮은 이자율 덕분에 실제로 정부가 지불해야 하는 부담 역시 매우 낮아졌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문제는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 오바마 시절 정부의 부채를 물고 늘어졌던 공화당의 강경파들이 거꾸로 도날드 트럼프 정권에서는 거대한 세금인하를 추진하면서 재정적자를 불러왔다.
원칙 3 – 인플레를 걱정하지 마라. 물가가 폭등할 것이라는 경고를 지속하면서 정부가 실제의 물가지수를 속이고 있다는 주장을 해오는 집단들이 있다. 이런 주장은 트럼프 시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바마 시절에도 줄곧 있어 왔지만, 그러나 인플레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점에도 이들은 여전히 인플레에 대한 걱정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참에 트럼프 시절부터 얻은 핵심적인 교훈을 강조하고자 한다 –경제를 확장적으로 운용하면서 실업률을 낮추고 재정적자를 확대해도 인플레는 일어나지 않는다. 필자는 바이든 역시 미국의 경제를 확장시키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을 조언한다.
물론 공화당으로부터 어떤 도움과 지지도 기대하지 말 것.
원칙 4 – 공화당이 협조할 것으로 판단하지 마라. 오바마 정책의 원죄는 2009년 당시 경제활성화 정책이 너무 빈약했다는 것이다. 당시 시행한 ‘회복을 위한 재투자법’이 경제를 안정시키는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위기의 깊은 골에 비하여 너무 초라하였다. 솔직해야 한다. 우리 대부분이 당시의 현실에 대처하는데 너무 인색하였다.
빈약했던 배경에는 오바마 자신이 다수의석을 가졌던 민주당의 의결을 통해 추진하기 보다는 공히 양당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2017년 세금인하정책은 당시 공화당은 이를 강경하게 밀어 붙였다). 공화당의 협조는 결코 실현되지 않았다. 그 결과 불만스런 경제회복으로 2010년 총선에서 공화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후 오바마의 정책에 건건이 제동을 걸었다.
비이든은 똑같은 실책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물론 공화당이 참여하여 검토하고 판단할 시간을 주는 것은 필요한 일이겠지만, 양당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 원래 기획한 정책에 물타기를 해서는 안된다.
현재의 공화당으로부터 바이든이 실제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명명백백한 대선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을 2개월 이상 거부하다가, 폭도들이 연방의회를 점거하는 사태에도 불구하고, 선거인단을 통한 확정과정에서조차 일부의 반대표를 던진 것이 공화당의 모습이다.
되풀이 하지만 바이든은 양당의 지지에 연연하여 그의 정책을 변질시켜서는 안된다. 유권자들은 과정보다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
상기에 언급한 내용을 합하여 한마디로 조언한다 “ 빌어먹을 장애를 돌파하며 전속력으로 달려라 – damn the torpedoes, full speed head.”
이데올로기에 굴복하지 말고, 재정에 대한 경고에 흔들리지 말 것이며, 쓸데없는 예의를 갖추지 말고, 미국시민들에게 정말 필요한 정책을 추진하는데 매진해야 한다.
출처 : 뉴욕타임즈 NYT on 21-01-14.
Paul Krugman
뉴욕시립대 교수이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십 수년간 뉴욕타임즈에 기고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작년 김정은 위원장이 10.10 노동당 창당일 행사에서 공개적으로 눈물을 보이고, 올 연초 노동당 제8차대회에서도 경제운영의 실패를 솔직하고 과감하게 인정했다. 아래의 글은 이러한 배경에 대한 서구의 분석을 읽을 수 있는 칼럼이다. 기고자는 북한이 코로나에 상당히 노출되어 있다는 입장이지만, 다른백년은 코로나 환자가 전무하다는 북한당국의 발표를 기본적으로 신뢰한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에 추가로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북한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빠져 들었다. 중국이 2017년 대북제재에 가세하면서 시작된 북한 경제의 어려움은 2020년에는 잔인할 정도의 수준으로 진행되었다.
전세계가 겪고 있는 일이지만, 코로나19는 북한사회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쳤다. 공식적으로는 수천 명 정도가 확진의심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발표하였지만, 정부의 주장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별로 없으며, 비공식적인 이야기로는 상당한 숫자의 확진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세계적으로 팬데믹이 전파되면서 북한의 주요 도심들이 시시때때로 봉쇄되어 왔다. 최근에도 자강도 전체가 전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봉쇄되고 도시 간의 여행과 시장활동 중단되면서, 경제에 큰 충격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 바이러스가 어느 정도 퍼져 있는지 누구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북한 정부의 말대로 확진자가 전혀 없다는 주장은 믿기 어렵다.
이로 인한 북한사회의 공공보건 어려움에 못지않게 경제적 충격도 대단하다. 북한 정부의 자체적인 결정에 따른 것이지만, 중국과 접한 국경을 봉쇄하면서, 거의 유일한 대외무역 창구가 막히게 되었고,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2020년 10월 무역액이 겨우 1.6백만 달러에 그쳤다.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는 내용에 따르면 국경봉쇄로 인해 식량부족이 발생하고 시장물가가 치솟고 있다고 한다.
물론 비공식적 무역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2019년 대비하여 2020년의 무역량이 80% 정도로 격감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2019년의 무역액 자체가 단호한 국제적 제제조치로 인하여 예년에 비해 상당량 줄어든 것을 감안한다면, 2020년의 무역량은 이중 삼중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북한당국은 코로나-19의 확산을 자체적으로 감당할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조치가 필요한 대상 인구를 상대하기에는 의료의 테스트 장비와 시설이 태부족이다.
외국의 도움을 수용해야 할 형편이지만, 스파이 활동과 이념의 유해한 영향을 염려하여 이를 거부하면서, 만약의 감염사태가 전면적으로 발생하면 통제가 어려울 상황에 처해 있다. 이미 감염이 일부 지역에 전파되고 있다면, 외부세계와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이 북한을 추가적인 위협에서 보호하는 유일한 방도이다.
그러나 국경의 봉쇄는 북한사회에 커다란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봉쇄로 인하여, 식량과 생필품의 부족사태가 발생하고 있고, 물가가 치솟고 기근이 진행되고 있다.
동시에,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은 2021년 초 예정된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5개년 경제계획을 발표할 예정인데, 인민경제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하도록 준비하여 왔다.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상당수의 인민들이 정부의 직접통제를 벗어나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정부가 중앙통제를 강화하여 시장과 민간영역의 활동을 억제하면, 시장거래와 사적 경제가 위축되면서 인민들의 생계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개혁을 동반하지 않는 강제조치를 강행하면 정치적인 위험을 동반할 수 있다. 제제조치에 의한 무역의 격감과 팬데믹 봉쇄에 따른 경제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정부차원에서 인민대중들의 자원을 동원할 필요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에 더하여 그동안 진행해온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위하여 필요했던 비용 역시 발언권을 갖고 있지 못한 인민대중들이 부담하여 왔다.
상기의 모든 어려움이 한데 겹치면서, 2020년은 북한의 역사에서 중대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심각한 제재에 직면한 상태에서 국경조차 봉쇄해야 하고, 자연적인 재해와 감염수준을 가름할 수 없는 펜데믹을 겪으면서도, 북한당국은 핵무기를 협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여 왔다.
핵개발을 다루는 정부의 책임자들은 일반인민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동떨어져 있는 정치집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은 북한의 지배집단들이 엄청난 부담을 일반 인민들에게 전가해야만 했던 일년이었다.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이 원하는 바 협상을 개시할 수는 있지만, 바이러스를 차단하기 위하여 대외무역을 강력히 차단하였듯이,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라는 압력과 이에 따르는 제제조치에는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제제완화를 대가로 무기통제와 핵무기억제를 위하여 실무적이며 실용적인 협상의 채널을 가동하겠지만, 완전한 핵무장의 해체까지 요구하기는 어렵다.
출처 : East Asia Forum in ANU, Sydney, on 2021-01-04.
Benjamin Katzeff Silberstein
텔-아비브 대학과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였으며, 현재 ANU동아시아 연구센터의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북한경제동향 North Korean Economy Watch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것은 엄동설한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굳굳히 광장을 지켜냈던 촛불시민들이었다. 하지만 그 항쟁의 과실은 고스란히 야당 정치세력에게 돌아갔다. 이후 시민들에게는 단지 선거 당일의 투표와 자신들에 대한 지지 그리고 상대당에 대한 반대만이 요구되었을 뿐, 더 이상의 어떠한 정치적 권리도 허용되지 않았다.
대의민주주의는 요술방망이였고, 이 대의민주주의라는 이름 하에 ‘정당’만 쥐고 있으면 누가 싸웠든 누구의 희생으로 획득되었든 권력은 언제나 그리고 철저하게 그들의 소유물이었다.
동지는 간 곳 없고, 탄식만 남았다.
‘대의 원리’에 근거하여 대표자만이 정책결정 권한을 독점한다
흔히 대의제는 민주주의와 등치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말하면 대의제는 하나의 통치기구의 구성 원리, 또는 국가의 의사 결정 원리로서 단지 민주주의의 하위 체계일 뿐이다. 그것은 권력분립, 선거제도, 정부 형태, 지방자치제도 등과 같은 민주주의의 여러 형식 원리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용어법상 직접 민주주의는 직접 결정방식, 대의제의 간접 민주주의는 간접 결정방식이라고 불러야 정확하다.
한편 의회민주주의란 의회 중심의 통치 질서에서 파악되는 것으로서 엄밀한 의미에서 정부 형태와 관련된 개념이며, 이는 단지 대의제의 한 형식에 속할 뿐이다.
특히 선거로 선출된 의원은 특정 선거구민이 아니라 전체 국민을 대표하고 전체적인 공공복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대의제의 이론은 명령 위임을 부정하고 자유 위임을 주창하고 있는 바, 이는 시민 세력을 배제시키면서 그와 유리되어 결국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해왔다. 대의제가 지니는 이러한 성격은 프랑스와 영국 대의제의 역사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결국 대의제라는 간접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고착되었다. 부르주아 세력은 국민세력을 동원하여 군주를 타도한 뒤 자신들의 정파 간의 무력적 권력 투쟁을 선거를 통한 정당 간의 권력 교대 혹은 경쟁이라는 ‘대의제’의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기제를 창출해낸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의원)는 특정 선거민이 아니라 ‘추상적으로’ 전체 국민을 위한 전체 이익을 추구해야 하며, 국민에 책임을 지는 명령 위임을 배제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명령 위임을 배제시킨 바로 그 순간 선출된 대표자는 국민에 봉사하는 위치로부터 국민 위에 군림하는 위치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대표자의 결정은 언제나 ‘전체 국민’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전체 국민’이라는 실체가 없는 관념적 존재일 뿐이다.
대의 관계에서 대표되는 실체는 없으며 대표하는 행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의 관계에서 존재하는 것은 오직 국민이 대표자를 선출하는 행위와 대표자가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행위뿐이다. 그리고 대표자의 이러한 행위는 ‘전체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그리하여 국민을 구속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의제에서의 대표자란 더 이상 선거민의 단순한 대변자가 아니며 대리인(Agent)이나 수임자(Kommissar)도 아니다. 그는 ‘전체 국민’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언제나 ‘공명정대’하게 행동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그의 결정과 판단에 영향을 주는 어떠한 힘으로부터도 독립되어야 한다고 주장된다. 물론 이러한 논리의 배경에는 탁월한 인물이 무지몽매한 국민의 의사나 명령에 따른다는 것은 당치도 않다는 우월적 의식이 깔려 있었다. 그들의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국민들은 오직 자신들을 선출할 ‘권리’ 혹은 ‘자유’가 있을 뿐 통치는 자신들처럼 탁월하고 고귀한 사람들만이 담당할 고유 영역이다.
역사적으로 시민혁명은 부르주아혁명으로 마무리되었고 시민 세력은 탄압을 받아 그 힘을 잃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의제는 굳건한 통치원리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하여 국민이 직접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대표자를 통하여 간접적으로만 정치적 결정에 참여하며, 따라서 당연히 통치자와 피치자가 별개의 존재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결국 이렇게 통치자와 피치자가 구별된다는 사실은 결국 대의제가 국민의 자기 통치를 통하여 민주주의를 실현함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의제는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 통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대의 기관을 통한 통치를 의미한다.
이러한 대의제에서 무엇보다도 대표자의 독립성 보장이 강조된다. 왜냐하면 대표자는 국가의사 결정에 있어서 항상 피치자(被治者)보다 탁월한 능력이 있으므로 대표자가 피치자로부터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대표자의 올바른 결정에 장애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민의 특수 이익보다는 일반 이익 즉, 전체 이익이 존중되며, 무엇이 전체 이익인가에 대해서는 오직 대표자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이 과정에서 대표자에 대한 시민의 통제는 철저하게 관심 밖의 문제로 전락된다. 대중이란 기껏 무지몽매한 존재이므로 애초부터 일체의 정치적 권한을 줄 필요가 없거나 혹은 체제 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어떠한 정치참여의 기회도 제공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리하여 대의제는 이른바 ‘대의 원리’에 근거하여 시민을 정치적 권한으로부터 배제시킨 채 대표자만이 정책 결정의 권한을 가지고 있게 됨으로써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은 명망가인 대표자에게 독점되었다. 결국 이러한 명망가 중심의 이른바 ‘명망가(혹은 명사, 名士) 민주주의’의 통치가 대의제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명망가에 독점된 이러한 배타적 결정권은 사회 구성원 전체의 이익에 기초하여 행사되기보다는 대표자 개인의 시각에서 그리고 자신들과 관련된 이익에 의하여 행사된다. 나아가 이들 대표자는 반드시 뛰어난 자질에 의하여 대표자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재산과 사회적 영향력 혹은 이른바 ‘이너서클’의 인간관계 그리고 그를 앞세운 배후 세력의 사회경제적인 힘에 의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대 대의제가 지니는 이러한 성격은 과연 대의제가 사회 구성원 전체 이익의 공공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가, 즉 대의제 하에서 특수 기득권의 부분 이익(특수 이익)의 지배로부터 공적(公的) 업무의 공공성 보장이 가능한가라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결국 대의제란 대표자의 활동에 따르는 위험성에 대한 담보가 오직 대표자의 양심과 인격에만 맡겨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그 대표자의 양심과 인격은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이익 추구로 변질된다(여기에는 선거와 당내 주도권 장악을 위한 갖가지 정치공학도 당연히 포함된다). 대의제가 지니는 근본적인 제도적 허약성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루소는 대의제 하의 국민은 대표자를 선출할 때만 자유로울 뿐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노예상태로 전락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었다.
직접민주주의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다
그러므로 대의제 민주주의는 공공선(公共善)이나 일반 의사의 지배가 아니라 정당 또는 정치인의 ‘부분 의사’가 지배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다. 다시 말하면, 현대 자유민주주의는 특정 집단의 이익과 가치가 특정 정당에 의하여 대표되는, 즉 ‘부분 의사’가 대표되는 정치 제도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최소주의적’ 대의제 민주주의 개념은 민주주의 가치를 축소시켰으며,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을 결코 보장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란 시민의 정치 참여에 의하여 자유, 평등, 정의라는 기본 가치를 실현시키고 시민으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시민의 통치 형태이다. 이러한 민주주의 정신을 정확하게 실현하는 방식은 바로 직접 민주주의이다.
필자는 이미 2021년도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생략을 예측했고, 그래서 <통일뉴스>에 기고할 목적으로 하루 전날인 2020년 12월 31일에 원고를 미리 써놨고, 이걸 ‘예측: 2021년 북 신년사를 대체한 제8차 당 대회’라는 제목의 분석글을 기고한 바 있다.(<통일뉴스>, 2021.1.1.)
아니나 다를까 북은 2021년도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를 내놓지 않았다. 대신, 김정은 위원장은 “위대한 인민 받드는 충심 변함없을 것 다시금 맹세”라는 내용을 중핵으로 하는 ‘전체 인민에게 보내는 친필 서한’형식의 새해인사를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친필서한 <출처: 로동신문>
이를 두고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남측 사회에서 일어났다. 다름아닌, 통일부가 2021년 1월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1년 새해를 맞아 주민들에게 공개한 친필서한을 두고 “김정은 위원장 집권 2012년 이후 전 인민을 대상으로 발표한 첫 친필 서한 형태의 ‘신년사'”라며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첫 사례라면서 “이례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같은 친필 서한도 ‘신년사’라고 판단한다, 했다.
참으로 수준 낮은, 아니 한심한 통일부이다. ‘새해인사’와 ‘신년사’가 어떻게 갔단 말인가?
말 그대로 새해인사는 최고지도자가 인민들에게 새해를 맞아 보내는 덕담인사이다. 단지, 그 덕담의 내용과 수위가 우리 자본주의 사고방식으로는 수용하기 좀 어려운 정치적 행위의 연장이기 때문에 그렇게 오해할 수는 있어도, 새해인사는 새해인사 일 수 밖에 없다. 반면, 신년사는 새해인사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수준의 문제이다. 최고지도자의 한 해 국정운영 철학과 국정운영 목표, 방식 등에 대한 계획을 당과 인민에 총화발표하고, 이를 당이 중심되어 군중적으로 조직동원하기 위한, 즉 한 해 북이 나아가가야 할 좌표방향과 목표에 대해 북 사회전체가 공유하고 결의하는 내용과 형식으로 집중된 고도의 정치행위이다.
바로 그 행위를 김정은 위원장이 생략하고, 시기적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제8차 당 대회(2021.1.5.개막)를 통해 대체한 것이다. 그러니 새해인사와 신년사와는 전혀 다른 층위의 차원문제이다.
어쨌든 그래놓고 기억을 되돌려보자. 북은 이미 지난해 8월 1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를 열에 제8차 당 대회를 2021년 1월에 개최할 것을 예고했고, 또 12월 29일에는 제7기 제 22차 당 정치국 회의를 열어 제8차 당 대회를 2021년 1월 초순에 개최할 것을 최종 결정함에 따라 정권수립 이후 아주 이례적인 예외 없이는 곧잘 지속되어왔던 최고지도자의 신년사가 생략될 것임을 미리 예고했었다.
유추하면 다음과 같다. 북도 여느 사회주의국가처럼 당 우위의 국가체제이다. 그러면서도 수령의 절대권한이 보장되는 수령중심의 체제이기도 하다. 바로 이 두 의미가 교집합되면 1월 초에 개최될 당 대회, 그것도 당의 최고의사결정 단위인 당 대회에서 그 조직의 최고지도자가, 그것도 ‘유일’최고지도자가 자신의 국정철학과 국정운용계획을 발표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체제원리적으로도 맞다.
조선노동당 제8차대회가 5일 오전 평양에서 개막되었다. <출처: 노동신문>
2. 제8차 당 대회 소집목적에 대한 간략한 고찰
제8차 당 대회 소집목적이 어디 있느냐는 <조선중통신>이 보도한 1월 6일 자 기사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통신은 그 소집목적을 공개했는데, 이로부터 이번 제8차 당 대회가 어떤 목적을 갖고 개최하려 했는지에 대해 충분히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고조기, 장엄한 격변기가 도래한 시대적 요구에 맞게 당중앙위원회의 사업을 전면적으로 엄중히 총화하고 사회주의 위업의 보다 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정확한 투쟁방향과 임무를 명백히 재확정하며 실제적인 개선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8번째로 되는 당대회를 소집했다.”
분석하면 첫째, ‘새로운 고조기’는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전진하는 북의 향후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름하여 사회주의완전승리노선의 ver.2이다.
둘째, ‘장엄한 격변기’는 미국과의 판가리싸움에서 결정적 승리국면을 반드시 열어제끼겠다는 의미가 있다.
셋째, ‘사회주의 위업의 보다 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정확한 투쟁방향과 임무를 명백히 재확정하며’에서 확인받는 것은 자강력제일주의와 정면돌파전에 기초한 자체의 힘, 주체역량강화에 기반 한 전략노선이 채택된다는 의미를 함의한다.
넷째, ‘실질적인 개선대책’에서 확인받는 것은 사회주의제도와 질서를 ‘개건’과 ‘개선’을 통해 보다 우리 식(주체)사회주의제도를 더 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임을 예고했고, 그 모습은 수령-당-대중의 혼연일체에 있다.(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 구현과 당을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무장된 혁명적 당으로 질적 전환을 내 오는 것, 그리고 수령의 절대성이 더 공고화 되는 방향으로의 정립이다.)
3. 총론적 분석: 사업총화보고와 결정서 중심으로
내용적으로는 대략 4가지 방향으로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북 언론보도가 이를 증거 해주는데 △첫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둘째, 조선로동당 중앙검사위원회 사업총화 △셋째, 조선로동당규약개정에 대하여 △그리고 마지막 의제가 조선로동당 중앙지도기관 선거부분, 그렇게 4가지 의제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이후 북의 국정운영 방향과 좌표 관련해 핵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내용은 뭐니 뭐니 해도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A4용지 20여장 분량에 해당되는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이하, ‘김정은 위원장의 보고’로 약칭, 정식 보고명칭은 ‘우리 식 사회주의건설을 새 승리에로 인도하는 위대한 투쟁강령’이다.)이다. 12일 폐막 때 채택된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 한 결론’ 부분도 매우 중요한 분석 자료이다.
해서 이 두 부분을 and적으로 조합하면 지난 제7차 당 대회 분석이 어떻게 심층분석 총화됐고, 향후 5년간 북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총적과제가 집대성된다. 5년간의 국정운영 방침결정서가 그렇게 수립되는 것이다.
참고로 이번 당 대회도 일반적으로 당 대회가 개최되면 최종적으로는 결정서 채택을 끝으로 폐막되는 그런 경로를 그대로 따랐다. 대회 기간이 좀 길어지면서(역대 두 번째로 긴 대회, 1/5 ~ 1/12) 한때는 결정서 채택없이 끝날 수도 있겠다는 추측이 난무했지만, 그 예외를 북은 허용하지 않았다.
물론 조금만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문제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기간 사업총화보고를 했는데도, 그에 대한 결정서 채택이 없다?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북 체제의 특성 간과이다. 결과, 이번 제8차 당 대회도 김정은 위원장의 사업총화보고와 결정서 채택중심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한 치의 어그러짐도 없는 북의 생각과 의도, 국정운영방향을 알 수 있다.
틀은 다음과 같다.
제1부: 제8차 당 대회 총론분석: ‘이민위천, 일심단결, 자력갱생’ 3대 이념으로 무장되다
제2부: 제8차 당 대회 대내관계 분석: 정면돌파전과 사회주의완전승리노선에 대한 이해
제3부: 제8차 당 대회 대외관계 분석: 북미, 남북관계 전망을 중심으로
이 중 이 글은 우선 그 첫 번째, ‘제8차 당 대회 총론분석: ‘위민위천, 일심단결, 자력갱생’ 3대 이념으로 무장되다‘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시작해 보자. 총론분석 그 첫째, 북은 이번 제8차 당 대회가 갖는 의미에 자신들의 현 단계 혁명발전단계 성격규정을 명확히 했다. 어떻게? 혁명의 ‘정착기(김일성시대)’를 거쳐 ‘과도기(김정일시대)’가 끝나고, 김정은시대에 들어와서는 자신들의 혁명발전단계가 ‘계승기와 발전기’ 단계로 진입했음을 공식 선언했다.
“우리 당과 혁명발전에서 중대한 정치적 사변(강조, 필자)으로 되는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는”에서 확인받듯이 이번 제8차 당 대회 개최를 ’정치적 사변‘으로 성격 규정해 북의 사회주의 혁명발전단계가 ’계승기와 발전기‘단계에 진입했음을 알려 내었다.
구체적 뒷받침은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는 조성된 대내외형세하에서 우리의 전진을 저애하는 주객관적 요인들과 심중한 결함들을 인정하고 당과 국가사업전반을 혁신하며 사회주의위업을 승리의 다음단계로 이행시키는데서(강조, 필자) 나서는 명확한 투쟁과업과 방도들을 밝힌 위대한 실천강령이다.” 이어 “전투적 기치이며 주체위업의 력사적뿌리와 오늘, 미래를 굳건히 이어주는 혁명적 문헌으로 된다.”고 성격 규정한데서도 그 의미가 찾아진다. 뿐만 아니라, 이번 제8차 당 대회에서 보고된 사업총화가 1월 12일 채택된 결정서(정식명칭: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 한 결론)에서는 자신들의 혁명단계를 “혁명과 건설의 새로운 고조기, 격변기를 열여놓기 위한(강조, 필자)”단계로 성격 규정했다. 그렇게 북의 사회주의가 사회주의완전승리단계에 진입할 수 있는 주객관적 조건이 되었음을 사회과학적 용어로 정립해내었다.
총론분석 그 둘째, 사회주의완전승리노선을 본격적으로 가동시킬 수 있는 물적·정치사상적 토대가 확고히 구축되었음을 선언하였고, 이를 5개년 국가발전계획 목표완성과 연동시켜 내었다. 그 대강으로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의 기본종자, 주제는 여전히 자력갱생, 자급자족(강조, 필자)”임을 분명히 했다. 방침으로는 “현 단계에서 우리 당의 경제전략은 정비전략, 보강전략으로서 경제사업체계와 부문들사이의 유기적련계를 복구정비하고 자립적토대를 다지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여 우리 경제를 그 어떤 외부적영향에도 흔들림없이 원활하게 운영되는(강조, 필자)”원리의 천명이다.
이미 이 기본원리는 제7차 사업총화보고에서 확인된다. “현 단계에서의 조선혁명의 진로를 명시한 당중앙위원회 제7기 사업총화보고의 진수는 우리자체의 힘, 주체적력량을 백방으로 강화하여(강조, 필자) 현존하는 위협과 도전들을 과감히 돌파하고 우리 식 사회주의건설에서 새로운 비약을을 일으키며”로 정의 된데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고, 이번 결정서를 통해서 “사회주의건설의 주체적 힘, 내적동력을 비상히 증대시켜(강조, 필자) 모든 분야에서 위대한 새 승리를 이룩해 나가자는 것이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의 기본사상, 기본정신입니다.(강조, 필자)”로 정식화 되었다.
총론분석 그 셋째, 이번 제8차 당 대회를 거쳐 확립된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또한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가 북의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으로 정식화되었다는 점이다. 달리는 김정은식 통치스타일이 확정되어졌음과 같다. 이는 통상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스타일을 ‘선군정치’로 규정했다면, 이번 제8차 당 대회를 거치고, 규약 개정전문이 발표되지 않아 그 내용 속속들이는 알 수 없으나, 일부 공개된 당 규약 서문확정을 통해 드러난 김정은식 통치스타일은 분명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이다.
당 규약 서문 표현은 이렇다. “우리 국가의 지위와 국력이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승리에서 더 큰 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고 있는 혁명발전의 요구를 반영하여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를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으로 정식화(강조, 필자)하였다.” 그 근본정신에 ‘모든 것을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라는 기치가 있고, 이를 김정은 총비서는 사업총화보고에서 “정세가 아무리 엄혹하고 난관이 중첩되어도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를 철저히 구현하면 불리한 모든 요인들을 능히 극복하고, 방대한 과제들을 용이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정치방식으로 정식화하였다.
북은 그렇게 ‘선군정치’에서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방식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맞이했다. ‘군대이자 당이고 국가이며 인민’이라며 군대중시의 선군정치와는 달리 이번 당 대회에서 “인민군대가 참다운 인민의 군대라는 사명과 본분(강조, 필자)을 다하라”고 주문하면서 2020년도 여름 태풍과 홍수 피해를 당한 인민들을 위해 군인과 평양 핵심 당원들을 피해 복구 지역에 파견한 것은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구현의 대표적인 사례이자, 당과 군대의 존재 이유를 인민에 대한 헌신복무에 찾아야 한다는 진리를 실천적으로 입증해 주었다.
총론분석 그 넷째, 이번 제8차 당 대회를 통해 드러난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 등 대외관계 부문은 기존 형제국들과는 친선과 우호협력을 보다 공고히 하면서도 미국을 대하는 방식으로는 핵무력 강화발전노선에 근거한 대북적대정책을 분쇄하고, 조국의 자주적 통일방향을 명확히 하였다. 증명하면 제8차 당대회 사업총화 보고에 “대외정치활동을 우리 혁명발전의 기본 장애물,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지향시켜나가야 한다.” 고 못 박고, 그 방도도 “국가핵무력건설대업을 완성(강조, 필자)하는것은 우리가 리상하는 강력한 사회주의국가건설행정에서 반드시 선차적으로 점령해야 할 전략적이며 지배적 고지”임을 분명히 밝혀 핵무장력 강화발전을 통해 미국을 제압하겠다는 의지가 보다 분명해졌다. 연장선상에서 미국을 상대하는 기본원칙이 ‘강대강, 선대선’의 대미정책이 수립되었다. 해서 향후 북의 대미전략은 일관되게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철회에 기본방점이 찍히고, 이를 통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으로 나아가는 프로세스가 확립될 것이다.
이를 남북관계와 연동하면 총화보고문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듯이 “남조선당국이 비정상적이며 반통일적인 행태들을 엄정관리하고 근원적으로 제거해버릴 때(강조, 필자) 비로소 공고한 신뢰와 화해에 기초한 북남관계개선의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될 것”임을 분명히 해 남측당국(현, 문재인 정부)이 민족자주와 자결의 정신으로 되돌아오지 않는 한, 구체적으로는 4.27판문점공동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의 약속이행이 담보되지 않는 한 남북관계 진전없음은 보다 확실해졌다.(※그런데도 문 대통령의 신년사와 이인영의 통일부는 여전히 방역과 인도적 지원문제 등에 집착하는 ‘작은교역’에 매달리고 있다. 참으로 번지수 잘 못 짚었다.) 달리 표현은 북이 미국과의 적대관계 청산을 기본핵으로 해 남북문제를 해결해가겠다는 전략구사을 분명히 했기 때문에 당분간 남북관계는 문재인 정부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소강국면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총론분석 그 다섯째, 통상 각급 당 체계를 중심으로 총화분석이 이뤄지던 특성과 절차대신, 이번 제8차 당 대회는 개최이전 4개월 전부터 당 중앙위원회에 비상설 중앙검열위원회를 구성하고 ‘요해사업 소조’를 각 도와 성, 중앙기관들에 파견하여 진행한 특성이 있다.(이름하여 ‘총결기간’으로 표현됨.) 아마도 이는 2020년 8월 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을 주관하면서 제8차 당 대회에서 결정될 5개년 국가발전계획과 관련해 제 7차 당 대회 결정사항인 5개년 국가발전전략에 대해 “해부학적으로 분석총화하고”에 대한 약속이행절차였고, 그 만큼 핵심당원 중심으로 심층적으로 분석총화가 이뤄졌음을 증거한다하겠다. 결과, 향후 5년 동안 ‘우리 국가제일주의’와 ‘인민대중제일주의’, ‘자력갱생전략’ 3대 키워드로 국가운영방침을 명확히 해냈다.
추진동력으로는 당 제7차대회가 강조한 ‘자력갱생정신’과 그 실현을 위한 투쟁방침인 ‘정면돌파전’을 지속시켰다. 이것이 사업총화보고에는 “우리 당의 자력갱생전략은 적들의 비렬한 제재책동을 자강력증대, 내적동력강화의 절호의 기회로 반전시키는 공격적인 전략으로, 사회주의건설에서 항구적으로틀어쥐고나가야 할 정치로선(강조, 필자)으로 심화발전되였다.” 더해서 “자강력을 증대시켜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기 위한 전인민적인 투쟁속에서 자력갱생은 주체조선의 국풍으로, 조선혁명의 유일무이한 투쟁정신으로 더욱 공고화(강조, 필자)되였다.”고 맺는다.
이상으로 제8차 당 대회 분석을 총론적으로 끝냈다.
핵심은, 북의 혁명발전단계를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의 고조기·격변기로 분명히 한 것과, 사회주의완전승리단계 고지점령을 위해 보편적인 사회주의 질서체계(예, 김정은 위원장 총비서 추대, 당의 혁명적 기풍확립, 당 중앙의 유일적 사상체계 확립 등) 구축, 그리고 대외관계는 형제국들과는 상호협력·친선확대를 도모하면서도 미국과 남북관계는 보다 핵무력 강화와 자주·자결에 기초한 정공법에 보다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분쇄와 자주적 통일방향으로의 전환이다.
베네수엘라 인민들은 2020년 12월 6일에 있었던 총선에 6.2백만 명 이상이 투표에 참여하면서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지배에 대하여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였다.
베네수엘라를 전복시키려는 미국의 전쟁협박과 제재압력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의 어려움 속에서도 베네수엘라 인민들은 자발적으로 투표소를 찾아가서 인민의 국회를 Bolivarian(베네수엘라 독립의 영웅적 장군을 칭함)다운 혁명의 품에 안겼다.
국가선거위원회가 공식으로 발표하였듯이 현재 집권정부의 여당격인 연합사회주의당(PSUV)이 유효투표의 63%를 획득하여 총의석 277의 252석을 차지하였으며, 야당인 민주행동당(Accion Democratica)는 겨우 7%를 획득하여 11석을 차지하면서 한참 못미치는 제2의 정당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군소 규모를 포함하여 107개의 정당들이 총선에 참여하였고, 14,000 여명의 후보가 난립하였으며, 이중 98개의 정당이 현재의 마두로 정부에 반대한다며 야당으로서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스스로 과도정부의 대통령이라고 주장해온 후안 과이도Guaido를 포함하여 친미(의존)성향의 인사들은 이번 총선을 ‘보이코트’하였다.
자본주의 국가들의 주요 미디어들이 보도한 엉터리내용(조작부정-선거)과는 달리, 국제적 기구 그리고 시민사회가 참여한 선거참관 조직들은 이번12월06일의 총선은 매우 민주적이며 자유롭고 공정하였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였다.
당시1,500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참관인으로 참여하였는데, 이중에는 해당국가의 수반을 지낸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에콰도르의 꼬레아, 스페인의 로드리게스 자파떼로 등 유명인사 다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국가선거위원회는 비정부-인권조직인 SURES를 총선참관단체로 지명하였는데, SURES는 총선에 대한 최종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이번 선거과정에 참여한 시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어떠한 강압도 없이 평등한 조건에서 보편적이며 자유롭고 투명하며 비밀이 보장된 가운데 행사하였다고 결론짓는다.”
또한 외국인 선거참관인들 역시 자신들의 참관내용에 대해 베네수엘라 시민단체가 제공한 보고 내용과 동일하게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정치조직들과 입후보자들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크게 확장된 총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선의 소식이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즈 그리고 캐나다의 주요 신문매체에는 일체 실리지 않았으며, 미국과 캐나다의 주요 방송미디어 역시 보도하지 않았다. 더구나 미국정부 그리고 그의 동맹국들은, 자신들의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의도에서, 베네수엘라의 총선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를 불법적이라고 미리 선언하고 있었다.
투표 참가율은 31% 이었는데 이는 팬데믹 상황과 미국이 전쟁을 운운하며 사보타주를 가하는 극도의 어려움 속에 진행된 점을 감안하면 커다란 승리를 거둔 것이다.
집권여당인 PSUV는 총선직후 발간된 당보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천명하였다 “미국과 그의 동맹국가들에게는 이번 선거의 과정과 합법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의도는 명백하게 정치적인 것으로, 베네수엘라의 혁명을 파괴하고 국가를 분열시켜서, 그 파장을 제국주의 하수인들에게 전파하여 라틴 대륙전체를 다시 재식민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베네수엘라의 위대한 혁명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음모를 결코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헌법에 의거하여 베네수엘라 총선은 5년마다 정부의 요청에 의해 시행된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미국정부와 캐나다를 포함한 동맹국들은 베네수엘라의 민주적 과정을 방해하고 사보타주를 가하는 캠페인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 왔다. 경제와 금융의 봉쇄에 더하여, 물리적 침공을 시도하고 친미적 반대세력들의 폭력적 군사훈련을 지원하는 등 베네수엘라 시민들이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온갖 수단을 동원하였다.
지난 2020년 3월에는 반혁명의 극우세력들이 자신들을 “베네수엘라 애국전선’이라 칭하면서 선거위원회의 보관창고에 불을 지르고 50,000개의 투표기를 파손시켰다. 이는 2014-2017년간에 저질렀던 투표방해 행위의 연장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는 반대세력이 투표 관련 설비와 장비들을 지속적으로 파손시켜 왔다.
총선 전날, 베네수엘라 주재 미국의 동영상 대사관은 –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실물의 대사관을 설치하지 않고, ‘동영상’이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인 외교활동을 대신하고 있음 – 베네수엘라 시민들에게 부정선거라는 거짓 뉴스를 유포하고 선거에 참가하지 말도록 트위터를 통하여 선동하였다.
이렇듯 오만방자한 방해행위에 더하여 미국의 온갖 제제라는 압박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 인민들은 투표장을 스스로 방문하였다. 결국 미국의 불법적이고 비인간적인 정책은 미국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려는 베네수엘라 인민들의 결집된 응징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미합중국과 캐나다 유럽연합 그리고 심지어 스위스까지 베네수엘라 인민들에게 온갖 제재를 가하면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마두로 정부를 전복하고, 혁명의 성과를 역전시키려고 시도하여 왔다.
오바마 시절인 2015년에 베네수엘라를 ‘미국안보의 현존하는 위협”이라고 선언하면서, 미국 행정부는 연방의회의 결의와 행정명령을 동원하여, 300가지의 잔인한 행정적 제재조치를 베네수엘라에게 가하였다.
이러한 조치로 인하여 식량과 의약품 그리고 수많은 생필품과 기계류와 기술에 대한 무역활동이 차단되면서, 베네수엘라 인민들의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실제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이들은 또한 베네수엘라의 금융자산인 수십 억 달러를 도둑질하여 갔다. 이중에는 미국과 유럽의 은행에 예치된 계좌들을 동결한 것도 포함되었고, 심지어 생명에 관련된 의약품 구매를 위한 결제행위조차도 예외로 인정하지 않았다.
경제정책연구센터(CEFR)의 추정치에 따르면, 2017-2018년 2년간에 이러한 제재조치로 인하여 베네수엘라에서만 40,000명이 생명을 잃었다. 이후, 베네수엘라 경제에 대한 미국의 목조르기 행위는 더욱 강고해 졌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주요한 사건이 2020년 10월 18일 볼리비아에서 있었는데, 일년 전에 미국의 지원으로 당시의 볼리비아 대통령이었던 에보 모랄레스Morales를 축출한 쿠데타를 응징하며, 통쾌한 선거의 승리를 쟁취하였다. 이날 위대한 볼리비아 인민들은 사회주의운동(MAS) 소속의 Luis Arce와 David Choquehuanca를 각각 볼리비아 공화국의 대통령과 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이러한 위대한 승리는 볼리비아 인민들의 용감한 저항으로 가능했다. 진보적인 좌파정부를 선택함으로써, 가난하지만 민족적인 볼리비안들은 사회주의행동MAS의 혁명적 이상과 모랄레스 Morales의 지도력을 신뢰하면서 볼리비아의 진보적 전진을 파괴하려는 미국의 무자비한 노력을 무산시켰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우익의 쿠데타정권에 대한 볼리비아의 억압받는 인민과 노동대중의 영웅적 저항과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이 없이는 이러한 승리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미국의 지배에 대한 베네수엘라 인민들의 지속적이며 혁명적인 저항이 볼리비아와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 반-제국주의의 정신을 줄곧 유지시키고 고무하여 왔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혁명정신이야말로 미국의 억압에 대한 라틴-아메리카 인민들의 저항과 수호의 메아리를 울리는 진원眞源이다. 지난 수십 년간 지속된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된 혁명적 과정이 라틴-아메리카의 반제국주의 혁명운동의 근간이 되었다.
우리는, 지난 수년 동안, 미국과 우익동맹들이 라틴 아메리카 내에 존재하는 동조 세력들을 규합하여온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예를 들자면, 2018년 들어선 브라질의 볼소나로 정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볼리비아에서의 승리는 라틴대륙의 가난하고 억압받으며 일하는 모든 인민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북돋았으며, 볼소나로와 같은 반동적 부류의 등장은 단지 일시적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일어나는 진보적 혁명운동은, 미합중국과 그의 동맹들에 의해 잠시 중단될 수는 있지만, 지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와 신자유주의 정권들에 의한 위기가 깊어질수록, 가난한 대중들과 일하는 노동자들 그리고 젊은 세대들이 이에 저항하고 나서고 있다. 특히 지난 2년간 정치지형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아르헨티나와 칠레 페루와 에콰도르 그리고 콜롬비아 등에 걸쳐 이제 많은 사람들이 좌파적 진보진영으로 이동하고 있다.
또한 베네수엘라가 영웅적인 혁명을 시작한 이래 오늘의 시점까지, 미합중국은 베네수엘라를 세계로부터 고립시키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비인간적이고 범죄적이며 일방적인 제재를 가했음에도, 베네수엘라는 제3국들과 연대와 경제적 협력을 지속하고 있는데, 이들 연대국가들도 미국의 공격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라틴-아메리카 다른 지역의 가난하며 억압받는 노동인민들에게 미국과 이의 하수인들인 세계은행 및 국제통화기금IMF의 도움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발전을 지속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미국의 제재와 압력이 주는 충격에서 완전하게 벗어날 수는 없지만, 베네수엘라 정부는 형제 국가들과 연대를 통하여 인민들에게 미치는 고통을 완화시키는 몇 가지 사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러시아가 개발한 Sputnik-V 백신이 베네수엘라 현지에서 오늘 현재 3단계의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펜데믹의 대응을 지원하는 중국은 274톤에 달하는 의약품과 의료자제와 장비를 공급하였다. 쿠바는 자국의 의사들을 베네수엘라에 파견하여 무료로 광범위한 의료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2020년 5월부터 이란이 정제된 휘발유를 대형선박으로 공급해 주면서,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을 붕괴시킬 목적으로 가하는 제재로 발생한 에너지의 공급부족을 완화시켜 주고 있다. 지난 10월 3척의 선박이 도착한 것에 더하여, 10대의 유조선이 베네수엘라를 향해 운항 중에 있다.
이렇듯, 베네수엘라 혁명정부는 다른 나라들과 형제애적인 연대를 강화하면서 미국이 가하는 경제적 제재에 대응하고 있는데, 이들 형제국가 자신들도 미국의 잔인한 제재를 감당하고 있다. 이들 모두는 쿠바의 혁명정부의 사례에서 많은 교훈을 배우고 있는데, 쿠바정부는 억압받는 제3의 국가들 및 지역들과 혁명적인 국제연대를 실천하면서 반제국주의 투쟁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역시 쿠바의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면서, 미합중국의 압력과 지배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는 대안을 만들어 가고 있다.
또한 베네수엘라가 단지 중립적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반제국주의 운동에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제국주의와 양키의 지배에 반대하는 운동의 성공여부는 베네수엘라 인민들의 저항여부에 달려 있다.
따라서, 라틴-아메리카에서 베네수엘라를 수호하는 것은 반제국주의 운동의 핵심사항일 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고 실제로 가능하다는 믿음을 제공한다. 베네수엘라의 주권과 자결권을 위해 싸우는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진보의 전진이라는 목표를 수호하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제 라틴 대륙에서 제국주의를 물리치고자 원하는 사람들은 베네수엘라를 지원하는 것이 필수적인 과제이다.
어릿광대 트럼프도 상황을 파악하였듯이, 바이든 행정부도 같은 일을 반복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2021년 1월5일 새로 선출된 국회가 출범하면서 지난 12월 6일의 승리를 굳건히 지켜나갈 것이다.
미국인이든, 캐나다인이든, 전세계의 모든 진보적 시민들은 베네수엘라에 가하고 있는 미국의 봉쇄를 끝장내는 일에 함께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 작고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전직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제국주의의 개들이 짖어대는 것에 상관하지 말아라. 그것이 그들의 모습이다. 우리의 역할은 인민대중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Let the dogs of the empire bark, that’s their job; ours is to battle to achieve the true liberation of our people.”.
출처 : ‘Fire-the Time’ via Global Research Center on 2021-01-05.
Alison Bodine
캐나다 뱅쿠버에 거주하는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가. ‘베네수엘라의 혁명과 반혁명’의 저자이며 ‘Fire-The Time’라는 신문의 편집인이기도 하다
코로나 시대의 삶이 어느덧 일상이 되어가며, 뉴노멀로 지칭된 새로운 사회 규범이 만들어지고 있다. 낯설게 경험하는 현상들 가운데 무엇에 주목하는지에 따라 뉴노멀의 내용과 방향도 설정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비대면’(untact) 상황에 주목할 경우 새로운 ‘행위규범’으로서의 뉴노멀에 관심하게 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의 위계’에 주목할 경우 ‘체제구상’으로서의 뉴노멀을 상상하게 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새로운 행위규범 못지않게, 근대문명의 청산을 기획하는 체제구상의 뉴노멀도 절실하다.
하지만 요청된 변혁이 근본적일수록 이루기 힘들다는 비관이 앞선다. 인류는 오랫동안 자연을 약탈해온 근대 자본주의 소비 문명이 언젠가는 삶 자체를 파괴하는 지점에 이를 것이라는 불안을 안고 살아왔다. 지구온난화를 가속해온 산업문명이 환경의 역습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경고, 사회적 갈등의 뿌리에는 양극화된 빈부격차와 새로운 신분제도를 도입한 자본의 악습이 있다는 인식은 이제 낯설지 않다. 우리 시대 고통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단지 자본의 재배치에 그치지 않으려면, 문명 전환을 겨냥한 상상이 구현될 수 있는 길을 내야 한다.
철학자 에롤 E. 해리스는 근대문명이 파국으로 귀결된 본질적인 원인을 근대과학의 사유방식에서 찾고, 인류의 과제를 낡은 정신적 편견을 떨쳐내는 것으로 봤다. 여기서 낡은 편견이란 뉴턴이 완성한 근대적 사유 패러다임에 담긴 특징들, 즉 물질주의와 기계론, 원자론과 개체주의, 외적(external) 관계방식과 환원주의, 선입견과 주관적 가치가 배제된 과학, 목적론적 설명에 대한 거부, 물질과 정신의 분리 등이다. 이러한 뉴턴 패러다임이 과학만이 아니라 인식과 실천의 전 영역에 만연하여 근대문명의 병폐가 깊어 파멸에 이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회의적 태도를 보인다고 그는 말한다.
근대문명이 세계를 이해할 때 ‘실체’(substance)에 착안하여, ‘자기 존재를 위해 다른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개체적 존재에 관한 관념 위에 문명을 축조할 때부터 그 행로는 정해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중시한 근대정신이 중세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인도주의적 가치를 높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각 유기체가 자신의 환경과 맺는 참된 관계를 무시”하고 “그 환경의 고유한 가치를 무시하는 습관”도 기르게 했다. 이렇게 상호연관 감각을 잃은 근대정신은 타인을 단지 ‘도구적’ 가치를 지닌 존재로 간주하고, “인간의 형제애에 유의하기보다는 부적격자를 근절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결국 인도주의적 이상은 공동선(common good)을 향한 전체적 비전을 구성하기보다는 “소득, 여가, 그리고 안전이 더는 향상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에 봉사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자연과 노동에 대한 약탈로 구성된 신자유주의 시대의 정점에서 터진 코로나 사태에서 우리는 길을 잃은 근대문명의 현실을 보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 종교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공한 중산층을 위해 진화해 왔기 때문에 문명 전환의 이정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개신교와 같이 한국 현대사회에서 급부상한 종교일수록 코로나 사태를 맞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한편 코로나 사태가 소위 ‘탈진리 시대’(post-truth era)로 불리는 상황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가짜뉴스마저 취향이 되어버린 탈진리 시대 환경에서, 윤리는 당위성에 대한 성찰보다는 심리적 취향이나 사회적 효용성에 함몰되어가며, 사회적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이 좀체 구성되지 않고 있다.
고통에 잠긴 삶을 구원으로 인도할 신성한(sacred) 무엇은 과연 있을까? 고통의 삶에는 혼돈과 신비가 교차한다. 아니 고통은 그저 혼돈일 뿐, 신비란 말은 어쩌면 실재의 깊이에 대한 암시라기보다는 현실을 은폐하는 현혹일지 모른다. 하지만 만일 고통의 심연에서 해방의 문을 여는 열쇠를 얻을 수만 있다면, 적자생존의 삶으로 얼룩진 근대문명의 ‘힘의 철학’과 ‘번영의 복음’을 넘어서는 상상도 가능할 것이다. 코로나 시대 삶의 불안정성과 사회적 비탄 속에서 인류 공동체에 관한 새로운 감각, 약탈적 체제의 종식과 생태적인 삶에 관한 갈망이 거세게 일어나, 위기 속에서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사실 근대문명의 억압적 요소를 극복하기 위한 사유와 실천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났다. 그것이 ‘탈근대’라는 이름을 가졌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근대문명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진보적 주체는 여러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 글은 그것을 세 유형으로 분류하여 저항적 주체, 해체적 주체, 생태적 주체로 부를 것이다. 그들은 진보 담론의 세 가지 패러다임을 대변한다. 저항적 주체는 억압적 체제를 전복하고 역사를 발전시키려는 피억압자의 관심을 대변하며, 해체적 주체는 근대정신의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성과 관용에 주목한 탈근대적 주체이며, 생태적 주체는 유기체적 관계성을 중시하는 생태 문명을 지향하는 주체를 상징한다.
2. 근대문명 극복의 두 시도, 저항적 주체와 해체적 주체
근대문명의 정신적, 제도적 폭력성을 해결하려 한 ‘저항적’ 주체는 근대문명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억압적 체제를 변혁하기 위한 저항적 주체는 세계에 대한 ‘해석’만이 아니라, 세계 자체를 ‘변혁’하는 일에 관심했다. 이들은 공동체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종교와 국가 그리고 자본에 부여된 절대 권위를 전복하려 하였고, 이데올로기적 왜곡과 제도적 억압에 맞선 실천을 철저히 밀고 갔다는 점에서 이후 모든 진보적 양심은 이들에게 빚지고 있다. 이들이 가진 당파적 윤리는 억압당하는 자의 편에서 세계를 해석하고 재편성하려는 해방의 이상을 대변하였기에, 그 역사적 한계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저항적 주체가 추구한 해방 정신의 항구적 교훈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저항적 주체의 대표적인 국가 실험이었던 사회주의 혁명은 지구적인 차원에서는 실패했고, 이제 국지적으로 남았다. 그 이유에 대한 여러 설명 가운데, 저항적 주체가 유기체적 사회의 복잡한 운동과 그 구성원의 포괄적 관심을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가 있다. 진보에 대한 절대적 낙관과 자기 이상의 당파적 실천이 결국 자기비평을 소홀하게 만들고, 사회라는 유기체 안에서 형성된 다양한 관심사에 대한 포괄적인 고려를 제한했다는 것이다.
사상적인 면에서 보면 저항적 주체의 변증법적 사유에서 갈등과 투쟁이란 보다 고상한 종합의 전조로 이해되기 때문에 역사적 진보에 대한 낙관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변증법적 발전이 역사 속에서 발견될 수 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갈등과 투쟁이 고상한 종합을 ‘필연적으로 발생’시킨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갈등 가운데 하나의 선(善)이 또 다른 선을 위해 파괴되는 것은 고차적인 종합으로서의 지양(aufhebung)이 아닌 항구적 상실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전의 사회를 파괴할수록 더 완벽한 사회가 더 빠르게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가치가 박멸되면 될수록 그것이 회복될 수 없는 위험이 높아질 뿐’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마르크스주의 운동 자체의 ‘오독’도 있었다. 이를테면 ‘소명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와 ‘역사적 상태로서의 노동자 계급’의 혼동을 말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프롤레타리아가 어느 특정한 사회계급인 노동자 계급과 동일시” 되면서 ‘혁명의 소명(klesis)을 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사한 딜레마가 역사에서 되풀이된다. 기독교 교회(ek-klesia)가 자신의 소명을 ‘실행’하기보다는 그것을 ‘소유’한 집단처럼 행세할 때 종교적 추락을 완성하듯이, 부처의 자비도 승가(僧伽)의 소유가 될 수 없고, 진보적 정신 역시 특정 집단의 ‘소유’가 되지 않는다. 소명을 활용하기보다는 그것의 특권적 소유에 집착하는 이들은 반드시 몰락한다.
오늘날 저항적 주체는 과거의 ‘계급투쟁’보다 훨씬 미묘하고 복잡한 과제를 맞고 있다. 노동가치이론의 ‘유통기한이 만료’되어 노동의 ‘부정적 존재론’이 널리 퍼져서 진리가 ‘노동의 힘’에 뿌리박혀 있다는 생각을 거의 깨졌으며, 돈이 ‘신비화’되어 이제 노동은 ‘착취’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배제’에 대한 대처를 먼저 해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 공항노동자들의 정규직화라는 노동의 꿈이 바로 노동자들에 의해 위태로움을 겪었던 것처럼, ‘가난한 자들의 인식론적 특권’은 이제 상실감을 경험한 대중들의 ‘공정성’이라는 명분 앞에서 설득력을 잃었다. 네트워크나 기계에 의해 노동이 대체되는 4차산업혁명과 포스트휴먼(post-human)의 전망 또한 저항적 주체의 진화를 요청하고 있다.
한편 근대문명을 극복하려 한 탈근대성은 두 흐름을 가졌다. 이 글에서는,지난 삼십여 년을 주도한 탈근대적 흐름을 ‘해체적 주체’로 부르고, 그 대안으로서 ‘재구성적’ 특징을 가진 흐름을 가리켜 ‘생태적 주체’로 부르고자 한다. 저항적 주체가 억압적 ‘체제’의 전복에 관심했다면, 해체적 주체는 억압적 ‘정신’의 해체에 주목했다. ‘탈근대성’을 표방한 해체적 주체는 근대사상의 문제점을 ‘전체성에 대한 전쟁’(a war on totality) 또는 ‘거대담론’(meta-narratives)에 대한 회의’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거기에는 분명히 절대적 진리를 표방한 근대 이성의 병폐와 한계들, 즉 객관주의적 과학 이론, 토대주의적 인식론, 보편주의적 도덕과 문화 관념이 억압 기제로 기능하는 체계를 타파하려는 해방의 요소가 있었다. 또한 해체적 주체에게 진보담론을 구사하는 저항적 주체 안에 내장된 폭력성이 근대성의 잔재로 포착되었다.
해체적 주체는 차별에 맞선 연대와 차이에 대한 관용의 미덕을 인간 정신에 심어주었다. 하지만 상대화/파편화되어가는 사회에서 어떻게 담론과 투쟁을 위한 공통의 토대를 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어려움에 빠졌다. 여기서 저항적 주체가 ‘하나의 진리를 절대화’하는 극단에 치우쳤다면, 해체적 주체는 ‘모든 진리를 상대화’하는 또 다른 극단에 치우쳤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말하자면, 해체적 주체는 새로운 문명을 향한 ‘동력’을 어떻게 제공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자기 관심에 매몰되는 소아병을 극복할 수 있는지, 어떻게 상대성에 대한 인식이 편협성이 되지 않게 할 것인지, 어떻게 지식의 파편화를 방지할 것인지, 어떻게 허무주의를 넘어설 가치를 제공할 것인지.
포스트모던 감각이 진리를 향한 열정보다는 각자의 취향으로 미끄러지는 것은 아닌가? 때로는, 자기주장의 알리바이로 왜소화되어가는 탈-진리 시대의 흔적은 동료 이웃과 자연에 대한 ‘고통 감수성’을 갖는 일마저 버거워 보인다. 진리 자체가 아니라 감정과 자기 신념을 만족하게 하는 것을 진리로 여기는 ‘탈-진리’(post-truth) 시대를 맞은 오늘, 문제는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선동적/반동적 존재보다 그 흐름을 제어할 사상적 장치가 없는 데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것은 다양성의 윤리를 권장해온 탈근대주의가 마주친 최대의 복병으로서, 당위성의 감각이 소실되거나 왜곡된 지점에서 경험하는 사회적 증후군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근대의 이기적 주체 못지않게 탈근대의 해체적 주체도 이해관계나 자기 편견 속으로 잘게 부서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탄식이 생긴다. 해체되어 개인의 ‘취향’으로 미끄러진 진리는 묵시록적인 미래에 대한 순종의 지표처럼 읽히지만, 다행히 존재의 무게에 이끌린 영혼은 어느 시대든 미래의 그루터기로 남는다.
3. 생태적 주체와 종교
생태적 주체는 ‘저항과 해체’의 경험을 창조적으로 수렴한 존재로서, 타자와의 연관성을 내재화하여 자기 고립을 극복한 존재이다. 그는 근대문명이 ‘생존 경쟁을 증오의 복음으로 해석’한 사상적 잘못에 깨달은 존재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유기체적 연관을 실재의 본질로 알기에,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도구적 가치가 아닌, 생명의 ‘고유한’(intrinsic) 가치를 만들어가기 위한 요소이자 환경으로 서로 작용하는 것을 이해한다. 이것은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과장한 개체주의적 편향과 공동체의 질서를 위한다는 명목의 전체주의적 편향을 함께 극복하려는 것이며, 각 생명의 본원적 가치를 키우고 보호하는 ‘공동체적 환경’과 개인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의 가치를 동시에 지지한다.
이러한 관계성에 대한 인식은 ‘우주의 본성에 대한 경외심을 일으키는 통찰’에 근거한 것으로서, “불굴의 합리성이 철저하게 깃들어 있는 하나의 세계관을 재창조하고 재가동”함으로써 뒷받침된다. 그럴 때 근대문명의 전제가 되는 실체철학의 개체주의적 관념, 즉 ‘모든 존재는 자기이해관계에만 관심할 뿐이다’는 생각이 실상은 추상적 이데올로기이자 전체 전망을 상실한 부분적 관찰에 기인한 편견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생태적 주체는 진리와 함께 아름다움과 평화의 중요성을 깨달은 존재이다. 해체적 주체가 이미 밝혔듯이, 다양한 생명이 어우러진 세계에서 자신의 진리를 구축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타자의 진리에 대한 인식이다. 생태적 주체에게 그러한 인식은 상대성의 관념에 머물지 않고, 아름다움의 윤리로 전진한다. 다시 말해서 세계를 설명하고 윤리적 행동을 하는데 진리보다 더 ‘넓고 근본적인’ 의미를 아름다움에서 찾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떠날 때 진리는 선도 악도 아니다. 진리가 없는 아름다움에 중후함이 없다면, 아름다움이 없는 진리는 사소성으로 전락한다. 진리가 중요하게 되는 것은 바로 아름다움 때문이다.”
생태적 주체에게 평화는 궁극적 이상으로서 이상적 관계요, 이상적 상태이며, 이상적 목적이다. 이 평화는 웅대한 관계성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파괴적 격동을 가라앉히고, 문명을 완성하는 조화 중의 조화’이다. 이 평화는 현실의 아픔에 눈감지 않고 ‘비극에 대한 감수성’을 생생하게 간직한 채, ‘무한성의 파악’, 즉 ‘한계를 초월하는 호소’를 듣는다. 화이트헤드는 이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은 “수많은 아름다움과 무수한 영웅적인 행위와 무수한 대담성이 일어나고 지나가는 한복판에서 영원을 직관”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평화의 감각을 잃은 진리, 아름다움, 모험, 예술은 ‘무자비하고 딱딱하고 잔인한 것’이 되고 만다.
진보하는 사회는 약탈적 풍요 위에 세워진 안락한 사회가 아니다. 진보하는 사회는 인간의 관심사들이 ‘평화’를 이루기 위해 유혹을 받는 사회요, 그것을 이룰 방식으로 ‘비폭력/설득’의 길을 신뢰하는 사회이다. 역사의 진보란 단지 과학적 기술이나 철학적 신념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예술의 감각과 종교의 전망이나 결단 없이 역사는 도약하지 않는다.
사실 종교가 중요하다. 근대문명의 비극은 종교적 전망을 잃은 과학에 의존한 데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반대로 과학적 세계관으로부터 분리된 종교 역시 근대문명을 질곡으로 이끈 원인이 되었다. 자신의 낡은 관념을 수정할 용기를 갖지 못한 종교는 과학에 패배하면서 결국 자신의 중요성까지 잃게 되었고 단지 ‘안락한 삶을 장식하는 형식신앙’이 되고 말았다. 평화(shalom)에 대한 비전으로 ‘직접적인 동의’를 불러일으키는 힘을 잃은 종교, 신의 분노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여 정서에 호소하여 연명하는 종교는 결국 외면 받는다. 그런 이유로 종교는 저항적 주체에게는 단지 ‘도구’였고, 해체적 주체에게는 ‘취향’이 되었다. 그러나 눈앞의 이익과 개체적 만족 너머로 뻗어가도록 충동하는 종교적 힘을 잃은 문명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
억압과 파괴로 얼룩진 문명을 싸매기 위해서는 생태적 주체가 필요하다. 자기 진리에 대한 충실만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감각과 평화의 이상으로 충동질 당하는 영혼이 역사의 품에서 자라나야 한다. 자비로운 열정과 은혜로운 관계에 대해 겸손한 생태적 주체의 등장을 염원한다.
유럽연합과 중국이 주요한 투자협정(CAI)에 합의하면서, 2021년을 새로운 기반 위에서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세계를 주도하는 강대국 간에 돌팔매질을 중단하고 함께 협력하여 팬데믹 상황을 종료하고 환경친화적 디지털기술에 기반한 지구회복의 토대를 마련할 시점이다.
뉴욕 – 중국과 새로운 투자협정의 협상을 완료한 유럽집행부에 찬사를 보낸다. 이에 더하여 유럽은 적극적인 외교 활동으로 최근 중국으로 하여금 탄소중립을 2060년까지 실현하겠다는 약속을 이끌어 냈고, 뒤이어 일본과 한국 역시 2050년까지 탈-탄소화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일들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유럽과 중국 간의 투자협정(CAI)은 유럽과 중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그리고 이를 반대하고 경고를 보냈던 미국에게도 유익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번 협정은 유럽과 중국이 서로 개방적 경제관계를 심화하겠다는 의사를 공식화하면서, 상대의 경제권에 더욱 많은 투자의 기회와 시장접근을 보장한 것이다.
중국이 향후 수십 년간 환경과 디지털을 축으로 경제구조의 개혁을 추진하면서 형성될 거대한 내수시장에 유럽의 산업계가 보다 용이한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해당분야에 선도적 기술의 위상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이번 협상의 타결은 트럼프 행정부의 참으로 잘못되고 위험스런 방해를 물리치고 이루어졌는데, 트럼프의 미국은 중국을 첨단산업 분야에서 고립시키고, 전통적인 동맹인 유럽과 태평양연안의 국가들과 동맹을 형성하여 중국의 성장을 억제하려고 시도하여 왔다. 물론 새로이 들어설 바이든 행정부 역시 같은 방향을 추구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보다 세련되고 덜 강압적인 방식을 선택할 것이다.
미국 정책의 표면적 목표는, 미국의 설명을 그대로 따르면, 중국의 호전성을 봉쇄하고 인권침해를 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의 양당이 공히 선호하는 외교정책의 실상이 해외에 800 개소 이상 군사기지를 운용하면서, 반복적으로 불법적인 전쟁행위를 벌리고, 역시 불법적인 제재를 가하고, 유엔의 헌장과 협약과 안보리 결정 등의 준수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정부가 중국을 호전적인 당사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중국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유엔의 인권고등 위원회에서 문제를 제기한 신장 위구르 자치지역의 상황을 개선해야만 한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은 미국과 유럽 인도 등 다른 국가들도 중국과 유사하게 개선해야 하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년을 살펴보면, 특별히 중동과 서아시아 지역의 무슬림 민족들이 서구의 군사력이 저지른 잔인한 전쟁으로 고통을 받아 왔으며, 많은 국가들이 국내의 소요진압 과정에서 인권문제를 노출시켰고, 미국은 다양한 제재의 수단을 일방적으로 악용하여 왔다.
팩트로 보자면, 인권에 대한 보편적 선언을 제대로 준수하는 국가는 지구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유엔이 정한 경제 사회 문화의 제 권리 헌장을 유럽27개국과 중국 등은 오래 전부터 준수해 왔던 반면에, 수치스럽게도 미국은 아직 이를 비준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인권문제에 대한 올바른 접근은, 상대방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과장해서 비난하고 외교적으로 혹은 통상적으로 대화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미래지향적으로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시켜 나가는 것이다. ‘죄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라는 가르침을 기억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미국의 ‘반-중국’ 시도는 인권과 아무 관련이 없다. 특히 트럼프의 무법적인 행정부 하에서 미국의 정책은 강자의 지배력이라는 단순한 욕구에서 촉발되어 왔다. 미국의 의도는 중국이 기술과 경제분야에서 성장하는 것을 억제하여 자신의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인구가 전세계의 4%에 불과하다는 단순한 사실만을 고려하더라도, 세계경제 시스템을 미국의 헤게모니를 위해서 일방적으로 희생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2020년에 발생한 어려움에 대처하려면,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냉전방식이 아니라, 지구전체를 대상으로 협력방식을 새로이 정립해야만 한다. 이제는 팬데믹을 극복하고 일상의 정상회복과 지속가능한 발전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다. 당연히 중국도 이에 주요 파트너로 책임을 갖고 참여해야 하며, 새로운 도전에 힘을 보태야 한다.
한편, 미국과 유럽과는 달리 주변 아태 국가들과 더불어 중국은 코로나-19 전염을 성공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실패한 현재에, 의약품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국가군들은 자신들이 성공시킨 방식(테스트, 접촉추적, 그리고 방역기술)을 제공하여 세계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이에 더하여 해당분야 전문가들의 검증을 통해 자체 개발한 시노백과 시노팜이 안전하고 효과적인 것이 인정되면, 중국은 곧바로 대량생산을 통하여 전세계에 이를 배분하여야 한다.
유럽과 중국 그리고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된 바이든의 미행정부는 서로 협력하고 참여하여 환경친화적 디지털 기술에 기반하여 세계의 정상회복을 위한 로드맵을 준비해야 한다.
탄소 주요 배출국인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하겠다는 바이든의 계획에 더하여, 미국 역시 2050년까지 탈-탄소를 서약함으로써, 인류는 진정으로 광범한 환경기반의 회복이라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더구나 새로운 환경기술인 재생 에너지, 전기차량 그리고 에너지저장기술의 개발과 적용은 구체적인 협력을 통해서 크게 약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난 주에 중국의 리듐기반 축전기술 회사인 YaHua그룹이 미국의 전기차량 생산업체인 테슬러에게 밧테리 공급계약을 체결하여 양국의 산업체들간에 협력이 성사되었다.
유사한 기회들이 디지털 기술영역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세계적 규모의 경제적 참여와 발전에 디지털 접근성이 매우 중요하며, 5G기반기술이 도전적인 영역의 해결에 지름길을 제공하면서 에너지의 효율증대와 e-Commerce, e-Health 등을 향상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다행히 유럽과 중국의 상호투자협정은 디지털 협력을 도모하면서 지속가능 발전을 크게 촉진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유럽이 ‘반-중국’에 참여하라는 미국의 압력을 지속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트럼프의 중국에 대한 주요 전략은 첨단기술의 중국수출을 차단하여 화웨이 등 중국의 주요 기술선도 업체들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의 헤게모니 유지라는 각본에서 나온 것으로 냉전시기에 소비에트에 적용한 과거방식의 반복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화웨이에 대한 보복의 명분으로 중국이 화웨이의 5G 장비를 이용하여 타국에게 스파이 활동을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그러나 실제로는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면, 미국이 미국시민을 포함하여 해당국가에 대한 스파이 활동이 매우 어려워진다는 사실에 있다. 또 다른 배경에는 중국에 선진적인 기술의 도입을 차단하면 미국이 영구히 기술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한심한 판단이다. 그러나 실제의 현실은 중국이 조만간 첨단적인 반도체를 자체 생산하면서 미국과 기술격차를 손쉽게 해결해 갈 것이다.
한편에서는 세계를 향해 인권문제를 지속적으로 진지하게 제기하면서, 중국과 적극적이며 깊이있게 그리고 미래지향적으로 개입(협력)하고자 하는 유럽의 판단이 올바르다.
바이든 행정부는 헤게모니라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되며, 반대로 중국과 미래지향적 관계를 추구해 가야 한다.
유럽과 중국이 투자협정에 합의함으로써 2020년의 끝을 멋지게 장식하면서 미국과 별도로 독자적인 유럽의 외교정책 권리를 훌륭하게 시현한 셈이다. 이제 2021년의 수많은 도전에 대응하여 세계는 펜데믹을 종결시키기 위해서는 과거의 관행을 수정할 필요가 있으며, 향후 지속가능한 발전경로를 찾아 전진해야 한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020-12-31.
Jeffrey D. Sachs
뉴욕 콜롬비아 대학교의 공공정책 분야 교수이자. 해당대학의 지속발전연구소와 유엔지속발전해결네트워크(UN-SDSN)의 책임자 직위를 겸임하고 있다
중국의 군사현대화 작업은 시진핑이 군사중앙위 주석으로 취임한 2102년 11월 이전부터 이미 오랫동안 추진되어온 사업이었지만, 그가 등장하면서 내용이 매우 과감해지고 신속하게 진행되어 왔다. 변화의 주요한 내용은 무기와 장비의 현대화, 인민해방군을 보다 효율적인 조직으로 전환하는 개혁, 그리고 부패를 근절하며 시주석의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이다.
과거의 인민해방군은 국내를 무대로 발발하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게릴라 전술과 지구전에 의존한 시대에 뒤떨어진 조직이었다. 등소평 시절에는 경제에 모든 국력을 집중하면서 소위 ‘4대 현대화’의 항목에서 군대의 문제가 한참 후순위로 밀려났다. 강택민의 집권1기 시절인 1989-2004년 동안에도 인민해방군은 지역의 적군에 대응하는 억지력을 전력의 핵심으로 삼았다.
반면에 현재 제기되고 있는 군대의 현대화라는 목표는 공군과 해군력의 강화라는 필요와 더불어 미사일 전력의 확충 그리고 훈련과 독트린, 인원보충과 교육에 대한 커다란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강택민과 후임인 후진타오 주석의 군사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은 제한적 있었으며, 인민해방군은 정치권에서 요구하는 개혁에 저항할 수 있는 자체의 자력이 있었다. 당시 인민해방군 문제점의 하나는 ‘거대 조직- Big Army’이라는 개념에 의존하면서 주요 지휘보직이 지상군에게만 주어졌고, 기타 조직은 지상군의 지휘권에 종속적 위치에 머물러 있었다.
또 다른 문제점은 공산당 상층 지도부가 만연한 군내부의 부패를 통제할 수 없었으며, 등소평에 의해 용인된 군대의 자급생산 체제는 1980년대 당시의 부족한 군사예산을 보충하는 일종의 대안이었다.
시진핑이 군사중앙위 주석으로 취임하면서, 전임자들이 방기했던 상기의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에 착수하는 동시에 현대화 작업을 가속화시켰다. 현대화 작업의 출발은 사실 이미 전임자들 시기에 이루어졌는데, 주요 시스템의 온라인(전산)화와 독자개발한 항공모함 산동호, 055형의 미사일격추 시스템, J-20형 스텔스 전투기, Y-20형 장거리 수송기, DF-21D형 대전함 미사일, 극초음속의 비행수단을 갖춘 DF-17형 미사일 등을 열거할 수 있다.
시주석 시기가 도래하여, 민간의 과학기술과 산업체가 긴밀하게 결합되면서 인민해방군은 새로운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 – 즉 인공지능, 양자 컴퓨터과 빅데이터 등을 배경으로 이제 인민해방군은 현대적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지능화-기능intelligentisation을 갖게 되었다.
전임자들 시기에 착수된 상기의 프로그램들을 신뢰하면서 이에 더하여, 시진핑은 강택민과 후진타오가 손댈 수 없었던 군조직의 혁신작업을 정치적으로 매우 신중하게 진행하였다.
취임초기부터 그는 인민해방군의 현안에 깊이 개입하였으며, 군부대를 자주 방문하여 군사에 관한 연설을 진행하였으며, ‘작은 붉은 책자 – little red book’라는 교본을 만들어 군대에 보급하고 교육을 시켜 왔다. 또한 사단 단위의 지휘관 인사까지 개입하여 그와 비전을 공유하는 인사들을 주요 보직에 배치하여 왔다.
시주석의 군대에 대한 정치적인 핵심전략은 후진타오 시절부터 시작된 반부패 사업을 ‘호랑이에서 잔챙이까지tigers & flies –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뇌물죄에 대하여 강력하게 숙청을 단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패청산 작업은 표면상 군대의 전문성을 고양시킨다는 명분을 지니고 있지만, 강택민에 의해 임명된 군사중앙위 부주석인 Xu Caihou(西才厚)와 Guo Boxiong(郭伯雄).를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이들 강택민의 측근들을 제거함으로써, 시주석은 조직개혁에 저항하는 수구파들을 선택적으로 격파하고 자신의 권위를 공고히 했을 뿐만 아니라, 조직개혁에 대한 반대의 논쟁을 종식시켰다.
시주석은 조직개혁에 저항하려는 반대파들의 논쟁을 인민해방군의 효율적 운용을 증진시킨다는 논리로 대응하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시켰다. 1950년대의 소비에트 방식을 모델로 하였던 최고사령부 중심의 일방적 조직을 현대적인 미군의 연합군 편제로 대체시켰다.
합동참모부는 5개의 지역군 사령부를 총괄한다. 각 지역군 사령부는 각자의 지역과 임무에 전적으로 부여된 군사계획과 훈련 그리고 조직을 운용하도록 하였다. 예를 들어 동방지역군 사령부는 대만문제를 전담하고, 서방지역군 사령부는 남중국해 지역을 맡는다. 합동참모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해군과 공군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이들이 각 지역군 사령부의 핵심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새로운 조직편제 내에 2개의 지원군이 창설되었다. 전략지원군은 우주공간과 사이버 그리고 전자전과 심리전 분야에서 인민해방군의 역량을 강화시킨다. 이러한 발전은 인민해방군이 정보의 영역에서 작전을 수행할 강력한 수단을 제공한다. 또 하나의 지원조직은 합동군수지원군으로 지역군 단위사령부의 군수지원을 종합하여 집중적이며 효율적으로 취급한다.
동시에 하부단위(below-the-neck) 조직에도 큰 변화가 있었는데 지상군과 공군력을 사단에서 여단 단위로 세분화하여, 인민해방군 내부의 운용역량과 상호지원능력을 향상시켰다. 2015-2019 사이에 인민해방군의 관심은 내부의 현안에 집중되었고, 새로운 조직개편에 따라 대규모의 훈련은 축소 연기되었으며, 이웃 국가들과 우발적인 사고에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후 개혁의 결과로 중국군대는 현대적으로 편성 조직되었고, 중국의 전략을 국내적으로 그리고 지역적으로 보다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2020년에, 인민해방군 창설 100주년이 되는 2027년을 ’군사현대화 완수 fully modern military의 해’로 설정하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추가적인 항공모함의 건조와 현대화된 장거리 폭격기의 개발을 포함한 야심찬 계획이 도입되었다. 연구개발과 혁신적인 기술을 군사조직에 도입하는 한편, 이들 현대적인 노하우를 운영할 수 있는 인적 지원의 보충을 계속하고 있다.
이는 인민해방군의 운용능력 범위가 중국과 지역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군의 현대화라는 목표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 내의 미군사력과 충돌을 대비하는 것이며, 중국군대의 능력과 원칙에 따른 작전범위의 확장을 포함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의 향방은 전방위적인 위험의 증가를 억지하고자 하는 정치지도력의 결정에 달려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에 선언한 소득주도의 경제운용 입장은 절대적으로 옳았으나, 집권 일년도 지나지 않아 서민층을 위한 최저임금과 노동시간에 대한 정책을 너무나 손쉽게 포기하면서, 양극화를 가속시키는 대기업 주도의 산업과 반서민적 자산버블중심의 성장정책으로 전환하고 말았다. 커다란 패착이다. 양국 산업과 경제에 구조와 성격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정부는 중국이 추구하고 있는 쌍순환과 수요중심의 장기적 사회경제 발전 전략을 배우고 참조해야 한다.
중국은 수요중심으로 경제정책을 전환하여, 소득의 불평등을 줄이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며 토지사용과 주택소유권을 개혁하면서 장기적인 경제발전과 사회안정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러한 전환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바람직한 것이며, 전통적인 촉진정책이 야기할 수 있는 과다한 부채의 문제나 경기의 부침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코로나-19가 야기하는 불황 속에 민간기업과 가계를 지원하기 위하여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하면 GDP대비 정부부채 비중이 늘어나며, 이는 장래에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 부유층과 빈곤층의 소득을 재분배하면 재정지출과 같은 효과를 내면서도 정부의 재정적 부담을 늘리지 않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낸다.
통상, 정부가 진행하는 경제촉진(구제) 팩키지는 통화정책과 함께 재정확대를 동반하면서 정부의 부채를 증가시키고, 중앙은행을 통한 통화량을 풀면서 경제회복을 위해 자금을 제공하는 것이다. 정부의 부채가 증가하게 되면, 미래에 닥칠 수 있는 경제의 하강에 대응할 수 있는 자원(역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재정정책의 효과를 제한한다.
통화량을 증가시키면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서 국내에 인플레를 자극하면서 사재기(매석)과 경제운영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편집자 주: 필자의 염려와는 달리, 단기적 측면에서 주요 경제권에서는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인플레가 발생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디플레를 염려하는 지경에 있다). 따라서 경제회복을 위한 재정과 통화정책의 효과는 장기적으로는 회의적이다.
국가의 부채를 분석하고 다른 국가들의 경제지표를 비교하는 통계부처Statista는, 중국 GDP대비 정부부채는 2020년 기준으로 61.7%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이는 2017년의 46.36%에 비해 상당히 증가한 수치로, 대부분 중미통상전쟁과 뒤를 이은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경제적 하락을 보상하기 위하여 정부가 지출을 늘렸기 때문이다.
다른 주요 국가들의 정부부채가 평균적으로 100%를 넘어서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양호한 것이기는 하지만, 증가의 속도가 빨라 미래의 재정적 불확실성을 염려하게 한다.
더구나 61.7%는 유럽연합이 마스트리히트Maastricht 협약에서 제시한 60%를 넘어선 것으로, 60% 기준은 잠정적인 재정부담의 적신호로 제시되고 있다 (편집자 주: 반면에, Maastricht 협약 당시의 이자율2-5%에 비하여 현재의 이자율0-1%은 제로에 가까우며, 이에 따라 염려하던 재정부담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상기의 후유증에 대한 염려와는 달리, 수요중심으로 개혁을 추진하면 재정의 과다한 지출과 양적완화의 조치 없이 경제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소득의 재분배는 정부가 부유층에게 세금부과를 증대하여 이를 빈곤층의 구매력을 확대하는 것으로 전환시키는 것으로 재정의 과다한 지출을 피할 수 있다.
중국의 저개발된 농촌과 저임의 농민공 때문에 적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학자들은 불평등을 축젛하는 지표로 지니계수를 도입한다. 지니계수는 0에서 1까지 표시되는데, 1은 절대적 불평등을, 0은 절대적 평등을 뜻한다.
통계부처Statisca에 따르면, 중국의 지니계수는 2019년 기준으로 0.46으로 이는 2009년의 0.49에서 개선되고 있지만 유엔이 제시한 위험기준인 0,40을 초과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다 공정한 소득의 재분배는 중국의 장기적 경제발전 전망을 개선시킨다. 14억 인구를 가진 거대국가로서 내수의 기반을 확대하면, 복합적인 승수적 수요를 유발하면서 GDP성장과 장기적 안정에 기여한다. 시장이 확대하면 추가적인 국내 및 외국 투자를 유인할 것이며, 이런 이유가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2019년 중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증가한 배경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토지사용과 주택소유개혁과 관련한 정부의 정책은 투기를 억제하고 주택가격을 더욱 낮추어 국내의 수요자들에게 접근이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의 경우, 몇 년 전부터 투기행위와 빈집에 대하여 추가적인 세금을 부과하여 주택수요(대부분 외국의 부유층)에 대한 투기와 가격상승을 억지하였다. 이에 따라 외국의 수요자들, 특히 다주택에 대한 투기가 대부분 사라졌고, 주택가격이 내려갔다.
이에 더하여 주택소유권에 대한 개혁은 쌍순환Dual-Circulation 전략을 보완하는데, 쌍순환 전략의 주요 내용에는 도시화를 통한 소득증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전지역을 대상으로 대규모의 주택건설 및 필요한 사회간접시설의 확충은 매우 중요한 승수적 효과를 가져오는데, 주택건설과 관련후방의 산업에 대한 새로운 투자를 유인한다.
도시화는 인민들이 농촌에서 거점도시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하며, 거점도시 내의 소득편차가 좁아지면, 소득의 불평등 역시 줄어든다. 이에 더하여 새로운 도시와 간접시설의 건설에서 발생하는 정부의 부채는 주택매매와 경제활성화에 따른 세수증가로 상쇄된다.
사회안전망의 확장은 보다 많은 공공재와 공공 서비스를 무상 또는 저렴한 가격으로 인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적정하고 공정한 교육과 의료제공은 경제발전을 촉진한다. 교육은 양질의 노동력을 보장하고 생산성을 높여 주며, 의료서비스를 무상 또는 저렴하게 제공하면 인민들은 일반재화와 민간서비스를 구매할 여력을 갖게 되면서 경제전망을 밝게 한다.
종합적으로 정리하자면 수요중심의 개혁은 정부의 과다한 부채에 의존하지 않고, 중국의 장기적인 경제발전과 사회안정을 고양시키고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실제로 수요중심으로 정책의 전환은 국내소비를 창출하여 경제성장을 도모하고자 하는 쌍순환 전략을 측면 지원하게 될 것이다.
출처 : 중국국제방송(CGTN) on 20-12-24.
Ken Moak
지난 33년 간 국내외의 유수 대학에서 공공정책과 세계화에 대하여 강의를 진행하였으며, 2015년에 ‘중국경제굴기의 세계충격’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하리라.//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기대하지 않았었다,/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예상하지 못했었다./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에/가장 이른 봄의/차가운 빛 속에서/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기억해 내면서.//나는 지금 두려운가./그렇다. 하지만/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미국 시인 루이스 글릭(Louise Glück)의 <눈풀꽃>(류시화 옮김)이다.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는데, 아직 봄이 오려면 멀었는데, 차가운 눈밭 위로 꽃 한 송이가 고개를 내민다. 안쓰럽게도, 아니 장엄하게도 눈 내린 땅 꽁꽁 언 흙을 뚫고 나와 봄을 부른다. 영어로 ‘스노우드롭’(Snowdrop), 한자로 ‘설강화’(雪降花), 우리말로 ‘눈풀꽃’이다. 코로나(COVID-19) 때문에 지친 지구인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로는 이만한 시가 없겠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건 자연의 이치다. 또 봄이 되면 어차피 천지가 꽃으로 뒤덮일 테다. 한데 시인의 눈은 하고많은 꽃 중에 ‘눈풀꽃’을 바라본다. “가장 이른 봄의/차가운 빛 속에서/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기억해 내면서” 길고 긴 겨울의 절망을 마침내 이겨냈다고 말을 거는 꽃. 연약한 자기가 그리했으니 당신도 그리할 수 있다고 손 내미는 꽃.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1】이어서 생명에 대한 기대를 손톱만큼도 허용하지 않는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에 압도당하고, 차갑게 내리누르는 대지의 무게에 짓눌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절망에 포획되어 죽음 속으로 봉인되는 법이다. 이 봉인은 저절로 해제되지 않는다. 여전히 “축축한 흙 속에” 감금된 몸이지만, 저 멀리서 오는 봄의 발걸음에 “다시 반응”할 줄 아는 예민한 감각이 살아 있어야 한다. 한데 이 감각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두려움’이라는 감정의 늪을 건너지 않으면 안 된다. 눈풀꽃이 위대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 안의 두려움을 직면하고 이겨냈기 때문이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두려움의 힘이 얼마나 세면 기쁨을 느끼는 일이 “모험”이란 말인가? 낡은 세상의 힘이 얼마나 강하면 “새로운 세상”을 마중하기 위해 “살을 에는 바람”을 견뎌야 한단 말인가? 이 대목에서 우리는 감정과 윤리 그리고 정치의 삼각관계를 만난다. 두려움이 정치와 결부되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쉽사리 좌절되기에,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은 단순히 심리학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윤리학의 과제이기도 하다.
2. 사피엔스, 그는 누구인가
지구의 진화과정에서 오랫동안 ‘미물’(微物)에 불과했던 인간에게 자연은 두려운 존재였다. 두려움이 엄습할 때 인간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공격하거나 도망치거나! 지구 드라마의 ‘엑스트라’ 시절, 인간은 도망 다니기에 바빴다. 그러다가 서서히 ‘주인공’ 자리를 꿰차게 되면서 드디어 공격 스위치에 불이 들어왔다. 때마침 “땅을 정복하라. …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세기 1:28)는 성경 말씀이 자연을 식민지화하려는 인간의 제국주의적 심성에 불을 질렀다.
기계론의 유명한 은유, 곧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시계장치에, 그리고 하나님을 시계공에 빗대어 설명하는 방식은 14세기 프랑스 주교 니콜 오렘(Nichole Oresme)이 제안한 것이다.【2】 요컨대, 자연을 기계론적 세계관 아래 포섭하여 인간이 알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죽은 물질’로 보는 시도가 대체로 경건한 기독교인들에 의해 취해졌다. 그 한 보기가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이다. 그가 주도한 18세기 물리학은 자연을 결정론 법칙에 종속된 수동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게 주요 업무였다. 그렇게 해서 막스 베버(Max Weber)가 ‘세계의 탈마법화(disenchantment)’라고 부른 일련의 과정이 완성되었다. 근대인 대부분은 인간이 자연법칙까지도 틀어쥐고 있다는 착각에 병적으로 매료되었다.
자연이 ‘생명을 부양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사악한 마녀’의 이미지로 재현된 시기는 공교롭게도 셰익스피어의 희곡 <말괄량이 길들이기>, 그림 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 안데르센의 동화 <분홍신> 따위가 인기를 끌던 시대와 상응한다. 다시 말해, 계몽(Enlightenment)이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여성에 대한 남성의, 유색인종에 대한 백인종의, 육체에 대한 정신의, 감성에 대한 이성의, 죽을 수밖에 없는 숙명에 대한 영생의 자유를 도모하는 “주체의 자아 강화 과정”【3】에 다름 아니었다.
노자(老子) 가라사대, 큰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고 했던가?【4】 그동안 지구가 여러 차례 경고음을 냈는데도 인간은 듣지 못했다. 아니 들을 마음조차 없었다. 인간의 이러한 오만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 팬데믹, 그중에서도 문명의 성취를 마음껏 뻐기는 오늘날 인류를 속수무책으로 쓰러뜨리는 코로나 역병이다. ‘2020년 지구 이야기’의 주인공은 단연 ‘코로나’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그러니까 코로나로 인한 혼돈은 인간이 주어가 아니라 목적어가 된 최초의 시간에 관한 반응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간의 왕성한 지배욕과 지배력에 제동이 걸렸다. ‘알파고’를 만든 구글(Google)이 인간에게 영생·불사·불멸을 가져다줄 ‘길가메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는데, 그래서 인간 종(種)이 ‘호모 데우스’(Homo deus)로 진화할 날이 코앞에 닥쳤다는데,【5】 바이러스 하나 제어하지 못한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가 무색하기 그지없다. 그러니까 코로나는 인간에 대해, 나아가 지구 이야기에서 인간의 등장이 지닌 함의에 대해 뿌리에서부터 다시 생각할 때가 왔다는 신호다.
과학-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지구는 놀라운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했다. 항상성이란 ‘일희일비하지 않는 뚝심’이다. 어림잡아 46억 년을 지내는 동안 소행성 충돌이나 빙하기 같은 별의별 큰일을 겪으면서도 지구가 굳건히 버틸 수 있었던 밑힘이 ‘항상성’이었다. 그러던 중 지구의 항상성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 ‘악당’(villain)이 등장했으니, 바로 ‘사피엔스’(sapiens)다.
사피엔스는 등장부터 시끄러웠다. 같은 ‘호모’(Homo, 사람) 속에 속한 네안데르탈렌시스(neanderthalensis), 솔로엔시스(soloensis), 플로레시엔시스(floresiensis), 데니소바(denisova), 루돌펜시스(rudolfensis), 에르가스테르(ergasther) 등 사촌들을 단박에 제치고 독무대에 올랐다. 지구생태공동체에서 이전까지 별 볼 일 없던 인간의 지위가 단숨에 맨 윗자리로 뛰어오르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사피엔스는 가는 곳마다 멸종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인지혁명이 일어날 즈음 지구에는 몸무게 45킬로그램이 넘는 대형동물 약 2백 속이 살고 있었다. 농업혁명이 일어날 즈음 이들 중 남은 것은 약 1백 속에 지나지 않는다. … 우리는 생물학의 연대기에서 단연코 가장 치명적인 종이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6】
그리하여 ‘사피엔스’의 별명은 ‘터미네이터’(Terminator)가 어울린다. 사피엔스가 지구별에 등장해 문명을 건설한 이래, 지구별의 뭇 생물·무생물이, 나아가 지구별 자체가 종말로 치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세대는 “자신들이 마지막 세대에 속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첫 번째 세대”【7】라는 지적이 적확하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는 ‘인류세’(Anthropocene)【8】의 끝에 와 있는 것이다.
3. 코로나라는 이름의 예언자에게 귀 기울이기
코로나는 사피엔스가 지구의 생리를 다 안다는 ‘착각’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여실히 폭로한다. 사피엔스는 이름만큼 그렇게 슬기롭지 않다. 게다가 지구는 살아 있다! 살아 있는 생명체에 대해, 그가 설령 연인이나 부부 혹은 자식일지라도, 다 안다는 망상은 언제나 폭력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 채로 놓아둘 줄 알아야 슬기롭다. 다른 말로 하면, 타자의 타자성을 인정해야 한다. 평화의 첫걸음은 여기서 시작될 것이다. 평화는 상태가 아니라 관계의 언어이기 때문이다.【9】
그러니까 코로나는 근대 인간(Modern sapiens)이 욕망한 ‘관리자’(manager) 이미지를 반성하도록 촉구한다. 인간은 지구를 ‘관리’하기에는 너무나도 무지하고 무능하다. 그래서 서구 기독교가 ‘청지기’(steward) 신학을 들고 나왔지만, 이 역시 오만하기는 마찬가지다. 속물적인 인간은 자본과 권력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기가 불가능하다. 한편,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은 ‘돌봄이’(caretaker)라는 단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도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지구가 인간을 돌보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이렇게 인간이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한 채 헤매는 사이에 코로나가 닥쳤다. 특정 국가의 국민 또는 아시아 사람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재난 인종주의’는 두려움의 다른 표현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두려움이라는 이 원초 감정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군주제: 한 철학자가 바라본 우리 시대의 정치 위기』(The Monarchy of Fear: A Phiosopher Looks at Our Political Crisis, NY: Simon & Schuster, 2018)【10】에서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은 두려움이 항상 지배욕 혹은 제국주의와 결부되는 현상을 분석한다. 그리고 이 질곡에서 벗어날 실마리로, 두려움이 사실상 지독한 ‘자기애적 감정’(narcissism)이라는 데 주목한다. 아기뿐만 아니라 전투를 앞둔 군인이나 진단을 앞둔 환자도 마찬가지다. 관심이 온통 자기 내부로만 쏠린다. “자신의 신체가 그들의 세상 전부가 된다.”【11】
하여 두려움을 극복하는 문제는 유치한 나르시시즘을 떨치는 과제와 다르지 않다. 여기에 사랑이 들어선다. 사랑은 자기라는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경험이다. 누스바움의 말에 기대면, “절대 왕정에서 민주주의적 관계로의 이동”【12】을 경험하는 길은 오직 사랑을 믿는 길밖에 없다. 그녀는 “타인의 삶을 상상하는 능력 … 감사하는 마음과 (받은) 사랑에 보답하려는 마음속에 진화의 근거가 있을”【13】 거라고 말을 건넨다. 나의 말로 바꾸면, 사피엔스가 심비우스(symbious)로 변태하지 않고는 답이 없다.【14】
심비우스는 단순히 ‘민주(民主) 자아’(democratic self)가 아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코로나의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면서 깨닫게 된 것, 깨달아야 하는 건 바로 이 지혜다. ‘사회’ 안에서 ‘타인’과 공존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선결되어야 할 과제는 ‘지구’ 안에서 함께 몸 붙여 사는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잘 지내는 법을 배우고(學) 익히는(習) 일이다.
그러니 심비우스는 ‘생주(生主) 자아’(biocratic self)라 할 것이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을 행동강령으로 삼지 않을뿐더러, 지구생태공동체에서 오로지 인간만 번성해야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히지도 않는다. 민주적 자아의 필요조건이 ‘자기애’를 넘어서는 일, 타인을 걱정할 수 있는 능력,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이라면, ‘인류애’마저 넘어 ‘신의 지문’이 새겨진 우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피조물의 복지에 헌신하는 이가 심비우스다.【15】
유대인 사상가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Abraham Joshua Heschel)은 “우리는 사람의 ‘본성’을 서술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든다”【16】는 점에서 여타 사물이나 동물과 구별된다고 지적했다. 달리 표현하면, 자연계에서 오직 인간만이 ‘문화’를 창조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이유가 “땅을 갈 사람”(창세기 2:5)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성서의 보도가 이를 잘 말해준다. 문화라는 영어 단어(culture) 자체가 ‘경작’을 의미하는 라틴어(cultura)에서 유래한 점을 기억하면, 인간의 독특성이란 바로 신에게 받은 ‘문화 명령’을 가리키겠다. 즉, 현생인류와 5만 년 전 조상 사이에 존재하는 주요한 차이는 유전자가 아니라 문화다.
심비우스는 자신이 지구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자각한다. ‘지구의 자의식’으로 깨어있어야 함을 안다. 지구가 얼마나 연약한 별인지, 얼마나 아픈 몸인지 절절히 느낀다. 열이 나고 숨을 쉬기 힘든 코로나의 증상이 기후 변화에 시달리는 지구별의 증상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포획되어 ‘티나’(TINA: There Is No Alternative)를 입에 달고 사는 대신에 “기쁨에 모험을” 거는 쪽을 택한다. ‘타타’(TATA: There Are Thousand of Alternatives)를 노래하며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으로 들어간다. 아니 차라리 심비우스가 바람이다. 심비우스의 눈길이 머무는 곳, 발길과 손길이 닿는 곳마다 생명의 바람이 일어난다.
“나는 내 운명을 안다. …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 니체(Friedreich Nietzsche)의 세기말적 선언을 이렇게 수정하자. “나는 내 운명을 안다. … 나는 사피엔스가 아니다. 나는 심비우스다.”
【8】 2016년 8월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국제지질학총회(International Geological Congress) 참석한 ‘인류세 워킹 그룹’은 지구가 1950년 즈음부터 새로운 지질학의 시대, 곧 ‘인류세’에 접어들었음을 공식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력한 ‘황금 못’(golden spike: 각 시대를 구분하는 주요 기준)으로는 방사성 물질, 플라스틱, 닭뼈 등이 지목되었다. 『유네스코뉴스』 747(2018), 7쪽.
【9】 구미정, “평화의 카이로스: 일상의 폭력 극복을 위한 기독교윤리학적 성찰”, 『신학논단』 65(2011).
【10】 이 책은 원제와 달리 다음의 제목으로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마사 누스바움, 『타인에 대한 연민』, 임현경 옮김(알에이치코리아, 2020).
【11】 윗글, 60쪽.
【12】 윗글, 62쪽.
【13】 윗글, 63쪽.
【14】 이하의 논의는 구미정, “코로나 시대에 다시 생각하는 ‘하나님의 형상’”, 『신학연구』 76집(2020) 참고; 구미정, 『호모 심비우스: 더불어 삶의 지혜를 위한 기독교윤리』(북코리아, 2009)도 볼 것.
【15】 이 대목에서 나는 백여 년 전 이 땅,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이 된 한반도에서 ‘대동’(大同)을 꿈꾸었던 선각자들이 떠오른다. 백암 박은식, 수운 최제우 같은 이가 그들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까다로운 외교정책 과제 중 하나는 핵무장한 북한입니다. 미국과 북한 간의 기나긴 회담은 2019 년 이후 교착 상태에 빠져 있고, 북한은 최근까지 핵무기 무기 개발을 계속하면서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무기를 공개하였습니다.
은퇴한 미육군 대령이자 40 년의 경험을 가진 미 외교관으로서 저는 미군의 행동이 어떻게 전쟁으로 이어지는 긴장으로 악화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속한 조직인 평화를 위한 참전용사단체는, 미국과 한국 등 수백의 시민 사회 단체의 일원으로, 바이든 행정부에 올해 다가오는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즉각적으로 중단할 것을 촉구합니다.
대대적인 규모와 도발적인 성격으로 인해 연례의 한미군사연합훈련은 한반도의 군사적 정치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계기가 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군사훈련은 2018 년부터 중단되었지만, 로버트 에이브람스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합동 군사훈련의 재개를 주장하고 있으며, 미국과 한국의 국방장관들도 기본적으로 합동훈련을 계속하기로 합의했고, 새로 임명된 국무장관 안토니 블링컨(Antony Blinken)은 훈련을 중단하는 것은 실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북한의 도전적인 대응조치를 유도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보다는, 블링컨은 북한과의 화해조치로서 훈련을 중단하는 것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에 걸친 대북제재의 효과는 말할 것도 없고, 트럼프가 채택한 최대압력전략이 실패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블링컨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압력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CBS방송과 인터뷰에서 그는 북한을 압박하여 협상의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더욱 강력한 경제적 제제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바이든 정부가 오는 3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진행할 경우, 이는 곧바로 북한과 외교적 타협의 가능성을 훼손하고 지정학적 긴장을 고조시키며 남한과 긴장을 재점화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도래하면 한반도는 재앙이 될 것입니다.
1950년대 이후 미국은 북한의 남한공격을 억제하기 위해 군사 훈련을 “무력의 과시”용으로 진행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한미군사훈련을 “최고 지도자의 살해작전”으로 간주하고, 체제전복을 위한 리허설처럼 평가합니다.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은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B-2 폭격기, 핵공격이 가능한 항공모함 및 핵잠수함의 참가, 장거리사격이 가능한 대형구경의 무기 등을 동원합니다. 따라서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은 매우 절실한 신뢰구축의 조치이며 북한과의 대화 재개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가 긴급한 인도주의적, 환경적, 경제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군사훈련에 동원되는 절실한 자원을 의료제공과 환경보호를 통한 생명과 안전을 제공하려는 노력으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또한 한미군사합동훈련은 또한 미국 납세자들에게 수십억 달러의 비용을 부담시키면서 현지 지역주민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입히고 한국의 환경에 큰 피해를 가합니다. 한마디로 미국은 한반도에서 긴장을 계속 유지시키면서, 이를 막대한 군사지출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여 왔습니다.
북한은 GDP 대비 군사비 지출에서 세계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총액 규모로 보면 한국과 미국이 국방에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 군비 지출 1 위 (7,320 억 달러)로 다음 10 개국을 합친 것보다 많고 한국은 10 위 (439 억 달러)에 해당합니다. 반면에 한국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북한의 전체 국방예산은 84 억 7 천만 달러(2019 년 기준)에 불과합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궁극적으로 위험하고 값비싼 군비경쟁을 막고 전쟁재개의 위험을 없애기 위해, 그리고 70년의 기간이라는 오랜 한국전쟁의 근본 원인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군사훈련을 즉시 중단하는 노력을 통하여 북한과의 긴장을 줄여야 합니다. 군사훈련과 오랜 전쟁을 끝내는 것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비핵화를 이루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For Peace With North Korea, Biden Must End the US-South Korea Military Exercises
One of the thorniest foreign policy challenges the Biden administration will need to face is a nuclear-armed North Korea. Talks between the U.S. and North Korea have been stalled since 2019, and North Korea has continued to develop its weapons arsenal, recently unveiling what appears to be its largest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As a retired U.S. Army Colonel and U.S. diplomat with 40 years of experience, I know all too well how actions by the U.S. military can exacerbate tensions that lead to war. That’s why the organization I am a member of, Veterans for Peace, is one of several hundred civil society organizations in the U.S. and South Korea urging the Biden administration to suspend the upcoming combined U.S.-South Korea military exercises.
Due to their scale and provocative nature, the annual U.S.-South Korea combined exercises have long been a trigger point for heightened military and political tensions on the Korean Peninsula. These military exercises have been suspended since 2018, but Gen. Robert B. Abrams, Commander of U.S. Forces Korea, has renewed the call for the full resumption of the joint war drills. U.S. and South Korean defense ministers have also agreed to continue the combined exercises, and Biden’s secretary of state nominee Antony Blinken has said suspending them was a mistake.
Rather than acknowledge how these joint military exercises have proven to raise tensions and provoke actions by North Korea, Blinken has criticized the suspension of the exercises as an appeasement of North Korea. And despite the failure of the Trump administration’s “maximum pressure” campaign against North Korea, not to mention decades of U.S. pressure-based tactics, Blinken insists more pressure is what’s needed to achieve North Korea’s denuclearization. In a CBS interview, Blinken said the U.S. should “build genuine economic pressure to squeeze North Korea to get it to the negotiating table.”
Unfortunately, if the Biden administration chooses to go through with the U.S.-South Korea joint military exercises in March, it will likely sabotage any prospect of diplomacy with North Korea in the near future, heighten geopolitical tensions, and risk reigniting a war on the Korean Peninsula, which would be catastrophic.
Since the 1950s, the U.S. has used the military exercises as a “show of force” to deter a North Korean attack on South Korea. To North Korea, however, these military exercises — with names such as “Exercise Decapitation” — appear to be rehearsals for the overthrow of its government.
Consider that these U.S.-South Korea combined military exercises have involved the use of B-2 bombers capable of dropping nuclear weapons, nuclear-powered aircraft carriers and submarines equipped with nuclear weapons, as well as the firing of long-range artillery and other large caliber weapons.
Thus, suspending the U.S.-South Korea joint military exercises would be a much-needed confidence-building measure and could help restart talks with North Korea.
At a time when the world is facing urgent humanitarian, environmental and economic crises, the U.S.-South Korea military exercises also divert critically needed resources away from efforts to provide true human security through the provision of health care and the protection of the environment. These joint exercises cost U.S. taxpayers billions of dollars and have caused irreparable injury to local residents and damage to the environment in South Korea.
On all sides, the ongoing tensions on the Korean Peninsula have been used to justify massive military spending. North Korea ranks first in the world in military spending as a percentage of its GDP. But in total dollars, South Korea and the United States spend vastly more on defense, with the U.S. ranking first in military spending worldwide (at $732 billion) — more than the next 10 countries combined — and South Korea ranking tenth (at $43.9 billion). By comparison, North Korea’s entire budget is just $8.47 billion (as of 2019), according to the Bank of Korea.
Ultimately, to stop this dangerous, expensive arms race and remove the risk of renewed war, the Biden administration should immediately reduce tensions with North Korea by working to resolve the root cause of the conflict: the longstanding 70-year-old Korean War. Ending this war is the only way to achieve permanent peace and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출처 : 전쟁없는세상(WorldBeyondWar) on 2021-01-28.
Ann Wright
공수부대 참전 경력을 지닌 미육군대령출신의 여성으로 예편 이후, 미국무부에 근무하다가 중동정책에 반대하면서 이라크 침공 하루 전에 공개적인 사임을 한 이후, ‘반전평화를 위한 참전용사단체’와 ‘Pink-Code’ 등에 참여하면서 왕성한 평화운동과 기고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중국이 디지털-위안화의 도입을 추진하면서 세계를 다시 한번 놀라게 하였다. 시험적 사용이 이미 4개 주요 도시에서 착수되었고, 2022년에는 국제동계올림픽의 개최지역에 공식적으로 도입 적용될 예정이다. 이는 국제금융시장을 향한 ‘중국의 벽돌쌓기’ 작업 중 하나이며, 세계경제의 새판짜기에 깊이 개입하고자 하는 포석이기도 하다.
Q1) 디지털-위안화(eRMB)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일까?
이는 단순히 현재 중국의 실물(physical)화폐를 디지털화하는 것이며,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PBOC가 제1 금융권인 국유은행들과 온라인-지급포탈 조직인Alipay와 Wechat Pay 등을 통하여 시중에 공급하는 것이다.
이들 은행들과 포탈기업들은 디지털-화폐를 개인과 민간기업에게 배포하는 권한을 정부로부터 부여받아 디지털-지갑방식으로 지불할 수 있게 된다.
Q2) 그렇다면 왜 굳이 실물화폐 대신에 디지털-화폐를 도입하려 하는가?
이미 전세계에 통용되는 디지털-화폐량의 44%를 중국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선도하는 것은 자연스런 발전의 추세이며, 이를 국가가 책임지는 주권디지털-화폐로 전환하여 중국 정부가 디지털 화폐의 순환을 통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Q3) 주권(국가발행)디지탈-화폐의 장점은 무엇일까?
현재 시중에 인기를 끌며 사용 중인 Alipay그리고 Wechat과는 달리, 디지털-화폐는 인터넷이 없어도 거래가 가능하며 은행에 계좌를 별도로 개설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현재에도 은행계좌가 없는 중국 성인의 20%에게 큰 도움을 제공한다. 이는 빈곤퇴치라는 중국정부의 큰 밑그림이다.
디지털-위안화는 국가발행 화폐로서 불법적인 행위를 방지하기 때문에, 돈세탁, 사기, 불법적 금융거래, 탈세 등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블록체인 기술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발권과 기장(book-keeping) 등 화폐의 유통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통화정책을 펼치는데 참조할 유용한 자료를 제공한다. 경제 흐름의 정확한 정보를 신속히 제공하면서 국가의 정책품질을 개선시킨다.
Q4) 디지털-위안화를 중국 밖의 해외에서도 사용이 가능할까?
물론 현재 단계에서는 중국 국내에서만 통용된다. 하지만 가까운 장래에 개인들이 해외에서 구매결제에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며, 중국의 수출입 부문에서 이루어지는 국제거래 역시 디지털-위안화 사용이 가능할 것이다.
대외무역에 있어서, 디지털-위안화는 특히 결재의 시간을 단축하고, 상대적인 위험을 감소시킨다. 현재 다양한 지불수단을 사용하고 있는 일대일로BRI 사업의 무역거래도 손쉽게 성사시킬 수 있다. 결제과정에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제3국의 화폐(예건데, 미국달러)를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된다.
따라서 디지털-위안화는 중국의 국제적 위상을 강화시키면서, 국가 간(cross-border)의 결제 시스템에 변화를 가져오게 할 것이다. 현재 다국가 간의 거래에는 미국의 SWIFT시스템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현행의 다국적 간 결제수단과 은행시스템을 미국이 정치적으로 무기화하여 많은 국가들에게 제재수단으로 악용하여 왔다. 디지탈-위안화는 다국적 거래에 있어서 SWIFT 시스템의 대체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Q5) 디지탈-위안화가 중국정부가 추진하는 쌍순환 경제정책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디지털-위안화는 중국기업과 외국기업 간의 연계(거래)에 틈새를 없애고, 외국의 간섭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 주면서, 쌍순환의 경제활동이 더욱 왕성하도록 돕는다. 디지털-위안화는 자체로서 결제기능을 갖추고 있어서 미국달러의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디지털-화폐는 중국산업의 혁신과 디지털 경제의 핵심요소가 될 것이며,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그리고5G 기술을 수용한다.
Q6) 그렇다면 디지털-위안화의 도입이 중국을 세계로부터 격리시키게 되지 않을까?
전망은 정반대이다. 디지털-위안화의 도입은 중국이 국제무역의 상대국가들과 관계를 쉽게 확장하도록 지원하며, 세계경제의 관리체계를 개혁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을 돕는다.
트럼프의 집권 4년은 세계적으로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트럼프는 미국식 대의 민주주의의 ‘완벽한’ 절차를 통하여 합법적으로 선출된, 그것도 전통에 빛나는 미국 공화당의 후보로서 대통령에 취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집권 이후 백인우월주의의 인종차별 정책과 극단적 미국 이기주의에 토대한 국제질서 부정으로 일관하면서 전 세계를 경악시켜왔다. 마침내 극우파 시위대의 의회 난입이라는 폭거는 ‘미국 자유민주주의’의 조종을 울리는 신호탄이다.
미국, 직접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세계적 대제국으로 성장했다
처음 미국에 건너간 이주민들은 같이 배를 타고 와 정착한 동료들과 생활의 근거지를 형성하였는데, 이것이 곧 town이었다. 인구가 약 2천 내지 3천 명에 이르렀던 town에서 주민과 밀접한 업무는 자신들의 손에 의하여 마을집회(town-meeting)에서 직접결정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주민들이 직접 처리할 수 없는 업무는 마을에서 선출된 사람들에 의하여 처리되었는데, 그들은 주민들이 위임한 실무적인 일만 처리하였을 뿐, 공적인 일에 대한 판단은 주민들의 직접 투표로 결정하였다. town에는 주요 행정기능을 수행하는 다수의 관리들이 있었는데, 이들 역시 마을집회에서 직접 선출되었고 그 공적 업무에 충실하지 못하면 책임이 뒤따랐다.
이러한 주민 자치제도는 특히 뉴잉글랜드에서 1650년에 확고하게 정착되었고, town의 독립성 역시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았다.
미국이 세계적 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그 직접민주주의의 힘에 기초하고 있었다.
차별성 없는 미국의 두 정당, 양당제의 역설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명예교수는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나눠진 미국의 정당 체제에 대하여 “기업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측면에서 사실 1당 체제다”라고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그는 미국을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 체제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체제 하에서 일반 대중들은 통제당하고 주변화 한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양상은 특히 미국과 같이 기업들의 주도력이 강한 사회에서 더욱 뚜렷하다면서 선거에서 홍보 대행 산업이 활개를 치는 것은 대중을 통제하고 주변화 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경제는 1970년대에 극적인 변화가 있었는데, 바로 금융화와 상품 수출이 강화되는 방향이었다. 여기에 부의 집중, 인구의 1%에 부가 몰리는 과격한 악순환을 조장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되었다. 이에 따라 정치력 집중도 초래되었으며, 경제 집중을 유도하는 국가 정책들이 쏟아졌고, 그러면서 정당들은 자연스럽게 자본의 휘하에 끌려갔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촘스키 교수는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도 별로 다르지 않다면서 미국의 차별성 없는 양당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사회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도 일찍이 “정치란 대기업들이 사회에 던진 그림자”라고 규정하고 이러한 상황은 “언론 등 정치 선동의 수단을 지휘하면서 은행과 부동산, 산업을 사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사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에 권력이 있는 한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ugene Stiglitz)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미국 사회가 겉으로는 민주주의가 가장 잘 발전된 국가로서 공정한 사회의 모델로서 자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1%의, 1%에 의한, 1%를 위한’ 국가일 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이 글에서 “미국 의회 의원 대부분은 선출되는 순간 상위 1%의 돈으로 유지되는 상위 1%의 멤버들이 되며, 무역과 경제정책의 핵심 고위관료들은 대체로 상위 1% 출신들이다. 또한 미국의 대법원은 선거비용 지출 제한을 철폐함으로써 기업이 정부를 돈으로 움직일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지적하고 있다.
驕兵必敗, 교만한 병사는 필패한다
이제까지 미국의 양당 제도는 장기적으로 오랫동안 미국 정치의 장점으로 역할 해왔다.
하지만 그 장점은 이제 다원화되는 사회계층의 이해와 다양화되는 사회문제를 포괄해내는 데 경직성을 노정시키면서 오히려 미국 쇠퇴의 중요한 단점으로 작동하고 있다. 반면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광범한 대중에 토대한 사회(민주)당의 존재에 의하여 대중들의 이해가 보다 강력하게 정당정치에 반영됨으로써 그만큼 정치적 사회적 안정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의 원칙 못지않게 소수 의견에 대한 존중 역시 중요하다. 이 점에서 독일의 정당 명부 비례대표제는 소수 정당의 존립 근거를 마련해줌으로써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사회의 소수 그룹을 존중하기 때문에 바람직한 제도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레이건 정부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덜 내게 하고, 군사비 등을 제외한 공공 서비스와 공공 투자를 줄였다”라며 미국 사회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레이거노믹스 시대 이래 상위 1%의 소득은 지속적으로 증가한 반면 나머지의 소득은 계속 정체되고 끔찍한 실업에 시달렸다고 비판한다. 그는 “다가올 시대의 중요한 도전은 99%의 번영을 이룩하고 그들의 힘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정치에 대한 금권의 지배는 이미 구조화되었다. 개방형 경선과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므로 특혜 정책을 위하여 돈을 제공할 능력이 있는 대기업의 정치자금 기부가 기부 액수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되어 있다. 미국 정치제도는 기업들의 로비 자금에 의하여 운용되고 있고, 이로 인하여 정작 교육, 의료, 에너지 등 대중들의 삶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회경제 분야는 점점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된다. 미국이 현재 세계에서 코로나 19 환자와 사망자가 많은 나라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교병필패(驕兵必敗), 건강한 신대륙의 건국 정신은 사라지고 패권국가로 너무 오래 교만하게 군림해왔다. 미국은 더 이상 아름다운 나라, 美國이 아니다. 쇠락의 추세는 비단 정치만이 아니라 그간 미국이 자랑하던 외교, 인권, 경제 그리고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현시되고 있다.
바야흐로 국제질서가 다자주의에 기반한 다극체제로 진입하는 과정의 향배는 미국도 아니고 중국도 아닌 유럽연합의 움직임에 달려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시급한 지구적 현안인 기후문제에 대한 유럽연합의 과감한 (주도적) 구상을 살펴본다.
기후위기의 긴급함을 고려해 볼 때, 이제 유럽연합이 지구적 현안인 기후문제를 국제외교의 핵심주제로 전환시켜야 한다. 금융과 시장 기술과 외교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유럽사회는 파리기후협약에서 결정한 것처럼 전세계를 지속가능한 미래로 이끌어갈 주도적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브뤼셀 – 이제 세계는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하면서, 일년 가까이 봉쇄되었던 사회를 원상으로 회복시키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인류에게 또 다른 위협으로 다가오는 기후변화에는 이를 정복할 백신조차 없다.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산림화재와 방글라데시를 황폐시킨 홍수 등의 혹독한 장면들은 인류가 기후위기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맞을 재앙적 미래에 대한 일종의 예고편이다.
엄청난 반전의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이러한 자연재해는 빈도를 더하여 자주 발생하고 더욱 파괴적인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이제 기후변화는 현재 인류가 당면한 가장 커다란 지정학적 현안이 되었다.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사회정치적 불안정을 야기하고, 대규모의 인구(난민)이동이라는 압력을 형성하는 동시에, 지구적 규모의 불공정을 확대시키며, 특히 취약한 국가군을 중심으로 인류에게서 인간다울 권리와 평화를 빼앗아 갈 것이다.
기후과학자들은 ‘파리협약에서 제시한 목표인 산업시대 이전의 지구평균기온 상승범위를 섭씨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대기 중 탄소산화물의 누적량을 최대 580기가 톤으로 억제해야 한다고 분명한 어조로 선언하였다. 이것이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구히 지켜내야만 하는 ‘대기 중의 탄소할당량’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매년 37기가 톤을 배출하고 있어서, 이대로 진행되면 2035년에 주어진 할당량을 초과하게 된다. 이제는 지체함 없이 탈-탄소화의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이미 지구온난화가 한참 진행되어서 산업화 이전에 비하여 평균 섭씨 1.1도가 상승되었고, 지역에 따라서는 훨씬 높은 수준으로 악화되었다. 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기회는 앞으로 남은 불과 수십 년뿐이다.
유럽연합은 기후현안에 대하여 지난 수십 년간 국제사회를 주도하여 왔으며, 코로나-19라는 위기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야심찬 대응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여러 가지 준비사항 중에는, 유럽집행부 부위원장인 Frans Timmermans가 적절하게 지적하였듯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그린촉진 계획인 ‘유로-그린딜’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55%까지 낮추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2050년에는 탄소중립화를 실현하는 것을 약정하고 있다.
이러한 야심적 계획을 지원하기 위하여, 유럽연합 가입국가들은 유럽투자은행EIB를 유럽기후은행(EU Climate Bank)으로 전환하는 것에 동의하였다. 기후운행은 2021-2025년간의 로드맵을 작성하면서 EIB가 향후 10년간 1조 유로(1.2조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기후관련 분야와 환경지속의 영역에 투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로써 EIB는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파리협약에 연계하여 조직을 운용하는 최초의 다자적 투자개발은행이 되었다.
이를 실제적이고 효과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 유럽은 자신들의 이러한 내부적인 노력을 적극적인 외교전략과 함께 병행해야 한다. 실제로 유럽은 지구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겨우 8% 수준에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기후대응의 노력이 유럽에만 국한되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만약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서 향후 추가적으로 요구되는 에너지 수요를 석탄과 가스 발전소에 의존하여 공급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지구온난화를 제한하겠다는 우리들의 희망은 대기로 흩어지는 연기처럼 허망하게 사라진다.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이 유럽의 야심찬 계획에 동참하도록 설득시켜야만 하고 이들도 필요한 대응조치를 취하도록 강제하고 함께 도와야 한다.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유럽이 기후외교에 대한 국제적인 주도권을 행사하여 필요한 만큼 경제적 외교적 무게를 실어야 한다. 기후에 대한 노력을 현실정치와 결합시키고, 기술혁신과 지속가능발전을 불가역적으로 연계해야만 한다.
오로지 혁신을 통해야만 유럽의 미래경쟁력을 보장하고 유럽국경의 안팎에서 기후도전에 대응할 수 있다. 오로지 기술혁신과 그린분야에 대한 투지를 지속해야만 아프리카와 제3 지역에서 회복탄력적resilient 경제를 촉진시킬 수 있다.
유럽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시장과 무역의 지역단위로서 유럽은 수입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규칙과 기준을 설정할 힘을 가지고 있다.
이미 전세계의 주요한 국가들과 지역 간의 통상협약과 전략적인 파트너-십의 체결을 진행하여 왔다. 동시에 유럽연합과 회원국가들은 제3세계에 대한 개발공여와 인도적인 지원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 왔다. 이에 더하여 EU는 유럽투자은행EIB를 통하여 이미 지구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다자적 원조의 제공주체이다.
유럽투자은행EIB의 자금투입력(firepower)이 절대적으로 긴요한 상황이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2030년까지 설정한 기후목표와 지속가능의 개발목표를 실현하려면, 향후 매년 2.5조 달러규모의 투자액이 추가로 필요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는, 특히 개발도상국가군에서는, 공적 영역에만 의존할 수 없다. 그린-채권(bonds)분야의 공적 금융기구이자 국제사회의 선도자로서 유럽투자은행EIB은 지속가능 투자사업 분야에 대한 민간금융영역의 재정렬(redirecting)과 모든 사업의 경제성을 확인하고 보증하는 이중의 역할을 주도해야 한다.
국제사회에 자극을 주기 위하여, 유럽연합은 가용이 가능한 모든 조직과 수단을 과감하게 동원하여, 유럽과 인근 지역에 코로나-19로 발생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대처하는 노력을 공유하면서 동시에 보다 광범하게 기후현안을 함께 대처하도록 계획하고 추진해가야 한다.
이에 더하여 타 지역의 개발은행들도 유럽투자은행과 발맞추어 파리협약에 부응하는 운용방식을 채택하여 저-탄소와 기후회복 등의 발전경로를 구축해 나가야 하며, 최소한 그린전환 활동을 저해하는 일을 방지해야 한다.
차기의 유엔기후회의(COP26)가 오는 11월에 영국의 글래스고우에서 열릴 예정이며, 이는 지구적 규모의 야심찬 구상을 추진할 절대적인 기회(crucial milestone)이다. 기존의 기후회의처럼 구속력이 없는 다자적 협의가 아니라, 가능한 모든 국가들 특히 주요 배출국가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확약하고 강제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조만 간에 유럽의 외무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여 글래스고우 기후회의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와 유럽-그린딜의 구상을 국제적으로 확대하는 기후에너지의 외교전략을 협의할 것이다.
기후행동을 가속화하고 에너지전환을 추진하는 것이 유럽연합의 외교전략 및 파트너 국가들과 협력의 핵심사항이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조 바이든 미국대통령이 업무개시 첫날에 파리협약의 재가입을 결정한 것을 환영한다.
오늘 우리가 행하는 일들이 미래 수십 년의 향배를 좌우한다. 유럽연합은 2021년이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지구적 싸움을 지원하는데 모든 외교적 금융적 가중치를 부여하는 ‘한해’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는 또한 유엔 사무총장인 António Guterres가 강조하였듯이 ‘우리의 시대를 가름하는 현안-defining issue of our time’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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