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개성에 있던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자, 미국 우익의 주류언론들이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북한에 대한 온갖 거짓 기사들을 조작하여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미국내의 진보적인 평론가가 비판하는 글을 번역하여 소개한다.
북한은 미국에 의해 수도 없이 협박당하고 공격을 받고 있는 국가들 중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보수매체들의 끊임없는 거짓말과 사기로 조작된 역사의 논리에 빠져,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거꾸로 북한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는 전(全)역사를 통하여 결코 사실이 아니었고 지금 현재도 사실이 아니다. 중국, 이란, 러시아 그리고 북한, 이들 어느 국가들도 미국을 위협하지 않고 있다.
미국당국과 주류매체들은 반미적인 자주독립 국가들에게 그러하듯이,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발을 계기로) 반북선전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의 소리(VoA)는 지난 목요일 다음과 같이 거짓 주장을 떠들고 있었다 “….. 북한은 남한에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sic).”
북한이 서울당국과 전화선을 끊고 자신의 지역에 있는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키며 강경의 대치상태로 돌아간 것은 미국과 문재인 정권과 화해하려던 온갖 신뢰적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에 대한 좌절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폼페이오와 불턴 등 트럼프 주변의 호전적 강경론자들은 트럼프-김정은을 희롱하며, 양국 정상의 회담(하노이) 과정에 수용할 수 없는 요구조건을 제시하여 빈손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VoA는 국제정세의 이슈에 대해 수도 없이 거짓말을 해오면서 당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헤드라인을 조작했다 “북한은 오랫동안 긴장과 도발을 강화해오면서 남한에게 경제지원과 양보를 받아내려고 하였다.”
뉴욕타임즈 역시 모든 나라와 안정과 협력을 기본원칙으로 하는 북한에 대해 “김정은은 남한에 대해 적대적이며, 호전적인 행동과 군사적인 도발을 반복하면서 취약한 평화의 유지를 깨뜨리려고 협박하는 인물이다”라며 거짓말로 혹평을 가했다.
북한정권이 성립한 이래 단 한번도 미국과 서방 그리고 남한 정부가 화해를 요청한 적이 없다 – 단지 일시적으로 관계가 개선되는 기간이 있었을 뿐이며, 이마저도 미국의 표리부동한 행동으로 지속되지 못했다.
거짓말과 사기극은 워싱턴 당국과 서방측에서 만들어 왔으며, 미국은 평양이 아니라 서울당국에게 지속적인 압력을 가해 왔다.
복한에 호전적인 워싱턴포스트지는 2018년 국제인권자료(global slavery index)를 인용하여 “2.6백만 명의 북한주민이 노예상태에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북한정권에 의해 강제노동을 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상기 자료는 호주의 광산재벌인 Andrew Forest와 그의 부인인 Nicola가 세운 소위 Minderoo 재단에서 발표한 것인데, Nicola는 지독한 백인우월주의자로 악명이 높으며 호주 인권조직단체에서 활동하는 Tony Maurice의 딸이다.
소위 국제인권자료는 미국과 서구 사회에서 수천 만 명이 최저생계비 이하의 임금으로 살아가며, 이들 대부분은 불안정한 임시직종에서 일체의 사회적 보장혜택을 받지 못하는 조건에서 착취당하고 있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북한을 이웃인 남한에 도발적이라’고 보도하면서도 미국이 자신을 한번도 협박하지 않은 국가를 75년 동안 적대하여온 사실은 무시하고 있다.
폭스 뉴스는 의심스러운 출처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북한이 오는 11월 대선과정에 미국을 공격할 것 같다”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뒤를 이어 소위 김구=한국재단(Kim Koo-Korea Foundation?- 아마도 탈북자 단체인 듯)은 북한을 미국의 종속국가로 만들고 싶어한다고 보도하면서, 이 조직의 북한 전문가라는 이성희의 말을 인용하여 구체적인 자료도 없이 “북한은 미국의 선거시스템을 해킹하여 무력화시킬 수 있는 자신들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자 하며, 그들의 주적인 미국에 심리전을 펼치는 등 정치적 압박을 증대하려 한다”는 것이다.
나가서, 이는 ICBM 혹은 핵실험처럼 연속적인 도발을 강화하고자 북한의 기획된 전략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워싱턴에 소재하고 있는 이슈발간의 One그룹은 “미국의 선거를 위태롭게 만드는 외국의 조작된 간섭을 주장하면서 ‘미국을 혼란에 빠뜨리지 말라’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미국의 역사에서 이런 일은 결코 없었다 – 오히려 반대로 미국이 외국의 선거를 개입하고 조작하여 친서방 정권이 권력을 장악하도록 여러 번 시도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북한이 미국 선거에 개입해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무엇이란 말인가? –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북한의 입장은 “장기간 지속되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여 보다 신뢰할 수 있는 군사력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는 모든 주권국가들이 당연히 해야 할 자주방위권에 해당한다. 호전적인 것은 미국과 서방이 시도하는 방식일 뿐이다.
미국은 두 개의 진영을 나뉘어 있는 일당 독재의 국가이다. 양당의 입장은 주요 국내 현안들과 국제정치 이슈에 관하여 실제로 오십보 백보의 수준이다. 이들은 북한을 포함하여 미국의 정책에 순종하지 않는 국가들에게 항구적인 적대정책을 펼친다.
실제로 미국의 국가안전을 위협하는 외국의 위협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짓으로 조작해내어 수 조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비용을 군사주의와 끝나지 않는(endless) 예방전쟁에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다른 국가들과 우호적이며 협력적인 관계를 희생시키면서 진행하고 있다.
미국의 방식은 적국뿐만 아니라 동맹국들조차 지배하고 통제하는 것 – 온 세계가 자신의 의지에 굴복을 요구하는 것이다. 세계가 간절히 희망하는 평화, 평등, 정의 그리고 합의에 의한 질서를 무시한 끝없는 군사주의와 호전성이 미국이 지닌 처방전이다.
올해로 파리기후협약을 맺은 지 5주년 되는 해입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팬데믹 덕분에 탄소배출량이 소량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잔류기간이 길게는 수십 년에 달하면서 누적량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고, 온실가스 원인의 1/3을 차지하는 메탄과 질소산화물은 오히려 증가추세에 있다 합니다.
12월초 유엔 사무총장은 특별기자 회견을 통하여 기후위기가 인류의 재앙으로 다가오는 상황에 대하여 경고를 보내면서 다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인류는 자연과 자살전쟁을 벌리고 있습니다 – Humanity is carrying on suicide-war on nature (CNN).”
1950년대 인류세로 진입한 이래, 포유류 양서파충류 조류 등을 중심으로 약 60%가 멸종상태에 있고 식물종의 40%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으며, 북극 부근이 얼음이 녹아 내리고 온난화가 지속되면서 해저면에 얼음상태로 있던 메탄층이 분출의 섭동을 시작하고 있다는 징후가 포착되었다 합니다. 메탄의 온실가스 효과는 이산화탄소의 30-80배 정도로 강력하여 상기의 대규모 분출이 본격화되면 급속한 기후위기에 따른 재앙이 불가피해 집니다.
바다로 버려진 플라스틱/비닐 류의 쓰레기 량이 급증하면서 태평양 한가운데에 한반도 면적의 열 배가 넘는 쓰레기 섬이 형성되고 있고, 이들의 무게가 조만 간에 바다 속 물고기 총량을 넘어설 전망입니다. 이들 쓰레기는 결국 먹이사슬과 대기순환을 통하여 우리의 신체에 독소로 쌓이면서 암을 위시한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합니다.
현재의 대기 온실가스량은 3-4백만 년 전의 플라이오세와 같은 수준으로 당시의 평균기온은 현재보다 3도C 정도, 해수면 역시 10-20 미터 높았다 합니다. 현재의 온실가스 수준이 지속되면 2070년 이후에는 지구의 1/3 이상이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황폐화되고 연안도시들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는 전망입니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기후경제학을 전공하는 교수는, 현재처럼 일상의 관행이 지속되면(BAU : business as usual), 조만간 닥칠 기후재앙에 따른 경제봉쇄는 현재의 팬데믹 상황보다 훨씬 극심하고 충격적일 것이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당장에 산업구조에 대한 대대적인 조정과 변혁 그리고 이를 위한 금융재정적 조치에 대하여 제안합니다.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문명사를 연구하고 있는 아담 투제(Tooze)교수는 G20를 G40로 확대하고 파리기후협약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강한 구속력의 실행조치를 요구합니다. 특히 강력한 탄소세의 도입과 이를 통상영역의 탄소국경세로 확장하여 에너지 기반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것을 제안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삶/문명에 대한 관점과 정책을 포함한 회개적repentent 일상의 실천입니다. 생태문명전환의 운동에 동참하는 다른백년은 “산업문명을 넘어 생태문명으로”라는 구호를 전개하면서 기후위기에 따르는 재앙의 경고와 지속가능한 미래전망에 대하여 매주 목요일 해외의 다양한 정보와 칼럼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우선 인류가 맞닥뜨린 역사상 가장 큰 위기에 대한 한국의 역할을 찾아보고 알아나가는 이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 주제에 있어서 후대 연구에 큰 영향력을 끼친 세계적인 학자 존 B. 캅 주니어 박사와 같은 길을 걷게 된 것도 제게는 특권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생태문명이라는 프레임은 인간에 의해 초래된 환경 위기가 사소한 변화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인류 공동의 미래는 전례 없는 규모와 속도를 동반한 깊은 변화에 달려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을 자주 방문했던 사람으로서, 저는 한국인들이 특출한 창의성과 기술, 헌신 등의 가치를 바탕으로 야심 찬 목표를 설정하고 이루어내는 데 경이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한국인들을 필요로 합니다.
글로벌생태발자국네트워크에 따르면, 인류가 현재의 소비 수준을 유지하는 데는 1.6개의 지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단 하나의 지구밖에 없으며, 우리가 더 빠른 속도로 성장을 거듭하고 지구에 부담을 지울수록 우리는 지구가 무자비한 인간 활동으로부터 자체적으로 회복할 능력을 빼앗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지구상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충분한 음식과 집, 깨끗한 공기와 물, 위생 시설, 환경적 안정성 등 생존에 필수적인 것들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공동의 미래는 지구상 모든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지킴과 동시에, 지구의 자생적 회복 능력을 보전하고 강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서로 관계를 맺고 또 지구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그 목표를 향해 같이 나아가지 않는다면 대안은 없으며, 죽은 지구에 승자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비필수적인 – 어떤 경우는 해롭기까지 한 – 물질 소비를 증가시키기 위해 지구의 마지막 남은 공기, 물, 토지, 서식지를 두고 치열하게 싸운다면 우리는 인류에 의한 6차 대멸종의 희생양이 되고 말 것입니다. 결국 우리 한 사람의 건강과 안녕은 하나의 지구 공동체 전체의 건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생존에 필요한 충분한 물질과 영적 풍요를 보장해줌과 동시에, 쓰레기를 줄이고 지구의 생명 시스템의 건강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개개인이 현재 일상적으로 타인과, 그리고 지구의 자생적 회복 시스템과 맺고 있는 근본적인 문화적 가치, 제도, 기술, 기반 시설 등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현재의 개인주의에 기반한 경쟁의 역학은 협력하는 공동체의 역학에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78억 명의 지구인이 전체적인 웰빙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며, 이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개인적, 기업적, 국가적 차원의 경쟁 시스템에 익숙한 것처럼 지구 공동체 자체를 협력적으로 만드는 데 익숙해져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우리는 과거에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일에 성공하기 위해서 우리는 – 유례 없는 속도와 깊이, 의지를 가진 종으로서 – 우리가 사는 곳들에 직접 유망한 아이디어들을 실험해보고 거기서 나온 교훈들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높은 지능과 그에 따른 판단 능력을 가진 종으로서, 인류가 공동의 목표 아래 단결할 수 있다면 우리의 능력과 수단 안에서 이 큰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와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하는 동질적 인구 집단, 혁신적 변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증명된 능력 등 여러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한국은 우리 모두가 하나의 종으로서 극복해야 하는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데, 지구상의 다른 선진국 시민들이 그러하듯 한국 사람들 역시 국토 내의 자연적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넘어 소비생활을 하고 있으며, 국가 전체적으로는 늘어나는 빈부 격차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글로벌생태발자국네트워크의 계산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현재 국내 자연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의 6배에 달하는 양을 소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만일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한국인과 같은 속도로 소비를 한다면 그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3.7개의 지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 토론에 참여하기로 하신 분들은 틀림없이 이 문제가 한국인들뿐 아니라 더 넓게는 인류와 지구상의 모든 생명 공동체의 미래에 묵과할 수 없는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오랫동안 세계적인 “성공 모델”로서 나머지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모방해야 하는 경이로운 사례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인간에게 “이야기(story)”란 우리가 다른 이들, 나아가 종국에는 우리의 존속 자체를 좌우하게 될 지구상의 다른 생명 공동체들과 어떠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나가야 하는지를 인도하는 구심점의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다음 두 가지의 이야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의 소비가 더욱 빨리 성장하면 할수록 전체적인 웰빙 수준도 올라간다고 말하는 반면,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유한한 지구 생명체 중 하나일 뿐이며 우리의 웰빙은 지구가 공기, 물, 토양, 기후 안정성 등에 대해 자생적으로 갖는 회복 능력을 보전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달려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두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근본적으로 다른 개인적, 집단적 차원의 결정들을 내리도록 합니다. 이 차이는 현재의 미국에서처럼 국민들과 국가를 갈라놓고 있는 정치적 투쟁의 근원적 동력입니다. 우리가 만일 올바른 이야기를 택할 수 있다면 우리의 관계도 올바른 쪽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인류는 지구의 생명 공동체의 건강을 회복하면서 더 적은 양으로 더 큰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길을 열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들에는 다섯 가지의 핵심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1. 깊은 변화의 명령을 인정하라. 팬데믹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 합니다. 우리 개개인의 웰빙은 궁극적으로 모두의 웰빙에 달려있습니다. 새로운 것이 싹을 틔우려면 오래된 것이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의 결과로 “경제적 포식자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우리를 보호해주는 필수노동자들을 위험으로 몰아넣는 착취적인 경제 구조의 치명적 결점이 드러나게 된 것도 그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이번 팬데믹 사태는 우리 모두의 웰빙을 지구 전체의 웰빙과 연계시키며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 또 그 과정에 한 개인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 전에 없던 절호의 기회입니다.
2. 시스템 실패의 요인을 파악하라. 현재 인류에게 당면한 위기는 그 동안 우리가 내렸던 문화적, 제도적, 기술적, 사회기반적 선택들의 심각한 결점들로 인해 초래되었습니다. 과거의 실수를 또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그 실수를 인정하고 무엇이 그 결과를 불러왔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웰빙”을 정의할 때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여 그들을 지배하고 나아가 지구 전체를 다스리는 것에 달려있다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개인의 생존 및 공존에 필수적인 조건들을 만들고 유지하는 다양한 생명 공동체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그 뒤에 감춰진 근본적 진실은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죠. 이 심오한 진실과 그 함의를 이해하지 못함에 따라 우리는 지구촌 경제를 이미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이들의 자산을 늘리기 위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지배와 착취를 강화하려고 경쟁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이익을 중심으로 형성하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는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들을 부정했으며 우리들의 궁극적 웰빙이 달려있는 것들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3. 가능성에 대한 통합된 전망을 만들어라. 당연하게도 우리는 매력적인 대안이 다가오고 있다는 합리적 믿음 없이는 현재의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고자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희망찬 미래는 자발적으로, 자동으로 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인간 본성과 가능성에 기반한 공동의 비전에 의해 인도되는 의식적, 자각적 인간성을 토대로 협동을 통해 그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지구의 유한성과 재생가능성에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는 모든 이를 위한 물질적, 정신적 풍요를 보장하는 진정한 문명을 현실에서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4. 그 전망을 지원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선택하라.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문화나 제도, 기술, 사회 기반 시설의 시스템은 그 통제권을 상류 계급의 소수 지배층에게 주어 그 밑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구조적으로 착취하도록 (즉 하향식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지구의 생명 공동체는 상향식이며, 이는 모든 생명체가 각자의 지역 환경에 적응해나가면서 웰빙을 이뤄낼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인류 공동의 미래를 위한 생태문명 하에서 문화적 가치와 제도, 기술, 사회 기반 시설에 대한 우리의 선택은 이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우리 각자를 지탱해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깊은 민주주의(deep democracy)”라고 부릅시다. 이런 올바른 선택들을 하려면 지역적인 자생적 공동체의 구조와 역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혀야 하며, 인간과 물질의 물리적 이동에 대한 의존도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효율적이고 협력적인 소통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이러한 지식을 최신 정보통신 기술들의 전면적, 창의적 적용과 결합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럴 능력도 되고요).
5. 변화를 위한 협동적인 배움에 참여하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나가야 할 미래에 가본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같이 만들어나가면서,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그 교훈을 공유해가면서, 또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기여하면서 그 미래에 대해 알아갈 뿐입니다.
이제 우리 인류는 지구 생명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공동의 정체성 아래 가족으로서, 공동체로서, 또 국가로서 모일 때가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평화롭고 아름답고 창의적이며 물질적, 영적으로 충만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 협력하고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헌신에 경의를 표하며, 오늘 저의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신데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올해로 파리기후협약을 맺은 지 5주년 되는 해입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팬데믹 덕분에 탄소배출량이 소량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잔류기간이 길게는 수십 년에 달하면서 누적량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고, 온실가스 원인의 1/3을 차지하는 메탄과 질소산화물은 오히려 증가추세에 있다 합니다.
12월초 유엔 사무총장은 특별기자 회견을 통하여 기후위기가 인류의 재앙으로 다가오는 상황에 대하여 경고를 보내면서 다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인류는 자연과 자살전쟁을 벌리고 있습니다 – Humanity is carrying on suicide-war on nature (CNN).”
1950년대 인류세로 진입한 이래, 포유류 양서파충류 조류 등을 중심으로 약 60%가 멸종상태에 있고 식물종의 40%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으며, 북극 부근이 얼음이 녹아 내리고 온난화가 지속되면서 해저면에 얼음상태로 있던 메탄층이 분출의 섭동을 시작하고 있다는 징후가 포착되었다 합니다. 메탄의 온실가스 효과는 이산화탄소의 30-80배 정도로 강력하여 상기의 대규모 분출이 본격화되면 급속한 기후위기에 따른 재앙이 불가피해 집니다.
바다로 버려진 플라스틱/비닐 류의 쓰레기 량이 급증하면서 태평양 한가운데에 한반도 면적의 열 배가 넘는 쓰레기 섬이 형성되고 있고, 이들의 무게가 조만 간에 바다 속 물고기 총량을 넘어설 전망입니다. 이들 쓰레기는 결국 먹이사슬과 대기순환을 통하여 우리의 신체에 독소로 쌓이면서 암을 위시한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합니다.
현재의 대기 온실가스량은 3-4백만 년 전의 플라이오세와 같은 수준으로 당시의 평균기온은 현재보다 3도C 정도, 해수면 역시 10-20 미터 높았다 합니다. 현재의 온실가스 수준이 지속되면 2070년 이후에는 지구의 1/3 이상이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황폐화되고 연안도시들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는 전망입니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기후경제학을 전공하는 교수는, 현재처럼 일상의 관행이 지속되면(BAU : business as usual), 조만간 닥칠 기후재앙에 따른 경제봉쇄는 현재의 팬데믹 상황보다 훨씬 극심하고 충격적일 것이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당장에 산업구조에 대한 대대적인 조정과 변혁 그리고 이를 위한 금융재정적 조치에 대하여 제안합니다.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문명사를 연구하고 있는 아담 투제(Tooze)교수는 G20를 G40로 확대하고 파리기후협약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강한 구속력의 실행조치를 요구합니다. 특히 강력한 탄소세의 도입과 이를 통상영역의 탄소국경세로 확장하여 에너지 기반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것을 제안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삶/문명에 대한 관점과 정책을 포함한 회개적repentent 일상의 실천입니다. 생태문명전환의 운동에 동참하는 다른백년은 “산업문명을 넘어 생태문명으로”라는 구호를 전개하면서 기후위기에 따르는 재앙의 경고와 지속가능한 미래전망에 대하여 매주 목요일 해외의 다양한 정보와 칼럼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영화 <월 스트리트>에서 금융가 고든 게코(Gordon Gekko)는 “탐욕은 좋은 것이다! (Greed is good!)” 라고 선언하였습니다. 1987년, 영화 관람객들이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이 터무니없는 주장은 전 세계적으로 악명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이후로, 이 선언의 근간이 되는 신자유주의의 윤리가 주류가 되었습니다. 30년이 넘도록, 한때는 부조리의 절정처럼 보였던 것이 글로벌 권력의 중심에서 정책 결정의 주축이 되었습니다. 사실상, 우리 전체의 주된 가치 체계는 그 이후로 근거 없는 것으로 입증된, 견고한 과학적 교훈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게코의 구호는 당시의 진화에 대한 아이디어에 기반을 두었습니다. 10년 전 리처드 도킨스의 베스트셀러인 『이기적 유전자』는 진화의 복잡성을 잔인한 기본 단순성으로 줄였습니다. 인간은 “우리 유전자에 의해 생성된 기계”이며 “성공적인 유전자에서 기대할 수 있는 주된 특성은 무자비한 이기심”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가혹한 현실이 “주로 개인의 행동에 이기심을 야기할 것” 이라고 예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영향력 있는 사상 지도자들은 이 생물학적 진리를 경제학, 정치학, 비지니스에 고취시켰습니다. <생명 경제학 저널Journal of Bioeconomic>의 공동 편집자인 사회생물학자 M. T. 지젤린 (Ghiselin)은 “자연계의 질서(The economy of nature)는 처음부터 끝까지 경쟁적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인류의 본질적인 폭력에 대한 똑같이 불안한 이야기가 20세기 저명한 생물학자들에 의해 전파되었습니다. ‘협력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는 “기회주의와 착취가 뒤섞인 것으로 드러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두 명의 영향력 있는 인류학자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적으로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살인자, 즉 “어리석은 생존자” 라고 합니다. 이기심의 지배적인 윤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은 우리가 개인을 모든 가치의 근간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인간이 고립되고, 이기적이고,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유물론자들이며,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 도덕적 연결이 행복과 무관하다는 허구를 바탕으로 한 사이비 철학에서 개인주의 가치 체계는 신자유주의의 형태로 주류 담론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인류의 이 기괴한 특성은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 영국 총리가 선언해서 유명해진 “사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남녀 개인이 있고 가족이 있을 뿐입니다.” 로 가장 잘 요약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 윤리에 동의하지 않는 도킨스 자신과 같은 사람들조차 우리의 타고난 이기심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의지력을 통해서라고 자주 주장합니다. 그는 “나처럼 공동의 선을 향한 사회를 건설하기를 바란다면 생물학적 본질에서 거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 라고 언급합니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이성을 통해 우리의 악한 본성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뇌는 우리의 이기적인 유전자에 대항하여 반항할 수 있을 정도로 진화했습니다. … 이기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관대함과 이타주의를 가르치도록 노력하자고 주장합니다.”
1. 도덕적 종
그러나 진화 생물학과 인류학에 대한 수십 년간의 연구는 진화와 인간 본성에 대한 이러한 구시대적인 생각들을 뒤집고, 그것들이 근거 없는 신화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경쟁에 의해 진화가 추진되는 것보다는 협력이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현대 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는 이기적인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수십억 년 전 지구에서 시작된 이래 삶의 진화적 전환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었다는 것입니다. 린 마굴리스 (Lynn Margulis) 는 “생명은 전투로 세상을 점령한 것이 아니라 네트워킹으로 세계를 점령했다”는 기억에 남는 말을 남깁니다.
협력이 모든 자연에 만연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진화에 있어서 훨씬 더 중요했습니다. 인간성을 규정하는 것은 ‘치명적인 공격성’ 이 아닙니다. “탐욕이 좋다”는 것은 갑자기 발견된 것도 아닙니다. 많은 진화생물학자들은 (심지어 친족이 아닌 사람들까지도) 서로 협력하는 것이 다른 영장류와 우리를 차별화하는 능력이라는 공감대를 중심으로 많은 융합을 이루었습니다.
우리의 초기 인류 조상들은 큰 포식자들에게 취약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협력을 통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고 먹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수백만 년 동안 인류는 죄책감, 연민, 당혹감, 수치심, 감사와 같은 “도덕적 감정”, 즉 복잡한 사회적 상호 작용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발전시켰습니다. 이런 감정들은 유전적 구성에 매우 깊이 침투해 배고픔이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직감적으로 느껴집니다.
그 결과, 인간은 모든 영장류 중에서 단연코 가장 협조적입니다. 유목민, 수렵채집인의 작은 무리에서 인간이 진화함에 따라, 사람들의 정체성은 그들 자신의 자아와 친족으로부터 확장되어 그들의 전체 집단을 포함시켰습니다. 공동 복지는 가치관의 시금석이 되었는데, 집단의 희생을 감수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나쁘게 여겨지는 반면,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좋게 여겨졌습니다. 문화유전자의 점진적인 공진화 과정에서 그러한 윤리적 구별은 번성하는 무리의 유전적 기층에 내재되어 결국 인간 종의 풍토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옳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2. 관계 중심의 전통적 가치
신자유주의가 인류의 선천적 이기심이라는 그릇된 신념의 토대 위에 구축되었다면, 인간이 본질적으로 도덕적이고 협조적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더욱 견고한 토대 위에 구축된 대안 체제는 어떤 모습일까요?
수세기 동안의 공격 속에서도 기필코 그들의 핵심 가치를 온전하게 지켜온 전세계의 토착 전통들은 일찍이 인류가 번성하도록 도왔던 가치의 종류에 대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진정한 협력적 본성의 틀에서 사회를 재건하도록 등불을 제공합니다.
코만치족(Comanche) 사회 운동가 라도나 해리스 (LaDonna Harris)는 전 세계 원주민이 공유하는 네 가지 핵심 가치를 확인하여 토착성(indigeneity)이라는 세계관을 구성했습니다. “4R”로 불리는 이것은 관계, 책임, 상호성, 그리고 재분배 (Relationship, Responsibility, Reciprocity, and Redistribution)입니다. 이런 세계관은 사람의 삶에서 필요한 각각 다른 유형의 의무들을 언급합니다. 관계는 가족뿐 아니라 동물, 식물, 그리고 살아있는 지구를 포함한 “모든 우리의 관계”에서 가치를 인정하는 친족의 의무입니다. 책임은 지역 사회의 의무이며, 이러한 관계를 양육하고 돌보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상호성은 주고받는 것의 균형을 맞추는 순환적인 의무입니다. 그리고 재분배는 물질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술, 시간, 에너지를 공유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이러한 가치에서 눈에 띄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모두 공동체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의 개성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그들의 공동체에 할 수 있는 독특한 공헌을 통해 개성이 표현되는 것입니다. 마가렛 대처의 사회에 대한 발언에 극적으로 반대하면서, 라도나 해리스는 토착적인 관점에서, 한 사람의 진정한 ‘자아’는 공동체를 통해서만 생겨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아프리카 우분투(ubuntu)의 원리, 즉 “나는 네가 있기 때문에, 너는 내가 있기 때문에”로 대표됩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세계관에서 규범적으로 여겨지는 자기 추구적 행동은 전통적인 토착 문화에서는 광기의 한 형태로, 어떠한 상담의 근거가 되거나 가능하면 외면해야 하는 형태로 간주될 것입니다.
또한 전 세계의 토착전통은 인류를 자연과 별개로 보기보다는, 자연세계를 확대 가족과 같은 형태의 삶의 일부로 봅니다. 호주에서는 원주민들이 다디리(dadirri)라 하는 명상을 하면서, 이것을 자연계에 대한 “깊은 경청, 침묵 의식”이라고 표현합니다. 미국 원주민 라코타의 표현인 “모든 나의 관계” 는 인간의 친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가리키는 말로, 모든 생명 간의 깊은 상호 관련성을 표현하는 세계관을 전형적으로 나타내며, 개인의 건강은 본질적으로 살아있는 지구의 건강과 결부되어 있다고 합니다.
3. 생태 윤리
최근 수십 년 동안 생태 사상가들은 모든 생명과의 연계를 바탕으로 현대적 형태의 윤리를 발전시킴으로써 이러한 전통적인 통찰력의 일부를 계승해왔습니다.
1973년 철학자 아르네 네스 (Arne Naess) 는 자연과의 관계를 탐구하기보다는 우리가 바로 자연이라는 토대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자신의 접근법을 “심층 생태론(deep ecology)”이라고 부르면서, 그는 이것이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재정의할 수 있는지 탐구했습니다. 그는 “생태적 자아의 개념을 잠정적으로 소개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시작될 때부터 자연 속에 있었고, 지금도 자연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서술했습니다.
위대한 인도주의자인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나는 살고자 하는 생명들의 한 가운데 있는, 또 하나의 살고자 하는 생명” 이라고 선언하면서 이 통찰력을 분명하게 요약했습니다. 이 본질적인 진리로부터 도덕은 자명해집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득력 있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생명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에 대해 경외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생명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도덕성의 시작이자 토대입니다.”
이러한 이해는 자연이 인간에게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주류가 가진 인간 중심적인 가정에서 벗어나, 생명 그 자체의 본질적 가치와 각각의 장엄한 다양성 속에서 번성할 수 있는 고유한 권리를 인정하는 것으로의 심도 있는 가치의 전환을 이끌어냅니다. 알도 레오폴드(Aldo Leopold ) 는 그의 유명한 선언에서 이 윤리에 대해 간결하게 표현했습니다: “어떤 것이든 생물학적 공동체의 진실성과 안정성, 그리고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경향이 있을 때 옳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4. 프랙탈 번영
모든 생명과의 상호 연결이라는 기본 원칙에 기반한 일관된 현대적 가치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우리는 생명 자체에서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미세한 세포 내 구조에서 가이아(Gaia) 자체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각 시스템은 스스로의 필요를 알과 충촉시킬 수 있는 자족적으로 통합된 활기찬 지능을 갖고 있는 동시에, 각 시스템이 포함된 더 큰 시스템의 웰빙에 기여합니다. 그리고 자연에서 시스템 전체의 건강은 그것을 구성하는 각 부분의 번영을 요구합니다. 각 시스템의 장기적 건강은 다른 시스템들의 생명력에 달려있기 때문에 모든 시스템은 상호 의존적 입니다.
그러므로 번영(flourishing)이란 것은 프랙탈 품질(fractal quality) 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기체 내에서 조화를 이루는 다른 건강한 시스템들과 함께, 유기체가 의존하는 건강한 외부 시스템을 필요로 합니다. 생태문명의 최우선적인 목표는 모든 인간이, 번영하고 살아있는 지구의 일부로서 번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교훈은 프랙탈 번영(fractal flourishing)의 인식일 것입니다. 인간 각자의 웰빙은 더 큰 세계의 건강과 프랙탈 방식으로 관련돼 있습니다. 개인의 건강은 사회적 건강에 의존하고, 사회적 건강은 그것이 내재된 생태계의 건강에 의존합니다.
지구 절멸 상황은 이 땅에 사는 인간을 포함해 모든 생명체들의 화급한 문제가 됐다. 인간이 쌓아올린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부산물이 지구 생명에 말기 판정을 내린 비공식 학명, 소위 ‘인류세(anthropocene)’ 시대를 우리는 맞고 있다. 인류세는 인간(the anthropos-)이 지구의 지배종이 되면서 새롭게 지층에 퇴적된 문명의 쓰레기더미의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cene; epoch)를 이르는 말이다. 가령 흙이나 유기물과 뒤섞인 플라스틱 찌꺼기, 콘크리트 잔해, 혼합시멘트, 핵물질, 살충제, 금속성분, 비료 반응성 질소(N2), 온실가스 농축 효과의 부산물 등이 인류세의 퇴적층을 이룬다. 동시대 지구 지질층을 일컫는 원래 학명인 ‘홀로세(holocene)’를 이 기괴한 비공식 용어가 대체할 정도로, 인류세란 말은 마치 파국으로 치닫는 지구 시대의 종말을 카운트다운하기 위한 경고처럼 들린다.
1. 인류세, 자본세, 그리고 과학기술
인류세는 그렇게 지구 절멸의 위기 상황을 일깨운다. 대륙 곳곳이 사막화로 물이 메말라 가고, 하루에도 수많은 생물종이 끝없이 사라져가고, 갈 곳 잃은 쓰레기 노폐물은 쌓여가고, 핵폐기물과 오염수는 방치되어 생태계에 상상하기 어려운 위험을 노출하고, 바다 생명들은 플라스틱에 질식해 가고, 인간 자신의 섭생은 스스로 만든 각종 오염된 화학 물질로 위협받고 있다. 무엇보다 지구 행성의 위상 또한 달라진다. 인간 삶 속 환경오염의 족적인 ‘생태발자국’을 그저 품어 안아주던 마더랜드 지구의 온화한 이미지는 이미 오간데 없이 사라진 지 오래다. 오염의 과포화 상태에 이르자 지구는 매우 즉각적이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사라지는 생물종, 사막, 태풍, 홍수, 폭염, 초미세먼지 등 기후재앙은 지구가 우리에게 즉각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아주 흔한 방식이 됐다.
우리는 폭주하는 자본주의 기계의 광란을 잠시나마 잦아들게 한 코로나19와 같은 미생의 바이러스에 어쩌면 감사해야할 지 모른다. 코로나19 재난 상황이 본격적인 지구 재앙의 시작을 알리는 화급한 경고처럼 느껴지기도 하거니와, 이 미생의 하찮은 존재가 질주 본능을 지닌 자본주의 기관차를 잠시 멈춰 세우면서 우리가 잊고 살았던 사회적 약자들을 주목하게 했고, 인간 아닌 뭇 생명과 사물들에 하나둘 생기를 되찾아 준 까닭이다. 달리 보면 코로나19가 인간 생명에는 극도로 위협적이지만 정작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을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촉매가 된 셈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인류세의 아주 작은 징후라면, 기후위기는 인류세의 전조다. 기후위기의 근본적 대안 모색 없이는 감염병 재난은 매번 잊을만하면 다시 찾아올 인류의 불청객이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들은 자신을 둘러싼 크고 작은 사건들과 사물에만 익숙했지, 전체 시스템으로서 지구 그 자체를 집중해 보는데 소홀했다. ‘지구행성주의’는 이렇듯 무상으로 제공되며 무한 수탈되어 온 ‘저렴한 지구’라는 공동 자연 자원의 관리 실패와 비극이 우리의 비수로 되돌아온 현실을 꾸짖는다. 지구행성적(planetary) 시각은 지구 위기 사태의 급박함을 알리는 데 있어서 나름 강력한 경고 효과와 함께, 파국의 대비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자연히 운명 공동체적 관점은 지구 시스템을 구제하기 위해 그 안에 수없이 서로 다른 인간과 생명 종들의 평화롭고 평등한 관계와 공존을 권고할 수밖에 없다.
디페시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 2017)의 강조처럼, 인류세 위기는 ‘행성의 고통’, ‘다른 종의 고통’에 대한 긴급한 기후행동을 요청한다. 인류세는 지구 생명들의 공동 운명과 (비)인간 생명 종들 사이의 연대와 협력을 강조하며, 지구 생태 위기의 공동 대응을 자극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하지만 이의 맹점은 자본주의 성장과 축적의 환경 폐해가 무엇인지를 지적하거나 기후위기의 실제 주범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누가 주로 피해를 입고 있는지를 꼼꼼히 살피는데 대단히 성기거나 때론 무심하기조차 하다는 것이다. 지구 위기 극복의 대오에 세계 시민들이 동참할 것을 주로 호소하면서, 오늘의 인류세 문제의 발생 원인을 우리 인간 모두의 탓이라 뭉뚱그린다.
이 점에서 지구 생태의 자본세(capitalocene) 비판과 생태 전환의 시도 없이, 그저 오늘의 인류세 위기를 우리 모두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운명 공동체적 논의나 과학기술에 대한 인간의 철저한 맹목은 순진하거나 허망하다. 지금도 지구의 생태분노로 인한 피해와 죽임을 당하는 생명들은 여전히 빈약한 환경 조건에 노출된 가난한 이들, 여성과 아이, 동식물 종으로 공식 기록되고 있다. 반면 기후위기를 유발하는 해당 국가 정상들이나 정치인들은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해왔다. 이제까지 지구행성 위기 테제는 인류 절멸의 거대 서사만을 전경화하는 대신, 구체적으로 고통 받는 존재들을 우리의 시야에서 저 멀리 사라지게끔 했던 것이다.
2. 과학기술의 오만과 과신
자본세적 생태교란을 외면하는 면죄부에 부합하듯,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 등 지구 위기관리 시스템의 범정부 혹은 각국 정상들 간 국제협의체는 형식적 합의만을 행하는 퍼포먼스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외려 현실에서는 지구 생태위기 상황에 대한 실질적 규제나 대안 마련보다는, 자본주의 시장 기제를 통한 또 다른 환경 산업의 성장 이윤 창출 방안을 고안하려 하거나 또 다른 첨단 공학적 해법들만이 난무한다. 자본주의 과학기술의 개조 능력을 과도하게 믿는 이들 근시안적 논의는, 현재의 지구 위기를 인류의 오만에서 비롯된 결정적 증거로 보기 보다는 지구를 새롭게 제어하려는 인간 문명 능력의 기회로 본다는 점에서 대단히 위험하다.
지구 생태 위기를 또 다른 첨단 신기술과 과학의 세례로 덮으려는 오만한 인간들의 구상을 보자. 이들은 기후위기와 온실가스 문제를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병폐로 보고, 또 다른 동시대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해 이를 돌려막는 것이 가능하다는 발상을 갖고 있다. 인간 과학기술의 자연 지배 욕망이 지구 생태 파괴의 현실로 드러난 오늘의 상황에서도, 더 거대한 과학과 첨단 기술을 매개해 자연에 대한 인간 통제력이 유효하다고 보는 어긋난 믿음이 끈끈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고도 과학에 의해 생태위기를 제어할 수 있다는 자신만만한 낙관론은 실상 주류 지구촌 사회의 국제기구들이나 일부 환경단체들의 의식에도 팽배해 있다. 가령 기후온난화의 해법으로 유황산화물의 에어로졸을 대기상층에 살포해 태양광을 차단하여 지구를 냉각하려는 지구공학적인 해결책을 보라. 이는 일종의 ‘태양 지구공학(solar geo-engineering)’이라 불리는 환경공학적 해법에 해당하는데, 현재 지구 기온 상승 흐름을 뒤바꿀 인간의 대안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돼 언급되고 있다. 이 저렴한 국부수술식 위기 탈출 해법은 지구 기후나 생태계를 불안정하게 만들 그 어떤 다른 환경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무모하다. 그보다 더 큰 위험은 인간 과학기술에 대한 과신과 오만에 있음은 물론이다.
또 다르게, 생태위기를 자본주의 사업화하는 경향 또한 경계해야 한다. 대체 에너지 개발이나 연료 효율성이란 명목으로 또 다른 반사 이익의 기회로 삼으려는 ‘그린’ 환경 비즈니스 사업체들이 크게 줄을 잇고 있다. 여전히 꽤 많은 이들은 핵에너지의 효율성을 가장 높게 사고 가시적으로 탄소 배출이 적다는 이유로 핵 발전 유지를 옹호하는 경향이 크다. 이를 유지 관리하고 폐기하는데 소요되는 수많은 생태 위험과 비용을 외면한 까닭이다. 게다가 태양광 발전, 첨단 반도체 생산, 인공지능 기술 개발 또한 마치 무공해산업으로 취급되는 정황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태양열 전지의 제조와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문제, 반도체 공장의 맹독성 화학물질 생산, 여의도 크기의 데이터센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드웨어 장비의 열기와 이를 식히기 위한 천연 자연수의 사용은 또 다른 지구 생태 오염원들이 된 지 오래다. 산업자본주의의 유물로부터의 탄소 배출이 지탄받는 것과 달리, 이들 신생의 것들은 꽤 환경 친화적이고 진화된 테크놀로지로 포장되면서 또 다른 반생태적 효과를 은폐한다.
3. 첨단 기술의 생태 공백들
대개 우리는 기후 위기의 주범이 화석원료에 의존한 전통 산업 공장과 석탄 발전소의 탄소 배출과 온실가스 효과라 단정한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첨단 신기술이 야기하는 반생태적 파괴력에는 무심하다. 심리적으로 우리에게 비트의 세계가 무색무취의 녹색 청정 지대처럼 여겨지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것은 디지털 첨단기업들 또한 탄소경제의 일부라는 사실에 있다. 우린 자주 첨단 가상 경제의 동력이 현실 세계의 화석원료 경제와 인간의 산노동을 근간으로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잊고 산다.
이제까지 우리에게 일상 속 온라인 데이터 활동이 탄소 경제와 얼마나 어떻게 맞물려 있는 지는 그리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각종 스마트 컴퓨터와 5G 스마트장치의 명멸하는 스크린 위의 불빛이 화석원료 에너지 기반 없이는 전혀 기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첨단 닷컴 경제가 주된 에너지 공급원을 화석원료에 의지하고 대체에너지 전환이 미미한 상태에서, 결국 이들의 주된 활동은 곧바로 온실가스 효과로 이어진다.
이탈리아의 공유지(커먼즈) 이론가인 맛시모 데 안젤리스는 우리의 온라인 활동과 탄소 배출과의 밀접한 유기적 성격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는데, 이를 옮겨보자. 가령 누군가 컴퓨터 앞에 앉아 구글 검색을 한다고 치면, 약 5~10 그램, 인터넷 브라우징을 하면 초당 20밀리그램의 탄소 배출을 초래한다. 단 몇 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웹 검색에 소모되는 전력량은 보통 주전자 물을 끓이는 데 투여되는 에너지와 맞먹는다. 한 때 서구인들의 관심을 크게 받았던 ‘세컨라이프’ 같은 가상현실 게임의 경우, 누군가 하나의 아바타를 유지하려면 매년 1,752킬로와트시(KWh) 전력량을 소모한다. 이는 약 1.7톤의 탄소 배출량에 해당하고, SUV 자동차에 견주어 볼 때 서울과 부산을 거의 5번 왕복 주행하는 양과 같다.
데 안젤리스는 아주 당연하게 좀 더 복잡한 컴퓨터 작업일수록 더 큰 전력 소모와 탄소 배출로 연결된다는 점을 우리에게 확인해주고 있다. 마치 전원을 켜고 전깃불을 켜고 물을 끓이고 선풍기를 돌리고 텔레비전을 보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아니 때로는 그 이상으로 우리 모두는 온라인 공간에서 무언가를 찾고 행하면서 지구 온실가스 효과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물론 그의 진술은 대체 혹은 재생 에너지 전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석탄원료 에너지 기반의 오늘 현실을 가정한다.
4. 첨단 IT기업과 생태 위기
닷컴기업들은 일반인들보다 좀 더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방식으로 지구 온실가스 효과에 기여한다. 이를테면, 닷컴기업들은 그들 시설의 재생에너지 사용과 데이터센터의 “청정 냉각” 과정이나 “절전형 에너지 소모”를 중요한 기업 홍보 소재로 삼아왔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들이 무색할 만큼 정황은 크게 다르다. 미국 IT 연구 및 자문업체 가트너 조사에 따르면, 휴대폰과 컴퓨터 등 첨단산업이 만들어내는 지구온난화 효과는 전세계 이산화탄소 방출량의 적어도 2%에 이른다.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10 여 년 전 통계치 임을 감안해야 한다. 가장 최근 ‘인공지능(AI) 나우 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이들 닷컴기업들의 지구온실 효과가 2020년에는 거의 두 배인 4% 수준, 2040년에는 14%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쉽게 비유하면, 현재 닷컴기업들의 화석원료 소모 수준은 매년 전 세계 항공기들이 운행 중 방사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에 맞먹는다. 무엇보다 닷컴 업계가 유지하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와 첨단 통신 인프라 장비의 냉각장치 가동을 위한 에너지 소모는 이보다 더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닷컴기업 탄소배출량의 70% 정도가 이들 거대 데이터 저장소로부터 발생하고 있고, 이의 온실효과 영향력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이렇듯 첨단기업들의 탄소발자국이 앞으로 계속해서 증가하리라 예측하고 있다. 더군다나 굴뚝공장들에 비해서 닷컴기업들은 이제까지 공적 감독이 쉽지 않은 만큼, 대체 에너지원의 비율이나 화석원료 에너지 소모량에 대한 정보가 미비하거나 내부적으로 이를 아예 공개조차 않고 있다는데 문제가 크다.
최근에는 신기술의 총아로 떠오른 비트코인 등 채굴 작업이 만들어내는 전력 소모가 새로운 환경 재앙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캠브리지 대학의 ‘캠브리지 비트코인 전기소비 지수’에 따르면, 한 해 비트코인 채굴에 들어가는 전력량은 74.01 테라와트시(TWh)로 추정된다. 이 전력량은 현재 칠레 등 남미 국가의 한 해 평균 전력 소모량을 능가하는 수치다. 문제는 늘어나는 채굴량의 대부분이 현재 주로 석탄발전소를 에너지원으로 삼는 중국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또한 여기에는 더 많은 비트코인을 생성하기 위해 고난이도의 산식을 풀어야 하고 이를 위해 더 큰 처리 용량의 장비를 들이면서 더 많은 에너지 소비를 유발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 또한 잠재해 있다.
혹자는 적극적 대체에너지 수급 노력 없이 닷컴 기업들의 지구 온실가스 효과를 나무라서만 되겠느냐고 문제제기 할 수도 있겠다. 외려 문제는 그들 스스로 ‘청정’에너지 사용 업체라 홍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첨단 신기술을 활용해 생태 파괴의 기술 구조에 적극 편입하는데 있다. 가령 IT전문뉴스 <기즈모도>에 따르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은 화석원료의 대표주자인 유전 개발업체들의 성장을 돕고 유전 채취를 가속화하면서, 인공지능, 자동화, 빅데이터 등 최첨단 기술들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비지니스 활동을 하고 있다. 닷컴들이 관련 부서를 신설해 유전 사업자와 사업 협력 관계를 맺고, 원유의 탐사, 추출, 생산, 관리, 노동 대체 등에 기술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닷컴기업들이 오히려 화석원료 생산을 촉진하면서 기후위기에 일조하고 이를 인공지능 자동화해 원유 생산을 배가하는, 환경 파괴의 촉진 효과까지 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는 ‘파리기후협정’에서 인류가 약속한 유전 개발의 제한을 위배하는 자본과 기술의 욕망이기도 하다.
5. 야만의 테크놀로지에 속박된 이들
당장의 기후위기도 문제이지만, 첨단 테크놀로지 역시 지구 생태와 지구에 살아가는 종들의 생존 조건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헐벗은 박탈 상태로 내몰고 있다. 다시 말해 첨단 기업들에 의한 온실효과가 바로 닥친 우리의 생태 위기 상황이라면, 이른바 인간의 기술 예속과 속박의 문제는 첨단 테크놀로지로 촉발된 지구 생명 종의 또 다른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대체로 기술 예속과 속박은 힘없고 박탈당한 이들 주위에 늘 꼬인다. 반생태적 테크놀로지에 예속된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주류 기술 체제로부터 소외된 이들, 방사능과 독성 화학기계로부터 일부 신체 능력을 잃은 이들, 중요 기술 설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권한에서 배제된 이들, 데이터 인권을 박탈당한 이들, 자동기계의 전산 논리에 심신이 피폐해진 이들, 불안한 플랫폼 노동으로 위험 상태에 처한 이들, 무인 자동화로 직장을 잃고 삶이 위태로워진 이들을 지칭한다.
첨단 닷컴 환경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물질 오염원, ‘전자쓰레기’는 생태 오염의 주범이 된 지 오래다. 플라스틱 오염과 함께 이는 지구 위기의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일부가 됐다. 이 반생태적 하이테크 부산물들은 자연 파괴와 함께 인간 생명 파괴나 피폐화 또한 크게 이끌고 있다. 가령 저개발국 아이들은 전자쓰레기 더미에서 쓸 만한 구리와 고철을 발라내기 위해 종일 연탄불 위에 꽁치 굽듯 전자 기판을 태우고 폐자재로부터 피어오르는 온갖 독성 연기를 흡입한다. 스마트폰과 자동차 배터리로 쓰이는 코발트 채굴을 위해 아직 학교도 안 들어간 아이들이 보호 장구 없이 노예처럼 노천 광산에 들어가 탄가루를 흡입하는 것 또한 오늘의 모습이다. 국내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화학물질에 백혈병을 얻어 생명을 잃는 수많은 청년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불과 얼마 전까지 중국의 한 휴대폰 제조 공장은 열악한 환경 속 스트레스에 시달린 많은 여공들이 투신해 ‘자살공장’이란 오명을 얻기도 했다.
무엇보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노동 현실에 처한 이들에게 테크놀로지는 비수가 되거나 악귀처럼 들러붙는 경우가 흔하다. 줄곧 노동의 피폐화나 ‘위험의 외주화’는 사회적 타살의 기계 장치와 맞물려왔다. 유통상품 재고관리의 빅데이터 분석과 예측력이 높아지면서, 낮과 밤 노동 리듬에 덧대 새벽배송 노동 형태가 강제 생성되고, 배달노동은 24시간 극한의 생존 능력의 시험장이 되고 있다. 플랫폼 배달노동이 활성화되자 수많은 라이더들의 배달 사고율이 급증하고 있다. 지하철 구의역과 태안발전소 사망 사고 등 전국 단위 산업 현장들에서 하청과 재하청, 파견, 이주 노동에 지친 청년들의 사회적 타살과 죽임이 일상화하고 있다.
기술 재난 상황도 다르지 않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수습과 방사능 피폭의 중심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힘없는 지역 주민들이 희생양으로 자리한다. 기후위기에 의해 야기된 해일이나 태풍 등 자연 재난으로 인한 사망 사고는 여성, 노약자, 어린아이 등 빈국의 약자들에 집중된다. 사회적 포용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 야만의 기술 환경에 밀려 약자들이 생존의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서 과로사와 자살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첨단 기술의 편리와 효율성만큼이나 이로부터 사회 약자들의 기술 소외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6. 테크노자본의 생태 책임
닷컴기업들이 하이테크 변장술로 무공해 산업들로 추앙받고, 효율의 지배 논리에 따라 기계에 예속된 빈자들은 사회로부터 점차 추방된다. 인간 종들의 첨단 테크놀로지에 대한 자만, 오만과 함께 성장과 발전에 대한 맹신은 지구 생태를 위태롭게 하고 사회 빈곤층에 대한 환경 소외를 크게 키워왔다.
오늘날 야만의 기술 조건을 떨치기 위해서는 첨단 기술을 매개한 극도의 ‘성장숭배’를 떨쳐내고 자연과 인간 사이에 선순환적으로 이뤄지는 물질대사 과정에 균열을 야기하는 근본 원인들을 제거해, 생태 합목적적인 기술문명의 방향을 세워야 한다. 생명 존중 없는 혁신 논리는 멀리하고, 생태-공생 지향의 기술 체계를 구상해야 한다. 테크놀로지의 방향은 지구 자연과 관련해서는 ‘저렴한’ 자원의 수탈과 성장중독 및 발전 패러다임을 떨쳐낸 ‘생태기술(ecological technology)’의 전망을, 인간 사회 공존과 연대의 미래와 관련해서는 지상의 모든 약자와 타자들과의 ‘공생기술(convivial technology)’적 전망을 함께 도모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먼저 기후위기와 관련해 첨단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이 무엇일지를 따져 물어야 한다. 현재 탄소배출에 일조하거나 온실가스를 상승시키는 닷컴 기업들의 주요 기반시설과 활동을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바꾸려는 에너지 수급정책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IT기업들의 에너지 소비량이나 대체 에너지 수급 정도가 얼마인지 투명하게 공개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전환의 자발적 노력이 어려운 경우에는, 기후위기와 무관한 듯 보이지만 이에 크게 일조하는 닷컴 기업들의 증가하는 환경 영향력을 공식적으로 규제할 탄소세 도입, 에너지 소비 효율을 높이는 기술설계 노력에 대한 에코 인센티브나 세제 혜택, 화석연료 사용을 촉진하는 협력 사업과의 절연 방식 마련 등 사회적 규제 수단이 가능한 지 따지는 일도 중요해진다.
나아가 긴급한 기후위기에 대응해 온실가스 배출을 막기 위해 모든 화석원료를 대체에너지로 단계별 전환하고 사회 빈곤층의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그린 뉴딜’ 정책이 국내에서 어떤 전망을 지닐 것인지를 근원적으로 따져야 한다. 최근 한국판 뉴딜의 발표 이후 ‘그린 뉴딜’이 ‘환경 비즈니스’나 ‘기후 케인즈주의’의 시장 변종들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린 뉴딜’에 첨단 디지털 조건이 낳을 수 있는 반생명적, 반생태적 부메랑까지도 함께 계산해 넣어야 한다. 예를 들어 ‘디지털 뉴딜’로 인한 전자쓰레기 오염, 데이터 저장소들과 지구온실 효과, 닷컴 기업들의 화석원료 소모 증가 등 공해 문제들이 ‘그린 뉴딜’과 서로 얽혀있다. ‘디지털 뉴딜’의 성장론이 ‘그린 뉴딜’에 치명적일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기술 성장의 생태주의적 재구성이 필요하다.
기술과 생태의 두 가지 사안을 기능적으로 분리해 접근하는 우리의 관행을 경계하고, 사물과 생태가 연결된 전체 순환계를 관통해 읽도록 노력해야 한다. 보다 근원적으로 첨단 테크놀로지의 반생명적 파탄과 전횡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의 신체를 시장의 유통 자원으로, 로봇 기계를 인간의 종이나 심부름꾼으로,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개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기술 효율성에만 기댄 혁신 논리를 걷어내는 일이 시급하다. 첨단 기술이 지닌 혁신 잠재성을 확장하는 당위만을 앞세워, 지구 환경과 생명파괴 행위를 그저 묵인할 순 없는 일이다. 더불어 자본주의 기술 예속 문제를 해결할 상생과 포용의 기술 미래 또한 함께 고민해야 할 의제이다.
우리 스스로 첨단 과학기술 중심의 성장과 발전주의 세계관을 바꿔야 한다. 인간 생태발자국이 만든 폐허로부터 재기 가능한 수준의 지구 회복력을 고려한 과학기술의 새로운 대안적 전망이 필요하다. 이는 과학기술의 생태 합목적적 방식의 재탄생을 뜻한다. 기존 자본주의 시장의 물질적 재화와 생산 기여도로만 과학기술의 성과를 측정하는 양적 패러다임 또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지구 사회와 생태적으로 부합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공동의 사회 가치 영역들을 새롭게 창안해내야 한다. 이는 첨단 신기술의 성장 신화를 걷어내고 한 사회의 생태 조건과 회복력을 고려한 적정의 민주적 테크놀로지의 채택과도 관계한다. 새로운 공생과 호혜의 테크놀로지 전망에 기초한 지구와 지역 생태 모델링이 시급하다.
우선 이 컨퍼런스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고, 도움을 주신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과 환경재단, 한국생태문명프로젝트 등에도 감사드립니다. 제가 기후 변화와 관련한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된 건 한국에서 오신 분의 리더십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입니다. 반 총장은 2014년에 유엔 기후회의를 개최하여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를 도모하고자 했는데, 당시 저는 뉴욕에 있는 유니언 신학교를 갓 졸업했습니다. 그 후 공공 계획 관련 일을 하고 있던 중에 반 총장의 도전을 듣게 되었고, 저는 “지구를 위한 종교”라는 컨퍼런스를 여는 것을 제 새로운 미션으로 삼았습니다.
이 컨퍼런스에는 전 세계에서200개 이상의 종교 단체들과 그 지도자들이 모여 현재의 기후위기를 도덕과 윤리의 문제로 재구성하고, 신앙심에 기반한 기후위기 대응 활동을 촉진하고자 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영감을 얻은 저는 지구윤리센터(Center for Earth Ethics)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이 단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저와 저희 팀의 목표는 지구를 비롯한 모든 것들의 장기적인 건강과 안녕을 목표로 하는 가치들을 측정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문화와 정책들을 찾아낸 뒤 그것들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물론 국내총생산이나 주식시장에서의 시가총액 등 사회가 가치 측정을 위해 사용하는 주요 기준들은 우리가 급박한 기후 위기를 맞이하게 된 데 책임이 있습니다. 그 기준들은 매우 단기지향적이며, 오염이나 자원 고갈, 불평등을 비롯해 문화나 공동체, 건강과 같은 웰빙의 비금전적 요소들에 대한 투자의 가치를 담아내지 못합니다.
오늘 저는 제가 참여하고자 하는 변화에 대해, 그리고 왜 제가 그것을 윤리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지 말하고자 합니다. 윤리는 옮음과 그름의 판단을 수반합니다. 또 한 개인으로서, 집단의 일원으로서 우리 각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도 함축하고 있습니다. 즉, 가치들과 우리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의 첫 번째 과제는 “윤리적 관심”의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또 정책 결정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는 일입니다. 지구 윤리에서의 윤리적 관심사의 범위는 매우 넓은데, 이는 우리가 전 지구적인 건강과 안녕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스웨덴의 한 교회에서 만난 제 친구의 이야기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국제 정책이 만들어지는 어느 공간이든 세 개의 빈 의자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세 개는 각각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미래 세대들, 그리고 지구에 있는 모든 인간 이외의 생명체들 – 즉, 현재 만들어지는 정책들에 가장 큰 영향을 받으면서도 가장 적은 영향력을 가진 존재들 – 을 위한 지정석들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잘 생각해보시면, 이 세 집단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정책의 수립 과정과 결과를 더 공정하게 만들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더 강하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 시스템을 만드는 수단으로서의 역할도 합니다.
저희 지구윤리연구소에서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전통과 지혜들을 끌어 모음으로써 세계의 어느 종교든 생명의 유기체성과 근본적 상호 연결성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생각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어느 곳이든 불의가 존재한다는 것은 모든 곳에서의 정의에 대한 위협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틱낫한 스님의 “우리는 우리 자신이 다른 것들과 서로 분리되어 있다는 환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존재한다”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합니다. 이러한 통합적 전체성은 과학에 의해서도 뒷받침되는데, 윤리와 과학이 만나는 간학문적 연구는 지구 윤리의 아주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다시 세 개의 의자 이야기로 돌아가면, 첫 번째 의자의 경우 현재 국제 인권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엔 세계 인권 선언에서는 인권의 핵심적 가치들을 제시하며 천부적 존엄성과 함께 모든 인간이 가진 평등하고 양도될 수 없는 권리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가치들은 자유와 평화, 정의의 기초가 되는 것들이죠. 따라서 지구 윤리도 이 프레임 안에서 작동하며, 단지 깨끗한 물과 공기에 대한 권리뿐 아니라 기후변화의 피해가 이러한 재난 상황을 유발하는 데 가장 적은 영향력을 끼친 (즉, 지금까지 가장 적은 양의 탄소를 배출한) 지구상의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돌아간다는 것도 알리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의자의 경우는 우리로 하여금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윤리적 사고를 하도록 합니다.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배출될 경우 이 가스들이 대기중에 머무르다가 실질적 영향을 끼칠 때까지의 시차가 있으며, 이는 우리가 자원을 자연적으로 보충되는 속도보다 빠르게 고갈시키고 있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 자원들과 토지는 대기중의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시켜주는 “자연 탄소 포집기”의 역할을 하는데도 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윤리학자 스티븐 가드너는 “우리는 단순한 공유지의 비극이 아닌, ‘현재의 미래에 대한 독재’의 상황에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것을 더욱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지난 수년간 강력한 청소년 기후위기 대응 운동의 부상을 지켜보았습니다. 이 운동은 미래 세대의 목소리를 현재로 가져옴과 동시에,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칠 현재 세대의 행동들을 중단하라는 도덕적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 여겼던 초대형 태풍, 가뭄, 폭염, 산불, 해수면 상승 등은 이미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우리가 생명 시스템의 균형을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 전에 생태적 전환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세 번째 의자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1948년, 그러니까 유엔 세계 인권 선언이 발표되던 해의 지구의 인구는 24억 명이었지만, 2020년 현재는 78억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 70여 년의 시간동안 인간은 다른 종들의 서식지를 대규모로 파괴했고, 그 결과 유엔은 현재 백만여 종 가량이 멸종 위기 상태에 놓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태적 손실은 인간에게 새로운 바이러스와 질병의 등장, 식량 시스템의 위협 등 수많은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인간이 받을 영향들은 반드시 생명 체계의 상호 연관성 속에서 설명되고 이해되어야 합니다. 한편,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체가 천부적 가치와 권리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윤리적 질문은 지구 윤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동안 역사 속에서 윤리학은 옳음과 그름의 판단이 사회적 규범과 법 질서 하의 판단과 맞지 않을 때 가장 강해졌습니다. 미국에서의 노예제 폐지와 여성 참정권 운동 등 과거의 중요한 운동들과 사회 변화의 시기도 모두 이런 때였습니다. 저는 오늘날이 바로 그런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생태계를 파괴해온 수많은 논리들과 유인들은 모두 완전히 합법적이었으며 사회적 규범과도 합치되었습니다. 이 때 데이터와 과학 기술은 이러한 생태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발생한 기후변화와 대기오염의 절반 정도가 지난 20년간 발생했는데, 이 시기는 바로 우리가 기후변화의 인과관계를 가장 잘 이해하고 친환경 재생 에너지라는, 가장 확실하고 실행 가능한 대체제를 가지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따라서 현재 상태의 변화를 위해서는 우리들의 도덕적인 판단이 필요합니다. “구조적 악마”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윤리학자 신디아 몰라베이다는 “구조적 악마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그 자체가 쉽사리 ‘선’ (善) 혹은 좋은 것으로 둔갑한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선은 경제 성장으로, 많은 사람들을 가난에서 구제해준다는 명목 아래 생산과 소비의 무한 성장을 위한 생태계 착취 및 화석연료의 지속적 사용을 꾸준히 지지하고 정당화시켜온 가치입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자가당착에 부딪히게 됩니다. 유엔의 한 빈곤 및 인권 문제 전문가는 작년에 발표된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는 지난 50여 년 간의 공중 보건 개선과 빈곤 감소를 위한 진보적 노력을 모두 수포로 만들 수 있으며, 오히려 수백만 명 이상을 추가로 빈곤의 늪에 빠지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러한 지속가능하지 않은 성장이 어떠한 견제도 없이 이어진다면, 기후위기는 궁극적으로 지구라는 행성 안의 생명체 서식 가능성 그 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컨퍼런스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것들입니다.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 우리는 세 개의 의자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현 상태를 정당화하는 논리들에 대한 비판적, 도덕적 사고를 멈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은 부유하고 깊으며 창의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입니다. 한국인들의 생태적 경험들은 한국을 생태 전환 시대의 리더로 만들어줄 것이며, 저도 여러분들과 함께 배우고 일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같은 인류로서, 지구에 사는 생명체로서 희망 넘치는 공존의 미래를 향해 나아갑시다.
필자는 이미 2021년도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생략을 예측했고, 그래서 <통일뉴스>에 기고할 목적으로 하루 전날인 2020년 12월 31일에 원고를 미리 써놨고, 이걸 ‘예측: 2021년 북 신년사를 대체한 제8차 당 대회’라는 제목의 분석글을 기고한 바 있다.(<통일뉴스>, 2021.1.1.)
아니나 다를까 북은 2021년도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를 내놓지 않았다. 대신, 김정은 위원장은 “위대한 인민 받드는 충심 변함없을 것 다시금 맹세”라는 내용을 중핵으로 하는 ‘전체 인민에게 보내는 친필 서한’형식의 새해인사를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친필서한 <출처: 로동신문>
이를 두고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남측 사회에서 일어났다. 다름아닌, 통일부가 2021년 1월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1년 새해를 맞아 주민들에게 공개한 친필서한을 두고 “김정은 위원장 집권 2012년 이후 전 인민을 대상으로 발표한 첫 친필 서한 형태의 ‘신년사'”라며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첫 사례라면서 “이례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같은 친필 서한도 ‘신년사’라고 판단한다, 했다.
참으로 수준 낮은, 아니 한심한 통일부이다. ‘새해인사’와 ‘신년사’가 어떻게 갔단 말인가?
말 그대로 새해인사는 최고지도자가 인민들에게 새해를 맞아 보내는 덕담인사이다. 단지, 그 덕담의 내용과 수위가 우리 자본주의 사고방식으로는 수용하기 좀 어려운 정치적 행위의 연장이기 때문에 그렇게 오해할 수는 있어도, 새해인사는 새해인사 일 수 밖에 없다. 반면, 신년사는 새해인사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수준의 문제이다. 최고지도자의 한 해 국정운영 철학과 국정운영 목표, 방식 등에 대한 계획을 당과 인민에 총화발표하고, 이를 당이 중심되어 군중적으로 조직동원하기 위한, 즉 한 해 북이 나아가가야 할 좌표방향과 목표에 대해 북 사회전체가 공유하고 결의하는 내용과 형식으로 집중된 고도의 정치행위이다.
바로 그 행위를 김정은 위원장이 생략하고, 시기적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제8차 당 대회(2021.1.5.개막)를 통해 대체한 것이다. 그러니 새해인사와 신년사와는 전혀 다른 층위의 차원문제이다.
어쨌든 그래놓고 기억을 되돌려보자. 북은 이미 지난해 8월 1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를 열에 제8차 당 대회를 2021년 1월에 개최할 것을 예고했고, 또 12월 29일에는 제7기 제 22차 당 정치국 회의를 열어 제8차 당 대회를 2021년 1월 초순에 개최할 것을 최종 결정함에 따라 정권수립 이후 아주 이례적인 예외 없이는 곧잘 지속되어왔던 최고지도자의 신년사가 생략될 것임을 미리 예고했었다.
유추하면 다음과 같다. 북도 여느 사회주의국가처럼 당 우위의 국가체제이다. 그러면서도 수령의 절대권한이 보장되는 수령중심의 체제이기도 하다. 바로 이 두 의미가 교집합되면 1월 초에 개최될 당 대회, 그것도 당의 최고의사결정 단위인 당 대회에서 그 조직의 최고지도자가, 그것도 ‘유일’최고지도자가 자신의 국정철학과 국정운용계획을 발표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체제원리적으로도 맞다.
조선노동당 제8차대회가 5일 오전 평양에서 개막되었다. <출처: 노동신문>
2. 제8차 당 대회 소집목적에 대한 간략한 고찰
제8차 당 대회 소집목적이 어디 있느냐는 <조선중통신>이 보도한 1월 6일 자 기사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통신은 그 소집목적을 공개했는데, 이로부터 이번 제8차 당 대회가 어떤 목적을 갖고 개최하려 했는지에 대해 충분히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고조기, 장엄한 격변기가 도래한 시대적 요구에 맞게 당중앙위원회의 사업을 전면적으로 엄중히 총화하고 사회주의 위업의 보다 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정확한 투쟁방향과 임무를 명백히 재확정하며 실제적인 개선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8번째로 되는 당대회를 소집했다.”
분석하면 첫째, ‘새로운 고조기’는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전진하는 북의 향후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름하여 사회주의완전승리노선의 ver.2이다.
둘째, ‘장엄한 격변기’는 미국과의 판가리싸움에서 결정적 승리국면을 반드시 열어제끼겠다는 의미가 있다.
셋째, ‘사회주의 위업의 보다 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정확한 투쟁방향과 임무를 명백히 재확정하며’에서 확인받는 것은 자강력제일주의와 정면돌파전에 기초한 자체의 힘, 주체역량강화에 기반 한 전략노선이 채택된다는 의미를 함의한다.
넷째, ‘실질적인 개선대책’에서 확인받는 것은 사회주의제도와 질서를 ‘개건’과 ‘개선’을 통해 보다 우리 식(주체)사회주의제도를 더 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임을 예고했고, 그 모습은 수령-당-대중의 혼연일체에 있다.(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 구현과 당을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무장된 혁명적 당으로 질적 전환을 내 오는 것, 그리고 수령의 절대성이 더 공고화 되는 방향으로의 정립이다.)
3. 총론적 분석: 사업총화보고와 결정서 중심으로
내용적으로는 대략 4가지 방향으로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북 언론보도가 이를 증거 해주는데 △첫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둘째, 조선로동당 중앙검사위원회 사업총화 △셋째, 조선로동당규약개정에 대하여 △그리고 마지막 의제가 조선로동당 중앙지도기관 선거부분, 그렇게 4가지 의제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이후 북의 국정운영 방향과 좌표 관련해 핵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내용은 뭐니 뭐니 해도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A4용지 20여장 분량에 해당되는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이하, ‘김정은 위원장의 보고’로 약칭, 정식 보고명칭은 ‘우리 식 사회주의건설을 새 승리에로 인도하는 위대한 투쟁강령’이다.)이다. 12일 폐막 때 채택된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 한 결론’ 부분도 매우 중요한 분석 자료이다.
해서 이 두 부분을 and적으로 조합하면 지난 제7차 당 대회 분석이 어떻게 심층분석 총화됐고, 향후 5년간 북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총적과제가 집대성된다. 5년간의 국정운영 방침결정서가 그렇게 수립되는 것이다.
참고로 이번 당 대회도 일반적으로 당 대회가 개최되면 최종적으로는 결정서 채택을 끝으로 폐막되는 그런 경로를 그대로 따랐다. 대회 기간이 좀 길어지면서(역대 두 번째로 긴 대회, 1/5 ~ 1/12) 한때는 결정서 채택없이 끝날 수도 있겠다는 추측이 난무했지만, 그 예외를 북은 허용하지 않았다.
물론 조금만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문제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기간 사업총화보고를 했는데도, 그에 대한 결정서 채택이 없다?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북 체제의 특성 간과이다. 결과, 이번 제8차 당 대회도 김정은 위원장의 사업총화보고와 결정서 채택중심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한 치의 어그러짐도 없는 북의 생각과 의도, 국정운영방향을 알 수 있다.
틀은 다음과 같다.
제1부: 제8차 당 대회 총론분석: ‘이민위천, 일심단결, 자력갱생’ 3대 이념으로 무장되다
제2부: 제8차 당 대회 대내관계 분석: 정면돌파전과 사회주의완전승리노선에 대한 이해
제3부: 제8차 당 대회 대외관계 분석: 북미, 남북관계 전망을 중심으로
이 중 이 글은 우선 그 첫 번째, ‘제8차 당 대회 총론분석: ‘위민위천, 일심단결, 자력갱생’ 3대 이념으로 무장되다‘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시작해 보자. 총론분석 그 첫째, 북은 이번 제8차 당 대회가 갖는 의미에 자신들의 현 단계 혁명발전단계 성격규정을 명확히 했다. 어떻게? 혁명의 ‘정착기(김일성시대)’를 거쳐 ‘과도기(김정일시대)’가 끝나고, 김정은시대에 들어와서는 자신들의 혁명발전단계가 ‘계승기와 발전기’ 단계로 진입했음을 공식 선언했다.
“우리 당과 혁명발전에서 중대한 정치적 사변(강조, 필자)으로 되는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는”에서 확인받듯이 이번 제8차 당 대회 개최를 ’정치적 사변‘으로 성격 규정해 북의 사회주의 혁명발전단계가 ’계승기와 발전기‘단계에 진입했음을 알려 내었다.
구체적 뒷받침은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는 조성된 대내외형세하에서 우리의 전진을 저애하는 주객관적 요인들과 심중한 결함들을 인정하고 당과 국가사업전반을 혁신하며 사회주의위업을 승리의 다음단계로 이행시키는데서(강조, 필자) 나서는 명확한 투쟁과업과 방도들을 밝힌 위대한 실천강령이다.” 이어 “전투적 기치이며 주체위업의 력사적뿌리와 오늘, 미래를 굳건히 이어주는 혁명적 문헌으로 된다.”고 성격 규정한데서도 그 의미가 찾아진다. 뿐만 아니라, 이번 제8차 당 대회에서 보고된 사업총화가 1월 12일 채택된 결정서(정식명칭: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 한 결론)에서는 자신들의 혁명단계를 “혁명과 건설의 새로운 고조기, 격변기를 열여놓기 위한(강조, 필자)”단계로 성격 규정했다. 그렇게 북의 사회주의가 사회주의완전승리단계에 진입할 수 있는 주객관적 조건이 되었음을 사회과학적 용어로 정립해내었다.
총론분석 그 둘째, 사회주의완전승리노선을 본격적으로 가동시킬 수 있는 물적·정치사상적 토대가 확고히 구축되었음을 선언하였고, 이를 5개년 국가발전계획 목표완성과 연동시켜 내었다. 그 대강으로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의 기본종자, 주제는 여전히 자력갱생, 자급자족(강조, 필자)”임을 분명히 했다. 방침으로는 “현 단계에서 우리 당의 경제전략은 정비전략, 보강전략으로서 경제사업체계와 부문들사이의 유기적련계를 복구정비하고 자립적토대를 다지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여 우리 경제를 그 어떤 외부적영향에도 흔들림없이 원활하게 운영되는(강조, 필자)”원리의 천명이다.
이미 이 기본원리는 제7차 사업총화보고에서 확인된다. “현 단계에서의 조선혁명의 진로를 명시한 당중앙위원회 제7기 사업총화보고의 진수는 우리자체의 힘, 주체적력량을 백방으로 강화하여(강조, 필자) 현존하는 위협과 도전들을 과감히 돌파하고 우리 식 사회주의건설에서 새로운 비약을을 일으키며”로 정의 된데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고, 이번 결정서를 통해서 “사회주의건설의 주체적 힘, 내적동력을 비상히 증대시켜(강조, 필자) 모든 분야에서 위대한 새 승리를 이룩해 나가자는 것이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의 기본사상, 기본정신입니다.(강조, 필자)”로 정식화 되었다.
총론분석 그 셋째, 이번 제8차 당 대회를 거쳐 확립된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또한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가 북의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으로 정식화되었다는 점이다. 달리는 김정은식 통치스타일이 확정되어졌음과 같다. 이는 통상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스타일을 ‘선군정치’로 규정했다면, 이번 제8차 당 대회를 거치고, 규약 개정전문이 발표되지 않아 그 내용 속속들이는 알 수 없으나, 일부 공개된 당 규약 서문확정을 통해 드러난 김정은식 통치스타일은 분명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이다.
당 규약 서문 표현은 이렇다. “우리 국가의 지위와 국력이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승리에서 더 큰 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고 있는 혁명발전의 요구를 반영하여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를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으로 정식화(강조, 필자)하였다.” 그 근본정신에 ‘모든 것을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라는 기치가 있고, 이를 김정은 총비서는 사업총화보고에서 “정세가 아무리 엄혹하고 난관이 중첩되어도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를 철저히 구현하면 불리한 모든 요인들을 능히 극복하고, 방대한 과제들을 용이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정치방식으로 정식화하였다.
북은 그렇게 ‘선군정치’에서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방식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맞이했다. ‘군대이자 당이고 국가이며 인민’이라며 군대중시의 선군정치와는 달리 이번 당 대회에서 “인민군대가 참다운 인민의 군대라는 사명과 본분(강조, 필자)을 다하라”고 주문하면서 2020년도 여름 태풍과 홍수 피해를 당한 인민들을 위해 군인과 평양 핵심 당원들을 피해 복구 지역에 파견한 것은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구현의 대표적인 사례이자, 당과 군대의 존재 이유를 인민에 대한 헌신복무에 찾아야 한다는 진리를 실천적으로 입증해 주었다.
총론분석 그 넷째, 이번 제8차 당 대회를 통해 드러난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 등 대외관계 부문은 기존 형제국들과는 친선과 우호협력을 보다 공고히 하면서도 미국을 대하는 방식으로는 핵무력 강화발전노선에 근거한 대북적대정책을 분쇄하고, 조국의 자주적 통일방향을 명확히 하였다. 증명하면 제8차 당대회 사업총화 보고에 “대외정치활동을 우리 혁명발전의 기본 장애물,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지향시켜나가야 한다.” 고 못 박고, 그 방도도 “국가핵무력건설대업을 완성(강조, 필자)하는것은 우리가 리상하는 강력한 사회주의국가건설행정에서 반드시 선차적으로 점령해야 할 전략적이며 지배적 고지”임을 분명히 밝혀 핵무장력 강화발전을 통해 미국을 제압하겠다는 의지가 보다 분명해졌다. 연장선상에서 미국을 상대하는 기본원칙이 ‘강대강, 선대선’의 대미정책이 수립되었다. 해서 향후 북의 대미전략은 일관되게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철회에 기본방점이 찍히고, 이를 통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으로 나아가는 프로세스가 확립될 것이다.
이를 남북관계와 연동하면 총화보고문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듯이 “남조선당국이 비정상적이며 반통일적인 행태들을 엄정관리하고 근원적으로 제거해버릴 때(강조, 필자) 비로소 공고한 신뢰와 화해에 기초한 북남관계개선의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될 것”임을 분명히 해 남측당국(현, 문재인 정부)이 민족자주와 자결의 정신으로 되돌아오지 않는 한, 구체적으로는 4.27판문점공동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의 약속이행이 담보되지 않는 한 남북관계 진전없음은 보다 확실해졌다.(※그런데도 문 대통령의 신년사와 이인영의 통일부는 여전히 방역과 인도적 지원문제 등에 집착하는 ‘작은교역’에 매달리고 있다. 참으로 번지수 잘 못 짚었다.) 달리 표현은 북이 미국과의 적대관계 청산을 기본핵으로 해 남북문제를 해결해가겠다는 전략구사을 분명히 했기 때문에 당분간 남북관계는 문재인 정부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소강국면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총론분석 그 다섯째, 통상 각급 당 체계를 중심으로 총화분석이 이뤄지던 특성과 절차대신, 이번 제8차 당 대회는 개최이전 4개월 전부터 당 중앙위원회에 비상설 중앙검열위원회를 구성하고 ‘요해사업 소조’를 각 도와 성, 중앙기관들에 파견하여 진행한 특성이 있다.(이름하여 ‘총결기간’으로 표현됨.) 아마도 이는 2020년 8월 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을 주관하면서 제8차 당 대회에서 결정될 5개년 국가발전계획과 관련해 제 7차 당 대회 결정사항인 5개년 국가발전전략에 대해 “해부학적으로 분석총화하고”에 대한 약속이행절차였고, 그 만큼 핵심당원 중심으로 심층적으로 분석총화가 이뤄졌음을 증거한다하겠다. 결과, 향후 5년 동안 ‘우리 국가제일주의’와 ‘인민대중제일주의’, ‘자력갱생전략’ 3대 키워드로 국가운영방침을 명확히 해냈다.
추진동력으로는 당 제7차대회가 강조한 ‘자력갱생정신’과 그 실현을 위한 투쟁방침인 ‘정면돌파전’을 지속시켰다. 이것이 사업총화보고에는 “우리 당의 자력갱생전략은 적들의 비렬한 제재책동을 자강력증대, 내적동력강화의 절호의 기회로 반전시키는 공격적인 전략으로, 사회주의건설에서 항구적으로틀어쥐고나가야 할 정치로선(강조, 필자)으로 심화발전되였다.” 더해서 “자강력을 증대시켜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기 위한 전인민적인 투쟁속에서 자력갱생은 주체조선의 국풍으로, 조선혁명의 유일무이한 투쟁정신으로 더욱 공고화(강조, 필자)되였다.”고 맺는다.
이상으로 제8차 당 대회 분석을 총론적으로 끝냈다.
핵심은, 북의 혁명발전단계를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의 고조기·격변기로 분명히 한 것과, 사회주의완전승리단계 고지점령을 위해 보편적인 사회주의 질서체계(예, 김정은 위원장 총비서 추대, 당의 혁명적 기풍확립, 당 중앙의 유일적 사상체계 확립 등) 구축, 그리고 대외관계는 형제국들과는 상호협력·친선확대를 도모하면서도 미국과 남북관계는 보다 핵무력 강화와 자주·자결에 기초한 정공법에 보다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분쇄와 자주적 통일방향으로의 전환이다.
코로나 시대의 삶이 어느덧 일상이 되어가며, 뉴노멀로 지칭된 새로운 사회 규범이 만들어지고 있다. 낯설게 경험하는 현상들 가운데 무엇에 주목하는지에 따라 뉴노멀의 내용과 방향도 설정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비대면’(untact) 상황에 주목할 경우 새로운 ‘행위규범’으로서의 뉴노멀에 관심하게 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의 위계’에 주목할 경우 ‘체제구상’으로서의 뉴노멀을 상상하게 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새로운 행위규범 못지않게, 근대문명의 청산을 기획하는 체제구상의 뉴노멀도 절실하다.
하지만 요청된 변혁이 근본적일수록 이루기 힘들다는 비관이 앞선다. 인류는 오랫동안 자연을 약탈해온 근대 자본주의 소비 문명이 언젠가는 삶 자체를 파괴하는 지점에 이를 것이라는 불안을 안고 살아왔다. 지구온난화를 가속해온 산업문명이 환경의 역습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경고, 사회적 갈등의 뿌리에는 양극화된 빈부격차와 새로운 신분제도를 도입한 자본의 악습이 있다는 인식은 이제 낯설지 않다. 우리 시대 고통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단지 자본의 재배치에 그치지 않으려면, 문명 전환을 겨냥한 상상이 구현될 수 있는 길을 내야 한다.
철학자 에롤 E. 해리스는 근대문명이 파국으로 귀결된 본질적인 원인을 근대과학의 사유방식에서 찾고, 인류의 과제를 낡은 정신적 편견을 떨쳐내는 것으로 봤다. 여기서 낡은 편견이란 뉴턴이 완성한 근대적 사유 패러다임에 담긴 특징들, 즉 물질주의와 기계론, 원자론과 개체주의, 외적(external) 관계방식과 환원주의, 선입견과 주관적 가치가 배제된 과학, 목적론적 설명에 대한 거부, 물질과 정신의 분리 등이다. 이러한 뉴턴 패러다임이 과학만이 아니라 인식과 실천의 전 영역에 만연하여 근대문명의 병폐가 깊어 파멸에 이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회의적 태도를 보인다고 그는 말한다.
근대문명이 세계를 이해할 때 ‘실체’(substance)에 착안하여, ‘자기 존재를 위해 다른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개체적 존재에 관한 관념 위에 문명을 축조할 때부터 그 행로는 정해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중시한 근대정신이 중세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인도주의적 가치를 높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각 유기체가 자신의 환경과 맺는 참된 관계를 무시”하고 “그 환경의 고유한 가치를 무시하는 습관”도 기르게 했다. 이렇게 상호연관 감각을 잃은 근대정신은 타인을 단지 ‘도구적’ 가치를 지닌 존재로 간주하고, “인간의 형제애에 유의하기보다는 부적격자를 근절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결국 인도주의적 이상은 공동선(common good)을 향한 전체적 비전을 구성하기보다는 “소득, 여가, 그리고 안전이 더는 향상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에 봉사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자연과 노동에 대한 약탈로 구성된 신자유주의 시대의 정점에서 터진 코로나 사태에서 우리는 길을 잃은 근대문명의 현실을 보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 종교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공한 중산층을 위해 진화해 왔기 때문에 문명 전환의 이정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개신교와 같이 한국 현대사회에서 급부상한 종교일수록 코로나 사태를 맞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한편 코로나 사태가 소위 ‘탈진리 시대’(post-truth era)로 불리는 상황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가짜뉴스마저 취향이 되어버린 탈진리 시대 환경에서, 윤리는 당위성에 대한 성찰보다는 심리적 취향이나 사회적 효용성에 함몰되어가며, 사회적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이 좀체 구성되지 않고 있다.
고통에 잠긴 삶을 구원으로 인도할 신성한(sacred) 무엇은 과연 있을까? 고통의 삶에는 혼돈과 신비가 교차한다. 아니 고통은 그저 혼돈일 뿐, 신비란 말은 어쩌면 실재의 깊이에 대한 암시라기보다는 현실을 은폐하는 현혹일지 모른다. 하지만 만일 고통의 심연에서 해방의 문을 여는 열쇠를 얻을 수만 있다면, 적자생존의 삶으로 얼룩진 근대문명의 ‘힘의 철학’과 ‘번영의 복음’을 넘어서는 상상도 가능할 것이다. 코로나 시대 삶의 불안정성과 사회적 비탄 속에서 인류 공동체에 관한 새로운 감각, 약탈적 체제의 종식과 생태적인 삶에 관한 갈망이 거세게 일어나, 위기 속에서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사실 근대문명의 억압적 요소를 극복하기 위한 사유와 실천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났다. 그것이 ‘탈근대’라는 이름을 가졌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근대문명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진보적 주체는 여러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 글은 그것을 세 유형으로 분류하여 저항적 주체, 해체적 주체, 생태적 주체로 부를 것이다. 그들은 진보 담론의 세 가지 패러다임을 대변한다. 저항적 주체는 억압적 체제를 전복하고 역사를 발전시키려는 피억압자의 관심을 대변하며, 해체적 주체는 근대정신의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성과 관용에 주목한 탈근대적 주체이며, 생태적 주체는 유기체적 관계성을 중시하는 생태 문명을 지향하는 주체를 상징한다.
2. 근대문명 극복의 두 시도, 저항적 주체와 해체적 주체
근대문명의 정신적, 제도적 폭력성을 해결하려 한 ‘저항적’ 주체는 근대문명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억압적 체제를 변혁하기 위한 저항적 주체는 세계에 대한 ‘해석’만이 아니라, 세계 자체를 ‘변혁’하는 일에 관심했다. 이들은 공동체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종교와 국가 그리고 자본에 부여된 절대 권위를 전복하려 하였고, 이데올로기적 왜곡과 제도적 억압에 맞선 실천을 철저히 밀고 갔다는 점에서 이후 모든 진보적 양심은 이들에게 빚지고 있다. 이들이 가진 당파적 윤리는 억압당하는 자의 편에서 세계를 해석하고 재편성하려는 해방의 이상을 대변하였기에, 그 역사적 한계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저항적 주체가 추구한 해방 정신의 항구적 교훈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저항적 주체의 대표적인 국가 실험이었던 사회주의 혁명은 지구적인 차원에서는 실패했고, 이제 국지적으로 남았다. 그 이유에 대한 여러 설명 가운데, 저항적 주체가 유기체적 사회의 복잡한 운동과 그 구성원의 포괄적 관심을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가 있다. 진보에 대한 절대적 낙관과 자기 이상의 당파적 실천이 결국 자기비평을 소홀하게 만들고, 사회라는 유기체 안에서 형성된 다양한 관심사에 대한 포괄적인 고려를 제한했다는 것이다.
사상적인 면에서 보면 저항적 주체의 변증법적 사유에서 갈등과 투쟁이란 보다 고상한 종합의 전조로 이해되기 때문에 역사적 진보에 대한 낙관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변증법적 발전이 역사 속에서 발견될 수 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갈등과 투쟁이 고상한 종합을 ‘필연적으로 발생’시킨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갈등 가운데 하나의 선(善)이 또 다른 선을 위해 파괴되는 것은 고차적인 종합으로서의 지양(aufhebung)이 아닌 항구적 상실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전의 사회를 파괴할수록 더 완벽한 사회가 더 빠르게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가치가 박멸되면 될수록 그것이 회복될 수 없는 위험이 높아질 뿐’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마르크스주의 운동 자체의 ‘오독’도 있었다. 이를테면 ‘소명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와 ‘역사적 상태로서의 노동자 계급’의 혼동을 말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프롤레타리아가 어느 특정한 사회계급인 노동자 계급과 동일시” 되면서 ‘혁명의 소명(klesis)을 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사한 딜레마가 역사에서 되풀이된다. 기독교 교회(ek-klesia)가 자신의 소명을 ‘실행’하기보다는 그것을 ‘소유’한 집단처럼 행세할 때 종교적 추락을 완성하듯이, 부처의 자비도 승가(僧伽)의 소유가 될 수 없고, 진보적 정신 역시 특정 집단의 ‘소유’가 되지 않는다. 소명을 활용하기보다는 그것의 특권적 소유에 집착하는 이들은 반드시 몰락한다.
오늘날 저항적 주체는 과거의 ‘계급투쟁’보다 훨씬 미묘하고 복잡한 과제를 맞고 있다. 노동가치이론의 ‘유통기한이 만료’되어 노동의 ‘부정적 존재론’이 널리 퍼져서 진리가 ‘노동의 힘’에 뿌리박혀 있다는 생각을 거의 깨졌으며, 돈이 ‘신비화’되어 이제 노동은 ‘착취’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배제’에 대한 대처를 먼저 해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 공항노동자들의 정규직화라는 노동의 꿈이 바로 노동자들에 의해 위태로움을 겪었던 것처럼, ‘가난한 자들의 인식론적 특권’은 이제 상실감을 경험한 대중들의 ‘공정성’이라는 명분 앞에서 설득력을 잃었다. 네트워크나 기계에 의해 노동이 대체되는 4차산업혁명과 포스트휴먼(post-human)의 전망 또한 저항적 주체의 진화를 요청하고 있다.
한편 근대문명을 극복하려 한 탈근대성은 두 흐름을 가졌다. 이 글에서는,지난 삼십여 년을 주도한 탈근대적 흐름을 ‘해체적 주체’로 부르고, 그 대안으로서 ‘재구성적’ 특징을 가진 흐름을 가리켜 ‘생태적 주체’로 부르고자 한다. 저항적 주체가 억압적 ‘체제’의 전복에 관심했다면, 해체적 주체는 억압적 ‘정신’의 해체에 주목했다. ‘탈근대성’을 표방한 해체적 주체는 근대사상의 문제점을 ‘전체성에 대한 전쟁’(a war on totality) 또는 ‘거대담론’(meta-narratives)에 대한 회의’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거기에는 분명히 절대적 진리를 표방한 근대 이성의 병폐와 한계들, 즉 객관주의적 과학 이론, 토대주의적 인식론, 보편주의적 도덕과 문화 관념이 억압 기제로 기능하는 체계를 타파하려는 해방의 요소가 있었다. 또한 해체적 주체에게 진보담론을 구사하는 저항적 주체 안에 내장된 폭력성이 근대성의 잔재로 포착되었다.
해체적 주체는 차별에 맞선 연대와 차이에 대한 관용의 미덕을 인간 정신에 심어주었다. 하지만 상대화/파편화되어가는 사회에서 어떻게 담론과 투쟁을 위한 공통의 토대를 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어려움에 빠졌다. 여기서 저항적 주체가 ‘하나의 진리를 절대화’하는 극단에 치우쳤다면, 해체적 주체는 ‘모든 진리를 상대화’하는 또 다른 극단에 치우쳤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말하자면, 해체적 주체는 새로운 문명을 향한 ‘동력’을 어떻게 제공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자기 관심에 매몰되는 소아병을 극복할 수 있는지, 어떻게 상대성에 대한 인식이 편협성이 되지 않게 할 것인지, 어떻게 지식의 파편화를 방지할 것인지, 어떻게 허무주의를 넘어설 가치를 제공할 것인지.
포스트모던 감각이 진리를 향한 열정보다는 각자의 취향으로 미끄러지는 것은 아닌가? 때로는, 자기주장의 알리바이로 왜소화되어가는 탈-진리 시대의 흔적은 동료 이웃과 자연에 대한 ‘고통 감수성’을 갖는 일마저 버거워 보인다. 진리 자체가 아니라 감정과 자기 신념을 만족하게 하는 것을 진리로 여기는 ‘탈-진리’(post-truth) 시대를 맞은 오늘, 문제는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선동적/반동적 존재보다 그 흐름을 제어할 사상적 장치가 없는 데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것은 다양성의 윤리를 권장해온 탈근대주의가 마주친 최대의 복병으로서, 당위성의 감각이 소실되거나 왜곡된 지점에서 경험하는 사회적 증후군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근대의 이기적 주체 못지않게 탈근대의 해체적 주체도 이해관계나 자기 편견 속으로 잘게 부서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탄식이 생긴다. 해체되어 개인의 ‘취향’으로 미끄러진 진리는 묵시록적인 미래에 대한 순종의 지표처럼 읽히지만, 다행히 존재의 무게에 이끌린 영혼은 어느 시대든 미래의 그루터기로 남는다.
3. 생태적 주체와 종교
생태적 주체는 ‘저항과 해체’의 경험을 창조적으로 수렴한 존재로서, 타자와의 연관성을 내재화하여 자기 고립을 극복한 존재이다. 그는 근대문명이 ‘생존 경쟁을 증오의 복음으로 해석’한 사상적 잘못에 깨달은 존재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유기체적 연관을 실재의 본질로 알기에,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도구적 가치가 아닌, 생명의 ‘고유한’(intrinsic) 가치를 만들어가기 위한 요소이자 환경으로 서로 작용하는 것을 이해한다. 이것은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과장한 개체주의적 편향과 공동체의 질서를 위한다는 명목의 전체주의적 편향을 함께 극복하려는 것이며, 각 생명의 본원적 가치를 키우고 보호하는 ‘공동체적 환경’과 개인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의 가치를 동시에 지지한다.
이러한 관계성에 대한 인식은 ‘우주의 본성에 대한 경외심을 일으키는 통찰’에 근거한 것으로서, “불굴의 합리성이 철저하게 깃들어 있는 하나의 세계관을 재창조하고 재가동”함으로써 뒷받침된다. 그럴 때 근대문명의 전제가 되는 실체철학의 개체주의적 관념, 즉 ‘모든 존재는 자기이해관계에만 관심할 뿐이다’는 생각이 실상은 추상적 이데올로기이자 전체 전망을 상실한 부분적 관찰에 기인한 편견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생태적 주체는 진리와 함께 아름다움과 평화의 중요성을 깨달은 존재이다. 해체적 주체가 이미 밝혔듯이, 다양한 생명이 어우러진 세계에서 자신의 진리를 구축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타자의 진리에 대한 인식이다. 생태적 주체에게 그러한 인식은 상대성의 관념에 머물지 않고, 아름다움의 윤리로 전진한다. 다시 말해서 세계를 설명하고 윤리적 행동을 하는데 진리보다 더 ‘넓고 근본적인’ 의미를 아름다움에서 찾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떠날 때 진리는 선도 악도 아니다. 진리가 없는 아름다움에 중후함이 없다면, 아름다움이 없는 진리는 사소성으로 전락한다. 진리가 중요하게 되는 것은 바로 아름다움 때문이다.”
생태적 주체에게 평화는 궁극적 이상으로서 이상적 관계요, 이상적 상태이며, 이상적 목적이다. 이 평화는 웅대한 관계성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파괴적 격동을 가라앉히고, 문명을 완성하는 조화 중의 조화’이다. 이 평화는 현실의 아픔에 눈감지 않고 ‘비극에 대한 감수성’을 생생하게 간직한 채, ‘무한성의 파악’, 즉 ‘한계를 초월하는 호소’를 듣는다. 화이트헤드는 이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은 “수많은 아름다움과 무수한 영웅적인 행위와 무수한 대담성이 일어나고 지나가는 한복판에서 영원을 직관”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평화의 감각을 잃은 진리, 아름다움, 모험, 예술은 ‘무자비하고 딱딱하고 잔인한 것’이 되고 만다.
진보하는 사회는 약탈적 풍요 위에 세워진 안락한 사회가 아니다. 진보하는 사회는 인간의 관심사들이 ‘평화’를 이루기 위해 유혹을 받는 사회요, 그것을 이룰 방식으로 ‘비폭력/설득’의 길을 신뢰하는 사회이다. 역사의 진보란 단지 과학적 기술이나 철학적 신념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예술의 감각과 종교의 전망이나 결단 없이 역사는 도약하지 않는다.
사실 종교가 중요하다. 근대문명의 비극은 종교적 전망을 잃은 과학에 의존한 데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반대로 과학적 세계관으로부터 분리된 종교 역시 근대문명을 질곡으로 이끈 원인이 되었다. 자신의 낡은 관념을 수정할 용기를 갖지 못한 종교는 과학에 패배하면서 결국 자신의 중요성까지 잃게 되었고 단지 ‘안락한 삶을 장식하는 형식신앙’이 되고 말았다. 평화(shalom)에 대한 비전으로 ‘직접적인 동의’를 불러일으키는 힘을 잃은 종교, 신의 분노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여 정서에 호소하여 연명하는 종교는 결국 외면 받는다. 그런 이유로 종교는 저항적 주체에게는 단지 ‘도구’였고, 해체적 주체에게는 ‘취향’이 되었다. 그러나 눈앞의 이익과 개체적 만족 너머로 뻗어가도록 충동하는 종교적 힘을 잃은 문명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
억압과 파괴로 얼룩진 문명을 싸매기 위해서는 생태적 주체가 필요하다. 자기 진리에 대한 충실만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감각과 평화의 이상으로 충동질 당하는 영혼이 역사의 품에서 자라나야 한다. 자비로운 열정과 은혜로운 관계에 대해 겸손한 생태적 주체의 등장을 염원한다.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하리라.//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기대하지 않았었다,/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예상하지 못했었다./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에/가장 이른 봄의/차가운 빛 속에서/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기억해 내면서.//나는 지금 두려운가./그렇다. 하지만/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미국 시인 루이스 글릭(Louise Glück)의 <눈풀꽃>(류시화 옮김)이다.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는데, 아직 봄이 오려면 멀었는데, 차가운 눈밭 위로 꽃 한 송이가 고개를 내민다. 안쓰럽게도, 아니 장엄하게도 눈 내린 땅 꽁꽁 언 흙을 뚫고 나와 봄을 부른다. 영어로 ‘스노우드롭’(Snowdrop), 한자로 ‘설강화’(雪降花), 우리말로 ‘눈풀꽃’이다. 코로나(COVID-19) 때문에 지친 지구인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로는 이만한 시가 없겠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건 자연의 이치다. 또 봄이 되면 어차피 천지가 꽃으로 뒤덮일 테다. 한데 시인의 눈은 하고많은 꽃 중에 ‘눈풀꽃’을 바라본다. “가장 이른 봄의/차가운 빛 속에서/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기억해 내면서” 길고 긴 겨울의 절망을 마침내 이겨냈다고 말을 거는 꽃. 연약한 자기가 그리했으니 당신도 그리할 수 있다고 손 내미는 꽃.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1】이어서 생명에 대한 기대를 손톱만큼도 허용하지 않는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에 압도당하고, 차갑게 내리누르는 대지의 무게에 짓눌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절망에 포획되어 죽음 속으로 봉인되는 법이다. 이 봉인은 저절로 해제되지 않는다. 여전히 “축축한 흙 속에” 감금된 몸이지만, 저 멀리서 오는 봄의 발걸음에 “다시 반응”할 줄 아는 예민한 감각이 살아 있어야 한다. 한데 이 감각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두려움’이라는 감정의 늪을 건너지 않으면 안 된다. 눈풀꽃이 위대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 안의 두려움을 직면하고 이겨냈기 때문이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두려움의 힘이 얼마나 세면 기쁨을 느끼는 일이 “모험”이란 말인가? 낡은 세상의 힘이 얼마나 강하면 “새로운 세상”을 마중하기 위해 “살을 에는 바람”을 견뎌야 한단 말인가? 이 대목에서 우리는 감정과 윤리 그리고 정치의 삼각관계를 만난다. 두려움이 정치와 결부되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쉽사리 좌절되기에,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은 단순히 심리학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윤리학의 과제이기도 하다.
2. 사피엔스, 그는 누구인가
지구의 진화과정에서 오랫동안 ‘미물’(微物)에 불과했던 인간에게 자연은 두려운 존재였다. 두려움이 엄습할 때 인간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공격하거나 도망치거나! 지구 드라마의 ‘엑스트라’ 시절, 인간은 도망 다니기에 바빴다. 그러다가 서서히 ‘주인공’ 자리를 꿰차게 되면서 드디어 공격 스위치에 불이 들어왔다. 때마침 “땅을 정복하라. …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세기 1:28)는 성경 말씀이 자연을 식민지화하려는 인간의 제국주의적 심성에 불을 질렀다.
기계론의 유명한 은유, 곧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시계장치에, 그리고 하나님을 시계공에 빗대어 설명하는 방식은 14세기 프랑스 주교 니콜 오렘(Nichole Oresme)이 제안한 것이다.【2】 요컨대, 자연을 기계론적 세계관 아래 포섭하여 인간이 알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죽은 물질’로 보는 시도가 대체로 경건한 기독교인들에 의해 취해졌다. 그 한 보기가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이다. 그가 주도한 18세기 물리학은 자연을 결정론 법칙에 종속된 수동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게 주요 업무였다. 그렇게 해서 막스 베버(Max Weber)가 ‘세계의 탈마법화(disenchantment)’라고 부른 일련의 과정이 완성되었다. 근대인 대부분은 인간이 자연법칙까지도 틀어쥐고 있다는 착각에 병적으로 매료되었다.
자연이 ‘생명을 부양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사악한 마녀’의 이미지로 재현된 시기는 공교롭게도 셰익스피어의 희곡 <말괄량이 길들이기>, 그림 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 안데르센의 동화 <분홍신> 따위가 인기를 끌던 시대와 상응한다. 다시 말해, 계몽(Enlightenment)이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여성에 대한 남성의, 유색인종에 대한 백인종의, 육체에 대한 정신의, 감성에 대한 이성의, 죽을 수밖에 없는 숙명에 대한 영생의 자유를 도모하는 “주체의 자아 강화 과정”【3】에 다름 아니었다.
노자(老子) 가라사대, 큰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고 했던가?【4】 그동안 지구가 여러 차례 경고음을 냈는데도 인간은 듣지 못했다. 아니 들을 마음조차 없었다. 인간의 이러한 오만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 팬데믹, 그중에서도 문명의 성취를 마음껏 뻐기는 오늘날 인류를 속수무책으로 쓰러뜨리는 코로나 역병이다. ‘2020년 지구 이야기’의 주인공은 단연 ‘코로나’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그러니까 코로나로 인한 혼돈은 인간이 주어가 아니라 목적어가 된 최초의 시간에 관한 반응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간의 왕성한 지배욕과 지배력에 제동이 걸렸다. ‘알파고’를 만든 구글(Google)이 인간에게 영생·불사·불멸을 가져다줄 ‘길가메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는데, 그래서 인간 종(種)이 ‘호모 데우스’(Homo deus)로 진화할 날이 코앞에 닥쳤다는데,【5】 바이러스 하나 제어하지 못한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가 무색하기 그지없다. 그러니까 코로나는 인간에 대해, 나아가 지구 이야기에서 인간의 등장이 지닌 함의에 대해 뿌리에서부터 다시 생각할 때가 왔다는 신호다.
과학-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지구는 놀라운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했다. 항상성이란 ‘일희일비하지 않는 뚝심’이다. 어림잡아 46억 년을 지내는 동안 소행성 충돌이나 빙하기 같은 별의별 큰일을 겪으면서도 지구가 굳건히 버틸 수 있었던 밑힘이 ‘항상성’이었다. 그러던 중 지구의 항상성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 ‘악당’(villain)이 등장했으니, 바로 ‘사피엔스’(sapiens)다.
사피엔스는 등장부터 시끄러웠다. 같은 ‘호모’(Homo, 사람) 속에 속한 네안데르탈렌시스(neanderthalensis), 솔로엔시스(soloensis), 플로레시엔시스(floresiensis), 데니소바(denisova), 루돌펜시스(rudolfensis), 에르가스테르(ergasther) 등 사촌들을 단박에 제치고 독무대에 올랐다. 지구생태공동체에서 이전까지 별 볼 일 없던 인간의 지위가 단숨에 맨 윗자리로 뛰어오르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사피엔스는 가는 곳마다 멸종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인지혁명이 일어날 즈음 지구에는 몸무게 45킬로그램이 넘는 대형동물 약 2백 속이 살고 있었다. 농업혁명이 일어날 즈음 이들 중 남은 것은 약 1백 속에 지나지 않는다. … 우리는 생물학의 연대기에서 단연코 가장 치명적인 종이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6】
그리하여 ‘사피엔스’의 별명은 ‘터미네이터’(Terminator)가 어울린다. 사피엔스가 지구별에 등장해 문명을 건설한 이래, 지구별의 뭇 생물·무생물이, 나아가 지구별 자체가 종말로 치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세대는 “자신들이 마지막 세대에 속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첫 번째 세대”【7】라는 지적이 적확하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는 ‘인류세’(Anthropocene)【8】의 끝에 와 있는 것이다.
3. 코로나라는 이름의 예언자에게 귀 기울이기
코로나는 사피엔스가 지구의 생리를 다 안다는 ‘착각’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여실히 폭로한다. 사피엔스는 이름만큼 그렇게 슬기롭지 않다. 게다가 지구는 살아 있다! 살아 있는 생명체에 대해, 그가 설령 연인이나 부부 혹은 자식일지라도, 다 안다는 망상은 언제나 폭력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 채로 놓아둘 줄 알아야 슬기롭다. 다른 말로 하면, 타자의 타자성을 인정해야 한다. 평화의 첫걸음은 여기서 시작될 것이다. 평화는 상태가 아니라 관계의 언어이기 때문이다.【9】
그러니까 코로나는 근대 인간(Modern sapiens)이 욕망한 ‘관리자’(manager) 이미지를 반성하도록 촉구한다. 인간은 지구를 ‘관리’하기에는 너무나도 무지하고 무능하다. 그래서 서구 기독교가 ‘청지기’(steward) 신학을 들고 나왔지만, 이 역시 오만하기는 마찬가지다. 속물적인 인간은 자본과 권력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기가 불가능하다. 한편,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은 ‘돌봄이’(caretaker)라는 단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도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지구가 인간을 돌보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이렇게 인간이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한 채 헤매는 사이에 코로나가 닥쳤다. 특정 국가의 국민 또는 아시아 사람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재난 인종주의’는 두려움의 다른 표현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두려움이라는 이 원초 감정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군주제: 한 철학자가 바라본 우리 시대의 정치 위기』(The Monarchy of Fear: A Phiosopher Looks at Our Political Crisis, NY: Simon & Schuster, 2018)【10】에서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은 두려움이 항상 지배욕 혹은 제국주의와 결부되는 현상을 분석한다. 그리고 이 질곡에서 벗어날 실마리로, 두려움이 사실상 지독한 ‘자기애적 감정’(narcissism)이라는 데 주목한다. 아기뿐만 아니라 전투를 앞둔 군인이나 진단을 앞둔 환자도 마찬가지다. 관심이 온통 자기 내부로만 쏠린다. “자신의 신체가 그들의 세상 전부가 된다.”【11】
하여 두려움을 극복하는 문제는 유치한 나르시시즘을 떨치는 과제와 다르지 않다. 여기에 사랑이 들어선다. 사랑은 자기라는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경험이다. 누스바움의 말에 기대면, “절대 왕정에서 민주주의적 관계로의 이동”【12】을 경험하는 길은 오직 사랑을 믿는 길밖에 없다. 그녀는 “타인의 삶을 상상하는 능력 … 감사하는 마음과 (받은) 사랑에 보답하려는 마음속에 진화의 근거가 있을”【13】 거라고 말을 건넨다. 나의 말로 바꾸면, 사피엔스가 심비우스(symbious)로 변태하지 않고는 답이 없다.【14】
심비우스는 단순히 ‘민주(民主) 자아’(democratic self)가 아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코로나의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면서 깨닫게 된 것, 깨달아야 하는 건 바로 이 지혜다. ‘사회’ 안에서 ‘타인’과 공존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선결되어야 할 과제는 ‘지구’ 안에서 함께 몸 붙여 사는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잘 지내는 법을 배우고(學) 익히는(習) 일이다.
그러니 심비우스는 ‘생주(生主) 자아’(biocratic self)라 할 것이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을 행동강령으로 삼지 않을뿐더러, 지구생태공동체에서 오로지 인간만 번성해야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히지도 않는다. 민주적 자아의 필요조건이 ‘자기애’를 넘어서는 일, 타인을 걱정할 수 있는 능력,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이라면, ‘인류애’마저 넘어 ‘신의 지문’이 새겨진 우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피조물의 복지에 헌신하는 이가 심비우스다.【15】
유대인 사상가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Abraham Joshua Heschel)은 “우리는 사람의 ‘본성’을 서술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든다”【16】는 점에서 여타 사물이나 동물과 구별된다고 지적했다. 달리 표현하면, 자연계에서 오직 인간만이 ‘문화’를 창조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이유가 “땅을 갈 사람”(창세기 2:5)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성서의 보도가 이를 잘 말해준다. 문화라는 영어 단어(culture) 자체가 ‘경작’을 의미하는 라틴어(cultura)에서 유래한 점을 기억하면, 인간의 독특성이란 바로 신에게 받은 ‘문화 명령’을 가리키겠다. 즉, 현생인류와 5만 년 전 조상 사이에 존재하는 주요한 차이는 유전자가 아니라 문화다.
심비우스는 자신이 지구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자각한다. ‘지구의 자의식’으로 깨어있어야 함을 안다. 지구가 얼마나 연약한 별인지, 얼마나 아픈 몸인지 절절히 느낀다. 열이 나고 숨을 쉬기 힘든 코로나의 증상이 기후 변화에 시달리는 지구별의 증상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포획되어 ‘티나’(TINA: There Is No Alternative)를 입에 달고 사는 대신에 “기쁨에 모험을” 거는 쪽을 택한다. ‘타타’(TATA: There Are Thousand of Alternatives)를 노래하며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으로 들어간다. 아니 차라리 심비우스가 바람이다. 심비우스의 눈길이 머무는 곳, 발길과 손길이 닿는 곳마다 생명의 바람이 일어난다.
“나는 내 운명을 안다. …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 니체(Friedreich Nietzsche)의 세기말적 선언을 이렇게 수정하자. “나는 내 운명을 안다. … 나는 사피엔스가 아니다. 나는 심비우스다.”
【8】 2016년 8월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국제지질학총회(International Geological Congress) 참석한 ‘인류세 워킹 그룹’은 지구가 1950년 즈음부터 새로운 지질학의 시대, 곧 ‘인류세’에 접어들었음을 공식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력한 ‘황금 못’(golden spike: 각 시대를 구분하는 주요 기준)으로는 방사성 물질, 플라스틱, 닭뼈 등이 지목되었다. 『유네스코뉴스』 747(2018), 7쪽.
【9】 구미정, “평화의 카이로스: 일상의 폭력 극복을 위한 기독교윤리학적 성찰”, 『신학논단』 65(2011).
【10】 이 책은 원제와 달리 다음의 제목으로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마사 누스바움, 『타인에 대한 연민』, 임현경 옮김(알에이치코리아, 2020).
【11】 윗글, 60쪽.
【12】 윗글, 62쪽.
【13】 윗글, 63쪽.
【14】 이하의 논의는 구미정, “코로나 시대에 다시 생각하는 ‘하나님의 형상’”, 『신학연구』 76집(2020) 참고; 구미정, 『호모 심비우스: 더불어 삶의 지혜를 위한 기독교윤리』(북코리아, 2009)도 볼 것.
【15】 이 대목에서 나는 백여 년 전 이 땅,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이 된 한반도에서 ‘대동’(大同)을 꿈꾸었던 선각자들이 떠오른다. 백암 박은식, 수운 최제우 같은 이가 그들이다.
인성(人性)은 인간의 기본이 되는 정신적인 전제이고 순환경제는 사회경제의 대안적인 틀을 말하는데, 이 둘을 연결시키는 것은 사회과학에서는 환영 받을 수 없다. 인간이 자연생태와 관계를 가지는 방식 자체가 문화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 그 물질적 측면을 말하면 경제이고, 그 중에서도 산업과 노동은 사람이 자연의 물질들을 직접 대하는 활동이다. 산업은 노동을 조직하는 방식이다. 사람은 자연 속에서 노동하는 인간으로 존재한다. 노동하는 방식과 형태를 통해서 삶을 영위하고 자신을 표현한다. 산업의 조직이 자연에서 벗어난 것일 때 이는 노동을 폭력적인 것으로 만들고 사람의 인성을 파괴하고 건강을 소진시킨다. 이러한 타율적인 노동에서는 창조적인 결실도, 노동방식도 나올 수가 없다. 노동이 문화로부터 소외되고 자연이 산업과 노동의 과정에서 파괴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다. 그것은 경제와 경제학의 전제로 되어 있는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이다. 첫째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아까워하지 말고 빨리 처분해야 한다는 생활 관념이다. 그럴 때 생활공간이 확보될 수 있고, 물자의 유동성이 커지고, 수요도 창출되고 경제의 흐름이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인구 또는 노동력은 생산에 필요한 소비 수요의 원천으로서는 중요하지만, 생산요소로서는 별로 능률적이지 못하고 사용을 줄여야 할 대상이라는 관념이다. 이러한 생각에서 두 흐름이 나타난다. 생태주의자들은 물질과 에너지 사용량이 지금의 생태환경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크게 넘으므로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케인즈주의자들은 시장이 커야 규모의 경제가 성립하고 산업이 안정적으로 발달할 수 있으므로 나라의 인구 규모가 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둘 모두 인구를 가치창출의 주체로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두 고정관념으로부터 사람을 가치창출의 원천으로서 소중히 여기고, 물자의 취득과 처분도 능률보다는 그 쓰임새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가치의 원천이 노동에 있다는 노동가치설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사람의 창조적 능력이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생산요소이며, 건강한 생태환경에서 사람을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노동자가 존중을 받으며 창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투자가 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회의 제도적 뒷받침이 이러한 사람과 노동과정을 도와주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를 삼는다면, 지금과 같은 산업의 형태는 달라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경제사상은 이런 측면에서 재해석될 수 있다.
동학의 가르침에는 물건에 대한 존중이 경물(敬物)이라는 개념으로 강조되고 있다. 더 이상 쓸모 없게 된 물건을 과감하게 정리하여 버리는 것이 최근에 생활의 지혜로 강조되고 있고, 여기저기서 물건들을 끌어 모아서 집에 발 디딜 틈 없이 채워놓는 사람들이 정신적인 결함을 가진 이상한 사람들로 화제가 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이런 세태와 경물(敬物)의 사상은 서로 상충되어 보인다. 형체를 가진 물건, 삶에 도움을 주어온 물건에 대한 애착심이나 버려진 물건에 대한 연민은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감정일 수가 있고, 창조적인 쓸모를 생각하게 하여 새로운 창조의 원천이 될 수가 있을 것 같다. 원천적인 사용 및 폐기량 절감(Reduction) → 재사용(Reuse) → 물질재활용(Recycle)의 3R 또는 폐기물 제로의 운동은 쓰고 버리는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저항이면서 돈을 떠나 물건을 아까워하는 사람의 고유하고 선량한 본성을 되찾는 운동으로 볼 수가 있고, 버려진 물건을 재료로 한 창조적 용도의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될 수도 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깨어 있는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3R 또는 폐기물 제로 운동은 피상적으로만 본다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산업문명의 부작용을 완화해 주고, 그 산업체계의 일부를 이루는 재생산업의 재생비용을 절감해 주는 선량한 소비자의 산업경제에 대한 책임 분담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시간을 들여 재활용을 위한 분리배출을 실천하고, 재사용과 원천적 절약에 노력해 가면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간다면, 이는 인구 전체의 움직임으로 발전할 수 있다. 물건을 낭비하고 폐기하는 생산소비 문화는 사람 역시 값싼 생산의 요소로서 남용하게 되고 이에 따라 풍요한 물질 생활 속에서도 삶의 질과 환경의 질은 점점 악화되고 자원의 고갈과 지구환경의 황폐화, 사회갈등의 폭발은 피할 수 없는 미래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식의 변화와 문화적 변혁이 토대가 되어 민주적인 정치를 통해 생태위기를 극복해 갈 수 있는 정책들이 개발되어 갈 수가 있다.
순환경제라는 용어는 자원재활용에서 자원순환을 거쳐 경제 체제 자체로 더욱 확장된 개념이며, 사실은 과거의 전통시대의 경제에서 유사하게 구현되었던 형태로서 현실의 경제 체제가 아니라 관념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R운동에서 확장된 관념이고, 이러한 관념적인 체제를 목표로 하여 여러 가지 제도들과 정책들을 설계해 갈 수 있다.
적어도 순환경제는 근대 경제학의 성장 중심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생태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건강한 먹을거리와 주거지, 대자연 속에서 배움과 치유와 재충전을 하게 하는 문화 활동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을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수계(水系)를 단위로 한 순환경제가 이러한 원리에 따라 운영될 때 그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노동은 건강한 노동이 될 것이고, 이러한 노동자들의 노동과 삶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으로서 생태적 영성이 중요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2. 산업사회에서의 자원사용 관행
산업사회에서 통용되는 경제학에서 투자의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은 수익률이다. 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하여 노동이란 생산요소를 최소화하고 생산 공정을 자동화하며 저렴한 에너지와 원재료를 투입하여 원가가 낮고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생산하려는 노력이 경주된다.
저렴한 비용으로 에너지와 원재료를 마련하기 위하여 생태환경이 착취되고 고갈된다. 생산과정에서는 끊임없는 노동절약적 기술혁신과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의 지위가 하락하고 소모품처럼 과도하게 사용되다가 버려지며, 또한 시간적인 능률을 극대화하여 다량의 물자가 아낌없이 산업폐기물로 버려진다. 그리고 생산된 많은 제품들이 인위적으로 짧은 수명을 가지도록 조정되어 대량으로 폐기되도록 한다. 이를 통해 2차 제품, 중고품 시장도 생겨나며, 폐제품과 포장에서 원료물질을 회수하는 자원재활용이 하나의 산업으로서 자리 잡는다. 폐제품과 포장의 전량 소각과 매립으로는 생태환경뿐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환경 자체가 보장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자원순환 또는 재활용 정책은 이러한 자원회수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며, 이를 잘 관리하는 것은 소각과 매립의 허용 용량이 제한된 상태에서 환경을 보전하는 데 큰 중요성을 가진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구매가 늘어 택배를 위한 포장재가 대량으로 발생한 반면에 세계 전체적으로 경제활동은 침체되어 원재료 가격이 하락하고, 이에 따라 재생원료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어 폐자원 수거의 동기가 약화되면서 폐제품의 재활용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적체 현상을 보이게 되었다.
자원재활용 또는 자원순환은 경제 자체가 무한경쟁의 산업 논리로 운영되는 가운데 하나의 작은 고리를 담당하면서 경제 시스템의 작동 불안에 따라 가장 먼저 침체되는 부문이고, 이에 종사하는 많은 인력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으로서 이에 따라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자원재활용이나 자원순환은 자본주의적 산업경제의 논리를 극복하는 활동이라기보다는 그 경제의 부산물로서 발생하는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는 부속물로서 기능한다는 한계점을 가진다.
그렇기는 하지만, 자원재활용 사업은 소비자들의 분리배출 노력에 상당히 많이 의존하며, 분리배출의 노력 여하에 따라 재생자원의 품질과 부가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분리배출 방법에 대한 교육과 자원의 순환을 통한 생태환경의 보전 원리에 대한 교육이 환경교육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실시된다. 이러한 교육과 분리배출의 체험을 통해서 자원 순환과 생태 환경보전에 대한 의식을 많이 가지게 되는 교육적 측면이 있다.
3. 순환경제 개념의 등장
중국에서 2008년도에 순환경제촉진법이 시행되면서 순환경제가 제도적인 용어로 등장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전통적인 농경문화에서 발달되었던 중국의 전통 철학사상, 마르크스를 중심으로 한 19세기 사회주의 사상과 관련이 깊은 변증법적 유기적인 자연관과 연결되며, 중국의 산업발전 과정에서 직면하는 자원과 환경오염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물질흐름의 순환 고리를 형성하는 지혜를 동원하는 지식경제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발상이다. 중국에서는 환경보호부가 아닌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라는 경제계획 단위에서 순환경제 정책을 담당하고 있다.
그 후 유럽연합에서 순환경제를 표방하면서 포장재, 전자제품 등의 획기적인 재활용 증대 노력에 순환경제(circular economy)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와 병행하여 생물경제(bio-economy)의 이니셔티브가 가동되고 있다. 이는 산업에 필요한 원재료와 에너지를 화석연료와 지하자원에서 얻는 것을 대체하여 지상에서 재배하는 식물과 육상과 수중의 동식물 등 바이오매스를 가공하여 확보해 가는 노력을 말하는 것이며, 그린 케미스트리(green chemistry)라는 이름으로 화학 등 소재산업과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많은 노력이 행해지고 있다. 이러한 생물경제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나 폐기물은 자연스럽게 토양으로 돌아가 자연으로 환원될 수 있는 성질의 것으로서 순환경제와 생물경제를 합하여 순환형 생물경제라는 용어를 중요한 노력의 방향으로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순환경제, 생물경제 그리고 순환형 생물경제의 노력들은 자본주의적 산업 문명이 초래한 화석연료의 다량 사용에 의한 온실가스 문제와 환경 중으로의 폐기물의 확산으로 인한 오염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들로서 현재 많은 주목을 받고 기술적으로도 연구되고 있다. 다만 유럽을 중심으로 본다면 순환경제는 주로 금속과 화석연료계통의 플라스틱 원료, 종이, 유리 등의 물질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에 생물경제는 농업, 임업, 수산업 등에서 생산되는 바이오매스 물질을 대상으로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순환경제라는 용어가 법령에 도입되지 않고 있지만, 2018년에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폐기물의 발생을 최대한 억제하고 발생된 폐기물의 순환이용 및 적정한 처분을 촉진하여 천연자원과 에너지의 소비를 줄임으로써 환경을 보전하고 지속가능한 자원순환사회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하는 자원순환기본법이 시행되면서 “자원순환사회”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법령은 독일의 “순환경제 및 폐기물의 친환경적 처리를 위한 법률”(1994)이나 일본의 “순환형 사회형성을 위한 기본법”(2001)을 모델로 삼고 있고, 자원순환을 넘어서 자원순환사회 또는 순환경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일정하게 담고 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는 여전히 폐기물관리법의 제도를 근간으로 이를 일정 부분 보완하는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행정이 여전히 기계적 관리의 사고방식을 가진 관료기구의 행태에서 달라지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4. 생태계와 노동을 존중하는 순환경제의 필요성
지금의 생태계 위기를 초래한 산업의 운영 논리를 바꾸지 않으면, 자원재활용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구와 그 안의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이 쇠퇴해 갈 것이라는 전망이 점차 강하게 대두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인간과 토지, 원재료, 에너지 등의 생산요소들의 조합을 전체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의 자본주의적 산업사회의 경제 패러다임에서도 경제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구집단의 교육수준과 건강, 정신적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특히 고전경제학의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경제학 체계에서 모두 강조되었다. 이러한 요인이 역사적으로 여러 나라들 간에 경제적 수준의 차이를 발생시켜 왔다. 그러나 나라와 민족의 관점을 떠나서 보더라도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환경의 불확실한 변동의 가능성 앞에서 이에 창조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은 외부에서 도입되는 기술이나 자금이 아니라 역시 인구집단의 능력에서 나온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노동을 지혜나 지식, 창조적 능력에서 소외되어 피동적이고 지시 받은 대로 행하는 단순 작업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이는 노동을 최대한 절약해야 할 비능률적인 생산요소로 취급하는 금융자본의 논리에 길들여진 결과다. 이러한 금융자본의 논리에 따른다면 불확실한 자연여건의 변화에 대응할 유일한 길은 첨단 기술을 국내의 역량으로 개발하거나 외부에서 도입하여 자본투자를 통해 돌파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적응 방식은 지구환경을 더 악화시키며 사회의 양극화를 더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창조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인적 자원으로서의 노동자의 새로운 위상정립을 통해 집단적인 힘으로 기후변화의 진행에 적응해 가야 하는데, 이는 생태환경의 건강과 일하는 사람의 건강을 같이 중시하는 산업 운영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노동자들의 의사결정 상의 지위가 확보되어야 하고, 건강과 생태환경에 대한 이해를 돕는 지식과 문화가 노동 문화로서 자리 잡아야 한다. 이를 통해 엘리트나 자본가들이 아니라 다수 인구집단의 의사에 의해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향한 노력이 진행되어야 한다.
5. 순환경제의 과제
순환경제는 전통적으로 생활과 역사, 언어 특색, 문화에서 동질적인 지역이었던 유역 내지 수계(水系)를 단위로 그 지역의 풍토와 자원, 인력을 활용하여 그 지역의 문화에 부합하는 의식주 형태를 이루어 가면서 그 지역의 독특한 생물자원을 활용한 건강과 의료, 교육, 문화예술을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이러한 순환경제 권역은 지형과 수계(水系)에 따라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우리나라에는 수계를 중심으로 대권역 21개, 중권역 117개, 표준권역 840개로 수자원지도가 그려져 있으며, 이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순환경제의 권역이라고 볼 수 있다.
당연히 해외에서 도입하는 화석연료와 지하자원, 원거리에서 끌어오는 전기 에너지의 사용은 최소화하고 지역에서 확보되는 재생에너지원과 생물재료를 개발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많은 전통지식을 발굴하여 응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자본에 따른 엘리트주의적 산업 운영 방식이 아니라 가능한 최대다수의 사람들이 지혜를 모을 수 있는 협동조합 등의 대안적 기업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 현재의 토지이용 형태가 생태계의 온전성(integrity)을 저해하는 형태였다면, 순환경제에 따른 물질 흐름에서는 지역의 에너지원과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므로 토지 이용 형태가 크게 달라져야 하고, 생태적인 측면에서도 토지가 효율적, 경제적으로 이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토지 사유제도의 개혁도 필요하다.
각 단위지역별로 자치단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되는데, 특히 이러한 순환경제의 패러다임에 맞는 교육기관을 세워서 인재를 양성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중등 및 고등교육 기관의 기존 교육 형태를 절반 정도는 전환하여 해당 지역의 의식주 문화와 공예, 기술을 담당하는 인재를 양성하도록 하여야 한다.
산업 사회에서 중심이 되어 온 상품인 자동차 등의 운송수단, 통신수단, 전자기기 등의 생산부문은 기존의 방식대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추구하는 대기업 중심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지만, 생태환경 보전의 조건이 더욱 엄격하게 지켜져야 하고, 노동자 사용의 관행은 지금과는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공장부지 등을 위한 방만한 부동산의 확보는 규제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녹색전환은 지금의 자본 중심 체제에서는 시도하기가 물론 어렵다. 예컨대 이에 필요한 토지 부동산 개혁 자체가 지금의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 상당한 정도의 지방분권이 가능해야 하고, 지금보다 훨씬 강한 토지 공개념, 경제학 지식 및 교육내용의 전면적인 재검토,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되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와 교육 체계의 수립, 국가의 산업정책, 에너지 정책의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경제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적자원의 역량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 볼 수 있으며, 특히 기후 위기와 기후 변화로 인한 생태환경의 대변동의 시대에 적절하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엘리트 중심적이고 자본 중심적인 지식생산과 기술적 응용 체제만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렵고 노동하는 인구 저변의 지식과 의식 수준, 그리고 창조적 역량을 높이는 데 정책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노동정책과 교육정책, 보건복지정책, 사람들의 먹을거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농림수산식품 정책, 깨끗한 물과 공기, 생태환경을 보호하는 환경정책, 건강하고 충분한 주거환경을 보장해 주는 주택정책, 에너지 공급정책 등이 인적 자원의 건강과 능력 향상을 중심으로 통일적으로 수립되어야 하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정치와 정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야 한다.
전자제품, 화학제품, 자동차, 금속제품 등을 생산하여 국제 시장을 상대로 활동하는 대기업 중심의 산업 체제를 지원해 주는 자본 중심적 엘리트주의 산업 정책은 청년인재들의 신규 창업과 창조적인 사업활동을 도와주는 산업 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것은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과제다. 민주주의는 최대다수의 사람들이 주인으로서 참여하는 정치이므로 인구 전체의 고른 발전과 복지를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는 기후위기의 시대에 대처하는 데서 더욱 더 절실하다.
<산업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라는 슬로건을 앞세우고 그동안 8회에 걸쳐 다른백년 이사를 겸직한 한윤정박사가 주도하는 생태문명전환 2020 프로젝트에 제출된 철학적 문건과 시대적 담론을소개하여 왔습니다.
이에 더하여 다른백년은 기후변화와 생태붕괴로 인하여 발생하는 다양한 위기의 신호에 대한 보고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대안의 글을 매주 금요일마다 연속으로 게재합니다.
동료 과학자들에 모범을 보이고 시민사회 특히 지구촌의 정치집단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하여, 17명의 전문 과학인들이 생물다양성의 훼손, 기후위기, 지나친 소비행태와 인구증가 등 주제가 지구라는 행성에 미치는 전반적인 문제점을 환기시키기 위하여 펜을 들었다.
“우리의 성명은 포기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행성의 심각한 상황에 대하여 정치지도자들이 각성하도록 강한 충격(cold-shower)을 주어서, 미래의 황량한 위기를 모면하는 기획에 착수하도록 하고자 함”이라고 서두에 밝히면서 ‘Frontiers in Conservation Science.’ 저널을 통하여 미국과 호주 멕시코 등의 관련 전문가들이 함께 서명하여 보고서와 성명을 발표하였다.
Stanford대학교의 ‘생명보존센터’를 책임지고 있는 Paul R. Ehrlich 교수와 동료들은 현재의 인구증가 추이 등 현안들이 야기할 미래에 대하여 모두 공포에 떨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1988년 당시에 콜롬비아 대학의 지구학 교수이자 NASA 우주연구센터의 책임자이었던 James Hansen 교수가 기후위기에 대하여 연방의회에서 “과학자들의 침묵이 뒤에 엄청난 문제를 야기시켰다”고 증언을 한 것을 환기시키면서, Ehrlich 교수는 과학자들은 사회와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learn to be communicators)고 고백한다.
그는 직설적인 표현을 통하여 현재 지구가 매우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자신들의 보고서에 언급한 끔찍한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수행했던 전시동원체제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 대규모 집단적인 멸종, 공공보건의 퇴조, 기후위기의 현재화, 대규모 난민 발생 그리고 자원부족으로 인한 전쟁 등.
“우리가 만든 현재의 보고서 내용은 물론 인기가 없겠지만 모두의 경각심을 불러오고자 한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하여, 인류가 직면한 엄청난 위기상황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과학자인 우리들이 솔직하고 정확하며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서명에 참여한 UCLA의 ‘환경과 지속’연구소의 Daniel T Blumstein 교수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CommonDream의 편집진에 이메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내 왔다 “과학자들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 내듯이, 정치인들은 자신들에게 위임한 유권자인 시민들을 대표하여 현안적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지, 기업과 조직의 이해에 휘말려서는 안된다.”
보고서는 코로나바이러스의 팬데믹으로 인하여 현재까지 2백만 명이 넘는 인류가 희생된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지난 해 코로나-19의 위기는 장래에도 발생할 수 있는 공공보건의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인류가 ‘더이상’의 자연을 파괴하는 것을 중단하도록 가르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현재의 지구시스템에 코비드가 끼친 폐해와 더불어 권위주의적 정치지도자들이 발호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면서 “이들이 생태적 문제를 여전히 지속가능하지 못한 폰지-게임처럼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장래에 더욱 치명적인 전염병 팬데믹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더하여 사회의 불안정, 전쟁과 대규모 기근들이 예상된다. 이미 인지하고 있었지만, 인류의 문명이 붕괴될 것이라는 예감에 충격을 받고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북미에서만 작년 한 해에 심각한 허리케인과 가뭄 그리고 산림화재 등으로 262명의 사망자와 950억불의 재산손실이 발생하였다.
이는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not the new normal). 우리가 현재의 관행을 지속한다면 재앙적 상황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 지구(행동)의 친구들. 2021-01-13.
이들 과학자들은 150여 건의 연구보고서를 인용하면서 생물다양성의 소멸과 지구생태의 위기가 가져올 결과에 대하여 새롭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인용한 연구보고서의 하나인 세계자연기금 (World-wide Fund for Nature, WWF)의 지난 9월 보고에 따르면, 1970년과 2016년 즉 46년간에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와 양서류 그리고 어류 등이 68%가 사려졌다.
“전지구적 규모의 팬데믹을 겪으면서, 생물다양성과 야생의 소멸을 반전시키고 인류의 건강을 지키고 가축을 보호하기 위하여, 전례없는 국제적 연대를 통하여 긴급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매우 긴요해졌다”고 세계자연기금의 책임자인 Marco Lambertini가 상기 보고서에서 언급하였다.
작년부터 기후위기에 대하여 전세계 수천 명의 과학자들과 결합하여 오래곤 주립대학교의 연구인력을 지휘하고 있는 William J. Ripple 교수 등은 상기의 보고서에 화답하듯이,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필수 작업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하면서, 이를 진행하기 위하여 대규모의 전시동원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인류 자신이 생물다양성의 급속한 소멸을 야기하고 있으며, 복잡한 생명체계에 대한 지구의 회복능력을 훼손하고 있다. 그러나 주류사회는 이러한 소멸의 규모를 파악조차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인류의 문명이라는 작품(fabric)이 점차적으로 부식되고 있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고 보고서는 주장한다.
생물다양성은 지구에 있는 생명을 지지하는 받침대이다.
“실제로 생태계와 모든 생명현상에 대한 현재의 위협 정도는 해당분야의 전문가들도 파악하기 어려운 주제이다. 문제는 그러한 위험에 대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과 정치적인 이해로 인하여 일방적 무시와 단기적 이해가 서로 얽히면서, 생존을 위하여 긴급한 행동을 취하는 것조차 방해를 받고 있다”고 보고서는 폭로한다.
“여러 가지 해결방안이 제시되고 있는 와중에도, 인류의 미래기획(enterprise-성장추구?)이 요구하는 지속적인 확장에 따라 생물다양성의 소멸과 생존의 위협이 무자비하게 진행되면서, 보충적이며 추가적인 해결 조치들의 규모가 충분하지 못하게 되었고, 현재로서 제6차 멸종의 시기로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이처럼 생물다양성이 빠르고 재앙적인 수준으로 소멸되면서, 생태시스템이 제공하는 서비스(혜택) 역시 급격하고 위축되고 있다. 결과로써 탄소포집(제거)능력과 수분작용이 저하되고 토질이 악화되면서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수질과 대기가 나빠지고 잦은 홍수와 화재 등이 발생하게 된다.”
이에 더하여 2050년경에 세계인구가 100억 명에 접근하게 되면, 거대한 인구규모와 지속적인 증가가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한다. 인구조밀, 실업문제 그리고 사회시설의 미비와 정치적 혼란 등으로 식량부족과 토질저하, 생물다양성의 소멸 그리고 팬데믹의 가능성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다.
순환재사용, 플라스틱과 육류소비 줄이기, 자가용 대신 공공교통 사용하기, 비행기 덜타기 등 일련의 활동 모두가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생물다양성과 인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절실한 변화 요구의 속도를 따라 잡을 수 없다 – —Daniel Blumstein, UCLA
보고서는 또한 오염원인 에너지와 탄소중심의 음식문화가 지구생태에 미치는 영향을 상술하면서 “기후위기를 극복하려면, 2050년 이전에 화석연료의 사용을 중단하는 것에 더하여, 인류가 대체에너지로 탈-탄소화를 실현하기 이전에라도, 생태계 복원에 노력해야 한다”고 요청하고 있다.
그 동안 생물다양성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와 목표설정에 실패하면서 “어느 국가에서도 고용과 공공보건 경제성장과 통화안정 등 주요 현안들만큼 생물다양성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고 고발한다.
기후위기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만큼, 생물다양성의 소멸이 가져다 주는 위험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이를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는 매우 부족한 내용이지만 파리기후협약에서 합의한 목표설정조차 실현하려는 노력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미합중국과 호주 브라질 등에서 수구적 정치집단들이 집권하면서 반환경적인 의제들이 등장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다행히 도날드 트럼프는 재선에 실패하였다). 이들 과학자 집단은 대통령에 당선된 조 바이든이 후보 시절에 제시하였던 기후관련 공약을 실천해주길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바이든이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뉴스이지만, 이는 필요한 변화의 요구에 비하면 하찮은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다.
조 바이든 신임대통령이 전직 국무장관 출신인 존 케리를 기후특사로 임명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Ehlich 교수는 지적하면서도, 사회일각에서 파리기후협약의 목표가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주장이 점차로 확대되면서, 일을 제대로 추진하려는 바이든에게 정치적 부담이 작용할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조 바이든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고자 추진하는 행정명령의 계획들이 연방의회 또는 연방대법원에서 제동이 걸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순환재사용, 플라스틱과 육류소비 줄이기, 자가용 대신 공공교통 사용하기, 비행기 덜타기 등 활동 모두가 중요하지만, 이는 생물다양성과 우리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절실한 변화 요구의 속도를 따라 잡을 수 없다고 UCLA의 Blumstein 교수는 지적하면서 정치적 격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항구적인 성장정책을 포기하고 생산활동에 환경의 비용을 부담시키는 가격의 외부효과로 화석연료의 시대를 종결시킬 수 있는 정치인들을 선출해야 한다고 유권자인 시민들에게 요청한다. 그는 또한 교육기회의 접근성과 재(순환)생산의 통제, 기업의 로비활동 규제 등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정치인들이 시민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정치자금법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쓰레기들이 누적되는 것(부의 집중?)을 막고, 모두에게 평등과 사회적 안녕을 가져다 주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Blumstein은 첨언한다.
Blumstein UCLA 교수와 16명의 과학자들이 연서명한 보고서는 국제사회가 직면한 거대한 도전의 과제를 현실적 상황으로 받아 들어야만 미래의 파국적 재앙을 모면할 수 있다는 전제를 설정한다.
“생태계의 미래와 인류의 안녕을 다루는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과학자) 집단에게 현재의 엄청난 도전 상황을 외면하지 말고(sugar-coating) 일단의 침묵을 깨면서 사실을 사실대로 폭로하는 것이 명령적인 의무사항이다” 면서 “상황을 호도하거나 무시하면 인류의 미래기획(Enterprise)이 종말에 이르게 하는 최악을 맞이할 수 도 있다”고 보고서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전세계에 걸쳐서 새로이 과학보고서를 작성한 수십 명의 전문가들은 곤충류의 급격한 감소에 대한 우려를 재확인하면서, 각국의 정부와 시민단체들에게 곤충의 멸종이 가져올 생물다양성의 위기에 긴급히 대처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인류세 연대에서 일어난 곤충류의 격감현상’에 대한 특별보고서는 서문과 11개항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최근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ies of Sciences’지에 ‘자연은 고통을 받고 있다(Nature under Siege)’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과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경고를 한다 “곤충류들이 수없이 반복되는 죽음의 위협(death by a thousand cuts)에 처해 있다.”
2019년 2월과 2020년 4월 등 기존 보고서에 이어, 세인트루지아나의 심포지움에서 발표된 지난 몇 년간 곤충류 감소에 대한 연구의 활동보고서 작성에는 73명의 관련 과학자들이 참여하였으며, 지난 1월의 발표에는 곤충의 멸종에 대항하는 전략적 로드맵이 상세하게 담겨 있다.
새로운 내용으로는 아래의 그림에서 보듯이, 곤충류의 급감에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위협과 관련을 밝히고 있는데, 농업의 관행, 화학물질, 조명과 소음의 공해 등이 연계되어 있으며, 공격적인 요인으로 대지(자연림)의 개간, 질소화, 살충제 살포 그리고 도시화 등이 언급되고 있다.
연구활동을 주도해온 Connecticut 대학의 곤충학 교수인 David Wagner는 기자회견에서 곤충류의 격감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해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곤충류는 어머니인 자연과 생명나무를 받쳐주는 절대적인 기둥(fabric)이다.”
Wagner 교수에 의하면 곤충류의 개체밀도가 매년 1-2%씩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그는 가디언 지의 기고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지난 10년 동안 지구 상의 동물들이 10-20%가 사라지고 있으며, 이는 인류가 생명의 테피스트리(연계)에서 단절되고 있다는 명백한 경고이다.”
“격감의 원인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가장 크고 절대적인 이유는 기후변화인데 일반인들이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염려스러운 일이다. 기후위기는 인류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속도로 곤충을 멸종시키고 있다”고 교수는 경고하고 있다.
“인류가 야기해온 ‘제6의 대멸종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지구상에 인구수를 지금보다 감소시켜야 하며,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소비를 절약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 Damian Carrington (@dpcarrington).”
통합적인 생물다양성을 연구하는 독일센터를 책임지고 있는 Roel Van Klink는 가디안 지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새로운 연구활동을 통해서 우리가 알게된 것은 곤충류의 격감을 유발하는 원인들이 매우 복합하다(complexity)는 것이다. 이중 한가지 원인만을 신속히 제어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풍부했던 곤충의 개체수가 급속히 줄어드는 지역들이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다행히 전체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단의 희망을 갖고 있으며, 이런 견지에서 멸종을 막아내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밝혀내기를 기대하고 있다. 바라건대, 주변조건이 개선되면 곤충류들은 신속하게 되돌아 올 것이다.”
“영국의 경우, 여러 종의 나방류가 지역과 개체밀도에 따라 분명하게 확산되고 있으며, 온난의 지역에서 살아가는 곤충들이 겨울의 찬 기운에 사라지고 주변 온도가 회복되면 넓은 지역에 걸쳐 매우 풍부하게 되살아나는 것을 보여준다”고 보고서의 서문에서 언급하고 있다.
“꽃가루 전달자인 벌꿀들이 북미에서 사람들의 노력으로 되살아나고 있고, 깨끗한 물에서 살아가는 곤충류들이 유럽과 북미지역의 수질관리 덕분에 풍부하게 늘어나고 있다.”
‘인류세 연대에서 일어난 곤충류 격감에 대한 특별보고서’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7가지 연구영역의 전망을 담고 있다.”
집약농업 방식과 기후의 변화가 곤충류의 다양성을 격감시키고 있음
곤충류의 표준조사지역인 코스타리카의 열대지역에서 곤충류가 격감하고 있음이 분명하며, 이들을 살려내는 것이 중요함
곤충류와 최근의 기후변화 간의 관계
유럽 내 나비류의 격감: 문제점의 중요성과 가능한 해법
지구적 규모의 곤충류 격감에 대한 성찰: 나방류의 다양성 추세가 지닌 복잡성과 특이성
심층조사와 컴퓨터분석을 통한 곤충학의 발전 가능성
꿀벌에 대한 소음의 악영향 : 꽃가루 전달자의 격감에 대한 여론환기
연구활동으로 아래 세가지 사항에 대한 조사를 담고 있다.
푸에르토리코의 산림의 경우 절지동물들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방해에 대하여 생존의 반응하고 있음
곤충류의 격감은 해당 종의 다양성과 연동되어 있음: Hoverfly 집단이 모여주는 형태
북극 절지동물이 기후변화에 대하여 보여주는 개체수와 다양성 간의 비선형적 경향 및 복잡한 반응
보고서는 결론부에서 곤충류의 격감을 해결하기 위해 개인들이 취할 수 있는 8가지 단순화된 행동지침을 제안하고 있는데, 5가지 행동들은 격감의 원인이 되는 요인들을 줄이는 곤충친화적인 행동에 관한 것이며, 나머지 3가지는 공동체가 집단적으로 취해야 하는 요구에 대한 것이다.
Dharna Noor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곤충에 질색이다. 많은 다리로 기어가는 모습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 그렇듯 혐오스러운 곤충들이지만 이들이 지구의 생태계를 적정하게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함에도 안타깝게 멸종의 위기에 몰려 있다.”
곤충류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하기 위해서, 과학자들은 공동체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곤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고 이들을 보존시키기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주거의 주변에서 1) 잔디밭을 다양한 자연적 풀밭으로 전환시키고, 2) 주위에 많은 나무를 심고, 3) 살충제의 살포를 삼가하고, 4) 조명과 소음공해를 제한하며, 5) 차량과 건물청소에 세척제와 더불어 제설용 염분과 방수제의 사용을 줄여야 한다.
상기의 관행과 실천은 곤충류의 보존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다. 이에 더하여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조처가 곤충류의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시너지를 발휘한다. 특히 기후변화는 인간뿐만 아니라 지역과 지구전역에 살아가는 동식물의 멸종에 대한 일차적 중대원인이라는 것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매년 자연재해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어 한계지점인 티핑-포인트를 넘기게 된다면 한 해의 피해규모가 세계 총 GDP의 5.0% 선을 넘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뮌헨 재보험회사(Munich Re)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220년 한해 자연재앙에 따른 직접피해액이 2,100억 달러에 이르면서, 2019년의 1,660억 달러에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보고서는 유럽연합의 기후기구가 2020년이 2016년과 함께 기록상 지구가 가장 뜨거웠던 한 해이며 십년 단위로 가장 더웠던 기간으로 함께 기록된다는 발표 직후에 나온 것으로, 이는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충격이 점차 심화되는 것을 알려준다.
독일의 거대한 재보험 조직인 Munich Re는 작년에 발생한 허리케인과 주요 산림화재에 따라 재해의 규모가 커졌다고 밝히고, 기후변화를 저지하기 위하여 긴급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자연재해로 인하여 전세계적으로 8,200명이 생명을 잃었고 직접피해액의 40%에 해당하는 820억불이 재보험을 통하여 보상되었다고 발표하였다.
기후의 변화가 이러한 자연재해에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점차 그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고 Munich Re의 중역인 Torsten Jeworrek 가 주장한다. “5년 전에 이루어졌던 파리기후협약의 일환으로 지구촌 모두가 협력하여 기후온난화를 섭씨 2.0도 이하로 유지하도록 목표를 설정하였는데, 이제 실천해야 할 때가 되었다.”
유럽기후기구에 따르면 2020년에 이미 기후온난화 상승온도가 산업화 시대 이전의 기준으로 평균 1,25도에 이르렀다고 한다. 파리기후협약은 2도를 상한선으로 정하고 기후변화가 가져올 가공할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가능한 1.5도 이하에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아시아는 홍수와 태풍으로 황폐화되고 있다(Floods and cyclones devastate Asia)
작년 아시아 지역에 가장 심각했던 재난은 여름철 몬순의 영향으로 작년 5월21일에서 6월30일까지 지속되었던 중국 남부의 홍수피해이었다. 전체적인 피해는 약 170억 달러 수준으로 보험으로 겨우 2.0%만 보상되었다.
아시아 전체로는 태풍과 홍수 피해를 모두 합쳐 자연재해 규모가 670억 달러이었는데 다행히 2019년의 770억 달러에서 줄어들었다.
큰 규모의 피해는 북미지역에서 발생 (Highest losses suffered ever in North America)
북미 지역으로 눈을 돌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작년의 가장 큰 피해규모 순위 10사례 중에 6개가 미국에서 발생하였다. Munich Re에 따르면, 13개의 허리케인을 포함하여 30개의 폭풍우가 북대서양풍의 계절에 북미를 강력하게 타격하였다.
이에 추가하여 화재면적으로 새로운 기록을 세운 산불로 피해를 보았던 캘리포니아와 콜로라도 지역을 포함하여, 거대한 산림화재가 미국의 서부지역을 휩쓸고 지나갔다.
유럽의 기후기구에 따르면 지난 8월의 캘리포니아 산불 열기로 인하여 모제브 사막에 있는 죽음의 계곡 온도가 섭씨 54.4도까지 치솟았는데 이는 기록상 공식적인 최고의 기온이었다. 미국의 자연재해 피해액은 2019년의 경우 510억 달러이었는데 2020년에는 950억불로 증가하였으며, 이중 670억 달러가 보험으로 보상되었다.
유럽의 경우, 자연재해의 피해가 최소이었다(Minimal natural disaster losses in Europe)
유럽지역의 경우, 2020년에는 비교적 양호하여 예년에 비하여 상황이 많이 호전되었다.
지역 별로 피해의 사례를 살펴보면, 지난 가을 시즌의 많은 강우량으로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가 피해를 입었으며, 통상의 겨울철 폭풍으로 인하여 지난 2월에 유럽대륙 전체가 입은 피해액이 25억 달러 수준이었다. 지난 3월에는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 북부지역에서 5.3 강도의 지진이 발생하여 총 18억 달러의 피해를 입었다.
유럽 전체로 작년 한해동안 120억불 달러의 피해가 발생하였고, 이중에 36억달러가 보상되었다.
북극지역이 예외적인 더위와 극심한 기온차를 보였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유럽대륙도 역시 2020년 가장 더운 여름 그리고 예외적으로 따뜻한 가을과 겨울을 경험했다. 북극과 북부 시베리아 지역은 지구의 평균보다 편차가 심한 기온을 일년 내내 보였으며, 지난 30년 간 평균기온의 편차보다 물경 6도가 높은 기온을 유지했다.
이들 지역 역시 야외화재의 계절이 예외적으로 활성화되면서 북극으로 몰려드는 야외화재가 244 백만 톤의 지구온난화성 탄소산화물을 배출하였는데, 이는 2019년보다 1/3정도가 늘어난 것이다.
북극해의 얼음이 지속적으로 줄어들면서 지난 7월과 10월 사이 바다의 얼음이 가장 적은 기록을 남겼다.
과학자들은 상기의 기록들과 화재들은 자연의 균형파괴에서 유발된 것으로 이는 점증하는 기후변화의 확실한 증거이며, 매년 강력해지는 허리케인과 산불, 홍수 등을 동반하는 자연재난을 야기시킨다고 확인한다.
지난 해의 극심했던 기후변동은 대기와 대양에 대한 수십 년에 걸친 온난화의 예측과도 일치하며, 자연재해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대기대양의 자연환경청NOAA의 기후과학자인 Adam Smith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매해마다 점증적으로 진행되는 극심한 기후변화가 어떠한 자연재해를 가져올지 제대로 밝히는 안내문건dictionary을 작성할 필요가 있다.”
호주와 중국 연구자들의 새로운 연구는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인간활동으로 인해 향후 수십 년 안에 해수면이 위험한 수준으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최근 유엔보고서의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기후위기의 경고가 매우 시급한 현안이라는데 무게를 더합니다.
영국의 홀더네스 해안에 있는 도로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바다로 무너지고 있다.
“특히 고수준의 온실가스배출 시나리오에 따르면, 2100년경에는 해수면이 심각한 수준으로 상승할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UNSW(뉴사우스 웽리즈대학)의 John Church.”
자연 커뮤니케이션Nature-communication연구저널 최신호에 실린 뉴사우스-웨일즈 대학 (UNSW)의 성명은 ‘인공위성 및 177군대의 조류측정 게이지의 관측에 의거하여 해수면의 상승을 예측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연구자들은 기후변화에 관한 UN의 IPCC( 정부간패널) 제5차 평가보고서 (AR5 )와 변화하는 기후해양 및 극저온권 ( SROCC )에 관한 해당기관의 특별 보고서 ( RCP기반 – 다양한 대표농도 경로)의 예측을 검토했습니다. RCP는 인류의 온실가스배출이 끼치는 영향에 대한 시나리오를 단계별로 예측히는 경로의 기준입니다.
(참조용 정보: RCP 2.6 – 지구온난화가 산업화 시대이전의 상태를 유지하는 파리협약의 이상적 시나리오. / RCP 4.5 –온실가스 저감정책이 상당히 실현되어 파리협약에 접근하는 시나리오. / RCP 6.0 – 온실가스 저감정책이 기대치에 못 미치는 중간단계의 시나리오. / RCP 8.5 –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3.7도)으로 지구가 병든 상태를 예측하는 시나리오).
연구진은 177 개의 위치측정에서 얻은 지구 및 해안해수면 데이터를 기반으로 세 가지 RCP 시나리오에 따른 보고서의 가설예측이 2007 년부터 2018 년까지의 같은 기간 동안 인공위성 및 조수관측의 자료와 상당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즉, “우리의 분석방식인 가설모델이 실제의 관측값에 가깝다는 것으로, 향후 수십 년 동안 일어날 일에 대한 현재의 예측에 대한 신뢰를 확인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라고 UNSW의 기후변화 연구센터의 일원인 John Church가 말했습니다. Church교수는 가설모델의 예측이 전세계적으로 정확할 뿐만 아니라 할당된 단위 지역수준에서도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11 년의 한정된 짧은 비교기간 때문에, Church교수는 “특히 고배출 시나리오의 경우, 2100 년을 넘어서면 예측보다 심각한 해수면의 상승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전히 협약의 약속을 충족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라고 주장합니다.
파리 기후협정은 금세기에 지구 기온상승을 산업화 이전 수준과 비교하여 2 ° C (바람직하게는 1.5 ° C) 이하로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현재 배출량의 공약도 이상적인 높은 목표를 달성하기에 이미 적절하지 않은 것입니다.
UN 보고서의 세 가지 연구경로는 RCP2.6, RCP4.5 및 RCP8.5 각각의 설정기준에 따른 것으로, 첫 번째 및 두 번째 경로는 파리협약의 목표에 근접하지만, 마지막 기준의 경로는 매우 심각합니다.
“최근 해수면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현재의 세계적 추이가 RCP4.5와 RCP8.5의 최악 시나리오 사이에서 변동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음을 알려줍니다.”라고 Church는 경고했습니다. “우리가 현재처럼 계속해서 대량의 배출을 계속한다면, 앞으로 수세기에 안에 해수면이 전세계에서 걸쳐 수 미터가 상승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2019년 9월에 공개된 SROCC(기후해양과 극저온권)보고서의 경고는 지구온난화가 인류, 해양 생태계, 글로벌 생태에 미치는 심각한 충격을 방지하기 위하여 대담하게 대응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Food & Water Action 전무 이사 Wenonah Hauter는 보고서 제출 당시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은 수백 년 동안 화석연료에 대한 어리석은 의존과 그로 인한 기후온난화로 인해 바다전체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고 따라서 우리 모두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충격적인 과학조사의 결과를 심각하게 마지막의 경고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극심한 지구기후의 혼란과 오염된 바다에서 대량 죽음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 신속하고 적극적인 행동의 조치를 통하여 이러한 흐름과 추이를 반전시켜야만 합니다.”라고 Hauter는 덧붙였습니다. “최종의 경고를 받았습니다. 더 이상 변명할 수 없습니다.”
IPCC의 SROCC(기후해양과 극저온층) 보고서는 지구해수면이 2100년까지 30 ~ 60 센티미터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예측합니다. 경우에 따라 110 센티미터의 상승도 예측할 수 있지만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코펜하겐 대학의 닐스 보어 연구소 (Niels Bohr Institute)의 연구원들은 최근 최악의 시나리오로 21세기 말까지 전세계의 해수면이 135 센티미터(약 4.4 피트)이상 상승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해수면 상승과 관련하여 현재 일반적인 시나리오는 너무 보수적입니다. 우리의 기법을 사용하면 바다가 현재의 방법을 채택하여 측정한 모델보다 훨씬 많이 상승할 것으로 보입니다.”
—Aslak Grinsted, 코펜하겐 대학교
연구소의 부교수인 Aslak Grinsted 는 “해수면 상승에 대한 현재의 예측 모델은 충분히 민감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분명히 말하자면, 미래의 시나리오를 과거의 관측 수치와 비교하여 해수면 상승률을 예측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이달 초 Ocean Science 저널에 실린 상기 연구소의 기법은 과거 데이터 분석을 포함하여 바다가 온난화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정량화하는 새로운 방법을 소개합니다.
Grinsed교수는 다음과 같이 첨언합니다 “ 이 보고서는 두 가지의 주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첫 째, 현재 채택하고 있는 모델은 해수면 상승에 대하여 매우 보수적입니다. 우리의 모델을 사용하면 해수면이 훨씬 높이 상승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이 분야의 연구에 우리의 방법을 사용하면 미래 시나리오에서 해수면의 상승을 강력하게 제한할 수 있는 강점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요일에 트위터를 통하여 Grinsted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Nature Communications에 소개된 새로운 연구를 통해 “2007-2018 년의 조사내용을 정밀하게 확대하여 분석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불일치를 발견한 배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으며, 기존에 사용하던 해수면 모델의 민감도와 실제측정의 민감도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IPCC(정부간패널)가 과거의 조사행적과 내용(hindcast)을 발표했었다면 두 가지 연구 모두에 대하여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Grinsted 는 트위터의 끝자락에 주장하였다. “다가오는 IPCC가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가능한 1850년 이래 현재에 이르는 조사행적과 내용(hindcast)을 발표해 주시길 바랍니다.”
각국이 제출한 약정서NDC에 의하면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이 고작 1.0% 감소될 뿐이다. 반면에 과학자들은 45%가 감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오 쿠테흐스는 각국들이 제출한 약정서 내용들이 지구 행성의 생존에 적색경고를 보내고 있다고 선언한다.
파리 기후 협정 의 핵심구성인 향후 10 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겠다는 국가의 기후공약NDC에 대한 첫 번째 평가에서 기후위기를 방지하는 데 필요한 노력이 너무 미진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지금까지 제출된 개별국가들의 공약이 모두 이행되어도, 2010년 수준에 비해 2030년까지 전 세계 배출량의 겨우 1 %만 감축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파리 협정에 따라 산업화 이전 수준의 1.5C 이하로 지구 난방을 유지하기 위해 향후 10 년 동안 45 % 감소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UN 기후변화기구의 사무총장 Patricia Espinosa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파리기후합의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경로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눈가리개를 한 채 지뢰밭으로 집단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다음 단계는 커다란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유엔이 금요일에 발표한 평가서는 전세계 배출량의 약 3분의 1에 불과한 국가를 대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파리협정에 서명한 197개국 중 75개국만이 현재부터 2030 년까지 배출량 감축을 위한 국가약정계획(국가결정기여도-NDC))을 제출하여 이에 대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중국, 미국, 인도를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아직도 기후약정NDC를 제출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이들 국가군들도 NDC 내용을 공식화해야 합니다. 그들도 서둘러 제출해야 한다는 긴박한 압력에 직면해 있습니다. 유엔은 그들 없이는 11월 글래스고우 에서 열린 COP-26 기후정상회담이 실패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안토니오 쿠테흐스 유엔 사무 총장은 선언합니다. “2021 년은 전지구가 기후비상사태에 맞서기 위한 결승전의 해입니다. 오늘의 중간평가 보고서는 우리 행성에 대한 적색 경보를 울립니다. 그것은 각국 정부가 파리기후 협정의 목표 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수준과 멀리 동떨어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주요 가스배출 국가들은 11월 글래스고우 회의가 있기 훨씬 이전에, NDC를 통해 2030년을 위한 훨씬 담대한 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달성해야 합니다.”
중국 과 미국을 포함하여 여전히 NDC를 제출하지 않은 많은 국가들은 파리 협정을 이행하기 위한 핵심공약으로 간주되는 2050년 또는 2060년까지 순배출량의 제로에 도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습니다. 그러나 쿠테흐스 사무총장은 2030년의 목표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Covid-19 복구계획은 보다 친환경적이고 깨끗한 환경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국가별 기후목표약정NDC의 장기적인 약속은 사람과 지구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변화의 10 년을 시작하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와 일치해야 합니다.”
미국과 중국은 보다 확실하게 주목을 받을 것입니다. 중국은 향후 5개년 국가운용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는 다음 주에 NDC를 제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은 4월 22일에 국제기후정상 회담을 열고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배출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미국과 중국은 상호간의 외교적 균형에 연루되어 있으며, 이에 파리기후 합의 이전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대통령 이 프랑스 파리에서 공통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기후회담 이전에 양국의 정상회담을 개최한 것이 그러한 배경을 설명합니다.
세계자원연구소의 부회장 인 Helen Mountford는 미중 모두에게 엄격한 계획을 요구했습니다. “미국은 야심차고 달성이 가능하도록 2030년의 배출감축목표를 50%로 설정해야 하며, 중국은 2025 년까지 배출량이 정점에 이르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연구가 양국의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동시에 메탄 및 산업용 가스와 같은 비-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억제해야 합니다.”
작은 섬국가들의 연맹위원장이자 앤티가와 바부다의 유엔대사인 Aubrey Webson은 온도가 1.5 C 이상으로 상승 할 경우 작은 섬국가들이 심각하게 침수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합중국이 파리기후협약에 재결합하여 세계가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미국은 우리에게 진정한 기후 리더십을 지속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 NDC약속을 하지 않은 대형배출 국가들은 즉시 제출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구 온난화를 1.5C 이하로 제한하기로 결정했다면 이러한 배출감소의 약속을 제대로 지켜야 하며, 가능하다면 더욱 과감하게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설정한 기후목표를 신속히 실행해야 합니다.”
유엔기후기구의 사무총장 Espinosa는 또한 이미 국가약정서NDC를 제출한 국가들의 내용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녀는 특정한 국가를 집어내어 설명하기를 거부했지만, 초기 NDC평가보고서라는 제목으로 집계 데이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녀는 “결국 지구라는 행성이 인간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비상사태에 직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평상시와 같은 사업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것이 놀랍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일본은 작년 초 NDC를 제출했고 그 이후 동아시아 지역 라이벌인 중국과 한국도 배출제로의 목표달성을 약속했지만 이들 국가군의 NDC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합니다. 호주와 브라질도 부적절하다고 간주되는 NDC를 제출했습니다. EU는 회원국들이 보다 적극적이기를 원했지만 1990년 수준과 비교하여 2030년까지 55 % 배출량 감축 목표에 동의했습니다. 훌륭합니다.
COP-26을 개최할 영국은 2030년까지 배출량을 68 % 줄이는 목표가 매우 힘들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부 경제학자들은 70 % 이상의 목표가 실현 가능하다고 계산하고 있습니다.”
최근인 2019년에 COP 회담을 주관했던 칠레 환경부장관 Carolina Schmidt 는 주요 경제국가들 중 EU와 영국만이 충분히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지역국가들 중에 두 지역만이 칠레기후회의의 약정(발자취)에 따라 작년에 온실가스감축 목표를 크게 증가시킨 NDC를 발표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칭찬하고자 하는 지역은 EU와 영국입니다. 나머지 국가들은 새로운 NDC를 제시하지 못했거나 목표가 충분하지 못한 NDC를 제시했습니다. 파리협약의 희망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NDC를 다시 제출하여 합의된 목표에 적합하도록 다시 작성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기후의 위기로 지구행성의 열대지방이 기온과 습도가 상승하여 인간의 거주한계에 다가 서면서, 인류의 상당한 인구가 치명적인 생존조건에 빠져들고 있다고 새로운 연구조사가 밝히고 있다. 연구활동의 영역은 멕시코 리비아 인도 등을 포함하여 적도를 중심으로 북반구와 남반구를 제각기 위도의 한계 20도를 절단하여 진행되었다.
이는 금세기에 해결해야 할 근본적 문제이다: 과연 과학이 해결해 낼 것인가 아니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인가?
만약 산업화 이전의 지구기온 대비하여 온난화 수준을 섭씨 1.5도 이내로 규제하는데 실패한다면,적도 중심의 열대지역은 인간의 생존이 불가능한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경고하고 나섰다.
인간이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체온을 조절하는 능력은 주변의 온도와 더불어 습도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의 몸은 섭씨 37도에서 체온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체내의 열을 피부를 통하여 밖으로 방출한다. 그러나 공기 온도와 습도를 합한 습구 온도가 섭씨 35도를 넘어서면, 몸의 표피에서 방출하는 열을 냉각시키지 못하면서 사망에 이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너무 습하면 우리 몸은 땀을 증발시켜 식힐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더운 곳에서 거주할 때 습도를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라고 최근 Nature에 발표한 연구를 주도했던 프린스턴 대학 연구원 Yi Zhang은 말했습니다. “높은 체온이 지속되면 위험하며 결국은 사망에 이릅니다.”
연구팀은 다양한 과거의 데이터와 시뮬레이션을 조사하면서 지구가 계속해서 뜨거워지면서 온도와 습도가 결합된 습구 온도가 변하는 과정에 대하여 연구하였으며, 열대 지방의 치명적인 한계온도가 지구의 평균온도와 거의 같은 속도로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습구온도의 조건에서 35도를 초과하는 열대의 위험지역 발생을 피하기 위해서는 지구의 온도상승을 1.5C 이내로 제한해야 함을 의미한다. 습구온도는 온도계를 젖은 천으로 감싸서 측정하는데 이는 인간이 땀을 증발시켜 피부를 식히는 능력을 흉내내어 재현한 것이다.
열대 지방의 치명적인 조건은 1.5도 임계값 이전에도 발생할 수 있으며, “극심한 조건에서 습구온도가 섭씨 1.0도가 상승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조건에서 몇 도의 온도 상승과 같은 정도로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서는 경고를 보낸다.
지구의 온도는 인간의 산업활동으로 인해 이미 평균 약 1.1C 정도가 따뜻해졌으며, 파리기후협정 에서는 온도를 1.5도로 유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과학자들은 열대지역의 치사한계가 10년 이내에 도래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것은 상당수의 인류에게 잠재적이지만 잔인한 정도로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현재 세계 인구의 약 40 %가 열대지역에 살고 있으며, 이 지역에 젊은 인구비율이 높기 때문에 2050 년까지 세계 인구의 절반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프린스턴 대학의 연구 활동은 멕시코, 리비아, 인도를 가로지르는 북반구 위도 20도, 브라질, 마다가스카르 및 호주 북부를 가로 지르는 남반구 위도 20도 사이의 지역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Boise State University의 기후위험 전문가인 Mojtaba Sadegh는 “이번 연구가 상당한 규모의 인프라 투자가 없이는 온도의 상승으로 많은 열대지역에서 사람이 살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분석하는 대단한 작업을 수행해 냈다”고 평가했다.
“습구온도의 한계를 넘으면 냉기보호소와 같은 인프라가 인간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라고 연구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Sadegh는 말한다. “기후영향을 받는 지역의 대부분이 저소득 국가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아무리 많은 물을 마시더라도 35C 이상의 습구온도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상기 연구는 온난화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위험에 대한 최근의 과학적 경고이다. 극심한 폭염은 중동지역의 일부도 역시 인간의 생존한계를 넘어서게 될 것이며, 추가적인 온난화는 중국과 인도의 일부 지역에서도 막대한 위험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온난화의 재난이 1979년과 2017년 사이에 두 배로 증가했다는 사실을 추적한 연구팀은 앞으로 수십 년 안에 30억 명에 가까운 인구들이, 지난 6,000년 동안 인류가 번창해온 지구의 역사적 기온의 범위를 벗어난, 생존의 한계조건에 처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기후위기가 가져올 끔찍한 재앙을 막기 위해 필요한 변화에 대한 행보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 라고 미국의 기후대사로 새로이 임명된 John Kerry가 첫 기자회견에서 말문을 열었다.
미합중국의 전직 국무장관 출신인 Kerry는 도날드 트럼프 시절에 지구온난화의 위기에 대처하는 국제적 노력에 미국이 불참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현재 어느 국가, 어느 대륙도 제대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고 일갈을 가한다.
그는 합의된 목표인 탄소중립을 2050년까지 실현하기 위해서는 세계경제에 전반적인 변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현재의 탄소소비량 감소추세를 5배로 빨리 가속해야 하며, 지구상에 녹지를 5배 이상 빠르게 확보해야 하고,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속도를 6배 그리고 전기차로 전환속도를 22배로 높여야 한다고 단언한다.
“재앙적인 위기를 피하기 위해 합의한 장기적인 목표는 고사하고, 눈앞의 계획조차 제대로 실천하는 국가가 거의 전무한 상태인 현재, 우리는 모두 함께 담대하게 나서야 한다”고 Kerry는 이야기한다.
상기의 발언은 새로 출범한 바이든의 행정부에서 그가 국제기후특사로 임명된 직후 G20 포럼에 참가한 민간기업 책임자들의 모임에서 행한 첫 연설의 내용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11월에 영국의 글래스고우에서 있을 UN의 매우 중요한 회의(COP26)를 앞두고 사전에 기후위기에 대한 주요 국가들의 정상회담 개최를 기대하고 있다고 그는 밝혔다.
유엔기후회의는 2015년 파리에서 합의한대로 지구온난화를 야기하는 배출가스의 감축계획을 신속히 추진하고자 한다. 그러나 최근 UN의 관련보고서는 현재의 진행상황이 목표에 지극히 미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기후재앙을 야기하는 지구의 온도를 산업화시기 이전에 대비하여 섭씨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노력을 5배 이상 배증해야 할 필요를 제기하고 있다.
Kerry는 단호하게 선언한다 “오는 11월 기후당사자회의에서 모든 국가들이 담대한 목표를 설정해야만 합니다 – 아니면 모두가 공멸합니다. 멸망은 우리들의 선택사항이 될 수 없습니다.”
트럼프 시절, 미국은 파리회의에서 탈퇴하여 발전소와 차량에 대한 배기규제를 완화하고, 미합중국의 방대한 대지와 강물을 민간기업들의 가스와 원유의 채굴사업에 개방하여 왔다. 국제사회는 세계에서 오염가스를 두 번째로 많이 배출하는 국가가 다시 합의의 모임에 귀환한 것을 환영하지만, Kerry 자신은 이전의 행정부가 벌린 소동으로 인하여 미국이 수취심을 갖고 돌아 왔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과거4년을 허비하며 미합중국의 지난 행정부가 협상의 테이블을 떠나 있으면서 인류의 도전적 과제에 함께 대응하지 못한 수치심을 갖고 있다” 라면서 2004년에 미국대통령 선거에 민주당의 후보로 출마했던 Kerry는 상기의 사실을 글래스고우의 COP26 회합의 의장을 맡을 예정인 영국의 해당부처 장관인 Alok Sharma에게 인정했다.
Shama 장관은 Kerry대사에게 미합중국도 파리회의에서 합의한 국가별기후약정(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즉 2030년까지 오염가스 배출량감소의 계획을 조속히 제출하도록 요청하였다.
국가별기후약정은 파리회의의 핵심적 내용으로 Cop26 회의 이전에 UN에 제출하여 사전에 평가를 받도록 합의되었다. 영국의 경우, 2030년의 배기가스배출량을 1990년에 대비하여 68%를 줄이는 계획서를 지난 12월에 이미 제출하였다.
가디언의 확인에 따르면, Kerry는 언제까지 미국이 국가기후약정NDC을 제출할지 정확한 일정에 대하여 답변하지는 않았으며, 다만 우선적으로 진행할 것을 약속하였다.
이들은 동시에 오는 기후회의 가장 주요한 의제인 기후금융에 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안토니오 쿠테흐스 UN 사무총장은 지난 12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가난한 나라들이 기후변화의 충격에 대응할 수 있도록 부유한 국가들이 연대하여 연간 1000억불을 지원하는 것을 약정하였으며,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UN이 주도하는 기후당사자회의Cop구상은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Kerry와 Shama 양자는 기후변화에 취약한 빈국들에 대하여 기후금융을 지원하는 중요성에 대하여 의견을 공유하였다.
바이든 행정부가 캐내다 Alberta지역에서 원유를 수송하여 미국 내에서 정제하려는 사업인 Keystone XL 배관공사를 중단시키려고 하자, 곧바로 기후위기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얻어내는 일이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 바이든과 외국 지도자로서 처음으로 국제통화를 나눈 캐나다의 Justin Trudeau수상은 상기 공사의 진행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를 대응하는 도전의 과제에 희망적 근거가 있다고 Kerry는 강조하면서, 태양에너지의 발전단가가 떨어지고 있고 청정에너지 기술에 대한 투자와 관련 분야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확인했다.
“배출가스의 제로를 향한 기획은 기업들에게 거대한 기회를 마련하면서 청정의 일자리와 경제적 성공을 제공하고 있으며, 미국 대통령의 표현에 따르자면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극복하여 과거보다 나은 미래를 건설할 수 있다- build back better.”
출처 : The Guardians(영국 가디언지) on 2021-01-22.
John Kerry
현재 미국의 국제기후 특명대사이며 지난 오바마 정권시절에 국무장관을 지내면서 이란핵협정JCPOA을 주도하였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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