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백년은 지난 3개월간 연재한 ‘코로나 이후 세계는?’을 마감하고 이번 주를 시작으로 3-4개월간 ‘미중 간의 갈등전개와 향후전망’ 라는 주제로 새로운 특별칼럼을 연재한다.
1990년 이래 단극적으로 세계질서를 주도해 왔던 미국의 G1위상이 급격히 추락하면서, 향후 당분간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G0의 혼란기로 접어들고 있다. 대체로 미국의 패권유지와 중국의 대국굴기가 갈등의 중심축을 이루면서, 유럽연합과 러시아 그리고 인도 등이 조정역할을 넘어 나름대로 지역과 현안에 대한 대안적 거점을 형성할지 여부가 향후 Gn의 세계질서의 내용을 결정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른벡년은 상기 주제에 대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시각과 분석을 아래과 같은 6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각각 2-3주 간격으로 교체하며, 매주 2건의 칼럼을 번역 소개하고자 한다.
1.미중 갈등의 격화의 배경과 전개
2.미국에 대한 대내외적 시각과 비판
3.중국에 대한 대내외적 시각과 비판
4.미중 간의 주도권 쟁탈과 전쟁 가능성
5.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과 중국의 반격
6.향후 세계질서에 대한 전망
미중 갈등의 배경과 전개에 대한 첫 번째 소개의 글은 미국의 진보적 Think-Tank인 Brookings 연구소의 중국센타 책임자인 Dr. Cheng Li와 중국국제방송CGTN 간에 이루어진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여러분들의 변함없는 관심과 격려를 기대한다.
중국과 미국은 전면적인 대결상황으로 향해가고 있는가? 정치와 안보상황이 더욱 악화일로에 있는 것일까? 경제적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중국국제방송CGTN의 Reality Check 프로그램에서는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중국센타 책임자인 Dr. Cheng Li와 인터뷰를 가졌으며, 그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현재 3가지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중 관계를 수십 년을 취재해온 사람으로서 본 프로그램 책임자인 필자는 양국의 관계가 지난 과거의 세월 중에 현재처럼 당황스러운 순간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양국은 결국 세계적 재앙인 팬데믹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어쩔 수없이 서로 협력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대선이 있는 올해를 겪으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인지, 전문가의 견해를 듣기 전에 우선 몇 가지 사실들을 확인해 본다.
정치적 대립을 보도하는 뉴스가 난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측면에는 여전히 회복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통상무역을 예를 들어보면, 트럼프의 중국무역에 대한 전쟁선포와 북경의 보복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에도, 2018년 한해 양국 무역이 6340억 불에 이르면서 사상 최고액수를 보였다. 물론 관세인상이 적용되는 시차가 발생하면서 추후에 무역량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피크에 이른 액수와 큰 차이를 보이진 않았다.
2019년에도 미국은 다른 국가들에 앞서 중국에게서 가장 많이 수입을 하였으며, 비록 느린 속도이긴 하지만 여전히 서비스의 교역량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양국 간의 투자에 있어서는 정부(正負)의 양 측면을 보인다. 조사기관에 의하면, 2019년 중국의 미국에 투자액이 50억불 규모로 이는 지난 십 수년간 제일 저조한 수준인데 주로 북경당국의 대외투자규제와 외국인 투자에 대한 미국의 정기적인 조사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에 미국의 대중 투자액은 오히려 140억불로 늘어났는데, 이는 중국의 내수시장에 대한 미국기업들의 기대가 여전히 크고 자동차와 금융분야에 대한 외국인 소유규제가 완화된 것을 기회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공급사슬(supply-chain)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팬데믹을 핑계로 미국당국은 미국적 기업들에게 국가안보차원에서 중국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로 미국적 기업들은 이전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암참(AmCham, 미국해외기업협회)회장인 Greg Gilligan은 CGTN과 인터뷰에서, 자체조사에 의하면 1.0% 이하 기업들만 중국에서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압도적인 기업들이 중국 내에서 거래를 하고 부품을 생산하는 것이 가치있는 일로 생각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정치적 상황이 계속 악화되면, 경제적 회복이 어려워 지면서 잔류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에도 COVID-19를 둘러싸고 정치적 비난과 책임공방이 진행되고 있다. 양국 간에 처음으로 현지에 체류 중인 기자들을 서로 추방하였으며, 북경당국은 워싱턴의 몇 가지 법안들이 중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미국과 대만 간의 외교를 지원하는 ‘대만법 Taiwan Act’과 미국의 고위직 정부인사가 대만을 방문하는 것을 허용하는 ‘대만여행법 Taiwan Travel Act’ 그리고 홍콩과 신장에 관한 입법행위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에 더하여, 최근들어 대만해협에 미해군 함정들이 한달 간격으로 출몰하고 있는데, 오바마 시절에는 일년에 한번 정도로 훈련을 실시했다.
미중 국민들이 양국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희망하는지 중요하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민의 66%가 중국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잇는데 이는 2005년 이래 가장 높은 것이다. 반면에 여론조사 결과를 나이별로 재분류하면, 젊은 미국인들에게는 중국에 대한 호감이 오히려 높은 것으로 나온다.
중국인들 사이에도 반미정서가 높아지고 있지만, 2018년에서 2019년 간에 미국으로 넘어간 중국학생수가 늘어났으며, 이는 비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음에도 나타난 결과이다. 높은 교육수준으로 인해 미국으로 유학온 외국인 학생의 비중에서 중국이 가장 높다.
상기에 언급한 것처럼 주제들이 다양하고 때로는 충돌하는 격동적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은 어디로 향해 가는가’라는 커다란 질문에 대해 브루킹스 연구소의 중국센타 책임자를 맡고 있는 Dr. Cheng LI의 견해를 들어본다.
사회자 Wang Guan: 당신은 지난 수십 년간 미중 관계를 다루어 왔습니다. 현재의 상태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Cheng Li 박사: 우선 3가지의 악순환 고리 또는 영역이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3 가지의 악순환 고리가 서로 반응하여 긴장을 고조시키고, 각자의 문제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3가지 악순환은 모두 “D”로 시작되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데, 첫 째는 미국을 황폐화시키는(Devastating)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입니다. 두 번째는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양당간의 극심한(Dire) 정쟁입니다. 마지막은 미중 관계가 위험스러운(Dangerous)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과 중국이 수교관계를 맺은 지난 1979년 이래, 40년의 기간에서 전례가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사회자: 미중 관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단기적 관점과 장기적 관점으로 나누어 예측해 주시길 바랍니다.
Cheng Li: 단기적으로 너무 많은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선기간에는 의례적으로 긴장과 비난의 수위가 높아집니다. 미국 내 여론도 중국을 비난하면서, 중국에 대한 호감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가장 낮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더구나 미국 경제에 미치는 코로나의 부정적 영향은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
비록 도날드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다 해도, 첨단기술에 대한 긴장, 국제지정학적 지형의 변화, 중국의 공격적인 국제외교정책에 대한 미국인들의 부정적 시각과 우려 등이 지속될 것입니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이긴다 해도, 공화당은 반중정책을 지속해 밀고 나갈 것이고 관행의 동력을 바꾸는 것이 어려워 않습니다. 이것이 단기적인 전망입니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람들의 사고체계mindset는 달라집니다. 당장 코로나바이러스를 어떻게 정의하던지, 이는 당연히 우리의 평생을 통해 일어난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인도주의적 위기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견해가 변해갈 것입니다. 비로소 양국 모두 진정한 상대(敵)은 중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라 공동의 적은 바로 바이러스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자연스레 국제적인 공공선public good의 주제가 기후위기, 국제 간에 이동하는 이주민 문제가 던지는 도전, 마약거래와 사이버 안전, 에너지 보존과 비핵화, 그리고 현재 겪고 있는 공공보건에 대한 협력으로 집중될 것입니다. 이런 주제들이 서로 간에 협력을 증진하도록 긍정적인 압력을 가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중장기적으로 낙관적입니다.
사회자: 현재 미중 간의 안보상황은 어떻게 판단하시는지요? 가장 위험한 요소가 무엇인지요?
Cheng Li: 가장 위험한 요소는 명백하게 대만입니다. 왜냐하면 최근 미연방의회에서 결의한 ‘대만입법 2019’는 대만을 별개의 국가로 인지하는 수준에 접근했습니다 이는 중국의 수용할 수 있는 방어선bottom-line에 대한 도전입니다.
다른 한편, 미국인들 관점에서는 남중국해와 때때로 동중국해에서 실시하는 중국의 군사훈련 그리고 사이버 안전등에 대해 매우 비판적입니다. 모두가 매우 위험한 분쟁적인 주제이죠, 다만 이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전쟁의 확률은 단지 5% -10% 수준입니다.
인터뷰는 여기서 끝났다. 추가로 첨언하면, Dr.Cheng Li를 포함한 70명의 저명한 학자들이 미중 양국의 지도자들에게 공개서한을 보내면서 ‘COVID-19 퇴치를 위한 *정치기금을 조성하도록’ 촉구하였다. 이 서신을 통해 이들은 ‘지도력을 형성하려면 수 년이 소요되어야 하지만, 지도력의 붕괴는 단지 순식간에 벌어진다’고 경고했다.
*코로나백신 개발기금에 중국을 포함하여 G20 주요 국가들이 참여했으나,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올해 종부세 납세 의무자는 59만5000명으로 지난해보다 12만9000명(27.7%) 증가했는데, 이는 전체 1,998만 가구의 약 2.5%수준이다. 납세의무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종부세 총액도 3조 3,471억원으로 전년보다 1조 2,323억원(58.3%) 늘었다고 한다. 작년에 서울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고 그 폭등이 공시가격에 일부라도 반영됐으니 종부세 납세의무자와 세액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를 노무현 정부 시즌 2라고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종부세(과세기준 및 세율)를 노무현 정부 수준으로 복원시키지도 못할 정도로 보유세 강화에 대한 의지가 약한 정부다. 게다가 2008년 헌법재판소에 의해 종부세 부부합산과세가 위헌결정을 받은터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올해 예상되는 종부세 추정세수가 3조 3천억원이 넘는다는 건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이 얼마나 많이 폭등했는지를 잘 알려주는 증거다. 참고로 종부세가 생긴 이래 최대 세수는 참여정부 당시인 2007년의 2조 7,671억원이었다.
종부세로 대표되는 보유세는 거의 모든 학자들이 가장 좋은 세금으로 평가하는 세금이며, 부동산 투기억제의 버팀목 노릇을 하는 세금이다. 대한민국은 보유세가 너무 약하기 때문에 부동산 투기가 횡행하고 부동산 과다보유자들이 천문학적 불로소득을 사유하고 있다. 보유에 따른 부담이 거의 없다보니 누구나 부동산을 통해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인 14~16년의 서울 아파트 평당평균가격 상승률이 실거래가 기준으로 16.0%였는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17~19년 동안 무려 37.5%가 상승한 데에도 문재인 정부의 보유세 강화 의지 박약이 큰 몫을 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주요선진국들과 비교해봐도 대한민국의 보유세는 너무 낮다. 대한민국의 GDP 대비 보유세 비율(2015년 기준)은 0.8%로 OECD 평균(1.12%)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며, 보유세와 거래세를 합친 재산과세에서 보유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OECD 평균은 69.8%인데 반해, 대한민국은 고작 28.7%에 불과할 정도로 기형적 구조다.
또한 보유세 부담의 정도를 직접 보여주는 실효세율(실효세율은 실거래가 기준으로 보유세를 실제 얼마내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예컨대 보유세 실효세율이 1%라고 하면 실거래가 10억짜리 아파트의 보유세가 1년에 1천만원인 셈이다)을 보면, 2015년 현재 OECD 주요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호주(0.31%), 캐나다(0.87%), 일본(0.57%), 영국(0.78%), 이탈리아(0.62%), 미국(0.71%)이고, 한국(0.16%)을 제외한 15개국의 평균은 0.39%이다. 한국은 주요 선진국의 1/3~1/5밖에 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말해 보유세 폭탄 운운하는 미디어들의 주장은 전형적인 곡학아세이자 견강부회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는 미디어들의 거짓선동에 현혹되지 말고 보유세 강화 로드맵을 입안해 발표해야 한다. 획기적인 보유세 강화 로드맵은 발표만으로도 시장에 미치는 효과가 클 것이다.
극소수 부유층의 금융자산에 대해 부유세를 부과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후폭풍과 위험을 잘 지적해 주는 칼럼이다. 우리는 이미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 시절 부유세를 피하기 위해 수 조억 달러(?)가 해외로 도피한 사례를 경험했다.
한국의 경우에도, 투기가 극성을 피우는 가운데 해외로 도피가 불가능한 부동산에는 누진적 보유세가 정답이지만, 이동이 가능한 금융자산에는 부유세 대신 거래세가 현실적임을 알려준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달 조 바이든이 민주당 후보지명 캠페인의 일환으로 금융거래세 (FTT)를 추가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류의 세금을 오랫동안 지지해왔던 우리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이 문제에 대해 버니 샌더스는 대학등록금 무료화를 내세운 그의 계획의 일환으로 금융거래세를 포함시키면서 대통령 후보자들 사이에서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몇몇의 다른 후보자들 또한 금융거래세를 지지하고 있으나, 만약 민주당의 유력한 중도성향 후보자가 이런 세금을 옹호한다면 주요 정치적 논쟁의 안에서 새로운 척도의 수용으로 나타날 것이다.
워렌 상원의원은 금융거래세를 지지하는 축에 끼지 않는다는 사실은 다소 놀라울 수도 있다. 분명히 그녀가 부자들의 이익에 도전하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그녀는 부유층과 권력층의 이익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다양한 방안들을 제시해왔다.
워렌의 제안에서 가장 야심찬 항목은 부유세이다. 워렌의 세금 관련 공약에 의하면 5천만 달러 이상의 부에 연간 2%의 세율, 그리고 10억 달러 이상의 부에는 연간 3%의 세율을 부과한다 (샌더스는 심지어 더 큰 재산세를 내세우고 있다). 아주 부유한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싶은 충분한 이유가 있는 한편, 금융거래세는 확실히 더 나은 경제 정책이며 훨씬 더 나은 정치 전망이 있다.
연방 정부의 과세에 대한 동기를 고려해보면 금융거래세의 경제성이 뛰어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현대 통화 이론(MMT) 지지자들이 상기시켜준 것 처럼, 연방 정부는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과세대신에 화폐를 인쇄할 수 있다. 연방 정부의 과세 목적은 소비를 줄이기 위한 것이고, 그로 인해 정부지출을 위한 경제적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만일 정부가 엄청난 양의 돈을 재정으로 지출하면서 세금을 거둬들이지 않는다면, 과다수요의 창출로 인해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논점이다.
경제적인 측면이나 정치적 측면에서 모두 금융거래세는 금융자산에 대한 부유세보다 얻는 이점이 많다.
연방정부가 내년에 청정 에너지와 대중교통 보조금 같은 ‘그린 뉴딜 정책’에 1조 달러(현 연방지출 보다 20% 정도 인상한 비용)를 더 지출할 것이라고 예를 들어 생각해 본다면 이 점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세금이 인상되지 않는다면, 해당 영역에서 수요의 급증으로 인하여 인플레이션이 초래 될 것이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금리 변동을 피하기 위해 단순히 더 많은 돈을 인쇄한다고 가정할 경우).
미국의 가장 부유한 사람들에게 매년 1조 달러의 혜택을 주었던 공화당 스타일의 세금감면을 시행하면서도, 지출을 감소시키지 않거나 또는 다른 세금을 인상하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경우에, 우리는 확실히 인플레이션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제프 베조스, 빌게이츠를 포함한 다수의 억만장자들은 그들이 쓸 수 있는 돈을 이미 다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정부 혜택은 그들의 주식자산의 구성을 풍족하게 만들어 줄 것이나 경제 수요에는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인플레이션까지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 다시 뒤집어서 억만장자들에게 세금혜택을 주는 대신에 우리는 매년 3퍼센트의 비율로 그들의 부에 세금을 매기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베조스, 게이츠, 그리고 여탸 부자들은 여전히 그들의 자산으로 돈을 벌고 있기에 그들의 재산은 거의 영향 받지 않을 것 이다. 극소수 부유층의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며 이는 우리가 추가적인 정부 지출을 위한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수요에 대한 영향은 다른 방향으로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 대부분의 억만 장자들은 그들의 자산증식을 좋아한다. 부유세 시행은 그들이 회계사, 변호사, 그리고 절세 및 탈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고용할 강한 동기를 부여한다. 간단히 계산를 하자면, 만약 제프 베조스가 20년 동안 10 억 달러를 숨겨놓을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그는 6억 달러(연간 3.0%)를 절약하게 된다 (이자는 제외한 예시이다). 이것은 그가 영리한 회계사와 세무 변호사에게 5억 달러를 지출한다 해도 오히려 돈을 더 버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회계사와 세무변호사에 대한 베조스의 지출은 비도덕적일지라도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창출을 위한 지출이다. 이러한 이유로, 부유세는 경제수요를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증가시키는 편이 될 것 이다.
반대로, 금융거래세를 피하는 방법은 거래를 줄이는 것이다. 금융 분야에서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적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대부분의 추정치를 통해 FTT로 인한 거래 비용을 올리면, 거의 비슷한 비율로 거래량이 감소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FTT가 주식이나 옵션의 거래 비용을 40% 인상한다면 거래량은 대략 40% 감소할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에 의하면, 사람들은 각 거래 마다 40%를 더 지출하게 되지만, 40% 적게 거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거래에 지출한 총액은 우리가 세금으로 지불한 것을 포함한 후에도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다른 우선 순위에 지출할 수 있도록 경제에서 자원을 확보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세금으로부터 기대하는 것이다.
금융산업은 거래에서 거둬들인 수익이 거의 세금의 크기만큼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세금의 전액만큼 축소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부가 다른 우선 순위에 지출할 수 있도록 경제적 자원을 확보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세금으로부터 기대하는 바 이다.
금융산업은 다소간 규모의 축소를 허용 할 수 있는 경제의 한 분야이다. 좁은 의미의 금융 부문 (증권 및 금융상품 거래) 규모는 1970년대에 GDP의 대략 0.5%에서부터 오늘날의 GDP의 2%이상으로 지난 40년 동안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금융거래세는 부분적으로 이 상승을 억제시킬 것 이다. 나의 계산에 따르면, 금융거래세는 향후 10년동안 1조6천억 달러에 이르는 GDP의 0.6%에 육박하는 액수로 올릴 수 있을 것이며 그 돈은 금융 부문의 축소에 상응하는 수준이다.
이런 류 거래량 감소로만 경제적 비용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지난 40년 동안 엄청난 거래량 증가가 있었기 때문에 거래량 감소가 50%에 달하여도 1990년대의 수준으로 돌려놓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확실히 미국은 1990년대에 매우 튼튼한 금융시장을 가지고 있었다. 금융 부문의 목표는 자본을 최선의 용도에 쓰일 수 있도록 배분하는 것이다. 주택 거품과 잇따른 금융 위기를 겪으며 살았던 미국 국민들에게 금융 거래량의 증가로 금융산업이 수십 년 전 보다 더 나은 자본배분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모든 종류의 세금 인상에 관한 정치란 항상 어렵다. 만약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강요를 받는다면, 그들은 그들의 재정적 권력을 사용하여 그러한 제도를 통해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사람들을 설득 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 이다. 그러나 부유세에는 특이점이 하나 있다.
이러한 돈뭉치들은 지극히 일부의 그룹에 속한 사람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이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시민권을 포기함으로써 세금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 이것이 이상하게 들린다면, 당신은 아마도 최근 몇 년간 부자들의 정치적 행동을 지켜보지 않은 것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민주주의 또는 미국에 헌신하는 애국자가 아니다.
그들 중 다수는 세금을 아끼는 것이 인종차별주의, 반유대주의,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모독을 눈감아줄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기에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고 투표를 한다. 만약 누구든 부자들이 일반인들의 소득세 부담을 줄이는 것으로 보여지는 부유세를 기꺼이 낼 것이라 생각한다면, 이들은 미국 정치를 정말 모르는 탓이다.
워렌의 부유세 정책은 시민권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몰수적 출국세(confiscatory exit tax)를 부과 할 수 있다. 그러나, 세금이 법으로 통과되기 전에 억만장자들이 시민권을 포기하는 것을 막을 방도는 없다.
억만장자들을 큰 재산을 모으는 천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황당한 상상이긴 하나, 그들의 대부분이 멍청이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 하다. 만약 그들이 부유세를 지불할 의향이 없다면 그들은 의회가 부유세를 시행하려고 하는 즉시 시민권을 포기할 수 있다. (참고로, 시민권을 포기한다고 해서 그들이 미국을 떠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의회가 부유세를 통과시키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면, 대다수의 부유층이 시민권을 포기할 것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이 있는가?
이 협박 자체가 의회에서 재산세 통과 전망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부가 10조원에 달하는 1천명의 극소수 부유층 사람들이 워렌 대통령의 부유세를 진행한다면 시민권을 포기하겠다는 그들의 의견을 의회에 서면으로 전달했다고 가정해보자. 추측하건대, 설사 부유세를 지지하고 있었을 지라도, 의회는 부유세를 통과시키지 않을 변명으로써 이 위협을 아주 기쁘게 이용할 것이다. 만약 의회가 법안 통과를 강행하고 상당수의 억만장자들이 그들의 위협을 실행한다면, 워렌 정부는 아주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물론 금융거래세는 금융산업의 격렬한 반대를 직면할 것이지만, 여기엔 큰 이점이 하나 있다. 그들이 하는 모든 주장은 거짓이 될 것이다. 금융 부문은 거래량이 50%로 떨어진다 해도 아주 잘 돌아갈 것이다. 훨씬 더 작은 금융 의 규모로도 지난 과거 별탈 없이 잘 지내왔다. 또한, 소규모 투자자들이 퇴직연금 비용을 부담할 것이라는 주장도 거짓처럼 보일 수 있다. 거래당 비용이 높을수록 거래량 감소가 상쇄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인정하고 싶진 않겠지만 금융거래를 통해 보통 투자자들이 돈을 벌 수는 없다. 평균적으로, 이기고 지는 것에는 일정한 균형을 유지 하고 있고, 활발한 금융산업의 영역에서 고수익을 내는 수익자는 거래를 통해 (타자의 손해를 통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금융거래세를 추진하고자 하는 대통령은 이러한 점을 일반 대중에게 알려야만 한다.
요약하자면, 경제 및 정치적인 측면에서 금융자산에 대한 FTT는 부유세보다도 더 많은 이점(利點)을 제공한다. 지난 40년간 보여진 불평등의 엄청난 증가에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잘 설계된 FTT가 정답이다.
딘 베이커
공공정책 연구소 (CEPR)의 공동대표이다. 그는 ‘완전 고용으로 돌아가기- 노동자들을 위한 더 나은 협상,’ ‘루저 자유주의의 종말 -시장의 진보화,’ ‘1980년 이후의 미국,’ 등 여러 책을 집필한 작가이며, 한겨레 신문의 기고자이기도 하다.
직접 민주주의는 선수들과 참가자들이 많은 하나의 “경기”인데, 시민들에게 그저 관람석에 앉아 있는 방청객이 아닌 현장의 주인공 역할을 하게 한다. 순전히 대의적인 제도에서는 오로지 선출된 대리인들만이 테이블에 앉아 경기의 규칙을 지시하지만, 직접 민주주의로 시민들은 온전한 의미의 주권자가 된다. 잘 정비된 모든 레퍼렌덤 권리에 관한 법규에서는 제도권의 다른 선수들에게도 중요한 역할이 주어진다. 의회 및 주 의회, 기초자치단체 의회는 경기의 규칙을 정하고 국민발안에 응답하며, 대의 기구들은 레퍼렌덤의 발안자들과 협상하고, 다른 기관들은 공식 정보전달을 담당한다. 법정은 중재자 역할을 자청하거나 시민들의 불만을 다룬다. 단 두 가지 행위만이 이제 더 이상 선출된 정치인의 권한에 속하지 않게 되는데, 그들이 경기를 방해할 수 없다는 것과 만일 시민들이 레퍼렌덤 도구를 통해 요구한다면, 그들은 규칙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회, 주 의회와 기초자치단체 의회
직접 민주주의 기제로 보완된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입법 절차는 법률의 승인으로 끝나지 않고 확정적 레퍼렌덤 기간의 종료와 그에 이은 법률 반포로 끝난다. 입법 발안은 헌법에 규정되어 있듯이 선출된 대의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에게 권리가 있으며, 시민들은 거부권(확정적 레퍼렌덤) 또한 지니게 된다. 이는 고대 로마 정치 제도의 전통이다. 다른 한편으로 의회는 시민들이 제출한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견해를 밝힐 의무가 있으며, 그 내용을 대폭 수용하여 발안자들의 동의가 있으면 국민투표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자신들의 반대 제안을 레퍼렌덤 투표에 가져갈 수 있다. 현재 이탈리아에서 이런 것이 아직 가능하지 않지만, 스위스에서는 근 150여 년 동안 실시되어온 관행이다. 이 경우 의회가 유일하게 앞장서서 경기에 참여하지 않는다. 확정적 레퍼렌덤의 경우 원칙적으로 다수파가 자신들의 법 제안을 방어하고, 소수파는 다른 입장을 취한다. 레퍼렌덤 의제에 관한 원내 정당들의 성향은 여전히 시민들의 동향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선출된 대의원들과 투표권을 지닌 시민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이 “경기”에서 늘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은, 직접 민주주의에서는 어떤 정당에 대한 신임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안을 다룬다는 점이다. 견해나 다수파의 형성은 횡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선출된 대의원들은 물론 시민들 사이에서도 구속성이 훨씬 적다. 레퍼렌덤 투표가 정부나 다수파에 대한 신임 투표로 해석되거나 이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 국민투표 이후 선출된 기관은 오직 겸손하게 결과를 존중하고 시행에 옮겨야 한다.
집행 기관: 정부와 지방 정부
정부와 주 정부 혹은 기초자치단체 정부의 구성원들이나 그 외 공무기관의 공무원들은 어떤 레퍼렌덤 캠페인을 지지할 수 있는가? 아니면 정부와 행정당국은 원칙적으로 모든 종류의 레퍼렌덤 투표의 홍보행위를 삼가해야 하는가? 공공 기관이나 공기업(우편, 철도, 방송국, 전화국 은행 등)들이 직접 참여하여 후에 해당 기관의 자금을 유용流用하는 것은 더욱 민감한 문제일 것이다. 가끔 시장이나 주지사들이 어떤 레퍼렌덤 의제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며 직접 활동을 펼치는 것을 목격한다. 그런데 이는 좋은 직접 민주주의 관행에 속할까?
정부나 지방 정부가 자신들이 지닌 수단과 기간 시설, 자금을 갖고 레퍼렌덤 투쟁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인지 논란이 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큰 불균형을 가져올 것이다. 납세자들이 납부한 공공 재원을 확보하고 있는 정부는 대중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사회 및 정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입장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민주적인 대결이 왜곡된다. 공기업이나 공익 단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이 직접 현장에서 선수로 참가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정확성과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
흔히 집행 기관은 직접 민주주의를 하나의 걸림돌로 바라본다. 시민들에게 어떤 법률이나 국책 사업을 무효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시민들 편에서는 그 실행이나 그에 대한 승인을 확정적 레퍼렌덤에 부칠 수 있으므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민투표에서 기각되면 그런 법률이나 국책 사업은 시행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적들이 위협을 느끼는 “입법 기능의 마비”를 상상하기는 힘들다. 그것은 근거없는 두려움이다. 그게 아니라면 스위스는 벌써 수십 년 전부터 마비되고 손댈 수 없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중재자: 사법부
어떤 경기에서건 흔히 속임수나 반칙을 저지르는 이들이 있다. 직접 민주주의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공적 혹은 중립적 관계자들은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국민발안 법 제안의 모든 공식적인 측면들을 검토하는 특정 위원회가 설치된다. 의제 작성, 제안의 허용성, 서명 인원수와 인증, 기간 고려 등 모든 것이 공공 기관과 “보증 위원회”에서 확증되어야 한다. 발안 위원회의 지출과 레퍼렌덤을 위한 최대지출 허용 한계 또한 관리해야 한다. 이러한 위원회들의 심의가 나중에 법정에서 지연될 수도 있다.
대개 이 보증 위원회는 재판관magistrate(일반적인 판사judge와 달리 ‘하급 판사’ 혹은 ‘치안 판사’를 지칭.─역자 주)과 법률 전문가로 구성된다. 법정에서는 종종 정치 기구들과는 다른 결론에 도달하곤 하는데, 판사들 또한 법이나 레퍼렌덤 제안들을 서로 다른 관점과 대조적인 방식으로 해석한다. 이탈리아에서는 가령 헌법재판소에서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로 레퍼렌덤 의제들을 부적격한 것으로 판결한 사례가 많다. 직접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다양한 단계에서 사법부가 개입한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헌법 재판소의 역할은 어쨌건 매우 중요한데, 법률이 국회나 국민의 승인 여부와 상관없이 헌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 연방 법정은 칸톤이나 기초자치단체 차원의 레퍼렌덤을 무효화할 수 있지만 연방 차원의 레퍼렌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스위스에는 헌법 재판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증인과 재판관은 직접 민주주의라는 경기장의 심판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들은 때로 경계를 넘나들며 직접 선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정당: 관중만이 아니다
정당은 정책과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정치적 단체이며, 그 자체로 대의민주주의에서 필수 불가결하다. 선거를 통해 의회 및 지방의회에서 의석을 나눠 갖고, 집행 기구의 책임직을 분배한다. 이탈리아에서 ‘정당정치partitocrazia: partycracy’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당정치에서 전통 정당들은 아무런 제한 없이 공공 자금과 공공 기관에서 제공하는 권력을 누린다. 엄청난 정치적 후견인주의clientelism와 직업적 정치인 계급에게 지나친 특권을 부여하게 되어버린 체제이다.
다른 한편으로 정당들은 권력과 선거를 통해 정치적 인물을 선택할 뿐만 아니라 레퍼렌덤 경기에서도 핵심적인 선수들이다. 정당들 또한 시민 사회와 연합주의자associationist들과 협력하거나 대결하는 과정에서 레퍼렌덤 권리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직접 민주주의에서 정치 무대의 유일한 주역으로서 정당의 중요성은 줄어들고 있다. 자유롭고 자립적이며 정당으로 조직화되지 않은 시민들이 여기 합세하기 때문이다. 대개 지배 정당들은 레퍼렌덤 권리를 강화하는 것에 반대하는데, 권력과 통제력을 잃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야당들은 대개 호의적인데, 그들은 대안적인 제안들에 대해 행동할 수 있는 도구들을 얻게 되고, 그것으로 더 큰 적법성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접 민주주의는 무엇보다 이미 현존하는 원내 정당들이 아닌 시민들에게 명확한 의사표현 도구를 제공해야 하지만, 정당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정치에 헌신하는 시민들의 단체로 제시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직접적으로 입법 제안을 표명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수년 동안 군소 정당인 급진당Radicali이 “레퍼렌덤당”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며, 일련의 법폐지 레퍼렌덤을 시도했다. 또 다른 정당들은 레퍼렌덤을 통해 집권하는 다수에게 도전을 시도하여, 그것을 정부에 대한 불신임 투표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이것이 직접 민주주의의 목적이 아니다. 결국 정부 또한 자문형 레퍼렌덤을 시도하여 국민에게 최종 발언권을 줄 수 있다. 이 마지막 대안은 앞에서 설명한 플레비사이트, 곧 시민들이 주도하지 않고 정부가 주도한 레퍼렌덤 투표라는 특수한 경우에 들어간다. 어느 누구도 어떤 정당의 당원이 레퍼렌덤 제안을 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이 게임에서 주요 역할은 어쨌든 정당이 아닌 시민들에게 주어져 있다.
시민 사회와 시민들
직접 민주주의 절차들로 시민들은 정치적 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을 얻는다.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대개 위원회나 단체를 결성하고, 여러 단체나 조직된 시민 사회계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종종 어떤 프로젝트나 특정 층의 개입을 저지하거나 추진하려는 목적의 시민 위원회나 여러 단체와 비정부기구NGO들의 플랫폼이 구성된다. 이렇게 임시로 구성된 플랫폼이 종종 광범위한 동의를 이끌어 내면 성공 가능성이 높다. 2014년 실시된 어떤 분석에 따르면, 1874년부터 2013년까지 전 세계에서 시행된 전국 차원의 537건의 레퍼렌덤 중 시민 사회 단체들이 주도한 레퍼렌덤의 성공률은 38.4% 정도인 반면, 야당들의 성공률은 24.9%에 그친다. 이 모든 레퍼렌덤 투표의 대부분은(336건) 스위스에서만 실시되었다.
시민 위원회는 즉각적인 공적 행동과 저항이 필요한 시기에 생겨나며 명확한 구조가 없고, 국회에 대리인들이 없으며, 하나의 특수 목적만을 쫓는 경우가 많다. 국민투표 후에는 해산한다. 국민적 차원의 결정이 필요한 순간에 집중되기 때문에 동원이 가능하고 예산이 크지 않다. 이탈리아에서도 그런 발안이 수백 건에 달해─사냥 반대, 핵 발전소 반대, 해안의 천공 반대 등─큰 관심을 글었으며, 종종 레퍼렌덤 도구를 통해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단체와 위원회들에게 직접 민주주의의 도구들은 매우 큰 헌신이 필요한 도전이다. 종종 이런 작은 단체들은 어느 지방 전체의 유권자들이나 심지어 전국의 유권자들을 상대로 다수를 설득하여 투표장에 나가게 만들고, 또 그들 제안에 투표하도록 만들려고 힘쓴다. 이러한 단체들은 자기들 생각을 “국민의 뜻”인 양 선포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가진 역량으로 자기들 메시지를 전 국민에게 전달하고 설명해야 한다. 이런 임무는 최대한 의사 전달을 잘하기 위해 힘쓰게 함으로써 정치를 더욱 흥미롭고 생생한 것으로 만든다.
물론 큰 기업이나 노조 등 다른 큰 단체들 또한 직접 민주주의 도구들을 활용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경제적 카테고리에 드는 이들이 레퍼렌덤 권리에 대해 가장 확신하고 있는 지지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정당과 정부의 정치 권력 보유자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더욱 직접적이고 생생한 채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통치자를 겨냥하는 정치적 로비는 적어도 투표하는 시민의 절반 이상을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한 레퍼렌덤이라는 노선보다 더 효과가 크다.
레퍼렌덤 투표에서 때로 큰 조직과 더 강력한 정당의 이익에 대항하는 다수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노조이건 기업가 부류이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모든 시민들의 자유롭게, 의견이 여과되지 않고, 정당의 지원 없이도 자유롭게 국민발안이나 확정적 레퍼렌덤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레퍼렌덤 권리를 제대로 갖춘 체제는 정치를 더욱 공평하고 접근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언론 기관들
민주주의에서 의견과 표현의 자유는 떼어놓을 수 없다. 모든 시민들은 정보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기본권을 지닌다. 출판의 자유와 인터넷 사용의 자유는 헌법과 다양한 국제 헌장으로 보장된 자유이다. 그러나 실상 그것이 미디어 권력이 동등하게 분배되며, 모든 시민이 여론에 영향을 미칠 동등한 기회를 갖는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제안을 갖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을 배려하지도 않으며, 그들은 정치적 차원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것과 다름없다. 로비는 권력을 쥔 사람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듣게 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직접 민주주의의 도구들 또한 큰 미디어 그룹에 의지하지 않는 “보통”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게 만드는 데 활용된다. 그들은 협력자들과 지지자들을 찾아서 레퍼렌덤을 준비하고 서명을 모으며 레퍼렌덤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그렇다면 레퍼렌덤 절차에서 미디어는 어떤 역할을 담당할까?
모든 정치적 생리가 그렇듯이, 직접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도 미디어는 장내의 가장 중요한 선수들 중의 하나이다. 독재 체제의 통치자들이 무엇보다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제하려 드는 것도 그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정보의 주인이 될 뿐 아니라, 반대파 사람들이 대중 여론이나 지지자들과 소통하는 것을 막는다. 침묵으로 반대파를 질식시킨다. 미디어를 통제하는 사람은 정보의 흐름을 관리하고 대중 여론을 자기들 입맛에 맞추어 이끌어 간다. 인터넷에서 정보와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소통을 위해 자체적으로 운영되는 많은 공간들이 열렸지만, 거대 미디어에서 발표하는 뉴스만이 중요성을 지닌다. 거대 미디어에서 배척당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며 자유로운 사고의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러시아, 터키, 이란, 이집트 등의 독재 권력은 군사력 외에도, 민주주의라는 가면 뒤에서 권력자들에게 다수의 지지를 쉽게 보장해 주는 정보의 통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레퍼렌덤 도구의 사용에서 미디어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암호와 소셜 미디어만으로 필요한 서명 인원수나 레퍼렌덤 투표에서 승리하기 위해 요청되는 표를 모으는 것은 어렵다. 어떤 주제를 많은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각계 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도달하여 관심을 받고 타당성을 얻어내려면, 가장 중요한 거대 일간지나 TV 채널에 노출되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미디어 자체에서도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시민들이 전면으로 꺼내든 논점들을 다루는 것에 관심이 있는데, 매우 중요하고 현실적인 정치적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그들의 독자인 시민들에게서 자극을 받는다. 그러나 미디어 권력이 지배적인 과도 권력으로 변질되지 않고 정확성을 보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규제가 필요하다. 이런 취지에서 미디어와 정보에 대한 권리에는, 대중이 알아야 할 권리가 있는 정보를 다루는 기관에 대한 접근 가능성에서 시민들과 정치 세력들의 “공평성”에 대한 규정이 추가되었다. 미디어는 선거 캠페인에서와 마찬가지로 레퍼렌덤 캠페인에서 “공평성”의 원칙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 다시 말해 레퍼렌덤 투표에 도전하는 모든 이들에게 아무런 차별이나 누군가가 더 큰 혜택을 얻는 일 없이, 동일한 시간과 공간을 보장하는 것이다. 사적인 인터넷 출판이나 미디어에는 같은 의무가 부과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늘 소수의 거대 언론들이 큰 몫을 점유하고 있는 정보 시장에서는 중립적이고 공식적인 정보가 모든 투표권을 지닌 이들의 가정에 직접 전달되도록 보장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시민들은 이 경기를 하고 싶어 할까?
직접 민주주의의 회의론자들 중에는 오늘날 현실 민주주의에서는 어쨌든 선출된 정치인들을 그리 중요시하지 않으며, 가끔 있는 레퍼렌덤 투표로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는 시민들은 더욱 적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들이 있다. 정치 생리에서 참으로 중요한 세력은 그와는 완전히 다른 세력이리라는 것이다. 이는 대의민주주의든 직접 민주주의든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숨은 주역, 배후 조종자들이 있다고 가정하는 그런 접근법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정부와 지방 정부 및 정당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지닌 강력한 권력자들이 더 이상 직접 민주주의를 장악하고 있지 않다. 직접 민주주의는 어쨌든 정치 권력을 분산시키고, 그 권력의 일부를 시민들에게 돌려 주며, 소수 여당의 소수 지도자 몇몇의 권력 독점을 막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적 이익과 정치 및 행정 권력들 간의 관계가 얽히는 것을 막기 위해 레퍼렌덤 권리가 더 필요한 이들은 정치 권력과 경제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또 너무나 많은 현안에 대해 모든 정부 차원에서 이미 투표가 지나치게 많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당연히 참정권이 불충분하고, “정치 계급과 정당들”에 대해 전반적으로 실망이 큰 체제에서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도 더 크다. 본질적으로 레퍼렌덤 권리는 일단 도입되고 정기화되면 시민들도 활용할 것이다. 다룰 논점과 현안들은 물론 부족하지 않다. 부족한 것은 주권자인 시민들이 자유롭고 합리적으로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신뢰이다.
결국 대개 직접 민주주의에 활발히 참여하지 않는 이들을 위해서도 직접 민주주의 도구들을 언제든 쓸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스위스에서는 모든 레퍼렌덤 투표에 정기적으로 참여하지는 않는 시민들이 많지만, 막상 직접 민주주의가 제한된다면 이들은 분개할 것이다. 효율적인 레퍼렌덤 권리 앞에서 정치인들은 보통 시민들에게 더욱 존중심을 지니게 된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의 경합과정에서 보이는 중도 구파의 모습에서 현재 한국 제도정치의 모습을 그대로 읽어볼 수 있다. 촛불혁명 덕분에 출범한 현재의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실패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현실에 도전하여 개혁할 의지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기득권 세력과 야합하는 무기력한 정치 때문일 것이다. 특히 오바마는 미국에서 트럼프를 등장시킬 빌미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이명박근혜와 함께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를 망쳐버린 장본인이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대비하며 공화당만큼 권력의 상실을 두려워할만한 미국의 또 다른 정치계층은 중도성향의 민주당 그룹이다. 버락 오바마 前대통령은 최근 자유주의 성향의 부유층 기부자를 대상으로 한 행사에서 “대부분의 국민은 제도를 완전히 해체하고 재정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하며, 그들의 두려움을 구체화했다. 그것은 “MediCare for All (모든 사람을 위한 의료제도)”, “그린뉴딜”과 같은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행동계획 또는 엄청난 재산의 일부를 환원하는 억만장자에 부과되는 “자산세”에 대한 빗발치는 요구를 저격하는 노골적인 언급이었다.
오바마의 발언은 해시태그 “#TooFarLeft (극심한 좌파성향)”를 타고 트위터에서 반발을 불러 일으켰으며, 사람들은 여러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과감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것이 극심한 좌파성향(too far left)으로 비춰진다면 “그것이 사실이다”는 입장을 보였다. 여전히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전직 대통령이 진보적 후보자들을 훈계한 사건은 지난 몇 주간 두 번이나 발생했다. 그는 10월말에 있었던 한 행사에서 “순수하다고 믿는 신념, 결코 타협하지 않는 태도, 항상 정치적으로 ‘깨어있는’ 태도라고 치부하는 태도는 하루 빨리 극복해야 하는 병폐다”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마치 고집스런 보수적 세대의 미국인들이 좌파를 “암적 존재”라고 비난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하였다.
짐작하건데, 오바마는 자신이 속한 당의 진보적인 목소리뿐만 아니라 좌파정치를 실현하고 있는 가장 인기있는 두 대통령 후보자인 버몬트주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와 메사추세츠주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렌으로부터 위협을 느끼고 있는 듯 하다. 상기 두 대통령 후보자는 여론조사에서 중도성향의 선두주자이자 오바마 정권시절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보다 점차적으로 누적 지지율을 꾸준히 높여오고 있다. 오바마의 발언은 밀레니엄 세대에 대해 꼰대 “OK Boomer”가 신랄한 반박을 하는 것에 해당한다, 젊은 세대들은 불의에 대해 침묵을 지키라는 꼰대들의 잔소리에 지쳐 있다.
중도파들은 바이든과 오바마보다 매우 진보적인 후보, 즉 자신들이 속해있는 당파의 정체성을 위협을 하는 후보를 중심으로 결집할 수밖에 없을 상황에 우려하고 있다.
흔들림없는 샌더스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오바마의 비판을 무시하면서, 자신이 “최저임금을 생계가능한 수준의 임금으로 올려야 된다고 말한 것은, 미국의 시스템을 망가뜨리자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는 정의의 실현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보건의료 분야에 관련하여 “미국만이 세계 주요국 중 유일무이하게 남녀노소의 의료보험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불명예를 종식시키자고 이야기하는 것 역시 시스템을 망가뜨리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30년 전에 시작했었어야만 했던 일을 이제 하려는 것뿐 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이러한 발언들은 하루하루 고생하며 살아가는 수 백만의 미국인들의 가슴을 울리지만, 불평등한 체계를 통해 이익을 받고 있는 (기득권)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간단히 말해서, 미국정치는 지금까지 양당의 야합으로 경제체제를 부유한 엘리트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갔으며, 이들 입법자들은 지난 날 미국의 부를 더욱 공평하게 분배한 적절한 제도(뉴딜)를 “폐지”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백만장자가 아닌 미국 국민들이 “역사상 최초로, 지난 해 미국 백만장자들이 중산층보다 적은 세금을 내게 되었다” 라는 보도 자료를 읽었을 때, 이는 마치 오바마가 우리에게 이런 좋은 제도를 폐지하지 말아야 된다는 말처럼 매우 모욕적으로 들린다. 그런데 좋은 제도는 백만장자와 오바마를 포함한 백악관과 의회에 있는 그들의 추종자들에 의해서 붕괴되어 왔다.
샌더스와 워렌의 인기는 미국 내 곳곳에 퍼진 국민들의 분노를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편, 당연스레 부유한 엘리트층의 걱정을 자아내고 있다. 그들의 상상할 수도 없는 만큼의 부(1억 달러를 갖던 10억 달러를 갖던 한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에 있어서 실제로 아무런 차이도 못 느끼는)를 지키려는 어설픈 언설로, 그들이 처한 곤경을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과 비교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의 백만장자 레온 쿠퍼맨은 그가 비난을 받은 상황에 대해 불평했다. “백만장자가 무슨 잘못이 있나요? 당신도 사람들이 즐겨 구매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한다면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걸요” 라며, 그는 아주 쉽게 역겨울 정도로 엄청난 부를 얻었다는 듯이 말했다.
쿠퍼맨은 불공평한 세금정책, 해외조세도피, 납세자 보조금 등 그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조작하여 일반국민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해서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무시했다. 그는 워렌이 제안하는 자산세에 대해 “나는 누진소득세와 부유층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것은 워렌이 싸질러놓은 빌어먹을 아메리칸 드림이다. “라고 말하며 맹렬히 비난했다.
워렌과 샌더스 같은 후보를 못된 트럼프 형의 그러나 좌파로 낙인을 찍은 사람들도 있다. “저명한 월스트리트의 해지펀드 매니저이자 워렌의 라이벌을 위해 모금하고 있는 민주당 소속”으로 알려진 어떤 이는 메사추세츠 상원의원에 대해 “트럼프 때 공화당원들이 겪었던 경험과 같습니다. 당신은 그녀를 평가하면서 그녀가 국가를 위해 끔찍한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그것에 대해 어떤 말을 하든 그녀를 더욱 강하게(고집스럽게) 만들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허둥대는 부자들은 한참 늦은 단계에서야 그들이 지지하는 후보들을 선거운동에 참여시켰다. 최근 경쟁에 합류한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개인의 재산이 너무 많아 선거자금을 모을 필요도 없을뿐더러 반트럼프 광고에 1억 달러를 쓸 계획이다. 이에 열광하는 월스트리트의 경영진들은 그를 지지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한편, 경쟁에 뛰어든 또 다른 신인인 메사추세츠 전(前)총재 데발 패트릭은 그 시점에 다른 후보들이 더러운 돈이라며 피하던 수퍼 PAC(전미회의: 기득권자 집회)을 통해 들어온 기부금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패트릭은 또한 기업과 자본주의를 옹호 하는 것을 출마의 핵심으로 잡았으며, AP통신 인터뷰 도중 “이 나라에 진행되고 있는 사적 이익의 투기가 만들어낸 좋은 예들이 많다”라고 언급했다. 한편 AP 통신은 패트릭이 ” 석유 및 가스회사의 자문역으로 일했던 사실과 비우량 대부회사로 2012년대선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중산층에게 약탈적인 회사라고 비난했고 롬니 후보의 목을 조여왔던 사모펀드 베인 캐피털에서 중역으로 봉사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민주당 후보 중 중도파의 상위를 형성하고 있는 바이든과 인디애나의 사우스밴드 시장인 피트 부티지지는 많은 후보들로 넘쳐나는 지역에서 선두가 되기 위해 헛수고를 해왔다. 바이든의 아들 헌터가 우크라이나 석유회사 이사회에서 보여준 부도덕적인(불법이 아니라면) 입장이 계속해서 언론의 헤드라인에 대두되면서 바이든은 하락세를 타고 있다. 前부통령 스스로도 최근 대마초를 “게이트웨이 드럭 (습관형성 약물)”이라고 칭하는 시대착오적 발언을 하는 등 끊임없는 말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부티지지가 일단의 상승세를 타고 있을지는 몰라도, 그는 민주당의 중요한 지지층인 흑인유권자의 저항에 직면해 있다. 흑인유권자들이 대놓고 동성애자 후보를 불편하게 여긴다는 단순하고 인종차별주의적인 주장을 넘어, 그는 사우스밴드 사법제도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현재,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흑인유권자 지지를 조작한 것에 대한 조사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 몇 달 뒤면 민주당내 중도세력으로부터 트럼프를 이기기 위해 자신들 성향의 단일후보를 집중해서 밀어주자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될 것이다. 그러한 후보는 공화당과 타협하고 본질적으로 인종차별이 덜한 노선, 즉 트럼프 이전의 현상유지를 유지할 수 있는 온건한 중도주의자여야만 한다는 이야기 또한 들을 것이다. 중도주의자들은 유권자들이 무식하다고 비난할 것이고, 그들 스스로 샌더스나 워렌 후보 간에 단일후보화 하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오바마가 좌파를 비난한 행사에서 그는 “그들이 오차범위의 밖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오바마는 조심성이 없는 대통령 후보 때문에 2016년 대선에서 패배한 최근의 기억을 완전히 잊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사람들”은 신중하지 않다. 불평등을 유지 보존하고자 하는 (기득권) 사람들이 신중한 사람들이다. 아무리 그들의 입장에서 희망스럽게 전망하려 해도, 그들의 시대가 이미 끝나가고 있다는 현실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Sonali Kolhatkar
Truthdig의 주요 기고자이자, “Rising Up With Sonali,” TV & Radio show 설립자 겸 진행자
서울 아파트 가격이 24주 연속 상승했다는 기사, 서울의 매수우위지수(100을 기준으로 이 보다 높으면 매수희망자가, 이 보다 낮으면 매도희망자가 많다는 뜻이다)가 125.2로 10월 초 100을 돌파한 후 계속 상승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는 심정은 울적했다.
작년 9.13종합대책 이후 거래가 격감하고 일부 랜드마크 단지들은 가격이 꽤 큰 폭으로 떨어지기도 했는데 6월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몇몇 이유들이 떠오른다. 우선 사상 최저치인 기준금리(1.25%)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금리가 낮다는 건 경제주체들의 체질이 그만큼 허약하다는 의미도 되지만, 단기적으로는 자산상승의 실탄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아울러 박근혜 정부 당시 초이노믹스와 발맞춰 이주열의 한국은행이 공격적이고도 추세적인 금리인하를 했고, 그게 2014년 가을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의 뇌관 역할을 했음을 많은 시장참여자들은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화폐개혁 논의도 서울 아파트 시장의 상승세 전환에 일정 정도 역할을 한 것 같다. 화폐개혁을 하면 강남 및 서울 아파트를 들고 있는게 유리하다는 이상한 논리가 빠르게 전파되며 그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꽤 있었던 듯 싶다.
물론 ‘서울 아파트는 오늘이 바닥이다’, ‘서울 아파트는 공급이 부족해 더 오른다’라며 곡학아세와 참주선동을 일삼는 미디어와 자칭, 타칭의 부동산 전문가들 영향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 시장의 상승세 전환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건 다름 아닌 문재인 정부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시기부터 불기 시작한 투기광풍을 출범 초에 압도적인 정책수단들을 집중적으로 투사해 잠재워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8.2부동산 종합대책으로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줄어들자 그해 12월에는 임대주택사업자에 대한 세제 및 대출혜택을 오히려 크게 늘리는 치명적 패착을 저질렀다. 그 결과 다주택자들이 대거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또 다시 투기에 나서는 사태가 벌어졌다.
작년 여름에 엄청난 투기폭풍이 불고 서울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자 문 정부는 부랴부랴 9.13부동산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9.13종합대책에도 투기심리를 꺾는 특효약이라 할 보유세의 획기적 강화와 임대사업자에 대한 특혜의 전면 철폐는 담기지 않았다.
정부가 투기와 전쟁을 벌일 의지가 없고 부동산 불로소득을 제대로 환수할 의지가 약함을 시장참여자들은 귀신 같이 간파한다. 부동산을 사거나 들고 있는게 이익 보다는 손해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시장참여자들은 사소한 재료나 소식에도 금방 투기심리에 포획되곤 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서울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걸 방관한다는 건 총선을 포기한다는 의미이니 문재인 정부가 3차 부동산 종합대책을 내놓긴 할 것 같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 3차 부동산종합대책에는 시장참여자들의 투기심리를 완전히 잠재울 대책들을 담아야 할 것이다.
언뜻 생각나는 것이 ‘보유세의 획기적 인상 로드맵 발표’, ‘3개월 정도의 유예기간을 둔 양도세 중과’, ‘임대사업자에 대한 혜택의 전면적이고도 소급적 폐지’, ‘투기의 자금 역할을 하는 전세자금대출 제도에 대한 엄격한 관리’,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지역의 대거 확대’ 등이다.
서구와 한국의 언론들은 8년 전에 튀니지로부터 시작된 아랍권의 색깔혁명을 민주화 봄이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해당 지역의 전문 연구자의 기술과 평가는 정반대 편에 서 있다. 현재에도 서구와 한국 언론들은 여전히 중국의 일국양제에 대한 일부 홍콩인들의 폭력적 저항을 민주항쟁이라고 연일 보도하면서도 남미에서 격렬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민중들의 신자유주의와 미패권에 대한 치열한 해방투쟁은 제대로 보도조차 하고 있지 않다.
북한 역시 리비아의 사례를 크게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구 언론들의 언술적 마법에서 벗어나 10년 뒤의 홍콩과 남미 국가들의 모습을 상상해면서 아래의 칼럼을 번역 소개한다.
무아마르 알 카다피
지난 9월, 미국이 지지해주고 있던 이드리스 왕을 전복한 무아마르 카다피의 리비아 혁명 이후 반세기를 맞았다. 1969년 리비아 혁명에서 무아마르 카다피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들 중 하나인 리비아를 승계 받았다. 그러나 42년 뒤, 그가 암살 당했을 당시 카다피의 사회주의를 통해 리비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되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리비아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기대수명이 가장 높았다.
2011년의 서구세력의 반체제 운동으로 리비아는 실패한 국가가 되었고 경제는 혼란에 빠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중 최악의 실수는 리비아”이며, “(카다피 정권 붕괴) 이후를 위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라고 말했다.
지난 50년 동안 리비아에서 일어난 두 개의 혁명은 확연하게 정반대의 형태를 띠고 있다. 카다피의 사망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초래 했다. 서구의 대사관은 모두 리비아를 떠났고, 리비아 남부는 테러리스트들의 피난처가 되었으며, 북부 해안은 대량 이주자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집트, 알제리, 튀니지는 모두 리비아와의 국경을 폐쇄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은 중심부가 붕괴된 국가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학살, 강간, 고문과 더불어 발생했다.
2011년, 서구는 확실히 아프리카에서 생활수준이 가장 높은 리비아 국민을 돕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았다. 카다피를 몰아내고 꼭두각시 체제를 만들어, 리비아의 천연자원을 장악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사람들은 서구의 리비아 개입이 또 다른 석유 강탈에 불과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군사 개입의 목적은 미국에 있어서는 무기, 이탈리아에 있어서는 석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프랑스에 있어서는 물 때문이었다. 리비아가 아프리카, 지중해, 아랍 지역의 전략적 요충지의 가장 중심에 있다는 것을 고려 할 때, 리비아를 통제 하는 것은 서방국가들이 이 세 지역에 세력을 뻗칠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2011년 혁명에 대한 프랑스의 지지는 석유보다 더 귀중한 자원인 물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물은 20세기에 석유가 보장했던 것을 21세기에 약속한다. 물은 국가의 부와 운명을 좌우하는 귀중한 자원이 될 것이다. 기름과 달리 물을 대체 할 수 있는 자원은 없다. 자연은 물의 공급을 규정한다. 한편 물에 대한 수요는 인구가 증가하고 인간의 삶이 풍요로워짐에 따라 거침없이 증가한다. 인구 증가, 기후 변화, 공해, 도시화가 끈끈하게 결합되어 있기에 2040년에는 물 수요가 공급을 40퍼센트 앞설 것으로 예상한다.
리비아는 석유보다 더 귀중한 자원인 세계 최대의 지하수 공급원인 누비아 샌드스톤 아퀴퍼(Nubian Sandstone Aquifer)에 자리잡고 있다. 이 화석수의 대수층은 약 2만년 전에 형성되었으며, 15만 큐빅 킬로미터의 신선한 물을 수용하고 있다. 카다피는 하루에 200만 큐빅 킬로미터의 물을 수송할 수 있는 사막 아래에 4,000km 길이의 복잡한 수로를 설치하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the Great Man-Made River Project) 에 250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 같은 기념비적인 물 유통 프로젝트는 95%가 사막으로 뒤덮인 리비아를 자급자족이 가능한 작물을 경작 가능한 오아시스로 만들기 위함 이었다.
오늘날 수에즈, 온데오 및 사우르와 같은 프랑스의 다국적 물 기업은 이미 세계산업의 4억달러에 달하는 지구상 물 시장의 45프로 이상을 통제하고 있다. 이런 프랑스에게 2011 리비아 혁명은 리비아의 놀라운 수자원의 통제와 민영화를 진행시키는 것과 같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리비아에 폭탄을 투하하기 몇 달 전 미 중앙정보국(CIA)은 “… 강과 호수, 대수층 등 미래의 국가안보 자산이 되는 자원을 쟁취하기 위한 미래의 ‘수자원전쟁’에 대해 경고했으며 용병과 대리인 국가들을 통해 통제했다. 리비아의 정권교체 혁명은 패권국가들의 수자원 전쟁이라는 주요한 예시가 되었다.
이제 리비아의 물로 인한 수익은 서부 세력이 취하고 있으며, 놀랍지도 않게 리비아의 서부는 식수 고갈을 겪고 있다. 기업의 욕심과 방치로 인해 나라의 주요 수도관의 3분의 2가 더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리비아의 유니세프 대변인인 무스타파 오마르는 향후 대략 4백만명의 리비아인들은 지구상의 가장 큰 대수층을 바로 아래 두고도 안전하게 마실 물을 구하기 어려워질 것 이며, 이로 인해 A형 간염, 콜레라 및 다른 설사병들이 발병할 것으로 예측 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그들의 전 식민의 석유와 가스를 착취하고자 하는 갈망으로 2011 혁명의 지지 의욕을 불태웠다. 리비아는 아프리카에서 석유 매장량이 가장 높다. 카다피 정권 아래 석유 수출의 85%는 유럽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카다피 정권 이전의 아이드리스 국왕은 근본적으로 스탠다드 석유회사가 리비아의 석유법을 작성하도록 했다. 카다피 정권은 이러한 행위를 중지 시켰고, 석유로 벌어들인 돈은 모든 리비아 국민의 은행 계좌로 직접 입금되었다. 이탈리아가 석유 회사들은 이러한 고귀한 관행을 멈추어버린 것은 놀랍지도 않은 행위였다.
리비아의 석유는 근접성, 추출의 용이함, 유황분이 적은 원유의 특성을 갖고 있어 이탈리아에게 아주 중요한 자원이다. 이탈리아와 다른 지역 대부분의 정제소는 유황분이 적은 리비아산 원유를 취급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이 설비들은 리비아산원유 부족으로 인해 대체되는 묵직한 사우디 원유를 취급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리비아는 52.7조 큐빅 피트 이상의 천연가스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방대한 면적의 지역이 여전히 탐구 되고 있다. 리비아산 석유의 확보로 이탈리아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덜 의존하게 되었고, 이에 대하여 유럽 본토에게 자랑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 거대 석유회사인 Eni는 영국 석유의 리비아 자산에 대한 통제 지분을 최근 매입했으며 매일 7억6천만 규빅 피트의 천연가스를 추출하도록 리비아 정권과 거래 했다.
프랑스인들은 리비아의 물 시장의 전리품을 누리고 있으며, 석유와 천연가스의 대부분은 이탈리아인들에게 돌아간 반면에 결과적으로 2011년 혁명에서 미국은 무기밀매의 시장을 노리게 되었다.
뉴욕타임즈는 2019년 6월 미국이 지지한 리비아 반란군의 무기고에서 미국의 중화기들이 발견되었다고 보도하였다. 뉴욕타임즈는 “미사일 상자는 무기 밀매거래의 대부이자 공동 제조업체인 Raytheon과 Lockheed Martin 것임을 확인하였으며, 1억 1천 5백만 달러에 해당하는 재블린 미사일 주문거래 번호 또한 표기되어 있었다.”라고 언급했다. 리비아는 이제 미국 무기거래상에게 노다지가 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허술한 무기 은닉처가 되었다. 2011년 리비아 혁명은 서구를 위해 석유, 물, 무기, 천연가스까지 수십억 달러를 긁어 모아 내어줬으며, 리비아인들에게는 끝없는 불행과 내전만을 일으켰다.
50년 전 카다피의 혁명은 완전히 달랐다.
40여년 동안 카다피는 경제민주주의를 장려했고, 리비아인들을 위한 진보적인 사회 복지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위해 국유화된 석유를 활용했다. 카다피 통치 하에서 리비아인들은 무료 의료 서비스와 무료 교육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무이자 대출과 무료 전기 혜택을 누렸다.
NATO의 카다피 퇴진에 힘입어 한때는 번창했던 지역인 트리폴리는 이제 정전사태가 흔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수천 명의 필리핀 의료 서비스 인력들이 해외로 도피하여 의료 부문은 붕괴 직전까지 치닫고 있으며, 동부 전역의 고등교육기관들이 문을 닫고 있다.
서구의 지지를 받은 2011년 혁명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은 집단 중 하나는 리비아의 여성들이다. 다른 많은 아랍 국가들과 달리 카다피의 리비아 여성들은 교육, 직업, 이혼, 재산 보유, 수입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유엔 인권이사회는 카다피가 여성의 인권을 증진시켰다고 칭찬하기 까지 했다.
1969년 카다피가 정권을 잡았을 때 대학교에 진학한 여성은 거의 없었다. 2011년, 미 공군이 리비아를 폭격하기 직전에는 리비아 대학생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다. 카다피가 1970년에 처음 통과시킨 법안들 중 하나는 노동 평등과 그에 따른 동등한 임금 제공에 관한 법안 이었다.
2011년 혁명 이후, 새로운 ‘민주주의’ 리비아 정권은 여성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 새로운 지배층은 가부장적 전통에 강하게 사로잡혀있다. 또한 개입 후 리비아 정치의 혼란을 틈타 양성평등을 서양의 도착적인 행위로 보는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이 군림하게 되었다.
서구의 언론에서 ‘카다피의 군사 독재’라고 표현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실과 반대로, 리비아는 사실 민주주의 국가였다. 카다피의 독특한 직접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전통적인 정부기관은 해체되고 폐지되었으며, 각종 위원회와 의회를 통해 국민들이 권력을 갖게 되었다.
리비아는 한 사람의 손에서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강한 분권력을 지니고 있으며, 국가내 “미니 자치주”와 같은 다수의 작은 공동체들로 나뉘어져 있다. 이 자치주들은 그들의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으며, 석유 수입과 예산 기금을 분배 방법을 포함하여 다양한 결정권을 갖고 있었다. 이 작은 자치주 내에서 리비아 민주주의의 3대 주체는 지방 인민 회의, 기초 인민 회의, 총 인민 회의 였다. 리비아의 기본 인민회의(BPC 또는 Mu’tamarshaʿbiasāi)는 본질적으로 영국 의회의 하원 미국 의회의 하원의원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
그러나 리비아의 8백 명의 기초인민회의는 그들만을 위한 법을 만드는 부유층의 선출 된 대표들로 구성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의회는 모든 리비아 시민들이 법제정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2009년 카다피는 리비아에 뉴욕 타임즈를 초청하여 2주 동안 리비아의 직접 민주주의를 지켜볼 수 있게 하였다. 뉴욕 타임즈는 카다피가 실행하고 있는 민주주의에 관해 “리비아에서는 모든 사람이 모든 결정에 관여한다. 시민들은 위원회에서 만나 외교 조약에서부터 학교 설립에 이르기까지 모든 안건에 대해 투표를 한다.” 라고 말했다. 카다피 정권 하의 리비아는 군사독재와는 반대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번창한 민주주의 국가였다.
오늘날 리비아 내의 서구형 ‘민주주의’ 에서 지역, 부족, 대륙, 이슬람, 범죄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된 민병대가 최근 두 개의 파벌을 형성했다. 리비아는 현재 각각 총리, 의회, 군대를 꾸리고 있는 두 개의 정부가 있으며, 이들은 영구적인 내전을 부채질하고 실제 민주주의 국가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기회를 파괴하고 있다.
카다피의 혁명은 확실히 21세기 경제민주주의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실험 중 하나가 되었다. 이와 아주 대조적으로, 서구 지지 하에 이루어진 2011년 반정부 시위는 21세기의 가장 큰 사회적, 군사적 실패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 될 것이다.
Garikai Chengu
고대 아프리카의 저명한 역사학자. 하버드와 스탠퍼드 및 콜롬비아 대학에서 평생 아프리카 지역을 연구하였다.
지금까지 러시아는 유럽 국가들과 협력해왔고, 국내적으로는 중부 지역에 관심을 뒀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개발이 완료되고 인구도 충분한 데 반해 극동 지역은 사정이 여의치 않다. 극동지역의 인구는 660만 명, 러시아 전체 인구의 5% 정도로 가장 낮은 인구밀도를 보이고 있다. 면적은 617만 ㎢로 국토의 36%인데 프랑스 영토의 10배이며 남북 거리 4500 ㎢, 동서 거리 3000 ㎢이다. 그런데 다이아몬드의 98% (야쿠츠크), 백랍 80%, 황금 50%, 어류.수산물 40%, 러시아 삼림 30%가 이 지역에 있어 원자재의 보고이다.
푸틴이 집권한 2000년부터 러시아는 극동지역을 개발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했다. 극동지역은 동북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 확보는 물론 아태지역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위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극동.시베리아 지역 개발과 아태 경제권으로의 편입이라는 과제에 직면하면서 러시아 중앙과 지방이 윈윈할 수 있는 개발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러시아 중앙정부는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블라디보스토크시를 아태지역 국제협력센터의 중심지로 육성하려 했다. 국제정치와 경제의 중심지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낙후된 러시아 극동지역을 개발해 이러한 국제질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은 극동지역을 선도적으로 개발하되 단기간이 아니라 21세기 내내 관심을 갖는 프로젝트가 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빅토르 고르차코프 연해주 입법의회 의장은 2016년 7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방 차원에서 100년간 보장되는 개발사업으로 보면 된다. 연방 정부에 극동개발부가 신설된 것도 그 일환이다. 또 푸틴 대통령이 극동에서 추진 중인 사업 가운데 변경된 건 전무하다. 불황으로 지원 예산이 삭감된 지역이 많지만 극동러시아만은 한 푼도 줄지 않았다. 또 우크라이나 사태로 대외환경이 어려워졌지만 러시아는 2015년에 이어 올해도 9월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방경제포럼을 열기로 결정했다. 푸틴 대통령의 뜻이 강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지역을 개발하면서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지역개발에 필요한 자원 조달 문제는 동북아 주요 국가의 참여 유도로 해결하려 하고, 노동력 부족 문제는 중국, 북한 등 옛 사회주의 형제국들의 노동력을 유입하면서 해결하려 한다. 특히 극동은 지역개발에 필요한 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극동지방의 인구는 지난 1992년부터 2001년까지 10년 동안 100만 명 정도가 줄었다. 인구 감소의 주 원인은 출산율 저하와 외부로의 인구 유출이 꼽힌다. 육체노동을 꺼리는 현지 주민들의 노동의식도 한몫 작용하고 있어 지역 개발을 위해서는 외국 노동력을 수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실제 상당수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고 있다. 이 가운데 중국인 노동자의 진출이 절대적으로 많다. 2005년을 전후한 시기에 극동에 체류중인 중국인 노동자가 80만 명 정도인 것으로 추산됐다. 그런데 상당수 러시아인들은 중국인 이주가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것이며 최악의 경우 중국인들에게 러시아 영토의 일부가 상실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한다.(신황화론)
여기에 극동으로 파견되는 북한 노동자들이 러시아의 고민을 다소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근면한 북한 노동자들은 중국 노동자들의 노동 현장 및 지역 시장 잠식을 어느 정도 제어하면서, 러시아가 우려하는 ‘극동지역의 중국화’ 문제를 해결하는데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 본다면, 북한 노동자들은 중국인 노동력 진출에 따르는 잠재적인 안보 위협의 해소와 극동지역 개발에 필요한 노동력 부족분을 충족해주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래서 러시아의 고민은 자연스럽게 한반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북한과의 관계를 통해 문제 해결에 접근하려 한다. 북한과의 관계는 지역안보와 북한 노동력 유입, 그리고 북한을 통한 한국의 투자유치 문제로 구체화되고 있다.
2) 첫 동방경제포럼
푸틴 대통령은 2012년 연방정부 내에 ‘극동개발부’라는 부처를 신설하고 극동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5년 9월에 처음 열린 동방경제포럼(Eastern Economic Forum)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나는 9월 3일부터 5일까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을 취재했다.
극동연방대학; 동방경제포럼 개최 장소
국내에선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지만, 러시아 내에서는 대단히 큰 규모의 행사였다. 푸틴 대통령이 참석해서가 아니라, 이 포럼을 기획. 추진한 당사자가 푸틴이기 때문에 그렇다. 최고 지도자가 의지를 갖고 밀어 붙이니 밑에서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트루트네프 러시아 부총리 겸 극동연방지구 대통령 전권대표가 총감독이 되고, 극동개발부가 발로 뛰어 만든 작품이다.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이렇게 초대형 경제포럼이 열린 것은 2015년 당시가 처음이다. 동방경제포럼은 한마디로 외국투자 유치 설명회라고 할 수 있겠다. 러시아는 투자하기 힘든 곳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적인 조치들이 대거 발표됐다. 그 중 핵심은 ‘선도 개발구역 조성’과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선포’이다.
▷ 선도 개발구 : 극동에 분야별로 특화되고 경제자유구역(EEZ)과 비슷한 여러 개의 산업기지를 조성해, 정부가 인프라를 구축해 주고 각종 행정.세제상의 특혜를 부여 함으로써 국내외 입주 업체들을 끌어들이려는 사업이다.
9개 선도 개발구는 다음과 같다.
1)하바로프스크 선도개발구역(공업 위주): 하바로프스크 지방
2)콤소몰스크 선도개발구역(공업 위주): 하바로프스크 지방
3)나데즈딘스키 선도개발구역(경공업.식품공업.운송-물류): 연해주 지방
4)미하일로프스키 선도개발구역(축산업.농식품 공업): 연해주 지방
5)프리아무르스키 선도개발구역(공업.운송-물류): 아무르 지방
6)벨로고르스크 선도개발구역(농업 위주): 아무르 지방
7)캄차트카 선도개발구역(관광-휴양.항만-공업.농업): 캄차트카 지방
8)베링고프스키 선도개발구역(광업): 추코츠키 자치구
9)칸갈라스 선도개발구역(공업 단지): 사하(야쿠티아) 공화국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개념도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 블라디보스토크 뿐만 아니라 남쪽 포시에트항, 자루비노항, 동쪽으로 나홋트카항, 북쪽으로 우수리스크, 한카이스키 군 등 15개 지자체가 포함돼 면적은 2만 8,400 평방미터에 이른다. 이 지역을 홍콩.싱가포르 등과 유사한 세계적 자유항으로 개발하려는 계획이다. 앞으로 70년 동안 자유항의 지위를 누리게 되는데, 자유항 방문객들에게는 입국시 8일 동안 비자가 발급된다. 거주자들을 위해 관세 및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는 자유관세지역이 설치된다.
이같은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외국기업들에게는 최초 5년간 법인세.재산세.토지세 등을 면제해 주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달콤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비자 절차 간소화, *행정 규제 완화, *각종 세제상의 혜택.
이는 푸틴 대통령이 연설에서 직접 언급한 내용이다. 그는 무엇이든 요구하라고 했다. 트루트네프 부총리에게 전권을 위임했으니 그에게 무엇이든 요청하라고 했다.
아무튼 이 달콤한 제안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한마디로 기대 반 관망 반이었다. 우선 파격적인 제안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우리측 관계자는, “러시아의 입장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당신들이 투자를 안할꺼요?” 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를 오래동안 지켜본 김승동 LS 네트워트 대표이사는 무엇보다 극동개발부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 기대가 된다고 했다. 김 대표이사는 “극동개발부 사람들은 장관.차관부터 젋고 일하는 것도 아주 적극적이다. 어떤 때는 한국 사람들보다 더 빨리 빨리 일한다. 이 사람들을 보면 무언가 가능성이 보인다. 그래서 이번 기회가 우리 기업들이 극동지역에 진출해야 하는 절호의 타이밍이 아닌가 생각한다” 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신중론도 있다. 연해주에서 오래동안 사업을 하고 있는 장민석 유니베라 러시아 법인장은,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지정 법안만 해도 세부적인 규정은 현재 계속 검토중이고, 10월 초에나 발효된다. 그때 가봐야 우리 기업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혜택이 돌아오는지 알 수 있다. 그때가서 각자의 입장을 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러시아가 워낙 복잡한 행정 절차 등으로 악명이 높아서, 그런 타성이 쉽게 고쳐질지 회의하는 목소리도 있다. 9월 5일 포럼 마지막 날, 한-러 비즈니스 대화가 열린 자리에서 한국측 위원장인 송용덕 호텔롯데 대표이사는 그동안의 애로사항을 털어놓았다. 송 대표이사는 “2010년 모스크바에 호텔을 지을 당시 각종 인.허가 과정이 100여 개나 되는데, 그걸 승인받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러시아 극동개발부의 오시포프 제1차관은, “극동지역에선 행정 절차를 대폭 줄이겠다. 다시는 롯데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동방경제포럼
극동지역 최초로 열리는 경제포럼에 러시아가 남북한을 동시에 초청하면서 가슴이 설렜다. 모처럼 남북한 회동이나 남북러 3자 회동을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컸던 것이다. 남북러 3자가 한자리에 앉는 것은 2002년 이후 13년 만의 일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8월 말에 남북한 포격전이 발생하면서 정국이 급속하게 얼어붙었다. 주최측에 몇번이고 물어봐도 북한측에서 누가 올지 답변이 없다고 밝혔다. 다행히 ‘8.25 합의’가 극적으로 체결되자 비로소 북측 대표단이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포럼 개막 직전에, 북한이 남북러 3자 회동에는 참석하지 않기로 통보해 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대가 낙담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윤상직 산업통상부 장관(왼쪽), 리용남 북한 대외무역상(오른쪽)
물론, 남북한 대표가 자연스럽게 만남을 가진 적은 있었다. 9월 3일 저녁, 투르트네프 부총리가 예고 없이 각국 대표단을 초청해 상견례를 겸한 행사장 견학 일정을 마련한 자리였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이용남 북한 대외무역상은 이 자리에서 30분간 회동했다. 두 사람은 ‘안녕하십니까’ 라는 간단한 인사말을 건넨 뒤 별다른 의견 교환 없이, 주최측이 마련한 행사장 견학을 마쳤다고, 윤 장관측은 전했다. 그나마 이같은 만남 때문인지 그 이튿날 전체회의에서 윤 장관이 이용남 대외무역상을 다시 만난 자리에서는, 북한 나선지구 홍수 피해를 잘 마무리 하시라고 덕담을 전했다고 한다. 폐쇄적이고 경직된 북한 체제를 감안해 볼때, 이미 남북러 3자 회동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방침이 내려진 이상, 현장에 나와있는 장관급 대표가 남한 대표를 만난다 하더라도 특별히 할 말이 없을 것이란 관측은 할 수 있다. 이번에 남북한 회동이나 남북러 3자 회동이 이뤄졌더라면, 나진~하산 물류.네트워크 사업이나 한반도 가스관 연결 사업 등 이미 벌여 놓은 각종 사업들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해보는 기회가 됐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결국 남북러 3각 경제협력이 제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남북간에 순풍이 불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경제포럼이 끝난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러시아 극동개발부에서는 내년에도 경제포럼을 다시 열 계획이라며, 조만간 그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내년에는 제발 남북러 3자 회동이나 남북간 회동이 반드시 이뤄져 극동에서 남북경협의 물꼬가 확 터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3) 갈수록 판이 커지다
이듬해인 2016년 제2회 동방경제포럼이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9월 2일과 3일 이틀 동안 열렸다. 2015년에는 3일 동안 열렸는데, 2016년엔기간을 이틀로 단축하고 대신 내실을 기했다. 한국과 일본의 정상들을 초청해 주가를 한층 올렸다. 오히려 한·러, 일·러 정상회담 때문에 본질인 경제포럼이 뒷전으로 밀린 듯한 느낌마저 든다. 아무튼, 이틀간 포럼에서 214건, 1조 8,500억 루블(약 31조 원) 상당의 계약이 체결됐다고, 러시아 극동개발부 공보처가 밝혔다.
앞서 지적했듯이 시베리아. 극동지방의 석유·가스·전력 생산은 세계 톱 상위권을 차지하지만, 인구가 현저히 적고, 자본·기술이 부족한 게 문제이다. 중·러 국경 너머로 중국 동북 3성에는 1억 3천만 명이 바글대는데, 극동 연해주 인구는 고작 600만 명 정도이다. 이번 포럼 전체 회의 사회를 봤던 마이클 케빈 전 호주 총리는, “극동의 영토 크기는 호주 정도인데, 인구는 싱가포르 정도이다.”라고 비유했다.
극동지역의 산업구조 변화도 요구된다. 현재 1차 산업 중심의 구조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다변화할 필요가 절실하다. 여기에 한국과 중국·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동방경제포럼은 아태 국가들에 극동지역 진출을 위한 멍석을 깔아주는 자리다. 이번엔 각국 정상들까지 초청해 제법 성대한 행사를 치른 이유다. 한국과 일본 역시 각각 안보, 영토 문제가 걸려 있으니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박근혜 대통령
9월 3일 오후 열린 전체회의에서 한러일 정상들이 기조연설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극동은 한국과 러시아를 이어주는 중요한 통로이며, 블라디보스토크는 물류의 대동맥이 시작되는 중요한 도시”라며 지역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극동개발의 구체적 방안으로 “주택, 보건, 의료 분야 등에서 투자 증대와 협력 강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러 기업 간 협력을 통한 교통·항만 등 극동지역 인프라 확충, 북극 항로 개발, 극동지역 고속도로 건설사업 및 폐기물 처리를 위한 친환경 사업 협력, 냉동창고 및 가공공장 건설 참여 등 극동지역 수산클러스터 조성 등을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하지만 무엇보다도 북핵 문제에 연설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박 대통령은 “지금 우리가 시급성을 갖고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북한의 핵 위협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라고 북한 핵 개발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북한이 동해 상으로 발사하는 탄도미사일은 극동지역의 선박마저 위협한다”며 북핵 문제가 단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역설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에 대해 “평양의 자칭 ‘핵보유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 또 러시아는 한반도 긴장 상황을 협상 국면으로 돌리기 위해 북한을 최대한 설득할 것이라고 답했다.러시아가 그동안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우리에게 비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것에 비 하면 푸틴의 이번 답변은 상당히 긍정적이라는 분석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이번 동방경제포럼 참석이 나름의 성과를 얻은 셈이다. 물론 민감한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을 여전하다.
아베 총리
아베 일본 총리의 연설에서는 러시아의 환심을 얻고자 하는 의도가 그대로 드러났다. 어떻게 들으면 아첨에 가깝게도 들릴 정도다. 아베 총리는 “저는 이번에 블라디보스토크를 처음 방문했습니다. 저는 전용기를 타고 왔지만, 이곳은 항구가 아름다운 도시이기 때문에 배를 타고 와야 할 것입니다. 100년 전 노르웨이 출신 탐험가 프리드쇼프 난센은 블라디보스토크를 보며 이렇게 말했죠. 여기보다 아름다운 곳이 어디에 있을까?”라며 한껏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치를 칭찬했다.
아베 총리는 또 동방경제포럼장이 있는 루스키 섬으로 들어오는 세계 최장의 사장교(길이 3km)를 일본 기업이 건설한 점을 상기시키면서, 아름다운 도시 건설에 일본 기업을 동참시켜 달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와 함께 러-일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았다면서 이 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에 종지부를 찍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 년에 한 번 이곳에서 정례 회담을 하자”라는 새로운 제안도 내놓았다.
아베 총리는 발언에는 그가 남은 2년 임기 동안 러시아가 필요로 하는 경제협력을 당근 삼아 쿠릴열도, 북방영토 문제를 매듭짓기로 작정한 것 같은 의도가 드러난다. 아베는 앞서 지난 5월에도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러시아 남부 소치에서 푸틴을 만나 ‘8개 항목의 협력방안(이른바 포괄적 접근)’을 제시한 바 있다.
물론 푸틴 대통령이 당장 아베 총리의 구애에 화답할 것 같지는 않다. 푸틴 대통령은 전체회의에서 러시아 관점에서 러-일 관계의 전략적 중요도는 어떤지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영토 문제는 러시아의 국익에 관계된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러시아와 일본의 시각이 다르다. 현재의 러시아가 이 문제를 만든 것이 아니다. 1956년에 이 문제가 해결되었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있다.”
(소련-일본 간 공동선언에서 당시 소련은 시코탄과 하보마이 등 쿠릴열도 4개 섬 중 2개 섬을 일본에 돌려주겠다고 제안한 바 있음)
푸틴 대통령
푸틴은 또 “당시에는 일본이 거절했다. 당시의 제안에 대해서 일본이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한다. 러시아와 일본에게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영토문제는 해결되리라고 생각한다. 나와 아베 총리가 소치에서 합의한 8개의 협력방안, 이것이 중요하다. 영토문제와 평화협정문제는 해결책을 찾아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양국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할 것이다.” 고 답했다.
이틀간의 잔치는 끝났다. 정상회담 덕분에 굵직한 계약체결. 각종 MOU 체결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다. 기자 개인의 관심사는, 한국과 일본의 정상들이 언급한 안보, 영토 문제를 러시아는 과연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베가 제안한 ‘매년 정례 정상회담’에 대해 러시아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도 관심사다. 문제는 러시아 사람들은 반응을 보이기까지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기다려 볼 일이다.
4) 극동개발의 노림수
한러일 정상들
푸틴 대통령은 왜 극동개발에 열을 올리는걸까? 푸틴은 2000년 7월 집권 1기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북한을 방문했다. 옛 소련시기를 통틀어 러시아 국가정상이 평양을 방문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때부터 극동개발에 박차를 가한 뒤 15년 만의 결실이 이번 동방경제포럼이라고 할 수 있다. 극동개발의 목적은 결국 아시아.태평양으로의 진출로 요약된다. 푸틴 대통령은 포럼 개막식 연설에서, “아시아.태평양 연안국가들은 지금 세계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아태국가들과 긴밀히 유대관계를 맺는 것은 러시아의 전략적 이해관계”라고 설파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미 자루비노 항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쪽으로 230km 위치. 중국 국경과 가까움)의 항만 현대화에 합의했다. 우리측 관계자는,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동해안을 따라 부산항에 이르러 아시아.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이 러시아의 목표일 것이라고 귀뜸했다.
5) 연해주 한국 공단
개성공단이 가동된지 꼭 10년째 되던 2013년 4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3차 핵실험 등 잇달은 북한의 강경 조치로 결국 남북한 종업원들이 모두 철수하면서 개성공단 중단 사태가 벌어졌다. 필자는 당시 북중 접경지역인 지린성 도문의 북한 전용공단에서 북한 노동자들의 실태를 취재하고 있었다. 개성공단이 문을 닫으면 개성지구 노동자들이 북중 접경의 도문 공단으로 옮겨올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또 남한 정부에서는 개성공단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남북한 협력 모델을 북한 땅이 아닌 제3국에서 시행하는 방안을 모색한다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제3국 중 유력한 후보지가 러시아 극동 연해주라는 첩보도 입수했다.
중국 전용 공단
그해 12월 필자는 <북방의 문을 열다> 라는 제목으로 철도 연결 등 남북러 3각협력 가능성을 타진하는 내용의 신년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극동 연해주를 방문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110km 떨어진 작은 도시 우수리스크. 필자는 우수리스크에서 아주 흥미로운 장소를 취재했다. 시 외곽에 중국 전용 공단이 있었다. 2012년에 가동을 시작한 이 공단에 20개 업체 1500여 명이 일하고 있었다. 원자재를 중국에서 들여와 신발.운동복.박스 등을 만드는 봉제가공업체들이었다. 상품은 모스크바를 거쳐 유럽으로 수출한다고 했다. 북한 노동자들 고용하는 조선족 공장도 있었다. 그동안 수지가 맞지 않아 일부 중국업자들이 철수한 탓인지 최근에는 300여 명 정도로 규모가 줄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공단을 보면서 필자는 연해주에 한국 업체들을 위한 전용 공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러시아측 입장에서는 중국인들 보다는 북한 노동자들을 더 선호한다는 말을 너무나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중국 전용 공단2
2019년 1월 산업연구원은 한반도 평화 정착과 경제성장을 위해 남북러 3국이 산업단지를 함께 조성하는 등 협력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산업연구원은 장기적으로 북한 내 산업단지와 더불어 한러 협력산업 집중지역에 점진적으로 ‘남북러 협력 산업단지’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러시아가 극동지역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점에 주목해, 남북러 협력의 최우선 대상 지역으로 극동지역을 제시했다. 연구원은 유엔의 대북제재 해제 추이에 따라 러시아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고려해 러시아의 협력을 최대한 유도하고, 남북러 수송망 구축과 유라시아 시장 확대에 필요한 수출형 제조업 분야 프로젝트를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북러 협력사업이 러시아 정책과 부합하도록 러시아가 극동지역에서 추진하는 루스키섬 과학·기술센터 조성, 가공산업 육성,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사회·수송 인프라 건설 정책 등을 활용한 프로젝트를 검토 대상으로 제시했다. 북한과 러시아가 전력, 광물자원, 철강, 수송망, 무역·투자, 농업 등 분야에서 진행해온 기존 협력사업을 활용할 것도 제안했다.
블라디보스토크
그런데 실제로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이런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LH는 2019년 9월 4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5차 동방경제포럼에서, 연해주 나데진스카야 선도개발구역(ASEZ) 내에 ‘한-러 경제협력 산업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서 15km 거리에 위치해있다. 단지 조성은 총 150만㎡(45만 평) 가운데 50만㎡(50 ha=15만 평)를 시범사업으로 우선 추진할 예정인데, LH가 러시아 정부로부터 개발권을 획득해 산업단지를 조성한 뒤 한국기업에게 입주권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만약 미분양 시에는 외국기업에게 입주권을 허용할 방침이라고 LH는 설명했다.
사업비는 100억원 이내로 2020년부터 3년간 추진할 계획이며 현재 사업타당성 조사용역을 진행중이다. LH는 지난 2월에 FEIEA(러시아 극동투자 수출지원청)와 이번 사업의 포괄적 내용을 담은 MOU를 체결하고 7월에는 국내 기업들의 입주 수요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LOI, 즉 입주의향서를 낸 기업은 28개로 17.1만평을 요구했는데, 이는 분양면적인 13.4만평을 128% 초과한 것이다. LH는 우리 기업의 연해주 진출 장점으로 다음과 같은 3가지를 들었다.
①생산 거점: 저렴한 전기.가스 비용, 노동력 등을 활용해 생산 단가 절감과 향후 CIS 진출을 위한 거점으로 활용 가능
②물류 거점: 북.중.러 접경지역에 국제물류 요충지로 성장이 예상되며 국내 시장과도 근거리에 있어 물류비용 절감 가능
③After Market: 극동아시아 지역은 중고차 점유율이 높아 A/S 부품 및 차량관리 용품 등에 대한 적지 않은 시장 규모 형성
LH는 9월에 사업타당성 분석을 마치고 12월 13일 러시아 정부와 ‘예비 사업시행 협약’을 맺었다. 이번 사업은 우리 정부가 2017년 9월 러시아에 제안한 9개 분야의 한‧러 간 경제협력사업(산업단지, 가스, 철도, 항만, 전력, 북극항로, 조선, 농업, 수산업) 즉 ‘9-Bridge 전략’의 하나로, 중소기업의 러시아 진출을 지원하기위한 방안이라고 LH는 소개했다. 또 이번 시범사업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창출해 제2, 제3의 한국형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필자는 진심으로 이 사업이 성공해 크게 번창하기를 바란다. 돌이켜보면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이후 러시아 극동 연해주에 진출을 시도한 국내 기업들은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살아남은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우수리스크에 있는 롯데 농장 (예전에 현대중공업 소유였다가 매각됨), 롯데 호텔(예전의 현대 호텔), 크라스키노에 있는 유니베라 농장, 대순진리교 농장 등이다. 필자는 앞으로 이 산업단지에 북한 노동력까지 가세해서 진정한 남북러 3각 협력사업으로 꽃피우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직접 민주주의의 영향과 실행에 대해 경험을 기반으로 한 총체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사회-경제적 맥락과 역사-문화적 배경, 레퍼렌덤 권리의 발전 단계, 법적인 틀과 국가적으로 각 현실의 정치적 상황 등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이를 시행한 모든 체제에 적합한 어떤 단일한 결론을 이끌어 내기란 어렵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모든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판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국제적인 차원에서도 다양한 연구 기관에서 실시한 경험적 조사에서 나타나며, 꾸준히 찾아볼 수 있는 몇 가지 효과들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들을 요약한다.
민주주의라는 근본적인 원칙에는 변화가 없다
직접 민주주의는 어떤 정치체제의 토대를 허물어 내는 수단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시민들은 정치적 권리들을 확장시키고 손질하기 위해 정치체제의 몇 가지 근본 요소들을 개선할 자유가 있다. 민주 사회에서 정치 참여는 기본권에 속하며, 정치법을 바꾸는 데 활용될 수도 있다. 국민 대다수가 바라는 레퍼렌덤 권리들은 사실상 민주주의의 정착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레퍼렌덤으로 엄청난 정치적 분열이 일어난 적은 없다.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체제에 새로운 국민의 권리를 통합시키는 것이다.
스위스에서 1900년대 후반 국가 권력 구조의 근본적인 개혁과 더 힘없는 계급들의 해방을 바란 좌파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처음에 보수층은 직접 민주주의를 확대하면 개인 소유주들의 권리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을 두려워했고, 유산有産계급은 새로운 국민 권력을 일종의 위협으로 느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두려움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소수당에 불이익은 없다
직접 민주주의는 덩치에 따른 선거 제도를 만들려는 지배당의 시도에 대항하기 위한 피난처이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는 자유선거와 복수 정당제이다. 때로는 강한 정당들이 레퍼렌덤을 이용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선거법을 바꾸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이런 논란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그런 정당들은 의회에서 다수당인 덕분에 어찌되었건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레퍼렌덤 권리는 이런 효과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다수당들을 통제하는 데 유용한 도구라는 것이 드러났다. 스위스에서 시민들은 레퍼렌덤 투표로 소수 정치 세력들에게 더 유리한 비례 제도를 적용했다. 반면 1990년대에 이탈리아에서는, 군소 정당들의 발안으로 완전 비례 제도가 폐지되고 정당 연합을 결성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주로 다수 편향적인 제도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때로는 야당들이 특정 정치 현안에 대해 집권 다수당을 좌절시키려는 과정에서 “레퍼렌덤이라는 방법을 시도해 보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집권당 연합 또한 거의 플레시비트와 유사한 술책의 형태로서 유권자들에게 결정권을 맡김으로써 별로 반갑지 않은 결정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대개 모든 레퍼렌덤에서 각 정당은 공개적으로 찬반으로 편을 나누거나 투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호소했다. 요컨대 선거 제도의 입법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소수 정당들에게 피해를 주기보다는 이익을 가져다 준 것을 볼 수 있다. 여러 나라에서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군소 정치 세력들이 종종 레퍼렌덤 도구를 활용하는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며, 이탈리아의 급진당Partito Radicale은 1974년부터 2006년까지 20개 이상의 레퍼렌덤 사안을 추진했던 것도 사실이다.
국민발안과 연합주의Associationism를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
직접 민주주의는 이익단체들이나 시민발안의 역할과 가능성을 강화시키는 한편 때때로 각 현안에 대한 정당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아무런 정치적 책임이 없고, 선거에 후보자를 내지 않으며 로비 활동처럼 집단의 이익을 위해 조직적으로 일하지도 않는 단체나 어떤 운동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관심 있는 특정 현안에 영향을 미칠 기회가
있다.
직접 민주주의는 보통 레퍼렌덤 투표에서 선거 때 투표한 정당과 완전히 같을 필요가 많지 않아, 시민사회 및 연합주의 단체나 운동의 역할을 강화시키고, 대화와 타협에 나서도록 정당들을 압박한다. 레퍼렌덤 도구 덕분에 국민 대다수는 필요할 경우 비상 브레이크나 안전 잠금 장치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연방제도: 직접 민주주의 가동에 유리한 조건
연방제도와 지방자치는 레퍼렌덤 권리의 발전에 유리한 기반을 제공한다. 지방(주, 현, 기초자치단체)에 더 큰 법적 권한이 더 부여될수록, 레퍼렌덤 권리를 가동할 수 있는 정치 부문이 더 확대된다. 이 권리는 일종의 “민주주의의 훈련장”이다. 지방 정치에서 시민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레퍼렌덤 투표에 참여하려 하는데, 다루는 사안이 그들 자신과 밀접히 관련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시민들이 담당해야 할 정치적 책임이 더 클수록, 시민들은 레퍼렌덤 도구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또한 레퍼렌덤 권리를 법적으로 잘 정비하여 미래의 지방법 개정을 위해 투표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포함시키면, 중앙에 비해 지방 정부들의 입지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사실상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지방의 책임을 기꺼이 중앙 정부에 양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연방제도 또한 강화시킨다. 곧 시민들은 가능한 한 자신들의 참정 기회가 훨씬 큰 지방 정부급에 힘을 실어주려 할 것이다.
소수의 위험과 기회
직접 민주주의는 사회적, 정치적 소수자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그들의 관심을 명확히 밝히거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론상 레퍼렌덤 도구는 소수자들에게 불리하게 쓰일 수도 있다. 우선 두 부류의 소수자를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한쪽은 “영속적인” 사회적 소수자들이 있다(예를 들어, 장애인, 집시, 동성애자, 소수 민족, 소수 종교인 단체, 이민자 등). 다른 쪽은 정치적 소수자나 가변적인, 다른 부류의 소수자들이다. 발안은 사회적 소수자에게 정치적으로 결정하고,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기회를 보다 많이 제공한다. 그러나 그들 혼자서 해낼 수는 없다. 정치적 다수가 그들의 관심사에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더 광범위한 사회적 집단들과 협력해야 한다. 레퍼렌덤을 통해 소수자들도 새로운 연합에 들어가고 심지어 국회의 다수를 꺾을 가능성도 갖게 된다. 이런 권리의 존재만으로도 정당과 정부를 압박하여 더욱 진지하게 소수의 이익을 고려할 수 있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패배한 체계적이지 않은 소수자들 또한, 때로는 그들이 바라는 개혁을 위해서는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음을 깨닫고, 정치적이건 사회적이건 레퍼렌덤 투표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경우이건 소수자들과의 공개적이고 바람직한 대면은 그들의 사회적 통합을 촉진시킨다. 물론 그것을 목표로 소수자들에게 레퍼렌덤 권리를 완전히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 조달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어쨌건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의회에 도달하지 못하는 단체로서는 조직하기 어려운 사회적 빈민층이나 정치적 소수자들의 이익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직접 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점에 국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수의 입장을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때로 사회적 소수자들은 직접 민주주의 절차의 틀 안에서 적대감과 뿌리 깊은 편견으로 똘똘 뭉친 집단들에게서 소외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공적인 토론은 그 자체로 역동성이 있으며, 매우 다각화된 우리 사회에서 그 어느 누구도 단 한 가지만 소수에 속하거나, 또 늘 소수자로 남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의회에서도 소수의 이익은 종종 다수당의 논리에 희생된다. 어쨌건 헌법과 국제 협약 및 인권 조약에서 마련된 기본권들로 구성되고, 거의 모든 나라에서 지방법 및 유럽연합 조약으로도 비준된 레퍼렌덤 권리들에는 한계가 있다.
정치적 엘리트의 확대
누가 정치적 엘리트에 속하는가? 정부, 국회, 행정부, 정당의 정치적 인물들과 정치적 성격을 지닌 거대 조직의 인물들이다. 엘리트, 혹은 적어도 이런 형태의 리더들의 집단은 대개 대의민주주의를 선호하며, 의사 소통 채널을 만들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한다. 직접 민주주의는 주로 그들에게 일반 국민들과 관계를 맺도록 독려함으로써 상황을 변화시킨다. 한편으로 각각의 레퍼렌덤 발안 또한 오로지 기꺼이 헌신하고, 어떤 대의를 위해 투쟁할 태세가 된 능동적인 시민들 덕분에 태어난다. 이들은 사회적 엘리트 층을 형성하지 않으며, 하나의 정치적 주제나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갈 역량을 지닌 소수자들이다. 제기한 사안과 관련하여 항상 이 시민들의 비중은 무시 못할 정도인데 특히 레퍼렌덤 권리가 얼마나 발전되었느냐에 따라 더욱 그렇다. 직접 민주주의는 그저 엘리트 층 사이에서 어떤 주제를 대면하도록 자극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계급과 국회 차원에 존재하지 않는 그룹들 간의 토론도 자극한다. 정치적 절차가 그렇게 더욱 확대되고 풍요로워진다.
직접 민주주의는 적법성legitimacy을 더 부여한다
“적법성”이라 함은 어떤 결정이나 어떤 조직에 대한 정치적 평가 수준을 의미한다.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록 그 결과는 더 적법성을 지닌 것으로 간주된다. 이런 의미에서 더 강력한 적법화의 형태는 두말할 나위 없이 온 국민이 참여하는 레퍼렌덤 투표, 혹은 선거의 경우 국가 원수나 지방 행정부 수장의 직접 선거이다.
만일 레퍼렌덤 도구를 통해 대의 기관의 심의에 반대하거나 행정부에서 바라는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집단들이 레퍼렌덤 투표에서 패배한다면, 그들이 제안한 주제의 유효성이 아니라 그들 반대의 적법성이 사라지게 된다. 민주주의에서는 다수의 이익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한편 각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레퍼렌덤 투표에서 패배한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전반적인 신임이나 총선을 통해 그들이 부여받은 위임의 적법상이 아니라, 단순히 국민과 의견을 달리하는 어떤 명확한 선택과 관련한 적법성을 잃는다.
진보주의의 온상도 보수주의의 온상도 아니다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에서 정치인들이 제기하는 첫 번째 질문의 하나는, “이 도구는 어떤 방식으로 나의 정치에 도움이 될까?’ 이다. 보수 세력이건 자유주의 세력이건, 좌파건 진보 진영이건 국민은 직접 질문을 받고 그들 견해를 밝힐 것을 요청받는다. 과거에는 과연 직접 민주주의가 사회의 진보를 옹호하거나 방해할 수 있을지 자문하는 것은 주로 좌파였다. 좌파들이 봉착한 딜레마는 직접 민주주의는 국민에게 더 큰 결정권을 넘겨 주지만, 과거에도 현재도 이것이 꼭 진보적 해결책을 옹호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대개 국민발안은 단지 여러 사람들이 느끼는 긴급 현안들을 제기하여 정치인들을 포함한 모두가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일 따름이다. 이 도구들은 시민 단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공적으로 표현하여 국회와 정부의 의도에는 어긋나는 것이더라도 그것을 다수의 결정으로 이끌어 낼 수 있게 해 준다. 만일 레퍼렌덤 절차가 대규모 토론과 함께 이루어진다면, 레퍼렌덤의 결과는 항상 열려 있다. 국민발안들 사이에서도 주요 구분을 할 필요가 있다. 곧 보수적인 국민발안이 있고, 혁신적인 국민발안이 있다. 직접 민주주의가 사회의 진보적 입장과 세력을 희생하여 보수적 입장과 세력을 옹호하려 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순히 전통적인 통로만으로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국민들에게 좀 더 목소리를 실어 주는 것이다.
정치 시스템 전반의 효율성 증진
어떻게 정치에서 “효율성”을 측정할까? 만일 어떤 정치적 승인에 도달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측정 기준으로 잡는다면, 직접 민주주의는 확실히 결정 과정을 간소화시키지도 않고, 그 기간을 줄여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평균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이나 좀 더 보편적인 시각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실시는 정치체제의 안정을 증진시키며, 그러므로 그 효율성 또한 증진시킨다. 대개 효율성은 한 정치체제의 유익성과 비용 사이의 관계로 정의된다.
종종 정치인들은 레퍼렌덤 도구들이 정부의 통치 능력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레퍼렌덤 투표가 선출된 정치적 책임자들과 거대 조직 책임자들의 결정 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하게 될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정보 전달과 공개 토론 비용 및 투표 자체의 실시 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비용 증가와 정치적 절차가 어느 정도 지연되는 것이 다른 이점들, 곧 지속성과 안정, 적법성 및 레퍼렌덤 승인으로 채택된 해결책의 수용 등의 이점을 없애지는 않는다. 시민들은 종종 선거 중간에 개입할 수 있는 그 어떤 정치적 도구도 없이 법적으로 호소하거나 좀 더 급진적인 항의 형식에 의존하여 어쨌든 프로젝트들을 막아내곤 한다. 그러나 직접 민주주의로 정치권은 미리 국민들의 동의를 구해야만 한다.
최고 수준의 정보 전달 덕분에 이루어지는 일반 교육
정치적 이익과 “정치적 성숙”을 위해서는 적절한 학습과 교육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모든 시민들은 참여 여부에 상관없이 레퍼렌덤에 즈음하여 생겨나는 공적 토론에 노출되게 된다. 직접 민주주의의 사회화 효과는 시민들과 정치인들 간에 직접 접촉으로 정치적 대면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더 크다. 이 효과는 시민들이 대개 그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느끼는 지역적 차원에서 더 생생하다.
그들은 다양한 입장이 있다는 것과 모든 이들의 논점과 목소리가 모두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민이 내린 결정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불특정의 시민은 한 번은 승리한 다수에 속하고, 또 다른 때는 패배한 소수에 속하게 된다. 레퍼렌덤 과정에서 다수를 설득해내지 못한다면 그 어떤 세력도 더 이상 “국민”을 운운할 수 없다. 미국과 스위스에서 투표 참여는 늘5 0%를 넘지 않지만, 진정한 민주주의의 성취로 여겨지는 레퍼렌덤 권리를 훼손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면 국민 저항이 매우 높다.
승인된 해결책의 수용율은 높고, 잠재적 갈등은 줄어든다
레퍼렌덤 투표에서는 특정 현안에 집중하며 그것을 전반적인 정치적, 사회적 갈등과 섞지 않는다. 레퍼렌덤 절차가 규정을 완전히 존중하여 시행된다면, 곧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모두가 받아들인다면 투표는 국민들과 의회 다수당, 정부 사이, 그리고 정치 세력들 간의 긴장을 명확히 설명하고 완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어떤 이는 직접 민주주의가 복잡한 현안들을 다룰 때 반듯이 필요한 타협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지만 대신 의회에서는 그런 타협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스위스에서는 레퍼렌덤의 예측 불가능함을 염두에 둔 세련된 기제가 존재한다. 자신들이 레퍼렌덤에 착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그룹들을 참여시켜 “예방 공간”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타협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때로는 직접 민주주의가 제도적 차원에서 진전이 없는 어떤 상황을 돌파할 수 있게 해 준다. 만일 의회가 타협점을 찾을수 없어 법을 정하지 않는다면 국민발안은 시민들에게 최후의 발언권을 준다. 스위스에서는 대개 국민 50% 이하가 레퍼렌덤에 참여하지만, 결과의 수용율은 높다. 각자 자신들이 원한다면 참여할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주제가 잘 알려져 있고, 단순하고, 토의를 거친 것일수록 레퍼렌덤에 더 적합하다
모든 정치 현안이 레퍼렌덤 절차로 쉽게 다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고, 잘 알려져 있고, 논의를 거쳐서 정보 제공이 많이 필요하지 않으며, 그에 대해 어떤 가부가 명확한 답을 줄 수 있는 의제가 바람직하다. 원칙에 따른 정치적 차원에서 내린 모든 결정은 평균적인 시민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현대적 개념은 자유롭고 정보를 갖춘, 의식 있는 시민을 전제로 한다. 그 밖에도 상당한 서명을 모으는 일이 민주주의의 여과기 역할을 한다. 헌법 개정, 정부 형태 변경, 초국가적 기구에 주권의 양도 등 더욱 강력한 합법성을 요하는 의제들이 존재한다. 많은 유럽 국가에서 실시한 유럽연합 가입 관련 레퍼렌덤들이 이런 막중한 정치적 결정을 합법화하는 법적 구속력을 지녔다.
예를 들어, 연간 예산 관련법 같이 여러 차원에서 타협을 요하는 복잡한 현안들은 레퍼렌덤 절차에 놓이는 것이 그리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특정 세금 관련법의 경우는 다르다. 캘리포니아 또한 몇몇 정치적 사안을 직접 민주주의에서 배제시키지만, 스위스는 그렇지 않다. 스위스에서는 그 어떤 사안도 배제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공공 예산과 관련하여 “참여적 예산”이라는 흥미로운 경험이 존재한다(11장 참조).
대체적으로 직접 민주주의의 긴 전통을 지닌 나라에서 실시한 선험적 조사에 따르면, 좋은 직접 민주주의에 따른 주요 효과는 다음과 같다(Gross 2007과 Kaufmann/Buchi/Braun 2009 참조).
직접 민주주의는 정치를 더욱 전달력 있게 만든다. 구체적인 정치적
현안에 관한 정치적 결정의 합법성에 대해 시민들 측에서 의문을 제
기할 수 있으며, 정치인들 측에서는 충분한 근거를 들어 이를 설명
해야 한다. 직접 민주주의는 모든 관계자들이 사실과 주제에 기반한 공개 토론
에 나서게끔 함으로써 정치적 대화를 더욱 진지하고 합리적인 것으
로 만들어 준다. 직접 민주주의는 수적으로 열세한 그룹이나 소수자들도─국회와
의회에 존재하지 않는─공개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히고
압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 준다. 직접 민주주의는 보다 공평하고 정확한 정치 권력 분배를 가능하게
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의 정치를 정당화시킬 필요가 없을 정도로
또는 국민 레퍼렌덤 투표에서 다수를 설득할 정도로 큰 특권을 주지
않는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2015년 9월 30일은 우리나라와 러시아가 외교관계를 맺은 지 2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25년이라면 4반세기가 흘렀으니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 양국관계는 그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우선, 양국 간 교역규모가 130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러 간 교역규모는 1992년 1억 9천만 달러에서 2014년에는 258억 달러로 약 134배 증가했다. 한국의 대러 수출은 1992년 1억 2천만 달러에서 2014년 101억 3천만 달러로 연평균 22.4%씩 증가했다. 러시아로부터의 수입은 같은 기간 7천만 달러에서 156억 7천만 달러로 연평균 27.5%씩 증가했다. 양국 간 인적교류는 1990년 3만 명에 불과했지만, 2014년에는 32만 8천 명으로 약 11배 증가했다.
‘유라시아 친선특급’ 열차 행사
한-러 수교 25주년을 맞이해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7월에는 “유라시아 친선 특급”이라는 이름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9,288km를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13일 동안 달리는 대장정이 있었다. 수교 25주년을 즈음해서 정의화 국회의장이 공식방문했고, 기념공연도 열렸다. 그러나 왠지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진지하고 차분하게 양국관계를 되돌아보며, 미래를 설계하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양국 국민들이 서로를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를 물어보는 설문조사라도 실시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해봤다. 4반세기가 흘렀지만, 아직도 한국인들이 러시아를 제대로 알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크렘린궁
“거기는 위험하지 않니?” (40대)
“먹을 것은 걱정 없는가?” (50대)
“소련말은 할 줄 아니?” (60대)
기자가 2015년 7월 1일 자로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부임하기 전 가족·친지 등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은 얘기들이다. 질문의 단어들이 함축적으로 암시하듯이 옛소련 시절, 소련 붕괴 후 상점 앞에 장사진을 치던 장면, 스킨헤드족이 극성을 부리던 2005년.. 이런 단편적 기억들에 한국인들은 갇혀 있는듯하다. 물론 다 옛날 얘기들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여전히 러시아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잘 모른다는 것은 그만큼 정보가 부족하다는 뜻인데, 정보 전달자라는 직업을 가진 기자로서 참 부끄럽다는 자괴감이 들었다.(그러고 보면 한국인들은 러시아에 한국 특파원이 몇 명이 있는지도 잘 모른다. 베이징이나 도쿄, 워싱턴에 비춰볼 때 10여 명이 있는 줄 안다. 한때 7~8명 되던 모스크바 주재 한국 특파원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줄줄이 철수해, 현재 KBS와 연합뉴스 기자 단 두 명뿐이다. 물론, 특파원을 보내고 안 보내고는 순전히 언론사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신범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한러 양국 국민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가 양국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 교수는 “한국인들에게는, 러시아가 옛 소련의 잔재가 남아 있고, 비합리적인 나라라는 생각이 그동안 지배적이었다. 반면에 러시아로서는, 한국은 여전히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어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해 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사람들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만한 자료는 아직 없는 것 같다. 길거리에서 만난 러시아 사람 중에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북쪽이냐 남쪽이냐를 묻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북한이 우리보다 먼저 수교를 맺었고, 더 오랜 시간 긴밀한 관계였기 때문일 것이다. 2015년이 한-러 수교 25주년이라면, 북-러 간에도 “친선우호의 해”였다. 마침 10월 21일부터 25일까지 최초로 모스크바에서 ‘북한 영화제’가 열렸다.
2) 문화 코드로 읽는 한러 관계
땅덩어리로 치자면 한국은 러시아에 비교도 안된다. 러시아의 면적은 1708만 ㎢로 한반도의 78배나 된다. 여기에 톨스토이, 푸시킨 같은 대문호와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등 기라성 같은 음악가,예술가들이 즐비하다. 또 발레와 기초과학, 우주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서구 지향적이고 콧대 높은 모스크비치(모스크바 사람)들한테 한국 노래, 한국 문화가 먹히기 시작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데 K-pop에 열광하고 한국어 학당을 찾는 러시아 젊은이들이 넘치니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문화와 예술, 의료.관광 등을 모두 아우르는 ‘문화 코드’로 한러 관계를 들여다 봤다.
① K-POP
필자가 처음 K-pop을 접한 것은 2015년 9월 2일이었다. 모스크바 시내에서 펼쳐진 댄스 경연 대회를 취재하는 자리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복장과 스타일, 노래와 춤동작을 그대로 흉내내 구현해 내는 이른바 ‘커버 댄스(cover dance)’ 페스티벌이었다. 400개 팀이 예선전을 치러 그 중 28개 팀이 결선에 올라왔는데 참가자들은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들이었다. 대회가 열린지 처음으로 멀리 벨라루스에서 온 팀도 있었다. 벨라루스에서 온 21살 마샤는 평생에 한번 있는 기회인데 놓치면 안된다고 판단해 출전했다고 말했다. K-pop의 저변이 넓어지면서 해가 갈수록 러시아 젊은이들의 창법, 안무, 스타일 등이 한국 K-pop 그룹과 대등할 정도로 수준 높아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대회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SM 안무가 백구영씨는 “참가자들이 K-pop 그룹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 실력을 갖고 있어 깜짝 놀랐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대회 참가자 18살 엘리자베타는 “음악인들이 타인을 위해 그들의 영혼을 k-pop에 녹여내는 거다. 그래서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는 것이다.”라고 자신이 K-pop에 매료된 이유를 설명했다.
K-pop 커버댄스 경연대회
K-pop은 2010년대 초반에 러시아에 적극 전파된 것으로 전해진다. 2010년만 해도 러시아 젊은이들이 유튜브를 통해 동방신기를 처음 알게되고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슈퍼주니어, 비스트, 빅뱅, 원더걸스, 소녀시대, 샤이니, 2NE1 등 유명 가수들이 차례로 알려지면서 삼삼오오 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K-pop 매니아인 다리아가 설명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2011년 K-POP 커버 댄스 경연대회가 모스크바에 처음 개최되면서부터라고 한다. 특히 커버 댄스 페스티벌의 심사위원으로 그룹 샤이니가 러시아를 첫 방문하면서 한국 아이돌에 대한 강력한 붐업이 시작됐다고 한다. 러시아에 K-POP 커버 댄스 페스티벌을 처음 소개한 문창호 서울신문 차장은 “K-pop 커버 댄스는 러시아 청소년들의 꿈을 실현하는 가장 중요한 참여형 K-POP 프로젝트였다고 평가한다. 그들이 K-POP을 적극적으로 사랑하게 만들어준 계기라고 본다. 실제로 러시아 젊은이들이 직접 표현하길 k-pop atmosphere(분위기)를 만들어준 너무 감사한 기회라고 답이 왔을 정도다”라고 설명했다. 문창호 차장은 “당시 태국 젊은이들이 우리나라 춤을 따라추며 놀고, 필리핀 교도소에서 재소자들 교화프로그램으로 원더걸스 춤을 추도록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올림픽 종목처럼 전세계에 걸쳐 퍼져있는 k-pop댄스 동아리들을 키워보자는 생각을 했다. 한류가 없는 나라 중에 철학과 음악을 사랑하는 나라에서도 사랑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러시아를 찾아갔다“라고 말했다.
K-pop 행사
현재 러시아에서 K-pop에 매료된 광팬들은 50만 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별로 그룹이 나뉘어져 있다고 한다. K-pop 열풍은 비단 러시아 뿐만 아니라 전 CIS(독립국가연합)를 강타했다. 멀리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외에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을 넘어 카프카스 산맥에 위치한 아르메니아에서도 한국 노래 떼창이 울려 퍼진다. 그들은 한국 아이돌의 노래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말을 배운다. 어떻게 한국말을 배우냐고 물었더니 한국 드라마를 듣고 배웠다는 답이 돌아온다. 우리가 미드(미국 드라마)를 보며 영어를 배우는 것과 비슷한 경로를 밟는 것이다. K-pop이 러시아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관계자들의 대답이 다음과 같다.
1. 친근하면서도 감성적 터치와 동양 특유의 이국적 매력으로 현실 속의 판타지 제공. 아이돌의 호소력 있는 가창력과 특유의 율동을 가미해 관중들의 마음 속에 파고드는 공연
2. 한국 아이돌만이 지닌 독특한 군무가 특히 러시아 젊은이들의 호흡과 기질에 잘 조화되고, 따라하기 쉬운 군무 및 중독성 있는 반복적 후렴구,
3. 마음을 사로잡는 아이돌의 팬 관리, k-pop 콘테스트 행사 등으로 팬덤 형성으로 이어지고 있음.
빅토르 초이
혹자는 이같은 인기의 뿌리를 러시아의 ‘원조 한인 스타’ 빅토르 초이(崔)로 보는 사람도 있다. 1962년 소련에서 고려인 3세로 태어나 19살때 록밴드 ‘키노(Kino)’를 결성해 보컬과 기타리스트로 활약하며 러시아 젊은이의 우상이 됐던 빅토르 초이. 1990년 6월 모스크바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키노의 공연에는 10만 여 명의 관객이 모여 러시아 최대의 행사로 기록되면서 러시아 대중음악의 신화를 썼다. 그런데 이 공연 후 2달 만에 의문의 교통사고로 28살의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모스크바 중심가 아르바트 거리에는 그를 기리는 ‘빅토르 초이 벽’이 설치돼 있다. 빅토르 초이는 1990년 8월 15일 라트비아 리가에서 숨졌는데, 러시아 젊은이들이 해마다 8월 15일을 기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추모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헐
모스크바에 살면서도 빅토르 초이가 그 정도로 마력이 있는지는 몰랐다.
아무튼 우리 노래, 우리 가락에 열광하는 러시아 젊은이들이 나는 너무나 사랑스럽다. 내 지인이 조만간 방탄소년단의 러시아 무대를 준비 중인데, 성황리에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② 의료 한류
K-pop의 뜨거운 열기를 이어받은 것이 이른바 ‘의료관광’이다. 치료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김에 관광까지 하도록 한다는 개념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러시아의 의료 시설이나 서비스 수준은 전반적으로 낙후돼 있어 돈푼 깨나 있는 사람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게 마련이다. 그동안에는 치료나 휴양 목적으로 유럽을 자주 찾았었는데,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그마저도 시원찮게 됐다. 그 와중에 수술 실력이 뛰어나고 높은 수준의 의료시설과 서비스를 갖추고 있는 한국이 러시아 부자들의 환심을 사게 된 것이다. 물론 국내 유수한 의료기관들이 끊임없이 러시아에서 열리는 박람회 등을 찾아 ‘의료 한류’ 바람을 불어넣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라고 본다.
의료관광 박람회
나는 201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최대 규모의 의료관광 박람회를 취재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내로라 하는 12개 의료기관들과 의료기기 업체들이 참가해 오는 손님 맞이하기 보다 손님을 찾아나서는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현장에서 만난 러시아 의료 관계자들은 한국 의료 서비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는 반응을 보였다. 러시아 의료관광협회장인 옥사나는 “한국은 정확한 진단과 고객 중심의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칭찬했다. 한방 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었다. 모스크바시 보건부의 마고메도프는 “한방은 양방에 대한 대체재로 훌륭한 선택이고, 효과도 좋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잠재력이 큰 러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선 한국에서 개선해야 할 점도 많다는 지적도 나왔다. 자생한방병원의 김하늘 국제진료센터장은 “환자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라든가 숙박 문제 등 모든 체계가 아직은 많이 미비한 상태이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극동 러시아에서 시작된 한국 의료관광 열풍은 이제 시베리아를 넘어 유럽권역인 모스크바에서 더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2015년 11월 한국은 러시아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세계 최고 의료관광 목적지로 선정됐다. 러시아 온라인 독자 24만 명이 참여해 한국을 1위로 인정한 것이었다. 이에 앞서 2015년 3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CIS권 최대 규모 국제관광박람회 MITT에서 의료관광을 테마로 내건 한국홍보관이 세계 1852개 참가부스 중 최우수상을 받으며 관람객들의 관심을 모았다.
의료 박람회
한국에서 외국인 환자 유치가 허용된 것은 2009년부터 인데, 10년 만에 누적 외국인 환자수가 200만 명을 넘어섰다. 2018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환자수는 37만 8967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일년 동안 190개 국에서 환자들이 한국을 찾았는데, 중국(31.2%), 미국(11.9%), 일본(11.2%), 러시아(7.2%), 몽골(3.7%) 등의 순으로 많았다. 러시아 환자들은 2009년에 1758명, 2015년에 2만 856명, 2018년에 2만 7185명 등으로 점차 늘어나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35.6%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환자들이 가장 많이 찾은 진료과목은 신장내과, 혈액종양내과,순환기내과 등 내과통합과 검진센터였다. 러시아는 이제 한국 내 외국인환자 수는 3~4위, 의료비 지출은 2~3위를 차지하는 의료관광의 ‘큰 손’이다. 그런데 아직 국내적으로는 체계적인 준비가 덜 돼 있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예가 ‘원격 의료’ 분야이다. 2016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원격의료 등 ICT 기반 의료기술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2018년 6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도 원격의료 관련 협의를 진행한 뒤, 분당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KT 등이 원격의료 사업을 위해 러시아에 진출하기로 했다. 그런데 정작 국내에서는 의사들의 반대와 비협조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려는 원격의료 사업에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다. 의사들은 가벼운 문진 정도만 가능해 효용성이 높지 않다는 것과 환자의 안전성 문제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원격의료가 활성화되면 아무래도 대형병원으로 쏠림현상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의료관광객 200만명 시대를 열었지만 우리나라의 관련 산업 규모는 세계시장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한 해 1억명에 달하는 전 세계 의료관광시장 규모에 비하면 0.38% 수준에 불과하다. 의료관광 선진국인 싱가포르와 태국의 경우 연 200만 명의 외국인 환자들이 찾고 있다. 앞서가는 나라들의 범정부적 지원 체계도 배워야 할 것이고 통역 등 해외환자 관리 인력을 지원하는 시스템도 갖춰야 할 것이다.
③ 한국 화장품의 인기
콧대 높은 러시아 여성들이 한국 화장품에 꽂혔다고? 글쎄 실감이 잘 가지 않아서 현장을 들여다 보았다. 러시아의 손꼽히는 화장품 체인점인 ‘일 데 보떼(Il de Beaute)’가 2016년 10월 24일부터 11월 17일까지 모스크바 전 매장에서 한국 화장품 특별 판촉 행사를 벌였다. “From Korea with Love”라는 슬로건을 걸고 한달 가까이 펼쳐졌는데 한국 화장품에 대한 러시아 여성들의 뜨거운 관심을 여실히 보여줬다.’일 데 보떼’는 자체 웹사이트에서 “한국 화장품은 미네랄과 천연 원료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보습(moisturizing)과 피부 영양공급 효과가 뛰어나다”고 소개했다. 매장에서 만난 매니저는 “손님들이 와서 한국 화장품들을 둘러보는데, 러시아 여성들은 특히 보습효과가 뛰어난 BB크림에 많이 끌리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미용 박람회
앞서 10월 26일부터 29일까지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최대 미용 박람회 ‘InterCHAM’에는 50여 개의 한국 기업들이 참여해, 러시아 내 한국 화장품의 성장 잠재력을 한국 화장품업계가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박람회에 참가한 한국 기업들은, 한국 화장품에 대한 인지도가 상승하고 있고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상담이 줄을 끊이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러시아의 미용시장은 약 14억 달러 규모로 유럽에서 4번째로 큰 규모이다. 해마다 6~12% 성장세를 보이는데, 국제 미용시장에 비해 2배 이상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미용시장 성장의 73.6%가 최근 5년 사이 급성장했다는 것이 특이점이다. 러시아 전체 시장에서 56%가 수입품인데, 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제품에 대한 인지도와 신뢰도가 높은 편이며 특히 프랑스는 러시아 화장품 수입시장의 30%를 차지한다. 그런데 최근 젊은 계층 사이에서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화장품은 2010년 이후 인터넷을 통해 러시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2013년을 기점으로 대러 수출이 급증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한국 화장품은 아직은 유럽 화장품에 밀려 수입시장의 2%대를 차지하고 있지만, 2016년에는 수입 규모 상위 10위 권에 안착할만큼 선전하고 있다.
러시아 여성들이 한국 화장품을 찾게 된 이유는 무얼까?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KOTRA) 모스크바 무역관이 러시아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을 조사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우선, 그동안 러시아 여성들은 프랑스 화장품만이 최고라고 생각했지만, 경기침체가 3년째 지속되자 현실적으로 적당한(?) 가격의 제품을 찾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화장품의 특성상 신뢰도가 매우 중요한데, 한국 화장품은 품질이 매우 우수하면서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인지도가 확산돼고 있는 상황이다.
둘째, 러시아 중산층은 요즘 웰빙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한국 화장품은 원료가 대부분 천연성분으로 저자극성이어서 성분의 우수성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는 것이다.
셋째, 또 한국 화장품의 포장이 단조롭지 않고 디자인이 우수하며, 화장품을 담은 용기가 매우 매력적이어서 인기를 끄는 다른 요인이 된다고 한다.
넷째, 러시아의 젊은 여성들은 유명 뷰티 아티스트들이 개인 SNS를 통해 쓰는 화장품 후기 등 평가에 많은 영향을 받는 편인데, 최근 러시아의 유명 뷰티 아티스트들이 한국 화장품에 대한 극찬을 연이어 게재하면서 젊은 소비층의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화장품 판매대
러시아 여성들은 안티 에이징(Anti-aging)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고 피부 케어에 대한 지출이 가장 높다고 한다. 러시아 수도물에는 석회질이 많아서 머릿결이 많이 상하게 되는데 염색을 즐겨 하는 러시아 여성들은 손상된 머리카락 케어 제품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이에따라 러시아 소비자들은 주름 개선, 보습 등 기능성 제품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한국의 마스크팩과 샴푸 같은 제품들이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러시아 인증기관이 발급하는 EAC 적합성 신고서를 의무적으로 발급받아야 하는 등 제법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지금처럼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다면 러시아에 진출하는 한국 화장품 기업들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내 대표적 한류(韓流)로 거론되는 K-POP과 드라마 외에도 이제는 한국 화장품이 한국 문화의 대표 아이콘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3) 앞으로 25년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던 한-러 관계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부터 주춤한 상태다. 양국 간 교역도 220~260억 달러에서 정체돼 있다. 2013년 기준으로, 한국의 경제규모는 세계 14위, 해외직접투자 규모는 세계 12위이고, 러시아는 경제규모 세계 9위, 세계 3대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국이다. 그런데, 이 같은 잠재력에 비해 최근 양국 간 경제협력 규모는 뒤떨어진 편이다. 한국의 대외무역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들어서야 2%를 넘는 수준이고 해외직접투자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1~2%에 불과한 실정이다. 2014년 한국기업의 대러 직접투자 규모는 1억 7천만 달러로 한국의 해외직접투자 총액의 0.46%였다. 한국의 브릭스(BRICs) 국가들에 대한 직접투자 가운데 러시아의 비중은 2.9%로, 77%를 차지하는 중국은 물론, 인도(8.3%)와 브라질(11.4%)에 비해 현저히 적은 규모이다(한국의 대러 투자실적이 부진한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최근 러시아에서 영업 중인 49개 한국기업을 설문 조사한 결과, 금융 조달 여건과 노동생산성이 대체로 나쁘다에 가까웠다. 생산비용 증가 속도, 조세 제도 등도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러시아의 금융여건을 개선하는 동시에 러시아도 대한국 직접투자를 확대하는 등 상호 수평적인 투자협력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지난 70년간 해양세력과의 관계를 통해 발전해오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한국 경제가 나아갈 지향점으로, 러시아 극동지역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때마침 러시아 정부도,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법안을 발표하는 등 파격적이고 친기업적인 법과 제도를 만들어 투자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러시아 극동지역은 남-북-러 3각 협력이 가능한 지역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남북러 가스관 연결사업, 한반도종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연결 사업, 러시아에서 북한을 통한 전력망 연계 사업 등 이른바 ‘3대 메가 프로젝트’가 논의돼 왔다. 특히, 나진~하산 철도 개보수 사업을 통해 나진항과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연계하는 해상-육상 복합물류 사업에 한국기업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형이다. 나진~하산 복합물류 사업의 성패가 중요한 이유는, 이 사업이 향후 남북러 3각 경제협력의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국 정부와 기업의 의지가 있다면, 한-러 간 앞으로 25년간 관계 발전의 시금석은 러시아 극동에서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바야흐로 2020년, 내년이면 한러 수교 30주년을 맞는다. 미-중 무역분쟁을 시작으로 동북아 지역을 둘러싼 미-중 패권 경쟁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전략적 의미는 더욱 커지고 있다. 북미 간에 북핵 해법이 도출되기 시작하면 대북 제재가 완화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러시아를 통한 한국의 경제적 확장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또 독일 통일에서 옛 소련이 결정적 역할을 했듯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도 러시아의 중재적 역할이 작용할 수 있고 북핵 해결 과정에서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입장이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에서 러시아의 위상은 어떠한가?
주러 한국 대사관
2018년 10월 모스크바 주러 한국 대사관에서 열린 재외공관 국정감사를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주러 한국 대사관에서 국정감사가 열린 것은 3년 만의 일이다. 내가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3년 동안은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국정감사가 예정됐다가 무산되는 등 열리지 못했었다.
3년 만에 열린 국정감사에서 무소속 이정현 의원은 “우리 외교부 유럽국이 57개 나라를 관장하면서 거기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중앙아 국가 등 옛 소련 국가들도 포함시키고 있다”면서 “러시아를 다른 많은 유럽국가 가운데 한 나라로 다룰 수 있다고 보는가”라고 물었다.
자유한국당 소속 정진석 의원은 “한-러 수교 후 30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 주러 한국대사관의 대사 관저 매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관저 임대를 위해 매월 3만 달러(약 3천400만 원)에 달하는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다”면서 오랜 기간 관저 국유화(매입)가 안 되는 이유를 따져 물었다.
이에대해 우윤근 주러 대사는 “한국의 러시아에 대한 이해가 크게 부족하며 부정적인 인식들이 널리 퍼져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심지어 우리 외교부가 러시아를 대하는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윤근 대사는 “우리 외교부에서 미국을 상대하는 직원은 40명이 넘고, 중국을 상대하는 직원이 20명 이상이며, 일본을 상대하는 직원도 16명이나 되지만 미국의 1.8배, 한반도의 78배 크기인 대국 러시아를 상대하는 직원은 단 4명”이라면서 “이는 한국의 미래를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외교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작심한 듯 우 대사는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우리가 북방, 대륙으로 가는 길이 곧 열리는 데 4명 갖고 무엇을 하라는 말인가”라면서 유럽국과 분리된 별도의 유라시아국(러시아·중앙아시아 담당국) 신설 필요성을 제기했다. 우 대사는 그러면서 외교부에도 유라시아국 신설 필요성을 보고했지만 아직 감감무소식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국가 전체의 소멸은 보기 드문 사건인 만큼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된다. 그야말로 국가가 소멸하려면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영역에 걸쳐 경제적, 군사적,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참패를 겪어야 한다.
그러나 소멸보다는 새롭게 부상하는 주도 집단이 기존의 일반적인 사회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명령을 새로운 체제로 이행시키는 경우가 훨씬 보편적이다. 이러한 변화 과정은 신속하고 격렬하게 일어나거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건설적이거나 또는 파괴적인 과정이 얽혀 장기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
지구상에서 세 번째로 많은 인구를 지니며 세계 제1의 압도적 군대 강국이자 여전히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이 위와 같이 전면적인 파멸을 당하는 일은 실제로 기대할 수 없다.
반면에 현재 미국의 대외 및 대내 정책을 관리하는 소수의 특정 이익집단이 완전히 상이한 유형의 주도 집단으로 대체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새로운 주도 집단은 미국인 전체에 최선인 이익을 더 잘 반영하고 전 세계 국가들과 대립하기보다 다른 국가들 사이에서 협력과 지속이 가능하게 작용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진행 중이다.
America’s Prevailing Order is Fading
미국 지배 체제가 쇠퇴하고 있다.
미국의 대외 및 대내 정책을 주도하는 현 상황의 특정 이익집단은 월가와 워싱턴 위주로 활동하고 있고, 전통적인 은행, 에너지, 제조 독점을 기반으로 하면서 점점 비현실적이고 지속 불가능하며 구태의연한 네트워크의 약점을 지니고 있다.
대중 매체, 대규모 로비 활동, 해외 정치적 전복, 국내 정치적 분쟁 등 기존의 특정 이익 집단은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며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수많은 수단을 활용했다. 그러나 미국 국민과 전 세계 국가가 점점 그들의 방식에 익숙해지고 효과적인 대응책 개발을 시작함에 따라 이들 수단의 효과가 점점 감소하고 있다.
미국의 특수 이익집단은 ‘러시아’나 ‘중국’의 ‘선전(propaganda)’에 대항하기 위해 일단 겉보기에 엄청난 시간을 쏟지만, 실제 월가와 워싱턴이 행사한 부당한 영향력을 폭로하고 약화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것은 위에 언급한 적국들이 아니라 미국과 동맹국 내부에서 새로이 떠오르는 대안 매체들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위키리크스(Wikileaks)가 있다.
미국 사회의 기존 엘리트 계층과 네트워크가 약해짐에 따라 이를 대체할 대안의 집단과 수단들이 계속해서 강력해지고 있다.
지속 불가능한 해외 군사 작전과 동일선상에 결부되어 지속 불가능한 사회경제 및 정치 모델은 구태의연한 정치 행태와 언론 방식과 더불어서 평범한 관찰자에게도 현재 미국 내 지배 체제가 돌이킬 수 없는 몰락의 길로 접어든 것으로 보여진다.
America’s Elite Face Challenges from Within as Well as From Abroad
미국 사회의 엘리트 계층은 국내와 해외로부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오랫동안 자리한 미국의 독점과의 경쟁에서 앞서 나가는 중국 기업에 대한 내용은 세계 언론에서 점차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주제가 되었다. 미국이 주도한 무의미한 미중(美中) 무역 전쟁을 촉발한 것은 사실 이런 상황의 변화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미국 내 기성 엘리트 계층의 쇠퇴만 부각시킬 뿐 그들이 지닌 본질적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화웨이와 같은 기업은 이를 무너뜨리기 위한 미국의 제재와 노력으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반면, 이와 경쟁하는 미국 기업들은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방해 공작이 있었음에도 화웨이는 견실한 기반을 갖춘 사업과 경제 기초여건을 토대로 갖추고 있었고, 미국 기업들은 경쟁 부재라는 초기 이점을 가졌지만 기초여건 구축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기성 엘리트는 중국 기업 외의 여러 도전자들과도 싸워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파괴적 기술을 보유한 몇 회사는 미국 내에서 성장하면서 대외 경쟁뿐 아니라 미국 국내에 기반을 둔 견고한 독점 체계도 도전하고 있다.
전기자동차 제조사 테슬라(Tesla)가 완벽한 예시이다. 테슬라의 놀라운 혁신 속도, 세간의 이목을 끄는 성공,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사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다른 무엇보다 미국 자동차 산업에 타격을 주고 있다. 또한 한 세기에 걸쳐 미국이 도입하고 전 세계를 장악해온 석유 중심의 에너지 모델에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미국 자동차제조 독점업체는 진정한 소비자 가치와 혁신을 대신할 수 있는 의도된 관행과 구식의 마케팅 술수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수십 년을 투자했다. 이들 산업은 단순히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벌고 매해 이윤을 증가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자동차제조’는 단지 돈과 구매 영향력을 축적하는 수단이 되었다.
반면에 수 년간 테슬라는 사업과 사회정치적 영향 측면에서 모두 성장해왔다. 미국 자동차제조 독점업체는 테슬라의 표면적인 매력을 흉내 내려고 시도했지만, 신설 회사의 성공을 주도한 본질을 이해하거나 복사하는데 실패했다.
미국 엘리트 계층이 해외의 화웨이와 같은 경쟁사를 상대할 때 직접적인 경쟁보다 ‘더러운 술책’이라고 불릴 수 있는 전략을 사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유사한 발식으로 ‘미국 내의 테슬라와 같이 혁신적인 기술을 보유한 회사에게 ‘더러운 술책’을 사용했다. 가짜 노조가 테슬라의 미국 공장을 곤란하게 하려고 했던 사건이 한 예시이다.
미국의 신생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 X’는 오랜 기간 자리한 미국독점업체에 직접적으로 도전한 (그리고 위협하는) 미국계 경쟁사의 또 다른 예시이다. 이 경우, ‘스페이스 X’는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 보잉(Boeing), 노스럽 그루먼(Northrop Grumman)과 같은 우주 독점업체와 맞섰다.
‘스페이스 X’는 놀라운 속도로 우주 항공혁신을 이끌면서, 동시에 우주 여행의 전반적인 비용을 절감시키고 있다. ‘스페이스 X’의 인상적인 비용 절감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로비 네트워크를 형성한 록히드, 보잉, 노스럽과 같은 기존의 항공 독점업체는 ‘스페이스 X’ 고객들의 (미국 정부를 포함) 로켓 여행 탑승 구매를 저지시키지 못했다.
로비와 정치 게임을 통한 이윤 유지에 지나치게 의존 해온 거만한 독점업체는 실제 경쟁이 도래하여 경쟁업체와 직면했을 때 거대한 조직을 재정비할 대책이 거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정책을 이끄는 지배적인 체제는 제대로 손을 쓸 수 없는 추락과 더불어 새로이 등장한 경쟁을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현존의 지배 체제를 대체하는 세력은 미국 기존의 권력과 영향력이 가지는 문제점을 지렛대로 활용하여 미래로 향하는 완전히 새로운 기회를 갖는다. 또한, 미래로 나아가면서 미국과 미국민 및 미국과 교류하는 세계 국가 모두에게 근본적인 영향력을 지닐 것이다.
America’s New Order May Seek Genuine Competition and Collaboration
미국의 새로운 질서는 진정한 경쟁과 협력을 추구할지도 모른다.
테슬라와 ‘스페이스 X’는 중요한 예시지만, 미국 내에서 점차 분명해지고 있는 진행중인 변화를 보여주는 유일한 예는 결코 아니다. 현재 미국의 엘리트 계층이 장악하고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는 새로운 혁신과 기업들이 등장하고 하여 그들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의 뿌리 깊은 기업언론을 겨냥한 대안 매체들부터 미국의 대규모 농산물 독점업체들을 위협하는 지역 유기농 농부들의 고조된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이미 실질적인 전환 사례가 많이 발생해 왔다. 미국의 현재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을 다루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국제적 수준에서 투자하거나 기여할 수 있다.
새로운 미국을 보여주는 희망적인 신호로는 테슬라와 같이 기존 체제를 파괴한 기업이 다른 국가와의 협력을 꺼려하지 않고 독점을 위해 세계적 규모의 네트워크 망을 구성하기 보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사업을 추구한다는 점에 있다. 한 예로 테슬라의 대규모 기가팩토리는 미국이 아닌 중국 상하이에서 운영되고 있다. 중국에 공장을 설립한 이유는 미국이 오로지 정치적이고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중국이 미국 국내에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인 이득을 얻지 못하도록 차단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러시아 및 중국과 같은 국가 사이에는 명백하게 적대감이 존재하지만, 미국인들의 일반여론에 따르면 현존 질서의 표적이 된 모든 국가들과도 동등한 조건에서 공정하게 사업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단순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 여전히 적대감이 남아 있다면 이것은 국가 혹은 국민으로서의 일반적인 미국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와 미국 사이의 협력 및 건설적인 경쟁을 저해하는 특정 이익집단에 의한 것이다.
머지 않은 중간 미래까지는 치열한 투쟁의 과정이 지속되면서 미국의 특정 이익집단이 권력을 손에 넣어 유지하려 하고, 불가피한 쇠퇴 및 변동과 맞서 싸우며, 외부 세계와 미국 내부의 경쟁자와 싸우려고 애쓸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이 다른 국가들보다 우위에 서려고 하기보다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고 건설적으로 경쟁하면서 자신을 다극화 세계의 건설적인 일원으로 여기는 희망적인 미래도 동시에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관계에 있는 국가들과 민족은 미국과 불필요하고 광범위한 적대행위를 삼가고, 대신에 현재 월가와 워싱턴에서 행해지는 활동을 끈기 있게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폭력적인 관행에 근거하여 진행 중인 쇠퇴에 책임이 있는 미국 내 깊게 자리한 이익집단과 진정한 경쟁과 타협을 추구하는 한편, 미국의 미래를 대표하는 미국 새로운 주도집단을 구분하여 후자의 이익집단과 유대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한편, 모스크바, 베이징 그리고 심지어 많은 신흥 및 개발도상국의 대외정책은 지나치게 소극적이거나 유화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 여러 국가들의 중심역할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미국에 일어나는 변화를 잘 인지하고 있으며, 미국 제국의 몰락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그들이 미국 기존의 권력 지렛대를 활용하여 새롭게 등장하는 대체 세력과 연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미국 패권질서가 해체된 후 일대일로 사업을 주도한 중국이 미국을 대신하여 새로운 패권국가로 등장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그것은 현실적 근거가 있는 것일까?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사실상 기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일대일로 사업 자체가 어떤 패권적 성격을 지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반패권·반독점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 점은 지금까지 살펴본 평등·호혜·상호공존 등과 같은 일대일로의 이념과 원칙, 그리고 그간의 실제 사업 추진방식을 통해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사업을 누군가가 ‘주도’하더라도 그 때문에 패권국가가 탄생되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그 주도 국가는 이 사업이 갖고 있는 이념과 규범 체계,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각종 국제기구 즉 새로운 ‘국제질서(국제체제)’를 현실화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대일로와 관련하여 볼 경우, 그 주도국은 패권체제가 아닌 새로운 민주적 국제질서의 주도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 양자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둘째, 중국은 미국을 대체하는 세계 패권국가가 될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글로벌시대에 들어서 패권국가는 유일한 것일 수밖에 없는데, 그러기에는 중국은 많은 부분에서 기준에 못 미친다. 예컨대 2차 대전 종전 직후의 미국처럼 세계 전체 GDP의 50%에 해당하는 압도적인 경제적 역량이 없을뿐더러, 또한 그것을 보완하고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배타적인 ‘이념적 동맹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그것은 중국공산당이 자신의 개혁개방 전략으로 내세우는 “하나의 중심, 두 개의 날개” 강령에서 4개 원칙, 즉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독재, 공산당 영도, 맑스레닌주의 지도이념 고수를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현재 대부분의 국가들이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나라가 이러한 중국과 이념적 동맹관계를 형성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중국은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도 ‘패권질서’ 보다는 민주적인 국제질서가 필요한 상황이다. 실제 그간의 역사적 행보를 보면, 중국은 사실상 개발도상국진영 내에서도 가장 일관되고 철저하게 반독점과 반패권주의 입장을 분명히 해온 국가라 할 수 있다. 물론 역사적 경험이 보여주듯, 사회주의국가라고 해서 무조건 반 패권주의와 반독점 세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는 동시에 만약 사회주의국가가 자본주의 열강처럼 스스로 패권국가의 길을 걷는다면 과거 소련처럼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주었다. 그 같은 방식으로는 자본주의 국가들이 절대 다수를 형성하는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소수자’의 위치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오히려 미국과 같은 패권세력으로 하여금 다시 국제적 차원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대 사회주의권 포위망을 형성하는데 있어 좋은 핑계거리만을 제공한다. 사회주의국가가 세계 자본주의국가들의 포위망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자기 발전의 길을 갈 수 있기 위해서는, 전체 자본주의진영의 ‘단결의 핵’인 국제 패권세력을 무력화시켜야 하는데, 그 핵심은 후자가 주도하는 패권적 국제질서를 ‘민주적’인 것으로 개조하는 것이다. 일대일로가 주권존중, 내정불간섭 등 ‘평화공존 5원칙’을 채택하고 있듯이, 각국이 사회제도와 이데올로기 및 가치관의 차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발전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신 국제질서가 구축되는 것은 중국에게 가장 유리하다. 이 때문에 지금 시기 국제 패권세력의 가장 큰 경계와 견제 대상인 중국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도 그들과의 투쟁에 있어 한 가운데에 설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또 실제로 그간 중국은 일관되게 국제질서에 있어 일체의 ‘독점’과 ‘패권’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오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일관된 태도는 객관적으로 볼 때 국제 패권세력의 존재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는 대부분의 다른 개발도상국들의 이해를 가장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중국은 자신이 천명하는 ‘평화적 발전(和平崛起)’을 추구할 수 있는 내적조건 또한 상당정도 갖추고 있다. 14억에 이르는 거대한 인구 외에도, 무엇보다도 그 경제제도에 있어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특유한 ‘국유기업이 주도하는 시장경제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그간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이 보여주었듯이. 중국은 대외적 패권이나 확장정책 없이도 충분히 자체 내포적 발전을 할 수 있는 체제임을 보여주었다. 사물은 현상과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본질을 끊임없이 노정한다. 40년간의 세월은 그것을 관찰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제국주의는 대부분 그 도약단계부터 이미 제국주의적 본색을 드러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미국이 그간 누릴 수 있었던 유일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는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것으로서 다시 복재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즉, 시기적으로는 우선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의 특수한 상황이 작용하였다. 당시 미국은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전혀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았으며 오히려 전쟁 때문에 부와 군사력을 더욱 갖추게 되었다. 또 1990년대 초반 경쟁상대국인 소련이 스스로 붕괴함으로써 냉전체제가 갑작스럽게 해체되었던 시기적 조건 또한 미국이 유일패권국이 되는데 있어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다. 다음, 공간적으로는 대서양과 태평양이라는 두 개의 대양에 의해 다른 대륙으로부터 격리됨으로써 공격과 방어에 모두 유리한 천연적인 지리조건이 존재하였음을 간과하여서는 안 된다. 이상과 같은 역사적·공간적 조건은 유일무이한 것으로 다른 나라에 의해 쉽게 재현되기가 힘들다.
앞으로 새로운 국제질서의 탄생을 상징하고 전체 국제규범체계를 이끌 최상위 국제기구는 ‘유엔’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유엔이라는 조직이 지금까지 존재하는 국제기구 중 가장 종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본래 그 자체 이념에 있어 진보적인 내용을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 인용 글은 이 점을 잘 나타내고 있다.
“유엔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의 토대 위에 수립된 것으로, 발기국과 그 권력의 핵심인 안보리 상임이사국에는 미·영·프 3개 선진 자본주의 국가는 물론 소련(현재는 러시아-인용자)이라는 세계 최대의 사회주의 국가, 그리고 중국이라는 나라가 있다. 현재 200여 개 회원국 중 상당수가 개발도상국이다. 반파쇼 전쟁 승리의 토대 위에서 구축된 것이기 때문에 침략 반대, 세계 평화 수호, 국가 독립과 주권 평등 수호, 타국 내정 간섭 반대가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예를 들어 유엔헌장 규정의 취지는 국제평화와 안전 수호, 국제협력 촉진,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에 대한 존중 증진 등이다. 이를 위해 유엔헌장은 회원국의 주권 평등,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 위협 또는 무력사용 불가, 어떤 나라의 영토 완전 및 정치적 독립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유엔 및 국제관계의 기본원칙을 규정했다. 물론 미국 패권주의의 방해로 유엔헌장에 규정된 이런 취지와 원칙들이 항상 관철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중요한 조항들이 유엔헌장에 포함된 것은 인류 문명의 진보를 위한 중요한 성과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것들은 제국주의 침략의 확장을 억제하고 개발도상국의 독립과 주권을 수호하는 일종의 장벽이 되어왔으며, 세계인 특히 사회주의 국가와 개발도상국의 많은 인민 대중이 오랫동안 싸워온 중요한 성과이며, 인류 문명의 진보의 중요한 표현이다.” (<제국주의 역사의 종식>, p140)
실천적으로 볼 때, 현재 국제 정치·경제 질서를 상징하는 각종 지구적 국제조직은 많은 경우 유엔을 둘러싸고 혹은 <유엔헌장>의 틀 아래 결성되어졌다. 경제 영역에서 WT0, 세계은행, IMF, UNDP(유엔개발계획) 등이 그러하다. 정치 영역에선 국제사법재판소, 세계인권회의 등이 있다. 군사 방면에는 유엔평화유지군, 세계원자력기구, 세계군축기구 등이 있고, 보건과 환경 영역에는 세계위생기구와 세계환경기구 등이 있으며, 문화 방면은 유네스코가 있다.
미국 등 패권주의세력이 현행 국제질서에 불만을 품고 별도의 국제신질서를 구축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유엔헌장 규정과 이미 광범위하고 심대하게 영향을 미치는 국가주권의 독립, 주권평등, 주권불가침 등 원칙이 자신들의 입맛이나 요구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들이 수립하고자 하는 ‘신질서’의 핵심 사상은 세계주의나 글로벌리즘, 인간 공동의 가치관, 주권보다 인권이 우선, 제국질서론, 미국 주도하의 세계평화 등으로 사실상 유엔헌장이 제창하고 확인한 국가주권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다. 반면 일대일로에서 표방하고 여기에 참여하는 많은 국가들이 옹호하려는 신 국제질서의 핵심 사상은 독립과 주권, 크고 작은 나라의 평등을 수호하고 국제적 착취와 억압에 반대하는 것이다. 요컨대 유엔헌장에 규정된 국가주권 원칙을 지킬 것인지, 부정할 것인지는 오늘날 두 가지 새로운 질서의 갈등과 투쟁의 초점이 됐다. 실제 중국과 러시아 및 다른 브릭스 국가들은 신 국제질서 수립과 관련하여 향후 유엔의 역할을 강화할 것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이처럼 유엔의 강화에 기초한 국제질서는 기존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와는 대립되며 그 종언을 의미한다.
다자간 무역 시스템의 붕괴에 대해 흔히 맥이 빠지는 기사 헤드라인 너머의 현실에서는 다행히 각국 정부들과 기업들이 세계무역기구(WTO) 개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 상소 기구의 기능 마비와 같은 부정적인 현안을 지적하기는 쉽지만, 지난 2년간의 발전이 이루어진 실제 분야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기업들이 나서서 주도하는 한, 노력을 적절하게 이해함으로써 더 광범위하게 개혁하기 위한 건설적인 로드맵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세계무역기구는 위기 의식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생산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년 간, WTO 회원국 다수는 21세기에 무역 규범을 도입하는 데 도움이 될 중요한 전자 상거래 협상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중요한 것은, 더 많은 국가가 전자 상거래 협상에 참여하고 있고, 2019년 12월 10일에는 WTO 회원국들이 전자적 전송물에 대한 무관세원칙(moratorium)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이다. 회원국들은 ‘규율화 된’ 수산업과 농업 보조금과 같이 전통적으로 다루기 힘든 쟁점에 대해 아직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합의와 상당히 가까워졌다. 그리고 국내 및 국경을 넘어 투자와 서비스 제공을 촉진하고, 여성의 경제적 권한을 강화하며 중소기업이 시장에 더 잘 진입하여 무역 시스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규칙을 제정하기 위해서 협상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다고 해서 상황을 모른 척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경제력이 변화하고, 기후위기의 난제에 대처해야 하며, 기술 발전이 상업에 지장을 주고, 시민들이 점점 더 포괄적인 형태로 모두를 위할 수 있는 세계화를 요구하고 있는 세계 속에서 다자간 무역 시스템의 핵심 중 일부가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무역은 사람과 지구를 위해 작용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하기 위해 다자간 무역 시스템의 개혁이 필요하다.
전 세계 각국 정부는 이번 위기를 헛되이 보내면 안 된다. 현재 무역 분쟁이 ‘법의 지배’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는 상소 기구의 위기에서 야기한 시급한 과제를 넘어, 현재 정치의 역동성은 무역 시스템을 극적으로 개선할 엄청난 기회를 제공한다.
WTO를 향해 집중된 관심은 WTO 조직 구조와 책임 체제를 강화하여 시스템 내 신뢰를 구축하기위해 활용되어야 한다. 시민사회 및 사업 단체의 참여 증진, WTO 과정 및 협상의 투명성 증대, ‘특별하지만 차등을 두는 방안’을 위한 증거 기반의 기준 확립은 시스템 신뢰 회복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각국의 정부는 현 시점에 기존의 WTO 규정들을 철저하고 포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1990년대 초에 제정된 무역 규범은 갈수록 더 서비스 및 데이터의 흐름으로 특징되며 디지털 기술 및 글로벌 가치사슬로 가능해진 21세기 무역의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정부단위에서 기후위기, 지속가능성, 불평등과 같이 우리 시대에서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사안을 다룰 권한을 WTO에 어떻게 부여할 것인지 독창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WTO가 세계화뿐 아니라 불만의 원인을 다루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것만큼 WTO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방안은 없을 것이다.
다행히도, 특히 아시아 태평양의 몇 정부가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고자 나서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가 WTO의 세 기능(감시, 분쟁 해결, 협상)을 개혁하고 현대화하자고 제의했는데, 이는 정확히 국제상공회의소(International of Chamber of Commerce)가 요구해온 바이다. 호주의 복수국간 WTO 전자상거래 협상 촉진은 21세기 무역의 현실을 다루기 위해 규범 제정을 통한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시이다. WTO 상소 기구의 교착 상태를 타파하기 위한 뉴질랜드의 핵심적인 중재 역할은 공로와 공감을 모두 받을 가치가 있다. 그리고 2019년 12월 10일, WTO의 60 회원국이 규범에 근거한 다자간 무역 시스템에서 WTO의 중심적이고 필수적인 역할을 재차 시인한 점은 고무적이다.
명백하게 정부 단위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더 많은 리더십이 필요하다. 초소형 기업, 중소기업, 대기업을 포함한 기업체들은 지난 25년 동안 다자간 무역 시스템의 혜택을 누려왔다. 세계 무역 시스템의 주요 사용자이자 수혜자인 기업은 WTO의 지지자가 되어 개혁 과정에 건설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리더십은 무역이 일자리, 환경,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정당하게 불평하는 일이 보호무역주의와 후퇴를 요구하며 역효과를 낳는 방향으로 변모되지 않도록 요구한다. 대신에 정부, 기업, 시민 사회는 무역 시스템이 사람들과 이 세상을 위해 작용하도록 보장하기 위해 더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WTO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 시기가 도래했다.
다른백년은 그 동안 워싱턴 프레임이라는 관점에서 홍콩사태를 보도해온 국내 언론의 한계를 벗어나, 독일에서 연구중인 중국본토의 젊은 학자의 시각과 미국 내 진보적인 지식의 견해를 소개한 데 이어서, 마지막으로 제3세계 정치경제 분석의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호주 국립대 (ANU)의 동아시아포럼(EAF) 편집진의 입장을 번역하여 독자분들께 알리고자 한다.
중국과의 범죄인 인도 법안이 제의된 후 홍콩에서 평화적으로 시위가 시작된 지 6개월이 넘었다. 이후 전개된 폭력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이르면서 상황이 계속 악화하고 있다.
그 동안 시위자들과 당국의 격렬한 대응에 의해 홍콩 도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마비되었다. 폭력, 죽음, 대규모 체포와 잘못된 정보가 잇달았다. 경기 침체가 예상보다 심각해지면서, 호텔의 반 이상이 텅텅 비었고, 대학이 포위되었으며 소매업이 심각하게 타격을 받았고 일상적으로 교통이 마비되면서 경제가 위축하고 있다. 그러나 범민주 진영이 11월 말 지역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시위 운동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부각시켰다.
시위운동에는 지휘하는 중심적 지도자가 없고, 다만 범죄인 인도 법안을 철회하라는 초기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구속된 시위대의 사면과 보통선거권을 포함한 나머지 네 가지 요구 사항은 행정부와 절충하기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보통선거권 개혁 과정에는 어려운 난관이 있으며, 실은 2014년에 이미 당시 야당 의원들이 변화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EAF 칼럼리스트 케리 브라운(Kerry Brown)은 ‘홍콩의 주민 대부분은 안전에 필요한 비용과 행정부의 대책 아이디어가 고갈되는 상황임에도 시위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여진다’며 홍콩의 상황을 요약했다. 시위 및 당국의 대응이 격화하면서 ‘때론 베이징 정치 지도자들조차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지 모르는 것 같다’고 전했다.
중국은 상당한 국제적인 비난과 반발을 야기할 수 있는 직접적인 개입을 기피해왔다. 중국이 시위대에게 물러설 일은 없겠지만, 시위에 개입하게 되면 홍콩 내 혼란과 국제적으로 엄청난 결과가 초래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국경 너머에서 군사력을 과시하면서도 사태를 지켜 보아야만 했다.
취약한 상황이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을까? 브라운이 설명하듯이, ‘2019년에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2020년으로 사안들을 연기했을 뿐이다. 위기가 더 오래 이어질수록 홍콩은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홍콩 주민의 복지와 동아시아 번영 및 안보에 있어 홍콩 도시가 지니는 중요성이 위기에 봉착했다. 잘 알려진 제도를 갖추고 있는 홍콩은 서쪽으로 중국 본토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하며 특별하고 전략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었다. 중국에게 있어서 홍콩은 주권이라는 주제를 넘어서 기업들과 정치인들이 (서구 사회에 대한) 전방의 위치에서 기능적으로 제도 및 재정 기법을 배우면서 본토 경제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경험적 교훈을 제공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가 오래 지속될수록 중국과 세계 다른 국가가 홍콩을 특별하게 여기는 요소가 줄어든다.
미국 의회가 11월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중국과 미국 간의 진행되는 심각한 패권과 전략적 경쟁이 더욱 복잡해졌다. 2019년 한해 전세계적으로 대규모 시위운동과 대응으로 많은 도시들이 마비되었지만 그 어떤 사건도 홍콩처럼 두 초강대국의 전략적 이해 관계가 얽혀 있지는 않았다.
미국은 배후에서 홍콩 문제에 직접 관여했다. 그렇지만 다른 국가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참여자 모두가 패배하는 (lose-lose) 위기 상황에 자칫 연루되면 잃을 것이 많다. 지난 10월 팀 서머스(Tim Summers)는 다른 국가들이 워싱턴, 런던, 캔버라 라는 배후 도시의 시각이 아니라 홍콩 사회 전반의 내적 견해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홍콩 정부를 지지하고 홍콩과 베이징의 이해 관계 사이에 올바른 균형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는 의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 같은 폭력사태는 반드시 멈춰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홍콩 사회는 결코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시위와 혼란이 멈추기를 바라며 시위대는 자신들의 요구 사항이 관철되기를 원한다. 양측이 체면을 세우면서도 홍콩 사회를 재건할 수 있는 타협안이 필요할 것이다.
홍콩과 중국은 홍콩 헌법에 명시된 영국과의 50년 합의가 만료되는 2047년까지 ‘한 국가-두 체제’로 운영된다. 2047년 이후에 벌어질 일은 명확하지 않고, 그 동안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있을 것이다.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한 지 22년이 지난 현재, 특히 중국에는 거대한 변화가 있었다.
중국은 2047년에 다른 국가가 되어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번영 및 고소득의 꿈을 이뤄낼지 성공의 여부는 아마도 경제와 정치 제도 개혁의 가능성에 달려있을 것이다. 중국이 상기 개혁이 성공하면 본토와의 관계에 대한 홍콩 국민들의 사고방식 역시 크게 변하게 될 것이다.
최근 수년간 급격한 기후변화와 전지구적 생태계 파괴를 경험하고 있는 이 시대의 인류는 불안한 마음으로 디스토피아가 다가옴을 지켜보거나 애써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과학기술 낙관주의에 빠져있다. 현 인류가 처한 이러한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극적인 처방은 과연 있는 것인가? 지구 환경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국제적 노력과 크고 작은 규모의 사회조직체들의 활동으로만 충분한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가 옳다고 믿었던 세계관을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류 문명을 개조하지 않는다면 디스토피아는 예상보다 빠르게 도래할 수도 있다. 기존 과학기술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중심적 환경주의 운동과 교육은 임시방편적이고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반면 인간과 생태계와의 화합을 주창하는 탈인간중심적 종교와 신비주의 철학은 현 인류문명의 토대가 된 과학기술의 견고함에 쉽게 무너져 버릴 수 있다. 현 인류에 닥친 지구 생태계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지만 동시에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이다.
우선 인류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곳에는 생태철학의 담론이 있어야 하는데, 현대 과학기술의 토대가 된 근대적 세계관을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의 파급력을 가져야 한다. 또한 새로운 생태문명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생태교육이 학교교육 현장에 커리큘럼으로 구체화되어야 하는데, 과학적 자연관과 인본주의적 능력배양 중심의 근대 교육의 한계를 설득력 있게 지적하고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 결과적으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지구의 문화는 과학기술, 생태계, 문명이 공진화하는 선순환 관계를 전제로 하는데, 현재의 환원론적이며 기계론적 과학기술에 대한 탁월한 대안으로서 생태과학의 패러다임이 과학계에서도 인정받아야 한다.
생태철학의 담론은 오랜 역사를 통해 발전하였고 현재에도 유효하지만 생태과학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가장 구체적이며 작은 실천부터 가능한 생태교육의 발걸음은 이미 시작되었고 이를 통해 철학과 과학연구의 새로운 세계관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적 세계관의 한계
17세기에 이르러 중세의 세계관이 종말을 고하면서 시작된 근대에는 인간, 신, 자연 간에 새로운 관계가 설정되었다. 르네상스로 대표되는 인본주의는 교권과 스콜라 철학의 권위로부터 해방된 인격체로서의 개인에 관심을 갖게 하였고, 이로써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이 가능해졌다. 자연사물과 정신의 공통된 존재론적 기원으로서 그 자체가 탐구의 목적이었던 신의 위상은 중세를 벗어나면서 기껏해야 과학적 인식의 객관적 타당성과 보편성을 정당화하는 하나의 지표로 전락하게 되었다. 종교개혁을 가능하게 한 복음주의 신학은 각 개인이 신과의 접촉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개인주의적 구원의 체계를 교리화한 것이다.
근대철학의 합리론과 경험론을 대표하는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론과 베이컨의 우상론은 자연세계의 진리에 접근하고 개인의 지적 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철학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이를 통해 과학혁명이란 이름 하에 자연세계의 여러 단면들을 탐구하는 여러 개별 과학분야가 이 시기에 태동하였다.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된 자연현상은 관찰할 수 있고 양적으로 측정 가능한 것으로 제한됐으며, 수학적 언어만이 이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수단이 되었다.
한편 개인의 자유, 평등, 인권, 복지, 자본, 부의 개념이 근대 이후의 세계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었다. 자연세계는 인간과 분리된 객관적 탐구의 대상이 되었고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자원의 의미로 전락하였다. 일부 환경주의자들에게는 지속 가능한 지구환경이란 인류가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지구자원을 잘 사용할 수 있는 경제적 관점에서 규정될 수 있다. 이는 근대의 사유체계가 지식확장의 주체인 인간과 탐구의 대상인 자연세계가 철저히 분리된 이원론적 실체론을 기반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자연현상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기계론적 인과론을 기반으로 이루어졌고 더 명확한 지식을 얻기 위해 자연세계를 더 작은 단위의 현상으로 환원하여 설명하게 되었다. 예컨대 복잡한 생명현상은 더 작은 단위의 분자수준에서 설명하고, 이를 더 잘 설명하기 위해 화학과 물리학적 지식을 동원하였다. 하지만 생명현상, 기후변화, 국제정치상황 등은 단순히 환원적이고 기계론적인 방식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매우 복잡한 현상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인류문명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여러 기이한 부작용들을 현재의 자연주의적 세계관으로는 설명할 수도, 해결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생태철학의 역사
지구환경 위기의 근본적 원인인 인간중심적 세계관을 극복할 수 있는 생태적 패러다임은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것인가? 제도화된 종교에 예속된 중세의 세계관과 권위에서 해방되어 인간중심적으로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근대의 세계관은 인류의 전 문명에서 볼 때 매우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자연세계를 바라보는 다양한 종류의 세계관이 이미 동서양에 더 넓고 깊이 퍼져 있었다. 따라서 이런 세계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오래 전 동양의 도가사상은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지도, 자연세계를 개별화된 개체와 부분으로 나누지도 않았다. 자연에 존재하는 각 개체들의 개별적 차이를 인정하지만 배타적으로 대하지 않고 자연 개체들의 내재가치가 존재함을 믿었다. 생태학(ecology)의 어원인 그리스어 ‘oikos’(eco)는 가족, 집, 가정을 이루는 가족 구성원, 사회를 이루는 작은 단위 공동체를 의미한다. 자연은 모든 구성원들이 상호작용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함께 지어가는 가정과 같은 것이고 생태지혜(ecosophy)는 노자가 말한 ‘유무상생(有無相生, 있고 없음은 서로 상대하기 때문에 생겨남)’, 즉 타자를 향한 관계적 진상을 깨닫는 직관적 통찰을 의미한다. 불교의 근본인 연기사상과 생명존중 사상에 따르면 법계와 생태계는 모든 존재가 상호 연결된 세계라는 점에서 같고 모든 생명체에 내재된 가치가 바로 불성이라고 가르친다.
기독교에서도 인간의 타락 이전에는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에 분리가 존재하지 않았고, 인식의 주체와 대상이 구분되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은 죄로 분리된 관계성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이고, 사랑으로 연합되는 전 우주적인 공동체가 교회라고 여겼다. 도교, 불교,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심층생태학을 주창한 아른 네스는 자연보존운동을 지향하는 표층생태주의가 여전히 인간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소아(self)에 국한되었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지구 안의 모든 것이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심층생태학은 생물권 전체와의 일체 의식을 경험하면서 최대의 대아(Self)를 실현할 수 있는 세계관이라고 주장하였다.
근대철학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정신과 철저히 분리된 물질의 개념을 공고하게 만들었지만 정신과 육체 사이의 인과적 관계에 대한 그의 기계론적 설명은 모순이 많았다. 또한 과학적 탐구의 대상인 자연은 인류의 발전과 진보의 수단으로만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영향을 받아 기하학적으로 데카르트의 철학을 발전시키려고 한 스피노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데카르트의 이원론과 정반대의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는 『윤리학)』에서 초월적 인격신을 거부하면서 모든 것의 내재적 원인이 되면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신’의 개념을 이끌어냈다.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 안에 있고 신 없이는 아무 것도 존재하거나 파악될 수 없으며 모든 개체들은 시공간 안에서 신의 속성을 특정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양태 혹은 변형태라고 설명했다.
스피노자의 일원론적 자연관에 따르면 신은 자연에 내재할 수 밖에 없으며 신과 분리된 자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의 전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 사건, 경험들은 상호의존 관계에 있고 이 모든 것들은 체계적으로 통합된 전체를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란 무에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스스로의 변화 생성을 의미한다. 스피노자의 생태론은 인과적으로 연결된 유기체로서의 생명에 대한 직관적 인식을 통해 자연전체와 자연법칙을 통찰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은 니체도 초인의 정신은 바로 어린아이와 같이 자연적 삶을 누리고 스스로 자유롭게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19세기 말 이후 생태적 세계관 형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철학자는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이다. 그의 유기체철학 혹은 과정철학은 절대 시공간 속에 외부의 어떤 것과도 관계를 갖지 않고 동일하게 정지해 있는 것으로 존재하고 파악되는 ‘실체’라는 개념의 과학적 유물론을 거부한다. 그에 따르면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로 여겨지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경험을 통해 새롭게 생성되는 현실적 계기(actual occasion)에 의해 구성되어 이름 붙여진 것이다. 각각의 현실적 계기는 그에 선행하는 (과거의 세계 전체인) 경험의 계기들을 통해 자신을 구성해가는 과정으로서의 존재이다. 이런 현실적 존재가 자기를 구성하는 생성의 과정을 파악(prehension)이라고 명명하였다.
화이트헤드는 자연의 모든 생명체도 인간이 가지는 경험의 정도는 아니라 해도 파악의 과정과 경험을 가지며 내재적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또한 시공간적으로 상호 연결된 자연 내의 모든 유기체들은 내재적 가치와 도구적 가치를 동시에 가지고 생태계 내에서 생기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간다고 했다. 이렇게 볼 때 자기(Self)의 존재를 세계와 분리시키지 않고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 생태교육의 핵심인 것이다.
생태과학의 등장
현대 물리학에서는 기존의 환원주의와 기계론적 인과율로 설명될 수 없는 자연의 복잡한 현상을 유기체적 자연관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의 생물학과 임상의학 분야에서는 복잡한 생명현상을 기계론적이고 미시적 관점에서 다루는 것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오믹스(omics, ‘체학’이라 번역되며 생명과학에서 분자들이나 세포 등의 집합체 전체를 뜻함)라는 분야가 등장해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유전체학(Genomics), 단백질체학(Proteomics), 후성유전학(Epigenomics), 대사체학(Metabolomics), 연결체학(Connectomics) 등이 그 예인데 단백질, 신경세포 등 몸 속의 여러 단위들 간의 상호작용과 연결에 대한 패턴을 분석하여 생명현상을 설명하려는 세부 학문분야들이다. 기존의 기계론적이고 선형적인 방식으로는 복잡한 생명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실험실 연구를 넘어선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 방법론이 복잡한 인과성을 설명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20세기 인공지능과 로봇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이버네틱스란 분야는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들 간의 상호관련성을 밝혀 시스템 스스로가 어떻게 자기를 조직하고 환경에 적응하는지를 개념화하였다. 오늘날 정보기술 분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월드와이드웹 기술도 정보와 데이터들의 연결을 통해 엄청난 양과 종류의 정보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초연결사회를 만들어가는 4차 산업혁명의 개념 역시 사람, 기계, 데이터, 환경이 서로 연결되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혁명적 변화를 의미한다.
이미 과학기술의 페러다임은 환원주의와 기계론을 넘어서 전체적 관점에서 관계와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구현하려고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교육에도 이런 패러다임을 적용할 수 있을까?
화이트헤드의 교수학습 원리
화이트헤드는 생태적 교육에 있어서 생태적 자기(Ecological Self)라는 개념을 제안하였다. 즉 생태교육은 한 개인이 세계의 한 부분임을 인식하게 도와주는 도덕교육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실천적 요소라고 하였다. ‘생태적 자기’는 개인을 넘어 이웃, 사회, 인류, 생태계, 우주와의 일체감을 형성하는 기본 개념이며 자기 초월성과 연결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학습자는 세계 속에서 다른 존재들과 상호 의존하면서 상호보완적 관계를 맺고 이 관계성을 통해 생명이 유기적으로 끝없이 탄생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로서의 개별 학습자는 고립된 에고(ego)가 아닌 사회적 관계를통해 다른 존재들과 연결된 자기(Self)의 존재를 경험하는 현실적 계기(actual occasion)이며, 지식이 아니라 지혜의 눈으로 세상의 당면한 문제들을 바라보고 해결하는 것을 학습해야 한다. 학습자 자신과 연결된 다른 존재들의 경험을 함께할 수 있는 마음을 공감이라 하며, 생태적 교육은 자연의 모든 존재들과 공감할 수 있는 내적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가 주장하였듯이 교육은 교실 내에서 생기 없는 관념(inert ideas)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경험과 체험을 통해 창조성을 배양할 수 있는 환경을 학습자와 교사가 함께 가꾸어가는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도덕과 교수학습의 네 가지 방법적 원리를 제시하였다.
(1) 상호성의 원리는 교사와 학생이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라는 관점에 기초한다. 교사와 학생은 양방향으로 경험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상호 파악(prehension)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파악의 주체가 된다. 이렇게 교육은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세계에 대해 배우고 공통의 세계를 창조하는 과정인 것이다.
(2) 관계성의 원리는 도덕이 기본적으로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는 입장에서 관계가 확대되어감에 따라 발생하는 도적적 개념을 이해하고 그에 따른 도덕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원리이다. 즉, 교육은 ‘관계적 자아’에 바탕을 두고 생태환경이나 주변 이웃과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책임감을 발전시키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도덕교육은 다양한 타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를 통해 관계적 자아와 가치관계를 확장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3) 리듬의 원리는 학습자의 정신발달의 리듬적 특성을 고려한 교수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리로서, 인간의 삶과 교육이 주기적으로 순환되는 리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화이트헤드의 리듬의 원리는 그의 합생의 원리(다자가 모여 또 다른 하나의 존재가 되는 원리)와 일맥상통하는데 교육은 지속적인 파악의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과정인 것이다.
(4) 조화의 원리는 추상적 사상을 현실에 응용할 수 있는 능력과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지혜를 강조한다. 교양교육은 조화의 원리를 토대로 추상적 이론을 현실에 응용할 수 있는 조화의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자율과 훈육을 학습자의 정신발달의 특성과 전체 학습의 과정을 고려하여 학습 단계별로 조화롭게 커리큘럼에 적용함으로써 지혜롭고 창의적이며 책임감 있는 사회의 구성원을 길러내는 것이 화이트헤드 교육철학의 핵심이다.
생태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생태교육은 근대의 기계론적 패러다임 안에서 생태적 내용만 교육하는 것이 아니다. 인본주의, 과학주의를 넘어 관계, 과정, 연결이라는 사고가 교육의 핵심원리가 될 때 진정한 생태적 교육이 실현될 수 있다. 생태철학과 생태과학에서 도입된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태교육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과 교수학습의 방법론이 재구성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근대적 세계관의 전환과 생태적 자기의 형성이 이뤄져야 한다.
아직 제도권 교육에는 도입되고 있지 않으나 여러 대안학교들과 지역공동체들에서 생태교육을 실천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다양한 생태교육 커리큘럼과 경험적이고 실천적인 학습을 통해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유기적 관계를 깨달을 수 있는 생태적 감수성을 높이고, 타인 및 자연과의 유대감을 통해 정서적으로 안정된 건강한 자아 발달에 도움을 주려는 노력들이다.
생태교육은 과학기술, 생태계, 문명이 공진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하고 구체적인 시도이다. 진화는 한 개체가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환경을 구성하고 관계의 연결망으로 서로 이어져 있는 모든 개체들이 서로에 대해 적응해가는 과정이다. 지구 환경도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그 안에 있는 모든 구성원들과 함께 스스로 적응하고 자기조직화 하는 창조적 활동을 하고 있다. 생태교육은 인류가 지구와 함께 건강하게 진화할 수 있는 실천적 발걸음이다.
코리아 양국체제1란 대한민국(ROK)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 두 나라가 주권국가로서 서로 인정하여 공식 수교하고 평화롭게 공존, 교류, 협력하는 일 민족 이 국가2의 평화체제, 공존체제이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지난 70여 년 남북 간에 쌓이고 쌓인 적대와 불신을 완화하고 해소함으로써 평화적 통일로 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경로다.
지난 70여 년 남북은 수없이 많은 ‘통일방안’을 경쟁적으로 제안해 왔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통일은 멀어졌다는 역설 속에서 살아왔다. 지금까지 한국과 조선은 서로를 국가 대 국가로서 인정한 바 없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아무리 통일을 말해봐야 통일이 이뤄질 리 없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반드시 통일하자고 하니까 전쟁까지 했던 것 아닌가. 그래서 통일을 하자고 할수록 통일이 멀어지는 역설이 여태껏 발생해왔다고 하는 것이다.
평화로운 통일로 가는 ‘제1보’가 양측이 상대를 진심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인정하는 데 있음은 굳이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은 자명한 사실이다. 국가로서 성립되어 있는 양자 간의 관계에서 그렇듯 진정에서 우러난 실제적인 인정이란 서로를 정당한 주권국가로서 인정하는 것이다. 남북 서로가 국가로서의 정당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각자의 내부에서 상대를 부정하고 적대했던 심리와 제도가 바뀌기 시작한다. 그래야 편지 한 통 오가는 데서 시작해서, 전화가 오가고, 사람이 오가고, 그리고 마음이 오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음 간의 긴장이 먼저 풀려야, 정치적 긴장도 풀리고, 군사적 긴장도 따라 풀릴 것이다. 이 길이 평화로운 통일로 가는 ‘제1보’이고 그러한 상태가 이루어지는 것이 코리아 양국체제다.
그러나 지난 70여 년 동안 그 ‘제1보’는 한 번도 제대로 떼어지지 못했다. 첫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하면서 내달리고 도약하기를 꿈꾸는 온갖 화려한 통일안들이 난무했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여태껏 미뤄져온 그 첫걸음을 제대로 분명하게 내딛자는 제안이다. 통일에 이르는 첫걸음이 될 양국체제가 정착되고 안정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첫 과정을 제대로 이수(履修)하는 데만 많은 노력과 인내와 창의력이 요구된다. 이 가장 기본적인 과정을 분명한 목표로 인식하고 그 과제의 실현을 위해 실제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 과정을 애매모호하게 남겨둔 채 2단계, 3단계로 건너뛰자는 통일안들은 말만 화려할 뿐 실효가 없다. 오히려 갈등과 불신만 키워왔다.
양국체제란 단순히 한반도에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두 국가 간에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이 공식적으로 이뤄지고 그러한 상호 인정 관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어야 비로소 양국체제라 할 수 있다. 2018년 현재 세계 157개국이 남북 두 국가를 동시에 인정하고 수교하고 있으니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세계인이 인정하고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한반도에 양국체제가 성립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은 전혀 아니다. 막상 남북 두 국가는 서로를 국가로서 정식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치르고 극단적으로 적대했던 두 국가가 엄혹했던 냉전 기간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은 상황 탓으로 넘겨본다 하더라도, 소련·동구권이 붕괴하여 미소 냉전이 해소되고 1991년부터는 남북 두 나라가 유엔의 정식 회원국이 되었음에도 그 후로도 거의 30년을 서로 국가 대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지내왔다는 것은 분명 비정상이다.
그러나 현실이 크게 변하여 이러한 비정상이 더는 지속되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같은 해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리면서 한국전쟁(Korean war)의 종전과 북미 수교가 남, 북, 미 3국의 공식 어젠다에 올랐다.3 정전 상태를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당사자가 될 남북 두 국가가 이제 서로를 정상적인 국가로서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여기에 더하여 이후 북미·북일 수교가 이뤄지는 날이 올 것인데, 그때에도 남북만은 끝내 상대를 국가로서 인정하지 않은 채 준 전쟁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이제 양국체제가 눈앞의 현실로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도 놀라운 것이지만 그러한 변화를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대중적 힘이 대한민국 내부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힘은 물론 2016년 겨울 이후 형성된 촛불혁명의 민의다. 촛불혁명은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이 드러나면서 시작되었지만, 그 배경에는 정권의 모든 실정(失政), 무능, 독단에 대한 항의와 비판을 ‘종북’으로 싸잡아 억누르고 ‘블랙리스트’로 묶어 배제했던 박근혜 ‘신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환멸과 거부가 있었다. 결국 북을 이용해 독재를 강화하는 낡은 공식을 재탕·삼탕하려다 국민적 대저항에 부딪쳤던 것이다. ‘보수가 안보는 잘할 거’라는 근거 없는 공식도 완전히 깨졌다. 이명박, 박근혜 소위 ‘보수정부’ 시절 내내 안보 위기·전쟁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높아만 갔다.
높아가는 안보 위기, 전쟁 위기에 대한 국민적 불안과 불만이 매우 심각한 상태였음은 2018년의 판문점, 싱가포르 회담에 대한 여론의 압도적 지지에서 여실히 드러났다.4 2019년 2월 하노이에서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면서 상황은 교착되는 듯했으나, 같은 해 7월 1일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다시 만나 70년 적대를 종식시킬 대장정의 새 장을 열었고, 여론은 여기에 대해 흔들림 없는 지지를 보냈다. 이 지지는 촛불민의의 연장이자, 촛불민의를 믿고 과감한 대북 화해, 북미 화해를 성공적으로 주도했던 새 정부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기도 했다. 이제 남북미 간의 평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의지와 역량이 새 정부가 ‘촛불정부’임을 입증하는 핵심 증표가 되었다. 이로써 양국체제로의 현실 변화는 남북미 간의 해빙 기류와 이를 지지하는 광범한 대중적 지지를 통해 안팎의 든든한 근거를 갖추었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어느덧 이미 시작된 사건이었다. 이제 코리아 양국체제는 학술적 발상이나 탐구의 수준을 넘어서 눈앞에 다가온 현실이 되었기 때문에, 양국체제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인식을 정립하여 임박한 변화에 준비된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에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상식이기 때문에 양국체제에 대한 이해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상식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간단해 보이나 실은 간단하지 않은 문제인 것이다. 양국체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흥미로운 현실의 블랙박스를 먼저 풀어야 한다. 오랜 세월, 상식이 현실로 되지 못하게 가로막아온 모종의 강고하고 거대한 장애가 우리 자신의 안팎에 존재해왔던 것이다. 따라서 양국체제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 정립을 위해서는 먼저 이 거대한 장애를 분석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작업은 현실에서의 시도와 실패에 대한 분석을 포함한다. 양국체제로의 첫 전환 시도가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첫 시도는 너무나 짧은 시간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시도가 어떻게 가능했고 왜 실패했는지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양국체제에 대한 체계적 인식은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양국체제 발상이 억압되어온 까닭
먼저 양국체제에 대한 기본적인 상(像)을 그리기 위해, 한중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현재 한국과 중국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중국은 2003년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제1교역국이 되었고, 2017년에는 중국에 체류하는 한국인과 한국에서 체류하는 중국인이 각각 100만 명을 넘어섰다.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진 후 벌어진 놀라운 변화다. 편지 한 통 자유로이 오가는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이러한 큰 변화가 이뤄진 것은 한중 두 나라가 국가로서 서로를 인정하고 정식으로 수교했기 때문이다. 먼저 정식 외교관계가 이뤄지면 여러 변화가 물꼬를 터서 연이어 진행되게 마련이다. 한중 수교와 교류는 한중 양국에 큰 혜택을 주었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수교 이전의 냉전시대 한중 관계는 사실상 전무했다. 당시엔 중국을 중국이라 부르지도 못하고 ‘중공’이라 불러야 했다. ‘적성공산국가’를 마치 정상적인 나라인 것처럼 부를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교류는커녕 교류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적대와 금기의식이 지배했다. 러시아(구소련)와의 관계, 베트남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제 달라졌다. 실로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었다.
주지하듯 이러한 변화는 미소 냉전체제의 붕괴로 인해 가능했다. 더는 이념과 체제의 차이가 교류와 협력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수많은 일반인들이 서로 만나 협력하고 사업하는 데 이념의 차이를 물고 늘어질 이유가 없었다. 한중, 한러, 한베 수교국 정부 사이의 공무(公務)를 수행하는 데서도 서로의 이념이나 체제를 문제 삼아 마찰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다. 간단히 말하면, 코리아 양국체제란 한국과 조선 두 나라 사이에도 한중, 한러, 한베 사이와 같은 정상적인 교류와 협력이 이뤄지는 상태를 말한다.
물론 한국과 조선은 같은 민족의 두 국가이지 서로 민족이 다른 외국이 아니다. 같은 민족의 두 국가 간의 관계는 일반 외국과의 관계보다 긴밀하고 특수할 수밖에 없다. 양국체제란 일종의 ‘한 민족 두 국가 간의 특수한 관계’를 말한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 지금까지는 불행하게도 삼엄한 휴전선을 경계로 대치하면서 어떤 정상적 교류도 불가능한 상태에 머무르도록 지극히 부정적으로 작용해왔다. 일반적인 대외 관계와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철저히 가로막힌 상태였다. 그러나 과거 냉전시대 ‘적성국’이었던 중국, 러시아, 베트남과의 관계가 정상화되고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일반인 사이에서도 ‘왜 북과는 같은 민족인데도 그럴 수 없느냐’는 자연스러운 질문들이 생겨났다. 그래서인지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일반인 대상으로 양국체제를 설명하면 쉽게 이해하고 그 필요성을 인정한다. 기본적인 소개만 하고 나면 오히려 필자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서기도 한다. 그럼에도 왜 남북 간의 양국체제는 여태껏 현실화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러한 발상조차 분명한 형태로 제기되지 못했던 것일까?5 흥미로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양국체제를 설명하다 보면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반응을 자주 접하게 된다. 뒤집어 보면, 비록 막연하게나마 그런 방향과 방식으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생각을 분명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인가 그러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을, 또는 그런 식의 생각을 표출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다는 뜻이다. 정신분석의 용어로 말하면, 그러한 생각과 발상은 무엇인가에 의해 ‘억압’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무엇이 그렇듯 양국체제적 생각과 발상을 억압해왔던 것일까?
먼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각 개인의 외부로부터 오는 억압이다. 이는 주로 그동안 북을 인정하지 않고 적대시했던 국가와 국가기관으로부터 오는 억압이다(남북이라는 말을 바꾸어도 상황은 정확히 같다). 일례로 우리는 오랫동안 ‘북한사람’을 우연이라도 만나게 되면 공포를 느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왔다.6 국내에서는 물론이려니와 해외에서도 그러했다. 북을 불법화하고 있는 국가 당국이 언제든 그런 ‘접촉’을 ‘간첩사건’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이러한 억압은 독재의 수단으로 오랜 세월 애용되어왔다. 어떤 정당한 비판도 ‘종북’이라 몰고, 어떤 비인도적 탄압도 ‘종북 척결’로 정당화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양국체제적인 발상을 떠올리기도, 꺼내놓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 절에서 말했듯 촛불혁명을 전후하여 국내외의 상황이 크게 바뀌고 있다. 이러한 외적 억압은 점차 약화되고 있고, 앞으로 더욱 약화되어갈 것임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런 외부 억압은 억압을 당하는 각자의 의식 속 내면화를 수반하기도 한다. 스스로 ‘종북’ 딱지에 걸리지 않도록 자기검열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소위 ‘내 귀의 도청장치’가 생긴다.7 이런 자기검열을 통해 북에 대한 경계와 공포, 적대감이 내면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듯 외적 억압에 의해 내면화된 의식 역시 결국 외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외적 억압 요인이 약화·소멸됨에 따라서 같이 또는 다소의 시차를 두고 약화·소멸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부터 비롯된 억압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이 억압은 원인이 내적인 것이기 때문에 앞서 살펴본 외적 억압이 사라져도 존속할 수 있다. 그러한 억압은 과연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보면 그것은 우리 내면의 ‘분단의식’임을 알 수 있다. 남북뿐 아니라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고 있는 모든 코리안들에게 ‘분단’이란 그저 단순한 한마디의 말, 언어가 아니다. 범상치 않은 단어다. 반드시 ‘비원(悲願)’이나 ‘한(恨)’과 같이 강렬한 정서적 에너지가 고도로 응축되어 있는 표현을 수반한다. ‘분단’이란 모든 코리안에게 깊은 고통과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수반하는 상처의 표현이다. 일제에 억눌리면서 맺혔던 한이 풀리나 했던 순간 야밤의 봉변처럼 닥쳐왔던 것이 민족분단, 조국분단이었다. 일본을 몰아낸 미국과 소련의 힘, 그리고 그들 사이의 냉전이 분단을 가져왔다. 민족의 심장에 꽂힌 가시가 반드시 뽑혀야 하듯, 이 ‘분단’은 반드시 거부되고, 부정돼야만 한다. 따라서 ‘분단의식’이란 강렬한 ‘분단부정의식’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분단’에는 또 항상 ‘극복’이란 말이 따라 붙는다. 그 결과 ‘분단의 비원’과 ‘분단의 극복’은 항상 짝을 이루는 말이 된다. 이러한 분단은 나뉘어 있되 결코 둘이 아님을, 아니 결코 둘일 수 없음을 말한다. 지금은 나뉘어 있지만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함을 정언적(定言的)으로 명령하는 말이다. 정신분석에서 무의식(이드)을 ‘억압’하는 것은 초자아(슈퍼에고)이고, 이 초자아의 명령은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과 닮아 있다. 정언명령을 닮은 이 ‘분단(부정)의식’이 ‘한 민족이 이룬 두 개의 국가’, ‘두 개의 코리아’라는 생각, 양국체제의 발상을 억압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무의식적 금압, 터부는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한중, 한러, 한베 수교 이후 현실이 크게 변했음에도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한반도에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상식”이 되었음에도 그렇듯 상식적인 양국체제적 발상을 제기한다는 것이 왠지 쉽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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