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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급변사태는 과연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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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급변사태는 과연 가능한가?

admin | 화, 2020/06/16- 01:14

우리사회에 북 붕괴론은 심심찮게 터져 나온다. 많은 진원지들이 있겠지만, 그 1차적 진원지는 아무래도 체제이탈자(본 글에서는 탈북자 대신, 체제이탈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유는 이 용어가 보다 개념설명에 더 부합한다고 보기 때문이다)집단이 아닐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체제이탈을 합리화해야 하니, 북 비난에 대한 욕망을 쉽게 뿌리칠 수 없다. 2020년 현재 약 3만 명 정도의 체제이탈자들이 국내에 거주하면서 생기는 곱잖은 부작용이다.

박근혜 정부 때는 정말 심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북 붕괴론을 공개적으로 언급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2016년 8월 22일 당시 박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북한 엘리트층조차 무너지고 있고, 주요 인사들까지 탈북과 외국으로의 망명이 이어지는 등 심각한 균열 조짐을 보이는 등 체제 동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망명을 계기로 내부 균열을 언급한 것이다. 그 이전(2011년 6월) 이미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다. 한밤중에 그렇게 올 수 있다”고도 했다.

2차 진원지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의 농락 때문이다. 미국의 딥스테이트 세력 및 국내의 보수·수구세력들의 정치적 집합체들이라 할 수 있는 미래통합당 등 정당 및 보수·수구계열의 국민운동체와 같은 부류의 시민사회가 한 통속이 되어 끊임없이 ‘가짜뉴스’를 생산해낸 부작용이다.

한 예로 1996년 게리 럭(Garry Ruck)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미하원 안전보장위원회 세출위원회에서 북의 봉괴에 대해 “붕괴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인가라는 시기의 문제이다”라고 진술했다. 1년뒤 2010년에는 커트 캠벨(Kurt Campbell) 당시 국방부 부차관보는 미국을 방문한 일본 의원단에게 “북은 6~7개월 버틸까 말까 하는 상황”이라고 장담했다.

3차 진원지는 조·중·동으로 대표되어지는 보수·수구 언론매체 및 그들에 기생해 있는 보수·수구계열의 전문가(학자, 지식인 등)집단들이고, 여기에 ‘국방의 의무’보다 직업 군인화된 군인집단도 예외이지 않다.

아래와 같은 상황을 상정해 그 대응책으로 한·미 당국이 수립한 ‘작전계획 5029’ 의 일부내용을 보면 ‘①식량난으로 굶주린 주민들의 불만이 증폭되고, 다수가 국경을 넘는다. ②민심을 의식한 지도층 다수가 불만을 표출하며 북한을 탈출한다. ③급기야 민중봉기가 일어나고 군부가 호응해 정변을 일으킨다. ④김정은을 제거하고 정권을 교체 내지 전복시킨다.’ 등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함의해주는 바를 잘 생각해볼 일이다.

‘3-3-3 붕괴설’은 그 정점이다. 전형적인 묻지마식 붕괴설이었고, 그 시작은 19994년 김일성 주석이 서거하자 빠르면 3일 혹은 3개월, 그것도 아니라면 3년 내에는 반드시 붕괴할 것이라는 뉴스와 확증편향이 우리사회를 유령처럼 떠돌게 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김정일 체제로의 안착이었다.

끝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심심찮게 정체불명의 북 붕괴설은 계속 터져 나온다. 고난의 행군시기(94-97)에도, 김정일 서거 이후에도, 장성택 숙청을 전후한 시기에도, 그리고 가장 최근은 김정은 건강 위중설과 맞물려 또 터져 나왔다. 이 결과 역시 모두가 없었던 일로 되었다.

그런데도 왜 이 ‘양치기 소년’현상은 없어지지 않을까?

참으로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는 거짓말이 그렇게 지속되면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주장이 용납되지 않거나, 설 땅이 없어져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어찌됀 판인지 계속하여 어떤 필요에 따라 부활하고 있으니 이 어찌 이상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중심에 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과는 하등 상관없이‘북은 반드시 붕괴되어져야 할’그들의 맹신적 사유체계가 조·중·동이라는 매체를 타고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일 께다.

결과, 우리 국민들은 단 한 번도 북에 대한 실체적 진실과 직면해보지 못했다. 오히려 북 지도자가 죽으면, 내분이 일어나 자멸하는 북 시나리오만 정답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는 그렇게‘붕괴 확증편향’으로 그들의 공범이 되었고, 그 공범의식은 또다시 그들에게 정치적 사냥감으로 작용하여 북 붕괴를 거의 맹신에 가까운 믿음으로 작용하게 했다.

그렇게‘양치기 소년’현상이 왜 발생하지 않은지는 설명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껏 우리 모두가 이렇게 목도한 이 모든 확증편향이 단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고, 향후에도 실현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해서 이 글은 바로 그런 실체도 없는 북 붕괴설, 어떻게 하면 허위가 밝혀지고, 그들이 있는 그대로의 북을 이해하는데 도움 될까를 고민한 끝에 앞선 글들과 마찬가지로 대신해 묻고, 대신해 그들에게 답 준다.

 

1. 과연 그들은 북 붕괴론에 대한 개념적 정의가 있는가?

 알다시피 북 붕괴론이 대한민국과 서구사회에 하나의 인식적 흐름으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1980년대 말에서 1990년 초까지 봇물처럼 터진 현실사회주의권 몰락 및 붕괴가 그 직접적 원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근거도 충분하다. “오늘날 제아무리 북한이 부인하더라도 전 세계 사람들은 공산주의 진영 대부분이 붕괴된 것처럼 결국에는 북한도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믿고 있다.” (<북한의 협상전략>, 366쪽 참조.)

다시 말하면 후쿠야마(Francis Hukuyama)의 역사인식, 즉 그가 <역사의 종말>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로 역사는 이미 끝났다’는 그 우월적 인식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 지독한 열병은 참으로 고치기 어려운 악성종양으로 남아 우리를 내내-분단극복과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괴롭히는 주범노릇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우리가 진작 주목해야 되는 것은 그 반전이다. 후쿠야마는 이후 그 정의적 명제가 틀렸음을 뒤늦게 인정하고, 트럼프의 정치행태를 보며 “민주국가도 퇴행(현지시각, 2017.2.9.)”가능하다는 수정인식을 선보인다. 해서 사회주의체제만 몰락(혹은,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체제도 충분히 몰락할 수 있다는 그 상상력이 필요한데, 그런데도 우린 여전히 몰락한 사회주의체제만 눈에 들어오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이념으로 인해 엉망진창 되어버린 자본주의체제의 위기와 몰락은 못 보고 있다.

더해서 우리가 북 붕괴론과 관련하여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북 붕괴론의 실체가 불명확하거나 없다는데 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말하는 북 붕괴론이 명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어느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으니 실체가 없다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겠다.

복잡하지도 않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소멸(몰락)하는 것인지, 아니면 동구권에서와 같이 사회주의체제에서 자본주의체제로 전환된다는 의미에서의 체제전환을 뜻하는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의 지배 체제(좁히면 김정은 체제)가 쿠데타나 시민봉기 등에 의해 붕괴되어 권력층의 교체가 일어난다는 의미에서의 지배체제 변동을 의미하는지… 그 어떤 것인지에 대해 그들 자신도 모른다.

그러니 그들 자신들도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과 필요에 따라 북 붕괴론을 남발시킬 수밖에 없고, 진작 북 붕괴론 실체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며 주구장창 그냥 북 붕괴설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들 자신도 북 붕괴론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그냥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내뱉는 술수언어일 뿐이고, 비례적으로 우리 국민 모두는 그들이 말하고 있는 북 붕괴론이 무얼 의미하는지, 또 어떤 실체를 갖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정말 북 붕괴론을 그들이 현실 가능한 상황으로 믿고 있다면, 그들의 섭리 상 아주 철저하게 붕괴의 의미를 정확하게 정립해 효과적으로 대국민 설득과 홍보에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할 것이다. 왜냐하면 북 붕괴론의 실체가 없으니 그럴 수밖에.

마치 이는 마르크스가 1848년에 발표한 <공산당 선언>,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고 했듯이 북 급변사태도 시도 때도 없이 필요에 따라 온 대한민국을 휘젓게 한다. 혹세무민(惑世誣民)도 이런 혹세무민이 없다.

 

2. 북 붕괴론은 현실화될 수 있는가?

백번 양보해 그들의 문제의식을 선의적으로 해석해줘 만약 북 붕괴론 실체가 있다고 한다면, 그건 아래 3가지로 요약정리 가능할 것이고, 그것에 대해-그 3가지에 대해 그 불가능성을 하나하나 짚어댄다면, 그들이 얼마나 허왕된 꿈을 꾸고 있으며, 국민들을 혹세무민시키려 하는지 알게 할 수 있을 것이다.

 

① 과연 국가 자체가 소멸할 수 있는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다. 천재지변 등에 의한 자연적 소멸의 경우가 충분히 있을 수 있으니 전혀 억지라고만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과 이 글에서 논하려는 논지의 핵심으로서의 국가 자체의 소멸은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래에 열거된 2가지 가능성 다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는 외세의 침입을 받아 그 국가가 외세의 국가에 병합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가 내에서 쿠데타나 국가적 변란 등이 일어나 다른 국가에게 자신들의 국가를 헌납하는 방식이다.

반론 첫째, 북은 스스로 자주국방의 기치하에 핵무력을 완성한 명실상부한 전략국가이다. 그런 국가를 상대로 그 어떤 국가가 공멸을 자초할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으며 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단 말인가? 불가능하다.

반론 둘째, 쿠데타나 국가적 변란 등에 의한 타국에 헌납하는 방식도 도저히 가능하지 않는 상상력의 범위이다. 왜냐하면 북에서는 원천적으로 쿠데타나 국가적 변란 등이 불가능하다. 수령중심의 유일체제 특성이 반체제 단체나 개인을 허용할리 만무하며, 연동해 시민봉기나 시위가 불가능하다. 실제도 이제까지 반체제 시위나 데모가 있었다고 보도된 적이 없다. 고로 역시 불가능한 기대이다.

 

② 레짐 체인지는 일어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이 또한 불가능하다. 근거는 만약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고자 했다면 이는 80년대 말 동구권이 체제전환의 길을 걸어가고자 했을 때 그때 일어난 것이 이치적으로 맞아서 그렇다. 하지만, 그때 북은 동구권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어떻게? 그건 <통일뉴스>에 실린 “북은 집단지도체제가 과연 가능한가?”(5.15) 중 ‘4. 현실사회주의 몰락에서 찾아낸 그들의 교훈’에서 확인받듯이 오히려 수령중심의 사회주의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그 항로를 잡았다.

이 외에도 2011년 아랍권의 오렌지 혁명이라 불린 ‘중동의 봄’이라는 민주화 물결 때도 북은 많은 사람들(혹은, 많은 국가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즉 그 영향을 미쳐 북이 곧 체제전환을 할 수밖에 없을 거라며 국제사회가 주목한 적이 있었지만, 북은 한 치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과 같이 북 스스로는 동구권의 체제전환에서 얻은 반면교사를 더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가운영원리를 확정했다. 불가능한 상상력이다.

 

③ 그럼 지배체제의 변동은 수반될 수 있는가?

기억을 되살려 보자. 위키리크스(Wikileaks)는 2010년 2월 17일 당시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와 천영우 당시 외교부 2차관의 오찬 때 천영우는 중국이 김정일 사망 뒤 북 정권의 붕괴를 막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했고, 더 나아가서 “북한은 경제적으로 이미 무너졌고, 김정일 사망 뒤 ‘2~3년 안에’ 정치적으로도 붕괴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천영우가 무슨 근거와 정보로 그런 인식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그런 인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필요충분조건이 성립해야 함은 분명하다. 이름하여 북 체제를 지탱하는 내구력에 어떤 변화가 수반되고,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흐름을 타고 있는지 정도는 충분히 검증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국가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이 부정되고 있는지, 둘째는, 그 주체사상에서 출발한 유일사상체계에 어떤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지, 셋째는, 역사적 정통성-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에서 김일성민족의 시원이 부정당하고 있는지, 넷째는 당과 인민의 관계에서 믿음과 신뢰적 관계보다는 그 반대의 관계가 형성되고 있는지, 다섯째는, 수령과 당의 군대로 되어 있는 군대가 어떤 변화가 있는지 등은 반드시 확인되어져야만 한다.

그런데, 그 어떤 변화가 없다는 이는 분명 허구이다.

그래놓고 또 우리가 유념해야 될 것은 그 허구를 증명하는데 있어 다음과 같은 시각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름 아닌, ‘북처럼 폐쇄적인 독재국가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날 수 없다. 정보가 통제되고 자유가 제한되어 불만 표출이 어렵고, 데모를 하더라도 그에 대한 탄압과 처벌이 너무 가혹할 것이기 때문에’와 같이 그런 인식을 갖는 진보적 자유주의 시각이다.

왜 이 시각이 북을 들여다보는데 있어 문제가 심각하게 되는 것 인가하면 북에 대한 인식 그 대전제가 북을 ‘폐쇄적인 독재국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오류에 빠진다. 지금 당장은 폐쇄적 독재가 인민의 저항을 다소 늦출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는 ‘아랍의 봄’이나 우리 대한민국의 경험처럼 독재체제는 반드시 민중의 저항을 받게 되어 붕괴될 것이라는 실체적 경험이 반영하게 되어 ‘그렇다면 북도 언젠가는 무너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자신의 인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즉, 북 체제변동은 잠시 유보될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변동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는 말이다.

이렇듯 북 체제를 수령중심 인민대중 사회주의체제로 인식하지 않고, 위와 같은-보수·수구세력들이 인식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적 자유주의시각의 ‘폐쇄적 독재체제’로의 인식은 북의 조그마한 변화에도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듯’이 언제나 북 붕괴론에 시달리게 된다.

예하면 이런 것이다. 노동자를 포함하는 기층민중, 유학생 및 작가나 교원 등 지식층뿐만 아니라, 외교관이나 당 비서를 포함한 지배층의 망명까지 다양한 계급·계층에서 체제이탈자가 발생하면 이를 인식함에 있어 ‘기층 민중들의 체제염증’, ‘지식층의 이반’, ‘지배층의 동요’로 확대해석해내 정권이나 체제에 불만을 품고 북을 탈출한다고 연계시켜 버리는 것이 바로 그것들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들이-진보적 자유의자들이 인식하지 못한 치명적 약점 둘이 있다.

하나는 체제이탈자 들 중에는 상당수가 자신들의 잘못에 따른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나, 혹은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소외감으로 탈출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절대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체제이탈자 수가 곧 체제붕괴와의 상관관계로 넘어가는 그 직접성이 매우 적다는 측면에서의 간과이다. 황장엽, 태영호 등 고위층의 체제이탈자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북은 ‘비겁한 자여 갈 테면 가라’로 정리해낼 수 있는 충분한 체제 내구성이 있고, 또 북 체제이탈자 수보다 약 66배가 더 많은 쿠바도 체제 붕괴설에 시달리지 않음은 그 함의를 잘 생각해내어야만 한다.

해서 결론은 북 체제는 항시 체제 붕괴라는 위험을 갖고는 있으나 ‘지금은 아니다’라는 인식보다는, 오히려 북 체제의 특성상 ‘체제 붕괴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보다 더 본질적임을 선행해 인식해야 한다.

 

3. ‘북 붕괴론이 붕괴되어져야 북이 보인다

북 붕괴론은 실체가 없다. 굳이 있다면 ‘북은 반드시 망할 것’이라는 믿음을 우리 국민들이 믿어줬으면 하는 그들의 사유체계만 있을 뿐이다. 결과, 그들은 북이 왜 핵을 개발하려 하는지, 또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대책 없이 ‘비핵화’만 외치고, 나아간다면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 제시하나 없이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도둑 찾아오듯 ‘통일은 대박’이라며 속 빈 구호를 내건다.

그래놓고 다시 그들의 북 인식 사유체계를 한번 들여다보자.

‘최고지도자 사망 → 권력투쟁 → 급변사태 → 체제붕괴 → 흡수통일’이 그들이 갖고 싶어 하는 최고의 프레임이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현실 사회주의권 붕괴 때와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때, 그리고 1990년대 중후반의 식량난 소동 때, 그리고 작금의 김정은 건강 위중설까지 그들은 단 한 번도 이 인식방법을 변경시킨 적 없다.

또한, 그들은 그들 자신들의 (정치적)목적 달성을 위해 남북관계나 북 상황에 대해서는 최대한 본질을 숨기고, 반면 드러난 상황에 대해서는 최대한 부풀려 곧 북 체제에 균열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소문을 적극 퍼트린다. ‘악마국가 북한’과 마침내 ‘승리하게 될 대한민국’이 그렇게 대비된다. 아주 전형적인 프로파간다이고, 프레임 씌우기이다. 최고 꼭지점은 ‘이대로만 간다면 북은 멸망할 것’이라는 국가적 최면도 마다하지 않는다. 북 붕괴론이 그렇게 계속 영속되길 바라며 비례해 계속 웃길 바란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먼저는 당신들이 그렇게 기대하는 북의 ‘위기’ ‘급변사태’, 혹은 ‘붕괴’가 온다하더라도 이를 당신들이 그렇게 기를 쓰고 원하는 ‘흡수통일’과는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다시말하면 당신네들의 생각, 혹은 셈법에는 ‘북의 위기는 필연적으로 급변사태로 이어지고, 급변사태는 붕괴로 이어지고, 붕괴는 통일로 이어진다’는 연관성을 가져가고는 싶겠으나, 실제로는 그 논법이 단언컨대 1도° 성립시키지 못한다.

이유는 북이 실제적 붕괴를 맞이한다고 하더라도, 그 국면하에서는 국제법상 정전협정 당사자국들이 제 1순위의 해결권을 가지고, 다음이 UN이 개입하게 되어 있다. 그렇게 미국·중국 등 강대국을 제치고 한국이 끼어들 틈은 단 1도° 없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는 위기에 빠진 북을 결코 한·미·일 세력에 포섭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을 것이며, 미국 또한 중국과 러시아를 깡그리 무시한 채 북을 온전히 집어삼키려만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더한다면 현상유지적 안정만을 꾀하는 국제사회의 특성상 남북통일을 도와줄 이유도 전혀 없다.

다음으로는 세계적인 평화학자 요한 갈퉁이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을 상기하면 당신네들의 생각이 얼마나 틀렸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북한붕괴론이 북한보다 먼저 붕괴할 것”이라고. 대입하면 ‘북 붕괴론을 철석같이 믿는 당신네들의 사유체계가 북 붕괴보다 먼저 붕괴될 것이다’이다.

이는 북이 당신들이 생각하고 싶은 것과는 달리, 위 ‘2와 3’에서와 같이 지금의 북 정권은 폭압정권도 아니며 북의 인민들이 북 정권을 반대하지도 않으며, 또 북에는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그 어떤 제재에도 충분히 견뎌낼 만한 힘이 있음이다. 때문에 북 붕괴보다 당신들의 그 믿음적 사유체계가 먼저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근거도 확실하다.

첫째, 그들은(북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일제를 반대하면서 형성된 항일무장투쟁경험과 이를 ‘자주’로 국채화한 국가정통성이 매우 강한 나라이다. 즉, 그 어떤 외세의 부당한 간섭과 제재에도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둘째, 비록 여러 측면에서 살펴봐야 할 점은 분명 있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또한 분명한 것은 무상교육·무상의료·무상주택으로 대변되는 사회주의체제가 갖는 장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셋째, 수령중심의 유일사상체계가 갖는 체제의 힘을 결코 무시해서도 안 된다. 그 표징에는 권력투쟁이 일반화되어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체제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최고 국가수반을 3년간이나 비워놓고도 ‘유훈통치’가 가능한 국가를 이 지구상에서 본 적이 있었던가? 없다면 이상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가능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체제가 갖는 견고성, 내구력은 대단하다는 것이 인정되어져야만 한다.

넷째, 군과 조선로동당이 갖는 힘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제2차 고난의 행군 시기는 선군의 힘으로, 공개처형(장성택의 예) 등에서 확인받듯이 부정부패와 특권에는 한 치의 타협 없는 일벌백계의 기풍이 당을 특권집단이 아니라 인민의 이익에 복무하는 최전선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결과, 가장 많은 사망자 집단이 우리 대한민국과 서방세계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당원, 당 간부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다섯째, 국가와 인민이 하나의 사상체계, 즉 주체사상으로 대변되어지는 지도이념으로 무장되어 있다는 점도 절대 간과되어져서는 안 된다. 상징으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것 중에 북 인민들은 고집이 세고, 줏대가 높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 이 표현을 철학적으로 표현해내면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자 모든 것을 결정 한다’가 된다. 이렇게 인민 한 사람 한 사람모두가 철학으로 무장되어 있고, 정치적으로는 수령-당-대중이 하나의 유기체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국가적으로는 ’대가정‘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북은 국가-인민이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명확해진다. 당신네들이 꿈꾸는 북 붕괴도, 그 붕괴를 통한 흡수통일도 모두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제는 그 긴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다름아닌, 북이 붕괴된다는 것도, 북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다른데 있지 않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페리의 보고서를 주목하면 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어떤 세계를 이해하는 길은 그 세계의 밖에 놓여있다”고 했는데, 바로 이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명제가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맞는 말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북을 이해하는 길은 북 밖에 있으며’로의 적용은 틀려서 그렇다.

단 한번만이라도 우리가 북을 북의 시각에서 제대로 바라보고자한 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 그들의 시각으로 봤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직 체제이탈자(탈북자)의 시각만으로 그들 내부를 들여다본 것뿐이다.

첫 출발부터 잘못되어졌음은 그렇게 생겼고, 또 공화당 출신의 페리가 어떻게 그런 ‘페리보고서’를 써낼 수 있었겠는가라고 반문했을 때 대한민국의 보수도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북 보고서’를 써낼 수 있을 만큼의 너무나도 긴 ‘잘못된’ 북 시간여행이 있었음을 고백하자.

그러면 보수와 민족은 다시 제자리를 찾고, 한반도는 통일조국의 청사진이 그려진다.

 

통일뉴스, 2020년 5월 29일에 게재된 글입니다 (필자와 협의하여 수정 후 본지에 실린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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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로베르토 M.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가 출간되었습니다.

‘시대의 예언자’ 혹은 ‘미래를 향한 메시아’로 불리는 웅거는 브라질 태생으로 하버드 법대를 다니며 비판법학 운동을 주도하면서 약관 29세에 종신교수직을 획득하고 이후 수많은 화제의 저술을 남기면서 국내에도 ‘주체의 각성’ ‘민주주의를 넘어’ ‘정치 3부작’ ‘진보의 대안’ 등이 번역 소개된 미국을 대표하는 현시대 최고의 지성입니다.

그는 현재의 산업체계를 ICT첨단기술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를 ‘지식경제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실제로 ICT 첨단기술이 산업과 생활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켰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산업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고 일부 집단이 소위 e-F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독과점을 강화하고 경제운용의 성과를 독차지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약직과 비선형적 고용의 불안정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웅거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첨단기술을 소수의 그룹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狹域(프린지)의 폐쇄적 전위주의와 거대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해와 지위를 강화하는 유사적 전위주의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지식경제의 소명은 가장 선진화된 기술과 생산관행을 생활과 산업전반으로 확산하고 보편화시키는데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이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를 실현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가지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인지적 교육적 요건 – 사회적 도덕적 요건 – 법적 제도적 요건.

이어서 웅거는 기존의 경제학인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고전경제학, 마샬과 빈-학파에 의해 주도된 한계(효용)학파와 미시경제, 그리고 이단이라는 표현으로 케인즈의 이론, 이후의 신자유주의와 이에 타협한 사민주의의 타락과 제3의 길 등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경제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는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못지않게 매우 난해하고 추상적인 저술입니다만, 기존의 논리와 관행에 갇혀 있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백년의 지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구매를 요청합니다. 책의 내용은 매주 한차례씩 20여 주에 걸쳐서 다른백년의 홈에 게재됩니다. 두손모아,

다른백년 이사장  이래경


유사전위주의와 초고립적 전위주의가 수반하는 또 다른 동향은 노동과 자본의 관계가 노동에 불리하게 변질된다는 점이다. 경제학의 가장 불변적인 교리 중 하나는 노동수익(실질임금)이 생산성 증가를 지속적으로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도그마는 부분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 노동수익의 강제적인 인상은 인플레이션을 통해 원래대로 돌아가기 쉽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조건과는 별도로, 우리는 이 도그마가 명백히 거짓이라는 점도 알고 있다. 다양한 요소부존량(특히 인구밀도와 천연자원의 부)의 발전과 제약에서 비슷한 경제를 비교한다면, 우리는 노동과 자본 사이의 국민소득의 분할에서 큰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어떻게 이런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을까?

이러한 차이의 원인은 자본과의 관계에서 노동을 강화 또는 약화시키고 생산을 위해 노동자를 채용할 수 있는 조건을 규정하는 법적 제도에 있다. 경제성장은 수요측면과 공급측면에 대한 제약을 반복적으로 돌파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수요에 대란 제약을 돌파하는 가장 오래 지속되고 효과적인 방법은 누진세와 재분배적 사회권을 통해 분배를 사후적으로 수정하려고 시도하는 것보다는 [제도적 안배들을 혁신함으로써] 경제적 편익의 일차적인 분배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이다. 경제적 이익의 일차적 분배를 형성하는 제도적 안배 중에는 자본에 대한 노동의 법적 위상을 정하는 안배(계약법, 회사법, 노동법)와 생산의 자원과 기회에 대한 분산적 접근의 조건을 규정하는 안배(재산권 체제)가 있다.

자본과의 관계에서 노동을 강화 또는 약화시키는 방법은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에 기반을 두는 경우에만 안전하다. 20세기에 지배적이었던 노동의 조직과 대표 방식은 그러한 기반을 확보하였다. 부유한 북대서양양안의 국가들에서 노동을 조직하고 대표하는 지배적인 안배와 지지대는 계약주의적 노동법 체제이거나 단체협상에 입각한 노동법 체제였다. 단체협상은 고용관계의 불평등한 여건에서 조직된 노동에 “대항력”을 부여함으로써 계약의 현실을 유지하려고 설계되었다. 중남미에서는 대안적인 조합주의적 노동법제가 등장하였다. 노동력의 절반 또는 그 이하를 관장하는 공식적이고 법적인 경제 영역에서 노동자들은 노동부의 보호 아래 직종별 노동조합에 자동적으로 가입되었다. 계약주의적 노동법 체제와 조합주의적 노동법 제체는 모두 기업 조직체들[협회들]의 비호 아래 확립된 생산단위(공장 등)에 안정적인 노동력을 특징적으로 결집시키는 공장제 대량생산을 자신의 경제적 배경으로 삼았다.

고립적인 지식경제의 등장은 대량생산을 유사하게 경제 전반에 퍼져있는 선진적인 생산방식으로 대체하지 않았다. 이러한 새로운 전위 부문의 동향은 전통적인 대량생산이 쇠락하는 상황과 안정적 노동력의 고용이 확고한 경제적 지원을 얻지 못하는 현실을 대변한다. 기업들은 더 싼 노동력, 더욱 유연한 노동력의 고용, 세금 우대(노동과 세금의 차익 거래) 등을 찾아 세계를 샅샅이 뒤지고 있다. 고립적인 지식경제뿐만 아니라 이로부터 불안정계약의 제도들을 통해 업무를 할당받는 세계에 두루 존재하는 비전위 기업들도 계약주의적 노동법 체제와 조합주의적 노동법 체제가 공히 의존하였던 경제적 기반을 침식하는 데에 일조한다.

노동의 대표와 보호의 자연적 형태처럼 보이던 것들이 회고해보면 노동이 경제적 안전이나 시민권이 없이 주로 분권적, 계약적 안배들로 조직된 두 시대 사이에 상대적으로 짧은 간주기의 현상으로 판명될지도 모른다. 공장제 대량생산과 계약주의적 및 조합주의적 노동법 체제 이전에는 선대제수공업(先貸制手工業)이 존재하였으며, 마르크스는 이를 『자본』의 초반부에서 기술하였다. 이제 대량생산의 쇠락과 새로운 선진적이지만 독점적인 생산방식(지식경제의 고립적 혹은 초고립적 전위주의)에 의한 대량생산의 추월 과정에서 또 다른 선대제수공업이 세계적인 규모로 등장하였다. 많은 대량생산의 일자리들은 더 가난한 나라의 저임금 회사에 하도급으로 제공되었다. 다른 일자리들은 특히 서비스 분야에서 불안정한 도급직과 임시직으로 대체된다. 노동의 대표와 보호를 위한 대안적인 법적 체제가 부재하고 더욱 근본적으로는 포용적 전위주의로 향하는 활동들이 부재하다면 노동은 무방비상태가 되고 국민소득 중 노동의 몫은 감소한다.

초고립적 전위주의와 유사전위주의의 출현이 초래한 동향들(과점기업들이 두 가지 전위주의를 통제하고 있는 상황과 많은 노동자들이 불안정 노동으로 전락하는 상황)에 대한 지금까지의 대응들은 전체적으로 불충분하다. 이러한 대응들은 더 크고 더 넓은 변혁으로 휩쓸려 들어가야만 작동할 수있다. 현재까지 그러한 변화는 시행되기는커녕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주변의 미미한 신생기업들로 둘러싸인 과점기업들이 지식경제를 지배하는 상황에 대한 해답으로서 독점금지법을 고려해보자. 독점금지법을 적용할 수 있는 사실요건(예컨대, 특정한 제품의 확정된 시장에서 제품가격책정에 대해 측정 가능한 영향력을 통해서 경쟁을 억제하는 행위)이 자주 결여되어 있다. 독점금지법이 지식경제의 거대기업이 경쟁을 억제하는 양상을 다루는 방향으로 개정되거나 발전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개정된 법은 이 장의 앞부분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소수의 글로벌 기업들에게 초고립성과 과점을 결합하는 데 결정적인 편익을 제공해온, 결합적이고 누적적인 요소들을 역전시키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독점금지법의 개정은 시장경제의 제도적 법적 구조에서 파급효과가 더 큰 변화의 일환으로서만 작동할 수 있다.

더욱이 플랫폼기업들의 해체는 이러한 기업들이 사용자들의 단일한 커뮤니티로 결집시킨 다수의 사람들과 연결된, 기업의 경제적 사회적 가치의 많은 부분을 파괴할 위험을 안고 있다. 우리는 플랫폼기업들을 소규모 회사로 분할하고 덜 포괄적인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대신에 플랫폼기업들을 유지하려고 결정하면서도 이 기업들을 새로운 지배구조 형태에 복종하도록 결정할 수도 있다. 예컨대, 법에 의해 설립된 독립적인 신탁회사들은 시민사회의 대표자들과 합께 플랫폼기업들을 통제할 권한을 보유하고 그리하여 주주의 권리와 경영자의 권한을 동시에 제약할 수 있다.

독점금지나 지배구조 활동의 효과는 경제적 제도들에 대한 더욱 파급력이 큰 혁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혁신은 지식경제에 대한 참여 수단들, 즉 자본, 선진기술 및 선진관행 등에 대한 접근을 확대함으로써 시작될 수 있다. 이러한 혁신은 기업들 간의 협력적 경쟁뿐만 아니라 정부와 신생기업들 간의 협력의 새로운 형식들을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도 있다. 나아가 이러한 혁신은 기본적인 재산권 체제(사람들이 사회의 축적된 자본을 배치하고 생산적 자원과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방식과 조건들)에 대한 다원주의적인 실험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실험은 현재 국한적인 형태의 지식경제의 계승자로서 포용적 전위주의의 전진에서 법적이고 제도적인 요소를 예시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순서도이다.

유사한 취지에서 특정한 직업 보유와 무관하게 모든 노동자-시민에게 제공되고 그래서 보편적으로 휴대가능한 안정성-보장적인 안전장치와 역량-강화적인 기부재원의 발전에서 북구의 실험, 즉 “유연안정성(flexsecurity)”을 고려해보자. 안전장치와 기부재원은 모든 일자리에서 노동자와 함께 이동한다. 일부 이러한 제도적 안배는 새로운 생산현실 아래서 나타나는 고용불안에 대한 효과적인 해답을 구성해야만 한다. 유연안정성의 광범위한 채택은 유연성과 안정성이 역의 관계를 이루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증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혁신과 협력 사이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체제의 일단을 범례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식경제의 카르텔 형성과 연관된 독점금지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응답의 단편 그 이상을 제공할 수 없다.

유연안정성이 제공할 수 있는 더 넓은 해법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경제를 위해 만들어진 기존의 노동법 이외에 또 다른 노동법체제를 탄생시켜야만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노동법 체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뚜렷한 경제적 불안에 대한 완곡한 언어로 복무하는 것을 보증하도록 설계될 수도 있다.

체제의 원칙들 중 하나로서 아마도 차등제의 채택이 될 수 있다. 그러한 불안정노동이 통신기술과 지식경제의 관행의 도움으로 더 많이 조직되고 대표될수록, 고용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법적 개입이 불안정 노동을 보호할 필요는 그만큼 작아진다. 반대로 불안정노동이 덜 조직되고 대표될수록, 그러한 직접적인 법적 보호의 명분은 그만큼 더욱 강력해진다.

이러한 보호의 내용을 발전시키는 또 다른 원칙은 법이 유사한 업무에서는 안정적 고용과 시간제 혹은 과업지향적인 고용 중 선택의 가격중립성을 요구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즉 계약직 노동자는 유사한 노동에 대해서는 최소한 정규직 노동자만큼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 목적은 지식경제의 관행과 관계들에 의해 요구된 유연성이 노동의 가격인하와 국민소득 중 노동의 몫의 감소에 대한 구실이나 위장수단으로 복무하지 않도록 보장하려는 것일 수 있다.

이러한 대안적인 노동법 체제의 진화의 후기 단계에서 노동법의 변화는 경제적으로 종속적인 임금노동이 농노제와 노예제의 특성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자유노동의 하자 있는 과도기적인 형태라는 19세기 사회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카를 마르크스부터 존 스튜어트 밀까지)의 공유된 믿음에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미래에는 경제적 종속노동은 고차적인 형태의 자유노동(독립자영업과 협동조합)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자유노동의 고차적인 형태들이 종속적 또는 주변적 지위로 격하되는 것은 19세기 후반에 그저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지식경제의 포용적인 형태의 제도적 안배들과 사법은 21세기 여건에서 19세기 이상을 쇄신함으로써 이러한 이상을 부활시키고 재해석할 수도 있다.

포용적 전위주의는 현재 세계화되었으되 고립적인 지식경제 형태의 증가에 수반되는 위협적인 동향들에 대한 적합한 유일한 해답이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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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21/07/03-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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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나는 지식경제를 국한되고 얕은 형태와 확산되고 심화된 형태로 구분하여 해명하고 지식경제를 심화하고 확산시키기 위한 요구사항들과 이러한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한 배경조건을 탐구하였기 때문에 이제 나는 이 주제에 관해 더 큰 세 가지 시각을 검토하겠다. 첫 번째 시각은 오늘날 개발도상국들이 직면한 선택지들과 포용적 전위주의의 관계다. 두 번째 시각은 세계 최고 부국들의 정치경제학 및 정치와 포용적 전위주의의 관계다. 세 번째 시각은 경제생활의 가장 기초적인 측면(공급과 수요의 상호수용이나 반복적인 불균형)에 대한 지식경제(고립적 형태이든 포용적 형태이든)에 관한 나의 주장이 갖는 중요성이다. 이 세 번째 시각은 이어서 경제이론의 일부 중심적인 문제들에 대한 이 책의 주장이 함축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세 번째 시각은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에 대한 연구가 경제생활의 가장 심층적이고 보편적인 특성들을 파악하는 최선의 방식이라는 애덤 스미스와 카를 마르크스의 판단을 지지한다.

오늘날 개발도상국들은 명백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20세기 후반의 발전경제학의 중요한 공식은 산업화가 표준적인 형태의 포드주의 대량생산의 수립을 의미한다는 전제에서 산업화를 통한 가장 부유한 경제를 따라잡는 것이었다. 이 공식은 내가 차차 논의하려는 이유들로 인해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어쨌든 이 공식에 대한 대안, 즉 지식경제의 확산되고 포용적인 형태는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 가장 강력한 제도적 역량과 교육적자원을 가진 가장 부유한 경제들조차 이런 방향에서 크게 전진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면, 포용적 전위주의의 요건에서 더욱 빈약한 개발도상국들이 전진한다는 것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을까?

낡은 전략은 실패한다. 새로운 전략은 낡은 전략에 대한 실현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기에는 너무 까다롭고 너무 동떨어져 있다. 오늘날 발전에 대한 모든 사유는 이 딜레마와 교전함으로써 시작되어야만 한다. 이 딜레마는 경제발전에 가장 절박한 실제적인 도전이 되었으며, 동시에 현재 활용 가능한 발전 관념들이 부적절하다는 점을 폭로한다.

고전적인 발전경제학의 주요 메시지를 상기해보자.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은 기초 여건들, 즉 교육과 제도들에 의해 제약된다. 앞서 말했듯이 발전경제학이 ‘인적 자본’의 형성에 대해 했던 입에 발린 말에도 불구하고 발전경제학은 교육의 내용과 방법, 제도적 구조에 대해 할 말이 거의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고전적인 발전경제학에서 욕망의 현실적인 표적이었던 대량생산 방식의 산업화는 교육의 면에서 거의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의 주요한 요구는 노동자들에게 기계처럼 움직이라는 것이었다. 너무 많은 교육은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타 근본적 제도들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발전경제학은 역사적 상황(규제받는 혼합적인 시장경제)에서 기성품으로 발견한 경제적 제도들을 거의 수정 없이 추천하는 것에 대체로 만족하였다. 중요한 관심사는 투자자들이 그들의 재산에서 또한 재산이 창출한 소득흐름에서 안전해야 한다는 점과 국가가 장기발전전략을 수립하고 이러한 전략을 단기정책으로 전환하는 업무를 전담하는 계획기구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고전적인 발전경제학의 주요 메시지는 다른 곳에도 있었다. 중단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최상의 방식은 노동자와 자원을 경제의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서 높은 부분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실제로 농업에서 표준화된 대량생산 방식을 갖춘 제조업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대량생산에 필요한 기술과 능력의 천편일률적인 특성과 대량생산을 위한 교육적 제도적 전제조건들의 상대적 소박성은 생산성 증가와 더불어 성장 증가가 단시간에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성장 증가는 계속 전진하다가 기초 여건에서의 상응하는 전진을 이루지 못함으로써 한계에 직면한다. 그러나 선행하는 제약조건들과의 충돌은 위험요소가 되기보다는 그러한 한계들을 극복하고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관철된 부문(포드주의 제조업)으로 노동자와 자원을 이전시키면서 시작되었던 변혁을 지속시키는 자극으로 봉사할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자본집약적인 대량생산이 가장 부유한 사회들과 연결되었던 세계경제에서 산업화는 국제적 노동분업의 증가를 의미했다.

개발도상국들은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이러한 처방에 더는 의존할 수 없으며, 자신들과 가장 부유한 국가들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는 작업에 착수할 수도 없다. 일부 개발도상국들은 오래 전부터 너무 이른 탈산업화라고 일컬어지는 현상을 겪어왔다. 또 다른 개발도상국들은 지식집약적인 생산의 거대기업들에 유용한 지구적 가치사슬에서 (국제기준에 비추어) 저임금과 분업화되고 종속적인 틈새를 결합함으로써 대량생산의 수명을 연장하려고 노력해왔다. 이러한 개도국들은 그 상부국가, 즉 전형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부국에서 실험주의적이고 지식집약적인 생산의 친숙한 고립적 형태를 범례적으로 보여주는 기업의 상품화된 측면을 끌어안았다. 소수의 국가들(특히 중국과 인도, 어느 정도는 러시아와 브라질)만이 언제나 고립적 형태로서 세계적인 지식경제의 전초기지들을 설치해왔다.

발전경제학의 표준적인 산업화 처방이 작동을 멈춘 데에는 서로 연관된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첫째, 세계에 산재한 그 독점적 기지들로부터 나온 선진적인 생산은 철 지난 대량생산을 점차 경쟁에서 물리칠 수 있다. 선진적인 생산은 전통적인 제조업의 제품들을 더 효율적으로 더욱 우수하게 생산할 수 있는 방법들을 발견함으로써 직접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 내가 초-전위주의라고 불러온 체제 아래서는 선진적인 생산은 생산라인의 표준화된 부분을 대체로 임금과 세금이 낮은 다른 나라에 위치한 공장에 할당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업은 발전경제학이 지금까지 생각했던 전위라기보다는 이제 지구적인 생산라인들에 대한 위성(짝패)으로 변한다.

둘째, 이러한 맥락에서 전통적 산업화는 국제적인 노동분업의 증가와 더 이상 연관되지 않는다. 세계 경제에서 더 유효한 구분선은 제조업과 여타 모든 것(특히 농업) 사이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구분선은 (과학적) 영농을 포함한 모든 부문에서 확립된 선진적인 생산의 프린지와 여타 모든 것 사이에 존재한다.

셋째, 고전적 발전경제학의 메시지의 중대한 전제라고 할 수 있는 부문들 간의 구분들은 효력을 상실한다. 이러한 구분들의 경직성은 상대적 후진성의 신호를 나타낸다. 모든 형태의 지식경제는 일천하고 제한적인 형태이든 발전되고 확산된 형태이든 이러한 구분들을 전복한다. 지식경제는 특히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차이를 약화시킨다.

넷째, 대량생산 제조업이 생존하는 경우에는 노동과 조세에서의 차익취득이 낙후한 생산의 입지를 몰아냄에 따라 대량생산 제조업은 더 낮은 임금과 더 작은 세금을 향한 경주에 입각해서만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생산의 기반설비로서 운송, 통신, 에너지 나아가 사람과 사람의 능력에 대한 공적투자 재원의 부재와 저임금은 전위부문을 향하는 운동을 위축시킨다.

그러나 고전적 발전경제학의 실패한 공식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고전적인 발전경제학의 계승형태는 대체로 어떤 일반적인 견해와 처방을 포기하였다. 그 계승형태는 빈곤층에 대한 상이한 정책들의 차별적인 효과들에 대한 미시적 연구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고전적 발전경제학은 결함 있는 구조적 비전을 갖고 있었다. 그 계승형태는 현대사회과학의 지배적인 조류와 일치하여 구조적 비전을 전혀 갖지 않은 것을 선호한다.) 실패한 공식에 대한 대안은 오늘날 개발도상국의 경제 여건에서 이곳에서 그곳으로 이르는 데에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는 매개적인 조치들을 통해 포용적 전위주의의 방향에로의 이동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낡은 메시지에 대한 대안을 찾는 사람들은 당연히 낙담할지도 모르겠다. 포용적 전위주의의 약속과 그다지 격차를 보이지 않는 경제체제에서도 포용적 전위주의가 외견상 영웅적이고 불가능한 기획으로 머문다면, 포용적 전위주의의 교육적, 도덕적, 제도적 요건을 충족시키는 일이 더욱 요원해 보이는 사회에서 포용적 전위주의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 전체적으로 이러한 사회는 교육 및 법의 기초와 계속해서 씨름하고 극단적인 불평등과 방향들 및 체제들의 혼란(이러한 혼란은 노골적인 혹은 은근한 독재를 통해서만 중단된다) 사이에서 자주 표류하는 나라들이다. 이러한 나라의 시민들은 최저치에 대한 자신들의 이해도 허약한 상태인데 어떻게 우리가 그들에게 최대치를 요구할 수 있는가라고 반론을 펼지도 모른다.

이 반론에 대한 답변을 고려하기 전에, 이 문제가 21세기 초반의 브라질과 같은 경제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생각해 보자. 이 사례는 포용적 전위주의의 추구라는 과업이 제시한 도전이 부유한 경제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에도 불가피한 이유를 보여줄 것이다. 그러한 사례도 문제를 해결하기 적합한 형태로 다시 규정하는 작업에 일조할 것이다.

고전적인 발전경제학의 자극 아래서 브라질의 남동부, 특히 상파울루 주에 위치한 브라질 제조업의 핵심은 대량생산이었다. 대량생산은 처음 설치된 시점에서도 이미 철 지난 것이었다. 대량생산은 제조업에서 탁월성의 기준에 도달하였고 그 이래로 일반적으로 이 기준을 유지해왔다.

어쨌든 대량생산은 기술적이고 조직적인 핵심에서 퇴행적인 제조업 생산양식으로 점차 변모해왔다는 부담 아래서 그렇게 해왔다. 이러한 철 지난 포드주의는 노동수익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빈번히 속류-케인스주의의 엄호 아래 제공된 신용보조금과 세금우대 등) 국가지원에 대한 의존을 대가로 해서만 경쟁력을 갖는다.

지식경제는 브라질에서도 출현했지만 매우 고립적인 형태로 몇 군데에서 신생기업들과 첨단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출현하였다. 유명한 준(準)국가적인 기술학교와 지원센터의 네트워크(바르가스 치세의 조합주의의 유산)는 선진적인 제조업에서 이러한 고립적인 활동들을 지원해왔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개발은행 중 하나를 포함하여 막강한 공공은행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또한 중소기업에 대한 가장 까다롭고 매우 이례적인 지원 형태, 즉 생산적 관행(농업 외의 확장 서비스)의 개선을 전문적으로 지도하는 기구도 보유한다. 이러한 지도관행에서 발전된 원리는 정부와 신흥기업 간의 분산적 협력관계와 그러한 기업들 간의 협력적 경쟁을 서술한 “지역적 생산 협정제도(local productive arrangements)”의 개념을 포함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경제체제들에서 전략적 역할을 수행하는 기업(선진적인 중견기업)은 대체로 결여되었다. 나아가 브라질의 제도적 장치나 발전의 원리들(수입대체 산업화에서 재정적 신뢰의 추구까지) 중 그 어느것도 브라질이 너무 이른 탈산업화의 가장 두드러진 실례가 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21세기 첫 10년간 상품가격의 상승과 농업, 목축업, 광업 제품에 대한 중국발 수요의 여파로 제조업은 생산과 수출품들의 백분율에서 극적으로 감소했다. 철 지난 포드주의는 대체되거나 전환되기보다 간단히 위축되었다. 브라질은 부자가 되기 전에 늙어가는 중이었으며, 지식경제를 성취하기도 전에 대량생산을 상실하고 있었다.

한편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활기찬 기업적 문화들 중 하나를 계속해서 지원했다. 두 번째 혼혈인종의 프티부르주아 계급과 이 계급의 경로를 따르려고 시도하고 독립성과 주도성을 추구하는 이 계급의 문화를 포용하는 수백만 명의 가난한 브라질 노동자들은 이러한 문화의 강력한 담지자들이었다. 수백만 명의 가난한 노동자들은 자신의 포부를 실현할 수단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프티부르주아 계급의 경로를 따르고자 하였다.

동북부의 반-건조한 오지들과 같은 일부 극빈지역에서 17세기 선대제수공업부터 20세기 후반의 낡은 대량생산에 이르기까지 유럽 시장경제들의 다양한 관행, 법적 기구들, 심지어 기술이 공존하였던 페르남부코내지의 섬유산업지대와 같은 지역을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풍부한 기업가적 정신은 대체로 지원을 받지도 못하고 방향을 잃었지만 거의 기적적으로 원기를 회복하였다. 국가발전의 새로운 의제가 제시되기만 한다면 이러한 사례는 그러한 의제의 원재료였다.

이러한 상황들이 제기한 질문은 온 나라가 나중에 다른 것이 되기 위해 철 지난 포드주의의 연옥에서 한탄하면서 20세기 중반의 상파울루가 먼저 되어야만 할 것인지 아니면 이 나라와 이 정부가 남동부의 낡은 산업 중심지들 바깥에서 포드주의 이전 단계에서부터 포드주의 이후 단계로의 직접적인 이행을 조직할 수도 있는 지였다. 이 질문에 대한 전자의 답변은 이 장의 도입부에서 열거한 모든 이유들로 인해 어떤 희망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자의 경로를 답습하는 것은 전자의 결과를 성취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후자의 대답은 세상에 전례가 없는 어떤 것의 성취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앞선 지면에서 기술한 발전의 딜레마의 브라질다운 형태에 불과하였다.

브라질 사례는 발전 딜레마의 몇 가지 측면을 보여준다. 첫 번째 요점은 이 딜레마가 허위의 딜레마라는 점이다. 포용적 전위주의의 전진은 어떤 조건에서도 어렵지만, 개발도상국의 조건에서는 특히 어렵다. 그러나 전통적인 제조업에 사후(死後)세계를 부여하려고 시도함으로써 이러한 어려움에 응답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라기보다는 더 나쁜 것이며 실로 부질없는 짓이다. 그러한 제조업은 고전적 발전경제학이 가정하였던 것과 같은 “무조건적 수렴”의 매개체로서 더 이상 복무할 수 없으며, 앞서 내가 논의한 모든 이유들로 인해 작동할 가능성은 더욱 줄어든다.

공장제 대량생산은 더 이상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아니므로 고전적 발전경제학의 메시지는 더 위축되고 더 제한적인 어조를 띤다. 그 메시지는 개발도상국에게 “관례적으로 산업화하고 차례를 기다리라”고 말한다. 이 메시지는 명백히 겸손함의 호소력을 갖는다. 메시지는 잘 알려진 경로에서 인내심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메시지는 우리의 생산능력의 진화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세계 노동분업에서 일어날 불가역적인 변화들을 고려하지 못한다.

고전적 발전경제학의 주장은 모든 경제체제들이 자신보다 앞서는 경제체제들의 과거를 나중의 역사적 시기에 자신의 미래로 예행연습하면서 똑같이 가차 없는 진화의 순서도를 따라야만 한다는 견해에 의존한다.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본성은 하나의 장소에서만 변화해온 것이 아니다. 그 본성은 세계의 모든 주요 경제체제에서 변화해왔으며 그 본성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입지는 직접적으로 또한 국제적인 노동분업에 대한 생산방식의 영향을 통해 간접적으로 대량생산을 국가적 발전의 더 높은 수준으로 상승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브라질의 예에서, 브라질 경제의 나머지 부분을 20세기 중반의 상파울루로 바꾸려는 시도는 사라진 세계와는 다른 어떤 것(퇴각임과 동시에 투항으로 이해되는 후퇴, 달리 말하면 국제적 전위부문에서는 퇴각이고 생산의 전선에 도달한 국가들과 기업들에 대해서는 투항)을 생산해낼 수도 있다.

브라질의 사례를 통해 드러나는 두 번째 요점은 포용적 전위주의의 주요한 구성 요소가 세계의 많은 곳과 마찬가지로 브라질에서도 풍부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는 포용적 전위주의와 이전의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을 구분해주는 (앞의 장들에서 논의한) 조건들의 하나가 아니다. 이는 모든 선진적인 방식의 형성에 관건적인 자원(사회에 널리 확산된 부단한 활기와 기업가적 충동)이다. 그 특징적인 의식형태는 엄청난 수의 빈곤한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프롤레타리아적이기보다는 프티부르주아적이다.

노동자들은 어느 정도의 성공과 독립성을 열망한다. 욕망의 기본 목표는 전통적이고 퇴행적인 가족기업이다. 경제의 핵심적인 불행은 기회와 수단의 부족으로 이와 같은 인간의 에너지와 생명의 엄청난 저량(貯量)을 거부하고 통제하고 위축시키면서 탕진하는 것이다.

어느 경제에서도 대량생산은 자립과 주도성의 세계로 진진입하려는 후보자들 중에서 소수만을 채용해왔다. 대량생산과 제조업의 제휴와 표준화의 이면으로서 대규모 대량생산에 대한 의존은 대량생산이 다수에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언제나 가로막았다. 고립적이고 일천한 전위주의의 엘리트주의적 제약 아래에 있는 것으로 현재 알려진 지식경제는 이와 같은 내재적 제약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용적이고 심화되는 지식경제로 가는 경로는 고단하다.

개발도상국의 상황에서 광범위한 경제성장을 위해 이와 같은 인간의 에너지를 활용하려면 두 가지 문제, 즉 정치적 전략적 문제와 개념적 제도적 문제에 대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정치적 전략적 문제는 이러한 경제적 기획을 자신의 대의로 삼는 좌파가 소생산자계급과 이들의 물질적 야망과 도덕적 태도를 공유하는 훨씬 더 많은 수의 사람들에 대해 품고 있는 편견이다. 좌파들은 이러한 프티부르주아 계급을 이러한 계급의 관점에서 만나고 이 계급이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도 있는 형태들에 대한 관념을 확장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대신에 전통적으로 이들을 적으로 선택하였으며, 이는 20세기 유럽 역사에서 재앙적인 결과를 낳았다.

개념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는 실제로 그러든지 혹은 말로만 그러든지 프티부르주아 계급에게 고립되고 후진적인 가족기업이라는 기본형태 이외에도 자신의 야망을 충족하는 방법을 제공해야할 필요성이다. 그것은 포용적 전위주의의 법적 제도적 조건에 대한 나의 앞선 논의에서 제시한 의제이다. 이 의제는 시장질서의 제도적 재구축에서 시작되고 거기에서 끝난다. 처음에는 생산자원의 접근 수단을 적절하게 수정함으로써, 그 다음에는 정부와 기업들 사이에 분권적이고 다원주의적이고 실험주의적인 조정을 형성하는 법적 혁신들을 통해서, 마지막으로 분권화된 경제주체들이 사회의 자본자원을 이용하고 서로의 노동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조건들의 근본적인 확대와 다각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브라질의 사례를 통해 예증된 세 번째 요점은 포용적 전위주의에 봉사하도록 시장질서의 쇄신을 시작할 제도적 기제가 단편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온 세상에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이다. 제도적 기제의 부분들은 모든 주요 경제에 존재한다. 제도적 쇄신작업은 맨땅에서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브라질 정부와 심지어 지역 주정부들도 내가 앞서 설명한 제도혁신의 첫 번째 단계에서 요구된 다수의 기구들에 의존할 수 있다.

즉 개발은행들, 자신의 관행을 개선하려는 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고안된 조직들, 개발도상국의 상대적으로 낙후된 기업들이 보유한 수용의 여건과 역량에 기술을 적응시킴으로써 기술의 개발과 전수를 목표로 한 기구들, 선진적인 제조업을 전담하는 지원센터와 학교를 포함하여 기술학교들의 준정부적인 네트워크 등에 의존할 수 있다. 여전히 결여된 요소는 이러한 도구들을 종합하고 이를 포용적 전위주의의 프로그램에 복무하도록 활용하는 방식이다. 접근형태들을 조정하는 방식이 없다는 점보다는 대량생산이 절정에 이른 이후에 일어나는 발전경로에 관한 지도적인 이론적, 프로그램적 견해가 없다는 점이 더욱 중차대하다.

이러한 발전의 딜레마는 진짜 딜레마가 전혀 아니다. 이 딜레마의 한축(고전적인 발전경제학이 권고한 경로를 계속 따라가고 전통적인 대량생산을 개발도상국에 대한 현실주의적인 도달지평으로 수용하라는 선택지)은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내놓는다. 딜레마의 첫 번째 축이 제공하는 것은 기껏해야 미래의 전망이 없는 현상유지책이다.

포용적 전위주의라는 접근하기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견해가 없으므로 이러한 후방진지는 현실주의라는 부당한 평판을 획득한다. 이러한 후방진지는 익숙한 것에 대한 공상적 견고함에 의존할 수 있다. 21세기 초에 부유한 북대서양 국가들에서 쇠락하는 대량생산을 국내외 경쟁에 맞서 필사적으로 방어하는 일이 우파 포퓰리즘과 동시에 전통적인 사민주의의 경제프로그램의 큰 부분을 이루었다. 가장 부유한 국가에서 이와 같은 프로그램의 영향은 이윽고 정신적 식민주의의 확립된 작동기제를 통해 개발도상국들에서 그 위신을 높여왔다.

이 딜레마의 다른 축(개발도상국의 여건에서 다수의 사람들을 위해 지식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은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현실적인 대안이다. 이러한 대안을 실천하는 열쇠는 불가능해 보이는 과업을 조각들로 분해하고 이를 단계별로 실천하는 것이다. 포용적 전위주의의 법적 제도적 요건들이 보여주듯이, 우리는 하나의 체계를 실천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도중에 지도를 수정하면서 길을 걷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궤도를 따라서 ‘결합되고 불균등한 발전’은 이 경로를 여행하는 하나의 가능한 방법일 뿐만 아니라 거의 항상 유일한 방법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지식]경제로 나아갈 가능성이 가장 부유한 국가들보다 주요한 개발도상국에서 더 제한적이라고 예상할 이유는 없다. 이러한 주장을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극복이 가장 발전한 국가에서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야 다른 세계로 확산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옳았던 것인지에 대한 마르크스의 추종자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과 비교해 보자. 마르크스의 추론은 경제사회의 조직형태들이 단선적인 진화적 계기를 이룬다는 동일한 가정에 의존하였고, 이러한 가정이 그의 모든 사회경제이론을 고무시켰다.  오로지 선진경제들만이 불가피한 여정의 모든 단계들 완성하였을것이기 때문에 선진경제들은 역사가 지정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조건이 될지도 모른다.

역사는 마르크스가 예상한 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상대적 후진성의 조건에서 수행된 이행은 과정과 결과에서도 이론이 제시한 모형을 따르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서유럽에서 착수된 혁명적 사회체제들의 짧은 경험들이 보여주었듯이 선진경제국에서도 이행은 그러한 모형을 따르지 않았다.

주변부 경제에 대한 중심부 경제의 우위성 관념은 도전적인 교란이 유발하는 독보적인 이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달리 말하면 그러한 관념은 다른 곳에서 수입된 제도적 안배들이 원래 있던 곳과는 달리 이곳에서 기능하지 않았고 기본적인 필요나 높은 희망을 충족시키지도 못함으로 인해 이러한 안배들을 거부하는 데에서 나오는 장점을 깨닫지 못했다. 중심부 경제에서 더욱 근본적인 대안들에 대한 개방성은 경제적 혹은 군사적 재앙의 자극이 없다면 점차 성취되기 어렵다고 드러났다. 그러한 자극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엘리트들의 국가적 혹은 초국가적 연대는 역사적 기회의 창을 닫아걸고 중요한 대안들로 인해 동요하지 않는 질서를 복원한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대체로 증명하였다.

다음 두 가지 요인들은 서로 결합하여 개발도상국들(특히 자신을 세계에서 지배적인 이익과 사상에 저항하는 거점으로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나라들)에게서 고립적 형태보다는 포용적 형태의 지식경제를 발전시킬 기회를 빼앗았다. 첫 번째 요인은 이러한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허약성이다.

여기에서 민주주의는 집단적 전제주의에 희생되거나 아니면 그 변혁적 잠재력이 북대서양 국가의 헌법적 안배들을 모방하면서 빠져나갔다.

두 번째 요인은 정신적 식민주의이다. 개발도상국의 지적 생활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지만 가장 체념적인 나라들에서 우세한 사조에 굴복하는 현상이다. 정신적 식민주의에 대한 해독제는 발전과 제도의 지역적 이단을 육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독제는 해독제가 겨냥하는 메시지만큼 그 목표에서 국제적인 메시지를 공식화하고 전파하는 것이다. 즉 보편적 정통[무조건적 수렴테제]에 맞서 이단들을 보편화시키는 것이다. 포용적 전위주의의 프로그램은 기존 생산형태의 한계점에 도달한 사회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이 아니다. 포용적 전위주의는 경제발전의 가장 믿을만한 공식[무조건적 수렴]이 어디에서도 작동하지 않았다는 불편한 사실에 대한 응답이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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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21/08/2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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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서구와 한국의 언론들은 8년 전에 튀니지로부터 시작된 아랍권의 색깔혁명을 민주화 봄이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해당 지역의 전문 연구자의 기술과 평가는 정반대 편에 서 있다. 현재에도 서구와 한국 언론들은 여전히 중국의 일국양제에 대한 일부 홍콩인들의 폭력적 저항을 민주항쟁이라고 연일 보도하면서도 남미에서 격렬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민중들의 신자유주의와 미패권에 대한 치열한 해방투쟁은 제대로 보도조차 하고 있지 않다.

북한 역시 리비아의 사례를 크게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구 언론들의 언술적 마법에서 벗어나 10년 뒤의 홍콩과 남미 국가들의 모습을 상상해면서 아래의 칼럼을 번역 소개한다.


무아마르 알 카다피

지난 9월, 미국이 지지해주고 있던 이드리스 왕을 전복한 무아마르 카다피의 리비아 혁명 이후 반세기를 맞았다. 1969년 리비아 혁명에서 무아마르 카다피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들 중 하나인 리비아를 승계 받았다. 그러나 42년 뒤, 그가 암살 당했을 당시 카다피의 사회주의를 통해 리비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되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리비아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기대수명이 가장 높았다.

2011년의 서구세력의 반체제 운동으로 리비아는 실패한 국가가 되었고 경제는 혼란에 빠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중 최악의 실수는 리비아”이며, “(카다피 정권 붕괴) 이후를 위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라고 말했다.

지난 50년 동안 리비아에서 일어난 두 개의 혁명은 확연하게 정반대의 형태를 띠고 있다. 카다피의 사망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초래 했다. 서구의 대사관은 모두 리비아를 떠났고, 리비아 남부는 테러리스트들의 피난처가 되었으며, 북부 해안은 대량 이주자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집트, 알제리, 튀니지는 모두 리비아와의 국경을 폐쇄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은 중심부가 붕괴된 국가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학살, 강간, 고문과 더불어 발생했다.

2011년, 서구는 확실히 아프리카에서 생활수준이 가장 높은 리비아 국민을 돕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았다. 카다피를 몰아내고 꼭두각시 체제를 만들어, 리비아의 천연자원을 장악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사람들은 서구의 리비아 개입이 또 다른 석유 강탈에 불과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군사 개입의 목적은 미국에 있어서는 무기, 이탈리아에 있어서는 석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프랑스에 있어서는 물 때문이었다. 리비아가 아프리카, 지중해, 아랍 지역의 전략적 요충지의 가장 중심에 있다는 것을 고려 할 때, 리비아를 통제 하는 것은 서방국가들이 이 세 지역에 세력을 뻗칠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2011년 혁명에 대한 프랑스의 지지는 석유보다 더 귀중한 자원인 물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물은 20세기에 석유가 보장했던 것을 21세기에 약속한다. 물은 국가의 부와 운명을 좌우하는 귀중한 자원이 될 것이다. 기름과 달리 물을 대체 할 수 있는 자원은 없다. 자연은 물의 공급을 규정한다. 한편 물에 대한 수요는 인구가 증가하고 인간의 삶이 풍요로워짐에 따라 거침없이 증가한다. 인구 증가, 기후 변화, 공해, 도시화가 끈끈하게 결합되어 있기에 2040년에는 물 수요가 공급을 40퍼센트 앞설 것으로 예상한다.

리비아는 석유보다 더 귀중한 자원인 세계 최대의 지하수 공급원인 누비아 샌드스톤 아퀴퍼(Nubian Sandstone Aquifer)에 자리잡고 있다. 이 화석수의 대수층은 약 2만년 전에 형성되었으며, 15만 큐빅 킬로미터의 신선한 물을 수용하고 있다. 카다피는 하루에 200만 큐빅 킬로미터의 물을 수송할 수 있는 사막 아래에 4,000km 길이의 복잡한 수로를 설치하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the Great Man-Made River Project) 에 250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 같은 기념비적인 물 유통 프로젝트는 95%가 사막으로 뒤덮인 리비아를 자급자족이 가능한 작물을 경작 가능한 오아시스로 만들기 위함 이었다.

오늘날 수에즈, 온데오 및 사우르와 같은 프랑스의 다국적 물 기업은 이미 세계산업의 4억달러에 달하는 지구상 물 시장의 45프로 이상을 통제하고 있다. 이런 프랑스에게 2011 리비아 혁명은 리비아의 놀라운 수자원의 통제와 민영화를 진행시키는 것과 같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리비아에 폭탄을 투하하기 몇 달 전 미 중앙정보국(CIA)은 “… 강과 호수, 대수층 등 미래의 국가안보 자산이 되는 자원을 쟁취하기 위한 미래의 ‘수자원전쟁’에 대해 경고했으며 용병과 대리인 국가들을 통해 통제했다. 리비아의 정권교체 혁명은 패권국가들의 수자원 전쟁이라는 주요한 예시가 되었다.

이제 리비아의 물로 인한 수익은 서부 세력이 취하고 있으며, 놀랍지도 않게 리비아의 서부는 식수 고갈을 겪고 있다. 기업의 욕심과 방치로 인해 나라의 주요 수도관의 3분의 2가 더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리비아의 유니세프 대변인인 무스타파 오마르는 향후 대략 4백만명의 리비아인들은 지구상의 가장 큰 대수층을 바로 아래 두고도 안전하게 마실 물을 구하기 어려워질 것 이며, 이로 인해  A형 간염, 콜레라 및 다른 설사병들이 발병할 것으로 예측 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그들의 전 식민의 석유와 가스를 착취하고자 하는 갈망으로 2011 혁명의 지지 의욕을 불태웠다. 리비아는 아프리카에서 석유 매장량이 가장 높다. 카다피 정권 아래 석유 수출의 85%는 유럽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카다피 정권 이전의 아이드리스 국왕은 근본적으로 스탠다드 석유회사가 리비아의 석유법을 작성하도록 했다. 카다피 정권은 이러한 행위를 중지 시켰고, 석유로 벌어들인 돈은 모든 리비아 국민의 은행 계좌로 직접 입금되었다. 이탈리아가 석유 회사들은 이러한 고귀한 관행을 멈추어버린 것은 놀랍지도 않은 행위였다.

리비아의 석유는 근접성, 추출의 용이함, 유황분이 적은 원유의 특성을 갖고 있어 이탈리아에게 아주 중요한 자원이다. 이탈리아와 다른 지역 대부분의 정제소는 유황분이 적은 리비아산 원유를 취급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이 설비들은 리비아산원유 부족으로 인해 대체되는 묵직한 사우디 원유를 취급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리비아는 52.7조 큐빅 피트 이상의 천연가스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방대한 면적의 지역이 여전히 탐구 되고 있다. 리비아산 석유의 확보로 이탈리아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덜 의존하게 되었고, 이에 대하여 유럽 본토에게 자랑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 거대 석유회사인 Eni는 영국 석유의 리비아 자산에 대한 통제 지분을 최근 매입했으며 매일 7억6천만 규빅 피트의 천연가스를 추출하도록 리비아 정권과 거래 했다.

프랑스인들은 리비아의 물 시장의 전리품을 누리고 있으며, 석유와 천연가스의 대부분은 이탈리아인들에게 돌아간 반면에 결과적으로 2011년 혁명에서 미국은 무기밀매의 시장을 노리게 되었다.

뉴욕타임즈는 2019년 6월 미국이 지지한 리비아 반란군의 무기고에서 미국의 중화기들이 발견되었다고 보도하였다. 뉴욕타임즈는 “미사일 상자는 무기 밀매거래의 대부이자 공동 제조업체인 Raytheon과 Lockheed Martin 것임을 확인하였으며, 1억 1천 5백만 달러에 해당하는 재블린 미사일 주문거래 번호 또한 표기되어 있었다.”라고 언급했다. 리비아는 이제 미국 무기거래상에게 노다지가 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허술한 무기 은닉처가 되었다. 2011년 리비아 혁명은 서구를 위해 석유, 물, 무기, 천연가스까지 수십억 달러를 긁어 모아 내어줬으며, 리비아인들에게는 끝없는 불행과 내전만을 일으켰다.

50년 전 카다피의 혁명은 완전히 달랐다.

40여년 동안 카다피는 경제민주주의를 장려했고, 리비아인들을 위한 진보적인 사회 복지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위해 국유화된 석유를 활용했다.  카다피 통치 하에서 리비아인들은 무료 의료 서비스와 무료 교육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무이자 대출과 무료 전기 혜택을 누렸다.

NATO의 카다피 퇴진에 힘입어 한때는 번창했던 지역인 트리폴리는 이제 정전사태가 흔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수천 명의 필리핀 의료 서비스 인력들이 해외로 도피하여 의료 부문은 붕괴 직전까지 치닫고 있으며, 동부 전역의 고등교육기관들이 문을 닫고 있다.

서구의 지지를 받은 2011년 혁명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은 집단 중 하나는 리비아의 여성들이다. 다른 많은 아랍 국가들과 달리 카다피의 리비아 여성들은 교육, 직업, 이혼, 재산 보유, 수입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유엔 인권이사회는 카다피가 여성의 인권을 증진시켰다고 칭찬하기 까지 했다.

1969년 카다피가 정권을 잡았을 때 대학교에 진학한 여성은 거의 없었다. 2011년, 미 공군이 리비아를 폭격하기 직전에는 리비아 대학생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다. 카다피가 1970년에 처음 통과시킨 법안들 중 하나는 노동 평등과 그에 따른 동등한 임금 제공에 관한 법안 이었다.

2011년 혁명 이후, 새로운 ‘민주주의’ 리비아 정권은 여성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 새로운 지배층은 가부장적 전통에 강하게 사로잡혀있다. 또한 개입 후 리비아 정치의 혼란을 틈타 양성평등을 서양의 도착적인 행위로 보는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이 군림하게 되었다.

서구의 언론에서 ‘카다피의 군사 독재’라고 표현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실과 반대로, 리비아는 사실 민주주의 국가였다. 카다피의 독특한 직접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전통적인 정부기관은 해체되고 폐지되었으며, 각종 위원회와 의회를 통해 국민들이 권력을 갖게 되었다.

리비아는 한 사람의 손에서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강한 분권력을 지니고 있으며, 국가내 “미니 자치주”와 같은 다수의 작은 공동체들로 나뉘어져 있다. 이 자치주들은 그들의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으며, 석유 수입과 예산 기금을 분배 방법을 포함하여 다양한 결정권을 갖고 있었다.  이 작은 자치주 내에서 리비아 민주주의의 3대 주체는 지방 인민 회의, 기초 인민 회의, 총 인민 회의 였다. 리비아의 기본 인민회의(BPC 또는 Mu’tamarshaʿbiasāi)는 본질적으로 영국 의회의 하원 미국 의회의 하원의원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

그러나 리비아의 8백 명의 기초인민회의는 그들만을 위한 법을 만드는 부유층의 선출 된 대표들로 구성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의회는 모든 리비아 시민들이 법제정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2009년 카다피는 리비아에 뉴욕 타임즈를 초청하여 2주 동안 리비아의 직접 민주주의를 지켜볼 수 있게 하였다. 뉴욕 타임즈는 카다피가 실행하고 있는 민주주의에 관해 “리비아에서는 모든 사람이 모든 결정에 관여한다. 시민들은 위원회에서 만나 외교 조약에서부터 학교 설립에 이르기까지 모든 안건에 대해 투표를 한다.” 라고 말했다.  카다피 정권 하의 리비아는 군사독재와는 반대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번창한 민주주의 국가였다.

오늘날 리비아 내의 서구형 ‘민주주의’ 에서 지역, 부족, 대륙, 이슬람, 범죄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된 민병대가 최근 두 개의 파벌을 형성했다. 리비아는 현재 각각 총리, 의회, 군대를 꾸리고 있는 두 개의 정부가 있으며, 이들은 영구적인 내전을 부채질하고 실제 민주주의 국가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기회를 파괴하고 있다.

카다피의 혁명은 확실히 21세기 경제민주주의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실험 중 하나가 되었다. 이와 아주 대조적으로, 서구 지지 하에 이루어진 2011년 반정부 시위는 21세기의 가장 큰 사회적, 군사적 실패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 될 것이다.

 

 

Garikai Chengu

고대 아프리카의 저명한 역사학자. 하버드와 스탠퍼드 및 콜롬비아 대학에서 평생 아프리카 지역을 연구하였다.

 

출처 : Global Research Center in Canada.

월, 2019/12/16-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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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간 중국인민공화국은 일년에 인민대표자회의(NPC)와 인민정치협상회의(CPPCC)라는 두 개의 회의를 동시에 개최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왔다. 양회로 불리는 두 개의 회의는 매년 3월에 개최되어 왔는데 올해는 COVID-19의 위기로 5월로 연기되었다.

서방사회에서는 인민대표자회의가 통과의례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공산당과 정치협상회의의 역할과 상호작용이 점차 무게를 더해 왔으며 이번 양회의 결정들은 중국 당중심 헌법기구와 강화된 다민족의 선출권력 간의 복잡한 관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번 양회에서 중국공산당이 중요한 몇 개의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그 중의 하나가 시민법(national civil law)이고, 다른 하나가 논쟁을 야기한 새로운 국가안전규정(new national security bill)으로 홍콩에서 지속되는 시위를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북경당국이 홍콩 내에 안전전담 조직을 설치하는 것을 허용한다. 북경당국은 안전규정의 제정을 지난 해에 감행할 수 있었으나, 이번 인민대표자회의를 통하여 선언하면서 규정의 무게를 더하였다.

인민대표자회의 대표단은 정부의 연간 업무보고를 승인하였는데 처음으로 대만에 대한 ‘평화적’ 통일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대만과 ‘비평화적’ 통일의 가능성을 암시하였다. 또한 GDP목표치를 설정하지 않았고 6%의 성장을 고수하는 대신,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두었다.

인민대표자회의와 정치협상회의의 양회는 당중심 헌법기구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공산당이 운전석을 차지하고 지배한다.

제14차 회의 이후, 공산당의 총서기가 중국국가의 주석직과 군중앙위원회의 주석직을 겸임한다. 다음으로 정치상임위원회(당중앙 지도부)의 중요한 3인이 행정부의 수상, 인민대표자회의 주석(의장) 그리고 정치협상회의 주석(의장)을 책임진다 (현재는 Li Keqiang, Li Zhanshu and Wang Yang이 맡고 있다).

이렇게 당 중심의 헌법시스템 내에서 권력의 배분이 당 중앙의 가장 중요한 4사람이 상기의 자리를 제각각 차지하면서 이루어 진다.

이러한 시스템은 당기구의 중앙위원들로서 일반주석들의 위치가 행정부의 핵심인 수상/부수상직보다 강한 권력을 가지도록 구성되어 있다. 동시에 권력의 분산보다는 통일집중의 원칙 위에 있다.

공산당과 인민대표자회의는 일상적인 긴장과 때때로 대립하는 위치에 있다. 헌법상으로는 대표자회의가 최고의 의결기구이다. 대표자회의 지위와 기능은 이론적으로는 당보다 우위에 있으며, 당은 인민대표자회의라는 헌법적 프레임 안에서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로 공산당이 대표자회의를 통제하며 공산당 총서기가 대표자회의의 주석보다 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인민의 주권개념은 대표자회의에 녹아 있다. 대표자회의와 정치협상회의는 마치 차량의 방향조향장치와 같이 자신들의 의견과 국가적 의지를 입법을 통해서 전달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표자회의는 제국의 봉인이 찍힌 현대적 형식기구로 이해할 수 있으며, 최고 권위와 주권을 상징한다. 실제로 인민대표자회의는 2980명의 참석자들이 보수를 받지 않는 임시적인 입법자로서 활동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공인의 입법기구인 셈이다.

의회 민주제도에서는 흔히 입법기구가 양원으로 분리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이론적으로 권력을 분리시키는 양원제를 거부하고 있지만, 지난 몇 년간 대표자회의와 정치협상회의는 양원제와 유사하게 입법과정의 역할을 증대하여 왔다. 헌법규정에 따라, 모든 주요 결정은 대표자회의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법적인 권한은 없더라도 정치협상회의의 자문을 사전에 거쳐야 한다. 국가의 법률의 제안과 통과는 반드시 대표자회의를 거쳐야만 한다.

입법 과정은 당의 해당위원회들이 제안, 조사와 연구, 기획의 초안, 상담과 여론취합 등 오랜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지고, 제안 이후에는 해당분야 전문가들의 검토, 숙의, 조정과 승인, 법제화와 초안의 수정을 거쳐 대표자회의의 참가자들에 의한 승인을 통과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실제 대표자회의가 개최되기 전에 진행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사전적 진행을 통해 진지한 상담과 협상, 조정과 논쟁을 통해서 수많은 수정이 이루어진다. 동시에 중앙당의 해당위원회 위원들은 양회가 개최되기 전에 중국전역을 방문하여 사전조사를 시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예를 들어, 홍콩의 국가안전규정은 1명의 거부와 6명의 기권을 제외하고 2878 참가자들의 찬성을 얻었다.

대표자회의 참석자 수數의 배정은 개별 성省과 특별지역의 인구수에 비례하여 이루어지며, 특별지역의 대표자들은 직접 선출되며, 개별 성의 대표자회의 참가자는 간접적으로 선출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정치협상회의의 참석자들은 지역의 이익보다는 해당 지역의 다양한 부문을 대표해서 구성된다. 협상회의는 통상 46개 부문으로 나누어 지는데 의료 건강 교욱 미디어 종교 자연과 사회과학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농민과 노동자들은 정치협상회의의 대표권을 갖지 않는데, 대신 당의 정치적 체계 내에서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분야의 엘리트들로 구성되는 ‘클럽’에 참여한다.

정부의 주요 지도부들은 대표자회의의 승인을 통해서 선출되지만, 이런 선출의 과정은 간접적이고 사전에 지명되고 통제된다. 중앙당의 조직부서에서 후보자들을 지명하고 통제하는 과정을 거친다. 공산당원들이 대표자회의 주요 기구에 참여하면서 당의 지침을 통하여 조직기구에서 지명한 후보들을 선출하고 승인한다. 이렇게 사전통제된 선거시스템은 당우위(黨優位) 국가시스템을 운용하는 전제가 된다.

비록 현재까지는 공산당에 의하여 대표자회의가 사전에 조직되어 진행되고 있지만, 이들 대표자회의와 공산당 간의 관계가 향후 어떻게 진화하여 중국사회가 다원화하고 국제적으로 상호관계를 형성해 갈지는 지켜보아야 할 사항이다. 지금부터 대표자회의의 참가자들이 국가의 장래와 통일에 관하여 더욱 국수적으로 변모할지 아니면 개방적으로 변해갈지 예의주시해야 한다.

 

출처: East Asia Forum in ANU on 2020-05-30.

Baogang He

호주의 멜버른에 있는 Deakin 대학교수, 국제관계학 전공.

목, 2020/06/11-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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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방경제포럼

1) 극동개발

지금까지 러시아는 유럽 국가들과 협력해왔고, 국내적으로는 중부 지역에 관심을 뒀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개발이 완료되고 인구도 충분한 데 반해 극동 지역은 사정이 여의치 않다. 극동지역의 인구는 660만 명, 러시아 전체 인구의 5% 정도로 가장 낮은 인구밀도를 보이고 있다. 면적은 617만 ㎢로 국토의 36%인데 프랑스 영토의 10배이며 남북 거리 4500 ㎢, 동서 거리 3000 ㎢이다. 그런데 다이아몬드의 98% (야쿠츠크), 백랍 80%, 황금 50%, 어류.수산물 40%, 러시아 삼림 30%가 이 지역에 있어 원자재의 보고이다.

푸틴이 집권한 2000년부터 러시아는 극동지역을 개발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했다. 극동지역은 동북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 확보는 물론 아태지역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위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극동.시베리아 지역 개발과 아태 경제권으로의 편입이라는 과제에 직면하면서 러시아 중앙과 지방이 윈윈할 수 있는 개발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러시아 중앙정부는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블라디보스토크시를 아태지역 국제협력센터의 중심지로 육성하려 했다. 국제정치와 경제의 중심지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낙후된 러시아 극동지역을 개발해 이러한 국제질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은 극동지역을 선도적으로 개발하되 단기간이 아니라 21세기 내내 관심을 갖는 프로젝트가 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빅토르 고르차코프 연해주 입법의회 의장은 2016년 7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방 차원에서 100년간 보장되는 개발사업으로 보면 된다. 연방 정부에 극동개발부가 신설된 것도 그 일환이다. 또 푸틴 대통령이 극동에서 추진 중인 사업 가운데 변경된 건 전무하다. 불황으로 지원 예산이 삭감된 지역이 많지만 극동러시아만은 한 푼도 줄지 않았다. 또 우크라이나 사태로 대외환경이 어려워졌지만 러시아는 2015년에 이어 올해도 9월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방경제포럼을 열기로 결정했다. 푸틴 대통령의 뜻이 강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지역을 개발하면서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지역개발에 필요한 자원 조달 문제는 동북아 주요 국가의 참여 유도로 해결하려 하고, 노동력 부족 문제는 중국, 북한 등 옛 사회주의 형제국들의 노동력을 유입하면서 해결하려 한다. 특히 극동은 지역개발에 필요한 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극동지방의 인구는 지난 1992년부터 2001년까지 10년 동안 100만 명 정도가 줄었다. 인구 감소의 주 원인은 출산율 저하와 외부로의 인구 유출이 꼽힌다. 육체노동을 꺼리는 현지 주민들의 노동의식도 한몫 작용하고 있어 지역 개발을 위해서는 외국 노동력을 수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실제 상당수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고 있다. 이 가운데 중국인 노동자의 진출이 절대적으로 많다. 2005년을 전후한 시기에 극동에 체류중인 중국인 노동자가 80만 명 정도인 것으로 추산됐다. 그런데 상당수 러시아인들은 중국인 이주가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것이며 최악의 경우 중국인들에게 러시아 영토의 일부가 상실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한다.(신황화론)

여기에 극동으로 파견되는 북한 노동자들이 러시아의 고민을 다소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근면한 북한 노동자들은 중국 노동자들의 노동 현장 및 지역 시장 잠식을 어느 정도 제어하면서, 러시아가 우려하는 ‘극동지역의 중국화’ 문제를 해결하는데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 본다면, 북한 노동자들은 중국인 노동력 진출에 따르는 잠재적인 안보 위협의 해소와 극동지역 개발에 필요한 노동력 부족분을 충족해주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래서 러시아의 고민은 자연스럽게 한반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북한과의 관계를 통해 문제 해결에 접근하려 한다. 북한과의 관계는 지역안보와 북한 노동력 유입, 그리고 북한을 통한 한국의 투자유치 문제로 구체화되고 있다.

 

2) 첫 동방경제포럼

푸틴 대통령은 2012년 연방정부 내에 ‘극동개발부’라는 부처를 신설하고 극동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5년 9월에 처음 열린 동방경제포럼(Eastern Economic Forum)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나는 9월 3일부터 5일까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을 취재했다.

극동연방대학; 동방경제포럼 개최 장소

국내에선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지만, 러시아 내에서는 대단히 큰 규모의 행사였다. 푸틴 대통령이 참석해서가 아니라, 이 포럼을 기획. 추진한 당사자가 푸틴이기 때문에 그렇다. 최고 지도자가 의지를 갖고 밀어 붙이니 밑에서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트루트네프 러시아 부총리 겸 극동연방지구 대통령 전권대표가 총감독이 되고, 극동개발부가 발로 뛰어 만든 작품이다.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이렇게 초대형 경제포럼이 열린 것은 2015년 당시가 처음이다. 동방경제포럼은 한마디로 외국투자 유치 설명회라고 할 수 있겠다. 러시아는 투자하기 힘든 곳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적인 조치들이 대거 발표됐다. 그 중 핵심은 ‘선도 개발구역 조성’과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선포’이다.

▷ 선도 개발구 : 극동에 분야별로 특화되고 경제자유구역(EEZ)과 비슷한 여러 개의 산업기지를 조성해, 정부가 인프라를 구축해 주고 각종 행정.세제상의 특혜를 부여 함으로써 국내외 입주 업체들을 끌어들이려는 사업이다.

9개 선도 개발구는 다음과 같다.

1)하바로프스크 선도개발구역(공업 위주): 하바로프스크 지방

2)콤소몰스크 선도개발구역(공업 위주): 하바로프스크 지방

3)나데즈딘스키 선도개발구역(경공업.식품공업.운송-물류): 연해주 지방

4)미하일로프스키 선도개발구역(축산업.농식품 공업): 연해주 지방

5)프리아무르스키 선도개발구역(공업.운송-물류): 아무르 지방

6)벨로고르스크 선도개발구역(농업 위주): 아무르 지방

7)캄차트카 선도개발구역(관광-휴양.항만-공업.농업): 캄차트카 지방

8)베링고프스키 선도개발구역(광업): 추코츠키 자치구

9)칸갈라스 선도개발구역(공업 단지): 사하(야쿠티아) 공화국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개념도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 블라디보스토크 뿐만 아니라 남쪽 포시에트항, 자루비노항, 동쪽으로 나홋트카항, 북쪽으로 우수리스크, 한카이스키 군 등 15개 지자체가 포함돼 면적은 2만 8,400 평방미터에 이른다. 이 지역을 홍콩.싱가포르 등과 유사한 세계적 자유항으로 개발하려는 계획이다. 앞으로 70년 동안 자유항의 지위를 누리게 되는데, 자유항 방문객들에게는 입국시 8일 동안 비자가 발급된다. 거주자들을 위해 관세 및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는 자유관세지역이 설치된다.

이같은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외국기업들에게는 최초 5년간 법인세.재산세.토지세 등을 면제해 주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달콤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비자 절차 간소화, *행정 규제 완화, *각종 세제상의 혜택.

이는 푸틴 대통령이 연설에서 직접 언급한 내용이다. 그는 무엇이든 요구하라고 했다. 트루트네프 부총리에게 전권을 위임했으니 그에게 무엇이든 요청하라고 했다.

아무튼 이 달콤한 제안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한마디로 기대 반 관망 반이었다. 우선 파격적인 제안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우리측 관계자는, “러시아의 입장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당신들이 투자를 안할꺼요?” 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를 오래동안 지켜본 김승동 LS 네트워트 대표이사는 무엇보다 극동개발부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 기대가 된다고 했다. 김 대표이사는 “극동개발부 사람들은 장관.차관부터 젋고 일하는 것도 아주 적극적이다. 어떤 때는 한국 사람들보다 더 빨리 빨리 일한다. 이 사람들을 보면 무언가 가능성이 보인다. 그래서 이번 기회가 우리 기업들이 극동지역에 진출해야 하는 절호의 타이밍이 아닌가 생각한다” 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신중론도 있다. 연해주에서 오래동안 사업을 하고 있는 장민석 유니베라 러시아 법인장은,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지정 법안만 해도 세부적인 규정은 현재 계속 검토중이고, 10월 초에나 발효된다. 그때 가봐야 우리 기업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혜택이 돌아오는지 알 수 있다. 그때가서 각자의 입장을 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러시아가 워낙 복잡한 행정 절차 등으로 악명이 높아서, 그런 타성이 쉽게 고쳐질지 회의하는 목소리도 있다. 9월 5일 포럼 마지막 날, 한-러 비즈니스 대화가 열린 자리에서 한국측 위원장인 송용덕 호텔롯데 대표이사는 그동안의 애로사항을 털어놓았다. 송 대표이사는 “2010년 모스크바에 호텔을 지을 당시 각종 인.허가 과정이 100여 개나 되는데, 그걸 승인받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러시아 극동개발부의 오시포프 제1차관은, “극동지역에선 행정 절차를 대폭 줄이겠다. 다시는 롯데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동방경제포럼

극동지역 최초로 열리는 경제포럼에 러시아가 남북한을 동시에 초청하면서 가슴이 설렜다. 모처럼 남북한 회동이나 남북러 3자 회동을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컸던 것이다. 남북러 3자가 한자리에 앉는 것은 2002년 이후 13년 만의 일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8월 말에 남북한 포격전이 발생하면서 정국이 급속하게 얼어붙었다. 주최측에 몇번이고 물어봐도 북한측에서 누가 올지 답변이 없다고 밝혔다. 다행히 ‘8.25 합의’가 극적으로 체결되자 비로소 북측 대표단이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포럼 개막 직전에, 북한이 남북러 3자 회동에는 참석하지 않기로 통보해 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대가 낙담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윤상직 산업통상부 장관(왼쪽), 리용남 북한 대외무역상(오른쪽)

물론, 남북한 대표가 자연스럽게 만남을 가진 적은 있었다. 9월 3일 저녁, 투르트네프 부총리가 예고 없이 각국 대표단을 초청해 상견례를 겸한 행사장 견학 일정을 마련한 자리였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이용남 북한 대외무역상은 이 자리에서 30분간 회동했다. 두 사람은 ‘안녕하십니까’ 라는 간단한 인사말을 건넨 뒤 별다른 의견 교환 없이, 주최측이 마련한 행사장 견학을 마쳤다고, 윤 장관측은 전했다. 그나마 이같은 만남 때문인지 그 이튿날 전체회의에서 윤 장관이 이용남 대외무역상을 다시 만난 자리에서는, 북한 나선지구 홍수 피해를 잘 마무리 하시라고 덕담을 전했다고 한다. 폐쇄적이고 경직된 북한 체제를 감안해 볼때, 이미 남북러 3자 회동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방침이 내려진 이상, 현장에 나와있는 장관급 대표가 남한 대표를 만난다 하더라도 특별히 할 말이 없을 것이란 관측은 할 수 있다. 이번에 남북한 회동이나 남북러 3자 회동이 이뤄졌더라면, 나진~하산 물류.네트워크 사업이나 한반도 가스관 연결 사업 등 이미 벌여 놓은 각종 사업들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해보는 기회가 됐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결국 남북러 3각 경제협력이 제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남북간에 순풍이 불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경제포럼이 끝난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러시아 극동개발부에서는 내년에도 경제포럼을 다시 열 계획이라며, 조만간 그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내년에는 제발 남북러 3자 회동이나 남북간 회동이 반드시 이뤄져 극동에서 남북경협의 물꼬가 확 터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3) 갈수록 판이 커지다

이듬해인 2016년 제2회 동방경제포럼이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9월 2일과 3일 이틀 동안 열렸다. 2015년에는 3일 동안 열렸는데, 2016년엔기간을 이틀로 단축하고 대신 내실을 기했다. 한국과 일본의 정상들을 초청해 주가를 한층 올렸다. 오히려 한·러, 일·러 정상회담 때문에 본질인 경제포럼이 뒷전으로 밀린 듯한 느낌마저 든다. 아무튼, 이틀간 포럼에서 214건, 1조 8,500억 루블(약 31조 원) 상당의 계약이 체결됐다고, 러시아 극동개발부 공보처가 밝혔다.

앞서 지적했듯이 시베리아. 극동지방의 석유·가스·전력 생산은 세계 톱 상위권을 차지하지만, 인구가 현저히 적고, 자본·기술이 부족한 게 문제이다. 중·러 국경 너머로 중국 동북 3성에는 1억 3천만 명이 바글대는데, 극동 연해주 인구는 고작 600만 명 정도이다. 이번 포럼 전체 회의 사회를 봤던 마이클 케빈 전 호주 총리는, “극동의 영토 크기는 호주 정도인데, 인구는 싱가포르 정도이다.”라고 비유했다.

극동지역의 산업구조 변화도 요구된다. 현재 1차 산업 중심의 구조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다변화할 필요가 절실하다. 여기에 한국과 중국·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동방경제포럼은 아태 국가들에 극동지역 진출을 위한 멍석을 깔아주는 자리다. 이번엔 각국 정상들까지 초청해 제법 성대한 행사를 치른 이유다. 한국과 일본 역시 각각 안보, 영토 문제가 걸려 있으니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박근혜 대통령

9월 3일 오후 열린 전체회의에서 한러일 정상들이 기조연설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극동은 한국과 러시아를 이어주는 중요한 통로이며, 블라디보스토크는 물류의 대동맥이 시작되는 중요한 도시”라며 지역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극동개발의 구체적 방안으로 “주택, 보건, 의료 분야 등에서 투자 증대와 협력 강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러 기업 간 협력을 통한 교통·항만 등 극동지역 인프라 확충, 북극 항로 개발, 극동지역 고속도로 건설사업 및 폐기물 처리를 위한 친환경 사업 협력, 냉동창고 및 가공공장 건설 참여 등 극동지역 수산클러스터 조성 등을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하지만 무엇보다도 북핵 문제에 연설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박 대통령은 “지금 우리가 시급성을 갖고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북한의 핵 위협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라고 북한 핵 개발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북한이 동해 상으로 발사하는 탄도미사일은 극동지역의 선박마저 위협한다”며 북핵 문제가 단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역설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에 대해 “평양의 자칭 ‘핵보유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 또 러시아는 한반도 긴장 상황을 협상 국면으로 돌리기 위해 북한을 최대한 설득할 것이라고 답했다.러시아가 그동안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우리에게 비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것에 비 하면 푸틴의 이번 답변은 상당히 긍정적이라는 분석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이번 동방경제포럼 참석이 나름의 성과를 얻은 셈이다. 물론 민감한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을 여전하다.

아베 총리

아베 일본 총리의 연설에서는 러시아의 환심을 얻고자 하는 의도가 그대로 드러났다. 어떻게 들으면 아첨에 가깝게도 들릴 정도다. 아베 총리는 “저는 이번에 블라디보스토크를 처음 방문했습니다. 저는 전용기를 타고 왔지만, 이곳은 항구가 아름다운 도시이기 때문에 배를 타고 와야 할 것입니다. 100년 전 노르웨이 출신 탐험가 프리드쇼프 난센은 블라디보스토크를 보며 이렇게 말했죠. 여기보다 아름다운 곳이 어디에 있을까?”라며 한껏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치를 칭찬했다.

아베 총리는 또 동방경제포럼장이 있는 루스키 섬으로 들어오는 세계 최장의 사장교(길이 3km)를 일본 기업이 건설한 점을 상기시키면서, 아름다운 도시 건설에 일본 기업을 동참시켜 달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와 함께 러-일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았다면서 이 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에 종지부를 찍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 년에 한 번 이곳에서 정례 회담을 하자”라는 새로운 제안도 내놓았다.

아베 총리는 발언에는 그가 남은 2년 임기 동안 러시아가 필요로 하는 경제협력을 당근 삼아 쿠릴열도, 북방영토 문제를 매듭짓기로 작정한 것 같은 의도가 드러난다. 아베는 앞서 지난 5월에도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러시아 남부 소치에서 푸틴을 만나 ‘8개 항목의 협력방안(이른바 포괄적 접근)’을 제시한 바 있다.

물론 푸틴 대통령이 당장 아베 총리의 구애에 화답할 것 같지는 않다. 푸틴 대통령은 전체회의에서 러시아 관점에서 러-일 관계의 전략적 중요도는 어떤지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영토 문제는 러시아의 국익에 관계된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러시아와 일본의 시각이 다르다. 현재의 러시아가 이 문제를 만든 것이 아니다. 1956년에 이 문제가 해결되었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있다.”

(소련-일본 간 공동선언에서 당시 소련은 시코탄과 하보마이 등 쿠릴열도 4개 섬 중 2개 섬을 일본에 돌려주겠다고 제안한 바 있음)

푸틴 대통령

푸틴은 또 “당시에는 일본이 거절했다. 당시의 제안에 대해서 일본이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한다. 러시아와 일본에게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영토문제는 해결되리라고 생각한다. 나와 아베 총리가 소치에서 합의한 8개의 협력방안, 이것이 중요하다. 영토문제와 평화협정문제는 해결책을 찾아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양국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할 것이다.” 고 답했다.

이틀간의 잔치는 끝났다. 정상회담 덕분에 굵직한 계약체결. 각종 MOU 체결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다. 기자 개인의 관심사는, 한국과 일본의 정상들이 언급한 안보, 영토 문제를 러시아는 과연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베가 제안한 ‘매년 정례 정상회담’에 대해 러시아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도 관심사다. 문제는 러시아 사람들은 반응을 보이기까지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기다려 볼 일이다.

 

4) 극동개발의 노림수

한러일 정상들

푸틴 대통령은 왜 극동개발에 열을 올리는걸까? 푸틴은 2000년 7월 집권 1기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북한을 방문했다. 옛 소련시기를 통틀어 러시아 국가정상이 평양을 방문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때부터 극동개발에 박차를 가한 뒤 15년 만의 결실이 이번 동방경제포럼이라고 할 수 있다. 극동개발의 목적은 결국 아시아.태평양으로의 진출로 요약된다. 푸틴 대통령은 포럼 개막식 연설에서, “아시아.태평양 연안국가들은 지금 세계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아태국가들과 긴밀히 유대관계를 맺는 것은 러시아의 전략적 이해관계”라고 설파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미 자루비노 항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쪽으로 230km 위치. 중국 국경과 가까움)의 항만 현대화에 합의했다. 우리측 관계자는,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동해안을 따라 부산항에 이르러 아시아.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이 러시아의 목표일 것이라고 귀뜸했다.

 

5) 연해주 한국 공단

개성공단이 가동된지 꼭 10년째 되던 2013년 4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3차 핵실험 등 잇달은 북한의 강경 조치로 결국 남북한 종업원들이 모두 철수하면서 개성공단 중단 사태가 벌어졌다. 필자는 당시 북중 접경지역인 지린성 도문의 북한 전용공단에서 북한 노동자들의 실태를 취재하고 있었다. 개성공단이 문을 닫으면 개성지구 노동자들이 북중 접경의 도문 공단으로 옮겨올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또 남한 정부에서는 개성공단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남북한 협력 모델을 북한 땅이 아닌 제3국에서 시행하는 방안을 모색한다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제3국 중 유력한 후보지가 러시아 극동 연해주라는 첩보도 입수했다.

중국 전용 공단

그해 12월 필자는 <북방의 문을 열다> 라는 제목으로 철도 연결 등 남북러 3각협력 가능성을 타진하는 내용의 신년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극동 연해주를 방문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110km 떨어진 작은 도시 우수리스크. 필자는 우수리스크에서 아주 흥미로운 장소를 취재했다. 시 외곽에 중국 전용 공단이 있었다. 2012년에 가동을 시작한 이 공단에 20개 업체 1500여 명이 일하고 있었다. 원자재를 중국에서 들여와 신발.운동복.박스 등을 만드는 봉제가공업체들이었다. 상품은 모스크바를 거쳐 유럽으로 수출한다고 했다. 북한 노동자들 고용하는 조선족 공장도 있었다. 그동안 수지가 맞지 않아 일부 중국업자들이 철수한 탓인지 최근에는 300여 명 정도로 규모가 줄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공단을 보면서 필자는 연해주에 한국 업체들을 위한 전용 공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러시아측 입장에서는 중국인들 보다는 북한 노동자들을 더 선호한다는 말을 너무나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중국 전용 공단2

2019년 1월 산업연구원은 한반도 평화 정착과 경제성장을 위해 남북러 3국이 산업단지를 함께 조성하는 등 협력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산업연구원은 장기적으로 북한 내 산업단지와 더불어 한러 협력산업 집중지역에 점진적으로 ‘남북러 협력 산업단지’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러시아가 극동지역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점에 주목해, 남북러 협력의 최우선 대상 지역으로 극동지역을 제시했다. 연구원은 유엔의 대북제재 해제 추이에 따라 러시아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고려해 러시아의 협력을 최대한 유도하고, 남북러 수송망 구축과 유라시아 시장 확대에 필요한 수출형 제조업 분야 프로젝트를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북러 협력사업이 러시아 정책과 부합하도록 러시아가 극동지역에서 추진하는 루스키섬 과학·기술센터 조성, 가공산업 육성,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사회·수송 인프라 건설 정책 등을 활용한 프로젝트를 검토 대상으로 제시했다. 북한과 러시아가 전력, 광물자원, 철강, 수송망, 무역·투자, 농업 등 분야에서 진행해온 기존 협력사업을 활용할 것도 제안했다.

블라디보스토크

그런데 실제로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이런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LH는 2019년 9월 4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5차 동방경제포럼에서, 연해주 나데진스카야 선도개발구역(ASEZ) 내에 ‘한-러 경제협력 산업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서 15km 거리에 위치해있다. 단지 조성은 총 150만㎡(45만 평) 가운데 50만㎡(50 ha=15만 평)를 시범사업으로 우선 추진할 예정인데, LH가 러시아 정부로부터 개발권을 획득해 산업단지를 조성한 뒤 한국기업에게 입주권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만약 미분양 시에는 외국기업에게 입주권을 허용할 방침이라고 LH는 설명했다.

사업비는 100억원 이내로 2020년부터 3년간 추진할 계획이며 현재 사업타당성 조사용역을 진행중이다. LH는 지난 2월에 FEIEA(러시아 극동투자 수출지원청)와 이번 사업의 포괄적 내용을 담은 MOU를 체결하고 7월에는 국내 기업들의 입주 수요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LOI, 즉 입주의향서를 낸 기업은 28개로 17.1만평을 요구했는데, 이는 분양면적인 13.4만평을 128% 초과한 것이다. LH는 우리 기업의 연해주 진출 장점으로 다음과 같은 3가지를 들었다.

①생산 거점: 저렴한 전기.가스 비용, 노동력 등을 활용해 생산 단가 절감과 향후 CIS 진출을 위한 거점으로 활용 가능

②물류 거점: 북.중.러 접경지역에 국제물류 요충지로 성장이 예상되며 국내 시장과도 근거리에 있어 물류비용 절감 가능

③After Market: 극동아시아 지역은 중고차 점유율이 높아 A/S 부품 및 차량관리 용품 등에 대한 적지 않은 시장 규모 형성

LH는 9월에 사업타당성 분석을 마치고 12월 13일 러시아 정부와 ‘예비 사업시행 협약’을 맺었다. 이번 사업은 우리 정부가 2017년 9월 러시아에 제안한 9개 분야의 한‧러 간 경제협력사업(산업단지, 가스, 철도, 항만, 전력, 북극항로, 조선, 농업, 수산업) 즉 ‘9-Bridge 전략’의 하나로, 중소기업의 러시아 진출을 지원하기위한 방안이라고 LH는 소개했다. 또 이번 시범사업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창출해 제2, 제3의 한국형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필자는 진심으로 이 사업이 성공해 크게 번창하기를 바란다. 돌이켜보면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이후 러시아 극동 연해주에 진출을 시도한 국내 기업들은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살아남은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우수리스크에 있는 롯데 농장 (예전에 현대중공업 소유였다가 매각됨), 롯데 호텔(예전의 현대 호텔), 크라스키노에 있는 유니베라 농장, 대순진리교 농장 등이다. 필자는 앞으로 이 산업단지에 북한 노동력까지 가세해서 진정한 남북러 3각 협력사업으로 꽃피우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목, 2019/12/1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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