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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평화복지연대, “5·18 진상조사 끝까지 이뤄내야”

인천평화복지연대, “5·18 진상조사 끝까지 이뤄내야”

admin | 수, 2020/05/27- 20:20

인천평화복지연대는 18일 성명서를 통해 “오늘은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이다. 전두환과 신군부의 무자비한 폭력과 집단발포, 인권 유린 앞에서 광주 시민들은 목숨으로 민주주의를 외치고 수호했다”라고 운을 뗐다. 아울러 “광주 정신은 3·1운동과 4·19혁명, 1987년 6월 항쟁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져 촛불로 다시 태어났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우리는 1980년 5월의 광주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 관련 소식 >

#인천투데이 : 인천평화복지연대, “5·18 진상조사 끝까지 이뤄내야” http://www.incheon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2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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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0년 5,6월호 – 활동가가 주목하는 이슈]

5.18 광주민주화운동 폄하와 왜곡 이제는 끝내야

 

조성훈 경실련통일협회 간사

 
올해 40주기를 맞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은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라는 주제로 열렸다. 기념식도 기존의 5.18 민주묘지가 아닌 4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옛 전남도청 앞 5.18 민주광장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진실이 하나씩 드러날수록 마음속 응어리가 하나씩 풀리고 우리는 그만큼 더 용서와 화해의 길로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왜곡과 폄훼는 더 이상 설 길이 없어질 것이다”라며 진상 규명의 의지를 드러냈다.

이 같은 문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까지도 계속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폄훼에서 비롯된다. 특히,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지난해 2월 극우 논객 지만원 씨를 불러 5.18 진상규명 공청회를 열고, 망언을 쏟아냈다. 김진태 미래통합당 의원은 “5.18 문제만큼은 우파가 결코 물러서면 안 된다.”라며 발언을 했으며, 김순례 미래한국당 의원은 “종북좌파들이 판을 치면서 5.18 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을 만들어내며 우리 세금을 축내고 있다.”라고 했다. 이종명 미래한국당 의원도 “1980년 당시 5.18 사태는 폭동이라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되고 있다.”라고 발언하며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들의 발언 외에 보수 종편과 극우 유튜브 등에서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왜곡과 폄훼가 줄을 이었다.

20대 국회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해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켰으나 미래통합당은 그동안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방해할 인사를 추천시켜 위원회 출범을 지연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5월 12일 위원회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계속된 폄하와 왜곡이 끝날지는 의문이다. 국회 망언 3인방에 대해 아무런 처벌 없이 흐지부지 됐기 때문이다. 미래통합당은 이종명 의원에 대해 제명, 김진태·김순례 의원에 대해서는 3개월 당원권 정지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종명 의원 제명 처분의 경우 위성정당의 의원 꿔주기를 위해 활용됐다. 국회 차원의 징계도 윤리특위 활동기간 연장이 이뤄지지 못해 징계가 이뤄지지 못했다.

또한 현재 소위 ‘홀로코스트 부정 처벌법’이라고 불리는 망언 처벌법이 없다. 5.18 망언 처벌을 강화하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한 번도 논의되지 못한 채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각 당은 역사 왜곡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모두 말뿐이었다. 이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진상규명위원회의 진상규명과는 별개로 망언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21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홀로코스트 부정 처벌법’을 제정해 역사 왜곡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전두환의 잔인한 학살이기에 더 이상 광주 시민들에 대한 모욕과 수모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발포명령자는 누구였는지, 진실을 은폐하고자 했던 자는 누구였는지 밝혀 진실 왜곡에 대해 단죄를 내려야 할 것이다. 벌써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은 산천도 국민 모두도 알고 있다. 이제 더 이상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하와 왜곡은 없어야 할 것이다.

금, 2020/06/05-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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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1년 5,6월호]

“ 악행을 고백하고 반성하는 순간, 선행은 시작된다”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이정국 감독1)

 

문규경 회원미디어국 간사

 

민주화의 열망에 몸을 맡긴 채,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5월 18일이 돌아왔습니다. 올해로 41주년을 맞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로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가 있습니다.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를 통해 스크린에서 광주를 기억하고 있는 이정국 감독을 경실련이 만났습니다.

Q. 월간경실련 구독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A. 반갑습니다. 월간경실련 구독자 여러분, 이정국 감독입니다. 이번에 경실련과 인터뷰하게 돼서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이번에 5·18을 소재로 한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를 만드셨습니다. 간략하게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는 5·18 트라우마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현재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중년의 대리운전 기사(안성기)가 5·18 피해자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5·18 가해 책임자들을 향해서 복수를 시도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5·18 영화를 보면,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어 왔습니다. 우리 영화는 피해자 입장도 있지만, 명령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가해자가 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심도있게 캐릭터에 담았습니다.

Q. 데뷔작이신 ‘부활의 노래’도 5·18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요. 30년 전에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제가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하지만, 5·18 당시에는 군 복무 중이어서 광주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후에도 저는 오직 영화 공부만 하고 영화를 만든다고, 시위에 참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대신 나는 영화인이니까 영화로 말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첫 데뷔작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5·18을 다루게 된 것입니다. 영화 제작할 당시가 노태우 정권이었습니다. 당연히 영화를 못 만들게 했었습니다. 처음에 영화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5분 정도를 잘라서 개봉을 못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개봉하기 전에 연세대에서 시사회를 했었는데, 그것을 빌미로 영화법 위반이라는 혐의로 법정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30대 중반의 나이에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두 번째 심의에서는 영화를 결국 받아줬는데, 핵심 장면들은 4~5분 정도 잘린 채로 개봉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Q. 3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다시 5·18을 다룬 영화를 만드신 계기가 있을까요?

A. 앞서 말했듯이 제가 ‘부활의 노래’라는 데뷔작을 만들고 나서 5·18을 경험하신 분들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로 인해 굉장히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20년간은 5·18 이야기도 안했고, 5·18 관련한 다큐멘터리가 나와도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트라우마를 갖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한 10여 년 전부터 광주에서 시민들에게 영화를 가르치면서 단편으로 5·18에 대해 다루게 되었고, 다큐멘터리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게 기반이 되어서 이번 장편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전에 제가 5월의 10일간 항쟁을 다룬 대작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20권 분량의 증언록을 봤습니다. 그러다가 생각한 것이 ‘광주사람들은 5·18 때 그렇게 억울하게 당했는데, 왜 아무도 복수를 안 하지, 가해자들은 단죄받지도 않고 잘 살고 있는데’라는 것이었습니다. 증언록은 읽는 동안 너무 화가 나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로라도 이 사람들을 대신해서 복수해주자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Q. 40년이 지난 일이지만, 최근에서야 몇몇 사람들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지난 3월에 5.18 당시 진압 작전에 참여했던 공수부대원 한 명이 유족에게 공식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제가 그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부분적으로 우리 영화와도 비슷한 점이 있고요. 어떻게 보면 너무 늦었다고 볼 수도 있는데 그분들도 가족이 있기 때문에 자기 얼굴을 내밀고 사과를 하기는 힘들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의 친일부터 그 이후의 수많은 역사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가해자들이 반성을 하거나 제대로 단죄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5·18 가해자들도 피해자들보다 건강하게 오래 잘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영화를 통해서 명령에 의한 가해자가 된 사람들을 포함한 가해자들이 양심고백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Q. 이번 영화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특별히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을까요?

A. 5세기 종교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게 생각납니다. “악행에 대한 고백은 선행의 시작이다.” 악행을 고백하고 그걸 반성하는 순간, 선행은 시작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5·18을 포함해서 우리 역사에서 악행을 양심고백하고 무릎 꿇고 사죄하는 것을 제대로 못 본 것이 참 아쉽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 가해자들이 좀 깨달았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습니다.

Q.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 계획이 있으신가요?

A. 원래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려고 출발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5·18을 소재로 영화를 시작했지만, 그 이후에 했던 <편지>, <산책>, <두여자 이야기>는 멜로에 기반한 서정적 이야기였습니다. 그렇다고 작가주의 감독으로서 일관되게 한 가지만 하기보다는, 현실에 발을 딛고 사회·정치적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삶의 정서가 담긴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해보고 싶습니다.

1) 이정국 감독은 1990년 영화 ‘부활의 노래’로 데뷔, 1994년 영화 ‘두 여자 이야기’로 대종상 신인감독상과 최우수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했습니다. 이후 <편지>, <산책>, <블루> 등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금, 2021/05/2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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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1년 5,6월호][지역이야기]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오주섭 광주경실련 사무처장

 
지난 5월 12일 저녁 뉴스에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의 인터뷰를 보다 순간 나는 그 날이 떠올라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광주교도소에 있는 가장 높은 건물에 M60 기관총을 설치해서 고속도로 또는 국도상으로 지나가는 모든 차량에 총격을 가하고, 사람들을 사살했습니다. M60 기관총은 5월 22일 이후 광주교도소의 감시탑과 건물 옥상 등 6곳에 설치됐습니다.”

1980년 5월 나는 전남대사범대부설고등학교 1학년생이었고, 형, 누나와 함께 자취를 하고 있었다. 학교가 전남대 정문 바로 옆에 있어 입학한 날부터 날마다 최루가스 냄새를 맡고, 전남대생들이 데모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내가 사는 곳은 광주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5월 17일 비상계엄령이 전국에 확대되었고, 월요일인 5월 19일부터 중간고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선생님들께서 “고등학생인 너희들은 다른 데 신경 쓰지말고 공부에 열중하라”고 틈날 때마다 강조했던 터라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음에도 19일 아침 예정대로 시내버스를 타고 등교를 했다. 전남대사거리 승강장에 도착하여 시내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총을 둘러멘 공수부대원이 곤봉으로 나를 가리키며 어디 가느냐고 물었고, 학교에 간다고 했더니 학교는 폐쇄되었으니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윽박질렀다.

공수부대원을 피해 학교로 가기 위해 전남대 정문앞을 가보니 이미 공수부대원들이 정문 앞을 가로막고 있었고, 대학생들이 그들을 향해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전두환이 물러가라, 물러가라!”

당시 살던 골목에 여섯 집이 있었는데 대학생 형, 누나들과 어른들은 나와 뒷집에 사는 고등학생 형한테 골목에 사는 중학생, 초등학생 동생들을 돌보게 하고, 매일 도청 앞 금남로로 시위를 하러 나갔다. 어른들은 총알이 솜이불을 뚫지 못한다며 방문마다 두꺼운 솜이불을 커튼처럼 쳐놓았다.

어느 날 밤, 광주역 방향에서 총소리가 들려 창문 틈으로 조심스럽게 밖을 내다보니 무등산 쪽으로 빨간 도깨비불 같은 것이 연속해서 날아가는 게 보였다. 그 빨간불이 M60 기관총 10발당 한발씩 있는 예광탄이라는 것을 군대에 가서 알게 되었다.

최근 5·18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한 내용을 보면 제3공수여단이 5월 20일 오후 10시 이후 광주역에서도 M60 기관총으로 시민들을 사살했다고 한다. 당시 내가 들었던 총소리가 바로 5월 20일에 제3공수여단이 시민들을 향해 발포한 총격이라고 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들은 위협 사격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날 광주시민들을 향해 M60 기관총을 쐈던 것이다.

5월 22일 점심 때쯤 곡성에 계시는 어머니께서 광주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자취방을 찾아오셨다. 어머니께서 “군인들이 광주사람들 다 죽인다고 하더라. 얼른 시골로 내려가자”고 했지만 형과 누나는 도청 앞 시위 현장을 다녀와서인지 끝까지 싸워야 한다며 시골로 갈 수 없다고 강하게 버텼고, 어쩔 수 없이 나만 가기로 합의를 봤다.

계엄군이 광주 외곽을 포위하고 봉쇄 작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라 버스는 끊긴 지 오래였다. 걸어서 고향인 곡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광주교도소 근처인 담양 가는 국도와 순천 방향 호남고속도로를 지나야만 했다. 어머니께서 고속도로 톨게이트까지 걸어가면 담양에서 온 택시들이 있으니 호남고속도로로 가자고 하셨다. 광주에 오실 때도 택시를 타고 호남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내려 걸어왔다고 했다.

어머니와 함께 광주교도소 옆 호남고속도로에 접어들자 많은 사람들이 광주를 빠져나가기 위해 걷고 있었다. 마치 영화나 TV 뉴스에서 봤던 한국전쟁 때 피난민 행렬을 연상케 했다.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웅성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덩달아 뛰어가며 사람들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군인들이 총으로 우리를 겨누고 있었다. 가는 방향 오른편에 광주교도소 담벼락이 있었는데 그곳에 있는 참호 속에서 군인들이 우리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던 것이다. 행여나 군인들이 총을 쏠까봐 어머니 손을 잡고 죽을힘을 다해 달려 그곳을 벗어났다. 다행히 군인들은 총을 겨누기만 할 뿐 쏘지는 않았다. 지금도 총을 겨누고 있던 그 군인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5·18진상규명위원회 발표처럼 만약 하루 늦은 23일 날 나와 어머니가 그곳을 지나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매년 5월이 오면 광주사람들은 41년 전 그날에 기억이 멈추곤 한다. 가슴이 먹먹하고 뭔지 모를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아마도 그것은 아직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전두환을 비롯하여 책임있는 자들이 반성과 사과는커녕 책임을 부인하고 오히려 적반하장식으로 북한군 개입설 등을 주장하며 5·18을 왜곡하고 폄훼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최근에 배우 안성기 주연의 ‘아들의 이름으로’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5·18 때 가해자였던 공수부대원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복수를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식당 화장실에서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문구를 보고 복수에 대한 결심을 굳히게 된다. 감독은 영화로나마 5·18 가해자 중의 한 명인 공수부대원이 반성과 사과를 하고, 복수를 통해 광주시민들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지난 3월 당시 계엄군이었던 전직 공수부대원이 자신이 쏜 총에 맞아 숨진 희생자의 유족을 만나 사과한 일이 있었다. 영화 같은 일이 현실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당시 진압 작전에 투입됐던 계엄군들의 양심고백은 5·18의 진실을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하다.

지난 1년 동안 5·18진상규명위원회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본다. 특히, 조사 개시 1년이 되는 시점에 광주에 투입됐던 2만 353명의 계엄군 가운데 200여 명으로부터 유의미한 증언도 확보했다고 한다. 앞으로 전체의 10%에 해당하는 2천 명 이상의 증언을 계획 중으로 진압 작전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사실을 확인해 5·18의 진실에 다가설 계획이라고 한다.

부디 발포 책임자 규명, 행방불명자 문제 등 핵심 의혹들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 밝혀져 내년 오월은 새롭게 시작하는 오월이 되었으면 한다.

금, 2021/05/2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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