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인류의 미래를 위한 탈성장 선언문 – 코로나 이후의 세계

지역

인류의 미래를 위한 탈성장 선언문 – 코로나 이후의 세계

admin | 일, 2020/05/17- 00:33

편집자 주:

다음의 글은 김상현 교수가 직접 번역하여 기획칼럼에 참여하고 계신 김화순 박사를 통하여 다른백년에 전달되었습니다. 내용이 소중하여 독자 여러분들과 공유하고자 아래와 같이 게재합니다.


5월 13일 CEST(중앙유럽표준시) 10시(한국 시간으로 오후 5시)에 발표된, 코로나19 위기 대응과 그 이후의 미래를 위한 사회·생태적 전환의 경로로서 ‘탈성장’을 요구하는 국제적 공개서한의 보도자료입니다. 이번 공개서한은 탈성장 연구자·활동가 국제 네트워크에서 활동해온 유럽의 젊은 생태경제학자, 사회과학자, 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처음 제안되었으며, 60여 개국에서 1,170여 명의 개인들과 70여 개의 단체들이 서명했습니다. 국내에도 번역 소개된 “탈성장 개념어 사전”의 편집자 페데리코 데마리아 (Federico Demaria)와 히오르고스 칼리스 (Giorgos Kallis) 외에도 딱히 ‘탈성장론’의 흐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포스트발전주의’(postdevelopmentalism), ‘부엔 비비르’(Buen Vivir), ‘가난한 이들의 환경주의’(environmentalism of the poor), ‘생태적 스와라지’(ecological Swaraj) 운동 등의 입장에서 ‘성장’과 ‘발전’에 대한 주류적 인식에 문제를 제기해온 진보적 생태경제학자 조안 마르티네즈-알리에(Joan Martinez-Alier), 발전 인류학 및 라틴아메리카 탈식민담론 연구로 잘 알려진 아르투로 에스코바르(Arturo Escobar), 인도의 환경운동가 아쉬쉬 코트하리(Ashish Kothari) 등이 서명에 참여하고 있기도 합니다.

 

1. 보도자료

1,000여 명의 전문가들이 포스트-코로나19의 경로로 ‘탈성장’을 요구하다.

“경제를 위한 새로운 근간”: 전 세계의 학자, 전문가, 예술가, 활동가와 사회운동 단체들이 더 이상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 경제체제의 성장 의존성에 작별을 고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2020년 5월 13일: 코로나19로 촉발된 위기에 대응하는 한편 향후 더 이상의 위기를 막고 보다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탈성장(Degrowth)’을 촉구하는, 60여 개국 1,100여 명의 전문가와 70여 개 단체가 서명한 공개서한이 오늘 발표되었다. 서한의 전문은 openDemocracy (영국), Mediapart (프랑스), The Wire (인도), HGV (헝가리), Pagina 12 (아르헨티나), L’Echo (벨기에) 등의 온라인 매체에 게재되었다.

공개서한은 시민사회와 경제 행위자들 뿐 아니라 국가 및 국제 기관들이 현재의 사회적·경제적 위기에 맞서기 위한 노력을 기울임에 있어 사회적·환경적 병폐들을 고려하는 다섯 가지 원칙을 따를 것을 촉구했다. 서한의 서명자들은 ‘탈성장(Degrowth)’, 즉 민주적으로 계획되고 변화에 적응력을 지니며 지속가능하고 평등한 방식으로 경제의 규모를 축소시킴으로써 덜 가지고도 더 잘 살 수 있는 미래로 나아갈 것을 요구했다. 탈성장은 자본주의 체제의 대대적인 개편을 필요로 한다. 공개서한의 저자들은 시장에 대한 맹신에 반대하면서 ‘녹색성장’과 탈동조화(decoupling)가 사회적·환경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주된 전략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공개서한을 준비한 이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촉발된 위기는 성장에 집착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많은 약점들을 이미 폭로하고 있다. 다수의 삶은 불안정해졌고, 보건의료 시스템은 다년간의 긴축재정에 의해 심각하게 타격을 입었으며, 가장 필수적인 직종조차 경시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착취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 같은 경제체제는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이른바 ‘정상성’이 이미 위기였던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위기에 대응하는 지배적인 전략은 경제적 분배를 시장에 맡기고 탈동조화(decoupling)와 녹색성장을 통해 생태적 파괴를 줄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효과가 없었고, 앞으로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서한의 서명자들은 경제의 회복과 정의로운 사회 건설의 기초를 위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1) 경제체제의 중심에 생명을 위치시켜야 한다.

2) 모두를 위한 좋은 삶을 위해 어떠한 노동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근본적으로 재평가해야 한다.

3) 핵심적인 재화와 서비스의 제공을 중심으로 사회를 조직해야 한다.

4) 사회를 민주화해야 한다.

5) 정치경제체제를 연대의 원칙에 기초하여 구축해야 한다.

서한을 제안한 이들은 또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현재의 경기침체는 일부에서 잘못 부르고 있는 것과는 달리 ‘탈성장’이 아니다. ‘탈성장’은 경제의 성장 여부와 관계 없이 모든 이들의 기본적 필요가 충족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적절한 정책들이 실행된다면, 경제의 많은 부분이 수개월에 걸쳐 중단된다 할지라도 모든 이들에게 충분한 식량, 주거와 보건의료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다. 경제를 재지역화(relocalized)하는 탈성장 사회에서는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유행이 덜 일어나게 될 것이고, 일어나도 덜 확산될 것이며 고통을 덜 유발할 것이다. 감염병 대유행으로 촉발된 위기는 우리의 ‘성장’ 의존성과 연결된 것이다.”

공개서한을 준비한 이들은 관심 있는 개인들과 단체들이 코로나바이러스 위기에 직면하여 경제와 사회를 새롭게 상상하는 열린 토론에 참여하도록 초대했다. 2020년 5월 29일~6월 1일에는 비엔나에서 국제회의 “탈성장 비엔나 2020: 사회-생태적 전환을 위한 전략”가 개최될 계획이다. 이 행사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추가 정보>

– 공개서한 링크: https://www.degrowth.info/en/open-letter/

– ‘탈성장’에 대한 정보: https://www.degrowth.info/en/what-is-degrowth/

– “탈성장 비엔나 2020”에 대한 정보: https://www.degrowthvienna2020.org/en/

 

2. 공개서한 탈성장 : 경제의 새로운 근간

코로나 위기 이후의 미래를 새롭게 상상하기

코로나바이러스의 대유행은 이미 수많은 생명을 앗아 갔으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갈지 불확실합니다. 보건의료 및 기본적인 사회적 물자조달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은 병자들을 돌보고 사회 유지에 필수적인 작업들을 수행하면서 바이러스의 확산에 맞서 싸우고 있지만, 경제의 상당 부분은 멈춰 선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많은 이들에게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일으키는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집합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촉발된 위기는 성장에 사로잡힌 자본주의 경제의 많은 약점들을 이미 폭로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경제 하에서 다수의 삶은 불안정해졌고, 보건의료 시스템은 다년간의 긴축재정에 의해 심각하게 타격을 입었으며, 가장 필수적인 직종의 일부조차 경시되고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의 착취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경제체제는 위기에 매우 취약함에도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세계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생산하고 있지만, 인간과 지구를 돌보는데 실패하고 있으며 부의 축적과 지구의 황폐화로 이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매년 수백만 명의 어린이들이 예방 가능한 원인으로 인해 사망하고 있고, 8억2천만 명에 이르는 이들이 영양부족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생물다양성과 생태계는 훼손되고 있고 온실가스 배출은 계속 치솟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가 극심해짐에 따라 여러 지역들을 소실시킬 수 있는 해수면 상승, 파괴적인 폭풍, 가뭄, 화재 등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러한 병폐들에 대응하는 지배적인 전략은 경제적 분배를 시장에 맡기고 탈동조화(decoupling)와 녹색성장을 통해 생태적 파괴를 줄이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협력과 연대 활성화로부터 보건의료, 돌봄노동, 식료품 공급, 폐기물 수거 등 기본적 사회 서비스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확산에 이르는 코로나 위기의 경험을 토대로 삼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염병의 대유행은 또한 대대적인 예산의 재정비, 자금의 동원과 재분배, 사회보장 체계와 홈리스를 위한 주택의 급속한 확대 등 근대의 평화 시기에 전례를 찾기 어려운 정부의 조치들로 이어지면서 행동할 의지가 있다면 무엇이 가능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시에 대규모 감시와 사생활 침해 기술, 국경 폐쇄, 집회의 권리 제한, 위기를 기회로 삼는 재난자본주의 등 문제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흐름에 단호히 저항해야 하지만, 그에 멈춰서는 안 됩니다. 파괴적인 성장 기제를 다시 가동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사회로의 전환을 시작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의 교훈과 지난 수개월 동안 세계 곳곳에서 싹트기 시작한 풍부한 사회연대 기획들을 발판으로 삼을 것을 제안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와는 달리 우리는 기업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지구를 구해야 하며, 긴축이 아닌 자족(sufficiency)에 기반한 대응으로 위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서한에 서명한 우리들은 우리 경제의 회복과 정의로운 사회 건설의 기초를 위한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합니다. 모두를 위한 경제의 새로운 근간을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1) 경제체제의 중심에 생명을 위치시켜야 합니다

경제성장과 낭비적인 생산 대신 생명과 복지가 우리 노력의 중심에 자리해야 합니다. 화석연료 생산, 군수 및 광고와 같은 경제의 일부 부문은 가능한 한 빠르게 단계적으로 폐지되어야 하지만, 보건의료, 교육, 재생가능에너지, 생태농업과 같은 다른 부문들은 육성되어야 합니다.

2) 모두를 위한 좋은 삶을 위해 어떠한 노동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근본적으로 재평가해야 합니다

우리는 돌봄노동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하며 코로나 위기 동안 필수적인 것으로 입증된 직종들에 대해 적절하게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파괴적인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보다 재생적(regenerative)이고 깨끗한 새로운 유형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훈련을 제공하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전반적으로 우리는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일자리 나누기(work-sharing)를 위한 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3) 핵심적인 재화와 서비스의 제공을 중심으로 사회를 조직해야 합니다

낭비적인 소비와 여행은 줄여야 하지만, 식량, 주택과 교육에 대한 권리를 포함한 인간의 기본적 필요는 보편적 기본서비스(universal basic services) 혹은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등을 통해 모든 이들에게 보장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최저 및 최대 소득이 민주적으로 정의되고 도입되어야 합니다.

4) 사회를 민주화해야 합니다

이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특히 소외된 사회 집단의 참여가 확대되어야 하며 페미니즘의 원칙이 정치와 경제체제에 적용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글로벌 기업과 금융 부문의 권력은 민주적 소유와 통제를 통해 대폭 축소되어야 합니다. 에너지, 식량, 주택, 보건의료, 교육 등 기본적 필요와 관련된 부문은 탈상품화되고 탈금융화되어야 합니다. 또한 노동자협동조합과 같이 협력에 기초한 경제 활동이 육성되어야 합니다.

5) 정치경제체제를 연대의 원칙에 기초하여 구축해야 합니다

현재와 미래 세대 간, 국가 내 사회 집단 간, 그리고 남반구(Global South)와 북반구(Global South) 간의 화해는 초국적(transnational), 교차적(intersectional), 그리고 세대상호간(intergenerational)의 재분배와 정의에 기초해야 합니다. 특히 북반구는 현재 형태의 착취를 중단하고 과거의 착취에 대해 보상해야 합니다. 급속한 사회-생태적 전환을 인도하는 원칙은 ‘기후정의’가 되어야 합니다.

 

성장에 의존하는 경제체제가 지속되는 한 경기침체는 치명적일 것입니다.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탈성장’(Degrowth)입니다. 즉 계획적이지만 변화에 적응하는, 지속가능하고 평등한 방식으로 경제의 규모를 축소시킴으로써 덜 가지고도 더 잘 살 수 있는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현재의 위기는 많은 이들에게 잔혹하며 특히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더욱 심한 타격을 입히고 있지만, 우리에게 성찰하고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고 있기도 합니다. 위기는 우리로 하여금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줄 수 있으며, 발판으로 삼아야 할 수많은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운동이자 개념으로서의 탈성장은 10년 이상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성찰해왔고, 지속가능성, 연대, 평등, 공생(conviviality), 직접민주주의, 삶의 즐거움과 같은 다른 가치들에 기반한 사회를 다시 생각하기 위한 일관된 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장 중독으로부터 벗어날 해방적 출구를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탈성장 비엔나 2020’과 ‘세계 탈성장의 날’(Global Degrowth Day)에 계속될 토론에 참여하고 여러분들의 아이디어를 공유해주십시오!

연대의 인사를 보내며,

공개서한 워킹그룹: Nathan Barlow, Ekaterina Chertkovskaya, Manuel Grebenjak, Vincent Liegey, François Schneider, Tone Smith, Sam Bliss, Constanza Hepp, Max Hollweg, Christian Kerschner, Andro Rilović, Pierre Smith Khanna, Joëlle Saey-Volckrick

이 서한은 탈성장 국제 네트워크 내 협력 과정의 결과입니다. 현재까지 60여 개 국 1,100여 명의 전문가와 70여 개의 단체가 서명에 참여했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다윗의 돌팔매

덕수궁 돌담길의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가는 1977년 10월 24일, 덕수궁 옆 서울지방법원 법정에서는 서울대·고대 유인물사건 재판의 결심이 열렸다. 서울대의 김창우(74학번)와 서익진(73학번), 고려대의 설훈(74학번), 이민구(75학번), 황인국(75학번) 등 수의를 입은 피고들이 법정에 들어오고 재판장이 들어와 앉자 곧바로 재판이 시작되었다. 재판장 허정훈 판사는 장영자 사건을 담당했던 사람으로 피고들에게 강압적으로 재판을 진행한다는 악평을 듣고 있는 인물이었다. 먼저 검찰의 구형이 있었다. 고려대 중심인물 설훈이 징역 5년, 서울대의 김창우가 징역 4년 등 유인물 사건치고는 꽤 높은 형량이었다. 이어서 이돈명, 황인철 변호사 등 변호인단의 긴 변론이 있고, 마지막으로 피고들의 최후진술 시간이 주어졌다. 박정희 유신독재의 감시 속에서 숨죽이면서 비밀리 유인물을 만들어 뿌리며 저항의 칼을 갈아온 이들에게는 공개적으로 독재정권의 야만성을 성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먼저 제일 연장인 고려대 설훈이 나서서 ‘독재자 박정희는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을 펴다가 예상대로 재판장의 제지를 받았다. 이어서 서울대 김창우가 나섰다. 김창우는 또렷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박정희 독재의 반역사성과 민주화투쟁의 정당성을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재판장이 돌연 나서서 말을 끊고 ‘네가 정당하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고 힐난하듯이 물었다. 김창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내가 30년 뒤에 박정희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잘못된 정권인지 당신 앞에서 똑똑히 증명해 주겠다. 그리고 당신이 박정희에게 부역한 사실까지 자손 대대로 이야기 해주겠다.’ 오만한 재판장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일순 재판장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김창우가 잠깐 숨을 고르느라 말을 멈춘 사이에 “이것으로 이만 재판을 마치겠습니다.”라고 내뱉듯이 말하고 일어나서 퇴장해 버렸다. 변호인과 피고 뿐만 아니라 재판정을 가득 메운 방청객들이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 골리앗을 겨냥한 다윗의 돌팔매처럼 시원하게 한방 먹인 통쾌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 후과(後果)는 4일 뒤의 선고공판에서 바로 나타났다. 김창우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4년 자격정지 4년을 선고 받았다. 이른바 ‘들었다 놓은’ 것이다. 통상 검찰이 4년을 구형하면 징역 2년 정도 판결을 내는 것이 보통인데, 검찰의 구형 형량 그대로 선고한 것이다. 김창우의 최후진술이 영향이 있었을 걸로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

 

성북서의 ‘횡재’ – 서울대·고려대 유인물사건

이 서울대·고려대 유인물사건은 당시 75년 긴급조치 9호 발령 이후 유신독재의 엄혹한 감시와 탄압 속에 학생운동이 각 대학별로 분산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서울대와 고려대가 함께 엮인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그 고리에 서익진이 있었다. 서익진은 김창우의 서클 1년 선배이면서 고려대 설훈에게는 마산고 1년 후배였다. 이 서익진이 마산고학우회장 시절 사용하던 등사기로 김창우와 설훈 두 사람의 유인물을 만들어준 것이었다.

먼저 꼬투리가 잡힌 것은 고려대 쪽이었다. 77년 4월 설훈과 이민구, 황인국이 고려대 학내에 뿌린 유인물이 악명 높은 성북서 정보과로 들어갔고, 성북서가 가능성 있는 인물을 한명씩 잡아다 악랄하게 조사하여 추적한 결과 설훈을 짚어냈고, 설훈을 잡아다가 ‘피똥을 쌀’ 정도로 고문하며 추궁해서 결국 서익진을 찾아 낸 것이다. 설훈도 서익진을 불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결정적 증거물인 등사기의 소재를 둘러댈 재간이 없었다. 서익진을 연행한 성북서 형사들은 덤으로 큰 횡재를 했다. 서익진의 자취방 빨래통에서 김창우가 서울대에서 뿌린 유인물 원본을 발견한 것이다. 서익진은 김창우의 부탁으로 자신의 등사기로 유인물을 인쇄해주고 그 원본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세탁물 속에서 수사관들에게 발각된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실수였고, 그 바람에 후배 김창우가 잡혀가 함께 법정에 서게 되었다.

김창우는 원래 그 전 해 1976년 ‘3우1승팀’(김창우, 김천우, 박찬우, 양춘승)의 일원으로 학내시위를 주동하려다가 리더 양춘승이 주동을 3인으로 줄이고 자신을 후속팀으로 남겨 놓아 학교에 남은 상태였다. 양춘승과 김천우, 박찬우 3명은 77년 3월 28일에 예정대로 시위주동을 하고 감옥으로 갔다. 김창우는 후속팀을 조직하기 위해 함께 주동할 사람들을 물색하는 한편 그 동안에 학내 유인물 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는 서클 ‘한사(한국사회연구회)’ 1년 선배이면서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군 입대를 기다리던 서익진이 등사기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그에게 부탁하여 유인물을 만들어 교내 강의실, 화장실 등에 뿌렸다.

77년 5월 말 모든 일이 완벽하게 잘 끝났다고 안심하고 있던 김창우는 ‘뜻밖에도’ 강의실로 들이닥친 성북서 정보과 형사들에게 연행되었다. 성북서에서 조사를 마치고 6월 11일 서울구치소로 송치되어 구속 수감되었다. 거기에서 먼저 와있던 양춘승, 박찬우, 김천우를 다시 만났다.

 

어린 시절 – 공부도 운동도 잘한 모범생

김창우는 1956년 1월 23일 제주시 삼도동에서 부친 김인희(金仁熙) 님과 모친 김규숙(金圭淑) 님의 4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김인희 님은 부산 건설국 산하 제주도 축항(築港)사무소에서 말단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집안 대대로 제주도에서 살았던 제주도 사람은 아니었고, 증조부 때 뭔가 사연이 있어 육지에서 건너와 아들 하나를 낳았다고 한다. 독자로 태어난 할아버지는 일제 때 의사 일을 해서 가난한 제주도 안에서는 제법 풍족한 살림을 했고, 슬하에 6남 2녀를 두었다. 아버지 김인희 님은 그 중 넷째 아들이었다. 외가 쪽은 4.3사건 당시 학살 피해가 많았던 조천면에서 살았는데, 동아일보 주필을 지냈던 김명식 씨 등 저명한 언론인, 학자들을 많이 배출했다고 한다. 어머니 김규숙 님은 제주에서 태어나 어릴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목포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목포에서 초등학교 선생으로 근무하다가 중매로 김인희 님과 결혼했다고 한다.

1962년 김창우는 제주북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김창우가 태어난 삼도동은 바닷가에서 가까워 어려서부터 늘 바닷가에 나가 놀았고,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도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바다에서 종일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김창우는 공부를 곧잘해서 항상 백점을 받아와 부모님을 기쁘게 했다. 그런 중에 축구도 잘 해 학교 대표선수로 뛸 정도였다.

1966년 김창우가 5학년 때 아버지는 공부 잘하고 똑똑한 큰아들을 큰물에서 키울 욕심으로 부산으로 전근을 신청했다. 신청이 받아들여져 일가족 모두 부산으로 이사했고 김창우는 부산 초량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전학 온 김창우는 첫 시험에서 백점을 받아 선생님과 반 아이들을 놀라게 했다. 제주 촌놈이라고 얕잡아 봤던 아이들의 태도가 대번에 달라졌다.

1968년에는 명문 부산중학교에 시험을 쳐 입학했고, 1,2학년 내내 거의 전교 수석을 독차지했다. 2학년 때부터는 좋아하는 축구도 다시 시작했고, 그러면서도 졸업 때까지 선두권을 놓치지 않았다. 1971년 부산고 입학시험에서도 수석은 놓쳤지만 차석으로 합격했다.

 

‘한사’에서 사회현실에 눈뜨고 감옥가기로 결심하다

1974년 김창우는 아들이 법대에 가서 판검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서울대 사회계열에 지원했다. 종암동에 있는 서울상대에서 시험을 치렀는데, 1박2일 시험기간 동안 부산고 선배들이 고향에서 올라온 후배 수험생들을 자기 하숙집에 데려가 재워주고 돌봐주었다. 김창우를 돌봐준 선배들이 바로 이념서클 한국사회연구회(한사) 선배인 정종호(72학번), 박석운(73학번) 등이었는데, 결국 이 선배들의 권유로 김창우는 대학 입학하자마자 한사에 가입하게 된다.

입학하고 얼마 안되어 긴급조치 4호가 발령되고 민청학련사건이 터졌다. 그 바람에 김병곤 등 한사 선배들이 다수 잡혀가고 서클활동이 어려워졌다. 그러나 이종구(72학번, 성공회대 교수), 박석운(73학번, 법대) 등의 노력으로 차츰 안정을 찾아간다. 김창우는 선배들의 지도 하에 정의헌, 장기영, 김현준, 박태주 등 74학번 동기들과 함께 경제사, 경제학, 사회사상 등의 학습을 하면서 차츰 우리 민족과 사회의 현실에 대해 눈뜨게 되고, 유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키워나가게 되었다. 선배들 중에서도 일찍이 노동운동을 꿈꾸고 보일러공으로 일하고 있던 김승호(68학번), 민청학련 사건의 맹장 김병곤(71학번), 박석운(73학번) 등이 특히 김창우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면서 2학년 2학기 초 학과 선택을 할 때 좀더 사회운동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 경제학과를 선택했다. 아버지 뜻을 어기고 처음으로 자신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1976년 3학년이 되면서부터 한사의 회장을 맡게 된 김창우는 어떻게 살 것인가 자신의 진로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2학기가 되자 자신 역시 선배들의 뒤를 따라 학생운동의 일선에 나서기로 결심한다. 반독재 데모를 주동하고 감방으로 가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이 지도하는 후배들의 영향이 컸다. 후배들에게 평소 했던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그리고 감옥살이를 마친 후에는 선배 김승호처럼 노동현장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3학년 당시 서울대 학생운동권에는 준비론적 분위기가 강했다. 현장 준비를 위해 정치투쟁은 유보되거나 자제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창우의 문제의식은 반독재투쟁에 있어서 학생운동이 75년 이후의 침체된 분위기를 깨야하고, 다음 투쟁으로 이어주는 디딤돌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학생운동은 학생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반독재투쟁을 해야 하고, 그를 통해 학생운동의 소시민적 한계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시 현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차피 위장취업할 수밖에 없는데 감옥에 가는 것이 현장 들어가는 것에 장애가 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은 자기 현실조건에 충실하게 역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학교가 너무 조용하지 않아?”

76년 2학기 초 어느 날 그는 같은 과 동기이면서 연합서클인 향토개척단 단장을 맡고 있던 친구 양춘승에게 자신의 뜻을 내비춘다. 그 장면을 신동호는 『70년대 캠퍼스1』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교문 앞에서 그(김창우)의 ‘콜’을 받은 양춘승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학교가 너무 조용하지 않아?”

지나가는 말투였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그 말이 무얼 뜻하는지를. 그 역시 지나가는 말처럼 되받았다.

“어디 할 놈이 있을까.”

김창우의 말이 그의 귓전을 때렸다.

“내가 좀 알아볼게.”

선문답 같지만 무서운 뜻이 담긴 대화였다.

이렇게 시작한 양춘승과의 데모 모의는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77년 5월 김창우를 감옥으로 인도했다.(자세한 과정은 신동호의 『70년대 캠퍼스1』 284쪽~293쪽 「관악산 유격대 ‘삼우일승’」을 보라)

서울구치소에서 양춘승을 다시 만났지만 오래 같이 있지는 못했다. 서울구치소에 수용된 시국사범이 늘어나면서 소내 정치투쟁이 가열화되었고, 이것이 사건화 되어 주동자들이 추가 기소가 되면서 교도소 측이 수용자들을 전국적으로 분산시키기 시작했다. 김창우는 한신대 김하범과 함께 장기수들을 수용하는 광주교도소 특사로 보내졌다. 광주에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장기 징역을 살고 있는 이현배, 유인태, 김효순, 이강철 등이 먼저 와 자리잡고 있었고, 김창우가 간 뒤에 송기숙 선생 등 광주 팀들과 이영희 선생, 김병곤 등이 들어왔다.

광주교도소에서 김창우는 이강철, 김병곤 등 선배들과 함께 소내투쟁에 앞장섰고, 그 결과 운동시간을 재소자들이 자율 조정할 정도로 소내 처우가 현저히 개선되었다. 그러자 자신감을 얻은 이들은 함께 수용된 장기수들과 함께 마찬가지로 대우해 달라는 차별철폐투쟁에 돌입했고, 결국 그 요구를 관철시켰다. 그러나 교도소 측의 보복을 불러와 주동자들은 다른 교도소로 이감보내졌다. 이 때 이 일로 김병곤은 공주로 이감갔다.

서울구치소에서 소내투쟁으로 추가 기소된 김창우의 추가건 재판이 광주에서 열렸다. 김창우는 이 재판을 위해 공들여 항소이유서를 썼다. 한국사회의 성격과 민주화투쟁의 목적에 대한 과학적 규명을 위해 쓴 이 항소이유서는 소내 선배들에게 회람되어 호평을 받았다. 추가건 재판은 구형 2년에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징역생활이 길어지면서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노동운동과 6월항쟁

김창우는 박정희가 김재규에 의해 사살되고 긴급조치9호가 해제되기 직전인 1979년 12월 5일 석방되었다. 그러나 광주교도소에서 얻은 신경쇠약증세는 석방 후에도 계속되었다. 그 바람에 석방 후 노동현장으로 들어가려던 계획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 큰 아버지 농장에서 6개월 요양하다 직장생활 하면서 건강을 추스르기로 하고 1981년 6월 비교적 근무조건이 좋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입사했다.

83년 초 건강이 조금 회복되자 KOTRA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현장 취업 준비를 했다. 전기학원을 다니면서 전기기사와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 취득 후 전기공사 현장을 돌아다니며 전기기술을 습득한 후 반월의 한 공장 변전실 전기관리공으로 들어갔다. 학력은 공고 중퇴로 위조했다. 신분이 탄로나 해고되지 않도록 조심해서 활동했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 일이 터졌다. 86년 서노련의 영향 하에 조직된 지하 노동운동조직 안산노동자해방동맹 사건이 터져 수사기관의 일제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집에 들어가지 않고 사태를 관찰하다가 자신의 집에까지 경찰의 손이 뻗치자 87년 초 김창우는 회사를 그만두고 정의헌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왔다.

부산에서 다시 공장에 들어갈 준비를 하던 중에 김창우는 역사적인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맞게 된다. 우선 취업은 유보하고 가두투쟁에 집중했다. 김창우는 밖에서 유인물을 만들고 시민들에게 뿌렸다. 노동자대투쟁 때는 부산의 국제상사투쟁에 집중하고 현장에 있는 일꾼들과 연계하면서 지원투쟁을 조직했다. 6.29선언 이후 열린 대통령선거 국면에서는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활동은 하지 않고 부산노동자협의회라는 노동운동단체를 조직하여 노동자의 권익이나 이해를 선전 선동하는데 집중했다. 88년에는 단순한 노동상담 지원 단체에 지나지 않던 부산노동자협의회를 해체하고 87 노동자대투쟁 과정에서 올라온 선진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기 위해 부산노동자연합을 조직했다. 현장활동가와 선진노동자들의 조직이면서도 현장에 조직적 기반을 가지는 조직체로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노운협 운동과 지역노동운동

지역 노동운동에 전념하고 있는 김창우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서울의 전국노동운동협의회(노운협)를 구하라. 91년 민중당이 뜨면서 피디파 중심으로 노운협 활동가들이 대거 민중당으로 이동하자 노운협이 깨질 위기에 처했고, 이 노운협 유지를 위해 지방 활동가를 차출하기로 한 것이다. 김창우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조직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어 서울로 올라와 노운협 실무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2년간 노운협에서 일하면서 박창수 사건, 전국연합 건설 등 많은 일들을 치루어냈다. 밤낮 없이 몸을 돌보지 않고 일에 몰두하는 김창우에게 간경화가 찾아왔다.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 다시 부산에 내려왔다. 93년의 일이다.

부산에 내려온 김창우는 집에서 요양하면서 다음 활동을 모색했다. 몸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전기기사 자격증을 활용해서 거제도와 부산 등에서 전기공사업체에 취직했다. 생활의 방편이면서 노동현장과 연결을 놓지 않으려는 생각에서였다.

1997년 IMF 사태 이후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고 비정규직과 일용노동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김창우는 이들의 역량을 묶어낼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생각하다가 이들을 지역 중심의 노동자조직으로 담아내기로 결심하여 가까운 노동운동가들과 협의하여 2000년 부산지역 일반노조를 창설한다. 이 지역일반노조는 지역 연대 및 투쟁 중심의 노조조직으로 대기업 기업별노조 중심의 산별연맹 또는 산별노조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형태로 제기된 것이었다. 이 부산 일반노조의 활동은 초기에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민주노총 건설 이후 지역의 연대와 투쟁이 급격하게 소멸되면서 지역노동운동이 거의 무력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지역노동운동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조직형태로 주목받으면서 전국적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부산의 일반노조가 활발해지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가입 조합원 수가 1000명 가까이로 늘어나고 활동이 활발해지자 노동운동 정파들이 앞다투어 조직원으로 가입하여 정파들간에 조직 장악을 위한 경쟁이 벌어졌다. 경쟁이 가열되다보니 상대방에 대한 비방, 중상, 모략이 행해지면서 조직이 혼란에 빠졌다. 이를 보다 못한 김창우가 ‘교각살우(矯角殺牛) 우려가 있으니 서로 자제하자’고 충고하고 나섰다. 그러자 정파들은 ‘편드는 거냐’며 김창우까지 공격하고 나섰다. 정파들의 소모전에 넌덜머리가 난 김창우는 2003년 재충전을 이유로 노조 활동을 당분간 중단하기로 했다.

 

인생 후반전에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

2004년 노동운동 현장에서 자신의 역할이 한계에 부딪혔음을 절감한 김창우는 창원 노동대학원에 입학하여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20여년 노동운동의 경험과정에서 가진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석사논문 ‘전노협 청산에 관한 연구’을 작성하여 제출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2007년 출판사 후마니타스에서 ‘전노협 청산과 한국노동운동’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그는 이 책으로 2008년 2월 16일 ‘제3회 김진균상’을 받았다.

 

이 논문은 한국노동운동이 광범한 기층 노동자들의 꿈과 희망과 투쟁에 기초하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려던 운동에서, 상층을 중심으로 한 법과 제도와 정책과 교섭에 의존하는 권력지향의 합법 개량주의 운동으로 변화해버린 것에 대해, 1995년 전노협이 청산되고 민주노총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김창우는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이 지역적, 전국적, 산업적 공동투쟁과 연대투쟁을 통해 중소 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들까지 포함하는 계급적 단결과 연대조직으로서의 산별노조를 건설하기 보다는, 대기업노조 중심의 합법적인 기업별노조에 기초한 산별연맹의 과두적 지배체제로서의 민주노총이라는 조직형태를 채택했던 것이 문제의 근본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하층 조합원들의 연대투쟁과 조직역량이 중심이 아니라 상층 간부들에 의한 정치적 교섭과 정책을 중심으로 한 권력지향의 관료적인 조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이 현재 상태를 타개하는 길은 현재와 같은 무늬만 산별이지 실제적으로는 기업별노조에 기초한 산별연맹의 과두적 지배체제에 불과한 민주노총체제를 해체하고, 중소 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주체 세력에 의해 공동투쟁과 연대투쟁을 통해 계급적 단결과 연대조직으로서의 진정한 산별노조 또는 전국단일노조체제를 새롭게 건설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잘못된 민주노총 건설의 역사를 바로잡고 첫단추를 새로 다시 꿰어야 비로소 한국노동운동이 본궤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석사학위를 받은 김창우는 석사논문의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자신의 이론을 실증적으로 입증할 필요를 느꼈다. 즉 민주노총이 70-80년대 민주노조운동정신과 전노협의 급진적인 사회변혁정신을 ‘계승’하지 못하고 ‘청산’한 바탕 위에서 세워짐으로써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하는 것을 역사적 과정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2008년 그는 성남에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그리고 10년의 연구 끝에 2018년 ‘민주노총의 운동노선과 노동법개정 총파업투쟁, 1996~1998’이라는 박사논문을 완성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에서 김창우는 민주노총 1기 집행부가 결국 상층중심, 교섭중심으로 가게 된 근본 이유는 기업별노조에 기초한 산별연맹들의 과두적 지배체제로서의 민주노총이라는 조직노선을 채택한 근본적 한계 때문이었고, 그 결과가 노동법개정 총파업투쟁을 비롯한 민주노총의 거의 모든 투쟁과 활동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

김창우는 지금 의왕시 인덕원역 근처 작은 연립주택에서 살면서 연구와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젊은 시절 노동운동에 투신하여 어쩌다보니 혼기를 놓쳐 독신으로 살고 있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추구하면서 살아온 지금까지의 삶에 후회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금 노동운동이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도 결국 가까운 장래에 극복될 것이라고 믿는다. 전노협으로 출발했던 변혁지향적인 노동운동은 사회개혁(개량)주의를 표방하는 민주노총과의 노선 투쟁에서 패배하여 현재까지는 비록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기 위한 길은 계속 추구할 것이고, 새롭게 형성되는 새로운 주체세력에 의해 조만간 길이 열릴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자신은 첫 단추를 잘못 꿰어 잘못 흘러가고 있는 한국노동운동의 역사를 바로잡는 데 작은 기여나마 하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어쩌면 그의 인생의 후반전은 이제 시작되고 있는지 모른다.

공동선, 2019년 11-1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는 공동게재에 동의함).

목, 2020/02/20- 21:57
22
0

역사적으로 보면 전쟁으로 인한 사망보다 질병과 전염병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 Clausewitz의 표현에 의하면, 인류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해당사회가 치루어야 할 전투를 전략적 개념을 통해 수행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치명적인 바이러스와 전쟁을 이기기 위한 전략을 구상하기 위해서는 매우 복잡한 연결망을 구성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다차원 속에서 타격을 가해오는 상대(질병)의 복잡다단한 성격을 이해해야만 한다.

지난 3월11일 WHO가 COVID-19를 팬데믹으로 공식 선언하였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에 대비하지 못한 상태이었다. 그러나 수십 년 전부터 전문가들은 전염병이 수시로 발생할 것이며, 세계화와 인구 증가, 불평등과 기후위기 등으로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게 될 것을 여러 차례 경고하여 왔다.

특히 세계화로 이루어진 전례가 없는 연결성 즉 대도시권의 대중교통수단, 빈번하게 이루어진 항공여행, 대규모의 크루즈 관광 등이 대양과 대륙을 정기적으로 연결하면서, 많은 국제 행사들이 이루어지고 산업계의 공급사슬구조가 형성되면서 팬데믹의 조건을 악화시켜 왔다. 그 결과로 각국 정부들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차원에서 제공해야 할 기본적 사회정책이 위축되었다.

COVID-19가 발발하자 각국 정부들은 지역봉쇄와 여행제한 그리고 국경차단을 통해, 연결고리를 통제하면서 대응해 왔다. 그러나 연결고리에 대한 전면적인 봉쇄는 해답이 아니다. 반대로 국제적인 지도자들간의 협력과 합동적인 과학적 연구가 이번 위기를 극복하는데 핵심이다. 요점은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연결고리의 시스템이 주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추구하는 것이다.

COVID-19의 사태가 우리에게 시스템에 대한 조언을 주고 있는데, 이미 주지하듯이 세계화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금융센터처럼, 연결고리의 시스템이 파괴될 경우에 입는 피해가 연결성이 주는 혜택을 훨씬 능가할 것이라는 점을 팬데믹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현재 위협이 던지는 근본적 도전은 연결성과 회복력 간의 거래인데, 후자 즉 회복력이란 사회가 시스템의 충격에서 제자리로 돌아오는 능력을 의미한다.

복잡계의 이론가들은 잘 짜여진 연결고리가 시스템적인 회복력을 강화시킨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 단, 기존의 관계라는 요소가 변화된 이후에 가능하다. 이는 특히 수많은 상호연결 고리들이 사회시스템 전체를 매우 빠르게 뒤흔들고 의도하지 않았고 예측도 할 수 없는 재구성의 결과를 만들어 낼 때에 유효하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대체로 세계경제에 유익하다. 그러나 중국이 2003년 이래 세계에서 두 번째 규모로 성장한 이후 발생한 이번 COVID-19는, 지난 SARS와 견주어 볼 때, 중국과 세계를 묶는 연결고리의 기능과 승수적으로 결합하여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연결성과 회복력이 균형적으로 제자리를 잡게 하는 전략적 방침은 회복력을 극대화하는 영역에 국가적으로 시스템을 준비하고 환기시키는 것이다.

우선, 이는 전략수립의 결정과정에 큰 변화를 요구한다. 국가의 이익에 초점을 맞추어 왔던 전통적인 방식에서 탈피하여 사회경제적으로 초연결화된 시스템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특히 작고 단순한 사건이 복잡한 사슬 속에 사방으로 파장을 야기시킬 수 있는 국제적 연계의 복잡성에 유의해야 한다.

두 번째, 이러한 결정을 통하여, COVID-19와 같은 전염병의 전파성과 싸우는 국가단위의 능력을 배가시키는 효과적인 방법들을 찾아내야 한다. 예를 들어 팬데믹과 싸우는 최전방을 지원하기 위해, 부자국가들과 국제적인 보건기구들이 지역단위로 팬데믹을 통제하는 국제적인 시스템을 공동으로 갖추어야 한다.

팬데믹은 각국의 질병센터만 고립적으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 시스템의 가장 약한 고리를 공격한다. 이러한 약한 고리가 붕괴되면 사방으로 확산되며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초기에 대응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다. 약한 고리에는 이주민 수용캠프, 빈민촌, 공공보건이 취약한 빈곤한 나라들이 해당된다. 유엔의 통계에 따르면 22억의 인구가 물부족을 겪고 있으며 42억 인구에게 기본적인 위생시설이 부족한 실정에 있다.

팬데믹은 경제사정과는 상관없이 진행되지만, 동시에 이에 대한 대응은 해당 국가가 회복력을 유지할 시스템을 갖추어야 가능하다. G20 국가 지도자들은 이번 전염병과 싸우는데 가능한 모든 국제적 금융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여전히 보호무역으로 국제간 협력을 방해하고 있으며, 이번에 발생한 시스템적 충격에 대응하는 다자간 무역기능을 신속히 복원시키기 위해 필요에 따라 경쟁력의 회복을 지원하는 환율의 재조정이 필요하다.

COVID-19의 전략적 정책으로 국가마다 사정에 따른 회복력을 승인해야 한다. 식량과 의료 그리고 기타 전략적 물품의 공급을 다양화하여, 공급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충격을 이겨낼 확실한 공급의 인프라가 요구된다.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진료에서 종합 병원에 이르기까지 의료시스템을 갖추어야 하며, 질병에 대한 전문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호주의 경우, 자체적으로 충분한 식량을 생산하고 있지만, 국제적으로 식량 공급체계에 혼란이 발생하면 필요한 대륙에 즉시 식량수송이 가능할 만큼 비축량을 운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국가들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가운데 공공보건의 위협을 관리할 수 있는 탄력적 운용이 가능하도록 정치제도와 사회적 공헌을 개선해 나아가야 한다.

이번 팬데믹은 상황에 대응하는 각국의 역량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키고 있다. 동시에 연결성과 회복력 간의 보다 견고한 균형을 찾도록 세계화를 재조정해야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전략적인 방침을 바꾸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현재 겪고 있는 경제불황은 국가와 세계단위의 활동을 어쩔 수 없이 위축시키고 있지만, 이후 회복될 경제활동은 반드시 팬데믹 이전의 수준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지난 여름 호주가 격은 기후의 재난(산불)은 이미 현재 지구의 탄소화가 지닌 위험이 어떤 것이지 잘 보여주었다. 연결성과 관련하여 재난으로부터 회복력을 갖추기 위하여 우리 삶의 방식과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이 지속가능한 것인지, 우리는 이제 분별하고 성찰을 해야 할 시점이다.

 

출처 : 동아시아 포럼, 2020-05-10.

Evelyn Goh

호주 국립대학교내 전략과 안보분야 연구소 주임교수

Jochen Prantl

호주 국립대학교내 아시아-태평양 국제관계분야 담당교수

금, 2020/05/29- 22:52
21
0

지난 주간에 있었던 대한항공의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당시 회장의 이사직 연임을 부결시킴으로써 한국기업의 경영사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비록 뒤이어 열린 한진칼(대한항공의 1대주주)의 총회에서 조양호씨의 심복으로 평가받는 인물이 대표이사로 선임되어 그 의미가 반감되었다 하더라도, 박정희 군사정권부터 진행되었던 개발독재 정책의 산물로 탄생한 재벌체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단적 경영지배 구조 속에서 일개 개인과 가문이 대기업 집단을 전횡적으로 마음대로 주물러온 소위 황제경영의 폐습에 일대의 경고를 보내고 현대적 경영의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를 정말 실망시키는 것은 조양호씨를 이사직에서 해임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국민연기금 등 공적 투자기관들과 주무부처 장관들이 보인 애매모호하고 불분명한 태도이다.

현대적 의미에서 상장기업은 결코 개인과 가문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더구나 한국재벌기업들의 성장 뒤에는 수많은 국민들의 피와 땀이라는 희생이 있었고 국민경제의 주요 자원을 일방적으로 집중 지원받아온 특혜라는 정경유착의 역사적 배경이 있었음은 모든 국민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반 국민들과 연기금들이 투자하는 증권시장에 상장을 허용하고 기업들에 법인격을 부여한 이유는 해당국가가 지닌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가용 가능한 국민경제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경영하고 나날이 혁신하여 해당 국민들의 경제적 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어가야 할 책임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칙과 맥락에서 개별 기업이 성취한 경영의 이익을 주주로서 배당을 받고 경영자와 종업원들이 기여에 따라 보상을 받는 것은 마땅하고 건강한 경제운영의 논리이다. 사적 소유의 재산권은 대한민국의 헌법 여러 곳에서 명백히 적시하였듯이 국민경제에 대한 정합적인 역할과 긍정적인 기여 속에서 정당하게 보호받고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사회적이며 국민경제생활에 해를 끼치는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이며 사익추구적 행위조차 사유권의 보호라는 이름으로 묵인하는 것을 결코 용납해서는 아니 된다.

이에 3.1서울민회는 문재인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해당 기관들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하고자 한다.

  1. 대한항공 사례를 계기로 국제적 조롱거리인 한국재벌들의 족벌경영 체제를 해체하고 국민경제에 책임을 다하는 현대적인 전문경영의 시대를 활짝 열어가야 한다.
  2. 국민연기금을 비롯하여 모든 공적 투자기관들은 확고하고 분명한 스튜어드쉽(주주행동 원칙)을 일반화하고 이를 예외 없이 시행해야 한다.
  3. 경제사범으로 예건데 일년 이상의 실형을 받은 자가 상장기업의 책임 있는 경영자리에 역임할 수 없도록 반듯한 윤리지침(Code of Conducts)를 만들어야 한다.
  4. 기업 내에 비리와 특혜가 만연한 현재, 기업의 비리를 밝혀 내는 용감한 내부 고발자들을 보호하고 평생을 보장하는 특별법을 반드시 제정해야 한다.

2019. 04.

 

3.1 서울민회 경제민주화 위원회 일동

월, 2019/04/01- 15:00
21
0

해결할 수 없지만, 관리는 가능한 북핵문제

여러 나라, 특히 한국에서 많은 희망을 가지고 있던 2019. 2. 27. ~ 28. 하노이 정상회담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과 달리, 트럼프와 김정은은 준비된 오찬도 먹지 않은 채 각자 숙소로 돌아가 버렸다. 이것은 갑작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지난 몇 개월 동안 사실상 미국과 북한이 거의 의미 있는 협의를 하지 않은 것을 감안한다면, 하노이 실패는 사실상 처음부터 가능성이 높은 일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노이 회담이 끝난 지 약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실망과 걱정, 그리고 우려감과 긴장감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하노이 정상회담의 결렬은 앞으로 북핵 문제에서 아무 진전이 없을 것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타협은 여전히 가능하다. 문제는 이 타협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관계 국가들이 아름다운 꿈을 꾸는 대신에 쉽지 않은 현실을 잘 인식하고, 모든 참가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약 1년 만에 낙관주의 시대가 드디어 막을 내리고, 현실주의 시대가 다시 찾아왔다.

사진: KBS뉴스

지난 2018년 4월 말, 거의 모든 한국 언론은 ‘낙관주의 쓰나미’에 덮혀졌다. 특히 진보경향 언론이 더욱 그랬다. 기자들은 한반도에서 영원한 평화시대가 도래하고, 악명높은 분단체제가 드디어 무너지고, 이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한반도를 만끽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들은 멀지 않은 미래에, 주말에 묘향산으로 가서 현지의 아줌마가 파는 군옥수수를 먹으며 산에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했고, 다른 기자들은 개성과 평양을 통과하는 기차를 타고 파리로 갈 때가 멀지 않다고 주장했다.

당시에 필자는 이 주장을 보면서 웃음을 짓거나 어깨를 으쓱했다. 솔직히 말해서 당시의 자료들을 잘 정리하고,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수많은 한국 기자와 학자들의 소박함을 보여주는 증거 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 사람들이 믿고 싶은 착각을 연구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18년 봄에 피어났던 많은 희망은, 근거가 별로 없었다.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을 비롯한 남-북-미 삼각관계에서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낙관주의가 사라졌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노이에서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로 지금 한국 관광객들이 금강산 여행 준비를 위해 가방을 싸고 있다고 하더라도, 2018년 봄에 넘쳐났던 꿈은 현실화되지 못했을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도 불가능하고, 남북한 자유왕래도 불가능하며, 남북한의 협력 강화에도 매우 강력한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초래하는 것은 어떤 사람 혹은 정치세력의 나쁜 의도 때문이 아니다. 한반도 문제를 희망대로 될 수 없게 하는 이유는, 사실상 바꿀 수 없는 구조 그리고 여러 관계 세력의 이익의 장기적인 모순과 충돌이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측이 믿을만한 안전보장을 받는다면 핵을 포기할 의지가 있다고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핵을 포기한 북한이 너무 큰 경제 성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도 한다. 누군가는 북한측이 경제건설을 위해 핵 포기 의지가 있다고도 하는데, 모두 다 틀렸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북한 당국자’들이 아니라 실제 ‘북한 당국자들이 가진 생각’이다. 제일 먼저 북한은 핵을 포기할 의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있을 수조차 없다. 북한은 시간을 벌기 위해서 비핵화가 가능하다고 할 필요가 생길 수 있지만, 북한을 이끄는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의 생각처럼 그들은 미치광이들이 아니라, 그들은 매우 합리주의적이며 냉정한 사람들이다. 최근의 세계 경향을 매우 냉정하게 분석하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스라엘의 폭격 때문에 핵개발을 하지 못한 이라크는, 미국의 침공을 당했다. 결국 이라크 통치자였던 후세인은 처형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라크 엘리트계층 사람들이 죽었고 나라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시에도 고급외교관으로 지내던 존 볼턴의 말을 잘 듣고, 핵개발을 포기했던 카다피 대령은 나토의 간섭 때문에 혁명군을 힘으로 잘 진압하지 못했고,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1994년에 러시아를 비롯한 강대국의 국경보장 약속을 믿은 우크라이나는, 자국 영토 내의 소련시대 핵무기를 양도했다. 그들은 2014년에 부다페스트 각서 당사자인 러시아의 침공을 받고 자신들의 보석으로 여기던 크림반도를 영원히 상실했다. 이것을 잘 본 북한 엘리트 계층은, 비핵화를 할 생각이 어떻게 생길 수 있을까?

물론 어떤 사람들은 북한이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체제보장을 받는다면 그들이 기꺼이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동의하기 매우 어려운 주장이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야당이 여당이 될 때’마다 과거의 정책을 매우 쉽게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이러한 경향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이 매우 어렵게 이룬 이란 핵합의를 하루아침에 취소해 버렸다. 미국에서도 차기 민주당 대통령은 트럼프 시대 북한과 맺은 체제보장이든 기타 합의이든 이와 같이 파기하지 않으리라는 근거는 어디 있을까? 그 때문에 북한은 핵무기를 관리할 수도 어느정도 감축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생각은 반드시 몇 기의 핵무기를 잘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이것은 자신의 생존을 다른 아무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북한 엘리트 계층의 입장에서 제일 합리주의적인 태도이다. 그들은 자살가들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해외에서 지원을 많이 받을 수도 없으며, 투자를 받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거의 확실히 사실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70-80년대 남한이나 80-90년대 중국과 같은 고도경제성장을 자랑하는 개발독재를 만들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북한 엘리트 계층의 입장에서 이것은 유감스럽지만 결정적인 걱정이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의 통치자들은 당연히 자기 나라가 빨리 발전하고, 잘 사는 이웃나라들을 따라잡기를 바란다. 그들은 자기 나라가 못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에게 경제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닌 체제유지이다. 그들은 체제유지가 불가능하다면, 자신의 생존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위협을 초래할 것 같은 정책을 하지 않을 것이다. 死者는 富者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 때문에 이라크나 리비아와 같은 체제붕괴를 초래할 수 있는 조치는, 그들에게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정책이다. 그래서 북한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비핵화 없이 고도경제성장이 불가능한 것을 잘 알더라도 ‘자살’과 같은 비핵화를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한 대가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같은 이유로 많은 한국 사람들이 희망하는 남북한 자유왕래도 꿈 뿐이다. 지난 2018년에 북한은 오랜만에 1인당 GDP 통계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북한 경제학자들은 2018년 북한의 1인당 GDP를 1214달러로 발표했는데, 이것은 남한보다 25배 작다. 이 세상에 남북한만큼 생활수준, 소득격차가 심한 이웃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북한 엘리트 입장에서 이것은 매우 위험한 사실이다. 인민들이 남북한 격차를 잘 알게 된다면 당연히 만성적인 위기를 야기한 체제에 대해서 불만이 많아질 것이고, 서울 주도 흡수통일을 통해서 자신들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질 수도 있다. 이것은 당연히 환상이지만, 인민들은 열심히 믿을 것이다. 그 때문에 인민들 사이에서 이와 같은 외부생활에 대한 지식이 많이 확산된다면, 김씨일가 그리고 엘리트계층은 나라를 통치하고 국내 안전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문제는 북한 엘리트계층이 나라의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전임자들에게 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다수의 경우 그 사람들은 자기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엘리트 계층이었기 때문에 자신도 그 자리에 있는데, 그들이 자신의 先代들을 비난하고 격하할 경우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험해진다. 先代에 대한 공격은 북한 엘리트계층의 정당성을 파괴하는 행동일 뿐이다.

그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전례가 없는 북한의 쇄국정책은, 북한 엘리트 계층이 편집증 환자이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쇄국정책은 북한 국가의 생존조건, 북한 국내안전의 유지조건이다. 북한 백성들이 남한을 비롯한 외부 세계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잘 알 수 없어야 체제유지가 가능하다.

쇄국정책은 북한의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핵심 이유 중의 하나이다. 등소평의 중국과 박정희의 한국이 잘 보여주었듯이, 해외로부터 투자와 기술 교류뿐만 아니라 문화, 민간 등의 교류를 많이 할 때 경제기적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엘리트 계층이 이 사실을 잘 안다고 하더라도, ‘개방’을 비핵화만큼 ‘자살’로 여길 이유가 이미 충분히 있으므로, 그들은 쇄국정책을 포기할 수 없다. 그들은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과 같은 ‘바깥사람 전용’공간을 마련할 수 있지만, 평양역이나 개성역에서 서울발 파리행 여객열차의 남한 사람들이 하차해서 역 주변을 관광하는 것도, 서울의 어떤 교수가 아무 때나 묘향산에 가서 자유롭게 등산하고, 인민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이것은 북한 집권세력이 사악하다거나 나쁜 의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 아니다. 세계 어디에나 집권세력은 오랫동안 정권을 장악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한국과 같은 민주국가에서 엘리트계층은 정권교체의 경우에도 권력을 뺐긴 사람들은 출구가 있다. 그들은 대학이나 기업으로 가거나, 아니면 야당 활동을 할 수 있다. 북한 엘리트 계층은 권력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옛날 인권침해 때문에 감옥으로 가지 않는다고 해도, 특권과 재산을 전부 잃어버릴 것이다. 즉 그들은 비상구가 없다.

그 때문에 2018년 봄에 많은 사람들이 희망했던 ‘아름다운 한반도의 미래’는 꿈 뿐이었던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북한 집권세력은 내부적인 구조의 한계 때문에 비핵화도, 개방도, 남북한 자유왕래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유감스러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국 정부와 한국 사회는 아름다운 꿈에 대해서 계속 주장할 수 있지만, 마음 속에서 진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필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했던 ‘평화체제’의 꿈이 가능할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남북한의 장기적인 평화 공존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중요한 정치목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현 단계에서 북한의 비핵화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북핵의 동결이나 감축은 가능한 일이다. 하노이 결렬 이후 북한측의 공식 발표를 보면, 그들은 앞으로도 회담을 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많이 강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하노이에서 미국측이 거부한 북한의 제안은 매우 심각한 착각과 잘못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북한측도 타협을 희망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물론 북한은 어떤 조건이라도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측은 영변을 비롯한 핵 시설의 일부를 철거하거나 폐기할 수 있고, 조건이 좋을 경우에는 이미 생산된 탄두, 무기용 플루토늄 또는 HEU의 일부를 반출할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공짜는 없으므로, 북한은 자신들의 이러한 행동에 막대한 보상을 받기를 희망한다. 적어도 대북제재를 완전히 완화하고, 대규모 대북 경제지원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볼 때, 미국(또는 남한)의 경제적인 양보는 정치적인 양보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북한측은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또는 수교가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수십억 달러 이상의 보상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극한 현실주의자들인 북한 결정권자들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군사력뿐이다. 이러한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북한측과 타협을 이루기 위해서는 북한 엘리트계층이 세계를 보는 의식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남한측이 북한과 교류를 할 때 거의 불가피하게 직간접적으로 남북 경제협력을 지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수파 박근혜 대통령도, 진보파 문재인 대통령도 통일이나 남북협력이 큰 이익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거리가 아주 먼 낙관주의이다. 하지만 보수파 일부의 주장과 달리, 남북한 경제협력을 지원하는 것은 단순히 퍼주기가 아니다. 남한의 입장에서 보면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목적이니까, 이 목적을 이루는 데 투자하는 돈을 그저 낭비된 돈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남북한 경제협력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남한 납세자들의 돈이다. 보수파 일부의 주장과 달리, 남북한 경제협력을 지원하는 것은 단순히 퍼주기가 아니다.

현 단계에서 북한측은 핵 동결(내지 감축)에 관심이 있는데, 문제는 미국측의 태도이다. 미국측은 이와 같은 부분적인 해결 방법을 결코 지지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지 벌써 몇 년 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포용정책도, 강경정책도 북한의 비핵화를 불러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치구조를 감안하면, 핵 관련 전략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중급이나 하급 공무원으로 볼 수 있는 한반도 전문가들이 아니다.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백악관, 의회, 국무성, 국방성 등을 움직일 수 있는 핵심 인물들이다. 유감스럽게도 그 사람들도, 미국 여론도 아직 착각을 극복하지 못 했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힘이 많은 주류 의견인 강경론은, 이와 같은 타협이 비확산체제를 위반한 파렴치한 국가에 대해서 보상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북동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유지보다 전세계에서의 핵 비확산 체제 유지를 더 중요시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북핵 동결(내지 감축)에 대해서 반대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북핵 동결은 전 세계 핵확산의 대문을 여는 전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측의 이러한 우려감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지금도 앞으로도 남한 외교관들은 미국측도, 북한측도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찾으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미·북 양측 모두 불만이 없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 있는 타협안’이 없다면, 한반도에서의 장기적인 평화공존은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핵 때문에 여전히 걱정이 많은 미국은 2017년과 비슷하게 가끔 대북 압박 정책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북한측도 핵동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자신의 핵, 미사일 능력을 더욱 열심히 개발하고 가끔 위기를 도발할 것이다. 그 때문에 남한은 북미 관계에서 위기를 예방하려 중개인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양측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타협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이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북한 관리’는 값싼 일이 아니다. 북한은 물질적인 보상 없이는 어떠한 타협에도 응하지 않고, 미국측은 ‘비핵화’를 포함하지 않는 모든 타협안에 대해서 반대감이 있는 조건 하에서 필요한 비용을 낼 수 있는 세력은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경제노선을 보면 ‘개방이 없는 개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해서 2012년부터 김정은 정권은 1980년대 초 중국과 매우 유사한 경제개혁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북한 경제상황이 많이 개선되었다. 2016년부터 많이 엄격해지기 시작한 대북제재는 북한 경제성장의 길을 가로막았지만, 이 제재가 완화된다면 북한 경제는 다시 활기를 찾고 빠르게 성장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2012-16년까지 김정은의 경제개혁 시기 북한 성장률이다. 당시에 시장화를 시작한 북한에서 성장률은 최소 3%에서 최대 7%로 추정되었다.

북한 경제 정책은 시장화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니다. 현대 세계에서 경제를 살리는 방법은 시장 중심 정책밖에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해외 유학을 통해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달리 현대세계를 잘 관찰한 김정은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등소평시대 중국과 김정은의 북한을 비교해보면, 공통점뿐만 아니라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1980년대 등소평 시대 중국과 달리 북한에서 정치자유화와 개방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북한 정권은 여전히 쇄국정치를 엄격히 실시할 뿐만 아니라, 김정일 시대보다 일정 수준 더 강화했다. 주민들에 대한 감시와 단속이 완화하기 시작할 조짐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북한 집권세력은 개방을 시작한다면 체제유지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개방은 없을 것이다.

현 단계에서 세계 역사에 전례가 없는 김정은 정권의 ‘개방이 없는 개혁’ 시도가 성공할 지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많은 관찰가들은 북한이 개방을 하지 않는다면 외부투자를 유치하지 못해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사실일 수도 있지만, 2010년대 초 상황을 고려하면 ‘개방이 없는 개혁’의 시작은 어느 정도 북한경제의 성장을 초래할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된다. 개방이 없어도 북한은 보다 더 열심히 시대착오적 중앙계획경제를 없애고 시장경제를 도입한다면, 경제상황이 어느 정도 좋아질 수밖에 없다.

남한측은 북한의 개혁을 환영해야 한다. 북한 경제가 많이 개선된다면 북한 인민들의 생활이 개선될 뿐만 아니라 북한 체제의 안정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매우 위험한 벼랑끝 외교를 할 이유가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 때문에 남한은 북한式 개방이 없는 개혁 정책을 많이 도와주면 좋다.

남한은 어떤 방법으로 도와줄 수 있을까? 다른 어떤 것보다 북한 엘리트 계층의 특수성과 우려감을 감안하여, 북한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을 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 햇볕정책의 경험이 잘 보여주듯, 북한은 개성공단과 같은 공단을 몇 개 받아들일 수도 있고, 금강산관광과 같은 ‘제한된 지역에서의 제한된 관광’에 동의할 수 있다. 북한 당국자들은 이러한 교류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이러한 제안에 동의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당연히 북한측은 관광지역이든 공업지구이든 모든 것을 감시, 통제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교류사업을 허가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해서, 묘향산에서 ‘특별관광지역’이 생길 때에만 서울의 교수는 묘향산으로 등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교수와 함께 군옥수수를 먹을 사람들은 현지 할머니들 대신에, 안내원으로 위장한 국가보위부 요원들 뿐이다. 공업지구도 비슷할 것이다. 북한측은 모든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남한측 관리자들과 비공식적으로 이야기를 한 노동자들을 조사하고 처벌하지 못한다면, 공업지구 계획에 동의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한에도 불구하고 남한 입장에서 관광사업, 특히 공업지구는 가치가 많은 사업이다. 이것은 북한 경제발전을 많이 도와주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들에게 매력이 많은 ‘자유롭고 잘 사는 남한’의 모습을 훔쳐볼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이다. 북한 사람들이 남한의 모습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혁명적인 반체제 감정이 솟구칠 수도 있지만, 체제의 단계적인 변화에 대한 많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희망은 북한이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방향으로 계속 바뀌도록 북한 통치권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압박을 가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현 단계에서 제일 바람직한 것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비롯한 농축우라늄 생산시설과 무기용 플루토늄 생산시설 대부분을 폐쇄하고, 그 대신에 유엔 안보리 제재가 완화되고, 북한측이 경제개발 또는 인프라 개발 지원을 받는 것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 이와 비슷한 특구가 몇 개 더 생기면 좋을 것이다. 남한은 북한 철도, 포장도로 건설 등에 많이 투자할 수도 있다.

벌써 말한 바와 같이 미국은 이와 같은 타협에 불만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로 미국측은 북한이 어느 정도 핵무기를 유지한다고 해도, ICBM 발사와 핵실험과 같은 도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환영할 이유가 있다. 다른 입장에서 미국은 북한측이 외부에서 알 수 없는 지하시설에서 수십기의 핵무기를 여전히 보유하며, 규모가 작더라도 여전히 핵 생산 시설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환영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북한 비핵화에 대해서 착각을 극복하지 못하는 미국 언론, 여론 그리고 전문가들이 아닌 정치인들은 반감이 많을 것이다. 미국측의 이러한 반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북한이 사실적인 핵 보유국이 되더라도 겉으로 북핵의 동결 및 감축이 ‘핵동결(내지 감축)의 완성’이 아니라 ‘비핵화 프로세스의 시작’이라고 주장할 필요가 있다.

바꾸어 말해서 북한측이 핵을 포기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조용히 인정하는 동시에, 이와 같은 핵동결이나 감축을 ‘비핵화를 위한 첫 단계‘로 공식적으로 널리 알리며, 북한과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 회담을 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회담은 별 진정성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양측 모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장기적인 목적으로 선전한다면, 국제 비확산 체제에 대한 타격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한다면,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 대신에 ’단계적이고 장기적인 비핵화를 하고 있는 나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두 개념은 아무 차이가 없지만, 후자는 듣기 좋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좋으며, 북핵이 국제 핵 비확산 체제에 만든 구멍을 어느정도 막을 수 있는 담론이다.

이와 같은 해결을 불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디에나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문제의 완벽한 해결을 이루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으며, 덜 나쁜 시나리오나 차악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보통 있는 일이다.

한편으로 남한 입장에서 이와 같은 타협과 장기적인 평화공존은 윤리적인 문제가 없지 않다. 남한 진보파도, 보수파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권문제는, 이러한 핵동결과 개방이 없는 개혁을 열심히 하는 ‘개발독재 북한’에서 여전히 큰 문제일 것이다. 물론 남한측은 이런저런 부문에서 인권침해 완화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데, 그 효과도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북한의 경우 인권침해 문제는 김정은이나 북한 통치권자들의 惡意의 결과보다도 북한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자유가 많으며 잘 사는 남한이 있기 때문에,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체제가 있을 수조차 없다.

이와 같은 타협을 이루기 위한 조건은 현 단계에서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바로 지금 그 타협이 가능한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트럼프는 매우 특수적인 미국 대통령이다. 한편으로 그는 보통 미국대통령과 다르게 대북 선제공격을 하고, 한반도와 북동 아시아에서 전쟁을 불러올 수도 있다. 다른 입장에서 보면 그는 보통 미국대통령이 상상하지도 못하는 새로운 해결방법과 타협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 때문에 평화공존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특수적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 기회를 잡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장기적인 위기와 위협 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Andrei Lankov

목, 2019/04/04- 11:38
20
0

어제로 장관후보자 7명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모두 마쳤다. 이제 후보자에 대해 청문회 보고서를 채택할 것인지, 후보자를 임명할 것인지는 국회와 청와대의 손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번 청문회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은 착잡하다. 흠결이 없는 후보자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우리 사회의 소위 지배엘리트 계층의 많은 문제가 또 다시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후보자 중에 최정호 국토교통부장관 후보자는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주었다. 부동산 투기를 막고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일해야 하는 국토교통부 장관으로서는 자격이 매우 의심스럽다. 1가구 3주택, 꼼수증여, 퇴직 전 공무원특별공급 악용 등 전형적인 토건관료의 행태를 보였으며, 장관후보자 지명을 앞두고 이루어진 증여도 시민들에게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 3.1서울민회를 통해 시민들은 엘리트 대의민주주의를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려움을 선언하고, 민회에 의한 직접민주주의를 활성화할 것을 결의했다. 3.1서울민회 경제민주화분과위원회에서는 당면과제로 △ 삼성 이재용 구속과 한진 조양호의 경영권 박탈 △ 토지공개념 실현과 보유세 강화 및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 △지역에 기반한 사회적경제의 실현 등 3대 과제를 선언한 바 있다.

최정호 후보자의 토건관료적 행태로 볼 때, 우리 경제민주화분과위원회에서 선언했던 토지공개념을 바탕으로 서민들의 주거, 주택 정책을 제대로 펼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최 후보자는 스스로 자질 부족을 인정하고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 만약 전문직 공무원으로 시민들에게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동안의 투기로 인한 불로소득을 서민과 청년들의 주거안정기금으로 내놓고 국민들의 판단을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지배엘리트는 권력과 부와 명예를 독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 부처의 장관은 그 자체로 권력과 명예를 누리는 자리이므로 그동안 부적절한 방식으로 치부한 이들은 이제라도 불로소득을 사회로 환원하고, 공인으로서 명예를 지키고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라도 권력과 명예와 부에 대한 더욱 엄격한 우리 사회의 기준을 세워야 하며, 청와대는 이를 계기로 부실한 인사검증을 더욱 심각하게 성찰해야 한다.

2019년 3월 28일

 

3.1서울민회 경제민주화분과위원회

금, 2019/03/29- 11:26
19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