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식량 안전에 관해 UN & G20에 보내는 공개서한

지역

식량 안전에 관해 UN & G20에 보내는 공개서한

admin | 목, 2020/05/14- 20:44

편집자 주:

코로나사태로 인한 봉쇄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아프리카를 우선으로 식량 공급체계에도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에 세계의 전직 정치지도자들과 주요 명사(50+)가 서명한 후 아래와 같은 공개서한을 UN과 G20 국가들에게 보냈다.

한국정부에게도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농업과 식량분야에 대해 배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절실해졌고, 공공보건과 경제적 충격이라는 혼란이 발생하여도 일반 국민들에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식량과 음식을 수급해야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동시에 환경과 기후라는 문제도 감안해야 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COVID-19가 농업과 식량 및 영양의 안전에 미치는 중기적이자 장기적인 염려를 담아, 국제적인 협력기구들과 개별 국가단위에 적절한 조치를 촉구하고자 아래와 같은 서한을 작성합니다.

현재 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보건의 위기는 일상의 공급체계에 혼란을 야기하며, 이에 따라 기아, 영양부족, 기후변화 그리고 환경적 퇴화에 주목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기에, 2015년에 UN에서 결의한 지속가능목표(SDGs)를 성취하기 위해 국제 간의 적극적이며 집단적인 협력과 행동이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아래와 같은 주요 국제기구들이 이미 제기한 강력한 성명의 내용에 깊은 동의를 표합니다: IMF, World Bank,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FAO), International Fund for Agricultural Development (IFAD), Committee on World Food Security (CFS), the Food and Land Use Coalition, the Global Forum on Agricultural Research (GFAR), the International Dryland Development Commission (IDDC), the Malabo-Montpellier (MaMo) Panel, 등.

동시에 아래의 연구 기관들의 조사와 보고에 따라 세계식량상(World Food Prize)과 같이 책임있는 조직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세계의 관심을 촉구하는 회의를 조직하고 있는 것에 주목합니다: Wageningen University, the Consultative Group for International Agriculture Research (국제농업연구자문그룹, CGIAR), Associaton of International Research, Development Centers for Agriculture (AIRCA) 등.

상기에 언급한 국제적 기구와 지역별 조직들이 보여주는 정치적 분석과 지지들은 국제적 농업의 연구개발과 식량안전에 관한 시스템을 제고할 긴급한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제안들을 지지하며, 지구적 단위에서 실제적인 조치가 신속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COVID-19로 인해 공공보건의 위기가 전면화되면서, 전세계의 식량시스템 역시 큰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고, 공급체계에 혼란이 발생하면서, 아동들의 학교급식이 제한되기도 하며, 식량보조에 의존하던 가구들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농부들은 시장수요를 잃어버리면서, 다가오는 시즌에 수확과 재배의 작업을 어찌해야 할지 시름에 쌓여 있습니다.

일부 국가들이 곡물의 수출을 금하고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가격의 불안정을 악화시키고 통상의 긴장을 초래하자, 곡물가격이 코로나사태 발발 전보다 크게 오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다른 한편에서는 인도주의적 노력을 통하여 식량의 수급체계를 효과적으로 안정시키려는 조치들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은 마땅히 격려되어 왔지만, 문제는 충분한 규모에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양한 지역단위의 식량체계와 지속가능한 자연자원의 관리에 기초하여, 국가와 지역단위에서 회복이 가능한 수급체계를 새로이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가오는 계절에 곡물의 수확과 재배를 지속하기 위한 협력적 조치들이 신속히 이루어져서, 식량의 생산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음식물이 가난한 사람들 특히 어린이와 여성 들에게 제대로 공급되도록 조치해야 합니다. 현재의 위기에 대응하는 단기적인 행동의 필요가 매우 시급하며, 동시에 세계적 규모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식량체계의 장기적 위기에 대해서도 대처를 해야 합니다.

유엔의 SDGs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농업과 식량안전의 현장에서 실제적 조치가 취해져야 하며 이러한 조치들은 마을과 개별국가, 지역과 국제적 수순에서 적절히 관리되는 협력적 노력을 동반해야 합니다.

COVID-19가 발발하기 이전에도 이미 많은 국가들이 SDGs에 접근하는데 실패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사태로 이들 국가들은 농업과 식량분야에 대해 배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절실해 졌고, 공공보건과 경제적 충격이라는 혼란이 발생하여도 일반 국민들에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식량과 음식을 수급해야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동시에 환경과 기후라는 문제도 감안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불행하게도, 상기에 언급된 복합적인 과제에 대한 연구성과들이 환경과 농업 그리고 경제와 공공보건이라는 난제를 만나 각자 밀폐된 공간(silo)에 갇혀있는 상태입니다. 이제 우리는 융합적이고 협력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중기적인 농업과 식량안전 체계의 탄력적 안정성을 더욱 추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이에 따른 재앙의 전조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COVID-19사태로 인해 주요 언론매체의 헤드라인에서 이를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환경에 대해 인류의 행동이 미친 충격이 얼마나 심각한지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지난 몇 주간, 그린하우스에서 발생하는 가스배출이 줄어들고, 물과 공기의 질이 개선되고 있으며, 황폐된 지역에 새와 야생동물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과다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감안하면 갑작스런 경제활동의 중단이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자연자원의 보존, 농업의 생물적 다양성, 탄소배출량의 흡수, 토양과 수질의 개선, 신재생 에너지의 발전, 환경친화적 과학계획, 물과 비료의 효율적 사용, 다변화, 마을단위에 기초한 음식공급 체계 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강조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진행중인 코로나사태와 지구적 위기와 도전에 대응하는 것에는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STI가 매우 긴요합니다. ICT와 바이오 분야의 혁명을 통하여 식량과 농업시스템을 개선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식량의 안전을 제공하면서도, 환경과 기후에 대한 충격을 줄여갈 수 있을 것입니다.

혁신적인 기술을 통한 정밀한 농업에 의한 생산성과 수입의 증대 그리고 농토에 적시의 자원 공급 “more from less” 접근 등이 요구됩니다. 단세포 단백질에서 육류를 만들어 내고 해조에서 바이오 연료를 추출해 내는 등 새로운 사고(out of the box)에 기초한 연구활동을 통한 혁신적인 기술을 시장에 도입해야 합니다: 어류 양식에서 출발하여 가축사육 대신 재배식 단백질생산 등 이러한 사례들을 통하여, 연구실의 성과가 실제 농업으로 연결되고 농장의 생산에서 소비자의 식탁으로 신속한 이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음식의 제공은 인류의 삶에 있어 어떤 경우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여성들에게는 건강의 유지는 인권입니다.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일은 건강을 보장하는 것과 더불어 자기결정(존중)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여성의 건강에 대한 권리가 보장되면, 아이들도 더욱 건강해지고 제대로 영양상태를 유지하면서 가족전체에게 혜택을 가져다 주며, 미래를 담당할 젊은 세대들이 질병과 발육부진에 걸리지 않고 보다 적극적이고 건강하며 생산적인 삶을 즐기게 됩니다.

식량과 농업 체계를 지원한다는 것은 가족들에게 영양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COVID-19에 대한 중장기적인 대응은 한계 상황에 처해 있는 모든 여성과 남성 그리고 아동들의 필요를 제공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당장 농업의 적시 수급에 혼란이 생기면 향후 6-24개월 간 어려움에 빠질 것입니다. 신속한 지원조치를 통해, 지금이라도 속히 농업에 필요한 종자와 비료 그리고 살충제를 공급할 자금을 제공해서, 농민들이 적시적소에 생산물을 공급할 능력을 지원해야 합니다. 수송과 보관 그리고 배분체계를 개선하여 생산에서 수요에 이르는 역량을 제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백지 상태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들부터 지원해야 합니다. The World Bank, the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FAO), the World Food Program (WFP), the International Fund for Agriculture Development (IFAD) , the regional Development banks 등이 그 동안 역할을 지속적으로 담당해온 기구들로, 농업과 식량안전을 지원하기 위한 중대한 임무를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유럽연합과 아프리카 연합과 같은 지역기구와 지원조직들 역시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모두 합쳐 130여 개국에 걸쳐 이미 실행조직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나은 미래를 위해 지원 조치를 신속히 시행하여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CGIAR(국제농업연구자문그룹)은 개별국가단위의 농업연구조직과 민간분야 그리고 NGO 등과 연대하여 보다 탄력적인 식량안전의 체계를 도입하는데 함께 연구활동을 개선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유엔은 2021년에 식량시스템에 대한 정상회의의 개최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면한 도전에 대응하는 지구적 차원의 노력을 조직하는 주요한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소수에 제한되어 있던 성공의 사례들을 모두가 공유하는 표준으로 만들기 위하여, 백지상태에서 해당 정부와 지역은행, 지원기구 그리고 민간 분야 간에 실제적인 파트너십이 형성되어야 하며, 모든 국가들의 농민과 수요자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국제기구들이 나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공동선을 향한 집단적인 노력과 인류애라는 정신의 고양 그리고 가장 약하고 힘든 자들을 향한 애정과 배려를 통하여, 인류사회의 농업과 식량 안전체계에 팬데믹이 던진 복합적인 도전을 극복하고, 보다 튼튼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의 경로 위에 균형적인 발전을 이루는 세상을 만들어 길 수 있다는 것이 우리들의 믿음입니다.

 

Signed by,

H.R.H Prince Hasan Bin Talal of Jordan;

Rashid Alimov, Secretary General of the 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2016-2018;

Abdulaziz Altwaijri, former Director General ISESCO;

Shaukat Aziz, Prime Minister of Pakistan 2004-2007;

Sali Berisha, President of Albania 1992-1997, Prime Minister 2005-2013;

Jean Omer Beriziky, Prime Minister of Madagascar 2011-2014;

Wided Bouchamaoui, Nobel Peace Prize Laureate 2015;

Gordon Brown, Prime Minister of the UK 2007-2010;

Helen Clark, Prime Minister of New Zealand 1999-2008, Administrator of UNDP 2009-2017;

Herman De Croo, Minister of State of Belgium, Honorary Speaker of the House;

Emil Constantinescu, President of Romania 1996-2000;

Mirko Cvetkovic, Prime Minister of Serbia 2008-2012;

Susan Elliot, CEO, President Committee on American Foreign Policy;

Jan Fisher, Prime Minister of the Czech Republic 2009-2010; Ameenah Gurib-Fakim, President of Mauritius 2015-2018;

Nathalie de Gaulle, Founder of Societer & NG-INOV;

Noeleen Heyzeer, Under-Secretary-General of UN 2007-2015, Member of the UN Secretary-General’s High Level Advisory Board on Mediation;

Mladen Ivanic, Member of the Presidency of the Bosnia and Herzegovina 2012-2017;

Ekmeleddin Ihsanoglu, Secretary General of the Organisation of Islamic Cooperation 2004-2014;

Gjorge Ivanov, President of North Macedonia 2009-2019;

Ivo Josipovic, President of Croatia 2010-2015;

Mats Karlsson, VP of the World Bank 1999-2011;

Shigeo Katsu, former Vice President of the World Bank, President of the Nazarbayev University;

Kerry Kennedy, President Robert F. Kennedy Human Rights;

Jadranka Kosor, Prime Minister of Croatia 2009-2011;

Ivo Komsic, Member of the Presidency of Bosnia and Herzegovina 1993-1996;

Chandrika Kumaratunga, President of Shri Lanka 1994-2005;

Zlatko Lagumdzija, Prime Minister of Bosnia and Herzegovina 2001-2002, deputy Prime Minister 2012-2015;

Yves Leterme, Prime Minister of Belgium 2008, 2009-2011;

Tzipi Livni, Minister of Foreign Affairs of Israel 2006-2009, Minister of Justice 2013-2014;

Budimir Loncar, Minister of Foreign Affairs of SFR Yugoslavia (1987-1991);

Justin Yifu Lin, Chief Economist and Senior Vice President of the World Bank 2008-2012;

Petru Lucinschi, President of Moldova 1997-2001;

Rexhep Meidani, President of Albania 1997-2002, Member of the Academy of Sciences;

Stjepan Mesic, President of Croatia 2000-2010;

Peter Medgyessy, Prime Minister of Hungary 2002-2004;

Amre Moussa, Secretary General Arab League 2001-2011, Minister of Foreign Affairs of Egypt 1991- 2001;

Joseph Muscat, Prime Minister of Malta 2013-2020;

Rovshan Muradov, Secretary General NGIC;

Bujar Nishani, President of Albania 2012-2017;

Djoomart Otorbayev, Prime Minister of Kyrgyzstan 2014-2015;

Roza Otunbayeva, President of Kyrgyzstan 2010-2011;

George Papandreou, Prime Minister of Greece 2009-2011;

Ana Palacio, Minister of Foreign Affairs of Spain 2002-2004;

Rosen Plevneliev, President of Bulgaria 2012-2017;

David Pan, Executive Dean Scwarzman College, Tsinghua University;

Petre Roman, Prime Minister of Romania 1989-1991, Speaker of Parliament 1996-2000;

Ismail Serageldin, Co-Chair NGIC, Vice President of the World Bank 1992-2000, former Chairman CGIAR;

Laimdota Straujuma, Prime Minister of Latvia 2014-2016;

Petar Stoyanov, President of Bulgaria 1997-2002;

M.S. Swaminathan, Founder Chairman M.S Swaminathan Research Foundation;

Boris Tadic, President of Serbia 2004-2012;

Eka Tkeshelashvili, deputy Prime Minister of Georgia 2010-2012;

Marianna V. Vardinoyannis, Goodwill Ambassador of UNESCO; Vaira Vike-Freiberga, Co-Chair NGIC, President of Latvia 1999-2007;

Filip Vujanovic, President of Montenegro 2003-2018;

Carlos Westendorp, Minister of Foreign Affairs of Spain 199501996;

Yashar Yakish, Minister of Foreign Affairs of Turkey 2002-2003;

Muhammad Yunus, Nobel Peace Prize Laureate 2006;

Viktor Yushchenko, President of Ukraine 2005-2010;

Kateryna Yushchenko, First Lady of Ukraine 2005-2010, President Ukraine 3000 Foundation;

Valdis Zatlers, President of Latvia 2007-2011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우리는 새로운 10년(decade)의 시작에 들어 왔다. ‘20년대’가 시작되면서 대다수 사람들은 20년대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게 되었다. 현대사에서 매 10년은 더 포괄적인 역사적 서술로 엮인 저명한 상징, 사건 및 주제로 정의되는 경향이 있다. 비록 주어진 사건 또는 발견의 이면에 있는 요소들이 더 오래 지속되거나 깊이 뿌리 박혀 있을지라도 말이다. 예건데, 세계는 1940년대를 전쟁 및 파멸의 시기로, 1960년대를 반체제 문화 및 반항의 시기로, 1990년대를 새로운 ‘현대성’의 시기 등으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역사는 2010년대를 어떻게 돌아볼 것인가? 필연적으로 역사는 항상 나중에서야 깨달음을 주기 때문에 현재의 대답은 불가피하게도 미완성이다. 우리는 세계가 아직 이루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미래 역사가들이 회고할 수수께끼에 오늘날의 사건들이 어떻게 ‘들어맞을지’ 확실히 예상하거나 파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2010년대의 10년사가 1991년에 구축된 ‘자유주의적 합의’가 무너지기 시작한 시대로 개념화되어 역사의 예비 전환점(preliminary turning point in history)으로 회고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0년 동안 통합 및 조화로운 세계에 대한 꿈이 흐지부지 사라졌다.

온라인 대중 매체가 부상하면서 사회가 극적으로 변화하도록 촉진되었고, 성난 반체제 정치 및 정체성 갈등이 뒤끓던 서구에 새로운 형태의 불만을 매개했다. 세계화는 역행했고, 10년이란 시간은 한 때 역사에 국한된 것으로만 여겨졌던 거대한 패권 경쟁이 재현됨에 따라 결국 퇴색되었다.

2010년대는 ‘소셜 미디어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소셜 미디어가 정식으로 출시된 시기는 그보다 10년 전이지만, 페이스북(Facebook), 트위터(Twitter) 및 기타 미디어는 스마트폰이 등장함에 따라 세계 문화로 확고히 통합되었는데 이런 현상은 최근 몇 년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바로 이 장치 곧 스마트폰은 수십억의 인생을 영구적으로 바꾸었고 기존에 시간 할당제로 편리함을 주었던 인터넷을 일상 활동 자체의 본질적 요소로 이에 맞게 편리해질 수 있도록 탈바꿈시켰다. 소셜 미디어는 그 자체가 없는 상황을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 사회에 융합되었다.

결과적으로 대중 소셜 미디어의 부상에는 심오한 정치적 영향이 있었다. 기존 언론매체를 벗어나,이제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견해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새로운 플랫폼과 방식이 생겼다. 그 동안 자주 소식을 접할 수 없던 사람들도 오늘날에는 수백만 명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신문, 텔레비전과 같은 전통적인 매체를 넘어 사람들의 정보원 및 연락망이 다양해졌다.

자연스레 이러한 매체가 없었다면 사회에서 고립되고 소외되었을 이들이 새로이 불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가 생겼다. 2008년 서양 국가들에서 벌어진 금융위기라는 사건과 뒤따른 긴축 재정에 대해 사람들이 소식과 견해를 공유하면서 분노하고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정치가 양극화되기 시작했다.

정치가 양극화되고, 좌파 및 우파의 새로운 움직임이 대중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회에 영향을 미치면서 1991년 이후의 소위 ‘자유주의적 합의’가 산산조각이 났다. 새로이 부상한 포플리즘 운동은 현 상황을 유지하고자 하는 엘리트 계층과 권력 계층을 공격했고, 결과적으로 전세계 곳곳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선거 결과를 야기했다. 이제 ‘중도 정치’를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2010년대는 브렉시트, 도널드 트럼프 등으로 기억되는 시대가 되었다. 확실하게 인지된 세계화의 불확실성 속에서 급속히 형성되는 대중의 불평을 무기 삼아 나타난 현상들이다.

미국 내 변화는 지정학적 파급력을 지닌다. 이른바 1991년 자유주의적 성향을 지닌 서구의 승리가 더 이상의 영향력을 상실하자, 변화하는 세계를 중심으로 엄청난 불안과 불확실성이 자리잡았다. 정치인들은 정치적 문제, 불평등 및 자신들의 실패에 대해 새로운 희생양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에 부상하는 포플리즘을 이용하여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두려움이 조직적으로 자리잡도록 악용하였다.

미국 엘리트 계층은 트럼프 대통령의 부상이 러시아의 잘못이며 모스크바가 소셜 미디어의 거대 기업을 활용하여 편집증을 유발시켰다고 비난했다. 이런 대외 의혹 풍토 속에서 정작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중국에 대한 공포와 미국의 ‘강대국 패권 경쟁’의 부활을 조성하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라는 문구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것이 2010년대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그것은 2010년대가 불확실성과 불안정의시대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고 시사한다.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으로 소셜 미디어 문화가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성난 포플리즘적 민족주의로 변모한 서양사회에 새로운 불안정을 초래했다.

미국은 세계에 대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점점 더 편집증적이 되었다. 이후 미국은 공격적으로 두려움을 유발하고 지정학적 투쟁을 추구하며 오랫동안 유지된 팍스-아메리카나를 여전히 갈망함으로써 실패로부터 벗어나 다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던 시기였다.

 

톰 포우디(Tom Fowdy)

중국 국영방송 CGTN 칼럼니스트

옥스포드 대학교의 중국학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더럼 대학교에서 정치학 전공

목, 2020/01/16- 19:36
7
0

[caption id="attachment_204272" align="aligncenter" width="640"] 출처 : the Sun[/caption]

지난 6개월 동안 호주 동남부 지역을 불태웠던 대형 산불이 마침내 끝났습니다.
13일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주 산불방재청은 공식적으로 호주 산불의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쏟아진 폭우 덕분이었습니다.

큰 산불은 잡았지만, 휴유증은 크게 남았습니다.
1100만 헥타르의 산림이 소실되었고, 33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며, 10억 마리 이상의 야생동물들이 죽었습니다.

특히 코알라는 '기능적 멸종위기(개체수가 크게 줄어 생태계 내에서 독자적 생존이 불가능한 상태)' 상태에 놓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113종의 동물이 긴급지원이 필요한 상태인 것으로 보입니다.

[caption id="attachment_204274" align="aligncenter" width="610"] ▲ 화마 속에서 구조된 코알라 어미와 새끼. 코알라는 이번 산불로 호주 동남부지역에서 기능적 멸종이 우려되고 있다. ⓒthe Sun[/caption]

또한 화재로 단기간 내 4억 톤에 이르는 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지구 대기로 배출되면서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호주는 코알라, 캥거루로 대표되는 유대류의 주 서식지 입니다.
이 신기하고 귀여운 동물들을 비롯해 호주의 자연 생태계가 큰 피해를 입자 이를 걱정하는 지구 시민들의 기부와 도움이 이어졌습니다.

한국에서도 호주 산불을 안타까워하는 많은 시민분들이 환경운동연합을 통해 소중한 후원금을 모아주셨습니다.

3차에 걸쳐 진행된 해피빈 모금함으로 총 2천 800여만원의 후원금이 모였고, 가수 GOT7(갓세븐) 진영님은 1천만원의 후원금을 보내주었습니다.

이 후원금은 환경운동연합의 지구의벗 연대 단체인 지구의벗 호주(Friends of the Earth Australia)에 순차적으로 전달되고 있습니다.

산불 이후 지구의벗 호주는 야생동물 구조와 케어 활동, 자원 소방관들을 위한 지원 그리고 서식지가 불타버린 야생동물 먹이 주기 활동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년 해 온 호주 동남부지역의 코알라 개체수 조사를 추가적으로 진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모아주신 고마운 마음들은 지구의벗 호주에 잘 전달해 호주의 재건을 위해 힘을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204832" align="aligncenter" width="540"] ▲ 호주 지구의벗이 산불 이후 지역 단체, 동물보호소와 함께 야생동물 구호 활동 및 먹이주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구의벗 호주[/caption]

[caption id="attachment_204840" align="aligncenter" width="640"] ▲ 호주 지구의벗이 지난 1월 30일 호주 산불 생존자들과 함께 호주 4대 은행 중 하나인 ANZ에 대한 법적 소송을 제기했다. ANZ는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투자자금을 대고 있으며, 원고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지구의벗 호주[/caption]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대형 산불이 언제든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호주 산불이 대형화된 이유는 잘 알려져 있는 것 처럼, 기후변화가 만들어 낸 이상기후 때문입니다.
이상기후로 더 뜨겁고 건조해진 날씨가 더 강해진 바람을 만나면서 호주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산불을 대형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 우리나라 강원에서 발생했던 산불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caption id="attachment_204831" align="aligncenter" width="640"] ▲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해 300여개 시민단체가 함께 하고 있는 기후위기비상행동의 주최로, 지난 1월 13일 호주 산불로 희생된 생명을 추모하고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광화문에서 열렸다. ⓒ환경운동연합[/caption]

우리 인류가 이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산불 뿐 아니라 홍수, 폭염 등 이상기후는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위협할 것입니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캠페인과 행동에 함께해주세요.
호주 산불과 같은 재앙이 반복되지 않도록, 이 지구를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의 삶을 지켜주세요.

토, 2020/02/15- 03:56
4
0

2021년 주목해야 할 소득보장제도 개편방향 경제활동 참가시기를 중심으로https://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353/796/001/43c8... style="margin:10px;" />

2021년 주목해야할 소득보장제도 개편방향 토론회 : 경제활동참가시기를 중심으로

2021. 6. 17. (목) 오후 2시, 한국노총 6층 대회의실(유튜브 생중계)

 

문재인 정부는 포용적 복지국가를 지향하며 기초연금 및 아동수당의 상향, 기초생활보장제도 내 부양의무자기준 단계적 폐지, 근로장려세제 확대,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 전국민고용보험 등 다양한 영역의 소득보장제도 개편을 추진해왔습니다. 

 

하지만 인구고령화가 급속도로 진전되고 노동소득이 줄어드는 경제사회적 환경과 더불어 2022년 대선이라는 정치적 환경이 결합되면서 사회복지정책 전반에 대한 개선방안을 도출하여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다만 소득보장제도에 있어서는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여러 형태의 제도들에 대해 분절적으로 논의되면서 거시적 관점에서 소득보장체계 전반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논의는 실종된 상태입니다.

 

노동시민사회단체는 한국사회를 보편적이면서도 포용적인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향후 소득보장제도 전반의 체계를 더욱 두터우면서도 넓게 구성할 수 있도록 개혁을 추동하려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나라 소득보장제도의 전체 체계를 엄밀하게 진단하고 여러 제도 간의 정합성을 검토하고자 합니다. 

 

한국노총, 참여연대,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남인순, 강병원, 김성주, 정춘숙, 강선우, 김원이 의원실이 함께 2021년 한국의 소득보장제도 체계를 진단하고 발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를 개최합니다.

 

토론회 구성

  • 일시: 2021년 6월 17일(목) 오후 2시

  • 장소: 한국노총 6층 대회의실(유튜브 생중계)

  • 주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참여연대

  • 공동주최 의원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남인순, 강병원, 김성주, 정춘숙, 강선우, 김원이 의원실

  • 순서
    • 좌장 : 김진석│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 발제 : 윤홍식│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토론

      ① 김성욱│호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② 정세은│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③ 정세정│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

      ④ 김승연│서울연구원 도시사회연구실장

      ⑤ 유정엽│한국노총 정책2본부장⑥ 보건복지부 복지정책관


 

목, 2021/06/17- 23:18
5
0

코로나 단상

 

김철환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새안산상록의원 원장

 
1. 질병의 대유행을 막을 수 있을까?

1347년부터 3년간 유럽인 1/5의 생명을 앗아갔던 흑사병(黑死病: Plague)은 야생의 설치류(齧齒類:다람쥐·쥐·비버 등)의 돌림병이었다. 벼룩에 의하여 동물 간에 유행하는데, 사람에게 전염된 후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환자로부터의 비말감염(飛沫感染:환자가 재채기나 기침을 할 때 튀어나온 병원균에 의하여 감염됨)과 보균동물을 흡혈한 벼룩에 물려서 감염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유럽의 대규모 인구 손실은 유럽 경제의 기반을 이루고 있던 장원제도와 봉건제도를 뒤흔들었고,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신에 지나치게 의존하도록 하였다. 이후에도 페스트에 버금가는 대유행이 독감, 사스,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페스트를 일으킨 세균보다 훨씬 작은 바이러스이다. 바이러스는 20~400나노미터의 작은 생물체로 정의한다. 나노미터(nm)가 천만분의 1mm이니 얼마나 작은 지 상상이 가능한가? 바이러스는 너무나도 작아서 전자현미경으로만 관찰 가능한 생물체이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생존할 수 없고 동물, 식물, 세균 등 살아있는 세포에만 기생하고 증식 가능하다. 즉, 세포 밖으로 나오면 수 분 내지 수 시간 내 사멸되는 미생물체이다. 따라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사이 직접적인 접촉이나 가래, 침, 성관계 등 매우 긴밀한 접촉이 아니면 옮길 수 없다. 바이러스는 살아있는 세포벽에 붙어서 유전체의 DNA 혹은 RNA를 세포 내로 들여보낸다. 이후 세포 내에서 끝없이 분열되고 증식해서 병을 유발한다. 현재 인류가 알고 있는 바이러스 종류는 수 만 가지이지만, 그 중 인류에게 병을 일으키는 것은 많지 않다. 코로나-19는 평소에는 심한 병을 일으키지 않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변종을 일으켜서 대유행을 일으킨 것이다.

세계의 경제 교류와 인적 교류가 이처럼 활발하고 앞으로는 더 활발해질텐데 감염성질환의 대유행을 막을 수 있을까? 밀접접촉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면 바이러스의 유행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바이러스가 변종을 일으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변종은 아무도 면역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밀접접촉을 통해 국내와 국외로 대유행을 일으킨다. 변종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와 예방하는 백신을 개발하는데 수 개월에서 수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미 유행은 끝난 후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질병의 대유행을 막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2. 바이러스를 이기는 면역체계는 있는가?

우리 몸 면역체계의 컨트롤 타워는 T 림프구이다. T 림프구는 우선 인터페론이라는 천연 방어물질을 만들어서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한다. 또한 T 림프구는 특정 바이러스에 대해 면역적으로도 공격할 수 있는 감작세포로 변화도 하고, B 세포로 하여금 항체를 생산하도록 지휘해서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키고 퇴치한다. 한 번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온 후 없어지더라도 우리 몸 면역체계는 오랫동안 같은 바이러스가 들어왔을 때 이겨내는 능력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면역력이다. 이러한 면역력을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갖추도록 하는 것이 예방접종이다. 현재 홍역·볼거리·소아마비·풍진 등과 같은 바이러스성 질병을 막는데 이용된다. 독감 예방접종도 이런 방식으로 항체를 형성하도록 해서 예방하고 있다. 다만, 독감 바이러스는 변이가 심해서 매년 4가지 종류의 독감 바이러스에 대한 유행을 예상해서 백신을 생산하고 있고, 예방접종도 매년 맞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바이러스를 막는 면역체계는 예방접종을 통해서 미리 갖추는 것이 최선이고, 그럴 수 없다면 물리적으로 화학적으로 우리 몸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차선이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해서 접종을 받으면 예방의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다만, 독감백신도 예방효과가 60% 정도에 불과해서 완전하지 않은 것처럼 변이가 심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평소 개인위생관리로 전염성질환을 예방하고, 건강관리를 통해서 만성질환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혹시 만성질환이 있다면 잘 관리해서 최대한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 몸의 면역력을 강화하여 바이러스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3. 가장 강력한 방역은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 의식이다.

2020년 들어서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독감 바이러스가 크게 유행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망 원인 중에는 극히 일부만 차지한다. 그동안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로 사망한 숫자는 담배 관련 질환으로 사망하는 한국인이 한 해 5만 명인 것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숫자이다. 이 중 간접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수 천 명인데 사람들은 담배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19를 무서워한다. 건강한 사람은 대부분 코로나-19 감염이 일어나도 가볍게 지나간다. 폐렴까지 진행해서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는 건강한 사람에서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과도할 정도로 두려운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새로운 균에 대한 두려움이다. 인간 무의식에 존재하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바로 제노포비아(xenophobia)이다. 나와 다른 것, 특히 새로운 것(사람, 환경, 먹거리 등)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의 무의식 깊이 숨어있다.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본능적으로 새로운 것을 경계하고 조심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합리적인 수준을 넘어서면 득보다 실이 크다. 예로부터 전해온 지혜와 의과학의 합리적인 대처방법으로 이겨내면 되는데 지나친 걱정이나 혐오는 불행한 일이다. 바이러스 결벽증이 사람들에게 퍼져있으면 마스크를 아무리 공급해도 모자란다. 청주시에서 택시기사가 감염되어 승객감염이 걱정되었는데 가족 감염은 있었지만 승객 감염은 없었다. 그 기사가 운행 시에 마스크를 잘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쉽고 상식적인 방법인 개인위생을 지키면 된다.

– 마스크 잘 쓰기(폐쇄된 공간이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 손씻기(30초 이상, 손 세정제로 대신할 수 있다.)
– 손씻기 전에는 얼굴(눈, 코, 입) 만지지 않기

이런 예방 수칙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만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독감 바이러스와 감기 바이러스 등 수많은 바이러스와 세균 감염을 예방하는 수칙이다. 특히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지켜야할 에티켓이다. 인간이 그 작은 바이러스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강력한 자연의 힘이고 현상이다. 겸손하게 자연현상을 받아들이되 인류가 축적한 지식과 연대의식과 공동체 정신으로 재난을 이겨나가는 길만이 인류의 건강과 행복을 지속할 수 있는 길이다.

금, 2020/03/13- 23:26
4
0

필자 주: 

논쟁의 중심에 있는 임미리 교수의 칼럼은 한국사회에 대한 단초적인 스냅사진일뿐.

소모적인 논쟁으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다가오는 총선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정작 빼고 찍어야 할 대상은 미래한국당이라는 좀비를 급조해낸 거시기집단이다.”


<출처: 국민일보>

활자판 경향신문의 오랜 구독자로서 1월말 당시 놓쳐버린 임미리 교수의 칼럼을 다시 읽어 보았다. 촛불연대의 정신을 잃어버린 문재인 정권을 출범부터 격하게 비판해온 필자의 평소 생각과 임교수의 비판 내용이 너무나 유사하여 오히려 감사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를 어찌하랴! 그의 마지막 멘트 ‘민주당만 빼고 찍자”는 앞서 기술한 비판적 지성의 내용을 쓰레기로 만드는 자해행위이자, 역사적 흐름에 대한 배신이며, 기득권 체계에 시달려온 일반시민들을 우롱하는 기만적 행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을.

앞에도 언급했지만, 지난 2-3년 간 보여준 민주당의 잘못과 패착에 대한 임교수의 지적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는 눈앞에 보인 장면을 스냅사진으로 찍으면서, 현재의 시점을 이루는 역사적 맥락을 놓치고 있으며,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촛불혁명의 원인이 되었던 수구의 기득권 체계를 묵인하고 옹호하는 오류를 범한 셈이다.

이 지점에서 현대중국의 분기점을 이룬 ‘서안사건’과 주역인 ‘장학량’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도올 선생은 지난 해 공중파의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오늘의 중국을 만들어 낸 일등공신은 신해혁명의 주역인 손문 선생도 아니고, 중국공산당을 이끌어 온 모택동 주석도 아닌 서안사건의 주인공 ‘장학량’이라고 분명하게 언명하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지만 요약해서 적어 본다. 군국주의자들이 이끄는 일본제국의 군대가 만주와 중국의 중북부 연안지역 대부분을 점령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당의 장개석 총통은 중국민족의 해방을 위한 항일투쟁보다는 팔만대장정 끝에 연안으로 피신해 간 공산당의 괴멸을 위하여 민족전쟁이라는 명분으로 민족내부의 투쟁에 군사적 역량을 집중한다.

마침 그의 휘하에서 서부지역 부사령관직을 맡고 있던 ‘장학량’은 1936년 말 장개석이 서안을 방문하자, 그를 구금시키고 연안의 주은래를 초빙하여 국공합작을 성사시킴으로써 소모적인 민족내부의 싸움을 항일해방전쟁으로 전화시키는데 성공한다. 덕분에 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과정에서 주요한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승전국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장개석이 남경으로 복귀한 이후 1990년 초까지 오랜동안 가택연금 상태에 놓이게 된다.

역사적 계기를 마련한 ‘서안사건’을 거울삼아 우리 시대의 정말 중요하고 핵심적인 현안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현재의 민주당 모습이 1936년 당시 정신나간 장개석의 국민당 정권과 흡사 닳았다고 인정하자. 그런데 국민당 정권이 패착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며 장개석의 처형을 요구했던 일부의 주장을 그대로 실행했더라면 겉잡을 수 없는 대혼란으로 중국대륙 전체가 일제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식민지화 되었을 것이 명약관화했던 상황이다. 당시에는 항일투쟁을 위한 ‘국공합작’만이 정답이었다.

이제 다가온 총선을 앞두고 ‘서안사건’ 당시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비견되는 현재 한국사회의 매판적이며 반역사적 세력이 누구인지를 꼼꼼히 헤아려 볼 일이다.

일제강점기 기간에 친일부역한 세력들의 뿌리와 잔재,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워싱턴에 팔아먹고 해방 이후에도 새로운 시대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짓밟으며 독재를 자행하였던 이승만과 추종세력, 일본군국주의와 괴뢰 만주정부의 행태를 완벽하게 재현시킨 박정희 유신독재와 하수인들,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등장한 신군부 세력과 이에 협조를 다한 속물 언론과 지식인 그룹들, 현재로 사법적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부패하고 무능한 이명박근혜 정권과 이를 태동시킨 수구정당 등이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가는 우리의 발길을 가로막았던 정치적 장애물들이었으며, 다행스럽게 한국 민중들의 역량에 의해 4.19 혁명, 10.26 사건과 80년의 봄, 6월 민주화 그리고 촛불시민혁명 등으로 이미 역사적 평가를 받은 셈이다.

다가온 총선과 관련하여 지난 70여 년 민족의 역사를 더럽힌 정당이름을 역사적 순서로 나열해 보면, 자유당 공화당 민정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등이다. 더구나 촛불시민의 요구에 따라 도입되어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되는 연동형 비례제 도입의 취지를 무참하게 짓밟고 이를 악용하여 좀비 정당인 미래한국당을 태동시킨 거시기 집단들이야말로 상종을 못할 무뢰배들로 총선을 통하여 이제는 용도가 폐기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던가?

촛불정부를 자임하고 출범한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지난 2-3년 동안에 보여준 기대 이하의 행보는 혹독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해방 이후 대부분의 선거역사에서 그랬듯이, 자연스레 그간의 업보에 대한 심판은 총선을 통하여 주권자인 시민들의 집단지성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잘못했다 해서 지난 역사를 그르친 적폐의 집단을 묵인하고 오히려 옹호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서안사건’이라는 극적인 계기를 통하여 참략자 일본군대를 격퇴하기 위한 ‘국공합작’이 이루어지며 중국이 회생하였듯이, 역으로 2020년 한국사회가 민주당의 패착을 빌미로 이명박근혜의 잔당들이 다시 정치를 좌우하는 암흑의 시대로 되돌아 갈수는 없는 일이다.

임미리 교수의 민주당에 대한 비판의 진정성과 본심을 그대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의 마지막 멘트는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빼고 찍어야 할 대상은 미래한국당이라는 좀비를 급조해낸 거시기 집단이다”.

월, 2020/02/17- 19:21
2
0

1403년 아펜젤로-이네르호덴Appenzello-Innerrhoden칸톤 주민들은 매년 4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군도로 무장하고 모여서 칸톤의 새로운 법률을 결정했다. 1990년이 되어서야 모든 칸톤에서 여성들도 선거의 참여가 허용되었고, 일반 남자들의 경우에도 1971년부터 보통 투표가 시작되었다. 글라로나Glarona 칸톤에도 아직 전통적인 “란트스게마인더Landsgemeinde”가 존재하는데, 이는 야외에서 열리는 칸톤 시민들의 입법회의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중세 스위스 특유의 민주적 회의는 다른 모든 칸톤에서는 투표소에서나 우편으로 하는 레퍼렌덤 투표로 대체되었다. 많은 스위스 기초자치단체에서 매년 총회가 열려서 시민들은 기초자치단체에서 정치적으로 필수 현안들에 대해 직접 투표한다.

 

150년 동안 지속된 전통

스위스는 전 세계에서 민주적인 많은 기관들과 국책 사업에서 큰 모범이 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을 제외하고 어떤 다른 나라보다 레퍼렌덤 권한이 매우 잘 발달되어 있다. 스위스의 정치 생활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특히 칸톤과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 사실상 특별한 역할을 담당한다.

의회에서 바라는 헌법 개정에 대한 의무적 실행 레퍼렌덤이 있는 직접 민주주의의 첫 제도들이 1848년 현대 스위스의 첫 헌법에 이미 포함되었다. 처음에 의원들은 오늘날 주변 국가의 많은 정치인들이 계속해서 그러듯이 직접 민주주의의 도입에 반대했다. 1870년대에는 의회를 장악했던 자유-자본주의적 과두정치에 대항하여 장인匠人, 소작농, 노동자 및 지식인 층 시민들의 강력한 국민 운동이 펼쳐졌다. 이 국민운동은 정당의 지나친 권력에 대항하여 더 큰 통제권과 더 큰 직접 참여를 주장했으며, 1874년에는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을 법제화하는데 성공했다. 이 국민 거부권은 오늘날 스위스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레퍼렌덤 도구이지만, 이탈리아에서는 헌법 제138조에 따른 헌법적 레퍼렌덤을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위스 사람들은 국민발안으로 헌법을 개정하여 새로운 규정을 도입할 수 있는데, 몇몇 칸톤에서는 1840년 대부터 이미 정치적 권리가 존재했다. 당시에도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였던 취리히 칸톤은 1869년 국민발안을 마련했다. 이 도구는 1891년 연방 차원에서 도입되어 1921년 국제 조약에 대한 선택적 레퍼렌덤이 추가된다. 1949년에는 연방정부의 긴급하고 법적 구속력 있는 심의를 위한 의무적 레퍼렌덤이 제정된다. 1977년 UN 등의 국제 기구에 대한 가입 결정에 대해서, 그리고 2003년에는 곧 연방법 채택을 의미하는 국제 조약에 대한 승인 결정에 대한 레퍼렌덤 권리가 뒤따른다.

연방 일반법ordinary law에 대한 입법 국민발안(제안적 레퍼렌덤)은 2003년 도입되어야 했는데 입법자들의 거부로 가로막혔다. 기초자치단체와 칸톤에는 그 밖의 직접 민주주의 권리들도 있는데, 그중 재정 관련 레퍼렌덤도 있다. 만일 기초자치단체의 지출에 관한 어떤 결정이 규정된 최소한의 문턱을 넘으면 이 결정은 시민들의 요청에 따라 혹은 법적 의무 상으로도 레퍼렌덤 투표에 부쳐져야 한다.

 

스위스 시민은 어떤 레퍼렌덤 권리를 이용할 수 있는가?

연방차원에서 유권자인 시민들은 (2018년 현재 약 5백만 명) 세 가지 주요 레퍼렌덤 도구들을 이용할 수 있다. 이 모든 권리들은 칸톤 차원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모든 레퍼렌덤 투표는 법적 구속력이 있다.

1. 헌법상 의무 레퍼렌덤(1848년부터): 모든 헌법 개정이 발효되려면 시민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스위스의 몇몇 국제 기구 가입 또한 의무 레퍼렌덤의 대상이 된다.
2.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1874년부터): 5만 명의 시민들(유권자들의 약 1.1%)은 의회에서 승인되었지만 아직 발효되지 않은 법률에 대해 레퍼렌덤 투표를 요청할 수 있다. 서명을 모으기 위해 유효한 시간은 법률 반포로부터 100일 동안이다.
3. 국민발안(1891년부터): 10만 명의 시민들(현재 유권자의 약 2%)이 특정 헌법 조항의 개정, 연장 혹은 폐지를 요청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헌법상의 발안”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주안점은 특정 주제에 대해 정치적 토론을 불러일으키거나 촉진시키는 것이다. 서명을 모으기 위해 유효한 시간은 18개월이다. 의회는 레퍼렌덤 투표에 대한 반대 제안을 제출할 수 있다.

국민발안을 통해 스위스 사람들은 거의 모든 정치적 사안에 대해 레퍼렌덤 투표를 요청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처럼 직접 민주주의에서 배제되는 사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는 세금이나 관세, 국제 협정에 대해서는 투표가 허락되지 않지만, 스위스에서는 어떤 정치적 의제라고 하더라도 모두 시민 투표에 부쳐진다. 직접 민주주의에서 배제된 유일한 주제는 스위스에서 비준된 국제 권리의 규정들이다. 이렇게 모든 정치적 사안에 개입할 수 있는 주권자의 보편적 권리는 스위스 정치체제에서 레퍼렌덤 현상의 중요성을 잘 반영해 준다.

국민발안은 형식과 내용의 일치라는 전제 조건을 존중해야 한다. 이는 국민발안의 법 제안에서 두 가지 이상의 주제를 다룰 수 없음을 뜻한다. 현행 법은 결국 실행 불가능한 제안들은 직권상 기각될 수 있음을 분명히 규정하지만, 그런 상황은 매우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어떤 법 제안이 레퍼렌덤 투표에 부쳐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예전에 투표에 대해 공공 지출로 그렇게 규정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스위스에서는 여전히 세금, 공공 지출, 군사 및 방위 문제, 심지어 정부 형태에 대한 법 제안들이 거듭되고 있다.

국민발안으로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정치적 의제를 결정할 수 있고, 그러므로 연방의회와 함께 일하여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한편으로, 스위스 사람들은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으로 의회에서 승인된 법률에 반응하여 그것을 가로 막거나 확정할 수 있다. 칸톤의회에서 승인된 모든 법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스위스에서는 제도권 기관에서 선포하는, 곧 의회나 정부 측에서 요청하는 레퍼렌덤 투표가 없다. 그것은 자문적 성격이건 심의적 성격이건 마찬가지이며, 앞서 말했듯이 플레시비트 또한 그러하다. 레퍼렌덤 도구는 의무적인 것이거나, 다시 말해 특정한 경우 헌법으로 엄격히 규정되었거나 서명을 모아 시민들이 주도한다.

이런 국민발안의 제안은 형식적 기준에 정확하게 부합되어야 하며, 내용 면에서도 그렇다. 제안을 제출한 후 칸톤의회와 발안위원회 간의 협상이 시작된다. 발안 위원회는 항상 자신들의 제안을 철회할 권한이 있다. 합의에 도달하지 않으면, 시민들의 제안은 레퍼렌덤 투표로 넘어간다. 그러나 의회는 그에 대한 입장을 다수결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 제안을 투표에 부칠 권한이 있다.

국민발안권의 경우 스위스 사람들은 칸톤 헌법의 완전 개정이나 부분 개정, 또 법 의사나 법 조항 제안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칸톤 중 약 2/3 가량에서 시민들은 국민투표를 통해 칸톤 정부의 법령 또한 수정 할 수 있다. 몇몇 칸톤에서는 선출된 정치인들의 소환투표권이 제정되었다. 소환투표의 요청은 국민발안을 통해 개시되지만, 어쨌듯 이 권한은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

확정적 레퍼렌덤의 경우, 선택의 폭이 더 넓은데, 법률에 대한 레퍼렌덤이나 헌법 개정에 대한 레퍼렌덤, 의무 혹은 선택적 레퍼렌덤, 재정 혹은 행정 관련 레퍼렌덤, 연방에서 규정한 국제 협정에 관한 레퍼렌덤 등이 있다. 국민발안이 시민 위원회에서 바라는 입법 절차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반면, 레퍼렌덤은 입법 절차의 마지막 단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항상 그 요청에 대한 다른 시민 청원자들의 숫자가 충분하다는 조건으로 국민투표에 이른다. 최소 서명 인원은 유권자들의 0.8%(취리히)에서 5%(티치노) 사이이다. 레퍼렌덤 요청 후에 발안 위원회는 필요한 서명을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모아야 한다.

 

150여 년간 지켜 온 민주주의 관행

스위스의 이 모든 직접 민주주의 형식들의 특징이 되는 네 가지 기본 원칙이 있다. 첫째, 항상 참여 정족수 없이 찬반을 결정한다. 둘째, 모든 레퍼렌덤 요청이나 국민발안 요청에는 단 하나의 사안을 담을 수 있다. 셋째, 레퍼렌덤 캠페인은 열려 있어서, 누구나 개입하고 찬반을 표명할 수 있다. 넷째, 시민들과 선출된 대의원들, 그리고 행정부 관리들을 포함시키는 민주적 절차이다. 연방이나 칸톤의회를 무시하고 투표에 착수하는 것이 아니다. 연방 차원의 서명 기준점으로 실행적 레퍼렌덤을 위해서는 5만 명, 국민발안에는 10만 명의 서명이 필요하다. 참여 정족수는 스위스에서 토론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없다. 투표하는 사람이 결정하며, 그 이상 이론異論은 없다.

시민들의 제안이나 선출된 대의원들이 제출한 법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요청하기 위한 절차에서 서명의 보증, 확인 및 공증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는 발안 위원회에 이런 것들을 요청한다. 또한 서명 운동을 펼치기 위한 공공 장소 사용의 문제처럼 재정적 측면에서도 서명 모으기 작업을 방해하거나 번거롭게 만드는 관료적 올가미 없이, 자유롭게 서명 운동을 펼치고 정치적 권리를 행사한다. 스위스의 관청에서는 투표 때마다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의 논점을 모아 설명하는 정보를 담은 소책자 형태의 안내서를 발행한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레퍼렌덤 권리는 확정적 레퍼렌덤 권한으로서 발안한 시민들의 높은 성공률을 자랑한다. 레퍼렌덤은 단순히 경고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므로 레퍼렌덤을 시작할 역량을 갖춘 시민 조직은 부득이 입법 절차에 참여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스위스는 수십 년 전부터 독특한 공적 조사 및 공청회 양식을 마련했다. 현재 무엇보다 인터넷을 통해 실시하는 이런 형태의 공청회 덕분에 연방 국회나 칸톤의회는 모든 정당과 조직 및 기업들을 초대하여 각자의 입장을 밝히게 할 수 있으며, 이렇게 견지된 입장은 공식 사이트에서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절차가 더욱 투명해지고, 입법 계획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이 준비 단계에서부터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선택적 레퍼렌덤으로 모든 연방 법률이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 있다. 국회는 대개 입법 과정에서 사실상 비판적인 입장을 수용함으로써 이런 종류의 레퍼렌덤을 피하려고 한다. 결과적으로 승인된 법률 중 일부 소수만이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1874년부터 183차례 있었는데, 그외 34건의 경우 레퍼렌덤 위원회는 필요한 지지를 모아내지 못했다(DFAE, <현대의 직접 민주주의>, 2018).

국민발안은 레퍼렌덤에 비해 성공률이 확연히 낮다. 스위스의 역사상 2017년 2월까지 제출된 446건의 국민발안 중 324건이 10만 명 최소 서명 인원 요건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으며, 209건은 연방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투표자 다수결이나 26개 칸톤의 다수결로 단 22건만이 통과되었다. 114건의 경우, 발안자들이 필요한 서명을 모으는 데 성공하지 못한 반면, 96건의 경우 발안 위원회가 절차가 끝나기 전에 제안을 철수했다(DFAE, <현대 직접 민주주의>, 2018, 11). 1891년부터 2014년까지 연방 차원에서 189건의 연방 발안이 전개되었지만 국민 제안의 단 10%만이 투표 심사를 통과했다. 칸톤 차원에서 국민발안의 성공률은 좀 더 높은 23%이다. 분명 스위스 사람들은 직접 참여를 좋아하는 듯하지만 또 혁신적인 제안들에 대해서는 다소 보수적이기도 하다.

 

법의 속성

보통 스위스 사람들은 한 해 3차례 투표소로 가서 연방, 칸톤, 시군 차원의 사안들에 대해 한꺼번에 투표를 한다. 평균 참여율은 40%대를 맴돌지만, 유엔이나 유럽경제공간SEE 가입처럼 막중한 현안에 대한 투표들이 있어서, 선거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참여율을 보인다. 스위스에서도 99%의 결정이 선출된 정치인들의 몫으로 남겨지지만, 직접 민주주의는 칸톤과 연방의 정치적 결정 과정에 강력한 인장처럼 새겨져 있어 스위스 정치 문화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대체로 1866년에서 2018년 3월 사이 스위스 사람들은 617건의 국가적 레퍼렌덤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그 취지들은 298건의 경우 받아들여졌으며, 333건의 경우 기각되었다. 이런 규칙적이고 집중적인 빈도의 자문은 국민발안이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눈에 띄는 영향력을 미친다. 각각의 사안에 대한 공식 정보 전달 기능도 있는 레퍼렌덤 캠페인은 광범위한 공공 토론이 이루어지게 하며, 각계각층의 국민들이 그에 대한 지식과 비판 의식을 심어 준다. 국민발안의 약 2/3가량이 그저 다음 3가지 영역, 곧 환경과 에너지 보호, 사회 정치 및 제도적 법규와 시민권리의 주제에 관한 것이다.

스위스의 독특한 점 중 하나는 연방 레퍼렌덤 투표에서 이중 찬성이라는 필수조건이다. 어떤 확정적 레퍼렌덤이나 국민발안이 유효하려면 전국 모든 투표자들이 던진 표의 과반수뿐만 아니라 26개의 칸톤 중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렇게 칸톤들 사이에서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조건은, 현실적으로 이 나라의 연방주의를 지키기 위해 다소 골치아픈 문제이기 때문에 적어도 13개 칸톤에서 그 찬성을 얻어내어야 하는 것이다.

때로 학자들은 스위스의 체제를 “절반의 직접 민주주의”로 정의한다. 국회의 입법 절차를 시민들의 레퍼렌덤 권리나 투표를 통한 선거와 결합시킴으로써 정치인들과 시민 사회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대화하도록 압박하기 때문이다. 권리를 온전히 지닌 스위스인들은 그들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자신들을 “주권자”라고 정의한다. 단지 정치인들을 뽑을 뿐만 아니라 언제라도 특정 현안이나 사안들에 대해 결정할 권한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칸톤과 연방 차원의 정치적 결정의 98%는 정치인들이 담당한다. 정치인들은 또 레퍼렌덤 투표의 결과를 적용해야만 한다. 직접 민주주의에서 정치인들은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주역으로 참여하며, 선거구 시민들과 더욱 직접적인 관계에 놓인다.

자주 이런 종류의 직접 민주주의는 입법 절차를 지나치게 지연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날 입법 생산성의 문제는 법의 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질에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마찬가지다. 틀림없이 이탈리아 국회는 지나치게 많은 법률을 양산해 내고, 그것도 지나치게 많은 성공적이지 못한 법률들을 만들어 낸다. 스위스에서는 법률 생산량이 부족한 것을 불평하지 않으며, 입법 절차 상 시민 동의나 직접 관련된 모든 사회적 그룹들의 공적인 참여에 훨씬 더 주의를 집중한다. 행정부는 효율적이고, 경제는 번영하고, 시민 만족도는 높고, 공공 부채는 낮은 스위스는 인구 대비 GDP상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스위스에서도 체제의 개혁을 논한다. 예를 들어, 인구 통계학적 성장에 비례하여 레퍼렌덤 투표를 개시하기 위해 필요한 서명 인원을 늘리는 것이나 연방 차원의 재정적 레퍼렌덤 도입 등을 다룬다. 헌법을 지나치게 부풀리지 않기 위해 일반 법률 상의 연방 국민발안이 제안되었다. 이 도구는 입법자들을 설득해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스위스는 국가에서 조인한 국제 협정에 대해 시민들이 투표할 권리를 훼손하지는 않으면서도 스위스가 지켜야 할 국제적 의무에 어긋나는 레퍼렌덤 투표를 막기 위한 헌법적 권한 행사에 대해 숙고하고 있다. 그러나 참여의 정족수 도입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스위스의 시스템을 이탈리아로 옮겨올 수 있을까?

사람들은 종종 역사적 발전과 특수한 전통을 바탕으로 직접 민주주의는 오로지 스위스에서만 작동할 수 있으며, 유럽 다른 지역에서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스위스에서 특정한 형태의 시스템이 발전했으며, 정치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는 최고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무엇보다 결과이다. 직접 민주주의가 잘 발달하면 시민들은 정기적으로 구체적인 현안에 대해 투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러한 전통이 없다는 것이 직접 민주주의가 확대되는 것에 반대할 논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그러한 문화가 발달할 수 있도록 레퍼렌덤 권한을 규정해야 할 것이다.

많은 경우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반대의 목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스위스 사람이 아니니 이러한 모델을 이탈리아의 현실에 이전할 수 없다.” 직접 민주주의를 스위스에서만 적용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나라는 독특한 발전을 이루어 왔으며, 매우 특별한 정치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혹은 이론적으로 모든 의회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보완할 수 있는 일련의 법률이나 도구가 있기 때문인가?

물론 스위스는 이탈리아나 이탈리아의 지방들에 비해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스위스는 매우 독특한 연방정치를 발전시켰으며, 스위스 사람들은 자신의 칸톤에 대한 소속 의식이 매우 강하다. 게다가 스위스는 정부 구성에서 화합의 원칙을 실천한다. 어떤 “연금술”에 따르면, 연립 정부에도 늘 더 강력한 정당들이 존재한다. 스위스의 모든 정치 관련 조직들은 촘촘한 연결망으로 연결된 강력한 연합주의를 자랑하며, 스위스 사람들은 대개 자신들의 전통에 매우 큰 애착을 갖고 있다.

스위스의 또 다른 독특함도 있다. 국제 정치에서 절대적 중립을 지키고, 지역성을 원칙으로 여러 언어를 사용하며(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모든 칸톤은 그들 특유의 공식 언어가 있다), 다양한 교파의 그리스도교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고, 2017년 현재 이주민 비율이 25%를 넘는다.

연방 조직이 모두에게 공통되는 하나의 연방 국가라는 큰 틀을 유지하는 가운데, 26개 칸톤에 각자의 언어와 문화, 개성을 개발할 수 있게해 준 한편으로, “국민의 권리”, 곧 직접 민주주의 권리들은 시민들로 하여금 각자의 정치 시스템을 자기 자신과 완전히 동일시하게 한다.

연방주의와 직접 민주주의, 이 두 가지는 스위스에서 국가와 사회통합의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아니, 이는 스위스인들 공통의 역사적 유산이 되었다. 결정 과정에서 민주주의 면모는 더 잘 드러난다. 즉 대의민주주의 기구들 말고도 시민들은 구체적인 단일 정치적 현안에 대해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시민 직접 참여의 노정이나 기회는 시민들에게 유리한 법규를 갖춘 명확한 권리에 기반을 둔다. 또한 스위스 시민들은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레퍼렌덤 투표로 결정할 수 있으며, 의회 또한 그러한 사안들을 토론하고 심의한다. 요컨대, 스위스에서는 정치적 주권자인 시민들이 사실상 최후의 발언권을 지닌다. 이 모든 것이 다른 민주주의 체제, 특히 중부 유럽에서 그렇지만,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가능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종종 스위스 사람들은 여러 다양한 레퍼렌덤 투표에서 용납할 수 없는 투표를 했다는 비난을 받곤 한다. 예를 들어, 1992년 스위스가 “유럽 경제 공간European Economic Space”에 가입하는 것을 거부했을 때 그랬고, 그 후 2001년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을 때도 그렇다. 최근에 이탈리아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 새로운 이슬람교 사원의 건설 금지(2009년)와 솅겐Schengen(유럽연합에 속한 26개국들로 서로 여권 검사 없이 국경을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다)협정으로 합의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철회하기로 한 결정(2014년)도 있었다. 이 경우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필터”가 작동된다. 이런 몇몇 불쾌한 결정들은 다른 나라에서 늘 직접 민주주의의 적들의 이용을 당하는 반면, 그 밖의 수백 건에 달하는 다른 사안들에 대한 투표에 대해서는 전혀 주목하지 않고 언급도 하지 않는다. 스위스 사람들은 이민과 난민 관련 정치에서 원칙적으로 소수자 및 외국인들에게 개방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주관적인 이데올로기적 필터를 가동하여 스위스의 어떤 레퍼렌덤 투표의 결과에 대해 “잘못”되거나 “불의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투표 결과를 레퍼렌덤 도구 자체와 혼동하는 심각한 오해가 있는 듯하다. 직접 민주주의는 역사의 특정한 순간에 국민들 내부에 존재하는 입장을 반영하는 거울과 다름 없다. 비춰지는 모습이 싫다고 거울을 깨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외부에서 볼 때 정치적으로 주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때 스위스에서는 “긍정적” 결과와 “부정적” 결과가 교차한다. 스위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만, 세상과 사회 및 정치 개혁에 열려 있는 국민으로서
항상 최고의 전문가들도 깜짝 놀라게 만들 준비가 되어 있다.

스위스에서 실행된 직접 민주주의의 주춧돌은 이미 다른 많은 나라로 이전되었다. 1900년대 초 미국 서부의 연방 주들은 공공연히 스위스의 모범을 따라 주와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요소로서 국민발안와 헌법상의 레퍼렌덤을 시작했다. 일단 미국 연방 24개 주들이 이 권리를 적용한다. 세계적으로 37개국이 적어도 일부 이 참정권을 갖추고 있다. 또한 여러 대표단과 관료들도 매년 스위스를 방문하여 직접 민주주의 운영을 담당하는 기관들을 둘러보며 그 기능을 연구하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는 현대적인 개념이며, 성공적이고 수출에 적합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적어도 150여 년간의 경험으로 스위스는 레퍼렌덤 권한이 모든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 적용 가능함을 보여준다. 의심할 여지없이 스위스에 비해 이탈리아는 모든 차원의 레퍼렌덤 권리에서 매우 뒤쳐지고 있다는 것이 보고된다. 이탈리아에서 주 차원의 직접민주주의는 스위스의 칸톤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종종 직접 민주주의와 관련된 토론에서 스위스의 모델은 다른 곳으로 이전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스위스의 모든 법령을 그대로 베껴 쓸 필요는 없더라도 이 시스템의 기반을 이루는 주춧돌은 참고로 하여 이탈리아 민주주의의 개혁을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위스적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스위스에서 일관된 형태로 실행된 보편적 직접 민주주의의 모델이 존재할 뿐이다. 이 보편적 모델의 다양한 요소들이 이탈리아에서도 적어도 기초적인 형태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확정적 (헌법상의) 레퍼렌덤, 정족수제로, 낮은 진입 장벽, 주 정부의 심의에 대한 레퍼렌덤, 몇몇 특별자치주에서 실시하는 제안적 레퍼렌덤 등이 그것이다. 어쨌든 이런 권리들은 대개 제대로 규범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러니 이탈리아 사람을 스위스 사람들로 바꿔놓자는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민주주의 체제에서 실행할 수 있는 법규를 이탈리아에서도 실시하자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잘 법제화되고 시민들에게 유리한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더 스위스화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더 민주적인 나라가 될 것이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금, 2020/02/14- 23:00
2
0

호주는 비극적인 산불 사태를 겪고 있다.

지난 몇 주 간의 호주의 모습은 악몽과도 같았다. 화염이 벽으로 형성되고, 하늘이 핏빛처럼 물들었으며 거주민들은 화재를 피하기 위해 해변에 급히 모여들었다. 호주 산불은 매우 강력해서 대형 트럭을 전복시킬 정도로 엄청난 ‘화재 토네이도’를 만들어냈다

여름에 발생한 호주 화재는 지난 1년간 발생한 일련의 재앙적인 기상 이변 중에 가장 최근에 발생한 사건일 뿐이라는 사실이 문제이다. 전례 없는 중서부 홍수, 123도(F)까지 육박한 인도 폭염, 유럽 전반에 걸친 전무후무한 기온을 보인 폭염 등이 잇달았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재앙은 기후 변화와 관련되었다.

필자가 위 사건들이 기후 변화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기보다 ‘관련된 것’이라고 말한 점에 주목해야 하는데, 이것은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이들이 혼란스러워 한 구분이다. 각 기상 현상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기에 뉴스 보도에서는 자연 재해 발생에 기후 변화가 미쳤을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기후학자들은 확률에 초점을 맞춘 ‘극단적인 원인 규명(extreme event attribution)’에 몰두하여 이러한 혼란을 타파하고자 노력해 왔다. 기후 변화가 특정 폭염을 일으켰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지구 온난화로 인해 폭염이 발생할 확률이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확률이 많이 달라졌다고 답할 것이다 “기후 변화로 인해 우리가 보아온 많은 유형의 극단적인 기후 현상이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그리고 기상 결과에는 임의성이 많지만, 사실 임의성은 사람들 대부분이 인지하는 것보다 초기 단계에서 기후 변화를 훨씬 더 위험하게 만든다. 현재까지 연구의 경험에서 추정해 보면 플로리다 전체는 결국 바다에 의해 잠식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훨씬 전에 해수면을 끌어 올리는 치명적인 태풍이 흔하게 밀려들 것이다. 마침내 인도 대부분의 지역에는 사람이 살 수 없게 될 것이다. 더구나 그러한 시점이 도달하기 전에 이미 폭염과 가뭄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것이다.

이렇게 설명해보자. 기후 변화가 야기할 전면적인 결과가 나오려면 수 세대가 지나야겠지만 기후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국지적이고 일시적인 재난이 많이 발생할 것이다. 대재앙이 일상적으로 평범한 사건이 될 것이며 우리 눈 바로 앞에서 항시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기후 관련 재난의 확산이 이를 억제하는 대응조치를 무력화시킬지 여부가 중요한 문제이다.

희망적인 신호가 몇 가지 있다.

첫째는 뉴스 매체가 재해 현상에 있어서 기후 변화의 역할에 대해 보도하는 빈도수가 많아진 것 같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폭염, 홍수, 가뭄 등 재해에 대해 장문의 기사를 내보내면서도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언급하려 하지 않았다. 이제 필자는 기자들과 편집자들이 마침내 불통의 침묵을 깼다고 느낀다. 지난 몇 년간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가 상당히 커지면서 대중들도 주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쁜 소식은 주로 민주당원들 사이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공화당 진영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라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와 원인 규명에 대해 과학계의 논쟁이 심각해지면서, 보수파 정치인들의 반환경적 극단주의가 오히려 격렬해졌다. 공화당과 특히 트럼프 정부는 전반적으로 과학의 보고서에 대해 적대적이 되었다. 과학자들은 사실상 공화당의 딥스테이트(막후 기득권,)의 일원이 아니던가?

더욱이 이것은 단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 호주 정부는 대륙 전체가 불에 타고 있는데도 석탄 산업에 대한 지원을 재차 확인하고, 이런 류의 환경파괴 사업을 보이콧하려는 행위를 범죄로 다스리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결단력 있는 조치가 시행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시점에 반환경주의가 점점 더 극단적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현재 상황의 병적인 아이러니이다.

이제 기후변화의 위험성은 더 이상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니다. 비록 눈 앞에 전개된 재해가 앞으로 닥칠 거대한 참상의 예고편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는 분명히 피해를 확인할 수 있다.

반면에 적어도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오늘날 온실 가스 배출의 급격한 감소를 상당히 쉽게 성취할 것처럼 보인다. 특히 대체 에너지 관련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하는 탓에 트럼프 행정부는 태양에너지 및 풍력 에너지와의 경쟁에 대항하는 석탄에너지 산업을 필사적으로 지원하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2020년 대선 캠페인에 환경정책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인가? 민주당원 대부분은 환경정책이 주요 사안으로 확대되는 것을 꺼리는 것으로 보이며, 필자는 그 이유를 이해한다. 환경 정책에 대한 우파들의 협박은 추상적이고, 먼 미래같이 느끼며, 공화당이 오바마 케어를 해체하려는 시도의 예처럼 현실적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와 관련된 재앙의 파장이 정치적 산술을 바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필자는 선거 전문가가 아니지만, 최근에 발생한 화재와 홍수를 선거홍보의 내용으로 활용하면서, 도널드 트펌프(Donald Trump)와 측근들이 그러한 재앙을 일으키는 어리석은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점을 경고하는 광고를 통해 선거 캠페인이 어느 정도 시민들의 관심을 유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트럼프의 환경정책은 미국과 세계에게 매우 유해하며, 유권자들은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NYT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이자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 교수

목, 2020/02/06- 19:44
2
0

샌프란시스코의 주택 중간가격은 1백만 달러(약 11억 6천만 원)를 훌쩍 넘었다(“Life on the Dirtiest Block in San Francisco,” New York Times, October 8, 2018). 트위터와 우버 같은 세계적인 기업의 유치를 집값 폭등의 탓으로 흔히 돌리곤 한다. 그곳엔 일자리가 있고 일자리를 얻는 이들이라면 거주할 곳이 필요하니까. 그러나 지금의 터무니없이 오른 가격은 그것로만으로는 충분히 설명이 안 된다. 그렇다면 그 가격을 누가 왜 어떻게 올렸을까? 거기에 누가 일조하고 그 큰 그림을 누가 그렸는가? 그 큰 그림의 승자와 패자는 누구인가? 그것을 따져 보는 것이 이번 편의 목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미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적용된 ‘자유주의 정책’과 직결되어 있다.

이를 위해 힌트를 주는 장면 하나를 먼저 보자.

 

임차인과 사모펀드

#장면 1.

2018년 11월 어느 날 일군의 시위대들이 캘리포니아의 산타모니카(Santa Monica)의 한 회사 사무실 앞으로 몰려가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그 회사는 뉴욕에 본사를 둔 사모펀드 블랙스톤(Black Stone)의 지부이다. 이들은 ‘법률개정안 10(proposition 10)’―일종의 임대차 보호법안 통과―이 좌절되자 이에 항의하기 위해 여기로 모여든 것이다.(“Protesters arrested during Santa Monica rally over rejection of Prop 10,” ABCNews7, November 8, 2019). 도대체 사모펀드와 임대법이 무슨 관련이 있기에 그럴까?

“집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구호를 들고 임대차보호법지지 시위를 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민들 <출처: AP>

그 답은 간단하다. 사모펀드 블랙스톤이 바로 주택임대사업을 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런데 보통의 임대업이 아니니까 문제다. 영국의 매체 가디언은 캘리포니아 주에서의 주택 가격과 임대료가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매체는 이것을 ‘성층권 가격’stratospheric price이라고 묘사했다. 얼마나 높이 치솟았으면 성층권이라는 것일까?) 서민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는데 그 원흉이 바로 블랙스톤을 위시한 사모펀드라고 콕 짚어 지적하고 있다.(“How California public employees fund anti-rent control fight unwittingly,” The Guardian, October 23, 2018). 도대체 미국의 임대주택 시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것은 블랙스톤을 위시한 사모펀드가 어떻게 서민들의 삶을 작살냈는지를 살펴보는 것을 의미한다.

 

부동산 업계의 최강 제국, 사모펀드 블랙스톤

스티브 슈워츠만(Steve Schwarzman) 블랙스톤 회장은 2015년 가을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에 “블랙스톤이 현재 세계 제일의 부동산 소유주다”라고 선언했다.(“Blackstone is now ‘the largest owner of real estate in the world’,” Business Insider, November 16, 2015). 그의 말은 허튼 소리가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제시한 다음의 도표를 보라. 그야말로 부동산업계의 제국 중 제국이 바로 블랙스톤이다. 도표는 2010년에서 2015년 사이에 부동산 업계에서 선두를 달리는 10개의 사모펀드를 보여준다. 블랙스톤은 그 중 최강으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도표: 부동산시장의 선두 그룹 사모펀드 현황>

설명: 2010년~2015년 동안 부동산 투자 총액으로 본 사모펀드 선두 그룹의 순위. 블랙스톤이 약 470억 달러(약 55조 원)로 단연 업계 1위이고 그 다음이 스타우드, 론스타가 있다. <출처: 파이낸셜타임스>

어느 정도라 회장이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일까? 블랙스톤은 2012년 7월 기준 미국 14개 지역에 86억 달러 들여 44,000채의 주택을 구입했고, 2019년 6월 현재 17개 지역에서 80,000채를 보유한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부동산업체다. 그런데 부동산은 원래 블랙스톤(Black Stone)의 주력 사업이 아니었다. 했다 해도 상업용만 조금 손댔을 뿐이다. 그러나 2012년부터 전략을 확 바꿨다. 부동산에 주력했고 그것도 상업용 보다는 일반 주택에 꽂혔다. 그런데 그것도 주택을 사고 파는 것이 아닌 임대사업으로.

블랙스톤은 가격이 대폭락한 지역의 은행에 압류된 집들을 대거 매입해서 되팔기보다는 임대사업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채택했다. 알다시피 사모펀드는 현금총알(loads of cash)이 두둑한 재력가들(deep-pocketed investors)로 이루어진 자본 제국이다. 게다가 이 제국은 ‘임대주택증권’(rental-home-backed security)을 발행해 더 많은 자금을 끌어 들여 헐값에 내 놓은 주택들을 아귀처럼 쓸어 담았다.

 

그라운드 제로는 애리조나 주, 피닉스

그런데 블랙스톤이 맨 처음 임대사업 시작한 것은 캘리포니아가 아닌 애리조나 주의 피닉스(Phoenix, Arizona)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피닉스가 2008년 이후 주택가격이 정점에서 2011년 무려 60%나 떨어진 대폭락 지역이기에 그렇다.(“The Future of Housing Rises in Phoenix: High-tech flippers such as Zillow are using algorithms to reshape the housing market,” Wall Street Journal, June 19, 2019). 둘째, 막대한 이익을 노리는 사모펀드에겐 그저 수십 채의 주택 매집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대량매집이 훨씬 남는 장사이니까. 대량매집의 최적지가 바로 피닉스였다. 왜냐하면 피닉스는 뉴욕과 보스턴 같은 대도시가 아니니 원래부터 주택가격이 높았던 지역이 아니다. 대도시는 아무리 거품 붕괴로 주택 가격이 떨어졌다고 해도 피닉스처럼 대량매집이 불가능하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지 반대로 되기는 어렵다. 그처럼 부동산 초짜들이 사업에 손을 대기에는 원래 가격이 낮았던 데다가 거품까지 꺼져 대폭락까지 한 피닉스만한 데가 없었다.

블랙스톤을 위시한 대형 임대주택투자자(큰손)들은 피닉스를 발판(그라운드 제로)으로 하여 조지아 주 아틀란타(Atlanta, Georgia)와 텍사스 주 달라스(Dallas, Texas)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이제는 미국 전역에서 30만 채 이상을 싹쓸이 하고 있다. 물론 캘리포니아도 포함된다. 몸집을 불렸으니 총알은 탄창에 두둑한터. 그 때문에 로스엔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압류된 주택들의 대량매집도 가능하게 됐다. 게다가 이들은 주택공급이 부족한 시장을 선택해서 지역 건축업자들과 결탁해 자신들만을 위한 주택을 짓는 이른바 ‘핀셋 건축’ 꼼수 부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The Future of Housing Rises in Phoenix: High-tech flippers such as Zillow are using algorithms to reshape the housing market,” Wall Street Journal, June 19, 2019).

 

2008년 이후는 사모펀드 세상

2008년 이후는 그야말로 사모펀드의 세상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월가의 대형투자은행은 어느 정도는 감시의 대상이 된 듯 보였다. 적어도 그런 것처럼 시늉을 냈다. 그러나 월가에 기반 한 사모펀드는 거기서조차도 완전히 빗겨 나있다. 그래서 설사 밑천이 별로 없어도 초저금리 거래가 가능해 얼토당토않은 사업 구상도 현실화 할 수 있었다. 수익률에 걸신들린 투자자들이 냄새를 맡고 사모펀드로 마구 유입되었다. 감시와 규제가 없는 곳, 그것은 투기꾼들의 천국이다. 그것은 새로운 월가의 블랙홀이다.

사모펀드의 경영 전략은 매우 단순하다. 사모펀드가 부채를 안고 기업을 인수 한 후 값을 최대한 올려 매각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것을 투자자에게 배분한다. 수익이 난다는 소문이 나면 날수록 돈은 몰려들게 되어 있다. 이른바 차입매수(Leveraged Buyout). 사모펀드가 매수 대상의 자산과 수익을 담보로 은행에서 자금을 차입하여 매수합병을 하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현재 가진 돈 없어도 인수할 기업을 위해 빚을 지고 기업을 인수한다. 그러나 그 빚은 인수 대상에게 떠넘기고 바이, 바이! 망해가거나 저렴한 기업 인수한 뒤 분칠 살짝 해서 또 다른 구매자에게 팔아치운다. 거기에 비상장회사가 상장회사를 사서 합병하는 우회상장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러면 이를 주도한 사모펀드는 엄청난 수익을 창출한다. 때로 이것을 넘어 사모펀드는 매수한 회사의 직접 경영에 손을 대서 인수 기업에 “감 놔라 배 놔라”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수기업에 대한 애정을 갖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오직 목적은 수익창출. 그것도 막대한 수익창출. 수익이 나면 곧 바로 미련 없이 떠난다. 다른 먹잇감을 찾아서.

 

블랙스톤의 2인자 존 그레이 좌우명

블랙스톤은 임대주택 사업을 자회사 인비테이션 홈즈(Invitation Homes)를 통해 시행해 천문학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 그 책임자는 현재 블랙스톤의 2인자, 존 그레이(Jon Gray). “절대로 적게는 먹지 않는다. 크게 먹는다. 그것도 상상이상으로 왕창!”이라는 좌우명을 갖고 사는 월가 사람이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신부동산부호(the new property barons)’라고 칭한 그는 다음과 같이 인터뷰 한 바 있다.

“나는 성공의 취약성을 안다, 그것은 [아버지 다이달로스(Daedalus)의 경고를 무시하고 밀랍의 날개로 날다 태양에 너무 접근해 밀랍이 녹아 바다에 떨어졌다는 인물] 이카루스(Icarus)와 같다. 나는 내 무덤에 ‘그저 상당한 내부수익율(internal rates)을 올렸을 뿐’ 이라는 묘비가 적히길 원치 않는다.”(“Investment strategy: The new property barons,” Financial Times, April 4, 2016).

임대주택 사업에 뛰어들어 사모펀드 블랙스톤을 세계 부동산업계 1위에 올린 존 그레이. 그는 웬만한 수익은 성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상상이상의 수익만을 추구한다고 공공연히 천명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그가 블랙스톤의 자회사 인비테이션 홈즈를 통해 손댄 임대주택사업이다. <출처: 파이낸셜타임스>

가히 그저 고만고만한 성공은 성에 안 찬다는, 즉 확실한 대박만을 노린다는 거대 탐욕의 노출 선언이다. 그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존 그레이의 투자 철칙: 바이(Buy), 픽스(Fix), 앤드 셀(Sell).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미국의 단독 주택 가격은 절반 이하로(40~70%) 수직 하강했다. 특히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가 심했다.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었던 대표적인 곳이기에 그렇다(왜 그곳이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었는지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거품이 갑자기 꺼지고 모든 이들이 부동산 시장에서 손을 털 때, 존 그레이는 역발상으로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즉 매매가 아닌 임대사업으로. 돈 버는 데는 가히 천재적이다. 왜냐하면 당시엔 아무리 집이 헐값에 나와도 구매할 사람들이 없었으니까. 투자처로서의 매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진짜로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대출 자격 요건이 안 돼서 못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으니까 그렇다.

이것을 간파한 자가 블랙스톤의 존 그레이다. 그는 이런 이들이 발걸음을 옮길 곳이 임대주택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자가가 아니면 월세를 살아야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니까(미국엔 전세가 없다). 그래서 그간 등한히 해 온 부동산 사업에, 그것도 전혀 해 본 적 없는 임대주택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뛰어들자마자 바로 압류된 주택 시장의 최강자로 등극했다.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그것을 파이낸셜타임스가 제공한 도표에 잘 보여준다. 임대주택 비율이 금융위기 이후 대폭 상승했기 때문이다. 2005년 33%에서 2014년엔 37%로 증가했다. 2014년 현재 1천 5백만 가구가 임대하고 있다. 그러면 그 이전에는 왜 임대사업이 월가의 큰손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했을까? 그것은 시장규모가 작았기 때문이다. 2005년 당시에는 1천 2백만~3백만 가구만 임대해 거주했기 때문에 큰손 투자자들의 눈에 들어오지 못했다. 월가의 제국들은 적당히 먹는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탐욕에 찌든 야수들에겐 먹잇감도 덩치가 커야 덤벼들 가치가 있으니까.

<도표: 미국 자가주택 대 임대(월세)가구 구성 비율 현황>

설명: 2005년에 임대가구는 33%인데 비해 2014년에는 37%로 4%p 더 증가했다. <출처: 파이낸셜타임스/미 인구조사국>

그레이의 임대주택 투자 전략도 사모펀드의 기본 경영 방침과 그대로 일치한다. 매수대상을 헐값에 차입매수 해서, 약간 분칠해 매각하듯, 임대주택도 개당 헐값에 대량매집해서(buy), 25,000 달러(약 3천만 원) 정도 들여 간단히 손 보고(fix), 임대(sell)하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부동산업계의 절대 강자가 되었다(“Investment strategy: The new property barons,” Financial Times, April 4, 2016; “Jonathan Gray: The Man Who Revolutionized Real Estate Investing On Entrepreneurship In A Big Company,” Forbes, October 18, 2016).

 

규제 없는 곳에 우뚝 선 망나니 제국, 블랙스톤

그런데 임대가구가 늘어난 것은 이들 사모펀드 제국들이 그린 큰 그림 때문이기도 하다. 일종의 피드백효과라 할까? 이제 막 붙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니까. 이들이 주택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았기 때문에 그렇다. 대량매집 자체가 주택 가격 올려놓은 일차적 효과 가져온다. 그리고 대량매집으로 공급도 줄어든다. 그러면 실수효자들의 ‘내 집 마련’ 꿈은 요원해 진다. 천정부지로 오른 집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러니 임대가구가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미국만이 전 세계에서 ‘나 홀로’ 경기가 좋다고 말들 하는 데 앞의 사실의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일반 서민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것은 왜일까? 규제 없는 곳에 어김없이 제국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즉 자유주의 정책은 망나니를 양산할 뿐이다. 이것의 한 가지 예를 지금 캘리포니아를 위시한 미국의 전 지역에서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모펀드의 난동으로 미국의 집값이 하늘로 치솟는 폭등을.

 

내부의 적에게 강탈당한 영토

모든 전쟁은 궁극적으로 영토를 차지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미국의 사모펀드는 이 전쟁에서 백전백승의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자. 사모펀드는 미국의 외부의 적인가? 내부의 적인가? 내부의 적이 승승장구하는 곳엔 자멸이 다음 수순이다. 하긴 서민들의 주거안정성이 파괴되는 마당에 그런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그러니 미국은 더 이상 외부의 적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호들갑은 떨지 말기를….

그렇다면 사모펀드가 집값만을 올려 서민들을 괴롭히고 있을까? 결코 아니다. 모든 제국은 하나를 주면 열을 달라하는 법. 하나에 만족하는 신사 제국은 없다. 다음은 임대업에 뛰어든 사모펀드에 의해 피를 보고 있는 임차인들의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미리 살짝 결론만 말해주고 이 글을 마치고 싶다. 사모펀드가 대량매집 하는 데 아무런 규제가 없듯이, 임대업을 하는 데도 아무런 규제가 없다. 오직 그들이 맘대로 활개를 칠 수 있게 만든 자유주의 정책들만 있을 뿐이다.

 

<참고자료>

“Blackstone is now ‘the largest owner of real estate in the world’,” Business Insider, November 16, 2015.

“Life on the Dirtiest Block in San Francisco,” New York Times, October 8, 2018.

“How California public employees fund anti-rent control fight unwittingly,” The Guardian, October 23, 2018.

“Protesters arrested during Santa Monica rally over rejection of Prop 10,” ABCNews7, November 8, 2019.

“Jonathan Gray: The Man Who Revolutionized Real Estate Investing On Entrepreneurship In A Big Company,” Forbes, October 18, 2016.

“Investment strategy: The new property barons,” Financial Times, April 4, 2016.

“The Future of Housing Rises in Phoenix: High-tech flippers such as Zillow are using algorithms to reshape the housing market,” Wall Street Journal, June 19, 2019.

수, 2020/01/08- 19:34
1
0

편집자 주:

아래의 칼럼은 다른백년에 자유롭게 수시로 기고하시는 김광수 박사의 글로 다른백년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선거를 앞두고 만절필동(萬折必東)과 그림책 <사자와 소년>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대의는 지켜지고, 정도(政道)를 넘어서는 감동이 이번 선거에서 꼭 연출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도 예외 없이 그런 대의존중과 감동은 없을 것이다. 선거라는 것이 언제나 그러하였듯이 정치교본에 따른 선거의미보다는, 정파의 입장과 각 정당들의 이해득실에 따른 현실의 문제로 더 압박해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비례위성정당문제이다. 애초 선거법 개정을 통해 얻고자 했던 등가성의 원칙과 소수정당에 대한 배려의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다수당이 되기 위한 이전투구만 남아있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이는 선거를 정치의 한 과정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이기고지는 게임의 문제’, ‘이익의 문제’, ‘프레임의 개념’으로 이해하다보니 필연적으로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게 되고, 이익이 걸려있다 보니 진영논리가 만들어져 네편·내편으로 나눠져 피터지게 싸울 수밖에 없고, 더해서 우월적 프레임으로 도그마(dogma)하여 승자·패자를 분명히 하려하다보니 승패만 남게 되어서 그렇다. 그렇게 상대방을 죽여야만 내가 사는 것이다.

선거가 이렇게 잔인하다.

연동되어져 진보와 보수를 떠나 과장된 언술과 정치적 선전선동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의도와 속임수는 다반사이고, 주의주장은 포퓰리즘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정도와 비(非)정도는 구분되지 않아 넘지 말아야할 선도 없다. 오직 있다면 유권자와 후보자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직립보행 진화과정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선거는 현실적인 문제이고, 권력을 향한 무한질주이다.

이를 위해 모든 정치세력들은 프레임 전쟁을 펼친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선거는 세 개의 프레임이 작동한다.

정권심판 VS. 야당심판 VS. 적폐세력 부활저지다.

전자는 미00이, 중간 것은 민00이, 그리고 제일 마지막 것은 시민사회진영의 프레임이다.

과연 어느 프레임이 더 많은 민심을 정확하게 반영하게 되고, 승리하게 될까?

당연히 긴 시간과 역사적 관점, 운동적 대의측면에서는 적폐세력 부활저지가 보다 많은 유권자들의 동의를 얻어내어야만 하지만, 현실에서는 반드시 그렇게 일치하지도 않는다.

다만, 최선을 다 할뿐이고, 그 중심에 우리가(시민사회진영과 진보적 대중정당이) 왜 이번 선거를 전략적 사고로 접근해야하는지, 그 결과 얻어진 결론이 야당심판세력과 적폐세력 부활저지세력 간의 연대여야 한다.

이유는 지금의 현 정부가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촛불시민항쟁으로 만들어진 정부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이번 선거는 당연히 적폐세력을 축출한 촛불시민항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이번 선거는 적폐세력들 간의 부활노림이 최고치로 도달하고 있어 이들 세력의 부활을 막는 것이야말로 너무나도 당연한 절체절명의 과제로 되고 있다.

해서 이번 선거는 누가 뭐래도 촛불시민항쟁 버전-2(version-2)이다. 그러니 각 정당들이 제아무리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야당심판이니, 여당심판이니, 대통령 국정전반에 대한 평가이니 하면서 떠들어 댄다하더라도 이번 선거의 의미와 본질이 변할 수는 없고, 적폐세력의 부활저지라는 목표가 부정될 수는 없다.

똑 같은 적용으로 제 아무리 진보적 대중정당의 독자적 후보전술의미가 커다하더라도 적폐세력 부활저지라는 목표를 넘어설 수는 없고, 연동하여 진보적 대중정당 후보당선도 적폐세력의 부활저지라는 목표를 넘어설 수는 없다.(당선시키지 말자는 의미가 아니다. 그렇게 오역하지 않았으면 한다.) 철저하게 적폐세력 부활저지에 복무하는 독자후보전술이어야 하고, 당선전략이어야 한다.

이를 위한 기준점과 관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적폐세력의 범주문제이다. 여러 기준점을 상정할 수는 있겠지만, 함의되고 합의되는 지점은 ①친일세력 ②분단세력 ③보수수구세력으로 규정할 수 있다.

둘째, 민주당에 대한 입장정리문제이다. 여러 주장들이 난무할 수는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정당의 성격이 보수정당이라는 사실, 이것만은 변하지 않는다. 또한 분명한 것은 적어도 이 정당이 보수수구세력은 아니라는 점, 이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을 어떤 태도와 관점으로 대해야 되는지가 분명해졌다.

다름아닌, 이번 선거가 적폐세력의 부활저지에 있다면 이 당과는 연대의 관점에서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이다.

설명은 이렇다. 촛불시민의 이해를 제대로 대변하는 진보적 대중정당이 독자적 힘으로 적폐세력의 부활을 막아낼 수만 있다면, 위 ‘둘째’와 같은 그런 전략적 고려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현실은 진보적 대중정당이 촛불민의를 100% 반영해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 정부와 집권여당 민00에 의해 촛불민의가 일부 반영된 개혁입법이 그것조차도 적폐세력의 저항으로 좌절되고 있는 것도 한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는 민00과도 연대해 반드시 이번 선거에서 과반이상의 의석수를 차지해야만 하는 당위가 충분히 발생한다.

그렇게 개혁입법을 완성시켜 낼 수 있는 동력이 이번 선거에서 마련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이번 선거는 반드시 민00을 포함한 비(非)적폐세력들이 과반이상의 의원확보를 해내어야만 한다.

셋째, ‘첫째’와 ‘둘째’를 함의하는 선거전술의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적폐세력 후보를 제외한 모든 당선 가능한 후보에 표를 집중해주고, 정당투표는 반드시 진보적 대중정당에게 투표하는 전략적 선택이 그 정답임을 알 수 있다.

왜 그런지는 다음과 같다.

각 정당들의 셈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민00은 거의 모든 선거구에서 후보를 내서 자당 중심으로 과반이상을 목표로 하고, 반대로 진보적 대중정당은 이번 선거가 적폐세력의 부활저지에는 동의하나 자당후보의 당선도 포기할 수는 없기에 나름 전략지구를 중심으로 후보를 내려할 것이다. 후보가 그렇게 대립한다.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답은 위에서 확인한대로 적폐세력의 부활저지라는 이번 선거목표에 충실하면서도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강화라는 조직적 강화관점을 견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지역구에 진보적 대중정당 후보가 없을 때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민00 후보를 찍으면 되겠지만, 문제는 진보적 대중정당 후보가 있을 때이다.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적 셈법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적폐세력 부활저지에 더 무게중심을 둘 것이냐, 아니면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강화 구축이라는 명분, 혹은 당원으로서 자당후보의 당선을 위해 최선의 의무를 다할 것이냐에 따라 그 선택지가 분명 달라질 것이다.

했을 때 단일화가 되면 좋겠지만,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최종 투표선택을 해야 한다.

▪기준1: 여러 차례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이번 선거의 최고 당면목표는 누가 뭐래도 적폐세력의 부활저지이다, 그래서 이 관점에서 투표행위가 이뤄져야만 하는 것은 당위이다. 제아무리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강화와 독자후보전술의 의의가 커다하더라도 이 선거의 의미를 뛰어넘어 설 수는 없다.

해서 감정적으로야 어느 교수의 심정대로 ‘민주당만 빼고’로 투표하고 싶지만,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유는 집권당인 민00이 백번이고 비판받고, 또 역사적으로도 심판받아야 하겠지만, 위 ‘첫째, 적폐세력의 범주문제’에서 확인받듯이 민00이 적폐세력이 아님은 분명하고, 또 현실적인 측면에서 진보적 대중정당이 민00만큼 촛불민심을 제대로 수용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상황은 이 당을 포함한 당선 가능한 모든 비(非)적폐세력의 후보들에게 전략적 투표행위를 해 적폐세력의 부활저지라는 선거당면목표에 반드시 부합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적폐세력의 부활을 저지해야 한다.

▪기준2: 위 ‘기준1’과 같은 기준으로 투표했다하더라도 투표할 기회는 한 더 번 남아있다. 다름 아닌, 정당투표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제대로 된 진보의 미래와 평화, 통일을 위한 여정은 계속하기 위해서는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마련이 결코 포기되어져서는 안 된다. 해서 비례에 있어서만큼은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도입취지에도 맞고, 또 민00으로는 한국사회의 근본개혁과 통일지향이 불가능함으로 반드시 진보적 대중정당들에 대한 전략적 투표행위가 이뤄져야만 한다.(여기서 ‘진보적 대중정당들’이라고 복수화한 것은 유권자 각자는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과 지지정당 선호도 등에 따라 진보적 대중정당을 달리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문제를 반영한다.)

이렇게 이번 4.15 총선은 철저하게 촛불시민항쟁의 연장선상으로 바라봐야 하고, 그러려면 비록 차선(혹은, 차차선)이라도 민00과 함께 적폐세력들의 발호를 막아내어야만 한다. 이것이 민00이 갖는 한계는 명백하지만, 민00을 버리고 갈 수 없는 명백한 이유이다.

그뿐만 아니다. 굳이 이번 선거가 아니더라도 민00과는 연대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정말 온전한 주권국가이고, 분단이 되어있지 않다면 시민사회진영은 위와 같은 그런 전략적 고민들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민00과 후보·정책연대 등을 그 핵심으로 하는 선거연대·정책연대 등을 고민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유럽등과 같이 진보적 대중정당을 직접 창당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진보적 대중정당 후보를 지지하여 일반 민주주의 정치를 구현해나가면 된다.

하지만, 분단국가의 숙명은 위와 같은 일반론적인 의미에서의 시민사회진영의 정치개입 방식과는 좀 다른 필연을 낳을 수밖에 없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국가보안법 등이 존재하여 온전한 정치적 활동을 보장받지 못할 수밖에 없다는 법·제도의 측면이다.

▪또 다른 하나는 분단극복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 운동방식이 정당정치를 포함한 광범위한 전선적 조직운동이라는 그 측면 때문이다.

바로 위 2가지가 민00이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보수수구이자 적폐세력의 본산인 미00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들이 진보적 대중정당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헌법적 책무라 할 수 있는 분단극복(=평화통일) 실현을 위해 연대해야 한다.

더군다나 국가보안법 등 악법들이 존재하는 엄연한 상황하에서는 분단을 넘어서려는 그 어떤 정상적인 제도권 정치활동마저도 쉽지 않고, 그렇게 쉽지 않은 만큼 민00을 정치파트너 우군으로 함께 해야 할 전선적 원리가 발생한다.

해서 대한민국 정치는 광의적 개념으로 전선운동으로서의 정당운동도 함의하고, 좁은 의미로서의 제도권 정당운동으로서의 정치운동도 공존하는 그런 개념이 된다.

대한민국 정치의 숙명이 그렇게 규정되어진다. 진보적 대중정당의 독자적 강화를 주선으로 틀어쥐면서도 비(非)적폐세력인 민00과는 전략적 연대를 끊임없이 고려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운동적 요구가 그렇게 발생한다.

그래서 이번 4. 15선거는 현 정국하에서 민00과 함께 과반이상의 국회의원 획득과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강화라는 원래의 조직적 목적이 충족되는 그런 수확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향후에는 진보적 대중정당들이 분단극복을 위한 일상적 정치활동이 가능하게 되고, 촛불민의를 보다 일상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확장된 정치 공간과 이후 선거에서는 보다 유리한 환경 속에서 진보적 대중정당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독자후보전술을 쓸 수 있어야 한다.

분명 이번 선거는 그런 선거가 되어야한다. 하지만, 대단히 우려스러운 것은 코르나19와 적폐세력들의 의도된 ‘낮은 투표참여전략’으로 조직선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져 있다는 사실이다.

넘어설 묘책이 필요하다.

▪우선은 이 글 전반에 걸쳐 관통하고 있는 맥락, 이해관계와 당리당략을 떠나 크게 대의적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나 자신부터 투표허무주의나 무용론에서 빠져나와 차선(혹은, 차차선)이라하더라도 투표하고, 선거투쟁을 통해 유권자들을 반드시 투표장으로 안내하자.

구호는 다음과 같다.

‘4.15투표를 통해 적폐세력 청산하자!!!’,

‘촛불시민항쟁은 4.15투표를 통해 완성된다!!!’,

‘4.15선거투표 없는 적폐청산 없다. 투표로 적폐세력 심판하자!!!’

참여하고, 지혜로운 선택을 통해 그렇게 촛불시민항쟁을 계속 이어나가자.

 

민플러스, 2020년 3월 13일에 게재된 글입니다 (필자와 협의하여 수정 후 본지에 실린 것임).

토, 2020/03/21- 22:52
4
0

[caption id="attachment_204272" align="aligncenter" width="640"] ▲ 전례없는 대형 산불로 비상사태가 선포된 호주 남동부 지역. 인명 피해 뿐 아니라 호주를 상징하는 코알라 등 야생동물과 가축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 출처:the Sun[/caption]

호주 산불이 해를 넘기며 점점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호주 남동부 지역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로 인해 현재까지 남한 면적의 절반 정도 되는 면적이 불에 탔고, 최소 24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뉴사우스웨일즈주와 빅토리아주에서는 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3개 주 10만명 이상의 주민들에게 긴급 대피령이 내려졌습니다.

야생동물의 피해도 커지고 있습니다.
호주는 캥거루, 코알라 등으로 대표되는 유대류의 주 서식지입니다. 하지만 이번 대형 산불로 코알라 서식지의 30%가 파괴되었고, 뉴사우스웨일즈 중북부 해안에서는 전체 코알라 중 1/3에 해당하는 8,000마리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유대류의 멸종까지 경고하고 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204274" align="aligncenter" width="610"] ▲ 호주 골드코스트 지역에서 발견된 코알라. 등이 그을린 어미 코알라가 아기 코알라를 보호하듯 안고 있다. 이후 코알라들은 구조대원들에 의해 야생동물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출처 : the Sun[/caption]

그동안 호주의 많은 야생동물들은 산불에 대처할 수 있도록 적응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산불은 긴 기간, 너무 큰 규모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야생동물의 피해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현재까지 4억 8천만 마리 이상의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가 사라졌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만든 대형 산불

그럼 이번 호주 산불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기후변화를 그 이유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호주 삼림에 크고 작은 산불은 계속 발생해왔지만, 이번 산불은 일상적인 규모가 아닙니다. 2018년 산불 시즌에 26만 헥타르가 불에 탔지만 2019년은 100헥타르를 넘어섰고 호주는 지금도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204275" align="aligncenter" width="574"] ▲ 2019년 12월 5일 부터 2020년 1월 5일까지 호주에서 발생한 산불을 NASA에서 화재관측위성 데이터로 3D화한 사진. 기후변화로 인해 특히 호주 동부해안의 경우 산불 발생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출처:NASA[/caption]

산불이 시작되려면 탈 수 있는 연료(삼림), 낮은 습도 그리고 산소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높은 온도와 바람이 더해지면 타오르기에 더 좋은 조건이 됩니다.
광범위한 가뭄과 매우 낮은 습도, 많은 지역에서 나타난 평균 온도 보다 높은 기온, 그리고 ‘남반구 극진동(Southern Annular Mode)'에 의해 유발되는 강한 서풍은 모두 인간에 의해 야기된 기후변화로 이전보다 더 심각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호주 동부 해안의 넓은 지역에서 충돌해 매우 특이한 산불 발생 조건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 속에 이번 대형 산불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호주에서는 2016년까지 5년 동안 산불 빈도가 40%나 증가했습니다. 과학자들과 기상학자들은 수년 동안 기후변화가 악화됨에 따라 더 큰 규모의 산불이 더 자주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해 왔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204280" align="aligncenter" width="640"] ▲ 12월 19일 호주 시민들이 시드니 총리관저 앞에서 스콧 모리슨 총리에게 산불 대책과 기후변화에 대한 긴급 조치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Jenny Evans / Getty Images[/caption]

하지만 호주 스콧 모리슨 총리는 산불과 기후변화의 연관성을 부인해왔습니다. 그간 호주 집권당인 자유당 연립정부는 기후변화가 산불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에서 호주 국민들은 산불을 촉발한 근본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지목했고, 기후변화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모리슨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러한 비난 여론 때문인지, 모리슨 총리는 지난 12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후변화가 산불 재앙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고 언급하는 등 기후변화가 산불의 원인임을 처음으로 시인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신년사에서 이번 화재가 역대 최악의 재해인 것은 맞지만 호주는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재해를 겪어왔다며 여전히 기후변화를 부정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산불의 원인보다 화재 피해 대응과 호주 기업 보호에 집중하겠다며, 석탄산업을 감축해야한다는 주장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최대 석탄 수출국 호주, 온실가스 배출량 지속적 증가

호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호주는 세계 최대 석탄 및 액화천연가스 수출국으로 전 세계 석탄 수출의 1/3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화석연료와 산업계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현재 2005년도 보다 7% 이상 늘어났습니다.

호주의 산불 비상사태는 이제 호주가 기후변화를 완화하기 위한 중요한 정책들을 더 늦지 않게 시행해야한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2035년까지 기존의 석탄화력발전을 재생에너지로 교체하는 등 에너지 정책 전환을 이뤄내야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구가 보내는 기후위기 신호, 석탄 줄이고 재생에너지 확대해야

[caption id="attachment_201557" align="aligncenter" width="640"] ▲ 지난해 아마존을 불태운 대형 산불. 아마존 산불은 인위적 방화가 주 원인이었지만, 기후 변화로 인해 자연적 발화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구의벗 브라질[/caption]

지난해 아마존에서도 대형 화재가 발생해 지구의 허파라고 하는 광활한 열대우림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아마존 산불 역시 인위적인 방화와 기후변화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는 단순히 지구가 뜨거워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구의 기후 시스템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변화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해수면 상승, 늘어나는 대형 홍수, 기록적인 폭염과 폭설 등 기후변화는 우리의 삶과 이 지구를 위기에 빠뜨릴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지구가 보내는 신호, 그리고 과학의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되돌릴 수 없는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서 우리는 탈탄소 경제로의 전환이 시급합니다. 매일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석탄,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여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 하고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사용을 적극 확대해야 합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수, 2020/01/08- 01:12
5
0

내가 방금 개관한 수요공급에 대한 사고방식은 특히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936)에서 정식화된 케인스의 경제이론과 대조적이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적 이단을 정식화한 케인스의 작품 배경은 1930년대 경제의 붕괴였다. 작품의 중심 주제는 수요와 공급이 조정에 실패하여 낮은 수준의 고용과 활동에서 균형을 이루게 된 양태였다. 그의 작품은 당시의 형태로나 지금의 형태로나 시장경제가 자체적으로 수정하고 모든 자원을 가장 효율적인 용처에 배정하는 기대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불신할 이유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내가 방금 간략히 제시한 견해와 비슷하다. 노동력을 포함한 모든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시장경제는 완전고용을 유지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방금 간략히 제시한 접근법이 케인스의 견해와 어떻게 다른지를 표시하는 한 가지 방법은 내가 제안한 대안적 시각에서 케인스의 교리와 이러한 교리가 제공한 정책적 처방들이 어떤 점에서 결함을 가지는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케인스 이론의 첫 번째 제약은 그의 이론이 특수 사례의 이론이라는 점이다. 즉, 그의 이론은 수요와 공급이 조정에 실패하거나 고용과 활동의 위축된 수준에서만 조정을 이루는 많은 양상들 중 하나의 사례에 관한 이론이라는 점이다. 케인스의 이론이 다루었던 특수 사례는 세의 법칙148에 어긋나는 사례, 즉 공급이 그 자체로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는 사례이다. 일정한 가격의 고정성(마셜149과 그의 제자인 피구150가 연구한 임금의 하방경직성)으로 인해 가능해진 저축의 생산적인 투자로의 전환 실패(결과적으로 퇴장(退藏))는 총수요의 유지 실패로 귀결될 수도 있다. 유동적인 화폐시장 균형들의 성향에 대한 의기양양함이나 낙담과 같은 인간의 불안정한 기질의 영향은 침체를 확대하고 연장시킬 수도 있다. 신뢰 실패로 시작된 것이 자생적인 수정기제가 있을 수도 없는 실물경제 활동에서 쇠퇴로 마감될지도 모른다. 그 경우 정부는 재정정책 또는 직접적인 정부지출과 활동을 통해 부족한 수요를 만회하고 경제를 다시 활성화시켜야만 할지도 모른다.

여기에 수요와 공급이 상호조정에 실패하거나 침체된 활동 수준에서만 균형을 이루는 하나의 양상에 관한 하나의 설명과 하나의 이론이 있었다. 수요공급의 상호조정이 실패하는 많은 양상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앞의 초보적이고 추상적인 개요에서도 이미 시사하였다. 우리는 케인스가 자신의 일반이론을 출판하기 전 몇 년 동안 가끔씩 쓴 글들을 통해 시대의 위기에 대한 다른 대응들과 위기를 이해하는 다른 방식들을 고려했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러나 케인스는 실질적이고 이론적인 이유보다는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로 (예컨대, 투자 부족보다는) 수요 부족을 강조함으로써 침체의 특징을 규정하려고 선택했다. 케인스는 수요 부족을 탓하고 재정확장 정책을 해법으로 요구하는 대응이 투자결정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을 주장하는 대응보다 정치적으로 더 매력적이고 따라서 이행하기도 더 쉽다고 생각하였다.

2007년부터 2009년 사이에 미국과 여타 선진국들은 금융위기를 겪었고 실물경제 활동에서 뚜렷한 쇠퇴로 이어졌다. 이러한 혼란이 1930년대에 케인스와 그의 동시대인들이 다루었던 경제적 붕괴만큼 심각하지 않을지라도 이 혼란은 이 시대의 표준적인 “경기순환”의 차원을 초월하였다. 나아가 이 혼란이 재정부양책과 통화확장 정책의 표준적 대응(케인스의 처방들의 취지와는 반대로, 재정부양책보다 훨씬 더 많은 통화확장 정책)을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혼란은 케인스가 직면했던 경제적 붕괴와는 결과적으로 다르지 않을지 모르지만 성격과 인과관계에서는 다른 붕괴로 곧 인식되었다. 혹자는 이러한 혼란상을 가계부채와 기업부채가 금융 불안을 촉발하고 이러한 금융 불안이 이어서 실물경제까지 악영향을 끼치게 된 “대차대조표불황”151이라고 규정하였다.

미국은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이 원하는 충분한 상품과 서비스의 공급을 중단했다. 수십 년 동안 소득과 자산의 급격한 역진적인 재분배가 나타났다. 역진적 재분배는 미국에서 경제성장의 잔여 전략인 저금리정책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간의 통상과 금융 거래에서 나타난 무역 및 자본 적자로 보증된 특히 가계 부분의 부채와 신용의 과도한 팽창을 통해 상쇄되었다. 그 직접적인 원인들의 성격상 이러한 침체는 1930년대의 더 극단적인 위기가 요구했던 것보다 훨씬 더 명백하게 경제의 공급측면에 대한 행동을 요구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침체는 케인스의 걸작의 표제와 상관없이 케인스의 교리가 적중하지 못한 것, 즉 수요공급간 상호조정의 실패들에 관한 일반이론을 요구하였다.

케인스 이론의 두 번째 제약은 그 이론이 구조적 내용이나 제도적 비전을 갖고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 케인스 이론은 배교를 의도하였지만 영국의 정치경제학 전통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들 중 하나(즐겨 쓰는 설명 방식에서 제도를 심리학에 종속시키는 특징)를 과장하였다. 케인스 체제의 핵심 개념들(유동성 선호, 소비 성향, 장기적 기대상태)은 완전히 심리학적이다. 인간의 충동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유동적인 화폐시장 균형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도록 유도하고 이렇게 활용함으로써 실물경제의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유도한다.

제도적인 것보다 심리적인 것을 우선시하는 것과 경제의 공급측면을 도외시하고 수요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케인스 교리의 심리학주의와 (한계주의 전통과 일치하여) 경제학을 생산이론이라기보다는 시장에 기초한 교환이론으로 파악한 견해 사이에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용과 경제활동의 쇠퇴에 대한 실천적 대응이라는 흥미로운 관점에서 이 문제를 고찰해보자. 경제의 제도적 안배들이나 생산조직에 대한 어떠한 변화를 수반하지 않은 채 공적자금을 투입하거나 민간지출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정책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최소한 케인스가 말하는 총 수요의 부족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 경제의 수요측면에 대한 더욱 효과적인 조치는 구조변화(경제적 기회와 능력에 대한 접근을 확장함으로써 경제적 편익의 일차적 분배를 쇄신하는 제도적 혁신)를 필요로 한다. 어쨌든 적어도 구조변화를 유발할 어떠한 시도도 회피하면서 수요 부족을 처리하는 방식을 상상하는 것은 가능하다. 구조변화가 없어도 된다는 시각은 케인스와 그 추종자들에게 견해와 정책적 제안들의 초점을 수요에 맞추게 한 요인들 중 하나였다.

우리가 불황의 원인이 경제의 수요측면과 공급측면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정을 알아낸 이상 우리는 시장의 제도와 생산의 안배에 대한 관심을 스스로 접어버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경제의 공급측면에서의 조치는 필연적으로 구조적인 조치이다. 북대서양의 부국들에서 전통적으로 보수적이거나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이 그러했듯이, 비록 그 목적이 경제적 제도들을 개혁하기보다는 시장경제의 소위 표준적인 형태를 순수한 또는 좀 더 순수한 형태로 복원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러한 조치는 구조적이다.

케인스 시각의 세 번째 결함은 다른 두 가지 결함에서 비롯된다. 케인스의 견해가 특수한 사례를 일반적인 해명으로 착각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구조적일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구조적인 비전도 없이 취급함으로써 싹이 잘려 버렸기 때문에 그의 견해는 미완의 이론이다. 케인스 이론은 노동과 경제의 다른 자원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활동 수준에서 수요와 공급이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는지에 관한 이론[고전파 경제이론]보다 낫다. 그러나 케인스의 이론은 경제에서 영구적인 불균형이론보다 못하다. 이러한 영구적 불균형, 달리 말하면 붕괴에 대한 취약성은 내가 여기서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는 구조변혁을 통해서만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케인스 이론은 내가 설명한 처음 두 가지 제약 때문에 그와 같은 이론이 될 수 없다. 첫째로 케인스 이론은 일반이론이 아니다. 케인스 이론은 노동과 자본의 상대적 권력들, 실물경제에서 금융의 위상 나아가 경제주체들의 문화와 의식의 더욱 무형적인 변형들을 통제하는 제도적 법적 안배들이 어떤 모습인지에 따라 가변적인 의미를 지니게 될 임금의 하방경직성이나 퇴장성향과 같은 요인들에 결정적인 비중을 부여한다.

둘째로 케인스 이론은 시장경제의 대안적인 조직방식에 관한 비전을 갖고 있지 않다. 결과적으로 케인스 이론은 실물경제 활동에서 붕괴들(공급과 수요의 상호조정이 자생적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붕괴들)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거나 낮은(다소간) 경제조직 방식(어떤 경제조직방식이 실물경제 활동에서 붕괴에 이를 가능성이 높은지 혹은 낮은지)을 공급측면에서도 수요측면에서도 구별할 기준을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이론에서는 경제가 수요와 공급의 상호조정의 실패에 당연히 취약한 것인지 아닌지를 말할 근거가 없다. 어떤 특수한 가정들(예컨대, 임금인하에 맞서 임금을 방어하는 노동의 힘, 투자 결정을 통제하는 자본의 힘, 생산적인 투자에 저축을 유보하는 저축자의 힘 등에 대한 가정들)을 고려할 때, 여건들의 예측가능한 결합 때문에 완전고용은 항상 달성될지는 않는다는 것만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결합에 대해서는 특수한 처방이 존재한다.

이와는 달리 내가 여기서 요약한 견해에 따르면 경제는 어떤 것이 일어날 때까지는 영구적 불균형(공급과 수요는 서로 조정하지 못하고 수요공급의 제약들에 대한 반복적인 돌파구들을 위한 기제를 제공하지도 못한다) 상태에 있다. 여기서 말한 어떤 것은 전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장구한 경제적 진화의 산물이고 또한 이러한 진화를 완성하기 위해 분권적 경제를 조직하는 제도뿐만 아니라 그 생산방식에서도 변화를 요구한다. 나는 이러한 변화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른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책 소개 바로가기>>

<<온라인 서점 바로가기>>

토, 2021/09/11- 20:35
3
0

이탈리아는 세계에서 공공 부채율이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이렇게 부채로 치닫는 현상은 정당에 신임을 주어 선출하는 시민들의 암묵적인 동의로 인한 것이다. 더욱이 시민들은 경제 분야의 정치나 특히 공공 재정public finance 관련 모든 직접 참여에서 배제되어, 헌법에서조차 세금 관련 레퍼렌덤의 시행을 허용하지 않는다. 최근의 발전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조처는 정당한가?

 

공공 재정문제에서 목소리를 빼앗긴 시민들

공공 부채는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고 납세자들의 지갑에 영향을 준다.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마지막으로 청구 금액을 지불하는 것은 납세자들이지만 그들에게는 공공 재정의 결정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더욱이 시민들의 레퍼렌덤 권리 강화에 대해 토론할 때, 공공 재정의 문제는 가장 민감한 문제중의 하나다. 곧 시민들이 재정 및 세금 관련 결정에 연루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개 민주주의를 강화하면 정부의 역할은 축소되고, 시민들은 공익을 책임져야 하는 정치인들과 달리 늘 세출은 늘이고 각자에게 돌아가는 세금은 줄이려 들 것이라는 우려에 겁을 먹는다. 실제 상황은 그 반대이다. 이탈리아에서 국가 세입 및 세금 관련 문제는 레퍼렌덤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고, 시민들은 그 어떤 정부 차원의 공공 예산문제에서도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현재 이탈리아는 엄청난 부채를 안고 있다. 지배 정당들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부채를 안고 있는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에서도 공공 지출과 세금 관련 문제들은 레퍼렌덤 권리에서 배제되어 있다. 재정에 관한 정치적 선택에 있어서 시민들을 모든 형태의 참여에서 배제시키는 것은 무분별한 지출과 부채 의존을 부채질할 듯하다. 실제로 헌법(제75조 2항)은 예산과 세금 관련 법률에 대한 레퍼렌덤 투표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금지는 헌법 제정자들 사이에서 존재했고, 지금까지 기존 정당들에 널리 퍼져있는, 시민들은 국가 재정에 그 어떤 책임도 없다는 가정 때문이다.

시민들의 특성상 늘 더 낮은 세금에 더 큰 사회복지를 요청하는 경향이 있다고 가정하곤 한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현실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을 보면 전반적으로 비교적 높은 세금을 지불하는 반면 공공 서비스의 질은 매우 낮은 상태이다. 불필요한 프로젝트에 공공 자금 낭비, 공공 사업 경영의 불찰, 횡행하는 파벌주의는 공공 재정의 불안에 기여했다. 시민들이 세금 관련 사항에 개입할 기회가 없는 곳에서는 정치인들이 부채를 엄청나게 조장해 심각한 공공 적자를 가져온다. 많은 유럽 국가들에서 축적된 공공 부채는 예를 들자면, 국민 레퍼렌덤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균형을 잃은 국가 재정 정책의 영향은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가 아무런 대책 없이 높은 세금을 감당할 수 밖에 없게 되며, 결국 지역사회에서 다수결로 요청된 바가 없는 공공 사업이나 프로젝트에 대한 지출이나 부채 이자로 인한 지출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지금이건 앞으로건 늘 납세자들이다. 정치 대의원들은 임기가 끝나면 임무가 바뀌고 종종 “연금 수당”의 부당이득을 누리고, 공공 예산의 균형을 바로잡을 책임은 그들의 후임자들에게 전가된다. 결국 공공 지출에 대한 책임의 논리는 뒤집혀야 한다. 지출과 수입 결정의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늘 시민들이니, 그와 관련한 최종 발언권은 시민들에게 주어져야 할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의 반증

실제로 공공 자금의 운용에서 시민들이 정치인들보다 책임감이나 장기적 안목이 부족하지는 않은 듯하다. 미국과 독일에서 수십 년 간 걸쳐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시민들 2/3가량의 다수가 단기적으로도 공공 예산이 균형을 이루는 것을 선호한다는 결과가 늘 나왔다. 엄청난 공공 부채는 국민, 특히 그 부담을 떠 안게 될 젊은 세대들이 바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정치의 결과이다. 공공 부채의 지속적인 증가는 사실 정당들의 전략적 선택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어 연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드러난다.

▪ 다수 정당들의 연합 내에서 분열이 클수록, 부채 증가 경향이 더 크다.
▪ 정부가 다음 선거에서 질 가능성이 클수록, 부채 증가 경향이 더 크다.
▪ 한 정부의 지속 기간이 짧을수록, 부채 의존 경향성이 더 크다.

이로 미루어, 엘리트 정치인들의 단기적인 논리가 공공 부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표를 얻기 위해 부채에 의존한다.

다른 한편으로 재정 및 국가 세입 관련 문제에도 시민들이 개입할 권리를 지닌 나라들이 있다. 스위스에서 시민들은 확정적 레퍼렌덤을 갖추고 있어서 정치인들이 지나친 과세나 공공 지출로 공공 예산에 너무 큰 부채를 지우고 그 결과 미래의 납세자들인 젊은 세대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지우는 듯 여겨질 때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민발안으로(이탈리아에서는 대개 ‘제안적 레퍼렌덤’이라고 정의한다)는 보다 균형 잡힌 국가 세입을 위한 시민들의 제안을 투표에 부침으로써 부채를 제한하고, 정치인들이 좀 더 공정하고 균형잡힌 지출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거부 수단으로써 긴급 제동을 걸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안 수단으로써 정치 계급과 정당들이 움직이지 않을 때 가속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위스의 거의 모든 칸톤과 많은 기초자치단체에는 재정관련 레퍼렌덤이 존재한다. 어떤 공공 프로젝트가 미리 정한 지출 한도(평균 2백 5십만 스위스 프랑 혹은 약 2백만 유로)를 넘어설 때 시민들은 의무적으로 레퍼렌덤을 통해 의사를 표명하도록 소집된다. 이런 직접민주주의 도구는 매우 단순한 원칙에 따라 작동한다. 곧 어떤 특정 공공 프로젝트를 위한 지출이 법으로 미리 정한 총액 한도를 넘어설 때 모든 유권자들은 이에 대해 결정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선택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최소 인원의 서명을 모은 시민들이 특정 지출의 승인과 관련하여 거부권으로서 레퍼렌덤을 요청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의무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가끔 어떤 공공 지출이 어떤 정해진 총액 한도를 넘기면, 국민투표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물어서 해당 칸톤이나 기초자치단체의 공공 지출을 승인하거나 거부한다는 뜻이다.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국민들이 지출 승인에 반대하여 국민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조세나 지방세로 충당되는 지출을 통제하거나 억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스위스 시민들은 어쨌든 국민발안과 실행적 레퍼렌덤이라는 두 가지 오랜 도구로 국가 세입관련 법령과 세금 제도에 개입할 수 있다.

대부분 이 도구를 활용하려는 성향의 칸톤에서는 “재정관련 레퍼렌덤”이 없는 칸톤들에 비해 공공 지출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나타난다. 스위스의 학자들(Kirchgassner, Feld, Savoiz, 1999년)은 131개의 스위스 도시와 칸톤에서 의무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의 영향을 분석했다.

기초자치단체들은 칸톤과는 달리 예산을 변경할 수 있는 여지가 더 크다. 분석에 따르면,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기초자치단체 예산의 적자를 줄이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다. 게다가 세금과 과세에 대해 레퍼렌덤 투표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시민들은 그 결과 늘 세금 감면을 선택한다는 주장은 입증되지 않았다.

1978년~1999년 사이 미국에서는 국세 관련 130건의 국민발안이 펼쳐졌는데 그중 86건이 감세를 목표로 한 것이었고, 27건은 증세, 17건은 과세와 관련하여 중립적인 것이었다. 증세 방향의 발안 중 39%가 승인된 반면, 감세를 위한 발안은 조사한 사례의40 %가 수용되었다.

그 외에도 스위스 사람들은 증세에 동의한 경우도 많았다. 1984년 국민발안으로 고속도로의 일반 통행새 징수를 위한 스티커가 도입되었다. 1993년에는 레퍼렌덤으로 석유 리터 당 0.2스위스 프랑의 새로운 추가세가 도입되었다. 1998년 스위스 사람들은 육상 화물 교통(중량급 화물)에 대해 세금을 도입하여 산고타르도San Gottardo의 새 터널을 만드는 데 든 지출을 충당했다. 2009년에 스위스 사람들은 일정 기간 동안 부가가치세의 일시 증액에 동의했다. 다른 한편으로 시민들 편에서 부가가치세의 도입을 세 차례 기각했다. 2001년 12월 스위스 사람들은 레퍼렌덤 투표로 “부채 동결”을 승인했다. 그 해부터 스위스 연방 공공 부채는 지속적으로 내려가서 2018년 국내 총생산GDP의 28.8%로 조정되었다. 2018년 3월에 스위스 시민들은 공영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 사업의 연방(국)세를 폐지하기 위한 국민발안을 기각했다.

산갈로San Gallo 칸톤을 예로 들 수 있을 텐데, 이곳에서는 현행법으로 충당하지 못하는 새로운 지출 항목을 위해 일괄 지불로 1천 5백만 스위스 프랑 이상을 지출하거나, 혹은 여러 해에 걸쳐 1백 5십만 스위스 프랑의 지출을 결정할 때 의무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이 공고되어야 한다. 칸톤 예산 총액 50억 스위스 프랑(2018년)에 미루어, 위의 금액은 비교적 적다. 선택적 레퍼렌덤은 3백만 스위스 프랑 이상에 준하는 지출과 30만 스위스 프랑 이상의 현행 지출 심의를 위해 요청될 수 있다.

이를 목표로 40일 안에 4천 명의 서명을 모아야 한다. 약 30만 유권자 숫자를 고려하면 이 서명 기준점은 당연히 지나치지 않다. 다양한 조사에 따르면Kirchgassner(2001년),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공공 지출을 제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도구를 갖춘 기초자치단체들은 시민들에게 이 권한을 주지 않는 기초자치단체에 비해 1인당 지출 수준이 더 낮은 양상을 보인다. 유권자들이 지역 법규에 대해 의사를 표명할 수 있는 곳에서는 과세와 부채율, 탈세 또한 더 낮다.

재정관련 레퍼렌덤 외에도 바로 직접 민주주의의 매커니즘이 함께 작용하여 스위스를 공공 부채가 적고, 과세율이 더 낮으며, 공공 행정의 효율성이 높고 경제가 안정된 나라의 하나로 만들었다. 스위스만이 아니라 캘리포니아와 미국의 다른 연방 주들에서 실시한 수많은 연구에서도 이러한 역동성을 볼 수 있다. 곧 직접 민주주의 매커니즘이 잘 작동하는 곳에서는 다음 양상이 나타난다.

▪ 공공 행정을 위한 지출이 더 적고, 세금 부담 수준이 낮다.
▪ 더욱 공평한 소득 분배
▪ 세금에 대한 시민들의 책임감이 더 높다.

실제로 탈세에 맞선 싸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세금 문제에 대해 투표를 더 많이 하는 칸톤에서는 탈세가 더 낮았다. 이는 한가지 단순한 연결고리를 보여준다. 곧 시민들이 자신이 직접 선택 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에도 공공 행정에 더 만족할수록, 더욱 기꺼이 의무로 부과된 세금을 납부하려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공익 사업에 대한 지출과 과세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을수록 더욱 공적인 책임 의식을 가지며, 공공 지출을 통제할 수 있을수록 더욱 기꺼이 국가의 세입 노력을 지원하고자 하게 된다.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순환고리이다.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어째서 직접 민주주의가 더 발전한 체제들은 대개 이런 민주주의는 물론, 국가 재정과 경제적 안정에서도 건강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레퍼렌덤을 통한 시기적절한 개입으로 시민들은 단지 5년에 한 번씩 다음 선거에서 다시 과반수로 선출하여 무능한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대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입법 회기 중에도 개입하여 특정 지출, 과세, 대형 프로젝트, 낭비 등을 차단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최근 전국 레퍼렌덤으로 핵발전의 선택이라는 엄청난 낭비를 피할 수 있었지만, 이미 납세자들의 어깨를 무겁게 할 태세가 된 다른 많은 대형 프로젝트들이 있다.

▪ 시민들은 레퍼렌덤 덕분에 공공 지출이나 정책 전반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전달받는다. 시민들은 경험을 통해 자신들이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신중하고 책임감을 갖는다.

▪ 레퍼렌덤이 있는 시민들은 정치 비용 또한 조절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다른 유럽 국가 정치적 대의원들의 평균 지출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정치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 정치인들의 바람과 시민들의 바람 사이의 단절이라는 커다란 문제를 직면한다. 잘 조직되고, 자금력이 있으며, 정확한 시기에 공공 지출과 정부 방침을 좌우하는 막강한 이익 집단들이 있다. 반대로 선거를 기하여 시민들은 보통 이념적인 이유로 한 정당에 “표몰이”를 하지만, 많은 현안에 대해서는 선거 이후 구성된 정부가 취한 선택과는 다른 견해를 지닌다.

과세 사안에서 시민들에게 직접 민주주의의 혜택이 부족한 점이나 공공 지출에 대한 이 간단한 언급을 통해, 국가 재정 관련 결정에서 시민들을 배제시키는 것은, 아마도 ‘이탈리아 제헌 국회Assemblea Costituente’가 상상했던 것과는 반대 현상을 가져왔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탈리아에는 세금 압박이 (사회적 기부를 포함하여) 매우 크다. 공공서비스의 질은 그다지 좋지 않고, 전국적으로 탈세가 만연해있으며, 공공 부채가 기록적인 수치에 이르고, 공금 낭비의 사례가 많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시민과 납세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각각의 결정을 통제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저 더 많은 의사 결정력과 중앙 집권화 만이 국가 세입에 대해 더 큰 책임감을 갖게 만들 것이라는 것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주권자들의 더 강력한 역할은 국가 재정을 회복시키기 위해 필수적이다.

이탈리아는 그리스 다음으로 가장 높은 국가부채율을 자랑하는데, 2017년 말 약 2조 3천 억 유로가 아직 GDP의 약 130%선에 머물러 있다. 동시에 가장 큰 재정적 압박을 받고 있는 유럽연합 가입국 첫 여섯나라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며, 43.3%(2017년 GDP 대비 세금과 사회복지 총액)에 달하는 재정적 압박을 호소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탈리아는 탈세율이 높은 편이다(2017년 1천 1백 억유로 추정). 반면 공공 서비스의 질은 떨어진다. 또한 지방 차원에서 국세-재정 관련 사안은 레퍼렌덤 사안에서 배제된다. 이탈리아에서 정치인들과 정당들은 일단 공공 지출을 운용할 수 있는 권력을 손에 넣으면, 공공 예산을 마치 셀프서비스 수퍼마켓처럼 여겼다. 2007년 40만명 이상이 직접 정치를 생업으로 삼았다(Salvi-Villone 2007년 참조).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심지어 이탈리아 취업자들 중 5%인 1백 10만명에 달한다(ILO 제3차 보고서-정치의 비용, 2013년 12월). 2018년 입법부만도 2017년에 비해 1.85%가 증가한 9천 6백 8십만 유로를 지출하게 될 것이다. 헌법 기관에 대해서는 2018년 이탈리아 중앙 정부는 총 24억 5천 8백 만 유로를 지출하게 될 것이다. 2012년 이탈리아 전역에서 지방의회에 약 10억 유로가 들었다. 이탈리아 전역에서 1117여 개의 지방의회 각각에 든 총 수당은 20만 유로를 조금 넘어선다. 한 의원의 지출 전체를 고려에 넣으면, 이탈리아 평균 연간 87만 5천 유로 정도이다. 대의 정치의 모든 간접 비용을 포함시키면, 총액은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그 어떤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대의 정치 비용이 이탈리아만큼 높지는 않다. 여당은 납세자들의 모든 직접 개입을 배제함으로써 늘 이런 특권을 지켜낼 수 있었다.

전후 지금까지 수십 년간 산더미 같이 쌓인 부채를 이탈리아 시민들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다양한 사회경제적 이유도 있겠지만 여당들 사이에 만연한 무책임한 지출 경향을 호도해서는 안된다. 또한 시민들 쪽에서는 전혀 거부권이 없다는 정치적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 가끔 국민발안 법 제안들이 제출되지만(2015년 봄, CGIL 노동조합에서 추진한 “보다 공평한 세입을 위해” 제안) 거의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고, 이런 제안들은 국회에서 급속도로 잊혀지고 만다.

한편 레퍼렌덤이 가능한 사안에서 국가 세입 및 세금 관련 사안을 배제하는 것이 전혀 당연하게 여겨진 적이 없었던 스위스의 경우가 있다. 스위스 사람들 사이에서 국가 재정 현안은 가장 인기 높은 사안에 속한다. 그러므로 전통적으로 국가 재정의 운용에서 정치적 대의원들을 단속하는 것에 큰 관심이 뒤따른다. 이 목적으로 칸톤과 기초자치단체에 “재정관련 레퍼렌덤”이 도입되었다.

 

시민들의 권리가 더 많을 때 정치인들은 재정적으로 더욱 책임있게 행동한다

스위스의 사례는 레퍼렌덤 가능 사안에서 국가 재정 사안을 배제하는 것은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반대로 시민들이 공공 지출 심의에 더 많이 참여할수록, 국민들 사이에서 책임의식도 더 커지고, 탈세도 더 줄어들고, 공공 자금낭비도 덜 생긴다. 민주주의와 공공 지출 사이의 관계는 단순하다. 시민들은 늦건 빠르건 자신들이 더 무거운 세금 압박을 통해 새로운 지출을 감당해야 할 것임을 알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새로운 분야의 지출을 인가하는 것에 매우 조심스럽다.

어떻게 직접 민주주의로 공공 재정에 이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몇 가지 가능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 선거로 유권자들은 정치 대의원에게 일종의 백지수표를 발행하여, 단지 4, 5년 후에나 그것을 되찾을 수 있다. 레퍼렌덤 권한의 부재시, 시민들은 잘못된 투자나 공공 자금의 낭비, 불필요한 지출, 정당성 없는 세금 등을 막기 위해 개입할 수 없다.

▪ 만일 시민들이 공공 재정관련 사항에 투표할 수 있다면, 즉각 시민들 자신이 더욱 그 사안에 관심을 갖고 정보를 얻게 된다. 결국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시민들이며, 이들은 보통 새로운 지출 요청 앞에서 더 조심스럽다. 이탈리아에서는 2011년 시민들이 핵발전소에 대항하는 투표로 엄청난 공공 자금 낭비를 피해갔다. 그러나 보통 이탈리아 시민들은 새로운 지출 요청 앞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권리가 없다.

▪ 확정적 레퍼렌덤으로 시민들은 지나친 정치 비용 또한 제한하고 정치적 족벌주의의 만연을 견제할 수 있다.

▪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아직 공공 행정상의 부패율이 높다. 지출 심의와 특정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치는 시민들의 권리는 이런 위험을 제한한다.

▪ 시민들이 바라는 것과 대의원들이 바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부합하지 않는다. 영향력 있는 이익 단체들과 여러 막강한 세력들은 늘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기호에 따라 공공 지출과 투자를 이끌어 가는 것을 제한할 수 있다.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이런 힘이 없다. “모든 것을 포괄하여” 한 정당에 투표하고, 모든 각각의 공공 자금 관련 결정은 정치인들의 몫으로 남겨지며, 시민들은 그에 대해 아무런 발언권이 없다.

이탈리아에 적용된 의무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미리 정한 기준치(가령, 5천만 유로)를 넘어서는 지출을 수반하는 모든 프로젝트에 대해 자동 국민투표를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명을 모아야 하는 수고를 피하여, 시민들은 상당한 재정적 규모의 어떤 프로젝트가 가져올 영향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시민들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거대 프로젝트의 경우 미리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야 할 것이다. 다른 나라에 존재하는 이 권리는 오랫동안 이탈리아의 공공 재정을 괴롭혀온 무책임한 지출에 대해 효과적인 제동 장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금관련 레퍼렌덤 권한을 포함한 공공 재정에 대한 시민들의 직접 참여는, 세금에 대한 입법부의 권한이 좀 더 지방분권 방식으로 분산되고 관리된다면 더욱 합리적이 될 것이다. 한 가지 예는 또 다시 스위스의 연방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탈리아의 주와 기초자치단체들은 세금과 지방세 관련 법에서 더 많은 자치권을 얻어야 할 것이다. 이탈리아의 주들은 과세 문제에 권한이 매우 적으며, 세입의 적은 일부만이 주 자체 내에서 부과한 세금으로 충당되고, 가장 큰 몫은 나라에서 보전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나친 지출을 막기 위한 목적의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유용하겠지만, 세금에 개입하기에는 법적, 정치적 연결고리가 부족하다. 거의 모든 세금들이 국가의 권한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첫 단계는 재정적 연방제fiscal federalism라는 더 나은 시스템을 갖추는 것일 것이다. 다음으로 재정적 연방제를 직접 민주주의와 결합시키는 것이 낭비와 지나친 세율의 과세를 줄이기 위한 방법이다. 정부의 모든 차원에서 진정한 납세자인 시민들이 회계 감사관 역할을 하는, 정치적 책임을 담당함으로써 공공 재정이 더욱 튼튼해지게 된다.

이탈리아에서─특히 돈을 헤프게 쓰는 정치인들이─종종 우려하는 것은 세금과 관세에 대한 직접 민주주의로 시민들은 근거가 충분하지 않는 세금을 삭감하기만 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시민들, 곧 납세자들의 직접 참여는 국가 재정을 더욱 견고하고 공정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스위스의 경험에 따르면 시민들은 공공 재정에 필요한 책임 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스위스 시민들이 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 나라는 사회적 기능이 원활하고, 질 높은 기간 시설, 적은 공공 부채 및 낮은 세율을 자랑한다.

이탈리아에서는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재정 운영에 대한 직접 통제 부족과 재정 시스템의 중앙 집중은 지나친 낭비, 잘못된 투자, 보스 정치 및 엄청난 공공 부채를 조장했다. 근래 수십 년 동안 뿌리내린 보스 정치를 지탱한 것은 바로 “돈-표-자리”라는 비정상적인 삼각지대에서 나타나는 표 거래 구조 덕분이다. 의무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이라는 열쇠로 이런 자동적인 악의 순환을 배양하는 음지를 밝은 곳으로 끌어내어 정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재정 관련 레퍼렌덤과 세금 관련 법률과 법규는 물론 대형 프로젝트에 대한 레퍼렌덤은 단순히 민주주의를 작동시켜 헌법에 규정된 “균형 예산”을 보완하며, 늘어나는 부채에 최선의 제동 장치를 제공할 것이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금, 2020/03/13- 19:42
3
0

필자가 한 친구에게 도덕과 외교 정책에 관한 책을 집필했다고 전하자, 그녀는 “아주 짧은 소개서 이겠구나”라고 빈정거렸다. 이러한 회의론은 일반적이다. 놀랍게도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미국 대통령의 도덕적 견해가 그들의 외교 정책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참고할 만한 서적은 거의 없다.

저명한 정치 이론가인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는 1945년 이후 미국의 국제 관계론 대학원 교육과정에서 “도덕적인 논쟁은 관행적으로 행해지는 외교적 예의 규칙과 어긋난다”고 서술했다.

회의적인 근거는 명백해 보인다. 역사가들이 미국적인 예외주의와 도덕주의에 대해 기술했을 때, 냉전시대 미국 ‘봉쇄’ 정책의 아버지로 알려진 조지 F. 케넌(George F. Kennan)과 같은 현실주의 외교관들에 의해 오랫동안 미국의 도덕주의-법률주의 전통이 추락된 것을 경고해 왔다.

국제 관계는 무정부 상태의 영역이다. 질서를 규정하는 세계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는 각자의 이해를 방어해야 하고, 생존이 위태로울 때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가치를 지닌 선택이 없는 곳에는 윤리가 있을 수 없다. 철학자들이 “당위는 가능을 예시한다”고 말하듯이 불가능한 일을 하지 않는다고 타인을 나무랄 수는 없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윤리와 외교정책을 결합하는 것은 칼을 선택할 때 잘 드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좋은 것을 고르거나, 빗자루를 사면서 잘 쓸리는 것보다 비싼 것을 묻는 것과 같은 멍청한 실책이며, 따라서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판단할 때는 단순히 외교정책이 도덕적인지 묻기보단 그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는 일부 장점이 있는 반면 어려운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함으로써 회피하기도 한다. 세계 정부가 부재한다고 해서 모든 국제질서도 부재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부 외교 정책 사안은 국가의 생존과 관련이 있지만 대부분 사안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여러 차례 전쟁에 참전했지만 미국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전쟁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인권, 기후 변화, 인터넷 사용의 자유에 대하여 다양하고 중요한 외교 정책을 선택하는 과정에는 전혀 전쟁이 수반되지 않는다.

실제로, 외교 정책 사안 대부분은 엄격한 국가 이성(raison d’état)이라는 공식의 적용이 아니라 선택을 요구하는 조건에서 가치와 균형을 맞추는 과정을 포함한다. 어떤 냉소적인 프랑스 관료는 언젠가 필자에게 “저는 프랑스 이익에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도덕은 무관합니다”고 말했다. 그는 그의 발언 자체가 도덕적인 판단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만일 그가 “모든 국가가 각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려고 한다”고 말하려 했다면 상식적인 논리 또는 싱거운 언급을 중복한 셈이다.

개별적이고 상이한 상황에서 국가 지도자들이 국익을 어떻게 정의하고 추구할 지 선택하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이다.

더욱이 우리가 좋든 싫든 미국인들은 끊임없이 대통령과 외교 정책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부당한 요청을 했다는 전화 통화가 익히 알려지기 이전부터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행실은 뉴스 톱기사에 오르면서 이론적인 질문으로부터 도덕성 및 외교 정책에 대해 회의를 일으켜 왔다.

예를 들어 2018년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 사우디 반체제 기자가 이스탄불 영사관에서 살해된 뒤, 트럼프는 사우디 왕세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잔혹한 범죄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를 무시했다고 비난받았다.

진보 성향의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는 카슈끄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비양심적인 거래이고 사실 관계를 무시한 것”이라고 기술했고, 보수 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Wall Street Journal)은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이나 린든 존슨(Lyndon Johnson)처럼 철저한 실용주의자로 간주되는 대통령을 포함해 역대 어느 대통령도 공개적인 성명에서 가치와 원칙을 준수하는 미국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사설에서 전했다.

석유, 무기 판매, 지역 안정 모두 국익과 관련된다. 다른 한편 많은 사안과 관련하여 우호적인 가치 및 원칙 또한 국익에 중요하다. 어떻게 그것들을 조합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윤리와 관련하여 현재 미국 외교정책에 대한 다양한 판단은 무계획적이고 사고 수준이 형편없으며 현재 논쟁의 다수가 트럼프의 성향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필자가 새로 집필한 저서 «도덕은 중요한가?»에서는 트럼프의 일부 행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통령들이 보인 전례가 있는 행동임을 보여줌으로써 이러한 판단을 바로잡고자 했다.

어떤 통찰력 있는 기자는 필자에게 “트럼프는 특별하지 않지만 극단적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미국인들에게 때론 외교 정책을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과 같은 대통령을 도덕적으로 명료한 진술을 했다며 칭송한다.

마치 잘 표현된 선한 언급이 도덕적인 판단을 하는데 충분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과 조지 W. 부시(George W. Bush)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적절한 수단을 선택하지 않은 선한 의도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결과를 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베르사이유 조약이나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때 우리는 단순히 결과를 통해 대통령을 판단한다.

몇몇은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킨 리처드 닉슨을 칭찬하지만, 그는 미국인 21,000명의 생명을 희생시켜서 체면치레를 위해 ‘그럴듯한 휴전’을 이끌었다. 이는 패배의 길에서 덧없는 휴전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훌륭한 도덕적 추론은 의도, 결과, 수단을 저울질하고 균형을 맞추면서 입체적인 성향을 지녀야 한다. 외교정책은 이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또한, 도덕적인 외교 정책은 타국에서 핍박을 받거나 반체제 성향을 지닌 집단을 돕는 것과 같은 특별하게 뉴스 가치가 있는 행위 외에 도덕적 이익을 조장하는 제도적 질서를 유지하도록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전쟁 때 헤리 S. 트루먼(Harry S. Truman)대통령이 핵무기를 사용하자는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의 권고를 따르기 보다 교착 상태와 국내 정치적 불이익을 수용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와 같은 도덕적인 결단을 포함하는 것이 중요하다.

셜록 홈즈(Sherlock Homes)가 말한 유명한 발언처럼 짖지 않는 개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올해에도 여전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외교정책 논쟁에서 윤리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외교 정책을 판단하기 위해 항상 도덕적인 추론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인지해야 하며, 해당 과정을 더 잘 해내기 위해 꾸준히 학습할 필요가 있다.

 

Joseph S. Nye (조지프 S. 나이)

하버드 대학 교수이자 ‘소프트 파워”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인물, “도덕은 중요한가? 루스벨트에서 트럼프까지 대통령과 외교 정책”라는 신작 출간예정

출처: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2020

화, 2020/01/28- 23:40
1
0

문케어 시행 3년, 종합병원 이행 성적 26점

’19년 종합병원의 건강보험보장률 목표(70%) 이행률 25.9%(58개소)

비급여 관리방안 부재로 예견된 실패, 재정 낭비한 관료 문책해야

보건복지부는 고시 즉각 개정해 비급여 풍선효과 방지하라

 

경실련은 오늘(8/19) <문케어 시행 3년, 종합병원 건강보험 보장률 목표 이행 실태>를 발표했다. 문케어는 문재인정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으로 2022년까지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올리는 국정과제다.

(조사목적) 정부는 문케어 시행을 위해 약 30.6조원의 건강보험료를 투입할 계획으로 이미 9.2조원 지출했다. 막대한 예산투입에도 비급여 관리대책 부재로 보장률 증가는 답보 상태에 있고,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된 비급여 관리를 위한 보고 의무제도는 정부의 고시 개정 중단으로 연내 시행이 불투명한 상태이다. 이에 문케어 최대 수혜대상인 종합병원의 목표 보장률 이행실태 발표를 통해 의지도 전략도 없는 무능한 관료와 정책의 문제를 알리고 비급여 관리제도의 조속한 시행을 정부에 촉구하고자 한다.

(조사대상) 233개 종합병원(공공 53개, 민간 180개)의 연도별(2016년~2019년) 건강보험 보장률 현황과 문케어 목표 보장률(70%) 이행 여부를 분석했다.
(재정계획) 정부는 문케어에 6년간 건강보험 재정 30.6조원 추가 투입 ′17년부터 ′19년까지 3년간 총 재정 소요의 1/3인 약 9.2조원 투입

(보장률 현황)문케어 시행으로 종합병원 전체 건강보험 보장률은 ’19년에 68.5%로, ’16년 대비 7.3%p 증가했다. 재정투입이 시작된 ’18년에는 전년 대비 7.5%p 증가했으나 ’19년엔 1.3%p로 둔화세였는데, 비급여 풍선효과로 추정된다.


 

(문케어 이행률) 문케어 시행에 따라 보장률 70%에 도달한 종합병원의 비율도 점차 증가했는데, ’16년 6.6%에서 ’19년 25.9%로 약 19.3%p 증가했다.

 

(문제와 개선방안) 문케어 시행 3년, 목표 보장률 이행 종합병원은 4곳 중 1곳 뿐.
문재인대통령은 문케어(건강보험 보장성강화대책)를 통해 국민의료비 직접 부담률을 30% 미만으로 낮추겠다고 약속했지만, 문케어 예산이 집중 투입된 대형 종합병원의 보장률은 68.5%로 개선되는데 그쳤고, 이행율은 25.9%(58개)로 저조했다.
이번 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개인소유 종합병원과 병∙의원의 보장률이 전체 의료기관 평균 보장률보다 낮은 상황임을 고려하면 문케어의 목표 보장률 이행은 문대통령 임기 내 실현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림3]의 종합병원 보장률 분포를 보면 166개(전체 중 74.1%, 공공병원 24개 포함) 기관이 문케어 목표 보장률 이하이며, 시행 3년 이행률 추세에 의하면 계획이 종료되는 ’22년에는 50%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문케어 저조한 성적은 비급여 관리대책 없이 밀어붙인 여당과 관료 책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해서는 건강보험 진료에 병행하는 비급여에 대한 관리방안이 마련되어야 ‘비급여 풍선효과’를 방지할 수 있다. 공공병원이 전체 의료기관의 10%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보장률이 낮은 민간 의료기관의 비급여 관리 기전 마련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문케어의 초라한 성적표는 예견된 결과다.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하면서 병원에 막대한 재정을 퍼줬고, 늘어나는 비급여에 대해서는 속수무책 상태다. 이는 비급여 대책 없이 정책을 밀어붙인 무능한 민주당과 정부 관료의 책임이 크다.
최근 문케어 4년 성과발표에 대한 비판 여론에 대해 청와대는 “다음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 뛰어가야 할 길이어야 한다”고 실패를 시인했다. 즉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이 실효성 있게 지속되려면 문대통령 임기 내 비급여 통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비급여 보고는 타협의 대상 아닌 의무, 정부는 고시 즉각 개정해야
국회는 2020.12월 의료법을 개정하고 2021.06.30까지 정부가 하위법령을 마련하여 시행하도록 공포하였으나, 정부는 의료계 반발에 고시개정을 2개월째 미루고 있다. 이는 국회의 입법명령을 행정부가 무시하는 행위로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경실련은 정부가 국회의 입법명령을 어기고 지난 ‘의대정원 증원 중단’과 같이 의료계와 타협하거나 후퇴하는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고, 국민 의료비 경감을 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다.끝.

 
 

2021년 08월 19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20210819_경실련보도자료_종합병원 문케어 이행 실태 발표
20210819_경실련보도자료_종합병원 문케어 이행 실태 발표

문의 : 경실련 정책국(02-744-0400)

목, 2021/08/19- 23:12
3
0

방역격리가 오래 지속되면서 폐쇄된 공간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서로에게 싫증을 내기 시작할 지경이 되었다. 사회적으로 크게 확대하여 보면, 이러한 미친 짓 같은 대규모 봉쇄 속에 사람들은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내기 시작한다.

이젠 대안의 미디어 매체까지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특히 독일의 반체제 언론들은 코로나 사태가 몇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정부와 주류 매체가 만들어 내는 거짓뉴스라고 믿고 있다. 이들은, 트럼프가 그러하듯이, 봉쇄에 대해서 저항시위를 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이는 마치 자신들이 나치가 행한 강압에 굴복하지 않은 진정한 반체제인사라도 되는 것처럼 고집스런 소란을 피우는 꼴이다. 대규모의 공공보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제한적인 개인의 자유를 선언하자는 것인가?

 

The Limits of Power

강제력의 한계

현명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주장의 동기가 무엇인지 밝히고자 할 것이다. 신앙적으로 신이 코미디 같은 각본을 진행했다고 믿는 극단적인 신비주의자들 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에겐 홍수, 전염병의 창궐, 지진 등이 전능하신 존재가 죄지은 인류에게 세상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징표인 셈이다.

현재 대부분 주류 언론들의 해설가들은 절대적 힘은 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맘몬(재물의 신)에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월가의 권력 속에, 정치의 배후에, 그리고 군사력과 대중매체 속에 있는 맘몬을 가리킨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현재의 위기는 바로 자기중심의 이기적 탐욕이라는 세속의 힘에 의해서 벌어진 것이다.

누군가 이야기 한다 “맘몬은 경제를 망가뜨려 아주 극소수들에게 모든 것을 몰아준다. 나가서 맘몬은 공포스런 코로나-19를 창궐시켜 우리를 가두면서 마지막 남은 자유마저도 빼앗아가려 한다. 아니면 바이러스를 이용하며 결국은 백신을 접종하여 우리 모두를 ‘좀비화’시키려는 음모일지도 모른다.”

정말일까? 상식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 우리가 아는 맘몬은 사악하여 도덕적으로 타락한 모든 범죄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맘몬이 지진이나 홍수나 전염병을 일으키지 않았듯이 이번 사태는 맘몬이 기획한 것이 아니라 그냥 터져 나온 것이다.

“다만, 우리가 격리되는 것을 증오하듯이 지배계층을 증오하는 것을 결합시켜 다음 같은 구호를 만든 것이다: 이들은 우리를 가두려고 현재의 벌어진 (거짓) 위기를 이용하여 것이다!”

그런데 대체 무엇 때문에? 무슨 이득이 있다고 전체 인구를 격리시킨다는 것인가? 그저 스스로 즐기기 위해 ‘우리가 원하니까 모두 집에 머물라’고 했나? 대중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대체 무슨 대중 반란? 억압받아야 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대중을 왜 억압한다는 것인가?

대중을 가두려는 의도가 도대체 무엇인가? – 아마도 미국이라면 – 여러 세대를 거쳐 조작된 자신의 조국이 모든 면에서 최고라는 거짓 이데올로기에 의해 분열되고 혼란스럽고 당황하면서 대중을 무자비하게 수탈하는 현재의 시스템의 진행형 요구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일까? 자신에게 충실했던 종복이 당신을 물어뜯기라도 한단 말인가?

하기사, 현재의 트라우마적 상황이 최면에 걸렸던 대중들에게 현재의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을 요구하도록 깨우칠지도 모르겠다.  이전의 격리에 대한 모든 경험에 비추어, 이번 격리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연장을 거듭하는 격리상황은 결국 시민들의 분노를 폭발로 유도할 것으로 보이는데 문제는 이러한 폭발이 과연 건설적이냐는 것이다.

파리의 벽에 쓰인 글 “우리의 분노를 가두지는 못할 것이다”

 

Blinded by Hubris

오만과 맹신

맘몬의 절대적 힘이라는 본성을 연구하는 것보다는, 맘몬이 가지고 있는 결함, 약점을 찾아 내는 것이 더욱 건설적이며, 그런 방식으로 그를 대대적으로 불신하고 비난하고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맘몬은 모든 것이 너무 쉽게 이루지는 탓에 오만해지면서 가끔은 어리석고 무능하며 앞일을 잘 보지 못한다. 폼페이오나 마이크 펜스 같은 자들을 예로 들어보자 – 이들이 전능한 천재들일까? 천만에! 반푼이 멍청이들이어서, 권력의 구조 속에 도덕적 또는 지적인 수준이 결여된 무리들과 함께, 진실과 덕성과 지성을 무시하는 부패한 시스템과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다.

이런 종류의 쓰레기들이 권력의 최상부에 오른 것은 일반 시민들이 정치를 혐오하여 사회적 책임을 멀리한 현상을 반영하는 권력구조(정치시스템) 때문이다.

서구의 정부들이 격리봉쇄를 선언한 것은 권력에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력함을 표출한 것이다. 사실 이들은 격리를 서둘러 시행하지 않았는데 이는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경제활동에 재앙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저하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시점에 이르자 결국은 시행하였고 준비상태는 엉망이었다. 이들은 중국이 봉쇄를 통해서 훌륭한 결과를 가져온 것을 지켜보았고, 더욱이 스마트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봉쇄를 취하지 않고도 마스크와 테스트와 의료행위를 통해서 상황을 극복하는 것을 배우면서도, 아무것도 준비한 것이 없었다.

서방의 정부들은 전문가 집단이 상황을 설명하고 기하급수적인 곡선을 제시하자 그제야 봉쇄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반면에, 팬데믹 상황에서 취해야 하는 기본적이고 고전적인 방역 매뉴얼에 따라 정부가 적정한 조치를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감각이 여전히 우리사회에는 존재한다.

물론 모든 위기 상황에도 재앙을 악용하는 무리들이 있다. 독수리는 먹이감을 직접 죽이지 않아도 썩은 고기를 즐길 수 있다. 월가의 금융권력은 재빨리 연방의회가 자산들을 지원 구제하도록 입법을 추진하는 동안, 소기업들은 파산하고 많은 이들이 절망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러나 길게 보자면, 소기업들이 파산하고 물건을 사야 하는 소비자들이 소득이 없어지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월가 자신이 수탈하고 탐식할 대상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경제적 강자들이 현재의 파괴적인 위기를 자신들에게 절묘한 혜택의 기회라고 간주하는 것은 정말로 몰상식한 짓이다.

유럽연합 내에서도 이탈리아와 스페인처럼 심하게 타격받은 국가들을 금융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유럽은행이 발행하는 ‘코로나채권’의 제안에 대해 독일과 네덜란드 같은 채권국가들이 거절하고 있다. 이는 어려움에 처한 국가들이 민간자본시장에서 고율의 이자로 빌려야 한다는 것이고 결국 해당국가들을 파산으로 이끌고 갈 것이다.

이는 국제민간금융시장에는 단기적으로 이익이 될지 모르겠지만, 회수가 불가능한 채무를 쥐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유럽연합은 결국 갈라서게 될 지 모른다.  이런 결과는 맘몬이라는 강력한 주인들의 이익에도 보탬이 되지 않는 일이다.

 

Public Health Is Not an Individual Choice

공공보건은 개인적 선택(자유)이 아니다

서구사회에서는 인권을 이야기할 때, 이는 개인 또는 소수자의 권리를 뜻하며, 서구가 아닌 다른 나라의 방식을 ‘레짐’이라고 표현하면서 이에 대한 저항권을 의미한다. 특히 미국은 자신의 세계패권을 거부하는 나라들에게 제재 또는 군사적 행위를 가하는 구실로 인권을 절대적 가치로 사용한다. (반미적) 체제에 도전하는 것에 대해 구체적인 사항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이를 ‘저항’이라고 찬양한다.

그러나 실상 대부분 문명화된 사회의 여러 측면을 살펴보면 개인적 권리를 지지하는 절대적 입장과는 상반되게 진행된다. 모든 문명화된 사회는 법치적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모든 시민이 반드시 준수해야만 하는 기본적 규칙이 있다. 문명화된 대부분의 국가들은 공공 교육시설과 모든 국민이 혜택을 누리도록 설계된 공공의료보험(미국을 예외로 하고)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개인적 자유에 일정 수준의 제약을 포함한다.

문명화된 사회가 주는 혜택을 모두가 누리려면 개인에게 가해지는 일정 수준의 제약을 수용해야 한다. 개인의 건강은 공동체의 건강에 의존하며, 그런 까닭에 대부분 서구사회에서는 건강보험에 대한 개별부담을 받아 들인다. 오직 유일한 예외 국가는 미국이며, 이는 철저한 개인이기주의를 미국시민 대부분이 매우 중요하게 받아드리기 때문이다.

Mammon and His Slave. <출처: Wikimedia Commons>

전염병의 창궐은 갑자기 검역조치와 같이 매우 비정상적이며 반갑지 않은 제재를 동반한다. 이는 공공선을 위하여 개인적 자유가 희생되는 대표적 예이다. 개인은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 그리고 모든 인류의 공공선을 위하여 제약을 감수한다.

오늘날처럼 과학이 발달한 사회의 역설은, 일반시민들이 해당 이슈의 심각한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질수록 그래서 전문가들과 해당기관에 더욱 의존해야 할수록, 일반인들은 전문가들과 해당기관을 점점 믿지 못하게 되고, 이들이 비밀스런 수작을 벌릴까 의심을 더한다. 보이지 않는 권력의 힘이 점점 수수께끼로 남을수록 해당사회는 내재적 의심증에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역설은 공공보건과 처방약이라는 이슈에 대해 매우 심하게 나타나면서, 책임을 지는 해당기관들 내부에 왕왕히 의견들이 충돌한다. 특히 독일과 같이 코로나 위기가 상대적으로 심각하지 않은 나라에서, 한 의사가 엉뚱하게 COVID-19에 대한 공포는 조작된 것이고 건강한 사람들은 무사할 것이고 어차피 죽을 사람은 죽도록 그대로 방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기의 견해는 모든 정부의 조처는 개인적 해방에 대한 임의적 제재라고 생각하는 일단의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이는 전문의사 집단의 주류적 의견일 수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 바이러스의 감염된 현장을 직접 목격하였다. 단순히 심한 감기나 계절적 독감의 수준이 아니었다. 가벼운 경우도 더러 있긴 했지만, 심각한 경우가 많았다. 살만큼 산 노인들만 죽어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격리봉쇄만이 유효한 것인지 질문을 던지는 것은 합리적이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약간 지체되기는 했지만 정부는 격리봉쇄를 실시하였는데, 실제로 전염병은 퍼져나가는데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스크는 구할 수도 없었다: 국내에 마스크와 의료장비를 공급하던 공장이 Brittany에 있었는데 Honeywell 사에 인수되면서 조업이 중단되어 있었다. 이것이 프랑스의 탈산업화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서구사회는 지식과 아이디어 그리고 혁신적 창업으로 얼마든지 경제를 꾸려갈 수 있고 제조활동은 가난한 나라의 저임금에 의존하면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마스크의 재고는 없었고 즉각 생산할 시설도 없었다. 인공호흡기도 없고 병원의 병상도 부족하여, 질병이 퍼지는 와중에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외출금지령과 해열진통제를 권하는 것뿐 이었다.

상황에 더욱 잘 대응하고 제대로 처리할 방식이 분명히 있었기에, 봉쇄가 풀리면 정부의 위기대응 능력에 대해 겉잡을 수 없는 비난이 쏟아지면서 공공의료시스템의 극적인 개선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독감이나 암 등 다른 질병으로 죽어 나갔을 거야’ 라고 변호할지 모르겠으나, 이번 유행전염은 기존질병에 추가되어 폭발한 것이며 의료체계의 한계를 넘어 이의 붕괴를 가져왔다. 이탈리아 경우에는 발발 한달 만에 수백 명의 의료진이 희생당했다. 이들은 전염질병이 아니었으면 죽어야 할 하등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정상적인 시기에는 ‘SAMU15’라는 응급서비스를 전화로 요청하면 구급팀이 몇 분 이내로 현장에 도착한다. 그러나 코로나 위기를 겪는 동안에는 응급전화를 하여도 당신의 위급상황에 상관없이 답변을 얻는데 한 시간이 넘도록 걸리거나 아예 답신을 얻을 수도 없는 경우도 생겨 났다.

방역격리의 주요 목적은 과부화가 걸린 의료시스템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격리조치가 없었으면 과부화로 인해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을 것이다. 현재의 위기는 현존 시스템이 부적격이며 공공의료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절대적 필요를 확인해 준 것이다.

 

Irrational Fear of Vaccination

백신에 대한 비이성적 공포

대량의 백신을 사용하는 것이 이런 치명적인 질병을 퇴치하는 확실한 길이다. 이 경우에도 공공선을 위하여 개인적 자유를 희생해야 하는 하나의 예가 된다. 우스꽝스럽게도 많은 지식인조차도 바이러스를 무서워해야 하는데 정작 바이러스와 싸우는 백신을 두려워한다.

백신을 반대하는 이유 중에는 이익에 집착하는 거대 제약기업들이 질병을 핑계로 돈을 벌어 들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나의 답변은 제약산업 자체를 반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문제는 거대 제약기업들이, 국가의료보험제도가 결핍된 미국에서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핑계로 공적 통제가 안되는 풍토 속에서, 보편적인 의료행위를 지원하기 위해서 약품을 만드는 것과는 별도로 보다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서 제품에 지나친 이익을 추가하는 점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은 의료행위와 약품생산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적 감시와 가격통제를 강화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결론은 제약산업은 수익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공공보건을 위해서 운용되어야 하며, 따라서 자금을 투자해온 금융산업에 배당을 우선할 것이 아니라 이를 공유기업으로 전환하여 발생하는 수익을 신약의 개발에 재투자하도록 해야 한다.

향후 전개된 전망은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미국과 같은 곳에서는 ‘자유기업’이 유일한 방식임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의료체제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실제로 불가능할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혼합경제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에, 유럽연합 또는 덜 직접적이겠지만 미국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면, 제약산업의 국유화가 가능할 것이다. 반면에 미국은 세계 어느 곳이든 사회주의적 방식이 도입되는 것을 봉쇄하려고 온갖 노력을 하고 있다.

 

No Longer the Center

서구는 더 이상 중심이 아니다

이젠 서구사회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COVID-19 사태에서 세계는 동아시아의 역량과 인상적인 인도주의 활약을 목격하였다. 아마도 백신은 NATO 회원국이 아닌 중국 또는 러시아 등에서 먼저 개발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로써 서방의 거대제약기업들의 독점시대는 지나갈 것이다.

유럽의 경우, 프랑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이 유럽연합이라는 기구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면서 개별국가의 주권시대로 복귀하려고 할 것이다. 동시에 개별 주권국가들은 시민들의 요구에 따라서 거대금융의 독재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노동조합과 진보단체들이 연합하여 기본적인 노동인구들에 대한 보호망의 개선을 요구하는 동시에 서비스 분야의 종사자들, 병원과 소매업, 버스운전사와 배달원들 (임시직노동자)들에게도 공공 서비스의 혜택을 더욱 강화하도록 단합된 연대를 통해서 관철하려 할 것이다.

Yellow Vests protest, March 7, 2020 in Paris before lockdown

아마도 프랑스는 사회투쟁의 오랜 관행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주춤한 ‘노란조끼운동’을 포함하여, 격리해제 이후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환상을 포기하고 시민들의 안녕과 복지를 우선하라는 요구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을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의 경우에는 오히려 반대의 현상이 예상되는데, 좌파에 속하는 일부의 그룹에서 젊은 세대를 우선하여 의료조치를 취한 후 여력이 있을 때 아픈 75세가 넘은 노인들을 돌보도록 요구할 개연성이 있다. 이는 나치가 시행한 악질적 우생학의 부활을 예고하는 것으로 시민들을 그룹별 분류하려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의 뒤틀린 행태이다.

모두에게 동일한 의료행위를 시행하는 것과 나이로 분류하여 차등을 두고자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문명적이고 어느 것이 야만적인지 분명하지 않은가? 재물의 신인 맘몬을 즐겁게 하기 위해 (비용을 아끼려고) 인간을 분류하여 희생시키려는가?

 

For Civilization

문명화를 위하여

지배계층이 얼마나 혐오스러운 존재인지 경고음을 울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현실적이고 확실한 대안 – 단순히 저항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 즉 기존 것과 다르고 보다 나은 무엇인가를 제시하고 이를 위해 싸워 나가야 한다.

우선 백신이라는 현재 마주치고 있는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주제부터 시작해 보자. 공공의료의 다른 주제들과 마찬가지로 이는 개인적 권리가 아니라 공동체의 안전에 관한 이슈이다. 이는 ‘억압의 저항(미국이 자주 쓰는)’이 아니라 ‘문명화의 설계’라는 주제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백신이 필요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반대로 백신은 반드시 개발해야 되며 이러한 과정이 BlackRock같은 거대제약기업의 주요 투자자에 대한 배당을 위해서가 아니라, 반드시 공동체의 안녕을 위한 공적 감시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백신의 문제는 백신을 사용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장악하려는 미국의 자본주의에 있다. 한때는 식량기구와 식약청이 제약산업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신뢰가 가능한 조직들이었으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는 거대 기업들의 손에 장악되어 그저 도장만 찍어주는 기구로 전락되었다.

또한 빌 게이츠처럼 인류박애주의자로 알려진 억만 장자들이 운용하는 기구들의 역할에도 경각심을 가져야 하며 숨겨진 사악한 음모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처방전은 의료행위와 백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배후에서 작동하는 거대한 독재권력을 제거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안녕을 균형있게 유지할 수 있도록 문명화가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물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말하는 것과 어떻게 해야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실한 아이디어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림을 그릴 수 없다.

 

A Mixed Economy

혼합 경제에 대하여

미국의 경우, 적정한 수준의 의료행위를 공공서비스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미국의 상황으로 보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마르크스 혁명은 아니라도, 혁명에 준하는 개혁의 물결을 요구한다. 제약과 의료 산업은 공공서비스의 영역이고 반드시 공공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 마치 인터넷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  자신의 영역에서 독점과 통제력의 명성을 누리며 자유시장의 기제에 익숙했던 혁신발명가들에게 이제 조언자의 입장으로 은퇴를 권하면서 자신이 편히 머물 주택을 고를 선택권을 부여하는 대신, 그들이 부적절하게 벌어들인 수입을 공공적 자산으로 전환해야 한다.

나는 미국을 위해서라도 공산주의적 혁명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는 1960년 대의 프랑스에서 그리고 현재의 중국이 채택하고 있는 ‘혼합경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경제의 중요한 결정과정은 사회적 통제 하에서 진행되고 주요한 투자 역시 사회적 목표를 가지고 이루어져야 한다.

통제의 형태는 다양할 수 있다. 우선 미국을 예로 들면, 결정과정에서 낭비적이고 비정상적인 국방에 대한 투자를 국내의 인프라로 돌리고 모든 시민들이 제대로 문명화된 사회에 통합되도록 하는 조처를 취해야 한다. 이러한 혼합경제는 소규모의 독립된 기업들이 마음대로 혁신할 수 있는 친화적 환경을 만들어 준다.

현재의 미국처럼 극심한 양극화에서 복권의 당첨이나 꿈꾸는 자본주의보다는, 모든 시민이 건강과 주거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 보다 실제적인 자유를 가져다 준다. 이러한 문명화 프로젝트는 사회의 모든 계층을 막라하여 성실하고 건전한 시민들의 지지를 얻을 것이다.

물론 조국인 미국이 나의 상식적인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수 년 또는 수십 년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반면에 이미 다른 나라들은 거대제약기업들의 위협과 미국의 억만장자들의 개입에 대응할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진행과정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다극화 multipolarization.’이다.

이 구호를 2007년 러시아의 푸틴이 사용했다. 그러나 단극적 세계화의 주요 세력인 서구진영은 ‘다극화’라는 관점을 받아들이는 대신, 분노에 빠져 ‘유럽방어 Defender Europe 20’라는 핵전쟁을 설정한 비정상적이고 도발적인 군사훈련을 러시아 국경 근처에서 실시하려고 했는데, 때마침 COVID-19로 인하여 잠시 중단되었다.

미국과 유럽의 위성동맹들은 자유국가 – 미국의 지배에서 자유롭다는 뜻에서 – 들을 위협하는 전쟁을 실제로 수행하는 중이다. 그것도 조작된 선거로 탄생한 권력에 의해 승인된 금융의 지배, 즉 신자유주의라는 전선을 형성하면서 ‘망상적 세계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수행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극적인 세계화는 파열과 대립의 과정에 있다. 중국에 대한 온갖 허위 선전은 사실을 바꿀 수 없다. 미국의 거대 미디어 매체들이 굴기하는 경쟁자를 비난하는 동안에도, 세계는 중국이 서구사회보다 팬데믹 상황을 보다 전문적인 노하우로 훌륭히 대처한 것을 목격했다. 미국이 통제하는 국제기구들은 이제 굴기하는 중국의 영향에 압도당하고 있다 – 특별히 WHO가.

다극적 세계는 거대제약기업들에겐 커다란 위협이 된다. 빌 게이츠와 미국의 제약산업은 COVID-19를 퇴치하는 백신개발에 더 이상 독점적 지위를 누리지 못한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서 다극적인 주권국가로의 극적인 전환은 백신개발뿐만 아니라 사회조직에 있어서 정당한 경쟁을 회복시킬 것이다.

서구국가들은 자신들이 처한 문제에 집중하고 해결해야 하며, 다른 국가들로 하여금 각자의 역사에 맞는 나름대로의 모델에 따라 발전하도록 허용해야 한다. 오만한 미국식의 자유시장 민주주의는 지구상의 어떤 국가에게도 강요해서는 안되는 방식이며 더구나 미국 자신을 위해서도 적용해서는 안된다.

혼합경제 방식은 다양한 형태를 지닐 수 있다. 어떤 국가에서는 이를 사회주의라고 부르겠지만, 다른 국가들은 이를 거부할 것이다. 작은 나라들은 아이슬랜드처럼 독립을 만끽하게 해야 하고 모두가 각자의 길을 스스로 모색하도록 해야 한다. 들판에 피는 수 만 가지의 꽃들처럼 말이다!

 

출처: Consortium News. 2020-04-11.

Diana Johnstone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는 미국인 작가, 최근 ‘Queen of Chaos’ ‘Circle in the Darkness’ 등 저술을 출간하였다.

목, 2020/05/07- 20:37
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