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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7] 팬데믹 이후의 농업 – 미국, 서유럽 그리고 남아공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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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7] 팬데믹 이후의 농업 – 미국, 서유럽 그리고 남아공의 경우

admin | 금, 2020/05/01- 22:06

편집자 주:

전체적인 식량의 수입의존이 70%가 넘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팬데믹 이후 세계농업의 지형변화와 수급상황은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아래의 칼럼은 남아공 전문가의 관점에서 작성된 것이나, 동남아에서 입국한 외국노동자에게 의존하는 한국농업의 입장에서도 경청하고 고민할 가치가 있는 글이다.


COVID-19 팬데믹이 국가 간의 국경을 닫아버리자, 농업분야도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과 같이 식량안보에는 전혀 문제 없을 듯 보이는 국가들마저도 새로운 장애로 인하여 저임금의 노동자들을 추방하면서 농업 필요한 일손이 부족하게 되었다. 더구나 이러한 농업노동자 수급의 붕괴라는 충격은 팬데믹이 멈춘 후에도 지속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계절적으로 외국의 노동자에 의존해온 위험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델란드 등 서유럽 국가들에게서 진행되어 왔는데 이들 국가들은 동유럽의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다. 질병과 방역에 대한 공포로 인해 국경이 폐쇄되면서, 동유럽의 노동자들이 계절에 따라 이동하지 못하면서 서유럽구가들의 곡식들이 논밭에 그대로 방치되는 상황이 시작된다.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COVID-19 위기이전부터 농업노동력의 부족을 염려하여 왔다. 미국인들은 논밭 일을 원하지 않아 농부들은 주로 계절적으로 이동해온 멕시코인들에게 의존한다. 예컨데 농업에 고용되어 유효기간이 일년 이내로 제한된 H-2A비자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 미국 농업노동자의 10%를 차지한다.

그런데 H—2A 프로그램의 비용과 복잡함으로 인해 이민노동자의 이동에 심각한 장벽을 오랜동안 형성해 왔다. 이제부터 미국의 입국심사 공무원들이 최초신청자와 귀국노동자들에 대해 비자 인터뷰를 취소한다 해도 H-2A의 절차는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 이에 더하여 팬데믹으로 인해 고용인들은 일터에서 ‘거리두기’ 규정 뿐만 아니라 H-2A 해당 노동자들의 이동과 숙박 등에 대한 건강과 안전에 대한 부담을 앉게 되면서, 농업생산량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러한 경험을 겪으면서, 농민들은 다시 계절적 외국의 이민노동자에게 의존하는 데서 오는 위험을 되풀이하여 하지 않을 것이고 이러한 위험을 감소시키려고 농업 일에 자동화를 시도할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자동화는 상당한 초기의 투자를 필요로 하며 과일과 채소의 수확 같은 일부 작업은 자동화하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드론, 자동화 트랙터, 씨뿌리는 로봇, 수확작업 로봇 등의 기술발전으로 이민노동자에 대한 의존이 현격히 줄어 들 것이다.

선진 경제권 대규모의 농업인들은 이러한 조처를 취하고 있으며 개발도상 국가들의 농업인들도 노동력 부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남아프리카의 경우, 농사일에 적당한 비숙련 및 비고용의 노동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숙련 노동자의 부족을 겪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COVID-19의 봉쇄조치에도 불구하고 식량과 음식 공급은 기본적인 활동으로 분류되어, 농사일은 장애를 받지 않고 지속되어 왔다. COVID-19 이전에도 남아프리카는 2012년에 수립된 국가발전계획(NDP)에 의거 농업과 농업관련 분야에 2030년 까지 백만 명의 고용을 늘리는 목표를 가지고 있고, 이를 위해 논밭의 면적을 넓히고 노동집약적 작업을 촉진하여 왔다.

이런 계획 하에서 각종의 과실과 곡류의 생산량을 증대하여 왔고, 2012년의 72만 명의 고용을 23%가 늘어난 2019년에는 89만 명으로 확대하였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국내 시장여건 때문이 아니라 국제시장에서 자동화를 채택한 선진경제권의 농업인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면서 자동화 기술의 도입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실제로 남아프리카 NDP도 관게시설, 생산성 향상, 그리고 수출확대를 위하여 투자를 늘릴 것을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자동화가 재정적으로 가능하고 필요하기도 하다.

농토 개간에 대해서도 같은 상황이다. 남아프리카는 자연대지와 돌보지 않은 토지가 풍부하다. 맥킨지 세계보고서에 따르면 KwaZulu-Natal, Eastern Cape, Limpopo 등 지역에 개척하지 않은 농토가 대략 합해서 1.6-1.8 백만 핵타르가 존재한다. 놀고 있는 대지를 농토로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자동화가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개략적으로 정리하자면, COVID-19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대규모 농업을 진행하는 국가들의 정책입안자들과 관계자들은 자동화하려는 경향에 신중해야만 한다. 남아프리카같이 농사일을 해야 먹고사는 풍부한 노동인력과 선진경제권에서 필요로 했던 계절적 농사일에 의존해온 외국 노동자들에게 매우 불안한 미래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출처: Project Syndicate, 2020.

Wandile Sihlobo

남아프리카 농업위원회 수석경제분석가이며, ‘Finding Common Ground: Land, Equity, and Agriculture’.의 저자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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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할 수 없지만, 관리는 가능한 북핵문제

여러 나라, 특히 한국에서 많은 희망을 가지고 있던 2019. 2. 27. ~ 28. 하노이 정상회담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과 달리, 트럼프와 김정은은 준비된 오찬도 먹지 않은 채 각자 숙소로 돌아가 버렸다. 이것은 갑작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지난 몇 개월 동안 사실상 미국과 북한이 거의 의미 있는 협의를 하지 않은 것을 감안한다면, 하노이 실패는 사실상 처음부터 가능성이 높은 일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노이 회담이 끝난 지 약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실망과 걱정, 그리고 우려감과 긴장감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하노이 정상회담의 결렬은 앞으로 북핵 문제에서 아무 진전이 없을 것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타협은 여전히 가능하다. 문제는 이 타협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관계 국가들이 아름다운 꿈을 꾸는 대신에 쉽지 않은 현실을 잘 인식하고, 모든 참가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약 1년 만에 낙관주의 시대가 드디어 막을 내리고, 현실주의 시대가 다시 찾아왔다.

사진: KBS뉴스

지난 2018년 4월 말, 거의 모든 한국 언론은 ‘낙관주의 쓰나미’에 덮혀졌다. 특히 진보경향 언론이 더욱 그랬다. 기자들은 한반도에서 영원한 평화시대가 도래하고, 악명높은 분단체제가 드디어 무너지고, 이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한반도를 만끽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들은 멀지 않은 미래에, 주말에 묘향산으로 가서 현지의 아줌마가 파는 군옥수수를 먹으며 산에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했고, 다른 기자들은 개성과 평양을 통과하는 기차를 타고 파리로 갈 때가 멀지 않다고 주장했다.

당시에 필자는 이 주장을 보면서 웃음을 짓거나 어깨를 으쓱했다. 솔직히 말해서 당시의 자료들을 잘 정리하고,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수많은 한국 기자와 학자들의 소박함을 보여주는 증거 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 사람들이 믿고 싶은 착각을 연구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18년 봄에 피어났던 많은 희망은, 근거가 별로 없었다.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을 비롯한 남-북-미 삼각관계에서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낙관주의가 사라졌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노이에서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로 지금 한국 관광객들이 금강산 여행 준비를 위해 가방을 싸고 있다고 하더라도, 2018년 봄에 넘쳐났던 꿈은 현실화되지 못했을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도 불가능하고, 남북한 자유왕래도 불가능하며, 남북한의 협력 강화에도 매우 강력한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초래하는 것은 어떤 사람 혹은 정치세력의 나쁜 의도 때문이 아니다. 한반도 문제를 희망대로 될 수 없게 하는 이유는, 사실상 바꿀 수 없는 구조 그리고 여러 관계 세력의 이익의 장기적인 모순과 충돌이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측이 믿을만한 안전보장을 받는다면 핵을 포기할 의지가 있다고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핵을 포기한 북한이 너무 큰 경제 성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도 한다. 누군가는 북한측이 경제건설을 위해 핵 포기 의지가 있다고도 하는데, 모두 다 틀렸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북한 당국자’들이 아니라 실제 ‘북한 당국자들이 가진 생각’이다. 제일 먼저 북한은 핵을 포기할 의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있을 수조차 없다. 북한은 시간을 벌기 위해서 비핵화가 가능하다고 할 필요가 생길 수 있지만, 북한을 이끄는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의 생각처럼 그들은 미치광이들이 아니라, 그들은 매우 합리주의적이며 냉정한 사람들이다. 최근의 세계 경향을 매우 냉정하게 분석하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스라엘의 폭격 때문에 핵개발을 하지 못한 이라크는, 미국의 침공을 당했다. 결국 이라크 통치자였던 후세인은 처형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라크 엘리트계층 사람들이 죽었고 나라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시에도 고급외교관으로 지내던 존 볼턴의 말을 잘 듣고, 핵개발을 포기했던 카다피 대령은 나토의 간섭 때문에 혁명군을 힘으로 잘 진압하지 못했고,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1994년에 러시아를 비롯한 강대국의 국경보장 약속을 믿은 우크라이나는, 자국 영토 내의 소련시대 핵무기를 양도했다. 그들은 2014년에 부다페스트 각서 당사자인 러시아의 침공을 받고 자신들의 보석으로 여기던 크림반도를 영원히 상실했다. 이것을 잘 본 북한 엘리트 계층은, 비핵화를 할 생각이 어떻게 생길 수 있을까?

물론 어떤 사람들은 북한이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체제보장을 받는다면 그들이 기꺼이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동의하기 매우 어려운 주장이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야당이 여당이 될 때’마다 과거의 정책을 매우 쉽게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이러한 경향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이 매우 어렵게 이룬 이란 핵합의를 하루아침에 취소해 버렸다. 미국에서도 차기 민주당 대통령은 트럼프 시대 북한과 맺은 체제보장이든 기타 합의이든 이와 같이 파기하지 않으리라는 근거는 어디 있을까? 그 때문에 북한은 핵무기를 관리할 수도 어느정도 감축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생각은 반드시 몇 기의 핵무기를 잘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이것은 자신의 생존을 다른 아무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북한 엘리트 계층의 입장에서 제일 합리주의적인 태도이다. 그들은 자살가들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해외에서 지원을 많이 받을 수도 없으며, 투자를 받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거의 확실히 사실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70-80년대 남한이나 80-90년대 중국과 같은 고도경제성장을 자랑하는 개발독재를 만들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북한 엘리트 계층의 입장에서 이것은 유감스럽지만 결정적인 걱정이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의 통치자들은 당연히 자기 나라가 빨리 발전하고, 잘 사는 이웃나라들을 따라잡기를 바란다. 그들은 자기 나라가 못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에게 경제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닌 체제유지이다. 그들은 체제유지가 불가능하다면, 자신의 생존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위협을 초래할 것 같은 정책을 하지 않을 것이다. 死者는 富者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 때문에 이라크나 리비아와 같은 체제붕괴를 초래할 수 있는 조치는, 그들에게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정책이다. 그래서 북한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비핵화 없이 고도경제성장이 불가능한 것을 잘 알더라도 ‘자살’과 같은 비핵화를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한 대가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같은 이유로 많은 한국 사람들이 희망하는 남북한 자유왕래도 꿈 뿐이다. 지난 2018년에 북한은 오랜만에 1인당 GDP 통계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북한 경제학자들은 2018년 북한의 1인당 GDP를 1214달러로 발표했는데, 이것은 남한보다 25배 작다. 이 세상에 남북한만큼 생활수준, 소득격차가 심한 이웃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북한 엘리트 입장에서 이것은 매우 위험한 사실이다. 인민들이 남북한 격차를 잘 알게 된다면 당연히 만성적인 위기를 야기한 체제에 대해서 불만이 많아질 것이고, 서울 주도 흡수통일을 통해서 자신들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질 수도 있다. 이것은 당연히 환상이지만, 인민들은 열심히 믿을 것이다. 그 때문에 인민들 사이에서 이와 같은 외부생활에 대한 지식이 많이 확산된다면, 김씨일가 그리고 엘리트계층은 나라를 통치하고 국내 안전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문제는 북한 엘리트계층이 나라의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전임자들에게 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다수의 경우 그 사람들은 자기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엘리트 계층이었기 때문에 자신도 그 자리에 있는데, 그들이 자신의 先代들을 비난하고 격하할 경우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험해진다. 先代에 대한 공격은 북한 엘리트계층의 정당성을 파괴하는 행동일 뿐이다.

그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전례가 없는 북한의 쇄국정책은, 북한 엘리트 계층이 편집증 환자이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쇄국정책은 북한 국가의 생존조건, 북한 국내안전의 유지조건이다. 북한 백성들이 남한을 비롯한 외부 세계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잘 알 수 없어야 체제유지가 가능하다.

쇄국정책은 북한의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핵심 이유 중의 하나이다. 등소평의 중국과 박정희의 한국이 잘 보여주었듯이, 해외로부터 투자와 기술 교류뿐만 아니라 문화, 민간 등의 교류를 많이 할 때 경제기적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엘리트 계층이 이 사실을 잘 안다고 하더라도, ‘개방’을 비핵화만큼 ‘자살’로 여길 이유가 이미 충분히 있으므로, 그들은 쇄국정책을 포기할 수 없다. 그들은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과 같은 ‘바깥사람 전용’공간을 마련할 수 있지만, 평양역이나 개성역에서 서울발 파리행 여객열차의 남한 사람들이 하차해서 역 주변을 관광하는 것도, 서울의 어떤 교수가 아무 때나 묘향산에 가서 자유롭게 등산하고, 인민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이것은 북한 집권세력이 사악하다거나 나쁜 의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 아니다. 세계 어디에나 집권세력은 오랫동안 정권을 장악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한국과 같은 민주국가에서 엘리트계층은 정권교체의 경우에도 권력을 뺐긴 사람들은 출구가 있다. 그들은 대학이나 기업으로 가거나, 아니면 야당 활동을 할 수 있다. 북한 엘리트 계층은 권력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옛날 인권침해 때문에 감옥으로 가지 않는다고 해도, 특권과 재산을 전부 잃어버릴 것이다. 즉 그들은 비상구가 없다.

그 때문에 2018년 봄에 많은 사람들이 희망했던 ‘아름다운 한반도의 미래’는 꿈 뿐이었던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북한 집권세력은 내부적인 구조의 한계 때문에 비핵화도, 개방도, 남북한 자유왕래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유감스러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국 정부와 한국 사회는 아름다운 꿈에 대해서 계속 주장할 수 있지만, 마음 속에서 진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필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했던 ‘평화체제’의 꿈이 가능할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남북한의 장기적인 평화 공존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중요한 정치목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현 단계에서 북한의 비핵화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북핵의 동결이나 감축은 가능한 일이다. 하노이 결렬 이후 북한측의 공식 발표를 보면, 그들은 앞으로도 회담을 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많이 강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하노이에서 미국측이 거부한 북한의 제안은 매우 심각한 착각과 잘못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북한측도 타협을 희망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물론 북한은 어떤 조건이라도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측은 영변을 비롯한 핵 시설의 일부를 철거하거나 폐기할 수 있고, 조건이 좋을 경우에는 이미 생산된 탄두, 무기용 플루토늄 또는 HEU의 일부를 반출할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공짜는 없으므로, 북한은 자신들의 이러한 행동에 막대한 보상을 받기를 희망한다. 적어도 대북제재를 완전히 완화하고, 대규모 대북 경제지원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볼 때, 미국(또는 남한)의 경제적인 양보는 정치적인 양보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북한측은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또는 수교가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수십억 달러 이상의 보상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극한 현실주의자들인 북한 결정권자들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군사력뿐이다. 이러한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북한측과 타협을 이루기 위해서는 북한 엘리트계층이 세계를 보는 의식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남한측이 북한과 교류를 할 때 거의 불가피하게 직간접적으로 남북 경제협력을 지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수파 박근혜 대통령도, 진보파 문재인 대통령도 통일이나 남북협력이 큰 이익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거리가 아주 먼 낙관주의이다. 하지만 보수파 일부의 주장과 달리, 남북한 경제협력을 지원하는 것은 단순히 퍼주기가 아니다. 남한의 입장에서 보면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목적이니까, 이 목적을 이루는 데 투자하는 돈을 그저 낭비된 돈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남북한 경제협력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남한 납세자들의 돈이다. 보수파 일부의 주장과 달리, 남북한 경제협력을 지원하는 것은 단순히 퍼주기가 아니다.

현 단계에서 북한측은 핵 동결(내지 감축)에 관심이 있는데, 문제는 미국측의 태도이다. 미국측은 이와 같은 부분적인 해결 방법을 결코 지지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지 벌써 몇 년 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포용정책도, 강경정책도 북한의 비핵화를 불러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치구조를 감안하면, 핵 관련 전략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중급이나 하급 공무원으로 볼 수 있는 한반도 전문가들이 아니다.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백악관, 의회, 국무성, 국방성 등을 움직일 수 있는 핵심 인물들이다. 유감스럽게도 그 사람들도, 미국 여론도 아직 착각을 극복하지 못 했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힘이 많은 주류 의견인 강경론은, 이와 같은 타협이 비확산체제를 위반한 파렴치한 국가에 대해서 보상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북동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유지보다 전세계에서의 핵 비확산 체제 유지를 더 중요시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북핵 동결(내지 감축)에 대해서 반대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북핵 동결은 전 세계 핵확산의 대문을 여는 전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측의 이러한 우려감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지금도 앞으로도 남한 외교관들은 미국측도, 북한측도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찾으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미·북 양측 모두 불만이 없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 있는 타협안’이 없다면, 한반도에서의 장기적인 평화공존은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핵 때문에 여전히 걱정이 많은 미국은 2017년과 비슷하게 가끔 대북 압박 정책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북한측도 핵동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자신의 핵, 미사일 능력을 더욱 열심히 개발하고 가끔 위기를 도발할 것이다. 그 때문에 남한은 북미 관계에서 위기를 예방하려 중개인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양측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타협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이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북한 관리’는 값싼 일이 아니다. 북한은 물질적인 보상 없이는 어떠한 타협에도 응하지 않고, 미국측은 ‘비핵화’를 포함하지 않는 모든 타협안에 대해서 반대감이 있는 조건 하에서 필요한 비용을 낼 수 있는 세력은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경제노선을 보면 ‘개방이 없는 개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해서 2012년부터 김정은 정권은 1980년대 초 중국과 매우 유사한 경제개혁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북한 경제상황이 많이 개선되었다. 2016년부터 많이 엄격해지기 시작한 대북제재는 북한 경제성장의 길을 가로막았지만, 이 제재가 완화된다면 북한 경제는 다시 활기를 찾고 빠르게 성장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2012-16년까지 김정은의 경제개혁 시기 북한 성장률이다. 당시에 시장화를 시작한 북한에서 성장률은 최소 3%에서 최대 7%로 추정되었다.

북한 경제 정책은 시장화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니다. 현대 세계에서 경제를 살리는 방법은 시장 중심 정책밖에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해외 유학을 통해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달리 현대세계를 잘 관찰한 김정은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등소평시대 중국과 김정은의 북한을 비교해보면, 공통점뿐만 아니라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1980년대 등소평 시대 중국과 달리 북한에서 정치자유화와 개방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북한 정권은 여전히 쇄국정치를 엄격히 실시할 뿐만 아니라, 김정일 시대보다 일정 수준 더 강화했다. 주민들에 대한 감시와 단속이 완화하기 시작할 조짐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북한 집권세력은 개방을 시작한다면 체제유지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개방은 없을 것이다.

현 단계에서 세계 역사에 전례가 없는 김정은 정권의 ‘개방이 없는 개혁’ 시도가 성공할 지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많은 관찰가들은 북한이 개방을 하지 않는다면 외부투자를 유치하지 못해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사실일 수도 있지만, 2010년대 초 상황을 고려하면 ‘개방이 없는 개혁’의 시작은 어느 정도 북한경제의 성장을 초래할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된다. 개방이 없어도 북한은 보다 더 열심히 시대착오적 중앙계획경제를 없애고 시장경제를 도입한다면, 경제상황이 어느 정도 좋아질 수밖에 없다.

남한측은 북한의 개혁을 환영해야 한다. 북한 경제가 많이 개선된다면 북한 인민들의 생활이 개선될 뿐만 아니라 북한 체제의 안정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매우 위험한 벼랑끝 외교를 할 이유가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 때문에 남한은 북한式 개방이 없는 개혁 정책을 많이 도와주면 좋다.

남한은 어떤 방법으로 도와줄 수 있을까? 다른 어떤 것보다 북한 엘리트 계층의 특수성과 우려감을 감안하여, 북한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을 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 햇볕정책의 경험이 잘 보여주듯, 북한은 개성공단과 같은 공단을 몇 개 받아들일 수도 있고, 금강산관광과 같은 ‘제한된 지역에서의 제한된 관광’에 동의할 수 있다. 북한 당국자들은 이러한 교류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이러한 제안에 동의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당연히 북한측은 관광지역이든 공업지구이든 모든 것을 감시, 통제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교류사업을 허가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해서, 묘향산에서 ‘특별관광지역’이 생길 때에만 서울의 교수는 묘향산으로 등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교수와 함께 군옥수수를 먹을 사람들은 현지 할머니들 대신에, 안내원으로 위장한 국가보위부 요원들 뿐이다. 공업지구도 비슷할 것이다. 북한측은 모든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남한측 관리자들과 비공식적으로 이야기를 한 노동자들을 조사하고 처벌하지 못한다면, 공업지구 계획에 동의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한에도 불구하고 남한 입장에서 관광사업, 특히 공업지구는 가치가 많은 사업이다. 이것은 북한 경제발전을 많이 도와주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들에게 매력이 많은 ‘자유롭고 잘 사는 남한’의 모습을 훔쳐볼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이다. 북한 사람들이 남한의 모습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혁명적인 반체제 감정이 솟구칠 수도 있지만, 체제의 단계적인 변화에 대한 많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희망은 북한이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방향으로 계속 바뀌도록 북한 통치권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압박을 가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현 단계에서 제일 바람직한 것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비롯한 농축우라늄 생산시설과 무기용 플루토늄 생산시설 대부분을 폐쇄하고, 그 대신에 유엔 안보리 제재가 완화되고, 북한측이 경제개발 또는 인프라 개발 지원을 받는 것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 이와 비슷한 특구가 몇 개 더 생기면 좋을 것이다. 남한은 북한 철도, 포장도로 건설 등에 많이 투자할 수도 있다.

벌써 말한 바와 같이 미국은 이와 같은 타협에 불만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로 미국측은 북한이 어느 정도 핵무기를 유지한다고 해도, ICBM 발사와 핵실험과 같은 도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환영할 이유가 있다. 다른 입장에서 미국은 북한측이 외부에서 알 수 없는 지하시설에서 수십기의 핵무기를 여전히 보유하며, 규모가 작더라도 여전히 핵 생산 시설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환영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북한 비핵화에 대해서 착각을 극복하지 못하는 미국 언론, 여론 그리고 전문가들이 아닌 정치인들은 반감이 많을 것이다. 미국측의 이러한 반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북한이 사실적인 핵 보유국이 되더라도 겉으로 북핵의 동결 및 감축이 ‘핵동결(내지 감축)의 완성’이 아니라 ‘비핵화 프로세스의 시작’이라고 주장할 필요가 있다.

바꾸어 말해서 북한측이 핵을 포기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조용히 인정하는 동시에, 이와 같은 핵동결이나 감축을 ‘비핵화를 위한 첫 단계‘로 공식적으로 널리 알리며, 북한과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 회담을 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회담은 별 진정성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양측 모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장기적인 목적으로 선전한다면, 국제 비확산 체제에 대한 타격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한다면,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 대신에 ’단계적이고 장기적인 비핵화를 하고 있는 나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두 개념은 아무 차이가 없지만, 후자는 듣기 좋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좋으며, 북핵이 국제 핵 비확산 체제에 만든 구멍을 어느정도 막을 수 있는 담론이다.

이와 같은 해결을 불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디에나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문제의 완벽한 해결을 이루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으며, 덜 나쁜 시나리오나 차악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보통 있는 일이다.

한편으로 남한 입장에서 이와 같은 타협과 장기적인 평화공존은 윤리적인 문제가 없지 않다. 남한 진보파도, 보수파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권문제는, 이러한 핵동결과 개방이 없는 개혁을 열심히 하는 ‘개발독재 북한’에서 여전히 큰 문제일 것이다. 물론 남한측은 이런저런 부문에서 인권침해 완화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데, 그 효과도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북한의 경우 인권침해 문제는 김정은이나 북한 통치권자들의 惡意의 결과보다도 북한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자유가 많으며 잘 사는 남한이 있기 때문에,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체제가 있을 수조차 없다.

이와 같은 타협을 이루기 위한 조건은 현 단계에서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바로 지금 그 타협이 가능한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트럼프는 매우 특수적인 미국 대통령이다. 한편으로 그는 보통 미국대통령과 다르게 대북 선제공격을 하고, 한반도와 북동 아시아에서 전쟁을 불러올 수도 있다. 다른 입장에서 보면 그는 보통 미국대통령이 상상하지도 못하는 새로운 해결방법과 타협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 때문에 평화공존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특수적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 기회를 잡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장기적인 위기와 위협 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Andrei Lankov

목, 2019/04/0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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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로 장관후보자 7명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모두 마쳤다. 이제 후보자에 대해 청문회 보고서를 채택할 것인지, 후보자를 임명할 것인지는 국회와 청와대의 손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번 청문회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은 착잡하다. 흠결이 없는 후보자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우리 사회의 소위 지배엘리트 계층의 많은 문제가 또 다시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후보자 중에 최정호 국토교통부장관 후보자는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주었다. 부동산 투기를 막고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일해야 하는 국토교통부 장관으로서는 자격이 매우 의심스럽다. 1가구 3주택, 꼼수증여, 퇴직 전 공무원특별공급 악용 등 전형적인 토건관료의 행태를 보였으며, 장관후보자 지명을 앞두고 이루어진 증여도 시민들에게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 3.1서울민회를 통해 시민들은 엘리트 대의민주주의를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려움을 선언하고, 민회에 의한 직접민주주의를 활성화할 것을 결의했다. 3.1서울민회 경제민주화분과위원회에서는 당면과제로 △ 삼성 이재용 구속과 한진 조양호의 경영권 박탈 △ 토지공개념 실현과 보유세 강화 및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 △지역에 기반한 사회적경제의 실현 등 3대 과제를 선언한 바 있다.

최정호 후보자의 토건관료적 행태로 볼 때, 우리 경제민주화분과위원회에서 선언했던 토지공개념을 바탕으로 서민들의 주거, 주택 정책을 제대로 펼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최 후보자는 스스로 자질 부족을 인정하고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 만약 전문직 공무원으로 시민들에게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동안의 투기로 인한 불로소득을 서민과 청년들의 주거안정기금으로 내놓고 국민들의 판단을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지배엘리트는 권력과 부와 명예를 독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 부처의 장관은 그 자체로 권력과 명예를 누리는 자리이므로 그동안 부적절한 방식으로 치부한 이들은 이제라도 불로소득을 사회로 환원하고, 공인으로서 명예를 지키고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라도 권력과 명예와 부에 대한 더욱 엄격한 우리 사회의 기준을 세워야 하며, 청와대는 이를 계기로 부실한 인사검증을 더욱 심각하게 성찰해야 한다.

2019년 3월 28일

 

3.1서울민회 경제민주화분과위원회

금, 2019/03/2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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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해설:

2015년에 진행된 이 인터뷰 내용은 세가지 의미에서 소개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첫째, 신향촌건설 운동의, 흥미진진하면서도, 시대적 역설이 잘 드러나는, 초기 역사와 일화를 확인할 수 있다. 2001년 당시 장쩌민 주석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의 최고위급 간부들이 배석한 회의에서 원테쥔 선생이 삼농문제를 직보하여, 중국 정부의 주요 정책의제로 받아들여지게 된 장면은 상당히 극적인 순간이다. 하지만, 동시에, 실제 중국 정부가 이를 받아 2005년부터 실행한 ‘신농촌건설’이 여전히 하드웨어적인 인프라 투자, 즉, 도시의 생산과잉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자 ‘발전주의’에 기반한 실천인데 반해서, 그에 앞서 진행된, 신향촌건설 운동은 농민과 청년지식인이라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고방식을 가진, 인문생태주의적인 실천이라는 것은, 당대 중국사회가 삼농문제를 받아들이는 양면성을 보여준다. 당시, 중국 정부의 신농촌건설은, 한국에서는 비판적으로 거론되는, 새마을운동을 상당히 참고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결국, 원톄쥔 선생은 삼농의 대표적인 이데올로그였음에도, 막상, 주류 사회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향촌건설운동은 20여년 가까이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으며, 이 글에서 주요하게 거론되는 량슈밍향촌건설 센터는 아직도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이 조직은 아직도, 베이징 교외의 매우 허술하고 영세한 시설속에서, 젊은 이상주의 청년 활동가들의 열정과 몇몇 선도적 민간/국제 기금의 지원으로 어렵게 운영되고 있다. 중국 NGO와 자선단체의 주류를 이루는 관방 혹은 대기업이 지원하는 거대 단체들의 지원을 통한 안정화는 여전히 요원한 일이다. 시진핑 정부의 ‘향촌진흥정책’이 보다 소프트웨어적인 관점으로 이행함에 따라서, 여건이 다소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대규모 자본이 투하되는 여러 정책 사업들에 신향촌건설 운동에 속한 풀뿌리 조직들이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는, 몇몇 기층 지방정부와 협력하는 실험적인 사업들을 제외하고는 제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역으로 지나치게 주류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으로 보이는 일부 참가자는 운동진영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실은 20년에 걸쳐 다양한 배경과 입장을 가진, 수많은 참여자들이 등장하면서, 참가방법도 그만큼 폭이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간난고투를 피할 수 없는, 순수한 민간사회의 운동노선과 사회적 자원을 쉽게 동원할 수 있는, 영향력이 큰 주류 대중운동사이에서의 선택에 긴장과 고민을 늦출 수 없는 것은,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중국의 교육과 청년문제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중국 교육은 한국과 그리 다르지 않은 매우 ‘신자유주의 체제하의 동아시아적’인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특히, 이 인터뷰가 진행된 2015년보다 훨씬 심각해진, 2020년 현재, 대졸자들의 취업난, 학벌지상주의와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날 수 없는, 학력에 의한 계급분화문제 등이 있다. 최근, 급증하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의 우울증, 경쟁지상주의에 기반한 학교 폭력, 매우 이기적이고 원자화된, 명문대학 엘리트들의 행동 양태를 보면, 중국 일선一線도시의 청년들은 한국의 동시대 청년들이 ‘헬조선’이라고 자조적으로 한탄하던 암울한 시대의 문턱에 이미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80년대 출생한 대졸자들은, 폭등한 집값 때문에, 졸업직후, 거주하는 도시에 아파트를 마련했느냐 하지못했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중산층 진입여부가 갈라지게 됐다. 당연히, 90년대 이후 출생자라면, 애초에 자력으로 집을 구매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짐에 따라, 결국 부모의 경제 능력이 계층을 나누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밖에 없다. 이 글에서는, 주로 삼농의 관점으로 제도권 교육에 대한 비판과, 대안이 제시 됐는데, 실제로, 중국에서도 고등교육 전단계에서는 소위 ‘대안교육’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 형편이다. 물론 현실은 별수 없이, 주류사회에서의 경쟁에 몰입하거나, 유학을 선택하는 이들이 더 많다. 원톄쥔 선생은, 최근의 인터뷰에서 향촌의 자연과 전통문화가 기반이 된, ‘자연교육’ 등을 보다 보편적 해결책의 방향성으로 제시하고 있다.    

세번째, 원톄쥔 선생이 열망하는, 탈엘리트주의와 대중민주주의 추구,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이 신향촌건설의 사상적 노선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사상적 경향은 젊은 시절, 10여년에 걸친, 그의 하방(상산하향) 경험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현대 중국 사회의 격변기에 해당하는 이 시기의 경험을 개인적인 비극과 고난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자양분으로 삼아, 현실에 기반한 지식과 활동으로 승화한, 몇몇 당대 중국 지식인들의 모습은 인간의 성장에 필요한 중요한 경험들이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지난 20년간 수많은 청년지식인들이 성장지상주의에 물든, 중국 주류 엘리트사회의 흐름을 좇지 않고, 신향촌건설 운동에 투신해, 이상을 좇아 분투하는 모습도 여기서 배운 바 적지 않을 것이다.


시진핑 총서기는 2017년 중국공산당 19대 보고에서 향촌진흥전략을 추진함과 동시에 ‘일동양애一懂兩愛 (농업을 이해懂하고, 농민과 농촌을 사랑愛하는)’ 인재의 육성을 천명했다. 감개무량한 일이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국가의 향촌진흥전략을 관철함에 있어서, 농민대중과 협력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는 일을 우리가 이미 수십년해왔기 때문이다. 향촌건설운동을 통해 길러내고 삼농문제에 이미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는 우수한 인재들이 이 시기를 맞아서, 생태문명체제개혁의 선봉에 서야 한다. 또 하나, 우리가 낡고 병든 현재의 교육체제안에서 이런 인재들을 키워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서구 분과학문의 교조주의와 학벌주의의 폐해와 맞서 싸워야 한다. 이런 의사과학적 형식주의가 유지하는 제도권 교육체제는 실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익집단의 이해관계의 산물이고 여전히 겉만 번드르르할 뿐이다 ! 그러니, 향촌진흥의 앞날은 여전히 가시밭길이다.

 

1. 청년 자원활동가들이 열어가는 농촌지원하향운동의 시대적 배경

2001년 새로운 세기가 열리면서, 나는 (장쩌민)총서기가 주재하는 삼농문제 좌담회에 참석할 것을 통보받았다. 회의석상에서 총서기에게 직접 삼농문제를 보고했다. 그리고 중앙이 농업정책 방향을 바꿔 삼농정책을 중시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그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중, 나는 비교적 젊고 지위가 낮은 편이었기에, 더 단도직입적으로 주저없이 발언할 수 있었다. 나는 농촌의 형세가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했고, 삼농문제가 갈수록 악화되어 간다고 내가 기탄없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중앙의 리더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당시 총서기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직접 책임지고 당신이 제기한 문제를 정치국에서 토론하겠소”. 나중에 중앙은 우리가 90년대부터 계속 외롭게 목소리를 높여온 삼농문제의 개념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삼농문제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책기반이 된 배경이다.

<그림 1> 2004년부터 중국공산당 중앙과 국무원은 매년 1호 문건에서 삼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을 내어 놓고 있다.

원래 중국 정부는 90년대초부터 대략 10년간, 서방의 농업정책과 사상을 참고해서 농업문제에 임해왔다. 방향이 다르니, 방침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90년대 농업정책을 비판하면서, “눈에 숫자만 들어오고, 마음속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표현해왔다. 삼농문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여전히 ‘농업’을 일순위로 놓고, ‘농민’은 돌아보지 않았다.

삼농의 첫자리에는 바로 농민이 와야 한다. 중국이 장기적으로 진정한 사회의 진보를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농민조직화이다. 왜냐하면, 농민이야말로 중국의 원주민이고, 중국 인민의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농민의 생산, 생활과 자연생태의 결합은 매우 밀접한 것이고, 농민의 문화적 실천은 언제나 일종의 다양성의 원칙을 견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농민이야말로 삼농중 첫째자리에 놓이게 된다. 마음속에 사람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이 근본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농민이 지켜온 농업문명을 진흥시켜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과거와는 다른 방법이다. 과거에는 농업생산만을 중시했다.

두번째가 농촌이다. 실은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려면, ‘농촌소멸’과 같은 극단적인 주장을 반대해야 한다. 만일 농촌이라는 그릇이 없어지면, 우리가 오늘날 이야기하는 농업경제, 생산 그리고 농민이 문화전승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개념들은 근본적으로 성립할 수 없게 된다.

<그림 2> 원톄쥔이 편집장으로 일했던 <<중국개혁 (농촌판)>> (2002) 잡지는 신세기 향촌건설운동의 플랫폼과 선전기관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므로 이 세가지 요소가 삼위일체를 이룰 때, 형세가 안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농의 삼위일체적 지속가능성이 바로 농업의 지속가능성이다.

2001년부터, 중앙은 삼농문제를 주요 의제로 받아들이고 2005년 중국 공산당 16차 전당대회 이래 신농촌건설을 중요한 국가전략으로 삼았다. 이것은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고, 우리는 이런 기회를 이용해,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이어졌던 향촌건설을 재개했다. 향촌의 부흥이라고 부를만하다.

“마을(촌락)주의”는 1894년 청일전쟁 패배이후 장지엔張謇이 난통南通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실험지역을 만들고 실천할 때 내놓았던 구호이고 바로 향촌건설의 기본 이념이다. 민국시절 지식인들도 이를 신조로 삼아 1920~30년대에 농촌으로 내려갔다. 이 흐름에는 거대한 국제적 배경도 있다. 영문으로 번역하면 rural reconstruction인데 향촌 혹은 농촌의 재건으로 번역할 수 있다. 나중에 국민당이 대만으로 건너가서 역시 이 개념으로 대만에서 농촌부흥을 꾀하고, 농촌부흥위원회라는 국가 기구를 만들게 된다.

우리는 2001년부터 향촌건설을 재개하면서, 향촌재건, 향촌부흥, 향촌건설 대신, 향촌문명의 부흥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백년 운동사를 이어받기 위해, 최종적으로 향촌건설이라고 부르게 됐다. 또 민국 시절의 운동과는 차별화를 두기 위해 신향촌건설이라고 불렀다.

<그림 3> 중국개혁 편집장 원톄쥔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중앙정부에 호소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상경한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02년).

당시의 대학생 청년 자원활동가들이 농촌지원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1년인데, 바로 중앙이 이미 삼농문제 개념을 받아들였던 그 시점이다. 하지만 각 지역과 부문은 아직 이를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사회적으로 반응이 뜨거웠다. 농민문제, 농촌문제와 농업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빌어, 우리는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내려가 농민들과 마주하고 협력할 것을 권했다. 삼농문제를 해결하려면, 삼농에 복무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중국 사회의 인민들이 그 흐름을 받아들이게 된다. 만약, 소수의 지식인들만 현실을 비판하고, 소수의 각성된 청년들만이 이에 호응한다면, 이는 소수만이 참여하는 소수의 일에 머물뿐이다. 일단 21세기 초에 전국민이 삼농문제를 인정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낼 때만, 규모를 갖추고 지속가능성을 가진 사회운동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것이 향촌건설운동이 21세기초에 다시 시작된 배경이다.

2001년 다시 시작된 향촌건설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맥락 혹은 주요한 내용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이미 많은 청년 자원활동가들을 농촌으로 보내, 농촌의 조사, 연구, 지원 활동에 참여하게 한 것이고, 사회적으로 ‘신하방(상산하향)운동’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 과정속에서, 키워낸 인재들이 천천히 젊은이들을 농촌으로 보내, 자신을 단련시키고 스스로 농촌의 우수한 인재로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어 냈다. 일반적으로 서구적 모델을 차용하는 대학들은 이런 식으로 인재를 키워내지 못한다.

<그림 4> 제1기 중국향촌건설교육, 스태프 (오른쪽: 류라오실劉老石, 중간: 치우졘셩邱建生)들과 농민이 함께 찍은 사진 (2003년 1월, 베이징).

 

2. 청년 지식인의 농촌지원 사명

2001년 신향촌건설 운동이 재개된 이래, 20세기 초반의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활동가들은 농민을 움직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이는 농민들이 조직화하여 스스로 협상을 할 수 있는 지위를 갖추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서만, 농민들은 사회계약의 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농민조직이 없으면, 의견이 분산돼, 농민 자신의 이익을 제대로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한편 그 상대방인 사회의 다른 주체들도 수많은 각각의 농민과 계약을 맺을 수는 없다. 즉, 효율이 너무 떨어져서, 의미있는 사회적 계약관계를 만들어 낼 수도 없다. 시장경제는 계약이 기초가 되고, 이것을 신용경제라고 한다. 시장경제조건하에서 신용사회를 만들게 되는데, 농민이 조직화되지 않으면 이것의 성립이 불가능해진다.

<그림 5> 2003년 겨울방학기간 베이징사범대학에서 열린 제1회 전국대학생 농촌지원조사연구 교육과정 (앞열의 왼쪽 두번째: 류라오실 왼쪽 아홉번째: 치우졘셩, 세번째열 오른쪽 아홉번째: 원톄쥔).

그리하여, 신향촌건설의 주요목표중 하나는, 농촌에 내려가 기층 농민들의 조직화를 돕는 것이었고, 이렇게 생겨난 농민조직들이 당시에 협동조합을 만들어 냈다. 이 과정은 정부에서 협동조합법을 제정하기 훨씬 전에 이루어졌고, 그 목적은 시장경제가 요구하는 계약관계를 성립시키는 기본적인 조직기초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이런 주류의 관점에서 시작했지만, 우리는 당연히 농민들을 움직여야 했다.

다시 문제가 생겼다. 누가 농민을 움직일 것인가 ?

1980년대이래, 우리는 지속적으로 대학생들의 농촌방문 활동을 조직해왔다.

<그림 6> 2003년 1월 류라오실이 서남지역의 농촌지원방문단의 간부로서 농촌방문활동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나는 당시 농촌정책수립분야에서 일하고 있었다. 당시, 중앙서기처 농촌정책연구실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내가 소속된 팀의 주요 임무중 하나는, 수많은 지식인들을 고무하는 것이었다. 특히 청년학생들을 조직해서 농촌으로 보내고, 농민과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농촌의 조사연구를 진행하면서, 현황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또 한가지는, 청년의 열정과 능력을 활용해, 농민을 돕게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통해 크든 작든 농촌의 발전을 촉진하게 하고 싶었다.

80년대이래, 중앙의 농촌정책중 주요한 업무중 하나가 수많은 지식인들이 농촌으로 내려가 지원을 하는 활동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당시 내 상사는, 나중에 내 박사논문을 지도한 두룬셩杜潤生 선생이었는데, 그는 중앙재경업무 영도소조의 일원이었고, 동시에 중앙농촌정책 연구실의 주임이었다. 그는 당시에 이미 70세를 넘었는데, 노년에 접어든 혁명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희들의 주요한 임무는, 수많은 지식인들을 농촌으로 보내는 것이다. 만일 이를 성공시킨다면, 그렇게 청년학생들을 보낼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업적이다” 그때 두선생의 마음속에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80년대의 농촌정책은 상대적으로 유효했고, 농민들에게 환영 받았다. 그 당시의 1호문건을 지금의 1호문건보다 농민들이 더 좋아했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지식인 청년 학생들을 농촌으로 내려보내서, 현황과 민심을 제대로 살필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90년대에 들어와서 상황이 바뀌었다. 서구의 모델이 농업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도입됐다. 농민의 권익과 농촌발전문제는 경시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청년학생들을 농촌으로 내려보내겠다는 중앙의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다. 21세기를 맞아, 중앙이 다시 삼농문제를 강조하기 시작한 이래, 다시, 청년학생들의 하향농촌지원활동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어서 국무원영도하에, 이 흐름을 지지하고, 공개 서신을 보내는 형식으로 청년들의 농촌 지원 활동을 격려했다.

이때, 다시 농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스스로의 협상지위를 제고하며, 사회계약 관계를 안정시키고,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경제사회기초가 되도록 하기 위해, 누가 다시 농민들의 조직화 문제를 도울 것인가 ? 그래서 우리는 다시 대학생들을 훈련시켜 농촌으로 보내고, 80년대 농촌정책부문의 훌륭한 전통을 계승하여, 지식인, 청년학생들이 농촌으로 가서 삼농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독려했다. 그래서 농민조직화를 위해서 반드시 청년학생들이 농촌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림 7> 2016년 농촌지원하향, 제8회 여름 캠프.

<계속>

 

2015년 8월에 진행된 인터뷰내용으로, 2020년 동방출판사에서 출간된 <<향촌필기:신청년과 향촌의 생명대화 鄉村筆記:新青年與鄉村的生命對話>>라는 저서에 수록됐다.

 

김유익

금, 2020/11/06-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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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여 지속 가능한 지역 인력 수급 체계를 강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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