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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기고문[2] 근대 세계의 종말과 다시 개벽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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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기고문[2] 근대 세계의 종말과 다시 개벽의 시대

admin | 금, 2020/04/10- 20:25

지금 이 순간(3월 30일)에도, 매서운 기세로 확산 일로를 치닫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그 공포와 고난과 고통에 더하여, 우리가 하나의 지구촌에 살고 있는 생명공동체임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거의 세계 모든 나라에서 국경폐쇄나 이동금지조치가 내려지고 있지만 그것은 이번 사태의 악화를 막기 위해 취해지는 일시적인 조치로서, 폐쇄나 단절이 그 장면의 주제가 아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하나로 통해 있음’을, 그리고 인간이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사례이다.

이번 사태로 사망하신 분들이나 그 유족의 슬픔은 말할 것도 없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살신성인하는 의료진, 그리고 확산 방지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분들과 헌신하는 봉사자들, 이에 호응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하나하나가 거룩하고 아름답고, 슬프다. 슬픔과 고통의 바로 그 자리에서 감동과 의지가 더 화려하게 피어나는 것을 볼 때, 각성과 참회, 감사와 희망이 교차한다. 각국에서 취해지는 조치들은, 인류 역사에서 ‘마지막 세계대전’이던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임에 분명한 극단적인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바야흐로 1백 년 만에 맞이하는 세계적인 대전(大戰) – 3차 세계대전의 상대가 ‘적국(敵國) 인민(人民)’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라는 사실은 한편으로 공포감을 주지만 한편으로 (박멸의 대상이 ‘人間’이 아니라는 점에서)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1차, 2차 대전과 마찬가지로 이번 세계대전도 근대 세계의 폐해(인간의 삶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바이러스의 침투 경로가 확장된 것)로 인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제3차 세계대전’은 근대 세계의 종말을 재확인하고, 기대컨대는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다시 개벽 시대’를 재조명하는 등불이 될 것이라고 전망해 본다.

앞서 말한 안도감은 근원적으로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 인류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통의 고난 경험’을 공유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나의 種으로서의) ‘인류’에 다시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데서 온다. 그것은 인류[人間]를 지금 당장, 지구상에서 현재보다 더 높은 위치로 올려놓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인류가 지구상의 생명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즉 N분의 1로서 자리매김하여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스스로의 생명력을 고양하는 길이고, 가장 ‘자연스러우며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태도이며, 또한 가장 지속가능하고 행복 지향에 적합한 현실-존재 인식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지난 20세기 내내 끊임없이 경계의 대상이 되어 왔던 인간중심주의(human-centralism), 시나브로 그 입지가 좁아져 왔으나 여전히 현실적으로 위력을 떨치고 있는 그 파멸적 근대 문명의 기저에, 분명한 구멍=문(門)을 만드는 일이다. 이 문을 통해 우리 인류와 지구생명공동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을 일러 ‘다시 개벽 시대’로의 진전이라고 하면, 적확할 것이다. 이 개벽에 즈음해서야 비로소 우리는 ‘인류’가 된 것이다.

기회는 늘 위기와 함께, 낙관적인 상황은 언제나 비관적인 상황과 함께 온다. ‘인류공동체, 지구공동체, 생명공동체’를 존재/인식이 거의 일치하게 경험/인식하는 ‘다시 개벽 시대’의 도래와 함께, 우리는 이제 인간이 치명적인 멸종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었으며, 사방이 생명에 위협적인 지뢰투성이인 지역/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실감하게 되었으며, 전 지구적 차원에서 그리고 전 인류의 지평에서 공통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목격하고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물질적, 정신적, 소통적(疏通的) 토대가 구축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인류) 집 문 앞에 배달된 택배(과제)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되겠지만(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그 종식을 알리는 ‘카톡 알림’은 그다음 택배(‘코로나20’일지, ‘코로나v.2’일지 모르지만)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초인종을 소리에 불과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 세계의 수많은 전문가들이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인류는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위험 요소에 더욱 빈번하게 노출될 것이며, 그 위험의 강도도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다시 말해 코로나19로 인한 지금의 사태는 빙산의 일각으로, 그 아래에는 훨씬 더 크고 무거운(무서운) 위험 요소들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대기 중이라는 것이다.

답은 언제나 문제 속에 있기 마련이다. 코로나19의 대량 감염국 중국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중국보다도 빠른 속도로 확진자가 늘어나던 2월 초순경만 해도 세계인의 의심스런 눈초리가 한반도로 쏟아졌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국민들은 끊이지 않는 돌발변수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침착하고 의연하게 사태를 수습해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은 역전되었다. 이제 전 세계 각국에서 한국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한국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 지구촌을 감싸고돈다. 이번 사태 직전에 있었던 BTS(방탄소년단)의 K-POP 세계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에 이어서, 현재의 상황은 대한민국의 현 위치가 우연적이고 일회적인 것이 아님을 확인하게 하는 또 하나의 쾌거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자화자찬으로 치달아서도 안 되고, ‘국뽕’으로 흘러서도 안 된다. 분명한 것은 이것은 우리끼리 알고, 우리끼리 (이 성공적인 대응의 혜택을) 누리고 말 사태는 아니라는 점이다. 작더라도 실질적이고 실제적이며 실용적인 의미를 발굴하고, 발견하고, 발전시켜 인류 전체에 베풀어 나가야 한다(弘益人間 在世理化). 필자가 보기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에게 이번 사태는 ‘세월호 이후’와 ‘촛불 혁명 이후’의 일로써 다가왔다. 재난이 일어나는 방식(‘세월호’ ‘메르스’)을 잊지 않고, 평화 시에 전쟁을 준비하는 그 자세로 방역 시스템과 의료체계를 정비해 왔으며(의료체계-의료보험제도 등-의 대부분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갖추어진 것이지만, 대한민국의 메이저 의료기관은 메르스 이후 유사한 사태에 대비한 훈련을 주기적으로 진행해 왔다), 또 그것을 극복하는 한국인 특유의 방법론(‘촛불혁명’의 그 위대한 참여정신)이 결합되어서 이번 코로나19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시민)의 반응과 대응은 전 세계 국가에게 모범이 되고 온 인류에게 희망이 될 여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는 우리가 세월호와 아이들을 잊지 않은 덕분[性靈出世]이며, 메르스의 비극을 외면하지 않은 덕분[臥薪嘗膽]이다. 무엇보다 문제에 정면으로, 정직하게, 정성껏 대응하는 것이 그 문제 해결의 정 도(正道)라는 것을 생생히 보여준 점이, 이번 사태 진전에서 대한민국의 첫 번째 인류사적인 기여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이번 사태로 인하여 목숨을 잃은 분들, 고통과 고난을 겪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후폭풍 (특히 경제나 생활-학생들의 학사일정 등)’ 등을 생각할 때, 이번 사태는 지난 세월호나 메르스(에볼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전면적인 전환의 숙제를 우리에게 지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국내나 동아시아 일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전 인류에 걸쳐 전면적으로 전개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개벽신문>을 통해 여러 차례 밝혔듯이 ‘촛불혁명’은 120여 년 전의 ‘동학농민혁명’의 경험으로부터 이어져 온 면면한 이력을 갖는다. 동학농민혁명은 ‘서세동점’의 정점과 ‘동학의 다시개벽’의 전망이 부딪친 사건이며, 그런 점에서 ‘근대세계’와 ‘근대 이후 세계’, 즉 다시개벽 시대의 전초전에 해당하는 사건이었다. 이번 코르나19는 바로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 인류가 도달한 근대세계, 그 대서사의 한 단락이 매듭지어진다는/지어져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데에 첫 번째 의미가 있다. 이번 사태에 즈음하여 서구 소위 ‘선진국’ 또는 ‘서구사회’가 보여준, ‘결과적으로’ 지리멸렬함과 그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는 단지 국가 지도자의 입장 차이나 국가 시스템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선진문명’이 놓여 있는 자리, 딛고 있는 토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본다. 한국 정부와 국민(시민)에 주어진 숙제는 이 위기를 ‘아국운수(我國運數) 먼저 하여’ 극복할 뿐만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의 세계체제를 어떻게 재구축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과 예시, 그리고 비전을 제시해 주는 데까지 닿아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바로 ‘다시개벽’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속히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또 돌아가서 도 안 된다. 문자 그대로 ‘널뛰듯’ 폭락과 폭등을 되풀이하는 증시 상황은 이번 사태에 즈음한 경제의 팬데믹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늘 현재(3월 말) 시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3,000조원이라는 거액의 예산을, 이번 사태로 인해 ‘위기’에 빠진 경제가 더 깊은 수령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아 내기 위해 책정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것도 ‘우선’ 그 정도이고, 여차 하면 후속 투입도 마다하지 않을 기세이다.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어떤 부문이랄 것 없이 부도와 파산의 위기에 내몰리는 기업, 자영업자와 그에 딸린 수십, 수백만의 경제 인구를 생각할 때, 아니 사실은 전 세계 모든 인류의 삶(생활, 경제)에 영향을 끼칠 이번 사태의 후폭풍을 생각할 때 경제 붕괴가 일어나는 일을 상상할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인 것처럼 보기는 한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 보면, 이번 사태 수습의 목표점이 사태 발생 이전, 물질적 풍요 문화적 만끽이 난무하던 그 상황, 이른바 ‘일상으로 돌아가기’, 경제적으로 발전을 거듭하던 그 시절로의 복귀하는 것이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멈춤!’의 첫 번째 경고판을 지나친 후과가 이 정도이다. 두 번째 경고판이 있을지, 곧장 절벽이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제라도/이제야말로 근대세계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근대문명, 현대문명, 물질문명의 질주를 멈추고 진로를 수정하는 일이다. 백척간두진일보란 바로 지금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벼랑 끝, 벼랑과 벼랑 사이, 그 너머에는 ‘다시개벽’의 새 시대가 놓여 있다. 과거로의 회귀, 예전 일상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새로운 인간-하늘 관계, 새로운 인간-인간 관계, 새로운 인간-만물 관계를 경천(敬天)과 경인(敬人)과 경물(敬物) 같은 개벽적 관점에서 모색하고 실천하는 것만이, 이번 사태에 즈음하여 우리가 치른 고통과 희생에 값하는 길이다.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대한국민(시민)’의 지혜로운, 은혜로운, 감동적인 일거수일투족 – 전 세계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일동일정(一動一靜)에 이미 그 씨앗이 싹트고 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자가 격리, 사회적 거리 두기, 통행금지, 여행금지, 국경폐쇄, 도시봉쇄 들은 ‘잠시 멈추어 보자’는, ‘참회의 자리/시간을 만들자’는, 보이지 않는 그 속에서 보이는 것을 찾고, 들리지 않는 그 가운데서 들리는 소리를 들어보자는, 홀로가 됨으로써 다시 동귀일체(同歸一體)를 생생(生生)하게 생득(生得)하는, 전일적(全一的) 생명으로서의 인류 양심(養心)-하늘[天]의, 거룩한 개벽의 소리이다. 하나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 ‘다시개벽의 그 시대’가 열리고 있다.

 

박길수

월간 ‘개벽신문’의 주간,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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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UN내 인도주의 원조조정국 북한 담당관이 3월 06일자로 북한실태의 긴박함을 호소하는 성명서를 아래처럼 발표하였습니다. 아직도 UN이 요청한 지원할당금의 이행을 유보하고 있는.문재인 정부와 동포인 북한에 대한 일체의 인도적 지원행위를 취하지 않고 있는 대한적십자에게 일대의 각성과 결행을 요구하면서 시의적인 것을 감안하여 원문을 그대로 게재합니다.”


The Humanitarian Country Team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 is today releasing the 2019 Needs and Priorities Plan which calls for US$120 million to urgently provide life-saving aid to 3.8 million people in need of humanitarian assistance.

Humanitarian operations in DPRK are a critical lifeline for millions of people who are in a protracted cycle of humanitarian need. Women, children, the elderly, and people with disabilities are particularly vulnerable and are prioritized in this plan. For example, in the nutrition sector, 90 per cent of assistance goes to children under five and women. In the health sector, 92 per cent of assistance is directed to children under five and women. Their plight must not be forgotten.

An estimated 11 million people in DPRK lack sufficient nutritious food, clean drinking water or access to basic services like health and sanitation. Widespread undernutrition threatens an entire generation of children, with one in five children stunted due to chronic undernutrition. Coupled with limited healthcare and a lack of access to safe water and sanitation and hygiene services, children are also at risk of dying from curable diseases.

Most concerning is that the overall food production in 2018 was more than 9 per cent lower than 2017 and wasthe lowest production in more than a decade. This has resulted in a significant food gap. Without adequatefunding for life-saving activities as outlined in the Needs and Priorities Plan, we open the door to a potential deterioration of the humanitarian situation in DPRK and to increased malnutrition and illness. If we are to address and mitigate the impact of food insecurity on the most vulnerable in the country, including women and children, the time to act is now.

Despite these alarming facts, humanitarian activities in DPRK are critically underfunded and the needs of millions of mostly women and children have not been met. Last year’s Needs and Priorities Plan was only funded at 24 per cent, making it one of the lowest funded humanitarian plans in the world. A number of agencies have already been forced to scale back their programmes. Without adequate funding this year, the only option left for some agencies will be to close projects that serve as a life-line for millions of people.

Although Security Council sanctions clearly exempt humanitarian activities, life-saving programmes continue to face serious challenges and delays. While unintended consequences of sanctions persist, these delays have a real and tangible impact on the aid that we are able to provide to people who desperately need it. We must collectively fulfil our commitment under 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to “leave no one behind.”

Last year, we were only able reach one third of the people to whom we planned to provide humanitarian assistance. An estimated 1.4 million people didn’t get food assistance. Just under 800,000 people were not able to access essential health services. An estimated 190,000 kindergarten children and 85,000 acutely malnourished children did not get the nutrition support they needed. Beyond the numbers, the human cost of our inability to respond is unmeasurable.

In spite of these challenges, and thanks to the generosity of donors, the UN and International Non-Governmental Organisations (INGOs) were able to reach two million people with humanitarian aid. I have never failed to be impressed by the commitment and work of the humanitarian organisations in the country.

I have seen the impact of their programmes on the lives of ordinary people who they have supported by providing nutritious food, ensuring children are vaccinated, treating malnutrition and diseases, providing access to clean water, and supporting farmers to grow food despite the risk of natural disasters. I have also seen progress being made on the ground. We have made great strides in improving access and monitoring for humanitarian agencies in DPRK through continued, principled, and robust engagement with the Government. Humanitarian agencies rigorously monitor their programmes throughout the country to ensure assistance is reaching the most vulnerable. In 2018, 1,855 project site visits were conducted during 854 monitoring days by UN agencies and INGOs, covering all 11 provinces in the country.

Since 2012, there has also been an improvement in the child nutrition situation with rates of chronic undernutrition amongst children under five dropping from 28 per cent to 19 per cent. Yet my concern, and that of the entire humanitarian community, is that while the impact of stunting is irreversible, these overall improvements are not.

I appeal to all our potential donors and stakeholders to rise above political and security considerations, and to not allow them to get in the way of providing life-saving aid to the men, women, and children who need it the most. We simply cannot leave them behind.

목, 2019/03/0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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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은 박근혜 탄핵을 넘어 우리 사회에 수십 년 쌓여온 폐단의 전면적 청산과 미래를 향한 과감한 개혁을 요구하였다. 특히 경제에서의 기득권 고착과 구조적 문제로 발생하는 양극화와 불평등의 심화를 해소하는 것은 지체할 수 없는 절박한 민심의 외침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역사적 개혁 의지를 후퇴시키고 시급한 민생현안을 방기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기득권을 강화하는 방편적인 입법을 진행하고 있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교체한 우리 국민들은 이러한 사태를 결코 용납할 수 없기에, 3.1서울민회는 상황을 직시하며 현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주체로서 문제와 현안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다해 나갈 것을 촉구한다. 3·1혁명 100년을 맞아 열린 3·1서울민회의 위원으로서 48명이 모여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적 과제에 대해 진지하게 토의하였으며 의견을 종합하여 아래와 같이 선언한다.

 

1. 이재용을 구속하고 조양호에게서 경영권을 박탈해야 한다

삼성그룹의 이씨 가문은 3대에 걸쳐 상속과정과 내부거래 그리고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온갖 불법과 탈법을 자행하였으며, 수십 년 간 대한민국 사회를 전방위적으로 부패시킨 주역이다. 예건데 이재용 부회장은 상속과 내부거래로 3조 원 대의 이득을 본 것으로 추정되나 국가에 낸 세금은 겨우 16억 원뿐이었다고 한다. 특히 뇌물로 박근혜와 최순실에게 건넨 440억 원의 댓가로 국민연금의 편법적 지지를 얻어낸 것이 경영권 승계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탈법 재산 불리기와 불법 경영권 승계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우리들 자신이자 대다수 국민들이다.

재벌의 족벌가문 경영에 대한 개혁이야말로 적폐 청산의 핵심 중 핵심이다. 재벌의 가문은 정경유착과 언론, 사법, 행정과 결탁을 통해 공정 거래를 해치는 주범들이고 시장을 교란하고 있는 장본인들이다. 현하 삼성 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가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대마불사 운운하며 상장을 유지하는 행태를 보라. 족벌가문 경영의 개혁은 시장을 정상화하고 공정거래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첫 걸음이다. 나아가서 70년간 고착화된 재벌 중심 경제체제와 그에 기반하여 편법적으로 형성된 막대한 기득권을 모든 국민을 위한 자산으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강력한 조치와 규제가 필요하다.

첫째, 이재용을 구속하고 삼성 바이오로직스 상장을 즉각 폐지해야 한다. 이재용이 1심 재판부의 뇌물액수 축소로 집행유예 석방되었으나, 이후 드러난 삼성 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는 명백하게 경영권 불법 승계의 추가적인 증거가 되었다. 이재용의 불법을 일시적인 경제의 어려움이란 핑계 삼아 관용하며 묵인하는 것은 촛불의 개혁 염원을 배신하는 것이다. 이재용의 구속과 엄한 처벌로 무소불위 재벌 가문가 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국민의 엄중한 경고를 보여줘야 한다.

둘째, 스튜워드십 코드의 원칙을 철저히 세우고 예외 없이 적용해야 한다. 한진 조양호 일가의 사례에서 보듯 재벌 총수 일가의 갑질로 기업의 대외신인도, 주가는 하락하고 국격까지 실추시키는 사태가 있었다. 국민연금 등 공적 투자기관들이 한진칼의 주주로서 스튜워드십 코드를 발동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함으로써 조양호 총수 일가의 경영권을 박탈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동시에 일체의 경제사범이 상장기업의 경영자로 더 이상 역할을 할 수 없도록 배제하는 법안을 신속히 제정하여야 한다.

셋째,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강력한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공직사회, 공공기관, 기업의 불법, 불공정, 부패비리를 드러내는 공익적 고발자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평생 동안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법규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넷째, 최저임금제도가 을과 을의 싸움으로 되어 방치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 정부는 대기업 등 갑의 위치에 있는 물적 재원이 저임금 노동자 에게 실질적으로 전환이 되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 제도적 정책적 조치를 강구하고 시행하여야 한다.

 

2. 토지공개념을 실현하고 보유세를 강화하며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이 시대 최고의 복지는 모든 시민들에게 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인간은 주거의 안정성이 보장되어야 비로소 실제적 자유를 누리게 된다. 주거 불안정에 시달리는 ‘현대판 소작인’인 무주택자는 지주인 다주택자에게 경제적·정신적으로 예속되어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2017년 현재 1,967만 가구 중 1,100만 가구만(55.9%) 주택을 소유했고 나머지 867만 가구는 집 없는 소작인이다. 그 중 146만 가구는 그나마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지만, 721만 가구는 전월세를 전전하며 2~3년에 한 번씩 이사 다녀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한편 주거불안에 가장 크게 시달리는 계층은 바로 헬조선을 외치는 청년이다. 주거불안 때문에 청년의 결혼 정년기는 점점 늦어지고 있고 출산도 포기하는 형국이다. 한마디로 주거문제는 결혼과 출산율 제고 등 나라의 존속 여부와 직결되어 있는 중차대한 문제다.

우리는 이것의 원인이 주택투기에 있다고 단언한다. 서울에 공급된 신규주택 10채 중 9채는 이미 집을 보유한 유주택자가 사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주택투기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보유세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다주택자가 보유한 투기 목적의 주택을 시장에 내놓게 되고 더 많은 가구가 제값으로 주택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반드시 대한민국 모든 토지에 토지공개념을 실현해야 한다. 토지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것이고, 이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은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토지 확보가 수월해지고 부동산으로 인한 불평등과 비효율이 사라진다. 이에 아래와 같이 구체적인 내용을 촉구한다.

첫째,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토지공개념을 실현하여 부동산으로 인한 불평등과 비효율을 해소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토는 대한민국 국민 전체와 후손이 함께 누려야 할 천부적 재화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둘째, 부동산 전체에 보유세를 강화하여 부동산(주택)투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2016년 현재 0.16%인 보유세실효세율을 현 정부 임기 중에 0.5%로, 장기적으로 1%로 강화해야 한다.

셋째, 2017년 현재 전체 주택의 7.2%인 공공임대주택비율을 10년 안에 15%로 높여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은 5년, 10년 분양전환이 아니라 최소 20년 이상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장기공공임대주택 위주로 공급하되 청년층이 최우선 대상이어야 한다. 또한 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재원으로 국민연금 등 가용가능한 공공기금을 과감하게 투입해야 한다.

 

3. 지역 경제공동체를 활성화해 사회적 경제를 통한 대안을 만들어가야 한다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의 원인은 지역과 사람이 배제된 자본만의 세계화에 기인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그로 인해 파생된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고용불안에 대응하고 저항하는 근거지는 삶의 터전인 ‘지역’이다. 인간다운 삶이 실현되는 지역에 활력과 생기가 넘쳐나고 사람중심의 경제로 돌아갈 때 경제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고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도 창출될 수 있다. 이를 위해 협동과 연대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경제의 원리에 기초한 지역단위의 경제공동체 운동이 필요하다. 생산자와 유통자, 소비자 등 경제주체의 상생을 위해서는 현안의 문제가 되고 있는 과당경쟁을 극복하는 출구로써 호혜와 연대를 원리적으로 구현하는 협동조합 중심의 사회적 경제 영역이 역사적으로 검증된 실천 방안임을 확인한다.

지역경제공동체를 위한 보편모델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도시재생에 대한 관의 접근방식이 지역민의 이해관계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지역공동체의 기금연대노력에 대해서도 관의 지원이 필요하다. 아울러 지역의 포괄적인 생활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주민참여를 도모함으로써 단순히 경제공동체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지역공동체로 발전하여야 할 것이다.

탐욕과 이해에 갇혀있는 천민적 사회경제 체제를 상생과 연대 그리고 호혜를 통한 선의적 경쟁과 협력방식으로 전환해야 마땅하다. 이것이 촛불혁명으로 탄생하고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역사적 소명임을 분명하게 천명한다.

 

2019년 3월 1일

 

3·1서울민회 경제민주화분과위원회 위원 :

강대성 곽종록 권혁건 김귀숙 김덕자 김만곤 김명신 김병준 김봉수 김양순 김어기 김용호 김제완 김준영 김진택 김화식 민영수 박가윤 박종석 박준의 손성희 송기호 신동현 신미숙 신인수 양춘승 오경석 오정삼 유행철 윤성노 윤호창 이광찬 이래경 이명순 이용성 이재찬 이희관 전홍철 정칠화 조원휘 최낙범 최수동 한선희 한종훈 한희옥 홍수표 황종환 황지연

자문위원 : 김광기 남기업

 

목, 2019/02/2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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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돌팔매

덕수궁 돌담길의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가는 1977년 10월 24일, 덕수궁 옆 서울지방법원 법정에서는 서울대·고대 유인물사건 재판의 결심이 열렸다. 서울대의 김창우(74학번)와 서익진(73학번), 고려대의 설훈(74학번), 이민구(75학번), 황인국(75학번) 등 수의를 입은 피고들이 법정에 들어오고 재판장이 들어와 앉자 곧바로 재판이 시작되었다. 재판장 허정훈 판사는 장영자 사건을 담당했던 사람으로 피고들에게 강압적으로 재판을 진행한다는 악평을 듣고 있는 인물이었다. 먼저 검찰의 구형이 있었다. 고려대 중심인물 설훈이 징역 5년, 서울대의 김창우가 징역 4년 등 유인물 사건치고는 꽤 높은 형량이었다. 이어서 이돈명, 황인철 변호사 등 변호인단의 긴 변론이 있고, 마지막으로 피고들의 최후진술 시간이 주어졌다. 박정희 유신독재의 감시 속에서 숨죽이면서 비밀리 유인물을 만들어 뿌리며 저항의 칼을 갈아온 이들에게는 공개적으로 독재정권의 야만성을 성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먼저 제일 연장인 고려대 설훈이 나서서 ‘독재자 박정희는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을 펴다가 예상대로 재판장의 제지를 받았다. 이어서 서울대 김창우가 나섰다. 김창우는 또렷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박정희 독재의 반역사성과 민주화투쟁의 정당성을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재판장이 돌연 나서서 말을 끊고 ‘네가 정당하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고 힐난하듯이 물었다. 김창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내가 30년 뒤에 박정희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잘못된 정권인지 당신 앞에서 똑똑히 증명해 주겠다. 그리고 당신이 박정희에게 부역한 사실까지 자손 대대로 이야기 해주겠다.’ 오만한 재판장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일순 재판장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김창우가 잠깐 숨을 고르느라 말을 멈춘 사이에 “이것으로 이만 재판을 마치겠습니다.”라고 내뱉듯이 말하고 일어나서 퇴장해 버렸다. 변호인과 피고 뿐만 아니라 재판정을 가득 메운 방청객들이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 골리앗을 겨냥한 다윗의 돌팔매처럼 시원하게 한방 먹인 통쾌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 후과(後果)는 4일 뒤의 선고공판에서 바로 나타났다. 김창우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4년 자격정지 4년을 선고 받았다. 이른바 ‘들었다 놓은’ 것이다. 통상 검찰이 4년을 구형하면 징역 2년 정도 판결을 내는 것이 보통인데, 검찰의 구형 형량 그대로 선고한 것이다. 김창우의 최후진술이 영향이 있었을 걸로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

 

성북서의 ‘횡재’ – 서울대·고려대 유인물사건

이 서울대·고려대 유인물사건은 당시 75년 긴급조치 9호 발령 이후 유신독재의 엄혹한 감시와 탄압 속에 학생운동이 각 대학별로 분산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서울대와 고려대가 함께 엮인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그 고리에 서익진이 있었다. 서익진은 김창우의 서클 1년 선배이면서 고려대 설훈에게는 마산고 1년 후배였다. 이 서익진이 마산고학우회장 시절 사용하던 등사기로 김창우와 설훈 두 사람의 유인물을 만들어준 것이었다.

먼저 꼬투리가 잡힌 것은 고려대 쪽이었다. 77년 4월 설훈과 이민구, 황인국이 고려대 학내에 뿌린 유인물이 악명 높은 성북서 정보과로 들어갔고, 성북서가 가능성 있는 인물을 한명씩 잡아다 악랄하게 조사하여 추적한 결과 설훈을 짚어냈고, 설훈을 잡아다가 ‘피똥을 쌀’ 정도로 고문하며 추궁해서 결국 서익진을 찾아 낸 것이다. 설훈도 서익진을 불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결정적 증거물인 등사기의 소재를 둘러댈 재간이 없었다. 서익진을 연행한 성북서 형사들은 덤으로 큰 횡재를 했다. 서익진의 자취방 빨래통에서 김창우가 서울대에서 뿌린 유인물 원본을 발견한 것이다. 서익진은 김창우의 부탁으로 자신의 등사기로 유인물을 인쇄해주고 그 원본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세탁물 속에서 수사관들에게 발각된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실수였고, 그 바람에 후배 김창우가 잡혀가 함께 법정에 서게 되었다.

김창우는 원래 그 전 해 1976년 ‘3우1승팀’(김창우, 김천우, 박찬우, 양춘승)의 일원으로 학내시위를 주동하려다가 리더 양춘승이 주동을 3인으로 줄이고 자신을 후속팀으로 남겨 놓아 학교에 남은 상태였다. 양춘승과 김천우, 박찬우 3명은 77년 3월 28일에 예정대로 시위주동을 하고 감옥으로 갔다. 김창우는 후속팀을 조직하기 위해 함께 주동할 사람들을 물색하는 한편 그 동안에 학내 유인물 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는 서클 ‘한사(한국사회연구회)’ 1년 선배이면서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군 입대를 기다리던 서익진이 등사기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그에게 부탁하여 유인물을 만들어 교내 강의실, 화장실 등에 뿌렸다.

77년 5월 말 모든 일이 완벽하게 잘 끝났다고 안심하고 있던 김창우는 ‘뜻밖에도’ 강의실로 들이닥친 성북서 정보과 형사들에게 연행되었다. 성북서에서 조사를 마치고 6월 11일 서울구치소로 송치되어 구속 수감되었다. 거기에서 먼저 와있던 양춘승, 박찬우, 김천우를 다시 만났다.

 

어린 시절 – 공부도 운동도 잘한 모범생

김창우는 1956년 1월 23일 제주시 삼도동에서 부친 김인희(金仁熙) 님과 모친 김규숙(金圭淑) 님의 4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김인희 님은 부산 건설국 산하 제주도 축항(築港)사무소에서 말단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집안 대대로 제주도에서 살았던 제주도 사람은 아니었고, 증조부 때 뭔가 사연이 있어 육지에서 건너와 아들 하나를 낳았다고 한다. 독자로 태어난 할아버지는 일제 때 의사 일을 해서 가난한 제주도 안에서는 제법 풍족한 살림을 했고, 슬하에 6남 2녀를 두었다. 아버지 김인희 님은 그 중 넷째 아들이었다. 외가 쪽은 4.3사건 당시 학살 피해가 많았던 조천면에서 살았는데, 동아일보 주필을 지냈던 김명식 씨 등 저명한 언론인, 학자들을 많이 배출했다고 한다. 어머니 김규숙 님은 제주에서 태어나 어릴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목포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목포에서 초등학교 선생으로 근무하다가 중매로 김인희 님과 결혼했다고 한다.

1962년 김창우는 제주북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김창우가 태어난 삼도동은 바닷가에서 가까워 어려서부터 늘 바닷가에 나가 놀았고,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도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바다에서 종일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김창우는 공부를 곧잘해서 항상 백점을 받아와 부모님을 기쁘게 했다. 그런 중에 축구도 잘 해 학교 대표선수로 뛸 정도였다.

1966년 김창우가 5학년 때 아버지는 공부 잘하고 똑똑한 큰아들을 큰물에서 키울 욕심으로 부산으로 전근을 신청했다. 신청이 받아들여져 일가족 모두 부산으로 이사했고 김창우는 부산 초량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전학 온 김창우는 첫 시험에서 백점을 받아 선생님과 반 아이들을 놀라게 했다. 제주 촌놈이라고 얕잡아 봤던 아이들의 태도가 대번에 달라졌다.

1968년에는 명문 부산중학교에 시험을 쳐 입학했고, 1,2학년 내내 거의 전교 수석을 독차지했다. 2학년 때부터는 좋아하는 축구도 다시 시작했고, 그러면서도 졸업 때까지 선두권을 놓치지 않았다. 1971년 부산고 입학시험에서도 수석은 놓쳤지만 차석으로 합격했다.

 

‘한사’에서 사회현실에 눈뜨고 감옥가기로 결심하다

1974년 김창우는 아들이 법대에 가서 판검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서울대 사회계열에 지원했다. 종암동에 있는 서울상대에서 시험을 치렀는데, 1박2일 시험기간 동안 부산고 선배들이 고향에서 올라온 후배 수험생들을 자기 하숙집에 데려가 재워주고 돌봐주었다. 김창우를 돌봐준 선배들이 바로 이념서클 한국사회연구회(한사) 선배인 정종호(72학번), 박석운(73학번) 등이었는데, 결국 이 선배들의 권유로 김창우는 대학 입학하자마자 한사에 가입하게 된다.

입학하고 얼마 안되어 긴급조치 4호가 발령되고 민청학련사건이 터졌다. 그 바람에 김병곤 등 한사 선배들이 다수 잡혀가고 서클활동이 어려워졌다. 그러나 이종구(72학번, 성공회대 교수), 박석운(73학번, 법대) 등의 노력으로 차츰 안정을 찾아간다. 김창우는 선배들의 지도 하에 정의헌, 장기영, 김현준, 박태주 등 74학번 동기들과 함께 경제사, 경제학, 사회사상 등의 학습을 하면서 차츰 우리 민족과 사회의 현실에 대해 눈뜨게 되고, 유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키워나가게 되었다. 선배들 중에서도 일찍이 노동운동을 꿈꾸고 보일러공으로 일하고 있던 김승호(68학번), 민청학련 사건의 맹장 김병곤(71학번), 박석운(73학번) 등이 특히 김창우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면서 2학년 2학기 초 학과 선택을 할 때 좀더 사회운동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 경제학과를 선택했다. 아버지 뜻을 어기고 처음으로 자신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1976년 3학년이 되면서부터 한사의 회장을 맡게 된 김창우는 어떻게 살 것인가 자신의 진로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2학기가 되자 자신 역시 선배들의 뒤를 따라 학생운동의 일선에 나서기로 결심한다. 반독재 데모를 주동하고 감방으로 가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이 지도하는 후배들의 영향이 컸다. 후배들에게 평소 했던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그리고 감옥살이를 마친 후에는 선배 김승호처럼 노동현장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3학년 당시 서울대 학생운동권에는 준비론적 분위기가 강했다. 현장 준비를 위해 정치투쟁은 유보되거나 자제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창우의 문제의식은 반독재투쟁에 있어서 학생운동이 75년 이후의 침체된 분위기를 깨야하고, 다음 투쟁으로 이어주는 디딤돌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학생운동은 학생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반독재투쟁을 해야 하고, 그를 통해 학생운동의 소시민적 한계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시 현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차피 위장취업할 수밖에 없는데 감옥에 가는 것이 현장 들어가는 것에 장애가 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은 자기 현실조건에 충실하게 역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학교가 너무 조용하지 않아?”

76년 2학기 초 어느 날 그는 같은 과 동기이면서 연합서클인 향토개척단 단장을 맡고 있던 친구 양춘승에게 자신의 뜻을 내비춘다. 그 장면을 신동호는 『70년대 캠퍼스1』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교문 앞에서 그(김창우)의 ‘콜’을 받은 양춘승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학교가 너무 조용하지 않아?”

지나가는 말투였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그 말이 무얼 뜻하는지를. 그 역시 지나가는 말처럼 되받았다.

“어디 할 놈이 있을까.”

김창우의 말이 그의 귓전을 때렸다.

“내가 좀 알아볼게.”

선문답 같지만 무서운 뜻이 담긴 대화였다.

이렇게 시작한 양춘승과의 데모 모의는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77년 5월 김창우를 감옥으로 인도했다.(자세한 과정은 신동호의 『70년대 캠퍼스1』 284쪽~293쪽 「관악산 유격대 ‘삼우일승’」을 보라)

서울구치소에서 양춘승을 다시 만났지만 오래 같이 있지는 못했다. 서울구치소에 수용된 시국사범이 늘어나면서 소내 정치투쟁이 가열화되었고, 이것이 사건화 되어 주동자들이 추가 기소가 되면서 교도소 측이 수용자들을 전국적으로 분산시키기 시작했다. 김창우는 한신대 김하범과 함께 장기수들을 수용하는 광주교도소 특사로 보내졌다. 광주에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장기 징역을 살고 있는 이현배, 유인태, 김효순, 이강철 등이 먼저 와 자리잡고 있었고, 김창우가 간 뒤에 송기숙 선생 등 광주 팀들과 이영희 선생, 김병곤 등이 들어왔다.

광주교도소에서 김창우는 이강철, 김병곤 등 선배들과 함께 소내투쟁에 앞장섰고, 그 결과 운동시간을 재소자들이 자율 조정할 정도로 소내 처우가 현저히 개선되었다. 그러자 자신감을 얻은 이들은 함께 수용된 장기수들과 함께 마찬가지로 대우해 달라는 차별철폐투쟁에 돌입했고, 결국 그 요구를 관철시켰다. 그러나 교도소 측의 보복을 불러와 주동자들은 다른 교도소로 이감보내졌다. 이 때 이 일로 김병곤은 공주로 이감갔다.

서울구치소에서 소내투쟁으로 추가 기소된 김창우의 추가건 재판이 광주에서 열렸다. 김창우는 이 재판을 위해 공들여 항소이유서를 썼다. 한국사회의 성격과 민주화투쟁의 목적에 대한 과학적 규명을 위해 쓴 이 항소이유서는 소내 선배들에게 회람되어 호평을 받았다. 추가건 재판은 구형 2년에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징역생활이 길어지면서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노동운동과 6월항쟁

김창우는 박정희가 김재규에 의해 사살되고 긴급조치9호가 해제되기 직전인 1979년 12월 5일 석방되었다. 그러나 광주교도소에서 얻은 신경쇠약증세는 석방 후에도 계속되었다. 그 바람에 석방 후 노동현장으로 들어가려던 계획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 큰 아버지 농장에서 6개월 요양하다 직장생활 하면서 건강을 추스르기로 하고 1981년 6월 비교적 근무조건이 좋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입사했다.

83년 초 건강이 조금 회복되자 KOTRA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현장 취업 준비를 했다. 전기학원을 다니면서 전기기사와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 취득 후 전기공사 현장을 돌아다니며 전기기술을 습득한 후 반월의 한 공장 변전실 전기관리공으로 들어갔다. 학력은 공고 중퇴로 위조했다. 신분이 탄로나 해고되지 않도록 조심해서 활동했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 일이 터졌다. 86년 서노련의 영향 하에 조직된 지하 노동운동조직 안산노동자해방동맹 사건이 터져 수사기관의 일제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집에 들어가지 않고 사태를 관찰하다가 자신의 집에까지 경찰의 손이 뻗치자 87년 초 김창우는 회사를 그만두고 정의헌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왔다.

부산에서 다시 공장에 들어갈 준비를 하던 중에 김창우는 역사적인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맞게 된다. 우선 취업은 유보하고 가두투쟁에 집중했다. 김창우는 밖에서 유인물을 만들고 시민들에게 뿌렸다. 노동자대투쟁 때는 부산의 국제상사투쟁에 집중하고 현장에 있는 일꾼들과 연계하면서 지원투쟁을 조직했다. 6.29선언 이후 열린 대통령선거 국면에서는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활동은 하지 않고 부산노동자협의회라는 노동운동단체를 조직하여 노동자의 권익이나 이해를 선전 선동하는데 집중했다. 88년에는 단순한 노동상담 지원 단체에 지나지 않던 부산노동자협의회를 해체하고 87 노동자대투쟁 과정에서 올라온 선진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기 위해 부산노동자연합을 조직했다. 현장활동가와 선진노동자들의 조직이면서도 현장에 조직적 기반을 가지는 조직체로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노운협 운동과 지역노동운동

지역 노동운동에 전념하고 있는 김창우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서울의 전국노동운동협의회(노운협)를 구하라. 91년 민중당이 뜨면서 피디파 중심으로 노운협 활동가들이 대거 민중당으로 이동하자 노운협이 깨질 위기에 처했고, 이 노운협 유지를 위해 지방 활동가를 차출하기로 한 것이다. 김창우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조직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어 서울로 올라와 노운협 실무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2년간 노운협에서 일하면서 박창수 사건, 전국연합 건설 등 많은 일들을 치루어냈다. 밤낮 없이 몸을 돌보지 않고 일에 몰두하는 김창우에게 간경화가 찾아왔다.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 다시 부산에 내려왔다. 93년의 일이다.

부산에 내려온 김창우는 집에서 요양하면서 다음 활동을 모색했다. 몸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전기기사 자격증을 활용해서 거제도와 부산 등에서 전기공사업체에 취직했다. 생활의 방편이면서 노동현장과 연결을 놓지 않으려는 생각에서였다.

1997년 IMF 사태 이후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고 비정규직과 일용노동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김창우는 이들의 역량을 묶어낼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생각하다가 이들을 지역 중심의 노동자조직으로 담아내기로 결심하여 가까운 노동운동가들과 협의하여 2000년 부산지역 일반노조를 창설한다. 이 지역일반노조는 지역 연대 및 투쟁 중심의 노조조직으로 대기업 기업별노조 중심의 산별연맹 또는 산별노조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형태로 제기된 것이었다. 이 부산 일반노조의 활동은 초기에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민주노총 건설 이후 지역의 연대와 투쟁이 급격하게 소멸되면서 지역노동운동이 거의 무력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지역노동운동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조직형태로 주목받으면서 전국적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부산의 일반노조가 활발해지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가입 조합원 수가 1000명 가까이로 늘어나고 활동이 활발해지자 노동운동 정파들이 앞다투어 조직원으로 가입하여 정파들간에 조직 장악을 위한 경쟁이 벌어졌다. 경쟁이 가열되다보니 상대방에 대한 비방, 중상, 모략이 행해지면서 조직이 혼란에 빠졌다. 이를 보다 못한 김창우가 ‘교각살우(矯角殺牛) 우려가 있으니 서로 자제하자’고 충고하고 나섰다. 그러자 정파들은 ‘편드는 거냐’며 김창우까지 공격하고 나섰다. 정파들의 소모전에 넌덜머리가 난 김창우는 2003년 재충전을 이유로 노조 활동을 당분간 중단하기로 했다.

 

인생 후반전에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

2004년 노동운동 현장에서 자신의 역할이 한계에 부딪혔음을 절감한 김창우는 창원 노동대학원에 입학하여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20여년 노동운동의 경험과정에서 가진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석사논문 ‘전노협 청산에 관한 연구’을 작성하여 제출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2007년 출판사 후마니타스에서 ‘전노협 청산과 한국노동운동’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그는 이 책으로 2008년 2월 16일 ‘제3회 김진균상’을 받았다.

 

이 논문은 한국노동운동이 광범한 기층 노동자들의 꿈과 희망과 투쟁에 기초하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려던 운동에서, 상층을 중심으로 한 법과 제도와 정책과 교섭에 의존하는 권력지향의 합법 개량주의 운동으로 변화해버린 것에 대해, 1995년 전노협이 청산되고 민주노총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김창우는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이 지역적, 전국적, 산업적 공동투쟁과 연대투쟁을 통해 중소 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들까지 포함하는 계급적 단결과 연대조직으로서의 산별노조를 건설하기 보다는, 대기업노조 중심의 합법적인 기업별노조에 기초한 산별연맹의 과두적 지배체제로서의 민주노총이라는 조직형태를 채택했던 것이 문제의 근본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하층 조합원들의 연대투쟁과 조직역량이 중심이 아니라 상층 간부들에 의한 정치적 교섭과 정책을 중심으로 한 권력지향의 관료적인 조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이 현재 상태를 타개하는 길은 현재와 같은 무늬만 산별이지 실제적으로는 기업별노조에 기초한 산별연맹의 과두적 지배체제에 불과한 민주노총체제를 해체하고, 중소 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주체 세력에 의해 공동투쟁과 연대투쟁을 통해 계급적 단결과 연대조직으로서의 진정한 산별노조 또는 전국단일노조체제를 새롭게 건설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잘못된 민주노총 건설의 역사를 바로잡고 첫단추를 새로 다시 꿰어야 비로소 한국노동운동이 본궤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석사학위를 받은 김창우는 석사논문의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자신의 이론을 실증적으로 입증할 필요를 느꼈다. 즉 민주노총이 70-80년대 민주노조운동정신과 전노협의 급진적인 사회변혁정신을 ‘계승’하지 못하고 ‘청산’한 바탕 위에서 세워짐으로써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하는 것을 역사적 과정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2008년 그는 성남에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그리고 10년의 연구 끝에 2018년 ‘민주노총의 운동노선과 노동법개정 총파업투쟁, 1996~1998’이라는 박사논문을 완성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에서 김창우는 민주노총 1기 집행부가 결국 상층중심, 교섭중심으로 가게 된 근본 이유는 기업별노조에 기초한 산별연맹들의 과두적 지배체제로서의 민주노총이라는 조직노선을 채택한 근본적 한계 때문이었고, 그 결과가 노동법개정 총파업투쟁을 비롯한 민주노총의 거의 모든 투쟁과 활동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

김창우는 지금 의왕시 인덕원역 근처 작은 연립주택에서 살면서 연구와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젊은 시절 노동운동에 투신하여 어쩌다보니 혼기를 놓쳐 독신으로 살고 있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추구하면서 살아온 지금까지의 삶에 후회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금 노동운동이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도 결국 가까운 장래에 극복될 것이라고 믿는다. 전노협으로 출발했던 변혁지향적인 노동운동은 사회개혁(개량)주의를 표방하는 민주노총과의 노선 투쟁에서 패배하여 현재까지는 비록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기 위한 길은 계속 추구할 것이고, 새롭게 형성되는 새로운 주체세력에 의해 조만간 길이 열릴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자신은 첫 단추를 잘못 꿰어 잘못 흘러가고 있는 한국노동운동의 역사를 바로잡는 데 작은 기여나마 하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어쩌면 그의 인생의 후반전은 이제 시작되고 있는지 모른다.

공동선, 2019년 11-1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는 공동게재에 동의함).

목, 2020/02/2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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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에 있었던 대한항공의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당시 회장의 이사직 연임을 부결시킴으로써 한국기업의 경영사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비록 뒤이어 열린 한진칼(대한항공의 1대주주)의 총회에서 조양호씨의 심복으로 평가받는 인물이 대표이사로 선임되어 그 의미가 반감되었다 하더라도, 박정희 군사정권부터 진행되었던 개발독재 정책의 산물로 탄생한 재벌체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단적 경영지배 구조 속에서 일개 개인과 가문이 대기업 집단을 전횡적으로 마음대로 주물러온 소위 황제경영의 폐습에 일대의 경고를 보내고 현대적 경영의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를 정말 실망시키는 것은 조양호씨를 이사직에서 해임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국민연기금 등 공적 투자기관들과 주무부처 장관들이 보인 애매모호하고 불분명한 태도이다.

현대적 의미에서 상장기업은 결코 개인과 가문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더구나 한국재벌기업들의 성장 뒤에는 수많은 국민들의 피와 땀이라는 희생이 있었고 국민경제의 주요 자원을 일방적으로 집중 지원받아온 특혜라는 정경유착의 역사적 배경이 있었음은 모든 국민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반 국민들과 연기금들이 투자하는 증권시장에 상장을 허용하고 기업들에 법인격을 부여한 이유는 해당국가가 지닌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가용 가능한 국민경제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경영하고 나날이 혁신하여 해당 국민들의 경제적 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어가야 할 책임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칙과 맥락에서 개별 기업이 성취한 경영의 이익을 주주로서 배당을 받고 경영자와 종업원들이 기여에 따라 보상을 받는 것은 마땅하고 건강한 경제운영의 논리이다. 사적 소유의 재산권은 대한민국의 헌법 여러 곳에서 명백히 적시하였듯이 국민경제에 대한 정합적인 역할과 긍정적인 기여 속에서 정당하게 보호받고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사회적이며 국민경제생활에 해를 끼치는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이며 사익추구적 행위조차 사유권의 보호라는 이름으로 묵인하는 것을 결코 용납해서는 아니 된다.

이에 3.1서울민회는 문재인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해당 기관들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하고자 한다.

  1. 대한항공 사례를 계기로 국제적 조롱거리인 한국재벌들의 족벌경영 체제를 해체하고 국민경제에 책임을 다하는 현대적인 전문경영의 시대를 활짝 열어가야 한다.
  2. 국민연기금을 비롯하여 모든 공적 투자기관들은 확고하고 분명한 스튜어드쉽(주주행동 원칙)을 일반화하고 이를 예외 없이 시행해야 한다.
  3. 경제사범으로 예건데 일년 이상의 실형을 받은 자가 상장기업의 책임 있는 경영자리에 역임할 수 없도록 반듯한 윤리지침(Code of Conducts)를 만들어야 한다.
  4. 기업 내에 비리와 특혜가 만연한 현재, 기업의 비리를 밝혀 내는 용감한 내부 고발자들을 보호하고 평생을 보장하는 특별법을 반드시 제정해야 한다.

2019. 04.

 

3.1 서울민회 경제민주화 위원회 일동

월, 2019/04/0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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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보면 전쟁으로 인한 사망보다 질병과 전염병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 Clausewitz의 표현에 의하면, 인류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해당사회가 치루어야 할 전투를 전략적 개념을 통해 수행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치명적인 바이러스와 전쟁을 이기기 위한 전략을 구상하기 위해서는 매우 복잡한 연결망을 구성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다차원 속에서 타격을 가해오는 상대(질병)의 복잡다단한 성격을 이해해야만 한다.

지난 3월11일 WHO가 COVID-19를 팬데믹으로 공식 선언하였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에 대비하지 못한 상태이었다. 그러나 수십 년 전부터 전문가들은 전염병이 수시로 발생할 것이며, 세계화와 인구 증가, 불평등과 기후위기 등으로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게 될 것을 여러 차례 경고하여 왔다.

특히 세계화로 이루어진 전례가 없는 연결성 즉 대도시권의 대중교통수단, 빈번하게 이루어진 항공여행, 대규모의 크루즈 관광 등이 대양과 대륙을 정기적으로 연결하면서, 많은 국제 행사들이 이루어지고 산업계의 공급사슬구조가 형성되면서 팬데믹의 조건을 악화시켜 왔다. 그 결과로 각국 정부들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차원에서 제공해야 할 기본적 사회정책이 위축되었다.

COVID-19가 발발하자 각국 정부들은 지역봉쇄와 여행제한 그리고 국경차단을 통해, 연결고리를 통제하면서 대응해 왔다. 그러나 연결고리에 대한 전면적인 봉쇄는 해답이 아니다. 반대로 국제적인 지도자들간의 협력과 합동적인 과학적 연구가 이번 위기를 극복하는데 핵심이다. 요점은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연결고리의 시스템이 주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추구하는 것이다.

COVID-19의 사태가 우리에게 시스템에 대한 조언을 주고 있는데, 이미 주지하듯이 세계화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금융센터처럼, 연결고리의 시스템이 파괴될 경우에 입는 피해가 연결성이 주는 혜택을 훨씬 능가할 것이라는 점을 팬데믹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현재 위협이 던지는 근본적 도전은 연결성과 회복력 간의 거래인데, 후자 즉 회복력이란 사회가 시스템의 충격에서 제자리로 돌아오는 능력을 의미한다.

복잡계의 이론가들은 잘 짜여진 연결고리가 시스템적인 회복력을 강화시킨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 단, 기존의 관계라는 요소가 변화된 이후에 가능하다. 이는 특히 수많은 상호연결 고리들이 사회시스템 전체를 매우 빠르게 뒤흔들고 의도하지 않았고 예측도 할 수 없는 재구성의 결과를 만들어 낼 때에 유효하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대체로 세계경제에 유익하다. 그러나 중국이 2003년 이래 세계에서 두 번째 규모로 성장한 이후 발생한 이번 COVID-19는, 지난 SARS와 견주어 볼 때, 중국과 세계를 묶는 연결고리의 기능과 승수적으로 결합하여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연결성과 회복력이 균형적으로 제자리를 잡게 하는 전략적 방침은 회복력을 극대화하는 영역에 국가적으로 시스템을 준비하고 환기시키는 것이다.

우선, 이는 전략수립의 결정과정에 큰 변화를 요구한다. 국가의 이익에 초점을 맞추어 왔던 전통적인 방식에서 탈피하여 사회경제적으로 초연결화된 시스템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특히 작고 단순한 사건이 복잡한 사슬 속에 사방으로 파장을 야기시킬 수 있는 국제적 연계의 복잡성에 유의해야 한다.

두 번째, 이러한 결정을 통하여, COVID-19와 같은 전염병의 전파성과 싸우는 국가단위의 능력을 배가시키는 효과적인 방법들을 찾아내야 한다. 예를 들어 팬데믹과 싸우는 최전방을 지원하기 위해, 부자국가들과 국제적인 보건기구들이 지역단위로 팬데믹을 통제하는 국제적인 시스템을 공동으로 갖추어야 한다.

팬데믹은 각국의 질병센터만 고립적으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 시스템의 가장 약한 고리를 공격한다. 이러한 약한 고리가 붕괴되면 사방으로 확산되며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초기에 대응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다. 약한 고리에는 이주민 수용캠프, 빈민촌, 공공보건이 취약한 빈곤한 나라들이 해당된다. 유엔의 통계에 따르면 22억의 인구가 물부족을 겪고 있으며 42억 인구에게 기본적인 위생시설이 부족한 실정에 있다.

팬데믹은 경제사정과는 상관없이 진행되지만, 동시에 이에 대한 대응은 해당 국가가 회복력을 유지할 시스템을 갖추어야 가능하다. G20 국가 지도자들은 이번 전염병과 싸우는데 가능한 모든 국제적 금융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여전히 보호무역으로 국제간 협력을 방해하고 있으며, 이번에 발생한 시스템적 충격에 대응하는 다자간 무역기능을 신속히 복원시키기 위해 필요에 따라 경쟁력의 회복을 지원하는 환율의 재조정이 필요하다.

COVID-19의 전략적 정책으로 국가마다 사정에 따른 회복력을 승인해야 한다. 식량과 의료 그리고 기타 전략적 물품의 공급을 다양화하여, 공급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충격을 이겨낼 확실한 공급의 인프라가 요구된다.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진료에서 종합 병원에 이르기까지 의료시스템을 갖추어야 하며, 질병에 대한 전문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호주의 경우, 자체적으로 충분한 식량을 생산하고 있지만, 국제적으로 식량 공급체계에 혼란이 발생하면 필요한 대륙에 즉시 식량수송이 가능할 만큼 비축량을 운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국가들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가운데 공공보건의 위협을 관리할 수 있는 탄력적 운용이 가능하도록 정치제도와 사회적 공헌을 개선해 나아가야 한다.

이번 팬데믹은 상황에 대응하는 각국의 역량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키고 있다. 동시에 연결성과 회복력 간의 보다 견고한 균형을 찾도록 세계화를 재조정해야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전략적인 방침을 바꾸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현재 겪고 있는 경제불황은 국가와 세계단위의 활동을 어쩔 수 없이 위축시키고 있지만, 이후 회복될 경제활동은 반드시 팬데믹 이전의 수준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지난 여름 호주가 격은 기후의 재난(산불)은 이미 현재 지구의 탄소화가 지닌 위험이 어떤 것이지 잘 보여주었다. 연결성과 관련하여 재난으로부터 회복력을 갖추기 위하여 우리 삶의 방식과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이 지속가능한 것인지, 우리는 이제 분별하고 성찰을 해야 할 시점이다.

 

출처 : 동아시아 포럼, 2020-05-10.

Evelyn Goh

호주 국립대학교내 전략과 안보분야 연구소 주임교수

Jochen Prantl

호주 국립대학교내 아시아-태평양 국제관계분야 담당교수

금, 2020/05/2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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