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14] 마의 순환고리 끊기

지역

[14] 마의 순환고리 끊기

admin | 수, 2020/04/08- 20:36

촛불혁명의 세 단계

2016년 10월 29일 시작된 대한민국의 ‘촛불집회’는 3차째인 11월 12일의 100만 집회에서부터 ‘촛불혁명’으로 전환되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자진퇴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함에 따라 이때부터 촛불광장의 요구가 국민에 의한 ‘하야’와 ‘퇴진’으로 분명해졌고 이 요구를 여러 미디어에서 받아 ‘촛불혁명’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듯 혁명적 요구를 장착한 거대한 대중행동은 이어 4차(11월 19일, 95만), 5차(11월 26일, 190만), 6차(12월 3일, 230만) 집회를 통해 국회의 대통령 탄핵 가결을 압박했고, 결국 국회는 12월 9일 찬성 234명, 반대 56명으로 대통령 탄핵을 가결했다. 이 ‘합헌적 혁명’의 경로는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탄핵 결정을 승인하고 대통령에게 파면 선고를 내림으로써 그 1단계가 완료되었다.

대통령 탄핵 – 파면 이후 촛불혁명은 다음 단계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5월 9일 치러진 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41.08퍼센트의 득표로 당선되었다. 국회 내 탄핵을 주도했던 야3당 후보의 득표율을 합하면 68.66퍼센트(국민의당 21.41퍼센트, 정의당 6.17퍼센트), 촛불의 압박 아래 탄핵 지지로 돌아선 새누리당 이탈 세력의 지지율(6.76퍼센트)을 더하면 75.42퍼센트에 이른다. 유권자 4분의 3 이상이 탄핵지지 정당의 후보를 지지하는 가운데 제1야당의 후보가 여유 있게 당선되어 정권을 안정적으로 교체한 이 대선 과정이 ‘합헌적 혁명’의 제2단계라 할 수 있다. 대선 이후 ‘촛불정부’가 들어선 이제 합헌적 혁명으로서 ‘촛불혁명’의 제3단계가 진행 중이다. 이 제3단계를 온전히 마무리하였을 때 촛불혁명은 비로소 완성·완수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장은 이렇듯 세 개의 단계를 경과하여 진행 중인 촛불혁명의 지향과 목표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목표와 지향은 무엇보다 우선 이 사건의 역사적 위치, 위상을 객관적으로 점검할 때 비로소 분명해질 수 있다. 그러한 위상이란 한국 현대사 속에서의 위상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사, 더 나아가 세계사 속에서의 위상을 포괄하는 것이 되어야 하겠다. 이 혁명이 어디쯤 있는 줄 알 때, 어디를 향해 가야 할지가 분명해진다.

2016~2017년 촛불혁명의 역사적 위상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먼저 한국 현대사 차원에서 볼 때 두드러진 점은 이번 촛불혁명이 1960년의 4·19 혁명과 1987년의 민주항쟁에 이은, 대략 30년 간격으로 터져 나온 거대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의 세 번째 분출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4·19도, 87년 민주화도 각각 이후 30년에 걸쳐 점차 그리고 결국은 강고한 독재로 귀결되고 말았다는 뼈아픈 사실이다. 거대한 민주적 열망을 냉혹한 독재체제가 회수하고야 마는 ‘마(魔)의 순환고리’ 또는 ‘독재의 반복고리’가 작동했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이번 촛불혁명도 꼭 같은 순환고리에 포획되고 말 운명인가? 촛불혁명의 완성을 이야기하자면 우선 이 점을 심각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반복강박 증상과 매우 유사한 이 불쾌한 역사적 순환에 대한 인식이 분명해질 때, 2016~2017년 촛불혁명의 제1과제는 바로 그 ‘마의 순환고리’를 분명히 끊어내는 것에 맞추어지게 된다. 반면 이러한 반복성과 그 뿌리 깊은 구조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지 못하면 촛불혁명은 다시 한번 자기혼란 속에 퇴행 소멸할 수 있다. 이것이 지난 60년간 한국 현대사에서 두 차례 반복된 ‘독재가 민주를 회수하는 마의 순환고리의 작동’ 속에서 배울 점이다.

한국의 이번 촛불혁명의 두 번째 역사적 차원은 기존 민주주의 시스템이 세계 곳곳에서 한계와 오작동을 드러내고 있는 상태에서 유독 이를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돌파하는 새롭고 거대한 힘을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한국의 촛불혁명에 세계가 놀랐던 이유다. 외국의 여러 주요 언론이 썼던 바와 같이 이번 한국에서의 촛불혁명의 에너지는 더 이상 ‘민주주의 선진국’의 발자국을 뒤따라가는 후발자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체와 퇴행에 빠진 세계 민주주의 상태에 새로운 활력을 일으키고 더 나아가 민주주의를 보다 고양된 수준으로 이끌어가는 선도자의 힘이다.

끝으로 필자는 한국 민주주의의 이러한 선도적 에너지가 세계사의 단계가 ‘서구 주도 근대’ 단계를 넘어 ‘후기근대’로 들어서는 상황에서 표출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후기근대의 주요 특징의 하나는 일극중심 문명체제에서 다극균형 문명체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대변동은 커다란 기회와 위기를 함께 수반한다. 한국의 경우 한편으로 정상사회, 정상국가로의 전환의 계기가 형성되고 있지만 동시에 이러한 전환을 오히려 신냉전 기류의 고조를 통해 모면하려는 흐름이 생겨난다. 현재 북미 간의 비상한 군사적 긴장 고조는 여기서 비롯된다. 이러한 상황을 어떤 방향으로 풀어가느냐에 따라 동아시아만이 아니라 세계 전반의 안녕이 큰 영향을 받게 된다. 20세기적 또는 냉전적 행동패턴, 분단체제적 사고패턴과 과감하게 작별하는 새로운 발상, 담대하고 창의적인 접근이 긴요한 시점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촛불혁명은 한국 현대사에서 30년 간격으로 되풀이 되었던 ‘마의 순환고리’를 확실히 끊어야 하는 목표이자 과제를 가지고 있고, 이러한 목표는 세계사 차원의 거대한 지각변동에서 대한민국의 촛불혁명이 수행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과 깊이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목표, 과제, 역할은 단기적 시야에서는 포착되기 어렵다. 눈앞에서 쉴 새 없이 진행되는 현상에 매몰될 때 촛불혁명의 제3단계는 방향을 잃고, 이 속에서 앞서 언급한 ‘마의 순환고리’는 다시 한번 거대한 작동을 시작하게 될 수 있다.

이 장은 이렇듯 촛불혁명이 놓인 역사적 위상과 여기서 도출되는 목표에 대해 가능한 구체적으로 적시해보려 한다. 그것은 ‘독재의 순환고리 끊기’와 ‘코리아 양국체제의 정립’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 두 목표·과제가 긴밀히 연관된 것임도 이 글은 밝혀 보일 것이다. 이 두 과제의 달성은 진정 ‘체제전환’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고, 그럼으로써만이 이번 촛불혁명은 진정 그 이름에 부합하는 혁명으로 완성될 수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마(魔)의 순환고리’

4·19와 87년은 대한민국 정치사, 민주주의 역사의 기념비적 봉우리였다. 이제 2016~2017년의 촛불혁명은 이를 잇는 세 번째 봉우리가 되었다. 그러나 앞서 두 번의 봉우리가 세계의 주목과 경탄을 받았던 만큼, 그 역사적 대분출 이후의 역사는 독재의 깊은 골짜기로 거듭 굴러 떨어지곤 했다. 그리하여 ‘민주의 대분출과 독재로의 회수’라고 하는 매우 불쾌한 사이클이 한국 정치사에 30년 주기로 반복되어왔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이 분명하게 그리고 널리 인식되게 된 데는 박근혜 정부의 등장과 귀결이 큰 역할을 했다. 그 이전 이명박 정부 출범은 참여정부 실패의 결과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독재 회귀의 큰 사이클에 대한 인식이 아직 대중적으로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은 박정희 체제로의 회귀라는 상징성이 강했고, 실제 재임 동안 그러한 회귀가 정부의 공공연한 이념공세의 형태로 추진되었다. 물론 이 사실의 확인은 87년 민주항쟁 이후 30년 사이클의 대미를 박근혜 정부의 유신 귀환 행태가 장식했다는 사실을 지적할 뿐이다. 우선 박근혜 정부의 독재화 가속 현상은 최근 밝혀지고 있는 바와 같이 이명박 정부 시기의 전방위적 블랙리스트 정책(감시·배체 체제)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 이전 김대중 – 노무현 민주화 정부 10년도 독재 회귀의 큰 사이클을 결코 끊지 못했다. 그 연원은 멀리 87년 하반기 민주화 진영의 분열과 대선 패배로부터 기인하는바, 이 30년의 전체 흐름에 대한 조망은 이 글 4절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박근혜 정부가 대미를 장식했던 독재 회귀의 피날레 현상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부터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과 군 정보기관의 조직적이고 대대적인 선거 개입(이명박 버전의 ‘비상국가체제’의 작동)에 의해 출범할 수 있었다. 이렇듯 국가기관의 대규모 선거 개입에 대한 검찰 수사를 박근혜 정부는 유신체제를 연상시키는 매우 강압적인 방식(박근혜 버전의 ‘비상국가체제’ 작동)으로 종결했다. 그렇게 시작된 박근혜 대통령의 재임 기간은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에서 보여준 무능과 불통·불감, 통진당 해체에서 보여준 냉전 극성기의 배제와 억압, 국정교과서 추진에서 보여준 시대착오적인 이념적 강압으로 시종 일관했다. 이러한 오만과 강압은 2016년 4·13 총선 공천 과정에서 전통적 지지층마저 고개를 돌릴 만큼 무제약적인 것이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모든 불통·불감, 억압·배제의 일방 통치와 오만에도 불구하고 당시 거의 모든 언론은 다가오는 총선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압승하고, 더 나아가 개헌선 이상의 여당 승리에 따른 제2의 유신 개헌 프로젝트가 가동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만큼 신 유신체제로의 회귀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인 것처럼 보였다. 때는 마침 87년 항쟁의 30주년에 임박해 있었기 때문에 87년의 민주주의의 희망찼던 큰 진전과 그 30년 이후 민주주의의 암담한 추락의 대비가 선명해질 수밖에 없었다.

4·13 총선의 결과는 사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렇듯 전혀 예상 밖에 조성된 여소야대의 상황이 박근혜 체제의 유신 회귀 질주를 멈추게 한 것도 아니었다. 총선 이후로도 전방위 블랙리스트 압박과 국정교과서 개정, 사드 배치, 일제 위안부 문제의 종결(소위 대못박기)을 위한 강박적 정책이 집요하고 일관되게 추진되었다. 10월 말 최순실 국정 개입·농단의 구체적 증거가 언론에 폭로되기 시작하면서 급전직하로 진행된 박근혜 정권의 극적인 몰락 역시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무리 독선·독주를 해도 철옹성처럼 견고해 보였던 박근혜 지지층을 단번에 해체해버린 11월, 12월의 거대한 대중행동은 자연스럽게 30년 전, 1987년의 거대했던 민주대항쟁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되살렸고, 많은 미디어가 이 대비를 부각시켰다. 1987년 역시 철옹성 같았던 군부독재체제가 그처럼 물러설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러한 경험과 기억의 중복 속에서 한국 정치사의 반복성은 평범한 국민대중의 인식 차원에서도 분명해져갔다.

그러한 반복의 시간에서 희열은 짧고 고통은 길기 마련이다. 희망의 짧은 시간은, 길고 둔중한 망각과 냉소와 자학과 고통의 시간에 묻히고 만다. 실제가 그러했다.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독재가 민주를 회수하는 마의 순환고리’란 그렇듯 짧고 날카로운 희망과 압도적으로 길고 둔중한 절망의 시간의 반복 메커니즘을 말한다. 혹시나 이렇듯 확인된 반복성이 ‘아무리 어두워도 새벽은 또 오고야 만다’는 식의 대책 없는 낙관주의로 도치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중증 반복강박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어두운 회귀 구조의 압도적인 불행과 불쾌와 고통에 주목해야 마땅하다. 역사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이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묘하게도 1960년 4·19, 87년 6월, 2016~17년의 세 개의 봉우리는 30년을 주기로 솟아올랐다. 또한 그 사이에 낀 두 개의 시기(1960~ 1987년과 1987~2016년)의 전개 양상, 즉 ‘독재가 민주를 회수하는 장기(長期) 메커니즘’의 작동은 구조적으로 매우 흡사했다. 이 패턴은 극과 극이 대체되는 것으로서, ‘제도 밖의 대중행동이 제도를 변화시키고 점차 보수화되는 제도를 다시금 제도 밖의 대중행동이 변화시킨다’라고 하는 기존 사회변동의 교과서적 일반론과는 매우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우선 4·19나 87년 6월 대투쟁은 (이번 촛불혁명도 마찬가지다) 반전이 도저히 불가능하여 철옹성 같아 보이는 독재 상황, 즉 독재가 외적 구조만이 아니라 멘탈의 내면까지 깊게 장악하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규모와 방식으로 매우 극적으로 분출하였다.

이 글이 주목하는 ‘마의 순환고리’란 이렇듯 정상적인 수준이나 패턴을 넘어서는 지극히 극단적인 독재 수렴 구조의 작동을 말하고, 이러한 극단적 패턴이 반복되는 배후에는 매우 특수한 한반도(코리아)의 상황이 존재한다. 이 강고한 순환고리의 ‘마성(魔性)’은 거대한 대중행동·민주열망이 제도 안으로 수렴되어 제도를 변화시키는 과정으로 이어진다고 하는 사회변동의 일반론이 작동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행동의 봉우리가 아무리 높고 거대해도 ‘마의 순환고리’ 자체는 끊기지 않고 결국 시간이 지나면 같은 패턴의 ‘독재수렴’이 반복된다.

그러한 ‘마성’의 효력을 마치 영구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반도적 상황’이란 무엇일까. 2차 대전과 6·25 전쟁 후의 동서(동방/서방) 그리고 남북(코리아) 간의 극단적인 적대적 대립이 지정학적 꼭지점에 2중으로 중첩되어 있는 상황을 말한다. 그로 인해 ‘2중의 독재권’이 중첩하여 증폭하게 된다. 이는 극히 예외적 –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그렇듯 특이해 보이는 국가 독재권의 작동 원리가 근대 국가주권론의 일반론에서 반드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근대 국가주권론의 이론적·이념적 순수형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 가장 선명한 이론적 표현은, 필자가 아는 한, 독일의 법학자 카를 슈미트에 의해 주어졌다. 그는 근대 국가주권의 핵심 권능과 표징이 국가 내외에 적(=예외)을 설정하는 권한(비상대권)의 독점, 즉 독재권에 있다 하였다.

냉전 시기 이 원칙은 국가 간이 아닌 동서 ‘진영’ 간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한 상황에서 슈미트적 의미의 국가주권의 배타적 권능(=독재권)이 가장 강력하게, 이론적으로 가장 순수한 형태로 표출되었던 곳이 한반도의 남북이었다. 남북의 두 국가가 하나의 주권을 두고 다투는 상황은 남북 상호를 절대적 적(=예외)으로 설정하게 함으로써 남북 각각의 주권이 절대성(=독재권)을 확보하도록 하였다. 진영 간 대립과 분단국가 간 대립이 가장 극단적 형태로 중첩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극단의 상황은 남북 내부에 정상적 정치 경쟁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카를 슈미트가 근대 국가주권 행사의 정화(精華)라고 보았던 최고통치자의 비상대권이 항시적·일상적으로 작동하는 ‘비상(非常)국가체제(permanent emergency state system)’, 그것이 남북한의 국가 상태였다.

한국의 경우 그러한 항시적 비상국가 상태에 파열구를 내고는 했던 것이 4·19였고 87년 6월 항쟁이었으며, 이번 촛불혁명이었다. 비정상 상태에서는 비정상이 정상이고, 정상은 비정상이 된다. 오직 그러한 비상 상태를 정지시킴으로써만 정상은 정상이 되고 비정상은 비정상이 된다. 즉 비로소 ‘정상 상태(normal state)’에 이르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현대사에서 세 차례의 민주 분출은 비상국가를 정상 상태로 되돌리려는 거대한 계기들이었고, ‘마의 순환고리’란 그러한 거대한 계기를 다시금 비상 상태로 되돌리려는 ‘마적(魔的) 시스템의 회복력’ 또는 ‘비상국가의 자기회복 시스템’이라 하겠다.

정상 상태란 우선 거대한 민주열망의 분출이 정상적으로 제도화되는 것을 전제한다. 이것이 제대로 된 민주화의 일차적 징표일 것이다. 그러나 4·19와 87년 이후 각 30년은 거대했던 민주열망을 정상적으로 제도화시키는 데 실패했던 시간이었다. 초기 얼마간은 과거 독재기에 비해 유사 민주화가 진행되는 듯 보이지만 이는 표피의 변화에 그치고 점차 비상국가체제의 독재·독점의 힘이 민주의 열망을 분산·둔화·왜곡시켜 결국은 몽땅 삼키고 만다.

한국 현대사에서 그러한 ‘마의 순환고리’가 지극히 강고하다는 것을 제대로 입증한 것은 4·19 이후 30년이라기보다 오히려 87년 이후 30년의 과정이었다. 왜냐하면 4·19 이후 30년은 세계적 동서 냉전이 맹렬하게 진행 중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비상국가 상태를 근본에서 종식시킨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매우 어려운 조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87년 이후 30년은 동구권 붕괴와 소련 해체를 통해 동서 냉전이 종식됨으로써 한국의 비상국가체제를 강제하는 국제적 구속력이 크게 약화된 역사적 국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비상국가체제는 그 거대했던 87년의 민주 동력을 다시 한번 차근차근 회수하여 다시금 또 다른 독재체제로 회수하고야 말았다. 동서 냉전이 종식되었고 ‘북방정책’을 통한 대소·대중 해빙이 있었음에도 한국의 비상국가체제는 강고하게 지속되었던 것이다.

 

비상국가체제의 작동과 균열

‘독재가 민주를 회수하는 마의 순환고리’의 핵심에 ‘비상국가체제’가 있다고 한다면, 우선 그 체제의 작동 방식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비상국가체제는 최고권력자의 독재권과 상당히 광범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기득권층과 동맹관계를 통해 작동한다. 최고권력자의 정치적 독재권은 사회 각 부면의 권력과 자원의 독점권·기회획득권을 기득권 상층에게 배타적으로 보장해줌으로써 비상국가의 지배동맹은 성립한다. 이 체제의 위기는 지배동맹의 균열·약화와 국민적 저항이 맞물렸을 때 발생한다.

이번 촛불혁명도 마찬가지였다. 임기 2~3년 차에 들어 (특히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 박근혜 정부의 실정(失政)에 대한 실망, 회의, 반발이 누적되었음에도 대통령에 대한 30~40퍼센트에 이르는 ‘콘크리트 지지층’은 2016년 10월 말에 이르기까지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40퍼센트에 이르던 지지율이 30퍼센트대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4·13 총선 이후였다. ‘친박 독선·독주에 대한 응징’으로 풀이된 총선 결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자신에 대한 지지율은 놀랍게도 콘크리트 밑바닥인 30퍼센트대를 굳건하게 유지했다.(아래 <그림 2>)

그러나 이 40퍼센트대에서 30퍼센트대로의 변화 과정에는 지배동맹의 균열과 약화라는 중대한 변수가 끼어 있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일단을 흥미롭게 정리해주는 기사가 JTBC의 최순실의 태블릿 공개 직전인 2016년 10월 23일 자 《미디어오늘》에 “조중동에게 노무현보다 박근혜가 최악인 다섯 가지 이유”라는 제목으로 떴다. 당시 조중동 기자들의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불만이 예사롭지 않다고 하면서 그 원인을 풀이한 기사다. 주요 내용은 2014년부터 시작된 ‘비선실세’ 의혹의 각종 보도에 대해 정부가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것(그 소송의 주역은 김기춘·우병우다), 언론사 수익원을 (역시 ‘진보, 보수 가리지 않고’) 막고 있다는 것, (조중동과 같은) ‘언론사’ 출신을 배제하고 (MBC, KBS와 같은) ‘방송사’ 출신만을 청와대가 애호하고 있다(=감투를 주고 있다)는 것 등이다.

이번 촛불혁명 과정에서 상세히 밝혀진 ‘비선실세’ 건은 이미 2014년부터 ‘문고리 3인방’ ‘정윤회’ 보도로 시작되었고, 2015년 초부터는(대통령 연두 기자회견 이후) 조중동이 한목소리로 대통령이 이 문제를 덮으려 한다고 비판해왔다. 권력과 자원을 조중동, 그리고 그들이 대변하는 사회 기득권층과 공유하고 대통령 개인의 사적 비선실세와만 나누려 하는 행태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었다. 권력 공유에 대한 묵언의 지배동맹, 계약을 위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항의였던 셈이다. 이러한 불만 표출에 대해 청와대는 “부패한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이 우병우 죽이기에 나섰다”고 예의 그(=박근혜 전대통령의) 매서운 표현 방식으로 응수했다(2015년 8월 21일).

중요한 점은 박근혜 정부와 조중동은 국내의 여러 이권에 대한 입장만이 아니라 국사교과서 국정화, 대중·대러시아 관계, 유라시아 외교, 일제 위안부 문제 합의 건 등 이념과 국제관계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미묘한 불일치와 마찰을 심심치 않게 보여왔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상은 2015년경부터 서서히 눈에 띄기 시작하여 2016년 들어, 특히 4·13 총선 이후 빈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신 시절과 다름없는 구시대의 이념과 외교관, 정치행태를 점점 더 강하게 표출함에 따라 지배동맹의 이념 전선에도 균열과 괴리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방증하는 사례의 하나로 대통령이 ‘주류 언론’에 대해서조차 이념적으로 지극히 적대적인 언어를 사용했던 사실을 들어본다. 최근(2017. 8. 2) 삼성 이재용 특검 재판에서 나온 이재용 부회장의 증언이 그것인데,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2월 15일 그를 청와대에서 독대하는 자리에서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을 언급하면서 “(《중앙일보》 계열 언론사인) JTBC가 왜 정부를 비판하나”라 항의하고 홍 회장에 대해서는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이면 그럴 수가 있나’라며 ‘이적단체’라는 표현까지 썼다”고 하였다. ‘이적단체’란 ‘좌빨·종북’과 동급의, 한국의 비상국가체제가 비판 세력을 말살하고 정치적 독재권을 유지하기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왔던 지극히 폭력적인 언어다. 이제 그러한 정치적 비상(砒礵, 극독)을 삼성 – 《중앙일보》라고 하는 한국 보수의 대표적 주류 기관의 수장들을 대상으로 들이밀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지만 객관적인 상황은 국내 자본 그리고 온건 보수의 입장에서도 과거 유신 시절과 같은 강고한 구냉전적 자폐(自閉)와 대결 일변도의 정책이 결코 반갑지 않은 것이었다. 한미 동맹은 유지하되 동시에 중국·러시아를 거쳐 유럽·중앙아시아·중동이슬람권에 이르는 광대한 유라시아 통로에 자유롭게 진입하고 싶은 것이 해외 상대의 사업을 하는 층과 온건 보수층의 일반적인 심정이었다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라도 (이명박 정부 이후) 꽉 막힌 대북관계를 어떻게든 풀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과 대중·대러시아 정책은 이명박 정부 때보다 더욱 경직되어 있어 그런 방향의 유연한 타개를 도저히 기대하기 어려웠다. 자본과 온건 보수의 입장에서도 불만과 우려가 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갔던 것이다.

이렇듯 겉으로는 강고해 보였던 박근혜 체제의 보수동맹은 임기 중반(대략 2015년경)부터 내부로부터 흔들리기 시작하여 2016년 4·13 총선을 계기로 그 균열이 가시화되었고, 결국 2016년 10월 말 이후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 백일하에 폭로되면서 정권이 급속하게 침몰하고 말았다. 기적처럼 되돌아온 거대한 대중행동이었다. 2008년 광우병 반대 촛불집회의 열기가 별다른 성과 없이 소진된 이후 심화되는 양극화와 ‘헬조선’의 현실 속에서도 무기력한 패배감과 냉소·자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민심이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 다시 크게 경각하기 시작하여 결국 촛불혁명의 거대한 힘으로 되돌아왔다. 그리하여 2017년 5월 촛불혁명의 힘에 의해 새 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더욱 중요하다. 이렇듯 크게 이완·약화된 비상국가체제를 완전히 역사의 뒷장으로 넘기고 이윽고 정상 상태의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인가. 4·19, 87년 항쟁, 이번 촛불혁명의 공통점은 권력 교체기에 권력 최고층의 도를 넘어선 독주와 권력 남용을 계기로 폭발했다는 데 있다. 기득권층의 일정 부분이 권력에서 소외·이반·이탈하면서 민주화의 요구가 압도적 민심이 되었다는 점도 같다. 그러나 앞서 두 차례의 거대한 대중행동(4·19와 87항쟁)은 비상국가체제를 종식시키는 데 결국 실패했다. 구 권력의 최고 담당층만을 밀어냈을 뿐, 비상국가체제를 작동시키는 구조와 논리, 이념을 종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비상국가체제가 더 이상 대한민국의 미래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마의 순환고리’가 몇 차례의 커다란 타격에도 불구하고 멀쩡하게 부활하고는 했던 것은 우선 한국이 처한 역사적·지정학적 내외 조건의 구조적 강제 때문이지만, 동시에 그러한 강제의 힘을 별 수 없이 수긍하게 된 또 다른 수동적 민심의 (동의가 아닌) 수용이 있었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문제적이라 하더라도 상당 기간 존속해온 체제에는 나름의 현실 근거가 있게 마련이고, 그렇듯 오래 존속해온 것은 비판이나 반대만으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선 현실이 변해야 하고, 그렇듯 변화한 현실을 정확히 읽어야 하며, 새로운 현실에 걸맞은 분명한 방향 제시가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그동안 운명처럼 받아들여왔던 ‘역사적·지정학적 내외 조건’이 크게 변하여 더는 옛 모습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 의거했던 ‘비상국가체제’는 변화한 현실과 오히려 크게 부조화하고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랬을 때 새로운 현실에 맞는 새로운 사회의 방향도 선명해질 것이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온라인 서점 바로가기>>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인민공화국은 일년에 인민대표자회의(NPC)와 인민정치협상회의(CPPCC)라는 두 개의 회의를 동시에 개최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왔다. 양회로 불리는 두 개의 회의는 매년 3월에 개최되어 왔는데 올해는 COVID-19의 위기로 5월로 연기되었다.

서방사회에서는 인민대표자회의가 통과의례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공산당과 정치협상회의의 역할과 상호작용이 점차 무게를 더해 왔으며 이번 양회의 결정들은 중국 당중심 헌법기구와 강화된 다민족의 선출권력 간의 복잡한 관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번 양회에서 중국공산당이 중요한 몇 개의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그 중의 하나가 시민법(national civil law)이고, 다른 하나가 논쟁을 야기한 새로운 국가안전규정(new national security bill)으로 홍콩에서 지속되는 시위를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북경당국이 홍콩 내에 안전전담 조직을 설치하는 것을 허용한다. 북경당국은 안전규정의 제정을 지난 해에 감행할 수 있었으나, 이번 인민대표자회의를 통하여 선언하면서 규정의 무게를 더하였다.

인민대표자회의 대표단은 정부의 연간 업무보고를 승인하였는데 처음으로 대만에 대한 ‘평화적’ 통일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대만과 ‘비평화적’ 통일의 가능성을 암시하였다. 또한 GDP목표치를 설정하지 않았고 6%의 성장을 고수하는 대신,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두었다.

인민대표자회의와 정치협상회의의 양회는 당중심 헌법기구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공산당이 운전석을 차지하고 지배한다.

제14차 회의 이후, 공산당의 총서기가 중국국가의 주석직과 군중앙위원회의 주석직을 겸임한다. 다음으로 정치상임위원회(당중앙 지도부)의 중요한 3인이 행정부의 수상, 인민대표자회의 주석(의장) 그리고 정치협상회의 주석(의장)을 책임진다 (현재는 Li Keqiang, Li Zhanshu and Wang Yang이 맡고 있다).

이렇게 당 중심의 헌법시스템 내에서 권력의 배분이 당 중앙의 가장 중요한 4사람이 상기의 자리를 제각각 차지하면서 이루어 진다.

이러한 시스템은 당기구의 중앙위원들로서 일반주석들의 위치가 행정부의 핵심인 수상/부수상직보다 강한 권력을 가지도록 구성되어 있다. 동시에 권력의 분산보다는 통일집중의 원칙 위에 있다.

공산당과 인민대표자회의는 일상적인 긴장과 때때로 대립하는 위치에 있다. 헌법상으로는 대표자회의가 최고의 의결기구이다. 대표자회의 지위와 기능은 이론적으로는 당보다 우위에 있으며, 당은 인민대표자회의라는 헌법적 프레임 안에서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로 공산당이 대표자회의를 통제하며 공산당 총서기가 대표자회의의 주석보다 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인민의 주권개념은 대표자회의에 녹아 있다. 대표자회의와 정치협상회의는 마치 차량의 방향조향장치와 같이 자신들의 의견과 국가적 의지를 입법을 통해서 전달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표자회의는 제국의 봉인이 찍힌 현대적 형식기구로 이해할 수 있으며, 최고 권위와 주권을 상징한다. 실제로 인민대표자회의는 2980명의 참석자들이 보수를 받지 않는 임시적인 입법자로서 활동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공인의 입법기구인 셈이다.

의회 민주제도에서는 흔히 입법기구가 양원으로 분리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이론적으로 권력을 분리시키는 양원제를 거부하고 있지만, 지난 몇 년간 대표자회의와 정치협상회의는 양원제와 유사하게 입법과정의 역할을 증대하여 왔다. 헌법규정에 따라, 모든 주요 결정은 대표자회의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법적인 권한은 없더라도 정치협상회의의 자문을 사전에 거쳐야 한다. 국가의 법률의 제안과 통과는 반드시 대표자회의를 거쳐야만 한다.

입법 과정은 당의 해당위원회들이 제안, 조사와 연구, 기획의 초안, 상담과 여론취합 등 오랜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지고, 제안 이후에는 해당분야 전문가들의 검토, 숙의, 조정과 승인, 법제화와 초안의 수정을 거쳐 대표자회의의 참가자들에 의한 승인을 통과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실제 대표자회의가 개최되기 전에 진행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사전적 진행을 통해 진지한 상담과 협상, 조정과 논쟁을 통해서 수많은 수정이 이루어진다. 동시에 중앙당의 해당위원회 위원들은 양회가 개최되기 전에 중국전역을 방문하여 사전조사를 시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예를 들어, 홍콩의 국가안전규정은 1명의 거부와 6명의 기권을 제외하고 2878 참가자들의 찬성을 얻었다.

대표자회의 참석자 수數의 배정은 개별 성省과 특별지역의 인구수에 비례하여 이루어지며, 특별지역의 대표자들은 직접 선출되며, 개별 성의 대표자회의 참가자는 간접적으로 선출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정치협상회의의 참석자들은 지역의 이익보다는 해당 지역의 다양한 부문을 대표해서 구성된다. 협상회의는 통상 46개 부문으로 나누어 지는데 의료 건강 교욱 미디어 종교 자연과 사회과학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농민과 노동자들은 정치협상회의의 대표권을 갖지 않는데, 대신 당의 정치적 체계 내에서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분야의 엘리트들로 구성되는 ‘클럽’에 참여한다.

정부의 주요 지도부들은 대표자회의의 승인을 통해서 선출되지만, 이런 선출의 과정은 간접적이고 사전에 지명되고 통제된다. 중앙당의 조직부서에서 후보자들을 지명하고 통제하는 과정을 거친다. 공산당원들이 대표자회의 주요 기구에 참여하면서 당의 지침을 통하여 조직기구에서 지명한 후보들을 선출하고 승인한다. 이렇게 사전통제된 선거시스템은 당우위(黨優位) 국가시스템을 운용하는 전제가 된다.

비록 현재까지는 공산당에 의하여 대표자회의가 사전에 조직되어 진행되고 있지만, 이들 대표자회의와 공산당 간의 관계가 향후 어떻게 진화하여 중국사회가 다원화하고 국제적으로 상호관계를 형성해 갈지는 지켜보아야 할 사항이다. 지금부터 대표자회의의 참가자들이 국가의 장래와 통일에 관하여 더욱 국수적으로 변모할지 아니면 개방적으로 변해갈지 예의주시해야 한다.

 

출처: East Asia Forum in ANU on 2020-05-30.

Baogang He

호주의 멜버른에 있는 Deakin 대학교수, 국제관계학 전공.

목, 2020/06/11- 02:59
0
0

편집자 주:

다른백년은 지난 3개월간 연재한 ‘코로나 이후 세계는?’을 마감하고 이번 주를 시작으로 3-4개월간 ‘미중 간의 갈등전개와 향후전망’ 라는 주제로 새로운 특별칼럼을 연재한다.

1990년 이래 단극적으로 세계질서를 주도해 왔던 미국의 G1위상이 급격히 추락하면서, 향후 당분간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G0의 혼란기로 접어들고 있다. 대체로 미국의 패권유지와 중국의 대국굴기가 갈등의 중심축을 이루면서, 유럽연합과 러시아 그리고 인도 등이 조정역할을 넘어 나름대로 지역과 현안에 대한 대안적 거점을 형성할지 여부가 향후 Gn의 세계질서의 내용을 결정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른벡년은 상기 주제에 대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시각과 분석을 아래과 같은 6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각각 2-3주 간격으로 교체하며, 매주 2건의 칼럼을 번역 소개하고자 한다.

1.     미중 갈등의 격화의 배경과 전개

2.     미국에 대한 대내외적 시각과 비판

3.     중국에 대한 대내외적 시각과 비판

4.     미중 간의 주도권 쟁탈과 전쟁 가능성

5.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과 중국의 반격

6.     향후 세계질서에 대한 전망

미중 갈등의 배경과 전개에 대한 첫 번째 소개의 글은 미국의 진보적 Think-Tank인 Brookings 연구소의 중국센타 책임자인 Dr. Cheng Li와 중국국제방송CGTN 간에 이루어진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여러분들의 변함없는 관심과 격려를 기대한다.


중국과 미국은 전면적인 대결상황으로 향해가고 있는가? 정치와 안보상황이 더욱 악화일로에 있는 것일까? 경제적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중국국제방송CGTN의 Reality Check 프로그램에서는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중국센타 책임자인 Dr. Cheng Li와 인터뷰를 가졌으며, 그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현재 3가지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중 관계를 수십 년을 취재해온 사람으로서 본 프로그램 책임자인 필자는 양국의 관계가 지난 과거의 세월 중에 현재처럼 당황스러운 순간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양국은 결국 세계적 재앙인 팬데믹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어쩔 수없이 서로 협력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대선이 있는 올해를 겪으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인지, 전문가의 견해를 듣기 전에 우선 몇 가지 사실들을 확인해 본다.

정치적 대립을 보도하는 뉴스가 난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측면에는 여전히 회복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통상무역을 예를 들어보면, 트럼프의 중국무역에 대한 전쟁선포와 북경의 보복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에도, 2018년 한해 양국 무역이 6340억 불에 이르면서 사상 최고액수를 보였다. 물론 관세인상이 적용되는 시차가 발생하면서 추후에 무역량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피크에 이른 액수와 큰 차이를 보이진 않았다.

2019년에도 미국은 다른 국가들에 앞서 중국에게서 가장 많이 수입을 하였으며, 비록 느린 속도이긴 하지만 여전히 서비스의 교역량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양국 간의 투자에 있어서는 정부(正負)의 양 측면을 보인다. 조사기관에 의하면, 2019년 중국의 미국에 투자액이 50억불 규모로 이는 지난 십 수년간 제일 저조한 수준인데 주로 북경당국의 대외투자규제와 외국인 투자에 대한 미국의 정기적인 조사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에 미국의 대중 투자액은 오히려 140억불로 늘어났는데, 이는 중국의 내수시장에 대한 미국기업들의 기대가 여전히 크고 자동차와 금융분야에 대한 외국인 소유규제가 완화된 것을 기회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공급사슬(supply-chain)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팬데믹을 핑계로 미국당국은 미국적 기업들에게 국가안보차원에서 중국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로 미국적 기업들은 이전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암참(AmCham, 미국해외기업협회)회장인 Greg Gilligan은 CGTN과 인터뷰에서, 자체조사에 의하면 1.0% 이하 기업들만 중국에서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압도적인 기업들이 중국 내에서 거래를 하고 부품을 생산하는 것이 가치있는 일로 생각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정치적 상황이 계속 악화되면, 경제적 회복이 어려워 지면서 잔류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에도 COVID-19를 둘러싸고 정치적 비난과 책임공방이 진행되고 있다. 양국 간에 처음으로 현지에 체류 중인 기자들을 서로 추방하였으며, 북경당국은 워싱턴의 몇 가지 법안들이 중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미국과 대만 간의 외교를 지원하는 ‘대만법 Taiwan Act’과 미국의 고위직 정부인사가 대만을 방문하는 것을 허용하는 ‘대만여행법 Taiwan Travel Act’ 그리고 홍콩과 신장에 관한 입법행위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에 더하여, 최근들어 대만해협에 미해군 함정들이 한달 간격으로 출몰하고 있는데, 오바마 시절에는 일년에 한번 정도로 훈련을 실시했다.

미중 국민들이 양국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희망하는지 중요하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민의 66%가 중국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잇는데 이는 2005년 이래 가장 높은 것이다. 반면에 여론조사 결과를 나이별로 재분류하면, 젊은 미국인들에게는 중국에 대한 호감이 오히려 높은 것으로 나온다.

중국인들 사이에도 반미정서가 높아지고 있지만, 2018년에서 2019년 간에 미국으로 넘어간 중국학생수가 늘어났으며, 이는 비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음에도 나타난 결과이다. 높은 교육수준으로 인해 미국으로 유학온 외국인 학생의 비중에서 중국이 가장 높다.

상기에 언급한 것처럼 주제들이 다양하고 때로는 충돌하는 격동적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은 어디로 향해 가는가’라는 커다란 질문에 대해 브루킹스 연구소의 중국센타 책임자를 맡고 있는 Dr. Cheng LI의 견해를 들어본다.

사회자 Wang Guan: 당신은 지난 수십 년간 미중 관계를 다루어 왔습니다.  현재의 상태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Cheng Li 박사: 우선 3가지의 악순환 고리 또는 영역이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3 가지의 악순환 고리가 서로 반응하여 긴장을 고조시키고, 각자의 문제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3가지 악순환은 모두 “D”로 시작되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데, 첫 째는 미국을 황폐화시키는(Devastating)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입니다. 두 번째는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양당간의 극심한(Dire) 정쟁입니다. 마지막은 미중 관계가 위험스러운(Dangerous)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과 중국이 수교관계를 맺은 지난 1979년 이래, 40년의 기간에서 전례가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사회자: 미중 관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단기적 관점과 장기적 관점으로 나누어 예측해 주시길 바랍니다.

Cheng Li: 단기적으로 너무 많은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선기간에는 의례적으로 긴장과 비난의 수위가 높아집니다. 미국 내 여론도 중국을 비난하면서, 중국에 대한 호감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가장 낮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더구나 미국 경제에 미치는 코로나의 부정적 영향은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

비록 도날드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다 해도, 첨단기술에 대한 긴장, 국제지정학적 지형의 변화, 중국의 공격적인 국제외교정책에 대한 미국인들의 부정적 시각과 우려 등이 지속될 것입니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이긴다 해도, 공화당은 반중정책을 지속해 밀고 나갈 것이고 관행의 동력을 바꾸는 것이 어려워 않습니다. 이것이 단기적인 전망입니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람들의 사고체계mindset는 달라집니다. 당장 코로나바이러스를 어떻게 정의하던지, 이는 당연히 우리의 평생을 통해 일어난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인도주의적 위기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견해가 변해갈 것입니다. 비로소 양국 모두 진정한 상대(敵)은 중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라 공동의 적은 바로 바이러스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자연스레 국제적인 공공선public good의 주제가 기후위기, 국제 간에 이동하는 이주민 문제가 던지는 도전, 마약거래와 사이버 안전, 에너지 보존과 비핵화, 그리고 현재 겪고 있는 공공보건에 대한 협력으로 집중될 것입니다. 이런 주제들이 서로 간에 협력을 증진하도록 긍정적인 압력을 가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중장기적으로 낙관적입니다.

사회자: 현재 미중 간의 안보상황은 어떻게 판단하시는지요? 가장 위험한 요소가 무엇인지요?

Cheng Li: 가장 위험한 요소는 명백하게 대만입니다. 왜냐하면 최근 미연방의회에서 결의한 ‘대만입법 2019’는 대만을 별개의 국가로 인지하는 수준에 접근했습니다 이는 중국의 수용할 수 있는 방어선bottom-line에 대한 도전입니다.

다른 한편, 미국인들 관점에서는 남중국해와 때때로 동중국해에서 실시하는 중국의 군사훈련 그리고 사이버 안전등에 대해 매우 비판적입니다. 모두가 매우 위험한 분쟁적인 주제이죠, 다만 이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전쟁의 확률은 단지 5% -10% 수준입니다.

인터뷰는 여기서 끝났다. 추가로 첨언하면, Dr.Cheng Li를 포함한 70명의 저명한 학자들이 미중 양국의 지도자들에게 공개서한을 보내면서 ‘COVID-19 퇴치를 위한 *정치기금을 조성하도록’ 촉구하였다. 이 서신을 통해 이들은 ‘지도력을 형성하려면 수 년이 소요되어야 하지만, 지도력의 붕괴는 단지 순식간에 벌어진다’고 경고했다.

*코로나백신 개발기금에 중국을 포함하여 G20 주요 국가들이 참여했으나,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출처: CGTN 2020-05-24일자 보도내용..

Wang Guan

중국국제방송CGTN의 Reality Check 편성책임자

목, 2020/06/18- 22:19
0
0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이 진행했던 ‘냉전-1.0’은 45년 간의 거대한 이념적 경제적 기술적 전쟁이 이었고, 세계를 핵전쟁의 위험(Armageddon)으로 몰아가며 지구상의 모든 국가뿐만 아니라 달나라까지 영향을 미쳤다.

현재 진행중인 미국과 중간의 ‘냉전-2.0’은 기존의 냉전과는 매우 다른 양상의 경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위험성과 영향력에 있어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미국에게 있어서 중국은 인구의 규모 면에 있어서도 기술적 야심이라는 측면에서 과거의 상대보다 훨씬 힘든 적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싸움은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진행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과 소련은 지구를 양분하여 분리된 형태로 각자의 영역에서 존재하였지만,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서로 엉켜 의존하고 있다. 2018년 현재 중국은 미국이 최대 무역대상국이었으며, 중국의 바이트댄스(ByteDance)사가 비디오 네트워크의 지분을 공유하고 있는 TikTok은 비게임 분야에서 세계 최대의 앱(app) 프로그램이고, 2019년 현재 미국의 대학에 369,548 명의 중국학생이 등록한 가운데 시진핑 주석의 따님이 2014년에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바 있다.

이와 별도로 미국과 중국의 강대국 경쟁은 기존과는 달리 전혀 새롭고 결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과거의 ‘냉전-1.0’이 재래식 군사력과 핵위협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면, 현재의 ‘냉전-2.0’은 민간사회를 통한 소프트웨어와 기술의 혁신경쟁이라는 측면이 훨씬 강하다. 인터넷은 단순히 통신수단이 아니라 통제의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 세계적 규모에서 사물인터넷(IOT)를 운용하면 수십 억의 장치를 연결하면서 지정학적 전략의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바로 이 분야에서 중국이 자신의 위상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서방의 주요 국가들이 5G 네트워크에 화웨이 장비를 적용하는 여부가 일종의 시금석이 된다. 흔히 미국과 중국의 대결적 상황은 성격이 전혀 다르며 어울리지 않는 두 국가의 지도자들 즉 트럼프와 시주석의 개인적 정치성향 때문이며 두 사람이 서로를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미국 내 중국분야 최고의 권위자중 한 사람인 Orville Schell은 보다 분석적이고 위협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공화와 민주 양당이 8번을 교대로 집권해온 지난 50년 간 지속되었던, 중국에 대한 미국의 포용정책은 이제 끝장이 났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냉전이라는 높은 산의 정상에 오른 것(종결)이 아니라 겨우 중턱 어디쯤에 머물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미국의 포용정책은 아래의 두 가지 전제에 기반하고 있었으나 모두 실패하였다고 결론짓는다. 한가지는 중국이 번영을 지속하고 개방화를 진행하면 점차로 민주적 사회로 전화할 것이라고 워싱턴은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인터넷의 도입이 자유를 확산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08년 전직 대통령인 빌 클린턴은 중국이 인터넷을 차단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마치 ‘벽에다 껌을 부치는 격’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판연히 다르다. 중국은 공산당이 내부의 통제력을 전혀 늦추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거대한 경제강국으로 부상하였으며, 국제적 인터넷에 대한 중국내의 방어벽(firewall)을 강화시키는 한편, 다른 국가들의 사이버 공간에 혼란을 야기시킬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지난 주에만 중국과 연계된 선전 캠페인으로 추정되는 23,750개의 내용물을 트워터에서 추려냈다.

“우리는 총격전을 벌릴 필요는 없지만 이에 필적하는 위험한 경쟁의 전쟁에 빠져 있다”고 미국의 전역장성은 경고를 보낸다. 위싱턴의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 책임자인 Robert Atkinson은 중국이 이미 일부의 선도산업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하였고 동시에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하여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중국은 기술분야에서 강력하게 그리고 손쉽게 미국을 압도할 것이다”. 그는 미국이 긴급하고 강력하게 자국의 산업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자유시장과 사적재산권 그리고 기업가의 정신이면 성공을 보장한다’는 기존의 흔해빠진 신념은 비역사(비현실)적이며 무책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Actkinson은, 냉전이 절정이었던 1963년 당시, 미국 연방정부는 나머지 전세계의 정부 및 민간 분야의 모든 투자액보다 많은 예산을 R&D 분야에 투입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현재는 1955년에 이루어진 GDP 비중보다도 적은 예산이 미국의 R&D에 할당되고 있다. 역설적인 것은 중국의 지도부들이 미국의 정치지도자들보다 과거 냉전에서 미국이 승리한 미국의 역사를 더 잘 숙지하고 있으며, 기술적 혁신이 국가안보의 핵심이라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출처 : 파이낸스 타임즈 on 2020-06-16.

John Thornhill

FT 혁신분야 편집책임자

금, 2020/07/31- 18:27
0
0

중국정부가 금융시장을 더욱 개방하고 자본의 흐름에 대한 통제를 완화한다면, 중국이 새롭게 도입하는 가상화폐e-RMB가 국제간 결제수단으로 기능하며 위안화의 저축통화로서 지위를 강화시켜 줄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기축통화라는 미국달러의 지위를 약화시키지는 못한다.

ITHACA – 수년 전부터 중국위안화가 국제적인 비중을 높여왔다. 실물경제의 국제결제과정에서 위안화는 5번째로 중요한 통화가 되었으며, 2016년에는 IMF가 특별인출권 가치를 결정하는 주요통화 바스켓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후에 위안화의 비중은 정체를 보여왔으며 실물교역의 국제결제수단으로서 비중이 여전히 2% 미만에 머물고 있으며 국제통화교환기금에서의 비중 역시 2%선에서 정체를 보이고 있다.

금년 상반기에 중국은 중앙은행발행 디지털화폐를 출범시켰는데, 주요 경제권에서는 처음있는 일이다 소위 디지털화폐/전자결제(DCEP)를 4개 도시에서 시험적으로 적용하였고 연이어 북경과 천진 홍콩과 마카오 등에 도입할 것이라고 최근 중국중앙당국은 밝혔다. 그러나 DCEP 방식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위안화의 역할을 증대시킬 만한 변화의 호재(game-changer)가 되지는 못한다.

중국이 소비시장의 결제수단에서 다른 선진국 경제권에 비하여 전자방식이라는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따라 e-RMB가 중국통화의 국제금융시장에서 비중을 상대적으로 높여줄 것이라는 기대 역시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냉정하다. DCEP방식이 중국 내에서 보편적인 결제수단이 될 것이지만 이것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중국을 넘어 국제간 결제수단이 될 것이라는 것은 과다한 망상이다. 오히려 중국이 2015년에 도입한 국제은행간 결제시스템이 해외거래에서 위안화의 사용을 확대하는데 훨씬 주요한 디딤돌의 역할을 하고 있다.

상기의 결제시스템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결제시스템SWIFT을 우회할 수 있어 미국의 금융제재를 피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에게 매력을 제공한다. 이런 배경에서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의 에너지 생산국가들은 중국과의 거래에서 위안화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용이하다.  또한 위안화의 사용이 점차로 확산되면서 중국과 통상 및 금융적으로 깊이 연계되어 있는 경제적 소국들이 중국과 거래에서 위안화로 결제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에서 DCEP방식이 결국에는 국제결제의 전자방식으로 도입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외국투자자들에게는 기존의 위안화와 새로운 DCEP방식 사이에 선택할 기금(기준)화폐로서 별다른 차이를 주지 못한다. 무엇보다 중국정부가, 자본입출의 흐름을 통제하고 인민은행이 위안화의 환율을 관리하는 상황에서는, 결제방식의 차이가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다 주지 못한다.

위안화를 지지하는 측은 중국정부가 자본의 흐름에 대한 통제를 완화하고 궁극적으로는 자본계정을 완전히 개방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으며, 인민은행도 환율개입을 줄이면서 시장의 힘에 맡길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자본흐름의 변화가 위안화에 부담을 주게 되면, 중국정부는 다시 통제와 규제의 과거 모드로 되돌아가고 환율에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해외의 중앙은행 등 외국 투자자들은 중국당국이 자본흐름을 자유화하고 환율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견해에 대하여 매우 회의적이다.

어떤 경우에도 외국 투자자는 물론이고 국내투자자들조차 국제금융시장의 혼란 시기에 위안화가 안전자산의 기능을 가질 것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안전자산의 기능은 신뢰와 믿음을 요구하는데, 이는 어떤 상황에도 규칙을 고수하고 정치시스템에 있어 균형과 견제가 작동해야만 가능하다.

일부에서는 중국에도 규칙에 의한 법치가 작동하며, 자본시장이 요동칠 때에 정책입안자들의 개입을 저지하는데는 일당 지배의 정부체제와 자체수정기능이 더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의 배치는 미국 등에서 적용되는 균형과 견제, 즉 집행부과 입법권 그리고 사법권력이 실행의 권한을 제한하는 일반화된 제도를 대치할 만큼 신뢰할 수도 없으며 지속가능 하지도 않다.

현재의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확립된 제도들을 약화시키고, 법치를 흔들고 있으며,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을 훼손시키려는 온갖 행위를 벌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금융 분야는 건재하다. 미국의 경제적 지배력과 흔들림없이 유연한 흐름을 보이는 자본시장의 작동, 여전히 건실하게 작동하는 제도적 프레임 등은 아직까지도 세계를 주도하는 기축통화로서 미국달러를 대체할 다른 경제수단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 위안화가 최근 결제수단과 투자대상으로 보여준 국제적 비중과 지위는 달러의 희생이 아니라 유로화와 파운드화의 퇴조에서 비롯되었다. IMF가 SDR바스켓에 위안화 비중의 가중치로 10.9%를 부여한 것은 유로화, 파운드 그리고 일본엔화의 조정에 따른 것이지 미국달러의 양보가 아니었다.

중국정부가 금융시장을 더욱 개방하고 자본의 흐름에 대한 통제를 완화한다면, 중국이 새롭게 도입하는 가상화폐e-RMB가 국제간 결제수단으로 기능하며 저축통화로서의 지위를 강화시켜 줄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기축통화라는 미국달러의 지위를 약화시키지는 못한다.

 

출처: Syndicate Project on 2020-08-25.

Eswar Prasad

코넬 대학교의 실용경제학 및 경영학 교수이며, 브루킹스 연구소의 책임연구원을 겸임하고 있으며 최근 “Gaining Currency: The Rise of the Renmini. 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목, 2020/09/17- 21:00
0
0

편집자 주:

<생태문명을 위한 연재칼럼을 기획하면서>

올해로 파리기후협약을 맺은 지 5주년 되는 해입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팬데믹 덕분에 탄소배출량이 소량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잔류기간이 길게는 수십 년에 달하면서 누적량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고, 온실가스 원인의 1/3을 차지하는 메탄과 질소산화물은 오히려 증가추세에 있다 합니다. 

12월초 유엔 사무총장은 특별기자 회견을 통하여 기후위기가 인류의 재앙으로 다가오는 상황에 대하여 경고를 보내면서 다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인류는 자연과 자살전쟁을 벌리고 있습니다 – Humanity is carrying on suicide-war on nature (CNN).”

1950년대 인류세로 진입한 이래, 포유류 양서파충류 조류 등을 중심으로 약 60%가 멸종상태에 있고 식물종의 40%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으며, 북극 부근이 얼음이 녹아 내리고 온난화가 지속되면서 해저면에 얼음상태로 있던 메탄층이 분출의 섭동을 시작하고 있다는 징후가 포착되었다 합니다. 메탄의 온실가스 효과는 이산화탄소의 30-80배 정도로 강력하여 상기의 대규모 분출이 본격화되면 급속한 기후위기에 따른 재앙이 불가피해 집니다. 

바다로 버려진 플라스틱/비닐 류의 쓰레기 량이 급증하면서 태평양 한가운데에 한반도 면적의 열 배가 넘는 쓰레기 섬이 형성되고 있고, 이들의 무게가 조만 간에 바다 속 물고기 총량을 넘어설 전망입니다. 이들 쓰레기는 결국 먹이사슬과 대기순환을 통하여 우리의 신체에 독소로 쌓이면서 암을 위시한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합니다. 

현재의 대기 온실가스량은 3-4백만 년 전의 플라이오세와 같은 수준으로 당시의 평균기온은 현재보다 3도C 정도, 해수면 역시 10-20 미터 높았다 합니다. 현재의 온실가스 수준이 지속되면 2070년 이후에는 지구의 1/3 이상이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황폐화되고 연안도시들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는 전망입니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기후경제학을 전공하는 교수는, 현재처럼 일상의 관행이 지속되면(BAU : business as usual), 조만간 닥칠 기후재앙에 따른 경제봉쇄는 현재의 팬데믹 상황보다 훨씬 극심하고 충격적일 것이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당장에 산업구조에 대한 대대적인 조정과 변혁 그리고 이를 위한 금융재정적 조치에 대하여 제안합니다.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문명사를 연구하고 있는 아담 투제(Tooze)교수는 G20를 G40로 확대하고 파리기후협약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강한 구속력의 실행조치를 요구합니다. 특히 강력한 탄소세의 도입과 이를 통상영역의 탄소국경세로 확장하여 에너지 기반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것을 제안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삶/문명에 대한 관점과 정책을 포함한 회개적repentent 일상의 실천입니다. 생태문명전환의 운동에 동참하는 다른백년은 “산업문명을 넘어 생태문명으로”라는 구호를 전개하면서 기후위기에 따르는 재앙의 경고와 지속가능한 미래전망에 대하여 매주 목요일 해외의 다양한 정보와 칼럼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영화 <월 스트리트>에서 금융가 고든 게코(Gordon Gekko)는 “탐욕은 좋은 것이다! (Greed is good!)” 라고 선언하였습니다. 1987년, 영화 관람객들이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이 터무니없는 주장은 전 세계적으로 악명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이후로, 이 선언의 근간이 되는 신자유주의의 윤리가 주류가 되었습니다. 30년이 넘도록, 한때는 부조리의 절정처럼 보였던 것이 글로벌 권력의 중심에서 정책 결정의 주축이 되었습니다. 사실상, 우리 전체의 주된 가치 체계는 그 이후로 근거 없는 것으로 입증된, 견고한 과학적 교훈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게코의 구호는 당시의 진화에 대한 아이디어에 기반을 두었습니다. 10년 전 리처드 도킨스의 베스트셀러인 『이기적 유전자』는 진화의 복잡성을 잔인한 기본 단순성으로 줄였습니다. 인간은 “우리 유전자에 의해 생성된 기계”이며 “성공적인 유전자에서 기대할 수 있는 주된 특성은 무자비한 이기심”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가혹한 현실이 “주로 개인의 행동에 이기심을 야기할 것” 이라고 예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영향력 있는 사상 지도자들은 이 생물학적 진리를 경제학, 정치학, 비지니스에 고취시켰습니다. <생명 경제학 저널Journal of Bioeconomic>의 공동 편집자인 사회생물학자 M. T. 지젤린 (Ghiselin)은 “자연계의 질서(The economy of nature)는 처음부터 끝까지 경쟁적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인류의 본질적인 폭력에 대한 똑같이 불안한 이야기가 20세기 저명한 생물학자들에 의해 전파되었습니다. ‘협력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는 “기회주의와 착취가 뒤섞인 것으로 드러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두 명의 영향력 있는 인류학자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적으로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살인자, 즉 “어리석은 생존자” 라고 합니다. 이기심의 지배적인 윤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은 우리가 개인을 모든 가치의 근간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인간이 고립되고, 이기적이고,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유물론자들이며,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 도덕적 연결이 행복과 무관하다는 허구를 바탕으로 한 사이비 철학에서 개인주의 가치 체계는 신자유주의의 형태로 주류 담론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인류의 이 기괴한 특성은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 영국 총리가 선언해서 유명해진 “사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남녀 개인이 있고 가족이 있을 뿐입니다.” 로 가장 잘 요약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 윤리에 동의하지 않는 도킨스 자신과 같은 사람들조차 우리의 타고난 이기심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의지력을 통해서라고 자주 주장합니다. 그는 “나처럼 공동의 선을 향한 사회를 건설하기를 바란다면 생물학적 본질에서 거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 라고 언급합니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이성을 통해 우리의 악한 본성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뇌는 우리의 이기적인 유전자에 대항하여 반항할 수 있을 정도로 진화했습니다. … 이기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관대함과 이타주의를 가르치도록 노력하자고 주장합니다.”

 

1. 도덕적 종

그러나 진화 생물학과 인류학에 대한 수십 년간의 연구는 진화와 인간 본성에 대한 이러한 구시대적인 생각들을 뒤집고, 그것들이 근거 없는 신화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경쟁에 의해 진화가 추진되는 것보다는 협력이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현대 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는 이기적인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수십억 년 전 지구에서 시작된 이래 삶의 진화적 전환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었다는 것입니다. 린 마굴리스 (Lynn Margulis) 는 “생명은 전투로 세상을 점령한 것이 아니라 네트워킹으로 세계를 점령했다”는 기억에 남는 말을 남깁니다.

협력이 모든 자연에 만연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진화에 있어서 훨씬 더 중요했습니다. 인간성을 규정하는 것은 ‘치명적인 공격성’ 이 아닙니다. “탐욕이 좋다”는 것은 갑자기 발견된 것도 아닙니다. 많은 진화생물학자들은 (심지어 친족이 아닌 사람들까지도) 서로 협력하는 것이 다른 영장류와 우리를 차별화하는 능력이라는 공감대를 중심으로 많은 융합을 이루었습니다.

우리의 초기 인류 조상들은 큰 포식자들에게 취약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협력을 통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고 먹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수백만 년 동안 인류는 죄책감, 연민, 당혹감, 수치심, 감사와 같은 “도덕적 감정”, 즉 복잡한 사회적 상호 작용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발전시켰습니다. 이런 감정들은 유전적 구성에 매우 깊이 침투해 배고픔이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직감적으로 느껴집니다.

그 결과, 인간은 모든 영장류 중에서 단연코 가장 협조적입니다. 유목민, 수렵채집인의 작은 무리에서 인간이 진화함에 따라, 사람들의 정체성은 그들 자신의 자아와 친족으로부터 확장되어 그들의 전체 집단을 포함시켰습니다. 공동 복지는 가치관의 시금석이 되었는데, 집단의 희생을 감수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나쁘게 여겨지는 반면,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좋게 여겨졌습니다. 문화유전자의 점진적인 공진화 과정에서 그러한 윤리적 구별은 번성하는 무리의 유전적 기층에 내재되어 결국 인간 종의 풍토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옳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2. 관계 중심의 전통적 가치

신자유주의가 인류의 선천적 이기심이라는 그릇된 신념의 토대 위에 구축되었다면, 인간이 본질적으로 도덕적이고 협조적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더욱 견고한 토대 위에 구축된 대안 체제는 어떤 모습일까요?

수세기 동안의 공격 속에서도 기필코 그들의 핵심 가치를 온전하게 지켜온 전세계의 토착 전통들은 일찍이 인류가 번성하도록 도왔던 가치의 종류에 대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진정한 협력적 본성의 틀에서 사회를 재건하도록 등불을 제공합니다.

코만치족(Comanche) 사회 운동가 라도나 해리스 (LaDonna Harris)는 전 세계 원주민이 공유하는 네 가지 핵심 가치를 확인하여 토착성(indigeneity)이라는 세계관을 구성했습니다. “4R”로 불리는 이것은 관계, 책임, 상호성, 그리고 재분배 (Relationship, Responsibility, Reciprocity, and Redistribution)입니다. 이런 세계관은 사람의 삶에서 필요한 각각 다른 유형의 의무들을 언급합니다. 관계는 가족뿐 아니라 동물, 식물, 그리고 살아있는 지구를 포함한 “모든 우리의 관계”에서 가치를 인정하는 친족의 의무입니다. 책임은 지역 사회의 의무이며, 이러한 관계를 양육하고 돌보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상호성은 주고받는 것의 균형을 맞추는 순환적인 의무입니다. 그리고 재분배는 물질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술, 시간, 에너지를 공유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이러한 가치에서 눈에 띄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모두 공동체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의 개성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그들의 공동체에 할 수 있는 독특한 공헌을 통해 개성이 표현되는 것입니다. 마가렛 대처의 사회에 대한 발언에 극적으로 반대하면서, 라도나 해리스는 토착적인 관점에서, 한 사람의 진정한 ‘자아’는 공동체를 통해서만 생겨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아프리카 우분투(ubuntu)의 원리, 즉 “나는 네가 있기 때문에, 너는 내가 있기 때문에”로 대표됩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세계관에서 규범적으로 여겨지는 자기 추구적 행동은 전통적인 토착 문화에서는 광기의 한 형태로, 어떠한 상담의 근거가 되거나 가능하면 외면해야 하는 형태로 간주될 것입니다.

또한 전 세계의 토착전통은 인류를 자연과 별개로 보기보다는, 자연세계를 확대 가족과 같은 형태의 삶의 일부로 봅니다. 호주에서는 원주민들이 다디리(dadirri)라 하는 명상을 하면서, 이것을 자연계에 대한 “깊은 경청, 침묵 의식”이라고 표현합니다. 미국 원주민 라코타의 표현인 “모든 나의 관계” 는 인간의 친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가리키는 말로, 모든 생명 간의 깊은 상호 관련성을 표현하는 세계관을 전형적으로 나타내며, 개인의 건강은 본질적으로 살아있는 지구의 건강과 결부되어 있다고 합니다.

 

3. 생태 윤리

최근 수십 년 동안 생태 사상가들은 모든 생명과의 연계를 바탕으로 현대적 형태의 윤리를 발전시킴으로써 이러한 전통적인 통찰력의 일부를 계승해왔습니다.

1973년 철학자 아르네 네스 (Arne Naess) 는 자연과의 관계를 탐구하기보다는 우리가 바로 자연이라는 토대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자신의 접근법을 “심층 생태론(deep ecology)”이라고 부르면서, 그는 이것이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재정의할 수 있는지 탐구했습니다. 그는 “생태적 자아의 개념을 잠정적으로 소개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시작될 때부터 자연 속에 있었고, 지금도 자연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서술했습니다.

위대한 인도주의자인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나는 살고자 하는 생명들의 한 가운데 있는, 또 하나의 살고자 하는 생명” 이라고 선언하면서 이 통찰력을 분명하게 요약했습니다. 이 본질적인 진리로부터 도덕은 자명해집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득력 있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생명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에 대해 경외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생명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도덕성의 시작이자 토대입니다.”

이러한 이해는 자연이 인간에게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주류가 가진 인간 중심적인 가정에서 벗어나, 생명 그 자체의 본질적 가치와 각각의 장엄한 다양성 속에서 번성할 수 있는 고유한 권리를 인정하는 것으로의 심도 있는 가치의 전환을 이끌어냅니다. 알도 레오폴드(Aldo Leopold ) 는 그의 유명한 선언에서 이 윤리에 대해 간결하게 표현했습니다: “어떤 것이든 생물학적 공동체의 진실성과 안정성, 그리고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경향이 있을 때 옳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4. 프랙탈 번영

모든 생명과의 상호 연결이라는 기본 원칙에 기반한 일관된 현대적 가치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우리는 생명 자체에서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미세한 세포 내 구조에서 가이아(Gaia) 자체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각 시스템은 스스로의 필요를 알과 충촉시킬 수 있는 자족적으로 통합된 활기찬 지능을 갖고 있는 동시에, 각 시스템이 포함된 더 큰 시스템의 웰빙에 기여합니다. 그리고 자연에서 시스템 전체의 건강은 그것을 구성하는 각 부분의 번영을 요구합니다. 각 시스템의 장기적 건강은 다른 시스템들의 생명력에 달려있기 때문에 모든 시스템은 상호 의존적 입니다.

그러므로 번영(flourishing)이란 것은 프랙탈 품질(fractal quality) 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기체 내에서 조화를 이루는 다른 건강한 시스템들과 함께, 유기체가 의존하는 건강한 외부 시스템을 필요로 합니다. 생태문명의 최우선적인 목표는 모든 인간이, 번영하고 살아있는 지구의 일부로서 번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교훈은 프랙탈 번영(fractal flourishing)의 인식일 것입니다. 인간 각자의 웰빙은 더 큰 세계의 건강과 프랙탈 방식으로 관련돼 있습니다. 개인의 건강은 사회적 건강에 의존하고, 사회적 건강은 그것이 내재된 생태계의 건강에 의존합니다.

 

제레미 렌트

작가


<<책 소개 바로가기>>

<<온라인 서점 바로가기>>

수, 2020/12/30- 20:20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