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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창씨개명 안 해 자랑스럽다”던 해병대 사령관의 악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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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창씨개명 안 해 자랑스럽다”던 해병대 사령관의 악행들

admin | 화, 2020/04/07- 20:38

2009년 11월 대통령 직속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국가공인 친일파’ 1005명을 발표했다. 이중 김백일,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김홍준, 백낙준, 신현준, 김석범, 송석하, 백홍석 등 11명은 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오마이뉴스는 대한민국 101주년을 맞아 현충원에 잠든 국가공인 친일파들의 실상을 소개한다.[편집자말]

“조상에 대한 신의로 창씨개명 아니한 오직 그 이름 김석범으로 이곳까지 왔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국립대전현충원 장군1묘역 최상단 바로 아랫줄에 잠든 친일파 김석범의 묘비 내용 중 일부다.

▲ 해병대 2대 사령관 김석범. ⓒ 해병대 전우회 중앙회 홈페이지 캡처

김석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 공식보고서에 “만주국군 장교로서, 특히 ‘간도특설대’의 주요 간부로 항일운동을 탄압하고 침략전쟁에 협력했다”라고 기록된 인물이다.

1915년 11월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난 김석범은 1934년 중국 신징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1936년 봉천군관학교에 입학한다. 견습사관을 거쳐 1937년 12월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한 김석범은 1939년 4월 졸업성적 우수자로 발탁돼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만주국 신징군관학교를 거쳐 일본 육사를 졸업한 박정희 대통령과 유사한 경우다.

1940년 9월 일본 육사를 졸업한 김석범은 12월 만주국군 중위로 진급해 간도특설대 정보반 주임(책임자)으로 활동했다.

위원회는 김석범이 책임자로 활동한 간도특설대 정보반에 대해 “1944년 열하성 유수림자에서 정식 성립했다”면서 “정보반의 목적은 팔로군, 지하공작원, 민병의 활동과 군중의 사상동태를 정찰해 (간도)특설대가 소탕활동과 항일군민을 체포하고 살해하는 것을 위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보반은 각 연(중대)에서 13명의 골간분자를 뽑아 조직하였으며 변절분자 중에서 약간 명을 흡수해 정보활동을 진행했다. 주요 임무는 정보를 수집하고, 반공선전을 전개하며 체포된 항일연군과 혁명군중을 직접 심문하고 기타 정보활동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기록으로 남은 간도특설대 정보반의 악행

▲ [현충원 안장 친일파] 김석범 묘지 우리가 잘 몰랐던 해병대 사령관 김석범의 비밀 친일파 김석범의 묘는 국립대전현충원 장군1묘역에 잠들어 있다. 대전현충원 상징인 현충탑을 끼고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역삼각 형태로 배치된 장군1묘역을 확인할 수 있다. 김석범은 장군제1묘역 최상단 바로 아래줄 우측에 위치한 묘에 잠들었다. ⓒ 김종훈

김석범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에는 재중사학자 차상훈씨가 남긴 기록도 첨부됐다.

“1944년 5월 열하성 유수림자에 주둔하고 있던 특설부대는 40세 좌우의 백성을 붙잡아다 사격 과녁으로 삼았다. 정보반 반장놈은 신병 매 사람에게 탄알 세 발씩 쏘게 했다. 30발을 쏘았으나 명중하지 못하자 노병사에게 사격하라 했고 단방에 그 백성을 명중했다. 1944년 5월 아키바 중대장 놈이 부대를 거느리고 사가장자 마을을 습격했다. 놈들은 여자는 만나는 족족 강간하고 좋은 물건은 닥치는 대로 빼앗았다.”- <악명 높은 간도특설부대> 중, 민족출판사, 1991.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간도특설대가 중국 허베이성 석갑진 일대에서 활동할 때, 정보반의 활동에 힘입어 ‘토벌’한 횟수는 34건이나 되었다”면서 “토벌로 팔로군 군정 인원과 주민 39명이 학살됐고, 체포된 자는 62명에 이르렀다”라고 기록됐다.

김석범은 1943년 9월 15일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만주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이듬해엔 만주국군 상위(대위)로 진급했다. 1945년 무렵 만주국군 제6관구 보병 7단으로 전출돼 연장(중대장)을 맡았다. 당시 만주국군 7단은 후방진지 구축과 군용도로 건설을 맡은 부대였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김석범은 1945년 6월경 보병 제30단과 합동으로 경박호 서측지구 진지를 구축하다 8월 12일 명령에 따라 원대복귀 하던 중 소련군을 만나 무장해제를 당했다”면서 “일제가 패망한 후 신징으로 가 조선인 출신 만주국군 장교들이 주축이 돼 만든 신징보안사령부에 참가해 봉천군관학교 동기생인 정일권에 이어 사령관을 맡았다”라고 <친일인명사전>에 밝혔다.

김효순 기자가 쓴 <간도특설대>라는 책에 따르면 “일본의 패전 이후 중국인의 약탈과 보복행위로부터 한인 거류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만군과 관동군 복무자들이 중심이 돼 만든 단체가 신징보안사령부”다. 해방 후 신징보안사령부 사령관이 된 김석범은 1946년 4월 신징보안사령부 소속 전원을 인솔해 인천으로 귀국했다. 당시 신징보안사령부에 참여한 인물에는 훗날 전두환의 장인이 되는 만주국군 경리관 출신 이규동도 있었다.

해방 후 해병대 2대 사령관이 되다

▲ [현충원 안장 친일파] 김석범 묘지 우리가 잘 몰랐던 해병대 사령관 김석범의 비밀 친일파 김석범의 묘는 국립대전현충원 장군1묘역에 잠들어 있다. 대전현충원 상징인 현충탑을 끼고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역삼각 형태로 배치된 장군1묘역을 확인할 수 있다. 김석범은 장군제1묘역 최상단 바로 아래줄 우측에 위치한 묘에 잠들었다. ⓒ 김종훈

해방 후인 1946년 김석범은 대한민국 해군으로 보직을 바꿨다. 이후 해군통제부 참모장과 방위사령관 등을 지내다 한국전쟁 중 해병대로 전과했다. 1953년부터 친일파 신현준에 이어 해병대 2대 사령관으로 4년 동안 재임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김석범이 해병대로 전과하는 데는 봉천군관학교 동기이자 간도특설대 전우인 신현준의 추천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해병대 사령관을 마친 김석범은 국방대학원과 국방부장관 특별보좌관을 거쳐 1960년 해병대 중장으로 예편했다. 이후 재향군인회 부회장과 국군 장성들의 예비역 모임인 성우회 부회장을 지냈다.

1998년 2월에 사망한 김석범은 국립대전현충원 제1장군묘역 최상단 바로 아랫줄에 안장됐다. 그의 무덤 옆에는 만주 관동군 헌병으로 활동하며 항일무장세력을 소탕하던 김창룡이 잠들어 있다. 1949년 6월 김창룡이 방첩대장을 할 때 그의 직속 수하인 안두희가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공식보고서에 “김석범은 만주국군 장교로 임관한 이래 일본의 패전 때까지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장교로 복무했다”면서 “특히 간도특설대 주요 간부로 만주와 중국 관내에서 항일무장부대 공격에 참여했고, 정보반 주임을 맡아 무고한 민중을 탄압하는 등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했다”라고 기록했다.

“김석범의 이러한 행위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10호, 19호에서 규정하는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장성급 장교”라는 이유로 1998년 2월 20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김석범은 ‘국가공인 친일파’로 선정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행 상훈법에는 “서훈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진 경우나 국가 안전에 관한 죄를 범해 형을 받거나 적대지역으로 도피한 경우, 형법·관세법·조세범 처벌법 등에 규정된 죄를 범하여 사형·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금고형을 받은 경우에만 서훈을 취소할 수 있다”라고 돼있다.

▲ 김석범 (1915~1998) – 창씨개명만 하지 않은 잔인한 간도특설대원 1915년 평남 강서에서 태어나 봉천군관학교를 거쳐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했다. 졸업성적 우수자로 발탁돼 일본 육사에 입학, 이후 간도특설대 정보반 책임자로 활동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따르면 “정보반의 목적은 팔로군, 지하공작원, 민병의 활동과 군중의 사상동태를 정찰해 (간도)특설대가 소탕활동과 항일군민을 체포하고 살해하는 것을 위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40세 좌우의 백성을 붙잡아다 사격 과녁으로 삼았다. 놈들은 여자는 만나는 족족 강간하고 좋은 물건은 닥치는 대로 빼앗았다”는 기록이 있다. 해방 후엔 대한민국 해군으로 변신, 해병대 사령관, 국방부장관 특별보좌관을 거쳐 해병대 중장으로 예편했다. 1998년 사망 후 국립대전현충원 제1장군묘역에 안장됐다. 그의 무덤 옆에는 항일무장세력을 소탕하던 김창룡이 잠들어 있다. 묘비엔 “조상에 대한 신의로 창씨개명 아니한…”이라고 적혀있으나 ‘창씨개명만 하지 않은’ 친일파였다. ⓒ 오마이뉴스


☞ 현충원 국가공인 친일파 11인 묘지 찾기
(http://www.ohmynews.com/NWS_Web/event/snmb/index.aspx)

☞ ‘현충원 국가공인 친일파 이장 촉구’ 청와대 국민청원 함께 하기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7052)

김종훈 기자

<2020-04-07>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창씨개명 안 해 자랑스럽다”던 해병대 사령관의 악행들 김석범 편

※관련기사 

☞오마이뉴스: 현충원 국가공인 친일파 11인 ‘추적’ 특별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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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25편 :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 24편 : 광복군 제3지대가 _ 김일진(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 장군, 광복군 오광심 지사 아들)

☞ 23편 : 추도가 _ 원형재(원심창 선생 아들)

☞ 22편 : 한반도가 _ 나중화(나창헌 선생 아들)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 국치추념가 _ 이준식 독립기념관장(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외손)

☞[출처] YTN Radio: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

토, 2021/08/1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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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사 작곡 교가·일본신사 잔재 등…교육청 “후속 조치는 자율”

친일 인사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 [학교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인천 지역 학교에 대한 일제 잔재 조사가 지난해 본격적으로 시행됐지만 별다른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15일 인천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4∼12월 지역 초·중·고교와 특수학교 52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모두 81건의 일제 잔재 사례가 파악됐다.

이 중 22건은 친일 작사가나 작곡가가 만든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 사례였다.

특히 ‘섬집 아기’와 ‘봄이 오면’의 작곡가로 유명한 이흥렬이 만든 교가도 7개 학교에서 사용되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흥렬은 일제강점기 일본음악의 수립을 목적으로 창설된 대화악단 지휘자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또 다른 친일 인사인 김동진이 만든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도 6곳에 달했다. 김씨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음악 활동을 했다가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친일 인사의 동상이나 일본 신사 잔재 등 일제 관련 기념물이 교정에 남아 있는 학교는 3곳으로 파악됐다.

나머지는 서운, 송월, 백마, 작약도 등 일제강점기에 일본식으로 변형된 지명이 교명과 교가 가사에 남은 사례였다.

시교육청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각 학교에 알렸으나 개선은 권고 사항에 그쳐 눈에 띄는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교 동문회와 학교운영위원회 등 내부 협의가 필수적인 만큼 교내 일제 잔재를 없애기까지는 시일이 좀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천황을 섬기던 신사의 돌기둥과 석등이 교정에 남아 있는 인천 중구 모 고교의 경우 별도의 시설물 철거 계획을 논의하지는 않은 상태다.

인천 연수구 모 중학교에는 독립운동가에서 친일파로 전향한 윤치호의 동상이 세워져 있지만 ‘나쁜 역사도 역사로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철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동창회 차원에서 재원을 마련해 학교 설립자 동상을 세운 것이라 학교 마음대로 없앨 수 없다”며 “내부 검토를 여러 차례 했지만 역사를 기억하자는 차원에서 동상을 남겨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친일 인사가 작사·작곡한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들도 대부분 즉각적인 개선 조치에는 나서지 못했다.

친일파가 교가를 작곡한 인천 연수구 모 고교는 추후 학생, 학부모, 동문회와의 협의를 거쳐 교가 일부를 개사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인천 동구 모 고교도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에 대해 별다른 개선 계획을 세우지 못한 상태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일선 학교에 일제 잔재 조사 결과를 보고서 형태로 알리기는 했지만 후속 조치는 자율적으로 하도록 했다”며 “이후 각 학교의 개선 여부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은지 기자 [email protected]

<2021-08-15> 연합뉴스

☞기사원문: 인천 학교들, 일제 잔재 남아 있어도 개선은 ‘거북이걸음’

※관련기사

☞서울신문: 친일파가 만든 교가…인천 각급 학교 일제 잔재 파악하고도 ‘개선‘ 소극적

화, 2021/08/17-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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