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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광복군’으로 신분 바꿔 박정희와 함께 돌아온 만주군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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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광복군’으로 신분 바꿔 박정희와 함께 돌아온 만주군 장교

admin | 화, 2020/04/07- 12:20

2009년 11월 대통령 직속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국가공인 친일파’ 1005명을 발표했다. 이중 김백일,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김홍준, 백낙준, 신현준, 김석범, 송석하, 백홍석 등 11명은 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오마이뉴스는 대한민국 101주년을 맞아 현충원에 잠든 국가공인 친일파들의 실상을 소개한다.[편집자말]

▲ 해병대 초대 사령관 신현준. 정부는 2009년 신현준을 ‘국가공인 친일파’로 결정해 발표했다. ⓒ 해병대 전우회 중앙회 홈페이지 캡처

“무적 해병의 아버지! 평생 조국과 겨레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치신 님이여, 영원히 우리를 지켜주소서!”

국립대전현충원 장군1묘역 최상단에 잠든 국가공인 친일파 신현준의 묘비에 적힌 말이다. 신현준은 경북 김천 출신이지만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만주로 올라갔다. 이로 인해 한국어와 중국어, 일본어를 자연스레 구사했다. 신현준 스스로도 자신의 책 <노 해병의 회고록>에 “어릴 때부터 중국어를 배워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다”면서 “이를 무기로 일본군에 종군하면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1932년 2월, 열일곱 살의 어린 나이였던 나는 학교 공부를 중단하고 일본군에 종군할 것을 결심했다. 당시 하얼빈시 남강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부대에 찾아가 구두시험을 치른 다음 그 자리에서 합격통지를 받았다.”

이날부터 신현준은 1936년 4월까지 4년여 동안 일본 만주파견군과 만주국군의 통역으로 활동했다. 당시 신현준이 모셨던 일본군 참모 중에는 만주군 제5군관구 수석고문으로 열하성 일대에서 활동한 세키하라 대좌(대령)가 있었다. 신현준은 회고록에 “장차 만주군 장교가 되고 싶다는 나의 희망을 알고 격려해 주었다”면서 세키하라 대좌와의 인연을 자세히 언급했다.

“세키 대좌는 35년 3월부터 나를 현지 실무부대(34사단)에 배속시켜 근무 경험을 갖도록 배려해주었다. 단장(연대장) 전속 통역으로 근무한 지 만 1년째 되던 36년 4월, 나는 마침내 소망하던 대로 만주군 장교가 되기 위해 봉천군관학교에 입교하게 됐다.”

신현준은 1937년 9월 만주국 봉천군관학교를 5기로 졸업했다. 이후 1937년 10월부터 보병 35연대 박격포련(박격포중대)에서 견습군관으로 복무한 뒤 그해 12월 만주국군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1938년 12월 1일부터 항일무장세력을 토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간도특설대 창설요원으로 활동했다.

1940년 우다카와 요시히토로 창씨개명한 신현준은 1941년 3월 중위로 진급한 뒤 1943년 12월부터 열하방면으로 출동해 팔로군 및 항일무장세력을 토벌했다. 1944년 3월 만주국군 상위(대위)로 진급한 후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간도특설대 주요 간부 및 만주국군 보병 중대장으로 활동했다.

광복군으로 신분 바꿔 귀국한 만주군 장교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1945년 8월 10일 만주국군 8단 소속의 신현준은 ‘소련군의 진격을 저지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고 집결지인 중국 싱룽으로 향한다. 8월 17일 싱룽에 도착한 신현준을 기다린 것은 일본의 패망 소식. 중국군은 신현준을 직위에서 해임하고 무장을 해제했다.

총검을 잃은 신현준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 베이징행을 택한다. 당시 ‘(세력 확장을 위해) 일본군 출신 조선인을 광복군에 적극 편입한다’라는 한국독립당의 방침을 접했기 때문이다. 베이징 인근에는 광복군 3지대가 주둔 중이었다.

▲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로 만주군관학교로 간 박정희. ⓒ 자료사진

신현준은 만주국군 후배인 이주일, 박정희 등 조선인 장교들과 함께 베이징으로 향했다. 일본군 고위장교였던 신현준은 광복군 3지대 핑진(平津) 대대의 대대장이 됐다. 함께 이동했던 이주일은 1중대장, 박정희는 2중대장에 임명됐다. 항일무장세력을 탄압하던 만주국군 장교가 해방 후 대한민국 광복군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친일파 전문가인 정운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2018년 10월 22일 <경남도민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해방 직후 북경에는 광복군 출신, 학도병 출신 등 수많은 조선 청년들이 집결했다”면서 “그 숫자가 대략 400여 명에 달했는데 만주군 중위 출신의 박정희 전 대통령도 그중 한 명이었다, 박정희는 만주군 장교 경력을 인정받아 3지대 1대대 2중대장을 맡았다, 이들은 모두 ‘해방 후 광복군'”이라고 지적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5월 10일, 신현준은 미군 수송선을 타고 부산에 상륙한다. 이후 봉천군관학교 동기인 정일권의 권유로 간도특설대 출신 김대식(해병대 3대 사령관)을 만나 조선해안경비대 입대절차를 밟고 1946년 12월 중위로 임관한다.

이듬해 해병 소령으로 특진한 신현준은 1948년 5월 해군 진해통제부 참모장에 임명됨과 동시에 중령으로 진급한다. 이 해 10월 여순사건이 발생하자 해군함정 4척을 이끌고 여수항 일대를 점령한 뒤 해상에서 작전을 전개해 저항세력을 진압했다.

▲ [현충원 안장 친일파] 신현준 묘지 무적 해병’의 아버지 신현준, 만주군 장교가 되고 싶었다 친일파 신현준의 묘는 국립대전현충원 장군1묘역에 잠들어 있다. 대전현충원 상징인 현충탑을 끼고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역삼각 형태로 배치된 장군1묘역을 확인할 수 있다. 신현준은 장군제1묘역 최상단 우측에 위치한 묘에 잠들었다. ⓒ 김종훈

신현준은 여순사건을 계기로 ‘상륙작전을 전담하는 부대가 필요하다’면서 해병대 창설을 국군에 제안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9년 5월 5일 대통령령으로 해병대 창설을 정식 공포한다. 신현준은 해병대 초대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신현준은 1949년 제주4.3사건이 발생하자 해병대 전 병력을 제주에 배치해 토벌 작전을 전개한다. 한국전쟁 후 신현준은 해병대 사령관 자리를 간도특설대 출신 김석범에게 인계한다. 이후 1958년 미 육군참모대학에서 유학한 뒤 1960년 6월 해군 중장으로 진급했고 1961년 4월 국방차관보에 임명된다.

5.16군사쿠데타 후 군에서 물러난 신현준은 초대 모로코 대사와 초대 바티칸 대사를 지냈다. 제5대 세계반공연맹 사무총장도 역임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노년을 보낸 신현준은 2007년 10월 15일 만 9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닷새 뒤인 10월 20일에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공식보고서에 “신현준은 만주국군 장교로서 1938년 창설된 간도특설대의 창설기간 장교로 발탁돼 1944년에 이르기까지 만주지역 항일세력 무력탄압에 적극 협력했다”면서 “이러한 행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43년 9월 만주국 정부로부터 훈6위 경운장을 받았다”라고 기록했다.

이어 “신현준의 이러한 행위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10호, 19호에서 규정하는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한다”고 공식보고서에 명시했다.

“장성급 장교”라는 이유로 2007년 10월 현충원에 안장된 신현준은 국가공인 친일파로 선정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립대전현충원 장군1묘역 최상단에 잠들어 있다.

상훈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강제로 이장할 수 없다. 현행 상훈법에는 “서훈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진 경우나 국가 안전에 관한 죄를 범해 형을 받거나 적대지역으로 도피한 경우, 형법·관세법·조세범 처벌법 등에 규정된 죄를 범하여 사형·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금고형을 받은 경우에만 서훈을 취소할 수 있다”라고 돼있다.

▲ 신현준 (1916~2007) – 간도특설대에서 광복군으로 신분세탁 1932년, 일본군에 종군할 것을 결심하고 일본 만주군 통역이 됐다. 만주국 봉천군관학교를 거쳐 항일무장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간도특설대 창설요원으로 활동했다. 열하방면으로 출동해 팔로군 및 항일무장세력을 토벌했다. 일본이름은 우다카와 요시히토.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일본군 출신 조선인을 광복군에 적극 편입한다’는 한국독립당의 방침을 접하고 만주국군 후배인 박정희 등과 함께 베이징 광복군 부대로 향한다. 당시 항일무장세력을 탄압하던 만주국군 장교가 해방 후 대한민국 광복군이 된 예는 적지 않다. 친일파 전문가인 정운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이들을 ‘해방 후 광복군’으로 구별해 부른다. 1946년 미군 수송선을 타고 부산에 상륙, 대한민국 해병이 된다. 여순사건 때 저항세력 진압에 앞장 선 뒤 해병대 창설을 국군에 제안, 해병대 초대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4.3사건이 발생하자 해병대 전 병력을 제주에 배치해 토벌작전을 전개했다. ⓒ 오마이뉴스


☞ 현충원 국가공인 친일파 11인 묘지 찾기
(http://www.ohmynews.com/NWS_Web/event/snmb/index.aspx)

☞ ‘현충원 국가공인 친일파 이장 촉구’ 청와대 국민청원 함께 하기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7052)

김종훈 기자

<2020-04-06>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광복군’으로 신분 바꿔 박정희와 함께 돌아온 만주군 장교 신현준 편

※관련기사 

☞오마이뉴스: 현충원 국가공인 친일파 11인 ‘추적’ 특별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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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25편 :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 24편 : 광복군 제3지대가 _ 김일진(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 장군, 광복군 오광심 지사 아들)

☞ 23편 : 추도가 _ 원형재(원심창 선생 아들)

☞ 22편 : 한반도가 _ 나중화(나창헌 선생 아들)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 국치추념가 _ 이준식 독립기념관장(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외손)

☞[출처] YTN Radio: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

토, 2021/08/1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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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사 작곡 교가·일본신사 잔재 등…교육청 “후속 조치는 자율”

친일 인사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 [학교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인천 지역 학교에 대한 일제 잔재 조사가 지난해 본격적으로 시행됐지만 별다른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15일 인천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4∼12월 지역 초·중·고교와 특수학교 52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모두 81건의 일제 잔재 사례가 파악됐다.

이 중 22건은 친일 작사가나 작곡가가 만든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 사례였다.

특히 ‘섬집 아기’와 ‘봄이 오면’의 작곡가로 유명한 이흥렬이 만든 교가도 7개 학교에서 사용되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흥렬은 일제강점기 일본음악의 수립을 목적으로 창설된 대화악단 지휘자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또 다른 친일 인사인 김동진이 만든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도 6곳에 달했다. 김씨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음악 활동을 했다가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친일 인사의 동상이나 일본 신사 잔재 등 일제 관련 기념물이 교정에 남아 있는 학교는 3곳으로 파악됐다.

나머지는 서운, 송월, 백마, 작약도 등 일제강점기에 일본식으로 변형된 지명이 교명과 교가 가사에 남은 사례였다.

시교육청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각 학교에 알렸으나 개선은 권고 사항에 그쳐 눈에 띄는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교 동문회와 학교운영위원회 등 내부 협의가 필수적인 만큼 교내 일제 잔재를 없애기까지는 시일이 좀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천황을 섬기던 신사의 돌기둥과 석등이 교정에 남아 있는 인천 중구 모 고교의 경우 별도의 시설물 철거 계획을 논의하지는 않은 상태다.

인천 연수구 모 중학교에는 독립운동가에서 친일파로 전향한 윤치호의 동상이 세워져 있지만 ‘나쁜 역사도 역사로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철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동창회 차원에서 재원을 마련해 학교 설립자 동상을 세운 것이라 학교 마음대로 없앨 수 없다”며 “내부 검토를 여러 차례 했지만 역사를 기억하자는 차원에서 동상을 남겨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친일 인사가 작사·작곡한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들도 대부분 즉각적인 개선 조치에는 나서지 못했다.

친일파가 교가를 작곡한 인천 연수구 모 고교는 추후 학생, 학부모, 동문회와의 협의를 거쳐 교가 일부를 개사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인천 동구 모 고교도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에 대해 별다른 개선 계획을 세우지 못한 상태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일선 학교에 일제 잔재 조사 결과를 보고서 형태로 알리기는 했지만 후속 조치는 자율적으로 하도록 했다”며 “이후 각 학교의 개선 여부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은지 기자 [email protected]

<2021-08-15> 연합뉴스

☞기사원문: 인천 학교들, 일제 잔재 남아 있어도 개선은 ‘거북이걸음’

※관련기사

☞서울신문: 친일파가 만든 교가…인천 각급 학교 일제 잔재 파악하고도 ‘개선‘ 소극적

화, 2021/08/17-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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