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이이화 선생님의 역사 정신, 우리 가슴에 살아 있습니다

지역

이이화 선생님의 역사 정신, 우리 가슴에 살아 있습니다

admin | 일, 2020/03/22- 04:56

선생님을 보내며

▲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이화 선생 빈소 ⓒ 민족문제연구소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님!

지난 40년 동안 선생님과 함께 우리 민족사의 현장을 탐험하면서, 빛나는 우리 민족사를 책으로 펴낼 수 있어서 저는 행복했습니다. 저 고단한 1980년대에,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역사란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역사 정신이란 무엇인가를 우리들 가슴에 심어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역사 이야기는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성찰하는 지혜였습니다.

1980년대에 진행된 선생님의 ‘역사강좌’를 통해 이 땅의 젊은이들은 힘찬 우리 민족사를 만났습니다. ‘한국근대민중운동사’를 통해 역사의 동력이 되는 민중과 민중 운동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역사 보는 눈을 활짝 뜨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국토와 산하에서 펼쳐진 ‘역사기행’의 현장 강의를 통해 선생님은 온몸으로 온정신으로 민족사를 체험하게 했습니다. 역사의 진실은 역사의 현장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역사 정신은 삶의 현장에서 체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우리는 동학농민혁명의 현장에서, 그 민중의 함성을 들었습니다. 전봉준 장군과 김개남 장군을 만났습니다. 김개남 장군의 집터에 ‘김개남 장군 생가터’라는 푯말을 선생님의 글씨로 세우기도 했지요. 지리산을 오르고, 지리산 깊은 계곡에서 밤을 지새우면서 ‘지리산의 정신사와 저항사’를 들었습니다. 의병장 신돌석 장군과 의병들을 찾아 나서 ‘이 시대의 의병은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영덕의 농가에서 토론했지요. 아름다운 국토의 산하에서 펼친 우리들의 역사기행은 한판의 역사축제였습니다.

선생님은 당대의 사관이었습니다. 1994년부터 2004년 10년에 걸쳐 완성되는 <이이화·한국사 이야기>는 그 누구도 엄두도 내지 못할 경이로운 작업이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이 책을 펴내게 된 것을 한 출판인으로서 긍지로 삼고 있습니다.

<한국사 이야기>는 선생님의 저간의 연찬을 집대성 하는 혼신의 작업이었습니다. 역사학자로서의 신념의 소산이었습니다. 그 어떤 기득권과도 무관한 재야정신이 아니었다면, 그 어떤 제도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면, 성취해낼 수 없는 역사정신의 실천이라고, 저는 책을 펴내면서 당당하게 주장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현실을 온몸으로 대응해내는, 역사의 현장을 걷는 역사가가 써낸 생동하는 역사이기에, ‘국민독본’으로 우뚝 서는 큰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늘 우리들과 함께 계셨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선생님의 역사정신이 더 절실해지는 이 나라의 현실입니다. “역사란 특정인이나 특별한 계층의 독점물이 아니고, 오늘의 현실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한국사>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계화의 시대에도 민족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역사정신·민족정신이 큰 이야기가 되어 우리들의 가슴에 울림이 되고 있습니다. 아,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님!

덧붙이는 글 | 김언호 기자는 출판인·한길사 대표입니다.

<2020-03-21>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이이화 선생님의 역사 정신, 우리 가슴에 살아 있습니다

※관련기사 

연합뉴스: “역사학계 큰 별이 졌다”…각계서 이이화 추모 잇따라

경향신문: 행동하는 양심, 이이화 선생을 떠나보내며…‘억강부약’의 삶 잘 간직하겠습니다

☞전주문화방송: 동학혁명 연구 큰 별 역사학자 이이화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25편 :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 24편 : 광복군 제3지대가 _ 김일진(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 장군, 광복군 오광심 지사 아들)

☞ 23편 : 추도가 _ 원형재(원심창 선생 아들)

☞ 22편 : 한반도가 _ 나중화(나창헌 선생 아들)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 국치추념가 _ 이준식 독립기념관장(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외손)

☞[출처] YTN Radio: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

토, 2021/08/14- 00:18
0
0

친일인사 작곡 교가·일본신사 잔재 등…교육청 “후속 조치는 자율”

친일 인사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 [학교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인천 지역 학교에 대한 일제 잔재 조사가 지난해 본격적으로 시행됐지만 별다른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15일 인천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4∼12월 지역 초·중·고교와 특수학교 52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모두 81건의 일제 잔재 사례가 파악됐다.

이 중 22건은 친일 작사가나 작곡가가 만든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 사례였다.

특히 ‘섬집 아기’와 ‘봄이 오면’의 작곡가로 유명한 이흥렬이 만든 교가도 7개 학교에서 사용되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흥렬은 일제강점기 일본음악의 수립을 목적으로 창설된 대화악단 지휘자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또 다른 친일 인사인 김동진이 만든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도 6곳에 달했다. 김씨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음악 활동을 했다가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친일 인사의 동상이나 일본 신사 잔재 등 일제 관련 기념물이 교정에 남아 있는 학교는 3곳으로 파악됐다.

나머지는 서운, 송월, 백마, 작약도 등 일제강점기에 일본식으로 변형된 지명이 교명과 교가 가사에 남은 사례였다.

시교육청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각 학교에 알렸으나 개선은 권고 사항에 그쳐 눈에 띄는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교 동문회와 학교운영위원회 등 내부 협의가 필수적인 만큼 교내 일제 잔재를 없애기까지는 시일이 좀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천황을 섬기던 신사의 돌기둥과 석등이 교정에 남아 있는 인천 중구 모 고교의 경우 별도의 시설물 철거 계획을 논의하지는 않은 상태다.

인천 연수구 모 중학교에는 독립운동가에서 친일파로 전향한 윤치호의 동상이 세워져 있지만 ‘나쁜 역사도 역사로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철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동창회 차원에서 재원을 마련해 학교 설립자 동상을 세운 것이라 학교 마음대로 없앨 수 없다”며 “내부 검토를 여러 차례 했지만 역사를 기억하자는 차원에서 동상을 남겨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친일 인사가 작사·작곡한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들도 대부분 즉각적인 개선 조치에는 나서지 못했다.

친일파가 교가를 작곡한 인천 연수구 모 고교는 추후 학생, 학부모, 동문회와의 협의를 거쳐 교가 일부를 개사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인천 동구 모 고교도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에 대해 별다른 개선 계획을 세우지 못한 상태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일선 학교에 일제 잔재 조사 결과를 보고서 형태로 알리기는 했지만 후속 조치는 자율적으로 하도록 했다”며 “이후 각 학교의 개선 여부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은지 기자 [email protected]

<2021-08-15> 연합뉴스

☞기사원문: 인천 학교들, 일제 잔재 남아 있어도 개선은 ‘거북이걸음’

※관련기사

☞서울신문: 친일파가 만든 교가…인천 각급 학교 일제 잔재 파악하고도 ‘개선‘ 소극적

화, 2021/08/17- 00:19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