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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 형제, 그들의 돈을 거부한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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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 형제, 그들의 돈을 거부한 사람은 없었다

admin | 목, 2020/03/19- 20:28

“우익 자유주의 운동에 연료를 공급해 온 억만장자 코크씨는 뉴욕의 병원과 박물관의 후한 기부자였다. 그는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너무 많은 돈을 썼으며 그 영향력을 계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코크형제

2019년 8월 코크 형제 중 동생인 데이비드 코크가 79세로 숨졌을 때 뉴욕타임스는 이런 부고 기사를 냈다. 미국 공화당의 돈줄이자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검은 손으로 불리는 코크 형제에 대한 세평을 생각하면 다소 밋밋한 평가다.

돈을 많이 쓰긴 썼다. 데이비드 코크는 맨해튼의 미국 자연사박물관에 2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박물관에는 그의 이름을 딴 공룡 전시홀이 있다. 이 전시홀에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듯한 설명 패널이 붙어 있어서 음모론이 돌기도 했다. (사실은 그냥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것이었다고 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65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링컨센터에는 1억 달러를 기부했다. ‘변혁적(transformative)’이란 평가를 받았던 이 기부금으로 링컨센터의 뉴욕주립극장은 무대 전면 보수가 가능했다. 극장 자체가 ‘데이비드 코크 극장’으로 불릴 정도다.

뿐만 아니라 뉴욕 장로교 병원(NewYork-Presbyterian Hospital)에 1억 달러를,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에 1억 5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흑인 고등교육 지원단체인 ‘흑인연합대학기금’에 2500만 달러,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 2억 달러를 기부한 것을 비롯해 각종 기관에 10억 달러 이상을 지원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미국을 움직이는 검은 손

미국의 부자라고 하면 빌 게이츠, 워런 버핏을 떠올린다. 코크 형제는 한국에는 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포브스 선정 세계 부자 순위에서 늘 10위권 내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곤 했다. 2016년의 경우 두 사람의 재산을 합치면 800억 달러에 달해 1위인 빌 게이츠의 자산 750억 달러를 넘을 정도였다. 지난해 두 사람은 나란히 11위에 올랐으며 재산을 합치면 1010억 달러에 육박했다. 1위인 제프 베이조스(1310억 달러)에는 못 미치지만 2위인 빌 게이츠(965억 달러)는 넘어섰다.

미국 정치가 ‘슈퍼팩’으로 대변되는 거대 기업과 큰손들의 막대한 정치자금 기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금권 과두 정치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코크 형제다. ‘뉴요커’의 전속 작가인 제인 메이어는 <다크 머니>라는 책에서 대표적인 ‘검은 돈’의 출처로 코크 형제를 꼽고 있다.

코크 형제가 소유한 코크 인더스트리는 하루 6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4000마일의 송유관을 소유하거나 운영하고 있는 거대 석유·화학 기업이다. 당연하게도 코크 형제는 기후변화를 부정한다. 되레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사람들의 삶을 오히려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당시 인수위원회에서 환경보호청 관련 업무를 맡았던 마이런 에벨은 기후변화 부정론자 중 하나다. 그는 코크 가문의 자금을 후원받아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하자 세계적 경제학자인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코크 형제의 승리다. 트럼프는 단지 도구에 불과하다”라고 평가했다.

코크 형제는 2012년 대선에서는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를 공개 지지했지만 2016년 대선에서는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당시 트럼프 후보의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에 대해서 “나치를 연상시킨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대선 기간 동안 트럼프와 힐러리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암과 심근경색 중 반드시 한쪽을 골라야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오히려 힐러리가 공화당의 경선 주자들보다 더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가능하다”고까지 말했다.

트럼프 역시 워싱턴 주류 정치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며 인기를 얻었다. ‘워싱턴 오물 빼기’(drain the swamp)라는 공약이 말해주듯 돈과 정치권력을 주고받으며 나눠먹는 거대 자본과 정치 엘리트를 척결하겠다고 했다. 마치 코크 형제를 겨냥한듯하다.

서로에게 으르렁대는 사이 이미 트럼프 주변은 이미 코크 형제의 영향력 하에 있는 인물들로 들어찼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부터가 코크 형제에게서 대규모의 정치자금을 받아온 인물이었다. 2012년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밀었고 30만 달러의 선거자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뒤에 국무장관이 되는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장 역시 별명이 ‘코크 가문의 하원 의원’일 정도로 아낌없는 지원을 받아온 인물이다. 폼은 잡았지만 트럼프 자신 역시 이른바 ‘코크토퍼스’(코크 형제와 문어를 뜻하는 옥토퍼스의 합성어)에 단단히 휘감겨 있었던 셈이다. 트럼프 취임 후 ‘오물’의 상징이었던 로비스트들은 더 늘어나고 로비 자금도 증가했다.

코크 형제는 트럼프를 싫어한다고 했지만, 트럼프의 등장은 그들이 만들어온 미국의 결과이자 역사의 일부다. <다크 머니>의 언급대로 “코크 형제는 트럼프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만 트럼프야말로 본질적으로 그들의 후계자인 동시에 그들이 1970년대 이후 계속해서 매진해 온 광범위한 정치 활동의 결과물”이며 “트럼프는 미국의 과두 체제를 이끄는 대부호들이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실패한 괴물”인 것이다.

 

코크 형제의 ‘자유지상주의’가 낳은 괴물

코크 형제는 캔자스주 위치토에서 태어났다. 형인 찰스 코크가 1935년생, 동생인 데이비드 코크가 1940년생이다. 할아버지인 해리 코크는 네덜란드 출신 이민자로 철도와 언론 사업을 벌였던 기업가다. 아버지인 프레드 코크는 MIT 출신으로 원유를 휘발유로 정제하는 보다 효율적인 공정을 개발하는 등 사업에 수완을 보였다. 프레드는 잠시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정유소 건설에 참여하기도 하는데 그때의 체험으로 공산주의를 혐오하게 된다. 극우단체인 존버치협회를 결성하고, 2차 대전 당시에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독일의 나치를 칭찬하기도 했다. 코크 형제의 양육에도 나치 추종자인 가정교사를 고용할 정도였다.

코크 형제는 두 사람 모두 MIT를 나왔고,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찰스 코크는 1967년 부친의 사업을 물려받아 사장이 됐고 회사 이름을 ‘코크 인더스트리’로 바꿨다. 데이비드 코크는 1970년에 회사에 합류했다. 코크 형제는 본래 네 명인데, 재산 다툼 끝에 1983년에 차남인 찰스와 3남인 데이비드가 다른 형제들의 지분을 11억 달러에 인수했다.

코크 인더스트리는 석유·화학을 기반으로 사업 다각화에 성공했다. 회사 매출액은 2006년에 이르러 2000배 이상 커졌다. 지금은 카길 다음으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비상장기업이다. 60여개 국가에서 12만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석유, 화학, 에너지, 섬유, 광물, 비료, 펄프 및 제지, 화학 물질 등 광범위한 사업 분야를 갖고 있다. 두 형제는 나란히 지분의 42%씩을 소유하고 있다. 2017년에는 유명 시사주간지 ‘타임’지 인수에 돈을 대기도 했다.

찰스 코크는 자신이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특권적인 삶을 누리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아버지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인 것처럼 일하기를 원했다”고 회고했다. 찰스는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민간의 자유를 중시하는 고전적인 자유주의 신봉자로 알려져 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등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비판하는 동시에 오바마 정부의 복지 정책에 대해서도 혹평을 아끼지 않았다.

데이비드 코크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1980년 대선에서 자유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을 때 공약이 사회보장과 복지 제도, 모든 가격지원과 보조금, 최저임금, 법인세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증권거래위원회(SEC), 연방수사국(FBI) 등의 연방 기관도 모두 없애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1% 남짓의 득표율로 패배했지만 그의 생각은 여전한 것처럼 보인다. 대외적으로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등 해외 군사 개입에 반대한다. 동성결혼과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하기도 했다.

코크 형제는 지식인, 정책연구소, 시민모임에 대한 지원이라는 3단계 계획을 세우고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AFP)’ 같은 보수 단체나 헤리티지재단 등 보수적 성향의 싱크탱크도 코크 형제의 지원 아래 있다. 자발적으로 생겨난 것으로 알려진 보수주의 정치 운동 ‘티파티’ 역시 코크 형제들이 자금을 지원해 조직한 ‘만들어진 운동’이라고 한다.

그들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1997년 정부가 석유 정제시설에서 나오는 오염물질 기준치를 강화하려고 하자 코크 형제의 지원을 받는 어느 학자는 궤변을 제시했다. “스모그로 인해 태양빛이 줄어들면 피부암도 줄어든다. 만일 공기오염에 지나치게 간섭한다면 피부암이 매년 1만1000건 이상 늘 것이다.” 소송까지 이어진 국면에서 어처구니없게도 재판부는 이 학자의 의견을 들어준다. 알고 보니 재판부 역시 코크 가문의 재단들이 뒷돈을 대준 학술회의에 참석해 휴가를 보냈던 것이다.

2010년 미 연방대법원 역시 코크 형제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슈퍼팩’을 허용하며 사실상 무제한 선거자금 사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 직접 자금을 대는 방식이 아니라면 영리 목적 기업들도 무한정 모금을 해서 선거자금으로 쓸 수 있다. 코크 형제도 자신들의 이념에 부합하는 정치인들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붓는다. 데이비드 코크는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저지하기 위해 1억 달러 이상을 썼다. 2016년 대선에서는 1600명이 넘는 유급 직원들을 35개 주에 파견해 전체 유권자의 80% 이상을 접촉할 수 있을 정도였다. 끌어 모은 정치자금만 8억8900만 달러에 달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파리기후협약 탈퇴 이후 ‘공화당 지도부가 어떻게 기후 변화를 가짜 과학(Fake Science)으로 생각하게 됐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에 따르면 한때 공화당의 존 매케인은 대선 후보 경선에서 지구온난화 대응을 주요 의제로 들고 나오기도 했지만 먼 옛날의 얘기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기후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하는 공화당 정치인들은 정치자금 부족에 시달린다고 한다. “특히 코크 형제와 같은 화석연료 산업의 플레이어들이 만든 정교한 캠페인에 따라 공화당 의원들이 움직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크 형제가 쓰는 언어의 단어 하나하나까지 가져와 썼다.”

데이비드 코크는 죽었지만 앞으로도 코크가문의 영향력은 변함없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미 대선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 2018년 코크 형제가 노스다코타 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케빈 크레이머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 웃음거리”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그들의 후원을 한 번도 구하지 않았다”며 “그들의 돈도 나쁜 아이디어도 필요치 않다”고도 했다. 코크 형제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 무역 정책을 공공연히 반대해 왔다.

그러나 <다크 머니>의 분석처럼 도널드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라는 아웃사이더가 열광적인 지지를 얻은 배경에 미국의 심각한 빈부 격차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코크 형제와 트럼프의 갈등은 사소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오랫동안 주장해 왔던 자유지상주의가 낳은 기형적인 세계에서 트럼프는 백인 중산층의 울분, 기성 체제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토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 토대는 당분간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생전에 데이비드 코크는 흔치 않았던 인터뷰 중 하나에서 ‘워런 버핏처럼 죽기 전에 전 재산을 기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닙니다. 우리 돈의 대부분은 코크 인더스트리에 있고, 우리가 죽으면 아이들은 주식을 인수할 것입니다. 나는 코크 인더스트리가 계속 성장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당신의 돈을 거부한 사람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아니오.”

 

참고자료

[뉴욕타임스 2019. 8. 26] How David Koch Left His Mark on New York

[뉴욕타임스 2017. 6. 3] How G.O.P. Leaders Came to View Climate Change as Fake Science

[CRAIN’S NEW YORK BUSINESS 2014. 9. 8] David Koch offers rare look into his giving, politics

[THE VERGE 2018. 1. 8] The climate change misinformation at a top museum is not a conservative conspiracy

[서울신문 2017. 6. 16]‘괴물’ 트럼프 조종하는 ‘코크토퍼스’의 검은 돈

[조선일보 2016. 4. 26] 美공화 핵심 돈줄 “힐러리 지지할 수도”

[이코노미조선 2017. 6. 12] 트럼프의 기후협약 탈퇴 조종한 ‘악의 축’ 비난, 자유 경제 신봉하는 재산 110조원 석유 재벌

[한겨레 2017. 6. 15] 트럼프 대통령을 조종하는 ‘어둠의 손’ 코크 형제

[한겨레 2018. 1. 28]‘워싱턴 오물’ 빼겠다더니…트럼프 첫해 ‘로비스트’ 더 활개

[연합뉴스 2018. 8. 1] ‘공화당 큰손’ 코크형제와 등돌린 트럼프…”그들 돈 필요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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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는 단순히 의료분야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에도 위기를 불러오면서, 이로 인한 긴장이 코로나바이러스에 퇴치하려는 국제적 협력의 노력에 큰 장애를 형성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갈등의 격랑 한가운데 처해졌다.

WHO가 중국과 상호적 협력을 진행한 것이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미국은 해당기구에 대한 재정과 지원을 거부하고 동시에 실태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러한 요구는 복합적인 정치적 목적을 지니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회원국들 공동의 목표인 WHO를 개혁해야 한다는 제안을 담고 있지만 실제로는 의도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심각한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WHO의 개혁에 대한 요구는 한편 이해할 만하다. 과거에도 전염병의 대유행이 여러 번 발생하였고, 이에 따라 WHO의 지도력과 전략 그리고 역량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공동의 관심이 형성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COVID-19 팬데믹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미국이 개혁을 요구한 것은 상기의 일반적 사항이 아니라 WHO와 중국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서, 회원국들 간에 WHO 개혁제안 자체보다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 많은 논쟁이 야기되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이 촉구한 개혁의 요구는 변화의 내용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 내기는커녕, 오히려 전향적인 개혁이 무엇인가에 대한 내부적 논란과 갈등만을 야기시켰다. 미국은 WHO개혁을 정치외교적 아젠다로 삼아 G7 사무국에 내용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뉴스 매체에 따르면, G7의 다른 회원국들은 미국의 WHO에 대한 공격을 지지하지 않으며 미국이 요구한 WHO에 대한 즉각적인 사찰요구에도 동의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G7에게 요구하는 WHO 재검토나 개혁프로세스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회원국들이 항상 대규모 전염병과 팬데믹에 대한 국제적 대응방안을 검토하고 국제보건의 감시체제에 대한 개혁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G7 회원국들과 의미있는 합의를 형성하지 못하면서, WHO와 같은 국제적 기구 내에서 미국의 위상이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G7에 제시한 WHO 미국 개혁안의 구체적 내용은 COVID-19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반복적으로 되풀이 된 것으로 기구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회원국들의 간섭으로부터 사무총장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국제적 보건지침의 준수 여부를 감독 개선하며, 심각한 질병의 발발 시 국제사회에 알리는 과정에 있어 폭넓은 재량권을 부여하는 등이다.

문제는 새로움이 없이 반복되는 상기 제안의 내용이, 기구에 대한 재정과 지원을 철회하겠다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횡포와 겹치면서, 정당화될 수도 없고 매우 부적절한 것으로 변질되었다.

더구나 사무총장의 독립성을 강화하자는 미국의 제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여행제한을 거부한 WHO결정에 대해 화를 내면서, 서로 모순이 상충되는 모양새가 되었다. 대통령의 주장(화)를 별도로 하더라도, 상기의 사건은 WHO 사무총장은 미국의 주권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미국 정부의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 되었다.

이에 대해, 중국 등 미국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회원국들은 사무총장의 더 많은 재량과 독립성이 과연 미국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구심을 나타낸다. 이에 따라 호주가 제안한, 즉 개별국가들의 주권에 우선하여 전염병 발발 시 WHO 파견전문가들이 해당국가를 방문하여 조사할 권한을 부여하자는, 내용은 의안으로 제출되자 곧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WHO개혁에 대한 오랜 노력은 세계보건에 대처하는 WHO의 권한과 개별국가들의 주권 간의 지속(합의)가능한 균형점을 찾지 못한 어려움에 봉착하여 왔다. 이러한 문제의 어려움은 특정국가들을 타겟으로 삼으면 더욱 복잡해진다.

미국이 WHO와 중국 간의 협력을 문제삼아 개혁을 제기하면, 당연히 중국은 자국의 주권을 위협하고 팬데믹의 대처에 대해 책임을 묻는 듯한 개혁조치를 거절할 것이다. WHO 개혁을 핑계로 중국의 행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는 해당기구를 국제정치의 전쟁터로 삼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이며, 동시에 WHO가 임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재정지원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다.

WHO개혁을 개별국가의 주권에 우선하는 기구의 권한에만 집중하게 되면 그 동안 진행되어온 개혁에 대해 합의된 논의의 모든 성과를 무력화시키는 위험이 도사린다. 2014년에 서아프리카에서 발발한 에볼라 발병은 세계보건의 재앙이었다, 이후 당시에 WHO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한 검토와 조사가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 WHO의 사전준비와 대처능력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개혁안이 제출되었다. 당연히 WHO 집행부는 이러한 개혁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2018년에 콩고에서 에볼라가 재발되자, WHO는 매우 인상적으로 대처하였다. 유사하게 COVID-19에 대응하여 WHO가 신속하게 연구팀와 의료진을 파견하여 공공의료의 역량을 보여준 점에 대하여 국제사회는 높게 평가하고 있다. 특히 가난한 국가들에게 팬데믹이 더욱 위협적이므로 이들에게는 신속한 대처능력은 더욱 중요하다 (실제로 아프리카 빈국에 대한 WHO지원은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팬데믹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없는 가운데, 미국 행정부가 재정지원을 동결하면서 WHO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팬데믹에 대응할 역량과 기능을 강화하려는 기구의 능력을 방해하는 꼴이다. 미국의 협박은 WHO회원국들이 미국의 개혁요구를 수용할 때까지 재정과 지원을 보류하겠다는 것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이러한 제안은 논리적이지도 못하고 신뢰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런 충동적인 개혁요구는 전략도 없고 자신이 무엇을 추구하는지도 모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최악의 시점에서 치명적인 병원균과 대처해야 하는 WHO의 역량에 커다란 타격을 가하는 짓이다.이처럼 잘못된 시도는 WHO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망치는 일이다.

 

출처 :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2020-05-10.

David P Fidler

워싱턴 대학교 등에서 강의와 연구활동을 하고 있으며, cyber-security와 공공의료분야에 관련한 많은 저술과 기고를 남기고 있다

 

수, 2020/06/03-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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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간 중국인민공화국은 일년에 인민대표자회의(NPC)와 인민정치협상회의(CPPCC)라는 두 개의 회의를 동시에 개최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왔다. 양회로 불리는 두 개의 회의는 매년 3월에 개최되어 왔는데 올해는 COVID-19의 위기로 5월로 연기되었다.

서방사회에서는 인민대표자회의가 통과의례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공산당과 정치협상회의의 역할과 상호작용이 점차 무게를 더해 왔으며 이번 양회의 결정들은 중국 당중심 헌법기구와 강화된 다민족의 선출권력 간의 복잡한 관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번 양회에서 중국공산당이 중요한 몇 개의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그 중의 하나가 시민법(national civil law)이고, 다른 하나가 논쟁을 야기한 새로운 국가안전규정(new national security bill)으로 홍콩에서 지속되는 시위를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북경당국이 홍콩 내에 안전전담 조직을 설치하는 것을 허용한다. 북경당국은 안전규정의 제정을 지난 해에 감행할 수 있었으나, 이번 인민대표자회의를 통하여 선언하면서 규정의 무게를 더하였다.

인민대표자회의 대표단은 정부의 연간 업무보고를 승인하였는데 처음으로 대만에 대한 ‘평화적’ 통일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대만과 ‘비평화적’ 통일의 가능성을 암시하였다. 또한 GDP목표치를 설정하지 않았고 6%의 성장을 고수하는 대신,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두었다.

인민대표자회의와 정치협상회의의 양회는 당중심 헌법기구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공산당이 운전석을 차지하고 지배한다.

제14차 회의 이후, 공산당의 총서기가 중국국가의 주석직과 군중앙위원회의 주석직을 겸임한다. 다음으로 정치상임위원회(당중앙 지도부)의 중요한 3인이 행정부의 수상, 인민대표자회의 주석(의장) 그리고 정치협상회의 주석(의장)을 책임진다 (현재는 Li Keqiang, Li Zhanshu and Wang Yang이 맡고 있다).

이렇게 당 중심의 헌법시스템 내에서 권력의 배분이 당 중앙의 가장 중요한 4사람이 상기의 자리를 제각각 차지하면서 이루어 진다.

이러한 시스템은 당기구의 중앙위원들로서 일반주석들의 위치가 행정부의 핵심인 수상/부수상직보다 강한 권력을 가지도록 구성되어 있다. 동시에 권력의 분산보다는 통일집중의 원칙 위에 있다.

공산당과 인민대표자회의는 일상적인 긴장과 때때로 대립하는 위치에 있다. 헌법상으로는 대표자회의가 최고의 의결기구이다. 대표자회의 지위와 기능은 이론적으로는 당보다 우위에 있으며, 당은 인민대표자회의라는 헌법적 프레임 안에서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로 공산당이 대표자회의를 통제하며 공산당 총서기가 대표자회의의 주석보다 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인민의 주권개념은 대표자회의에 녹아 있다. 대표자회의와 정치협상회의는 마치 차량의 방향조향장치와 같이 자신들의 의견과 국가적 의지를 입법을 통해서 전달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표자회의는 제국의 봉인이 찍힌 현대적 형식기구로 이해할 수 있으며, 최고 권위와 주권을 상징한다. 실제로 인민대표자회의는 2980명의 참석자들이 보수를 받지 않는 임시적인 입법자로서 활동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공인의 입법기구인 셈이다.

의회 민주제도에서는 흔히 입법기구가 양원으로 분리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이론적으로 권력을 분리시키는 양원제를 거부하고 있지만, 지난 몇 년간 대표자회의와 정치협상회의는 양원제와 유사하게 입법과정의 역할을 증대하여 왔다. 헌법규정에 따라, 모든 주요 결정은 대표자회의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법적인 권한은 없더라도 정치협상회의의 자문을 사전에 거쳐야 한다. 국가의 법률의 제안과 통과는 반드시 대표자회의를 거쳐야만 한다.

입법 과정은 당의 해당위원회들이 제안, 조사와 연구, 기획의 초안, 상담과 여론취합 등 오랜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지고, 제안 이후에는 해당분야 전문가들의 검토, 숙의, 조정과 승인, 법제화와 초안의 수정을 거쳐 대표자회의의 참가자들에 의한 승인을 통과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실제 대표자회의가 개최되기 전에 진행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사전적 진행을 통해 진지한 상담과 협상, 조정과 논쟁을 통해서 수많은 수정이 이루어진다. 동시에 중앙당의 해당위원회 위원들은 양회가 개최되기 전에 중국전역을 방문하여 사전조사를 시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예를 들어, 홍콩의 국가안전규정은 1명의 거부와 6명의 기권을 제외하고 2878 참가자들의 찬성을 얻었다.

대표자회의 참석자 수數의 배정은 개별 성省과 특별지역의 인구수에 비례하여 이루어지며, 특별지역의 대표자들은 직접 선출되며, 개별 성의 대표자회의 참가자는 간접적으로 선출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정치협상회의의 참석자들은 지역의 이익보다는 해당 지역의 다양한 부문을 대표해서 구성된다. 협상회의는 통상 46개 부문으로 나누어 지는데 의료 건강 교욱 미디어 종교 자연과 사회과학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농민과 노동자들은 정치협상회의의 대표권을 갖지 않는데, 대신 당의 정치적 체계 내에서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분야의 엘리트들로 구성되는 ‘클럽’에 참여한다.

정부의 주요 지도부들은 대표자회의의 승인을 통해서 선출되지만, 이런 선출의 과정은 간접적이고 사전에 지명되고 통제된다. 중앙당의 조직부서에서 후보자들을 지명하고 통제하는 과정을 거친다. 공산당원들이 대표자회의 주요 기구에 참여하면서 당의 지침을 통하여 조직기구에서 지명한 후보들을 선출하고 승인한다. 이렇게 사전통제된 선거시스템은 당우위(黨優位) 국가시스템을 운용하는 전제가 된다.

비록 현재까지는 공산당에 의하여 대표자회의가 사전에 조직되어 진행되고 있지만, 이들 대표자회의와 공산당 간의 관계가 향후 어떻게 진화하여 중국사회가 다원화하고 국제적으로 상호관계를 형성해 갈지는 지켜보아야 할 사항이다. 지금부터 대표자회의의 참가자들이 국가의 장래와 통일에 관하여 더욱 국수적으로 변모할지 아니면 개방적으로 변해갈지 예의주시해야 한다.

 

출처: East Asia Forum in ANU on 2020-05-30.

Baogang He

호주의 멜버른에 있는 Deakin 대학교수, 국제관계학 전공.

목, 2020/06/11-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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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다른백년은 지난 3개월간 연재한 ‘코로나 이후 세계는?’을 마감하고 이번 주를 시작으로 3-4개월간 ‘미중 간의 갈등전개와 향후전망’ 라는 주제로 새로운 특별칼럼을 연재한다.

1990년 이래 단극적으로 세계질서를 주도해 왔던 미국의 G1위상이 급격히 추락하면서, 향후 당분간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G0의 혼란기로 접어들고 있다. 대체로 미국의 패권유지와 중국의 대국굴기가 갈등의 중심축을 이루면서, 유럽연합과 러시아 그리고 인도 등이 조정역할을 넘어 나름대로 지역과 현안에 대한 대안적 거점을 형성할지 여부가 향후 Gn의 세계질서의 내용을 결정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른벡년은 상기 주제에 대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시각과 분석을 아래과 같은 6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각각 2-3주 간격으로 교체하며, 매주 2건의 칼럼을 번역 소개하고자 한다.

1.     미중 갈등의 격화의 배경과 전개

2.     미국에 대한 대내외적 시각과 비판

3.     중국에 대한 대내외적 시각과 비판

4.     미중 간의 주도권 쟁탈과 전쟁 가능성

5.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과 중국의 반격

6.     향후 세계질서에 대한 전망

미중 갈등의 배경과 전개에 대한 첫 번째 소개의 글은 미국의 진보적 Think-Tank인 Brookings 연구소의 중국센타 책임자인 Dr. Cheng Li와 중국국제방송CGTN 간에 이루어진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여러분들의 변함없는 관심과 격려를 기대한다.


중국과 미국은 전면적인 대결상황으로 향해가고 있는가? 정치와 안보상황이 더욱 악화일로에 있는 것일까? 경제적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중국국제방송CGTN의 Reality Check 프로그램에서는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중국센타 책임자인 Dr. Cheng Li와 인터뷰를 가졌으며, 그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현재 3가지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중 관계를 수십 년을 취재해온 사람으로서 본 프로그램 책임자인 필자는 양국의 관계가 지난 과거의 세월 중에 현재처럼 당황스러운 순간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양국은 결국 세계적 재앙인 팬데믹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어쩔 수없이 서로 협력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대선이 있는 올해를 겪으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인지, 전문가의 견해를 듣기 전에 우선 몇 가지 사실들을 확인해 본다.

정치적 대립을 보도하는 뉴스가 난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측면에는 여전히 회복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통상무역을 예를 들어보면, 트럼프의 중국무역에 대한 전쟁선포와 북경의 보복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에도, 2018년 한해 양국 무역이 6340억 불에 이르면서 사상 최고액수를 보였다. 물론 관세인상이 적용되는 시차가 발생하면서 추후에 무역량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피크에 이른 액수와 큰 차이를 보이진 않았다.

2019년에도 미국은 다른 국가들에 앞서 중국에게서 가장 많이 수입을 하였으며, 비록 느린 속도이긴 하지만 여전히 서비스의 교역량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양국 간의 투자에 있어서는 정부(正負)의 양 측면을 보인다. 조사기관에 의하면, 2019년 중국의 미국에 투자액이 50억불 규모로 이는 지난 십 수년간 제일 저조한 수준인데 주로 북경당국의 대외투자규제와 외국인 투자에 대한 미국의 정기적인 조사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에 미국의 대중 투자액은 오히려 140억불로 늘어났는데, 이는 중국의 내수시장에 대한 미국기업들의 기대가 여전히 크고 자동차와 금융분야에 대한 외국인 소유규제가 완화된 것을 기회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공급사슬(supply-chain)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팬데믹을 핑계로 미국당국은 미국적 기업들에게 국가안보차원에서 중국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로 미국적 기업들은 이전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암참(AmCham, 미국해외기업협회)회장인 Greg Gilligan은 CGTN과 인터뷰에서, 자체조사에 의하면 1.0% 이하 기업들만 중국에서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압도적인 기업들이 중국 내에서 거래를 하고 부품을 생산하는 것이 가치있는 일로 생각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정치적 상황이 계속 악화되면, 경제적 회복이 어려워 지면서 잔류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에도 COVID-19를 둘러싸고 정치적 비난과 책임공방이 진행되고 있다. 양국 간에 처음으로 현지에 체류 중인 기자들을 서로 추방하였으며, 북경당국은 워싱턴의 몇 가지 법안들이 중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미국과 대만 간의 외교를 지원하는 ‘대만법 Taiwan Act’과 미국의 고위직 정부인사가 대만을 방문하는 것을 허용하는 ‘대만여행법 Taiwan Travel Act’ 그리고 홍콩과 신장에 관한 입법행위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에 더하여, 최근들어 대만해협에 미해군 함정들이 한달 간격으로 출몰하고 있는데, 오바마 시절에는 일년에 한번 정도로 훈련을 실시했다.

미중 국민들이 양국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희망하는지 중요하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민의 66%가 중국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잇는데 이는 2005년 이래 가장 높은 것이다. 반면에 여론조사 결과를 나이별로 재분류하면, 젊은 미국인들에게는 중국에 대한 호감이 오히려 높은 것으로 나온다.

중국인들 사이에도 반미정서가 높아지고 있지만, 2018년에서 2019년 간에 미국으로 넘어간 중국학생수가 늘어났으며, 이는 비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음에도 나타난 결과이다. 높은 교육수준으로 인해 미국으로 유학온 외국인 학생의 비중에서 중국이 가장 높다.

상기에 언급한 것처럼 주제들이 다양하고 때로는 충돌하는 격동적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은 어디로 향해 가는가’라는 커다란 질문에 대해 브루킹스 연구소의 중국센타 책임자를 맡고 있는 Dr. Cheng LI의 견해를 들어본다.

사회자 Wang Guan: 당신은 지난 수십 년간 미중 관계를 다루어 왔습니다.  현재의 상태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Cheng Li 박사: 우선 3가지의 악순환 고리 또는 영역이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3 가지의 악순환 고리가 서로 반응하여 긴장을 고조시키고, 각자의 문제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3가지 악순환은 모두 “D”로 시작되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데, 첫 째는 미국을 황폐화시키는(Devastating)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입니다. 두 번째는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양당간의 극심한(Dire) 정쟁입니다. 마지막은 미중 관계가 위험스러운(Dangerous)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과 중국이 수교관계를 맺은 지난 1979년 이래, 40년의 기간에서 전례가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사회자: 미중 관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단기적 관점과 장기적 관점으로 나누어 예측해 주시길 바랍니다.

Cheng Li: 단기적으로 너무 많은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선기간에는 의례적으로 긴장과 비난의 수위가 높아집니다. 미국 내 여론도 중국을 비난하면서, 중국에 대한 호감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가장 낮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더구나 미국 경제에 미치는 코로나의 부정적 영향은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

비록 도날드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다 해도, 첨단기술에 대한 긴장, 국제지정학적 지형의 변화, 중국의 공격적인 국제외교정책에 대한 미국인들의 부정적 시각과 우려 등이 지속될 것입니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이긴다 해도, 공화당은 반중정책을 지속해 밀고 나갈 것이고 관행의 동력을 바꾸는 것이 어려워 않습니다. 이것이 단기적인 전망입니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람들의 사고체계mindset는 달라집니다. 당장 코로나바이러스를 어떻게 정의하던지, 이는 당연히 우리의 평생을 통해 일어난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인도주의적 위기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견해가 변해갈 것입니다. 비로소 양국 모두 진정한 상대(敵)은 중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라 공동의 적은 바로 바이러스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자연스레 국제적인 공공선public good의 주제가 기후위기, 국제 간에 이동하는 이주민 문제가 던지는 도전, 마약거래와 사이버 안전, 에너지 보존과 비핵화, 그리고 현재 겪고 있는 공공보건에 대한 협력으로 집중될 것입니다. 이런 주제들이 서로 간에 협력을 증진하도록 긍정적인 압력을 가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중장기적으로 낙관적입니다.

사회자: 현재 미중 간의 안보상황은 어떻게 판단하시는지요? 가장 위험한 요소가 무엇인지요?

Cheng Li: 가장 위험한 요소는 명백하게 대만입니다. 왜냐하면 최근 미연방의회에서 결의한 ‘대만입법 2019’는 대만을 별개의 국가로 인지하는 수준에 접근했습니다 이는 중국의 수용할 수 있는 방어선bottom-line에 대한 도전입니다.

다른 한편, 미국인들 관점에서는 남중국해와 때때로 동중국해에서 실시하는 중국의 군사훈련 그리고 사이버 안전등에 대해 매우 비판적입니다. 모두가 매우 위험한 분쟁적인 주제이죠, 다만 이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전쟁의 확률은 단지 5% -10% 수준입니다.

인터뷰는 여기서 끝났다. 추가로 첨언하면, Dr.Cheng Li를 포함한 70명의 저명한 학자들이 미중 양국의 지도자들에게 공개서한을 보내면서 ‘COVID-19 퇴치를 위한 *정치기금을 조성하도록’ 촉구하였다. 이 서신을 통해 이들은 ‘지도력을 형성하려면 수 년이 소요되어야 하지만, 지도력의 붕괴는 단지 순식간에 벌어진다’고 경고했다.

*코로나백신 개발기금에 중국을 포함하여 G20 주요 국가들이 참여했으나,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출처: CGTN 2020-05-24일자 보도내용..

Wang Guan

중국국제방송CGTN의 Reality Check 편성책임자

목, 2020/06/18-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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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베트남 북부와 가까이 위치한 하이난 섬의 총면적은 33만 평방킬로미터로 경상남북도를 합한 면적보다 조금 작고 제주도의 18배에 달하는 광활한 지역이다. 인구는 8-9 백만명으로 상대적으로 조밀하며, GDP는 일인당 2019년 기준 약 9천불 수준이다.


하이난 성의 수도인 하이코우 시의 모습

지난 주에 중국정부는 하이난(海南)성을 자유무역항(FTP) 지대로 만드는 종합계획안을 공개하면서 기존의 아열대 관광지역을 두바이와 싱가포르와 어깨를 겨누는 국제적 중심지로 개발하려는 60여 조치를 제시하였다.

특별정책들을 포함한 패키지는 3단계로 나뉘어, 2025년까지 무역과 투자의 자유항으로 개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2035년까지는 이를 완숙한 단계로 이끌며, 2050년에는 명실상부한 국제적인 거점으로 만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향후 15년의 개발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이미 해당 지방정부의 관리책임자들을 두바이와 싱가포르에 파견하였고 이들을 성공시킨 자유무역의 규정들을 연구하도록 독려하였다.

하이난 지역을 중국의 새로운 자유무역과 물류의 중심으로 개발한다는 정책으로 의료, 바이오텍, 교육, 오락 그리고 금융서비스의 혁신 등 분야에 외국투자자들의 문호를 즉각적으로 개방하는 조치를 가져올 것이다.

하이난 지역은 등소평 시절부터 중국지도부에 의해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고려되어 왔으며, 이미 1988년에 중국의 가장 작고 가장 남부에 위한 성省급 지역으로 선정되었고, 2018년 4월에 시진핑 주석은 이 섬지역을 중국의 최대자유무역지대(FTZ)으로 선언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에 발표된 FTP종합계획은 2018년의 FTZ의 구상보다 훨씬 규모가 크며 거대한 청사진의 포부를 담고 있으며, 수출입에 대한 관세의 면제를 넘어서 투자와 자본의 흐름에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한다.

국제적 금융활동에 있어서, 세금은 투자와 자본의 흐름에 중추적 역할을 하며 지역을 소비와 인재, 투자와 사업에 매력적인 지역을 전환시키는 축으로 기능한다.

두바이와 싱가포르가 수십 년에 걸쳐 부유하고 번영한 지역으로 발전한 것에는 사업과 개인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소득세가 낮은 배경이 있으며, 이러한 배경의 연구를 통해 하이난 지역에 주거하기에 편하고 사업을 번창시키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능력있는 인재들의 개인소득세과 기업들의 법인세를 최대 15%로 제한하도록 결정한 것은 하이난을 국제적인 조세피난처에 견주는 지역으로 보장하려는 노력이다.

하이난의 전략적인 입지는, 한편에서는 광동성과 인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홍콩과 나란히 위치하여 중국의 접경지역을 확장하고 본토와 Greater Bay(광동-홍콩-마카오) 지역을 동남아 국가들과 연계하면서, 남반부의 여러 나라들과 무역 등 다양한 협력을 도모하는 관문關門으로 자연스러운 역할을 맡게 한다.

아열대적인 기후는 싱가포르를 대체하며 국제적인 정치 및 경제 이벤트를 개최하는 지역으로 매력을 가지게 할 것이다. 이미 지난 세월 유명 관광지로서 해변가 주변에 리조트와 5 성급의 호텔 등 인프라가 잘 조성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Dalian(대련)이 ‘여름의 다보스’로 불리듯이, 중국은 하이난 개발을 통하여 또 하나의 국제적인 지역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며, 주요한 국제행사를 유치하는 것과 더불어 국제관광 도시로서 소비진작과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이미지와 영향력을 강화하는 게기를 마련하게 된다.

중국당국의 하이난 개발결정은 Greater Bay(광동-홍콩-마카오) 지역과 연계하여 국가의 경제를 더욱 확장시키는 현명한 방향의 움직임이다. 국가를 국제사회에 더욱 개방하려는 견지에 비추어, 하이난 지역을 경제와 정치가 하나로 융합되는 왕관의 보석으로 선정 개발하면, 이 지역을 외국투자가 자연히 이루어지는 국제적 센터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출처: CGTN, 2020-06-06.

Matteo Giovannini

이탈리아 경제개발부의 중국담당 주요 맴버이자 중국상업은행의 재정분야 전문상담가


보충자료 –

중앙정부의 지원과 다양한 정책을 구비한 개발제도의 도움으로 하이난 성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우선 무엇보다도 제조업, 수송차량, 원자재, 소비재 등 분야에 대한 수출입 무역에 관세를 면제받게 된다. 이로서 자유무역이 상당한 수준으로 촉진될 전망이다.

다른 한편으로, 하이난 지역은 국제적인 관광과 하이테크를 위한 단지조성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중앙정부의 정보분야 위원회(council info office)는 세계경제의 미래전망은 하이테크 개발에 맞추어 있다는 판단과 하이난 지역이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지역이 아니었다는 현실을 감안하여, 향후 개발은 관광과 서비스 산업, 그리고 하이텍 분야를 유치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분야에 우호적인 정책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예를 들어 상기에 언급한 산업분야의 기업들은 본토의 기업들에게 적용하는 법인세 중에 가장 낮은 15%의 세금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중국본토의 소비자들에게 적용되어온 면세금액 3만 위엔의 혜택을 10만 위엔까지 확대할 것이다. 많은 중국인들이 면세가 적용되어 국제적인 소비재가 저렴한 홍콩을 관광하며 소비를 맘껏 즐겨왔듯이, 이제 하이난 섬도 같은 매력을 갖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계획에 의하면 재능있는 국제적인 인재들에게도 혜택을 부여한다.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개인들은 본토의 개인소득세 한도인 45%보다 30%를 낮춘 최대 15%의 한도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이는 홍콩보다도 2%가 더 낮은 수준이다. 이로써 자유무역지대는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뿐만 아니라, 재능과 기술과 경험을 갖춘 인재들을 불러모을 것이다.

하이난 자유항을 개발하면서 세계무역과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싱가포르와 홍콩의 성공을 따라 배울 것이지만, 하이난은 자신의 독특한 입지와 구상을 통하여 두 도시들의 정책을 단순히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만의 모습을 만들어 갈 것이다.

싱가포르와 홍콩이 성공한 배경은 단순히 지정학적 이점과 무관세정책 또는 매력적인 세금혜택뿐만 아니라, 중국 본토가 흉내낼 수 없는 역사적이고 제도적인 근거가 있다.  예를 들어 홍콩은 중국본토와 세계를 연결하는 핵심적인 역할이라는 장점을 통하여 놀라운 경제적 성장을 이루어 냈다.

따라서 하이난의 자유무역항 개발의 과정을 통하여 책임을 지고 있는 성省당국은 자신들의 입지와 중국의 사회경제적 현실과 조화를 이루어 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개발계획서에서 하이난 자유무역항은 중국적 특색을 지녀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하이난이 앞선 두 도시보다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뜻은 아니며, 성공여부를 가르는 핵심은 사업하기에 매력적인 환경을 만들어 내느냐에 달려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곳에서 사업하는 것이 매력적이고 편해야만 한다. 하이난이 이것을 제공할 수만 있다면 미래는 보장된 것이다.

일, 2020/06/2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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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2017년부터 준비되어 2018년 큰 물꼬를 텄고, 최근 하노이 북미회담에서 일시적 교착국면에 빠진 남북미 간 평화체제 정착은 어떻게 수순을 풀어야 할까? 남북관계든 북미관계든 핵심은 ‘신뢰의 확증’에 있다. 남북과 북미관계가 대화 지속 – 신뢰 축적의 트랙을 이어가면 남북·북미관계 서로를 선(善) 방향으로 추동한다. 그러나 지금 하노이 회담 이후 보듯, 북미관계에서 지체가 생길 수 있다. 그럴 때 남북관계의 주동성, 추동력이 더욱 부각될 수 있다. 남북관계의 게임의 차원을 바꾸는 것이, 북미관계의 게임의 차원을 바꾸는 일보다 우리의 주동력이 발휘될 수 있다. ‘양국체제론’은 남북관계가 동북아 주변관계에 최대의 주동성, 추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구상되었다.

남북관계의 고리를 획기적으로 풀어나가는 방법을 우리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 신뢰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면 된다. 신뢰에는 ‘피상적 신뢰’가 있고, ‘심층적 신뢰’가 있다. 심층적 신뢰란 가장 기본적인,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신뢰를 말한다. 남북 간에 그렇듯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신뢰가 무엇이겠는가. 남북이 서로의 존재를, 존립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명환 교수의 글에도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정식 국교를 맺고 적대정책을 철회하더라도 남한의 존재가 위협이라는 현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고,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고 북한 사회가 개혁·개방에 노출될수록 북의 체제 운영자들은 정치적 위협을 심각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 북한 당국이 자신의 주민이 친족방문을 위해 남을 왕래하는 일을 허용하는 일은 상당 기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부분이다. 김명환 교수는 이런 사정 때문에 양국체제는 어렵고, ‘남북연합만이 올바른 길’이라 하였지만, 김 교수가 언급한 내용이 필자에게는 오히려 김 교수의 주장을 반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북미 수교, 북일 수교는 가능하더라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교, 즉 ‘한조(韓朝) 수교’는 오히려 불가능하다고 보는 듯하다. 글쎄 그럴까. 북미 수교와 북일 수교라는 토픽이 미국과 일본의 정책 캐비넷에 올라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베까지도 이 판에 끼어보려 하고 있다. 그러나 북미 수교, 북일 수교는 오히려 한조 수교가 물꼬를 터줌으로써 빠르게 뒤따라올 가능성이 더욱 크다. 왜냐하면 ‘근본적 신뢰의 확증 순서’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북의 안보조건에서 미국과 일본 쪽에 자신의 존립에 대한 근본적 신뢰를 먼저 확보하려고 할 가능성은 낮다. 반면 한국과는 그 가능성이 더 높다. 촛불 이후의 국면에서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앞서 김명환 교수가 말한 “남한의 존재가 위협이라는 현실”은 이제 북에게도 더 이상 그렇게 자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스스로가 북(DPRK)의 존립에 위협이 되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물론 30년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단번에 일소한 촛불혁명의 힘, 그리고 그 힘에 의해 들어선 촛불정부의 역할 때문이다. 아니, 30년이 아니라, 코리아전쟁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의 민의가 이만큼 남북의 공존과 평화를 소망하는 방향으로 모아져본 적이 없다. 남의 한국도, 북의 조선도 이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과 조선 간에 그러한 ‘근본적 신뢰’를 확증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무엇일까? 백낙청 선생, 그리고 백 선생을 항상 충실하게 조술(祖述)하는 김명환 교수도, 그 방법이란 ‘남북연합’이라고, ‘남북연합밖에 없다’고, 되풀이해왔다. 그런데 지금 이 마당에 그 ‘남북연합’의 방책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분명히 한 것이 없다. 필자가 본 단 하나의 예외라면 백 선생이 2018년 《창작과비평》 181호에 “미국이 어느 시점에 변심하여 북을 다시 침공하거나 적대정책으로 되돌아갈 태세가 되었을 경우, 이것이 곧바로 대한민국이 가담한 국가연합에 대한 침공 내지 적대가 될 수밖에 없도록 제도화해 놓는 일”이라 한 것인데, 이 정도로 높은 수준의 ‘국가연합’이란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국가 간의 관계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누가 읽어도 당연히 그렇게 읽히는 말이다.(이렇게 읽은 것이 ‘오독’이고 ‘비약’이라는 김명환 교수의 반론에는 아쉽게도 무엇이, 왜, 어떻게 ‘오독’이고 ‘비약’이라는 것인지 설명이 없다. 다만 ‘기성 사회과학 교과서에 맞춰 재단한 탓’이라 하고 만다.)

현재 이 순간의 남북관계에서 생각해보자. 백 선생과 ‘분단체제론’에서는 현재 이 순간 역시 당연히 ‘남북연합’, ‘국가연합’ 상태다. 남북연합은 분단체제를 상정·전제하는 것이라 하니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재의 남북관계 또는 남북연합 관계에서 백 선생이 말한 바와 같이 “미국이 어느 시점에 변심하여 북을 다시 침공하거나 적대정책으로 되돌아갈 태세가 되었을 경우, 이것이 곧바로 대한민국이 가담한 국가연합에 대한 침공 내지 적대”가 된다고 어느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물론 너무나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다. 그렇다면 백 선생이 그리는, 그렇듯 높은 수준의 ‘국가연합’까지 한참을 올라가야 할 것인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높이 올라가기 위한 첫 계단, 첫 단추가 무엇이냐다. 나는 지금껏 여기에 대한 답을 들어본 바 없다.

그 답이 어려워서 그런 것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필자가 지난 글들에서 여러 차례 설명해놓았다. 기존의 남북 간의 고통을 아주 기본적인 수준에서 느껴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다 알 수 있는 문제다. 남과 북이 서로의 존립을 보장하는 신뢰의 확증이 무엇이겠는가? 그 첫 단추가 무엇이 될까? 상대방을 적으로, 붕괴와 소멸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확증 장치다. 지금 남과 북의 상태에서 무엇이 그런 확증 장치가 될까? 남은 북을, 북은 남을, 영토와 주권을 가진 정당한 국가 대 국가로서 서로 인정하고 이를 만천하에 공표하고 상호 대표부를 교환하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과 조선 두 나라의 수교, 즉 ‘한조(韓朝) 수교’다. 이렇게 될 때 ‘분단체제’라는 과거의 룰은 폐기되고 ‘양국체제’라는 새로운 차원의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 이 ‘한조 수교’의 역사적 파급력은 1972년 ‘동서독 수교’에 못지않을 것이다. 동서독 수교 이후 상호 교류와 협력이 크게 증가했던 것은, 상호 간의 ‘근본적 신뢰’의 문제를 일차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두 국가가 상호의 존립을 위협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지켜질 것임을 서로가 믿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2018년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역시 그러한 근본적 신뢰를 확증해가는 과정이었다. 그 결실이 머지않은 미래에 맺어지기를 바란다. 한국이 북미 대화를 잘 중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일이 있다. 남북이 만나는 모든 자리에서, 남북의 모든 논의와 합의가 어떤 쪽을 향해가고 있는지 방향감각이 무엇보다 우선 분명해야 한다. 그것은 ‘남북 간의 근본적 신뢰의 확증’이며 ‘남과 북이 서로를 정당한 국가 대 국가로 인정’하는 일이다. 북미 수교가 한조 수교에 선행하기보다, 한조 수교가 북미 수교를 성사시키는 경로가 더 현실적이다. 소위 ‘대북제제’ 문제도 ‘한조 수교’라는 역사적 임팩트에 틀 자체가 변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김명환 교수는 여전히 북은 ‘남한의 존재의 위협’을 벗어날 수 없고, 남 역시 마찬가지로 ‘북한의 존재의 위협’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할까? 한 발 물러서 생각해보자. 물론 ‘한조 수교’가 이뤄지자마자 남북이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상태가 당장 100퍼센트 깨끗하게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사에 그런 일은 없다. 그러나 ‘한조 수교’가 이뤄지면 역사적 첫 단추가 채워진다. 게임과 트랙이 달라지는 것이다. 코리아의 지난 70년 적대 상태를 생각해보면, 당장 100퍼센트는 언감생심이고, 우선 절반만 해소된다고 하여도 획기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이런 것이 바로 ‘질적 변화’다. ‘위협’은 강박이어서 붙들려 있을수록 커진다. 기존의 ‘분단체제론’에는 그러한 ‘위협’을 넘어서고 극복할 담대한 전망이 부족했다.

그렇듯 질적 변화를 이루어내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그 후의 과정 역시, 그만큼, 또는 그보다 더욱 중요할 것이다. 상호 신뢰를 확인하고 쌓아가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배려들이 교환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매우 많다. 동서독 간 성공적 교류의 선례도 있다. 나는 ‘분단체제론’이 이러한 양국체제의 전망을 아주 적극적으로 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원래 분단체제론은 분단체제를 비판하고 극복하자는 이론이었다. 분단체제론이 양국체제의 전망을 수용한다는 것은 그러한 원래의 이론적 취지와 포부에도 부합한다.

 

독일 양국체제의 경험을 다시 생각한다

끝으로 앞서 몇 차례 언급한 만큼, 동서독 사례의 의미에 대해 첨언해보려 한다. 1970년대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동서독 수교(=<동서독기본조약>)의 의미를 다시 새겨볼 때가 되었다. 1990년대 초반 백낙청 선생이 분단체제론을 처음 입론하고 있을 때, 백 선생은 당시 이뤄졌던 독일의 흡수통일 사례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았고, 그래서 독일과 한반도의 분단 원인과 통일 전망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당시 백 선생이 그러한 태도를 취했던 데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동구권이 붕괴하고 동독이 서독으로 흡수통일 되었던 당시에는 ‘북한 조기붕괴론’을 펴는 사람들 중에 독일식 통일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았다. ‘북한’은 어차피 곧 붕괴될 것이니까 한국은 서독처럼 흡수통일 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그러한 생각은 물론 허황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독일의 사례를 무조건 백안시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1970년대 동서독 수교와 독일 양국체제이지, 1990년의 흡수통일이 아니다. 1972년 동서독 수교와 1990년 흡수통일은 전혀 다른 맥락에서 벌어진 전혀 다른 사건이다.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제는 1990년대 초반에 독일 흡수통일의 스펙터클에 눈이 팔려 1970년대의 독일 양국체제 경험의 역사적 중요성을 놓치고 있지 않았는지 다시 물어야 할 때가 되었다. 백낙청 선생과 김명환 교수도 다시 주목해주기 바라는 대목이다. 1989~1991년 당시 남북의 ‘당국자’들은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인 시각에서 양국체제의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북이 유엔에 동시가입할 수 있었고, <남북기본합의서>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볼 때도 대단한 용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정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남북 수교까지 이루었다면 코리아 양국체제는 이미 그때 성립할 수 있었다. 왜 이 길이 막혔던가? 누가 막았었나? 남쪽의 노태우 대통령도, 북쪽의 김일성 주석도 아니었다. 이들은 오히려 더 속도를 내서 이 방향으로 나가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 길을 막았던 것은, 이 책 1부 1장에서 상세히 분석해둔 바와 같이, 북미 수교를 거부하고 북의 조기붕괴를 도모했던 미국과 한국의 냉전대결 세력들이었다.

1970년대의 동서독 수교 – 독일 양국체제와 1990년대 흡수통일이 전혀 성격이 다른 사건이라는 것은, 흡수통일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반추해볼 시각을 1970년대 양국체제의 경험이 제공해주고 있다는 데서도 볼 수 있다. 독일 흡수통일의 최대 문제는 동독을 내부 식민지로, 동독인을 열등국민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통일독일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동구권 – 소련 붕괴라는 충격 속에서 통일과정이 눈사태와 같은 파국적 양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 체결 이후 1989년 소련·동구권 붕괴 이전까지 독일의 양국체제는 동서독의 차이를 장기적이고 점진적으로 줄여나간다는 분명한 공동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독일 양국체제의 경험이 우리에게 여전히 귀중한 타산지석이 되는 이유다.

더구나 과거 독일 양국체제를 둘러싼 국제적 상황에 비해 오늘날 코리아 양국체제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훨씬 더 안정적이다. 1970~1980년대 미소 간의 적대와 대립은 오늘날 미중, 미러, 또는 중일 간의 갈등에 비해 훨씬 날카롭고 높았다. 냉전 이후 세계는 진영 간 이념 적대가 사라지고 국가 간 지역 간 상호 의존이 깊어졌다. 필자는 이러한 새로운 세계상황을 ‘후기근대’로 정의하면서, 이 새로운 역사 단계의 세계사적 의미에 대해 여러 차례 분석하고 음미해본 바 있다. 후기근대에는 과거 소련·동구권 붕괴와 같은 진영 붕괴가 발생하지 않는다. 과거와 같은 수준의 진영 자체가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중국 혹은 미국이 머지않아 과거 소련과 같이 극적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이 세계의 그 많은 ‘전문가’ 중에서 단 한 사람도 없는 이유다. 그리고 이는 코리아 양국체제가, 성공적으로 정립되기만 한다면, 과거 독일의 양국체제보다 훨씬 성공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예상해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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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0/06/25-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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