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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중의 자유와 책임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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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중의 자유와 책임 III

admin | 수, 2020/03/18- 20:37

1980년 5월 김낙중은 만기 출소했다. 전두환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와 광주에서 벌인 시민 학살의 광기가 전국을 휘감고 있을 때였다. 출소 이후 김낙중은 상한 건강을 추스르며 홀로 조용히 저술에 전념했다. 그러나 그의 초심인 평화통일에의 열망은 그 시기에도 한시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86년 초부터 김낙중은 조심스럽게 독립운동 원로들이 만든 ‘민족통일촉진회’라는 온건한 통일운동단체의 회지(會誌)를 만드는 일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87년 민주항쟁이 터져 나왔고 이후 통일문제에 관한 그의 발언과 활동은 점차 활발해졌다. 김낙중은 특히 노태우 정부의 통일정책에 주목했다.

(노태우 태통령은) 1988년 7월 7일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이를 북한과 재야 운동권(전대협과 민통련) 진영에서는 ‘영구분단획책’이라고 비판하고 있었는데도 김낙중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통일원에서는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라는 것을 발표했는데, 그는 이 방안을 남과 북이 서로 상대방에 대한 타도를 추구할 것이 아니라, 공존을 전제로 하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으로 (김낙중은) 이해했다. …… 1980년대 말, 재야 운동권은 치열하게 통일운동을 전개했지만 대체로 노태우 정부의 통일방안에 대해서는 무조건 배타적이었다. 또한 북측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세력도 많았다. 이와 반대로 보수적 통일운동 세력은 남측의 통일방안만을 고수하며 북측의 통일방안은 일말의 논의할 가치가 없다고 비난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낙중은 남측의 주장과 북측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결합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시대 변화의 추세에 잘 부합하는 것이었다. 87년 민주화에 이어 89년부터는 미소 냉전체제가 붕괴하고 있었다. 김낙중은 남과 북이 서로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오랜 시간 생각해온 자신의 통일방안을 ‘4단계 통일론’으로 정리했다. 1단계 평화공존 기초 구축 → 2단계 국가연합 → 3단계 연방국가 → 4단계 통일 민족국가의 경로였다. 이를 1989년 9월 국회 통일특별위원회에서 민족통일촉진회 정책심의회 의장 자격으로 발표했다. 시민단체에서의 활발한 통일 논의와 함께 통일원의 통일방안 자문에 여러 차례 응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강연도 하고, 언론에도 자주 모습을 비쳤으며, 각종 집회에서 연설할 기회도 많았다. 1991년 후반부터 1992년 봄까지는 민중당 공동대표로도 활동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고 주목하게 되었다.

그러던 1992년 9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또 한 번의 ‘김낙중 간첩사건’이 보도되었다.

안기부에 따르면 김낙중 씨는 지난 55년 6월 자신 월북, 공작원으로 포섭돼 1년간 간첩 교육을 받고 남파된 뒤 36년간 자신의 신분을 진보적 지식인으로 위장한 채 다른 남파간첩을 통해 북한으로부터 미화 210만 달러(한화 약 16억 원)를 넘겨받아 민중당 창당을 지원하는 등 고정 간첩으로 활동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안기부는 김 씨가 지난 1990년 2월 남파간첩 최 모 씨(35)로부터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포섭해 지하망을 구축하라”는 지시와 함께 30만 달러를, 1990년 10월에는 “민중당 창당에 참여해 당권을 장악하라”는 지시와 함께 30만 달러를 각각 받았으며 지난해 10월 북한의 장관급 공작원 임 모 씨(65)로부터 추가로 150만 달러와 권총, 독약 앰플을 받는 등 세 차례에 걸쳐 활동비를 받았다고 밝혔다.

당시에는 김낙중 씨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던 만큼 사건 발표 내용은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1955년의 일을 두고 ‘간첩 교육 받은 남파 고정간첩’이라 한 것은 박정희 정권이 이미 70년대에 써먹은 낡은 수법이라 하더라도, 과연 정말 김낙중 씨가 북한 공작원을 만나고 돈을 받았을까? 김낙중 씨처럼 간첩 혐의로 억울한 죄를 번번이 뒤집어썼고, 그런 만큼 북한에서 보낸 ‘공작원’을 만나는 일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 과연 그러한 일을 정말 저질렀을까? 또 한 번 모진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 아닌가?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발표 내용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당시의 시기는 미묘했다. 노태우 정부의 남북화해정책에 서서히 제동이 걸리고 있었다. 미국이 북에 핵사찰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그해(1992년) 5월 민자당 대통령 후보로 당선된 김영삼 씨는 남북화해기조가 대선에서 라이벌인 김대중 씨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해 8월 벌어졌던 ‘대통령 훈령 조작 사건’도 그런 흐름 속에서 나왔다. 김영삼 후보 진영에서 남북화해사업의 진행을 노태우 대통령의 훈령을 조작하면서까지 방해했던 사건이다. 그렇다면 이 뜬금없는 또 한 번의 ‘김낙중 간첩사건’은 역시 남북화해기조를 흔들고 뒤집어놓기 위해 만들어낸 안기부의 조작극 아닐까? 김낙중은 또 한 번 대북 적대감 고취를 위해, 분단권력 강화를 위해 억울하게 이용된 것이 아닐까? 의문들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2005년 출판된 『탐루』의 상세한 기록에 따르면, 1990년 2월부터 4월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일성 주석님이 보낸 사람”이라고 밝힌 최 모라는 30대의 인물을 여섯 차례 만났고, 1990년 10월부터 12월까지 최 모가 데려온 65세가량의 ‘임 과장’과 여러 차례 긴 시간 만났다. 이들로부터 기사에 발표된 금액의 지원금을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들이 북으로 돌아간 후 1년 동안 세 차례 ‘장문의 편지’를 “임 과장이 미리 알려준 국제사서함”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1991년 10월 다시 서울에 온 ‘임 과장’과 다음 해 3월까지 다시 여러 차례 만났다고 한다. 그렇지만 김낙중은 자신의 간첩 행위 여부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했다. 다음은 《한겨레신문》 1992년 11월 13일 자에 보도된 이 사건 첫 공판에서의 그의 진술이다.

김 씨는 “대북 접촉 창구를 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북과 접촉한 것은 맞지만 북쪽 사람들로부터 기밀 수집을 요청받지도 않았고, 하지도 않았다”라면서 “검찰의 공소장은 일부 내용이 맞으나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라고 진술했다. 김 씨는 이어 “처음 북쪽의 연락 대표가 찾아왔을 때 이들을 신고해야 하느냐는 문제로 며칠 밤을 새며 고민했다”라면서 “그러나 지난 1955년 평화통일안을 들고 북한을 찾아갔을 때부터 계속 평화통일론을 주장해온 나로서는 이들을 신고해 처벌받게 하고 남북관계를 긴장되게 할 수는 없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라고 진술했다.

1993년 2월 11일의 최후진술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본 피고인의 행동 자체가 아니라 본 피고인이 상대했던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 예, 그렇습니다. 저는 분명히 여러분이 악마로 생각하는 북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1955년 사선을 넘어 평양에 갔었던 사람이고, 또 1990년 2월 이후 평앙에서 온 그들을 상대로 회합·통신 등의 행동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검사님이나 판사님, 그리고 우리 사회 많은 사람들과 제가 관점을 달리하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즉 저는 북한 사람들을 악마로 대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며 그들을 우리와 똑같은 동포 형제로 대했다는 사실입니다.

1993년 2월 22일,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김낙중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8년, 김낙중은 8·15 특사에 포함되어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되었지만, “현재도 여전히 ‘무기수’이며, 투표권도 없고, 해외여권도 나오지 않는 부자유한 신분의 소유자다.”

 

분단체제에서의 자유와 책임

김낙중은 자신에게 자유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 했다. 과연 그는 그 자유를 얻었던 것일까? 그의 자유는 북에서도 남에서도, 남 체제에 의해 북 체제에 의해 거듭 꺾였다. 그러나 그렇듯 거듭 좌절해도 결코 굴하지 않고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자유라고 한다면 과연 김낙중은 자기 방식의 자유인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이명준은 김낙중 식의 자유를 차라리 포기했다. 포기를 통해 이명준 식의 자유를 실현했던 셈이다. 그러나 이명준과 김낙중의 두 자유는 일반화하고 권장할 만한 차원의 긍정적 의미의 자유가 되기 어렵다. 이명준의 자유는 포기의 자유일 뿐이고, 김낙중의 자유는 현실의 벽에 부딪치는 자유, 부딪치고 부서져도 포기하지 않고 반복하는 패배의 자유일 뿐이다.

우리는 소설 속 이명준에게 비겁하게 죽지 말고 살아남아 현실 속에서 무엇이든 이뤄 나가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작품이 아닌 현실에서 찾을 수 있는 그와 흡사한 살아있는 플롯이 있다면 바로 김낙중이 그에 가까운 모델이었다. 캐릭터는 다르지만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광장”을 열정적으로 추구했다는 점에서 양자는 같다. 이명준이 결국 포기한 반면 김낙중은 이 길을 평생 추구했다.

그의 ‘자유’ 추구 방식은 특이했다. 현실이 그어놓은 남과 북의 경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현실의 남북에는 경계가 있지만 그의 소망(所望) 속의 남북에는 경계가 없다. 그 소망 속의 자유를 그는 평생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 자신 그리고 그의 가족은 혹독한 고통의 대가를 치렀다. 그 고통의 크기는 일반인은 쉽게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것이었다. 남(南)의 체제는 자신의 정권안보를 위해 필요할 때마다 김낙중의 이상과 소망을 거꾸로 이용했다. 북(北) 역시 다를 바 없었다. 1955년 입북했을 때도, 그리고 1990년 서울의 그를 찾아 고위 공작원을 보냈을 때도 북은 자기 체제를 위해 김낙중을 이용했을 뿐이다.

김낙중 자신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스스로 “평화통일이 절실한 사람들에게는 힘이 없고,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평화통일보다 자기 지위나 정권의 유지가 더 소중하다는 현실”을 말한다. 그렇게 잘 알고 있음에도 그는 번번이 현실에 걸려 넘어진다. 20대 젊은 시절 휴전선을 넘어 입북했던 것은 젊은 이상주의와 열정 탓이었다 하자. 30대, 40대의 고난 역시 순전히 분단 독재권력의 야만과 탐욕의 소산일 뿐이었다 하자. 그러나 수많은 고난을 겪은 60대가 되어서도 남과 북 사이에 아직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의 경계를 수용하지 않고 또다시 그의 관념, 소망 속에서 그 경계를 지워버렸다는 사실, 그로 인해 이번에는 ‘조작’이 아닌 실제 간첩사건에 엮여 든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의 자유, 어떤 억압이 와도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시도를 그만두지 않겠다는 그의 자유는 어쨌거나 그의 뜻대로 행사하였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야기되었던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도 그는 감당할 수 있었을까? 가족과 주변의 오랜 친구와 동지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은 여기서 논외로 치더라도 과연 김낙중 식의 ‘자유’ 행사는 그가 원했던 남북 화해와 공존, 그리고 통일에 기여했는가? 그의 사상과 실천에 감명을 받은 이들도 많고 그의 선구적인 공동체 통일론에 영감을 받은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흐름을 결과적으로 보면 그의 행동은 그의 의도와 반대되는 쪽, 분단체제의 구속력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쪽으로 이용되고 말았다. 특히 노태우 정부 시기 현실로 진행되던 남북 화해 흐름을 거꾸로 돌이켜 보려는 세력에게 김낙중의 행동이 역용의 빌미를 주었던 것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사실이다.

북 역시 ‘연방제 통일’이라는 자신의 통일정책을 충실히 대행해줄 남측의 정치 세력을 만들기 위해 김낙중이라는 한 개인을 이용했다. 그들이 그를 접촉하고 거액의 돈을 전달했을 때, 그런 방식의 ‘대남사업’이 김낙중 개인에게 얼마만큼의 위험부담을 주는 일인지 결코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김낙중의 젊은 시절부터의 순수한 이상주의와 사람됨을 믿고, 그를 시험했다. 그리고 남북의 경계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그의 관념 세계, 소망 체계는 여지없이 다시 한번 그를 시험에 들게 했다. 그의 말대로 북한 사람을 악마로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 그러나 남과 북을 서로 악마시하는 세력이 남과 북의 체제의 뇌수와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현실 역시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 현실을 그의 관념·소망 속에서 지워버리고 ‘악마가 아닌 사람과 만난’ 그의 ‘순수한’ 행위는 역으로 ‘사람이 아니라 악마로 그들을 보아야 한다’는 분단체제의 정언명령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데 맞춤형으로 이용되고 말았다.

이명준과 김낙중, 이 두 사람의 자유에는 불행하게도 현실의 기반이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늘 분단을 부정하고 극복한다. 그러나 관념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부정이요 극복일 수밖에 없었다. 둘 모두 자유의지에 따라 분단선을 넘는다. 그러나 우선 이명준은 남에서도 북에서도 그가 찾는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광장”을 찾을 수 없었다. 중립국행과 자살이 그의 자유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렇지만 이명준에 대한 평결은 여기서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 『광장』과 이명준의 문학사적 위치에 대해 조금 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명준이라는 캐릭터가 한국 문학에 등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사건’이 되었던 그 시대, 바로 그러한 ‘사건’을 가능하게 했던 시간적 배경을 함께 읽어야 할 것이다. 1960년이라는 해, 그리고 4·19라는 사건이었다. 『광장』이라는 소설이 분단체제에서 최초로 열렸던 4·19라고 하는 ‘자유의 공간’에서야 비로소 출현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명준이라는 캐릭터 자체, 『광장』의 이미지 자체가 ‘분단체제에서 최초로 출현한 자유’를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자유의 틈새는 아직 좁았고 연약했던 듯하다. 그래서 결국 이명준은 중립국행의 배 위에서 바다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의 투신자살은 이명준이라는 캐릭터의 죽음이 아니라, 분단체제에서 피어난 아직 연약한 자유의 싹의 운명을 예견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김낙중에게도 그 자신의 ‘소망 체계 안에서의 자유’가 아닌 ‘현실에서의 자유의 기반’은 너무나 취약했다. 분단체제의 강박은 남북 모두에서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강고해졌다. 그런 분단체제를 살아야 했던 그의 삶에서도 현실에서의 자유의 기반이 크게 열렸던 때가 있었다. 첫 번째는 4·19였고, 두 번째는 1987년의 민주화대투쟁이었다. 87년이 열어놓은 자유는 60년보다 크고 넓고 강했다. 87년 대선에서 야권의 어리석은 분열로 그 에너지의 태반이 초반부터 분산·유실되었음에도 민주화의 큰 흐름은 여전히 도도했다. 어부지리로 출범했던 노태우 정부 역시 이 대세를 의식하여 북방정책과 남북화해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다.

김낙중은 이렇듯 열린 87년 이후 ‘현실의 자유’의 기반 위에서 그의 생에서 아마도 가장 빛났을 몇 해를 보냈다. 그의 평생에 걸친 ‘평화통일’의 구상이 비로소 현실 속에서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김낙중은 노태우 정부의 남북화해정책을 88년 <7·7 선언>에서부터 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92년 <남북기본합의서> 효력 발생에 이르기까지 줄곧 적극적으로 평가하였다. 이는 당시 재야와 학생운동권의 태도와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당시 재야와 학생운동권은 노태우 정부의 출범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했다. 노태우 정부의 남북화해정책 역시 신뢰하지 않았기에 정부의 ‘불순한’ 남북 대화 ‘독점’을 운동권이 앞장서 깨뜨려야 한다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89년의 문익환 목사, 임수경 양의 실정법을 넘어서는 ‘불법 방북’은 이러한 흐름의 운동론에서 나온 필연적 산물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분단의 벽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이러한 지향은 남북의 경계를 초월해 있는 김낙중의 소망적 자유와 상통하는 바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한편으로 노태우 정부의 남북화해정책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당시 재야 학생운동권이 추진하던 남북 직접 접촉의 운동방식에 대해서도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이렇듯 ‘실정법을 뛰어넘는 남북 직접 접촉’의 흐름이 재야 운동권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는 사실이 1990년 초 북쪽 사람이 은밀히 그를 찾아왔을 때 그의 판단과 대응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 그의 오랜 고난의 경험과 거기서 쌓인 지혜가 노태우 정부의 남북화해정책을 편향 없이 사실 그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면, 그의 원형적 분단초월의식은 1988~1989년 남북 직통의 통일운동 열기에 의해 다시금 격발되었고, 그 격발에 의해 그의 관념 세계 속에서 현실의 남북 경계는 또다시 지워졌던 것이 아닐까? 어떤 이유에서든 그는 1990년 이래 2년간 북에서 보낸 대남사업 고위간부를 마치 남북의 현실적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자유롭게 만났다. 그리고 그로 인해 다시 한번 ‘간첩사건’에, 그것도 이번에는 결코 조작되었다고 항변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연루되고 말았다.

끝내 꽃피우지 못했다는 점에서 87년 공간 속의 김낙중과 60년 공간 속의 이명준은 동형(同型)이다. 철옹성 같았던 분단체제에 자유의 파열구가 열리는 순간을 맞이했으나 결국 그 안에서 자유의 꽃을 피우지 못했다. 분단체제는 여전히 강고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은 4·19와 87년에 이어 세 번째 자유의 시간을 맞이했다.

2016~2017년의 촛불혁명이다. 이 촛불혁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대립과 적대의 분단체제가 공존과 평화의 새로운 체제로 전환하는 순간까지 촛불이 지속될 때, 촛불혁명은 비로소 성공했다고 자신의 소임을 비로소 완수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준은 사랑과 생명을, 김낙중은 평화와 통일을 꿈꾸었다. 그러나 남북의 분단체제는 이들의 꿈을 가혹하게 짓밟았다. 분단체제란 분단의 대상을 ‘법 밖’으로 내모는 ‘호모 사케르(Homo Sacer)’의 체제다. ‘호모 사케르’란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 자’를 뜻한다. 휴전선 저쪽에, 그리고 이쪽 내부에도 호모 사케르가 존재하는 체제, 아니, 호모 사케르를 만듦으로써 작동하는 체제, 따라서 호모 사케르를 만들어야만 하는 체제다. 독일 법학자 카를 슈미트(Carl Schmitt)의 언어로는 ‘법 밖의 예외(exception)’를 결정하는 절대적 힘을 가진 권력, ‘예외주권’이다.

남에는 북이, 북에선 남이 ‘법 밖’에 존재하는 예외의 대상, 호모 사케르다. 예외주권은 자신의 주권 영역 안에 ‘법 밖’의 결정선을 그어놓고 그 선을 넘어섰다고 결정한 자는 누구든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 자’, ‘호모 사케르’로 선포한다.

따라서 이명준의 아버지가, 그리고 그를 이어 월북한 이명준이 바로 호모 사케르다. 휴전선을 넘은 김낙중 역시 호모 사케르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그는 ‘법 밖의 예외’ 취급을 받았다. 그리하여 북에서 한 번, 남에서 네 번 ‘간첩’이 되었다. 간첩은 분단체제에서의 호모 사케르를 칭하는 말이다. ‘미제 간첩’, ‘남조선 간첩’, 그리고 ‘북한 간첩’. 그래서 도합 18년을 감옥에 갇혀야 했다.

분단체제는 ‘적’을 먹고 사는 체제다. 적이 존재해야만 분단체제는 존속하고 강해진다. 그 적은 전쟁을 통해 남과 북에 각각 확고하게 정립됐다. 남과 북은 각각 서로에게 확실한 적, 악마가 되어야 남북의 분단체제는 힘과 생명을 얻는다. 남북의 분단체제는 각각 서로의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내부의 적=간첩=호모 사케르를 색출한다. 예외를 결정하는 법 밖의 법은 색출된 ‘예외분자=불순분자’들의 적성(敵性)의 정도에 따라 형량을 설정한다. 이렇게 적발한 ‘빨갱이’, ‘미제 – 남조선 간첩’들은 국민대중·인민대중의 공포와 두려움, 경각심을 한껏 끌어올린다. 이렇게 위축된 대중심리는 분단체제의 결속력, 구심력의 핵심 장력(張力)이 된다.

분단체제에서 이명준과 김낙중의 자유는 설 곳이 없었다. 오직 현실 너머 그들의 소망의 터에 그들의 자유를 풀어줄 만큼의 자유를 가질 뿐이었다. 그러한 자유조차 허용하지 않으려는 또 다른 자유가 있었다. 분단체제는 예외를 결정할 수 있는 힘을 항시화한 국가권력체제라 했다. 바로 비상국가체제(emergency state system)다. 누구를, 어느 세력을 ‘법 밖’으로 ‘결정’하여 호모 사케르로 호명할 수 있는 것 역시 자유다. 그것도 절대적 자유, 무제한적 자유다. 그 자유는 이명준과 김낙중의 꿈속까지도 검열하고 수색할 수 있는 자유다. 그렇기에 분단체제의 자유와 이명준·김낙중의 자유, 이 두 개의 자유는 결단코 병존할 수 없다. 분단체제가 존속하는 한, 이명준과 김낙중의 자유는 영원히 패배하는 자유, 패배할 자유일 수밖에 없으며, 오직 그들의 꿈, 소망 속에서만, 이명준의 말에 따르면 ‘자신만의 밀실’ 안에서만, 그것도 매우 위태롭게 숨쉴 수 있는 자유였다.

코리아의 분단체제는 이미 해방 직후 싹이 뿌려졌고 1950~1953년의 전쟁을 통해 순식간에 성체(成體)가 되었다. 이후 어언 70여 년이다. 해방 이후 38선이 그어졌을 때 그 어느 누구도 그토록 인위적인 분단선이 이토록 오래 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무엇이 이 분단체제를 이렇듯 장수하게 하였을까. 그 시작이 미소 냉전 때문이었다면 미소 냉전이 종식된 후에도 30여 년이나 분단체제가 지속된 이유가 무엇일까. 분단체제의 특이한 자기생산 메커니즘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분단체제의 생명은 남북 체제 안팎에 적을 생산함으로써 유지된다. 70여 년간 남북의 분단체제는 적의 존재와 생산을 항구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분단체제는 자기부정을 통해 자기를 유지한다. 분단체제는 늘 분단극복=통일을 부르짖는다. 그리고 그 분단극복=통일의 분투를 통해 분단체제는 지속된다. 그러니 분단체제란 분단의 부정, 즉 자기부정을 통해 자기를 재생산하는 괴이한 자기생산체제다.

자기부정을 통한 자기생산이란 무엇인가. 먼저 분단체제가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체제의 목적이 ‘분단의 극복’이다. 남북의 분단 권력 모두 분단을 부정하고 자기 중심의 통일, 즉 분단의 극복을 주창해왔다. 이렇듯 분단체제의 양측이 분단을 부정하고 통일을 부르짖을수록 서로에 대한 적대와 대결의 힘은 더욱 팽팽하게 당겨진다. 이것만이 아니다. 분단체제의 기득 권력을 비판하고 맞서는 힘 역시 ‘분단극복’을 표방한다. 그러나 분단체제의 기득 권력은 ‘분단체제극복’을 부르짖는 비판 세력을 기다렸다는 듯이 체제비판 세력, 내부의 적, 예외, 호모 사케르로 호명하고 잡아들인다. 자신이 내세우는 통일이 아닌 모든 통일은 적이 주장하는 통일, 적과 내통한 통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김낙중의 반복된 사례에서 보았듯 기획하고 조작하여 거대한 간첩사건, 체제전복사건, 내란선동사건으로 생산해낸다.

분단체제란 이렇듯 강고하고 교묘한 자기생산체제다. 과연 이렇듯 교묘하고 지독한 ‘마의 순환고리’를 벗어날 길이 있는가. 4·19도, 87년 민주화대투쟁도, 결국 분단체제의 작동논리에 야금야금 말려들어가 결국 다시금 강압적인 대결체제로 회귀하지 않았던가. 김낙중의 운명이 말해주듯 그의 분단극복의 선한 의지는 번번이 차가운 감옥 안의 장기수, 무기수 신세로 끝맺음되지 않았던가. 과연 2016~2017년의 촛불혁명조차 그러한 전철을 다시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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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아래의 칼럼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의장을 지낸 전문가가 작성한 내용으로, 장래에 안전한 원자력기술의 혁신을 위하여 긴호흡의 장기적 R&D 투자는 당연히 의미가 있지만, 당장 다가오는 10~20년 내의 기후재앙을 대처하기에는 경제성도 없고 근본적으로 시간이 없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아래 언급하고 있듯이 기술개발의 현실적 장애에 더하여, 아직 완벽한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는 솔루션에다 더구나 예상을 뛰어넘는 급변의 기후재앙을 통제할 대책이 없다는 점에서, 인구조밀지역인 한반도에 원자력을 추가로 건설해야 한다는 일부 정치집단의 주장은 한마디로 수백만의 생명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무책임한 협박에 다름이 아니다. 현시점에서 원자력 추가건설은 무조건 중단되어야 한다. 오히려 에너지 절약이 정답이다.


지구를 지켜내기 위한 에너지 부문의 탄소 중립 계획과 관련하여 인류는 낭비할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것이 해수면 상승, 가뭄, 화재, 극단적인 기상현상, 해양산성화 등을 포함한 기후변화의 가장 놀라운 결과와 재앙을 예방하는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러한 위협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석탄, 천연가스 및 석유와 같은 탄소를 배출하는 에너지원에 >덜 의존할 수 있도록 하는 원자력발전의 잠재력, 특히 혁신적인 원자로 설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으로 최근 몇 년 동안 첨단원자력의 설계는, 2006년 원자로 설계회사인 TerraPower를 설립한, Bill Gates와 같은 민간 투자자와 미국을 비롯한 국가와 정부의 집중적인 관심과 지원의 초점이었습니다.

이의 옹호자들은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새로운 혁신이 기술발전과 비용절감을 가져올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기후변화 의 임박한 영향을 피하려면, 핵기술의 최첨단 혁신조차도 너무 작고 너무 늦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기존발전소와 건설중인 발전소의 경제성 동향을 고려할 때 원자력은 향후 10년 안에 기후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lang="en-US">새로운 고급설계의 엔지니어링으로 본격적인 프로토-타입을 개발하는데 걸리는 긴 소요시간과 원자력을 보다 경제적으로 경쟁력있게 만들기 위한 제조기반 및 실제수요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감안할때 원자력이 배출가스를 크게 줄이기 시작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미국을 포함하여 전세계 어디에도, 20년 안>에 탄소에너지의 발자국을 제거할 만큼, 원자력기술을 광범위하고 성공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개발할 수 있는 국가는 없습니다.

 

버티기 고군분투

원자력은 현재 미국전력의 약 20%를 제공하지만 관련업계는 수십 년 동안 경제적으로 조업이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뉴욕의 인디언-포인트 발전소가 올해 4월 30일에 마지막 원자로를 정지시키면서 2013년 이후 12번째로 폐쇄되었습니다. 적어도 7개의 미국원자로가 2025년까지 추가로 폐쇄될 예정입니다. 

2020년 10월 Lazard(세계적 자산투자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에서 원자력의 자본비용은 거의 모든 다른 에너지 생산기술보다 높습니다. 원자로를 궁극적으로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고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다른 형태의 에너지 생산과 비교하여 경쟁력 있게 만들기 위한 여러 노력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고유한 일련의 물류 및 안전규제라는 장애물에 직면해 있습니다.

미국, 프랑스, 일본 및 기타 여러 국가에서 현재 가동 중이거나 건설중인 발전로는 모두 저농축 우라늄 연료로 동력을 공급받고 물을 사용하여 냉각 및 “감속”하는 발전소인 경수로의 변형입니다. 물을 사용한 “Modulation”기능으로 우라늄 연료에서 추가 핵분열을 일으킬 가능성을 개선하기 위해 핵분열 반응에서 방출되는 중성자의 에너지를 줄입니다. 캐나다는 약간 농축된 우라늄 연료를 사용하고 수소 동위원소의 일종인 중수소를 포함하는 중수로 냉각 및 조절 원자로를 운영합니다. 영국은 단일 경수로와 가스냉각식 원자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원자로는 모두 600~1,200 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대형규모의 원자로입니다.

새로운 원자로 제작사들은 원자로를 보다 작게 만들고 다양한 유형의 연료, 냉각제 및 감속재를 사용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설계 중 하나인 NuScale 원자로는 77 메가와트의 전기를 생성할 수 있는데, 수동적 안전기능을 강조하는 소형경수로가 미국의 원자력규제위원회 (Nuclear-Regulatory-Commission)의 인가절차 중에 있습니다.

NuScale설계의 첫번째 고객은 Utah주의 Associated Municipal Power Systems이며, 2027년까지 Idaho에서 발전소운영을 시작할 계획 입니다. 미국 에너지부는 13억 5500만 달러의 보상예산으로 상기 프로젝트를 지원했습니다.

NuScale은 혁신적인 신규 원자로설계 공급업체가 라이선스 프로세스에 참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른 국가들의 승인과정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미국 원자력규제 위원회(Nuclear Regulatory Commission)는 상기 특이한 설계의 일부를 허가하기 위해 별도의 새로운 규정을 마련하기위해 노력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의 자본비용은 거의 모든 다른 에너지 생산기술보다 매우 높습니다.

NuScale사의 나트륨냉각 고속원자로는 기존의 다른 원자로설계보다 승인과정에서 앞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원자력발전의 성배로 평가되는 ‘사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연료를 생성하는’ 설계개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지난 60년 동안 8개 국가가 1,000억 달러이상의 비용으로 이러한 유형의 원자로의 여러 버전을 건설했지만, 경쟁력있게 전기를 생산할 만큼 신뢰성이 입증된 국가는 아직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에너지부는 GE-히타치 및 테라파워와 함께 아이다호 국립 연구소에서 건설할 다목적 시험원자로를 위한 상기의 설계를 승인했습니다. 비용이 30억~60억 달러로 추산되는 다목적 시험원자로는 2026년까지 연료시험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다른 스타트업 벤처기업들도 두 가지 대안적 디자인을 고려하여 왔습니다. 첫 번째는 용융염 원자로를 위한 것으로, 그 중 몇 개는 작동 중에 있습니다. 이들은 종종 리튬 또는 베릴륨과 혼합되는 불화물 또는 염화물의 염을 사용합니다. 더 유망한 것은 냉각재로 헬륨을 사용하고 감속재로 물대신 흑연을 사용하는 고온가스 원자로입니다. 미국은 1960년대와 1980년대 사이에 이런 류의 원자로 2기를 건설하고 운영하여 왔습니다. 중국, 독일, 일본은 모두 고온가스 원자로의 시험버전을 건설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른 주요 과제는 이러한 새로운 원자로가 새로운 연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연료는 사용허가를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사용 중 생산, 관리, 사용 후 저장 및 폐기해야 합니다. 일부 새로운 원자로설계는 현재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거의 없는 우라늄의 고농축을 필요로 하는 연료의 사용에 의존합니다. 고농축 연료는 핵무기 확산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켰고 국제적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까다로운 연료공급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해도 비전통적인 원자로 설계는 심각한 건설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새로운 고급설계의 대부분은 수익성을 달성하기 위해 적절한 부지와 효율적인 건설의 가용성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원자력 산업은 기나긴 건설시간과 비용초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1979년 쓰리마일 아일랜드 사고 이후 미국에서 대부분의 원자로 건설기간은 10년을 넘어섰고 건설비용은 무섭게 치솟았습니다.

 

원자력 혁신으로는 지구를 구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조지아의 Vogtle 공장은 미국에서 유일하게 건설중인 신규원자로입니다. 이 발전소의 원자로 2기는 초기가격이 140억 달러였으며 건설 5년 후인 2016년과 2017년에 조업을 시작할 예정이었습니다만, 현재까지 여전히 건설진행 중에 있으며, 2022년까지도 발전조업을 시작하지 못할 수 있고 최종 비용은 25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최근 유럽의 새로운 건설경험도 비슷합니다. 프랑스의 EPR 원자로설계는 프랑스와 핀란드 모두에서 여러 차례 지연과 막대한 비용초과를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대형 프로젝트는 프로그램 관리, 품질관리 및 규제문제에 있어 오랜 지연을 초래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미국도 이런 문제에 예외가 아닙니다. 전세계의 원자로는 노후화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가동이 중단되었지만 신규의 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19년에는 6개의 원자로가 가동을 시작했고 13 개의 원자로가 폐쇄되었습니다. 2020년 기준으로 전세계에 가동중인 원자로 408기의 평균 연령은 31년이며 이중 81기는 41년 이상입니다.

이러한 모든 이유 때문에 원자력은 기후변화에 대한 단기 또는 중기적 대책이 될 수 없습니다. 더욱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비용이 경쟁력 있는 원자로를 건설하는 데 얼마나 많은 경제적, 기술적, 물류적 장애물이 존재하는지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원자력 에너지가 기후변화의 최악의 영향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온실가스의 배출량 감소수준을 달성하기에는 신속한 진행이 가능한 다른 형태의 발전방식을 대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원자로설계 및 핵연료의 혁신은 여전히 상당한 연구와 정부지원을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한계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은 여전히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잠재력이 있으며 이는 평가할 일입니다. 그러나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원자력의 능력에 대한 근거없는 고집 대신에, 우리는 진정한 위협인 기후위기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10년이나 20년 이후가 아니라 당장 사용이 가능한 비탄소방출(재생) 에너지기술에 대한 강력한 정부지원이 필요합니다. 1분도 지체할 수 없습니다.

 

출처: Foreign Affairs(포린어페어) on 2021-07-08.

Allison Macfarlane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공공정책 및 국제문제학부의 교수 겸 이사직을 맡고 있다

월, 2021/07/26-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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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창당 100주년을 맞이한 공산당이 주도하는 현대중국은 1980년대 개혁개방을 추진한 이래 2001년 WTO에 정식으로 가입하고 지난 수십 년간 고도의 성장을 이룩하면서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경제지표상으로 2010년대 중반에 이미 구매력지수 PPP기준으로 미국경제력을 추월하였고, 공칭의 달러기준으로 평가하는 경제규모도 2030년 이전에 미국을 앞지르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클린턴 시절만 하여도 중국은 경제성장과정에서 자체의 요구에 따라 민주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서구체제에 편입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시진핑의 시대가 개막되면서 공산당 지배체제가 오히려 강화되었고 신형대국으로서 러시아와 함께 상해협력기구SCO를 결성하고 일대일로BRI를 통하여 국제사회에 대한 상응한 역할과 영향력을 확대하는 단계에 이르자, 오바마 정권은 급기야 대서양 중심에서 아시아로 회귀  Pivot to Asia의 전략으로 회귀하기 시작하였고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America-First(미국우선주의)를 외치었던 트럼프 시절에는 국가안보전략에서 중국을 현존하는 최대의 위협으로 규정하며 무역보복을 포함한 강압적인 조치와 제재를 취하기 시작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시절의 거칠고 일방적인 대중정책을 계승하되 이를 세련되게 정리하면서, 미국이 돌아왔다 – America is Back in Alliance’라는 구호로 위기에 빠졌던 대서양 양안의 기존동맹을 재정립하고, 주요 전략거점으로 부상한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기존의 정치군사적 파트너십 성격인 Quad에 다양한 동맹의 성격을 부여하면서 이를 확대 강화하고자 하는 한편,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투명성을 내세우면서 가치개념의 전략을 통하여 중국을 세계에서 고립시키려는 소위 하이브리드 전쟁을 전면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은 자신주도의 패권유지를 지속하기 위하여 새로운 형태와 접근방식의 신냉전을 전개하면서 21세기 인류사회의 전망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과거의 트럼프가 미국 블럭버스터 영화인 록키 또는 터미네이터 타입이었다면, 현재의 바이든은 영화 대부의 주인공 알-파치노처럼 교활하고 치밀한 작전을 펄치고 있는 셈이다. 이에 7월 20일자 뉴욕타임즈는 Trump was Bad, however Biden is even worse to China  중국에겐 트럼프도 나쁜 상대이었지만 바이든은 최악의 상대이다’라는 기사를 게재하였으며 포린폴리시의 전 편집장인 Jonathan Teppermann은 Bidens Dangerous Policy라는 제목으로 중국에 대한 바이든의 편집광적인 냉전사고를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대중국 전방위적 하이브리드 전쟁양상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산업공급사슬의 차단과 첨단기술의 봉쇄에 이어 신장의 인종학살 및 강제노동에 대한 언론조작 그리고 우한연구소의 코로나바이러스 발생설WIV 등이 자리잡고 있다.

신장과 관련하여 필자는 지난 상반기 다른백년의 플랫홈에 10여 차례에 걸쳐 해외 칼럼과 다양한 시각을 소개하면서 미국과 영국이 주요 언론매체들을 동원하여 내용을 심각하게 과장하고 왜곡하는 것을 넘어서 없는 사실까지 조작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고발한 바 있으며, 이로 인하여 현재까지 미국의 Facebook 등 온라인 매체에게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한편, 위그르 족을 포함한 신장지역의 소수민족들은 실제로 역사이래 가장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고 있다고 중국당국은 밝히고 있고, 현지를 방문한 제3국의 많은 인사들도 이를 재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의 핵심주제인 우한연구소발생설 WIV에 대하여 필자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개진하고자 한다. 우선 아래의 2019년 3월 이래 코로나바이러스의 흔적과 발생에 관한 기록을 참조하여 주시길 바란다.

이미 2019년 봄철,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유럽각지에서 코로나바이러스 또는 이의 항체가 발견되고 있었으며, 11월에는 프랑스 등에서도 다수의 코로나-19 추정 제로환자(Patient-Zero)들이 발생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별도로 2019년 가을 초입에 이미 대만의 감염전문가인 치과의사가 기존의 인플루엔자와는 전혀 다른 코로나바이러스의 증상이 미국과 하와이를 다녀온 관광객들에게 다수 발견되었고 3-4개의 변종이 확인되었다고 공개적인 방송을 통하여 발표하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예전의 독감과는 다른 증상을 보이는 호흡기 환자들이 급증하면서 사망자도 속출하고 있었다. 

한 예로 미국 동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의 시장이 2019년 10월 경 신약발표회에 참석한 후 견딜 수 없는 감기몸살과 발열로 인하여 10여 일 고생 겪은 다음, 2020년 2월 코로나 역학조사에서 이미 자신의 몸에 항체가 형성되었다는 판정을 듣고 지난 10월 자신이 앓은 몸살감기가 바로 코로나바이러스임을 확신하는 내용을 미국언론에 기고한 바도 있다. 참조로 중국당국이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생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일자는 2019년 12월 8일이다.

이를 종합해보면 이미 2019년 봄 또는 여름부터 세계도처에서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질환의 초기증상이 발생하였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는 대부분 감염분야의 전문가들과 기후생태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일치하는 것으로, 코로나-19는 자연생태를 마구 해쳐온 인류의 지나친 산업활동과 이로 인한 생태환경적 급변에 대한 자연계의 대응 즉 보복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해석된다. 

세계 여러 곳에서 2019년 봄과 여름에 걸쳐 다발적으로 발생한 코로나-19 초기의 바이러스 종들이 몇 개월간 잠복과 매개와 진화의 과정을 거쳐 인체에 치명적인 상태로 발전하면서 때마침 2019년 11월에 국제군인체육대회를 개최한 대도시 중국의 우한을 거점으로 전세계로 확산된 것으로 일단의 추정이 가능하다. 당시 체육대회에 참여한 군인경기자들의 숙소가 문제가 된 화난해산물시장과 가까이 소재하고 있었으며, 참가자 상당수가 별난 장소인 화난시장을 관광차 방문한 것으로 알려지면 이러한 추정의 가능성을 높여 준다. 

상황이 점차 밝혀지면서 유엔산하 국제보건기구인 WHO연구팀과 중국연구진이 1개월 넘게 조사를 진행한 이후, 이의 활동을 근거로 지난 봄에 WHO 조사팀이 우한연구소의 진원설WIV에 대하여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하다(extremely unlike)고 공식적으로 밝혔고,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하여 전세계를 대상으로 광범한 제2단계의 조사연구와 이를 위한 지구적인 협력체제가 긴요하다고 설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서구의 언론매체들이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조작과 가설수준의 정보에 의존하여 우한연구소의 진원설WIV을 자가발전시키는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첫째, 중국은 초기대응에 성공하여 단시일 내 정상으로 복귀한 반면에,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하여 여전히 전전긍긍하는 서구사회의 정치지도자들은 자신들의 패착과 무능에 대한 면피성 구실과 희생양이 필요한 상황이다.

둘째, 미국과 서구는 백신기술을 두고 상업주의와 자국이기주의를 드러내는 동시에, 땅에 떨어진 위상을 되찾고자 백신패권주의라고 칭할 만큼 이를 국제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반면에, 중국은 국제적 협력프로그램인 코백스COVAX의 적극참여를 통하여 직접 제3세계 100여 개국에 백신지원을 제안하고 이를 수용한 50여 개국에 5-6억 회분을 제공함으로써 제3세계의 격한 호응을 받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상황이 미패권에 대응하는 중국의 도전기반 즉 다자적 협력의 국제질서의 출발점이 되는 것을 극히 우려하면서, 근거도 없이 중국백신의 무용설과 더불어 WIV가설을 퍼트리고 있다.

셋째, 반중 공포감과 혐오감을 이용하여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 그리고 동양인들은 파렴치한”라고 호칭한 트럼프의 저질 악성정치가 그를 구세주로 받드는 QANon조직과 더불어 미국전역에 뿌리를 내리고 미국 국내정치의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는 주요 요인으로 자리를 잡아가자, 바이든의 입장에서 이를 무조건 부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오히려 이를 공개적으로 대응하고 역으로 활용할 필요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시 종합하여 보면 코로나-19의 바이러스는 2019년 봄과 여름에 걸쳐 세계도처에서 다발적으로 발생하여 점차 인간에게 잠복 전이 진화하면서 치명적인 형태로 발전했으며, 마침 11월에 중국의 우한에서 있었던 국제군인체육대회를 계기로 전세계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군사적 바이오실험을 통한 인공조작 또는 실수로 인한 누출사고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며, 이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지구적 협력체제를 통한 제2, 제3의 전문적 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이는 미래의 팬데믹 재발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여기에 특별히 주목을 받는 장소가 비로 미국 메릴랜드 주에 소재한 미군 바이오연구소 Port De-Dtrick Lab이다. 

상기 장소가 주목을 받는 까닭은 2019년 가을에 오수처리의 시설기반을 보강해야 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미군 최대의 바이오 기지를 장기간 폐쇄하였다는 것이 결코 합리적인 설명이 되지 못한다는 점과 더불어 당시에 상기 연구소에 근무하였던 인원 몇 명이 우한국제체육대회에 참가하고 화난시장을 방문한 것을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이 보였던 역사적 행보가 혐의의 가능성을 더욱 짙게 한다. 태평양 전쟁 당시 만주에 소재하였던 일본군 731부대의 생체실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사실이다. 서시 등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하늘과 별과 바람의 시인 윤동주도 731부대에서 희생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은 현대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도무지 행할 수 없는 인간생체실험을 통해 얻은 731부대의 모든 실험자료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제1급 전범이었던 일본천황의 제도를 묵인하였으며, 실제로 수천에서 수만 명의 인명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천인공로할 731부대의 책임자들은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이후 존경을 받는 사회인사로 천수를 누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은 731부대에서 넘겨받은 자료를 기반으로 이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등에서 콜레라 장티푸스 흑사병 그리고 유행성출혈열 등 전염병 세균을, 의도적이거나 누출사고를 가장하여, 사용하고 전파해 온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전쟁국가인 미국은 저렴하고 가장 효과적인 생화학무기로서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한 유혹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최근 주한미군은 자신들의 전용부두인 부산항에서 최근까지 수백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가공할 치사병원체인 탄저균 실험을 한국정부에 통보도 없이 극비리에 진행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우리를 경악시킨 바 있다. 이의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유튜브 동영상 서울대 수의학 우희종 교수 강연내용 <미국세균무기(탄저균) 현황과 한국> 등을 참조해 주시길 요청한다.

수십 억의 인류를 고통으로 몰아놓고 현재까지 4백만 명 이상 생명을 앗아간 코로나-19 출현의 배경과 원인을 반드시 밝혀내어야만 제2, 제3의 팬데믹 상황을 예방하고 대비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과 서구의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진영을 넘어서 중국과 러시아의 과학자들 포함하여 지구촌 모든 관련자들이 모두 총집결한 국제적인 협력체제를 통하여 진실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따라서 중국의 우한연구소 뿐만 아니라, 메릴랜드의 Port Detrick Lab 포함하여 전세계 도처에 소재한 미군의 바이오연구소들에 대해서도 예외없이 일반적이고 전반적인 탐색과 재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서구가 중국에게 요구하는 범위와 절차와 수준의 재조사와 탐색이 미군 산하의 모든 생화학무기연구소에 대해서도 반드시 이루어져 한다. 

만약 미국이 자국의 안보라는 구실로 이를 거부한다면, 수백만 수천만의 인류를 희생시킨 팬데믹의 진실을 은폐한 악성 범죄국가로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이 칼럼은 7/24일자 프레시안에 사전 기고된 글입니다

이래경

수, 2021/07/28-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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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불명예스럽게 떠났지만 모든 징후는 그가 차기 대선에 출마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지난 선거결과에 대한 그의 경멸은 이제 공화당의 신조가 되었습니다. 연방의회의 점거사태로 마침내 그에게 충성을 유지했던 공화당원들의 마법을 깨뜨릴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상황은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걱정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한 가지 큰 불안의 근원 때문에 우리가 밤에 잠을 설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만, 미국 안팎에서 그토록 지독한 편집광적인 에너지가 한때 한 사람에게 바쳤고 그가 어떻게 우리의 꿈까지 방해하게 되었는지를 되돌아 보면, 오늘 시점에 우리가 도널드 트럼프에게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매우 위안이 됩니다. 사실인가요? 우리가 그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사실, 그가 커다란 주황색 글씨로 떠벌리는 일은 소설-미디어SNS의 타임라인에서 사라졌고 Facebook과 Twitter의 경영진에 의해 추방되었으며, 이러한 금지조치 때문에 겨우 자신의 블로그를 운용하는 것으로 위축되어 있습니다. 과거 많은 Trump 기업들이 파산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정치행위는 조용히 포기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은 명백히 실패이며, 현재까지 한 달 이상 지속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매일 아침 트럼프가 무슨 새로운 황당함을 저질렀는지 보기 위해 핸드폰의 화면을 손가락 사이로 엿보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일상의 시야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그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비극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좋든 나쁘든, 달의 인력에 의해 조수처럼 끌려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트럼프는 여전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는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미래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기 때문에 그를 과거에 묶어둘 수는 없습니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그가 차기 대선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고 당의 차기 백악관 후보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시기상조이지만 다음 선거를 위해 공화당 후보로 추정되는 후보들의 여론조사를 살펴봅시다.

그는 항상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공화당원의 76%가 그를 호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 주 오하이오주에서 트럼프가 지지하는 후보가 보다 나은 자격을 갖춘 경쟁자를 물리치고 공화당 하원의원 예비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았습니다.  부시 대통령 시절 연설문 작가였던 데이비드 프럼(David Frum)가 트럼프 에 대해 “그가 죽거나 능력이 제거되지 않는 한 그가 2024년 가장 유력한 후보” 라고 말한 것은 사실 그대로 입니다.

미국인이 예방접종을 받았는지 여부 역시 그가 바이든 또는 트럼프에게 투표했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는 지표입니다.

장래에도 당신의 수면을 계속해서 괴롭힐 위험이 있다는 것은 끔찍한 전망입니다. 2024년 선거일은 조 바이든의 82번째 생일을 불과 며칠 앞둔 날입니다. 대통령이 출마하면 그는 86세가 될 때까지 집무실에 남아 있게 됩니다. 많은 미국인들은 그가 대선출마의 요청을 수락하는 일에 회의적일 것입니다 (한편, 78세의 나이에 해당하는 트럼프는 상대적으로 젊은 후보로 출마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솔직히 대선후보가 바이든이든 카말라 해리스이든 또는 어떤 민주당 인사가 되든, 트럼프는 선거문화에 익숙한 선동의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2016년의 대선은 그에게 승리를 안겨주었고 2020년에는 위험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상기의 시나리오는 시간상 아직 멀었고 너무 우울하다고 인정하고,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고 가정해 봅시다(트럼프가 대선출마를 않는다는). 그렇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트럼프가 절대로 출마하지 않더라도 트럼피즘은 이미 미국인들의 핏속에 강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1월 6일의 연방의회 점거의 반란시도로 마침내 트럼프의 주문을 깨뜨릴 수 있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역으로 그가 거칠고 조잡하고 편협하고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이기적일지라도 궁극적으로 무해하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트럼프에게 충성을 유지했던 공화당원들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았습니다.

낙관론자들은 민주적 선거의 결과를 뒤집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군중들이 연방의회 건물을 습격하도록 폭도를 선동하는 미국대통령을 목격하는 것으로 마침내 대부분의 공화당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트럼프는 결국적으로 공화국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하원의 공화당의원들은 트럼프의 범죄에 대한 탄핵에 반대표를 던졌고 상원의 공화당의원들은 그의 무죄선고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이를 반대하던 의원들은 배척당했습니다. 보수강경파의 딸이라는 가계의 후광도 위대한(?) 지도자에 반대한 배경으로 하원지도부에서 제명된 리즈 체니를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음모이론가인 Marjorie Taylor Greene과 그녀의 동지인 Matt Gaetz가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사실 후자는 성매매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 졌습니다만, 중요하고 유일한 리트머스 테스트인 트럼프에 대한 충성도를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2020년 선거가 도난당했고 도널드 트럼프는 진정한 대통령으로 남아 있으며 바이든은 찬탈자라는 근거없는 주장은 한때 트럼프의 열광적인 망상에 불과했고, 패배의 진실로부터 상처받은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메커니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Stop Steal”은 이제 공화당의 신념이 되었습니다. 9개월 후, 공화당원 대다수는 모든 증거와 유권자 사기에 대한 모든 주장이 근거가 없다는 일련의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승리하고 바이든은 패배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민주주의 의지를 강탈하기로 결정한 바이든이 아니라 트럼프였다는 최근의 확인조차도 충실한 사람들의 신념을 바꾸지 못할 것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2월 법무장관 대행에게 “선거는 조작되었다고 선언하고 나머지 일은 나에게 맡기라”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편, 애리조나 주 상원의원들은 선거관리인들을 독방에 감금할 것을 촉구했었습니다.

공화당 지지집단이 2020년의 트럼피즘에 충성스럽게 고집하는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코로나-19의 현실을 부정하고 바이러스를 저지하는 데 필요한 일(백신접종)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인이 예방접종을 받았는지 여부에 대한 가장 큰 예측지수는 지난 11월 그들이 바이든과 트럼프 중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여부입니다. 지난달 기준으로 민주당원의 86%가 한번 이상 접종을 맞았습니다만, 공화당원은 45%에 불과합니다.

공화당 정치인들이 백신접종을 나치의 유대인박해 또는 KGB의 방문노크에 비유하고, 개별 주차원에서 공화당의원들이 ‘백신을 너무 과도하게 밀어붙였다는 이유’로 공중보건공무원을 해고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트럼피즘에는 두 가지의 신조는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전문과학지식에 대한 경멸과 팩트에 대한 무시입니다. 전문가가 과학자든 선거관리자든, 혹은 사실이 바이러스의 본질과 관련이 있는지 아니면 지난 11월에 투표한 총계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가 하나입니다. 트럼피즘은 사실을 무시하고 강력한 조타수에게 무릎꿇을 것을 요구합니다. 통치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은 진리이지 이들에게 과학과 팩트는 진리가 아닙니다.

때때로, 자신이 속한 정당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는 공화당 인사들을 만납니다. 자신의 주 소속 의료관계자가 제공한 백신접종의 필요성에 대한 브리핑을 외치는 아칸소 주지사의 얼굴을 조명한 비디오 장면은 지켜볼 가치가 있습니다. 그 순간 주지사는 자신이 속한 공화당이 더 이상 과학이나 민주주의를 믿지 않으며 트럼피즘이라는 바이러스가 모든 장기를 감염시켰다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트럼프 자신의 복귀여부는 실제로 부차적인 주제이나 트럼피즘이라는 질병은 이미 미국정치계의 절반을 차지하는 정당을 집어삼켰고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출처 : The Guardians(영국 가디언) on 2021-08-06.

Jonathan Freedland

가디언 지의 정치분야 정기 기고자

수, 2021/08/2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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