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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조동(朝東)100년] ③ 조선일보 1면엔 일왕과 일장기가 얼마나 등장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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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조동(朝東)100년] ③ 조선일보 1면엔 일왕과 일장기가 얼마나 등장했나

admin | 화, 2020/03/10- 01:40

조선일보 사시(社是) 가운데 첫째가 ‘정의옹호(正義擁護)’다. 조선일보는 정의옹호를 사시로 삼은 이유에 대해 “민족지로서 민족의 정의를 으뜸가는 가치로서 정치적 정의, 경제적 정의, 사회적 정의를 옹호하겠다는 신념의 피력”이라고 설명한다.

민족지로서 민족의 정의를 으뜸가는 가치로 내세우는 조선일보가 과연 그 ‘사시’를 어떻게 구현해 왔는지 살펴보자.

1937년 1월 1일, 조선일보 1면 한가운데에 당시 일본왕 히로히토 부부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일제강점기였지만 그래도 ‘민족지’를 내세우며 한글 발행을 하는 신문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나 시도할만한 지면 배치였다.

자칭 ‘민족지’ 조선일보, 1937년 1월 1일 1면에 일왕부부 대형 사진 올려

이날 자칭 ‘민족지’ 조선일보는 1면 제호 옆에 눈 쌓인 소나무 그림을 배치하고, 중앙에 일왕 부부 사진을 올렸다. 사진은 봉황 이미지와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국화 문양으로 장식됐다. ‘원단(元旦)‧궁중(宮中)의 어의(御儀)’, 즉 ‘설날 아침 궁중의 의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왕을 ‘천황폐하’로 칭했고, 임금의 손을 높여 부르는 ‘어수(御手)’, 임금의 옷을 높여 부르는 ‘어포(御袍)’ 같은 극존칭 단어를 동원해 일왕을 찬양했다. 일왕 부부 사진 왼쪽에는 당시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의 사진과 함께 그의 신년사를 빼놓지 않고 실었다.

▲ 1937년 1월 1일, 조선일보는 처음으로 1면에 히로히토 일왕 부부의 사진을 크게 실었다. 조선일보는 이 때부터 1940년 8월 폐간 때까지 해마다 새해 1면을 일왕 부부의 사진으로 채웠다.

동아일보는 이듬해인 1938년 1월 1일부터 일왕 부부 사진 1면 게재를 시작했다. 1면 제호 옆부터 일왕 부부의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배치했다.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봉황과 국화 문양으로 일왕 부부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동아일보 1938년 1월 1일부터 1면에 일왕부부 사진 등장

동아일보는 이날 1면 ‘대본영하(大本營下)에 어월년(御越年), 황공(惶恐)-천황폐하어일상(天皇陛下御日常)’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일왕을 ‘천황폐하’ 또는 ‘대원수폐하’로 표기했고, 임금의 뜻을 높여 부르는 ‘성지(聖旨)’, 임금의 걱정을 높여 부르는 ‘성려(聖慮)’, 임금의 나이를 높여 부르는 ‘성수(聖壽)’라는 극존칭을 사용해 일왕 히로히토를 칭송했다.

▲ 히로히토 일왕 부부를 1면 전면에 실은 동아일보 1938년 1월 1일자 신문. 봉황과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국화 문양 등으로 장식했다.

두 신문은 이후 1940년 8월 폐간때까지 매년 1월 1일, 1면 중앙에 일왕 부부의 사진을 실었다. 일왕 부부 사진을 장식하는 배경이나 문양은 해가 갈수록 화려해졌다. 봉황은 물론, 떠오르는 태양, 눈 쌓인 소나무, 날아오르는 학, 구름,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국화 문양 등이 일왕 부부의 존엄을 보조하는 상징으로 다양하게 동원됐다.

▲ 일왕 부부가 등장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지면.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939년 1월 1일자 동아일보, 1940년 1월 1일자 동아일보, 1938년 1월 1일자 조선일보, 1940년 1월 1일자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1939년과 1940년 1월 1일자 1면에는 예복이 아닌 군복을 입은 일왕의 사진을 실었다. 일왕을 전쟁을 지휘하는 ‘대원수폐하’로, 즉 중일전쟁 시기 최고 군사지휘관으로서의 ‘천황’을 강조한 것이다.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조선일보가 독자들에게 “황국신민으로서 침략전쟁의 수행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 1939년 1월 1일자 조선일보 1면. 예복이 아닌 군복을 입고 있는 일왕이 눈에 띈다.

조선과 동아일보, 두 신문이 일왕 부부의 사진으로 1면을 장식한 것은 1월 1일만이 아니었다. 히로히토 일왕의 생일(천장절)인 4월 29일에도 1면에 일왕 부부의 사진을 배치했다. 조선일보는 1937년과 1938년, 동아일보는 1938년, 1939년 4월 29일 일왕 부부의 사진을 싣고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어휘를 동원해 일왕 생일을 ‘봉축’했다.

▲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일왕 생일(천장절)에도 1면에 일왕 부부의 사진을 실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937년 4월 29일자 조선일보, 1938년 4월 29일자 조선일보, 1938년 4월 29일자 동아일보, 1939년 4월 29일자 동아일보.

조선일보, 1940년부터 제호 위에 일장기 새겨, 모두 10건 확인

일제를 향한 조선일보의 충성은 1940년 1월 1일 지면에서 극에 달한다. 바로 조선일보 제호 위에 일장기를 올려 놓고 인쇄한 것이다. 신문 제호 위에 일장기를 새겨 넣은 것은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나 경성일보, 또는 일본 신문들이 하는 행태였다.

▲ 1940년 1월 1일자 조선일보 1면. 제호 위에 일장기를 올려놨다.

뉴스타파 조사 결과, 일제강점기 조선일보가 제호 위에 일장기를 올려놓은 지면은 모두 10건으로 확인됐다. 새해 첫날은 물론 주요 기념일마다 제호 위에 일장을 새겨 넣었다.

1940년 1월 1일, 3일, 5일 그리고 우리의 개천절과 비슷한 일왕 기원절인 2월 11일, 일제 육군기념일인 3월 10일, 일왕 생일(천장절) 다음날인 4월 30일, 일제 해군기념일인 5월 27일, ‘지나사변(중일전쟁)’ 3주년인 7월 7일에 특별히 일장기를 새긴 것으로 나타났다.

▲ 제호 위에 일장기를 올린 조선일보 지면. 왼쪽 위부터 1940년 1월 3일자, 1월 5일자, 2월 11일자, 3월 10일자, 3월 21일자, 4월 3일자, 4월 30일자, 5월 27일자, 7월 7일자.

뉴스타파는 일제가 조선의 젊은이를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몰았던 시기에 조선과 동아, 두 신문은 어떤 보도행태를 보였는지 다음 편(3월 11일)에 보도한다.

뉴스타파는 조선일보 창간일인 3월 5일부터 동아일보 창간일인 4월 1일까지 조선과 동아 두 신문의 정체를 알리는 기획시리즈를 연재하고 이를 토대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해 개봉할 예정이다.

<2020-03-09> 뉴스타파 

☞기사원문: [조동(朝東)100년] ③ 조선일보 1면엔 일왕과 일장기가 얼마나 등장했나 

※관련연재 

[조동(朝東)100년] ② 조선일보 윤전기는 왜 철거됐나 

[조동(朝東)100년] ① 뉴스타파, 조선 · 동아 정체 알리는 다큐영화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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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25편 :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 24편 : 광복군 제3지대가 _ 김일진(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 장군, 광복군 오광심 지사 아들)

☞ 23편 : 추도가 _ 원형재(원심창 선생 아들)

☞ 22편 : 한반도가 _ 나중화(나창헌 선생 아들)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 국치추념가 _ 이준식 독립기념관장(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외손)

☞[출처] YTN Radio: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

토, 2021/08/1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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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사 작곡 교가·일본신사 잔재 등…교육청 “후속 조치는 자율”

친일 인사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 [학교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인천 지역 학교에 대한 일제 잔재 조사가 지난해 본격적으로 시행됐지만 별다른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15일 인천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4∼12월 지역 초·중·고교와 특수학교 52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모두 81건의 일제 잔재 사례가 파악됐다.

이 중 22건은 친일 작사가나 작곡가가 만든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 사례였다.

특히 ‘섬집 아기’와 ‘봄이 오면’의 작곡가로 유명한 이흥렬이 만든 교가도 7개 학교에서 사용되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흥렬은 일제강점기 일본음악의 수립을 목적으로 창설된 대화악단 지휘자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또 다른 친일 인사인 김동진이 만든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도 6곳에 달했다. 김씨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음악 활동을 했다가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친일 인사의 동상이나 일본 신사 잔재 등 일제 관련 기념물이 교정에 남아 있는 학교는 3곳으로 파악됐다.

나머지는 서운, 송월, 백마, 작약도 등 일제강점기에 일본식으로 변형된 지명이 교명과 교가 가사에 남은 사례였다.

시교육청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각 학교에 알렸으나 개선은 권고 사항에 그쳐 눈에 띄는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교 동문회와 학교운영위원회 등 내부 협의가 필수적인 만큼 교내 일제 잔재를 없애기까지는 시일이 좀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천황을 섬기던 신사의 돌기둥과 석등이 교정에 남아 있는 인천 중구 모 고교의 경우 별도의 시설물 철거 계획을 논의하지는 않은 상태다.

인천 연수구 모 중학교에는 독립운동가에서 친일파로 전향한 윤치호의 동상이 세워져 있지만 ‘나쁜 역사도 역사로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철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동창회 차원에서 재원을 마련해 학교 설립자 동상을 세운 것이라 학교 마음대로 없앨 수 없다”며 “내부 검토를 여러 차례 했지만 역사를 기억하자는 차원에서 동상을 남겨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친일 인사가 작사·작곡한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들도 대부분 즉각적인 개선 조치에는 나서지 못했다.

친일파가 교가를 작곡한 인천 연수구 모 고교는 추후 학생, 학부모, 동문회와의 협의를 거쳐 교가 일부를 개사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인천 동구 모 고교도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에 대해 별다른 개선 계획을 세우지 못한 상태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일선 학교에 일제 잔재 조사 결과를 보고서 형태로 알리기는 했지만 후속 조치는 자율적으로 하도록 했다”며 “이후 각 학교의 개선 여부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은지 기자 [email protected]

<2021-08-15> 연합뉴스

☞기사원문: 인천 학교들, 일제 잔재 남아 있어도 개선은 ‘거북이걸음’

※관련기사

☞서울신문: 친일파가 만든 교가…인천 각급 학교 일제 잔재 파악하고도 ‘개선‘ 소극적

화, 2021/08/17-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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