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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톱] ‘위안부 최초 보도’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 패소했지만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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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톱] ‘위안부 최초 보도’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 패소했지만 지지 않았다

admin | 목, 2020/03/05- 00:00

[김언경 칼럼]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의 명예훼손 소송 도쿄 2심 재판 결과에 부쳐

* 이 글은 위안부 존재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의 명예훼손 소송을 지지하는 활동을 해 온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의 칼럼입니다.

지난해 10월, 저는 한겨레 전 부사장이신 원로 언론인 임재경 선생께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에 대해 처음 들었습니다. 임 선생은 그가 일본에서 재판을 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그를 지지하기 위해 ‘우에무라 다카시를 생각하는 모임’(우생모)을 만들었는데 그들이 일본에 가니 “한국의 대표적 언론단체인 민언련 사무처장이 함께 가면 좋겠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불매운동이 전개되는 와중에 3박4일이나 일본을 다녀온다는 것이 부담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권유로 저는 우에무라 기자의 자서전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푸른역사)를 읽었고, 결국 함께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2월, 삿포로 재판소 판결을 지켜보기 위해서 저는 또 다시 우생모와 함께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그의 도쿄 재판소의 2심에서 또 다시 패소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직 판결문에 대한 상세한 분석은 전해 받지 못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매우 큽니다. 앞으로 이 문제를 더욱 공론화해야겠다는 생각에 제가 느낀 우에무라 기자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위안부 문제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보도한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는 누구이며, 어떤 재판인가?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62)는 <아사히신문> 기자로 재직 중이던 1991년 8월 11일 고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보도했습니다(우에무라 다카시 “27년 전으로 돌아가도 다시 위안부 문제 보도하겠다” 뉴스톱 인터뷰 기사 참고). 그의 보도 사흘 뒤 김학순 할머니가 실명으로 기자회견을 열어서 우리에게도 많이 보도가 되었지만, 우에무라 기자의 보도는 한국보다 앞서 보도한 특종이었습니다. 그의 기사는 위안부 문제를 한‧일간 주요한 외교문제로 만드는데 주요한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2014년 1월, 느닷없이 우에무라 기자에 대한 일본 우익들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도쿄기독교대학의 니시오카 스토무 전 교수가 <주간문춘>에, 저널리스트라 불리는 사쿠라이 요시코가 <주간신초> 등을 통해 우에무라가 날조기자라고 비판한 것입니다. 우에무라 기자의 1991년 보도가 날조라는 주장의 배경은 단순합니다. 우에무라 기자가 쓴 당시 기사의 첫 구절에 “여자정신대라는 명목으로 전장으로 연행돼”라는 부분이 나오는 것을 트집 잡으며 정신대와 위안부를 구별하지 않고 썼다는 것이죠.

하지만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문제를 폭로하셨던 1990년대 당시에는 모두들 위안부와 정신대라는 표현이 혼용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에 창립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의 전신)도 단체명에 ’정신대‘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보면 이는 분명합니다. 우에무라 기자도 당연히 “당시 정신대라는 표현은 당시 일본과 한국 언론에서 모두 일반적으로 썼던 표현”이라고 설명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밖에도 우익들은 우에무라 기자의 부인이 한국인이라는 점 등을 빌미로 그가 사적인 의도를 가지고 기사를 날조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보도로 인해서 우에무라 기자는 우익들의 공격에 노출되었습니다. 해당 보도들이 나올 당시, 우에무라는 아사이신문에 사표를 내고, 한 대학 강사로 부임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당 학교에 날조기자를 고용하지 말라는 항의가 이어져 그의 임용은 취소되었습니다. <아사히신문>은 그의 기사가 날조가 아니라는 점을 보도했지만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우익들은 ‘일본의 매국노’라며 그에 대한 공격을 이어갔고, 심지어 고등학생인 딸에게 살해 협박까지 했습니다.

명예 회복을 위한 재판, 그러나 두 재판소 모두 2심까지 패소

이렇게 일본 우익으로 인한 공격에 시달리던 우에무라 기자는 자신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 명예훼손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재판은 니시오카 스토무와 <슈칸분춘>(週刊文春)을 대상으로 도쿄 재판소에서, 사쿠라이 요시코와 <슈칸신초>(週刊新潮) 등을 대상으로 삿포로 재판소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삿포로재판소 1,2심 모두 우에무라 기자가 패소했고, 도쿄재판소도 1심 패소 이후 오늘(3월 3일) 2심 결과가 나왔는데, 마찬가지 결과였습니다.

두 재판소 모두 우에무라의 사회적 평가가 떨어진 것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익들이 ‘우에무라는 날조기자다’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으며,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안이기 때문에 명예훼손은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한 ‘상당한 이유’ 그 무엇도 전혀 ‘상당한 근거’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변호인 측은 두 항소심 재판 모두에 대해서 “최고재판소(일본의 대법원)는 명예훼손 재판의 경우 진실 상당성을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재판소가 추론으로서 상당한 합리성이 있다고 판결했다”고 평하면서 이는 판례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늘 재판 이후 우에무라 씨와 변호인 측은 즉각 상고하겠다고 밝혔기에, 이제 두 사안은 일본의 최고재판소에서 다투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말을 하는 사람들일까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의 삿포로 재판을 방청하는 과정에서 저는 사쿠라이 요시코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삿포로 재판은 사쿠라이 요시코와 그의 글을 출판해 준 3개의 출판사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쿠라이 요시코는 영화 <주전장>에서도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대표적인 일본의 우익인사입니다. 그는 45년생이고 여성으로 베트남에서 출생하여 하와이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의 도쿄 지국에서 근무한 후 1980년부터 1996년까지 니혼 TV의 저녁 뉴스 프로그램인 ‘오늘의 사건’에서 메인 캐스터로 일했습니다. 일본에서 여성 캐스터의 선구자적 존재이기에 그를 ‘저널리스트’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가 쓴 글을 번역한 것들이 제법 있던데요. 일본 ‘슈칸다이아몬드’ 2018년 3월 17일호에 실린 사쿠라이 요시코의 칼럼 <한국의 사회주의화 및 북한화가 진행 중, 문대통령과 보수파 간의 대립에 주목>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마디로 근거도 없는 허위조작정보이며, ‘프로 막말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재인이 구상하는 것은 헌법의 전면적인 개정입니다. 한국을 전혀 다른 나라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헌법 전문에는 한국을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의 국가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자유’를 삭제하고 그냥 ‘민주주의적’이라고 바꿉니다. 그렇게 하면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부호가 맞기 때문입니다.”

“(문재인의 헌법 개정 내용 중 하나는) ‘국민의 권리’를 ‘인간의 권리’로 수정하는 것인데 이것은 북한 김일성의 ‘인간중심’ 주체사상에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재인은 적어도 이념에 있어서는 한국을 북한풍의 국가로 개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연방제를 거쳐 통일국가로 향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사회주의화 및 북한화가 척척 진행중이라고 판단해도 될 것입니다.”

“경계 대상은 북한의 김정은만이 아니라 한국의 문재인이기도 합니다.”

우에무라 다카시를 생각하는 모임(우생모) 회원들이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 재판에 참석한 모습

졌지만 이기고 있는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의 재판과정

삿포로 재판소의 2심에서 패소한 날,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는 두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는 자신을 도와주고 지지하는 분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위해 함께 해주는 이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는 그 모습을 보니 숙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어 그는 “역사적으로는 이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이 재판은 일본의 전쟁범죄와 부끄러운 역사를 파헤친 언론인과 그 역사를 부인하고 다시금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가려는 일본의 보수 우익 아베 정권과의 ‘역사적’ 싸움입니다.

그리고 삿포로 재판을 응원하기 위해 두 번 일본을 방문하면서 나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에무라 기자를 지지하는 많은 일본의 시민이 있으며, 한국의 우생모 등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일본의 시민사회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작년 민언련은 일본의 무역보복 이후, 일본과 한국의 보수언론들의 하는 거짓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 토크쇼를 마련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강연을 한 민족문제연구소 김승은 책임연구자는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고 규명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시민사회의 노력이 매우 진정성 있었음을 강조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저는 실감을 하지 못했죠. 하지만 두 차례 일본 방문을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정한 사과를 촉구하며 본인의 자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양심을 지키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본 시민이 존재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선 그의 변호인단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우에무라 기자 말로는 삿포로와 도쿄에 계시는 약 270명에 달하는 변호인단이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삿포로에서 활동하는 900여명의 변호사들 중 107명이 우에무라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실제 내가 재판을 방청한 두 번의 재판 모두 상대방 변호인 측은 4명 정도의 변호인이 앉아있는 데 비해서, 우에무라 측 변호인은 그야말로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계속 들어왔습니다. 변호인석의 모든 자리가 꽉 차서 간이의자를 가지고 오고, 그 와중에 더 자리를 좁혀서 앉아야 할 정도로 변호인의 수는 많았습니다. 게다가 이들의 구성과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 변호인부터 젊은 여성 변호인까지 정말 다양했고, 재판정에 들어서는 그들의 표정은 매우 따뜻하고 활기찼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재판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서서 실질적으로 그와 연대하고 있었습니다. 재판이 끝나면 시민을 대상으로 재판결과와 의미, 앞으로의 계획 등을 매우 상세히 알려주는 기자회견을 했고, 다시 시민사회를 대상으로 보고회를 했습니다. 많은 변호인들이 이런 과정이 끝난 뒤 우에무라 기자와 함께 한국음식을 먹는 회식 자리까지 함께 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함께 모여서 우에무라 기자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변호인단의 모습은 감동적이었습니다.

일본의 시민들의 우에무라 기자에 대한 응원과 지지도 결연했습니다. 재판이 있을 때마다 재판과정에 대한 보고회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지난 10월 그 자리에 우리가 ‘우에무라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며 인사했을 때, 여러 명의 일본인들은 눈물을 훔치는 것을 봤습니다. 감사와 환영과 연대의 표정은 지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홋카이도 주민이면서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해결하는 홋카이도 모임>이라는 시민단체 활동을 하신다는 나나오 히사코(七尾寿子, ‘우에무라재판을 지원하는 시민들의 모임’ 사무국장)라는 일본 여성은 ‘우생모’가 모이는 자리마다 오셔서 시종일관 손을 잡고 우에무라 기자를 지지하기 위해 방문한 것에 대한 감사와 연대의 뜻을 전했습니다. 올 2월 삿포로 판결 이후 열린 보고회에서는 ‘경남지역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추진위원회’의 이경희 공동위원장(‘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창진 시민모임’ 대표)의 발언을 듣고 그 자리에서 성금을 걷어주기도 했습니다.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는 우익들에게 ‘매국노’로 낙인찍혀있는 상태입니다. 우경화된 일본 사회 내에서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많은 시민들과 정의로운 변호사들은 그에 대한 부당한 공격을 비난하며 그를 지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재판은 이런 한일 양국의 깨어있는 시민을 늘려나가고, 그들의 참여로 결국은 역사적으로 승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싸움의 과정에서 한일 양국의 많은 시민들이 왜 이렇게 지극히 정상적인 기사 하나로 인해 한 인간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에 대한 사과와 배상조차 받기 힘든 일본의 현실이 얼마나 엄혹한지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는 2019년 제 7회 리영희상을 수상했다.

한일 교류의 필요성을 강조한 우에무라 기자

마지막으로 우에무라 기자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가 거듭 강조한 것은 한일 교류였습니다. 그는 현재 일본의 <슈칸 긴요비>(週刊 金曜日)의 편집장입니다. <슈칸 긴요비>는 일본의 진보적 주간지인데, 경영난에 처한 잡지사가 우에무라 기자를 편집장으로 초빙했다고 합니다. 현재 <슈칸 긴요비>는 우리의 〈시사IN〉과 기사 교류를 맺고 있습니다. 한편 우에무라 씨는 한국가톨릭대학의 초빙교수로 한국에서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되었지만, 학기 중에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강의를 하고,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힘겨운 재판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쁘게 지내는 그는 한일 예비 언론인의 교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예비 언론인’은 우리의 ‘언론사 지망 취업준비생’과는 조금 다릅니다. 일본은 사실상 언론사에 취업이 확정된 상태의 예비 언론인들이 학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이들에게 한일 교류의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에무라 기자는 2017년부터 ‘언론인 한일 학생 포럼’을 만들어서 한일 양국의 문제해결에 진정으로 기여할 수 있는 언론인의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반일감정이 매우 큰 편입니다. 그래서 처음 우에무라 기자의 이런 간곡한 호소를 들었을 때는 그다지 절실하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결심 공판 당시 재판 과정을 미디어에 담고 후원하는 한국과 일본의 학생들을 보면서 저의 마음은 바뀌었습니다. 친일과 반일, 친한 반한이 아니라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 양국 시민이 함께 노력하는 과정은 분명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일본 최고재판소의 최종 판결을 남겨둔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를 위해서 한일 양국의 많은 시민들이 이 재판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며, 그를 응원합니다.

*참고자료


공소인성명

오늘, 도쿄고등재판소에서 니시오카 츠토무 씨 등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니시무라 도쿄소송의 공소심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1심에 이어 우리는 패소했습니다. 지극히 부당한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니시오카 씨는 2014년 2월 6일호《주간문춘》의 기사에서 제가 쓴 전 일본군 “위안부” 김학순 씨의 증언기사 A를 “날조”로 규정하는 등, 저에 대한 “날조”공격을 되풀이해왔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격렬한 “우에무라 날조 배싱(bashing)”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내정되어있던 대학의 교수직을 잃었고, “딸을 죽이겠다”는 협박장까지 받았습니다.

저는 2015년 1월 니시오카 씨 등을 고소했습니다. 저의 명예, 가족의 안전, 근무처 학생들의 안전, 그리고 전 “위안부”인 김 씨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오늘 고등재판소 판결에서는 니시오카 씨가 제 기사를 “날조”라고 주장하는 세 가지 점 중 두 가지에 대해 진실성을 인정하지 않으나, 믿는 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하면서 니시오카 씨를 면책했습니다. 니시오카 씨는 저에 대한 직접취재를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니시오카 씨는 제 기사를 날조기사로 단정할 때에도 결정적인 오류를 범했습니다. 그것이 1심에서 밝혀졌습니다.

이《주간문춘》의 기사를 보십시오. “이 때 자기 이름을 대고 나온 여성은 부모에게 팔려 위안부가 되었다고 소장에 썼고, 한국 언론의 취재에도 그렇게 답하고 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소장에서도 한국 언론의 취재에도 김학순 씨는 그렇게 답하지 않았습니다. “날조” 비판의 전제 자체가 잘못되어있는 것입니다.

또, 니시오카 씨는 저의 기사 B에 대해, 저서『알기 쉬운 위안부문제』에서 김학순 씨가 기생으로 팔려갔던 것을 적지 않았으므로 “악질적이고도 중대한 날조”라고 규정했습니다. 우리는 이 언설을 무너뜨릴 새로운 증거를 발견하여 고법에 제출했습니다.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준비하고 있던 김 씨가 처음 변호단의 청취조사에 응한 1991년 11월 25일의 녹음테이프입니다. 여기서 김 씨는 “기생”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테이프에 근거해 기사 B를 썼습니다.

그러나 고법판결은 이 새 증거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니시오카 씨의 결정적인 오류도 간과하고 있습니다. 결론을 내려놓은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에무라 날조 배싱”의 장본인은 니시오카 씨입니다. 그의 언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배싱에 가담했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던 대학에 협박전화를 한 남성이 체포되어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제 딸을 트위터로 비방ㆍ중상한 회사원은 그 책임을 추궁 받아 배상금 지불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판결에서 그 장본인이 면죄를 받은 것입니다.

이 문제는 우에무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일은 기자 여러분에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 부당판결을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이대로라면 가짜뉴스가 거리낌 없이 유포되는 심각한 시대가 옵니다. 즉각 상고하고, 최고재판소에서의 역전판결을 기대하겠습니다.

이상


공소심 판결에 대한 변호인단 성명

전 아사히신문 기자 우에무라 다카시 씨가 전 “위안부” 김학순 씨의 증언에 관한 91년의 신문기사를 둘러싸고 주식회사 문예춘추와 니시오카 츠토무 씨를 고소한 소송의 공소심에서 도쿄 고등재판소는 오늘, 우에무라 다카시 씨의 공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우에무라 씨 등의 논문이나《주간문춘》의 기사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것은 인정하면서 진실성ㆍ진실상당성의 항변을 인정한 도쿄지방재판소 판결을 거의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추인한 지극히 부당한 판결이다.

니시오카 씨 등은 무에무라 기사에 대해 “기생이었던 김학순 씨의 경력을 쓰지 않았으니 날조다”라는 취지를 주장해왔다. 우에무라 씨는 공소심에서 91년 12월 기사의 근거가 된 김학순 씨의 증언테이프를 증거로 제출했다. 증언테이프 안에는 기생에 대한 증언이 없었다. 증언자가 증언하지 않은 내용을 기사로 쓰지 않은 것이 “날조”가 될 리 없다. 그러나 공소심은 해당 증언 테이프가 김학순 씨의 증언 전체를 기록한 것이라 인정하기 힘들다는 둥 믿기 어렵다는 트집을 잡으면서 그 증거력을 부정했다. 이런 주장은 상대방에게도 통하지 않아, 테이프의 성립과정을 입증하기 위해 신청된 본인 신문도 각하되었다. 고등재판소의 판결은 변호인단으로부터 반론의 기회를 빼앗은 기습적인 인정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판결은 8월의 우에무라 기사 중에 “여자정신대의 이름으로”라는 기사가 “강제연행을 의미한다”는 전제에서 우에무라 씨가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른 기사를 썼다는 1심의 인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애초에 8월에 기사에는 확실하게 “속아서 위안부가 되었다”고 써놓지 않았는가. 우에무라 씨에게 강제연행을 꾸며내려는 악의적인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면 “속아서 위안부가 되었다” 따위를 썼을 리가 없다. 이 판결의 인정은 상식을 까마득히 벗어나있다.

이상의 내용에서 볼 때 이 판결은 결론을 미리 내려놓은 너무도 조잡한 판결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한편, 고등재판소 판결은 ① 우에무라 씨가 김 씨가 기생으로 팔려갔다는 경력을 알고 있었으면서 일부러 이를 기사화하지 않았다는 사실, ② 우에무라 씨가 장모의 재판에 유리하도록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른 기사를 썼다는 사실에 대해 공히 진실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는 공소심의 큰 성과로써 우에무라 씨의 명예를 일부나마 회복한 것이다.

변호인단은 이번 심리 과정에서 우에무라 씨의 기사가 날조가 아니라는 것을 완전히 입증하고, 그의 명예를 회복함과 동시에, 전 “위안부”의 존엄회복 운동을 든든하게 뒷받침했다고 믿는다. 이러한 1심, 2심의 성과를 토대로 최고재판소에서 끝까지 싸워낼 것이다.

이상

2020년 3월 3일

<2020-03-04> 뉴스톱 

☞기사원문:
‘위안부 최초 보도’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 패소했지만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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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가짜 독립운동가’ 고발한 김세걸 선생을 보내드리며

▲ 김세걸 선생의 트레이드 마크는 “카메라”였다. 늘 묵직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행사사진 촬영을 도맡았다. ⓒ 김경준

7일 오후 독립운동가 김진성(1914~1961) 선생의 장남 김세걸 선생(72)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접했다.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어쩌다 독립운동 관련 행사장에서 마주칠 때면 늘 건강한 모습으로 손을 내미는 선생이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이들과 SNS로 소통하고 영문과 중문으로 된 해외 원서들의 번역 작업에 몰두하는 등 최근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했던 선생이기에 급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황망할 따름이었다.

2년 전 가을 선생을 인터뷰하면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 선생은 국립서울현충원에 잠든 가짜 독립운동가 집안(김낙용·김병식·김관보·김정수)의 실체를 고발해 그들의 서훈 취소를 끌어냈다. 무려 20년에 걸쳐 국가보훈처와 줄다리기 한 끝에 이뤄낸 쾌거였다(관련기사: 20년 만에 밝혀진 가짜 독립운동가 집안의 진실 http://omn.kr/180fq).

감정이 북받쳐올랐던 선생과의 첫 만남

독립운동가였던 부친에 대한 기억, 어느 날 노래방에 갔다가 반주 화면에 등장한 현충원 묘역 영상에서 부친의 이름을 새긴 묘비명을 발견하고 느꼈던 황당함, 한국으로 건너와 문제의 무덤이 가짜라는 것을 밝혀내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그동안의 일을 회고하는 선생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정작 선생의 목소리를 기록하던 나는 북받치는 감정을 자제하기가 어려웠다. 선생이 20년 동안 겪은 고초를 감히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선생은 중국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며 대령까지 진급하는 등 편안한 삶이 보장된 신분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신념 하나로 1997년 조국 대한민국으로 귀화했다.

그러나 돌아온 선생에게 조국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가짜 독립운동가 문제를 제기하는 선생에게 보훈처 공무원들은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인정해주고 귀화시켜줬으면 됐지 뭘 더 요구하느냐’며 핀잔했다고 한다.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야 할 정도로 넉넉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은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이러한 일을 몰랐던 내가 너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인터뷰 말미에 선생은 힘주어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더이상 안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잖아요. 가짜 독립유공자 문제에 대해서도 신속하고 올바른 해결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현재 현충원에 가짜 독립유공자로 밝혀진 이들이 66기나 된다고 하는데 언제까지 방치할 겁니까. 이런 건 정부가 의지를 갖고 나서야 합니다.”

▲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위치한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의 묘(181번 묘) ⓒ 김경준

선생의 뜻을 이어가겠습니다

인터뷰 당시 선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수없이 강조했다. 무엇보다 가짜 독립운동가로 밝혀진 김정수의 묘역을 강제 이장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선생은 보훈처로부터 “유족들이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강제로 파묘할 법적 권한은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기사가 나간 지 2년이 흐른 지금도 김정수는 여전히 애국지사 묘역에 잠들어 있다. 선생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가짜 독립운동가가 현충원에서 파헤쳐지는 것을 끝내 보지 못한 것이다.

더욱 아쉽고 원통한 것은 이제야말로 선생의 꿈이 실현될 순간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이다. 최근 광복회와 민족문제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파들을 강제 이장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광복회에서 제21대 국회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친일파 강제이장에 대한 찬·반 설문’에서도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지역구 후보자 73.1%가 찬성의 뜻을 밝혔다고 한다. 이에 따라 새로 구성되는 21대 국회에서 강제 이장을 허용하는 ‘국립묘지법’ 개정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친일파뿐만 아니라 가짜 독립운동가로 판명 난 묘역의 강제 이장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 결실을 보지 못하고 떠난 선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애달프다. 빈소를 찾아 선생의 영정 앞에 향을 사르며 다짐했다.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반드시 현충원에서 친일파와 가짜 독립운동가들을 끌어내겠다고.

빈소를 나오면서 헛헛한 마음에 차영조 선생(독립운동가 차리석 선생 후손)께 전화를 드렸다. ‘영원한 동지’를 잃은 선생의 목소리에도 슬픔이 짙게 배어있었다. “얼마나 상심이 크시냐”는 나의 위로에 선생께서는 내게 이렇게 당부했다.

“가신 분은 가신 분이고 남은 우리가 뜻을 잘 이어받아 나갑시다.”

선생의 영면을 기원하며, 남은 우리의 역할을 생각해본다.

▲ “영원한 동지” 차영조 선생(차리석 선생 후손)과 김세걸 선생(김진성 선생 후손) ⓒ 김경준

덧붙이는 글 | 고인: 김세걸 (향년 72세 / 독립유공자유족회 상임이사)
빈소: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0호실
발인: 2020년 5월 10일 오전 9시
장지: 서울시립승화원
상주: 처 안보의, 아들 김해남, 김해응

<2020-05-09>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현충원의 가짜 독립운동가들 꼭 끌어내겠습니다

화, 2020/05/1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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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 (5.05) ‘내역사’ 시즌 5: 5화: 소설 『명시』작가 안재성이 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삶

☞ (4.28) ‘내역사’ 시즌 5: 4화: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가수 이지상과 함께

☞ (4.2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1편_이호철

☞ (4.21)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강주원 박사와 함께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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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뉴스 ☞뉴스1: [새로나온책] 명시 (19.9.29)

노동소설 ‘파업’으로 제2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한국 근현대사 속 그늘에 가려진 인물들을 조명하는 데 힘써온 안재성의 장편소설. ‘조선의 잔다르크’, ‘백마 탄 여장군’이라 불리며 항일 무장투쟁의 최전선에서 싸웠던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생애를 소설로 재현해낸 작품으로, 조국 해방과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꿈꾼 한 여성의 치열한 삶을 생생하게 그린 작품이다.

안재성
1960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1989년 장편소설 『파업』으로 제2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경성트로이카』, 『황금이삭』, 『연안행』, 『사랑의 조건』,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명시』 등의 장편소설과 『이관술 1902~1950』, 『이현상 평전』, 『박헌영 평전』, 『실종 작가 이태준을 찾아서』, 『식민지 노동자의 벗 이재유』,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윤한봉』 등의 평전, 『한국노동운동사』, 『청계 내 청춘』, 『타오르는 광산』 등의 노동운동 관련 책, 『잃어버린 한국 현대사』 등의 역사책을 펴냈다.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5

화, 2020/05/1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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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2000년 5월 15일 첫걸음을 뗀 민중의소리가 창간 20주년을 맞았습니다. 독자와 후원인들의 성원과 격려로 민중의소리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민주주의를 확장하며 자주평화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한 진보언론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창간 20주년 특별기획으로 각계 원로, 전문가, 신진인사들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와 한국사회를 조망하는 릴레이 기고를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파문당한 선량한 철학자 스피노자와는 대화도 식사도 금지인 데다 2미터 이상 떨어져야만 했다. 코로나19의 전파력은 전 인류에게 이와 똑같은 ‘고슴도치의 법칙’이란 굴레를 씌워버렸다. 바이러스의 변이가 방역복을 착용해야만 외출이 가능한 재앙으로 번질까 두렵다.

이 유령 같은 괴질을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던 한국은 실로 2차 대전 이후 시민혁명을 가장 많이 치른 민족적 긍지를 높여주고 있다. 이 다행스러운 흐름에 견인차 역할을 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다른 한편에 이 해괴한 바이러스는 ‘욕망하는 기계’인 돈벌레(黃金虫)로 인간을 변신시킨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지닌 온갖 병폐를 그대로 드러내 주어 선진국일수록 더 허둥대는 꼴불견을 노정시켰다.

특히 지구 전체를 파멸시킬 가공할 무장력을 과시하는 미국과 그 찰떡 공모자인 일본의 대응책은 국민의 생명 보호가 기본인 국가의 책무를 포기한 무방비에 가깝다. 그런데도 트럼프와 아베는 자신의 지도력에 도취하여 황홀한 나르시시즘의 포로가 되어있는 형국이다. 온 지구인들이 부러워했던 나라가 고작 저런 실체였는데 그간 우리가 속아온 건가, 아니면 코로나19 이전에는 훌륭한 국가체제였으나 이 괴질로 순식간에 변질된 걸까.

미 백악관 코로나19 데스크포스(TF)가 3월 31일(현지 시간)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최대 24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공식 예측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매우 고통스러운 2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뉴시스/AP
아베 총리의 얼굴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있는 마스크 2020.04.07.ⓒ뉴시스/AP

세계 최대의 자기 나라 도시에서는 시신이 썩은 고목처럼 뒹구는 데도 RC-135W정찰기를 한반도에 보내는 한편 B-1B 폭격기는 남중국해를 맴도는 등의 긴장 조성에 더욱 열심인 걸 보면 동아시아에 행여나 평화가 깃들까 조바심 내는 속내가 그대로 드러난다.

어디 그뿐인가. 코로나19를 아예 중국과 한국 때리기로 삼고자 작심한 듯이 사사건건 생트집을 잡아 물어뜯는 트럼프와 아베의 블랙코미디는 마치 국내의 일베나 태극기 부대 혹은 제1야당과 너무나 닮았다. 동맹은커녕 인간적인 자질이 의심스럽다. 거기에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까지 나서서 장단을 맞춰 노골적인 인종차별 감성을 부추겨 KKK단이 부활하나 싶어 모골이 송연해진다. 더욱 공포스러운 건 그걸 다루는 언론의 태도다. 그 전 같으면 이런 비이성적인 조치를 질타하는 논조가 빗발쳐야 하건만 조용하기만 하다.

과연 저런 게 인류가 피를 흘려 쟁취해온 참된 자유민주주의일까? 한국 같으면 금방 항의 촛불시위가 일어날 법한데 그 반대로 끔찍한 시취(屍臭)가 떠도는 도심 한복판에서 외출과 영업을 허용하라며 총까지 들고 시위하는 지경이니, 돈을 사람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황금충의 나라라고 한들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미 국방부가 느닷없이 우주 비행물체를 진짜라고 공개한 것도 어쩌면 인류에게 공포심을 유발하여 지구방위대 사령부 설치를 밑밥 삼아 돈을 울궈낼 궁리는 아닌지 신경과민적 의구심마저 든다. 대선을 앞둔 터라 천문학적인 달러를 풀어대는데, 저 벌충을 필시 남의 나라에서 받아내겠지 싶어 미리 조바심이 일기도 한다.

코로나19, 돈벌레로 인간을 변신시킨 신자유주의
그리고 미일 두 부자 나라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민족이 평화롭게 살려면 남북 당사자끼리가 가장 소중함을 깨달아야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넘어갔을 두 부자 나라의 민낯을 보면서 세계가 평화롭게 살아가려면 아무리 너그럽게 봐줘도 미국이나 일본을 본받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명백해지고 있다. 그 나라들을 모든 가치관의 상석에 놓았던 일부 우리 국민들도 돈이 없어 검사도 못(안) 받는 엉망진창 건강보험체계를 보면서 느끼는 게 있을 것이다.

거기다 미국은 이미 9.11 사태 이후 정치적 이성이 마비된 단계로 접어들었고, 일본은 한신(阪神)대지진과 후쿠시마(福島)원자력 발전소 사태 이후 파시즘 체제로 회귀하려는 독 묻은 이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판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018년 4월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만나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 내려오고 있다.ⓒ2018남북정상회담 공동사진기자단

코로나19로 실추한 권위와 경제적 손실을 메우기 위해서는 인류애와 평화를 기본으로 삼고 있는 진보적인 정치혁신을 감행해야 되건만 오히려 이 두 강대국은 까놓고 지구촌 곳곳에서 분쟁을 조장하여 엄청난 이득을 챙기려고 혈안이 될 공산이 더 크다. 더욱 비관적인 건 이 두 공룡국가를 변혁시킬 어떤 전망도 밝지 않다는 점이다. 지도자나 정당이 바뀌어 봤자 그 나물에 그 밥일 수밖에 없을 만큼 오랜 세습제 권력으로 굳어져버려 새로운 비전을 갖춘 정치인을 싹수부터 잘라 왔기 때문이다.

세계 평화를 담보해야 할 유엔은 무력하고, 지구의 평화를 외칠만한 러셀이나 사르트르 같은 인류의 양심과 용자도 사라져버린 이 삭막한 시대를 오히려 절호의 기회로 삼아 미일 두 나라의 전쟁상인 기질이 더욱 잔혹해지면서 염려스러운 건 만만한 ‘홍어X’ 한반도가 걸려들까 아찔하기만 하다.

아무리 돌아봐도 우리 민족이 평화롭게 살려면 남북 당사자끼리가 가장 소중함을 코로나19 사태는 대오각성케 해준다. 이 공감대를 남북이 공유하고 실천하지 않는 한 한반도는 미일 두 강대국의 봉으로 전락하여 계속 시달릴 것이다. 남도, 북도 진작 알고 있던 이 만고의 진리를 제발 코로나19로 재확인하고 실천하는 계기가 되길 대망한다.

<2020-05-07>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창간20주년 특별기획] 코로나19 이후의 한반도 릴레이 기고 ‘코로나 너머’ ②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수, 2020/05/1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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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양형에 영향을 주기 위한 사과문”

5월 12일 낮 10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진행된 ‘삼성 이재용 사과 관련 삼성불법사찰 단체의 공동입장 발표 기자회견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email protected]

지난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고개를 숙였다. 경영권 승계 과정의 의혹과 노조파괴 사건에 대한 사과였다. 하지만 삼성 불법사찰 관련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가 ‘진정성’이 없다며 비판했다.

‘삼성의 불법사찰에 대한 시민사회공동대응’(이하 공동대응)은 12일 낮 10시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삼성 이재용 사과 관련 삼성불법사찰 단체의 공동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단체는 한국진보연대, 참여연대, 향린교회,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 반올림 등이다.

지난 2월 28일 삼성전자와 삼성계열사 17곳은 보도자료를 통해 환경운동연합과 민족문제연구소,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한국여성민우회, 통합진보당 등 10개 시민단체 및 정당을 ‘불온단체’로 규정하고 임직원들의 동의 없이 후원 내용을 열람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중 향린교회는 6월 민주항쟁의 중심지 중 한 곳이기도 하다.

공동대응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과문은 국정농단 사건에서 박근혜 정부에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설치한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주문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양형에 영향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봤다.

또한, “지난 연말 선고된 삼성노조파괴사건 판결 이후, 삼성의 지속적인 불법사찰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가려내 처벌하고 피해자가 입은 유무형의 손해를 배상하며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것을 수차례 삼성에게 요구해왔지만, 삼성은 여전히 그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면서 사과의 진정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5월 12일 낮 10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진행된 ‘삼성 이재용 사과 관련 삼성불법사찰 단체의 공동입장 발표 기자회견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email protected]

금속노조 삼성지회는 “삼성물산(구 삼성에버랜드)은 여전히 노조파괴 공범으로 나란히 유죄판결을 받은 기업노조와만 교섭을 진행하며 민주적으로 설립된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박탈하고 있다”면서, “삼성전자서비스는 노조파과 전략에 따라 해고된 노동자의 복직요구를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문에 있었던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는 말이 진정성 없다는 것이다.

공동대응은 “삼성은 준법감시위원회 뒤에 숨어 허울뿐인 사과문 발표를 반복하지 말고 진짜 사과를 하라”면서, “진정한 준법은 과거의 범죄에 대해 법대로 처벌받고 현재의 범죄를 중단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재발방지대책, 피해자구제대책마련 등 요구사항에 충실히 답하라”고 주장했다.

한편, 양대노총은 6일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문 발표 직후 관련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국노총은 ‘문제는 ‘실천’이다’라는 논평에서 “현재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를 비롯해 한국노총 산하 삼성그룹 내 노동조합들은 임단협을 진행 중이거나 사측에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은 여전히 적극적인 모습을 이고 있지 않다. 이재용 부회장이 언급한 ‘노동3권’ 중 교섭권을 도외시 하는 행위”라면서, “삼성은 노동조합 활동을 확실히 보장하라. 지금 삼성에게는 필요한 것은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실천”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사과는 더 이상 무노조 경영을 위해 불법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불과하다. 민주노총은 그간 ‘무노조 정책’의 핵심 피해자인 김용희, 이재용 해고자를 비롯한 노동자들에게 직접 사과와 복직, 보상이 되어야 하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오늘 발표가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로 이루어 진 것인 바, 이후 재판에서 사법적으로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불법행위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지는 것과 오늘 사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밝혔다.

<2020-05-12> 참여와혁신 

☞기사원문: 삼성 불법사찰 관련 시민사회단체, “이재용 사과, 진정성 없다”

수, 2020/05/13-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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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박물관서 세계기록 유산 5·18 기록물 등 전시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특별전 개막식 [광주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국가 기관이 최초로 주최하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 특별전이 개막했다.

12일 광주시에 따르면 5·18 40주년 특별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개막식이 이날 오후 서울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이용섭 시장, 이소연 국가기록원장, 주진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조광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안병욱 한국학 중앙연구원장,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특별전은 국가기록원,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등 국가 기관과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5·18 기념재단, 전남대 5·18연구소 등 광주 지역 기관이 공동 주최했다.

특별전은 4개 공간에서 ▲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정부 기록물 ▲ 국방부와 광주 동구청이 생산한 상황일지·통행증, 계엄군의 군복·군화·진압봉 ▲ 1980년 제작된 일본 판화가 도미야마 다에코의 판화 ‘광주의 피에타’ ▲ 당시 시민들이 생산한 문서 등을 선보인다.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인 시민들의 일기, 취재 수첩, 성명서 등 실물자료는 그동안 5·18 기록관에서만 전시된 것들로 서울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인다.

전시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1층과 3층의 기획전시실, 역사 회랑, 역사 마당 등에서 진행되며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서울을 시작으로 19일 제주4·3 평화기념관, 27일 5·18 기록관에서도 특별전이 개막한다.

주진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장은 “광주를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소중한 자료들의 서울 전시를 통해 당시 광주시민의 눈물을 공감함으로써 광주의 역사가 올바르게 자리매김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20-05-12> 연합뉴스 

☞기사원문: 국가 기관 첫 주최 5·18 특별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개막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해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에서 5·18 정신을 오롯이 담은 특별 전시회가 개막했다.국가기관이 최초로 개최하는 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 특별전이 12일 서울에서 막을 올렸다

※관련기사 

☞위키트리: 서울에서 제주까지전국에 울려 퍼지는 5·18 민중의 함성 

☞뉴시스: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5·18 40주년 특별전, 서울 개막 

☞아시아경제: 5·18특별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서울서 개막

수, 2020/05/1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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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1부] [2부]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베트남전 당시 퐁니퐁넛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작품들_영화 “기억의 전쟁”과 만화 “붉은돌단풍”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 베트남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_4월 21일 베트남 피해자 최초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소송을 제기하다”

☞ (5.0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2부

☞ (5.0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1부

☞ (5.05) ‘내역사’ 시즌 5: 5화: 소설 『명시』작가 안재성이 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삶

☞ (4.28) ‘내역사’ 시즌 5: 4화: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가수 이지상과 함께

☞ (4.2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1편_이호철

☞ (4.21)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강주원 박사와 함께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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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5

금, 2020/05/15-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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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역사 청산, 올바른 문화 후손에 전달

전남 광양시가 유당공원 내 친일인물 기념비에 설치한 단죄문 [광양시 제공.재판매 및 DB금지]

[광양=뉴시스]김석훈 기자 = 전남 광양시는 유당공원 내 친일인물 비석 앞에 단죄문을 설치했다.

14일 광양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시정조정위원회 자문회의와 시의회 의원간담회를 통해 ‘유당공원 내 친일논란 비석정비’의견을 수렴했다.

시는 이어 지난 2월 문화유산보호관위원회를 열어 유당공원 내 국권침탈 협력자 친일인물 이근호와 조예석 등 비석 2기에 대해 단죄문을 설치하기로 의결했다.

단죄문에는 이들이 일제 국권침탈 협력자라고 명시했다.

이근호(1861~1923)는 을사오적 이근택의 형으로 1902년 제5대 전라남도 관찰사 겸 전라남도 재판소 판사를 지내 ‘관찰사이공근호청덕애민비(觀察使李公根澔淸德愛民碑)’가 건립됐으나, 경술국치 이후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에 앞장선 공로가 인정돼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다. 일제 강점하 반민족 진상규명 위원회에서 발간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보고서’에 등재된 인물이다.

조예석(1861~?)은 1902년부터 전라남도 관찰부 광양 군수로 부임하면서 ‘행군수조후예석휼민선정비(行郡守趙侯禮錫恤民善政碑)’가 건립됐지만, 경술국치 이후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에 관계한 조선 관리들에게 일본 정부가 수여한 한일병합기념장을 받았다.

2009년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광양시 김복덕 문화예술과장은 “이번에 설치된 단죄문에는 해당 인물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적시해 친일행적을 시민들과 유당공원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널리 알리고 역사적 교훈으로 삼고자 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2020-05-14> 뉴시스 

☞기사원문: 광양시, 유당공원 친일인물 기념비에 단죄문 설치 

※관련기사 

☞연합뉴스: 광양시, 친일인사 이근호·조예석 기념비에 단죄문 

☞아시아경제: 광양시, 친일인물 기념비에 단죄문 유당공원 내 설치 

☞한국시민기자협회: 광양시, 유당공원 내 친일인물 기념비에 단죄문 설치

토, 2020/05/1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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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1부] [2부] [3부]

☞ (5.20)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3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광주항쟁의 정신은?”

☞ (5.19)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2부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 (5.18)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1부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베트남전 당시 퐁니퐁넛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작품들_영화 “기억의 전쟁”과 만화 “붉은돌단풍”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 베트남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_4월 21일 베트남 피해자 최초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소송을 제기하다”

☞ (5.0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2부

☞ (5.0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1부

☞ (5.05) ‘내역사’ 시즌 5: 5화: 소설 『명시』작가 안재성이 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삶

☞ (4.28) ‘내역사’ 시즌 5: 4화: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가수 이지상과 함께

☞ (4.2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1편_이호철

☞ (4.21)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강주원 박사와 함께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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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에서는 5개의 질문으로 5.18민주화의 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쟁점을 이야기 합니다.

1. 작년 3월에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왜 다시 진상규명법이 제정된 건가?
2. 
최근에는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군인들에 의한 여성 성폭행 문제가 새롭게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오랜 시간 폭도로 매도당하면서 피해자 가족들이 입었던 2차 피해와 트라우마도 극심했죠? 5.18민주화운동의 피해자를 인권문제 차원에서 좀 더 광범위하게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는데?
3. 
이번 진상규명 과제 중 하나로 ‘5.11연구위원회’라는 게 나옵니다. 이게 무엇인가?
4. 
5.18이 ‘민주화운동’인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5. 
최근 5.18의 상징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시아 곳곳에서 불리고 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 

1~2부_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10일간의 기록_5월 22일~27일까지 광주시민들이 민주주의 지키기 위해 어떻게 싸웠는지 이야기합니다.

올해는 5·18이 일어난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우린 광주의 정신을 계승한 투쟁을 통해 권좌에 올랐던 학살자들을 법정에서 내란죄로 처벌 했고, 518은 국가기념일로 지정했으며, 폭도로 몰렸던 항쟁의 주역들은 민주주의 지킨 국가유공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마치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 것처럼 전두환은 뻔뻔스럽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보수라고 일컫은 몇몇의 무리들은 광주를 폭동, 북한군의 개입이라는 발언을 서슴치 않고 특히 인터넷 공간에서 일베나 보수유투버들은 희생자를 모욕하는 발언을 끊임없이 내뱉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 방송은 40주년을 맞은 5.18을 맞아 광주의 정신은 무엇이며 특히 반역사적이고 반민주적인 시도가 일어나는 현실속에서 다시 광주 518의 역사적의미가 무엇인지 꼼꼼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특히나 40년이 지난 지금 까막득한 옛날 사건 중 하나로만 알고 있은 젊은세대들에게 어떻게 그 의미를 전달할 것인지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함께 이야기기 나눌 노영기 교수는 5.18연구의 권위자로 ‘왜 국민의 군대가 국민들에게 총을 쏘았을까?’라는 질문을 안고서 한국현대사 공부를 시작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2007년까지 조사관으로 활동하며 12·12와 5·18과 관련된 새로운 자료를 검토하고 관련자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5

금, 2020/05/22-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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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전남 고흥 녹동고 학생들 민원에 국가보훈처가 답하다

▲ 철거전김정태흉상 김정태 흉상 철거를 위해 사전에 경계석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 ⓒ 국가보훈처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었던 2019년, 전국적으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전남교육청은 이미 오래전부터 ‘전남청소년 역사탐구대회’를 진행해 왔다. 지난해로 9회째를 맞았다. 지난해 주제는 ‘임정 100주년·광주학생독립운동 90주년, 전라도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의 실상과 해결방안’ ‘전남지역 친일잔재의 실상과 해결방안’이었다. 도내 중·고교 70여 개 팀이 참가했다.

‘친일파’ 흉상이 있다는 사실 알게된 학생들

참가팀 중에는 고흥 녹동고등학교 팀도 있었다. 이 학생들은 대회 과정에서 자신들의 고장에 ‘김정태’의 흉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정태(1869~1935)는 강제합병 후, 전남 영광군수·광주군수·순천군수 등을 지냈으며 1914년부터 1917년까지 전남 지방토지조사위원회 임시위원으로 활동하며 일제의 토지조사 사업에 협력했다.

1924년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를 지냈으며 한국병합기념장(1912), 다이쇼 천황 즉위기념 대례기념장(1915), 쇼와 천황 즉위기념 대례기념장(1928) 등을 받았다.

김정태의 아들 김상형(1897~?) 역시 중추원 참의 등을 지내며 일본의 중국 침략을 정당화하는 전조선시국강연반 연사로 참여했다. 중추원 의원 시절엔 내선일체 정신의 구현에 대해 “반도민중의 일본화”에 달렸다고 주장하며 “천황 폐하를 경모하여 받드는 정조(情操)를 고양”시키기 위해 “마을에서 학교에서 황거망배(皇居望拜)와 천양무궁(天壤無窮)을 기원하고 마음을 정화해 황국신민임을 맹세함으로써 진정한 황국신민으로서 자각을 하게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상형은 해방 후, 1949년 반민특위에 송치됐다.

이와 같은 김정태의 친일행적을 확인한 학생들은 2019년 8월 고흥군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광복 74년이 지났음에도 이런 역겨운 동상이 주민들의 휴식공간인 옥하공원에 버젓이 세워져 있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는 죽어서도 고흥 군민들을 내려다보며 분명히 비웃고 있을 것입니다. 동상이 철거된다면 주민들의 애국심과 지역 역사의식이 한층 더 함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친일파 동상이 버젓이 세워진 채로 우릴 내려다보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 민원 제기 학생의 글 발췌

고흥군은 학생들의 민원을 국가보훈처에 이첩했다. 김정태 흉상이 있던 옥하공원 내 토지를 비롯해 약 56만 제곱미터의 토지가 김정태 후손들의 소유였으나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재산조사위원회에 의해 국가로 귀속된 이후 현재까지 국가보훈처가 관리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민원 전까지 국가보훈처는 그 땅에 친일파의 흉상이 있었다는 사실은 파악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2020년 4월 28일, 흉상 철거되다

▲ 김정태 흉상 제거 영상 김정태의 흉상이 기단부에서 분리되고 있다. ⓒ 국가보훈처

▲ 철거중흉상 김정태의 흉상이 철거되는 모습을 후손과 관계자가 바라보고 있다. ⓒ 임승관

민원을 넘겨받은 국가보훈처는 김정태의 후손에게 ‘흉상을 자진 철거할 것’을 통보했다. 그러나 후손들이 흉상 철거를 미루자 국가보훈처는 행정대집행을 통보했다. 결국 후손들은 지난 4월 28일 오전 흉상을 철거했다.

철거는 국가보훈처와 고흥군청 관계자들이 오기 전에 신속히 진행됐지만, 필자는 그날 오전 일찍 현장에 가 있었기에 다행히 철거의 모든 과정을 영상에 담아 지역 언론사 등에 제공할 수 있었다.

‘김정태 흉상 철거’는 친일파 기념물 철거를 학생들이 요구하고 고흥군과 국가보훈처 등 공공기관이 응답한 사례로 의미가 크다. 흉상 철거를 담당한 국가보훈처 담당자는 “배움을 실천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행동과 민원 내용에 진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민원이라고 치부하지 않고 백방으로 철거 방법을 알아내 성과를 이룬 보훈처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해 준 녹동고등학교 학생 여러분에게도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 철거된김정태흉상 김정태의 흉상이 철거되어 선산으로 옮기기 위해 줄에 묶여있다. ⓒ 임승관

<2020-05-22>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친일파 김정태 흉상 철거, 이렇게 이뤄졌습니다

금, 2020/05/2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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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20/05/26-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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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6> ‘정치의식 탐구’ 임헌영 비평가

▲ 사회운동과 한국 근현대문학은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의 삶을 정의하는 두 축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이자 원로 비평가인 임헌영(79) 선생의 이미지는 불가피하게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선명하게 각인된다. 이른바 ‘남민전 사건’으로 인한 투옥과 시련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로 상징되는 사회운동에의 투신이 한 축의 면모라면, 다른 한 축은 치밀한 자료 섭렵을 통해 한국 근현대문학의 실증적·사상적 연구를 축적해 온 면모로 귀납된다. 그 가운데 연구소에서 오랜 열정과 공력을 다해 펴낸 ‘친일인명사전’(2009)의 성과는 우리 근대사의 어둑한 순간들을 현재로 소환해 반성적 자료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세 권 분량에 4300여명을 수록한 이 책의 성과는 두고두고 임헌영 선생의 생애를 집약하는 표지가 돼 줄 것이다.

▲ 임헌영 선생이 최근 출간한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와 ‘엄헌영의 유럽문학기행’.

· 알리고 밝히고 세워 가야 할 역사

친일 행적을 밝히는 게 쉬울 리 없다. 당시 작업에 대한 폄하와 공격도 상당했다. 선생이 연구자들에게 강조한 점은 이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 조상 다루듯 하라.’ “많이 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저히 뺄 수 없을 경우에만 넣도록 하자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창의적 교육관이 아니라 단순히 수동적 집행에 머물렀던 교육자 같은 이들은 모두 빠졌죠.”

민족사적 관점에서 반성적 자료가 되기에 족한 이들, 제국주의 협력의 자의식을 가진 이들만 추린 모종의 정예화 결과인 셈이다.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만, 한쪽에서는 당사자인데도 이러한 과정을 흔연하게 받아들인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분들이 준 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 2009년 11월 ‘친일인명사전’을 내 임 소장(왼쪽부터), 윤경로 편찬위원장, 김병상 필립보 몬시뇰이 대표로 백범 영전에 봉정했다. 원로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임 소장은 참여문학, 민중문학으로서 국내외 문학을 탐독했다.

“파인 김동환의 자제 김영식 선생은 전집에 아버지가 쓴 친일 문건을 다 실었어요. 아버지가 사죄할 기회가 없었는데 자신이 대신 사죄한다면서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데 큰 힘을 줬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어쨌든 인명사전 출간 후 친일 청산에 대한 긍정적 지지자는 많이 늘어났고, 다수 여론조사에서 친일 청산 여론이 70%가 넘는다고 했다.

“우리 연구소는 시민단체 가운데 가장 역사의식이 투철한 구성원들로 이뤄진 것 같아요. 이제 저희 과제는 오늘도 여전히 일본이 옳았다고 하면서 학문이나 예술이나 경제 논리로 포장하는 이들과의 싸움에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도 일본의 새로운 파시스트들과의 싸움이 중요하지요.”

최근 연구소는 각고의 노력으로 서울 청파동에 새 건물을 마련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스튜디오를 만들어 팟캐스트를 찍고 그걸 유튜브에 공개해 일반 시민들과 연구소 성과를 공유하고 있다. 일본 파시즘 지지 세력과 우리 쪽 일부 세력이 보여 주는 정치적 화음에 주목할 때 아직도 연구소가 알리고 밝히고 세워 가야 할 역사의 흐름이 만만치 않은 듯했다. 물론 일본에도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와 우경화 반대를 외치는 이들이 있고, 우리 쪽에도 민족 경험을 훼손하려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현재형을 돌파해 제대로 된 민족사를 쓰기 위해 선생의 헌신과 노력은 지속될 것이다.

▲ 프랑스 파리 위고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친일 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 설립된 연구소가 펼치는 한국 근현대사 연구와 과거사 청산 작업 역시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 국내외를 망라한 작가들의 정치의식 탐색

사실 인터뷰를 촉발한 직접적 계기는 선생이 오랜만에 두 권의 역저를 잇달아 낸 데 있었다. ‘임헌영의 유럽문학기행’(역사비평사, 2019),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소명출판, 2020)가 그것이다. 두 책은 대조적 속성을 띠고 있다. 앞의 것이 광폭의 발품과 해박한 독서력을 기반으로 해외에 눈을 돌렸다면, 뒤의 것은 한국소설의 맹장들에 대한 정치적 관점에서의 독법이 담겼다. 먼저 유럽문학 기행은 어떤 의미였을까?

“감옥에서 나와 여행을 못 다닌 게 원통했어요. 문화센터 같은 데서 강의하다가 외국 문인들의 박물관 방문 프로그램을 계획했는데 모집이 잘돼 제 뜻대로 계획도 짜고 진행도 했어요. 성공적이었지요. 이 책에서 다룬 분들은 모두 평화, 반전, 반제국주의의 작가들이에요. 민중적 정치의식을 가진 분들의 문학을 테마로 한 결과이지요.”

책은 영독불러의 황금분할을 이루고 있다. 푸시킨, 톨스토이, 고리키, 스탕달, 위고, 괴테, 횔덜린, 헤세, 바이런, 로런스 등이 선생의 열정적인 답파(踏破)와 재구성에 의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에세이풍으로 써 가는 선생의 친절하고도 에두름 없는 문장들이 책의 가독성을 한결 높여 준다. 위대한 작가들의 사생활, 특별히 외도 경험 같은 어둑

한 측면까지 훤칠하게 재현했다.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는 어떠할까?

“우리가 위대한 시민혁명을 했는데도 여전히 발전된 정치의식이 빈곤하다는 것을 최근 절감했어요. 늘 흔들리고 위태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소설가들을 통해 역사를 올바로 보는 눈, 정치를 제대로 하는 힘을 빌리자고 생각했지요. 이왕이면 독자가 많은 작가들을 골랐어요. 되도록 각주를 빼고 연애소설 읽듯이 쉽게 풀어 갔습니다.”

책에는 장용학, 이호철, 최인훈, 박완서, 이병주, 남정현, 황석영, 손석춘, 조정래, 박화성, 한무숙 등이 담겼는데, 문학에 친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이병주가 다가올 것 같고, 문학의 자의식이 큰 분들에게는 최인훈과 남정현이 매우 유의미하게 다가올 것 같다.

“정치사 비판의 현장 중계는 이병주 선생이 최고봉이에요. 어떤 정치평론가도 못 따라가요. 최인훈 선생은 우리 문단의 고질병인 파벌을 넘어선 범례로 다루면 좋겠고요. 그 지성의 날카로움과 처연함이 단연 빛나지요.”

아직도 우리에게는 ‘정치’라는 말을 향한 기대와 혐오의 엇갈림이 있다. 그러나 정치야말로 가장 첨예한 예술이 아니던가. 책 서문에 인용된 나폴레옹의 말처럼 모든 공동체에서는 “정치가 운명”이 아니겠는가. 그 점에서 이 책은 선생의 사회적 실천의 연장선상에서, ‘비평가 임헌영’의 두께를 한 뼘 늘려 줄 것이다.

· 고단하고도 외로운 길

▲ 독일 고전문학의 도시 바이마르에서 찍은 사진. 바이마르에 있는 괴테와 실러 동상 앞에 권성우 평론가(왼쪽부터), 백시종 작가, 임 소장,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서 있다.

선생은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그 후 카프(KAPF)나 해방기에 대한 자료를 누구보다도 선구적으로 모았고 자료집을 냈으며 그 논리와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진력했다. 선생은 1980년대 이후 우리 지성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해방 전후사의 인식’ 시리즈에서도 단골 필자였다. 이쪽을 연구하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등단하기 전부터 카프에 대한 애정을 가졌어요. 해금 전부터 납월북 작가에게 관심이 많았고요. 그때는 대학 도서관에서 자료를 카메라로 직접 찍었어요. 해독이 잘 안 되면 살아 계신 분들께 전화로 직접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최첨단을 걸었지요.”

임헌영 비평은 참여문학, 민족문학, 리얼리즘, 민중문학에 이르는 패러다임을 모두 품고 있다. 안으로는 동학농민혁명, 4·19혁명, 광주민중항쟁, 6월항쟁과 관련한 문학에 대해 꾸준한 비평을 해 왔고, 밖으로는 글로벌 시대의 해외동포문학에 대한 탐구도 줄기차게 수행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외연을 넓혀 갔다. 이처럼 선생은 근현대 민족 수난사와 함께하면서 디아스포라 문제에도 눈을 떴다. 물론 선생은 서정적이고 예술적인 언어도 세상에 많이 내놓았다. 이 점, 선생을 설명하는 데 퍽 중요한 균형추가 아닐 수 없다.

마침 연구소 곁 숙명여대에서 재직하는 권성우 교수가 동석을 해 줬는데, 권 교수가 선생께 ‘앞으로 어떤 책을 내고 싶으냐’는 질문을 던졌다.

“북한문학 한번 정리해야 하고요. 해외동포문학도 중요합니다. 해외동포 쪽은 제가 제일 먼저 손대지 않았나 싶어요. 문학사회사, 특별히 필화사에 애정이 가요. 아마도 필화사가 제일 먼저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이후로 두 분의 치열한 대화가 오갔다. 재일조선인문학, 특히 김석범과 김시종과 서경식에 대한 경험적 대화는, 비록 즉각적이었지만 임헌영 선생의 경험과 사유가 어디까지 뻗어 나가 있는지를 실물적으로 알려 줬다.

“젊은 작가들의 세계를 평하기에는 이제 제 비평의 틀이 안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변해도 문학의 원칙은 그대로라고 생각해요. 그걸 훼손하면 안 됩니다. 원래 문학은 문학 하는 이들의 전유물이 아니었어요. 교양의 정점에서 문사철을 모두 이끌어 갔습니다. 손끝으로 하는 문학 말고 가슴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문학을 지금도 옹호하고 또 대망하고자 합니다.”

굵직한 의제들을 버리고 쇄말주의에 빠진 우리 문학에 대한 원로다운 문제 제기인 셈이다. 선생의 말씀처럼 근본적 문학의 위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하되 변하지 않을 문학을 위해, 여전히 현재형 의제인 민족사 복원을 위해, 선생이 걷는 고단하고도 외로운 길은 아직도 가파르게만 보였다. 하지만 그 길은 누군가는 걸어 우리에게 비춰야 했던 오랜 지남(指南)으로 남을 것이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2020-05-25> 서울신문 

☞기사원문: 어둑한 근대사에 돋보기…행간 속 민족을 사색하다

 

수, 2020/05/2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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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1부] [2부] 

☞ (5.22)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3편 이병주 2부

☞ (5.21)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3편 이병주 1부

☞ (5.20)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3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광주항쟁의 정신은?”

☞ (5.19)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2부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 (5.18)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1부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베트남전 당시 퐁니퐁넛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작품들_영화 “기억의 전쟁”과 만화 “붉은돌단풍”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 베트남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_4월 21일 베트남 피해자 최초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소송을 제기하다”

☞ (5.0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2부

☞ (5.0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1부

☞ (5.05) ‘내역사’ 시즌 5: 5화: 소설 『명시』작가 안재성이 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삶

☞ (4.28) ‘내역사’ 시즌 5: 4화: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가수 이지상과 함께

☞ (4.2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1편_이호철

☞ (4.21)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강주원 박사와 함께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0523-1

[책소개]
문학평론가이자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의 평론집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
해당 도서는 제목과 같이 정치 권력을 ‘몹시 꾸짖는’ 주요 작가와 작품을 소개한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으로서 작가들은 한국사회의 질곡을 그들의 글 속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일제 식민지와 6·25동란, 분단 현실과 군사쿠데타를 거치며 우리 시대 문학은 무엇을 보고 어디에 펜촉을 향하고 있는가 저자는 준엄하게 묻는다.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5

목, 2020/05/28-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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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구국영웅’이자 항일세력 토벌 ‘반민족행위자’…명암 선명
자서전서 만주군 간도특설대 활동 인정했지만 명확한 반성은 없어

6·25전쟁 영웅으로 불리는 백선엽 장군
[서울=연합뉴스 자료사진] 김주형 기자 = 6·25전쟁 영웅으로 불리는 백선엽 장군(예비역 대장)이 2019년 6월10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군사 편찬연구 자문위원장실에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만나기에 앞서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2019.6.10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김예림 인턴기자 = 올해로 만 100세를 맞은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최근 건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그가 사망할 경우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 전력 때문이다.

한국전쟁 초기 전세를 역전하는 계기가 된 ‘낙동강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무훈 등으로 2차례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백 전 장군은 사망 후 국립묘지법 5조에 따라 국립서울현충원이나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자격을 갖춘 상태다.

이외에 ‘평양전투’와 ‘중공군 춘계공세 저지’ 등 한국전쟁 중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받을 만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바 있다.

이에 따라 보훈처는 백 전 장군이 사망하면 여분의 장군묘역 자리가 없는 서울현충원 대신 대전현충원에 묘역을 조성한다는 입장이다.

논란은 최근 여권 일각에서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친일 반민족 행위자를 다른 곳으로 이장하는 내용의 국립묘지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불거졌다. 이 내용대로 법 개정이 이뤄지면 전쟁영웅으로 추앙받는 백 전 장군과 같은 인물도 국립묘지에 더는 안장될 수 없게 될 수 있다.

‘구국의 영웅’과 ‘친일·반민족 행위자’라는 두 수식어가 병존하는 백 전 장군을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데 대해 찬반 양론이 맞서면서 그의 친일행적도 재조명받고 있다.

그는 2차대전 당시 조선인 독립군 토벌로 악명 높은 만주군 육군 휘하 ‘간도특설대’에서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장교로 복무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백 전 장군은 1943년 2월 간도특설대의 일원으로서 압록강, 두만강 상류 일대에서 중국 항일 게릴라 토벌에 종사했다. 당시 중국 공산당이 주도한 항일 게릴라에는 중국인, 만주인과 함께 조선인도 포함돼 있었다.

백 전 장군은 1944년 봄, 팔로군(八路軍·1937∼1945년 일본군에 맞선 중국공산당의 주력부대 중 하나) 토벌 작전에 참가해 정보수집에서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여단장 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간도특설대에 몸담았던 시절에는 독립군과 싸운 적 없다고 했지만 간도특설대 자체는 ‘조선인 독립군은 조선인으로 잡아야 한다’는 일제 방침에 따라 조직된 특수부대였다.

특히 간도특설대는 백 전 장군이 몸담기 전인 1939년 천보산 전투에서 ‘동북항일연군’과 교전을 벌인 후 포로로 잡힌 독립군을 고문·살해한 부대로 알려져 있다.

친일·반민족 행위를 조사·연구하는 시민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출간한 친일인명사전의 백 전 장군 관련 기술은 다음과 같다.

“만주국이 초급장교를 양성하기 위해 세운 중앙육군훈련처에 1940년 3월 입학해서 1942년 12월 졸업하고, 1943년 4월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했다. 자무쓰 부대를 거쳐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했다. 1943년 12월 러허성(熱河省·지금의 허베이·랴오닝성 및 네이멍구자치구의 경계지점에 위치했던 옛 중국 행정구역)에서 간도특설대 소속으로 팔로군 공격작전에 참가했다. 일제 패망 당시 만주국군 중위였다.”

이어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을 발표하면서 ‘간도특설대에서 항일세력을 탄압’했다는 이유로 백 전 장군을 포함했다.

당시 백 전 장군은 “직접 독립군 토벌에는 참여하지 않았다”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위원회는 근거 자료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처럼 ‘구국영웅’과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명암이 존재하는 백 전 장군의 국립묘지 안장 논란이 불거진 상황에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그가 과거의 친일 행적에 대해 자서전에서 어떻게 기술했는지와, 사죄 및 반성을 표명했는지 여부다.

백 전 장군은 국내에서 출간한 두 권의 자서전에서 간도특설대 복무 사실을 서술했지만, 이를 명확히 반성하거나 사죄하는 내용은 담지 않았다.

그는 1990년 국내서 출간한 자서전 ‘군과 나’에서 간도특설대에서 3년 동안 복무하다 소련군에 진압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책에는 “봉천 만주군관학교를 마치고 1942년 봄 임관하여 자므스부대에서 1년간 복무한 후 간도 특설부대 한인부대로 전출, 3년을 근무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고 적었다.

또 1992년 국내서 출간한 자서전 ‘실록 지리산’에는 만주군 시절 익혔던 바를 지리산 빨치산 토벌전에 활용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책에는 “일제 말기 만군에 잠시 몸을 담았던 시절 나는 ‘죽이지 말라, 태우지 말라, 능욕하지 말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때 이후 나는 게릴라 토벌은 민심을 얻어야만 성공한다는 점을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다”고 적었다.

간도특설대 복무 사실을 간단히 언급한 정도에 그쳤던 국내 출간 자서전과 달리 일본에서 출간한 책에선 간도특설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기록했다. 1983년 일본에서 출간한 ‘대(對) 게릴라전-미국은 왜 졌는가’라는 책에선 간도특설대 활동이 반민족 행위였음을 시인하는 뉘앙스와 함께 합리화 시도로 여겨질 수 있는 기술도 담았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백 전 장군은 이 책의 한 장인 ‘간도특설대의 비밀’ 본문에서 “장래를 위한 군사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자각하고, 유일한 한국인 무장집단에 근무하고 있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고 썼다.

그러면서 “소규모이면서도 군기가 잡혀 있는 부대였기에 게릴라를 상대로 커다란 전과를 올렸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고 썼다.

이어 “그러나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적었다.

백 전 장군은 “그렇다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며 “주의주장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민중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평화로운 생활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칼을 쥐고 있는 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서술했다.

한편, ‘직접 독립군과 싸운 적은 없다’는 백 전 장군 주장과 관련, 일단 간도특설대는 1941년 동북항일연군이 사실상 궤멸한 뒤로는 독립군과 이렇다 할 전투를 치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43년 12월 중국 러허성으로 부대가 이동해 주로 중국 팔로군과 전투를 치렀던 것으로 알려진다.

단, 백 전 장군 복무시절인 1944년 7월과 9월, 11월 간도특설대가 무고한 조선인 등을 살해하거나 식량을 강탈했다는 등의 기록은 당시 상황을 기록한 ‘중국조선민족발자취 총서’에 소개돼 있다.

<2020-05-29> 연합뉴스 

☞기사원문: [팩트체크] 국립묘지 논란 백선엽, 친일·반민족행적 반성했나?

금, 2020/05/29-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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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이번 편은 영상촬영을 하지 못해 오디오만 올립니다.민주화 운동 기념사업회가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젊은 세대에게 그날의 뜨거움을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시리즈를 출간했다. 김홍모, 윤태호, 마영신, 유승하 네 작가가 참여해 제주4·3,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렸다. 네 작품 모두 의미가 깊은 사건들을 새롭게 발견하며 역사적 의미와 만화적 재미를 고루 담았다.이 중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아무리 얘기해도’ 의 마영신작가와 6.10민주항쟁을 다룬 ‘1987 그날’ 의 유승하 작가를 초대해 작가가 직접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독자들과 공감하고 싶었던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5

화, 2020/06/02-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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