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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HMC 2월모임] 우리는 한평생 기대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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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HMC 2월모임] 우리는 한평생 기대어 산다

admin | 목, 2020/02/20- 01:16

지난 2월 13일, 희망제작소가 1004클럽과 HMC회원의 온기로 가득 찼습니다. 판화가 이철수 화백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인데요.

이철수 화백은 1980년대 군사독재 시절에 판화로 맞서 싸우는 운동가이자 예술가로서 활약했고, 1990년대부터는 시와 판화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이철수 화백

이철수 화백은 희망제작소에 본인 작품의 기부할 뿐 아니라, 맞춤형 기부 커뮤니티인 1004클럽(3번)에 가입하셨습니다. 이날 모임에는 이 화백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평소보다 더 많은 회원들이 자리했습니다.

“원래 강의를 잘 안 하는데 오늘은 특별한 모임이라 왔어요. 무엇보다 나눔의 기쁨을 아시는 분들이라 그런지 얼굴만 봐도 행복이 느껴지네요. 누구의 감사를 대신 전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감사하다는 말씀드리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철수 화백은 깊은 성찰과 지혜, 때로는 위트가 담긴 본인의 작품을 하나 하나 소개했습니다. 작품에서는 인생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연륜이 느껴졌습니다.


▲작품 <너와 나> ⓒ이철수 화백

‘나도 자연이지 네가 그런 것처럼.’

“이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보통 화자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정말 뿌리 깊게 ‘나’ 중심으로 생각하기 마련이거든요. 생명이니까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게 당연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눈으로 자연을 대하다 보면 풀 한 포기가 저렇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화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린 그림입니다.”

성공한 화가인 이철수 화백에게도 혹독한 무명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림을 그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던 청년 시절, 어려울 때마다 나타나 도움을 주는 목사 님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은 저에게 돈 봉투를 주고 가시면서 ‘잘 받는 놈이 주기도 잘 준다더라. 혹시 갚게 되면 나한테 갚지 말고 다른데 갚아.’ 하셨습니다. 그 분 말고 또 다른 지인도 ‘앞으로 받고 옆으로 줘.’하면서 저에게 도움을 주셨죠. 청년기에는 받는 것이 고민이었어요. 부끄럽기도 하고. 그런데 좋은 돈을 받아 써서 그랬는지 나중에는 남에게 돈을 주면서 사는 것도 가능해졌는데 돈이 생기면 늘 그 때 그 말씀이 생각나는 거에요. 받기는 나한테 받았더라도 갚기는 다른데 갚으라는 말씀. 어쩌면 여러분도 그러고 계신 게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아주 좋은 계산법입니다.”

이철수 화백은 현재 충북 제천에서 꽤 큰 농사를 지으며 작품 활동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품에는 자연과 마주하며 얻은 자기 성찰과 영감이 듬뿍 담겨있습니다.

“제가 그리는 그림은 일종의 고백이에요. 누구에게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별 것 없는 화가로 시작해서 여전히 별 것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저도 고민이 많거든요. 잘 살아가는 법에 대해, 저한테 하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립니다.”


▲작품 <벌레먹은 머루나무와>ⓒ 이철수 화백

‘그렇잖아도 송이가 시원찮은데 벌레까지 극성이네?’
‘죄송해요. 우리는 그렇게 나누고 살아요. 벌레도 먹이고, 사람도 먹이고.’


▲ 작품 <가난한 머루송이에게> ⓒ 이철수 화백

‘겨우 요것 달았어?’
‘최선이었어요.’
‘그랬구나. 몰랐어. 미안해!’

“이런 경쟁 사회에서 살자면 누군들 열심히 안 살 수 있겠어요. 그런데 능력껏 최선을 다했는데도 남들과 비교해서 결과가 나쁘면 좋은 소리를 못 듣고 살지요. 지금까지 살아보니 성공했다는 건 거의 운이 좋았던 것이더라고요. 제가 밥 굶지 않고 화가로 사는 것은 운이 좋았다는 것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어요.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도 없었고 남들보다 특별히 부지런한 것도 아니고. 정말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들을 제가 아는데 다 밥 잘 먹고 사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 그림으로 먹고 사는 건 운이 좋았다고 해야죠. ‘겨우 요것 달았어?’ 이런 말이 없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작품<의자> ⓒ이철수 화백

뜰에 나가 앉다.
의자.
잘난체 할 것 없다.
우리는 한평생 기대어 산다.

“이 의자는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인데 제 그림에 많이 등장해요. 남들을 부리고 싶어하는 사람은 본인도 어디 기대어 산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아서요.”

기부자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여졌습니다.

“신실한 불교 신자였던 중국의 황제가 달마를 만났을 때입니다. 황제는 자기가 절도 짓고 탑 세우고 공양도 열심히 했는데 어떠냐고 달마에게 자랑삼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달마는 ‘아무 공덕이 없다’고 했답니다. 기분 나쁜 황제가 왜냐고 물으니 ‘그런 일은 윤회 거리나 만드는 일이며, 형체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처럼 있는 듯 하지만 실상은 없는 것이다’라는 거에요. 기부를 했다거나 어디 좀 도와줬다는 것은 평생 따라다니는 그림자같이 덧없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감히 제가 하는 얘기는 아니고, 달마가 한 이야기입니다. 하하. 앞으로도 변함없이, 희망제작소와 함께 아름다운 경험을 계속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철수 화백의 그림은 담백합니다. 하지만 진한 여운을 남깁니다. 치유 받는 느낌도 듭니다. 자연에 대한 존경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한평생 기대어 사는 우리들의 삶,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고민하게 하는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1004클럽과 HMC클럽 회원 분들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1004클럽·HMC정기모임>은 5월 16일 열립니다. 후원회원의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 글: 이음센터 연구원 | 이규리 [email protected]
– 사진: 이음센터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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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에서 20여 년 동안 산부인과운영을 하면서 외부활동으로 청소년 성폭력예방강사와 감정코칭 강의 활동이 한참 진행 중일 때, 청소년 멘토링 사업 재능기부활동을 권유받아 6년 전 안산희망재단 이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첫 권유와 달리 우리나라 지역재단은 내가 오랫동안 활동한 국제로타리재단운영과 달라 오랜 시간 늘 고민하면서 50%는 발을 담그고 50%는 언제 도망갈지 타이밍만 노리고 있었다.

3년 전, ‘지역재단협의회’가 전국연합으로 구성되었고 협의회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지역재단학교를 운영, 1, 2기를 수료하면서 비로소 지역재단의 가치와 비전을 이해하게 되었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사랑과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모금… 솔직히 말하면 병원 운영자 입장에서는 불편한 단어였고 늘 적은 금액부터 큰 금액까지, 정기기부 및 후원금을 ‘주는’ 입장으로 괜히 착한 척만 하는 거 같고, 겉과 속이 다른 느낌마저 들 정도로 기부가 불편했다.

하지만 지역재단 교육을 받고 관점을 바꾸게 되었고 이제는 정반대로 후원금을 ‘요청’하는 입장인 ‘모금위원장’을 맡게 되었고 내친김에 CCM – 모금 캠페인 매니저 자격증까지 취득하게 되었다.

이번 교육에 참가한 동기는 지역재단학교, CCM 자격증까지 취득하였는데도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사무국에 무슨 도움을 줘야 할지에 대한 갈등으로 머리를 쥐어 짜고 있을 때 이메일로 모금전문가학교에 대한 제목이 있어 충동적으로 클릭, 등록까지 하게 되었고 교육장에서 너무나 유익한 10주차의 강의를 무사히 마치고 수료했다.

배움에는 남녀노소, 어떤 장애도 극복하고 임한다지만 손녀를 돌 볼 나이에 교육을 받으려 다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모금교육을 듣고 혼자서 생각한 것을 정리도 안 된 채로 희망재단 사무국 실무자들과 미팅을 하다 보니 굉장히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

결국 이사가 교육을 받아 사무국에 정보를 제공할 일이 아니고, 사무국이 열정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교육이고, 그들이 교육의 대상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사회에서 직원의 모금역량강화를 위한 교육 지원을 안건으로 올리게 되었다.

수업과 함께 진행되는 과제만 잘 따라 해도 큰 성장이 될 것 같다. 과제를 어설프게 올려도 넘칠 정도로 자세히 봐주시고 코칭해주셨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집중하지 못하고 욕심만 부린 탓에 안산희망재단 ‘안산최초기부클럽’은 안타깝게도 당분간 보류하게 되었다.

성과는 공부기간에 코로나가 겹쳐서 ‘재난기본소득 기부캠페인’으로 500만 원을 모으는데 사람들 만나고 모금하여 안산다문화단체 5곳에 배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인정해주셔서 큰 보람과 위안이 되었다.

10주차의 모금 핵심지식에서 실무준비까지의 과정을 재미있게 배웠고, 집중해서 그런지 나중에 교재를 보면서 정리가 잘 되는 것 같았다. 개인적 모토가 ‘배워서 남 주자.’ 였기에 몽~땅 잘 배워서 과거의 나처럼 ‘지역재단에 무지한 사람들’에게 배움을 통해 관점을 다르게 해주고 싶었다.

모금전문가학교에서 만든 모금 10원칙만 잘 이해하고 실천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교육 과정 중 모금 실습을 통해 얼마를 모금한 것은 참으로 보람있는 일이었다.

요즘 주변을 돌아보면 상황이 좋지 않다. 국가도 기업도 심지어 NGO단체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일수록 잠시 멈추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 설계해보는 것이 좋다.

이런 설계를 하는데 모금전문가학교에서 배운 것이 틀림없이 도움이 되며, 이를 지식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실무에서 실행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22기 동기 모두, 개인의 성장과 조직의 성장을 기원한다.

– 글: 문옥선 22기 모금전문가학교 수료생
– 사진: 휴먼트리

수, 2020/07/01-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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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지역 후원회원님을 만날 때마다 유독 한 분의 이름을 자주 듣습니다. 바로 김주형 후원회원(1004클럽)인데요. 많은 분이 김 후원회원의 추천으로 희망제작소 후원을 시작했다고 말씀하십니다.

후원은 기본적으로 마음이 움직여야 가능한 일인데요. 김주형 후원회원의 어떤 모습이 다른 분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요. 김 후원회원을 만나러 전주로 향했습니다.

더 좋은 사회를 꿈꾸는 마음으로

전주에서 아동병원을 운영 중인 김주형 후원회원은 ‘아름다운 가게’에 무상임대로 공간을 내어주는 등 우리 사회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많은 활동을 해 왔습니다.

“광주에 전라도 최초로 ‘아름다운 가게’가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찾아보니 전북에는 없는 거예요. ‘이렇게 좋은 게 왜 전북에는 없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저희 건물 1층이 비어있어서 무작정 아름다운 가게에 전화했죠.”

김 후원회원은 무상임대는 물론 인테리어 비용까지 부담하며, ‘아름다운 가게 모래내점’이 개점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웁니다. 이후 ‘공동대표’라는 직함도 얻었지만 어떤 혜택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좋은 일이 돈에 가로 막히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공과금만 받아요. 남들이 보기에는 제가 손해보는 것처럼 느껴질지 몰라요. 하지만 제가 돈을 벌려고 이 일은 한 건 아니잖아요. 좋은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죠.”

희망제작소와의 인연은 아름다운가게 모래내점 축사를 온 박원순 전 상임이사(현 서울시장)와의 만남으로 시작됐다고 합니다. 당시 김주형 후원회원은 전주시의사회 회장을 맡고 있었는데요. 의사회 연수교육 당시 박 전 상임이사를 초대해 기부문화와 관련된 강의를 듣고 희망제작소에 대한 소개를 들은 후 후원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희망제작소 활동 취지에 공감이 가더라고요. 보탬이 되고 싶었죠. 그래서 제가 1004클럽에 가입하겠다니까 몇몇 의사들이 함께하겠다고 하셨어요. 회장인 제가 하니까 엉겁결에 같이 후원을 시작한 게 아닌가 싶어요.” (웃음)

겸손하면서도 따뜻함이 묻어나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모습이 지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의사회뿐 아니라 사적인 모임에서도 희망제작소 이야기를 종종 꺼내셨다는데요. 그때마다 많은 분이 공감하고 함께 후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셨다고 합니다. 덕분에 희망제작소에는 더 많은 지원군이 생겼습니다.

코로나19 자원봉사현장으로 향하다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시끌시끌합니다. 실제 우리의 삶도 많이 달라졌는데요. 김 후원회원이 운영 중인 병원에도 코로나19의 영향이 미쳤습니다. 하루 평균 400여 명이던 환자 수가 약 70% 정도 감소했다는데요. 입원 환자의 경우에는 72개의 병상 중 10개를 넘기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당뇨, 고혈압, 관절 등 만성질환을 다루는 병원은 좀 나을 거예요. 하지만 저희 같은 경우는 급성질환이 많다 보니 환자 수가 많이 줄었죠. 저희 병원 의사가 9명이거든요. 환자가 줄다보니 한 달에 2주씩 무급 휴직을 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집에만 있고, 가끔 나가더라도 마스크를 쓰니까 위생 상태가 좋아지는 거죠. 사회전체적으로는 긍정적인 현상인데, 의사들은 살짝 어려워졌어요.”

지난 3월에는 김 후원회원의 병원에 확진자가 다녀가는 바람에 상황이 더 어려워지기도 했습니다. 하루 전체 환자 수가 10명이 되지 않는 날도 있었다는데요. 그 와중에도 김 후원회원은 코로나19 의료봉사에 참여했습니다. 신천지 사태로 전국이 한참 시끄러울 당시에 선별진료소로 향했고, 전주에 있는 600여 명의 신천지 신도를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드라이브스루라지만 불안했던지 아내가 못 가게 했어요. 손주도 있고 해서 저도 살짝 고민했죠. 그래도 가야겠더라고요. 가면 제가 최고참일 줄 알았는데, 두 분의 선배가 더 계셨어요. 감사했죠. 후배들도 좋아했어요. 물론 힘들긴 했습니다. 3월이라 많이 춥진 않았는데 손이 시렸어요. 입김 때문에 안경에 김도 서렸고요. 또 방진복을 벗으니 머리에만 땀이 흥건하더라고요.

김주형 후원회원은 드라이브스루, 워킹스루 등을 포함한 K방역이 혁신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덧붙여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꼭 한국에서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는데요. 이를 통해 한국의 우수한 의료체계가 전 세계에 알려지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대응을 잘한 것은 의료체계의 영향도 있다고 봐요.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공적의료 체계와 함께 민간의료시설이 발달해 있거든요. 또 의료수준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도 상당히 높습니다. 덕분에 대응이 훌륭했던 거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주세요

김 후원회원은 직업인 의사를 넘어 봉사자 의사로서 평생 일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시간 날 때마다 동남아 등지로 의료봉사를 떠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젊었을 때 아프리카로 의료봉사를 가는 게 꿈이었어요. 생활에 얽매여 못 하고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하고 싶네요. 물론 제일 좋은 건 현지에 병원을 짓거나 교육을 해서 의사를 양성하는 것인데요. 지금은 그게 쉽지 않으니까, 우선은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싶네요.”

다소 엉뚱한 것 같지만 김주형 후원회원의 꿈은 ‘세계평화’라고 합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사용하는 닉네임까지 ‘세계평화’라고 지었다고 하는데요. 세계평화는 가족기도회 때마다 빠트리지 않는 기도 제목 중 하나라고 합니다.

“요즘 가슴이 많이 아파요. 코로나19 때문에도 그렇지만, 뉴스를 보면 복잡한 정세에 머리가 지끈지끈 해요. 북한, 미국, 일본 등 참 골치 아픈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우리 사회는 점점 진보하고 있다고 믿어요. 희망제작소 같은 비영리단체도 일조했다고 보고요.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좋은 역할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주세요.”

– 글 : 최은영 이음센터 연구원 [email protected]
– 인터뷰 진행 : 한상규 이음센터 센터장 [email protected] 최은영 이음센터 연구원
– 사진 : 이음센터

월, 2020/07/0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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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오래된 미래
– 사진을 통해 보는 희망제작소 15년

운동성과 연구 역량을 갖춘 민간 싱크탱크로서 새로운 시민운동의 패러다임을 꿈꾼 희망제작소가 창립된 지 15년을 맞이했습니다.

시민의 아이디어가 사회적 의제로, 정책 대안이 될 수 있도록 희망제작소의 연구와 활동은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현장의 시민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의 시작인 2006년부터 현재까지 사진을 통해 15년의 시간을 되짚어봅니다.

민간독립연구소로서 첫 걸음을 떼다

(좌) 2006년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창립대회
(우) 2019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후원의 밤
시민의 삶 속 반짝이는 제안을 모아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는 2021년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딱딱하고 어려운 연구?!, 시민이 직접 나서는 연구

(좌) 2006년 수해 전문가 뿐 아니라, 수해 현장을 몸소 느낀 시민이 발표자로 서서 생생한 이야기를 나눈 월례포럼 ‘천재 그리고 인재,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
(우) 2019년 재난이 닥쳤을 때 반려동물과 함께 통합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반려동물 재난위기 매뉴얼을 만들었던 ‘2019 온갖문제연구 프로젝트’ 시민연구자. 온갖문제연구소는 시민이 문제 해결의 당사자이자 연구자로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생태적 전환, 내가 살아가는 일상 속 실천을 모색하는 워크숍

(좌) 2009년 박스, 일회용품, 이면지 등 쓰레기를 이용해 노트를 만드는 에코노트 만들기 시간. (우) 2019년 안쓰는 실, 안입는 니트를 풀어 만든 실을 활용해 산호를 뜨며, 멸종위기에 처한 산호를 알리는 산호뜨개모임. 시민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기후행동은 우리의 일상을, 지구를 바꿀 수 있습니다.

자치분권을 실현하기 위해 지자체가 머리를 맞댄 정책 사례 연구

(좌) 2006년 ‘공무원이 바뀌면 지역이 바뀐다’는 모토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지방의회의원, 지역리더를 대상으로 공공리더의 성장을 도운 ‘시장학교’
(우) 2020년 코로나19 관련 지역의 현안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 중인 민선 7기 목민관클럽 9차 정기포럼 현장
목민관클럽은 지난 2010년부터 지방자치 혁신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장, 공무원이 함께 자발적 협력과 연구, 교류하며 풀뿌리 민주주의를 일구고 있습니다.

탁상공론?! 다양한 아이디어를 나누고, 대안을 찾는 ‘공론장’

(좌) 2010년, 고양시 간부공무원 워크샵에서 머리를 맞대고 함께 문제를 맞대고 있는 고양시 공무원
(우) 2019년 완주군 정책디자인 스쿨, 주민 중심 정책 디자인을 위해 머리를 맞댄 완주군 공무원

희망제작소의 든든한 뿌리, 후원회원과 함께 한 시간

(좌) 2009년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희망제작소 3주년 후원의 밤
(우) 2019년 세종문화회관에서 후원의 밤.
함께 쓴 ‘희망’글씨를 들고서 우리 안의 희망을 시민과 함께 쓰고자 합니다.

직접 만나고, 안부를 나누는 후원회원과의 만남

(좌) 2013년 후원회원과 함께 하는 연탄 배달 나눔 봉사
(우) 2019년 후원회원과 함께 하는 연탄 배달 나눔 봉사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연탄 배달 나눔 봉사가 잠시 보류됐지만, 매년 진행하는 연탄 나눔 봉사를 통해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봉사 시작 전에는 빨간 목장갑이 연탄 한 장 한 장 힘을 모아 나누고 나면 어느새 검은 장갑으로 변하곤 합니다.

후원회원이 모여 시민으로 연결되는 모임

(좌) 2011년 산을 사랑하는 후원회원이 모인 산행 커뮤니티, ‘강산애’
(우) 2019년 ‘강산애’가 관악산에 함께 오른 모습
희망제작소 후원회원이 모인 ‘강산애’는 산을 사랑하는 회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수송동, 평창동을 거쳐 시민의 힘으로 마련한 성산동에서

(좌) 2005년 서울 수송동에 희망제작소가 있던 시절, 신입 연구원 오리엔테이션 현장
(우) 2019년 서울 평창동에서 시민의 힘으로 마련한 성산동으로 옮긴 희망제작소에서 신입 연구원과 함께.

희망제작소가 계속 빛날 수 있도록 지지해준 후원회원

(좌) 2011년 서울 평창동 희망제작소 벽을 빛냈던 후원회원의 이름이 담긴 별 헤는 밤
(우) 2021년 현재 성산동 희망제작소 천장을 밝히는 희망제작소 활동을 정리한 희망 별
희망제작소 곳곳에는 희망제작소를 만든 회원과 시민의 이름이 새겨져있습니다.

희망제작소가 품은 연구와 활동을 나누며 새로운 연결을

(좌) 2014년 서울 평창동 희망제작소 공간투어 현장
(우) 2019년 서울 성산동 희망제작소 공간에 방문한 싱가포르 Raffles Institute 관계자들이 ‘희망별’을 보며 활동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다.
공간투어는 누구나 신청할 수 있으며, 희망제작소 공간에서 활동과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시민 스스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모이고, 의견을 나누고, 정책을 제시하는 변화는 희망제작소가 뿌린 작은 씨앗입니다. 어느새 희망제작소가 창립된 지 15년을 맞이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민간 독립연구소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연구와 현장을 놓치지 않고, 시민연구와 시민운동의 새로운 방향성을 찾고, 스스로 새로운 전환을 일구는 희망제작소가 걷는 앞으로의 15년을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십시일반 후원으로 희망제작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

– 글/정리: 이음팀

토, 2021/03/2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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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순간은 늘 슬프고 아쉽습니다. 희망제작소 연구원들도 1년에 여러 차례 이별을 겪는데요. 동료 연구원이 떠나가는 순간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후원회원으로 남아 희망제작소와 계속 인연을 이어가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번에 만난 이은경 후원회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은경 후원회원은 2013년 가을부터 2017년 여름까지 약 4년여간 희망제작소 연구원으로 활동했습니다. 퇴직 이후에는 후원회원과 독립연구자로서 함께 했는데요. 최근에는 희망제작소의 여러 프로젝트에 객원연구위원으로 합류해 활발하게 연구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 연구원에서 후원회원으로

“큰 흐름을 보게 되었어요.”

희망제작소 안에서 바라볼 때(상근연구원)와 밖에서 바라볼 때(후원회원)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묻자 돌아온 답변입니다. 연구원으로 일할 때는 프로젝트로 희망제작소의 미션과 목표를 실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다 보니 성공과 실패에 일희일비하는 경우가 많았다는데요. 거리를 두고 바라보자 ‘희망제작소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위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너그러워 보이지만 더 어려운 시선이에요.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길 바라는 마음은 더 커졌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새로운 의제가 떠오를 때마다 희망제작소가 어떻게 움직일지 기대하게 되더라고요.”

퇴직 이후에도 꾸준히 후원을 이어가는 이유 역시 이런 기대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후원회원은 “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는 직접 후원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희망제작소의 활동 가치에 좀 더 깊이 공감하고 후원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면서 후원을 시작했다고 하네요.

“입사와 동시에 후원을 시작한 게 아니기 때문에 퇴직 후에도 탈퇴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중요한 사실은 처음 후원했을 당시와 지금의 마음이 같다는 건데요. 희망제작소가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 그리고 중요한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거죠.”

새로운 사회의제를 발굴하고, 연구하고, 대안을 찾던 경험

연구원으로 활동하던 당시 이은경 후원회원은 희망제작소가 전통적으로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사회의제를 연구하고, 대안을 찾아보는 역할을 했습니다.

“다문화정책 연구, 노동, 일상 정치 참여 등 희망제작소가 기존에 연구했던 의제와 조금 다른 방향의 것들에 집중했었는데요. 어떻게 보면 실험적이었던 것도 같아요. 하지만 새로운 사회적 의제나 이슈를 다룰 때, 그것이 희망제작소의 주요 키워드인 사회혁신, 지역혁신, 시민참여와 어떻게 맞닿아있는지 심도 있게 탐색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실제 이 후원회원이 리더로 있던 사회의제팀에서 기획했던 ‘좋은 일, 공정한 노동’, ‘좋은 일을 찾아라’ 보드게임 등의 프로젝트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노동의 의미,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등의 이슈가 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하고 있던 때에 진행되고 대안을 제시한 연구라서 더욱 의미 깊었습니다.

“희망제작소에서 일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희망제작소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였어요. 생각해 보니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게 어렵긴 하더라고요. 워낙 많은 일을 했으니까요.”

이런 고민은 외부에서 희망제작소를 바라볼 때도 비슷하게 다가오지만, 연구원으로 일할 때보다 더 많은 주문을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합니다. 특히, 희망제작소가 여러 지역과 현장에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은 보이는데, 그것들이 지향하는 핵심적인 가치 혹은 변화의 방향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과거에 비해 시민의식이 많이 높아졌어요. 시민참여 방법론도 다양해졌고요. 저 역시 희망제작소처럼 시민참여는 ‘작은 단위’에서 시작한다고 봐요. 시민이 우리 사회의 어떤 지점에서 분노하는지, 그리고 어떤 부분에 기여하고 싶어 하는지 면밀하게 살피고 이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시민참여를 활성화 할 수 있어요. 이 원리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 동력이 되는 게 희망제작소가 바라는 진정한 의미의 ‘시민참여’ 아닐까요?”

희망제작소, 독립연구자의 든든한 협업 파트너가 되었으면

미디어학을 전공한 이은경 후원회원의 최근 관심 분야는 미디어 스타트업인데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독립연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미디어와 언론의 혁신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데요. 동시에 앞서 언급한 것처럼 희망제작소의 다양한 프로젝트에도 객원 연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독립연구자로 연구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가끔 힘에 부쳐요. 혼자 모든 것을 만들고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때 필요한 건 돈일 수도 있고, 지식이나 능력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사람일 수도 있는데요. 희망제작소가 독립연구자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어요. 공익에 관심 있는 이들의 활동을 지원해주는 것은 물론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협업의 파트너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묵직한 조언에 마음이 든든해졌습니다. 희망제작소라고 해서 늘 희망만 있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도 나눴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보다는 희망이 큰 삶을 함께 살아가자는 말에 힘을 얻었습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걷는 사람. 좋은 친구라는 말은 이럴 때 붙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 글 : 최은영 이음센터 연구원 [email protected]
– 인터뷰 진행 : 최은영 이음센터 연구원
– 사진 : 이음센터

수, 2020/10/2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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