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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아름다움과 생태문명의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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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아름다움과 생태문명의 창조

admin | 월, 2020/02/17- 22:24

우리가 생태문명의 비전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반드시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가치도 그 비전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삶의 중심에 있는 가치이며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일의 핵심이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아름다움을 자기 철학의 중심에 두었다. 그는 관계적 관점에서 세계를 설명했으며 이런 관계들이 “아름다움의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미적 사건들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아름다움의 생산”이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아름다움이라는 원리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를 견고하게 재구조화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대 서구 문명의 지배적 패러다임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이 “보는 사람의 눈”에 달린 것, 단지 의견에 그치는 판단이라고 믿게 됐다. 그래서 아름다움을 피상적이고 사소한 특성으로, “오직 피부 두께”로 거론한다. 이런 가르침은 아름다움을 공공생활에서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예술세계에서는 아름다움이 줄곧 논쟁적인 주제였지만 대개는 화장품, 패션, 성 상품화, 소비자 마케팅의 영역에 갇혀 있었다. 그래서 아름다움이 공공정책, 지방정부, 경제발전, 교육, 공공보건, 환경보호에서도 고려할 가치가 있는 주제라고 제안하는 일은 당황과 조롱 사이의 어디쯤에 있는 무미건조한 감정을 끌어낸다.

자연세계와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에서도 아름다움에 대한 현대성의 편견이 그대로 유지된다. 토지이용계획을 세울 때 산책로를 만드는 것과 건물을 짓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한다면 우리는 미적 결정을 내린다. 구역설정, 쓰레기처리, 대기질과 수질에 대해서도 비슷하다. 물론 우리의 도덕적 코드와 문화적 관계에는 미적 차원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름다움의 사소함을 확신하기 때문에 이런 결정에서 아름다움을 여러 요소 중 하나로 경시한다. 그 결과는 우리 도시와 집들이 싸고 투박하게 지어짐으로써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직접적 경험을 퇴화시키는 비타협적 법칙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생태적 패러다임의 본질이다

사실 아름다움은 생태적 패러다임의 본질이다. 아름다움은 현대 산업기술 자본주의 세계관의 핵심에 도전해 생명을 부정하는 원리와 가정을 소환하는 가치체계이다. 아름다움은 생명체에 내재하는 생동감과 관련이 있으며 존재들간의 관계에서 강화된다. 생명을 긍정하는 관계는 가치를 가지며 아름다움은 우리가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아름다움은 생명, 그리고 생명의 경험들과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가치이며 그래서 다른 존재들의 활기와 연결된 우리 자신의 활기를 북돋운다.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실재를 좀더 정확히 설명하는 포스트 기계론의 패러다임을 구상할 때 아름다움을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 기계론의 반생명성에 대항하기 위해 화이트헤드는 느낌의 형이상학을 제안했고 관계의 느낌을 실재의 가장 기본으로 설정했다. 느낌을 다시 도입하는 것은 기계론의 가정들과 현대사상의 경로에 대항하는 생각들을 순차적으로 끌어낸다. 느낌은 주체성을 요청하고 주체성은 자유, 새로움, 목적, 가치를 요청한다. 생명이 다시 세계로 돌아오는데 이는 생존을 위한 혼란스런 돌진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향한 궁극적 목적으로서의 회귀이다. 화이트헤드는 “아름다움, 도덕적이고 미적인 그것은 존재의 목적이다”(Cited in The Philosophy of Alfred North Whitehead, Paul Arthur Schilpp, editor (La Salle: Open Court, 1941 and 1951), p. 8)라고 썼다.

 

조직의 원리이자 목적으로서의 아름다움

이런 방식으로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예술에 국한돼온 아름다움이 확장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현대 세계에서는 공공영역에서 아름다움에 기울이는 작은 관심이 오로지 예술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공공예술 지원은 공공조각, 벽화, 간판 같은 형식적 활동에 그친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존재의 목적”으로 이해된다면 세계의 구조와 과정이 생명을 긍정하고 의도적으로 “생명의 생생함”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이끄는 비전을 제시하게 된다. 아름다움은 이런 저런 물질적 형태가 아닌, 문화적 커먼즈를 창조하는 조직 원리로서 우리의 공공영역에 다시 들어와야 하며 전반적인 삶의 실천이 돼야 한다.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사회적으로 공정한 새 패러다임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실재의 구조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새로운 형이상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오랫동안 인식해 왔다. 그러나 그들조차 지속가능성과 아름다움이 어떤 관계인지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환경에 대한 글과 함께 제시된 이미지가 아무리 우리의 마음을 열고 “이 아름다운 세계에 등을 돌리지 마시오”라고 외치도록 만들더라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아름다움의 역할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토론을 위한 시각적 자료 이상으로 활용되지 않으며 기계론과 유물론의 형이상학을 전복하는 일의 중요성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이것은 아름다움이 실재가 아니거나 우리가 아름다움의 부재에서 괴로움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아름다움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도록 훈련 받아왔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조직의 원리로서 다시 도입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생태적 패러다임을 향해 움직이려는 노력을 기울여도 여전히 현대적 패러다임에 속박된다. 지속가능성이라는 목표에 접근하는 지배적 방식도 현대성에 명백하게 붙들려 있다. 지속가능성이 공공의 논의에서 견인력을 가질수록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서 거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 기술적 혁신으로 환원된다. 탄소저감기술이 우리의 제1세계 생활양식을 유지해주면서 기후붕괴를 피하는 놀라운 가능성을 갖는 지속가능성의 성배가 되어왔다.

에너지 절약과 재생 가능한 자원기술이 기후안정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에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자신에게 내재한 활력과 모든 존재의 가치를 긍정하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보다 넓고 깊은 토대가 필요하다.

 

지속가능성, 생명에 대한 긍정, 아름다움

“지속가능성”이란 단어는 인내를 최선의 목표로 제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더 큰 의도가 있다. 바로 번성에 대한 관심이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지구에서 끝없이 견디는가” 혹은 “우리가 어떻게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는가”가 아니다. 지속가능성은 그것 자체가 목표가 되거나 에너지 절약과 재생 가능한 자원의 문제로 축소되면 안 된다.

지속가능성이란 개념의 핵심에는 가치, 그리고 무엇이 지속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공리적 질문이 있다. 그것은 (확실히 재생능력이 해답의 필수적 부분이기는 하지만) 단순한 지속을 넘어선 문제이다. 훨씬 위대한 미적-윤리적 비전이 아름다움과 선함이 융합되는 지속가능성의 실천적 작업을 제시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어떻게 하면 생명을 긍정하는 방식으로 살수 있는가”이며 이것은 “우리는 아름다움을 증진시키는 방식으로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도 같다. 그래서 지속가능성은 아름다움과 함께 번성하는 세계에 도달하는 실천적 지침이 된다.

아름다움을 생태문명의 점근선적 목적으로 만들 때 우리는 기계론을 유기체적 세계관으로 대체하는 일을 완성하게 된다. 아름다움을 다시 도입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정신을 만족시키고 고양시키며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의 주체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문명을 재형성할 수 없다.

 

아름다움을 실천하기

“실천(practice)”이란 단어는 영어에서 두 가지 품사-명사와 동사-로 쓰이지만 단수이며 의도적인 반복이란 특징이 있고 삶의 형태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실천은 바람이나 생각을 실용적, 기술적 활용으로 변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실천”이란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어 동사 “성취하다(accomplish)”에서 왔으며 “행동에 적합한(fit for action)“, “효과적인(effective)”, “활기 있는(vigorous)” 같은 단어들과 관련이 있다.

아름다움을 단순한 “우리의 경험”이 아니라 “생명의 구조의 일부”로서 세계에 돌려주는 일은 아름다움의 실천을 우리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만들려는 헌신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 음악에서 스즈키 메소드의 창시자인 스즈키 신이치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네가 밥을 먹는 날에만 (바이올린을) 연습하라.” 스즈키의 목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본사회를 아름다움과 도덕성으로 정의되는 국가로 만들어 재건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세계관을 재형성하려면 악기를 배우는 것처럼 엄청난 연습이 요구된다는 걸 알았다. 낡은 습관을 깨고 새로운 습관을 개발하려면, 새로운 자세를 유지하는 새로운 근육을 만들려면, 인식을 정화하려면, 새로운 느낌을 표현하는 언어능력을 얻으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아름다움을 실천에 옮기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출발점으로 4가지를 제안한다.

1. 아름다움으로 이끌라

현대성은 형식과 기능의 관점을 부과했는데 오로지 이런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기능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될 때는 효율성(시간과 비용 모두에서)만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형식이 기능에 종속될 때는 보다 큰 관계의 패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물질적 생산이란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이 계획이 세계의 아름다움에 어떻게 기여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면 기능과 형식은 삶의 위대한 경제를 책임지게 될 것이다. 이 경제는 관계의 전체성과 모든 행위가 전체성으로부터 나온다는 규칙에 기초를 둔다. 미적 문제를 우선으로 한다는 것(관계 없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존재의 활기와 그 활기가 어떻게 전체의 활기에 기여하는지,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런 상호성이 핵심이다: 어두운 하늘의 별빛처럼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빛나게 한다. 화이트헤드가 든 사례는 샤르트르 대성당의 9개 문을 그린 조각작품이다: “이 조각들은 각각 아름다움을 지니면서 전체의 아름다움에 자신을 내어준다.”(Alfred North Whitehead, Adventures of Ideas (New York: The Free Press, 1933), p. 264) 아름다움으로 이끄는 것-삶을 긍정하는 관계로서 이해되는 아름다움-은 즉각 효율성과 금전적 이익을 넘어 생명체계의 활기로 관심을 확장시킨다.

서울의 1호 공공건축가인 승효상은 도시 디자인에 대한 자신의 접근법이 “재개발”보다는 “재생”이라고 설명함으로써 경제발전에서 재생으로 초점을 옮겨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 그의 구분은 1960년대 이후 서울에서 지배적이었던 서구 산업화 모델을 생태적이고 문화적으로 조율된 모델로 대체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승효상의 비전에 따르면 건축가들은 서울이란 장소의 독자성과 생기를 얻기 위해 서울을 둘러싼 8개의 산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는 도시를 “기억과 바람을 가진 살아있는 존재”라고 하면서 “존재하기보다 생성”하는 전체를 디자인하는 최우선 원리로서 전통 문화와 자연-기술과 건축가 개인의 육감이 아닌-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http://www.urbanista.org/issues/local-eyes/news/close-encounters-of-the-...) 세계에 존재하는 살아있음에 대한 그의 옹호(그리고 우리를 삶으로 데려가기 위한 도시 디자인에 대한 그의 헌신)는 생태문명을 형성하고 아름다움을 우리 삶의 조직 원리로 만드는 중요한 발걸음이다.

2. 느낌을 앎의 기초로 만들라

미학(aesthetics)이란 단어는 “느낀다”는 뜻이다. 어원은 그리스어인데 인식하거나 감각한다는 뜻이 들어있다. 반대말인 반미학(anesthetic)은 “무감각하다”는 뜻으로 감각을 무디게 만듦으로써 고통의 공포를 없애는 의학적 발전과 연관돼 대부분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친근한 단어이다.(번역자주: anesthetic은 마취제라는 뜻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느끼고 느낌을 갖는 것, 다른 사람의 느낌을 경험하는 것, 삶을 유지하는 일들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적 세계관은 실재의 구조에서 근본적인 것인 느낌의 부정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느낌, 주체성, 가치는 서로 통한다. 이것은 모두 기계론의 가정에 대한 평형추이며 삶의 형이상학을 향한 주춧돌이다. 살아있는 주체들의 세계에서 세계의 전체성과 세부를 동시에 알 수 있는 것은 철저한 느낌을 통해서이다. 상호적응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느낌이고 상호적응이 가져오는 생명을 긍정하는 결과-즉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도 철저한 느낌을 통해서이다. “무엇이 아름다움 혹은 아름다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느낌의 형이상학에 달려있다. 그래서 아름다움의 실천은 느낌을 근본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실천이자 느낌에 의해 구성되는 전체성에 대한 수용성을 배우는 실천, 그리고 타자와의 관계에서 우리 자신의 삶-정신을 느끼도록 자신을 훈련시키는 실천을 통해 우리의 인식이 보다 정교해지고 “언제나 우리를 둘러싼 것들을 우리의 눈이 볼 수 있고 우리의 귀가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실천이다.

3. 아름다움의 이름을 말하라

서구의 지배적 문화는 아름다움이 단지 주관적 의견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름다움을 개인적 스타일의 문제로 생각하도록 배우고 그것을 사적인 삶에 국한시켰다. 그리고 오직 합법적인 가치체계는 돈과 관련된 것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였다. 아름다움을 공공생활의 한 요소로 여길 때도 기껏해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름다움의 가치를 여행객들이 쓰는 돈이나 생태적 서비스의 형식으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아름다움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간명한 대답을 할 수 없는데 당황할까 봐 걱정된 나머지 우리는 아름다움을 공공적 고려가 필요한 가치로서 언명하는 것을 자제해왔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새로 들어서는 고층호텔이나 대규모 학생기숙사 프로젝트, 대형 조립식건물의 상점을 추하다는 측면에서 반대하지 않았는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런 개발을 반대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이다.

아름다움은 세계에 있는 어떤 것, 그러나 단순히 우리의 사적 감각에 의해 구성된 것은 아닌 경험에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을 검열함으로써 우리 자신에게 심각한 장애를 만들었다. 공공 영역에서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부정하는 형이상학 체계에 굴복했다. 우리는 경제주의에 도전하기에 충분할 만큼 강력하고 만족스러운 비경제적 가치의 형식을 스스로에게서 빼앗았다. 가장 중요하게는 아름다움에 대한 침묵을 통해 우리는 세계를 파괴하는 일의 공모자가 됐다.

우리는 문화를 형성하고 문화적 가치를 강화하는 언어의 힘을 안다. 아름다움의 실천에서 중요한 부분은 모든 구조물, 시스템, 공동체 생활을 규정하는 과정에 대한 공공의 대화에 미적 판단을 다시 도입하는 것이다.

4. 아름다움을 가르치라

우리에게는 삶의 구조를 가치로 가득 찬 관계의 문제로 이해하는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STEM 교과목-과학, 기술, 공학, 수학-에 대한 현재 교육의 선호는 우리가 세계를 그토록 심각하게 파괴하도록 이끌어온 바로 그 사고방식을 계속 껴안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이 커리큘럼에 예술을 더한 STEAM 역시 이런 패러다임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모든 측면에 드러난 생명”(Alfred North Whitehead, The Aims of Education and Other Essays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repr. 1959), p. 10)을 주제로 삼고 삶의 전체성은 미적 과정, 즉 “생명의 생생함”에 기여하고 그것을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생명과 생명의 상호적응을 통해 가장 잘 이해된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교육이 필요하다. 아름다움 중심의 교육은 예술, 예술감상 혹은 철학적 미학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철학과 느낌에 기반한 인식론에 기초를 둔 교육이다. (전체는 부분으로 환원시킬 때 가장 잘 이해된다고 가정하는) 환원주의적 방법론에 근거한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는 논리 중심의 교육과는 대조적으로, 아름다움 중심의 교육은 전체가 부분보다 크다고 간주한다. 무엇보다 이것은 “세계의 활기찬 존재함”을 가정한다. 아름다움의 학습이 우리 대학에서 탐구주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산업적 패러다임에서 생태적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작업이 필요한지를 우리에게 말해준다.

 

결론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경시와 지구의 생명을 지탱하는 서식처의 변형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다. 현대성의 특징인 미적, 도덕적 무관심은 자연세계의 남용과 전반적인 생명에 대한 저평가에 기여한다. 우리의 형이상학, 언어, 교육시스템, 삶의 실천에 아름다움을 다시 가져오는 것은 우리가 생태문명을 창조하는데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샌드라 B. 루바스키

노던아리조나대학교 종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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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국무부)이 의도하는 G7+가 반중 연합인줄 알면서도 어쩔 수없이 참여해야 한다면, 국익을 위해 이를 상쇄하는 Counter-Balance를 구상하고 실행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국제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유럽연합과 관계를 한층 강화해야 하며, 한반도 프로세스와 관련하여 북미간 회담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한국이 주도하여 유럽연합도 참여하는 다자회담을 구상하고 추진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G7의 4개국을 차지하는 유럽연합 외교안보 책임자인 Borell 집행 부위원장의 ‘미국이 세계를 주도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으며, 유럽은 유라시아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발언은 우리에게 중요한 암시를 준다. 아래 칼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유럽연합의 외교안보분야 최고책임자인 Josep Borell 집행 부위원장은 지난주 독일대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전문분석가들에 의하면 미국주도의 질서는 끝나가고 있고 아시아의 세기가 도래하고 있다’고 연설하면서 ‘현재 우리 눈앞에 전개되고 있듯이 코로나 팬데믹이 힘의 중심을 서양에서 동양으로 이동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으면서 27개국으로 구성된 유럽연합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압력으로 작동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제 어느 한편에 의해 이용당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우리 자신의 이익과 가치를 추구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Borell은 연이어 ‘집단적 원칙에 따라 중국과 거래를 추진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이며, 오는 가을에 예정된 유럽연합과 중국 간의 정상회의가 이를 실천할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이에 우리는 중국에 대한 분명하고 확실한 전략을 갖추어야 하며, 동시에 민주체제를 갖춘 아시아 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연구기관(Standard Chartered PLC)에 의하면, 중국 인도 일본과 러시아가 2030년까지 세계 최대의 경제력을 지닌 중심을 형성하면서 21세기는 어쩔 수 없이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이다. 따라서 유럽연합은 아시아와 직접교역을 확대하기 원한다면 현재처럼 러시아에 대한 적대적인 접근을 지속해야 하는지 재검토해야만 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인구밀도가 낮아 겨우 수백만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중국과 접해 있는 극동지역에 주변국가의 사람들이 이주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 역시 ‘아시아의 세기’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유럽과 아시아 간의 무역은 극동의 항구인 블라디보스톡과 시베리아 철도노선을 통하여 이루질 수 밖에 없으며, 이는 동시에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BRI, Belt & Road Initiative)를 통과하게 된다. 프랑스의 Macron 대통령 역시 폐북을 통하여 언급하기를 ‘다양한 정치와 경제적 이슈에 대한 흐름이 보여주듯이 프랑스와 러시아 간의 관계개선에 노력하고 있다. 나는 확신하는데, 이러한 다극적인 구조를 통하여,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안보와 신뢰의 토대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적고 있다. Macron은 유럽과 러시아 간의 화해를 강조하는 동안, 드골 장군이 인용한 유럽의 확장구상인  ‘리스본에서 우랄까지’를 인용하면서, 이제 유럽은 우랄을 넘어서 중국과 북한과 접경을 이루는 블라디보스톡까지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에 의한 러시아 극동지역의 개발은 유럽과 모스크바의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다.

전문가에 의하면, 극동지역의 개발촉진 지역에 대한 해외투자 비중 가운데 중국의 해외투자가 59.1%를 차지한다고 한다. 러시아의 극동지역은 거대한 투자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자연자원과 물자, 어업과 관광 등 분야가 전망이 밝으며, 중국이 낙후된 이 지역의 이점을 활용하는 전략을 발빠르게 구사하고 있다. 이 지역은 자원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중국과 몽골 그리고 북한 등과 접경을 이루고 일본과는 바다로 접하고 있어서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하다.

프랑스가 블라디보스톡을 재인식하고, Borell(유럽연합 외교안보책임자)은 힘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이동한다고 파악하면서, 이제 유럽은 러시아와 화해하고 러시아에 취해졌던 제재조치를 중단해야만 한다. 추가적으로, 미국을 대신하여 반(反)중국의 대열에 가담하지 않는 것이 유럽의 이익에 부합한다.

중국이 코로나 팬데믹에 잘 대응하여 온 것은 단순히 중국의 경제가 회복되고 재가동된다는 것을 뛰어 넘어, 전세계에 걸쳐 수 톤에 달하는 의료자재를 공급하고 전염병에 가장 취약한 나라들에게 의료진을 파견함으로써, 중국의 힘과 존재를 광범위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이는 미국이 국내에 확진자 수가 2백만에 이르고 십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다. 미국의 실제적 실업자가 40백만 명을 넘어서고 공식적인 실업률이 14.7%에 이르렀으며, 연방준비위원회 예측에 따르면 25%선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이미 미국 국민의 29.9%가 빈곤 계층에 속하고 이중 5.3%는 절대적 가난에 빠져 있으며, 미국가계의 11.1%에 음식조달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가족들 모두에게 충분한 음식을 제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처럼 국내에 심각한 사회현안들이 증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행정부는 국제적 패권을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다.

자연스레 Borell은 미국이 장래에도 세계의 주도권을 유지할 것이라고 믿지 않으며, 유럽의 무역통상 파트너로서 중국과 동아시아에 주목하고 있다. 앵글로 출신들이 대서양 양안을 끼고 세계의 지배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반면에, 유럽의 미래는 유효적으로 유라시아와 함께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출처 : InfoBrics via Global Reasearch, 2020-05-26.

Paul Antonopoulos

그리스 출신으로 Western Sydney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연구했고 다극체제의 입장을 지지하며, 최근 시리아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다

목, 2020/06/04-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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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에게 세금을!’은 진보적 정치집단이 흔히 외치는 슬로건이고, 경제적 불평등은 노벨상 수상자들과 국제정책을 주도하는 유명인사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구호를 내세운 좌파정치 그룹에게 기대하는 승리를 가져다 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99%시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불평등보다 사회경제적 불안이기 때문이다.

물론 불평등은 불안정을 나타내는 징표의 하나이다. 그러나 불평등에만 집중하는 것은 문제에 접근하는 분석적 실책이다. 구매력의 향상을 위해 단순히 부를 재분배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보다 급진적인 것, 즉 보다 안정되고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의 토대를 요구해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COVID-19 팬데믹은 이 점을 다시 부각시켰다.

불평등에 대한 비판은 줄곧 정치적 패배를 가져 왔는데,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부자를 부러워하기 때문이다. 물론 소수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 주제에 대해 무심하다. 현존의 사회주의가 보여주는 지나친 평등주의 역시 빈부격차만큼 문제투성이로 보이며, 사람들은 칙칙하고 단조로운 삶을 싫어한다. 이러한 감성이 지속되는 한, 불평등에 매달리는 정치는 성공할 가능성이 적다.

불평등은 통계적 팩트이며, 손쉽게 측정되고 관심을 끌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 불평등의 통계가 곧바로 사회적 불의를 형성하는가? 부자계층이 사회적 특권을 누리고, 거대부자들이 권력을 장악하여 자신들을 위해 약탈적으로 행동하면 사회적 부정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현실적 대응은 재분배 정책보다는 이를 견제하는 정치적 힘이어야 한다. 노조와 대중조직을 강화하고, 이들과 결합된 정치정당을 만들고, 경제적 범죄를 단죄하고, 정치인들이 부자들에게 포획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이다.

두 번째의 문제점은 자금이 사회안전망의 유일하고 명백한 자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인데, 이는 현재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편견이다. 자동화와 세계화 그리고 공적서비스 분야의 축소 등이 결합되면, 일반 시민들에게 광범한 경제적 불안을 야기하는데 이는 남녀노소뿐만 아니라 전문직과 일반직 그리고 가난한 계층뿐만 아니라 중산층까지 영향을 파급시킨다. 물론, 소수자와 이주자 그리고 장애인 그룹들에게는 불안의 심도가 한층 심해진다.

팬데믹은 현존의 정치가 조작해낸 사회적 불안요소인 임시직업의 어려운 상황을 확대시킨다. 99% 시민들을 불안과 걱정으로 내모는 것은 공공서비스의 부족, 일반교육의 취약, 대학졸업자들의 은행부채 그리고 무엇보다 공공의료의 취약함과 더불어 재정적 이유로 의료보험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실상은 사회가 평등해진다고 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문제는 단순히 임시직 계층(프레카리아트)를 형성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끝없이 확대하는 미궁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COVID-19가 불러온 위기는 나라마다 공공의 영역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덴마크와 독일 등에서는 병원내 침대숫자와 테스트 역량과 치료시설 등 안정적이고 수준높은 공공의료 인프라 덕분에 잘 견디어 내고 있는 반면에, 영국과 이탈리아에서는 지난 수 십 년간 긴축재정을 시행하면서 공공의료시스템이 형편없이 낙후되어 왔다. 미국은 이익중심의 의료체계가 어떤 것이지 교과서적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불안은 정치적으로 보수 집단을 키워내며, 본능적으로 반동적인 성격을 지닌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노동자 계층은, 이들이 급진적으로 변할 것으로 기대한 좌파의 희망을 배반하고, 일관되게 우익 집단에게 투표를 하였다. 팬데믹은 이러한 성향을 더욱 강화시킬지 모른다. 커져가는 프레카리아트의 상황을 이대로 방치하면, 다음차례 공공의료의 위기상황에 우리 모두를 더욱 취약하게 만들 것이다.

소수의 부자들에게 증세를 하여 재정자금을 마련하고 이를 재분배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에 더하여, 공공의료와 전략적 과학기술에 긴급히 투자하고, 사회적 보험과 공공 서비스의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정치를 이동시키는 유일한 방책이자 유인이다.

 

출처: FT, 2020-04-28.

Albena Azmanova

벼량 끝에서 선 자본주의의 저자이자, 켄트 대학교의 국제연구소 교수이다

월, 2020/06/08-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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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미국을 보라, 단지 죽음이라는 단어로 규정되는 나라가 되었다. 사람들은 병상이나 자신의 침상에서 외로이 죽어가고 있고, 또는 길거리에서 살해당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일상을 둘러싼 경제가 붕괴되면서 사람들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은 사라지고 있다. 미국 시민들은 숨을 쉴 수가 없어 죽어간다(dying because they can’t breathe).

이것들을 제대로 설명하려 해도 우리를 누르는 힘이 강하여 맞서기 어렵다. 이유는 너무나 많고 상대할 적들은 너무나 힘이 세다. 어떻게 한 나라에서 동시에 이토록 엄청난 이들이 동시에 터져 나올 수 있을까?

치명적인 팬데믹이 전 지역을 휩쓸고 있는데도 정부는 대응할 능력이 없고, 기억이 가능한 현대의 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경제적 붕괴가 일어나고, 거리에선 분노의 시위가 폭발하고, 세기에 걸친 백인우위의 역사 속에 조지 플로이드가 살해되면서 상황은 격화되고 있다.

상기의 비극들이 개별적으로 미국흑인들에게 유별나게 비대칭적으로 전개된다. 일단의 설명은 인종차별과 억압에서 시작할 수 있는데 이로써 나라가 분열되고 있다. 단순히 건국이래 역사적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것뿐만 아니라, 또한 현재 벌어지고 있는 길거리의 시위를 부채질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현재의 권력자들이 미국을 더욱 분열시키고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다.

현재 백인 미국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스런 위기는 전염병의 어려움과 경제적 위기 그리고 미국의 역사에서 흑인들이 겪고 있는 공권력의 폭력의 연대기적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흑인들은 유아의 놀랄만한 사망률을 포함하여 질병감염률에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고, 흑인가구의 평균 자산은 백인가구의 평균에 1/10에 지나지 않는다. 항의가 시작된 Minneapolis시의 통계를 보면, 백인가구의 평균 수입은 흑인 가구의 두 배를 넘는다. 전국적인 수치를 살펴보면, 일생을 통해 천 명당 한 명이 경찰력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데, 이는 백인의 수치에 2.5배이다.

이런 기본적인 사항을 통해, 현재 터져 나오는 문제들 역시 흑인들에게 압도적인 충격을 가한다. 예건데 코로나바이러스로 죽는 흑인 숫자가 백인보다 3배가 많고, 팬데믹의 경제적 영향은 취약한 빈민계층에게 더욱 가혹한데, 그나마 연장되어 시행중인 실업구제기금은 7월말이면 중단된다. 중단시점이 오면 흑인들이 비대칭적으로 더욱 고통을 받을 것이다. 반면에 미국의 무책임한 사회 미디어들이 방영하는 비디오들과 지나치게 강압적인 공권력의 사례들이 고난에 항의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폭력적으로 다루는지를 (일종의 경고로) 보여주고 있다.

미국사회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이해하려면, 시각을 확대해서 보아야 한다. “인종차별을 언급하는 것은 미국의 원죄에 해당하는 일종의 유행이며, 건국 당시부터 약속이 지금 현재에도 지켜지지 않는 영속불멸한 실패라는 점을 무시하고, 지난 과거의 세대가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인 점을 간과하는 일이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도날드 트럼프 자신인데 정착 본인은 이러한 상황이 우연적인 것으로 느끼고 있다 – 참으로 제때에 제자리를 차지한 기회주의적 행운아라고 말할 수 밖에.

더욱 중요한 것은 트럼프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한 힘의 배경이며, 그 자신이 직접 관련이 없는 오랜 과거의 누적된 일이 그의 말대로 우연적으로 그에게 닥친 것이다. 트럼프가 현재 상황에 대한 백인들의 불만을 정치무기로 삼는 가운데, 공화당 의원들은 규정된 법조차 거부해 가면서 인종차별과 부패면피 등에 자신과 국가의 운명을 걸고 있다.

보수정권 시절에 흔했던 공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과 길거리 시위 – Conservative Movement -에 더하여 전염병이 창궐한 이때, 이제 길거리 시위는 Trump Movement로 변화되면서, 트럼프가 입을 열어 말할수록 위기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는 재난은 이제 상기의 진실을 외면하고는 탈출할 출구가 없다. 이는 지난 몇 년간, 아니 지난 수일간에 다시 확인된 사실이다. 일부 백인 자신들의 힘과 공인된 불만의 표출이 바로 미국의 실제라는 환상이 실현(트럼프의 재선)되기 전에 미국이 붕괴되는 것을 맛보게 될 것이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미래에도 당연히 존재할 것이지만, 건국이래 약속된 땅이 아닌 다른 곳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국가의 모든 폭력, 통제되지 않은 대통령의 트위터가 이를 부추기고 선출된 공직자들이 무책임하게 방관하며 지켜보는 가운데, 온갖 궤도이탈의 행위들이 범람하면서 미국의 약속은 질식하여 사라질 것이다. 숨 한번 쉬어보자.

 

출처 : 영국 가디안지, 2020-06-02 일자.

Andrew Gawthorpe

네덜란드의 Leiden University에서 미국역사를 강의하는 교수

 

화, 2020/06/09-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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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아래의 칼럼은 한국 유수한 대학의 국제대학원에 재직중인 미국인 교수가 한국의 정치와 외교에 던진 조언의 글이다. 한반도상황과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라는 주문은 매우 고맙고 소중한 것이지만, 그의 글속에서 동아시아 역사전반에 대한 몰이해, 근대역사에서 탈아입구를 추구하며 주변국들에게 패악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은 일본에 대한 무지, 미국의 패권을 위해 일본에 면죄부를 제공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패혜와 4.3항쟁에서 저지른 미군의 범죄 및 광주민주항쟁에 보인 미국의 패착 등에 대한 묵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북한에 대한 악의적 폄하 등을 엿볼 수 있다. 자연스레 과연 한국의 대학에 체류하는 미국 지식인들은 우리를 돕고 있는 우인(友人)인가? 아니면 미국의 패권유지를 위한 하수인인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에 대한 답변은 온전히 글을 읽는 독자들의 몫이다.


2020년 세계보건회의에서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주의 체제와 과학기술에 기반한 COVID-19 대응의 성공사례를 발표하였다. 그는 동시에 인간의 안전보장(human security)에 대한 협력분야에 세계적인 지도국가가 될 것임을 약속하였다.

이는 아시아에서 미들-파워로 부상하는 한국의 국가적 위상을 반영한 사례로, 지난 시절 식민지배와 격심한 전쟁을 겪은 과거의 역사와 극적인 대비를 보여준다. ‘미들-파워’라는 것은 다자주의에 기초하여 외교적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강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제 한국의 외교정책의 성과에 대한 표준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다만 이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아시아에 있어서 규칙에 기반한 질서를 옹호하고 북한의 도전에 응답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기도 한다.

미들-파워 국가로서의 한국의 위상은 자신에 대한 확신과 야망과 필요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아시아의 지정학적 어려움으로 중국과 러시아 미국과 일본 그리고 여전히 군사적 위협과 인권이 무시되는 레짐(북한체제)의 한가운데 한국이 처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워싱턴과 동맹은 북한을 대응하는데 필수적이지만, 지난 시기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의 과정에서 한반도의 분단을 야기시킨 것처럼 자신의 주도적 전략이 결여되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서울당국은 친(親)사회적 좌표와 기구들을 통해 아시아의 미래를 형성해 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정권의 새로운 남방정책의 목표는 실재적인(physical) 것과 디지털적인 인프라를 사회기제적으로 융합하는 방식으로 아시아의 남방과 북방지역을 연결하는 것이다. 경제적 상호의존의 혜택 국가로서 한국은 이해상충의 해결방식으로 군사적 대결과 무역전쟁을 피하고자 한다.

외무장관인 강경화씨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웃 국가들과 사전적으로 협력을 제안함으로써, 우리는 개별국가 간의 협력이 다른 개별국가들과 협력을 확대하는 선의적(virtuous) 사이클을 형성하고자 도모한다’.

물론 자신의 위상을 확인하는 것은 환경과 타산에 의한 수동적 기능이 아니라 능동적인 자신감과 확신에 기초한다. 이미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을 국제무대에서 주요한 행위자로 인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선진국과 개발국을 연계하는 여러 종류의 국제회의 주관하고, 산업적으로는 삼성과 현대 등의 브랜드가 부상하고 있고, 문화적으로도 K-Pop, BTS 그리고 기생충과 같은 영화가 한국의 지위를 알려준다.

동시에 해외협력기금(ODA)와 유엔평화유지군 등에 유의미한 재정지원을 하고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도전을 받고 있는 아시아의 질서유지에 주도적인 미들-파워 국가로서 다음의 3가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일본과 과거사에 대한 대립이 미들-파워 외교라는 에너지의 공급에 주기적으로 정전(停電)사태를 야기한다. 독도분쟁과 불충분한 과거사의 화해, 전쟁(강제노동) 보상 등 반일본의 정서가 미들-파워의 위상에 걸림돌로 돌출한다.

한국의 주요 언론매체들은 일상적으로 일본군사주의의 위협을 과장하고 도쿄당국과 협력의 중요성을 간과하면서, 한국이 지역안보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감소시킨다. 미사일방어 등에 대한 정보 교환, (북한의) 제재의 기피와 수출통제의 위반에 대한 확인, 항해의 자유보장과 재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에 대한 협력 가능성을 제한한다.

두 번째, 한국의 자유민주적 가치는 중국을 대응하는 과정에서 실용주의에 입각한 현실적 외교정책과 가끔 충돌을 한다. 한국당국은 평양과 외교적 접근은 북경을 경유한다는 믿음 때문에 때때로 가장 주요한 무역 파트너이자 강력한 이웃(중국)에 대하여 차별화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은 신장과 홍콩의 인권 상황과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착취당하거나 북한으로 송환되는 것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또한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보이는 팽창주의, WTO 규칙의 준수여부, 그리고 일대일로가 국제적 규범을 지키는지 여부에 대해서 침묵을 지킨다.

세 번째, 국내의 정치적 대립이 외교정책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양당체제 하에서 전임의 두 대통령이 감옥으로 보내졌고, 국회는 입법과정에서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키는 실제적 전장터이다.

단임의 5년제 대통령 임기와 불안정한 정당정치 때문에 북한과 주변 이웃국가들에 대한 정책이 시계추처럼 흔들린다. 이러한 내부의 균열로 인해 외국의 개입전술에 쉽게 노출되고, 성과있게 운용되는 정권이라도 외교정책에서 자원할당의 주도권을 행사하기에 비효율적이며 일관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대치적 정치상황이 정치적 지도력에 제한을 가하면서, 이념적 경쟁의 주변국가들에 대해 주도적 우위를 취하기보다는 주어진 법적 규정을 수동적으로 따르게 한다. 한국의 외교정책은 민주적 절차와 국가이익에 대한 전략적 사고를 갖추기 위해 투명성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북한과 평화경제를 추구하기 위해 일본과 결별한다는 정책적 오류(fantasy)를 피할 수 있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그리고 인권상황, COVID-19 팬데믹의 위기극복, 미국 미사일시스템의 한국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 등에 대하여 일관된 정책이 요구된다.

미들-파워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으로 한국은 워싱턴과 동맹을 강화하고 북경과 평양과의 관계를 조정해가는 가운데 제로-섬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한국은 미국의 방위비 분담 요구에 주도적으로 대응하면서 중국과 북한을 자극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동맹의 의무라며 국제적 질서유지에 기여하는 것보다, 패권국가들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자유무역을 증진하고 기후변화를 완화시키는 소소한 분야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한국정부는 아시아 내에 새로운 협력기구를 창립하면서 이념과 역사의 갈등에서 외교정책을 해방시킬 수 있다. 이를 통하여 지역 내의 경제를 활성화하고 정치적 안정을 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평화와 합의에 의한 한반도 통일에도 다가갈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MIKTA(Mexco, Indonesia, S. Korea, Turkey & Australia) 협력기구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새로운 남방정책에 있어서도 인도를 결합시키지 못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또한 지역역량의 증대를 위해서 동반자 국가들인 호주와 아세안과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 이러한 미들-파워 외교를 통하여 한국의 위상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강화할 수 있고 다른 국가들과 국제적인 협력의 가치를 과시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EastAsiaForum, 2020-05-27.

Leif-Eric Easley

이화여자 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화, 2020/06/09-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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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간 중국인민공화국은 일년에 인민대표자회의(NPC)와 인민정치협상회의(CPPCC)라는 두 개의 회의를 동시에 개최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왔다. 양회로 불리는 두 개의 회의는 매년 3월에 개최되어 왔는데 올해는 COVID-19의 위기로 5월로 연기되었다.

서방사회에서는 인민대표자회의가 통과의례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공산당과 정치협상회의의 역할과 상호작용이 점차 무게를 더해 왔으며 이번 양회의 결정들은 중국 당중심 헌법기구와 강화된 다민족의 선출권력 간의 복잡한 관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번 양회에서 중국공산당이 중요한 몇 개의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그 중의 하나가 시민법(national civil law)이고, 다른 하나가 논쟁을 야기한 새로운 국가안전규정(new national security bill)으로 홍콩에서 지속되는 시위를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북경당국이 홍콩 내에 안전전담 조직을 설치하는 것을 허용한다. 북경당국은 안전규정의 제정을 지난 해에 감행할 수 있었으나, 이번 인민대표자회의를 통하여 선언하면서 규정의 무게를 더하였다.

인민대표자회의 대표단은 정부의 연간 업무보고를 승인하였는데 처음으로 대만에 대한 ‘평화적’ 통일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대만과 ‘비평화적’ 통일의 가능성을 암시하였다. 또한 GDP목표치를 설정하지 않았고 6%의 성장을 고수하는 대신,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두었다.

인민대표자회의와 정치협상회의의 양회는 당중심 헌법기구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공산당이 운전석을 차지하고 지배한다.

제14차 회의 이후, 공산당의 총서기가 중국국가의 주석직과 군중앙위원회의 주석직을 겸임한다. 다음으로 정치상임위원회(당중앙 지도부)의 중요한 3인이 행정부의 수상, 인민대표자회의 주석(의장) 그리고 정치협상회의 주석(의장)을 책임진다 (현재는 Li Keqiang, Li Zhanshu and Wang Yang이 맡고 있다).

이렇게 당 중심의 헌법시스템 내에서 권력의 배분이 당 중앙의 가장 중요한 4사람이 상기의 자리를 제각각 차지하면서 이루어 진다.

이러한 시스템은 당기구의 중앙위원들로서 일반주석들의 위치가 행정부의 핵심인 수상/부수상직보다 강한 권력을 가지도록 구성되어 있다. 동시에 권력의 분산보다는 통일집중의 원칙 위에 있다.

공산당과 인민대표자회의는 일상적인 긴장과 때때로 대립하는 위치에 있다. 헌법상으로는 대표자회의가 최고의 의결기구이다. 대표자회의 지위와 기능은 이론적으로는 당보다 우위에 있으며, 당은 인민대표자회의라는 헌법적 프레임 안에서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로 공산당이 대표자회의를 통제하며 공산당 총서기가 대표자회의의 주석보다 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인민의 주권개념은 대표자회의에 녹아 있다. 대표자회의와 정치협상회의는 마치 차량의 방향조향장치와 같이 자신들의 의견과 국가적 의지를 입법을 통해서 전달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표자회의는 제국의 봉인이 찍힌 현대적 형식기구로 이해할 수 있으며, 최고 권위와 주권을 상징한다. 실제로 인민대표자회의는 2980명의 참석자들이 보수를 받지 않는 임시적인 입법자로서 활동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공인의 입법기구인 셈이다.

의회 민주제도에서는 흔히 입법기구가 양원으로 분리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이론적으로 권력을 분리시키는 양원제를 거부하고 있지만, 지난 몇 년간 대표자회의와 정치협상회의는 양원제와 유사하게 입법과정의 역할을 증대하여 왔다. 헌법규정에 따라, 모든 주요 결정은 대표자회의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법적인 권한은 없더라도 정치협상회의의 자문을 사전에 거쳐야 한다. 국가의 법률의 제안과 통과는 반드시 대표자회의를 거쳐야만 한다.

입법 과정은 당의 해당위원회들이 제안, 조사와 연구, 기획의 초안, 상담과 여론취합 등 오랜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지고, 제안 이후에는 해당분야 전문가들의 검토, 숙의, 조정과 승인, 법제화와 초안의 수정을 거쳐 대표자회의의 참가자들에 의한 승인을 통과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실제 대표자회의가 개최되기 전에 진행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사전적 진행을 통해 진지한 상담과 협상, 조정과 논쟁을 통해서 수많은 수정이 이루어진다. 동시에 중앙당의 해당위원회 위원들은 양회가 개최되기 전에 중국전역을 방문하여 사전조사를 시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예를 들어, 홍콩의 국가안전규정은 1명의 거부와 6명의 기권을 제외하고 2878 참가자들의 찬성을 얻었다.

대표자회의 참석자 수數의 배정은 개별 성省과 특별지역의 인구수에 비례하여 이루어지며, 특별지역의 대표자들은 직접 선출되며, 개별 성의 대표자회의 참가자는 간접적으로 선출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정치협상회의의 참석자들은 지역의 이익보다는 해당 지역의 다양한 부문을 대표해서 구성된다. 협상회의는 통상 46개 부문으로 나누어 지는데 의료 건강 교욱 미디어 종교 자연과 사회과학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농민과 노동자들은 정치협상회의의 대표권을 갖지 않는데, 대신 당의 정치적 체계 내에서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분야의 엘리트들로 구성되는 ‘클럽’에 참여한다.

정부의 주요 지도부들은 대표자회의의 승인을 통해서 선출되지만, 이런 선출의 과정은 간접적이고 사전에 지명되고 통제된다. 중앙당의 조직부서에서 후보자들을 지명하고 통제하는 과정을 거친다. 공산당원들이 대표자회의 주요 기구에 참여하면서 당의 지침을 통하여 조직기구에서 지명한 후보들을 선출하고 승인한다. 이렇게 사전통제된 선거시스템은 당우위(黨優位) 국가시스템을 운용하는 전제가 된다.

비록 현재까지는 공산당에 의하여 대표자회의가 사전에 조직되어 진행되고 있지만, 이들 대표자회의와 공산당 간의 관계가 향후 어떻게 진화하여 중국사회가 다원화하고 국제적으로 상호관계를 형성해 갈지는 지켜보아야 할 사항이다. 지금부터 대표자회의의 참가자들이 국가의 장래와 통일에 관하여 더욱 국수적으로 변모할지 아니면 개방적으로 변해갈지 예의주시해야 한다.

 

출처: East Asia Forum in ANU on 2020-05-30.

Baogang He

호주의 멜버른에 있는 Deakin 대학교수, 국제관계학 전공.

목, 2020/06/11-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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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미래는 암울하지만, 아직은 포기할 시점이 아니다.

그 동안 홍콩은 중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핵심적 역할을 맡아 왔다.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에 홍콩은 결코 자치적일 수 없고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라는 점은 현지인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세력들#이 자치권을 자극하여 긴장을 격화시키려 하고 있으며, 1989년에 있었던 천안문 학살을 기념한다는 구실로 지역 내 시위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미중관계가 악화일로인 상황에서 국제적인 개입은 홍콩에 도움이 되기 보다는 위험을 증가시키게 될 것이다. 반면에 홍콩인 스스로 합법적인 수단을 통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홍콩의 중국반환은 1984년 중국과 영국간의 합동선언으로 결정되었고 1990년에 있었던 인민대표자회의(NPC)에 의해 기본법이 설정되었으며, 1997년에 양도작업이 진행되었다. 선언의 합의문에는 ‘일국양제’가 명시되었고, 1997-2047의 50년 간 이를 유지되도록 하였다. 중국정부는 일국(一國)에 방점을 두었고, 홍콩인들은 이제(二制)의 유지에 관심을 가졌다.

지정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지역적으로도 홍콩은 중국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 서방의 언론들이 선동하고 외부에서 지원자금이 들어오면서 소수인(minority)들이 자치권을 요구하였지만, 대부분의 지역민들은 단순히 자신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이 유지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들은 그저 북경어를 공식어로 사용하는 것에 저항감을 가지고 있고 공립시스템의 교육제도를 거부하고 있다.

홍콩인들은 자신들을 본토의 재판정에 세울 수 있는 범죄인송환법 도입의 제안을 저지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새로운 저항은 일국이제의 모델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국가안전법에 집중되고 있다.

인민대표자회의의 상임위원회 주석을 맡은 Wang Chen은 중국본토에 적용되는 기본법 23조의 지역안전규정이 현재까지 홍콩에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달 회의에서 이에 대한 입법절차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이의 목적은 중앙정부에 저항하는 반란, 분리, 난동 및 국가기밀의 도적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다.

홍콩인들은 법안의 목적이 북경당국에 의해 임의적으로 적용되고 저항권을 허용하지 않을 것으로 염려하고 있다. 기본법에 의해 발언의 자유는 보장되지만, 장래에 중국을 비난하는 것이 불법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외국인들과 공조하는 사람들은 구속될 수 있으며, 안전법에 해당되면 본토의 규정에 따라 사전허가 없이도 문밖에서 도청이 가능해 진다.

반면에 홍콩행정당국은 시민들에게 염려할 것이 없다고 설득하고 있으며, 법무담당 책임자인 Teresa Cheng은 만약 기본법을 저촉하는 사례가 발생하면 이를 조사 확인하여 NPC에 통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행정장관이었던 Leung Chun-Ying은 영국통치 시절에 있던 ‘반공특별국’과 같은 기구가 설치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들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안심하지 못하며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6월4일 천안문학살 기념행사에는 18만 명의 시민들이 운집하기도 하였다. 올해에도 COVID-19를 구실로 집회가 금지되고 있음에도 수천 명이 이를 위반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은 창가에 촛불을 밝히면서 동참하고 있다.

홍콩 상업회의소 4천여 회원들은 제안된 안전법을 일반적으로 지지하지만 미국의 무역제재를 걱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본토와 분리하여 관세 및 여행 등에 부여한 혜택을 폐지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중국의 안전법제에 의한 감시와 처벌이 증대하는 위협을 반영하여, 국무부의 여행책임부서가 필요한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5월 29일에 행한 그의 선언대로 거의 예외없이 모든 분야에서 제재가 이루어질 것이다.

홍콩의 재무담당 책임자인 Paul Chen은 미국과 직접교역량은 홍콩경제의 적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염려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콩은 본토로 들어가는 주요 관문의 역할을 해왔으며 경제는 서비스 분야에 집중되어 있고, 진주강(Pearl River) 델타의 Greater Bay(광동-홍콩-마카오) 해안을 따라 급성장한 금융중심과 연구개발의 센터역할을 하여왔다.

동시에 아시아의 최상급 업무중심이다. 현재까지 중국투자의 2/3가 홍콩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다. 중국의 주요 기업인 ICBC와 Tencent 등이 본사를 홍콩에 두고 해외활동을 확대하여 왔으며, 외국인들은 홍콩의 증권시장을 통하여 본토기업의 주식을 매입할 수 있었다. 이런 활동들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미국과 호주 등 서방 기업들은 중국 본토와 서방의 완충지대라는 전략적 견지에서 홍콩에 등기를 하였다. 이들이 철수를 결정하면 지역의 경제뿐만 아니라 본토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호주의 외무장관은 최근 주요한 내용을 언급하였는데, 영국에 관련된 것이었다. 영국은 영국국적의 해외주민증(BNO)를 소지한 홍콩시민들에게 거주와 시민권 임시부여를 제안하면서 호주에게도 동참하기를 요청하였다. 중국과 미국 간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상기의 제안을 북경당국이 수용하지 않으면서, 다시 한번 홍콩시민들의 운명은 외부세력에 의해 결정되게 되었다.

가장 순탄하고 평화로운 경로는 홍콩시민들이 스스로 국가안전법을 거부하는 법안을 제출하는 것이다. 입법의회선거가 9월에 예정되어 있고 지난해 40만 명으로 등록된 유권자 숫자가 8% 늘어난다. 친-민주 진영은 시민들에게 과거에 친-민주 진영이 다수를 차지한 적 있는 기능적 입법의회 선거에 참가하도록 독려 중이다. 이러한 민주적인 절차의 과정이 현안이 되고 있는 사항에 대해, 외부의 개입을 통하는 것보다, 홍콩의 특별한 지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홍콩시위 배후에는 미국의 NED(National Endowment of Democracy) 자금지원이 있었다.

 

출처: East Asia Forum in ANU, 2020-06-8.

Jocelyn Chey

시드니 대학의 방문교수이자 홍콩에 대한 호주정부의 대표자문역을 지냈다

월, 2020/06/15-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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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에 북 붕괴론은 심심찮게 터져 나온다. 많은 진원지들이 있겠지만, 그 1차적 진원지는 아무래도 체제이탈자(본 글에서는 탈북자 대신, 체제이탈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유는 이 용어가 보다 개념설명에 더 부합한다고 보기 때문이다)집단이 아닐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체제이탈을 합리화해야 하니, 북 비난에 대한 욕망을 쉽게 뿌리칠 수 없다. 2020년 현재 약 3만 명 정도의 체제이탈자들이 국내에 거주하면서 생기는 곱잖은 부작용이다.

박근혜 정부 때는 정말 심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북 붕괴론을 공개적으로 언급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2016년 8월 22일 당시 박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북한 엘리트층조차 무너지고 있고, 주요 인사들까지 탈북과 외국으로의 망명이 이어지는 등 심각한 균열 조짐을 보이는 등 체제 동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망명을 계기로 내부 균열을 언급한 것이다. 그 이전(2011년 6월) 이미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다. 한밤중에 그렇게 올 수 있다”고도 했다.

2차 진원지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의 농락 때문이다. 미국의 딥스테이트 세력 및 국내의 보수·수구세력들의 정치적 집합체들이라 할 수 있는 미래통합당 등 정당 및 보수·수구계열의 국민운동체와 같은 부류의 시민사회가 한 통속이 되어 끊임없이 ‘가짜뉴스’를 생산해낸 부작용이다.

한 예로 1996년 게리 럭(Garry Ruck)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미하원 안전보장위원회 세출위원회에서 북의 봉괴에 대해 “붕괴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인가라는 시기의 문제이다”라고 진술했다. 1년뒤 2010년에는 커트 캠벨(Kurt Campbell) 당시 국방부 부차관보는 미국을 방문한 일본 의원단에게 “북은 6~7개월 버틸까 말까 하는 상황”이라고 장담했다.

3차 진원지는 조·중·동으로 대표되어지는 보수·수구 언론매체 및 그들에 기생해 있는 보수·수구계열의 전문가(학자, 지식인 등)집단들이고, 여기에 ‘국방의 의무’보다 직업 군인화된 군인집단도 예외이지 않다.

아래와 같은 상황을 상정해 그 대응책으로 한·미 당국이 수립한 ‘작전계획 5029’ 의 일부내용을 보면 ‘①식량난으로 굶주린 주민들의 불만이 증폭되고, 다수가 국경을 넘는다. ②민심을 의식한 지도층 다수가 불만을 표출하며 북한을 탈출한다. ③급기야 민중봉기가 일어나고 군부가 호응해 정변을 일으킨다. ④김정은을 제거하고 정권을 교체 내지 전복시킨다.’ 등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함의해주는 바를 잘 생각해볼 일이다.

‘3-3-3 붕괴설’은 그 정점이다. 전형적인 묻지마식 붕괴설이었고, 그 시작은 19994년 김일성 주석이 서거하자 빠르면 3일 혹은 3개월, 그것도 아니라면 3년 내에는 반드시 붕괴할 것이라는 뉴스와 확증편향이 우리사회를 유령처럼 떠돌게 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김정일 체제로의 안착이었다.

끝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심심찮게 정체불명의 북 붕괴설은 계속 터져 나온다. 고난의 행군시기(94-97)에도, 김정일 서거 이후에도, 장성택 숙청을 전후한 시기에도, 그리고 가장 최근은 김정은 건강 위중설과 맞물려 또 터져 나왔다. 이 결과 역시 모두가 없었던 일로 되었다.

그런데도 왜 이 ‘양치기 소년’현상은 없어지지 않을까?

참으로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는 거짓말이 그렇게 지속되면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주장이 용납되지 않거나, 설 땅이 없어져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어찌됀 판인지 계속하여 어떤 필요에 따라 부활하고 있으니 이 어찌 이상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중심에 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과는 하등 상관없이‘북은 반드시 붕괴되어져야 할’그들의 맹신적 사유체계가 조·중·동이라는 매체를 타고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일 께다.

결과, 우리 국민들은 단 한 번도 북에 대한 실체적 진실과 직면해보지 못했다. 오히려 북 지도자가 죽으면, 내분이 일어나 자멸하는 북 시나리오만 정답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는 그렇게‘붕괴 확증편향’으로 그들의 공범이 되었고, 그 공범의식은 또다시 그들에게 정치적 사냥감으로 작용하여 북 붕괴를 거의 맹신에 가까운 믿음으로 작용하게 했다.

그렇게‘양치기 소년’현상이 왜 발생하지 않은지는 설명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껏 우리 모두가 이렇게 목도한 이 모든 확증편향이 단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고, 향후에도 실현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해서 이 글은 바로 그런 실체도 없는 북 붕괴설, 어떻게 하면 허위가 밝혀지고, 그들이 있는 그대로의 북을 이해하는데 도움 될까를 고민한 끝에 앞선 글들과 마찬가지로 대신해 묻고, 대신해 그들에게 답 준다.

 

1. 과연 그들은 북 붕괴론에 대한 개념적 정의가 있는가?

 알다시피 북 붕괴론이 대한민국과 서구사회에 하나의 인식적 흐름으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1980년대 말에서 1990년 초까지 봇물처럼 터진 현실사회주의권 몰락 및 붕괴가 그 직접적 원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근거도 충분하다. “오늘날 제아무리 북한이 부인하더라도 전 세계 사람들은 공산주의 진영 대부분이 붕괴된 것처럼 결국에는 북한도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믿고 있다.” (<북한의 협상전략>, 366쪽 참조.)

다시 말하면 후쿠야마(Francis Hukuyama)의 역사인식, 즉 그가 <역사의 종말>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로 역사는 이미 끝났다’는 그 우월적 인식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 지독한 열병은 참으로 고치기 어려운 악성종양으로 남아 우리를 내내-분단극복과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괴롭히는 주범노릇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우리가 진작 주목해야 되는 것은 그 반전이다. 후쿠야마는 이후 그 정의적 명제가 틀렸음을 뒤늦게 인정하고, 트럼프의 정치행태를 보며 “민주국가도 퇴행(현지시각, 2017.2.9.)”가능하다는 수정인식을 선보인다. 해서 사회주의체제만 몰락(혹은,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체제도 충분히 몰락할 수 있다는 그 상상력이 필요한데, 그런데도 우린 여전히 몰락한 사회주의체제만 눈에 들어오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이념으로 인해 엉망진창 되어버린 자본주의체제의 위기와 몰락은 못 보고 있다.

더해서 우리가 북 붕괴론과 관련하여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북 붕괴론의 실체가 불명확하거나 없다는데 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말하는 북 붕괴론이 명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어느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으니 실체가 없다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겠다.

복잡하지도 않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소멸(몰락)하는 것인지, 아니면 동구권에서와 같이 사회주의체제에서 자본주의체제로 전환된다는 의미에서의 체제전환을 뜻하는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의 지배 체제(좁히면 김정은 체제)가 쿠데타나 시민봉기 등에 의해 붕괴되어 권력층의 교체가 일어난다는 의미에서의 지배체제 변동을 의미하는지… 그 어떤 것인지에 대해 그들 자신도 모른다.

그러니 그들 자신들도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과 필요에 따라 북 붕괴론을 남발시킬 수밖에 없고, 진작 북 붕괴론 실체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며 주구장창 그냥 북 붕괴설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들 자신도 북 붕괴론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그냥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내뱉는 술수언어일 뿐이고, 비례적으로 우리 국민 모두는 그들이 말하고 있는 북 붕괴론이 무얼 의미하는지, 또 어떤 실체를 갖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정말 북 붕괴론을 그들이 현실 가능한 상황으로 믿고 있다면, 그들의 섭리 상 아주 철저하게 붕괴의 의미를 정확하게 정립해 효과적으로 대국민 설득과 홍보에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할 것이다. 왜냐하면 북 붕괴론의 실체가 없으니 그럴 수밖에.

마치 이는 마르크스가 1848년에 발표한 <공산당 선언>,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고 했듯이 북 급변사태도 시도 때도 없이 필요에 따라 온 대한민국을 휘젓게 한다. 혹세무민(惑世誣民)도 이런 혹세무민이 없다.

 

2. 북 붕괴론은 현실화될 수 있는가?

백번 양보해 그들의 문제의식을 선의적으로 해석해줘 만약 북 붕괴론 실체가 있다고 한다면, 그건 아래 3가지로 요약정리 가능할 것이고, 그것에 대해-그 3가지에 대해 그 불가능성을 하나하나 짚어댄다면, 그들이 얼마나 허왕된 꿈을 꾸고 있으며, 국민들을 혹세무민시키려 하는지 알게 할 수 있을 것이다.

 

① 과연 국가 자체가 소멸할 수 있는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다. 천재지변 등에 의한 자연적 소멸의 경우가 충분히 있을 수 있으니 전혀 억지라고만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과 이 글에서 논하려는 논지의 핵심으로서의 국가 자체의 소멸은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래에 열거된 2가지 가능성 다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는 외세의 침입을 받아 그 국가가 외세의 국가에 병합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가 내에서 쿠데타나 국가적 변란 등이 일어나 다른 국가에게 자신들의 국가를 헌납하는 방식이다.

반론 첫째, 북은 스스로 자주국방의 기치하에 핵무력을 완성한 명실상부한 전략국가이다. 그런 국가를 상대로 그 어떤 국가가 공멸을 자초할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으며 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단 말인가? 불가능하다.

반론 둘째, 쿠데타나 국가적 변란 등에 의한 타국에 헌납하는 방식도 도저히 가능하지 않는 상상력의 범위이다. 왜냐하면 북에서는 원천적으로 쿠데타나 국가적 변란 등이 불가능하다. 수령중심의 유일체제 특성이 반체제 단체나 개인을 허용할리 만무하며, 연동해 시민봉기나 시위가 불가능하다. 실제도 이제까지 반체제 시위나 데모가 있었다고 보도된 적이 없다. 고로 역시 불가능한 기대이다.

 

② 레짐 체인지는 일어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이 또한 불가능하다. 근거는 만약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고자 했다면 이는 80년대 말 동구권이 체제전환의 길을 걸어가고자 했을 때 그때 일어난 것이 이치적으로 맞아서 그렇다. 하지만, 그때 북은 동구권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어떻게? 그건 <통일뉴스>에 실린 “북은 집단지도체제가 과연 가능한가?”(5.15) 중 ‘4. 현실사회주의 몰락에서 찾아낸 그들의 교훈’에서 확인받듯이 오히려 수령중심의 사회주의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그 항로를 잡았다.

이 외에도 2011년 아랍권의 오렌지 혁명이라 불린 ‘중동의 봄’이라는 민주화 물결 때도 북은 많은 사람들(혹은, 많은 국가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즉 그 영향을 미쳐 북이 곧 체제전환을 할 수밖에 없을 거라며 국제사회가 주목한 적이 있었지만, 북은 한 치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과 같이 북 스스로는 동구권의 체제전환에서 얻은 반면교사를 더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가운영원리를 확정했다. 불가능한 상상력이다.

 

③ 그럼 지배체제의 변동은 수반될 수 있는가?

기억을 되살려 보자. 위키리크스(Wikileaks)는 2010년 2월 17일 당시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와 천영우 당시 외교부 2차관의 오찬 때 천영우는 중국이 김정일 사망 뒤 북 정권의 붕괴를 막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했고, 더 나아가서 “북한은 경제적으로 이미 무너졌고, 김정일 사망 뒤 ‘2~3년 안에’ 정치적으로도 붕괴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천영우가 무슨 근거와 정보로 그런 인식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그런 인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필요충분조건이 성립해야 함은 분명하다. 이름하여 북 체제를 지탱하는 내구력에 어떤 변화가 수반되고,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흐름을 타고 있는지 정도는 충분히 검증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국가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이 부정되고 있는지, 둘째는, 그 주체사상에서 출발한 유일사상체계에 어떤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지, 셋째는, 역사적 정통성-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에서 김일성민족의 시원이 부정당하고 있는지, 넷째는 당과 인민의 관계에서 믿음과 신뢰적 관계보다는 그 반대의 관계가 형성되고 있는지, 다섯째는, 수령과 당의 군대로 되어 있는 군대가 어떤 변화가 있는지 등은 반드시 확인되어져야만 한다.

그런데, 그 어떤 변화가 없다는 이는 분명 허구이다.

그래놓고 또 우리가 유념해야 될 것은 그 허구를 증명하는데 있어 다음과 같은 시각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름 아닌, ‘북처럼 폐쇄적인 독재국가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날 수 없다. 정보가 통제되고 자유가 제한되어 불만 표출이 어렵고, 데모를 하더라도 그에 대한 탄압과 처벌이 너무 가혹할 것이기 때문에’와 같이 그런 인식을 갖는 진보적 자유주의 시각이다.

왜 이 시각이 북을 들여다보는데 있어 문제가 심각하게 되는 것 인가하면 북에 대한 인식 그 대전제가 북을 ‘폐쇄적인 독재국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오류에 빠진다. 지금 당장은 폐쇄적 독재가 인민의 저항을 다소 늦출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는 ‘아랍의 봄’이나 우리 대한민국의 경험처럼 독재체제는 반드시 민중의 저항을 받게 되어 붕괴될 것이라는 실체적 경험이 반영하게 되어 ‘그렇다면 북도 언젠가는 무너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자신의 인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즉, 북 체제변동은 잠시 유보될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변동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는 말이다.

이렇듯 북 체제를 수령중심 인민대중 사회주의체제로 인식하지 않고, 위와 같은-보수·수구세력들이 인식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적 자유주의시각의 ‘폐쇄적 독재체제’로의 인식은 북의 조그마한 변화에도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듯’이 언제나 북 붕괴론에 시달리게 된다.

예하면 이런 것이다. 노동자를 포함하는 기층민중, 유학생 및 작가나 교원 등 지식층뿐만 아니라, 외교관이나 당 비서를 포함한 지배층의 망명까지 다양한 계급·계층에서 체제이탈자가 발생하면 이를 인식함에 있어 ‘기층 민중들의 체제염증’, ‘지식층의 이반’, ‘지배층의 동요’로 확대해석해내 정권이나 체제에 불만을 품고 북을 탈출한다고 연계시켜 버리는 것이 바로 그것들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들이-진보적 자유의자들이 인식하지 못한 치명적 약점 둘이 있다.

하나는 체제이탈자 들 중에는 상당수가 자신들의 잘못에 따른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나, 혹은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소외감으로 탈출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절대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체제이탈자 수가 곧 체제붕괴와의 상관관계로 넘어가는 그 직접성이 매우 적다는 측면에서의 간과이다. 황장엽, 태영호 등 고위층의 체제이탈자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북은 ‘비겁한 자여 갈 테면 가라’로 정리해낼 수 있는 충분한 체제 내구성이 있고, 또 북 체제이탈자 수보다 약 66배가 더 많은 쿠바도 체제 붕괴설에 시달리지 않음은 그 함의를 잘 생각해내어야만 한다.

해서 결론은 북 체제는 항시 체제 붕괴라는 위험을 갖고는 있으나 ‘지금은 아니다’라는 인식보다는, 오히려 북 체제의 특성상 ‘체제 붕괴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보다 더 본질적임을 선행해 인식해야 한다.

 

3. ‘북 붕괴론이 붕괴되어져야 북이 보인다

북 붕괴론은 실체가 없다. 굳이 있다면 ‘북은 반드시 망할 것’이라는 믿음을 우리 국민들이 믿어줬으면 하는 그들의 사유체계만 있을 뿐이다. 결과, 그들은 북이 왜 핵을 개발하려 하는지, 또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대책 없이 ‘비핵화’만 외치고, 나아간다면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 제시하나 없이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도둑 찾아오듯 ‘통일은 대박’이라며 속 빈 구호를 내건다.

그래놓고 다시 그들의 북 인식 사유체계를 한번 들여다보자.

‘최고지도자 사망 → 권력투쟁 → 급변사태 → 체제붕괴 → 흡수통일’이 그들이 갖고 싶어 하는 최고의 프레임이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현실 사회주의권 붕괴 때와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때, 그리고 1990년대 중후반의 식량난 소동 때, 그리고 작금의 김정은 건강 위중설까지 그들은 단 한 번도 이 인식방법을 변경시킨 적 없다.

또한, 그들은 그들 자신들의 (정치적)목적 달성을 위해 남북관계나 북 상황에 대해서는 최대한 본질을 숨기고, 반면 드러난 상황에 대해서는 최대한 부풀려 곧 북 체제에 균열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소문을 적극 퍼트린다. ‘악마국가 북한’과 마침내 ‘승리하게 될 대한민국’이 그렇게 대비된다. 아주 전형적인 프로파간다이고, 프레임 씌우기이다. 최고 꼭지점은 ‘이대로만 간다면 북은 멸망할 것’이라는 국가적 최면도 마다하지 않는다. 북 붕괴론이 그렇게 계속 영속되길 바라며 비례해 계속 웃길 바란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먼저는 당신들이 그렇게 기대하는 북의 ‘위기’ ‘급변사태’, 혹은 ‘붕괴’가 온다하더라도 이를 당신들이 그렇게 기를 쓰고 원하는 ‘흡수통일’과는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다시말하면 당신네들의 생각, 혹은 셈법에는 ‘북의 위기는 필연적으로 급변사태로 이어지고, 급변사태는 붕괴로 이어지고, 붕괴는 통일로 이어진다’는 연관성을 가져가고는 싶겠으나, 실제로는 그 논법이 단언컨대 1도° 성립시키지 못한다.

이유는 북이 실제적 붕괴를 맞이한다고 하더라도, 그 국면하에서는 국제법상 정전협정 당사자국들이 제 1순위의 해결권을 가지고, 다음이 UN이 개입하게 되어 있다. 그렇게 미국·중국 등 강대국을 제치고 한국이 끼어들 틈은 단 1도° 없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는 위기에 빠진 북을 결코 한·미·일 세력에 포섭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을 것이며, 미국 또한 중국과 러시아를 깡그리 무시한 채 북을 온전히 집어삼키려만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더한다면 현상유지적 안정만을 꾀하는 국제사회의 특성상 남북통일을 도와줄 이유도 전혀 없다.

다음으로는 세계적인 평화학자 요한 갈퉁이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을 상기하면 당신네들의 생각이 얼마나 틀렸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북한붕괴론이 북한보다 먼저 붕괴할 것”이라고. 대입하면 ‘북 붕괴론을 철석같이 믿는 당신네들의 사유체계가 북 붕괴보다 먼저 붕괴될 것이다’이다.

이는 북이 당신들이 생각하고 싶은 것과는 달리, 위 ‘2와 3’에서와 같이 지금의 북 정권은 폭압정권도 아니며 북의 인민들이 북 정권을 반대하지도 않으며, 또 북에는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그 어떤 제재에도 충분히 견뎌낼 만한 힘이 있음이다. 때문에 북 붕괴보다 당신들의 그 믿음적 사유체계가 먼저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근거도 확실하다.

첫째, 그들은(북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일제를 반대하면서 형성된 항일무장투쟁경험과 이를 ‘자주’로 국채화한 국가정통성이 매우 강한 나라이다. 즉, 그 어떤 외세의 부당한 간섭과 제재에도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둘째, 비록 여러 측면에서 살펴봐야 할 점은 분명 있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또한 분명한 것은 무상교육·무상의료·무상주택으로 대변되는 사회주의체제가 갖는 장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셋째, 수령중심의 유일사상체계가 갖는 체제의 힘을 결코 무시해서도 안 된다. 그 표징에는 권력투쟁이 일반화되어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체제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최고 국가수반을 3년간이나 비워놓고도 ‘유훈통치’가 가능한 국가를 이 지구상에서 본 적이 있었던가? 없다면 이상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가능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체제가 갖는 견고성, 내구력은 대단하다는 것이 인정되어져야만 한다.

넷째, 군과 조선로동당이 갖는 힘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제2차 고난의 행군 시기는 선군의 힘으로, 공개처형(장성택의 예) 등에서 확인받듯이 부정부패와 특권에는 한 치의 타협 없는 일벌백계의 기풍이 당을 특권집단이 아니라 인민의 이익에 복무하는 최전선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결과, 가장 많은 사망자 집단이 우리 대한민국과 서방세계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당원, 당 간부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다섯째, 국가와 인민이 하나의 사상체계, 즉 주체사상으로 대변되어지는 지도이념으로 무장되어 있다는 점도 절대 간과되어져서는 안 된다. 상징으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것 중에 북 인민들은 고집이 세고, 줏대가 높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 이 표현을 철학적으로 표현해내면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자 모든 것을 결정 한다’가 된다. 이렇게 인민 한 사람 한 사람모두가 철학으로 무장되어 있고, 정치적으로는 수령-당-대중이 하나의 유기체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국가적으로는 ’대가정‘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북은 국가-인민이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명확해진다. 당신네들이 꿈꾸는 북 붕괴도, 그 붕괴를 통한 흡수통일도 모두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제는 그 긴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다름아닌, 북이 붕괴된다는 것도, 북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다른데 있지 않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페리의 보고서를 주목하면 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어떤 세계를 이해하는 길은 그 세계의 밖에 놓여있다”고 했는데, 바로 이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명제가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맞는 말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북을 이해하는 길은 북 밖에 있으며’로의 적용은 틀려서 그렇다.

단 한번만이라도 우리가 북을 북의 시각에서 제대로 바라보고자한 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 그들의 시각으로 봤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직 체제이탈자(탈북자)의 시각만으로 그들 내부를 들여다본 것뿐이다.

첫 출발부터 잘못되어졌음은 그렇게 생겼고, 또 공화당 출신의 페리가 어떻게 그런 ‘페리보고서’를 써낼 수 있었겠는가라고 반문했을 때 대한민국의 보수도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북 보고서’를 써낼 수 있을 만큼의 너무나도 긴 ‘잘못된’ 북 시간여행이 있었음을 고백하자.

그러면 보수와 민족은 다시 제자리를 찾고, 한반도는 통일조국의 청사진이 그려진다.

 

통일뉴스, 2020년 5월 29일에 게재된 글입니다 (필자와 협의하여 수정 후 본지에 실린 것임).

화, 2020/06/16-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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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행정부가 홍콩에 부여한 무역의 특별한 지위를 중단하는 제재조치에 착수했다고 선언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제재가 홍콩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호주의 중국무역협회 의장인 Daryl Guppy와 중국국제방송CGTN 간에 이루어진 인터뷰 내용을 번역 소개한다.


CGTN: 홍콩에 부여한 특별무역지위를 종결한다는 선언을 행한 이후, 트럼프가 취할 제재의 내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Guppy: 글쎄요, 정확한 내용은 저도 알 수 없습니다만, 다양한 조치들이 취해질 수 있을 겁니다. 우선은 미국기업들이 홍콩에서 사업하기가 좀더 어려워 지겠지요. 일부 사업분야에는 직접적으로 금지조치가 행하여질 것이지만, 가장 주요한 관심은 비자의 제약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홍콩에 들어가는 비자를 받는 것이 중국으로 들어가는 비자처럼 받기가 어려워 지겠지요. 이점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아마도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홍콩에서 철수하는 것입니다. 대단히 극적이고 나쁜 시나리오인 셈입니다. 일단의 충격으로 투자알선 기금들, 즉 현재 홍콩지수를 투자의 대상 삼고 있는 기관들과 헤징 조직들이 크게 영향을 받을 것 같습니다.

미국의 자본들이 홍콩을 통해 중국본토에 접근을 합니다만 이렇게 되면 자본시장도 충격을 받겠지요. 다시 말하면, 미국의 제재가 이루어지면 홍콩을 통해 중국본토에 흘러 들어가던 자본의 흐름에 장애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상황에서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상기에 언급한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반면에 한가지 보탬이 되는 측면은 미국에 상장된 기업들이 중국의 중시로 복귀하는 일이 늘어날 것입니다. 진작에 Alibaba와 Tencent가 미국의 증시를 떠나 홍콩의 증시로 이동하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이러한 움직임이 빨라질 수 있습니다만, 기억해야 하는 것은 홍콩이라는 도시가 WTO에 의해 여전히 독립적인 관세지역으로 취급을 받고 있다는 점이며, IMF와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에서도 독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CGTN: 홍콩에 직접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요?

Guppy: 향후 홍콩이 상해처럼 변해가는 것이 불가피할 듯 합니다. 상호연계된 자본시장 특성상, 중국에서 직접 거래하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따라서 홍콩이 지난 시절에 자본시장에서 차지했던 비중이 상대적으로 축소될 것이고 반면에 중국경제 전체와 결합되는 수준은 높아질 것입니다. 물론 이는 거대한 대국을 지향하는 중국에게는 좋은 일이죠. Greater Bay(광동-홍콩-마카오)의 결합도 함께 증가할 것입니다.

전체적인 영향을 종합해 보면, 홍콩이 중국경제의 전반과 상당한 수준으로 결합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그러나 홍콩을 경유하던 국제투자 행위들은 향후에는 중국본토에서 직접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CGTN:  홍콩 내의 미국기업들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지요?

Guppy: 미국 기업들이 받을 중요한 충격은 관세와 관련된 것입니다. 현재 660억불의 무역이 홍콩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데, 무관세이던 이들 무역거래에 관세가 부과되면 이는 매우 심각한 부담과 위험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미국에서 홍콩으로 수출되는 액수가 500억불이고, 나머지가 홍콩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액수인데 그간의 용이했던 거래에 관세라는 충격이 다가오는 것이죠.

다른 한가지는, 이것도 매우 주요한 충격으로 작용할 텐데, 과거에는 누구나 홍콩을 들어가고 나오는 일이 비자라는 과정없이 매우 용이하게 이루어 졌습니다. 이제 미국이 제재를 가하고 미국인들의 이동에 비자를 요구한다면 홍콩에서 사업하는 것의 용이함이 줄어들게 되고, 사업의 편이함이 사라진다는 것은 결국 불리한 점이 되겠지요.

CGTN: 트럼프가 이런 조치를 취하게 된 동기와 배경이 무엇이라고 판단하시는지요?

Guppy: 첫 번째 동기는 트럼프가 재선을 위하여 반중 캠페인을 무기로 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배경이고, 트럼프 진영은 무엇인가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느꼈을 것이고, 이 시점에서 매우 큰 조치를 취하거나 최소한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손쉽게 판단한 듯 합니다.

홍콩은 중국의 일부입니다. 이는 변경시킬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간 홍콩은 매우 큰 자유를 누려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6개월 간 혼란을 겪으면서 중국당국이 홍콩을 안정화시키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예들 들어 미국 내에 전국적으로 시민적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고 봅시다(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런 경우 미국은 중국이 홍콩에 가한 것보다 훨씬 강제적으로 진압을 하려 할 것입니다.

사업은 시위진압처럼 그렇게 되질 않습니다. 당신이 사무실에 나갈 수도 없고, 사업을 계속할 수 없으면 당연히 그런 억압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겠지요. 어떤 사회도 그런 상황을 용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대응을 해야 할까요? 중국은 미국의 제재조치에 대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면에 미국에게 중국이 자국 영토에서 시민적 질서를 회복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도록 요구를 해야겠지요.

 

출처: CGTN, 2020.06.07.

화, 2020/06/1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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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년 동안 홍콩을 완벽하게 통치해 왔던 영국의 의회가 중국의 국가안전법을 ‘홍콩에 대한 전제적 강압’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지난 2세기 동안 지역에 대해 불법적이고 무단으로 특혜를 누려왔던 영국의 제국주의 전설을 다시 일깨운다.

1997년 홍콩이 드디어 모국에 귀속되었을 당시, 중국과 영국은 양도의 과정과 중국당국이 국가주권의 행사를 홍콩에 개시한다는 합의문에 연명으로 서명하였다 이를 통하여 영국의 점령상황은 종결되었고 이에 대한 사법적 의무도 함께 끝났다.

이후 독특한 국제도시는 유례가 없는 특별한 행정구역으로 지위를 누려왔다. 처음으로 홍콩인들은 소위 외국세력에 복종되지 않은 생활이 무엇인지 체험했다. 반면에 공권력이 느슨해지면서 외부의 간섭 사건들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폭력을 동반한 시위가 도시를 휩쓸면서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금융허브로서 명성에 큰 타격을 받았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여, 중국정부는 도시의 자치권에 압박을 가하지 않는 방식으로 안전을 보호하는 새로운 규정의 법규를 도입함으로써, 도시의 안정과 번영을 전복시키려는 시도에 의해 발생하는 위협(구멍)을 차단하고자 한다.

이러한 법의 제정을 비난하면서 영국은 중국이 서명한 합의의 의무들을 무효화시키고 있다고 거짓 주장하고 있다. 합의한 의무사항은 서명을 하면서 이미 이행된 것이며, 현재 홍콩은 중국당국의 헌법과 기본법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영국의 외무장관인 Dominic Raab은 국회에서 영국은 합의사항을 준수해 왔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그는 식민지배를 시작할 당시에 이미 국제적인 의무의 준수에 실패한 점과 당시 상황의 국제적 권리조차 묵살했던 사실을 동료들에게 확인시켜 주지 않았다.

홍콩의 경우, 거주민들에게 세대를 넘어 오랫동안 자치적 권리를 인정해 준 것은 영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영국이 지난 식민지배의 인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홍콩에 국가안전법을 선포한 것에 반대를 표하는 것은 매우 적절치 못한 일이다. 그의 연설에는 못된 과거에 대한 향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영국제국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홍콩을 지배하던 봉건적 자세를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들이 지배자라고 착각하고 있다. Calliope 군함이 1841에 섬에 도착하였을 당시 이들은 상륙지역을 ‘점령거리 Possession-Street’라고 호칭했다.

산업이 점차 번창해지면서, 부임한 총독들은 도시의 경제를 마음대로 주무르며 절대적 정치권력을 휘둘렀으며, 다양한 산업의 분야에 영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수입하도록 강요하였다. 이에 저항하는 현지인들은 ‘화이트하우스’라고 불렸던 빅토리아 거리의 감옥소로 보내졌으며, 그곳에서 일어난 잔인했던 이야기들로 인해 당시 시련을 당했던 노인들이 현재에도 몸서리를 치고 있다.

당시 현지인들은 국적(identity)을 상실했고 이를 대신하는 어떠한 신분증도 제공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영국시민권이 아니라 영국국적의 해외주민(BNO)라는 여권만이 발급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신분증은 영국 내에 6개월 이상의 체류가 인정되지 않는 이등급 계급임을 암시하는 것이었고, 오늘날에 ‘관광비자’라고 불리는 것에 해당한다.

이런 수치스러운 역사의 증거들을 현재의 영국정치인들에게서 다시 듣게 되는 것은 차라리 경이스럽다. 내무장관인 Priti Patel은 홍콩인들에게 상기의 BNO의 발급을 다시 검토하겠다는 발언을 하였다 – 그것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외무장관 Raab은 국회에서 임시시민증을 제공하는 것을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하겠다는 것이고, 시민증이 아닌 ‘임시증’으로 말이다.

이에 대하여 Boris Johnson 수상은 시민증 대신 BNO 발급에 대하여 체류허가 기간을 6개월 대신 일년으로 연장하는 것을 추가 제안하면서 이는 시민권을 부여하는 ‘경과조치’라고 언급하였다. ‘경과조치’라는 표현은 그야말로 식민제국주의적 용어인 것이다.

Johnson 수상은 너그럽게도 현재 BNO를 소지하고 있는 35만 명의 홍콩인들에 추가하여 약 2.5백만 명에게 추가로 발급하겠다는 의향도 밝혔다.

반면에, 영국정부 최근 그 어느 때보다 입국심사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외국인의 이민을 제한하기 위하여 입국체류를 신청하는 외국인의 재정수준과 교육자격과 직업종류의 규정을 매우 높여 놓았다.

이에 추가하여 외무장관 Raab은 영제국 식민시대라는 자신들의 상처를 덧내는 추가 발언을 하였다. 그는 국회연설을 통해서 중국이 경제발전이라는 왕관의 보석에 해당하는 홍콩에 국가안전법을 도입함으로써 홍콩을 질식시키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발언은 식민지로부터 약탈하여 버킹검 궁전을 장식한 보석들을 상기시켰다. 이러한 약탈의 흔적은 홍콩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에 걸쳐 있다.

영국 자신이 과거에 식민지배를 하였던 지역에 대해 내부적 간섭을 하고자 의도하였다면, 이에 대한 저항은 당연한 것으로 북경의 외무부 대변인은 이에 대해 노골적인 간섭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는 첨언으로, 영국은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대가를 치를 것임을 경고하였다.

 

출처 : OneWorld. 2020-06-06.

Iram Khan

파키스탄 출신의 국제관계 해설가

수, 2020/06/1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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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북한이 개성에 있던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자, 미국 우익의 주류언론들이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북한에 대한 온갖 거짓 기사들을 조작하여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미국내의 진보적인 평론가가 비판하는 글을 번역하여 소개한다.


북한은 미국에 의해 수도 없이 협박당하고 공격을 받고 있는 국가들 중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보수매체들의 끊임없는 거짓말과 사기로 조작된 역사의 논리에 빠져,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거꾸로 북한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는 전(全)역사를 통하여 결코 사실이 아니었고 지금 현재도 사실이 아니다. 중국, 이란, 러시아 그리고 북한, 이들 어느 국가들도 미국을 위협하지 않고 있다.

미국당국과 주류매체들은 반미적인 자주독립 국가들에게 그러하듯이,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발을 계기로) 반북선전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의 소리(VoA)는 지난 목요일 다음과 같이 거짓 주장을 떠들고 있었다 “….. 북한은 남한에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sic).”

북한이 서울당국과 전화선을 끊고 자신의 지역에 있는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키며 강경의 대치상태로 돌아간 것은 미국과 문재인 정권과 화해하려던 온갖 신뢰적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에 대한 좌절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폼페이오와 불턴 등 트럼프 주변의 호전적 강경론자들은 트럼프-김정은을 희롱하며, 양국 정상의 회담(하노이) 과정에 수용할 수 없는 요구조건을 제시하여 빈손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VoA는 국제정세의 이슈에 대해 수도 없이 거짓말을 해오면서 당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헤드라인을 조작했다 “북한은 오랫동안 긴장과 도발을 강화해오면서 남한에게 경제지원과 양보를 받아내려고 하였다.”

뉴욕타임즈 역시 모든 나라와 안정과 협력을 기본원칙으로 하는 북한에 대해 “김정은은 남한에 대해 적대적이며, 호전적인 행동과 군사적인 도발을 반복하면서 취약한 평화의 유지를 깨뜨리려고 협박하는 인물이다”라며 거짓말로 혹평을 가했다.

북한정권이 성립한 이래 단 한번도 미국과 서방 그리고 남한 정부가 화해를 요청한 적이 없다 – 단지 일시적으로 관계가 개선되는 기간이 있었을 뿐이며, 이마저도 미국의 표리부동한 행동으로 지속되지 못했다.

거짓말과 사기극은 워싱턴 당국과 서방측에서 만들어 왔으며, 미국은 평양이 아니라 서울당국에게 지속적인 압력을 가해 왔다.

복한에 호전적인 워싱턴포스트지는 2018년 국제인권자료(global slavery index)를 인용하여 “2.6백만 명의 북한주민이 노예상태에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북한정권에 의해 강제노동을 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상기 자료는 호주의 광산재벌인 Andrew Forest와 그의 부인인 Nicola가 세운 소위 Minderoo 재단에서 발표한 것인데, Nicola는 지독한 백인우월주의자로 악명이 높으며 호주 인권조직단체에서 활동하는 Tony Maurice의 딸이다.

소위 국제인권자료는 미국과 서구 사회에서 수천 만 명이 최저생계비 이하의 임금으로 살아가며, 이들 대부분은 불안정한 임시직종에서 일체의 사회적 보장혜택을 받지 못하는 조건에서 착취당하고 있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북한을 이웃인 남한에 도발적이라’고 보도하면서도 미국이 자신을 한번도 협박하지 않은 국가를 75년 동안 적대하여온 사실은 무시하고 있다.

폭스 뉴스는 의심스러운 출처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북한이 오는 11월 대선과정에 미국을 공격할 것 같다”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뒤를 이어 소위 김구=한국재단(Kim Koo-Korea Foundation?- 아마도 탈북자 단체인 듯)은 북한을 미국의 종속국가로 만들고 싶어한다고 보도하면서, 이 조직의 북한 전문가라는 이성희의 말을 인용하여 구체적인 자료도 없이 “북한은 미국의 선거시스템을 해킹하여 무력화시킬 수 있는 자신들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자 하며, 그들의 주적인 미국에 심리전을 펼치는 등 정치적 압박을 증대하려 한다”는 것이다.

나가서, 이는 ICBM 혹은 핵실험처럼 연속적인 도발을 강화하고자 북한의 기획된 전략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워싱턴에 소재하고 있는 이슈발간의 One그룹은 “미국의 선거를 위태롭게 만드는 외국의 조작된 간섭을 주장하면서 ‘미국을 혼란에 빠뜨리지 말라’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미국의 역사에서 이런 일은 결코 없었다 – 오히려 반대로 미국이 외국의 선거를 개입하고 조작하여 친서방 정권이 권력을 장악하도록 여러 번 시도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북한이 미국 선거에 개입해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무엇이란 말인가? –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북한의 입장은 “장기간 지속되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여 보다 신뢰할 수 있는 군사력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는 모든 주권국가들이 당연히 해야 할 자주방위권에 해당한다. 호전적인 것은 미국과 서방이 시도하는 방식일 뿐이다.

미국은 두 개의 진영을 나뉘어 있는 일당 독재의 국가이다. 양당의 입장은 주요 국내 현안들과 국제정치 이슈에 관하여 실제로 오십보 백보의 수준이다. 이들은 북한을 포함하여 미국의 정책에 순종하지 않는 국가들에게 항구적인 적대정책을 펼친다.

실제로 미국의 국가안전을 위협하는 외국의 위협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짓으로 조작해내어 수 조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비용을 군사주의와 끝나지 않는(endless) 예방전쟁에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다른 국가들과 우호적이며 협력적인 관계를 희생시키면서 진행하고 있다.

미국의 방식은 적국뿐만 아니라 동맹국들조차 지배하고 통제하는 것  – 온 세계가 자신의 의지에 굴복을 요구하는 것이다. 세계가 간절히 희망하는 평화, 평등, 정의 그리고 합의에 의한 질서를 무시한 끝없는 군사주의와 호전성이 미국이 지닌 처방전이다.

 

출처: global research center in Canada. 2020-06-18.

Stephen Lendman

미국의 시카고에 거주하는 진보적인 기고자이며 국제정치 관련의 기사를 주로 다루고 있다

금, 2020/06/19-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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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베트남 북부와 가까이 위치한 하이난 섬의 총면적은 33만 평방킬로미터로 경상남북도를 합한 면적보다 조금 작고 제주도의 18배에 달하는 광활한 지역이다. 인구는 8-9 백만명으로 상대적으로 조밀하며, GDP는 일인당 2019년 기준 약 9천불 수준이다.


하이난 성의 수도인 하이코우 시의 모습

지난 주에 중국정부는 하이난(海南)성을 자유무역항(FTP) 지대로 만드는 종합계획안을 공개하면서 기존의 아열대 관광지역을 두바이와 싱가포르와 어깨를 겨누는 국제적 중심지로 개발하려는 60여 조치를 제시하였다.

특별정책들을 포함한 패키지는 3단계로 나뉘어, 2025년까지 무역과 투자의 자유항으로 개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2035년까지는 이를 완숙한 단계로 이끌며, 2050년에는 명실상부한 국제적인 거점으로 만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향후 15년의 개발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이미 해당 지방정부의 관리책임자들을 두바이와 싱가포르에 파견하였고 이들을 성공시킨 자유무역의 규정들을 연구하도록 독려하였다.

하이난 지역을 중국의 새로운 자유무역과 물류의 중심으로 개발한다는 정책으로 의료, 바이오텍, 교육, 오락 그리고 금융서비스의 혁신 등 분야에 외국투자자들의 문호를 즉각적으로 개방하는 조치를 가져올 것이다.

하이난 지역은 등소평 시절부터 중국지도부에 의해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고려되어 왔으며, 이미 1988년에 중국의 가장 작고 가장 남부에 위한 성省급 지역으로 선정되었고, 2018년 4월에 시진핑 주석은 이 섬지역을 중국의 최대자유무역지대(FTZ)으로 선언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에 발표된 FTP종합계획은 2018년의 FTZ의 구상보다 훨씬 규모가 크며 거대한 청사진의 포부를 담고 있으며, 수출입에 대한 관세의 면제를 넘어서 투자와 자본의 흐름에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한다.

국제적 금융활동에 있어서, 세금은 투자와 자본의 흐름에 중추적 역할을 하며 지역을 소비와 인재, 투자와 사업에 매력적인 지역을 전환시키는 축으로 기능한다.

두바이와 싱가포르가 수십 년에 걸쳐 부유하고 번영한 지역으로 발전한 것에는 사업과 개인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소득세가 낮은 배경이 있으며, 이러한 배경의 연구를 통해 하이난 지역에 주거하기에 편하고 사업을 번창시키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능력있는 인재들의 개인소득세과 기업들의 법인세를 최대 15%로 제한하도록 결정한 것은 하이난을 국제적인 조세피난처에 견주는 지역으로 보장하려는 노력이다.

하이난의 전략적인 입지는, 한편에서는 광동성과 인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홍콩과 나란히 위치하여 중국의 접경지역을 확장하고 본토와 Greater Bay(광동-홍콩-마카오) 지역을 동남아 국가들과 연계하면서, 남반부의 여러 나라들과 무역 등 다양한 협력을 도모하는 관문關門으로 자연스러운 역할을 맡게 한다.

아열대적인 기후는 싱가포르를 대체하며 국제적인 정치 및 경제 이벤트를 개최하는 지역으로 매력을 가지게 할 것이다. 이미 지난 세월 유명 관광지로서 해변가 주변에 리조트와 5 성급의 호텔 등 인프라가 잘 조성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Dalian(대련)이 ‘여름의 다보스’로 불리듯이, 중국은 하이난 개발을 통하여 또 하나의 국제적인 지역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며, 주요한 국제행사를 유치하는 것과 더불어 국제관광 도시로서 소비진작과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이미지와 영향력을 강화하는 게기를 마련하게 된다.

중국당국의 하이난 개발결정은 Greater Bay(광동-홍콩-마카오) 지역과 연계하여 국가의 경제를 더욱 확장시키는 현명한 방향의 움직임이다. 국가를 국제사회에 더욱 개방하려는 견지에 비추어, 하이난 지역을 경제와 정치가 하나로 융합되는 왕관의 보석으로 선정 개발하면, 이 지역을 외국투자가 자연히 이루어지는 국제적 센터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출처: CGTN, 2020-06-06.

Matteo Giovannini

이탈리아 경제개발부의 중국담당 주요 맴버이자 중국상업은행의 재정분야 전문상담가


보충자료 –

중앙정부의 지원과 다양한 정책을 구비한 개발제도의 도움으로 하이난 성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우선 무엇보다도 제조업, 수송차량, 원자재, 소비재 등 분야에 대한 수출입 무역에 관세를 면제받게 된다. 이로서 자유무역이 상당한 수준으로 촉진될 전망이다.

다른 한편으로, 하이난 지역은 국제적인 관광과 하이테크를 위한 단지조성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중앙정부의 정보분야 위원회(council info office)는 세계경제의 미래전망은 하이테크 개발에 맞추어 있다는 판단과 하이난 지역이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지역이 아니었다는 현실을 감안하여, 향후 개발은 관광과 서비스 산업, 그리고 하이텍 분야를 유치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분야에 우호적인 정책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예를 들어 상기에 언급한 산업분야의 기업들은 본토의 기업들에게 적용하는 법인세 중에 가장 낮은 15%의 세금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중국본토의 소비자들에게 적용되어온 면세금액 3만 위엔의 혜택을 10만 위엔까지 확대할 것이다. 많은 중국인들이 면세가 적용되어 국제적인 소비재가 저렴한 홍콩을 관광하며 소비를 맘껏 즐겨왔듯이, 이제 하이난 섬도 같은 매력을 갖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계획에 의하면 재능있는 국제적인 인재들에게도 혜택을 부여한다.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개인들은 본토의 개인소득세 한도인 45%보다 30%를 낮춘 최대 15%의 한도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이는 홍콩보다도 2%가 더 낮은 수준이다. 이로써 자유무역지대는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뿐만 아니라, 재능과 기술과 경험을 갖춘 인재들을 불러모을 것이다.

하이난 자유항을 개발하면서 세계무역과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싱가포르와 홍콩의 성공을 따라 배울 것이지만, 하이난은 자신의 독특한 입지와 구상을 통하여 두 도시들의 정책을 단순히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만의 모습을 만들어 갈 것이다.

싱가포르와 홍콩이 성공한 배경은 단순히 지정학적 이점과 무관세정책 또는 매력적인 세금혜택뿐만 아니라, 중국 본토가 흉내낼 수 없는 역사적이고 제도적인 근거가 있다.  예를 들어 홍콩은 중국본토와 세계를 연결하는 핵심적인 역할이라는 장점을 통하여 놀라운 경제적 성장을 이루어 냈다.

따라서 하이난의 자유무역항 개발의 과정을 통하여 책임을 지고 있는 성省당국은 자신들의 입지와 중국의 사회경제적 현실과 조화를 이루어 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개발계획서에서 하이난 자유무역항은 중국적 특색을 지녀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하이난이 앞선 두 도시보다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뜻은 아니며, 성공여부를 가르는 핵심은 사업하기에 매력적인 환경을 만들어 내느냐에 달려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곳에서 사업하는 것이 매력적이고 편해야만 한다. 하이난이 이것을 제공할 수만 있다면 미래는 보장된 것이다.

일, 2020/06/2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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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라는 합중국은 출발부터 문제투성이였다. 스스로 자국시민들에게 권리와 자유를 부여했다고 자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량학살과 노예제도 위에서 건국되었고, 이러한 과거의 죄업들을 제대로 청산한 적도 없다. 세대와 세대를 이어오면서 질문은 계속된다 – 누구를 위한 자유이며 누구의 권리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대륙을 약탈하여 국가를 세운 건국의 이주민(약탈자)들은 적시의 적소에 나타난 것이다. 이들은 당시 온갖 종류의 전쟁터가 되었던 유럽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광대한 수림, 향해가 가능한 넓은 강, 비옥한 토양, 석탄과 오일 그리고 가스 등 풍부한 광물자원들이 넘치는 지리와 역사를 누리는 행운을 가졌다.

그 결과로 한세기 반 만에 엄청난 부을 축적하고 산업화를 이루면서 세계 주도권을 갖게 되었다. 미국은 세상에 과잉소비라는 마법의 공식을 가져왔고 이를 온 세계에 퍼뜨렸다: 값싼 에너지+광고+신용(부채)제공은 끝없는 상업적 성장과 고용과 세금과 투자수익을 가져다 주었고, 풍부한 자원들이 에너지와 기술과 자본의 투자 그리고 노동력을 통하여 전례가 없는 속도로 엄청난 규모의 부로 전환되어 축적되었다.

20세기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미국의 시대이었다. 미국과 멀리 떨어져 진행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달러는 기축통화가 되었고 누구도 이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워싱턴의 미국 정치인들은 국가를 사례의 원칙에 의해서 통치한다고 주장하였지만, 미국의 지배에 저항하는 나라들은 CIA가 배후조종하는 쿠데타와 침공 또는 경제적 제제를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금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빛이 분명하게 약해지기 시작했다. 첫 징후는 지난 세기의 60-70년대 의미없는 베트남 침략에서 나타났는데 이로 인하여 국가가 분열되면서 문제가 발생하였고, 원유생산량이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리차드 닉슨은 아프리카-츨신의 미국시민들을 약화시키고 감옥에 가두기 위해 마약과의 전쟁을 기획했다. 1980년대에 시작된 금융우위정책은 미국을 2개 층의 카지노 판으로 변모시켰다. 부유한 소유계급들은 불만이 전혀 없었고, 가난한 계급은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었다. 계급으로 분리시켰다.

언급할 가치도 없이 값비싼 대가의 전쟁(중동개입)을 조지 부시 시절에 치렀는데, 무식하지만 돈많고 명랑하지만 말을 더듬는 촌놈이 졸지에 집안의 배경과 대법원의 도움으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것이다. 부시의 퇴임시기가 세계의 원유생산량이 한계에 이르고 주택시장의 대출거품이 터져 나오는 시점과 겹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 치명적인 어려움을 간신히 피해 살아 남았다.

부시의 후계자인 버락 오바마는 이 모든 혼란을 수습하는 책임을 맡게 되었다. 그는 매우 지적이었고, 수완이 좋았으며 호소력이 있었다. 더구나 그의 연설은 가치에 호소하면서 미국인들을 단결시켰다. 그러나 그의 당선으로 미국의 경제, 군사, 보건 그리고 환경정책 등이 크게 변할 것으로 기대한 진보그룹의 희망과는 달리, 오바마는 미국의 현안을 돌파하지 못했고 의지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그의 재직 당시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가 노동자들을 궁핍으로 몰아가면서도 유한의 투자계급들에게 엄청난 보상을 몰아주는 것을 막지 못했다.

투기꾼들은 흥청망청하게 제공되는 구제자금으로 엄청난 일들을 진행할 수 있었다: 후레킹의 열풍이 불어왔고, 소수의 흥분한 기업들이 북부 다코타, 텍사스, 오클라호마 등지의 세일 유정에서 매일 수백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실상은 채광업자들과 투자자들에게는 별 이익이 돌아가지 않았다. 이는 마치 피라미드의 게임과 같았지만 다행히 유형적 생산물이 손에 잡히는 사업이었다. 이로 인해 기존 원유생산의 한계(peak of oil)는 다시 미루어 졌고, 미국은 이제 세계최대 원유생산국가가 되었다.

오바마의 시절에는 또한 social-media가 거의 모든 미국인들의 생활 속에 확산되면서 주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편리하고 중독성이 강하며 수익성이 높은 디지털산업의 기업들이 통신에 재미를 보태면서 미국이라는 국가의 전반적인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이들 기업들은 사용자들에게 엉터리가 만든 조작이라도 한번 믿으면 그것에 빠지도록 유도하였다.

2008년에 유럽의 한 지인이 내게 묻기를, 미국이 아프리카-혹인 출신 대통령을 가지게 된 것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고 물어 왔다. 나는 답변하기를 나의 조국 내에 팽배하여 꺼질 줄 모르는 인종차별로 인해 누구인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했다.

8년 뒤에 재수없이 도날드 트럼프라는 작자가 나타나서 ‘버락 오바마는 케냐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는 황당한 내용을 퍼트렸다. 트럼프의 심리 – 과대망상증, 집중력과 애정의 결핍, 자신의 불만을 극적으로 표출하는 성향 등에 대한 많은 글들이 이미 출판되었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의 경악할 조치들에 대한, 예를 들어 환경규제의 철폐, 헌법이 규정한 합의와 견제 기능의 무력화, 그리고 미국의 국제적인 위상을 무너뜨리는 결정들에 대한 보고서들이 터져 나왔다.

불가피하게 여론의 다수는 트럼프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대응은, 정부를 보다 능력있게 운용하겠다는 식의 재선 캠페인을 벌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로운 논쟁을 벌려 나라전체를 분열시켜서 오는 11월 선거의 결과를 장악하려는 분명한 의도로 국가를 분노와 정치적 혼란에 빠뜨리려고 한다. 이런 혼란은 1960년대에 있었던 일련의 암살사건들(JFK, MLK, RFK, Evers, Malcolm-X)로 인한 도시의 폭동과 격돌 이후, 어쩌면 남북전쟁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하나 더 있다 – 팬데믹 사태.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사태의 돌출은 이미 공공보건의 전문가들이 경고하였듯이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미국이 극도로 분열되고 서로가 불신상태에 빠진 시점에 버그처럼 터져 나온 점이다.

논쟁은 있겠지만, 연방정부 지도력의 부재로 선진국가 반열에서 가장 취약한 대응을 하면서, 미국이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에서 세계를 압도하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 신속하고 협동적으로 대응하여 바이러스를 제거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가운데, 트럼프가 지도하는 미국은 뒤뜰거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극단의 혼란 속에 빠졌다. 얼굴에 마스크를 해야 하는지 결정을 못하는 것은 차리라 사소한 실책이고, 국민의 절반 가까이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고집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팬데믹으로 인해 경제적 불황 속에 엉망진창이 되었으며 전례없는 실업률과 광범위한 파산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에 예상을 뛰어넘는 관대한 지원조치에 힘입어 주식시세는 회복되어 고공을 유지하고 있다.

국가라는 육체적 정체政體가 치명적인 질병에도 불구하고 수수께기처럼 버티고 있었다면, 인종차별이라는 암이 갑자기 전이되어 나타났다. 무기도 없는 흑인-미국시민을 경찰이 살해한 것이다. Jim-Crow(흑인분리)법이 작동하던 수십 년(1876-1965)동안 자행되었던, 린치, 범죄 그리고 공권력이 배후인 기금지원프로그램으로 백인시민을 높이 받들고 흑인시민을 낮게 취급하던 관행이 이제 증오와 공포를 담아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격한 감정들이 폭발하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는 타는 불에 기름을 붓는 반응을 보냈다 ‘약탈이 시작되면 사살도 시작된다’ – 이는 악명이 높았던 마이애미 경찰국장 Walter Headley라는 자가 사용했던 바로 그 문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의 시위대들 대부분은 나이와 피부색을 막론하고 평화로운 행진을 유지하며 오는 11월의 선거를 앞둔 국가의 정치적 앞날을 염두에 두었다. 전체주의적 정권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일단의 독재로 향하는 국면에서 먼저 민주주의를 핑계로 삼았으며 일단 독재가 시작되면 이를 중단시키기가 어려워 진다. 독재를 중단시키는 유일하고 강력한 힘은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의 시위에 참여하여 저항하는 것이다.

지난 며칠 간의 시위는 특별히 트럼프를 목표로 삼지는 않았지만 시민들은 오랫동안 속을 끓였던 그와 그가 자행한 모든 행태의 백인우월주의와 제도화된 인종차별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에너지로 분출되어 나오는 것이 분명하다. 이제 군대의 지도자들이 공개적으로 트럼프에게 제동을 걸고 있다. 이런 사태의 추이를 감안해 보면, 트럼프에게 집중된 권력은 장기간에 걸쳐 심각하게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항의시위는 시민 대다수가 자랑스러워할 만큼 열정적으로 진행되었고, 아주 짧은 시간에 (트럼프의) 몇 번의 예공을 피했다. 트럼프의 독재가 퇴조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에는 팬데믹의 즉각적인 위협도 줄어들고 있다. 사업들은 재개되고 음악회와 스포츠 행사가 일정을 준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상태로 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여전히 시기상조이며 근본적으로 비현실적이다. 새로운 행정부가 내년 초에 들어선다고 가정하더라도, 미국은 이미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해체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비전통적인(후레킹) 원유생산은 이제 한계에 도달하여 급격히 퇴조하고 있으며, 2007년 때보다 규모가 커진 부채의 버블은 곧 터져나올 것이고, COVID-19는 반복적인 돌출을 통하여 인구를 감소시킬 것이다. 동시에 미국이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기후위기의 사건들이 다음 차례의 등장을 대기하고 있다. 조만 간에 해수면이 높아지고 산불폐해가 심각해지며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면서 폭풍우를 동반할 조짐이다.

짧게 말하면, 미국은 패권의 조락기에 들어서 있으며, 이는 세계의 질서를 제대로 유지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지난 5월말에 트럼프가 백악관의 지하벙커에서 움츠리고 있었다는 상징적 사건이 매우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향후에도 미국이라는 국가가 합중국으로 지속될 것인지 묻는 질문은 차라리 합리적이다. 연방정부가 당면한 주요 문제들을 해결하는 점차적으로 무능함을 드러내 왔는데, 백악관에 새로운 얼굴이 들어선다 해도 이러한 상황의 추이를 역전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현재의 팬테믹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태평양연안 북서부, 대륙중부 그리고 북동부 지역들이 서로 연합하였듯이, 향후 필요에 따라 주정부들은 분권적 전략을 추구할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Gavin Newsom이 ‘주단위 국가, nation state’라고 호칭하였지만, 현재로서는 주단위 정부들이 재정적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아, 경제적 불황의 충격을 견디어 낼 수 있는 만큼의 대규모 적자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한 목적으로 돈을 발권하고 대출을 집행할 수 있도록 주정부 산하의 은행들의 역할을 차선책으로 검토될 수 있다. 그러나 주정부로 권한을 이양하는 것만으로는 미국 전역의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도시와 농촌간 그리고 경제적 인종적 정치적 편차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법률적으로 합중국으로 남을지 여부가 현재의 미국 국민들과 후손들이 자신들을 미국인(또는 미국에 속하는 지역단위)이라고 확인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필요에 의해서 이들은 과소비를 축소하고 보다 분권화된 삶으로 적응해 갈수 있어야 한다. 특별히 개별적이고 가족중심적이며 지역의 자치권회복에 주도적 행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미국이라는 제국의 해체되는 과정이 살아가는데 이득이 될 수도 있지만 이를 즐기기에는 넘어야 할 어려움(rough seas)이 기다리고 있다.

욕망, 지나친 과소비, 인종차별, 그리고 제국주의적인 야심들이 우리조국의 운명을 지배하여 왔다. 한나라의 시민으로서 조국이 미래를 향해 전진하길 원한다면, 우리를 단결시키는 기초적인 가치인 근면, 절약, 관용, 공정, 정직, 성실, 그리고 상호존중 등을 추구해야 한다. 국가가 조락하는 과정에서 희생을 최소화하려면, 지역 단위의 제도와 경제운용, 그리고 실현가능한 사회적 제도들 속에 상기의 가치들을 고양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 시작하여도 결코 빠른 것은 아니다.

 

출처: CommonDreams.Org, 2020-06-10.

Richard Heinberg

포스트-탄소 연구재단의 수석연구원으로 Our Renewable Future, Society Beyond Fossil Fuels, How Fracking’s False Promise of Plenty Imperils Our Future 등 에너지 관련한 13종의 저술을 발간하였다

월, 2020/06/2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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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서울의 미대사관에는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기습시위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사실은 주한미군 분담금의 5배 인상을 요구한 도날드 트럼프의 요구에 거칠게 항의하는 시위가 이미 수개월 간 진행되고 있었다.

참가중인 한 시위자는 외친다. “그들은 우리에게 전쟁무기를 팔아먹고 있을 뿐이다.” 한 배너에는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항의시위의 구호 문구를 인용하여 이렇게 적혀 있다. “미제국은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는 뜻이다.” 한국전쟁을 통하여 피로 맺은 동맹이라는 혈맹의 나라에서 반미 감정의 흐름이, 특히 진보적인 젊은이들 그룹을 중심으로 긴장이 형성되고 있다.

그런데 현직 미국 대통령에 대한 혐오가 지난 몇 년간 비등해지면서 참가자와 경찰들 간의 충돌을 야기하는 등 시위가 발생하면서 이제 반미의 정치적인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미국은 방위분담금을 더 내라는 압박을 가하기 위해, 코로나바이러스가 경제에 심한 충격을 주는 와중에도, 지난 4월 미군기지에 일하고 한국인 근무자들을 일시 해고시켰다. 이러한 조치는 6월에 이루어진 잠정적인 합의 덕분에 중단되었지만 한국민의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는 한국인에게서 돈을 받아 내는 것이 (자신의 부동산을 통해) 뉴욕의 시민들에게 임대료를 받는 것보다 쉽다’고 떠벌리면서, 우리를 맘대로 돈을 뜯어낼 수 있는 국민이라고 조롱하였다”고 퇴역한 장교출신인 최인범씨는 인터뷰에서 밝혔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워싱턴의 오랜 혈맹인 한국은 그의 장사꾼 방식 외교정책으로 자신들의 이해가 소홀하게 무시되는 것을 염려해 왔으며, 상기에 언급한 시위 사태는 트럼프와 서울 당국자 간의 마찰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미행정부의 코로나 사태에 대한 대응이 국제적 비난을 받고, 미국사회가 인종차별 문제로 혼란에 빠져 있는 와중에, 미국과 한국 간의 갈등으로 지난 70년 간 지역의 평화를 유지해 왔던 미국주도의 안보질서에 간극이 발생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간극은 중국의 급속한 굴기에 의하여 넓어지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미국의 지도력에 의해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제일주의(America First)가 한국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고 있지만, 동시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주요 동맹국들도, 호주와 일본을 위시하여 지난 세기에 지역을 주도했던 미국의 패권에 자신들을 방어해 주는 역량과 의지가 점차 약화되고 있다고 염려하고 있다.

중국이 이웃 국가들에게 경제력과 더불어 군사적 영향력을 공격적으로 적용하면서 여기저기에서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아시아의 주요 국가들이 미국과 함께하는 것으로는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고 이를 신뢰할 수도 없게 되었다”고 미국의 주요 싱크탱크인 국제전략연구소 센터의 Bonnie Glaser는 말한다.

“오는 11월에 트럼프가 낙선되면 이 지역의 국가들 사이에 안도의 한숨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후의 워싱턴 당국이 트럼프보다 나아질 것에 대해서 확신을 갖지 못한다. 그 이유는 미국외교의 주요 관심과 군사력이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그녀는 설명한다.

북경당국이 중거리 미사일 숫자를 늘리면서 역내 미국의 군사적 우위가 위협받고 있고 독일 내 미군의 잠재적인 철수가 거론되는 등 유럽과의 관계와 나토가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무역이 핵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아시아는 북한문제와 SenKaku 또는 Diaoyu 군도, 대만해협, 남중국해, 이에 더하여 인도와 파키스탄 및 중국간의 국경 분쟁 등 많은 위험 요소들이 존재한다.

동시에 워싱턴 당국의 신뢰성 여부가 의심받고 있으며, 오랫동안 견지해 왔던 미국의 군사적 우위가 상실되고 있다는 징후들이 나오고 있다. 북경이 중장거리 미사일을 증강시킨다는 의미는 미국의 전통적인 역내 군사력 상징인 거대한 항공모함의 운용방식이 위협에 처해 있다는 것을 말한다.

2004년 이래 미군은 괌에 전략적인 폭격기 기지를 운용하면서 몇 시간 안에 미태평양 사령부 관할지역인 동중국해, 대만해협 또는 남중국해로 중무장 또는 스텔스 폭격기를 출격시킬 수 있었는데, 16년 만인 지난 4월에 이의 운용을 종결했다 ‘이제 미군은 전략폭격기를 미국 본토의 기지에서 운용하며, 이러한 변화는 군사력을 보다 유연하지만 예측하기 어렵게 하는 변화라고 전략사령부의 책임자는 이야기하면서, 이는 괌의 킬러라고 불리는 중국의 D-26 중거리 미사일, 즉 중국본토에서 괌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에 대한 대응이며 옳은 결정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어서 군사력과 무기체계를 유동적이고 비정기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중국이 대응하기 어렵고 비용을 크게 부담하게 만든다고 추가 설명하면서도, 반면에 역내의 국가들에게 미군이 약화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것 역시 언급한다.

같은 논리가 미국 군사력의 보호막이라는 핵심적인 항공모함의 운용에도 적용된다. 이들이 공룡(한 순간에 무력화)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고 동경의 싱크탱크이며 미군과 일본군 장교의 교환 프로그램을 주도한 Asia-Pacific Initiative의 회장인 Yoichi Funabashi는 주장한다. “COVID-19 사태로 미군의 항공모함이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 확인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는 바이러스가 출현하자 역내에 있는 4개의 항공모함 모두가 항구에 정박해야 했으며, 서태평양 지역에는 단 한 대의 항공모함도 운용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코로나를 대응하는 워싱턴 당국의 무력함에 신뢰가 심하게 흔들렸다. 미국은 경제와 군사력 그리고 기술적 주제에서 보여준 것 같은 효과적이고 강력한 모습을 팬데믹 대응과정에서 보여주지 못했다고 필리핀 대학 해양연구 센터의 책임자인 Jay Batongbacal는 지적하면서 미국의 군사력은 쇠퇴하였고 모든 이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은 이러한 비판을 거부한다. 우리는 전투력 증강을 위한 협력을 중진하고 능력을 고양시키는 상호지원운용, 정보의 교환 등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고 인도-태평양사령부의 대변인 Mike Kafka 대위는 주장하면서 2주 전에 군사력의 교체를 위해 호주의 Darwin 항구에 200 척의 군함이 집결되었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아시아 내의 미국동맹국들은 중국이 시도하는 군사적 도전에 트럼프 행정부가 초점을 맞추도록 신뢰를 보내고 있다. 워싱턴 당국은 북경당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확인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을 대체하려는 잠재적인 힘으로 묘사하고 있다. 북경당국이 강력해진 군사력과 경제적인 힘으로 이웃국가들과 관련지역을 자신의 이해에 복종하도록 압박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십 년 이상의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는 전력강화를 통해 중국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태평양 함대의 지휘관인 Phil Davidson 함장은 지난 4월에 언급하면서 향후 6년간 200억 달러의 추가적인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한 재편성으로 잠재적인 적의 어떠한 예비적 도발도 실패할 것이며 비용을 치를 것이라고 선언한다.

인도-태평양 사령부 역시 동맹간 군사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보의 교환을 강화하고 역내의 동맹들과 공유할 탐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합동지휘와 무기통제력을 구성하여 합동훈련을 배가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미해군이 소위 남중국해를 통과하는 향해의 자유(freedom of Navigation)를 운용하고 있지만, 역내의 국가들, 특히 중국과 해역과 지원이용 문제로 중국과 충돌하고 있는 필리핀과 베트남은 미군이 보다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도록 요구하고 있다. 베트남 국립대학 학장인 Pham Quang Minh,는 미해군은 중국이 공격적일 때만 반응을 보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중국과 베트남에서 회자되는 속담을 인용하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물은 아무리 많아도 불을 진화하는데 사용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최근 미국은 중국이 분쟁 해역에 대한 소유권 주장을 강화하는 것에 대응하여 남중국해에 대한 접근전략을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지아 국영회사인 Petrobra가 드릴쉽을 운용하고 있는 전용수역에 중국이 탐사선을 파견하자, 미군은 호주해군과 연합하여 해당지역에 전투함과 구축함 등을 운용하였는데, 이는 이전과 확연히 달리진 모습이었다.

“미군은 중국의 도전적인 행태에 대응하여 해전을 불사할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역내의 아시아 친구들은 이를 환영하고 있다”고 전역한 미군장교가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시아의 동맹들은 미군의 적극적이 작전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의 정치적인 입장 특히 미국제일주의의 배경을 염려하고 있다.

몇 주전에 워싱턴 당국이 발표한 중국인민공화국에 대한 전략적 접근은 민주주의와 자유무역에 대하여 동맹들과 자유의 가치를 공유한다는 의례적인 내용 이상은 없었다. 미국과 전통적인 관계를 맺어온 동맹국가들은 워싱턴 당국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를 존중하고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면 중국을 향해 접근해 갈수도 있다.

‘우리는 미국이 과거 자유적인 국제질서를 지켜왔다고 믿습니다. 이 점이 우리가 믿는 가치와 질서를 위해 중국과 대항하는 이유입니다’라고 Funabashi는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현재의 미국은 이러한 가치를 지켜주는 동맹이 아니라고 봅니다. 미국이 우리를 거래의 품목으로 취급하고 소모품(as prawn)으로 활용한다고 염려합니다. 이런 류의 불안감은 처음있는 일로 우리를 당황하게 합니다’라고 그는 말을 잇는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최대 고객인 일본은 워싱턴과 서울 당국간의 불협화음을 지켜보고 있다. 일본의 미국고객국가로서의 협정은 올해 재협상을 예정하고 있다.

호주와 일본은 특히 미국이 환태평양-파트너쉽(TPP)를 파기한 것에 실망하고 있는데 이는 오바마 시절 중국의 경제력 굴기에 따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호주당국이 지지한 역내 무역협상안이었다. 호주의 전직 외교통상 차관 출신인 Richard Maude는 미국이 TPP를 탈퇴하면서 역내 경제에 관한 발언권을 상실했다고 평가한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미국제일주의라는 경제적 자국주의에 의해 평가절하되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다른 동맹들은 미국이 중국과 대립이 심화되는 과정에 자신들이 볼모가 되었다고 느낀다. 싱가포르의 수상 Lee Hsien-loong은 6월에 있던 외교행사에서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이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고 연설문에 적고 있다.  그는 작성된 연설문을 통해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을 역내의 핵심적인 이해를 지닌 지역의 힘으로 평가하는 동시에 중국을 디딤돌의 현실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미중 간에 선택을 강요당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산업적인 공급사슬에서 중국과 결별을 요구하고 무기통제와 보건 및 기후위기에 관한 국제합의에서 철수하면서, 미국이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적고 있다.

시드니 연구센터의 연구자는 호주의 정책 책임자들은 워싱턴이 우리에게 양자 간에 선택을 강요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난 5월 미국무장관인 폼페이오는 호주가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의 경제계획에 참여하면 정보공유를 중단시키겠다는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호주와 단절을 위협했다. 이후 그의 발언은 호주의 미국대사관에서 긴급하게 수정되었다.

미국과 긴밀한 동맹관계를 갖고 있는 국가들은 이의 유지를 선호한다. 베트남은 아직 미국과 군사적 동맹은 아니지만, 미군에게 항구를 개방하고 미군의 훈련과정을 관람하는 수준에서 군사적 교환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과 오랜 동맹관계를 유지해온 필리핀은, 비록 현직 두테르테 대통령이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희망하면서 기존의 관계가 손상되기도 했지만, 최근 중국에 대한 억지력으로 미국과 동맹이 지니는 가치를 재평가하면서 미군의 잠정체류를 통제하려던 계획을 중단하였다.

일부의 국가들은 미군이 철수하는 것에 대비하여 양자 또는 다자간의 안보관계를 수립하고자 한다 한 예로 일본은 지역 안보에 독자적인 책임을 강화하려고 노력한다. 일본의 자위대는 미군 항공모함의 운용작전에 동참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해상안보를 위하여 유럽과 캐나다 등과 해군함정의 운용을 공동으로 진행한다.

미국 때문에 발생하는 경제 소프트파워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동경당국은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 프로그램의 일부인 동남아 인프라 투자에 참여한다. 호주 수상은 인도의 수상과 이번 달 초에 화상회의를 통하여 쌍무적인 협약을 체결하였으며, 이의 내용에는 양국 간의 군사기지에 접근하는 것을 양허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이는 2018년 베트남과 맺은 파트너 협정의 연장에서 이루어 졌다.

호주의 연구자는 중국의 영향력과 균형을 이루기 위해 일본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과 가능한 역할을 나누는 것이 호주에게 이상적인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미들-파워의 형성을 통해 지역의 안보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미군이 철수를 감행할 경우를 대비한 가장 안전한 시나리오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록 중국의 외교정책이 동맹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지 않고 있지만, 다른 상황 즉 친미국의 진영과 친중국의 진영으로 나누어지는 위험한 시나리오도 무시할 수 없는 가능성으로 보고 대비해야 한다.

전통적인 동맹인 미국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무시하고 안보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대안으로 중국과 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것이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서울에 있는 안보 컨설턴트인 StratWays그룹의 연구자이자 주한미군의 전직 전략가였던 Paul Choi는 미국과 불화가 심화되면 개혁적인 현재의 정부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과 강한 군사적 관계(강요)를 갖는 것과 중국과 경제적으로 압박을 받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가?”

한국사회 시민들은 북경당국이 어느 때보다 강력해 지면서 중국을 수용할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새로운 {   }의 세계질서가 형성되면 새로운 해법을 찾아가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상황을 매우 위험하게 만든다’고 한국의 어느 예비역 장군이 걱정스럽게 말을 맺는다.

 

출처 : FT 기자단의 합동취재 기사. 2020-06-15.

Kathrin Hille in Taipei, Edward White in Wellington, Primrose Riordan in Hong Kong and John Reed in Bangkok

수, 2020/06/2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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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의시위가 미국전역에 넘쳐나는 가운데, 중도좌파적 경향을 지닌 경제학자들은 투시경을 통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오바마시절 백악관의 경제자문단을 이끌었던 하버드 대학의 James Furman은 오는 11월에 트럼프를 끌어내리는 것에 안달을 하고 있는 민주당원들에게 경고를 보내면서 유권자들이 투표장을 향하는 직전에 ‘이 나라 역사에서 가장 경기가 좋은 상황을 맞이할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저명한 Paul Krugman 역시 빠른 회복세를 전망한다. 이러한 입장들에 대해 초당적인 입장을 지닌 의회예산처(CBO)도 동의하고 있으며, 증권시황도 낙관적이다.

이러한 판단의 공식은 매우 단순하다. 의회예산처는 2분기에 GDP가 12% 위축된다고 전망하는데 이는 일년으로 따지면 40%가 줄어드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동시에 3분기에는 5.3%의 반등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하는데 이는 연간기준으로 23.5%의 성장을 의미한다.

반등의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5월의 고용동향이 긍정적이며 2분기의 부진도 예상보다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예산처의 상기 예측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선거시점의 GDP는 1분기에 비하여 7%가 축소된 것이고 실업률 역시 10%를 훨씬 넘어선 수준에 이를 것이다.

3분기에 대한 낙관론자들의 전망이 맞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전개될까? 소득이 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등 즐거운 일들이 연속해서 벌어질까? 아니면 극심한 불황이 지속되면서 새로운, 정확히 표현하자면,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뉴딜이 필요할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상기에 언급한 Furman & Krugman 교수들 그리고 예산처는 심리적 모델로 접근하였다. 이들은 팬데믹이 불러온 상황을 마치 지진 또는 9.11 테러공습과 같은 일시적 충격으로 바라본다. 아니다, 이는 정상적 성장에 대한 이탈이며, 견고했던 구조의 붕괴를 의미한다.

미국이 다시 가동되려면, 정말로 필요한 것은 아마도 충격적 자극을 통한 신뢰의 회복이다. 소비자들의 위축된 잠재수요를 충격적 자극을 통하여 새로운 소비로 전환한다면, 기업은 투자를 재개할 것이고 빠른 시일 안에 모든 것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 이런 류의 각본은,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중도좌파의 경제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이, 1960년 케네디와 존슨 시절 세금을 인하하여 경기를 회복시켰던 사례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미국의 경제가 1960년대 이후 세계화를 통하여 주요한 변화를 가져온 것을 무시한 것으로, 소비와 고용에 있어 서비스분야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개인과 기업의 부채가 증가한 사실을 잊고 있다.

1960년대에는 경제가 매우 균형적이었고 기업과 가계를 위한 생산은 기술적 수준의 향상에 의해 이루어졌고 잘 통제된 금융산업은 비교적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생산이 경제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수입도 부족한 상품중심으로만 이루어 졌다.

그러나 현재의 미국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선진적 투자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우주항공, 정보기술, 전쟁무기 그리고 석유생산 기술과 금융 등을 판매하고 있다 대신에 반세기 전에는 자체생산을 했던 온갖 소비재들, 의류와 전자제품, 차량과 부품 등을 대량 수입하고 있다.

1960년대에는 미국소비자들의 수요가 차량과 TV 그리고 가전제품들에 몰려 있었으나, 현재에는 외식과 호텔, 리조트, 살롱, 커피샵 그리고 오락실 등 중심으로 대량소비가 이루지고 있으며 이들 분야에 수천만 명이 종사하고 있다.

종합하면, 1960년대에는 임금이 오르고 가계자산이 늘어나고 있었던 반면에, 2000년 이후 임금은 전반적으로 정체상태에 머물고 개인과 기업의 부채를 증가시켜 소비를 함께 늘려 왔다. 주택가격은 운좋으면 정체상태를 유지하거나, 아니면 조만 간에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으며, 소비는 수입과 욕구에 의해 되살아날 것이고 이에 따라 기업의 투자도 재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본질과 현상은 전혀 구분되지 않은 채, 부채라는 현실의 짐이 전적으로 무시되고 있다.

더구나 미국자신이 만든 자본상품의 수요는 글로벌한 조건에 의존한다. 민간 항공기의 절반이 묵혀있는 상황에서 신규 항공기 수요는 회복되지 않는다. 현재의 원유가격에서는 새로운 유정을 개발하지 않는다. 국내적으로도 새로운 건물계획이나 토목의 프로젝트가 없을 것이고 신규의 대규모 소비판매장(outlets)도 개설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왕래를 줄이면서, 차량의 보유기간은 늘어나고 차량에너지 수요도 격감할 것이다.

급격하게 닥친 불확실성으로 인해 미국 소비자들은 덜 쓰고 더 많이 저축하려 할 것이다. 정부가 일시적으로 수입을 보전해 주는 조치를 취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재정지원이 조만 간에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이 정말 알지 못하는 것은 실직 후 일자리가 다시 회복되는 시점이다.

더구나 사람들은 필요(needs)와 욕구(wants)를 구별한다. 미국인들은 먹어야 살지만 대부분 반드시 외식을 해야 할 필요는 없고 반드시 여행을 즐겨야 할 필요도 없기에, 레스토랑과 항공산업은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한다. 공공보건(팬데믹)이 진행되는 동안 매출은 제한되어 기본 경비를 충당할 수 없으며, 설령 코로나가 사라진다 해도 수요는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배경이 법적으로 사업을 재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아직 사업의 재개를 망설이는 이유이고. 재개한 사람들도 지속적으로 운영이 가능한지 자신을 못하는 이유이다. 거대한 서비스 부문에 종사해온 수백 수천 만영의 종사자들은 이제 자신들의 직업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반면에 미국의 가계부채는 임대료, 담보비용, 전기-가스 사용료, 교육비와 차량 대출의 이자 등 줄곧 늘기만 하였다. 정부의 구제지원이 유효하기는 하였다. 파산이 줄어 들었고, 부동산 임대업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수입부족이 장기간 지속되면, 사람들은 부채를 갚기 위해 자금을 비축하려 할 것이고, 이에 따라 매출은 줄어들고 연방정부와 지방조직들의 재정수입이 줄어들면서 지출을 삭감하고 일자리와 수입 또한 사라질 것이다.

미국경제의 어려움은 구조적인 것이다. 단순히 트럼프의 무능함이나 연방의회 의장인 Nancy Pelosi의 정치전략의 미숙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지난 50년간 일류상품을 글로벌 시장에 의존하고 소비재를 등한시 하였으며 가계와 기업의 부채에 의존한 성장을 추구해온 시스템의 결함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 동안 다행스럽게 수백 수천만 명에게 일자리와 소득을 제공하면서 번영을 구가하여 왔으나. 이는 부채로 쌓아 올린 모래성이었고 이제 COVID-19에 의해 날라가 버린 것이다.

미국의 재가동(Reopen-America)는 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 환상일 뿐이다. 현직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기대하는 만큼 일시적인 성장의 반등을 추구할 것이고, 붕괴의 깊이가 깊어진 만큼 잠시 동안의 반등은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깊숙이 들어다 보면 잠시의 반등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뿌리깊은 인종차별과 폭력적인 정치강압에 대한 시위가 미국전역에 벌어지는 만큼, 당장 미국의 경제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출처: Project Syndicate. on 2020-06-10.

James K. Galbraith

텍사스 대학의 교수이며 공공정책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저술한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의 아들이기도 하며 ‘The end of Normal(2014)’ 등을 저술하였다

화, 2020/06/3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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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개혁을 방해하는 요인들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민중이므로 개혁을 지체시키고 있는 기본 원인은 외적인 객관적 조건보다는 민중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 개혁을 성과적으로 추진하려면 그 무엇보다 민중이 어떤 이유 때문에 개혁에 소극적인가 혹은 개혁에 반대하는가를 알아야 하고 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민중이 개혁의 주체가 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걸림돌이 무엇인지 밝히고 기본소득이 그것을 없애는데 기여함으로써 개혁을 뒷받침한다는 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정치적 무관심과 기본소득

민중을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고통이다. <풍요중독사회>를 비롯한 저서들을 통해서 줄기차게 강조해왔듯이 한국인들은 심각한 수준의 생존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쉽게 말해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생존 불안은 돈과 관련된 근심걱정을 끊임없이 유발하고 그 결과 돈에 대한 병적인 욕망을 강제한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삶을 위협하는 생존 불안은 그 자체로서 끔찍한 고통이다. 고통스러운 사람은 자신의 고통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배고픔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은 아름다운 풍경에 눈길을 주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생존 불안이라는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은 사회개혁, 더 나은 미래 등에 관심을 갖기 힘들다.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요즈음의 한국 젊은이들은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다.”고 절규하며 취직준비에만 골몰하고 자그마한 돈이라도 손에 쥐게 되면 소위 영끌투자를 하는 반면 정치에는 무관심하다. 이들에게 ‘사회 개혁’이란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다.

심각한 생존 불안은 한국인들에게 정치적 무관심을 강요한다. 생존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 고통스러운 사람은 정치가 어찌 되든, 나라가 어찌 되든, 지구촌이 어찌 되든 간에 일단은 자기부터 살려고 발버둥치기 마련이다. 생존 불안과 민중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비례관계에 있다. 민중은 기본소득 – 최소한 최저생계비를 상회하는 수준의 기본소득 – 을 통해 심각한 생존 불안에서 해방되면 자연히 사회개혁, 더 나은 미래에 대해 눈길을 돌리게 될 것이다. 즉 생존 불안을 크게 줄여주는 기본소득은 민중이 정치적 무관심에서 벗어나 정치의 주체로 나설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고립과 무저항

“억압과 착취가 있는 곳에는 저항이 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은 이 명제를 의심하게 만든다. 1대 99의 사회라는 말이 웅변하듯,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심각한 불평등 사회 속에서 여전히 억압과 착취를 당하고 있지만 민중의 저항은 과거에 비해 약화되었다. 왜 민중은 저항하지 않는 것일까?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거의 개인 단위로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어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는 학교 공동체, 직장 공동체, 마을 공동체 등 각종 공동체가 존재했다.

민중이 공동체, 집단으로 묶여서 살아가는 경우에는 억압과 착취를 받으면 반드시 저항을 한다 – 그 시점이 언제일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 고 말할 수 있다. 어떤 농촌마을 사람들이 공동체로 묶여서 살아간다고 가정해보자. 만일 지주가 마을 사람들 중에서 일부를 폭행하거나 가혹하게 착취한다면 모든 마을 사람들이 그것을 자기 문제로 받아들여 분노할 것이다. 그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마을 사람들은 농민봉기에 떨쳐나설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 마을 사람들이 개인 단위로 고립되어 살아가고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면 어떨까? 지주가 마을 사람들 중에서 일부를 폭행하거나 가혹하게 착취하더라도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그 장면을 보면서 더 겁을 먹고 더 무력해질 수도 있다. 물론 폭행과 착취를 당한 당사자들은 분노할 것이다. 그러나 그 분노는 개인적 분노에 그칠 뿐 마을 사람들 모두의 분노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분노감정이 건강하게 해소되거나 치유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노감정이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되면 마을 사람들은 우울증을 앓게 될 것이고 그것이 외부로 향하게 되면 타인을 학대하거나 범죄를 저지르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억압과 착취가 있는 곳에는 저항이 있다’는 명제에는 전제조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전제조건은 민중이 흩어져서가 아니라 공동체로 묶여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온갖 학대, 갑질, 성희롱 등에 시달리는 데도 저항을 잘 하지 못하고 개혁에 미온적인 것은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가 전멸했다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인 단위로 고립되어 살아가는 민중은 억압과 착취를 당하면 정신병에 걸리거나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게 될 뿐 저항을 하지 못하며 개혁의 주체가 될 수도 없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개혁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민중이 하나로 단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체와 기본소득

기본소득은 뿔뿔이 흩어져 있는 한국인들을 단합시키고 공동체를 복원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기본소득은 한국인들을 공동의 이해관계로 묶음으로써 민중적 단결과 공동체 복원을 촉진할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고 단결하려면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공동의 이해관계를 발견하기가 어렵고 많은 경우에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민주노총이 개혁적인 부동산정책을 주장하기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 중에 주택보유자도 있고 무주택자도 있어서다. 집값이 오르기를 바라는 주택보유자와 집값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무주택자를 하나로 묶기는 힘들다. 물론 한국인들은 근본적인 사회대개혁이라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인들의 의식 수준은 그것을 당면한 자기 문제로 받아들일 정도가 아니므로 근본적인 사회대개혁은 현실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역할을 하기 힘들다. 반면에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제공할 수 있는 기본소득은 절대다수의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내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이웃과 사회 나아가 기본소득을 추진하거나 실시하는 정부에 대한 한국인들의 우호적 태도와 친사회적 심리를 강화할 것이다.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이웃과 사회가 자기한테 피해를 주면 주지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웃을 경쟁대상으로 간주하여 경계하고 적대적으로 대하며 사회에 등을 돌린 채 살아간다. 한국인들은 정부에게 뜯기기만 할뿐 받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금저항 심리가 강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의심부터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장차 어떤 정부가 집권하더라도 한국은 미래로 나아가기 힘들다. 지금까지 이웃, 사회, 국가는 생존 불안으로 신음하는 절대다수의 국민들을 외면해왔다. 즉 한국인들은 이웃, 사회, 국가가 자신을 사랑해주고 보호해주는 경험, 위기에 빠진 자신을 도와주는 경험을 거의 해보지 못했다. 이런 조건에서 기본소득은 이웃, 사회, 국가가 자신을 위해 존재하며 활동한다는 믿음을 갖게 해줌으로써 이웃, 사회, 국가에 대한 신뢰를 가능하게 해주고 친사회적인 심리를 강화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민중적 단결과 공동체 복원으로 이어질 것이다.

 

의식개혁과 기본소득

반복적으로 강조하건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개혁의 성패는 민중적 단결과 공동체의 복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립된 개인의 처지에서 벗어나 공동체로 묶여야만 개인들은 비로소 개인중심적 사고가 아닌 집단중심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되고, ‘우리는 모두가 하나의 운명공동체’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다. 한국인들이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면 나의 고통이 곧 이웃의 고통이자 세상의 고통임을 깨닫게 되고 나의 행복만이 아니라 모두의 행복을 바라게 될 것이다.

기본소득이 촉진하는 민중적 공동체의 복원은 우선 의식개혁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까지 절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개인으로 고립되어 살아왔기에 생존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자도생의 생존전략에 기초해 각개약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각자도생이 아닌 다른 방법, 집단적 힘으로 사회를 개혁함으로써 생존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즉 기본소득은 한국인들에게 ‘이웃과 미친 듯이 경쟁하고 싸워야만 이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서로 단결하고 협력하는 방식으로도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겠구나’라는 통찰과 자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각개약진이 아닌 모두가 힘을 합쳐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 있으며 그것만이 살길임을 깨닫게 해주는 의식혁명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다. 기본소득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 기본소득의 실시는 한국인들의 의식개혁을 촉진함으로써 개혁의 분위기를 크게 강화할 것이다.

기본소득이 촉진하는 민중적 공동체의 복원은 또한 개혁에 대한 민중의 자신감을 강화할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한국 사회가 부정의하고 불평등한 사회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려고 하기보다는 각자도생에 매몰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믿어서다. 단결된 집단의 힘은 무한대이지만 고립된 개인은 무력하다. 개인의 힘이 제아무리 크다 한들 개인의 힘만으로는 사회를 개혁할 수 없다. 개인이 최대의 능력을 발휘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경쟁에서 승리해 떼돈을 벌거나 출세하는 것뿐이다. 고립되어 살아가는 개인은 무력감으로 인해 사회 개혁에 대해서는 꿈조차 꾸기 힘들다. 따라서 고립된 개인은 개혁의 청사진이 아무리 멋져도 그것을 냉소적으로 대한다. 이런 조건에서 기본소득은 개개인의 생존 불안을 없애고 공동체 복원을 촉진하여 한국인들을 무력감의 깊은 늪에서 구출해냄으로써 개혁을 힘차게 떠밀어나갈 수 있다. 고립된 개인들이 공동체로 묶이면 묶일수록 민중의 자신감은 백배해질 것이고 개혁에는 가속도가 붙기 마련이다.

 

국민통합과 기본소득

오늘날 한국인들 사이의 관계는 유사 이래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악화되어 있다. 이것은 사회적 관계 영역에서 한국이 OECD 회원국 중에서 꼴찌를 차지한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최악이라는 것은 특정한 사회집단에게 이익이 되는 개혁과제에 나머지 사회집단이 박수를 쳐주기보다는 배 아파하거나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타깝지만 한국인들은 서로에게 그다지 너그럽지 않다.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처럼 시기와 질투가 심하다. 이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는 특정한 집단에게만 이익이 되는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찬성률이 낮은 편이다. 예를 들면 노동자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은 사실 자영업자들에게도 이익 – 노동자들의 수입이 올라가면 소비를 많이 할 테니까 – 임에도 그들은 그 제도를 반대한다. 청년들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은 사실 그들의 아버지뻘인 중장년층에게도 이익임에도 그들은 그 제도를 반대한다. 이런 식으로 악화된 인간관계는 택시 기사들에게 도움이 되는 개혁과제를 버스 기사들은 싫어하고 노인세대에게 도움이 되는 개혁과제를 청년세대는 반대하게 만들 수 있다.

민중이 다종다양한 집단으로 분열되어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대립하고 갈등하는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면 성공적인 개혁의 추진은 불가능하다. 사회가 분열되면 국가적 개혁과제를 제기하기도 힘들고 추진하기는 더더욱 힘들어진다. 특히 어떤 개혁과제가 특정한 사회집단의 생존 불안을 자극할 경우 그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그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과감한 부동산 개혁, 토지개혁이 일부 집단의 생존 불안을 건드린다면 그들은 결사반대할 것이다. 최소한 생존 불안에서는 해방되어야 사람들은 마음의 안정과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고 설사 개인적으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이 전체 사회에 이익이 된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찬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고질적인 사회 분열과 갈등을 완화하고 국민통합에 기여하며 개혁 추진에 유리한 사회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사회 개혁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기본소득은 개혁의 마중물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생존 불안을 해결하는데 그치지 않고 평등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평등 수준이 높아져야 ‘너와 나는 다르다’가 아니라 ‘우리는 하나’라는 동질감이나 일체감이 형성될 수 있다. 또한 위계 간 학대 현상이 근절됨으로써 연대의식이나 공동체 의식이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개혁을 위해서도, 즉 격차를 줄이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도 기본소득부터 실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앞에서 계속 강조했듯이 기본소득으로 생존 불안이 약화되어야 민중의 의식이 깨어나고 정치참여가 가속화되며 민중적 단합이 실현됨으로써 한국 사회가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 쪽으로 거대한 방향전환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기본소득과 인권>이라는 글에서 강조했듯이, 기본소득은 민중의 저항 의지와 권리를 든든히 뒷받침해주고 강화할 것이다. 위계 관계나 조직 내에서 사람들이 저항을 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해고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즉 생존 불안이다. 직장상사가 갑질을 하거나 성희롱을 해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참는 것은 해고를 당해 생존이 위태로워질 것을 두려워해서다. 기본소득은 사람들을 생존 불안에서 해방시킴으로써 불의에 저항할 용기를 내도록 고무하고 격려해줄 것이다. 생존 불안에서 해방된 민중이 조직이나 직장에서 불의에 저항하기 시작하면 한국의 조직 문화, 직장 문화, 사회 문화는 민주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즉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문화가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인 문화에서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문화로 바뀌어나가고 각종 조직이나 직장은 조직 구성원들을 더 우대하고 존중해주는 쪽으로 변화해나갈 것이고 그 결과 민주화, 개혁이 촉진될 것이다.

기본소득이 개혁의 마중물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려면 최소한 최저생계비 이상의 기본소득이 지급되어야 한다. 현재 여당의 대권 주자인 이재명 도지사는 기본소득의 최종목표를 1인당 월 50만 원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상당한 정도로 개혁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본소득이 되기 위해서는 또 기본소득의 거대한 의의가 충분히 발휘되기 위해서는 월 지급액의 목표치를 더 높이 잡아야 할 것이다. 만일 이재명 지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민중은 그의 기본소득 정책을 지지하면서 그것의 목표치를 더 상향조정하도록 요구해야 할 것이다.

 

김태형

토, 2021/09/18-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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