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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소유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서 존재의 손을 들고 싶습니다. – 문현웅 변호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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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소유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서 존재의 손을 들고 싶습니다. – 문현웅 변호사 인터뷰

admin | 수, 2020/02/12- 01:02

 

 

대전충청지부장 문현웅 변호사 인터뷰

소유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서 존재의 손을 들고 싶습니다.

 

 

인터뷰어: 심재섭 변호사 (출판소통팀 팀장)

 

대전 법원 맞은 편 건물에 자리 잡은 사무실로 찾아뵈었다. 서울의 여느 변호사 사무실과는 다른 널찍한 방에서, 청바지 차림의 변호사님께서 반가이 맞아주셨다.

 

안녕하세요. 대전충청지부는 처음 인사드립니다. 지부장님이셔서 아무래도 회원 숫자가 신경이 쓰이실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우리 지부는 사실 신규 회원이 많이 들어오는 지부는 아니에요. 그냥 꾸준히 몇 명씩은 가입하는 지부이지요. 민변으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던 분들이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을 겪으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변호사로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시고 가입하신 분들이 몇 분 계세요. 대학 때 잠깐 운동 경력이 있으신 분도 있고, 또 변호사로서 어떤 활동을 목표로 하셨던 분들도 아니셨는데요. 그렇게 나이와 경력이 좀 되시는 회원들이 가입을 했고요.

젊은 신입 회원 분들도 꾸준히 가입하고 계세요. 많이는 아니고 꾸준히요. 작년에 후배님들 몇 명과 일주일에 한 번씩 시간 되는 대로 점심을 하자고 했는데, 평균 적으로 5, 6분 정도, 많으면 7, 8분 정도가 모였어요. 회무를 이야기하는 모임이 아니라, 밥 같이 먹으면서 수다 떨자 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그렇게 어울리고 친해지면서, 나중에 일도 같이 잘 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매주 모이는 숫자가 그 정도 모임라면, 상당히 긍정적인 것이 아닌지요. 대전 충청 지부가 관할하는 지역이 원체 넓기도 하지 않습니까.

광주지부, 대구지부 같이 숫자도 많고 결속력이 강해 보이는 지부들을 생각하면, 우리 지부도 뭔가를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여러 지역에 있는 회원님께서 우리 지부에서 이렇게 열심히 활동해 주시는 것을 들여다보면 이 정도 유지하는 것도 훌륭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 이전에 우리 지부 사무처장을 하신 선배님이 83학번이세요. 선배님들 연배가 젊다고 하긴 좀 어려운 거죠. 우리 후배들이 모임에서 적극적으로 요청을 드리면 흔쾌히 참석하고 도와주시지만, 우리가 먼저 선배님께 기대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늘 보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과는 별도로, 어서 우리 후배 그룹들이 일머리를 키우고 활동력을 늘려서 이 모임을 끌고 가야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역할은 그 징검다리가 충실히 되는 거지요.

 

지부에서 후배 회원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특별히 있을까요.

지금 우리 지부에서 떠오르는 분이 두어 분 정도 계세요. 시민사회단체와 긴밀하게 소통하고 연대하는 분이요. 저희가 무언가를 알려 주었다기 보다는, 모임을 통해서 얻게 된 약간의 기회를 잘 활용한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라고 이름을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로스쿨에 있을 때 우리 사무실에서 연수를 하신 분이세요. 로스쿨에 재학 중이셨을 때부터 우리 민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시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제가 제안을 했어요. 내 일상을 같이 해 보면서, 민변 변호사가 어떤 것인지 날 것 그대로 느껴보자고요. 법정에도 같이 들어가고, 퇴근 후 시민사회단체 회의에 갈 때도, 활동가분들과 술 한잔 하는 자리에도 함께 했지요. 그렇게 모든 일과를 함께 했습니다. 이후 우리 모임에 가입을 했고, 그간 소식을 구체적으로 듣지 못하다가, 최근에 소식을 들었더니, 우리 모임과 지역 시민사회 단체의 주축으로서 열심히 역할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때 활동가들과 밥 한 번씩 같이 먹고, 회의에도 참석했던 그 경험을 꾸준히 스스로 확장시켜 나가신 거에요. 물론 워낙 훌륭하신 분이어서 그 기회가 없었더라도 스스로 잘 찾아서 나가셨을 것 같긴 합니다.

 

일과를 공유한다는 것이 인상 깊습니다. 저희 사무실에 누가 연수를 오셔서, 아니 친구 하나라도 제 하루를 다 본다면 민망하고 부끄러울 것 같아요.

에이, 누구라도, 저 역시 제 일과를 다 공유한다는 것은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죠. 그런데 우리 모임에 관심이 있는 후배에게, 그런 마음이라면 꾸밈없는 그대로 지역 민변 변호사를 경험하게 해드리고 싶었던 거예요. 지역 활동가들과 술을 먹든 밥을 먹든 돈은 우리가 다 내는 거고, 어느 달은 수임이 잘 될 수도 있고, 답답할 정도로 안 될 때도 있고요. 소송구조나 민변 공익 사건을 하기도 하는데 좋은 사건도 있고, 수임하기 싫은 사건도 있고 그렇지요. 민변 변호사라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으니, 객관적으로 판단해 보시라, 민변 지부의 변호사로서 살 수 있는지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라는 거였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지부에서의 활동은 본부와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아요. 본부라면 열심히 하면 기사화되기도 하고, 명성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민변의 활동이 그렇게 자신의 커리어가 될 수가 있을 텐데, 여기에 그런 것은 없어요. 그렇지만 활동하다 보면 나름대로 민변의 역할이 있지요.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을 로스쿨 재학 중일 때 미리 알게 되는 것은 장래 변호사가 되는 데에 있어서, 그리고 민변 활동을 결심하는 데에 있어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말씀 중에 소송구조를 하신다는 점이 특히 귀에 들어옵니다. 변호사님 이런 저런 글을 보면 국선변호에 대한 말씀도 있으신 것으로 압니다. 변호사님께서 지금 15년 이상 변호사 생활을 하고 계시는데, 여전히 소송구조나 국선을 하고 계시는지요.

예,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왜 하고 있는지 물어보면, 할 말이 많지만 결론적으로 변호사라면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사실 소송구조가 힘든 것은 사실이에요. 오죽하면 법원에서 변호사를 붙이라고 명령을 할까요. 법원이 보기에 스스로 정리하는 것이 쉽고 별 어려움이 없다고 판단하면 소송구조를 내주지 않는 것 같아요. 당사자가 소송 진행하는 것도 거칠고, 법원이 소송지휘하기가 힘들 때 주로 소송구조를 붙여주지요. 소송 자체가 보람이 있거나 하는 경우는 솔직히 거의 없어요. 국선도 마찬가지죠. 대부분의 경우에 소위 뻔한 상황들에서 부인하는 경우, 아니면 구속을 마음먹은 경우에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선을 붙여주는 것 아니겠어요. 이런 부분이 소송구조, 국선 변호에 대해 가지는 한 가지 생각인 것은 맞아요.

그래도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기고 말고를 떠나서 변호사가 꼭 옆에 있어줘야 하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합니다. 별론인데, 보수도 나쁘지 않아요. 사선에 비해서 보수가 좀 넉넉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보수를 잘 확인하지 않고 일을 하잖아요. 그래서 체크를 안 하고 있다가 몇 달이 지나서 한꺼번에 보수가 입금되면, 또 희한한게 그런 보수는 형편이 어려울 때 들어고고 하니까,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됩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변호사에 대한 존중에 관한 거예요, 사회 각계 여러 부문에서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예전에 비해서 권위라는 것이 해체되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저 초임 때만 해도 변호사 그 자체가 가지는 권위가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소송구조 의뢰인이라든가 국선 피고인이 변호사를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때 이제 내가 그만 둬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변호사로서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버티는 겁니다. 말씀드리다보니 생각이 나네요. 2년 차에 국선을 해드렸던 분이 계신데, 공소사실 2개 중 1개를 무죄를 받았습니다. 2심에선 사선변호사를 선임하신 걸 보면 돈이 없으신 분이 아니었는데도 저를 참 힘들게 하신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뒤로 1년에 2번, 추석하고 설날 명절마다 꾸준히, 지금까지 15년이 넘게 과일을 선물로 가지고 오시면서 인사를 하세요. 10년 정도 되었을 때 제가 이제 그만 하시라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여전히 계속 인사를 와주십니다. 제가 그분에게 친절하게 했다거나, 저 스스로 보람이 있었다고 평가할 것까진 아니었어요. 너무 힘들게 하셨거든요. 그래도 정말 열심히는 했습니다. 변호사가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해준다는 사실 자체로, 그게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힘이 되는 경험이라고 느꼈습니다. 100명 중 99명이 나를 힘들게 하고 국선, 소송구조 변호사를 무시한다고 해도 그 한 분 때문에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후배 변호사님들에게도 소송구조와 국선변호를 권하시나요.

저는 후배들에게 소송구조와 국선변호를 하라고 권하죠. 특히 형사사건은 무작정 한다고 변호사 실력이 느는 것이 아니라, 무죄를 다투는 사건을 다뤄봐야 실력이 느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를 도와준다고 하는 생각 이전에,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열심히 하시라고 하지요. 실력이 확실히 늡니다. 저도 초기에는 기록을 보는데 어느 정도 절대적인 시간을 들여야 했고,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 맘이 답답하고 그랬습니다. 그게 익숙해지는 기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훈련이 안 되면 정말 힘을 발휘해서 성과를 내야 할 사건에서 위축되고 힘들어지고 하는 거니까요.

 

변호사님 SNS 보면, 개업변호사로서 생계를 열심히 꾸려나간다는 의미의 겸손한 소개글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대전에서 개업변호사로서 활동하실 생각을 하셨는지요.

연수원 생활 대부분을 천주교 인권위원회 활동으로 보냈습니다. 2년을 열심히 생활하다가 연수원을 수료할 무렵이 되자, 뭘 해야 할지 구체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지요. 당시 고민이 있었죠. 당시 천주교 인권위원회에 계셨던 다른 활동가 분들하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런 시민단체 내지 활동가 단체에서도 상근으로 변호사를 채용하는 것에 대한 의견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상근변호사를 채용할 여력이 있었던 것은 공감이었습니다. 제가 연수원에서 변호사 전문 연수를 공감에서 했어요. 정말 좋은 곳이라 지원을 해볼까 했는데, 우리 동기였던 황필규 변호사님, 필규 형이 저한테 이야기를 했죠. 야, 거기 지원하면 안 돼, 나도 지원할거야 하고 말이지요. 어차피 1명 뽑는데 둘이 같이 경쟁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서 또 변호사 역할을 하면서 사회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법무법인 덕수를 마음에 두었습니다. 변호사 시보를 덕수에서 하기도 했고요. 시보생활을 할 때 제 방이 거기 있었습니다. 물론 창문은 없었지요. 그때 점심식사를 최병모 변호사님을 비롯해서 여러 선배님들과 같이 하곤 했죠. 이런 이야기가 있었어요. 식사할 때에 선배 변호사님들 질문에 답을 잘 하면 입사가 가능하다고요. 그런데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저의 수입도 그렇고 월급 주는 회사도 그렇고 돈이었습니다. 어차피 급여를 받으며 사회활동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 맘 편하게 내가 벌어서 내 시간 쓰고 후원도 하면서 참여하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개업을 결심하게 되었고, 개업을 할 거라면 제가 초중고를 보낸, 그리고 처갓집이 있는 대전에서 개업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개업 직후부터 민변에 가입하신 걸로 압니다. 당시 민변을 통해서 수임한 사건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요.

사실 개업하고 1, 2년 동안에는 민변을 통해서 수임하게 된 사건도 별로 없었어요. 참여정부 때라서 그런지, 국보법 사건도 별로 없었습니다. 민변을 통해서 처음 접한 사건은 가입하고 3년 정도 되었을 때로 기억합니다. 충남도청에 불이 난 사건, 그러니까 FTA반대 시위 중에 방화로 번진 사건의 형사 대응을 민변 지부 회원들이 나눠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 민변 활동이라고 하면… 선배님들, 우리 간사님들하고 술을 많이 먹고,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변호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민변 변호사로서 어떤 지향을 가져야 하나 하는 주제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작게는 수임료를 제대로 신고하고 있느냐 하는 주제도 있었어요. 이거 누락을 하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선배님께서 민변 변호사가 당연히 제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라고 정리를 해 주셔서 그렇게 마음을 다집기도 했고요. 변호사로서 여려 기본적인 것부터 생활을 잡아 나갔지요.

 

개업 후에 수임은 잘되셨나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2005년에 개업을 했는데 3년차까지는 힘들었던 것 같아요. 힘들 때, 사건도 없고 일도 없는데 방에 있지 말로 밖에 나가라, 하는 말을 누가 했어요. 어느 날은 괴로워서 구두 신고 차 몰고 속리산을 갔어요. 차로 한시간 반 정도 걸리거든요. 혼자서 주변 산책하면서 지금은 담배를 끊었지만, 저쪽에 아름드리나무가 큰 게 있었는데, 그 아래서 담배도 한 대 피우고, 그렇게 3년 고생했어요.

수임 자체가 안 되는 고민도 있었지만, 취업을 할 걸 뭐 이런 저런 선택에 대한 후회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죠, 어쩌겠어요. 버텨야지…

 

그때도 어려웠다면, 지금 신규 개업하는 후배들이 어렵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에 우리 지부 후배님들과 유사한 주제의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사실 우리 누구나 금전적인 부분에 대한 걱정을 덜 하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요. 그런데 그렇게 잘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매번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면 부러운 존재들이 있어요. 첫째가 전관 변호사, 둘째가 영업력이 참 좋아서 개별적인 수임이 별도로 없이도 기관, 회사들로부터 지속적인 사건 제공이 되는 변호사들이지요. 가만 생각을 해보니, 제가 전관 변호사는 될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영업력을 키우고 싶은 맘도 있었지만, 그러니까 모임이나 골프나 이런 방법들로 영업을 하겠다는 삶을 선택하지는 않았고요. 이런 사실을 인정하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되지도 못할 거면서 왜 부러워하고 비교를 하느냐, 하는 결론에 이르더라고요. 우리가 부러워하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렇게 될 수 있으면 부러워하자, 그런데 이미 그 길을 걷지 않기로 어떤 의미에서 결단을 했으면 더 이상 그런 쪽에 마음을 쓸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결론이요..

저 중학교 졸업할 때 즈음 1년 선배가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을 권해줬어요. 당시는 안 읽고 나중에 읽었겠지요. 우리는 소유냐 존재냐 하는 이 갈림길에서 늘 고민하는 것 같아요. 소유쪽의 유혹이 굉장히 강렬하죠. 돈도 벌고 싶고 명예도 얻고 싶고, 거기에 더해서 권력도 좀 가지면 더 좋고… 이렇게 소유쪽에 매력을 많이 느끼는데, 그래도 학창시절에는 당연히 소유보다 존재에 손을 들었어요.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지내오다가 변호사 개업하고 3년 동안 힘들다고 잠시 그 생각을 잊게 된 거에요. 애도 크고 돈은 벌어야 되고 그러면서요.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내가 변호사로서, 특히 민변 변호사로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되새겨보면, 다시 그때 그 질문을 마주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소유라는 쪽에 방점을 찍고 욕심을 부린다고 해서, 반드시 그게 오는 건 아니에요. 우리는 욕심을 부리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절대 그렇지는 않지요. 전 신이 계시다고 하면, 사람들마다 똑같은 양의 복을 주었다고 생각을 해요. 어떤 사람에게는 돈 복을 더 많이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녀 복을 주고, 처복을 주고, 동료 복을 주고, 이렇게요. 이 사람에게는 인간관계의 복을 주었으니 돈 복은 좀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가진 것을 좀 더 소중히 하면 복이 새끼를 치고 불어나는데,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자꾸 욕심내면 내가 가진 복도 달아난다고 느껴요. 결국 굳이 내게 주어지지 않은 것을 좇을 필요는 없다.

그런데 늘 유혹적이니까, 소유라는 것이 너무 달콤한 유혹이니까 쉽지가 않죠.

 

대전 충청지부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와의 관계는 어떤가요. 시민단체와 연을 이어나간다는 것이 변호사 업무를 하는 데에 지장이 될 정도로 시간 할애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입할 때부터 이미 선배님들을 통해서 우리 지부와 관계를 맺은 단체들이 있고, 또 이슈가 생길 때마다 알음알음으로 연을 맺고 사업을 같이 하면서 저변을 확장해 나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힘들고 바쁘고 한 것 확실해요.

제가 대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까지 했다가 좀 쉬었습니다. 올해 공동의장 선거 진행 중이고 제가 출마는 했는데,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 경험상, 시민단체 활동을 열심히 할 때, 그러니까 쉬기 전까지는 정말 바빴어요. 쉴 필요가 있더라고요. 일부러 쉬었다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네요.

시민단체 이야기를 해 보자면, 대전 참여연대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움직이는데, 전체적으로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듯한 느낌도 있었어요. 일을 하다보면 중앙에서의 이슈를 가지고 지역에서도 동조를 해야 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죠. 그런데 이런 것들을 개별 지역에서 다시 논의하고 우리는 어떻게 하겠다, 이렇게 소통이 되어야 하는데, 중앙이 일방적으로 하달되고 지역은 단지 실행에 그치는, 그런 역할을 하게 될 때 참 속상했어요. 예를 들면 소녀상 건립에 관한 이슈가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설치를 하더라도 각 단위 별로 다양한 의견을 내어 논의를 하고 진행했으면 하는데, 이건 하기로 한 거야, 너희 단위에서 참여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라는 식으로 일률적으로 일이 처리되는 면이 있어서 회의를 느낀 적도 있습니다. 민주주의, 지방 분권을 이야기 하는데, 조금 늦더라도 다양하게 의견을 교환해 볼 필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겨레 21에 어느 전문가가 기고를 하기도 했어요. 전국적으로 동상을 세우는 것이 정말 적절한 방식이냐 하는 이야기였지요. 시민단체일수록 다른 생각이 필요한데, 중앙의 이슈를 그대로 가져오는 방식으로는…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 외에 여러 사정이 있어서 쉬었어요. 5년 정도 쉰 것 같네요.

좀 쉬면서 밖에서 보니까 보이더라고요. 나의 문제는 뭔지, 우리 단체의 문제는 뭔지, 이걸 어떻게 풀어갈지, 정말 풀어갈 수 있는 문제인지…

 

6년의 사무처장직을 수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땠나요.

사무처장을 맡으면서 여러 생각이 있었습니다. 원래 대전충청 원래 사무처장 임기는 3년이었는데, 3년은 너무 길다는 의견이 있어서 2년으로 단축을 하자, 그리고 필요하면 2년을 연임하도록 하자라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사실상 2년을 하고 나서는 당연히 2년을 더 하는 것으로 운용되었어요. 예전 같으면 3년이니 1년만 더 한다는 분위기였지요. 제가 2년으로 감축되고 사무처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연임까지 4년을 마치고 나니, 20주년 기념행사가 예정되어 있더라고요. 마땅히 그 준비를 맡아 줄 분을 구하지 못해서 2년을 더 하게 되었다. 여러 고민이 있었습니다. 나이든 연배든 제 상황이라면 후배들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가교 역할을 해 줘야 되잖아요. 바로 후배들한테 직무를 이관하기도 애매한 상황에서 더 하게 되었어요.

저는 6년 생활이 나름대로 즐거웠어요. 사무차장으로서 많은 집회에서 발언을 요청하는 일들이 많았고, 다 수용할 수는 없었겠지만 법률가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모임에는 많이 참석을 했습니다.


 

전에도 여쭙고 싶었는데 책장에 의학서적이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개업하고 초창기에 의료 소송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의사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저 책들이 기본서적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구입을 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열심히 했고 승소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의료소송이 들어오지는 않더라고요. (웃음) 그래도 재밌었습니다. 공부를 해야 서면을 쓰니까, 재밌게 했습니다. 신장의학, 내과학, 당뇨병 관련 서적들을 다 사서 봤습니다. 주변에서 다들 이야기했어요,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그래도 어떻게든 공부를 하면 달아나진 않으니까요.

 

말씀을 듣다 보니, 변호사님께서는 정말 직접 송무를 계속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아, 좀 지치긴 하는데…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요즘엔 판사님들이 조심하는 면이 있지만, 법관평가도 없는 옛날에는 정말 속상하게 하는 판사들이 많았어요.

떠오르는 형사사건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진실은 모르겠어요. 그런데 형사사건은 누구도 진실을 모르는 거잖아요. 증인이 정말 많아서 하나하나 신문을 했습니다. 검찰 증인인데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증언이 나올 때마다 재판장이 개입해서 완전히 뒤집어 놓는 겁니다. 주심판사가 다시 물어봐서 또 우리에게 유리한 답이 나오면 다시 재판장이 개입해서 뒤집고. 이게 반복되는 거예요. 너무 속이 상해서 최후 변론을 좀 강하게 준비했습니다. 출근하기 전에 아내에게 보여줬어요. 나 이렇게 읽을 거라고. 아내가 변호가 그만 하려고 하느냐고 하더라고요. (웃음) 할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최후진술 준비해 간 원고를 법정에서 30분 동안 읽었어요. 방청석에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고, 선고일도 아니었는데 재판장이 바로 우리 피고인을 법정구속 시키더라고요.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정말 그 정도로 이상한 재판 진행도 많았죠. 어떤 사건은 증거가 없는 사건에 대해 우리가 끝까지 무죄를 다투었는데, 법관이 검찰에 입증 촉구를 1달에 1번씩 1년 동안 하더니, 하고 결국 유죄 내리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힘든 일이 많았는데도요, 열심히 해서 무죄가 나온다거나 하면 이게 또 마약같아요. 그 기분에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책을 보고, 글을 쓰시고 하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느껴집니다.

책을 보는 것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아요. 사실 소설책을 좋아합니다. 머리 식히는 데에는 소설책만한 것이 없으니까요. 작년에는 술 끊고 신앙 서적을 주로 보았습니다.

기고도, 여러 인연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쓰게 되었습니다. 강연하면서, 혹은 소송을 진행하면서 어떤 주제에 관여하고 있으면, 신기하게 관련 기고 요청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런데 좋다고 평을 받는 글들은 연구하고 공부하고 쓴 글이 아니라, 그냥 제 삶을 돌이켜 보면서 제 시각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것들이었습니다. 최근에 술 끊었다는 내용으로 쓴 글을 우리 논설 실장님이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문현웅의 공정사회라고 타이틀이 붙어있으니까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어야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문현웅 변호사님이 서울신문에 기고하신 글 몇 가지. 더 많은 글은 서울신문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현웅의 공정사회] 바리사이의 기도

[문현웅의 공정사회] 사라진 젠더

[문현웅의 공정사회] 법정 패션


 

책을 보는 절대적인 시간은 어떻게 확보를 하시는지요.

저희 집에 텔레비전이 없습니다. 결혼하고 샀다가 몇 년 안 되어서 없앴어요. 그러니까 집에 가면 할 게 없습니다. 당연히 책을 읽게 되죠. 쉬면서.

사실 저 때문에 텔레비전을 없앴어요. 퇴근하면 지치고 힘드니까 누워서 리모콘 들고 텔리비전만 보는 거예요. 아내, 아이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거의 없어졌고, 어느 날 문득 이런 상황이 정말 싫더라고요. 텔레비전을 없애니까 일단 대화를 많이 하게 되고, 아이들과 몸으로도 놀아주게 되고, 산책도 하고. 애들 어릴 때는 뱀주사위 놀이판이 엄청 큰 게 있어서 그걸 장만하고 같이 게임을 했어요. 최근에는 가족들과 윷놀이를 많이 해요. 심변도 고민 중이라면, 과감하게 없애는 쪽으로 결단하는 걸 추천합니다.

변호사님의 청바지 패션에 대해서도 궁금합니.

아유, 청바지 원래 안 입었었죠. 또 저 대학교 때는 청바지 입는 것이 미 제국주의와 연결되어서 일부러 기피하던 세대였지요. 그런데 옷이 많지 않은 사람은 청바지가 코디하기 참 좋아요. 사실 머리 기르고 청바지 입기 시작한 때는 박근혜 당선 즈음이에요. 전 2012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정말, 심각하게 괴롭고 우울했어요. 2012년도 대선 기간을 나름 열심히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민주당 정치인의 행태를 직간접적으로 느끼건대, 이 선거에 완전히 몰입한다는 것이 아니었거든요. 당과 후보가 따로 놀았다는 표현이 맞았어요. 그렇게 지고 나니까 분노와 화가 너무 많아졌습니다. 술만 먹으면 다른 사람들 욕하고 그랬어요. 그때 술을 끊었고, 스스로 새로운 기분을 얻고 싶었습니다. 마침 한석규 배우 머리 기른 것이 보기 좋아서 나도 길러봐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당시 일도 하기 싫어서 사건 수임도 좀 줄였더니 정장 입을 일이 많이 없어서 청바지 차림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것이 있어요. 그때 제가 청바지를 입고 다닐 때 선배 변호사님들 몇 분이 변호사가 복장이 왜이래 하면서 핀잔을 주셨는데, 지금은 다들 저처럼 편하게 입고 다니세요.

 

저도 개업하면서 복장, 권위 등 외형적인 모습에 대한 고민이 좀 있었습니다.

그런 고민을 할 필요도 있다고 봐요. 어떻게 보면 단계적으로 거치는 과정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는, 어제 참여자치시민연대 회의에서 한 말이기도 합니다만, 우리가 당위적인 강박에서 좀 벗어나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난 변호사니까 이래야 돼, 민변이니까 이래야 돼 하는 당위를 좀 탈피하고 자연스럽고 자발적으로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옷도 편하게 입고요.

민변 선배님들 중에서는 나이는 지긋하신데도, 불필요한 당위나 강박이 전혀 없으신 분들도 많이 있는데, 정말 존경스럽죠.

‘뒤로 넘긴 장발’은 문현웅 변호사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민변이 변호사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예전에는 후배든 누구에게든 민변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전해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다른 누구에게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민변이 가지는 의미를 자문하곤 합니다. 오늘 인터뷰를 오신다고 하는 생각에, 아침에 샤워하면서 민변을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나에게 민변이 뭔가 생각하는데 영화라는 답이 떠오르더라고요.

우리 어릴 적 굉장히 감동하고 나도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하게 되는 영화들이 있잖아요. 저에게 민변은 그런 영화입니다. 민변의 도도한 역사와 활동을 보면서, 민변 회원들 개개인의 삶을 통해서 감동을 받고, 내 모습을 점검하고, 그런 계기가 됩니다.

아까 나온 이야기지만, 소유냐 존재냐 하는 것은 모든 인생을 걸쳐 떨칠 수 없는 고민인 것 같아요. 저 스스로 소유 쪽에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잘못되었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 고민을 가지면서 한편의 영화 같은 민변을 보면, 내가 존재 쪽에 손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적어도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단초는 됩니다. 10번 정도 소유와 존재가 싸운다고 하면 최소한 한 번, 두 번 정도는 존재 쪽에 손을 들어줄 수 있는 그런 내가 되고 싶다고 희망하는데, 그런 결정을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민변입니다.

오늘 아침 샤워하다 생각이 났어요.

 

열심히 치열하게 살고 계시면서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과장되지 않은 편안한 매력의 문변호사님을 뵙고 오는 기차에서 생각이 많아졌다. 가까이에 본받을 수 있는 선배이자 동료로서 문변호사님의 인터뷰가 잘 전달되기만을 바란다.

The post [회원 인터뷰] 소유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서 존재의 손을 들고 싶습니다. – 문현웅 변호사 인터뷰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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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1년여간 민변 부산지부에는 젊은 피가 넉넉히 수혈되었습니다. 제가 가입했던 2015년 초만 하더라도 청년 변호사의 신입회원 가입은 아주 간간이 있던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리하여 2017년 11월 말경 부산지부 권혁근 회장님 이하 선배 변호사님들께서는 신입 청변 회원들의 순조로운 민변 적응을 위한 “신입회원과의 만남”의 자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부산지부의 경우 매월 둘째 주 화요일 점심에 월례회가 열리지만 신입회원이 민변에 더욱 잘 적응하도록 하려는 선배님들의 따뜻한 배려였습니다. 신입회원과의 만남은 민변가입 2년 미만 변호사를 대상으로 하였으므로 당시 가입기간이 1년 10개월 정도였던 저도 가까스로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신입회원과의 만남에는 20여명의 변호사님이 참석하였는데 청변 회원이 많아졌음을 피부로 느낀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오고간 다양한 의견들은 민변의 밝은 미래를 암시하는 복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2. 2017년 8월경 부산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한 기결수로부터 민변부산지부를 수신인으로 한 통의 편지가 배송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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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인즉 구치소 내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졌는데 이에 상당한 처치를 받지 못하고 주말 내내 방치되었으며 월요일에 되어서야 응급실로 가게 되었지만 마비증세로 인해 반신불수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시간을 내어 접견을 하였는데 처음 접견하였을 때에는 왼쪽팔다리가 거의 마비되어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상태였고 말을 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구치소 측에 휠체어를 요청하였으나 휠체어는 골절환자를 위한 것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여 마비된 왼쪽다리를 질질 끌며 힘든 걸음을 겨우 걷고 있었습니다. 이후 몇 차례 더 접견을 하였는데 오른쪽 부위까지 마비증세를 보이고 안면부도 더 불편해졌는지 의사전달에 어려움을 겪는 등 상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었으며 그나마 휠체어 지원은 받고 있었습니다. 뇌경색이나 뇌졸중과 같은 질병은 촌각을 다투기 때문에 시급한 응급처치가 필수적인데 토요일에 쓰러진 뒤 월요일이 되어서야 응급실로 실려 간 부분에 있어 구치소 측의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보아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하기로 하고 민변이 지원하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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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수감자는 신체마비로 인해 형집행정지를 받았고 현재 이 소송은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언론매체를 통해 춘천소년원에서 체중이 40kg이나 빠진 대장암3기 재소자에 변비 진단을 해왔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수감시설 의료지원 체계의 허술함이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우연히 다른 매체에서 교도소에 수감되어있던 한 재소자가 뇌경색으로 쓰러졌으나 의무실에 사람이 없다며 18시간을 방치하는 바람에 반신불수가 되었다는, 현재 진행 중인 손해배상 청구 사건의 사안과 매우 유사한 사건의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해당 수감자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구치소나 교도소등의 수감시설 내 의료지원 체계의 구조적인 미흡함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현재 지원하고 있는 손해배상청구 사건이 의뢰인 개인적인 피해회복뿐 아니라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는데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수, 2018/01/3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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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렇습니다. 이 글은 사법위원회를 함께하실 미래의 위원님을 모시기 위해 보내는 열렬한 초대장입니다. 오세요, 얼른 오세요. 사법위원회의 문은 활짝 열려있습니다. 제도개혁에 관심 있으신 변호사님이라면 두려워말고 꼭 오셨으면 합니다.

무조건 오시라고 당기기를 하기에 앞서 먼저 사법위의 올 한해를 소개해드립니다.
2017년 올해의 키워드는 누가 뭐래도 ‘적폐청산’이었습니다. 적폐청산은 한편으로는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에 아직 미치지 못하는 각종 사회 조직과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부패한 인적 구성원들에 대한 법적 단죄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입니다. 사법위는 여기에 어떠한 내용의 개선이어야 하는가, 그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토론을 통해 우리의 입장을 향상시키고 나아가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하여 노력할 것입니다.

올 해 초인 3월경 사법위원회는 검찰개혁이슈리포트를 통해 공수처 설치, 검경수사권조정, 법무부탈검찰화, 재정신청사건 확대 등 민변의 검찰개혁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였습니다. 그 중 특히 공수처 설치 문제와 검경수사권조정의 문제의 경우 실질적인 수사실무의 관행이나, 경찰 조직에 대한 이해와 신뢰의 문제 등 여러 현안이 겹쳐져 있어서 보다 다각도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한 사안이었습니다. 이에 사법위는 10월, 경찰대 출신으로서 경찰 실무경험을 가지고 계신 경남대 법학과 유주성 교수를 모시고 의견을 청취하고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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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위는 미래의 위원님과 아래의 일들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사법위원회는 2018년을 맞아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적폐청산’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이슈인 검찰개혁, 법무부 탈검찰화, 검경수사권조정, 경찰개혁, 공수처 설치, 법원개혁, 법조일원화에 따라 도입된 로스쿨제도, 개헌 등 온갖 제도개선의 필요성 등의 문제가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다루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민변 사법위 위원님들께서 각 단위별 위원회에 참여하고 계시기 때문에 가까이에서 실제 제도개선을 위한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우리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될 것인지를 가늠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개혁의 과업이란 사람 몇 명 바꾸는 것이나 조직 하나를 없애고 새로 만드는 것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기적으로 많은 문제들이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메타적인 시선이 강력하게 요구됩니다. 사법위원회는 민변의 다른 위원회도 물론 그렇지만 사법개혁에 대해 오랜기간 고민하고 공부하신 선배 변호사님들의 주옥같은 말씀을 가까이서 듣고, 배울 수 있습니다.

사법개혁에 관해서라면 민변 사법위원회에서의 논의가 언제나 최신이며 최고이고 최선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어, 그러면 난 잘 모르는데 위원회 활동을 잘 할 수 있을까 하고, 참여의 마음은 있지만 왠지 겁이 나시는 변호사님을 위해 단란한 사법위 사진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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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의 자랑은 선후배 변호사의 연차 고하 막론하고 동등하고 평등한 발언권을 가지고 함께 토론할 수 있는 문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법위는 현재 위원 구성으로 본다면 표준분포가 큰 위원회이지만 어느 위원회보다도 가장 동등하고 평등한 발언권을 보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드립니다.

사법개혁은 인권을 수호하고, 민주적 절차를 준수하며 국민의 법감정에 맞는 법치주의 작동을 현실화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인 논의의 흐름을 알지 못하더라도 전혀 사법위에 오셔서 말씀하시는데 두려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언제나 활력을 주고, 더 사회에 적합한 논의를 심화시키는데 이롭기 때문입니다.

 

목, 2017/12/2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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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각 분야 불공정행위 및 공정위의 불공정행정 개선을 위한 간담회 참관 후기

 

저는 민변 활동을 시작한 후 민생경제위원회 공정거래팀 회의나 민변 강의, MT 활동 등에 주로 참가했습니다. 그러던 중 현 2017년 7월 6일 광명역에서 오뚜기 대리점주들을 상대로 진행된 김종보 변호사의 대리점법 설명회를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갑질 공화국에서 대리점을 하는 분들을 처음 만났고 이날 이후 다양한 업종의 대리점주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2017년 6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한 후 뉴스에서 가장 많이 접한 건 공정거래위원회 관련 뉴스들이었습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재벌 저격수라는 명성에 맞게 경제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고, 우리 사회의 乙들은 경제 개혁의 기대를 품고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고자 하고 있습니다.

2017년 9월 11일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 참여연대, 전국을살리기국민운동본부,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전국대리점살리기협회, 전국유통상인협회, 전국서비스산업연맹, 전국골프존협동조합,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단체 인사들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간담회가 이루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취임 3개월 만에 시민단체들과 공정거래위원장과의 간담회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신속하고 현실적인 개혁 의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간담회장에 수많은 기자가 대기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서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의 움직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간담회장은 편안하면서도 긴장감이 느껴졌습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대리점주들은 공정거래위원회에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할 방법에 목말라 하고 있었기에 공정거래위원장과 만남은 자신들의 상황에 대한 간절함과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감을 전달할 기회로 여겨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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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 제공

오후 3시에 시작한 간담회는 한 시간 정도 예정이었지만 두 시간 반이 넘도록 쉬지 않고 진행되었습니다. 민관 국정 관리 체계 구축에 대한 의견, 공정거래위원회의 집행체계(공정위의 사건 처리, 조사방식 등) 개선에 대한 의견, 업종별 대표적인 불공정 사례와 개선에 대한 의견 등을 공정거래위원회 측에 제안하고 이에 대한 답변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본격적인 간담회 시작에 앞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서 논란이 되었던 이해진 전 네이버 의장 관련 발언을 사과했습니다. 이날 간담회는 비공개였기에 기자들은 공정거래위원장의 인사말이 끝남과 동시에 퇴장했습니다.

이후 민변 김남근 변호사의 현장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소통 관련 제안, 이동우 변호사의 공정거래위원회의 사건 처리·조사방식 등 개선에 대한 제안, 중소기업 하도급 분야 피해 사례에 대한 김남주 변호사의 발언, 대리점, 가맹점, 대형마트 분야에 대한 각 단체에서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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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 페이스북 카드뉴스(9.12) @kftcnews

공정거래위원회 측은 공정위가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적 기대와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우선하여 공정위 신뢰 제고 방안 마련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를 위해 국회와도 긴밀히 협조하여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신뢰 제고 방안을 만들도록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오늘 간담회장에서의 각 단체의 요구에 귀 기울이면서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이해를 부탁하였고, 동시에 참석한 단체들에 경제 사회적 약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공정하게 대변하는 역할을 지속해서 수행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변호사가 소송을 준비하면서 의뢰인과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신뢰 구축이 이루어져야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유사하게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부 개혁과 동시에 경제 개혁을 제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각 시민단체와의 원활한 소통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의 요구 사항에 대해 행정기관이 고려하는 점과 그 해결을 위한 절차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끊이없는 문제 제기의 필요성과 동시에 현실적으로 해결할 문제에 대한 고려가 필요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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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김주호 간사

민변 활동을 하는 신입 변호사로서 이런 자리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견문이 넓어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이는 앞으로 공정거래팀 활동뿐 아니라 변호사로 업무를 수행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신입 변호사님들도 기회가 있으면 민변의 다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면서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화, 2017/09/2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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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지부의 박인동 변호사가 적극 추천한 정다은 변호사님. 사무실에 들어가자 맑은 미소로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심재섭 (이하 심) : 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정다은 (이하 정) : 세상살이는 32년차고요, 변호사는 5년차고, 결혼생활은 2년차, 그리고 애 엄마로는 1년차에요.

 

심 : 민변은 어떻게 가입하신 건가요.

정 : 시험 합격하고, 실무수습 하면서 가입신청했어요. 14년 10월경 정도였을 것 같아요. 로스쿨 다닐 때부터 민변 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전혀 그러지 못했어요. 사실 제가 변호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안 했었고, 그 전에 학생운동이나 사회 활동을 한 적도 없었거든요.

민변에는 꾸준히 운동을 해 오신 변호사님들이 많죠. 그렇지 않아도 저희 남편이 남들 할 때 좀 하지, 그때는 맨날 술 퍼먹고 연애질만 하고 다니다가 다 늙어서 활동하냐고 농담을 하기도 했어요. 민변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았던 거는 초등학교 때에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부모님 성향 때문이었나 봐요. 집 책장에 조영래 변호사님 책들이 꽂혀 있었거든요. 그렇게 민변을 알고, 그게 전부죠. 그 뒤로 민변은 잊고 살다가, 변시 붙고 나서 그냥. 주머니 넣어 놓았던 것 꺼내듯이, 그랬던 것 같아요.

전대 로스쿨에 유명한 ‘인연회’라는 메이저 인권 모임이 있었고, 그거 말고 마이너들이 모여가지고 만든 ‘서로’라는 동아리가 있었어요. 한 달에 한번씩 광주 YMCA, 이주여성센터 이런 곳에서 상담봉사를 했었어요. 이 친구들은 아주 소수정예, 아니 정예인지는 모르지만 아주 소수였어요. 그 모임 멤버들이 민변에 꽤 가입을 했어요.
변호사 시험을 보고 발표하기 전까지 기간이 좀 있어요. 운이 좋아서 그 기간에도 지금 자리에서 일을 하게 되었죠. 정식 변호사는 아니지만 그때 수습한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이 사무실에 있어요.

저희 지부에서는 매년 신입변호사를 대상으로 행사를 합니다. 이게 대학교에서 동아리 모집하는 방식하고 비슷하기도 한데, ‘민변소개마당’이라는 행사에요. 수습변호사들이 수습을 하러 들어왔고, 고용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민변 소개마당이라는 행사를 개최해서 1부를 하고, 2부는 이제 술 먹고 놀죠. 저같은 경우에는 그 행사 끝나고 바로 신청서를 냈었어요.

 

심 : 그런 행사를 하려면, 대상자에게 알려야 하잖아요. 수습기간 중에 있는 변호사님들의 명단 파악은 어떻게 한 걸까요.

정 : 저희 지부 특성일 텐데, 전남대 로스쿨이 대부분이잖아요. 전남대 로스쿨 기수 대표가 있어요. 예를 들어서 이제 7기가 나온다, 그러면 민변 6기 변호사님들한테 우리 행사하자, 이렇게 연락이 다 가는거죠. 연락처 확보는 문제가 아니에요. 오세요, 오세요 홍보를 하고 사전에 질문지를 받습니다.

질문지 내용을 보면 ‘법정에서 인사는 몇 번 해야 하나요’ 같은 사소한 것부터 정말 다양해요. 행사를 하면 선배 변호사가 이 질문지에 대해 답을 하시죠.

 

심 : 선배로 오시는 분들은 연배가 어떻게 되세요.

정 : 저희 또래부터, 아주 원로 변호사님들까지. 선배님들이 활동을 계속 해 주시는 것이 저희는 너무 좋거든요. 김정호 지부장님보다 선배인 변호사님도 정말 많아요. 법정에서 그런 변호사님들 뵈면 어떻게 편하게 인사하겠어요. 민변에서나 편하게 선배님, 선배님 하죠.

민변소개마당이라는 행사가 인상적이다. 회원유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시스템.

심 : 우수변호사 상을 받으신 이야기도 해 주세요.

정 : 정말 제가 받을 상은 아니에요. 우수변호사 그거는 지방변회에서 추천을 받는데, 광주지방변호사회의 집행부 중에 민변 소속 회원이 과반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법조계 성폭력 실태 조사에 대하여 상을 주신 것이지요. 실은 이 상은 제 상이 아니에요. 실태조사단이 여성변회와 전남지부가 협력하여 이루어진 구조인데, 규정상 단체를 추천할 수 없어서 간사였던 저를 추천해 주신 것이지요.

 

심 : 에이, 이건 좀 겸손이 과한 것 같은데.

광주전남지역 법조계를 대상으로 성폭력 실태를 조사한 건데요, 광주에는 사무직원회도 있거든요. 법원, 검찰공무원, 물론 판검사 다 포함되어 있고요. 변호사, 변호사 사무원들까지 전부 대상이에요.

성폭력 상황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는지 묻고, 가해자를 나누게 했어요. 답변인이 예를 들어서 사무직원회 소속 여직원 이었다면 자신들이 업무상 접촉하는 사람들에 대한 설명이 나올 것이고, 여자 변호사가 응답하였다면 업무시간 종료 후에 회식에서 만나는 판, 검사까지도 대상이 되겠지요.

 

심 : 이런 기획은 처음에 시작된 건가요.

정 : 시작은 미투운동이었고, 다음은 서지현 검사님의 고백이었지요. 그뒤에 사실 법조계에서는 잠잠했었잖아요. 그런데 저희 지변 소속에 여자 변호사님 한 분이 지역 일간지에 기고를 하셨었어요. 저보다도 연차가 낮으신 분이었는데 용감하게 자신의 경험도 드러내면서 우리도 각성하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기사가 나고 지변은 난리가 났죠.

임성숙 변호사님이 광주 여변들의 왕언니에요. ‘야, 우리 뭐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냐’하셨고, 다행히 저희 지부에 실행력 있으신 분들이 많아서 일이 진행되었지요.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님도 민변 변호사님이고, 미국에서 활동하셨던 변호사님도 들어와 계시고, 구성이 참 좋았어요.

저희가 이 실태조사 하면서 미국 변호사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미국에서도 법조계 성희롱 실태 조사를 했었대요. 그 설문지의 설계를 참고해서 저희 설문지가 나왔습니다.

설문조사 기간이 사실상 그렇게 길지 않았는데도, 이 실태조사를 실시한다는 자체만으로 남자변호사님들은 굉장히..

 

심 : 굉장히..?

정 : 임변호사님이 굉장히 큰 역할을 해주셨죠. 풍파를 막아주신 거에요. 원로 변호사님들은 이게 무슨 자랑이라고 이런 걸 굳이 하느냐는 말씀도 있으셨나 봐요. 광주가, 굳이 다른데도 아니고 광주가 왜.

광주에서 이 관련된 일을 하다보면 그 말 되게 많이 들어요. 광주에서 굳이. 518의 도시인 광주, 민주화의 성지에서 굳이 우리의 흉을 밝힐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거죠.

다른 지역에서 시도한 적이 없었고 처음이었고, 이후에 대한여성변호사회에서 하겠다고 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실제로는 홈페이지에서 공고 띄워서 경험한 것 있으면 들려주세요, 하는 정도더라고요. 저희의 목표는 최종적으로 신고센터를 만들려는 것이었고, 그 점에서 우리의 실태조사완 좀 다르더라고요.

개방형 답변에 대해서는 사례보고가 굉장히 많이 됐는데. 이 내용이 실은 굉장히 충격적인 것도 있었죠. 그렇지만 이 내용을 오픈해버리면 피해자, 가해자가 특정되어버리니까 그럴 수는 없고. 지역사회가 워낙 좁거든요.

그래서 사례 공개는 못하고, 형사 처벌이 가능한 데이터를 뽑았어요. 법률에 저촉 되는 퍼센티지를 냈는데, 이걸로만 언론들은 난리가 났었죠.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어린 여자변호사들에게 변호사 이외의 사무직원이 가해를 한 행위도 굉장히 높았어요. 사실 우리 안에서는 대충 상황이 그려지는 상황인데, 밖에서는 상상을 못하는 내용이지요.

우리 사회에서 전문성, 직업, 학벌 다 필요 없고, 남자라는 자체만으로 권력이 주어지는 것이라는 평가가 가능했어요.

 

심 :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요.

정 : 막아주신 임변호사님이 안계셨으면 기획 자체가 좌절될 수도 있었어요. 토론회에 발제하기도 쉽지 않았을테고. 그래서 시작할 때부터 허락을 받고 했어요. 회장님 저희 이거 하겠다 하고. 다행이 지역에 있는 변호사님들이 다 도와주셨어요.

그래도 응답률은 되게 낮았어요. 특히 사무직원은 정말로 낮았어요. 자기가 이직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저희가 이 설문조사가 끝나고 실제로 신고센터가 아니라 양성평등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매해 실태조사를 하고 개략적인 정보를 공개하는 제도를 만들었어요.

첫 번째로 실시된 조사였기 때문에 익명보장에 대한 믿음이 없었는데, 이번 설문조사 결과 완벽하게 비밀이 보장되어서, 상당히 신뢰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어요. 내년 응답률과 결과에 굉장히 주목하고 있어습니다.

이제 양성평등위원회, 저희 여변 차원이 아니라 지변 차원에서 마련되었으니까요.

 

실태조사에 대한 설명만큼 인상적이었던 것은, 선배에 대한, 특히 왕언니에 대한 신뢰.

 

심 : 지만원이 쓴 책 이야기도 해 볼까요.

정 : 실은 이 지만원이라는 사람과 518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고자 하는 세력, 그 세력들이 비슷한 시도를 계속 해 왔지요. 그런데 이번 책은 새로운 접근이었어요.

자기들 자체 내에서 최첨단 영상 분석기술을 활용했다. 518 당시 사진에 찍힌 인물들의 눈코입을 비교해서 지금 그 사람들이 북한 인사들이었다 하는 주장이지요.

사실 이런 정식 분석기술이 있긴 해요. 그렇지만 지만원이 사용한 것은 자기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거래요. 그러면서 프로그램 개발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못하고 ID만 밝혀요. 그런데 지만원이 주장하는 518 당시 사진의 인물과 현재 북한 인사하고는 연령대부터가 전혀 안 맞아요.

소송에서 사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둘이 다르다는 점이 아니라, 이 사진 속 인물이 원고라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거냐 하는 부분이었어요.

그래서 형사소송을 먼저 진행해요. 정보통신망법위반 등으로요. 형사사건에서 증인신문 하잖아요. 증인신문에서는 왜 이 사진이 찍히게 되었는지 상황을 설명할 수밖에 없어요. 당신은 어디에 있었냐, 이 사진은 뭐하는 장면이냐, 날짜별로 일어났던 사건들이 있잖아요. 진술과 역사적 사실들이 일치하는지 맞춰보는 수밖에 없거든요. 그 증언을 증거로 하여 민사에서 당사자의 동일성을 밝히지요. 아직까지 당사자 동일성에서 문제 된 적은 없어요.

 

심 : 이게 전두환 회고록 하고 같이 진행을 하고 있는 건가요.

정 : 지변이랑 민변지부랑 인적구성이 굉장히 많이 겹치기도 하고 그에 따라 활동해야 하는 목적도 많이 겹쳐요. 지변에도 518위원회가 있고, 민변에도 518위원회가 있어요. 그래서 518위원회에서 지변이랑 민변이랑 같이 하고 있죠.

심 : 광주에서 민변 변호사에 대한 이미지는 어떤가요.

정 : 민변이라고 해서 의뢰인들이 싫어하시거나 불편해하시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어요. 아무래도 지역색도 좀 있겠죠. 아니면, 제가 좀 사람 대할 때 차갑고 싸가지가 없다고, 그러다 보니까 의뢰인들이 그렇게 느껴서 말을 안 하는 거 일수도 있어요(웃음).

그런데, 이번엔 좀 새로운 경험이 있었어요. 지난 주말에 광주에서 퀴어 퍼레이드가 있었거든요. 이거를 민변에서 같이 하기로 하고, 조력하기로 하고. 이 과정이 되게 참, 뭐랄까요.

민변 내부에서도 당연히 성소수자에 대한 의견이 다양하잖아요. 민변의 이름으로 결합하는 것도 의미있었죠.

되게 새로웠어요. 사실 민변이 일반 시민과 접촉하는 기회가 박근혜 탄핵하는 그 시국 말고는 없었잖아요. 그때에는 민변 변호사들과 일반 시민의 인식이 같았으니까 별 문제 없었고, 한 편이었는데, 퀴어 퍼레이드는 다르잖아요. 퍼레이드를 하는 장소가 518광장이었어요. 분수대를 둘러싸고 허가를 받았어요. 원래 그 분수대에 아무 통제가 없어요. 통제하지 않아도 누가 그 위에 올라가지는 않거든요. 어린애들이라도.

그런데 이번 행사가 이루어지니까 난리도 아니었어요. 기독교는 당연하고, 518단체들에서도 나와서 내 친구 가족들이 목숨 바친 곳인데 이 자리에서 이게 무슨 짓이냐, 하는 것이지요. 저희가 민변에서 인권침해감시단 조끼를 받아입고 갔는데도, 그런 얘기를 들었죠. 니들 이런거 하라고 너희 부모가 공부시켰나 이런 이야기들.
그래도, 경찰이 연행하거나 하진 않더라고요. 아무래도 광주니까요.

심 : 민변 본부에 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시다면.

정 : 저는 저희 지부 구성원들끼리 워낙 스킨십이 많아요.
선배님들이 본부 행사가 있으면 많이 데려가려고 하세요, 분위기를 느껴봐야 한다고요.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민변 본부는 본부대로 일을 하고 있고, 저희는 저희대로 하면서 불만이나 부족을 못 느끼고 있어서 그런지 특별히..

 

심 : 스킨십이 많다?

정 : 수가 훨씬 적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다른 분이 무엇을 하는지도 꽤 잘 알고 있어요. 광주에서 전업 공익변호사로 이소아변호사님이 계시고, 이변호사님이 운영하시는 비영리단체인 동행의 구성원이 두 명 있어요. 너무 열심히 하시죠. 민변에서 하는 사업의 아이디어가 많이 나와요. 퍼센티지로 따지면 60프로 될까? 그런 아이디어가 나오면 서로 참여하고, 여튼 그렇게 자주 만나고 뭉치고 해요.

 

심 : 민변 변호사님이 몇 분이나 계세요.

정 : 우리 한 40명 되나? 월례회를 하면, 그래도 한 스무 명, 스물다섯 명 정도는 모이는 것 같아요.

 

40명 중 반 이상이나 참석한다니.

 

심 : 지부 특색이나 자랑은 뭐가 있을까요.

정 : 저희는 일단 잘 안 빼요. 일할 때도, 놀 때도요.

누구 한 명이 제안을 해요. 이거 한 번 해보자. 요새 이런 일이 있다는데 이거 한 번 해보자 라고요. 그것도 연차 상관없이 자유롭게 제안을 하고, 제안이 들어오면 집행부 회의 거치지요. 합시다, 결정하면 그날로 밴드에서 공지를 하고 자원자들이 댓글을 달아요. 그렇게 대리인단, 변호인단이 나오죠.

7, 8년차를 기준으로 위, 아래 숫자가 반반은 될 것 같아요. 그리고 회의에는 오지 않고 다크템플러처럼 일만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또 한편은 회의에 안 오시지만 술 먹고 노는 자리에 꼭 와 주시는 분들도 있고. 다양합니다.

아, 지부 자랑에 선배님들이 행사나 사건이 있을 때, 후원도 잘 해주시는 점도 있어요. 시간도 내 주시고, 돈도 내 주시고.

잘 놀고, 재주꾼들도 많고, 또 잘 싸워요. 연차 상관없이 잘 싸워요. 잘 싸우고, 잘 화해하고.

 

심 : 일상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본부는 보통 회의를 저녁시간에 하거든요. 6시 끝나면 퇴근은 하시나요?

정 : 네. 제가 운이 좋아요. 제 남편도 민변이고, 저랑 동기고, 이 친구도 지금 저랑 똑같이 고용으로 있거든요. 제가 운이 좋다고 하는 이유가, 저희 대표님을 만난 것도 있어요. 법원 출신이시거든요. 회사 안에서 당신이 의도하지 않은 일이 달갑지 않을 법도 한데, 그냥 저 하고싶은 일 하도록 허락해 주셔요.

업무 시간도 아주 힘들지는 않아요. 제가 출근시간이 좀 빨라요. 아홉시에서 아홉시 반 사이? 그래서 여섯시까지 바짝 하면 회사 업무가 거의 다 끝나요. 그러다보니 민변 활동하기가 좋은 편이에요. 고용 중에서도 일이 없는 사무실에 속해 있으니까요. 아이는 친정엄마 도움을 받고, 퇴근도 제 때 하고, 주말에 출근도 거의 없고. 그런데 이건 광주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에요. 당연히 차이가 있긴 할 것 같아요. 전 그냥 운이 좋다는 말밖에.

 

심 : 정말 하시고 싶었던 말씀, 지금 하세요.

정 : 민변 회원 분에게 하고 싶은 얘기이기도 한데, 제가 처음 변호사가 되어 민변에 들어올 때 내가 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는 것 하나도 없는데, 이런 생각을 하실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만 제가 했던 사건을 돌이켜 보면 민변에 들어와서 하다못해 변호사님들 사이에 연락이라도 해야겠다, 돈 관리, 총무라도 해야겠다, 이런 사소한 일이라도 해야 겠다고 생각해서 이름을 걸었던 사건들이거든요. 내가 뭐 법리에 능해서, 절차에 능해서 그런 게 아니었어요. 그렇게 시작되는 것 같아요. 저희 지부에서 실제로 1, 2년차 변호사님들이 일을 참 많이 하고 계시거든요.

제가 무슨 선배인 것처럼 이런 말씀 드리는 것이 어색하긴 하지만요. 저도 뭣 모르고 가입해서 정말 즐겁게 변호사 생활 하고 있어요. 두려워하지 마시고 일단 민변에 푹 들어와 보시면 좋겠어요.

민변 변호사로서의 생활을 이야기할 때, 아마 머릿속으로 동료, 선후배 얼굴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는지 정다은 변호사님의 표정이 참 밝았다.

The post [회원인터뷰] 잊고 살다가도 항상 곁에 있던 민변 – 정다은 변호사, 광주지부를 말하다.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금, 2018/11/16-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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