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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사회주의를 폄훼하고픈 이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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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사회주의를 폄훼하고픈 이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admin | 화, 2020/02/04- 20:12

사회주의라는 시스템이 언제부터 전체주의의 또 다른 표현으로 자리를 잡았는지 정확한 그 시점은 알 수 없다. 또한, 인류 보편의 권리라는 “자유”, 그리고 “번영”이 어찌하여 자본주의가 독점하는 가치가 되었는지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라틴아메리카 국가 대부분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들이 자본주의 시스템이 태생적으로 잉태할 수밖에 없는 것임에도 말이다.

풍요로운 소수와 다수의 빈곤층이 겹겹이 만들어내는 그 사회적 관계망들은 흔히 우리가 일컫는 “불평등”이라는 개념으로는 부족한 현대판 봉건사회를 구축하였으니, 이른바 ‘자유인들’로 구성된 새로운 신분질서가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라틴아메리카의 굴곡진 근현대사가 시작되었다.

서구에서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는 19세기 초반 유럽으로부터 독립한 라틴아메리카 국가 대부분은 이후 미국 자본주의가 성장하기 위한 가장 ‘모범적’인 시장이자 원자재 공급을 위한 수탈과 착취의 대륙이었다. 물론 이 같은 종속 관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지역 내 매판 자본가와 지배계급들의 ‘공조’를 필요로 했음은 물론이다.

민중적 기반이 취약한 라틴아메리카 내 흔히 ‘백인’ 혈통의 기득권 세력들은 미국 지배계급과의 동맹을 이용하는 것 외에는 자국의 위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 능력 따위는 애초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사태가 이를 증명하고 남음이다. 1954년 과테말라, 1973년 칠레, 그리고 1980년대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 지원 등 이외에도 수많은 국가 들에서 자국의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고 친 민중적 국가개혁을 추진하던 정부들이 대부분 미국의 노골적인 방해와 군사개입으로 전복되었다.

라틴아메리카 지역 내 쿠바 사회주의가 갖는 의미는 그 체제가 여타 다른 자본주의 사회보다 우월하다거나 이상적이라는 ‘과장된’ 감성적 연대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쿠바 사회는 분명 다른 라틴아메리카 지역과는 구별되는 다양한 층위의 사회문화적 단면들이 존재한다. 쿠바 기층 민중들이 만들어내는 그들의 삶이고 존재 방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쿠바 지역사회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표현하는 일례를 들어볼까 한다. 쿠바인들의 평범한 일상이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자 많은 승객으로 촘촘한 콩나물시루를 연상케 하는 버스에서 일어나는 풍경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 한국 사회의 분위기와 빗대어 이야기를 해보면 이렇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어르신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물론 예전과는 다소 다른 온도가 감지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어르신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문화에 익숙한 평범한 개인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할아버지에게 자리를 양보받는다면? 그리고 나는 아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면? 버스를 타는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 쿠바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와 사회적 합의가 아주 자연스럽고 응집 적으로 표현되는 일상을 포착한 순간이다.

우선 사회적 약자를 규정하는 방식이다. 임산부와 어린아이, 혹은 아이를 동반하고 있는 어른은 가장 배려해야 하는 ‘약자’이다. 그들이 약자인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여기에는 여성을 향한 배려도 포함된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나이가 많은 노인이라는 점보다 남성이라는 정체성으로 종종 여성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을 선보인다.

임산부와 아이가 버스에 오른다. 쿠바의 버스는 언제나 만원이다. 버스 안은 이미 겹겹이 밀착을 이룬 사람들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의 제재가 한 단계 더 높아지면서 버스의 운행횟수가 급격히 줄었기에, 상황이 호전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 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종종 너무 많은 사람의 틈에서 임산부라는 사실이 간혹 쉽게 식별되지 않는다 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주위의 사람들이 임산부가 버스에 올랐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리면서 그녀는 좌석을 양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를 동행하거나 안고 버스에 오르는 남성 어른도 이는 마찬가지다. 임산부와 어린아이를 외면할 수 있는 승객은 없어 보인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노인들에게 좌석을 양보하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쏟아졌던 따가운 시선 못지않은 ‘응징’의 사회적 시선을 견디는 일은 쉽지 않을 테니까.

간혹 주위의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한다면 임산부 당사자는 아주 ‘당당히’ 요구하는 모습도 흔하다. “임산부인데 자리 좀 부탁해요!”. 그러면 주위에 함께 서 있던 승객들은 함께 외쳐주기도 한다. “여기 임산부가 있어요!”. 이 같은 광경에 주위 누구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다. 언제나 쿠바의 만원 버스에서 좌석을 잡고 앉는 일도 쉽지 않지만, 그 와중에 선뜻 자리를 양보하는 쿠바인들의 배려심이 흐뭇하다. 한국에서 노인들에게 좌석을 선뜻 양보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는 외국인들의 경험담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임산부에 대한 배려는 사회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은행, 상점, 병원은 물론 순서를 기다리며 줄을 서야 하는 모든 곳에서 그녀들은 배려와 양보를 받는다. 이를 싫어하거나 불편해하는 내색이 쿠바인들에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주 자연스럽고 여유가 있는 모습들이다. 버스에 오르내리기 위해 전쟁을 치러야 하는 우리의 모습은 온 간데없다. 일단 버스에 오른 이상 출근이 늦어지지 않을 것이며, 무사히 등교할 수 있고, 약속 장소에 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쿠바의 만원 버스가 특별한 이유는 라틴아메리카 어느 나라에서도 이처럼 사람들과 ‘밀착’된 생활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외국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물론 자국민들이 공공재인 대중교통을 아무 거리낌 없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국가는 단연코 없다. 양극화된 사회가 만들어낸 긴장감은 주변의 인물들이 나의 이웃이 아니라 ‘잠재적’인 범죄자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은 자가 교통수단이 없는 기층 민중들이 일상적인 ‘위험’을 감수하며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제로 거리에서는 출퇴근이나 등하굣길, 그리고 연인을 만나러 가는 평범한 사람들은 일상에서 목숨을 잃는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의 지표가 곧 그 사회의 문화, 가치, 상식의 잣대가 되는 지금, 그래서 경제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믿음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는 이상 ‘저개발’ 혹은 제 3세계 쿠바를 바라보는 우리 인식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잠시 고민해 볼 대목이다. 클린턴의 “문제는 경제야!”라는 그 ‘유명한’ 정치 슬로건이 마치 세상 진리인 양 비판 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경제만 좋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괜찮다는 맹신이 ‘철학의 빈곤’을 끊임없이 양산한다. 그렇게 제 1세계의 그럴듯한 하드웨어는 그 사회가 내포하는 내적 가치와 상식, 문화들이 덩달아 과대평가 받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쿠바가 못내 못마땅하여 호시탐탐 ‘붕괴’의 가능성을 노리는 북쪽의 ‘이웃’에게. 미국의 사회적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합의된 가치나 기준은 무엇인가. 분명한 것은 약자를 대하는 사회의 배려와 양보는 아닌 것 같다는 나름의 판단이다. 최첨단 의료 장비와 시설을 갖춘 제 1세계의 대표주자 격인 미국에서는 수천만 명의 미국인들은 접근도 할 수 없는 ‘그림의 떡’이며, 잘린 두 개의 손가락 중 하나만을 선택해서 봉합해야 하는 미국의 의료 제도를 고발한 마이클 무어의 유명한 다큐멘터리 “시코”는 크게 과장되지 않은 현실임을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그럴듯한 미국의 경제적 위상은 한편으로 자국민 개인이 소유한 자본 능력에 따라 차별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체제를 단번에 구축해 냈다. 의료 영리병원이 미국에 이식된 결과이며, 대한민국 제주도에서 진행하려 했던 의료 영리병원 설립은 그 첫 단계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이다.

낙후된 만원 버스를 타야 하는 쿠바이지만 그럴듯한 하드웨어를 갖춘 미국보다야 더욱 그럴듯해 보이는 사회적 가치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여전히 쿠바의 만원 버스가 종종 힘에 부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작은 공간에서 드러나는 쿠바의 사회적 공감대에 시선이 놓여 있는 한 나의 ‘투덜거림’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렇게 고된 하루가 지나고 초저녁이 되면 쿠바 사람들은 집 앞의 준비된 의자와 발코니에 나와 앞집, 옆집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가끔 청년들은 야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한적한 오후를 보내는 쿠바 지역사회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사회가 내재하고 있는 무궁한 잠재력은 그럴듯한 인프라와 최첨단 시설로부터가 아니라, 그 에 앞서 사회의 공동체가 “사람”을 우선하는 가치와 합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쿠바의 의료시설이 열악하다는 사실로부터 쿠바의 의료체계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혹자들을 향한 일갈이기도 하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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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창당 100주년을 맞이한 공산당이 주도하는 현대중국은 1980년대 개혁개방을 추진한 이래 2001년 WTO에 정식으로 가입하고 지난 수십 년간 고도의 성장을 이룩하면서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경제지표상으로 2010년대 중반에 이미 구매력지수 PPP기준으로 미국경제력을 추월하였고, 공칭의 달러기준으로 평가하는 경제규모도 2030년 이전에 미국을 앞지르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클린턴 시절만 하여도 중국은 경제성장과정에서 자체의 요구에 따라 민주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서구체제에 편입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시진핑의 시대가 개막되면서 공산당 지배체제가 오히려 강화되었고 신형대국으로서 러시아와 함께 상해협력기구SCO를 결성하고 일대일로BRI를 통하여 국제사회에 대한 상응한 역할과 영향력을 확대하는 단계에 이르자, 오바마 정권은 급기야 대서양 중심에서 아시아로 회귀  Pivot to Asia의 전략으로 회귀하기 시작하였고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America-First(미국우선주의)를 외치었던 트럼프 시절에는 국가안보전략에서 중국을 현존하는 최대의 위협으로 규정하며 무역보복을 포함한 강압적인 조치와 제재를 취하기 시작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시절의 거칠고 일방적인 대중정책을 계승하되 이를 세련되게 정리하면서, 미국이 돌아왔다 – America is Back in Alliance’라는 구호로 위기에 빠졌던 대서양 양안의 기존동맹을 재정립하고, 주요 전략거점으로 부상한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기존의 정치군사적 파트너십 성격인 Quad에 다양한 동맹의 성격을 부여하면서 이를 확대 강화하고자 하는 한편,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투명성을 내세우면서 가치개념의 전략을 통하여 중국을 세계에서 고립시키려는 소위 하이브리드 전쟁을 전면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은 자신주도의 패권유지를 지속하기 위하여 새로운 형태와 접근방식의 신냉전을 전개하면서 21세기 인류사회의 전망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과거의 트럼프가 미국 블럭버스터 영화인 록키 또는 터미네이터 타입이었다면, 현재의 바이든은 영화 대부의 주인공 알-파치노처럼 교활하고 치밀한 작전을 펄치고 있는 셈이다. 이에 7월 20일자 뉴욕타임즈는 Trump was Bad, however Biden is even worse to China  중국에겐 트럼프도 나쁜 상대이었지만 바이든은 최악의 상대이다’라는 기사를 게재하였으며 포린폴리시의 전 편집장인 Jonathan Teppermann은 Bidens Dangerous Policy라는 제목으로 중국에 대한 바이든의 편집광적인 냉전사고를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대중국 전방위적 하이브리드 전쟁양상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산업공급사슬의 차단과 첨단기술의 봉쇄에 이어 신장의 인종학살 및 강제노동에 대한 언론조작 그리고 우한연구소의 코로나바이러스 발생설WIV 등이 자리잡고 있다.

신장과 관련하여 필자는 지난 상반기 다른백년의 플랫홈에 10여 차례에 걸쳐 해외 칼럼과 다양한 시각을 소개하면서 미국과 영국이 주요 언론매체들을 동원하여 내용을 심각하게 과장하고 왜곡하는 것을 넘어서 없는 사실까지 조작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고발한 바 있으며, 이로 인하여 현재까지 미국의 Facebook 등 온라인 매체에게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한편, 위그르 족을 포함한 신장지역의 소수민족들은 실제로 역사이래 가장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고 있다고 중국당국은 밝히고 있고, 현지를 방문한 제3국의 많은 인사들도 이를 재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의 핵심주제인 우한연구소발생설 WIV에 대하여 필자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개진하고자 한다. 우선 아래의 2019년 3월 이래 코로나바이러스의 흔적과 발생에 관한 기록을 참조하여 주시길 바란다.

이미 2019년 봄철,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유럽각지에서 코로나바이러스 또는 이의 항체가 발견되고 있었으며, 11월에는 프랑스 등에서도 다수의 코로나-19 추정 제로환자(Patient-Zero)들이 발생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별도로 2019년 가을 초입에 이미 대만의 감염전문가인 치과의사가 기존의 인플루엔자와는 전혀 다른 코로나바이러스의 증상이 미국과 하와이를 다녀온 관광객들에게 다수 발견되었고 3-4개의 변종이 확인되었다고 공개적인 방송을 통하여 발표하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예전의 독감과는 다른 증상을 보이는 호흡기 환자들이 급증하면서 사망자도 속출하고 있었다. 

한 예로 미국 동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의 시장이 2019년 10월 경 신약발표회에 참석한 후 견딜 수 없는 감기몸살과 발열로 인하여 10여 일 고생 겪은 다음, 2020년 2월 코로나 역학조사에서 이미 자신의 몸에 항체가 형성되었다는 판정을 듣고 지난 10월 자신이 앓은 몸살감기가 바로 코로나바이러스임을 확신하는 내용을 미국언론에 기고한 바도 있다. 참조로 중국당국이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생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일자는 2019년 12월 8일이다.

이를 종합해보면 이미 2019년 봄 또는 여름부터 세계도처에서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질환의 초기증상이 발생하였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는 대부분 감염분야의 전문가들과 기후생태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일치하는 것으로, 코로나-19는 자연생태를 마구 해쳐온 인류의 지나친 산업활동과 이로 인한 생태환경적 급변에 대한 자연계의 대응 즉 보복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해석된다. 

세계 여러 곳에서 2019년 봄과 여름에 걸쳐 다발적으로 발생한 코로나-19 초기의 바이러스 종들이 몇 개월간 잠복과 매개와 진화의 과정을 거쳐 인체에 치명적인 상태로 발전하면서 때마침 2019년 11월에 국제군인체육대회를 개최한 대도시 중국의 우한을 거점으로 전세계로 확산된 것으로 일단의 추정이 가능하다. 당시 체육대회에 참여한 군인경기자들의 숙소가 문제가 된 화난해산물시장과 가까이 소재하고 있었으며, 참가자 상당수가 별난 장소인 화난시장을 관광차 방문한 것으로 알려지면 이러한 추정의 가능성을 높여 준다. 

상황이 점차 밝혀지면서 유엔산하 국제보건기구인 WHO연구팀과 중국연구진이 1개월 넘게 조사를 진행한 이후, 이의 활동을 근거로 지난 봄에 WHO 조사팀이 우한연구소의 진원설WIV에 대하여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하다(extremely unlike)고 공식적으로 밝혔고,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하여 전세계를 대상으로 광범한 제2단계의 조사연구와 이를 위한 지구적인 협력체제가 긴요하다고 설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서구의 언론매체들이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조작과 가설수준의 정보에 의존하여 우한연구소의 진원설WIV을 자가발전시키는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첫째, 중국은 초기대응에 성공하여 단시일 내 정상으로 복귀한 반면에,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하여 여전히 전전긍긍하는 서구사회의 정치지도자들은 자신들의 패착과 무능에 대한 면피성 구실과 희생양이 필요한 상황이다.

둘째, 미국과 서구는 백신기술을 두고 상업주의와 자국이기주의를 드러내는 동시에, 땅에 떨어진 위상을 되찾고자 백신패권주의라고 칭할 만큼 이를 국제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반면에, 중국은 국제적 협력프로그램인 코백스COVAX의 적극참여를 통하여 직접 제3세계 100여 개국에 백신지원을 제안하고 이를 수용한 50여 개국에 5-6억 회분을 제공함으로써 제3세계의 격한 호응을 받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상황이 미패권에 대응하는 중국의 도전기반 즉 다자적 협력의 국제질서의 출발점이 되는 것을 극히 우려하면서, 근거도 없이 중국백신의 무용설과 더불어 WIV가설을 퍼트리고 있다.

셋째, 반중 공포감과 혐오감을 이용하여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 그리고 동양인들은 파렴치한”라고 호칭한 트럼프의 저질 악성정치가 그를 구세주로 받드는 QANon조직과 더불어 미국전역에 뿌리를 내리고 미국 국내정치의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는 주요 요인으로 자리를 잡아가자, 바이든의 입장에서 이를 무조건 부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오히려 이를 공개적으로 대응하고 역으로 활용할 필요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시 종합하여 보면 코로나-19의 바이러스는 2019년 봄과 여름에 걸쳐 세계도처에서 다발적으로 발생하여 점차 인간에게 잠복 전이 진화하면서 치명적인 형태로 발전했으며, 마침 11월에 중국의 우한에서 있었던 국제군인체육대회를 계기로 전세계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군사적 바이오실험을 통한 인공조작 또는 실수로 인한 누출사고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며, 이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지구적 협력체제를 통한 제2, 제3의 전문적 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이는 미래의 팬데믹 재발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여기에 특별히 주목을 받는 장소가 비로 미국 메릴랜드 주에 소재한 미군 바이오연구소 Port De-Dtrick Lab이다. 

상기 장소가 주목을 받는 까닭은 2019년 가을에 오수처리의 시설기반을 보강해야 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미군 최대의 바이오 기지를 장기간 폐쇄하였다는 것이 결코 합리적인 설명이 되지 못한다는 점과 더불어 당시에 상기 연구소에 근무하였던 인원 몇 명이 우한국제체육대회에 참가하고 화난시장을 방문한 것을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이 보였던 역사적 행보가 혐의의 가능성을 더욱 짙게 한다. 태평양 전쟁 당시 만주에 소재하였던 일본군 731부대의 생체실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사실이다. 서시 등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하늘과 별과 바람의 시인 윤동주도 731부대에서 희생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은 현대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도무지 행할 수 없는 인간생체실험을 통해 얻은 731부대의 모든 실험자료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제1급 전범이었던 일본천황의 제도를 묵인하였으며, 실제로 수천에서 수만 명의 인명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천인공로할 731부대의 책임자들은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이후 존경을 받는 사회인사로 천수를 누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은 731부대에서 넘겨받은 자료를 기반으로 이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등에서 콜레라 장티푸스 흑사병 그리고 유행성출혈열 등 전염병 세균을, 의도적이거나 누출사고를 가장하여, 사용하고 전파해 온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전쟁국가인 미국은 저렴하고 가장 효과적인 생화학무기로서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한 유혹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최근 주한미군은 자신들의 전용부두인 부산항에서 최근까지 수백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가공할 치사병원체인 탄저균 실험을 한국정부에 통보도 없이 극비리에 진행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우리를 경악시킨 바 있다. 이의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유튜브 동영상 서울대 수의학 우희종 교수 강연내용 <미국세균무기(탄저균) 현황과 한국> 등을 참조해 주시길 요청한다.

수십 억의 인류를 고통으로 몰아놓고 현재까지 4백만 명 이상 생명을 앗아간 코로나-19 출현의 배경과 원인을 반드시 밝혀내어야만 제2, 제3의 팬데믹 상황을 예방하고 대비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과 서구의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진영을 넘어서 중국과 러시아의 과학자들 포함하여 지구촌 모든 관련자들이 모두 총집결한 국제적인 협력체제를 통하여 진실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따라서 중국의 우한연구소 뿐만 아니라, 메릴랜드의 Port Detrick Lab 포함하여 전세계 도처에 소재한 미군의 바이오연구소들에 대해서도 예외없이 일반적이고 전반적인 탐색과 재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서구가 중국에게 요구하는 범위와 절차와 수준의 재조사와 탐색이 미군 산하의 모든 생화학무기연구소에 대해서도 반드시 이루어져 한다. 

만약 미국이 자국의 안보라는 구실로 이를 거부한다면, 수백만 수천만의 인류를 희생시킨 팬데믹의 진실을 은폐한 악성 범죄국가로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이 칼럼은 7/24일자 프레시안에 사전 기고된 글입니다

이래경

수, 2021/07/28-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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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불명예스럽게 떠났지만 모든 징후는 그가 차기 대선에 출마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지난 선거결과에 대한 그의 경멸은 이제 공화당의 신조가 되었습니다. 연방의회의 점거사태로 마침내 그에게 충성을 유지했던 공화당원들의 마법을 깨뜨릴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상황은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걱정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한 가지 큰 불안의 근원 때문에 우리가 밤에 잠을 설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만, 미국 안팎에서 그토록 지독한 편집광적인 에너지가 한때 한 사람에게 바쳤고 그가 어떻게 우리의 꿈까지 방해하게 되었는지를 되돌아 보면, 오늘 시점에 우리가 도널드 트럼프에게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매우 위안이 됩니다. 사실인가요? 우리가 그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사실, 그가 커다란 주황색 글씨로 떠벌리는 일은 소설-미디어SNS의 타임라인에서 사라졌고 Facebook과 Twitter의 경영진에 의해 추방되었으며, 이러한 금지조치 때문에 겨우 자신의 블로그를 운용하는 것으로 위축되어 있습니다. 과거 많은 Trump 기업들이 파산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정치행위는 조용히 포기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은 명백히 실패이며, 현재까지 한 달 이상 지속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매일 아침 트럼프가 무슨 새로운 황당함을 저질렀는지 보기 위해 핸드폰의 화면을 손가락 사이로 엿보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일상의 시야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그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비극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좋든 나쁘든, 달의 인력에 의해 조수처럼 끌려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트럼프는 여전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는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미래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기 때문에 그를 과거에 묶어둘 수는 없습니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그가 차기 대선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고 당의 차기 백악관 후보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시기상조이지만 다음 선거를 위해 공화당 후보로 추정되는 후보들의 여론조사를 살펴봅시다.

그는 항상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공화당원의 76%가 그를 호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 주 오하이오주에서 트럼프가 지지하는 후보가 보다 나은 자격을 갖춘 경쟁자를 물리치고 공화당 하원의원 예비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았습니다.  부시 대통령 시절 연설문 작가였던 데이비드 프럼(David Frum)가 트럼프 에 대해 “그가 죽거나 능력이 제거되지 않는 한 그가 2024년 가장 유력한 후보” 라고 말한 것은 사실 그대로 입니다.

미국인이 예방접종을 받았는지 여부 역시 그가 바이든 또는 트럼프에게 투표했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는 지표입니다.

장래에도 당신의 수면을 계속해서 괴롭힐 위험이 있다는 것은 끔찍한 전망입니다. 2024년 선거일은 조 바이든의 82번째 생일을 불과 며칠 앞둔 날입니다. 대통령이 출마하면 그는 86세가 될 때까지 집무실에 남아 있게 됩니다. 많은 미국인들은 그가 대선출마의 요청을 수락하는 일에 회의적일 것입니다 (한편, 78세의 나이에 해당하는 트럼프는 상대적으로 젊은 후보로 출마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솔직히 대선후보가 바이든이든 카말라 해리스이든 또는 어떤 민주당 인사가 되든, 트럼프는 선거문화에 익숙한 선동의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2016년의 대선은 그에게 승리를 안겨주었고 2020년에는 위험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상기의 시나리오는 시간상 아직 멀었고 너무 우울하다고 인정하고,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고 가정해 봅시다(트럼프가 대선출마를 않는다는). 그렇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트럼프가 절대로 출마하지 않더라도 트럼피즘은 이미 미국인들의 핏속에 강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1월 6일의 연방의회 점거의 반란시도로 마침내 트럼프의 주문을 깨뜨릴 수 있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역으로 그가 거칠고 조잡하고 편협하고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이기적일지라도 궁극적으로 무해하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트럼프에게 충성을 유지했던 공화당원들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았습니다.

낙관론자들은 민주적 선거의 결과를 뒤집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군중들이 연방의회 건물을 습격하도록 폭도를 선동하는 미국대통령을 목격하는 것으로 마침내 대부분의 공화당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트럼프는 결국적으로 공화국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하원의 공화당의원들은 트럼프의 범죄에 대한 탄핵에 반대표를 던졌고 상원의 공화당의원들은 그의 무죄선고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이를 반대하던 의원들은 배척당했습니다. 보수강경파의 딸이라는 가계의 후광도 위대한(?) 지도자에 반대한 배경으로 하원지도부에서 제명된 리즈 체니를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음모이론가인 Marjorie Taylor Greene과 그녀의 동지인 Matt Gaetz가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사실 후자는 성매매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 졌습니다만, 중요하고 유일한 리트머스 테스트인 트럼프에 대한 충성도를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2020년 선거가 도난당했고 도널드 트럼프는 진정한 대통령으로 남아 있으며 바이든은 찬탈자라는 근거없는 주장은 한때 트럼프의 열광적인 망상에 불과했고, 패배의 진실로부터 상처받은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메커니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Stop Steal”은 이제 공화당의 신념이 되었습니다. 9개월 후, 공화당원 대다수는 모든 증거와 유권자 사기에 대한 모든 주장이 근거가 없다는 일련의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승리하고 바이든은 패배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민주주의 의지를 강탈하기로 결정한 바이든이 아니라 트럼프였다는 최근의 확인조차도 충실한 사람들의 신념을 바꾸지 못할 것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2월 법무장관 대행에게 “선거는 조작되었다고 선언하고 나머지 일은 나에게 맡기라”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편, 애리조나 주 상원의원들은 선거관리인들을 독방에 감금할 것을 촉구했었습니다.

공화당 지지집단이 2020년의 트럼피즘에 충성스럽게 고집하는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코로나-19의 현실을 부정하고 바이러스를 저지하는 데 필요한 일(백신접종)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인이 예방접종을 받았는지 여부에 대한 가장 큰 예측지수는 지난 11월 그들이 바이든과 트럼프 중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여부입니다. 지난달 기준으로 민주당원의 86%가 한번 이상 접종을 맞았습니다만, 공화당원은 45%에 불과합니다.

공화당 정치인들이 백신접종을 나치의 유대인박해 또는 KGB의 방문노크에 비유하고, 개별 주차원에서 공화당의원들이 ‘백신을 너무 과도하게 밀어붙였다는 이유’로 공중보건공무원을 해고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트럼피즘에는 두 가지의 신조는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전문과학지식에 대한 경멸과 팩트에 대한 무시입니다. 전문가가 과학자든 선거관리자든, 혹은 사실이 바이러스의 본질과 관련이 있는지 아니면 지난 11월에 투표한 총계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가 하나입니다. 트럼피즘은 사실을 무시하고 강력한 조타수에게 무릎꿇을 것을 요구합니다. 통치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은 진리이지 이들에게 과학과 팩트는 진리가 아닙니다.

때때로, 자신이 속한 정당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는 공화당 인사들을 만납니다. 자신의 주 소속 의료관계자가 제공한 백신접종의 필요성에 대한 브리핑을 외치는 아칸소 주지사의 얼굴을 조명한 비디오 장면은 지켜볼 가치가 있습니다. 그 순간 주지사는 자신이 속한 공화당이 더 이상 과학이나 민주주의를 믿지 않으며 트럼피즘이라는 바이러스가 모든 장기를 감염시켰다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트럼프 자신의 복귀여부는 실제로 부차적인 주제이나 트럼피즘이라는 질병은 이미 미국정치계의 절반을 차지하는 정당을 집어삼켰고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출처 : The Guardians(영국 가디언) on 2021-08-06.

Jonathan Freedland

가디언 지의 정치분야 정기 기고자

수, 2021/08/2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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