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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화된 정체성, ‘먼저 온 통일’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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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화된 정체성, ‘먼저 온 통일’의 신화

admin | 목, 2020/01/23- 22:03

필자 주: 

탈북이주의 역사가 시작된 지도 벌써 20년이 흘렀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탈북인을 통해 ‘먼저 온 통일’을 꿈꾸는 대리체험을 해왔다. 이제 그들과 우리가 함께 만나 잘 살아가는 모습이 곧 사람의 통일을 미리 실험해보는 예비실험의 장이라고 믿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전쟁을 부추기는 서북청년단판 ‘먼저 온 통일’들이 광화문을 중심으로 시위를 벌이면서 반북을 외치는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가 그들을 타자화된 명칭으로 호명해오면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만들어온 것은 아닌지 돌아다볼 때이다. ‘먼저 온 통일’은 악몽이 되었다. 신화와 꿈에서 깨어나 살아있는 생활세계에서 북한출신주민을 만나서 소통해야 할 때이다.

원래 진보진영에 대한 탈북인들의 반대 정서는 그 역사가 깊다. 닭이냐 달걀이냐의 문제이지만, 지난 20여년간 진보진영 측에서 탈북인을 회피하거나 혹은 침묵해야 할 주제로 여겨지거나 심지어 배신자로 여기는 정서가 자초한 결과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촛불정부와 탈북인간의 갈등은 지속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인가? 진보정부인 문재인 정부 들어서 탈북민정책이 박근혜 시대와 똑같이 일말의 개혁노력이나 관심도 보이지 않은채 그대로 반복되었다는데 그 원인이 있었다고 보인다. 근본적인 성찰과 개혁이 필요하다.

이 글은 먼저 우리의 시선이 어떤 인식틀을 가지고 그들을 보았는지 되돌아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새로운 평화체제로의 이행과정이 이미 도래하고 있으나 탈북민 정책은 과거 낡은 분단체제의 낡은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탈북인을 보는 시각 역시 진영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수/진보진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탈북인의 생활세계를 중심으로 탈북인의 정체성과 남한에서 국가와 탈북인관계, 탈북민정책청사진, 시민사회와의 관계, 정착서비스 전달체계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연재물을 기획하면서 우선 탈북인을 보는 우리의 시각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한다.


1. 탈북인을 보는 프레임과 착시현상

탈북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북한을 보는 대립적 프레임에 의해 규정된다. 북한을 보는 첫 번째 시각은 북한을 적으로 보는 시각이다. 대립과 극복대상으로 북한을 본다. 두번째 시각은 북한을 존중과 협력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이러한 두 개의 대립적 프레임은 다시 북한주민을 보는 시각을 규정하게 된다. 이러한 대립적 프레임에서 북한주민은 적국의 주민이거나 혹은 동포로 규정된다. 그런데 탈북인에 이르면 그 시각은 또 다시 변환한다. 보수진영이 한국에 온 탈북인을 일종의 우리에게 귀순한 투항자라고 보는 한편, 진보진영은 탈북인을 가난한 (불쌍한)동포로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진영프레임에서 본 탈북인은 북한에 온 탈북인 아무개는 개인이 아니다. 그(그녀)는 북한의 대리인이자 북한주민이자 소수자인 탈북민 3만명의 일원으로 이중 삼중으로 망막에 포착되는 피사체로서 회피대상, 거꾸로 특별한 관심대상이다. 보수진영은 북한의 인권을 소리높여 규탄하고 진보진영은 남한의 인권상황의 개선을 외친다.

이러한 보수/진보 프레임 속에서 탈북인들도 나뉘어진다. 어떤 이들은 북한의 인권을 외치는가 하면 그들이 남한에서 겪고 있는 차별과 국가폭력에 대해 개탄하는 이도 있다.

이러한 현상이 초래된 배후에는 분단체제가 있다. 분단체제에서 탈북인을 보는 두 개의 대립적 인식틀은 고정관념을 양산하였고 그 결과 많은 오해와 왜곡을 초래하였다. 필자는 북한이탈주민 아무개를 북한이라는 프레임을 통하지 않고 생활세계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 한다. 보수든 진보든 북한-북한주민-탈북인이라는 집단이미지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 탈북인을 귀순자나 정치적 박해자 혹은 가난한 나라에서 온 경제적 이주자 혹은 이주동포라는 고정된 이미지라는 프레임은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 먼저 북한주민 홍길동이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고 그가 왜 북한을 떠나게 되었고 한국에서 어떤 꿈을 가지고 살아가고자 하는지 구체적인 생활세계로부터 출발해 그들의 삶과 상황을 이해한 후에 사람 그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그들의 인권을 말해야 할 것이다.

 

북한체제의 배신자인가? 혹은 폭압한 정권의 희생자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탈북민을 북한체제의 배신자 혹은 폭압한 정권의 희생자로 보는 양극단의 시각이 병존하였다. 그간 보수에게 있어서 북한주민의 인권문제는 북한 체제를 공격하는데 있어 효과적인 무기였으며 아직 유효시한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할지라도 북한주민 인권문제가 지닌 폭발력은 여전하다. 트럼프는 북한협상에서 필요하다면 인권문제라는 폭탄을 다시 꺼내들 수 있다. 언제라도 백악관으로 탈북자들을 다시 불러들여 북한주민의 인권에 귀 기울이는 인권애호가의 자세를 취할 것이다.

북한사회를 비판하기 이전에 남한사회에서 탈북민 인권은 이미 문제적 상황에 놓여있다. 탈북민의 인권은 입국경로부터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철저하게 유보되는 상황에 놓여졌다. 국민도 비국민도 아닌 상태에서 국정원 합동신문과정에서 6개월이나 계속된다. 합동신문-하나원 총 9개월을 거쳐 한국국민으로서 주민증을 받은 이후에도 이어지는 적응교육과 정보수집 협조, 그리고 정기적인 신변보호경찰관의 수시점검, 국정원 요원들과의 만남이 십 수 년간 계속 이어지며 그게 언제 끝날지는 모른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내내 그들의 관찰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은 한국의 시민이기 이전에 정치적 취약계층인 북한이탈주민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비록 문재인정부 들어 합동신문과정이 비록 3개월로 줄어들기는 했으나 이러한 변화는 무의미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2000년대 이후 우리 정부는 북한인권을 말하면서 탈북인들의 인권을 무시하면서 그들을 북풍의 소재나 간첩의 단골 공급원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순된 행태를 보여왔다. 이명박 박근혜 보수정권 10년동안 이러한 자가당착적 자기모순은 더욱 심화되었다. 탈북인들의 수가 김정은시대 들어 1/3 수준으로 현저하게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탈북행위 그 자체가 마치 북한체제 붕괴의 조짐이라도 되는 양 과장하기를 서슴치 않았으며, 심지어 전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공식연설에서 북한주민을 향해 탈북을 적극 권유하기조차 하였다.

북한체제의 배신자라거나 혹은 폭압한 정권의 희생자라고 보는 양극단의 시각은 탈북인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그들의 실체를 왜곡하고 변형한다. 이러한 왜곡은 보는 자 자신의 관념의 산물이다. 탈북인은 배신자도 희생자도 아닌 북한출신주민이다. 그러면, 북한사회에서 북한주민이 어떻게 살고 있으며 왜 폭정에 저항하지 않는지,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탈북하게 되었는가를 먼저 탈북배경을 이해해보고 이를 통해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보자.

 

2. 탈북추이와 원인: 북한주민은 왜 탈북하게 되었을까?

탈북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한국에 온 탈북인들은 흔히 국경을 넘어 한국에 올 때의 급박하고 힘들었던 상황을 되풀이 이야기한다. 목숨을 걸고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탈북인들은 정치적 동기에 의해 탈북한 것인가? 혹은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여 한국에 온 경제적 이주자인가?

탈북의 동기에 대해 보수진영과 진보진영간에는 서로 다른 의견이 대립한다. 보수주의자의 시각에서는 북한인권 문제 혹은 정치적 탄압에 대한 주민들의 반격이라고 탈북현상을 이해한다. 진보주의자들은 탈북문제를 일종의 경제적 이주로 이해해왔다. 그러나, 사례분석 결과는 이와 다른 그 무엇이다.

 

탈북이주의 추이

휴전직후 1953년부터 2000년까지의 47년간 북한이탈주민 누적인원은 총 947명에 지나지 않았다. 북한이탈주민이 본격적으로 한국사회로 유입된 계기는 북한내부의 경제적 위기인 고난의 행군이다. 식량을 구하러 중국으로 갔던 북한 식량난민의 일부가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2001년을 기점으로 입국인원이 1천명을 넘었고 2009년 2,914명을 정점으로 입국자 수가 점차 감소하기 시작하여 2017년 12월에는 1,127명, 2019년에는 1,047명까지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입국자 수의 증가와 감소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왜 탈북하였고 어떤 사람들이 탈북하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탈북의 시작, 식량난

2000년대 이전 북한의 경제위기 시대의 탈북사유는 아주 단순하고 자명해서 이견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바로 식량난과 미증유의 기아사태 때문이었다. 배급의 중단과 굶주림은 북한주민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두만강을 건너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1990년대의 북한의 식량위기는 수많은 식량난민들을 배출하였다. 배출요인으로는 식량난으로 인한 생존위협 외에도 경제난·식량난의 악화 속에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 ‘북한주민들의 외부정보 접촉’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탈북의 유인요인(pull factor)으로는 조선족 사회의 보호, 민간단체의 구호활동, 취업기회, 여성에 대한 수요, 가족결합, 대한민국 정부의 정착지원정책 등이 있다.

식량난이 어느 정도 진정된 이후에 시장화이후 다소 생활여건은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주민의 한국 입국규모는 2009년까지 계속 증가해왔다. 국경연선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 특히 여성들이 탈북대열에 새로이 합류하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북한에 있을 당시부터 한국에 오기 위해 출발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들은 식량난민과 구분하여 직행파라고 불리웠다. 국경이동을 넘어 조중접경지역에서 중국, 남한, 북한, 조선족이라는 다문화가 공존하는 단둥지역의 사회문화적 행태를 주제로 한 연구들은 조중접경지역의 이문화가 소통하면서 상호침투하는 분위기를 통해 국경지역에 거주하는 북한주민들이 탈북에 이르는 배경과 동기를 설명해주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며, 북한주민의 국경을 넘는 초국적 이주행위를 주목한다.

물론 고난의 행군시기 식량을 구해 국경을 넘었던 북한주민은 전부 북한으로 도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식량을 구하러 중국에 나온 후에 식량여건이 나은 중국에서 계속 살기도 하였고 일부는 한국에 오는 등 다양하게 분화하면서 한국으로 오는 탈북주민 대열을 형성했다. 중국에서 거주하다 한국으로 오는 탈북주민 외에도 북한 거주 당시부터 한국을 목표로 탈북하는 이른바 ‘직행 탈북이주자’들이 새로이 등장하게 된다.

 

식량난민 vs 직행파

첫 번째 집단은 중국에 장기체류해온 식량난민 집단이다. 1990년대에 국경을 넘었던 탈북자들은 대부분 자기 선택을 중시하는 적극적인 이주자들이 아니라 식량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렸던 취약계층들로서 식량을 구하기 위해 북한을 떠난 일종의 식량난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들이 중국에 장기적으로 머물러 있다가 결국 한국으로 오는 선택을 하는 그룹이다.

결론적으로 탈북입국자 수가 정점에 달했던 2009년도에는 중국거주 북한출신주민들과 직행이주자들이 비슷한 비중으로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보기에는 똑같은 북한주민으로 보이지만 두 집단은 서로 이질적이라고 느낀다고 한다. 두번째 집단은 북한에서 남한을 목표로 이동하는 직행파집단이다. 북한이탈주민 수가 정점을 향했던 2000년대 중반에는 식량난민으로 중국에 체류했던 집단과 직행이주자 집단이 합해지게 되면서 2009년 이르면 근 3천명까지 늘어나게 된다.

 

김정은 정권이후 탈북입국자 급격한 감소의 원인과 향후 전망

2009년의 2,913명을 정점으로 탈북 국내입국자 수는 점차 줄어들다가 김정은 등장이후 2012년에는 1,502명으로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10여년간 계속 증가해왔던 북한이탈주민 입국인원이 왜 감소하게 되었을까?

고난의 행군 이래 중국으로 배출된 채 거주해온 북한 식량난민의 자연감소한 결과이다. 식량난민들은 그간 꾸준히 한국에 입국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둘째, 직행이주자가 급격히 감소한 결과이다. 직행이주자가 감소원인으로는 대한민국 탈북민 정착지원정책의 변화, 한국 정착상황의 어려움 등이 북한내부에 전해져 대한민국 드림의 거품이 꺼졌다는 점이 큰 요인이다. 한국사회의 어려움에 대한 보고가 직행탈북이주의 대열이 줄어드는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물론 김정은 정권의 탈북자 예방과 이탈방지를 위한 강력한 국경경비정책 등이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고 판단되면, 김정은의 등장이후의 정책(시장에 대한 관용, 월경단속 강화)가 중요한 요인이다. 이같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면서 북한에서 한국을 목표로 출발하는 탈북이주자의 감소에 작용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3. 탈북이주 20, 살아있는 북한출신주민을 생활세계에서 만날 때

그러면 이러한 탈북배경에 비추어 탈북인을 정의해보자. 인구학자인 박경숙은 1990년대 중반 북한사회를 강타한 배급제의 붕괴와 이로 인한 기아는 약 80여만명에 달하는 인구의 감소를 가져왔다고 보고한다. 굶주림에 시달린 북한주민들은 식량을 구하러 중국 등 제 3국에 나오게 되었는데 이들 중 일부가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일종의 식량난민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이후 북한에서 시장화가 진전되면서 시장경제를 선망하는 북한주민, 비공식일을 하는 과정에서 비법행위 등에 연루되어 곤경에 처한 북한주민들이 ‘직행’이라는 이름으로 집단을 이루면서 식량난민들이 앞서 갔던 탈북과 입국의 대열에 다시 합류하게 되었다. 즉 이들은 시장화과정에서 밀려나 더 이상 북한에서 살기 힘들어진 사람들 혹은 앞서 온 식량난민의 가족, 친지들이다.

이 두 집단이 합류한 결과 탈북이주민 수는 2000년부터 10년 동안 탈북입국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였고 2009년에 이르면 2,914명에 이른다. 그러나, 김정은정권 집권이후에는 강력한 국경단속과 대한민국드림의 거품이 사라지면서 국내 입국 탈북인은 연 1,000명대로 감소하게 되었다(2017, 1127명, 2019년 1137명, 2019년 1047명). 탈북인 초기정착민은 거의 식량난민이며 2000년대 중반부터 오기 시작한 직행이주자들은 북한시장화 과정에서 탈락하거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북한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전망하는 사람들이며 식량난민의 가족 혹은 친지들이다.

탈북인들은 북한에서 출신성분이 적대계급에 속해 불이익을 받거나 숙청된 사람들도 일부 포함되며 정치적으로 망명한 사람들도 극소수 있다. 그러나 탈북인의 절대다수는 고난의 행군당시 발생한 식량난민을 뿌리로 한다. 또 하나의 기둥을 이루는 북한 시장화이후에 온 직행파들이다. 이들은 시장경험이 풍부하고 시장경제에 대한 동경심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바로 한국으로 오는 직행파들의 비중이 감소하는 중이다. 식량난민과 직행이주자들은 가족 친지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탈북이주 동기와 배경으로 미루어 탈북인에 대한 상을 다음과 같이 그려본다.

식량난민들은 극한적인 굶주림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가정이 해체되는 경험을 겪었다. 직행이주자의 경우에도 탈북하면서 가정이 이산되고 빈몸으로 야반도주하여 한국에 왔다. 이들은 한국에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면서 고등교육을 받아 좋은 일자리에서 일하고 안정적이고 독립적인 경제생활을 영위하기를 원한다. 북한에서 사회화된 이들은 국가를 중시여겨 한국사회에서도 사회구성원으로서 존재와 가치를 인정받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

탈북인들은 모두 금의환향을 꿈꾼다. 미래에 언젠가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서 고향사람들과 자랑스럽게 만나고 싶어한다. 비록 자신은 북한사회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떠났으나 언젠가 고향에 돌아가 자신의 멋진 모습을 고향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기를 꿈꾼다. 고향이 잘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치열한 경쟁의 어려움에 시달렸기에 반드시 북한이 한국처럼 되어야 좋겠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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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창당 100주년을 맞이한 공산당이 주도하는 현대중국은 1980년대 개혁개방을 추진한 이래 2001년 WTO에 정식으로 가입하고 지난 수십 년간 고도의 성장을 이룩하면서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경제지표상으로 2010년대 중반에 이미 구매력지수 PPP기준으로 미국경제력을 추월하였고, 공칭의 달러기준으로 평가하는 경제규모도 2030년 이전에 미국을 앞지르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클린턴 시절만 하여도 중국은 경제성장과정에서 자체의 요구에 따라 민주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서구체제에 편입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시진핑의 시대가 개막되면서 공산당 지배체제가 오히려 강화되었고 신형대국으로서 러시아와 함께 상해협력기구SCO를 결성하고 일대일로BRI를 통하여 국제사회에 대한 상응한 역할과 영향력을 확대하는 단계에 이르자, 오바마 정권은 급기야 대서양 중심에서 아시아로 회귀  Pivot to Asia의 전략으로 회귀하기 시작하였고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America-First(미국우선주의)를 외치었던 트럼프 시절에는 국가안보전략에서 중국을 현존하는 최대의 위협으로 규정하며 무역보복을 포함한 강압적인 조치와 제재를 취하기 시작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시절의 거칠고 일방적인 대중정책을 계승하되 이를 세련되게 정리하면서, 미국이 돌아왔다 – America is Back in Alliance’라는 구호로 위기에 빠졌던 대서양 양안의 기존동맹을 재정립하고, 주요 전략거점으로 부상한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기존의 정치군사적 파트너십 성격인 Quad에 다양한 동맹의 성격을 부여하면서 이를 확대 강화하고자 하는 한편,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투명성을 내세우면서 가치개념의 전략을 통하여 중국을 세계에서 고립시키려는 소위 하이브리드 전쟁을 전면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은 자신주도의 패권유지를 지속하기 위하여 새로운 형태와 접근방식의 신냉전을 전개하면서 21세기 인류사회의 전망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과거의 트럼프가 미국 블럭버스터 영화인 록키 또는 터미네이터 타입이었다면, 현재의 바이든은 영화 대부의 주인공 알-파치노처럼 교활하고 치밀한 작전을 펄치고 있는 셈이다. 이에 7월 20일자 뉴욕타임즈는 Trump was Bad, however Biden is even worse to China  중국에겐 트럼프도 나쁜 상대이었지만 바이든은 최악의 상대이다’라는 기사를 게재하였으며 포린폴리시의 전 편집장인 Jonathan Teppermann은 Bidens Dangerous Policy라는 제목으로 중국에 대한 바이든의 편집광적인 냉전사고를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대중국 전방위적 하이브리드 전쟁양상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산업공급사슬의 차단과 첨단기술의 봉쇄에 이어 신장의 인종학살 및 강제노동에 대한 언론조작 그리고 우한연구소의 코로나바이러스 발생설WIV 등이 자리잡고 있다.

신장과 관련하여 필자는 지난 상반기 다른백년의 플랫홈에 10여 차례에 걸쳐 해외 칼럼과 다양한 시각을 소개하면서 미국과 영국이 주요 언론매체들을 동원하여 내용을 심각하게 과장하고 왜곡하는 것을 넘어서 없는 사실까지 조작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고발한 바 있으며, 이로 인하여 현재까지 미국의 Facebook 등 온라인 매체에게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한편, 위그르 족을 포함한 신장지역의 소수민족들은 실제로 역사이래 가장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고 있다고 중국당국은 밝히고 있고, 현지를 방문한 제3국의 많은 인사들도 이를 재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의 핵심주제인 우한연구소발생설 WIV에 대하여 필자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개진하고자 한다. 우선 아래의 2019년 3월 이래 코로나바이러스의 흔적과 발생에 관한 기록을 참조하여 주시길 바란다.

이미 2019년 봄철,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유럽각지에서 코로나바이러스 또는 이의 항체가 발견되고 있었으며, 11월에는 프랑스 등에서도 다수의 코로나-19 추정 제로환자(Patient-Zero)들이 발생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별도로 2019년 가을 초입에 이미 대만의 감염전문가인 치과의사가 기존의 인플루엔자와는 전혀 다른 코로나바이러스의 증상이 미국과 하와이를 다녀온 관광객들에게 다수 발견되었고 3-4개의 변종이 확인되었다고 공개적인 방송을 통하여 발표하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예전의 독감과는 다른 증상을 보이는 호흡기 환자들이 급증하면서 사망자도 속출하고 있었다. 

한 예로 미국 동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의 시장이 2019년 10월 경 신약발표회에 참석한 후 견딜 수 없는 감기몸살과 발열로 인하여 10여 일 고생 겪은 다음, 2020년 2월 코로나 역학조사에서 이미 자신의 몸에 항체가 형성되었다는 판정을 듣고 지난 10월 자신이 앓은 몸살감기가 바로 코로나바이러스임을 확신하는 내용을 미국언론에 기고한 바도 있다. 참조로 중국당국이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생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일자는 2019년 12월 8일이다.

이를 종합해보면 이미 2019년 봄 또는 여름부터 세계도처에서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질환의 초기증상이 발생하였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는 대부분 감염분야의 전문가들과 기후생태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일치하는 것으로, 코로나-19는 자연생태를 마구 해쳐온 인류의 지나친 산업활동과 이로 인한 생태환경적 급변에 대한 자연계의 대응 즉 보복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해석된다. 

세계 여러 곳에서 2019년 봄과 여름에 걸쳐 다발적으로 발생한 코로나-19 초기의 바이러스 종들이 몇 개월간 잠복과 매개와 진화의 과정을 거쳐 인체에 치명적인 상태로 발전하면서 때마침 2019년 11월에 국제군인체육대회를 개최한 대도시 중국의 우한을 거점으로 전세계로 확산된 것으로 일단의 추정이 가능하다. 당시 체육대회에 참여한 군인경기자들의 숙소가 문제가 된 화난해산물시장과 가까이 소재하고 있었으며, 참가자 상당수가 별난 장소인 화난시장을 관광차 방문한 것으로 알려지면 이러한 추정의 가능성을 높여 준다. 

상황이 점차 밝혀지면서 유엔산하 국제보건기구인 WHO연구팀과 중국연구진이 1개월 넘게 조사를 진행한 이후, 이의 활동을 근거로 지난 봄에 WHO 조사팀이 우한연구소의 진원설WIV에 대하여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하다(extremely unlike)고 공식적으로 밝혔고,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하여 전세계를 대상으로 광범한 제2단계의 조사연구와 이를 위한 지구적인 협력체제가 긴요하다고 설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서구의 언론매체들이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조작과 가설수준의 정보에 의존하여 우한연구소의 진원설WIV을 자가발전시키는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첫째, 중국은 초기대응에 성공하여 단시일 내 정상으로 복귀한 반면에,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하여 여전히 전전긍긍하는 서구사회의 정치지도자들은 자신들의 패착과 무능에 대한 면피성 구실과 희생양이 필요한 상황이다.

둘째, 미국과 서구는 백신기술을 두고 상업주의와 자국이기주의를 드러내는 동시에, 땅에 떨어진 위상을 되찾고자 백신패권주의라고 칭할 만큼 이를 국제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반면에, 중국은 국제적 협력프로그램인 코백스COVAX의 적극참여를 통하여 직접 제3세계 100여 개국에 백신지원을 제안하고 이를 수용한 50여 개국에 5-6억 회분을 제공함으로써 제3세계의 격한 호응을 받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상황이 미패권에 대응하는 중국의 도전기반 즉 다자적 협력의 국제질서의 출발점이 되는 것을 극히 우려하면서, 근거도 없이 중국백신의 무용설과 더불어 WIV가설을 퍼트리고 있다.

셋째, 반중 공포감과 혐오감을 이용하여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 그리고 동양인들은 파렴치한”라고 호칭한 트럼프의 저질 악성정치가 그를 구세주로 받드는 QANon조직과 더불어 미국전역에 뿌리를 내리고 미국 국내정치의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는 주요 요인으로 자리를 잡아가자, 바이든의 입장에서 이를 무조건 부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오히려 이를 공개적으로 대응하고 역으로 활용할 필요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시 종합하여 보면 코로나-19의 바이러스는 2019년 봄과 여름에 걸쳐 세계도처에서 다발적으로 발생하여 점차 인간에게 잠복 전이 진화하면서 치명적인 형태로 발전했으며, 마침 11월에 중국의 우한에서 있었던 국제군인체육대회를 계기로 전세계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군사적 바이오실험을 통한 인공조작 또는 실수로 인한 누출사고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며, 이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지구적 협력체제를 통한 제2, 제3의 전문적 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이는 미래의 팬데믹 재발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여기에 특별히 주목을 받는 장소가 비로 미국 메릴랜드 주에 소재한 미군 바이오연구소 Port De-Dtrick Lab이다. 

상기 장소가 주목을 받는 까닭은 2019년 가을에 오수처리의 시설기반을 보강해야 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미군 최대의 바이오 기지를 장기간 폐쇄하였다는 것이 결코 합리적인 설명이 되지 못한다는 점과 더불어 당시에 상기 연구소에 근무하였던 인원 몇 명이 우한국제체육대회에 참가하고 화난시장을 방문한 것을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이 보였던 역사적 행보가 혐의의 가능성을 더욱 짙게 한다. 태평양 전쟁 당시 만주에 소재하였던 일본군 731부대의 생체실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사실이다. 서시 등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하늘과 별과 바람의 시인 윤동주도 731부대에서 희생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은 현대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도무지 행할 수 없는 인간생체실험을 통해 얻은 731부대의 모든 실험자료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제1급 전범이었던 일본천황의 제도를 묵인하였으며, 실제로 수천에서 수만 명의 인명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천인공로할 731부대의 책임자들은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이후 존경을 받는 사회인사로 천수를 누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은 731부대에서 넘겨받은 자료를 기반으로 이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등에서 콜레라 장티푸스 흑사병 그리고 유행성출혈열 등 전염병 세균을, 의도적이거나 누출사고를 가장하여, 사용하고 전파해 온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전쟁국가인 미국은 저렴하고 가장 효과적인 생화학무기로서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한 유혹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최근 주한미군은 자신들의 전용부두인 부산항에서 최근까지 수백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가공할 치사병원체인 탄저균 실험을 한국정부에 통보도 없이 극비리에 진행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우리를 경악시킨 바 있다. 이의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유튜브 동영상 서울대 수의학 우희종 교수 강연내용 <미국세균무기(탄저균) 현황과 한국> 등을 참조해 주시길 요청한다.

수십 억의 인류를 고통으로 몰아놓고 현재까지 4백만 명 이상 생명을 앗아간 코로나-19 출현의 배경과 원인을 반드시 밝혀내어야만 제2, 제3의 팬데믹 상황을 예방하고 대비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과 서구의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진영을 넘어서 중국과 러시아의 과학자들 포함하여 지구촌 모든 관련자들이 모두 총집결한 국제적인 협력체제를 통하여 진실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따라서 중국의 우한연구소 뿐만 아니라, 메릴랜드의 Port Detrick Lab 포함하여 전세계 도처에 소재한 미군의 바이오연구소들에 대해서도 예외없이 일반적이고 전반적인 탐색과 재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서구가 중국에게 요구하는 범위와 절차와 수준의 재조사와 탐색이 미군 산하의 모든 생화학무기연구소에 대해서도 반드시 이루어져 한다. 

만약 미국이 자국의 안보라는 구실로 이를 거부한다면, 수백만 수천만의 인류를 희생시킨 팬데믹의 진실을 은폐한 악성 범죄국가로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이 칼럼은 7/24일자 프레시안에 사전 기고된 글입니다

이래경

수, 2021/07/28-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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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불명예스럽게 떠났지만 모든 징후는 그가 차기 대선에 출마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지난 선거결과에 대한 그의 경멸은 이제 공화당의 신조가 되었습니다. 연방의회의 점거사태로 마침내 그에게 충성을 유지했던 공화당원들의 마법을 깨뜨릴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상황은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걱정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한 가지 큰 불안의 근원 때문에 우리가 밤에 잠을 설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만, 미국 안팎에서 그토록 지독한 편집광적인 에너지가 한때 한 사람에게 바쳤고 그가 어떻게 우리의 꿈까지 방해하게 되었는지를 되돌아 보면, 오늘 시점에 우리가 도널드 트럼프에게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매우 위안이 됩니다. 사실인가요? 우리가 그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사실, 그가 커다란 주황색 글씨로 떠벌리는 일은 소설-미디어SNS의 타임라인에서 사라졌고 Facebook과 Twitter의 경영진에 의해 추방되었으며, 이러한 금지조치 때문에 겨우 자신의 블로그를 운용하는 것으로 위축되어 있습니다. 과거 많은 Trump 기업들이 파산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정치행위는 조용히 포기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은 명백히 실패이며, 현재까지 한 달 이상 지속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매일 아침 트럼프가 무슨 새로운 황당함을 저질렀는지 보기 위해 핸드폰의 화면을 손가락 사이로 엿보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일상의 시야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그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비극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좋든 나쁘든, 달의 인력에 의해 조수처럼 끌려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트럼프는 여전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는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미래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기 때문에 그를 과거에 묶어둘 수는 없습니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그가 차기 대선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고 당의 차기 백악관 후보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시기상조이지만 다음 선거를 위해 공화당 후보로 추정되는 후보들의 여론조사를 살펴봅시다.

그는 항상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공화당원의 76%가 그를 호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 주 오하이오주에서 트럼프가 지지하는 후보가 보다 나은 자격을 갖춘 경쟁자를 물리치고 공화당 하원의원 예비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았습니다.  부시 대통령 시절 연설문 작가였던 데이비드 프럼(David Frum)가 트럼프 에 대해 “그가 죽거나 능력이 제거되지 않는 한 그가 2024년 가장 유력한 후보” 라고 말한 것은 사실 그대로 입니다.

미국인이 예방접종을 받았는지 여부 역시 그가 바이든 또는 트럼프에게 투표했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는 지표입니다.

장래에도 당신의 수면을 계속해서 괴롭힐 위험이 있다는 것은 끔찍한 전망입니다. 2024년 선거일은 조 바이든의 82번째 생일을 불과 며칠 앞둔 날입니다. 대통령이 출마하면 그는 86세가 될 때까지 집무실에 남아 있게 됩니다. 많은 미국인들은 그가 대선출마의 요청을 수락하는 일에 회의적일 것입니다 (한편, 78세의 나이에 해당하는 트럼프는 상대적으로 젊은 후보로 출마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솔직히 대선후보가 바이든이든 카말라 해리스이든 또는 어떤 민주당 인사가 되든, 트럼프는 선거문화에 익숙한 선동의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2016년의 대선은 그에게 승리를 안겨주었고 2020년에는 위험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상기의 시나리오는 시간상 아직 멀었고 너무 우울하다고 인정하고,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고 가정해 봅시다(트럼프가 대선출마를 않는다는). 그렇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트럼프가 절대로 출마하지 않더라도 트럼피즘은 이미 미국인들의 핏속에 강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1월 6일의 연방의회 점거의 반란시도로 마침내 트럼프의 주문을 깨뜨릴 수 있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역으로 그가 거칠고 조잡하고 편협하고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이기적일지라도 궁극적으로 무해하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트럼프에게 충성을 유지했던 공화당원들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았습니다.

낙관론자들은 민주적 선거의 결과를 뒤집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군중들이 연방의회 건물을 습격하도록 폭도를 선동하는 미국대통령을 목격하는 것으로 마침내 대부분의 공화당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트럼프는 결국적으로 공화국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하원의 공화당의원들은 트럼프의 범죄에 대한 탄핵에 반대표를 던졌고 상원의 공화당의원들은 그의 무죄선고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이를 반대하던 의원들은 배척당했습니다. 보수강경파의 딸이라는 가계의 후광도 위대한(?) 지도자에 반대한 배경으로 하원지도부에서 제명된 리즈 체니를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음모이론가인 Marjorie Taylor Greene과 그녀의 동지인 Matt Gaetz가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사실 후자는 성매매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 졌습니다만, 중요하고 유일한 리트머스 테스트인 트럼프에 대한 충성도를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2020년 선거가 도난당했고 도널드 트럼프는 진정한 대통령으로 남아 있으며 바이든은 찬탈자라는 근거없는 주장은 한때 트럼프의 열광적인 망상에 불과했고, 패배의 진실로부터 상처받은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메커니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Stop Steal”은 이제 공화당의 신념이 되었습니다. 9개월 후, 공화당원 대다수는 모든 증거와 유권자 사기에 대한 모든 주장이 근거가 없다는 일련의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승리하고 바이든은 패배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민주주의 의지를 강탈하기로 결정한 바이든이 아니라 트럼프였다는 최근의 확인조차도 충실한 사람들의 신념을 바꾸지 못할 것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2월 법무장관 대행에게 “선거는 조작되었다고 선언하고 나머지 일은 나에게 맡기라”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편, 애리조나 주 상원의원들은 선거관리인들을 독방에 감금할 것을 촉구했었습니다.

공화당 지지집단이 2020년의 트럼피즘에 충성스럽게 고집하는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코로나-19의 현실을 부정하고 바이러스를 저지하는 데 필요한 일(백신접종)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인이 예방접종을 받았는지 여부에 대한 가장 큰 예측지수는 지난 11월 그들이 바이든과 트럼프 중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여부입니다. 지난달 기준으로 민주당원의 86%가 한번 이상 접종을 맞았습니다만, 공화당원은 45%에 불과합니다.

공화당 정치인들이 백신접종을 나치의 유대인박해 또는 KGB의 방문노크에 비유하고, 개별 주차원에서 공화당의원들이 ‘백신을 너무 과도하게 밀어붙였다는 이유’로 공중보건공무원을 해고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트럼피즘에는 두 가지의 신조는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전문과학지식에 대한 경멸과 팩트에 대한 무시입니다. 전문가가 과학자든 선거관리자든, 혹은 사실이 바이러스의 본질과 관련이 있는지 아니면 지난 11월에 투표한 총계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가 하나입니다. 트럼피즘은 사실을 무시하고 강력한 조타수에게 무릎꿇을 것을 요구합니다. 통치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은 진리이지 이들에게 과학과 팩트는 진리가 아닙니다.

때때로, 자신이 속한 정당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는 공화당 인사들을 만납니다. 자신의 주 소속 의료관계자가 제공한 백신접종의 필요성에 대한 브리핑을 외치는 아칸소 주지사의 얼굴을 조명한 비디오 장면은 지켜볼 가치가 있습니다. 그 순간 주지사는 자신이 속한 공화당이 더 이상 과학이나 민주주의를 믿지 않으며 트럼피즘이라는 바이러스가 모든 장기를 감염시켰다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트럼프 자신의 복귀여부는 실제로 부차적인 주제이나 트럼피즘이라는 질병은 이미 미국정치계의 절반을 차지하는 정당을 집어삼켰고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출처 : The Guardians(영국 가디언) on 2021-08-06.

Jonathan Freedland

가디언 지의 정치분야 정기 기고자

수, 2021/08/2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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