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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여론조사 결과, 시민들의 친일청산 문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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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여론조사 결과, 시민들의 친일청산 문제 인식

admin | 화, 2020/01/21- 02:41

[특집]

연구소 여론조사 결과,

시민들의 친일청산 문제 인식

박수현 사무처장 정리

 

일반 시민들은 친일청산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연구소는 지난해 11월 1일부터 4일까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친일청산 문제 전반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주요 결과를 <민족사랑> 경자년 새해 1월호 특집기사로 싣는다.
이 조사는 <친일인명사전> 발간 10주년을 맞아, 그간 한국사회의 친일청산운동 성과를 점검하고 향후 시대정신에 맞는 공익적・미래지향적인 친일청산운동의 방향을 모색한다는 취지에서 이루어졌다. 친일청산 문제가 핵심이지만, 이슈가 되는 다른 과거사문제도 설문조사에 포함했다.
설문조사는 전국의 만 19세 이상의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했으며,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조사방법은 웹조사 방식이다. 응답자는 성별・연령별・지역별・직업별・이념성향별 비례할당으로 추출했다.

설문 문항은 40여 항목이며, 이를 주제별로 나누면 크게 4가지다. (1)친일청산 체감도 및 친일파 인식, (2)사회지도층의 친일문제, (3)<친일인명사전>과 연구소에 대한 인지도, (4)기타 과거사문제 해결 방향 및 뉴라이트에 대한 생각 등이다. 다음은 주제별 주요 설문결과와 분석 내용이다.

 

친일청산 체감도 및 친일파 인식

시민 10명 중 8명, 한국사회의 친일청산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 가장 미흡한 분야는 정치, 경제, 교육 순

시민 대다수는 해방 후 지금까지 친일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0명 중 8명 이상이 친일파 처벌은 물론 일제잔재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친일행위에 대한 진상규명도 미흡하다고 답했다. 민주화 이후 친일청산운동이 꾸준하게 전개되었음에도 그조차도 대다수 시민들은 체감하지 못했거나 미흡하다고 평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친일청산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친일청산이 가장 미흡하다고 생각한 분야(중복 허용)는 정치 75.8%, 경제 53.9%, 교육 47.4%, 언론 44.7%, 사법 43.7%, 군경찰 43.4% 순이었다.
또 많은 시민들은 친일파를 과거의 역사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상황, 현실 정치와 연계해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주관식)에 ‘자유한국당・’ ‘아베’ ‘나경원’ 등의 답변이 높은 빈도수를 차지했고, ‘친일파’ 하면 떠오르는 인물을 묻는 질문(주관식)에 대해서도 ‘나경원’ ‘이명박’ ‘박근혜’ 등 최근의 정치인이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사회지도층의 친일문제

시민 10명 중 7~8명, 사회지도층의 친일행위는 개인의 영달을 위한 적극적인 친일 … 더욱 엄격히 책임을 물어야

사회지도층의 친일행위에 대해서는 시민 10명 중 7명(72.2%)이 개인의 안위와 성공을 위한 적극적인 친일로 평가했으며, 지금까지 친일파를 옹호하는데 가장 많이 등장했던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은 18.1%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시민 10명 중 8명(82.7%)이 사회지도층의 친일행적을 더 엄격히 따져야 한다고 답했다. 이들에 대한 기념사업에 대해서도 10명 중 8명(81.3%)이 중단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현재 국립묘지에 안장된 지도층 친일인물에 대해서도 10명 중 7명(74.4%)이 이장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또한 아무리 국가적으로 기여한 공로가 있더라도 친일행위를 했다면 서훈을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10명 중 6명(65.6%)으로, 서훈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24.4%)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사회지도층의 친일문제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문화예술계 친일인물에 대해서는 그들의 작품을 교과서에 수록하는 것에 과반이 약간 넘는 사람만이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58.2%)을 보여, 다른 분야의 친일 지도층에 비해 비판의 강도가 낮았다. 이는 문화예술계 인물과 작품에 대한 오랜 기간의 학습효과와 고정관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친일인명사전>과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한 인지도

<친일인명사전>,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데 일조 … 박정희・김성수・방응모 등 지도층 인사의 수록은 적절.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한 인지도, 젊은 층일수록 낮아

<친일인명사전>에 대해서는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나, 사전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상당수에 달했다. 전체 응답자 중 사전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29.7%였지만, 여기에 <친일인명사전> 이름은 들어서 알고 있다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인지도는 78.8%였다. 내용과 상관없이 <친일인명사전>의 인지도는 꽤 높게 나타난 것이다.
사전 평가에 대해서는 시민 10명 중 6명 이상이 긍정적으로 답했다. 사전이 친일문제를 공론화하는 여건을 마련했다는 의견에 62.3%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데 일조했다는 의견에 62.1%가, 민족과 국가에 중대한 과오를 저지르면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는 교훈을 남겼다는 의견에 62.7%가 동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전의 내용과는 별개로 인지도만으로 사전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사전에 대한 사회적 평판, 친일청산에 대한 기대와 희망 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박정희・김성수・방응모・김활란・이광수・최남선・장면・유치진・홍난파・현제명 등 유명인사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것에 대해서도 적절하다는 의견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히 그동안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한 보수층은 이들이 사전에 수록된데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보수층도 사전 수록에 찬성하는 의견이 많거나 찬반이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박정희의 경우는 사전 수록에 대한 보수층의 의견이 찬성 32.4%, 반대 50.1%, 모름 17.5%로, 다른 인물들에 비해 반대가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까지 보수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우상화 현상까지 나타났던 것에 비하면, 이 조사 결과는 박정희 평판에 대한 보수층의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해서는 시민 27.6%가 알고 있다고 답했으며, 이름만 들어봤다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인지도는 65.5%였다. 주목되는 것은 연구소를 알고 있다는 응답자의 이념성향별 분포다. 진보층 40.4%, 보수층 25.5%, 중도층 22.1% 순으로 진보층이 가장 많았지만 예상과 달리 과반을 넘지 못했다. 반면 보수층은 중도층보다 연구소를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그 의도가 무엇이던 간에 연구소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젊은 층일수록 연구소에 대한 인지도가 낮다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연구소를 알고 있다는 응답자 가운데 60세 이상이 34.4%로 가장 많았고, 50대가 33.1%, 40대가 26.6%, 30대가 25.8%, 그리고 19~29세가 13.8%로 가장 적었다. 특히 19~29세의 인지도는 다른 연령대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연구소의 장기적인 활동 방향이나 전망과 관련해 반드시 참고 해야 할 내용이다.
연구소를 알게 된 계기 및 활동에 대해서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가장 많았고, 이어 친일인물 훈장 취소, 교과서 왜곡 및 국정화 반대운동, 친일인물 기념사업 반대 등의 순이었다.

 

 

과거사문제 해결 방향 및 뉴라이트에 대한 생각

과거사문제 해결이 사회통합과 발전에 도움. 뉴라이트의 주장에는 동조하지 않아, 과거사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행위는 법으로 처벌해야

과거사문제 해결 방향 및 뉴라이트의 역사왜곡에 관해서도 설문조사를 했다. 우선 과거사문제 해결이 한국사회의 통합과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65.8%가 도움이 된다고 응답해, 상당수 시민들이 과거사 문제 해결이 한국사회의 통합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사 청산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는 1,2순위를 합해 일본의 역사왜곡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52.7%),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설치해 정부차원에서 과거사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51%)이 그 다음이었다. 또한 시민 사회의 역할에 대해서는 1,2순위를 합해 일본의 역사 왜곡(위안부, 역사교과서 문제 등)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응답(64.1%)이 가장 많았으며, 친일 진상 규명(35.1%), 시민 홍보(29.3%), 역사교육 강화(26.3%) 등의 응답이 뒤를 이었다.
최근 논란이 된 뉴라이트의 ‘식민지근대화론’이나 ‘반일 종족주의’에 대해서는 38.2%가 알고 있다고 응답했으나, 11.1%만이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나 뉴라이트의 영향력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시민 10명 중 7명(70%)은 과거사를 노골적으로 부정하고 폄하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유럽의 경우처럼 법을 만들어 처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응답해, 과거사 왜곡과 폄하에 대해서는 대다수 시민들이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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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시민사회, 국정 역사교과서 저지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인 5월 31일 관보 게재를 통해 국정 역사교과서를 공식적으로 폐기했다. 이는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저지넷)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 학계의 끈질긴 투쟁의 결과였다. 저지넷은 485개 단체로 구성되었으며, 연구소가 사무국을 맡았다. 교육부는 새 정부 출범 직전까지도 국정교과서 연구학교를 지정하고 보조교재 배포를 시도하는 등 꼼수를 멈추지 않았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연구학교로 선정된 경산 문명고등학교마저 거센 반대에 부딪혀 결과적으로 국정 역사교과서 채택은 완전히 무산되었다.

 

식민지역사박물관건립운동, 국내외에 큰 반향

2016년 8월 29일 국치일부터 본격화한 식민지역사박물관건립운동이 2017년에 들어 국내외의 성원에 힙입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여기에는 일본과 미국의 해외동포는 물론 연구소의 취지에 공감하는 일본 시민사회도 적극 동참하였다. 특히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은 일본 각지의 시민과 단체로부터 1천만 엔 이상을 모았고, 1만여 점의 자료를 수집해 연구소에 전달하였다.

 

미국 3대 도시에 연구소 지부 결성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운동에 발맞추어 11월 미국의 3대 도시인 워싱턴 뉴욕 LA에 연구소 지부가 결성되었다. 미주 지부 창립식 및 준비위원회 결성식에는 임헌영 소장과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에 창립된 워싱턴지부(윤흥로 이사장, 박진영 지부장)와 LA지부(정찬열 지부장, 김창옥 사무국장), 2018년 3월 창립 예정인 뉴욕지부(이춘범 이사장)는 친일 청산운동과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 적극 동참하고 현지 교민들을 대상으로 한 역사교육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일제식민지통치기구사전: 통감부•조선총독부 편 출간

2012년부터 5년여의 작업 끝에 『일제식민지통치기구사전: 통감부•조선총독부 편』이 출간됐다. 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한 이후 오랜만에 펴낸 소중한 학술 성과다. 여기에 실린 통치기구는 통감부•조선총독부 본부와 소속관서(총 248개의 기구)로 각 항목마다 존속기간•성격•연혁•조직과 기능•참고문헌 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통감부와 조선총독부 기구를 총체적으로 다룬 사전은 이번이 처음으로 일제강점기 정책사•제도사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되고 나아가 식민통치의 구조와 식민지배의 본질을 해명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항일음악회 성황리에 열려

연구소와 근현대사기념관은 12월 18일 서울 강북문화예술회관에서 ‘항일음악회-다시 부르는 독립의 노래’를 개최했다. 고 노동은 교수가 집필한 ????항일음악 330곡집????에서 ‘광복군 아리랑’ ‘안중근 옥중가’ ‘압록강행진곡’ 등 11곡을 선곡하여 장사익, 노브레인, 오단해, 두레소리 합창단 등이 노래하였다. 800여 청중의 열띤 호응 속에서 잊혀졌던 항일음악을 되살리고 독립투사들의 치열했던 항일정신을 기린 뜻깊은 자리였다.
한편 연구소는 10월 27일부터 12월 18일까지 고양 창원 대전 광주 부천에서 ‘촛불 1년, 다시 부르는 항일의 노래’ 토크 콘서트를 순회 공연하였다.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기금 마련과 항일음악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기획된 이 공연에 이야기 손님으로 이재명 시장, 노회찬 박주민 의원, 김광진 정청래 전 의원이 초대되어 ‘촛불혁명과 우리 시대의 적폐청산’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11회 임종국상 학술부문 조재곤 박사, 사회부문 한상권 교수 수상

11월 10일 제11회 임종국상 시상식이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렸다. 학술부문에는 러일전쟁을 한국인의 관점에서 재조명한 『전쟁과 인간 그리고 ‘평화’-러일전쟁과 한국사회』를 저술한 조재곤 박사가, 사회부문에는 오랜 기간 역사정의실천연대와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의 상임대표를 맡아 교학사 한국사교과서 보급과 한국사 국정교과서 도입을 저지한 한상권 교수가 선정돼 수상의 영예를 누렸다.

 

박정희 관련 명예훼손 소송, 모두 승소

1월 25일, 연구소가 박정희혈서조작설을 유포한 강용석 변호사,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 일베회원 강모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각각 500만원, 300만원, 300만원을 연구소에 배상하라는 항소심의 판결을 확정했다.
12월 12일에는 문퇴본(문재인정권 퇴진촉구 애국의병혁명본부)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방모씨를 상대로 한 박정희 합성사진 조작 관련 명예훼손 소송 2심에서 서울북부지방법원은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고 연구소에 500만원을 배상하도록 결정했다.

 

‘기록으로 보는 3•1혁명’ 심포지엄을 통해 3•1혁명의 의미를 재조명해

연구소는 6월 1일 근현대사기념관 개관 1주년 기념으로 덕성여대 인문과학연구소 지역문화연구센터와 공동으로 ‘기록으로 보는 3•1혁명’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함흥법원 검사의 기소자료와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카드 등 기존 연구에서 다뤄지지 않은 자료를 활용하여 3•1혁명의 새로운 양상을 도출하였고, 운동보다는 혁명으로 명명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여 3•1혁명의 역사상을 한층 풍부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2회째 맞은 ‘평화의 촛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 야스쿠니반대촛불행동

8월 12일 일본 도쿄의 한국YMCA에서 열린 야스쿠니반대촛불행동 행사에 무단합사 피해자 유족들을 비롯하여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한국위원회 사무국을 맡은 연구소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관계자들이 참가했다. 이 행사는 2006년 8월부터 한국 타이완 오키나와 일본의 시민들이 침략신사 야스쿠니를 반대하고 동아시아 평화를 염원하기 위해 매년 개최해왔다.
한편 6월에는 그간 보추협의 숙원사업이었던 강제동원피해자유족증언집 『빼앗긴 어버이를 그리며』가 출간되어 유족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근현대사기념관, 다채로운 강좌로 학생•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어

연구소가 2016년부터 위탁 운영하고 있는 근현대사기념관이 시의적절한 다양한 주제의 강좌를 개최하여 학생과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7월 25일~28일 진행된 ‘영화로 배우는 일제강점기’ 강좌에서는 최근 흥행한 영화 <밀정> <암살>과 강제동원문제를 다룬 <안녕 사요나라> <군함도>를 소재로 삼아 연구소 상근자들이 강사로 나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강제동원 피해실태를 생생하게 설명했다. 이밖에도 ‘저항과 협력-식민지 지식인의 엇갈린 선택’(3~6월) ‘역사의 길에서 민주주의를 묻다’(6~7월)와 ‘순례길의 독립운동가’(9월) 등의 강좌를 열어 독립전신과 민주의식 고양에 앞장섰다.

목, 2018/01/2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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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소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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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항 위안소구지진열관 안에는 할머니가 된 소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답사단의 소녀가 그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청년백범이 주최하고 민족문제연구소가 후원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역사기행’이 10회를 기록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상하이를 시작으로 자싱, 하이옌, 항저우, 난징을 찾아가는 일정이다. 이번에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여든이 넘으신 민문연 이광찬 회원과 이윤 회원 등 17명이 다녀왔다.
이봉창 의사가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문을 두드렸던 상하이시기 마지막 임정 청사. 의열단원 오성륜・김익상・이종암 의사가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를 저격한 황포마두. 김구 선생 어머니가 먹을 만한 것을 고르기 위해 중국 사람들이 다듬고 버린 채소더미를 뒤지던 골목길. 아직도 조국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독립운동가들의 유골이 흩어져 있는 송경령능원(상하이 외국인묘지였던 만국공묘의 현재 명칭). 김구 선생이 이봉창ㆍ윤봉길 의사 의거 후 일제의 추적을 피해 중국 뱃사공 주애보와 살았던 자싱의 피신처. 시진핑 주석이 저장성 당서기 시절에 찾아왔던 하이옌의 김구선생피난처. 중국의 ‘국가급 항전시설 및 유적지’로 지정된 항저우 서호 옆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김원봉 선생이 청년들을 모아 군사훈련을 했던 난징 산골의 천녕사, 여운형・조동호・김마리아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이 다녔고, 민족혁명당 창당식을 거행했던 난징대학교.
중일전쟁시기 일제가 난징 시민 30만 명을 학살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든 남경대도살조난동포기념관(南京大屠殺遭難同胞紀念館). 난징총독부에서 500미터도 안 되는 곳에 동양 최대 규모의 위안소를 만들어 놓고, 눈앞에서 벌였던 그 잔인한 짓을 지금도 인정조차 하지 않는 일본의 무모함에 말을 잃어버리게 되는 곳 리제항 위안소구지진열관. 그곳에는 끌려온 어린 소녀가 할머니가 되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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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 천녕사 앞에서 기념촬영

 

옛날 의병전쟁을 하시던 분들의 머리에는 꽃이 피었다고 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산과 들에서 몇날 며칠을 씻지도 못했던 그분들의 머리에, 바람에 날려 씨앗이 꽂히고 그것이 꽃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현실의 몸은 거칠고 고단했지만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꽃으로 기억돼야 하는 역사다. 우리가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그분들 같은 삶의 길을 갈 수 있었을까? 다시는 그런 삶을 걸어야만 하는 시대가 와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그분들을 잊지 않아야 하고, 그분들이 걸으셨던 길을 따라 걷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화, 2018/03/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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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조민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장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

 

북한은 지난 7월 두 차례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마침내 미국 본토 타격 가능성이 현실화되었다. 동북아 전략 구도의 게임체인지 순간이 다가왔다.
ICBM은 현대 군사 기술의 집약체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속옷도 제대로 못 만드는 북한의 ICBM 개발이 미스터리라고 하면서, 성공 요인을 크게 세 가지로 봤다. 첫째, 지난 수십 년 간 ICBM 관련 과학자들을 꾸준히 관리했으며, 둘째 스스로 확보한 비공식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를 활용해 미사일 개발 비용을 감당했고, 마지막으로 김정은이 미사일 개발에 정권의 사활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연합뉴스???? 2017.7.10).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는 워싱턴포스트 분석보다 뿌리가 더 깊다.
북한은 사회주의 붕괴 이후 고립무원의 외톨이가 됐다. 이에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에 올인했다. 모든 국가자원을 다 쏟아 부었다. 북한 스스로 핵개발 의도를 미국의 핵위협 대처, 재래식 무기의 엄청난 비용 부담에 따른 코스트 측면에서 핵개발, 그리고 민족통일의 원동력 구축임을 밝히고 있다. 북한의 ‘피포위 의식’과 미국의 대북 핵위협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통일 무기로서의 핵’이라는 데에 북핵의 본질을 정확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의 북한 비핵화 전략은 실패했다. 왜 실패하고 말았는가?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우려하면서도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가 군산복합체 입장에서 달갑지 않은 상황일 수도 있었고, ‘불량국가’와의 협상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제국 미국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미국은 좀체 북한과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체결의 세 이벤트가 주목된다. 그해 말 전술핵무기가 철수되었다. 독일 통일(1990.10.3)을 전후하여 한소수교(1990.9.30), 한중수교(1992.8.24)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북한과 미일과의 교차승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92년 초 북한은 주한미군 주둔 용인을 전제로 북미수교를 요구했지만, 미국은 거절했다. 그러자 북한은 핵프로그램 추진으로 돌아섰다.

 

북핵, 협상 실패의 역사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몇 차례의 협상 타결이 있었다. 1994년 10월의 제네바 기본합의로 제1차 핵위기가 봉합되었다. 그러나 당시 클린턴 행정부와는 달리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의 발목잡기에 걸려 경수로 건설의 첫 삽을 뜨는데 3년 가까이 걸렸다. 1998년 8월 31일 대포동 미사일 발사로 다시 미국의 주목을 끌었다. 2000년 10월 12일 워싱턴의 「북미 공동코뮤니케」(US-DPRK Joint Communique)로 한반도의 새 역사의 장이 열리는 듯했다. 그러나 공동코뮤니케는 다음해 부시 대통령에 의해 찢겨지고 말았다.
2002년 10월 고농축우라늄(HEU) 핵개발 의혹으로 제2차 핵위기가 불거졌다. 우여곡절 끝에 다음해 8월 다자간 협상틀인 6자회담이 개최되어 커다란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2005년 「9·19 공동성명」으로 거의 완벽한 합의문이 도출되었다. 그러나 이 합의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북한 자금을 묶은 BDA(방코델타아시아)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자 북한은 다음해(2006.10.9) 마침내 제1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에 놀란 미국은 다시 북미 양자 협상을 서둘렀다.
2008년 6월 영변 5MW 원자로 냉각탑 폭파, 10월 테러지원국 해제 등 북핵 협상이 순항하는 듯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6자회담은 2008년 12월의 6차 회담을 끝으로 지금까지 열리지 않고 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김정일이 2008년 8월 스트로크(뇌졸중)를 맞았다. 갑자기 건국기념일(9월 9일) 행사가 취소되었다. 그러자 김정일 사망 관련 예측 보도가 봇물을 이루었다. 미국 정보기관을 중심으로 김정일 사망 후 대책이 얘기됐고, 미국과 한국에서 북한붕괴론이 크게 부각되었다. 학술 세미나, 언론은 호들갑을 떨었다. 미국은 협상 판을 걷어 치웠다.
김정일은 ‘유감스럽게도’ 3년이나 더 살았다. 그 3년 동안 중국과 러시아를 수차례 방문했고, 핵미사일 소요 첨단 소재와 장비들을 구입했다. 2009년 1월 김정은을 세습 후계자로 내세웠다. 김정일은 3년의 후견 기간을 통해 절대 미국을 믿어서는 안 되고, 핵미사일만이 살 길이라는 점을 확신시켜주고 떠났다. 김정일의 사망이 급변사태나 붕괴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북한 비핵화, 2단계 접근
미국은 본토 침공을 두 번 당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1941.12.7), 2001년의 9․11 테러가 그것이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언어폭탄으로 미국 시민의 충격은 크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는 사실상 전략적 무대책으로 실패했다. 그렇다고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 예방전쟁(preventive war) 카드를 함부로 휘두를 형편은 못된다.
북미 간 치킨게임이 진정 국면에 들어서는가? 북한의 협박 자제와 한미연합훈련 축소로 일단 긴장국면을 넘긴다면, 이제 본격적인 협상 모멘텀을 찾아 나서야 한다.
2단계 접근이 가능하다. 1단계는 위기 봉합과 핵·미사일 상황 악화 방지에 초점이 있다. 이는 ‘동결 vs 제재·압박 해제(완화)’의 맞교환이다. 2단계는 장기전망 구도 위에서 ‘핵폐기 vs 평화체제’ 협상틀이 예상된다. 1단계 진입이 쉽지는 않지만, 협상 이외에 다른 길이 있겠는가?

편집자주 – 이 시론은 8월 25일 접수된 글이라 이후 북핵 위기의 변동 사항이 반영되지 않았다.

월, 2017/09/25-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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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섭 지도위원 제63차 자료기증, 도서와 문서류 총 20점 보내와
2월 28일 심정섭 지도위원 겸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이 63번째 자료를 기증했다. 주요 자료는 공무여행증명서, 1940년도 소작료납입고지서 등 문서류와 일제강점기 농업교과서 등 도서류다.

조영숙 회원(도쿄지회 총무) 자료 기증
2월 1일 조영숙 회원이 지난해 재일동포들의 고단한 삶이 묻어있는 자료에 이어 남편의 자료 5점을 기증했다.

이건제 회원 자료기증
2월 20일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을교주했던이건제회원이「노동자신문」(1989~1996)과 도서 16권 등 총 464점의 소장자료를 기증했다.
귀중한 자료를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 자료실 안미정

월, 2018/03/2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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