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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람의 지혜와 무심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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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람의 지혜와 무심의 공존

admin | 월, 2020/01/20- 21:16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

1972년 로마클럽의 보고서 『성장의 한계』가 발표된 이후, 경제성장 위주로 달려오던 현대 문명이 지속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구환경이 더는 인류문명을 지탱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문명의 방향을 전환하지 못하면 인류가 지속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졌다. 이러한 환경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의 한 결과로 ‘지속 가능한 발전’ 개념이 1987년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의 보고서 ‘우리 공동의 미래’에서 제안되었다.

이 지속 가능한 발전 개념을 사람들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해하고 있다. 한 극단은 지식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 무한의 경제성장을 지속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하는 방향이며, 다른 한 극단은 지구, 정확히 말해 인류를 위기에 봉착하게 할 경제 성장을 중단하고 지구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준 내로 경제규모를 한정함으로써 인류도 지속되도록 하는 방향이다. 현실에서 각각의 집단이나 개인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 양 극단의 스펙트럼 중 어느 한 지점으로 각자 이해할 것이다.

무한 경제 성장의 욕구를 담보하는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의 개념이 이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 수식어가 제안되었으며,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 언급될 때 대부분의 경우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의 해석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많은 논의에서 추구하는 바는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이라 볼 수 있다. 이 경우 지속 가능한 발전에서 ‘생태’가 중심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선 시민의 의식과 행동이 변해야 한다. 의식과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방안의 하나는 교육이다. 이러한 목적의 교육 중 하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큰 줄기인 생태 개념을 시민이 이해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행동으로 실천하도록 하는 생태교육이다. 하지만 생태교육의 개념에 대해 아직 명확한 정의가 확립되어 있지 못하다.

 

생태교육의 정의

생태(ecology)의 뜻은 학문으로서 생태학(ecology)의 정의가 생태학자의 수만큼 다양한 것처럼 이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마다 다르다. 인간의 개입이 전혀 없는 순수 자연의 상태나 그 속성을 전제하기도 하고, 인간에게 전혀 위해가 되지 않는 환경의 상태를 전제하기도 한다. 인간에게 위해가 되지 않는 상태는 인간 개입이 없는 자연이 순수하고 안전하다는 사고에 기초를 두고 있을 수도 있고, 위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인간이 철저하게 개입해야 한다는 사고에 기초를 두고 있을 수도 있다. 후자에서 인간의 개입은 전자의 순수 자연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의 훼손 행위를 방지하는 개입일 수도 있고, 인간이 자연을 적극적으로 안전하게 개조하는 개입일 수도 있다.

자연 개조를 옹호하는 관점에서의 생태 용어 사용은 생태농법에 대한 인식에서 볼 수 있다. 생태농법으로 생산된 농작물이 인간 건강에 좋다는 관념은 인간을 위한 식량생산의 도구로 자연을 이용하면서 인간 건강에 좋도록 자연을 개조하는 개입을 정당화하고 옹호할 우려가 있다.

그러나 생태교육에서 말하는 생태는 순수 자연을 전제하며 무한의 물질순환을 통한 생태계의 지속성 개념에 바탕을 둔 개념으로 규정될 수 있다. 생태계는 개별 구성원인 종보다는 구성원들이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는 전체로서 하나의 계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즉 생태교육에서 생태계는 인위적인 개입 없이 무한히 지속될 수 있는 물질의 순환계로 여겨진다. 에너지는 생태계 외부에서 안으로 흘러 들어와 생태계 내 생물구성원의 연결망(관계)을 통해 전달되다가 외부로 흘러 나가는 일방향의 흐름을 보여주지만, 물질은 생물공동체 밖의 무생물 구성원에서 생물공동체 내로 들어와 생물 구성원의 연결망을 통해 전달되다가 공동체 밖의 무생물 구성원으로 되돌아가며 생태계 내에서 무한히 순환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생태교육에서 생태는 인위적인 개입, 즉 에너지의 투입 없이 무한히 순환하는 상태나 속성을 말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생태 개념에 기초한 생태도시는 환경에 위해가 발생하지 않는 자연 순환의 도시로서 지속 가능한 발전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생태도시에서는 생태위기를 초래하지 않고 도시 문명이 지속되면서 자연 생태계의 생물상도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것이 이상적으로 전제된다.

이처럼 생태교육에서 생태란 인간 문명 내에서 무한의 순환에 저해가 되지 않도록 인간 이외의 생물 구성원뿐만 아니라 인간까지 포함한 모든 생태계의 구성원이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며 공존하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생태의 정의에 기초한 생태교육은 순수 자연이 무한의 순환을 하듯 인간과 자연이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며 인간 문명이 지속될 수 있는 시민의 행동 양식을 익히게 하는 교육으로 정의할 수 있다. 생태계의 원리에 대한 이해, 즉 생태주의에 이념적 바탕을 두고 있는 생태교육은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관계를 인식하고 인간이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가르치는 교육이라는 점이 강조되기도 하다.

요컨대 생태교육은 일차적으로 현대 문명의 지속 불가능성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자연 생태계의 원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시민의 생태소양을 높여 생태주의 이념으로 무장된 생태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으로 규정될 수 있다. 이 생태교육의 목적은 생태시민이 인간 이외의 생물구성원뿐만 아니라 인간 사이의 유기적 관계에 기반을 두고 행동하도록 함으로써 현대문명이 자연과 공존하고 지속 가능하게 하며 인류공동체 구성원들도 평등하게 공존하도록 하는 것으로 규정될 수 있다.

 

통합적 생태교육

20세기 후반부터 융‧복합적 또는 통합적 접근이 중요시되고 통합적 접근의 교육이 강조되면서 공통과학이나 공통사회 교과목이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도입되었고, 생태교육에서도 통합적 교육의 요구가 높아졌다. 자연과학과 기술과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가치관 변화와 사회 제도와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 생태시민의 개별 행동과 사회행동이 교정되도록 하는 데 기반이 되는 생태교육은 통합과학이나 통합사회를 넘어 전 분야가 통합하는 접근이 더욱 절실하다.

‘통합’은 표준대국어사전의 정의를 참조하면 ‘둘 이상을 하나로 합치는 일’로 교육에서는 ‘학습자의 경험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학습결과를 종합하고 통일하는 일’로 규정될 수 있다. 따라서 ‘통합적 접근’은 ‘경험을 중심으로 형성된 가치관과 태도에 바탕을 두고 다양한 분야의 시각에서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을 분석하고 종합하여 통일된 해석과 결론을 내리는 접근’으로 규정될 수 있다. 통합적 접근을 통해 개인의 가치관과 태도는 조정 변경되고, 조정된 가치관과 태도에 따라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개인의 반응, 즉 행동이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통합적 교육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명쾌한 해답이 없다. 고등학교에서 형식적인 문∙이과 통합교육과정이 도입되었고 대학에서도 여러 분야에서 통합교육이 시도되고 있지만, 실제 교육내용이나 방법은 단순한 메들리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통합교과목이라는 명목 하에 한 교과목에 다양한 분야를 넣어놓고 한 교사가 가르치거나 다양한 전공 교사들이 연이어 가르친다고 통합적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분야를 학습하며 형성된 다양한 시각으로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을 분석하고 통합할 수 있게 훈련시키는 교육이 진정한 통합적 교육이다. 각 분야를 폭넓고 심도 있게 가르침으로써 배양된 학습자의 다양한 시각이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을 한층 더 심도 있게 분석하고 해석하며 통합할 수 있다. 이렇게 분석되고 해석된 결과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충을 종합적인 틀에서 포괄하여 차이를 줄이고 조화로운 통일을 만들어가는 통합 훈련을 하는 것이 진정한 통합교육이 될 것이다.

생태교육은 이러한 진정한 통합적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교육이다. 환경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일차적인 단순한 해석들이 서로 상충되더라도 개인 또는 사회는 하나의 실천적 결론을 강제적으로라도 내려야 하며, 그러한 훈련이 이루어지는 교육이 생태교육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통합적 결론을 내려야 하는 사례를 들어보자.

자동차의 연비를 개선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가정하자. 우리는 이러한 기술 개발을 친환경적이라거나 생태적이라고 일컫는다. 그런데 연비가 개선된 차를 소유하게 된 개인은 친환경 기술이 개발되기 이전보다 운행의 경제효율이 개선되어 운행 시간과 거리를 늘리기 때문에 연료의 소비량이 늘어나고 실제 배출되는 공해기체도 늘어날 수 있다. 낮은 연비 때문에 자동차 소유를 꺼렸던 사람도 자동차 운행의 경제효율이 개선됨에 따라 자동차를 구입하고 운행에 합류함으로써 사회적으로 공해기체의 배출총량이 친환경기술 개발 이전보다 훨씬 더 늘어날 수 있다. 게다가 늘어난 차량을 소화하기 위해 도로 수요까지 늘어 자연이 더욱 훼손될 수 있다. 실제 역사는 이러한 현상을 증명해왔다.

이와 같이 환경부담 감소라는 개별 기술의 분석이나 해석이 기술수요 증가라는 심리적, 경제적 사회적 분석이나 해석과 상충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상충을 해결함으로써 환경부담의 총량이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들게 하는 제도적 해결책을 생각해 보자. 단순한 접근으로 자동차 운행수요를 줄이는 방법은 연료가격을 올려 연비개선에 따른 운행의 경제효율을 이전과 같게 되돌리거나 오히려 개악하는 것이다. 그 결과, 자동차 운행이 유지되거나 감소함으로써 환경부담의 총량을 줄일 수는 있다. 그런데 이런 제도적 대응을 직간접으로 경험한 기술자나 회사는 연비를 개선하는 기술을 더는 개발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복합된 환경문제나 생태문제에 대한 문제 중심 혹은 과제 중심의 생태교육은 진정한 통합적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교육을 이끌어갈 교사를 어떻게 훈련하고 양성할 수 있는지의 난제가 있다. 과학, 기술, 사회, 인문 분야의 지식을 모두 갖춘 교사가 통합적 교육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지, 각 분야의 지식이 부족한 교사라도 통합적 접근의 교육을 이끌어 갈 수 있는지 명쾌하게 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지속 가능성의 생태학적 이해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개념이 중심이 되는 생태교육은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원리를 자연 스스로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생태계에서 찾으려 한다. 그런데 과거와 같은 경제성장 방식이 더는 지구에 부담을 주지 않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식하에 제안된 지속 가능한 발전이 인간에게 경제 성장을 중단하거나 축소하도록 경고하기보다는 경제 성장의 부작용을 줄이거나 없앰으로써 지속적으로 경제 성장을 키우려는 욕구를 오히려 더 자극하고 있는 듯하다. 그 결과 친환경 또는 생태 기술을 개발하여 지구 자원(물질과 에너지)의 소비가 계속 늘어나도록 하는 경제 성장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물질의 상을 변환하는 모든 에너지 흐름의 과정은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지구의 무질서도(엔트로피)를 높이며 최소한 인류의 지속성을 저해한다. 이러한 엄연한 우주법칙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인류 문명은 소비를 유지하거나 줄이기보다는 늘리는 방안을 생태계의 원리에서 찾으려 노력한다. 생태계는 열역학 제2법칙을 따르는 계이기 때문에 생태위기를 악화하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물질 소비와 에너지 소비를 늘리는 경제 성장 방안을 제공할 수 없다.

성장의 욕구를 채우려는 지속 가능성 요구와 열역학 제2법칙을 따르는 생태계의 본질은 서로 모순된다. 진정한 생태교육은 이러한 모순을 지적하고 우주의 법칙을 따르는 지속 가능성에 부응하는 인류 문명의 방향을 제시하여야 한다.

모든 생태학 교과서는 생태계 내의 무한한 물질 순환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생태계 내에서 생물공동체를 거쳐 순환하는 물질은 전체 물질 중 극미량에 불과하다. 거의 모든 물질은 저장고에 머물러 있다. 극미량의 물질이 생물공동체를 거쳐 순환하도록 하는 데 필요한 간접적인 에너지는 상대적으로 막대하다.

광합성을 통해 생물공동체가 직접 사용하는 태양에너지의 양은 지구에 유입되는 양의 0.023%에 불과한데 비해 지구 밖으로 반사되어 나가는 34%를 제외한 66%의 태양에너지는 극미량의 물질이 순환하는 생물공동체가 지속될 수 있도록 지구의 무생물 환경을 유지하는 데 쓰인다. 극히 적은 양의 물질과 에너지를 생물공동체가 직접 이용하고 나머지 거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생물공동체 밖에 머물기 때문에 지구는 생물공동체가 지속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의 반증은 제한된 공간에서 생물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실험이었던 ‘생물권 2’(생물권 1은 지구이므로) 실험이다. 1991년 미국 아리조나 주 남부 오라클의 사막지대에 1만2000㎡의 거대한 유리온실을 지구의 축소판인 바다, 습지, 열대우림, 사막, 초원 등과 3800여 종의 각종 동식물, 자원참가자 8명이 2년간 함께 지냈다. 그러나 제한된 밀폐 공간에서 생물공동체의 생명현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계속 증가하는 무질서도를 감당할 수 있는 거대한 무생물 공간이 없던 생물권 2는 지속되지 못하고 2년 만에 종료될 수밖에 없었다.

지속 가능한 생태계의 물질 순환은 생태계 내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며 지속 가능한 생물공동체가 이용하는 생태계 내 에너지도 극소 분량에 불과하다. 따라서 인간의 무한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지구 내 물질과 에너지의 소비를 계속 늘리는 지속 가능한 발전은 불가능하다. 지속 가능한 생태계의 원리는 인류 문명의 물질과 에너지의 소비를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할 때만 인류 문명이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은 물질과 에너지 소비의 팽창이 아니라 다른 수준의 질적 향상, 정확히 말하면 자연의 과정에 순응하고 조화를 이루며 한정된 수준 내의 물질적 풍요를 수용하고 만족하는 정신적 행복의 향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생태교육의 이념

물질과 에너지 소비를 지속적으로 팽창하려는 무한 탐욕은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 따라서 생태교육이 추구하는 지속 가능성은 인류 문명의 물질과 소비를 한정된 수준 이하로 제한하는 생태적 지속 가능성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인간 사회로 확장하는 논의가 필요하다.

(1)자기 절제와 타자 배려의 생태철학적 반성

많은 생물학과 인문사회학 책들이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을 생태계의 존속 방식인 것처럼 호도한다. 하지만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이 지배하는 생태계는 지속될 수 없다. 왜냐하면 강자가 약자를 초토화하고 박멸하여 강자가 취할 수 있는 약자가 더는 없어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강자로 비유되는 포식자의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포식활동을 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포식자는 약자로 비유되는 피식자에게 무심할 수밖에 없으며, 피식자도 그렇게 무심한 포식자에게 도피활동의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무심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포식자와 피식자는 한 생태공간에서 동시에 공존한다. 필자는 이러한 공존을 ‘모자람의 지혜(frugal wisdom)’를 바탕으로 하는 ‘무심의 공존(disinterested coexistence)’이라 명명하였다. (『이해하는 생태학: 인간과 자연의 본성을 찾아서』, 공주대 출판부, 2005)

이와 반대로 인간의 탐욕 때문에 일어나는 철저한 약자의 멸살로 공존이 무너지는 것을 ‘지나침의 무지(indulgent ignorance)’라 명명하였고, 그 결과는 인류 미래의 지속 불가능성으로 나타난다. (‘함께하는 사회의 구현: 4대강 사업의 이기적 탐욕과 생명경시 극복’, 『생명연구』45호, 2017)

절제하지 못하고 탐욕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인류는 자연과 공존하지도 못하고 인류공동체가 갈등 없이 함께하는 공동체가 될 수도 없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은 물론, 인류공동체의 갈등 없는 공존을 위해서 인류는 생태계가 보여주는 ‘모자람의 지혜’를 탐욕을 억제하는 자기 절제의 지혜로 깨닫고, 생태계가 보여주는 ‘무심의 공존’을 타자의 생존과 권리를 존중하는 타자 배려의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인류 문명은 모자람의 지혜와 무심의 공존을 토대로 자연이 보여주는 생태 평등(ecological equality, 정민걸, 위의 논문, 2017)을 인간 사회의 공동체에서도 구현하는 지혜로운 문명으로 발전해 가야 할 것이다.

(2)함께하는 생태시민의 자아실현

생태계가 지속되는 원리는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생태계가 붕괴될 수 있는 과도한 에너지 전환의 과정이 일어나지 않도록 작동하는 ‘모자람의 지혜’와 ‘무심의 공존’이다. 이 생태계 지속성의 원리는 물질과 에너지 소비의 무한한 팽창을 희구하는 인간의 무한 탐욕과 기술능력 과신으로 공존을 무너뜨리는 지나침의 무지와 대조된다.

따라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위해서 무한소비 탐욕의 발로인 지나침의 무지를 생태철학적으로 반성하고 소비를 생태적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한도 내로 절제하는 ‘모자람의 지혜’가 시민의 삶을 이끌어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소비가 절제된 이러한 시민이 생태시민이다.

생태교육은 생태계의 ‘모자람의 지혜’와 ‘무심의 공존’을 이념으로 지향하며, 학습자가 이런 이념을 체득함으로써 생태시민의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이러한 생태교육은 자연과 인간, 인류공동체의 생태 평등을 구현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

생태교육은 학습자가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인간의 탐욕에 비추어 그릇되게 이해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데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생태계는 ‘모자람의 지혜’로 ‘무심의 공존’을 구현하는 체계이기 때문에 생태계 내에서 능력이 모자란 구성원들이 서로를 관조하며 공존한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도 생태교육이 학습자에게 생태계 지속성의 바탕인 ‘모자람의 지혜’와 ‘무심의 공존’을 깨닫게 하고 자연에 대해 인간의 능력을 절제하고 생태계의 존재를 무심하게 관조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무한 탐욕에 빠져 타자를 배려하지 않는 인류공동체는 구성원 간 불평등의 심화로 구성원들이 지속적으로 함께할 수 없는 사회가 될 것이다. 따라서 자기 절제와 타자 배려의 바탕인 ‘모자람의 지혜’와 ‘무심의 공존’을 이념으로 하는 생태교육은 단순히 자연과 인간의 공존만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함께 하는 생태 평등도 구현하는 교육이다.

 

정민걸

공주대 환경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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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을 쓰는 과정에서 영화에 대한 중요한 아이디어와 논의를 해주신 인제대학교 통일학부의 안지영 박사님에게 감사드린다. 이 글은 북한영화전공자인 안지영 박사님과 농민의 직업세습과 영화를 주제로 한 공동논문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였으며, 영화관련 글에 안지영 박사님의 커멘트를 가져온 부분이 있음을 밝힌다.

최근 수년간 조선영화 제작은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유튜브에 올리는 조선영화들은 전례없이 많다. 빈곤 속의 풍요다. 김정일시대와 달리 김정은 시대에는 영화의 제작편수가 대폭 줄어들어 한 편 한 편이 더없이 귀한 상황에서, 유튜브에만 조선영화 풍년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제작되는 영화는 한 해에 한편이나 예술영화를 만들까말까 한다. 영화제작 편수가 대폭 줄었으니 김정은 정권의 입장에서는 아마도 인민에게 꼭 전달해야 할 메시지만 영화에 담을 것이다. 이 척박한 문화현실에서 당첨된 그야말로 ‘올해의 영화’다. 여러분도 유튜브를 통해 손쉽게 접근 가능하다. 최근 10년간 북한 김정은시대 포전담당제를 중심으로 한 농업개혁의 흐름을 배경으로 한 두 편의 농민영화를 소개한다. ‘분조의 주인’과 ‘벼꽃’이다. 김정은식 개혁국면이 막 시작하던 2012년도에 “분조의 주인(2012)”이 제작되었고, 개혁이 곤경에 부딪혀 개혁이 방향이 어긋나기 시작한 게 대략 2016년이후이니 2015년에 제작한 벼꽃(2015)은 개혁의 끝자락 쯤에 있다.

이 영화에서 농장을 이끌어가는 간부인 작업반장이나 분조장과 같은 말단 농촌관료들의 일태도는 외부자가 보기에도 상당한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 그러나, 문제는 농촌관료를 대신할 누가 있을까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달 것인가? 조선의 존망을 지고 가는 식량생산문제를 걸머질 주체가 없다면 개혁은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는 농민들이나 선동원이 책임을 지고 솔선수범으로 나서 당과 수령이 원하는 과학영농을 이루고 식량증산의 주체로 그려진다. 이게 북한당국의 꿈이자 속마음일 거다. 수많은 간부들보다 한 사람의 농꾼이 귀할 게다. 우리 조선영화 속 세상으로 한 번 들어가 보자.


사회주의를 향해 달리는 제 2 고난의 행군

김정은이 집권이래 처음으로 행한 대중연설은 2012년 4.15일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김일성 주석탄생 100주년 기념 열병식이었다. 그는 이 연설에서 인민들에게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겠다고 선포했다.【1】 이러한 결심은 2012년 6.28 조치와 2014년 5.30 담화를 통해 농업분야에서는 <포전담당책임제>, 공업분야에서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로 경제개혁의 두 축을 이루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에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2017년 대북제제강화를 필두로 9년이 지난 지금, 북미회담 결렬에 이어, 핵문제, 코로나, 북한관련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 그간 분분하게 논의되었던 우리식경제관리방식이나 포전담당책임제,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 등 북한경제개혁에 대한 논의와 기대, 희망섞인 관측과 평론은 사라졌고 지난 4월에는 세포비서 대회에서 제 2의 고난의 행군이 선언되었다. 8월 현재 2000년대 시장화 이후 가장 강력한 봉쇄와 고립의 사회주의 국면이 전개되는 중이다.

현재는 수령과 당, 인민들이 하나로 뭉쳐 다시 천리마 시대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구호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사회주의건설에 총력을 다하자는 식의 전쟁터로 휘몰아쳐가는 새로운 코로나/제재의 봉쇄국면이다. 김정은이 경제개혁에 박차를 가했던 시기는 불과 5년전으로 2012년~ 2015년도에 짧은 개혁기를 경과하였으며, 2017~ 2019년까지는 관리와 시장통제의 국면에 들어선데 이어 2020년부터 엄혹한 코로나 봉쇄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왜 이렇게 개혁은 사라졌을까?

 

포전담당책임제 개혁은 실종되었나?

오늘날 봉쇄와 사회주의 회귀의 국면에 당시 4년간(2012~2015년)의 개혁국면을 다시 한번 복기해보자. 김정은이 내세운 ‘우리식 경제관리의 핵심은 한마디로 하면 현장에 경영권한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박형중, 2013: 2)’【2】 김정은 시기에 가장 큰 갈등 중의 하나가 농업개혁, 즉 분조관리제에서 포전담당책임제를 둘러싼 기득권세력과의 투쟁이었다. 식량배정에서 우선순위를 가진 정권 특권기관 그리고 농촌관료들의 저항에 부딪히면서 농민들에게 생산의욕을 북돋우고자 한 개혁시도는 주춤해졌다. 2012년도에 시작하여 2013년도 약 1년간 엄청난 저항에 직면하면서 가족단위의 분조관리제(포전책임담당제)의 도입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으며, 농민:국가의 3:7제나 분조의 규모를 줄여 가족영농책임제 도입 등 당초 계획했던 원안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결국 농촌관료들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변형되어갔다. 심지어 농민들의 생산의욕을 높이고자 했던 포전책임담당제가 오히려 부자농민을 위한 제도로 변질되었다는 평들이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자유아시아방송, 2020, 3월 4일 보도). 【3】 “돈 있고 뒷배 있는 농민들에게 농경지가 집중 분여되면서 대부분의 가난한 농민들은 더 가난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필자 역시 직접 농장간부 출신 탈북민과의 면담결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포전담당제 실시를 했다고 하면 뭐 더 잘 살 수 있지 않느냐? 하는데 (농장원은)오히려 더 힘든 거죠. 국가에서 하라는 건 해마다 더 많아지고 그렇다고 해서 비료나 씨앗이나 뭐 살초제를 더 충분히 주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그럼 기일 안에…농장에서 비료를 주는데 씨앗도 주는데 다 빠듯하게 줘요. 그러면 잘 사는 집은 또 추가를 해서 넣을 거란 말이죠. 비료랑 또 이만큼 넣을 걸 이 사람들이 이만큼씩 넣으면 당연히 이 사람들(잘사는 집)이 더 크죠. 그런데 못 사는 집들은 주면 준대로만큼 넣어요. 그러면 이삭이 이만해요. 그러면 땅이 4 정보면 예를 들어서 수확물을 석톤 200kg을 바쳐야 된다면 이 집은 그게 안 돼요. 다 까보고 해도 안 돼요. 그러면 사는 집은 그나마 사는데, 못 사는 사람들은 더 못살게 되는 거죠. ” (농장원, 2017년 탈북, 2021년 4월 25일 필자면접)

한 여성 농장원이 전하는 포전담당책임제 이후의 농장의 현실은 한마디로 농촌에서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들간의 격차가 더 커졌으며 간부들의 힘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포전담당책임제 이후 잘사는 집(가구)들은 비료를 농장에서 제공하는 량에 추가로 더 사서 수확고를 올리지만, 못 사는 집(가구)들은 농장에서 주는 것만 넣는 바람에 수확량이 종전보다 줄어들었다. 돈이 많은 가구에 더 많은 땅을 분배하는 지역도 생겨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되었다.

 

식량 분배투쟁의 격화

물론 북한당국이 개혁을 통해 양극화라는 결과를 내고자 의도했던 것은 아니다. 박형중에 의하면, 북한 당국이 애초에 실시하고자 했던 분조관리제【4】의 개념은 두 가지 극단의 어느 한 지점에 있었다(박형중, 2013: 25). 한 극단은 가족단위 분조를 도입하여 수확물을 국가와 농민이 7: 3으로 나누는 약정하에서 농사의 자율을 분조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는 협동농장의 해체에 준한다. 다른 한 극단은 기존에 존재하는 협동농장 관료체계 간부의 기득권을 최대한 존중하고 농민통제를 손상시키지 않는 차원에서 분조규모만 축소하여 국가 대 농민의 분할비율을 7대 3으로 나눌 것을 약속한다. 두 개의 청사진 사이에서 분조관리제는 지역에 따라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편차를 가지고 시행되었다. 대체로 첫 번째 방향, 즉 협동농장의 해체 형태로 가기보다는 두 번째 방향, 즉 분조규모만 축소하는 형태로 점차 진행되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김정은시대에 농업개혁은 분조규모만 축소하는데 그쳤고 그 이상의 개혁으로 나아가지 못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결국 기존질서에서 상대적으로 이득을 얻어왔던 중간간부층이 자신들의 특권적 지위와 분배권 등을 없애는 분조관리제로의 개혁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간부들의 반대를 넘어서는 일이야말로 포전담당제로의 농업개혁을 위해 가장 중요한 고비였으나 김정은정권은 이를 넘어서지 못했던게【5】 아닌가 생각된다. 원래 공장이고 농장이고 할 것없이 간부들은 노동자나 농장원 수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편이다. 농장의 경우, 농장원 수가 200명이라면 초급당 비서를 비롯한 정치일꾼과 행정간부, 분조장 등만 40~50명에 달할 정도로 간부들의 비중이 컸다(박형중, 2013). 농업개혁을 완수하고 알곡생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간부 중 상당수를 줄이고 일하는 노동자의 수를 늘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으나 농촌관료들은 순순히 이를 수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기존 조직체계에서 권리를 행사해온 농장관리위원회나 농촌경영위원회 간부들 모두 분조관리제 도입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했고, 애초 농민의 생산의욕을 자극하여 수확량을 증가시키려는 농업개혁의 방향은 시작부터 관료집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6】

요약하자면, 포전책임담당제가 당초 국가가 목표한 개혁을 달성하지 못한 이유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개인농이나 가족농 중심으로 농업개혁이 이루어질 때 자신들의 직위가 없어질 것을 우려한 농촌관료층의 반대. 둘째, 농민 통제의 어려움이다. 농작물에 대해 개인의 처분권이 늘게 되면 간부들의 권한은 축소된다. 따라서 간부들이 농민들을 통제하기 어려워진다. 중앙의 지시나 방침들이 더 이상 농민들에게 먹혀들지 않는 사태를 예상할 수 있다. 셋째, 생산물 통제 문제. 농민들이 생산량을 속이고 빼돌리는 현상에 대해 적절히 대응할 방법이 없다 등. 이같은 세가지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면서 농업개혁은 2013년 말부터 제동에 걸렸고(박형중, 2013). 그 결과, 식량증산 의욕을 북돋우기 위해 전국적으로 힘차게 추진해야 할 포전담당책임제는 2014년에 이르면, 현장에 맞추어 진행되는식으로 축소되었다. 2021년 현재 포전담당책임제가 어떤 상황까지 왔는지 그 정확한 실상을 아는 사람은 없다. 지역에 따라 포전담당책임제 추진의 편차가 워낙 크고 실태도 다르기 때문이다.【7】

 

올해의 영화?

위에서 서술한 북한 김정은시대 포전담당제를 중심으로 한 농업개혁의 흐름을 배경지식으로 깔고 김정은시대에 제작된 두 개의 농민영화를 감상해보자. 개혁국면이 막 시작하던 2012년도에 제작한 분조의 주인(2012)과 개혁이 어려움에 부딪혀 개혁이 방향이 어긋나기 시작한 2015년에 제작한 벼꽃(2015)의 작업반장이나 분조장과 같은 말단 농촌관료들의 일태도가 안일하기 그지 없다. 과학영농을 기피하고, 기존의 하던 방식으로만 한다는 등의 비판이 영화에 나온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하겠다. 문제는 대안인데, 기존의 농촌관료를 대체하여 누구를 호명했는지가 관전의 중요한 포인트라고 하겠다. 김정일시대와 달리 김정은 시대에는 영화의 제작편수가 대폭 줄어들어 한 편 한 편이 더없이 귀한 상황에서 당국에서는 인민을 대상으로 꼭 전달해야 할 메시지를 담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 해에 한편이나 영화를 만들까말까한 척박한 문화현실에서 당첨된 그야말로 ‘올해의 영화’인 셈이다. 여러분도 유튜브를 통해 손쉽게 접근 가능하니 한 번쯤 감상해보자. 우선 2012년에 제작한 ‘분조의 주인’을 살펴보자.

충수염으로 쓰러진 분조장은 자신을 대리할 농장원을 주위를 둘러싼 농장원 중 찾다가 그만 의외의 선택을 하게 된다.

영상 1. ‘분조의 주인’ 중 충수염으로 쓰러진 분조장과 이를 바라보는 소영. <출처: [조선영화] 분조의 주인, 유튜브 영상>
2012년에 제작한 <분조의 주인>의 제작은 분조장이 과거의 관행에만 매여 형식주의, 허풍주의로 일관하다가, 도시에서 시집온 신참농삿꾼 소영이와 갈등을 빚는 단순한 프레임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평농장원인 소영이 쌀로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한 전쟁에서 분조의 주체로 나서서 무력하고 관행에만 젖었던 분조의 분위기를 혁신하는 이야기가 중심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분조의 주인(2012)’의 줄거리

도시에서 자란 제대군인 출신의 소영(여주인공)은 농촌 작업반 기술원과 결혼을 하여 농장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사실 도시 처녀가 농촌에 시집간다는 이런 설정 자체가 현실성이 없다고 볼 수 있겠으나, 연애결혼 끝에 도시 처녀가 농촌으로 결혼하러 간 사례를 필자도 2021년 올해 면접했으니 전혀 없는 일은 아니다. 기술원인 남편은 아리따운 아내가 농사짓기가 어려우리라 생각하여 분조장에게 부인을 특별히 배려해줄 것을 부탁(?)하고 이에 분조장은 호응하여 퇴비 만들기 목표에서 미달한 소영을 2톤의 목표를 완료한 것으로 배려한다. 소영은 사업총화에서 거짓을 했다는 죄책감에 밤늦게까지 일을 한다. 나아가 니탄을 퇴비로 사용하여 후민산 액체비료 원액을 만들자고 제안하는 등 당과 수령의 뜻을 받들어 식량증산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한다. 그러나, 남편과 분조장은 이런 소영의 행동을 모르는 것도 아는 척 하는 사람,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 앉을 자리 설 자리 못 가리는 사람으로 비난하며 소영과 분조장은 갈수록 사사건건 어긋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분조장은 아침 회의 중 갑자기 급성중수염(복막염)을 일으켜 구급차에 실려 가게 된다. 그 와중에서도 분조장은 분조의 일을 걱정하여 대리 분조장 직책을 뜻밖에도 소영에게 맡긴다.분조장이 병원에 있는 동안 소영은 군농기계사업소의 도움으로 무동력삭도를 개발하고 이를 이용하여 후민산 액체 비료원액을 만드는데 쓸 수 있는 니탄을 쉽게 옮겨온다. 이것을 본 분조장은 새로운 기술개발에 게을렀던 자신을 반성하며 소영과 손잡고 일하게 된다.

 

분조의 주인(2012)’의 주제의식

낡은 방식을 고수하는 구세대 농촌관료(분조장)을 비판하고 신세대 청년 농장원이 과학영농으로 식량증산의 주체이자 분조의 주인이 될 것을 촉구하는 세대교체 요구가 담겨 있다.

북한당국이 2012년에 ‘분조의 주인’을 제작했던 의도는 무엇일까? 부정인물과 긍정인물을 통해 의도의 일단을 추적해볼 수 있다. 농장에 소영이라는 제대군인 출신의 도시 처녀로 기술원과 결혼하여 농장에 들어오게 된다. 그녀는 농사는 처음이지만, 그녀는 열정적으로 식량증산을 위해 후미산 비료를 만들고자 하며, 이것은 수령과 당의 숙원인 과학영농사업의 실현이다. 소영은 긍정인물인 반면에,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농장을 이끌어온 강 삼 분조장은 부정인물로서 대립각에 서 있다. 강삼 분조장은 나름대로 성실한 인물이지만 기존의 방식만을 고집하다 시대와 당의 요구를 외면하는 부정적 인물이다. 반면에, 도시 처녀로 갓 농삿꾼이 된 청년 소영은 대극점에 선 긍정인물로 과학영농을 통해 당과 수령의 명령을 실현하고자 한다. 긍정인물인 소영은 부정인물인 분조장과 대립하다가 결국 분조장의 반대를 물리치고 비료의 원료인 니탄을 기계적인 방식으로 나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함으로서 즉 과학영농을 통해 비료증산을 성공시키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강 삼은 분조의 주인이란 농사경험이 아니라 당과 수령의 명령을 받드는데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현실세계인 농업개혁의 현장에서 기득권을 가진 농촌관료들과 평농장원 간의 갈등은 대단히 컸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영화에서는 이러한 갈등은 당과 수령의 명령에 따른다는 사상기조하에 쉽게 봉합된다. 두 사람의 갈등과 대립은 분조장의 반성과 분조장 충수염으로 쓰러진 상태에서 주위 농장원들을 둘러보던 중 분조장은 이제까지 나서기 좋아한다고 못마땅하게 여겼던 소영을 자신을 대리하는 분조장으로 세우는 사건을 통해 극적 계기를 맞이한다. 하필 왜 분조장이 병원에 실려가면서 하필이면 소영을 선택했을까? 그 이유는 소영이 당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나선다는 것을 강삼 분조장 자신이 알고 인정했기 때문이고, 영화 마무리에서 강삼 분조장의 입을 빌어 “농사경험이 많다고 해서 주인이 아니라 당정책을 심장으로 받아들여 관철하는 사람이야말로 분조의 주인”이라고 선언을 통해 분조의 주인을 정의한다.

아마 현실에서는 알곡 수확물의 분배와 경작권을 중심으로 날카롭게 대립되었던 간부와 농민간의 갈등은 이 영화에서처럼 아름답고 단순하게 봉합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포전책임담당제를 계기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던 평농장원들에 대처하여 간부그룹의 기득권이 개혁의 파고를 이기고 이들을 압도하고 제압했을 것이라고 상상해볼 수 있다. 갓 들어온 새댁 농꾼에게 밀려 분조장의 위신은 추락하고 반성하는 장면을 통해, 분조장으로 대표되는 농촌관료들에게 일종의 경고를 준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농업개혁을 추진해왔던 당국의 의지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농장운영의 기존 질서를 비판하되, 수령과 당의 명령을 받들어 식량증산의 지상과제를 농민에게 주고 쌀로 사회주의를 지킬 것을 강하게 요구하며, 농민들을 사상을 통해 통제하고자 하는 당국의 의지는 영화를 통해 전달된다.

<계속>

 

【1】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15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해 행한 대중 연설이다. 이 대목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인민 만난 시련을 이겨내며 당을 충직하게 받들어온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입니다.”에서 가져온 것이다.

【2】 박형중, 2013. <6.28 방침> 1년의 내용과 경과. 통일연구원 온라인 시리즈. 2p.

【3】 rfa, 2020, 3,4, 북 포전담당제, 부자 농민들을 위한 제도로 변질, “당에서는 분조관리제를 융통성 있게 실시해 알곡수확량을 늘이도록 농장간부들이 자율적으로 포전담당책임제를 실행토록 허용했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면서 “돈 있고 뒷배 있는 농민들에게 농경지가 집중 분여되면서 대부분의 가난한 농민들은 더 가난에 빠지게 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https://www.rfa.org/korean/in_focus/food_international_org/agriculturenk-03042020085343.html

【4】 분조관리제, 협동농장의 기층조직인 분조 단위에 기초한 협동농장의 내부관리 운영형태.분조관리제는 김일성(金日成)이 1965년 5월 강원도 회양군 포천협동농장을 현지지도하면서 처음으로 제시하였으며, 1966년부터 북한의 각 협동농장에서 실시되고 있다.북한은 분조관리제가 “농민들을 집단경리의 관리운영에 적극 참여시키는 훌륭한 생산조직 형태”라고 설명하면서 분조관리제를 실시하는 이유에 대해 “농업생산의 특성을 감안해 농민들의 자각성과 책임성을 높이고, 농업에 대한 국가의 기업적 지도를 철저히 하며, 사회주의 분배원칙을 관철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분조란 일정한 조직체에서 기층조직이나 기본조직의 아래에 조직하는 작은 단위를 말하는 것으로서 통상 협동농장에서 작업반 밑에 조직되어 있는 하부조직을 말한다.분조관리제는 협동농장의 각 분조(10∼25명)들에게 일정한 면적의 부침땅과 농기구, 부림소, 생산도구 등을 할당하고 이들에게 국가 생산계획에 준하여 수확고 계획과 노력일 투하계획을 설정해 준 다음 계획 수행 정도에 따라 노력일수를 평가해 주고, 이에 근거하여 분배를 실시하는 방법으로 운영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5】 정정현(2018). 북한의 협동농장 생산체제에 있어 분조관리제의 변화와 농업협력방안에 관한 연구. 협동조합경영연구 48: 130

【6】 한 중국 대북전문가는 김정은정권이 실시하는 분조관리제를 통한 농업개혁에 대해 협동농장 경영위원회와 관리위원회 전임간부들은 개혁을 방해할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자리의 축소를 우려하는 반면, 농장원들은 전임간부들이 줄지 않으면 자신들의 실제 분배 몫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7】 일부 농장들의 소식이 내부 소식통을 통해 흘러나오거나 농장에서 일하던 탈북민들을 통해 짐작해보는 수준으로, 아직 김정은시대의 농업개혁의 실태와 수준을 전국규모에서 명확하게 규명한 연구논문은 부재한 실정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본 글 역시 마찬가지이다.

 

김화순

화, 2021/09/14-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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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을 쓰는 과정에서 영화에 대한 중요한 아이디어와 논의를 해주신 인제대학교 통일학부의 안지영 박사님에게 감사드린다. 이 글은 북한영화전공자인 안지영 박사님과 농민의 직업세습과 영화를 주제로 한 공동논문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였으며, 영화관련 글에 안지영 박사님의 커멘트를 가져온 부분이 있음을 밝힌다.


벼꽃(2015)의 주제의식: 형식주의에 빠진 간부층을 비판하고 열성당원이 해야 할 일을 제시

작업반장으로 대표되는 낡은 농촌관료층의 농장관리행태를 비판하고, 선동원의 벼꽃 리더십을 중심으로 새로이 농장원들이 식량증산을 위해 하나로 뭉쳐가는 과정을 제시

2012년에 6.28 조치로 농업개혁의 모양을 구체화하기 시작였지만 개혁의 진전은 더뎠다. 2013년에는 외부관측자들에게는 거의 농업개혁이 중단되는게 아닌가 할 정도인 상황이었으나, 2021년 현재 안에서 흘러 나오는 이야기로는 관료들과의 타협 속에서 기득권은 인정되면서 농장은 계속 포전담당책임제가 형태를 달리하면서 실시되는 중인 것으로 보인다.

<영상 2> 벼꽃의 타이틀 롤. <출처: 유튜브 영상>

북한에서 개혁은 2012~2015년에 추진되었는데, 2015년에 제작된 유일한 예술영화이다.【8】 당연히 이 시나리오는 많은 영화 시나리오 중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에 대해 당의 수많은 검토를 거쳐 선정되었을 것이다. 농장에는 청년 동팔, 미경이, 비료를 연구하여 인정받고자 하는 광민이, 시장적인 마인드를 지닌 선화 등 각자의 욕망을 지닌 다양한 인물들이 농장공동체를 구성한다. 선동원 정임은 농사에 의욕을 잃은 농장원들과 신세대들의 이들의 다양한 욕구를 모아 쌀로 사회주의를 지키자는 당의 목표로 이끌어가는 변화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벼꽃(2015)의 인물과 줄거리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선동원 정임이다. 마치 붉은 선동원 리신자를 모델로 삼은 듯한 정임은 전국분조평가에서 제 1작업반을 우수분조로 이끈 열성적인 선동원이다. 그러나, 명예를 버리고 제일 뒤떨어지는 제3작업반의 선동원으로 스스로 배치를 원한다. 제3작업반에는 농장일보다 개인의 실리를 앞세워 과수생산에만 열을 올리는 비사회주의적인 선화, 장기간의 식물성 농약개발연구에도 별 성과가 없어 엉터리박사라 무시당하는 광민, 축구에 푹 빠져 작업반 꼴찌를 하는 청년 동팔이가 속해 있다. 정임은 이들의 애환을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집단노동에 충성을 다하고 쌀로 사회주의를 지키고 분조장과 분조원의 임무를 다하자고 선동하는 정임과 대립되는 인물은 기존 농업운영체계의 간부들과 선화와 같은 부정인물들이다. 특히 작업반장은 분조의 집단노동을 빠지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다른 일을 하는 선화의 뒷배를 봐주는 역할을 하는 부정적 인물이다. 둘 사이에는 모종의 돈거래가 존재한다. 분조장은 이도 저도 아닌 무력한 존재이다. 당비서는 농사짓는 아바이로 이 모든 것을 알지만 묵묵히 지켜보는 인물로 그려진다.

선동원 정임은 혼자 동분서주하면서 농장원들의 생산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는 헌신을 통해 농장원들의 마음을 사게 된다. 정임은 선화의 다친 아들에게 급히 수혈을 해주고 동팔에게는 축구와 관련한 책을 구해주고 그의 뛰어난 축구실력을 보여줄 기회를 마련하여 미경과의 연인관계를 인정받도록 미경의 아버지 작업반장을 설득한다. 비료를 연구하느라 가짜 박사라는 비웃음을 사는 광민에게도 연구에 적합한 실험환경을 마련해주어 비료발명을 성공시킨다. 정임은 그 소식을 별거 중이던 광민의 아내에게 전해 아내는 딸과 함께 집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해체위기에 내몰렸던 광민의 가정도 다시 회복된다. 농장은 이같은 농장원 한명 한명에 대한 돌봄과 노력을 다하는 정임의 헌신을 밑걸음으로 해서 분조원들은 다시 하나가 되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과정을 통해 변화해간다. 마침내 영화는 제 3작업반은 우수분조로 표창장을 받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기존 농장운영 방식과 기득권을 상징하던 작업반장조차 이제는 정임이 벼꽃과 같은 사람이라며 칭찬한다. 모든 사람들의 축복과 함께 동팔과 미경이 결혼하며 이를 통해 젊은 처녀 총각이 농사에 마음을 정착한다.

 

벼꽃 리더십: 천리마 시대 붉은 선동원【9】의 후신

일견 벼꽃의 선동원 정임은 천리마 시대에 리현리의 천리마영웅인 리신자의 분신이 소환한 것으로 보인다. 천리마시대에 리현리에서 활동했던 리신자는 붉은 선동원이라는 영화와 연극으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뛰어난 업적으로 갓 22살의 나이에 관리위원장으로까지 고속승진했고, 평양 농업국 경영위원장까지 올라갔다. 2021년 현재 북한 당국은 그를 살아있는 신화로 소환하고 있다. 반면 2021년에 새로 소환되는 선동원은 모든 농장원들을 섬기고 그들을 알아주되 자신은 죽이는 벼꽃같은 존재로 형상화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천리마정신은 집단주의를 향한 인간개조운동이자 생산량 증대운동이었다. 전체를 위한 하나가 어떻게 하나의 씨앗으로 자신을 희생함으로서 전체를 위할 수 있고 그러한 노력이 전체 인민들의 정신을 각성시키고 당시 대중을 격동시켜 생산의 열기에 나서게 한 대중운동이었다.

그러나, 1960~70년대의 천리마운동시기가 당시 감동적이었다고 할지라도 50년 전의 영광을 다시 불러낸다고 해서 과연 대중들의 심장을 뜨겁게 뛰게 할 수 있을까? 주인공 정임은 천리마 시대의 붉은 선동원을 소환한 캐릭터로 유명한 공훈 배우 윤수경이 주역인 선동원을 연기하였다. 북한당국의 속내는 두 가지로 추정된다. 먼저, 농업개혁이 농촌관료와 농장원, 그 외 관련자들에 의해 가능한 부드러운 방식으로 원만하게 진행되길 바랐을 것이다. 이를 위해 영화는 벼꽃 이미지를 농촌사회의 다양한 이해당사자 간 갈등을 완화하는 온건하고 통합적인 리더십으로 내세운 것이다.

<영상 3> <분조장의 임무>카드를 분조장에게 전하는 선동원 정임. <출처: 유튜브 영상 “벼꽃”>

그러나, 2015년 당시 격동기 농업개혁기 농장사회에서 들끓는 농촌공동체를 구심이 되어 끌어가는 리더십으로는 무기력해 보였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인물은 자신의 이익을 창출해가고 작업반장과 모종의 거래를 통해 다른 농장원들의 질시와 선망을 받는 선화라는 인물이다.

<영상 4> 붉은 선동원 리신자를 형상화한 예술영화. <출처: 조선중앙TV 특집 천리마시대의 녀성영웅들- 붉은 선동원 리신자 유튜브 영상>【10】

<영상 5> 영화 벼꽃: 비닐하우스 딸기소출을 계산하는데 골몰한 농장원 선화. <출처: 영화 ‘벼꽃’의 선화, 유튜브>

“뭐니뭐니 해도 지금 계절엔 딸기가 확실히 나아!” 주택의 온실에서 수확한 딸기가 얼마나 소득이 될지를 소형계산기를 두드리면서 계산에 골몰한 모습을 담았다. 김소영(2019)에 의하면 농장원들의 개인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비닐하우스 딸기를 도시의 상층들에게 공급 된다.【11】

농장원 선화는 집단농사에는 슬슬 빠지면서 자신의 텃밭에서 재배하는 딸기에 더 열을 올힌다. 작업반장은 이같은 선화의 뒤를 봐주고 교류하는 관계이다. 선화는 농장원이지만 자신의 주택 텃밭에 온실을 설치하여 딸기와 수박을 재배해 소득을 올리는 일을 한다. 선화가 재배하는 딸기는 그림과 같은 경로를 거쳐 도시 상층에게 공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영화에서 선화는 시장화와 개인주의에 물든 농촌의 새로운 계층을 대변하며, 작업반장이 선화가 집단노력 동원에 빠지는 것을 노골적으로 봐주는 장면은 농촌관료와 농촌 시장행위자들의 간의 모종의 거래가 있음을 암시한다. 북한영화의 체제선전 속성상 이런 비사회주의 행위장면을 담아냈다는 점, 영화에서 집단에서 벗어난 개인주의 행위에 대해 어떤 인과응보 처리없이 지나친다는 점도 의외의 지점으로 관전 포인트이다. 동팔 등의 다른 농장원들은 선화를 뒤에서 비난하면서도 마치 그녀를 선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처럼 영화는 선화라는 농촌 시장화를 대변하는 인물에 대해 시종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연애와 축구에만 열을 올리고 농사일은 슬슬 빠지는 신세대 전형적 인물인 동팔은 연모하던 처녀 미경과 결혼에 성공하면서 농사일에 마음을 주는 결말로 끝난다.

 

분배순위에서 밀린 농민들의 절박한 식량사정은 배제

영화 벼꽃(2015)은 개인 농사를 지어 시장에 파는 선화나 나 자유주의 분자 동팔과 같은 현실적인 인물을 담아내는 등 현실에 근접하려는 여러 시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영화가 과거에 인민대중들에게 가졌던 호소력을 잃어버렸다. 이는 시장화 현실은 물론 김정은 정권에서 시도한 개혁이나 농장의 현실을 영화가 전혀 담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에서 시도한 개혁의 속내나 군량미로 대부분의 식량을 빼앗기고 굶주리는 농민들의 절박한 현실은 철저히 배제된다. 과거 구시대 천리마 노력영웅들은 언제나 앞장서 놀라운 생산능력은 물론, 분조원 개개인의 욕구나 형편을 마치 형제처럼 돌보는 따스한 폭넓은 인품의 소유자들이었다. 정임의 벼꽃 리더십은 형태 면에서는 이런 천리마노력영웅들의 행태와 유사하다. 그러나 왜 오늘날은 호소력을 얻지 못하는가?

이는 시대적 배경 변화가 영화에서 도려내고 천리마정신만 강조되는데 그 이유가 있다. 2010년 이후 시장화와 계층의 분화가 진행되면서 시장화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행위자들이 등장하고 농촌관료층들이 기득권층으로 고착화되었다. 무엇보다 고난의 행군 이래 농촌의 농민들은 군대나 특수기관 등의 군량미 우선원칙에 밀려 농민들은 분배순위에서 ‘군-> 기업소-> 농민’의 순위를 차지하게 되었고(그림 2 참조), 농민의 희생에 기초한 분배구조의 문제로 생산의욕을 상실하였다.

<그림 1> 농산물 수확후 농산물 처리흐름도

이같이 북한 농민들의 억울한 현실이나 농가 가계는 외면한 채 수령님의 뜻만 주장하는한, 영화 속 선동원 정임이 농장원에게 보여주는 헌신과 보살핌, 진정성의 리더십은 무기력하지 않을 수 없다. 생산능력과 인품으로 대중을 감화하고자 하는 희생적 벼꽃 리더십만으로는 농촌사회나 농민들의 근본적인 생존문제 해결 전망이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국가의 일방적 메시지 전달과 길잃은 조선영화의 향방

과거에는 영화에 대해 안목이 높고 열정적이었던 김정일에 힘입어 북한사회가 직면한 현실의 문제를 영화에서 일부나마 드러내기도 하였다. “줄기는 뿌리에서 자란다”. “한 여학생의 일기” 등에서는 인민대중들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그러나, 최고권력자의 비호가 사라진 현재, 영화는 좀더 조심스러워졌다. 분조의 주인이나 벼꽃에서 몇몇 농장간부들, 즉 분조장이나 작업반장 등과 같은 말단간부의 무기력한 태도를 온건하게 비판하는데 그치고 있으며 모든 일을 수령님 뜻에 따라 하는 영화의 문법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필자가 면담한 결과에 의하면 포전담당책임제이후 농민의 식량문제는 오히려 절실해졌다.【12】 분배의 순위에서 농민에게 정권기관이나 군량미 등이 분배순위에서 우선되고 농민 자신의 분배는 하위로 밀리기 때문인데 그 문제는 다음에 다루고자 한다.

농민 자신의 절실한 고민 예를 들어 ‘농민들이 어떻게 먹고 사느냐?’의 질문은 여전히 영화에서 철저하게 배제됨은 물론, 개혁시기 포전담당제를 둘러싼 갈등이나 현실의 구조적 문제는 은폐된다.

기층 노동자인 농장원의 식량문제는 해결의 전망이 보이지 않으며, 분배의 정의는 세워지지 않는다. 농촌사회를 어떻게 이끌어나갈지는 여전히 막막하다. 지역별 포전담당책임제의 적용이라는 미명 하에 농촌관료들의 힘은 여전히 견고하며 이들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속화된다. 포전담당책임제 하에서 이제 비료와 영농자금, 노력을 댈 수 있는 부유한 가구는 더 많은 토지를 받아 더 많은 수확을 얻게 된 반면에, 가난한 이들은 먹을 식량도 없는 현실에서 절망한다. 이러한 와중에서 수확물 분배의 권한을 대행하는 작업반장 등의 농촌관료들과 이들과 유착된 농장원들의 권력은 더 커진다. 포전담당책임제가 농촌 양극화의 문을 연 것이다.

한 평양의 명문대학 출신 청년은 과거 대중들의 마음을 샀고 감동을 주었던 북한영화가 이제는 길을 잃었다고 말한다.【13】 조선영화와 현실간의 간극은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그러기에 기층대중들은 영화에 갈수록 무관심해지고 있다. 농민이 ‘식량의 주인’으로 인정받을 때 비로소 진정한 ‘분조의 주인’ 이 될 것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본령은 체제 선전이 아니라 현실에 토대를 둘 때 살아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확인해주고 있다.

 

(예술영화) 분조의 주인(2012)

평양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제작진/연출, 공훈예술가 전종팔 ; 촬영, 공훈예술가 류승철 ; 미술, 최영식 ; 작곡, 전봉덕 ; 연주, 평양영화음악록음소 ; 후원, 평양시 순안구역 택암협동농장

연주자와 배역진/김은향(소영 역), 한용팔(강삼 역), 리성광(문일 역), 리웅관(기사장 역)

 

(예술영화) 벼꽃(2015)

정임-공훈배우 윤수경, 선화(중학교 동창, 딱친구)-김경애, 광민(초순아버지)-김성철, 반장-한성훈, 동팔-김룡만, 초순어머니(미용사)-박윤

영화문학-김송림, 김서휘, 연출- 선우훈

책임연출-백현구, 촬영-심영학, 정복남, 미술-김학철, 작곡-허준모,

1부 연출-윤창수, 1부 촬영-권형철, 분장-변애경, 리향희, 편집-최옥별

후원-황해남도 신천군인민위원회

<끝>

 

【8】 이영애. “김정은 집권이후 예술영화에 나타난 갈등에 관한 연구: 2015년 발표된 벼꽃의 내용분석을 중심으로”. 한국동북아논총 23(4). 2018.12.

【9】 붉은 선동원, 북한에서 ‘천리마 시기’를 배경으로 협동농장을 둘러싼 갈등을 보여주는 영화이다.962년 조백령의 영화문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민청원 선동원 선자를 주인공으로 천리마 작업반과 농업혁명화를 이야기한다. 민청원 선동원인 선자는 남강을 사이에 둔 이웃 청룡리는 매년 풍년을 맞는데 비해 자기 마을은 사람들이 땅만 탓하면서 패배감에 젖어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6.25전쟁 당시 가족을 모두 잃고 장사를 해 생계를 유지하던 복선은 농사에 취미를 붙이지 못하여 자기 포전을 돌보지 않고, 영애와의 결혼 문제로 선자를 오해한 관필 역시 평양에 가 공장에 취직할 궁리만 한다. 관필의 아버지 진오는 원래 농사꾼이지만 새로운 방식의 협동 농사법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공명심 때문에 나선다는 사람들의 오해를 받으면서도 선자는 복선, 관필, 진오를 작업반의 일원으로 만들어 결국 청룡리 만큼 잘 사는 농촌마을로 만든다. ‘천리마 시기’ 농촌에서 협동농장을 만들며 사람들 사이에 생긴 갈등을 보여주며 청산리 농법을 보여준 영화로 평가받는다. 동명의 연극으로도 제작되었다. 1961년 국립연극단이 제작한 연극은 인민상계관작품상을 받았다. 2006년에 영화배우 김윤홍이 각색하여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10】 지난 2018년 11월에는 조선중앙tv에서는 그 손녀가 농촌에 선동원으로 들어가 리신자의 뒤를 계승하여 활동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기도 하였다.

【11】김소영, “북한 농업부문의 시장화:협동농장과 ‘장마당’을 중심으로”, KDI북한 경제리뷰 2019.10.p. 61.

【12】 “김일성 때 같으면 그래도 암행어사 식으로 현실적으로 농장에 내려와서 37제로 70%는 농민이 먹고 30%는 국가에 바쳐라. 지금은 아예 반대로 된 거잖아요. 말이 37제지 어떤 사람들은 100% 다 바쳐도 수매곡이 안 돼요. 이런 식으로 갔다가는… 제가 살고 있는 그 농장 사람들은 몇 년도 못 버틸 것 같아요, 진짜. 획기적인 게 없이 그런 상태로 그냥 유지가 된다면 진짜 막 몇 년을 못 넘길 것 같아요.” 2021.4.25.일 필자면담, 2017년 탈북 농장원.

【13】 필자면담, 2021년 6월 16일, 2019년 탈북.

 

김화순

화, 2021/09/14-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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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개혁을 방해하는 요인들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민중이므로 개혁을 지체시키고 있는 기본 원인은 외적인 객관적 조건보다는 민중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 개혁을 성과적으로 추진하려면 그 무엇보다 민중이 어떤 이유 때문에 개혁에 소극적인가 혹은 개혁에 반대하는가를 알아야 하고 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민중이 개혁의 주체가 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걸림돌이 무엇인지 밝히고 기본소득이 그것을 없애는데 기여함으로써 개혁을 뒷받침한다는 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정치적 무관심과 기본소득

민중을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고통이다. <풍요중독사회>를 비롯한 저서들을 통해서 줄기차게 강조해왔듯이 한국인들은 심각한 수준의 생존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쉽게 말해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생존 불안은 돈과 관련된 근심걱정을 끊임없이 유발하고 그 결과 돈에 대한 병적인 욕망을 강제한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삶을 위협하는 생존 불안은 그 자체로서 끔찍한 고통이다. 고통스러운 사람은 자신의 고통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배고픔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은 아름다운 풍경에 눈길을 주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생존 불안이라는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은 사회개혁, 더 나은 미래 등에 관심을 갖기 힘들다.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요즈음의 한국 젊은이들은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다.”고 절규하며 취직준비에만 골몰하고 자그마한 돈이라도 손에 쥐게 되면 소위 영끌투자를 하는 반면 정치에는 무관심하다. 이들에게 ‘사회 개혁’이란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다.

심각한 생존 불안은 한국인들에게 정치적 무관심을 강요한다. 생존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 고통스러운 사람은 정치가 어찌 되든, 나라가 어찌 되든, 지구촌이 어찌 되든 간에 일단은 자기부터 살려고 발버둥치기 마련이다. 생존 불안과 민중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비례관계에 있다. 민중은 기본소득 – 최소한 최저생계비를 상회하는 수준의 기본소득 – 을 통해 심각한 생존 불안에서 해방되면 자연히 사회개혁, 더 나은 미래에 대해 눈길을 돌리게 될 것이다. 즉 생존 불안을 크게 줄여주는 기본소득은 민중이 정치적 무관심에서 벗어나 정치의 주체로 나설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고립과 무저항

“억압과 착취가 있는 곳에는 저항이 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은 이 명제를 의심하게 만든다. 1대 99의 사회라는 말이 웅변하듯,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심각한 불평등 사회 속에서 여전히 억압과 착취를 당하고 있지만 민중의 저항은 과거에 비해 약화되었다. 왜 민중은 저항하지 않는 것일까?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거의 개인 단위로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어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는 학교 공동체, 직장 공동체, 마을 공동체 등 각종 공동체가 존재했다.

민중이 공동체, 집단으로 묶여서 살아가는 경우에는 억압과 착취를 받으면 반드시 저항을 한다 – 그 시점이 언제일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 고 말할 수 있다. 어떤 농촌마을 사람들이 공동체로 묶여서 살아간다고 가정해보자. 만일 지주가 마을 사람들 중에서 일부를 폭행하거나 가혹하게 착취한다면 모든 마을 사람들이 그것을 자기 문제로 받아들여 분노할 것이다. 그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마을 사람들은 농민봉기에 떨쳐나설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 마을 사람들이 개인 단위로 고립되어 살아가고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면 어떨까? 지주가 마을 사람들 중에서 일부를 폭행하거나 가혹하게 착취하더라도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그 장면을 보면서 더 겁을 먹고 더 무력해질 수도 있다. 물론 폭행과 착취를 당한 당사자들은 분노할 것이다. 그러나 그 분노는 개인적 분노에 그칠 뿐 마을 사람들 모두의 분노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분노감정이 건강하게 해소되거나 치유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노감정이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되면 마을 사람들은 우울증을 앓게 될 것이고 그것이 외부로 향하게 되면 타인을 학대하거나 범죄를 저지르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억압과 착취가 있는 곳에는 저항이 있다’는 명제에는 전제조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전제조건은 민중이 흩어져서가 아니라 공동체로 묶여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온갖 학대, 갑질, 성희롱 등에 시달리는 데도 저항을 잘 하지 못하고 개혁에 미온적인 것은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가 전멸했다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인 단위로 고립되어 살아가는 민중은 억압과 착취를 당하면 정신병에 걸리거나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게 될 뿐 저항을 하지 못하며 개혁의 주체가 될 수도 없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개혁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민중이 하나로 단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체와 기본소득

기본소득은 뿔뿔이 흩어져 있는 한국인들을 단합시키고 공동체를 복원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기본소득은 한국인들을 공동의 이해관계로 묶음으로써 민중적 단결과 공동체 복원을 촉진할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고 단결하려면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공동의 이해관계를 발견하기가 어렵고 많은 경우에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민주노총이 개혁적인 부동산정책을 주장하기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 중에 주택보유자도 있고 무주택자도 있어서다. 집값이 오르기를 바라는 주택보유자와 집값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무주택자를 하나로 묶기는 힘들다. 물론 한국인들은 근본적인 사회대개혁이라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인들의 의식 수준은 그것을 당면한 자기 문제로 받아들일 정도가 아니므로 근본적인 사회대개혁은 현실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역할을 하기 힘들다. 반면에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제공할 수 있는 기본소득은 절대다수의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내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이웃과 사회 나아가 기본소득을 추진하거나 실시하는 정부에 대한 한국인들의 우호적 태도와 친사회적 심리를 강화할 것이다.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이웃과 사회가 자기한테 피해를 주면 주지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웃을 경쟁대상으로 간주하여 경계하고 적대적으로 대하며 사회에 등을 돌린 채 살아간다. 한국인들은 정부에게 뜯기기만 할뿐 받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금저항 심리가 강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의심부터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장차 어떤 정부가 집권하더라도 한국은 미래로 나아가기 힘들다. 지금까지 이웃, 사회, 국가는 생존 불안으로 신음하는 절대다수의 국민들을 외면해왔다. 즉 한국인들은 이웃, 사회, 국가가 자신을 사랑해주고 보호해주는 경험, 위기에 빠진 자신을 도와주는 경험을 거의 해보지 못했다. 이런 조건에서 기본소득은 이웃, 사회, 국가가 자신을 위해 존재하며 활동한다는 믿음을 갖게 해줌으로써 이웃, 사회, 국가에 대한 신뢰를 가능하게 해주고 친사회적인 심리를 강화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민중적 단결과 공동체 복원으로 이어질 것이다.

 

의식개혁과 기본소득

반복적으로 강조하건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개혁의 성패는 민중적 단결과 공동체의 복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립된 개인의 처지에서 벗어나 공동체로 묶여야만 개인들은 비로소 개인중심적 사고가 아닌 집단중심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되고, ‘우리는 모두가 하나의 운명공동체’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다. 한국인들이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면 나의 고통이 곧 이웃의 고통이자 세상의 고통임을 깨닫게 되고 나의 행복만이 아니라 모두의 행복을 바라게 될 것이다.

기본소득이 촉진하는 민중적 공동체의 복원은 우선 의식개혁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까지 절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개인으로 고립되어 살아왔기에 생존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자도생의 생존전략에 기초해 각개약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각자도생이 아닌 다른 방법, 집단적 힘으로 사회를 개혁함으로써 생존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즉 기본소득은 한국인들에게 ‘이웃과 미친 듯이 경쟁하고 싸워야만 이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서로 단결하고 협력하는 방식으로도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겠구나’라는 통찰과 자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각개약진이 아닌 모두가 힘을 합쳐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 있으며 그것만이 살길임을 깨닫게 해주는 의식혁명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다. 기본소득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 기본소득의 실시는 한국인들의 의식개혁을 촉진함으로써 개혁의 분위기를 크게 강화할 것이다.

기본소득이 촉진하는 민중적 공동체의 복원은 또한 개혁에 대한 민중의 자신감을 강화할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한국 사회가 부정의하고 불평등한 사회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려고 하기보다는 각자도생에 매몰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믿어서다. 단결된 집단의 힘은 무한대이지만 고립된 개인은 무력하다. 개인의 힘이 제아무리 크다 한들 개인의 힘만으로는 사회를 개혁할 수 없다. 개인이 최대의 능력을 발휘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경쟁에서 승리해 떼돈을 벌거나 출세하는 것뿐이다. 고립되어 살아가는 개인은 무력감으로 인해 사회 개혁에 대해서는 꿈조차 꾸기 힘들다. 따라서 고립된 개인은 개혁의 청사진이 아무리 멋져도 그것을 냉소적으로 대한다. 이런 조건에서 기본소득은 개개인의 생존 불안을 없애고 공동체 복원을 촉진하여 한국인들을 무력감의 깊은 늪에서 구출해냄으로써 개혁을 힘차게 떠밀어나갈 수 있다. 고립된 개인들이 공동체로 묶이면 묶일수록 민중의 자신감은 백배해질 것이고 개혁에는 가속도가 붙기 마련이다.

 

국민통합과 기본소득

오늘날 한국인들 사이의 관계는 유사 이래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악화되어 있다. 이것은 사회적 관계 영역에서 한국이 OECD 회원국 중에서 꼴찌를 차지한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최악이라는 것은 특정한 사회집단에게 이익이 되는 개혁과제에 나머지 사회집단이 박수를 쳐주기보다는 배 아파하거나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타깝지만 한국인들은 서로에게 그다지 너그럽지 않다.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처럼 시기와 질투가 심하다. 이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는 특정한 집단에게만 이익이 되는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찬성률이 낮은 편이다. 예를 들면 노동자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은 사실 자영업자들에게도 이익 – 노동자들의 수입이 올라가면 소비를 많이 할 테니까 – 임에도 그들은 그 제도를 반대한다. 청년들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은 사실 그들의 아버지뻘인 중장년층에게도 이익임에도 그들은 그 제도를 반대한다. 이런 식으로 악화된 인간관계는 택시 기사들에게 도움이 되는 개혁과제를 버스 기사들은 싫어하고 노인세대에게 도움이 되는 개혁과제를 청년세대는 반대하게 만들 수 있다.

민중이 다종다양한 집단으로 분열되어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대립하고 갈등하는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면 성공적인 개혁의 추진은 불가능하다. 사회가 분열되면 국가적 개혁과제를 제기하기도 힘들고 추진하기는 더더욱 힘들어진다. 특히 어떤 개혁과제가 특정한 사회집단의 생존 불안을 자극할 경우 그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그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과감한 부동산 개혁, 토지개혁이 일부 집단의 생존 불안을 건드린다면 그들은 결사반대할 것이다. 최소한 생존 불안에서는 해방되어야 사람들은 마음의 안정과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고 설사 개인적으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이 전체 사회에 이익이 된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찬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고질적인 사회 분열과 갈등을 완화하고 국민통합에 기여하며 개혁 추진에 유리한 사회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사회 개혁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기본소득은 개혁의 마중물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생존 불안을 해결하는데 그치지 않고 평등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평등 수준이 높아져야 ‘너와 나는 다르다’가 아니라 ‘우리는 하나’라는 동질감이나 일체감이 형성될 수 있다. 또한 위계 간 학대 현상이 근절됨으로써 연대의식이나 공동체 의식이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개혁을 위해서도, 즉 격차를 줄이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도 기본소득부터 실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앞에서 계속 강조했듯이 기본소득으로 생존 불안이 약화되어야 민중의 의식이 깨어나고 정치참여가 가속화되며 민중적 단합이 실현됨으로써 한국 사회가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 쪽으로 거대한 방향전환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기본소득과 인권>이라는 글에서 강조했듯이, 기본소득은 민중의 저항 의지와 권리를 든든히 뒷받침해주고 강화할 것이다. 위계 관계나 조직 내에서 사람들이 저항을 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해고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즉 생존 불안이다. 직장상사가 갑질을 하거나 성희롱을 해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참는 것은 해고를 당해 생존이 위태로워질 것을 두려워해서다. 기본소득은 사람들을 생존 불안에서 해방시킴으로써 불의에 저항할 용기를 내도록 고무하고 격려해줄 것이다. 생존 불안에서 해방된 민중이 조직이나 직장에서 불의에 저항하기 시작하면 한국의 조직 문화, 직장 문화, 사회 문화는 민주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즉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문화가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인 문화에서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문화로 바뀌어나가고 각종 조직이나 직장은 조직 구성원들을 더 우대하고 존중해주는 쪽으로 변화해나갈 것이고 그 결과 민주화, 개혁이 촉진될 것이다.

기본소득이 개혁의 마중물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려면 최소한 최저생계비 이상의 기본소득이 지급되어야 한다. 현재 여당의 대권 주자인 이재명 도지사는 기본소득의 최종목표를 1인당 월 50만 원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상당한 정도로 개혁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본소득이 되기 위해서는 또 기본소득의 거대한 의의가 충분히 발휘되기 위해서는 월 지급액의 목표치를 더 높이 잡아야 할 것이다. 만일 이재명 지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민중은 그의 기본소득 정책을 지지하면서 그것의 목표치를 더 상향조정하도록 요구해야 할 것이다.

 

김태형

토, 2021/09/18-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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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교육위원회 1차 회의가 지난 2월 23일(화)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교육위원회는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에서 진행되는 교육과 관련된 사업 전반에 대해 논의하는 곳인데요,
이번 회의에서는 올해 진행 될 풀꿈자연학교, 미호천미호종개 환경교육, 사회환경교육 지원사업, 풀꿈환경강사 교육 논의가 진행되었습니다.
풀꿈자연학교 전체 일정과 프로그램, 그리고 강사 운영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3월 중에 지역아동센터에서 미호천 미호종개 교육 진행,  생태놀이나 응급처지 교육 등 강사님들의 교육을 진행하자고 결정하였습니다.

정진 위원장님을 비롯한 박상경, 오희옥, 이경자, 이미영, 임지은, 정남득 선생님 올 한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교육위원회의 활동도 기대해 주세요~~^^

 

화, 2021/02/23-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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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당산성 옛길에서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길을 따라 올라가려고 하는데 길가에 개미가 딱!
개미떼가 이동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줄지어 가는 개미, 어디로 가는 걸까요?ㅎ

이 꽃은 무슨 꽃일까요? 가지를 꺽으면 노란색 액이 나오는데요
바로 애기똥풀입니다. 애기똥풀로  손톱에 노란색 물도 들여보았습니다~ㅎ

새끼손톱에 노랗게 물들인거 보이나요?ㅎ

나뭇잎 뒷면에 끈끈함이 묻어있는 나뭇잎을 옷에 붙여보았습니다. 식물이 살아가는 전략이겠죠~ㅎ

산당산성 옛길을 다니면서 1,2,3,4, 숫자와 연결되는 자연물을 찾아보았습니다~
1개 꽃이 한송이 있어요~ 2개 꽃잎이 두개예요~이렇게 10까지 찾아보았답니다^^

계곡에 있는 수생식물도 관찰했구요. 소금쟁이, 옆새우 등등을 보았답니다!ㅎㅎ

뱀딸기도 따서 관찰하고 맛도 보았지요 ㅎㅎ

통나무 위에서 중심잡기! 그 다음엔 하나둘셋 찰칵!ㅎ

나무잎 뒤에 있는 애벌레 알도 관찰하고, 거미의 다리가 몇개인지 세어보았구요,
거북꼬리잎에서 거위벌레가 만든 알집을 살펴보았습니다 ㅎ

숲속에 있는 귀신을 찾으러 가볼가요?ㅎ
명주잠자리 애벌레인 개미귀신입니다 ㅎ

여러모양의 나무잎으로 종이에 탁본을 떠보고 잎을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나뭇잎으로 가면을 만들어 보기도했지ㅎ요~

루페로 이끼도 보고, 꽃도보고, 나뭇잎도 보고~

하하호호 2시간동안 웃음소리가 ~~!ㅎㅎ
다음달에 또 만나요!^^

목, 2021/07/29-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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