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코리안 블라인드

지역

코리안 블라인드

admin | 화, 2020/01/07- 22:26

지금껏 코리아 남쪽의 대한민국(ROK)의 눈에는 코리아 북쪽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라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눈에는 남쪽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없다. ‘코리안 블라인드(Korean blind)’다. 한쪽 눈만 뜬 채 상대를 맹점 지대에 넣어놓고 서로가 상대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헌법에는 ‘한반도’에 오직 대한민국만이 존재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헌법에는 ‘조선반도’에 오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만이 존재한다. 헌법만이 아니라 두 나라의 어느 공식적인 법과 제도에도 상대는 국가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한번쯤은 마리오트 맹점 실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혹시 안 해본 분이라면 이번 기회에 직접 한번 해보시기 바란다.(아래 그림) 먼저 왼쪽 눈을 가리고 오른쪽 눈으로 그림의 십자 표시를 응시한다. 그리고 눈을 멀리 가까이 하여 거리를 조정하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검은 원이 사라져버린다. 다음에는 반대로 오른쪽 눈을 가리고 왼쪽 눈으로 그림의 검은 원을 응시하면서 거리를 조정하다 보면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십자가가 사라져버린다.

지금 코리아 남북의 두 나라가 꼭 마찬가지 아닌가. 그러나 두 눈을 다 뜨고 바라보면, 멀리 보든 가깝게 보든, 뒤집어 보든 바로 보든, ‘코리아’에는 엄연히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2019년 현재 세계 157개국이 한국(ROK)과 조선(DPRK) 두 나라를 모두 인정하여 동시 수교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코리아 남북의 두 나라는 서로 상대를 부정하고 있으니 세계인의 시각에서 볼 때는 매우 이상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코리아 양국체제란 이제는 두 코리아 모두 정상적인 세계인의 시각을 갖자는 것이다.

코리안 블라인드는 있는 것을 없다고 우기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거꾸로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놀라운 신박을 부린다. 아직도 여전히 1980년 5월의 광주 시민항쟁 대열에 북에서 보낸 수백 명의 특수부대(소위 ‘광수’)가 있었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망상 허언에 증거가 있을 리 없다. 5·18 당시 계엄사령부와 미국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맹목의 외눈박이들에게는 증거가 중요하지 않다. 필요하지도 않다. 오직 ‘그래야만 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외눈박이 맹목의 당위가 있을 뿐이다. 존재를 부정하는 북과 연결시켜야 5·18 광주를 부정할 수 있고, 그래야 광주 시민들에 대한 피의 살육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있는 것을 없다고 하고,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외눈박이 맹점 놀음은 이렇게 내통하고 있다. 이러한 지록위마(指鹿爲馬) 뺨치는 외눈박이 맹점 놀음으로 오랜 세월 독재체제를 정당화해왔다. 심지어 세월호 참사 항의도 촛불집회도, 북과 연결시켜 압살하려 했던 공작들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코리아 양국체제란 외눈박이 넌센스, 블라인드 기만술로 지탱해온 독재체제, 독재심리를 영구히 종식시켜 정상체제, 정상심리가 확고히 자리 잡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난 70년 코리아 남북에 독재체제, 독재심리가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양측이 ‘내전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전 상태’란 하나의 주권, 하나의 영토를 누가 차지하느냐를 놓고 벌이는 필사의 전쟁 상태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절박하고 극단적인 심리 상태다. 그래서 상대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불법단체’나 ‘반란집단’으로 간주한다. 내전체제는 전쟁체제고 비상체제다. 6·25 전쟁 이후 남과 북 사이가 그랬고, 남과 북 내부가 그랬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남이든 북이든 독재의 위협을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전쟁 상태, 내전 상태이므로 독재가 정당화된다. 내전 상태로 맞선 남북이 ‘상응(相應)하여’ 자신의 독재를 정당화해온 체제를 1970년대 이래 한국의 민주화운동권에서는 ‘분단체제’라 불러왔다. 이러한 ‘내전 상태=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순수한 통일 의지와 통일 열망은 오히려 내전 격화와 독재 강화의 불쏘시개로 역용(逆用)되었을 뿐이다.

오늘날 코리아가 이러한 ‘내전 상태=분단체제’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다. 하나의 주권, 동일한 영토를 놓고 벌이는 필사의 전쟁 상태를 끝내야 한다. 그러자면 한국과 조선 두 국가가 서로의 주권과 영토를 인정하고 공존해야 한다. 코리아 남북은 이미 70여 년 동안 두 개의 주권국가다. 국가주권의 구조적 작동논리는 혈연적 정서논리와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이해하고 대처해야 마땅하다. ‘한 민족 한 형제인데 두 나라가 웬 말이냐’는 식의 민족정서·혈연논리만으로는 내전 상태의 두 나라, 두 주권 간의 적대와 대립을 결코 해소할 수 없다. 1950년 코리아전쟁부터가 한 민족에 두 나라가 있을 수 없다는 논리의 귀결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남북이 서로의 주권과 존재를 인정해야만 통일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은 사실은 너무나도 상식적이고 당연한 말이다. 상대를 인정하기를 기필코 거부하면서 우리는 둘이 아니니까 반드시 합쳐야 한다고 우겨봐야 하나가 될 리 없다. 갈등만 더 증폭될 뿐이다. 누가 보더라도 서로 합칠 생각이 없는 둘의 모습이다. 반대로 상대를 진정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서로 충분히 확인한 연후에 이제부터 어떻게 합칠 것인가를 이야기해보자고 한다면, 이제야 비로소 누가 보더라도 정말 합칠 생각이 있는 둘의 모습이다.

분단체제에서는 남북이 서로를 결코 인정하지 못한다. 분단체제에서 가능한 입장이란, 남과 북 어느 한쪽만을 인정하든지(남과 북 당국의 공식입장), 아니면 양자 모두를 부정하는 입장(둘 모두에 비판적인 입장)일 수밖에 없다. 반면 양국체제에서는 남북이 서로를 마땅히 인정하게 된다. 시늉이나 속임수로서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상대가 더는 자신의 영토와 주권을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서로에게 확고해져야 한다. 그것이 코리아 양국체제다. 그때서야 통일의 길은 비로소 열린다. 하나가 되자고 하면 오히려 하나가 되자는 둘이 우선 분명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고 애당초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하나가 되자고만 해왔던 것이 오히려 분란과 갈등을 키워왔다. 코리안 블라인드를 걷어내고 둘임을 인정해야, 하나가 되자는 양편의 진실성이 입증된다. 오직 이 길을 통해서만 통일은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한 민족 두 나라 공존을 통해 평화적 통일에 이르는 길이다.

이 책의 제목을 ‘한반도 양국체제’가 아니라 굳이 ‘코리아 양국체제’라 한 이유를 눈 밝은 독자라면 이미 눈치 채셨을 것이다. 반도 남쪽의 대한민국(ROK)에서는 ‘코리아 반도(Korean peninsula)’를 ‘한반도’라 부르지만,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RPK)에서는 ‘조선반도’라고 부른다. 양국체제는 한국과 조선 두 나라 모두를 인정하고 위하자는 것인데, 그 이름을 한국에서만 쓰고 있는 용어로 ‘한반도 양국체제’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름부터 남북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공통의 것을 쓰자는 취지이다. 또 ‘코리아’라고 하면 지리적인 의미의 ‘코리아 반도’만이 아니라 코리아 반도와 전 세계 도처의 코리아 사람들(Korean people), 코리아 민족(Korean nation)을 포괄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앞으로 양국체제가 정착되어 양국이 합의하여 양국을 통칭하는 합의된 언어를 찾기까지는 아쉬운 대로 ‘코리아 양국체제’라는 용어를 쓰기로 한다.

 

기회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첫 가능성은 이미 지난 1989~1991년 사이에 한번 열렸던 바 있다. 미소(美蘇) 냉전 종식 국면에서 한국(ROK)과 조선(DPRK)은 유엔에 동시 가입했고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조선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 합의할 수 있었다. 노태우 정부는 양국체제 전망에 적극적이었고, 북 역시 북미 수교를 타진하면서 남북 공존을 통한 체제 보장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코리아에서의 냉전대결 국면을 연장시키려는 국내외 세력은 ‘북한 조기붕괴론’을 유포하면서 양국체제의 전망을 가로막았고, 소련·동구권 붕괴에 이은 ‘북한 붕괴’의 위협으로 궁지에 몰린 북은 핵 개발에 올인하게 되었다. 1987년의 민주화 동력이 하나로 뭉쳐 1987년의 대선에서 정통성이 강한 민주연합정부를 수립했다면, 이러한 내외의 방해를 물리치고 이미 1990년대에는 코리아 양국체제가 출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민주화 동력은 분열되었고 양국체제의 전망은 ‘북한붕괴론’과 ‘북핵위기론’의 공세에 밀려 너무나 빨리 닫히고 말았다.

그러나 거의 30년 만에 코리아 양국체제의 새로운 가능성이 다시 열리고 있다. 2016년 말 한국의 촛불혁명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 그리고 2017년 조선의 핵 완성이라는, 각각이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세 요소가 한 시점에 합류하면서 그 조건이 형성되었다. 한국의 촛불혁명은 1960년 4·19와 1987년 민주항쟁이 미처 이루지 못했던 나라의 민주적 정통성의 필요충분조건을 비로소 충족시켰다. 촛불혁명은 남북 대결과 적대의 경사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시켰고 그 힘이 온전히 민주정부로 이어졌다. 반쪽국가가 아닌 온전한 한 국가로서 안정된 정당성과 자신감을 갖춘 것이다. 그렇기에 2017년 북미 간 전쟁 위기의 고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남북 화해, 북미 화해의 길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 결실이 2018년부터 남북미 간 정상회담으로 맺히기 시작했다.

1989~1991년 소련·동구권 붕괴 이후 미소 냉전이 종식되었지만 당시 미국은 곤경에 빠진 조선(DPRK)을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붕괴를 위한 압박과 제재를 강화했다. 그 결과 ‘북핵문제’가 본격화했다. 북핵 개발과 제재·압박의 벼랑 끝 줄다리기는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되어 2017년까지 계속됐다. 이 30년의 위기와 긴장 속에 북미 간만이 아니라 남북 간의 적대와 대결의식도 고조되어왔다. 이 적대와 대결의 고조를 한국의 촛불혁명이 먼저 끊었다. 그리고 조선의 ‘핵 완성’ 선언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북핵문제의 해결은 북핵 완성을 통해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그 역설은 미국 주류 정치의 국외자인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북미 대화의 파트너가 되면서 현실화의 실마리를 찾았다. 2018년 벽두부터 남북이 극적으로 화해의 물꼬를 텄다. 촛불혁명을 통한 한국의 자신감과 핵 완성을 통한 조선의 자신감이 당당하게 만날 수 있었다. 양국체제의 기반이 형성된 것이다. 이어 한국이 북미 간 협상을 성공적으로 중재함으로써 영영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남북미 간 화해의 협주가 가능해졌다. 이제 남북미는 종전과 평화협정, 그리고 한조·북미 수교와 한반도 비핵화를 일정에 올려두고 있다. 코리아 양국체제가 바로 우리 코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두 번째 기회

이렇게 다시 열린 코리아 양국체제의 두 번째 기회는 매우 소중하다. 그러나 이 기회를 어떻게 해서든 다시 한번 닫아버리고 싶어 하는 냉전대결 세력도 여전히 남아 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제야말로 북한체제를 끝장낼 때’라고 소리를 높이고 있는 세력들이 그렇다. 정확히 1990년대 초반의 북한 붕괴 – 북핵 위기 – 전쟁위기론의 복사판이다. 1991년 12월의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에 남북 양측 총리가 서명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한국 보수 언론에서 ‘북핵위기론 – 북한붕괴론’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채 2년 반이 지나지 않은 1994년 5~6월, 코리아는 전쟁 일보 직전의 초비상 위기 상태에 빠졌다. 그 후 양국체제의 전망은 굳게 닫히고 말았다. 냉전대결 세력은 이 순간 코리아의 상황을 다시금 그때와 꼭 같이 몰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과 30년이 지난 촛불 이후 현재의 상황은 너무나도 다르다. 1992~1994년의 반전의 핵심은 당시 냉전대결 세력이 한국의 여론의 방향을 남북 화해에서 남북 적대 기조로 뒤집어놓는 데 성공한 데 있었다. 당시는 남북대결체제를 남북공존체제로 밀고 나갈 지형과 중심이 아직 충분히 형성되어 있지 못했다. 노태우 정부는 군부연장 세력인 데다가 허약했고, 87년 시민항쟁을 이끌었던 민주화 세력도 분열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 반쪽은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냉전대결 세력과 합쳐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냉전 세력과 합친 민주화운동 세력의 한 축이 ‘북한붕괴론 – 북핵위기론’에 동조했다. 그래서 쉽게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고 말았고, 그러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촛불 이후 오늘날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우선 촛불혁명이 30년 전 만들어진 ‘기울어진 운동장’을 소멸시켰다. 그리고 촛불혁명 이후 들어선 정부의 민주적 정통성이 과거 노태우 정부에 비해 훨씬 강하다. 촛불혁명의 주도 세력의 일부가 냉전대결 세력과 야합할 가능성도 없다. 오히려 냉전대결 세력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자체를 거부하고 폭력적이고 억지스런 대중동원을 고집하면서 합리적 보수층의 마음으로부터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국제적 상황 역시 차이가 크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가능성이 처음으로 열렸던 1990년대 초반은 냉전 승리 이후 미국 일극(一極)주의의 전성기였다. 1990~1991년 사이의 ‘걸프전쟁’을 돌이켜 보면 이 당시 전 지구상에 미국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또 ‘북한붕괴론’이 먹히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 엄청난 소련도 무너졌는데 ‘북한’이 따라서 무너지지 않겠느냐는 여론이 국내외에 상당히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완연히 다르다. 미국 일극주의란 냉전 종식 이후 단지 10년의 에피소드였을 뿐이었다. 세계가 미소 양극으로 나뉘어 필사적인 세계내전을 벌이던 시대는 영영 끝났다. 세계사는 이제 일극주의가 아니라 주요 지역 문명권들의 공존체제 형성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이 대표하는 미영 문명권은 이제 그러한 주요 문명권 중 하나일 뿐이다. 현금의 미중 갈등은 세계가 어느 한편에 서야 했고 어느 한쪽이 망해야 끝났던 미소 냉전과 본질적으로, 근본적으로 다르다. 앞으로도 밀고 당김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제 미래는 여러 문명이 협력하여 공존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데 세계의 이해가 모아지고 있다. 1990년대 초의 ‘북한붕괴론’이 실제와 동떨어진 엉뚱한 이야기였다는 것도 이제는 분명해졌다. 동아시아의 조선, 중국, 베트남은 소련·동구권과는 다른 역사적·문명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소련·동구권 붕괴 이후에도 독자적 근거 위에서 존속할 수 있었다. 유럽 기원의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세계내전적 폐쇄회로와는 다른 문맥에서 동아시아 역사를 새롭게 볼 때가 되었다. 이렇듯 30년 전과 상전벽해(桑田碧海)처럼 크게 달라진 세계 상황에서 30년 전과 꼭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사람들에게 귀 기울일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제 코리아 양국체제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세계사적 상황이 무르익은 것이다.

필자가 양국체제론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은 촛불혁명 전이었다. 필자는 21세기 들어 세계사의 큰 흐름이 코리아에 아주 유리한 기회를 주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냉전의 족쇄를 풀고 아메리카 – 태평양권과 유라시아권을 이어주는 절묘한 위치에서 새 도약의 호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한국의 정치상황은 자꾸만 과거로 역주행하고 있었다. 왜 그럴까? 너무나도 오래 지속된 코리아 내전체제, 분단체제 때문이었다. 특히 1990년대 초반 양국체제의 첫 기회가 깨진 이후 줄곧 심화되어온 북핵문제와 남북·북미 간 대결 기조가 문제였다.

이 역주행의 순환고리를 깨뜨리고 벗어나야만 했다. 당시의 현실이 아무리 어둡고 비관적으로 보이더라도, 현실이 이렇게까지 나빠진 원인을 정확히 알면 반드시 빠져나갈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문제만 해결하면 코리아엔 큰 기회가 온다고 믿었다. 오랜 고심과 궁리 끝에 그 족쇄를 푸는 핵심 방법이 코리아 양국체제 정립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촛불혁명 이전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어둠이 너무나도 짙었던 오밤중이었지 않은가?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하더라도 과연 그 족쇄 풀기가 실제로 언제나 가능할까? 까마득하지 않은가? 그냥 상상으로 끝나는 것 아닌가? 그럴 때마다 나는 그때보다 더 어둡고 더 힘들었던 87년 이전의 시간들을 생각했다. 설혹 나 혼자의 외침이라 하더라도 누군가는 시작해야 할 일이 아니겠냐고 자신을 북돋았다. 그런 막막한 기분으로 양국체제를 이야기해가던 중, 촛불혁명이 일어났다. 변화가 이렇게 빨리 그리고 그렇듯 거대한 규모로 시작되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그 엄청난 에너지 속에서 양국체제론은 현실의 발판을 얻고 한층 구체화될 수 있었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온라인 서점 바로가기>>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드디어 로베르토 M.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가 출간되었습니다.

‘시대의 예언자’ 혹은 ‘미래를 향한 메시아’로 불리는 웅거는 브라질 태생으로 하버드 법대를 다니며 비판법학 운동을 주도하면서 약관 29세에 종신교수직을 획득하고 이후 수많은 화제의 저술을 남기면서 국내에도 ‘주체의 각성’ ‘민주주의를 넘어’ ‘정치 3부작’ ‘진보의 대안’ 등이 번역 소개된 미국을 대표하는 현시대 최고의 지성입니다.

그는 현재의 산업체계를 ICT첨단기술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를 ‘지식경제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실제로 ICT 첨단기술이 산업과 생활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켰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산업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고 일부 집단이 소위 e-F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독과점을 강화하고 경제운용의 성과를 독차지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약직과 비선형적 고용의 불안정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웅거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첨단기술을 소수의 그룹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狹域(프린지)의 폐쇄적 전위주의와 거대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해와 지위를 강화하는 유사적 전위주의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지식경제의 소명은 가장 선진화된 기술과 생산관행을 생활과 산업전반으로 확산하고 보편화시키는데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이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를 실현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가지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인지적 교육적 요건 – 사회적 도덕적 요건 – 법적 제도적 요건.

이어서 웅거는 기존의 경제학인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고전경제학, 마샬과 빈-학파에 의해 주도된 한계(효용)학파와 미시경제, 그리고 이단이라는 표현으로 케인즈의 이론, 이후의 신자유주의와 이에 타협한 사민주의의 타락과 제3의 길 등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경제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는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못지않게 매우 난해하고 추상적인 저술입니다만, 기존의 논리와 관행에 갇혀 있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백년의 지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구매를 요청합니다. 책의 내용은 매주 한차례씩 20여 주에 걸쳐서 다른백년의 홈에 게재됩니다. 두손모아,

다른백년 이사장  이래경


나는 이제 표층에서 심층까지, 실험주의적이고 지식집약적인 생산이 발전하고 확산될 때에만 드러나는 세 가지 특성들을 논의하겠다. 지식경제가 현재 프린지 안에 고립되어 있는 경우 지식경제는 그 본성을 숨긴다. 우리는 현재의 고립적인 지식경제가 제공하는 파편적인 증거에서 지식경제의 잠재력을 이끌어내야만 한다.

이와 같이 더 심층적인 첫 번째 특성은 한계수확체감(다른 요소들이나 투입물들이 불변적인 상황에서 하나의 요소나 투입물의 연속적인 증분들의 한계산출에서 수확체감)의 제약조건을 완화하거나 심지어 역전시키겠다는 약속이다. 하나의 투입물이나 요소의 연속적인 증분들의 생산성은 특정한 지점을 넘어서면 감소하기 시작한다. 경제생활의 어떤 특징도 한계수확체감의 제약만큼 경제생활의 보편적이고 초시대적인 법칙으로 여겨질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한계수확체감의 법칙과 그 가능한 수정이나 대체물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법칙과 종종 혼동되는 다른 관념, 즉 규모수익(returns to scale)을 구별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이 최상이다. 규모수익이란 두 가지 정량의 관계를 말한다. 첫 번째 정량은 생산에서 모든 투입물이나 요소들이 같은 비율로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경우에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에 활용되는 요소나 투입물의 증감이다. 두 번째 정량은 장기간에 걸쳐 표시된 산출물의 결과적인 증가 또는 감소이다.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에 활용되는 투입물의 증감에 비례하여 산출물이 증감할 때 규모수익은 불변적이다.

규모수익은 통상적으로 불변적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규모수익의 체증이나 체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모든 투입물이 동일비율로 증가된 더 큰 공장은 더 작은 공장보다 더 효율적일 수도 있고 덜 효율적일 수 있다. 규모수익불변의 발생은 결코 경제생활의 법칙으로 당연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것은 기껏해야 반박가능한 사실적 가정이다. 그러한 가정은 생산의 투입물이나 요소들 사이의 유익한 또는 유해한 상호작용을 포함하여 그 가정을 부정할지도 모르는 무수한 상황 중 어느 것도 없는 경우에만 유효하다. 이런 의미에서 그 가정은 뉴턴 역학에서 불변적인 운동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기존의 허다한 경제분석과 마찬가지로 계시적 단순화를 용이하게 하기 때문에 유용한 개념이다.

많은 사람들은 지식경제가 규모수익체증과 관련이 있고 이러한 추정을 정당화하는 원인을 이러한 생산방식의 일정한 특징들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 중 일부는 지식경제의 일부가 누리는 장점, 즉 플랫폼사업의 사용자 커뮤니티에 새로운 고객을 추가하는 데 거의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주장들은 그러한 장점을 갖지 못한 지식경제의 다른 부분들이 어떻게 규모수익체증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기껏해야 지식경제의 특정 분야에 대한 주장이다.

다른 제안들은 지식경제의 기업들이 의존하는 통찰력, 기술, 인력들에 의해 발생되는 긍정적 외부효과를 강조한다. 이러한 기업들은 실천적인 지식의 생산자일 뿐만 아니라 소비자다. 이러한 기업들이 판매하는 재화와 서비스는 그러한 지식을 풍부하게 구현하고 효과적인 사용을 위해 지식기반 기술을 요구할 개연성이 높다. 게다가 지식경제의 기업들은 그들 주위에 자신의 사업에 도움이 되는 사람, 제도, 관행, 아이디어의 넓은 잠재 영역을 창조해야만 번창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육화되거나 암묵적인 모든 지식은 경제학자들이 “비경합적” 재화라고 부르는 유형을 대표한다. 지식재산법이 비경합적 재화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자 개입하여 이를 “배제적인” 재화로 만드는 경우를 제외하고 비경합적 재화는 일부 사람들의 재화 사용이 다른 사람들의 재화 사용을 막을 수 없는 재화를 의미한다. 지식경제에서 공유된 암묵적 지식과 능력의 확산은 생산체계의 선진기업들과 선진분야들의 발전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성공적 기업과 부문들(성공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선도성을 확장함으로써 번창하는 것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 것이다. 바로 이들은 (유형적 자원뿐만 아니라 무형의 기술축적에 의해) 지식경제의 비경합적이고 비배제적인 재화를 이용할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긍정적 외부효과는 지식경제만의 특성이라고 보기 어렵다. 긍정적 외부효과는 비슷한 제한 아래서 이전의 생산형태들에서도 일상적이었다. 예컨대, 이전의 생산방식들이 19세기의 기계발명들뿐만 아니라 이러한 발명가들을 지원한 과학, 문화, 제도들에도 의존하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긍정적인 외부효과는 기계화된 제조업과 공장제 대량생산의 전성기에도 일상적이었다.

거의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이나 긍정적 외부효과에 대한 이러한 추측들이 과잉포섭이나 과소포섭 없이 그들의 주제(지식경제)를 충분히 차별화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추측들은 더 기본적인 결함을 가질수도 있다. 즉 이러한 추측들은 우선적으로 편의적이고 우발적이고 경험적인 가정에 불과한 표준(규모수익불변)에서 한계적인 이탈을 설명할 수도 있다.

우리는 생산성의 미래에 대한 지식경제의 혁명적 중요성을 다른 부분에서, 즉 지금까지 사실상 경제법칙에 준하는 것으로 여겨진 한계수확체감의 법칙을 완화하거나 역전시키는 지식경제의 잠재력에서 찾아야만 한다. 생산과정에 모든 투입요소들을 불변적으로 유지하고 그 중 하나의 투입요소를 증가시켜보자. 그 투입요소의 증가에 대한 산출물의 수확은 증가하다가 한계에서 감소할 것이다.

산출물의 감소를 막고 회피하고 지연시키는 것은 개념적, 과학적, 기술적, 조직적 또는 제도적 혁신이다. 그러나 혁신들이 일련의 산발적인 일회성 조치들로 그친다면 각 혁신은 수확체감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 투입요소와 등가적인 요소가 된다. 혁신은 산출물의 증가를 낳지만 이윽고 혁신이 가진 촉진적인 잠재력은 소진되고 혁신의 더욱 확장적인 사용에 대한 한계수확은 체감하기 시작한다. 한계수확체감의 법칙(다른 투입물들이나 요소들을 불변적으로 유지하는 가운데 생산에서 하나의 투입물이나 요소의 연속적인 증분에 따른 생산성의 체감)은 규모수익불변과 모순되지 않는다.

실제로 한계수확체감의 법칙은 이 법칙이 적용되는 단기간에는 규모수익불변을 당연시한다. 한계수확체감의 법칙이 관행상 장기적이기보다는 단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지만 이러한 법칙의 발생은 엄청나게 중요한 장기적 결론을 내포한다. 이러한 결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계수확체감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이 경제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는 데 매우 근본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한계수확체감의 기초에 대한 명료한 이해가 별로 없다는 사정은 주목할 만하다. 그 기초는 혁신의 일회적 또는 불연속적 성격이고, 이러한 성격은 생산체계에서의 진보가 생산체계 외부에 있는 과학적 기술적 (그 자체로 일회적인) 돌파구들에 의존함으로써 악화된다. 혁신은 한계수확체감을 상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요소이다. 그러나 혁신이 지속적이고 영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일회적이거나 불연속적인 것이라면, 각 혁신은 마치 동일한 한계수확체감의 제약 아래서 새로운 투입요소 혹은 수정된 기존 투입요소인 것처럼 작동할 것이다.

이전의 선진적인 생산방식, 특히 지식경제의 바로 직전 형태인 공장제 대량생산과 그 선행 형태인 기계화된 제조업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혁신들의 특성을 이루어온 세 가지 불연속 형태를 고려해보자. 첫 번째 불연속 형태는 과학적 발견의 역사 자체에서 존재하는 것으로서, 자연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의 발명과 이로부터 나오는 이론, 실험, 절차의 조직이나 규칙화가 동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번째 불연속 형태는 과학적 통찰을 과학기술적 발명에 적용하는 데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과학의 관행에 대한 과학기술적 발명, 특히 과학적 장비의 역(逆)작용으로 강화된다는 점이다. 세 번째 불연속 형태는 생산체계가 과학에 기초한 기술을 이용하는 데에서의 불연속이다. 이러한 중첩적이고 누적적인 불연속들은 생산 외부의 진보에 생산이 의존한다는 점과 결합하여 한계수확체감이라는 제약조건의 궁극적인 기초를 형성한다.

지식경제는 한계수확체감의 궁극적 기초를 무너뜨리고 따라서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을 극복하거나 심지어 역전시킬 잠재력을 창출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리하여 한계수확체감의 완화 또는 역전은 지식집약적인 생산이 왜 규모수익체증을 산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에서 원용된 이유들보다 더 근본적이고 동시에 더 특수한 이유들 때문에 일어날 수 있다.

내가 다음 절에서 논의하게 될 지식경제의 더 심층적인 특징들 중 하나는 우리의 협력방식을 상상력의 작동방식과 더욱 유사하게 만들고 노동자가 기계의 거울이라기보다는 기계의 대립물이나 보완물이 될 수 있게 하는 과학적 실험주의의 모형에 따라 생산을 쇄신하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앞으로도 불연속적인 상태에 머물지 모른다. 그러나 지식경제를 특징짓는 실험주의적인 생산은 과학적인 발견과 기술적 발명을 이전보다 더 직접적으로 또한 더 지속적으로 생산활동으로 변형할 수 있다. 더욱이 그러한 생산은 과학기술의 진보가 가져다주는 결과물의 수동적인 수혜자로 머물지 않고 관행과 제품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들에서도 스스로 끝없는 혁신의 원천으로 변한다. 그러한 생산은 과학기술을 더욱 닮아가기 때문에 과학기술이 창조한 것을 더 기꺼이, 더 완전하게, 더 항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혁신이 일회성보다는 영구성을 띨수록, 혁신이 생산체계 외부에서 발전된 아이디어와 기계의 이용뿐만 아니라 생산체계 내부에서도 더 많이 일어날수록,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을 완화시키거나 심지어 역전시킬 가능성은 그 만큼 더 커진다. 이러한 제약조건은 기술 속에 구현된 지식과 관련해서도 나아가 노동과 자본을 포함한 생산과정의 모든 투입요소와 관련해서도 완화되거나 역전될지도 모른다. 각 요소와 각 투입물의 성격과 그 생산적 잠재력은 지식경제의 일부가 됨으로써 변화된다.

이러한 사변적 명제들은 반증가능한 가설을 낳는다. 우리는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이 완화된다는 점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지식경제의 심화와 확산에 비례하여 그러한 완화가 발생한다는 점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제약의 극복에서의 성패는 한가한 호기심이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그러한 성패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물질적 도덕적 이익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을 완화하거나 극복하는 것은 생산의 성격에 중대한 변화를 두드러지게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의 경제사는 대체로 세 시기로 구분된다.

가장 원시적인 조건에만 해당하는 경제사의 제1기에서 경제성장의 결정적인 제약은 현재의 소비를 공제한 잉여의 규모, 즉 마르크스가 본원적 축적(primitive accumulation)이라고 불렸던 바다. 스미스와 마르크스 둘 다 본원적 축적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주요한 연구대상인 그 시대의 경제성장의 가장 중요한 한계라고 믿었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사회의 계급적 성격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아래서 매매상품으로서 노동력의 취급에 대해서도 지배적인 설명은 잉여의 강제추출을 확보할 필요성이었다. 스미스에게 있어서 기술적인 노동분업의 계층적이고 전문화된 형태 아래서 노동자의 비인간화는 경제적 진보를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미래 성장에 필요한 자본 스톡을 증가시키기 위한 조건의) 일부를 형성했다.

스미스와 마르크스 둘 다 오류를 범했다. 그들의 시대에도 이미 잉여의 규모가 아니라 관념적, 기술적, 조직적, 제도적 혁신이 성장에 대한 결정적인 제약이었다. 영국은 꽤나 높은 수준의 국내 민간저축과 정부저축을 유지하였다는 점에서 아시아의 농업적-관료적 제국들과 다르지 않았다. 역사적 연구는 영국이 도리어 다수의 아시아 제국들보다 낮은 저축수준을 유지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영국은 혁신과 이에 적합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배경에서 이러한 아시아 사회들과 달랐다.

문명의 시작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역사 전체에 해당하는 경제적 진화의 제2기에는 혁신의 수준, 범위, 속도 나아가 생산기술과 생산안배에서의 혁신과 제도, 과학, 문화에서의 혁신의 관계가 경제성장의 주요한 제약조건이 되었다. 다양한 형태의 혁신은 성장의 주요한 동력으로 전환되었다.

저축은 성장의 원인이기보다는 성장의 결과가 되었다. 그러나 혁신에 의해 촉발되고 지속된 성장은 희소성과 한계수확체감의 이중적인 비호 아래서 일어났다. 혁신은 비록 다면적이지만 단속적이었다. 혁신은 여타지속적인 관행과 안배에서 일련의 불연속적인 변화였다. 가장 중요한 혁신은 사람들의 협력방식과 인간의 편익을 위한 자연의 변형이나 자연적 요소들의 동원과 관련된 혁신이었다. 기계의 설계와 사용은 두 가지 유형의 실험(자연에 대한 실험과 협력적 관행에 대한 실험)의 흔적과 이러한 실험을 연관시키는 방법의 흔적을 간직하였다.

경제사의 제3기는 혁신이 그 단속적인 성격을 상실하고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이 완화되거나 심지어 역전되는 때 시작된다. 희소성과 부족한 자원의 분배와 이용에 관한 다양한 방법들의 불평등한 결과는 계속해서 경제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이다. 그러나 혁신은 일회성보다는 영구성을 갖는다. 혁신은 생산체계 외부에서 도입된 과학과 기술에 의존하게될 뿐만 아니라 생산과정에 내부적으로 된다. 좋은 기업이 좋은 학교를 닮기 시작하고 생산의 발전이 지식의 발전을 닮기 시작하는 까닭에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은 이완된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책 소개 바로가기>>

<<온라인 서점 바로가기>>

토, 2021/05/29- 23:03
1
0

편집자 주:

미국이 중국에 대하여 Decoupling을 선언하고 전방위적인 하이브리드 전쟁을 진행하는 한편 한국측에 대하여 정치군사 및 산업과 기술동맹의 참여를 강요하는 상황에서, 한중수교 30주년을 앞두고 양국간 증권상품 상호교환(ETF)에 대한 양허각서를 교환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일임에 분명하다. 한마디로 미중 간의 주도적 균형외교라는 기회와 미국과 동맹강화라는 종속의 길이라는 교차점에 서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한심하게도 한국 주요 매체에서는 이에 대한 일체의 뉴스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중국국제방송에서 칼럼형식으로 올라온 내용을 번역 소개한다.


가까운 장래에, 세계경제와 완벽하게 통합된 국가단위의 주체가 되기 위한 중국의 장정은 역사적인 경제개혁 과정과 주변국가들과 전략적 양자협력의 협정을 통해 강력한 추진력을 얻고 있습니다.

전문가와 해당기관들 모두 금세기에 가장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는 지역인 아시아 태평양에 위치한 주요 경제국들과 국가간 상호협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최근 일련의 결정은 자유무역협정의 형태(RCEP)와 자본시장의 연결성(ETF)과 같은 협력의 형태로 드러납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 주(5월 두번째) 상하이 증권거래소와 한국거래소 간 거래펀드를 국경을 넘어 교환하는 방식(ETF, exchange-traded funds)의 출범을 위한 양해각서 (MOU)합의에 도달했다는 발표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이러한 결정이 중국의 국내 자본시장을 전세계에 더욱 개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신호의 연장이며, 상하이-홍콩과 심천-홍콩 뿐만 아니라 상하이와 런던의 증권거래소간 등 글로벌 연결계획 이후에 나왔다는 점입니다. 특히 상하이와 홍콩 간 거래소는 자본계정뿐만 아니라 부채계정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증권상품의 상호교환에 대한 제안의 역사는, 기존에 이미 작동시키고 있는 증권연결 프로그램을 확장할 수 있도록 금융상품의 교차상장거래를 허용함으로써, 중국본토와 홍콩금융 시장 간 거래연결의 확대를 고려했던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어서 2019년에는 일본 증권거래소, 상하이 증권거래소 및 심천 증권거래소 간에 첫 번째로 국경을 넘어선 ETF 연결계획이 수립되어 아시아의 최대 금융시장 간의 투자기회를 더욱 촉진 확대했습니다.

제 생각에 일본과 상호협력 프로그램을 시작한 동기는 중국의 국내 금융시장이 전문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최고수준의 국제관행에서 배우며, 세계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로 큰 금융시장 간의 통합을 강화하고자 하는데 있었습니다.

이제 한국과의 합의는 중국이 보다 발전되고 접근하기 쉬운 자본시장이 되겠다는 공약을 강력히 뒷받침하고 증권의 지수개발 및 채권시장에서 상하이와 서울 간의 협력수준을 심화시키는 것을 강력히 뒷받침하는 첫걸음을 내딛는 의미를 지닙니다.

홍콩과 합의가 특별행정구역과 중국본토 간의 금융시장에 보다 나은 통합 메커니즘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면, 일본 및 한국과 합의는 기본적으로 아시아에서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장 선진화된 3개 국가의 경제권을 연결하면서 지역 간의 금융협력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또한 이번 주에 발표된 상호연계의 계획은 개별국가별 국내금융상품에 대한 접근성 측면에서 분명한 상호이익을 제공하면서 결과적으로 투자자에게 보다 높은 수준의 다각화를 제공하고 투자에 따른 위험을 낮출 뿐만 아니라, 이미 지난 해 지역포괄경제동반자의 협정(RCEP)에 서명한 중국과 한국의 경제관계를 더욱 보완하는 효과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또한 중국이 한국과 최대 교역국이라는 사실이 양국간 상생의 방향으로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글로벌 벤치마크 지수에 중국증권을 편입함으로써 한국투자자가 중국시장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반면에, 중국은 국내 금융시장의 현재 위상을 글로벌 기준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끌어 올릴 수 있는 이점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양국의 협력관계는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발전하는 양국 시민 간의 역사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유대감을 가져온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가오는 한중수교 30주년 기념행사의 핵심적 내용으로 양국의 협력을 상징하는 증권거래의 연계협정(ETF Connect Scheme)을 검토하기로 결정한 것을 높게 평가해야 합니다.

종합적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의 상호거래에 대한 발표는 중국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더욱 적극적이고 책임있는 참여자가 되고자 할뿐만 아니라, 통합과 포용을 통해 모든 국가들이 경제적 이익을 즐기는 다자적 세계질서를 확산하고자 하는 중국의 입장을 뒷받침합니다.

 

출처: CGTN(중국국제방송) on 2021-05-15.

Matteo Giovannini

베이징에 거주하는 이탈리아인으로 중국의 산업 및 금융 재무전문가이자 이탈리아 경제개발부처의 중국관련 태스크-포스 정회원

월, 2021/05/31- 19:56
2
0

편집자 주:

현재 한국의 언론들은 WHO의 공식적인 발표를 무시하고, 워싱턴에서 제공하는 코로나 우한 발생설을 자가발전시키고 있다. 이에 다른백년은 WIV설에 대한 중국정부의 입장을 밝히는 CGTN의 Voice 내용을 아래로 소개한다.


COVID-19의 “실험실누출 음모이론(WIV)”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 (WSJ) 등 미국 미디어 매체들에 게재된 연속적인 추측보도에 따라,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 (Joe Biden)은 정보기관에게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가 어떻게 출현했는지에 대한 포괄적인 검토를 준비하도록 요구하는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자연적 기원과 우한바이러스연구소WIV의 유출설 간의 COVID-19에 대한 워싱턴의 접근 방식은 팩트체크나 과학적 진실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아니라 국제지정학 및 자신의 필요에 따른 임의적 서술을 선호하는데 기반합니다. 따라서 그간에 이루어진 조사가 중국에 대한 과실이나 불신을 두둔하지 않는 결과로 귀결되어도 이의 내용도 받아들이지 않는 완고함을 고집한지 오래되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정작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기간 COVID-19를 재앙스럽게 처리한 것을 회피하고자 선택한 편향수단으로 실험실 누출이론을 퍼뜨린 점에 대하여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시점에서 백악관은 국내정치에서 오는 추가적인 압박으로 인하여 검토요구를 수용해야 했습니다.

 

트럼프의 거짓말

미국의 트럼프 시대는 단지 한 자연인의 영향력에 의해서만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개인적 무능력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그를 옹립하고 지지하려는 정치적 필요의 맥락에서 커다란 흐름이 형성되었습니다.

현재 미국정치의 환경은 점점 양극화되고 서로를 불신하며 분열적인 정체성의 갈등이 형성되는 시기입니다. 이러한 대규모 불신과 갈등은 음모이론, 부정적 내러티브와 정체성에 우선하는 사실거부, 반과학적 정치로 구성된 ‘거짓 정치’로 묘사되는 문화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위의 WSJ 기사가 전형적인 예입니다. 이러한 모든 현상은 진실을 왜곡하고 과장하는 과정을 통해 국내정치 전쟁의 매개체가 되며, 양측은 서로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쏟아 붓고 도덕적으로 상대방을 타격할 불명예를 모색합니다.

분열된 정치환경에서 WIV의 실험실 음모이론이 선거연도(2020년)의 열기 속에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 및 실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등장했습니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두가지 방향에서 활용했는데, 우선적으로 자신의 과실가능성을 거부한 다음, 기회주의적 방식으로 중국에 대한 미국의 비난정책을 강제로 재설정하고 극단주의적 접근을 추구하여 왔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퇴임한 이후에도, WIV이론은 새 대통령을 타격하기 위하여 중국에 대한 강경한 정책을 유지하고 중국을 불신함으로써 그의 유산을 증명하기 위한 내러티브 즉 “트럼프는 항상 옳았다”라는 이중 목표를 가지고 바이든 행정부를 공격하는 몽둥이로 진화했습니다.

 

거짓말 문화의 쇼는 계속된다

실험실 유출이론에 대한 명백하고 심각한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단서에 따르면 2019년 하반기에 바이러스가 우한 뿐만 아니라 세계도처 곳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우한이 첫 사례를 보고하기 전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WSJ가 2012년 동굴작업을 했던 중국광부들의 죽음을 2019년까지 출현하지 않았던 COVID-19 바이러스와 연결시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억지입니다(2012년의 죽음이 2019년 코로나를 불러왔다는 상상력을 사실로 만들려는 황당무계한 쇼).

90일 이내에 조사를 요구하는 바이든의 요청은 순전히 정치적 조작입니다. 이러한 조사기획의 배경은 성가신 국내의 정치상황을 탐색하고, 소위 투명성이라는 이름으로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에서 코로나라는 전염병을 지속적으로 무기화하려는 시도입니다.

미국이 투명성에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면 중국의 요구에 따라 WHO 전문가를 미국에 초청하고 *포트 데트릭의 바이오 연구소를 국제사회에 공개하고 2019년 초가을에 발생한 버지니아와 위스콘신에서 설명되지 않은 호흡기 질환발생에 대한 자세한 데이터를 공개해야 합니다 (*워싱턴의 이웃한 메릴랜드 주에 위치한 대규모의 Fort Detrick 미군생화학무기 연구소를 2019년 6월경 아무런 설명도 없이 긴급 폐쇄하였으며, 코로나가 진정된 이후 점차 정상화의 과정을 밟고 있다. 중국시민사회는 상기 연구소가 코로나 진원지의 하나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WHO의 우한방문 조사팀은 실험실 누출이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것 extremely unlikely “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조사결과는 현장학습과 광범위한 데이터에 대한 심층연구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Biden 대통령의 조사요청은 새로운 기준을 별다르게 설정하지 않았습니다.

미국도 이를 분명히 알고 있으나, 추측과 가설은 이에 상관없이 난무할 것입니다. 워싱턴은 진지한 답변에 관심이 없으며 사실 역시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WIV 이론은 지속적으로 미국에서 골치가 아픈 정치의 게임으로 남을 것이며 극도로 당파적일 것입니다. 이것은 음모, 잘못된 정보, 진실이전의 조작정치의 절정에 휩싸인 국가에서, 객관적으로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는 국가에서 발생합니다. 어쨌든 이것은 현대미국의 민주주의적 불안정성, 비합리성 및 비정상적인 특성을 설명하는 데 안내의 역할을 합니다.

 

출처 : (CGYN)중국국제방송의 Voice on 2021-05-28.

화, 2021/06/01- 19:14
4
0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29일 열린 제34차 정기총회에서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 특별결의문을 채택했다.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이 연일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회장 김도형, 이하 민변)은 29일 열린 제34차 정기총회에서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 특별결의문을 채택했다.

민변은 29일 보도자료를 통해 “민변은 이번 총회에서 앞으로 1년 동안 민변의 핵심의제가 될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와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에 대해 각 특별결의문을 채택하였다”고 밝히고 “민변은 1988년 창립 이후 30여 년간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온 대표적인 악법인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때까지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결의”하였다고 천명했다.

‘국가보안법 폐지 결의문’은 “국가보안법은 1948년 제정 당시부터 지금까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온 대표적인 악법”이라며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전제로 꽃피는 민주주의가 국가보안법으로 질식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로 우리는 국가보안법 체제 하에 살고 있다”고 규정했다.

결의문은 “국가보안법은 우리 사회의 자기검열을 강제하는 헌법 위의 법으로 군림해왔다”고 지적하고 특히 “평화통일의 상대방인 북한을 적으로 간주하고 남북관계에 관한 특정 의견을 형사처벌함으로써 통일정책 수립에 관한 국민주권원리를 훼손하며, 평화적 교류로 나아가려는 민간의 노력조차 가로막아 헌법상 국제평화주의와 평화통일원리에도 정면으로 반한다”고 적시했다.

또한 “최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국민동의청원에 10만 명의 국민이 참여하여 국가보안법 전부폐지법률안을 국회에 상정시켰으나, 바로 그 때 통일운동가는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구속되었다”며 “국가보안법이 2021년에도 적용되는 현실에서 진정한 자유와 민주, 평화를 이야기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정훈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이 국가보안법상 통신․회합 등의 혐의로 지난 14일 압수수색을 받고 체포돼 16일 구속된데 이어 26일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발간한 김승균 민족사랑방 대표에 대한 압수수색이 실시됐고, 27일 청주지역 활동가 4명에 대한 압수수색이 실시됐다. 앞서, 지난 4월 29일 원진욱 범민련남측본부 사무처장 외 1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결의문은 “국회는 망설이지 말고 국가보안법 전면폐지안을 신속히 논의하고 의결해야 한다”면서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의 위헌을 선언하고, 국회와 정부는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한편,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행동은 지난 10일부터 10만 입법청원 운동을 벌여 9일만에 10만명을 달성해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국가보안법 폐지 결의문(전문)

국가보안법은 1948년 제정 당시부터 지금까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온 대표적인 악법이다. 우리 모임은 창립 이후부터 줄곧 국가보안법에 근거한 용공조작과 인권유린, 사상의 자유 침해에 맞서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 과정에서 국가보안법 피해자를 보호하고 폐지를 촉구한 회원들이 형사처벌되고 변호사자격을 제한당하고, 모임 역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되거나 악의적 보도로 공격받았다.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맞서 인권을 지키기 위한 변호사들의 활동조차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되고 공격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 온 현실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전제로 꽃피는 민주주의가 국가보안법으로 질식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로 우리는 국가보안법 체제 하에 살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우리 사회의 자기검열을 강제하는 헌법 위의 법으로 군림해왔다. 국가보안법은 특정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을 금지하고 국가가 허락한 사상이나 신념만을 허용하며, 직접적인 표현 행위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표현으로 나아가기 전에 읽고 쓰고 생각한 내용조차 처벌하여 헌법상 인간 존엄, 사상과 표현의 자유, 학문예술의 자유 등을 근본에서부터 침해한다. 행위의 결과가 아닌 행위자의 이력과 성향을 기준으로 수사기관의 자의에 따라 처벌 여부를 달리하여 평등권을 침해한다. 구성요건이 모호하여 죄형법정주의에 따른 명확성 원칙에도 반하고, 침묵할 자유마저 인정하지 않아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 평화통일의 상대방인 북한을 적으로 간주하고 남북관계에 관한 특정 의견을 형사처벌함으로써 통일정책 수립에 관한 국민주권원리를 훼손하며, 평화적 교류로 나아가려는 민간의 노력조차 가로막아 헌법상 국제평화주의와 평화통일원리에도 정면으로 반한다.

1990년대 이후 국가인권위원회 및 국제인권기구들로부터 폐지 요구가 계속되었지만, 아직도 국가보안법 적용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국민동의청원에 10만 명의 국민이 참여하여 국가보안법 전부폐지법률안을 국회에 상정시켰으나, 바로 그 때 통일운동가는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구속되었다. 냉전체제의 종식과 함께 역사 속 유물이 되었어야 할 국가보안법이 2021년에도 적용되는 현실에서 진정한 자유와 민주, 평화를 이야기할 수 없다. 더 이상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를 미룰 이유도 없고, 미뤄서도 안 된다.

이에 우리 모임은 국가보안법은 전면 폐지되어야 함을 다시 한 번 천명한다. 국회는 망설이지 말고 국가보안법 전면폐지안을 신속히 논의하고 의결해야 한다. 정부는 촛불정신을 기억하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적극 나서야 한다.

우리 모임은 창립 이후 30여 년간 국가보안법의 폐지와 인권 옹호를 위해 헌신해온 회원들의 역사를 기억하며, 국가보안법이 완전히 폐지될 때까지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결의한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의 위헌을 선언하고, 국회와 정부는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에 나서라!

2021.05. 29.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처 : 통일뉴스 on 2021-05-30.

수, 2021/06/02- 00:30
3
0

지난 몇 년간 미국의 잘못된 정책과 혼란을 겪으면서, 세계인들이 ‘과연 위안화가 그린백(Green-back, 미국달러를 의미)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한편 누구도 기축통화에 대한 국가 간의 경합을 반기고 있지 않지만, 역사는 미국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뉴델리 – 최근 억만장자인 Ray Dalio(Bridge-Water해지펀드 설립자)가 불쑥 중국의 위안화가 국제기축통화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온세계가 그의 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중국정부를 고무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질문의 촛점은 ‘소의 해’인 올해 안에 주요 국가들의 정책결정권자를 만족시킬 만큼 과연 위안화의 위상이 높아질 것인가에 달려 있다.

미인선발대회처럼, 국제기축통화의 경합은 상대방과 비교되는 매력에 의해 결정된다. 국제사회의 거래상과 투자자들은 주요 통화 중에 어느 것이 자신이 사용하기에 가장 적절한(유익한) 지를 선호할 것이며, 판단의 기준으로 강력한 금융제도와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해당국가의 주권에 대한 신뢰도를 따질 것이다. 마침 현재의 상황은 가장 강력한 강대국 간에 상대방의 신뢰도를 감쇄시키려는 경쟁을 벌리는 형국이다.

상대적인 매력을 정량화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화폐발행 해당국가의 경제규모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만이 1984년의 논문에서 밝혔듯이, “세계경제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한 국가의 통화가 적은 규모 국가의 것보다 기축통화로서 자격을 지닌다” 즉, 세계를 지배하는 경제의 규모가 기축통화가 되는 하드웨어 hardware인 셈이다.

중국은 분명히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다. 중국은 이미 2013년 이래 세계에서 가장 큰 무역대국이며, 현재에도 구매력지수인 PPP기준으로 미국보다 커다란 경제력을 지니고 있으며, 시장환율로도 조만간 미국을 추월할 기세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나의 친척인 Subramanian (하버드대학 박사출신의 인도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은 십여 년 전부터 위안화가 달러와 경합과정을 거쳐 결국에는 달러를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하여 왔다.

이후에도 중국은 발전을 거듭하면서 위안화가 국제통화로서 매력을 계속 키워왔다. 성장률에서 미국을 지속적으로 앞질러 왔고 코로나-19 위기를 매우 성공적으로 극복해 왔으며, 중국의 인민은행은 디지털통화를 계발하여 시험 중에 있다. 전세계에 걸쳐 일대일로에 참여하는 많은 개발도상국가들은 중국과 무역과 금융거래에서 이미 위안화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달러 역시 만만치 않은 저력을 보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의 수석경제분석가인 Gita Gopiath와 동료들은 국제무역에서 달러로 거래되는 물량이 압도적이며(60%), 국제지불 수단으로서도 여전히 주도적인 역할을 지니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위안화의 도전에 대응하여 달러가 여전히 강세인 주요 요인은 미국의 경제적 하드웨어를 소프트웨어가 강력히 보완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투자자들의 신뢰를 유인하는 무형적 질적 자산인 강력한 금융시스템과 안정적인 국가권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는 중국이 한참 뒤쳐져 있는 셈이다.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 중국은 보다 수준높고 규모있는 은행들을 확보해야만 하며, 그런 후에도 자본시장에 대한 통제를 제거하여 확실한 투명성을 보여주어 투자자들이 구매하고자 하는 상품에 대하여 신뢰를 가지고 시장에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 당국자들은 자본통제라는 장애물을 불식시켜 투자자들이 원하면 언제라도 돈을 국외로 반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도록 해야만 한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며, 더구나 변화된 시스템이 과거로 번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데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다음의 과제는 국가 권력에 대한 신뢰를 쌓는 것이다. 중국은 자신이 믿을만한 경제파트너임을 상대국가에게 확신시켜야 한다. 특히 지난 몇 년간 중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여 왔기 때문에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중국은 최근 지역내 포괄적경제파트너십인 RCEP협상에 주도적인 역할을 보여 왔으나, 동시에 주요 통상국가인 호주에게 정치적인 보복으로 통상제재를 가하여 왔다.

더구나 국제적 금융의 중심역할을 맡아온 홍콩지역에서 자유언론과 민주적인 활동에 대하여 정치적 처벌을 내렸다. 금융분야의 선도적인 기업가이자 알리바바의 창업자인 Jack Ma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했으며, 분명하게 경제정책의 내수지향적인 신호를 보내는 ‘쌍순환’ 개발전략을 공언하였다.

물론, 미국 역시 금융파트너로서 국가신뢰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구심을 자아냈으며, 특히 트럼프시절이 그러했다. 예를 들어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의 금융기관들이 이란과 직접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넘어서, 외국의 금융기관까지 제재를 가했다. 그 결과로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동맹과 우호국가들을 포함하여, 미국의 일방적 행위가 그들에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닫게 하였다. 달러의 지배적 지위가 편리함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매우 위험해지면서, 유럽은 무역의 대외결제 수단기구로 자신들의 방식을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최근에 이르러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대하여 직접적인 제재를 다시 가하면서, 미국의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의 중국국유기업들과 거래를 금지시키고 중국의 3개 기업을 뉴욕증시에서 퇴출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후 중국당국은 미국금융지배의 공격과 횡포에서 중국기업들을 보호하려는 일련의 대응조치들을 준비하여 왔다.

미국과 중국 간에 어느 국가가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더욱 심하게 훼손시켰는지, 과연 달러의 지배적 위치가 흔들리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여하튼 단순히 미국의 달러가 매력을 상실해가던, 아니면 위안화가 더욱 매력적으로 변신해가던, 중국의 위안화가 기축통화에 도전할 경합의 기회는 여전히 남아 있다.

더구나, 역사는 달러의 편이 아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작고한 경제역사학자인 Charles P. Kindleberger는 다음과 같이 예측하였다 “ 시간을 되돌려 올라가서 베네치아 화폐인 Ducat, 네덜란드 화폐인 Gulder, 그리고 영국의 Sterling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달러 역시 언젠가 역사의 뒷길로 사라질 것이다.”

물론 올해 안에 달러에서 위안화로 이행이 시작될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긴 호흡으로 본다면, 중국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통화에 대하여 ‘여전히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부족하지만 하드웨어에서는 충분히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자신할 것이다. 중국이 무슨 일을 벌리든, 위안화가 장차 지배적인 (국제)통화가 될 것이라는 것은 새삼스레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021-01-19.

Arvind Subramanian

인도정부의 수석경제자문역을 맡았으며 아쇼카 대학의 경제학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Eclipse: Living in the Shadow of China’s Economic Dominance가 있다

수, 2021/06/02- 19:38
3
0

중국의 ‘가장 보통 젊은이’들, 입을 열기 시작하다

매년 중국의 대입학력고사인 ‘까오카오高考‘에 응시하는 인원은 현재 약 천만명 수준에 이르고, 이중 절반이상이 전문대학을 포함한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한다. 한때 매년 2천만명 넘게 출생하던 중국에서는 점차 감소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2천년 이후 매년 천오백만명 정도가 태어나고 있으며, 작년에는 가까스로 천만명을 넘는 아이들이 태어났다. 그래서, 80년대 출생한 이들이 대학에 진학하기 시작한 2천년대부터는 중국의 대다수 대학들도 엘리트가 아닌, 대중교육기관으로 여겨지고 있다. “나의 이본二本 학생”은 과거 한국의 전후기 모집처럼 응모 시기에 맞춰 일본一本, 이본二本, 삼본三本으로 구분되며, 그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본 즉 ’비명문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황덩 작가의 논픽션 문학 작품이다. 그가 십년 넘게 비즈니스 중국어와 중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광둥금융학원은 광둥성 광저우시에 위치한 대학인데, 금융계 전문대학으로 오랜 기간 운영되다가, 정부의 대학정원 확대 방침에 따라, 2천년대 초반에 4년제 대학으로 승격됐다. 대부분의 이본 대학과 마찬가지로, 주로 학교가 소재한 성省내 출신인 자신의 학생들을 저자는 중국의 ’가장 보통 젊은이들‘로 부른다.

나의이본학생 – 황덩

74년생인 황덩은 광둥성 북쪽에 위치한 내륙지역 후난성의 가난한 농촌 출신인데, 본인이 후난의 한 이본대학 학부를 졸업하고, 당시 관행대로 국가가 지정해준 국영기업에서 사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다. 90년대 경제개혁의 한파속에 문을 닫은 대부분의 국영기업의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정리해고를 당했다. 하지만, 전화위복인지, 일본(명문)대학인 우한대학, 중산대학에서 각각 석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교편을 잡게 됐다.

그는 자신이 십여년간 이어 가르친 80호우, 90호우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정리하게 된 일종의 구술사 기록과, 작문 지도 등을 통해서 이해한 그들의 구체적 인생 경험을 하나 하나 들여다 본다. 여기에 자신이 속한 70호우 대학 동기 동창들의 생애를 덮어 씌워 보면, 중국이 가장 급속한 변화를 겪은 개혁개방 후 지난 40여년 동안의 세 ‘청년세대’의 경험이 인공위성에서 들여다 본 장강의 거대한 물줄기처럼 굽이쳐 흐른다. 70호우는 농촌출신이 ‘개천에서 용나는’ 것이 가능한 가성비 높은 마지막 고등교육 세대였다. 80호우는 졸업하자마자 직장을 얻게 될 도시에서 집을 구매한 결정 여부가 중산층 진입을 가르게 된 희비극의 세대였다. 90호우는 이미 벼락같이 올라버린 집값을 감당할 수도 없고,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어진 탓인지, 늘 성적에 조바심하면서도, 조금만 수업이 재미없다고 느끼면, 무심하게 스마트폰으로 고개를 떨구는, 한국의 사회학자 엄기호가 얘기했던 ‘단속세대’에 해당한다. 그래서, 기시감이 든다. 마치, 한국의 50호우부터 90호우의 이야기가 압축돼 있는 것 같다. 일선 도시의 90호우 이야기는 아프게 동시대적이다.

다시 급강하해서, 이름이 호명된 모든 학생들이 들려주는 낱낱의 이야기로 빠져들면, 잔물결들에 부서지는 기포소리마저 생생하게 들린다. 2020년 발간 직후 큰 화제가 된 이 책은, 같은 시기에, 인기를 끈, 서바이벌 음악예능프로에 출연해 일약 전국구 스타가 된, 광둥성 출신의 언더 그라운드 롹밴드 우탸오런五條人의 모습과도 은근히 겹치는 바가 있다. 가난한 지방, 현성縣城 (한국이라면 군청소재지에 해당하는) 출신에, 중국인 대부분이 알아들을 수 없는 지역 방언인 차오저우화로 자기 사는 이야기를 가사로 풀어 놓는 이들은 약속된 곡대신 즉흥적으로 다른 곡을 연주하는 방송사고를 치고도 너무나 태연히 행동했다. 무대를 떠나며 오히려 방송스태프를 위로하는 이들의 태도가 광둥의 동네 청년들 옷차림인 플립플롭 & 가죽자켓과 너무도 잘어울렸다. 그들의 대표곡중 하나인 ‘지구의’의 가사가 또 절묘했다. “立足世界. 放眼海丰 세계에 서서, 하이펑 (그들의 고향인)을 바라보다.”

14억 인구의 무게와 5천년 역사의 지층에 까마득하게 묻혀버린 중국의 보통 청년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한다. 황덩의 문학사 수업에 참여한 덕에, 자신이 속한 시대와 삶의 언어를 연결하는 마법을 발견한 한 90호우 학생이 증언한다. “현재 중국 사회를 둘러 보면, GDP2위로 올라선 우리 나라가 자랑스럽긴 하죠, 하지만, 시대를 거슬러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분투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하나뿐인 삶이 어디에 놓이는지를 살피는 것이 더 값지고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책의 또다른 재미는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인 광둥이라는 지역의 문화적 특성, 그리고,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 온 이들이, 광둥에 와서 느끼는 위화감을 함께 관찰하면서 현대 중국을 만화경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저자는 따로 한 장을 할애해서, 남방사회의 특질이 매우 두드러진 챠오샨 지역, 그리고 이제는 경제적 위상으로 홍콩을 능가해버린, 션전 출신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전히 절반에 불과한 ‘보통대학생’의 이야기가 비진학 청년과 농촌 청년들을 홀대하고 있다고 불평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황덩 작가는 2016년 발간된, 자신과 남편의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비장한 톤으로 들려준 책 ‘대지의 친족들’로 이미 명성을 얻은 논픽션 전문 작가이다. 그의 전공 분야가 향촌사회와 향촌문학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가 극도의 진실성을 갖게되는 이유는 이 책의 서문에 인용한 중국 사회학과 인류학의 비조인 페이샤오퉁费孝通의 주장과, 이에 영향을 받은 중국 사회과학계의 풍토와도 관련이 있다. “내가 책에서 서술하는 것은 모두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나는 사회과학 연구는 반드시 필드에 기반함으로써 탁상공론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나는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보편성을 희생할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 3월1일에 발표된 중국 교육 당국의 통계에 의하면, 중국의 고등교육 기관 입학률은 54.4%에 달한다 (해당 학령인구대비, 전체 학생수 비율. 2021년 전체 모집인원은 900만명 가량이라고 한다)

■ 5월11일 발표된 2020년 중국 인구센서스 자료

■ 이 글의 축약본이 경향신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경향신문의 허락을 얻어, 다른백년에도 옮깁니다.

목, 2021/06/03- 19:50
5
0

기후와 생물다양성의 위기에 직면하여 인류는 탄소중립적인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것 뿐만 아니라, 경제의 순환과정에서 자연자원의 가치를 재할용하고 재평가하여만 한다. 이러한 목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매우 소중하다.

헬싱키 –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의 실종은 우리 시대의 가장 긴급한 도전으로 책임있는 모든 정치지도자들은 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장기적인 대책을 수립해야만 합니다. 실현가능한 목표를 향한 분명한 전략이 필요하며, 과감하게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야만 합니다. 특별히 신뢰할만한 기후 전략을 채택함에 있어서 기술적 혁신이 가지는 중요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2035년까지 기후중립을 시현하고 이후 곧 탄소음성(배출되는 것보다 더 많은 대기 탄소를 제거)을 목표로 하는 핀란드의 기후목표는 세계에서 가장 야심찬 목표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는 배출량 감축뿐 아니라 지속가능성과 폐기물제거에 초점을 맞춘 순환경제를 도입함으로써 선진경제권의 리더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우리의 계획은 2035년까지 자원효율성과 순환비율(경제로 돌아가는 모든 재료의 비율)을 두 배로 늘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화석연료로부터 해방되는 최초국가가 되기 위한 핀란드의 길에 대한 주요 벤치마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귀중한 천연자원을 보존하는 나은 방법 없이는 기후목표를 달성 할 수 없습니다. 과학적 발견, 신기술 및 혁신은 모든 장기적인 대책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모든 국가지도자들은 화석연료의 사용을 멈추는 방법을 보다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초점은 생물다양성을 손상시키지 않는 연료와 에너지원의 사용을 늘리는데 있어야 합니다. 엄격한 지속가능성의 기준을 준수하고 수명주기 동안 배출량을 줄이는 연료의 사용을 장려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바이오-매스 연료의 부산물은 섬유 및 건축자재와 같은 고품질의 지속가능하고 생분해 가능한 제품에 사용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산림자원에 대한 수요를 줄여 생물다양성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Power-to-X” 변환기술은 전기를 열과 수소 또는 합성연료로 바꾸는 다양한 프로세스에 대한 문을 열어줍니다.

과감한 투자와 혁신을 통해 이러한 기술은 포획된 이산화탄소 배출량에서 합성연료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석탄와 ​​석유 및 천연가스를 분리할 수 있게 해줍니다. 여기에서 바이오 기반산업, 시멘트 고로 및 고형 폐기물 소각로 등 기존 산업에서 발생하는 가스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 건물에서 배출공기를 수집하거나 심지어 직접 공기 포집(DAC)과 같이 중간수준의 탄소원을 활용하는 새로운 기술도 개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험이 이미 진행 중입니다. 전기분해에 의해 생성된 수소를 이용하여, CO 2 산업설비 및 DAC로부터의 배출탄소 중립도, 해상, 및 항공 용도의 합성액체와 기체연료의 공급원을 만들 수 있습니다이러한 방법은 합성메탄올을 중간 생성물로 생성하고 이를 가솔린과 등유 및 디젤로 전환 할 수 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는 희박한 공기로 연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기술과 프로세스는 비용적 부담을 갖고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태양전지판과 연료전지에서 보았듯이 기술비용은 사용량이 늘어나기 시작하자마자 급락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정부지원 수준에 따라 (연료혼합 규제 및 탄소가격 책정과 같은 조치를 통해) 깊이와 범위가 다양하지만 다른 새로운 기후친화적 기술에 대한 시장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망한 새로운 수소기반 기술은 규모를 달성하기 위해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전기 생산량을 대폭 증가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풍력과 태양열의 사용을 확대함으로써 충족될 수 있으며, 이미 세계 여러 지역에서 가장 저렴한 전력생산의 옵션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은 많은 선진국 및 개발도상국에서 지속가능한 연료원의 주요 전환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글로벌 배출가스를 줄이는 것에 멈추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배기가스의 배출량뿐만 아니라, 미래에 탄소음성이 되기 위해 많은 산업을 배치해야 합니다.

또한 기술만으로는 인류를 위한 기후위기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반드시 올바른 정책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녹색전환의 핵심요소는 높은 탄소가격의 책정이며, 이는 국제적 수준의 조정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탄소시장 메커니즘에 대한 지속가능한 기준에 동의하는 것은 중요한 진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는 규제프레임 워크와 재정적 인센티브를 통해 구조적 변화를 지원하기 위해 더욱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화석연료에서 전세계를 해방시키려면 에너지생산 및 산업공정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순환 및 녹색경제를 개발하려면 보다 많은 작업이 필요합니다. 국가마다 필요와 장점이 다릅니다. 그러나 최고의 솔루션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적용하고 확산할 수 있는 솔루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은 우리가 배출량 감소목표를 달성하고 미래의 기후재난을 피하려면 지구의 배기가스 배출량이 조만간 정점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기후중립적인 순환적 세계경제를 만들려면 유망한 신기술들을 종합적인 시각에서 개발, 최적화 및 전 세계적으로 배포해야 합니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021-05-17.

SANNA MARIN

핀란드 총리


<<책 소개 바로가기>>

<<온라인 서점 바로가기>>

금, 2021/06/04- 19:43
2
0

드디어 로베르토 M.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가 출간되었습니다.

‘시대의 예언자’ 혹은 ‘미래를 향한 메시아’로 불리는 웅거는 브라질 태생으로 하버드 법대를 다니며 비판법학 운동을 주도하면서 약관 29세에 종신교수직을 획득하고 이후 수많은 화제의 저술을 남기면서 국내에도 ‘주체의 각성’ ‘민주주의를 넘어’ ‘정치 3부작’ ‘진보의 대안’ 등이 번역 소개된 미국을 대표하는 현시대 최고의 지성입니다.

그는 현재의 산업체계를 ICT첨단기술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를 ‘지식경제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실제로 ICT 첨단기술이 산업과 생활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켰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산업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고 일부 집단이 소위 e-F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독과점을 강화하고 경제운용의 성과를 독차지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약직과 비선형적 고용의 불안정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웅거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첨단기술을 소수의 그룹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狹域(프린지)의 폐쇄적 전위주의와 거대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해와 지위를 강화하는 유사적 전위주의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지식경제의 소명은 가장 선진화된 기술과 생산관행을 생활과 산업전반으로 확산하고 보편화시키는데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이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를 실현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가지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인지적 교육적 요건 – 사회적 도덕적 요건 – 법적 제도적 요건.

이어서 웅거는 기존의 경제학인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고전경제학, 마샬과 빈-학파에 의해 주도된 한계(효용)학파와 미시경제, 그리고 이단이라는 표현으로 케인즈의 이론, 이후의 신자유주의와 이에 타협한 사민주의의 타락과 제3의 길 등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경제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는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못지않게 매우 난해하고 추상적인 저술입니다만, 기존의 논리와 관행에 갇혀 있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백년의 지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구매를 요청합니다. 책의 내용은 매주 한차례씩 20여 주에 걸쳐서 다른백년의 홈에 게재됩니다. 두손모아,

다른백년 이사장  이래경


지식경제의 또 다른 심층적인 특징은 지식경제가 우리가 작업하는 방식과 정신이 관념을 발전시키고 발견을 성취하는 방식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을 수립해준다는 데에 있다. 생산이란 우리의 힘을 향상시키는 기술의 도움을 받아 자연을 변형하고 자연의 힘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지식성장이 경제활동의 중심축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 신규제품이나 신규자산, 이를 형성하는 새로운 방식은 우리의 추측과 실험을 상품과 서비스로 구현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식경제의 이와 같은 성격규정에서 경제생활에 중요한 어떤 것들, 예컨대 생산에서 우리가 함께 작업하는 방식, 즉 협력체제나 기술적 노동분업 나아가 우리가 협력하고 있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제도적 안배들은 배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 않다. 우리가 지식경제의 중요한 충동을 급진화함에 따라 실천적인 목표를 달성하고자 우리가 함께 작업하는 방식은 상상력의 표현이 된다. 이 방향으로 더 전진하기 위해서는 미시적 수준에서, 즉 현장에서 우리가 함께 작업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또한 경제와 정치의 제도적 안배들을 쇄신하여 이러한 안배들이 시장과 국가에 관한 확립된 가정과 안배들을 당연시하기보다는 우리가 이를 초극하고 변화시키는 것을 허용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먼저 우리의 정신활동의 두 측면에 대한 견해를 확립하지 않고서는 상상력을 협력으로 전환하는 데에서 무엇이 관건적인지를 이해할 수 없다. 한 측면에서 정신은 구닥다리 기계, 즉 기계화된 제조업과 공장제 대량생산에서 중요했던 기계의 일종과 같다. 이러한 정신은 모듈과 같아서 (뇌가소성에서 한계가 존재하는 한) 뇌의 구분된 영역들과 연결된 다양한 부분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정신은 공식과 같아서 판에 박힌 공식, 규칙 또는 알고리즘에 따라 작동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정신의 행동 또한 반복적이다.

다른 측면에서 정신은 모듈이나 공식과 다르다. 이러한 정신은 뇌가 소성을 이용하여 뇌의 물리적 하부구조의 다양한 부분들에 유사한 역량을 부여할 수 있고, 자유롭게 모든 것을 여타 모든 것과 재조합할 수 있다. 이는 수학에서 회귀적 무한(recursive infinity)이라고 부르는 역량이다. 이러한 정신은 자신의 정립된 관행이나 방법을 기각하고 자신의 확립된 전제들에 도전하고 계속해서 발견을 이루거나 정신이 회고적으로 명료화하는 통찰들, 적절한 관행들, 방법들, 전제들을 발전시킬 수 있다. 이는 시인이 부정적 능력이라고 불렀던 권능이다.

이것이 우리가 상상력이라고 부르는 정신의 측면이다. 상상력은 기계로서의 정신과 대조적인 반(反)기계로서의 정신이다. 상상력의 측면에서 정신은 두 가지 구성적 작동방식을 가진다. 첫 번째 작동은 칸트가 강조했던 것으로서 거리두기이다. 그 이미지는 인식의 기억이다. 두 번째 작동은 칸트가 간과한 것으로서 변형적인 변주이다. 우리는 어떤 자연적이거나 계획적인 개입에 반응하여 현상의 변화를 기획하거나 자극함으로써 현상을 파악한다. 우리는 그 현상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 혹은 우리가 그 현상을 무엇으로 바꿀 수 있는지와 같은 인접한 가능성들의 범위에 현상을 포섭함으로써 그 현상을 이해한다. 생산과 상상력의 근접성은 지식경제의 심장이며, 지식경제가 확산되고 심화될수록 더욱 그렇다.

우리는 두 가지 방법으로 생산과 상상력의 유사성을 탐구할 수 있다. 하나는 작업을 조직하는 방법이나 노동의 기술적 분업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와 기계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기계로서의 정신과 반기계로서의 정신(상상력)의 상대적 권능이나 우위성은 뇌의 물리적 구조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그 상대적 권능이나 우위성은 생산의 제도와 관행뿐만 아니라 문화와 사회의 조직에 의해 형태화된다. 이런 의미에서 (만약 정치가 인간관계의 형태를 둘러싼 투쟁을 의미한다면) 정치의 역사는 정신의 역사에 내재적이다.

지식경제 하에서 우리가 함께 일하는 방식(기술적 노동분업)은 상상력으로서의 정신의 작동방식과 닮기 시작하고, 그 각각의 특징들, 한편으로는 정신의 비모듈적이고 비공식적인 특성과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이 더욱 완전하게 발현됨에 따라 그 회귀적 무한의 역량과 부정적 능력을 갖기 시작할 수 있다. 생산은 이러한 특성들과 능력들 덕분에 인접한 가능성의 잠재영역에서 새로운 제품과 새로운 생산의 가능성들을 이용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다. 감독적 역할과 집행적 역할 간의 차이나 결과적으로 전문화된 집행적 역할들 간의 차이가 완화될수록, 생산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실현할 기회는 더 나아진다.

생산계획은 집행과정에서 작업반에 의해 지속적으로 수정된다. 결과적으로 작업반 내에서 전문화된 역할들은 더 이상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역할들 간의 구분의 고착성은 개념 정립과 집행 간의 차이의 명료성의 이면일 뿐이다.

기술적 노동분업이 어떻게 변할 수 있고 또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와 같은 견해는 경제에 적용되는 경우 당혹감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더 익숙한 군사적인 응용사례를 가지고 있다. 재래식 정규군으로 조직된 보병여단은 지휘관과 병사의 엄격한 구분과 야전에서 고정된 역할들을 가진 지휘통제구조를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보병여단은 자체적으로 구비한 군사기술의 잠재력, 즉 화력기술 및 통신장비를 이용할 수 있는 능력에서 매우 제한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보병여단은 기습전에 대응하여 전장에서 재편성하고 변통하는 능력에서도 제한될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적절한 훈련을 받고 기술을 습득하고 장비를 갖춘 비정규군은 전투의 계획과 실행 사이에 그와 같은 뚜렷한 차이를 두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군대는 엄격한 지휘통제구조를 피할 것이며, 긴급한 장애와 기회에 비추어 계획을 조정할 더 큰 재량을 하급 장교와 하급 부대에 배정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군대는 스페셜리스트에게 동시에 제너럴리스트가 되라고 요구할지도 모른다. 부대가 이러한 이상을 추구하면 부대는 뛰어난 작전능력을 구비할 것이고 전통적인 정규군보다 화력과 통신장비를 더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부대는 야전에서 흩어지고 다시 집결하고, 일관성과 추진력을 상실하지 않은 채 기습전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군사적 진화의 노선은 정규군이 상황에 따라 자체적으로 확장하고 중앙의 (그러나 느슨하고 유연한) 통제를 수용하고 야전에서 일관성과 추진력을 보존하는 능력을 유지하면서 비정규군의 일부 특성들을 외부로부터 획득하는 것이다. 똑같은 일이 경제에서도 일어나야 하고, 일어날 수 있다. 그러한 상황이 일어나는 것은 그 자체로 지식경제의 발전과 확산에서 진보를 의미한다. 현장에서 협력방법은 더욱 완전하게 상상력의 특징들을 띠게 된다.

이제 상상력으로서의 생산이라는 동일한 아이디어가 기술적 노동분업 뿐만 아니라 기계에 대한 노동자의 관계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이전의 선진적인 생산방식(기계화된 제조업과 그 후속형태인 공장제 대량생산) 아래에서 노동자는 마치 자신이 기계의 일부인 것처럼 일했다. 애덤 스미스의 핀공장이나 헨리 포드의 조립 라인에서 그의 동작은 기계들의 동작을 연상시켰다. 노동자와 기계의 유사성은 은유나 먼 비유 그 이상이었다. 그러한 유사성은 프레더릭 테일러와 같은 산업조직 전문가들에 의해 연구되고 정전화되어 경영자와 작업반장에게 실제적인 지침으로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이전의 선진적인 생산방식 하에서 우리는 심지어 그러한 관행의 가장 신중한 표현형태에서도 기계로서의 정신을 본다. 고전적인 발전경제학이 교육을 경제성장의 기본요소 중 하나로 떠받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계화된 제조업과 공장제 대량생산 시대의 노동자에게 교육을 통해 요구되는 바가 사실상 거의 없다는 사정은 당연하다. 이러한 노동자가 필요로 했던 것은 복종심, 기본적인 문해력과 수리력, 손재주, 특히 손과 눈의 협응력이었다.

지식경제는 노동자와 기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만들고 또한 지식경제의 심화와 확산은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이러한 변화는 상상력의 모형에 따른 생산의 쇄신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또 다른 실례를 제공한다. 여기서 이러한 변화를 지도하는 원칙을 가장 단순하고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기계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개관으로 제시한다.

아주 최근까지 기계의 요체는 우리가 반복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우리를 대신하여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런 기계들을 공식과 같은 것이라고 부르자. 기계가 틀에 박힌 공식과 같이 작동한다는 사실은 기계의 가장 큰 가치가 기계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공식과 같지 않게 행동하도록 허용하는 데에 있다는 점을 시사할지도 모른다. 그 기계의 사용자는 반복하고 기계 장치로 코드화하는 것을 아직 터득하지 못한 활동들에 그들이 가진 최고의 자원, 어떤 의미에서는 유일한 자원(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그러나 기계와 사용자의 이와 같은 관계는 생산방식의 역사에서 지배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대량생산에서 기계와 노동자의 관계에 대한 실례가 보여주듯이, 노동자는 더욱 빈번히 기계의 반복적인 움직임을 모방하거나 다양하지만 비교적 공식과 같은 활동으로 기계를 보완함으로써 마치 그가 자신의 기계 중 하나인 것처럼 일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비교적 단순하고 경직된 기계일지라도 사용자들로 하여금 기계를 모방하는 대신에 기계를 최선으로 이용하도록 허용하는 기술의 잠재력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기술의 잠재력은 주류 경제사의 주변으로 내몰리게 된 공예적이거나 장인적인 생산형태로 달성되었다.

생산방식의 역사와 이러한 생산방식을 배태한 경제, 정치, 문화의 역사는 기계의 진화를 위축시키고 또한 기술적 노동분업을 형성해왔다. 기계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기계가 아닌 것, 반(反)기계, 또는 비공식적이거나 비알고리즘적으로 작업하는 방식이라는 아이디어는 지금까지도 순전히 사변적인 가능성에 그쳤다.

지식경제의 도래는 현재의 고립적이고 상대적으로 피상적인 형태에서도 기계에 대한 기존의 이해와 이용방식을 거부하는 기계들의 발전을 수반하였다. 지식경제의 도래는 특히 현재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으로 알려진 기술혁신의 가장 혁명적인 분야에서 그러한 발전을 수반하였다. 지식경제의 초기 역사에서 지금까지 발전된 기계들을 이해할 수 있는 두가지 기본적인 방식이 있다.

우선, 지식경제의 기계들은 공식에 따르는 좀 더 고차원적인 장치들일 뿐이다. 우리는 특정한 용도에 한정하여 일련의 제한된 조작들의 공식들과 알고리즘들을 그러한 장치에 코드화하는 것 그 이상을 수행한다. 우리는 그러한 장치가 사례와 경험에서 새로운 동작을 추론하고 그에 따라 1차적인 알고리즘과 공식을 변경하도록 허용하는 메타적인 공식들과 알고리즘들을 혹은 2차적인 추론규칙들을 그러한 장치들에 부여한다. 우리는 기계들이 자신의 절차들을 조정할 때 반응하는 경험과 사례의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심지어 이러한 기계들에 무작위성의 요소까지 장착할 수 있다.

또 다른 이해에 따르면 이 기계들이 수행하기 시작한 활동은 고차적인 형태의 공식과 같은 활동으로 그치지 않는다. 기계들은 일반적인 추론규칙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다. 우리는 공식에 따르지 않은 기계기능을 문의 손잡이를 돌리는 방법과 같은 가장 단순한 것에서부터 차량을 안전하게 운전하는 방법과 같은 더욱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적응적인 조작능력의 획득으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능력들은 과업들의 물리적 수행의 맥락에서 발전한다.

가장 발전한 기계들에 대한 두 번째 이해에 따르면 우리가 고차적인 추론규칙으로 파악한 것은 그러한 추론규칙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그 규칙을 명확히 하는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적응적인 진화적 상승에 대한 회고적 기술에 불과하다. 그러한 능력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것은 피아제의 인지심리학에서 연구된 발달과정과 유사하다. 즉 추상적인 것은 구체적인 것 다음에 나타나고 개념적인 것은 조작적인것 다음에 나타난다. 공식적인 환원이나 표현에 반발하는 실용적인 여분은 존재한다

기계의 역사에서 이러한 새로운 단계, 즉 지식경제에서 시작하고 지금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이라고 부르는 단계에 관한 메타-공식적이고 조작적인 이해들은 부상하는 새로움에 대한 대안적인 철학적 해명들이다. 우리는 그러한 해명 중 하나를 선택하는 데에 신뢰할 만한 근거를 적어도 아직까지는 확보하고 있지 않다. 기계 역량들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것이 두 가지 설명들을 등가적이거나 보완적인 것으로 더 이상 취급할 수 없다는 점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지점까지 진보하는 때가 곧 도래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술의 역사에서 이러한 새로운 단계를 최종적으로 어떻게 규정하든지 상관없이 사람과 기계의 관계에서 어떤 근본적인 사항은 이미 변하였다. 비록 그러한 접근 방식이 심지어 비교적 원시적인 초기 기술의 모든 잠재력을 허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에게 기계의 친구로서 배역을 주는 방식으로 대량생산을 조직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현재 고립적이고 단절된 형태에서도 지식경제의 노동자를 기계의 그림자로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 기계들은 어떤 일에서는 인간 노동자가 일찍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기계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어떤 기계도 가질 수 없는 것, 즉 상상력을 보유한다.

공식적인 것에서 메타-공식적이거나 포스트-공식적인 것으로의 운동은 내가 앞에서 상상력이라고 불렀던 마음의 두 번째 측면을 기계(원칙적으로는 모든 기계)가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이 아니다. 상상력의 특징은 부정적 능력이다. 즉 상상력은 어떤 현상이나 어떤 사태로부터 스스로 거리를 두고 이윽고 변형적 변주들의 범위 안에 그러한 현상이나 사태를 포섭하는 정신의 능력이며, 정신이 아직 볼 수 없었던 어떤 것을 더 잘보기 위하여 정신의 확립된 방법들을 버리고 정신의 현재적 전제들에 이의를 제기하는 정신의 능력이고, 나아가 이전에는 생성될 수 없었던 통찰을 이해하는 방법들을 반성적으로 발전시키고 그 전제들을 공식화하는 정신의 능력이다. 상상력은 역량에 관한 것이 아니라 비전에 관한 것이다. 기계는 원칙적으로 이와 같이 이탈적이고 예지적인 힘을 가질 수 없다. 상상력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 즉 인간 실존의 온갖 유한한 결정 요소들에 대한 인간의 초월성, 우리가 만들고 살아가는 개념적이고 사회적인 세계 안에 유폐될 수 없는 우리의 역량에 뿌리박고 있는 힘이다.

이러한 기계의 가장 효과적인 사용은 마치 자신이 기계인 것처럼 작업하거나 사고하지 않는 노동자들에 의한 기계사용이다. 기계와 반기계(달리 말하면, 노동자)의 결합은 노동자나 기계가 독자적으로 일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우리는 기계에게 부여하였던 저차원의 규칙과 고차원의 규칙 이외에 이러한 규칙에 저항하는 능력과 이러한 저항으로 성취한 발견들을 반성적으로 이해하는 능력까지 기계에게 장착함으로써 기계를 상상력의 거점으로 만들 수 없다. 우리가 인간과 기계의 격차를 줄이고 심지어 연산능력에서는 인간을 능가하는 것으로 보이는 기계까지 개발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계보다 앞서 간다. 거북이, 즉 우리가 손수 만든 거북이[기계]와의 가장 중요한 경쟁에서 아킬레스처럼 기계는 결코 우리를 따라잡을 수 없다.

노동자와 기계의 관계에서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물질적 이익뿐만 아니라 도덕적 이익에도 응답한다. 우리가 늘 하는 일의 더 많은 부분을 기계가 수행하는 경우에도 이러한 변화는 노동자와 기계가 분열하는 세계를 나타낸다. 많은 사람들은 결국 대부분의 일자리를 빼앗는 기계라는 유령을 불러왔다. 나는 나중에 급진화되고 경제 전반에 확산된 지식경제 아래서 노동의 성격은 변할 것이지만 노동의 총량은 줄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할 근거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 주장은 기술혁신에 대한 반론으로서 노동총량불변이론에 대한 정통경제학의 거부 태도와 완전히 일치한다. 진정한 위험은 그 반대다. 노동자층의 압도적인 다수는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기계가 할 수도 있는 일을 수행하도록 내몰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우리의 능력에 대한 존중을 통해 발전하는 경제라면 어느 누구도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가 시장경제의 제도적 안배를 바꾸지 않는다면 이러한 잠재력은 일회적이고 단편적인 방식을 제외하고는 실현되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 논의하게 될 특정한 방향의 시장질서의 제도적 개편은 지식경제의 심화와 보급을 위한 주요한 요건 중 하나이다. 그러한 변화의 한 요소는 노동자와 기계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설명에서 일찌감치 언급할 만하다. 계약형태로 매매하는 경제적으로 종속적인 임노동이 자유노동의 지배적인 형태로 남아 있는 한, 지식경제가 선호하고 요구하는 노동자와 기계의 관계는 억압되거나 통제되기 쉬울 것이다. 재산권의 이름으로 생산을 조직하는 사람들이 경영 재량권의 극대화에 대해 갖는 이익은 이러한 잠재력의 달성을 억제한다. 이들의 권력적 이익은 엘리트 노동자와 기술자의 작고 고립된 세상 바깥에서 기계와 노동자의 관계에 대한 혁명적인 변화를 반대한다.

노동자와 기계의 관계의 변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19세기 자유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바라고 기대했던 대로 임노동이 점차 고차적인 자유노동으로서 독립자영업과 협동기업으로 이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러한 19세기 이상이 21세기의 현실과 가능성으로 전환되는 경우 그 이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책 소개 바로가기>>

<<온라인 서점 바로가기>>

토, 2021/06/05- 18:55
2
0

편집자 주:

아래의 내용은 불공정하고 유해한 과로노동이 사회적 관습으로 정착한 미국의 적나라한 현실을 고발하는 뉴욕타임즈의 논설문이다. 그러나 실상 한국은 미국보다도 더욱 심각한 저임과 장시간의 노동의 기반 위에 있는 악질적 수탈사회이다. 시간당 만원의 최저임금제와 주당 52시간의 노동제한은 반드시 돌파해야 할 시대과제적 관문이다.


온라인을 통하여 “과로노동”를 검색하면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초래되는 해로운 의학적, 정신적, 사회적 결과에 대한 정보들이 스크린 샷에 수없이 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용 중에는 17세기에 처음으로 기록된 격언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 “일만하고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재미없는 바보가 됩니다.”

세계 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의 과로에 관한 연구조사 문건 역시 “과로는 사람을 죽는 (의미없는) 존재로 만듭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상기 국제기구들의 새로운 연구 에 따르면 일주일에 55시간 이상 일하는 것은 “건강의 심각한 위협”이라고 규정합니다. 긴 근무시간으로 인해 2016년 한 해에 세계적으로 745,000명이 사망했으며 이는 2000년에 대비하여 29% 증가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망자의 72%는 남성입니다. 최악의 지역과 연령층은 태평양 지역과 동남아시아, 특히 45세 이후 오랜 시간 일한 60 ~ 79세 이었습니다.

19세기 이전 과거의 사람들은 어쨌든 평균 60세 이상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둔하고 늙은 노동자들에게는 이런 내용은 특별히 관련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세계에서 상기의 연구는 오랜 근무시간의 직업이 건강에 가장 위험한 것임을 알려줍니다. 주당 55시간 이상을 일하면 35~40시간 일하는 사람들에 비해 뇌졸중의 위험은 35%가 증가하며, 이에 더하여 작업환경이 열악한 경우에는 치명적 심장병이 17% 높게 나타납니다.

펜데믹 상황은 특히 원격근무의 과로라는 새로운 조건을 창출했습니다. WHO의 T.A. Ghebreyesus 사무총장은 재택근무가 직장과 가정의 경계를 모호하게 했으며, 어려움에 처한 기업의 정리해고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결국 더욱 장시간의 근무를 강요당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직원의 압도적 다수가 팬데믹 대유행 기간에도 휴가를 단축, 연기 또는 취소했습니다.

과로에 대한 위험신호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다양한 경고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장시간의 노동이 2005년 텍사스의 BP 정유공장 폭발과 쓰리마일 섬 의 원전사고와 같은 산업재난의 요인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노동시간이 너무 길어서 “과로로 인한 죽음”으로 번역된 “karoshi(過勞死)”가 법적으로 인정되는 사망원인입니다.

그러니 노동시간을 줄이고 오래 살아야지요. 당연하지 않나요?

한때 노동시간의 단축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경제적 기반이 갖추어지고 자동화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함에 따라 사람들은 취미와 가정생활에 전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John Maynard Keynes는 선진국들은 일을 줄이고 휴가를 연장하는 방향으로 꾸준한 발전을 이루면서 21세기가 되면 사람들이 하루에 3시간, 일주일에 15시간 정도만 일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는 1930년 에세이 에서 “천지창조이래 처음으로 인간은 자신의 실제적이고 항구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썼습니다 “과학의 발전과 복리의 증진으로 사람들이 여가를 어떻게 현명하게 활용하여 삶을 쾌적하고 즐길 것인가 고민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케인즈의 예상은 미국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습니다. 미국인들의 평균노동시간이 조부모 시절보다는 줄어들었지만, 대부분 여전히 법적 규정인 주당 40시간 이상 일하며 WHO가 위험하다고 간주하는 장시간 노동에 오히려 자부심을 느낍니다.

유럽은 노동자들에게 건강을 보호하는 강제적인 휴가조치를 시행했습니다.  유럽연합은 1년에 최소 20일의 휴가를 규정하고 있으며, 많은 국가들에서 훨씬 많은 (프랑스 경우 30 일) 휴가의 기간을 배려하고 있지만, 미국은 자랑스럽게 홀로 휴가금지(강제하지 않는)의 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경제정책연구센터(Center for Economic and Policy Research)가 2019년 21개의 부유한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이 의무적인 유급휴가 혹은 유급휴가가 없는 유일한 국가라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다만 16개 주와 컬럼비아의 특별구만이 유급병가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유급휴가를 받는 미국인조차도 그것을 아껴 사용하려 합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절반 이상이 휴가를 모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 헌팅턴은 미국인들에 대해서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인가?: 미국의 국가정체성에 대한 비판 – 장시간의 노동, 짧은 휴가와 형편없는 실업 및 장애 수당, 부족한 퇴직혜택. 부유한 상대국가들보다 은퇴연령이 훨씬 높은 나라.”

평균적으로 많은 미국인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오랜시간 일합니다. 케인즈는 현대사회의 번영을 예상했지만 모든 사람이 번영을 충분히 함께 누릴 것이라고 잘못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점은 부유한 미국인들조차 수세기 전의 선조들의 모범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유하고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실제로 수십 년 전보다 훨씬 많이 일하며, 특히 부유한 10%가 가장 많이 일합니다.

건국 초기시대의 부자들은 과감하게 일하지 않음으로써 풍요로움을 과시하였습니다. 그들은 흰색 토가 또는 멋진 모자 또는 깨끗한 장갑을 착용했습니다. 마지막 번영의 황금시대의 유한계급은 수도사와 같은 고상함, 장미정원에서 공치기, 여우사냥 또는 저녁식사를 위해 귀족풍의 옷차림에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부유한 미국인들은 오로지 일만 하면서 이를 과시합니다.

왜일까요? 한가지 설명은 부유한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일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해야만 했고 노동이란 재미가 없으며 아무도 필요 이상으로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일하는 이유는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부유한 미국인들은 여가를 절제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결정한 것 같습니다.

The Atlantic기고가인 Derek Thompson은 “업무중독 workaholism – 대한 미국인들의 개념이 직업에서 소명적 부름으로, 필요성에서 사회적 지위로 의미를 옮겨가는 새로운 종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Times기자 Erin Griffith가 뉴욕의  WeWork(노동자파견 전문업체) 여러 지점 을 방문했을 때, 구직자들에게 “일을 사랑하십시요”를 강요하는 베개, “더욱 분발합시다”를 촉구하는 네온사인, “#ThankGodIt의 복음을 전파”하는 포스터를 발견했습니다.

부유한 미국인들은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이 어느 때 보다 크다는 현실적 동기를 부여받습니다. 엄격한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뒤처짐의 결과는 끔찍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건강보험에 가입하고, 주택을 구입하고, 좋은 학교에 아이들을 보낼 수 있는 능력이 항상 위험을 당하기 때문에 장시간 일합니다.

부유한 다른 국가들의 시민들은 단지 장기간의 휴가를 보낼 자격만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미국인들처럼 주말에도 추가로 몇 시간을 더 일을 하거나 침대에서조차 이메일로 업무를 처리해야 수입을 더 얻거나 잃을 것이 없는 여건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충분한 여가의 시간을 즐길 수 있습니다.

업무에 시간의 제한을 두는 것은 단순한 규정과 특권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가난한 서민적 미국인들도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과로업무의 혜택에 집착하는 부유한 미국인들도 삶이란 기회비용을 고려해야 합니다.

 

출처 : 뉴욕타임즈(NYT) on 2021-05-29.

뉴욕타임즈 편집부 논설

월, 2021/06/07- 20:00
4
0

국회사무처가 국회의 주인’? 아전이 권력을 농단하는 꼴

몇 년 전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지원부서는 폐쇄적이다. 언터처블이다. 행정부의 감사감찰, 수사기능이 여기에 미치지 않는다. 국회의 주인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사무처 직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한 바 있었다. 국회사무처란 문자 그대로 국회의 ‘사무’를 담당하는 보조기관일 뿐이다. 그런 국회사무처가 국회의 주인 행세를 한다는 것은 약간 과장해 말하자면 “아전이 권력을 농단”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일들은 주인이 주인답지 못할 때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국회사무처란 마땅히 명실상부(名實相符), 국회의 사무 및 관리(administer)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의회 시스템에서 행정 사무관리 업무를 지원하는 기관이 비대해짐으로써 결과적으로 행정부를 연상케 하는 제2의 관료체제로 전환되어서는 안 된다. 국회 사무처의 경우, 바로 이러한 행정관리 업무를 중심으로 관료적 질서를 구축하면서 사실상 제3의 세력 집단으로 성장해 있다. 이는 입법관료가 대표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국회 사무처가 국회의원에 대한 입법지원 기구라는 점에서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독일의회의 사무처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6급 이하’로 구성된 공무원들이 맡은 바 ‘사무’ 업무를 수행하며 의회를 지원하고 있다.

이제 국회사무처는 본연의 ‘보조’ 업무로 되돌아가야 한다. 미국 의회의 경우, 1946년과 1970년 두 차례에 걸쳐 ‘입법부 재조직법’을 제정하고 입법지원 조직을 획기적으로 강화시켰다. 우리도 이를 모델로 하여 국회의원들로 구성되는 가칭 ‘입법부강화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입법부 재조직법」을 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로써 현 국회 행정조직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진정한 입법지원 조직으로서의 국회공무원 조직을 정립시켜야 한다.

 

미국 의회의 전문성은 유능한 입법지원 조직에서 나온다

어느 나라든 의회의 의원들은 국가 중요 정책의 결정권을 가지며, 그 활동 결과는 국가와 국민에게 매우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하여 의원들은 그 직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이 요청되며 이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갖출 것이 요구된다. 하지만 국회의원이란 기본적으로 전문성에 의해 선출된 것이 아니라 선거에 의해 국민을 대표하는 대표자로 선출되었고, 정치활동에도 매우 바쁜 정치인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시간과 전문성 부족을 보완하고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조직이 절실히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 대표들을 도와 정책과 전문성의 분야를 높여주는 제도적 장치가 바로 입법지원 기구이다. 다시 말하면, 입법지원 기구란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의회의 전문성을 확보하여 의회가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적 장치’라고 규정될 수 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입법지원 기구의 형태는 미국 의회를 모델로 하고 있다. 미국 의회의 입법지원 기구 규모는 2007년 현재 회계감사원(GAO) 3,159명, 의회예산처(CBO) 235명, 의회도서관 4,302명, 의회조사처(CRS) 700명이다. 이밖에 의원 보좌관, 상임위 스태프, 기타 행정 보조원까지 합하면 약 2만 4,000명의 엄청난 규모이다.

의회가 행정부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의회는 행정부에 비견되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의회의 전문성 확보는 곧 의회의 기능 회복과 직결된 문제이다. 그리하여 입법지원 조직에서는 대체로 일반 행정가(Generalist)보다 각 분야의 전문가(Specialist)를 더 필요로 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하원 법제실은 35명의 법제관과 15명의 법제보조직원으로 구성되는데, 법제관은 모두 변호사나 법학박사 등으로 이뤄진다. 미 의회 입법지원 기관들은 행정부보다 우수한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정규직 임용을 기본으로 하며, 행정부보다 높은 급여 체계를 운용하고 있다. 그 결과 행정부와 비교하여 교육수준, 재임기간, 급여수준이 모두 상대적으로 높다.

 

회계감사원, 의회예산처, 의회조사처행정부를 능가하는 의회의 입법지원조직

먼저 의회예산처(CBO)는 전문직 직원의 70% 이상이 경제학이나 공공정책 분야 전문가로서 구성된다. 행정부 산하 예산관리국과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역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사후적으로 볼 때 의회예산처 예측의 정확도가 예산관리국보다 높다고 평가되고 있다. 미 의회는 이 의회예산처의 활동을 배경으로 하여 예산에 대해 실질적으로 심의할 수 있게 된다.

회계감사원(GAO)의 경우, 1921년 제정된 예산회계법 제7장에 의하여 회계감사원이 “권력에 대항하여 진실을 말할 의무를 가진 독립된 기관”으로 규정되어 설치되었다. 당시 의회지도자들은 예산 감시기관이 행정부의 외부에 설치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여 원래 재무부 관할 하에 있었던 회계 감사 기능을 의회에 이전시켰다. 미국 회계감사원은 연방정부의 예산 지출과 운영에 대한 감사를 임무로 하며, 연방 정부의 예산을 사용하는 모든 사업과 활동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회계감사원 활동에 의한 예산절감, 비용절약, 지출연기, 수입증대 등 재정적 이익은 엄청난 수준이다. 1998년도의 그 재정적 이익은 197억 달러에 이르렀고, 이는 회계감사원이 사용하는 예산(약 4억 달러)의 매 1달러 당 49 달러에 해당한다. 회계감사원의 감사결과는 수시로 모든 상하원 의원과 행정부에 제출된다. 그러므로 미국 의원들은 우리처럼 매년 국정감사를 하지 않아도 이 감사보고를 통해 각 부처의 운영상황을 손금 보듯 파악할 수 있다.

한편 1900년대 초, 의회도서관 직원의 능력만으로는 대규모 연구기관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자, 의회지도자들은 의회도서관 내에 입법정보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별도의 의회조사처를 설치하였다. 의회조사처의 인력구성은 700명 중 연구요원(Analyst)이 400명 정도로 대부분 석ㆍ박사이며, 미국 공무원 등급(GS) 13~15 등급에 해당한다. 의회조사처의 직원 채용은 필요한 직위를 적시에 선발하며 다양한 방식에 의해 이뤄진다. 2007년의 경우, 모두 82개 직위에 대한 채용이 이뤄졌는데, 이 중 72개는 전문직과 행정직이었고 10개 직위는 지원부서의 직위였다. 2007년 상근 직위 중 6개는 ‘대통령 공공관리 펠로우 프로그램(PMF: Presidential Management Fellow program)’, 즉 석ㆍ박사를 대상으로 하는 우수인재 유치 프로그램에 의해 채용이 이뤄졌고, 다른 6개 직위는 로스쿨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법률가 채용 프로그램에 의해 채용되었다. 이 방식에 의해 채용되기 위해서는 인터뷰와 서류 심사를 거쳐 미법무부에서 실시하는 심층 인터뷰를 통과해야 한다. 시험 방식에 의한 채용은 일반 행정직 이외에 드물다.

 

국회의원이 국회의원답지 못한 국회, 그것은 국회가 아니다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으로서의 직책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국회가 존립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국회를 허수아비로 전락시키기 위해 독재권력이 만들어낸 구태와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입법관료에 의존하는 빈 깡통 국회, 일은 하지 않고 군림만 하는 국회. 그것을 국회라 말할 수 없다.

‘사무보조’ 업무에 충실한 국회사무처, 입법지원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국회 입법지원 기구, 국민이 부여한 직책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국회의원. 이렇게 ‘정명(正名)’이 정확하게 구현되는 것, 그것이 “국회다운 국회”의 선결조건이다.

 

소준섭

화, 2021/06/08- 19:55
4
0

‘동북공정’이라는 문제

“현대중국의 영토기준으로, 역사상의 중국을 설정해서는 안된다. 고구려는 당나라가 관할하던 지방정권이 아니다. 토번(티벳)도 당나라의 일부가 아니었다”. “조선(반도)과 월남의 문화와 제도는 중국 내륙이나 변경의 소수민족보다 훨씬 더 중국에 가까왔다. 하지만, 두 나라는 독립왕조 성립후, 중국의 일부였던 적이 없다.” 상하이의 명문 푸단대학에는 거자오광(葛兆光), 거젠슝(葛劍雄)이라는 동성의 두 저명한 역사학자가 있다. 각각, 사상사와 문화사 그리고 역사지리학과 이민사 전문가인 두 사람의 또다른 공통점은 “과연 중국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오랜 동안 천착해왔다는 것이다. 2011년 출간직후 한국어 번역본도 나온 <이 중국에 거하라>, 1994년에 출간된 <통일과 분열>은 그들의 대표작들로써 위와 같이 역사상의 고구려에 대한 관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준고전급 반열에 들어갈만한 예전 책들을 굳이 소개한 것은, 최근 한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진 문화분쟁과 관련한 몇가지 오해를 불식하고자 함이다. 김치공정, 한복공정과 같은 신조어는 동북공정에서 비롯한 것일 터인데, 한국에서는 중국사람이라면 민관이 합심하여 한민족과 한반도를 중국에 흡수통합하려는 야망에 불타오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생각에 따르면 정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꼭둑각시같은 중국학자들은 당연히 이 국가대사에 협력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지식인이나 지식대중들은 그리 우매하지 않다. 이 책들은 전문학술서적이 아닌 대중교양서일뿐더러, 두 사람의 강연은 중국의 유튜브격인 삐리삐리에서도 인기가 높다. 특히 거자오광 연구팀이 연재중이며 책으로 출간도 준비중인 <중국에서 출발하는 세계사>  칸리샹(看理想)오디오 강연시리즈는 중국의 지성인들에게 가장 ‘핫’한 콘텐츠중 하나이다.

이 중국에 거하라 – 거자오광

ᅠ사실 두 거교수의 관점과 입장은 조금 다르다. 정협위원이자 중국역사지리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교육부사회과학위원회에 속한 거졘슝교수가 왕이 부장을 비롯한 외교부 간부들에게 정책 조언을 할만큼 관방의 입장도 수용하는 반면 거자오광 교수는 철저히 민간의 학술적 입장을 대변한다. 그래서, 거자오광 교수의 대표저작들은 영어, 일어, 한국어 등으로 번역이 되어 있으며, 외국과의 학술교류도 잦은 편이다. 그는 작년에도 도쿄대학과의 온라인 학술교류를 통해 청나라의 최전성기인 건륭제의 팔순축하연이라는 역사적 외교이벤트를, 중국, 조선을 포함한 이웃나라들, 글로벌이라는 세가지 관점으로 분석한다. 당시 황제의 만기친람형 권력이 지나쳐, 민간의 활력을 억제하는 상황이, 청나라의 쇠퇴로 이어졌음에 대한 신랄한 비평을 남겼다. 시진핑 정권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이 강연은 유튜브뿐 아니라 삐리삐리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거졘슝은 학술로서의 역사와 정책에 활용되는 응용으로서의 역사를 나누어 설명한다. 그는 고대부터 티벳이나 신장지역이 중국의 일부였다는 중국 사학계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한다. 그의 학술적 주장은 엄밀한 고증을 토대로 한다. 중국 역사상 통일보다는 분열된 상황이 민중의 이익에 부합했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청이 황실의 종교적 연대, 유목민족간의 연대를 통해, 신장, 시장, 몽골과 같은 변경지역을 국토의 일부로 삼았고, 이를 이어받은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이 영토의 주권을 보유하게 된 사실에 대해서는 양보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속도로나 철도와 같은 교통수단의 강화, 한족 이민정책을 통해, 이를 공고히 할 것을  주장한다.

ᅠ거자오광은 2004년작인 <고대중국문화강의>에서도 중국인들의 천하관이 유아독존적이었다는 것을 자세히 설명한다. 그러한 생각을 오랜 기간 벗어나지 못한 탓에 반半식민지의 고통으로 귀결됐다는 것을 뼈아프게 인정하는 것이다. 그는 주체성이 강조된 중국과  외부시각속에 자기객관화한 중국관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한족중심의 중국이라는 민족국가의식은, 송나라부터 본격화되어, 도시에서 농촌으로, 중앙에서 지역으로, 그리고 상층에서 하층으로 수백년의 시간을 거쳐 형성되어 온 실체를 지니고 있다. 그는 중국의 지역연구를 통해서 아래로부터, 혹은 탈근대, 후기식민지주의, 혹은 동아시아 관점을 통해 위로부터 ‘중국사’를  해체하려는 시도를 경계한다. 서구와 일본이 자기 이익을 위해, 중국을 분열시키려한 역사의 경험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아시아를 중국과 등치시키며, 서방의 타자와 거칠게 비교하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한자로 기록된, 한국, 일본, 베트남과 같은 이웃 나라의 역사적 시각으로 섬세하게 중국을 살피고자 하는 노력도 최근 10여년간 지속해 왔다. 그래서 한중일 지식인들이 함께 참여해 온 공동역사교과서나 동아시아 담론에 대해서도 나름의 의견을 제시한다.

2017년 고등교육재단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한국이나 일본과 달리, 중국정부의 간섭을 피할 수 없는 역사교과서 논의를 순수 민간협력에 의한 출판 프로젝트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과거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는 기반이 됐던 반서구진영으로의 결집을 호소하는 침략적 아시아주의를 비판적으로 살핀다. 그래서, 주로 일본의 학자들이 제기한 90년대 이후의 새로운 동아시아 담론이 상정하는 역사상의 동아시아 공동체가 오히려 상상에 기반한 것이 아닌지, 정확히 어떤 의도에서 출발한 것인지 묻는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주장처럼 근대에 이르러서야 민족국가 개념이 형성된 유럽과 달리, 17세기 중엽이후 동아시아는 이미 각 나라가 자신만의 민족 주체성을 강화해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증국은 또, 언어나 문화가 동일한 ‘단일민족국가’인 한국이나 일본과도 다른 복잡한 다원일체성을 가진 제국이라는 비대칭성 때문에, 주변 국가와 한통으로 묶기가 어렵다는 점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스스로에 대해서, 그리고 주변국가와의 차이에 대해서 명확한 이해가 선행해야 한다. 그래서, 백영서와 거자오광의 주장을 함께 살핀 이케가미 요시히코는 그가 미래지향적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토론에 대해서는 열려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동아시아 논단으로의 초대, <공생의 길과 핵심현장>이 이끄는 세계

 

이 글의 축약본이 경향신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경향신문의 허락을 얻어, 다른백년에도 옮깁니다.

 

김유익

목, 2021/06/10- 19:28
4
0

드디어 로베르토 M.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가 출간되었습니다.

‘시대의 예언자’ 혹은 ‘미래를 향한 메시아’로 불리는 웅거는 브라질 태생으로 하버드 법대를 다니며 비판법학 운동을 주도하면서 약관 29세에 종신교수직을 획득하고 이후 수많은 화제의 저술을 남기면서 국내에도 ‘주체의 각성’ ‘민주주의를 넘어’ ‘정치 3부작’ ‘진보의 대안’ 등이 번역 소개된 미국을 대표하는 현시대 최고의 지성입니다.

그는 현재의 산업체계를 ICT첨단기술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를 ‘지식경제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실제로 ICT 첨단기술이 산업과 생활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켰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산업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고 일부 집단이 소위 e-F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독과점을 강화하고 경제운용의 성과를 독차지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약직과 비선형적 고용의 불안정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웅거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첨단기술을 소수의 그룹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狹域(프린지)의 폐쇄적 전위주의와 거대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해와 지위를 강화하는 유사적 전위주의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지식경제의 소명은 가장 선진화된 기술과 생산관행을 생활과 산업전반으로 확산하고 보편화시키는데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이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를 실현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가지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인지적 교육적 요건 – 사회적 도덕적 요건 – 법적 제도적 요건.

이어서 웅거는 기존의 경제학인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고전경제학, 마샬과 빈-학파에 의해 주도된 한계(효용)학파와 미시경제, 그리고 이단이라는 표현으로 케인즈의 이론, 이후의 신자유주의와 이에 타협한 사민주의의 타락과 제3의 길 등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경제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는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못지않게 매우 난해하고 추상적인 저술입니다만, 기존의 논리와 관행에 갇혀 있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백년의 지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구매를 요청합니다. 책의 내용은 매주 한차례씩 20여 주에 걸쳐서 다른백년의 홈에 게재됩니다. 두손모아,

다른백년 이사장  이래경


지식경제의 특징은 지식경제가 생산의 도덕적 문화를 변화시키고, 생산작업에서 요구되고 허용된 신뢰와 재량의 수준을 향상시키며, 협력에 대한 우리의 의지와 능력을 고양시켜 모든 사회생활에 고질적인 협력과 혁신 간의 갈등을 완화시키는 경향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기계화된 제조업과 공장제 대량생산은 이러한 생산방식이 번창하도록 하였던 시장질서의 유형과 마찬가지로 적당한 정도의 신뢰만을 요구한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사회이론가들(막스 베버와 게오르그 짐멜)은 그 시대의 “자본주의” 경제의 도덕적 전제들을 강조했었다. 사회경제생활의 초기 형식들에서 전형적이었던 차이, 즉 국외자들에게 보인 불신과 혈연이나 문화로 엮인 내부자들이 공유하는 고도의 상호신뢰 간의 예리한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이러한 전제들에서 관건적이었다. 불필요하고 신뢰가 전혀 없는 경우에는 불가능한, 이방인들 간의 협력형태로 이해될 수 있다. 시장경제는 이방인들 사이에 일반화된 적당한 정도의 신뢰(낮은 신뢰)에 의존한다.

즉성(卽成)의 쌍무적 이행약속[쌍무계약]을 중시하고 지속적인 관계들을 계약법의 주변부로 격하시킨 19세기 고전적인 계약법은 이러한 비전을 법적 규칙과 교리로 발전시켰다. 19세기의 발명품인 통일된 재산권은 마치 자연적으로 한통속이기나 한 것처럼, 사물의 관계에서 일련의 권력을 결합하고 그러한 권력을 동일한 권리보유자, 즉 소유권자에게 부여하면서 계약법이 했던 것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다. 통일된 재산권은 많은 권리들 중 그저 하나의 권리로 그치지 않았다. 통일된 재산권은 모든 권리의 범례적인 형태로 봉사하였다.

소유자는 자신의 권리의 엄격하고 명확한 범위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가능한 한 최소로 고려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재산비축은 연대의 요구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 되었다. 그러한 재산비축은 이방인들 사이에서 낮은 신뢰를 보편화하는 데에 몰두하였던 사회에 적합한 물권법이었다.

대량생산은 재산권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계층적 전문화를 강조하면서 대량생산의 전 단계인 기계화된 제조업처럼 자본의 대표자들로서 생산과정을 감독하던 사람들에게 중요한 재량을 유보하였다. 대량생산은 개별노동자 또는 작업반에 허용된 재량영역을 최소화함으로써 임노동자에 대한 신뢰나 근로자 간의 신뢰에 의존할 필요를 제한하였다.

이러한 경제적 세계에서 협력의 요구와 혁신의 요구 간의 긴장은 첨예화되었다. 모든 혁신은 혁신을 집행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협력하도록 요구한다. 기술적이든, 조직적이든, 제도적이든 혹은 개념적이든 모든 혁신은 기성의 협력체제를 동요시킬 소지를 안고 있다. 모든 혁신은 이러한 모든 협력체제에 착근한 권리와 기대의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그렇게 한다. 그러므로 모든 혁신은 혁신이 자신의 상대적 위치에 미칠 영향을 놓고 관련된 집단들 사이에 투쟁을 촉발한다.

우리는 협력의 필요와 혁신의 필요 사이의 긴장을 줄이는 활동을 통해 협력체제를 개선할 수 있다. 예컨대, 우리는 노동자 각자에게 경제적 불안에 맞서 보편적이고 휴대 가능한 일련의 안전장치들과 역량을 향상시키는 경제적, 교육적 재원을 보장할 수 있다. 우리는 생산기술뿐만 아니라 생산 제도에서도 혁신의 기회를 동시에 증가시키면서 그렇게 할 수 있다.

지식집약적인 선진적인 생산방식은 순전히 일회적인 혁신보다는 지속적인 혁신 위에서 번창한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생산방식은 일반화된 낮은 신뢰 그 이상을 필요로 한다. 감독 역할과 집행 역할 사이에 존재하는 뚜렷한 차이의 전복과 엄격한 전문화에 대한 선진적 생산방식의 양가성은 상사와 감독관들 안에서뿐만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더 넓은 재량과 더 큰 신뢰를 요구한다. 지식집약적인 선진적인 생산방식은 협력과 경쟁을 각기 특징적인 활동영역으로 분리하는 것을 거부하고 대신에 기업 내에서 뿐만 아니라 기업들 사이에서도 협력적 경쟁(협력과 경쟁의 유동적인 혼합)을 신뢰한다.

이러한 발언들은 사회자본(연결의 밀도)을 축적하는 것과 협력의 경향과 혁신의 필요성 간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것이 지식경제의 기초라는 점을 시사한다. 나는 이 책의 후반부에서 시장경제의 제도적 개편(경제적 분산의 제도들)이 포용적 전위주의의 전진을 위한 주요한 조건이라고 주장 할 것이다. 또 다른 요구사항은 교육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성장에서나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을 심화하고 확산시키는 데에서나 교육과 제도가 전부일 수는 없다.

협력의 능력은 주요한 독자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한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는 협력적 능력의 상대적 강점을 불변적인 소여로 수용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우리는 협력적 능력의 진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일부 국가들은 경제의 제도적인 구조틀을 다수 시험하였으나 모조리 실패하였다. 다른 국가들은 제도적 실험에 대한 약속에 의해서든 국가적 비상사태로 인해서든 자신의 경제적 제도들을 변화시키면서 높은 수준의 협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은 국민적 정치문화에서 신성불가침적인 것으로 간주된 다수의 경제조직 형태들을 불가피하게 배제하고 이러한 문화에서 질색하던 방식으로 경제를 운영했다. 그러나 인종적 선을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계급적 선을 넘어서는 협력적 성향은 남아 있었다. 그 실제적인 결과들은 매우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과감한 제도적 혁신과 물리적, 재정적, 인적 자원의 대규모 동원의 결합은 국내총생산을 4년 만에 두 배로 증가시켰으며, 이러한 결과는 미국의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평화시처럼 전시에서도 사회자본의 수준과 협력의 성향과 역량은 군사적이든 경제적이든 세속적 성공에 대한 열쇠였다. 미국인들은 실상과 달리 자신들이 무계급 사회에서 살고 있는 척하면서 자신들이 협력적 관행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저해하는 고착된 불평등을 공격하는 일에서 오랜 기간 억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에 미국인들의 자기기만은 그들이 보고 싶지 않거나 볼 수도 없었던 계급적 선을 넘어협력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단기적으로 그들에게 잘 봉사했던 것 같다.

지식경제에 대한 도덕적 배경은 그저 존재하거나 혹은 부재하는 어떤 상황이 아니라 어느 경우에든지 의도적인 행동과 프로그램적인 의도의 파급 범위를 넘어서 있다. 이러한 배경이 결여된 곳이라면 집단행동이 이러한 배경을 창출할 수 있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책 소개 바로가기>>

<<온라인 서점 바로가기>>

토, 2021/06/12- 19:58
2
0

편집자 주:

바이든 정권의 출범이래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되찾고자 여전히 냉전적 이데올로기의 불씨를 되살리고 종속적인 동맹을 강요하며 산업과 기술을 매개로 세계질서를 재편하려 한다. 이에 대하여 러시아의 푸틴은 미국이 과거 소련의 패망의 길을 걷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며 바이든 행정부는 매우 긍정적인 두가지 정책전략을 제시하고 있는데, 하나는 탈세방지를 위하여 글로벌 기본과세의 도입을 추진하는 점과, 다른 하나는 아래에 소개하듯이 부패와 권위적 기득정치체제와 전쟁을 선언한 것이다. 미중 간의 쟁패와 상관없이, 바이든의 부패척결 구상이 국내외적으로 소정한 목적을 이루길 바란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목요일 반부패 노력을 국가안보의 핵심 우선순위로 삼기 위하여 전면적이며 전혀 새로운 형식의 계획을 추진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러한 계획은 기득권(부패)정치 klepto-cracy를 제거하려는 국제적 노력에 상당한 힘을 실어 줄 것입니다.

새로운 국가안보 각서에 따르면 정부산하 기구들에게 부패한 행위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불법금융 문제를 처리(처벌)하며, 권위주의 정권의 뿌리깊은 부패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파트너들과 협력하며, 지금까지 노력을 검토하고 현대적으로 개선할 방법을 검토하도록 지시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워싱턴 수준에서 부패에 대한 국가안보위험의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루어 졌으며, 전세계의 기득권적인 부패정치체계에게 경고를 보내겠다는 Biden의 캠페인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미국행정부의 주요한 조치입니다.

바이든은 목요일 성명에서 “미국 행정부는 동맹국들과 시민사회 그리고 민간부문에게 모범을 보이고 이들과 협력하여 부패라는 재앙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전세계인들을 위한 사명입니다. 우리 모두는 정직하고 투명한 거버넌스를 요구하는 전세계의 용감한 시민들을 지지해야 합니다.”

지난 십 수년 동안 일어난, 권위주의 정권의 지지기반에서부터 선거간섭에 이르기까지 부패가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동시에 재정을 악용하여 국가를 불안정에 빠지게 하는, 사례들을 파악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허점을 막아내는 것이 미국의 국가안보에도 필수사항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파괴적인 당파싸움의 시대(트럼프 재임)에는, 부패와 기득체계에 대한 반대운동이 다우-케미컬 컴퍼니(세계최대 화학그룹으로 환경오염원으로 지목됨)에서 그린피스에 이르는 광범위한 활동가들을 결집시키는데 별다른 의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패가 국가안보의 위협이라고 오랫동안 주장해 왔기에, 이제 부패와 안보를 공식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진전입니다.”라고 미국 투명성국제사무소의 책임자인 Gary Kalman이 말합니다.

목요일 정부의 발표에 따라 초당파적 의원그룹이 중심이 되어 다음 주부터 연방의회에서 부패(기득권)체재를 반대하는 새로운 조직운동(caucus)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부패체제 척결운동을 제안한 싱크탱크 Hudson Institute의 연구원 Nate Sibley는 “우리는 상기의 주제를 담당하는 두 개의 부처(국무부와 재무부)를 중앙정부에 갖게 되었습니다”라고 확인합니다.

작년 말 통과된 막대한 2021년 국방지출의 예산안에는 마약조직, 테러단체와 같은 악의적인 행위자들이 돈을 숨기고 옮기는데 악용해온 도구인 위장회사의 조직을 효과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포함하여 부패를 단속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익명을 조건으로 한 고위관리는 행정부가 불법금융을 퇴치하기 위해 규제기구의 조직에 “중요하고 체계적인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기축통화 보유자로서 미국이 반부패 조치를 강화하는 것은 광범위한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국가간 금융거래의 절반을 차지하는 달러의 움직임를 통하여, 미국은 불법행위자들을 추적하고 국제금융시스템의 투명성을 확대할 수 있는 중요한 위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미국의 법률집단 및 시스템이 국제적 부패정권과 기득권체제를 돕고 있다.

Kalman은 “다른 국가들에게 미국의 의도를 강요하고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미국의 자체 금융인프라를 단속하고 투명성을 강화할 때, 이는 곧 세계전역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동맹국들과 국제기구는 이미 부패퇴치에 국제적인 관심을 기울이는데 나름대로 동참하겠다는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유엔총회는 지난 수요일부터 부패방지를 위한 제1차의 특별회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세계경제대국의 모임인 G7의 장관들은 영국에서 곧 열릴 정상회의에 앞서 불법금융과 해외뇌물사건에 대처할 것을 선언하고 이러한 행위자와 사기를 폭로하는 시민사회의 활동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부통령으로서 Biden은 오바마 행정부 당시에 반부패 노력을 주도했으며, 취임을 앞두고 신임대통령으로서 국가안보보좌관과 함께 이를 행정의 우선순위로 설정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Politico(정치전문매체)와 인터뷰에서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반은 아래 사항이 자신의 최고목표 중 하나라고 확인했습니다. “동맹들과 함께 부패 및 기득정치체제(klepto-Cracy)와 싸우며, 권위적인 정권들에게 상응한 책임을 묻고 이들이 규칙기반에 기반한 시스템의 투명성에 참여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투명성을 지지하는 활동가들은 이번 행정부의 조치에 고무되었습니다. “나는 우리가 부패와 기득정치체제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다짐을 싸움의 전환점을 평가하고 이를 지켜 보겠습니다” 활동가의 한 사람인 Sibley는 실현여부는 행정부가 용기를 가지고 구체적인 실행에 착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바이든 행정부가 현실과 거리를 두면서 문제가 되는 정권들을 향해 어렵고 대결적인 결정을 내릴 용기가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진행은 긍정적입니다. 지난 수요일, 미국재무부 는 불가리아 정권의 부패에 대한 “광범위한 개입”을 근거로 불가리아 공직자 3명과 이들과 연결된 64개 기업네트워크에 대해 제재를 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Magnitsky 국제적용법에 따라 단 하루 만에 취해진 가장 강력한 제제사안이었습니다. 2016년 미국연방의회에서 통과된 상기 법안은 인권침해와 심각한 부패에 연루된 사람들을 제재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행정부에 부여합니다.

목요일에 발표된 구상에 따르면, 연방행정기구들은 반부패 의제에 대한 실행계획을 200일안에 보고하도록 요구합니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해당 기구들의 임무에 고유하게 적용”되고 그들에게 주인 의식을 부여한다고 카네기 국제평화기금의 외래연구원인 Abigail Bellows는 말했습니다. 그는 행정부에서 5년 동안 근무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런 구상을 시작단계에서 공개적으로 발표한 것도 책임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러한 작업을 수행할 것이라고 미리 사전에 발표함으로써 외부 전문가와 협의가 가능하며, 외부의 비판을 허용하면서, 상응한 기대치를 높입니다. 이런 접근과 진행은 해당조직의 열정을 불러내고, 도움이 된다면 시민사회와 파트너십도 가능하게 합니다.” 라고 Bellows는 말했습니다.

 

출처 : 포린폴리시(ForeignPolicy) on 2021-06-03.

Amy Mackinnon

포린폴리시의 국가안보 및 정보분야 전문기자

월, 2021/06/14- 19:43
4
0

지난 6월 11-13일 간에 영국의 콘웰이라는 생소한 지역에서 소위 G7의 정상들과 유럽연합의 지도자인 미셀 의회의장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모인 회담에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초청대상국(옵서버)자격으로 참석하였다. 이에 한국의 주류언론과 미디어매체는 한국이 세계 10대 강국의 반열에 들어섰으며 세계가 이를 공인한 것으로 크게 보도하여 왔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젊은 세대들이 헬지옥을 연호하고 천만이 넘는 시민들이 내일없는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정권과 국내언론들이 보이는 자가도취에 대하여, 필자는 가장 위험한 그리고 위장된 독배는 언제나 달콤한 향을 담고 있음을 경고하고자 한다. 스스로 성취하고 자신의 판단과 이해에 기초하지 않은 행보에는, 더욱이 일반시민들의 지지가 흔쾌히 함께하지 않은 상황에는 항상 그리고 언제든 치명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에 유념해야 한다.

우선 초청대상국으로는 한국뿐만 아니라 친미적 성향이 아주 강한 호주와 남아공 그리고 인도가 포함되어 ‘G7+4’라고 불리면서, 이번 화합은 미국과 영국이 공조하여 준비하고 있는 반중국 전선인 민주주의동맹 ‘D10’의 예비적 모임이라는 성격을 분명히 하였다.

G7의 역사적 배경은 1970년대 중동의 산유국 중심으로 기존 서구제국들의 식민역사를 비판하고 자원의 국유화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오일쇼크와 더불어 스테그-인플레가 심각해지자, 이에 대응하고자 근대 세계질서를 좌지우지해온 경제강국 5개국이 중심이 되어 출발한 이후, 이탈리아와 캐나다가 추가되면서 G7이라고 불렸으며, 러시아가 한때 참여하여 G8이 되었다가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서방과 불편해지자 일방적으로 제명되면서 다시 서구중심의 G7로 복귀되었다 (일본은 20세기 근대화 이후 탈아입구의 서구연합임을 분명히 하여 왔다).

세계적 현안과 흐름 그리고 국제질서에 관해서는 기본적으로 다자적이고 공식적인 유엔과 산하기구를 통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오만한 몇 개의 선진강국들은 자신들의 기득권과 이해를 방어하기 위하여 유엔을 깡그리 무시하고 이를 마치 종복처럼 다루면서 별도의 협의기구로서 G7 및 G20를 만들고 별도로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OECD기구를 창설하였다.

순서와 절차로 따지자면 유엔 등 보편적 국제기구에서 토론하고 합의하면,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지난 식민제국시대를 속죄하는 의미에서도, 서구의 강대국들이 확실하게 책임을 분담하면서 솔선수범으로 결정사항을 이행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러나 적반하장 격으로 서구제국들은 유엔이라는 다자국제기구를 실익이 없는 허명의 간판으로 활용하면서, 실제로는 식민제국의 시대에서부터 누적 형성하여온 자신들의 기득권과 이해를 유지하기 위하여 강자들만으로 별도의 밀실을 차린 셈이다. 한마디로 패권에 의한 국제질서의 강행이라는 꼼수이다.

참가회원국들 면면이 그러하다, 모두가 세계1.2차 대전을 일으킨 당사자들과 관련국들로, 2차 대전 이후 벌어진 270여 차례의 국제분쟁 중 260여 건에 개입한 미국을 위시하여, 중동 및 북아프리카 그리고 중부유럽의 온갖 내전과 침공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온 국가들인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아직도 자신의 엄청난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이 포함되어 있다.

과연 이들이 중심으로 형성된 모임이 만국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국제질서를 만들어 나갈 자격이 있을까? 실제 논의된 대부분의 현안들은 국제사회를 향한 보편적이며 다자적인 접근보다는 강대국들 중심의 과시적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 특별히 관심을 이끈 인물은 단연코 지난 1월 초에 집권을 개시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다. 오로지 자국우선주의와 단순하게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을 외친 트럼프에 반하여, 올 1월부터 집권을 개시한 바이든은 매우 세련된 접근과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면서 치밀하게 미국의 이익을 강화해오고 있다.

그는 G7과 Nato체제를 넘어서 D10과 Quad 등 기존동맹을 강화하고 새로운 연합을 구상하는 America is Back (in Alliance), 수조 달러의 재정을 추가로 투입하면서 미국의 경제와 산업의 재건을 향한 Build Back Better, 차기의 선거를 의식하면서 기존의 미국외교방식에 일대의 전환을 시도하는 Foreign Policy for Middle Class, 등 구호들과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제2차대전의 전후질서를 설정하고 주도하며 강요해왔던 미국의 일방적 패권의 지위가 흔들리자, 격변하는 상황에 응동하고 재편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입지를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강화 유지하는 한편에, 자신의 위상을 위협하는 중국을 고립시키고 결국은 서구의 기존 질서에 굴복시키고 편입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기존의 캐논식 봉쇄라는 정치군사적인 접근을 넘어서 소위 하이브리드 전략을 구사하면서 첨단기술에서 확실한 우위 확보, 가치(인권, 민주주의, 투명성 – 반부패와 반권위주의 등)를 내세우는 새로운 연합전선, ‘신장 이슈’에서 보듯이 국제미디어를 동원한 문화적 이념적 공세 등을 파상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문제는 지정학적으로나 지경학적으로나 미중 간에 둘러 쌓인 대한민국의 포지션닝(Positioning)이다. 미국은 한국에게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이해를 대변하는 동반자(하수인)의 역할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직간접적인 Quad의 참여, D10의 주요 국가로서 동행, 일본과 함께 첨단기술과 산업에서 한미일 연합구축 등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새롭게 눈여겨 보아야 할 지점은 한미군사연합과 가치동맹을 뛰어 넘어 미래의 첨단기술전쟁에 한국을 반중 연합전선에 편입시키고 더 나가 중국과 산업기술적으로 단절Decoupling을 선언한 이래 점차적으로 미국산업 중심의 공급사슬 네트워크의 한축으로 한국산업을 재편성(강제편입)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미래의 승부는 군사력보다 기술과 경제가 결정한다).

이러한 전략과 판단의 일환으로 바이든은 대한민국의 삼성그룹과 문대통령을 백악관으로 초대하여 속보이는 환대를 베풀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이번 G7회의에서는 영국과 합작하여 초대대상국 중에서도 공공의료기술과 백신공여 등에 관하여 한국에게 유별나게 역할을 부여하려는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반면에 중국은 한중수교 29년을 맞이하는 현재 그간 한국의 발전에 가장 큰 기여를 제공한 이웃이자, 북한의 핵무장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의 균형과 안정이라는 토대를 마련하는 대국이다.

이제는 많은 전문연구기관들이 인정하고 있지만, 지난 2008년 전후 국제금융위기를 맞이하여, 선진 주요 국가군들은 양적완화라는 통화팽창정책을 추진하여 자국의 자산가 중심의 거품경제를 형성하면서 동시에 부채국가들에게 가혹한 긴축재정을 강요하여 이중적인 피해를 야기하여 온 반면에, 중국당국은 과감한 재정확대정책을 통하여 산업정책을 강화하고 인민의 생활경제를 지원하며 중국시장을 세계에 개방하면서 지구촌이 금융위기에서 벗어나는 매우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감당하여 왔다.

이후 중국의 세계경제에 대한 발전기여도가 25-30%에 이르고 있으며, 특히 한중간의 상호공헌도는 타국들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유기적 관계를 깊숙히 강화시켜 왔으며, 이를 더욱 가속시키기 위하여 이미 한중일 FTA의 체결을 위한 실무적 검토가 완결되었으나, 한국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로 2020년 말로 예정하였던 타결서명의 일정이 무기연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더하여 내년인 한중수교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한국증권거래소와 상해증권거래소 간에 투자상품(ETF)을 상호 개방한다는 MOU를 체결하였음에도 한국측에서는 이를 아직 공개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 대해서 문재인 정권에게 공개적으로 묻고자 한다, 미국의 간섭과 압력 때문인가 아니면 스스로 알아서 판단한 것인가? 우리는 미중의 쟁패라는 현재상황을 강요된 선택의 위기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민족의 명운을 걸고 반드시 묘수풀이라는 꽃패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단연코 서구문명의 일방적 지배시대는 이제 지나가고 있다.

지난 과거로부터 역사의 흐름을 보자면 대한민국은 G7국가들이 지닌 성격 즉 식민시대 종주제국이 아니라 가혹한 일제강점시대를 격은 이후 강대국들의 패권싸움으로 분단과 민족상쟁의 아픔이라는 과거의 상처를 가슴에 품고, 현재적으로도 여전히 동아시아의 화약고를 머리에 지고 있는 나라이다.

해방 이후 70여 년 세월 동안 우리가 성취한 오늘의 모습이 한편에서는 대견하게 평가할 수준이 이르렀다고 해도, 이를 냉정하게 판단하고 시시비비를 가려가며 지신의 이해에 따른 주권적 판단과 결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남들이 띄워준 애드벌룬에 취하여 행여나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우를 범해서는 아니 된다. 개방경제에 기반한 우리의 산업적 기반은 자칫 종속적인 동맹이나 맹목적인 진영의 논리에 휘둘리면 한 순간에 위태로울 뿐만 아니라, 일부의 재벌과 기득권을 위해 손쉬운 임시방편을 취하면 중장기적인 전망과 방향을 잃기가 십상이다. 긴 호흡으로 남북한 8천만 모두가 상생과 평화를 꿈꿀 수 있는 한반도라는 터전의 기반을 설계하며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지난 70여 년의 한미동맹이 현재적 조건이자 한계라는 점을 현실의 지렛대로 삼되, 중장기적으로 수천 년 누래累來로 이어져온 배달민족의 염원을 역사로 복원하는 지혜를 가져야만 한다. 이제 일년도 남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주어진 절대절명의 과제이다.

 

이래경

6.15남측위 국제연대 공동위원장, (사)다른백년 이사장

화, 2021/06/15- 20:09
5
0

편집자 주:

바이든 정권의 출범이래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되찾고자 여전히 냉전적 이데올로기의 불씨를 되살리고 종속적인 동맹을 강요하며 산업과 기술을 매개로 세계질서를 재편하려 한다. 이에 대하여 러시아의 푸틴은 미국이 과거 소련의 패망의 길을 걷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며 바이든 행정부은 매우 긍정적인 두가지 정책전략을 제시하였는데, 하나는 부패와 권위주의적 체제에 대한 싸움을 선언한 것과 다른 하나로 아래에 소개하는 바처럼 탈세방지를 위한 글로벌 기본과세의 도입을 추진하는 점을 둘 수 있다.  6월 초 G7회의에서 이루어진 글로벌과세의 기본합의에 대하여 CNN/BBC 보도와 중국의 CGTN내용을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London (CNN+BBC)

주요 7개국(G7)이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을 도입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G7 재무장관들은 5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에서 회의를 열어 기업들에 최소한 15%의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을 부과하기로 합의하고 서명을 마쳤다.

의장을 맡은 영국의 리시 수낙 재무장관은 “수년간의 논의 끝에 디지털 시대에 적합하고 공평하게 글로벌 조세 체계를 개혁하기 위한 역사적 합의가 이뤄졌다”라며 “앞으로 기업들은 올바른 곳에서, 올바른 세금을 내게 된다”라고 밝혔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도 “각 나라의 법인세율 인하 경쟁을 종식하기 위한 중대하고 전례 없는 합의”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은 기업에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마련해주고, 노동력 교육 및 훈련과 연구·개발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늘려 세계 경제가 번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G7 재무장관들은 기업이 세율이 낮은 곳에 본사를 둬서 세금을 회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익을 얻는 국가에서 세금을 내도록 했다.

앞서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IT 대기업들이 자국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리며, 자체적으로 디지털 서비스세를 만들어 부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국은 유럽에서 수입되는 의류, 명품 등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맞섰다.

지난 수년간 논의를 거듭하던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은 각국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재정 지출로 세입 확충이 시급해지면서 속도가 붙었고, 사실상 결정권을 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동의하면서 극적으로 합의에 도달했다.

더구나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로 정한 15% 앞에 ‘최소한’이라는 문구를 넣으면서 향후에 세율을 올리기 위한 길도 열어 놓았다.

영국 BBC는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 대기업들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법인세율이 낮은 아일랜드와 버뮤다에 자회사를 이용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소재하는 곳에서 세금을 내도록 한 100년 된 글로벌 법인세 체계를 뒤바꾼 것”이라며 “과세는 주권의 근본이기에, 그동안 각국 정부가 합의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라고 강조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재무장관은 “기업들이 더 이성 불투명한 조세 체계를 가진 국가로 본사를 옮겨 교묘하게 납세를 피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조세 회피처들에는 불행한 소식”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각국 정부와 시민단체들의 압박과 비판을 받아온 기업들은 일단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페이스북의 닉 클레그 부사장은 “우리는 글로벌 조세 개혁이 성공하기를 바란다”라며 “이로 인해 페이스북이 세금을 더 많이, 여러 국가에서 낼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구글의 호세 카스타네다 대변인도 “글로벌 조세 개혁을 강력히 지지한다”라며 “각국이 균형 있고 지속적인 합의를 마무리하도록 계속 협력하기를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G7 재무장관들의 다음 목표는 7월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를 시작으로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도입 국가를 확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법인세율이 12.5%로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아일랜드는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도입에 반대하고 있으며, 중국도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작다 (편집자 주. 천만에, 중국도 기본적으로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미국이 꼼수를 부릴까 구체적 내용에 대하여 경계를 가지고 있다)”라며 “G7 국가들이 정치적 압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파샬 도노호 아일랜드 재무장관은 “글로벌 조세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우리는 합법적인 법인세율 인하 경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Beijing (CGTN) 

G7 국가는 다국적 기업이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하기 위해 “역사적인”거래에 동의했습니다.

런던에서 이틀간 회의를 마친 후 재무 장관은 조세회피를 줄이고 다국적 기업이 공정한 몫을 지불하도록 하는 새로운 시스템에 서명했습니다. 그러나 변화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며 새로운 시스템은 무엇이며 다음에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조세회피, 즉 불법적인 탈세가 아닌 조세를 최소화하기 위한 법적 조치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 수십 년 동안 거대 다국적기업이 세율차이를 이용하고 COVID-19 회복에 따른 막대한 비용이 솔루션에 집중하면서 점점 구제적인 현안적 주제가 되었습니다.

현재 일어나는 일은 기업이 상대적으로 낮은 법인세율 (즉, 소득 또는 자본에 대한 기업부담금)을 가진 국가에 지점을 설립하고 실제로 사업이 얼마나 많았는지에 관계없이 해당국가에서 수익을 신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곳의 세율에 따라 납세를 하여 왔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기업이 본사를 그곳에 정착시키면 지역경제를 활성화 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의도적으로 낮은 법인세율을 제공함으로써 이러한 세금관광이란 아이디어를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효과가 있지만 때로는 바닥을 향한 경쟁(rush to bottom)을 통하여 일부 기업들이 흔적을 남기지 않는(비밀을 유지하는)국가에 세금을 신고할 수 있습니다.

예건데 아일랜드(현재는 법인세율이 12.5 % 인 저율의 과세지역)의 더블린에 사무실을 둔 Microsoft 자회사가 작년에 3,150억 달러의 수익을 냈으나 12.5%의 세율조차도 회피하기 위하여 일체의 법인세를 부과하지 않는 조세피난처인 버뮤다에 등록하면서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습니다.

COVID-19 전염병과 관련하여 1년 넘게 엄청난 불확실성을 겪고 많은 기업이 산업활동의 중단에서 발생한 손실을 상쇄하기 위해 차입금을 늘린 후, 정부는 시스템을 점검하고 과세대상 수익이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에 긴급히 집중했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 트럼프의 세율인하 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여 왔습니다.

새로운 시스템은 무엇일까요?

G7국가들이 동의한 합의내용은 본질적으로 두 가지입니다.  “제1 원칙”으로 알려진 첫 번째 목표는 영업 또는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국가에서 해당기업이 상응한 비례세금을 납부하도록 함으로써 기업이 자의적으로 수익을 신고할 국가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원칙”은 아마도 더욱 야심적입니다. 글로벌 최소세율을 만드는 것이 성공할 경우 조세 피난처를 찾는 기업의 기회를 근본적으로 봉쇄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G7의 장관들은 원칙적으로 15%의 최저세율을 설정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세금이라는 주제이기 때문에 실제의 시행과정은 매우 복잡합니다. 첫 번째 원칙은 수익마진이 10 %이상인 글로벌 기업에 적용되며 해당 벤치마크를 초과하는 모든 수익의 20 %는 사업을 영위하는 국가에서 과세됩니다.

다음의 절차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이번 합의는 G7 회원국 즉,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캐나다 및 일본과 EU 사이에 체결되었습니다. 특히 다음 달 베니스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최저 세율과 관련된 두 번째 원칙에 대해 논의 할 것입니다.

G20에는 G7과 아르헨티나, 호주, 브라질,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멕시코, 러시아, 사우디 아라비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한국 및 터키가 포함됩니다. 따라서 이들 회원국 간의 합의는 세계 주요 경제의 많은 부분(80% 정도)을 포함할 것이지만 이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닙니다.

일부 국가들과 기업들은 향후 논의에서 세계무역을 장려하는 38개국 기구인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회원을 포함시키려는 의도를 인용했습니다.

그것조차도 여전히 세계국가 및 세금지역의 소수만 포함됩니다.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기업들은 종종 조세피난처를 찾는 데 몰두하기 때문에, G7 리더들이 합의로 이룬 결정들이 실현되기에   글로벌 조세개혁은 아직 먼 길을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수, 2021/06/16- 19:56
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