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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과학’의 관계를 재정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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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과학’의 관계를 재정의하기

admin | 월, 2020/01/06- 22:43

왜 자연과 과학의 재정의가 필요한가

나는 자연과 과학이 이해되는 방식의 혁명적인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이런 설명은 역사 혹은 철학 수업이 아니다. 이것은 정책결정, 정책의 프레임 구축, 지구의 미래에 관한 장기적인 비전 마련에 필요한 설명이다. 현대적 가정의 바깥에서 “자연”과 “과학”을 생각하는 방식을 배움으로써만 우리는 문명적 변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자연”은 인간의 통제 아래 놓인 지구와 생태계를 의미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또 “과학”은 이런 지배력을 뒷받침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인류는 자동차에서부터 화력발전소, 핵무기에 이르는 많은 기술을 통해 지구의 미래에 대해 완전한 통제권을 행사한다. 이런 기술은 폭발적인 과학지식을 통해 발명되고 실용화됐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를 바꿈으로써만 우리는 자연과 과학을 다르게 이용하게 될 것이다. 또한 자연과 과학을 다르게 이용할 때만 새롭고 진정한 생태문명을 향해 진전하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이것은 “큰 그림”의 문제이지만 추상적이지도, 우리와 무관하지도 않다. 정부, 교육, 산업, NGO 등이 정책과 우선순위를 바꾸려면, 현재를 넘어 우리가 생태문명이라고 부르는 목표를 향한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 정책변화를 위해서는 우리 인간이 급속도로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현대(지난 50년 정도) 이전까지 아주 명백하게 보였던 근본적 가정을 의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생태문명연구소는 전 세계에 있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조직들과 협력한다. 이들은 이미 기후위기와 그것이 지구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있다. 우리가 지구상에서 인간의 존재에 대해 근본적인 재해석을 내릴 때만, 인류는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다. 그 첫 번째 단계는 사실상 생태계 전체가 인간의 통제에 들어간 후현대에 자연과 과학이 어떻게 이해되는지 인식하는 것이다.

 

현대 이전의 자연과 과학

오늘날 자연세계에 가해진 피해의 많은 부분은 자연이 “몰가치하다”, 즉 인간이 원하는 방식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현대 이전의 어떤 시대에도 자연이 이런 방식으로 몰가치하다고 여겨진 적은 없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서구의 철학적 전통에서도 그랬고 동양도 마찬가지다. 만약 자연이 몰가치하다면, 과학도 몰가치하다.

서양철학의 탄생을 생각해보자.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자연을 이해한다는 것은 데이터와 패턴뿐만 아니라 자연의 기본원리(archē)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리스의 과학은 실증적이기보다 철학적이었다. 심지어 서양역사상 최초의 실증주의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물리학이나 생물학을 배우는 목적은 인간이 이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얻는 수단이었다. 이 초기 과학자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신에게 호소해야 한다고 믿지 않았다. 대신 위대한 유교사상가들처럼 가치의 패턴이 이미 자연 속에 들어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결코 자연을 지배의 대상이나 인간의 목적을 위해서만 이용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1600년경 현대가 시작되기 직전, 만물의 가치에 대한 믿음은 서양철학에서 정점에 달했다. 유럽 가톨릭교회의 지도자들은 신이 만물을 창조한 데는 각각의 이유가 있고 모든 것이 신성한 질서에 따라 적절하게 자리잡고 있다고 믿었다. 전체로서의 자연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신의 선함을 드러냈으며, 모든 생명은 특별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창조되었다고 여겼다. 신이 창조한 모든 것은 좋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과학은 일종의 자연신학, 즉 신의 과학이었다. 자연신학에서 신은 부분적으로 세계를 통해 이해됐으며, 세계는 신을 통해 온전히 이해됐다.

 

과학과 현대 세계

오늘날 환경위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시기인 이른바 현대를 끝내고 있다. 현대의 기원은 약 400년전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인간이 유일하게 생각하는 존재(res cogitans)라고 가르쳤다. 동물은 “단지 기계”이며 자연은 인간의 문명과 사고의 확장을 위한 배경에 그쳤다. 그렇다면 현대인에게 과학이 그저 인간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인간의 지구 지배를 위한 도구로 여겨지는 것도 놀랍지 않다.

이런 자연의 모습을 감안할 때 데카르트가 선택한 과학이 어떤 종류인지 상상할 수 있다. 바로 물리학이다. 동시대에 토마스 홉스가 주장한 것처럼 만물이 “움직이는 물질”에 불과하다면, 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것은 운동의 방정식이다. 실제로 토마스 홉스가 이런 말을 한 뒤 40년이 지나기 전에 뉴턴이 운동의 방정식을 제시했다.

이제 이 글의 핵심적 생각에 이르렀다. 자연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자연에 대한 연구, 즉 우리가 선호하는 과학의 종류를 결정한다. 즉, 자연이 과학을 결정한다. 만약 자연이 생명체를 포함한다면, 자연은 생명과학을 이용해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자연이 실재하는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포함한다면, 자연에 대한 연구는 심리학, 인류학, 역사, 문학, 그리고 예술을 포함해야 한다. 그러나 서구에서 근대가 탄생할 때 선구적인 과학자들은 이 모든 것을 거부했다. 그들에게 자연은 기본적으로 원자, 나중에는 부원자적 입자가 된 물질이었다. 유럽과 미국이 전 세계로 수출한 세계관이 바로 이것이다. 이런 생각을 퍼트리기 쉬웠던 이유가 있다. 자연을 단지 객체로 바꿔놓는 게 인간에게 강력한 힘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자연관이 배와 비행기, 총과 핵폭탄,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만들어냈다. 전세계 지도자들은 이런 세계관이 생산한 기술에 대한 대가로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과 상충하는 세계관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문제는 이런 기술들이 이윤의 극대화를 주장하는 주주들과 “공동선”을 위해 조금도 헌신하지 않는 다국적 기업들을 양산한다는 점이다.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지속적인 성장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를 원하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의 권력을 잃으니까!) 국내총생산(GDP)을 기반으로 성공을 측정한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통제에 저항하는 국가들은 가난에 허덕이다가 국민들의 반란에 직면한다. 사람들은 작은 거라도 원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권력을 유지하려면 설사 기후변화를 일으킬지라도 국민들이 원하는 단기적 이익을 제공해야 한다.

여기에서 교훈은 분명하다. 자연은 과학을 결정하고, 과학은 기술을 결정하며, 기술은 정치와 경제적 전지구화의 형식을 결정한다.

그런데 과학과 자연 사이에 형성된 역학의 나머지 절반이 있다. 자연이 과학을 결정하는 게 맞지만, 과학도 자연을 결정한다. 즉, 우리가 자연을 연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과 가정들은 결국 우리가 연구하는 자연을 정의하게 된다. 아브라함 매슬로우가 썼던 오래된 표현인 “당신이 가진 유일한 도구가 망치라면, 모든 것을 못처럼 다루고 싶어질 것이다.”라는 말을 떠올려보라.

과학에 반대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과학도로서 과학의 진보가 인간의 생존에 결 정적임을 강조하고 싶다. 점점 더 정교한 도구를 사용하는 실험가들은 세계에 대한 풍부한 데이터를 얻고, 과학자들은 이 데이터를 이용해 경험적 일반화를 도출하고 자연의 기본법칙을 공식화한다. 이런 지식 없이는 기후파괴의 실제 규모를 알지 못했을 것이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비하는 방법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거의 400년 동안 과학은 현대적 세계관의 시종으로 이용됐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은 과학과 가치 사이에 더 견고한 장벽을 쌓기 위해 투쟁해왔다. 과학자들은 “문화적 전통과 미신에 구속되면 과학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제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오래된 미신을 없애고 그것을 (과학이라는) 새로운 미신으로 대체하기 위해 현대적 지식을 수용해야 한다.

가장 최악은 현대적 세계관이 과학은 몰가치적이어야 한다, 즉 모든 가치를 넘어 존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는 점이다. 이런 잘못된 주장은 지난 400년 동안 파괴적인 결과를 낳았다. 과학자들은 과학의 우위가 전통적 가치를 현대성의 세계관과 가치로 대체하는 비용을 치렀다는 명백한 사실마저 부인한다. 예를 들어 객관적이고 입증 가능한 지식만이 가치가 있다, 자연은 인간의 목적을 위해 정량화되고 통제되고 사용될 때만 정확하게 이해된다, 인간은 모든 생명체를 지배하고 우리의 필요에 맞게 이용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에 모든 생명체 가운데 가장 독보적이다, 물질 이상인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생기, 의식, 예술과 종교, 선악-은 물질/에너지가 진화과정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복잡한 방식일 뿐이다 등의 주장이 우위를 얻었다. 어느 신경학자가 내게 말했듯, “전선과 화학물질, 그게 우리의 전부이다.”

어떤 실수는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 자연을 인간이 제약 없이 사용하는 자원의 집합으로 만든 게 그런 경우다. 결과적으로 깨끗한 공기, 파란 하늘, 마실 수 있는 물, 건강한 토양이 손상됐다. 기업농이 전통적인 농장을 대체했고, 교통체증은 세계의 거의 모든 대도시에서 자전거와 보행자들을 대체했으며, 알고 통제하려는 욕구가 연결하고 보살피고 보호하려는 바람을 대체했다. 대학과 기업은 가치중립적인 곳이므로 학생과 노동자들은 가치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듣게 됐다. 현대성은 식민권력의 확장과 함께 지구 전체에 자본주의와 개인주의를 전파했다.

 

몰가치의 과학과 몰가치의 자연을 넘어

과학이 승리를 선언한 이후 수세기 동안 상황은 급격하게 변했다. 독립성에 기초한 실증과학은 이제 위협적 존재가 되었다. 오늘날 과학, 기술, 산업이 “몰가치적”이라는 생각은 지구와 우리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종을 위험에 빠트렸다. 자연에 대한 현대적 관점은 대양의 산성화, 토양이 죽은 농경지, 사막의 확장, 지하수면의 감소, 급속한 지구온난화라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는 현대과학이 지식과 가치를 분리하고,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몰아내고, 지혜의 단련을 끝없는 소비의 즐거움으로 대체하도록 허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고 지구 생태계가 붕괴지경에 이르렀음을 발견했다.

좋은 소식은 대안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성이 붕괴하면서 후현대가 등장하고 있다. 어떤 점에서 이 새로운 대안은 사람들이 땅, 공동체, 그들의 거처를 구성하는 생태계와 유기적으로 상호 연결돼 살아갔던 근대 이전시기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근대성이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붕괴하면서 우리는 전근대의 선조들과 원주민들의 가치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물론 전근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이것은 일종의 낭만주의이다-지구와 더불어 사는 새롭고 지속 가능한 방식을 창조하는데 과거의 중요한 요소들을 혼합할 수 있다.

이 과정에는 두 가지 중요한 단계가 있다. 첫째, 과학은 자연을 단지 “움직이는 물질”의 연구로 해석하는 관점을 버려야 한다. 인간사회도 수많은 생태계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다양한 생태계의 상호연관성을 연구하는 새로운 생태과학이 이를 대체해야 한다. 둘째, 근대성을 벗어나 지속가능성으로 이동하는 것은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는 만큼 과거의 잔재로부터 새로운 문명이 탄생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 생태적 사고와 문명적 변화가 필요하다.

 

생태문명을 향하여

“생태문명”은 네 층위의 조화가 이뤄진 후현대적 비전인데, 이는 사회, 과학, 전통적 가치, 생태적 사고를 규정하는 방식들 사이의 조화를 가리킨다. 이는 강력한 비전이다. 이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문명”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사회를 전체적으로 어떻게 조직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뜻한다. 문명은 개별적인 법, 정치, 기술 이상이다. 문명이란 한 집단의 전체 생활방식, 지구화 시대에는 인간이라는 종 전체의 생활방식을 의미한다.

우리는 집단이 공유한 가치와 열망을 가리켜 영어로 “에토스”란 단어를 사용한다. 한 집단의 에토스를 보존하는 것은 오래된 풍습과 가장 깊은 가치를 보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환경문제는 단순히 개별적 정책들, 즉 정부가 원자력의 사용을 승인할지 말지, 누가 자동차를 소유할지, 혹은 사회가 어떻게 농업을 조직할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생태문명이란 용어는 환경이란 용어를 확장시켜 한 집단의 모든 생활방식을 포함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예를 들어 생태농업은 기업농이 해온 고도의 석유의존 관행을 줄이고, 보다 전통적이며 지속 가능한 방식의 농업을 선택하는 것을 뜻한다. 생태경제학은 단순한 GDP를 넘어 경제적 성공을 측정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인간의 복지와 화합을 강조하는 것을 뜻한다. 사회의 다른 분야들도 이와 마찬가지다.

새로운 네 층위의 비전에서 두 번째는 과학이다. 현대과학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가끔 과학과 기술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자고 주장한다. 많은 이들이 복잡한 문제를 가진 현대 세계로부터 등을 돌리고 원시적 농업이나 토착민의 생활방식, 즉 삶이 보다 단순하고 과학이나 기술이 없던 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생태문명 건설이라는 목표는 과거로의 퇴행을 허용하지 않는다. 생태문명은 과학이 여전히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계를 계승하므로 전근대가 아니라 후현대라는 목표를 갖는다. 과학으로부터 도망치기보다 과학을 통합시킨다. 생태문명은 탈과학(post-scientific)이 아니라 현대가 가진 해로운 가정들에서 벗어나 자연과 과학을 보다 유기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과거의 과학은 사회와 지구를 위해 봉사하는 시종이었으나 지금의 과학은 주인이 되어 인간과 문화를 노예로 만들었다. 이런 추세를 역전시키려면, 공동선을 위한 과학에 재정지원을 하는 등 사회와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후현대의 우선순위에 봉사하는 과학의 인도에 따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기술이 개발될 수 있다.

네 층위의 비전 중 세 번째는 전통문화의 가치이다. 이것은 서구인들이 종교라고 지칭하는 믿음과 실천의 집합인데 종교라는 말은 동양보다는 서구의 문화적 맥락에 좀더 편안하게 맞는다. 만약 우리가 종교라는 용어를 쓴다면, 후현대 종교만이 이런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역자주: 불교나 힌두교는 서구인들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체계화하기 이전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다. 체계화, 권력화된 서구의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배타성과 획일성으로 인해 수많은 분쟁과 갈등의 원인이 됐다.)

후현대 종교는 현대 종교와 완전히 다르다. 각 문명이 가진 오랜 지혜를 돌아보며 우리가 사는 후현대 세계에 각자의 전통을 적용한다. 자신의 종교적 진리를 증명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대신, 상대방의 문화적 전통이 가진 지혜를 배우려고 한다. 후현대인들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고유한 문화적 전통을 실천할 수 있다. 믿음과 실천이 사회에 유용하기 위해서 반드시 객관적이거나 보편적일 필요는 없다.

누구나 “생태문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고, 종교적 헌신 없이도 환경이라는 최우선의 가치를 위해 깊이 헌신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과 동물의 합일은 여전히 전통적인 종교적 가치의 심오한 표현이 될 수 있다. 두 가지 예를 생각해 보자. 유교는 상반된 힘과 이해들, 즉 남성과 여성, 통치자와 백성, 하늘과 땅 사이의 조화를 강조한다. 지구와 조화롭게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라는 요구는 아마 우리 시대의 가장 높은 가치일 것이다. 도교는 차이간의 균형을 강조하는 또 다른 모델을 제공한다. 균형이란 남성과 여성, 인간과 동물, 사회의 각 부분들, 혹은 과학과 가치 사이의 균형을 의미할 것이다. 한쪽이 다른 쪽을 힘으로 억누를 때 불균형이 발생한다. 부자와 가난한 자, 군사강국과 약소국가, 북반구와 남반구가 그런 사례들이다.

생태문명의 네 층위의 비전 가운데 마지막은 생태적 사고, 즉 환경 전체를 고려하는 과학, 철학, 정책이다. 생태학은 모든 존재의 상호의존성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건강한 생태계는 그 생태계의 모든 유기체들 사이의 적절한 균형에 달려있다고 가르친다. 환경이 균형에서 벗어나면 생태과학이 균형을 회복할 수 있는 행동지침을 제공한다. 정책이 확고한 생태적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다면 그 정책은 모든 구성 요소들 사이의 균형이 깨지더라도 바로 회복되도록 사회를 구조화할 것이다.

 

간단한 예: 과학 정책

한국과 미국 같은 국가의 정부는 과학정책을 구상하고, (미국의 경우) 국립과학재단(NSF), 국립보건원(NIH) 같은 과학단체들에 기금을 할당한다. 이런 정부출연기관들은 지원기준을 정하고, 이들의 기금 지원은 해당 국가의 과학연구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런데 기금 지원결정을 내릴 때 그들은 과학을 어떻게 정의할까? 주요한 기금은 대개 매우 전문화된 프로젝트에 투입되는데, 그 이유는 확실한 결론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가치의 개입도 차단되는데, 그 이유는 “인류의 장기적 이익”과 같은 목표는 5년 이내의 지원으로는 정확히 측정되거나 시험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체적 기준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어떤 “가치”가 기금 수혜자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아이러니하다. 우선 정치적 가치인데 과학계에서는 기금을 받기 위한 전투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다음은 기금 지원기관의 특수한 가치인데, 이 기관들은 현재 과학적 패러다임 안에서의 정확성과 일관성이 유지되는지, 그리고 3년 내지 5년의 수혜기간 내에 확실한 결론을 낼 수 있는지 증명하기를 요구한다.

이런 가치들이 지원기준이 되면 결국 우리와 자연세계의 관계를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이론과 기술을 지원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속 가능한 기술과 사회를 조직하는 급진적으로 새로운 방식을 연구하고 증진시키는 과학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비전이 있는 장기 연구를 지원하는 일이 어렵기는 해도 NGO나 민간기부자들을 통해 약간의 지원이 가능하다. 시민들이 지속 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지원을 요구한다면, 정부도 정책 변화로 응답할 것이다.

 

세계관으로서의 생태학

우리는 자연과 과학의 개념이 중요한 이유를 살펴보았다. 지구는 위기에 처했다. 지난 몇 세기 동안 자연을 인간의 소비를 위한 자원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런 자원을 어떻게 측정하고 효과적으로 이용할지 결정하는 수단이 됐다.

나는 건강한 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지구를 보호하려면 여러 과학분야의 도움이 필요하다. 생태문명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고 말만 하면 안 된다. 이런 종류의 사회질서가 어떤 것인지, 물리적∙생물학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지,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엄격한 자연과학은 자연의 내재적 가치를 확신하는 후현대적 맥락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의 깊은 상호연관성을 인정하면서 생태과학과의 대화 속에서 후현대적 자연관을 세워나갈 때 모든 것이 변화한다.

전근대 시대에 인간은 자연과 가치를 통합할 수 있었다. 현대과학은 인간과 생태의 심오한 가치를 저버린 대가로 성공했으나 불균형의 과학이 됐다. 후현대 과학의 임무는 높은 수준의 현대과학을 과학분야 상호간의 관계, 지구와의 온전한 관계라는 가치 아래 서로 만나게 하는 것이다. 생태연구는 지구의 미래를 담보하려면 어떤 종류의 균형이 필요한지 밝혔다. 사고방식 혹은 세계관으로서의 생태학은 사람들을 각자의 환경과 보다 가깝게 통합시키는 수단으로서 각 지역의 문화적 전통을 되살리기를 권한다. 과거의 지혜와 미래의 생태학이 함께 현재의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생태문명으로의 길은 쉽지 않을 것이다. 모더니즘의 힘은 여전히 우세하다. 자본주의 기업들은 쉽게 통제권을 내놓지 않을 것이다. 많은 정부들은 계속해서 지구의 이익보다 자국의 이익을 앞세울 것이다. 많은 소비자들은 사회의 이익보다 자신의 안락과 욕구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현명한 장기적 해결책보다 쉬운 단기적 대응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지구의 미래는 위태롭다. 우리가 계속 상위의 가치를 부정한다면 개인들은 계속 자신에게 가장 이익을 주는 생활방식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가치를 오직 유용성의 관점에서만 정의하는 것은 지구의 생물다양성을 파괴하고 대규모 멸종을 낳으며 지구상 생명의 정교한 균형을 손상시킨다. 새로운 생태문명은 자연 본연의 가치라는 기반 위에서, 그리고 그 가치가 지구에서 인간의 행위에 대한 지침으로 기능할 때만 이뤄질 것이다.

 

필립 클레이튼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 교수, 생태문명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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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코리아 남쪽의 대한민국(ROK)의 눈에는 코리아 북쪽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라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눈에는 남쪽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없다. ‘코리안 블라인드(Korean blind)’다. 한쪽 눈만 뜬 채 상대를 맹점 지대에 넣어놓고 서로가 상대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헌법에는 ‘한반도’에 오직 대한민국만이 존재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헌법에는 ‘조선반도’에 오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만이 존재한다. 헌법만이 아니라 두 나라의 어느 공식적인 법과 제도에도 상대는 국가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한번쯤은 마리오트 맹점 실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혹시 안 해본 분이라면 이번 기회에 직접 한번 해보시기 바란다.(아래 그림) 먼저 왼쪽 눈을 가리고 오른쪽 눈으로 그림의 십자 표시를 응시한다. 그리고 눈을 멀리 가까이 하여 거리를 조정하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검은 원이 사라져버린다. 다음에는 반대로 오른쪽 눈을 가리고 왼쪽 눈으로 그림의 검은 원을 응시하면서 거리를 조정하다 보면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십자가가 사라져버린다.

지금 코리아 남북의 두 나라가 꼭 마찬가지 아닌가. 그러나 두 눈을 다 뜨고 바라보면, 멀리 보든 가깝게 보든, 뒤집어 보든 바로 보든, ‘코리아’에는 엄연히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2019년 현재 세계 157개국이 한국(ROK)과 조선(DPRK) 두 나라를 모두 인정하여 동시 수교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코리아 남북의 두 나라는 서로 상대를 부정하고 있으니 세계인의 시각에서 볼 때는 매우 이상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코리아 양국체제란 이제는 두 코리아 모두 정상적인 세계인의 시각을 갖자는 것이다.

코리안 블라인드는 있는 것을 없다고 우기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거꾸로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놀라운 신박을 부린다. 아직도 여전히 1980년 5월의 광주 시민항쟁 대열에 북에서 보낸 수백 명의 특수부대(소위 ‘광수’)가 있었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망상 허언에 증거가 있을 리 없다. 5·18 당시 계엄사령부와 미국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맹목의 외눈박이들에게는 증거가 중요하지 않다. 필요하지도 않다. 오직 ‘그래야만 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외눈박이 맹목의 당위가 있을 뿐이다. 존재를 부정하는 북과 연결시켜야 5·18 광주를 부정할 수 있고, 그래야 광주 시민들에 대한 피의 살육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있는 것을 없다고 하고,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외눈박이 맹점 놀음은 이렇게 내통하고 있다. 이러한 지록위마(指鹿爲馬) 뺨치는 외눈박이 맹점 놀음으로 오랜 세월 독재체제를 정당화해왔다. 심지어 세월호 참사 항의도 촛불집회도, 북과 연결시켜 압살하려 했던 공작들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코리아 양국체제란 외눈박이 넌센스, 블라인드 기만술로 지탱해온 독재체제, 독재심리를 영구히 종식시켜 정상체제, 정상심리가 확고히 자리 잡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난 70년 코리아 남북에 독재체제, 독재심리가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양측이 ‘내전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전 상태’란 하나의 주권, 하나의 영토를 누가 차지하느냐를 놓고 벌이는 필사의 전쟁 상태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절박하고 극단적인 심리 상태다. 그래서 상대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불법단체’나 ‘반란집단’으로 간주한다. 내전체제는 전쟁체제고 비상체제다. 6·25 전쟁 이후 남과 북 사이가 그랬고, 남과 북 내부가 그랬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남이든 북이든 독재의 위협을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전쟁 상태, 내전 상태이므로 독재가 정당화된다. 내전 상태로 맞선 남북이 ‘상응(相應)하여’ 자신의 독재를 정당화해온 체제를 1970년대 이래 한국의 민주화운동권에서는 ‘분단체제’라 불러왔다. 이러한 ‘내전 상태=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순수한 통일 의지와 통일 열망은 오히려 내전 격화와 독재 강화의 불쏘시개로 역용(逆用)되었을 뿐이다.

오늘날 코리아가 이러한 ‘내전 상태=분단체제’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다. 하나의 주권, 동일한 영토를 놓고 벌이는 필사의 전쟁 상태를 끝내야 한다. 그러자면 한국과 조선 두 국가가 서로의 주권과 영토를 인정하고 공존해야 한다. 코리아 남북은 이미 70여 년 동안 두 개의 주권국가다. 국가주권의 구조적 작동논리는 혈연적 정서논리와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이해하고 대처해야 마땅하다. ‘한 민족 한 형제인데 두 나라가 웬 말이냐’는 식의 민족정서·혈연논리만으로는 내전 상태의 두 나라, 두 주권 간의 적대와 대립을 결코 해소할 수 없다. 1950년 코리아전쟁부터가 한 민족에 두 나라가 있을 수 없다는 논리의 귀결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남북이 서로의 주권과 존재를 인정해야만 통일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은 사실은 너무나도 상식적이고 당연한 말이다. 상대를 인정하기를 기필코 거부하면서 우리는 둘이 아니니까 반드시 합쳐야 한다고 우겨봐야 하나가 될 리 없다. 갈등만 더 증폭될 뿐이다. 누가 보더라도 서로 합칠 생각이 없는 둘의 모습이다. 반대로 상대를 진정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서로 충분히 확인한 연후에 이제부터 어떻게 합칠 것인가를 이야기해보자고 한다면, 이제야 비로소 누가 보더라도 정말 합칠 생각이 있는 둘의 모습이다.

분단체제에서는 남북이 서로를 결코 인정하지 못한다. 분단체제에서 가능한 입장이란, 남과 북 어느 한쪽만을 인정하든지(남과 북 당국의 공식입장), 아니면 양자 모두를 부정하는 입장(둘 모두에 비판적인 입장)일 수밖에 없다. 반면 양국체제에서는 남북이 서로를 마땅히 인정하게 된다. 시늉이나 속임수로서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상대가 더는 자신의 영토와 주권을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서로에게 확고해져야 한다. 그것이 코리아 양국체제다. 그때서야 통일의 길은 비로소 열린다. 하나가 되자고 하면 오히려 하나가 되자는 둘이 우선 분명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고 애당초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하나가 되자고만 해왔던 것이 오히려 분란과 갈등을 키워왔다. 코리안 블라인드를 걷어내고 둘임을 인정해야, 하나가 되자는 양편의 진실성이 입증된다. 오직 이 길을 통해서만 통일은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한 민족 두 나라 공존을 통해 평화적 통일에 이르는 길이다.

이 책의 제목을 ‘한반도 양국체제’가 아니라 굳이 ‘코리아 양국체제’라 한 이유를 눈 밝은 독자라면 이미 눈치 채셨을 것이다. 반도 남쪽의 대한민국(ROK)에서는 ‘코리아 반도(Korean peninsula)’를 ‘한반도’라 부르지만,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RPK)에서는 ‘조선반도’라고 부른다. 양국체제는 한국과 조선 두 나라 모두를 인정하고 위하자는 것인데, 그 이름을 한국에서만 쓰고 있는 용어로 ‘한반도 양국체제’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름부터 남북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공통의 것을 쓰자는 취지이다. 또 ‘코리아’라고 하면 지리적인 의미의 ‘코리아 반도’만이 아니라 코리아 반도와 전 세계 도처의 코리아 사람들(Korean people), 코리아 민족(Korean nation)을 포괄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앞으로 양국체제가 정착되어 양국이 합의하여 양국을 통칭하는 합의된 언어를 찾기까지는 아쉬운 대로 ‘코리아 양국체제’라는 용어를 쓰기로 한다.

 

기회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첫 가능성은 이미 지난 1989~1991년 사이에 한번 열렸던 바 있다. 미소(美蘇) 냉전 종식 국면에서 한국(ROK)과 조선(DPRK)은 유엔에 동시 가입했고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조선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 합의할 수 있었다. 노태우 정부는 양국체제 전망에 적극적이었고, 북 역시 북미 수교를 타진하면서 남북 공존을 통한 체제 보장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코리아에서의 냉전대결 국면을 연장시키려는 국내외 세력은 ‘북한 조기붕괴론’을 유포하면서 양국체제의 전망을 가로막았고, 소련·동구권 붕괴에 이은 ‘북한 붕괴’의 위협으로 궁지에 몰린 북은 핵 개발에 올인하게 되었다. 1987년의 민주화 동력이 하나로 뭉쳐 1987년의 대선에서 정통성이 강한 민주연합정부를 수립했다면, 이러한 내외의 방해를 물리치고 이미 1990년대에는 코리아 양국체제가 출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민주화 동력은 분열되었고 양국체제의 전망은 ‘북한붕괴론’과 ‘북핵위기론’의 공세에 밀려 너무나 빨리 닫히고 말았다.

그러나 거의 30년 만에 코리아 양국체제의 새로운 가능성이 다시 열리고 있다. 2016년 말 한국의 촛불혁명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 그리고 2017년 조선의 핵 완성이라는, 각각이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세 요소가 한 시점에 합류하면서 그 조건이 형성되었다. 한국의 촛불혁명은 1960년 4·19와 1987년 민주항쟁이 미처 이루지 못했던 나라의 민주적 정통성의 필요충분조건을 비로소 충족시켰다. 촛불혁명은 남북 대결과 적대의 경사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시켰고 그 힘이 온전히 민주정부로 이어졌다. 반쪽국가가 아닌 온전한 한 국가로서 안정된 정당성과 자신감을 갖춘 것이다. 그렇기에 2017년 북미 간 전쟁 위기의 고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남북 화해, 북미 화해의 길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 결실이 2018년부터 남북미 간 정상회담으로 맺히기 시작했다.

1989~1991년 소련·동구권 붕괴 이후 미소 냉전이 종식되었지만 당시 미국은 곤경에 빠진 조선(DPRK)을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붕괴를 위한 압박과 제재를 강화했다. 그 결과 ‘북핵문제’가 본격화했다. 북핵 개발과 제재·압박의 벼랑 끝 줄다리기는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되어 2017년까지 계속됐다. 이 30년의 위기와 긴장 속에 북미 간만이 아니라 남북 간의 적대와 대결의식도 고조되어왔다. 이 적대와 대결의 고조를 한국의 촛불혁명이 먼저 끊었다. 그리고 조선의 ‘핵 완성’ 선언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북핵문제의 해결은 북핵 완성을 통해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그 역설은 미국 주류 정치의 국외자인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북미 대화의 파트너가 되면서 현실화의 실마리를 찾았다. 2018년 벽두부터 남북이 극적으로 화해의 물꼬를 텄다. 촛불혁명을 통한 한국의 자신감과 핵 완성을 통한 조선의 자신감이 당당하게 만날 수 있었다. 양국체제의 기반이 형성된 것이다. 이어 한국이 북미 간 협상을 성공적으로 중재함으로써 영영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남북미 간 화해의 협주가 가능해졌다. 이제 남북미는 종전과 평화협정, 그리고 한조·북미 수교와 한반도 비핵화를 일정에 올려두고 있다. 코리아 양국체제가 바로 우리 코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두 번째 기회

이렇게 다시 열린 코리아 양국체제의 두 번째 기회는 매우 소중하다. 그러나 이 기회를 어떻게 해서든 다시 한번 닫아버리고 싶어 하는 냉전대결 세력도 여전히 남아 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제야말로 북한체제를 끝장낼 때’라고 소리를 높이고 있는 세력들이 그렇다. 정확히 1990년대 초반의 북한 붕괴 – 북핵 위기 – 전쟁위기론의 복사판이다. 1991년 12월의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에 남북 양측 총리가 서명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한국 보수 언론에서 ‘북핵위기론 – 북한붕괴론’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채 2년 반이 지나지 않은 1994년 5~6월, 코리아는 전쟁 일보 직전의 초비상 위기 상태에 빠졌다. 그 후 양국체제의 전망은 굳게 닫히고 말았다. 냉전대결 세력은 이 순간 코리아의 상황을 다시금 그때와 꼭 같이 몰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과 30년이 지난 촛불 이후 현재의 상황은 너무나도 다르다. 1992~1994년의 반전의 핵심은 당시 냉전대결 세력이 한국의 여론의 방향을 남북 화해에서 남북 적대 기조로 뒤집어놓는 데 성공한 데 있었다. 당시는 남북대결체제를 남북공존체제로 밀고 나갈 지형과 중심이 아직 충분히 형성되어 있지 못했다. 노태우 정부는 군부연장 세력인 데다가 허약했고, 87년 시민항쟁을 이끌었던 민주화 세력도 분열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 반쪽은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냉전대결 세력과 합쳐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냉전 세력과 합친 민주화운동 세력의 한 축이 ‘북한붕괴론 – 북핵위기론’에 동조했다. 그래서 쉽게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고 말았고, 그러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촛불 이후 오늘날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우선 촛불혁명이 30년 전 만들어진 ‘기울어진 운동장’을 소멸시켰다. 그리고 촛불혁명 이후 들어선 정부의 민주적 정통성이 과거 노태우 정부에 비해 훨씬 강하다. 촛불혁명의 주도 세력의 일부가 냉전대결 세력과 야합할 가능성도 없다. 오히려 냉전대결 세력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자체를 거부하고 폭력적이고 억지스런 대중동원을 고집하면서 합리적 보수층의 마음으로부터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국제적 상황 역시 차이가 크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가능성이 처음으로 열렸던 1990년대 초반은 냉전 승리 이후 미국 일극(一極)주의의 전성기였다. 1990~1991년 사이의 ‘걸프전쟁’을 돌이켜 보면 이 당시 전 지구상에 미국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또 ‘북한붕괴론’이 먹히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 엄청난 소련도 무너졌는데 ‘북한’이 따라서 무너지지 않겠느냐는 여론이 국내외에 상당히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완연히 다르다. 미국 일극주의란 냉전 종식 이후 단지 10년의 에피소드였을 뿐이었다. 세계가 미소 양극으로 나뉘어 필사적인 세계내전을 벌이던 시대는 영영 끝났다. 세계사는 이제 일극주의가 아니라 주요 지역 문명권들의 공존체제 형성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이 대표하는 미영 문명권은 이제 그러한 주요 문명권 중 하나일 뿐이다. 현금의 미중 갈등은 세계가 어느 한편에 서야 했고 어느 한쪽이 망해야 끝났던 미소 냉전과 본질적으로, 근본적으로 다르다. 앞으로도 밀고 당김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제 미래는 여러 문명이 협력하여 공존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데 세계의 이해가 모아지고 있다. 1990년대 초의 ‘북한붕괴론’이 실제와 동떨어진 엉뚱한 이야기였다는 것도 이제는 분명해졌다. 동아시아의 조선, 중국, 베트남은 소련·동구권과는 다른 역사적·문명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소련·동구권 붕괴 이후에도 독자적 근거 위에서 존속할 수 있었다. 유럽 기원의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세계내전적 폐쇄회로와는 다른 문맥에서 동아시아 역사를 새롭게 볼 때가 되었다. 이렇듯 30년 전과 상전벽해(桑田碧海)처럼 크게 달라진 세계 상황에서 30년 전과 꼭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사람들에게 귀 기울일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제 코리아 양국체제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세계사적 상황이 무르익은 것이다.

필자가 양국체제론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은 촛불혁명 전이었다. 필자는 21세기 들어 세계사의 큰 흐름이 코리아에 아주 유리한 기회를 주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냉전의 족쇄를 풀고 아메리카 – 태평양권과 유라시아권을 이어주는 절묘한 위치에서 새 도약의 호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한국의 정치상황은 자꾸만 과거로 역주행하고 있었다. 왜 그럴까? 너무나도 오래 지속된 코리아 내전체제, 분단체제 때문이었다. 특히 1990년대 초반 양국체제의 첫 기회가 깨진 이후 줄곧 심화되어온 북핵문제와 남북·북미 간 대결 기조가 문제였다.

이 역주행의 순환고리를 깨뜨리고 벗어나야만 했다. 당시의 현실이 아무리 어둡고 비관적으로 보이더라도, 현실이 이렇게까지 나빠진 원인을 정확히 알면 반드시 빠져나갈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문제만 해결하면 코리아엔 큰 기회가 온다고 믿었다. 오랜 고심과 궁리 끝에 그 족쇄를 푸는 핵심 방법이 코리아 양국체제 정립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촛불혁명 이전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어둠이 너무나도 짙었던 오밤중이었지 않은가?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하더라도 과연 그 족쇄 풀기가 실제로 언제나 가능할까? 까마득하지 않은가? 그냥 상상으로 끝나는 것 아닌가? 그럴 때마다 나는 그때보다 더 어둡고 더 힘들었던 87년 이전의 시간들을 생각했다. 설혹 나 혼자의 외침이라 하더라도 누군가는 시작해야 할 일이 아니겠냐고 자신을 북돋았다. 그런 막막한 기분으로 양국체제를 이야기해가던 중, 촛불혁명이 일어났다. 변화가 이렇게 빨리 그리고 그렇듯 거대한 규모로 시작되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그 엄청난 에너지 속에서 양국체제론은 현실의 발판을 얻고 한층 구체화될 수 있었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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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20/01/07-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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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20세기의 유럽은 사민당의 역사이었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의 사회당은 존재가 사라졌고, 스웨덴의 사민당은 1당의 위치를 유지는 하였으나 무기력한 정당으로 전락하고, 유럽진보 정치의 중심이었던 독일 사민당(SPD)조차 소수정당으로 전락하는 위기에 처해진 가운데, 아래의 기사는 10월-11월간에 벌어지는 사민당 당대표 선출의 과정을 묘사한 내용이다.

한국 내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은 유럽의 교훈, “사회적 정체성으로서 산업 노동계급의 감소, 노조 가입자 정체 및 더 많은 맞춤형 정책과 정체성을 제공하는 녹색당, 포플리즘 정당 등 다양한 요구들이 좌파 정치조직의 과거 빅텐트(big-tent) 모델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 달 바이에른에서 열린 회의에서 독일 사회민주당을 이끌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모습

9월 중순 화요일 밤, 독일 사회민주당원 수 백 명이 1960~70년대 독일을 이끌었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총리의 동상을 지나 베를린 당사로 몰려들었다. 1964년부터 1987년까지 당을 이끌었던 브란트의 동상은 마치 그의 동료 당원들을 보호하듯 한쪽 팔을 벌리고 있는 모양새다.

참가한 당원들은 대강당에 자리했고, 곧 이어 남녀 7쌍이 무대 위에 올랐다. “검투사가 나타났다” 필자 근처에 있던 누군가가 속삭였다. 각 쌍은 당의 차기 당대표에 출마하여 한 때 브란트가 홀로 맡았던 역할을 둘로 나눠 가지게 됐다

“우리 당을 다시 노동자의 당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한 후보가 말했다. “사회민주당은 희망의 당이 돼야 한다”고 다른 후보가 말했다. 또 다른 후보자는 사회민주당과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성향의 기독민주당으로 구성된 연합인 “대연정을 파기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날 밤 대강당을 가득 채운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사회민주당(독일어 약자로 SPD)의 일원이 되기에 좋은 시기라고 할 순 없었다. 당의 전임 지도자 안드레아 날레스(Andrea Nahles)는 취임한 지 불과 1년여 만인 지난 6월 대표직을 내려놨다. 사민당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또 다른 큰 패배를 맛본 바 있었다. 지난 2017년 총선에서 사민당의 득표율은 20%로, 2000년대 중반 34%, 1998년 40%의 득표율을 기록했던 것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수치를 보였다. 현재는 여론조사 지지율이 약 15%대로 떨어졌다. 한 때 독일 좌파의 지배적 목소리였던 사민당은 현재, 특히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녹색당에 자주 밀리는 형국이다.

잔존 지도부는 날레스 대표가 사임할 당시, 그녀의 후임은 대개 비밀리에 결정되던 것과는 달리 모든 당원들에게 공개되는 예비선거에 의해 선출될 것이며, 9월 베를린에서 있을 프레젠테이션을 포함해 전국적인 공개방송을 통해 발표함으로써 이번 금요일 최종 투표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사민당은 토요일 투표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독일 법에 따라 선출 대의원 회의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겠지만, 정치적으로 당원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당대표 투표는 당원과 당 기득세력 간의 싸움이 됐으며, 동시에 연정을 유지할지 여부에 대한 싸움이 되기도 했다. 많은 평당원들은 당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맺은 타협을 쇠퇴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만약 연정 “탈퇴”를 주장하는 후보 팀이 예비선거에서 승리하는 경우엔 연정이 붕괴되고, 내년 독일은 조기선거를 치르거나 소수당 정부로 전락하게 될 수도 있다.

특히 이 같은 후보자 명부의 경우, 사민당 투표는 당 역사상 유례없는 경우다. 노스트라인베스트팔렌주 의회 의원이자 연정을 탈퇴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인인 크리스티나 캄프만(Christina Kampmann, 39)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사민당 역사에서 결정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다. 새 출발, 새 시대에 대한 열망이 엄청나다. 이번 예비선거는 누가 그런 변화를 실현해 낼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새 시대는 독일 사회민주당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서유럽 국가들에서 사회민주당의 득표율이 90년대 중반 평균 3분의 1을 훌쩍 넘어섰던 수준에서 최근 몇 년간 약 5분의 1로 줄었다. 프랑스 사회당과 같은 일부 정당들은 특히 큰 타격을 입었다. 2017년 총선에서 프랑스 사회당의 득표율은 7.4%에 그쳤으며,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과 같은 기타 정당들은 그보단 나은 사정이지만, 여전히 종종 선거에서 패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쇠퇴에 국가별 요인이 작용하긴 했겠지만, 대부분의 사회과학자들은 근본 원인이 정치구조에 있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중도좌파 유권자의 비율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지만, 사회 민주당은 점점 더 그들을 동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취리히 대학의 정치학자 실야 하우저만(Silja Häusermann)은 유럽사회의 분열이 전후 시대를 지배했던 경제 및 계급적 요소에서 이주 및 기후변화와 같은 문제로 옮겨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문화적으로 보다 진보적인 세계주의자와 문화적으로 보다 보수적인 “사회주의자”를 갈라놓는데, 이 둘은 모두 한 때 전통적 사회민주주의 유권자들이 가졌던 이념을 공유하고 있다.

게다가 사회적 정체성으로서의 산업 노동계급의 감소, 노조 가입자 축소 및 더 많은 맞춤형 정책과 정체성을 제공하는 녹색당, 포퓰리즘 정당, 극좌 정당의 부상 등 이 모든 것들이 좌파 정치조직의 과거 빅텐트(big-tent) 모델에 도전하고 있다.

쇠퇴의 압력 속에서 유럽의 많은 사회민주당은 대표직을 두고 벌이는 싸움과 당 진로에 대한 격렬한 싸움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재정정책과 경제부양 비법을 가지고 있는 포르투갈인이나 반이민 정책을 주장하는 덴마크 사회민주당원이 제시하는 쇠약한 희망에 지나치게 현혹되는 경향이 있다.

뒤셀도르프 대학(University of Düsseldorf)의 정치학자 토마스 포군트케(Thomas Poguntke)는 유럽의 다른 정당들이 고려하고 있는 공개 예비선거의 경우 당 기반세력이 기득세력보다 더 온건하다면 완화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의 마테오 렌치(Matteo Renzi)가 2013년 비당원들에게 개방된 경선에 의지하며 좌파 지도부에 맞서, 사민당 내에서 중도 노선을 힘겹게 방어했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공개예비선거는 결과를 왜곡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와 같은 비정통 후보자가 선출되어 기득세력의 반대를 극복할 수 있게 될 수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극좌파 후보 브누아 아몽(Benoît Hamon)이 주류 선두주자인 마뉘엘 발스(Manuel Valls)를 제치고 사회당을 장악했다. 영국에서는 평화주의 사회주의자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이 2015년 3파운드에 표를 산 “기명 지지자들”에 의해 노동당 지도자로 선출됐다.

독일 후보자에는 제레미 코빈이 없다. 심지어 대연정 탈퇴를 옹호하는 사람들조차도 비교적 온건하다. 그럼에도 위험성이 높은 것처럼 대연정 탈퇴에 대한 지지율도 여전히 높다. 사민당 예비선거는 새 지도자 또는 정부를 떠나는 것 같은 단기적인 움직임이 당을 비틀거리게 만드는 요인을 고칠 것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느 쪽도 중도파 타협에서 멀어지면서 철저히 양극화로 다가가는 유럽 정치의 구조적 변동에 대해 고심하고 있지 않다.

이제 유럽 내 사회민주당의 미래는 누가 그들을 이끌 것인가 보다는 새롭고 지속적인 기반을 구축하도록 이끌 수 있은 인물이 누구인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누구의 얼굴이 포스터에 그려지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제공해야 하는 가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회민주당은 그 부분을 파악하지 못해왔다. (2019-10-26, 1차 개표결과 독일 사민당 당대표 선거에서 숄츠 재무장관이 1등을 차지했으나 과반수 미달로, 현재 숄츠와 대연정 파기를 주장하는 발터-보어얀스 간에 결선투표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며 11월 30일 경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다른백년).

 

안나 사우어브레이(Anna Sauerbrey)

독일 타게스슈피겔(Der Tagesspiegel) 편집자 겸 논설위원

토, 2019/11/16-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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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민주주의의 영향과 실행에 대해 경험을 기반으로 한 총체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사회-경제적 맥락과 역사-문화적 배경, 레퍼렌덤 권리의 발전 단계, 법적인 틀과 국가적으로 각 현실의 정치적 상황 등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이를 시행한 모든 체제에 적합한 어떤 단일한 결론을 이끌어 내기란 어렵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모든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판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국제적인 차원에서도 다양한 연구 기관에서 실시한 경험적 조사에서 나타나며, 꾸준히 찾아볼 수 있는 몇 가지 효과들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들을 요약한다.

 

민주주의라는 근본적인 원칙에는 변화가 없다

직접 민주주의는 어떤 정치체제의 토대를 허물어 내는 수단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시민들은 정치적 권리들을 확장시키고 손질하기 위해 정치체제의 몇 가지 근본 요소들을 개선할 자유가 있다. 민주 사회에서 정치 참여는 기본권에 속하며, 정치법을 바꾸는 데 활용될 수도 있다. 국민 대다수가 바라는 레퍼렌덤 권리들은 사실상 민주주의의 정착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레퍼렌덤으로 엄청난 정치적 분열이 일어난 적은 없다.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체제에 새로운 국민의 권리를 통합시키는 것이다.

스위스에서 1900년대 후반 국가 권력 구조의 근본적인 개혁과 더 힘없는 계급들의 해방을 바란 좌파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처음에 보수층은 직접 민주주의를 확대하면 개인 소유주들의 권리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을 두려워했고, 유산有産계급은 새로운 국민 권력을 일종의 위협으로 느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두려움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소수당에 불이익은 없다

직접 민주주의는 덩치에 따른 선거 제도를 만들려는 지배당의 시도에 대항하기 위한 피난처이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는 자유선거와 복수 정당제이다. 때로는 강한 정당들이 레퍼렌덤을 이용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선거법을 바꾸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이런 논란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그런 정당들은 의회에서 다수당인 덕분에 어찌되었건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레퍼렌덤 권리는 이런 효과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다수당들을 통제하는 데 유용한 도구라는 것이 드러났다. 스위스에서 시민들은 레퍼렌덤 투표로 소수 정치 세력들에게 더 유리한 비례 제도를 적용했다. 반면 1990년대에 이탈리아에서는, 군소 정당들의 발안으로 완전 비례 제도가 폐지되고 정당 연합을 결성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주로 다수 편향적인 제도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때로는 야당들이 특정 정치 현안에 대해 집권 다수당을 좌절시키려는 과정에서 “레퍼렌덤이라는 방법을 시도해 보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집권당 연합 또한 거의 플레시비트와 유사한 술책의 형태로서 유권자들에게 결정권을 맡김으로써 별로 반갑지 않은 결정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대개 모든 레퍼렌덤에서 각 정당은 공개적으로 찬반으로 편을 나누거나 투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호소했다. 요컨대 선거 제도의 입법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소수 정당들에게 피해를 주기보다는 이익을 가져다 준 것을 볼 수 있다. 여러 나라에서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군소 정치 세력들이 종종 레퍼렌덤 도구를 활용하는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며, 이탈리아의 급진당Partito Radicale은 1974년부터 2006년까지 20개 이상의 레퍼렌덤 사안을 추진했던 것도 사실이다.

 

국민발안과 연합주의Associationism를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

직접 민주주의는 이익단체들이나 시민발안의 역할과 가능성을 강화시키는 한편 때때로 각 현안에 대한 정당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아무런 정치적 책임이 없고, 선거에 후보자를 내지 않으며 로비 활동처럼 집단의 이익을 위해 조직적으로 일하지도 않는 단체나 어떤 운동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관심 있는 특정 현안에 영향을 미칠 기회가
있다.

직접 민주주의는 보통 레퍼렌덤 투표에서 선거 때 투표한 정당과 완전히 같을 필요가 많지 않아, 시민사회 및 연합주의 단체나 운동의 역할을 강화시키고, 대화와 타협에 나서도록 정당들을 압박한다. 레퍼렌덤 도구 덕분에 국민 대다수는 필요할 경우 비상 브레이크나 안전 잠금 장치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연방제도: 직접 민주주의 가동에 유리한 조건

연방제도와 지방자치는 레퍼렌덤 권리의 발전에 유리한 기반을 제공한다. 지방(주, 현, 기초자치단체)에 더 큰 법적 권한이 더 부여될수록, 레퍼렌덤 권리를 가동할 수 있는 정치 부문이 더 확대된다. 이 권리는 일종의 “민주주의의 훈련장”이다. 지방 정치에서 시민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레퍼렌덤 투표에 참여하려 하는데, 다루는 사안이 그들 자신과 밀접히 관련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시민들이 담당해야 할 정치적 책임이 더 클수록, 시민들은 레퍼렌덤 도구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또한 레퍼렌덤 권리를 법적으로 잘 정비하여 미래의 지방법 개정을 위해 투표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포함시키면, 중앙에 비해 지방 정부들의 입지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사실상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지방의 책임을 기꺼이 중앙 정부에 양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연방제도 또한 강화시킨다. 곧 시민들은 가능한 한 자신들의 참정 기회가 훨씬 큰 지방 정부급에 힘을 실어주려 할 것이다.

 

소수의 위험과 기회

직접 민주주의는 사회적, 정치적 소수자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그들의 관심을 명확히 밝히거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론상 레퍼렌덤 도구는 소수자들에게 불리하게 쓰일 수도 있다. 우선 두 부류의 소수자를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한쪽은 “영속적인” 사회적 소수자들이 있다(예를 들어, 장애인, 집시, 동성애자, 소수 민족, 소수 종교인 단체, 이민자 등). 다른 쪽은 정치적 소수자나 가변적인, 다른 부류의 소수자들이다. 발안은 사회적 소수자에게 정치적으로 결정하고,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기회를 보다 많이 제공한다. 그러나 그들 혼자서 해낼 수는 없다. 정치적 다수가 그들의 관심사에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더 광범위한 사회적 집단들과 협력해야 한다. 레퍼렌덤을 통해 소수자들도 새로운 연합에 들어가고 심지어 국회의 다수를 꺾을 가능성도 갖게 된다. 이런 권리의 존재만으로도 정당과 정부를 압박하여 더욱 진지하게 소수의 이익을 고려할 수 있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패배한 체계적이지 않은 소수자들 또한, 때로는 그들이 바라는 개혁을 위해서는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음을 깨닫고, 정치적이건 사회적이건 레퍼렌덤 투표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경우이건 소수자들과의 공개적이고 바람직한 대면은 그들의 사회적 통합을 촉진시킨다. 물론 그것을 목표로 소수자들에게 레퍼렌덤 권리를 완전히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 조달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어쨌건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의회에 도달하지 못하는 단체로서는 조직하기 어려운 사회적 빈민층이나 정치적 소수자들의 이익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직접 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점에 국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수의 입장을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때로 사회적 소수자들은 직접 민주주의 절차의 틀 안에서 적대감과 뿌리 깊은 편견으로 똘똘 뭉친 집단들에게서 소외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공적인 토론은 그 자체로 역동성이 있으며, 매우 다각화된 우리 사회에서 그 어느 누구도 단 한 가지만 소수에 속하거나, 또 늘 소수자로 남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의회에서도 소수의 이익은 종종 다수당의 논리에 희생된다. 어쨌건 헌법과 국제 협약 및 인권 조약에서 마련된 기본권들로 구성되고, 거의 모든 나라에서 지방법 및 유럽연합 조약으로도 비준된 레퍼렌덤 권리들에는 한계가 있다.

 

정치적 엘리트의 확대

누가 정치적 엘리트에 속하는가? 정부, 국회, 행정부, 정당의 정치적 인물들과 정치적 성격을 지닌 거대 조직의 인물들이다. 엘리트, 혹은 적어도 이런 형태의 리더들의 집단은 대개 대의민주주의를 선호하며, 의사 소통 채널을 만들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한다. 직접 민주주의는 주로 그들에게 일반 국민들과 관계를 맺도록 독려함으로써 상황을 변화시킨다. 한편으로 각각의 레퍼렌덤 발안 또한 오로지 기꺼이 헌신하고, 어떤 대의를 위해 투쟁할 태세가 된 능동적인 시민들 덕분에 태어난다. 이들은 사회적 엘리트 층을 형성하지 않으며, 하나의 정치적 주제나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갈 역량을 지닌 소수자들이다. 제기한 사안과 관련하여 항상 이 시민들의 비중은 무시 못할 정도인데 특히 레퍼렌덤 권리가 얼마나 발전되었느냐에 따라 더욱 그렇다. 직접 민주주의는 그저 엘리트 층 사이에서 어떤 주제를 대면하도록 자극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계급과 국회 차원에 존재하지 않는 그룹들 간의 토론도 자극한다. 정치적 절차가 그렇게 더욱 확대되고 풍요로워진다.

 

직접 민주주의는 적법성legitimacy을 더 부여한다

“적법성”이라 함은 어떤 결정이나 어떤 조직에 대한 정치적 평가 수준을 의미한다.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록 그 결과는 더 적법성을 지닌 것으로 간주된다. 이런 의미에서 더 강력한 적법화의 형태는 두말할 나위 없이 온 국민이 참여하는 레퍼렌덤 투표, 혹은 선거의 경우 국가 원수나 지방 행정부 수장의 직접 선거이다.

만일 레퍼렌덤 도구를 통해 대의 기관의 심의에 반대하거나 행정부에서 바라는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집단들이 레퍼렌덤 투표에서 패배한다면, 그들이 제안한 주제의 유효성이 아니라 그들 반대의 적법성이 사라지게 된다. 민주주의에서는 다수의 이익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한편 각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레퍼렌덤 투표에서 패배한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전반적인 신임이나 총선을 통해 그들이 부여받은 위임의 적법상이 아니라, 단순히 국민과 의견을 달리하는 어떤 명확한 선택과 관련한 적법성을 잃는다.

 

진보주의의 온상도 보수주의의 온상도 아니다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에서 정치인들이 제기하는 첫 번째 질문의 하나는, “이 도구는 어떤 방식으로 나의 정치에 도움이 될까?’ 이다. 보수 세력이건 자유주의 세력이건, 좌파건 진보 진영이건 국민은 직접 질문을 받고 그들 견해를 밝힐 것을 요청받는다. 과거에는 과연 직접 민주주의가 사회의 진보를 옹호하거나 방해할 수 있을지 자문하는 것은 주로 좌파였다. 좌파들이 봉착한 딜레마는 직접 민주주의는 국민에게 더 큰 결정권을 넘겨 주지만, 과거에도 현재도 이것이 꼭 진보적 해결책을 옹호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대개 국민발안은 단지 여러 사람들이 느끼는 긴급 현안들을 제기하여 정치인들을 포함한 모두가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일 따름이다. 이 도구들은 시민 단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공적으로 표현하여 국회와 정부의 의도에는 어긋나는 것이더라도 그것을 다수의 결정으로 이끌어 낼 수 있게 해 준다. 만일 레퍼렌덤 절차가 대규모 토론과 함께 이루어진다면, 레퍼렌덤의 결과는 항상 열려 있다. 국민발안들 사이에서도 주요 구분을 할 필요가 있다. 곧 보수적인 국민발안이 있고, 혁신적인 국민발안이 있다. 직접 민주주의가 사회의 진보적 입장과 세력을 희생하여 보수적 입장과 세력을 옹호하려 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순히 전통적인 통로만으로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국민들에게 좀 더 목소리를 실어 주는 것이다.

 

정치 시스템 전반의 효율성 증진

어떻게 정치에서 “효율성”을 측정할까? 만일 어떤 정치적 승인에 도달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측정 기준으로 잡는다면, 직접 민주주의는 확실히 결정 과정을 간소화시키지도 않고, 그 기간을 줄여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평균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이나 좀 더 보편적인 시각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실시는 정치체제의 안정을 증진시키며, 그러므로 그 효율성 또한 증진시킨다. 대개 효율성은 한 정치체제의 유익성과 비용 사이의 관계로 정의된다.

종종 정치인들은 레퍼렌덤 도구들이 정부의 통치 능력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레퍼렌덤 투표가 선출된 정치적 책임자들과 거대 조직 책임자들의 결정 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하게 될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정보 전달과 공개 토론 비용 및 투표 자체의 실시 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비용 증가와 정치적 절차가 어느 정도 지연되는 것이 다른 이점들, 곧 지속성과 안정, 적법성 및 레퍼렌덤 승인으로 채택된 해결책의 수용 등의 이점을 없애지는 않는다. 시민들은 종종 선거 중간에 개입할 수 있는 그 어떤 정치적 도구도 없이 법적으로 호소하거나 좀 더 급진적인 항의 형식에 의존하여 어쨌든 프로젝트들을 막아내곤 한다. 그러나 직접 민주주의로 정치권은 미리 국민들의 동의를 구해야만 한다.

 

최고 수준의 정보 전달 덕분에 이루어지는 일반 교육

정치적 이익과 “정치적 성숙”을 위해서는 적절한 학습과 교육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모든 시민들은 참여 여부에 상관없이 레퍼렌덤에 즈음하여 생겨나는 공적 토론에 노출되게 된다. 직접 민주주의의 사회화 효과는 시민들과 정치인들 간에 직접 접촉으로 정치적 대면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더 크다. 이 효과는 시민들이 대개 그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느끼는 지역적 차원에서 더 생생하다.

그들은 다양한 입장이 있다는 것과 모든 이들의 논점과 목소리가 모두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민이 내린 결정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불특정의 시민은 한 번은 승리한 다수에 속하고, 또 다른 때는 패배한 소수에 속하게 된다. 레퍼렌덤 과정에서 다수를 설득해내지 못한다면 그 어떤 세력도 더 이상 “국민”을 운운할 수 없다. 미국과 스위스에서 투표 참여는 늘5 0%를 넘지 않지만, 진정한 민주주의의 성취로 여겨지는 레퍼렌덤 권리를 훼손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면 국민 저항이 매우 높다.

 

승인된 해결책의 수용율은 높고, 잠재적 갈등은 줄어든다

레퍼렌덤 투표에서는 특정 현안에 집중하며 그것을 전반적인 정치적, 사회적 갈등과 섞지 않는다. 레퍼렌덤 절차가 규정을 완전히 존중하여 시행된다면, 곧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모두가 받아들인다면 투표는 국민들과 의회 다수당, 정부 사이, 그리고 정치 세력들 간의 긴장을 명확히 설명하고 완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어떤 이는 직접 민주주의가 복잡한 현안들을 다룰 때 반듯이 필요한 타협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지만 대신 의회에서는 그런 타협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스위스에서는 레퍼렌덤의 예측 불가능함을 염두에 둔 세련된 기제가 존재한다. 자신들이 레퍼렌덤에 착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그룹들을 참여시켜 “예방 공간”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타협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때로는 직접 민주주의가 제도적 차원에서 진전이 없는 어떤 상황을 돌파할 수 있게 해 준다. 만일 의회가 타협점을 찾을수 없어 법을 정하지 않는다면 국민발안은 시민들에게 최후의 발언권을 준다. 스위스에서는 대개 국민 50% 이하가 레퍼렌덤에 참여하지만, 결과의 수용율은 높다. 각자 자신들이 원한다면 참여할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주제가 잘 알려져 있고, 단순하고, 토의를 거친 것일수록 레퍼렌덤에 더 적합하다

모든 정치 현안이 레퍼렌덤 절차로 쉽게 다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고, 잘 알려져 있고, 논의를 거쳐서 정보 제공이 많이 필요하지 않으며, 그에 대해 어떤 가부가 명확한 답을 줄 수 있는 의제가 바람직하다. 원칙에 따른 정치적 차원에서 내린 모든 결정은 평균적인 시민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현대적 개념은 자유롭고 정보를 갖춘, 의식 있는 시민을 전제로 한다. 그 밖에도 상당한 서명을 모으는 일이 민주주의의 여과기 역할을 한다. 헌법 개정, 정부 형태 변경, 초국가적 기구에 주권의 양도 등 더욱 강력한 합법성을 요하는 의제들이 존재한다. 많은 유럽 국가에서 실시한 유럽연합 가입 관련 레퍼렌덤들이 이런 막중한 정치적 결정을 합법화하는 법적 구속력을 지녔다.

예를 들어, 연간 예산 관련법 같이 여러 차원에서 타협을 요하는 복잡한 현안들은 레퍼렌덤 절차에 놓이는 것이 그리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특정 세금 관련법의 경우는 다르다. 캘리포니아 또한 몇몇 정치적 사안을 직접 민주주의에서 배제시키지만, 스위스는 그렇지 않다. 스위스에서는 그 어떤 사안도 배제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공공 예산과 관련하여 “참여적 예산”이라는 흥미로운 경험이 존재한다(11장 참조).

대체적으로 직접 민주주의의 긴 전통을 지닌 나라에서 실시한 선험적 조사에 따르면, 좋은 직접 민주주의에 따른 주요 효과는 다음과 같다(Gross 2007과 Kaufmann/Buchi/Braun 2009 참조).

▪ 직접 민주주의는 정치를 더욱 전달력 있게 만든다. 구체적인 정치적
현안에 관한 정치적 결정의 합법성에 대해 시민들 측에서 의문을 제
기할 수 있으며, 정치인들 측에서는 충분한 근거를 들어 이를 설명
해야 한다.
▪ 직접 민주주의는 모든 관계자들이 사실과 주제에 기반한 공개 토론
에 나서게끔 함으로써 정치적 대화를 더욱 진지하고 합리적인 것으
로 만들어 준다.
▪ 직접 민주주의는 수적으로 열세한 그룹이나 소수자들도─국회와
의회에 존재하지 않는─공개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히고
압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 준다.
▪ 직접 민주주의는 보다 공평하고 정확한 정치 권력 분배를 가능하게
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의 정치를 정당화시킬 필요가 없을 정도로
또는 국민 레퍼렌덤 투표에서 다수를 설득할 정도로 큰 특권을 주지
않는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금, 2019/12/20-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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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회의 대표적인 이미지 중의 하나가 바로 국정감사다. 그야말로 국회의 큰 ‘행사’다. 그런데 이 국정감사 제도가 세계적으로 우리 국회에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출처: 파이낸셜신문>

국정조사(국정감사가 아니라) 제도는 영국 의회에서 1689년 아일랜드 전쟁의 실패 원인을 조사하고 그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조사활동을 전개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하지만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국정조사권은 인정되고 있지만 국정감사제도는 다른 나라 의회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1948년에 제정된 우리 제헌헌법의 제43조는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기 위하여 필요한 서류를 제출케 하여 증인의 출석과 증언 또는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제정된 국회법에서도 국정감사와 관련된 내용을 규정하였다.

“국회는 의안 기타 국정에 관한 사항을 심사 또는 조사하기 위하여 의원을 파견할 수 있다(제72조).”

“국회로부터 심사 또는 조사하기 위하여 정부 기타의 기관에 대하여 필요한 보고 또는 기록의 제출을 요구할 때에는 이에 응하여야 한다(제73조).”

“국회는 의안 기타 국정에 관한 사항을 심사 또는 조사하기 위하여 증인의 출석을 요구할 때에는 따로 정하는 규정에 의하여 여비와 일당을 지급한다(제74조).”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국회법에서는 헌법과 달리 ‘감사’ 대신 ‘심사’ 혹은 ‘조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정례적으로 실시한다는 내용이나 감사의 대상과 주체에 대한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국정감사와 국정조사의 구분을 하지 않았다.【1】

국정감사는 유신헌법에 의해 폐지되었다가 1987년 이후 부활하였고 헌법 제61조에도 다시 명문화되었다. 국회의 힘을 강화하고 그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엄격히 말해, ‘감사’와 ‘감시’ 그리고 ‘조사’는 상이한 의미를 지닌 용어로서 정확하게 구별되어 사용해야 한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로서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통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지 직접 감사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행정부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된다. 더구나 현행 헌법상으로도 행정부 감사는 원칙적으로 감사원이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국정감사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나온다.【2】 그에 따르면, 국회의 정부 감시 기능은 상임위원회 활동을 활성화시켜 상시적으로 이뤄지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미국 의회처럼 의회 내에 회계감사원을 설치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미국 회계감사원은 연방정부의 예산 지출과 운영에 대한 감사를 임무로 하며, 연방 정부의 예산을 사용하는 모든 사업과 활동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회계감사원의 감사결과는 수시로 모든 상하원 의원과 행정부에 제출된다. 그러므로 미국 의원들은 우리처럼 매년 국정감사를 하지 않아도 이 감사보고를 통해 각 부처의 운영상황을 손금 보듯 파악할 수 있다.

 

국회의원은 연예인이 아니다

국정감사가 진행될 때면 장관이 수시로 불려 다니고 국회 복도까지 공무원들로 북새통, 아수라장이 되어 국정 마비 현상을 초래할 정도다. 미국에서는 엄격한 권력분립에 의해 원칙적으로 의회의 장관출석 요구권이 없다.

그 동안 사람들은 국정감사장에서 국회의원들이 피감기관에 호통을 치고 엄청난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모습을 너무도 많이 목격해왔다. 감사보다는 정쟁의 연속이고 건수 위주며 ‘특권 과시의 현장’이다. 몇 해 전 국감에서도 태권도복을 입고 나오거나 한복 경연을 시연하고 고양이를 특별증인으로 신청하는 등 어떻게든 튀어보려는 연기정치의 희화화된 공연장이었다. 그러니 졸속감사에 수박겉핥기식 감사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으며, 이는 결국 국회의원들의 이미지를 더욱 추락시키고 정치 불신을 더욱 가중시킨다. 국회의원은 연예인이 아니다.

또한 국감이라는 이 과정을 통하여 전문위원을 비롯해 행정부에 대한 ‘갑’으로서의 국회 관료들의 권한 역시 필연적으로 더욱 강화된다.

‘개념의 오해, 혹은 착각’으로 탄생된, 세계 어느 의회에도 없는 국정감사 제도, 이제 폐지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1】 이러한 ‘감사’와 ‘감시’ 그리고 ‘조사’ 용어 혼동과 관련하여, 제헌헌법 기초자인 유진오 박사는 국정감사와 조사를 혼용하여 설명하며 국정감사를 영국에서 기원한 것이라 하여 국정조사의 의미로 파악하고 있었다. 즉, 제헌헌법 제43조 규정에 대하여 유진오 박사는 “국회가 국정을 감시하기 위하여 제반의 조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기능이라 할 것이며, 본조는 국회의 이 당연한 기능을 선명(宣明)하는 동시에 국회가 국정을 감사할 때의 증인을 소환하여 증언 또는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음을 명백하게 한 것이다. 국회의 국정감사기능은 처음 영국에서 시작되어 점차 각국에 보급된 것인데, 종래 각국에 있어서의 국정감사의 실제를 보면……”라고 해석하고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유 박사는 국정감사를 영국에서 기원하여 각국에서 인정하고 있는 국정조사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김효전, “입법부의 정책통제 기능; 국정감사권과 조사권을 중심으로”, 「대한변호사협회지」제150호, 1989.

【2】 이관희, “우리나라 국정감사ㆍ조사 제도의 개혁방안”, 「헌법학연구」제11권 제3호, 2005. 9.

 

소준섭

목, 2020/09/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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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십 년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정치에 대한 직접 참여권의 확장이 이루어졌다. 수많은 국가들과 지방에서 정기적으로 레퍼렌덤 권리가 활용되었다. 최근에는 주요 레퍼렌덤 투표들이 있었는데,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콜롬비아의 평화협정, 스위스 핵발전의 미래, 터키의 대통령제 관련 레퍼렌덤 투표 등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나라에서 시민들에게 직접 민주주의는 아직 실현되지 못한 제도일 뿐만 아니라, 그 나라들 중 1/3은 아직 민주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완전히 민주적인 조건에서 시민들에 의해 요청되는지, 아니면 플레비사이트처럼 독재 정권에서건 민주적 정부에서건 상부에서 공고되는 것인지에 따라 차이가 있다.

 

점점 더 많은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레퍼렌덤 권리

정치 시스템으로서 민주주의는 세계적으로 차츰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직접 민주주의를 옹호하기에도 유리하다. 1975년 인구의 30%가 민주적 정권에서 살아갔으며, 2016년 이 숫자는 68%에 도달했다. 프리덤 하우스에 따르면, 2018년 195개 독립 국가들 중 39%가 자유롭고, 24%가 부분적으로 자유로우며, 37%는 자유롭지 않다. 117개 민주 국가 중 113개국이 헌법에 기반한 권리나 법률을 갖추어, 국민발안이나 레퍼렌덤 혹은 그 두 가지 모두 규정되어 있다. 스웨덴의 권위 있는 기관인 IDEA에 따르면, 1980년부터 세계 10개국 중 8개국 이상이 적어도 국민발안이나 국가적 차원의 레퍼렌덤을 공고했다. 모든 국가들 중 절반 이상이 국가적 차원의 레퍼렌덤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2018년 5월까지 세계에서 국가적 차원의 총 1,471건의 레퍼렌덤 투표가 기록 되었는데, 그중 유럽이 1,059건, 아프리카 191건, 아시아 189건, 미국 181건 및 오세아니아 115건이다. 이 1,471건의 레퍼렌덤 중 절반 이상이 최근 30년 동안 시행되었다. 그리고 국가적으로 레퍼렌덤을 규정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지역별 기초자치단체 차원, 다시 말해 국가 하부차원에서 국민투표를 허락하고 있는 나라들이 더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종종 레퍼렌덤 권리가 헌법에 규정된 의무적 실행 레퍼렌덤정도로 끝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의회에서 만든 헌법 개정안들은 어쩔 수 없이 시민들의 투표 또한 거쳐야 한다는 것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 여러 나라에서 그런 국민투표는 오로지 상부에서, 곧 대의기관이나 행정 관청에서 공고할 수 있다(플레비사이트). 발안이나 레퍼렌덤을 제도화하여 이용할 기회를 제공하는 좁은 의미의 직접 민주주의는 오늘날 단 38개국에서만 존재하며 이 숫자는 직접 민주주의가 발전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전에는 전혀 시행되지 않던 레퍼렌덤 투표 대부분이 최근 25년간 있었다. 1991년부터 2017년까지 1793년(프랑스 헌법 채택)에서 오늘날까지 시행된 모든 레퍼렌덤 투표의 약 1/3 가량이 실시되었다.

가장 많이 확산되어 있는 현대 직접 민주주의 방식은 헌법적 확정 레퍼렌덤이다. 이러한 레퍼렌덤으로 유권자들은 입법자들이 바라는 헌법 개정안을 승인하거나 기각한다. 192개 독립 국가들 중 111개국이 이런 종류의 레퍼렌덤을 두고 있으며, 특히 헌법의 수정이나 전체 개정의 경우 이를 실시한다. 미국에서는 1639년 코넥티컷 주에서 이런
종류의 첫 레퍼렌덤이 시행되었다. 첫 번째 국민투표는 벨기에와 스위스 등 1790년대에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에서 실시되었다. 다양한 연방 국가에서 공공 지출이나 세금관련 결정을 위해서도 의무적으로 확정 레퍼렌덤을 규정하고 있다.

다른 한편, 여러 나라에서 레퍼렌덤 도구들은 장애물이나 난공불락의 절차적 한계라는 부담을 안고 있다. 예를 들자면, 서명 모음 기간이 지나치게 짧고 그 기준점이 높은 점, 참여 정족수의 제한, 공공 기관들의 정보 전달 의무화 부재, 배제된 사안들이 지나치게 많은 점 등이 있다. 때로 제한적 법률은 직접 민주주의의 정기적인 시행을 가로막는다.

 

세계 직접 민주주의의 비교 명세서

직접 민주주의 도구들은 모든 대륙에 있는 나라들에서 주로 각국의 헌법으로 도입되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우르과이, 에콰도르, 칠레, 베네주엘라, 콜롬비아, 페루,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등 몇몇 나라의 경우 직접 민주주의를 자주, 그리고 거의 정기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에콰도르, 베네주엘라, 콜롬비아 및 볼리비아에서 시민들은 선출된 대리인들, 특히 대통령에 대한 소환투표 권리 또한 행사한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우르과이만큼 권리를 극적으로 활용한 나라는 없다.

미국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서부 대부분의 연방 주에서 한 세기 이상 시행되고 있지만 연방 차원의 레퍼렌덤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주들이 헌법적 실행 레퍼렌덤의 권리를 지니며, 18개 주들은 선출된 정치인들의 소환투표제 또한 허용한다.

아시아에서 정기적으로 레퍼렌덤 투표를 활용하는 나라들은 매우 적다. 1987년 헌법에 모든 레퍼렌덤 도구들을 규정한 필리핀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대만은 국내 및 국외 정치 현안에 대해 정부에서 공고한 레퍼렌덤이 있다. 여기서도 50%라는 높은 정족수가 투표의 유효성을 위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직접 민주주의의 레퍼렌덤 도구를 도입한 나라 중에는 키르기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도 있다.

유럽은 계속해서 세계에서 직접 민주주의에 가장 많이 기대는 대륙이다. 프랑스는 이미 혁명 기간 동안과 이후 나폴레옹 시대 때부터 레퍼렌덤을 시행했다. 스위스는 1848년 헌법에 레퍼렌덤 권리를 도입했으며, 세 단계의 모든 정부 차원에서 자주 그리고 정기적 관행으로 이 권리를 행사한다.

유럽연합의 발전으로 국가적 차원의 레퍼렌덤이 많이 보급되어, 유럽연합 가입에 관해서나 유럽연합 조약 인준에 관해서도 레퍼렌덤이 실시되었다. 스위스는 직접 민주주의에 관하여 “세계 모범” 국가로 정평이 나 있다. 프랑스 유권자들은 1992년 마에스트리트 조약과 2000년 대통령 임기에 대해, 2005년 유럽연합의 헌법을 이루는 조약 문서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아일랜드도 마찬가지로, 아일랜드 시민들은 마에스트리트(1992년), 니차(2001년과 2002년), 리스본(2008년) 유럽 조약 문서에 관해 투표했다. 아일랜드 공화국은 레퍼렌덤 캠페인 기간 동안 정부의 활동과 중립적인 공공 정보 전달 의무와 관련하여 엄격한 법규를 도입했다. 이탈리아는 별도로 하고, 유럽연합에서 레퍼렌덤 숫자가 가장 높은 곳은 덴마크인데, 모든 헌법 개정에 대해 의무적 실행 레퍼렌덤을 규정하고 있다.

중동의 국가들에는 플레비사이트, 곧 대의 기관에서 선포하는 레퍼렌덤 투표만이 존재한다. 종종 이런 투표는 임기 중인 대통령이나 그들의 특정 선택을 인준하기 위한 순수한 플레비사이트인 것을 넘어 온갖 부정과 조작으로 얼룩진 단순한 겉치레에 불과하기도 하다.

오세아니아의 뉴질랜드는 시민들에게 레퍼렌덤 권리를 보장하는 반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이 권리는 그저 연방에 속하는 각각의 주에만 존재하며, 헌법적 실행 레퍼렌덤의 경우 예외이다. 팔라우와 마이크로네시아 연방국의 시민들 또한 레퍼렌덤 권리를 활용한다. 어떤 경우이건 민주주의의 전반적인 확산은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높였으며, 민주적 자유와 시민 참여의 점진적 확립으로 레퍼렌덤 권리 또한 더 큰 호응을 얻을 것이 확실하다.

 

진정한 참여와 플레비사이트 사이의 직접 민주주의

2016년에는 이탈리아와 헝가리, 영국에서 여러 레퍼렌덤이 실시되어, 많은 논평가들로 하여금 이 레퍼렌덤이 무엇보다 자신들의 목적에 국민을 이용하려는 의도를 지닌 정치인들에게나 소용이 닿는 것이 아닐지 자문하게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브렉시트라는 대안을 선호하여 유럽연합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기각시켰다. 덴마크에서는 집단적 입법행위에 대한 ‘옵트인opt-in(어떤 활동이나 계획 등에 강권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참여하기로 선택하는 것─역자 주)’을 거부했다. 네덜란드는 유럽연합과 우크라이나 간의 조약 승인을 거부했다. 그리스에서는 국민들 대다수가 유로화를 쓰는 공동체에서 부과한 금융 구제 조건들을 거부했고, 헝가리에서는 정부 수장의 바람으로 레퍼렌덤을 통해 정치적, 인도주의적 망명 요청자들의 수용에 대한 유럽연합의 방침을 거부하기 위한 정당성을 얻고자 했다.

이러한 사례는 레퍼렌덤이 정부나 여당을 꺾기 위해 포퓰리스트들이 선호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의식을 은근히 심어준다. 종종 “레퍼렌덤”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에게서 나온 국민발안, 의무적 실행 레퍼렌덤, 그리고 결국 정부나 국회에서 바란 플레비사이트 등이 한통속으로 묶이기 때문에 여러 다양한 레퍼렌덤 행동을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런 투표는 때로는 법적 구속력이 있고, 때로는 그저 자문적인 것이다. 몇몇 레퍼렌덤은 매우 문턱이 높아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요청한 것이기도 하다. 서둘러 결론을 내리기 전에 다양한 나라에서 레퍼렌덤 투표를 위한 법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실히 밝혀둘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국민투표가 자유롭고, 공정하고, 타당한 투표가 될 수 있도록 근본적인 규범을 준수하는지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또 많은 레퍼렌덤이 원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누가 원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영국의 주권자는 브리튼 시민들인데, 이들은 한 해에 걸친 긴 토론 끝에 자유롭고 민주적인 투표에서 유럽연합에 반대를 표명했다. 이들은 영국에 더 나은 것이 무엇일지에 대한 다른 나라의 논평가들과 전문가들의 확신에 공공연히 반대표를 던졌다. 콜롬비아에서는 정부와 FARC 반군들 사이의 평화 협정이 겨우 37%의 레퍼렌덤 참여로 기각되었다. 그 협정은 분명 콜롬비아 사람들 대다수를 설득하지 못했다. 그게 아니라면 참여율이 좀 더 높고, 시민들은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다. 그 결과 콜롬비아 정부는 평화 조약에서 몇 가지 사항을 수정한 후 발효시켰다.

세 번째 이유는 사실 여러 정부와 독재자들이 레퍼렌덤을 플레비사이트처럼 전략적, 도구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정당 정치인들은 때로 매우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어떤 이슈를 다시 꺼내 들어 그것을 선거 캠페인에서 누락시키려 하고, 자신들의 입장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보여주려 한다.

2017년 대통령제 도입 관련 터키의 헌법상 레퍼렌덤은 그런 전형적인 직접 민주주의의 플레비사이트식 도구화로서, 미래의 대통령과 그의 당에 힘을 실어주어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제한한 케이스였다. 그러한 정부와 정당 편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견고하게 만들기 위한 레퍼렌덤의 전락적 이용은 직접 민주주의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의 정반대편에 서 있다. 이러한 종류의 도구화는 직접 민주주의의 위신을 실추시킬 뿐이다. 레퍼렌덤 도구는 주로 시민들의 정치권력이지 정부의 권리가 아니며, 시민들의 발안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플레비사이트는 배제되어야 한다. 스위스에는 플레비사이트가 존재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경우 확정적 레퍼렌덤이건 국민발안이건 정당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곧 시민 사회에서 출발한다.

오늘날 직접 민주주의는 한 세기 전 보통 투표가 그런 과정을 거쳤듯이 세상에서 한걸음씩 확장되어 가고 있다. 사람들은 “만약”이라는 의혹 보다는 “어떻게”를 논한다. 그러므로 의회 차원에서도 직접 민주주의의 어떤 권한과 어떤 형태를 적용해야 할 것인지 많은 연구와 교육과 토론이 진행 중이며, 이탈리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적 결정에 대한 직접 참여와 간접 참여 사이의 균형은 오로지 레퍼렌덤 권한이 정기적으로 실행될 때에만 가능해질 것이다. 그런 경우 시민들과 정치적 대의원들 사이의 참된 대화가 생겨난다. 그렇지 않다면 레퍼렌덤은 단순히 불만이 있는 국민들의 화풀이 잠금 장치로 변할 위험이 있어서(예를 들어, 2005년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있었던 유럽 헌법에 대한 플레비사이트),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찬반 논의를 반 정부적이고 반 제도적 이슈들과 뒤섞는다. 최근 국제적으로 대의적 시스템에 레퍼렌덤 권한을 도입함으로써, 직접 참여와 그밖의 법원칙, 기본권, 소수자의 권리 등 현대 민주주의의 근본적 측면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자 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고 있다.

오늘날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더욱 견고해진 민주주의 체제에서 이는 무엇보다 정부 차원의 모든 단계에서 직접 참여 및 시민들의 심의기능을 개선시키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늘 더 많은 기초자치단체와 지방 정부들이 시민들에게 추정 예산이나 어떤 구체적인 프로젝트의 예산 편성, 토지 계획 및 다른 법령 마련 등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심의” 도구들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지만, 좁은 의미의 레퍼렌덤 권리를 대체할 수 없다.

그리고 아직 국가적 차원에서 적용 가능한 그 어떤 레퍼렌덤 권리도 활용할 수 없는 유럽 국가들이 여럿 있다. 여러 활동가들과 국제 비정부 기구들이 직접 민주주의 절차를 대의적 시스템에 통합 및 보완적인 요소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참된 권리의 실행이 더 많아지고 바람직한 관행이 확산될수록, 정당들은 그들 자체의 민주주의 시스템에 그와 유사한 권리들을 보완하도록 더욱 자극을 받고,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금, 2020/05/15-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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