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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위] 제 10회 동아시아금융피해자 교류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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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위] 제 10회 동아시아금융피해자 교류회 후기

admin | 월, 2019/12/30- 20:10

< 세션 1 > 대만의 다중채무문제 입법과정과 미해결 과제

– 김소리 변호사 –

첫 번째 세션은 ‘대만의 다중채무문제 입법과정과 미해결 과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아이치현 변호사회의 츠케 나오야 변호사가 퍼실리테이터로 세션을 진행했습니다. 대만의 우페이리엔 변호사님과 첸체민 변호사님이 대만의 다중채무 문제의 입법과정과 미해결 과제에 대해 발표했고, 우리 민변의 백주선 변호사님께서 한국의 개인채무조정제도의 최근 동향에 관해 발표했습니다.

대만측에서는 대만의 소비자 채무정리 조례에 의한 회생, 청산절차를 중심으로 발표했습니다. 대만측에서는 대만의 채무정리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강제적 사전절차’를 지적했습니다. 대만의 채무정리는 협의, 조정, 회생, 청산 4개의 제도로 되어 있는데, 회생이나 청산 절차로 가기 전에 반드시 협의 또는 조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합니다. 협의단계에서는 사실상 채무자는 금융기관의 부당한 협의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는 점, 이러한 사전절차는 종종 법률요건에 맞추기 위한 형식적 절차로 전락해 자원 낭비 등 비효율을 낳는 점 등에서 문제가 있으며 이러한 사전절차의 강제를 폐지하고 채무자에게 절차선택권을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한편, 대만의 회생제도 변화 과정에 대한 설명도 있었는데, 크게 회생안 인가 결정시 변제노력여부를 고려하게 된 점, 회생안 변제기간의 한도를 6년으로 명문화한 점(2012년 개정), 회생절차 기각 사유를 제한한 점, 채무자가 면책되는 최저 변제비율을 3/4에서 2/3으로 인하된 점을 주된 변화점으로 꼽았습니다.

대만의 청산절차와 관련하여서는 2012년 개정으로 기존에는 채무자의 사치나 낭비로 인한 부분은 면책될 수 없었던 부분이 청산 신청 전 2년 안에 사치나 낭비가 없으면 대부분 면책이 가능해진 점을 긍정적 변화로 꼽았고, 가처분소득 계산 시 압류 등으로 월급에서 강제로 공제되는 부분까지 포함시키는 것이 현재 법원의 다수의견이어서 이 부분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또, 2018년 강제집행법의 개정으로 채무자는 최저생활 기준액의 적어도 1.2배 및 월급의 2/3 금액을 보장받게 된 점을 이야기하며 엄청난 진보라고 밝혔습니다.

백주선 변호사님께서는 한국의 개인 채무조정제도의 최근 동향과 관련하여 개인회생 변제기간상한이 5년에서 3년에서 단축된 점 및 법개정 전 변제계획 인가자들에 대한 소급적용이 불가하다고 한 최근 대법원 판결의 내용, 대법원의 개인파산 신청서류 간소화 권고 등의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또, 한국 도산제도의 개선 방안과 관련하여서 도산전문법관제도의 도입, 직권주의에서 대심구조로의 전환, 파산자에 대한 신분상 불이익 등 차별대우 금지, 파산절차에서의 중지명령 도입, 면제 재산의 관대한 설정, 면책범위의 확대, 파산선고 후 5년 경과시 당연면책되는 제도 도입, 주택에 대한 담보채무에 대하여도 가용소득으로 변제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 생계비와 주거비를 공제한 나머지 금액을 가용소득으로 하도록 명백히 규정, 개인회생절차에서의 생계비의 현실적 적용, 변제기간의 탄력적 운용, 보증채무자의 보호, 파산관재인이나 개인회생위원에 대한 평가제도 도입, 도산 관련 통계관리 개선 등의 필요성을 지적했습니다.


< 세션 2 > 각국의 생활 보호제도와 운용 상황

– 박인숙 변호사 –

두 번째 세션은 ‘대만의 사회 구조의 빈곤 상황과 전망, 대만 공법 구조와 사법상의 부양과의 모순, 계쟁 및 해결 방법’, ‘한국의 공공부조 및 관련 제도의 현황과 평가’, ‘일본의 생활보호제도와 운영 상황’ 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쿄토 변호사회의 비토우 히로키 변호사가 퍼실리테이터로 세션을 진행했습니다. 각국이 위 내용으로 발표를 하고 발표자들이 서로 질의하는 형태로 진행했습니다.

대만의 사회구조법은 1980년에 제정되어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 2015년 개정 후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회구조법은 교육, 보육, 사회복지, 의료, 경찰, 촌(리)의 간부 등 직원에게 사회구조 대상자를 알게 되었을 때에 주무기관에 통보하도록 의무를 정하고 주무기관은 신청 후 5일 이내에 조사하여 긴급구조를 3일 이내에, 의료보조를 15일 이내에, 생활 부조를 30일 이내에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수입세대 및 중수입세대의 신청자격을 1인의 매달 평균소득, 동산 한도액과 부동산 한도액으로 심사를 합니다. 취업알선 서비스, 직업훈련 또는 구제를 대신하는 직업보장에 참가하면 창업자금 보조 또는 교통비 보조가 주어지고 일정기간 및 한도액 내에서 취업하여 증가한 수입은 저수입세대 및 중저수입 세대 신청시에 가정의 총수입 재산 심사시 최장 3년을 한도로 산입이 면제됩니다. 정부나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정부가 위탁한 시책에 참가하면 일정기간 혹은 한도액 내에서 시책 참가로 증가된 수입도 가정총수입을 심사할 때에 최장 3년을 한도로 산입이 면제됩니다.

한편, 대만의 법률구조 기금회는 2004. 7. 1.부터 사회적 약자의 소송 대행 등을 하고 있는데 최근 수년간 부양비 관련 사건이 증가하여 가사사건 중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여 이혼 사건을 뛰어 넘었습니다. 그 이유는 대만의 사회 부조와 법제도로 인한 것으로, 가족의 총수입을 가족 인원수로 나누어 1인당 수입이 최저 생활비 이하이고 가정의 재산이 매년 공표하는 금액을 넘지 않아야 하는데 가족의 범위에 배우자, 일촌 직계친족, 동일 호적 또는 함께 생활하는 기타 직계친족, 종합소득세 상의 부양친족 공제를 받는 의무자를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하면서 가족에서 제외되는 자에 ‘기타 특별한 사정으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고 신청자의 생활을 곤경에 빠트려서 주무기관이 신청자에게 최선의 이익을 고려했을 때에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고 판정한 자’를 규정하고 있어서 가족에 포함되는 자도 법원이 부양 의무가 면제된다는 판결을 하면 가족에서 제외할 수 있습니다. 처자식과 강물 투신자살을 하고 싶어 하는 81세의 부친, 저수입 심사 탈락 사기꾼들에게 속아서 명의를 빌려준 노인, 친부에게 성폭력을 당한 딸이 십수년 후에 친부에게서 부양청구를 당하는 고통에 직면한 3가지 사례를 통해서 위 법제도로 인해서 사회구조의 대상자가 되기 위해서 법원에서 신청인은 과거의 문제를 언급해야 하고 상대방은 법원에 가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양자가 힘든 과정을 겪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노익창 호서대 교수가 발표를 하였습니다. ‘사회보장급여의 이용 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이 2014. 12. 30. 제정되어 2015. 7. 1.부터 시행되고 있으나 인원 및 역량의 한계로 법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생활보호법’은 1961. 12. 31. 제정된 후 1997. 8. 22. 개정으로 최저생계비 개념이 법률에 반영되었습니다. 1998. 9.경 초등학생 강정우군의 아버지가 1천만 원 생명보험금을 노리고 아들의 손가락을 자르고 강도사건으로 위장하여 허위신고한 사건을 계기로 1999. 9. 7.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었고 2000. 10. 1. 시행되었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를 지급받으려면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미만일 것과 부양의무자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엄격한 요건과 낙인효과, 인격적 모멸감으로 인해서 수급신청을 하지 않는 빈곤층이 존재하고 실제로 빈공한 상태이나 수급대상에서 탈락하거나 수급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관할 관청이 근로능력있는 수급자의 경우 자활사업에 참여할 것을 조건으로 생계급여를 지급할 수 있는데 만일 수급자가 자활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 관할 관청이 임의로 파악되지 않는 소득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여 소득을 인정해서 2014. 2.경 서울시 송파구 단독주택 지하에 세들어 살던 세 모녀가 빈곤에 지쳐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두 딸에게 행정청이 각 60만 원 정도의 추정소득을 부과했기에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상이 되어서 기초생활보장급여를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위 사건을 계기로 위 법이 2014. 12. 30. 개정되고 2015. 4. 20. 같은 법 시행령이 개정되어서 실무상 ‘확인소득’이 도입되었습니다.

개정된 법은 최저생계비가 삭제되고 중위소득 개념이 도입되었는데 각 급여가 종류별로 수급요건이 달라져 개별 급여화 되면서 급여의 종류별로 수급자 선정기준 및 최저보장수준이 차별화되어 실질에 가깝게 바뀐 것으로 평가됩니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사항이었던 부양의무자 요건의 폐지가 단계적으로 추진되는 중입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생활보호제도를 이용하는 사람이 인구대비 1.7%밖에 안 되는 상황으로, 빈곤한 사람 중에서 10 ~ 20 % 정도밖에 이용할 수 없는데 국가나 지자체의 창구직원이 상담자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서 되돌려 보내는 신청권 침해가 만연하여 전국 각지에서 굶어죽는 사건이나 자살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006년 이래 일본변호사연합회 등의 요구로 변호사 법무사가 생활보호신청에 대한 운동을 전개하였고 2007. 6.경에 생활보호문제 대책 전국회의를 설립했습니다. 2011년 이후 창구직원의 정보제공의무 위반을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다수 선고되면서 2014. 7. 생활보호법 시행규칙에 보호를 실시하는 기관은 신청이 신속히 진행되도록 필요한 원조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신설되었습니다. 또한 일본은 친족의 부양의무가 생활보호를 적용하는 요건이 아니지만 친족에게 도움을 받으라는 식으로 위법하게 돌려보내는 복지 사무소가 끊이지 않습니다. 생활보호기준을 넘으면 일체 급여를 받지 못해 면제되는 혜택에서 제외되기에 생활보호를 받는 세대보다도 더 어려운 생활을 하는 역전현상이 발생합니다. 보호비 1개월분 이상의 예금이 있으면 생활보호가 개시되지 않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사례관리자가 관리하는 세대가 법률로 80세대라고 정해져 있으나 100세대 이상인 경우도 적지 않고 전문성도 요구하지 않아 복지와 무관한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이 사례관리자로 종사합니다.

한편, 일본은 2012년 봄 인기 코미디언 어머니가 생활보호를 이용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생활보호에 대한 비난을 하면서 자민당은 2012. 12. 총선거에서 생활보호비 10% 삭감과 부정수급대책강화 등의 공약을 내세우며 정권을 탈환하였고 2013. 1.경 사상최대 생활부조기준 인하를 결정하고 2013. 8.부터 3년에 걸쳐 실행하였습니다. 시민들은 ‘전례가 없는 공격에는 전례가 없는 반격을!’을 구호로 1만 건 심사청구 운동에 착수하여 기각 재결된 심사청구에 대해서 1,000명 이상의 원고가 위헌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일본변호사연합회는 일본, 독일, 프랑스, 스웨덴, 영국 미국, 한국에 정통한 연구자와 함께 7개 국가의 제도를 철저히 비교하여 일본에 개정 제안을 하는 생활보호법에서 생활보장법으로라는 서책을 2018. 8. 발간하였습니다.

퍼실리테이터인 쿄토 변호사회의 비토우 히로키 변호사가 많은 질문을 하였는데 특히 부양의무 요건에 대한 질문이 기억에 남습니다. 대만, 한국, 일본의 사회구조의 문제점과 장점에 대해서 알게 되는 좋은 계기였습니다.


<세션 3> 각국의 다중채무자ㆍ생활빈곤자에의 자립 지원, 연대와 협동

– 이연주 변호사-

세션 1과 2가 금융 피해자와 관련한 각국의 입법ㆍ사법 동향과 현행 운영 제도에 대해 살펴보았다면, 세션 3은 각국의 사회단체 들이 금융 피해자들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지원활동, 연대 활동 등이 소개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시민단체 주빌리은행 홍석만 사무국장님이, 대만에서는 LIAO, YI-TING 변호사님(타이베이 변호사회)/ WU, CHUNG-SHEN 준교수님/ KUO, LI-TING 님이, 일본에서는 사토우 미츠유키님(아키타 의존증 문제를 생각하는회 대표)/ 이시쿠로 요시토 님(아키타시복지총무과생활지원담당주석주사)이 각 발표를 맡아 수고해주셨습니다.

한국에서 발표를 맡은 홍석만 사무국장님은 구체적인 자립지원 현황이나 대안을 설명하기에 앞서, 다중채무자의 60~80% 이상은 소득기반이 취약한 저소득층, 노년층에 해당하는 사회적 취약계층에 해당하고,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임을 강조했습니다. 이들이 한 번 부채를 부담하게 되면 이를 변제하기 위해 다시금 추가 대출을 받으면서 걷잡을 수 없는 다중채무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이러한 부담이 결국 한국의 “네모녀 자살 사건”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금융피해자 교류회의 취지가 담긴 서두 발언으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대목이었습니다.

한편, 다중채무자 취약계층의 자립을 지원하는 한국의 현행 정책(① 희망키움통장, ② 국민행복기금, ③ 정책자금대출)을 소개하면서, 저소득층의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오히려 공적 권한을 이용하여 과도한 추심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 등 각 제도의 문제점도 잘 짚어주셨습니다. 한국에서는 금융 피해자에 대한 정부 인식 전환이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오히려 민간 비영리 부분의 자립지원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도 설명되었습니다. 정부가 채무자도 국가의 구성원이자 경제주체의 일원이라는 점을 주목하고, 인식을 전환할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할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중채무자가 한 번 채무를 부담하면 계속적인 채무부담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기적인 관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홍석만 사무국장님의 지적이 매우 타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만 측에서는 법률구조기금회 타이베이 분회, 카드채무 피해자 자구회 등 채무자 자립을 지원하는 정부기관, 민간단체를 소개하였습니다. 특히, 재단법인 불광산 자비 사회 복지 기금회가 긴급한 사건에 휘말려 당장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긴급 구조를 해주는 방식으로 지원을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대만의 망초심 자선 협회는 노숙자 대부분에게 채무가 있고, 불법 명의 대여 등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문제점을 인식하고 노숙자나 빈곤자에게 자립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측에서도 시민단체의 지원활동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곤궁자의 자립에 있어 ‘정직하게 말할 장소 제공’, ‘고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것’을 중요히 여기면서 곤궁자의 존엄성 확보를 강조하는 등 시민단체의 정서적인 지원까지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금번 교류회가 개최된 아키타의 복지총무과에서는 매년 2회 정도 외부기관도 참가하는 사례검토회를 개최하여, 변호사, 법무사, NPO법인 등 다양한 구성원이 참가해서 곤궁자 지원 사례를 토론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각 기관의 지원 내용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상호 협력 관계를 구축하여, 실제로 곤궁자를 지원할 때 다중적이고 적절한 지원이 있을 수 있다며 상당한 자부심을 내비췄습니다. 우리나라도 금융피해자에 대하여 정부보다는 NPO단체가 먼저 문제점을 인식하고 활발히 운동을 전개해 온 만큼, 관계 협력기관 간의 공동 연구 체계 구축이 자주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 측의 발표를 마지막으로 세션 3의 발표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마지막 세션이라 시간이 부족하여 각 국의 발표자간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 많이 아쉬웠지만, 한국의 금융피해자 지원 제도의 문제점, 개선 방향을 알 수 있었고, 각 국이 실제 금융피해자 지원을 어떻게 해가고 있는지 보아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 저녁 만찬 스케치 >

– 조미연 변호사 –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이어진 교류회는 저녁 만찬으로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교류회 발표가 진행된 아키타 국제학교에서 단체로 일본 측에서 준비한 버스에 탑승하여 만찬장으로 이동하였고, 만찬장에 들어가서는 참가자들 이름표에 적힌 알파벳으로 배정된 테이블을 찾아 삼삼오오 모여 앉았습니다. 테이블마다 구성원이 다르니 특유의 분위기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겠지만, 건배할 때만큼은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공통된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저녁 만찬은 크게는 각국의 대표가 나와 교류회 소감을 나누면서 건배 제의를 하거나 서로가 준비한 선물을 주고받는 시간이었고 작게는 각 테이블에서 만난 참가자들 사이 인사를 나누며 소소한 공감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각국의 대표로 나와 발언한 사람들은 저마다 시간이 짧아 아쉽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하루종일 진행되었던 교류회 일정으로 피곤하고 많이들 지쳤을 시간이었는데요. 다들 단상 위에 오르는 순간 상기된 표정과 빛나는 눈빛으로 저마다의 소회를 밝히는데 어찌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던지요. 직접 마주한 자리에서의 온기가, 교류회 참가자들을 이렇게 뜨거운 열의에 찬 모습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위 사진 오른쪽 세 명의 가족 이야기입니다. 교류회의 포문을 열었던 기조연설 발표자 킨조가쿠인 대학의 오오야마 교수님과 남편 그리고 딸의 모습인데요. 운이 좋게도 알파벳 J 테이블에 같이 자리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오오야마 교수님 기조연설 이후 함께 참가했던 한국 참가자들과 발표가 정말 훌륭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부터 꼬마 숙녀님의 나이는 이제 4살이 되었고 작년 한국 교류회에 함께 참가했었다는 사실 등 서툰 영어와 통번역 어플 등을 활용한 대화였지만 기조연설자와 만찬 자리에서 나눈 대화는 또 다른 기쁨을 가져다줬던 것 같습니다.

각자 테이블에서 이야기꽃이 피어가는 과정 속에서 틈틈이 진행되었던 각국 대표자들의 이야기도 색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사실 단상 위에서 발언하는 사람들이 교류회 규모가 커진 만큼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모든 시간에 다 집중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위 사진의 한국 금융피해자협회 윤태봉 회장님께서 발언에 앞서 “ 내 얼굴이 빨간 이유는 술에 취해서가 아닌, 술을 잘 못해서일 뿐입니다.” 라고 하신 안내? 말씀이라던가 각국에서 다양한 술과 과자 등 선물을 준비해와 교환했던 장면들은 비교적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웃음). 물론 선물 내용이 궁금해서 유독 귀를 쫑긋 세웠던 것 같기는 하네요.

위 사진은 일본 변호사님과 한국 파산회생변호사회 김관기 변호사님이 대만 측에서 가져온 선물을 받아든 장면입니다. 교류회를 통해 각국의 금융피해사례, 정책 및 입법현황 뿐 아니라 소소한 먹을거리 등 선물을 나누면서 오가는 정이 또 있나 봅니다. 한층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던 것 같습니다.

저녁 만찬의 통역은 비교적 본 교류회 때보다 간소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양방향 통역은 위 사무국장님이 수고를 해주셨고, 중국어와 일본어의 양방향 통역은 본 교류회 통역 중 한 분이 맡아주셨습니다.

비록 통역은 간소화한 자리였지만, 참가자들 사이 마음의 거리는 훨씬 좁혀질 수 있었습니다. 같은 테이블의 한 일본 참가자는 한국에 방문해서 행사에 참가 했던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활동가라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고, 대만의 한 발제자는 알고 보니 동갑내기 친구였는데 생각지 못하게 LOL 이라는 게임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 선수단의 팬이며 주로 사용하는 게임 캐릭터가 무엇인지 등까지 예기치 못한 취미 이야기까지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갑자기 대만과 중국이 하나의 국가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아 당황하기도 했었고요. 그렇지만, 교류회 내내 무언가 차오르는 기쁨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책으로 읽었던, 통계로 그렇구나. 라고 이해했던 부분들을 각국의 참가자들이 생생한 음성으로 전달했던 자리. 그런 자리에 이어서 ‘어떤’ 참가자들이 함께했는지를 직접 눈을 마주하고 손을 맞잡으며 이야기했던 만찬 시간. 맛있는 음식과 아키타의 깔끔한 사케가 같이 먹고 마시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만큼 잘 어우러졌던 기회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아키타 풍경스케치>

– 김재희 변호사 –

(1) 아키타로 떠나던 첫 날(2019. 11. 08.)

< 도쿄 하네다공항 >
– 아키타는 한국에서 직항이 없어, 도쿄 하네다 공항을 경유하여 갔습니다. 아이리스(김태희, 이병헌 주연)라는 드라마 방영시 배경으로 아키타가 나왔고, 당시 아키타행 직항기 운항이 되었었다고 하나 현재는 한국에서 아키타로 갈수 있는 직항은 없는 상태입니다.

– 도쿄 하네다 공항 전망대에 도착하여 인증 샷

 

<아키타공항>

– 아키타 공항에 도착하자, 제일먼저 만난 것은 아키타 강아지 인형~

일본의 대표적인 견종으로 아키타 견종이 유명합니다. 일본 황실에서 아키타 견종을 많이 아껴 황실 소수의 사람만 이 견종을 키우고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 아키타 공항 앞에서 인증샷

 

–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메뉴로 기리탄포 라는 아키타 향토음식을 먹기 위해 들른 음식점 앞에서 찍은 한 컷입니다.

 

(2) 둘째날(2019. 11. 09.) – 학술대회일

제10회 동아시아 금융피해자교류회는 아키타 국제교양대학에서 열렸습니다.
아키타 국제교양대학은 2004년 미국의 인문학, 사회과학, 어학 등 교양과목에 중점을 둔 교양대학인 Liberal Arts College를 본 따서 설립했고, 모든 과목을 영어로 수업한다고 하네요. 47개국 185개 기관과 인턴쉽을 맺고 있어서 학생들은 대학생활 4년중 1년은 해외에서 공부하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키타 교양대학은 건축물이 독특하고 층고가 낮았습니다. 건축물들 사이에 어우러진 단풍이 아름다웠습니다.




 

학술교류대회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발표는 기조연설이었습니다.

기조연설은 일본 킨조가쿠인(金城学院)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오오야마교수는 일본사회에서 파산신청 건수가 급증할 무렵, 다중채무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오오야마 교수는 기조연설자로 나서 ‘동아시아 다중 채무 대책의 전개’라는 주제로 연단에 올라, 일본의 지난 40년과 한국 대만의 지난 10년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한중일 금융피해자교류가 시작된 역사, 연결된 지점에 대해 발표를 하였습니다.

오오야마 교수의 기조연설 발표를 들으면서, 동아시아금융피해자교류회가 왜 생겼고, 상호교류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 오오야마 교수의 발제 모습

-오오야마 교수의 발표자료(한국어, 일본어, 대만어로 모두 준비한 PPT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점심시간>
점심은, 대학 내 카페테리아로 이동하여, 준비된 도시락으로 먹었는데, 작은 도시락에 아기자기 닮긴 반찬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커피브레이크>
-세션 2와 세션 3 중간에 커피브레이크가 있어, 역시 카페테리아로 이동하여 준비된 다과와 함께 커피를 마실 시간이 있었습니다. 단풍으로 물든 교정을 지나 커피를 마시러 가던 발걸음이 참으로 가벼웠습니다.


 

< 교류회장 >
– 커피브레이크가 끝나고 돌아온 교류회장에서 한국에서 오신 분들 모두 모여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 만찬장-간친회 >
– 한국, 대만, 일본의 대표자들은 각 국에서 준비해온 선물을 서로 나누며 만찬행사를 시작했습니다. ^^ 각 테이블에는 각국에서 오신 분들이 섞여 앉아 짧은 영어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3) 셋째날(2019. 11. 10.) – 자유시간

<아키타미술관>
–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 안도 타타오가 설계했다는 미술관으로 들어가면서부터 인테리어가 남다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심한 시멘트 벽, 나선형으로 높게 설치된 계단을 올라 나오는 곳은 미술관 카페였습니다. 잔잔한 물이 찰랑대는 것을 바라보며 차를 마실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 가쿠노다테(무사마을)>
-가쿠노다테는 일본에서 작은 교토라고 불리는 정취가 감도는 관광명소로, 옛 무사들이 살던 마을이라고 합니다.




<아키타 센슈 공원>
– 아키타 센슈공원은 아키타 영주 사타케 요시노부가 1604년에 쌓은 구보타성의 옛터에 만들어진 공원입니다. 일본 벚꽃명소 100선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라는데요. 가을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단풍이 꽃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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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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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과 평화를 지키는 실천적 활동 -작성: 김은진 회원 안녕하세요, 미군문제연구위원회 김은진입니다. 회원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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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1/08/04-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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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절한 서훈 취소, 정보공개거분처분 최소소송 활동   과거사청산위원회에서는 「부적절한 서훈취소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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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1/09/0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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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행사 너무 맘에 든다

김남주 회원

 

민변 행사 너무 맘에 든다. 우선 내가 가는 민변 행사는 가족을 데리고 갈 수 있는데, 공짜라 좋다. 밥도 준다. 아빠가 어떤 단체에서 활동하는지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점도 좋다. 물론 프로그램도 좋다. 이런 여러 장점이 있다. 그런지 올해에만 민변 행사에 가족들과 벌써 3번이나 갔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민변 10월 월례회로 간 민주인권기념관과 식민지역사박물관 나들이에는 온 가족과 함께 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둘째아이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신청했다. 큰아이는 역사에 별 흥미가 없어서 선물을 사주겠다고 하고, 맛있는 밥도 공짜로 준다고 해서 ‘모셔’왔다. 다행히 아이나 배우자와 동반으로 오신 회원들이 꽤 있었다.

안내해준 곳으로 옛 남영동 대공분실, 현재는 민주인권기념관을 찾아가보니 나조차 놀랐다. 기차길 옆, 평지에 위치해 있었고, 대공분실 주변에 상가와 사무실들이 연접해 있었다. 머릿속 상상으로는 숙대 근방 인적 드문 언덕배기에 숨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들 눈에 버젓이 드러나는 위치에서 그런 몹쓸 짓을 했다니…

해설사 선생님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둘러봤다.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씨가 이 건물을 설계했다고 했다. 건물의 설계는 치밀해 보였다. 끌려온 사람들을 들여보냈던 문은 건물 뒤편에 작게 나 있었고, 그 문을 곡선 담으로 둘러쳐 놓아서, 그 문가로 차를 바짝 대고 끌려온 사람을 건물 안으로 들여보내면 밖에서는 파파라치라도 누가 끌려왔는지 알 수 없게 해놨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건물 뒤편 창문 전부와 고문을 자행하던 조사실이 있는 5층 앞 창문은 폭이 한 뼘 남짓밖에 안 돼 건물 뒤편(옛 롯데제과 본사라고 한다)에서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없도록 해 놨다. 끌려온 사람들이 드나는 문을 들어가면 좁은 나선형 계단이 조사실이 있는 5층까지 이어져 있다. 그 계단을 따라 5층까지 올라가면 요즘의 보통 변호사방 만한 조사실과 조금 큰 조사실이 합해 열 몇 개가 있다. 그 조사실 중 한 곳은 박종철 열사가 고문 받던 중 돌아가신 방이다. 그 방은 원형을 그대로 보존해 두고 있다. 그 방에만 물고문을 하던 욕조가 남아 있었다. 나머지 방엔 경찰이 욕조를 모두 없앴다고 한다. 경찰은 그 외에 일명 ‘뼁끼통’ 가리개 높이도 조금 더 높이는 등 일부 변경을 했다고 한다. 그 의도는 자신들의 과오를 조금이나마 덮어보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봤다. 진심으로 과거를 반성한다면 있는 그대로를 보존하고, 국민들로부터 비판받고, 새롭게 태어나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씁쓸했다. 사법개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될 경찰이 여전히 이런 태도라면 과연 그들에게 온전한 수사권을 맡겨도 과거의 참혹한 인권침해가 재발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역시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둘째는 민주역사기념관의 이곳저곳을 열심히 둘러보고 설명도 들으려 했는데, 큰아이는 다른 집 꼬마 아이들과 노는데 정신이 없었다. 일행은 민주인권기념관을 나와 걸어서 멀지 않은 식민지역사박물관에 도착했다.

민변에 사위라고 자신을 소개한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김영환 선생님이 일행을 맞아주셨다. 숙대 근방 ‘자가’ 단독 5층 건물의 1층과 2층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꾸려 놓았다. 강제동원 사건의 원고이신 이춘식 할아버님 등 낯익은 사진들과 민변 변호사님들의 노고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뻔한 그런 박물관일 줄 알았는데 생생하고 귀한 사료들도 꽤 보였다. 몇장 남지 않은 최초의 3.1독립선언서, 백범일지, 압록강 자생 14종 나무로 만든 부채(압록강재감, 鴨綠江材鑑) 등 유물을 보면서 민족문제연구소가 들인 정성과 노력, 전문성을 알 수 있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관람을 마치니 이른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됐다. 민변 사무처가 준비해준 맛난 만두전골, 모듬전에 배불리 공짜로 식사를 했다. 왠일인지 일어나서 발언도 시키지 않고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고, 아이들 기준으로 늦지 않게 집에 올 수 있어서 대만족이었다. 민변의 예산을 축낸다고 눈총만 받지 않는다면 다음에도 온 가족이 민변 행사에 참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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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9/10/22-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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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인권위원회 소식

조은호 신입회원

안녕하세요. 민변 신입 회원인 조은호입니다. 저는 평소 청소년, 아동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아동인권위원회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아동인권위원회 TF 활동에 참여한 덕분에 아동인권위원회 활동을 민변 회원 여러분께 소개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지난 7월 15일부터 26일까지, 유엔 Privacy 특별보고관의 방한이 있었습니다. 특별보고관은 7월 26일 방한에 대한 Statement를 발표했는데 시민단체가 지적한 아동의 프라이버시권과 침해에 대하여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이에 민변 아동인권위원회는 국제아동인권센터, 아수나로, 정보인권연구소, 띵동, 오픈넷 등과 함께 특별보고관에게 제출할 추가보고서를 작성하였습니다.

유엔 프라이버시 특별보고관 시민사회단체 간담회 장면

 


UN 프라이버시권 특별보고관 2019715~26일 방한 결과에 관한 기자회견 모두발언문

프라이버시와 아동

24) 점차 그런 경우가 줄고 있으나, 여전히 초등학생 중 일부는 글쓰기 실력 향상을 이유로 일기를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학생 중 일부는 선생님에게 정기적으로 일기를 강제로 검사 받습니다. 선생님이 일기의 내용을 살펴볼 수 있고, 살펴볼 것이라는 점, 그리고 아동학대와 같이 민감한 정보를 발견 시 선생님은 해당 사안에 대해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학생에게 정확히 인지시킨다면 일기를 쓰게 하는 현 관행을 유지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25) 또한 어린이집 CCTV 의무설치에 관한 우려를 담은 증언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CCTV 영상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만들어 둔 안전장치가 적절하다고 평가했습니다. CCTV 열람 요청건수가 매우 적습니다. 대구시의 경우 6개월 동안 120개 교육기관 중 두 곳에서 단 2건의 열람요청만을 허가했다고 합니다.

26) 또한 수사 중 피해자의 이름, 나이, 주소, 학교와 더불어 CCTV 영상이 유출된 사례가 있었다는 진정도 받아보았습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는 유출사례가 발생시, 언론중재위원회는 “권고 시스템”을 이용해 해당 컨텐츠를 사후적으로 검토하고, 언론중재위원회 홈페이지에 비강제적인 성격의 권고를 게재합니다. 또한 언론중재위원회는 언론의 개인정보 공개에 관한 일련의 기준을 마련했습니다. 또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사에 의한 개인정보 침해를 평가하여, 그 결과에 따라 과태료 부과, 콘텐츠 삭제명령, 정정명령 등 구속력 있는 제제를 가할 수 있습니다. 언론중재위원회의 권고 내용이 충분한 억제력을 발휘하는지는 좀 더 살펴볼 예정입니다. 또한 현재의 기본체계가 적시에 제제를 가하고 있는지, 기존 권고 중 강제성을 부여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지 역시도 추가로 살펴볼 예정입니다. 언론과 무거운 과태료 부과 간의 관계 역시도 추가로 평가가 필요합니다.

27) 한국 내 일부 학교에서 학생 간의 교제를 제제하거나 처벌하는 학칙이 있다는 시민사회의 진정에 대해서도 살펴보았습니다. 해당 진정과 관련된 정보가 너무 오래된 정보(2009~2013)이거나 대부분의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을 수도 있다는 판단 하에 본 사안에 대해서는 아직 추가적인 사실확인을 진행 중입니다. 2013년 이후 교육부는 어떠한 상황에서 학생을 규율해야 하는지, 규율을 할 때는 어떤 절차를 따라야 하는지에 대한 일련의 공식 지침을 발표했습니다. 이 지침에는 자의적인 판단으로 학생의 성적지향 그리고/또는 교제활동을 규율하지 못하도록 하는 자세한 절차가 기술되어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추가보고서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아동중심적 시각을 기반으로 한 접근과 해당 문제의 한국적 맥락이었습니다. UDHR, ICCPR의 평등원칙, CRC의 차별 금지, 아동우선원칙, 생존권, 참여권 등을 바탕으로 아동 프라이버시 침해의 문제는 그 자체로 온전한 인간이자 인권의 주체인 아동의 시각에서 접근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성인의 입장에서 아동 프라이버시권 침해의 심각성을 축소하거나 아동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교육적 효과 등을 이유로 사생활 침해를 정당화하는 것은 지양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였습니다. 또 Statement에서 이미 해결되었다고 보았던 학교 내 이성교제 등은 최신 자료를 보강하여 여전히 문제임을 지적하였습니다.

이번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CRC 협약과 일반논평을 처음으로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일반논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아동을 바라보는 시각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인이 아동을 대하는 시각은 한정적입니다. 아동의 미성숙함을 전제로, 권리가 없다고 보아 배제하거나 보호를 이유로 통제하는 식입니다. 어느 쪽이든 아동은 객체일 뿐, 아동의 생각과 욕구는 반영되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UN 일반논평은 성인과 다른 아동의 상태를 권리를 제한해야 할 이유로 삼지 않습니다. UN 일반논평은 아동을 권리의 주체로 이해하며, 아동의 고유한 사고·의사소통 방식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협약 제12조 참여권이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유아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이었습니다. UN 일반논평은 유아에게도 이해력, 인지력이 있으며 언어적 소통이 가능하기 훨씬 이전부터 생각과 의사를 표명한다는 점을 천명하였습니다. 아동, 영·유아의 사고와 의사소통은 미숙하고 서투르다는 기존의 관념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지적이었습니다.

마침 그 무렵 아동이 주인공인 영화 <벌새>, <우리집> 등을 보았습니다. 목소리가 여릴 뿐 영화 속 아동의 대화는 어른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체계 잡힌 문장에 담긴 발화자의 생각이 충분히 전달되었습니다. 아동의 대화라고 하면 으레 떠오르는 혀 짧은 말투, 귀엽고 애교 있는 목소리, 자연스럽지 않은 문장구조 등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아동은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른과 대화할 수 없고 시민적 절차에 참여할 수 없다는 건 막연한 편견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동의 눈높이에서 진행되는 서사를 따라가며 아동이 일상에서 마주치는 고민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어른에겐 사소한 문제들이 아동의 일상을 가득 채울 수 있다는 것도, 그걸 해결하기 위한 고군분투도 비로소 눈에 보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아동이었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과 성숙한 정도는 달랐지만 그 옛날의 나에게도 몸으로 부딪치며 이해해야만 하는 세계가 있었습니다. 나름의 체계와 완결성을 갖춘 고유한 가치관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기를 바라던 마음은 지금과 그때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된 나는 아동의 미숙함을 탓하고 그렇기에 함께할 수 없다고 섣불리 결론 내렸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마치 어른이었던 것처럼, 서툴지만 치열했던 그때의 나를 잊어버리고 말입니다.

유엔 제네바 앞에서 아동위 위원들 찰칵!

9월 18일부터 19일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대한민국 본심의가 있었습니다. 국제아동인권센터에서 본심의를 생중계 한 덕분에 다른 활동가들과 같이 본심의를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몇 년 만의 아동권리협약이행 심의인데다가 제네바 현지에 계신 분들의 낮밤을 가리지 않는 열정에 열띤 논의가 예상되었습니다. 제네바 현지팀의 노력이 빛을 발한 덕분에 위원들은 구체적이고 예리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위원들의 열의에 비하면 정부의 대응은 다소 소극적이었습니다. 미리 준비한 답변을 전달하는데 중점을 둔 까닭에 정부의 답변은 위원들의 질문과 때때로 내용이 맞지 않았습니다. 통역이나 시간의 한계 역시 아쉽게 다가왔습니다.


아쉬움이 남는 정부의 태도와 대조적으로 본심의 생중계를 보기 위해 국제아동인권센터를 찾은 아동들의 모습은 희망적이었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자각하고 직접 행동하는 아동들은 어떤 어른보다 멋있고 당찼습니다. 그들을 보며 쉽게 실망하기는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이 부족한 만큼, 아쉬운 만큼 할 수 있는 일은 더 많을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바꿔야 할지 알기 위해선 나 역시 한 때 아동이었음을 기억하고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UN CRC 본심의 생방송 방청에 함께한 아동위 위원들

많은 분들의 노력 덕분에 이번 CRC에서 한국의 아동인권 문제에 대한 다양한 권고가 채택되었습니다. 소년사법에 관해서도 혁신적인 내용을 담은 일반논평인 “아동사법에서의 아동권리”가 채택되었습니다. 현재 아동인권위원회 소년사법 TF에서 이를 번역 중입니다. 단어를 하나, 하나 골라내는 작업은 쉽지 않지만 일반논평이 지향 하는 아동인권의 이상을 살펴보고 협약 내용이 구현된 미래를 그리는 과정이 즐겁습니다. 아동중심적 시각을 기반으로 민변만의 언어로 풀어낸 일반논평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됩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실수록 번역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관심 있는 민변 회원들은 언제든 참여해주세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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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9/10/22-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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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청산위원회 소식

-여순민중항쟁 71주기 워크숍- 

0.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입니다. 저희 과거사위원회는 2019. 10. 19. 여순민중항쟁 71주기를 맞아 여수로 1박 2일 워크숍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과거사위 활동 소식은 워크숍 여정을 중심으로 전달해드릴까 합니다.

 

1. 제71주년 여순사건 희생자 합동 추념식

 

    과거사위는 2019. 10. 19. 오전 11시 이순신 광장에서 열린 제71주기 여순사건 희생자 합동 추념식에 참석하였습니다. 이 날 유족과 시민 500여 명이 참석한 추념식은 문화공연에 이어 추념사와 헌화 순으로 진행되었고, 오전 11시 정각에는 여수시 16개 민방위 경보시설에서 묵념 사이렌이 울렸습니다.

    그간 추념식은 여수지역사회연구소를 비롯한 다양한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주도되어 왔습니다. 이후 여수시가 추념식을 주관하게 되면서 올해 처음으로 위 묵념 사이렌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울리게 된 것입니다.

    또한 올해는 지난해 경찰서에서 순직 경찰위령제를 지냈던 순직 경찰 유족을 비롯해 많은 안보보훈단체 회원들이 추념식을 함께 지켜봐 상생과 화합의 도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 등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무엇보다도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의 아픔에 시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대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2. 여수지역사회연구소에서의 강연


    추념식이 끝난 후에는 여수지역사회연구소로 이동하여 이영일 소장님으로부터 여순항쟁의 원인과 경과, 현 시점에서의 과제 등에 대한 강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장님께서는 여순항쟁의 성격을 일부 좌익계 사병들이 일으킨 단순한 반란이 아니고, ‘부당한 명령에 맞선 항쟁’이며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운동’이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또한 “제주 4·3사건이 없었다면 여순사건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여순항쟁은 제주 4·3사건의 연장선상에서 평가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48년 4월 3일 단독선거·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주장하던 제주도민들을 국가는 무참히 학살하였고, 이 과정에서 진압명령을 하달 받은 여수 주둔 14연대 병사들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군대가 오히려 국민을 진압하고 학살하라는 명령을 따르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명하며 무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끝으로 여순항쟁을 기화로 제정된 국가보안법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발생시킨 폐해를 언급하시면서 여순항쟁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하셨습니다. 다행히 제주 4·3사건의 경우 1999년 12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11년 동안 7차례에 걸쳐 추가 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반면 여순항쟁을 비롯한 많은 과거사 사건들은 여전히 진상 규명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앞으로도 현대사의 질곡을 온전히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가 더욱 노력을 경주해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3. 사적지 답사

  . 14연대 주둔지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서완종 국장님과 함께한 과거사위원회의 여수 첫 답사지는 1948년 여순항쟁의 시발점이 된 육군 제14연대 주둔지였습니다. 1976년 7월 23일부터 현재까지 한화여수공장이 입주하여 가동 중인데, 옛 부터 평화로운 원주민 마을을 강제로 이주시킨 후 일본과 미군에 이어 한국군의 병영지로 쓰이다가 급기야는 화약공장이 들어선 민족현대사의 아픔과 질곡을 간직하고 있는 비극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군사보안시설로 지정되어 현재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으며, 최근 인근 지역에 아파트를 비롯한 많은 주거시설이 확충되면서 화약공장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공장 가동률이 4분의 1로 하락함에 따라, 여수시가 한화와 부지 매각에 대한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하나, 지나치게 높은 매입금액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이 더욱 컸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나. 중앙동 인민대회장과 종산초등학교


    다음으로는 중앙동 인민대회장과 종산초등학교(현 중앙초등학교)에 방문하였습니다. 중앙동 인민대회장은 1948년 10월 20일 오후 3시경 중앙동 로터리 광장에서 수많은 시민들과 14연대 봉기군이 함께 참여하여 인민대회를 열었던 장소입니다. 인민대회에서는 ’38선이 무너졌다. 제주 출병을 거부한다. 동포가 동포를 죽일 수 없다’고 선언한 뒤 인민위원회를 조직할 것을 결의하고,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 실시 등을 내용으로 하는 6개 항의 결정서를 채택하였습니다.

    이후 여수가 진압되고 부역혐의자를 색출하면서 인민대회장에 나갔다는 이유만으로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현장에서 즉결처형 되거나 종산초등학교 등으로 압송되어 수용되었습니다. 종산초등학교는 여수경찰서와 가깝다는 이유로 수도경찰과 전남경찰 및 여수경찰서 특수대, 국방경비대 군인들의 공동 주둔지가 되었습니다. 10월 28일부터는 소위 가담자 색출이라는 이름으로 여수와 인근 읍면 지역에서 끌려온 혐의자를 속옷만 입힌 채 10명씩 포승줄로 묶어 12월 중순까지 수용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부산의 5연대장이었던 김종원은 혐의자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재판 없이 즉결처분을 자행하였는데, 권총이나 일본도로 목을 치는 광란적인 학살 만행을 자행하여 백두산 호랑이라는 악명을 떨치기도 하였습니다. 일본군 하사관 출신인 김종원은 여순사건 이후에도 거창양민학살을 주도하였고,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 등의 만행을 일삼다 1960년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아무런 재판과정도 없이 학살되어 암매장되거나 만성리, 민드래미 골짜기, 호명과 봉계동 등지에서 학살된 사람 모두가 이 학교에 수용되었던 혐의자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아직까지 그 규모와 내용이 밝혀지지 않은 채 7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다. 만성리 학살지와 형제묘


    만성리 학살지는 부역혐의자로 잡혀있던 종산초등학교 수용자 중 수백여 명의 민간인들을 끌고 와 집단학살을 자행한 장소입니다. 깊은 골짜기 형태를 한 이곳에서, 군경은 1948년 11월 초순경부터 종산초등학교에 수용되었던 여순사건 부역혐의자들 일부를 학살하고, 협곡과 같은 골짜기 속으로 던져 넣은 후 흙, 모래와 돌로 암매장하였습니다. 사건 당시의 증언을 토대로 한 기록을 보면 1948년 11월 13~14일 양일간 제3차 고등군법회의가 열려 재판 회부자 458명 중 사형언도자가 102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사건이 지난 후 이 골짜기를 지나는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 작은 돌을 계곡에 던져 넣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풍속이 한동안 지속되어 돌탑무덤이 솟아오르기도 하였고, 현재는 2009년에 건립된 여순사건 희생자위령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여순사건 희생자위령비에는 오직 6개의 점(……)만이 덩그러니 새겨져 있습니다. 위령비 건립 당시 전・현직 경찰관 모임인 경우회가 희생자 유족들이 새긴 추모 문구에 이의를 제기했고, 이에 유족들은 사실을 왜곡할 바에는 아무런 문구도 새기지 않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무력으로 자국민을 학살하고, 그 죄적을 은폐하기 위해 희생자들을 암매장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유족들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위령비에서도 사회는 침묵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희생자와 그 유족들이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거나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차가운 현실이 위령비에 새겨진 6개의 점과 함께 무겁게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만성리 학살지와 함께 널리 알려진 이 곳 형제묘는 학살 후 시신을 찾을 길이 없던 유족들이 죽어서라도 형제처럼 함께 있으라고 ‘형제묘’라 이름 붙인 곳입니다.

    여순사건의 부역혐의자가 되어 종산국민학교에 수용되었던 사람들 중 제4차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125명이 1949년 1월 13일 이 자리에서 총살되고 불태워 졌습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여수경찰서 사찰계 형사는 “‘5명씩 총살 한 후에 다시 5명씩 장작더미에 눕혀 5층으로 쌓은 큰 더미 5개, 모두 125명이 매장되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처형은 헌병들이 주도하였으며, 장작더미에 기름을 부어 불을 태웠고 처형된 가족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보초를 세우고 태워진 시신 위로 큰 바위를 굴려서 덮었다고 전해집니다.

    형제묘의 커다란 봉분 한 켠에는 작은 봉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묘에는 정기만, 정기순, 정기덕, 정기옥 남매가 합장되어 있습니다. 정기순 위원장은 여순항쟁 당시 민주여성동맹(여맹) 위원장으로 인민대회 5인의 연설자 중 유일한 여성 지도자였습니다. 항쟁 당시 진압군에 의해 오빠인 정기만과 동생인 정기덕이 사망하였고, 두 형제는 유골조차 찾을 수 없이 형제묘에 함께 매장되었습니다. 살아남은 정기순 위원장과 여동생 정기옥씨도 ‘빨갱이’, ‘부역자’ 등으로 평생을 지탄받으며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동생인 정기옥씨는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모진 일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그마저도 주기적인 경찰의 신원조회 및 감시로 인해 직장을 잃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세상을 비관하던 정기옥씨는 이른 나이에 요절하였고, 정기순 위원장의 어머니는 막내딸을 오빠들과 함께 매장해 주고자 형제묘 옆에 작은 봉분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형제묘에 또 하나의 작은 봉분이 만들어졌고, 정기순 위원장 역시 사망 후 화장하여 그 유골을 형제묘에 뿌려 가족들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형제묘는 여순항쟁의 희생자들과 그 유족의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장소입니다. 희생자가 가해자와 주변인들로부터 ‘빨갱이’로 매도되어 한 평생을 죄인처럼 살아야만 했습니다. 2019년이 된 지금에도 그 자손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기에 우리 과거사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더욱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4. 나가며


    답사를 마친 뒤에는 숙소에 짐을 풀고 워크숍 일정에서 느낀 소회를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석해주신 많은 선배 변호사님들께 좋은 말씀을 많이 들을 수 있었고, 앞으로 더욱 노력하자는 마음가짐을 다잡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상희 변호사님과 위원장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변화는 더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우리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상으로 10월 민변 과거사 청산위원회의 활동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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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19/11/02-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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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위]

민변 노동위-오사카노동자변호단 제 21회 교류회 후기 (1)

인천지부 김연지 회원

안녕하세요.

민변 노동위원회 위원이자, 2018년도부터 인천지부 소속인 김연지입니다.

저는 올해로 21회를 맞이하는 민변 노동위원회와 오사카노동변호사단 교류회 준비팀 일원으로, 처음으로 교류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교류회 준비팀은 노동위의 유일무이한 존재 일당백 이현아 차장님, 민변 노동위원회 국제노동팀장 유태영 변호사님, 교류회 준비단장으로 교류회 동안 통역을 도맡아 해주신 전민경 변호사님, 세미나 1부 발제와 오사카 노변단 입법˙판례 동향에 대한 질의문 작성까지 맡아주신 이충언 변호사님, 아이디어 뱅크 이주희 변호사님, 환영회의 명MC 이종훈 변호사님, 교류회 경험을 바탕으로 꿀팁을 전해주시고 자료집 번역을 담당해주신 최용근 변호사님과 제가 함께했고, 마지막 날 대법원˙민변 사무실 견학 시 통역은 정소연 변호사님이 맡아주셨습니다.

첫째 날, 11월 15일 금요일

올해도 수능을 보는 목요일에는 어김없이 추위가 찾아왔고, 그 다음날인 교류회 첫날엔 오후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렸습니다. 준비팀은 전태일기념관 견학 후 청계천을 따라 전태일다리와 동상을 지나 종로 5가 닭한마리 식당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계획하며, 역사적 의미와 경치를 덧대고 맛집까지 얹은 일정에 스스로 흡족했었습니다. 기대와 달리 사진으로 만난 교류회 첫날 오사카노동자변호단의 변호사님들은 추위에 조금은 지친 모습이었습니다. 야속하게 내리는 비로 인하여 전태일기념관에서 저녁식사 장소까지는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하였으나, 뜨끈한 닭한마리 국물은 몸과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습니다. 첫날 저녁 식비는 노동위원회 대표로 외부 교육을 다녀오신 유태영 변호사님이 부담하시기로 했는데, 노변단 변호사님들께 위와 같은 이야기를 전하자, ‘후배는 계산할 권리가 없다’며 갹출해주셨습니다. 흔쾌히 식비를 부담하겠다고 한 유태영 변호사님과 단호하면서도 재치있게 상황을 정리해주신 노변단 변호사님들이 만들어주신 미담으로, 전해 듣기만 해도 배부른 첫째 날이 지났습니다.

교류회 첫날 일정에 참여한 유태영 변호사님은 “오사카 변호사님들의 호기심 많으면서도 사려 깊고 진중한 모습을 보며, 꽃보다 할배 생각이 났다”는 감상을 남겨주셨습니다.


▲ 10월 26일 준비팀(좌), 11월 15일 교류회(우)

 

둘째 날, 11월 16일 토요일

김해영 국회의원실의 도움으로 동시통역 부스가 설치된 국회의원회관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교류회의 하이라이트, ‘세미나’의 구체적인 내용은 조세현 변호사님의 후기에 자세하게 담겨있으니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긴 시간 동안 이어진 세미나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두 번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모리 히로유키 변호사님의 인사말’이었습니다. 올해 오사카노동자변호단 참석인원은 10명 내외로 교류회가 한국에서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노변단 변호사님들의 참여가 저조했습니다. 20년간 이이온 교류회도 연일 악화되는 한˙일 관계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짐작하며 아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지레짐작하고 아쉬워하는 제게 모리 히로유키 변호사님은 다음과 같이 시원한 인사말로 세미나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일본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하라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대법원 판결은 1965년 한일협정은 청구권에 관한 외교보호권을 포기한 것으로 개인의 청구권을 포기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강제징용이 불법임을 전제로 기업들의 배상책임을 확인하였다. 저를 포함한 오사카노변단은 이와 같은 대법원 판례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일본사회에 대법원 판례의 취지를 잘 전달하는 것이 오사카노변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장면은 세미나의 마지막에서 나왔습니다. 끊이지 않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에 답변으로 전체토론의 분위기는 식을 줄 몰랐고, 사회를 보신 고윤덕 변호사님은 와키타 시게루 교수님께 토론의 마무리를 부탁드렸습니다. 그러자 와키타 시게루 교수님은 “일본 48시간, 한국 52시간을 놓고 비교할 게 아니다. 일본과 한국 모두 OECD 국가 중 최하위이다. EU 기준을 놓고 나아가야 한다”는 말로 우리의 시선이 향해야 할 곳을 정해주시며, 시원하게 시작한 세미나를 깔끔하게 마무리해주셨습니다.

오사카노동자변호단에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변호사 업무를 시작하여, 민변 노동위와 오사카노동자변호단의 교류회에 애정을 가지고 한결같이 참여해주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있기에 민변 노동위와 오사카노동자변호단의 교류회는 어디서, 어떤 주제로 세미나가 구성된다고 할지라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첫 교류회의 소감을 전하며 후기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민변 노동위-오사카노동자변호단 제 21회 교류회 후기 (2)

조세현 회원

 

1. 들어가며

민변 노동위원회와 오사카노동자변호단 간의 제21회 정기교류회가 2019. 11. 15.(금) ~ 11. 18.(월)까지 4일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첫 날 진행된 전태일기념관 견학 및 전태일 동상과 평화시장 방문은 개인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했으나, 둘째 날 국회의원회관에서 있었던 교류회 세미나에는 다행히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첫 교류회 참가임에도 전 일정을 함께 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세미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알찬 경험이었습니다. 이번 참가 후기는 제가 참석한 교류회 세미나를 중심으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 정기교류회 세미나

정기교류회 세미나는 11. 16.(토)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오전 9시 30분에 등록을 시작하여 오후 6시까지 이어지는 상당히 장시간의 일정이었음에도, 발제와 토론을 담당해주신 변호사님들 덕택에 충실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세미나는 오전 10시 민변 노동위 정병욱 위원장님의 개회사와 모리 히로유키 노변단 대표님의 인사말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세미나의 제1부는 한•일 주요 노동 법령 및 판례 동향에 대하여, 신하나 변호사님의 사회로 약 1시간 20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민변 노동위 측에서는 이충언 변호사님께서 故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사고로 인해 추진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시작으로 ‘직장내 괴롭힘’ 방지, 1주 최대 근로시간 52시간 확립 등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해 소개해주셨습니다. 여기서 다뤄졌던 근로시간제도에 관한 내용은 이후 2부 주제로 다뤄졌던 노동자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근로시간규제제도에 관한 문제와도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주요 노동판례로는 크게 근로시간과 관련된 판결(휴일근로수당에 연장근로수당을 중복 가산할 수 없다는 판결과 최저임금 계산 시 법정유급휴일의 임금과 기준시간을 분리 산입한다는 판결)과 근로자성 여부가 문제되는 판결(학습지교사, 방송연기자노조, 코레일 매점운영자 사건) 들에 대해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오사카노동자변호단에서는 타니 지로 변호사님께서 ‘일하는 방식 개혁 관련법’에 대해 상세히 소개해주셨습니다. 구체적으로 ①장시간 노동의 훈칙에 의한 규제, ②고도 프로페셔널 제도, ③ 동일노동 동일임금, ④ 다양하고 유연한 일하는 방식 등에 관하여 설명해주셨고, 개인적으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부분의 ‘불합리한 대우의 금지규정’ 및 ‘차별적 취급의 금지규정’이 우리 기간제법 및 파견법과 비교해 볼 수 있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주요 노동판례 동향으로는 시간외 할증임금에 관한 최고재판소 판결(국제자동차 사건, 의료법인 사단강심회 사건)과 격차시정에 관한 최고재판소 판결(하마 쿄렉스 사건, 나가사와운송 사건)을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발표가 끝난 후에는 30분 간 발표를 담당해주셨던 변호사님들 간의 상호토론이 있었습니다. 타니 지로 변호사님께서는 한국의 직장내 괴롭힘 방지 조문과 관련하여 위 조문이 직장 내의 한정된 문제만을 다루고 있음을 지적하시며, 일본에서 논의되었던 것과 같이 ‘일터 괴롭힘’이라는 조금 더 포괄적이고 넓은 개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는 의견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일본의 개정안들은 표면적으로 노동의 자율성과 유연성을 제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그 취지를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부업•겸업 등을 종용하고, 텔레워크 등을 촉진하는 등 전반적으로 노동자의 생명•건강권의 보호를 도외시하는 성격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일 하는 방식의 개혁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부여된 일말의 여가조차 허용하지 않고, 이를 유휴노동력으로 취급하여 다시 시장으로 내모는 일본 정부의 모습은 한국과도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 시행의 계도기간을 부여하고,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에 ‘일시적인 업무량 급증 등 경영상 사유’를 추가하는 등 제도 도입의 본래 취지를 몰각하는 입장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후기를 작성하며 노동자들을 장시간 노동으로 내모는 양국 정부의 너무나도 닮아 있는 모습에 재차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2부는 노동자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근로시간규제제도의 현황과 과제에 대하여 김도형 변호사님의 사회로 3시간 가량의 발제 및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민변 측에서는 손익찬 변호사님께서 변형근로시간과 노동자 건강권이란 제하의 발제문을 통해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재량근로시간제 등의 변형근로시간제와 근로시간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는 특례업종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발제 말미에서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스스로의 권리나, 과로로 인한 건강권 침해 실태에 관하여 자각해야 한다는 소회를 덧붙여 주셨는데 말씀의 취지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오사카노동자변호단에서는 김용수, 타니 지로 변호사님들께서 일본의 법정노동시간제도와 노동시간제도의 특칙(변형 노동시간제, 플렉스타임제, 사업장 외 노동 간주제와 재량노동 간주제 등)을 상세히 소개해주셨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18. 6. 노동안전위생법이 개정되어 ‘사업자의 노동시간 파악 의무’가 신설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개정법에 따라 사업자는 노동자의 ‘노동 시간의 상황’을 타임카드에 의한 기록과 컴퓨터 등의 전자계산기의 사용 시간의 기록 등의 객관적인 방법 기타 적절한 방법으로 파악해야 할 의무가 부과되었는데, 노동자가 스스로의 노동시간을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다소간 해소되지 않을까하는 긍정적인 기대를 품어볼 수 있었습니다.

지정토론에서는 오사카노동자변호단의 김용수, 타니 지로 변호사님께서 손익찬 변호사님의 발제에 대한 다양한 질의사항을 던져주셨습니다. 특히, 타임카드, 컴퓨터 ON/OFF 시간, APP 등을 통한 노동시간 입증 수단 내지는 노동시간 관리에 관한 부분에 대하여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또한 포괄임금계약에 대하여 일본의 고정잔업대와 비교하여 질문을 해주셨는데, 이에 대하여는 김도형 변호사님께서 포괄임금제는 법정근로시간을 무시하고 임금 지급이 없는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묵인하는 제도로서, 일본의 고정잔업대보다는 부불노동에 가깝다는 답변을 해주기도 하셨습니다.

민변 측에서는 유태영 변호사님께서 오사카노동자변호단의 발제에 대한 토론을 진행해주셨습니다. 유태영 변호사님께서는 양국의 근로시간제도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토론을 진행해주셨는데, 앞선 발제를 다시금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했습니다. 또한 유태영 변호사님께서는 일본의 개정법에 의하면 ‘휴일을 제외하고 연 720시간 이내’라는 상한선을 상당한 장시간의 시간외 노동을 하게 됨을 지적하시며, 이에 대한 추가 설명을 요청하셨습니다. 저 또한 발제문에 ‘휴일 근로 여부까지 포함한 상한은 1년 960시간이 된다’고 언급되어 있어 계산을 해보았으나 끝내 답을 구하지 못해 이 부분이 몹시 궁금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타니 지로 변호사님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해서는 끝내 이해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후기를 통해 이 부분에 대한 변호사님들의 고견을 구하고자 합니다.

제3부는 고윤덕 변호사님의 사회로 1시간 반 가량 전체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앞선 발제와 지정 토론 등에 대한 자유로운 질문과 답변이 오갔습니다. 노동시간제도와 관련한 질의에서 플랫폼 노동자의 지위에 관한 문제까지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중 토론 말미에 와키타 시게루 교수님의 정리 말씀이 가장 감명 깊었습니다. OECD 최하위 그룹에 속하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공통점이나 차이점 등에 천착하기 보다는 우리의 노동법제를 노동자 보호에 보다 선도적인 EU의 기준까지 어떻게 추동해 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자는 그 말씀에서 우리 교류회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3. 공식 환영회

세미나 일정이 모두 끝난 후에는 여의도 운산이라는 한정식 집에서 공식 환영회를 가졌습니다.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탓에 다소 소통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전민경 변호사님의 통역과 정병욱 위원장님의 노력으로 환영회 자리는 무척 화기애애했습니다. 최근 한일 양국의 관계가 경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강제동원 판결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며 앞으로도 민간차원의 교류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자이마 변호사님의 말씀이 인상 깊었습니다. 식사 후에는 민변 노동위와 오사카노동자변호단 측에서 상호 선물을 교환하며 우의를 다지고, 지속적으로 교류회 행사를 이어나가자는 약속을 나누었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교류회에 참가한 신입회원으로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노동법에 대해 더 깊이 있게 공부 해야겠다는 자극도 되었습니다. 일본의 현 상황과 제도를 배우고, 이를 통해 앞으로 한국 노동자들의 권익향상 및 사회의 진보에 대한 고민까지 나눌 수 있는 유익한 자리였습니다. 환영회 자리에서 말씀드렸듯이 앞으로도 오사카노동자변호단과의 교류회가 지속될 수 있도록 저 역시도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소중한 자리를 만들어주신 양국의 교류회 준비단 분들께 감사드리며, 후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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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9/12/0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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