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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위] 제 10회 동아시아금융피해자 교류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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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위] 제 10회 동아시아금융피해자 교류회 후기

admin | 월, 2019/12/30- 20:10

< 세션 1 > 대만의 다중채무문제 입법과정과 미해결 과제

– 김소리 변호사 –

첫 번째 세션은 ‘대만의 다중채무문제 입법과정과 미해결 과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아이치현 변호사회의 츠케 나오야 변호사가 퍼실리테이터로 세션을 진행했습니다. 대만의 우페이리엔 변호사님과 첸체민 변호사님이 대만의 다중채무 문제의 입법과정과 미해결 과제에 대해 발표했고, 우리 민변의 백주선 변호사님께서 한국의 개인채무조정제도의 최근 동향에 관해 발표했습니다.

대만측에서는 대만의 소비자 채무정리 조례에 의한 회생, 청산절차를 중심으로 발표했습니다. 대만측에서는 대만의 채무정리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강제적 사전절차’를 지적했습니다. 대만의 채무정리는 협의, 조정, 회생, 청산 4개의 제도로 되어 있는데, 회생이나 청산 절차로 가기 전에 반드시 협의 또는 조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합니다. 협의단계에서는 사실상 채무자는 금융기관의 부당한 협의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는 점, 이러한 사전절차는 종종 법률요건에 맞추기 위한 형식적 절차로 전락해 자원 낭비 등 비효율을 낳는 점 등에서 문제가 있으며 이러한 사전절차의 강제를 폐지하고 채무자에게 절차선택권을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한편, 대만의 회생제도 변화 과정에 대한 설명도 있었는데, 크게 회생안 인가 결정시 변제노력여부를 고려하게 된 점, 회생안 변제기간의 한도를 6년으로 명문화한 점(2012년 개정), 회생절차 기각 사유를 제한한 점, 채무자가 면책되는 최저 변제비율을 3/4에서 2/3으로 인하된 점을 주된 변화점으로 꼽았습니다.

대만의 청산절차와 관련하여서는 2012년 개정으로 기존에는 채무자의 사치나 낭비로 인한 부분은 면책될 수 없었던 부분이 청산 신청 전 2년 안에 사치나 낭비가 없으면 대부분 면책이 가능해진 점을 긍정적 변화로 꼽았고, 가처분소득 계산 시 압류 등으로 월급에서 강제로 공제되는 부분까지 포함시키는 것이 현재 법원의 다수의견이어서 이 부분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또, 2018년 강제집행법의 개정으로 채무자는 최저생활 기준액의 적어도 1.2배 및 월급의 2/3 금액을 보장받게 된 점을 이야기하며 엄청난 진보라고 밝혔습니다.

백주선 변호사님께서는 한국의 개인 채무조정제도의 최근 동향과 관련하여 개인회생 변제기간상한이 5년에서 3년에서 단축된 점 및 법개정 전 변제계획 인가자들에 대한 소급적용이 불가하다고 한 최근 대법원 판결의 내용, 대법원의 개인파산 신청서류 간소화 권고 등의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또, 한국 도산제도의 개선 방안과 관련하여서 도산전문법관제도의 도입, 직권주의에서 대심구조로의 전환, 파산자에 대한 신분상 불이익 등 차별대우 금지, 파산절차에서의 중지명령 도입, 면제 재산의 관대한 설정, 면책범위의 확대, 파산선고 후 5년 경과시 당연면책되는 제도 도입, 주택에 대한 담보채무에 대하여도 가용소득으로 변제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 생계비와 주거비를 공제한 나머지 금액을 가용소득으로 하도록 명백히 규정, 개인회생절차에서의 생계비의 현실적 적용, 변제기간의 탄력적 운용, 보증채무자의 보호, 파산관재인이나 개인회생위원에 대한 평가제도 도입, 도산 관련 통계관리 개선 등의 필요성을 지적했습니다.


< 세션 2 > 각국의 생활 보호제도와 운용 상황

– 박인숙 변호사 –

두 번째 세션은 ‘대만의 사회 구조의 빈곤 상황과 전망, 대만 공법 구조와 사법상의 부양과의 모순, 계쟁 및 해결 방법’, ‘한국의 공공부조 및 관련 제도의 현황과 평가’, ‘일본의 생활보호제도와 운영 상황’ 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쿄토 변호사회의 비토우 히로키 변호사가 퍼실리테이터로 세션을 진행했습니다. 각국이 위 내용으로 발표를 하고 발표자들이 서로 질의하는 형태로 진행했습니다.

대만의 사회구조법은 1980년에 제정되어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 2015년 개정 후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회구조법은 교육, 보육, 사회복지, 의료, 경찰, 촌(리)의 간부 등 직원에게 사회구조 대상자를 알게 되었을 때에 주무기관에 통보하도록 의무를 정하고 주무기관은 신청 후 5일 이내에 조사하여 긴급구조를 3일 이내에, 의료보조를 15일 이내에, 생활 부조를 30일 이내에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수입세대 및 중수입세대의 신청자격을 1인의 매달 평균소득, 동산 한도액과 부동산 한도액으로 심사를 합니다. 취업알선 서비스, 직업훈련 또는 구제를 대신하는 직업보장에 참가하면 창업자금 보조 또는 교통비 보조가 주어지고 일정기간 및 한도액 내에서 취업하여 증가한 수입은 저수입세대 및 중저수입 세대 신청시에 가정의 총수입 재산 심사시 최장 3년을 한도로 산입이 면제됩니다. 정부나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정부가 위탁한 시책에 참가하면 일정기간 혹은 한도액 내에서 시책 참가로 증가된 수입도 가정총수입을 심사할 때에 최장 3년을 한도로 산입이 면제됩니다.

한편, 대만의 법률구조 기금회는 2004. 7. 1.부터 사회적 약자의 소송 대행 등을 하고 있는데 최근 수년간 부양비 관련 사건이 증가하여 가사사건 중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여 이혼 사건을 뛰어 넘었습니다. 그 이유는 대만의 사회 부조와 법제도로 인한 것으로, 가족의 총수입을 가족 인원수로 나누어 1인당 수입이 최저 생활비 이하이고 가정의 재산이 매년 공표하는 금액을 넘지 않아야 하는데 가족의 범위에 배우자, 일촌 직계친족, 동일 호적 또는 함께 생활하는 기타 직계친족, 종합소득세 상의 부양친족 공제를 받는 의무자를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하면서 가족에서 제외되는 자에 ‘기타 특별한 사정으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고 신청자의 생활을 곤경에 빠트려서 주무기관이 신청자에게 최선의 이익을 고려했을 때에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고 판정한 자’를 규정하고 있어서 가족에 포함되는 자도 법원이 부양 의무가 면제된다는 판결을 하면 가족에서 제외할 수 있습니다. 처자식과 강물 투신자살을 하고 싶어 하는 81세의 부친, 저수입 심사 탈락 사기꾼들에게 속아서 명의를 빌려준 노인, 친부에게 성폭력을 당한 딸이 십수년 후에 친부에게서 부양청구를 당하는 고통에 직면한 3가지 사례를 통해서 위 법제도로 인해서 사회구조의 대상자가 되기 위해서 법원에서 신청인은 과거의 문제를 언급해야 하고 상대방은 법원에 가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양자가 힘든 과정을 겪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노익창 호서대 교수가 발표를 하였습니다. ‘사회보장급여의 이용 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이 2014. 12. 30. 제정되어 2015. 7. 1.부터 시행되고 있으나 인원 및 역량의 한계로 법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생활보호법’은 1961. 12. 31. 제정된 후 1997. 8. 22. 개정으로 최저생계비 개념이 법률에 반영되었습니다. 1998. 9.경 초등학생 강정우군의 아버지가 1천만 원 생명보험금을 노리고 아들의 손가락을 자르고 강도사건으로 위장하여 허위신고한 사건을 계기로 1999. 9. 7.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었고 2000. 10. 1. 시행되었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를 지급받으려면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미만일 것과 부양의무자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엄격한 요건과 낙인효과, 인격적 모멸감으로 인해서 수급신청을 하지 않는 빈곤층이 존재하고 실제로 빈공한 상태이나 수급대상에서 탈락하거나 수급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관할 관청이 근로능력있는 수급자의 경우 자활사업에 참여할 것을 조건으로 생계급여를 지급할 수 있는데 만일 수급자가 자활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 관할 관청이 임의로 파악되지 않는 소득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여 소득을 인정해서 2014. 2.경 서울시 송파구 단독주택 지하에 세들어 살던 세 모녀가 빈곤에 지쳐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두 딸에게 행정청이 각 60만 원 정도의 추정소득을 부과했기에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상이 되어서 기초생활보장급여를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위 사건을 계기로 위 법이 2014. 12. 30. 개정되고 2015. 4. 20. 같은 법 시행령이 개정되어서 실무상 ‘확인소득’이 도입되었습니다.

개정된 법은 최저생계비가 삭제되고 중위소득 개념이 도입되었는데 각 급여가 종류별로 수급요건이 달라져 개별 급여화 되면서 급여의 종류별로 수급자 선정기준 및 최저보장수준이 차별화되어 실질에 가깝게 바뀐 것으로 평가됩니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사항이었던 부양의무자 요건의 폐지가 단계적으로 추진되는 중입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생활보호제도를 이용하는 사람이 인구대비 1.7%밖에 안 되는 상황으로, 빈곤한 사람 중에서 10 ~ 20 % 정도밖에 이용할 수 없는데 국가나 지자체의 창구직원이 상담자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서 되돌려 보내는 신청권 침해가 만연하여 전국 각지에서 굶어죽는 사건이나 자살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006년 이래 일본변호사연합회 등의 요구로 변호사 법무사가 생활보호신청에 대한 운동을 전개하였고 2007. 6.경에 생활보호문제 대책 전국회의를 설립했습니다. 2011년 이후 창구직원의 정보제공의무 위반을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다수 선고되면서 2014. 7. 생활보호법 시행규칙에 보호를 실시하는 기관은 신청이 신속히 진행되도록 필요한 원조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신설되었습니다. 또한 일본은 친족의 부양의무가 생활보호를 적용하는 요건이 아니지만 친족에게 도움을 받으라는 식으로 위법하게 돌려보내는 복지 사무소가 끊이지 않습니다. 생활보호기준을 넘으면 일체 급여를 받지 못해 면제되는 혜택에서 제외되기에 생활보호를 받는 세대보다도 더 어려운 생활을 하는 역전현상이 발생합니다. 보호비 1개월분 이상의 예금이 있으면 생활보호가 개시되지 않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사례관리자가 관리하는 세대가 법률로 80세대라고 정해져 있으나 100세대 이상인 경우도 적지 않고 전문성도 요구하지 않아 복지와 무관한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이 사례관리자로 종사합니다.

한편, 일본은 2012년 봄 인기 코미디언 어머니가 생활보호를 이용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생활보호에 대한 비난을 하면서 자민당은 2012. 12. 총선거에서 생활보호비 10% 삭감과 부정수급대책강화 등의 공약을 내세우며 정권을 탈환하였고 2013. 1.경 사상최대 생활부조기준 인하를 결정하고 2013. 8.부터 3년에 걸쳐 실행하였습니다. 시민들은 ‘전례가 없는 공격에는 전례가 없는 반격을!’을 구호로 1만 건 심사청구 운동에 착수하여 기각 재결된 심사청구에 대해서 1,000명 이상의 원고가 위헌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일본변호사연합회는 일본, 독일, 프랑스, 스웨덴, 영국 미국, 한국에 정통한 연구자와 함께 7개 국가의 제도를 철저히 비교하여 일본에 개정 제안을 하는 생활보호법에서 생활보장법으로라는 서책을 2018. 8. 발간하였습니다.

퍼실리테이터인 쿄토 변호사회의 비토우 히로키 변호사가 많은 질문을 하였는데 특히 부양의무 요건에 대한 질문이 기억에 남습니다. 대만, 한국, 일본의 사회구조의 문제점과 장점에 대해서 알게 되는 좋은 계기였습니다.


<세션 3> 각국의 다중채무자ㆍ생활빈곤자에의 자립 지원, 연대와 협동

– 이연주 변호사-

세션 1과 2가 금융 피해자와 관련한 각국의 입법ㆍ사법 동향과 현행 운영 제도에 대해 살펴보았다면, 세션 3은 각국의 사회단체 들이 금융 피해자들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지원활동, 연대 활동 등이 소개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시민단체 주빌리은행 홍석만 사무국장님이, 대만에서는 LIAO, YI-TING 변호사님(타이베이 변호사회)/ WU, CHUNG-SHEN 준교수님/ KUO, LI-TING 님이, 일본에서는 사토우 미츠유키님(아키타 의존증 문제를 생각하는회 대표)/ 이시쿠로 요시토 님(아키타시복지총무과생활지원담당주석주사)이 각 발표를 맡아 수고해주셨습니다.

한국에서 발표를 맡은 홍석만 사무국장님은 구체적인 자립지원 현황이나 대안을 설명하기에 앞서, 다중채무자의 60~80% 이상은 소득기반이 취약한 저소득층, 노년층에 해당하는 사회적 취약계층에 해당하고,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임을 강조했습니다. 이들이 한 번 부채를 부담하게 되면 이를 변제하기 위해 다시금 추가 대출을 받으면서 걷잡을 수 없는 다중채무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이러한 부담이 결국 한국의 “네모녀 자살 사건”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금융피해자 교류회의 취지가 담긴 서두 발언으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대목이었습니다.

한편, 다중채무자 취약계층의 자립을 지원하는 한국의 현행 정책(① 희망키움통장, ② 국민행복기금, ③ 정책자금대출)을 소개하면서, 저소득층의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오히려 공적 권한을 이용하여 과도한 추심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 등 각 제도의 문제점도 잘 짚어주셨습니다. 한국에서는 금융 피해자에 대한 정부 인식 전환이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오히려 민간 비영리 부분의 자립지원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도 설명되었습니다. 정부가 채무자도 국가의 구성원이자 경제주체의 일원이라는 점을 주목하고, 인식을 전환할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할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중채무자가 한 번 채무를 부담하면 계속적인 채무부담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기적인 관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홍석만 사무국장님의 지적이 매우 타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만 측에서는 법률구조기금회 타이베이 분회, 카드채무 피해자 자구회 등 채무자 자립을 지원하는 정부기관, 민간단체를 소개하였습니다. 특히, 재단법인 불광산 자비 사회 복지 기금회가 긴급한 사건에 휘말려 당장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긴급 구조를 해주는 방식으로 지원을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대만의 망초심 자선 협회는 노숙자 대부분에게 채무가 있고, 불법 명의 대여 등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문제점을 인식하고 노숙자나 빈곤자에게 자립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측에서도 시민단체의 지원활동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곤궁자의 자립에 있어 ‘정직하게 말할 장소 제공’, ‘고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것’을 중요히 여기면서 곤궁자의 존엄성 확보를 강조하는 등 시민단체의 정서적인 지원까지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금번 교류회가 개최된 아키타의 복지총무과에서는 매년 2회 정도 외부기관도 참가하는 사례검토회를 개최하여, 변호사, 법무사, NPO법인 등 다양한 구성원이 참가해서 곤궁자 지원 사례를 토론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각 기관의 지원 내용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상호 협력 관계를 구축하여, 실제로 곤궁자를 지원할 때 다중적이고 적절한 지원이 있을 수 있다며 상당한 자부심을 내비췄습니다. 우리나라도 금융피해자에 대하여 정부보다는 NPO단체가 먼저 문제점을 인식하고 활발히 운동을 전개해 온 만큼, 관계 협력기관 간의 공동 연구 체계 구축이 자주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 측의 발표를 마지막으로 세션 3의 발표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마지막 세션이라 시간이 부족하여 각 국의 발표자간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 많이 아쉬웠지만, 한국의 금융피해자 지원 제도의 문제점, 개선 방향을 알 수 있었고, 각 국이 실제 금융피해자 지원을 어떻게 해가고 있는지 보아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 저녁 만찬 스케치 >

– 조미연 변호사 –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이어진 교류회는 저녁 만찬으로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교류회 발표가 진행된 아키타 국제학교에서 단체로 일본 측에서 준비한 버스에 탑승하여 만찬장으로 이동하였고, 만찬장에 들어가서는 참가자들 이름표에 적힌 알파벳으로 배정된 테이블을 찾아 삼삼오오 모여 앉았습니다. 테이블마다 구성원이 다르니 특유의 분위기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겠지만, 건배할 때만큼은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공통된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저녁 만찬은 크게는 각국의 대표가 나와 교류회 소감을 나누면서 건배 제의를 하거나 서로가 준비한 선물을 주고받는 시간이었고 작게는 각 테이블에서 만난 참가자들 사이 인사를 나누며 소소한 공감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각국의 대표로 나와 발언한 사람들은 저마다 시간이 짧아 아쉽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하루종일 진행되었던 교류회 일정으로 피곤하고 많이들 지쳤을 시간이었는데요. 다들 단상 위에 오르는 순간 상기된 표정과 빛나는 눈빛으로 저마다의 소회를 밝히는데 어찌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던지요. 직접 마주한 자리에서의 온기가, 교류회 참가자들을 이렇게 뜨거운 열의에 찬 모습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위 사진 오른쪽 세 명의 가족 이야기입니다. 교류회의 포문을 열었던 기조연설 발표자 킨조가쿠인 대학의 오오야마 교수님과 남편 그리고 딸의 모습인데요. 운이 좋게도 알파벳 J 테이블에 같이 자리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오오야마 교수님 기조연설 이후 함께 참가했던 한국 참가자들과 발표가 정말 훌륭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부터 꼬마 숙녀님의 나이는 이제 4살이 되었고 작년 한국 교류회에 함께 참가했었다는 사실 등 서툰 영어와 통번역 어플 등을 활용한 대화였지만 기조연설자와 만찬 자리에서 나눈 대화는 또 다른 기쁨을 가져다줬던 것 같습니다.

각자 테이블에서 이야기꽃이 피어가는 과정 속에서 틈틈이 진행되었던 각국 대표자들의 이야기도 색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사실 단상 위에서 발언하는 사람들이 교류회 규모가 커진 만큼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모든 시간에 다 집중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위 사진의 한국 금융피해자협회 윤태봉 회장님께서 발언에 앞서 “ 내 얼굴이 빨간 이유는 술에 취해서가 아닌, 술을 잘 못해서일 뿐입니다.” 라고 하신 안내? 말씀이라던가 각국에서 다양한 술과 과자 등 선물을 준비해와 교환했던 장면들은 비교적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웃음). 물론 선물 내용이 궁금해서 유독 귀를 쫑긋 세웠던 것 같기는 하네요.

위 사진은 일본 변호사님과 한국 파산회생변호사회 김관기 변호사님이 대만 측에서 가져온 선물을 받아든 장면입니다. 교류회를 통해 각국의 금융피해사례, 정책 및 입법현황 뿐 아니라 소소한 먹을거리 등 선물을 나누면서 오가는 정이 또 있나 봅니다. 한층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던 것 같습니다.

저녁 만찬의 통역은 비교적 본 교류회 때보다 간소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양방향 통역은 위 사무국장님이 수고를 해주셨고, 중국어와 일본어의 양방향 통역은 본 교류회 통역 중 한 분이 맡아주셨습니다.

비록 통역은 간소화한 자리였지만, 참가자들 사이 마음의 거리는 훨씬 좁혀질 수 있었습니다. 같은 테이블의 한 일본 참가자는 한국에 방문해서 행사에 참가 했던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활동가라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고, 대만의 한 발제자는 알고 보니 동갑내기 친구였는데 생각지 못하게 LOL 이라는 게임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 선수단의 팬이며 주로 사용하는 게임 캐릭터가 무엇인지 등까지 예기치 못한 취미 이야기까지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갑자기 대만과 중국이 하나의 국가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아 당황하기도 했었고요. 그렇지만, 교류회 내내 무언가 차오르는 기쁨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책으로 읽었던, 통계로 그렇구나. 라고 이해했던 부분들을 각국의 참가자들이 생생한 음성으로 전달했던 자리. 그런 자리에 이어서 ‘어떤’ 참가자들이 함께했는지를 직접 눈을 마주하고 손을 맞잡으며 이야기했던 만찬 시간. 맛있는 음식과 아키타의 깔끔한 사케가 같이 먹고 마시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만큼 잘 어우러졌던 기회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아키타 풍경스케치>

– 김재희 변호사 –

(1) 아키타로 떠나던 첫 날(2019. 11. 08.)

< 도쿄 하네다공항 >
– 아키타는 한국에서 직항이 없어, 도쿄 하네다 공항을 경유하여 갔습니다. 아이리스(김태희, 이병헌 주연)라는 드라마 방영시 배경으로 아키타가 나왔고, 당시 아키타행 직항기 운항이 되었었다고 하나 현재는 한국에서 아키타로 갈수 있는 직항은 없는 상태입니다.

– 도쿄 하네다 공항 전망대에 도착하여 인증 샷

 

<아키타공항>

– 아키타 공항에 도착하자, 제일먼저 만난 것은 아키타 강아지 인형~

일본의 대표적인 견종으로 아키타 견종이 유명합니다. 일본 황실에서 아키타 견종을 많이 아껴 황실 소수의 사람만 이 견종을 키우고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 아키타 공항 앞에서 인증샷

 

–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메뉴로 기리탄포 라는 아키타 향토음식을 먹기 위해 들른 음식점 앞에서 찍은 한 컷입니다.

 

(2) 둘째날(2019. 11. 09.) – 학술대회일

제10회 동아시아 금융피해자교류회는 아키타 국제교양대학에서 열렸습니다.
아키타 국제교양대학은 2004년 미국의 인문학, 사회과학, 어학 등 교양과목에 중점을 둔 교양대학인 Liberal Arts College를 본 따서 설립했고, 모든 과목을 영어로 수업한다고 하네요. 47개국 185개 기관과 인턴쉽을 맺고 있어서 학생들은 대학생활 4년중 1년은 해외에서 공부하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키타 교양대학은 건축물이 독특하고 층고가 낮았습니다. 건축물들 사이에 어우러진 단풍이 아름다웠습니다.




 

학술교류대회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발표는 기조연설이었습니다.

기조연설은 일본 킨조가쿠인(金城学院)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오오야마교수는 일본사회에서 파산신청 건수가 급증할 무렵, 다중채무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오오야마 교수는 기조연설자로 나서 ‘동아시아 다중 채무 대책의 전개’라는 주제로 연단에 올라, 일본의 지난 40년과 한국 대만의 지난 10년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한중일 금융피해자교류가 시작된 역사, 연결된 지점에 대해 발표를 하였습니다.

오오야마 교수의 기조연설 발표를 들으면서, 동아시아금융피해자교류회가 왜 생겼고, 상호교류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 오오야마 교수의 발제 모습

-오오야마 교수의 발표자료(한국어, 일본어, 대만어로 모두 준비한 PPT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점심시간>
점심은, 대학 내 카페테리아로 이동하여, 준비된 도시락으로 먹었는데, 작은 도시락에 아기자기 닮긴 반찬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커피브레이크>
-세션 2와 세션 3 중간에 커피브레이크가 있어, 역시 카페테리아로 이동하여 준비된 다과와 함께 커피를 마실 시간이 있었습니다. 단풍으로 물든 교정을 지나 커피를 마시러 가던 발걸음이 참으로 가벼웠습니다.


 

< 교류회장 >
– 커피브레이크가 끝나고 돌아온 교류회장에서 한국에서 오신 분들 모두 모여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 만찬장-간친회 >
– 한국, 대만, 일본의 대표자들은 각 국에서 준비해온 선물을 서로 나누며 만찬행사를 시작했습니다. ^^ 각 테이블에는 각국에서 오신 분들이 섞여 앉아 짧은 영어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3) 셋째날(2019. 11. 10.) – 자유시간

<아키타미술관>
–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 안도 타타오가 설계했다는 미술관으로 들어가면서부터 인테리어가 남다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심한 시멘트 벽, 나선형으로 높게 설치된 계단을 올라 나오는 곳은 미술관 카페였습니다. 잔잔한 물이 찰랑대는 것을 바라보며 차를 마실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 가쿠노다테(무사마을)>
-가쿠노다테는 일본에서 작은 교토라고 불리는 정취가 감도는 관광명소로, 옛 무사들이 살던 마을이라고 합니다.




<아키타 센슈 공원>
– 아키타 센슈공원은 아키타 영주 사타케 요시노부가 1604년에 쌓은 구보타성의 옛터에 만들어진 공원입니다. 일본 벚꽃명소 100선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라는데요. 가을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단풍이 꽃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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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왜 거리로 나섰는가

 

류하경 회원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권과 재판거래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우리는 대법원 동문 앞에서 지난 6월 5일 “사법농단규탄 법률가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전 11시 30분 취재열기는 뜨거웠다. 많은 수의 변호사, 법학교수들이 분노 담긴 규탄 발언을 쏟아냈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 선언문 낭독이 있었다. 선언문은 기자들에게 사전에 배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선언문 말미에 농성돌입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5일전인 5월 31일 초동모임을 갖고 긴 토론 끝에 천막농성을 결의했다. 이 내용이 알려질 경우 보안상 문제가 생겨 천막농성 시작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어서 비밀유지에 만전을 기했다.

 

낭독자가 선언문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시대를 밝히는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되새기며, 그리고 법원에 대한 분노를 모아 위와 같은 내용으로 법률가 시국농성을 선언합니다.”

 

문장이 마무리되는 그 때,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투쟁 노동자들이 미리 준비한 천막을 대법원 동문에서 서초역 6번 출구로 가는 인도 위에 펼쳤다. 10여초나 되었을까 천막은 금세 설치되었다. 마이크를 잡고 소리쳤다. “지금 농성천막이 설치되었습니다. 현 시간부로 법률가 농성 시작을 선언합니다. 자, 참가자 여러분 모두 천막으로 가서 빨리 앉아주십시오.” 법원 경위와 주위에 서있던 경찰들은 우리 쪽으로 다가올 엄두도 내지 못했다. 너무나 순식간이었고 천막을 지키려 달려간 우리 숫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함성과 박수로 농성이 시작되었다. 오늘까지 10일차 노숙농성이다.

 

1971년 최초의 사법파동이 있었다. 판사들이 공안사건에 자꾸 무죄를 내리는 것이 박정희는 맘에 들지 않았고 결국 서슬퍼런 군부독재가 양심껏 재판하는 판사들을 손보기 시작하자 이에 법원 전체가 들고 일어난 것이다. 독재자 박정희의 칼은 검찰이었다. 서울지검 공안부는 대표적인 소신 판사인 이범렬 부장판사를 표적 수사하여 관례상 접대를 이유로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 접대자체가 전혀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법원은 시기와 대상의 형평성을 보건대 정황상 소신 판사에 대한 표적수사로 결론지었고, 이를 독재정권이 법원의 독립성에 도전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전국 법관의 1/3인 153명의 판사가 사표를 제출했다. 박정희는 법무부장관에게 수사중지를 지시하고 대법원장은 법관처우개선을 약속하면서 사법파동이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당시 대법원장을 찾아가 법관들의 항의를 전달한 7명의 판사 중 스스로 사직한 홍성우, 김공식 판사를 제외한 나머지 최영도, 목요상, 김인중, 금병훈, 장수길 등 5명의 판사는 모두 재임명에서 탈락했다. 이후에도 1988년 2월 소장 판사 335명이 5공화국에서 중용되었던 김용철 대법원장 재임명을 반대하며 성명을 발표하면서 시위하여 결국 김용철 대법원장이 사퇴하였고(2차 사법파동), 1993년 6월에는 판사 40여명이 군부독재에 협조한 사법부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며 항의하여 대법원장이 사퇴하기에 이른 일도 있다(3차 사법파동). 그리고 2003년, 판사 160여명이 기수 서열에 따른 보수적 남성 법원장만이 대법관이 되는 관례에 항의하며 대법관 제청에 반대하는 연명을 제출했다(4차 사법파동).

 

이처럼 법원은 지난 군부독재 시절 권력의 폭압적 분위기에서 그릇된 재판을 했거나, 정당한 지휘권과 인사권을 침해당한 역사가 있다. 그런데 작금의 사법파동은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다. 법원이 사사로운 제 이익을 위해서 스스로 정권에 부역한 것이다. 특히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법원이 박근혜 정권과 거래한 재판들이 모두, 노동자·사회적약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가장 마지막으로 법원에 기댄 사건들이라는 점이다. 1차~4차 사법파동에서 피해자가 법원 또는 판사였다면, 이번 사법파동에서는 법원과 판사가 가해자가 되었다. 그래서 사법파동이 아닌 “사법농단”이라고 역사에 기록해야 한다.

 

문제가 된 대법원 판결들을 살펴보니, 사법농단의 피해자는 투쟁하는 노동자, 가난한 서민, 독재의 폭력에 저항하다가 희생된 과거사 피해자들이었다. 법원은 제도에 희생된 약자를 권력에 아부하기 위한 ‘협상카드’로 사용함으로써 이들을 두 번 죽였다. 대법원이 정권의 하수인이 되었다. 강요에 의한 굴복이 아닌 자발적·적극적 부역이기에 이는 조금도 감경될 수 없고 오히려 가장 엄하게 가중처벌 되어야 할 역사범죄다.

 

변호사도 중요한 직접 피해자다. 재판이 이 모양이면 우리가 쓰는 서면이 다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재판이 이 모양이면 국민이 권력자를 찾아가지 무엇 하러 변호사를 선임하겠는가. 변호사는 독립성과 공정성을 스스로 내팽개쳐 버린 법원에서 더 이상 재판을 할 수 없다. 심판이 부패하고 경기장이 무너져 내렸는데 선수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시합 준비에만 매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

 

대법원 앞에서 법률가들이 천막 노숙농성에 돌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일상적이지 않은 사태에 일상적으로 대응할 수는 없다. 초유의 사법농단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에 법률가들이 책상머리와 법정을 벗어나 초유의 노숙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피해 당사자들 외의 국민 대다수는 이 사태가 어떻게 역사를 후퇴시켰는지, 그 피해의 규모와 향후 예방의 필요성에 대해 크게 절감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법농단에 대한 사회적 파장은 지금보다는 더 커져야 한다. 독립적이며 공정하여 시시비비를 가리고 정의를 세우는 주춧돌이어야 할 법원이 썩어버리면 힘의 논리와 권모술수만이 지배하는 정글에서 모두가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문명의 파괴다. 역사의 종말이다. 대통령이 권력을 팔아먹은 국정농단에 버금가거나 이를 능가하는 심각한 사태다.

 

그렇다면 사안의 엄중함을 누구보다 깊이 알고 있는 우리 법률가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야 한다. 법률가들이 행동함으로써 사회적 공론을 주도하고 토론의 장을 열어,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이 사법농단 사태를 부각시켜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거리로 나서게 되었다.

 

금, 2018/06/1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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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대구지부 조직활동의 가장 큰 특징은 매주 목요일 만나는 점심 회의에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항은 점심 모임 회의에서 보고되고 결정되며, 부설기관인 인권센터의 소송구조사건 변론상황도 함께 공유하고 있습니다. 지난 기간동안 있었던 변론사건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2017. 8~ 2018. 3.)

1. 원폭피해소송

17. 8. 3. 원폭기자회견 3

2017년 8월 3일 최봉태 변호사를 단장으로 해서 대구지부에서는 원폭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조정 신청을 대구지방법원에 제출하였습니다. 미국 정부와 원폭제조사‧한국 정부를 상대로 원폭 피해자들의 치유, 권리규제를 위한 법적 투쟁을 시작하기로 했으며, 한국인 피해자들이 미국의 원폭 사용이 위법 행위라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당사자들이 제기한 조정 신청 취지는 원폭제조사에 원폭 투하 행위의 위법성을 묻고, 미국 정부의 사죄, 대한민국 정부의 피해자 구제를 위한 책임 있는 행동 등을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8월 21일 서울중앙지법으로 이송되어 9월 18일 우리 정부만을 대상으로 첫 조정 재판이 열렸으나 조정불성립 되어 현재 재판 중입니다.

 

2. 대구 여중생 성폭행  항고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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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40대 중반의 남성 학원 원장이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 수강생인 중3 여학생과 늦은 밤, 아무도 없는 불 꺼진 학원 강의실에서 문을 잠그고 성관계를 가졌으며 다음날 학생이 학교 보건교사 등과 상담 후 경찰에 성폭행을 신고하여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017년 3월 서부지청은 아동‧ 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강간) 혐의에 대해 피의자가 폭행, 협박 또는 위계, 위력을 사용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 없음 불기소 처분을 내렸습니다. 피해 여중생 측 법률대리인을 맡은 박정민 변호사는 위력에 의한 강간 또는 아동복지법상 성적 학대행위라며 2017년 9월 검찰에 항고장을 제출하였습니다. 대구고등검찰청은 아동복지법위반에 대한 항고를 받아들여 고검에서 직접 수사해 처리하는 직접경정(재기수사) 결정을 하였고, 아동복지법위반(아동에대한음행강요·매개·성희롱등)으로 기소하여 현재 재판 진행 중입니다.

 

3. 박성수 씨(2) 명예훼손 사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전단지를 만들어 전국에 배포한 혐의(명예훼손 등)로 구속기소된 사회운동가 박성수씨 사건은 민변본부의 김인숙 변호사와 민변대구지부 이승익, 류제모, 김미조 변호사가 주축이 되어 변론을 진행하였습니다. 1심에서 전부유죄,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투어진 명예훼손죄에 대하여 무죄, 정보통신법 위반에 관하여 일부 유죄‧ 일부 무죄, 집시법위반과 정통법 일부 유죄에 관하여 벌금 200만원 선고받았습니다. 현재 상고심 계속 중에 있습니다.

박성수씨가 만든 전단지를 대구시당 앞에서 배포한 혐의(명예훼손)로 재판에 넘겨진 변홍철씨와 신동재씨 역시 각각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대구지부는 201711월부터 신입회원 사무실 방문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목요일점심모임 회의를 마치고 참석한 회원들과 함께 사무실에서 다과와 담소를 나누는 일정입니다. 사무실에서 변호사님들을 뵈니 더욱 더 반가워하시고 변호사로서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 전달 등 짧지만 뜻깊은 소통의 시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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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에 본부 소속 권영국, 김동창 변호사님께서 경주에 사무소를 개설하면서 대구지부소속 회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작년 송년회에 참석하신 두 분 사진으로 대구지부 소식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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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3/2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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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위가 주관하여 3월 6일부터 3월 31일까지 총 10강으로 진행된  <제 7회 노동법 실무교육>을 수료한 신입변호사의 수강후기입니다.

노동법 실무교육 수강 후기

 

박용범

 

  한가롭던 2월 중순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민변 노동법 실무 떴어!

  그렇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민변 노동법 실무교육 공지가 언제 뜨나 기다리고 있었다. 우연히 SNS에서 공지를 보고 한번 들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참석한 게 아니라 이미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2월 한 달 동안 아무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면서도 이거 하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아! 3월에는 민변 가서 노동법 공부해야지.

  민변 노동법 실무교육에 가겠다고 결심한 데에는 학교 선배의 조언이 컸다. 작년에 민변 교육에 참석했던 선배로부터 정말 훌륭한 강의이니 나중에 꼭 들으라는 얘기를 들은 때부터 이미 부러움 반, 기다림 반의 심정으로 나중에 꼭 참석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2016년 민변에서 했던 실무수습의 좋은 기억 때문이다. 너무나도 더웠던 2016년 8월 민변에 와서 민변 노동위원회와 법무법인 시민에서 실무수습을 했던 경험은 나의 짧았던 로스쿨 생활 중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꼽고 싶다. 그리고 그때부터 결심하고 있었다. 변호사시험을 치고 나면 꼭 다시 민변에 가야겠다고.

  시간을 더 거슬러서 내가 로스쿨에 와서 왜 처음으로 노동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생각해본다. 내가 다닌 로스쿨은 이른바 세무특성화 로스쿨이었는데 입학 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세법 수업을 많이 들어야 취업이 잘된다는 말이었다. 이런 말에 대해선 막연한 거부감을 느꼈다. 이왕에 법을 공부하게 되었으니 취업보다는 다른 뭔가를 하고 싶었다. 공익활동에 관심에 있다면 적어도 노동법은 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일단 노동법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듣다보니 좀 많이, 네 과목이나 듣게 되었다. 꼭 집어 구체적으로 말하긴 쉽지 않았지만 돈 많이 버는 자리보다 공익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자리면 좋겠다는 생각, 세무나 기업 관련 사건보다는 노동사건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이어져 노동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민변 노동법 실무교육에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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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변에서의 노동법 강의는 역시 기대한대로 모두 훌륭했다. 내가 감히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평가한다는 건 언감생심이지만, 한 가지 말하자면 모든 강의가 각각 다른 방식으로 훌륭해서 더욱 좋았다. 한 강의에서는 모든 노동 사건의 유형을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해서 배웠고(이 표는 취업하면 꼭 사무실 책상에 붙여놔야겠다), 산재보험 신청절차를 실제 진행된 기록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배우기도 했다.(생각했던 것보다 신청 서류가 무척 복잡해서 놀랐다. 변호사는 의학까지 알아야 되는 걸까?) 또 이제는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유명한 사건을 직접 담당하신 변호사님으로부터 직접 그 사건에 대해 듣기도 했고, 흠모해 마지않던 변호사님의 강의는 한마디 한마디를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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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출발하는 신입 변호사로서 가졌던 진로와 공익활동에 대한 고민, 또 내가 과연 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들이 이 강의를 듣고서 시원하게 해결되었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같은 길을 지나서 저 멀리까지 나아간 선배 변호사님들의 존재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주었다. 역시 고민도 혼자 할 것이 아니라 밖에 나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고민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변호사로서의 첫발을 떼어 보려고 한다. 내가 과연 어떤 변호사가 될 수 있을지는 지금부터 내 손에 달릴 일이겠지만, 2018년 3월, 변호사시험을 치고서 처음으로 들었던 이 노동법 실무교육을 앞으로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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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4/2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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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위] 2017 노동위 전체모임 후기

와 가을이네!

신경주역에 도착하는 열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여갈 때 즈음,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신경주역은 KTX만을 위해 지어진 역이기에 경주 시내와 멀리 떨어져 눈에 걸리는 건물도 없었고, 약간의 나무와 멀리 보이는 논밭, 능선들이 가을이 왔음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우리를 마중나와주신 경주인권센터 집행위원장님은 멀리까지 운전하여 오시고 꽤 기다리셨을 것임에도 지친기색 하나 없이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주셨다.

황금 들녘과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능선을 구경하며 한 시간여를 달려서 권영국변호사님께서 예약해놓으신 식당에 도착했다. 구시가지 골목 안쪽에 자리한 식당은 외지인들은 잘 모르는 식당이라고 했다.

푸짐한 한 상에 교대역의 슬픈 밥들을 먹던 변호사들은 정말 행복한 얼굴로 밥을 먹었다. 맛있는 식사에 빠질 수 없는 친구인 막걸리를 곁들였는데, 경주법주막걸리는 지금 쌀 소비량이 최저를 찍는 이 시점에 수입산 쌀을 섞어 쓰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배도 부르고 해서 다음 장소인 경주노동인권센터까지는 걸어가기로 했다. 식당에서 걸어가는 동안, 3층을 넘어가는 건물이 거의 없었다. 프렌차이즈 가게들이 적은, 왕복 1.5차로 정도 되는 길을 걷다보니, 권영국변호사님께서 하신 ‘경주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경북노동인권센터는 경주 번화가에 인접해 있었는데,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보고 접근하기 좋게 되어있었고, 넓은 사무실에, 주방을 갖추고 창밖이 트인 환경이 참 신기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들어와서 우리가 아니더라도 북적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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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일정은 경북지역 노동현안에 대해서 들어보는 자리였다. 메인은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문제였다. 아사히 글라스는 일본기업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부지, 세금면제 등의 엄청난 혜택을 받고 있으면서도, 최저임금인 비정규직(불법파견)으로 공장을 채우고.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고자 노동조합을 만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하루의 휴무일 이후에 해고해 버린 ‘엄청난’ 기업이다. 이렇게 해고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분들은 오랫동안 투쟁을 계속 해왔고, 최근에 노동부에서 이러한 아사히 글라스 비정규직에 대하여 불법파견이므로 직접고용하라는 시정지시를 내렸다고 했고,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관심이라고 했다. 사업장이 구미에 있고, 전통적으로 유명한 사업장도 아니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가 어렵다고 하셨는데, 앞으로 좀 더 관심을 갖고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아사히 글라스 측에서 노동부의 시정지시를 이행하지 않기로 결정하여서 앞으로 추이를 지켜보아야겠다.

아사히 글라스 지회의 얘기 외에도 투쟁에서 승리한 발레오만도 노동자의 발언도 들었고, 다른 경북지역 노동현안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던 뜻깊은 자리였다.

간담회가 끝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위원장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로, 경주지역에서 나는 향토 특산물(?)인 천년한우를 먹게되었다. 망언처럼 들리지만, ‘소고기는 금방 질린다’라는 말을 가끔 하는데, 정말 넉넉한 마음으로 고기를 시켜주셔서 고기로만 배를 채우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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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른 배를 안고 우리는 안압지로 향했다. 사실 이 코스는 2012년 여름 내일로 여행에서 굉장히 좋았던 인상이 남았던 내가 강하게 추천한 것이었는데, 주말이고 단풍철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굉장히 많아서 예전에 느꼈던 고요한 기분은 느끼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조명을 켠 안압지와, 안압지를 나와서 월성터, 첨성대를 지나 대릉원 인근을 거쳐 황리단길에 이르는 여정은 가을의 선선한 바람과 겹쳐서 얼굴을 상기시켰다. 물론 황리단길로 오는 직선 코스가 아니라 빙- 돌아서 오는 바람에 다리가 아프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노동위3

결국 술은 경주에 계신 분들이 마련하신 노상(!)에서 마시게 되었는데, 이것이 정말 대단했다.

나무가 무럭무럭 자란 봉황대가 보이는 공원에서 자리를 깔고 둘러앉아 수제맥주를 마셨는데, 이것이야말로 경주에서 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약간 쌀쌀하기는 했지만, 좋은 사람들과 좋은 술 그리고 좋은 풍경과 공기. 이보다 더 멋진 술자리는 한동안 경험하지 못할 것 같다.

날이 점점 더 추워져서 숙소로 술자리를 옮겼다. 여기에서는 현재 노동위의 상황과, 앞으로 어떻게 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들이 이어졌고, 새벽 4시쯤 자리가 파했다.

체력이 좋은 것인지 의지가 뛰어난 것인지, 권영국변호사님께서 직접 부탁하신 경주문화원장님의 문화해설이 준비되어서인지, 많은 변호사님들이 늦게 잤음에도 제 시간에 일어나서 아침도 먹고 약속시간에 거의 늦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둘째날은 태풍 ‘란’의 영향으로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정말 날아갈 뻔하기도 하였고, 까마귀떼가 바람에 휘청거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문화원장님의 강의는 단지 문화재의 양식에 대한 설명에 그치지 않고 그 바탕이 되는 역사를 곁들여 설명해주셔서 더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다.

점심으로 물회를 먹었는데, 다른 부재료가 잡다하게 많이 들어가지 않고, 배와 신선한 물회의 조합은 정말 깔끔하고 맛있었다. 그 이후에 약간 시간이 남아 황리단 길을 다시 구경이나 해볼까하였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포기하기로.

다시 신경주역으로. 사실 이번 모임에서 처음 뵌 변호사님들도 많았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사람은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 만나는 법이니까.

월, 2017/11/06-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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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처 레터”는 우리모임 회원 여러분께 드리는 사무처 구성원들의 편지입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질문하는 퀴어들!

장길완 간사

출처: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안녕하세요 민변 회원여러분, 사무처에서 상근하고 있는 장길완 간사입니다.

제가 뉴스레터로는 처음 인사드리는데요, 항상 사무처 공간에서 얼굴 맞대며 반갑게 인사드렸었는데, 이렇게 글로 인사드리니까 참 쑥스럽고 그렇습니다^^; 글재주가 없어서, 무슨 이야기로 활동 소식과 인사를 드릴까 하다가,,,! 제 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 소식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퀴어-앨라이, 그리고 혐오세력 모두에게 공평한(?) 무더위가 있었던 지난달 7월 14일 서울광장에서의 서울퀴퍼 참가 소식을 전해 드릴게요! (길어도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드려요)

민변은 올해도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소수자인권위원회,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주관하는 부스를 운영하였고, 회장님 총장님 위원장님을 포함 30명이 넘는 회원들이 함께했습니다. 광장에 도착하고 입구를 통해 들어갈 때부터, 장장 8시간 동안 6 색깔 무지개를 질릴 정도로 봤는데요, 저기도 무지개, 여기도 무지개, 민변 깃발도 무지개, 그래서 오히려 무채색이 눈에 띌 정도의 벅찬 분위기였습니다. 당일 민변 부스에서도 퀴퍼의 전통에 맞춰 형형색색의 무지개 굿즈들을 쌓아놓고 후원금을 모금했고, 만약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률이 제정된다면 어떤 조항이 들어가면 좋을지? 퀴어-앨라이들의 의견을 받았습니다.

포스트잇을 두 통이나 쓸 정도로 많은 분이 의견을 남겨주셨습니다.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한 시민들의 의견을 토대로 민변이 결합할 활동이 정말 많다고 느꼈습니다.

민변 프라이드 플래그 정말 이쁘죠? 디자인은 박한희 회원께서, 기수는 김동현 위원장이 해주셨습니다. 금손!

김-치- 사진만 찍으면 어색한 변호사들… 신나는 그 날의 기운이 여기까지 전해지네요

(비온뒤무지개재단은 한국여성의전화와 함께 행진 트럭을 운영했고, 올해도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한국여성민우회, 장애여성공감 등 페미니스트 단체들의 부스와 난민인권센터,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민주노총 등 사회운동단체들의 부스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각 단체들의 부스에서 파는 굿즈가 너무 이뻐서 정신없이 업어 오다보니 다음 날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 지갑 눈 닫아…)

올해 서울퀴퍼에서는 더욱 페미니스트-퀴어와의 연대를, 사회적 소수자들 간의 연대를 두드러지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성 인권과 성소수자 인권, 그리고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로 위치 지어 지는 이들의 인권은 분리되어 생각될 수도, 분리되어 보장받아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이 여성으로 위치 지어지는 불평등,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장애가 ‘장애’로 배치되는 불평등, 난민-이주민을 ‘잠재적 위협’으로 상상하는 불평등, 성소수자가 일상에서 지워지고, 존재를 부정당하게 되는 불평등한 현실 등, 사회적 소수자가 불평등한 조건에 놓이고, 차별을 경험하는 것은 다층적이고 다면적이고, 공적/사적의 영역에 상관없이 경험하는 것이며, 이러한 불평등한 구조는 교차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여성과 남성, 두 가지의 성별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그 두 가지의 성별만이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라는 생각, 이러한 두 개의 성별 중 ‘여성’이라는 범주가 만들어지고, 그 범주에 위치된 사람들에게 강요되는 불평등과 폭력의 문제는, 성별이분법이라는 문법 하에 퀴어가 경험하는 차별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서로의 차이가 절대 공존할 수 없고 이해될 수 없는 간극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러한 차이를 기반으로 한 소수자들의 연대가 결국 교차적인 구조적 차별을 없애고, 서로 서로의 불평등한 위치를 바꿔나갈 힘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특정한 관계(이성애), 특정한 성적 실천(여성성, 남성성에 맞춘 젠더롤), 특정한 몸(지정성별과 ‘동일한’ 몸)만이 정상으로 여겨지고, ‘정상’의 위치를 점유하는 이들만이 1등 시민으로 존재하는 사회에 저항하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인식의 지평을 열어가는 모습들은 올해 서울퀴퍼에서 더 두드러지게 볼 수 있었습니다. 참여한 많은 이들이 혐오세력에 기죽지 않고, 광장에 모인 다양한 서로의 존재들을 축하하고 자긍심을 북돋는 시간이었습니다.

아 물론 혐오세력은 날씨가 엄청났는데도 불구하고 몇 년째 계속 시청광장 일대에서 동성애 축제를 반대한다고 외쳤습니다. (퀴퍼에는 트랜스젠더, 양성애자 등 보다 다양한 성적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오는데 말이죠..?) 서울퀴어문화축제는 2015년부터 시청광장에서 진행되었는데, 그즈음부터 한 차례도 빠짐없이 혐오세력이 방문(?)해주었습니다. 시청광장은 아마 회원 여러분에게 익숙한 공간이실 텐데요, 그 공간 자체가 시민들이 광장을 통해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민주주의를 열어가기 위해 모였던 공간이고, 610 민주항쟁부터 최근의 촛불집회까지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던 곳이니까요. 이렇게 역사적인 공간인 시청광장에서, 그간 성소수자를 사회 구성원으로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한국 사회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를 가로지르는 퀴어들이 그 경계를 무너뜨리고, 차별과 낙인을 넘어 다양한 성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자고 자신을 드러내는 서울퀴퍼가 개최되는 것 자체가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혐오세력은 공적 공간에 저렇게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축제하는 게 너무 싫을 텐데, 어쩌겠어요, 저희는 귀엽고 사랑스러운데요.

아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아예 프라이드 플래그를 건물에 걸어놓았습니다. 국가 기관이 축제에 참여하고, 성소수자 인권 증진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하는 모습들은, 한국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많은 퀴어 시민들에게 용기와 힘으로 다가왔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를 시발점으로 많은 국가기관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나중’의 문제로 생각하지 말고, 지금 한국 사회에 살아가는 퀴어들의 불평등한 위치에 주목하고,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자세와 행동을 보여주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퀴어 이슈가 사소한 문제이자 사적인 일이라 여기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요, 하지만 이 문제는 그간 우리 사회가 응답했어야 하는 일이고, 국가와 공동체가 성소수자의 권리가 보장되도록 바꿔 나가야할 책임이 있는 공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공적/사적 영역, 두 가지의 영역이 완벽하게 분리되어서 이야기되기도 어렵지만, 개인적인 일이라 여기고, 그렇기에 사소한 것으로 얘기되는 퀴어 운동은 오히려 사회 시스템에 대해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가 누군가를 사회 구성원에서 탈락시키고, 그렇게 해야만 운영되는 사회이며, 탈락된 이들의 안위와 사람됨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구성원으로서 탈락된 이들이 이 사회의 구조가 어떻게 설계되어 있고, 삶의 풍경을 어떤 방식으로 바꿔나가고 싶다는 것을 말하고 질문하고 바꿔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이고 ‘공적인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아직 미약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퍼레이드에 참여한 퀴어-앨라이들에게 환영과 지지의 메세지를 던진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축제가 끝난 지는 이제 한 달이 넘었네요. (한 달 만에 이 글을 쓰려고 하니 기억이 가물가물 했습니다^^;).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 사회를 두 번째로 맡아 진행하며 무대 위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다 보니, 문득 3년 전에 공개 커밍아웃하고 퀴어 운동을 했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3년 전에, 당시 제가 활동하던 공간에서 커밍아웃 했고, 이후로 지금까지 오픈 게이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커밍아웃이 항상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던 것도 아니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자주 저를 이성애자일 것이라 ‘당연’하게 생각하고 물어보는 질문을 하며, 제가 인생에서 ‘처음’ 만난 게이라고 말하며 “모든 게이는 다 장길완 같을 것이다,“ 라고 넘겨 짓는 타자화의 경험도 있었으며(이성애자가 어떤 언행을 한다고 해서, 그게 곧 바로 이성애자들은 다 저럴 것이라고 여겨지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존중한다고 말하지만, 성차별과 성별이분법을 해체하고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가기 위한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는 등의 말들도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제가 맺는 친밀한 관계들은 사회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인정’받을 길이 없어, 앞으로 노후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하는 걱정도 앞서네요. 이런 것들은 제가 커밍아웃했어도, 대체로 ‘안전한’ 공동체에 속해 있는 ‘혜택’을 누리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커밍아웃’을 해야 하고, ‘1등 시민’이었으면 증명 받지 않아도 되는 부분들을 ‘질문’받고 하는 당면한 현실입니다. 주변의 트랜스젠더 친구들이 경험하는 성별 정정과 정체성에 맞는 젠더 표현을 하는 것의 난관과 트랜지션을 선택해 나가는 과정, 그리고 레즈비언 친구들이 가부장제-성차별 사회에서 이성애-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 계속 마주하는 어떤 식의 압박 등 우리가 삶에서 겪는 수많은 난관들을 함께 마주칠 때, 언제쯤 변화된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까? 를 질문하며 먹먹해지기도 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결국 시청광장을 점유하며 일 년의 몇 안 되는 하루를 무지개로 물들이듯이, 인내심을 가지고 변화된 세상을 만들어 가면 넘어설 수 있는 난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퇴진으로 촉발된 ‘촛불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을 참 많이 듣는데요, 촛불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이제는 일상에서의 민주주의가 관철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노동권을 보장받는 일, 사법 농단의 전모가 밝혀지고 있는 지금 사법부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개혁해나가야 하는 일,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언제나 ’무시해도 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문화를 바꾸고, 권력과 위계로부터 발생하는 성폭력을 추방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일, 비장애인에게 맞춰진 사회 시스템을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누구나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내는 일, 이 모든 것들이 촛불 이후에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해 바꿔나가야 하는 것들이라 생각합니다. 촛불이 끝난 이후에도, 축제가 끝난 이후에도, 성소수자가 감내하고, 싸워 나가야 하는 ‘일상’에서의 차별은 여전히 유효하게 잔존하는 지금, 저도 그렇고, 많은 퀴어 운동가들도 그렇고, 그리고 민변도 그렇고 해야 할 활동이 참 많습니다. 민변은 계속해서 성소수자 존재를, 성소수자의 존재와 퀴어-인식론을 법에 기입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군형법 92조의 6 폐지 활동,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 참여, 각 지자체의 인권조례를 지키기 위한 활동, 성별이분법적 인식에 기반한 문화재청 한복가이드라인을 국가인권위에 제소하는 등 많은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민변 회원분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활동에 참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이제 이만 이렇게 장황하고 긴 글을 끝내며! 축제에 참여해서 고생한 민변의 회원들과 상근자들께도 감사 인사드리고, 아직 축제를 못 오신 분들이 있다면, 앞으로 열릴 다른 지역(ex. 부산, 인천, 제주 등)의 퀴어문화축제와 내년에 있을 서울퀴어문화축제 때 함께 참여하고, 퀴어들의 끼를 흠뻑 경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내년은 서울퀴어문화축제 20주년이래요! 대박)

그럼 무더위 잘 이겨내시고, 자주 뵙겠습니다!

덧붙여,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연인원 몇 만 명이 오는 서울퀴어퍼레이드, 그리고 한국퀴어영화제를 주최하고 주관하고 있습니다. 많은 시민사회노동 단체들이 그렇듯… 항상 사람과! 돈이 충분치 않다고 합니다.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서울퀴퍼 조직위 후원도 해주시고, 그리고 성소수자 인권 운동 단체들의 역동적이고 끼발랄한 활동들에도 많은 관심과 후원 부탁드릴게요. 이제 진짜 안녕!

 

2018.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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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08/1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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