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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위] 제 10회 동아시아금융피해자 교류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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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위] 제 10회 동아시아금융피해자 교류회 후기

admin | 월, 2019/12/30- 20:10

< 세션 1 > 대만의 다중채무문제 입법과정과 미해결 과제

– 김소리 변호사 –

첫 번째 세션은 ‘대만의 다중채무문제 입법과정과 미해결 과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아이치현 변호사회의 츠케 나오야 변호사가 퍼실리테이터로 세션을 진행했습니다. 대만의 우페이리엔 변호사님과 첸체민 변호사님이 대만의 다중채무 문제의 입법과정과 미해결 과제에 대해 발표했고, 우리 민변의 백주선 변호사님께서 한국의 개인채무조정제도의 최근 동향에 관해 발표했습니다.

대만측에서는 대만의 소비자 채무정리 조례에 의한 회생, 청산절차를 중심으로 발표했습니다. 대만측에서는 대만의 채무정리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강제적 사전절차’를 지적했습니다. 대만의 채무정리는 협의, 조정, 회생, 청산 4개의 제도로 되어 있는데, 회생이나 청산 절차로 가기 전에 반드시 협의 또는 조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합니다. 협의단계에서는 사실상 채무자는 금융기관의 부당한 협의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는 점, 이러한 사전절차는 종종 법률요건에 맞추기 위한 형식적 절차로 전락해 자원 낭비 등 비효율을 낳는 점 등에서 문제가 있으며 이러한 사전절차의 강제를 폐지하고 채무자에게 절차선택권을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한편, 대만의 회생제도 변화 과정에 대한 설명도 있었는데, 크게 회생안 인가 결정시 변제노력여부를 고려하게 된 점, 회생안 변제기간의 한도를 6년으로 명문화한 점(2012년 개정), 회생절차 기각 사유를 제한한 점, 채무자가 면책되는 최저 변제비율을 3/4에서 2/3으로 인하된 점을 주된 변화점으로 꼽았습니다.

대만의 청산절차와 관련하여서는 2012년 개정으로 기존에는 채무자의 사치나 낭비로 인한 부분은 면책될 수 없었던 부분이 청산 신청 전 2년 안에 사치나 낭비가 없으면 대부분 면책이 가능해진 점을 긍정적 변화로 꼽았고, 가처분소득 계산 시 압류 등으로 월급에서 강제로 공제되는 부분까지 포함시키는 것이 현재 법원의 다수의견이어서 이 부분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또, 2018년 강제집행법의 개정으로 채무자는 최저생활 기준액의 적어도 1.2배 및 월급의 2/3 금액을 보장받게 된 점을 이야기하며 엄청난 진보라고 밝혔습니다.

백주선 변호사님께서는 한국의 개인 채무조정제도의 최근 동향과 관련하여 개인회생 변제기간상한이 5년에서 3년에서 단축된 점 및 법개정 전 변제계획 인가자들에 대한 소급적용이 불가하다고 한 최근 대법원 판결의 내용, 대법원의 개인파산 신청서류 간소화 권고 등의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또, 한국 도산제도의 개선 방안과 관련하여서 도산전문법관제도의 도입, 직권주의에서 대심구조로의 전환, 파산자에 대한 신분상 불이익 등 차별대우 금지, 파산절차에서의 중지명령 도입, 면제 재산의 관대한 설정, 면책범위의 확대, 파산선고 후 5년 경과시 당연면책되는 제도 도입, 주택에 대한 담보채무에 대하여도 가용소득으로 변제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 생계비와 주거비를 공제한 나머지 금액을 가용소득으로 하도록 명백히 규정, 개인회생절차에서의 생계비의 현실적 적용, 변제기간의 탄력적 운용, 보증채무자의 보호, 파산관재인이나 개인회생위원에 대한 평가제도 도입, 도산 관련 통계관리 개선 등의 필요성을 지적했습니다.


< 세션 2 > 각국의 생활 보호제도와 운용 상황

– 박인숙 변호사 –

두 번째 세션은 ‘대만의 사회 구조의 빈곤 상황과 전망, 대만 공법 구조와 사법상의 부양과의 모순, 계쟁 및 해결 방법’, ‘한국의 공공부조 및 관련 제도의 현황과 평가’, ‘일본의 생활보호제도와 운영 상황’ 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쿄토 변호사회의 비토우 히로키 변호사가 퍼실리테이터로 세션을 진행했습니다. 각국이 위 내용으로 발표를 하고 발표자들이 서로 질의하는 형태로 진행했습니다.

대만의 사회구조법은 1980년에 제정되어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 2015년 개정 후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회구조법은 교육, 보육, 사회복지, 의료, 경찰, 촌(리)의 간부 등 직원에게 사회구조 대상자를 알게 되었을 때에 주무기관에 통보하도록 의무를 정하고 주무기관은 신청 후 5일 이내에 조사하여 긴급구조를 3일 이내에, 의료보조를 15일 이내에, 생활 부조를 30일 이내에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수입세대 및 중수입세대의 신청자격을 1인의 매달 평균소득, 동산 한도액과 부동산 한도액으로 심사를 합니다. 취업알선 서비스, 직업훈련 또는 구제를 대신하는 직업보장에 참가하면 창업자금 보조 또는 교통비 보조가 주어지고 일정기간 및 한도액 내에서 취업하여 증가한 수입은 저수입세대 및 중저수입 세대 신청시에 가정의 총수입 재산 심사시 최장 3년을 한도로 산입이 면제됩니다. 정부나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정부가 위탁한 시책에 참가하면 일정기간 혹은 한도액 내에서 시책 참가로 증가된 수입도 가정총수입을 심사할 때에 최장 3년을 한도로 산입이 면제됩니다.

한편, 대만의 법률구조 기금회는 2004. 7. 1.부터 사회적 약자의 소송 대행 등을 하고 있는데 최근 수년간 부양비 관련 사건이 증가하여 가사사건 중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여 이혼 사건을 뛰어 넘었습니다. 그 이유는 대만의 사회 부조와 법제도로 인한 것으로, 가족의 총수입을 가족 인원수로 나누어 1인당 수입이 최저 생활비 이하이고 가정의 재산이 매년 공표하는 금액을 넘지 않아야 하는데 가족의 범위에 배우자, 일촌 직계친족, 동일 호적 또는 함께 생활하는 기타 직계친족, 종합소득세 상의 부양친족 공제를 받는 의무자를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하면서 가족에서 제외되는 자에 ‘기타 특별한 사정으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고 신청자의 생활을 곤경에 빠트려서 주무기관이 신청자에게 최선의 이익을 고려했을 때에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고 판정한 자’를 규정하고 있어서 가족에 포함되는 자도 법원이 부양 의무가 면제된다는 판결을 하면 가족에서 제외할 수 있습니다. 처자식과 강물 투신자살을 하고 싶어 하는 81세의 부친, 저수입 심사 탈락 사기꾼들에게 속아서 명의를 빌려준 노인, 친부에게 성폭력을 당한 딸이 십수년 후에 친부에게서 부양청구를 당하는 고통에 직면한 3가지 사례를 통해서 위 법제도로 인해서 사회구조의 대상자가 되기 위해서 법원에서 신청인은 과거의 문제를 언급해야 하고 상대방은 법원에 가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양자가 힘든 과정을 겪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노익창 호서대 교수가 발표를 하였습니다. ‘사회보장급여의 이용 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이 2014. 12. 30. 제정되어 2015. 7. 1.부터 시행되고 있으나 인원 및 역량의 한계로 법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생활보호법’은 1961. 12. 31. 제정된 후 1997. 8. 22. 개정으로 최저생계비 개념이 법률에 반영되었습니다. 1998. 9.경 초등학생 강정우군의 아버지가 1천만 원 생명보험금을 노리고 아들의 손가락을 자르고 강도사건으로 위장하여 허위신고한 사건을 계기로 1999. 9. 7.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었고 2000. 10. 1. 시행되었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를 지급받으려면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미만일 것과 부양의무자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엄격한 요건과 낙인효과, 인격적 모멸감으로 인해서 수급신청을 하지 않는 빈곤층이 존재하고 실제로 빈공한 상태이나 수급대상에서 탈락하거나 수급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관할 관청이 근로능력있는 수급자의 경우 자활사업에 참여할 것을 조건으로 생계급여를 지급할 수 있는데 만일 수급자가 자활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 관할 관청이 임의로 파악되지 않는 소득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여 소득을 인정해서 2014. 2.경 서울시 송파구 단독주택 지하에 세들어 살던 세 모녀가 빈곤에 지쳐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두 딸에게 행정청이 각 60만 원 정도의 추정소득을 부과했기에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상이 되어서 기초생활보장급여를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위 사건을 계기로 위 법이 2014. 12. 30. 개정되고 2015. 4. 20. 같은 법 시행령이 개정되어서 실무상 ‘확인소득’이 도입되었습니다.

개정된 법은 최저생계비가 삭제되고 중위소득 개념이 도입되었는데 각 급여가 종류별로 수급요건이 달라져 개별 급여화 되면서 급여의 종류별로 수급자 선정기준 및 최저보장수준이 차별화되어 실질에 가깝게 바뀐 것으로 평가됩니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사항이었던 부양의무자 요건의 폐지가 단계적으로 추진되는 중입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생활보호제도를 이용하는 사람이 인구대비 1.7%밖에 안 되는 상황으로, 빈곤한 사람 중에서 10 ~ 20 % 정도밖에 이용할 수 없는데 국가나 지자체의 창구직원이 상담자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서 되돌려 보내는 신청권 침해가 만연하여 전국 각지에서 굶어죽는 사건이나 자살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006년 이래 일본변호사연합회 등의 요구로 변호사 법무사가 생활보호신청에 대한 운동을 전개하였고 2007. 6.경에 생활보호문제 대책 전국회의를 설립했습니다. 2011년 이후 창구직원의 정보제공의무 위반을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다수 선고되면서 2014. 7. 생활보호법 시행규칙에 보호를 실시하는 기관은 신청이 신속히 진행되도록 필요한 원조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신설되었습니다. 또한 일본은 친족의 부양의무가 생활보호를 적용하는 요건이 아니지만 친족에게 도움을 받으라는 식으로 위법하게 돌려보내는 복지 사무소가 끊이지 않습니다. 생활보호기준을 넘으면 일체 급여를 받지 못해 면제되는 혜택에서 제외되기에 생활보호를 받는 세대보다도 더 어려운 생활을 하는 역전현상이 발생합니다. 보호비 1개월분 이상의 예금이 있으면 생활보호가 개시되지 않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사례관리자가 관리하는 세대가 법률로 80세대라고 정해져 있으나 100세대 이상인 경우도 적지 않고 전문성도 요구하지 않아 복지와 무관한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이 사례관리자로 종사합니다.

한편, 일본은 2012년 봄 인기 코미디언 어머니가 생활보호를 이용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생활보호에 대한 비난을 하면서 자민당은 2012. 12. 총선거에서 생활보호비 10% 삭감과 부정수급대책강화 등의 공약을 내세우며 정권을 탈환하였고 2013. 1.경 사상최대 생활부조기준 인하를 결정하고 2013. 8.부터 3년에 걸쳐 실행하였습니다. 시민들은 ‘전례가 없는 공격에는 전례가 없는 반격을!’을 구호로 1만 건 심사청구 운동에 착수하여 기각 재결된 심사청구에 대해서 1,000명 이상의 원고가 위헌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일본변호사연합회는 일본, 독일, 프랑스, 스웨덴, 영국 미국, 한국에 정통한 연구자와 함께 7개 국가의 제도를 철저히 비교하여 일본에 개정 제안을 하는 생활보호법에서 생활보장법으로라는 서책을 2018. 8. 발간하였습니다.

퍼실리테이터인 쿄토 변호사회의 비토우 히로키 변호사가 많은 질문을 하였는데 특히 부양의무 요건에 대한 질문이 기억에 남습니다. 대만, 한국, 일본의 사회구조의 문제점과 장점에 대해서 알게 되는 좋은 계기였습니다.


<세션 3> 각국의 다중채무자ㆍ생활빈곤자에의 자립 지원, 연대와 협동

– 이연주 변호사-

세션 1과 2가 금융 피해자와 관련한 각국의 입법ㆍ사법 동향과 현행 운영 제도에 대해 살펴보았다면, 세션 3은 각국의 사회단체 들이 금융 피해자들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지원활동, 연대 활동 등이 소개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시민단체 주빌리은행 홍석만 사무국장님이, 대만에서는 LIAO, YI-TING 변호사님(타이베이 변호사회)/ WU, CHUNG-SHEN 준교수님/ KUO, LI-TING 님이, 일본에서는 사토우 미츠유키님(아키타 의존증 문제를 생각하는회 대표)/ 이시쿠로 요시토 님(아키타시복지총무과생활지원담당주석주사)이 각 발표를 맡아 수고해주셨습니다.

한국에서 발표를 맡은 홍석만 사무국장님은 구체적인 자립지원 현황이나 대안을 설명하기에 앞서, 다중채무자의 60~80% 이상은 소득기반이 취약한 저소득층, 노년층에 해당하는 사회적 취약계층에 해당하고,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임을 강조했습니다. 이들이 한 번 부채를 부담하게 되면 이를 변제하기 위해 다시금 추가 대출을 받으면서 걷잡을 수 없는 다중채무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이러한 부담이 결국 한국의 “네모녀 자살 사건”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금융피해자 교류회의 취지가 담긴 서두 발언으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대목이었습니다.

한편, 다중채무자 취약계층의 자립을 지원하는 한국의 현행 정책(① 희망키움통장, ② 국민행복기금, ③ 정책자금대출)을 소개하면서, 저소득층의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오히려 공적 권한을 이용하여 과도한 추심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 등 각 제도의 문제점도 잘 짚어주셨습니다. 한국에서는 금융 피해자에 대한 정부 인식 전환이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오히려 민간 비영리 부분의 자립지원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도 설명되었습니다. 정부가 채무자도 국가의 구성원이자 경제주체의 일원이라는 점을 주목하고, 인식을 전환할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할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중채무자가 한 번 채무를 부담하면 계속적인 채무부담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기적인 관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홍석만 사무국장님의 지적이 매우 타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만 측에서는 법률구조기금회 타이베이 분회, 카드채무 피해자 자구회 등 채무자 자립을 지원하는 정부기관, 민간단체를 소개하였습니다. 특히, 재단법인 불광산 자비 사회 복지 기금회가 긴급한 사건에 휘말려 당장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긴급 구조를 해주는 방식으로 지원을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대만의 망초심 자선 협회는 노숙자 대부분에게 채무가 있고, 불법 명의 대여 등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문제점을 인식하고 노숙자나 빈곤자에게 자립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측에서도 시민단체의 지원활동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곤궁자의 자립에 있어 ‘정직하게 말할 장소 제공’, ‘고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것’을 중요히 여기면서 곤궁자의 존엄성 확보를 강조하는 등 시민단체의 정서적인 지원까지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금번 교류회가 개최된 아키타의 복지총무과에서는 매년 2회 정도 외부기관도 참가하는 사례검토회를 개최하여, 변호사, 법무사, NPO법인 등 다양한 구성원이 참가해서 곤궁자 지원 사례를 토론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각 기관의 지원 내용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상호 협력 관계를 구축하여, 실제로 곤궁자를 지원할 때 다중적이고 적절한 지원이 있을 수 있다며 상당한 자부심을 내비췄습니다. 우리나라도 금융피해자에 대하여 정부보다는 NPO단체가 먼저 문제점을 인식하고 활발히 운동을 전개해 온 만큼, 관계 협력기관 간의 공동 연구 체계 구축이 자주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 측의 발표를 마지막으로 세션 3의 발표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마지막 세션이라 시간이 부족하여 각 국의 발표자간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 많이 아쉬웠지만, 한국의 금융피해자 지원 제도의 문제점, 개선 방향을 알 수 있었고, 각 국이 실제 금융피해자 지원을 어떻게 해가고 있는지 보아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 저녁 만찬 스케치 >

– 조미연 변호사 –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이어진 교류회는 저녁 만찬으로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교류회 발표가 진행된 아키타 국제학교에서 단체로 일본 측에서 준비한 버스에 탑승하여 만찬장으로 이동하였고, 만찬장에 들어가서는 참가자들 이름표에 적힌 알파벳으로 배정된 테이블을 찾아 삼삼오오 모여 앉았습니다. 테이블마다 구성원이 다르니 특유의 분위기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겠지만, 건배할 때만큼은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공통된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저녁 만찬은 크게는 각국의 대표가 나와 교류회 소감을 나누면서 건배 제의를 하거나 서로가 준비한 선물을 주고받는 시간이었고 작게는 각 테이블에서 만난 참가자들 사이 인사를 나누며 소소한 공감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각국의 대표로 나와 발언한 사람들은 저마다 시간이 짧아 아쉽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하루종일 진행되었던 교류회 일정으로 피곤하고 많이들 지쳤을 시간이었는데요. 다들 단상 위에 오르는 순간 상기된 표정과 빛나는 눈빛으로 저마다의 소회를 밝히는데 어찌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던지요. 직접 마주한 자리에서의 온기가, 교류회 참가자들을 이렇게 뜨거운 열의에 찬 모습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위 사진 오른쪽 세 명의 가족 이야기입니다. 교류회의 포문을 열었던 기조연설 발표자 킨조가쿠인 대학의 오오야마 교수님과 남편 그리고 딸의 모습인데요. 운이 좋게도 알파벳 J 테이블에 같이 자리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오오야마 교수님 기조연설 이후 함께 참가했던 한국 참가자들과 발표가 정말 훌륭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부터 꼬마 숙녀님의 나이는 이제 4살이 되었고 작년 한국 교류회에 함께 참가했었다는 사실 등 서툰 영어와 통번역 어플 등을 활용한 대화였지만 기조연설자와 만찬 자리에서 나눈 대화는 또 다른 기쁨을 가져다줬던 것 같습니다.

각자 테이블에서 이야기꽃이 피어가는 과정 속에서 틈틈이 진행되었던 각국 대표자들의 이야기도 색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사실 단상 위에서 발언하는 사람들이 교류회 규모가 커진 만큼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모든 시간에 다 집중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위 사진의 한국 금융피해자협회 윤태봉 회장님께서 발언에 앞서 “ 내 얼굴이 빨간 이유는 술에 취해서가 아닌, 술을 잘 못해서일 뿐입니다.” 라고 하신 안내? 말씀이라던가 각국에서 다양한 술과 과자 등 선물을 준비해와 교환했던 장면들은 비교적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웃음). 물론 선물 내용이 궁금해서 유독 귀를 쫑긋 세웠던 것 같기는 하네요.

위 사진은 일본 변호사님과 한국 파산회생변호사회 김관기 변호사님이 대만 측에서 가져온 선물을 받아든 장면입니다. 교류회를 통해 각국의 금융피해사례, 정책 및 입법현황 뿐 아니라 소소한 먹을거리 등 선물을 나누면서 오가는 정이 또 있나 봅니다. 한층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던 것 같습니다.

저녁 만찬의 통역은 비교적 본 교류회 때보다 간소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양방향 통역은 위 사무국장님이 수고를 해주셨고, 중국어와 일본어의 양방향 통역은 본 교류회 통역 중 한 분이 맡아주셨습니다.

비록 통역은 간소화한 자리였지만, 참가자들 사이 마음의 거리는 훨씬 좁혀질 수 있었습니다. 같은 테이블의 한 일본 참가자는 한국에 방문해서 행사에 참가 했던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활동가라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고, 대만의 한 발제자는 알고 보니 동갑내기 친구였는데 생각지 못하게 LOL 이라는 게임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 선수단의 팬이며 주로 사용하는 게임 캐릭터가 무엇인지 등까지 예기치 못한 취미 이야기까지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갑자기 대만과 중국이 하나의 국가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아 당황하기도 했었고요. 그렇지만, 교류회 내내 무언가 차오르는 기쁨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책으로 읽었던, 통계로 그렇구나. 라고 이해했던 부분들을 각국의 참가자들이 생생한 음성으로 전달했던 자리. 그런 자리에 이어서 ‘어떤’ 참가자들이 함께했는지를 직접 눈을 마주하고 손을 맞잡으며 이야기했던 만찬 시간. 맛있는 음식과 아키타의 깔끔한 사케가 같이 먹고 마시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만큼 잘 어우러졌던 기회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아키타 풍경스케치>

– 김재희 변호사 –

(1) 아키타로 떠나던 첫 날(2019. 11. 08.)

< 도쿄 하네다공항 >
– 아키타는 한국에서 직항이 없어, 도쿄 하네다 공항을 경유하여 갔습니다. 아이리스(김태희, 이병헌 주연)라는 드라마 방영시 배경으로 아키타가 나왔고, 당시 아키타행 직항기 운항이 되었었다고 하나 현재는 한국에서 아키타로 갈수 있는 직항은 없는 상태입니다.

– 도쿄 하네다 공항 전망대에 도착하여 인증 샷

 

<아키타공항>

– 아키타 공항에 도착하자, 제일먼저 만난 것은 아키타 강아지 인형~

일본의 대표적인 견종으로 아키타 견종이 유명합니다. 일본 황실에서 아키타 견종을 많이 아껴 황실 소수의 사람만 이 견종을 키우고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 아키타 공항 앞에서 인증샷

 

–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메뉴로 기리탄포 라는 아키타 향토음식을 먹기 위해 들른 음식점 앞에서 찍은 한 컷입니다.

 

(2) 둘째날(2019. 11. 09.) – 학술대회일

제10회 동아시아 금융피해자교류회는 아키타 국제교양대학에서 열렸습니다.
아키타 국제교양대학은 2004년 미국의 인문학, 사회과학, 어학 등 교양과목에 중점을 둔 교양대학인 Liberal Arts College를 본 따서 설립했고, 모든 과목을 영어로 수업한다고 하네요. 47개국 185개 기관과 인턴쉽을 맺고 있어서 학생들은 대학생활 4년중 1년은 해외에서 공부하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키타 교양대학은 건축물이 독특하고 층고가 낮았습니다. 건축물들 사이에 어우러진 단풍이 아름다웠습니다.




 

학술교류대회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발표는 기조연설이었습니다.

기조연설은 일본 킨조가쿠인(金城学院)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오오야마교수는 일본사회에서 파산신청 건수가 급증할 무렵, 다중채무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오오야마 교수는 기조연설자로 나서 ‘동아시아 다중 채무 대책의 전개’라는 주제로 연단에 올라, 일본의 지난 40년과 한국 대만의 지난 10년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한중일 금융피해자교류가 시작된 역사, 연결된 지점에 대해 발표를 하였습니다.

오오야마 교수의 기조연설 발표를 들으면서, 동아시아금융피해자교류회가 왜 생겼고, 상호교류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 오오야마 교수의 발제 모습

-오오야마 교수의 발표자료(한국어, 일본어, 대만어로 모두 준비한 PPT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점심시간>
점심은, 대학 내 카페테리아로 이동하여, 준비된 도시락으로 먹었는데, 작은 도시락에 아기자기 닮긴 반찬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커피브레이크>
-세션 2와 세션 3 중간에 커피브레이크가 있어, 역시 카페테리아로 이동하여 준비된 다과와 함께 커피를 마실 시간이 있었습니다. 단풍으로 물든 교정을 지나 커피를 마시러 가던 발걸음이 참으로 가벼웠습니다.


 

< 교류회장 >
– 커피브레이크가 끝나고 돌아온 교류회장에서 한국에서 오신 분들 모두 모여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 만찬장-간친회 >
– 한국, 대만, 일본의 대표자들은 각 국에서 준비해온 선물을 서로 나누며 만찬행사를 시작했습니다. ^^ 각 테이블에는 각국에서 오신 분들이 섞여 앉아 짧은 영어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3) 셋째날(2019. 11. 10.) – 자유시간

<아키타미술관>
–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 안도 타타오가 설계했다는 미술관으로 들어가면서부터 인테리어가 남다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심한 시멘트 벽, 나선형으로 높게 설치된 계단을 올라 나오는 곳은 미술관 카페였습니다. 잔잔한 물이 찰랑대는 것을 바라보며 차를 마실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 가쿠노다테(무사마을)>
-가쿠노다테는 일본에서 작은 교토라고 불리는 정취가 감도는 관광명소로, 옛 무사들이 살던 마을이라고 합니다.




<아키타 센슈 공원>
– 아키타 센슈공원은 아키타 영주 사타케 요시노부가 1604년에 쌓은 구보타성의 옛터에 만들어진 공원입니다. 일본 벚꽃명소 100선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라는데요. 가을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단풍이 꽃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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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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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표지안녕하세요? 저는 김영준 변호사라고 합니다, 민변 활동은 올해가 딱 10년째네요. 공부모임을 비롯해서 민변 활동을 막 시작하던 시기에 저와 가까운 교사가 해직되면서 교육 관련 활동을 시작했는데, 교육청소년위원회에서 오랫동안 간사변호사로 활동하다 이렇게 위원장이 된 지 3년째가 되었네요.

교육청소년위원회는 2007년 송병춘 변호사님이 처음 만드셔서 위원장을 역임하시고, 김기현 변호사님, 이명춘 변호사님이 위원장을 맡으셨어요. 제가 4대 위원장이네요.

교육, 중요하잖아요?

학부모라고 한다면 자기 자녀를 가르치는 문제를 고민하게 되죠. 한 개인으로서도 계속 교육을 받아왔고, 또 평생교육 시대에 앞으로도 계속 교육을 받아야 하고요. 그런 점에서 교육은 누구나 접점이 있는 분야예요. 그러다 보니 교육청소년위원회는 정말 사건이 끊이지 않는 곳이죠.

교육위가 맡는 사건들은 정말 다양해요. 교육기관이나 교육주체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분야마다 사건마다 각기 다 다르죠. 크게는 고등교육 문제와 초중등교육 문제로 나눠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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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있는 판결을 끌어냈던 비리사학 대응 활동

우선 비리사학의 전횡에 법적으로 대응하는 활동이 있겠네요. 비리사학에 대한 투쟁 과정에서 학생과 교수의 학교 운영 참여권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 수원대학교 학생들의 등록금 환불 소송 승소 같은 의미 있는 판결이 많이 나왔어요.

원주에 있는 상지대는 지역에서 오랫동안 비리사학의 대명사로 불렸어요. 상지대 구 재단의 김문기 씨는 학교의 설립자는 아닌데 재단 이사장으로 많은 비리를 저질렀죠.

사립학교에 분쟁이 생겼을 때 임시이사 선임과 해임, 임시이사를 선임한 학교의 정상화 추진에 필요한 사항을 심의하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이하 사분위)라는 기구가 있어요. 그런데 사분위가 김문기 씨 측을 복귀시키는 결정을 했고, 교수들과 교직원, 학생들은 반대했죠. 교수들과 학생들이 싸운 결과 2015년 대법원에서 교직원과 학생 역시 학교 운영에 참여할 권리가 있고, 이 권리는 학교 법인이 위기에 빠졌다고 해도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 있는 판결을 내렸어요.

그 후 다시 파견된 임시이사가 모호한 태도를 취해 문제가 됐지만 최근 사분위가 다시 임시이사를 파견했는데, 이 중에 민변 김호철 부회장님도 있습니다. 비리 재단과 오랫동안 싸워오셨던 상지대 정대화 교수님은 지금 총장 직무대행이 되셨죠. 상지대는 지금 정상화 되는 기로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수원대도 교육위가 비리 재단과 싸우는 분들에게 오랫동안 법률적인 도움을 드렸던 학교예요. 총장이 여러 비리와 전횡을 저지르면서 “교수들 무릎을 꿇렸다”는 소문까지 나왔고, 한편으로는 학생들의 교육여건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어요. 교육비 환원율이 누가 봐도 비정상일 정도로 낮았어요. 결국 교육위가 학생들과 함께 등록금 환불 소송을 제기해서 학생들이 1심과 2심에서 승소했습니다. 지금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어요. 이 두 학교의 법적 다툼에는 이영기, 하주희, 손영실 변호사님이 교수님, 학생들과 함께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학교를 점거한 학생들, 학생들에게도 학교 운영에 참여할 권리를

최근에는 상지대 학생들처럼 학교의 운영에 참여할 권리를 인정해달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높아요. 학생들도 학교의 구성원인 만큼 학교 운영에 참여할 권리에 대한 요구는 높아지고 있는데 학생들의 참여권은 제도적으로 잘 보장되지 않고 있어요.

현실적으로 학교 운영에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대학평의원회 하나예요. 그런데 교수, 교직원, 동문, 이사회 등으로 구성된 대학평의원회 위원 열 명 중에 학생은 한두 명 포함될까말까 해요. 게다가 대학평의원회 결정에 구속력도 없어요. 예를 들면 2013년 중앙대에서 학교가 대학평의원회의 보류결정을 무시하고 학과구조조정을 밀어붙이자 학생들이 구조조정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는데, 중앙지방법원이 받아들여주지 않았죠.

또 총장 선출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학교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신대에서는 교수와 학생들이 투표를 거쳐 총장 후보를 뽑았는데, 정작 이사회에서는 1순위, 2순위 후보를 제껴두고 3순위 후보를 총장으로 임명했어요. 대학의 중요한 정책들이 당장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 수업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도 학교가 의사결정을 일방적으로 하는 거죠.

이렇게 학교 운영에 참여할 권리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학교를 점거하고 싸우는 일도 많아졌어요. 한동안 떠들썩했던 이화여대도 있고, 동국대에서도 논문을 표절한 총장과 그 총장을 임명한 이사장을 비판하면서 점거농성을 했었어요. 서울대는 시흥캠퍼스 문제로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했고, 한신대도 총장 선출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며 본관점거 농성을 했어요. 이런 과정에서 학생들이 징계나 재판까지 받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학생들을 변론하는 일도 교육위의 활동 중 하나예요.

학생들의 학교 운영 참여 같은 권리가 좀 제도적으로 정비되어서 더 이상 징계나 재판을 받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학생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대학에 지원된 그 돈들은 투명하게 쓰였을까

이렇게 각 학교에서 비리사학과의 법적 분쟁을 지원하거나 학교와 분쟁을 겪은 학생들을 변론하는 활동도 있지만 대학 정책 분야에서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요. 대학 구조조정과 대학재정지원사업에 대해 토론회도 하고, 제안서도 제출하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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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등록금 운동이 거둔 성과 중 하나가 2011년에 도입된 등록금 인상률 상한제예요. 물가상승률과 연동해 일정비율 이상을 인상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로 그동안 계속 등록금을 올려왔던 사립대학들이 전처럼 등록금을 인상할 수 없어졌죠. 교비 대부분을 등록금에 의존하는 사립대학들이 재원이 쪼들리는 상황이 되자 교육부가 ‘대학 재정지원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공모사업을 시행하고 있어요.

언론에 많이 보도되었던 코어 사업, 프라임사업, 평생교육 단과대학 같은 공모사업이 교육부의 대학 재정 지원사업들이에요. 그런데 이 지원사업의 지원대상 선정과 운영과정이 불투명해요. 국정농단 특검 수사 결과 프라임사업 지원 대상 선정 과정에서 이대가 부당한 혜택을 받았다는 사실이 들어났잖아요.

교육부는 대학재정지원사업과 동시에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들어 대학구조조정도 추진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대학구조조정이 진행되면 결국 대학이 취업률 같은 눈에 보이는 지표만 강조하게 돼요. 예술, 인문학, 사회학, 기초학문은 고사하는 거죠. 그래서 전반적으로 재점검이 필요해요. 이런 취지에서 지난 7월 18일 국회에서 대학 재정지원사업의 개편과 정책감사를 위한 토론회를 열었어요. 이 토론회 논의를 바탕으로 민교협, 교수노조 같은 교수단체와 함께 교육부에 기존의 대학재정지원사업에 대한 정책감사를 제안해놓은 상태입니다.

교육분야 대표 적폐, 국정 역사교과서

이제 초중등교육 분야를 얘기해볼까요?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건은 교육 분야의 대표적인 적폐였죠. 국정교과서 문제에 대해 반대 여론이 높았고, “획일적인 역사관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안 된다, 헌법과 민주주의에 반하는 일이다”라는 생각에서 민변에서 TF를 꾸려 활동했습니다.

TF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막기 위해 행정소송과 헌법소원도 제기했어요. 마지막에는 교육부가 꼼수를 써서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를 지정하고 연구학교에서는 국정교과서를 배울 수 있게 하겠다’고 했죠. 워낙 반대여론이 높아서 경북의 문명고만 연구학교 지정을 신청했습니다. 이것도 저와 이영기 변호사님이 소송을 해서 연구학교 지정 금지 가처분 결정을 받아냈습니다.

정부가 새로 바뀌고 문재인 정부 1호 명령으로 국정교과서 문제를 해결했어요. 민변도 뭐 국정교과서 저지 네트워크에 참여해서 열심히 싸웠고, 다행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그 문제를 잘 해결한 셈이죠.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너무 소모적이잖아요, 반역사적이고요. 국정교과서 추진 과정도 문제가 많아요. 예비비를 무리하게 편성해서 그 예비비 중 상당액을 국정교과서를 홍보하는 홍보비로, 쉽게 말해 신문 광고하는데 써버렸거든요. 또 국정교과서 집필자를 공개하지 않아서 ‘복면집필’이란 얘기도 나올 정도로 불투명하게 진행됐는데 원고료조차 이전의 교과서 편찬사업에 비해 상당히 고액을 지급했다고 하더군요. 저희는 더 이상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는 취지에서 지난주에 감사원에 감사청구서를 접수시켰고, 현재 감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 잘 해결되겠죠?

전교조의 교원노조 지위도 회복되어야죠. 국민의 정부 때 교원노조가 합법화된 후에,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내내 탄압이 이어졌어요. 이명박 정부 때는 일제고사와 전교조 시국선언을 이유로 교사들이 수십 명 해고됐어요. 국회의원이 전교조 명단을 공개해버렸던 사건도 있었고요. 그런데 저희가 소송으로 다퉈 전부 이겼어요.

전교조 명단 공개 사건은 제가 했어요. 저한테는 평소 잘 알고 지냈던 해직 교사를 변론한 것과 이 사건이 교육위 활동을 하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아예 전교조에 법외노조 통보를 했죠. 전체 조합원 중에서 9명이 해직 후 재판에서도 패소하면서 더는 교사가 아니게 되었는데, 그 분들을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는 이유로 법외노조 통보를 한 거예요. 사실 이건 노동법의 원리에도 반하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이명박 정부에서는 법원이 보루 같은 역할도 했었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니까 이기는 판결도 적어지더라고요.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둘 것인지 말 것인지는 노동조합의 자주권의 문제거든요. 지금 전교조는 법외노조 상태에 있지만, 이 문제는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새 정부에서 잘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대법원장 되신 분이 대법원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에 대해 효력정지 결정을 하셨던 분이더라고요.

부당한 문제에 맞서는 건 오히려 쉬워요

최근에는 교원 임용절벽 문제도 심각해요. 그동안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인데도 교원 정원은 줄이지 않고 있었던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발령이 제한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임용고시에 합격한 교원이 3년 안에 발령을 받지 않으면 1급 정교사 자격이 만료되거든요. 이런 문제가 누적되자 더는 미룰 수 없어서, 서울시 교육청에서 올해 교원 신규 발령 인원을 확 줄여버렸어요.

그런데 동시에 2급 정교사 자격증을 가진 기간제 교사를 정교사화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죠. 일부 사립학교에서 정교사가 해야 할 일을 계속해서 기간제 교사를 채용하면서 ‘비용절감’을 추진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또 임신·육아 휴직처럼 정말 대체근무자가 필요한 경우도 있거든요. 임용고시에 합격하고도 교사로 발령받지 못하는 사람들과 교사로 일하고 있지만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소모품처럼 사용되는 사람들의 문제가 동시에 얽혀있어요. 그래서 기간제 교사 정교사화 문제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차원에서 경력이 있으면 정교사로 발령하는 것이 맞다’는 견해도 있고, ‘교사는 임용고시 등의 문제와 얽혀 복잡하기 때문에 함부로 결정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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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간제 교사 정교사화 같은 문제에 비하면 부당한 일에 맞서 싸우는 일은 오히려 쉬워요. 교수를 파면해임한 학교와 싸워서 이기는 것, 징계 받은 학생들을 변호하는 것, 전교조 해직 교사들에 대해 다투거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에 대해 싸우고, 국정교과서 저지를 위해 싸우는 일들 말이에요. 이런 일들은 싸워야 할 상대가 분명하다고 할까요? 그런데 기간제 교사 문제, 시간강사 처우 문제, 대입 수능 개편안 같은 정책 문제는 아직 국민도 정부도 아직 공론을 모아야 하는 과정이라고 보여요. 저희도 공부를 더 해야 할 거 같고요.

모여서 함께 해나갈 일이 아직도 많아요

교육 분야는 계속 이슈가 제기되고 있고, 우리가 앞으로 개척해나가야 하는 분야인 것 같아요. 어디에서 조사한 결과로는 이런 얘기도 있더라고요. 현 정부 정책 지지율이 대체로 60~70% 선인데 교육 분야는 이보다 훨씬 저조하다는 거예요. 교육 분야는 새로운 정책의 틀을 만들어가야 하는 단계예요.

제가 교육위 간사변호사, 위원장을 맡으면서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느낀 건데, 이른바 ‘진보진영’의 교육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호감도가 우리 생각만큼 높지 않아요. 경쟁 위주의 교육정책에 더 익숙한 거 같고요. 우리가 생각하는 교육정책에 대해 더 설명하고 공감대를 넓히고, 더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이 필요해요. 또 여러 가지 이슈가 제기되고 있어서 차근차근 공감을 모아서 해결해야 하는 일이 많은 그런 곳입니다.

교육위의 이슈나 사건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교육위 위원마다 담당 분야를 정했거든요. 예를 들면 대학 분야는 하주희, 이영기 변호사님이, 사립학교법은 저와 이영기 변호사님, 초중등교육은 강영구, 탁경국 변호사님이 주로 맡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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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교육위 변호사님들이 인원은 많지 않지만 민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공익인권변론센터 송상교 소장도 교육위에서 활동하고 있고, 하주희 변호사는 지금 미군문제연구위원회 위원장이시고, 이영기 변호사님도 환경보건위원회 위원장님이셨죠.

사실 교육 사건들은 생각보다 진입장벽이 좀 있는 거 같아요. 교육 사건은 어떤 계기가 있어야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면 사대를 나오셨거나,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거나, 자녀를 키우면서 교육에 관심이 커졌다든가. 교육 분야는 새롭게 만들어나갈 부분이 많은 분야입니다. 새 정부에서 새로운 교육 정책을 수립하고 펼치는 과정에서 민변 교육청소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도 많이 있으니까. 많이 오셔서 함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금, 2017/09/0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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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행정법원, 서울고등법원,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 18년 동안 법관으로 근무하면서 노동 재판 실무 편람과 국내 최초의 근로기준법 주석서인 근로기준법 주해 발간에 큰 역할을 했어요.
  • 그뿐인가요. 판사면서도 SNS에 한미 FTA 비준동의안 강행처리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가,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되기도 했는데, 동료 판사들이 옹호하며 나서 징계를 받지는 않았어요.
  • 그런데도 멈출 수 없었어요. 2013년에는 국방부장관 후보자 임명을 두고 공개적으로 반대한다고 했거든요.
  • 법원 내 사법개혁 논의를 주도해 온 연구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도 했어요. 지금은 민변 회원이에요.
  • 요즘 일부 언론이 정부 요직을 장악한다는 바로 그 ‘우리법연구회’와 ‘민변’을 모두 관통하고 있는, 그야말로 ‘핫’한 나는, 최은배 변호사(사법연수원 22기)입니다.

 

 

이혜정 : ‘판사 최은배하면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했던 페이스북 글이 먼저 떠올라요. 당시 응원이나 비판도 많았겠지만, 특히 법원 내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최은배 : 사실 그렇게까지 이야기가 크게 번질 줄 몰랐어요. 그런 부분도 생각 못하고 올렸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죠. 글을 쓸 때는 페이스북 친구 200명 정도가 보고, 서로 공감하고 말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글을 밤 9시쯤 올렸는데 이틀 후 조간신문부터 조선일보에서 “이 사람이 이랬다더라”하는 식으로 보도하기 시작한 거예요. 제 일이 더는 제 일이 아니게 돼버린거죠.

그때 사용했던 말 자체는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니었어요. 당시 이상득 의원이 미국 대사한테 했던 말이거든요. 이상득 의원이 동생인 이명박 대통령은 ‘to the core’ 그러니까 ‘뼛속까지 한미동맹에 대한 의견이 확실한 사람이다’ 이렇게 말했거든요. 이걸 약간 비틀어서 “그래서 FTA 했나보다” 한 거였어요.

 

사실 제가 FTA나 통상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FTA에 대해 오해했을 수도 있죠. 하지만 국회 비준 절차가 충분한 토론 없이 날치기로 진행됐고, 시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잖아요. 국가 간의 문제이긴 하지만 결국 농림수산업을 희생시키고 공업, 특히 자동차를 더 팔기 위해서 우리 경제 안에서 형성되는 부를 밖으로 이전하는 것이고요. 이런 문제로 서민들이 더욱 고통당한다는 공감도 있었고요. 공직자로서 중립성을 유지하는 것과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문제는 구분되는 일입니다. 지금도 공무원법 집단행동 금지 조항은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는 부정선거의 악몽이 있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법에 못 박았지만, 사실 정치적 중립은 그런 데서 오는 게 아니거든요. 공직자가 의무를 다하는 것과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것은 양립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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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는 제가 무슨 말만 해도 반응이 득달같이 일어나는 상황이 됐어요. 나도 할 말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주 보편타당한 가치에 대해서만 말하고 어딘가 휘말릴 수 있는 말은 안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예를 들면 이 사건은 언론에 보도된 사건은 아닌데요. 2012년 대선 때 대선후보 토론회를 보고 페이스북에 “국가원수가 되면 외신 기자 앞에서 말이라도 해야 할 텐데 저렇게 아무 말도 안 하니 너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썼어요. 그랬더니 다음날 바로 법원장이 ‘그러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나도 판사로서 나라 일을 한다고 앉아있는데, 정말 판사가 말을 못하게 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2013년 국방부장관 후보자 임명에 반대하는 글을 올렸을 때는 ‘곰곰이 생각해보니 너무 걱정되고, 누구하고 토론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조용하게 페이스북에 올려봤다가 사단이 났어요.

 

남이 하는 말을 내 뜻과 맞지 않다고 배척하고 불이익을 주는 게 아니라 가만히 내버려두면 어떤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틀리거나 잘못된 의견이라면 자연히 사라지겠죠. 그런 사회가 빨리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헌법에서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이렇게 네 가지 자유를 규정해요. 앞의 두 가지는 개인적인 표현이고 뒤의 둘은 집단적인 표현이죠. 40년 전에 처음 헌법을 공부할 때는 왜 ‘결사’가 표현의 자유 문제로 귀결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모여서 노는 것도 결사이고,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러 모이고 동창 만나러 모이는 게 왜 표현의 자유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한참 후에 국가보안법 사건을 다룰 때에야 이게 왜 표현의 자유 문제인지를 깨달았어요. 어느 조직에 있느냐를 기준으로 상대의 생각을 재단할 수도 있기 때문에 결사의 자유가 표현의 자유 문제로 연결되더라구요. 우리나라는 반공이라는 이념 하나로 다른 의견을 완전히 배제해왔고, 또 이렇게 얻은 권력이나 이득을 지키려는 습성으로 항상 적을 만들어왔어요.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 같은 모임은 ‘적’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잣대나 도구가 돼요. 옛날에는 ‘빨갱이’라는 말로 배제하면 다 통했는데 지금은 국민들이 ‘빨갱이’, ‘공산주의자’ 같은 말에 반응해주지 않으니 어떤 소수자를 만들어서 배제해요. 소수자를 만들어 냄으로써 상대를 배제하고 공격하는 일은 어떤 형태로든 빨리 극복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혜정 : 일반 시민들은 비슷한 정치적 표현으로 실제 기소된 분들이 많아요. 민변에서 표현의 자유 기금으로 도와드리기도 하구요.

 

최은배 : 표현의 자유에 대해 형법으로 제한하고 민사상에서도 필요 이상으로 불이익을 주는 게 분명히 있다고 봐요. 사람들이 프랑스 식 관용, 즉, 똘레랑스의 훈련이 되면 사회적으로도 나 역시 저런 상황의 당사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역지사지가 가능할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요. 프랑스는 시민혁명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의 경험이 쌓였고, 2차대전 같은 비극의 피바람도 겪는 과정에서 똘레랑스를 확립할 수 있었죠. 우리나라도 동족상잔, 이념갈등 같은 피바람을 겪을 만큼 겪었는데.. 우리는 똘레랑스로 서로를 포용하는 게 아니라 서로 배제하는 양상으로 나타나요.

 

정치나 선거의 영역 안에서 이야기하자면, 이런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명분은 대체로 ‘선거가 혼탁해진다’ 이런 얘기잖아요. 옛날에는 일반 시민이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 많지 않았죠. 미디어는 신문이나 방송같이 개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것들뿐이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욕설을 한다든가 그냥 확성기나 스피커에 대고 말하는 것, 유인물을 만들어 뿌리는 것 정도였죠. 그런데 지금은 퍼스널 미디어가 발달했고, 이를 통해 의견을 표출하는 건, 보기 싫거나 듣고 싶지 않으면 피하면 되잖아요. 표현하는 것 그 자체에 대해서는 제한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닐까요?

물론 서구에서도 홀로코스트 같은 사건을 옹호하는 등 반인류적인 발언, 혐오발언을 하는 것은 처벌해요. 이런 부분은 제한되어야 마땅합니다. 동시에 정당한 발언을 했음에도 ‘혐오발언’으로 몰려 처벌당할 위험도 있으니 이 부분에 대해 이론이 충분히 쌓여야겠죠. 혐오발언과 혐오발언이 아닌 것을 구분할 충분한 기준이 있다면 혐오발언에 해당하지 않는 모든 발언에 대해 제한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서부터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나도 어떤 점에서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새기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학교 현장에서는 앞만 보고 가르치잖아요. ‘좋은 대학 가야 한다, 이런 게 행복이다, 노력하면 오늘은 괴로워도 나중에는 도움이 된다…’ 이런 이야기 대신 내가 실패를 겪거나 약자가 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고, 공동체 안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야죠.

그래서 노동위원회에서 노동자의 삶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얘기도 하고 있어요. 다들 자라서 노동자가 될 텐데 노동3권 같은 기초적인 권리도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거죠. 노동자의 권리도 가르치고, 토론과 회의를 통한 민주주의의 진정한 면모도 겪어보게 해야 해요. 학교 다닐 때 그런 걸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그 때부터 배우기 시작해요.

 

법률가로서의 소양에도 문제가 있죠. 예를 들면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단체법 이론을 이해하는데도 차이가 있어요. 총회를 소집하고 회의를 진행하고 토론하고 결의하는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그 결의는 무효잖아요. 이런 과정이 민법의 가장 기본이에요. 그런데 학교 다닐 때는 전혀 배우거나 겪어보지 못하다가 법조인이 되어서야 주입식으로 배우는 거예요. 우리 사회가 사람들이 자라는 동안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푸는 방법을 배울 기회를 주지 않아요. 그나마 학교에서 전교조 교사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그 세대 때부터 조금씩 배우지 않았나 싶네요.

 

이혜정 : 그런데 오랜 법관 생활 후 어떤 계기로 민변에 가입하시게 되었나요.

 

최은배 : 제가 민변에 가입할 때 민변 회장이셨던 한택근 변호사님이 저와 연수원 동기입니다. 사법 연수원 때부터 같이 지냈고, 모임도 같이하고 해서 저는 변호사가 되면 민변에 가입하는 걸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민변 가입을 안 하면 한택근 변호사님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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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들은 법원에 있다가 나와서 변호사가 되면 공직 출신이기 때문에 특정 단체에 가입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법원에 있을 때도 우리법연구회에서 활동했어요. 그때도 비슷한 프레임이 있었어요. 보통 법원행정처 업무로 들어가게 되면 상당수의 법관들이 우리법연구회를 탈퇴하고는 했어요. 법원행정처에서 일하다 보면 싫은 소리를 해야 할 때도 있는데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이유가 많았죠. 그런데 저는 법원행정처에서 일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어요.

 

이혜정 : 판사 재직 시절에 바라보았던 민변은 어땠나요?

 

최은배 : 사실 제가 판사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기본적으로 민변에 아는 분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오히려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네요. 제 시각이 일반적인 판사들의 시각이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대학 때부터 조영래 변호사님을 비롯한 정법회 변호사님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법이 인권이라는 가치를 지키는 한 저는 민변이 모든 변호사의 가치를 포함할 수 있다고 봐요.

70년대에는 사법시험을 통과해 법조인이 되는 것이 운동의 차선책이 될 수도 있었는데, 80년대 초반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87년 이전에는 학생운동, 민주화운동을 하거나 뭔가 양심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사법시험을 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런 시절에 제가 사법시험을 치르고 법률가가 되었다면 제 주변 사람들도 지금과 달랐을 거고, 제 생각도 지금과 달랐겠죠. 87년 이후에는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사법시험을 부담 없이 치를 수 있게 되었고, 저도 주위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이혜정 : 그렇다면 법원에서 판사로서 민변을 바라보다가, 지금은 민변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민변을 직접 경험하고 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최은배 : 저는 법관 생활 하면서도 노동법을 많이 다뤘고, 민변에서도 노동위원회 활동을 많이 하고 있어요. 법원에 있을 때터 노동위원회 위원들과 이미 알고 지냈기 때문에 그 점이 좀 편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민변에 막 가입했을 때도 낯설거나 겉도는 느낌은 받지 않았어요. 다만 저는 법관 생활을 했기 때문에 ‘전관예우’에서 완전히 자유롭기 어렵거든요. 새내기 변호사님들은 민변 활동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저는 중간에 들어왔기 때문에 비슷한 시기에 가입한 새내기 변호사님들이랑 같은 스텝으로 함께하기는 어렵더라고요.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하면, 비슷한 법조경력에 잘 알고 지냈던 분들이 여기서는 너무 높은 자리에 계세요. 회장 하시고, 총장 하시고(웃음). 그렇다고 막 가입한 새내기 변호사님들과 같이 다니기에는 또 세대차이가 나고요. 활동하면서 그런 부분은 나름대로 고민하고 있지만, 다들 너무 잘해주시기 때문에 민변에서 늘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혜정 : 혹시 판사일 때 할 수 없었던 일 중에, 민변에서 회원으로서, 변호사로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최은배 : 법원에 있을 때는 사실 생각할 겨를이 별로 없었어요. 변호사가 되어야겠다고 오랫동안 고민하고 준비하지는 않았거든요. 판사를 잠시 머무는 자리라고 여기면서 언젠가 변호사를 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판사로 계속 일할 생각이었어요. 여러 가지 문제로 사직을 결심하고 얼마 되지 않아 변호사가 되었고요. 판사로 일하는 동안에는 변호사들로부터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는 요구사항을 주로 들었죠. 피드백이나 모니터링 중심이었고요. 내가 변호사가 되면 뭘 해야겠다는 생각이나 준비를 하지는 못했고요.

대신 법관으로서 법원을 어떻게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건 있어요. 법원을 나오면 변호사가 되어 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죠. 민변에서는 사법위원회가 법원 개혁에 대한 일을 주관하고 계시죠. 저보다 전문성을 갖춘 분들도 계시고요. 저는 법원 안에서도 사법제도나 앞으로 법원이 추구해야 할 지향보다는 재판을 잘 하는 것, 어려운 사람이나 노동자를 중심으로 노동자를 위한 재판이 이뤄지게 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사법제도나 외국의 법관 양성, 외국의 사법 인사 제도 같은 분야는 저 말고도 전문성을 갖춘 분들이 많으니 오히려 제가 따라가기 바빠요.

 

이혜정 : 판사하고 변호사를 경험하셨는데, 그 중 어느 쪽이 더 적성에 맞으신가요.

 

최은배 : 판사는 국가의 녹을 받는 공직입니다. 사실 가정경제면에서 보자면 월급은 모자란 편이죠. 물론 판사가 받는 월급은 공무원 중에서 최고액에 가깝고, 흔히 ‘월급쟁이’라 말하는 분들에 비하면 많기는 합니다만, 반대로 변호사들은 자기 사업을 하는 것이니 능력에 따라서는 많은 수익을 올릴 수도 있지요. 그런데 역으로 경기 부침에 따라 집에 월급을 못 가져다 줄 수도 있더라고요. 저도 작년에 한 달 반 정도 집에 월급 가져다주기가 어려웠어요. 그래도 다행히 제가 노동법에 특히 전문성이 있다는 약간의 이름을 얻어서 사람들의 신뢰를 사는 면이 있어요. 그 덕에 다른 부장판사 출신들보다 형편이 좀 더 나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담인데, 흔히 아기가 태어나서 사주를 보면 관운이 있다, 재물 복이 있다, 혹은 장수할 거다 이런 얘기를 하잖아요. 아버지가 제 이름을 지어준 작명소에서 제 사주를 봤더니, 행정 관료가 될 거라고 했답니다. 법관이 아니고요.

 

이혜정 : 판사는 변호사가 서면으로 정제하고 정리한 언어로 사건을 접하고, 변호사는 정제하기 전 날것 그대로의 사건을 만나게 되죠. 양쪽을 경험한 지금, 느낌이 어떤지 궁금해요.

 

최은배 : 일반론적으로 답하자면, 저도 절실하게 깨달았죠. 법원에 있을 때 변호사인 친구들이 “변호사가 서면으로 법원에 제출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는지 아느냐”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변호사는 있는 그대로의 사건을 법률 언어로 번역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거예요. 변호사는 사건의 전후와 쟁점을 법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생을 하고요. 그런데 이건 이성으로 파악하는 얘기고요, 사실 판사는 괴로워요.

봐야 하는 서면도 많고, 재판도 많고, 일에 시달리고, 짜증도 나고, 변호사하고 싸우기도 하죠. 가끔은 변호사의 서면을 받았을 때 “이렇게밖에 못하나”, “이런 신청은 무슨 의미가 있어서 하나, 안 해도 되는데”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실제로 법정에서 “그쪽에서 받아봐라, 당신이 요청한 그 자료 받으면 제대로 쓸 수 있겠냐”고 물어본 적도 있어요. 판사일 땐 제가 판단하기에 부적절하거나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취하시키라고 하기도 했는데, 변호사가 되니까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변호사 편에 서게 되더라고요. 의뢰인이 무리한 요구를 할 때는 “판사한테 오히려 인상만 망가진다”고 말리기도 하지만요.

 

변호사가 되어보니 알게 된 점은, 법원의 명령이 절대적이라는 거예요. 모든 기관이 법원의 명령을 핑계로 미룰 수 없어요. “판사님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고요. 법원의 명령이 강력해요. 실제로 법원이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사건들이 많아요. 예를 들면 회사에서 영업비밀이라고 자료 요청을 거부할 때 법원이 명령해주면 훨씬 쉽게 풀리잖아요. 판사일 땐 몰랐는데 의외로 법원이 강력한 힘을 갖고 있어요. 법원이 강하게 나갈 때는 강하게 나가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는 변호사들이 많은 부분 더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법원이 소심한 태도를 보이는 부분이 많아요.

 

이혜정 : 작년에는 변호사님이 민변에서 신입변호사를 위한 강연도 하셨죠. 판사의 경험을 토대로 볼 때 좋은 변호사는 어떤 변호사인지, 후배 법조인들에게 팁을 주시다면.

IMG_0312최은배 : 사실 법조인이 되기 위해 고민하고 공부한 시간에 비하면 아무 내용 없는 답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서면은 공들인 만큼, 공부하고 쌓아온 실력만큼 나오게 되어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사실 판사 입장에서 가장 보기 편한 서면을 내는 사람들은 부장판사 출신인 변호사가 직접 쓴 서면이에요.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직접 자기 판결문을 쓰듯 써 낸 서면이 가끔 있거든요. 그런데 모든 사람이 판사를 경험할 수 없고, 또 부장판사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은 더 적잖아요. 그러니 이건 특별한 일부의 이야기죠.

좀 더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첫째 핵심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컴팩트하게 쓰는 게 중요합니다. 이야기 많이 하는 게, 서면 60페이지씩 써 내는 게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고민하는 만큼 정제된 서면을 쓰게 됩니다. 분량을 늘리는 것보다 줄이는 것이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해요. 판결문도 너무 긴 판결문보다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읽을 만한 판결문이 더 좋고요. 짧게 쓴다고 생각도 짧은 건 아니에요.

둘째는 국어 실력입니다. 법학 소양의 문제가 아니라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 그 변호사를 가르친 국어선생님이 누구인지 궁금해지는 사람들이 있어요. 부장판사가 되고 남의 글을 고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건데, 나이 드신 변호사님들 중에 서면의 문장이 항상 ‘것입니다’로 끝나는 분들이 있어요. “~할 것입니다” 이렇게. 그게 모든 문단에 나와요. 그러면 읽는 입장에서 지쳐요. 최근 문장 교정하는 법을 다룬 책이 있는데, 전문교정인이 ‘적·의를 보이는 것·들’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적, 의, 것, 들 이 네 가지만 주의하면 훨씬 깔끔한 문장을 쓸 수 있다고 지적하더군요.

중언부언하는 서면, 보여주기 식으로 분량만 길게 쓴 서면, 습관적으로 문장에 군더더기가 붙어 읽는 사람을 지치게 하는 서면. 이런 글쓰기와 국어 실력 문제가 두 번째 문제예요.

세 번째가 법학이론의 문제입니다. 본인이 공부를 충실하게 한 만큼 장기적으로 실력차이가 드러나게 되어있어요. 사법시험 세대에 빗댄다면, 민법 총칙 교과서 네 권을 다 읽은 사람과 수험서로 본 사람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길게 보면 노동법을 다룰 때도 민법을 성실하게 공부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정치한 논리를 전개할 수 있습니다.

 

이혜정 : 서면이 중요하다, 판사님도 정성들인 만큼 본다, 글 잘 쓰기 위한 노력을 하라는 이야기를 참 많이 하죠. 그런데 가끔은 저 수많은 사건과 기록을 판사님이 정말 다 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해요.

 

최은배 : 기본적으로 눈에 들어와야 더 읽게 된다는 건 맞아요. 사실 세 페이지 정도 넘기다가 덮게 되는 서면도 있어요. 제목만 봐도 ‘했던 말 또 내는구나, 상대방이 서면 써냈으니까 반박하겠지’ 지레짐작으로 안 본 서면도 있었고요. 그런 재판에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서면이 몇 개 안 나와요. 소장, 답변서, 답변서에 대해 제출한 원고의 서면, 그리고 끝이죠. 나머지는 감정이 필요할 때, 혹은 중요한 증거 조사 결과가 밝혀졌을 때 보면 되고요.

민사재판도 재판이 수십 차까지 길어지는 재판이 많고 변호인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만, 자기가 원고라면 첫 번째 변론기일, 증거조사 이 두 가지가 제일 중요해요. 법정에서 요구하는 것도 이 두 가지이고, 시간이 모자라 똑같은 말 그대로 쓴 똑같은 서면 내는 것보다 이 두 가지에 집중하는 게 낫다 싶어요. 변론의 기술보다 강력한 건 진실이에요. 사실관계가 우리한테 유리하다면 글도 간단히 핵심만 전달하면 되죠. 그게 아닌데 어떻게든 돌이키고 만회하려고 하면 말이 길어지고, 중언부언하게 되고 변명처럼 느껴집니다.

 

이혜정 : 지금 민변 활동 중에도 노동위원회 활동을 가장 많이 하고 계시잖아요. 노동법 전문가로서 최근 통상임금 판결은 어떻게 보시나요.

최은배 : 저도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사용자 입장이 되었어요. 도발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사용자가 큰돈을 버는 것은 위험부담을 떠안는 대가 아닐까요? 기업이 성공과 실패를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는 사업적 위험을 감수한 결과 성공하여 큰돈을 벌었다면 할 말이 없어요.

그런데 사업 기반이 모두 마련되어있어 땅 짚고 헤엄치면서 들어오는 돈만 챙기는 기업도 있어요. 특히 지금의 통신사 같은 기업들이요. 그런 기업을 운영하는 CEO는 앉아서 1억 이상 급여를 가져가는 것은 물론이고 스톡옵션으로 수십억씩 챙겨가기도 하죠. 그런 건 옳지 않다고 봐요. 주주들도 마찬가지고요.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기업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에요. 기업 그 자체가 기업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인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을 조직하고,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세팅하는 것이 기업입니다. 사람의 조직과 사업 기반에서 재화가 생산되고, 용역과 재화가 결합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하나의 조직체고 용조물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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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의 기업은 회사라는 이유만으로 노동자의 임금을 ‘비용’ 취급하면서 기업 그 자체의 보전만을 가치로 삼고 있어요.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돈입니다. 매출이 적어서 임금을 지불하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하더라도 그게 정당한 사업의 결과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이상한 일이 아니죠.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비축해두는 유보금, 예비비는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게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겠죠.

기업에서 실제로 일을 한 노동자들의 임금이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의 절반도 안 된다면 좀 이상한 일 아닐까요? 대기업의 순수익 중 일부는 국가가 세금으로 거둬들여서 돈이 되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에 분배해줘야죠. 결국 임금, 세금, 상품 원가를 제하고 나면 주주가 가져갈 이익이 그렇게 크지 않은 게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주주가 자본을 투입한 것에 대해서는 일정부분 보상해주는 게 맞지만, 회사가 주주만의 것은 아니잖아요. 주주자본주의는 미국의 자본주의 형성 초기에 나타난 극단적인 이론이에요. 지금은 기업의 존재 이유는 주주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에 있다는 게 정설이에요. 기업의 기반은 그 회사의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첫째, 회사의 사업에 노동을 투여하는 노동자가 둘째입니다. 자본은 마지막이에요. 소비자, 노동자, 자본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기업입니다. 이렇게 바라보면 기업과 노동관계에서 발생하는 많은 사회 문제가 해결될 거예요.

우리 사회는 노동자는 비용 지출을 발생시키는 대상으로만 보고, 이윤이 안 나면 인건비를 가장 먼저 깎아요. 일을 할 사람을 조직하고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다는 기업의 존재 가치가 우선시되어야 하고, 궁극적으로 노동자의 공헌은 ‘비용’으로 환산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판결을 본다면 임금을 더 주는 바람에 적자가 생겨도 그 때문에 기업이 망하진 않을 거라고 봅니다. 사람이 모이는 조직체이니 이 문제도 사람이 해결하겠죠.

 

이혜정 : 마지막으로, 요즘 법원개혁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어요. 가장 시급한 사법개혁을 꼽으라면 무엇을 꼽으시겠어요.

 

최은배 : 법원 내부의 문제라서 국민들이 실감하기 어려운 문제로는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력 문제가 있어요. 기업에서도 직급별로 권한이 구분되어야 하잖아요. 판사도 스스로 협의회를 구성해서 의견도 내야하고, 사법 현장에서 대법원장 개인의 판단에만 근거하여 행정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는 여러 판사들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권력이나 권한을 분산해야 해요. 지금은 전국의 모든 법정이 일사분란하게 의자 개수까지도 대법원의 결정을 따르고, 법원장은 법원 안에서 기금 운영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권한을 모두 분산시켜야죠. 연방제 국가는 주 법원과 연방법원이 완전히 달라요. 우리나라도 법원 자체적으로 특색 있는 법정도 만들어보고, 재판 받으러 온 사람들의 의견이나 아이디어가 법원에서 실현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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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법부가 국민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다른 게 없습니다. 판사 수 늘리고 법정 늘리고 법원 많이 만들어서 국민이 재판을 받을 기회가 보장되어야 하는 게 가장 급선무입니다. 판사나 사법부의 틀도 국회의 입법에 의해 결정되고, 행정부는 공무원의 정원을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어요. 그러니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크게 형성되어야 합니다.

최근에는 사실상 검사가 민사재판을 하고 있거든요. 판사가 모자라니 민사재판을 진행하는데 오래 걸려서 재산 분쟁이 일어나면 사기, 횡령, 배임 같은 형사 사건으로 해결하려 해요. 법원이 제대로 기능하면 재산 문제나 개인 분쟁을 민사 재판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검사가 하는 많은 일을 법원이 가져와야 하고, 그러려면 법원이 경찰서만큼 많아야 해요. 경찰서는 자치구마다 하나씩 있잖아요. 법원이 인구 50만명당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러면 검사가 형벌로 다스려 사회 질서와 사법정의를 지키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금, 2017/09/2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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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위] 경의선 공유지 현장 월례회 
– 시민이 꾸리는 서울의 26번째 자치구를 상상하다

기차가 다니던 자리에 시민들이 장터를 만들었습니다. 시민들은 이 장터에 언제나 사람이 북적북적한 장날이 계속되기를 바라면서, ‘늘장’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벼룩시장, 수공예 제품,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과 사방치기를 할 수 있는 공터가 생겼습니다. 도시 재개발로 ‘주거난민’이 된 청년도 늘장이 있는 이곳으로 왔습니다. 시민들은 이제 그 장터를 어떻게 하면 시민 모두의 공간으로 남겨둘 수 있을지 고민하는 중입니다. 도심 개발의 흐름을 피하고 시민들이 스스로 운영하는 가치 있는 공유 공간으로 남기는 방법을 찾아내려고요. 서울 마포구 공덕역 인근의 ‘경의선 공유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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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지난 2월 21일 (수) 이곳에서 현장월례회를 진행했습니다.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 활동가들로부터 경의선 공유지에 개발사업이 추진된 경위와 앞으로 이 공간을 어떻게 시민의 공간으로 남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듣고 법적 이슈에 대한 고민도 나눴습니다. 또 현재 경의선 공유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주거난민 ‘뜨거운 청춘’의 이희성 씨의 도시난민 경험을 나누고 도시 주거 난민의 문제를 고민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개발사업 주춤하는 사이 경의선 공유지에 들어온 식구들

원래 경의선 기차가 지나다녔던 이 곳은 철도 지하화 사업으로 ‘철도유휴부지’가 되었습니다. 철도시설공단은 2011년 (주) 이랜드 공덕과 30년간 임대계약을 맺고 이 자리에 생활주택을 건설하는 개발계획을 세웠습니다. 원래 2015년까지 생활주택을 건설한다는 계획은 축소·변경되어 지금은 사실상 관광호텔 계획이 되어버렸습니다.

2013년 마포구는 기차가 지나가지 않아 흉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경의선 공유지를 시민·지역단체가 꾸린 ‘늘장 협동조합’에 맡겼습니다. 경의선 숲길의 공원과 작은 플리마켓을 합쳐 ‘늘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어린이들이 뛰어 놀고, 어른들은 수공예 제품을 구경하거나 맥주 한 잔을 나누는 공간이 되었죠. ‘2015년부터 이곳에서 진행될 도시개발 사업이 시작되기 전까지만’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경의선 공유지를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늘어만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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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대로라면 2015년부터 생활주택 건설이 시작되어야 할 이곳엔 지금까지 어떤 개발이나 사업의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이 경의선 공유지에는 식구가 늘었습니다. 2016년 마포구 ‘아현동 포차거리’ 강제 철거 이후 ‘아현 포차 이모님’들이 경의선 공유지에 임시 포장마차를 만들고 영업을 계속하는 중입니다.

민생경제위원회는 이날 ‘아현포차 이모님’이 운영하는 포차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포차 안에는 지금은 사라진 아현동 포차거리 시절의 마지막 모습과 철거 용역과 싸우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습니다. 따뜻한 밥에 시원한 쇠고기뭇국, 소주 한 잔에 꼼장어까지. 이모님의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김태근 변호사는 ‘속이 풀리는 것 같다’며 국물을 들이키고, 박정만 변호사도 “정말 오랜만에 집밥을 먹는다”고 밥을 두 공기나 비웠습니다.

청년 주거난민 희성씨, 주거권을 말하다

경의선 공유지에는 청년 도시 주거난민 이희성씨도 머물고 있습니다. 의류업계에서 일하는 꿈을 꾸며 서울로 올라온 이희성씨는 동대문과 가까운 성동구 행당동에 작은 방을 얻었습니다. 행당동에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자 세입자들은 아무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쫓겨나야 했습니다. 재개발 조합은 임대인들에게 ‘주거이전비 1000만 원을 받으려면 세입자를 내보내야 한다’고 했고, 임차인들은 계약기간이 남아있음에도 속수무책 쫓겨나야 했습니다.

12월까지만 버티면 그래도 방을 구할 수는 있었을 텐데. 봄이 절정이던 2015년 4월 하순, 희성씨의 집은 강제철거됐습니다. 당장 갈 곳이 없어 구청 마당 원두막에서 노숙을 하는데, 봄인데도 새벽이 너무나 추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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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희성씨는 청년 주거문제의 중요성을 알리고 국가와 서울시에 대책을 요구하는 등 청년 주거난민을 대변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세입자를 무작정 내쫓는 도시 재개발에 반대하고 세입자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활동입니다. 하지만 제도와 행정의 눈으로 볼 때 희성씨는 ‘거주불명자’이고,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입니다.

경의선 공유지를 서울 시민의 26번째 자치구로

현재 경의선 공유지의 사업권을 가지고 있는 (주)이랜드공덕은 개발 사업을 진행할 기미가 없는 상태입니다.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은 ‘26번째자치구운동’과 힘을 합쳐 경의선 공유지를 자율적이고 이질적인 시민들의 공유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경제적 환경에 영향 받지 않고 시민이 직접 꾸려 나가는 공유지 ‘공덕 커먼즈’를 만들어 이곳에서 지식과 예술을 생산할 수 있게 하는 계획입니다.

가장 큰 전제는 기존 (주)이랜드공덕의 사업계획을 해소하고 서울시나 철도시설공단을 통해 이 공간을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꾸려나가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현재 경의선공유지 시민행동은 이와 같은 시민 공유지 계획을 서울시나 철도시설공단과 함께하는 협력사업으로 만들고자 제도와 절차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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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월례회를 추진하고 준비한 김태근 금융부동산팀장은 “공덕 커먼즈라는 새로운 시도가 성공했으면 좋겠고, 여기서 사실상 홀로 숙박 중인 ‘뜨거운 청년’ 이희성 씨가 자기 꿈을 찾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또 “도시난민이라는 화두를 (계속) 잡고 있는 그분들이 고맙기도 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월례회에 참석했던 김가희 변호사 역시 “기사와 댓글로 짐작할 수 없는 것들이 현장에 있었다”며 “그 현장에 선배 변호사님들이 먼저 도착해 계신 것을 보고 가슴이 뜨거워진 월례회”였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민생위가 직접 현장을 찾아가는 ‘현장 월례회’는 올해 몇 차례 더 이어질 예정입니다. 또 다른 현장 소식은 다음 소식에 또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월, 2018/03/0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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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기 자원활동가 인터뷰]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를 꿈꾸다 : 조현주 변호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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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이 맑던 6월의 어느 날,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에서 조현주 변호사를 만났다. 변호사가 된 후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자의 곁에서 보낸 그는 만도지부 투쟁, 쌍용자동차 대한문분향소 투쟁, 콘티넨탈지회 노조 간 차별 소송 등 굵직한 노동 사건들을 맡아왔다.

최근 열린 민변 31차 정기총회에서 모범회원상을 수상한 그는 ‘세상에 이로운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는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를 꿈꾼다는 조현주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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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변호사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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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현주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조현주 변호사입니다. 2009년에 변호사가 된 후 2011년에 민주노총 법률원을 시작으로 금속노조 볍률원을 거쳐 작년 5월부터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Q. ‘조현주 변호사‘라고 하면 ’노동‘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같아요. 대학시절부터 노동 변호사를 꿈꾸신 건가요?
사실 대학교에 들어갈 땐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노동 분야에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었어요.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마냥 낭만적인 캠퍼스 라이프를 꿈꿨죠. 그러던 중 정말 우연한 계기로 학내문제 관련 집회에 참가하게 됐어요. 그런데 거기서 연세대학교 학생 한 명이 죽는 일이 발생한 거예요. 그 학생은 풍물패 단원이었는데, 집회가 진행되기 전 준비 작업을 했을 뿐인데 토끼몰이식의 시위 진압으로 인해 맨 앞에서 맞아 죽은 거죠. 그 학생이 위협적인 무기를 가지고 폭력적인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걸 보면서 왜 민주주의 사회에서 집회의 자유가 지켜지지 않는 건지 그 이유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한 후 자연스럽게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웠고, 이 문제들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이후 졸업할 시기가 되어 ‘내가 뭘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고, 제 대답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때 행복하다’는 거였어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 즉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 길로 시험 준비를 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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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원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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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럼 사법고시 합격 후 처음부터 법률원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으셨던 건가요?
네. 연수원 수료할 때 법률원에 지원을 했는데 그 때는 지원이 늦기도 했고 채용이 안 되었어요. 그래서 우선 일반 법률사무소에서 2년 정도 근무를 한 후에 다시 지원을 해서 운 좋게 민주노총법률원에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

Q. 현재는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에서 일하신다고 하셨는데 어떤 업무를 하고 계신지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려요.
우선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은 공공운수노조의 부설기관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노조 관련한 일을 하는데요, 구체적으로는 상담 및 자문, 의견서 작성, 법률 교육, 다른 단체와의 연대활동, 기본적인 송무 등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사무실에는 변호사 9분, 노무사님 4분, 차장님 3분이 함께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업무의 강도는 어떤지 궁금해요.
법률원에 들어오기 전에 바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저도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 걱정을 했어요. 지금은 법률원 규모도 어느 정도 커지고 인원 충당이 많이 돼서 예전 선배들만큼 고생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기본적인 업무는 상당한 편에 속해요.

특히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시기에는 처리해야 할 일이 상당히 많아지죠. 또 단순히 투쟁은 끝나더라도 법률적인 싸움은 지속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기본적으로 업무량은 있는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주말에는 최대한 쉬려고 노력하는데, 이때는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거나 미술관도 가거나 다른 취미생활을 해요.

Q.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높은 업무강도를 버티기 위한 나름의 비법이라도 있나요?
정말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 스스로도 아직 비법을 찾지 못했거든요.(웃음)
다만, 예전에는 최대한 일을 빨리 끝내려고 식사도 자리에서 대충 해치웠는데, 이제는 점심시간에 바깥공기도 쐬고 많이 걸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있는 것만큼 척추에 무리가 가는 것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식사시간에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산책도하고, 혈액을 순환시켜주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에요.

Q. 그동안 다양한 법률원에서 활동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제가 금속노조법률원에 있었던 2016년 초에 노조가 처음으로 압수수색을 당한 사건이 있었어요. 그 때 금속노조 사무처 분이 “그래도 변호사님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어요.”라고 문자를 보내주셨어요. 그때 내가 도움이 됐구나, 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문자를 보내주셨던 게 아직까지 기억에 많이 남아요.

이 외에도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여럿 있어요. 일을 하다가 자신감이 떨어지거나 하는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떠올리는 분들, 노조들이 있어요. 절 잊지 않으시고 “보고 싶다”고 연락 주시는 분, “고맙다. 잘했다”고 말해주셨던 분들이요.

한번은 제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수련회에 참석해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는데, 최근에 지회장님이 농담으로 ‘변호사님이 불러준 그 노래 때문에 우리가 투쟁할 수 있었어요’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런 가벼운 농담일지라도 기억에 남죠. 이런 순간순간들이 모여서 저한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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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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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직장갑질 119에서 활동을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직장갑질 119>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네이버 밴드, 메일 등을 통해서 노동자분들이 직장에서 받으신 부당한 대우에 대해 말해주시면 스태프들이 법률 자문을 해주는 시스템인데요, 저도 스태프로 직장 내 부당한 대우나 차별적 관행에 대한 법률 자문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Q. 직장갑질 119에 자문을 의뢰하는 분들은 대부분 어떤 피해를 입으신 분들인가요?
피해자 분들이 얘기해주시는 사건들은 대부분 근로기준법 위반과 관련된 것들이에요. 임금체불이나 근로시간 산정, 연차 수당과 관련된 문제들이 상당히 많고요, 이 외에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비율도 꽤 높은 편입니다. 이런 고민들을 들으면 저는 항상 노조에 가입하거나, 노조를 직접 만드시라고 제안을 하는 편이에요. 문제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혼자보단 여럿이 힘을 합쳐 해결하는 게 훨씬 수월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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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직장갑질 119에서 진행되는 상담과 법률원 측에서 진행하는 노동 상담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민주노총 법률원에서도 유선 상으로 노동 상담을 하긴 해요. 다만, 이쪽으로 전화를 주시는 분들은 대부분 노동조합에 대해 거부감이 없으신 분들이고, 상담이 진행되기 전에 저희가 거의 이름, 전화번호 등을 확인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누군지 저희가 좀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죠.

이에 반해 직장갑질 119를 통해 문의해주시는 분들은 모두 익명이기 때문에 저희가 정확한 신원을 파악할 수 없어요. 익명이기 때문에 상담을 신청해주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덜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고, 접근성이 좋아지는 측면은 있어요. 한편으로 저희가 상담을 해드려도 실질적으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활동이 정말 중요한데 이분들이 상담 후에 노동조합 활동에 실질적으로 참여하실지는 미지수죠. 이 부분은 민주노총 법률원 유선 상담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갑질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법률상담을 넘어서 ‘직접 힘을 모아 부당한 것을 바꾸자’는 것이 필요한데 그런 측면에서 상담을 넘어선 집단적 변화를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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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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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변호사로서 노동 현장에 함께 하시면서 노동권 보장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법적 장치, 사법 환경이 있나요?
문제들이 한 둘이 아니라 단정하기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를 규정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특히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는 분들이 있는데, 이 분들은 지금 법원의 해석으로 ‘노동자’의 범위에 포섭되고 있거든요. 이분들이 더 이상 법원의 해석을 기다리지 않고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 부분은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사항이기도 하고요. 유엔 사회권위원회에서도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권고가 내려왔는데 이행기간이 내년 상반기로 알고 있어요.

이 외에도 지금 창구단일화 구조는 사용자의 입맛에 맞춰 교섭을 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변경되어야 하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법정형이 낮은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또 지금 현행법에서는 강요된 근로를 금지하기는 하는데 ‘감금’과 같은 수단을 요구해요. 즉, 아무리 강요된 근로가 발생했더라도 그것이 ‘감금’과 같은 수단에 의한 것이 아니면 형사적 처벌을 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요새 누가 감금해놓고 강제로 일을 시키나요?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인거죠. 뿐만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을 때 그게 실질적으로는 폭행을 하거나 협박에 이르는 정도는 아니어서 법적 처벌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지속되는 경우가 있고요. 이렇게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시급히 개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2013년 변호사님께서 쓰신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라는 칼럼을 읽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가 되기 위한 선결과제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노동자의 개념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우리사회는 ‘노동자’라고 하면 아직까지도 ’막노동‘의 이미지만 떠올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들은 노동자야’, ‘나는 커서 노동자가 되지 않을 거야’, ‘나는 노사관계와 관련이 없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많은 것 같아요. 왜 이런 편견들이 생겨나는 걸까요? 우리가 학교에서 이 부분에 대해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죠. 우리 모두가 노동자가 될 수 있고, 노동자가 되었을 때 어떠한 권리들을 요구할 수 있는 지에 대해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교육이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해요.

또,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막연하게 ‘투쟁을 하는 단체’, ‘공격적인 단체’라고 편견을 갖는 부분도 개선되어야겠죠. 노동조합을 활동할 권리가 헌법에 명시된 이유는 이 활동을 통해 우리가 기본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만큼 노동조합이 중요한 데 그 중요성이 과소평가되는 것 같아요. 이 외에도, 노동조합의 투쟁방식도 천차만별일 수 있는 데 노조에 대해 공격적 이미지만 갖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런 편견들이 해소될 때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가 만들어 질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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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한 인터뷰에서 “정의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변호사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추상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윤보다 사람의 가치가 소중한 것’이구요, 구체적으로는 ‘구성원들의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음식과 식당이 차고 넘치는 데 굶어 죽는 분들이 있고, 길거리에 집이 이렇게나 많은데 내 한 몸 뉘일 곳이 없는 분들이 있다는 게 이해가 안가요. 아픈데 돈이 없어서 죽어야 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 노후를 위해서 일평생을 바치는 그것도 이해가 안 가요.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해결되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 실질적인 평등이 보장되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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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마지막으로, 인간 조현주의 앞으로의 계획, 꿈은 무엇인가요?
법률원에 처음 들어올 때 술자리에서 꿈 얘기를 했는데, 나중에 묘비에 ‘인권변호사‘ 라는 글자가 새겨질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살다 보면 현실적 여건 때문에 지금 이야기 하는 꿈이 바뀔 수는 있겠죠.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인권변호사’로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금, 2018/06/2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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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위 활동 소식

양승태 대법원장은 상고법원의 설치를 위하여 재판거래와 사법농단으로 헌정을 유린하였습니다. ‘과거 왜곡의 광정(匡正)’이라는 명목으로 과거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에게 판결로서 ‘제2의 국가폭력’을 자행하였습니다. 누구보다 공정하여야 하고,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재판하여야 할 사법부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였다’고 자평하면서, 스스로 사법부 독립을 내팽겨 쳤고, 판결을 정부와 대통령의 입맛에 맞게 농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피해의 선두에는 ‘과거사 사건의 피해자들’이 있었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은 과거사 피해자들의 권리구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판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국가폭력을 가하였습니다.

과거사위원회는 이와 관련하여 5월 28일,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자처하며 과거사 청산을 가로막은 사법부의 만행을 규탄하며, 검찰의 즉각적인 수사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6월 11일 오전 11시경 대법원 동문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과거사 피해자들 약 500명을 고발인으로 하여 양승태 대법원장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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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과거사위원회는 민변 사법농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TF에 합류하여,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다각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데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특히 과거사 관련 판결에 대한 재판거래 내지는 재판개입 의혹을 규명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6월 27일 오전 11시에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모임인 ‘긴조사람들’이 주관하는 “민보상법 18조 2항 헌법소원에 대한 조속한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등 과거사 피해자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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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6월 15일에는 과거사위원회의 신입 회원들을 환영하는 “신선한 모임”을 가졌는데요. 이 자리에서는 과거사위원장을 역임하셨던 장완익 변호사님(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장)을 모시고, 과거사위원회의 발자취와 앞으로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신입회원으로 서채완, 이주희, 정현석, 천지륜 변호사님이 함께 해주셨답니다. 앞으로 신입 회원 변호사님들의 많은 활약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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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과거사위원회는 6월 27일 저녁 7시 30분, 일본군 ‘위안부’ 및 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며 6년여에 걸쳐 진행된 ‘관부(關釜)재판’ 과정을 담은 영화 ‘허스토리’를 함께 관람할 예정이구요, 8월에는 울릉도로 떠나는 대망의 워크샵이 준비되어 있답니다!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변호사들이 모여 있는 곳. 언제나 즐겁고 유쾌한 술자리와 대화가 있는 곳. 과거사위원회는 언제나 신입 회원 여러분들을 격하게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언제든지 과거사위원회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목, 2018/06/2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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