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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성 EU 집행위원장, 순탄치 않은 앞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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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성 EU 집행위원장, 순탄치 않은 앞날

admin | 금, 2019/12/27- 20:58

유럽연합(EU)을 대표하는 행정부 수반 격인 집행위원장에 여성으로는 최초로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이 취임했다. 폰 데어 라이엔은 40대에 늦깎이로 정치에 발을 들였지만 한때 앙겔라 메르켈을 이을 가장 강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돼 온 중량급 정치인이다. 추진력은 널리 알려져 있다. 스스로가 7남매의 어머니인 폰 데어 라이엔은 독일 노동부 장관으로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펼쳤다. 남성에게 유급 육아휴직 2개월을 주는 제도와 육아휴직 여성에게 임금의 67%를 보조하는 법안을 이끌어냈다. 군 경험이 전무하면서도 “독일 연방군을 독일에서 가장 매력적인 직장으로 만들겠다”며 여성으로는 최초로 독일 국방장관직을 수행했다.

폰 데어 라이엔의 취임은 EU를 이끄는 두 축인 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ECB)의 수장이 모두 여성이 됐다는 상징적인 변화로 주목받기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맡고 있었던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지난 11월 여성 최초로 유럽중앙은행 총재에 취임했다. 두 사람 모두 기후변화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나선 것도 공통점이다. 라가르트 총재는 기후변화 대처를 위해 통화정책까지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EU는 많은 도전과 위험에 직면해 있다. 영국의 EU 탈퇴 이슈인 ‘브렉시트’나 난민 대책, 극우 포퓰리즘의 득세 등 하나 같이 만만치 않다. EU의 성장 엔진 역할을 해 왔던 독일의 경제 침체가 EU의 경제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미·중 무역분쟁의 격화와 러시아의 위협 등도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EU와 미국과의 관계도 무역과 이란 핵 합의 등에서 충돌하며 악화됐다.

지난 11월1일부터 5년의 임기를 시작한 폰 데어 라이엔은 트럼프 대통령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도 통화하며 새해에 만나겠다고 밝혔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더라도 “제3국이 되겠지만 유례없는 협력관계를 갖게 될 것”이라며 안정적인 관계를 이끌어나가겠다고 밝혔다. 폰 데어 라이엔이 EU가 맞닥뜨린 대내외적인 도전에 맞서면서 기후변화와 EU의 미래라는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메르켈 내각 최장수 장관… 프랑스어·영어도 능통

폰 데어 라이엔은 1958년 10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에른스트 알브레히트가 그 직전 해에 출범한 유럽경제공동체(ECC)의 집행위원회(EU 집행위원회의 전신)에서 일하게 되면서 가족들이 브뤼셀에 살게 됐기 때문이다. 알브레히트는 초대이자 폰 데어 라이엔이 취임하기 전까지 유일한 독일인 집행위원장이었던 발터 할슈타인 아래에서 일하며 경쟁 담당 사무국장까지 지내기도 했다. 훗날 집행위원장이 되는 폰 데어 라이엔을 생각하면 아버지가 일했던 자리에 다시 돌아온 셈이다.

폰 데어 라이엔은 13살이 됐던 1971년 가족과 함께 독일 니더작센 주의 하노버로 이주했다. 이후 식품회사 사장을 거쳐 정계에 입문한 아버지는 1976년 니더작센 주의 주지사가 됐으며 1990년까지 계속 재선돼 연임했다. 아버지는 중도 보수 성향인 기독민주당(CDU) 소속으로 한때 헬무트 콜의 지지를 받아 당 대표 선거에 나갔지만 낙선하기도 했다. 총리까지 꿈꿔볼 수 있었던 정치가였던 것이다. 1990년에는 주지사직을 내주게 되는데 그의 후임자가 바로 나중에 독일 총리가 되는 게르하르트 슈뢰더다.

폰 데어 라이엔은 1977년 괴팅겐대에 입학해 경제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 독일에는 68혁명의 영향으로 생겼던 극좌 무장단체였던 적군파(RAF)가 독일 경영자총협회 회장이자 나치 친위대 출신이었던 한스 마틴 슐러를 납치해 사살하는 등의 사건이 발생했다. 테러에 대한 불안감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1978년에는 RAF가 저명한 보수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알브레히트의 딸인 폰 데어 라이엔을 납치 대상에 올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때 폰 데어 라이엔에게는 24시간 경호를 받거나 영국으로 건너가 가명으로 사는 두 가지 선택권이 주어졌는데, 영국행을 선택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로즈 래드슨’ 이라는 가명으로 생활하면서, 런던 정경대(LSE)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갔다. 이 이름은 미국인이었던 증조할머니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폰 데어 라이엔에게 런던은 ‘현대성의 전형’이자 ‘자유’와 ‘삶의 기쁨’을 느끼게 해 준 곳이었다. 그는 런던 생활에서 “내가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 내면의 자유를 얻었다”며 “다른 문화가 공존하면서 잘 지낼 수 있다는 깨달음도 얻었다”고 말한다.

1979년 독일로 돌아온 그는 전공을 바꿔 하노버 의대에 입학했다. 1987년에는 졸업하면서 의사 면허를 취득했고 산부인과 의사로 일했다. 1992년에는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그러는 동안 1986년에는 같은 의사인 남편 하이코 폰 데어 라이엔과 결혼했다. 괴팅겐대의 합창단에서 남편을 만났다고 한다. 1992년에는 남편이 스탠포드 대학에서 일하게 되자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건너가 4년 동안 아이를 키우며 뒷바라지를 했다. 1987년부터 1999년 사이에 그는 7남매를 낳아 길렀다.

벨기에와 영국, 미국을 다양하게 거친 이력 탓에 폰 데어 라이엔은 독일어는 물론 영어와 프랑스어에도 능통하다. 이 점이 뒷날 EU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는데 반감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고도 한다.

그는 미국에서 다시 독일로 돌아온 뒤 2002년까지 하노버대에서 강의와 연구를 계속했다. 한편으로 1990년부터 기민당에 입당했던 그는 지역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96년에는 기민당의 니더작센 주 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기민당 소속 의사들의 모임에서도 활동했다. 2003년에는 니더작센 주 의회 의원으로 선출됐다. 2003부터 2005년까지는 주 정부 내각에서 사회복지 및 여성·가족·보건 장관을 맡아 일했다.

2003년 기민당 당 대표였던 앙겔라 메르켈은 당시 슈뢰더 총리에 맞선 사회복지 개혁안을 마련하고 있었고, 이 안을 마련하는 그룹에 폰 데어 라이엔도 참여하게 된다. 2005년 총선에서 메르켈은 저출산과 사회 보장 문제를 공략하면서 표심을 잡기 위해 폰 데어 라이엔을 예비 내각 명단에 넣게 된다.

폰 데어 라이엔은 보수 정권에서 일했지만 북유럽식 복지체계를 도입해 기민당 내 진보파로 분류되기도 한다. 출산 증가가 경제발전에 기여한다는 지론으로 출산 장려책에도 힘썼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부친을 5년이나 집에서 간병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정적인 이미지가 부각되기도 했다.

그는 메르켈 내각이 출범할 당시인 2005년부터 2009년까지는 가족여성청소년부 장관을 맡았다. 보수적인 당내의 반대 분위기 속에서도 보육 시설 확충에 43억 유로의 예산을 확보했다. 남성들에게도 2개월의 유급 육아휴직을 도입했다. 이런 정책에 대해 기민당과 연합하고 있는 기독사회당(CSU)에서는 “남성들은 기저귀 교환 인턴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노골적으로 비꼬기도 했다.

폰 데어 라이엔의 과감한 추진력은 때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아동 포르노 단속을 위해 독일 연방경찰청이 가지고 있는 차단 목록을 인터넷 서비스 업체에 제공해 강제 차단하는 방법을 옹호하면서 ‘검열 줄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06년에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기독교적 가치관 교육을 제시했다가 이슬람 이민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2009년부터는 노동사회부 장관으로 일했다. 주요 대기업의 감독이사회에 2023년까지 40%의 여성 이사를 임명하도록 하는 할당제 도입을 두고 사회민주당(SPD)과 기민당의 갈등이 벌어지자 메르켈 총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민당의 손을 들어줬다. 숙련된 노동 인력 확보를 위해 이주노동자의 이민 장벽을 낮추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동성결혼에 대해서도 찬성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2013년 폰 데어 라이엔은 여성 최초의 독일 국방장관에 임명됐다. 그는 군대를 ‘최고의 직장으로 만들자’며 군인들의 복지에 1억 유로를 투입했다. 군내 괴롭힘 등을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군 사령관을 해임시키기도 했다. 유럽과 러시아와의 긴장이 확대되면서 국방비 지출을 늘렸고, 18만5000명이던 병력 상한선을 해제하고 지속해오던 감군 정책을 벗어나 군인의 수를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대외적으로는 강경한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2014년에는 이슬람국가(IS)와 싸우고 있는 쿠르드자치정부에 대전차 미사일과 공격용 소총과 기관총 등 7000만 유로 상당의 무기를 지원했는데, 이는 2차 대전 이후 70년 만에 최초로 독일이 외국에 무기를 제공한 사례가 됐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별도로 유럽의 독자적 군 지휘체계를 창설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에 대한 무기 수출을 추진하기도 했다.

폰 데어 라이엔은 메르켈 내각에서 지금까지 14년 동안 계속 장관을 지낸 유일한 인물일 정도로 메르켈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나토 사무총장이나 메르켈의 뒤를 이를 총리 재목으로 꼽혔다. 그러나 2017년 총선 이후부터는 메르켈 총리의 후계자 그룹에서 서서히 밀려나는 분위기였다. 국방부 장관 재임 중에 연방군 내 장비 부족과 부실, 연방군 내 극우주의자 활동과 신병 모집 시 무리한 홍보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입지가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해군 훈련함 정비와 관련해 국방부 차관이 고임금의 고문들을 고용한 문제가 불거졌다. 독일 의회는 국방부가 민간 컨설팅회사와 자문 계약을 체결하면서 폰 데어 라이엔 장관의 사익을 위해 예산을 사용했는지에 대한 의혹을 조사하고 있다. 문제가 된 외부 자문 컨설팅회사 중에는 폰 데어 라이엔의 아들이 일하고 있는 매킨지도 있다. 이 문제로 폰 데어 라이엔은 연방하원의 조사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야 한다.

장관직 수행에 대한 독일 여론의 평가는 박하다. 메르켈 정부의 장관 지지도를 묻는 주간지 슈피겔의 여론조사에서는 꼴찌에서 두 번째를 기록했다. 독일 공영방송 ARD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폰 데어 라이엔의 EU 집행위원장 선출에 대해 응답자의 56%가 ‘적합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 직전에는 메르켈 총리가 선거 뒤 개각을 단행할 경우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분석이 언론에서 나오기도 했다. 예상과 달리 폰 데어 라이엔은 EU 집행위원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우여곡절 끝에 집행위원장에… 앞길은 순탄치 않아

폰 데어 라이엔이 EU 집행위원장에 오르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 전부터 본인이 속한 유럽의회 내의 최대 정치그룹인 유럽국민당(EPP)에서 집행위원장 후보로 선출된 만프레드 베버 의원을 추천해 왔다.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유럽국민당이 1위를 차지하자 메르켈 총리는 계속해서 베버 의원을 추천했다.

그동안 EU 집행위원장은 ‘선도후보’ 방식으로 선출돼 왔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최다 득표를 한 정치그룹의 대표 후보를 EU 회원국 정상들이 추인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럽국민당의 독주를 견제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반대가 있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집행위원회 경쟁담당위원을 지지하고 나섰다.

EU 지도부와 28개 회원국 정상들은 지난 6~7월 밤샘 회의 끝에 두 사람이 아닌 중도좌파 성향의 유럽사회당(S&D) 그룹의 집행위원장 후보인 프란스 티메르만스 협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전 네덜란드 외무장관)을 추천하기로 의견을 모아갔다. 그러나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등 4개국 정상들은 티메르만스가 헝가리와 폴란드에 대한 EU 차원의 제재를 주도했다며 ‘절대 반대’ 입장을 내놨다. 이때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폰 데어 라이엔을 새롭게 추천했고, 메르켈 총리가 수용하면서 전격 타결됐다. 대신 메르켈 총리는 폰 데어 라이엔을 지명하면 연정을 깰 수도 있다고 압박하는 사민당을 의식해 EU 회원국 정상 중 유일하게 집행위원장 지명 투표를 기권했다.

EU 집행위원회에 여성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 온 마크롱 대통령은 집행위원장을 독일에 양보하는 대신 유럽중앙은행 총재를 프랑스 출신 여성으로 앉히는 수확을 얻었다. 메르켈 총리는 60년 만에 독일 출신 EU 집행위원장을 앉히는 성과를 얻었다.

이 같은 진통은 지난 5월 말 유럽의회 선거가 끝난 후부터 예고됐다. 그동안 EU를 지배해온 중도파 유럽국민당과 유럽사회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대신 마크롱 대통령이 속해 있는 자유주의 성향 ‘리뉴 유럽’이 약진했고 발언권이 강해졌다. 그런데다 폰 데어 라이엔 임명 과정을 거치면서 유럽의회 내부의 다수 정당이 추천하는 후보를 집행위원장에 앉히는 ‘선도후보’ 제도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스카 켈러 유럽녹색당 그룹 공동대표는 “정상들의 밀실 인선은 EU의 변화를 요구하는 유럽시민들의 기대에 미달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유럽의회 인준표결에서 폰 데어 라이엔은 중도파 정당들의 반대에 부닥쳐 간신히 과반을 넘겨 통과했다. 찬성 383표, 반대 327표, 기권 22표였다. 과반을 불과 9표 넘겼다. 2008년 리스본 협약에 따라 유럽의회에 인준 거부권이 주어진 뒤 가장 적은 표차다. 유럽의회 지도부가 지지하는 인물을 거부해서 중도파가 이탈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극우파들이 폰 데어 라이엔을 지지하고 나서 입지가 어색해진 상황이다.

EU 집행위원장은 그동안 정책에 대해 거의 독점적 권한을 행사해 왔다. 집행위원회는 EU 차원의 법안을 만들어 유럽의회와 EU 각료이사회에 제출하고, 심의·채택을 받는다. 유로존(19개) 회원국 예산안을 점검할 수 있는 권한을 포함해 점차 권한도 확대되는 분위기다. 폰 데어 라이엔은 의회가 특정 안을 표결을 통해 통과시키면 입법활동에 반영하기로 하는 등 일부 권한을 나눠주기로 했다. 하지만 유럽의회가 역대 최대로 분열됐다는 평가가 나오는데다, 선도후보제를 무시하고 나온 집행위원장과 의회의 관계가 얼마나 원만할지는 미지수다.

새로 취임한 폰 데어 라이엔은 벨기에 브뤼셀의 EU 집행위원회 본부 빌딩 13층의 집무실 옆 사무실을 개조해 숙소로 사용하기로 했다. 브뤼셀에서 일하며 숙박할 경우 전임자들처럼 호텔을 이용하지 않고 집무실 옆에서 잠을 자기로 한 것이다. EU 고위관리들이 낭비가 심하다는 비판에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라이엔은 2005년 정부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줄곧 그렇게 해 왔다고 한다. 국방부 장관 시절에도 국방부 내 소박한 공간에서 숙박을 했다. 주말에는 베를린에서 290km 떨어진 하노버의 집에서 가족들과 지냈다. 독일의 다른 장관들의 사정도 비슷했다고 한다. EU 안에서 숙박할 경우 경호 인력도 필요 없고 교통 혼잡을 겪지 않아도 된다. 전임 집행위원장인 장 클로드 융커는 집무실 근처의 아파트형 호텔을 이용했는데, 매월 3250유로(428만원)의 비용을 썼다.

 

‘하나같은’ EU로 기후위기 돌파할까?

폰 데어 라이엔은 EU가 미국과 같은 연방 국가처럼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EU군’의 창설도 장기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내 자녀 세대는 아닐지라도 내 손자 세대에선 유럽연합국(United States of Europe)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선 소감으로 그는 “강하고 단결된 EU를 만들겠다”며 “외부의 누구도 우리를 분열시킬 수 없게 다시 단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취임 이후 그의 행보도 그에 발맞춰 가고 있다. 폰 데어 라이엔은 차기 집행위원단 명단을 공개하면서 EU 집행위원회 산하에 방위·우주 분과를 신설하고 실비 굴라르 프랑스 전 국방장관이 분과 집행위원을 맡는다고 발표했다. EU 집행위에 방위와 관련된 분과가 창설된 것은 처음이다. 폰 데어 라이엔은 “EU는 결코 군사동맹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회원국들의 군대에 대한 공통적인 (무기 등) 조달은 매우 중요하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 같은 행보의 배경에는 EU를 압박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에 맞선다는 심중이 담겨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은 관세 인상 및 방위비 분담금 압박 등으로 연일 EU를 거세게 압박 중이다.

경제적으로도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논리에 호락호락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폰 데어 라이엔은 ‘미국 기업 저승사자’로 불리는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현 EU 경쟁 분과 집행위원을 유임시켰다. 베스타게르 위원은 애플, 구글 등 미국의 초대형 정보통신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경쟁 질서를 해쳤다며 사상 최고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르그레테 위원을 두고 “택스 레이디(Tax lady)가 미국을 싫어한다”며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무역 분과 집행위원직에도 미국에 공격적인 필 호건 현 농업 분과 집행위원을 임명했다.

폰 데어 라이엔은 취임하면서 기후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지난 11일에는 EU를 ‘탄소 중립 대륙’으로 만들기 위한 ‘유런 그린딜’을 마련해 발표했다. EU 집행위원회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1990년 대비 40% 감축하는 현행 목표를 2020년 중반까지 적어도 50% 감축하는 내용으로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도 마련 중이다. 그린 딜에는 탄소 제로 과정에서 타격을 받는 국가와 지역을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유럽중앙은행 역시 화석연료 사업에 대한 대출 및 투자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분야 기업에 대해서는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고려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신임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재생에너지 분야 기업 채권을 대거 매입하는 ‘녹색 양적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자칫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EU회원국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EU 집행위의 그린딜에 대해서도 헝가리, 체코, 폴란드 등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동유럽 국가들은 반대하고 있다. 폰 데어 라이엔은 “어떤 이들은 전환 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말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데 따른 비용은 매년 커질 것”이라며 “그린 딜은 한편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되 한편으로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혁신을 증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자료

Wikipedia – Ursula von der Leyen

[경향신문 2016.10.15.] 김종대 “우리도 여성 국방장관을 상상해 보라”

[경향신문 2019.7.3.] 존재감 과시한 마크롱, 위상 낮아진 메르켈

[경향신문 2019.7.7.] 독일 자국서 반대 목소리 커지는 EU 집행위원장 후보

[연합뉴스 2019.7.17.] ‘유리천장’깨고 첫 여성 EU수장 등극 ‘7남매 엄마’ 폰데어라이엔

[연합뉴스 2019.7.14.] EU 행정수반 후보 폰데어라이엔, 대학시절 獨적군파 표적돼 피신

[동아일보 2019.7.3.] EU에 거세게 부는 女風…집행위원장에 폰데어라이엔 장관 깜짝 발탁

[파이낸셜뉴스 2019.7.17.] EU 첫 여성 수장 폰 데어 라이엔 “하나된, 강력한 유럽 목표“

[파이낸셜뉴스 2019.7.20.][박종원의 News 속 인물] EU 이끌 “슈퍼 엄마”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연합뉴스 2019.10.4.] 몸에 밴 절약…EU 집행위 차기 수장, 집무실 옆에 숙소 둔다

[한국경제 2019.11.28.] 녹색금융 강력 주창하는 두 명의 여성 유럽수장

[연합뉴스 2019.12.18.] EU 집행위원장, 트럼프·존슨과 통화…”내년 초 만남 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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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양국체제적 발상을 가로막아왔던 심리적 억압 기제는 크게 외부에서 비롯된 것과 내부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 두 개의 억압기제는 일단 겉보기에 서로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외적 억압은 상대를(즉 남은 북을, 북은 남을) 부정하는 쪽으로 작용한 반면, 내적 억압은 반대로 상대를 부정할 수 없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을 분석해보면 이 두 개의 계기가 역설적인 방식으로 서로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강렬한 ‘분단(부정)의식=내적 억압’이 결과적으로 남북 두 국가 간의 적대를 심화시켜 국가기구의 외적 억압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칸트의 정언명령이 곧잘 그러하다고 하듯, 당위는 그 당위가 강할수록 의도와는 반대되는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분단의식에 내포된 당위, 즉 분단부정의 당위 역시 그러했다. 남북은 반드시 하나여야 한다는 당위는 과연 어느 정도나 실제로 남북이 하나로 되는 데 기여했을까. 분단사에서 결정적 사건인 6·25 전쟁부터 생각해보자. 통일의 당위는 당시 남북 모두 하늘을 찌를 듯 강렬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분단의 고착이었다. 분단부정, 즉 통일에 대한 열정의 강도(强度)는 전쟁의 참혹도와, 그리고 그 결과로 생긴 분단의 고착도와 정확히 비례했다. 그때 심어진 적대와 원한을 아직까지도 다 지우지 못하고 있다. 통일을 외칠수록 통일에서 멀어지고, 분단극복을 외칠수록 분단현실이 강화되는 역설이 바로 2016년 겨울의 촛불 직전까지도 강력하게 작동했다.

당위의 정언성이 강하고 이념적일수록 그 당위의 실현을 저해하는 반대물, 장애물에 대한 부정과 억압은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다. 한반도에서 분단부정의 당위는 고도로 이데올로기적인 미소 냉전의 대립구조 안에서 작동했다. 따라서 그 당위의 정언성이 강해질수록 이데올로기적 순수와 오염의 이항 대립구도 역시 극도로 첨예해진다. 남과 북은 서로 전쟁을 한 군사적 적이자 동시에 이데올로기적 적이다. 적은 휴전선 저 밖에도 있지만, 더욱 위험한 적은 내부의 적이다. 따라서 남의 체제는 내부의 적인 ‘빨갱이’를 탐색하고 제거하는 고도의 정화 기계이고, 북의 체제는 또한 내부의 적인 ‘미제와 남조선 괴뢰도당의 끄나풀, 간첩’을 색출하여 말살하는 고도의 검열 장치이기도 했다. 이 정화와 검열의 장치는 그 속에 사는 인간의 마음과 뇌까지를 점유하여(‘내 귀의 도청장치’) 그 지배를 완성한다. 이로써 분단의 골은 인간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까지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듯 전면화된 분단체제는 커다란 고통과 함께 분단 현실에 대한 강렬한 비판의식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비판의식 역시 또 하나의 분단부정의 정언성에 기초한 당위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비판운동이 두드러지게 전개된 곳은 재야, 야당,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한국이었다.

한국의 역대 독재정권은 이러한 비판을 ‘이적’ ‘용공’ ‘친북’으로 몰아 탄압해왔다. 이들이 통치체제를 비판하면서 주장하고 있는 분단극복, 통일이란 결국 대치하고 있는 적의 편에 동조하는 통일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상황은 정치체제의 차이만 있을 뿐 남과 북에서 동형적으로 진행되어왔다. 분단체제란 이러한 분단체제 비판 세력을 식량으로 먹어치우면서, 즉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탄압하면서 자신의 몸체를 괴물처럼 더욱 키워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면 독재정권이 비판 세력을 ‘적’으로 상정하고 탄압하는 한, 극악한 탄압을 당하는 비판 세력 역시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독재정권을 ‘적’으로 상정하고 맞서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독재정권은 비판 세력이 자신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이적단체’에 불과한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강변해왔다. 이로써 상호를 적으로 간주하여 투쟁하는 상승적 순환 구조가 남과 북의 정권 사이에서, 그리고 남 내부와 북 내부 각각에서 형성되고 교차하면서 가속도를 얻어 작동한다.(이 책, 153쪽)

결국 분단체제란 분단의 부정, 즉 자기부정을 통해 자기를 재생산하는 기묘한 체제였다. 이 기묘한 작동논리는 2중의 차원에서 전개된다. 먼저 남북의 분단체제가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체제의 목적이 분단의 극복이다. ‘조국통일’, ‘북진통일’, ‘흡수통일’, ‘붕괴통일’, ‘통일대박’, 매한가지다. 모두 분단을 부정하고 자기 중심의 통일, 즉 ‘분단의 극복’을 표방한다. 이렇듯 분단체제가 분단을 부정하면 할수록 남북 양측에서 서로에 대한 의심과 대립과 적대의 힘, 즉 분단의 장력(張力)은 더욱 팽팽하게 당겨지는 물리학이 성립한다. 그러나 분단체제의 자기생산력이란 이것만이 아니다. 이렇듯 자기생산성을 갖는 분단체제의 기득 권력을 비판하고 맞서는 힘 역시 ‘분단극복’을 표방한다. 분단을 극복해야 분단체제가 종식될 것이니 당연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단체제는 바로 이렇듯 ‘분단체제극복’을 부르짖는 세력을 기다렸다는 듯이 체제비판 세력, 내부의 적, 간첩으로 낙인찍어 잡아들인다. 수많았던 기획된 간첩사건, 체제전복사건, 내란선동사건들이 그러했다.

분단체제의 적대적 장력은 이렇듯 서로를 외부·예외로 간주하는 남북 간에 형성될 뿐 아니라, 바로 남북의 내부에 외부·예외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겹2중’으로 형성된다. 이 ‘겹2중’이 맞물려 돌아가는 동력 구조가 분단체제다. 내부에 외부를 설정하는 이 ‘내부 적대’의 장치 마련을 통해 ‘외부 적대’의 동력을 증폭시키는 매커니즘이다. 분단체제란 이렇듯 강고할 뿐 아니라 교묘한 자기생산 – 재생산체제다. 70여 년이나 생명을 이어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애초에 문제는 분단을 부정하는 당위의 주체가 하나일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분단부정의 당위는 무엇보다 우선 분단부정의 또 다른 당위와 생사존망의 대결 상태로 빠질 수밖에 없다. 분단부정의 당위가 또 다른 분단부정의 당위를 부르는 구조였다. 이제 그 과정은 다음과 같은 반복적 순환 사이클로 요약할 수 있다.

분단부정의 당위 → 남북 적대의 심화 → 분단독재체제의 강화 → 분단독재체제에 대한 비판의 강화 → 분단부정의 당위의 강화

이 순환은 자꾸만 반복된다. 피하고 싶은 불쾌한 증상을 자꾸만 되풀이하는 반복강박과 닮아 있다. 이처럼 철저하게 외부와 내부를 완전히 포괄한 분단구조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위가 강할수록 반대의 결과를 낳는다는 정언명령의 역설은 분단체제 70년의 현실로 완벽하게 구현되었다.

분단을 부정할수록 분단이 고착된다는 ‘분단(부정)의 딜레마’는 애초에 둘임을 부정했던 데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이 딜레마를 끊으려면 둘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가 되자고 하면 오히려 하나가 되자는 둘이 우선 분명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고 애당초 둘이 아니라고 하면서 하나가 되자고 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의 발단이 되어왔다. 둘임을 인정하고, 하나가 되는 노력을 하자는 것이 양국체제다. 이것을 하지 못하고 ‘분단(부정)의 딜레마’에 빠져 겪어야 했던 고통은 이미 너무나 컸고 길었다. 북을 철저히 부정하면서 ‘통일대박’과 ‘종북몰이’를 양 손에 들고 휘둘렀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의 경험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촛불혁명은 유신체제로 되돌아가려 했던 총체적 종북몰이, 블랙리스트 소동을 종식시켰다. 촛불혁명 이후 이 나라의 민심은 마치 긴 악몽에서 깨어난 듯 새로운 눈으로 현실을 보고 있다. 그리고 그 힘에 기초하여 2018년 판문점 선언, 싱가포르 선언, 평양 선언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어 대한민국 대통령이 평양에서 평양 시민들 앞에서 대중연설을 하였고, 머지않아 서울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 시민들을 만나는 날도 올 것이다. 한 민족의 두 나라가 서로를 인정하면서 평화롭게 공존하며 통일로 가는 길을 준비하는 길로 접어든 것이다. ‘코리아 양국체제’, 다시 말해 ‘한 민족 두 국가의 평화체제, 공존체제’가 이미 현실로 시작된 것이다.

 

양국체제의 첫 번째 역사적 계기: 반쪽국가의식에서 양국의식으로

그렇지만 양국체제적 인식이 오직 촛불혁명과 판문점·싱가포르 선언을 통해서만 처음 생겨났던 것은 아니다. 이렇게 큰 변화에는 반드시 그에 선행하는 역사적·예비적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반에 연속적으로 벌어진 대형 사건들이 그러했다. 1987년의 민주항쟁과 1989~1991년 사이의 소련·동구권과 미소 냉전체제의 붕괴, 한소·한중 수교, 그리고 1991년의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교환으로 이어진 초대형 변화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분단체제의 지반을 처음으로 크게 흔들었다. 세계 판도 전체가 크게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변화 속에서 분단의식도 크게 흔들렸다. 분단의식은 ‘반쪽의식’이기도 하다. ‘반쪽만으론 온전하지 못하다’, ‘나뉜 반쪽은 합쳐야 비로소 온전한 하나가 된다’는 생각이다. 반쪽의식에서 양국체제 발상은 나올 수 없다. 양국체제는 두 코리아를 각각 온전한 하나의 국가로 보기 때문이다. 온전한 국가란 ‘내부의 정당성’과 ‘외부의 인정’이라는 양 측면을 모두 갖추어야 성립한다. 남북이 이 두 근거를 어느 정도 갖추기 시작한 최초의 계기는 1991년의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교환이었다. 이 두 사건은 1987년부터 시작된 세계적 대변동의 연쇄가 낳은 종합적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세계사 차원에서는 미소 냉전구조의 붕괴가 주원인이었고, 국내적으로는 87년 시민항쟁이 열어놓은 민주화 지향의 강력한 여론이 있었다.

분단의식, ‘반쪽의식’으로 보면 남북의 국가는 ‘반쪽(만의) 국가’일 뿐이다. 우선 이러한 ‘반쪽국가의식’을 벗어나지 못하면 양국체제 발상은 생겨나기 어렵다. 그러나 반쪽국가의식에도 그만한 현실의 근거가 있었다. 냉전시대 남북 국가의 내적·외적 정당성 구조 자체가 온전하지 못하고 반쪽짜리로 보이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외적 측면부터 살펴보자. 어떤 국가에 대한 외부의 인정이란 국제사회의 인정, 외국과의 수교관계로 표현되는데, 냉전시대 남북의 국제적 인정, 수교관계는 실제로 ‘반쪽짜리’였다 할 수 있다. 한국(ROK)은 미국 영향권의 국가들과만, 반대로 조선(DPRK)은 소련 영향권의 국가들과만 수교하고 있었다.8 나머지 반쪽의 인정이 없었던 것이다. 남북 모두 외부 세계의 절반으로부터만 인정받고 있다는 ‘반쪽국가의식’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내적으로도 남북은 ‘반쪽국가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1948년 두 정부의 수립 이래 남북은 자신이 통일을 목적으로 세워진 일종의 ‘경과적인 국가’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자신만이 적통자(嫡統子)고, 자신이 주도하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두 국가 모두 자신이 이미 완결되었거나 완성되어 있는 국가라고 내세울 수는 없었다. 스스로 ‘반쪽국가’이고 따라서 ‘반쪽만의 정당성을 가진 국가’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반쪽국가의식’이 강할수록 통일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그래야 ‘반쪽국가’의 정당성이 충족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측이 모두 통일을 내세우고 자신만이 통일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통일은 말은 늘 좋지만 실제 의도는 상대를 소멸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냉전시대 남북의 통일정책들은 언어로 하는 전투와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총탄을 교환하듯 오갔던 통일정책, 통일방안들이 오히려 통일을 멀게 했다는 것은 역설이라기보다 당연한 결과였다.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은 이러한 관성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유엔 동시가입과 기본합의서 채택을 주도했던 것은 한국의 노태우 정부였다.9 소련·동구권 붕괴 이후의 유리한 상황에서 상대를 인정해주더라도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북은 곤란한 상황이었다. 동구권 붕괴 이전까지 북은 유엔 동시가입을 반대해왔다. 통일 주도권이 자신의 편에 있다고, 자신만이 ‘조선반도’에서 유일하게 정통성을 가진 국가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정통성 없는 ‘남조선’ 정부를 굳이 유엔 동시가입을 통해 국제적으로 인정해줄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냉전의 한 축이었던 소련 중심의 ‘진영’이 무너져 국제무대에서 남과 북의 지지 균형은 한국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여기에 더해서 87년 개헌에 따라 대통령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한국 새 정부의 정통성을 (야권분열에 따라 군부 출신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하더라도) 전면적으로 부정하기 어려웠다. 이제 북은 예전처럼 한국 정부를 무작정 반대하거나 무시할 수 없었다. 체제 유지를 위한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단국의 유엔 동시가입은 1973년 동서독의 선례가 있다. 그러나 동서독 상황이 1990년 급속한 흡수통일로 마감되었다는 사실이 북으로서는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련이 한국과 수교하고(1990년) 중국이 남북 유엔 동시가입을 지지하자(1991년 5월) 북도 입장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동서독의 경우 1973년 유엔 동시가입과 1990년 흡수통일은 별개의 사건이다. 마찬가지로 남북의 유엔 동시가입과 흡수통일을 혼동할 이유가 없다. 북은 북대로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을 하고 있었다. 그 판단의 중심에 물론 김일성 주석이 있었다. 불가피한 일이라면 오히려 이를 자신의 체제 보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살려보려 했다.

실제 유엔 동시가입이 북에 대한 국제적 공인을 담보하여 일방적 흡수통일의 가능성을 차단한다고 생각할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핵무기 철수 등 미국으로부터의 군사적 양보도 요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남북 대화가 최고조에 올랐던 1991년 하반기에는 다음 해 한미 팀스피리트 훈련 취소가 결정되었고, 미국은 한국에 배치된 핵무기를 철수하기로 결정했으며, 그로 인해 연말에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이뤄질 수 있었다. 북은 결단을 했고, 이로써 유엔 동시가입은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남북은 유엔 회원국이 되었다. 유엔 회원국은 회원국 상호의 주권을 인정하고 서로 침해하지 않는다는 유엔헌장을 준수해야 한다. 따라서 일단 형식 차원에서라도 ‘두 개의 코리아’가 온전한 국가로 공인된 것이다. ‘반쪽국가’가 아닌 ‘온쪽국가’로 인정되었고, ‘반쪽의식’ 자리에 ‘양국의식’이 생겨났다.

이는 <남북기본합의서>로 다시금 분명히 표현되었다. 3장 25조에 이르는 기본합의서의 핵심은 제1조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에 있다. 과거 냉전시대에도 주도권 경쟁 차원에서 그와 유사하거나 또는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구절들을 사용한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격과 방어 차원의 언어 공세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분명한 합의였다. 크게 달라진 상황에 대한 인식과 이해(利害)의 공통기반이 생겼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많았지만 당시 양측은 이 합의를 통한 공존 기조의 지속에 상당한 기대와 믿음을 공유했다. 노태우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모두 크게 흡족해했다. 애초부터 각자의 적대적 체제를 오히려 강화하려는 목적을 숨기고 서로가 일시적으로 이용하였을 뿐이던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 때와는 분명히 달랐다. 이 합의로 양국의 자체적·내적 정당성 근거 역시 분명 ‘반쪽국가’에서 각자가 충족된 정당성을 갖는 ‘양국체제’ 쪽으로 이동했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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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1/22-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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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지의 비극”을 넘어

기후변화는 “공유지의 비극”으로 볼 수 있으며 커먼즈 운동은 21세기의 사회적, 생태적 시스템 붕괴에 대한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책을 제공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기후변화는 집단행동에서 비롯된 대표적 문제이며 현재의 정치제도는 사회적, 생태적 문제가 복합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개럿 하딘은 1968년에 쓴 유명한 논문「공유지의 비극」에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개인들은 국가나 시장이 개입하지 않으면 공유지를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에세이가 발표된 이후 50년 동안, 우리는 그의 주장과는 반대로 규제와 민영화가 어떻게 전세계 공유자원을 관리하는데 도움이 되기보다 그것을 망쳐왔는지 지켜봤다.

신자유주의의 공공재 민영화는 공유지의 비극을 자연자원의 영역(공기, 물, 토양 등)으로부터 사회보장의 영역(보건, 교육 등)으로, 마침내 사회적 교류와 내적 삶의 영역(기업 소유의 디지털 기술, 소셜미디어, 광고의 확산을 통해)으로까지 확장시켰다. 기후변화는 공유자원의 민영화와 잘못된 운영의 결과이지, 하딘이 주장한 대로 민영화와 규제를 더 진전시키기 위한 구실은 될 수 없다. 하딘은 공유에 기반을 둔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못 이해한 것으로 비판 받아왔다. 공유지에 대한 그의 이해는 정치, 경제 제도에 널리 수용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경험적 관찰에 기초하는 대신, 개인을 강요당하지 않는 한 협력할 능력이 없는 자율적, 이성적, 이기적 존재로 바라보는 신고전주의적 관점의 이데올로기에 경도됐다.

엘리노어 오스트롬의 선구적인 작업은 하딘과는 대조적으로 공유자원이 협력을 장려하고 무임승차자들이 자원을 취하지 못하게 막도록 구상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의 저서 『공유자원의 관리』(1990)는 공유자원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8가지 핵심 원칙을 제시했다. (역자주: 이 원칙은 다음과 같다. ①명확한 경계 ②규칙의 부합성 ③집합적 선택장치 ④감시활동 ⑤점층적 제재 ⑥분쟁해결장치 ⑦규칙제정권리 ⑧최소한의 자치권 보장) 수십 년 간 오스트롬은 어떻게 공유자원이 자율 조직되고 자율 규제되는지를 경험적으로 보여주는 대규모 연구작업을 수행했다. 그의 영향력은 매우 커서 2009년 여성으로서는 처음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에게는 놀랍게도, 오스트롬은 사람들이 시장 또는 국가의 개입이 아닌 효율적 의사소통, 신뢰, 호혜성을 바탕으로 공유자원을 자율 관리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의 업적 덕분에 공유자원은 여러 학문 분야에서 더욱 잘 이해되고 확립되었다.

 

자본주의 대안으로서의 커먼즈

지난 수십 년 동안 공유자원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증진시키는 심오한 연구가 확산됐으며 이는 중요한 고려대상이다. 오스트롬은 제도경제학과 게임이론의 방법론을 채택했는데 이는 그의 작업이 주류학계에 호소력을 갖게 한 동시에 연구의 범위와 관련성에 제한을 가했다. 오스트롬이 채택한 방법론은 자기 이익의 최대화를 추구하는 합리적 개인을 전제했다. 개인에 대한 그의 방법론적 편견은 예컨대 마르크시즘 연구가 탐색했던 것과 같은 구조적, 정치적 해석을 폐기하는 결과를 낳았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공유자원의 사유화, 즉 인클로저 운동은 자본주의의 출현과 시기적으로 일치했다. 역사적으로 인류에 의한 기후변화는 인류의 독특한 특성에 기인한 게 아니라 산업자본주의의 글로벌화 때문이다. 우리가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불리는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에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지질학자들은 인류가 지질을 변화시키는 지구물리학적 세력으로 출현한 시기를 1800년 전후 산업혁명의 시작으로 잡는다. 이는 기후위기의 바탕에는 자본주의의 대안이 요구되는 정도의 시스템 위기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제이슨 무어는 인류세보다는 자본세(Capitalocene)라는 용어를 선호하는데, 이 말은 모든 인간이 기후변화에 똑 같은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훨씬 정확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보다 직접적인 책임은 인간과 자원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있다.

다행히 자본주의 시스템의 대안은 이미 존재한다. 「복수우주(Pluriverse)의 공유지」(2015)라는 에세이에서 아투로 에스코바르는 공유화(commoning)의 실천이 글로벌 산업자본주의라는 하나의 세계 안에 여러 개의 세계들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커먼즈(역자주: 영어로는 모두 commons로 표기됐으나 이 글에서는 맥락에 따라 공유지, 공유자원, 커먼즈로 번역했다. 커먼즈는 현대 사회운동으로 물질적, 비물질적 공유자원은 물론 참여자들의 주체성 변화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원어 그대로 표기한다) 운동은 글로벌 시장 혹은 국민국가에 의한 가치의 포획과 맞서는 시스템적 대안을 위한 존재론적 복수성-Pluriverse-을 구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현재 공유화 실천의 정치적 잠재력을 간과하는데 이는 오늘날의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적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한 핵심적인 참조점으로 여전히 자본주의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J. K. 깁슨-그래함은 이런 경향을 “자본중심주의”라고 비판했다. 그와 동료들이 개발한 다양한 경제연구 프로그램은 자본주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 커먼즈에 기반한 경제의 수백 가지 사례를 보여준다. 이런 일련의 경험적 연구는 커먼즈 운동으로 자본주의의 대안들이 수렴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장, 국가, 그리고 커먼즈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여전히 지배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공유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목격하고 있다. 인류역사 전반에 걸쳐 공유화의 실천은 생산의 기본 방식이었고, 얼마나 많은 무급노동이 여성과 유색인종에 의해 수행됐는지를 고려할 때 사회적 재생산의 기본 방식 역시 대부분의 경우 공유화를 통해 이뤄졌다. 오늘날 현대 커먼즈 운동은 이런 공유지에 대한 전통적 지식과 새로운 도시, 디지털 커먼즈를 결합한다. 철학자 안드레아 베버는 심지어 공유화가 사실상 자연의 재생산에서도 기본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커먼즈로서의 실재」(2015)라는 논문에서 그는 “커먼즈는 실존적인 동시에 경제적이고 생태적인 관계의 존재론을 묘사한다. 공유화는 지구상의 생명체의 공존을 서로 연결되고 창조적인 과정, 생물권과 문화권의 활력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썼다.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활력 역시 언제나 공유화에 의존하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된 적이 없다.

가까운 미래에는 이것이 단순히 계속될 수 없다. 세계 경제성장은 꾸준히 감소하며 우리는 경기침체의 시기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비어있는 세계에서나 제대로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착취논리는 더 이상 가득 찬 세계에서는 지속될 수 없다. 기후변화는 시장과 국가 시스템에 근본적인 도전을 제기하며 시스템의 일부는 향후 수십 년에 걸쳐 붕괴될 수도 있다. 공통의 자원을 공유하는 일은 불안정성, 갈등, 점증하는 자원부족으로 압박을 받는 점점 더워지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건을 제공하는데 필수적이다.

최근 공유 기반 경제학의 폭발적 증가는 이런 시스템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했다. 공유에 기반한 시스템은 자원 처리량을 최대 80 %까지 줄이면서 번영을 유지할 수 있다(Rizos, X., & Piques, C. (2017). Peer to peer and the commons: A path towards transition. A matter, energy and thermodynamic perspective. Amsterdam, Netherlands: P2P Foundation). 미셀 보웬스와 호세 라모스는 공유 기반 시스템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실험이 포스트 자본주의 단계로의 전환을 위한 맹아 형태를 구성한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친다(Bauwens, M., & Ramos, J. (2018). Re-imagining the left through an ecology of the commons: Towards a post-capitalist commons transition. Global Discourse. doi: 10.1080/23269995.2018.1461442). 공유화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넘어선 제3의 공급부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력적인 시장과 국가 시스템은 공유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지원할 수 있다.

서울시는 이런 좋은 사례를 실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2년부터 공유도시 정책을 시행했으며 불과 3년만에 서울시민은 연간 120억원, 서울시는 1조1800억원을 절감했다. 이 정책으로 1,280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9,800톤까지 줄었다. 여러 국제기구들이 이 정책의 성공을 인정하고 있지만, 서울시는 대중의 인식과 의지를 높이는 것이 시급한 당면과제라고 시인한다.

 

커먼즈를 위한 사고방식

패러다임 변화가 진정한 것이 되려면 사회적, 문화적 변화가 필요하다. 도넬라 메도스는 대규모 사회적 전환을 촉진하는 가장 전략적인 레버리지 포인트는 사고방식(mindset)의 차원에 있다고 주장한다.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데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사고방식이 요구된다. 현재 상황이 시사하는 것처럼 만약 커먼즈 운동이 시스템 위기의 제한된 조건에서의 자원이용에 대한 광범위한 대응이 되려면, 사람들의 사고방식, 사회적 규범, 행동양식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관계적 세계관과 존재론은 인류세에 인간의 역할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많은 관련이 있다. 인류세의 생명의 복잡성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질문할 뿐만 아니라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비인간 행위자들의 권위와 역할을 존중하는 윤리학의 개발을 요구한다. 내가 내부주체성(intra-subjectivity)이라고 부르는 윤리학을 따르는 공유참여자들이 늘어난다면, 단순한 P2P 경제학을 넘어 공유화를 확장함으로써 보살핌을 모든 존재로 확장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내부주체성의 윤리학은 자연이 우리로부터 분리된 요소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상호작용 안에서 공동 생산된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내부주체성의 윤리학은 관계가 외적으로 의존적일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 의존적이며 내적 인식 차원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상호의존성 개념과 구별된다. 내부주체성은 어떻게 모든 존재가 서로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연결돼 있는지 설명한다. 우리가 스스로의 고통과 더 깊이 연결될수록 우리는 그것이 타자의 고통과 어떻게 구성적 관계를 갖는지 더 잘 알 수 있으며 우리 자신의 확장으로서 타자에게 봉사하기 위해 더 많이 행동하게 된다.

내부주체성의 윤리학은 우리가 어떻게 자연-문화를 공동 생산하는지, 자연과 문화가 연결돼 있다는 생각의 전환이 어떻게 더 긍정적으로 사회-생태적 시스템 위기를 완화시키는지 보다 잘 이해하도록 해준다. 인류세에 각자 능력이 많이 다른 인간과 비인간 존재 모두에게로 확장되는 보살핌의 윤리학을 발전시키는 것은 주체성과 행위자라는 개념을 날카롭게 만든다. 이것은 인간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의 삶이 문제인지, 우리가 어떻게 인간적 품위를 갖추고 지킬 수 있을지, 보다 생생하고 우호적인 세계를 향한 전환의 집단적 조건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지 등 복잡한 질문들의 해답을 찾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공유화는 우리의 비분리성, 상호의존성, 공존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 물질적으로, 관계적으로 서로에게 연결되는 방식이다. 협동조합과 풀뿌리 조직을 결합한 잘 조직된 커먼즈는 투명성, 평등, 존중을 실천함으로써 다양한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킨다. 신뢰를 만들고 책임을 실천하는 것은 성공적인 자기조직과 운영을 위한 필수 요소이다. 우분투의 서술처럼 “네가 있어서 내가 있다.”(역자주: 우분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건국이념으로 사람들간의 관계와 헌신에 중점을 둔 윤리사상이며, 그 자체로 “네가 있어서 내가 있다”는 뜻이다.) 초기불교의 보살사상에 응용한다면, 세속적이고 영적인 운명의 결합으로서 나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에서 생겨난다. 포용성의 확장은 다른 사람을 주변화하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한다. 그리고 의식은 물질적 인프라와 욕망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에 물질의 전환과 의식의 전환은 함께 이뤄진다.

거의 인식되지 않지만 공유화는 물질적, 사회영성적 교환-스스로 조직하고 서로를 책임지는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교환-이라는 형식으로서 이중의 원자가를 갖는다. 합리적인 자기이익을 정책화하고 규제함으로써 공동자원을 관리하는 정책입안자들과 달리, 공유참여자들은 커먼즈를 땅과 공동체에 대한 정서적 애착이라는 감각으로 운영한다.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 서부해안의 어부들은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의무로부터 나온 “신사협약”을 따른다. 유사하게 오픈 소스 디지털 커먼즈 운동은 자발적인 교환이 교육과 리소스에 대한 공공의 접근을 어떻게 가능하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오픈스트리트맵의 데이터와 정보를 공유하는 자원봉사자들의 글로벌 커뮤니티는 의료시설, 관공서, 공공시설에 대한 리소스와 정보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급한다. 이들은 합리적 자기이익으로부터 행동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타자에 대한 헌신의 감각에 따라 서로의 요구를 보살피는 것이다.

 

커먼즈의 생태계

개럿 하딘,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는 엘리노어 오스트롬도 현재 패러다임 안에서 공유에 대한 연구를 발전시켰다.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이든 공유를 대상물로 여기는 그들의 이해방식은 암묵적으로 실체의 존재론에 기반하고 있다. 여기서 커먼즈는 외부의 권위에 의해 주어진 공식적인 규범과 규칙의 존재로 인해 협력하는 합리적, 자율적 개인들에 의해 구상되는 어떤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개인, 시장, 국가에 대한 자유주의 이론을 경유한 커먼즈의 발전은 본질적으로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생활을 운영하기 위해 부과된 일련의 과정과 체제로 커먼즈를 축소시키기 때문이다.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만약 커먼즈 운동이 글로벌 사회운동이 된다면 어떻게 커먼즈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사람들의 가치와 세계관을 재형성할 것인가. 공유화의 인식론적, 존재론적, 공리적 차원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커먼즈 패러다임이 관계적 패러다임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

로버트 울라노비치는 『세 번째 창』(2009)이라는 저서에서 근대성으로의 중요한 전환을 이룬 세 가지 세계관을 제시했다. 첫째는 기계론의 세계관으로 데카르트, 흄, 칸트, 베이컨, 특히 뉴턴과 같은 사상가들에 의해 형성됐다. 두 번째는 진화론의 세계관이며 카르노와 다윈에 의해 형성됐다. 두 번째 세계관은 첫 번째 세계관보다 진보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관계의 원동력으로서 협력의 중요성, 진화에서의 창발이론, 자연-문화의 동시생산과 같은 최근의 발견을 깎아 내린다. 세 번째 세계관인 관계적 혹은 생태적 세계관이야말로 커먼즈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가장 관련이 깊다. 아직 초기단계인 이 세계관은 생태적 혹은 과정적 형이상학이라는 특징이 있으며, 시스템을 상향과 하향의 과정 모두로부터 영향을 받는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관계적 세계관의 관점에서 볼 때 커먼즈는 탄생 이전에 미리 존재 지어진 대상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관계와 실천에 의해 생성된다. 공유화에 대한 이런 합리적 관점은 차이들의 조화를 실현하는 데로 나아간다. 또한 “커먼즈의 생태계”를 상상하도록 만드는데 이는 존재론적으로 다른 커먼즈 공동체들을 가로지르는 역동적 연대와 협력을 실현한다(Bauwens & Lamos, 2018). 이런 관점은 공유참여자들(commoners)이 서로의 번영을 위한 조건을 제공한다고 바라보며, 자유와 자기결정이 인간과 비인간 존재, 힘, 자원들로 이뤄진 공동체들과의 보다 풍부하고 정교하게 연결을 만들어냄으로써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커먼즈는 삶의 내재적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서로 유쾌하게 어울려 사는 공동체들에 의해 활성화되는 창발적 과정으로서 나타난다. 삶의 가치를 높이는 일은 자기결정과 공동체의 연대 사이의 조화롭고 끝없이 복잡한 대조를 통해 실현된다.

마지막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현대 커먼즈 운동의 가장 고무적인 측면은 그것이 생태적 방식의 사고, 존재, 행동을 선취하면서 관계적 세계관 안에서 공동체가 번영하기 위한 이미 검증된 수단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커먼즈 운동은 21세기의 시스템 위기에 대한 광범위한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집단적으로 커먼즈를 삶의 방식으로서 탐색해야 하며, 더 큰 문화적 전환의 한 부분으로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적 삶의 모습으로 상상해보는 일이 요구된다.

 

잭 월시

독일 포츠담 고등지속가능성연구원(IASS) 연구원

월, 2020/02/0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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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른백년의 2019년도 기부금 모금액과 사용 실적을 공개합니다.

이 내용은 국세청 홈텍스에 공개한 내용과 동일합니다.

[다른백년] 2019 연간보고서 기부금모금액 및 활용실적명세

화, 2020/03/3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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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워싱턴 프레임에 갇혀서 국제적 풍향에 어두운 국내 언론에서는 한 줄도 다루지 않은 내용이다. COVID-19가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에서 창궐하는 가운데, 별로 진행되고 있는 석유가격 전쟁으로 미국의 세일가스 산업계가 전멸적 파산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국채 역시 폭락의 위기에 휘말리며 삼중의 악재를 맞이한 미국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이지 21세기의 향배가 달려 있는 현안이다. 이번을 계기로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패권주의를 포기하고 호혜적 협력과 대화를 중시하는 상호주의의 지도국가로 전환하기를 소망해 본다.


최근의 석유가격전쟁이 미국의 세일가스산업계에 커다란 충격을 가하는 가운데 지난 3월말 트럼프는 푸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걸었다.

지난 몇 달간 사우디는 러시아가 자신들이 요구하는 생산량 감소에 동의하도록 압력을 가하기 위해 석유시장에 물량을 대거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푸틴은 사우디의 완고한 고집을 거부하고 기존의 생산량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결과로 원유 시장가격이 18년 이래 최저치인 미화 20.09 달러로 고꾸라지면서 미국세일 산업계의 생산원가(40-50달러)를 한참 밑도는 수준이 되었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자본집중 투자의 성격을 지닌 미국의 세일산업계가 심각한 적자를 보이면서 월가에 빨간 신호등이 켜졌는데, 해당산업계의 줄파산은 미국의 거대 은행들에 심대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이 트럼프가 푸틴에게 전화를 하게 된 이유이다. 그는 러시아 대통령에게 원유의 감산을 설득하고자 한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몇 해전 미국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구실로 러시아에게 경제적 제재를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푸틴은 구도자적인(stoically) 침묵을 지켰다는 것이다. 또한 시리아에 대한 워싱턴의 간섭에 대해서도,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독일과 불가리아에 대한 공급라인(Nord & South streams)을 봉쇄하려고 시도한 것에 대해서도 한마디 불평을 표하지 않았다. 이제 입장이 180도 바뀌어서 미국산업계의 이익이 크게 손상을 당하는 상황이 도래하자 트럼프는 마치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모스크바에 도움을 청하고 있는 꼴이다. 한 비평가의 말이다. “트럼프 팀은 과거의 일들을 설거지 하듯이 없애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 주에 이루어진 통화에 대해서는 미국의 언론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어쩌면 당연한 일로 그 동안 악마로 지칭해온 푸틴에게 미국대통령이 애원하는 사고(事故)를 있는 그대로 보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타스통신은 다음과 같이 사실을 알렸다. “양국 지도자들은 세계 원유시장의 현재 상황에 대해 논의하였고, 양국 간의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과 개인적인 접촉을 지속하는 것으로 조율하였다.”

서구 미디어들의 흔한 수법인 근거없는 추정과 매도의 기사들에 비해, 타스통신의 보도가 훨씬 세련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지난 3년 여간 서구 언론들의 ‘러시아의 간섭’이라는 온갖 조작된 보도에 보복하려고 타스통신의 편집진이 트럼프의 제스처에 비난을 가하고 적국에게 음흉한 함정을 파면서 원유생산량을 줄이려 음모를 펼친다고 보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러시아에 관한 모든 접근에 대해 마치 조미료라는 양념을 가미한다는 의견을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서 타스통신은 속좁은 보도를 하지 않았다.

현재 석유가격의 문제는 ‘사우디’가 야기시킨 것이다. 생산량을 늘리고 시장에 공급을 학대한 것은 러시아가 아니라 ‘사우디’이다. 그렇다고 러시아가 문제를 완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양국 지도자들이 각자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분명히 하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한다는 것이고, 그 동안 미국무부와 외교라인에 극렬하게 반대해온 양국 간의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어떤 경우라도 푸틴은 단순하게 미국이 경제제재를 풀면 반대급부로 원유생산량을 감소하겠다고 합의할 것 같지는 않다. 그가 워싱턴에 원하는 것은 매우 포괄적 사항들이다. 그는 미국이 여러 관련 국가들이 다자적 형태로 참여하여 현안 문제들 – 전쟁, 팬데믹, 핵확산 금지와 국제적 안보 등에 대하여 집단적인 협력방식으로 논의하기를 희망한다. 디시 말하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되어 합의된 룰에 의해 행동하고, 국제적 법질서를 준수하며, 정권전복을 꾀하는 피의 전쟁을 중단하고, 약소국가들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세계적 위기에 도움을 제공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푸틴은 다른 국가들의 이익을 존중하고, 상호 간에 주요 관심사들에 대해 협력하고, 세계경제가 번영과 성장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협력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트럼프가 이러한 푸틴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입장을 바꾼다면, 그는 주저없이 트럼프를 돕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예처럼 미국만의 자국우선주의를 고집하면 아무것도 성사시키지 못할 것이다.

월, 2020/04/06-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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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해체 이후 근대 세계사는 새로운 단계인 후기근대(late modern age)에 접어들었다. 세계인이 이를 점차 실감하고 있는데, 촛불 이후 남북 코리아는 더욱 그러하다. 새로운 시간의 실감 속에서 최원식 교수가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글 「남북연합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강조하고 코리아 남북연합이 그 촉진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후기근대의 세계 상황이 두 코리아의 공존체제·평화체제를 가능하게 하고 있으니 이를 위한 내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평자로서는 동의하고 환영한다.

이제 촛불혁명과 판문점, 싱가포르 선언으로 그 가능성은 바로 코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촛불 직전인 2016년 5월 《프레시안》과 ‘다른백년’이 주관했던 4회 강연에서부터 평자는 공존체제, 평화체제보다 ‘양국체제’라는 개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공존체제나 평화체제는 ‘그냥 맞는 말’로 들릴 수 있다. ‘좋아.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공존과 평화를 이뤄낼 실제적 방법, 핵심고리가 중요한데, 이것이 ‘코리아 남북 양국의 주권국가(sovereign state)로서의 상호 인정’에 있다는 것이다. 결국 양국체제가 돼야 공존과 평화가 가능하다. 양국체제란 양국 공존체제, 양국 평화체제의 줄임말이다. 공존과 평화를 실현할 양국체제가 남북연합의 바탕이 될 것도 자명하다.

발제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우선 발제문은 ‘國際(inter-national)’보다 ‘民際(inter-civic)’를 중시하기에 통상 쓰는 ‘(남북)국가연합’이 아니라 국가를 빼고 ‘남북연합’이라 하는 듯하다. 국제(International)에 민간관계가 빠지는 게 아니니 민제라는 말이 굳이 따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국제와 민제가 따로는 아니겠다. 발제문이 언급한 한중일 관계만 하더라도 국제가 안 풀리면 민제도 어려워진다. 극적 사례는 1992년 한중 수교였다. 국제를 트니 민제가 크게 열렸다. 남북관계는 국제(이 경우는 inter-national이 아니고 inter-state가 된다)가 막혀 민제는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있다 할 형국이니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남북연합 논의에서도 국가(state) 대 국가(state)로서 남북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발제문은 그와 전혀 다르게 본다. 아래 문단은 관련 주장이 집약된 것으로 보이는데, 의외로 ‘양국론’에 대한 ‘경계 긋기’로 시작한다.

최근 세를 얻고 있는 양국론에 대해서도 경계를 그을 필요가 없지 않다. 양국체제론자들의 논의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탓에 단정하긴 어렵지만 남북은 일국도 아니지만 양국도 아니다. 분단으로 두 쪽이 난듯이 보여도 남과 북은 분단체제의 드러남으로 연계된바, 분단체제를 상정하지 않은 양국론과는 애초에 무관하다. 그렇다고 그냥 일국론도 물론 아니다. 정말로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不一不二]. 요컨대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론을 설령 통일의 최종형태로 삼는다고 해도 그 연합이 두 나라의 단순 병치가 되기는 애시당초 그른 것이매 남북연합론은 주변 4강의 의심을 풀고 내부의 대국주의를 절약할 요체가 아닐 수 없다. 요컨대 남북연합론은 일국적 통일론과 양국적 반통일론을 가로지르는 중형국가적 분단해소론이다.

국가 대 국가의 문제를 시종 비켜가고 있다. 일국도 아니고 양국도 아니라 한다. 과연 그런가? 현실은 일 민족, 이 국가(one nation two states)이다. 둘이되 하나요, 하나이되 둘[一而二, 二而一]이다. 엄연한 사실이 그러함에도, 즉 이 두 개의 국가가 국제적으로는 모두가 널리 공인된 국가이면서, 막상 양국은 아직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 문제요, 비정상 아닌가? 그러나 「발제문」은 거꾸로 본다. 이런 상태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여기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 ‘불일불이(不一不二)’라 한다. 불일불이란 불가(佛家)의 진리관[中論]을 표현하는 높고 찬란한 언어다. 진리적 불일불이가 ‘분단체제’라는 개념에도 적용되고 있다. “분단으로 두 쪽이 난듯이 보여도 남과 북은 분단체제의 드러남으로 연계된바 …… ”라고 하였다. 분단체제를 이렇듯 고도로 긍정적인 개념으로 보기 때문에, 발제자의 ‘남북연합’이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론”이라 하였다. 그동안 ‘분단체제’란 말은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왔기 때문에 이를 이렇듯 고도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용법이 일반인에게는 매우 낯설다. 분단체제는 남북이 적대하는 체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국가로서 인정하지 못해왔던 체제 아닌가?

거듭 말하여, 현실은 일 민족 이 국가 상태다. 체제 보장은 북미 간에만 아니라 남북 간에도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양국체제다. 과연 무엇이 분단과 분단체제를 영구화시켜왔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둘임을 부정했기 때문에, 둘을 부정한 채로 결코 하나이자고 했기 때문 아닌가? 둘이 서로 인정하는 것이 이 함정을 벗어나는 제1보다.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것만이 바른 길이다. 『노자(老子)』 22장에서 “곡즉전 왕즉직(曲則全 枉則直)”이라 했던 게 양국체제의 취지와 닿아 있다.

양국체제 없이 남북연합이 제대로 될까? 국(state) 간의 際가 안 열렸는데 民 간의 際가 활짝 열릴까? 그렇듯 국제가 닫힌 채로 가능한 남북연합이란 어떤 것일까? 양국체제가 성립하고 안정돼야 비로소 그 두 국가(state) 간의 남북연합이든 국가연합이든, 낮은 단계든 높은 단계든, 비로소 현실화되는 것 아닌가? 촛불혁명, 그리고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선언으로 이제 양국체제는 목전의 현실문제가 되었다. 판문점, 싱가포르 회담 한참 이전부터 줄곧 강조해온 것처럼 종전과 북미 수교는 양국체제의 입구요 일부다.

양국체제란 1973년 <동서독기본조약> 이후의 동서독 관계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동서독기본조약>에서 양독(兩獨)은 서로를 국가로서 분명히 인정했고, 기본조약 이후 미국은 동독과 수교했다. 그 두 고리가 풀리면서 양독 관계는 안정됐다. 반면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는 이 둘 다 이루지 못했다. 유엔 동시가입으로 코리아 양국체제의 외적 모양새는 일단 시작되었지만 완성되지 못했다. 불완전하고 불균형했다. 그랬기에 그 경로는 금방 닫혔다. 반면 동서독의 양국체제는 안정적으로 지속됐다. 정권이 바뀌어도 존속했다. 이런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당시 남북이 처해 있던 여러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낮은 수준에서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거꾸로 뒤집어서 그것이 마치 아주 높은 수준의 결과였던 것처럼 생각한다면 문제가 된다.

「발제문」의 ‘불일불이’ 구절을 읽으면서 연상을 금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유명한 “(남북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구절이다. 이 표현은 매우 외교적인 것인데, 이를 액면가보다 낮추어 읽는 것이 아니라(외교문서를 읽는 기본이다), 오히려 액면가보다 훨씬 높게 읽는 경향이 있었다. 마치 ‘남북은 국가 대 국가로 서로를 (아직 외적 조건과 내적 능력이 부족하여)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뜻이 높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남북은 애당초 두 국가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이기 때문이다’라는 식이다. 그렇게 읽으면 이 구절은 마치 ‘우리가 지금 하나는 아니지만 결코 둘일 수 없다(불일불이)’라는 높은 이상에 남북 대표가 의기투합하여 ‘우리는 결코 두 국가가 될 수 없으니 이러한 불일불이의 상태에서 곧바로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통일로 직행하자’라는 뜨거운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표현한 것이 된다. 실제로 그런 오독들이 꽤 있었다. 서로 국가로 인정하지도 않는데 연합이든 연방이든,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에 대한 답은 여태껏 듣지 못했다.

끝으로 ‘말이 아닌 말’을 일부러 만들어낼 필요는 없겠다. 위 인용문에서 “양국적 반통일론”이 그렇다. 앞서 설명한 대로 양국체제 없이는 공존체제도, 평화체제도, 남북연합도 담보되지 않는다. 양국체제 자체가 통일은 아니지만, 어떠한 경로보다 통일 촉진적이다. 양국체제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바람직한 통일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반통일’일까? 또 이 말과 짝을 걸어놓은 “일국적 통일론”이란 뭘까? 진보진영에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안다. 북(DPRK) 역시 이 입장을 폐기한 지 오래됐다. 그럼 뭘까? 발제자의 뜻을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런 게 있다면 우스꽝스런 무엇일 듯하다. ‘말이 아닌 말’을 만든 것으로 부족하여 실체 없는 허깨비와 짝을 붙여놓은 꼴이다. 왜 이래야 했을까? 양측에 ‘극단’을 세워놓고 중간에 끼어들어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은 때로 쓸 만하다. 단, 그 양쪽 입장이 단단하고 분명해야 한다. 그럴수록 자신의 입장이 힘을 받는다. 그렇지 않고 ‘말이 아닌 말’과 ‘대립 아닌 대립’을 세워놓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식이라면 별다른 의미나 성과가 없을 듯하다. 또 그렇듯 가로지르는 게 ‘중형국가적 분단해소론’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국가’는 어떤 국가이고(일 국가? 이 국가?), 여기서 ‘분단 해소’는 어떤 해소인지(분단체제의 해소? 분단의 해소?)도 궁금하다. 어쨌거나 지금 필요한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들 사이의 ‘경계 긋기’가 아니라 존재하고 있는 것들의 공통점을 모으는 일이 아니겠나 생각해본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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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4/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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