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뉴스1] 전북도, 친일 행각 도지사 2명 전시 사진 철거

지역

[뉴스1] 전북도, 친일 행각 도지사 2명 전시 사진 철거

admin | 화, 2019/12/10- 20:48

민족문제연구소, 사진 철거 요청

전북도청 대회의실에 걸렸던 역대 전북도지사 사진. 친일행각 벌인 11대 임춘성·12대 이용택 전 도지사.2019.12.10© 뉴스1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는 10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친일잔재 청산 취지로 전북의 역대 도지사에 대해 조사했다”며 “이들 중 2명이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친일인명사전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일제 강점기 당시 민족 반역, 부일 협력 등 친일·반민족행위를 자행한 한국인(친일파) 목록을 정리한 것으로 2009년 발간됐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날 밝힌 전북지역 친일도지사는 11대 임춘성, 12대 이용택이다.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임춘성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 장수군수 재임 시절, 중·일전쟁에 참전한 일본군을 위해 국방헌금 모집, 출정군인 환송영, 귀환군인 위안회 개최 등 전시 업무를 도맡았다.

그는 이 같은 공로로 지나사변(중·일전쟁)공로자공적조서에 이름을 올렸다. 해방 후에는 진안군수, 남원군수, 전주시장 등을 거쳐 1960년 6월부터 10월까지 전북도지사를 지냈다.

전북도청 홈페이지에서 11대 임춘성·12대 이용택 전 도지사는 삭제됐다.(전북도 홈페이지 캡처)© 뉴스1

이용택은 1940년 11월 친일조직인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에 후원금을 내는 등 만주에서 활동하는 항일유격부대 투항을 유도했다.

그는 해방 뒤 대화무역공사 사장으로 재직하다 1960년 10월 전북도지사로 임명됐다.

전북도는 그동안 이들을 포함한 역대 도지사 사진을 도청 홈페이지와 청사 대회의실에 전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전날 이들 도지사의 친일행적을 지적하며, 전시된 사진을 조치해달라고 전북도에 공식 요청했다.

전북도는 친일잔재 청산 취지에 공감한다면서 임춘성·이용택 전 도지사 사진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하고, 대회의실에 걸린 액자를 떼어냈다.

김재호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은 “친일도지사의 사진을 없앴다고 해서 친일잔재를 청산했다고 볼 수 없다”며 “이들 도지사가 친일 반민족행위자였음을 도민에게 알리기 위해 전북도와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19-12-10> 뉴스1 

☞기사원문: 전북도, 친일 행각 도지사 2명 전시 사진 철거 

※관련기사 

☞연합뉴스: 전북도, ‘친일행적’ 임춘성·이용택 전 도지사 사진 철거 

☞전북일보: 친일 행보 역대 전북도지사 2명 사진 철거16시간전

☞월드투데이: “친일 행적 확인…임춘성·이용택 전 전북도지사 사진 내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는 광복 75주기를 맞아 15일 오후 독립운동가 고(故) 이기홍(1912~1996)·장재성(1908∼1950) 선생에게 ‘자랑스러운 독립유공자’ 서훈패를 증정한다고 13일 밝혔다. (사진=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제공). 2020.08.13.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가 광복 75주기를 맞아 정부가 외면한 독립운동가 고(故) 이기홍(1912~1996)·장재성(1908∼1950) 선생에게 ‘자랑스러운 독립유공자’ 서훈패를 증정한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는 15일 오후 2시 광주 서구 싸목싸목 다목적홀에서 이기홍·장재성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서훈패 증정식을 갖는다고 13일 밝혔다.

이기홍 선생은 1929년 11월 광주학생독립운동 당시 독서회 회원으로 시위에 가담했으며 ‘백지동맹’을 주도해 퇴학 당했다. 이후 고향 완도로 돌아가 항일 농민운동을 전개하다가 1934년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박정희 정권에 맞서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투쟁하다 12년 6개월을 감옥에서 보냈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장재성 선생은 1926년 광주고보 재학 시절 ‘성진회’를 결성해 항일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이후 독서회 중앙부를 조직해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해방 뒤 1950년에는 시국사범으로 낙인 찍혀 광주형무소에 수용된 뒤 행적이 사라졌다.

정부는 장 선생이 건국준비위원회와 북한에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1962년 독립유공자 서훈을 취소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는 서훈패 증정 이후 ‘서훈받지 못하는 독립유공자’라는 주제로 특강도 개최한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관계자는 “이기홍·장재성 선생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중심 인물로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해방후 75년이 지나도록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증정식은 시민의 이름으로 선생들의 공을 기리고 국가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2020-08-14> 뉴시스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이기홍·장재성 서훈식…광주학생독립운동 주도 

※관련기사 

☞연합뉴스: ‘광주학생독립운동 주도’ 이기홍·장재성 선생에 ‘시민 서훈패’ 

☞광주일보: 민족문제연구소, 광복 75주년 독립운동가 이기홍·장재성 서훈패 증정

일, 2020/08/16- 16:19
3
0

민족문제연구소 15일 카페 싸목싸목서 서훈식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가 ‘서훈받지 못하는 독립유공자’ 이기홍·장재성 선생에 증정할 서훈패. 사진=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제공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가 광복 75주년을 맞는 15일 ‘서훈받지 못하는 독립유공자 서훈식’을 갖는다. 대상은 이기홍 선생과 장재성 선생이다.

13일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에 따르면, 서훈식은 15일 오후 2시부터 서구 풍암동 카페 ‘싸목싸목’에서 열린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지난해 학산 윤윤기 선생과 향산 김범수 선생에 ‘자랑스러운 독립유공자’ 서훈패를 증정했다.

올해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중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지사 이기홍 선생과 장재성 선생에 서훈패를 증정하기로 했다.

이기홍 선생은 민족민주통일운동가로, 1929년 광주고보 2년 재학 중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가했다. 이듬해에는 백지동맹을 주도하다 퇴학 당했다.

낙향 후에는 농민운동에 투신했고, 독재정권 하에서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생애 말년 실명 상태에서 구술로 자신의 삶과 사상에 대한 기록을 남겼고, 이는 2016년 두 권의 유고집으로 출간됐다.

장재성 선생은 광주고보 졸업생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 시위를 이끌었다. 학생비밀조직인 ‘성진회’의 후신격인 ‘독서회 중앙회’의 책임 비서였다. 그는 광주에서 시작된 시위를 전국화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위에 참여하다 구속돼 재판에 넘겨져 4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했다. 이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관련자 중 최고 형량이다.

해방 정국에서 남북 분단에 반대해 세 차례 북을 오간 그는 1948년 징역 7년을 선고 받았고, 광주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1950년 7월20일 무등산으로 끌려가 총살당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는 “광주학생독립운동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해방 후 75년이 지나도록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지 못하는 두 분에게 독립국가의 시민의 이름으로 서훈패를 증정한다”고 밝혔다.

서훈식 후에는 ‘서훈받지 못하는 독립유공자’를 주제로 한 강좌, 대담이 진행된다.

김홍길 박사와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 이경순 교수(이기홍 선생 후손) 등이 참여한다.

강경남 기자 [email protected]

<2020-08-13>광주드림

☞기사원문: “‘서훈받지 못하는 독립유공자’ 이기홍·장재성 선생에 서훈

금, 2020/08/14- 19:15
3
0

[보도자료] [다운로드]

한·일 학술회의

누구를 위한 식민지 ‘개발’인가
경남 진영 무라이 농장의 형성과정을 중심으로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식민지시대 경상남도 진영일대에 조성된 무라이 농장의 형성과정에 대해서 2019년 10월 25일(금) 한일학술회의를 개최합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고 노무현대통령 생가인 봉하마을 근처의 구 진영역 일대에는 일본의 신흥재벌 무라이 기치베가 낙동강 일대를 개척하여 1910년대 대규모 농장을 조성했던 지역입니다. BC급 조선인 전범문제를 연구해 온 일본의 대표적인 양심적 지식인 우츠미 아이코 선생은 신흥재벌 무라이 기치베가 이 농장조성당시 작성해 온 대량의 친필서한을 분석하여 이 농장의 형성과정에 대한 일본인 경영자의 의식을 직접 연구해 왔습니다.

“누구를 위한 식민지 ‘개발’인가”라는 주제의 이 학술토론회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반일 종족주의』 및 식민지근대화론, 개발론으로 대표되는 추상적인 식민지 근대화 및 착취론 논쟁이 아닌 구체적인 식민지 농장 경영 당사자의 의식을 중심으로 한일학자들이 그 본질을 파헤치고자 합니다.

무라이 농장일대는 현재 람사르 조약에 의해 주변이 생태보존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구 진영역일대는 재개발되어 일본인 집단촌의 흔적이 사라지고 있는 등 그 역사적 형태가 변모해 가고 있습니다. 또한, 고 노무현대통령의 유지를 이어받은 봉하마을의 생태농업이 구 무라이 농장일대에서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지역의 역사적 형성 배경과 그 가치가 제대로 연구되지 못한 채 역사적 유산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민족문제연구소와 한일학자들이 무라이 농장을 테마로 한 학술회의를 개최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지역의 관계자를 비롯한 관심 있는 여러분들의 많은 협조와 홍보를 부탁드립니다. 이하 첨부한 한일학술회의 기획안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기획안] 한일학술회의 

누구를 위한 식민지 ‘개발’인가
경남 진영 무라이 농장의 형성과정을 중심으로

  • 일시: 2019년10월25일(금) 오후2시-5시, 10월26일(토) 농장일대 현장답사
  • 장소: 강금원 기념 봉하연수원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로 107)
  • 주최: 민족문제연구소

■발표자
허수열(충남대 명예교수)-창원군 대산면 대산평야 개발과정과 일본인 농장 

우츠미 아이코(일본 평화학회 전 회장,게센여학원대학 명예교수)-무라이 기치베에(村井 吉兵衛)의 농장개발 과정 검증 -기록 서한을 중심으로(가안) 

김민철(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경희대교수) -일제의 촌락지배와 유형

■토론
박수현(민족문제연구소), 박근호(시즈오카대학), 권향숙(죠지대학)

■사회
이영채(일본 게센여학원대학)

■현장답사
2019년10월26일(토) 오쿠다 토요미(와다즈미고노에 평화박물관 연구원)
무라이농장,구진영역일대, 일본인 거주지,낙동강 독, 저수지(남사르조약 인정 습지)

■학술회의 참가자(약40명)

목, 2019/10/24- 20:40
3
0

기존 노래 친일 논란 김해강 시인 작사
전북도, 내년에 새 노래 제작
민족문제연구소, 추모시비에 친일행위 안내판도

전주 덕진공원 안에 세워진 김해강 추모시비(사진=자료사진)

전라북도가 친일 논란이 일고 있는 전주 출신 김해강(1903~1987) 시인이 가사를 쓴 ‘전북도민의 노래’를 대체할 새로운 도민의 노래 제작에 나선다.

10일 전라북도에 따르면 지난 1962년 제작된 전북도민의 노래를 작사한 김해강 시인은 일본제국주의강점기 몇 편의 일제 찬양시를 쓴 전력이 있다.

이 때문에 그는 광복회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그는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명 ‘가미카제’로 불렸던 일제 자살특공대를 칭송한 ‘돌아오지 않는 아홉 장사’란 시를 남겼다.

이에 따라 전라북도는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해 김해강 시인이 작사한 기존 전북도민의 노래를 대체할 수 있는 새 도민의 노래를 만들 계획이다.

내년 상반기 중 도민의 노래 작곡·작사가를 선정해 노래를 제작한 뒤, 도민 의견을 수렴해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김해강 시인의 친일 잔재는 지역의 명소인 전북 전주 덕진공원에도 남아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는 올해 75주년 광복절을 맞아 덕진공원에 있는 김해강 시인 추모시비 옆에 그의 친일 행적을 담은 안내판을 설치할 계획이다.

하지만 앞서 덕진공원을 관리하는 전주시는 추모시비를 세운 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 등과 안내판 설치 문제를 두고 협의했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족문제연구소 김재호 전북지부장은 “김해강 시인의 숱한 제자들이 전북 문화계에 견고히 자리 잡고 있어 안내판 설치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무슨 일이 있어도 광복절 안에는 김해강의 친일행위 안내판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한편, 전라북도는 오는 11월까지 ‘친일 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을 진행한다.

이번 용역은 전북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수행하며, 도내 친일파·친일 잔재 현황 조사 및 분석, 청산 등 처리 기준 및 방안 등을 검토한다.

전북CBS노컷뉴스 최명국 기자

<2020-07-10> 노컷뉴스

☞기사원문:친일 논란 ‘전북도민의 노래’ 다시 만든다”

화, 2020/07/14- 19:42
3
0

▲ ‘인천노동역사탐방’ 해설을 맡은 장회숙 인천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장이 강경애의 장편소설 ‘인간문제’의 배경인 인천 중·동구 일대의 일제강점기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지부장·강태욱)는 24일 인천 중구 북성포구와 동구 만석동 일대에서 ‘인천노동역사탐방’을 개최했다.

회원, 시민 30여명과 함께 진행된 이날 행사는 장회숙 인천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장이 해설을 맡았다.

중구 차이나타운 입구 중국문화원에 모인 참가자들은 장 소장의 해설을 따라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탑과 기념탑 교회 앞으로 이동했다.

1883년 인천개항 이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역만리 낯선 땅을 찾은 선교사들이 조선 땅에 첫 발을 디딘 곳이다.

1884년 매클레이 선교사를 시작으로 알렌, 아펜젤러, 언더우드 등이 차례도 이곳 제물포항에 내려 서울로 들어갔다.

▲ 구한말 조선 땅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발자취가 중부경찰서 옆 기념탑 교회에 상세히 설명돼 있다.

기념탑을 지나 개항기 러시아 공사관 터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28층짜리 오피스텔을 짓는다며 옛 흔적을 모두 지운 채 높다란 가림막을 둘러놓았다.

주민들은 고층 오피스텔이 들어선 이후에는 수변공간으로 개방될 예정인 8부두와 상상플랫폼 전경을 가로 막는 흉물이 될 것이라는 비판한다.

인천역 뒷길을 따라 대한제분을 지나면, 북성포구 입구를 알리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안내판을 등에 지고 맞은 편 원목야적장을 바라보며, 대한제분 담벼락을 따라 400m 가량을 걷다보면 북성포구에 도착한다.

▲ 인천의 바닷가의 삶을 고스란히 간직한 북성포구는 내년 8월 매립이 끝나면 기억 속으로 사라진다.

형형색색의 어망들이 햇빛을 받으며 줄지어 누웠고, 어민들이 막 잡아 올린 바닷고기들은 어판장에서 손님을 불러 세운다.

한창 매립이 진행되고 있는 포구 한 켠에서는 갈매기 떼를 꼬리에 단 고깃배 갑판 위에서 ‘파시’가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어민들과 주변 횟집 상인들의 삶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은 북성포구는 내년 8월이면 기억 속으로 사라진다.

자갈과 모래, 콘크리트가 바닷길을 메우는 매립공사가 끝난 뒤에는, 그 위로 새로운 어판장이 들어서고 ‘똥바다’ 북성포구의 과거를 알지 못하는 낯선 관광객들의 왁자지껄이 아스라한 추억을 대신하게 된다.

▲ 매립이 진행되고 있는 북성포구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이 곳으로 들어오는 고깃배들의 파시가 관광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포구를 뒤로 하고 작은 골목길을 빠져 나오면 장 소장이 손에 든 강경애의 ‘인간문제’가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궁핍한 농민과 고달픈 노동자의 삶을 그린 ‘인간문제’는 만석동과 동양방적(현 동일방직 자리), 신포동 등이 주 무대다.

이 주변은 현덕의 ‘남생이’,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등 수많은 작품의 배경이 된 곳이다.

▲ 만석동 쭈꾸미집 일대는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그려낸 여러 문학작품 속 배경으로 등장한다.

강경애는 ‘인간문제’에서 농촌을 떠나 공장지대에 흘러온 ‘선비’의 투쟁과 죽음, 그를 둘러싼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냈다.

이 소설은 일제 강점기 여성작가의 작품 중에는 가장 뛰어난 역작으로 평가받는 이외에도, 당시 인천 지역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인간무대’에서 여공들이 투쟁을 벌이던 방직공장은 이후, 1970년대를 대표하는 투쟁현장으로 거듭났다.

인천지역의 탁월한 노동운동가들을 배출한 ‘동일방직’ 사건은 부마항쟁의 촉매제로 작용해 박정희 정권을 몰락을 가져왔다.

1986년 인천 5.3항쟁,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진 ‘한국 민주주의의 산실’로 불리고 있다.

장 소장의 해설에 빠져 동일방직 담 길을 걷던 일행들은 어느덧 동일방직 정문에 도착한다.

지금은 베트남으로 이전해 빈 공장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현재 동일방직 건물 터를 두고, 동구청은 영상촬영 스튜디오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아파트촌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시민사회 일부에서는 민주화공원으로 조성하자는 운동이 조심스럽게 일고 있다.

답사를 마친 일행들은 동일방직 정문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마친 뒤,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다음 역사탐방을 기약했다.

/글·사진 = 정찬흥 기자 [email protected]

<2020-05-25> 인천일보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인천노동역사탐방 개최

목, 2020/05/28- 05:33
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