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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갈팡질팡’ 전북경찰청…친일행적 국장들 삭제사진, 홈피서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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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갈팡질팡’ 전북경찰청…친일행적 국장들 삭제사진, 홈피서 복원

admin | 금, 2019/12/06- 02:00

(전주=연합뉴스) 정경재 나보배 기자 = 과거사 청산을 위해 친일 행적이 뚜렷한 경찰국장의 사진을 삭제했다던 전북경찰청이 이틀 만에 홈페이지에 이들의 사진을 다시 내걸었다.

전북경찰청은 5일 “언론의 문제 제기가 있을 것 같아서 홈페이지 사진을 삭제했는데 자체적인 판단을 거쳐 복원했다”며 “이들 국장이 재임한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청사 홍보관에 있던 국장의 사진을 뗀 것도 ‘조직의 권위주의를 해소하라’는 민갑룡 경찰청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며 “언론에 보도된 친일 청산 의도와는 무관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전북경찰청, 친일행적 경찰국장 8명 사진 삭제 [전북지방경찰청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전북경찰청의 이날 입장은 과거사 청산 차원의 조처라는 기존 설명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전북경찰청 청사 관리 담당 부서는 전날까지도 친일청산 차원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실렸거나 친일행적이 뚜렷한 경찰국장 8명의 사진을 삭제했다고 설명했었다.

손바닥 뒤집듯 하루아침에 바뀐 경찰의 입장에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민족문제연구소는 발끈했다.

김재호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은 이날 전북경찰청을 찾아 “경찰에 더는 기대할 것도 없다”고 개탄했다.

김 지부장은 “경찰청사 내에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국장들의 사진이 버젓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떼던가, 아니면 친일인사라는 표시를 해달라고 2년 전부터 요청했다”며 “경찰에서 이를 계속 무시해서 기자회견까지 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경찰에 사진 철거 여부를 물었는데 ‘지금 하고 있으니까 기자회견은 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그 말을 믿고 회견을 안 했는데 인제 와서 친일청산은 아니라고 하니까 시민·사회단체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김 지부장은 “권위주의 문화를 바꾸겠다는 경찰은 정작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의 흑역사는 부정하고 있다”며 “90도로 하던 인사를 70도로 한다고 권위주의가 청산되는 게 아니고, 일제 치하나 독재정권 등 역사적 상황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민 청장 치적이 희석되지 않도록 경찰청이 하급 기관인 전북경찰청에 압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했다.

민 청장의 지시에 따른 국장 사진 철거가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사회단체 문제 제기의 성과로 보일까 봐 이를 차단하도록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전북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청 담당 부서와 전날 통화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언론 보도가)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비친다고 이야기했고, 자료를 검토해보니 경찰청의 말이 맞아 다시 바로잡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외에 경찰청에서 따로 이 문제와 관련해 압력을 행사하거나 지시한 것은 없다”며 “제대로 자료를 확인하지 않고 언론에 답변하다 보니 혼선을 주게 됐다”고 사과했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2019-12-05> 연합뉴스 

☞기사원문: ‘갈팡질팡’ 전북경찰청…친일행적 국장들 삭제사진, 홈피서 복원 

※관련기사 

☞뉴스1: 친일 경찰국장 사진 철거… “일제잔재 청산 취지 아냐”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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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교육재단의 양심적인 교사 징계 움직임, 참으로 개탄스럽다.

온 나라가 코로나19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대구와 경북 지역의 피해가 커 온 국민이 함께 마음 아파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빠른 회복을 기원하고 있다. 학교는 코로나 19의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에 호응하여 학생들은 4월이 되도록 학교도 나가지 못하고 있고, 교사들은 4월 9일 온라인 개학을 준비 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런 엄중한 시국에 경북 경산의 문명 중·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문명교육재단이 2017년 당시 국정교과서 연구학교에 반대했던 교사에 대한 징계 의결을 요구하여 오늘(2020.04.02.) 교원 징계위원회가 열린다고 하니, 문명교육재단의 반교육적인 행태가 참으로 놀랍다.

2015년부터 박근혜 정부가 교육부를 앞세워 추진했던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작업은 온갖 불법과 위법으로 점철되어 강력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였다. 국민의 저항으로 국정교과서 추진이 어렵게 되자 당시 총리실(총리 황교안)과 교육부는 2017년 1월, ‘국·검정 혼용’과 국정교과서의 생명 연장을 위한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운영’이라는 꼼수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전국 어느 학교도 연구학교를 신청하지 않자 교육부는 신청 기한을 늘리고, 경북교육청은 연구학교 지정 관련 규정까지 바꾸는 무리수를 두며 문명고등학교를 국정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하였다. 이에 문명 중·고등학교 교사들은 교육자적 양심에 따라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운영 반대 의견을 밝히고 반대 운동에 동참하였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재단이 앞장서 국가공무원법 위반을 들먹이며 교사들을 징계하겠다는 것이다.

문명교육재단의 징계 요구는 매우 부적절하고 시대착오적이다. 우선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운영은 법원에 의해 두 차례나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판결을 받았다. 당시 문명고등학교 학부모 대표는 연구학교 효력 정지 신청을 냈고 대구지방법원은 집행 정지를 결정(2017.3.17.)하였다. 재판부는 “문명고 학생들이 국정교과서로 수업을 받는 것은 최종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경험으로서 결코 회복할 수 있는 손해가 아니며, 학생과 학부모들이 받게 될 불이익은 금전보상이 불가능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라고 봄이 상당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에 불복한 경북교육청이 낸 항고 역시 대구고등법원이 기각하였다. 고등법원은 “정책의 유지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새로운 교과 과정에 따른 수업이 진행됨으로써 학생과 학부모가 받게 될 심리, 정신적 불안감이나 부담감은 이 사건 처분에 따른 현실적인 불이익에 해당하고 이는 회복되기 어렵고 금전으로 쉽게 보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위법한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지정으로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게 법원의 분명한 판결이었다.

문명교육재단이 내세우는 징계 사유도 문제다. 재단은 국가 공무원법상의 ‘복종의 의무, 품위 유지의 의무, 정치 운동의 금지, 집단행위의 금지’ 등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단이 호들갑스럽게 꺼내든 징계 사유는 박근혜 정부가 국정교과서 반대 운동에 나섰던 교사들을 징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검찰에 고발했던 이유와 판박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2017년 12월 국정교과서 반대 운동을 벌였던 교사 86명에 대한 검찰 고발을 취하하며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 폐지, 교육자적 양심과 소신에 근거한 발언과 행동들을 고려해 86명에 대한 고발을 취하한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교육부 장관으로 국정교과서 정책을 주관했던 이준식은 2017년 7월 이임사에서 국정 교과서 문제로 “교육현장에 혼란을 가져온 점은 참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고, 2018년 6월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학계는 물론 국민 대다수의 뜻을 거스르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권력의 횡포였으며, 교육의 세계적 흐름마저 외면하는 시대착오적인 역사교육 농단이었다.”고 공식 사과하였다. 국정교과서 실무를 담당했던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역시 “국편은 역사 전문기관으로서 사명과 정체성을 망각하고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국정교과서와 관련하여 징계를 받아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 2018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 조사위원회는 박근혜 정부 당시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공무원들에 대한 징계와 17명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의뢰했지만, 이들은 아직까지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 실무를 담당했던 중·하위직 공무원들은 상급자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고 여전히 교육부에 남아 있다. 경북교육청과 문명교육재단 역시 연구학교 지정 관련해서 교육부와 함께 위법·부당한 정책을 교사들에게 강요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누구도 위와 관련하여 합당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적반하장으로 문명교육재단은 화풀이 하듯 뜬금없이 양심적인 교사들에 대한 징계를 강행하고 있다. 지금 재단이 해야 할 일은 징계 시도를 철회하고 학생과 교사들이 온라인 원격학습 준비와 개학 후 교정에서 만날 준비에 몰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또한 문명고 사태의 원인 제공을 한 경북교육청은 결자해지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분명히 밝혀 둔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은 이 문제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렸고 하루 만에 2천여 명이 문명교육재단의 징계가 부당하다는 서명에 동참하였다. 국정교과서 정책에 반대했던 학계와 교사들, 그리고 광범위한 시민사회 역시 이 사태를 주시하고 있음을 문명교육재단은 명심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사흘 만에 교육 분야 첫 번째 업무 지시로 박근혜 정권의 적폐 중의 적폐인 국정교과서를 폐기할 것을 지시하였다(2017.5.12.). 따라서 국정교과서 반대 운동에 참여했던 양심적인 교사들이 부당한 징계를 받는 것은 상식과 정의에 반하는 것이 된다.

이에 우리는 다음을 요구한다.

1. 문명고는 양심적인 교사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징계 시도를 즉각 철회하라.
1. 문명고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경북교육청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라.
1. 교육부는 정부의 역사교육 방침에 반하여 양심적인 교사를 징계하려는 문명교육재단(이사장 홍택정)에 대해 지휘 감독권을 행사하라.


2020년 4월 2일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금, 2020/04/03-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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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보도자료】

이이화 선생 조문 마지막 날…각계 애도 잇따라

지난 18일(수) 별세한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의 빈소에 각계 인사들과 시민들의 애도 행렬이 잇따르고 있다. 장례는 민족사 정립과 역사 대중화에 헌신해온 선생의 의지를 기려 시민사회장으로 치러지고 있으며 빈소는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조문 첫날에는 문재인 대통령, 정세균 국무총리, 문희상 국회의장 등 정계 인사들의 조화와 박원순 서울시장,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이재명 경기도 지사 등의 근조기가 빈소에 도착해 유족을 위로했다.

고인을 기리기 위한 본격적인 조문행렬이 이어진 것은 이튿날(19일)부터였다. 이날 오후 1시경, 김거성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이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한 데 이어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등의 정·관계 인사들이 조문했다. 오후 7시경에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빈소를 찾아 유족 및 조문객들을 인사를 나누며 고인을 애도했다.

무엇보다 학계와 시민사회의 애도가 끊이지 않았다. 빈소를 가장 먼저 찾은 이들은 고인이 생전에 헌신하며 몸담아 오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역사문제연구소와 민족문제연구소의 동료와 후학들이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과 윤경로 전 한성대총장, 정남기 동학농민혁명유족회장은 일찍부터 빈소를 찾아 유족들을 돕고 조문객을 맞았다. 이어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과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이용기 역사문제연구소장 등도 조문했다. 그 밖에 선생이 관여한 단체와 기관의 동료들과 지인, 전국 각지의 한국전쟁민간인학살 유족들과 동학농민군의 후손, 일반 시민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조문 마지막 날인 20일 오전 11시 30분경에는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부로부터 추서된 ‘국민훈장 무궁화장(1등급)’을 고인 영전에 바쳤다. 앞서 19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대한민국의 역사 연구와 학술·교육 발전에 큰 공적을 세운” 고(故) 이이화 선생을 기리기 위해 훈장 추서를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조문은 마지막 날인 오늘(20일), 늦은 시각까지도 이어질 전망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고인을 기리는 시민들의 관심에 감사하다”면서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와 간소함을 원하는 유족들의 뜻을 감안하여 추모식 등 다수의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장례 행사는 생략할 것”임을 밝혔다. 대신 연구소는 조문이 어려운 시민들을 위해 19일 오후부터 연구소 홈페이지(www.minjok.or.kr)에 추모사이트를 개설 운영 중이다. 추모사이트에서 선생의 생애와 저술활동, 사진과 동영상을 살펴보고 직접 추모글을 남길 수 있다.

한편 발인은 21일 오전 10시에 있을 예정이다. 장지로 출발하기에 앞서, 유족 및 고인과 각별한 친분을 가졌던 인사들이 간소한 영결식을 거행한다. 빈소를 떠난 운구행렬은 고인의 자택이 있는 헤이리 마을을 거쳐 장지인 파주 동화경모공원으로 이동한다.

*문의: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방학진(010-8638-8879)


[고(故) 이이화 선생 시민사회장 빈소 사진첩]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이화 선생 빈소 ⓒ 민족문제연구소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이화 선생 빈소 ⓒ 민족문제연구소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이화 선생 빈소 ⓒ 민족문제연구소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윤원태 사무국장 ⓒ 민족문제연구소
이낙연 전 국무총리 ⓒ 민족문제연구소
이낙연 전 국무총리 ⓒ 민족문제연구소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및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 민족문제연구소
이용기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 민족문제연구소
윤경로 장의위원회 집행위원장(전 한성대 총장),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 민족문제연구소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 및 이용기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 민족문제연구소
20일 오전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영전에 바쳤다. ⓒ 민족문제연구소
20일 오전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국민훈장무궁화장을 영전에 바쳤다 ⓒ 민족문제연구소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희 님과 아들 응일 님, 딸 응소 님이 있다. ⓒ 민족문제연구소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희 님과 아들 응일 님, 딸 응소 님이 있다. ⓒ 민족문제연구소

토, 2020/03/21-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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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보도자료] [연보]

역사학계의 ‘녹두장군’ 이이화 선생 별세

민족사 정립과 우리 역사의 대중화에 헌신해온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이 3월 18일 오전 11시경 향년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이화 선생은 최근까지도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이사장, 식민지역사박물관건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목표를 달성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으나, 담낭암 진단에 따른 두 차례의 수술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영면에 들었다.

이이화 선생은 1970년대부터 민족문화추진회, 서울대 규장각,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등 학술단체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과명예회복을위한범국민위원회 등 역사관련 시민단체에서 학술연구와 실천운동에 매진해 100여권의 역저를 출간하는 등 수많은 연구 성과를 내놓는 한편으로 역사정의의 실현에도 크게 기여해왔다.

선생은 1973년 유신정권에 대한 저항의식을 표출한 「허균과 개혁사상」을 발표하며 역사학자로서의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1980년대 초반까지 《뿌리깊은나무》 《월간중앙》등에 한국사 관련 글을 연재하고 꾸준히 논문과 저서를 집필하며 연구의 지평을 넓혀 나갔다.

‘이이화’ 특유의 역동성과 활달함이 돋보이는 대외 학술 활동이 전개된 것은 198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선생은 1986년 설립된 역사문제연구소의 운영위원 소장을 역임하였으며, 1988년에는 발기인으로 〈한겨레신문〉 창간에도 참여했다. 나아가 1993년부터는 우리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와 관련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는데 이는 동학농민혁명백주년기념사업단체협의회(1993), 동학농민혁명유족회(1994),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2004) 설립 등의 성과로 이어졌다. 당시 선생이 이끌어낸 연구업적으로 1996년 발간된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 30권은 동학농민혁명 연구에 관한 굴지의 바이블로서 자리 매김, 현재도 중요한 연구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2000년대는 오랜 연찬이 활짝 꽃피운 시기로, 평생의 역작으로 손꼽히는 『한국사 이야기』(총 22권)가 2004년 발간된다. 『한국사 이야기』는 기존의 왕조사와 정치사 중심 서술이 아닌 신기원을 연 민중사적 관점의 역사서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비슷한 시기 『한국의 파벌』 『인물로 읽는 한국사』 『만화 한국사 이야기』 등 수십여 권의 저서를 펴냈는데 여기에는 아동과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서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역사의 대중화를 이루고자 했던 선생의 의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선생은 연구와 저술에만 열정을 기울인 것이 아니라 현실문제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사회 각계의 대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특히 친일 청산, 한일과거사 문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문제 등 한국근현대사에 있어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있는 분야의 활동에 강한 의지를 보였는데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한일시민선언실천협의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한국전쟁민간인학살진상규명위원회 등에 참여한 것을 보기로 들 수 있다.

심산상, 단재학술상, 청명학술상, 허균허난설헌학술대상,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출판특별상, 녹두대상 등 숱한 수상 경력은 그의 막대한 노고에 대해 사회가 경의를 표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장례는 시민사회장이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를 감안하여 추모식 영결식 등 집회는 생략하고 약식으로 치러진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직접 조문하기 어려운 시민들을 위해 19일 오후부터 연구소 홈페이지(www.minjok,or.kr)에 추모 사이트를 개설 운영한다. 민족문제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 등 학술단체와 동학농민혁명 한국전쟁기민간인희생자 제주4.3 한일과거사 관련 시민단체 등 고인이 생전에 깊이 관여하였던 50여 단체로 구성된 장의위원회(공동위원장 : 박재승 임헌영 정남기 서중석 안병욱 신영우, 집행위원장 윤경로)는 적절한 시기에 별도의 추모식을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오후 김거성 시민사회수석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로 보내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정부는 역사 대중화와 역사정의 실현에 기여한 고인의 공적을 인정해 국민훈장무궁화장을 추서하기로 결정하였으며, 20일 오전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훈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희 님과 아들 응일 님, 딸 응소 님이 있다.

발인은 21일 오전 10시에 있으며 장지는 파주 동화경모공원이다.


이이화 선생 연보(1936∼2020)

∙ 1936년 대구 비산동에서 아버지 야산 이달 선생과 어머니 박순금 님 사이에서 출생
∙ 7세 무렵(1942년)부터 주역의 대가인 부친 아래에서 한문 수학
∙ 10세 무렵(1945년) 부친을 따라 충남 논산 수락리와 대둔산 석정암으로 이주
∙ 14세 때(1949년) 안면도 개락금 지역으로 이주
∙ 18세 때(1953년) 한영중학교 입학
∙ 20세 때(1955년) 광주고등학교 입학. 은단 장사와 여관 종업원 일을 하며 고학
∙ 23세 때(1958년)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장학생으로 입학. 그해 부친의 별세로 중퇴. 이후 전국을 돌며 대학입시 문제집을 팔아 생계를 이어나감
∙ 25세 때(1960년) 광주 집에 기거하면서 419 시위에 참여. 이후 서울에 올라와 친구 하숙집을 전전하며 취업 준비
∙ 29세 때(1964년) 새로 창간된 《불교시보》 기자로 입사, 3년간 근무
∙ 32세 때(1967년) 모친 별세
∙ 33세 때(1968년) 《신동아》 별책부록 『한국 고전 백선』 작업에 참여, 천관우・박종홍・임창순・이숭녕 등 당대의 석학들과 교류. 이후 1974년까지 서울대 규장각에서 고문서 해제 작업
∙ 34세 때(1969년)부터 5년간 동아일보사 촉탁직으로 《동아일보》 창간호부터 기사 색인 작업에 참여
∙ 38세 때(1973년) 《창작과비평》에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의식을 표출한 「허균과 개혁사상」 발표
∙ 39세 때(1974년)부터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근무하며 본격적으로 한국사 연구에 돌입. 이듬해 《창작과비평》에 유신정권에 대한 비판을 내포한 「북벌론의 사상사적 검토」 발표
∙ 41세(1976년) 김영희 여사와 백년가약
∙ 42세 때(1977년) 학술지 《한국사연구》에 논문 「척사위정론의 비판적 검토」 발표, 학계의 주목을 받음. 다시 서울대 규장각으로 옮겨 1981년까지 해제 작업. 아들 응일 출생
∙ 44세 때(1979년) 화곡동 자택에 ‘한문서당’ 개설
∙ 45세 때(1980년) 5월 ‘서울의 봄’ 당시 학생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 첫 저서 『허균의 생각』(뿌리깊은나무) 출간
∙ 46세 때(1981년) 전두환 정권하에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전문위원으로 임용되었으나 1년 남짓 근무 후 사직
∙ 47세 때(1982년) 성심여대 국사학과에서 한국사상사 강의, 이후 10여 년 동안 대학 강단에 섬
∙ 50세 때(1985년) ‘한길역사기행’, ‘한길역사강좌’에서 강의
∙ 51세 때(1986년) 역사문제연구소 설립 후 초대 운영위원. 부소장, 소장 역임. 딸 응소 출생
∙ 52세 때(1987년) 6월 민주항쟁 참여. 《역사비평》 창간준비호에 논문 「역사소설의 반역사성」기고
∙ 53세 때(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발기인, 학술단체협의회 상임공동대표 역임
∙ 54세 때(1989년) 동학농민전쟁백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발족, 위원장으로 추대
∙ 56세 때(1991년) 저서 『중국역사기행- 조선족의 삶을 찾아서』 출간
∙ 58세 때(1993년) 《한겨레》에 ‘발굴 동학농민전쟁 인물열전’ 연재. 12월 동학농민전쟁100주년기념사업단체협의회 공동대표로 추대
∙ 61세 때(1996년) 총 30권의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 출간
∙ 64세 때(1999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을 위한 국제회의’(1999)에 참가
∙ 66세 때(2001년) 단재학술상 수상
∙ 67세 때(2002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지도위원,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과명예회복을 위한범국민위원회 상임공동대표 역임
∙ 67세 때(2003년)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
∙ 69세 때(2004년) 고구려역사문화재단 공동대표, 고구려역사문화보존회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역임. 『한국사 이야기』 마지막 원고 탈고, 총 22권 완간(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위한 한국의 대표적인 책 100선’, 2007년 《한국일보》의 ‘우리 시대 명저 50선’에 선정)
∙ 70세 때(2005년) 서원대학교 역사교육과 석좌교수로 초빙됨. 『만화 한국사 이야기』 7권 출간(2011년 9권으로 개정 증보). ‘임종국상’과 ‘단재상’ 심사위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와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자문위원 역임. 개성에서 열린 남북 역사학자 학술 토론회에 참가
∙ 71세 때(2006년) 임창순청명학술상 수상
∙ 73세 때(2008년) 대통합민주신당(현 민주당) 18대 국회의원 후보 지역공천심사위원으로 활동. 허균허난설헌학술대상,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출판특별상, 녹두대상 수상
∙ 74세 때(2009년) 진실과미래,국치100년사업공동추진위원회 공동대표로 추대. 『인물로 읽는 한국사』(전10권) 출간
∙ 75세 때(2010년) 강제병합100년공동행동한국실행위원회 상임공동대표로 추대. 《한겨레》에 회고록 「길을 찾아서-민중사 헤쳐 온 야인」 연재(6개월 동안 121회)
∙ 76세 때(2011년) 식민지역사박물관건립위원회 위원장, 동학혁명정신선양대회 대회장, 한일시민선언실천협의회 상임대표 역임. 자서전 『역사를 쓰다』 출간
∙ 78세 때(2013년) 역사교육에 대한 권력과 정치의 개입을 규탄하는 16인의 원로학자 중 한 사람으로 ‘한국사 교과서와 역사교육 문제에 대한 원로 교수 기자회견’ 참석
∙ 79세 때(2014년) 원광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 수여. 『전봉준, 혁명의 기록-동학농민전쟁 120년, 녹두꽃 피다』 출간
∙ 80세 때(2015년) 역사 교과서 국정화 행정 예고 철회와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원로학자 22인에 참여. 『한국사 이야기』 개정판 출간
∙81세 때(2016년) 『거리에서 국정교과서를 묻다』 공동 집필. 《경향신문》의 ‘경향 70년, 70인과의 동행’에서 명사 70인에 선정
∙ 82세 때(2017년)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창립, 이사장으로 추대. 저항운동의 태동기인 19세기 민중봉기를 다룬 『민란의 시대-조선의 마지막 100년』 출간
∙ 83세 때(2018년) 전봉준 장군 동상 제막식 주관.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취임. 역사에세이 『위대한 봄을 만났다』 출간. 8월29일 ‘식민지역사박물관’(건립위원회 위원장) 개관
∙ 84세 때(2019년) 동학농민혁명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데 헌신한 공로로 전주시 명예시민에 선정
∙ 2020년 3월 18일 오전 11시 향년 84세를 일기로 별세
∙ 정부, 역사 대중화와 역사정의 실현에 끼친 고인의 공적을 인정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추도사]

한국사학계의 녹두장군 이이화 선생님 영전에

한국 민족사학계의 녹두장군 이이화 선생님, 이렇게 기어이 우주의 섭리에 순종하시는 겁니까. 문병을 극구 사양하면서 병원도 알려주지 않으시더니 이렇게 속절없이 떠나시는 겁니까. 가벼운 수술이니 2〜3주 뒤에 만나자고 하시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어찌 침묵하시는 겁니까.

선생님은 상아탑에 갇힌 민족사를 해방시켜 대중의 역사, 거리의 역사, 현실에 발 디딘 살아 숨 쉬는 역사로 바꾼 행동하는 지성이요 실천가셨습니다. 국민 필독서가 된 『한국사 이야기』의 저자답게 선생님의 지식은 비화에서 보학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경계가 없었습니다. 작지만 옹골찬 몸으로 뿜어내던 사자후는 청중을 압도하고 뉴라이트들을 떨게 하였습니다. 역사의 제단 아래 포청천처럼 거침없이 춘추필법을 구사하시던 이이화 선생님.

여러 학술단체나 시민단체의 고달픈 감투를 마다않고 기꺼이 맡아주셨던 선생님.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파동 때 그 추운 날씨에도 서슴지 않고 거리로 나서던 최고령 연사의 모습이 선연히 떠오릅니다.

선생님이 자리하신 민족사의 법정에서는 역사정의에 어긋나는 모든 반동은 ‘김어준식 어법’으로 ‘아작’ 났습니다. 때로는 수사법이 위험수위를 넘나들었지만 그 신랄함은 소크라테스의 대화법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도, 헤겔의 변증법도 아닌 이이화체 횡설수설형 눌언식 불교적 변증법이었습니다. 근엄한 한국사학계에서 드물게 보는 유머리스트인 선생님은 박제화한 역사를 흥미롭고 친근한 학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주변에는 항상 경탄과 박장대소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19세기의 민중운동, 그 중에서도 특히 동학농민전쟁을 민족사의 주축으로 삼아 그 계승과 부흥에 진력하셨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배려로 녹두장군 동상을 서울 종로 한 가운데다 건립하면서 흡족해하시던 그 환한 얼굴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부친인 〈주역〉의 대가 야산 이달 선생으로부터 천부적인 탁월성을 물려받았으나, 성장기 내내 혹독한 가난 때문에 고리키에 뒤지지 않는 험난한 밑바닥 인생을 겪었습니다. 필시 그 참담함 속에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눈치에 유머정신까지 터득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여기에다 선생님을 키운 8할은 술로, 밥이나 반찬보다 술을 먼저 찾았지요. 그런데 이 토착 민족주의자는 맥주 팬이었습니다. 저 호치민 선생도 미제와 전쟁을 하면서도 양담배를 즐기셨지만 아무도 트집 잡지 않았습니다. 하기야 맥주는 이미 토착화되어 우리 술이나 진배없으니까요. 술 없는 이이화 선생님은 하안거에 든 스님에 다름 아니었겠지요.

이런 사학계의 바쿠스를 술 한 모금도 않는 나 같은 소인배가 가까이할 수 있었던 건 시대 탓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신동아〉에 근무했던 1960년대 후반에 처음 뵌 이후 역사문제연구소와 도서출판 한길사의 학술행사와 역사기행, 그리고 만년의 민족문제연구소 활동에 이르기까지 동고동락했던 선배이자 자문역에 동지이셨던 선생님.

특히 식민지역사박물관건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으신 이후 만년의 선생님께는 술자리가 인생일락이었으며 그 곁을 오랜 지기 박재승 변호사님이 지켜주셨습니다. 간혹 임종국기념사업회 장병화 회장이 그 대역을 맡기도 했으나 안전귀가의 책임은 주로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상임이사의 몫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그 빈 자리는 누구도 채울 수 없다는 막막함이 우리 모두를 슬프게 합니다. 그러나 못다 이룬 선생님의 뜻을 받들 후진들이 쟁쟁하게 뒤를 이어 갈 것입니다. 하니 이제 가시는 곳에서 녹두장군님과 신선주 드시면서 편히 쉬시기를 빕니다.

임헌영 삼가 올림


[사진첩]

1980년대 한길역사기행_지리산 노고단에서 ⓒ 한길사 제공
이이화 선생 ⓒ 가족 제공
이이화 선생 ⓒ 한길사 제공
이이화 선생 ⓒ 한길사 제공
아들 응일이 찍은 아버지 이이화, 울릉도에서 ⓒ 가족 제공
1955년 고학시절 광주 충장로에서 ⓒ 가족 제공
문학청년을 꿈꾸던 이이화 선생 ⓒ 가족 제공
직장 동료들과 함께 ⓒ 가족 제공
김개남장군 고택 역사기행에 함께 한 네 가족 ⓒ 가족 제공
동학농민혁명 연구와 진실규명에 함께 한 후배이자 동지 신순철 신영우 배항섭 ⓒ 가족 제공
임진각에서 오랜 벗 박재승과 함께 ⓒ 가족 제공
1986년 11회 한길사역사기행 신돌석장군 생가 답사 ⓒ 한겨레 제공
강원도 농민전쟁의 현장 구룡령에서 ⓒ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2004년 금강산 금강문바위에서 ⓒ 가족 제공
1986년 역사문제연구소 운영회의 ⓒ 한겨레 제공
1993년 ‘다시 쓰는 사발통문’
1994년 공주 우금치 합동위령제 ⓒ 한겨레 제공
2013년 9월12일 친일독재미화 뉴라이트 교과서 규탄대회 및 검정 무효화 국민네트워크 출범식 ⓒ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2014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전체회의 ⓒ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2015년 국정화 행정예고 철회 기자회견 ⓒ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2014년 원광대 명예문학박사 학위 수여식 ⓒ 가족 제공

이이화 선생님 추모 홈페이지

목, 2020/03/1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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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사진 철거 요청

전북도청 대회의실에 걸렸던 역대 전북도지사 사진. 친일행각 벌인 11대 임춘성·12대 이용택 전 도지사.2019.12.10© 뉴스1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는 10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친일잔재 청산 취지로 전북의 역대 도지사에 대해 조사했다”며 “이들 중 2명이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친일인명사전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일제 강점기 당시 민족 반역, 부일 협력 등 친일·반민족행위를 자행한 한국인(친일파) 목록을 정리한 것으로 2009년 발간됐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날 밝힌 전북지역 친일도지사는 11대 임춘성, 12대 이용택이다.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임춘성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 장수군수 재임 시절, 중·일전쟁에 참전한 일본군을 위해 국방헌금 모집, 출정군인 환송영, 귀환군인 위안회 개최 등 전시 업무를 도맡았다.

그는 이 같은 공로로 지나사변(중·일전쟁)공로자공적조서에 이름을 올렸다. 해방 후에는 진안군수, 남원군수, 전주시장 등을 거쳐 1960년 6월부터 10월까지 전북도지사를 지냈다.

전북도청 홈페이지에서 11대 임춘성·12대 이용택 전 도지사는 삭제됐다.(전북도 홈페이지 캡처)© 뉴스1

이용택은 1940년 11월 친일조직인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에 후원금을 내는 등 만주에서 활동하는 항일유격부대 투항을 유도했다.

그는 해방 뒤 대화무역공사 사장으로 재직하다 1960년 10월 전북도지사로 임명됐다.

전북도는 그동안 이들을 포함한 역대 도지사 사진을 도청 홈페이지와 청사 대회의실에 전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전날 이들 도지사의 친일행적을 지적하며, 전시된 사진을 조치해달라고 전북도에 공식 요청했다.

전북도는 친일잔재 청산 취지에 공감한다면서 임춘성·이용택 전 도지사 사진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하고, 대회의실에 걸린 액자를 떼어냈다.

김재호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은 “친일도지사의 사진을 없앴다고 해서 친일잔재를 청산했다고 볼 수 없다”며 “이들 도지사가 친일 반민족행위자였음을 도민에게 알리기 위해 전북도와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19-12-10> 뉴스1 

☞기사원문: 전북도, 친일 행각 도지사 2명 전시 사진 철거 

※관련기사 

☞연합뉴스: 전북도, ‘친일행적’ 임춘성·이용택 전 도지사 사진 철거 

☞전북일보: 친일 행보 역대 전북도지사 2명 사진 철거16시간전

☞월드투데이: “친일 행적 확인…임춘성·이용택 전 전북도지사 사진 내려“ 

화, 2019/12/1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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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보도자료]

일제시기 일본제철에 강제동원되었던 피해자 1인과 유족 1인은 2021년 5월 25일, 박근혜 정부 시기 재판거래 불법행위에 대해 국가배상을 청구하는 소장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하였습니다(첨부문서 1. 소장 발췌본 참조). 이하는 소송 관련 정보들입니다.

1. 본 소송의 원고는 2인입니다. 2018. 10. 30.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3다61381 판결)의 원고인 이춘식과 위 소송의 원고였지만 선고를 보지 못하고 사망하신 망 김규수의 배우자 최00입니다.

2. 피고는 ‘대한민국’입니다. 이는 국가배상법에 따라 공무원의 불법행위에 대해 국가의 배상책임에 따른 청구입니다. 이 사건 재판거래 행위는 현재 기소가 되어 재판 중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뿐만 아니라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정무수석, 외교부장·차관, 김앤장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들 다수의 조직적인 공모와 실행으로 이루어진 불법행위로 파악됩니다. 그러나 이 중 재판거래 혐의로 기소가 된 것은 양승태, 임종헌 등 소수에 불과하고, 그조차 1심 판결도 선고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제수사권이 없는 원고(및 대리인)로서는 개별 행위자들 각각의 불법행위 양태를 증거로서 특정하는 것에 일정한 제약이 존재합니다. 이에 원고들의 소송대리인은 재판거래 불법행위자들 각각을 피고로 삼기보다는, 이후 형사재판의 진행상황을 참조하며, 재판과정에서 이들의 불법행위를 포괄적으로 입증하는 것에 주력하기로 하였습니다.

3. 손해배상 청구금액은 원고별로 위자료 1억 100원입니다. 청구금액의 산정과 관련하여서는 ‘첨부문서 1. 소장 발췌본’ 중 “Ⅵ. 위자료 산정 관련”을 참고하여 주십시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대법관을 비롯한 법관들, 청와대·외교부 소속 고위 공직자들, 그리고 김앤장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들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에 대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재판을 지연시키거나 재판결과를 조정하려 공모하였습니다. 법원 내부에 설치된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2018년 5월 25일자 조사보고서 및 양승태·임종헌의 공소장 기재 내용을 보면 이들이 장기간에 걸쳐 치밀하게 공모하였고, 구체적인 실행행위로 나아갔습니다. 심지어 법관들이 소송의 일방 당사자인 피고의 소송대리인에게 재판 관련 기밀을 누설하고, 특정한 소송행위를 지시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당시 소송의 원고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공정하고, 신속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습니다.

이 사건의 원고들은 2005년 2월에 한국에서 일제시기 강제동원 피해를 호소하며 소를 제기했습니다. 이 소송의 첫 대법원 판결은 2012년 5월 24일에(파기환송) 선고되었고, 위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른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2013년 7월 10일에 선고되었습니다. 이후 피고가 재상고하여 2013년 8월 9일 대법원에 재상고 사건이 접수됩니다. 그리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된 2018년 10월 30일까지 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바로 이 5년 동안, 국가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 피해자들의 목숨을 대가로 추악한 재판거래를 하는 동안, 대한민국 최고 법원에서 그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원고들과 지원 단체는 조속한 판결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고 일본의 시민단체와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조속한 판결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법농단으로 재판이 불법적으로 지연되는 동안 소송의 원고 4명 중 3명이 생을 마감했습니다(여운택 2013년 12월, 신천수 2014년 10월, 김규수 2018년 6월 사망).

일제시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위해 우리 사회는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사죄, 배상을 요구하는 한편 피해자들의 고통을 치유하고 인권의 회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70여 년간 일본 정부는 이러한 피해자들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해 왔고, 한국 정부의 노력도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 사법부는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자신들의 존엄과 명예회복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싸워 온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해 3권 분립이라는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원칙과 재판을 받을 권리라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면서까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권리회복 절차를 지연시키고 심지어 방해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따라서 국가는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판거래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명확히 사죄하고 배상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목숨을 대가로 한 사법농단에 관여하여 불법행위를 저지른 모든 자들의 잘못을 명확히 하고, 그 책임을 묻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이번 소송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회복과 역사정의의 실현, 그리고 사법개혁과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소중한 디딤돌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첨부문서1> 소장 발췌본

Ⅰ. 서언

대한민국 헌법에는 ‘독립’이라는 단어가 단 두 번 등장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헌법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입니다. 무엇보다 독립적이어야 할, 그렇지 않으면 존재 이유가 없는 법관들이 헌법을 위반했습니다. 누군가의 평생 한을 담은 소송을 고의로 지연시키고, 일방 당사자와 몰래 내통하며 재판기밀을 누출했습니다.

또한, 민주주의 제도가 작동하는 핵심 원리라 할 ‘3권 분립’을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의 고위공직자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훼손했습니다. 청와대와 외교부의 고위 공직자들은 대법관들 및 법원행정처 공직자들과 치밀하게 공모하여 재판을 지연시키고, 자신들의 선호에 따라 재판 결과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청와대 출신, 외교부 출신으로 소송의 당사자인 일본 기업을 대리하고 있는 김앤장법률사무소의 변호사들 역시 공모와 실행의 주체들이었습니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은, 그들을 지원하는 시민사회는, 소송대리인은 왜 이렇게 재판이 늦어지는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법원이 행정부, 소송 일방 당사자와 법정이 아닌 장막 뒤에서 각자의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해 재판을 대가로 ‘거래’하는 추악한 불법행위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우리 할아버지들 연세가 많으신데, 왜 선고가 나지 않는 건가, 대법원 판결도 있었는데 도대체 선고가 언제 되나’ 발만 동동 구르면서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재판이 지연되는 사이, 소송의 원고들 중 세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이후 법원 내부의 진상조사가 이루어졌고, 재판거래에 가담한 전 대법원장 양승태 등이 기소되는 등의 변화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도 원고들을 포함한 재판거래의 피해자들은 사건의 진상을 온전히 알지 못합니다. 사건으로 발생한 손해를 배상받지도, 책임 있는 주체로부터 그 어떤 공식적 사과나 의사표시를 받은 사실도 없습니다. 국가공권력 행사 중 가장 높은 독립성을 가져야 할 재판이, 그 신뢰 속에서만 유지될 수 있는 재판이 철저히 부정했고, 불법이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그 어떠한 절차를 통해서도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고령의 원고들은 다시 한 번 사법부의 문을 두드립니다. 2018. 10. 30. 대법원 판결의 유일한 생존 원고인 이춘식과, 선고를 몇 달 남겨두고 사망한 김규수의 배우자 최00는, 부디 본 소송을 통해 ‘인권의 최후의 보루로서 사법부의 역할과 사명’이 지켜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법부의 수치와 과오를 스스로 대면하고 판단하여, 피해자들의 고통이 일부나마 치유되는 판결을 선고해주시기를 요구합니다.

(중략)

Ⅴ.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불법행위로 인한 원고들의 권리 침해

  1.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침해

앞서 ‘Ⅲ. 사건의 경위’ 중 발췌·요약하여 기재한 소외 양승태, 임종헌에 대한 공소장 내용을 근거로 볼 때, 피고 소속 공무원들은 원고들의 ‘소송당사자가 서로 공격·방어할 수 있는 공평한 기회가 보장되는 재판을 받을 권리’, ‘독립적이고 공평한 법원에 의한 공정한 심리를 받을 권리’를 명백히 침해하였습니다.

– 법관들이 소송 일방 당사자 및 청와대, 외교부 공무원들에게 공개된 법정 등 법이 정한 절차가 전혀 아닌 방식으로 개별·비밀 접촉하여, 구체적 재판 계획 내지 심증 형성 내용을 누설하였음.

– 법관들이, 오직 이 사건 재상고심 판결을 이 사건 2012년 대법원 판결과 달리 판단할 목적으로 대법원 규칙을 제정하고, 소송 일방 당사자와 외교부에 특정 문서를 작성하여 재판에 제출할 것을 지시하였고, 그 지시에 따라 특정 문서들이 그대로 제출되었음.

법관들은 청와대, 외교부 공무원들 그리고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들과 이 사건 재상고심 절차와 판결내용까지, 법정이 아닌 공간에서 위법하게 논의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 사건 강제동원 소송의 원고들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그 어떠한 정보도 얻지 못하였고, 당연하게도 공평하게 공격·방어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겼습니다. 이 사건 재상고심에 관한 재판 계획과 심증 형성 내용이 법에서 정한 절차와 형식에 따르지 않고 소송의 일방 당사자 또는 제3자에게만 전달되고, 나아가 법관들의 비밀지시에 따라 일방 당사자가 소송행위를 하였다면, 이 사건 재상고심을 심리하였던 대법원은 ‘더 이상 독립적인 지위에서 공평한 판결을 하는 법원’이 아니었으며, ‘공정하게 심리’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1.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침해

소외 양승태, 임종헌에 대한 공소장 내용을 근거로 볼 때, 피고 소속 공무원들이 원고들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 분명합니다.

가. 지연기간 관련

이 사건 재상고심이 대법원 접수된 것이 2013. 8. 9., 선고가 이루어진 것이 2018. 10. 30. 이었기에 재상고심 처리기간이 약 5년 2개월 정도였다고 특정할 수 있습니다. 2018년 기준으로 이전 5년간의 민사본안사건 상고심 처리기간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이 선고까지 2년이 초과되는 경우는 2018년 2%, 2017년 역시 2% 정도로 매우 드물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나. 지연이유 관련

(1) 지연에 대한 합리적 사유 부존재

위와 같이 이 사건 재상고심 처리에 5년의 기간이 소요된 이유는 법률상 쟁점의 난이도가 높거나 개별사건에서 발생한 특수상황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이 사건 재상고심은 이미 2012년 대법원 판결이 있었기에 파기환송 판결의 기속력에 따라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신속하게 판단되었어야 하여, 가사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판단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선행 대법원 판결로 인하여 법률상 쟁점의 난이도가 높은 사건이라고 전혀 볼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개별사건에서 발생한 특수상황 역시 부존재 하였는데 신규 증거가 제출되거나, 새로운 주장이나 쟁점이 제기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백번 양보하여, 2012년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다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보아 전원합의체 회부를 검토하였다면 신속히 관련 절차를 진행하였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법원이 이 사건 재상고심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한 것은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2018. 5. 25. 조사보고서가 나온 이후인 2018. 7. 27.에서였습니다. 그리고 전원합의체 회부 3개월 만에 선고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즉, 5년이라는 현저한 심리지연을 정당화시킬 사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2) 지연 이유는 이 사건 재판거래 행위자들의 고의적인 불법행위

이 사건 재상고심이 현저히 늦어진 ‘지연이유’는 소외 양승태, 임종헌에 대한 공소장에 기재된 바와 같이, 이 사건 재판거래 행위자들이 재판을 지연시키고자 치밀하게 공모하였고, 이를 그대로 실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법원행정처 소속 공무원 및 대법관들은 청와대 및 외교부 소속 고위공무원들로부터 이 사건 재상고심이 ‘조기에 선고되지 않도록 해주고, 정부의 의견 개진 기회를 제공해주며, 국제적 차원의 의미와 파장 등을 감안하여 전원합의체 회부를 통해 보다 신중히 판단해 달라’를 요청을 받았고, 이후 이 사건 재상고심을 심리불속행 기간을 도과하게 하였고, ‘국가기관 등 참고인 의견서 제출 제도’가 도입될 때까지 재판연구관 검토 보고 등의 절차를 진행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법관들이 법원조직법 및 법관윤리강령에 따른 비밀준수 의무를 위반하고 소송 일방 당사자와 외교부에게 비밀을 누설하였을 뿐만 아니라, 특정 문서 제출을 요구하였고, 이후 그대로 실행되었습니다.

결국 법관들, 청와대와 외교부 소속 공무원들, 김앤장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들은 이 사건 2012년 대법원 판결을 변경하기 위해 이 사건 재상고심의 전원합의체 회부를 공모하였고, 이를 위해 대법원 규칙 변경, 이 사건 강제동원 소송 피고 및 외교부의 서면 제출 등이 공모한 계획에 따라 이루어지면서 이 사건 재상고심의 선고 및 심리가 장기간 이루어지지 못한 채 재판이 현저하게 지연된 것입니다.

다. 지연으로 인하여 당사자가 받는 불이익의 정도

이 사건 재상고심이 5년이 넘도록 판결이 이루어지지 않는 과정에서 이 사건 강제동원 소송의 원고였던 김규수는 2018. 6. 14. 사망하였습니다. 김규수는 2005년부터 시작한 소송의 결론을 끝내 보지 못하고 사망한 것입니다. 만약 대법원이 행정부로부터의 부당한 요구와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들 조직의 이익에 눈이 멀지 않고 사법부의 독립과 공정을 지켰다면, 최소한 김규수는 자신의 소송에 대한 확정판결을 직접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소외 김규수에게 이 사건 재상고심의 지연으로 인하여 발생한 불이익의 정도는 그 어떤 것으로도 회복 불가능한 극히 중대한 불이익일 수밖에 없습니다.

원고 이춘식 역시 1924년생의 고령의 나이에 대법원에서 언제 최종 판결이 이루어지기만을 학수고대 하였습니다. 고령의 원고 이춘식이 장기간 판결을 선고받지 못해 자신의 권리가 확정되지 못한 불안한 상태가 지속된 것 역시 불이익의 정도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1. 소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권리라 할 수 있지만, 본 사건의 경우 두 권리가 모두 명백하게 침해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법관이 소송 일방 당사자에게 재판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일방 당사자와 공모하여 재판의 절차와 판결의 결론을 특정하게 도출하려 한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형해화된 것이라 할 것입니다.

한편, 위와 같은 불법적 재판거래 과정에서 재판이 현저하게 지연되었고 그 과정에서 소송 당사자들이 사망에 이르게 된 상황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임에 분명합니다.

Ⅵ. 위자료 산정 관련

이 사건 강제동원 판결의 원고였던 이춘식, 그리고 같은 원고였으나 이 사건 재상고심 판결이 선고되기 직전 사망한 소외 망 김규수는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불법행위(공정·신속한 재판 받을 권리 침해 행위)로 인해 큰 충격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실망감을 느꼈고, 2018. 10. 30. 이 사건 재상고심 판결 선고가 이루어질 때까지도 노심초사하며 결과를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이에 원고 이춘식과 소외 망 김규수의 상속인 원고 최00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라 피고 대한민국에게 각 100,000,100원의 위자료를 청구합니다. 이 사건 강제동원 판결에서 원고들이 청구했던 손해배상액이 100,000,000원이었음을 볼 때, 본 소송의 위자료 청구액이 일견 과다하다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 이 사건 재판거래는 독립과 공정이 본질인 사법부, 그것도 최고법원인 대법원에서 재판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아 벌어진 반헌법적 불법행위라는 점에서 불법의 정도가 매우 중대하다는 점,

나. 불법행위의 양태에 있어서도 청와대, 외교부 등 삼권분립을 수호해야 할 고위공직자뿐만 아니라 소송 일방 당사자까지 함께 조직적으로 공모하였고 상당 부분 실행되었다는 점에서 그 양태가 현저히 불량하다는 점,

다. 원고들로서는 최고법원인 대법원에서 위와 같은 불법행위가 발생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한 채 믿고 기다려왔으나 결국 자신들의 재판이 거래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을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고, 특히 대법관들과 대통령까지 나서서 본인들의 한이 담긴 일생의 재판을 조작하려 했다는 점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정신적 고통의 정도가 현저히 크다는 점,

라.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지연된 기간에 비례하여 피해가 증가하는데,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장기간 피해가 계속되었다는 점,

마. 소외 망 김규수의 경우 사망하여 피해회복이 전혀 불가능한 상황이 초래되었고, 원고 이춘식 역시 고령의 나이에 불안한 심정으로 장기간 판결을 기다려야만 했다는 점을 종합하면,

원고들이 청구하는 위자료는 과다하지 않으며, 헌정사상 초유의 대법관들이 연루된 반헙법적 행위가 초래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적정한 피해회복을 위한 위자료라고 할 것입니다.

Ⅶ. 결론

이 사건 재판거래는 고위공직자들이 비밀리에 실행하여 집행한 범죄이기에, 강제수사권이 없는 원고들로서 이 사건 재판거래 행위자들의 불법행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원고들을 비롯한 이 사건 재판거래 피해자들은 소외 양승태, 임종헌의 형사 1심 판결이 선고되면 이를 일응의 증거로 하여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형사 1심 판결 선고가 통상에 비해 늦어지는 상황에서 고령의 원고들이 소제기 조차 하지 않고 계속 기다릴 수는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사건 재판거래는 독립과 공정이라는 사법부의 가치가 모두 허물어졌던 반헌법적 사건이었고, 고위 공직자들이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이 자의적으로 남용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소수 법관들에 대한 기소만 이루어졌을 뿐, 사건에 대한 온전한 진실규명도 피해자들에 대한 권리회복 절차도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에 원고들은 본 소송을 통해서, 이 사건 재판거래의 온전한 사실관계를 판단받고, 원고들이 보다 건강하실 때 일말의 피해회복이라도 이루어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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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1/05/27-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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