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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영화 단체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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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영화 단체관람

admin | 수, 2019/12/04- 02:27

경실련은 2019년 올 한 해 마무리를 회원님과 함께 하고자 영화관람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경실련이 준비한 의미 있는 자리를 회원님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신청 : https://forms.gle/8fmDWdxYFqL7gio86

*일시 : 12월 18일 수요일 오후7시30분
*장소 : 대한극장 9관 (충무로역 1번 출구)

* 프로그램
– 영화관람 19:30~20:55 (약 85분)
– 감독과의 대화 21:00~21:30 (약 30분)

* 참가비
– 회 원 : 무료
– 비회원 : 5,000원 (현장납부)

* 영화정보 : https://bit.ly/2Do1X3w
* 예 고 편 : https://www.youtube.com/watch?v=Lr3N6B3Ylv4

<문의 : 경실련 회원미디어국 02-766-5628>

* 티켓은 현장수령 하시면 됩니다.
* 더욱 많은 분들의 참여를 위해 실제 참석 가능하신 분들만 신청을 부탁드립니다.
* 인원이 제한되어 있어 신청자가 많을 경우는 신청이 조기 마감될 수 있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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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3,4월호 – 재벌갑질을 알리오! – (주)엠케이정공 주민국 대표 인터뷰]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국가에서 우리를 버리는구나
법이 무섭구나 이런 생각 많이 해요.”

 

윤은주 회원미디어국 간사
[email protected]

 

▲ 지난 3월 7일 경실련 1층 카페에서 엠케이정공 주민국 대표, CRB법률사무소 조인명 변호사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사진 왼쪽: 조인명 변호사, 오른쪽: 주민국 대표)

 

몇 해 전 터진 땅콩 회항사건은 재벌 갑질의 민낯을 알리며 온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재벌총수의 이런 낯 뜨거운 행동은 재벌 갑질의 아주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재벌 갑질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훨씬 더 교묘하게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법 개정이나 구조적인 개선책 마련도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을과 병의 미투 운동처럼 재벌 갑질의 피해를 있는 그대로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도 재벌개혁 운동의 일환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자동차 2차 협력업체인 ㈜엠케이정공의 주민국 대표를 만나 재벌의 갑질을 넘어 1차 협력업체의 을질까지 내리 갑질을 당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 ㈜엠케이정공 소개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주민국: 저희는 현대•기아자동차 2차 협력업체입니다. 자동차 차체부품을 주로 생산하고, 아버님부터 시작해서 30년 가까이 운영했고, 제가 가업승계 2세입니다. 범퍼, 도어프레임, 카울 크로스바, 센터플로어 등 차체부품을 현대차 1차 협력사인 세원에 납품하는 회사였고, 현대차 협력사인증평가제도 SQ(Supplier Quality)인증 A등급도 받았었습니다.

 

Q. SQ A등급까지 받은 협력회사였는데 어떻게 부도가 난 건가요?

주민국: 무리한 단가 인하를 강요받고, 품질유지 비용을 부당하게 전가 받다가 결국 이렇게 됐습니다. 가격결정을 할 때는 보통 입찰 같은 걸 통해 하는데, 저희는 입찰제도 자체가 없었고, 위에서 하라는 대로 얼마에 해 하면 하는 거였어요.

단가 후려치기와 품질유지 비용 전가로 적자가 쌓여갔고, 2016년부터 적자가 심해졌어요.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연장이 안 되는 대출 2억원이 있었는데 원청사에 단가 인하로 인한 손실금액 보전을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SQ A등급 아무 의미 없습니다.

 

Q. 가격결정 과정에 합의가 없다는 건가요? 하청업체는 교섭권이 없나요?

주민국: 네 합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강제 CR(단가인하)이에요. 하청사는 교섭권이 없습니다. 원청사에 문제 제기하면 거래를 끊겠다는 협박이 들어옵니다. 단가 정하기 전에 약정 합의서를 요구하지만 이것도 허울뿐이에요. 서명을 거부하면 수주를 못 받습니다.

 

Q. 현대차가 ‘갑’이면 1차 협력업체인 세원은 ‘을’이고, 엠케이정공은 ‘병’이라고 하셨는데, 을이라고 하신 세원의 갑질은 어떤 것인가요?

주민국: 회사가 부도날 경우 현대차나 세원 입장에서도 부품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에 저희는 우선 세원에 저희 회사의 어려움을 알리고 자금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세원은 20억에 회사를 인수해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계약서를 체결했고 계약금 2억원을 받았습니다.

세원은 엠케이정공 직원 전원도 고용승계하겠다고 하고 본사 견학도 하고 회식도 시켜준다고 세원 공장으로 데리고 갔어요. 직원들 모두 고마운 마음에 기쁘게 회식에 참여했는데, 같은 시간 세원은 직원 100여명과 중장비를 동원해 제조업의 핵심인 금형 및 완제품을 모조리 무단 반출해 가져간 뒤 M&A 계약을 파기했습니다.

조인명: 한 마디로 엠케이정공을 인수하는 척 하면서, 엠케이정공의 알맹이만 쏙 빼간 후 “인수하고 보니까 너무 부실이 많아 (인수) 못 하겠어” 라면서 계약 취소를 일방적으로 한 것이죠. 그 다음에는 계약금 돌려달라며 주 대표님 살고 있는 집하고 가족들 자산에 대해 가압류를 했습니다.

 

Q. 백주 대낮에 눈 크고 코 베인 격이네요. 금형을 탈취해간 세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하고 계십니까?

조인명: 저희는 실제로 (저희 소유인) 금형과 재고물품등을 탈취 당했기 때문에 특수절도 혐의로 세원을 고소했습니다. 대전지검 천안지청에 고소를 했고, 현재 경찰단계는 마치고 검찰단계에 있는 상태에요.

세원은 저희가 받은 계약금 반환 청구소송을 했는데요. 저희는 처음부터 계약을 이행하라고 요구하였고, 이행을 못 하겠으면 그에 대한 손해배상을 하라고 반소제기 할 예정입니다.

공정위에도 하도급법 위반(하도급대금 부당결정, 부당감액, 서면 미교부, 부당한 경제적 이익요구 등) 혐의로 신고를 한 상태에요. 근데 문제는 공정위 신고 들어가면 요즘은 원청들이 영악하게 보관하는 서버 data를 다 날리고 다시 자료를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또한, 해당 직원들을 미국이나 중국 등 해외로 출장이나 파견 보내버리는 등 공정위 조사가 들어오기 전에 증거를 싹 날려 버립니다. 공정위는 강제수사를 할 수 있는 권한도 없고, 내부에 디지털포렌식 등을 할 수 있는 인원과 자원도 상당히 부족한 상황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공정위에서도 증거를 확보하기에는 역부족인거죠.

주민국: 현재 세원 회장 아들 둘이 개인 법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원 거 받아서 수출만 하는 법인인데, 이익률이 29.6% 나와요. 아이티 회사도 아닌데 말이죠. 그 형제 둘이 2016~2017년 2년 동안 현금배당으로 그 회사에서 빼간 배당금액만 500억이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개인 법인으로 일감을 몰아줘서 본사 주가는 10배 이상 떨어졌어요. 상장 회사의 부를 비상장회사로 이전시킨 것이죠. 형사 수사 대상이 되서 기소됐습니다. 현재 소액 주주들이 별도로 집단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주민국 대표는 너네가 경쟁력 없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현대기아차 상위 5% 해당하는 업체도 손짓 하나에 망하는데 경쟁력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되물었다.

 

Q. 지금 회사와 대표님은 어떤 상황이세요?

주민국: 결국 세원은 회사의 모든 핵심 자산들을 훔쳐갔고, 그 후 일방적으로 인수를 취소하였습니다.. (생산시설이 없는) 저희 회사는 부도났고, 회사와 집, 자신들은 다 경매 들어갔습니다. 회사는 지금 강제적으로 휴업 상태구요, 소송을 하려면 파산도 할 수가 없대요. 소송의 주체가 있어야 되기 때문이라고하더라고요. 회사는 회생불가죠. 앞으로 제조업은 못 하겠어요. 아니 안할 거예요. 제가 제일 듣기 싫은 소리가 제조업 사장님들은 정말 애국자라는 소리에요.

원청에서 회유하는 대로 법정관리하고 고의 부도 내고 그랬으면 이렇게 까지는 안 됐을 수도 있었겠죠. 그래도 그건 아니잖아요. 지금 아이들이 올해 다섯 살, 세 살 됐는데 유치원 보내고 뭐라도 해야 하니까 저수조 청소 아르바이트도 하고 그렇게 지냅니다.

저는 저희 아버님을 많이 존경하며 살았어요. 저도 제 아이들한테는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어 끝까지 싸우는 겁니다. 아직까지는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려고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국가에서 우리를 버리는 구나, 법이 무섭구나 이런 생각 많이 해요. 1심까지도 못 갔는데 벌써 1년 지났어요. 몇 년을 끌지 모르겠어요. 저희는 지금 당장 생계가 어려운데 계속 시간 끌어도 상대는 아쉬울 게 없죠.

 

Q. 이런 갑질 사태의 가장 큰 원인과 개선방향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조인명: 부당한 단가로 결정한 부분들, 단가를 감액하고 위탁을 취소한 부분들 모두 입증책임이 하청업체에게 있어요. ‘부당’하다는 걸 피해자인 저희가 입증해야 되는데 원청회사의 자료는 저희가 볼 수 없잖아요. 쉽지 않은 과정이고 사실상 불가능하죠.

그리고 신고가 들어가면 공정위나 사법부의 판단은 갑을관계로 이 회사를 보지 않고 대등한 법인간의 관계로 봐요. 일반 소액임차인이나 임대인처럼 , 또는 노동자나 사용자 관계로 보지 않아요. 회사 대 회사, 법인 대 법인의 대등한 관계로 봐요.

저희는 그래도 언론에서 이슈가 됐기 때문에 공정위나 수사기관에서 조사도 하고 국회차원에서 도움도 받았지만, 일반 사건들 같은 경우는 조사 자체도 딜레이가 많이 돼요. 생각보다 하도급법 위반으로 인해 공정위가 형사고발하는 비율이 1%도 안 돼요. (실제로 최근 5년간 하도급법 위반에 대한 총 신고건수 7,298건 중 경고이상의 제재는 547건(7.49%), 형사고발은 20건(0.27%)에 불과합니다.) 하도급법에는 을들이 단가 조정신청도 갑에게 할 수 있긴 한데 자동차 산업의 경우는 형해화된 조항에 불과합니다..

결국 피해자가 스스로 부당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원청이 부당하지 않다는 걸 입증해라 이래야지 뭔가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봐요. 약자들은 돈도 없고, 원청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자료를 안주면 입증할 길이 없거든요. 서울대 박상인 교수님이 주장하시는대로 한국식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하는 게 필요합니다. 미국처럼 디스커버리제도나 징벌적 손해배상이 있어야 이게 무서워서라도 불공정거래를 안 하게 되고 이런 짓을 하면 안 되는구나, 거래를 할 때는 공정하게 해야 되는구나 라는 인식이 생겨야 돼요.

 

▲ 조인명 변호사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1차 협력업체들이 2차 협력업체를 관리하는 방식이 더 잔인하고, 권위적이며 주종관계에 아주 익숙하다고 했다.

 

주민국: 1차 협력업체 경영자들은 재벌이에요. 현대차는 보는 눈이 있으니까 대놓고 활동을 못하기 때문에 지탄받을 짓들은 1차 협력업체들에게 행동대장격으로 다 시켜요. 그 대신 현대차로부터 물량이나 단가로 보상을 받는 거죠.

중소기업 도와주는 데가 없어요. 저희 회사에 가압류를 제일 먼저 신청한 데가중소기업진흥공단이에요. 여기서 제일 먼저 들어오더라고요. 회생지원이나 재기 지원 등 도움을 받을 길이 전혀 없었어요. 저희만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니에요. 공정한 거래를 해서 자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달라는 것이고, 당연한 정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 중소기업진흥공단이나 중기부에 너무 실망을 많이 했어요. 국회 세미나에 와서 신고센터 몇 군데 늘렸다는 그런 실효성 없는 대책만 말하지 말고 실제적으로 원청과 협상을 잘 할 수 있도록 변호사 지원이라든지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상황이면 소송하는 동안 (상환)유예를 해준다든지 등의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노블리스오블리제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상식적으로 이런 불공정한 짓은 하면 안 되는구나, 디스커버리제도 같은 게 상징적으로 도입돼서 사람들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꼼수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일한만큼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자고 30년 전 시민의 힘으로 경실련이 창립한 건데, 열심히 일하고도 억울한 이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건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최정표 前공동대표님은 한국경제는 빨대식 구조가 너무 심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최고 강자는 중간 강자에게, 중간 강자는 약자에게 빨대를 꼽고 쭉쭉 빨아들이는 구조가 경제 전체에 거미줄처럼 깔려 있다고 하셨는데, 딱 맞는 비유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나라 자동차 업체가 9,000여개 이고, 여기에 종사하는 이들 수는 직간접적으로 5,00만명에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재벌들도 더는 이런 야만적인 갑질행태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주 대표님 같은 재벌 갑질피해가 더는 생기지 않고, 거래는 공정하게 하는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하루 빨리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도급법 개정과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등 재벌개혁 정책들이 속히 실현되길 기대합니다.

수, 2019/03/2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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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3,4월호 – 30주년 특집 인터뷰 : 임현진 前공동대표]

“정부와 시민단체의 가장 바람직한 관계는 비판적 협력관계입니다.
거리를 두고 비판하면서 도울 건 돕고 견제할 건 견제해야죠”

 

윤은주 회원미디어국 간사
[email protected]

 

▲ 지난 3월 13일 본인이 사회대 학장시절 창립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임현진 前공동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경실련 30주년을 맞아 작년부터 시작한 기념 인터뷰가 벌써 일곱 번째입니다. 이번 호에서 일곱 번 째 경실련이 만난 분은 임현진 전 공동대표입니다. 임현진 대표는 경실련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꾸 준히 경실련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사회학자로서 한국의 사회과학 발전에 밑거름 역할을 하셨고, 경 실련뿐 아니라 한국NGO학회를 이끌며 다양한 시민단체 영역에서도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Q. 1989년 발기인으로도 참여하셨는데, 어떻게 경실련 운동을 하게 되셨는지와 창립 당시 에피소드나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 있으시면 들려주세요.
 
A. 1988년부터 서로 얘기들을 많이 했는데, 당 시 경실련이란 시민단체를 창립한다고 하니까 우리 사회 여기저기서 제게 연락이 왔어요. 동 참하고 싶다는 말씀이 많았어요. 특히 직장인들 중에서도 공공부문보다 회사원, 은행원, 교사 등 민간부문에 종사하는 분들이 엄청난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선후배, 동료 교수들과 우리 사회에 경 제정의와 사회개혁을 위해 시민운동이 필요하 다는 얘기를 나누곤 했어요. 영국의 페이비언 소사이어티처럼, 개량주의라 하더라도 우리는 혁명을 할 수는 없으니까 개혁을 해보자는 것이 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시민사회를 만들고 지키 자는 얘기를 나눴었지요.
 
에피소드라고 하면 그때 지금은 돌아가신 박 세일 교수(청와대 정책수석 역임)하고 양건 교 수(국민권익위원장, 감사원장 역임) 이런 분들 과 같이 경실련은 사회운동에 끝까지 매진해야 지 이걸 디딤돌로 해서 정치를 한다든지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지요. 그러나 이 신조가 개혁 을 위한 정치참여, 현실참여라는 명분 아래 잘 지켜지지 않았다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시민 운동을 하다가 정치를 시작한 분들 중에서 성공한 분이 거의 없어요. 시민운동가는 본연의 자 세를 지켜야 합니다.

 

Q. 세월호 참사 직후에 한 언론에서 인터뷰하신 걸 보니까 우리 사회는 ‘4불(不)’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씀하셨어요. 불통, 불신, 불만, 불안이 소 통을 어렵게 만든다고 하셨는데, 5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가 달라졌다고 보시는지요?
 
A. 세월호 이후에도 그런 ‘4불’이 없어지지 않아 걱정입니다. 촛불 이후 형식적으로는 의견 개진 이나 공론 조성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거의 변화가 없다고 볼 수 있어요. 지방정부는 그래도 나은 편인데 중앙 정부 수준에서는 협치가 전혀 되지 않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도 국회는 협치라는 말만 떠들었지 민의를 대변하고 있진 못하고, 완전히 정파 이해에 빠 져 나라 안팎의 현안에 대해 거의 손을 놓고 있 어요. 태극기는 태극기대로 나가고 촛불은 촛불 대로 갈라져 있고 소통도 잘 안 되고 신뢰도 회 복이 안 되고 사회가 어렵다 보니까 민생은 힘 들고 여전히 국민들은 불안하고 불만이 많다고 생각해요.
 
최근 미세먼지 대책만 봐도 정부가 뭐냐? 국 가가 뭐냐? 촛불 때와 똑같은 질문이 나올 수밖 에 없어요. 아무런 대책이 없어요. 사드 때처럼 중국 눈치만 보고 중국에 할 말을 못해요. 특 히 어린이들의 미래 건강을 위해서라도 미세먼지를 줄여 국민의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현실 적 방도를 단기와 장기로 찾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어요.
지금 정부는 촛불 이후 시민단체를 편하게만 바라보고 있고, 야당은 다 자기의 적으로만 바 라보고 있는 거 같아요. 여·야당이 시민단체를 네 편, 내 편으로 보는 단견을 버려야 합니다. 시민사회와 정부는 항시 비판적 협력관계로 거 리를 두고 비판하면서 도울 건 돕고, 견제할 건 견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Q. 한국NGO학회 활동을 이끌기도 하시고, 경실련뿐 아니라 다양한 시민단체 활동도 활발히 해오셨는데 한국 NGO의 시작은 언제라고 볼 수 있을까요?
 
A. 출발은 19세기 말 만민공동회죠. 만민공동회 정신이 3·1운동으로 이어졌고 3·1운동은 사 회운동 입장에서는 엄청난 의미를 가져요. 주권 을 빼앗긴 나라에서 국민이 살아나는 마치 촛불 에서 시민이 살아났듯이 국민이 주도해서 일으 킨 운동이니까 굉장히 큰 의미죠.
 
일제 강점기에는 흥사단, YMCA, YWCA 이런 단체들이 1세대 NGO라고 볼 수 있어요. 2세대는 구사회운동과 신사회운동을 구분해 야 하는데 신사회운동은 주로 기존의 노동운 동, 계급운동이 아니라 시민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인권운동, 평화운동 등을 말하는 데 NGO를 좁혀서 얘기한다면 경실련이 하나 의 출발점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 어요. 경실련 창립 30주년일 뿐 아니라 NGO 창립 30주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있 어요.

 

Q. 한국 NGO의 한계로 높은 정부 의존도를 많이 이야기 합니다. 이를 어떻게 보시며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A. 현재 NGO가 마주한 가장 큰 한계이며 도전 과제임이 분명합니다. 정부 프로젝트를 대행하 는 소위 에이전트(Agent)로 전락하는 것이 문 제예요. 과거 정책 비판자, 대안자, 경쟁자로서 의 지위가 단순한 정책을 수행하는 지위로 전락 한 것이죠.
 
누가 정책을 견인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물론 정부나 기업의 인·물적 자원과 역량의 측면과 비교해볼 때 시민단체가 결코 우위를 점하기 어 려운 현실이긴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문 제를 한 단체가 모두 다루려하지 말고 경제정 의, 산림, 물, 미세먼지, 원자력발전, 농촌이주 노동자, 한국산 콩 두유 등 조금 더 전문영역에 서 탐사와 혁신이 결합된 대안 정책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해요. 과거와 같은 운동방식으로 당위 적인 주장만 하다 보면 정책경쟁에서 늘 밀리게 되고, 소위 ‘10급’ 공무원으로 전락하는 위험을 극복할 수 없을 거예요.
 
결국 이 문제는 재정 문제인데, 국제 NGO 같은 경우 그린피스나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등 의 단체를 보면 회비 비중이 1/3이고, 더 많은 비중이 재단에서 후원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빌 게이츠가 서너 개의 재단을 만들었는데, 그 재단에서 ‘환경단체 후원하자’ ‘인권단체 후원하 자’라고 하면서 내는 거죠. 빌 게이츠가 자기 주 식을 팔아서 개인 돈으로 내는 거지, 회사 돈으 로 내는 게 아니에요. 기업주가 기업의 돈을 자 기 이름으로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통해 번 돈을 개인이 자기 이름으로 기부하는 이런 방식이에요.

 

Q. NGO 활동가 또는 NGO 활동을 꿈꾸는 젊은 청년들에게 조언과 격려의 한 말씀 부탁드 립니다.
 
A. 시민사회 활동 분야는 요즘 학생들이 생각하 는 희망 직장의 블루오션이 결코 아니에요. 10 년 전에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민간외교 역 할과 국제활동 역량 등을 강조하며 많은 학생들 을 불러 모았어요.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 고 떠났어요.
 
NGO는 가치지향 조직이에요. 올바른 세계 관과 가치관을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공공선에 대한 관심이 어려서부터 다양한 경 험과 참여를 통해 체득돼야 해요. 단순히 세 계시민교육을 받았다고 세계시민이 될 수 없 는 것과 같아요. 지방, 국가, 지역, 세계 구석 구석 구성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마음 이 우선 생겨야 합니다. 듣는 훈련이 되고 공 감 능력이 커지면 보다 사회에 필요한 변화를 기획하게 되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나아가게 되죠.
 
공공선을 구현하고자 하는 마음, 이를 위해 공유, 연대, 협력의 가치를 키우고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에 가치를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사회가 희망이 있 어요. NGO가 이런 일에 보다 더 초점을 맞춰 야 해요.

 

Q. 끝으로 올해 30주년을 맞는 경실련에게 바라시는 점이 있으시다면?
 
A. 우리 경실련은 큰 의미에서 사회개혁을 위 한 종합시민단체라는 어쩔 수 없는 큰 짐을 짊 어져 왔는데, 그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역 량을 한 군데 모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요. 너무 많이 벌이다 보니까 역량의 한계에 부 딪치는 거죠.
 
그리고 옛날에는 시민들이 경실련을 많이 찾 아왔는데 요즘은 아마 덜 찾아 올 거예요. 과거 에는 시민단체를 통해서 자기의사를 대변했는데 촛불 이후에는 시민들이 스스로 SNS 통해서 직접 다 표현해요. 전문가들도 과거에는 정책개 발에 많이 참여하고 도움을 줬는데 요즘은 다들 먹고 살기 바빠서 집합적인 문제의식이 없어져 요. 시민단체들이 과거와는 다른 도전에 직면해 있어요. 시민들의 힘은 커졌는데 회원들은 빠져 나가고 있는 아이러니를 봅니다. ‘시민 없는 시 민운동.’ 시민은 살아나고 있는데 시민단체는 거꾸로 왜소해지고 있습니다. 30주년을 맞이해 서 이런 문제들을 경실련이 다른 NGO들과 머 리를 맞대고 어떻게 활로를 뚫어갈지 모색해보 면 좋을 것 같아요.

 

수, 2019/03/2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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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3,4월호 – 우리들 이야기1]

반갑습니다! 신입회원 인사드립니다!!

 

정준영 회원
[email protected]

 

 

안녕하세요!! 신입회원 정준영입니다. 저는 올해 32살 된 청년입니다.

제가 경실련을 알게 된 건 대학시절 동아리 지도 교수님이 지역경실련 지부장으로 활동하신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입니다. 평소에 인격적으로 존경하고 있던 교수님이 몸담고 계신 단체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경실련 페이스북 페이지를 2년 동안 구독하게 되었고, 다른 시민단체와는 다르게 외압이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지도 않으면서도 소신껏 공익의 목소리를 말한다는 걸 깊게 느껴 후원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저는 영등포에서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였습니다. 그곳에 단골로 오시는 폐지 줍는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다 그분 사연을 듣게 됐습니다. 할머니는 주택가에서 작은 슈퍼마켓을 하시다 대형 쇼핑몰과 편의점의 난립으로 가게 문을 닫게 되셨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망하게 한 편의점에서 폐기 도시락을 얻어가고 950원짜리 라면으로 매 끼니를 해결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꼈고, 현대사회가 아무리 경쟁이 필연적인 사회라고는 하나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난 사람들을 구제하는 방법이 없는 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고대 중국의 유학자이자 성악설의 제창자인 순자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 ‘법의 뜻은 생각 안 하고 법조문을 알기만 하는 자는 모든 일에 있어서 혼란을 일으킨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글을 보며 약자와 정의를 위해 존재하는 법의 참 뜻을 망각하고 사법농단을 일으키거나 법조문을 이용해서 자기들의 이익만 꾀하고 법망을 피해가는 사람들이 떠오르며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기해년 새해에 당장 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이제 막 생각이 깨어 사회를 배우고 있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경실련을 통해 저희 세대들과 선배 세대님들이 합심해서 조금씩 바꾸어 나가길 기대합니다.

수, 2019/03/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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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1,2월호 – 좋은사회적기업 : 노리소리 강원두레]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문화예술 예산이 여전히 1% 내외로 상대적으로 다른 분야에 비해 인색합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정책이 혁신적으로 바뀌어야한다고 봅니다.

 

윤은주 회원홍보팀 간사 [email protected]

 

▲ 지난 12월 13일 경실련 강당에서 개최한 좋은사회적기업상을 시상식 (왼쪽이 엄기종 대표)

 

경실련은 어려운 경제・사회적 여건 속에서 사회적 목적을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회적기업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 국내 상장기업들을 발굴하여 널리 알리기 위해 해마다 좋은기업을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습니다. 경실련 좋은기업상은 올해 27회를 맞이했고, 좋은사회적기업상은 4회를 맞이했습니다.

모두 5개의 기업이 수상을 했고, 모두 자세히 소개하고 싶지만 그 중에 특별히 공익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문화예술 전문 사회적기업인 ㈜노리소리강원두레의 엄기종 대표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Q. ‘노리소리 강원두레’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요?

A. 노리소리강원두레는 강원도를 기반으로 문화예술 사업을 통해 오늘날 새로운 생활예술 문화공동체를 구현하고자 고성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을 중심으로 설립되었습니다.

‘노리소리강원두레’ 이름은 조선시대 농촌지역에서 행해지던 전통 민속놀이인 두레놀이와 두레소리를 합성한 후 재구성하여 만든 것입니다.

 

Q. ‘노리소리 강원두레’ 소개와 현재하고 있는 활동과 주요활동 등에 대한 설명 부탁

드립니다.

A. 노리소리강원두레는 강원도 고성지역의 청장년 예술가 및 예술 강사들의 일자리 창출과 문화예술 교육 및 공연 등의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지역의 문화예술 정체성과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하여 설립된 사회적 기업입니다. 현재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생활예술 동아리 운영, 고성농악 및 고성아리랑 등 전통 민속예술의 발굴 및 전승 활동, 지역주민과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예술 교육 및 공연 프로그램 공모사업, 지역 내 문화제 및 축제 등 크고 작은 행사 대행 사업 등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고성농악보존회, 고성아리랑보존회, 고성역사문화연구소, 농가주부모임 밴드 등을 노리소리강원두레의 상주단체로 설립함으로서 지역 문화예술 활동의 산파 역할 뿐만 다문화합창단, 장애인합창단 및 고성진로체험지원센터 위탁 운영 등을 통해 지역 문화예술 발전의 매개 역할을 감당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지역 내 취약계층을 위한 시설 및 기관 단체와 MOU 체결을 통하여 무상으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나눔 사업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적 기업 자율 경영공시를 통해 그간의 성과와 활동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여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가치를 견고히 다져나가고 있습니다.

 

Q. 대표님 소개도 간단히 부탁드리고, 어떻게 이런 사업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특별히 사회적 기업을 하신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저는 국내에서 대학원까지 마치고 미국에서 박사과정 유학생활을 하던 중 실패하고 돌아와 방황하다 경기도 일산 및 강원도 원주에서 교육 사업을 하면서 귀향을 결심하고 2012년 고향인 강원도 고성지역으로 돌아와 문화예술 분야 전문 사회적 기업을 설립했습니다.

문화예술 분야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게 된 이유는 늘 고향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가 귀향하면서 고성지역에 꼭 필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찾던 중 2012년 당시 사회적 기업이라는 좋은 정책적 지원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역에서 본인이 잘 할 수 있고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문화예술 사업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사회적 기업이라는 정부의 지원제도가 없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빠른 시간 내에 사업적으로 자리 잡을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Q. 지역사회공헌 사회서비스 부문 최우수기업으로 선정되셨는데 문화, 예술을 매개로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연대할 때의 장점과 또는 한계나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일반적으로 문화예술은 공공재로서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운영하기가 어려운 사업 분야입니다. 현재 정부의 문화예술 예산은 2013년 이후로 2%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OECD 국가들의 문화예술 예산이 3%인 점을 감안한다면 향후 이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있어야한다고 봅니다. 특히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문화예술 예산이 여전히 1% 내외로 상대적으로 다른 분야에 비해 인색한 것을 보면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정책이 혁신적으로 바뀌어야한다고 봅니다.

 

▲ 해맞이 달맞이 고성 금단작신 가면놀이 길놀이 공연

 

▲ 해맞이 달맞이 고성 금단작신 가면놀이 축제 공연

 

Q.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계시는지와 강원지역에도 경실련 지부들이 있는데,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려면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요?

A. 2019년 올해에는 고성군이 노리소리강원두레가 그동안 발굴하여 전승해가고 있는 ‘고성 금단작신 가면놀이’를 강원민속예술경연대회 종목으로 선정하여 출전하기로 하였습니다. ‘고성 금단작신 가면놀이’는 조선시대 고성지역에서 세시풍속으로 연희되던 귀한 민속자료로 향후 지역의 대표 문화예술 축제로 키워가고자 합니다.

강원도 고성지역의 경우 아직 경실련 지부가 없어서 상호 교류 소통할 기회는 없지만 인근 지역의 경실련 지부들과 교류하기를 희망합니다. 경실련 행사에 노리소리강원두레가 운영업체로 참여하거나 노리소리강원두레 주관 행사에 인근 경실련 지부가 지부 차원에서 홍보하고 참여해 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역 주민들의 경우 노리소리강원두레의 운영하는 고성역사문화연구소, 고성농악보존회, 고성아리랑보존회, 농가주부모임 밴드 등 생활예술 동아리에 회원으로 참여하여 지역 문화예술의 생산자로 함께 한다면 큰 힘이 되리라 봅니다.

 

Q. 경실련 좋은 사회적기업상을 수상하신 소감과 앞으로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나 우리사회가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사회적 기업을 하고 계시거나 시작하려는 분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A. 좋은 평가를 해주셔서 다시 한 번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도 사회적 기업으로서 지역의 공익적 가치, 윤리적 가치, 경제적 가치 구현을 통해 취약계층에 대한 일자리 창출 및 문화 소외계층에 대한 재능기부 등 사회서비스 제공에도 게을리 하지 않고,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노력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지역에서 사회적 기업을 통해 취약계층의 건강한 경제 생태계를 만들고자 준비하거나 하고 계신 사회적경제인들의 행운과 건투를 빕니다.

 

Q. 끝으로 앞으로 어떤 계획이나 목표를 가지고 계신지 말씀해주세요.

A. 올해 2019년도부터는 그 동안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면서 쌓아온 신뢰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노리소리강원두레의 사업을 보다 내실 있게 운영하고, 지역의 현안에 대해 지역주민들과 함께 혁신적인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전문가 초청 세미나를 주기적으로 개최하며, 지역의 자연자원과 문화자원을 활용하여 국도 7호선 고성여행 플랫폼을 구축함으로서 지역을 홍보하고 마케팅 하는데 많은 공을 들이고자 합니다.

 

▲50여평 규모의 공연장과 미술전시관, 사무실 등을 갖추고 지역 예술인들의 연습공간으로 개방하거나 예술인들의 작품을 발굴해 전시하고 있다. (사진출처: 강원고성신문)

 

월, 2019/01/2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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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3,4월호 – 우리들 이야기3]

“우리 엄마, 아빠들이 포기 안 하면 끝나지 않는 거니까
진실은 꼭 밝혀질 거예요!”

– 유경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前집행위원장(예은 아버님) 인터뷰 –

 

회원미디어국 윤은주 간사
[email protected]

 

 

▲ 지난 3월 11일 416연대 회의실에서 유경근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前집행위원장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5년이 됩니다.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합니다. 많은 시민이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고 함께 아픔을 나누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마치 세월호의 끝인 것처럼 생각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때문에 탄핵당한 것이 아니고, 세월호의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그동안 이전 정권의 방해로 시작도 하지 못했던 진상규명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유경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前집행위원장(예은 아버님)과 만나 그간의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보았습니다.

 

Q. 세월호 2기 특조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A. 2기 특조위 정식명칭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요. 1기 특조위가 2016년 6월 30일자로 강제해산 당하고, 두 번째 특조위를 만들려는 것도 당시 새누리당이 이 집요하게 계속 방해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 환경노동위원회에서 2기 특조위를 위한 특별법을 준비하면서 가습기를 같이 다룰 수 있는 특별법을 만드는 거였죠. 가습기 사건도 진상규명이 필요하고 대책을 수립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문제는 최대 120명이라는 한정적 인원, 한정적 예산, 최대 2년밖에 안 되는 이런 조건 속에서 대규모 대형 참사 2개를 같이 다룬다는 게 현실적으로 힘든 문제라는 거죠.

그렇게 본회의 통과하고 준비 기간 거쳐 2018년 12월 11일 조사 개시선언을 했고, 이제 조사 시작한 지는 만 4개월 정도 넘어가는 시점입니다. 실질적으로 1기 특조위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거나 대폭 조사가 진전되거나 한 게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내용상으로 보면 거의 처음 시작을 하는 거라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에요.

 

Q. 1기 특조위는 강제해산 당해서 성과를 낼 수 없었다고 하셨는데, 그럼 선체조사위원회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A. 10개월 동안 활동을 했는데, 성과를 뚜렷하게 남기진 못 했어요. 본격적으로 선체 들어가서 조사할 수 있었던 것도 후반부 한두 달밖에 없기도 했고요.

보고서를 냈는데 ‘내인설’과 ‘열린안’ 두 가지를 내놓았어요. 세월호 침몰의 원인이 세월호 자체의 문제 때문이라고 보는 ‘내인설’로 결론 내린 파트가 하나 있고, ‘열린안’은 세월호 자체의 문제만으로 침몰을 설명하기는 매우 어렵고 또 다른 침몰의 원인이 있는지도 열어 놓고 봐야 된다는 건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채택했어요. 결론이 없는 거죠.

선체조사위원회는 실패한 조사위원회라고 규정을 내릴 수밖에 없지만 매우 의미있는 실패를 했다고 저는 평가해요. 왜냐면 이전까지는 ‘열린안’에서 주장하는 또 다른 제 3의 힘이 세월호에 가해졌다는 것을 이전 정권에서는 모두 음모론으로 치부했어요.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탄압했고 검찰은 내인설, 기계고장, 과적, 선원실수로만 세월호 침몰을 설명하고 기소했었어요. 그런데 선체조사위원회가 공식적으로 그게 무엇이라고 단정 짓지는 않았지만 어떤 힘이나 조건이 세월호에 가해졌을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죠.

 

▲ 유 집행위원장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핵심은 왜 당연히 살아야 할 사람들이 죽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는 아직 밝혀진 게 없다고 말했다.

 

Q. 지금까지 밝혀진 의혹은 무엇이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의혹은 무엇입니까?

A. 어떤 시각에서 보면 다 밝혀졌고, 어떤 시각에서 보면 하나도 안 밝혀졌습니다. 구조와 관련해서는 해경이 탈출 방송 안 했고, 탈출시키기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는 게 이미 증명됐어요. 해경은 정확하게 선원들이 있는 곳에 정확하게 가서 그 사람들만 데리고 나왔고 일반 승객들을 적극적으로 구조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어요. 그저 한 것이라고는 스스로 탈출해서 물 위에 떠 있거나 배 위에 기어오른 사람을 옮겨 태우는 것만 했어요. 해경 대원들이나 비행기 타고 왔던 항공대원들이 배 안으로 단 한명도 진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미 다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침몰 원인도 모두가 저 배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고 예상했었어요. 기울어진 상태에서 계속 방송을 봤잖아요. 저 상태로 열 몇 시간 스무 몇 시간 떠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근데 그게 불과 한 시간 반 만에 완전 침몰 됐어요. 모두 이해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근데 왜 그랬나 조사해보니 선체조사위원회에서 드러난 거지만 배 안에 수많은 문이 있잖아요. 특히 배 하부에 기관실이라든가 사람들이 드나들기 위한 수많은 문이 있어요. 이 문들은 항상 닫아놔야 하거든요. 근데 그 수밀문의 대부분이 열려 있었어요. 왜 이렇게 빨리 침몰했냐도 밝혀진 거죠.

그런데 안 밝혀진 것은 뭐냐? 해경이 구조 안 한 거는 다 드러났는데, 그럼 왜 그랬냐? 충분히 구조할 수 있는 상황에서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는 안 밝혀진 거죠.

배가 급변침하고 침몰을 시작한 이후에도 살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이 됐었어요. 바다로 나오기면 해도 건져 올릴 배들이 참고 넘쳤었구요. 기울어진 그 상태에서 최소 1시간 이상의 시간이 있었어요. 사람들에게 갑판으로 나가라고 탈출하라고 바다로 뛰어내리라고 방송하고 명령하고 나서 모든 사람이 빠져나오는 시간을 시뮬레이션으로 돌려보니까 공통적 의견이 짧으면 6분, 길어야 8분, 6-7분이면 모든 승객이 바다로 탈출 가능한 조건이었다고 드러났어요. 최소 1시간이 있었어요. 여유있게 잡으면 1시간 20분까지 탈출할 수 있는 조건이었어요. 그 시간동안 해경이 한 일은 선수에 가서 조타실 선원들 빼오고 배 중앙에 가서 기관실 선원들 빼 온 거밖에 한 게 없었어요.

세월호 참사가 세월호 사고가 아니고 참사인 이유는 살 수 있는 304명, 당연히 살아야 하는 304명이 죽었기 때문이에요. 대부분이 살아 돌아왔더라면 세월호 사고라고 부르겠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핵심은 왜 당연히 살아야 할 사람들이 죽었냐? 그 과정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이걸 밝히는 거예요. 이 측면에서는 전혀 밝혀진 게 없죠.

 

Q.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새 정권 이후 달라진 게 있는지, 지금 정부에 바라는 점은 어떤 것들이 있으신가요?

A. 박근혜 정권 시절 진상규명이 안 된 것은 99%가 정권에서 방해했기 때문이에요. 강제해산 시키고 온갖 패악질을 다 했습니다. 새 정권은 많이 다르죠.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도 다르고, 기대부터 다르긴 합니다.

문재인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꾸 해상교통사고, 안전사고로 보려고 하는데, 이건 사람을 죽인 살인 범죄에요. 특조위가 범죄 수사를 할 수는 없거든요. 특조위가 무엇을 밝혀야 하는지 과제와 방향을 제시하고 검찰이 수사해야 할 것들을 수사해서 조사와 수사가 어우러져서 진상규명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검찰 특별수사단을 설치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 유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박근혜 탄핵하려고 광화문 나가서 단식 한 게 아니고,

세월호 참사의 이유와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Q. 5주기를 맞아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A. 박근혜 탄핵이 우리한테는 플러스이기도 하지만 마이너스도 됐어요. 많은 사람이 박근혜를 탄핵하고 감옥에 보낸 것이 세월호 아이들 때문에, 엄마아빠들 때문에 시작이 될 수 있었다, 광화문에서 버텨주셔서 촛불 들 수 있었다고 얘기해주셨어요.

근데 정작 박근혜는 세월호 때문에 탄핵당한 게 아니에요. 정권이 바뀌고 나서 소위 함께했던 분들이 박근혜 감옥 갔으니까 됐잖아요, 벌줬으니까 된 거 아니에요? 라고 하는 데 힘이 쫙 빠지더라고요.

우리는 박근혜 탄핵하려고 광화문 나가서 단식한 거 아니에요. 세월호 참사의 이유와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싸우고 있는 거예요. 이제 진짜 진상규명해야 하는데 그 정도면 되지 않냐며 동력이 빠지고 진상규명 명분을 갉아먹는 전혀 예상치 않은 상황이 된 거죠.

5주기 맞아 추모문화제, 시민행사도 중요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제대로 교정해야 하는 것이 5주기 앞둔 피해자들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에요. 박근혜 감옥 보냈다고 해결된 문제가 아니고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세월호는 안전사고가 아니다. 범죄로 규정하고 범죄 수사를 제대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시민들과 다시 힘을 모아야 합니다.

놀러 가서 우연히 일어난 안전사고 프레임으로 끊임없이 몰고 가지만 우리 엄마, 아빠들이 포기 안 하면 끝나지 않는 거니까 진실은 밝혀질 겁니다.

 

하루라도 빨리 진상규명이 돼야
생명안전공원에서 나눌 교훈을 찾을 수 있다

 

Q. 4.16 생명안전공원 설립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생명안전공원은 기본계획 부지 결정 났고 실제로 건립을 위한 단계에 돌입했습니다. 용역 실시 중인데, 올 6-7월쯤 용역 결과 나오면 설계 공모가 들어갈 거예요.

생명안전공원은 세월호 참사의 의미와 교훈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라 대부분의 희생자가 청소년들이었잖아요. 대한민국 청소년, 젊은이들 또는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 데리고 부담 없이 찾아와서 도시락 먹고 잔디에서 뛰어놀며 이미 오래전에 그곳에서 뛰어놀았던 250명 언니 오빠들의 숨결을 함께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그 교훈을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장소여야 해요.

문제는 무슨 교훈을 나눌 것이냐 했을 때도 진상규명이 빨리 되는 게 중요한 거예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말자고 자꾸 얘기하는데 거꾸로 되묻는 거죠?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이 뭔데요? 어떤 사람들은 단순 교통사고라고 생각해요. 그럼 교훈운 구명조끼를 빨리 입어야 하고, 생존 수영을 가르쳐야 하고 해경 구조훈련을 강화해야 한다고 가는 거예요. 근데 해경이 구조훈련 못 받아서 구조 못 한 게 아니잖아요. 전혀 상관없는 얘기거든요. 진상규명이 안 된 채 자꾸 교훈을 얘기하면 이렇게 가는 거예요. 하루라도 빨리 진상규명이 돼야 생명안전공원에서 나눌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추모공원 떼어 버리고 생명안전공원이라고 굳이 부르는 이유도 추모공원 만들고 봉안시설 만들고 추모비 만들면 이제 그 일은 끝났구나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정부에서도 돈으로 배상해주고 추모비 하나 세워주고 가족들이 받아들이면 모든 게 끝나는 식으로 추모사업이 악용돼 왔단 말이에요. 우리는 그것을 거부하는 거예요.

 

Q.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생명안전공원은 세월호 참사의 끝이 아니고 진상규명의 시작이고 이유이고 동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이 생명안전공원 설계 공모에 참여해주시면 좋겠어요. 이 일은 유명한 건축가나 디자이너 같은 전문가들만의 일이 아니고 5년 동안 저희와 함께 공감하고 눈물 흘렸던 시민들이 그들보다 세월호 참사의 의미를 더 잘 아실 거 아니에요. 외국의 유명한 전문가들이 와서 한다고 해도 5년 동안 거리에서 싸우고 진상규명 외쳤던 시민들이랑 누가 더 많이 알겠어요? 누가 더 마음이 진심이겠어요? 시민들이 직접 팀을 만들고 대학생들 관련 공부하는 학생들 교수님이나 조교들 같이 모아서 하든지 동네마다 세월호 때문에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온 엄마 아빠들도 많거든요. 같이 모여서 논의하고 토론해서 아이디어 내주시고, 그걸 모아서 함께 설계할 수 있는 분들은 설계도 해서 실제 공모도 참여해주시고 이런 게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그것 자체가 진상규명을 위한 또 하나의 큰 동력이 되잖아요.

 

인터뷰를 마치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 걸 느꼈습니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이합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지도 진상규명이 돼야 찾을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2기 특조위에서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주셨는데, 하루빨리 진상규명이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수, 2019/03/2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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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3,4월호 – 우리들 이야기4]

< 문화산책 >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조성훈 정책실 간사
[email protected]

 

 

제주도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섬으로 인식되어 있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제주 벚꽃, 유채꽃 그리고 아름다운 바다 등… 하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제주도에 켜켜이 쌓인 슬픔과 분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바로 제주 4.3항쟁에 대해서이다. 제주도에 남겨진 아픔과 상처를 보지 못했다면 제주도를 온전히 봤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몇 년 전 제주4.3평화공원에 다녀오기 전까지는 이름만 들었을 뿐 사건의 실체에 몰랐기에 제주도를 온전히 알지 못했다. 제주 4.3항쟁이 가진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제주 4.3항쟁은 한반도 전쟁의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다. 1948년 좌익·우익의 개념조차 몰랐던 제주도민들이 토벌대와 무장대에 의해 무고하게 고통 받았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군인과 경찰이 집단 주민 학살이 벌어진 것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이는 한반도 전쟁 이후 발생할 집단 학살의 전주곡이기도 했다. 때문에 어느 학살보다 슬프고, 가슴 미어질 수밖에 없다.

제주 4.3항쟁은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도 희생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2000년이 넘어 55년이나 지나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대통령의 공식 사과가 있었다. 또한 4.3항쟁 66주년을 맞는 2014년 국가 기념일로 지정 되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깊은 참회가 필요하다.

당시 제주민들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할 요량이면 빨갱이라는 사슬에 묶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그 가슴 아픈 역사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제주4.3특별법이 통과된 직후 “이제는 마음 놓고 울 수 있느냐”며 울먹이던 희생자 유족들의 눈물이 이를 말해준다. 명백히 국가권력이 잘못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허나 제주 4.3항쟁에 대한 진실 캐기 작업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근현대사 전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글을 쓰기에 앞서 도움을 얻기 위해 읽었던 책이 있다. 바로 제목에 나와 있는 허영선 시인의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라는 책이다. 이 책은 쉬우면서도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제주 4.3항쟁을 다루고 있다. 책의 묘사는 굉장히 사실적이며, 구체적이다. 또한 구술과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해 매우 생동감이 넘친다. 그렇기에 당시 제주민들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책의 한 구절을 소개하고자 한다. ‘4.3은 말한다. 역사의 진실은 가둔다고 가둬지는 것이 아님을, 역사는 미래를 위해 있는 것임을. 인간의 역사는 계속되고 삶은 계속된다. 그러기를 나는 믿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했던 상처는 분명 드러내야 하고, 그 드러난 상처는 햇볕에 바짝 말려야 깨끗이 소독이 된다. 그래야 다시 새살이 돋는다.

최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망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여전히 이러한 행태들이 반복되는 것에는 앞에서 소개한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 광복 직후 반민특위가 해체 되면서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그 원죄가 수많은 양민 학살이 있었고, 군부독재를 탄생시켰으며, 반역사적 세력의 망언이 서슴지 않고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계속되고 반복되기에 이제라도 우리의 아픈 역사를 드러내고, 소독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제주 4.3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제주 4.3항쟁의 진실은 소중하며, 어려움에도 당시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아름다운 제주 벚꽃 이면에 놓인 그 슬픔 말이다.

수, 2019/03/2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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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3,4월호 – 지역이야기]

꼼짝 마! 삼성!!

– 구미경실련과 Channel NewsAsia와의 인터뷰 –

 

정호철 재벌개혁본부 간사 [email protected]

감수: 조근래 구미경실련 사무국장 [email protected]

 

“삼성 스마트폰 공장도 이전한다는 소문이 사실이에요”? Channel NewsAsia의 특파원으로부터 국제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최근 삼성전자가 5G 네트워크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가운데 스마트폰 전체 생산량을 줄이고, 스마트폰 공장이 있는 구미지역의 공장 일부를 수원본사 등 다른 지역으로 투자·이전 시키면서, 아마도 “삼성 스마트폰 배트남 이전” 소문까지도 해외시장에 퍼진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중국의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가 자사의 네트워크장비 보안문제로 다소 휘청거리는 가운데, 그 틈을 타 삼성전자가 5G 네트워크 공급사업에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쏟아 붓고 있다”고 통신원은 우리에게 전했다. 더군다나, 올해 1월경 이낙연 국무총리가 삼성네트워크 사업장을 방문했을 때에도 이재용 부회장과의 비공개대담에서 5G네트워크 등 혁신성장 동력사업에 기술인력 투자를 요청한 적도 있었다.

 

 

Q) 혹시삼성이나 LG 등 대기구미 공장들의 구조조정 계이라도 있는 걸까요? 현재 구지역 고용현황은 어떤가요?

삼성의 해외시장에 대한 설비투자와 노동이동을 견제한 다소 노련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우리의 대답은 단호했다.

A) ... 적어도 삼성 스마트폰 공장만큼은 어디 못 갑니다!!!

이 같은 공장 철수/이전 논란은, 사실 지난 10년 동안 구미공단 일대에 대기업들의 생산비용 절감문제와 하청기업들의 지역경제 침체문제를 둘러싸고 갈등과 불안이 계속 반복돼 왔었다. 대표적인 제조업 도시인 구미는 1969년 조성된 구미국가산단 제1단지를 시작으로 지난 2012년에 제5단지를 착공하였지만, 이 후 기대와 달리 대기업들의 설비투자와 생산물량 축소로 인해 지역 하청기업들의 입주율과 공장가동률이 다소 저조한 실정이다 [도표1]. 특히 2017년부터 대기업 하청 제조업체의 고용인원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추세를 보였다 [도표2]. 일례로, 같은 해 LG는 소형 디스플레이 생산을 제외한, 대형 디스플레이 제조공장과 함께 직원 8천여 명을 파주로 이전시키기로 결정했다.

 

 

LG디스플레이 생산 공장 6곳 중 2개의 라인이 정지됐고, 직원들은 떠났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계속 더해졌다. 삼성전자는 2018년 6월경 구미 제1공장 네트워크사업부 생산인력 4백여명 중 50%를 수원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삼성그룹은 지난 2015년경에 제1공장부지 일부를 환화그룹에 매각했고, 현재 잔여부지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이다. 뒤이어 삼성은 그룹 차원의 180조원 투자 5대 전략사업에서 구미제2공장 스마트폰 사업에 대한 투자를 제외시켰다. 공장직원들도, 개발자들도, 삼성임직원들도, 구미시민들도, 우리들 모두는 불안했고, 시민들은 수원이전을 반대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찬성했다. 정부와 대기업의 혁신-주도-성장 이면에는 하청-고용-축소와 같은 불안의 그림자가 구미지역에 차츰 드리워지고 있었다.

 

Q) 공장가동률이 꾀 낮은 편이네요. 그렇게 된 배경이 무엇때문인가요?

 

그들의 정책적 배경에 대한 우리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이 같은 철수/이전 문제의 원인으로,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로 인한 대기업 공장의 이전 및 타 지역을 잇는 내륙교통의 발달로 인한 상대적인 입지 경쟁력 감소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전자의 경우 글로벌 대기업이 구미와 같은 산업도시를 떠나게 되면 지역경제는 직격탄을 맞는다. 후자의 경우 삼성과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의 스마트폰 수출생산 공장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지에 따라 물류비와 인건비를 효율적으로 절감함으로써 사회전체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측면도 적지 않다고 할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 따르자면, 결국 지역경제와의 상생발전을 간과한 이재용 재벌총수와 문재인 정권의 “자유방임적” 재벌중심 정책, 즉 포용적 규제완화를 통한 끝이 보이지 않는 혁신-낙수-성장과 같은 구태정책에 대한 그들의 집착이 현재의 그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섬성과 정부는 구미 제2공장 스마트폰 단지를 향후 추가‧이전시켜서는 결코 아니 될 말이다. 삼성의 “인건비 혁신”은 산업전통과 지역 상생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뿐이다. 또 정부의 “자구적 혁신”은 포용적성장과 지역 균형발전에 땜질식의 처방으로서만 작용할 뿐이다. “구미공단 스마트폰 생산인력을 1만명에서 8천명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삼성의 비공식 구조조정계획 문건이 유출된 바 있다. 삼성은 정부의 눈치를 보며 이 문제에 대해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또한, GM군산공장의 철수와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중단 이후 지역 일자리정책의 “실패”를 두려워한 나머지, 이들 지역 간 전통산업경제의 공유와 양보의 미덕마저 이제는 정권에 의해 희생되고 있다. 정부 역시 삼성의 눈치만 보며 GM군산공장 부지에 투자할 것을 적극 요구, “개입” 해 왔다. 삼성과 정부에게 과연 구미란 무엇이었나? 그들이 해야 할 일이란 무엇일까?

 

A) 글세요, 보이지 않는 혁신에 손을 대려 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요즘 우리사회의 정책방향 대해 이 같은 말을 빌려서 정부의 강변(強辯)을 대체하고 싶네요.”

“제도적 인간”은 반대로 자신만의 상상에서나 꾀 현명할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은 종종 이상적인 정부계획의 제 멋에만 빠져, 그 어떤 정부계획의 일부에 대해 그 어떤 “타협”의 작은 진통조차도 겪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모든 부분에 걸쳐서, 대중의 큰 관심사나 또는 이에 반하는 강한 편견 속에서 아무런 숙고도 하지 않은 채, 정부계획을 독단하게 된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체스판 위에 다양한 말들을 배열하는 것처럼, 그들은 사회 내 다양한 구성원들을 손쉽게 배치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가 체스판 위에 있는 단일한(single) 각각의 모든 말들의 개별적 움직임의 원리를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즉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에 의해 사회구성원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인간사회의 거대한 체스판 위에 모든 단일한 말들에게 입법부(“정부”)가 원하는 “자유”를 줄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각 개체의 움직임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두 가지 움직임의 원리가 일치하고 같은 방향으로 작동 한다면, 인간사회의 게임은 순조롭고 조화롭게, 그리고 적절하게 성공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차이와 반목은 그 게임을 비참하게 만들 것이므로 우리사회를 언제나 병폐의 정점에 다다르게 할 것이다.―Adam Smith, The Wealth Of Nations, Vol. I, Chap. II, Pp. 26-7, para. 12.

수, 2019/03/2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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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9/04/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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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tion id="attachment_218385" align="aligncenter" width="640"] ▲ 지난 24일 MBC PC수첩에서 방송된 "예고된 죽음-4대강 10년의 기록" ⓒ MBC[/caption]

지난 24일 환경운동연합과 <뉴스타파> 등은 낙동강과 금강에서 미국 레저 활동 기준을 수백 배 초과한 마이크로시스틴(Microcystin)을 검출해 발표했다. 같은 날 MBC 은 '4대강 10년의 기록 예고된 죽음' 편을 통해 이 문제를 심층 고발했다. 마이크로시스틴은 청산가리(시안화칼륨)보다 100배 이상 높은 독성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25일 '보도 설명자료'를 내고 "먹는 물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면서 '정수장 조류독소 측정 결과 검출사례가 없으며, 세계보건기구(WHO) 가이드라인에 따라 조류 경보제 운영 중'이라고 주장했다.

환경부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정수장 취수는 마이크로시스틴이 많은 표층이 아닌 중‧하층에서 취수되고 취수구 앞에 조류 차단막이 있어 문제없다 ▲ 마이크로시스틴-LR은 표준 정수처리에서 99% 이상 제거, 고도정수처리에서는 거의 완벽하게 제거 ▲ 상‧중‧하별 통합 채수와 남조류 세포수 측정법을 이용한 조류경보제는 WHO 가이드라인을 따른 것.

이런 주장에 대해 환경연합 등은 '부실 해명'이라고 반박했다. 녹조 독성의 농작물 축적은 소관 부처가 달라 환경부가 언급을 안 했다 하더라도(농림축산식품부도 문제다), 실제 취수구 앞이 아닌 녹조가 거의 없는 지점에서 채수한 이유에 대해서는 해명이 없다. 환경연합 등은 이를 두고 현재 환경부의 마이크로시스틴 분석 체계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낙동강 먹는 물이 안전? 환경부가 소나기 피하려는 면피에 불과"

[caption id="attachment_218386" align="aligncenter" width="600"] ▲ 부산시 덕산정수사업소에가 발간한 보고서에 "조류차단막 효과 미미" 내용이 담겼다. ⓒ 이철재[/caption]

녹조 비상 상황에서 조류 차단막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은 이미 드러난 사실이다. 2018년 8월 낙동강 창녕합천보 상류 500m 지점에서 밀리리터당(mL)당 126만 개가 나왔다. 당시 유해 남조류가 2회 연속 mL당 100만 개를 넘어 조류 경보 가운데 가장 높은 '조류 대발생'이 발령됐다.

당시 부산광역시 덕산정수사업소에서는 수돗물 공급 중단 직전까지 가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덕산정수사업소는 '남조류 장기유입 관련 정수처리 장애요인 및 대책보고(2018.09)'를 통해 중대 장애요인으로 "조류차단막 및 살수시설 운영 효과성 저조"를 꼽았다.

"남조류 세포 내 기포로 인한 부유성과 햇볕/영양염류를 찾기 위한 수직이동성으로 인해 조류 제거율 2~3%로 저조"했다는 게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환경부 주장처럼 중‧하층에서 취수를 해도 유해 남조류가 수직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효과가 없다는 말이다.

"마이크로시스틴-LR은 표준 정수처리에서 99% 이상 제거, 고도정수처리에서는 거의 완벽하게 제거"라는 환경부 주장도 마찬가지다. 2018년 덕산정수장은 정수 시설(침전지, 입상활성탄 여과지) 자체가 기능이 마비되거나 저하된 바 있다. 덕산정수장 보고서에는 "전체 침전지 18곳이 모두 침전 불량", "더이상 조치 방법이 없다"라는 부분이 등장한다.

기후위기 가속화에 따라 폭염일수가 증가하는 추세에서 2018년 같은 폭염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 여기에 낙동강은 4대강 사업 이후 8개 보로 유속이 이전에 비해 1/10 수준으로 느려졌다. 다시 말해 현재 상태라면 '조류 대발생'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참고로 2014년 마이크로시스틴 기준 초과 검출로 수돗물 공급 중단 사태가 벌어졌던 미국 톨레도의 경우 당시 원수의 마이크로시스틴 농도(MCs)는 20ppb였다.

"상‧중‧하별 통합 채수와 남조류 세포수 측정법을 이용한 조류경보제는 WHO 가이드라인을 따른 것"이라는 환경부 주장에 대해서는 환경연합과 MBC 이 이미 문제를 지적했다. 남조류 세포수 수치가 낮다고 물속 마이크로시스틴 농도가 꼭 낮은 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시민환경연구소 신재은 연구위원은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할 환경부가 지금 상황에서 낙동강 먹는 물이 안전하다고 단언하는 것은 그저 소나기를 피하려는 면피에 불과하다"라며 "'무조건 문제없다'라는 환경부 자체가 '진짜 문제'"라고 꼬집었다.

[caption id="attachment_218295" align="aligncenter" width="800"] ▲ 8월 24일 열린 '낙동강,금강 독성 마이크로시스틴 현황 분석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뉴스타파 최승호 PD.[/caption]

※ 글 : 이철재 에코큐레이터, 환경운동연합 생명의날특별위원회 부위원장

월, 2021/08/3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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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9,10월호 30주년 특집]

“시민들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경실련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미영, 정원철 前 경실련 활동가

지난 30년, 경실련과 함께했던 수많은 활동가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경실련을 떠나 새로운 길을 찾아간 그들에게 경실련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경실련에서 청춘을 보냈고, 열정을 쏟았던 활동가들을 만나 지난날의 경실련과 앞으로의 경실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Q. 독자분들에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미영: 1999년 경실련에 들어와 정치입법팀의 간사로 일했습니다. 주로 정치, 사법, 지방자치 쪽을 맡아 활동했었다. 월간 경실련과 온라인을 담당하는 커뮤니케이션팀에서도 잠깐 일하기도 했고요, 2012년 정치입법팀 국장을 끝으로 경실련을 떠났습니다.

정원철: 반갑습니다. 국회 정성호 의원실 정원철 보좌관입니다. 1998년 정책실 간사로 들어와서 경제사회 분야의 모든 분과위원회를 담당했었고, 기획실 회원팀장, 사무처 부장, 통일협회 사무국장 대행, 정치입법팀장, 시민권익팀장(구 부추본) 등 대부분의 사업 부문을 경험했습니다. 당시 경실련 내부가 여러 내홍을 겪던 시기라 업무 공백을 메워야 했고, 저도 사무총장이 포부라 다양한 업무를 맡고 싶은 생각이 컸습니다.

Q. 경실련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그 당시, 경실련의 모습은 어땠나요?

김미영: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선거나 정당 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시민들과 함께 하는 정치개혁에 관심을 갖게 되며 자연스럽게 경실련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경실련의 내부 갈등이 외부로 드러나는 시기라 매우 어수선했습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다양한 사업을 쏟아내며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상근자들이 떠오릅니다.

정원철: 저는 좀 독특한 게 일찍부터 사회변혁에 관심을 가지고 고2 때인 1987년 ‘서고련’을 결성하고 노동운동, 학생운동 판을 기웃거렸습니다. 1992년 동구권 사회주의가 몰락한 뒤, 걸출한 운동권 선배들이 하나둘씩 현장을 떠나 대학 도서관으로 들어오는 걸 보며 좌절했습니다.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사회개혁 운동으로 진로를 잡았는데, 가장 먼저 올라온 경실련 채용공고를 보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가을의 토요일 오후, 그때 면접관이 하승창 정책실장님이셨는데, ‘사회주의 물이 덜 빠졌다’면서 면접이 아니라 한판 논쟁을 벌이고 퇴근해야겠다고 하여 같이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 내려왔습니다. 단테의 [신곡]을 읽어봤냐고 물으셔서 다소 건방지게 “남들이 뭐라 하던 네 갈 길을 가라는 말씀이시죠?”라고 말하고 각자 반대 방향으로 헤어졌던 기억이 납니다. 당연히 떨어진 줄 알고 참여연대나 가야지 하고 시름에 빠졌있는데 삐삐가 오더군요. 월요일부터 출근하라고.

첫 출근길, 앞에서 주머니 속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걸어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유종성 총장이셨습니다. 총장실에 들어갔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겁주는 말을 한 보따리 하시더니 사무국 조례에 들어가서는 반갑게 소개해주시더군요. 사무실은 마치 신문사처럼 책상 몇 개 모아놓고 위 천정에 부서 푯말이 흔들흔들 매달려있었고, 신입의 임무는 1층의 생수통을 5층까지 계단으로 눈치껏 나르는 것과, 정책실 막내로서 신문철과 천리안 기사 갈무리를 솔선하고, 기획실과 친분을 쌓아 A4용지를 확보하며, 성명서를 팩스로 동시·동보하는 일 등이 기본이었습니다.

Q.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하나만 말씀해주세요.

김미영: 2000년 총선 정보공개운동이 기억에 남습니다. 총선에 출마할 정치인들에 대한 정보공개 운동이었는데 낙천낙선운동으로 일반 시민들의 기억에는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며칠 밤을 새워가면서 보도자료를 만들고 하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에는 논란도 많고 비판도 많이 받았는데 가장 관심을 많이 받고, 가장 열심히 일했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정원철: 워낙 격동기라 무궁무진해서 하나만 꼽기가 어렵네요. 일단 평간사협의회의 출범입니다. 잇따른 내홍으로 붕괴된 상근역량의 재생과 사무국 의사결정구조의 민주성 제고가 목표였던 것 같습니다. 사업 단위별로 흩어져 배치된 평간사들의 소통에 도움이 됐고, 전체 경실련운동에 대한 이해와 참여도, 통합력을 높이는 데 의미가 있었다고 자평합니다. 그래서인지 간부들도 활동 초기에는 많이 배려해주었고, 환경련과 참여연대 등도 평간협을 만들겠다며 우리 사례를 묻곤 했습니다. 다음은 사무총장 경선이 생각납니다. 발런티어 그룹과 상근자 그룹이 각각 지지하는 사무총장 후보를 놓고 최초로 경선을 치렀는데, 지역 경실련과 함께 간접적, 비공식적으로 선거운동을 지원했습니다. 끝나고 조직정치가 이런 거구나 하는 체험, 권력의 맛과 두려움을 교훈으로 얻었습니다.

Q. 현재 자리에서 경실련의 활동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미영: 예전보다 뉴스에서 경실련 이름을 자주 듣지는 못하지만 SNS 등을 통해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최근 부동산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경실련 30년 역사의 가장 대표 활동으로 자리매김 해온 만큼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민들의 관심 분야인 교육, 복지,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실련의 목소리를 예전보다 잘 들을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정원철: 지금의 경실련을 보면 예전 반짝했던 전동 타자기와 씨티폰이 생각납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조직인데, 사회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조직 같다는 느낌입니다. 민주화 이행기와 주기적 정권교체,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지나는 동안 ‘레드 퀸’ 신세가 되었습니다. 주인 의식이 없어서 주인 없는 단체 신세인지 그 반대인지 그렇게 보입니다. 너무 매정한가요? 회비도 꼬박꼬박 내고 있고, OB로서 기대와 애정이 크기 때문이라고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오늘의 경실련운동이 조직 유지를 위한 타성에 젖은 활동인지, 시민 삶에 도움을 주는 이로운 활동인지를 잣대로 살펴봤으면 합니다. 거창한 공익은 못 되어도 최소한 회원들 이익 대변에 성실히 귀 기울이고, 민원 해결로 성과를 축적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도 방법일 것입니다(회원은 경실련운동의 아이템 촉수이자 홍보 첨병이며,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사회여론 그 자체입니다). 덧붙이자면, 머릿속 선진국의 정책과 사업 아이템을 찾아 주장을 내릴 게 아니라, 생활현장에서 부지런히 찾아 밀어 올려야 시민들이 경실련운동의 ‘효능감’을 느낄 것입니다. 새롭고 다르게, 모두 상근운동가의 몫입니다.

Q. 올해로 경실련이 창립 30주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경실련에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김미영: 경실련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계셔서 든든한 마음입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은 운동과 소통으로 시민들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경실련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원철: 축하합니다. 경실련 한 세대의 딱 중간에 있던 상근자로서 감회가 남다르다 보니 말도 길어졌습니다. 사무국 역량 강화가 핵심입니다. 경실련 초기 10년이 성장기, 다음 10년이 정체기, 최근 10년이 침체기였다면, 앞으로의 10년은 부흥기가 될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경실련이 맏형답게 새로운 시민운동의 전범과 표준을 만드는 퍼스트 무버가 되고, 10년 후 ‘초격차’를 이루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Q. ‘나에게 경실련은 OOO이다.’

김미영: 나에게 경실련은 ‘청춘’이다. 인생에서 가장 빛이 난다고 하는 20~30대를 경실련에서 보냈으니, 경실련을 생각하면 마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정원철: 나에게 경실련은 ‘군대’다. 운동권 선배들이 무슨 군 도망이 혁명가의 기본인양 읊어댔지만, 막상 제게는 유익하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책상물림에서 벗어나 팔도의 다양한 배경과 직업의 인간 군상들과 접하며 넓게 세상을 알게 되었고, 휴식 같은 사색과 위계조직의 원리를 학습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습니다. 또한, 경실련 생활은 제게 새로운 세계와 사람들과 실전 같은 훈련 경험을 강렬하고 짜릿하게 안겨 준 곳입니다.

지금의 경실련 활동가들에게 많은 숙제를 던져준 인터뷰였습니다. 경실련이 시민의 곁에서 더 많은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더욱 분발해야겠습니다.

월, 2019/09/3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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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9,10월호 지역이야기]

경실련 활동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지난 8월 29일부터 31일까지 전국에 있는 경실련 활동가들이 모여서 를 진행했습니다. 오랜만에 모인 활동가들과 함께 경실련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경실련에서 일하고 있는 활동가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확인해보시죠!

Q. 우선, 각자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미진 : 충북청주경실련에서 일한 지 2년 된 김미진입니다.
박향미 : 저는 광주경실련 박향미 간사고요. 일한 지 9개월 되었습니다.
김세윤 : 부산경실련에서 일하고 있고요. 8개월 차 김세윤 간사입니다.

Q. 요즘 지역에서 어떤 활동들을 하고 계신가요?

박향미 : 8월에는 내부 일에만 집중했고요. 9월부터는 분양가상한제에 대해서 활동을 할 것 같아요. 최근에 분양된 아파트의 분양가가 많이 올라서 광주 내에서는 고분양가라는 여론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 분양가상한제 적용지역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앞으로 포함될 수 있는 여지가 좀 있어서 이 문제에 대응해보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김미진 : 청주는 오히려 미분양이 조금 문제인 지역이에요. 그래서 민간개발 쪽을 집중해서 보고 있어요. 청주시가 민간에게 무분별하게 허가를 내주고 있는데, 그 지역에서 문화재가 집중돼서 나오고 있어요. 그런데도 아파트를 세우고, 공장을 세우고 있거든요. 그래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고, 막아야 할 부분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유튜브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많이 있어요. 몇 개 만들어보긴 했는데 아직은 스스로를 교육하는 단계로 올려봤고, 앞으로 콘텐츠화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그렇게 하라고 하셨어요. 아무래도 시민단체가 미디어에 약한 부분이 있으니까 영상을 배워서 해보려고 해요.

김세윤 : 10월에 후원의 밤이 있어서요. 회원 사업으로 그쪽으로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 같아요. 최근에는 시의회 의정평가 결과를 발표했어요. 정량평가와 정성평가를 준비한 기간만 4, 5개월 정도 됩니다. 제가 전체 담당은 아니지만 맡은 부분만 해도 상임위 전체 회기의 속기록을 일일이 다 보고 했어요. 의정감시단도 꾸렸는데 저희 회원과 집행위원 위주로 25명 정도에요. 한 상임위당 3, 4명 정도를 배치했지요. 그리고 조례, 5분 발언, 시정 질의까지 다 살펴봤어요. 조금 재미있게 하려고 출입기자들과 부산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했어요.

Q. 처음에 경실련에서 일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김미진 : 세월호 때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이과를 나와서 정치, 역사를 하나도 몰랐거든요. 그때부터 역사 공부를 시작한 거에요. 그러면서 정치 쪽으로도 공부를 해보다가 아카데미에서 처장님을 만났어요. 그때 저는 취직준비는 안 하고 있었거든요. 그냥 공부하고 다니면서 인문학 공부, 글쓰기 공부 같은걸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활동가로 가는 길이었어요. 전 경실련이 뭔지도 몰랐거든요. 근데 처장님이 자리가 났는데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해주셔서 공부를 시작한 케이스에요.

김세윤 : 저는 공대 출신인데 과가 너무 안 맞아서 하고 싶은 공부를 찾다가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갔어요. 그제야 공부가 재미있더라고요. 그러다가 수업시간에 시민 사회투어를 하는데 참여연대를 갔었어요. 그러고 나서 방학에 참여연대로 근로장학생이 되어 시민단체 생활을 했어요. 작년에는 선거운동을 하자는 사람이 있어서 하다가 그만두고, 돈을 벌자는 생각으로 다른 취업을 준비했어요. 근데 제가 좀 아쉬웠던 거 같아요. 시민사회단체에서 일을 안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경실련에서 일하게 됐어요.

박향미 : 저는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3년 정도 근무하다가 쉬려고 했어요. 전에 다니던 직장은 시민단체와 전혀 관련이 없는 곳이었어요. 근데 광주경실련의 회원인 지인이 간사 자리가 비었는데 지원해보라고 권유해주셔서 지원하게 됐어요. 사실 경실련은 이름만 들어봤지 정확히 무슨 단체인지 몰랐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덜컥 일하게 되었죠. 그래서 일하면서 배우는 것도 있지만 ‘이 길이 내 길이 맞나’라고 고민하며 다녔어요.

Q. 경실련에서 활동하면서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미진 : 컴퓨터가 늘 아쉬운 것 같아요. 저희한테는 컴퓨터가 무기잖아요. 그게 좀 좋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후원행사를 마치면 꼭 사달라고 한 주에 한 번씩 얘기하고 있어요.

박향미 : 저희는 인원이 2명밖에 없어서 인원이 많은 지역이 부러워요. 같이 일하는 처장님이 하고 싶어하시는 일들은 많은데 활동가가 둘 뿐이니까 뭔가 하기에 힘든 점이 많아요.

김세윤 : 좋은 점은 소소하게 회원분들을 만났을 때 좋은 것 같아요. 간간히 하는 회의들이나 토론회, 기자회견 때 회원분들이 오시면 힘이 나더라고요. 이분들이 저희 활동을 알아준다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같이 서로 돕는 모습이 좋은 것 같아요.

김미진 : 저는 활동가로서 제일 좋은 점은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활동가들은 생각해야 되잖아요. 생각을 토로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앞서는 감성이나 감각을 가져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그래서 되게 좋은 것 같아요. 활동가라는 직업이 이 사회에 몇 안 되는 나 자신을 잃지 않는 직업인 것 같아서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박향미 : 처음부터 만족스러웠나요?

김미진 : 처음에는 함께할 동료가 없어 힘들었어요. 동료가 같이 일하는 상근활동가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뜻을 함께하는 시민들이 있어야 하죠. 제가 늘 혼자서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윗세대들은 그걸 같이 해줄 사람이 있지만, 저는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너무 커요. 그래서 그게 가장 위기였어요. 특히, 경실련 운동은 힘들고, 어려운 분야인 것 같아요. 다행히도 어려운 일을 즐기는 편이어서 지금은 만족하고 있죠.

박향미 : 저는 지금도 좀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 같아요.

김세윤 : 저는 그게 개인적인 고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진짜 좋은 직업이면 만족하겠죠. 저는 공대에 있을 때, 개인의 만족도 만족이지만 성적이 너무 안 나오는 거예요. 어느 정도 성적이 나오면 만족도를 떠나서 다닐 수 있었을 텐데 안 되더라고요. 사실 저도 퇴근하면 다른 분야의 자격증 공부를 하거든요. 그런 부분들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청년들이나 활동가들이 고민해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Q. 지역에서 활동할 때,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박향미 : 젊은 층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광주시에서 하는 ‘청년 일 경험 프로그램’으로 인턴이 한 명 왔는데 그 친구도 경실련을 처음 들었대요.

김미진 : 어른들은 지역 뉴스를 보시잖아요. 그래서 ‘어제 뉴스에서 봤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반면 젊은 친구들은 절대 안 보거든요. 젊은 층을 위한 유튜브 방송을 고민하고 있어요.

김세윤 : 지역에서 당사자들이 체감하는 것들이나 대규모의 시민이 있는 곳에서 하는 활동이 시민들의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경실련이 직접하고 있는 활동 반응을 확실히 캐치하기가 어려워요. 오히려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 의견을 내면, 집값이 내려갈 거라는 사람들에게 바로 전화가 와요. 간혹 잘한다고 해주시는 분들께도 전화가 오는데 그러면 힘이 나고, 너무 감사하죠.

김미진 : 언제나 외로워요. 경실련은 원칙을 가지고 원칙을 굳건히 밀고 나간 몇 안 되는 시민단체이기도 해요. 그래서 그 원칙에 따라 순수한 운동성을 밀고 나가는 것이 자부심이에요, 시민의 반응을 바라기는 쉽지 않아요. 외롭지만 해나가는 거죠.

박향미 : 실제로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운동해 나가면 좀 낫지 않을까요.

Q. 앞으로 경실련에서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김세윤 : 경실련이 시민들의 반응을 끌어내지 못한 이유는 단편적이고 확실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어렵게 얘기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활동가들은 물론 전문가가 되어야겠지만, 시민 분들 눈높이에 맞춰 쉽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요. 활동가들이 토론회나 방송에서도 전문가의 관점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말을 하는데, 그게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과 조금 다른 느낌이에요. 그래서 저는 쉽게 이야기하고, 편하게 이야기하면 어디 가서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렇게 활동을 한다면 시민들도 반응하고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김미진 : 저는 지역 토호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어려운 부분이 그 사람들은 점점 합법적으로 살아가고, 저는 법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거에요. 근데 분명 그 안에서 카르텔이 공고해지고, 그건 국가적으로도 지역으로도 이어지고 있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 전문적이지 않으면 답이 안 나와서 그쪽으로 알았으면 좋겠어요. 정부 쪽으로는 정보공개청구도 가능하고 공개되어있어서 시민들도 접근할 수 있는 루트가 많아졌거든요. 근데 우리는 찾기 어려운 부분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간 날 때마다 지역의 유지로서 본분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나 기업이 있으면 적어놔요. 앞으로 그런 것들을 조금 관심 있게 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박향미 : 저는 9월에 ‘세금도둑 잡아라’라는 단체에서 예산 교육을 받을 계획이에요. 그래서 활동가가 2명뿐이지만, 전문성을 키워서 예산감시활동을 하고자 합니다.

지역마다 상황이 다르고, 각자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다르지만, 청년활동가로서 그들의 생각과 고민은 비슷해 보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이들은 계속해서 ‘지금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고민할 것입니다. 하지만 더는 이 활동과 고민이 외롭고 힘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오늘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을 활동가들에게 힘찬 응원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월, 2019/09/30-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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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주년을 바라보다 – 이근식 前공동대표 인터뷰] 

 

“정부는 정책이 과연 실현 가능한가
그리고 부작용은 없는가를 사전에 잘 따져 보아야 해요.”

 

윤은주 회원팀 간사 [email protected]

 

이번 호 30주년 기념 특집인터뷰는 이근식 전 공동대표입니다. 이근식 대표는 경실련 초대 정책위원장이셨고, 공동대표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셨습니다. 경제학자로 사회운동가로 쌓아 오신 연륜과 깊이만큼 우리 사회를 걱정하며 해주신 말씀들이 참 소중합니다. 경기도 양평에서 지내시며 가끔 서울에 다니러 오시는데 경실련 인터뷰를 위해 귀한 시간을 내주셨습니다.

 

 

Q. 전반적으로 한국경제의 현실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궁금하고,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A: 글쎄 국민들이 힘들어하는 게 실업과 가난, 노후 불안, 양극화, 주택가격 상승 이런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경제문제도 사실은 국민들의 욕망이나 의식이 연결돼서 나타나는 거에요. 우리나라 모든 사람이 다 서울 강남 살고 싶어 하고, 일류대학에 자녀 넣고 싶어 해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야 돼요. 그런 생각이 있는 한 입시지옥은 안 없어지고 서울 아파트 값은 안 내려가요. 나는 경실련에서 정책위원장 하면서 알았어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힘든 게 교육이구나. 이게 노동문제보다 더 힘들구나. 자기 자녀들 SKY 대학 보내려고 어거지 주장을 막 하거든요. 하나마나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사람들 생각이 조금 건전해져야 해요.

독일은 가봤더니 학벌에 대한 집착이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진짜 없어요. 일류대학 가겠다는 욕구가 없더라고요. 대부분 부모들이 자식들이 공부를 썩 잘하면 대학교 보내고, 그렇지 않으면 직업전문학교 보내고 그래요. 직업전문대학 나왔다고 살아가는데 차이가 없어요. 봉급도 직업에 상관없이 다들 비슷하고 학력이나 직업에 따른 차별이 없어요. 사람들이 차별을 안 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해요. 학벌 따지고 집안 따지고 그런 것에서 벗어나야 돼요.

 

Q. 이번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A: 이전 정부와 분명히 다른 부분이 있죠. 박근혜 정부나 이명박 정부 때는 잘사는 사람 편을 들었거든요. 기업 편들고. 반대로 이 정부는 못 사는 사람, 어려운 사람 편을 들려고 해요. 그것은 아주 좋은 생각이고, 소득주도 성장의 방향은 옳아요. 소득을 올리면 수요가 증가하여 경제가 살아나는 거는 지금 이 정부가 처음 말한 거 아니에요. 그 유명한 케인즈가 1935년에 출판한 『일반이론』에서 한 얘기에요. 노동자들 임금이 올라가면 경제가 살아난다. 그건 당연한 거에요. 노동자들 임금이 올라가면 노동자들이 돈을 많이 쓰게 되니까 시장이 활성화되잖아요. 그럼 그걸 어떻게 현명하게 실시할거냐? 이게 중요한 건데 글쎄 이 부분은 정부가 의욕만 가지고 될 일이 아니라 문제인 거 같아요. 정부는 정책이 과연 실현 가능한가 그리고 부작용은 없는가를 사전에 잘 따져 보아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급작스런 최저임금 인상을 잘못되었지요. 저소득층에 대한 공공지원을 늘려야지 임금을 억지로 올리는 것은 실현 가능하지도 않고 부작용은 큰 정책이지요.

정치인들은 말장난을 많이 해요.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그 내용을 보면 새로운 게 하나도 없어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건 공공복지 늘리겠다는 얘기고, 혁신성장이라는 것은 새로운 산업에 지원을 많이 하겠다는 거거든요. 그게 뭐가 새로운 거 에요. 하나도 안 새로운 거 에요. 어느 정부든 해야 될 일이에요. 정책 평가를 하려면 정책의 구체적 내용을 다 알아야 되는데, 내가 요즘 그런 걸 잘 알지 못하니 이렇게 벙벙한 소리밖에 못 하네요. 부동산 같은 경우는 보유세를 높이는 게 좋은 방향이에요. 보유세를 높이면 그만큼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줄거든요. 그대신 양도소득세는 좀 낮춰주는 거죠.

 

 

Q. 어떻게 경제학 공부를 하게 되셨고, 경실련 활동은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되셨나요?

A: 경제학 배우면 당시 몹시도 가난하였던 우리나라를 잘 살게 만들 방법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어요. 요즘은 별로 인기가 없지만 내가 대학교 갈 때는 다들 나 같은 착각에 빠져서 경제학과가 제일 인기 좋았어요. 경실련 활동은 서경석 목사와 의기투합해서 시작했었어요. 그 친구가 사무총장 맡고, 내가 정책위원장 맡고, 변형윤 선생님 공동대표로 모시고 시작했는데 아주 잘 되더라고요. 경실련 출신으로 출세한 사람들 많지요.

 

Q. 경실련 활동하시며 제일 보람을 느끼셨을 때는 언제셨나요?

A: 경실련이 주장하던 금융실명제가 전격 실시 됐을 때 제일 보람을 느꼈지요. 부동산실거래가격제도를 도입할 때도 그랬구요. 다운사이징이 옛날에는 다 합법이었어요. 요즘 국회에서 인사청문회하면 다운사이징 많이 걸리잖아요. 옛날엔 그게 합법이니까 세금 적게 내려고 모두가 실거래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신고하였지요. 그런데 부동산실거래가격제도가 실시되어서 등기할 때 제출한 계약서의 매매금액을 기준으로 나중에 부동산 팔 때 부과하는 양도소득세를 계산하도록 하니 모두 실거래가격을 쓰게 되었지요, 산 가격을 적게 쓰면 거래 차액이 커저서 나중에 양도소득세가 그만큼 커지니 모두가 이젠 실거래가격을 쓰게 되었지요. 옛날에는 신고한 거래 가격이 아니라 세무서가 임의로 책정한 매매 가격을 이용하여 양도소득세를 부과하였지요. 전세계약기간을 2년으로 연장토록 한 것도 경실련의 자랑스러운 공로입니다. 전세계약기간이 옛날에는 6개월이었어요. 그래서 나도 6개월마다 이사 다녔어요. 2년으로 늘리자는 경실련 주장을 정부가 받아들였거든요. 시행 처음에는 집 주인이 2년동안 못 올린다고 2년동안 올라갈 예상 금액을 미리 받으려 하는 바람에 전세금액이 많이 올랐지요. 그래서 경실련이 욕을 바가지로 먹었었지만 지금 와서는 다들 잘했다 그러죠. 만일 지금도 옛날처럼 6개월 마다 세입자들이 쫓겨나서 이사가야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시민단체가 사회의 목탁 역할도 하면서

국민들의 윤리의식을 높이는 노력도 병행해가길 바래요.”

 

Q. 경실련 상근자, 임원, 회원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A: 우리는 경실련을 노래방이라고 했어요. 자기 돈 내고 자기가 노래 부른다고. 회원들은 그런 정신으로 와야 해요. 지돈 내고 지가 노래 부르고 싶은 사람들이 오는 거에요. 지가 좋아서 지가 떠들고 싶어서 오는 거죠. 그러나 이것은 회원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이고 상근자들에게는 정상 생활할 수 있는 생활급을 주어야지요. 저는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합니다. 경실련 같은 시민단체가 우리나라 시민의식을 끌어주는 일들을 계속하면 좋겠어요. 사회의 목탁 역할도 하면서 국민들의 윤리의식을 높이는 노력도 병행해가길 바래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윤리의식이 많이 부족해요. 역사가 그래요. 조선 후기부터 양심적인 사람은 감옥에 가거나 죽고, 일제 강점기 때는 친일파들이 자손대대 잘 살고 독립운동가들은 자손 대대로 가난하고, 해방이후에도 권력과 돈에 아부하는 사람들이 출세해서 잘 살고 올바른 생각과 뜻을 가진 사람들은 핍박을 받고 어려움을 겪어 왔지요. 그러다 보니 양심 버리고 기회주의적으로 살아야 잘 살고, 양심적으로 살면 본인만 아니라 자식들 고생만 시킨다고 많이들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Q.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A: 하루 놀고 이틀 쉬고 그러고 지내요. 이제는 체력도 옛날과 비교가 안 돼 등산도 잘 못해요. 최근에 책을 하나 냈어요. 『애덤스미스 국부론』입니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시장은 독과점 기업이 없는 공정한 경쟁시장이에요. 제일 중요한 게 그거에요. 독과점 시장이 아니라 경쟁시장에 맡기라는 거였고, 독과점은 규제하라고 그랬어요. 요즘 시장은 다 독과점 재벌들이 장악하고 있으니, 경제를 시장에 맡기라고 하는 것은 경제를 재벌에 맡기라고 하는 말과 같지요. 애덤 스미스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가 많아요. 스미스는 아주 양식 있는 사람이에요. 지주들은 생각이 없고, 기업가들은 자기들 이익만 생각하니 이들의 말은 새겨서 들어야 하고, 노동자들이 잘 사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그랬어요. 과거에 썼던 것을 고쳐서 다시 쓴 건데 옛날보다 내 생각을 많이 넣어서 솔직하게 그리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썼어요. 200페이지밖에 안돼서 한 나절이면 읽을 수 있으니 읽어보세요.

 

목, 2018/09/2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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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

 

“사회적으로 받은 상처는

사회적으로 바로 잡혔을 때 풀린다고 하더라고요.”

 

윤은주 회원팀 간사 [email protected]

 

2년 반 일하고, 12년 2개월을 싸운 KTX 해고승무원들의 눈물의 복직 기사 많이들 보셨지요? 지난 7월 21일 철도노조와 코레일이 해고 승무원 180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지난하고 긴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 이들이 있어 그래도 이렇게나마 해결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 싸움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이 경실련 회원이라는 사실이 번쩍 떠올라 축하도 드리고, 그간의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 등도 회원들과 나누면 좋겠다 싶어 회원인터뷰를 요청 드렸는데 흔쾌히 만나주셨습니다.

“아직도 서울역 가서 농성해야 할 것 같고, 아직도 안 끝난 것 같아요”

인터뷰를 위해 철도노조 사무실이 있는 용산역 인근 카페에서 만난 김승하 회원의 첫 마디였습니다. 그만큼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뜻일 텐데, 김승하 회원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 지난 9월 4일 용산역 인근에서 만난 김승하 회원

 

Q. 먼저 다시 한 번 정말 축하드립니다. 오랜 기간 애 많이 쓰셨어요. 복직합의 소식 이후 한 달이 조금 지났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A: 네 다음 주 월요일에는 대전 본사 가서 면접 볼 예정이고요, 적성검사 시험도 봐야 되고, 서류 떼는 등의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리고 대전, 부산 돌아다니면서 그동안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드리러 많이 다녔고 다니고 있어요. 지난 8월 22일에는 ‘KTX 해고승무원 직접고용 어울림 한마당’이라는 문화재를 했었어요. 감사드려야 되는 분들 초대해서 다 일일이 찾아가지 못하니까 다 같이 만나서 감사인사도 드리고 이번에 복직대상 되는 사람들 거의 120명 정도 모였었어요, 그동안 못 본지 못 본지 몇 년 된 사람들 얼굴 보고, 저희가 한꺼번에 복직하는 게 아니라 33명 먼저 복직하고 내년 상반기에 순차적으로 티오가 나는 대로 순서대로 복직을 하게 되거든요. 아마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얼굴보고 마음을 나누는 자리가 필요하겠다 싶어 행사를 마련했어요. 사실 좀 정신없이 얼레벌레 지나다보니까 벌써 한 달이 지났네요. 이번 달은 조금 놀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Q. 첫 출근은 언제부터 하시나요?

A: 아직 배치가 안 돼서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어요. 아마 10월이나 11월 돼야 알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입사전형 준비 하고 있어요. 신체검사도 받아야 되고, 다음 주 월요일에는 대전 본사 가서 면접 볼 것 같아요. 적성검사 시험도 봐야 되고, 서류 떼는 것 준비하고 있어요.

 

Q. 이제 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장은 사임하시는 건가요?

A: 아 이제 KTX 열차승무지부가 아예 없어지는 거예요. 이제 저희가 각 역으로 발령을 따로 받게 돼요. 우선 이번에 합의한 것 중 승무 업무는 논의가 진행 중이거든요. 그 논의가 완료되면 전환배치 하겠다는 걸 약속했지만 지금 당장은 저희 대부분 역무직으로 가게 될 거 같아요. 그래서 열차승무지부는 완전히 사라지고 각 역에 속하게 되면 역 지부의 조합원이 되는 거죠.

 

Q. 이번 채용은 특별채용인가요? 정규직으로 복귀하시는 거죠? 이번에 복직이 결정된 180명 전원 복직하시는 건가요?

A: 경력직 채용으로 특별채용이긴 한데, 거의 신입사원 채용하는 것처럼 다시 모든 전형을 그대로 보는 거죠. 전체 정리해고 된 인원은 290명이었고, 소송에 참여하신 분이 180명이었어요. 처음에는 끝까지 투쟁한 33명만 복직해준다고 했었는데 협상 끝에 소송에 참여한 180명 모두 복직하게 됐죠.

정규직으로 복직하는 거 맞구요. 근데 거의 신입이라 사실 고민스러워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실제 복직을 안 하는 분들도 3명 정도 되고요. 가끔씩 저희 기사보고 댓글다시는 것 보면 그냥 그 시간에 다른데 가서 취업을 했겠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분들도 계시던데 사실은 취업을 했거든요. 다른 직장을 다니면서 퇴근 이후에 활동을 한다든지 휴가를 내고 활동을 한다든지, 집회에 나선다던지 이런 식으로 활동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다른 직장을 다닌 지 벌써 10년이 되어가는 거죠. 이미 과장급이 된 친구들은 이번에 복직하면 월급이 지금보다 반 토막 나는 경우도 있어요. 초봉, 신입으로 들어가는 거니까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자리 잡은 친구들은 많은 걸 포기하고 복직하는 경우도 꽤 있어요. 이 일을 위해 싸웠기 때문에 지금 직장 조건이 더 좋아도 그만두고 복직하겠다는 거죠.

 

 

Q. 이번 KTX 사태의 근본 문제가 무엇이고, 앞으로 이런 사례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A: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선은 저는 사실 IMF를 잘 모르고 지나갔지만, 그 IMF 때 파견법이 생겼잖아요. KTX 승무원이 처음으로 계약직 자회사로 파견되어있는 그런 형태로 고용을 할 수 있었던 게 우선은 IMF때 법제가 바뀌면서 그런 근거가 마련 된 거죠. 그러면서 신자유주의를 외치게 되고 글로벌한 세계화 이런 것들에 경쟁하지 않아야하는 것 까지도 무한경쟁 체제로 도입을 하면서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 기업 경영을 잘하는 것처럼 사회적으로 인식되면서 철도도 자회사에 사람을 주게 되면 이것이 인건비가 아니라 사업비로 지출되면서 철도공사 경영평가도 높게 받고 이런 것들이 다 복합적으로 작용을 했다고 봐요. 그러면서도 여성들만 뽑혔던 건 기본적으로 철도공사의 마인드 자체가 스튜어디스, 예쁠 때 잠깐 쓰고 버리는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체 승무원들을 여성으로, 팀장이랑 남자 승무원들은 놔두면서 여성 승무원들만 비정규직에다가 자회사 이런 고용 구조로 서슴없이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던 거죠. 이런 배경 하에서 여성 차별 문제까지. 그리고 모든 것이 회사 입장에서는 경영평가를 잘 받게 되면 연말에 성과급이 올라가거든요. 그리고 철도공사 안에서 자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막 생겼는데 고위직이 퇴직을 하면 그 사람들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한 수단으로써 자회사들이 생기는 거거든요.

 

Q. 양승태 대법원장의 재판거래 제일 큰 피해자중 하나이신데, 사법농단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저희 문제도 사실은 양승태 사법부의 그 문건이 발견되지 않았으면 아마 해결 안됐을 거예요. 아마 그게 핵심적으로 작용을 했다고 생각을 해요. 정치적으로 풀린 문제이죠. 아직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았는데 다른 사법농단의 피해자분들이 굉장히 많으시잖아요. 쌍용차도 그중에 하나고. 전교조도 그렇고. 그런 분들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회의 체계가 있어요. 그쪽에서 계획이 닿는 대로 활동도 하고 또 지금 국회 안에서 특별법이라든지 이런 게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박주민 의원이 발의하시고 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뭔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계속 참여할 생각이에요.

쌍용차 문제는 제발 좀 해결됐으면 좋겠어요. 그 더운 날, 지난여름 너무 더웠잖아요. 바닥에 누우면 익을 정도로 뜨거운데 그걸 또 하신다 하셔서 되게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근데 만약에 저 같아도 만약에 저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더라면 나 같아도 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분들 심정이 이해가 가요. 아무리 덥다고 해도 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더 이상 그런 것들 안 봤으면 좋겠어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활동을, 역할을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사법농단 관련된 부분이에요. 이건 분명히 양승태 사법부에 대한 책임, 철저한 수사, 수사에 대한 처벌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구제까지 다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런 것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활동을 할 생각이에요. 돌아가신 한 분을 위해서도 저희가 할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Q. 앞으로 승무업무 전환 배치 및 직접고용 등 과제가 남아있다고 하셨어요. 조금 더 설명해주신다면?

A: 저희가 싸웠던 목적이 승무업무를 직접고용 시켜야 된다는 것이 목적이었고 다들 그렇게 되기를 바랐는데 아직 갈 길이 많은 거죠. 뭔가 이번이 해결될 수 있는 그나마 기회라고 생각을 해서 합의를 하긴 했지만 그러면서도 마음이 한편으로는 무겁고 개운하지 못하고 그런 건 분명히 있어요. 영화 헝거게임 보셨어요?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가 있어서 가난한 동네에서 사람들을 뽑아서 서로 죽고 죽이는 게임을 시키면서 1등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부자 동네에서 살게 해주는 건데 주인공이 이런 구조에 저항하고 이런 체제가 잘못됐다 하면서 다 같이 싸워나가는 이야기에요. 제가 그런 느낌이 들어요. 헝거게임에서 을끼리 싸우게 만든 구조를 바꾼 사람이 아니라 그냥 그중에서 1등을 한 사람이구나. 그래서 부자동네에서 1등을 한 사람은 너네들도 열심히 하면 이렇게 살 수 있어. 너네들 서로 죽고 죽여서 살아남은 사람은 이렇게 떵떵거리고 살 수 있어. 야 얘네들 해결하는 거 봤잖아. 마치 우리 문제가 그 사람들이 시혜를 베풀어서 풀린 그런 케이스로 홍보가 되는 건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어 씁쓸했어요.

 

 

Q. 경실련 회원 인터뷰로 요청 드린 건데, 경실련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셨나요?

A: 저희가 기자회견 하면 시민단체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경실련도 그렇구요. 그러면서 인연이 돼서 가입을 하게 됐어요. 아직 제가 많은 걸 알지 못하는데 경실련 소식지는 잘 보고 있어요. 덕분에 지식이 쌓이는 느낌이랄까. 뭔가 뉴스를 잘 챙겨보고 그런 스타일은 아닌데 그래도 경제 관련해서 경제라고 하면 숫자, 머리 아프고 굳이 뭐 찾아봐야 되나 하면서 좀 멀리하게 되는데 그러다가 사실은 당하는 거잖아요, 이런 생각은 그래도 머릿속에 가지고 있어야 되겠다 하는 것들을 짚어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하죠.

 

Q.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A: 철도노조 한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아무런 계획도 하지 말고 그냥 현재에만 충실하고 그냥 쉬라고. 근데 그 말이 제일 위로가 되고 너무 좋았어요. 다른 분들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열심히 앞으로도 노동계에서 활동을 해야 되고… 막 그러시는데 이제 뭐 사실 저도 지부장이라는 타이틀이 없어지고 KTX 열차승무지부가 없어지면서 다른 지부 조합원으로 돌아가게 되잖아요. 그게 제일 기뻐요. 이제 지부장 끝! 우리가 남은 미션도 분명히 있지만 이건 장기적인 미션인거고요. 우선 지금 당장은 좀 끝났으니 쉬어. 그런다고 사실 쉬어지는 게 아니에요. 아직도 마음이 풀어지지 못한 그런 게 있어서 저희도 심리상담 같은 걸 할 계획이 있어요. 뭔가 하나하나 아직도 쌍용자동차 이런 것 때문에도 마음이 불편한 것들이 있어서 조금 조금씩 놓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그런 것들을 더 많이 하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쉬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저희들이 다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나는 옳다고 생각해서 뛰어들었지만 정말 십몇 년 동안 왜 너네 그러고 있니. 그거 안 되는 거야. 계란으로 바위치기야. 이런 식으로 너네들이 그걸 붙잡고 있는 게 바보 같은 거야.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가 어쨌든 풀렸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받았던 비난들, 상처들이 하루아침에 됐으니까 풀리는 게 아니거든요. 이런 것들이 치유되는 시간이 분명히 필요하고 그러려면 사회적으로 받은 상처는 사회적으로 바로 잡혔을 때 이게 풀린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나중에 출근을 하고 너희들이 싸워서 뭔가 됐어 라는 식으로 위로도 사람들한테 많이 받고 그래야 좀 나아지지 않을까, 아직은 조금 힐링하는 시간을 가지며 지내려고 합니다.

 

복직 소식을 듣고 마냥 좋은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김승하 회원을 직접 만나 뵙고 나니 좋은 일이라 다행이기도 하지만 한편 무거운 마음과 여러 고민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일단 잘 쉬고, 회복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회원 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 사회 희망의 씨앗이 되는 사건을 만들고 계시니 큰 힘이 됩니다.

목, 2018/09/2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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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9,10월호 우리들이야기4]

이제는 우리가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 그리고 <김복동>

이성윤 회원미디어국 간사

 2017년 개봉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아마 영화의 예고만 봤다면 이 영화를 늦은 나이에 영어를 배우려는 할머니가 나오는 평범한 코미디 영화로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내용은 조금 특별하다. <아이 캔 스피크>는 이제껏 우리가 단 한 번도 접하지 못한 방식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루고 있다. 끝까지 유쾌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루는데 무거운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실화에 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주인공 나옥분의 미국 의회에서의 증언 장면도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나옥분이라는 캐릭터에는 수많은 피해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지난달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은 그 실화의 일부이다. 많은 사람에게 ‘김복동’은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그 앞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말이 더해진다면 ‘김복동’은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 아닌 기억해야 할 이름으로 바뀔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그저 ‘김복동’ 한 사람만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영화에 자세히 나오진 않지만, 하나둘 나열할 수 없는 많은 분의 사연이 그 안에 담겨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영화 <김복동>은 올해 초 세상을 떠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보여준다. 김복동은 1940년 우리 나이로 15살의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8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얘기할 수 없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 1992년, 피해 사실을 증언하겠다고 하자 가족들조차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그 당시 우리 사회가 피해자들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우리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아이 캔 스피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주인공 옥분이 어머니의 산소에서 눈물 흘리는 장면이 단순히 극적 효과를 더하기 위한 장면은 아니다.
 가족들의 반대와 외면에도 불구하고 김복동은 피해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나섰다.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전 세계를 다니며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해 증언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자신에게 너무나 큰 상처였을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그곳이 어디든 일본이 사과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로 만들어진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요구하며 수술 후, 입원 중인 상황에서도 거리로 나와 목소리 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사과를 받기 전까지는 죽을 수도 쓰러질 수도 없는 한 그루의 거대한 나무와도 같았다.

인권운동가, 평화운동가 김복동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김복동’은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피해자로서의 활동을 넘어 평화와 인권을 위한 활동가로서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중 하나가 2012년 만들어진 ‘나비기금’이다. 나비기금은 전 세계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동안 우간다, 나이지리아, 콩고 등 여러 나라에 이 기금이 전달되었다. 이를 통해 그들과 연대하며 자신과 같이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전쟁으로 피해받는 이들이 없길 바라며 그들을 보듬고 위로했다. 그리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도 우리는 일본 시민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며 모금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또 일본에 있는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김복동은 앞으로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없기를 바랐고, 지진피해가 있다면 그들을 걱정했고,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한 학생들을 생각했다. 김복동은 자신도 모르게 이미 평화와 인권을 위해 앞장서는 위대한 활동가였다. 그러한 모습들은 오랜 시간 ‘위안부’ 피해자의 상처를 보듬어주지 못한 우리, 그리고 우리 정부를 더욱 부끄럽게 만든다.

20명… 이제는 우리가 증인이 되어야 한다

 지금도 매주 수요일 12시면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는 집회라는 아픈 기록을 가진 이 집회는 얼마 전 1,400번째 집회를 열었다. 2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외쳤지만, 아직 일본은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 외침은 일본의 사과가 있기 전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에 생존해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이제 20명뿐이다. 그분들의 나이도 이제 8~90대이고, 앞으로 10~20년이 지나면 실제 피해자들은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 만약 그때가 되어도 일본이 사과하지 않고, 피해자들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결될 수 없고, 아프다고 감출 수도 없으며, 없었던 일처럼 부정할 수도 없는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남아있는 우리가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외쳐야 한다.

지금 당신은 증인이 될 준비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외쳐보자. 아이 캔 스피크!

화, 2019/10/01-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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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9년 11월 4일 (월) 오후 6시 30분

장소 :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행사문의: 02-766-5626 / 후원문의 : 02-766-5627~8

목, 2019/10/1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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