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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정체성 위기 뒤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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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정체성 위기 뒤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

admin | 수, 2019/11/27- 23:41

편집자 주:

11월 23일에 있었던 홍콩지방의회 선거는 반중파(민주파?)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다. 한국을 포함하여 대부분 서방 언론은 마치 민주주의의 승리인양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의 결과가 보여주듯이 홍콩인들은 이미 어느 국가의 누구보다도 자유와 자치분권을 누리고 있었다. 과연 이번 선거 결과가 홍콩의 잃어버린 영화를 다시 가져다 줄 것인가는 분명하지 않다. 일국양제 하에 있는 홍콩이 임의로 미국의 52번째 주로 편입될 수는 없는 일이다.

중국 본토의 지원과 협력이 없는 홍콩의 미래가 가능할 것인가? 오히려 잔꾀가 많은 영국정치와 막가파식 미국의 패권에 희생당할 소지가 높아 보인다. 현재 독일의 자유도시에서 법과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는 중국 젊은이의 색다른 견해를 아래에 소개한다.


소위 아시아 시위대는 자국인 홍콩 거리에서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약자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 모자를 쓰고 성조기를 흔든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생각을 지닌 미국인들이 이런 기괴한 광경을 보면 한편 즐겁지만 괴로운 메스꺼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아시아 시위대는 공론을 통해 ‘민주 투사’ 또는 ‘인권 수호자’로 불려지곤 하는데 두 단어 모두 의미가 약해서 특이한 차림을 한 사람들의 진정한 정신을 잘 포착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몇 왜곡된 언론은 정신 이상의 의미가 잘 담기거나 또는 누군가 마침내 깨닫고 “시위대 옷차림은 딱 극우주의자 같아” 라고 말할 때까지 여러 차례 시위대를 무고한 천사로 그려낸다.

그렇다. 이러한 유사함은 단순히 우연이 아니라 계속 심각하게 오래 지속되어 온 홍콩 위기 뒤의 추악한 진실을 밝힌다. 그리고 주류적 이야기인 경제 이론에 이의를 제기한다.

분명히 홍콩 부동산 재벌을 보면 독과점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세계 경제 침체, 미-중 무역 전쟁과 부인할 수 없는 외세 개입, 식민주의 잔존의 적폐 문제가 존재한다. 홍콩 거주민들이 중국 본토인들보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서 ‘교육 부족’이 발생했고, 통합을 위한 노력이 불충분했기 때문에 홍콩과 중국 본토 통합에 실패했다는 타당성을 내세울 수도 있다. 그것들은 모두 홍콩 위기에 기여한 중요한 요인이지만 평이한 답에만 안주하다 보면 결정적 원인과 관련성을 놓치게 된다.

시위대 구호인 ‘홍콩을 해방하라. 우리 시대의 혁명으로’는 많은 사실을 드러낸다. 필자는 현재 홍콩이 직면한 위기는 근본적으로 정치 관련이 아니라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체성은 사회 계층 속에서 우리 자신의 자아를 찾는 가장 단순한 방식이며 이익과 의무가 일괄적으로 표출된 형태로 나타난다. 거리의 홍콩 젊은 층은 유럽이나 북아메리카에 있는 아이덴티타리언 (identitarian)과 동일하게 ‘잠재적 정체성의 도둑질 potential identity theft’에 분노하고 있다.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2017년 백인 우월주의자 집회가 일어났던 곳)과 홍콩은 공히 세계적으로 우익의 세력이 막강한 지역이다. 홍콩 시위대는 트럼프 대통령 유권자 대부분과 동일하게 ‘야심찬 후임자’가 지역 내‘ 교체를 주장하는’ 엘리트주의자와 협력을 통해 급상승하여 지위를 잃을까 봐 깊게 두려워하는 편집증과 음모론을 가지고 있다.

2016년 미국 대선과 마찬가지로, 반전통적인 현재 홍콩 내 소란은 기존 지배집단들이 외부인에게 끊임없이 확실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노력이다.

‘홍콩인들이 서양과 중국 본토에서 누리는 모든 특권에서 반드시 다른 중국인들을 앞서야 한다’는희망을 담은 홍콩 시위는 서구를 향한 웅얼거림이자 베이징을 향한 외침일 뿐이다.

중국 본토인들은 아주 오랫동안 마치 나치 독일의 유대인, 유럽의 이슬람교도, 미국의 멕시코인처럼 홍콩인들의 우월하다는 정체성 구조 아래 “다른 민족”으로 희생양이 되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본토와 홍콩이 성공적으로 통합하려고 하면 할수록, 홍콩 ‘분리주의자’ 일부 세력이 더 초조해 할 것이다. 또한 베이징이 더 개방적이고 세계화를 향한 입장을 취하면 취할 수록, 홍콩인 일부 중 더 심한 외국인 혐오와 폐쇄적인 입장을 보일 것이다. 중앙 정부가 더 우호적인 입장을 취할수록, 홍콩 시위대는 더 폭력적으로 행동하게 될 것이며 본토 경제가 번영할수록 홍콩인 일부는 더 큰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폭력적인 홍콩 시위대가 주장하는 경찰의 강경 진압 이야기가 왜 쉽게 빠르게 신뢰성을 잃고 본토인들에게 거의 동정을 받지 못했는지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시위대 구호 속 중국어 단어 ‘광푸 (guangfu)’는 일부 홍콩인들이 한때 홍콩 황금기였다고 여겨지는 1980년대를 추억하는 깊은 향수를 미묘하게 암시한다. 홍콩 황금기 시절 홍콩인들은 자랑스럽게도 ‘선진적’이고 부유한 서양 스타일과 상업 문명을 대표했고, 홍콩과 본토 사이 경제 격차는 엄청났다. 이런 식으로 홍콩 정체성에는 중독적인 우월함도 내재되었다.

하지만 그 격차는 빠르게 좁혀져 왔다. 중국 본토는 급속히 발전하면서 세계화와 다극화를 통해 계속해서 세계 권력 균형을 재편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홍콩인들은 직접 차이와 변화를 실감하면서 변화한 현실에 대해 더 큰 타격을 받아 왔다. 상실감과 고통을 느낀 시민사회 단체들은 소위 옛 시절의 지위 계층을 재정립하겠다고 공약을 내세우는 급진적인 후보에 대한 지지를 더 끌어올렸다.

자기 비하는 자존감(상실)에서 오는 죄악이다.

“물길이 되어라, 홍콩의 친구들이여.” 육지의 돌사자 동상에서 출발하여 광활하게 펼쳐지는 바다를 향해 연안을 통과하여 전진해 나가는 뱃머리(중국)에 매달려 그저 뱃전에 문구만을 새기려 하지 말고, 더불어 함께 물길이 되어 시대에 확고한 불굴의 정체성을 불러일으킬 자유와 용기를 가지길 바란다 (중국어 구절 ‘ke zhou qiu jian’ 刻舟求劍에서).

 

루 양(Lu Yang)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 (Uni Freiburg)에서 법학 이론과 정치 이론 전공을 하고 있는 박사과정 학생이자 독립연구자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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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매년 자연재해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어 한계지점인 티핑-포인트를 넘기게 된다면 한 해의 피해규모가 세계 총 GDP의 5.0% 선을 넘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뮌헨 재보험회사(Munich Re)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220년 한해 자연재앙에 따른 직접피해액이 2,100억 달러에 이르면서, 2019년의 1,660억 달러에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보고서는 유럽연합의 기후기구가 2020년이 2016년과 함께 기록상 지구가 가장 뜨거웠던 한 해이며 십년 단위로 가장 더웠던 기간으로 함께 기록된다는 발표 직후에 나온 것으로, 이는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충격이 점차 심화되는 것을 알려준다.

독일의 거대한 재보험 조직인 Munich Re는 작년에 발생한 허리케인과 주요 산림화재에 따라 재해의 규모가 커졌다고 밝히고, 기후변화를 저지하기 위하여 긴급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자연재해로 인하여 전세계적으로 8,200명이 생명을 잃었고 직접피해액의 40%에 해당하는 820억불이 재보험을 통하여 보상되었다고 발표하였다.

기후의 변화가 이러한 자연재해에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점차 그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고 Munich Re의 중역인 Torsten Jeworrek 가 주장한다. “5년 전에 이루어졌던 파리기후협약의 일환으로 지구촌 모두가 협력하여 기후온난화를 섭씨 2.0도 이하로 유지하도록 목표를 설정하였는데, 이제 실천해야 할 때가 되었다.”

유럽기후기구에 따르면 2020년에 이미 기후온난화 상승온도가 산업화 시대 이전의 기준으로 평균 1,25도에 이르렀다고 한다. 파리기후협약은 2도를 상한선으로 정하고 기후변화가 가져올 가공할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가능한 1.5도 이하에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아시아는 홍수와 태풍으로 황폐화되고 있다(Floods and cyclones devastate Asia)

작년 아시아 지역에 가장 심각했던 재난은 여름철 몬순의 영향으로 작년 5월21일에서 6월30일까지 지속되었던 중국 남부의 홍수피해이었다. 전체적인 피해는 약 170억 달러 수준으로 보험으로 겨우 2.0%만 보상되었다.

아시아 전체로는 태풍과 홍수 피해를 모두 합쳐 자연재해 규모가 670억 달러이었는데 다행히 2019년의 770억 달러에서 줄어들었다.

 

큰 규모의 피해는 북미지역에서 발생 (Highest losses suffered ever in North America)

북미 지역으로 눈을 돌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작년의 가장 큰 피해규모 순위 10사례 중에 6개가 미국에서 발생하였다. Munich Re에 따르면, 13개의 허리케인을 포함하여 30개의 폭풍우가 북대서양풍의 계절에 북미를 강력하게 타격하였다.

이에 추가하여 화재면적으로 새로운 기록을 세운 산불로 피해를 보았던 캘리포니아와 콜로라도 지역을 포함하여, 거대한 산림화재가 미국의 서부지역을 휩쓸고 지나갔다.

유럽의 기후기구에 따르면 지난 8월의 캘리포니아 산불 열기로 인하여 모제브 사막에 있는 죽음의 계곡 온도가 섭씨 54.4도까지 치솟았는데 이는 기록상 공식적인 최고의 기온이었다. 미국의 자연재해 피해액은 2019년의 경우 510억 달러이었는데 2020년에는 950억불로 증가하였으며, 이중 670억 달러가 보험으로 보상되었다.

 

유럽의 경우, 자연재해의 피해가 최소이었다(Minimal natural disaster losses in Europe)

유럽지역의 경우, 2020년에는 비교적 양호하여 예년에 비하여 상황이 많이 호전되었다.

지역 별로 피해의 사례를 살펴보면, 지난 가을 시즌의 많은 강우량으로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가 피해를 입었으며, 통상의 겨울철 폭풍으로 인하여 지난 2월에 유럽대륙 전체가 입은 피해액이 25억 달러 수준이었다.  지난 3월에는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 북부지역에서 5.3 강도의 지진이 발생하여 총 18억 달러의 피해를 입었다.

유럽 전체로 작년 한해동안 120억불 달러의 피해가 발생하였고, 이중에 36억달러가 보상되었다.

 

북극지역이 예외적인 더위와 극심한 기온차를 보였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유럽대륙도 역시 2020년 가장 더운 여름 그리고 예외적으로 따뜻한 가을과 겨울을 경험했다. 북극과 북부 시베리아 지역은 지구의 평균보다 편차가 심한 기온을 일년 내내 보였으며, 지난 30년 간 평균기온의 편차보다 물경 6도가 높은 기온을 유지했다.

이들 지역 역시 야외화재의 계절이 예외적으로 활성화되면서 북극으로 몰려드는 야외화재가 244 백만 톤의 지구온난화성 탄소산화물을 배출하였는데, 이는 2019년보다 1/3정도가 늘어난 것이다.

북극해의 얼음이 지속적으로 줄어들면서 지난 7월과 10월 사이 바다의 얼음이 가장 적은 기록을 남겼다.

과학자들은 상기의 기록들과 화재들은 자연의 균형파괴에서 유발된 것으로 이는 점증하는 기후변화의 확실한 증거이며, 매년 강력해지는 허리케인과 산불, 홍수 등을 동반하는 자연재난을 야기시킨다고 확인한다.

지난 해의 극심했던 기후변동은 대기와 대양에 대한 수십 년에 걸친 온난화의 예측과도 일치하며, 자연재해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대기대양의 자연환경청NOAA의 기후과학자인 Adam Smith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매해마다 점증적으로 진행되는 극심한 기후변화가 어떠한 자연재해를 가져올지 제대로 밝히는 안내문건dictionary을 작성할 필요가 있다.”

 

출처 : 중국국제방송(CGTN) on 2021-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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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1/03/05-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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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를 직접 봤더니

얼마 전 경기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국회 전문위원이 작성한 검토보고서를 직접 읽고서 개탄하는 기고문을 발표하였다.

보건복지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를 읽어보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상임위원회의 검토보고서라면 해당 정책을 논의하는 중요한 기초자료인데, 그 가운데 기본소득에 관한 사실관계(fact)가 틀린 곳이 다수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나라의 정책이 이런 허술한 자료에 근거하여 논의되고 결정된다니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다….. 이 검토보고서는 기본소득의 기초적 개념조차 모르는 전문위원이 작성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동안 몇몇 기고에서 수석전문위원이 초선 의원 5~6명을 합한 것보다 힘이 세다는 것, 그것은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 때문에 국회의원이 입법에서 소외되기 때문이라는 것, 이러한 폐단은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만들어졌다는 것, 그리하여 드디어 참여연대가 이처럼 국회의원의 입법권을 훼손하는 전문위원 검토보고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는 것 등을 간간이 보아 왔다. 그렇지만 그저 문제가 많은 제도구나 라고 어렴풋이 느꼈을 뿐, 그 깊은 내막까지는 잘 몰랐었다. 그런데 이번에 검토보고서라는 것을 직접 보고 나니 그 폐해가 피부로 느껴진다. 이렇게 부실한 검토보고서로 저렇게 막강한 권한을 누리다니 얼마나 우려스럽고 위험한 일인지…(정원호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원, “국회의 기본소득 검토보고서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2020, 12,30)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는 단지 ‘검토’의 차원을 훨씬 넘어선 것이다. 지엄한 ‘선언’이요 ‘결정문’과도 같은 위상으로 된지 이미 오래다. 세계 의회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국회공무원, 즉 입법관료에 의한 법안 검토 시스템이다. 그리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가운데 입법관료의 영향력은 막강해졌다. 하지만 이른바 ‘국회 전문위원’은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국회에서 순환 근무하는 국회 공무원들일 뿐이다. ‘전문’이란 그 명칭과 부합되지 않는다.

 

국회는 입법관료의 하부 구조인가?

필자는 오래 전부터 국회 전문위원이 피감기관이나 행정부 소속기관 공무원에게 “갑중의 갑”이라는 ‘증언’을 많이 들었다. 그들이 법안과 예산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권한을 비롯해 국정감사 제도를 통하여 커다란 권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연전에 국회의 한 전문위원이 자신의 직무가 “국회의원과 비슷한 영향력이 있다”며 해당 상임위 소속기관에 국회의원급의 식사와 골프 접대를 요구했다는 논란이 각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국회 전문위원 스스로도 자신들이 국회의원에 준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현실이다. 국회의원 스스로 부여받은 권한을 행사하지 아니하고 그 직무를 유기하면서 생긴 권한의 공백이 국회 입법관료들의 수중에 쥐어진 셈이다. 그러니 국회가 “입법관료의 하위 구조”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는 최근 “국회법상 전문위원은 국정감사를 지원하고, 법안에 대한 조사 등을 통해 검토보고서를 제출한다. 국회는 법안 심사 시, 첫 단계로 해당 법안에 대한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고, 전문위원의 검토보고가 국회의원들의 법안 심사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며 “국회의원의 입법권을 훼손하는 전문위원 검토보고제도 폐지가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국회란 숟가락만 얹어놓기선수들이 필요한 게 아니다

우리는 국회가 법률 해석과 관련하여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요청하는 경우를 여러 차례 목격한 바 있었다. 그러나 법제처는 행정부 각 기관에 법률 문제와 관련된 자문을 수행하는 행정부의 일개 부처로서 국회가 그러한 법제처에게 ‘유권해석’을 요청하는 것은 전혀 위상에도 맞지 않고 자존심도 버려버린 상황이다. 또 주지하는 바와 같이, 국회는 늘 자신들의 정쟁 문제를 검찰에 고소 고발하고 법원 판단에 맡겨놓고서 ‘하염없이’ 그 결정을 기다린다. 그런가 하면 국회 내에서 여야끼리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이제는 국회 사무처에게 ‘유권해석’을 의뢰한다.

매사에 숟가락만 올려놓는 자세로 일관한다. 이런 자세로 일관하니 마땅히 자신들이 수행해야 할 법률 검토도 (세계 의회사상 유례가 없이) 국회 공무원에게 맡겨놓고 이제 거꾸로 그 ‘검토’를 신주 모시듯 모시면서 ‘분부’를 기다리게 된 것이다.

물론 국회의원 본인들은 자신들이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다며 자부할 게 분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법안을 ‘발의’하고, 본회의에도 열심히 출석하여 법안을 통과시키며, 매일 같이 상대당을 향해 질타한다. SNS 활동 또한 대단히 열심이다. 또 줄줄이 찾아오는 민원인과 이해당사자들 만나느라 분 단위로 약속이 잡혀있고, 게다가 지역주민들의 경조사를 비롯해 각종 모임 등등… 너무 바쁘고 너무 열심히 일하는 선량의 삶이라고 스스로 자부할 것이다. 하지만 외화내빈, 속빈 강정이다.

 

근본을 잃게 되면 모든 일이 본말전도된다

오늘 우리 국회의 모든 왜곡과 혼돈은 근본적으로 국민이 부여해준 입법권 수행이라는 직무를 사실상 유기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만약 우리 국회의원들이 다른 나라 의원들처럼 법안 검토를 국회 공무원에 넘겨 대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불철주야 진지하고 성실하게 수행한다면, 지금처럼 주야장천 아수라장의 정쟁에만 몰두하는 시간 자체가 없게 될 것이다. 또 마치 연예인처럼 SNS 활동과 ‘재담(才談)’에만 몰두하는 국회의원의 모습도 찾아보기 어려워질 것이다.

기본과 근본을 잃게 되면 모든 일이 본말전도된다. 국민들이 부여해준 입법권을 스스로 수행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맡기게 되면, 결국 내가 아니라 그 다른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 국회의원 중 세계 의회사상 유례가 없는 이 왜곡된 전문위원 검토보고 제도를 개혁하여 자신들이 직접 수행해야 한다고 나서는 의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아니 이것이 문제라고 말하는 의원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과연 언제 제대로 된 국회의원을 볼 수 있을까?

 

소준섭

화, 2021/02/16-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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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시민들은 억만장자들이 우리가 믿기를 원하는 거짓말 “당신의 수입이 당신의 존재가치를 알려준다”라는 주장이 얼마나 해로운 것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팬데믹으로 대부분의 인류가 고통 받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엄청난 부를 벌어들이는 극소수의 거대부자들은 여전히 일반시민들을 향해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부자들의 재산에 세금을 부여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오랜 전승의 기법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부와 영향력을 유지하여 왔는데, 한마디로 ‘부와 세력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는 것은 자연의 필연적 법칙’이라는 믿음의 체계이다.

중세 시기에 영국의 제임스 1세와 프랑스의 루이16세 등은 소위 왕권신수설을 확신하면서 군주는 신으로부터 권한을 부여 받았기 때문에 세속적인 일에 책임질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우리가 역사에서 목격하였듯이, 이러한 주장은 17세기 영국의 명예혁명과 18세기 미국과 프랑스 혁명에 의해서 종지부를 찍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소위 “시장봉건제(시장만능주의)”, 즉 과거의 군주제가 신성하였듯이 거대부자의 권한이 신성하다는 신념이 재등장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당신이 받는 수입이 당신의 사장가치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수십 억불을 지니고 있다면, 당신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시장이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근근이 살아 간다면, 그에 합당하게 스스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수백 수천 만 명이 실직을 당하거나 감봉을 당한다는 것, 혹은 한가지 직업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워 2-3가지 직업을 가지면서도 다음달 또는 다음 주의 수입을 걱정하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이는 불행한 일이지만 시장의 힘에 의한 자연스런 결과라는 것이다.

현재 ‘자유시장-free market’이라는 개념만큼 온 세상을 통해 각국 정부에 영향을 끼치면서 일반시민들의 사고를 병들게 하는 독충은 없다.

이들 견해에 따르면, 현존의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경제적 불안정을 줄이면서 경제를 다수의 시민들을 위해 운용하는 것은 시장을 왜곡하고 효율을 저하시켜서 결국은 모두에게 의도하지 않은 해로운 결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경우에도 자유시장이 정부의 역할보다 선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주장들은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정부의 개입이 없는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은 어떤 형태를 취하든지 반드시 게임의 규칙을 정하고 이를 강제하는 정부를 필요로 한다. 현대적 민주체제 하에서는 이러한 규칙들이 입법과정과 행정운용 그리고 사법적 판단으로 이루어진다.

정부가 자유시장을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시장을 창출하고 시장을 유지하는 것이다.

트럼프가 행한 가장 악질적인 내용은 일체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러한 일이 미합중국이라는 국가체제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 졌다는 점이 충격적 사실이다.

시장은 결코 중립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다. 시장은 사회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가치척도와 기준이다. 동시에 해당사회에서 누가 가장 세력이 강하고 시장의 규칙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영향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부자집단들은 자유시장이 정부의 역할보다 효과적이라는 끝없는 논쟁을 벌리면서, 실제로는 어느 집단이 세력을 행사하고 영향력을 통해서 이익을 선점하는지에 대한 사실을 파악하는 것을 방해하고, 더 나가 잘못된 규칙을 모두를 위해 개정하려는 작업을 저지한다.

의도적인 ‘시장 봉건제(시장만능주의)’라는 주장은, 상기에 언급한 것처럼, 경제운용의 왜곡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게 방해하면서 잘못된 시장에서 이익을 취하는 집단에게 대단히 유용한 논리를 제공한다.

시장의 규칙에 대해 불균형적으로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야말로, 실제로 규칙을 설계하고 운용하면서 이에 따른 혜택을 즐기는 한편, 정부의 역할보다는 시장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온갖 논리를 옹호하면서 자유시장이라는 허구를 지지하는 집단이다.

이들은 ‘정부 대 시장’이라는 논쟁을 지속적으로 유발하면서, 시장의 규칙이 왜곡되게 설정되고 수정되는 현실과 잘못된 운용의 과정을 통해 전개되는 돈의 위력 그리고 이들이 취하는 이익의 결과물에 대하여, 일반시민들의 시선을 차단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들 자유시장 옹호자들은 시장의 우월성에 대하여 일반시민들의 지지를 조직하고자 의도할 뿐만 아니라, ‘시장이냐 정부의 역할이냐’ 논쟁을 끊임없이 유발하면서, 문제의 핵심에서 시민들의 관심을 벗어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자유시장이 왜곡되게 작동하는 구조를 폭로하고 누가 어떻게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를 밝혀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상기의 내용을 필자가 ‘가디안’ 지의 칼럼에 기고한 이유는 ‘가디안’ 지는 경제운용의 진실을 드러내고 사실을 은폐하려는 거짓말을 폭로하는 시대의 매우 소중한 소수의 매체이기 때문이다. 가디안 지가 이처럼 용기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민간기업 또는 재정적 이해관계를 지닌 집단에 의해서 지배당하지 않고 순수하게 공공을 위해 봉사하는 매체이기에 가능하다.

현재 모든 선진국가들의 경제권에서 수입과 자산과 정치적 권력의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는 반드시 수정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흐름을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현대의 거대부자들이 중세의 군주처럼 신성불가침의 권리를 가졌다’는 주장이 허황된 거짓말임을 일반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야만 한다.

 

출처 : 영국의 가디안 The Guardian on 2020-12-08.

Robert Reich

빌 클린턴 행정부시절 노동부장관을 역임했으며, 2006년 이후 버클리대학교 공공정책학의 석좌교수로 부임 중이다. 미국행정부 역대에 가장 유능한 관료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금, 2021/01/0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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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절멸 상황은 이 땅에 사는 인간을 포함해 모든 생명체들의 화급한 문제가 됐다. 인간이 쌓아올린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부산물이 지구 생명에 말기 판정을 내린 비공식 학명, 소위 ‘인류세(anthropocene)’ 시대를 우리는 맞고 있다. 인류세는 인간(the anthropos-)이 지구의 지배종이 되면서 새롭게 지층에 퇴적된 문명의 쓰레기더미의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cene; epoch)를 이르는 말이다. 가령 흙이나 유기물과 뒤섞인 플라스틱 찌꺼기, 콘크리트 잔해, 혼합시멘트, 핵물질, 살충제, 금속성분, 비료 반응성 질소(N2), 온실가스 농축 효과의 부산물 등이 인류세의 퇴적층을 이룬다. 동시대 지구 지질층을 일컫는 원래 학명인 ‘홀로세(holocene)’를 이 기괴한 비공식 용어가 대체할 정도로, 인류세란 말은 마치 파국으로 치닫는 지구 시대의 종말을 카운트다운하기 위한 경고처럼 들린다.

 

1. 인류세, 자본세, 그리고 과학기술

인류세는 그렇게 지구 절멸의 위기 상황을 일깨운다. 대륙 곳곳이 사막화로 물이 메말라 가고, 하루에도 수많은 생물종이 끝없이 사라져가고, 갈 곳 잃은 쓰레기 노폐물은 쌓여가고, 핵폐기물과 오염수는 방치되어 생태계에 상상하기 어려운 위험을 노출하고, 바다 생명들은 플라스틱에 질식해 가고, 인간 자신의 섭생은 스스로 만든 각종 오염된 화학 물질로 위협받고 있다. 무엇보다 지구 행성의 위상 또한 달라진다. 인간 삶 속 환경오염의 족적인 ‘생태발자국’을 그저 품어 안아주던 마더랜드 지구의 온화한 이미지는 이미 오간데 없이 사라진 지 오래다. 오염의 과포화 상태에 이르자 지구는 매우 즉각적이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사라지는 생물종, 사막, 태풍, 홍수, 폭염, 초미세먼지 등 기후재앙은 지구가 우리에게 즉각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아주 흔한 방식이 됐다.

우리는 폭주하는 자본주의 기계의 광란을 잠시나마 잦아들게 한 코로나19와 같은 미생의 바이러스에 어쩌면 감사해야할 지 모른다. 코로나19 재난 상황이 본격적인 지구 재앙의 시작을 알리는 화급한 경고처럼 느껴지기도 하거니와, 이 미생의 하찮은 존재가 질주 본능을 지닌 자본주의 기관차를 잠시 멈춰 세우면서 우리가 잊고 살았던 사회적 약자들을 주목하게 했고, 인간 아닌 뭇 생명과 사물들에 하나둘 생기를 되찾아 준 까닭이다. 달리 보면 코로나19가 인간 생명에는 극도로 위협적이지만 정작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을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촉매가 된 셈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인류세의 아주 작은 징후라면, 기후위기는 인류세의 전조다. 기후위기의 근본적 대안 모색 없이는 감염병 재난은 매번 잊을만하면 다시 찾아올 인류의 불청객이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들은 자신을 둘러싼 크고 작은 사건들과 사물에만 익숙했지, 전체 시스템으로서 지구 그 자체를 집중해 보는데 소홀했다. ‘지구행성주의’는 이렇듯 무상으로 제공되며 무한 수탈되어 온 ‘저렴한 지구’라는 공동 자연 자원의 관리 실패와 비극이 우리의 비수로 되돌아온 현실을 꾸짖는다. 지구행성적(planetary) 시각은 지구 위기 사태의 급박함을 알리는 데 있어서 나름 강력한 경고 효과와 함께, 파국의 대비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자연히 운명 공동체적 관점은 지구 시스템을 구제하기 위해 그 안에 수없이 서로 다른 인간과 생명 종들의 평화롭고 평등한 관계와 공존을 권고할 수밖에 없다.

디페시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 2017)의 강조처럼, 인류세 위기는 ‘행성의 고통’, ‘다른 종의 고통’에 대한 긴급한 기후행동을 요청한다. 인류세는 지구 생명들의 공동 운명과 (비)인간 생명 종들 사이의 연대와 협력을 강조하며, 지구 생태 위기의 공동 대응을 자극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하지만 이의 맹점은 자본주의 성장과 축적의 환경 폐해가 무엇인지를 지적하거나 기후위기의 실제 주범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누가 주로 피해를 입고 있는지를 꼼꼼히 살피는데 대단히 성기거나 때론 무심하기조차 하다는 것이다. 지구 위기 극복의 대오에 세계 시민들이 동참할 것을 주로 호소하면서, 오늘의 인류세 문제의 발생 원인을 우리 인간 모두의 탓이라 뭉뚱그린다.

이 점에서 지구 생태의 자본세(capitalocene) 비판과 생태 전환의 시도 없이, 그저 오늘의 인류세 위기를 우리 모두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운명 공동체적 논의나 과학기술에 대한 인간의 철저한 맹목은 순진하거나 허망하다. 지금도 지구의 생태분노로 인한 피해와 죽임을 당하는 생명들은 여전히 빈약한 환경 조건에 노출된 가난한 이들, 여성과 아이, 동식물 종으로 공식 기록되고 있다. 반면 기후위기를 유발하는 해당 국가 정상들이나 정치인들은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해왔다. 이제까지 지구행성 위기 테제는 인류 절멸의 거대 서사만을 전경화하는 대신, 구체적으로 고통 받는 존재들을 우리의 시야에서 저 멀리 사라지게끔 했던 것이다.

 

2. 과학기술의 오만과 과신

자본세적 생태교란을 외면하는 면죄부에 부합하듯,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 등 지구 위기관리 시스템의 범정부 혹은 각국 정상들 간 국제협의체는 형식적 합의만을 행하는 퍼포먼스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외려 현실에서는 지구 생태위기 상황에 대한 실질적 규제나 대안 마련보다는, 자본주의 시장 기제를 통한 또 다른 환경 산업의 성장 이윤 창출 방안을 고안하려 하거나 또 다른 첨단 공학적 해법들만이 난무한다. 자본주의 과학기술의 개조 능력을 과도하게 믿는 이들 근시안적 논의는, 현재의 지구 위기를 인류의 오만에서 비롯된 결정적 증거로 보기 보다는 지구를 새롭게 제어하려는 인간 문명 능력의 기회로 본다는 점에서 대단히 위험하다.

지구 생태 위기를 또 다른 첨단 신기술과 과학의 세례로 덮으려는 오만한 인간들의 구상을 보자. 이들은 기후위기와 온실가스 문제를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병폐로 보고, 또 다른 동시대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해 이를 돌려막는 것이 가능하다는 발상을 갖고 있다. 인간 과학기술의 자연 지배 욕망이 지구 생태 파괴의 현실로 드러난 오늘의 상황에서도, 더 거대한 과학과 첨단 기술을 매개해 자연에 대한 인간 통제력이 유효하다고 보는 어긋난 믿음이 끈끈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고도 과학에 의해 생태위기를 제어할 수 있다는 자신만만한 낙관론은 실상 주류 지구촌 사회의 국제기구들이나 일부 환경단체들의 의식에도 팽배해 있다. 가령 기후온난화의 해법으로 유황산화물의 에어로졸을 대기상층에 살포해 태양광을 차단하여 지구를 냉각하려는 지구공학적인 해결책을 보라. 이는 일종의 ‘태양 지구공학(solar geo-engineering)’이라 불리는 환경공학적 해법에 해당하는데, 현재 지구 기온 상승 흐름을 뒤바꿀 인간의 대안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돼 언급되고 있다. 이 저렴한 국부수술식 위기 탈출 해법은 지구 기후나 생태계를 불안정하게 만들 그 어떤 다른 환경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무모하다. 그보다 더 큰 위험은 인간 과학기술에 대한 과신과 오만에 있음은 물론이다.

또 다르게, 생태위기를 자본주의 사업화하는 경향 또한 경계해야 한다. 대체 에너지 개발이나 연료 효율성이란 명목으로 또 다른 반사 이익의 기회로 삼으려는 ‘그린’ 환경 비즈니스 사업체들이 크게 줄을 잇고 있다. 여전히 꽤 많은 이들은 핵에너지의 효율성을 가장 높게 사고 가시적으로 탄소 배출이 적다는 이유로 핵 발전 유지를 옹호하는 경향이 크다. 이를 유지 관리하고 폐기하는데 소요되는 수많은 생태 위험과 비용을 외면한 까닭이다. 게다가 태양광 발전, 첨단 반도체 생산, 인공지능 기술 개발 또한 마치 무공해산업으로 취급되는 정황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태양열 전지의 제조와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문제, 반도체 공장의 맹독성 화학물질 생산, 여의도 크기의 데이터센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드웨어 장비의 열기와 이를 식히기 위한 천연 자연수의 사용은 또 다른 지구 생태 오염원들이 된 지 오래다. 산업자본주의의 유물로부터의 탄소 배출이 지탄받는 것과 달리, 이들 신생의 것들은 꽤 환경 친화적이고 진화된 테크놀로지로 포장되면서 또 다른 반생태적 효과를 은폐한다.

 

3. 첨단 기술의 생태 공백들

대개 우리는 기후 위기의 주범이 화석원료에 의존한 전통 산업 공장과 석탄 발전소의 탄소 배출과 온실가스 효과라 단정한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첨단 신기술이 야기하는 반생태적 파괴력에는 무심하다. 심리적으로 우리에게 비트의 세계가 무색무취의 녹색 청정 지대처럼 여겨지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것은 디지털 첨단기업들 또한 탄소경제의 일부라는 사실에 있다. 우린 자주 첨단 가상 경제의 동력이 현실 세계의 화석원료 경제와 인간의 산노동을 근간으로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잊고 산다.

이제까지 우리에게 일상 속 온라인 데이터 활동이 탄소 경제와 얼마나 어떻게 맞물려 있는 지는 그리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각종 스마트 컴퓨터와 5G 스마트장치의 명멸하는 스크린 위의 불빛이 화석원료 에너지 기반 없이는 전혀 기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첨단 닷컴 경제가 주된 에너지 공급원을 화석원료에 의지하고 대체에너지 전환이 미미한 상태에서, 결국 이들의 주된 활동은 곧바로 온실가스 효과로 이어진다.

이탈리아의 공유지(커먼즈) 이론가인 맛시모 데 안젤리스는 우리의 온라인 활동과 탄소 배출과의 밀접한 유기적 성격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는데, 이를 옮겨보자. 가령 누군가 컴퓨터 앞에 앉아 구글 검색을 한다고 치면, 약 5~10 그램, 인터넷 브라우징을 하면 초당 20밀리그램의 탄소 배출을 초래한다. 단 몇 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웹 검색에 소모되는 전력량은 보통 주전자 물을 끓이는 데 투여되는 에너지와 맞먹는다. 한 때 서구인들의 관심을 크게 받았던 ‘세컨라이프’ 같은 가상현실 게임의 경우, 누군가 하나의 아바타를 유지하려면 매년 1,752킬로와트시(KWh) 전력량을 소모한다. 이는 약 1.7톤의 탄소 배출량에 해당하고, SUV 자동차에 견주어 볼 때 서울과 부산을 거의 5번 왕복 주행하는 양과 같다.

데 안젤리스는 아주 당연하게 좀 더 복잡한 컴퓨터 작업일수록 더 큰 전력 소모와 탄소 배출로 연결된다는 점을 우리에게 확인해주고 있다. 마치 전원을 켜고 전깃불을 켜고 물을 끓이고 선풍기를 돌리고 텔레비전을 보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아니 때로는 그 이상으로 우리 모두는 온라인 공간에서 무언가를 찾고 행하면서 지구 온실가스 효과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물론 그의 진술은 대체 혹은 재생 에너지 전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석탄원료 에너지 기반의 오늘 현실을 가정한다.

 

4. 첨단 IT기업과 생태 위기

닷컴기업들은 일반인들보다 좀 더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방식으로 지구 온실가스 효과에 기여한다. 이를테면, 닷컴기업들은 그들 시설의 재생에너지 사용과 데이터센터의 “청정 냉각” 과정이나 “절전형 에너지 소모”를 중요한 기업 홍보 소재로 삼아왔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들이 무색할 만큼 정황은 크게 다르다. 미국 IT 연구 및 자문업체 가트너 조사에 따르면, 휴대폰과 컴퓨터 등 첨단산업이 만들어내는 지구온난화 효과는 전세계 이산화탄소 방출량의 적어도 2%에 이른다.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10 여 년 전 통계치 임을 감안해야 한다. 가장 최근 ‘인공지능(AI) 나우 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이들 닷컴기업들의 지구온실 효과가 2020년에는 거의 두 배인 4% 수준, 2040년에는 14%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쉽게 비유하면, 현재 닷컴기업들의 화석원료 소모 수준은 매년 전 세계 항공기들이 운행 중 방사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에 맞먹는다. 무엇보다 닷컴 업계가 유지하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와 첨단 통신 인프라 장비의 냉각장치 가동을 위한 에너지 소모는 이보다 더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닷컴기업 탄소배출량의 70% 정도가 이들 거대 데이터 저장소로부터 발생하고 있고, 이의 온실효과 영향력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이렇듯 첨단기업들의 탄소발자국이 앞으로 계속해서 증가하리라 예측하고 있다. 더군다나 굴뚝공장들에 비해서 닷컴기업들은 이제까지 공적 감독이 쉽지 않은 만큼, 대체 에너지원의 비율이나 화석원료 에너지 소모량에 대한 정보가 미비하거나 내부적으로 이를 아예 공개조차 않고 있다는데 문제가 크다.

최근에는 신기술의 총아로 떠오른 비트코인 등 채굴 작업이 만들어내는 전력 소모가 새로운 환경 재앙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캠브리지 대학의 ‘캠브리지 비트코인 전기소비 지수’에 따르면, 한 해 비트코인 채굴에 들어가는 전력량은 74.01 테라와트시(TWh)로 추정된다. 이 전력량은 현재 칠레 등 남미 국가의 한 해 평균 전력 소모량을 능가하는 수치다. 문제는 늘어나는 채굴량의 대부분이 현재 주로 석탄발전소를 에너지원으로 삼는 중국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또한 여기에는 더 많은 비트코인을 생성하기 위해 고난이도의 산식을 풀어야 하고 이를 위해 더 큰 처리 용량의 장비를 들이면서 더 많은 에너지 소비를 유발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 또한 잠재해 있다.

혹자는 적극적 대체에너지 수급 노력 없이 닷컴 기업들의 지구 온실가스 효과를 나무라서만 되겠느냐고 문제제기 할 수도 있겠다. 외려 문제는 그들 스스로 ‘청정’에너지 사용 업체라 홍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첨단 신기술을 활용해 생태 파괴의 기술 구조에 적극 편입하는데 있다. 가령 IT전문뉴스 <기즈모도>에 따르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은 화석원료의 대표주자인 유전 개발업체들의 성장을 돕고 유전 채취를 가속화하면서, 인공지능, 자동화, 빅데이터 등 최첨단 기술들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비지니스 활동을 하고 있다. 닷컴들이 관련 부서를 신설해 유전 사업자와 사업 협력 관계를 맺고, 원유의 탐사, 추출, 생산, 관리, 노동 대체 등에 기술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닷컴기업들이 오히려 화석원료 생산을 촉진하면서 기후위기에 일조하고 이를 인공지능 자동화해 원유 생산을 배가하는, 환경 파괴의 촉진 효과까지 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는 ‘파리기후협정’에서 인류가 약속한 유전 개발의 제한을 위배하는 자본과 기술의 욕망이기도 하다.

 

5. 야만의 테크놀로지에 속박된 이들

당장의 기후위기도 문제이지만, 첨단 테크놀로지 역시 지구 생태와 지구에 살아가는 종들의 생존 조건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헐벗은 박탈 상태로 내몰고 있다. 다시 말해 첨단 기업들에 의한 온실효과가 바로 닥친 우리의 생태 위기 상황이라면, 이른바 인간의 기술 예속과 속박의 문제는 첨단 테크놀로지로 촉발된 지구 생명 종의 또 다른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대체로 기술 예속과 속박은 힘없고 박탈당한 이들 주위에 늘 꼬인다. 반생태적 테크놀로지에 예속된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주류 기술 체제로부터 소외된 이들, 방사능과 독성 화학기계로부터 일부 신체 능력을 잃은 이들, 중요 기술 설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권한에서 배제된 이들, 데이터 인권을 박탈당한 이들, 자동기계의 전산 논리에 심신이 피폐해진 이들, 불안한 플랫폼 노동으로 위험 상태에 처한 이들, 무인 자동화로 직장을 잃고 삶이 위태로워진 이들을 지칭한다.

첨단 닷컴 환경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물질 오염원, ‘전자쓰레기’는 생태 오염의 주범이 된 지 오래다. 플라스틱 오염과 함께 이는 지구 위기의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일부가 됐다. 이 반생태적 하이테크 부산물들은 자연 파괴와 함께 인간 생명 파괴나 피폐화 또한 크게 이끌고 있다. 가령 저개발국 아이들은 전자쓰레기 더미에서 쓸 만한 구리와 고철을 발라내기 위해 종일 연탄불 위에 꽁치 굽듯 전자 기판을 태우고 폐자재로부터 피어오르는 온갖 독성 연기를 흡입한다. 스마트폰과 자동차 배터리로 쓰이는 코발트 채굴을 위해 아직 학교도 안 들어간 아이들이 보호 장구 없이 노예처럼 노천 광산에 들어가 탄가루를 흡입하는 것 또한 오늘의 모습이다. 국내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화학물질에 백혈병을 얻어 생명을 잃는 수많은 청년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불과 얼마 전까지 중국의 한 휴대폰 제조 공장은 열악한 환경 속 스트레스에 시달린 많은 여공들이 투신해 ‘자살공장’이란 오명을 얻기도 했다.

무엇보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노동 현실에 처한 이들에게 테크놀로지는 비수가 되거나 악귀처럼 들러붙는 경우가 흔하다. 줄곧 노동의 피폐화나 ‘위험의 외주화’는 사회적 타살의 기계 장치와 맞물려왔다. 유통상품 재고관리의 빅데이터 분석과 예측력이 높아지면서, 낮과 밤 노동 리듬에 덧대 새벽배송 노동 형태가 강제 생성되고, 배달노동은 24시간 극한의 생존 능력의 시험장이 되고 있다. 플랫폼 배달노동이 활성화되자 수많은 라이더들의 배달 사고율이 급증하고 있다. 지하철 구의역과 태안발전소 사망 사고 등 전국 단위 산업 현장들에서 하청과 재하청, 파견, 이주 노동에 지친 청년들의 사회적 타살과 죽임이 일상화하고 있다.

기술 재난 상황도 다르지 않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수습과 방사능 피폭의 중심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힘없는 지역 주민들이 희생양으로 자리한다. 기후위기에 의해 야기된 해일이나 태풍 등 자연 재난으로 인한 사망 사고는 여성, 노약자, 어린아이 등 빈국의 약자들에 집중된다. 사회적 포용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 야만의 기술 환경에 밀려 약자들이 생존의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서 과로사와 자살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첨단 기술의 편리와 효율성만큼이나 이로부터 사회 약자들의 기술 소외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6. 테크노자본의 생태 책임

닷컴기업들이 하이테크 변장술로 무공해 산업들로 추앙받고, 효율의 지배 논리에 따라 기계에 예속된 빈자들은 사회로부터 점차 추방된다. 인간 종들의 첨단 테크놀로지에 대한 자만, 오만과 함께 성장과 발전에 대한 맹신은 지구 생태를 위태롭게 하고 사회 빈곤층에 대한 환경 소외를 크게 키워왔다.

오늘날 야만의 기술 조건을 떨치기 위해서는 첨단 기술을 매개한 극도의 ‘성장숭배’를 떨쳐내고 자연과 인간 사이에 선순환적으로 이뤄지는 물질대사 과정에 균열을 야기하는 근본 원인들을 제거해, 생태 합목적적인 기술문명의 방향을 세워야 한다. 생명 존중 없는 혁신 논리는 멀리하고, 생태-공생 지향의 기술 체계를 구상해야 한다. 테크놀로지의 방향은 지구 자연과 관련해서는 ‘저렴한’ 자원의 수탈과 성장중독 및 발전 패러다임을 떨쳐낸 ‘생태기술(ecological technology)’의 전망을, 인간 사회 공존과 연대의 미래와 관련해서는 지상의 모든 약자와 타자들과의 ‘공생기술(convivial technology)’적 전망을 함께 도모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먼저 기후위기와 관련해 첨단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이 무엇일지를 따져 물어야 한다. 현재 탄소배출에 일조하거나 온실가스를 상승시키는 닷컴 기업들의 주요 기반시설과 활동을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바꾸려는 에너지 수급정책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IT기업들의 에너지 소비량이나 대체 에너지 수급 정도가 얼마인지 투명하게 공개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전환의 자발적 노력이 어려운 경우에는, 기후위기와 무관한 듯 보이지만 이에 크게 일조하는 닷컴 기업들의 증가하는 환경 영향력을 공식적으로 규제할 탄소세 도입, 에너지 소비 효율을 높이는 기술설계 노력에 대한 에코 인센티브나 세제 혜택, 화석연료 사용을 촉진하는 협력 사업과의 절연 방식 마련 등 사회적 규제 수단이 가능한 지 따지는 일도 중요해진다.

나아가 긴급한 기후위기에 대응해 온실가스 배출을 막기 위해 모든 화석원료를 대체에너지로 단계별 전환하고 사회 빈곤층의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그린 뉴딜’ 정책이 국내에서 어떤 전망을 지닐 것인지를 근원적으로 따져야 한다. 최근 한국판 뉴딜의 발표 이후 ‘그린 뉴딜’이 ‘환경 비즈니스’나 ‘기후 케인즈주의’의 시장 변종들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린 뉴딜’에 첨단 디지털 조건이 낳을 수 있는 반생명적, 반생태적 부메랑까지도 함께 계산해 넣어야 한다. 예를 들어 ‘디지털 뉴딜’로 인한 전자쓰레기 오염, 데이터 저장소들과 지구온실 효과, 닷컴 기업들의 화석원료 소모 증가 등 공해 문제들이 ‘그린 뉴딜’과 서로 얽혀있다. ‘디지털 뉴딜’의 성장론이 ‘그린 뉴딜’에 치명적일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기술 성장의 생태주의적 재구성이 필요하다.

기술과 생태의 두 가지 사안을 기능적으로 분리해 접근하는 우리의 관행을 경계하고, 사물과 생태가 연결된 전체 순환계를 관통해 읽도록 노력해야 한다. 보다 근원적으로 첨단 테크놀로지의 반생명적 파탄과 전횡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의 신체를 시장의 유통 자원으로, 로봇 기계를 인간의 종이나 심부름꾼으로,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개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기술 효율성에만 기댄 혁신 논리를 걷어내는 일이 시급하다. 첨단 기술이 지닌 혁신 잠재성을 확장하는 당위만을 앞세워, 지구 환경과 생명파괴 행위를 그저 묵인할 순 없는 일이다. 더불어 자본주의 기술 예속 문제를 해결할 상생과 포용의 기술 미래 또한 함께 고민해야 할 의제이다.

우리 스스로 첨단 과학기술 중심의 성장과 발전주의 세계관을 바꿔야 한다. 인간 생태발자국이 만든 폐허로부터 재기 가능한 수준의 지구 회복력을 고려한 과학기술의 새로운 대안적 전망이 필요하다. 이는 과학기술의 생태 합목적적 방식의 재탄생을 뜻한다. 기존 자본주의 시장의 물질적 재화와 생산 기여도로만 과학기술의 성과를 측정하는 양적 패러다임 또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지구 사회와 생태적으로 부합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공동의 사회 가치 영역들을 새롭게 창안해내야 한다. 이는 첨단 신기술의 성장 신화를 걷어내고 한 사회의 생태 조건과 회복력을 고려한 적정의 민주적 테크놀로지의 채택과도 관계한다. 새로운 공생과 호혜의 테크놀로지 전망에 기초한 지구와 지역 생태 모델링이 시급하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기술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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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1/01/0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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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농산물 자급율이 43% 정도 된다고 하면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43%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맞는 말이지만 따져 보면 우리 농산물이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종자의 대부분은 수입하고 있다. 이를 심기위해 밭을 만들어야 하는데 농기계는 수입 석유로 가동한다. 결정적인 건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일손인데 국내 농업노동 자원이 점점 고령화되고 부족해지면서 외국인 노동자 의존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조수익(농산물 총 매출액)에서 생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올라가 60%를 상회하는 수준이 되었다. 만원어치 팔면 6천원은 농지 임차료, 농기계값 상환, 농기계 임차료, 농업노임, 종자대, 비료값, 시설비, 기타 경영비 등으로 들어가고 농민들 손에 들어오는 농업소득은 4천원이 채 안되는 수준. 1년에 1억 매출을 올리는 농민들은 말이 ‘억대 농부’이지 실상 농업 소득은 4천만원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농민들은 비닐 하우스 등 시설을 늘리거나 소득이 높은 인삼이나 과일 농사 혹은 축산으로 전환하며 규모를 늘린다. 시설이든 농지 면적이든 규모를 늘리면 혼자 감당할 수 없고 마을에서도 품을 구할 수 없으니 외부에서 노동력을 사와야 한다. 한동안은 농촌에 살다가 인근의 도시지역으로 이사가 살고 있는 아주머니, 할머니 들이 외부 농업노동을 감당했었는데 이들이 고령화되어 더 이상 노동을 제공하지 못하게 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지난 해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오지 못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농사를 짓던 농민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일꾼을 구하기도 어려웠지만 부족한 노동력으로 인해 임노동비용도 크게 올라 이중고를 겪었다. 그런 가운데에도 국내에 남아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한 농장들은 그나마 농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농사를 지어서 올리는 수입이 줄어드니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규모를 늘려도 실제 소득은 크게 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들이 고용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생활여건이나 노동조건을 보장해 주기가 쉽지 않다.

소득을 늘리기 위해 규모를 키워야 하고 늘어난 농사규모를 감당하자니 농업노동자를 고용해야하고 늘어난 일꾼들에게 급여를 지급하려고 다시 규모를 늘리는 이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출신 여성노동자인 ‘누온 속헹’(31세)씨가 지난 해 12월 20일에 비닐하우스로 만든 숙소에서 자다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리고 올해 2월 1일에는 여주에서 또 다른 캄보디아 출신 남성 노동자가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두 사람 다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속헹씨는 가장 추운 겨울날 전기가 끊겨 전기장판도 못켜고 자다가 숨졌다고 한다.

‘속헹’씨 사고가 일어난 후 고용노동부는 올해부터 외국인 노동자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비닐 하우스 내 컨테이너나 조립식 패널로 만든 숙소를 제공하는 농가에게는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를 내주지 않는 ‘외국인 근로자 숙소 기준강화 방안’ 을 적용하겠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들에게도 차별없이 노동법을 적용하고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 행복추구권과 사람답게 살 권리 역시 똑 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이들에게 최소한의 주거환경을 갖춘 숙소가 제공되어야 한다.

그런데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농가들은 대부분 외국인 들을 위한 주택을 준비하고 있지 않다. 이유를 들자면 숙소를 짓는데 돈이 많이 들어간다. 두 사람이 거주할 정도의 공간인 열평짜리 집을 평당 5백만원의 최소비용으로 지어도 농지전용비, 설계비, 대지 조성비 등을 포함하면 7~8천 만원의 목돈이 들어간다. 집을 짓는 비용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지만 농민들 대부분은 남의 땅을 임차하여 농사를 짓기 때문에 땅 주인들이 집을 짓게 허락을 해주지 않는다. 또 집을 지으면 1가구 2주택이 된다.

고용노동부의 조치가 나오자 농민단체들은 반대하고 나섰다. 고용노동부의 방침대로 하자면 대부분의 농업 경영주들은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를 받지 못하게 되어 인력수급에 차질을 빚게 되고 사실상 농사를 중단하라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조치도 이해가 되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열악한 환경을 강요하는 것도 중단해야 하고 가중되는 생산비에 코로나 위기로 인해 인력을 구하기도 힘든데 제대로 된 숙소까지 마련하기 힘든 농가의 처지도 이해가 된다.

우리나라 농축수산물 생산과정의 상당 부분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의존하는 현실을 금방 바꿀 수도 없다. 현재 우리 농업 현실은 외국인 노동자들 없이는 그나마 절반도 안되는 식량자급율을 유지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이런 현실은 농가에 압박을 가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이를 개선하려면 단기적 과제와 중장기적 해결책을 세워야 한다.

나름 급한대로 장·단기적 대안을 생각해 봤다.

단기적 해결책으로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주거환경을 최소한이라도 개선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우리나라보다 따뜻한 지역 사람들이다.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난방시설을 설치하고 취사와 화장실, 욕실 등 생활시설은 개선되어야 한다. 고무통을 묻고 널판지 두 어개 걸치고 거적대기로 가리는 곳에서 용변을 보게 해서는 안된다.

중장기 대책으로는 냉난방 설비를 갖추고 조리와 현대식 화장실과 욕실을 갖춘 표준화된 거주시설을 농식품부와 지방정부가 설계하고 이런 시설을 갖춘 농가에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고용허가를 내어주는 것이다. 이 시설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농가에 신고만으로 설치할 수 있게 하고 비용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일부 보조하고 농가가 부담하되 시설 자금은 저리로 융자할 수 있는 보조금을 만들어 농가가 큰 부담없이 외국인 주거시설을 갖추도록 한다.

이 글을 처음 구상할 때는 어떤 대안이라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주변의 농민들이나 농민들의 처지를 잘 이해한다는 생활협동조합의 임원들 그리고 농업전문가들과 대화를 해봤다. 그런데 여러 가지 규제가 얽혀있어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농식품부와 법무부, 고용노동부, 외무부 등 부처 간에 풀어야할 문제 그리고 세제와 보험 가입, 교통법 등 많은 부분에서 얽혀 있다.

그렇지만 이대로 규제와 압박 그리고 불법과 관행으로 유지할 수도 없다. 시간이 지나 잊혀지길 기다린다면 제2, 제3의 속헹씨는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농업에 대한 정부와 국민들의 시선과 태도가 바뀌고 식량안보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범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어쨌든 그들이 현재 우리 국민들의 먹을 거리를 해결하는 가장 큰 일꾼이고 이들을 대신할 수 있는 농업 노동력을 단기간에 쉽게 확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재욱

목, 2021/03/04-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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