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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의 장을 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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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의 장을 열면서

admin | 월, 2019/11/04- 20:15

편집자의 글:

올해도 예외 없이 기후변화에 따른 온갖 재난이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모두를 열거할 수 없는 엄청난 재난현상들이 해가 갈수록 정도를 더하고 있고, 연전(年前)부터 국제회의마다 기후변화를 넘어서 생태위기와 인류세의 멸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사회는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무감하고 무책임으로 일관해 오고 있다. 에너지 과소비의 산업구조, 일인당 폐비닐 배출 세계 1위 국가, 탄소배출량을 감소하기는커녕 화석연료발전소 건설을 금융 지원하는 악당국가, 겨울과 봄철이면 찾아오는 미세먼지의 공습 등이 오늘의 대한민국 자화상이다.

근본적인 성찰과 전환이 요구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대개 평범한 시민들은 일상에 빠져있는 가운데 무능한 정부는 성장률과 GDP수치만 타령하고, 무지하고 시대역행적인 의회는 자신들의 정치적 셈법에만 빠져 있다.

<다른백년>은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이라는 주제를 연구해온 한윤정 박사와 함께 한국사회의 현실을 돌아보고 깨어있는 시민 여러분들의 연대를 통하여 미래세대를 위한 실천적 좌표를 제시하고자 <생태문명전환> 프로젝트라는 주제의 글들을 매주 연재하기로 하였다.


[1] 현재 우리 문명은 어떤 토대 위에 세워졌을까

기후변화는 잘못된 시스템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전환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이것의 가장 뚜렷한 증상은 만연한 위기와 불안이다.

가장 큰 위기는 기후변화와 환경파괴이다. 이미 지난 세기부터 나온 진부한 이야기, 아직 극단적 상황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 이야기로 여기기에는 심각한 상황들이 지구 곳곳에서 벌어진다. 매년 최고기온을 경신하고 대형산불이 나고 경작지가 줄고 수많은 종이 사라진다. 플라스틱이 바다를 뒤덮고 가축전염병이 국경을 넘어 창궐한다. 이른바 인간이 지구의 대기와 지질을 바꿔놓은 ‘인류세’로 접어들었다.

이렇듯 병들어가는 지구 위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힘들고 불안한 삶을 살아간다. 극소수 특권층을 제외하고는 중산층부터 빈곤층까지 모두 시스템의 노예가 돼서 어디로 향하는지 확실하지 않은, 모호한 미래를 향해 달린다. 불평등은 점점 심화한다. 불안을 가져오는 두려움의 대상은 때로는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로, 때로는 인공지능이라는 신기술로, 때로는 무역전쟁과 마이너스 경제로, 나아가서는 계층 갈등과 정치적 혼란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대책 마련에 부심한다. 기후변화를 조금이라도 늦추거나 기후붕괴에 대응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을 대체할 수 없는 직업을 상상해 거기에 맞게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저성장 나아가 마이너스 성장시대에 맞춰 청년이나 노인 수당을 신설하거나 복지제도를 개편한다. 모든 이해관계가 모이고 조정되는 정치에 관한 한 대안 마련이 더욱 쉽지 않지만, 분권이나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위기는 기회라는 점에서 현재는 대안과 혁신을 모색함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런데 우리의 고정관념은 과감한 혁신이나 도전을 어렵게 한다. 고정관념이란 다른 말로 하면 사고의 프레임, 지식의 패러다임,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설명하는 존재론과 우주론, 즉 철학과 과학이다(과학이라고 하면 실험과 수치에 입각한 실증과학을 가리키기 때문에 실재를 질문하는 자연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도 있다). 현재가 어떤 토대 위에 형성됐는지 그 사고의 뿌리를 파고들지 않는다면, 진정한 변화는 불가능하다.

 

화석연료가 우리 문명의 기반이다

현재 우리 문명은 어떤 생각의 토대 위에 세워졌을까.

경제주의: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소비하는 것,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은 모든 가치에서 가장 우위를 차지한다. 우리는 돈 없이 절대 살아갈 수 없다고 믿는다. 그 규모와 운영원리가 공공의 통제범위 바깥에 있는 글로벌경제, 특히 금융경제의 시스템 속에서 현상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재앙이 닥치며, 이는 모든 사람에게 해악을 끼친다고 믿는다. 경제주의적 사고방식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미국 민주당이 월 스트리트와 결탁한 것처럼 한국 민주당도 재벌을 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긴다. 생산과 소비인구를 늘리려는 출산장려 정책은 물론, 소득주도성장처럼 진보적으로 보이는 정책의 배경에도 지독한 경제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개인주의: 돈이 절대적인 이유는 남이 나를 돕거나 책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심지어 가족관계에서도 금도가 됐다. 성인이 된 개인은 재정적으로, 정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 전통사회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난 개인의 자유를 다시 반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개인이란 관계의 구성물이다. 사람은 가족, 친구, 이웃, 타인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삶의 의미와 행복은 관계와 인정감에서 나온다. 아무리 복지사회를 위한 재원과 제도를 마련하더라도, 공동체에 대한 관념과 믿음이 없다면 이는 시혜와 수혜의 일방적 관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분과주의: 오늘날 대학의 전공분야는 놀랍도록 세분화돼 있다. 직업의 세계도 그렇다. 지식인, 전문가는 한 분야를 좁고 깊게 아는 사람이다. 자신의 전문분야만 탐구하는 데도 시간과 능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는 아예 귀를 닫고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들은 가치와 당위를 말하는 거대담론에 대해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는 냉소적 반응을 보인다. 학벌주의, 능력주의와 합쳐진 분과주의는 여러 분야를 연결하는 폭넓은 사고를 가로막는다. 학문간 융합은 시장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며, 인간을 연구하는 인문학조차 문화콘텐츠나 테크놀로지를 위한 실용성을 갖추는 수단으로서 스스로의 지위를 유지한다.

실증주의: 실증주의는 이른바 객관적, 과학적 사고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지 않는다. 세속화한 세계에서 종교는 초월적 세계와의 교감이라기보다는 오랜 관습과 제도의 관성으로 남아있다. 때로 자연에서 에너지와 영감을 얻지만, 그것은 지구 자원을 개발과 이용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현대 경제시스템에서 더욱 유능하게 일하기 위한 휴식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무관심은 희망과 가치에 무감각하게 만든다. “절실하게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경험을 사람 사이의 에너지나 우주와의 교감으로부터 설명하기보다 심리학과 뇌과학이 발견한 인간 내면의 사건으로 환원시킨다.

서구에서는 이삼백 년, 한국에서는 백 년 이상 사회를 지탱해온 이런 사고들이 합쳐져 현재의 생태위기, 인간의 위기를 초래했다. 경제주의는 화석연료에 기반한 서구 산업문명을 세계화하는 원동력이 됐고, 그 결과는 자원고갈과 환경파괴로 나타났다. 파국적 결과가 눈에 보이는데도 에너지 전환은 여전히 경제적 이익과 연관돼 논의되고, 탈성장에 대한 언급은 금기시된다. 자연에 대한 외경심은 물론, 자연과의 교감조차 어려운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능과 역할에 충실하며, 넓은 시야를 비전문성의 증거로 간주한다. 사회의 엘리트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며, 경제적 수요에 부응하는 교육이 이를 부추긴다는 것은 문명의 지속가능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다소 위악적으로 서술한 우리 문명의 토대는 그러나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인간의 유전자는 자신의 근시안적 이익만을 위해 행동할 만큼 이기적이지 않다. 이타성이 최고 수준의 이기적 선택임을 밝혀주는 생물학적, 역사적 증거들이 나타나면서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 지식이든 재산이든,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은 과거의 유산과 동시대인들에게 빚진 것이라는 자각과 함께, 산업문명을 탄생시킨 사유화(인클로저)에 저항하는 공유화(커먼즈)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청년세대는 대학이 가진 권위와 대학 자체의 경제주의에 저항하면서 비제도권에서 폭넓은 지식을 탐구하는가 하면, 유목민적이고 생태적인 삶을 꿈꾸며 실천한다.

그럼에도 이런 경향은 아직 비주류에 머물고 있다. 주류의 사고와 행동은 여전히 과거의 철학적 토대 위에 서 있으며, 그만큼 전면적 변화는 요원하다. 대안을 추구하는 사람들마저 현재 궤도에 결박된 삶과 이를 거부하는 앎 사이에서 자기분열을 겪으며 조금씩 열정을 소진해간다. 문명의 전환은 명백한 시대적 과제이지만, 그것을 분명한 언어와 힘찬 주장으로 제시하고 많은 이들과 공유할 때만효과적으로 이행될 수 있다. 경제주의를 거부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우리의 존재와 관계를 틀 짓는 개인주의와 분과주의, 실증주의를 극복하기는 훨씬 어렵다.

 

생태문명은 전환의 방향이다

생태문명은 이런 한계를 뛰어넘는 개념으로 제안됐다. 생태는 지구상 모든 존재와 생명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뜻이며, 문명은 사회시스템을 구성하는 모든 분야가 함께 변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생태문명은 기후변화나 환경파괴의 문제와 연관이 깊지만, 그것을 넘어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 지구 전체의 생활양식을 아우르는 말이다. 생태문명은 생태와 문명이 조화를 이루는 전환의 방향을 가리킨다. 경쟁하고 배제하는 게 아니라 협력하고 공유함으로써 적절한 물질적 수준과 최고의 정신적 수준을 가진 문명을 만들자는 이 주장은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유토피아적인 관념인지도 모른다.

생태문명이라는 단어는 여러 문맥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했다.

지구헌장: 2000년 유엔총회에서 발표된 지구헌장은 “지구는 우리의 집이며 지상 모든 것의 집이다. 지구는 그 자체로 살아있다. 인간은 훌륭한 삶의 형태와 문화를 가진 지구의 한 부분이다”라고 선언했다. 또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은 지구를 보호하거나 우리 자신과 다양한 생명을 파괴하는 것, 둘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자신과 지역사회, 소유와 존재, 다양성과 획일성, 단기와 장기, 사용과 육성을 조화시키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함으로써 산업기술문명사회를 재고찰해야 한다”고 했다. 지구헌장은 1992년에 열린 역사적인 리우 환경회의 이후, 유엔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영성적 지도자와 NGO들이 제시한 환경보존과 지속가능개발 원칙을 바탕으로 1994년 초안을 마련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네덜란드 정부의 지원으로 1995년 30개국 대표와 70개 이상의 단체가 모인 가운데 첫 번째 국제워크숍이 열렸고, 1996년 지구의회가 조직돼 5년간의 검토와 보완과정을 거쳤다. 리우 회의의 성과인 ‘아젠다21’의 점검과 지속가능발전목표의 형성에 깊이 관여해온 지구의회가 발표한 2002년 보고서는 지구헌장의 원리를 “생태문명의 원리”라고 명시했다.

중국정부: 중국은 1997년 제15차 당대회에서 지속가능발전을 국가발전전략으로 채택했다. 지속가능발전은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가 1987년 발표한 ‘우리 공동의 미래’에서 “미래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발전”이라고 정의한 개념이다. 그런데 10년 뒤인 2007년 제17차 당대회에서는 지속가능발전 대신, 생태문명을 건설하자는 제안이 등장한다. 이는 지속가능발전이 제시하는 경제성장과 환경보존의 상호관계를 넘어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를 이해해야 한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생태문명은 2012년 공산당 당헌에 포함돼 정치기본노선이자 국가통치전략으로 격상하며, 이때 권력을 승계한 시진핑 주석은 중국식 사회주의의 목표로 경제, 정치, 문화, 사회, 생태문명 건설이 조화를 이루는 ‘오위일체론’을 제시한다. 2018년 생태문명 건설과 환경권을 담은 헌법 수정안이 통과됐고, 행정부처의 대대적 개편에 따라 기존 환경보호부를 포함한 6개 부처와 기구의 환경오염 관리 기능을 통합한 ‘생태환경부’가 탄생했다.

중국의 생태문명 정책은 세계 여러 나라의 모범이 될 만큼 혁신적이라는 찬사와 함께, 현실이 따르지 않는 이상주의이자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새로 부상하는 녹색경제에서 세계시장 제패를 노리는 ‘시진핑의 세일즈 전략’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유엔은 중국정부를 지지해왔다. 유엔환경계획은 2013년 중국의 생태문명을 지지하고 확산시키는 결의안(결정 27/8)을 채택했다. 또 2016-2030년을 목표연도로 하는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수립하면서 중국을 적극적인 동반자로 끌어들였다. 2016년 유엔환경계획이 발행한 중국생태문명 홍보책자 『Green is Gold』(“청산녹수가 금산은산”이라는 시진핑 발언을 인용한 제목)는 “중국의 생태문명 건설노력은 2030 아젠다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의 확산에 중요한 영향을 줄 것”이라며 혁신, 조화, 녹색, 개방, 공유를 원칙으로 내세운 제13차 경제개발계획(2016-2020)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우리의 삶은 생태적 원리로 재조직돼야 한다

2015년은 생태문명 개념 확산에 중요한 전기가 됐다. 그 해 12월 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 환경회의는 지구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에 비해 섭씨 2도 이하로 억제하고, 가능하면 섭씨 1.5도 이하가 되도록 노력하자는 결의안인 파리협약을 채택해 198개국의 서명을 받았다. 각국이 이행계획을 마련해 보고하고 유엔이 이행을 감시하기로 함에 따라 한국도 2030년 이산화탄소 배출추정치의 37%를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했다. 그러나 전체 탄소배출량의 12%를 차지하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4월 이 협약을 탈퇴했다. 한국의 에너지 전환 속도 역시 약속이행을 담보하기 어렵다.

파리협약이 체결되기 몇 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리우 환경회의 이후 50년(2012년)이 되도록 유사한 회의와 결의만 계속됐지 상황은 점점 악화됐다는 것이다. 나오미 클라인의 책 『이것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에 나오는 한 대학생은 2011년 유엔환경회의장에서 각국 대표들을 향해 “당신들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회의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변화가 없이는 기후변화를 막을 수도, 이를 부추기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자원착취적 경제구조를 억제할 수도 없다는 공감대가 확산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영적, 종교적, 철학적 각성을 촉구하는 선언이 이어졌다.

찬미받으소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6월 자신이 주제 선정부터 집필, 발표에 이르는 전 과정을 주도한 첫 회칙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를 발표했다. 회칙이란 보편교회에 대해 교황이 발표하는 공식 사목교서로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오늘의 사회윤리적 문제에 비춰 해석하고 적용원리와 방안을 제시한다. 회칙의 핵심은 통합생태론인데, 이는 생태위기가 비단 환경문제가 아니라 경제사회적 조건과 결합돼 있기 때문에 통합적으로 인식하고 풀어가야 하며, 이를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 경제와 발전에 대한 다른 이해방식을 찾으라는 요청, 모든 피조물의 고유한 가치, 생태계의 인간적 의미” 등을 고려할 것을 주문했다. 통합생태론은 생태문명과 동의어이며 유엔과 지구헌장 그룹, 주요 종교지도자들, 과학계의 열광적 지지를 얻었다.

클레어몬트 컨퍼런스: 같은 2015년 6월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에서는 과정신학자(과정신학은 앨프리드 노드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을 응용한 미국의 진보신학운동이다)이자 환경사상가인 존 B. 캅 주니어의 주도로 ‘대안을 잡기: 생태문명을 향하여’라는 주제의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 생태문명이라는 주제로 열린 사상 최대의 학술행사로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1500여명의 사상가, 작가, 활동가, 신학자, 철학자, 과학자들을 끌어 모았고,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어 기후변화에 당면한 인류의 미래를 토론했다. 컨퍼런스 이후 주최측은 행사의 취지를 잇기 위해 비영리법인인 ‘생태문명연구소(Institute for Ecological Civilization)’를 만들었다. 이곳은 지속가능하고 생태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학제적인 연구를 수행하며, 지방정부 및 연구기관, NGO와 협력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삶이 어떤 방식으로 재조직돼야 하는지 규명하는데 헌신한다.

세계종교의회: 1893년 창설돼 종파를 초월해 가장 많은 종교인이 모이는 세계종교의회는 2015년 10월 유타주 솔트레이크에서 열린 행사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선언’을 발표하면서 생태문명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우리가 맞이할 미래는 새로운 생태문명이다. 이는 생명의 다양성이 확장되고 평화, 정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세계이다. 우리는 지구공동체 안의 인간 가족으로서 생태문명이라는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다.” 이 선언은 지구공동체(지구상 모든 생명의 공동체)라는 상위 시스템에 속한 인간사회의 하위시스템으로 생태문명을 규정한다.

이밖에 생태문명과 유사한 개념은 적지 않다. 문화사학자이자 환경사상가인 토마스 베리는 물리학자 브라이언스 윔과 공저한 『우주이야기』(1997)에서 생태대(Ecozoic Era)라는 조어를 썼다. 지질학 용어를 차용한 생태대는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 생명중심주의, 지구중심주의로 옮겨간 시대이며, 이를 실현하려면 지구와 적절한 관계를 맺으려는 인간의 결정과 투신이 중요하다. ‘만인과 만물이 하늘(物物天 事事天)’이라며 공경의 대상을 한울과 사람을 넘어 만물(동식물)까지 확대한 최시형의 동학사상, 동학정신을 계승해 산업문명의 위기와 기계론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인간 안의 우주생명’을 도모한‘ 한살림 선언’(1989) 역시 생태문명과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

 

생태문명은 진정한 글로컬 문명이다

생태문명 담론은 여전히 형성되고 있다.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 따르면, 생태문명은 실체가 아닌 과정이다. 생태문명을 위해서는 다른 미래를 꿈꾸는 사람과 단체가 서로 연결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유기적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구상해야 한다. 문명의 토대를 바꾸기 위해 철학, 종교, 정치, 경제, 과학, 교육, 문화를 가로지르는 학제적 구상이 필요하며 이론과 실천, 담론과 정책이 만나야 한다. 견고하게 형성된 현재 상황을 개선하는 데서 시작하기보다는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미래를 꿈꾸면서 이를 실현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되짚어 내려오는 과감한 혁신의 과정이기도 하다.

생태문명의 시공간은 산업문명의 시공간과 현저히 달라질 것이다. 산업문명에서 미래는 무한히 진보하고 확장되는 시간이다. 과학기술은 발전하고 생산력은 증대하며 경제는 팽창한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구 용량과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생태문명에서 미래는 순환하는 시간이다.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모두 써버리는 자본주의 경제논리가 아니라 가을에 추수를 마친 뒤 이듬해 봄의 파종을 위해 씨앗을 보관하는 것처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미래, 즉 자본가와 도시노동자가 아닌 농부의 시간이 될 것이다.

생태문명의 공간은 이중적이다. 산업문명처럼 생태문명은 글로벌 문명이다. 서구 근대의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이미 전 세계로 퍼져나간 지금, 지구화 이전 삶의 형태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산업문명이 차등근대화와 분업을 통해 전지구적 착취구조를 형성한 것과 달리, 공동체에 기반한 에너지 자립과 지역순환경제를 추구하는 생태문명은 보다 평등한 세계를 만들 것이다. 모두가 공유하는 단 하나의 지구를 고려하며 살아가는 글로벌 문명인 동시에, 마을 단위로 각자의 삶을 꾸리고 실험하는 커뮤니티 문명이다. “범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에서 실천하라(Think Globally, Act Locally)”는 구호는 지역의 차이를 활용하는 후기자본주의의 경영전략이 아닌, 생태문명의 구호로 전유돼야 한다.

앞으로 ‘생태문명전환 프로젝트’에 연재될 국내외 필자들의 글은 한국생태문명프로젝트가 미국 과정사상연구소와 생태문명연구소, 중국 후현대발전연구원, 한국 지구와 사람 등 국내외 여러 기관과 협력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개최한 컨퍼런스의 성과물이다(2017년 11월 클레어몬트에서 ‘한국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 2018년 10월 파주에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생태적 전환’, 2019년 10월 서울에서 ‘생태문명을 향한 전환: 철학부터 정책까지’라는 제목으로 열렸다). 생태문명을 향한 담대한 꿈과 실천적 제안들이 한국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앞당기는데 영감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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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편집자 주:

향후 국제정치경제의 핵심사항인 다극체제와 다자주의 향방을 결정하는 역할을 주도할 유럽연합의 입장과 전망을 아래 칼럼을 통하여 살펴본다.


21세기를 맞이하던 2000년 첫해의 순간을 우리 대부분은 당시 광범하게 퍼져있던 기대와 열광으로 기억할 것이다. 높은 기대감과 호언장담을 논하는 칼럼들 그리고 서구가 성취한 것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이 넘쳐났었다.

그런데 역사적 흐름에서 보면, 상기의 시각들은 이미 코로나-19팬데믹이 발생하기 이전부터 극적으로 반전되고 있었다. 세계의 대부분 지역에서 좌절과 혼란이 지속되어 왔고, 현재는 자신감이 아니라 공포가 미래의 전망을 대체하고 있다.

21세기가 시작되던 20년 전, 정치와 정책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은 ‘세계화’ 일변도이었고,. 이에 따른 제도적 그리고 실제적 목표가 설정되고 진행되어 왔지만, 정작 충격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2008년에 발생한 지구적 금융위기와 2020년 초이래 현재 진행중인 팬데믹은 상호의존성이 커지면 파급적 충격도 덩달아 커진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에 더하여, 현재 공급사슬의 위기가 증명하였듯이, 전문성과 효율(수익)성의 추구가 불안정을 야기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더구나 해외로 생산거점을 이동시키는 것이 국내적으로 미치는 정치적 영향을 과소평가하여 왔다.

2000년에 도날드 트럼프가 개혁정당이라는 이름으로 대통령 경선에 등장하였다가 실패했을 당시, 누구도 그가 2016년에 재등장하여 공화당을 장악하고 자유무역체제를 반대하면서 결국 미합중국의 대통령에 당선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속에 적혀 있던 선견지명의 문구를 재조명하게 만들었다 “개별단위 국가들은 다른 나라들과 무역을 통하여 번영을 추구하는 과정에 자국에게 돌아올 득과 실을 자신만의 관점에서 판단하게 된다.”

21세기가 시작되는 초반에는 미합중국이 다른 나라들과 경쟁을 의식한다거나 안보에 취약한 국가로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비정부 임의단체의 잠재적 파괴력을 극적으로 재조명시킨 9.11 테러는 미국의 헤게모니라는 황금시기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가져올 국제지정학적 파급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막 미대통령으로 당선된 부시는 러시아의 파트너인 블라디미르 푸틴을 한껏 치켜 올리며 테러와 전쟁에 동참을 요구하였다.

이전까지 러시아는 G8의 성실한 회원국이었고, 북한은 핵무기확산금지체제인 NPT에 가입하고 있었으며, 이란의 비밀스런 핵개발 활동이 시작되지 않았다. 중국은 경제분야에 있어서 미국과는 경쟁하기에는 한참 뒤쳐져 있었으며 국제무역기구WTO에도 가입하지 않은 상태이었다.

그러나 이후, 세계는 격변적인 재구성을 겪으면서 분명한 흔적을 남기었다. 2001년 당시 미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의 23% 수준을 발생시키고 있었던 반면에 중국은 13%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6년에는 양국의 배출비중이 비슷하게 되었으며, 최근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이 온실가스배출의 15% 비중을 차지하는 반면에 중국이 28%를 차지하게 되었다. 물론 일인당 배출량 기준에서는 미국인이 여전히 중국인의 2배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현재 진행중인 팬데믹 위기상황으로 줄기는 했지만, 그동안 탄소배출량은 매년 늘어가는 추세이었으며, 2011년에 비교하여 북극을 덮고 있던 여름시기의 얼음량이 거의 반으로 줄어들고 있다. 기후위기는 이제 구체적인 현안의 현실이 되었으며, 21세기에 태어나 정치참여에 진입한 젊은 세대는 이의 긴급한 해결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20여 년 동안 인류는 서로간의 상호의존성이라는 전례없는 혁명을 겪어 왔다. 인터넷은 모든 지역으로 보편화되었으며, 온라인 네트워크가 우리시대의 아고라(토론의 광장)가 되고 있다. 아직까지 긍정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2010년 초에 아랍의 봄(민주화운동)에서 인터넷 공간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민주화라는 과정에 기여할 잠재적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디지털이라는 도구가 매우 유해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자신만의 최대 이익을 추구하는 거대 기술기업들에 의해, 조작된 알고리즘은 공명효과를 일으키며 공론의 과정을 심각하게 타락(왜곡)시켜 왔다.

더구나 디지털 공간에서 벌어지는 소위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를 통하여 사이버 공격을 진행하고 조작된 거짓정보를 대규모로 유통시키면서 위험한 인물들이 활약하는 무익(위험)한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유럽 역시 다른 지역 못지 않게 디지털화의 부정적인 영향에 노출되어 있다. 최근에 들어 지역기반적인 포플리즘이 뿌리를 내리고 극단적인 양극화가 사회를 멍들게 한다. 2002년에 유로화가 도입되고 2004년에는 유럽연함의 가입에 10개국이 추가되면서 낙관으로 시작되었던 21세기 초반의 전망이 몇 개 국가군의 지속적인 위기, 유로화의 문제점과 난민 그리고 영국의 탈퇴 등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유럽연합의 결속을 강화할수록, 그리고 국제적인 경제와 지정학적 균형이 대서양 연안에서 태평양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BREXIT 등 유럽 내의 분열상이 더욱 첨예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난 2001년부터 이제까지 공동으로 성취한 주요한 성과(milestone)를 흔들고 어둡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지난 20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인류의 평균수명은 67세에서 73세로 연장되었으며, 특히 아프리카의 경우 53세에서 63새로 늘어났다. 동시에 책임있는 자리에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괄목하게 신장되었으며, 아직도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는 있지만, 주요 정부를 대표하는 자리(국가수반)에 19명의 여성이 앉아있다.

미국에서는 조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이제 세계 모든 국가들이 파리기후협약을 지지하게 될 것이며, 유럽연합 역시 통합이 더욱 진척되면서 내부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것이다. 코로나-19 회복기금을 국제적 연대를 통하여 공의롭게 부담하게 될 것이며 빈국들에게는 공여라는 형태로 배분될 것이다.

국제현안들에 대한 대응의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미래전망을 공유하고 문제점들을 공동으로 개선하여 나갈 것이다.

과거의 예를 들어보면, 2008년의 금융위기는 중국의 금융재정확대라는 도움과 국제적 공조를 통하여 극복해 냈으며, 신속한 산업화를 통하여 수억 명의 인류가 가난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만약에 20년 전처럼 정보통신 기술이 부족하여 해당되는 경제부문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지 못하는 조건에서, 현재의 팬데믹 상황을 맞이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제 2020년을 뒤로 하고 21세기 3번째의 십년기간(third decade)을 시작하면서, 최근의 과거에 있었던 실책과 성과를 침착하게 평가해야 하는 시점이다. 미래를 전향적으로 바라보면서, 2000년 전후에 가졌던 순진한 낙관을 되풀이해서는 안되며, 트럼프의 재임기간에 노출되었던 서구진영의 참담하고 나약한 경험을 극복해야 한다.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에는 지구의 지정학적 다극체제를 통하여 국제적인 평화와 협력을 추구해 가면서 인류의 진보를 책임져야 한다. 동시에 디지털 사회에서 발생한 균열을 치유하고 자연과 지속가능한 균형점을 찾아가야 한다.

물론 이는 거센 도전이지만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다. 지난 2020년이 혼란과 실책을 배우는 소중한 반전의 계기로 기억될지, 아니면 악화일로라는 패착의 전주곡으로 남게 될지는, 이제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020-12-24.

Javier Solana

EU의 외교안보정책 고위직과 나토의 사무통장 그리고 스페인의 외무장관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스페인의 국제경제정치연구 센타인 EsadeGeo 책임자 겸 브루킹스 연구소의 특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월, 2021/01/04-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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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아래의 칼럼은 구태의연한 관료적 사고에 갇혀 건전재정을 방패삼아 코로나로 인해 당장 생계의 어려움에 직면한 서민을 위한 정부의 과감한 지원정책을 거부하는 한국의 전-현직 모피아 집단에게 보내는 공개적 경고장이다.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필요한 일자리 창출을 핵심으로 삼아 균형잡힌 경제활동을 유도하는 것’이라는 제임스 갈브레이스 교수의 따가운 일침을 전달한다.


전현직 중앙은행 책임자들은 현대금융이론MMT을 위협으로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케인즈 전통에 입각하여 완전고용을 실현하고자 하는 현대금융이론이야말로 “훌륭한 경제이론과 건전한 정책이며, 정부관리들이 과거식 구태의연한 고집에서 벗어나야 함”을 깨우쳐 준다.

텍사스/오스틴– 중앙은행의 역할을 권한을 가지고 감독해온 관련 인사들은 자신들의 권위가 도전받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들 대부분은 진부하고 시시한 내용을 감추려고 권위적인 전문용어를 섞어가며 마법과 같은 후광(aura)에 의존하여 자신들의 거짓말(myth)을 옹호한다.

J.M. Keynes가 1920-1044년간 영국은행의 총재를 지낸 Montagu Norman과 논쟁을 즐겼듯이, 고답적인 금융론자들과 싸우는 것은 차라리 즐거운 일에 속한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에 연방의회 금융위원회 의장을 지낸 Wright Patman과 Henry Reuss 양인 역시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지난 Arthur Burns와 논쟁하며 그를 고문했던 기록을 가지고 있다. 나는 당시에 Reuss의장을 돕는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그는 Burns의장과 논쟁을 무척 즐겼다.

오늘날에도 현대금융이론MMT는 현직 중앙은행 중역들의 단잠을 괴롭힐 뿐만 아니라 퇴역한 전직 인물들까지 고문하고 있다. 이들은 맥베드 극중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회랑을 걸으면서 외친다 – “빌어먹을!”

두 사람의 예를 들어 보자, 전직 인도중앙은행 총재이었던 Raghuram G. Rajan과 전직 영국은행의 책임자였던 Mervyn King이 그런 인사들이다. 이들은 최근의 공개적인 발언을 통하여 대부분 동의할 수 없는 케케묵은 이론에 기초하여 고함과 겸양을 섞어가며 MMT를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들 인사들은 구체적인 내용의 적시도 없이 막연하게 MMT를 공격하면서도, 자신들이 인용한 사례와 이론이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고 관련된 인물의 이름조차 거명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King의 비난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당신들은 설명할 수 없으면, 그저 약칭만을 되풀이 사용하려 한다. 당신들이 말하는 MMT 다시 말하면 현대금융이론은 마치 마법나무와 같은 것이다.”

나는 그가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Stephanie Kelton 교수가 저술한 “재정적자라는 거짓말-The Deficit Myth”를 지적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확인하려 했지만, 그는 상기 저술의 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분인 Rajan 전직 인도은행 총재 역시Bard대학교의 Pavlina R. Tcherneva 교수를 포함하여 MMT학파를 대표하는 몇 권의 저술에 대해서 이해하는 바가 전혀 없었다,

현대금융이론MMT를 주장하는 주요 인사들이 여성이라는 것이 이분들에게 부담이 되었다면 이는 핵심을 벗어난 이야기이다. 현대의 중요한 경제학을 여성분들이 주도한다는 사실 때문에 저자들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면, 이는 과분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아간 기사도 정신이다.

설령 전직 총재님들이 상기 두 분의 여성경제학자(Kelton과 Tcherneva)들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아도, 이들은 현직 중앙은행의 책임자들이 두려워하고 기피하고 싶어할 만큼 만만치 않은 강력한 영향력을 갖춘 상대들이다.

King과 Rajan은 MMT를 화폐발행비용이 저렴한 정책으로 논쟁을 이끌어 가려 한다. 이들은 중앙은행이 발행한 돈은 민간에 풀리면서 시민들이 지출을 늘려 산업활동을 제고하고 고용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 MMT의 주요 내용이라고 판단하면서 그러한 시도는 로마제국 시절부터 시작하여 영국의 핸리8세를 거쳐 바이마르 공화국과 현재 짐바브웨와 베네주엘라 등에서 시도되고 있지만 결과는 형편없었다고 결론을 짓고 있다.

그러나 멀리 갈 것도 없이 2020년 초 봄에 발생한 대혼란, 즉 코로나-19 팬데믹에 직면하여, 붕괴를 면하기 위해 미합중국이 신규통화량으로 2.2조억 불을 발행하여 민간분야에 풀면서 시민들이 소비를 촉진하여 산업생산과 고용을 촉진시킨 사례를 들여다 보자.

물론 미국 경제가 예상치 못한 대혼란을 맞이하여 상대적으로 잘 나갈 일도 없었겠지만, 급격한 인플레를 유발하지도 않았다. 다시 말하면 미국이 짐바브웨나 베네주엘라 또는 바이마르 공화국처럼 형편없는 모습을 전혀 보이질 않았다. King은 이러한 차이를 간과한 것일까? 이에 더 나가 Rajan은 확신에 가득 차서 짐바브웨 사태까지 예견하지 않았던가?

이들은 MMT가 전혀 새로운 이론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는데, 이 또한 MMT에 대한 학습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이들은 반박과는 달리 ‘New’와 ‘Modern’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금융이론에서 사용하고 있는 ‘Modern’이라는 용어는 케인즈가 1930년에 저술한 “금융에 대한 고찰 treatise on Money”에서 도입하였는데, 그는 현대의 화폐는 주권국가가 법적인 근거에 기반하여 행사하는 권한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권한은 모든 현대국가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사실은 4천년 이상 이미 시행되어온 것이다”  도은행의 총재를 역임한 KIng자신이 현시대의 매우 우수한 대학인 캠브리지 출신으로 케인즈의 이론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고 충격적이다.

그렇다면 현대금융이론MMT의 핵심내용은 무엇인가?

King과 Rajan이 비난하듯이 이는 정책적인 구호가 아니라, 케인즈 통화이론의 전통에 기반한 이론체계이며, 미국의 저명한 경제이론가인 Hyman Minsky와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의 공공정책학 교수인 Wynne Godley등이 공을 들여 체계화시킨 내용이다.

MMT는 현대의 국가(정부)와 중앙은행의 역할을 제시한 것으로 쉽게 이야기하자면 회계의 복식부기 개념을 경제학 개념으로 도입하여 정부와 중앙은행의 자산대장의 변동을 민간영역의 자산변동과 거울의 양면처럼 연동시킨 것이다. Kelton이 아주 평이하게 설명하였듯이, 정부의 부채자산은 민간영역의 잉여자산이 된다는 것 등이다.

현대금융이론MMT는 케인즈의 고전적인 견해를 계승하여, 산업적 주권국가에서 시행하는 경제정책의 적정한 목표는 완전고용, 즉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일자리를 실현하고 보장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는 내가 1978년에 완전고용과 균형성장을 위한 법(Humphrey-Hawkins law)를 제정할 때 주장했던 내용과 동일한 것이다.

완전고용은 균형적인 성장과 합리적인 물가인상과 함께 추구해야 하는 정부경제운용의 목표이며, 상기 법규제정 이후 미국 내에서 정책을 시행할 때마다 ‘국가의 법률로서 준수해야 할 두 가지 의무사항 – dual mandate / full employment & balanced growth)’으로 받아들여 졌다.

요약하자면, 현대금융이론MMT은 시민들이 선호하고 접근가능하며 민주적으로 매우 훌륭한 경제이론의 표본이지만, 구습에 갇힌 중앙은행과 정부관료들은 이를 수용하는데 항상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020-12-23.

James K. Galbraith

미행정부의 거시경제 위원회 의장을 지냈으며, 오스틴 시에 있는 텍사스 대학교의 경제학 교수로 공공시장정책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풍요의 사회’를 저술한 존 갈브레이스의 아들로 뉴욕시립대학교의 폴 크루그만과 더불어 후기케인즈 이론의 쌍두마차를 이끌면서 정부의 과감한 화폐금융 그리고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주장하는 등 민주당의 경제산업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수, 2021/01/0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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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절멸 상황은 이 땅에 사는 인간을 포함해 모든 생명체들의 화급한 문제가 됐다. 인간이 쌓아올린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부산물이 지구 생명에 말기 판정을 내린 비공식 학명, 소위 ‘인류세(anthropocene)’ 시대를 우리는 맞고 있다. 인류세는 인간(the anthropos-)이 지구의 지배종이 되면서 새롭게 지층에 퇴적된 문명의 쓰레기더미의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cene; epoch)를 이르는 말이다. 가령 흙이나 유기물과 뒤섞인 플라스틱 찌꺼기, 콘크리트 잔해, 혼합시멘트, 핵물질, 살충제, 금속성분, 비료 반응성 질소(N2), 온실가스 농축 효과의 부산물 등이 인류세의 퇴적층을 이룬다. 동시대 지구 지질층을 일컫는 원래 학명인 ‘홀로세(holocene)’를 이 기괴한 비공식 용어가 대체할 정도로, 인류세란 말은 마치 파국으로 치닫는 지구 시대의 종말을 카운트다운하기 위한 경고처럼 들린다.

 

1. 인류세, 자본세, 그리고 과학기술

인류세는 그렇게 지구 절멸의 위기 상황을 일깨운다. 대륙 곳곳이 사막화로 물이 메말라 가고, 하루에도 수많은 생물종이 끝없이 사라져가고, 갈 곳 잃은 쓰레기 노폐물은 쌓여가고, 핵폐기물과 오염수는 방치되어 생태계에 상상하기 어려운 위험을 노출하고, 바다 생명들은 플라스틱에 질식해 가고, 인간 자신의 섭생은 스스로 만든 각종 오염된 화학 물질로 위협받고 있다. 무엇보다 지구 행성의 위상 또한 달라진다. 인간 삶 속 환경오염의 족적인 ‘생태발자국’을 그저 품어 안아주던 마더랜드 지구의 온화한 이미지는 이미 오간데 없이 사라진 지 오래다. 오염의 과포화 상태에 이르자 지구는 매우 즉각적이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사라지는 생물종, 사막, 태풍, 홍수, 폭염, 초미세먼지 등 기후재앙은 지구가 우리에게 즉각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아주 흔한 방식이 됐다.

우리는 폭주하는 자본주의 기계의 광란을 잠시나마 잦아들게 한 코로나19와 같은 미생의 바이러스에 어쩌면 감사해야할 지 모른다. 코로나19 재난 상황이 본격적인 지구 재앙의 시작을 알리는 화급한 경고처럼 느껴지기도 하거니와, 이 미생의 하찮은 존재가 질주 본능을 지닌 자본주의 기관차를 잠시 멈춰 세우면서 우리가 잊고 살았던 사회적 약자들을 주목하게 했고, 인간 아닌 뭇 생명과 사물들에 하나둘 생기를 되찾아 준 까닭이다. 달리 보면 코로나19가 인간 생명에는 극도로 위협적이지만 정작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을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촉매가 된 셈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인류세의 아주 작은 징후라면, 기후위기는 인류세의 전조다. 기후위기의 근본적 대안 모색 없이는 감염병 재난은 매번 잊을만하면 다시 찾아올 인류의 불청객이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들은 자신을 둘러싼 크고 작은 사건들과 사물에만 익숙했지, 전체 시스템으로서 지구 그 자체를 집중해 보는데 소홀했다. ‘지구행성주의’는 이렇듯 무상으로 제공되며 무한 수탈되어 온 ‘저렴한 지구’라는 공동 자연 자원의 관리 실패와 비극이 우리의 비수로 되돌아온 현실을 꾸짖는다. 지구행성적(planetary) 시각은 지구 위기 사태의 급박함을 알리는 데 있어서 나름 강력한 경고 효과와 함께, 파국의 대비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자연히 운명 공동체적 관점은 지구 시스템을 구제하기 위해 그 안에 수없이 서로 다른 인간과 생명 종들의 평화롭고 평등한 관계와 공존을 권고할 수밖에 없다.

디페시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 2017)의 강조처럼, 인류세 위기는 ‘행성의 고통’, ‘다른 종의 고통’에 대한 긴급한 기후행동을 요청한다. 인류세는 지구 생명들의 공동 운명과 (비)인간 생명 종들 사이의 연대와 협력을 강조하며, 지구 생태 위기의 공동 대응을 자극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하지만 이의 맹점은 자본주의 성장과 축적의 환경 폐해가 무엇인지를 지적하거나 기후위기의 실제 주범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누가 주로 피해를 입고 있는지를 꼼꼼히 살피는데 대단히 성기거나 때론 무심하기조차 하다는 것이다. 지구 위기 극복의 대오에 세계 시민들이 동참할 것을 주로 호소하면서, 오늘의 인류세 문제의 발생 원인을 우리 인간 모두의 탓이라 뭉뚱그린다.

이 점에서 지구 생태의 자본세(capitalocene) 비판과 생태 전환의 시도 없이, 그저 오늘의 인류세 위기를 우리 모두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운명 공동체적 논의나 과학기술에 대한 인간의 철저한 맹목은 순진하거나 허망하다. 지금도 지구의 생태분노로 인한 피해와 죽임을 당하는 생명들은 여전히 빈약한 환경 조건에 노출된 가난한 이들, 여성과 아이, 동식물 종으로 공식 기록되고 있다. 반면 기후위기를 유발하는 해당 국가 정상들이나 정치인들은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해왔다. 이제까지 지구행성 위기 테제는 인류 절멸의 거대 서사만을 전경화하는 대신, 구체적으로 고통 받는 존재들을 우리의 시야에서 저 멀리 사라지게끔 했던 것이다.

 

2. 과학기술의 오만과 과신

자본세적 생태교란을 외면하는 면죄부에 부합하듯,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 등 지구 위기관리 시스템의 범정부 혹은 각국 정상들 간 국제협의체는 형식적 합의만을 행하는 퍼포먼스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외려 현실에서는 지구 생태위기 상황에 대한 실질적 규제나 대안 마련보다는, 자본주의 시장 기제를 통한 또 다른 환경 산업의 성장 이윤 창출 방안을 고안하려 하거나 또 다른 첨단 공학적 해법들만이 난무한다. 자본주의 과학기술의 개조 능력을 과도하게 믿는 이들 근시안적 논의는, 현재의 지구 위기를 인류의 오만에서 비롯된 결정적 증거로 보기 보다는 지구를 새롭게 제어하려는 인간 문명 능력의 기회로 본다는 점에서 대단히 위험하다.

지구 생태 위기를 또 다른 첨단 신기술과 과학의 세례로 덮으려는 오만한 인간들의 구상을 보자. 이들은 기후위기와 온실가스 문제를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병폐로 보고, 또 다른 동시대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해 이를 돌려막는 것이 가능하다는 발상을 갖고 있다. 인간 과학기술의 자연 지배 욕망이 지구 생태 파괴의 현실로 드러난 오늘의 상황에서도, 더 거대한 과학과 첨단 기술을 매개해 자연에 대한 인간 통제력이 유효하다고 보는 어긋난 믿음이 끈끈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고도 과학에 의해 생태위기를 제어할 수 있다는 자신만만한 낙관론은 실상 주류 지구촌 사회의 국제기구들이나 일부 환경단체들의 의식에도 팽배해 있다. 가령 기후온난화의 해법으로 유황산화물의 에어로졸을 대기상층에 살포해 태양광을 차단하여 지구를 냉각하려는 지구공학적인 해결책을 보라. 이는 일종의 ‘태양 지구공학(solar geo-engineering)’이라 불리는 환경공학적 해법에 해당하는데, 현재 지구 기온 상승 흐름을 뒤바꿀 인간의 대안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돼 언급되고 있다. 이 저렴한 국부수술식 위기 탈출 해법은 지구 기후나 생태계를 불안정하게 만들 그 어떤 다른 환경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무모하다. 그보다 더 큰 위험은 인간 과학기술에 대한 과신과 오만에 있음은 물론이다.

또 다르게, 생태위기를 자본주의 사업화하는 경향 또한 경계해야 한다. 대체 에너지 개발이나 연료 효율성이란 명목으로 또 다른 반사 이익의 기회로 삼으려는 ‘그린’ 환경 비즈니스 사업체들이 크게 줄을 잇고 있다. 여전히 꽤 많은 이들은 핵에너지의 효율성을 가장 높게 사고 가시적으로 탄소 배출이 적다는 이유로 핵 발전 유지를 옹호하는 경향이 크다. 이를 유지 관리하고 폐기하는데 소요되는 수많은 생태 위험과 비용을 외면한 까닭이다. 게다가 태양광 발전, 첨단 반도체 생산, 인공지능 기술 개발 또한 마치 무공해산업으로 취급되는 정황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태양열 전지의 제조와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문제, 반도체 공장의 맹독성 화학물질 생산, 여의도 크기의 데이터센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드웨어 장비의 열기와 이를 식히기 위한 천연 자연수의 사용은 또 다른 지구 생태 오염원들이 된 지 오래다. 산업자본주의의 유물로부터의 탄소 배출이 지탄받는 것과 달리, 이들 신생의 것들은 꽤 환경 친화적이고 진화된 테크놀로지로 포장되면서 또 다른 반생태적 효과를 은폐한다.

 

3. 첨단 기술의 생태 공백들

대개 우리는 기후 위기의 주범이 화석원료에 의존한 전통 산업 공장과 석탄 발전소의 탄소 배출과 온실가스 효과라 단정한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첨단 신기술이 야기하는 반생태적 파괴력에는 무심하다. 심리적으로 우리에게 비트의 세계가 무색무취의 녹색 청정 지대처럼 여겨지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것은 디지털 첨단기업들 또한 탄소경제의 일부라는 사실에 있다. 우린 자주 첨단 가상 경제의 동력이 현실 세계의 화석원료 경제와 인간의 산노동을 근간으로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잊고 산다.

이제까지 우리에게 일상 속 온라인 데이터 활동이 탄소 경제와 얼마나 어떻게 맞물려 있는 지는 그리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각종 스마트 컴퓨터와 5G 스마트장치의 명멸하는 스크린 위의 불빛이 화석원료 에너지 기반 없이는 전혀 기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첨단 닷컴 경제가 주된 에너지 공급원을 화석원료에 의지하고 대체에너지 전환이 미미한 상태에서, 결국 이들의 주된 활동은 곧바로 온실가스 효과로 이어진다.

이탈리아의 공유지(커먼즈) 이론가인 맛시모 데 안젤리스는 우리의 온라인 활동과 탄소 배출과의 밀접한 유기적 성격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는데, 이를 옮겨보자. 가령 누군가 컴퓨터 앞에 앉아 구글 검색을 한다고 치면, 약 5~10 그램, 인터넷 브라우징을 하면 초당 20밀리그램의 탄소 배출을 초래한다. 단 몇 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웹 검색에 소모되는 전력량은 보통 주전자 물을 끓이는 데 투여되는 에너지와 맞먹는다. 한 때 서구인들의 관심을 크게 받았던 ‘세컨라이프’ 같은 가상현실 게임의 경우, 누군가 하나의 아바타를 유지하려면 매년 1,752킬로와트시(KWh) 전력량을 소모한다. 이는 약 1.7톤의 탄소 배출량에 해당하고, SUV 자동차에 견주어 볼 때 서울과 부산을 거의 5번 왕복 주행하는 양과 같다.

데 안젤리스는 아주 당연하게 좀 더 복잡한 컴퓨터 작업일수록 더 큰 전력 소모와 탄소 배출로 연결된다는 점을 우리에게 확인해주고 있다. 마치 전원을 켜고 전깃불을 켜고 물을 끓이고 선풍기를 돌리고 텔레비전을 보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아니 때로는 그 이상으로 우리 모두는 온라인 공간에서 무언가를 찾고 행하면서 지구 온실가스 효과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물론 그의 진술은 대체 혹은 재생 에너지 전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석탄원료 에너지 기반의 오늘 현실을 가정한다.

 

4. 첨단 IT기업과 생태 위기

닷컴기업들은 일반인들보다 좀 더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방식으로 지구 온실가스 효과에 기여한다. 이를테면, 닷컴기업들은 그들 시설의 재생에너지 사용과 데이터센터의 “청정 냉각” 과정이나 “절전형 에너지 소모”를 중요한 기업 홍보 소재로 삼아왔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들이 무색할 만큼 정황은 크게 다르다. 미국 IT 연구 및 자문업체 가트너 조사에 따르면, 휴대폰과 컴퓨터 등 첨단산업이 만들어내는 지구온난화 효과는 전세계 이산화탄소 방출량의 적어도 2%에 이른다.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10 여 년 전 통계치 임을 감안해야 한다. 가장 최근 ‘인공지능(AI) 나우 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이들 닷컴기업들의 지구온실 효과가 2020년에는 거의 두 배인 4% 수준, 2040년에는 14%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쉽게 비유하면, 현재 닷컴기업들의 화석원료 소모 수준은 매년 전 세계 항공기들이 운행 중 방사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에 맞먹는다. 무엇보다 닷컴 업계가 유지하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와 첨단 통신 인프라 장비의 냉각장치 가동을 위한 에너지 소모는 이보다 더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닷컴기업 탄소배출량의 70% 정도가 이들 거대 데이터 저장소로부터 발생하고 있고, 이의 온실효과 영향력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이렇듯 첨단기업들의 탄소발자국이 앞으로 계속해서 증가하리라 예측하고 있다. 더군다나 굴뚝공장들에 비해서 닷컴기업들은 이제까지 공적 감독이 쉽지 않은 만큼, 대체 에너지원의 비율이나 화석원료 에너지 소모량에 대한 정보가 미비하거나 내부적으로 이를 아예 공개조차 않고 있다는데 문제가 크다.

최근에는 신기술의 총아로 떠오른 비트코인 등 채굴 작업이 만들어내는 전력 소모가 새로운 환경 재앙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캠브리지 대학의 ‘캠브리지 비트코인 전기소비 지수’에 따르면, 한 해 비트코인 채굴에 들어가는 전력량은 74.01 테라와트시(TWh)로 추정된다. 이 전력량은 현재 칠레 등 남미 국가의 한 해 평균 전력 소모량을 능가하는 수치다. 문제는 늘어나는 채굴량의 대부분이 현재 주로 석탄발전소를 에너지원으로 삼는 중국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또한 여기에는 더 많은 비트코인을 생성하기 위해 고난이도의 산식을 풀어야 하고 이를 위해 더 큰 처리 용량의 장비를 들이면서 더 많은 에너지 소비를 유발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 또한 잠재해 있다.

혹자는 적극적 대체에너지 수급 노력 없이 닷컴 기업들의 지구 온실가스 효과를 나무라서만 되겠느냐고 문제제기 할 수도 있겠다. 외려 문제는 그들 스스로 ‘청정’에너지 사용 업체라 홍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첨단 신기술을 활용해 생태 파괴의 기술 구조에 적극 편입하는데 있다. 가령 IT전문뉴스 <기즈모도>에 따르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은 화석원료의 대표주자인 유전 개발업체들의 성장을 돕고 유전 채취를 가속화하면서, 인공지능, 자동화, 빅데이터 등 최첨단 기술들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비지니스 활동을 하고 있다. 닷컴들이 관련 부서를 신설해 유전 사업자와 사업 협력 관계를 맺고, 원유의 탐사, 추출, 생산, 관리, 노동 대체 등에 기술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닷컴기업들이 오히려 화석원료 생산을 촉진하면서 기후위기에 일조하고 이를 인공지능 자동화해 원유 생산을 배가하는, 환경 파괴의 촉진 효과까지 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는 ‘파리기후협정’에서 인류가 약속한 유전 개발의 제한을 위배하는 자본과 기술의 욕망이기도 하다.

 

5. 야만의 테크놀로지에 속박된 이들

당장의 기후위기도 문제이지만, 첨단 테크놀로지 역시 지구 생태와 지구에 살아가는 종들의 생존 조건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헐벗은 박탈 상태로 내몰고 있다. 다시 말해 첨단 기업들에 의한 온실효과가 바로 닥친 우리의 생태 위기 상황이라면, 이른바 인간의 기술 예속과 속박의 문제는 첨단 테크놀로지로 촉발된 지구 생명 종의 또 다른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대체로 기술 예속과 속박은 힘없고 박탈당한 이들 주위에 늘 꼬인다. 반생태적 테크놀로지에 예속된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주류 기술 체제로부터 소외된 이들, 방사능과 독성 화학기계로부터 일부 신체 능력을 잃은 이들, 중요 기술 설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권한에서 배제된 이들, 데이터 인권을 박탈당한 이들, 자동기계의 전산 논리에 심신이 피폐해진 이들, 불안한 플랫폼 노동으로 위험 상태에 처한 이들, 무인 자동화로 직장을 잃고 삶이 위태로워진 이들을 지칭한다.

첨단 닷컴 환경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물질 오염원, ‘전자쓰레기’는 생태 오염의 주범이 된 지 오래다. 플라스틱 오염과 함께 이는 지구 위기의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일부가 됐다. 이 반생태적 하이테크 부산물들은 자연 파괴와 함께 인간 생명 파괴나 피폐화 또한 크게 이끌고 있다. 가령 저개발국 아이들은 전자쓰레기 더미에서 쓸 만한 구리와 고철을 발라내기 위해 종일 연탄불 위에 꽁치 굽듯 전자 기판을 태우고 폐자재로부터 피어오르는 온갖 독성 연기를 흡입한다. 스마트폰과 자동차 배터리로 쓰이는 코발트 채굴을 위해 아직 학교도 안 들어간 아이들이 보호 장구 없이 노예처럼 노천 광산에 들어가 탄가루를 흡입하는 것 또한 오늘의 모습이다. 국내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화학물질에 백혈병을 얻어 생명을 잃는 수많은 청년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불과 얼마 전까지 중국의 한 휴대폰 제조 공장은 열악한 환경 속 스트레스에 시달린 많은 여공들이 투신해 ‘자살공장’이란 오명을 얻기도 했다.

무엇보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노동 현실에 처한 이들에게 테크놀로지는 비수가 되거나 악귀처럼 들러붙는 경우가 흔하다. 줄곧 노동의 피폐화나 ‘위험의 외주화’는 사회적 타살의 기계 장치와 맞물려왔다. 유통상품 재고관리의 빅데이터 분석과 예측력이 높아지면서, 낮과 밤 노동 리듬에 덧대 새벽배송 노동 형태가 강제 생성되고, 배달노동은 24시간 극한의 생존 능력의 시험장이 되고 있다. 플랫폼 배달노동이 활성화되자 수많은 라이더들의 배달 사고율이 급증하고 있다. 지하철 구의역과 태안발전소 사망 사고 등 전국 단위 산업 현장들에서 하청과 재하청, 파견, 이주 노동에 지친 청년들의 사회적 타살과 죽임이 일상화하고 있다.

기술 재난 상황도 다르지 않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수습과 방사능 피폭의 중심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힘없는 지역 주민들이 희생양으로 자리한다. 기후위기에 의해 야기된 해일이나 태풍 등 자연 재난으로 인한 사망 사고는 여성, 노약자, 어린아이 등 빈국의 약자들에 집중된다. 사회적 포용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 야만의 기술 환경에 밀려 약자들이 생존의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서 과로사와 자살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첨단 기술의 편리와 효율성만큼이나 이로부터 사회 약자들의 기술 소외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6. 테크노자본의 생태 책임

닷컴기업들이 하이테크 변장술로 무공해 산업들로 추앙받고, 효율의 지배 논리에 따라 기계에 예속된 빈자들은 사회로부터 점차 추방된다. 인간 종들의 첨단 테크놀로지에 대한 자만, 오만과 함께 성장과 발전에 대한 맹신은 지구 생태를 위태롭게 하고 사회 빈곤층에 대한 환경 소외를 크게 키워왔다.

오늘날 야만의 기술 조건을 떨치기 위해서는 첨단 기술을 매개한 극도의 ‘성장숭배’를 떨쳐내고 자연과 인간 사이에 선순환적으로 이뤄지는 물질대사 과정에 균열을 야기하는 근본 원인들을 제거해, 생태 합목적적인 기술문명의 방향을 세워야 한다. 생명 존중 없는 혁신 논리는 멀리하고, 생태-공생 지향의 기술 체계를 구상해야 한다. 테크놀로지의 방향은 지구 자연과 관련해서는 ‘저렴한’ 자원의 수탈과 성장중독 및 발전 패러다임을 떨쳐낸 ‘생태기술(ecological technology)’의 전망을, 인간 사회 공존과 연대의 미래와 관련해서는 지상의 모든 약자와 타자들과의 ‘공생기술(convivial technology)’적 전망을 함께 도모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먼저 기후위기와 관련해 첨단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이 무엇일지를 따져 물어야 한다. 현재 탄소배출에 일조하거나 온실가스를 상승시키는 닷컴 기업들의 주요 기반시설과 활동을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바꾸려는 에너지 수급정책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IT기업들의 에너지 소비량이나 대체 에너지 수급 정도가 얼마인지 투명하게 공개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전환의 자발적 노력이 어려운 경우에는, 기후위기와 무관한 듯 보이지만 이에 크게 일조하는 닷컴 기업들의 증가하는 환경 영향력을 공식적으로 규제할 탄소세 도입, 에너지 소비 효율을 높이는 기술설계 노력에 대한 에코 인센티브나 세제 혜택, 화석연료 사용을 촉진하는 협력 사업과의 절연 방식 마련 등 사회적 규제 수단이 가능한 지 따지는 일도 중요해진다.

나아가 긴급한 기후위기에 대응해 온실가스 배출을 막기 위해 모든 화석원료를 대체에너지로 단계별 전환하고 사회 빈곤층의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그린 뉴딜’ 정책이 국내에서 어떤 전망을 지닐 것인지를 근원적으로 따져야 한다. 최근 한국판 뉴딜의 발표 이후 ‘그린 뉴딜’이 ‘환경 비즈니스’나 ‘기후 케인즈주의’의 시장 변종들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린 뉴딜’에 첨단 디지털 조건이 낳을 수 있는 반생명적, 반생태적 부메랑까지도 함께 계산해 넣어야 한다. 예를 들어 ‘디지털 뉴딜’로 인한 전자쓰레기 오염, 데이터 저장소들과 지구온실 효과, 닷컴 기업들의 화석원료 소모 증가 등 공해 문제들이 ‘그린 뉴딜’과 서로 얽혀있다. ‘디지털 뉴딜’의 성장론이 ‘그린 뉴딜’에 치명적일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기술 성장의 생태주의적 재구성이 필요하다.

기술과 생태의 두 가지 사안을 기능적으로 분리해 접근하는 우리의 관행을 경계하고, 사물과 생태가 연결된 전체 순환계를 관통해 읽도록 노력해야 한다. 보다 근원적으로 첨단 테크놀로지의 반생명적 파탄과 전횡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의 신체를 시장의 유통 자원으로, 로봇 기계를 인간의 종이나 심부름꾼으로,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개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기술 효율성에만 기댄 혁신 논리를 걷어내는 일이 시급하다. 첨단 기술이 지닌 혁신 잠재성을 확장하는 당위만을 앞세워, 지구 환경과 생명파괴 행위를 그저 묵인할 순 없는 일이다. 더불어 자본주의 기술 예속 문제를 해결할 상생과 포용의 기술 미래 또한 함께 고민해야 할 의제이다.

우리 스스로 첨단 과학기술 중심의 성장과 발전주의 세계관을 바꿔야 한다. 인간 생태발자국이 만든 폐허로부터 재기 가능한 수준의 지구 회복력을 고려한 과학기술의 새로운 대안적 전망이 필요하다. 이는 과학기술의 생태 합목적적 방식의 재탄생을 뜻한다. 기존 자본주의 시장의 물질적 재화와 생산 기여도로만 과학기술의 성과를 측정하는 양적 패러다임 또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지구 사회와 생태적으로 부합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공동의 사회 가치 영역들을 새롭게 창안해내야 한다. 이는 첨단 신기술의 성장 신화를 걷어내고 한 사회의 생태 조건과 회복력을 고려한 적정의 민주적 테크놀로지의 채택과도 관계한다. 새로운 공생과 호혜의 테크놀로지 전망에 기초한 지구와 지역 생태 모델링이 시급하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기술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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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1/01/0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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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시민들은 억만장자들이 우리가 믿기를 원하는 거짓말 “당신의 수입이 당신의 존재가치를 알려준다”라는 주장이 얼마나 해로운 것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팬데믹으로 대부분의 인류가 고통 받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엄청난 부를 벌어들이는 극소수의 거대부자들은 여전히 일반시민들을 향해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부자들의 재산에 세금을 부여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오랜 전승의 기법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부와 영향력을 유지하여 왔는데, 한마디로 ‘부와 세력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는 것은 자연의 필연적 법칙’이라는 믿음의 체계이다.

중세 시기에 영국의 제임스 1세와 프랑스의 루이16세 등은 소위 왕권신수설을 확신하면서 군주는 신으로부터 권한을 부여 받았기 때문에 세속적인 일에 책임질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우리가 역사에서 목격하였듯이, 이러한 주장은 17세기 영국의 명예혁명과 18세기 미국과 프랑스 혁명에 의해서 종지부를 찍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소위 “시장봉건제(시장만능주의)”, 즉 과거의 군주제가 신성하였듯이 거대부자의 권한이 신성하다는 신념이 재등장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당신이 받는 수입이 당신의 사장가치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수십 억불을 지니고 있다면, 당신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시장이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근근이 살아 간다면, 그에 합당하게 스스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수백 수천 만 명이 실직을 당하거나 감봉을 당한다는 것, 혹은 한가지 직업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워 2-3가지 직업을 가지면서도 다음달 또는 다음 주의 수입을 걱정하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이는 불행한 일이지만 시장의 힘에 의한 자연스런 결과라는 것이다.

현재 ‘자유시장-free market’이라는 개념만큼 온 세상을 통해 각국 정부에 영향을 끼치면서 일반시민들의 사고를 병들게 하는 독충은 없다.

이들 견해에 따르면, 현존의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경제적 불안정을 줄이면서 경제를 다수의 시민들을 위해 운용하는 것은 시장을 왜곡하고 효율을 저하시켜서 결국은 모두에게 의도하지 않은 해로운 결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경우에도 자유시장이 정부의 역할보다 선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주장들은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정부의 개입이 없는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은 어떤 형태를 취하든지 반드시 게임의 규칙을 정하고 이를 강제하는 정부를 필요로 한다. 현대적 민주체제 하에서는 이러한 규칙들이 입법과정과 행정운용 그리고 사법적 판단으로 이루어진다.

정부가 자유시장을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시장을 창출하고 시장을 유지하는 것이다.

트럼프가 행한 가장 악질적인 내용은 일체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러한 일이 미합중국이라는 국가체제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 졌다는 점이 충격적 사실이다.

시장은 결코 중립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다. 시장은 사회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가치척도와 기준이다. 동시에 해당사회에서 누가 가장 세력이 강하고 시장의 규칙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영향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부자집단들은 자유시장이 정부의 역할보다 효과적이라는 끝없는 논쟁을 벌리면서, 실제로는 어느 집단이 세력을 행사하고 영향력을 통해서 이익을 선점하는지에 대한 사실을 파악하는 것을 방해하고, 더 나가 잘못된 규칙을 모두를 위해 개정하려는 작업을 저지한다.

의도적인 ‘시장 봉건제(시장만능주의)’라는 주장은, 상기에 언급한 것처럼, 경제운용의 왜곡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게 방해하면서 잘못된 시장에서 이익을 취하는 집단에게 대단히 유용한 논리를 제공한다.

시장의 규칙에 대해 불균형적으로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야말로, 실제로 규칙을 설계하고 운용하면서 이에 따른 혜택을 즐기는 한편, 정부의 역할보다는 시장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온갖 논리를 옹호하면서 자유시장이라는 허구를 지지하는 집단이다.

이들은 ‘정부 대 시장’이라는 논쟁을 지속적으로 유발하면서, 시장의 규칙이 왜곡되게 설정되고 수정되는 현실과 잘못된 운용의 과정을 통해 전개되는 돈의 위력 그리고 이들이 취하는 이익의 결과물에 대하여, 일반시민들의 시선을 차단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들 자유시장 옹호자들은 시장의 우월성에 대하여 일반시민들의 지지를 조직하고자 의도할 뿐만 아니라, ‘시장이냐 정부의 역할이냐’ 논쟁을 끊임없이 유발하면서, 문제의 핵심에서 시민들의 관심을 벗어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자유시장이 왜곡되게 작동하는 구조를 폭로하고 누가 어떻게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를 밝혀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상기의 내용을 필자가 ‘가디안’ 지의 칼럼에 기고한 이유는 ‘가디안’ 지는 경제운용의 진실을 드러내고 사실을 은폐하려는 거짓말을 폭로하는 시대의 매우 소중한 소수의 매체이기 때문이다. 가디안 지가 이처럼 용기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민간기업 또는 재정적 이해관계를 지닌 집단에 의해서 지배당하지 않고 순수하게 공공을 위해 봉사하는 매체이기에 가능하다.

현재 모든 선진국가들의 경제권에서 수입과 자산과 정치적 권력의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는 반드시 수정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흐름을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현대의 거대부자들이 중세의 군주처럼 신성불가침의 권리를 가졌다’는 주장이 허황된 거짓말임을 일반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야만 한다.

 

출처 : 영국의 가디안 The Guardian on 2020-12-08.

Robert Reich

빌 클린턴 행정부시절 노동부장관을 역임했으며, 2006년 이후 버클리대학교 공공정책학의 석좌교수로 부임 중이다. 미국행정부 역대에 가장 유능한 관료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금, 2021/01/0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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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미국 연방의회 난입사건이 주는 충격과 관련하여 진보적 싱크탱크의 책임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2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주변의 동맹국가들이 미국과 협약 또는 협력하는것을 매우 주저할 것이다.

둘째, 미합중국은 국제정치 환경에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고 보장하는 대신에 위험과 불안정을 가져다 주는 부정적 존재로 변질되었다.

이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 출범이후 올 봄에 예정한 반중반러를 위한 민주주의동맹(D10+)의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명분이 사라진 셈이다. 미국은 국내정치에 주력해야 한다.


농담은 우스워야 농담이다.

“정치부 기자들이 외국의 정치에 대하여 희롱하듯이, 현재 미국의 모습을 취재하면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 질까?” 라는 농담조의 질문들이 2016년 이래 여러 번 제기되어 왔다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제3국(?)의 대통령이 선거결과의 승복을 거부하며 대통령 궁에 숨어 싸움질하는 것에 대하여 트위터를 통한 미국시민들의 비난이 수없이 난무한 적이 있다.

그러나 외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농담조 비난은 지난 1월6일부로 종지부를 찍었다.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폭도들이 경찰의 저지를 돌파하여 연방의회 건물에 난입하였고, 이에 연방의원들이 급하게 피신을 해야 했으며, 황당한 사태는 최루탄 가스와 총격을 가해지고 최소한 4명이 목숨을 잃고 나서야 진정되었다.

이러한 장면은 탱크 위에서 외치던 소비에트 시절의 보리스 옐친 모습과 아랍의 봄,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거리시위 모습을 연상하게 하였다. 전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 정치인들이 그토록 비난했던 모습은 – 폭력에 찌들고 권력의 이양과정에 피를 흘려야만 하는 형편없는 민주주의의 몰골, 바로 그것이었다.

외교정책에 대한 미국의 위상이 추락하는 신호탄이며, 많은 평론가들이 보낸 첫 반응처럼 미국의 도덕적 권위와 국제적 지도력에 대한 의문제기였다. 많은 앵커들은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반길 일이라고 언급하면서, 외국에 민주주의를 설파하던 미국이 오히려 시험을 당하게 되었다고 논평하였다.

오바마 시절, 모스크바 주재 대사로 일했던 Michael McFaul은 다음과 같은 트위터를 날렸다 “트럼프는 오늘 따끈따끈한, 하지만 바라건데 마지막이 될 선물을 푸틴에게 안겨 주었다.”

반면에 보수적인 NGO 집단들은, 국가민주재단(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을 포함하여, 희망섞인 발언으로 다음과 같이 재확인하고 있었다.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전세계인들과 연대를 분명히 확인한다.”

요약하자면, 민주적 선거절차에 따른 대통령 당선의 확인과정이 중단되고, 연방의회가 폭도들에게 기습을 당하는, 문자 그대로, 반란의 시도가 이루어진 가운데, 외교정책 담당자들에게는 미합중국이 과연 세계를 향해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계속 설파할 수 있을지, 또한 중국과 강대국 경합을 벌리고 있는 미국의 국가역량이 크게 손실을 당하지는 않았는지, 초조해 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미합중국은, 세계에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역량의 손실 그리고 중국과 벌리는 야심찬 세계지도력의 경쟁보다, 더욱 커다란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 바로 미국의 국내정치 상황으로 수십 년간 양당체제의 극심한 대립으로 망가지면서, 그나마 대부분의 헌법적 기구들이 잘 버티어 왔지만, 미래에 트럼프와 같은 폭군이 다시 등장할 때 과연 이를 이겨낼 수 있을지 보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미 지난 4년간 트럼프에 의해 손상을 당한 것에 더하여, 지난 1월6일의 연방의회 난입이라는 폭력사태는 미합중국의 국제적인 이미지에 큰 타격을 가했다. 지난 11월 대선 이후 전개된 정치적 혼란으로 미합중국이 반-중국의 국제적 연합을 구성하는 것이 이미 어려워졌으며, 국내의 유혈상황을 중단하는 것에 우선하여, 국제정치적으로 야심차게 추진하려던 민주주의동맹 alliance of democracies의 명분을 갖추는 것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분명히 하자면, 필자의 주장은 미국이 세계현안에서 후퇴를 하라는 뜻이 아니다. 미합중국은 국제적 개입을 통하여 얻는 이익이 엄청나다. 그러나 1월6일의 사태가 미국의 현재 대외정책에 깊은 상처를 가하면서, 야심적인 외교정책의 목표는 국내정치와 경제적 비상상황으로 완전히 궤도를 이탈한 상황이다.

바이든이 대선의 과정에서 약속했지만, 미국인들이 자국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세계무대에서 과연 미국지도력의 회복이 가능할 것인가? 자국 내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데, 다른 국가들에게 모범이라 주장하면서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전파할 수 있을까?

워싱턴 당국의 외교정책 책임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국제무대에서 형성되어온 미국의 입지를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이들은 2020년 현재의 미합중국 모습에 너무나 무감각하다.

카네기 재단이 추진하고 있듯이, 2016년 이래 국내현안과 외교정책의 상호교차점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주요 내용은 그간의 외교정책을 유지하는 것에 미국시민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방식과 미국의 중산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통상과 투자의 정책을 전환하는 방식 간의 선택에 집중되었다.

이제 현실적으로 그간의 외교정책에 대한 대대적인 재검토를 통하여, 보다 온건하고 억제된 접근으로 전환하면서, 국내의 실패로 야기된 실제적 현안에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1월6일의 연방의회 난입사태로 세계가 미합중국을 국제적 환경에서 불안요소로 느끼기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의 사태는 아래와 같은 2개의 구체적인 외교현안을 미합중국에 남겨주고 있다.

첫째, 다른 국가들이 미합중국과 구속력있는 협약 또는 깊이있는 협력을 갖는 것에 주저할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트럼프의 4년간 경험으로 다른 국가들은 미국과 약속이 종잇장에 불과하다는 판단을 갖게 하였으며, 특히 양당의 적대적 환경이 이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란의 핵협정, 환태평양 중심의 TPP, 파리기후 협약 등이 미국의 적대적 양당관계의 희생물이 되었고, 미국의 외교정책이 시소의 게임처럼 간주되었다. 지난 11월 대선 이후의 정치적 불안정과 이번의 난입사태로 인하여, 미국의 향후 대선과정이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염려를 세계인들이 갖게 되었다.

둘째, 세계인들이 미합중국이라는 존재를 국제적 환경에서 안정기제로 기대하기 보다는 위험요소로 바라보기 시작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과거의 실책이 존재한다 : 2001년 이래 미국의 중동지역 개입으로 불안정이 증대하였고, 이는 유럽에 난민분제를 야기시켰다. 미국의 제재조치들은 비용만 발생시킨 반면에 다른 국가들을 불편하게 하였으며, 트럼프의 행정부 시절에 있었던 이란과 중국 등에 대한 벼랑끝 전략으로 상황의 안정 대신 불안정만 불러 왔다. 민주적 통제를 벗어난 정치 지도자의 위험성과 과대하게 강력한 군사력에 의존하면서도 국내정치는 점점 비민주적이며 즉흥적으로 변해가는 미국에 대해서 세계인들의 시각은 긍정적이지 못하다.

지난 수개월간 미합중국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서투른 대응으로 형편없는 모습을 보이며, 양극화가 심해지는 경제 그리고 적대적으로 갈라진 양당정치에 허우적거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에 더하여 이번 연방의회 난입사태는 커다란 충격을 가했다. 이는 비록 실패하였지만, 미국정부(헌법)의 심장을 타격한 사건으로 오래 지속되는 상처를 남길 것이다.

더구나 워싱턴의 외교정책 집단이 현직 대통령이 선동한 반란시도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면서, 도덕적 권위와 강대국 세력경쟁 역량에 대한 커다란 타격을 가했고, 과연 미국의 현재 외교역량으로 오는 봄에 개최할 예정인 민주주의 정상회담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 것이지 위험스런 회의를 갖게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보다 절제되고 실질적인 내용을 외교정책의 목표로 설정하는 것이, 미국이 지닌 현재의 문제점을 더욱 잘 반영하는 것이며, 미국인들의 역량을 국내의 현안에 집중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J. F. 케네디의 표현을 빌리자면, 외교정책에 있어서 금번 같은 위기가 닥치면 자신들이 추진하는 정책이 방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대신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바꿀 시점에 되었는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출처 : 포린폴리시(ForeignPolicy) on 2021-01-07.

Emma Ashford

아틀란틱 연구소Atlantic Council의 안보전략 분과에서 새로운 미국의 주도적 포용(New American Engagement Initiative )이라는 주제를 책임지는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토, 2021/01/09-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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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은 현대의 역사에서 가장 운이 좋았던 국가이다. 유럽의 주변부 식민지로 존재하다가 항해의 위험으로 인하여 이주민들의 모국으로부터 분리되면서 독자적인 건국이 시작되었다. 식민지에서 독립국가로 출범할 당시의 미국은 빈약하고 가난하며 분파적이었다.

그러나 한세기 반도 지나지 않아, 출범 당시 13개의 주에 지나지 않았던 국가가 북반구의 반을 차지하던 서구진영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배경으로 영토를 북미전체로 확장하였고, 내전을 거치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역동적인 경제를 만들어 왔다. 이러한 극적인 출현은 19세기를 거쳐 20세기에도 지속되었고, 냉전의 종식을 통하여 권력(세력)의 정상을 독차지하는 위치에 이르렀다, 비록 잠시이겠지만.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이룬 놀라운 성취를 조상님들의 덕분으로 돌리면서, 건국의 아버지들이 지녔던 계몽시기의 지혜, 미국이 지닌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독특한 결합, 그리고 미국만의 특장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에 더하여 원주민에 대하여 가했던 잔인함과 아프리카에서 수입된 노예들, 그리고 자연적 조건을 포함한 행운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인들은 북아메리카라는 지역이 자원이 풍부하고, 토지가 비옥하며, 항해가 가능한 하천들이 대륙을 가로지르고, 대부분 지역에서 기후가 온화하다는 점에서 축복을 받았다. 더구나 건국 시절부터 미합중국은 당대의 열강들이 서로 각축을 벌리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도 행운을 누려 왔다.

프랑스는 라이벌인 영국이 약해지길 희망하면서 미국의 독립혁명을 지원하였고, 나폴레옹이 유럽의 내전을 치르기 위해 자금이 필요해지면서 루이지애나 등을 미국에 헐값으로 넘기면서 영토를 손쉽게 두 배로 확장할 수 있었다.

유럽의 내전상황이 1812년에 벌린 미국의 황당한 캐나다 침략을 도왔다. 영국은 당시 나폴레옹과 전쟁에 전력을 다하는 과정에 있었기에, 추악하게 점령했던 식민지(캐나다)를 도울 처지가 못되었다. 유럽의 열강들이 자중지란에 빠져 전쟁을 치르는 동안, 미합중국은 북미 대륙을 관통하면서 영토를 확장하여 텍사스, 뉴멕시코, 아리조나 그리고 캘리포니아 등을 멕시코로부터 분리시켜 합병하여 왔다.

1900년에 이르기까지 영국은 굴기하는 독일을 견제하며 태평양 연안과 남미지역에서의 식민지를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동안, 미국에 대해서는 관대한 정책을 펼쳐 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1823년에 선언한 몬로-독트린MonroDoctrine이 현실로 자리를 굳혀갔다.

실제로 현대의 역사에서, 건국이래 미국처럼 소위 안보자유free-security(무임승차)를 한껏 즐길 수 있었던 강국은 없었다. 영국을 예외로 하고 지난 200여 년간 모든 강대국들은 외국의 침략을 받아 왔으며 일부는 침공에 의해 잠시나마 점령을 당하기도 하였다. 영국조차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의 공습에 의해 시가지가 파괴되고 5만 명의 시민들이 생명을 잃었다.

1812년 캐나다와 전쟁 중에 잠시 외국군대가 미국의 영토에 머물렀던 것을 마지막으로, 유럽과 아시아가 20세기 동안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커다란 타격을 받던 와중에도, 미합중국은 행운아처럼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다. 이러한 미국의 안보자유(무임승차)라는 조건 덕분에 강대국으로서 두 번의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했으며, 미미한 타격만을 받으면서 결국 종전 이후 지배적인 위치로 군림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미국의 지도자들이 현명한 결정을 하여 상기의 행운아적 조건들을 제대로 활용하여 왔다. 헌법사항으로 개인의 자유라는 특권을 부여하여 폭발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박차를 가하였다. 미국이라는 대륙을 재능있는 세계인들에게 개방하였으며, 이민의 파고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여 왔다.

부끄러운 노예의 역사가 미국이 이룬 성취를 현재에도 퇴색시키고 있지만, 남북전쟁에서 북부 연합군이 승리하면서 대륙의 영구적인 분열을 종식시키고 국가전체를 단합시키면서 미국이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이 초강대국이 되는 과정에서 만난 상대들에게서도 운이 뒤따랐다. 제1차 세계대전시 독일제국은 엄청난 군사력을 지녔었지만 미국이 실제로 참전했던 1918년경에는 기세가 한풀 꺾인 시점이었다. 이후 등장한 나치의 행군은 더욱 기세가 등등했지만 아돌프 히틀러는 무능한 전략가에 지나지 않았으며 독일을 결정적으로 패퇴시킨 것은 소비에트의 몫이었다.

진주만을 기습한 1941년 당시 일본제국의 경제력은 미국의 1/5 수준에 지나지 않았으며, 전쟁과정에 내부의 지도력에 분열이 발생하였고, 상당수의 군사력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진흙탕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제2차대전과 태평양 전쟁은 분명히 즐거운 축제는 아니었지만, 전쟁을 통하여 미국이 더욱 강성해진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후 소비에트가 미국에게 매우 강력한 적국으로 등장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미국에 유리하였다. 소비에트의 경제력은 미국에 비해 매우 왜소하였으며, 그의 동맹들 역시 빈약하고 서로간의 신뢰기반이 약했다. 더구나 미국이 북반구 절반을 차지하며 멀리 떨어져 있는 지리적 조건에서 일체의 타격을 받지 않는 동안, 소비에트는 유럽대륙의 강자들과 여전히 상대해야만 하였다.

소비에트의 통제경제는 한마디로 낭비와 비효율의 황당한 영역이었으며, 미국과 상대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벅찬 수준으로 국방지출을 감당하여야 했다. 미카엘 고르바초프가 뒤늦게 체제를 개혁하려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나면서, 소비에트는 비록 한방에 날라가지 않았지만 잔펀치를 맞아가며 스스로 붕괴하였다.

결과로 미국은 상대가 없는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존재하게 되었고, 정치학자들과 전문가 집단들은 세계화로 뻗어가는 미국의 성공에 대한 마법의 공식을 만드는 일에 몰두하였다. 1990대에 형성된 미국의 자만에 대하여 당시에는 다음과 같은 멘트가 가능했다: “지구상 어느 나라도 미국과 같이 지속적이고 유례없는 성공을 누리지 못했으며, 이런 상황을 뒤흔들 악운은 당분간 덮쳐오지 않을 것이다.”

상기의 멘트가 오늘 시점에도 여전히 유효한가? 세계는 변함없이 미국에게 맛난 고기를 제공하는 낚시터(oyster)이며, 미국이 설령 무책임하게 행동하더라도 현재의 운좋은 상황은 지속될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미국의 행운이 향후 소진될 가능성의 배경을 아래와 같이 4가지로 설명하려 한다.

첫째로, 미국이 건국이래 즐겨왔던 안보자유(무임승차)가 여전 같지 못한 상황이 되고 있다. 오해하지 마시길. 현재의 시점에서도 실질적인 상대의 적국이 없다는 것이 여전히 커다란 강점이며, 대륙의 양안을 감싸 앉고 있는 거대한 두 개의 대양들은 여전히 미국을 잠재적인 위협에서 보호해주고 있다.

펜타곤의 공식명칭은 국방의 부서이지만 미군 병력은 대부분의 시간과 예산을 미국본토에서 소진하고 있지 않다. 반대로 미국과는 떨어져 있는 국가들을 통제하려는 의도 하에 외국의 타 지역에서 위험의 상황을 전개하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는 미국이 캐나다이든 멕시코이든 주변의 국가에서 침공을 당할 염려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2020년은 미국이 이제껏 즐겨왔던 방어벽이 절대적인 철벽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한 예를 들자면, 코로나-바이러스가 제1차 대전과 한국전 그리고 배트남 전쟁에서 희생당한 이들을 합한 것보다 많은 미국인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오늘도 하루의 사망자가 9/11테러 당시의 희생자 숫자를 넘어서고 있다. 지리적 거리간격은 여전히 안보에 중요하지만, 이제 모든 위험에서 미국을 방어해준다는 보장이 없어졌다.

또한 최근에 외부의 세력(아마도 러시아로 추정되지만)이 미국정부의 컴퓨터 시스템을 해킹하였으며, 대상에는 미국의 국가안보체계를 다룬 내용도 포함되었다. 아직까지 해킹의 범위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사건은 지리적 거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안보의 취약점을 드러낸 것이다. 미합중국의 지리적 격리가 여전히 강점이긴 하지만 과거와 같지는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둘째는 중국에 관한 것인데, 현재의 중국은 과거의 소비에트보다 훨씬 강력한 상대이다. 미국이 1776년 독립된 해부터 1990년대까지 승승장구하여 왔지만, 1990년 이후부터는 미국을 대신하여 중국이 매우 자신만만한 궤적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경제력은 조만 간에 미국을 능가할 것이며, 전쟁의 폐허 을 극복하고 일어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중국의 엘리트 지도부는 자신들이 21세기를 주도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으며, 일당一黨방식의 국가자본주의 역시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고, 세계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주요한 국제기구와 조직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다양한 형태의 보호주의 정책을 동원하여 억지하려 했지만, 중국은 성공적으로 국제사회와 새로운 무역과 투자의 협정들을 체결하여 왔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최초로 창궐하기도 하였지만, 오늘 현재 14억 인구 중에 사망한 희생자 숫자가 5천명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2020년 말 현재 중국은 다시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재개하고 있는 반면에, 미합중국은 팬데믹을 극복하는데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3십만 명이 넘는 누적 사망자 숫자를 보이고 있으며, 미국의 경제는 봉쇄와 제약으로 여전히 황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던지는 도전을 지나치게 과대평가 했을 수도 있다. 중국의 일인당 수입은 미국에 비해 현저히 낮으며, 새로운 발전을 창출해내는 동력이 여전히 미약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일대일로BRI사업은 시진핑 주석이 희망하는 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호전적인 전랑외교(Wolf-Warrior)와 무역상대국들에 대한 강압적인 조치들, 그리고 위구르 소수민족의 문제 등으로 국제사회가 중국의 장기적인 의도에 잔뜩 경계심을 지니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앞선 경쟁상대국이 무너져 갔듯이 중국 역시 언젠가는 사라져갈 것이라는 근거없는 병적 낙관론이 미국인들 사이에 등장하고 있다.

셋째 배경은 미합중국에는 행운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황당한 믿음 속에 스스로에게 타격을 연속적으로 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한 목록은 길고도 길다:

의도적으로 기획된 양극화와 현상고착의 심화로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개인적 자유를 빙자하여 수천만 명이 팬데믹 와중에도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행동을 어리석다는 비판대신에 영웅적 행동으로 착각하고, 조작과 허풍 그리고 부패들이 시민사회 내에 강고한 집단을 형성하면서 사회내부에 증오와 거짓말들이 팽배해지고 있으며, 지금이 풍부한 로비조직들의 영향력으로 진실을 알리는 언론의 기능이 약화되고 있고, 엄청난 금권이 미국정치를 오염시키고 있으며, 취약한 선거제도로 인하여 소수자 원칙이 오용되고 있는 과정에 과거의 실책에서 배울 능력이 없는 허접한 정책집단들의 무능력과 무책임이 설치는 등, 수많은 맹점들이 속속히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기후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기후문제는, 당신과 내가 어찌 생각하는지, 믿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물리적 법칙과 화학적 원리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다. 기후변화의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각자 자유의 판단이겠지만, 지구라는 행성은 어리석은 미국인들의 판단에 상관하지 않는다. 대기온도가 상승하면 미국이 지닌 지정학적 강점조차도 국가를 방어하지 못한다. 거대한 데크를 지닌 항공모함과 기술의 진수를 담고 있는 대륙간 탄도탄 그리고 최신예 대잠수함과 사이버전쟁 능력 등 현대의 엄청난 전투능력이 기후위기와의 전쟁에서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강력한 경제력과 높은 수준의 과학자들과 기술인들 그리고 혁신적인 민간기업들이 국가를 변혁시키고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기후위기가 날이 갈수록 점차 거대한 위협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지구라는 행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와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정치적으로 제 기능을 못하는 국가가 서로 결합(충돌)하면, 그 결과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한마디로 오랜 기간 누려왔던 미국의 행운은 한두 세대 안에 종말을 고할 것이다.

필자가 너무 비관적인 것일까? 제발 그러하길 소망한다.

물론 미합중국은 여전히 많은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과학과 기술분야가 두드러진다. 잠재적인 상대(중국과 러시아)국가들은 자체적으로 많은 문제점들에 봉착하여 있다. 1990년식 일방적인 주도권의 행사는 정답이 될 수 없지만, 정보조직과 기능을 개혁하면 장기적으로 국가의 안보를 유지하고 핵심적인 정치적 가치와 함께 국가의 번영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 역시 도움이 크게 될 것이다.

Branch Rickey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구를 남겼다 “행운은 기획의 결과물이다 – Luck is the Residue of Design.”

미국인들은 더 이상 성공이 그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미국인들이 과거에 이루어낸 성취를 미래에도 유지하려면, 지난 수십 년간 망각했던 함께함(work-together)의 강점을 되살려 내야 한다. 만약 불행하게도 서로 협력하는 것을 거부한다면, 지난 2백 년간 지속되었던 미합중국의 오랜 행운은 이제 종말을 고할 것이다.

 

출처 : 포린폴리시(ForeignPolicy) on 2020-12-23.

Stephen M. Walt

하버드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좌교수로 미국정치학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월, 2021/01/1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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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달러의 가치가 날이 갈수록 평가절하되고 있다. 폭락세는 아니지만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제무역의 주요 결제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자산가치 보존의 통화로서 위치를 유지하는 점에 대하여 많은 경제학자들은 의아해 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국가들이 달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의 약세는 세계경제의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의 주요 현황은 다음과 같다.

–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2020년 10월 현재 3조1120억불에 달하고 있는데 이중 40%에 해당하는 1조3000억불 정도가 달러화이며, 보유고는 매달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 2021년 말경에는 세계 전체 외환거래량에서 중국 위안화가 미국달러와 유로화 다음의 3번째로 주요한 통화로서 지위를 구축하면서, 일본의 엔화와 영국의 파운드화를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 모건 스탠리의 발표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중앙은행을 포함하여 세계주요 외환관리 기구로서 10개 정도가 중국 위안화를 수용하고 있는데, 조만간 70개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 미국연방준비제도FED에 의하면 미국은 경제분야에서 2021년 중반기까지 GDP의 1/3 정도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에, 중국은 자체 예측에 따라 2020년 경제성장률을 3.5% 수준으로 유지할 것으로 발표했다.

코로나-19와 연동하여 세계경제가 침체를 겪고 있는 와중에, 주요 경제권에서는 중국이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실현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상기에 언급하였듯이 중국 위안화로 자산가치를 보유하고자 하는 외환관리 조직들의 숫자가 2021년에 극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면서,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자신들의 외환보유고에서 중국위안화의 비중을 급격하게 늘려나갈 것이다.

이는 일본 엔화와 영국 파운드 특히 미국 달러 등을 매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러시아는 이미 지국이 보유하고 있던 달러를 신속히 매각하여 달러와 연동된 부채를 96%나 줄였다.

러시아 통상장관인 Denis ManTunov는 BRICs 동료들에게 달러를 매각하고 자국통화의 보유를 늘려 나갈 것을 제안하면서,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그리고 남아공 5개국 간의 통상협력에서 자국통화가 주요 결제수단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이들 경제권에서 탈-달러화가 효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등 상해협력기구(SCO) 국가들 간에는 이미 지난 수년 전부터 자국의 통화 또는 중국 위안화가 무역거래의 지불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철권 같은 제제를 회피하기 위하여 이들 국가 간에 자국통화를 적용한 스왑SWAP이 확대되고 있다.

국제통상 전문미디어인 MarketWatch와 인터뷰에서 모건 스탠리 아시아본부 총책임자를 지낸 예일대 Stephen Roach교수는 코로나 이후 미국달러의 지위는 급격히 추락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뒤틀리기 시작했으며, 달러가 조만간 주요 국제통화와 대비하여 35% 정도 평가절하가 될 것인데,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실제로 서구의 경제권이 회생을 위하여 사력을 다하고 있는 중에, 중국은 새로운 국제통화 방식으로 디지털, 금본위, 아마도 가상화폐RMB의 국제결제 및 가치저장 수단을 출범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이는 미국달러가 지배하는 국제은행간 결제방식인 SWIFT 시스템에서 벗어나 이용가능 한 것으로, 현재 중국의 몇 개 도시에서 시험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결과는 성공적이다.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PBOC는 주권디지털화폐를 2022년에 열릴 국제동계 올림픽에 사용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실제로 이의 국제시장에 도입은 이보다 빠르게 2021년 중에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며 IMF가 이를 보증하면 더욱 신속하게 진행될 것이다.

어떤 경로를 통하든지, 급격히 추락하는 달러를 대체하는 무역결제수단으로서 새로운 통화의 등장은 많은 국가들에게 대환영을 받을 것이며, 특히 이들 국가들은 워싱턴이 가하는 제제의 협박에서 벗어나는 탈-달러의 경로를 갈망하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국제무역의 결제수단과 가치저장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중국의 위안화는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현재의 중국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형태로 실질적이고, 단단하며, 장기적인 안정성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과 미국의 GDP 내용을 들여다 보면, 마치 ‘낮과 밤’ 같은 느낌이다. 중국경제의 2/3 이상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생산기반과 간접시설, 주택, 수송 그리고 에너지 분야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에, 미국경제의 절반은 소비와 서비스 기반에 의존하고 있으며 주요한 실물생산이 해외에서 이루어 지고 있다.

이것이 실질생산에 기반한 중국화폐와 법적 기반에만 의존하고 있는 명목화폐인 달러 혹은 유로화 간에 차별되는 지점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중국 경제와 화폐는 국제사회에서 신뢰하고 믿을 수 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명백한 차이점들이 GDP라는 산술적인 계산방식에는 아직 반영되지 않지만, 주요 국가들의 재무부처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전문가들과 분석가 집단에게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무역결제와 가치저장의 수단으로 새로운 디지털화폐 또는 중국위안화를 신뢰할 근거들은 차고 넘치며, 선호도에서 현재 ‘새로운 금’으로 불리며 가치수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Bitcoin을 조만간에 추월할 것이다.

중국화폐를 선호하는 국가들이 단지 숫자로 급격히 늘어날 뿐만 아니라 보유할 금액 역시 로켓트처럼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미국달러의 헤게모니가 조만간 종말을 고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이 국제사회에서 경제권력의 전환을 가져올 것이다.

“몇 년 뒤에 2020년을 회고하면 2가지 뚜렷한 역사적 이벤트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하나는 코로나-팬데믹이고 다른 하나는 디지털-화폐가 될 것이다” 라고 북경대학교의 디지털금융 연구센터의 책임자로 일하는 Xu Yuan은 China-Morning Post와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물론 워싱턴 당국이 이러한 추세를 방관만하고 있지는 않다. 미국은 세계경제와 금융의 흐름을 지배하는 달러의 헤게모니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미국의 달러가 세계경제를 전일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이미 물 건너간 사실이지만, 미국당국은 상황의 전환을 가능한 지체시키고자 노력한다. 이런 과정에서 물리적 전쟁의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통화전쟁의 방식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팬데믹 와중에 세계경제포럼WEF와 IMF가 동시적으로 ‘거대한 전환(Great Transformation)’을 선언하고 나온 것과 맥을 같이 하면서, 일종의 통화혁명과 같은 조치가 검토되고 있으며 ‘거대한 전환’에 상응하여 소위 ‘거대한 재편(Great Reset)을 주도하는 국제조직이 출범할 가능성이 있다.

하나의 가설로서, 워싱턴 당국이 IMF를 활용하여 금본위 제도로 복귀할 수도 있다. 약화된 달러를 디지털 위안화e-RMB가 대신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하여 주요 통화바스켓에 기초한 e-SDR(특별인출권)를 도입할 수도 있다. 현재의 SDR는 5국가의 국제결제통화로서 이루어져 있는데 구체적인 구성은 다음과 같다. 미국달러(41.73%), 유로화(30,93%), 중국위안(10.92%), 일본앤(8.33%) 그리고 영국파운드(8.09%).

2017년에 SDR바스켓에 처음으로 도입된 중국위안화는 미국달러와 유로화에 대비하여 가중치가 많이 평가절하되어 있지만, 이후 국제적인 지불과 가치의 수단으로 공식화되었다. 가중치 적용의 룰은 5년 동안 유효하며, 2021년에 재협상과 재평가를 거치도록 예정되어 있다.

새로운 SDR통화의 도입과 별도로, 새로운 금본위 기준의 도입이라는 가설로 금의 가치가 달러의 약세를 대치하면서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미국은 1944년 금본위 제도를 도입했을 당시처럼, 금의 가치를 달러에 연동시키면서 바스켓의 가중치에서 달러의 비중을 불균형적으로 높게 평가하도록 주장하려 할 것이다.

만약 미국의 이러한 주장을 주요 국가들이 수용하게 되면, 브레튼-우드 체제에서 탄생한 IMF와 World-Bank 조직에서 독보적인 거부권을 행사하였듯이, 새로이 탄생하는 가상적 금본위 SDR에서도 미국이 거부권을 유지하면서 새로이 부상하는 디지털e-RMB의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도래하면, 통화전쟁이 일어날수 있으며, 직간접적으로 상당량의 금을 보유한 중국은 미국의 영향권(US orbit)에서 이탈한 금보유 강국들, 예건데 러시아, 베네수엘라, 남아공 등과 함께 위안화와 금가치를 연동시킨 대안통화를 만들거나, 대안적 금시장에 참여하는 주요 국가들과 함께 금의 가치를 평균가중치로 적용한 통화를 창출할 수도 있다. 이러한 금본위의 대안통화는 이에 참여하는 국가들의 경제력이 뒷받침하면서 강화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미 시작되고 있지만, 금과 연동하든 하지 않든, 해당 경제권과 통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가 향후 진행될 통화전쟁의 향배를 결정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중국은 국가 간의 무역에 자국통화를 이미 사용하여 왔으며, 국제거래에서 위안화의 사용을 급격히 확대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그리고 이란 등과 자국통화 스왑 SWAP조치를 취하면서 위안화 사용을 안착시키며 미국달러의 헤게모니를 약화시키고 있다.

결국, 중요한 목표는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헤게모니를 또 다른 헤게모니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서로 연결하여, 인류의 미래를 함께 공유하는 세계공동체World-Community를 평화롭게 건설하는 일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금융자원을 공정하게 접근하도록 다극적인 지역 허브와 금융센터를 균형있게 형성하는 일이다.

 

출처 : Origin from New Eastern Outlook.via Global Research center on 2020-10-07.

Peter Koenig

경제학자이자 국제지정학 분석가이다. 30년 이상 World-Bbank와 세계보건기구 등과 조사작업을 하여 왔으며, 환경과 수자원 분야의 세계적 베테랑이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남미의 대학에서 강연을 진행하면서 진보매체에 기고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수, 2021/01/13-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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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컨퍼런스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고, 도움을 주신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과 환경재단, 한국생태문명프로젝트 등에도 감사드립니다. 제가 기후 변화와 관련한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된 건 한국에서 오신 분의 리더십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입니다. 반 총장은 2014년에 유엔 기후회의를 개최하여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를 도모하고자 했는데, 당시 저는 뉴욕에 있는 유니언 신학교를 갓 졸업했습니다. 그 후 공공 계획 관련 일을 하고 있던 중에 반 총장의 도전을 듣게 되었고, 저는 “지구를 위한 종교”라는 컨퍼런스를 여는 것을 제 새로운 미션으로 삼았습니다.

이 컨퍼런스에는 전 세계에서200개 이상의 종교 단체들과 그 지도자들이 모여 현재의 기후위기를 도덕과 윤리의 문제로 재구성하고, 신앙심에 기반한 기후위기 대응 활동을 촉진하고자 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영감을 얻은 저는 지구윤리센터(Center for Earth Ethics)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이 단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저와 저희 팀의 목표는 지구를 비롯한 모든 것들의 장기적인 건강과 안녕을 목표로 하는 가치들을 측정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문화와 정책들을 찾아낸 뒤 그것들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물론 국내총생산이나 주식시장에서의 시가총액 등 사회가 가치 측정을 위해 사용하는 주요 기준들은 우리가 급박한 기후 위기를 맞이하게 된 데 책임이 있습니다. 그 기준들은 매우 단기지향적이며, 오염이나 자원 고갈, 불평등을 비롯해 문화나 공동체, 건강과 같은 웰빙의 비금전적 요소들에 대한 투자의 가치를 담아내지 못합니다.

오늘 저는 제가 참여하고자 하는 변화에 대해, 그리고 왜 제가 그것을 윤리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지 말하고자 합니다. 윤리는 옮음과 그름의 판단을 수반합니다. 또 한 개인으로서, 집단의 일원으로서 우리 각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도 함축하고 있습니다. 즉, 가치들과 우리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의 첫 번째 과제는 “윤리적 관심”의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또 정책 결정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는 일입니다. 지구 윤리에서의 윤리적 관심사의 범위는 매우 넓은데, 이는 우리가 전 지구적인 건강과 안녕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스웨덴의 한 교회에서 만난 제 친구의 이야기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국제 정책이 만들어지는 어느 공간이든 세 개의 빈 의자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세 개는 각각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미래 세대들, 그리고 지구에 있는 모든 인간 이외의 생명체들 – 즉, 현재 만들어지는 정책들에 가장 큰 영향을 받으면서도 가장 적은 영향력을 가진 존재들 – 을 위한 지정석들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잘 생각해보시면, 이 세 집단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정책의 수립 과정과 결과를 더 공정하게 만들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더 강하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 시스템을 만드는 수단으로서의 역할도 합니다.

저희 지구윤리연구소에서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전통과 지혜들을 끌어 모음으로써 세계의 어느 종교든 생명의 유기체성과 근본적 상호 연결성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생각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어느 곳이든 불의가 존재한다는 것은 모든 곳에서의 정의에 대한 위협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틱낫한 스님의 “우리는 우리 자신이 다른 것들과 서로 분리되어 있다는 환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존재한다”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합니다. 이러한 통합적 전체성은 과학에 의해서도 뒷받침되는데, 윤리와 과학이 만나는 간학문적 연구는 지구 윤리의 아주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다시 세 개의 의자 이야기로 돌아가면, 첫 번째 의자의 경우 현재 국제 인권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엔 세계 인권 선언에서는 인권의 핵심적 가치들을 제시하며 천부적 존엄성과 함께 모든 인간이 가진 평등하고 양도될 수 없는 권리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가치들은 자유와 평화, 정의의 기초가 되는 것들이죠. 따라서 지구 윤리도 이 프레임 안에서 작동하며, 단지 깨끗한 물과 공기에 대한 권리뿐 아니라 기후변화의 피해가 이러한 재난 상황을 유발하는 데 가장 적은 영향력을 끼친 (즉, 지금까지 가장 적은 양의 탄소를 배출한) 지구상의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돌아간다는 것도 알리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의자의 경우는 우리로 하여금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윤리적 사고를 하도록 합니다.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배출될 경우 이 가스들이 대기중에 머무르다가 실질적 영향을 끼칠 때까지의 시차가 있으며, 이는 우리가 자원을 자연적으로 보충되는 속도보다 빠르게 고갈시키고 있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 자원들과 토지는 대기중의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시켜주는 “자연 탄소 포집기”의 역할을 하는데도 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윤리학자 스티븐 가드너는 “우리는 단순한 공유지의 비극이 아닌, ‘현재의 미래에 대한 독재’의 상황에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것을 더욱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지난 수년간 강력한 청소년 기후위기 대응 운동의 부상을 지켜보았습니다. 이 운동은 미래 세대의 목소리를 현재로 가져옴과 동시에,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칠 현재 세대의 행동들을 중단하라는 도덕적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 여겼던 초대형 태풍, 가뭄, 폭염, 산불, 해수면 상승 등은 이미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우리가 생명 시스템의 균형을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 전에 생태적 전환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세 번째 의자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1948년, 그러니까 유엔 세계 인권 선언이 발표되던 해의 지구의 인구는 24억 명이었지만, 2020년 현재는 78억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 70여 년의 시간동안 인간은 다른 종들의 서식지를 대규모로 파괴했고, 그 결과 유엔은 현재 백만여 종 가량이 멸종 위기 상태에 놓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태적 손실은 인간에게 새로운 바이러스와 질병의 등장, 식량 시스템의 위협 등 수많은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인간이 받을 영향들은 반드시 생명 체계의 상호 연관성 속에서 설명되고 이해되어야 합니다. 한편,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체가 천부적 가치와 권리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윤리적 질문은 지구 윤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동안 역사 속에서 윤리학은 옳음과 그름의 판단이 사회적 규범과 법 질서 하의 판단과 맞지 않을 때 가장 강해졌습니다. 미국에서의 노예제 폐지와 여성 참정권 운동 등 과거의 중요한 운동들과 사회 변화의 시기도 모두 이런 때였습니다. 저는 오늘날이 바로 그런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생태계를 파괴해온 수많은 논리들과 유인들은 모두 완전히 합법적이었으며 사회적 규범과도 합치되었습니다. 이 때 데이터와 과학 기술은 이러한 생태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발생한 기후변화와 대기오염의 절반 정도가 지난 20년간 발생했는데, 이 시기는 바로 우리가 기후변화의 인과관계를 가장 잘 이해하고 친환경 재생 에너지라는, 가장 확실하고 실행 가능한 대체제를 가지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따라서 현재 상태의 변화를 위해서는 우리들의 도덕적인 판단이 필요합니다. “구조적 악마”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윤리학자 신디아 몰라베이다는 “구조적 악마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그 자체가 쉽사리 ‘선’ (善) 혹은 좋은 것으로 둔갑한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선은 경제 성장으로, 많은 사람들을 가난에서 구제해준다는 명목 아래 생산과 소비의 무한 성장을 위한 생태계 착취 및 화석연료의 지속적 사용을 꾸준히 지지하고 정당화시켜온 가치입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자가당착에 부딪히게 됩니다. 유엔의 한 빈곤 및 인권 문제 전문가는 작년에 발표된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는 지난 50여 년 간의 공중 보건 개선과 빈곤 감소를 위한 진보적 노력을 모두 수포로 만들 수 있으며, 오히려 수백만 명 이상을 추가로 빈곤의 늪에 빠지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러한 지속가능하지 않은 성장이 어떠한 견제도 없이 이어진다면, 기후위기는 궁극적으로 지구라는 행성 안의 생명체 서식 가능성 그 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컨퍼런스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것들입니다.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 우리는 세 개의 의자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현 상태를 정당화하는 논리들에 대한 비판적, 도덕적 사고를 멈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은 부유하고 깊으며 창의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입니다. 한국인들의 생태적 경험들은 한국을 생태 전환 시대의 리더로 만들어줄 것이며, 저도 여러분들과 함께 배우고 일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같은 인류로서, 지구에 사는 생명체로서 희망 넘치는 공존의 미래를 향해 나아갑시다.

 

카렌나 고어

지구윤리센터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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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1/01/15-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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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경제학자들은 그동안 장기적인 안정이라는 관점에서 효율성이 야기하는 문제점에 대해 무지하였으며, 자신들이 신봉하는 현재의 균형이론이 장래에도 변함없이 적용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현 시점에 효율적이라는 것이 미래에도 작동할 것이라는 믿음에는 근거는 없다.

런던 – 경제학은 최소의 시간과 노력으로 최대의 만족을 산출하려는 활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적은 자원을 투입하여 경제적으로 활용할수록, 우리가 원하는 것을 더욱 많이 얻어내는 것을 한마디로 ‘효율적 efficient’이라고 불러왔으며, 효율성을 최고의 목표로 추구하면서 생활비용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하여 왔다. 원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저렴하게 취득하는 것이 삶을 개선하는 열쇠이었다.

또한 효율성은 무역(거래)이론의 핵심을 형성하고 있었다. 19세기 초, 데이비드 리카르도는 모든 국가들은 자신들이 가장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상품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0세기에 노벨상을 수상한 폴 사무엘슨은 상기의 리카르도의 주장에 대하여 개인거래를 넘어서 민간사업과 국가 간에 공히 적용할 수 있는 노동분업의 이론을 인용한 것으로 평가하면서, ‘비교우위의 이점 comparative advantage’이라는 명칭을 부여하여 경제학의 최고이론으로 치켜 세웠다.

그간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상기의 주장은 지당하고 합리적인 이론으로 굳게 신봉되어 왔다.

동시에 ‘효율성’이란 단어는 현대의 경제학 분야에서 경제학자들이 노동생산성에 매달리는 근거가 되어 왔다. 영국의 경우에, 노동자 한 명의 시간당 산출량이 2007년 이래 정체되면서 효율성 측면에서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하였다. 다시 말하면, 지난 13년 동안 영국인들의 생활수준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며, 이는 산업혁명이래 가장 오랫동안 정체를 겪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하여 경제학자들은 학계 매체를 통하여 ‘생산성의 미로 – productivity puzzle’ 에 관하여 수백 수천의 논문을 발표하여 왔다.

그러나 이제 배경음악과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구글 검색어를 통하여 최근의 수백만의 저술과 논문을 분석하여 보면, 1982년 이래 효율성과 생산성이라는 단어의 사용빈도가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대신하여 균형적인 회복resilience과 지속성 sustainabilty이라는 단어가 더욱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제 인류는 경제생활의 지속성과 위기에 대한 균형적 회복에 대하여 더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경제학자들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존재가 되고 있다.

3가지 사항이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첫째는 가용 자원을 오로지 현재의 비용이라는 관점에서 집중하여 소모하면,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류의 생존을 지속할 수 없다는 염려가 증대하고 있다. 오늘 당장 저렴한 것이 미래에는 비싼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민간기업과 소비자들에게 단기적인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인류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지속가능의 기술에 투자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둘째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세계화에 따른 공급사슬의 취약점을 분명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가장 저렴한 지역에서 상품을 구매를 하자는 논리 즉 리카르도의 매력적인 이론을 수용한 것이 생필품의 접근을 하루 아침에 상실할 수 있는 악몽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팬데믹 과정에서 서구사회의 시민들은 의료행위에 필요한 기자재들을 중국 등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이제 모든 것에 우선하여 효율성을 추구하면, 그것이 자동화의 도입이든 세계화의 과정이든, 일자리의 안정과 지속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담 스미스는 논박할 수 없는 논리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생산의 종점(목표)은 소비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소비는 지속가능한 수입을 필요로 하며, 이는 일반시민들의 임금으로 이루어진다. 현재의 정치경제 시스템에서 임금이 없는 소비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현실에서는 오히려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부의 집중과 수입의 불평등이 거대하게 진행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흔히 거래(trade-off)에 대하여 논리를 펼친다. 그런데 이들은 효율성과 지속가능성 간에 이루어지는 상호의 거래에는 무지하였다. 일시적인 효율성을 시간을 넘어서는 장기적 개념으로 확장시키는 문제를 백안시하였다.

이는 대체로 현대 경제학이 떠받치는 균형모델에 시간개념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었고, 단지 현재의 모형이 미래에도 당연히 적용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 현재에 효율적인 것은 미래애도 여전히 효율적일 것이다?

케인즈가 여러 번 지적하였듯이 ‘미래는 불확실하다 future is uncertain’. 현재의 효율성에 작동하는 자유무역과 세계단위의 공급사슬, 자동화와 저렴한 임금 등의 조건들이 지속될 것이라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

케인즈가 생존 당시에 Jan Tinbergen(후에 노밸상을 수상한 인물)에게 수리경제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날선 비판을 하였다: “과거에 근거한 수리경제학의 결정함수가 인류의 미래에도 적용이 가능하다고 믿는가? 수학으로 표현할 수 없는 발명과 혁신, 정치, 노동쟁의, 전쟁, 지진, 금융위기 등 내용에 대하여 수리경제학의 어디에서 언급하고 있는가?”

케인즈의 지적대로 현재의 현안적 위기에 대하여 우리는 이제 목록을 작성해야만 한다.

우선적으로 경제정책의 책임자들은 ‘예비경고적인 원칙’ 다시 말하면 ‘최소적 위험에 대한 원칙’들에 보다 주의를 기울이면서, 최대의 수익보다는 위험을 관리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경제학자 Vladimir Masch는 이러한 접근을 ‘위험을 관리하는 극대화’라고 호칭하면서 ‘이번 세기는 매우 위험하고 불확실하며 복합한 조건들이 뒤섞어 있기에 위험을 우선시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Masch가 주장하는 신중한 정책결정의 이론은 기존의 관행에 익숙해 졌던 우리에게 불편함(어려움)을 가져다 준다.

예를 들어 ‘지구상의 통제할 수 없는 인구증가에 대하여 어떻게 지속가능한 원리를 적용할 것인가? – 이에 대하여 인구폭발을 규제하기 위해 적시의 교육과 과학을 활용해야 한다는 믿음을 견지해야 하지만, 문제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지구상의 인구폭발을 받쳐줄 자원의 부족으로 대규모의 질병, 기근, 홍수, 전쟁 등 전통적인 재앙이 과잉인구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맬서스의 근거 있는 주장을 새삼 심각하게 받아 들어야 한다.

동시에 정치적 경제적 회복력을 위협하고 예측가능한 정치적 후유증을 가져올 지나친 소비를 조절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기술력을 키워내야 하지만, 현재와 같이 효율성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비용절감과 시장경쟁력이라는 수단을 동원하여 이의 해결이 가능할까? 신중한 정책결정의 원칙에 따라 다른 무엇보다도 사람을 중시하는 기술에 집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기적으로 파국을 불러오는 현재의 금융시스템을 허용하는 자본주의적 정치경제 시스템으로, 다시 말하면 단기적인 효율성이라는 목표로 과연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여건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현재 우리는 상기에 언급한 중차대한 질문들에 대하여 겨우 첫걸음을 뗀 상태이다. 이제라도 ‘효율성에서 지속가능이라는 이슈의 전환’에 발맞추어, 경제학적 사고 역시 새로운 추세를 의무적으로 따라가야 한다.

 

출처: Project Syndicate on 2020-12-17.

Robert Skidelsky

영국귀족원의 평생회원이자 Warwick 대학교의 정치경제학 분야 명예교수로 케인즈에 대하여 3권의 방대한 전기를 저술하였다. 노동당에서 정치적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후에 보수당의 재정정책을 지지하는 귀족원의 대변인 역할을 맡았다가, 1999년 코소보에 대한 나토의 공습을 격렬하게 반대하여 보수당에서 출당조치를 당하였다

금, 2021/01/15-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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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난 12년 동안 공화당이 망친 경제를 되살려 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민주당 출신이 두 번째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지난 주에 발생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난동을 참담하게 지켜보았지만, 이제 곤경에 빠져있는 미국경제의 회생여부는 바이든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를 다루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연방의회에서 민주당이 미세하게 다수를 지켜내고 있어서 야심차게 진보적 목표를 추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지난 목요일 바이든이 이미 제시한 구제지원의 제안은 오바마 당시 경제적 위기에 보였던 지나친 소심함에서 일단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바이든 경제팀 중에 소심한 접근을 검토하는 인사들이 있다면, 필자는 과거의 고통스런 경험을 통해 터득한 다음의 4가지 원칙을 제시하여, 현재의 난국을 과감하게 돌파할 것을 주문한다.

원칙 1 – 구제지원에 대한 정부의 역량(파워)을 의심하지 말라. 오바마 정권 초기 당시, 백악관의 민주당 출신 참모들은 보수적인 이념적 공격에 어줍잖게 타협하면서 정부의 개입이 도움보다는 해를 끼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2009년 이후에 진행된 정부의 과감한 지출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커다란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당시 공화당은 오바마의 의료정책를 비난하면서 이를 노예제에 비유한 사실을 기억해보라? 여전히 몇 가지 결점을 지니고는 있었지만, 환자보호-적정부담-보험법(A.C.A – Affordable Care Act)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미국시민들의 숫자를 급격히 축소시켰고, 이들에게 과거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안전(사회안전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하였다. A.C.A를 뒤집으려는 공화당의 시도에 대한 이들 시민들의 반대가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을 승리로 이끈 주요 배경이 되었다.

최근에 들어서 상기 보험법이 확대되어 민간기업과 실업자들에게 추가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더욱 많은 구제지원이 가능해지면서 팬데믹으로 인한 어려움을 완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바이든은 확대된 구제지원책을 구상하면서, 빈민아동을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기존의 A.C.A 보험법을 보다 많은 시민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확대하고자 한다. 당연한 조치이며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최근의 경험에 따르면, 정부의 현명한 지출은 미국시민들의 생계를 크게 개선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원칙 2 – 재정적자를 마음에 두지 마라. 오바마 정권은 출범 당시부터 정부의 채무에 대한 끊임없는 경고에 시달렸다. 바이든 정부는 이러한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사실은 이러하다. 재정적자에 대한 과다한 경고성 예측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으며, 정부부채는 과거의 식견에서 판단했던 것처럼 큰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이제 다수의 경제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한 예를 들어보면, 연방정부의 부채비중이 높아져도 역사적으로 매우 낮은 이자율 덕분에 실제로 정부가 지불해야 하는 부담 역시 매우 낮아졌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문제는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 오바마 시절 정부의 부채를 물고 늘어졌던 공화당의 강경파들이 거꾸로 도날드 트럼프 정권에서는 거대한 세금인하를 추진하면서 재정적자를 불러왔다.

원칙 3 – 인플레를 걱정하지 마라. 물가가 폭등할 것이라는 경고를 지속하면서 정부가 실제의 물가지수를 속이고 있다는 주장을 해오는 집단들이 있다. 이런 주장은 트럼프 시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바마 시절에도 줄곧 있어 왔지만, 그러나 인플레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점에도 이들은 여전히 인플레에 대한 걱정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참에 트럼프 시절부터 얻은 핵심적인 교훈을 강조하고자 한다 –경제를 확장적으로 운용하면서 실업률을 낮추고 재정적자를 확대해도 인플레는 일어나지 않는다. 필자는 바이든 역시 미국의 경제를 확장시키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을 조언한다.

물론 공화당으로부터 어떤 도움과 지지도 기대하지 말 것.

원칙 4 – 공화당이 협조할 것으로 판단하지 마라. 오바마 정책의 원죄는 2009년 당시 경제활성화 정책이 너무 빈약했다는 것이다. 당시 시행한 ‘회복을 위한 재투자법’이 경제를 안정시키는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위기의 깊은 골에 비하여 너무 초라하였다. 솔직해야 한다. 우리 대부분이 당시의 현실에 대처하는데 너무 인색하였다.

빈약했던 배경에는 오바마 자신이 다수의석을 가졌던 민주당의 의결을 통해 추진하기 보다는 공히 양당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2017년 세금인하정책은 당시 공화당은 이를 강경하게 밀어 붙였다). 공화당의 협조는 결코 실현되지 않았다. 그 결과 불만스런 경제회복으로 2010년 총선에서 공화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후 오바마의 정책에 건건이 제동을 걸었다.

비이든은 똑같은 실책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물론 공화당이 참여하여 검토하고 판단할 시간을 주는 것은 필요한 일이겠지만, 양당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 원래 기획한 정책에 물타기를 해서는 안된다.

현재의 공화당으로부터 바이든이 실제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명명백백한 대선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을 2개월 이상 거부하다가, 폭도들이 연방의회를 점거하는 사태에도 불구하고, 선거인단을 통한 확정과정에서조차 일부의 반대표를 던진 것이 공화당의 모습이다.

되풀이 하지만 바이든은 양당의 지지에 연연하여 그의 정책을 변질시켜서는 안된다. 유권자들은 과정보다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

상기에 언급한 내용을 합하여 한마디로 조언한다 “ 빌어먹을 장애를 돌파하며 전속력으로 달려라 – damn the torpedoes, full speed head.”

이데올로기에 굴복하지 말고, 재정에 대한 경고에 흔들리지 말 것이며, 쓸데없는 예의를 갖추지 말고, 미국시민들에게 정말 필요한 정책을 추진하는데 매진해야 한다.

 

출처 : 뉴욕타임즈 NYT on 21-01-14.

Paul Krugman

뉴욕시립대 교수이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십 수년간 뉴욕타임즈에 기고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토, 2021/01/16-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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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작년 김정은 위원장이 10.10 노동당 창당일 행사에서 공개적으로 눈물을 보이고, 올 연초 노동당 제8차대회에서도 경제운영의 실패를 솔직하고 과감하게 인정했다. 아래의 글은 이러한 배경에 대한 서구의 분석을 읽을 수 있는 칼럼이다. 기고자는 북한이 코로나에 상당히 노출되어 있다는 입장이지만, 다른백년은 코로나 환자가 전무하다는 북한당국의 발표를 기본적으로 신뢰한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에 추가로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북한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빠져 들었다. 중국이 2017년 대북제재에 가세하면서 시작된 북한 경제의 어려움은 2020년에는 잔인할 정도의 수준으로 진행되었다.

전세계가 겪고 있는 일이지만, 코로나19는 북한사회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쳤다. 공식적으로는 수천 명 정도가 확진의심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발표하였지만, 정부의 주장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별로 없으며, 비공식적인 이야기로는 상당한 숫자의 확진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세계적으로 팬데믹이 전파되면서 북한의 주요 도심들이 시시때때로 봉쇄되어 왔다. 최근에도 자강도 전체가 전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봉쇄되고 도시 간의 여행과 시장활동 중단되면서, 경제에 큰 충격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 바이러스가 어느 정도 퍼져 있는지 누구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북한 정부의 말대로 확진자가 전혀 없다는 주장은 믿기 어렵다.

이로 인한 북한사회의 공공보건 어려움에 못지않게 경제적 충격도 대단하다. 북한 정부의 자체적인 결정에 따른 것이지만, 중국과 접한 국경을 봉쇄하면서, 거의 유일한 대외무역 창구가 막히게 되었고,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2020년 10월 무역액이 겨우 1.6백만 달러에 그쳤다.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는 내용에 따르면 국경봉쇄로 인해 식량부족이 발생하고 시장물가가 치솟고 있다고 한다.

물론 비공식적 무역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2019년 대비하여 2020년의 무역량이 80% 정도로 격감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2019년의 무역액 자체가 단호한 국제적 제제조치로 인하여 예년에 비해 상당량 줄어든 것을 감안한다면, 2020년의 무역량은 이중 삼중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북한당국은 코로나-19의 확산을 자체적으로 감당할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조치가 필요한 대상 인구를 상대하기에는 의료의 테스트 장비와 시설이 태부족이다.

외국의 도움을 수용해야 할 형편이지만, 스파이 활동과 이념의 유해한 영향을 염려하여 이를 거부하면서, 만약의 감염사태가 전면적으로 발생하면 통제가 어려울 상황에 처해 있다. 이미 감염이 일부 지역에 전파되고 있다면, 외부세계와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이 북한을 추가적인 위협에서 보호하는 유일한 방도이다.

그러나 국경의 봉쇄는 북한사회에 커다란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봉쇄로 인하여, 식량과 생필품의 부족사태가 발생하고 있고, 물가가 치솟고 기근이 진행되고 있다.

동시에,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은 2021년 초 예정된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5개년 경제계획을 발표할 예정인데, 인민경제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하도록 준비하여 왔다.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상당수의 인민들이 정부의 직접통제를 벗어나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정부가 중앙통제를 강화하여 시장과 민간영역의 활동을 억제하면, 시장거래와 사적 경제가 위축되면서 인민들의 생계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개혁을 동반하지 않는 강제조치를 강행하면 정치적인 위험을 동반할 수 있다. 제제조치에 의한 무역의 격감과 팬데믹 봉쇄에 따른 경제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정부차원에서 인민대중들의 자원을 동원할 필요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에 더하여 그동안 진행해온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위하여 필요했던 비용 역시 발언권을 갖고 있지 못한 인민대중들이 부담하여 왔다.

상기의 모든 어려움이 한데 겹치면서, 2020년은 북한의 역사에서 중대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심각한 제재에 직면한 상태에서 국경조차 봉쇄해야 하고, 자연적인 재해와 감염수준을 가름할 수 없는 펜데믹을 겪으면서도, 북한당국은 핵무기를 협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여 왔다.

핵개발을 다루는 정부의 책임자들은 일반인민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동떨어져 있는 정치집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은 북한의 지배집단들이 엄청난 부담을 일반 인민들에게 전가해야만 했던 일년이었다.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이 원하는 바 협상을 개시할 수는 있지만, 바이러스를 차단하기 위하여 대외무역을 강력히 차단하였듯이,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라는 압력과 이에 따르는 제제조치에는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제제완화를 대가로 무기통제와 핵무기억제를 위하여 실무적이며 실용적인 협상의 채널을 가동하겠지만, 완전한 핵무장의 해체까지 요구하기는 어렵다.

 

출처 : East Asia Forum in ANU, Sydney, on 2021-01-04.

Benjamin Katzeff Silberstein

텔-아비브 대학과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였으며, 현재 ANU동아시아 연구센터의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북한경제동향 North Korean Economy Watch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월, 2021/01/18-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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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기에 앞서: 한심한 통일부의 대북인식을 질타하며

필자는 이미 2021년도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생략을 예측했고, 그래서 <통일뉴스>에 기고할 목적으로 하루 전날인 2020년 12월 31일에 원고를 미리 써놨고, 이걸 ‘예측: 2021년 북 신년사를 대체한 제8차 당 대회’라는 제목의 분석글을 기고한 바 있다.(<통일뉴스>, 2021.1.1.)

아니나 다를까 북은 2021년도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를 내놓지 않았다. 대신, 김정은 위원장은 “위대한 인민 받드는 충심 변함없을 것 다시금 맹세”라는 내용을 중핵으로 하는 ‘전체 인민에게 보내는 친필 서한’형식의 새해인사를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친필서한 <출처: 로동신문>

이를 두고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남측 사회에서 일어났다. 다름아닌, 통일부가 2021년 1월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1년 새해를 맞아 주민들에게 공개한 친필서한을 두고 “김정은 위원장 집권 2012년 이후 전 인민을 대상으로 발표한 첫 친필 서한 형태의 ‘신년사'”라며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첫 사례라면서 “이례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같은 친필 서한도 ‘신년사’라고 판단한다, 했다.

참으로 수준 낮은, 아니 한심한 통일부이다. ‘새해인사’와 ‘신년사’가 어떻게 갔단 말인가?

말 그대로 새해인사는 최고지도자가 인민들에게 새해를 맞아 보내는 덕담인사이다. 단지, 그 덕담의 내용과 수위가 우리 자본주의 사고방식으로는 수용하기 좀 어려운 정치적 행위의 연장이기 때문에 그렇게 오해할 수는 있어도, 새해인사는 새해인사 일 수 밖에 없다. 반면, 신년사는 새해인사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수준의 문제이다. 최고지도자의 한 해 국정운영 철학과 국정운영 목표, 방식 등에 대한 계획을 당과 인민에 총화발표하고, 이를 당이 중심되어 군중적으로 조직동원하기 위한, 즉 한 해 북이 나아가가야 할 좌표방향과 목표에 대해 북 사회전체가 공유하고 결의하는 내용과 형식으로 집중된 고도의 정치행위이다.

바로 그 행위를 김정은 위원장이 생략하고, 시기적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제8차 당 대회(2021.1.5.개막)를 통해 대체한 것이다. 그러니 새해인사와 신년사와는 전혀 다른 층위의 차원문제이다.

어쨌든 그래놓고 기억을 되돌려보자. 북은 이미 지난해 8월 1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를 열에 제8차 당 대회를 2021년 1월에 개최할 것을 예고했고, 또 12월 29일에는 제7기 제 22차 당 정치국 회의를 열어 제8차 당 대회를 2021년 1월 초순에 개최할 것을 최종 결정함에 따라 정권수립 이후 아주 이례적인 예외 없이는 곧잘 지속되어왔던 최고지도자의 신년사가 생략될 것임을 미리 예고했었다.

유추하면 다음과 같다. 북도 여느 사회주의국가처럼 당 우위의 국가체제이다. 그러면서도 수령의 절대권한이 보장되는 수령중심의 체제이기도 하다. 바로 이 두 의미가 교집합되면 1월 초에 개최될 당 대회, 그것도 당의 최고의사결정 단위인 당 대회에서 그 조직의 최고지도자가, 그것도 ‘유일’최고지도자가 자신의 국정철학과 국정운용계획을 발표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체제원리적으로도 맞다.

조선노동당 제8차대회가 5일 오전 평양에서 개막되었다. <출처: 노동신문>

 

2. 제8차 당 대회 소집목적에 대한 간략한 고찰

제8차 당 대회 소집목적이 어디 있느냐는 <조선중통신>이 보도한 1월 6일 자 기사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통신은 그 소집목적을 공개했는데, 이로부터 이번 제8차 당 대회가 어떤 목적을 갖고 개최하려 했는지에 대해 충분히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고조기, 장엄한 격변기가 도래한 시대적 요구에 맞게 당중앙위원회의 사업을 전면적으로 엄중히 총화하고 사회주의 위업의 보다 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정확한 투쟁방향과 임무를 명백히 재확정하며 실제적인 개선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8번째로 되는 당대회를 소집했다.”

분석하면 첫째, ‘새로운 고조기’는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전진하는 북의 향후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름하여 사회주의완전승리노선의 ver.2이다.

둘째, ‘장엄한 격변기’는 미국과의 판가리싸움에서 결정적 승리국면을 반드시 열어제끼겠다는 의미가 있다.

셋째, ‘사회주의 위업의 보다 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정확한 투쟁방향과 임무를 명백히 재확정하며’에서 확인받는 것은 자강력제일주의와 정면돌파전에 기초한 자체의 힘, 주체역량강화에 기반 한 전략노선이 채택된다는 의미를 함의한다.

넷째, ‘실질적인 개선대책’에서 확인받는 것은 사회주의제도와 질서를 ‘개건’과 ‘개선’을 통해 보다 우리 식(주체)사회주의제도를 더 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임을 예고했고, 그 모습은 수령-당-대중의 혼연일체에 있다.(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 구현과 당을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무장된 혁명적 당으로 질적 전환을 내 오는 것, 그리고 수령의 절대성이 더 공고화 되는 방향으로의 정립이다.)

 

3. 총론적 분석: 사업총화보고와 결정서 중심으로

내용적으로는 대략 4가지 방향으로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북 언론보도가 이를 증거 해주는데 △첫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둘째, 조선로동당 중앙검사위원회 사업총화 △셋째, 조선로동당규약개정에 대하여 △그리고 마지막 의제가 조선로동당 중앙지도기관 선거부분, 그렇게 4가지 의제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이후 북의 국정운영 방향과 좌표 관련해 핵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내용은 뭐니 뭐니 해도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A4용지 20여장 분량에 해당되는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이하, ‘김정은 위원장의 보고’로 약칭, 정식 보고명칭은 ‘우리 식 사회주의건설을 새 승리에로 인도하는 위대한 투쟁강령’이다.)이다. 12일 폐막 때 채택된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 한 결론’ 부분도 매우 중요한 분석 자료이다.

해서 이 두 부분을 and적으로 조합하면 지난 제7차 당 대회 분석이 어떻게 심층분석 총화됐고, 향후 5년간 북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총적과제가 집대성된다. 5년간의 국정운영 방침결정서가 그렇게 수립되는 것이다.

참고로 이번 당 대회도 일반적으로 당 대회가 개최되면 최종적으로는 결정서 채택을 끝으로 폐막되는 그런 경로를 그대로 따랐다. 대회 기간이 좀 길어지면서(역대 두 번째로 긴 대회, 1/5 ~ 1/12) 한때는 결정서 채택없이 끝날 수도 있겠다는 추측이 난무했지만, 그 예외를 북은 허용하지 않았다.

물론 조금만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문제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기간 사업총화보고를 했는데도, 그에 대한 결정서 채택이 없다?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북 체제의 특성 간과이다. 결과, 이번 제8차 당 대회도 김정은 위원장의 사업총화보고와 결정서 채택중심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한 치의 어그러짐도 없는 북의 생각과 의도, 국정운영방향을 알 수 있다.

틀은 다음과 같다.

제1부: 제8차 당 대회 총론분석: ‘이민위천, 일심단결, 자력갱생’ 3대 이념으로 무장되다

제2부: 제8차 당 대회 대내관계 분석: 정면돌파전과 사회주의완전승리노선에 대한 이해

제3부: 제8차 당 대회 대외관계 분석: 북미, 남북관계 전망을 중심으로

이 중 이 글은 우선 그 첫 번째, ‘제8차 당 대회 총론분석: ‘위민위천, 일심단결, 자력갱생’ 3대 이념으로 무장되다‘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시작해 보자. 총론분석 그 첫째, 북은 이번 제8차 당 대회가 갖는 의미에 자신들의 현 단계 혁명발전단계 성격규정을 명확히 했다. 어떻게? 혁명의 ‘정착기(김일성시대)’를 거쳐 ‘과도기(김정일시대)’가 끝나고, 김정은시대에 들어와서는 자신들의 혁명발전단계가 ‘계승기와 발전기’ 단계로 진입했음을 공식 선언했다.

우리 당과 혁명발전에서 중대한 정치적 사변(강조, 필자)으로 되는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는”에서 확인받듯이 이번 제8차 당 대회 개최를 ’정치적 사변‘으로 성격 규정해 북의 사회주의 혁명발전단계가 ’계승기와 발전기‘단계에 진입했음을 알려 내었다.

구체적 뒷받침은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는 조성된 대내외형세하에서 우리의 전진을 저애하는 주객관적 요인들과 심중한 결함들을 인정하고 당과 국가사업전반을 혁신하며 사회주의위업을 승리의 다음단계로 이행시키는데서(강조, 필자) 나서는 명확한 투쟁과업과 방도들을 밝힌 위대한 실천강령이다.” 이어 “전투적 기치이며 주체위업의 력사적뿌리와 오늘, 미래를 굳건히 이어주는 혁명적 문헌으로 된다.”고 성격 규정한데서도 그 의미가 찾아진다. 뿐만 아니라, 이번 제8차 당 대회에서 보고된 사업총화가 1월 12일 채택된 결정서(정식명칭: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 한 결론)에서는 자신들의 혁명단계를 “혁명과 건설의 새로운 고조기, 격변기를 열여놓기 위한(강조, 필자)”단계로 성격 규정했다. 그렇게 북의 사회주의가 사회주의완전승리단계에 진입할 수 있는 주객관적 조건이 되었음을 사회과학적 용어로 정립해내었다.

총론분석 그 둘째, 사회주의완전승리노선을 본격적으로 가동시킬 수 있는 물적·정치사상적 토대가 확고히 구축되었음을 선언하였고, 이를 5개년 국가발전계획 목표완성과 연동시켜 내었다. 그 대강으로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의 기본종자, 주제는 여전히 자력갱생, 자급자족(강조, 필자)”임을 분명히 했다. 방침으로는 “현 단계에서 우리 당의 경제전략은 정비전략, 보강전략으로서 경제사업체계와 부문들사이의 유기적련계를 복구정비하고 자립적토대를 다지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여 우리 경제를 그 어떤 외부적영향에도 흔들림없이 원활하게 운영되는(강조, 필자)”원리의 천명이다.

이미 이 기본원리는 제7차 사업총화보고에서 확인된다. “현 단계에서의 조선혁명의 진로를 명시한 당중앙위원회 제7기 사업총화보고의 진수는 우리자체의 힘, 주체적력량을 백방으로 강화하여(강조, 필자) 현존하는 위협과 도전들을 과감히 돌파하고 우리 식 사회주의건설에서 새로운 비약을을 일으키며”로 정의 된데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고, 이번 결정서를 통해서 “사회주의건설의 주체적 힘, 내적동력을 비상히 증대시켜(강조, 필자) 모든 분야에서 위대한 새 승리를 이룩해 나가자는 것이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의 기본사상, 기본정신입니다.(강조, 필자)”로 정식화 되었다.

▶총론분석 그 셋째, 이번 제8차 당 대회를 거쳐 확립된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또한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가 북의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으로 정식화되었다는 점이다. 달리는 김정은식 통치스타일이 확정되어졌음과 같다. 이는 통상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스타일을 ‘선군정치’로 규정했다면, 이번 제8차 당 대회를 거치고, 규약 개정전문이 발표되지 않아 그 내용 속속들이는 알 수 없으나, 일부 공개된 당 규약 서문확정을 통해 드러난 김정은식 통치스타일은 분명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이다.

당 규약 서문 표현은 이렇다. “우리 국가의 지위와 국력이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승리에서 더 큰 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고 있는 혁명발전의 요구를 반영하여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를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으로 정식화(강조, 필자)하였다.” 그 근본정신에 ‘모든 것을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라는 기치가 있고, 이를 김정은 총비서는 사업총화보고에서 “정세가 아무리 엄혹하고 난관이 중첩되어도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를 철저히 구현하면 불리한 모든 요인들을 능히 극복하고, 방대한 과제들을 용이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정치방식으로 정식화하였다.

북은 그렇게 ‘선군정치’에서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방식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맞이했다. ‘군대이자 당이고 국가이며 인민’이라며 군대중시의 선군정치와는 달리 이번 당 대회에서 “인민군대가 참다운 인민의 군대라는 사명과 본분(강조, 필자)을 다하라”고 주문하면서 2020년도 여름 태풍과 홍수 피해를 당한 인민들을 위해 군인과 평양 핵심 당원들을 피해 복구 지역에 파견한 것은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구현의 대표적인 사례이자, 당과 군대의 존재 이유를 인민에 대한 헌신복무에 찾아야 한다는 진리를 실천적으로 입증해 주었다.

▶총론분석 그 넷째, 이번 제8차 당 대회를 통해 드러난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 등 대외관계 부문은 기존 형제국들과는 친선과 우호협력을 보다 공고히 하면서도 미국을 대하는 방식으로는 핵무력 강화발전노선에 근거한 대북적대정책을 분쇄하고, 조국의 자주적 통일방향을 명확히 하였다. 증명하면 제8차 당대회 사업총화 보고에 “대외정치활동을 우리 혁명발전의 기본 장애물,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지향시켜나가야 한다.” 고 못 박고, 그 방도도 “국가핵무력건설대업을 완성(강조, 필자)하는것은 우리가 리상하는 강력한 사회주의국가건설행정에서 반드시 선차적으로 점령해야 할 전략적이며 지배적 고지”임을 분명히 밝혀 핵무장력 강화발전을 통해 미국을 제압하겠다는 의지가 보다 분명해졌다. 연장선상에서 미국을 상대하는 기본원칙이 ‘강대강, 선대선’의 대미정책이 수립되었다. 해서 향후 북의 대미전략은 일관되게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철회에 기본방점이 찍히고, 이를 통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으로 나아가는 프로세스가 확립될 것이다.

이를 남북관계와 연동하면 총화보고문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듯이 “남조선당국이 비정상적이며 반통일적인 행태들을 엄정관리하고 근원적으로 제거해버릴 때(강조, 필자) 비로소 공고한 신뢰와 화해에 기초한 북남관계개선의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될 것”임을 분명히 해 남측당국(현, 문재인 정부)이 민족자주와 자결의 정신으로 되돌아오지 않는 한, 구체적으로는 4.27판문점공동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의 약속이행이 담보되지 않는 한 남북관계 진전없음은 보다 확실해졌다.(※그런데도 문 대통령의 신년사와 이인영의 통일부는 여전히 방역과 인도적 지원문제 등에 집착하는 ‘작은교역’에 매달리고 있다. 참으로 번지수 잘 못 짚었다.) 달리 표현은 북이 미국과의 적대관계 청산을 기본핵으로 해 남북문제를 해결해가겠다는 전략구사을 분명히 했기 때문에 당분간 남북관계는 문재인 정부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소강국면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총론분석 그 다섯째, 통상 각급 당 체계를 중심으로 총화분석이 이뤄지던 특성과 절차대신, 이번 제8차 당 대회는 개최이전 4개월 전부터 당 중앙위원회에 비상설 중앙검열위원회를 구성하고 ‘요해사업 소조’를 각 도와 성, 중앙기관들에 파견하여 진행한 특성이 있다.(이름하여 ‘총결기간’으로 표현됨.) 아마도 이는 2020년 8월 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을 주관하면서 제8차 당 대회에서 결정될 5개년 국가발전계획과 관련해 제 7차 당 대회 결정사항인 5개년 국가발전전략에 대해 “해부학적으로 분석총화하고”에 대한 약속이행절차였고, 그 만큼 핵심당원 중심으로 심층적으로 분석총화가 이뤄졌음을 증거한다하겠다. 결과, 향후 5년 동안 ‘우리 국가제일주의’와 ‘인민대중제일주의’, ‘자력갱생전략’ 3대 키워드로 국가운영방침을 명확히 해냈다.

추진동력으로는 당 제7차대회가 강조한 ‘자력갱생정신’과 그 실현을 위한 투쟁방침인 ‘정면돌파전’을 지속시켰다. 이것이 사업총화보고에는 “우리 당의 자력갱생전략은 적들의 비렬한 제재책동을 자강력증대, 내적동력강화의 절호의 기회로 반전시키는 공격적인 전략으로, 사회주의건설에서 항구적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할 정치로선(강조, 필자)으로 심화발전되였다.” 더해서 “자강력을 증대시켜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기 위한 전인민적인 투쟁속에서 자력갱생은 주체조선의 국풍으로, 조선혁명의 유일무이한 투쟁정신으로 더욱 공고화(강조, 필자)되였다.”고 맺는다.

이상으로 제8차 당 대회 분석을 총론적으로 끝냈다.

핵심은, 북의 혁명발전단계를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의 고조기·격변기로 분명히 한 것과, 사회주의완전승리단계 고지점령을 위해 보편적인 사회주의 질서체계(예, 김정은 위원장 총비서 추대, 당의 혁명적 기풍확립, 당 중앙의 유일적 사상체계 확립 등) 구축, 그리고 대외관계는 형제국들과는 상호협력·친선확대를 도모하면서도 미국과 남북관계는 보다 핵무력 강화와 자주·자결에 기초한 정공법에 보다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분쇄와 자주적 통일방향으로의 전환이다.

 

김광수

정치학(북한정치) 박사/‘수령국가’ 저자/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화, 2021/01/19-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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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인민들은 2020년 12월 6일에 있었던 총선에 6.2백만 명 이상이 투표에 참여하면서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지배에 대하여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였다.

베네수엘라를 전복시키려는 미국의 전쟁협박과 제재압력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의 어려움 속에서도 베네수엘라 인민들은 자발적으로 투표소를 찾아가서 인민의 국회를 Bolivarian(베네수엘라 독립의 영웅적 장군을 칭함)다운 혁명의 품에 안겼다.

국가선거위원회가 공식으로 발표하였듯이 현재 집권정부의 여당격인 연합사회주의당(PSUV)이 유효투표의 63%를 획득하여 총의석 277의 252석을 차지하였으며, 야당인 민주행동당(Accion Democratica)는 겨우 7%를 획득하여 11석을 차지하면서 한참 못미치는 제2의 정당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군소 규모를 포함하여 107개의 정당들이 총선에 참여하였고, 14,000 여명의 후보가 난립하였으며, 이중 98개의 정당이 현재의 마두로 정부에 반대한다며 야당으로서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스스로 과도정부의 대통령이라고 주장해온 후안 과이도Guaido를 포함하여 친미(의존)성향의 인사들은 이번 총선을 ‘보이코트’하였다.

자본주의 국가들의 주요 미디어들이 보도한 엉터리내용(조작부정-선거)과는 달리, 국제적 기구 그리고 시민사회가 참여한 선거참관 조직들은 이번12월06일의 총선은 매우 민주적이며 자유롭고 공정하였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였다.

당시1,500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참관인으로 참여하였는데, 이중에는 해당국가의 수반을 지낸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에콰도르의 꼬레아, 스페인의 로드리게스 자파떼로 등 유명인사 다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국가선거위원회는 비정부-인권조직인 SURES를 총선참관단체로 지명하였는데, SURES는 총선에 대한 최종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이번 선거과정에 참여한 시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어떠한 강압도 없이 평등한 조건에서 보편적이며 자유롭고 투명하며 비밀이 보장된 가운데 행사하였다고 결론짓는다.”

또한 외국인 선거참관인들 역시 자신들의 참관내용에 대해 베네수엘라 시민단체가 제공한 보고 내용과 동일하게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정치조직들과 입후보자들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크게 확장된 총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선의 소식이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즈 그리고 캐나다의 주요 신문매체에는 일체 실리지 않았으며, 미국과 캐나다의 주요 방송미디어 역시 보도하지 않았다. 더구나 미국정부 그리고 그의 동맹국들은, 자신들의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의도에서, 베네수엘라의 총선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를 불법적이라고 미리 선언하고 있었다.

투표 참가율은 31% 이었는데 이는 팬데믹 상황과 미국이 전쟁을 운운하며 사보타주를 가하는 극도의 어려움 속에 진행된 점을 감안하면 커다란 승리를 거둔 것이다.

집권여당인 PSUV는 총선직후 발간된 당보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천명하였다 “미국과 그의 동맹국가들에게는 이번 선거의 과정과 합법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의도는 명백하게 정치적인 것으로, 베네수엘라의 혁명을 파괴하고 국가를 분열시켜서, 그 파장을 제국주의 하수인들에게 전파하여 라틴 대륙전체를 다시 재식민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베네수엘라의 위대한 혁명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음모를 결코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헌법에 의거하여 베네수엘라 총선은 5년마다 정부의 요청에 의해 시행된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미국정부와 캐나다를 포함한 동맹국들은 베네수엘라의 민주적 과정을 방해하고 사보타주를 가하는 캠페인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 왔다. 경제와 금융의 봉쇄에 더하여, 물리적 침공을 시도하고 친미적 반대세력들의 폭력적 군사훈련을 지원하는 등 베네수엘라 시민들이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온갖 수단을 동원하였다.

지난 2020년 3월에는 반혁명의 극우세력들이 자신들을 “베네수엘라 애국전선’이라 칭하면서 선거위원회의 보관창고에 불을 지르고 50,000개의 투표기를 파손시켰다. 이는 2014-2017년간에 저질렀던 투표방해 행위의 연장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는 반대세력이 투표 관련 설비와 장비들을 지속적으로 파손시켜 왔다.

총선 전날, 베네수엘라 주재 미국의 동영상 대사관은 –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실물의 대사관을 설치하지 않고, ‘동영상’이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인 외교활동을 대신하고 있음 – 베네수엘라 시민들에게 부정선거라는 거짓 뉴스를 유포하고 선거에 참가하지 말도록 트위터를 통하여 선동하였다.

이렇듯 오만방자한 방해행위에 더하여 미국의 온갖 제제라는 압박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 인민들은 투표장을 스스로 방문하였다. 결국 미국의 불법적이고 비인간적인 정책은 미국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려는 베네수엘라 인민들의 결집된 응징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미합중국과 캐나다 유럽연합 그리고 심지어 스위스까지 베네수엘라 인민들에게 온갖 제재를 가하면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마두로 정부를 전복하고, 혁명의 성과를 역전시키려고 시도하여 왔다.

오바마 시절인 2015년에 베네수엘라를 ‘미국안보의 현존하는 위협”이라고 선언하면서, 미국 행정부는 연방의회의 결의와 행정명령을 동원하여, 300가지의 잔인한 행정적 제재조치를 베네수엘라에게 가하였다.

이러한 조치로 인하여 식량과 의약품 그리고 수많은 생필품과 기계류와 기술에 대한 무역활동이 차단되면서, 베네수엘라 인민들의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실제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이들은 또한 베네수엘라의 금융자산인 수십 억 달러를 도둑질하여 갔다. 이중에는 미국과 유럽의 은행에 예치된 계좌들을 동결한 것도 포함되었고, 심지어 생명에 관련된 의약품 구매를 위한 결제행위조차도 예외로 인정하지 않았다.

경제정책연구센터(CEFR)의 추정치에 따르면, 2017-2018년 2년간에 이러한 제재조치로 인하여 베네수엘라에서만 40,000명이 생명을 잃었다. 이후, 베네수엘라 경제에 대한 미국의 목조르기 행위는 더욱 강고해 졌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주요한 사건이 2020년 10월 18일 볼리비아에서 있었는데, 일년 전에 미국의 지원으로 당시의 볼리비아 대통령이었던 에보 모랄레스Morales를 축출한 쿠데타를 응징하며, 통쾌한 선거의 승리를 쟁취하였다. 이날 위대한 볼리비아 인민들은 사회주의운동(MAS) 소속의 Luis Arce와 David Choquehuanca를 각각 볼리비아 공화국의 대통령과 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이러한 위대한 승리는 볼리비아 인민들의 용감한 저항으로 가능했다. 진보적인 좌파정부를 선택함으로써, 가난하지만 민족적인 볼리비안들은 사회주의행동MAS의 혁명적 이상과 모랄레스 Morales의 지도력을 신뢰하면서 볼리비아의 진보적 전진을 파괴하려는 미국의 무자비한 노력을 무산시켰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우익의 쿠데타정권에 대한 볼리비아의 억압받는 인민과 노동대중의 영웅적 저항과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이 없이는 이러한 승리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미국의 지배에 대한 베네수엘라 인민들의 지속적이며 혁명적인 저항이 볼리비아와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 반-제국주의의 정신을 줄곧 유지시키고 고무하여 왔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혁명정신이야말로 미국의 억압에 대한 라틴-아메리카 인민들의 저항과 수호의 메아리를 울리는 진원眞源이다. 지난 수십 년간 지속된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된 혁명적 과정이 라틴-아메리카의 반제국주의 혁명운동의 근간이 되었다.

우리는, 지난 수년 동안, 미국과 우익동맹들이 라틴 아메리카 내에 존재하는 동조 세력들을 규합하여온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예를 들자면, 2018년 들어선 브라질의 볼소나로 정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볼리비아에서의 승리는 라틴대륙의 가난하고 억압받으며 일하는 모든 인민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북돋았으며, 볼소나로와 같은 반동적 부류의 등장은 단지 일시적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일어나는 진보적 혁명운동은, 미합중국과 그의 동맹들에 의해 잠시 중단될 수는 있지만, 지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와 신자유주의 정권들에 의한 위기가 깊어질수록, 가난한 대중들과 일하는 노동자들 그리고 젊은 세대들이 이에 저항하고 나서고 있다. 특히 지난 2년간 정치지형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아르헨티나와 칠레 페루와 에콰도르 그리고 콜롬비아 등에 걸쳐 이제 많은 사람들이 좌파적 진보진영으로 이동하고 있다.

또한 베네수엘라가 영웅적인 혁명을 시작한 이래 오늘의 시점까지, 미합중국은 베네수엘라를 세계로부터 고립시키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비인간적이고 범죄적이며 일방적인 제재를 가했음에도, 베네수엘라는 제3국들과 연대와 경제적 협력을 지속하고 있는데, 이들 연대국가들도 미국의 공격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라틴-아메리카 다른 지역의 가난하며 억압받는 노동인민들에게 미국과 이의 하수인들인 세계은행 및 국제통화기금IMF의 도움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발전을 지속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미국의 제재와 압력이 주는 충격에서 완전하게 벗어날 수는 없지만, 베네수엘라 정부는 형제 국가들과 연대를 통하여 인민들에게 미치는 고통을 완화시키는 몇 가지 사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러시아가 개발한 Sputnik-V 백신이 베네수엘라 현지에서 오늘 현재 3단계의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펜데믹의 대응을 지원하는 중국은 274톤에 달하는 의약품과 의료자제와 장비를 공급하였다. 쿠바는 자국의 의사들을 베네수엘라에 파견하여 무료로 광범위한 의료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2020년 5월부터 이란이 정제된 휘발유를 대형선박으로 공급해 주면서,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을 붕괴시킬 목적으로 가하는 제재로 발생한 에너지의 공급부족을 완화시켜 주고 있다. 지난 10월 3척의 선박이 도착한 것에 더하여, 10대의 유조선이 베네수엘라를 향해 운항 중에 있다.

이렇듯, 베네수엘라 혁명정부는 다른 나라들과 형제애적인 연대를 강화하면서 미국이 가하는 경제적 제재에 대응하고 있는데, 이들 형제국가 자신들도 미국의 잔인한 제재를 감당하고 있다. 이들 모두는 쿠바의 혁명정부의 사례에서 많은 교훈을 배우고 있는데, 쿠바정부는 억압받는 제3의 국가들 및 지역들과 혁명적인 국제연대를 실천하면서 반제국주의 투쟁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역시 쿠바의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면서, 미합중국의 압력과 지배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는 대안을 만들어 가고 있다.

또한 베네수엘라가 단지 중립적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반제국주의 운동에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제국주의와 양키의 지배에 반대하는 운동의 성공여부는 베네수엘라 인민들의 저항여부에 달려 있다.

따라서, 라틴-아메리카에서 베네수엘라를 수호하는 것은 반제국주의 운동의 핵심사항일 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고 실제로 가능하다는 믿음을 제공한다. 베네수엘라의 주권과 자결권을 위해 싸우는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진보의 전진이라는 목표를 수호하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제 라틴 대륙에서 제국주의를 물리치고자 원하는 사람들은 베네수엘라를 지원하는 것이 필수적인 과제이다.

어릿광대 트럼프도 상황을 파악하였듯이, 바이든 행정부도 같은 일을 반복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2021년 1월5일 새로 선출된 국회가 출범하면서 지난 12월 6일의 승리를 굳건히 지켜나갈 것이다.

미국인이든, 캐나다인이든, 전세계의 모든 진보적 시민들은 베네수엘라에 가하고 있는 미국의 봉쇄를 끝장내는 일에 함께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 작고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전직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제국주의의 개들이 짖어대는 것에 상관하지 말아라. 그것이 그들의 모습이다. 우리의 역할은 인민대중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Let the dogs of the empire bark, that’s their job; ours is to battle to achieve the true liberation of our people.”.

 

출처 : ‘Fire-the Time’ via Global Research Center on 2021-01-05.

Alison Bodine

캐나다 뱅쿠버에 거주하는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가. ‘베네수엘라의 혁명과 반혁명’의 저자이며 ‘Fire-The Time’라는 신문의 편집인이기도 하다

수, 2021/01/20-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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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vid-19 시대와 근대문명

코로나 시대의 삶이 어느덧 일상이 되어가며, 뉴노멀로 지칭된 새로운 사회 규범이 만들어지고 있다. 낯설게 경험하는 현상들 가운데 무엇에 주목하는지에 따라 뉴노멀의 내용과 방향도 설정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비대면’(untact) 상황에 주목할 경우 새로운 ‘행위규범’으로서의 뉴노멀에 관심하게 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의 위계’에 주목할 경우 ‘체제구상’으로서의 뉴노멀을 상상하게 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새로운 행위규범 못지않게, 근대문명의 청산을 기획하는 체제구상의 뉴노멀도 절실하다.

하지만 요청된 변혁이 근본적일수록 이루기 힘들다는 비관이 앞선다. 인류는 오랫동안 자연을 약탈해온 근대 자본주의 소비 문명이 언젠가는 삶 자체를 파괴하는 지점에 이를 것이라는 불안을 안고 살아왔다. 지구온난화를 가속해온 산업문명이 환경의 역습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경고, 사회적 갈등의 뿌리에는 양극화된 빈부격차와 새로운 신분제도를 도입한 자본의 악습이 있다는 인식은 이제 낯설지 않다. 우리 시대 고통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단지 자본의 재배치에 그치지 않으려면, 문명 전환을 겨냥한 상상이 구현될 수 있는 길을 내야 한다.

철학자 에롤 E. 해리스는 근대문명이 파국으로 귀결된 본질적인 원인을 근대과학의 사유방식에서 찾고, 인류의 과제를 낡은 정신적 편견을 떨쳐내는 것으로 봤다. 여기서 낡은 편견이란 뉴턴이 완성한 근대적 사유 패러다임에 담긴 특징들, 즉 물질주의와 기계론, 원자론과 개체주의, 외적(external) 관계방식과 환원주의, 선입견과 주관적 가치가 배제된 과학, 목적론적 설명에 대한 거부, 물질과 정신의 분리 등이다. 이러한 뉴턴 패러다임이 과학만이 아니라 인식과 실천의 전 영역에 만연하여 근대문명의 병폐가 깊어 파멸에 이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회의적 태도를 보인다고 그는 말한다.

근대문명이 세계를 이해할 때 ‘실체’(substance)에 착안하여, ‘자기 존재를 위해 다른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개체적 존재에 관한 관념 위에 문명을 축조할 때부터 그 행로는 정해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중시한 근대정신이 중세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인도주의적 가치를 높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각 유기체가 자신의 환경과 맺는 참된 관계를 무시”하고 “그 환경의 고유한 가치를 무시하는 습관”도 기르게 했다. 이렇게 상호연관 감각을 잃은 근대정신은 타인을 단지 ‘도구적’ 가치를 지닌 존재로 간주하고, “인간의 형제애에 유의하기보다는 부적격자를 근절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결국 인도주의적 이상은 공동선(common good)을 향한 전체적 비전을 구성하기보다는 “소득, 여가, 그리고 안전이 더는 향상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에 봉사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자연과 노동에 대한 약탈로 구성된 신자유주의 시대의 정점에서 터진 코로나 사태에서 우리는 길을 잃은 근대문명의 현실을 보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 종교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공한 중산층을 위해 진화해 왔기 때문에 문명 전환의 이정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개신교와 같이 한국 현대사회에서 급부상한 종교일수록 코로나 사태를 맞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한편 코로나 사태가 소위 ‘탈진리 시대’(post-truth era)로 불리는 상황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가짜뉴스마저 취향이 되어버린 탈진리 시대 환경에서, 윤리는 당위성에 대한 성찰보다는 심리적 취향이나 사회적 효용성에 함몰되어가며, 사회적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이 좀체 구성되지 않고 있다.

고통에 잠긴 삶을 구원으로 인도할 신성한(sacred) 무엇은 과연 있을까? 고통의 삶에는 혼돈과 신비가 교차한다. 아니 고통은 그저 혼돈일 뿐, 신비란 말은 어쩌면 실재의 깊이에 대한 암시라기보다는 현실을 은폐하는 현혹일지 모른다. 하지만 만일 고통의 심연에서 해방의 문을 여는 열쇠를 얻을 수만 있다면, 적자생존의 삶으로 얼룩진 근대문명의 ‘힘의 철학’과 ‘번영의 복음’을 넘어서는 상상도 가능할 것이다. 코로나 시대 삶의 불안정성과 사회적 비탄 속에서 인류 공동체에 관한 새로운 감각, 약탈적 체제의 종식과 생태적인 삶에 관한 갈망이 거세게 일어나, 위기 속에서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사실 근대문명의 억압적 요소를 극복하기 위한 사유와 실천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났다. 그것이 ‘탈근대’라는 이름을 가졌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근대문명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진보적 주체는 여러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 글은 그것을 세 유형으로 분류하여 저항적 주체, 해체적 주체, 생태적 주체로 부를 것이다. 그들은 진보 담론의 세 가지 패러다임을 대변한다. 저항적 주체는 억압적 체제를 전복하고 역사를 발전시키려는 피억압자의 관심을 대변하며, 해체적 주체는 근대정신의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성과 관용에 주목한 탈근대적 주체이며, 생태적 주체는 유기체적 관계성을 중시하는 생태 문명을 지향하는 주체를 상징한다.

 

2. 근대문명 극복의 두 시도, 저항적 주체와 해체적 주체

근대문명의 정신적, 제도적 폭력성을 해결하려 한 ‘저항적’ 주체는 근대문명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억압적 체제를 변혁하기 위한 저항적 주체는 세계에 대한 ‘해석’만이 아니라, 세계 자체를 ‘변혁’하는 일에 관심했다. 이들은 공동체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종교와 국가 그리고 자본에 부여된 절대 권위를 전복하려 하였고, 이데올로기적 왜곡과 제도적 억압에 맞선 실천을 철저히 밀고 갔다는 점에서 이후 모든 진보적 양심은 이들에게 빚지고 있다. 이들이 가진 당파적 윤리는 억압당하는 자의 편에서 세계를 해석하고 재편성하려는 해방의 이상을 대변하였기에, 그 역사적 한계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저항적 주체가 추구한 해방 정신의 항구적 교훈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저항적 주체의 대표적인 국가 실험이었던 사회주의 혁명은 지구적인 차원에서는 실패했고, 이제 국지적으로 남았다. 그 이유에 대한 여러 설명 가운데, 저항적 주체가 유기체적 사회의 복잡한 운동과 그 구성원의 포괄적 관심을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가 있다. 진보에 대한 절대적 낙관과 자기 이상의 당파적 실천이 결국 자기비평을 소홀하게 만들고, 사회라는 유기체 안에서 형성된 다양한 관심사에 대한 포괄적인 고려를 제한했다는 것이다.

사상적인 면에서 보면 저항적 주체의 변증법적 사유에서 갈등과 투쟁이란 보다 고상한 종합의 전조로 이해되기 때문에 역사적 진보에 대한 낙관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변증법적 발전이 역사 속에서 발견될 수 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갈등과 투쟁이 고상한 종합을 ‘필연적으로 발생’시킨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갈등 가운데 하나의 선(善)이 또 다른 선을 위해 파괴되는 것은 고차적인 종합으로서의 지양(aufhebung)이 아닌 항구적 상실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전의 사회를 파괴할수록 더 완벽한 사회가 더 빠르게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가치가 박멸되면 될수록 그것이 회복될 수 없는 위험이 높아질 뿐’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마르크스주의 운동 자체의 ‘오독’도 있었다. 이를테면 ‘소명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와 ‘역사적 상태로서의 노동자 계급’의 혼동을 말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프롤레타리아가 어느 특정한 사회계급인 노동자 계급과 동일시” 되면서 ‘혁명의 소명(klesis)을 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사한 딜레마가 역사에서 되풀이된다. 기독교 교회(ek-klesia)가 자신의 소명을 ‘실행’하기보다는 그것을 ‘소유’한 집단처럼 행세할 때 종교적 추락을 완성하듯이, 부처의 자비도 승가(僧伽)의 소유가 될 수 없고, 진보적 정신 역시 특정 집단의 ‘소유’가 되지 않는다. 소명을 활용하기보다는 그것의 특권적 소유에 집착하는 이들은 반드시 몰락한다.

오늘날 저항적 주체는 과거의 ‘계급투쟁’보다 훨씬 미묘하고 복잡한 과제를 맞고 있다. 노동가치이론의 ‘유통기한이 만료’되어 노동의 ‘부정적 존재론’이 널리 퍼져서 진리가 ‘노동의 힘’에 뿌리박혀 있다는 생각을 거의 깨졌으며, 돈이 ‘신비화’되어 이제 노동은 ‘착취’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배제’에 대한 대처를 먼저 해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 공항노동자들의 정규직화라는 노동의 꿈이 바로 노동자들에 의해 위태로움을 겪었던 것처럼, ‘가난한 자들의 인식론적 특권’은 이제 상실감을 경험한 대중들의 ‘공정성’이라는 명분 앞에서 설득력을 잃었다. 네트워크나 기계에 의해 노동이 대체되는 4차산업혁명과 포스트휴먼(post-human)의 전망 또한 저항적 주체의 진화를 요청하고 있다.

한편 근대문명을 극복하려 한 탈근대성은 두 흐름을 가졌다. 이 글에서는,지난 삼십여 년을 주도한 탈근대적 흐름을 ‘해체적 주체’로 부르고, 그 대안으로서 ‘재구성적’ 특징을 가진 흐름을 가리켜 ‘생태적 주체’로 부르고자 한다. 저항적 주체가 억압적 ‘체제’의 전복에 관심했다면, 해체적 주체는 억압적 ‘정신’의 해체에 주목했다. ‘탈근대성’을 표방한 해체적 주체는 근대사상의 문제점을 ‘전체성에 대한 전쟁’(a war on totality) 또는 ‘거대담론’(meta-narratives)에 대한 회의’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거기에는 분명히 절대적 진리를 표방한 근대 이성의 병폐와 한계들, 즉 객관주의적 과학 이론, 토대주의적 인식론, 보편주의적 도덕과 문화 관념이 억압 기제로 기능하는 체계를 타파하려는 해방의 요소가 있었다. 또한 해체적 주체에게 진보담론을 구사하는 저항적 주체 안에 내장된 폭력성이 근대성의 잔재로 포착되었다.

해체적 주체는 차별에 맞선 연대와 차이에 대한 관용의 미덕을 인간 정신에 심어주었다. 하지만 상대화/파편화되어가는 사회에서 어떻게 담론과 투쟁을 위한 공통의 토대를 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어려움에 빠졌다. 여기서 저항적 주체가 ‘하나의 진리를 절대화’하는 극단에 치우쳤다면, 해체적 주체는 ‘모든 진리를 상대화’하는 또 다른 극단에 치우쳤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말하자면, 해체적 주체는 새로운 문명을 향한 ‘동력’을 어떻게 제공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자기 관심에 매몰되는 소아병을 극복할 수 있는지, 어떻게 상대성에 대한 인식이 편협성이 되지 않게 할 것인지, 어떻게 지식의 파편화를 방지할 것인지, 어떻게 허무주의를 넘어설 가치를 제공할 것인지.

포스트모던 감각이 진리를 향한 열정보다는 각자의 취향으로 미끄러지는 것은 아닌가? 때로는, 자기주장의 알리바이로 왜소화되어가는 탈-진리 시대의 흔적은 동료 이웃과 자연에 대한 ‘고통 감수성’을 갖는 일마저 버거워 보인다. 진리 자체가 아니라 감정과 자기 신념을 만족하게 하는 것을 진리로 여기는 ‘탈-진리’(post-truth) 시대를 맞은 오늘, 문제는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선동적/반동적 존재보다 그 흐름을 제어할 사상적 장치가 없는 데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것은 다양성의 윤리를 권장해온 탈근대주의가 마주친 최대의 복병으로서, 당위성의 감각이 소실되거나 왜곡된 지점에서 경험하는 사회적 증후군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근대의 이기적 주체 못지않게 탈근대의 해체적 주체도 이해관계나 자기 편견 속으로 잘게 부서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탄식이 생긴다. 해체되어 개인의 ‘취향’으로 미끄러진 진리는 묵시록적인 미래에 대한 순종의 지표처럼 읽히지만, 다행히 존재의 무게에 이끌린 영혼은 어느 시대든 미래의 그루터기로 남는다.

 

3. 생태적 주체와 종교

생태적 주체는 ‘저항과 해체’의 경험을 창조적으로 수렴한 존재로서, 타자와의 연관성을 내재화하여 자기 고립을 극복한 존재이다. 그는 근대문명이 ‘생존 경쟁을 증오의 복음으로 해석’한 사상적 잘못에 깨달은 존재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유기체적 연관을 실재의 본질로 알기에,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도구적 가치가 아닌, 생명의 ‘고유한’(intrinsic) 가치를 만들어가기 위한 요소이자 환경으로 서로 작용하는 것을 이해한다. 이것은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과장한 개체주의적 편향과 공동체의 질서를 위한다는 명목의 전체주의적 편향을 함께 극복하려는 것이며, 각 생명의 본원적 가치를 키우고 보호하는 ‘공동체적 환경’과 개인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의 가치를 동시에 지지한다.

이러한 관계성에 대한 인식은 ‘우주의 본성에 대한 경외심을 일으키는 통찰’에 근거한 것으로서, “불굴의 합리성이 철저하게 깃들어 있는 하나의 세계관을 재창조하고 재가동”함으로써 뒷받침된다. 그럴 때 근대문명의 전제가 되는 실체철학의 개체주의적 관념, 즉 ‘모든 존재는 자기이해관계에만 관심할 뿐이다’는 생각이 실상은 추상적 이데올로기이자 전체 전망을 상실한 부분적 관찰에 기인한 편견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생태적 주체는 진리와 함께 아름다움과 평화의 중요성을 깨달은 존재이다. 해체적 주체가 이미 밝혔듯이, 다양한 생명이 어우러진 세계에서 자신의 진리를 구축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타자의 진리에 대한 인식이다. 생태적 주체에게 그러한 인식은 상대성의 관념에 머물지 않고, 아름다움의 윤리로 전진한다. 다시 말해서 세계를 설명하고 윤리적 행동을 하는데 진리보다 더 ‘넓고 근본적인’ 의미를 아름다움에서 찾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떠날 때 진리는 선도 악도 아니다. 진리가 없는 아름다움에 중후함이 없다면, 아름다움이 없는 진리는 사소성으로 전락한다. 진리가 중요하게 되는 것은 바로 아름다움 때문이다.”

생태적 주체에게 평화는 궁극적 이상으로서 이상적 관계요, 이상적 상태이며, 이상적 목적이다. 이 평화는 웅대한 관계성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파괴적 격동을 가라앉히고, 문명을 완성하는 조화 중의 조화’이다. 이 평화는 현실의 아픔에 눈감지 않고 ‘비극에 대한 감수성’을 생생하게 간직한 채, ‘무한성의 파악’, 즉 ‘한계를 초월하는 호소’를 듣는다. 화이트헤드는 이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은 “수많은 아름다움과 무수한 영웅적인 행위와 무수한 대담성이 일어나고 지나가는 한복판에서 영원을 직관”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평화의 감각을 잃은 진리, 아름다움, 모험, 예술은 ‘무자비하고 딱딱하고 잔인한 것’이 되고 만다.

진보하는 사회는 약탈적 풍요 위에 세워진 안락한 사회가 아니다. 진보하는 사회는 인간의 관심사들이 ‘평화’를 이루기 위해 유혹을 받는 사회요, 그것을 이룰 방식으로 ‘비폭력/설득’의 길을 신뢰하는 사회이다. 역사의 진보란 단지 과학적 기술이나 철학적 신념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예술의 감각과 종교의 전망이나 결단 없이 역사는 도약하지 않는다.

사실 종교가 중요하다. 근대문명의 비극은 종교적 전망을 잃은 과학에 의존한 데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반대로 과학적 세계관으로부터 분리된 종교 역시 근대문명을 질곡으로 이끈 원인이 되었다. 자신의 낡은 관념을 수정할 용기를 갖지 못한 종교는 과학에 패배하면서 결국 자신의 중요성까지 잃게 되었고 단지 ‘안락한 삶을 장식하는 형식신앙’이 되고 말았다. 평화(shalom)에 대한 비전으로 ‘직접적인 동의’를 불러일으키는 힘을 잃은 종교, 신의 분노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여 정서에 호소하여 연명하는 종교는 결국 외면 받는다. 그런 이유로 종교는 저항적 주체에게는 단지 ‘도구’였고, 해체적 주체에게는 ‘취향’이 되었다. 그러나 눈앞의 이익과 개체적 만족 너머로 뻗어가도록 충동하는 종교적 힘을 잃은 문명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

억압과 파괴로 얼룩진 문명을 싸매기 위해서는 생태적 주체가 필요하다. 자기 진리에 대한 충실만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감각과 평화의 이상으로 충동질 당하는 영혼이 역사의 품에서 자라나야 한다. 자비로운 열정과 은혜로운 관계에 대해 겸손한 생태적 주체의 등장을 염원한다.

 

김희헌

향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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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1/01/2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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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과 중국이 주요한 투자협정(CAI)에 합의하면서, 2021년을 새로운 기반 위에서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세계를 주도하는 강대국 간에 돌팔매질을 중단하고 함께 협력하여 팬데믹 상황을 종료하고 환경친화적 디지털기술에 기반한 지구회복의 토대를 마련할 시점이다.

뉴욕 – 중국과 새로운 투자협정의 협상을 완료한 유럽집행부에 찬사를 보낸다. 이에 더하여 유럽은 적극적인 외교 활동으로 최근 중국으로 하여금 탄소중립을 2060년까지 실현하겠다는 약속을 이끌어 냈고, 뒤이어 일본과 한국 역시 2050년까지 탈-탄소화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일들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유럽과 중국 간의 투자협정(CAI)은 유럽과 중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그리고 이를 반대하고 경고를 보냈던 미국에게도 유익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번 협정은 유럽과 중국이 서로 개방적 경제관계를 심화하겠다는 의사를 공식화하면서, 상대의 경제권에 더욱 많은 투자의 기회와 시장접근을 보장한 것이다.

중국이 향후 수십 년간 환경과 디지털을 축으로 경제구조의 개혁을 추진하면서 형성될 거대한 내수시장에 유럽의 산업계가 보다 용이한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해당분야에 선도적 기술의 위상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이번 협상의 타결은 트럼프 행정부의 참으로 잘못되고 위험스런 방해를 물리치고 이루어졌는데, 트럼프의 미국은 중국을 첨단산업 분야에서 고립시키고, 전통적인 동맹인 유럽과 태평양연안의 국가들과 동맹을 형성하여 중국의 성장을 억제하려고 시도하여 왔다. 물론 새로이 들어설 바이든 행정부 역시 같은 방향을 추구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보다 세련되고 덜 강압적인 방식을 선택할 것이다.

미국 정책의 표면적 목표는, 미국의 설명을 그대로 따르면, 중국의 호전성을 봉쇄하고 인권침해를 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의 양당이 공히 선호하는 외교정책의 실상이 해외에 800 개소 이상 군사기지를 운용하면서, 반복적으로 불법적인 전쟁행위를 벌리고, 역시 불법적인 제재를 가하고, 유엔의 헌장과 협약과 안보리 결정 등의 준수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정부가 중국을 호전적인 당사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중국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유엔의 인권고등 위원회에서 문제를 제기한 신장 위구르 자치지역의 상황을 개선해야만 한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은 미국과 유럽 인도 등 다른 국가들도 중국과 유사하게 개선해야 하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년을 살펴보면, 특별히 중동과 서아시아 지역의 무슬림 민족들이 서구의 군사력이 저지른 잔인한 전쟁으로 고통을 받아 왔으며, 많은 국가들이 국내의 소요진압 과정에서 인권문제를 노출시켰고, 미국은 다양한 제재의 수단을 일방적으로 악용하여 왔다.

팩트로 보자면, 인권에 대한 보편적 선언을 제대로 준수하는 국가는 지구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유엔이 정한 경제 사회 문화의 제 권리 헌장을 유럽27개국과 중국 등은 오래 전부터 준수해 왔던 반면에, 수치스럽게도 미국은 아직 이를 비준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인권문제에 대한 올바른 접근은, 상대방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과장해서 비난하고 외교적으로 혹은 통상적으로 대화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미래지향적으로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시켜 나가는 것이다. ‘죄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라는 가르침을 기억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미국의 ‘반-중국’ 시도는 인권과 아무 관련이 없다. 특히 트럼프의 무법적인 행정부 하에서 미국의 정책은 강자의 지배력이라는 단순한 욕구에서 촉발되어 왔다. 미국의 의도는 중국이 기술과 경제분야에서 성장하는 것을 억제하여 자신의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인구가 전세계의 4%에 불과하다는 단순한 사실만을 고려하더라도, 세계경제 시스템을 미국의 헤게모니를 위해서 일방적으로 희생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2020년에 발생한 어려움에 대처하려면,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냉전방식이 아니라, 지구전체를 대상으로 협력방식을 새로이 정립해야만 한다. 이제는 팬데믹을 극복하고 일상의 정상회복과 지속가능한 발전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다. 당연히 중국도 이에 주요 파트너로 책임을 갖고 참여해야 하며, 새로운 도전에 힘을 보태야 한다.

한편, 미국과 유럽과는 달리 주변 아태 국가들과 더불어 중국은 코로나-19 전염을 성공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실패한 현재에, 의약품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국가군들은 자신들이 성공시킨 방식(테스트, 접촉추적, 그리고 방역기술)을 제공하여 세계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이에 더하여 해당분야 전문가들의 검증을 통해 자체 개발한 시노백과 시노팜이 안전하고 효과적인 것이 인정되면, 중국은 곧바로 대량생산을 통하여 전세계에 이를 배분하여야 한다.

유럽과 중국 그리고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된 바이든의 미행정부는 서로 협력하고 참여하여 환경친화적 디지털 기술에 기반하여 세계의 정상회복을 위한 로드맵을 준비해야 한다.

탄소 주요 배출국인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하겠다는 바이든의 계획에 더하여, 미국 역시 2050년까지 탈-탄소를 서약함으로써, 인류는 진정으로 광범한 환경기반의 회복이라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더구나 새로운 환경기술인 재생 에너지, 전기차량 그리고 에너지저장기술의 개발과 적용은 구체적인 협력을 통해서 크게 약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난 주에 중국의 리듐기반 축전기술 회사인 YaHua그룹이 미국의 전기차량 생산업체인 테슬러에게 밧테리 공급계약을 체결하여 양국의 산업체들간에 협력이 성사되었다.

유사한 기회들이 디지털 기술영역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세계적 규모의 경제적 참여와 발전에 디지털 접근성이 매우 중요하며, 5G기반기술이 도전적인 영역의 해결에 지름길을 제공하면서 에너지의 효율증대와 e-Commerce, e-Health 등을 향상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다행히 유럽과 중국의 상호투자협정은 디지털 협력을 도모하면서 지속가능 발전을 크게 촉진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유럽이 ‘반-중국’에 참여하라는 미국의 압력을 지속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트럼프의 중국에 대한 주요 전략은 첨단기술의 중국수출을 차단하여 화웨이 등 중국의 주요 기술선도 업체들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의 헤게모니 유지라는 각본에서 나온 것으로 냉전시기에 소비에트에 적용한 과거방식의 반복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화웨이에 대한 보복의 명분으로 중국이 화웨이의 5G 장비를 이용하여 타국에게 스파이 활동을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그러나 실제로는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면, 미국이 미국시민을 포함하여 해당국가에 대한 스파이 활동이 매우 어려워진다는 사실에 있다. 또 다른 배경에는 중국에 선진적인 기술의 도입을 차단하면 미국이 영구히 기술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한심한 판단이다. 그러나 실제의 현실은 중국이 조만간 첨단적인 반도체를 자체 생산하면서 미국과 기술격차를 손쉽게 해결해 갈 것이다.

한편에서는 세계를 향해 인권문제를 지속적으로 진지하게 제기하면서, 중국과 적극적이며 깊이있게 그리고 미래지향적으로 개입(협력)하고자 하는 유럽의 판단이 올바르다.

바이든 행정부는 헤게모니라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되며, 반대로 중국과 미래지향적 관계를 추구해 가야 한다.

유럽과 중국이 투자협정에 합의함으로써 2020년의 끝을 멋지게 장식하면서 미국과 별도로 독자적인 유럽의 외교정책 권리를 훌륭하게 시현한 셈이다. 이제 2021년의 수많은 도전에 대응하여 세계는 펜데믹을 종결시키기 위해서는 과거의 관행을 수정할 필요가 있으며, 향후 지속가능한 발전경로를 찾아 전진해야 한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020-12-31.

Jeffrey D. Sachs

뉴욕 콜롬비아 대학교의 공공정책 분야 교수이자. 해당대학의 지속발전연구소와 유엔지속발전해결네트워크(UN-SDSN)의 책임자 직위를 겸임하고 있다

금, 2021/01/2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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