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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서산시 부지에 세워진 ‘친일파 문학비’… 시조차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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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서산시 부지에 세워진 ‘친일파 문학비’… 시조차 몰랐다

admin | 일, 2019/10/27- 01:00

지난 2004년 지원금 받아 건립된 ‘이종린 문학기념비’… “단죄비 세우자” 의견도

▲ 서산시 지곡면 안견기념관 입구에는 친일부역자로 친일인명사전과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올라있는 황산 이종린의 문학기념비(빨간 원안)가 세워져 있다. ⓒ 신영근
▲ 친일인명사전 자료에 따르면 이종린(李鍾麟 1883 ~ 1950)은 당시 서산군 출생으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언론인·종교인이며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이종린에 대한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기록은 무려 4페이지에 이른다. 지난 2004년 세워진 문학기념비에는 일제강점기 후반 친일 행적이 빠진 그의 일생(사진 왼쪽)과 함께 그의 작품(사진 오른쪽)이 적혀 있다. ⓒ 신영근

3.1 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은 올해 서산시에서는 친일파 기념비가 세워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서산시 지곡면 안견기념관 입구에는 친일부역자로 친일인명사전과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올라있는 황산 이종린의 문학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친일인명사전 자료에 따르면 이종린(李鍾麟, 1883~1950)은 서산군 출생으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언론인·종교인이며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이종린에 대한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기록은 무려 4페이지에 이른다.

독립운동 후 변절… 소년들에게 ‘지원병 지원’ 선동

이종린은 변절한 지식인이었다. 친일인명사전 등 현재 남은 기록을 통해 그의 행적을 따라가보면 일제강점기 3.1 운동과 지하신문인 ‘조선독립신문’의 주필로 참여하는 한편, 물산장려회와 신간회에서도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에 기여했다. <조선독립신문>을 발행하며 독립운동의 전국적 확산에 주력하다가 옥고를 당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종교인과 문인으로 활동했다.

여운형, 안창호와 함께 3대 웅변가로 일컫어진 그는 변절 후에 일제를 위해 강연회에 나섰다. 당시 천도교 기관지인 <신인간>을 통해 일본 식민으로서 지원병에 참여하는 것이 내선일체 완성에 도달하는 길이라는 주장을 담은 글을 여러 편 발표하기도 했다. 나아가 각종 월간지에 “제군들은 머리와 눈이 있는 청년들이다. 일제히 지원병을 지원하라” “징병제가 실시되어 지금 서울 거리거리에는 반도 민중이 모인 자리마다 기뻐하고 감사하는 소리로 가득찼다”라고 선동했다.

이종린은 일본 패망 직전인 1945년 7월 조직된 친일단체인 국민동지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친일행위와 관련해 소환장을 발부하자 자진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조직적인 방해로 제대로된 친일청산이 이뤄지지 못했고 그 역시 무죄로 풀려난다.

이후 이종린은 제1, 2대 제헌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제헌국회에서 헌법 기초위원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공헌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한국전쟁 때 납북돼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일인명사전에는 이종린의 이 같은 독립운동과 함께 친일행적이 고스란히 기술되어 있다. 그는 당시 천도교 기관지인 <신인간>을 통해 일본 식민으로서 지원병에 참여하는 것이 내선일체의 완성에 도달하는 길이라는 주장을 담은 여러편의 글을 발표했다고 기록되어있다. ⓒ 신영근
▲ 친일인명사전에는 1942년 조선에 징병제가 실시될 것이라는 소식에 조선신궁에서 징병제실시감사제를 거행하고 “징병제가 실시되어 지금 서울 거리거리에는 반도 민중의 모인 자리마다 기뻐하고 감사하는 소리로 가득 찼다”라고 외쳤다(홍은감읍(鴻恩感), <대동아> 1942년 7월호)“고 전했다. 특히, 이종린은 일본 패망 직전인 1945년 7월 조직된 친일단체인 국민동지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빨간 네모안) ⓒ 신영근

이종린 문학기념비는 당시 서산시와 지곡면 등을 중심으로 ‘문학비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2004년 건립되었다. 이 비는 건립 당시 문학비건립추진위원회와 서산시의 보조금으로 세워졌으며, 서산시 소유 부지에 건립되었다.

기념비에는 이종린의 독립운동 활동 내용은 비문에 상세히 담겨 있으나, 이후 변절해 일본에 부역한 사실은 쏙 빠져 있다.

당시 문학비 건립 추진위원이었던 A씨는 지난 18일 통화에서 “우리 지역 출신으로 독립운동을 하고 뛰어난 작품을 남긴 이종린 선생을 기리기 위해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건립했다”면서도 “당시에 이종린 선생이 친일을 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A씨는 당시 문학비 건립에 약 2천만 원이 들었으며, 추진위가 모금을 하고 서산시가 일부를 지원해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功)과 과(過)를 볼 때 공이 많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건립했다”며 “당시 천도교 수장을 맡은 (이종린) 선생이 천도교를 말살하겠다는 일본의 위협에, 종교를 살리기 위해 부득이 한번 강연을 한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A씨는 “당시 한번 강연한 것을 가지고 친일부역이라고 하면 당시에 친일 안 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문학과 친일은 관계가 없다. (친일이라 하더라도) 주민들이 다 이해하기 때문에 투표를 해서 두 차례나 국회의원으로 시켜줬다. 당시 독립운동으로 정부에서도 훈장(이종린은 지난 1967년 12월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 받았다)을 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는 파악조차 못하고 있어… “철거는 법규 확인해봐야”

▲ 친일파의 문학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것과 관련해 24일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 권희용 지부장은 “이종린은 일제강점기 초반에는 독립운동과 3년 옥고를 치른 부분“이 있지만, ”후반에는 일본을 찬양하는 강연 등을 한 인물로 당시 신문과 문헌에 많은 자료로 나와있다”라고 말했다. ⓒ 신영근
▲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는 이종린 문학기념비는 서산시 지곡면 안견기념관 앞에 설치되어 있다. 기념관 뒤로 지곡면행정복지센터가 보인다. 하지만 지곡면 행정복지센터는 이종린이 친일파 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 신영근

서산시는 해당 문학비가 시의 지원을 받아 시 소유 부지에 세워져 있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었다. 시 관계자는 “정확히 얼마가 지원됐는지 당시 문서를 확인해야 알 수 있다”면서 “법적인 5년의 문서보존기간이 끝나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다”라고 해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 권희용 지부장은 “이종린은 일제강점기 초반에는 독립운동으로 3년 간 옥고를 치렀지만 후반에는 일본을 찬양하는 강연을 한 인물로 당시 신문과 문헌에 많은 자료로 나와있다”면서 “공(功)이 있다고 봐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오히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변절하면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권 지부장은 이어 “변절한 독립운동가들이 일본을 위한 강연에 나서면, 국민들은 ‘독립운동가의 말이 옳은 게 아니냐”하면서 부화뇌동할 수 있다”면서 “(변절로) 더 나쁜 결과를 초래했던 사람을 공만 평가해서 기념비를 건립한 것은 너무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

문학비 철거에 대해선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렸다. 당시 건립추진위원 A씨는 “주민들과 많은 분들의 성금으로 건립된 문학기념비 철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당시 서산시에서도 승인을 해줘 시소유 부지에 건립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시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시소유 부지에 개인 기념비가 세워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당시에 묵시적 협조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철거를 위해서는) 관련 법규를 확인 후에 처리하는 게 맞다”고 신중한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 권 지부장은 “잘못된 것을 인정 안 하고 잘한 것만 말하면 이 세상에 나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철거보다는 서산시 또는 시의회에 동의를 얻어 친일행적을 자세히 기록한 단죄비를 기념비 옆에 세워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최근 충남교육청을 비롯해 전국에서는 교육청에서는 친일파가 작사·작곡한 교가와 학교에 걸린 일본인 교장 사진 등을 교체하는 등 친일잔재 청산에 나서고 있다.

<2019-10-26>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서산시 부지에 세워진 ‘친일파 문학비’… 시조차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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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25편 :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 24편 : 광복군 제3지대가 _ 김일진(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 장군, 광복군 오광심 지사 아들)

☞ 23편 : 추도가 _ 원형재(원심창 선생 아들)

☞ 22편 : 한반도가 _ 나중화(나창헌 선생 아들)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 국치추념가 _ 이준식 독립기념관장(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외손)

☞[출처] YTN Radio: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

토, 2021/08/1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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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사 작곡 교가·일본신사 잔재 등…교육청 “후속 조치는 자율”

친일 인사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 [학교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인천 지역 학교에 대한 일제 잔재 조사가 지난해 본격적으로 시행됐지만 별다른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15일 인천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4∼12월 지역 초·중·고교와 특수학교 52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모두 81건의 일제 잔재 사례가 파악됐다.

이 중 22건은 친일 작사가나 작곡가가 만든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 사례였다.

특히 ‘섬집 아기’와 ‘봄이 오면’의 작곡가로 유명한 이흥렬이 만든 교가도 7개 학교에서 사용되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흥렬은 일제강점기 일본음악의 수립을 목적으로 창설된 대화악단 지휘자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또 다른 친일 인사인 김동진이 만든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도 6곳에 달했다. 김씨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음악 활동을 했다가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친일 인사의 동상이나 일본 신사 잔재 등 일제 관련 기념물이 교정에 남아 있는 학교는 3곳으로 파악됐다.

나머지는 서운, 송월, 백마, 작약도 등 일제강점기에 일본식으로 변형된 지명이 교명과 교가 가사에 남은 사례였다.

시교육청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각 학교에 알렸으나 개선은 권고 사항에 그쳐 눈에 띄는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교 동문회와 학교운영위원회 등 내부 협의가 필수적인 만큼 교내 일제 잔재를 없애기까지는 시일이 좀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천황을 섬기던 신사의 돌기둥과 석등이 교정에 남아 있는 인천 중구 모 고교의 경우 별도의 시설물 철거 계획을 논의하지는 않은 상태다.

인천 연수구 모 중학교에는 독립운동가에서 친일파로 전향한 윤치호의 동상이 세워져 있지만 ‘나쁜 역사도 역사로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철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동창회 차원에서 재원을 마련해 학교 설립자 동상을 세운 것이라 학교 마음대로 없앨 수 없다”며 “내부 검토를 여러 차례 했지만 역사를 기억하자는 차원에서 동상을 남겨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친일 인사가 작사·작곡한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들도 대부분 즉각적인 개선 조치에는 나서지 못했다.

친일파가 교가를 작곡한 인천 연수구 모 고교는 추후 학생, 학부모, 동문회와의 협의를 거쳐 교가 일부를 개사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인천 동구 모 고교도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에 대해 별다른 개선 계획을 세우지 못한 상태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일선 학교에 일제 잔재 조사 결과를 보고서 형태로 알리기는 했지만 후속 조치는 자율적으로 하도록 했다”며 “이후 각 학교의 개선 여부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은지 기자 [email protected]

<2021-08-15> 연합뉴스

☞기사원문: 인천 학교들, 일제 잔재 남아 있어도 개선은 ‘거북이걸음’

※관련기사

☞서울신문: 친일파가 만든 교가…인천 각급 학교 일제 잔재 파악하고도 ‘개선‘ 소극적

화, 2021/08/17-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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