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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의 재정 위기: 분담금을 빙자한 미국의 국제적 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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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의 재정 위기: 분담금을 빙자한 미국의 국제적 횡포

admin | 수, 2019/10/23- 22:03

편집자 주:

“유엔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직후인 1945년 10월 24일 미국의 적극적인 제안과 후원으로 설립되었다. 유엔총회, 안전보장 이사회, 유엔사무국, 경제사회 이사회 등 4개의 공식기구와 국제 원자력 기구, 식량농업기구, 유네스코, 세계은행, 세계보건기구 등 산하의 여러 전문기구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2019년 현재 193개 회원국과 37,000 여명의 직원을 두고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주요 공여국인 미국의 상습적인 분담금 납입지연과 불이행 등으로 2019년 현재 수억 불이상의 채무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래의 글은 유엔에 가하는 미국의 횡포와 압력의 실상을 소상히 밝혀주고 있다.”

유엔은 자금조달에 있어서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마치 변덕스러운 회원들로 채워진 클럽처럼 유엔은 모든 회비가 제 때 들어올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에 빠졌다. 일부 회원국들은 회비 지급을 미루고 있고 결제는 종종 실종된다. 미국의 경우, 현재 유엔 운영 예산의 약 22%를 담당하는데, 회계연도에 따라 10월 이후에야 회비지급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상 더 큰 문제의 일면에 불과하다. 회비지급 보류는 유엔헌장 17조를 위반하는 사항으로 예산상 행위만큼이나 정치적이기도 하다. 이 조항의 중요성은 유엔의 운영비용을 “총회가 배정한대로 회원국이 부담한다”고 규정하는 데 있다.

역사적으로 UN 외교정책과 조직의 개혁 문제는 부과된 회비를 줄이거나 보류하는 주요 사안들로 언급되어 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렇게 “부과된 회비”가 행정 비용, 평화유지 활동 및 다양한 프로그램에 쓰이는 비용을 부담하는 공식 정규 예산으로 편성되기 때문이다 .”

미국의 경우, 종전에는 기구 운영 비용의 약 40%를 부담해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따라서 UN 조직에 어떤 압력이 가해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중반, 이스라엘이 “불법적으로 추방, 유보, 자격 부인 또는 어떤 식으로든 참여할 권리를 침해” 당하는 경우 “미국이 연간 분담금의 지급을 유보하면서 매달 8.34%” 축소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었다.

재정 지원 문제는 돈주머니를 걱정하는 미 의회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중요한 쟁점이었다. 수년간 위원회의 붙박이 역할을 한 제시 헬름스(Jesse Helms) 미 상원 외교위원장이 미국이 유엔 회비를 전액 지불할지, 정시에 지불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불렸다. 그와 함께 조 바이든(Joe Biden) 상원의원은 UN에 전액을 지불 하기 위한 전제로 다양한 “기준들”을 준수하도록 압박하는 협상을 1997년 타결했다. 여기에는 불가피한 UN 직원의 감축, 감찰관과 사무총장 간의 적절한 보고 절차, 타 기관에 대한 자금지원 금지 항목이 포함됐다. 2000년 1월, 헬름스 의원은 수 십 년간 의심해왔던 조직인 이른바 그림자 정부에 대해 충고하고, 참견하며, 잘난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특히 UN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연설에서 독특한 인상을 준 한 미국 의원을 경험하는데, 그는 당시 UN 주재 미국대사였던 리처드 홀브룩(Richard Holbrooke)이었다. 유엔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내비치면서, 그의 목적은 이 기구에 대한 미국의 기여를 “빚쟁이”가 한 것으로 간주하는 비평가들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그는 “유엔의 최대 공여자인 미국 국민의 대표로서, 우리는 투자에 대한 대가로 구체적 개혁을 요구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라고 공언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의 등장으로 미국의 자금과 유엔 운영비 사이의 훈훈한 협상의 새 장이 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18년 9월, 트럼프 행정부는 유엔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 대한 미국의 인도주의적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사회복지 사업, 의료 및 교육 부문을 위태롭게 하는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Jared Kushner)는 이 조치의 타당성을 확신했다.

“이 기구는 부패했고 비효율적이며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18년 예산안에는 유엔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미국 자금의 절반을 삭감하는 조치도 포함됐는데, 이는 특히 기후변화에 관한 것이었다. (미국 연방의회는 유엔평화유지활동 기부금 상한제 시행 안건에 동의했다.) 이와 같이 자금지원을 중단하여 유엔 기관들을 위협하고 압박을 가하는 사례는 여전히 미국의 관행으로 남아있다.

현재 회원국들이 유엔에 지불해야 하는 13억 달러 상당 중 미국이 체납한 금액은 10억 달러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 불량한 수치의 누적은 미국이 다른 회원국들에 불만을 토로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니까 미국뿐만 아니라 모든 회원국들이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6월, 안토니오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 사무총장은 5차 위원회의 예산 감독관들에게 급여와 물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명성과 운영 능력에 있어서 파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통보했다. “모든 회원국들이 분담비를 모두 제 때 지급하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금을 적소에 사용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

유엔은 5월 말까지 4억9200만 달러의 적자를 내고 있었다. 이에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파국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한계점에 다다랐으며, 우리가 이제 어떻게 하느냐가 앞으로 수 년간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상황은 예상대로 악화됐다. 지난 10월 첫 주 월요일에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10월말 현금 보유고가 고갈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유엔 사무국 소속 37,000명의 직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회원국들이 2019년 유엔 정기 예산 운영에 필요한 금액의 70%만 지불했다. 이는 9월말 2억3000만 달러의 현금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달 말까지 예비 유동자산 보유고가 고갈될 위험에 처했다.”

재정긴축 조치가 내려졌다. 컨퍼런스와 회의가 연기되고 있으며, 필수적이지 않다고 판단된 출장도 취소됐다. 유엔 대변인 스테판 두자릭(Stéphane Dujarric)은 회원국들에 압력을 가하며, 193개국 중 129개 회원국만이 “전 세계적으로 운영 중단을 초래할 수 있는 채무 불이행을 방지하기 위해 연간 분담금을 전액 지불했다”고 밝혔다. 유엔의 의미와 영향은 회원국들에 달려있으므로,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게 되면 세계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확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글로벌 리서치, 2019.10.11.

비노이 캄프마크(Binoy Kampmark)

케임브리지 셀윈 대학의 영연방 학자. 현재 멜버른 RMIT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글로벌리서치 및 아시아-태평양 리서치의 기고자로 활동 중이다.

 

More info.

추가 정보

심 심 위스곳(Sim Sim Wissgott), UN 분석가.

안토니오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10월 중 유엔의 재정이 고갈되고 있으며, 11월 직원들의 급여를 지급하려면 긴급조치가 필요하다는 경고 메시지를 전했다.

평화와 안보를 증진하고 개발을 돕기 위해 설립된 세계 최대의 국제기구가 어떻게 현금 부족에 시달리게 된 것일까? 유엔의 재정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그리고 왜 허리끈을 조이게 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누가 유엔에 돈을 지불하는가? 193개 회원국은 모두 각 국가의 규모와 경제력에 따라 산출된 유엔의 전반적인 운용을 위한 연간 분담금을 지급하기로 되어 있다. 2019년 총 분담금은 28억5000만 달러로, 미국의 분담금(약 6억7420만 달러)이 가장 많이 책정됐으며 바누아투, 미크로네시아, 소말리아, 벨리즈,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과 같이 국가의 규모가 작거나 빈곤한 경우 각각 최소 2만7883달러 만을 부담했다.

유엔의 재정 규칙 및 규정에 따르면, 이 자금은 해당 국가들이 그 해의 분담금을 통보 받은 후 “30일 이내 전액 지불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매해 지급 기한은 1월 31일이었다. 하지만 기한을 준수하는 회원국은 단 몇 십 개 국가들뿐이다. 2019년 10월 8일 현재, 유엔은 여전히 분담금의 약 30%에 해당하는 63개국의 기금 지급을 기다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들의 전년도 미지급 연회비마저도 연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이번 주,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우리는 급여를 충당할 현금이 부족한 채로 11월을 맞이할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하며 국가들에 회비 지급을 촉구했다. 유엔이 10년 만에 가장 큰 적자를 기록하며 “우리의 업무와 개혁이 위기에 처했다”고 덧붙였다.

그 돈은 어디에 쓰이는가?

유엔의 정기 예산은 뉴욕의 유엔 본부뿐만 아니라 비엔나, 나이로비, 스위스 제네바 등지에서 통신과 정치, 인도주의 및 경제 업무 등을 운용하는 데 쓰인다. 르완다, 구 유고슬라비아와 같은 평화유지 활동 및 국제 재판소는 별도의 예산으로 처리된다.

그러나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현재의 적자 상황을 “유엔이 직면한 최악의 재정 위기”로 표현했으며, 이는 공석을 채우지 않고, 필수적인 출장인 경우만 허용하고, 회의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등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화유지 활동을 위해 따로 떼어 놓은 돈에서 자금을 빌려야 할 수도 있다. 유엔은 전 세계 4개 주요 센터와 아프가니스탄, 말리, 아이티의 현장 사무소에 3만7500명이 넘는 직원을 두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 유니세프, 유엔난민고등판무관과 같은 유엔 기관들은 자체 예산을 가지고 있다.

스테판 두자릭(Stephane Dujarric) 대변인에 따르면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올해 초 이미 상당한 수준의 비용절감 조치를 시작했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유엔은 현재 약 6억 달러의 적자로 인해 전 세계 지도자들이 참석하는 주요 연례 행사인 지난 달 총회를 개최할 수 없었을 것이다. 9월 말, 유엔의 적자는 2억3000만 달러였다.

브라질, 한국,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같은 국가들은 분담 지급을 미루고 있다. 특히 유엔 총 예산의 3분의 1을 지급하는 상위 6개 회원국 중에는 미국만이 2019년 분담금을 전액 지불하지 않았다. .

뿐만 아니라 각종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금년 분 4억 달러에 육박하는 체납금을 포함하여 지급해야 할 총 납입액은 1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유엔에 상당한 자금 지원을 해온 것에 오랫동안 불평해왔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다자주의에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자 하는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는 지난 해 유엔총회에서 “세계주의의 이념을 거부하고 애국주의 원칙을 채택했다”고 말했다. 지난 달 그는 세계 정상들에 “모든 파트너들이 공정한 몫의 방위비 및 기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유네스코(UNESCO)의 반 이스라엘 성향 및 근본적 개혁의 필요성과 함께 “증가하는 체납금”을 언급하며, 유엔 산하 교육문화기구인 유네스코를 탈퇴했다.

미국은 자신들이 지원해야 했던 “과도한 분담”에 대해 불평하며 팔레스타인 난민을 위한 유엔 프로그램인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와 낙태 관련 유엔인구기금(UNFPA)에 대한 지원을 삭감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발언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첫 주 수요일 트위터에 “그러니까 미국만이 아니라 모든 회원국들이 지불하도록 하라!”는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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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해체 이후 근대 세계사는 새로운 단계인 후기근대(late modern age)에 접어들었다. 세계인이 이를 점차 실감하고 있는데, 촛불 이후 남북 코리아는 더욱 그러하다. 새로운 시간의 실감 속에서 최원식 교수가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글 「남북연합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강조하고 코리아 남북연합이 그 촉진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후기근대의 세계 상황이 두 코리아의 공존체제·평화체제를 가능하게 하고 있으니 이를 위한 내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평자로서는 동의하고 환영한다.

이제 촛불혁명과 판문점, 싱가포르 선언으로 그 가능성은 바로 코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촛불 직전인 2016년 5월 《프레시안》과 ‘다른백년’이 주관했던 4회 강연에서부터 평자는 공존체제, 평화체제보다 ‘양국체제’라는 개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공존체제나 평화체제는 ‘그냥 맞는 말’로 들릴 수 있다. ‘좋아.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공존과 평화를 이뤄낼 실제적 방법, 핵심고리가 중요한데, 이것이 ‘코리아 남북 양국의 주권국가(sovereign state)로서의 상호 인정’에 있다는 것이다. 결국 양국체제가 돼야 공존과 평화가 가능하다. 양국체제란 양국 공존체제, 양국 평화체제의 줄임말이다. 공존과 평화를 실현할 양국체제가 남북연합의 바탕이 될 것도 자명하다.

발제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우선 발제문은 ‘國際(inter-national)’보다 ‘民際(inter-civic)’를 중시하기에 통상 쓰는 ‘(남북)국가연합’이 아니라 국가를 빼고 ‘남북연합’이라 하는 듯하다. 국제(International)에 민간관계가 빠지는 게 아니니 민제라는 말이 굳이 따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국제와 민제가 따로는 아니겠다. 발제문이 언급한 한중일 관계만 하더라도 국제가 안 풀리면 민제도 어려워진다. 극적 사례는 1992년 한중 수교였다. 국제를 트니 민제가 크게 열렸다. 남북관계는 국제(이 경우는 inter-national이 아니고 inter-state가 된다)가 막혀 민제는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있다 할 형국이니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남북연합 논의에서도 국가(state) 대 국가(state)로서 남북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발제문은 그와 전혀 다르게 본다. 아래 문단은 관련 주장이 집약된 것으로 보이는데, 의외로 ‘양국론’에 대한 ‘경계 긋기’로 시작한다.

최근 세를 얻고 있는 양국론에 대해서도 경계를 그을 필요가 없지 않다. 양국체제론자들의 논의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탓에 단정하긴 어렵지만 남북은 일국도 아니지만 양국도 아니다. 분단으로 두 쪽이 난듯이 보여도 남과 북은 분단체제의 드러남으로 연계된바, 분단체제를 상정하지 않은 양국론과는 애초에 무관하다. 그렇다고 그냥 일국론도 물론 아니다. 정말로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不一不二]. 요컨대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론을 설령 통일의 최종형태로 삼는다고 해도 그 연합이 두 나라의 단순 병치가 되기는 애시당초 그른 것이매 남북연합론은 주변 4강의 의심을 풀고 내부의 대국주의를 절약할 요체가 아닐 수 없다. 요컨대 남북연합론은 일국적 통일론과 양국적 반통일론을 가로지르는 중형국가적 분단해소론이다.

국가 대 국가의 문제를 시종 비켜가고 있다. 일국도 아니고 양국도 아니라 한다. 과연 그런가? 현실은 일 민족, 이 국가(one nation two states)이다. 둘이되 하나요, 하나이되 둘[一而二, 二而一]이다. 엄연한 사실이 그러함에도, 즉 이 두 개의 국가가 국제적으로는 모두가 널리 공인된 국가이면서, 막상 양국은 아직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 문제요, 비정상 아닌가? 그러나 「발제문」은 거꾸로 본다. 이런 상태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여기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 ‘불일불이(不一不二)’라 한다. 불일불이란 불가(佛家)의 진리관[中論]을 표현하는 높고 찬란한 언어다. 진리적 불일불이가 ‘분단체제’라는 개념에도 적용되고 있다. “분단으로 두 쪽이 난듯이 보여도 남과 북은 분단체제의 드러남으로 연계된바 …… ”라고 하였다. 분단체제를 이렇듯 고도로 긍정적인 개념으로 보기 때문에, 발제자의 ‘남북연합’이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론”이라 하였다. 그동안 ‘분단체제’란 말은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왔기 때문에 이를 이렇듯 고도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용법이 일반인에게는 매우 낯설다. 분단체제는 남북이 적대하는 체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국가로서 인정하지 못해왔던 체제 아닌가?

거듭 말하여, 현실은 일 민족 이 국가 상태다. 체제 보장은 북미 간에만 아니라 남북 간에도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양국체제다. 과연 무엇이 분단과 분단체제를 영구화시켜왔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둘임을 부정했기 때문에, 둘을 부정한 채로 결코 하나이자고 했기 때문 아닌가? 둘이 서로 인정하는 것이 이 함정을 벗어나는 제1보다.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것만이 바른 길이다. 『노자(老子)』 22장에서 “곡즉전 왕즉직(曲則全 枉則直)”이라 했던 게 양국체제의 취지와 닿아 있다.

양국체제 없이 남북연합이 제대로 될까? 국(state) 간의 際가 안 열렸는데 民 간의 際가 활짝 열릴까? 그렇듯 국제가 닫힌 채로 가능한 남북연합이란 어떤 것일까? 양국체제가 성립하고 안정돼야 비로소 그 두 국가(state) 간의 남북연합이든 국가연합이든, 낮은 단계든 높은 단계든, 비로소 현실화되는 것 아닌가? 촛불혁명, 그리고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선언으로 이제 양국체제는 목전의 현실문제가 되었다. 판문점, 싱가포르 회담 한참 이전부터 줄곧 강조해온 것처럼 종전과 북미 수교는 양국체제의 입구요 일부다.

양국체제란 1973년 <동서독기본조약> 이후의 동서독 관계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동서독기본조약>에서 양독(兩獨)은 서로를 국가로서 분명히 인정했고, 기본조약 이후 미국은 동독과 수교했다. 그 두 고리가 풀리면서 양독 관계는 안정됐다. 반면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는 이 둘 다 이루지 못했다. 유엔 동시가입으로 코리아 양국체제의 외적 모양새는 일단 시작되었지만 완성되지 못했다. 불완전하고 불균형했다. 그랬기에 그 경로는 금방 닫혔다. 반면 동서독의 양국체제는 안정적으로 지속됐다. 정권이 바뀌어도 존속했다. 이런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당시 남북이 처해 있던 여러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낮은 수준에서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거꾸로 뒤집어서 그것이 마치 아주 높은 수준의 결과였던 것처럼 생각한다면 문제가 된다.

「발제문」의 ‘불일불이’ 구절을 읽으면서 연상을 금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유명한 “(남북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구절이다. 이 표현은 매우 외교적인 것인데, 이를 액면가보다 낮추어 읽는 것이 아니라(외교문서를 읽는 기본이다), 오히려 액면가보다 훨씬 높게 읽는 경향이 있었다. 마치 ‘남북은 국가 대 국가로 서로를 (아직 외적 조건과 내적 능력이 부족하여)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뜻이 높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남북은 애당초 두 국가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이기 때문이다’라는 식이다. 그렇게 읽으면 이 구절은 마치 ‘우리가 지금 하나는 아니지만 결코 둘일 수 없다(불일불이)’라는 높은 이상에 남북 대표가 의기투합하여 ‘우리는 결코 두 국가가 될 수 없으니 이러한 불일불이의 상태에서 곧바로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통일로 직행하자’라는 뜨거운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표현한 것이 된다. 실제로 그런 오독들이 꽤 있었다. 서로 국가로 인정하지도 않는데 연합이든 연방이든,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에 대한 답은 여태껏 듣지 못했다.

끝으로 ‘말이 아닌 말’을 일부러 만들어낼 필요는 없겠다. 위 인용문에서 “양국적 반통일론”이 그렇다. 앞서 설명한 대로 양국체제 없이는 공존체제도, 평화체제도, 남북연합도 담보되지 않는다. 양국체제 자체가 통일은 아니지만, 어떠한 경로보다 통일 촉진적이다. 양국체제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바람직한 통일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반통일’일까? 또 이 말과 짝을 걸어놓은 “일국적 통일론”이란 뭘까? 진보진영에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안다. 북(DPRK) 역시 이 입장을 폐기한 지 오래됐다. 그럼 뭘까? 발제자의 뜻을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런 게 있다면 우스꽝스런 무엇일 듯하다. ‘말이 아닌 말’을 만든 것으로 부족하여 실체 없는 허깨비와 짝을 붙여놓은 꼴이다. 왜 이래야 했을까? 양측에 ‘극단’을 세워놓고 중간에 끼어들어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은 때로 쓸 만하다. 단, 그 양쪽 입장이 단단하고 분명해야 한다. 그럴수록 자신의 입장이 힘을 받는다. 그렇지 않고 ‘말이 아닌 말’과 ‘대립 아닌 대립’을 세워놓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식이라면 별다른 의미나 성과가 없을 듯하다. 또 그렇듯 가로지르는 게 ‘중형국가적 분단해소론’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국가’는 어떤 국가이고(일 국가? 이 국가?), 여기서 ‘분단 해소’는 어떤 해소인지(분단체제의 해소? 분단의 해소?)도 궁금하다. 어쨌거나 지금 필요한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들 사이의 ‘경계 긋기’가 아니라 존재하고 있는 것들의 공통점을 모으는 일이 아니겠나 생각해본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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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4/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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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의 시작을 알리는 『흔들리는 분단체제』가 출간된 것은 1998년이다. 앞서 말했듯 이 제목은 역설적이다. 분단체제가 흔들리고 있음을 알리면서 분단체제 개념은 장기화되고 분단체제론은 안정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2006년에는 “지금 돌이켜 보면” 분단체제가 1987년 6월부터 이미 “동요하기 시작했었다”고 하였다. 1987년 6월은 양국체제론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분단체제의 양국체제로의 전환’의 가능성이 이때부터 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단체제론의 강조점은 다르다. 이렇듯 일찍부터 분단체제가 동요하고 흔들리고, 더 나아가 허물어지고, 해체되고 있다고 하면서, 그럴수록 분단체제는 묘하게 더욱 장기화하고 그에 따라 분단체제론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고 하는 이론적 메커니즘이 분단체제론 2기의 특징이다.

이 메커니즘의 숨은 비밀은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한 매우 높은 평가에서 출발한다. 물론 이 두 사건은 높게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나 역시 매우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높게 평가하는 대목이 크게 다르다. 아무튼 ‘분단체제론적 고평가’는 1997년 발표한 「분단체제극복운동의 일상화를 위해」에서부터 표명되기 시작하는데, 이 글은 1991~1994년 사이에 발표된 글들에서 보인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한 경계와 유보, 그리고 이를 전제로 한 소극적 인정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입론의 첫 단계(1991~1994년)에서 분단체제론은 아직 분단체제극복운동과 현실과의 접맥점을 잘 찾지 못하고 있었다. 접맥점이란 그렇듯 높은 목표를 갖는 분단체제극복의 경로와 주체를 구체화하는 것이 될 터인데, 첫 입론 단계에서는 아직 “통일운동이 민중운동이 될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거나, “범한반도적 민중운동 …… 남북한 민중연대의 가능성”을 원론적 수준에서 언급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러한 ‘범한반도적 민중운동’과 ‘남북한 민중연대’ 주장이 “남북한의 현실을 ‘현실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볼 때 …… (현실적 근거가 없는) 당위론적이고 관념론적인 이상론이 아닌가”라는 비판에 대해, “문제의식은 정당한데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아서 구체적인 성과가 미미한 것과 문제의식 자체가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당위론 내지 관념론·이상론이라는 것은 마땅히 구별해야 할 터”라고 소극적으로 변명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원론적 시각에서 볼 때 남북 유엔 동시가입이나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이 ‘남북한 민중연대에 기초한 범한반도적 민중운동’의 기준에서 한참 못 미침은 자명했을 것이고, 그래서 백 선생은 1991년 “유엔 가입을 포함한 한국 정부의 ‘북방정책’의 성과”가 “반민주적 분단체제의 부분적 개량에 불과함이 명백하다”고 썼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것은 문자 그대로 개량이요 개선이지 개악은 아니며, 분단체제의 장기화에 이바지할 가능성과 더불어 분단체제극복운동에도 새로운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라는 흥미로운 표현을 덧붙였다. 소극적인 인정의 표현이기는 하지만, “분단체제 장기화에 이바지”라고 하는, ‘분단체제의 장기화’가 긍정되는 묘한 표현과, 그 분단체제의 장기화가 “분단체제극복운동에도 새로운 공간을 열어”준다고 하는, 분단체제론의 독특한 개념적 함수관계가 처음으로 명료하게 드러난 대목이기도 하다.

우선 유엔 동시가입 등 북방정책의 성과가 ‘분단체제의 장기화에 이바지했다’는 말은 명백하게 틀렸다. 사태를 정반대로 말하고 있다. 유엔 동시가입 등 북방정책의 성과들은 분단체제를 분명히 균열내고 흔들었다. 그 균열과 동요를 틀어막았던 것, 즉 진정 “분단체제 장기화에 이바지”했던 쪽은, 그 유엔 동시가입이나 <남북기본합의서>의 효과가 북미・북일 수교로, ‘남북 양국(평화공존)체제’의 성립으로 이어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던 내외의 냉전대결 세력들이었다. 어쨌거나 이 말에서 드러난 분단체제론의 독특한 개념적 함수관계를 정리해본다면, ‘분단체제론은 분단체제의 장기화에 의거하여 분단체제극복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가기 위한 이론’이 될 것이다. 이 독특한 함수관계는 몇 년의 숙고를 거친 후인 1997년,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표현을 얻게 된다.

통일을 향한 획기적인 한 걸음을 뜻하면서도 분단체제의 급격한 붕괴를 피하는 국가체제라면 비교적 느슨한 형태의 복합국가인 국가연합(confederation)이 아닐 수 없다고 본다 …… 북의 ‘연방공화국’ 제안이 영어로는 ‘confederal republic’(즉 국가연합 공화국)으로 표현되었고 1991년 남한 정부의 ‘한민족공동체’ 통일안에 국가연합 단계가 포함되었다는 사실들을 떠나서라도, 남북 간에는 국가연합을 향한 더욱 실질적인 합의가 이미 이루어진 상태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북한의 UN 동시가입이야말로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이라는 면에서 그 어느 공동선언보다 실질적인 조치였으며, 이렇게 상호 인정을 나눈 두 국가 당국은 1991년 12월에 조인되어 92년 2월에 발표한 ‘남북합의서’에서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한 관계”로 규정함으로써 이미 국가연합 형태의 단초를 열어놓은 형국이다.

“통일을 위한 획기적인 한 걸음”으로서 남북의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을 강조하고, 남북 유엔 동시가입이 이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였음을 언급하는 대목은 마치 분단체제론이 아니라 양국체제론의 논거를 펼치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피상적으로 보면 분명 그렇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면 그렇지가 못하다. 오히려 중요한 점에서 인식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글을 쓴 1997년은 어떤 시간인가. 유엔 동시가입 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났고 한국은 중국, 러시아와 수교한 반면, 북(DPRK)은 결국 미국, 일본과 수교하지 못한 채 매우 위축된 상황에서 고난의 시기를 보내고 있음에도, 이러한 상태를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매우 후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은 양국체제론의 시각과 분명히 다르다. 양국체제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남북 양국 모두에서 내적 외적으로 안정된 인정구조가 우선 성립되어야 한다. 남북 유엔 동시가입은 외부 세계가 남북 두 국가를 각각 정상적이고 온전한 국가로 인정하는 ‘양국체제의 외적 인정구조 성립’을 위해 중요한 일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불완전하고 불균등했다. 한국은 소련, 중국 및 동구권 모든 국가와 수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은 그러지 못했다. 미국은 냉전 해체 이후 위기에 처한 북을 압박을 통해 붕괴시키려만 했지 인정할 의도가 애초부터 없었다. 그 결과 일본을 비롯하여 미국의 영향력이 강한 많은 국가가 북과 수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남과 북은 국제적으로 매우 불균등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이런 상태는 남북 간의 긴장의 소지를 오히려 높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듯 여전히 위태로운 상황 속의 남과 북 두 나라의 관계가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이 이미 ‘실질적으로’ 이루어져 마치 안정된 평화적 동반 관계가 이미 달성된 상태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분명 현실과 한참 동떨어진 인식이었다.

양국체제론의 현실 인식과의 차이는 이어지는 다음 대목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양국체제론은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이제는 유명해진 구절인 “(남북 쌍방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한 관계”라는 표현을 매우 문제적인 것으로 본다. 나는 다른 글에서 그 이유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보았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란 앞서 분석한 ‘반쪽국가의식’에 정확히 상응하는 표현이다. 흔히 <남북기본합의서>는 1972년 체결된 <동서독기본조약>을 준용한 것이라 한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상호 인정의 수준에서 <남북기본합의서>가 <동서독기본조약>에 크게 못 미친다는 사실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동서독기본조약>은 서문, 10개조, 그리고 2개조의 추가조항 전체에서 조약 쌍방을 정식국호인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라 분명히 칭하고, 두 국가가 주권과 영토를 상호 인정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구절은 <동서독기본조약>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필자가 독일의 동방정책과 관련해서 이와 그나마 가까워 보이는 표현을 조사해본 바로는, 1969년 10월 28일 서독 수상 빌리 브란트의 연방정부 성명 중에 “독일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더라도 그 국가는 상호 외국이 아니며, 그 상호관계는 특수한 종류인 것”이라 했던 것이 처음이었다. 그 성명의 핵심은 독일에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이라는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는 것이었다. 다만 그 두 국가는 서로 외국이 아닌 특수관계라는 뜻이었다. 먼저 국가로서 인정하면서, 그다음에 그 두 국가 간의 관계는 특수하다 한 것이다. 하나의 민족이 이룬 두 개의 국가(one nation, two states) 간의 관계이니 특수하다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동서독은 기본조약 이후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일반 수교국 대사보다 격이 높은 장관급 대표를 상호 파견했다. 그런데 <남북기본합의서>는 그와 전혀 다르다. 국가로서 인정하지도 않았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고 거듭 확인까지 하고 있다.(이 책 1부 1장, 52~53쪽)

따라서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문제의 그 구절은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을 표현하고 있다고 결코 볼 수 없는 것이다. 아직 그 상태에 이르지 못한 남북 양 당국의 곤혹스러운 상황을 외교적 언어로 봉합하거나 절충하는 표현에 불과한 것이었다.

당시 상황을 냉정하게 보면 비록 냉전이 종식이 되었다 하더라도 미국이 북을 인정할 의도가 없는 상태에서 남북 양측만으로 종전(終戰)을 이루기 어려웠다. 아직 전쟁도 공식적으로 끝마치지 못한 상대를 국가로 인정한다는 것은 앞뒤가 바뀐 일이기도 하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미국과 별개로 독자적으로 북과 종전처리를 하고 상호 국가 인정까지 밀고 나갈 만큼의 의지와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북 역시 ‘남조선’을 곧바로 국가로서 인정할 만한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못했다. 위기에 처한 당시의 상황을 우선 모면하는 데 급급했지 장기적인 비전을 차분히 재정립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듯 남북 모두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제약된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낮은 수준의 합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남북기본합의서>가 <동서독기본조약>에 비해 상호 인정의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불완전한 합의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면 문제가 없다.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으면 그것을 극복해갈 방향도 정확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낮은 수준에서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거꾸로 뒤집어 그것이 마치 오히려 더욱 높은 수준의 심오한 합의의 결과였던 것처럼 생각한다면 문제가 된다.

실제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표현은 그러한 혼란을 유발할 여지가 없지 않다. ‘남북은 국가 대 국가로 서로를 (아직 능력이 부족하여)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뜻이 높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남북은 애당초 두 국가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이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읽으면 이 구절은 마치 ‘우리가 지금 하나는 아니지만 결코 둘일 수 없다’라는 높은 민족적 이상에 남북 대표가 의기투합한 결과, 곧바로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통일로 직행하려는 속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표현되었던 것처럼 과잉 해석될 수도 있다.(이 책, 53~54쪽)

앞서 인용했던 1997년도의 백 선생의 글이 바로 그런 과잉 해석의 두드러진 일례다.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바로 그 문제의 구절을 “국가연합 형태의 단초를 열어놓은 형국”이라거나, “연방제 통일로의 길도 열어놓았”고 “이미 형성되기 시작한 일종의 연합관계를 추인”하는 것이라고 극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런 고평가는 이후 글에서 거듭 되풀이된다.

한쪽(DPRK)은 ‘고난의 행군’에다 ‘핵사찰’의 압박 속에서 생사존망의 위기에 빠져 있고, 휴전선의 삼엄한 대치와 긴장은 여전한데, 그러한 상황에서 ‘연방제 통일의 길’이 이미 열려 있고 남북 간 ‘연합관계’가 이미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강조한다? 실제 1991년은 그러한 ‘양국 평화공존 체제’의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열렸던 순간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한국 민주화운동 세력이 분열되고, 내외 냉전대결 세력의 힘이 압도하면서 금방 닫히고 말았다. 사정이 그러했기 때문에 1991년의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를 1997년에 돌아보면서 쓰는 글이라면, 그 가능성이 어떻게 열릴 수 있었으며, 어찌하여 그렇게도 빨리 닫히고 말았는지,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지적하는 글이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랬더라면 훨씬 더 시의적절했을 것이다. 아쉬운 대목이다.

1997년 쓴 백 선생의 이 글이 왜 그렇게까지 낙관적인 글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분단체제론을 초기 입론한 1994년의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의 한반도 정세와 분단체제론」에는 유엔 동시가입과 기본합의서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1992년의 「분단체제의 인식을 위하여」에는 지나가는 말로 “남북 양쪽에서 제기된 국가연합을 전제한 민족공동체라든가 연방제, 연합성 연방제 등”이라고 딱 한 번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이 단계에서는 두 사건이 분단체제론의 입론에서 별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1997년에는 이 두 사건에 대한 매우 높은 사후 평가가 분단체제론의 새로운 입론의 근거가 되고 있다. 그렇게 변화한 사정을 잘 알 수는 없지만, 시기상 남북 화해와 통일정책에 적극적이었던 김대중 씨의 집권 가능성이 생겼다는 상황과 연관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당시 미국의 클린턴 정부가 북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는 사정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어느 것이든 짐작일 뿐이다. 그렇지만 순전히 이론적 차원에서만 본다면, 백 선생의 분단체제론이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를 적극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입론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이미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 직후에 이 속에서 “분단체제의 장기화에 이바지할 가능성”, 그와 더불어 “분단체제극복운동에도 새로운 공간을 열어”줄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분단체제론 2기에는 ‘국가연합(또는 남북연합)’이 분단체제론의 키워드로 부상한다. 이 점이 1기와의 큰 차이다. 그런데 어떤 국가연합이든, 구 소련연방 국가들의 ‘국가연합(CIS)’이나 유럽연합(EU) 등 어떤 사례를 보더라도, 국가의 연합이라 하면 먼저 국가 간 국가로서의 완전한 상호 인정과 정식 수교를 전제로 한다. 그래서 국가연합을 이룬 나라들은 국가연합 이전에 당연히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대사를 교환한다. 우리와 같이 한 민족이 두 나라를 이루고 있는 경우에 이 두 나라(ROK와 DPRK)의 수교관계란 마땅히 일반 외국 사이의 수교관계보다 더 높은 것이 된다. 그래서 동서독도 기본조약 이후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양국에 대표부를 설치했고, 일반 대사보다 급이 높은 장관급의 대표를 교환했다. 그것이 양국체제고, 그것이 전제되어 있지 못한 국가연합, 즉 ‘국가 간 정식 수교관계 없는 국가연합’이란 도대체 성립될 수 없는 말이다. 국가연합을 하자면 먼저 국가 간 수교가 당연히 선행해야 되지 않겠는가? 먼저 밥을 지어놓아야 그것으로 비빔밥이든 볶음밥이든 만들 것 아닌가. 밥도 해놓지 않고 비빔밥 나와라 볶음밥 나와라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애당초 불충분하고 불완전했던 것이 1991년의 유엔 동시가입과 기본합의서였다. 이것이 양국체제론의 시각이다. 그러나 백 선생은 그 유엔 동시가입과 기본합의서의 취지조차 그 후 북핵문제와 전쟁소동으로 빛이 바래버린 1997년에 이르러, 1991년에 남북은 이미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이 이뤄졌고, 더 나아가 기본합의서를 통해 “국가연합을 향한 더욱 실질적인 합의가 이미 이루어진 상태”라고 쓰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조건이 무르익은 국가연합의 완성을 위해 이제 일로매진만 하면 된다. 이로써 분단체제론은 현실과의 실천의 접면을 비로소 발견한 것이다. 국가연합의 완성을 위해 일로매진할 때, 앞서 1991년의 글에서 예고하였듯, ‘분단체제극복운동에 새로운 공간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새로운 공간이란 ‘분단체제 장기화’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분단체제론은 이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마련되어 있는 이곳, 국가연합(남북연합)의 터가 바로 분단체제론의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라! Hic Rhodus, hic salta! 동시에 바로 이곳이 ‘지평선 도달하기 운동’의 출발점이다. 이곳에 출발선을 그은 이상, 이제 여기서부터의 한 발짝은 모두 지평선을 향한 한 발짝이다. 우리가 발걸음을 떼는 만큼 우리는 지평선에 가까워진다. 분명하지 않은가! 지평선 도달하기 운동의 실체성, 실천성은 이로써 명확해진다.

백 선생이 “나라 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고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기본합의서 서문의 구절을 1997년에 이르러 그토록 높게 평가했던 이유를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분단체제는 하나의 체제다’라는 분단체제론의 명제에서의 강조점이, 이론 1기에는 ‘체제’ 쪽에 있었다면, 2기에는 ‘하나의’로 쪽으로 이동했다. 분단체제란 결코 둘일 수 없는, 둘이어서는 안 되는 ‘하나의’ 체제다. 그렇다면 남북관계를 “나라 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고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했던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표현은, 이렇듯 (나라 대 나라 사이의) 둘의 관계가 아닌, ‘하나의’ 체제 안에서 이루어지는 “특수한 관계”라고 하는 ‘분단체제’의 성격을 지극히 절묘하게 표현해준 것으로 읽힌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상태를 “국가연합을 향한 더욱 실질적인 합의가 이미 이루어진 상태”와 등치하게 된다.

앞서 최원식 교수가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론”이라 했던 표현의 근원이 어디였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다. 남북연합(국가연합)은 ‘하나의’ 체제인 분단체제를 상정하고 전제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하나의’ 체제인 분단체제를 상정하지 않고 ‘두 개의 나라’를 전제하는 양국체제론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는다. 이런 사고법에서는 양국체제가 안정되어야 비로소 정책연합이든 국가연합이든 통일로 가는 다음 단계가 가능해진다는 생각은 자리 잡을 데가 없어진다. 분단체제론이 국가연합과 함께 강조해온 남북 민중연대(또는 시민연대)도 양국 수교를 통한 안정된 민간 교류 속에서 훨씬 대대적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애초에 가로막혀 있다. 다만 양국체제는 ‘국가연합과 연방제를 통해 통일로 직행하는 길’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로 간주될 뿐이다.

분단체제론 1기에서 분단체제 개념의 ‘과잉이론화’는 분단체제의 장기화와 분단체제극복 과제의 초역사적 보편화라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2기에서의 과잉이론화는 분단체제가 국가연합(남북연합)의 전제조건으로 상정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로써 분단체제 자체가 국가연합이라는 적극적인 실천목표와 어느덧 엉켜버린다. 국가연합의 목표 실현을 위해서는 분단체제의 존속이 상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후 국가연합(남북연합)은 분단체체론의 ‘분단체제극복운동’의 초점이 된다. 이로써 분단체제론은 분단체제의 존속을 상정해야만 하게 되었다. 앞서 이를 ‘분단체제론의 곤경(딜레마)’이라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분단체제론의 출발에서 비판과 극복의 대상이었던 분단체제가 이제 ‘남북연합’이라는 분단체제극복운동의 목표와 뒤엉키면서, 어느덧 분단체제 자체가 적극적인 긍정의 대상으로, 처음과는 정반대의 존재로 환골탈태하고 만다. 앞서 이를 ‘분단체제론의 역설(패러독스)’이라 했다. 이 분단체제의 곤경과 역설은 이론 2기에 이르러 이제 그 전모를 완연히 드러내게 되었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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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0/05/2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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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다른백년은 지난 3개월간 연재한 ‘코로나 이후 세계는?’을 마감하고 이번 주를 시작으로 3-4개월간 ‘미중 간의 갈등전개와 향후전망’ 라는 주제로 새로운 특별칼럼을 연재한다.

1990년 이래 단극적으로 세계질서를 주도해 왔던 미국의 G1위상이 급격히 추락하면서, 향후 당분간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G0의 혼란기로 접어들고 있다. 대체로 미국의 패권유지와 중국의 대국굴기가 갈등의 중심축을 이루면서, 유럽연합과 러시아 그리고 인도 등이 조정역할을 넘어 나름대로 지역과 현안에 대한 대안적 거점을 형성할지 여부가 향후 Gn의 세계질서의 내용을 결정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른벡년은 상기 주제에 대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시각과 분석을 아래과 같은 6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각각 2-3주 간격으로 교체하며, 매주 2건의 칼럼을 번역 소개하고자 한다.

1.     미중 갈등의 격화의 배경과 전개

2.     미국에 대한 대내외적 시각과 비판

3.     중국에 대한 대내외적 시각과 비판

4.     미중 간의 주도권 쟁탈과 전쟁 가능성

5.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과 중국의 반격

6.     향후 세계질서에 대한 전망

미중 갈등의 배경과 전개에 대한 첫 번째 소개의 글은 미국의 진보적 Think-Tank인 Brookings 연구소의 중국센타 책임자인 Dr. Cheng Li와 중국국제방송CGTN 간에 이루어진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여러분들의 변함없는 관심과 격려를 기대한다.


중국과 미국은 전면적인 대결상황으로 향해가고 있는가? 정치와 안보상황이 더욱 악화일로에 있는 것일까? 경제적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중국국제방송CGTN의 Reality Check 프로그램에서는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중국센타 책임자인 Dr. Cheng Li와 인터뷰를 가졌으며, 그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현재 3가지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중 관계를 수십 년을 취재해온 사람으로서 본 프로그램 책임자인 필자는 양국의 관계가 지난 과거의 세월 중에 현재처럼 당황스러운 순간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양국은 결국 세계적 재앙인 팬데믹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어쩔 수없이 서로 협력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대선이 있는 올해를 겪으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인지, 전문가의 견해를 듣기 전에 우선 몇 가지 사실들을 확인해 본다.

정치적 대립을 보도하는 뉴스가 난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측면에는 여전히 회복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통상무역을 예를 들어보면, 트럼프의 중국무역에 대한 전쟁선포와 북경의 보복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에도, 2018년 한해 양국 무역이 6340억 불에 이르면서 사상 최고액수를 보였다. 물론 관세인상이 적용되는 시차가 발생하면서 추후에 무역량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피크에 이른 액수와 큰 차이를 보이진 않았다.

2019년에도 미국은 다른 국가들에 앞서 중국에게서 가장 많이 수입을 하였으며, 비록 느린 속도이긴 하지만 여전히 서비스의 교역량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양국 간의 투자에 있어서는 정부(正負)의 양 측면을 보인다. 조사기관에 의하면, 2019년 중국의 미국에 투자액이 50억불 규모로 이는 지난 십 수년간 제일 저조한 수준인데 주로 북경당국의 대외투자규제와 외국인 투자에 대한 미국의 정기적인 조사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에 미국의 대중 투자액은 오히려 140억불로 늘어났는데, 이는 중국의 내수시장에 대한 미국기업들의 기대가 여전히 크고 자동차와 금융분야에 대한 외국인 소유규제가 완화된 것을 기회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공급사슬(supply-chain)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팬데믹을 핑계로 미국당국은 미국적 기업들에게 국가안보차원에서 중국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로 미국적 기업들은 이전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암참(AmCham, 미국해외기업협회)회장인 Greg Gilligan은 CGTN과 인터뷰에서, 자체조사에 의하면 1.0% 이하 기업들만 중국에서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압도적인 기업들이 중국 내에서 거래를 하고 부품을 생산하는 것이 가치있는 일로 생각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정치적 상황이 계속 악화되면, 경제적 회복이 어려워 지면서 잔류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에도 COVID-19를 둘러싸고 정치적 비난과 책임공방이 진행되고 있다. 양국 간에 처음으로 현지에 체류 중인 기자들을 서로 추방하였으며, 북경당국은 워싱턴의 몇 가지 법안들이 중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미국과 대만 간의 외교를 지원하는 ‘대만법 Taiwan Act’과 미국의 고위직 정부인사가 대만을 방문하는 것을 허용하는 ‘대만여행법 Taiwan Travel Act’ 그리고 홍콩과 신장에 관한 입법행위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에 더하여, 최근들어 대만해협에 미해군 함정들이 한달 간격으로 출몰하고 있는데, 오바마 시절에는 일년에 한번 정도로 훈련을 실시했다.

미중 국민들이 양국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희망하는지 중요하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민의 66%가 중국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잇는데 이는 2005년 이래 가장 높은 것이다. 반면에 여론조사 결과를 나이별로 재분류하면, 젊은 미국인들에게는 중국에 대한 호감이 오히려 높은 것으로 나온다.

중국인들 사이에도 반미정서가 높아지고 있지만, 2018년에서 2019년 간에 미국으로 넘어간 중국학생수가 늘어났으며, 이는 비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음에도 나타난 결과이다. 높은 교육수준으로 인해 미국으로 유학온 외국인 학생의 비중에서 중국이 가장 높다.

상기에 언급한 것처럼 주제들이 다양하고 때로는 충돌하는 격동적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은 어디로 향해 가는가’라는 커다란 질문에 대해 브루킹스 연구소의 중국센타 책임자를 맡고 있는 Dr. Cheng LI의 견해를 들어본다.

사회자 Wang Guan: 당신은 지난 수십 년간 미중 관계를 다루어 왔습니다.  현재의 상태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Cheng Li 박사: 우선 3가지의 악순환 고리 또는 영역이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3 가지의 악순환 고리가 서로 반응하여 긴장을 고조시키고, 각자의 문제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3가지 악순환은 모두 “D”로 시작되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데, 첫 째는 미국을 황폐화시키는(Devastating)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입니다. 두 번째는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양당간의 극심한(Dire) 정쟁입니다. 마지막은 미중 관계가 위험스러운(Dangerous)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과 중국이 수교관계를 맺은 지난 1979년 이래, 40년의 기간에서 전례가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사회자: 미중 관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단기적 관점과 장기적 관점으로 나누어 예측해 주시길 바랍니다.

Cheng Li: 단기적으로 너무 많은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선기간에는 의례적으로 긴장과 비난의 수위가 높아집니다. 미국 내 여론도 중국을 비난하면서, 중국에 대한 호감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가장 낮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더구나 미국 경제에 미치는 코로나의 부정적 영향은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

비록 도날드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다 해도, 첨단기술에 대한 긴장, 국제지정학적 지형의 변화, 중국의 공격적인 국제외교정책에 대한 미국인들의 부정적 시각과 우려 등이 지속될 것입니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이긴다 해도, 공화당은 반중정책을 지속해 밀고 나갈 것이고 관행의 동력을 바꾸는 것이 어려워 않습니다. 이것이 단기적인 전망입니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람들의 사고체계mindset는 달라집니다. 당장 코로나바이러스를 어떻게 정의하던지, 이는 당연히 우리의 평생을 통해 일어난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인도주의적 위기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견해가 변해갈 것입니다. 비로소 양국 모두 진정한 상대(敵)은 중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라 공동의 적은 바로 바이러스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자연스레 국제적인 공공선public good의 주제가 기후위기, 국제 간에 이동하는 이주민 문제가 던지는 도전, 마약거래와 사이버 안전, 에너지 보존과 비핵화, 그리고 현재 겪고 있는 공공보건에 대한 협력으로 집중될 것입니다. 이런 주제들이 서로 간에 협력을 증진하도록 긍정적인 압력을 가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중장기적으로 낙관적입니다.

사회자: 현재 미중 간의 안보상황은 어떻게 판단하시는지요? 가장 위험한 요소가 무엇인지요?

Cheng Li: 가장 위험한 요소는 명백하게 대만입니다. 왜냐하면 최근 미연방의회에서 결의한 ‘대만입법 2019’는 대만을 별개의 국가로 인지하는 수준에 접근했습니다 이는 중국의 수용할 수 있는 방어선bottom-line에 대한 도전입니다.

다른 한편, 미국인들 관점에서는 남중국해와 때때로 동중국해에서 실시하는 중국의 군사훈련 그리고 사이버 안전등에 대해 매우 비판적입니다. 모두가 매우 위험한 분쟁적인 주제이죠, 다만 이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전쟁의 확률은 단지 5% -10% 수준입니다.

인터뷰는 여기서 끝났다. 추가로 첨언하면, Dr.Cheng Li를 포함한 70명의 저명한 학자들이 미중 양국의 지도자들에게 공개서한을 보내면서 ‘COVID-19 퇴치를 위한 *정치기금을 조성하도록’ 촉구하였다. 이 서신을 통해 이들은 ‘지도력을 형성하려면 수 년이 소요되어야 하지만, 지도력의 붕괴는 단지 순식간에 벌어진다’고 경고했다.

*코로나백신 개발기금에 중국을 포함하여 G20 주요 국가들이 참여했으나,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출처: CGTN 2020-05-24일자 보도내용..

Wang Guan

중국국제방송CGTN의 Reality Check 편성책임자

목, 2020/06/18-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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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이 진행했던 ‘냉전-1.0’은 45년 간의 거대한 이념적 경제적 기술적 전쟁이 이었고, 세계를 핵전쟁의 위험(Armageddon)으로 몰아가며 지구상의 모든 국가뿐만 아니라 달나라까지 영향을 미쳤다.

현재 진행중인 미국과 중간의 ‘냉전-2.0’은 기존의 냉전과는 매우 다른 양상의 경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위험성과 영향력에 있어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미국에게 있어서 중국은 인구의 규모 면에 있어서도 기술적 야심이라는 측면에서 과거의 상대보다 훨씬 힘든 적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싸움은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진행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과 소련은 지구를 양분하여 분리된 형태로 각자의 영역에서 존재하였지만,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서로 엉켜 의존하고 있다. 2018년 현재 중국은 미국이 최대 무역대상국이었으며, 중국의 바이트댄스(ByteDance)사가 비디오 네트워크의 지분을 공유하고 있는 TikTok은 비게임 분야에서 세계 최대의 앱(app) 프로그램이고, 2019년 현재 미국의 대학에 369,548 명의 중국학생이 등록한 가운데 시진핑 주석의 따님이 2014년에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바 있다.

이와 별도로 미국과 중국의 강대국 경쟁은 기존과는 달리 전혀 새롭고 결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과거의 ‘냉전-1.0’이 재래식 군사력과 핵위협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면, 현재의 ‘냉전-2.0’은 민간사회를 통한 소프트웨어와 기술의 혁신경쟁이라는 측면이 훨씬 강하다. 인터넷은 단순히 통신수단이 아니라 통제의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 세계적 규모에서 사물인터넷(IOT)를 운용하면 수십 억의 장치를 연결하면서 지정학적 전략의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바로 이 분야에서 중국이 자신의 위상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서방의 주요 국가들이 5G 네트워크에 화웨이 장비를 적용하는 여부가 일종의 시금석이 된다. 흔히 미국과 중국의 대결적 상황은 성격이 전혀 다르며 어울리지 않는 두 국가의 지도자들 즉 트럼프와 시주석의 개인적 정치성향 때문이며 두 사람이 서로를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미국 내 중국분야 최고의 권위자중 한 사람인 Orville Schell은 보다 분석적이고 위협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공화와 민주 양당이 8번을 교대로 집권해온 지난 50년 간 지속되었던, 중국에 대한 미국의 포용정책은 이제 끝장이 났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냉전이라는 높은 산의 정상에 오른 것(종결)이 아니라 겨우 중턱 어디쯤에 머물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미국의 포용정책은 아래의 두 가지 전제에 기반하고 있었으나 모두 실패하였다고 결론짓는다. 한가지는 중국이 번영을 지속하고 개방화를 진행하면 점차로 민주적 사회로 전화할 것이라고 워싱턴은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인터넷의 도입이 자유를 확산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08년 전직 대통령인 빌 클린턴은 중국이 인터넷을 차단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마치 ‘벽에다 껌을 부치는 격’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판연히 다르다. 중국은 공산당이 내부의 통제력을 전혀 늦추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거대한 경제강국으로 부상하였으며, 국제적 인터넷에 대한 중국내의 방어벽(firewall)을 강화시키는 한편, 다른 국가들의 사이버 공간에 혼란을 야기시킬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지난 주에만 중국과 연계된 선전 캠페인으로 추정되는 23,750개의 내용물을 트워터에서 추려냈다.

“우리는 총격전을 벌릴 필요는 없지만 이에 필적하는 위험한 경쟁의 전쟁에 빠져 있다”고 미국의 전역장성은 경고를 보낸다. 위싱턴의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 책임자인 Robert Atkinson은 중국이 이미 일부의 선도산업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하였고 동시에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하여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중국은 기술분야에서 강력하게 그리고 손쉽게 미국을 압도할 것이다”. 그는 미국이 긴급하고 강력하게 자국의 산업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자유시장과 사적재산권 그리고 기업가의 정신이면 성공을 보장한다’는 기존의 흔해빠진 신념은 비역사(비현실)적이며 무책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Actkinson은, 냉전이 절정이었던 1963년 당시, 미국 연방정부는 나머지 전세계의 정부 및 민간 분야의 모든 투자액보다 많은 예산을 R&D 분야에 투입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현재는 1955년에 이루어진 GDP 비중보다도 적은 예산이 미국의 R&D에 할당되고 있다. 역설적인 것은 중국의 지도부들이 미국의 정치지도자들보다 과거 냉전에서 미국이 승리한 미국의 역사를 더 잘 숙지하고 있으며, 기술적 혁신이 국가안보의 핵심이라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출처 : 파이낸스 타임즈 on 2020-06-16.

John Thornhill

FT 혁신분야 편집책임자

금, 2020/07/3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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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작에서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제재가 2020년에는 한층 기승을 부릴 것이다”라고 예측하였다. 불행하게도 나의 예감은 적중하였다. 현재 목격하듯이, 미중 간의 관계가 악화일로에 빠지면서 세계적인 지정학적 위기로 발전하는 양상이다.

이러한 대결국면이 향후 다음세대의 국제지정학적 지형을 결정할 것이다. 더욱이 위험한 것은 인류전체가 상황의 인지여부를 떠나 양대 강국의 전략적 대결을 자연스러운 국면으로 수용하면서 아예 체념하는 것이다.

북경과 워싱턴 당국의 전투는 현재까지 대부분의 영역으로 확대되어가고 있다 – 기술과 통상, 투자와 금융, 공급사슬과 생산거점, 미디어와 국내정치의 간섭, 코로나 상황 등. 과연 누가 이 상황을 조정할 수 있을까? 양대 당사국이 아닌 국제무대에 영향력있는 제 3자(global Players)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과연 누가 제 3자적 역할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전문가들 대부분이 거대한 두 개의 진영에 부분적으로 편입되어 있는 4개의 중심 국가들을 거론한다. 한쪽 진영에는 미국과 유럽연합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존재한다.

이러한 사각 마름모꼴을 단순하게 보면, 현재 2:2의 스코어이다. 한 측의 골대에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광범한 분야에서 협력을 유지하면서 미국이 가하는 제재와 압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다른 끝의 양상은 보다 복합하다. 유럽연합은 미국과 특별한 관계를 일차적으로 유지하지만, 동시에 러시아와 중국과는 대립할 의사가 전혀 없다.

러시아는 현재 미국과는 공개적으로 적재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미중의 대결을 중재할 입장이 못된다. 자연스레 미국-유럽연합-중국의 삼각관계를 살펴 보고자 한다.

미국과 중국의 현재적 관계는 모든 면에서 대립적이라는 것이 분명하며, 이를 다루는 연구보고서의 양은 트럭에 담을 만큼 방대하다. 따라서 나는 유럽연합과 미국 그리고 별도로 유럽연합과 중국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우선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내세우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미국 내부의 단합을 심각하게 해쳐 왔다. 유럽국가들은 트럼프가 미국의 국가이익을 새롭게 정립해가면서 동맹으로서 대서양 양안의 이해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는 전후 미국이 추구해온 전통적 외교정책과는 매우 동떨어진 내용이다.

유럽국가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은 특별히 안보분야에서 미국과 긴장이 형성되고 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나토가 뇌사상태에 빠졌으며, 별도의 ‘진정한 유럽군’의 창설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마크롱의 요구를 트럼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메르켈 수상도 지지하면서 ‘현실적이며 진정한 유럽군’의 창설에 한술을 보태면서 지지를 표명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첨언했다 “ 유럽이 (안보를) 다른 나라에 의존했던 시절은 지났다.”

미국과 유럽이 마치 이혼을 앞둔 부부처럼 서로 으르렁대는 명백한 사실들은 수십 가지 존재한다. 한 가지 예로 G7 참여요청을 메르켈이 거부하자, 트럼프는 곧바로 독일에서 9,500명의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공언하였다 (최근 12,000명 미군의 독일철수를 공식화하였다).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연결되는 북부천연가스(Nord-Stream) 공사에도 전례없는 긴장이 조성되어 왔다. 독일연방의회의 경제에너지분야 책임자인 Klaus Ernst의원은 지난 6월 16일 기자회견에서 상기 공사에 미국이 제재를 가하면 독일은 상응하여 가능한 조처로 대응하겠다고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미국이 제재를 가하면 일대일(tit-for-tat)의 대응으로 미국의 LNG 수입에 징벌적 제재를 고려해야 한다. 유럽북부 두 개 노선의 가스공급 공사에 대해 미국 상원이 제재법안을 결의하면, 우리도 상응하는 제재를 도입해야 한다. 미국의 제재결의는 유럽의 법률체제에 대한 불법적인 개입이며 동시에 독일과 유럽의 주권에 대한 침해이다.”

나의 판단으로는 중국과 유럽연합이 우선적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분야는 환경보호와 녹색발전(green development)의 영역이라고 본다. 특별히 미국이 국제적인 연대(파리기후협약)를 거부하고 탈퇴한 영역이기 때문에 이 시점에 서로가 협력하기에 적격인 셈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팬데믹이 발생하고 확대되기 이전부터, 유럽연합은 환경보호 및 탄소제로의 촛점을 맞춘 인프라에 1.1조 달러를 투자하는 유럽-그린-딜(European-Green-Deal)을 속도감있게 추진하여 왔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유럽과 협력을 강화면서, 태양광 에너지와 수소생산 플랜트, 전기차량(EVs)와 배터리 생산 등 분야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으며, 상호 간에 중요한 승수적 효과를 얻는 것이 어렵지 않다.

유럽연합 집행부 환경과 해양수산 분야의 책임자는 유럽과 중국 양측이 유사하게 환경보호라는 심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국제연대분야의 기후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인사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이상적 세상을 위하여 유럽과 중국은 탄소시장을 서로 통합하면서 세계기후문제에 대해 주도할 수 있다….. 배경에는 유럽 단독으로 (세계를 주도하기에) 충분히 강력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협력을 해야만 한다.”

본 주제에 대한 결론으로 유럽연합과 중국 간에는 상호 상거래를 통한 거대한 이익이 존재한다. 중국에 있는 유럽상공회의소의 조사에 따르면, 펜데믹 상황으로 어려움을 겪고는 있지만,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투자 기업들의 60%에 가까운 조직들이 계속적으로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현재, 중국 내에는 16,000 이상의 유럽기업들이 투자하고 있으며 투자의 누적 총액이 1,100억 달러를 상회하는 만큼 47,000 여의 사업장이 운용되고 있다. 1+17(중국과 17개국의 유럽국가)라는 전략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서 이미 중국은 완숙한 유럽의 협력자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유럽집행부의 외교안보담당 최고책임자인 Josep Borrell 부집행위원장은 중국에 대항하는 환대서양-동맹(transatlantic-alliance)의 구상을 거부했으며, 북경당국과 체계적인 경쟁도 배제하였다. 그는 6월 14일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언급하였다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이 국제정치의 중심축을 형성하면서, 양 진영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압력이 증대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자신의 길’My-Way’을 걸어갈 것이며, 모든 도전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과 대립이 장기화되면서, 유럽의 역할을 점증될 것이다. 향후 수 개월에 진행될 미국-유럽연합-중국 간의 삼각관계가 향후 세계질서의 전반적인 지형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유럽연합과 중국간의 FTA는 타결단계에 접어들었으며, 오는 가을에 공식관계를 발표하는 대대적인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출처 : 중국국제방송 on 2020-06-21.

Djoomart Otorbaev

소련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러시아 사회과학원 연구원을 거쳐 키르기스 공화국의 수상을 2년간 역임하고 현재는 중국인민대학의 Chongyang 연구소 초청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금, 2020/08/14-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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