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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최장수 이낙연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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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최장수 이낙연 총리

admin | 화, 2019/10/22- 21:51

한동안 조국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논란으로 정국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둘로 갈라진 거대한 열광과 분노, 냉소와 조롱이 한국 사회를 뒤덮었다. 그 와중에 이낙연 국무총리의 안정감과 신뢰감이 조용히 주목받았다. 혼란 속에서도 이 총리는 ‘책임 총리’로서 돼지열병과 태풍 방재에 전념하는 등 안정적으로 내치를 관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느덧 이 총리는 각종 여론조사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총리는 오는 22일에는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한국 정부 대표로 참석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통’으로서 일본과 외교 분쟁을 해결할 돌파구를 마련할 것으로 주목받았던 터라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총리에게는 ‘할 일은 확실히 한다’는 이미지가 계속 쌓이고 있다. 과거 고건 총리나 황교안 총리처럼 혼란스런 정국 속에서 2인자인 총리가 주목받는 일이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현재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총리에게 주목할 만큼 떨어져 있진 않다. 어느 날 갑자기 주목을 받았다고 말하기에는 이 총리의 내공도 만만치 않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총리로 지명됐된 이낙연 총리는 지금까지 큰 과오 없이 직을 수행함으로서 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최장수 총리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자연스럽게 현재 정국에 대한 해결사 노릇도 이 총리에게 바라는 모습이 종종 관측된다. 최근에는 권노갑·정대철 전 의원 등 원로 정치인들이 이 총리를 만나 “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신을 내세우는 요란한 대응은 그간 이 총리의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차기 대권에 대한 질문에도 “아무 계획이 없다”며 말을 아낀다.

 

품격 있는 사이다 발언으로 존재감

“MBC, KBS의 불공정 보도를 본 적 있느냐?”(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

“MBC, KBS를 잘 안 본다. 오래전부터 좀 더 공정한 채널을 보고 있다.”(이낙연 총리)

“수십 조 씩 퍼붓는 복지 예산을 늘릴 때인가?”(김무성 바른정당 의원)

“복지 예산은 대부분 지난 대선 때 모든 정당들이 공통으로 공약한 것이다.”(이낙연 총리)

이 총리는 2017년 9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대정부질문에서 야당 의원들의 파상공세에도 불구하고 ‘품격 있는 사이다 발언’으로 상대방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시민들은 이 총리의 대정부질문 답변에 환호했고 그의 주요 발언 장면은 소셜미디어 등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이 총리의 존재감이 본격적으로 부각된 순간이다. 고 노회찬 의원은 이날 이 총리의 모습을 보고 “중학생을 대하는 자상한 대학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자해공갈단 같은 거였는데, 자해만 하고 공갈은 못 하는 그런 상황이 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오랜 언론인 생활과 다섯 번에 걸친 대변인 생활은 그에게 ‘말과 글’을 단련할 시간을 주었다. 명대변인으로 꼽혔던 그는 여러 차례 기억에 남을 말들을 남겼다.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길로 가라. 큰길을 모르겠거든 직진하라. 그것도 어렵거든 멈춰 서서 생각해 보라.” 2002년 10월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사퇴를 압박하는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 의원들의 공세가 최고조에 달하자 당시 선대위 대변인이었던 이낙연 총리가 남긴 논평이다. 이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취임사의 최종 정리를 맡았다. 노 대통령은 연설문을 극찬하며 토씨하나 고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달 대정부질문에서도 이 총리에게 조국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질문이 쏟아졌다. 이 총리는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서도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인사청문회 이후 조 장관에 대해 어떻게 판단했느냐”라는 질문에 이 총리는 “문 대통령께 (임명 전에) 저의 의견을 충분히 말씀드렸다”며 “저의 의견을 여기서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 총리가 사실상 반대 의견을 표명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 장관이 자택 압수수색 당시 담당 검사와 통화한 것에 대해서도 이 총리는 “적절하지 않다, 아쉬움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이 총리는 검찰에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인사청문회 당일 조 장관 부인을 검찰이 기소한 것에 대해서는 “검찰의 의도와 별개로 국회의 검증권한과 대통령의 인사권에 영향을 미쳤다”며 일침을 놓았다. 또한 “이미 알려져 있는 것 가운데는 사실도 있겠지만 추측에 불과한 것도 있고 거짓도 있다”며 “진실이 가려지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 요청에 대해서도 “훗날 저의 역할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은 자연스레 알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21년 동안의 기자 생활 동안 네 가지를 배웠다고 한다. 첫째, 진실은 몹시 알기 어렵다. 둘째, 어느 경우에나 공정해야 한다. 셋째, 말과 글은 알기 쉬워야 하며 그러려면 평범하고 명료해야 한다. 넷째,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 일주일에 하루는 책을 읽으려 한다. 그 중에서도 진실에 신중하다는 것과 “공정을 내 브랜드로 삼고 싶다”는 말에 눈길이 간다. 이 총리는 국회의원에게 의사당에서 주먹질을 당했지만 세상에 알리지 않는 대신 동료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앞으로 그 의원 기사는 자네가 써 주게. 나는 공정할 자신이 없네.” 지금의 이 총리의 모습에서 보이는 신중하면서도 강단 있는 태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꼼꼼한 일처리, 공백 없는 삶

이 총리는 늘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꼼꼼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좌우명은 근청원견(近聽遠見)이다. 가까이 듣고 멀리 본다는 뜻이다. 전남 지사 시절에는 ‘이 주사’로 불리기도 했다. 실무를 맡는 6급 공무원 같다는 의미다. 보도자료 문구 하나하나도 직접 챙긴다고 한다. 이 총리는 국회의원 시절에도 의정활동 우수로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전남 지사직 수행도 ‘100원 택시’ 정책 등 대체로 후한 평가를 받는다.

이 총리는 취임 이후 장관들의 ‘군기’를 잡는다는 소문도 났다. 보고를 제대로 못한다고 질책도 서슴지 않는다. 2017년 8월 살충제 계란 파동 당시 국정현안점검조정 회의에서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관련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자 “제대로 답변 못 할 거면 기자들에게 브리핑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이 총리의 스타일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인자한 어머니(자모)’, 이낙연은 ‘엄격한 아버지(엄부)’라는 말이 돌 정도다. 어느 날 이 총리가 장관들의 술자리에 참석한 일이 있는데 “총리님 질문 좀 하지 마세요”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매주 월요일마다 이 총리와 정례 오찬 회동을 진행한다. 2018년부터는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문 대통령이 아닌 이 총리가 주재하기도 했다. 역대 정부에서 매년 신년 부처 업무보고를 대부분 대통령이 주재한 것을 보면 이 총리에게 실리는 무게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과거 신문사 논설위원 시절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마치 최근의 이 총리에 대한 경구인 것 같기도 하다. “정상외교는 단발적이지만 내정은 연속적이다. 정상외교는 효과가 금방 나타날 수 있으나 내정에 효과가 나려면 많은 절차와 시간이 소요된다. 사람들은 그것을 참기 싫어한다. 그래서 하나라도 확실히 매듭짓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전략이 필요해진다. 많은 것을 펼쳐놓고 별로 주워 담지 못한다면 펼치지 않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소수정부가 가장 의지해야 할 것은 국민의 감동이다. 감동을 주기는 어렵지만 잃기는 쉽다.”

최근 일본과의 갈등 국면에서 이 총리는 특사로 파견될 것이란 기대도 받았다. 이 총리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래 전에 장관을 하고 잠깐 쉬는 사이 한국에 들렀을 때 비 내리는 삼청각에서 소주를 마셨던 일화가 있다. 그 자리에서 이 총리는 일본이 한센병 피해자 보상에 조선인만 차등을 둔 것을 지적했고, 아베 총리는 “알아보고 시정하겠다”고 답했다. 아베 총리는 1년 뒤 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해 결국 고쳤다.

이 총리는 일본에 가게 된다면 도쿄의 이자카야에 가서 ‘곤방와(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마침 30년 전 이 총리는 도쿄 특파원 시절 아키히토 일왕 즉위 행사에 참석한 경험도 있다. 이번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참석해서도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어떻게 보면 이 총리는 정치인으로 한 번의 낙선도 없는 ‘꽃길’만 걸어온 것처럼 보인다. 동아일보 기자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의 눈에 띄어 정계에 입문했고 성공가도를 달렸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 중에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이 총리는 가난한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렵게 서울대 법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사법시험의 길을 걷지 않고 취업의 길을 택한 뒤 기자가 된 것도 어려운 집안 사정의 영향이 컸다. 한 인터뷰에서 이 총리는 “인생에서 무직 상태로 있었던 것은 기자를 그만두고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전 50일이었다”며 “이력서에 공백이 있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는 공백이 있으면 굶어죽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남지사 후보 경선에 도전할 때도 만만치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80%는 주승용 의원에게 진다고 했지만 국회의원직을 던지고 도전하는 길을 택했다. 경선 당시 돈이 없어서 광주시내 값싼 원룸에서 지냈는데 겨울에 곰팡이가 슨 바지를 입으면 피부에 달라붙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를 ‘곰팡이 같은 내 인생’이라고 곱씹으며 막판에 극적인 승리를 일궜다.

 

장점이자 단점 ‘무난함’

취임 이후 이 총리는 무난한 내정 관리를 수행해 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8년 9월에는 3년 만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확진 환자가 나오자 이 총리는 신속하게 대처해 확산을 조기에 차단했다. 조류인플루엔자, 살충제 계란 대응도 무난했으며 돼지 열병에 대한 대응도 아직까지는 괜찮은 편이다.

몇 가지 논란도 있었다. 이 총리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김영란법의 선물비 상한액 5만원을 농축산물에 한해 10만원으로 올리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농어민들을 배려한 조치였지만 결국 고무줄 규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해서도 “메달권에 있거나 그렇지는 않다”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이 총리는 “가령 좋은 북한 선수 몇 사람을 추가해서라도 승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우리 선수들 사이에서도 생기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해명했지만, 마치 어차피 메달권 밖이라 단일팀을 구성해도 괜찮다는 발언처럼 들려서 뭇매를 맞았다.

때로는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글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 총리는 지난 7월 우정노조가 총파업 계획을 철회하자 “한 번도 파업하지 않은 자랑스러운 전통을 지키셨다”는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이 자신의 가장 강력한 권리인 파업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 원인이 있을 텐데도 이를 두고 ‘전통’이라 표현한 것은 노동자 파업에 대한 이 총리의 경박한 인식을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 총리는 이후 해당 문구를 삭제하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신 노조원들께 감사드린다”고 수정했다.

차기 대선주자로서 이 총리에게 관심이 쏠리고는 있지만 안정감과 신뢰감 외에 확실한 이미지를 굳히지 못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아직까지 이 총리는 차기 대권에 대해서는 철저히 입을 다물고 있다. 언론의 집요한 질문에도 “지금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참 두려운 일” “아무런 계획도 없다” “총리가 계획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총리를 그만둔 뒤에나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2007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안을 두고 벌어진 여야 토론회에서 이 총리는 당시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과 설전을 벌였다. 그 자리에서 박 의원은 “링컨은 민심과 함께하면 실패할 것이 없고 민심과 함께 하지 않으면 성공 없다고 했다”고 공격했다. 그러자 이 총리는 “세네카는 이런 말을 했다. 민심에 거스르기만 하면 국민에 의해 망할 것이고, 민심에 따르기만 하면 국민과 함께 망할 것이다.”라고 맞받았다.

앞으로 이 총리가 걸어야 할 길도 비슷할 것이다. 지난 10년 사이 민심은 더욱 집채만한 파도처럼 요동치고 있다. 때로는 성내고, 때로는 열정이 넘치고, 때로는 냉소하고 조롱하고 뒷짐지는 민심 사이에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진지하게 ‘민심’만을 내세우는 정치인치고 제대로 된 정치인은 없었다. 세네카의 말을 인용했던 이 총리라면, 그 길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유종민, <총리의 언어>(타래)

[신동아 2019. 7. 17]‘지일파 해결사’ 이낙연 국무총리

[노컷뉴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2019. 1. 22][인터뷰] 이낙연 “여론조사 1등? 대권 생각 자체가 두렵다”

[한겨레 2019. 5. 13] 이낙연 총리 “민주주의 끊임없이 위협”…태극기부대·일부 야당 행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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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현은 2014년 4월 친구 김태경이 죽었을 때 장례식 추모 글에서 김태경을 이렇게 평했다. “출판인으로, 고난 많았던 민주화의 투사로, 탁월한 미식가요 사통팔달의 인문학자로 일생을 풍운아로 살았던 그” 세상에는 법무장관을 지낸 강금실의 전 남편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는 우리 출판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걸출한 출판인이자 60년 한 생애를 ‘굴곡진 우리 역사 한 가운데서 불꽃처럼 살다 간’ 불굴의 민주화운동가였다.

칼럼_190116

 

『교수대의 비망록』

죽기 2년 전인 2012년에 ㈜도서출판 다빈치에서 김태경 자신의 이름으로 낸 『교수대의 비망록』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체코의 언론인이면서 문예평론가였던 체코 공산당 간부 율리우스 푸치크(Julius Fucik 1903~1943)가 체코에 침공한 나찌에 맞서 지하에서 해방투쟁을 벌이다 체포되어 처형 당하기 직전 까지 쓴 비망록과 옥중편지를 모아놓은 것이다. 200쪽 정도의 작은 이 책이 평생 출판인으로 수많은 두꺼운 명저들을 출판한 김태경에게도 특별히 각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김태경은 이 책의 발문을 직접 썼다. 여기에서 그는 푸치크의 죽음 앞에서도 굽힐 줄 모르는 자유혼, 미래에 대한 낙관과 동지에 대한 신뢰, 너무도 인간적인 인간사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 경탄을 보내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를 ‘빨갱이’라는 수식어로 비하하고 낙인찍는 모든 인간들에게 나는 말하고 싶다. 푸치크를 보라고. 그러고도 생각이 변치 않는다면 그 가시면류관을 나에게 달라고. 같은 류의 존재로서 억압받고 학대받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빨갱이‘로 낙인찍는다면 그 낙인을 나는 내 삶의 훈장으로 받겠노라고.

 

사실 김태경의 삶은 철의 규율을 추구하는 현실 공산주의자와는 거리가 있었다. 학생시절부터 그와 함께 활동했던 김영현, 이을호는 그를 ‘허무주의자’라고 평했다. 그리고 정치사상적으로는 아나키스트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어째서 철저한 공산주의자 푸치크에 대해서 저렇듯 열렬한 찬사를 보냈을까?

김태경은 감옥을 두 번이나 간 민주화운동가이면서도 천하가 알아주는 미식가여서 장안의 맛집이란 맛집은 그의 발길이 거쳐가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뒤에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자신의 신조에 따라 결혼 후에도 아이조차 가지지 않았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완벽주의자라고 할 만큼 철저했지만 사회적 명성이나 출세 같은 세속적 가치에 무관심했다. 그리고 어떤 권력이나 권위 앞에서도 당당했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믿는 동료나 후배들에게는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보냈다. 친구가 어려움에 처하면 서슴없이 주머니를 털어 도와 주었다.

김태경 장례식에서 호상을 맡았던 친구 양춘승은 김태경에 대해서 지금도 잊지 못하는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1979년 10월 남민전 사건을 수사하던 수사관들이 양춘승의 본가가 있는 장흥에 들이닥쳤다. 사건 관련자로 수배 중인 양춘승의 후배를 잡기 위해서였다. 당시 학내시위로 2년여 수형생활 끝에 석방되어 집에서 요양 중이던 양춘승은 간발의 차로 체포를 면하고 맨몸으로 산을 넘어 서울로 도피했다. 무슨 영문인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잡혀 들어가면 어떻게 엮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에 도착한 양춘승은 마지막으로 수중에 남은 동전 2개로 김태경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김태경은 두말할 것 없이 택시를 타고 급히 달려와 당시로는 거금이었던 10만원을 주고 갔다. 양춘승은 그 돈으로 방을 얻고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양춘승은 두고두고 그 일을 잊지 못했고, 김태경이 죽자 호상을 자청하여 사흘을 내리 빈소를 지켰다.

2014년 3월 병세가 악화되어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실로 문병 온 친구들은 김태경에게서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는 당찬 모습을 보았다. 그는 극도로 쇠약한 중에서도 끊임없이 불의한 정권에 대해 분노하고, 가야할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를 위로하려는 친구들의 농담을 받아넘기며 어린아이처럼 웃곤 했다. 죽음 앞에서 의연한 그의 모습이 교수대를 눈 앞에 둔 푸치크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급조치시대, 대학에서 루카치와 헤겔과 마르크스를 읽다.

김태경은 1954년 진해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네 살 때 일가족이 서울로 이사하여 계모 밑에서 동생 태성이와 두 형제가 화곡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미동초등학교와 서울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4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미학과에 입학했다.

그 해는 박정희가 1972년 유신 쿠테타 이후 일인 독재체제를 강화하면서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로 비판세력을 철저히 탄압하고 옥죄던 숨막히던 시기였다. 바로 그 해 4월에 천여명의 민주인사와 청년 학생들을 구속한 민청학련 사건이 일어났고, 이듬해 1975년 5월 장기독재체제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는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되었다. 서울농대 김상진이 독재에 항거해 할복자살하고 서울대에서 5.22 시위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후 1년 반 동안 독재정권의 혹독한 탄압 속에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에서도 기관원들이 상주하여 감시하는 무시무시한 분위기 속에서 학생운동은 지하로 잠복하여 암중모색하였다.

김태경 역시 입학하자마자 인문대 선배들의 학생운동 흐름에 자연스럽게 합류하였다. 당시 인문대학에는 뛰어난 인재가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김태경은 천재로 알려진 철학과 이을호와 글솜씨가 뛰어나 나중에 소설가가 된 철학과 김영현, 국문과 김사인(시인, 현재 동덕여대 교수) 등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이들은 학문적 관심사도 비슷했지만 박정희 유신독재체제에 대한 치열한 저항의식을 공유한 동지이기도 했다.

이들은 3학년 때인 1976년부터는 인문대 학보 편집실에서 자주 만났다. 당시 김영현과 김사인이 학보 편집위원으로 있었는데, 거기에 김태경과 이을호가 합세하여 편집실에서 함께 공부하고 토론했다. 이 시절이 김태경에게는 사회과학 이론과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중요한 시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루카치와 헤겔, 마르크스, 그리고 수많은 사회과학 서적들을 함께 읽었는데, 텍스트가 되는 책들은 대체로 김태경이 공급했다.

김태경은 대학시절부터 사업가적 기질을 발휘했다. 그는 대학도서관을 샅샅이 뒤지고, 외국 원서 전문서점과 청계천 헌책방들을 섭렵하여 당시로는 귀하기 힘들었던 철학/미학 책들, 그리고 금서가 된 사회과학 원서들을 구했다. 당시 서울대도서관에 유일하게 고속복사기가 있었는데, 김태경은 이 복사기를 이용하여 이 책들을 복사하여 복사본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은밀히 팔았다. 주로 루카치, 헤겔, 모리스 돕, 카우츠키 등의 영어 원서들이었는데, 이 책들은 모두 당시에 당국에 의해 금서로 분류돼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노란 커버를 씌운 이 책들은 당시 학내 이념서클에서 활동하던 운동권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김태경은 책을 팔아 얻은 수익금으로 항상 주머니가 풍성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가난한 친구들에게 밥과 술을 사주는 물주였다.

 

반유신 시위 모의와 투옥

1976년 12월 8일 이범영, 박석운, 백계문 서울법대 삼총사의 유신철폐 시위사건은 철옹성 같은 유신체제에 균열을 냈다. 한동안 잠잠했던 학생운동권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유신독재에 대한 저항운동을 시작했다.

1977년 4학년이 된 김태경과 편집실 친구들 역시 이 저항운동의 대열에 합류하기로 결심했다. 이 해 9월 김태경과 김영현, 이을호, 김사인 등 4명은 서울근교 일영 장자원에 가서 10월 중에 학내시위를 하기로 결의하고, 본격적으로 준비에 착수했다. 인문대 74, 75학번들 중에서 함께할 사람들을 물색하고, 시위 선언문 초안은 김영현이 작성하여 이을호 자취방에 보관해 두었다.

이들의 시위계획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연기되었다. 그해 10월 서울대 26동에서 사회과학대학 심포지움이 대학당국의 저지로 무산되었는데, 이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움직임이 자연적인 반정부시위로 발전하였다. 이 시위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수백명의 학생들이 남부경찰서로 연행되었는데, 연행된 학생들 속에 김태경과 김영현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가까스로 구속은 면했지만 구류 처분을 받아 15일 만에 석방되었다. 또 석방된지 얼마 안 된 11월 11일, 국사학과 김경택 등이 주동한 학내시위가 서울대 도서관을 점거한 채 수천명의 학생들이 참여하여 유신독재 철폐의 함성으로 서울대 교정을 뒤흔들었다.

이런 저런 사유로 지지부진하던 김영현 김태경 그룹의 시위계획은 결국 불의의 사건으로 무산되게 되었다. 11월 16일 김영현이 서울대 후문 낙성대 쪽에서 이을호에게서 등사기를 받아들고 나오다가 서울대 상주 기관원의 검속에 걸려 체포된 것이다. 김영현이 관악서로 붙들려 가고, 이어 김사인과 이을호도 차례로 집에서 체포되었다. 그에 앞서 김태경의 집에도 경찰이 들이닥쳐 김태경을 체포함과 동시에 집안에 쌓여있는 수십 박스의 책들을 압수해 갔다. 이 속에는 김태경이 공들여 수집한 수십 종의 사회과학 원서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소지 자체만으로도 몇 년씩 징역을 살아야 하는 금서들이었다. 그런데 압수된 장서 속에 플레이보이, 펜트하우스 같은 도색잡지들이 있었는데, 이런 책들에 눈이 팔린 기관원들이 금서는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단순 압수물로 넘어가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났다. 가슴 조마조마했던 김태경이 가슴을 쓸어내린 순간이었다.

이 불발 시위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이들과 별개로 진행되던 75학번 반병률, 이증연, 배남효 등의 시위모의사건을 합쳐 <불온 유인물 제작배포 미수사건>으로 확대했다. 이들 서울대 74,75학번 10여명은 한 묶음이 되어 긴급조치 위반으로 기소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 사건으로 김태경은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는다. 구속 후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되었던 김태경은 1심 재판이 시작되면서 서울구치소로 옮겼다. 이후 항소심 진행 중에 안양교도소로 이감되어 1년 6개월로 감형되어 수감생활을 하다가 석방되었다.

 

광화문 시대 – <민중문화사>와 양서조합운동

김태경의 출판 경력은 1979년 광화문에서 시작한다.

그는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고대 출신 김진영과 함께 민중문화사라는 조그만 사회과학 서점을 냈다. 이 서점에서는 주로 대학가 운동권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진보적인 사회과학 서적들 뿐만 아니라 루카치나 모리스 돕, 폴 바란 등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의 원서를 복사본으로 만들어 팔았다. 물론 이런 책들은 대개가 당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어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책들이었다. 당시 진보적 변혁 이론에 갈급했던 운동권 대학생들에게 이런 책들을 구할 수 있는 민중문화사는 반드시 들러야하는 필수 코스였다.

물론 이런 책들은 서점 진열대에 놓지 않고, 안쪽 골방에 숨겨 놓고, 믿을만한 고객이 찾을 때만 꺼내서 팔았다. 그리고 국민연합이나 민청협 등 재야운동권에서 나오는 유인물도 이 서점에서 구할 수 있었다. 박정희 군사독재의 엄혹한 철권통치가 서슬이 퍼렇던 시절에 이 작은 서점이 재야 민주화운동권의 정보가 공유되고 유통되는 거점 구실을 한 것이다.

이 당시 이 서점을 찾는 많은 젊은이들 중에 강금실이라는 미모의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당시 서울법대 4학년으로 이 서점에서 김태경을 처음 만나서 강한 인상을 받는다. 그래서 거의 매일 이 서점을 드나들면서 김태경과 깊은 정신적 교류를 가지게 되었고, 이것이 2-3년 후 결혼으로까지 발전한다.

1979년 박정희의 죽음으로 유신체제가 무너지고, 1980년 5월까지 ‘서울의 봄’이라는 잠시 동안의 열린 공간이 열리면서 민주화운동 진영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서구의 진보적 사상과 이론을 공부하는 열풍이 불었다.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양서조합운동도 그런 흐름의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김태경은 이을호, 김영현 등과 함께 양서협동조합을 만들고, 헤겔 철학,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회변혁 이론, 루카치의 미학이론 등에 관한 책들을 함께 읽고 토론하였다. 여기에 필요한 책들은 김태경이 공급했고, 그 근거지가 민중문화사였다. 이런 양서조합운동은 부산, 광주, 전주 등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광주의 녹두서점, 전주의 금강서점 등이 지역근거지의 역할을 했다.

김태경의 민중문화사는 양서조합운동을 통해서 민주화운동 진영에게 독재에 대한 저항운동을 넘어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민주변혁운동의 이론과 실천의 과학적 기반을 제공하고자 했다. 민중문화사를 효시로 서울에도 박경희 사장이 세운 광화문 논장서점이 문을 열었고, 서울대, 연대, 고대 앞에도 사회과학 전문 서점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신촌시대 – <오늘의 책>과 <이론과 실천>

1985년에 김태경은 광화문 민중문화사를 접고 신촌 연대 앞에 <오늘의 책> 이라는 이름으로 당시로서는 꽤 큰 서점을 오픈했다. 이곳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운동권 학생들의 약속장소로 인기가 높았다. 그리고 이곳은 양질의 사회과학 서적과 문화비평서들을 소개해 주는 곳이기도 했다. 정기적으로 기획도서전을 열었다. 소설가 공지영, 백원담(백기완 선생 딸, 현재 연대 중문과 교수) 등도 이 서점의 단골이었다. 이 서점의 골수단골로 당시 서점에서 살다시피 했던 연대 국문과 학생 김재환(현재 헝가리한국문화원장)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곳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다… 서점은 좋은 책을 선별하여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해야 하는 곳이어야 한다. <오늘의 책>의 존재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김태경은 서점운영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1980년대 초 출판사 지청사를 설립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회과학 출판사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1985년에는 백원담 씨가 운영하던 <이성과 현실>이라는 출판사를 인수해 운영했다. 그러다 이듬해 1986년 <이성과 현실>을 편집장으로 일하던 최청수(현재 출판사 <자작나무> 대표)에게 넘기고, 본인은 마포구 신수동에 출판사 <이론과 실천>을 설립해 국내의 대표적인 철학/예술 분야 출판사로 키웠다.

<이론과 실천>는 한국 출판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슬람문명사’, ‘음악이 있는 풍경’ 등을 출간해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설립 당시 미학과 출신답게 책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쓴 그는 삼청동에서 부부가 운영하던 북 디자인 회사에 표지를 맡겨 당시로는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독자들의 이목을 끌었으며, <교보문고>에서 주는 ‘올해의 북디자인상’을 받기도 했다.

서점 <오늘의 책>과 출판사 <이론과 실천>은 출판계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면서 경영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김태경은 확대된 자금력을 바탕으로 영세 출판사 4-5개를 합병하여 사업 규모를 키워 나갔고, 그가 기획한 책들이 연달아 성공하면서 ‘사업의 황금시대’를 열어나갔다.

1986년 김태경은 사업에 대한 충만한 자신감 속에서 학생시절부터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사업에 착수했다. 마르크스 <자본>의 독일어 원서 번역본 출판이었다. 이 책은 전두환 군사정권 아래에서 금서로 되어 있는 책이라 출판 자체가 위험부담이 컸다. 게다가 총 9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작이라 번역 출간하는 데에 적지않은 자금이 들어가는 사업이었다. 김태경은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과 노력을 이 사업에 투입하였다. 그리고 5년만인 1990년 드디어 한국 최초로 <자본> 전 9권을 완간하였다. 이것은 군사정권이 사상통제의 수단으로 출판계에 드리웠던 오랜 금기를 깨뜨리고, 국내 마르크스 연구의 물꼬를 터놓은 쾌거였다. 그러나 이 획기적 출판으로 김태경 자신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두 번째 징역 생활을 해야 했다.

<자본> 완간은 김태경의 배짱과 수완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1985년 이후의 사업적 성공이 바탕이 되었다. 김태경은 <자본> 출판 다음 해인 1991년 한국출판문화운동협의회 3대 회장에 선출되어 출판인으로서 최고 정점을 찍었다.

 

시련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시대를 거침없이 달려온 김태경에게도 시련의 시기가 왔다.

대학가 사회과학 서점을 선도했던 <오늘의 책>에게 정권의 손길이 뻗쳐왔다. 건물주가 어느날 갑자기 보증금을 10배, 임대료를 3배 올려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사실상 나가달라는 요구나 다름 없었다. 신촌 대학가 학생들에게 비판적인 사회의식을 전파하는 서점에 대해서 정부당국이 건물주에게 압력을 넣은 것이 분명했다. 김태경이 부당한 요구에 항의하고, 연대, 이대 학생들이 ‘서점지키기 운동’을 벌였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잘 나가던 <이론과 실천>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노태우 정권 하에서도 형식적/절차적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전되면서 사회주의운동 등 진보적 사상 이론과 문예에 대한 출판물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 속에서 김태경이 영세출판사들을 인수 합병하는 등 무리하게 사세를 확장한 것이 화근이었다. 1992년 무렵 김태경의 <이론과 실천>은 수십억의 부도를 내고,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형편에 몰렸다. 부도를 막기 위해 김태경은 자기가 가진 전 재산을 처분했지만 역부족이었고, 결국 본인은 파산하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뿐만 아니라 당시 변호사로 일하고 있던 아내 강금실의 월급까지 차압당하는 수모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잘 나가던 출판인이자 사업가에서 하루아침에 밑바닥으로 추락한 김태경은 모든 일을 접고 아내 강금실과도 별거에 들어갔다. 그리고 북한산 밑에 조그만 방을 하나 얻어 칩거생활을 시작했다. 건강도 급속하게 나빠졌다. 오랜 지병이었던 당뇨병이 악화되었고, 그에 따라 시력도 현저히 저하되어 반실명상태가 되었다. 결국 90년대 말 강금실과도 이혼했다. 계속되는 부채의 압박에서 아내를 해방시켜주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지만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혼 후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이어졌지만 이로써 부부로서의 법적 관계는 정리되었다.

이런 실의의 상태 속에서 10년을 지냈지만 그러나 그 속에서도 김태경은 출판의 꿈을 접지 않았다. 그는 해외의 출판정보를 계속 수집하고, 후배들과 만나 토론하면서 재기의 기회를 노렸다. 90년대 말 그가 후배들과 자주 들렀던 곳이 인사동 카페 ‘하가(霞歌)’였는데, 이곳에서 그는 서강대 출신 최석도 등 후배들과 만나 와인을 마시며, 출판이야기를 나눴다. 이것이 그의 삶에 큰 위로가 되고 다시 일어서는 힘이 되었다.

2000년 이후에 그에게 기회가 왔다.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미국에서 출판되고 있는 책들을 훑어보고 있던 그에게 세계역사에 관한 아동도서 시리즈가 눈에 들어왔다. 출판인으로서의 오랜 경험 속에서 직감적으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그는 이 책들을 번역해서 출판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다시 신수동 출판단지에 <꼬마이실>이라는 출판사를 새로 내고 번역작업에 착수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2004년 펴낸 『세계역사이야기』 (전 5권)이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청소년 추천도서와 각 신문사의 ‘올해의 추천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책은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팔려나가 그의 말년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새로운 삶과 죽음

2004년 8월 20일 김태경은 출판사에서 멀지않은 거리에 있는 홍대입구 철길 옆 땡땡거리의 카페 ‘섬’에서 김인미를 만난다. 카페 주인 김인미는 사업 실패 이후 신산(辛酸)한 삶을 살았던 김태경을 항상 따뜻하게 맞아주고 품어 주었다. 김태경은 그해 말 김인미에게 프로포즈했다.

김인미와 북한산 밑에 보금자리를 차리고 생활의 안정을 찾은 김태경은 한편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책들을 기획하고 출간하는 전투적인 작업 속에서도 인생의 맛을 즐기는 여유로움을 되찾을 수 있었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해마다 김인미와 함께, 때로는 신세진 출판계 동료들과 함께 이태리, 체코, 독일, 프랑스, 일본 등지를 여행했다.

그에게 병마가 찾아 왔다. 2009년 11월 뇌경색이 왔고 12월에는 심장수술을 받았다. 뇌경색 후유증으로 좌측 마비와 언어장애가 왔지만 강한 의지로 재활 치료에 전념하여 일년 만에 거의 정상상태로 회복했다. 주치의에게서 와인 한 잔 정도는 마셔도 좋다는 허가도 받았다. 그래도 아주 완전하지는 않아 김태경은 이후에도 지팡이 신세를 져야했지만 그러나 더욱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2013년 12월 육십세 생일기념으로 일본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에 배에 복수가 차는 등 이상징후가 나타났다. 급히 여행에서 돌아와 2014년 1월 1일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김태경은 검사 결과 악성 간암 진단을 받는다. 암종의 위치가 나빠 수술이나 화학요법 시술도 어려운 상태였다. 간의 해독기능이 멈춰 간헐적으로 간성혼수(肝性昏睡)가 찾아왔다. 간성혼수가 올 때면 옆에 있는 사람조차도 몰라봤다. 평생 천하에 두려움이 없었던 김태경이지만 자신의 그런 상태만은 몹시 두려워했다. 두 번의 간성혼수를 겪은 뒤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김태경의 마지막 투쟁은 떠나는 순간까지도 계속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남은 기운을 다 쓴 듯 김인미의 헌신적인 간호에도 불구하고 병세는 서서히 악화되어 갔다. 간암 말기 신부전으로 신장이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어 의사가 투석을 권했지만 김태경은 거절했다. 자신의 상태가 끝이 멀지 않았음을 예감한 것이다.

2014년 4월 초 병세가 위급한 상태로 가면서 집에서 가까운 일산 명지병원에 입원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김인미가 강금실에게 전화해서 문병을 권했다. 황급히 달려온 강금실을 김인미가 병실로 안내했다. 강금실의 뜻밖의 방문에 김태경은 깜짝 놀라면서도 짐짓 농담을 하는 여유를 보였다. “내가 평생 당신에게 해 주지 못한 것을 이 사람에게 다 해 줬어.” 세 사람은 마주보고 웃었다.

강금실이 다녀간지 사흘 후인 2014년 4월 17일 03시 20분 김태경은 마지막 10년간을 항상 그 옆에서 지켰던 아내 김인미의 품 안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이틀 후 4월 19일 오전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영결식을 한 후 김태경의 유해는 벽제 화장장으로 옮겨져 화장을 했다. 그리고 유골은 김태경과 김인미가 말년에 자주 찾았던 양평미술관 발치의 남한강 강변에 뿌려졌다.

공동선, 2017년 11-12월호 137호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는 공동게재에 동의함).

수, 2019/01/16-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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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집에 불이 났어요. 불이 났다고 말하려고 여기 왔습니다.”

지난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16살 스웨덴 소녀의 연설이 화제가 됐다. 이 소녀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모든 곳들처럼 이곳 다보스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돈에 대해서만 얘기합니다. 돈과 성장이 우리의 주요한 관심사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후변화는 한 번도 위기로 취급되지 않았죠.”

이 소녀의 이름은 그레타 툰베리. 지난해부터 어른들에게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며 ‘등교 거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전 세계의 정·재계 유력 지도자들과 학계·예술계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스위스의 휴양지에 모여 툰베리의 말을 들었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에 따르면 우리의 실수(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를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은 12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소한 50% 줄이는 것을 포함해 우리 사회 모든 측면에서 전례 없는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올해 다보스 포럼에 모인 유명 인사들은 기후변화에 대해 전에 없는 우려를 표명했지만, 그들이 스위스에 오기 위해 몰고 온 전용기 대수 역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진정 무엇을 고민하는지 알 수 없는 자리였다. 툰베리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당신들이 주는 희망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공포에 빠뜨리려고 합니다. 나는 내가 매일 느끼고 있는 두려움을 당신도 느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이 행동하기를 바랍니다.”

툰베리는 혼자 운동을 시작했지만 전 세계 학생들에게 영감을 줬다. 이제는 호주, 영국, 벨기에, 미국 등 전 세계 270개 지역에서 10만 명 가까운 학생들이 등교 거부 운동에 함께하기 시작했다. 3월15일에는 전 세계 59개국, 524개 지역에서 전 세계적인 등교 거부 운동이 벌어질 예정이다. 과연 툰베리와 어린 학생들의 움직임이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툰베리는 말한다.

“등교 거부 운동에 참여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건 당신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더 없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왜 공부를 해야 합니까? 이건 학교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늦다, 더 빨라야 한다

툰베리는 15살, 9학년이 됐던 지난해부터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스웨덴의 여름은 기록이 시작된 이래, 262년만에 가장 더웠다. 열파와 산불이 나라 곳곳을 덮쳤다. 툰베리는 8월 20일부터 스웨덴 총선이 열리는 9월 9일까지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대신 툰베리는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정치인들에게 기후 변화를 우선 순위로 두고 위기 상황처럼 이 문제를 다뤄달라고 요구했다. 매일 조용히 국회 의사당 앞마당에 앉아 전단지를 나누어 주면서 “당신들 같은 어른들이 우리 미래를 망치고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웨덴은 사실 기후 변화에 모범적으로 대응해 온 국가다.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2015년 유엔기후변화회의가 채택한 파리 협정의 목표를 무난하게 달성할 것이라 예상한다. 2045년까지 탄소 중립국(탄소 배출량과 포집량이 같아서 더 이상 추가적인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상태)을 목표로 하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기후관련 법안을 제정하기도 했다. 스웨덴은 1990년 이래 계속 경제가 성장했지만 탄소 배출량은 26%나 줄였다. 불과 10년 만에 재생에너지 사용을 12% 늘린 국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툰베리는 “너무 늦다. 더 빨라야 한다”며 “스웨덴 역시 낙원이 아니며 가장 큰 탄소배출국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한다. 선진국은 매년 15%의 배출량을 줄여야 하지만 스웨덴은 지난해 1/4분기의 경우 오히려 실제 배출량이 늘었다.

총선이 끝나고도 툰베리는 매주 금요일마다 등교 거부 운동을 계속했다. 어른들은 학교에 가지 않는 툰베리를 걱정한다. 툰베리는 그래도 학교에 있어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가방에 있는 교과서를 가리키며 말한다.

“여기에 내 책이 있어요. 그러나 나는 또한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하죠. 학교에서 뭘 배울 건가요? 팩트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요. 정치인들은 과학자들의 말도 듣지 않죠. 그런데 내가 왜 배워야 하나요?”

2003년생인 툰베리는 3학년이었던 9살 때부터 기후 변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전등을 잘 끄고, 물과 종이를 절약하고, 음식을 버리지 말라고 가르쳤다. 살 곳을 잃어가는 북극곰의 모습을 보여주고 휴가철에 비행기 여행은 자제하라고 말했다. 툰베리는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고 기후 변화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믿기지 않았다. 인간이 실제로 기후를 변화시키고 있다면 그건 우리 문명을 위협하는 일일 테고 모든 사람들이 그걸 얘기해야 하고 관심을 가져야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고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툰베리는 기후 변화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답이 없다는 절망감에 빠졌다. 11살 때는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 몸무게가 10kg이나 빠지기도 했다. 어느 순간 툰베리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조차도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우울증에서 벗어나는데 힘이 됐다.

툰베리는 지난해 스웨덴 신문에서 주최한 작문 경연대회에서 기후 변화를 주제로 한 에세이를 써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런 인연으로 환경운동가들과 만날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등교 거부 운동을 원하는 툰베리와 함께 하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관심이 없었지만 혼자서라도 하겠다고 결심했고 오늘날 이런 호응까지 이끌어낼 수 있었다.

“내 시위의 가장 좋은 점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다가와 참여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에요. 학교에서 징계를 받아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한 사람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습니다.”

툰베리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행동이나 관심 분야가 제한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다. 툰베리는 자신이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고 밝힌다. 트위터 계정의 자기 소개에도 써 놓았을 정도다. 툰베리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고 기후 위기에 눈을 뜨게 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했다면 비슷한 삶을 살았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었어요.” 오히려 몇 시간이고 똑같은 일을 해도 지루하지 않아서 집중적으로 기후 변화를 공부하는데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툰베리는 2015년 비행기 타기를 그만뒀다. 지금도 등교 거부 운동이나 국제기구 연설을 위해 유럽 각국을 이동할 때면 기차를 타고 다닌다. 지난해에는 스웨덴 ‘어린이 기후상’ 위원회가 후보 중 한 명으로 자신을 지명하자 “상 받으러 수상자가 비행기를 타고 멀리서 스웨덴까지 오는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발생한다”며 자신을 후보에서 빼 달라고 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툰베리가 부모의 세뇌를 받아서 이런 행동을 한다고도 말한다. 툰베리는 반대로 부모와 주변을 변화시켰다. 유명 오페라 가수인 툰베리의 어머니는 더 이상 해외 공연을 위해 비행기를 타지 않기로 했다. 툰베리의 가족은 집에 태양광 발전 장비를 설치하고 도심 외곽에서 텃밭을 가꾼다. 대부분의 거리는 자전거로 이동하고 꼭 필요할 때만 전기차를 이용한다. 툰베리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자신도 채식을 선택했다. 아버지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자녀를 지지할 수는 없다”고는 하지만 툰베리의 생각과 등교거부 운동을 존중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툰베리는 집에 있으면 불행할 거예요. 시위에 나가야 행복할 겁니다.”

툰베리의 시위에 동참하기 위해 함께 학교를 나가지 않은 선생님도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후 변화를 막으려 하면서 느끼는 우리의 무기력함은 세계 대전을 멈추려는 노력했을 때의 그것과도 비슷합니다. 여러 해 동안 기후변화가 진행된다고 알고 있었고, 온갖 종류의 컨퍼런스가 열렸지만 막지 못했습니다. 그레타는 말썽꾸러기이고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죠. 하지만 대격변을 앞두고, 이 상황에서 유일하기 합리적인 것은 비합리적인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세상을 바꾼다

어린 청소년들이 역사의 흐름을 바꾼 건 처음이 아니다. 1888년 런던 성냥공장에서는 10대 여공들이 14시간의 고된 노동과 독성물질에 중독돼 아래턱이 괴사하기도 하는 끔찍한 작업 환경에 맞서 파업을 일으켰고, 결국 근무환경 개선을 이끌어냈다. 1951년 미국 캔자스 주 토피카에 살던 여덟 살 소녀 린다 브라운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집근처 학교에 입학을 거절당하고 한참을 걸어다녀야 했다. 린다와 가족들은 부당함에 맞서 소송을 제기했고 미 연방대법원은 ‘공립학교의 인종 분리는 위헌’이라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에는 미국 플로리다주 파크랜드 소재의 한 고교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을 계기로 중·고교생들이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툰베리도 이 집회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훗날 역사는 16살의 툰베리 역시 2018년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첫걸음을 뗐다고 기록할지도 모른다. 지난해 12월 툰베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에서 전 세계 190개 나라의 대표들을 향해 각성을 촉구했다.

“당신들은 당신의 자녀를 그 무엇보다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은 그 아이들의 눈앞에 있는 미래를 빼앗고 있습니다… 2078년이면 나는 75번째 생일을 축하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녀들이 있다면 내게 물을 거예요. 왜 아직 행동할 시간이 있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느냐고.”

툰베리의 뼈아픈 질책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최대치를 경신했다. 지난 5년간은 근대 기록이 시작된 이래로 최고로 더웠다. 툰베리는 왜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느냐는 질문에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면 옳은 행동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해요. 사람들은 온실가스 때문에 지구 온난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로 인한 실제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해요.”

툰베리는 지난 2월 유럽경제사회위원회(EESC)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세상을 구하길 바라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할 겁니다. 우리가 자라서 책임을 질 만한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릴 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습니다. 2020년부터 온실가스 배출 곡선이 가파르게 아래로 떨어져야 하는데, 그게 바로 내년입니다.”

여전히 어른들은 ‘등교 거부’ 운동에 대해 말하면서도 ‘기후 위기’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무단 결석 처리를 할 것인지, 학교에는 언제 돌아갈 것인지에만 관심이 있다. “우리는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우리와 대화하길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압니다. 좋아요, 우리도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과학자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길 바랍니다. 우리가 말한 것은 과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이야기한 것을 다시 한 번 말한 것에 불과합니다. 파리 협약과 IPCC 보고서를 따르기 바랍니다. 우리는 다른 선언이나 요구 사항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과학적 사실 아래 함께하자, 그게 바로 우리의 요구입니다.”

툰베리는 희생 없이 변화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우리 삶의 방식까지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위해 우리 문명은 희생되고 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어른들이 만든 정치 체제는 모두 경쟁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경쟁하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우리는 협력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지구의 자원을 공평하게 공유해야 합니다. 매우 순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지구온난화의 개념을 처음으로 주장했던 과학자 스반테 아레니우스 역시 툰베리와 같은 스웨덴 출신이다. 노벨상을 받기도 했던 그는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을 처음으로 정량적으로 계산했다. 하지만 그의 예측은 틀렸다. 아레니우스는 지금 수준의 온난화가 진행되려면 2000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 속도는 훨씬 빨랐다. 사람들이 지구온난화에 대처하는 속도도 그만큼 빨라져야 한다. 툰베리는 오늘도 그 목표를 위해 달린다.

“우리는 세계 지도자들에게 관심을 구걸하기 위해 여기 오지 않았어요. 당신들은 과거에도 우리를 무시했고 또 무시할 겁니다. 당신에게 변화가 올 것이라고 알려주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진정한 힘은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 참고자료

2019년 2월 유엔경제사회위원회 연설

2018년 12월 기후변화당사국 총회(COP24) 연설

[레디앙] ‘기후변화 위한 휴업’ 변화의 바람이 한국에도 닿을까?

[Guardian] The Swedish 15-year-old who’s cutting class to fight the climate crisis

[Guardian] ‘Our leaders are like children,’ school strike founder tells climate summit

[New Yorker] The Fifteen-Year-Old Climate Activist Who Is Demanding a New Kind of Politics

[Financial Times] Greta Thunberg: ‘All my life I’ve been the invisible girl’

화, 2019/03/1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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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1년 1,2월호 – 시사포커스(5)]

전직 대통령 사면으로 국민통합 이룰 수 있나?

 

서휘원 정책국 간사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월 2일 “적절한 시기에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며 “국민 통합을 위한 큰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이후 한동안 정치권이 뜨거웠다. 새해 벽두부터 더불어민주당의 대표가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건의한 것에 대한 말들이 많았고,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사면으로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는 것인지를 두고 설전이 벌어졌다.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 건의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석부터 국면전환용이라는 해석까지 다양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년 전 노무현 정부 때는 대통령의 사면권 사용을 막기 위한 법안을 발의한 사실에 비춰보건대, 사면론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오히려 지지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본인의 입지 강화를 위해 사면론을 건의했다는 해석이 더욱 설득력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본인의 온건한 이미지를 부각해 중도층, 보수층의 지지를 얻고자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거론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청와대와의 교감 하에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거론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복귀로 청와대의 부담감이 강해지자 청와대가 국면전환용으로 사면론을 꺼내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렇듯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면론에 정치적 의도가 농후해 보이는 상태에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론은 국민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면 언급은 오히려 국민들에게 생뚱맞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실 국민들에게 사면론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이 시기상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형이 확정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부담 속에서도 법원 역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하여 엄정한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횡령과 뇌물 혐의 등으로 지난해 10월 29일 대법원에서 징역 17년이 확정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국정농단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사건에 대하여 지난 1월 14일 징역 20년이 확정된 바 있다.

게다가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본인들의 죄에 대해 반성도, 사죄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사면론을 거론하는 것에 대한 불편한 마음도 존재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징역 17년형을 확정지은 대법원 판결 직후 “법치주의가 무너졌다. 대법원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고 발언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재판에 단 한 차례도 출석하지 않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언급한 이후, 오히려 정치권만 과열된 측면이 있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면 언급이 청와대와의 교감 속에서 이뤄진 것인지를 알기 위해 청와대의 반응에 촉각을 세웠다. 그래서인지 청와대는 “실제 건의가 이뤄져야 논의할 수 있는 문제”라고 선을 긋는 듯한 반응을 보였고, 이후 정치권에서는 사면이 적절한 것인지를 두고 설전이 벌어졌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면 언급 이후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심히 유감”이라며, “두 전직 대통령의 재직 시절 범죄로 고통받았던 수많은 국민이 있다. 불의한 것은 불의한 것”이라며 입장 철회를 요구했고, 민주당 내에서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 건의가 시기상, 내용상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 나왔다.

이렇듯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고, 더불어민주당 내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대표가 왜 새해벽두부터 사면을 언급했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다. 최근 한국 갤럽이 지난 5~7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사면 반대(54%)가 찬성(37%)보다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통합을 기대한다던 사면론이 오히려 정치권의 분란을 가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사면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국민통합’을 내걸었다. 하지만 국민통합을 꼭 ‘사면’이라는 상징적 통치 행위로 이뤄야만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국민들이 위임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직접 촛불을 들어 위법성을 알리고, 법원도 그 위법성을 판결한 마당에 더불어민주당은 꼭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통해서만 국민통합으로 나아가고자 해야 했던 것일까. 사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으로 국민통합을 이루겠다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상은 그동안 선언적인 법안으로 개혁을 이루겠다고 말해온 더불어민주당의 행태와 많이 맞닿아 있다.

사면이라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서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정말로 문재인 정부가 정말로 적대의 정치, 진영의 정치, 정치적 양극화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전반적인 국정운영 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간 더불어민주당은 독단적인 국정운영 방식으로 국민통합을 저해한 측면이 있다. 지난 2월 “민주당만 빼고”라는 제목으로 민주당을 비판한 칼럼을 쓴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의 칼럼을 게재한 경향신문을 검찰 고발하는가 하면, 지난 5월에는 더불어민주당의 당론이었던 공수처 설치법안에 대하여 표결에서 기권한 금태섭 의원을 징계처분 내리기도 했다. 또, 더 이상 개혁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법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회 민주주의를 악화시킨 측면도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신년사에서 거론된 사면론으로 시끄러운 한 해를 시작하게 됐다. 논란이 계속되자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기자들에게 “박 전 대통령은 국민께 진솔하게 사과해야 옳다”고 밝히면서, ‘국민의 공감과 당사자 반성’이 사면의 전제 조건이라는 듯 유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1월 14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징역 20년형이 확정된 이후 다시금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던 1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사면과 관련해 “그래도 지금은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이 시기상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국민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왜 더불어민주당의 대표는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건의하려고 했던 것일까? 정말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사면을 통해 국민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쏘아 올린 사면론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어려우며, 사면으로 손쉽게 국민통합의 효과를 얻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화, 2021/02/09-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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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이 남과 미국을 다루는 태도는 확실히 다르다.

스톡홀름 회담 결렬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향한 북의 메시지는 비록 연내 시한이라는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매우 유화적이다. 김계관 외무성 고문의 10월 24일 개인 담화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는 미국이 어떻게 이번 년말을 지혜롭게 넘기는가를 보고 싶다.”

반면, 대한민국 문재인 정부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영 180° 다르다. 그것도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선다. 그는 금강산 관광 지구를 현지지도 한 자리에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하여 싹 쓸어내도록 하고…”에서 확실하게 확인된다. 문재인 정부에게 화가 나도 엄청 화가 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이런 상반된 인식이 발생했을까?

정말 이 상황을 정부와 청와대는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소망적 접근이 아닌, 내재적 접근을 통해 북의 정확한 의도를 분석해내는 것이 그 여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그런데도… 친(親)여권은 정권의 눈치 때문에, 전문가들은 실력이 부족하거나 정권 눈 밖에 나기 싫어서, 그리고 보수야권은 아예 ‘북(김정은) 생각읽기’에는 애당초 관심 없고 오직 문재인 정부만을 공격하기에 바쁘다(평화번영정책에 대해). 그렇게 지금 대한민국은 민족이 처해진 운명보다는 각자도생(各自圖生)하면서 총선을 향해 무한질주하기에 바쁘다.

백번양보해 보수야권과 그 추종지식인들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러하지 말아야 할 자칭 친여 대북전문가들 조차도 북의 생각읽기를 본질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정부와 집권여당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예의 그 희망적 사고에 맞는 맞춤형 ‘북 생각읽기’에 여념 없다.

정말 이 시점에서 한반도 번영과 평화, 통일을 위해 전문가로서, 해당 관료로서, 청와대 참모로서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성찰적으로 고민하고 제언하기보다는 온통 기회주의자들뿐이다. 배는 가라앉으려고 하고 있는데 이에는 아랑곳없이 탑승하고자만 하는 이들로 넘쳐난다.

이름하여 남북교류협력의 상징이고, 국민들 속에는 평화와 통일의 절실함을 심어줬던 금강산관광이 영구 중단되게 생겼는데도 정부는 정부대로 상황 관리만 하려하고, 전문가들은 전문가대로 이 문제가 북미 고래 싸움에서 파생된 새우 등 터진 꼴로 시간이 좀 지나면 해결될 수 있다는 등 그렇게 ‘별 것 아니다’며 진단해 낸다.

해서 이 글은 이런 상황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그 상황의 심각성과, 도저히 상상살 수 없었던-적폐정부가 물러나면 적어도 남북관계는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관광 재개·개성공단 재가동 등 민족 내부문제 정도는 ‘순풍에 돛단 듯 잘 풀릴 것’이라고 내다봤으나, 그런 기대와는 정반대로 최악의 상황까지 직면한 남북관계가 잘 풀려지기 위해서는 현재의 남북관계 경색국면을 본질로 읽고, 경색국면을 타개할 방도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데 (조그마한 도움이나마)도움을 주고자 쓰여 진다. 그것도 아무도 접근하려 하지 않는 본질로서 말이다.

우선은 ‘금강산 남측 시설물 철거’ 지시배경에 대한 팩트체크이다.

①김정은 위원장의 ‘선임자들’의 정책을 비판한데 대해 일각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을 지칭했다는 보도가 여과 없이 막 나오고 있는데, 엉터리 해석도 이런 해석이 없다. 북에서는 ‘영생’하는 ‘영원한’수령들을 지칭할 때 쓰는 용어는 선대(先代)라는 표현을 쓰지 선임자라고 지칭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선임자들’은 금강산관광 지구를 정책적으로 책임진 관계부분의 책임일꾼을 말한다. 이름하여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유관부서의 수장들을 일컫는다.

②‘선임자들’의 정책을 비판했다하여 금강산관광 개발 그 (정책)자체가 잘못되었다로 오독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김정은 위원장의 비판 문장을 맥락적으로 이해해보면 ▲남측의존 정책 ▲과도한 남북관계 발전과 연계 ▲‘우리식’ 건축물 양식 배재이다. 즉, 세계적인 명산답게 너무 남북관계에만 얽매이지 말고 ‘우리식 건설’작풍을 최대한 발휘하여 세계적인 관광시설, 인민의 휴양시설로 탈바꿈 시키라는 것이다.

③둘째(②)와 마찬가지로 김정은 위원장의 비판을 맥락적으로 이해해 본다면 남측정부-문재인정부에 대한 불만이 엄청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양공동선언 2조 2항에서는 “남과 북은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고”에 합의했고, 이를 해결하는 방도로서는 4.27판문점선언에서 “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에 합의, 이것도 모자라 미국의 대북제재가 작동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정부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본인이 직접 나서 올 신년사에서 ‘조건 없는’재개까지 언급했으나, 이를 함께 풀고자 하는 이행의지가 없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강한 유감과 실망감의 표현이 그렇게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금강산 남측 시설물 철거’지시는 다름아닌, 문재인 정부가 그 원인제공자라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문재인 정부로 인해 발생한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석을 해야만 문제의 본질이 정확하게 보는 것이고, 그리고 해석을 그렇게 해야만 또 문재인 정부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개성공단(강조, 필자)또한 그 운명이 금강산관광과의 운명과도 하등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상황이 그렇게 심각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 정부(통일부와 청와대)는 사태의 심각성을 그렇게 이해하려하기 보다는 상황관리 차원에서 ‘남북관계가 완전히 문 닫힌 것은 아니며’, ‘협의’가 아니라 ‘합의’발언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며 이것은 보기에 따라 대화 모멘텀이 살아있다는 증명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낸다. 참으로 ‘편안한’해석이다.

‘태도변화’없이는 금강산관광뿐만 아니라, 개성공단 재가동 운명도 간단치가 않건만, 생각이 어쩌면 그렇게 나이브할 수 있을까?

(정부와 청와대의 그런 인식과는) 상관없이 촛불정부가 처해진 남북문제는 분명 바람 앞에 선 등불과 같다. 미국에게 그렇게까지 과잉충성 하지 않아도 되었건만, 친미관료들과 참모들로 인해 명(明)대신 미국(美)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현대판 신(新)재조지은(再造之恩)이 완벽하게 부활했고, 비례해서 대한민국은 미국 스스로가 그렇게 말하고 있듯이 ‘대한민국은 자신들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나라(트럼프의 정확한 워딩은 “그들(한국)은 우리 승인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보다 더 미국이 NO할 것이 두려워 ‘알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뼈 속까지 숭미사상DNA가 내재되어 있는 현 정부로 전락되었다.

과한 비유라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는 문재인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미국의 대북제재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사업이었다.

이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의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발언만으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개인 北관광, 제재대상 아냐..통일부 허락할지의 문제”(2019.10.24., 기자간담회 중에서)발언이 그것이다.(그리고 이 사실 확인은 현 정부가 이제까지 국민들을 속여 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위 발언은 사실 통일부 장관이 해야 될 워딩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외교부 장관의 입에서 나온 답변이라 그것이 더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다시말해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개인 北관광, 제재대상 아냐… 외교부가 허락할지의 문제’그렇게 해야 했고, 그러면서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외교부와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뭐 그 정도는 해야 되는 것이었다.

그래야 통일부의 존재이유도 있는데, 그런데도 이 발언을 통일부장관 대신 외교부장관이 했다? 참으로 자기 역할이 뭔지도, 되게 못난 통일부가 되어버렸다. 정말 통일부가 왜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상황은 이렇게 이 정부의 대북정책, 남북정책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상황까지 와버렸다.

이정도 해놓고 다음으로 우리가 한번 본질적으로 상황체크를 해야 할 부분은 북의 남에 대한 태도가 확연하게 바뀐 시점이 언제인지 한번 체크해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정확한 해법을 찾아낼 수 있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문재인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면서 이뤄진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고 난 이후부터가 분명한듯하다.

이때부터 북은 남에 대해 선미후남(先美後南)으로 돌아섰고, 지금은 점차적으로 통미봉남(通美封南)으로까지 이동시켜 나가고 있다.

비례해 북이 문재인 정부와 대통령에 대해서도 지난 적폐정부와 하등 다를바없는 비난을 쏟아낸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약칭, 조평통)가 8월 16일에 발표한 성명이 그 정점이다.

“아래 사람들이 써준 것을 그대로 졸졸 내리읽는 남조선 당국자가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 (강조, 필자. 여기서 ‘남조선 당국자는 문재인 대통령을 지칭하고 있음)애써 의연함을 연출하며 북조선이 핵이 아닌 경제와 번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역설하는 모습을 보면 겁에 잔뜩 질린 것이 역력하다. 두고 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앉을 생각도 없다.(강조, 필자)”

그렇다면 북이 왜 이런 망발을 쏟아냈고, 위에서와 같이 ‘금강산 남측 시설물 철거’지시와 같은 그런 극단적 조치가 이뤄졌을까하는 문제인데, 여기에는 적어도 3가지 이유는 분명하다.

그 전에 우선 단초를 한번 찾아보자. 북의 김성 UN대사가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4차 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9월 30일)은 그 단초를 분명하게 찾아준다.

“불과 한 해 전 북과 남, 온겨레와 국제사회를 크게 격동시킨 역사적인 북남선언들은 오늘 이행단계에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교착상태에 빠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대사는 “북남선언들의 이행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은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연출하고 돌아앉아서는 우리를 겨냥한 최신 공격형 무기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 군사연습을 강행한 남조선 당국의 이중적 행태에서 기인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우리를 겨냥한 최신 공격형 무기 반입과 미국과 남조선의 합동 군사연습은 상대방에 대한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며, 무력증강을 하지 않기로 합의한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에 대한 난폭한 위반이며 도전”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데 대한 불만이다. 이름하여 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의 핵심은 국제적인 대북제제의 틀은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금강산 관광 등 민족내부의 문제만큼은 당사자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전혀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이다.

둘째는, 4.27판문점선언에 따라 남북 간에 조성되어 있는 군사적 긴장과 군비확산문제에 대해 군사적 긴장완화와 군축문제를 그 핵심으로 하는 남북부속합의서까지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F-35A 등 최신 공격형 무기 반입을 하는 등 그 역행에 대한 불만이다.

셋째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북미간의 새로운 관계수립을 위한 그 사전약속으로 한미합동군사훈련과 전략자산무기 반입 등을 중지하기로 약속했음에도 이 약속이 지켜지고 있지 않은데 대한 불만인데, 이 불만이 문재인 정부를 향하는 지점은 미국이 이 약속을 지키려 하지 않을 때는 대한민국 문재인 정부가 이 약속이행을 미국에게 상기시키면서 미국에 대해 북과 한 약속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선제적으로 한미합동 군사훈련의 불필요성을 미국에게 설득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하는 점(백번양보하여 정부의 논리대로 작전권 이양으로 인한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정말로 최소한 꼭 필요하다면 이 문제는 북과 충분히 협의하여 북이 오해하지 않도록 사전 조치 후 시행하는 것이 맞지, 그냥 한미동맹의 논리에 포획돼 주권국가로서의 당연한 권리운운하면서 밀어붙이는 것은 아무래도 남북문제를 풀어가야 할 한 해당국가로서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또 지난 9월 한미정상회담에서와 같이 향후 3년간 무기구매계획을 발표하는 등 군사 분야에서의 부속합의서가 전혀 지켜지지 않는데 대한 불만이 극도로 달한 것이다.

북이 문재인 정부에게 가지는 불만은 이렇듯 명확한 3가지이다. 그러면서 북은 또 향후 남북관계가 복원되고 진전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해법도 내놓는다.

김성 대사의 같은 날 발언인데, 거기서 그는 남북관계 개선문제와 관련해 “남조선 당국의 사대적 본성과 민족공동의 이익을 침해하는 외세 의존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북남선언의 성실한 이행으로 민족 앞에 지닌 자기 책임을 다할 때에만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바로 위 사실로부터 향후 남북관계가 복원되고 정상화되려면 적어도 2가지 입장이 or적이 아니라, and적으로 결합되어져야만 이제까지 드리워진 남북관계 먹구름이 걷어치워짐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외세 의존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에서 확인받듯이 민족공조에 나서라는 말이다. 이를 현재 처해진 북미 간, 남북 간의 상황과 조건을 고려하여 정치적 의미로 재해석해내면 한반도 비핵화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한미동맹에 근거해 자리 매김된 중재자 역할 대신, 때로는 판문점선언에서 확인되어진 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에 선 당사자 역할로 되돌아오라는 말이고, 특히 금강산관광 재개문제나 개성공단 재개문제와 같은 그런 민족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당사자역할에 충실하라는 말이다.

둘째는, ‘북남선언의 성실한 이행’에서 확인받듯이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을 제발 이행하라는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김성 대사가 UN발언으로 확인되어진 ‘첫째, 둘째, 셋째’문제의식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 전제하에 이를 이번 금강산관광 지구에 대해 ‘남측시설물을 싹 들어내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내용을 대입시켜보면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가 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으로 되돌아와야 하고, 정상간 합의된 남북선언에 대해서는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몸짓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예하면 금강산관광의 경우 대북제재 사항이 아님으로 ‘조건 없이’ 즉시 이행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마련을 위한 남북이 함께 가칭TF(강조, 필자. 명칭은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협상전략팀)을 꾸려 해법을 모색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남북관계의 입구는 반드시 열릴 것이다.

 

통일뉴스, 2019년 10월 26일자와 동시 게재된 글입니다.

화, 2019/11/05-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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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을 입은 한 성인 여성이 힘차게 성큼성큼 걷고 있는 옆모습이 보인다. 옆의 흰 벽에는 그림자가 비치는데 이 여성의 그림자는 아닌 것 같다. 키가 훨씬 작다. 그림자는 짧은 고수머리를 뒤로 묶은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미 대선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해 11월 8일 소셜미디어에서는 이 이미지가 이슈가 됐다. 성인 여성은 미국 역사상 첫 ‘흑인·여성’ 부통령으로 당선된 카멀라 해리스다. 그림자 소녀는 미국 흑인 민권운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루비 브리지스다. 1960년 여섯 살 소녀이던 루비는 백인들만 다니던 학교에 맨 처음 등교한 흑인 학생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화가이자 디자이너인 브리아 골러가 만든 이 이미지는 해리스 당선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First. First. First.”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워싱턴포스트의 정치평론가 로빈 깁핸은 “역사는 항상 바로 거기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며 이렇게 감격을 표현했다. ‘최초(First)’라는 표현을 세 번 쓴 것은 여성이자 흑인, 그리고 아시아계(인도)로서 각각 최초로 부통령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3중의 장벽을 한꺼번에 무너뜨린 셈이다.

트럼프인가 아닌가, 지난 미 대선이 온통 거기에 쏠려 있는 동안 해리스는 조용히 부상했다. “그것(해리스의 당선)이 도래했을 때 체제에는 비명 섞인 충격이 나오지 않았다. 체제는 솔직히 말해 무감각했다.”(깁핸) 바이든의 승리가 확정되자 미국은 바이든보다는 오히려 부통령 당선인에 기대를 하는 모습이다. 대통령보다 부통령 당신이 더 의미 있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미국 언론 폴리티코는 “조 바이든 당선자의 승리가 알려진 날, 소셜미디어엔 (대통령 당선자보다) 그의 러닝메이트에 대해 더 흥분한 사람들의 열기가 분출됐다”고 전했다.

해리스는 당선이 확정되자 대선 승리를 알리는 연설에 하얀색 바지 정장에 ‘푸시 보’(pussy bow) 차림으로 등장했다. 흰색은 20세기 초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권 운동을 벌인 여성 운동가 ‘서프러제트’를 상징하는 색이다. 푸시 보는 상의 목둘레에 커다란 리본을 묶는 패션을 통칭하는 말로, ‘여성의 타이’로 불린다. 여성들이 당당한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연출할 때 썼던 액세서리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했다. 해리스는 승리 연설에서 “흑인, 아시아계, 백인, 라틴계,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 세대들이 이 순간을 위한 길을 닦아왔다”며 “그들은 우리 민주주의의 중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들의 어깨 위에 서 있다”고 했다.

 

혼란 끝에 흑인으로서의 정체성 확립

해리스는 1964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샤말란 고팔란은 인도 출신으로 19세에 UC 버클리대로 유학을 오게 되면서 미국에 정착했다. 아버지 도널드 해리스는 자메이카 출신으로 역시 UC 버클리대 유학생이었다. 두 사람은 대학원생 시절 만나 결혼했다. 두 사람 모두 이민자 출신이었지만 인정받는 학자였다. 해리스의 아버지는 흑인으로는 최초로 스탠퍼드대 경제학부에서 정년을 보장받은 교수였다. 어머니는 유방암 전문가로 암 연구자였다.

어린 시절 해리스는 인종차별을 몸으로 겪으며 자랐다. 버클리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버싱(busing)’ 정책이 시행됐다. 버싱 정책이란 1954년 미연방대법원이 ‘공립학교의 인종 분리는 위헌’이라는 판결(브라운 대 교육위원회)을 내놨음에도 여전히 주거지에 따라 같은 인종끼리 학교를 다니는 일이 굳어지자 나온 방안이다. 흑인 거주지 학군과 백인 거주지 학군 사이에 버스를 이용해 학생들을 서로 상대 학군의 학교로 보내서 섞이도록 한 것이다.

해리스가 들어간 반은 이 정책에 따라 생긴 두 번째 학급이었다. 시행 초기 도끼눈을 치켜뜬 사람들 사이에서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백인들이 주로 사는 부유한 동네의 초등학교로 등교를 해야 했던 해리스의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이다. 해리스는 훗날 “리버럴한 버클리에서도 대법원의 명령을 이행하는데 20년이 걸렸다”고 회고했다.

해리스가 5살 무렵 부모는 별거에 들어갔고, 7살 때 이혼했다. 주말에 아버지가 있는 팔로알토로 놀러갔을 때 흑인이기 때문에 이웃 아이들과 놀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다. 어머니는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주했고 맥길 대학병원에서 유방암 연구원으로 일하게 됐다. 어머니와 살게 된 해리스는 고교 시절을 여기서 보냈다. 백인이 대부분이고, 프랑스어가 주류인 지역에서 느꼈을 소외감과 차별감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과학자였지만 쇼핑을 하러 가면 가정부로 오인받기도 했다.

백인 위주의 환경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해리스는 ‘흑인들의 하버드대’라고 불리는 명문 하워드대에 진학하면서 안정을 찾았다. 역사적으로 흑인을 위한 대학으로 설립됐으며 흑인 엘리트들이 선호하고 대다수의 학생이 흑인인 학교에서 그는 새롭게 자신의 위치를 재정립했다. 해리스는 “하워드는 나의 존재에 대해, 또 그 의미와 이유에 대해 아주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밝히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하워드대는 변호사 시절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결의 승소를 이끌어냈고 훗날 최초의 흑인 연방 대법관이 된 서굿 마셜의 모교이기도 하다. 그런 점이 대학 선택에 영향을 끼쳤을 지도 모른다.

해리스는 하워드대에서 정치·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은 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UC 헤이스팅스대 로스쿨을 마쳤다. 1994년에는 캘리포니아주 앨러미다 카운티의 지방검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1998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지방 검사장인 테런스 할리난의 제안을 받아 그곳에서 지방검사로 근무하게 된다. 해리스는 형사부에서 일하면서 살인, 성범죄, 폭행, 음주운전 등의 사건을 주로 맡았다.

선출직에의 첫 도전은 2003년 샌프란시스코 지방 검사장 선거였다. 해리스는 자신을 영입했던 테런스 할리난을 상대로 검사장에 도전했다. 선거 과정에서 샌프란시스코 시장을 지낸 윌리 브라운과 해리스의 관계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1994년 윌리 브라운이 캘리포니아주 의회 의장이었던 시절 해리스와 연인 사이였고, 브라운이 주 실업보험항소위원 자리 등을 해리스에게 제공하면서 고액의 연봉을 받게 해 줬다는 것이었다. 여성에 대한 전형적인 공격이었지만, 해리스는 굴하지 않았다. 그는 “반대자들은 내 자신의 노력은 전혀 없는 것처럼, 내가 누군가의 창조물이라는 외설적인 이야기를 선택했다”고 맞받았다.

해리스는 검사장 선거운동 때부터 절대 사형을 구형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검사장 취임 후 2004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경찰관이 총에 맞아 살해당한 뒤에도 사형을 구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민주당 출신 상원의원들조차 해리스가 사형에 반대하는 걸 알았더라면 검사장 선거에서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공격했다. 그럼에도 해리스는 꿋꿋이 신념을 지켰다.

그러나 훗날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이 된 이후 이 신념을 뒤집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오렌지카운티 소재 연방지방법원은 2014년 캘리포니아주의 사형 제도가 실제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면서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지연된다며(1978년 이후 사형 선고 800명 중 13명만 집행) 잔혹하고 통상적이지 않은 처벌을 금지한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이에 해리스가 항소하겠다고 밝혀 얼핏 사형제를 옹호했다는 인상을 남겼다. 항소법원은 해리스의 손을 들어줬다.

해리스는 범죄자를 교도소에 보내는 것보다 직업 훈련, 정신건강 치료, 약물 재활 등의 범죄예방 프로그램이 더 중요하다고 오랫동안 강조해 왔다. 해리스는 자신의 책에서 “범죄 근절을 위한 강력한 처벌”과 “초범에게 필요한 관용과 지원”이 서로 모순되는 목표가 아니라고 밝혔다. 동시에 추구해야 하고 또 달성할 수 있는 목표라는 것이다. 해리스는 실제 검사장 시절 경범죄 초범들에게 무사히 교육을 마치면 범죄 기록을 없애주는 ‘궤도 재진입(back on track)’ 제도를 실시했다. 이 제도로 50%에 달하던 경범죄자의 재범률을 10%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해리스는 ‘경찰의 안전’과 ‘피의자의 안전’ 같은 상호 모순된 가치에 대해서도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둘 다를 정책과 교육으로 지원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해리스는 2010년에는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에 출마해 선출됐다.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으로서는 최초의 여성·흑인이었다. 2016년에는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에 선출됐다. 역시 캘리포니아 최초의 여성·흑인 상원의원이었다. 미국 전체를 통틀어서도 두 번째 여성·흑인 연방 상원의원이기도 했다.

워싱턴 정가에서 해리스는 ‘전사’로 자리매김했다. 2018년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청문회 때 보수 대법관 후보를 몰아붙이는 송곳 질문으로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지난 대선에서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지난해 6월 경선 1차 TV토론에서는 조 바이든을 향해 ‘버싱’ 정책 반대에 협력했다며 공격해 바이든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해리스는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매일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던 작은 소녀가 인종차별로 상처를 입었고, 그 소녀가 바로 나”라고 몰아붙였다. 순간 지지율도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갔다.

 

존재만으로도 가능성을 보여준 해리스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중도 사퇴했지만 바이든은 경선 승리 이후 해리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유색인종으로서 해리스의 강점이 부각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한 지명도를 가진 여성이자 유색인종 후보군은 찾기 어렵기도 했다.

해리스는 부통령 후보 지명 이후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토론회에서 시시때때로 말 중간에 끼어드는 펜스를 향해 “부통령님, 내가 말하고 있잖아요”라고 단호하게 대처했다. 지지자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유세 기간에는 검은색 스키니진과 컨버스 운동화를 신고 나와 춤을 추는 등 틀을 깨는 행보로 화제를 모았다. 해리스는 49세에 결혼했는데, 남편인 더그 엠호프 변호사는 선거 기간 부통령 후보의 남편으로서 ‘이해충돌’이 발생하지 않게 변호사 업무를 휴직하고 아내를 지원했다.

해리스는 유세 시간 동안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부통령 후보 수락 연설 때는 자신의 가족들을 소개하면서 ‘치티스(여성 가족구성원을 소개하는 인디언 언어)’라는 단어를 사용해 인디언들로부터 큰 갈채를 받았다. 선거에는 불리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공격이 나왔다. 반대편에서는 해리스를 ‘성난 흑인 여성’이라는 전형적인 이미지에 가두려고 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성난’ ‘고약한’ ‘끔찍한’ 등의 수식어로 해리스를 표현했다. “흑인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괜찮겠냐?”며 노골적으로 공격했다. 카멀라의 이름을 갖고도 말이 나왔다. 카멀라는 인도식 이름으로 ‘연꽃’을 뜻하지만 미국식으로는 흔하지 않은 이름이었다. 데이비드 퍼듀 상원의원은 트럼프 지지 연설에서 “카-말라, 카-마-라, 카멀라 멀라 멀라”라며 여러 차례 해리스의 이름을 발음하며 조롱했다.

흑인·여성·아시아계의 고위직 진출이 구조적 문제 해결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지만, 해리스는 존재만으로도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의 입법정보 공유사이트인 고브트랙(GovTrack)은 해리스를 두고 “100명의 상원의원 중 가장 진보적인 의원”이라고 평가했다. 해리스는 임신중단, 마리화나 합법화, 더 엄격한 총기규제에 찬성한다. 이민자들에게는 더 관대한 정책을 약속했다. 플로이드 사건 이후에는 흑인 차별 문제와 경찰개혁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환경 규제 강화도 주장했다.

반면 의료보험에 대한 태도는 불분명하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내놓은 ‘메디케어 포 올(전 국민 단일 의료보험)’에 서명한 민주당 의원 중 한 명이었지만, 대선경선 초기 이를 철회했다. 주 법무장관 시절, 경찰의 민간인 총격 사건 처리에서도 소극적인 대응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친밀해 기술 산업 규제에도 소극적이란 지적도 나온다.

“조, 우리가 해냈어요.” 해리스는 당선 확정 직후 조 바이든 당선자와 감격의 통화를 나누는 장면을 트위터로 전했다. “저는 첫 여성 부통령이 되겠지만, 제가 마지막은 아닐 겁니다. 오늘 밤 모든 소녀들이, 이 나라가 가능성의 나라임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리스 당선자는 당선을 알리는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은 그의 어머니가 “네가 가는 길이 최초가 되더라도, 마지막이 되게 하지 말라”며 생전에 딸에게 강조한 말이기도 했다.

해리스는 역대 그 누구보다 강한 ‘실세 부통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인은 77세의 고령임을 감안하면 재선에 도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해리스가 부통령이 된 후 능력을 인정받으면 현직 프리미엄으로 2024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강력한 대선후보로 나설 수 있다. 바이든 당선인이 해리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면서 ‘가능성’이라는 말을 언급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4년 뒤 해리스는 어떤 모습으로 유권자 앞에 서게 될까.

 

참고자료

[워싱턴포스트 2020.11.7.] Kamala Harris made history with quiet, exquisite power

[LA타임스 2015.9.30.] How race helped shape the politics of Senate candidate Kamala Harris

[경향신문 2020.11.9.] 카멀라 해리스의 그림자 속 그 소녀, 루비 브리지스

[경향신문 2020.11.9.] 해리스 부통령 당선자가 하얀색 정장을 입은 이유

[경향신문 2020.11.11.] 4년 후, 카멀라 해리스와 미셸 오바마가 겨룬다면

[경향신문 2020.11.13.] 정은진의 샌프란시스코 책갈피 – ‘잘못된 선택지’를 거부해온 해리스, 그 경험과 지혜로 좋은 부통령 기대

[경향신문 2020.11.8.] 미국 부통령 당선 카멀라 해리스는 누구

[경향신문 2020.11.8.] 미국 정치의 얼굴을 바꿀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

[한국일보 2020.11.8.] 유리천장 깨부순 ‘최초’ 신화… 2인자 해리스는 누구

[연합뉴스 2020.8.12.] 백인들 틈바구니서 설움 겪던 소녀…’여자 오바마’로 뜨다

[피렌체의 식탁 2020.8.21.] 유정훈 칼럼 – 바이든의 ‘승부수’ 카멀라 해리스…그가 상징하는 미국의 ‘possibilities’

[연합뉴스 2020.8.22.]딸이 부통령 후보됐는데…멀리서 지켜만 본 해리스 아버지

[뉴시스 2020.8.12.] 해리스, ‘인종 정의’ 앞장…의료보험·기업정책 오락가락 행보도

 

황경상

화, 2021/01/26-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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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후임은 누가 될 것인가. 오는 9월 독일은 연방하원 선거를 치르고 새로운 총리를 선출한다. 메르켈 총리가 소속된 집권 기독민주당(CDU·기민당)의 지지율이 여전히 높기 때문에 지난 1월 당 대표로 선출된 아르민 라셰트(60)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총리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상황이 간단치만은 않다. 당 대표로 선출되고 총선에서 승리한다고 반드시 총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라셰트 대표의 인기가 그다지 높지 못하기 때문이다.

독일 슈피겔이 지난해 12월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정치인을 꼽는 질문에서 라셰트는 31%로 11위에 그쳤다. 독일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에 이어 가장 높은 지지율인 60%를 얻은 정치인은 기민당의 자매정당인 기독사회당(CSU·기사당) 마르쿠스 죄더 대표(바이에른주 총리)와 옌스 슈판 독일 보건장관이었다. 라셰트는 야당인 사회민주당(SPD·사민당) 총리 후보인 올라프 슐츠 재무장관(52%)과 같은 당 소속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51%)에도 지지율이 한참 미치지 못했다.

전통적으로 함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해 온 기민-기사 연합에서는 대체로 다수파인 기민당 내에서 총리 후보가 선출돼 왔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죄더 기사당 대표가 사실상 총리 선거 출마를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당 부대표로 선출된 슈판 보건장관 역시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지지세를 등에 업고 차기 총리 후보군으로 떠오르고 있다. 라셰트 대표는 대표 선출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총리 후보 결정과 관련해 “여론조사 결과가 중요하지만, 결정을 할 때 유일한 근거가 아니라는 점을 안다”며 선을 긋고 있다.

 

라셰트의 도전, 기회와 위협

라셰트는 1961년 2월 벨기에와 네덜란드 국경에서 가까운, 독일의 가장 서쪽에 있는 도시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아헨에서 태어났다. 양친 모두가 벨기에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가톨릭 신자이고 불어에 능숙하다. 아버지는 광부였다. 당 대표 출마 연설에서 그는 아버지가 광산 갱내에서 일하면서 동료들과 서로 믿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본과 뮌헨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1차 사법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이후 저널리즘을 공부했으며, 주로 언론인으로 일했다. 바이에른 방송의 본 특파원을 지내기도 했다. 가톨릭 신문의 편집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94년에 독일 연방 하원 의원에, 1999년에는 유럽 의회 의원에 당선됐다. 2005년에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정부 초대 세대·가족·여성·통합 장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특히 2017년 독일 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총리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전통적인 사민당의 텃밭이자 당시 메르켈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마르틴 슐츠 사민당 대표의 고향에서 승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라셰트는 메르켈 총리의 후계자로 불렸던 안네그레트 크람프 카렌바우어 전 기민당 대표가 지난해 초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연대 논란으로 사퇴하면서 당 대표에 나설 기회를 얻게 됐다. ‘차기 메르켈’로 불리던 바우어의 사퇴 이후 기민당은 지난해 4월 전당대회에서 대표를 선출하려 했으나 코로나19로 무기한 연기됐다. 당시 차기 총리 후보이자 대표로 유력하게 떠오른 인물은 프리드리히 메르츠였다. 보수 성향이 강하며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독일 경제를 다시 활성화시킬 거라는 기대를 받았다. 만약 그때 대표 선출을 했다면 라셰트가 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1년 사이 메르츠는 코로나19의 위험성을 부정하면서 당 대표 선거 연기가 자신이 대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폈고, 인기가 많이 하락했다. 해를 넘겨 올해 온라인으로 진행된 투표에서도 메르츠는 1위를 차지했다. 라셰트는 결선투표에서 이를 뒤집었다. 최종 단계에서 메르츠 당선 이후 혼란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다시 메르켈을 비롯한 중도파 쪽으로 다시 표심이 기운 셈이다.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지난 3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와 라인란트팔츠주 의회 선거에서 기민당이 역대 최저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패배했다. 이 두 곳의 선거는 올해 연방 하원 의원 선거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첫 시험대라는 점에서 여파가 컸다. 현직 주지사들의 인기에 따른 것이라며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도 있지만 최근 악재의 영향도 있었다. 기민당의 니콜라스 뢰벨 의원이 중국산 마스크 중개 수수료를 받은 혐의로 사퇴한 것이다. 게다가 미국, 영국에 비해 늦어지고 있는 독일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상황이 유권자들의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 라셰트 역시 선출된 뒤 두 달만에 당을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면서 차기 총리에 적합한지에 대한 의문도 조금씩 나오는 상황이다. 라셰트는 선거 결과에 대해 “기민당의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메르켈의 공백을 기민당이 어떻게 메울 수 있을지가 더 큰 문제다. 메르켈은 지난 15년 동안 유럽에서 독일의 위상을 높여왔다. 메르켈의 리더십 덕분에 오늘날의 유럽연합이 유지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민당의 현재 지지율 역시 ‘메르켈 보너스’라고 불릴 정도로 메르켈의 인기가 끼친 영향이 크다. 분석가들은 메르켈이 자리에서 물러날 경우 기민당의 인기가 약화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 최근 여론조사에 조금씩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기민당의 지지율 하락은 라셰트의 총리 도전에도 위협이 아닐 수 없다.

 

포스트 메르켈, 독일의 행보는 어디로

라셰트의 총리 선출 여부는 메르켈식 국정철학이 계속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언론에서는 라셰트를 ‘메르켈의 충신’(도이체벨레) ‘메르켈과 연속성을 가진 후보’(가디언)라고 표현하고 있다. 라셰트는 메르켈 총리와 공개적으로 논쟁을 벌인 적도 없으며, 늘 메르켈의 편에 섰다고 알려져 있다. 2015~2016년에 걸쳐 메르켈 총리가 백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했을 때 기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심했지만, 라셰트는 끝까지 메르켈을 지지했다. 메르켈 역시 당 대표 선거에서 라셰트를 지지했다. 라셰트도 메르켈 정부에 대한 신뢰를 강조하며 당 대표 선출 이후 “총리의 국정 운영이 안정적으로 마무리되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라셰트는 ‘통합의 마이스터’라고 불린다. 중도 실용주의자로 알려져 있으며 기민당 내에서도 진보적인 편에 속한다. 다양성과 통합에서 독일이 얻는 이익이 많다는 메르켈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유럽의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과 나토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독일의 성공을 위해서는 러시아와 관계를 맺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러시아의 천연가스는 독일의 친환경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전환 정책의 보완재로서 중요하기도 하다. 메르켈 총리가 유지해 온 친중정책을 이어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라셰트 역시 독일 수출기업의 이익을 위해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 중국과의 가까운 관계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껄끄러운 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미국은 유럽연합이 최근 중국과 포괄적 투자협정을 체결한 일을 두고 불만을 품고 있다.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대중국봉쇄정책에 찬물을 끼얹은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협상을 주도한 것이 유럽연합 이사회 의장국인 독일이고, 메르켈 총리다. 라셰트 역시 친중, 친러 입장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라셰트는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천연가스 수송관 사업에 대해 “재고의 여지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미국은 이 사업이 자국 천연가스를 유럽에 판매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보고 반대하고 있다. 메르켈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각을 세워왔지만, 때맞춰 새로 출범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로서도 메르켈의 행보를 답습할 것으로 보이는 라셰트가 달갑게 보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누가 총리가 되든 복잡한 국제 역학관계에서 독일의 운신 폭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한편으로 메르켈 시대가 끝나면서 그의 리더십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당 대표 선거에서도 라셰트를 비롯해 후보로 거론됐던 인물들이 ‘가톨릭에 법학 전공, 서독 노스트라인-베스트팔렌 출신 남성’이라는 점에서 과거 서독 시절로 회귀했다는 말도 나왔다. 동독 출신의 여성 과학자라는 배경을 가진 메르켈과는 어떤 식으로든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헤르프리트 뮝클러 독일 훔볼트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메르켈이 보여준 깊이 경청하고, 인내심과 중재력이 뛰어나며, 믿을 수 없는 수용능력을 지닌 리더십은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티모시 가튼 애쉬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메르켈의 퇴장은 독일 역사상 매우 좋은 시기의 끝”이라며 “메르켈은 우리가 경험한 가장 좋은 독일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잘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헝가리와 같은 사실상 독재 국가들에게 강한 면모를 보이지 못했고, 디지털/생태 전환에는 미온적이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기민당이 녹색당과 연합하게 되면 중국과 유럽의 신진 독재자들에게 강한 입장을 표시하면서 디지털/환경에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차기 연합의 형태가 차기 총리의 성향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녹색당은 기민당에 이어 지지율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참고자료

Wikipedia, Armin Laschet 인물정보 바로가기

[연합뉴스 2021.3.15.] 독일 포스트메르켈 선거개시…주의회 선거 2곳서 여당 패배 유력

[시사저널 2021.2.2.] 누가 라셰트를 ‘포스트 메르켈’이라 했나

[가디언 2021.3.15.] Questions over new CDU leader as Angela Merkel’s party slumps to defeats

[한겨레 2021.3.15.] 일 기민련, ‘메르켈 이후 선거 전초전’에서 뼈아픈 패배

[서울신문 2021.1.17.] 메르켈 떠나도 ‘메르켈 시대’

[경향신문 2021.1.17.] ‘포스트 메르켈’ 윤곽…라셰트, 여당 대표 선출

[조선일보 2021.1.18.] 獨 집권당 대표에 라셰트…’메르켈 후임’ 경쟁 본격화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1/18/2021011801949.html

[오피니언뉴스 2021.1.25.] 최수정의 유럽외교전 – 메르켈 보다 더 친러시아, 獨총리 후보 ‘라셰트’

[뉴욕타임스 2021.1.16.] A Step Toward a Post-Merkel World: Her Party Picks a New Leader — Again

[뉴욕타임스 2021.1.15.] Merkel’s Party to Choose New Leader, and Possible Successor as Chancellor

[연합뉴스 2021.1.23.] 라셰트 독일 기민당대표 “총리후보 결정, 여론조사에 의존 안해”

[연합뉴스 2021.1.18.] 홍콩매체 “독일 집권 기민당 새 대표 선출, 中에 긍정 신호”

[연합뉴스 2021.1.19.] 포스트 메르켈 체제 이끌 라셰트 기민당 대표…차기 총리 될까

[연합뉴스 2020.1.19.]포스트 메르켈 체제 이끌 라셰트 기민당 대표…차기 총리 될까

[문화일보 2021.1.26.] 라셰트 獨 기민당 대표 “노르트스트림-2 사업 재고 없다”

 

황경상

목, 2021/04/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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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사우디 석유시설이 드론으로 추정되는 무기로 공격을 당한 이후, 몇 년 째 사우디와 전쟁을 치루고 있는 후디 반군이 직접 자신의 행위임을 분명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미행정부는 마치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즉각적으로 이란의 전쟁행위라고 공격하고 나섰다. 마치 베트남의 통킹만 어뢰와 이라크 침공의 명분을 조작한 역사적 사건을 연상하게 하며, 사고의 원인이 불명함에도 불구하고 하루 사이에 북한에 의해 피침을 당한 것으로 조작한 천안함 사건과 배경이 너무나도 유사하다. 현재 유럽, 중국, 러시아 뿐만 아니라, 미국의 고객국가인 일본조차도 이란 공격설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 언론들의 보도자세이다.


지난 주말, 사우디아라비아 소유의 아람코(ARAMCO,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기업) 시설에 드론 공습으로 의심되는 공격이 발생했다. 이 폭발로 인해 국가 원유 생산량의 절반이 줄어 유가가 치솟는 등 피해가 컸다. 예멘을 중심으로 반정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단체, 후티 반군은 이번 공격이 자신들의 소행임을 즉각 밝혔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공격 주체를 특정하진 않았다.

그러나 백악관은 이미 비난의 화살을 겨눌 대상으로 이란을 정해 놓았다.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 장관에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에 이르는 고위 당국자들은 숨 돌릴 새도, 조사할 새도 없이 이번 폭발이 이란의 공격행위라고 비난을 가했으며, 이것이 가져올 심각한 결과에 대해 위협했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 역시 이 공격에 대해 무기가 북동쪽에서 왔으므로 이것이 예멘이 아닌 이란이 가담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란은 이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으며 그럴만한 타당한 근거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과 일주일 전 외교 및 제재 완화에 대해 언급한 바 있지만, 시계추는 다시 대치 국면으로 되돌아갔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란의 공격을 꾸며냈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록 어리석은 술수일지라도, 우리는 미국이 특히 중동에서 공격적인 외교 정책 목표를 밀어붙이기 위해 속임수를 사용해온 오랜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이란은 상대하기 쉬운 표적이며, 우리는 본 사태의 전개를 무엇보다 ‘기회포착’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봐야 한다. 모든 증거는 사실상 후티 반군의 소행임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외교정책에서 타국에 대한 적극적, 특히 군사적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고도의 속임수를 사용한다. 미국이 스스로 침략에 반대한다는 독선적 주문(Mantra)를 되풀이하고 있으므로, 워싱턴 정치인들은 군사행동이 미국의 가치와 존속에 대한 잠재적 위협을 다루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미 정부는 항상 ‘위협’을 과민하게 비현실적으로 과장하고, 속임수를 사용하여 물리적 충돌에 대한 지지를 얻는 방식을 취한다.

역사에 이러한 사례들이 명백히 새겨져 있다.

2003년 이라크 침공은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이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넘겨져 동맹국들을 공격하는 데 사용될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완전히 잘못된 주장으로 인해 일어났다. 2017년 미국은 과장된 위협을 이용해 공격적 행동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고자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이 핵미사일로 미국을 공격할 계획이며 물리적 충돌이 임박했다고 주장했다. 각 사례에서 주류 미디어 담론은 이러한 속임수를 즉각 보도하고 지지하는 태도를 취한다.

따라서 이것 사례들이 이란의 경우를 해석하는 시각을 제공한다. 미국이 바라보기에 이란은 악마로 묘사하여 비난하기 가장 쉬운 나라임이 분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정치적 불이익이나 반향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배경이다. 미 정부에 대한 강렬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시아파 종주국 이란을 9.11공격 이후 발생한 담론에서 미국인들의 고통과 죽음을 바라는 위험하고 비인간적이며 악한 테러국으로 모함하는 것은 몹시 쉽다.

이슬람에 대해 떠올렸을 때 가장 두드러지게 연상되는 대중적 이미지인 중동에서의 전쟁, 대학살, 테러리즘에 대한 고정관념은 이를 그럴듯한 담론으로 만든다. 실제로 이란 시아파의 “일국” 이데올로기는 나름대로 역사적 배경과 합리적 근거를 지니고 있으며, 수니파에서 영감을 받은 살라피-와하비즘 (ISIL과 같은 단체에 영향을 끼침)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대중들은 이에 대해 결코 알지 못한다. 따라서 9/11과 같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들추어 내어 이란을 악마로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믿을 뿐만 아니라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임을 뜻한다.

이번 경우에도 이란이 직접 사우디 시설에 대한 공격을 꾀한 것이 아니더라도, 미국이 이란을 비난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적대감과 군사적 행동의 잠재적 가능성을 가늠하는 데 이용되고 있는 기회포착적인 기만행위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 그간 후티 반군이 수년간 사우디 기반시설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해왔음에도 서방 언론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멘의 분쟁에 대해 면밀히 관찰해온 사람들에게는 공격의 근원이 매우 분명히 드러나며, 왜 이란이 이웃 국가의 핵심 시설을 무작위로 공격하여 전면적인 지역 분쟁을 무릅쓰고자 하는지에 대해 합리적이고 설명 가능한 근거를 설정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미국은 이란을 불안정하고 비이성적인 존재로 만들어 사람들이 이를 믿길 바라고 있는데, 따라서 속임수가 어떻게 미 정부의 외교 정책 담론을 끌어내고 형성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주류 언론에 의해 다뤄지거나 비판되지 않는지를 이번 사태가 다시 한번 보여준다.

 

Tom Fowdy (톰 포디)

옥스포드대 중국학과를 졸업하고 Durham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

현재 중국과 북한 그리고 유럽을 중심으로 한 국제관계에 대해 글을 쓰고 있음

토, 2019/09/21-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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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받지 못하고, 흥미도 없고, 정보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데다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며, 이성을 따르기 보다는 열정에 이끌리거나 자기중심적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는 시민이라는 이미지는 수 세기에 걸쳐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항상 함께 따라다녔다.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정치 생활에서 여러 시민 집단들이 그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역량이 없는 평균적 시민이라는 이미지는 항상 통치자들의 선전 도구로 이용되어 왔다. 처음에는 이를 핑계로 모든 이들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았고, 나중에는 시민들이 요구하는 직접 참여 요청을 반대하는 핑계로 쓰고 있다.

여전히 이 ‘무능’이라는 단어는 레퍼렌덤 권리의 확대를 말할 때 종종 튀어나온다. 대개 평균적인 시민은 스스로 판단하고 “복잡한 현안들”에 대해 결정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주제는 수십 년간 보통 선거권의 발달에 걸림돌이 되었고, 나중에는 여성 참정권의 발목을 잡았으며, 그 후에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 투표권을 제한하는데 악용된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한집단이 한 때 차별을 받다가 투표권을 획득해낼 때마다 그 이슈는 사라졌다.

오늘날 이 주제로 도전을 받는 것은 더 이상 민주주의와 보편 선거권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의 직접 참여권의 확대이다. 다시 말해, 평균적인 사람들이 법률을 평가하고 다듬고 저지하고 폐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한다. 여전히 “정부의 전문가들, 바로 이상적인 후견인들이 전반적으로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탁월한 지식을 갖추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최고의 수단이 무엇일지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더 나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직접 참여를 반대한다(로버트 달Robert Dahl, 민주주의에 대해Sulla democrazia, 2000). 또한 어떤 정치인이나 정치 세력에 대해 전반적으로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다는 행위는 정치적 현안들에 대해 논리적으로 생각하거나 결정하는 데 그리 성숙하지 못하고, 조작이나 착취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나아가 언론 보도에 좌우되어 특정 정당에 투표하는 평균적인 시민의 모습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국민의 권리 강화는 전혀 정치적 후퇴가 아니다

19-20세기에 무능함이라는 주제는 민주주의 체제에 맞서면서, 무엇보다 다른 유형의 사람들, 특히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나 일반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확장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맞서 본색을 드러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몇몇 이슬람 국가를 제외하고 여성 투표권에 대해서는 그 어느 누구도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대신 평범한 시민들이 이 시대의 정치적 문제들을 이해하고 평가하기에는 무능하다는 인식이 현재 레퍼렌덤 권리 행사를 논할 때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사실에 비추어 그러한 논란은 근거가 없다. 만일 그랬다면 레퍼렌덤 도구를 완벽히 갖춘 민주주의 국가인 스위스는 벌써 자멸했을 것이다. 1800년대 전반에 벌써 레퍼렌덤 법조항을 도입한 후 스위스는 이기적 이익이나 평범한 사람들의 좁은 시야에 갇혀 실패한 법안이 수도 없이 쏟아질 것이라는 위협을 받았다. 스위스의 개혁주의자들은 남성 유권자 선거 덕분에 권력을 갖게 되었지만 그들의 중심 사상은 국민과 “더불어” 통치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통치에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보통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미성숙하고 정치적 결정에 참여할 능력이 없었다. 이 논란은 계속해서 순전히 대의적인 의회 체제를 합리화시켰다.
스위스에서는 그러한 체제가 1869년까지 변함없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 국가들 대부분에 여전히 그런 체제가 통용된다. 몇몇 학자들은 스위스의 민주주의는 자국 시민 대다수의 인식 불능cognitive incapacity이라는 바위에 부딪혀 박살이 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그런데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이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고 안정적인 민주국가의 하나가 되었다.

21세기 초, 여러 나라에서 정치적 결정 시 더 많은 참여 요청이 제기되었다. 유럽 각국의 국민들은 평균적으로 지적 능력 부족이라는 평가가 들어맞는 교육 수준을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에서 순전히 대의적인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은 계속해서 레퍼렌덤 투표 결과가 한 사회의 자유주의적이고 개방적이며 연대적인 발전에 큰 저해 요인이 될 수 있는 상황을 환기시키려 한다. 어떤 여론 조사에서는 국민발안을 통해 사형제가 다시 도입될 수도 있으며, 정치적 난민법을 거의 적용할 수 없게 될 것이고, 석유 소비세나 자동차세 등의 세금이 삭감되리라고 예측했다. 스위스에서 직접 민주주의 법 시행이 확정되고 15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런 일들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논쟁은 한 세기 반에 걸친 민주주의 체제의 발전과 대중의 학교 교육 및 온갖 정보 전달 매체의 파급에 따른 평균적인 시민의 정치력 향상을 간과하는 듯하다.

그 외 몇몇 산업 국가들에서도 전에 없이 문화, 기술 및 교육 조건이 민주주의를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이제 더 이상 어떤 한정된 일부 사람들만이 정치적 문제를 이끌어가도록 교육을 받거나 소명을 지녔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더구나 보통 시민들에 비해 정치적 현안을 더 잘 판단할 능력이 있는 정치 엘리트가 있다고 추정할 이유도 없다. 선거와 정당 내에서 쌓은 정치적 이력이 자동으로 보통 시민으로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앞선 정치적 지성”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민주주의에서는 전문 정치인이 아닌 보통 시민들이 정치적 현안에 참여하기 위해 필수적인 정치적 성숙도를 평가하는 시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정치 계급은 그에 속하지 않는 보통 시민들과는 다른, 어떤 사회적 엘리트라는 이미지를 조성하는 경우가 있다.

반면, 주요 레퍼렌덤 법률 조항들이 보완된 민주적 체제에서 시민과 정치인의 관계는 대의적인 체제와 확연히 다르다. 전자의 경우, 정치인들이건 시민들이건 정치적 결정에 개입할 자유와 기회가 있다. 물론 행동할 기회 면에서는 다르다. 정치인들과 시민들은 서로 동등한 존엄성을 갖고 만난다.

 

정치적 결정을 독점하면서

평범한 시민들의 역량 부족을 주장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 자체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논지이다. 시민들이 단일 정치 현안에 대해 결정할 능력이 없다면, 어떻게 자신들을 위해 결정을 내리도록 입후보한 사람들을 제대로 평가할 능력이 있을 수 있겠는가?

사실 한 후보를 선출하는 경우 단지 한 사람의 도덕적, 지적 완전무결함이나 그의 역량과 능력만이 아니라, 그의 정치적 플랜도 전체적으로 알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이 여러 정당과 후보들을 선별할 능력이 있지만 구체적인 정치 현안들에 대해 판단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면 서로 모순된 이야기이다.

이러한 비판은 은연중 정치인에 대한 거의 신화에 가까운 지도자상을 제시하기도 한다. 뛰어나게 지적이고 지극히 견문이 넓으며 이성적이고 도덕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현명한 정치가, 이를테면 어느 행정 조직의 수장과 대학 교수를 완벽히 결합해 놓은 이상적인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정부가 공동선을 위해 나라를 다스리는 데 전념하는 전문가로서 어느 누구보다 국가 통치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들을 더 잘 알고 있는 전문가에게 맡겨 두어야 한다는 생각은 항상 민주적 사고의 주적主敵이었다. 보통 선거권을 얻기 위한 시민들의 투쟁이 이어졌던 시대에 이런 태도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정당성을 얻곤 했다. 로버트 달은 전문가들의 말을 이렇게 비꼬아 비유한다.

“여러분처럼 우리 또한 인간의 타고난 평등을 확고하게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동선을 이루기 위한 헌신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어떻게 그것을 더 잘 실현할 수 있을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나라를 다스리기에 훨씬 더 적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독점적인 통치권을 보장해 준다면, 우리의 지혜와 힘을 모아 공동선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이익도 똑같이 고려할 것입니다”(. 로버트 달, 2000년)

이는 정치적 인물의 선택을 좌우하거나 투표권을 제한하기 위해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논점이었다. 오늘날 대의적 민주주의 안에서 시민들은 단순히 대표자들을 선출하고 위임하지만, 결정은 정치인들만이 한다. 오늘날의 이탈리아처럼 레퍼렌덤 권리가 매우 제한되어 있고 레퍼렌덤 투표가 매우 드문 상태에서 상황은 비슷하다.

정치인들은 모든 종류의 수단을 독점한다. 거의 모든 주요 현안을 결정하기 위한 수단과 정치적 의제를 정하기 위한 수단 및 자신들의 입장을 선전할 금전적 재원을 활용하는 일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러한 그들의 독점적인 수단 점유는 정치인과 시민들 사이의 권력 불균형의 뿌리에서 출발한다. 아직까지 이 불균형은 두 가지 주요 논점으로 정당화되고 있는데, 선거라는 민주적 합법화 행위와 정치적 인물의 전문가적 능력이다. 민주적 선거를 통한 합법화라는 본질에 흠잡을 데가 없다면(오늘날 선출되기 위해 시행 중인 선거 시스템에 대해 할 얘기가 많겠지만), 정치적 능력의 습득을 오로지 의회 활동에만 연결시키는 무의식적인 연상 작용은 매우 의심가는 구석이 많다.

 

민주주의와 전문가 정치

보통 시민은 엘리트 정치인에 비해 무능하다는 잘못된 생각을 키우는 데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전문가들도 한몫하고 있다. 기술이 발달하고 산업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과학적 엘리트들도 항상 더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권력자들의 이익을 대변하여 민주적 대의 기관의 조정력 및 입법 능력에 도전한다. 우리 사회처럼 점점 더 복잡해져 가는 사회에서는 종종 자신의 안녕에 직접 영향을 주게 될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전문가들의 견해를 구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나 어떤 결정을 전문가들에게 자문하는 것은 더 중요한 결정에 대한 최후의 통제력을 양도하는 것과 다르다. 전자는 정부에서 전문가들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고, 후자는 어떤 엘리트 집단에게 우리가 지켜야 할 법률과 정치적 결정을 할 권한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누가 혹은 어떤 단체가 한 나라나 지역을 다스리는 과정에서 내리는 결정에서 최종 발언을 해야 하느냐에 달려 있다!” (로버트 달, 2000년). 이제 민주국가의 통치는 물리나 화학, 혹은 극단적인 경우 의학 같은 과학이 아니다.

“한편으로 실제로 모든 중요한 정치적 결정은 개인적인 것이건 정부 차원에서건 윤리적 판단을 의미하며, 이런 판단은 대개 ‘과학적’ 판단이 아니다. 게다가 항상 활용 수단에 대해 확신할 수 없고, 갈등의 여지도 크다. 곧 어떻게 목표에 도달할 것인가, 혹은 방법의 바람직함, 실용성, 수용성과 그 결과로 나올 수 있는 것들을 말한다.(”로 버트 달, 2000년)

전문가들이 시민들의 심부름꾼으로, 곧 특정 임무를 지니고 봉사하기 위해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그들이 통치자로 봉사할 자격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로버트 달을 비롯하여 가장 권위 있는 정치학자나 우리 시대 민주주의 학자들 중 누군가가 그들을 선택하라고 강요 할 수는 없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어떤 논점을 “과학적 근거가 없다”거나 전문적이지 못한 것으로 깍아 내림으로써 선출된 기관의 합법성을 부인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유권자들이 함께 모두에게 구속력을 지닌 법규를 정할 때 그 합법성을 부인할 수 없다. “전문가 정치expertcracy”에 대한 토론은 지난 정부나 주, 현 정부에서 다양한 자문을 받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지급함에 따라 더욱 뜨거워졌다. 전문가들의 자격이나 역량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더라도, 그들을 선택하여 받는 자문의 종류, 조건 등이 종종 그리 투명하지 않다는 점에서 정치인들이나 관련된 이익 집단에 의해 결정되는 위험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의 역할이 남용되지 않으려면, 정치적 엘리트들 편에서 결정 과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 목적을 위해 가장 유용한 수단의 하나는 발안권과 레퍼렌덤을 갖춘 직접 민주주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 정치”는 투명성을 요구하고, 전문가들 자체의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역할을 요청하는 시민들 자체의 역할을 강화시킴으로써 균형을 찾아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적법한 전문가들과 레퍼렌덤의 시민 발안자들은 물론 시민 유권자들 사이에 적대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민들이 행사하는 많은 공공 발안에 대한 재원은 매우 한정되어 있지만, 과학적 지식과 기술자와 전문가의 견해를 활용할 수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와 “전문가 정치” 사이에서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여, 정치적 결정을 하는 사람들과 지식과 학위를 갖춘 정당한 전문가 자격으로 조언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사람들 사이의 역할을 분명히 구분짓는 것이다.

잘 제도화된 레퍼렌덤 권리 체제에서 전문가들은, 그저 엘리트 정치인들만 설득하면 되는 순전히 대의적 체제에 비해 자신들의 견해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더 어렵다. 스위스의 투표를 보면 유권자들이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혹은 그에 반대하여 어떤 편견을 지니고 투표를 하지 않는다. 스위스 유권자들은 대개 전문가적 식별이나 순전히 학문적인 추론과는 상관없이 기술적 기준과 조정 평가를 결합하여 신중하게 투표한다. 스위스에서 국민들은 최종 분석에서 전문가들의 역할이 지나치게 두드러지면, 자유 시민들의 자주적 결정력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더욱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자주적 결정력은 스위스 시민들에게 매우 소중한 개념이다.

레퍼렌덤 도구를 통해, 정치 기구에 선출된 이들의 전반적 책임 제한이나 수정 없이도 극소수 정치인들의 손에 결정이 독점되는 관행은 대폭 무너졌다. 무능한 시민상은 사라지고, 능동적이고 관심이 크며 더욱 책임감 있고 정치적으로 더욱 유능하고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잘 알고 있는 시민상으로 대체되었다. 동시에 정치인 상도 바뀌었다. 소수의 다른 정치인들이나 로비스트 만을 상대하여 고차원의 결정을 함께 내리던 이미지에서, 좀 더 지상의 현실로 내려와 “보통 시민들”과 상대해야 하는 정치인 이미지로 바뀌었다. 정치인들은 이 과정을 권력이나 지위의 상실이 아니라 공감력과 인류애를 더욱 확대시킬 기회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피지배자subject에서 주의 깊고 역량 있는 시민으로

“행하면서 배운다”는 경구가 있다. 입법부에서 일하는 데 필요한 능력은 입법 절차에서 발휘됨으로써 가장 잘 드러나고 습득될 수 있듯이 직접 민주주의에서 레퍼렌덤과 발안 절차들은 마찬가지로 평범한 시민들 사이에서 정치적 능력을 키워 준다. 이런 맥락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훈련장”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한편으로 공교육은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정치적 견해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결정적인 도구들을 갖추게 해주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투표권을 지닌 이들의 숫자가 점차 확대되면서 보통 선거권에 이르는 수단이 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1946년 보통 선거권이 도입되어 민주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모두에게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정치 생활 참여가 선거인 투표로 끝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주로 보통 시민들을 정치
적 결정에 참여시키고 “교육할” 수 있는 도구들이 필요하다.

스위스에서 제도상 보장된 레퍼렌덤 권리는 시민들에게 정부나 정당에 좌우되지 않는 결정 권력을 부여한다. 시민들은 능동적으로 국가 운영이나 사회 발전에 참여할 수 있으므로 훨씬 더 정치적 현안을 주시할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직접 민주주의는 모든 이를 위한 공교육 및 정치적 양성 프로그램으로도 활용된다. 취리히 대학의 정치학자 마티아스 벤츠와 알로이즈 슈튜처는 이 점에서 참여권을 더 많이 누리는 시민들일수록 정치 현안에 대해서도 정보 전달을 더 잘 받고 있음을 보여주었다(마티아스 벤츠Mattias Benz, 알로이즈 슈튜처Alois Stutzer, ‘유권자들은 정치에서 더 발언권이 클수록 정보를 더 잘 전달받고 있는가? Are voters better informed when they have a larger say in politics?, “공공 선택Public Choice”에서 119번 (2004), 31~59쪽).

시민들은 목표에 도달하려면 자치적으로 공동의 협력방식을 찾아야 한다. 국민발안이나 레퍼렌덤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원의 서명 모음과 의사전달 역량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조직력을 개발하고, 어떻게 캠페인을 벌이고, 어떻게 자원(금전적, 물리적, 인간적)을 마련하며, 어떻게 정보를 전달하고 공공 토론을 조직하며, 어떻게 동맹을 결성하고 괜찮은 절충안을 찾으며, 어떻게 정치 권력을 다룰지를 배운다. 직접 민주주의는 그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진지하게 레퍼런뎀 캠페인의 준비와 실행 하는 것 또한 의미한다.

이탈리아 헌법 또한 시민들의 참여 증진을 규정하며, 이를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는 것으로 인정한다(이탈리아 헌법 제118조). 점차 정치적 헌신을 고무하는 방식이 강화되면서 무능력한 시민이라는 신화도 사라지고, 시민들 사이에서 신뢰를 형성하는 올바른 메커니즘이 자리잡는다. 그러나 그러한 메커니즘은 시민들의 헌신이 있을 때, 다시 말해, 시민들의 헌신과 표가 글자 그대로 “결정적”인 요인일 때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탈리아에서 공공 교육 기관들의 영향력이 약하여 이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므로 직접 민주주의의 유효성을 믿는 사람은 반드시 시민들이 필요한 역량을 습득하고 함양할 수 있는 적절하고 효과적인 방식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는 관심을 유지하고 방심하지 않으며 정보를 갖춘 시민들을 전제로 하며, 모든 국민을 대신하여 생각하고 결정할 권리를 독점하는 계몽된 소수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엘리트적 개념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잘 발달된 직접 민주주의에서는 결국 최후의 발언권은 늘 온전히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금, 2019/09/20-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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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자일스(Chris Giles), 런던 파이낸셜타임즈(FT), 2019.08.24

영국은행 총재 마크 카니(Mark Carney)는 미 달러에 대한 전 세계의 의존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을 것”이며, 달러가 더 많은 세계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국제 통화 및 금융 시스템으로 대체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개최되는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들의 연례 모임인 잭슨홀 미팅 연설에서 카니 총재는 IMF에 새로운 통화 시스템을 책임질 것을 요구하며, 신흥국가들을 협박하는달러의 자본유출로부터 구하고 미국 달러를 보유할 필요성을 없앨 것을 촉구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IMF가 다국적 시스템을 구축하여 “판도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년 동안 캐나다 및 영국의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한 마크 카니는 국제금융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다른 정책 입안자들에게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다른 국가의 중앙은행 총재들 앞에게 발표한 연설에서 그는 특히 신흥국들에 호소하며, 미래의 IMF 총재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카니 총재는 내년 1월 말 영국은행을 떠날 예정이지만, 유럽 및 미국의 지원 부족으로 인해 현재 IMF에서 최고위직을 맡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금요일 연설에서 세계 경제에서 과도하게 위력을 가진 달러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국제 통화 및 금융 시스템의 결함이 점점 더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통화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조차도 달러 중심의 현상이 지속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영국은행 총재는 미국이 세계 무역의 10% 및 세계 GDP의 15%를 차지하지만 무역 송장의 절반 및 증권 발행의 3분의 2 정도가 달러로 이루어 진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세계 경제가 재정비되는 기간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미 달러가 브레턴 우즈(Bretton Woods) 체제가 1971년 붕괴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 달러의 변동은 미국과의 직접적 무역관계가 거의 없는 국가들에게도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이것은 잠재적 자본도피 현상에 대비하기 위해 자가보험을 설정하고 달러를 비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과도한 저축 및 세계적 저성장을 초래한다.

카니 총재는 이처럼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국제 통화 체제가 세계 금리 인하의 원인이 되며, 각국의 중앙 은행들이 경기 침체에 대처하는 데에 겪는 어려움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 국가들이 “가능한 최선의 방식으로 카드들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며, 그들의 통화정책 결정에 잠재적 국제 유출에 대한 사항을 추가해야만 세계 경제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화 시장에서 달러가 우세한 상황은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입지가 점차 줄어든다면 지금처럼 작동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그는 중기적 관점에서 달러 중심의 핫머니 흐름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자 하는 모든 국가들과 함께 IMF가 자본 도피에 대처하기 위한 글로벌 펀드를 설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IMF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189개 회원국에 그 비용을 분배하는 것이 개별 국가들이 자가보험으로 부담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라고 말하며 향후 10년간 IMF 자금을 3배인 3조 달러로 늘릴 것을 요구했다.

카니 총재는 장기적 관점에서 중국의 인민폐가 달러에 대항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다극적 세계 경제를 만드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그는 “중앙은행의 디지털 통화 네트워크를 통해 합성기축통화(synthetic hegemonic currency)” 역할을 할 수 있는 세계 전자화폐를 만드는 데에 더욱 신경 쓸 것을 제안했다. 그는 이것이 “미 달러가 세계무역에 미치는 지배적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는 미국 발 충격이 지금과 같이 전 세계에 반향을 일으키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The rise of the Petroyuan:

비상하는 페트로 위안(Petroyuan)

폴 안토노폴로스(Paul Antonopoulos), 포트 루스 뉴스의 편집장, 새로 설립된 다극화 연구센터 소장 및 혼합주의 연구 센터 연구원

베네수엘라처럼 자국 경제를 달러에서 해방시키려다 공격을 받은 국가들뿐 아니라 브릭스 국가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도 마찬가지로 미 달러 패권에 저항하면서 이를 세계 경제에서 자국 발전 및 자주권의 저해요소로 여기고 있다.

이들 국가의 집단적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 블록을 형성하고 있으며, 최근 수 년간 가장 큰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지정학적으로 달러의 실존적 위기를 심화시킨다.

중국과 러시아는 2017년 680억 위안(약 100억 달러) 규모의 투자펀드를 설립했지만, 3년 동안 양국 통화교환협정을 연장할 계획이다. 이것은 2017년 상반기 8개월 동안 유라시아의 두 거대국간 교역이 3분의1 증가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2018년 러시아는 약 10억 달러 상당의 국가채무채권을 중국 위안화로 거래하기를 원했다. 이는 중국 정부의 조치를 반영함과 동시에 중국 국경 너머의 자금 조달 및 국가 예치금으로 사용되는 달러에 대한 대체 통화로서 위안화의 범위를 크게 확대하는 조치다.

중국도 원유가격을 위안화로 표기하기 시작했지만, 이를 위해서는 생산국들이 위안화를 결제 형태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미 나이지리아, 앙골라, 베네수엘라, 러시아 및 이란과 원유를 위안으로 거래하기 위한 사전약정을 맺었는데, 이는 미국 오일달러의 지배권을 약화시키고 위안화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 경제를 조성하기 위한 첫 단계를 뒷받침한다.

소련 붕괴 후 미국의 패권적 단극체제로 인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대안을 이제 택할 수 있는이란, 러시아 및 베네수엘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다극적 국제무역체계는 미국이라는 단독 행위자에 의한 독단적 제재의 범위를 축소시킬 것으로 보인다.

중국, 러시아,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들 및 이란 및 터키와 같은 잠재적 회원국들은 자의적 금융시스템에 대한 취약성을 줄이려는 준비를 하고 있다.

이 국가들이 미 달러를 우회하는 무역 청산을 위한 양국협정에 의존한다면 미 달러는 세계 준비 통화로서의 지위가 하락하고 다른 통화들이 달러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 이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시장에 변화를 가져오기 어려울 것이다.

이란은 미 재무부의 불법적 제재로 인해 중국 위안화를 통한 원유거래를 가장 먼저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2017년 베네수엘라가 이에 합세했다. 같은 이유로 러시아도 2015년 위안화를 기반으로 한 일부 원유거래에 합의했다.

달러의 하락은 미 정부의 중국, 러시아, 베네수엘라 및 기타 국가들과의 경제 전쟁 능력을 약화시킨다. 일대일로(BRI, Belt and Road Initiative) 전략은 중국 및 러시아에 유리한 방향으로 세계 권력 균형을 바꿀 수 있는 금 기반 화폐를 포함하고 있다.

미 달러 대신 중국 위안화 사용을 권장하는 계획은 BRI의 맥락에서 중국을 중앙아시아, 러시아, 유럽 및 중동 국가들과 연결하는 철도망 사업에 자금을 조달할 필요에 의해 세워졌다. 이것은 중국의 광활한 국경을 통과하는 물자의 육로 흐름을 허용한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일대일로 전략 하에서 철도망 건설은 중국이 중앙아시아의 전략적 천연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도록 아시아를 통합하는 데에 기여하며, 나아가 중국 상품을 새로운 잠재적 시장에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할 것이다.

중국 및 러시아 간 직접 결제 시스템을 통해 이들은 유라시아, 브릭스(BRICS), 베네수엘라 등 다른 BRI 국가들과 새로운 지정학적 중심적 축의 일부로 결합될 것이다.

직접 결제 시스템은 정치적으로 협박하며 투기적인 미 달러 체계와는 별개로 금으로 대체되는 대안 통화체계를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페트로-달러를 대체하기 위한 페트로-위안 전략은 미국의 제재로 고통 받는 국가들이 미 정부에 의한 패권적 침략의 권력과 무력간섭을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온전한 국가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수, 2019/10/1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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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의 세 위원회가 Donald Trump의 탄핵조사를 진행함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트윗을 남겼다.

“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탄핵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이는 ‘쿠데타’이다.” Britannica 백과사전은 쿠데타를 ‘소규모 집단에 의한 갑작스럽고, 폭력적인 기존 정부의 전복’으로 정의하고 있다.

반면, 연방의회는 탄핵의 대상이 되는 불법행위 혐의를 조사하기 위한 헌법 상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이러한 불법행위는 중대한 범죄와 경범죄를 의미한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처음부터 탄핵을 ‘정치적 무기이며 내전을 제외하고 가장 강력한 무기’라 일컬었다.

탄핵은 미국 헌법 제1조, 제2조, 제3조에서 6번 언급된다.

‘탄핵의 유일한 권력’은 연방하원에 있다. 탄핵은 기소와 같은 것이다. 투표에 참여한 하원의원 중 단순 과반수가 찬성하여야 한다. 이 경우 사건은 재판을 위해 상원으로 넘어간다. 상원 의원의 3분의 2가 찬성할 경우, 대통령은 탄핵을 선고받아 파면된다.

1974년 하원 법사위원회의 참모가 작성한 Nixon 탄핵조사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언급하였다. “폭군과 협력자들에 의한 독재에 대한 저항으로 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미 헌법의 최초 입안자들은 행정부의 권력 남용과 권력 찬탈에 대한 보호장치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탄핵사유는 형사범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974년 법사위원회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언급하였다. “형사사건과 달리, 대통령의 해임 사유는 그가 재직 중 행한 일련의 행위 전체에 기반할 수 있다. 특정 상황에는 개별 행위가 아닌 일련의 행위가 헌법 정치를 전복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Alexander Hamilton은 탄핵의 대상이 되는 불법행위를 정치적인 것으로 특징지었다. 그는 연방주의자(Federalist)논고 65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탄핵의 대상이 되는 불법행위는 공직자의 위법 행위, 다시 말해 공공 신뢰의 남용 또는 위반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불법행위는 주로 사회의 직접적 손해와 관련이 있기에, 특유한 적절성을 갖출 경우, ‘정치적인’ 것으로 일컬어질 수 있다.”

Trump의 권력 남용과 사법 방해에 대한 증거는 풍부하다. 그리고 두 가지 모두 탄핵의 대상이 되는 명백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Evidence of Abuse of Power

권력 남용의 증거

지난 8월 정보기관 감찰관인 Michael Atkinson은 내부고발자의 Trump에 대한 고발장이 ‘긴급한 사안’을 제기하였고, ‘믿을만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내부고발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작성하였다.

나는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미국 정부 관료들로부터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공직 상의 권력을 이용해 타 국가가2020년 미국 대선에 개입하도록 요청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이러한 개입은 다른 무엇들보다도, 타 국가가 대통령의 주요 국내 정치적 라이벌을 조사하도록 압박하는 것을 포함하였다.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Ruldoph Giuliani씨는 이러한 활동의 중심 인물이다. 법무장관 Barr 역시 개입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Volodymyr Zelensky는 Trump와의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내부고발자의 고발장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다수의 미국 정부 관료들은 내게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미국 대통령과 Zelensky 대통령 간의 회담이나 전화통화가”, Giuliani가 제시한 “이슈들에 대해 Zelensky가 협조의사를 보이는지 여부에 달려있다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Trump는 내부고발자의 신뢰도를 비난하며 다음과 같은 트윗을 남겼다.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통화의 내용에 대한 고발은 사기다!” 그러나 2019년 7월 25일 Trump와 Zelensky의 전화통화에 대한 요약본이 해당 고발장을 확증하였다.

해당 통화로부터 약 일주일 전, Trump는 Mick Mulvaney 비서실장 대행에게 의회가 승인한 우크라이나에게 제공할 약 4억 달러 상당의 군사적 원조를 보류할 것을 아무런 설명 없이 지시하였다.

통화 중 Zelensky는 Javelin 대탱크 미사일을 미국으로부터 구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러자 Trump는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 많은 일이 있었고, 우크라이나가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만큼 한가지 부탁을 하고 싶다.” Zelensky에게 CrowdStrike(2016년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 해킹을 조사한 사이버 보안 회사)의 조사를 요청한 후, Trump는 Zelensky에게 대통령 후보인 Joe Biden과 우크라이나에 있는 그의 아들에 대해 제기된 부정의혹을 조사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Trump는 당시 부통령이었던 Biden과 아들인 Hunter Biden이 이사회에 재직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가스회사의 조사를 방해하고자 부패 검사의 해고를 촉구한 혐의로 기소하였다. 그러나 Biden은 우크라이나 당국에 의해 모든 혐의를 벗은 상황이었다.

통화 요약본은 Trump가 Zelensky에게 한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였다.

“법무장관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좋을 것이다. Biden은 자신이 기소를 중지시켰다고 뽐내고 다녔으니, 그것을 조사해볼 수 있다면….. 내게는 끔찍한 이야기로 들린다.”

마침표는 요약본 원문 중 일부가 생략되었음을 나타낸다.

Trump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와 Zelensky의 워싱턴 방문을 대가로 Zelensky에게 Biden 부자와 2016년 대선을 조사할 것을 압박하였다는 추가 증거가 나타났다.

10월 3일, 전 국무부우크라이나 특사 Kurt Volker가 하원 조사관들과의 인터뷰에서 대가성 보상이 있는 거래를 입증하는 문자메시지 기록을 제출하였다. Trump와 Zelensky의 통화가 있었던 7월 25일 아침에 보낸 문자메시지에 따르면, Volker는 Zelensky의 보좌관에게 다음과 같이 메시지를 보냈다. “백악관에서 들은 내용이다. Z 대통령이 Trump에게 조사 의사를 확신시켜준다면 / 2016년의 진상을 밝혀낼 것이라고 한다면, 워싱턴 방문일정을 확정 지을 수 있을 것이다.”

8월 9일, 유럽연합(EU) 주재 미국 대사 Gordon Sondland는 Volker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 “미국 대통령은 약속한 내용이 지켜지기를 정말로 원하는 것 같다.”

Sondland는 Zelensky가 기자회견을 열어 조사의사를 밝힐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하였다.

9월 9일,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리대사 William B. “Bill” Taylor는 Sondland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전화에서 말한 대로, 선거운동에 도움을 얻기 위해 안보 원조를 보류하는 것은 미친짓이라 생각한다.”

Taylor는 의회가 승인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의 보류 결정이 이미 “악몽과 같은 시나리오”로 이어졌다고 불평하였다.

“탄핵의 대상이 되는 불법행위는 대통령의 심각한 권력 남용, 그리고 심각한 공공 신뢰 남용을 수반한다.” North Carolina 대학교 법학 교수 Michael Gerhardt가 Los Angeles Times에 밝힌 내용이다.

“Trump 대통령의 통화는 두 가지 모두에 해당된다. 이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국가가 아닌 자신이 이득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기에 권력 남용에 해당된다. 그리고 미국인은 대통령이, 사업체들이 자신들의 뱃속을 불리도록 이끌어가는 방식, 또는 타국 권력과 협력 또는 공모하여 미국 대선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사적 거래를 하지 않을 것이라 신뢰하기 때문에 이는 배임에 해당된다.”

권력의 남용은 Nixon에 대해 제기된 탄핵소추안 조항들 중 하나였는데, 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 침입이 일어난 Watergate 사건에서의 본인의 역할을 은폐하기 위해벌인 공모에 대한 것이었다.

Evidence of Obstruction of Justice

사법 방해의 증거

하원 정보위원회에서의 증언에서 국가정보국 국장 대행 Joseph Maguire는 감찰관 Atkinson이 내부고발자가 신뢰할 만하고 선의에서 행동하였다는 ‘타당한 결론’에 도달하였다고 인정하였다.

“내부고발자가 옳은 일을 하였고, 모든 단계에서 법을 준수하였다고 생각한다.”고 Maguire는 위원회에 진술하였다.

그러나 Maguire는 내부고발자 보호법에서 감찰관이 고발장이 ‘긴급한 사안’을 제기한다고 판단할 경우 해당 고발장을 의회에 전달하도록 정한 것을 따르지 않고, 백악관과 미국 법무부 법률자문국(OLC)을 찾았다. 그 자신이 해당 스캔들에 연루되어 있는 법무장관 William Barr의 감독 하에OLC는 내부고발자의 고발이 ‘긴급한 사안’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결정지었고, Maguire에게 그에게는 의회에 고발장을 보낼 의무가 없다고 조언하였다. 백악관이 대통령 특권의 적용을 고려하고 있었으나, 대중의 격분에 마주한 Trump는 해당 고발장을 공개하기로 결정하였다.

내부고발자는 7월 25일 통화의 녹취록 은폐도 주장하였다.

백악관 관료들은 내게 자신들이 백악관 변호인들에게 ‘지시를 받아’, 그러한 기록이 조정과 협정 체결, 그리고 내각 관료들 대상 배포를 위해 일반적으로 저장되는 컴퓨터 시스템에서 해당 전자 기록을 제거하였다고 말했다. 대신, 해당 기록은 특히 민감한 성격의 기밀 정보를 저장하고 다루기 위해 사용되는 독립된 전자시스템에 저장되었다. 한 백악관 관료는 해당 통화가 국가 안보 관점에서 조금이라도 민감한 내용을 전혀 담고 있지 않기에, 이러한 행위가 해당 전자 시스템의 남용에 해당된다고 기술하였다.

더 나아가, 백악관과 Giuliani는 하원 정보위원회, 외교위원회, 감독 및 개혁위원회의 탄핵조사에 따른 증인 및 문건 소환장에 불복하고 있다.

이러한 방해는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 위원장 Adam Schiff 하원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 Eliot Engel 하원위원, 감독 및 개혁위원회 위원장 Elijah Cummings 하원의원이 아래 진술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사법 방해의 증거들을 역시 제공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국무부]장관 Mike Pompeo는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자신의 정치적 적수를 중상 비방하도록 압박하였을 때 통화를 청취 중이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Pompeo 장관은 이제 하원 탄핵조사의 사실관계 증인이다. 그는 자신과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국무부 내 증인들을 위협하는것을 즉각 중지해야 한다.

국무부 직원들을 포함해 증인들을 위협하려 하거나, 그들이 의회와 대화하는 것을 막으려는 어떤 시도도 불법행위에 해당하며 탄핵조사 방해의 증거가 될 것이다. 이에 의회는 이러한 방해에서 어떠한 밝혀지지 않은 문건과 증언이 해당 내부고발을 확증하는 정보를 담고 있을 것이라는 점을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9월 30일, Trump는, Trump가 실각할 경우 내전 발발 가능성이 있음을 언급한 복음주의 목사 Robert Jeffress의 말을 인용하였다. “만일 민주주의자들이 대통령을 파면하는 데 성공한다면 (절대 불가능하겠지만), 이는 이 국가에 결코 치유될 수 없는, 내전과 같은 분열을 불러올 것이다.”라고 Trump는 트윗을 남겼다.

Harvard 법학 교수 John Coates가 Newsweek에 밝힌 바와 같이, 해당 트윗은 별도 탄핵의 ‘독립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 의회가 헌법 상의 탄핵과 파면 절차를 진행할 경우 내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위협하는 것은 전형적인 사법 방해라는 것이다.

사법 방해는 Richard Nixon과 Bill Clinton에 대해 제기되었던 탄핵소추안 둘 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조항이다. Nixon은 탄핵당하기 전 사임하였다. Clinton은 백악관 인턴 Monica Lewinsky와의 정사를 은폐하기 위해 위증한 혐의로 하원에 의해 탄핵되었으나, 상원에서 탄핵안이 부결되었다.

Trump Lashes Out

Trump가 악담을 늘어 놓다

Trump는 우크라이나와의 통화를 둘러싼 거센 비난여론에 매우 놀랐다. “그건 농담이었다. 그것으로 탄핵을?”이라고 그는 말했다. Trump는 현재 탄핵이 진행되고 있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Mueller 보고서 결과에 대해 트럼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우리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정말 끝났다.”

그러나, 방어적인 트윗 폭격을 남기지 않고서는 어떤 비판도 견디지 못하는 Trump가 탄핵조사에 참여하는 하원 의원들을 비판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 실제로 Trump는 정보위원장 Adam Schiff를반역죄를 들어 트위터 상에서 비난하였다. 반역죄는 전쟁 중 적에게 원조하거나 조력하는 것을 의미하나, Trump는 자신의 정치적 적수를 종종 반역죄라며 비난한다.

내부고발자의 고발에 대해 Trump는 염탐 행위가 처형으로 이어지던 ‘지난 사례들’을 상기시켰다.

“나는 내부고발자에게 정보를 준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 그것은 스파이에 가깝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UN 주재 미국 대표부 직원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우리가 똑똑했던 지난 날들에 우리가 무엇을 하곤 했는지 알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스파이나 반역을, 지금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곤 했다.”

Trump는 우익성향에 총기에 찬성하며 이민자를 증오하고 복음주의성향을 가진 자신의 지지기반층을 노리고, 자신의 권력 남용 혐의에 대한 조사가 “국민의 주권, ‘투표권’, 자유, 수정헌법 제2조, 종교, 군대, 국경 장벽, 그리고 미국 시민으로서 가지는 천부인권을 빼앗기 위한 것이다!”라고 트윗을 남기기도 하였다.

아마 가장 불안감을 주는 것은, 헌법 상으로 규정된 두번의 임기 후에도 대통령직을 맡겠다는 Trump의 위협일 것이다. 그는 UN 주재 미국 대표부 직원들과의 비공개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또 다른 4년 동안 성공적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원한다면 또 다른 4년, 그리고 또 다른 4년도.”

Trump는, “대통령이 행하면 불법이 아니다.”라는 말로 악명 높은 Nixon의 선례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심지어는 대통령도 법 위에 있을 수는 없다.

What’s Next?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원 위원회들이 탄핵조사를 위한 소환장을 계속하여 발부함에 따라 백악관은 이를 방해할 것으로 예상된다.

Harvard 법학 교수 Laurence Tribe는 The Guardian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게재하였다. “탄핵조사를 위해 하원 의회가 열리면, 이는 특별한 헌법 상의 힘을 행사하며, 불법한 대통령에 대한 최후의 억제수단 역할을 하게 된다. 때문에, 이는 거의 모든 대통령 특권이나 면책권을 뛰어넘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은 중대한 범죄나 경범죄를 저지르고도 자신의 범법행위를 밝히기 위한 노력들을 단순히 거부하는 것만으로 책임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세 위원회는 자신들의 일을 마친 후 결과를 하원 법사위원회에 보낼 것이고, 이후 법사위원회가 조사를 주도할 것이다. 법사위원회는 자체 공청회를 열 수 있는데, 이는 Nixon 탄핵조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James Reston Jr.는 The New York Times에 1974년의 “TV로 방송된 하원 법사위원회 [Watergate] 공청회의 위력”에 대한 글을 기고하였다. “그들은 전혀 정치적 분열을 보이지 않고, 대통령의 지독한 위법행위에 품위 있고 적절한 대처를 보였다. 이는 위원회 내 17명의 공화주의자들 중 7명으로 하여금 탄핵소추안 조항 중 적어도 하나에 찬성하도록 하기에 충분하였다.”

법사위원회는 조사의 범위를 결정할 것이다. 하원 의원 전원에게 탄핵소추안 조항을 제시함에 있어, 법사위원회는 조사의 범위를 우크라이나 게이트로 제한할 수도 있다. 또는 매일 생겨나는 듯한 다른 문제들까지 포함하도록 할 수 있다.

10월 3일, 반항적인 Trump는 중국에 Biden의 조사를 공개적으로 요청하며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은 Biden 부자의 조사에 착수하여야 한다. 중국에서 일어난 일이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일만큼 나쁘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고는 Trump가 곧 있을 중국과의 무역협상을 언급한 직후 이루어졌으며, Trump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덧붙였다. “그들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그들을 강제할) 엄청난 힘이 있다.” The New York Times는 Trump와 Barr가 “현재 대통령의 정치적 적수를 비방하는데 도움을 줄 것을 우크라이나와 호주, 이탈리아, 그리고 한 보도에 따르면 영국에 요청한 상태”라고 보도하였다.

미국 재무부의 고위관료들이 Trump의 납세 신고 감사와 관련하여 비밀리에 미국 국세청고위 관료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추가 내부고발도 있다. 하원 조사관들은 보수단체들과 적어도 하나의 타국 정부가 Trump의 호텔을 예약하고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Trump의 호의를 얻으려 했다는 주장도 조사하고 있다. 이러한 ‘유령 예약’은 미국의 보수 조항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그리고 Mueller 보고서는 러시아 게이트 수사 동안 있었던 사법 방해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하원이 예상되는 바와 같이 탄핵소추안을 가결한다면, 탄핵소추안은 상원으로 넘어가게 된다. 다수당 대표인 Mitch McConnell은 자신은 법에 따라, 그 문제를 취급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대법원장 John Roberts가 상원재판을 주재할 것이다. 그러나 상원은 기각 동의안을 통과시켜 재판 전체를 막을 수도 있다. Clinton 탄핵 소송절차에서민주당 상원의원 Robert Byrd가 발의한 탄핵소추 기각 동의안은 당의 방침과 뒤따른 5주간의 재판에 의해 무산되었다. 공화주의자들은 탄핵소추를 기각시키기에 충분한 수의 상원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갈수록 탄핵 지지율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론에 응하여야 할 것이다.

아직 답이 이루어지지 않은 질문들도 있다. 탄핵 조사의 범위는 어떻게 될 것인가? Trump가 탄핵될 것인가? 그렇다면 상원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탄핵은 2020년 선거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현재 스캔들에 연루된 Mike Pompeo와 William Barr, 부통령 Mike Pence도 우크라이나 게이트에서 역할로 인해 탄핵/면직되거나 기소 당할것인가?

Stay tuned

계속해서 주목하라

 

<원 출처: Global Research Center>

Marjorie Cohn

Thomas Jefferson법과대학 명예교수, 미국변호사협회(NLG) 전 협회장, 국제민주변호사협회(IADL) 사무차장, Veterans for Peace 자문위원

월, 2019/10/1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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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한과 일본에 산재되어 있는 유엔사라는 이름의 조직은 국제적 근거가 없는 임의적인 가설집단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소련이 참석하지 않는 상태에서 유엔안보리는 한국전쟁에서 남측을 지원하는 결의를 하였고 16개국이 참전을 결정하자 미국에게 이를 지휘하는 통합사령부의 통솔권을 부여하였다. 되풀이하면 유엔군의 파견이 아니라, 16개국의 군을 지휘하는 통합사령부를 권고하였다. 이후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이루어지면서 이는 자연스레 해소가 되어야 할 조직인 셈이었다.

그러나 미국 측은 1954년 제네바에서 제기된 정전의 후속조치인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거부한 채, 이후 정당한 국제적 근거와 조약도 없이 유엔사를 지속시켜 왔고, 급기야 DMZ 통제의 책임 주체임을 내세워 최근 남북간 평화와 화해를 향한 노력에 장애를 조성해 왔다.

실제 1975년 유엔 총회는 유엔사의 해체를 공식으로 결의하였고, 이에 대해 1976년 초 미국 행정부는 그의 이행을 약속하기도 했으나, 미군부의 반대로 시행을 보류하고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하여 남측 군대에 대한 작전과 통솔권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회피하여 왔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1992-3년 당시 유엔의 갈리 사무총장 역시 ‘유엔사는 유엔과 아무 관련이 없는 조직’임을 여러 번 확인하였고, 2018년 9월에도 유엔안보리에서 유엔 사무차장이 이러한 사실을 재확인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간 미국 측은 오히려 유엔사를 강화하여 동아시아 내 다국적의 지휘부로 격상시키려는 시도를 노골화하고 있으며, 북측에 대한 점령계획에 의거하여 대한민국 군대와 더불어 일본자위대를 공동으로 참여시키는 연합작전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탄할 일이다! 미국에 의한 임의적 가설 군사조직인 유엔사가 동아시아 다국적의 지휘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군대가 그 통제하에 들어간다는 의미이며, 따라서 대한민국이 한미연합사로부터 전시작전 지휘권을 되돌려 받는 것이 실제로 의미가 없는 무용지물이 될 위험에 처해 진다는 뜻이다.

때마침 다른백년도 참여하는 ‘유엔사 해체운동’이 발족되어 국내외적으로 46개 이상의 단체들이 참여한 가운데, 첫 작업의 일환으로 ‘유엔사의 지위에 대한 질의와 유엔 깃발 사용금지를 요청하는 서한’을 모두가 연명하여 국제민주법률가협회 사무총장 진 마이어 변호사의 이름으로 유엔사무국에 접수하였다. 서신의 내용을 아래에 소개한다.


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헤스 귀하

뉴욕시, 국제연합 본부

유엔사”의 한국과 일본에서의 유엔기사용에 대한 유엔사무총장의 입장

 

친애하는 사무총장님,

나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가 인정한 비정부기구인 본인의 조직과 이 서한을 지지하는 다른 시민사회단체들(이들 단체들의 목록은 3쪽에 있습니다)을 대신하여 이 서한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엔총회가 유엔의 이름을 옹호하기 위해 유엔초창기에 결의를 채택하였고, 유엔사무총장이 유엔기법을 채택하고 그 존엄성을 옹호하도록 유엔총회에 의해 승인된 바 있기에, 위 주제에 대한 총장님의 의견을 구하는 바입니다.

1. 미군은 1950년 7월 미국이 일방적으로 창설한 소위 “유엔군사령부”라는 이름으로 한국과 일본의 특정 군사기지에서 아직까지도 유엔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1950년 7월 7일 유엔안전보장 이사회 결의 84에 기반하여 유엔기의 사용을 정당화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유엔기사용에는 몇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안보리는 안보리결의 84호에 의해 권고된 유엔이 아닌 다국적통합사령부에 유엔기의 사용을 승인하는데 있어서 중대한 실수를 범했습니다. 아마도 당시 몇몇 안보리회원국들은 안보리에 그런 권한이 있다고 믿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시 유엔헌장과 유엔법에 대한 최고의 국제법학자였던 한스 켈센 교수에 의하면 그러한 견해는 “유엔헌장이나 총회결의167(II)호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더군다나 안보리결의84호는 “북한군에 대한 작전 중” 유엔기사용을 “통합군사령부”에 승인했지만 미군은 한국에서 군사작전을 펼치면서 전쟁 초부터 “유엔군사령부”란 이름으로 유엔기를 사용했습니다.

2. 유엔기법은 1947년 12월 19일 처음 공표되었고 그 8항에 “유엔기는 이 유엔기법에 따라서만 사용할 수 있다”고 적혀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은 군사작전에서의 깃발사용을 승인하는 조항이 아예 없었습니다. 1950년 7월 28일 트리그브 리 유엔사무총장은 “군사작전중 유엔깃발사용은 유엔관할기구가 구체적으로 이를 승인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된 6항의 새로운 문장을 깃발법에 추가하였습니다. 켈센 교수는 이 새 조항에 대해 안보리결의 84에 대한 “사후정당화”라고 비판했습니다.

3. 1972년 9월 15일 28개회원국이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이 국가들은 제27차 유엔총회에 “한반도의 자주적, 평화적 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한 우호적인 여건의 조성”이란 결의문 초안을 사무총장에게 제출하였고 이 결의문 제 2항에 의하면 총회는 “한국에서의…유엔깃발사용권의 폐기를 고려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 후 미국은 안보리에 보낸 서한에서 “유엔기사용의 자제를 포함하여 ‘유엔군사령부’의 노출을 줄이는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약 석달 후 미국은 안보리에 보낸 다른 서한에서 “1975년 8월 25일부터 유엔기”는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실행과 직접 관련된 시설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모든 군사시설에서 더 이상 게양하지 않을 것이라고 통지했습니다. 미국은 이 조치를 한국에서의 유엔기사용중지를 요구해온 회원국들의 의사에 반하여 일방적으로 취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조치는 사무총장의 권한과 의사를 무시한 조치였습니다.

4. 1993년 12월 24일, 비무장지대의 남·북간 경계선을 넘은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Boutros Boutros Ghali) 유엔사무총장은 자신은 판문점에 유엔기를 게양할 수 있는 권한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사무총장이전에 국제법학자이기도 한 그의 소견은 사실이며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1994년 6월 사무총장은 더 나아가 안보리결의 84호가 “안보리의 산하기구로 통합사령부를 설립하지 않았다.”고 명확히 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통합사령부”는 유엔안보리의 통제하에 있지 않으며 따라서 “유엔사령부”로 부를 수 없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총장님께 다음 4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1) 안보리결의 84호가 유엔기구가 아닌 “통합사령부”에 북한군에 대한 작전과정에서 유엔기사용을 승인한 것은 유엔헌장과 유엔기법을 위반한 것 아닙니까?

2) 미국이 자기주도로 소위 “유엔사”를 창설한 다음 “유엔사”라는 이름으로 유엔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안보리결의 84호의 위반 아닙니까?

3) 1953년 7월 27일 한국에서 실질적인 전투가 중단되었고 안보리결의 84호의 주요 목표가 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까지도 “유엔사령부”라는 이름으로 유엔기를 계속 사용함으로써 미국은 안보리결의 84호를 위반한 것 아닙니까?

4) 만약, 미국이 유엔헌장, 유엔기법, 그리고 안보리 결의 84호를 위반했다면, 한국과 일본에서의 유엔기의 남용을 중단시키기 위해서 사무총장님은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 것입니까?

이 문제에 대해 총장님의 관심과 친절한 답변이 최대한 빨리 이루어진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총장님께

국제민주법률가협회 사무총장 진 마이어


9월 30일자 최종 서신에는 23개 국내단체 23개 국제단체 총 46개 단체가 연명했습니다.

아시아-태평양법률가협회(Confederation of Lawyers of Asia and the Pacific-COLAP)

평화통일시민연대(Citizen’s Solidarity for Peace & Unification)

평화어머니회(Peace Mothers of Korea)

장준하부활시민연대(Citizen’s Coalition for Resurrection of Chang Jun Ha, the Patriot of Korea)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Korean Confederation of Trade Unions)

유라시아평화의길(Eurasia Peace Way)

한국청년연대(Korea Youth Solidarity)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미군문제연구위원회(Lawyers for a Democratic Society Research Committee on USFK Affairs)

다른백년(The Tomorrow)

전국농민회총연맹(National Federation of Peasant Society)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 Korean Women Peasant Association

전국여성연대(National Women’s Solidarity)

코리아국제평화포럼(Korea International Peace Forum)

AOK(Action One Korea)

민주노동자전국회의(Democratic Workers’ National Conference)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National Democratic Movement Families Association)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National Unification National Unity South Korea Headquarters)

진보대학생네트워크(Progressive College Student Network)

통일광장(Unification Square)

양심수후원회(Support Committee for Prisoners of Conscience for Justice, Peace and Human Rights)

한국진보연대(Korea Progressive Solidarity)

전국빈민연합(National Poverty Alliance)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Democratization Practice Family Movement Council)

한국대학생 진보연합(Progress Union of Korea univ. Students)

6.15 Committee of Section Europe.

Australian Anti-Bases Campaign Coalition.

Citizens Opposing Active Sonar Treats, USA.

The Columban Mission Society.

Des Moines Catholic Workers, USA.

Environmentalists against War, USA.

Global Network against Weapons & Nuclear power in Space.

Int’l Network of Engineers & Scientists for Global Responsibility.

National Association of Korean Americans, NAKA.

The Olympia Washington Fellowship of Reconciliation, USA.

Peace Philosophy center, BC, Canada.

Peace Women Partners Int’l.

Popai Liem Education Foundation, USA.

Swedish Peace Council.

Trident Ploughshares, XR peace, UK.

Policy Research for Development Alternatives, Bangladesh.

WorldBeyondWar, USA.

Peace Action, Maine, USA.

Peace Workers, USA.

Veterans for Peace, Korea-peace Campaign, USA.

Presbyterian Peace Network for Korea, USA.

SOAS Univ of London, Social Justice of Korean Students Union.

토, 2019/10/12-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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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대전이 모든 걸 흡수하는 와중에 정말 중요한 뉴스가 나왔다. 부동산 양도차익 등 불로소득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가 그것이다. 미디어의 보도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유승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2017년 귀속 양도소득과 금융소득’ 자료를 국세청에서 받았는데, 이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부동산 양도차익으로 인한 소득이 한 해 84조8천억원, 주식 양도차익이 17조4천억원, 배당 및 이자소득 등 금융소득은 33조4천억원이었다고 한다([단독] 불로소득 ‘136조’ 돈이 돈을 불렸다).

<출처: 한겨레>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부동산 양도차익 등 불로소득 규모는 135조6천억원인데 이는 2016년(112조 7천억원)보다 20% 증가한 액수다. 불로소득의 규모도 천문학적이지만 이 불로소득이 극소수에게 집중된다는 사실이 더욱 심각하다. 배당소득의 경우 2017년 전체 배당소득이 19조6천억원에 달했는데, 상위 0.1%에 해당하는 9,313명이 8조9387억원(전체의 45.7%)을, 상위 10%가 18조3740억원(전체의 93.9%)을 각각 차지했다. 이자소득도 상황은 비슷하다. 2017년 전체 이자소득은 13조8천억원인데, 상위 0.1%에 해당하는 5만2435명이 2조5331억원을(전체의 18.3%), 상위 10%에 해당하는 524만3532명이 12조5654억원(전체의 90.8%)을 각각 차지했다. 부동산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신고액수를 기준으로 줄 세웠을 때 상위 10%에 해당하는 부동산 거래로 인한 양도소득이 전체 소득 84조7947억원의 절반이 넘는 53조7913억원(63.4%)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하니 말이다.

배당소득, 이자소득, 부동산양도소득 등의 불로소득 편중도와 근로소득을 비교해 보면 불로소득의 양극화가 얼마나 극심한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근로소득의 경우 상위 0.1% 초고소득층(1만8005명)이 전체 근로소득(633조6천억원)의 2.3%를 차지하는데, 이는 자산소득의 불평등도에 견주면 귀여울 정도다.

 

부동산불로소득 환수가 가장 선행되어야  

불로소득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적이다. 불로소득이 창궐하고 시장참여자들이 불로소득을 추구문하면 자산양극화와 소득양극화가 심화되고, 자원배분이 왜곡되며, 기업가 정신과 근로의욕이 소멸하고, 사회적 연대의식이 저해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 불로소득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정당성과 효율성을 결정적으로 침해하는 암종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만사를 제쳐두고 불로소득의 공적 환수에 나서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불로소득의 공적 환수에 나설 때 무엇보다 먼저 손을 대야 하는 부문은 단연 부동산 불로소득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은 배당, 이자 등의 불로소득과 비교불가일만큼 규모가 크며(국세청 자료는 양도차익만 집계한 것이지만, 임대소득과 귀속임대소득까지 포함하면 GDP의 30%수준이다) 불로소득 중에서도 가장 악성의 불로소득이기 때문이다. 흔히 불로소득을 다 같은 불로소득으로 간주하기 쉽지만 이는 심각한 착각이다. 불로소득도 악성의 정도가 다르다.

불로소득의 악성 정도를 평가하는 기준을 1.기여 및 폐단의 정도, 2. 불로소득을 얻을 기회의 공평성, 3. 무책손실의 정도 이렇게 세 가지로 제시해보겠다. 주식과 부동산을 비교해 보자. 주식은 기업에 자금을 직접 제공하는 기여가 있으며, 비교적 금액이 크지 않아 주식투자로 인해 불로소득을 얻을 기회가 공평하고, 주식투자를 하지 않으면 손실을 볼 가능성이 없다. 반면 부동산은 사회경제적으로 폐단만 있으며, 금액이 너무 커 불로소득을 얻을 기회가 소수에게 집중되고,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아도 가격이 오르면 엄청난 손실을 본다.

모든 일에는 선후와 완급과 경중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노력소득은 보장하고 불로소득을 환수해야 한다. 불로소득의 환수 순위는 부동산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조국 대전에서 승리하고 검찰개혁에 성공하더라도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에 지금처럼 미온적이라면 문재인 정부의 앞날은 어두울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도 암담할 것이다.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의 성공여부에 대한민국의 앞날이 걸려 있다.

목, 2019/10/1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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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민주주의의 절차는 두 기둥을 기반으로 한다. 하나는 시민들에게 정치적 대리인들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권한을 주는 것으로, 이는 국회나 지방의회의 통제 기능이나 반대의 거부권 기능과 나란히 있는 일종의 통제수단이다. 다른 하나는 시민들이 대의 기구에 법률안이나 계획을 제출하여 능동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정치인들이 제시한 법제안을 거부하면, 그것을 레퍼렌덤에 부칠 수 있게 해 준다. 이 두 가지 도구는 확정적 레퍼렌덤과 국민발안권인데 4장과 5장에서는 이에 대해 다룬다.

국민발안권과 레퍼렌덤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속장치 및 제동 장치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권력층의 정치인들이 사회적인 주요 현안들을 정면으로 마주할 의향이 없을 때, 발안권은 가속 장치 역할을 한다. 반대로 레퍼렌덤은 정치인들이 어떤 문제를 국민들이 선호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할 때 비상 제동장치를 제공한다. 발안권의 경우, 시민들은 정치권에서 어떤 문제를 특정한 방식으로 해결하도록 박차를 가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결정한다. 레퍼렌덤의 경우, 시민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대리인들이 “소통하도록riferire(영어로 refer, 곧 ‘관계를 맺고 소통하다’는 의미를 지니며, referendum의 어원이기도 하다─역자 주)”, 곧 어떤 현안에 대해 그들을 대표인으로 세운 이들이 관심을 갖게끔 알리도록 압박을 가한다.

 

“레퍼렌덤”인가
“레퍼렌덤 관련 투표referendary vote”인가?

국제정치적인 논의에서나 정치학에서 “레퍼렘덤”이라 할 때는 항상 레퍼렌덤의 두 가지 주요 도구 (실행결정권과 투표권) 중 하나를 일컫는다. 곧 국회에서 승인된 어떤 규정이 시행에 들어가기 전에 저지하는 것과 투표에 부치는 것이다. “레퍼렌덤”이라는 용어는 어원 상 두 번째 정치 권한을 일컫는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는 모든 레퍼렌덤 관련 투표(이하 ‘레퍼렌덤 투표”─역자)를 “레퍼렌덤”이라고 정의한다. 어떤 목적으로, 혹은 어떤 정부 차원에서 투표하는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늘 모두 레퍼렌덤이라고 한다. 일상어에서 이 단어는 투표의 도구와 절차와 행위 모두를 가리킨다.

이탈리아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레퍼렌덤 투표가 있는 국민발안권은 아직 없다.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제안형 레퍼렌덤”이라고 정의해야 할 것이다(어떤 정치 세력은 그렇게 주장했다). 해외에서 그런 레퍼렌덤 투표는 늘 “국민발안”(스위스)이나 “발안initiative”(미국)이라고 정의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레퍼렌덤 도구이나 투표 모두 레퍼렌덤이라고 하는데, 그 때문에 용어에 혼동을 일으키곤 한다. 이탈리아의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는 법폐지를 위한 레퍼렌덤인데, 다른 나라에서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형태이다. 이 레퍼렌덤의 권한은 이미 존재하는 법률이나 규정을 폐지할 수 있는데, 그것을 새로운 법률로 대체하거나 이후에 시민들이 정책을 다듬어 제안하는 과정은 없다. 결국 이는 국민발안의 변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곧 어떤 법률의 도입이 아니라 폐지를 위한 것이다. 본문에서는 시민 직접 참여의 두 가지 주요 형태 중의 하나인 확정적 레퍼렌덤과 확실히 구분하기 위하여 투표 행위를 “레퍼렌덤 투표”라고 부른다.

 

시민들의 거부권 행사 권한

“권력은 통제가 필요하다.” 레퍼렌덤을 위한 정치적 권리가 마련된 주요 동기가 이것이다.

새로운 법률은 주권자인 시민에게 알리고 그들이 해당 법률을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거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9세기에 스위스 시민들은 입법 과정에서 자신들이 최종 발언권을 지닐 것을 요구했다. 최소 인원수 시민들의 요청에 따라 선출된 기관에서 승인한 어떤 법률에 대해 레퍼렌덤 투표를 실시할 권리를 요청한 것이다. 오늘날 이탈리아를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이러한 거부권 행사 권한을 발효시킬 수 있는 이는 단 한 사람, 곧 공화국의 대통령뿐이다. 때로 이 권한은 비상 브레이크에 비견된다. 이 권한으로 시민들은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는 법률을 저지할 수 있다. 확정적 레퍼렌덤이 스위스인들이 가장 많이 행사하는 레퍼렌덤 권한이라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는 1848년 모든 헌법적 법률에, 1874년 모든 연방법에 도입되었다. 스위스 국민들 중 일부가 연방의회나 칸톤의회가 통과시킨 법률을 막고자 할 때는 레퍼렌덤을 국민 동의의 시험대로 삼는다.

확정적 레퍼렌덤으로 시민들은 법률 혹은 선출된 기관들이 내리는 행정 명령에 대해서건 자신들의 의사를 표명할 수 있다. 이 도구는 시민들의 손에 대의 기관들을 통제할 진정한 권력을 쥐어 준다. 시민들은 그렇게 단지 선거 때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특정 결정에 개입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법을 위한 의무적 레퍼렌덤의 경우, 시민들의 요구가 없이도 국민투표가 개시된다. 대신 선택적 레퍼렌덤은 시민들이 요청해야 한다. 다시 말해 최소 인원수 이상의 발안자들이 정식으로 레퍼렌덤 요청을 제출하고, 짧은 시일내로 필요한 지지 서명을 모아야 한다. 모든 법률에는 주권자가 자신들의 레퍼렌덤 권한을 행사하지 않거나 그것을 요청할 기한(스위스에서는 칸톤에 따라 30~90일)이 경과되지 않을 경우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곧 아무도 레퍼렌덤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어야 법이 발효된다.

좁은 의미에서 레퍼렌덤(투표 행위가 아님)은 일종의 동의의 시험대이다. 정치적 대리인들이 바라는 법이나 심의가 시민들의 전반의 동의를 고려에 넣을 수 있을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때로 시민들이 선출한 정치 대리인들(국회, 주 의회, 기초자치단체 코뮤네 의회)의 결정은 공공연히 국민 대다수의 뜻과 다르다. 시민들 대다수의 뜻을 거스르는 법을 채택하는 것은 결국 민주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러므로 시민들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필요하다면 그 법률이 발효되기 이전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원칙적으로 지나치게 장기간 입법 기구를 방해하지 않고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입법 의회 쪽에서 어떤 법률를 승인한 후, 시민들(발안 위원회)은 매우 짧은 기간 동안 투표(혹은 거부권)를 요청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최소 인원수의 서명을 모아 국회에서 방금 기각된 법률에 대한 레퍼렌덤 투표 요청을 지원할 수 있다.

그 최소 인원수의 서명에 도달하면, 그 법률은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만일 그 법률이 동의의 시험대를 통과하면 발효되고, 통과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의회로 되돌아 간다. 이후 의회에서 바라는 법률이 국민들의 저지를 받았다면, 법률안은 다시 입법자들에게 되돌아 간다.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했으니, 입법자들은 그것을 포기하거나, 더욱 적절하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종류의 통제 도구를 선택적 확정 레퍼렌덤(협의의 레퍼렌덤)이라고 한다. ‘선택적’이란 것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레퍼렌덤 투표를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최고법(헌법)에 대해서는 시민들이 서명을 모아 요청하지 않더라도 레퍼렌덤 시행이 규정되어, 확정적 레퍼렌덤이 의무적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보통 헌법의 부분적이거나 전체적인 개정의 경우, 곧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들을 수정하는 경우, 이와 같은 레퍼렌덤이 규정되어 있다. 이런 경우 시민들은 반드시, 그리고 법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국토 재정비나 주요 법적 권한이 국제 조직(예를 들어, 유엔 같은 조직)에 양도될 때 의무적 레퍼렌덤을 실시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스위스와 달리, 국가적 법률이건 지방법이건 정규법 실행에 관한 레퍼렌덤 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스위스에서 협의적 레퍼렌덤이 훨씬 오랜 세월 활용된 레퍼렌덤 권리인 반면, 이탈리아에서는 그게 무엇인지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그도 그럴 것이 오직 법폐지를 위한 레퍼렌덤 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사회에 해로울 수 있는 법률이 발효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정규법의 “비상 브레이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 시민들의 이 “자기방어권”은 국회의원 2/3 이상의 승인을 받지 못한 헌법 개정에 대해서만 존재한다(헌법 제138조). 2001년과 2006년, 2016년, 시민들은 헌법의 개정법들을 확정하거나 거부하기 위한 투표 요청을 받았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프로디(전직 수상)의 개혁을 통과시켰지만(2001년), 베를루스코니의 개혁안은 기각했으며(2006년), 2016년 12월 렌치 정부가 추진한 개혁안 또한 기각했다. 이런 방식의 레퍼렌덤 투표에는 어떤 종류의 참여 정족수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러나 투표 결과는 항상 법적효력을 지닌다.

다양한 의무적 레퍼렌덤과 선택적 레퍼렌덤 및 국민발안 등은 잘 작동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두 가지 주요 기둥이다. 다른 도구들은 자문형 레퍼렌덤과 국민발안의 법률 제안이라는 기초적 도구들을 보완한다. 이탈리아에서 일반법을 위해 존재하는 유일한 레퍼렌덤 형태인 법폐지를 위한 레퍼렌덤은 결국 하나의 법률을 폐지하기 위한 국민발안에 불과하다. 레퍼렌덤은 늘 법적 구속력을 지니는 반면, 정치적 결정의 과정에 시민들을 참여시키고자 하는 그 밖의 참여 민주주의 형태들은 법적 구속력이 없으므로 결정적 중요성이 훨씬 떨어진다.

 

투표에 부칠 법률에 따른 확정적 레퍼렌덤 종류

이탈리아의 법률 제도는 단순히 국회의 과반수 이상으로 승인된 헌법 개정의 경우만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경우에도 선택적 확정 레퍼렌덤(이탈리아 헌법 제138조)을 시행한다.

▪트렌티노 알토아디제 주의 “정부 구성 법률들”에 대한 확정적 레퍼렌덤. 여러 현provincia 의회 소속 의원들의 1/5 혹은 유권자의 1/50의 요청에 따라 선거 제도와 직접 민주주의에 관한 주 법률에 대해 레퍼렌덤을 실시할 수 있다. 알토아디제 주에서 2014년 2월 9일 처음으로 이런 종류의 “적용” 법률에 대한 레퍼렌덤이 시행되었다.

▪트렌티노 알토아디제 주의 여러 기초자치단체 의회에서 당 기초자치단체 법령을 개정할 경우 거주 시민들이 확정적 레퍼렌덤을 요청할 수 있다. 2015년 발효된 기초자치단체 법령 관련 단일 문서는 시민들의 민주적 통제권의 이 새로운 돌파구를 열었으며, 몇몇 기초자치단체 (말레스, 아나우니아)에서는 그 권한을 당 의회의 승인을 받은 다른 모든 조례들에까지 확장시켰다.

▪이탈리아에서는 아직 국가적 일반법ordinary law에 대해서나 주의 일반법 혹은 주 법령regional statutes에 대해서도 확정적 레퍼렌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헌법에는(제123조) 주의 행정 명령 관련 법률 폐지를 위한 레퍼렌덤 권리가 규정되어 있는데, 이는 사후事後 레퍼렌덤의 한 형태로서, 주 차원의 모든 레퍼렌덤이 대부분 그렇듯이 거의 활용되고 있지 않다.

직접 민주주의에서는 어떻게 투표하는가? 국민 레퍼렌덤에서는 대개 아직 투표소에서 투표하는데, 이탈리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스위스나 독일 등 여러 나라와 미연방 여러 주에서는 일반 우편을 통한 투표 또한 허용함으로써 시민들 대다수가 우편시스템을 활용하여 투표한다. 인터넷을 통한 전자투표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대개 레퍼렌덤투표로는 다음의 방법들이 있다.

▪총회(강당에서 거수 투표나 투표함에 비밀 투표)

▪투표함(투표하는 일요일)

▪우편 투표(우편시스템을 이용)

▪전자 투표(인터넷)

▪마지막 3가지 형태(투표함, 우편, 인터넷)의 혼합형

스위스에서 단 두 칸톤(주)들만이 아직도 “란츠게마인데Landsgemeinde(스위스의 칸톤 차원 주민 총회─역자 주)”를 실시한다. 이는 주 단위로 열리는 모든 시민들의 연례 총회로서 입법 기능이 있으며, 거수로 법률과 추정 예산안을 승인한다. 그러나 스위스 기초자치단체의 70%에서는 기초자치단체 단위 집회에 참석한 모든 주민들의 투표(열린 투표나 비밀 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어쨌든 레퍼렌덤 투표에서 스위스 사람들 대다수가 아직 우편으로 투표한다. 또한 2015년부터 해외 거주 스위스인들은 인터넷을 통해 전자로 투표할 권리를 갖는다. 이 권한은 2019년에는 모든 스위스 시민들에게로 확대될 터인데, 이 해부터 스위스인들은 세 가지 투표 방법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은 그 외에도 전통적인 “란츠게마인데”(단 두 칸톤에서)와 결정을 위한 시 총회(작은 기초자치단체에서)에 직접 참여한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월, 2019/10/0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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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다른백년의 기획칼럼 기고자인 이만열(미국명: 페스트라이쉬)교수는 기후행동국제회의와 유엔총회 등 계기로 모국인 미국을 방문하여 여러 인사들과 인터뷰를 나누고 있다. 아래의 내용은 전 국무장관 파웰의 수석 보좌관과 함께 홍콩의 시위사태에 대한 미국의 배후 역할 등에 나눈 이야기이다. 인터뷰 일단의 내용을 통하여 트럼프 미행정부의 동아시아에 대한 정책결정 과정과 취약점을 느껴볼 수 있다.


아래는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Emanuel Pastreich)와 조지 부시 대통령시절 온건파로 알려졌던 파월 전국무장관의 수석 보좌관을 지낸 래리 윌커슨(Larry Wilkerson)의 인터뷰 내용이다.

페스트라이쉬: 비록 최근 홍콩시위가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느끼는 젊은이들 사이에 팽배한 불만에서 힘을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젊은 층의 불만이라는 측면에서만 설명될 수는 없다. 미국이 홍콩의 현재 정치위기 상황에 개입 혹은 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래리 윌커슨: 물론 우리(미국)는 베네수엘라에서 그랬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 것처럼 이 사건에도 홍콩에 개입하고 있다. 나는 2002년 베네수엘라를 여행했고 거기서 우리가 얼마나 치열하게 당시 대통령이던 우고 차베스(Hugo Chavez)를 타도하려 노력했는지를 목격했다. 이후에도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정치를 바꾸고자 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지금은 니콜라스 마두로(Nicolas Maduro)정권의 전복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베네수엘라에 실패와 더불어 고통만을 가져다 주었을 뿐이다. 미국은 제재를 통해 수십만 베네수엘라인을 처벌하고 그들 경제에 큰 피해를 입히는 데에만 성공했다.

언론은 절대로 베네수엘라 사태와 홍콩을 비교하지 않지만, 우리는 홍콩의 젊은이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해 가르친다고 설쳐대며 활발히 활동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우익적인) 국립기부재단과 같은 수상쩍은 기구들을 분명히 파견해 놓았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1956년 헝가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젊은이들을 탄압에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싸움이 일어나고 탄압이 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소비에트의 탱크들이 1956년 헝가리에서 그 반란을 진압할 때 미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민주주의를 위한다는 국립기부재단 및 그 밖의 NGO들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존재가 CIA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홍콩 시위에는 헝가리 사례와 다른 측면이 있다. 우리는 적(예건데 중국)에 대한 은밀한 작전 수행을 위해 소셜 미디어 및 생생한 뉴스보도라는 보다 고도화된 접근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어떻게 반응하고, 궁극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지에 대해 매우 신중히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의 조치가 대만에 거주하는 2,300만 명의 사람들에게 확실한 신호로 받아들여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이 이 사태를 잘못 처리할 경우 대만이 중국 본토에서 완전히 등을 돌릴 것은 자명하다.

페스트라이쉬: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작전을 이끌 만큼 정교함을 지닌 인물이 아니다. 트럼프는 개인적으로 중국에 트럼프 카지노를 몇 군데 더 열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워싱턴에서 이 움직임을 추진하고 있는 인물은 누구인가?

윌커슨: 최근 해임당한 존 볼턴(John Bolton)이 지금까지 모든 사항을 관장했다. 존 볼턴은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중국과 기타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일련의 작업들을 시행했고, 이 과정에서 그는 “고문여왕”으로 불리는 지나 해스펠(Gina Haspel) CIA국장의 도움을 받았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소수 인물들이 모든 결정권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페스트라이쉬: 그 말은 존 볼턴이 떠나면 미국의 대외 정책에 실질적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인가.

윌커슨: 지난주 크리스 헤이스(방송)의 쇼에서 언급했듯 볼턴이 떠났어도 바뀐 건 거의 없다. 어마어마한 전쟁광이 국가안보 보좌관직에서 떠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지위의 영향력을 결정하는 건 전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이다.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 시절엔 단 8년 동안 무려 6명의 보좌관이 거쳐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자리가 대통령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리차드 닉슨(Richard Nixon)과 지미 카터(Jimmy Carter) 대통령 사례와 완전히 다르다. 그들은 각각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와 외교정책 관련 권력을 나눠 가졌다.

대통령이 내린 결정을 확실히 실행할 최고의 방법은 국가안보보좌관을 갈아치우는 것이다.

트럼프는 여러모로 레이건과 다르다. 따라서 마이크 폼페이오부터 지나 하스펠(CIA 국장), 스티븐 밀러(트럼프 정치고문), 스티븐 므누신(재무장관)에 이르기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주변 인물들은 아마도 계속해서 그들의 안건을 밀어붙일 것이다. 트럼프에겐 그들 모두를 한 손에 쥐고 흔들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존 볼턴이 떠난 것은 잘된 일이다. 유능하면서 동시에 악하기도 한 인물이라는 온갖 소문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한 그는 오직 악하기만 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애런 버(전 미국 부통령)는 영리하면서 악했지만, 볼턴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 그런 악인이 요직에서 해고된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애초에 그를 그 자리에 앉힌 무능한 대통령은 여전히 그대로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

페스트라이쉬: 홍콩 폭도들 대부분은 대만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심지어 대만 현 정부에 의해 부추겨지고 있다. 나는 차이잉원 총통이 최근 ‘아메리칸 리전(American Region)’과 나눈 대화 내용을 알고 놀랐는데, 차이 총통이 실제 시민들의 우려를 논리적, 체계적으로 해소하기보다는 중국 전체를 악의 세력으로 묘사하는 극단적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1980년대 이후 대만 정치에서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그 발언은 근시안적이라고 본다. 대만 총통의 이 같은 발언은 오히려 많은 중국인들이 대만을 서방 극우세력의 꼭두각시로 보도록 부추길 것이다.

윌커슨: 천수이볜(Chen Shui-Bian) 대만 전 총통은 2000년대 초반에도 가끔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차이 총통이 이런 표현에 가장 잘 반응하는 아메리칸 리전(우익 매체)에 연설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녀는 자신이 연설할 수 있는 다소 한정된 청중 명단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볼턴은 그녀가 비비 네타냐후(Bibi Netanyahu) 총리처럼 미 의회 합동연설을 하길 바랐을지 모르지만 트럼프 행정부에는 중국과 대만에 관한 한 완전히 미치지 않은 인물이 한 두 명은 남아있다.

차이 총통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 발언은 중국뿐만 아니라 아메리칸 리전과 미국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된 것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그녀가 신중하고 잘 정돈된 표현으로 발언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는 당신 말처럼 기후변화 같은 실존적 위협에 대해 내세우며 전세계를 대상으로 발언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익적인 특정 청중들에게 이 같은 발언은 완전히 헛되게 들렸을 것이다.

페스트라이쉬: 많은 젊은이들이 그들이 당면한 암울한 미래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 시위에 동참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소위 지도자라 불리는 인사들이 펜스(Pence) 부통령과 볼턴(Bolton) 전 보좌관을 만나면서 기후 변화가 홍콩에 미치는 영향, 홍콩 내 과도한 부의 집중(세계의 모든 도시 중 가장 심각한 실정), 홍콩 문제에 대한 엘리트들의 무관심에 대해 항변하지 않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이슈들이 논의에서 제외된 이유는 무엇인가?

윌커슨: 이러한 현상은 아주 오래도록 이어져 온 것이다. 사람들은 선정적이고, 극적이며, 위험한 눈앞의 현안들에 관심을 보이는 대신 그들 가까이 있는 중요한 문제들은 곪게 만든다. 미국의 트럼프 지지자들이 어떤지 봐라. 트럼프 부자 감세든 무역 관세든 모두 그의 정치적 기반을 무자비하게 응징하는 경제정책을 펼친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로 대 웨이드(Roa vs. Wade) 판결을 뒤집고 기독교 기도를 다시 백악관으로 가져오겠다고 약속하는 한 이런 것들에 거의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홍콩 시위대는 그들이 서 있는 지구가 병들어 고군분투하다 그들이 사는 동안에 파괴될지도 모르는데, 하늘 위 별들을 향해서만 손을 뻗고 있는 것이다.

페스트라이쉬: 군사예산 법안에 대한 간단한 논리도 있다. 그 많은 돈이 중국과의 전쟁 준비를 위한 예산으로 책정된다면 어떤 정부 관료들이라도 중국과 대립해야 한다는 제도적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윌커슨: 대만을 얘기하는 것인가 미국을 얘기하는 것인가? 둘 다인가?

페스트라이쉬: 미국의 주요 예산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국방비로, 현재 공식적으로 7천5백억 달러이며 이 국방예산으로 개발된 값비싼 시스템들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윌커슨: 엄청난 규모의 미국 국가안보 예산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가 없다. 보훈처, 국토안보부, 에너지부의 핵무기 관련, CIA포함 국방부외 정보예산, 국가정보국장 및 통계국장에 투입되는 예산은 1조3천억 달러에 달한다. 이 같은 예산으로 조장된 위협들은 여러 면에서 자기충족적 예언을 형성한다.

냉전 동안 일어난 일을 되돌아보고, 예산이 어떤 식으로 핵무기 및 재래식 무기의 경쟁을 이끌었는지 그리고 예산이 매번 전략적 결정을 내리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아야 한다. 중국 상대의 군사 및 경제 전략을 뒷받침하도록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는 것은 궁극적으로 전쟁에 대한 추가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페스트라이쉬: 그렇다면 어떻게 이 긴장과 갈등의 근원을 가지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우리가 어떻게든 행사를 조직하고 홍콩과 전 세계의 지방정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면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실제 이슈들, 즉 기후 변화와 경제 군사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다른 독창적 접근 방식이 있을 지도 모른다.

윌커슨: 우리는 뭔가 긍정적인 것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이슈에 대한 논의를 촉진하기 위한 노력이 어느 정도 효과를 가져올지는 의문이다. CIA의 노력 (MI6/영국 정보부도 마찬가지)에 필적하거나 그를 능가하는 자산(돈,사람, 조직력)을 갖추고 있지 않는 한 더 현명하고 똑똑하며 보다 관련 있는 대화를 끌어낸다고 해도 그들을 뛰어넘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의욕을 꺾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단지 이런 노력들을 조직하는 사람들이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페스트라이쉬: 그러나 홍콩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정책이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 우리는 정책을 세워야 하고, 그 정책은 건설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정책이 더 효과적인 정책인가?

윌커슨: 우리는 조지 부시(George H.W. Bush) 행정부 및 냉전 종식 이후에 취했던 포지션으로 돌아가 평화적 경쟁을 위해 전략적 의도를 가진 신중한 판단을 이어가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평화와 경제의 연대적 통합이어야 한다. 우리는 국제 범죄, 기후 변화, 현재 전 세계적으로 7천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난민 문제 및 단일 국가가 다루기 어려운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일본 및 한국과의 동맹을 유지하고 인도와 같은 국가들과의 관계를 확대하면서, 즉시 이용할 수 있지만 훨씬 비용이 적게 드는 군대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반드시 평화 및 평화적 경쟁이어야 한다.

페스트라이쉬: 미국 지식인 중 우리가 함께할 미래에 대한 심도 깊고 의미 있는 토론을 위해 홍콩, 이나 대만, 상해 또는 북경을 방문할 사람들이 많다. 그 학자들이 일반 시민들과 함께 공통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중국의 지식인들을 참여시키기 시작하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기후 변화, 사회경제적 문제 및 사이버공간의 미래에 대한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눈다면 미디어를 긍정적인 메시지들로 채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윌커슨: 나 역시 그런 움직임이 환영 받을 거라는 데에 동의한다. 또한 이 지혜를 이해하고 있는 훌륭한 리더들이 대통령직, 국가안보위원회, 국무부 및 재무부를 채운다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페스트라이쉬: 현 정부가 그늘진 곳에서 외교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다른 나라의 기반을 흔드는 은밀한 활동을 끝내고 문화적 연대로 젊은 층의 진정한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인가?

윌커슨: 첫째로, 현명한 새 행정부가 필요하다.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이해하는 새로운 의원들이 있어야 한다. 또 중국을 신 냉전(new Cold War) 시대의 적국으로 규정하는 것을 우선시하지 않는 새로운 미디어가 필요하다. 물론 그리고 나서 이 대화를 진행해 나갈 여러 분야의 학자들과 시민들이 필요하다.

금, 2019/10/0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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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것이다. 9월 평양공동선언에 명시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에 따라 가까운 시일 내로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 약속이 최근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한 것은 국정원이 “김정은, 11월 부산 아세안회의 참석 가능성”(<연합뉴스>, 2019.09.24.)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자, 그럼. 팩트체크를 한번 해보자.

우선, ‘김정은 위원장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답방을 약속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조건 방남한다’이다.

결론적으로 이 경우는 그리 높지 않다.

왜냐하면 약속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당위적으로 방남해야 한다는 논리적 인식은 지극히 일차원적인 사고이고, 그 맥락에 숨어있는 정치적 의미를 전혀 읽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이때의 약속은 정치적 약속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고, 반면 그 정치적 함의는 방남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 이뤄졌을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조건 없는’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북의 여종업원납치문제 사과와 송환 ▲한미연합훈련, 전략무기 등 도입 중단 등 남북 간에 이뤄져야할 신뢰회복 조치가 먼저 선행되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약속이행조치 없이 그냥 방남은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 해서 이 논리는 거짓(×)이다.

다음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 이뤄지고 있지 않는 팩트는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확인된 ‘민족자주’와 ‘자결’의 정신을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것에 있다.

그럼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합의된 대로 ‘민족자주와 자결’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되돌아 가야할 뿐만 아니라, 이때-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합의된 내용들을 이행·담보해야 하는 것까지 포함해야 된다.

그럼 그 이행·담보의 내용은?

▲첫째는, 개성공단·금강산관광 등 민족내부의 문제는 철저하게 민족내부의 문제로 남북이 합의하여 풀어내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는, 비핵화문제는 ‘중재자’ 등 3자적 관점의 접근이 아니라 판문점선언에서 확인한대로 ‘당사자’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한미동맹의 관점에서 북을 설득하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고, 민족공조의 관점에서 북과 협의하여 미국을 설득하려는 자세로 전환해야 한다(북-미 평화회담 견인, 한반도비핵화 추진).

그럼으로 이 논리는 사실(○)이 된다.

그리고 실제 이렇게 방남의 필요충분조건이 마련되었다하더라도 방남을 최종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카드는 하나 남아있다.

다름 아닌,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은 남북철도연결 사업(강조, 필자)과 반드시 연결되어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남북철도연결 사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 고 있던 그런 물류, 관광 등 경제적 차원으로 접근되어지는 것도 분명 있지만, 답방과 관련해서는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남북철도연결 사업은) 민족의 혈맥(강조, 필자)을 잇는 그런 정치적 의미로서의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북이 통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부분인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민족의 혈맥을 잇고’라는 표현을 우리가 잘 이해해야 하는데, 이를 남북철도연결 사업과 연동해 해석해내면 남북철도연결 사업은 단순한 끊어진 철도의 복원, 이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신경제지도를 완성하기 위한 수단만도 아닌, 이 모든 것을 넘어서는 통일로 가기위한(강조, 필자) 정치적 의미가 더 중요하다.

그럼으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지금은 비록 중단되어 있지만) 남북철도 복원사업이 단순한 교통·경제적 수단의 복원의미를 넘어 민족의 혈맥(강조, 필자)을 잇는다는 그런 정치적 의미로 재해석해낼 때 김정은 답방시기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우리가 남북철도연결 사업을 정치적으로 해석해내어야 하는 이유가 북이 설명해내고 있는 사회유기체론이다.

이 유기체론에 따르면 남북철도가 끊어졌다는 것은 사람의 몸(신체)으로 치자면 허리가 두 동강 났다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는 정상적인 사람의 신체구조를 유지할 수 없는 만큼, (끊어진) 철도도 반드시 연결되어야만 민족이 온전한 형태로 재구성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즉, 몸속을 돌고 있는 피가 돌지 않으면 죽듯이 이를 민족적 개념에 대입하여 적용한다면 그 피에 해당하는 것이 철로이고, 그 철로가 끊어져 있다면 이는 반드시 복원되어져 연결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남북철도연결 사업은 ‘민족과 통일’의 개념으로 확장되는 유기체적 개념이다.

해서 김정은 위원장의 방남은 반드시 이 남북철도연결 사업이 진행되고, 북에서 남쪽으로 철도이동이 가능할 때 이뤄지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남북철도연결 사업이 완결될 때 김정은 위원장의 방남이 임박했다 할 수 있고, 이를 정치적 의미로 볼 때는 남북철도연결 사업이 김정은 위원장의 방남을 읽어내는 가장 확실한 바로미터가 된다 하겠다.

참고로 김정은 위원장의 ‘철로’방남 갖는 의미를 위와 같이 ‘민족과 통일’의 개념으로 확장해 낼 수 있다면 더해진(+) 정치적 의미의 하나는 김정은 위원장 답방 그 자체가 6.15공동선언을 한 단계 버전-업(version-up)시킬 수 있는 그런 상황과 정확히 비례한다는 사실이다.

근거는 이른바 남북의 선대 두 지도자 합의한 것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남측의 연합제에 공통성 있다는 것인데, 김정은의 답방은 그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 때 이뤄져야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이른바 ‘민족통일기구’를 내올 수 있는 합의가 가능할 때 이뤄진다하겠다.

이렇듯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은 ‘민족자주와 자결’의 정신에 입각하여 세 차례에 걸쳐 합의된 남북공동선언을 이행담보하고, 남북정상회담이 국가 간 외교회담의 성격뿐만 아니라 민족내부의 최고위급회담의 성격도 띄고 있는바 민족의 절체절명의 과제인 통일문제에 대해 일정한 성과를 낼 수 있을 때 답방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답방도 반드시(‘죽었다 깨어나도’) 철로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다.

 

민플러스, 2019년 9월 27일에 게재된 글입니다 (필자와 협의하여 수정 후 본지에 실린 것임).

목, 2019/10/03-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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