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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과학수준과 미-중 기술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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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과학수준과 미-중 기술 전쟁

admin | 금, 2019/10/18- 22:17

편집자 주:

미중 간에 진행되는 패권주도 전쟁은 무역통상과 군사적 영역뿐만 아니라, 과학과 산업기술 분야에서 더욱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빅데이타와 인공지능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하기 시작했다는 견해가 나오는 가운데 사회주의의 경직성이 혁신적 창조 역량을 제약할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향후 미국과 중국이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ICT 중심으로 국제적 기술의 기준이 양분화될 것이 이라는 우려도 나오기 시작한다.

이는 중국에 국한되는 이야기 일뿐만 아니라 핵력강국에 이어 과학기술강국을 지향하는 독자적인 노선의 성공여부에 따라 북한의 향방과 한반도의 미래지형이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중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중국의 과학발전에 대한 도전이라는 과제가 제기됐다. 중국의 기술진보에 대한 미국의 우려는 수출 통제 및 외국인 투자 규제 강화, 중국 과학자 및 기술자에 대한 비자규제 강화, 그리고 미국의 대학 및 기업에 종사하는 중국인 과학자들의 행동에 대한 적극적 조사로 이어지고 있다. 대학, 산업, 및 정부 등 과학기술 분야에서 한때 번성했던 양국 관계는 국가 안보 및 지적 재산 보호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현재 매우 불투명한 상태다.

단기적으로 미국의 압력으로 중국과학의 발전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지만, 중국은 1960년대 초 소련의 지원 철회를 떠올리게 하는 기술 민족주의적 노력을 통해 연구와 혁신을 위한 중국의 독자적 시스템을 구축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과학발전의 네 가지 특징은 진행중인 기술 전쟁에 대한 대응 방식을 좌우할 것이다.

첫째, 국제 과학 및 기술에 대한 중국의 수용 및 토착 개발 경험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은 정책 과제뿐만 아니라 문화적 갈등도 제기한다. 국제환경, 특히 미국과의 상호작용은 중국 과학기술의 속도 및 방향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은 국제 환경 자원을 이용하면서 일련의 국내 연구, 교육 및 산업 정책을 마련하여 자체 역량을 향상시키고 해외지식의 소화를 가능하게 했다. 이 같은 이중노선 정책은 매우 성공적이었지만, ‘해외’와 ‘국내’ 사이의 근본적 긴장상태가 지속되며 과학, 기술 및 혁신에 대한 정치 문화적 방향성을 형성한다.

둘째, 중국 산업체와 대학 및 중국과학원을 중심으로 한 연구시스템이 오랫동안 통합되지 못하고있다. 최근까지도 기업 부문에서는 강력한 연구 방향성의 부재로 국내 연구시스템을 통한 장기 개발 협력 대신 외국의 검증된 기술들을 추구해왔다.

‘국가적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자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 연구 기관들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출판물 및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는 국제 공동체로 발전했지만, 국내 기업들과의 협력에 대한 강력한 의지는 부족한 상태다. 미중 간 기술 전쟁으로 보다 효과적인 ‘생산과 연구’ 관계와 1960대와 같이 기술 공동체와 국가전략 목표의 통합을 향한 최근 추세를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셋째, 중국 정치 시스템의 특징들은 중국 과학기술의 본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중국 공산당은 국가-사회간 관계의 조건을 내세우고 국가 의제를 지지하기 위한 정책 선호의 사용을 오랫동안 촉구해왔다. 과학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전문 커뮤니티 활동이나 민간 경제의 성장을 지원하는 자주적인 영역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Xi Jinping) 국가주석의 통치 아래 연구, 교육 및 산업조직에서 중국공산당의 역할 강화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 대규모 자금 투입, 제도적 취약성을 개선하기 위한 지속적 개혁 및 국제 동향에 대한 면밀한 분석 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중국이 현재 육성하고자 하는 진정한 창조성에 반대되는 요소인 정치적 경직성도 더불어 보여주고 있다.

넷째, 중국은 세계 수준의 인재자원을 육성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고등 교육시스템의 개선으로 중국은 이공계 졸업생들을 대거 배출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유망한 인재들은 해외 대학원에서 교육 받고, 그 후에 중국 밖에서 뛰어난 경력을 쌓는 경우가 많다. 이 인재들, 특히 국가 연구 정책에 중요한 분야를 전공하는 인력들을 중국으로 돌아오도록 유인하기 위해 중국은 현재 기술전쟁에서 미국의 표적이 된 인재육성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상기 프로그램은 엇갈린 성공을 가져왔는데, 중국의 많은 주요 연구자들이 그들에게 남아있는 애국심과 세계주의적 욕구 사이의 균형을 이루면서 미국에서의 경력 기반을 유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책이 유능한 인재들을 중국으로 되돌려 보낼지 여부는 환태평양 지역의 광범위한 ‘인재 순환’의 미래에 대한 더욱 심화된 질문과 마찬가지로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중국의 정책결정은 이러한 국가 발전의 특징들로 인한 문제 및 과학기술에 대한 명성에 있어서 ‘후발주자’라는 인식을 반영한다. 중국은 산업 및 기술 분야에서 성공적인 ‘빠른 추종자’가 됐지만, 이후 정책적 목표의 전환을 통하여 중국이 주도적 지위를 점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의 기반이 되는 신기술에 대한 ‘뛰어넘기(leapfrogging)’ 전략이 제시 되어야 한다.

중국은 미국과 같은 국가에 의존하는 첨단기술 산업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지만, 연구 및 기술의 한계를 고부가가치 생산이 가능한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양자통신 및 인공지능과 같은 분야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국가 이익에 봉사하고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이러한 정책들은 연구 및 혁신이라는 ‘중국 모델’의 개발에 대한 추세를 통합할 것이다.

중국 모델의 미래에 대한 중요한 질문은 무역전쟁으로 인해 미국의 일부 정책결정자들이 추진하고자 하는 대로 국제 시스템으로부터의 ‘분리(decoupling)’가 야기될 것인가의 문제까지 이어진다.

분리라는 충격을 통해 중국에서 현재 고심하고 있는 것처럼 오른쪽에서 운전하고 동시에 왼쪽에서 운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21세기에 과학이 행해지는 방식의 유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격리는 과학의 보편주의적 규범에 반하며, 과학 진실성 및 새로운 기술에 대한 윤리적 반응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격리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위에 예측한 시나리오를 벗어나 미래는 연구 및 혁신의 세계화가 관철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은 여전히 서구 기술 및 연구 환경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주도권의 분리가 이미 국제 협력의 신뢰할 수 있는 규범, 즉 재확립이 쉽지 않은 규범을 파괴하는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 또는 왼쪽에서 운전하는 비유적 표현과 함께 발전하는 ‘중국 모델’의 현실은 창조적 역동성과 내부 모순을 공히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2019.09.18 동아시아포럼에서 발췌함

 

Richard P Suttmeier (리차드 슈트마이어)

오리건대학교 명예교수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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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사람들은 국회 공무원인 국회 전문위원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또 국회의원과 전문위원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필자는 이 문제를 널리 알리고 쉽게 설명하기 위해 항상 고심한다. 그러다가 최근 괜찮은 교재 자료를 발견했다.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언론기사가 눈에 띈 것이다.

바로 7월 12일자 <아시아경제>에 게재된 “정무위 전문위원실 단톡방·유튜브發 불량코인 유사투자자문업 단속해야”란 제목의 기사였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회 정무위원회 전문위원실이 가상자산 법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오픈채팅방·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유포되는 불량코인 투자자문 영업형태에 대한 규제와 단속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현재 발의된 4개 법안(이용우·김병욱·양경숙·강민국 의원안)SNS 관련 내용이 없다는 점을 언급하며, 단체채팅방을 통한 불량코인 투자자문 행태가 만연하니 규제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제언이다. 수석전문위원 검토보고서는 법안1소위원회 법안 심의 과정에서 사실상 가이드라인이 되는 자료, 향후 법안 병합심사 과정에서 관련 규정이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정무위원회 이용준 수석전문위원의 가상자산 관련 법안 검토보고서“4개 법안에는 관련 규제 내용이 없지만, 최근 오픈카톡, 유튜브 등 SNS를 통해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가상화폐 투자자문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용료를 수취하는 영업행태가 있다이에 대한 규제 방안도 필요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코인 발행업체 심사에 금융위원회 뿐만 아니라 기술 이해도가 높은 산업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참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3개 법안(김병욱·양경숙·강민국 의원안)이 코인 발행업체에 대해 금융위원회 신고·인가·등록을 규정한데 따른 보완 조치 성격이다. 검토보고서는 심사를 금융위원회 (혼자) 수행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코인 개발이 충실히 이뤄진 것인지 기술적인 면을 심사하려면, 산업 이해도가 높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부 등도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자료: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용우·김병욱·양경숙·강민국 의원안)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 이용준 수석전문위원 검토보고서

3개 법안(이용우·김병욱·양경숙 의원안)이 규정한 피해보상 규정과 관련해서는 손해배상 책임을 법에 명시해 투명성과 안전성을 제고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손해 방지를 위한 주의 의무이행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고 했다. 또 김병욱 의원안이 담고 있는 역외조항(자국 영역 외에서 발생한 법률 문제에 대해 자국법을 적용하는 일)을 제시하며 해외요인으로 시세조종 등이 발생해 피해가 야기되는 경우도 있으니 효과적인 불공정행위 제재를 위해 국제적인 협력과 공조도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료: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용우·김병욱·양경숙·강민국 의원안)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 이용준 수석전문위원 검토보고서

한편 가상화폐 관련 4개 법안(이용우·김병욱·양경숙·강민국 의원안)13일 전체회의에 상정돼 법안1소위원회로 회부된 뒤 이달 중 본격적인 법안심사가 진행된다. 법안 1소위 심의 과정에선 수석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 의견이 상당부분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여야 모두 당내 가상자산 태스크포스(TF)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에서 법안의 필요성에 대한 큰 틀의 합의는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국회 공무원이 지원차원을 넘어 입법을 판단하고 결정하다

본래 국회 공무원은 국회의원을 ‘지원’하는 위치에서 ‘지원’하는 업무에 종사해야 한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우리 국회도 당연히 그렇게 운영되고 있을 것으로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용한 위의 기사에서 우리는 국회가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위의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국회는 국회 전문위원이 ‘지원’ 차원이 아니라 명백하게 국회의원의 ‘상위’에 존재하면서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에 대해 ‘판단’하고 ‘결정’하고 있다. 국회 공무원인 전문위원이 국회에서 국회의원의 입법권을 ‘침해’하고 ‘훼손’하면서 사실상 입법의 ‘주인공’ 역할을 담당하며 입법권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국회의원을 선출하면서 국회의원에게 입법권을 부여한 것이지 이들 국회 공무원에게 입법권을 부여한 적이 없다.

필자는 이렇듯 국회 공무원이 명실상부하게 입법권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현재의 국회 시스템은 명백하게 위헌이라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국회의원들은 왜 이 시스템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우선 이 시스템이 국회의원에게 너무 편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가만히 있어도 옆에 있는 국회 공무원, 입법관료들이 다 알아서 해주니 편하고 좋은 것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독일 의원들은 스스로 수행해야 하는 법안 검토보고를 위해 분주히 활동하느라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우리 의원들은 그렇게 고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한 제도인가! 우리 국회에서 초등학생을 국회의원 시켜도 아무 문제 없다는 말은 바로 이 같은 현실에서 비롯되었다.

다음으로 이 전문위원 검토보고 제도가 박정희 유신정권 무렵부터 존재한 시스템이라 이미 수십 년이나 ‘관행’으로 굳어졌다. 그래서 적지 않은 국회의원들은 어느 나라든 본래 법안 검토가 국회 공무원들이 담당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또한 이미 국회 공무원의 ‘파워’가 손대기 어려울 정도로 비대화되어 버렸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은 국회 공무원들이 입법을 좌지우지하는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이 시스템을 바꾸라는 문제 제기와 시정 요구도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렇게 문제 제기도 없는 상황에서 국회의원에게 너무 편하고 귀찮은 일 할 필요도 없는 현 시스템을 바꿀 필요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렇듯 전문위원이 국회의원의 상위에서 입법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정보와 로비도 국회의원이 아니라 전문위원으로 몰리게 된다. 각 상임위 소관 행정부처를 비롯하여 이를테면, 법원행정처나 검찰의 각종 자료와 정보가 전문위원실로 보고되며, 각종 로비단체와 이익단체의 주장과 로비도 전문위원실로 쏠린다. 김&장 법률사무소 같은 곳도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오늘 국회 전문위원실은 국회 입법의 핵심이요 꽃이다.

국회의원들은 아무런 부담 없이 법안 발의만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더구나 법안발의 건수로 소속 정당의 공천 점수도 결정되고, 또 시민단체로부터 좋은 평가도 받을 수 있으니 ‘무책임한’ 날림 법안발의 건수는 엄청나게 많아진다. 그래서 우리 국회의 법안발의 건수는 세계 의회에서 당당 1위다. 겉으로 보면, ‘일하는 국회’의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그야말로 ‘소리만 요란한 깡통’, ‘빛 좋은 개살구’ 그 자체이다. 그러면서 국회는 점점 더 왜곡되어 간다.

 

국회의원이 그 직무를 방기하는 국회, 그것은 국회가 아니다

분명한 점은 우리처럼 국회 공무원이 이렇게 법안 검토를 하면서 국회의원의 윗자리에서 법안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경우는 전 세계 어느 의회에서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 국회처럼 국회 공무원이 법안을 좌지우지, 결정권을 보유하고 사실상 입법권을 행사하는 것은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것이며 의회 시스템 기본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행태이다.

이것이 비정상적인 우리 국회의 본질이요, “일하지 않는” 국회의 ‘숨겨진’ 진실이다.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의 본업을 수행하지 않는 국회, 국회의원이 자신의 직무를 방기하는 국회, 그것은 ‘국회’라 부를 수 없다. 그것은 ‘국회’일 수 없다.

 

소준섭

화, 2021/07/2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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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저술한 『진보의 미래』에서 “(자신이) 그냥 앉아서 관료에 포획되었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한편, 문재인 정부에서도 실패하고 있는 관료 문제에 대해 어느 교수는 최근 한 기고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들)’들은 ‘늘공(늘 공무원인 사람들)’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사실 현재의 5년 단임제는 ‘영원한 관료지배의 충분조건’일지도 모른다. 각 분야 관료개혁의 세부적인 각론 없이 허허벌판에서 총론만 들고 적폐청산을 외치다 보니, 청산의 대상이 되어야 할 관료들에게 각론을 의지하게 된다. 개혁적인 정권이 들어서서 장·차관, 기관장 몇 명 바꾸고 새로운 정책을 편다 해도 관료사회는 꿈쩍하지 않는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문재인 정부, 아직 임기 500여일이 남았다”, <오마이뉴스> 2021. 1. 10.)

우리 사회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대통령 한 사람이 홀로 우뚝 서서 이 나라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채 온 나라를 좌지우지 통치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청와대 권력이란 단지 전체 공무원 조직에서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점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권력은 5년마다 바뀌지만, 관료들은 바뀌지 않은 채 언제나 강고하게 온존하면서 그 핵심적인 자리를 장악한다. 국민들이 이름을 아는 장관은 거의 없을 만큼 너무도 수시로 바뀐다. 그러니 행정부 부처의 실질적 주인은 필연적으로 관료일 수밖에 없다. 환경정책이나 노동정책도 대통령과 장관이 지휘하는 듯 보이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불과 몇 가지 정책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정책들을 관료들이 행사하고 있다.

국회 역시 겉으론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의 온갖 비난을 모두 들으면서 정치와 입법을 좌지우지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국회 입법관료들이 보이지 않은 실권을 행사한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는 사실상 관료들이 지배하는 관치(官治), 관헌(官憲) 국가이다. 이 나라는 대표적인 행정 비대 국가다. 정책 하나하나마다 수백 수천 명의 이해가 걸려 있다. 공무원이 가진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 법제가 입헌군주 국가인 일본의 식민지 강점기에 만들어졌고, 그 뒤에도 그것을 벤치마킹했기 때문에 우리 법제에는 관헌국가적 잔흔이 너무나 많다. 예를 들어, “**을 하고자 하는 자는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식으로 행정청의 권한을 간접적으로 규율하는 방식이 그 예이다. 이는 국민을 행정권 발동의 단순한 수동적 존재로 설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나라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관(官)주주의다.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법’과 ‘규정’이 사회를 일상적으로 지배하게 된 이른바 ’87체제 이후 ‘법치주의’의 이름하에 결국 이들 관료집단의 지배력이 갈수록 확고해져왔다. ‘시험 권력’이 ‘선출 권력’을 사실상 조종하고 지배하는 이러한 사회는 민주주의가 실종된 사회다.

 

행정사무그리고 규정만이 군림하다

원래 행정사무 업무란 보조적 업무여야 한다. 그리하여 사무 및 관리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함으로써 그 명(名; 이름)과 실(實; 내용)이 부합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는 전반적으로 행정사무 업무가 오히려 상위에 군림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법원의 법원행정처는 그 대표적 사례다. 법원행정처는 법관의 재판을 보조한다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인사관리와 기획조정 업무를 장악하면서 스스로 법관에 대한 감독기관으로 군림하였다. 국회사무처 역시 전형적 사례이다. 독재 권력이 국회를 하수인 혹은 거수기로 전락시키기 위하여 도모한 국회사무처 소속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기제는 국회 입법관료에게 과도하고 ‘위헌적인’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관료 조직은 대부분 행정사무 부서가 인사와 예산 그리고 각종 사무분담 업무에 의거해 원래 보조기관이지만 실제로는 상위에 군림하면서 실질적인 주도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객전도요 본말전도가 아닐 수 없다. 공공성과 가치와 철학은 사라지고, 대신 오직 사무와 규정이 군림하면서 상명하복과 형식주의만이 만연되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국회를 비롯하여 감사원, 대법원, 정당 등등 국가의 공공 시스템과 기관 중 자기의 명칭에 부합하는 위상을 지니고 그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국회 전문위원’이라고 하면 누구든지 ‘전문가’들이 임명되어 업무를 수행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모두가 국회에서 순환 근무한 국회 공무원들이다. 이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검토보고’라는 막강한 권한을 보유한 국회 공무원이다. 미국 의회의 위원회에 근무하는 전문가 스태프 조직은 모두 정당에 소속되어 있다. 독일 의회에서 이들 정책 ‘전문위원’은 독일 사회의 각계 전문가 출신으로서 자부심이 높은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역시 정당 소속이다.

미국 의회 소속기구인 법제실의 법제관은 변호사나 법학박사 등 모두 법제 전문가로 구성된다. 반면에 우리 국회의 경우, 모두 순환 근무하는 공무원이다. 또 미국 의회예산처의 처장은 주로 경제학을 전공한 인사가 임명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주로 국회사무처 공무원인 수석 전문위원 출신이 임명된다. 부실하고 왜곡된 우리 입법지원 기구의 모습이다.

 

우리의 생존을 위하여 관료집단을 새롭게 바꿔내야 한다

엉망이 된 우리의 정치과 경제, 사회, 노동 그리고 환경문제의 저변에는 언제나 관료집단이 도사리고 있다. 관료집단은 본질적으로 현상 유지와 친(親)재벌 사고방식의 보수적이고 기득권 편향으로서 대부분의 경우 변화와 개혁에 저항한다. 더구나 외부로부터의 진입이 철저히 차단된 독점구조에서 감시견제 기제가 부재한 채 책임감과 의식 부재가 더해져 스스로도 갈수록 무능해질 수밖에 없다. 대체로 관료집단은 일반 시민과의 접촉은 별로 없고(혹 만나더라도 부정적이거나 거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 반면 기업 측 인사들은 빈번하게 만나게 된다. 그래서 관료집단은 ‘시장 친화적’이며 시장경제 옹호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등등 모든 분야에서 기득권이 고착화되고 보수화가 강화되며 한 치의 변화와 개선조차도 어려워지기만 하는 것은 바로 이 사회가 근본적으로 관료지배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심각하기 짝이 없는 기후 위기와 환경오염의 문제에서도 관료집단은 아무 의식 없이 그저 규정과 관행만을 내세우고 모르쇠, 시간끌기로 일관할 뿐이다. 참으로 암담하기 그지없다.

명백한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관료개혁 없이는 우리 사회의 어느 것 하나도 바뀔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럴 때 우리의 미래 역시 없다. 우리의 미래를 이들 낡은 관료조직에 맡길 수 없다.

우리의 생존을 위하여 관료집단을 새롭게 바꿔내야 한다.

 

시험에 의한 공무원 선발, 과연 공정한 것인가?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오로지 시험에 의하여 공무원을 선발하는 방식이 최고의 미덕으로 치부된다. 그렇지 않은 그 어떤 공무원 채용도 불공정성으로 매도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공무원 선발제도를 일률적으로 중앙인사기관이 독점하여 고스란히 관리하는 시험제도만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모든 것을 결정하는 나라는 없다. 거의 모든 선진국들은 각 부처별로 인력을 충원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에는 1993년 정부혁신처(NPR; National Performance Review)가 설치되면서 인사관리의 분권화와 권한 위임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각 부처에 채용권한을 위임하고 각 부처는 자체 실정에 맞게 채용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운영 형태가 각기 상이하다.

일본의 공무원제도는 우리나라와 많은 측면에서 유사하지만 우리의 경우 중앙인사위원회에서 일괄적으로 선발하여 각 기관에 배분하는 형식을 취하는 반면, 일본은 시험을 중앙 인사원에서 일괄적으로 실시하지만 각 기관별로 채용후보자 명부를 작성할 수 있다. 그리하여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더라도 바로 임용되지 않고, 우선 ‘채용후보자 명부’에 등록되어 명부 순으로 각 행정기관에 추천된다. 따라서 성적이 좋을수록 희망하는 기관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각 기관은 엄격한 면접과 심사로 임용을 다시 결정하기 때문에 어려운 관문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미국에서 시행하는 ‘대통령 공공관리 인턴(PMI: Presidential Management Intern)’ 프로그램이라는 고급공무원 임명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공공정책 분야에 우수한 석․박사 인력을 충원하기 위하여 1977년 카터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의하여 도입된 제도이다.

매년 공공정책 프로그램의 분석 또는 관리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약 200명 이상의 젊은 인재들이 미국 국민에게 연방정부 공무원이 되는 지름길로 인식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2년 동안 연방정부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게 된다. 이들은 ‘순환 인턴십 기회’를 통하여 거의 모든 정부 부처에서 근무하게 되며, 이 프로그램에 의하여 우수한 석․박사 인력들이 연방정부에 채용되고 있다.

프랑스는 유명한 국립행정학교, 즉 에나(ENA)를 통하여 고위공무원을 채용한다. 2003년의 경우 총 선발인원은 100명으로서 이 중 50명은 외부 경쟁시험, 41명은 내부 경쟁시험, 9명은 ‘제3의 시험’을 통하여 선발된다. 외부경쟁 시험은 28세 이하이고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자에게 주어진다. 내부경쟁 시험은 현직 공무원에게만 지원 자격이 주어지고, 학력 제한 없이 5년 이상의 공공 부문 근무경력을 충족시킨 자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실시한다.

‘제3의 시험’은 40세 미만이고 전문직 또는 지방자치단체 의원으로 8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자에게 응시자격을 준다. ‘제3의 시험’은 고위 공무원의 사회적, 지리적 배경을 다양화시켜 공무원 충원의 민주화에 기여하기 위하여 도입된 제도이다. 프랑스는 이렇게 하여 고급 공무원의 사회적 배경의 균형을 추구하고 전문가의 공직 진출 가능성을 제고시키기 노력하는 한편, 그밖에도 계급제의 단점인 충원 형태의 경직성을 완화하기 위하여 공개채용시험 외에 다양한 충원 형태를 운영하고 있다. 특별채용과 전체 공무원의 20%에 이르는 계약직 공무원 제도의 활성화로써 계급제 하에서 인력운영의 탄력성을 높이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다.

한편 영국의 경우에는 속진(速進) 임용제를 적용하여 공무원 중 고위직 공무원 직위에 도달할 수 있을 우수 인재를 선발하여 별도의 훈련 및 능력개발기회와 조기승진 기회를 제공한다. 실제 영국 고위공무원단의 1/3에 가까운 인원이 속진 임용제를 통하여 선발된다.

 

고시 출신의 군림과 육두품 출신의 슬픔

공무원이 기피대상으로 되던 시기가 있었다. 공무원 임금이 너무 낮고 대우도 좋지 않아 일반 대졸자들이 기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시기에 5급 고시는 우수한 인력을 공무원 조직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일종의 ‘유인책’의 제도였다.

그러나 이제 공무원은 이 나라 모든 젊은이들의 꿈으로 되었다. 9급 공무원 시험도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이다. 가장 우수한 인력들이 공무원 시험에 몰려들고 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이 밀집해있는 노량진역 부근은 공시족으로 언제나 인산인해다. 몇 년 전부터 이제 5급 공채(고시)나 7급 시험이나 차이가 없다는 주변의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이 우수한 인력들을 공무원으로 선발해 잘 운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문제는 고시 출신, 고시족들이 전두환 시절의 군대 내 사조직이었던 ‘하나회’처럼 공무원 사회를 장악하고 독점하는 데 있다. 모두 고시 몇 기 몇 기로 통하고, 이들끼리 모든 요직과 지휘계통을 장악한다. 고시 출신이 아닌 다른 공무원은 마치 신라 시대의 ‘육두품’처럼 들러리로 전락한다. 진골과 성골 그리고 육두품의 출신 성분은 너무도 명확하다. 서슬이 퍼런 이런 계급 사회에서 기상천외하게 아부하는 재주가 있지 않는 한, 육두품 출신이 요직에 오르기 어렵다. 비(非)고시 출신으로서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여 요직에 오르게 될지라도 이미 비고시로서의 정체성은 상실된다. 아니 오히려 비고시 집단에 적대적으로 스스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고시족 집단에 대한 높은 충성심이 이미 내재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조직에서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국민을 위한 역동성이나 미래지향성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국회사무처의 경우를 살펴봐도 수석 전문위원과 전문위원을 비롯한 요직과 국장급에서 5급 공채, 즉 ‘입법고시 출신’의 비율은 매우 높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갈수록 강화된다. 최근에는 과장급까지 고시 출신의 독점 현상이 나타난다. 실제 국회사무처의 주요 보직 중 고시 대 비고시 출신 비율은 2006년 48: 52였는데, 2011년에는 58: 42였고 2016년에는 80: 20으로 그 독점 현상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5급 공채로 관료사회에 진입하면 30대에 이미 3급으로 승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것은 지나치게 빠른 승진이고, 국가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심지어 사회 경험이 적은 본인에게도 불행이다. 최근 판사 임용도 최소 3년 내지 5년의 법조 경력이 요구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와 같이 5급 공채라는 ‘특급 대우’를 제도적으로 제공하는 나라는 없다.

다양한 나무 품종으로 이뤄진 숲이 가장 번성한 숲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시험이라는 한 가지 단일한 형태로만 공무원을 선발하는 현재의 방식은 “우리가 남이가”의 가족주의와 온정주의를 낳고 이는 결국 부패와 무능을 심화시키게 된다. 그것은 오직 특권과 독점의 상징으로 되었고, 상명하복으로 권력에 무조건 아부하고 줄서기와 승진에만 몰두해 있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국회 고위 공직자로 있던 어떤 후배는 필자에게 4급 이상의 고위공무원은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필자는 대부분의 4급 이상 공직자들에게 ‘승진’에만 필요한 비상한 능력을 보유하고 발휘한다는 점 이외에 그들에게 특별히 대단한 능력을 가졌거나 실행하는 모습을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이제 공무원 조직도 과거와 같은 일반 행정가로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곤란하다. 앞으로의 공무원은 ‘일반 행정가(generalist)’ 보다는 공직사회 내에서 특화된 전문 능력을 보유하면서 유능한 행정가로서 종합적인 관리 능력을 보유한 ‘전문성을 지닌 행정가(specialized generalist)’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은 1940년대 이후 지역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가능한 ‘대표관료제(representative bureaucracy)’를 채택하고 있다. 대표관료제란 한 나라 전체의 인구 구성에서 여성이나 장애인 등 사회집단별 인구비례에 따라 정부 공직이 배분되어야 한다는 인사 원칙이다. 미국에서는 이 대표관료제를 적용하여 고용평등조치, 차별철폐조치 그리고 적극적인 고용할당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인재의 지역할당제 역시 이러한 적극적인 인재할당 대표관료제의 일종으로서 인력충원에 지역이라는 변수를 적극적으로 고려함으로써 일종의 ‘지역주권’의 신장을 추구한다. 대의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살펴볼 때, 지역별 비례에 의하여 국가 인재를 선발하는 것은 선발된 인력이 국가 공직사회에서 업무를 담당하는 과정에서 출신 지역과 관련된 이익을 직간접적으로 반영하는 ‘정치적 대표성(political representativeness)’, 혹은 ‘정치적 대의성’을 수행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시험만에 의한 공무원 선발, 현대 국가에 적합하지 않다

고시제도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각급 공무원 시험제도는 사실 과거제도를 계승한 것이다.

흔히 과거제가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공평성의 측면이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왔다. 하지만 중국 역사에서 과거제도는 본래 치국의 인재를 배양하고 선발할 수 없고 도리어 황제 전제정치의 필요에 충실하게 부응한 제도이기도 하였다. 명나라 말기의 학자 고염무는 팔고문(八股文: 과거 시험이 엄격하게 요구했던 여덟 가지 형식)의 폐해가 진시황의 분서(焚書)와 같으며 인재에 대한 파괴는 오히려 진시황의 갱유(坑儒)보다 더 심하다고 갈파하였다. 그리고 결국 중국은 크게 낙후되었다.

오늘날 세계의 선진국들은 공무원을 직무별로 수시 채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오직 암기식의 단일시험 제도를 통해 일시에 공무원을 선발한다. 그리고 연공서열에 의하여 결정되는 승진과 급여 체계 대신 이제 성과와 실적에 의하여 결정되는 방향을 지향해야 한다.

시험만으로 우수하고 도덕적이며 유능한 공무원이 선출될 수는 없다. 시험으로만 선발되는 현 공무원 제도 그리고 연공서열에 의하여 모든 시스템이 운영되어서는 전문성과 창의성 그리고 역동성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의 수요에 결코 효과적으로 부합할 수 없다.

 

소준섭

화, 2021/03/0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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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진리라 함은 주체의 인식과 인식 대상이 일치할 때 그 인식 내용을 일컫는다는 근대철학의 진리개념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하여 근대철학은 신이 예정해준 진리를 벗어나서 인간이 스스로 진리를 찾아 나서게 되는데 이를 인식론이라고 부르게 됩니다만 당시 접근방식의 차이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따른 대륙의 합리론과 베이커가 이끌은 영국의 경험론으로 나누게 됩니다.

이후 진리의 획득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무렵 칸트가 나타나 경험론과 합리론을 종합하여 선험적 종합판단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진리를 주관화하며 절대적인 진리를 획득하였다며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을 이루었다고 선언하게 됩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는 경험론과 합리론의 한계를 상호 보완하는 측면에서 종합을 시도하였을 뿐이지 절대적인 진리의 인식방법론을 완성한 것은 아니라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대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진리는 인식론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론의 영역으로 승격되면서 절대적 진리는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지기에 절대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근대의 인식론은 더 이상 존립할 토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특히 양자역학을 통하여 인식주체와 무관한 객관적인 대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식주체와 대상 또한 양자얽힘에 의해 상호 내재적으로 생성관계에 있어 인식주체를 배제한 대상에 대한 절대적인 기술을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후 과학철학의 발달에 힘입어 실재론이 힘을 잃고 토마스 쿤이 주도하는 비샐재론, 즉 존재에 대한 진리의 기술은 단지 잠정적인 담론에 불과하다는 패러다임이론이 등장하게 됨에 따라 절대적인 진리를 인식하거나 또는 절대적인 진리가 존재한다라는 이론은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 의하면 관찰이 대상을 창조한다고 보는데 이 이론을 포함한 코펜하겐 해석이 정통해석으로 받아들여진 오늘날 대상에 대한 관찰, 즉 인식작용은 단지 대상에 대한 앎이 아니라 대상을 창조하는 작용을 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규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파악이론(특히 개념적)이나 지각이론의 상징적 연관개념을 통해 인식론을 존재론으로 흡수하여 버리게 되면서 진리의 절대성과 보편성은 불가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는데 이 또한 그가 아인쉬타인과 교류할 정도로 현대 물리학에 대한 소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진리에 대한 개념을 폐기해야할지 아니면 개념을 새롭게 정립해야할 지를 고민할 시점이 오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즉, 근대의 진리개념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어버린 상황에서 진리라는 개념을 폐기하는 것이 타당한지 아니면 진리마저 폐기해버리면 무정부적인 세기말적 상황에서 인간은 중심가치가 없이 표류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진리개념을 새롭게 정리하는게 타당한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진리를 논하기 전에 먼저 근∙현대의 철학적 존재론을 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고대 파르메니데스부터 근대 인식론까지 서구를 지배해온 존재론은 실체론인데 그 특징은 모든 존재는 실체(실체의 의미는 플라톤은 제1원인자, 자기원인자인 이데아라고 해석하였으나 근대철학자들은 타자와 내재적 관계가 없이 독립적으로 존속하는 존재)이기때문에 고정불변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에 인간은 이러한 실체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였기 때문에(예를 들면 신의 계시) 존재론은 겨우 유명론 논쟁 외에는 터부시되어왔으며 오로지 주체가 실체인 대상을 있는 실상 그대로 파악하기 위한 인식론만 발달하게된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철학의 시조이자 실체론의 파괴를 시도했던 니이체와 하이데거를 거쳐 화이트헤드에 걸쳐 실체론은 폐기되기에 이르렀으며 결국은 반실체론인 생성론(이는 달리 합생이론, 사건론, 관계론, 과정론이라고도 불립니다)이 21세기의 새로운 존재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생성론의 입장에서는 존재라 함은 사건들의 연속적인 인과과정이라고 정의합니다.

다시 말하면 시공간상의 사건들의 인과적 흐름을 존재라 부르기에 여느 존대도 다른 존재와 내재적 생성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존립할 수가 없기에 우주는 하나라고 보게 됩니다.

하여 실체론에 기초한 기계론적 세계관을 버리고 유기체적 세계관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생성론의 존재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고 끝없이 상호작용하며 생성해가는 연속적인 사건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이러한 존재의 실상에 대한 파악은 주체나 객체가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지 않고 주체의 인식이 객체의 생성과정에 내재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따라서 고정불변의 실체는 없기에 근대의 실체의 고정불변의 본질이나 속성 을 파악하려는 진리를 찾아내고자했던 인식론은 이제는 심리학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존재의 실상에 대한 앎으로서의 진리는 이제는 설 자리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진리의 개념을 바꾸어 진리를 추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실체론이 폐기되었기 때문에 존재의 본질이나 속성을 알아내는 의미에서의 진리추구는 무의미해졌지만 즉, 성론의 입장을 따르게 되면 절대적 앎이 허구라는 것이 밝혀졌읍니다만 그렇다하더라도 생성의 작용원리와 생성의 목적은 인간사회의 가치규범의 근거로서 반드시 밝혀내야할 과제로 다시 우리 앞에 놓여지게 되었기에 이러한 작용인과 목적인을 진리로 삼아 보편적인 지혜, 즉 직관지로 받아들여야만 뭇 존재의 질서와 평화가 가능해지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적인에 대해서는 오늘날 천체물리학과 복잡계이론의 성과를 반영하여 우주의 항상성 유지를 위한 자기 조직화를 목적인으로 받아들여 이를 인간사회에 부합되게 새롭게 재해석하여 우주 자체를 인간사회의 질서와 평화와 생명의 창조자로 받아들여야만할 것이며 나아가 작용인에 대해서는 현대물리학, 특히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과 불교사상과 복잡계이론에서 존재의 작용인에 대해서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가 있는데 예를 들면 생성론의 연기법은 상호생성의 작용인을 제시하는데 중요한 예시가 된다할 것입니다.

특히, 현대과학은 자연의 존재법칙과 인간사회의 당위규범이 서로 전혀 별개의 원리로 작용하는 것이 깊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데, 예를들면 오늘날 인지과학에 의하면 생명의 중요한 요소인 마음을 단지 정보에 대한 통합적인 관리시스템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이를 달리 표현하면 복잡계이론의 자기조직화 기능과 같은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에 따르면 산소원자와 수소원자와 합해서 반드시 물분자만을 만드는 것도 자기 조직화 작용이 있다고 볼 수 있기에 산소와 수소도 마음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나아가 인간사회와 다른 생명체의 집단간에는 변용modification이 필요한 양적인 차이는 있지만 똑같이 자기조직화와 창발작용을 하면서 복잡계를 유지하기에 근본적으로 구조적인 차이가 없다고 보기에 우주의 자연법칙과 인간의 사회규범 간에는 깊은 상관관계가 있기에 자연법칙으로부터 인문학적 존재론을 찾아내어 뭇 존재의 작용인과 목적인을 철학적으로 재구성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여 종교와 과학을 융합하여 새로운 21세기의 철학을 구축하여야할 것입니다.

목, 2019/11/28-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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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11월 23일에 있었던 홍콩지방의회 선거는 반중파(민주파?)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다. 한국을 포함하여 대부분 서방 언론은 마치 민주주의의 승리인양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의 결과가 보여주듯이 홍콩인들은 이미 어느 국가의 누구보다도 자유와 자치분권을 누리고 있었다. 과연 이번 선거 결과가 홍콩의 잃어버린 영화를 다시 가져다 줄 것인가는 분명하지 않다. 일국양제 하에 있는 홍콩이 임의로 미국의 52번째 주로 편입될 수는 없는 일이다.

중국 본토의 지원과 협력이 없는 홍콩의 미래가 가능할 것인가? 오히려 잔꾀가 많은 영국정치와 막가파식 미국의 패권에 희생당할 소지가 높아 보인다. 현재 독일의 자유도시에서 법과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는 중국 젊은이의 색다른 견해를 아래에 소개한다.


소위 아시아 시위대는 자국인 홍콩 거리에서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약자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 모자를 쓰고 성조기를 흔든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생각을 지닌 미국인들이 이런 기괴한 광경을 보면 한편 즐겁지만 괴로운 메스꺼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아시아 시위대는 공론을 통해 ‘민주 투사’ 또는 ‘인권 수호자’로 불려지곤 하는데 두 단어 모두 의미가 약해서 특이한 차림을 한 사람들의 진정한 정신을 잘 포착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몇 왜곡된 언론은 정신 이상의 의미가 잘 담기거나 또는 누군가 마침내 깨닫고 “시위대 옷차림은 딱 극우주의자 같아” 라고 말할 때까지 여러 차례 시위대를 무고한 천사로 그려낸다.

그렇다. 이러한 유사함은 단순히 우연이 아니라 계속 심각하게 오래 지속되어 온 홍콩 위기 뒤의 추악한 진실을 밝힌다. 그리고 주류적 이야기인 경제 이론에 이의를 제기한다.

분명히 홍콩 부동산 재벌을 보면 독과점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세계 경제 침체, 미-중 무역 전쟁과 부인할 수 없는 외세 개입, 식민주의 잔존의 적폐 문제가 존재한다. 홍콩 거주민들이 중국 본토인들보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서 ‘교육 부족’이 발생했고, 통합을 위한 노력이 불충분했기 때문에 홍콩과 중국 본토 통합에 실패했다는 타당성을 내세울 수도 있다. 그것들은 모두 홍콩 위기에 기여한 중요한 요인이지만 평이한 답에만 안주하다 보면 결정적 원인과 관련성을 놓치게 된다.

시위대 구호인 ‘홍콩을 해방하라. 우리 시대의 혁명으로’는 많은 사실을 드러낸다. 필자는 현재 홍콩이 직면한 위기는 근본적으로 정치 관련이 아니라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체성은 사회 계층 속에서 우리 자신의 자아를 찾는 가장 단순한 방식이며 이익과 의무가 일괄적으로 표출된 형태로 나타난다. 거리의 홍콩 젊은 층은 유럽이나 북아메리카에 있는 아이덴티타리언 (identitarian)과 동일하게 ‘잠재적 정체성의 도둑질 potential identity theft’에 분노하고 있다.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2017년 백인 우월주의자 집회가 일어났던 곳)과 홍콩은 공히 세계적으로 우익의 세력이 막강한 지역이다. 홍콩 시위대는 트럼프 대통령 유권자 대부분과 동일하게 ‘야심찬 후임자’가 지역 내‘ 교체를 주장하는’ 엘리트주의자와 협력을 통해 급상승하여 지위를 잃을까 봐 깊게 두려워하는 편집증과 음모론을 가지고 있다.

2016년 미국 대선과 마찬가지로, 반전통적인 현재 홍콩 내 소란은 기존 지배집단들이 외부인에게 끊임없이 확실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노력이다.

‘홍콩인들이 서양과 중국 본토에서 누리는 모든 특권에서 반드시 다른 중국인들을 앞서야 한다’는희망을 담은 홍콩 시위는 서구를 향한 웅얼거림이자 베이징을 향한 외침일 뿐이다.

중국 본토인들은 아주 오랫동안 마치 나치 독일의 유대인, 유럽의 이슬람교도, 미국의 멕시코인처럼 홍콩인들의 우월하다는 정체성 구조 아래 “다른 민족”으로 희생양이 되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본토와 홍콩이 성공적으로 통합하려고 하면 할수록, 홍콩 ‘분리주의자’ 일부 세력이 더 초조해 할 것이다. 또한 베이징이 더 개방적이고 세계화를 향한 입장을 취하면 취할 수록, 홍콩인 일부 중 더 심한 외국인 혐오와 폐쇄적인 입장을 보일 것이다. 중앙 정부가 더 우호적인 입장을 취할수록, 홍콩 시위대는 더 폭력적으로 행동하게 될 것이며 본토 경제가 번영할수록 홍콩인 일부는 더 큰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폭력적인 홍콩 시위대가 주장하는 경찰의 강경 진압 이야기가 왜 쉽게 빠르게 신뢰성을 잃고 본토인들에게 거의 동정을 받지 못했는지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시위대 구호 속 중국어 단어 ‘광푸 (guangfu)’는 일부 홍콩인들이 한때 홍콩 황금기였다고 여겨지는 1980년대를 추억하는 깊은 향수를 미묘하게 암시한다. 홍콩 황금기 시절 홍콩인들은 자랑스럽게도 ‘선진적’이고 부유한 서양 스타일과 상업 문명을 대표했고, 홍콩과 본토 사이 경제 격차는 엄청났다. 이런 식으로 홍콩 정체성에는 중독적인 우월함도 내재되었다.

하지만 그 격차는 빠르게 좁혀져 왔다. 중국 본토는 급속히 발전하면서 세계화와 다극화를 통해 계속해서 세계 권력 균형을 재편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홍콩인들은 직접 차이와 변화를 실감하면서 변화한 현실에 대해 더 큰 타격을 받아 왔다. 상실감과 고통을 느낀 시민사회 단체들은 소위 옛 시절의 지위 계층을 재정립하겠다고 공약을 내세우는 급진적인 후보에 대한 지지를 더 끌어올렸다.

자기 비하는 자존감(상실)에서 오는 죄악이다.

“물길이 되어라, 홍콩의 친구들이여.” 육지의 돌사자 동상에서 출발하여 광활하게 펼쳐지는 바다를 향해 연안을 통과하여 전진해 나가는 뱃머리(중국)에 매달려 그저 뱃전에 문구만을 새기려 하지 말고, 더불어 함께 물길이 되어 시대에 확고한 불굴의 정체성을 불러일으킬 자유와 용기를 가지길 바란다 (중국어 구절 ‘ke zhou qiu jian’ 刻舟求劍에서).

 

루 양(Lu Yang)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 (Uni Freiburg)에서 법학 이론과 정치 이론 전공을 하고 있는 박사과정 학생이자 독립연구자이다

수, 2019/11/27-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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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 제기접경지역의 생태계적 상호협력의 역동성

경계라는 말의 사전적 뜻풀이에 따르면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다. 접경지역이란 말 그대로 그 경계와 경계가 접하는 지역이다. 서로 다른 성격(체제와 국가)의 공간이 만나는 지역이다. 이 이질적인 경계 사이에는 통제가 존재하며 기준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넘나드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경계가 단절적인가 서로 협력적인가는 이 경계를 넘어 어떤 교류가 존재하는가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단절의 공간이 아니라 소통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질적인 것이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작용할 경우 접경지역은 경계를 넘어선 역동성으로 상호침투와 융합이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분단으로 민족과 조국이 양분돼 있는 남북의 경계는 분단의 결과이자 분단을 재생산하는 핵심 공간이지만, 그러기에 경계가 만나는 접경지역에서의 상호협력과 소통은 분단을 넘어서는 바로미터이자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미 접경지역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남북연결 도로와 철도 개설 등으로 평화 정착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갔었다. 잠시 멈춰섰던 걸음을 이제 다시 내디뎌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성공단 금강산 등과 같은 접경지역에서의 협력은 남북당국간 정치적 협상과 회담의 결과이지만 그 과정은 남북 주민이 공동체적 질서를 구축해 삶의 과정에서 마음으로 좀 더 가까워지는 신뢰구축 작업으로 지속적으로 진행되야 할 것이다.

특히 임동근은 “접경지역을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정치적 역동의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각 부문을 연결하는 다기능(multi-function)을 수행하는 행위 주체의 등장과, 이들 간의 재화와 서비스의 흐름을 만드는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개성공단의 경우 남한의 기계와 북한의 노동력이라는 단순한 구도였지, 평양-개성-서울을 오고가는 네트워크의 진화는 고려하지 않았었다”고 비판했다. “에너지, 물자, 사람, 정보 등 생태계를 구성하는 흐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무엇’이 접경지역을 오고가며 기존에 불가능했던 역동성을 만들어 낼 것인가라는 ‘대상’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1】

 

. 남북 협력과 평화의 시발점으로서의 한강 하구

▣ ‘한강 하구’의 특수성- 경계의 소멸로서의 중립수역

○ 지리적 역사적 그리고 정치 군사적 의미의 한강하구

‘한강하구’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지리적 풍경적인 개념으로 임진강 한강 예성강이 만나는 조강(祖江, 염하를 포함)과 서해가 만나는 수역을 말한다. 그러나 흔히 이 지역을 한강하구로 부르는 것은 꼭 들어맞지가 않는다. 정왕룡 김포시 의원 같은 이들은 “예로부터 이 지역에 맞는 조강이라는 이름이 있으니, 한강하구라는 보통명사적 용어 대신에 조강이라는 원명칭을 복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곳은 임진강 예성강 등이 합쳐졌기에 더 이상 한강으로 부를 수 없다는 것이며, 그 범위도 한강과 임진강이 합수하는 지점부터 서해로 흘러나가는 유도까지, 혹은 넓게 보자면 예성강 부근까지 한강하구 일대를 가리키는 포괄적 용어였다는 것이다.【2】 게다가 남북분단으로 더 이상 사람이 갈 수 없게 되면서 언제부터인가 잊혀진 이름이 되었으니 그 명칭의 복원은 분단을 넘어서려는 것이기도 하다. 조강은 글자 그대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강(祖江)이란 뜻으로, 흔히 총길이 514km에 달하는 한강이 조강에 이르러 그 수명을 다했다는 뜻에서 온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 한강 하구라는 말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정치 군사적인 개념으로 정전협정상에 명시된 지역으로서의 의미다. 여기서 한강하구는 군사적으로 남쪽과 북쪽이 대치하는 적대적인 군사지역 가운데 정전협정 5항에 의해 규정된 수역이 된다. 정전협정은 이 수역을 한강 예성강 임진강이 흘러들어 만나는 수역으로 파주시 탄현면 만우리부터 서해 강화군 서도면 말도까지 67㎞로 구체적으로 명시해두고 있다.

정전 협정상에 규정된 이 ‘한강하구’(Han River Estuary)는 특별하다. 비무장지대(DMZ)의 다른 접경지역과 근본적으로 다른 한반도 유일의 중립수역이기 때문이다. 정전협정 제1조 5항은 다음과 같이 한강하구를 ‘군사분계선이 없는 자유항행 지대’로 규정하고 있다.

“한강하구의 수역으로 한쪽 강안이 일방의 통제 하에 있고 다른 한쪽 강안이 다른 일방의 통제 하에 있는 곳은 쌍방의 민간 선박의 항해에 이를 개방한다. 쌍방 민간선박이 항행함에 있어 자기 측의 군사통제 하에 있는 육지에 배를 대는 것은 제한받지 않는다.”

이 규정에 따르면 남북한의 민간선박은 한강하구를 자유 항행할 수 있고, 남이든 북이든 출항한 쪽이면 어디든 자유로이 입항할 수 있으며, 이는 정전협정에 규정된 육상의 비무장지대(DMZ)와 달리 한강하구가 중립지대(수역)라는 특수한 지위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한강하구는 ‘한반도 남북 접경지대에서 군사분계선(MDL)이 그어지지 않은 유일한 지역’이다. 그럼에도 위 지도에서 보듯이 많은 지도들과 그래픽이 이곳에도 군사분계선을 그어놓고 있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한강하구 지역은 군사분계선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유항행을 보장하는 중립수역이다. 그런 점에서 보통 DMZ 바깥쪽에 설정되는 민통선도 한강하구에서는 법적 존재근거가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 유엔사 관할권의 차등적 구조와 한강하구에 대한 법적 통제

정태욱 인하대 교수(법학)는 정전협정을 보면 유엔사의 이른바 군사통제에 근거한 관할권이 적용되는 비무장지대 및 접경지역의 범위는 이처럼 각 지역에서의 ‘군사적 필요’의 정도에 따라 차등적 구조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접경지역, 즉 육상의 비무장지대, 한강하구, 서해5도 수역들에 대한 정전협정의 규정과 유엔사의 관할권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우선 비무장지대의 경우에는 “적대행위의 재발을 초래할 수 있는 사건의 발생을 방지”(정전협정 제1조 제1항)하기 위하여 민간인 출입과 왕래 자체를 금하는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한강 수역(한강하구)의 경우에는 ‘쌍방의 민용 선박의 항행에 개방’하고, 다만, 그 ‘항행규칙을 규정하는’ 차원에서만 관할권을 행사하고 있다(정전협정 제1조 제5항), 또 서해 5도 수역에서는 바다 자체에 대하여는 직접적인 관할권을 정하지 않고, 다만, 섬들에 대한 군사통제만을 획정하고(정전협정 제2조 제13항 ㄴ목), 인접 해면을 존중하고 어떠한 종류의 봉쇄도 하지 못하게(정전협정 제2조 제15항) 하는 소극적인 차원에서만 관할권을 행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다르다. 한강하구도 여전히 군사통제구역으로 존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정태욱 교수는 “군사적 통제구역이 되었다고 하여 그것을 유엔사 관할권 행사의 결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실적인 통제 상태와 법적인 통제구역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강하구가 법적으로 통제구역으로 돼 있는 것은, 정전 협정상의 통제가 아니라 남한의 국내법적 통제인데, ‘군사기지 및 시설 보호법’(군사시설 보호법은 폐지) 상의 민통선, 그리고 해양수산부가 제정한 선박조업 안전규칙 등에 의한 어로한계선이 그것이다. 이는 남한 당국이 육상의 비무장지대와 동일한 원칙을 한강하구에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이러한 국내법적 통제는 정전협정이나 유엔사의 관할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우리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해제되거나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3】

물론 한강하구가 정전에 관한 국제법이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한강하구가 정전협정의 적용 대상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남북관계에서 한강하구는 무력 충돌의 위험 뿐만 아니라 70년대까지만 해도 적대행위가 빈발했다는 점에서 정전협정에서 한강 하구를 민간에 개방하였다는 사실만으로 그 구역에서 유엔사의 관할권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한강하구가 유엔사의 관할 구역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허가권(관할권 행사)을 비무장지대에서의 그것과 같이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태욱 교수는 이를 “민간의 평화적 이용권을 확인하는 협력적 확인행위”로 표현했다. 유엔사가 부속협의서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명시하기도 한 한강하구의 항행에 관한 정전협정 상의 민간선박 등록절차 등을 보건데 ‘금지를 해제하는’ 허가가 아니라, 단지 “자유의 행사를 인정하고 그것이 휴전체제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해 주는 절차라고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4】

 

▣ ‘한강 하구’의 미래- 남북협력을 통한 ‘한강의 기적’

○ 한강하구의 특수한 지위와 남북 협력의 가능성

한강하구는 특별한 지위에 있다.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군사적 통제 아래 있는 육상에서의 비무장지대와 서해(동해) 수역에서의 북방한계선을 둘러싼 남북간의 군사적 갈등과 비교해 본다면 접경지역에서의 남북 협력을 추진하는데 가장 적합한 독특한 지위에 있는 것이다.

국제법적으로 이러한 한강하구의 특수한 지위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선행적 실험을 추진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은 군사적 대결의 정전협정 체체를 넘어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이뤄가기 위해서는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미국(유엔사) 중국 등의 관할에서 남북의 관할과 합의로 바뀌어야 하며, 그런 합의 절차(평화협정 체결)가 요구된다. 예컨대 기존 정전협정상의 군사분계선(MDL)은 남북기본합의서의 ‘남북 불가침 경계선’으로, 군사정전위원회는 기본합의서의 ‘남북군사공동위원회’로 바뀌고, 중립국감시위원회는 ‘한반도 평화관리 국제위원회’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그에 비한다면 정전협정 상의 한강하구는 이미 경계가 없는 중립수역이라는 지위에 있기에 그런 합의 이전에도 현재의 정전협정에 의거해 남북이 공동관리하는 데 합의할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정전협정 상의 이러한 특수한 지위는 한강하구 사업이 남북관계의 부침이나 안보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중립수역일 뿐만 아니라 북방한계선(NLL) 등 서해 동해에서의 경계 논란과 군사분계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한 정치적 논쟁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인정되고 있는 항행의 자유와 평등의 원칙에 따라 강의 본래 기능을 되찾는 남북 공유하천으로 만들어간다는 방향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이에 반해 서해 동해 등의 해역에서는 중립수역임에도 이른바 유엔사령관이 일방적으로 정한 북방한계선이 본래 취지와는 정반대로 남쪽이 북의 남하를 막는 군사적 남방한계선으로 고착화했으며, 이 북방한계선이 정전협정의 어디에도 근거가 없고 국제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북이 ‘불법적인 선’으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심각한 군사적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게다가 남쪽이 이 북방한계선을 실효 지배의 경계선으로 고수한다면 노무현 정부에서의 서해평화협력지대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이 합의한 서해 해상에서의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의 범위를 설정하는 데 북이 동의할 수 있는 수역을 정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북방한계선은 이처럼 서해에서의 평화를 진전시키지 못하는 딜레마가 되고 있다.

한강하구에서의 협력에 관한한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접경지역 협력에서 남쪽이 중요시한 철도 도로 연결에 대해 북은 상대적으로 매우 소극적이었다. 대륙으로 가는 육로나 철도 연결은 남이 단절돼 있던 것이지 북은 늘 연결돼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임진강 예성강 등을 통한 서해로의 자유로운 진출, 해주 등 서해에서의 항행 자유 등은 북 또한 매우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한강하구의 이러한 정전협정 상의 특수한 지위 등 법적 지리적인 여건에 입각해 볼 때 한강하구야 말로 남북간에 가장 유망한 접경지역 협력 지대로 만들어가기 위한 적극적인 조처가 필요한 것이다.

한강하구는 예로부터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 전략적인 요충이자 물류의 중심이었다.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시대에는 치열한 세력다툼의 전장이었고 고려, 조선시대에는 삼남지방의 물자를 실어나르는 주요교통로였다. 병인, 신미양요 때는 프랑스, 미국 군함이 오르내렸고 분단이전 까지만 해도 임진강 예성강 한강은 살아 쉼쉬며 이 지역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육지와 바다를 이어주는 주요한 물길이었다. 그런 점에서 정전협정에서 한강하구 중립수역의 자유항행을 보장하고 있고, 한강(임진 예성강)이 예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주요 뱃길의 하나였다는 관점에서 이곳의 포구를 복원해 뱃길을 여는 사업은 본래의 강을 되찾아가는 일이자 분단을 넘어서는 본래 하나였던 삶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으로서 최우선적 과제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5】

 

○ 생물 다양성의 기수역(汽水域)이자 남쪽의 마지막 자연하구

생태 환경적으로 본다면 한강하구는 남쪽에서는 이제 마지막 남은 자연하구다. 특히 바닷물과 강물이 하루에 두번씩 교차하며 뒤섞이는 조수간만의 차가 큰 이 지역은 기수역(汽水域)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민물고기와 바닷고기가 공존하는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습지와 뻘 등이 넓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곳은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 경로의 주요 중간 기착지이기도 하다. 북의 황해 연안 지대와 함께 이곳은 연중 일부를 한반도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여타 대양주 아시아 지역에서 보내고 여름 번식기를 위해 시베리아 알래스카로 날아가는 세계적인 철새 이동경로의 하나다.

한강하구에는 예로부터 황복, 웅어, 농어, 새우, 뱀장어, 숭어 등이 풍부했으며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인 저어새 노랑부리 백로 등이 서식한다. 특히 황복과 웅어는 예로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올려 보내는 귀한 물고기였다. 갈대밭에 서식하는 웅어는 환경파괴 등으로 많이 사라져버렸으나, 바다에서 잡히는 일반 복들과 달리, 강에서 잡히는 유일한 민물복어인 황복은 고가의 ‘황금물고기’로 지금도 임진강의 명물이 되고 있다. 특히 장어는 현재 한강하구 어민들의 주된 수입원이 되고 있다. 흔히 풍천(風川) 장어라고 하면 풍천이라는 지명의 장어로 혼동하는데 본래 풍천이라고 하는 지역 또는 마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바닷물(짠물)이 하루에 두번씩 밀물로 들어올 때 바람이 함께 들어와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기수역을 풍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곳(짠물과 바닷물이 뒤섞이는 곳)에서 생산되는 장어를 바람이 함께 몰고 들어온다고 해서 ‘풍천 장어’라고 하는 것이다.

남북이 이 지역의 생태 서식 실태를 파악하고 지켜나가기 위한 환경 생태적인 차원에서도 공동 관리와 보호를 위한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자연적으로 방치된 상태가 아닌 강의 수자원 기능과 수로 항행 기능이 보장되고 인간으로부터 차단된 자연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면서 생태적 가치를 유지하도록 관리하고 보호하는 적극적 환경보호와 평화적 이용의 관점을 견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강하구 뱃길 및 주운 활성화, 포구의 복원, 한강과 서해의 연결, 홍수 방지와 같은 핵심적 사업은 생태환경 가치의 보존과 함께 병행될 필요가 있다.

 

○ 다시 시작하는 한반도 평화

한강하구의 평화는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고 남북관계가 개선돼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된 이후에 가능한 사업이 아니다. 오히려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어려운 상황에서 상호 호혜와 신뢰의 구축을 통해 협력의 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업이다. 즉 평화를 유지하고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사업으로서 의미가 있으며. 우선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민간 선박의 자유항행(뱃길 열기)을 그 맨 앞에 두려는 것은 앞서 살펴봤듯이 정전협정에서 이미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강 하구 중립 수역에 대한 뱃길 수로 및 생태 환경 조사는 이 자유 항행을 위한 선결 조건인 셈이다. 아울러 이 생태 환경 수로조사는 자체로 이 지역의 자유항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길을 열어가는 일이 길을 만들어가는 것인 셈이다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안전 조처 등 항로 개설에 필요한 절차와 관행을 확립해 정전협정이 보장한 민간선박이 오가게 된다면, 문재인 정부가 판문점 정상회담 이래 내건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이라는 구호에 걸맞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현재의 북핵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유엔제재 아래서도 남북관계를 변화시키는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수도권 장기발전 구상과 서해 해상 평화 벨트와의 연계

이러한 한강하구의 복원 및 남북의 평화적 활용은 남북간 긴장 완화 및 접경지역 남북교류협력 활성화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남쪽 내부의 관점에서 본다면 한강하구 주변 지역 사회들의 발전을 이끌어 나가는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 북은 북대로 임진강, 예성강, 사천강을 통해 개성 등 황해도 내륙지역의 서해로의 출구를 확보하면서, 서해 NLL을 둘러싼 영해 논란을 우회해서 한강하구를 통한 자유항행으로 서해에서의 통항의 자유를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며, 서해 5도와 인접한 군사적 긴장으로 인해 가로막혀 있던 강령 녹색시범구, 해주항 개발 등 황해도의 개발과 발전을 추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과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기조에서 볼 때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수도권의 과밀과 서울 집중을 완화하는 균형발전의 광역 수도권(메가 폴리스) 전략을 결합시켜 추진하는 비전이 될 수고 있을 것이다.【6】 지난 30년간 시행된 수도권 종합개발계획 및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정책과 규제의 성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대체적인 평가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인구와 산업의 분산이라는 정책목표 달성에 실패했고, 수도권과 지방이 모두 만족하지 못해서 국토 균형발전 목표도 이루지 못했다는 의견이 많다.

따라서 남한 유일의 자연하구인 한강의 옛 뱃길을 복원하여 분단된 한강(조강)을 하나로 만들어가는 길은 넓고 길게 본다면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자, 반쪽이 아닌 남북을 아우르는 온전한 의미에서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가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1】 임동근 한국 교원대(국토지리학), 접경지역시군구협의회와 한겨레통일문화재단 공동주최, ‘2018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접경지역 협력’ 1세션(2018 남북정상회담 이후 경계를 넘어선 협력의 모색) 토론문. 2018년 6월 27일, 제주 국제컨벤션센터.

【2】 정왕룡 김포시 의원, 신년특집 김포 통일시대를 꿈꾸다 <김포저널> 2015년 1월8일.

【3】 정태욱 인하대 교수(법학) ‘한강하구에 관한 유엔사의 관할권’, ‘7.27 한강하구 평화 배 띄우기 조직위원회’ 주최의 “한강하구의 평화정착과 생태‧평화적 발전전략” 토론회 발표문 2007년 6월20일.

【4】 한강 하구의 항행규칙은 제8차 정전협정 후속 합의서인 <한강 하구에서의 민용 선박 항행에 관한 규칙 및 관계사항(1953.10.3.)> 제6항 (민간에서 오랫동안 관습적으로 사용하여 온 한강 하구 수역 내에 성문화되지 않은 항행규칙과 습관은 정전협정에 저촉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쌍방 선박이 이를 존중한다)에 규정돼 있다. 이 항행규칙은 군사정전위에서 정했으며, 다른 비무장지대의 경우 민간인의 출입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면, 한강하구는 규정에 근거해 등록된 민간선박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불허할 뿐 원칙적으로 항행을 허용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5】 생태 교란, 선박의 항행의 안전등 논란이 되고 있는 신곡수중보 철거여부 문제도 생태적 관점만이 아니라 닫혀 있는 한강을 열어 온전히 복원하는 자유로운 항행의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이처럼 한강 및 수도권과 관련한 많은 사업계획 및 환경 생태관련 사업은 남북의 한강하구 공동관리의 관점에서 재검토되고 그런 방향에서의 장기 전망 아래 추진돼야 할 것임. 일단 당면 과제는 한강하구의 자유항행을 통한 한강 뱃길의 복원이라는 관점을 견지할 필요가 있음.

【6】 김동성 외(2017). 『한강하구 평화적 활용을 위한 경기도 주요과제 연구』, 경기연구원, p. 174.

 

2020-06-05.

강태호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편집위원장, 전 한겨레 평화연구소장

목, 2020/11/19-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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