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을 위한 행진곡》 을 함께 부르는 100만 홍콩 시위대ㆍ22분경부터 나옵니다. 25분경부터는 한국어로 노래하며 구호를 외칩니다.위대한 광주혼의 부활 ~! ♡
♡ 《임을 위한 행진곡》 을 함께 부르는 100만 홍콩 시위대ㆍ22분경부터 나옵니다. 25분경부터는 한국어로 노래하며 구호를 외칩니다.위대한 광주혼의 부활 ~! ♡

♡ 《임을 위한 행진곡》 을 함께 부르는 100만 홍콩 시위대ㆍ22분경부터 나옵니다. 25분경부터는 한국어로 노래하며 구호를 외칩니다.위대한 광주혼의 부활 ~! ♡

한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2019년 내내 이어진 홍콩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2019년 12월 7일부터 11일까지 홍콩에 다녀왔습니다. 다산인권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인권운동공간 활,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한국YMCA전국연맹의 활동가 7명이 만난 홍콩의 오늘에 대한 이야기를 여섯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International&document_srl=16... target="_blank" rel="nofollow">[홍콩의 오늘을 만나다 ①] 무장 경찰, 검문검색..... 그래도 '홍콩에 오길 잘했다'
류다솔 /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상근변호사
2018년 2월, 한 홍콩인 남성이 발렌타인데이를 기념하여 함께 여행을 간 여자친구를 대만에서 살해한 뒤 홍콩으로 돌아왔다. 영국법체계를 따라 형사법상 속지주의를 택한 홍콩에서는 홍콩 밖에서 범죄를 저지른 위 남성을 처벌할 근거가 없었고, 대만과 범죄인인도협정이 맺어져 있지 않아 그를 대만으로 송환할 수도 없었다. 이에 홍콩 정부는 2019년 2월 중국, 마카오, 대만 등 별도의 범죄인인도협정을 맺지 않은 지역으로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범죄인 인도법(아래 '법') 개정안을 발표하였다. 이 개정안은 2019년부터 해를 넘긴 현재까지 이어지는 홍콩 시민들의 거대한 분노와 투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법 개정안이 발표된 직후 법안의 악용 가능성 등 문제점을 처음으로 지적한 이들은 홍콩의 변호사들이었다. 진보적 변호사 단체인 PLG(Progressive Lawyers Group) 등은 2019년 2월 말 성명을 통해 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홍콩의 행정장관이 정치인을 포함하여 홍콩에 발을 들이는 모든 사람에 대해 모호한 죄명을 이유로 중국 등지로의 송환 결정을 할 권한을 가지게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2015년 중국 내 '금서(禁書)'를 판매한 홍콩 퉁뤄완(銅鑼灣) 서점 관계자 5인 실종사건 등을 경험한 홍콩에서 이러한 지적은 매우 현실적인 위협이었다.
▲ 홍콩의 변호사 단체인 PLG는 2019년 2월 22일 홍콩 정부의 송환법 개정안에 관해 성명을 발표하였다.
PLG 홈페이지 갈무리ⓒ Progressive Lawyers Group
법 개정안의 문제점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2019년 6월, 홍콩의 변호사와 법학자 등 법률가 3000여 명이 송환법 철회를 요구하며 거리 침묵행진을 펼쳤다. 인구 약 740만 명의 도시에서 2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반송중(중국 송환 반대) 시위'에 때로는 격렬하고 때로는 조용하게 저마다의 작은 불빛을 보탰다.
캐리 람 행정장관이 송환법 공식철회를 선언한 9월 4일 이후에도 시위대는 경찰의 시위대 강경 진압을 조사할 독립 진상조사단 설치 등 '5대 요구' 관철을 주장하며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다. 2019년 11월 중순까지 시위로 인해 체포된 사람은 4500명을 넘어섰다. 우리 방문단은 시시각각 변하는 홍콩의 상황 속에서 홍콩의 시위대에게 법률지원을 제공하고 있는 홍콩의 변호사들을 만났다.
우리는 '주도자 없는 시위'로 일컬어지는 홍콩의 시위대를 위해 법률 지원 핫라인을 운영하는 한 중견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우리에게 가장 먼저 2005년 한국 농민들의 세계무역기구(WTO) 반대 시위를 언급했다. 2005년 12월,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한국 시민사회는 1500명가량의 대규모 투쟁단을 구성하여 WTO 제6차 각료회의가 열리는 홍콩으로 원정투쟁길에 오른 바 있다.
한국 시위대는 사물놀이, 바다 수영, 삼보일배, 도로점거투쟁 등 다양한 방식으로 5일가량 시위를 이어갔는데, 특히 삼보일배 시위는 홍콩 시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당시 시위로 인해 1000명이 넘는 시위대가 연행되었다. 홍콩 역사상 가장 큰 규모였다. 그는 처음 겪는 상황에 홍콩 경찰과 홍콩 시민사회 모두 미숙했지만, 이를 통해 양측 모두 시위 대응 능력이 높아졌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이때 처음으로 홍콩 변호사들의 대규모 프로보노 공익법률지원 활동이 시작되었다고 평했다.
▲ 2005년 WTO 반대시위의 일환으로 삼보일배를 하며 홍콩 거리를 행진한 한국 시위대 (http://omn.kr/35c2)
ⓒ 오도엽
당시 홍콩 시민사회는 대규모 연행자들의 법률 조력을 위해 20여 명가량의 변호인단을 꾸렸다. 이들의 조력으로 대부분의 시위대가 기소되지 않고 풀렸났으며, 당시 3심까지 갔던 한국인 세 명에 대해서도 최종적으로 무죄 선고가 나왔다. 마지막 무죄 판결까지 이끌어낸 이 변호사는 당시의 인연으로 한국에 왔다가 농활까지 다녀왔다고 하니, 과연 필자보다 한국의 사회운동에 더 베테랑이었다. 이후 두 번째 대규모 공익법률지원 활동은 2014년 79일 동안 지속된 '우산혁명'이었다. 수십 명 규모의 변호인단이 구성되었지만 다행히도 연행자가 많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세 번째 대규모 공익법률지원 활동이 바로 지금의 시위이다. 홍콩의 시민단체들이 연합하여 시위대를 위한 법률 지원 핫라인을 운영하고 있는데, 연행되는 시위대가 연락을 하면 법률지원이 가능한 변호사와 연결을 해주는 식이다. 현재 약 200명 가까운 변호사가 자원하여 일하고 있다고 한다.
홍콩의 변호사가 법정변호사(Barrister) 1500여 명, 사무변호사(Solicitor) 9900여 명 등 1만 명가량이니 전체 변호사의 약 2% 남짓이다. 홍콩 명보 등에 따르면 지난 2019년 6월부터 12월 5일까지 시위 과정에서 체포된 홍콩 시민의 수는 5980명이고, 이 중 18세 미만 청소년은 2380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변호사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숫자의 시위 연행자들을 위해 법률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다.
▲ 긴급법률지원이 필요한 경우를 위한 홍콩 인권단체 ‘민권관찰’의 안내문ⓒ 민권관찰(民權觀察)
이번 방문을 통해 10여 명의 홍콩 변호사들을 만났다. 이들은 평일에는 기존의 일상적인 변호사 업무에 더해서 매일같이 잡혀있는 시위대의 변론기일에 출석하고 밤이 되면 밀린 서면을 쓰고 있었다. 주말이면 흐르는 물과 같이 어디서 시위대에 대한 폭력이 발생할지 모른다. 주말 저녁에 연행 소식을 들으면 시위현장과 경찰서, 구금 시설 등으로 달려간다.
지난 11월 홍콩이공대에서 하룻밤 새 1000명 이상이 연행되었을 때는 변호인단에게도 악몽같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올해 첫 시위가 있던 지난 1월 1일에도 400여 명의 시위대가 연행되었다. 이런 생활도 어느덧 반년을 훌쩍 넘었다. 시위대도, 함께 하는 변호사들도 언제 '일상'을 되찾을지 기약이 없다.
홍콩 변호사들의 결연한 목소리와 눈빛을 통해 느낀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홍콩 시위대가 존재하는 한 홍콩 변호사들의 공익법률지원 활동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 피해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변호사로서의 당연한 의무이다. 당연한 일은 때로는 현실에서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이는 비단 홍콩의 오늘을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변호사들을 공명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쉽지 않은 길을 나아가려면 혼자서 빨리 달리기보다는 함께 멀리 걸어나가야 할 것이다. 오늘의 서울에서 연대의 인사를 건넨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02322" target="_blank" rel="nofollow">오마이뉴스에서 보기>>
보도협조요청
2019년 10월 4일(금) 오전 11시, 광화문 남측 광장 (세월호 기억저장소 앞)
지난 3월 31일 홍콩에서 시작된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개정안 철회 시위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국 건국 70주년 국경절이었던 지난 1일, 홍콩에서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분들을 기리는 ‘애도의 날’ 행사가 있었던 이날, 시위 참여자인 중등학교 5학년 남학생이 경찰의 실탄에 맞아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동안 홍콩 경찰은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최루탄과 물대포를 동원하고, 특공대 투입과 경고성 실탄을 발사하는 등 강경 대응을 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천 명이 넘는 인원이 체포되었고, 지난 10월 1일 시위에서만 66명이 부상을 입고 180여 명이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꾸준히 비판 받아 온 홍콩 경찰의 무차별적인 폭력 진압, 과잉 대응을 여실히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이에 지난 8월 진행한 홍콩 시위 지지 한국 종교, 인권, 시민사회 기자회견에 이어 시위대를 향한 홍콩 정부의 폭력 진압을 규탄하고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촉구하는 2차 기자회견을 개최합니다. 기자회견에는 국제민주연대, 참여연대를 비롯한 한국 시민사회단체들과 재한 홍콩인들이 함께할 예정입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홍콩 시민들에 대한 연대와 지지의 의미로 검은 색 옷을 입을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취재를 부탁드립니다.
문의 :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02-723-5051, [email protected])
보도협조 https://docs.google.com/document/d/1rWtwrY2xTpJ0eRijH06a0r4BtJF9_0vUS4Fm... target="_blank" rel="nofollow">[원문보기/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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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민주주의가 위태롭습니다.
홍콩 시민들은 송환법 개정을 넘어 중국 본토 반환 이후 느꼈던 사회적, 경제적 박탈감과 홍콩의 자치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주주의와 인권, 홍콩의 미래를 걱정하며 계속해서 거리로 나서고 있습니다.
이러한 홍콩 시위에 적극 함께하고 있는 민간인권전선(民間人權陣線)의 얀 호 라이(Yan Ho Lai) 부의장이 한국을 방문합니다. 그는 홍콩의 시위가 지속될 수 있었던 건 국제사회의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군부독재 시절 국제사회가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관심과 지지를 표한 것처럼, 과거 한국 시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마주한 홍콩에 관심을 가져주길 호소하고 있습니다.
홍콩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시민모임은 얀 호 라이 부의장에게 홍콩 시위의 동향은 어떠한지, 홍콩 시민들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등 생생한 소식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한국은 국경을 넘어 어떻게 홍콩 시민들과 연대할 수 있을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석 부탁드립니다.
홍콩 민간인권전선 얀 호 라이 부의장에게 듣는 홍콩의 민주주의
- 일시: 2019년 11월 11일(월) 오후 7시
- 장소: 나눔문화 https://store.naver.com/restaurants/detail?entry=plt&id=21413519&query=%... target="_blank" rel="nofollow"><라 카페 갤러리>
- 주최: 홍콩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시민모임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아시아공동행동, 국제민주연대, 나눔문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연대위원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아시아민주주의네트워크, 참여연대, 홍콩시위를 지지하는 촛불시민연대,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5.18재단)
- 문의: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02-723-5051, [email protected])
[관련기사] http://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90222... target="_blank" rel="nofollow">'홍콩 민간인권전선' 얀 호 라이 "만약 정치 개혁이 없다면, 시위는 세대를 통해 계속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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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31일(토) 저녁 6시 - 8시 (한국 시간) @ Zoom
“진짜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봐야 해”
2020년 6월 홍콩 국가보안법 발표 이후 홍콩 시민들 사이에서는 <어린 왕자>의 이 구절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자유롭게 말하고 외치기 어려운 홍콩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문장이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홍콩을 대표하는 언론 <빈과일보>(蘋果日報, Apple Daily)가 결국 마지막 신문을 발행하고 폐간되었습니다. 빈과일보의 마지막 신문을 사기 위해 홍콩 시민들은 길고 긴 줄을 섰습니다.
홍콩의 활동가들은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마주하고 있을까요? 국가보안법 1년, 홍콩의 오늘에 대해 한국과 홍콩 활동가들이 함께 이야기 나누는 연대의 밤을 진행합니다.
언제나 홍콩을 기억해왔고, 앞으로도 홍콩과 함께 하고픈 분들의 많은 신청 부탁드려요.
https://bit.ly/HongKongSolidarityKorea" target="_blank" rel="nofollow">참여 신청 https://bit.ly/HongKongSolidarityKorea" target="_blank" rel="nofollow">▶https://bit.ly/HongKongSolidarityKorea" target="_blank" rel="nofollow">bit.ly/HongKongSolidarityKorea
프로그램
한국어로 참여하실 분들은 https://bit.ly/HongKongSolidarityKorea" target="_blank" rel="nofollow">링크에서 참여 신청을 해주세요
당일 Youtube 생중계(영어 통역 버전)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공동주최 아시아민주주의네트워크(ADN), 홍콩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단체 (국제민주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연대위원회, 참여연대, 한-홍 민주동행) - 추가 예정
한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2019년 내내 이어진 홍콩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2019년 12월 7일부터 11일까지 홍콩에 다녀왔습니다. 다산인권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인권운동공간 활,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한국YMCA전국연맹의 활동가 7명이 만난 홍콩의 오늘에 대한 이야기를 여섯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International&document_srl=16... style="background-position:0px 0px;color:rgb(102,153,204);" target="_blank" rel="nofollow">[홍콩의 오늘을 만나다 ①] 무장 경찰, 검문검색..... 그래도 '홍콩에 오길 잘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02322" target="_blank" rel="nofollow">[홍콩의 오늘을 만나다 ②] 홍콩 인권변호사단의 시작엔 한국 농민들이 있었다
김랑희 / 인권운동공간 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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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진 종착지 센트럴에 경찰들이 무장하고 도로를 통제한 채 대기중이다. ⓒ 김랑희
2019년 11월 9일, 홍콩 민간인권전선(民間人權陣線)의 얀 호 라이(Yan Ho Lai) 부의장이 한국을 방문했고, 나는 홍콩 시민들을 연대하는 한국 집회에서 그의 연설을 들었다. 이날은 홍콩 경찰이 쏜 최루탄을 피하려다 추락해 숨진 홍콩과학기술대 대학생 차우츠록을 추모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얀 호 라이는 홍콩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과거 한국의 민주화 투쟁과 닮았고, 차우츠록의 사망은 1987년 이한열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또한 2005년 홍콩에서 벌인 한국 농민들의 WTO 투쟁은 이후 홍콩의 운동진영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했다. 그는 "이것은 홍콩만의 일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를 위한 싸움의 고통을 겪어 본 모두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한국과 홍콩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서로 연결된 감각을 갖는다. 그런데 나는 "홍콩에 방문해달라. 그리고 거대 프랜차이즈가 아닌 홍콩 사람들의 작은 가게들을 이용해달라"는 그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아마 나라면 연대를 호소하고 함께 투쟁에 동참해달라는, 구체적인 행동을 요청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저 홍콩에 와서 작은 상점을 이용해달라는 말만 남겼다. 그의 말이 계속 여운이 남았는데 한 달 뒤 홍콩시민들을 만나고 나니 조금 알 것 같다. 그가 무엇을 요청한 것인지.
민간인권전선이 주최한 12월 8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 행진 'World Day of Human Rights Rally'(월드 데이 오브 휴먼 라이츠 랠리)은 8월 18일 이후 처음으로 경찰이 허가한 집회였다.
주최 측은 집회가 금지되지 않기 위해 여러 조건을 갖추었다고 하는데(경찰은 그동안 안전상의 이유로 집회를 불허해왔다. 때문에 구급대 배치 등 안전을 증명할 여러 요건들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동안 집회가 금지될 때마다 얼마나 화가 나고 답답한 마음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참가자들도 몇 개월 만에 허가가 난 이 집회를 평화적으로 진행하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경찰 측은 집회 참가자가 1만 8000명이라고 추산했다(홍콩 경찰이나 한국 경찰이나 숫자 줄이기란...). 하지만 시위 주최 측은 80만이 참석했다고 발표했고, 홍콩 시민들은 100만은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거리는 오전부터 집회 준비로 분주한 광경이었다. 다양한 선전물이 사람들의 손에 전달되고 도로 곳곳에 스피커가 설치되었다. 빅토리아 공원에, 행진 도로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12월의 따사로운 햇볕에 "집회하기 참 좋은 날씨야"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친구, 가족과 함께 행진했다. 각자 준비한 다양한 선전물을 들고 개성 넘치는 분장을 한 모습이 한국의 촛불집회 풍경과 같았다. 불과 한 주 전에도 최루탄이 등장했기 때문에 마스크도 준비해갔지만 교통경찰조차 마주치지 았다. 그렇게 평화로움을 느끼던 중 홍콩 활동가가 경찰과 물대포가 등장했다고 알려줬다. 대체 이유가 뭔지, 경찰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안내를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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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본부의 육교 위에서 경찰들이 행진 참가자들을 내려다보고 있고 시민들을 그 모습을 보고 "경찰 해체"를 외쳤다 ⓒ 김랑희
행진이 진행되는 도로 옆으로 난 작은 길들에 무장한 경찰이 배치되어 있었다. 20여 명이 헬멧에 복면까지 하고 있었다. 군인 같은 복장에 각종 장비로 무장을 이들은 한눈에도 일반 경찰은 아니었다(나중에 언론 보도를 통해 이들이 특공대였다는 것을 확인했다). 기록을 위해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는데 총처럼 생겼지만 총구가 큰 낯선 무기가 보였다. 무엇인지 몰라 홍콩 활동가에게 물어봤더니 최루탄을 발사하는 장비였다.
경찰 앞에서 홍콩 활동가에게 궁금한 것을 묻자, 경찰이 무어라 소리를 질렀다. 너무 놀랐지만 겁먹은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평화적인 집회에 이렇게까지 무장을 하고 사람들을 겁주는 행태에 너무 화가 났기 때문이다. 행진 도로에서 경찰이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무장한 경찰이 '우리는 언제든지 진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집회 참가자들에게 알리려는 의도로 보였다. 소리 지르는 경찰을 다시 한번 쳐다봐주고 최대한 여유 있어 보이는 모습으로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처음과 달리 긴장감은 높아졌다.
행진 대열이 경찰본부를 지날 때 "경찰 해체"를 외치는 구호가 높아졌다. 경찰본부 건물 부근에 많은 경찰이 있었고, 그들은 육교에서 시민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마치 비웃는 느낌이었다. 시민들도 경찰의 내려다보는 모습에 더욱 격렬하게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그렇게 일부러 자신들을 노출했다. 경찰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불신과 분노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시민들은 몇 개월째 경찰 폭력을 직접 겪거나 목격하고 있다. 최루탄뿐만 아니라 페퍼 스프레이, 물대포, 빈백건, 고무탄총, 음향대포(지향성음향장비)에 권총까지. 경찰 무기의 총동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권력의 폭력에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오히려 분노가 더 커 보였다.
정당한 요구를 위해 거리에 나선 사람들을 '폭도'로 규정한 정부에 대해, '바퀴벌레'라고 부르며 조롱하는 경찰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폭력의 공포를 동원해 시위를 멈추게 하려는 권력에 맞서는 시민들은 때로는 평화적으로 때로는 기습적으로 창의적이고 다양한 투쟁을 하며 서로를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었다.
행진의 종착지인 센트럴에 다가가자 홍콩 시위의 상징인 된 검은 옷에 마스크, 방독면, 고글을 쓴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홍콩 사람들은 이들을 프론트 라인(front line)이라고 불렀다. 경찰에 맞서 최전선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센트럴에 도로를 봉쇄하고 무장한 채 대기 중이었고, 주최 측은 행진을 마친 참가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반대편 길로 안내했다. 그리고 프론트 라인은 참가자들이 무사히 행진을 마칠 때까지 경찰과 거리를 두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었다. 바리케이드라고 해봤자 우산과 주변의 기물들로 만든 엉성한 장애물이지만 긴장은 팽팽하게 유지되었다.
밤 10시쯤이 되자 인도에 검은 옷을 입은 일군의 사람들이 우산을 펼치고 모였다. 잠시 후 우산은 접히고 형형색색의 발랄한 옷을 입은 젊은 얼굴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서로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렇게 몇 번 우산이 모였다 접히면서 검은 옷은 일상의 옷이 되어 거리를 떠났다. 아마도 몇 개월을 이렇게 거리에서 모이면서 누군가는 경찰 폭력으로부터 시위대를 지키고, 누군가는 음식을 만들어 나누고, 누군가는 헬멧과 우산, 갈아입을 옷을 모으면서 서로를 지켰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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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트럴의 무장한 경찰에 맞서 검은 옷의 프론트 라인이 바리케이드로 저지선을 만들고 있다. ⓒ 김랑희
나는 종종 집회에서 참가자들에게 적대적인 눈빛과 태도를 보이는 경찰을 만나면 왜 그런 태도를 보이는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집회 진압 과정에서 누군가 다치고 죽게 된다면 경찰들도 두려움을 갖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런 두려움을 갖게 된다면 경찰은 공권력을 행사하는 데 신중하게 될 것이다. 즉, 강력한 힘을 필요로 하는 권력에게 경찰의 머뭇거림은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래서 권력은 경찰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해야만 한다. 경찰 폭력을 정당화하려면 권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범죄자로 규정해야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홍콩 시위를 "급진 폭력 범죄행위"로 규정하며 법치와 사회질서를 엄중하게 짓밟고 있다고 말했다. 또 홍콩의 번영과 안정을 엄중하게 파괴하고 있으며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의 마지노선에 엄중하게 도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폭력을 저지하고 난동을 제압해 질서를 회복하는 게 홍콩의 '가장 긴박한 임무'라고 말했다. 또 홍콩 경찰의 엄정한 법 집행을 '지지'하며 홍콩의 사법기구가 법에 따라 폭력 범죄분자를 엄벌하는 걸 '지지'한다고 밝혔다.
시 주석의 이런 메시지를 받은 캐리 람 행정장관은 시민을 향해 경찰이 실탄을 발사했어도 시위대를 '폭도'라고 부르며 유혈 진압을 정당화했고, 중국 정부는 강경파인 크리스 탕을 홍콩 경무처 처장으로 기용했다. 그러니 경찰은 시민들을 향해 어떤 망설임도 없이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홍콩 시민들의 5대 요구 중 3가지는 현재 경찰의 시위 대응에 대한 문제다.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이 요구들은 경찰의 잘못된 행위를 밝히는 것을 넘어 경찰 폭력 뒤에 숨어있는 권력을 향해있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힘으로 누르려는 권력, 시민들의 삶을 통제하려는 권력을 드러내겠다는 의지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요구는 하나의 요구이기도 하다. 자유를 박탈하려는 권력을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려면 반드시 거처야 할 과정이다.
정부는 힘을 동원해 시위를 멈추게 할 생각이었겠지만, 시민들은 공권력의 두려움보다 파괴된 민주주의와 자유가 사라진 삶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에 여전히 거리에 나온다. "FREE Hong Kong"을 외치는 시민들은 곳곳에서 원치 않는 미래를 강요하는 권력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하철 운행을 멈춰 경찰 폭력에 협조한 MTR(Mass Transit Railway) 승차를 거부하고, 시위를 지지하는 옐로우 레스토랑을 이용하고, 휴교를 하거나 등교를 하면서 시위를 하고, 파업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있다. 홍콩 시민들은 시위를 통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삶과 지키고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더 분명하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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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를 채운 행진 참가자들이 손을 펼치며 5대 요구를 외치고 있다 ⓒ 김랑희
<임을 위한 행진곡>을 홍콩 시민들이 집회에서 불렀다는 소식은 많은 한국인을 감동시켰고, 홍콩 시위에 대해 한 걸음 더 다가가게 했다. 홍콩에서 만난 사람마다 한국의 민주화 '트릴로지(3부작)'를 얘기했다. <1987>, <택시운전사>, <변호인> 이 영화들은 한국의 민주화 투쟁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홍콩시민들의 현재 투쟁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 역시 감동적이었고 감사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은 "한국의 민주화 투쟁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가"였다. 이 질문은 내게 많은 고민을 던져준다. 우리는 승리했는가? 우리의 민주주의는 현재 어떤 모습인가?
87년 투쟁으로 현재 홍콩의 요구처럼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고 김대중 정부 이후 이제 집회에서 최루탄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과정은 오랜 투쟁의 시간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죽어갔다. 단체와 노동조합은 만들고 부서지기를 반복했고 사람들은 잡혀갔고 고문을 당했다. 그런 시간들이 이어지고 반복하는 과정에도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가 가능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여전히 공권력을 동원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세력이 등장했고 정부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범죄자가 되었다. 홍콩 시민들이 요구하는 경찰의 폭력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우리도 해내지 못했다. 광주의 학살자들을 처벌하지 못했고 용산의 철거민들, 쌍용차의 노동자들을 진압했던 자들, 백남기 농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권력으로부터 제대로 사과를 받지 못했다.
민주화 투쟁의 과실을 얼굴만 다른 세력이 차지해 권력을 지키는 데만 사용한다면 계속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권력과 계속 불화하는 과정에서 지켜지고 확장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홍콩에 가서야 다시 깨닫게 되었다. 홍콩 시민들의 투쟁은 내게 현재 우리의 과제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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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곳곳에 "FREE HK" 의 구호를 볼 수 있다. ⓒ 김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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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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