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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싸움’을 하겠다 – 3월 5일 서울 시위를 주도한 강기덕과 학생지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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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싸움’을 하겠다 – 3월 5일 서울 시위를 주도한 강기덕과 학생지도부

익명 (미확인) | 금, 2019/03/29- 16:31

[사건과 인물로 보는 우리 근현대사 30]

우리는 ‘우리의 싸움’을 하겠다

– 3월 5일 서울 시위를 주도한 강기덕과 학생지도부

조한성 선임연구원

학생대표 강기덕과 김원벽, 3월 5일 인력거를 타고 만세 시위를 지휘했다.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1919년 1월의 어느 날 전문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관수동에 있는 중국요리집 대관원에 모였다. 중앙기독교청년회(YMCA) 간사인 박희도가 주선한 모임이었다. 청년회 회원을 모집하는 데 전문학교 학생들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이 자리에는 보성법률상업학교의 강기덕, 연희전문학교의 김원벽, 경성의학전문학교의 김형기, 경성전수학교의 윤자영, 경성공업전문학교의 주종의 등 전문학교 학생들과 보성법률상업학교 졸업생인 주익, 연희전문학교 출신의 배화여학교 교사 윤화정이 참여했다.
그런데 이날 모임에서 시국에 관한 얘기가 화제에 올랐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강화회의가 개최된다고 하니 이때야말로 조선이 독립을 할 적기가 아닌가. 평화의 정착을 위해 민족자결주의가 주창되었다고 하니 약소국도 독립을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생긴 것이 아닌가. 당장 독립운동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과 좀 더 사태를 관망해야 한다는 의견이 격렬히 이어졌다.
결론이 나진 않았다. 모임의 본래 목적이 여기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희도는 그동안 전문학교 학생들이 서로 소원하여 만나지 못했으니 이번 기회에 정기적인 만남을 이어가자고 덕담 비슷한 말을 했다. 하지만 이날의 모임은 모두의 가슴에 묵직한 돌덩어리를 남겼다.
며칠 후 강기덕이 김원벽을 찾아왔다. 김형기도 왔다. 그들은 함께 독립운동을 하자고 했다. 다수의 학생들이 뜻을 모으고 있으니 함께 하자고 했다. 결국 김원벽은 그들과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학생들의 독립운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제2회, 제3회의 독립운동을 위하여

2월 20일 승동교회에 각 전문학교 학생 대표들이 모였다. 보성전문학교 강기덕, 연희전문학교 김원벽, 경성의학전문학교 김형기, 한위건, 경성공업전문학교 김대우와 경성전수학교의 전성득, 윤자영,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김문진, 이용설 등이었다. 전문학교 학생들은 이삼일 전인 2월 17~18일에 각 전문학교별로 학생대표를 선정했다. 동지가 될 수 있을지 신원과 인격을 조사하고, 괜찮다싶으면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여 본인이 승낙하면 대표자로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2월 20일 전문학교 학생들은 천도교와 기독교가 추진하고 있는 독립운동에 최대한 협조하되, 그것으로 운동을 끝내지 말고 학생들이 주도하는 운동을 계속해서 벌여나가기로 결정했다.
“독립운동은 한번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제1회에 선언서를 발표한 사람이 체포되면 제2회, 제3회, 계속하여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다.
전문학교 학생들은 이러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책임자를 1선 간부와 2선 간부로 나누었다. 1선 간부는 학생들이 주도한 제2차 독립운동을 책임지도록 하고, 2선 간부는 그 이후에 있을 3차 독립운동을 책임지도록 한 것이다. 천도교와 기독교가 주도하는 제1차 독립운동에는 전문학교 학생들의 동원을 최소화하는 대신 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기로 했다. 학생들은 독립운동을 결의하는 순간부터 독자적인 운동을 꿈꿨다. 종교인들이 주도하는 독립운동에 협력하기는 하되, 그 운동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운동을 벌일 생각이었다. 학생들이 주익을 통해 독립선언서를 따로 준비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학생들, 독자적 독립선언서 발표를 포기하다

“학생들이 독자적인 독립선언의 발표를 중지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경성지방법원 예심판사의 질문에 김원벽이 대답했다.
“2월 20일경 선언서를 인쇄하려고 했소. 그런데 박희도가 기독교, 천도교 측에서도 독립운동 계획이 있으므로 하나의 운동에 두 가지 선언서가 있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며 자신들의 계획에 합류해달라고 했소. 우리는 그것에 동의하고, 선언서는 난로에 넣어 소각해 버렸소.”

학생들과의 논의 창구였던 박희도. 후일 변절하여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했다.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독립선언서는 학생들의 독자적인 독립운동 계획을 내용적으로 완성시키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데 학생들의 독립선언서 발표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독립운동을 준비하고 있던 천도교와 기독교 인사들이었다. 그 중심에 강기덕과 김원벽을 통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박희도가 있었다.
박희도는 학생들의 독자적인 독립운동의 포기를 종용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자신들의 운동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격렬한 논쟁 끝에 학생 측은 선언서의 발표를 포기하는 대신, 3월 1일 이후의 운동은 학생 측이 맡아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양측의 갈등은 완전히 봉합되지 않았다. 종교인들은 학생들의 선언서 발표를 막긴 했지만, 학생들의 독자적인 운동에 대해 깊은 우려가 있었고, 학생들은 자신들의 독자적인 독립운동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종교인들에게 불만이 있었다. 양측의 갈등은 결국 사달을 내고 말았다. 2월 28일 밤,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서의 발표 장소를 탑골공원에서 명월관지점(태화관)으로 변경한 것이다.

독립선언 장소가 탑공공원에서 명월관지점으로 변경된 이유

2월 28일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서의 발표 장소를 변경할 때 이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사람은 박희도였다. 학생들이 탑골공원에 모이면 어떤 일을 할지 모르므로 잘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의 문제제기로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폭력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민족대표들 사이에 확산되었고, 독립선언 장소는 순식간에 명월관지점으로 변경되고 말았다.
학생들의 독립운동이 대관원에서 박희도와의 만남을 계기로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후 민족대표는 박희도를 통해 자신들이 생각하는 독립운동으로 학생들의 행동을 제어하고자 했다. 문제는 그러한 의도가 생각보다 잘 먹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종교계의 독립운동에 거리를 두고 있었고, 끝까지 독자적인 독립운동을 유지하고 했다. 2월 28일에 있었던 박희도의 발언은 제어되지 않는 학생들의 운동에 대한 불안감의 표현이었다. 그 불안감이 결국 양측의 불협화음을 야기하고 만 것이다.
3월 1일 오전 10시경, 보안 유지를 위해 하루 전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강기덕의 병실 문을 급히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학생대표 김문진이었다. 그는 울상이 된 얼굴로 독립선언 발표 장소가 변경된 소식을 알렸다. 강기덕은 김문진, 한국태와 함께 명월관 지점으로 달려갔다.

학생과 대중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강기덕은 손병희와 기타 ‘민족대표’들에게 장소를 변경한 이유를 물었다. 그들은 “파고다공원에서 선언서를 발표하면 경찰이 자신들을 현장에서 체포할 것이고, 학생과 군중들이 그것을 보면 폭동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했다. 폭동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장소를 변경했다는 답변이었다.
강기덕은 납득하지 못했다. 학생과 군중에 대한 저들의 뿌리 깊은 불신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강기덕은 말했다.
“민족대표가 파고다공원에 가지 않으면 그것이 오히려 폭동의 원인이 됩니다. 파고다공원에서 선언서를 발표한다고 학생과 시민을 모아놓고 갑자기 명월관지점에서 한다고 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파고다공원으로 가셔야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말했다.
“우리가 가지 않아서 폭동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우리가 책임지겠소. 선언서는 여기서 발표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소. 우리는 여기서 발표할 테니 당신은 돌아가는 게 좋겠소.

” 강기덕은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그때 책임진다고 말한 사람은 누구인가?”
예심판사의 질문에 강기덕이 대답했다.
“모르겠소. 난 그때 실례되는 태도를 취하고 말았소.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나의 팔을 잡고 제지했고, 그곳은 무척이나 혼란해져 버렸소.”
참아야 했지만 강기덕은 참지 못했다. 분노가 그의 이성을 모두 잠식한 것 같았다.
강기덕은 만류하는 사람들에 의해 끌려나오다시피 해서 명월관지점을 나왔다. 몇몇 사람이 따라 나와 차분한 말투로 그를 설득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의 귀에 그 말이 들어올 리 없었다.
바로 그때 강기덕은 이제 막 명월관지점으로 들어가는 이갑성과 눈이 마주쳤다. 이갑성은 박희도와 함께 학생 측과 긴밀히 의견을 나눴던 기독교 인사다. 그런데 이갑성은 무언가 얘기할 듯하다가 아무 말 없이 문 안으로 사라졌다.
“손병희 등이 파고다공원에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심판사의 질문에 강기덕이 답했다.
“마음에 불평이 있었소.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싸움’을 시작하겠다

2월 28일 밤 ‘민족대표’가 장소를 변경했을 때, 박희도나 이갑성은 학생지도부에 이 사실을 알리고자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대상은 김원벽이었을 수도 있고, 강기덕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강기덕의 말과 행동을 보면 그 소식이 그에게까지 닿지 못했거나, 닿았더라도 충분히 납득하지 못했던 것 같다.
강기덕과 김문진은 탑골공원의 학생과 시민들에게 ‘민족대표’가 오지 않기로 한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그날의 만세시위를 책임지기로 한 학생들에게 ‘민족대표’와 상관없이 집회를 진행하라고 했다. 강기덕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불법적인 행동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자리를 떠났다. 강기덕은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산공원으로 향했다. 인근에 있는 조선총독부와 경무총감부가 신경이 쓰였지만 그곳만큼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은 없었다. 시위 계획대로 된다면 학생과 군중들은 조선총독부가 있는 혼마치 일대로 오게 될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민족이 온 힘을 다해 부르는 만세의 함성이 공원 안까지 들려왔다. 학생과 군중들이 대열을 갖추고 행진하는 모습이 보였다.
휑했던 마음이 어느새 다시 뜨거워졌다. 확실해진 것이 하나 있었다. 이것은 그들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의 싸움이라는 점이었다. 학생들만으로 제2의 독립운동을 하기로 했을 때부터 학생들은 어쩌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조선인들의 마음엔 이미 봄이었다

3월 5일 남대문역 앞 도로는 오전 9시가 되기 전부터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3월 5일 학생들이 주도하는 제2차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날 시위에 각자가 가지고 나올 수 있는 것들을 많이 가지고 나왔다. 구호를 적어 넣은 깃발이 대표적이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집회엔 언제나 그러하듯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새롭게 등장한다. 새로운 생각이 태어나고 새로운 인식이 자라난다.

대한문 앞 광장 만세시위 광경. 위의 사진에서 뒤로 보이는 건물은 당시 경성일보 겸 매일신보 사옥(지금 서울시청 자리). 미국 컬럼비아대 유니언신학교의 버크도서관 소장. 3•1운동 당시 서울에서 활동하던 선교사가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3월 5일 남대문역 일대를 붉게 물들인 붉은 수건도 그 중 하나였다. 사람들은 붉은 수건을 머리띠인양 머리에 두르기도 하고, 완장처럼 팔에 감기도 하고, 손에 들고 흔들기도 하면서 만세를 불렀다. 붉은 수건은 내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불덩어리를 내 친구, 내 이웃에게 전하는 도구였다.
9시가 조금 지난 시각, 군중 속에서 2대의 인력거가 나타났다. 인력거에 탄 청년들의 손에는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조선독립’이라고 쓴 깃발이 들려 있었다. 강기덕과 김원벽이었다. 군중들은 인력거를 앞세우고 행진을 시작했다. 만세의 함성이 온 시내를 뒤흔들었다.
‘만세’로 조선인은 하나가 되었다. 그들은 독립과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싸웠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아무도 억압 받지 않는 세상, 아무도 차별 받지 않는 세상, 아무도 착취 받지 않는 세상이 그것이었다.
강기덕은 시위를 시작한 지 10분 만에 경찰에 체포되었다. 김원벽은 좀 더 오래 버텼지만 그 역시 많이 길지는 않았다. 시위의 경험이 부족해 지도자를 보호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 것은 금세 배울 수 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 다음 사람이 그들이 떨어뜨리고 간 깃발을 주워 흔들면 될 테니까 말이다.
봄은 아직이었다. 하지만 조선인들의 마음엔 이미 봄이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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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저는 ids사기 사건의 피해자로 1년 넘게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김성훈은 이미 2심에서 15년의 중형을 받은 사기꾼입니다. 그럼에도 매번 피해금을 변제하겠다

변제하겠다 하면서 시간을 끌어오다  지난 8월에는 비상장주식인 정체불명의 변제안을 제시하면서 합의서와 처벌불원서를 받아 자신의 감형에만 정신을 쏟다기 몇몇 몰지각한 피해자의 파산신청을 옳다구나 받아들여

자신의 1조에 채무를 벗어나려하고 있습니다.

민족문제를 바르게 풀어가는 민족문제연구소의 고문 변호사이신 정만순 변호사님께서 김성훈 사기꾼을 돕고 수많은 피해자를 또다른 고통으로 몰아가는 일에 앞장서신다는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제발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주시고,..

정의로운 변호사가 되는 길에 오점이 생기질 않길 바랄뿐입니다.

목, 2017/12/07- 02:03
76
0

정만순 변호사님 부탁드립니다.

29명이 1만명의 생각 몫까지 생각해 파산을 신청한다는건 김성훈에게 면죄부를 주는일은 사람이 해서는 안되는일이고, 잘못된 일인줄알면서 했다는건 더 그죄가 악질입니다.

많은 변제안으로 사람들을 현옥시켰고

서민들이 피땀흘려 번것들을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다

사측에서의 장난

목, 2017/12/07- 00:37
96
0

정만순 변호사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고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고문이라면 ‘어떤분야에 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품부한 경험을 가지고 자문에 응하여 의견을 제시한다’고 되어있습니다.

고문으로서

29명이 1만명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은 상태에서 파산을  대신한다는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발 다시 한번 생각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온갖 비리가 다 걸쳐져 있는 ids !

이건 아마도  더이상 유사수신등 의 건으로 이런 불상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록

법을 개정하도록 힘을 주세요

이건 아마도

 

목, 2017/12/07- 00:51
109
0

정만순변호사님…

저는 IDS홀딩스의 김성훈 사기사건으로 매일 밤잠 설치며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지내고 있는 피해자입니다.

김성훈은 사기꾼입니다. 무허가 유사수신회사를 설립해 1만 2천여명의  투자자로부터 1조원을 챙긴 나쁜 사기꾼입니다.

김성훈과 일부 파산을 신청한 사람들은 또 다른 사기로 투자자들을 힘겹게 하고 있습니다.

저의 목숨과도 같은 피 같은 돈입니다.

부디  피해자들의 고통을 혜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제발 김성훈의 파산을 막아주십시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수, 2017/12/06- 23:32
16
0

안녕하세요

저는 IDS피해자입니다

이번에 채권자라는 20여명이 신청한 파산을 보면서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저희 가족의 피같은 돈을 이렇게 사기당한것도 억울한데 다른 피해자들의 대표도 아닌 사람들이 변호사와 함께 파산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잠도 못자고 정말 자멸감이 뭔지 느끼고 있습니다

정만순 변호사님

정말 이게 옳은 일인지 생각하시고 돕고 계신지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파로 인한 역사 왜곡을 바로잡으시는데 앞장서서 훌륭한 일을 하시는데 어찌하여 김성훈 사기범을 돕는 일을 하시는지요

파산을 김성훈은 쌍수를 들며 환영하고 있습니다

공평..말이 공평이지 피해자들은 또 파산이후 돈을 들여 법정싸움을 해야하고

김성훈은 파산됐으니 홀가분하게 지낼텐대.. 변호사님께서 이 일을 전체에게 좋은일인지 몇명에게 좋은 일인지 판단하시여 파산을 멈춰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목, 2017/12/07- 19:18
41
0

정만순변호사님

저는 IDS홀딩스 피해자입니다

IDS홀딩스 김성훈은 1조원대 사기범이고 피해자가 1만2천명입니다

13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차곡차곡 모아둔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을 사기 당하고 하루라도 빨리 변제가 이루어 지기만을 소망하는 피해자로 현재 파산절차를 보면서 깊은 절망속에 있습니다

이 파산은 1만명의 동의를 얻은 것이 아니며 단 20여명이 신청하였고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써 김성훈에게 파산은 결코 용납 할 수 없습니다.

김성훈 파산이 이루어지면 동의하지 않은 피해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이게 공평한 재산 나눔일까요

파산이 이루어지면 김성훈과 동조했던 이들이 월급이라며 받아가고

직급자들도 투자사실있으면 받아가고.. 현재 피해자별지에

누락된 피해자들은 또 법정싸움을 해야합니다.

피해자들 입장에서 생각해주십시요.

민족문제연구소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곳이라 들었습니다

죄없다며 상고중에 있는 김성훈을 돕는 파산 진행은 되지 않도록 도움 부탁 드립니다.

목, 2017/12/07- 18:26
58
0

 

ids홀딩스로 인해 고통받는 피해자입니다.

제2의 조희팔 사건..

제가 그 사건의 피해자가 될 거라 생각도 못했었답니다.

저의 욕심이 이렇게 힘든 생활의 연속이 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처럼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이 넘쳐나고 있는 상황에서 29명이 12000명을 대표하여 파산신청을 진행한다는 말에 더 놀랐습니다.

어렵게 모으고 모은 돈을 기다리면 준다하여 1년반을 넘게 기다렸는데 단 한푼의 변제도 받지 못한 상태인데

이제는 파산을 하여 면책을 받겠다니요…

제발 간혹히 부탁드립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훌륭한 곳이고 이런 곳의 고문변호사이신 분께서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목, 2017/12/07- 17:01
61
0

 

“제2의 조희팔” IDS홀딩스 사건의 피해자의 한사람으로

하루하루 절망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변제해준다는 말만믿고 기다렸지만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하지않고

단한푼의 변제도 받지못하였습니다

 

그런데  파산을 하여 면책을 받겠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12,000명의 피해금에 대한 파산을

극히 일부인 29명의 파산신청인이 대표하여 진행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29명이 만명을 대신할수는 없습니다

파산이 받아들여진다면

만명의 피해자들이 또한번의 절망적인 일을 겪는것입니다

더이상의 피해를 보지않도록 파산을 막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목, 2017/12/07- 21:25
79
0

정만순 변호사님

저는 Ids홀딩스 피해자입니다

이번 사기사건으로 저는 건강에 문제가 생길정도로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있습니다. 정말 김성훈이 피해자들을 기만하며 변제한다 떠들기만 할뿐 실제 1원도 받지 못했고 오히려 김성훈은 피해자들에게 파산을 하면 돈을 공평하게 나눠 가진다며 편지글을써서 유포하고 있습니다

이게 정말 정의가 살아있나 싶을정도로 사기범이 자기 파산하니 찬성해달라하니.. 어느 사람이 이해하며 받아들일까요

 

정만순 변호사님께서 만일 제 입장이시라면 파산 좋으니 동참하세요 하실수 있으실까요? 민족문제연구를 이번에 처음알고 친일파를 바로 잡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좋은 일을 하는 곳이란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데 김성훈의 파산을 도와 1만가정의 결제를 파탄내는 일을 도우신다니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정만순 변호사님

1만명의 목소리와 피맺힘이 들리시는지요?

김성훈에게 파산이라니.. 이걸 채권자라는 20여명의 사람들이 돕고 있으니 정말 1만명의 피해자 대표도 아닌 그들이 나서서 김성훈을 돕는 것을 볼수가 없습니다

제발 !! 올바른 길이 무엇일까 생각해주십시요. 저는 김성훈의 파산을 절대 받아들일수가 없습니다. 부디 파산을 막아주십시요

목, 2017/12/07-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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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돈을 가지고 가서

호의호식해놓고…

지금 깐빵에 있는 인간!

죄를 뉘우치고 돈을  갚을 생각은 커녕

파산으로 배째라 하는 인간!

인간으로 할 짓이 아닌 행동을 하는 인간!

그리고 많은 서민들은 눈물과 괴로움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목, 2017/12/07-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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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Ids홀딩스 피해자 입니다.

김성훈 대표는 피해자들의 돈을 훔쳐가고 변제할 생각이 없습니다

단본인이 죄를 뉘우친다면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변제를 해야하는데

그런행동도 없이 파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김성훈의 파산를 막아주세요

 

목, 2017/12/07-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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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서정주를 비롯한 친일문인들은 누구인가?

우리가 일본의 침략에 의해 36년 간 식민통치를 받는 동안 일제를 적극 옹호하고 일본국 천황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자고 했던, 적국의 편에 서서 민족을 배반한 부역자들이다.

이들은 단지 문화예술을 통한 일본에 협조한 행위를 넘어서서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전쟁의 앞잡이 노릇을 한 ‘전범들’이었다.

중앙일보는 역사와 국민 앞에 사죄하고, 미당문학상 운영과 수상자 선정을 즉각 중단하라!

친일문인 기념문학상, 미당문학상 폐지하라! 친일문인 기념문학상은 역사의 무덤 속으로!

2017년 12월 5일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 민족문제연구소 / 역사정의실천연대 / 친일문학상 폐지를 위한 학생시민연대

금, 2017/12/0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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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은평구에 거주하는 결혼7년차 평범함 주부입니다

 

결혼할때도 최대한 돈을 최대한 아껴야 한다는마음에 결혼전 쓰던 저의 대부분의 물건을

 

가져와서 신혼살림을 차렸을만큼 아끼고 아껴서 돈을 모아놓았고, 결혼후에, 저없이 혼자살게될 어머님도

곰팡이 나는 집에서 이사시켜드리고 싶어서 최선을 다해서 절약해서 돈을 모았습니다..

 

 IDS홀딩스에 투자한 돈은 결혼 전 밤낮을 일하며 어렵게 모은돈과 친청어머니에게 생활비의 도움을

드리고자 친정어머님집에 대출을 받아서 ids에 투자하여, 어머님께 용돈 및 대출 이자를 갚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69ids사태가 벌어지고 어머님께 드리는 용돈은 물론이거니와 그 집을 담보로

 

대출받은 돈의 이자까지 너무 힘겹게 매달 갚아내고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남편에게 말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해서 저는 건강도 많이 안좋아지고, 결국 몇 달몇 버티다

남편에게 이실직고후엔 부부사이는  많이 악화되었습니다.

 

 당시 모집책은 김성훈대표의 계좌동결만 풀리면 원금 회수를 할 수 있다하였고,

 

저는 그 말만 믿고 몇 달을 기다리다가 이렇게 시간이 지나버렸습니다

 

 모든것이 거짓임이 밝혀진 지금에도, 이들은 아직도 피해자들에게 ids가 변제를 해줄것이라며 합의서와

함께 지점장 처벌불원서를 받고 있으며 본인들도 피해자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태를 늦게 파악한 저는 원금 손실이라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결혼한지 7년이 되었지만 아이를 가질생각은

엄두도 못내고 있는 상황입니다..저는 그동안 돈을 아끼느라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돈 때문에  밤잠을 설쳤을 때

피해자들의 돈으로 수당을 받아 호의호식한 이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피해자들이 대형 보험사의 FC나 재무설계사, 자산운용가를 통해 IDS홀딩스에 가입하였습니다.

이들 모집책은 금융전문가들로써 IDS홀딩스가 불법 유사수신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의 이득을 위하여 원금 손실이 없는 월이자식 금융상품인양 안내하여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였습니다.

이에 ids홀딩스를 신고합니다.

 

 

 

 

금, 2017/12/0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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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모텔주인은 여석가구로…

적십자희비

마는세종대왕… 그라고….$$$$$…..%%%%%시민역사관 낸다고….

집현전열장

사임당두장                   $약속%

그러나

그인력노동자는  그약속이

일부 달방세입자와나 ……..그리고  ……주인으런의  횡포라고

볼수 있는 ……..그러나

백이호실의 몽문일부

 

부분파손(기물폭행)그리고수갑

그인력노동자의 저녹서 출소날이

십유길

그복직된  화면목탁에게  하소연 하는가?

니는 일마야  최소한  삼육오라는  그팀장형사!

섣딸양력에 이사도  자라는데,

이게  무슨  인심고!?(참고사진경남민언련)

 

금, 2017/12/0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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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임을 하시려거든 그래도 말이 되는 수임을 하시지.. 여기저기 깨끗한 이름이 더럽혀 질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 본인도 아시리라 봅니다. 속히 돌이키시어 정의를 지켜주시는 변호사님으로 남아주세요

금, 2017/12/0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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