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80명에 달하는 사법농단 가담 법관, 참담하다
'20대 개새끼론'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현행 선거법 문제, 다양한 국민의견 담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실시해야
하민 청년활동가, 우주당(정치개혁공동행동 참여단체)
이 글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과 정치개혁 공동행동의 공동기획 연재 기사입니다. [원문 바로가기]
[정치야 말 좀 들어!-①] 예산동결-의석확대로 선거제도 개혁해야
[정치야 말 좀 들어!-②] '촛불'이 특정 정당 반대? 문제는 선거법이다
[정치야 말 좀 들어!-③] '촛불 정치', 이렇게 가능하다
[정치야 말 좀 들어!-④] 32살에 교육부장관, 스웨덴이라 가능했다.
나는 민주주의의 꽃이 선거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지방선거와 총선, 대선을 합쳐 지금까지 투표만 여섯 번을 했는데, 내가 투표한 후보가 당선된 적이 한 번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나는 시청 민원실에 전화해 불편한 점을 말해야 했고 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구 국회의원과 시청 홈페이지를 들락날락 해야 했다.
선거 때 내 주권이 행사되고 민주주의의 '효능감'을 느낀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선거는 정말 민주주의의 꽃인가. 내가 원하지 않았던 나의 대표가 무얼 하든 동의하며 보고 있어야만 하는가.
문제는 내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선거 제도에 있다. 그렇다면 나는 선거법 개정을 주장할 수 있다. 내 표가 사표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정치적 소수자인 내 의견도 반영되는 방향으로 말이다. 아무리 현대 사회가 법과 제도에 의해 돌아간다고 해도 내가 동의하지 않는 법과 제도라면 나는 바꿔 달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우리가 대의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 정치적 다수자의 의견만 정치무대에 올라가는 현행 선거법은 개선돼야 한다. 더 다양한 의견이 주목받고, 숨어 있는 문제들이 해결되는 나라를 위해서 말이다.
정치적 다수자와 정치적 소수자의 의견을 동등하게

▲ 지난 5월 3일, 불기 2561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광주 문빈정사는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한 의지를 상징하는 무지개 물결로 표현하여 현수막 한 장에 집약했다. ⓒ 서진영
앞서 이 기획에 참여한 많은 필자들이 밝혔듯,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면 소수 정당이 정치무대 중앙으로 들어올 수 있다. 또한 정치 경험은 적지만 열정적이고 소수자 의제를 다루는 정치 신인도 경력이 굵은 국회의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소수 정당과 정치 신인을 국회에 보내는 것은 국민의 다양한 의견이 입법 과정에 반영돼야 하기 때문에 중요한다. 아래는 지난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판결문에서 김이수 재판관이 썼던 반대 의견 중 일부이다.
"정치적 다수자들의 처지에서 보면, 설령 자신이 직접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은 이미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되어 현실에서 제도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경우가 많고, 나아가 굳이 본인이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을 대변해 줄 가능성도 크다. 그에 반해 정치적 소수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직접 표현하거나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의견은 결코 사회적으로 의미 있게 드러낼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 판결문 227쪽
소수 정당이 다루는 소수 의제는 동물, 성소수자, 강제 철거 반대, 양심적 병역 거부 등 다양하다. 이 의제들은 찬반 여론이 심해 정치 무대의 중앙에는 올라가기 어려운 의제들이다.
나는 지난 3월, 자유한국당의 동물 복지 간담회에 참석했다가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동물보호단체의 대표들이 공장식 축산 문제나 개고기 식용반대에 대해 아무리 호소를 해도 당시 간담회에 참석했던 국회의원들은 축산업계 카르텔의 공고함을 이유로 들며 동물보호단체 대표들의 의견에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소수 정당들은 동물 보호에 대한 이슈를 꾸준히 제기하며 형식적 간담회가 아닌 실질적 활동들을 펼치고 있다.
또한 지난 대선, 사상 최초로 성소수자 이슈가 대선 테이블에서 논의됐지만, 성소수자를 지지한다고 말한 사람은 심상정 후보 한 명 뿐이었다. 하지만 사실 "지지한다"는 표현도 옳지는 않다. 해가 뜨고 달이 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일에 어찌 "지지한다"는 말을 해야 할까.
강제 철거 현장에 오거나 양심적 병역 거부자와 연대하는 정당 사람들도 소수 정당 소속 사람들이 많다. 나와 같은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농담조로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들 사이에선 노녹정이 거대 정당인데 말야."
'노녹정'은 노동당, 녹생당, 정의당을 일컫는다. 우리의 정치적 입장은 늘 한결같고 확고하지만, 우리가 지지하는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이 중앙 정치에 입성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김 재판관은 판결문에서 정치적 소수자의 의견이 왜 보호돼야 하는지 설명한다. 정치적 다수자의 의견은 공중의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대변해 줄 사람이 많다. 그러나 소수자의 의견은 소수자 당사자가 외치는 경우가 아니면 의견을 대변해 줄 사람이 적다.
지난 대선 때, 성소수자의 권리를 외치던 사람들이 "나중에" 소리를 듣거나 대화의 기회조차 빼앗긴 채 경찰에 연행됐던 걸 생각해 보자. 외쳐도 안 들어 주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자의 의견을 대변하고 입법 과정에 반영해 줄 국회의원의 존재는 절실하다. 김 재판관은 또 판결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양한 종들이 각자의 존재를 과시하며 자연계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수의 지지를 받는 정당들도 우리 사회의 정치적 역량과 상상력, 민주적 실천을 다채롭고 풍부하게 만드는 정치적 자산이다. 자연계에서 다양한 종의 보존이 중요하듯이 민주 사회에서 다양한 생각의 보존 또한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수라는 수적 우위와 보편적 정서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주류적 사고로 인해 소수의 생각이 주눅 들어 사멸되지 않도록 해 주어야 한다." - 판결문 228쪽
나는 선거법 개정을 통해 정치적 다수자의 의견과 정치적 소수자의 의견이 정치 무대에서 동등한 무게로 다뤄지는 세상을 꿈꾼다. 다수자의 의견이라고 해서 더 중요하고 소수자의 의견이라고 해서 덜 중요하다는 생각은 민주적이지 못 하다. 진짜 민주적인 것은, 어떤 의견의 경중을 머릿수로 따지는 게 아니라, 각자의 생각이 중요한 의견으로 동등하게 대우받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소수자의 의견을 정치 무대에 올려야 하고, 그렇게 해 줄 국회의원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많이 뽑혀야 한다. 이럴 경우 성소수자 국회의원, 장애인 국회의원, 많은 수의 여성 국회의원이 탄생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청소년의 정책은 청소년 손에

▲ 부산 지역 학생·청소년단체와 교육관련 시민사회단체 등 36개 단체가 꾸린 ‘촛불 청소년 인권법제정 부산연대’가 22일 오후 부산시청 광정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청소년연대는 청소년 참정권 보장과 어린이 청소년 인권법 제정, 학생 인권 법제화 등 관련 법제화 등을 요구했다. ⓒ 정민규
나는 현재 경기도에 살고 있다. 일과 공부는 서울에서 하는 중이지만, 집은 경기도다. 월세가 싸서 이쪽으로 왔다. 경기도로 이사 온 1년 뒤 지방선거에 참여했다. 잠자고 쉬는 곳을 위해 투표를 하는 게 어쩐지 이상했다.
더 이상한 것은 교육감을 뽑아야 했을 때였다. 나는 이곳에 아무 연고가 없다. 이 지역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것도 아니고, 이 지역에서 결혼해 아이 낳을 계획도 없으며, 하다못해 이 지역에 조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1인 가구의 떠돌이 인생에 따라 언제 또 이사 갈지 모른다. 즉, 나는 경기도의 교육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이다.
근데 내가 이 지역 청소년을 위해 교육감 선거에 참여해야 했다. 교육 정책의 당사자에겐 투표권이 없고 비당사자인 나에겐 투표권이 있는, 유권자와 정책 간 불일치의 경험을 하고 나서, 청소년 투표권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청소년을 만나 대화할 기회가 많았다. 20대 내내 과외와 학원 파트타임 등 사교육에 수시로 종사해 왔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청소년들은 대체로 어른과 국가에 의해 통제 받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나는 종종 청소년들에게 무언가를 정해 달라고 했다. 에어콘을 끌 건지 말 건지, 숙제를 얼마나 할 건지, 숙제를 안 해오는 친구에게는 어떤 벌칙을 주면 좋겠는지 등. 규칙을 내가 정해주는 게 아니라 청소년 스스로 합의해 정하고 자기가 만든 규칙을 지키도록 했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으레 이렇게 얘기하곤 했다.
"아, 귀찮아요. 쌤이 그냥 정해 주세요."
나는 이 말을 듣고 청소년을 위한 민주 시민 교육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 수 있었다. 실제로 학생 자치를 학교에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셨던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어 보면, 학생 자치 초반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비 올 때 우산을 대여해 주거나 화장실이 더러우니 청결하게 해달라는 등 민원성 요구가 대부분이고 학생의 복장이나 두발 규정 등 학생의 권리에 대한 것은 학교가 정해주는 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동안 어른은 청소년을 비주체적이고 비자발적인 사람으로 길러왔다. 그러고는 20대가 되자마자 "투표 해. 투표 하지 않으면 민주 시민이 아니야!"라며 선거 참여를 강요한다. 투표하지 않으면 철없는 어린 놈 취급을 한다. 이른바 '20대 개새끼론'이다.
10대 시절 정치와 민주주의 '효능감'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20대가 되자마자 없던 효능감이 생겨나게 될까? 독일에서는 선거 후보들이 투표권 없는 청소년을 위해 학교에 가서도 선거운동을 한다고 한다. 청소년을 미래의 유권자로 여기며 그들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청소년을 민주시민으로 대우하지 않고 통제만 하려고 들면서, 성인이 되자마자 민주시민이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투표권 연령 하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어렵다면, 교육감만이라도 해당 지역 교육의 당사자인 청소년이 직접 뽑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먼저 이뤄진다면, 투표권 연령이 하향될 기대도 해볼 수 있다. 사실상 모든 것에 교육이 있고 교육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선 유관 기관 혹은 부서와 협력해야 하는 일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청소년이 자기 손으로 자신의 교육 정책을 잘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교육감, 국회의원, 시장, 대통령 등을 뽑게 될 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의 자격을 설정하지 않는 선거 제도를 원한다

▲ 지난 2월 18일 열린 제16차 촛불집회에서 청소년들이 18세 선거권 보장을 요구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 정대희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러 놓고 성인, 비장애인, 남성, 비성소수자, 동물이 아닌 인간의 의견과 처지가 주요하게 다뤄진다면, 선거를 과연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를 수 있을까? 다수자의 의견이 사회를 지배하고 소수자의 의견은 사장되기만 하는 현행 선거법은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르기 어렵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아름다운 수식어를 붙이려면, 평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어려웠던 정치적 소수자와 청소년들도 선거 날에는 자신의 의견을 대변할 후보에게 투표하며 민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우받을 수 있어야 한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제도로 인해 시민 자격을 박탈당했던 주인공 다니엘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현행 선거법은 마치 시민의 자격을 나누고 있는 느낌이다. 다수의, 다수에 의한, 다수를 위한 선거법. 이런 선거 제도라면 어차피 투표해 봤자 내 의견이 반영되지도 않으니까 차라리 투표를 거부하고 싶다.
나는 시민의 자격을 설정하지 않는 선거 제도를 원한다. 우리나라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귀하게 대우받고 싶다. 어떤 시민이든 동등하게 대우하는 선거 제도로 바뀐다면, 그날 춤을 추며 투표하겠다. 그렇게 된다면 선거 날은 나를 포함해 나와 정치적 입장이 같은 소수의 사람들이 소외받지 않는 문이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 하민 청년활동가, 우주당
* 상기 칼럼은 정치개혁공동행동 참여단체 활동가들의 자유로운 연재로 이루어지며, 오마이뉴스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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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역사기행1
서촌! 오래된 길, 그러나 신선한 길
글.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서울은 백제, 조선,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면 1,300년이 넘는 ‘수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1,000년 안팎의 거대 도시인 ‘메트로폴리탄’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몇 없다. 아테네, 로마, 마드리드, 이스탄불, 런던, 파리, 상하이 정도다. 이들 도시는 제각기 나름의 특색 있는 모습과 도시경관을 유지하고 있고, 지역마다 문화정체성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을 경험하려고 여행을 하고 친구를 사귄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역사도시 중 하나인 서울은 현재 자신의 역사와 문화의 정체성을 보여줄 곳이 거의 없다. 공항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동안 보이는 것은 현대식 건물과 도로뿐이다. 천년 이상 된 도시의 문화와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곳은 겨우 서울 한복판에 있는 경복궁, 창덕궁 등의 궁궐과 인사동의 뒷골목, 북촌의 한옥 밀집지구 정도, 그리고 경복궁 서쪽의 한옥마을 ‘서촌’이다.
사대부와 민중이 어울려 살던 곳, 서촌
한양 도성 내 각 지역은 권력 있는 집안의 대저택과 토지, 동일직종을 가진 관직자 계층의 집단 거주지가 되면서 서로 구별되는 지역적인 특색이나 생활양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양반 사대부계층의 권력 다툼이 심화되고 상공업의 발달, 신분제의 동요 등으로 사회분화가 진행되는 18세기 무렵에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따라서 어디에 사는 사람이라고 하면 따로 물어볼 것도 없이 그 사람의 신분과 가문, 직업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오늘날 강남에 사느냐, 강북에 사느냐에 따라 선입관을 가지고 보는 이치와 비슷할 것이다.
예를 들면 북악산 밑 북촌에는 노론(老論)을 중심으로 한 권문세도가들이 거주하였다. 자하문 부근 장동 일대에 자리를 잡고 살았던 안동 김씨 집안의 김창흡이 대표적이다. 그는 서촌 일대에 넓은 토지와 대저택을 소유했으며, 우리가 잘 아는 겸재 정선은 그 집안의 화가였다. 남산 아래 남촌에는 남인(南人)을 비롯하여 소론(少論) 등 몰락한 양반가문이나 무반(武班)등이 거주하였다. 연암 박지원이 지은 「허생전」의 주인공 허생은 몰락한 양반의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자세히 알아보면, 조선 시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북촌은 집권 세력의 거주지였고,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 ‘서촌’은 역관 등 조선의 전문직인 중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북촌과 남촌의 경계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던 청계천은 일반 주거지가 아닌 도성에서 대표적인 상업 지역이자 유흥가였다.
북촌과 남촌이 양반들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면, 청계천 지역은 시정상인이나 중인, 하급군인 등 중하층 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인 소위 여항(閭巷)이었다. 여항이란, 비권력층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서울의 인구증가와 도시 상업의 발달로 인하여 생겨난 중하층민들의 생활영역이다. 양반들이 거주하는 북촌이나 남촌과 같은 양반층의 거주지역과는 구분되는 지역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청계천 주변 지역에도 상류의 우대, 장통교와 수표교 어름의 중촌, 효경교 이하 왕십리 일대의 아랫대로 세분되었으며, 각각은 서로 직역을 가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서로 구별되는 지역적 특색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의 오랜 역사의 진정한 정주민의 생활 모습을 간직한 곳은 오히려 ‘서촌’이다. 사대문 안의 한옥 1,400여 채 가운데 300여 채가 서촌에 남아 있는 데다 이 지역 한옥은 북촌과는 다른 문화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서촌에는 북촌처럼 거주형 한옥만 존재하지 않다. 사대부와 일반 민중의 다양한 공간구조의 한옥과 집들과 어울려 있으며 다양한 민속, 즉 사람살이가 존재한다. 그 예로 과거에서 현재까지 살고 있는 사람들의 유무형적 형태가 존재하는데 무당집, 이름을 지어주는 철학원, 전통시장(통인시장), 도심 속 사찰, 그리고 오랜 명분을 이어오고 있는 작은 한옥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
1840년대 한성의 지도, 수선전도(首善全圖)
옛 모습을 간직한 마을 골목, 고샅길
조선 시대 서울은 유교적인 이상도시의 기준에 따라 설계된 계획도시였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하여 왼쪽에는 종묘(宗廟)가, 오른쪽에는 사직(社稷)이 배치되었으며, 궁궐 앞 대로(大路) 좌우에는 의정부(議政府와 육조(六曹), 한성부(漢城府) 등 주요 관청들이 들어서 있고, 동서의 종로와 남북대로 좌우측(창덕궁에서 종로, 종각에서 남대문)에는 시전 행랑(육의전)들이 자리 잡았다. 육의전이란 여섯 가지 주요 판매품인데 비단, 포목, 면주, 종이, 삼배, 어물이었으나 반드시 여섯 가지는 아니고 더 다양하게 변하였다. 이들은 소위 허가를 받고 일정금액을 국가로 세금을 내고 사업을 했던 상인들이다. 종로에 80년대까지 비단과 포목상점이 남아있었다.
한양도성 주변을 둘러싼 북악산, 인왕산, 목멱산, 타락산 네 산 아래는 오늘날로 말하자면 주거전용지역으로서 민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북악산 밑 북촌(北村), 목멱산 밑은 남촌(南村), 동쪽 타락산 밑은 동촌(東村), 서소문 부근은 서촌(西村), 청계천 주변 장통교와 수표교 일대는 중촌(中村)이라고 불렀다. 특히 서촌은 중인들이 모여 살아 대체로 북촌보다 한옥 한 채가 차지하는 필지가 작은 편이고, 겉으로는 한옥의 결구 구조가 소박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내부는 한옥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특히 고샅길로 불리는 좁고 긴 골목은 조선 시대의 전통적인 풍수사상의 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너비 2~3m밖에 안 되는 거미줄 같은 골목은 옛 도시 조직의 모세혈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 정겹다. 즉 마을의 골목인 ‘고샅길’이 잘 보존되어 있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전통의 모습과 대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전통을 그대로 전승하는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기 힘들지만 현재의 모습대로 생활하고 있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샅길은 직선이 아닌 곡선이다. 오늘날 문명과 도로는 우리에게 직선만을 강요한다. 새마을사업 이래로 정겨운 곡선 골목 고샅길은 폭력적인 직선으로 변해 버렸다. 한번쯤 쉬어가고 뒤를 돌아보는 곡선의 미학이 사람을 여유롭게 한다는 것을 서촌의 골목이 알려준다.
서촌 한옥의 특색
서촌 일대의 한옥은 규모가 매우 작은 한옥이며, ‘ㅁ’자 구조와 ‘ㄷ’자 구조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서까래나 대들보의 형태와 규모는 왜소하며 기타 부재(部材)의 사용과 부재의 결구방식도 격조 있는 한옥의 모습과는 매우 차이가 있다. 조선 초기나 중기의 큰 한옥은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 소실되었다. 중기 이후는 북촌과 아울러 서울 도성 안에 많은 관리들이 집을 지어야 하지만 북촌과 서촌 일대의 대지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작은 평수의 집을 약식으로 짓고 본가는 자신의 출생지인 향리에 번듯하게 지어놓고 필요할 때 귀향하였기 때문에 서촌 일대의 한옥은 왜소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현재 서촌 일대의 한옥은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집단 한옥, 소위 집장사 한옥이 대부분이다. 당시는 부재인 소나무의 고갈로 인해 전통 결구방식으로 집을 건축할 때 건축비가 상당히 소요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현상으로 인해 비슷한 규모의 한옥이 집단적, 획일적으로 대량으로 지어진다. 또한 한옥으로 집단주거지가 계획되기도 했다. 즉 서촌 일대의 한옥은 격조와 규모는 떨어지지만 우리나라 주택사의 한 과정, 즉 서민적, 경량화, 상업적 획일화된 한옥의 한 시대를 상징한다는 면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이후 전통 한옥은 점점 퇴락의 길로 갔으나 서촌 일대는 이러한 말기적 한옥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행랑채는 방을 들이면서 벽돌담으로 변했고, 낮은 담장은 벽돌로 높아졌고 기와지붕은 슬레이트(slate)로 변했지만 건축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한옥이 다수 존재한다.
서촌의 한옥은 비워지고 있었다. 비워져가는 한옥을 사람들이 살게 하고 그 속에서 생활의 주제가 되고 풍습이 전승되길 간절히 바랐고 노력했다. 그 결과 사람들이 돌아왔지만 천박한 자본과 함께 돌아와 기존 정주민을 내보내고 있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대신 서촌에 남아 있는 골목을 느리게 걸어보는 ‘길 박물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한옥과 골목이 존재하고 그 속에서 어울려 사는 사람이 있는 곳이 서촌이다.
조선 시대 후기 서촌의 모습
조선 시대 위항문학의 현장 ‘송석원’
서촌은 문화와 역사를 품고 있는 보물 창고다. ‘중인은 의학·천문학·지리학 등을 전공한 전문성 강한 전방위 지식인’이라며 ‘풍류를 즐기는 시문학 동인 등 문화공동체를 형성해 활약했으며, 바로 그들의 터전이 인왕산 일대’이다. 옥인동 47번지는 이런 문화공동체 가운데 하나인 ‘송석원 시사’(시 동인) 즉, 문인들이 주로 모이던 곳이다.
송석원(松石園)은 서인·중인 출신의 위항인(委巷人)들이 모여 살던 서촌(西村:지금의 인왕산 밑 옥인동 일대)의 소나무 숲 사이로 계류가 흐르는 곳에 도인 천수경이 정원을 짓고 살면서 추사 김정희가 쓴 편액을 걸고 불우한 시인들과 어울려 술과 시로 소요자적(逍遙自適) 하던 곳이었다. 당시 이곳에 출입하던 시인들을 송석원 시사 시인이라 일컬었으며, 후일에 흥선대원군도 여기에 나와 큰 뜻을 길렀다 한다. 김정희가 쓴 ‘송석원’이란 바위 글씨가 남아있었는데 현재는 빌라 건설공사로 콘크리트 밑으로 사라졌으나 발굴해보면 출토될 것으로 믿는다. 필자도 찾아보려 많은 노력을 했으나 아직 찾지 못했다.
조선 시대 진경산수와 겸재 정선
2017년은 겸재가 운명한 지 258주년이 되는 해이다. 미술계와 국립박물관은 2009년 겸재 타계 250주년을 맞아 그를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했으나 겸재의 주생활 무대였던 서촌 일대는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 겸재는 심사정·조영석과 함께 삼재(三齋)로 불리었다. 강한 농담(濃淡)의 대조 위에 청색을 주조로 하여 암벽의 면과 질감을 나타낸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으나 후계자가 없어 그의 화풍은 단절되었다.
이러한 겸재가 서촌의 인곡정사에서 기거하며 인왕제색도, 청풍계 같은 서촌의 경관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겸재는 우리의 산천을 직접 다니며 우리 시각으로 그린 진경산수의 명작을 여러 점 남겼는데, 특히 72세에 완성한 ‘금강내산(金剛內山)’은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의 암봉을 마치 한 떨기 흰 연꽃송이처럼 화폭에 담아내 진경산수의 결정체로 평가된다. 정선은 기이한 산천의 모습이나 안개 낀 풍경 등 머릿속으로만 상상한 경치를 그린 관념 산수화에서 벗어나 우리 산천을 직접 보고 그린 진경(眞景) 산수화를 완성했다. “정선에 와서야 우리 산수화가 개벽되었다” 라는 같은 시대 화가 조영석의 표현처럼, 그는 조선 300년 산수화의 전통을 깨고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낸 천재 화가다.
현재 서촌의 신교동은 겸재의 집인 인곡정사터가 존재하며 인왕제색도를 그린 자리는 서촌의 경복 고등학교 자리이다. 또한 청풍계는 지금의 청운동이다. 이 일대 역시도 서촌에 포함된다. 현재 이곳은 고층 건물이 비교적 없어 겸재가 그렸던 인왕제색도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 문명교류의 현장
조선 시대 중인은 의학·천문학·지리학 등을 전공한 전문성 강한 전 방위 지식인이었다. 그중 서촌에는 역관이 상당수 기거했다. 역관은 5개 국어에 능통했으며 7살 때부터 교육을 받았다. 이들의 출신성분은 서자였다. 따라서 아무리 훌륭한 성적과 업적을 내어도 고위직으로는 승진할 수 없었다. 자연히 송석원의 위항문학자들과 어울렸고 새로운 세계가 필요하였다. 역관들이 중국에서 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면 새로운 서적을 기다리는 무리가 있었으니 그들이 서촌 일대에서 활동했던 중인계급들이다. 이들은 지금으로 말하면 전문가들이었다.
이들이 읽고 논하고 쓰고 그리는 일상의 활동은 조선의 문명담론을 이끌어나갔다. 연암 형제들도 서촌에서 구입한 서학 책을 읽으며 새로운 세계를 개척했다. 현재 21세기는 문명담론의 시대이다. 혹자는 문명 간 충돌을 말하기도 하지만 문명은 끊임없이 교류하며 발전한다. 서촌은 근세조선의 문명교류의 생생한 현장이기도 하다.
송석원시사야연도(松石園詩社夜宴圖) 김홍도作
사람들이 모여 술과 시로 인생을 비롯한 여러 이야기를 나눈 곳이다. 실력이 있어도 세상으로 진출하지 못한 사람들이 저항(위항, 여항)의 시를 썼을 것이다. 어찌보면 서촌에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이 들어선 것도 이런 전통이 아닐까.
Jalaur River Dam Project and lives of the people
The Export-Import Bank of Korea (Korea Eximbank) made a contract in 2012 with the Philippine government to provide 250 billion won of the 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 (EDCF), the largest amount in Korean EDCF history, for the Jalaur River Multi-purpose Project Stage II (JRMP II). Korea Eximbank said it has applied EDCF Safeguard policy to JPMP II in the Philippines.
The indigenous people and local organizations, however, have opposed the project and carried out a movement raising awareness of various problems such as submerging communities, validity of procedures, human rights infringement on indigenous people and destroying the environment.
In April 2018, Ms. Remia C. Castor of TUMANDUK, Ms. Cynthia A. Deduro of Dagsaw-pgipnet and Mr. John lan S. Alenciaga of JRPM visited Korea to inform the negative impact of JRMP II. The group met with a lawmaker as well as officials from the Korea Eximbank and Daewoo Engineering & Construction. They had an open talk with Korean people and interviews with Korea newspapers.
People’s Solidarity for Participatory Democracy (PSPD) will continue to monitor against JRMP II. PSPD will work in solidarity toward to legislating a safeguard to prevent bad effects caused by large-scale development aid projects on environmental, social and human rights.
Jalaur River Dam Project Advocacy Trip
JRPM (Jalaur River for the People’s Movement)
SNS : www.facebook.com/notojalaurdam/
The Philippines visiting group
○ Ms. Remia C. Castor (Representative, the TUMANDUK Organization)
○ Ms. Cynthia A. Deduro (Executive director, Dagsaw Panay-Guimaras Indigenous People’s Network)
○ Mr. John Ian S. Alenciaga (Coordinator, JRPM)
Official Schedule
5 April 2018
[Meeting with Korea Eximbank]
Korea Eximbank introduced their JRMP II progress and their monitoring activities about environmental and social issues. Korea Eximbank said that they are well aware of the related concerns and problems, based on their 12 monitoring missions in the Philippines from 2015 to 2017.
However, they did not answer how they have solved the problems they identified through the monitoring nor how they reflected on the project the opposition of the residents. When PSPD asked Korea Eximbank to open their monitoring report, Korea Eximbank said they cannot because the ownership of the monitoring report was to the Philippine government.
On the other hand, it was positive to hear that Korea Eximbank may stop funding if the measures to minimize negative environmental and social impacts are not implemented in accordance with the EDCF Safeguards.

(Photo = JPRM)
[Open Talk] "Why does Korea ODA cause suffering in the Philippines?"
○ Date: 5th April (Thu) 2018, 7pm - 9pm
○ Venue: Space Noah Connect Hall
○ Panelist
- Voices from IPs / Ms. Remia C. Castor
· Translator from Local Language to English / Mr. John Ian S. Alenciaga
- Main Issues and Challenges of JPRM II / Ms.Cynthia Deduro
- Problems of Korea ODA in Philippines and Suggestion / Mr.Jung Bubmo (Professor, Bukyung University)
(Photo = PSPD)
6 April 2018
[Meeting with Daewoo Engineering & Construction]
Daewoo E&C has received a US$193 million to build a multipurpose dam in the Philippines.The advocacy group from the Philippines had a meeting with Daewoo to tell them about the negative impact of the dam will cause on their village.
Daewoo E&C answered that the meeting was a good opportunity to fully understand the issues and concerns. However, they also pointed out that the Philippine government has the responsibility to resolve the problems and that they are rather hesitant to clarify their position because they have not signed the final contract yet.
[Meeting with lawmaker]
The advocacy group visited the office of National Assembly member Shim Kijoon (Democratic Party of Korea), informed the issues raised by JRMP II and concerns of local residents and asked the Korean National Assembly to join in solving the problems.
Press release
5 April 2018 [Kyunghyang] “Please stop the dam construction funded by Korea”(Korean)
6 April 2018 [News 1] “Your taxes are being wasted in the Philippines”(Korean)
6 April 2018 [Consumer Business newspaper] The Controversy about Korea ODA Jalaur River Multi-purpose Project Stage II (JRMP II) in the Philippines (Korean)
9 April 2018 [Ohmynews] “Please don’t take our land and our life”(Korean)
15 April 2018 [Korea Herald] Locals call for stop to Korea's ODA protect in Philippines (English)
PSPD’s activities
2018.04.05 [Open Talk] Why does Korea ODA cause suffering in the Philippines (Korean)
2018.04.05 [Open Letter] A Briefing Paper on the Jalaur River Multi-purpose Project Stage II (Korean)
2018.02.28 [Pod Cast] Indigenous people are suffering because of Korea ODA (Korean)
2016.09.12 [Open Letter] Inquiries on ‘the Jalaur River Multipurpose Project stage II’ in the Philippines (English)
2016.08.02 [Column] The Struggles of the Tumandok and Ilonggos Against the Jalaur Mega Dam (English)
2016.07.18 [1st International Solidarity Mission in Jalaur River] Declaration of International Solidarity against Jalaur River Multipurpose Project Phase II (English)
특집2_결혼하지 않을 자유, 비혼
혼자여도 괜찮아
글. 이진송 계간홀로 편집장, 『연애하지 않을 자유』 저자
‘결혼공화국’, ‘연애의 시대’에 안녕들하신가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내가 서른이 된다면’이라는 주제로 수업 과제가 나왔다. 스무 살이 되면 성숙하고 세련된 어른이 될 줄 알았던 시절이니, 그보다 먼 서른의 삶은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여우원숭이의 그것만큼이나 낯설었다. 서른 살의 나는 집과 차를 소유하였으며 내 스타일의 남편도 있는(!) 커리어우먼이라고 썼다. 그때까지만 해도 결혼은 어른의 삶에 ‘당연히 있는’ 구성요소이자 필수적인 통과의례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알거나 만나는 사람들은 다 결혼했고, 모두들 “이제 시집가도 되겠다”라는 말로 나의 성장을 가늠했으며, 생리통 때문에 앓으면 “나중에 아기 낳으면 없어진다”라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친척 중에서 결혼하지 않은 삼촌이 한 분 있었지만 그는 ‘비혼의 가능성’보다는 ‘미혼의 비참함’을 담당하고 있었다. 자주 술에 취해 있었으며, 친척들은 가족이 없는 그를 걱정했다. 마치 그가 겪는 문제들이 결혼만 하면 사라지거나,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인하는 양.
드라마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조롱하고, 뉴스에서는 고독사의 공포를 부추겼다. 영화에서는 아이를 낳음으로써 ‘그렇게 아버지’가 되고, 문학의 세계에서는 사랑받지 못해 미쳐버린 ‘B사감’이 남의 연애편지를 훔쳐보고 있었다. 토크쇼에 나오는 중년 이상의 연예인들은 모두 결혼했거나 사별했으며 결혼하지 않은 이들은 반드시 결혼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14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비혼’이라는 단어가 ‘미혼’을 물리치고 공중파 뉴스에 진출하고, 정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만혼과 저출산, 그리고 개인주의자(라고 쓰고 이기적이라고 비난하고 싶은) 청년세대를 우려한다. 그러나 결혼공화국 또는 연애의 시대는 여전히 안녕, 안녕들 하시다.
인간은 원래 반쪽짜리도, 짚신도 아니다
5년 전, 나는 “남자친구 있으세요?”나 “왜 연애 안 하세요?”라는 질문에 지쳐 ‘비연애’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독립잡지 『계간홀로 :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창간했다. 연애하지 않는 상태를 비정상적인 것, 어딘가 하자 있는 것, 어서 ‘솔로탈출’해야 하는 감옥처럼 여기는 연애지상주의에, 에라이 침이라도 뱉어보자! 연애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구분되는 문화적 코드이고 사회적, 역사적 이데올로기가 반영된다. 결혼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이고, 그저 오래되었으며 ‘다들 하니까’라는 권위에 기댈 뿐이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3포 세대’는 이 세 가지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전제해야 가능한 명명이다. 상황이 나아지면 당연히 할 거라고 믿는, 포기가 아닌 ‘하지 않음’의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 연애와 결혼이 오로지 이성애의, 비장애인의, 가임기의 인구에게만 허용되며 그 외는 배제한다는 기만은 싹 지운 채로.
동아시아에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운명의 상대와 붉은 실로 이어져 있다는 미신이 있다. 플라톤의 『향연』에는 인간이 원래 둘씩 붙어 다니는 총체인간이었는데 신이 이를 찢어놓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헤드윅>의 넘버 ‘The origin of love’는 이 내용을 바탕으로 인간이 자신의 반쪽을 그리워하며 찾아다니는 것이 ‘사랑’이라고 노래한다. 한국 속담은 더 직관적이고 노골적이다. ‘짚신도 짝이 있다’처럼 우리 사회는 이렇게 인간을 ‘세트’로 전제한다. 개인은 젓가락 한 짝처럼 불완전한 미완성품이기에, ‘세트’를 맞춘 자들만을 바람직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승인한다. 내 새끼손가락은 텅 비었고, 나는 반쪽이 아니고, 인간은 짚신이 아닌데 말이다.
연애와 결혼이 반드시 행복은 아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손쉽게 연애와 결혼을 인간 생의 필수 요소로 규정한다. 연애/결혼하지 않는 사람의 하자를 확신하고, 하는 사람에게도 하자가 있다는 사실은 잊는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데이트 폭력과 가정 폭력이 발생하는지 설명을 좀 해봐요 네? 세상에는 해로운/착취적인/불평등한/폭력적인 연애와 결혼이 존재한다. 연애와 결혼은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고, 살면서 부딪치는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을 모조리 해결하는 만능열쇠가 아니다. 그러니 부디, “그러니까 연애/결혼 해.”라는 말로 누군가의 선택을 부정하거나 오롯한 1인분의 삶을 미완의 것으로 규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신성시와 낭만화를 걷어내는 일은, 우리의 선택지를 제한하고 삶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폭력에 저항하는 첫 번째 단계이다.
행복은 결혼이나 연애와 결합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붙어 다니지는 않는다. 어디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어떻게 살 것인지, 사람마다 기준과 목표와 삶의 색깔은 다 다르다. 이 결정권을 남에게 넘겨줘서는 안 된다. 20대 중반에 나는 생각했다. “연애하지 않아서 나는 불행한가?” 대답은 ‘아니오’였고, 그것은 세상이 나에 대해 하던 말과 달랐다. 내 스스로 나의 삶과 행복에 대해서 정의하면서 내가 소중히 하는 것과, 남들이 중요하다고 해도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가치들이 물에 뜬 기름처럼 선명해졌다. 원하는 대로 살려면 결혼은 필요 없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결혼은 내 삶에서 빠졌다. 유학이나 워킹홀리데이 같은 선택들과 함께.
사람들은 여전히 묻는다. “왜 결혼 안 해?” 한때는 구구절절 답했다. 그러나 그조차 나의 비혼을, 어떤 상태를 설득시킬 의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부터는 그만두었다. ‘하지 않을 자유’가 없는 ‘할 자유’는 오직 강요에 불과하다. 연애와 결혼을 하지 않을 자유가 없는 세계에서 살면, 나의 선택이 온전히 자발적인 것이라고 믿고 나의 ‘하자 없음’을 증명하라는 압박에 시달린다. 그래서 나는 비혼에서 자발과 비자발을 구분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은 예측불허고, 누군가는 비혼을 이야기하다가 결혼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결혼을 꿈꾸지만 미뤄지거나 안 하기도 하니까. 살다 보면 비혼은 그냥 결심하고 자시고 없이 자연스럽게 ‘유지’되거나 끝나기도 한다. 결혼이 삶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선택이라면 비혼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지속하려는 선택이다. 혼자 사는 시민을 위한 제도나 시스템, 사회적 인식은 그 사람이 언젠가 결혼을 할지 말지 여부와 상관없이 ‘현재의 상태’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 이외의 공동체 관계를 법적으로 승인하고 보호하는 「생활동반자법」 발의에 함께 관심을 기울여주었으면 한다.
결혼하지 않아도 불행하지 않을 사회를 꿈꾼다
앞으로 비혼인 나는 많은 제도에서 소외되고 불이익을 받을 것이다. 영원히 우선순위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코 묻은 돈을 붓던 주택청약통장을 깼다. 누구와 살든 그 동반자가 남편이 아니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위협을 받아도 ‘남편’이 개입하여 해결해주지 않는 여자는 더 많은 시비에 걸릴 것이다. 사람들의 걱정처럼 언제 혼자 외로운 죽음을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나는 더 많은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고, 공동주거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주거 모델을 고민해보고, 나를 잘 돌보고, 내 일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여기기로 했다. 몇 년 전에는 함께 살 집을 사려고 친구들과 돈을 모아 정기적으로 로또를 사기도 했다. 현실적이지는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도 ‘함께’인 미래를 상상하는 친구들과 무언가를 같이 한다는 사실 자체가 되게 좋고 따뜻했다. 그렇게 살 것이다. 고통받는 결혼한 친구들과 연대하며 제도의 부당함을 규탄하고, 더 많은 비혼을 위한 제도와 시스템의 개선을 요구하고, 새롭고 다양한 비혼 여성들을 드라마와 토크쇼와 영화에서 보여 달라고 아우성을 치면서. 나보다 어린 여성들의 눈에 띄는 비혼의 즐거운 예시가 되어서, ‘결혼하지 않아도’ 죽거나 사라지거나 비참하거나 불행하지 않은 여자로 충실하게 늙을 것이다. 어떤 열일곱이 문득 자신의 서른 이후를 상상할 때, 결혼하지 않는 가능성에 한 오라기의 실이라도 더 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둘이어도 좋지만, 혼자여도 괜찮다. 나는 오롯한 1인분의 삶, 나를 성실히 먹이고 돌보고 기르며 나와 잘 지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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