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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삼쩜일절’이라 읽는 세대에게…정우성이 묻고, 임헌영이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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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삼쩜일절’이라 읽는 세대에게…정우성이 묻고, 임헌영이 답하다

익명 (미확인) | 금, 2019/03/01- 11:36

정우성 묻고, 임헌영 답하다 

여성독립운동가 조명 영화 많다
‘암살’ 모델 남자현 열사 외에도
기생들 만세 동참·독립자금 대
독립운동가 가족 희생도 엄청 나
도운 여성들 훈장 주자는 말도

친일-친미 독재세력 이어졌는데?
지배세력 오랜 선거로 단련
개혁세력 더 치밀한 논리로 맞서야
혁명은 결국 국민의식 변화
극우파 5%로 줄이는 게 혁명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다. 문재인 정부는 3·1운동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2019년을 한반도 평화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때마침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평화의 마중물이 될 ‘제2차 북미회담’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고 있다. 3·1 독립선언서에 담겼던 ‘세계평화의 정신’이 100년의 시차를 두고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 정착이라는 결실로 맺어질 수 있을지 온 겨레와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한겨레>는 3·1운동 100주년의 현재적 의미와 아직 이루지 못한 친일청산의 중요성 등을 짚어보는 다양한 기획을 연재 중이다. 그 중 하나로 최근 각종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배우 정우성과 친일인명사전 편찬 등의 활동을 통해 역사청산 문제에 앞장서 온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의 대담을 마련했다. 이번 대담은 ‘정우성이 묻고 임헌영이 답하다’라는 주제로 27일 오후 용산구 청파동에 위치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진행됐다. 이날은 마침 1991년 창립한 민족문제연구소가 28살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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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우성-임헌영 대담

3·1운동과 난민인권운동 닮았나?
우리도 30여년 나라밖 떠돌아
이웃나라 도움으로 독립운동
나라 잃은 난민 돕는 건 당연

정우성(이하 정) 지난해 <한겨레>와 ‘난민 문제’ 관련한 인터뷰를 하다 평소 관심이 많았던 민족문제연구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연말을 맞아 존경하던 임헌영 소장님을 찾아뵈었다. 그 자리에서 이런 대담을 제안받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응했는데, 막상 이 자리에 오니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앞선다.

임헌영(이하 임) 젊은 독자들에게 3·1운동 100주년 이야기를 전하는 편안한 자리다. 오히려 저를 만나고 (정 배우의) 인기가 떨어질까 걱정이다. (웃음)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한반도 역사의 중요한 날에 소장님과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를 갖게 돼 기쁘다. 벌써 100주년이 됐는데, 3·1운동의 현재적 의미에 대해 소장님께서 한 번 짚어주시며 시작하면 좋겠다.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 100년을 기다렸을 것 같다. 지난 100년을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는 오히려 3·1정신을 매장하고 지우는 데 시간을 허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복 이후 분단과 독재정권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면 “3·1정신은 잊고 돈벌이 잘하고, 잘 먹고 잘살자”는 의식에 매몰돼 있었다. 100년 만에 제대로 3·1정신을 기념하는 자리니 그분들도 이제서야 제삿밥 먹어도 되겠다 싶으실 터다. 모든 언론과 정부 기관이 총동원돼 각종 행사를 기획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3·1정신이 무엇인지 의미를 되살리는 데 신경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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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오른쪽)과 배우 정우성(왼쪽)이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3·1운동 100주년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소아 기자 [email protected]

‘삼쩜일절’이라 읽는 세대에게?
독립운동한 분들 존경하라
친일사전 오른 이는 0.0176%
교장도 면장도 친일이냐 반발은
서민이 재벌 걱정하는 격

민족정신을 다시 한 번 다져야 하는 시점이라는 말씀으로 들리기도 하고, 그동안 기득권 세력들이 왜곡하고 폄훼한 독립 선열들에 대한 가치를 되새김질해야 한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불과 1년 반 전에 ‘광화문 혁명’도 일어났고 정부가 바뀌었다. 3·1운동의 정신과 촛불 혁명을 연관 지어서 그 의미를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소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3·1만세운동은 겉으로는 ‘고종의 장례식’을 계기로 했지만, “왕(고종) 만세”를 외친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외친 것은 “조선독립 만세”였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김으로써 한 왕조가 끝이 났고 미래와 희망이 사라진 시대였다. 하지만 국민 절대 다수는 이념, 신분, 학벌, 빈부의 차이를 넘어서 한마음으로 만세를 외치며 우리가 살아 있음을 선포했다. 광화문 촛불 혁명 때도 똑같이 모든 차이를 넘어서 모두가 하나였다. 당시 집회에서 만날 거라고 생각못했던 지인들을 만난 경우가 많지 않나. 이런 건 3·1운동 이후 거의 처음이 아닐까. 100년 만에 민중이 다 함께 촛불을 들었던 것이다.

3·1운동 당시 청년들이 많이 나섰다고 들었다. 당시 대다수 민중은 태극기를 본 적도 없을 정도였다던데. 광화문 때도 청소년들이 많이 거리로 나왔다. 당시나 지금이나 청년들이 나라를 이끌 주인공인데, 요즘 청년들은 먹고 사는 문제 등 고민이 더 많은 것 같다. 지금 청년들에게 3·1운동에 대해 가져야 할 가치관에 대한 당부 말씀을 해주신다면?

청년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항상 역사의 주역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신문화운동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청년들에게 “어른들 말씀 잘 듣고 가만히 있어라”라고 교육했다. 하지만 개화기를 겪고, 국운이 기울면서 청년들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됐다. 식민지 시대 독립운동에 앞장선 것은 결국 청년들이었다. 우리는 3·1만세운동을 떠올리면 항시 ‘민족대표 33인’을 말하는데, 그분들도 아마 청년을 비롯해 일반 민중들이 그렇게까지 들고 일어날 줄 몰랐을 것이다. 독립선언서가 굉장히 문학적이긴 하지만, 어렵기도 하다. 당시 그걸 읽고 완벽히 독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2%도 안 됐을 거다. 지금 대학 나온 사람들도 잘 못 읽을 정도인데. 독립선언서에 감화된 것이 아니라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고 나라 잃은 설움을 느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일어선 것이다. 어느 시대나 아직 타락하지 않은 청년들이 더 올곧은 역사의식을 가진 셈이다.

말씀하신 것처럼 당시 3·1운동에는 각종 직업을 가진 민중들이 다양하게 참여했고, 각자의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최근 출간된 <만세열전>(조한성 지음)이라는 책에서는 “3·1운동은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 100년 전 민초들이 이룩한 촛불”이라고 정의했다. 

제가 감동을 한 것은 당시 흔히 기생이라 불렸던 여성들이 만세운동에 많이 동참했다는 것이다. 그 여성들은 유흥업소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상류층의 부정부패를 더 많이 보고 알았다. 그리고 그분들은 당시 ‘일정한 수입이 있는 여성 직업군’이기도 했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그 여성분들로부터 상당히 많은 독립운동 자금이 전해졌다.

얼마 전 본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에도 유관순 열사와 함께 투옥된 기생 출신 여성 독립운동가가 나온다. 사회가 천시했어도 그분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했다. 소장님께서 여성에 관해 말씀을 해주셨으니, 자연스럽게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해보겠다. 영화 <암살>을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이 환기됐고, <항거>를 통해 유관순 열사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최근 정부가 유관순 열사의 서훈이 3등급에서 1등급으로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영화의 영향도 있었고, 그후 연구도 많이 이뤄져서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암살>의 실제 모델인 남자현 열사가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그간 선양사업이 남성 위주로 추진되면서 관심에서 빗겨나 있던 여성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고 기념하자는 취지의 행사나 흉상 건립 등의 기념사업도 이뤄지고 있다. 올바른 현상이다.(2018년 12월 기준으로 국가보훈처에서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 수를 보면, 남성은 1만5180명, 여성은 357명이다.)

반민특위와 친일청산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고 임종국 선생의 책을 읽다 보니, 가족의 희생이 엄청났다. 우리는 독립운동가 개인만을 기억하지만, 그 노력 뒤에는 믿고 옆에서 지지해 준 가족들의 희생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얼마 전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이 “독립운동할 수 있게 도운 여성들의 공적을 인정해서 따로 훈장을 줘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가족과 그 자녀들이 경제적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가부장제 사회였어도 가족들의 지지와 도움이 없이 독립운동은 못 했을 것이다.

사실 친일청산이 안 되면서 그 세력이 독립운동가 가족들도 많이 핍박했다고 들었다. 그 세력이 결국 친독재 세력으로 이어져서 우리나라의 정치·사회지형에도 엄청난 악영향을 미쳤다. 소장님만 해도 박정희 정권 시절 문인간첩단조작 사건과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에 연루돼 두차례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되시지 않았나. 이런 잘못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도 이어져 블랙리스트라는 이름 아래 문화예술가들도 많은 핍박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100년은 3·1정신을 지우고 역사적으로 매장시키는 데 소진된 시기였다. 분단 이후 친일세력이 그대로 친미세력으로, 이후로 독재 세력으로 이어지면서 대대로 지배계급으로 자리했다. 그들은 대대로 선거운동에 단련된 사람들이다. 가끔 “일제식민시대 때 우리 집안은 징역 간 사람도 없고, 다친 사람도 없고, 일본군 강제위안부 끌려간 사람도 없다”고 자랑삼아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생각해보면 그런 집안은 멀쩡한 집안이 아니다. 민주정권이 들어서고도 늘 수세에 몰리는 게 가슴이 아프다. 민주세력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비유하자면, 레슬링장에 레슬링 선수들이 버티고 섰는데, 거기에 무용수들을 집어넣고 싸우라고 해봐라. 싸움이 안 되는 거다. 과거로부터 지배세력으로 자리를 굳히고 선거에 단련된 세력들을 갈아치우려면, 개혁세력이 얼마나 더 논리를 세우고 독립운동보다 더 치열한 각성을 해야 하는지 깨달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가 중요한 시기가 아닐까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고 “이젠 다 됐다”는 착각 속에 다시 이명박·박근혜 정권으로 돌아가면서 국민들도 시대적 학습효과를 얻은 것 같다. 혁명이 끝나면 혁명이 완성됐다고 생각하는데, 혁명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 같다.

정권이 바뀐 것이 역사의 변수가 되기는 하지만, 저는 혁명이라는 것은 결국은 국민의 의식 변화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세계 시민으로서 가지는 의식 말이다. 인권의 중요성, 남녀평등의 중요성, 세계평화의 중요성, 환경의 중요성…. 이런 것들을 중심에 놓고 관심을 가지는, 그런 국민 의식의 전환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이다. 우리 사회엔 일부 극우파들이 있다. 극우파가 20%를 넘어서면 썩은 사회다. 한 사회에는 별종들이 많기 때문에 한 5% 정도 있는 건 봐 줘야 한다. 그건 다양성이다.(웃음) 그런데 20%가 넘으면 불행한 사회다. 그 세력을 5% 이하로 줄이는 것이 결국 혁명이라고 본다. 세월호 가족들을 보면서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보편적인 인간이고 맹자가 말하는 ‘사단칠정’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선천적이며 도덕적 능력과 인간의 자연적인 감정)인데, 그런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극우로 불러주는 것도 아깝다.

소장님 말씀에 동의하면서도 저는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우리 국민은 짧은 시간 안에 변화의 주체가 됐다. 친일·친독재 세력들이 물질숭배와 성장 우선 논리를 설파하고 젊은 세대의 역사교육을 단절시켰지만, 결국 우리 국민은 자연스럽게 미래를 올바르게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왔다. 젊은 세대들도 좀 더 현명한 길을 찾지 않을까, 저는 긍정적으로 본다.

동감한다. 우리나라는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를 하는 미국보다, 메이지유신 이후 제대로 된 정권교체가 거의 없었던 일본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정치의식을 갖고 있다. 이승만이 불과 12년, 박정희가 그렇게 독재를 했어도 18년밖에 정권 유지를 못 했다. 전두환은 간신히 임기 채웠다. 87년 6월 항쟁, 그 이후로는 5년 단임이다.

정우성 배우 주연한 ‘증인’ 봤다
“넌 자폐아, 네 말 못 믿어” 대사
“넌 빨갱이” 독재자 말과 겹쳐
차별적 색 입혀 말 못하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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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헌영 민족문제 연구소 소장(왼쪽)과 배우 정우성(오른쪽)이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진행한 ‘3·1운동 100주년 관련 대담’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백소아 기자 [email protected]

결국 1900년대 조선 역시 제국주의의 희생양이었다. 저는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활동을 하면서 난민 사태가 벌어지는 많은 국가를 가보면 그들은 역사적으로 제국주의의 희생양이었고, 그 후유증을 아직도 앓고 있다. 난민 이야기를 할 때 우리 독립운동가 이야기도 많이 하는데, 많은 이들에게 와닿지 않는 것같기도 하다. 소장님께서는 3·1운동과 난민 인권 운동의 연결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

나라를 잃은 우리 민족 모두가 당시 난민이었다.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국외에서 활동하면서 중국 사람, 러시아 사람, 심지어 일본 사람들 도움도 많이 받았다. 30여년을 나라 밖에서 떠돌며 고생한 우리 선조들을 도와준 다른 나라 사람들을 생각하면 우리도 지금 난민을 돕는 것은 당연하고 정당하다.

최근에는 조선어사전 편찬 과정을 다룬 <말모이>나 당시 일본인을 이기고 자전차대회에서 우승한 <자전차왕 엄복동> 등 총이나 칼이 아닌 다른 방식의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도 많이 나오고 있다. 소장님께서 보시기에 앞으로 독립운동에 관련한 작품을 만든다고 할 때, 어떤 점에 집중해야 할지 말씀해달라.

요즘은 영화·드라마가 끼치는 영향이 문학의 영향력을 넘어선 지 오래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도 한 회도 안 빼놓고 다 봤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젊은이들이 역사청산이나 독립운동에 관심을 갖는 건 훌륭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정신을 고취하는 음악인은 아직 안 나오는 듯하다. 이탈리아 베르디의 오페라가 가장 민족의식이 강한 음악으로 평가받는데, 국민의 역사적 정서를 일깨워주고 민족의식을 일깨워주는 음악을 하는 시대를 앞서가는 가수도 좀 나오면 좋겠다. 내가 문학평론가이기도 해서 글쓰기 강의를 제법 하는데, 항상 모든 예술은 젊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젊은 감각으로 소통하고 역사를 바라보는 젊은 시각을 제시할 수 있는 예술작품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젊어진다는 것은 시대의 핵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정 배우가 주연한 <증인>을 봤다. 자폐를 가진 아이가 주인공이더라. 영화를 보면서 “넌 자폐아잖아. 네 말은 믿을 수 없어”라고 하는 장면에서 독재자들이 “너 빨갱이잖아. 네 말을 믿을 수 없어”라고 했던 것이 겹쳐 읽히더라. 우리 정치가 그랬다. 진실과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차별적인 색을 입혀 말하지 못하게 하지 않았나.

소장님께서 민족문제연구소에 몸담고 계시기 때문에 자폐아 지우가 놓인 상황을 일제시대, 독재시대에 바른말을 하는 지식인들에게 말을 못 하게 했던 핍박으로 해석하신 듯하다. 감사하다.

이제 교육에 관한 문제로 옮겨가서 이야기를 해보겠다. 요즘 어린 학생 중에 ‘3·1절’을 ‘삼쩜일절’이라고 읽는 친구도 있다고 한다. 역사교육이 부족하다고 할 수도 있고, 밀레니얼 세대라 불리는 새 세대의 눈높이에 맞춘 소통방식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친일을 바라보는 시각도 “당시 친일은 어쩔 수 없던 일이다”라는 보수의 논리도 판을 친다. 어린 세대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교류해야 할까.

영화·드라마 통한 역사청산은?
‘미스터 션샤인’ 한회도 안빼고 봐
베르디같은 음악가도 나왔으면
모든 예술은 젊어야 한다젊다는 건
시대의 핵을 본다는 것

젊은 세대들에게 ‘애국’에 대한 의무를 말하고 싶지는 않다. 역사를 공부하고, 민족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너희들이 잘살기 위해서”다. 남의 나라에 업신여김받거나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짓밟히지 말고 행복하게 평화롭게 살려면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거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모든 사람이 한 건 아니다. 나머지는 독립운동을 한 사람을 존경할 줄 알면 된다. ‘바보처럼 왜 그렇게 살아’라고 하지 않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면 된다. 친일인명사전을 만들 때 ‘우리 할아버지가 당시 면장을 했고, 교장을 했는데, 친일이냐’고 반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지 않다.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인사는 4389명이다. 당시 조선 인구가 대략 2500만 정도였으니 0.0176%에 불과하다.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자의에 의해 친일을 했을 때”에 오르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인사를 걱정하는 것은 노숙자나 서민이 재벌 걱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마지막 질문드리겠다. 28일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한반도 역사에서 어떤 의미가 될지, 또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소장님 의견을 듣고 싶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큰 틀에서 보면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정착을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한국전쟁의 종식’이라는 ‘종전선언’, 더 나아가 ‘부전(不戰)선언’에 방향성을 두고 노력하면 된다. 기차를 타고 (평양, 신의주, 만주, 몽골, 러시아를 지나) 런던까지 갈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회담 결과가 어떻든 앞으로도 최대한 남북화해의 모드를 이어가야 하고, 무엇보다 미국이나 다른 주변 세력이 아닌 우리 민족의 이익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처해 나갔으면 좋겠다.

정리/유선희 기자 [email protected]

<2019-03-01> 한겨레 

☞기사원문: [영상] ‘삼쩜일절’이라 읽는 세대에게…정우성이 묻고, 임헌영이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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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섬마을 사찰, 징용자 유골 거둬들이며 추도식
해방직후 귀국선 난파로 숨진 희생자 유골, 고향 못가고 日 곳곳 전전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한때 일본 정부의 창고까지 가며 갈 곳을 잃었던 한국인 유골들이 일본 섬마을의 사찰에서 새로운 안식처를 찾았다.

나가사키(長崎)현 이키(壹岐)섬의 사찰 덴토쿠지(天德寺)는 31일 낮 한일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종교인 등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추도식을 열고 징용 희생자와 가족 등을 포함한 한국인 유골 131위를 이 절에 안치했다.

새 보금자리를 찾은 유골들은 지난달 중순까지 사이타마(埼玉)현의 사찰 곤조인(金乘院)에 있다가 일본 후생노동성의 창고와 다름 없는 보관시설로 옮겨지며 안타까움을 샀던 것들이다.

곤조인측이 내부 사정상 유골을 더 보관하기 어렵다고 밝히자 갈 곳을 잃었던 유골들은 덴코쿠지의 수용 의사 덕분에 이 절로 옮겨지게 됐다.

당초 일본 정부는 덴코쿠지 이전에 반대했지만, 일본과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압박을 가하자 결국 이날 덴코쿠지에 유골을 전달했다.

이들 유골은 해방 직후 귀국선을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다가 태풍으로 조난해 숨져 덴코쿠지가 있는 이키섬 등에 떠내려온 것들이다.

1976년 일본 시민들이, 1983년 일본 정부가 각각 이키섬과 인근 쓰시마(대마도·對馬島)에서 수습한 유골들로, 일본 각지의 여러 사찰을 돌며 보관됐다가 다시 이키섬으로 돌아와 덴코쿠지로 옮겨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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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정부로부터 강제징용자 등 한국인 유골 인계받는 한일시민들 (이키<일본 나가사키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31일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이키(壹岐)섬의 사찰 덴토쿠지(天德寺)에서 일본과 한국의 시민단체 활동가와 종교인들이 1945년 광복 직후 인근에서 숨진 강제징용자와 가족 등 한국인 유골 131위를 일본 정부 후생노동성으로부터 인계받고 있다. 이들 유골은 지난달 중순까지 사이타마(埼玉)현의 사찰 곤조인(金乘院)에 있다가 일본 후생노동성의 창고와 다름없는 보관 시설로 옮겨지며 안타까움을 샀던 것들로, 덴토쿠지에 안치돼 귀국 길을 기다리게 됐다. 2018.5.31 [email protected]

이날 추도식은 불경을 외우고 합장하는 불교식 법회와 유골 앞에서 술잔을 돌리고 두 번 절하는 한국식 제사 두가지 방식으로 열렸다.

니시타니 도쿠도(西谷德道) 덴코쿠지 주지는 추도식에서 “(1976년 수습 후) 42년간 떠돌아다닌 유골들이 귀국을 향한 큰 걸음을 걷게 됐다”며 “하루라도 빨리 유골들이 고향에 돌아가도록 한국과 일본 정부에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골을 덴코쿠지에 모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일본 시민단체 ‘유골봉환 종교자 시민연락회’는 이날 추도식 후 일본과 한국 정부에 유골의 한국 봉환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연락회는 “유골이 한국과 가까운 쪽인 이키섬에 모셔졌지만 귀향의 길로는 아직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는 그간 역사를 거울로 보고 스스로 경의를 갖고 유골봉환에 적극 나서야 하며 한국 정부도 그동안 방치했던 유골봉환 문제에 대한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단체들과 함께 유골을 덴토쿠지에 옮기는 일을 주도한 한국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의 김영환 팀장은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기쁨과 함께 나선 길에 태풍을 맞아 돌아가신 분들이 해방 72년이 지나도 아직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하루빨리 이분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일본 정부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도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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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나가사키 사찰서 강제징용 한국인 유골 131위 추도식 열려 (이키<일본 나가사키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31일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이키(壹岐)섬의 사찰 덴토쿠지(天德寺)가 한일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종교인 등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추도 법회를 열고 징용 희생자와 가족 등을 포함한 한국인 유골 131위를 안치했다. 새 보금자리를 찾은 유골들은 지난달 중순까지 사이타마(埼玉)현의 사찰 곤조인(金乘院)에 있다가 일본 후생노동성의 창고와 다름 없는 보관시설로 옮겨지며 안타까움을 샀던 것들이다. 2018.5.31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2018-05-31> 연합뉴스

☞기사원문: 갈곳 잃은 韓강제징용자 유골 131위, 日섬에서 새 안식처 찾다

목, 2018/05/3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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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사진 등 주요 자료가 화면에 표시됩니다.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시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주 작은이야기를 골라 다소 깊게 파보겠습니다. 100년 전과 오늘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추적하는 시간, 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미식가 5회 “골프, 친일귀족의 신선놀음”

출연 : 이순우, 김영환, 강동민

연출 : 임선화

금, 2018/06/0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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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얼마나 되나

日사찰 보관 유골 2천770위…오키나와 등 미발굴 유골 2만2천구
2004년 유골봉환 합의에도 일부만 반환…日정부 외면에 韓정부는 소극 대응

(이키<일본 나가사키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해방 후 70여년이나 흘렀지만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다 숨진 징용·징병자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어서도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1일 행안부 과거사업무지원단에 따르면 일본에서 발굴된 뒤 보관 중인 한반도 출신 징용·징병자의 유골은 2천770위에 달한다. 사찰이나 납골당 등 340여곳에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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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섬마을 사찰서 열린 강제징용자 유골 131위 추도식 (이키<일본 나가사키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31일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이키(壹岐)섬의 사찰 덴토쿠지(天德寺)가 한일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종교인 등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추도식을 열고 징용 희생자와 가족 등을 포함한 한국인 유골 131위를 안치했다. 새 보금자리를 찾은 유골들은 지난달 중순까지 사이타마(埼玉)현의 사찰 곤조인(金乘院)에 있다가 일본 후생노동성의 창고와 다름 없는 보관 시설로 옮겨지며 안타까움을 샀던 것들이다. 2018.5.31 [email protected]

행안부가 일본 정부의 정보 제공 등을 통해 파악하고 있는 일본 사찰의 유골들은 홋카이도(北海道)·도호쿠(東北) 480위, 간토(關東) 560위, 긴키(近畿) 200위,주부(中部) 570위, 주고쿠(中國)·시코쿠(四國) 220위, 규슈(九州)·오키나와(沖繩) 740위 등이다.

유골 봉환 문제는 지난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출신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골 반환에 합의한 뒤 한때 급물살을 타기도 했다.

합의 후 도쿄도 메구로(目黑)구의 사찰 유텐지(祐天寺)의 유골 423위가 2008~2010년 4차례에 걸쳐 봉환되는 성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이와 관련한 양국 정부간 교섭이 중단되면서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나마 봉환된 유텐지의 유골은 모두 군인과 군속(군무원)의 것으로 강제징용 노동자의 유골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부 간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는 사이 유골 봉환은 양국의 시민단체들의 노력으로 성사되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들은 지난 2015년 일본 북부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숨진 115명의 유골을 도쿄(東京)-교토(京都)-오사카(大阪)-히로시마(廣島)-시모노세키(下關) 등 강제로 끌려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경로로 한국으로 봉환했다.

한편으로는 아직 발굴이 안된 유골들을 찾아내서 한국에 봉환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한국과 일본의 관련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말 격전이 치러졌던 일본 남부 오키나와(沖繩)를 비롯해 남태평양과 동남아시아 등에는 조선인 군인·군속의 유골이 최소 2만2천구가 발견되지 않은 채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6년 3월 ‘전몰자 유골수집 추진법’을 제정해 2차대전 당시 전몰자의 유골을 국가 차원에서 발굴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유족의 DNA를 수집한 뒤 발굴한 유골과 대조 작업을 진행해 유골을 유족에게 찾아주고 있지만 한반도 출신자는 대상에서 제외해 한국인 전사자들의 유골을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찾아서 보관하고 있든, 아니면 앞으로 발굴해야 할 것이든 이들 두 부류의 유골 문제가 모두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은 일본 정부의 외면과 한국 정부의 무관심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사찰에서 보관 중인 유골을 한국으로 봉환하는 일, 전사자 유골의 발굴·대조 작업에 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하는 문제 모두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요청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밝히며 책임을 한국 정부에 미루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는 실무선에서 일본 정부와 접촉을 하면서도 아직 유골 봉환이나 발굴에 대해 공식적인 요청을 하지 않고 있어 일본측의 핑곗거리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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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시민단체, 일본 정부에 조선인 전몰자 유골반환 촉구 요청서 (도쿄=연합뉴스) 데라사키 유카 통신원 =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이하 보추협)가 8일 일본 정부에게 한반도 출신 전몰자의 유골 반환을 촉구하는 요청서를 전달했다. 사진은 보추협 사무국 역할을 하는 민족문제연구소의 김영환 대외협력팀장(오른쪽)이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일본 후생노동성 담당자(왼쪽)에게 요청서를 주는 모습. 2018.2.8 [email protected]

한국과 일본은 작년 12월 일본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의에서 유골봉환 문제를 협의하기로 했지만, 협의에 속도가 붙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8-06-01> 연합뉴스

☞기사원문: 日외면·韓무관심에 죽어도 고향 못가는 일제 징용·징병자 유골

※관련기사

☞SBS: 일제 징용·징병자 유골, 일본의 외면과 한국의 무관심에 죽어도 고향 못가

☞연합뉴스: 갈곳 잃은 韓강제징용자 유골 131위, 日섬에서 새 안식처 찾다

☞한겨레: 바다가 삼킨 해방의 환희…일본 섬에 잠든 조선인 131명 유골

☞한겨레: [특파원 칼럼] 그들은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까 / 조기원

금, 2018/06/0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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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06/0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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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도 넣어라. 그 책에서 내 이름 빠지면 그 책은 죽은 책이다’
 
친일문제를 연구하던 임종국 선생의 아버지가 선생에게 한 말이다.
선생은 아버지의 친일행적을 친일문학론에 실었고,
선생의 유지를 이어받은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에 “임문호”를 실었다.
 
“….1937년 4월 이후에는 청년당 당두로서 천도교중앙종리원 관정(觀正)에 선출되어…….일제 침략전쟁과 황민화 정책을 적극 후원하고 지원할 것을 독려했다…..”-친일인명사전에서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했던 아버지

아버지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낸 아들

진실을 밝힘에 있어 그 어떤 이해관계(비록 아버지일지라도..)도 철저히 배척하는 원칙주의자가 임종국 선생이다.

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써 내려갔던 그 날
임종국 선생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토, 2018/06/0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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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엔 100주년 기념식 개최 거절…현 정부 들어 재평가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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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피 300kg으로 만든 독립영웅 흉상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1일 서울 육군사관학교에서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제막식이 열리고 있다. 육사는 독립전쟁에 일생을 바친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 그리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탄피 300kg을 녹여 제작했다. 2018.3.1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의 산실이던 ‘신흥무관학교’ 설립 기념식이 처음으로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다.

3일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와 육군사관학교에 따르면 이들 기관은 오는 8일 오후 2시 육사 화랑연병장과 을지강당에서 신흥무관학교 설립 107주년 기념식을 연다.

기념사업회는 설립 100주년이던 2011년 처음으로 기념식을 열기로 하면서 육사에 개최를 요청했지만, 당시에는 제안을 거부당했다.

당시 서대문형무소에서 100주년 기념식을 연 기념사업회는 올해 2월 다시 육사의 문을 두드렸고, 올해 처음으로 육사 교내에서 기념식을 열게 됐다.

신흥무관학교는 1910년 3월 신민회의 국외독립기지 건설과 무관학교 설립 결의를 계기로 이듬해 6월 10일 ‘신흥강습소’라는 이름으로 공식 출발했다. 항일비밀조직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당시에는 ‘강습소’라는 간판을 달았다.

신흥강습소는 1912년 통화현으로 이전한 뒤 이듬해 건물을 신축해 신흥중학교로 개칭했다. 각지에서 지원자가 몰려오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다.

국권을 되찾기 위한 군 조직이라는 점에서 군의 효시라는 주장이 있지만, 여태껏 우리 군의 역사에 편입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변화 움직임이 나타났다.

문 대통령은 작년 8월 국방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의 전통도 우리 육군사관학교 교과 과정에 포함하고 광복군을 우리 군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육군사관학교에서 ‘독립군·광복군의 독립전쟁과 육군의 역사’라는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학술대회는 육군의 초기 역사를 재조명하고자 열린 것으로, 당시 육사가 독립군과 광복군 활동을 주제로 학술 행사를 연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올해 3월에는 독립전쟁에 나섰던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교내 충무관에 설치했다. 흉상은 우리 군 장병이 훈련으로 사용한 실탄의 탄피 300㎏을 녹여 제작했다.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겸하는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은 “최근 들어 육사는 학술회의 등 여러 사업을 통해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한 독립군, 광복군의 역사를 자신의 뿌리로 재정립하려고 하고 있다”며 “앞으로 해군·공군사관학교, 더 나아가 전군 차원에서 이러한 작업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육군 관계자는 “을사늑약 이후 국권 회복과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 바쳐 투쟁한 항일의병, 독립군·광복군의 역사와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mail protected]

<2018-06-03> 연합뉴스

☞기사원문: 신흥무관학교 기념식 육사서 첫 개최…’軍 효시’ 자리 잡나

월, 2018/06/0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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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칠승 의원, 친일반민족행위자 국립묘지 안장금지 및 이장 규정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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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충일을 이틀 앞둔 4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묘역에서 바라본 도심에 빌딩들이 보이고 있다.ⓒ뉴시스

오는 6일 제63회 현충일을 앞두고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국립묘지 안장을 금지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국립묘지 밖 이장을 강제하는 방안이 국회에서 추진된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경기 화성병)은 5일 이 같은 내용의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국가보훈처로부터 제출받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 국립묘지 안장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과 대전의 국립현충원에 ‘친일파’로 분류되는 인물이 무려 63명이나 안장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다고 결정한 사람 가운데 국립서울현충원에 7명(김백일, 김홍준, 백낙준,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이, 국립대전현충원에 4명(김석범, 백홍석, 송석하, 신현준)이 각각 안장돼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친일인사 중 서울·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경우까지 합하면 63명이 된다. 서울에 37명, 대전에 26명이 안장돼 있다.

그동안 과거사 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이들의 묘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곤 했지만, 이장을 강제할 법률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아 논의만 공전을 거듭해 왔다.

이에 대해 권 의원은 “현행법이 유지될 시 향후에도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다”며 “지금이라도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국립묘지 이장을 명할 수 있도록 하여 국립묘지의 영예성과 국민들의 자부심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김홍준은 2015년9월3일 63명 중 가장 최근에 안장됐다. 그는 만주군 상위, 간도 특설대에서 복무했고, 남조선국방경비대 총사령부에 근무하면서 순직해 안장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위패만 안장돼 있다.

백낙준은 연희전문학교 교수이자 기독교 신문 이사 및 편집위원의 친일행위를 했다. 제2대 문교부 장관을 지내며 국가사회공헌을 이유로 안장자격을 취득했다.

심응균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소좌로 활동했다. 광복 이후 육군 중장을 지내며 안장자격을 취득했다.

신태영 역시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중좌로 활동한 친일인사다. 한국전쟁에서 전북편선관 구사령관으로 참전하고 이후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이응준은 일본군 대좌 출신으로 시베리아 간섭전쟁에 참전했다. 한국전쟁 당시 수원지구 방위사령관으로 참전했으며, 이후 체신부 장관을 역임, 현충원에 안장됐다.

이종찬은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일본 정부로부터 금치훈장까지 수여받았지만, 한국전쟁 당시 육군 수도경비 사령관으로 참전,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이유로 현충원에 안장됐다.

김석범은 만주군 상위 출신으로 만주국 훈6위 주국장을 수여받았고, 백홍석은 경성 육군병사부 과장 출신으로 재향군인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송석하는 간도특설대 중대장 출신으로 만주국 훈5등 경운장을 수여받았으며, 신현준은 간도특설대 창설기간 장교를 지내고 만주국 훈6위 경운장을 수여받았다.

특히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김창룡은 일본 관동군 헌병 출신으로 항일 독립투사들을 잡아들이고 김구 선생의 암살을 사주하는 등 온갖 반민족행위를 저질렀지만 육군 특무대장을 역임, 현충원에 안장됐다.

권 의원은 “독립유공자와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국립묘지에 나란히 안장하는 것은 독립유공자에 대한 모욕이자 무원칙의 표본”이라며 “이번 개정안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흐트러진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18-06-05>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아직도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반민족행위자 63명, 강제 이장 추진된다

※관련기사

파이낸셜뉴스: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 무려 ’63명’

노컷뉴스: 권칠승 “현충원 안장 친일 63인 이장시켜야”..국립묘지법 개정안

화, 2018/06/0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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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Q.1 – ‘4.27 판문점 선언’, 그날의 소회
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
대담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 편집장)

※ 팟빵에서 오디오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4024

화, 2018/06/0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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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Q.1 – ‘4.27 판문점 선언’, 그날의 소회
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
대담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 편집장)

※ 팟빵에서 오디오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4024

화, 2018/06/0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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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Q.1 – ‘4.27 판문점 선언’, 그날의 소회
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
대담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 편집장)

※ 팟빵에서 오디오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4024

화, 2018/06/0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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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Q.6 –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이후 동북아시아의 질서 변화?

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식민지역사박물관)

대담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재단 편집장)

※ 팟빵에서 오디오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4024

목, 2018/06/0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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