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노동자의 목숨이 싼 값에 거래되는 진짜 이유 [프레시안 19/2/14]






계절에 한 번씩,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 문제를 꼼꼼하게 되짚어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자는 의미로 <노동과 건강>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번 책 발간이 늦어지고 매번 ‘반성문’을 쓰면서 책을 시작하게 됩니다. 4계절이 아니라, 여름/겨울만 있는 곳이라면 부담이 좀 줄어들 텐데 하는 헛된 상상도 해봅니다.
계절이 수십 번 바뀌는 동안, 노동건강연대가 줄곧 이야기했던 ‘기업 살인’. 이번 호에도 다시 한 번 특집으로 다루었습니다. 올 한 해 안타까운 산재 사망 소식이 들릴 때마다, 노동건강연대 기업살인대응팀에서는 열심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해서 회원들과 공유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지훈 활동가가 ‘2018년 기업살인 – 원하청 관계에서의 사망을 중심으로’라는 글을 써주었습니다. 우리 회원인 강원대 법대 전형배 교수의 초청 특강을 지상 중계한 ‘기업살인법, 비관과 낙관 사이에서 상상해 본다’에는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기업살인 특집 원고는 사실 여기서 끝나야 했지만, 현실에서 ‘기업살인의 마감’이란 없었습니다. 12월 청년 노동자의 비극적 죽음 앞에서 ‘2018년 겨울, 범인은 누구인가 - 김용균의 죽음 앞에서’라는 글이 덧붙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8년은 미투 운동의 해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직장갑질119, 시민건강연구소의 활동가, 연구원이 모여 노동의 관점에서 미투 운동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내용을 ‘미투의 시대, 일하는 여성의 세상에서 본 미투’라는 제목으로 지상 중계합니다.
<노동과건강>은 일하는 사람의 건강 문제를 다룬 해외 연구나 법제도, 사회운동을 꾸준히 소개해왔습니다. 이번 해외연구 동향 코너에서는 이주연 회원이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효과를 분석한 연구를 소개해주었고, 박진욱 회원은 ‘긱 이코노미’와 노동자 권리 투쟁 사례를 소개해주었습니다.
한편 2018년 하반기에는 보건의료운동과 관련한 여러 행사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을 찾은 페미니스트 노동보건과학자 캐런 메싱 교수의 강연회에 참석한 이나단 활동가, 미국의 의료영리화를 비판한 책 ‘코드 그린’의 북토크 행사에 참여한 한지훈 활동가가 각각 후기를 적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시민건강연구소의 김정우 연구원은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 대한 젊은 세대의 감상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원고 편집을 마무리하는 동안,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일보 전진이라 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노동자의 권리, 건강과 안전을 지킬 권리를 담고 있는 건조한 법 조항, 문구 하나하나마다 한 사람의 생명과 가족들의 눈물이 깃들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또 다른 김용균이 생겨나지 않도록 만드는 것, 노동건강연대가 나아갈 길이고 우리 남은 자들의 몫입니다.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상상조차 끔찍한 일이 바로 아이를 잃는 일일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닥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에 사는 우리는 유난히도 많은 젊은이들의 죽음을 목도했다. 그 곁에서 가슴 치며 오열하는 부모들의 모습도 먹먹하게 지켜봐야 했다. 그만한 크기의 아픔을 겪은 이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어느 표현대로 그저 ‘빈껍데기’의 삶일지도 모른다.
그 슬픔을 딛고 자식의 죽음 속에서 다른 젊은이들의 그림자까지 읽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죽음을 개인적 차원에서 닫아두기로 마음먹는다면 더 이상 괴로울 일은 적다. 그 죽음에서 사회적 의미를 읽어내는 일은 감당하기 버거운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쉽사리 구해지지 않는 답과 늘 싸워서 버텨내야 한다. 이유를 물어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들, 그건 네 탓이라며 폭언과 저주까지 서슴지 않은 이들과도 맞닥뜨려야 한다. 삼성 직업병 사건이 그랬고, 세월호 참사도 그랬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도중 숨진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49)는 어렵게 그 길을 택한 듯하다.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나서서 당당하게 발언하고 인터뷰한다. 어머니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너는 갔지만 엄마는 네가 원했던 그 뜻을 찾아 살 거야.” 바로 아들이 생전에 손팻말을 들고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자며 밝혔던 뜻이다. 비정규직을 없애는 일이고, 아들 또래의 청년들이 참혹한 환경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으며 또 목숨을 잃지 않는 일이다. 그 자신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아직도 하나뿐인 아들의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수립과 비정규직 직접 고용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대통령이 직접 해결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차가운 아들 용균이를 끌어안고 눈물을 삼키며” 아들이 숨진 지 44일째 태안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지난 1월27일에는 49재를 지냈다. 도중에 어머니는 또 울음을 터뜨렸다. 그 옆에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뇌종양을 얻은 한혜경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가 앉아 가만히 손을 잡고 함께 울었다.

■ “연쇄 살인범과 뭐가 다를까요”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김용균 씨를 포함해 지난 10년간 12명의 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했다. 지난해 12월11일 용균 씨가 숨지기 직전까지 3주 동안 한국에서는 하루 2명씩 최소 50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해마다 1000명가량이 일터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최근 5년간(2012~2016) 노동자 10만 명당 치명적 산업재해 수에서 한국은 2위인 멕시코(8.5명)를 제치고 11.35명으로 1위를 기록했다.
지난 5년간 5개 발전사에서 발생한 안전사고 346건 가운데 97%가 하청노동자 업무에서 발생했다. 조선·철강·자동차 등 51개 원청사에서 노동자 1만 명당 숨진 사내하청 노동자 수는 원청보다 8배가 높았다는 실태조사도 있었다. 멀게 갈 것도 없이 불과 1년 전에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열아홉 살 비정규직 청년이 숨을 거둬 온 국민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용균씨도 김군과 마찬가지로 먹지도 못한 컵라면을 남겼다. 그의 유품인 탄가루가 어지럽게 묻은 물티슈와 수첩을 바라보면서 많은 이들의 가슴이 먹먹했다. 금방이라도 풋내 나는 웃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앳된 얼굴의 청년이었다. 미세한 석탄가루가 수없이 날려 미끄러운 그 공간은 잡을 난간조차 마땅치 않았다고 했다.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 어두침침한 공간에서 물웅덩이와 턱과 장애물을 피해 육중한 컨베이어벨트 사이로 수시로 머리를 디밀어야 했다는 사실은 할 말을 잊게 만들었다. 사망한 지 4시간이나 지나 발견된 용균 씨를 구하러 갔을 때는 그가 떨어뜨린 휴대전화의 희미한 불빛이 간신히 그의 위치를 알려줬다고 했다.
용균 씨가 사망하자 업체에서는 “용균이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며 뒤집어씌우기부터 했다. 그러나 용균 씨는 긴 죽음의 터널에서 그저 발을 헛디뎠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나 바뀌는 것은 없었던 탓이다. 구의역 사고 이후에도 위험 작업에 대한 하도급을 금지하고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처 의무와 처벌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논의됐지만 흐지부지됐다.
용균 씨의 죽음 이후,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개정됐다. 법이 통과되는 순간 어머니는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들을 잃은 뒤 눈물 마를 날이 없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엷은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는 그 법 통과를 위해 연말 내내 국회에 있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을 만나 법안 처리를 호소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반대로 법안 처리가 지연되자 사흘 동안 국회에서 꼬박 논의 과정을 지켜봤다. “왜 이렇게 뭉그적거리냐”고 호통도 쳤다. “누가 이 법을 가로막는지” 똑똑히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법이 통과되고서야 어머니는 태안에 다시 와서 아들 사진 앞에 서서 말했다. “28년간 늘어진 법인데,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용균이 너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살릴 수 있게 됐다고…. 그래서 엄마가 너한테 조금은 할 말이 생겼다고. 용균이 네가 좋은 일을 했다고.”
용균 씨가 피켓을 든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좀 더 용기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거기서 헤어 나오고 싶었으면 저 피켓을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용균 씨 잘못이라는 말에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사진이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어머니는 사고 현장을 둘러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꼭 옛날 탄광 같았는데, 탄광은 무너져야 사고가 나지만 그곳은 들어가면 금방 사고가 날 것처럼 보였다. 그동안 10명이 넘게 죽었는데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걸 보면 “서부발전소 최고 관리자는 연쇄 살인범과 뭐가 다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용균 씨의 죽음으로 9~10호기는 멈췄지만 여전히 1~8호기에서 용균 씨의 동료들이 똑같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 친구들도 죽을 것만 같아서 그 친구들을 살려야만 용균이한테 조금이라도 얼굴을 들고 죄를 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비정규직에게도 법은 있었고 안전규정은 있었지만 적용되는 건 없었다. 용균 씨가 소속된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은 지난해에만 28차례에 걸쳐 안전설비 개선을 요구했다고 한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은 3억 원이 든다며 거부했다. “그냥 인간으로 안 보는 거죠. 그냥 일회용이고 물건인거죠.” 어머니는 말한다. “사람들은 왜 정규직을 원하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비정규직은 인간 취급을 안 합니다. 노예 취급 받고 삽니다. 그래서 생명이 위태로워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일하라고 하면 해야만 합니다.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회사(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정말 어렵다는 것을. 그래서 모두들 회사를 나가지 않는 한 일해야 된다고 용균이 동료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너는 살아야 한다”
사고가 나고 사흘 만에 용균씨의 어머니는 현장조사 공개브리핑에 나와 “저는 우리나라를 저주합니다”라고 말했다. 일하던 현장을 가보니 놀고먹는 한이 있어도 보내지 말아야 할 곳이었다. 비상시 운전을 정지할 수 있는 안전줄이 있었지만 홀로 근무하던 용균씨를 위해 당겨줄 사람이 없었다. 당겼다 하더라도 평소 느슨하게 늘어져 있어 반응속도가 느렸기에 제대로 작동했을지도 의문이었다. 용균 씨가 숨지고 난 뒤 안전줄은 팽팽하게 고쳐져 있었다. 통탄할 노릇이었다.
어머니는 원청회사를 향해 “너희들은 인간쓰레기”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분노했다. “사람이라면 그렇게 열악하고 험악한 곳에서 일 시킬 수 없어. 최소한의 인간성만큼은 지킬 수 있게 해야 했잖아. 할 수만 있다면 니들도 내 아들처럼, 똑같이 일하고 컨베이어 속에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어. 그래야 부모의, 감당키 어려운 고통에 갇혀 살아야 하는 것을 느낄 테니까.”
어머니는 “열심히 일하라”고 얘기했던 게 후회된다고 했다. 구의역 사고 때 숨진 김군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책임감 있게 키운 게 미칠 듯이 후회된다”고 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저 시킨 대로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이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에게 돌아오는 건 죽음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는 “화가 나 짐승처럼” 울었다. “서민은 아이를 낳아도 돈 있는 사람들의 노예로 살다가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 사고가 나도 책임지지도 않는 이런 나라에서는 아이를 낳지 말았어야 한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분노에 그치지 않았다. 아들의 동료들을 만날 때마다 끌어안고 “너는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지방노동청을 찾아가 1~8호기의 작업도 전면 중지해달라고 호소했다. 빈소에서 어머니는 세월호 가족협의회 사람들을 만났다. 산업체 현장실습 중 목숨을 잃었던 특성화고생 고 이민호 군의 아버지도 만났다. 어머니는 말했다. “같은 아픔을 가진 분들이라 가슴에 와 닿았다. 자식을 잃고 어떻게 살아갈까 막막했는데 이분들을 만나 살아야 할 목표가 생겼다. 대통령을 만나 아들의 소망을 전하고 억울한 누명 벗겨주고 목숨을 앗아가는 외주화를 막기 위해 싸우고 싶다.”
어머니는 400일이 넘게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에서 굴뚝 농성을 벌이던 파인텍 노동자들도 찾았다. 좌절하던 노동자들은 어머니에게서 희망을 발견했다고 했다. 나중에 굴뚝을 내려온 그들은 “우리 싸움의 돌파구는 김용균 동지가 그렇게 되고 나서 어머니가 완강하게 버텨주셔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열릴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관심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외치며 청와대 앞에서 기습시위를 했던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의 구속영장 발부를 앞두고 김 지회장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말한다. “하루에 6~7명, 1년에 2000명가량이 안전장치만 갖추어진다면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어 놓은 줄 아십니까? 자본가들과 일부 정치가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만들어 비정규직들을 입과 귀를 먹게 하고 손과 발을 꽁꽁 묶어놓고 아무런 대항도 못 하도록 해서 결국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용납하면 안 됩니다. 용서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나서서 싸워서 우리의 권리를 찾아야 합니다.”
■ 아들에게 전해 줄 반지
“신기해 가지고요. 작년에 3호기에서 사고가 났을 땐 기사가 조금 뜨고 지나갔는데 이번엔 이렇게 많이 떠서….” 용균씨의 동료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용균씨 사고 이후 고용노동부 등은 태안화력발전소에 대한 특별감독을 벌여 1000건이 넘는 법 위반 사항을 적발했다. 발전소에 과징금 6억7000만원을 부과하고 태안화력발전소와 하청업체 책임자를 형사 입건할 방침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산업안전보건법은 통과됐지만 정작 용균씨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상이 아니다. 하청을 주지 못하도록 하는 위험 업종에 발전사의 컨베이어벨트 점검 노동자는 빠져 있다. 책임자 처벌도 상한선은 있지만 하한선은 없다. 정규직 전환 역시 갈 길이 멀다. 정부는 갑작스럽게 정규직 전환이 진행되면 전까지 민영화됐던 영역들의 회사에서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고 보고 신중한 입장이다. 설 전에 장례식을 치르고 싶다는 어머니의 소원은 현재까지로는 이루기 쉽지 않아 보인다.
어머니는 “내가 사는 날까지 싸우고 이겨낼 테니 부당한 나라를 반듯하게 세우기 위해 힘을 모아달라”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집과 회사밖에 모르는 평범한 시민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라며 “구의역 사고 이후 작업 환경이 나아지고 관련자들이 처벌받은 것처럼 내가 싸워서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다”고 말한다.
용균 씨가 숨지고 나서 찾은 그의 기숙사 방문 앞에는 생전에 갖고 싶어 했던 ‘반지의 제왕’ 반지가 택배로 배달돼 있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좋아했던 용균 씨가 그 반지를 사 달라고 했던 것이 기억나 어머니는 또 마음이 아팠다. “하루만이라도 더 살았다면 그 반지 끼워봤을 텐데… 죽은 아니 손가락에 끼워주면 아이는 알까요? 좋아할까요? 가슴이 미어집니다.” ‘반지의 제왕’ 반지를 사 주진 못했지만 어머니는 적어도 용균 씨에게 반지만큼이나 좋아했을 값진 선물을 이 세상에 남기려고 한다.
아들 전태일이 죽은 뒤 노동자의 어머니가 돼 노동운동에 헌신한 이소선 여사가 그랬다. 딸 황유미 씨가 죽은 뒤 11년이 걸려서야 기어이 삼성의 사죄와 책임 인정을 받아낸 아버지 황상기 씨가 그랬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세월호 참사 유족들도 아직 고통 속에서 더 이상의 거대한 사회적 비극이 탄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도 용균 씨의 동료와 친구들이 더 이상 같은 비극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길고 힘든 여정이 기다리는 벌판 위에 섰다.
어머니는 <시사IN> 인터뷰에서 두렵거나 그만두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저는 가진 걸 다 잃었잖아요. 애 하나가 전부였는데, 그걸 잃었으니 두려울 것 없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한들 기쁘지도 않을 겁니다. 저를 위해 산다는 것보다 이 사람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야 되겠기에 나섰습니다.”
■ 참고자료
[시사IN]“아들이 남긴 숙제는 죽음의 고리 끊는 것”
[이투데이] 끝나지 않은 엄마의 싸움…故김용균 어머니 “책임자 처벌해야 장례 치를 것”
[경향신문] 고 김용균씨 어머니 “아들에게 조금은 할말이 생겼다···그런데 이렇게 끝날까 두렵다”
[오마이뉴스]”그토록 원하던 반지가 왔는데… 죽은 아들에게 어떻게 전해주죠?”
[오마이뉴스]”잡아도 소용없는 안전줄… 화가 나 짐승처럼 울었다”
[노컷뉴스]故김용균씨 어머니 “마지막 CCTV보니…얼마나 무서웠을까”
[노컷뉴스]故김용균 어머니 “문재인 대통령 만나서 꼭 듣고 싶은 말은..”
[한겨레] 2명 중 1명이 또 다른 ‘김용균’…“사고 현장 무서워서 못간다”
[한겨레] 최근 3주새 50명 사망…‘김용균’은 우리 사회 도처에 있다
[서울신문] “저는 우리나라를 저주합니다” 태안화력 고 김용균씨 어머니의 절규

노동과건강 2019 첫 호
특집 기업살인
2018년 기업살인 – 원하청 관계에서의 사망을 중심으로 / 한지훈
기업살인법, 비관과 낙관 사이에서 상상해 본다 / 전형배
2018년 겨울, 범인은 누구인가 - 김용균의 죽음 앞에서 / 전수경
기획좌담
김명희 / 편집위원장
이 을 / 한국여성노동자회
전수경 / 직장갑질119
김성이 / 시민건강연구소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효과가 있었나 / 이주연
긱 이코노미와 노동자 권리, 끝나지 않는 투쟁 / 박진욱
노동자와 대화하지 않거나, 노동 현장을 관찰하지 않을 때 연구자에게 일어나는 일
국가부도의 날: 누구의 위기였고 누구의 기회였나 / 김정우
의료영리화가 지워버린 간호사의 목소리 - 『코드 그린』 북토크 참관기 / 한지훈
김용균의 죽음이 남긴 질문, ‘안전’이 아닌 ‘정치’의 의미를 물어야 한다 / 이상윤
특집 기업살인
2018년 겨울, 범인은 누구인가
- 김용균의 죽음 앞에서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 진행자 : 2016년 구의역 사고 이후에 노동자를 위한 법안, 안전을 위한 법안이 왜 국회에서 계속 통과가 안 됐다고 생각을 하세요?
▶ 우원식(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 하나는 재계에서 반대가 아주 심했습니다. 이렇게 저희는 이런 위험한 사업장,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고 또 위험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직접 고용을 하자, 이것을 하청이나 도급을 주지 말고 직접 고용하자는 법안을 낸 건데요. 그렇게 고용 형태를 제안한 것은 기업에 부담을 준다고 해서 경영계에서 반대가 아주 심했죠. 그런 것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국회 안에서는 야당들, 그러니까 그때로 보면 정부 여당이었는데 한나라당이 굉장히 이 부분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죠.
우원식 의원은 이어서 "위험한 업종을 원래는 정규직, 원청의 정규직이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위험한 업종이니까, 상식적으로. 그런데 우리나라는 구조가 그 위험한 업종을 외주를 줘요" "그 외주를 받은 업체에는 비숙련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한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이게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 라고 계속해서 설명해 준다.
하청노동자가 사망하는 이유를 국민들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해서 가르쳐주는 것일까. 국회의원의 할 일은 무엇일까. 정치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설명할 수는 있다. 여당의 국회의원이 남 탓만 하고 있으니 문제다. 유체이탈이 계속 되니 책임의 구조 자체를 망각한 것인지 모르겠다.
여당 국회의원이 기업과 야당의 반대로 법안을 만들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죽은 노동자의 어머니가 국회 안 복도에 웅크려 두 손을 모은 채, 아들과 같은 죽음을 막고 싶다며, 법안통과 소식을 기다리는 모습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활동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머니께서 오셔서 이 과정의 마지막까지 함께 하셨기 때문에 법안이 처리된 것입니다"
"마음이 참담하실 텐데, 어머니 공이 크십니다. 아드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죽은 노동자의 어머니가 집권여당의 대표와 의원들로부터 감사인사를 받는다. 기사에는 취재진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며, 여야 실무 협상을 맡았던 집권당 간사 의원이 "어머니 더 이상 많이 우시면 안 돼요" 라고 노동자의 어머니를 달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전한다.
이것은 미담인가? 이 기사를 작성한, 촬영한, 뉴스로 송출한 모든 언론사에 묻고 싶다. 슬프지만 훈훈한 현장으로 묘사하고 싶었나?
2018년 12월 27일에서 28일의 아침까지 이른바 ‘김용균법’,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통과를 둘러싼 여야의 협상 과정을 전하는 기사들의 드라마틱한 논조는 이 기사가 팔릴 것이라는, ‘상품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흥분에 들떠 스펙터클을 전하는 취재진들의 키보드 소리가 잦아진 자리에서 집권여당은 원청인 서부발전에, 노동부에, 산업자원부에, 청와대에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나? 정치는 그 시점부터 시작될 것이고, 어머니의 웅크린 등에 응답할 진심이 있는지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만 드러날 것이다.
12월 11일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이 있기 전까지 2018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노동의 관심 밖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경영계만이 움직였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주요 대기업 114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도급작업에서 산재가 일어나는 원인은 '작업자 부주의'(57.0%), '안전보건조치 부족'(25.6%), '위험한 작업 공정'(8.1%), '안전보건교육 부족'(3.5%), '기계·설비 결함'(1.2%) 순이라고 한다.
하청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서는 '수급사업체의 안전보건 전문성 확보방안 강구'(44.2%), '도급인의 안전관리 책임강화에 비례하는 수급인 근로자 관리 권한 부여'(34.9%)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급박한 위험 시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는 안에 대해서는 '산재 발생 우려의 정의가 모호해 현장 혼란 및 노사갈등 우려'(54.4%), '급박한 위험이 아니어도 긴급대피권이 남발될 우려'(27.2%)를 제기했다.
노동자 사망에 사업주 징역형을 높이고, 법인에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10억 원 이하'로 올리는 안에 대해서는 '근로자 부주의·과실에 비해 벌칙이 과도하다'(57.0%), '규정이 너무 많아 모두 준수하는 것이 어렵다'(21.1%), ‘경영상 손실 고려 시 과도하다'(2.6%)’ 등 80%가 넘는 기업이 지나친 조치라고 응답했다.
산재는 하청기업의 전문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노동자의 잘못으로 일어나며 원청기업의 책임을 묻고 싶으면 하청노동자에 대한 관리 권한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청노동자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하더라도 불법파견으로 시비 걸지 말라는 뜻이다. 노동자의 안전의식 수준을 묻고는 안전의식이 낮다는 응답이 56.1%, 높다는 응답이 7.4%였다고 보고를 마무리한 것은 화룡정점이라 하겠다. 조사는 노동자의 부주의로 시작해 낮은 안전 의식으로 마무리된다. 산재는 노동자의 잘못으로 시작해 노동자의 잘못으로 끝난다.
이 조사가 114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우리가 주장해 온 ‘기업살인법’, 매년 진행해 온 ‘최악의 살인기업상’은 응답 없는 공허한 이벤트에 불과했음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경제계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기업에 막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 등에 이은 또 다른 시한폭탄"이라고 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대한민국의 기업에게 이런 위상을 갖게 되었다니 영광이라고 해야 할까.
김용균 노동자가 2018년 12월 11일 새벽, 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여 사망한 후 원청 한국서부발전이 보여준 반인권적 사고수습 과정은 한국의 공기업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명을 얼마나 가벼이 여기는지 증명한 적나라한 현장이었다.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보도하는 언론들 중에는 사건의 본질을 은폐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기사들을 끼워 넣기도 하였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 한국발전기술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다 숨진 고(故) 김용균(24)씨의 사고의 쟁점이 시민단체 및 정치권에 까지 확대되고 있다.(중략) 이를 두고 시민단체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관철될 때까지 촛불집회를 개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중략) 한편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소 임직원과 고 김용균 씨가 근무했던 협력업체 임직원 등은 사고 다음 날 빈소를 찾아 조문하려고 했지만, 유족과 직장동료들에게 저지당해 발길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균의 사망 후 공기업으로서의 기업윤리는커녕 ‘돈이 먼저, 사람(하청노동자)은 돈을 위한 도구’ 라는 한국사회의 지옥을 보여준 한국서부발전 경영진이 국민의 분노에 놀라 황급히 장례식장을 찾았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여러 정황상 언론은 한국서부발전 경영진, 나아가서 이 문제의 관리책임이 있는 산업자원부에 대해서 더 많이 취재하고 발언을 이끌어냈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모든 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 같은 위험한 설비를 점검할 때 2인1조로 근무하게 하고, 낙탄 제거처럼 위험한 설비 주변에서 하는 작업은 설비를 정지시킨 뒤 시행하도록 하고, 경력 6개월이 안 된 직원은 단독작업을 금지하고, 개인 안전장구를 완벽히 갖추도록 하겠다고 했다. 위험시설 주변 안전장치를 보완하고 비상정지스위치 작동상태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답은 암기과목 정답처럼 이미 나와 있다. 그런데 이 정도의 기술적인 안전 조치를 현실에서 실행에 옮기려면 인력이 두 배가 되어야 하고, 예산이 늘어야 한다. 김용균 노동자의 동료들은 정부와 언론이 마치 대단한 해법이라도 찾은 것처럼 2인1조를 말할 때 그 현장의 노동자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2017년 11월 현장실습 도중 사망한 제주도의 이민호 학생을 기억할 것이다. 그로부터 1년 후 제주도 교육감은 제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억울한 심경’을 전했다고 한다.
‘학교에서의 안전문제를 어디까지 봐야하나 고민된다, 학교는 일상적인 안전, 스스로 자기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에 목표를 둬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무슨 고민이 된다는 것일까. 실업계 고등학생이 교육 중에 사망한 사건에 대해서 저런 애매한 말솜씨가 왜 필요한 것인가. 이 문제의 일차적인 해결 방법은 현장실습제도에 대해서 들여다보고 찾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있다. 안전 문제를 제기하면 아이들이 제대로 실습을 못해서 피해를 보고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교육감이 협박처럼 이야기한다. 반복해서 학생들이 사망해 왔는데도, 현장실습 제도에 대한 책임감을 찾아볼 수 없다.
이민호 학생의 사망 이후 적어도 학생이 사망할 수도 있는 현장실습제도 자체는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었다. 새로운 직업교육시스템으로 교육당국이 방향을 전환하지 않을까 조금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아니다. 학생이 죽을 수도 있는 산업체에 가서까지 직업교육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교육당국의 대답은 그렇다, 그렇게 해서라도 현장실습을 가야 한다.
실습학생의 죽음에 대하여 학교에 묻는 것은 억울하다는 생각을 가진 교육 당국의 책임자.
학생신분으로 공장실습을 하고 다시 노동자로 공장으로 가게 된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자 용기를 냈을 때 어떤 극우정당 국회의원이 던져놓은 말에 대해서 뒤늦게 알게 되고, 아프게 곱씹어 보게 될 까 두렵다.
"어디 싸구려 노동판에서 왔나. 어디서 와서 싸구려 말을 함부로 하고 있어" -지난 해 11월 자유한국당 박순자 의원이 다른 당 의원과 말싸움을 하다 뱉은 말이라고 한다 -
“김용균씨 사건으로 비용절감 이데올로기 아래 구조화된, 존재 파괴적 기업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사람의 소모품화를 억제하려는 ‘사람 중심 사회’론이 모처럼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노력에 긍정적 평가를 내릴 만하다.
... ‘대속’이라는, 오늘날 그리스도교적 적폐처럼 간주되는 교리, 그것의 개념적 뿌리에는 어떤 이(들)의 고통에 직면해서 그것에 공감하는 이들의 성찰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된다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김용균씨 사건에서 그 원초적 믿음의 현상을 재발견할 수 있었다. 김용균씨로 인해 우리는 고통당하는 이들을 공감하는 노력에 동참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간 무감각하게 살던 우리가 구원받는 자의 대열에 서게 되는 체험이며, 그 덕에 2018년을 마감하면서 우리가 받은 하나의 구원체험이다. “
그리고 여기, 진보적(?) 기독교인이 쓴 칼럼을 읽는다. 사회적 고통에 대하여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공동체의 선한 의지를 고양하려는 종교인의 진심을 믿는다. 그런데 난감하다. 난처하다. 죽은 김용균의 옆 자리에서 여전히 컨베이어 벨트를 돌며 검은 낙탄을 치우고 있는 동료들이 이 글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용균의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 저런 글이 쓰여졌다는 것을 모르셨으면 좋겠다.
김용균 노동자의 동료는 말한다.
“어머니가 지금 계속 언론에 하고 싶은 얘기는 제발 TV 카메라로 저를 찍지 말고 당신을 찍지 말고 그 사고 현장을 찍어 달라.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어서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에게 보여 달라. 그러면 이게 사람이 일할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국민들이 알 거라고 이렇게 얘기 하십니다”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말한다.
“엊그제 사고소식을 들은 것 같은데 어느덧 49재가 되었습니다. 49재는 이승하고 작별하고 저승으로 가는 날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시신을 냉동고에 놔두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도 비참합니다. 아직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정규직 전환하는 것들을 무엇 하나 이룬 게 없는 실정입니다. 24살 쳐다 보기에도 아까운 아들입니다. 아직 다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입니다. 용균이가 일했던 험악한 현장 상태와 너무도 처참하게 생을 마감한 아들을 생각하면 내 가슴에 맺힌 한은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너무도 억울하고 분한 마음, 내가 죽는 날까지 자본가를 원망하고 이 나라를 원망할 것입니다.”
김용균을 죽게 한 범인은 누구일까.
김용균의 어머니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는 이들은 누구일가.
어머니가 용서하지 말아야 할 이들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누구에서 누구까지인가.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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